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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도(눈높이 경제교실)

    ◎자금은 동맥경화증 기계는 잇따라 멈추고…/치솟는 어음부도율 4개월째 0.2% 맴돌아… 회사가 발행한 어음이 은행에 돌아와도 자금부족으로 결제를 하지 못해 기업이 망하는 부도가 사태를 이루고 있다. 보통때의 어음부도율은 0.1내외인데 비해 서울지역 어음부도율은 연속 4개월째 0.2%를 웃돌고 있다.서울부도율은 지난 1월 한보그룹의 부도로 0.19%를 기록하고 2월과 3월에도 각각 0.23%와 0.22%로 상승한데 지난 4월에도 0.23%에 달했다.특히 4월중에는 진로그룹 등 대기업들의 자금난이 심화되면서 하청업체들의 부도로 이어져 어음부도율이 28일에는 0.57%,30일에는 0.68%에 달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부도사태는 5월에도 계속되고 있다. 예년의 부도사태는 특정사건으로 한때 치솟았다가 대부분 수습과 함께 곧 정상을 되찾곤 했다.지난 82년 5월의 장영자 어음사기사건으로 부도율이 치솟았으나 다음달부터는 정상화됐고 지난해 1월의 우성건설 부도때도 그달에 0.15%의 부도율을 기록한 뒤 곧 0.1% 미만으로 떨어졌었다. 기업부도사태가 올들어장기화되고 있는 것은 한보부도의 영향이 컷던데다 뒷처리가 원만하지 못했고 경기침체 장기화로 은행 등 금융권이 몸조심하느라 자금을 잘 빌려주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된다.(부도율=교환에 회부된 전체 어음금액중 부도가 난 금액의 비율.1만원이 교환에 회부돼 1백원이 부도가 나면 어음부도율은 1%다) ◎부도 어떻게 날까 . 기업이 발행하는 어음 또는 수표는 은행에 튼 당좌예금에 기초해 당좌예금이 개설돼 있는 거래은행을 지급인으로 해서 발행된다. 따라서 어음의 만기가 도래되면 어음소지인은 지급인(지급은행이라 함)에게 어음을 제시하고 대금지급을 요구한다.이를 지급제시라고 하는데 통상 거래은행(제시은행)이 대행하며 교환절차상 어음만기일 하루전(D­1일)에 이루어진다.이와 같이 D­1일자로 어음이 지급제시되면 어음교환절차를 거쳐 지급은행은 다음날인 만기일(D일)영업시간 시작전까지 어음을 수취하게 된다.지급은행은 우선 발행기업의 당좌계좌에 그만큼의 돈이 들어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어음에 적힌 만큼의 예금잔액이 있을 경우 은행은 결제를 하면 그만이고 이경우가 정상적인 어음결제다.그러나 돈이 모자랄 때는 해당 기업에 입금을 요청하게 된다. 만일 어음발행기업이 영업마감 2시간전(14:30)까지 어음결제금액을 입금하지 못하면 지급은행은 일단 제시은행에 대하여 해당어음을 결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통보한다.그후 발행기업이 영업마감시간까지(2시간동안) 입금하지 못하는 경우 해당 어음을 부도처리하고 어음을 제시은행에 반환한다.이를 1차부도라고 한다. 이렇게 1차부도가 발생한 기업이 만기일 다음날(D+1일)영업마감시간까지 부도어음금액을 입금하지 못하면 어음발행기업은 최종부도 처리된다.어음교환소는 해당 기업의 당좌거래를 정지토록 각 은행에 통보함으로써 다음날인 만기일후 둘째 영업일(D+2일)부터 발행기업의 당좌거래는 전면 정지된다.이것이 기업의 부도다. 그러나 1차 부도처리된 기업이라 하더라도 어음만기일 다음날(D+1일)영업시간 마감전까지 결제금액을 제시은행에 입금하면 제시은행은 어음교환소앞으로 동 부도어음의 입금계가 제출되었다는 부도어음 입금통보서를 제출하여 해당기업의 당좌거래 정지처분이 유예된다. ○거래정지 유예 연3회 그렇다고 1차부도가 몇차례라도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1년 이내에 3회까지는 1차부도후 입금계를 제출하면 당좌거래 정지처분이 유예되나 4회째의 1차부도 발생은 곧바로 최종부도로 처리되어 부도어음금액 입금여부와는 관계없이 해당기업의 당좌거래가 정지된다. 기업의 부도발생으로 당좌거래가 정지되면 실질적으로 영업활동에 따른 어음 및 수표발행은 물론 여타 자금융통도 거의 불가능해 지므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더이상 영위할 수 없게 된다. ◎부도가 파산은 아니다? 기업이 부도가 났다고 해서 바로 기업이 파산하는 것은 아니다.기업이 최종 부도처리되면 채권자들은 해당기업에 대한 채권회수방안을 강구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우선 청산절차에 의해 부도기업의 재산을 정리하여 채권회수하는 방안이 있다.이경우 기업은 완전히 파산하게 된다.그러나 상황에 따라서 당장 채권회수를 추진하기 보다 기업이 영업활동을 계속하도록 지원하여 향후 발생하는 영업수익으로 채권을 회수하는 방안이 고려될 수 있다.이런 방법으로는 법정관리,은행관리,화의제도가 있다. ○법정관리 법정관리란 법원의 결정에 의해 일정기간 법원이 선임하는 관리인으로 하여금 회사경영은 물론 재산관리 및 처분을 수행토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이 제도에서는 부도어음의 지급채무 등 기업의 각종채무는 법정관리인의 별도 결정이 있을때까지 동결된다. ○은행관리 은행관리란 주채권자인 주거래은행이 해당기업의 경영 및 자금관리에 참여하는 형태로서 기업과 은행간의 사적계약에 의해 이루어지며 주거래은행은 기업의 부도발생에도 불구하고 일정기간 자금지원을 계속한다. ○화의제도 화의제도는 채권자 등 이해당사자들이 합의를 통해 일정기간 채권행사는 유예하고 기업의 영업활동을 지속토록 함으로써 회사재건을 위해 노력하는 제도이다. 이상과 같은 법정관리,은행관리,화의제도 등의 경우 부도발생에도 불구하고 기업활동을 계속할 수 있기때문에 이들 제도를 잘 활용할 경우 기업이 회생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95년 이후 거액의 부도가 발생한 우성,건영 등의 경우 법정관리 상태에서 기업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금번 대규모 부도사태를 몰고온 한보그룹 부도도 법정관리 상태에서 포항제철측 인사들에 의해 영업활동과 공장건설이 계속되고 있다. ◎어음부도율 무얼 뜻하나 어음부도율은 돈의 가격을 나타내는 시장금리,요구불예금 회전율 등과 함께 시중자금사정 및 경기상황 등을 판단하는 지표로 활용되고 있다.그러나 어음부도율과 경기와는 다음과 같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어 해석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좋을 때에는 상거래가 활발하여 어음발행규모가 증가하는 반면 시중자금사정 호전으로 부도금액은 줄어듦에 따라 어음부도율은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한편 경기후퇴 초기단계에서는 그동안 축적된 자금을 활용할 수 있어 부도발생 확률이 낮으며 경기침체가 상당기간 지속된 후에야 어음부도율이 상승하게 된다.경기 회복시에도 구조조정과 경기적응지연 등으로초기에는 부도업체수가 증가할 수 있다.실증분석 결과에서도 우리나라의 어음부도율은 경기변동과 약 1년 6개월간의 시차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이를 감안하여 어음부도율과 경기와의 관계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도산을 통계 도입 필요 알다시피 어음부도와 기업파산은 개념상 상당한 차이가 있다.따라서 어음부도율이 올라가는 만큼 기업도산이 늘고 있다고 단선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외국의 예를 보더라도 현재 부도관련 지표를 작성하여 사용하는 나라는 독일,일본,대만 뿐이며 이중 대만만이 자금사정 판단 지표로 활용하고 있다.미국 및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기업도산율을 집계하여 산업구조조정 속도를 분석하고 있다.우리나라도 앞으로 사정이 허락하면 어음부도율보다는 도산율 통계를 편제하여 산업구조조정 분석 등에 활용할 필요가 있겠다. ◎부도 이렇게 줄이자 부도를 줄이는 방법은 처해 있는 경제상황에 따라 달라야한다. 즉 기대인플레율(물가인상이 얼마쯤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 낮고 기업 경쟁력이 상당히 높은상황에서 일시적인 경기 침체로 어음부도율이 상승할 경우에는 금리인하정책을 사용해 경기를 부추김으로써 부도를 줄일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기대인플레율이 높고 고비용 저효율로 기업의 경쟁력이 매우 낮은 상태다.거기다 기업의 부채비율이 300%를 상회하는 상황에서 경기침체로 부도가 증가하는 경우이기 때문에 처방도 복잡할 수 밖에 없다.산업구조조정과 같은 근본적인 대책없이 단순한 경기부양책의 실시는 단기적인 효과를 거둘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부정적인 결과만 초래하기 때문이다.즉 부도율을 낮추고자 통화공급을 늘릴 경우 단기간에는 금리가 떨어져 자금사정이 호전되고 경기가 다소 올라갈지는 모르지만 곧 인플레 기대심리를 부추겨 다시 금리가 상승하여 정책효과가 소멸될 뿐만 아니라 고비용 저호율 구조의 조정이 늦어져 보다 심각한 경기불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통화관리 안정 중요 따라서 부도율을 근본적으로 낮추기 위해서는 통화당국의 안정적 통화관리로 인플레 기대심리를 불식시켜 금리 및 임금수준을 안정시키는 일이 전제돼야 한다.그런 가운데서 개별 기업으로 하여금 중장기 산업정책방향과 연계한 산업구조조정 차원에서 업종전환,기술개발 및 생산성 향상을 촉진토록 하고 영업전망이 좋지않은 부문은 과감하게 정리하는 다운사이징을 추진해야 한다.또 자본출자를 확충해 부채비율을 선진국수준으로 낮추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깃털통해 몸통캐기」 집중 추궁(청문회 초점)

