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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무형문화재에 대한 사회적 예우/이세섭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이사장

    [열린세상] 무형문화재에 대한 사회적 예우/이세섭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이사장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제공하는 ‘무형문화재 이야기’가 18일부터 한 포털 사이트에 게재되어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첫 문을 연 주인공은 중요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 기능보유자였던 고(故) 최은순 선생 이야기다. 매듭에 관한 기록과 장인의 세계를 다양한 시각으로 조망하여 보여주고 있다. 용도에 따라 매듭의 종류를 사진작가가 촬영한 화려한 사진과 함께 보여주고, 최 선생이 직접 사용했던 작업도구와 사진을 이력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매듭이 갖는 미학적 가치와 한국문화에서 갖는 의미, 매듭에 관한 오랜 기록에 대한 소개도 알차게 들어 있다. 이를테면 최 선생과 매듭에 대한 사이버 박물관인 셈이다. 최 선생의 매듭 인생은 역시 중요무형문화재 매듭장 기능보유자였던 남편 정연수 선생과의 만남에서 시작됐다. 1917년생인 최 선생은 서울 아현동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 인천으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자랐다. 21세 때 13살이나 많은 서른네 살의 매듭장 정연수 선생과 결혼하면서 매듭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단순한 생업 때문이었다. 시댁은 매듭장들이 많이 사는 서울 광희동에서 4대째 살아왔으나 세습적인 매듭장인은 아니었다. 또 시집 올 당시에는 남편 정씨가 광희동 옆 동네인 신당동에 살았는데, 신당동에서 매듭 일을 하는 집은 정연수 선생 댁뿐이었다고 전해진다. 최 선생은 이곳에서 생업을 위해 남편에게서 매듭을 배우게 되어 자연스레 ‘매듭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1960년대 말까지는 주로 유소와 술을 많이 제작하였고, 1974년 정 선생이 타계한 이후부터는 노리개 종류의 매듭을 주로 하였다. 1976년에는 남편에 이어 최 선생도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어 뒤를 잇게 된다. 부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매듭장 기능보유자가 된 것이다. 2009년 노환으로 별세하기까지 90세가 넘도록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한·중·일 3국 국제매듭전,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작품전 등 활발한 활동으로 우리 매듭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렸다. 최 선생이 작고한 뒤로는 딸 정봉섭 선생이 전수받아 2006년 보유자로 인정되었고, 외손녀인 박선경 선생이 대를 이어 전수하고 있다. 이러한 내력의 최 선생 이야기가 포털 사이트에 게재되자 우리의 매듭에 대한 미적 가치와 유래 및 용도 등에 대한 새삼스러운 관심으로 독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게재 첫날 하루 동안 수십개의 댓글이 달리고 조회 수가 1만여건에 달하고 있다. 이 포털 코너에서 소개한 여느 인기 콘텐츠 못지않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 내용도 다양하다.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내용에서부터 외국인에게 보여주고 싶다거나 백화점의 명품보다 더 명품이란 찬사가 줄을 잇고 있다. 실을 염색하여 풀고 짜고 엮으며 섬세한 솜씨로 결실을 거두어 내는 매듭 예술을 장인의 이야기와 함께 사진을 곁들여 보니 할머니나 어머니가 차고 있거나, 할머니 방에 걸려 있던 예전의 매듭과는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평생을 전통문화의 전승을 위해 간난의 길을 걸어온 장인들의 작품이나 작품도구, 재료 등을 전시하고 연구하는 변변한 박물관 하나 없는 현실에서 ‘사이버 박물관’을 통해 만난 장인과 이들의 작품, 작품도구에 대한 ‘관람객’(독자)의 감동은 어쩌면 당연한지 모르겠다. 하지만 무형유산에 대한 현실은 어떤가? 장인이 만든 전통공예품보다는 백화점의 명품이 더 수요가 높고, 명인들의 소리와 몸짓보다는 현대 오페라나 뮤지컬 소비가 더 큰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까? 이러한 독자들의 반응들이 모아져서 이분들의 예술세계와 삶의 내력, 장인정신을 조망하고 기리며 예우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들이 좀 더 세심한 배려 속에 형성되어 갔으면 한다. 한 시대 최고의 예술가들이었지만 살아생전 단 한번의 전시회도 갖지 못한, 이미 고인이 된 이분들의 삶의 모습을 담은 소박한 박물관이나, 자유로운 창작과 판매를 위한 공방촌이라도 하나씩 세워 나간다면 이분들의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게 될 것이며, 그 재능과 삶은 문화자원이자 관광자원으로 더욱 풍성해지지 않을까 싶다.
  • [영화프리뷰] ‘양과자점 코안도르’

    삶이 지치고 힘들 때, 한 조각의 달콤한 케이크에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양과자점 코안도르’는 감동을 주는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을 담은 작품이다. 시작부터 스크린 가득 펼쳐지는 화려한 케이크의 향연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영화는 일본 도쿄의 인기 양과자점인 ‘코안도르’를 무대로 가고시마 출신의 시골 아가씨 나쓰메(아오이 유)가 파티셰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유명한 파티셰가 되겠다며 고향을 떠난 남자친구를 찾으러 코안도르에 온 나쓰메는 남자친구가 이미 떠났다는 말을 듣고는 코안도르에서 일을 하며 남자친구를 찾겠다고 떼를 쓴다. 케이크 솜씨는 별로 나아지지 않고 실수만 연발하던 나쓰메는 우여곡절 끝에 남자친구를 찾게 되지만 새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더욱 일에 매달린다. 하지만 열심히 만든 케이크가 셰프의 친구이자 제과 평론가인 도무라(에구치 요스케)로부터 빵점을 받자 낙심한다. 도무라와 각을 세우던 나쓰메는 그가 한때 전설적인 파티셰였으며 8년 전 어떤 사고를 겪은 뒤 주방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 도무라의 사연에 관심을 갖게 된다. 영화는 시각과 미각을 동시에 자극한다. 눈으로 맛보는 각양각색의 케이크는 영화의 중요한 축이다. 더불어 일본의 발달된 제과 문화와 그들의 장인정신도 엿볼 수 있다. 주연배우인 아오이 유는 아기자기한 영화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영화의 대부분에서 흰색 파티셰 복장으로 나오는 그녀는 청순한 매력과 고집 센 천방지축 아가씨의 캐릭터를 오가며 다양한 색깔의 연기를 선보인다. 통통 튀는 아오이의 매력과 달리 에구치 요스케 등 다른 중견 배우들이 무게감 있는 연기를 펼쳐 전체적인 균형을 잘 맞췄다. 특히 일본 영화 특유의 미덕이 잘 녹아 있다. 케이크를 만드는 과정에서 정교함이 빛났고, 인물들의 심리 묘사에서 섬세한 표현력이 뒷받침됐다. 주인공이 끝까지 고군분투하면서 실력을 갈고닦는 이야기도 진정성을 갖췄다. 하지만 강렬한 에피소드나 갈등 구조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영화는 자칫 밋밋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케이크가 사람들을 미소짓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 전달력도 부족해 자극적인 영화에 길들여진 관객들에게는 지루함을 안겨줄 수도 있겠다. 28일 개봉. 관람등급 미정.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신라금관 첫 호주 나들이

    한국과 호주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오는 10월 27일부터 내년 2월 18일까지 호주 시드니 파워하우스 뮤지엄서 ‘장인정신-한국의 금속 공예전’이 열린다. 국보 제188호인 천마총 신라금관 등이 첫 호주 나들이에 나선다. 국제교류재단 초청으로 방한 중인 돈 케이시 파워하우스 뮤지엄 관장은 25일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신라금관을 포함한 유물부터 현대공예품에 이르기까지 한국 금속공예 걸작 전시회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시회에는 한국과 호주에서 엄선된 작가의 작품과 파워하우스 뮤지엄 소장품 등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 161점이 소개된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에쎄 골든 리프’ 새 디자인 출시