    ◎야 의원,청와대 배후설 거듭 제기 수감중인 신한국당 홍인길 의원을 대상으로 서울구치소에서 실시된 12일 「한보 청문회」를 통해 의원들은 한보특혜의 숨은 「몸통」의 실체를 추궁하는데 초점을 맞췄다.특히 야당 의원들은 홍의원과 김영삼대통령의 「특수관계」를 집중 부각시키며 김대통령과 차남 현철씨를 「몸통」으로 거론했다. 국민회의 김경재 의원(전남 순천갑)은 『한보측으로부터 받은 10억원으로 수차례에 걸쳐 수천만원씩 현철씨에게 제공하지 않았느냐』면서 『결국 한보돈이 홍의원을 거쳐 현철씨의 사조직 운영 자금으로 흘러갔다』고 주장했다.그는 『한보의 비극은 곧 김영삼정권의 비극』이라며 정권차원의 사건으로 규정,『전두환때 장영자 사건,노태우때 수서비리사건 처럼 김대통령이 감히 차기정권 재창출을 기도해 무리수를 둔 것』이라고 공박했다. 같은 당 조순형 의원(서울 강북을)도 『청와대 총무수석과 경제수석의 은행 대출 청탁은 개인적인 부탁이라기 보다 직속상사인 대통령의 의사라고 해석하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10개월뒤 정권이 바뀌면 백일하에 드러날 사실을 왜 숨기느냐』고 청와대 배후설을 거듭 제기했다. 자민련 이인구 의원(대전 대덕)은 『김대통령과 증인의 30년 관계로 볼때 금융계 인사든 누구든 증인을 김대통령의 분신으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92년 대선직전)한보가 수백억이나 천억 단위로 「해」와 정치적 거래를 한 사실을 알고 「하늘」인 홍의원이 몸통의 뜻에 따라 심부름을 한 것 아니냐』고 다그쳤다. 신한국당 김학원 의원(서울 성동을)은 『현철씨가 운영한 언론대책반 등 사조직에 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 사실이냐』며 해명성 답변을 유도했다. 이에 대해 홍의원은 『사실 무근』이라며 일축했다.특히 홍의원은 『깃털과 몸통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동양사람들은 남들이 자기에게 「실세」라고 해도 겸양의 자세로 낮춰서 얘기하지 않느냐』며 「깃털­몸통 일체론」을 피력,다른 실세가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 2월 어음부도율 0.24%… 1월보다 0.03%P 상승

    지난달 전국의 어음부도율(금액기준)과 서울의 어음부도율은 모두 82년5월의 장영자·이철희 부부 어음사기사건 이후 가장 높았다. 한보철강의 부도에다 아프로만 등 컴퓨터 유통업체의 부도 파문이 지속된 탓이다.
  • 어음부도율 15년만에 최고/2월/전국 0.24%­서울 0.18%

    부도한파가 전국을 휩쓸고 있다. 지난달 전국 및 서울의 어음부도율(금액기준)이 모두 82년 5월 이후 가장 높았다.한보철강의 부도파문이 지속된데다 컴퓨터 유통업체인 아프로만과 한국IPC 등의 잇따른 부도 때문이다.이달의 어음부도율은 지난달보다는 다소 낮겠지만 1월보다는 높을 것으로 추정됐다. 한국은행이 28일 발표한 「2월중 어음부도율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의 전국 어음부도율은 0.24%로 장영자·이철희 부부의 어음사기사건때인 82년 5월의 0.32% 이후 가장 높았다.전달보다는 0.03% 포인트 높아졌다. 지난달 서울의 경우만 두고보면 어음부도율이 0.18%로 역시 82년 5월 이후 가장 높다.전달보다 0.02% 포인트 높다. 이달의 어음부도율도 한보철강의 부도영향이 지속되는데다 삼미특수강의 부도가 겹쳐 전국은 0.22∼0.23%,서울은 0.17%선으로 추정되고 있다.
  • 어음부도율 15년만에 최고/2월

    ◎한보사태 영향 서울 0.23% 기록 한보철강 부도사태 여파로 지난달 서울지역 어음부도율이 0.2%를 돌파해 82년 5월의 장영자 어음사기사건 이후 15년만에 가장 높았다. 9일 재정경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지역 어음부도율은 평균 0.23%(전자결제 조정전)였다.한보부도 사태 수습을 위한 각종 지원대책이 시행됐지만 1월의 평균 0.19%보다도 0.04% 포인트 높아졌다. 장영자 어음사기사건이 터졌던 지난 82년 5월의 0.29% 이후 처음으로 0.2%를 넘어섰다.
  • 금융사고와 은행 부침사

    ◎상업은/장영자·이철수­명성악재… 한때 꼴찌로/제일은/유원·우성·한보 건설삼재… 수성 힘들듯/조흥은/페점 직전서 산매금융 전환… 재기 신화 은행의 성적은 돌고돈다.지난 77년부터 지난해까지 20년간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성적표를 보면 그대로 나타난다.6년이상 순이익 1위를 유지한 은행은 하나도 없다.평균 3년정도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돈 장사는 원래 남는다.자금수요가 공급보다 많기 때문이다.은행별로 직원들의 생산성도 예전이나 요즘이나 큰 차이는 없다.은행간의 순이익에 결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은 대형사고다.대기업의 부도 등 대형 금융사고에 휘말리면 실적은 급속히 나빠진다.은행의 부침사는 금융사고사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 상업은행은 77∼81년까지 잘 나갔다.원래 법인과 거래가 많아 수신고(예금액)에서 앞선데다 거래하는 대기업의 부도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82년부터 액운이 끼기 시작했다.82년 장영자·이철희 부부의 어음사기 사건에 휘말린데다 83년에는 명성사건까지겹쳤다.중동에 진출한 건설회사의 부실도 이어졌다.후유증으로 86∼89년에는 꼴지로 내려앉았다. 산매금융에 상대적으로 주력했던 제일은행의 저력도 80년대 중반부터 나오기 시작했다.제일은행은 85∼86년 1위에 오른데 이어 92∼93년 다시 1위에 올랐다.하지만 95년 유원건설(현 한보건설),지난해 우성건설의 잇단 대형부도로 타격을 입은데다 올해에는 한보철강의 악재까지 겹쳤다. 거액부실 등에 따른 악재를 호재로 이용해 실적이 좋아진 경우도 있다.조흥은행은 77∼81년까지 4∼5위권에 맴돌던 하위권 은행이었다.82년에는 장영자·이철희 사건,83년에는 영동개발사건까지 겹쳤다.문닫기 일보직전이었다.모은행에 인수된다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였다. 조흥은행은 이때부터 산매금융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살길을 찾았다.89년까지는 사고 후유증으로 4∼5위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90년대 들어 몰라보게 좋아졌다.94∼96년에는 1위를 지켜 최고은행이 최고은행이 됐다.나이값을 한 셈이다.
  • “먼저 정태수씨 사법처리” 본격화/한보 파동­속전속결 수사 안팎