    ‘에쎄 골든 리프’ 새 디자인 출시

    KT&G가 ‘에쎄 골든 리프’(ESSE Golden Leaf)를 리뉴얼해 1월 말부터 새롭게 선보인다. ‘에쎄 골든 리프’의 소나무 디자인은 나전칠기 명장 박재성씨와 ‘컬래버레이션’(예술가와의 공동작업)을 통해 한국의 문화적 전통과 장인정신을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에쎄 골든 리프’는 김소월의 시 ‘님과 벗’을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씨가 ‘한글 캘리그라피’(손으로 직접 그리는 글씨디자인)로 패키지 디자인에 적용해 2007년 처음 출시됐다. 타르 3㎎, 니코틴 0.3㎎ 제품이며, 한 갑당 4000원이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데스크 시각] 장인, 명인, 명장, 달인…/김성곤 정책뉴스부장

    [데스크 시각] 장인, 명인, 명장, 달인…/김성곤 정책뉴스부장

    영국은 17~19세기 세계를 이끈 강대국이었다. 이 영국은 19세기 후반부터 일류국가 대열에서 뒤처지기 시작한다. 원인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1차 대전 때 플랑드르 전장에서 우수한 젊은이들이 떼죽음을 당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고, 전문인력과 기술의 해외 유출이 맞물리면서 일어났다는 진단도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를 영국의 표준화 실패에서 찾기도 한다. 철도를 처음 도입한 영국은 우리보다 조금 넓은 나라지만 지역마다 궤도의 폭은 제각각이었다. MIT 교수를 역임한 미국의 저명한 경제사학자 찰스 P 킨들버거는 ‘경제강대국 흥망사’라는 책에서 19세기가 끝나갈 무렵까지도 영국에서는 200여 종류의 차축함과 40여 가지 수동 브레이크가 통용됐고, 주파수는 10가지쯤, 전압도 24가지에 달했다며 영국의 표준화 실패 사례를 적시했다. 이에 비해 독일과 프랑스는 맹렬히 영국의 기술을 수입, 표준화하고 개선한다. 여기에 독일은 장인(마이스터)이 가세하면서 1900년을 전후해 산업분야에서 영국을 추월한다. 실제로 188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철강산업에서 영국의 비중은 31%였고 독일은 15%였지만 30여년 뒤에는 영국 10%, 독일 24%로 역전됐다. 학자마다 이견이 있지만 독일이 영국을 추격한 데에는 길드체제에서 육성된 이들 장인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장인정신과 표준화, 규모의 경제 실현, 도약을 위한 독일의 열정 등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일본도 장인으로 유명한 나라다. 칼의 장인, 맛의 장인, 도자기의 장인, 화과의 장인 등 손으로 꼽을 수도 없을 만큼 장인이 많다. 이들은 몇 세대에 걸쳐 이를 완성하고 숙성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에게도 장인이 있었다. 고려시대 이름 없는 도공에서부터 조선시대 장영실은 대표적인 장인이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이름은 전해져 오지 않고 작품만 남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들과 달리 끊어진 비법이나 전통기법들이 즐비할까.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문화 때문 아닐까 생각한다. 1894년 갑오개혁 때까지 이 신분차별은 우리 사회를 옥죄어 왔다. 양반들은 뛰어난 기술 보유자나 예술가를 장인이라 부르며 낮춰보았다. 이런 현상은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귀족계급은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대학으로 가고, 산업 분야는 마치 남의 일인 양 다른 계층의 일로 여겼다. 요즘 달인이 화제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생활의 달인’이 국민에게 잔잔한 감동과 즐거움을 전해주고 있다. 어떤 분야에 달통한 사람에 대한 용어는 다양하다. 이 가운데 달인은 사전적 의미로 학문이나 기예에 통달해 남달리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을 지칭한다. 이에 비해 장인은 예술가의 창작활동이 심혈을 기울여 물건을 만드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예술가를 두루 이르는 말이다. 명인은 어떤 분야에서 기예가 뛰어나 유명한 사람을 뜻한다. 이 중에 가장 높은 경지의 전문가는 역시 달인이다. 그러면서도 달인은 보편적이고 대중적이다. 우엉 껍질을 가장 빨리 벗기는 젊은이, 포장을 가장 잘하는 아줌마, 커튼을 가장 빨리 접는 아저씨 등 생활의 달인은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찾는다. 여기에는 돈이나 지위가 필요없다. 그래서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행정안전부와 서울신문이 올해 첫 지방행정의 달인을 공모 중이다. 전국 16개 시·도에서 331명이 응모해 최근 95명으로 압축됐다. 대상은 제한이 없지만 대부분 5급 이하 하위직 공무원들이 지원했다. 모기 박멸 전문가, 꽃게 어업지도 전문가, 태극기 꽂기에서부터 청소에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환경미화원 등 눈이 번쩍 뜨이는 달인 후보들이 적지 않다. 다음달이면 이들 후보 가운데 30명을 최종 선발해 ‘지방행정의 달인’ 칭호를 부여한다. 국제경기대회의 메달리스트 못지않게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아 우리 사회의 소금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sunggone@seoul.co.kr
  • [뉴 시티노믹스 시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5) 행복한 중소기업 도시 볼로냐

    [뉴 시티노믹스 시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5) 행복한 중소기업 도시 볼로냐