    ◎측근 김종국씨 조사서 정씨 혐의 확보/의혹핵심 접근후 주변 파헤치기 수순 한보 특혜대출 의혹 비리에 대한 검찰수사가 「쾌도난마」식으로 진행되고 있다.수사 착수 나흘만인 30일 한보그룹 정태수 총회장을 전격 소환,전례에 비춰 「서두른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발빠르게 의혹의 핵심부에 접근했다. 수사의 속도감은 지난 95년 덕산그룹 연쇄부도사건과 비교해 볼 때 확연히 느껴진다.대검중수부는 당시 압수수색 실시후 10여일이 지난 뒤에야 박성섭 회장 등 일가를 소환,사법처리했었다. 부실대출금액 등 금액과 정치권과의 연계 가능성 등 사건의 폭발성에 비추어 덕산그룹 사건은 이번 사건에 비교할 수 없다.그런데도 검찰은 박회장 일가 소환에 앞서 각종 자료를 면밀히 검토하는 등 신중을 기했었다. 그렇다면 검찰의 발걸음이 이처럼 잰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정총회장 소환에 앞서 김종국 전 재정본부장 등 측근으로부터 대출 등과 관련한 정총회장의 혐의사실을 충분히 확보했을 것이란 풀이가 가능하다. 실제로 김씨는 사흘간에 걸친 검찰조사에서 한보철강의 비자금 조성 등 정총회장을 옭아맬수 있는 단서를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수사의 정점에 해당하는 정총회장을 당장 소환하더라도 위험부담이 없다는 계산이 섰다는 것이다. 사상최대의 금융사건에 쏠린 여론의 관심도 검찰수사에 가속을 붙게 한 요인이다.검찰로서는 시간 지체에 따른 의혹 증폭 및 축소수사 시비 등이 부담스러울수 밖에 없다.비리커넥션의 핵심 부위를 당장 캐내지는 못하더라도,정총회장에 대한 사법처리 등 가시적인 성과를 올려야 하는 필요성이 제기됐다는 전문이다. 사정당국의 관계자는 『검찰수사에 시간이 많이 걸리면 국민감정이 악화될 수 밖에 없다』면서 『정총회장을 일단 사법처리한 뒤 대출 커미션 및 뇌물수수 여부 등 핵심사안에 대한 수사가 뒤따를 것』이라고 말해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사건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정총회장을 상대로 검찰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둘지는 불투명하다.정총회장은 수서택지 비리와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조사받는 과정에서 녹록지않은 솜씨로 검찰을 곤경에 빠뜨렸었다. 하지만 모든 의혹을 가능한 한 풀겠다는 검찰의 의지는 강하다.검찰의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5공 때의 이철희·장영자사건,영동사건 등에 비견될 정도로 폭발력이 있다』면서 『수사 성과 여하에 따라 검찰 전체의 명예가 좌우될 것』이라고 말했다.
  • 해방후 40여명 불명예퇴진/한보사태 계기로 본 은행장 수난사

    ◎율산·장영자·명성 등 큰사건때보다 “뭇매”/현정부 들어서도 비리 등 관련 16명 떠나 한보철강의 대출과 관련해 전·현직 은행장 중 몇명은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게 금융가의 지배적인 관측이다.게다가 청와대의 고위관계자가 『경영을 잘못한 행장이나 부실대출과 관련된 행장의 경우 이사회나 검찰 조사결과에 따라 퇴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한보철강 사태후 은행권은 꽁꽁 얼어붙고 있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금융계와 관련된 사건이 터지거나 대출 부조리에 휘말려 물러난 행장은 모두 16명.사정바람이 불때마다 0순위에 오르는 게 은행장이다.우리나라의 은행사는 행장 수난사로 기록될 만하다.광복 이후부터 따지면 「불명예」 퇴진한 행장은 40명이 넘는다. 대형 시중은행의 행장은 1만명 가까운 직원들을 통솔하고 웬만한 기업의 생존여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막강한 힘이 있다.하지만 권력 앞에서는 무력하기 짝이 없다.만만한 게 은행장이라는 말도 이래서 나온다. 대표적인 행장의 수난사만 보자.74년 세상을떠들썩하게 했던 박영부 사기사건이 터지자 정우창 기업은행장이 74억원을 불법 대출해줬다는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79년에는 잘 나가던 율산그룹이 무너지자 부정대출과 수출금융 사후관리 미흡이유로 홍윤섭 서울·홍승환 제일·이염수 조흥·김정호 한일은행장이 불명예 퇴진했다.5대 시중은행장 중 4명이 물러난 셈이다. 80년초 신군부가 들어서자 사회정화차원에서 남상진 서울은행장 등 4명이 희생양이 됐다.82년 장영자­이철희 사건때에는 임재수 조흥·공덕종 상업은행장이 구속됐으며 83년 상업은행 혜화동 지점을 창구로 자금을 조성했던 명성사건때에는 주인기 상업은행장이 물러났다. 92년 7월 정보사터 사기사건으로 이상철 국민은행장이 불명예 퇴진한데 이어 같은해 12월에는 김추규 상업은행장이 물러났다.이희도 명동지점장의 자살까지 몰고온 양도성예금증서(CD) 남발사건에 대한 문책이었다. 현정부 들어서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출범 직후인 93년 3월 김준협 서울은행장과 이병선 보람은행장이 대출부조리 혐의로 물러난 것을 시발로지난해 말까지 15명의 행장이 타의로 자리를 떴다.94년 12월 조성춘 대동은행장은 경영실적 부진과 관련해 스스로 물러났다. 사정과 대출부조리,비자금조성 등 「죄목」도 다양하다.94년 1월에는 제2의 장령자 사건으로 선우윤 동화은행장과 김영석 서울은행장이 옷을 벗었다.장씨가 자신과 다른사람 이름으로 된 어음과 당좌수표를 불법유통시키는 수법으로 2백50억원을 챙기는 사기사건에 휘말렸기 때문이다.선우윤 행장과 김영석 행장은 은행감독원의 특별검사에 따라 자진 사퇴하는 형식으로 물러나는 등 은감원의 특검으로 자리를 떠난 행장도 적지 않다.은행장은 누구에게나 선망의 대상이다.하지만 자신들에게는 가시방석이 된 지 오래다.요즘의 분위기는 더욱 그렇다.
  • 국세청 조사국:5/조사의 거인들(테마가 있는 경제기행:36)