    현대사회에서 시장경제를 이끌어가는 것은 ‘기업’이다. 특히 수만에서 수십만명의 직원과 전 세계에 지사를 둔 다국적 기업들은 국경을 초월하는 강력한 영향력과 부를 자랑한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고, 애플의 신제품 발표 소식이 미국의 대통령 선거만큼이나 관심을 받는 이유다. 특히 ‘중소기업 상생’이나 ‘중소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등의 표어들도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외면받는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을 대변한다. 그러나 이 같은 흐름과 정반대의 모습이 펼쳐지는 곳이 있다. 밀라노에 이은 이탈리아 제2의 경제도시 볼로냐에서는 ‘대기업’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행복한 중소기업들이 ‘그들만의 세상’을 꿈꾸고 있다. ●代이은 중소기업 즐비… 세계시장과 경쟁 볼로냐 시내를 벗어나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을 지나자 조그마한 공단이 등장했다. 곱슬머리에 풍채가 좋은 전형적인 이탈리아 남성이 문 앞에서 기자를 맞았다. 농기계 전문 생산업체 ‘노빌리’의 귀도 로시 사장이다. 철공소 직원이었던 이프롬 노빌리가 1945년 세운 회사를 동업자이자 사장의 아버지인 마리오 로시가 인수해 대를 이어 운영해 오고 있다. 그는 “전 직원이 80명에 불과하지만 전세계에 분무·살포기를 팔고 있다.”면서 “지난 3년간 매출이 1850만 유로(약 290억원)에 이른다.”고 자랑했다. 올해 한국, 중국 등 아시아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지난 5월 한국을 방문해 파트너도 선정했고, 이미 상당한 수출물량이 예약된 상태다. 글로벌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농기계 시장에서 노빌리의 장점은 독보적인 기술과 뛰어난 품질이다. 로시는 “직원 모두가 오랜 경험과 장인정신으로 무장하고 있어 불량품이 없다.”면서 “해외수출 시에는 해당국 파트너도 철저하게 교육시킨다.”고 설명했다. 이익의 절반 가까이는 다시 기술 개발에 투자한다. 특허 수를 묻는 질문에는 “세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100개는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빌리의 가장 큰 경쟁상대는 이웃의 농기계 업체들이다. 로시는 “유럽시장은 물론 미주나 아시아 시장 진출을 모색하다 보면, 항상 이웃 업체들과 최종 경쟁을 펼치게 된다.”면서 “여기에 볼로냐 중소기업들의 비밀이 숨어 있다.”고 말했다. 볼로냐의 중소기업들은 업종을 막론하고 누구나 자체적인 ‘협동조합’을 형성하고 있다. 인구가 50만명이 채 되지 않는 도시에 협동조합이 400개이고 전체 생산의 3분의1가량이 조합을 통해 이뤄진다. 시민의 절반 이상은 어떤 형태로든 조합에 가입해 있다. 협동조합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상생’의 정신에 있다. 이들에게 국가와 시 정부는 자신들을 방해하지 않는 존재라는 인식이 강하다.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것보다는 스스로 만들어 낸 규율을 깨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로시는 “주문이 많아져 일손이 모자라면 조합을 통해 전문가들을 구하는 것이 대표적”이라며 “일이 없는 경쟁업체의 직원을 지원받는 경우가 많은데, 서로를 경쟁상대로만 인식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반대의 경우가 항상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면서 “한국과 이탈리아인이 정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는데, 한국도 협동조합이 자리잡기 쉬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책은 어디까지나 보조수단 이탈리아에 협동조합의 개념이 처음 선보인 것은 1854년 북부 토리노에서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생활협동조합을 운영해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각종 물건을 구입하려 했던 것이 그 시초다. 오늘날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대안경제로 부상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의 개념이 이탈리아에서는 무려 150년 전에 싹이 튼 셈이다. 이것이 단순히 고용을 보장하기 위한 협동조합에서 사회복지 협동조합의 형태로 발전하면서 급속히 퍼져 나가게 됐다. 이 과정에서 협동조합은 파시즘 등 자신들을 억압하는 정치세력에 대한 반대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고, 이는 현재 이탈리아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사회주의 성향의 토대가 됐다. 협동조합이 이루고 있는 네트워크는 볼로냐 어느 곳에서나 찾을 수 있다. 농업, 공업, 의료업은 물론 산업의 기본이 되는 사회보장체제에도 협동조합의 개념이 도입돼 있다. 농업에서는 비료나 제초제 구입과 수확물의 유통 및 판매에 이르기까지 일정 조건을 갖춘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책임감과 주인의식을 키우기 위해 공동소유물에는 균등 출자와 소유권 배분의 원칙이 적용된다. 이 과정에서 시는 관찰자의 역할을 한다. 볼로냐시 경제국장인 프란체스카 마르티네스는 “볼로냐의 경제정책은 협동조합과 각 상공협회들이 주도하는 형태”라며 “이들은 스스로 의료시스템 등을 갖추며 자생력을 키워나가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볼로냐 박건형 순회특파원 kitsch@seoul.co.kr
  • [열린세상] 일본의 노벨상 수상과 한국의 기초과학 현실/임상빈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일본의 노벨상 수상과 한국의 기초과학 현실/임상빈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일본이 기초과학 강국임이 재확인됐다. 올해 또 2명이 노벨 화학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14명이 노벨과학상(의학생리·화학·물리)을 수상했다. 미국 국적의 일본인까지 포함하면 15명이다. 노벨과학상은 기초과학 수준의 표징인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일본 과학자의 성과를 지켜보면서 부러움보다 우리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앞선다.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한명도 못낸 탓보다는 한국의 취약한 기초과학 기반과 사회적 무관심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달은 앞날의 불확실성을 더욱 확대시켜 가고 있다. 불확실성 시대에서 선도적 국가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초를 튼튼히 다지는 것이다. 특히 기초과학분야의 기반은 세계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창의력을 제공한다. 국가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키울 수 있는 활로는 창의성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은 기초과학을 국가적 인프라로 여기고 꾸준히 투자해 왔다. 1985년 플라자 협약이 계기였다. 이로 인한 엔고 현상은 버블경제의 붕괴를 가져왔다. 일본의 국가경쟁력을 현저히 떨어뜨렸다. 다른 국가들과 더 이상 비용면에서 산업경쟁력의 우위를 보장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초과학을 파격적으로 지원했다. 일본 정부는 1990년 ‘50-30프로젝트’라는 구체적 목표를 제시했다. 기초과학 분야에서 50년 동안 3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1985년에 국민총생산의 2.77%를 연구개발에 투자했으며 그 이후 2% 수준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투자다. 이 중 40%를 기초과학에 지원하고 있다. 셰라던 다쓰노는 1997년 ‘일본이 앞서 달리고 있다’는 저서에서 “일본은 1985년 이후 1만 5000개의 기초과학연구소를 세웠다.”고 밝혔다. 한국 과학계의 한 유명인사는 “일본을 ‘기초과학연구소’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면서 “기초과학연구소에 70만명의 연구원이 있다.”고 말했다. 2008년 노벨상 수상자 중 한 사람도 “나의 수상은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진 일이 아니다.”면서 “수십년 연구와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기초과학에 대한 이런 과감한 투자가 거의 모든 사업분야에서 일본이 최고 기술수준을 확보하는 실적을 낳았다. 축적된 힘이 발휘된 것이다. ‘잃어버린 10년’을 보낸 뒤의 일본은 투자의 결실을 얻어가고 있다. 일본의 독창성 흔적을 특허에서 찾아보자. 지난해 미국 특허청이 발표한 국가별 특허등록에서 1위를 차지했다. 3만 8620건이다. 2위인 독일(1만 1490건)의 3.5배를 넘는다. 아마 등록된 특허 중에 어떤 것들은 혁신적인 신제품으로 세계시장을 선도할지도 모른다. 과거 ‘혁신의 모방자’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일본의 현재 모습이다. 여기에 기초과학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남달랐다. 일본인 특유의 장인정신, 즉 ‘모노즈쿠리 정신’도 이 같은 성과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창의적 연구를 뒷받침한 것은 기초과학자를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였다. 과학자들의 연구 실패에 대해 책임을 묻는 일은 없다. 일본 이공계 교수는 우리나라 교수들처럼 1년에 몇 건의 논문을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부담도 없다. 연구소 연구위원들도 당장 신제품 개발 실적을 내놓아야 하는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된다. 세금을 감면받기 위한 기업연구소 개소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최고 기초과학 선진국이라는 명성을 얻었음에도 일본은 이공계 기피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요미우리 신문은 이런 현실을 보고 “내일도 노벨상 수상을 휩쓸지 미지수”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번에 노벨상을 수상한 스즈키 아키라 명예교수도 수상소감에서조차 “젊은이여, 외국으로 나오라. 더 많이 해외로 가라.”면서 “이공계에서 활약하는 일본 젊은이가 점점 늘어나길 바란다.”며 이공계의 소침을 걱정할 정도였다. 한국은 지난 3년 동안 이공계 이탈 학생이 5만 6000명에 이르지만 책임 있는 어느 누구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언급하지 않는다. 일본의 기업과 언론이 우리를 칭찬하는데 정신을 놓고 있다가 어려운 사정에 빠져드는 것도 모르고 있는 것(호메고로시)은 아닐까.
  • “한류 갑작스러운 부상은 거품처럼 급하게 꺼질 수 있어”

    “한류 갑작스러운 부상은 거품처럼 급하게 꺼질 수 있어”

    100만명이 넘는 외국인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지만 한국어로 유창하게 말하는 외국인, 특히 서양인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벌써 오셨군요.”라며 또렷한 한국어로 안내하는 마틴 프로스트 파리7대학 교수를 처음 만난 순간 몇 년 전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만났을 때 느꼈던 어색함이 떠올랐다. 아리랑TV MC로 활동하고 있는 아들 아드리앙 리의 근황을 묻자 “엄마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직장을 잡는 게 좋죠.”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한국 엄마가 따로 없었다. 한국 문화에 대한 그의 폭 넓은 이해는 기대를 뛰어넘었다. 문학, 음악, 미술 등 각 분야에서 그가 알고 지내는 지인들의 이름이 수시로 등장했다. 한국 문화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에 답변하는 그의 말투는 긍정적인 부분에서는 자랑스러움이, 부정적인 부분에서는 안타까움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왔다. 외규장각 도서 문제에 대해서는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며 현실적인 대안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인터뷰는 대부분 한국어로 진행됐다. 일부 어렵거나 미묘한 단어는 기자에게 물어 꼼꼼하게 받아적었다. →어떤 계기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나. -1977년 하버드대를 다니면서 도쿄대에 유학을 갔다가 한국을 찾았다. 김포공항에 처음 내렸는데, 군부독재 시절이라 공항을 가득 메운 군인들을 보면서 기가 질렸다. 그런데 시내에 들어오자 사람들은 정말 활발하고 친밀했다. 신촌시장을 걸을 때였나, 꼬마들이 외국인이 신기했는지 손을 잡아서 조그만 한옥집으로 데려가더라. 무거운 정치 상황 속에서도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인상 때문에 마음이 끌렸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지 않았나. 어떤 이미지였고, 지금은 어떻게 변했나. -당시 유럽에서 한국에 관한 것은 모두 전쟁, 독재 이런 부정적인 내용들뿐이었다. 특히 프랑스는 자유주의, 여성해방운동이 심화되던 시기여서 독재국가와는 관계를 맺는 것조차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한국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건데, 프랑스인들은 1900년 만국박람회 때 이미 짚신·지게 등을 전시했던 한국관을 만난 경험이 있다. 그걸 잊고 있었을 뿐이다. 보여줄 문화가 없는 나라가 만국박람회에 참여할 수 있었겠나. 지금은 그 중간의 단계는 잊히고 예전처럼 한국의 좋은 부분이 부각되고 있다. →영화의 역할이 굉장히 큰 것 같다. -며칠 전에 한국에 가 있는 남편과 헬스클럽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프랑스 여자가 “그 말 한국어 아니냐.”고 묻더라. 한국 영화 광팬이라 만날 보다 보니 익숙해졌다고 했다. 일부 감독들은 마니아층이 형성된 정도가 아니라 주류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한국 문화 전도사는 유학생들이다.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세계 누구보다 센 프랑스인들도 “우리 문화 최고, 꼭 와서 봐야 한다.”고 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한국 유학생들은 그렇게 한다. ●판소리 등 어려운 것에 더 큰 관심 가져 →한국 정부가 ‘코리아 브랜드’를 기치로 내걸었다. -문화를 세계화시키는 데 가장 좋은 것은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단점도 크다. 한국 사람 눈에 좋은 것만 소개하고 알리려고 한다는 거다. 얼마 전에 리틀엔젤스가 부채춤 공연을 하러 왔었다. 유럽사람들도 리틀엔젤스의 부채춤은 특이하니까 좋아한다. 하지만 이들이 진짜 좋아하는 것은 창조적인 것이다. 예술로 평가받는 무대에 오르려면 지식인들이 많이 보는 르몽드, 르피가로 같은 신문에 소개돼야 하고 이를 읽은 사람들이 일반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부채춤 대신에 승무나 판소리를 대입시켜 봐라. 문화적 호기심이 많은 서양인들은 어려울수록 이해하기 위해서 더 관심을 갖는다. 또 코리아 브랜드는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작업인데, 이건 억지로 되기 힘들다. 단시일 내에 만들어진 이미지는 잘못하면 유럽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촌스러운’ 이미지가 될 수도 있다.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멀지 않나. -중국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한자라는 글씨와 이를 표현하는 서예 분야에 관심들이 많다. 또 유교, 도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점 때문에 기독교 국가들에서 호기심으로 접근하기가 쉽다. 일본은 예술에 대한 감각에서 독특함을 모두 인정한다. 최근에 한국에 대해서는 자연스럽지만 완벽한 것, ‘혼을 불태우는 장인정신’에 대한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미지 구축 자체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반면 일부 영화 등에서 보여지는 폭력성 등은 좀 우려스럽다. →정명훈, 백건우 등 음악가들이나 백남준 등 아티스트들이 유럽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 이바지했나. -당연하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고 세계적인 거장들로 인정받고 있다. 다만 현재 한국 문화의 대표주자로 알려져 있는 사람들은 모두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뒤 한국에서도 알려진 사람들이다. 뭔가 구조가 이상하지 않나. 이건 코리아 브랜드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유럽을 비롯한 나라들에서는 자국에서 알려지고 난 뒤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진다. 진정한 코리아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 구조를 바꿔야 한다. ●잘못된 번역이 한국문학 가치 떨어뜨려 →문학적인 부분에서의 평가는 어떤가.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초창기에 프랑스 사람들이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소재들이 그나마 잘못된 번역으로 등장하면서 한국 문학이 가치가 없는 것으로 치부됐다. 번역이 잘못된 글을 읽으면 정말 피곤하고 읽기 싫어지지 않나. 말이 나온 김에 한국 측이 프랑스에서 하는 행사에 가 보면 프로그램이나 안내문이 오자 투성이다. 심지어 음식 이름을 눈꺼풀로 번역해 놓은 경우도 있었다. 큰 돈을 들여서 오히려 코리아 브랜드를 망치고 있지 않나 싶다. 다행히 요즘에는 피케, 줄마 등 한국 작품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출판사까지 등장했다. 프랑스 사람이 독자층 조사를 해 책을 선정하고 한국 측에서 함께 번역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김훈이 쓴 ‘칼의 노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화제로 삼을 정도였다. →프랑스에도 한류가 불고 있다는 얘기가 많다. -최근 경향을 봐서는 분명히 그렇다. 지난 6일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에서 오전 9시30분부터 한국어 강좌 신청을 받았는데 새벽 6시부터 줄이 늘어섰다. 10년 전에 처음 시작할 때는 학생이 달랑 5명이었다. 이번에는 200명이 등록을 못 했다. 다만 갑자기 부는 바람은 결코 좋은 게 아니다. 유럽사람들은 한 번 좋아하면 계속 좋아한다. 일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평생 일본에 관심을 갖는다. 그런데 급작스럽게 인기를 얻은 한류는 잘못하면 거품처럼 순식간에 꺼질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천천히 접근하는 게 한국의 국민성과 맞지 않아서 생기는 괴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를 임신하면 열 달을 다 채우는 게 당연하지 않나. 문화도 마찬가지다. 성숙해야 진짜 인정 받는 문화가 되는 거다. ●외규장각 반환 선례땐 ‘도미노 현상’ 우려 →외규장각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프랑스가 반환을 안 하는 진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개인적으로는 돌려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외규장각 도서는 어디까지나 한국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한테도 “다른 나라의 문화재를 갖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거나 “프랑스는 문화재를 돌려주고 왜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기를 두려워하나.”라는 식으로 얘기하곤 한다. 그러나 실제 반환까지는 멀고 험하다. 솔직히 말하면 반환이나 장기임대 모두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가장 큰 이유는 선례가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아랍이나 아프리카에서 경제 성장이 어느 정도 된 나라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프랑스 정부에 문화재 반환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국에 돌려주면 다 돌려줘야 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과거 정부 합의를 보는 프랑스인들의 시각은 어떤가. -보수적인 사고방식 때문인 것 같다. 원칙이 어떻다고 배우면 다른 의견을 수용하거나 바꿀 줄 모른다. 프랑스인 대부분은 당시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약속했던 미테랑 대통령이 월권을 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정당한 절차를 밟은 게 아니라 그냥 자기 마음대로 약속해 버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국립도서관 사서는 휘경원원소도감의궤 한 권조차 내놓지 않겠다고 버텼다. 전후사정이 어떻든 간에 국립도서관에 들어온 이상 이건 프랑스의 것이고, 난 그걸 지키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딱 박혀 있었던 것이다. 결국 미테랑이 먼저 비행기를 타고 가고, 나중에 문화부 장관이 책과 함께 억지로 두 사람을 비행기에 태워 빼앗다시피 해서 그 책을 한국에 넘겨준 것이다. 문제는 그 후에 이 두 사람이 사표를 내고, 그게 언론에 보도되면서 정말 시끄러웠다. 두 사람은 옳은 일을 했고, 대통령과 문화부 장관은 잘못했다는 의견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여론은 당연히 부정적으로 변했고. 어떻게 보면 미테랑이 절차를 무시했던 것이 지금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든 셈이다. →해결책이 없다는 얘기인가. -어떤 경우라도 포기하면 안 되고, 정부와 민간 차원의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다만 무조건 반환만 요구해서는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하고 시간만 흐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현실적인 대안도 함께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먼저 얻어낼 수 있는 것이라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현재 외규장각 도서 상당수가 마이크로 필름 작업이 돼 있다. 그런데 내용은 모른다. 내용을 아는 건 전체의 1%나 될까. 외규장각 도서를 프랑스가 소유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 내용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이 한국 것이다. 정치외교적인 반환 요구와 함께 한국 연구진이 연구를 주도하거나 최소한 공동연구에 참여라도 할 수 있도록 접근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파리 박건형 순회특파원 kitsch@seoul.co.kr ■마틴 프로스트는 누구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영문학, 미국 하버드대에서 동양언어학, 도쿄대에서 일본어, 서울대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면서 동양과 한국에 대한 폭 넓은 지식을 쌓았다. 연세대 불문과에서 교수를 맡았고 1992년부터 4년간 주한 프랑스 대사관 문정관으로 재직했다. 현재 파리7대학 동양학부 한국학과장과 콜레주 드 프랑스 한국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20여년간 한국문화를 프랑스 등 유럽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고 파리7대학 내에 한국식 정원인 ‘청자정원’ 건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공로로 지난해 한글날 한국 정부로부터 문화포장을 받았다. 1980년 연세대 교수 재직 시절 체육학과 학생이자 테니스 국가대표였던 이승근(53)씨와 결혼한 반(半)한국인이기도 하다.
  • 한예슬, 우아한 ‘파리지엔’ 면모 발산…까르띠에 초청