    ◎추경석 청장 「금융 추적기법」 도입/임채주 현 청장 음성·탈루소득 조사 업적 남겨/조사국장으로는 장병순·이근영씨 등 큰 족적 세무조사 지휘 라인은 국세청장→조사국장→지방청 조사국으로 이어진다.조세징수의 지휘탑인 국세청장의 세정방침은 조사의 방향과 강도를 결정하게 된다.조사국의 기능이 강화된 것은 80년대 들어서였다.새로운 조사기법이 개발되고 조사분야에 큰 족적을 남긴 「조사의 거인」들이 탄생한다. 5공의 개혁주체로 사회정화위원장 출신인 5대 안무혁 청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배경으로 세무조사권을 강력히 운용한 인물이다.전 서울청 국장 L씨는 『조사권을 가장 잘 활용한 사람』이라고 했다.조사권을 남용했다는 지적도 받는 그는 조사국원을 직접 선발했다.국세청 직원들은 『장관들이나 정치권의 청탁을 물리칠 만큼 강직한 일면도 있었다』고 회고한다. 7대 서영택 청장은 고시 13회로 22년만에 첫 내부승진한 청장.부동산 투기와 음성·불로소득 생활자에 대한 강력한 세무조사를 벌였다.「일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던 서청장은 탈세자는 고발을 원칙으로하는 등 엄정한 세정을 폈다.대구 출신에 경북고·서울대를 나온 TK.현재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으로 있다. 8,9대를 연임한 추경석 청장(현 건설교통부 장관)은 첫 조사국장 출신 청장.83년2월부터 3년4개월동안의 최장수 조사국장을 지낸 그는 83년 명성그룹 탈세사건 당시 조사국장으로서 금융추적기법을 처음 도입,조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는다.범양상선·영동개발진흥·포철·정래혁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이 그의 손을 거쳐 조사가 이루어졌다.조사관계자들은 그가 『세무조사를 통해 국세청의 위상을 확립했다』고 말한다. 임채주 현 청장 역시 조사국장을 거쳤다.국장 재임시절 대기업 비업무용 부동산조사와 음성·탈루소득에 대한 조사에 업적을 남겼다.2개월동안 2백여명을 투입,7백11개 재벌 계열사의 부동산을 조사하는 집념을 보인 인물. 조사국장은 본청과 6개 지방청의 6백여명의 조사요원을 지휘하는 야전사령관이다.청장의 신임이 가장 두터운 사람이 발탁된다.『조사국장은 조직안에서 능력과 자질을 검증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국세청 김정복 총무과장) 『조사국장은 자신에게 엄격해야하고 소신과 판단력이 뛰어나야 한다.절대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된다』(최병윤 전서울청 조사국장) 장병순 전국장은 5공 최대의 경제사건인 이철희·장영자사건을 파헤친 사람이다.사채업자를 대대적으로 사찰,지하경제 단속에도 공이 컸다.이근영 전국장(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은 범양상선 사건과 5공비리 세무조사를 무리없이 처리했다.업무추진력이 뛰어나고 상황판단이 빨라 안무혁청장에 의해 발탁됐다.국세심판소장·한국투자신탁사장을 역임. 허●도 전국장(작고)은 국토개발대출신으로 일 욕심이 많고 승부욕이 강했다.보스기질이 있는 마당발 스타일.박경상 전국장(현 성업공사사장)은 현대상선과 포항제철에 대한 세무조사를 담당했으며 부동산 투기단속에 공이 컸다. 조사국장은 발족 30년동안 20명이 자리를 거쳐갔다.주정중 현국장은 21대.서영철 초대국장과 이철성 2대국장은 두번이나 국장을 지냈다.이밖에 60년대 후반부터 80년 초까지 국장으로 재직한 나오연·엄빈·김동빈·권태호·권영로·한용석·송순·최기연씨 등은 초창기 조사국의 기틀을 다지고 경제개발을 위한 재정조달에 이바지했다.
  • “착근성공” 실명제 3년/정신모 논설위원(서울논단)