    한예슬, 우아한 ‘파리지엔’ 면모 발산…까르띠에 초청

    배우 한예슬이 세계적인 주얼리 브랜드 까르띠에의 초청으로 프랑스 파리를 찾았다. 지난 8월 중순 파리에 간 한혜슬은 까르띠에 최초의 매장인 뤼드라뻬 13번지 숍을 방문했다. 한예슬은 유창한 영어 실력과 패셔니스타다운 스타일로 파리 현지 관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까르띠에 파리 본사 관계자의 권유로 뤼드라뻬 13번지 매장이 소장하고 있는 40억 원 이상의 주얼리를 착용한 한예슬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파리를 매혹시켰다. 관계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여배우 한예슬이 프랑스 파리의 까르띠에 매장을 방문해준 것에 매우 감사를 표한다”며 “한예슬은 까르띠에와 잘 어울리는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갖고 있어 앞으로도 함께 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앞서 한예슬은 지난해 9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까르띠에 트래져’(Cartier Treasures-King of Jewellers, Jewellers to Kings) 전시회 개막식 행사에도 초청됐다. 당시 한예슬은 까르띠에 CEO 베르나르 포나스 회장으로부터 아름다운 여배우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베이징 행사에 이어 파리의 뤼드라뻬 13번지 부티크를 돌아본 한예슬은 까르띠에의 열정과 오랜 역사에서 비롯된 노하우에 감탄했다는 후문이다. 한편 까르띠에는 1847년 창립 이래 160년 동안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이뤄진 디자인과 기술력으로 주얼리 및 워치 분야의 권위있는 브랜드로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지난 2008년에는 서울 청담동에 아시아 최초의 까르띠에 메종(Maison)을 오픈한 바 있다. 사진 = 까르띠에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 ▶ "태어나니 엄마가…" 연예인 출산러시 축하세례▶ 황수정, 스크린 컴백 차질…최철호 폭행사건 불똥▶ 김종국 허리디스크 수술…’런닝맨’ 활동 불투명▶ 한채아, 2AM에 사과 "내 인생 최악의 실수 죄송"▶ 닉쿤 여동생, 태국 패션쇼 메인모델 ‘포스 작렬’
  • 카라 한승연, 父 선물한 백접도 공개 ‘장인정신’

    카라 한승연, 父 선물한 백접도 공개 ‘장인정신’

    걸그룹 카라의 멤버 한승연이 아버지가 선물한 백접도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11일 오전 방송된 SBS ‘하하몽쇼-엄마가 부탁해’에 출연한 한승연은 본인의 방에서 검을 발견하고 놀란 하하와 MC몽에게 "아버지께 받은 선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버지가 칼을 만드시는 분이다."며 아버지의 직업이 도검장인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한승연의 부친인 한종칠 씨는 대통령 하사품인 삼정검을 제작하는 유명한 도검장인이다. 한종칠 씨가 딸 한승연에게 선물한 백접도는 백 마리의 나비문양을 직접 그려 새긴 것으로 알려져 시선을 모았다. 이날 한승연은 백접도를 들어보이며 "진검은 소지허가가 필요해서 가지고 있지 않다. 모두 가검이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한승연과 함께 출연한 카라 멤버들은 숙소 내부와 민낯을 공개하며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진 = SBS ‘하하몽쇼’ 화면 캡처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 [한·일 100년 대기획] 도요타 리콜 충격 탈출 안간힘

    [한·일 100년 대기획] 도요타 리콜 충격 탈출 안간힘

    일본의 자동차 역사는 비교적 짧다. 일본 자동차산업을 대표하는 도요타자동차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승용차 크라운을 첫 출시한 것은 1955년이다. 1968년 도요타의 카롤라는 미국 시장에 진출, 소형차 붐에 힘입어 성공을 거뒀다. 일본 자동차산업은 1980년 영원하리라 믿었던 세계 자동차생산국 1위인 미국을 밀어냈다. 자동차 강국으로 자리잡았다. 더욱이 1997년 하이브리드카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도요타의 ‘프리우스’를 통해 친환경자동차를 선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도요타자동차의 리콜 사태는 ‘메이드 인 재팬’의 신화를 뒤흔들었다. ‘최고’, ‘제일’이라는 우월감에 빠진 탓이다. 도요타 사태를 계기로 일본 경제의 상징인 자동차산업을 되짚어 본다. 도요타자동차는 일본 기업의 상징이다. 때문에 ‘국민기업’이라는 명칭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지난해 세계적인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 속에서도 791만대를 판매, 세계 1위의 자동차 기업을 지켰다. 일본인들은 도요타자동차의 경이적인 성과를 칭찬하는 데에 전혀 꺼림이 없다. 그러나 지난 2월24일 도요타그룹 100년사에 모욕적인 사건이 터졌다. 창업가문 출신의 도요타 아키오 사장이 미국 하원의 감독 및 정부개혁위원회 청문회에 불려 나갔다. 리콜(무상 회수수리) 대응이 늦어진 점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죄하고 눈물을 흘렸다. 도요타는 가속페달 매트와 브레이크 제어시스템 등의 결함으로 전 세계 1063만대의 자동차를 리콜조치해야 했다. 미국 정부는 4월20일 15억엔(약 195억원) 상당의 과징금 부과를 결정했고, 도요타는 승복했다. 리콜 사태로 인해 도요타는 2009년 10월~2010년 3월 사이의 손실이 무상수리비 1000억엔, 판매차질 700억~800억엔 등 최대 1800억엔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 사회는 혼돈에 빠져 있다. 자존심으로 여겼던 도요타가 행여 침몰하지는 않을까 우려해서다. 일본 산업의 대표적 아이콘인 도요타자동차의 리콜사태는 일본의 국가적 위상마저 멍들게 했다. 소니와 같은 일본의 다른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뒤처졌지만, 도요타는 일본 제조업 및 디자인의 표상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도요타 리콜 사태가 일어났을 때 일본 사회 전체는 도요타를 겨냥한 비판이나 공격을 최대한 삼가며 감쌌다. 하지만 도요타 사태가 단순한 결함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일본 산업 전반에 걸친 생산 방식에 대한 의문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도쿄 주재 칼리온 캐피털의 크리스토퍼 리히터 자동차 애널리스트는 “자동차산업은 일본 제1의 산업”이라면서 “일본에서는 국가 최고의 산업이 국민을 오히려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고 말했다. 다이와종합연구소에 따르면 도요타 사태로 일본 내 자동차 생산이 30만대 감소할 경우 1조 8529억엔 규모의 산업생산이 줄고 국내총생산(GDP)이 0.12%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요타가 생산과 판매에 있어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GM) 자동차를 추월할 수 있었던 것은 생산과 품질개선 방식에서 우위에 있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도요타는 불량 부품의 사용으로 야기된 사망사고에 대한 원인규명을 소홀히 한 데다 그룹차원의 대처도 신속하지 못했다. 도요타는 아이치현 미카와(현재의 나고야) 지방의 제조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장인정신을 갖고 자신의 혼을 담아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의 ‘모노즈쿠리’ 기질이 강하다. ‘혼을 불어넣어 만든 물건’에 하자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차 있다. 그러다 보니 결함이 났을 때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측면이 강하다. 이번 리콜 사태도 초기에 대응했어야 할 것을 “우리는 틀림이 없다.”는 과도한 자부심, 자만심이 사태를 키웠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시다 마사루 엠아이 종합연구소장은 “이번 리콜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품질에 자만해 소비자를 경시해 서둘러 대응에 나서지 않은 도요타의 태도에 있었다.”면서 “급속한 해외사업의 확대로 생산·관리체제 및 인재 교육의 부실화, 개발의 단기화, 계열외 부품조달 등이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국내시장에서는 소비자들의 엄격한 검증 시스템에 의해 결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도요타의 글로벌화가 급속하게 이뤄지면서 해외 각지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국내처럼 관리하지 못해 이뤄진 결과라는 지적이다. 한국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도 최근 ‘도요타 리콜사태의 발생원인과 교훈’이라는 자료를 냈다. 자료에서 “도요타는 원가절감을 위해 약 50개 차종에 과도하게 부품 공용화를 추진, 일개 부품의 결함 발생시 파급효과가 증폭되는 맹점을 초래했다.”면서 “가격경쟁력확보를 위해 마른 수건 짜기식으로 부품업체에 단가인하를 요구, 부품업체가 비정규직 채용을 늘리는 등 품질을 저하시켰다.”고 분석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4일 TV 하이라이트]