    지난 12일로 금융실명제가 실시된지 3주년을 맞았다.문민정부의 여러 개혁 중에서도 가장 핵심으로 꼽히는 실명제는 당초 우려와는 달리 큰 부작용 없이 착실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사실 이 제도는 이른바 이철희·장영자 부부의 거액어음 부도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지난 82년에 처음으로 성안됐었다.그 당시도 지하경제를 뿌리뽑아야 한다는 취지였으나 그 충격과 부작용이 너무나 크다는 반대 때문에 실시가 보류됐었다. 실제로 문민정부가 지난 93년 전격적으로 금융실명제를 단행한다고 발표했을 때에도 국민들의 놀라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금융소득이 거의 없는 서민들까지 불안감에 떨었었다. 그러나 우려하던 부작용은 지난 3년간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금융기관으로부터의 급격한 자금이탈을 뜻하는 금융대란,부동산이나 골동품 등 실물자산에 대한 투기,거액 자금의 해외도피 우려 등은 모두 기우로 끝났다. 올해부터 실명제를 바탕으로 금융소득에 대한 종합과세가 시행되면 조세부담의 형평성이 높아져 경제정의의 폭도 그만큼 넓어진다.때문에 종합과세는 금융실명제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또 그 완결판으로 꼽히고 있다. 물론 실명거래 자체만으로도 사회 전반을 투명하게 만드는 효과는 크다.현재 재판부의 선고를 기다리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도 실명제가 아니었다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실명제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보완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우선 실명에 의한 거래가 자연스러운 관행으로 자리잡도록 서명에 의한 금융거래가 확대돼야 한다.현금이나 자기앞수표가 아닌,신용카드나 서구식 개인수표와 같은 새로운 지급결제 수단도 활성화돼야 한다. 부부의 금융소득(이자 및 배당)을 합해 연간 4천만원이 넘는 경우로 정한 종합과세 대상도 중장기적으로 넓혀야 한다.현 금리체계에서 이만한 금융소득을 얻으려면 최소 3억원 이상의 금융자산을 보유해야 하는데,그 수는 기껏해야 7만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실명제의 유일한 부작용으로 저축의 감소와 사치성 소비의 증가를 꼽는다.금융기관들이 다양한 금융상품을 개발함으로써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합의에 의한 차명거래가 적발되더라도 아무 처벌규정이 없는 점도 석연치 않다.물론 차명의 목적인 조세포탈 등에 대한 징벌을 받는다지만 차명 자체도 처벌할 필요가 있다. 초기에 금융기관의 자금이탈을 막기 위해 금융거래의 비밀을 완벽하게 보장함으로써 범죄수사 등 다른 공공의 목적과 상충되는 사례가 있었다.이 부분도 앞으로 더 보완할 여지가 있다. 가·차명에서 실명으로 전환한 거액자금에 대한 세무조사도 서둘러야 한다.조세시효를 넘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당시 각 금융기관마다 일정한 액수 이상의 실명전환 자금을 국세청에 통보했지만 아직껏 세무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가명이나 차명으로 숨어있던 거액의 자금은 떳떳하지 않은 구석이 있을 것이다. 금융실명제는 그 2년 뒤인 95년 7월 시행된 부동산 실명제와 함께 경제정의의 실현을 촉진하는 기본 틀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아직도 큰 규모의 지하경제가 존재하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두개의 실명제로 음성 및 불로 소득이 더이상 발붙이기 어려워진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반면 국민들이 새로운 제도 때문에 치르는 대가는 다소 「불편해졌다」는 정도이다.당초의 우려와 비교할 때 개혁의 성과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싼 편이 아닌가.
  • 신한은행 신화:9·끝(테마가 있는 경제기행:21)

    ◎문제점은 없는가/조직 최우선… 신세대와 「먼거리」/2세대 주주 결속 미약… 은행 대형화 큰 걸림돌/부실대출비용 증가… 밀어부팅기식 영업 한계 앞만 보고 달려온 신한은행.친절을 비롯한 일본식 경영기법을 한국풍토에 고스란히 접목시켜 고속질주를 계속해온 최고의 은행임에 틀림없다.그러나 신한은행을 보는 시각에는 지금까지 다뤄온 긍정적인 측면외의 이견도 있음직하다.일본식 경영기법이 계속 위력을 발휘할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성장이 한계에 달했을 수도 있다는 전망도 있다.신한은행의 문제와 약점은 무엇인가. 시대가 바뀌고 대형화되는게 신한은행에는 약점이 될 수 있다.일본식 경영에서 대체로 개인은 무시된다.신한은행은 개인보다는 조직 우선이다.창립때부터 이런 식으로 교육을 해왔다.정신교육과 구보는 신한은행의 상징처럼 자리잡았다.지금까지 이런 교육은 먹혔다. 상황은 변하고 있다.신세대들은 신한은행식 교육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나응찬 행장을 비롯한 신한은행의 창립세대들은 개인보다는 조직을 우선해왔다.창립세대가 물러난 뒤에도 조직우선이 효과적일지는 불투명하다』 은행감독원관계자의 진단이다. 대졸과 고졸(특히 상고졸)간의 알력도 다른 은행보다는 심한 편이다.하나은행이 생기자 신한은행에서 80여명이 하나은행으로 빠져나갔다.월급도 약간 많았던데다 승진기회가 더 많을 것이라는 점이 작용했다.동시에 학력간의 갈등도 한 몫했다는 얘기가 적지 않았다. 신한은행은 처음 거래할 때는 대출이자 할인 등으로 잘해준다는 평을 듣는다.하지만 1년쯤 지나면 거래하는 중소기업과 마찰이 적지 않게 생긴다고 한다.대출금리도 높아지고 고객에게 처음보다 잘해주지 않는다.이미 담보를 맡겨놓은 상태라 중소기업은 불만이 있어도 신한은행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 신한은행의 주주구성도 더이상 배타적인 장점이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신한은행은 2000년에는 총자산 3위,2005년에는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대형화로 가려면 증자를 해야 한다.증자를 하면 재일동포주주들의 지분은 감소한다.성역을 누려온 재일동포주주라는 특성을 유지하는게 힘들다.재일동포주주중 창립세대는 떠나고 2세가 이어받는 중이다.2세는 창업세대보다는 은행에 애착이 적다. 이희건 회장이후가 특히 문제다.신한은행이 성공하게 된 것은 이회장이 재일동포주주들의 전체 지분을 갖고 카리스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것과 무관치 않다.누가 이회장 뒤를 이어 주주권을 행사하더라도 이 정도의 영향력과 카리스마를 갖기는 불가능하다.오사카파와 도쿄파로 분리될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있는 판이다.선발 시중은행들처럼 주인없는 은행의 단점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지난 94년말 0.6%였던 부실대출비율은 지난해말 0.9%로 높아졌다.다른 은행들은 부실대출비율이 줄고 있으나 거꾸로 가고 있다.더 후발인 하나와 보람은행은 각각 0.1%와 0.2%에 불과하다.신한은행의 부실대출증가는 밀어붙이기식 영업의 한계가 나타난 대표적인 사례다. 신한은 기존은행들이 장영자사건,영동개발사건 등 부실대출의 늪에서 허덕일때 출발했다.산업합리화 여신(대출)도 신설은행이라는 이유로 없었다.기존은행들이 모래주머니를 차고 뛸때 신한은행은 맨 몸으로달렸던 셈이다.지점설치도 자유로웠다.부실대출증가는 초창기의 이점이 사라진다는 반증이다. 신한은행의 신화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4천5백명의 임직원들이 얼마나 주인의식을 갖느냐에 달려있다.
  • 투금 15사 새달 종금사 전환/재경원 인가