    ●한식탐험대(KBS1 오후 7시30분) 오랜 기다림과 정성으로 만드는 숯, 그리고 장인정신이 빚어낸 간장의 만남으로 태어나 반 세기를 이어온 달콤한 맛으로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불고기. 그 시작은 언제일까. 고기구이를 즐기던 한민족이지만 지금과 같은 형식의 불고기가 생긴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데…. 불고기의 달콤한 전설을 찾아간다. ●희망릴레이 일자리119(KBS2 오전 11시20분) 자동차 경정비 프랜차이즈 전문 기업 ‘카젠’은 믿을 수 있는 맞춤정비를 모토로 하여 전국 공통의 표준화된 가격으로 정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로열티 없는 가맹시스템을 바탕으로 전국 320여개 가맹점을 보유하고 있다. 카젠이 일자리 119 TV 공개채용에서 영업관리·마케팅 분야 신입사원을 모집한다. ●휴먼다큐멘터리 사랑<고마워요 내사랑>(MBC 오후 10시55분)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은숙씨네는, 5살 연상의 은숙씨를 열렬히 사랑하는 남편 김경충씨, 아내의 딸에서 부부의 딸이 된 라하나, 두 사람의 사랑 결실 단, 준 형제, 이렇게 다섯으로 이루어진 재혼 가족이다. 그러던 어느 날, 행복하기만 했던 은숙씨 가족에게 시련이 닥쳐오는데…. ●세자매(SBS 오후 7시20분) 영호는 골프장 한쪽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은영에게 기분이 좀 나아졌는지 묻는다. 이때 미란이 나타나자 손을 흔들며 반기는 은영과 달리 영호는 잠시 난감해하다가 미란을 회사 사장이라고 소개한다. 이어진 식사자리에서 미란이 영호와 대학동기라는 말을 던지자 은영은 갑자기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명의(EBS 오후 9시50분) 성형외과를, 모든 진료과 중에서 유일하게 생산적인 일을 하는 과라고 말하는 서울대병원 성형외과 민경원 교수. 다른 과처럼 근본적으로 병과 환자의 치료를 담당하지는 않지만 그는 미세수술을 통해 성공적인 수술을 지원하고, 병 치료 과정에서 환자의 잃어버린 피부와 근육을 재건해 새로운 삶을 선물한다. ●스토리시사 봄(OBS 오후 11시) 행복한 삶을 영위하다 재개발법으로 인해 집과 행복, 그리고 추억까지 잃어버린 철거민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이와 관련해 ‘스토리시사 봄(view)’에서는 서울시 은평구 응암동의 한 공사현장에서 2년 동안 천막을 치고 투쟁을 하고 있는 박래출(55)씨 사연을 다룬다. 박씨는 지난해 분신을 시도해 뉴스에 보도됐다.
  • “금융·후계자양성 지원 정부·도쿄都서 팔 걷어”

    “금융·후계자양성 지원 정부·도쿄都서 팔 걷어”

    │도쿄 이종락특파원│일본 경제의 버팀목인 오타구 단지 내 공장들이 경기 침체로 고전하고 있다. 원가 경쟁력, 가업승계 문제로 문을 닫는 공장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와 도쿄도는 오타구 단지 내 공장들에 대한 대대적인 금융지원과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등 ‘오타구’ 살리기에 진력하고 있다. 다음은 오하시 히로시 오타구 산업진흥협회 홍보이사와의 일문일답. →오타구 단지 내 공장들이 폐업하거나 이전하는 숫자가 늘고 있다는데. -전성기 때인 80년대 오타구에는 1만여개의 업체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4000여개에 불과하다. 지난해 오타구에 본사를 두고 일본 동북지역의 이바라기현, 지바현 등으로 공장을 이전한 회사가 300여개에 이른다. →오타구의 회복은 힘든가. -3인 이하 영세 공장들이 후계자를 찾지 못해 자발적 폐업을 하고 있고, 공장부지에 맨션들이 들어서면서 공장 숫자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 초일류 기술을 자랑하는 공장들은 건재하다. 특히 일본에는 장인정신이 남아 있어 경제침체를 극복할 것으로 믿는다. →기업들에 대한 지원책은. -공장을 새로 세우려는 기업에는 파격적인 금융지원을 한다. 일정한 자격요건만 갖추면 일반운전자금 2000만엔, 설비자금 3000만엔, 공해방지자금 1500만엔 등 6500만엔을 무담보로 대출해준다. 연 이율은 2%인데 보증기금센터를 통해 구가 1.3%를 부담하고, 본인은 0.7%만 내면 된다. →후계자 양성을 하지 못해 공장 문을 닫는 업체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도쿄도가 산업기술 고교 전문학교를 운영하며 인재확보에 나서고 있다. 로코공고의 경우 공장에서 직접 일을 배우는 현장 인터십을 1학년 세 차례, 2학년 두 달간, 3학년 때 네 달간 진행해 숙련된 기술자를 양성한다. 이들이 공장에 투입돼 기술을 전수하기도 한다. jrlee@seoul.co.kr
  • 아! 곽지균

    아! 곽지균

    ‘겨울나그네’의 곽지균 감독 죽음이 알려지자 영화계는 ‘1980년대 멜로 영화의 대명사가 일이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비통함을 금치 못했다. 트위터 등을 통한 동료 영화인들의 애도 물결도 이어졌다. 고인과 친분이 두터웠던 차승재(50) 영화제작가협회장은 26일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한 시대를 풍미하며 좋은 영화를 많이 만든 분이었는데… 영화를 한다는 게 이런 것인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고인 밑에서 연출을 배운 장현수(51)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쓸쓸한 죽음을 맞으신 것 같아 안타깝다.”며 눈시울을 훔쳤다. 배창호(57) 감독 밑에서 조감독을 하던 고인을 눈여겨 봤었다는 한 60대 감독은 “심성이 곱고 착한 친구였다. 자기 성격에 맞는 멜로 영화를 잘 해 왔는데 요즘의 영화계와 시대 분위기는 그 친구가 끼어들 여지가 많지 않았다. 그 때문에 괴로웠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흥행에만 매몰된 나머지 장인정신이 돋보이는 작가주의 작품은 홀대하고, 한 번 손해를 끼친 작가에게는 좀처럼 재기 기회를 주지 않는 제작 풍토에 대한 성토다. 정인엽(68) 한국영화감독협회 이사장도 “투자 방법이 달라지고, 하루살이 감독이 많아지면서 곽 감독처럼 예술가 정신이 살아 있고 능력 있는 작가들이 밀려나는 게 요즘 영화계의 슬픈 현상”이라며 “10여년 전부터 50세만 넘으면 늙은이 취급을 하는 풍조에 곽 감독도 많이 씁쓸해했다.”고 전했다. 배우 박중훈(44)은 자신의 트위터에 “어떤 선배는 영화가 없어서 우울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냥 제 자신이 참 미안합니다. 그간 형에게 무심하게 지낸 제가 막 원망스럽습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계시길…. ”이라고 썼다. ‘시월애’의 이현승(49) 감독도 트위터에 “감독들은 정신력이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곽 감독의 자살이) 그것도 일이 없어서라니. 이런 엿 같은 영화판, 화가 납니다!”라고 적었다. 경찰은 이날 고인의 시신을 검안한 결과 연탄가스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고인은 전날 대전 자택에서 발견됐다. 옆에는 다 탄 연탄이 있었다. “일이 없어 괴롭고 힘들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노트북 컴퓨터에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발인 27일 오전 9시30분. (042)523-4444.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우리구 창의왕] 송파구 이용선 치수과장