    ◎시설대여·투신업 등 취급 가능 재정경제원은 24일 서울 8개,지방 7개 등 15개 투자금융회사에 대한 종합금융회사 전환을 인가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지난 72년 사채를 전면동결시킨 이른바 8·3조치와 82년 장영자 사건을 계기로 지하자금 양성화를 위해 출범한 투금업계는 4반세기만에 완전히 사라지게 됐고 종금사는 서울 6개,지방 9개 등 15개사에서 서울 14개,지방 16개 등 30개사로 늘어나게 됐다. 이들 신규 종금사들은 다음달 1일부터 전체 26개 영업사무소를 영업지점으로 변경,종전 투금업무외에 시설대여업,투신업,유가증권의 매매·중개업,외국환업무등 본격적인 종금업무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충북,울산,신세계 등 지방 3개사는 부실자산이 자기자본 이하가 될 때까지 투신·시설대여·유가증권 중개업 등 종금업무중 일부는 취급할 수 없도록 영업범위를 제한받는다. 재경원은 특히 지방자금의 서울 역류를 방지하기 위해 지방 종금사의 서울소재기업에 대한 여신(어음할인,팩토링)은 서울지점 수신액(어음매출,CMA수탁금의 합계액)이내로제한했다.〈김주혁 기자〉
  • 경제안정 공방/득표 연결에 관심(4·11의 변수)

    ◎여 정책 합격점… 경기 양극화가 과제 투표율과 경기는 서로 상반되는 경향이 있다.경기가 좋을 때 보다는 불경기일 때 선거장으로 향하는 불만에 찬 유권자들이 많다.때문에 이번 4·11 총선을 앞두고 여야 4당은 모두 경제성장의 혜택을 덜 받은 사람들,특히 2백50만 중소사업자와 영세사업자 끌어안기에 마음이 급하다. 지난해 우리 경제는 무역규모 1천만달러 돌파,국민총생산 1만달러 시대를 맞았다.한국은행은 95년 국내총생산(GDP)이 9% 성장했고 1인당 GNP도 1만76달러를 기록,선진국 문턱에 진입했다고 발표했다.12월 결산법인들도 지난해 매출액 24.9%,당기순이익 31.6%증가의 실적을 올렸다. 또 지난 1월 어음부도율은 0.25%로 이철희·장영자 사건이 났던 82년 5월 0.32%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2,3월 내리 0.14%로 떨어졌다.시장금리도 3년만에 최저 수준에 있고 무역수지 적자도 3월 들어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3억6천만달러가 줄었다. 거시경제지표만 보면 정부·여당의 경제정책은 합격점을 받은듯 해 여유를 가질 법도 하다.그러나 문제는 정작 중소사업사와 영세상인들이 느끼는 체감경기에 적신호가 켜져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과 대기업 부설 경제연구소에서 잇달아 발표하는 호황 일색의 각종 자료는 체감경기가 불황에 가까운 일반 서민과 중산층에는 오히려 소외감만 준다.「경기는 호황이라는데 왜 나만 힘드느냐」는 불만이 팽배해 있다.경기양극화는 업종간은 물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에도 심각하다.반도체와 철강,조선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순이익이 전년에 비해 줄어든 업종이 태반이고 도산하는 중소기업도 하루에 수십개씩 된다.특히 산업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국제경쟁력을 못 갖춘 업종과 중소기업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LG증권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중소기업에 대한 대책이 미봉책에 그쳐 근원적으로 해결되지 못했다』며 『그러나 올들어 정부 정책이 자금공급 확대와 불공정거래 관행 개선 등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 예전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2백50만 중소사업자,이들과 직·간접적인 관계가 있는 유권자는 적게 잡아도 5백만명은 넘는다.물론 이들이 모두 투표를 할 지,마음을 정하지 못한 부동표인 지는 분명치 않지만 이들 표의 향배가 선거에 미칠 영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4당은 중소기업 지원정책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는 있지만 차별화를 기한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아 딜레마에 빠져 있다.이런 가운데 신한국당은 98년까지 공제사업기금 3천억원 이상 확보와 대금업 및 외상매출채권보험제도 도입을 약속했고 국민회의는 중소기업 경영안정지원특별기금 설치를,민주당은 중소기업부문 예산의 10%이상 유지,자민련은 중소기업 의무대출비율 상향조정 및 대출자금의 상환기간 연장 등으로 차별화를 노리고 있다. 결국 대동소이한 각당 중소기업 지원대책이 중소사업자의 표의 향배를 가름한다기 보다는 얼마 만큼 이들 공약이 현실성을 갖고 있으며 대기업 정책과 일관성이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김균미 기자〉
  • 대기업­중기 동반발전 협력 강화/정·재계 오찬간담회 지상중계