    [우리구 창의왕] 송파구 이용선 치수과장

    “빗물 튀기는 보도블록 하나가 도시 이미지를 갉아먹는다는 사실을 흔히 잊고 살지요.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게 바로 진실입니다.” 18일 송파구 교통환경국 이용선(55) 치수과장은 이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토목직으로 30여년을 근무하면서 ‘도로시설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인도(人道)에 만든 맨홀 하나라도 ‘디자인 서울’이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도로 경관은 물론 색깔과 어울려야 한다는 데 착안해 순회강연을 벌이고 있다. 2004년부터 서울 자치구 6곳과 시설관리공단 등 17개 기관을 찾아가 26차례에 걸쳐 2760여명에게 ‘옥에 티를 찾아보자.’는 구호를 내걸고 강의했다. 이 과장은 이웃 일본의 선진국형 도로 및 각종 시설물을 담은 사진 400여장과 부끄러운 국내 현실을 담은 사진 600장 등 모두 1000여장을 슬라이드로 만들어 강의에 활용한다. 여간 정성이 아니고는 엄두도 못낼 일이다. 그는 “고위 공직자들도 책상머리에 앉아 설명만 듣는 식의 관리감독에서 벗어나 무엇이 잘못인지 눈으로 봐야 문제점이 제대로 잡힌다.”고 꼬집는다. 이 과장은 완벽한 시공과 감독을 강조한다. 일본은 도로나 시설물의 안전에 대한 법규가 제대로 정비된 것은 물론 공사감독 공무원도 완공 때까지 헬멧을 쓰고 따라다닌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제가 모은 자료를 보면 외국(일본)과 시공 및 관리 수준, 생각의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일본은 모두 완벽하고 우리는 모두 엉망이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러나 명품이라고 외쳐도 티가 있으면 아니올시다입니다. 옥에도 티가 있지만 티를 하나하나 없애야 진짜 명품이 아닐까요.” 이처럼 작은 노력이 쌓여야 서울시는 물론 세계 경쟁력 27위인 대한민국 수준을 한층 끌어올릴 수 있다고 이 과장은 덧붙였다. 처음엔 그를 보는 눈길이 곱지 않았다. 먼저 구 식구들부터 반대했다. 돈을 써가면서까지 해야 하느냐는 말이었다. 이 과장은 “결코 잘나서가 아니라 그냥 지나치기 쉽고 하찮은 부분이라도 고민하고, 토론하고, 개선해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다.”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교통 완전통제, 계획적인 추진, 전면 책임감리 등 체계적인 관리가 따르는 대형 공사장보다 골목 포장이나 맨홀 설치 등 소규모 작업장에서 큰 차이를 보여 시민과 외국인에게까지 불편을 끼친다는 것이다. 그는 “저마다 맡은 분야에서는 ‘내가 최고다.’라고하는 일본의 장인정신과 책임의식, 눈길을 끌지 못하는 구조물이라도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정교하게 시공하는 그네들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대전시 동네 빵집·이발소 살린다

    ‘오래된 동네 빵집이나 이발소를 명소로 키웁니다.’ 대전시는 21일 3대째 가업을 잇거나 30년 이상 된 제과점, 음식점, 이발소, 찻집 등을 돕기 위한 ‘전통업소 지원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시가 최근 같은 장소에서 한 업종을 이같이 운영한 업소를 조사한 결과, 모두 296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 관계자는 “다음달 7일까지 개발사업 등으로 다른 데로 옮겨 3대째 가업을 잇는 업소도 추가 선정하겠다.”면서 “이렇게 되면 350곳이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는 선정이 끝나면 이들 업소를 소개하는 홍보책자를 만들어 배부하고 시 인터넷 홈페이지와 시정백서 등에도 올려 업소를 홍보할 계획이다. 또 상인과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 뒤 노후시설 개선 등 명목으로 업소당 5000만원까지 자금을 지원한다. 시 관계자는 “신도시에는 이런 업소가 없다. 침체된 구도심을 활성화하고 옛도심의 전통 이미지를 유지하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일본처럼 직업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줘 장인정신과 경쟁력을 높이고, 시민에게 추억이 깃든 명소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서울광장] 일본 변화 냉정히 지켜보자/이춘규 논설위원

    [서울광장] 일본 변화 냉정히 지켜보자/이춘규 논설위원

    세계 2위 경제대국 일본이 흔들리고 있다. 일본 침몰론까지 나온다. 이럴 때 일수록 일본을 있는 그대로, 제대로 보아야 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이 최근 몇 년간 좋아지고 있지만 일본기업에는 더 배워야 할 게 있다.”고 말해 화제다. 겸양이냐, 진심이냐를 놓고 말이 많았다. 일본의 현주소에 대한 논쟁을 촉발했다. 이에 대해 경제부처 한 고위관료는 “일본은 거대한 군함 같다. 이에 비해 한국은 돛단배 같다. 군함이 전례 없는 세계경제 위기를 맞아 우왕좌왕할 뿐”이라고 냉혹하게 비유했다. 현재 일본은 54년만의 정권교체 뒤 리더십이 위기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에다 도요타자동차 대량리콜 사태까지 겹치며 위기가 더욱 커보인다. 디플레이션 압박도 심하다. 과연 일본의 현주소는 어딘지 살펴보자. 우선 일본은 기술력에서 세계 최강이다. 연간 특허출원건수에서 미국과 1, 2위를 다툰다. 세계 최고수준의 원천기술이 많다. 삼성전자가 외형 세계 1위 전자업체임은 분명하지만 많은 핵심부품, 원천기술을 일본에 의존한다. 우리나라의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가 연간 300억달러 안팎인 것은 쓰디쓴 현실이다. 미국 우주선이나 항공기 핵심부품을 공급하는 강한 중소기업들이 도쿄, 오사카의 중소기업단지나 동네골목에서 가동 중이다. 후계자·경제위기 문제로 다수가 고전 중이지만 첨단중소기업들은 정부의 면밀한 지원과 관리 속에 세계를 선도한다. 특히 우주기술력이 세다. 1970년 러시아, 미국 등에 이어 세계 네번째로 자체위성을 쏘아올렸다. 현재 로켓발사 성공률은 94%로 세계 1, 2위를 다툰다. 국제우주정거장에 일본인 남녀 우주인 2명이 동시 체류하는 우주대국이다. 1964년 세계최초로 시속 300㎞ 신칸센 고속열차 운행을 시작, 타이완에도 수출한 고속철 강국이다. 모노쓰쿠리(물건만들기)는 지독한 장인정신을 자랑한다. 제조업체들은 ‘세계 최고, 세계 유일’을 추구한다. 일본은 19세기 말 이후 근대화를 단행, 막차로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다. 데이코쿠데이터뱅크에 따르면 100년 이상 장수기업만 2만여개다. 1000년 이상 기업도 8개다. 세계수준의 지진학, 기상학은 ‘쓰나미’ 등 일본어를 세계 통용어로 만들었다. 일본의 원천기술을 한국이 상용화, 중국에서 조립하는 경제 연쇄의 사슬은 여전하다. 일본전문가인 한 대학 교수는 “한일합병 100년이 흘렀지만 일본은 한국이 넘기 힘든 거대한 벽이다. 한두 분야에서 추월했다고 흥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일본은 여전히 전자, 자동차 등에서 세계최강 기술을 가졌다. 고급화 전략에 집중, 중급 시장에서 한국 등에 잠시 추월을 허용했을 뿐이다. 하이브리드카, 태양광, 환경 등 미래기술에서 선두다. 한국의 신용등급이 최근 A1으로 겨우 상향됐지만 여전히 일본보다 두 계단 아래다. 문화력에서도 일본은 세계를 주도한다. 원천은 기록문화다. 기록들이 축적돼 일본 문화력의 기초가 됐다. 여전한 출판대국이다. 애니메이션이나 소설 등은 세계 문화시장을 선도한다. 일본의 음식도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물리, 화학, 의학, 문학 등 노벨상 수상자가 16명이나 된다. 집요함과 극진함은 인문·자연과학 발전의 원천이다. 900조엔에 육박하는 국가채무가 문제이지만 정부 발행 국채(2008년 말 699조엔·일본 재무성 홈페이지) 중 외국인은 6.8%만을 보유, 외부충격에 강한 편이다. 한일합병 100년인 올해 일본이 정치·경제 등 여러 면에서 총체적으로 고전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이 100년 전 일본을 가볍게 보다가 국권을 빼앗기는 치욕을 당한 기억이 아프다. 우리 국민들이 일제강점기의 응어리에 눌려 일본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실은 냉혹하다. 국내총생산(GDP), 기술력 등 일본과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 분발해야 극일이 가능하다. 일본은 위기 때마다 스스로 돌파하는 변화의 에너지를 보여줬다.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일본의 변화를 냉정히 지켜보자. taein@seoul.co.kr
  • [내고장 名品]전주 전통한지

    [내고장 名品]전주 전통한지

    한지는 ‘맛과 멋의 전통 도시’ 전북 전주시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특산품이다. 전주는 고려시대부터 한지의 명산지로 이름을 날렸다. 전주한지는 고려 중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수백년 동안 빼놓을 수 없는 왕실 진상품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외교문서로 사용될 만큼 빼어난 품질을 인정받았다. 전주한지가 오랜 시일 귀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비결은 한지에 배어 있는 장인정신이다. 국내산 닥나무를 손이 여러번 가는 고유의 제조법으로 가공해 매우 질기고 보존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닥나무 거두기-찌기-껍질벗기기-세척과 일광표백-티고르기-두드리기-종이뜨기-물빼기-말리기 등 10여단계를 거쳐야 천년이 가도 변하지 않는 전통한지가 탄생한다. 오랜 기간이 지나면 좀이 슬거나 바스라지는 서양 종이나 천보다 질겨 역사 자료나 외교문서는 전주한지에 기록하는 것을 으뜸으로 친다. 특히 자연적인 질감이 빼어나고 살아 숨쉬는 듯한 생명감이 가득해 서예지, 공예지, 창호지, 장판지, 영구 보존지 등으로 호평받고 있다. 전통 장인들의 손을 거쳐 빚어지는 은은한 윤기는 전주한지만의 특징이다. 전주에서 한지산업이 발달한 것은 물이 깨끗하고 철분 함유량이 적어 탈색이나 변색되지 않고 산화가 일어나지 않는 양질의 한지 생산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부터 관아에서 전주 근교에 닥나무 밭을 가꾸도록 제도화했을 정도다. 한때 5만여개에 이르던 전국의 한지 제조업체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지만 전주시에는 아직도 10여개 업체가 맥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한류·웰빙 바람을 타고 전통한지산업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한지산업은 이제 단순한 종이에 머무르지 않고 아토피 치료에 효과가 좋은 섬유와 화장품 등으로 폭넓게 진화하고 있다. 면 섬유보다 3~5배 빨리 마르고 곰팡이 등 유해세균을 억제하는 향균성이 뛰어난 한지를 활용해 양말, 속옷, 넥타이 등 의류와 건자재를 생산한다. 전주한지의 명맥 잇기와 새로운 상품 개발은 대를 잇고 있는 천양제지가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 최대 한지 제조회사인 천양제지는 전통한지생산에 그치지 않고 현대 감각에 맞는 응용한지, 친환경벽지에 이어 닥나무 성분을 이용한 기능성 화장품 생산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2007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관저 게스트룸과 유엔 한국 대표부를 전주 한지로 리모델링한 것도 이 회사다. 지난해는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시장에도 진출했다. 최영재(45) 대표는 “한지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내거는 금줄부터 죽었을 때 입는 수의까지 우리 삶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했던 우리의 종이”라며 “이제 한지는 국내에 머물지 않고 한민족의 문화를 세계속에 꽃피우는 미래의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주시는 한지산업 육성을 위해 300억원을 투입, 77만㎡의 한지특구를 조성할 계획이다. 한지산업진흥원을 건립해 연구·인력양성·브랜드화 사업을 추진하고 팔복동 친환경첨단복합단지 3만㎡에 한지전용단지를 조성할 방침이다. 한지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상림동, 동서학동 주변에 대규모 닥나무 재배단지를 만들기로 했다. 송하진 전주시장은 “한지는 자체 수요만 1000억원대를 넘고 일본 화지까지 포함할 경우 1조원대의 시장을 가지고 있다.”면서 “한지를 전통문화의 산업화를 상징하는 한스타일 대표 상품으로 집중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라이프 단신]

    ●유아복 업체 모아베이비는 백호해를 맞아 출산준비물을 구매하는 고객들에게 구매 금액별로 정품 유모차와 바운서(유아용 흔들의자) 등 푸짐한 사은품을 제공하는 ‘모아베이비 출산 대축제’를 3월7일까지 연다. 30만원 이상 사면 9만 3000원짜리 ‘모아베이비 가넷 유모차’, 50만원 이상 사면 가넷 유모차와 바운서를 받을 수 있다. (02)566-8898. ●캐주얼 브랜드 더베이직하우스는 대우인터내셔널과 미얀마에 새로운 봉제법인을 함께 세우는 것을 골자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18일 밝혔다. 현재 중국 470여개 매장을 비롯해 전 세계 8개국에서 500여개의 매장을 운영 중인 더베이직하우스는 미얀마에 설립될 대우인터내셔널과의 합작공장에서 남성복 바지를 주로 생산할 예정이다. (02)2140-1033. ●아식스스포츠는 경기 분당 정자동에 걷기 전문매장을 열었다. 서울 양재점과 경기 일산점에 이은 세 번째 걷기 전문매장에서는 ‘3차원 발 모양 측정시스템’을 통해 적합한 걷기용 신발을 추천해준다. 분당 탄천 가까이에 매장이 있어 걷기 동호인들의 모임 공간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02)3454-1226. ●일본의 친환경 일회용 그릇 와사라(WAS ARA)가 자체 온라인 쇼핑몰(www.was ara.co.kr)을 통해 국내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와사라는 갈대, 대나무, 사탕수수에서 설탕 원액을 추출한 뒤 남은 찌꺼기인 바게스 등의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진다. 디자이너 신이치로 오가타의 장인정신이 더해져 일회용 그릇에 대한 개념을 바꾸어 놓는다. 패키지로 판매하며 값은 9900원부터 시작된다. (02)512-5878.
  • [부고]남양유업 창업주 홍두영 명예회장 별세

    남양유업 창업주인 홍두영 명예회장이 17일 별세했다. 84세. 고인은 1925년 평안북도 영변에서 출생, 일본 와세다대 불문과를 졸업했다. 1951년 한국전쟁 중 1·4후퇴 때 월남해 1964년 남양유업을 창업했다. 1963년 나선 외국 출장길에 외국의 분유산업을 목도한 뒤 낙농업에 투신할 것을 결심했다. 고인은 “전쟁 직후 아기들에게 제대로 먹일 우유조차 없던 현실이 안타까웠다. 우리 기술로 분유와 우유를 생산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 낙농산업의 선구자’로 불린 고인은 이후 요구르트와 치즈 등 다양한 유제품을 선보이며 한국 낙농 역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남양유업은 고인의 독특한 경영철학 덕분에 무차입, 무분규, 무파벌, 무사옥의 ‘4무(無) 경영’을 달성했다. 고인은 철저한 장인정신과 정직한 기업정신으로 한국낙농산업의 기반을 닦는 데 평생을 바친 공로를 인정받아 철탑산업훈장, 대통령표창 등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지송죽(80) 여사와 남양유업 회장인 장남 원식과 우식, 명식씨, 딸 영서, 영혜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19일 오전 7시. 장지는 경기 양주시 회암동 산98이다. (02) 2072-2014.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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