    ◎이 중기청장­강한자가 약한자 돌봐주는 퉁포 조성/최종현 회장­“부품 공동개발 등 최대한 지원”약속/박상희 회장­PCS사업권 선정 전경련서 지원 바라 정부와 대기업,중소기업의 3자대표들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증진을 통한 경제발전」에 한목소리를 냈다. 최종현 전경련회장과 이우영 중소기업청장,박상희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장은 12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경제인클럽에서 오찬 간담회를 갖고 중소기업문제 전반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상견례를 겸한 이날 간담회에서 이청장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더욱 애정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고 박회장은 PCS(개인휴대통신)사업자선정에서 중소기협중앙회 주도의 컨소시엄이 사업권을 따낼 수 있도록 전경련의 협조를 요청했다.이에대해 최회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동발전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대화에서 구체적인 사업협력에 대한 논의까지는 이르지 않았으나 3자간의 우호적인 분위기 조성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협력증진의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대화요지다. ▲최회장=중기청이 발족하고 초대 이우영 청장이 취임하신 것을 뜻깊게 생각합니다.중소기업과 대기업이 나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 발달해야 합니다.중소기업이 건실할 때 경제가 안정되고 발전합니다.2000년대에 가면 대량생산과 대량판매 보다는 다품종 소량생산의 수요가 늘 것이며,그렇게 되면 중소기업이 우리경제를 짊어지게 될 것입니다.대기업과 중소기업인 모두 다같은 경제인이며 농업문제까지도 같이 걱정해야 하는 의존적 관계인 만큼 부품공동개발을 비롯,대기업이 도울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돕겠습니다. ▲이청장=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관계는 「더불어 발전하는 관계」가 돼야 합니다.그러려면 강한자가 약한자를 돌봐주고 생각해주는 분위기가 우선돼야 합니다.중소기업청은 중소기업인 스스로가 용기와 희망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나갈 계획입니다.중소기업 입장에서 어려움을 진단하고 파악해 정부부처와 오손도손 얘기로 풀어나갈 생각입니다. 한은 자금부장으로 있을 때 장영자사건과 영동개발사건이 모두한 은행에서 일어나 당시 그 은행이 파산직전이었습니다.시중은행 상무들을 만나 7천억원의 동업자예금을 예치해준 적이 있습니다.지금 이 은행은 건실하게 성장해있습니다.대기업들도 중소기업에 대해 이런 애정을 갖고 대하면 좋을 결실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박회장=중소기협중앙회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이 PCS사업권을 따내면 컨소시엄 참여업체들이 참여지분의 10%를 중앙회에 무상증여토록 해 재정자립을 도모,정부를 비롯한 모든 기관으로부터 「무지원」을 선언하겠습니다.대기업계열 협력업체에 대한 대기업의 지원은 이만하면 됐다고 봅니다.문제는 비계열 중소기업입니다.이들에 대해서도 지원이 강화돼야 합니다.
  • 1월 어음부도율 0.21%… 13년만에 최고

    ◎「우성」 여파… 작년 12월비 0.07%P 상승/정부지원 탈불황 기대로 건설업은 진정 지난 1월 건설업체의 부도가 큰폭으로 줄었다.건설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 및 부동산 경기 회복 기대감 때문으로 여겨진다.1월의 부도업체수는 전달에 비해 크게 줄어든 대신 신설업체수는 오히려 늘어 기업경영 여건은 다소 개선된 것처럼 보이나,우성건설의 부도로 어음부도율(금액기준)은 13년여만에 가장 높았다. 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1월중 전자결제 금액을 고려한 어음부도율은 0.21%로 전달보다 0.07% 포인트 높아져 장영자씨 사건으로 0.32%까지 치솟았던 지난 82년 5월이후 가장 높았다.1월의 어음부도율이 크게 높아진 것은 우성건설과 관련된 부도금액이 4천17억원이나 됐기 때문이다.우성의 부도금액을 제외한 부도율은 0.15%로 작년 평균인 0.17%보다 낮다. 부도 업체수는 1천38개로 전달의 1천2백68개보다 2백30개가 줄었다.부도 업체수를 업종별로 보면 건설업은 1백27개사로 전달보다 39개사가 줄었다.이에 따라 전체 부도업체중 차지하는 비중도 12.2%로 전달의13.1%보다 0.9% 포인트 줄었다.작년 9월의 11.9% 이후 4개월만에 가장 낮다. 서울과 부산을 비롯한 5대 광역시,수원 등 7대 도시에서 신설된 법인은 1천5백31개사로 이 지역의 부도법인수 3백51개사보다 4.4배나 많았다.작년 12월에는 7대 도시의 신설법인수는 1천4백97개사,부도업체수는 4백17개사였다.
  • 비자금 싸고 「불꽃공방」 펼듯/전씨 공판 검찰·변호인단 면면

    ◎정통 수사통… 노씨사건으로 노하우 축적­검찰/법조·재야서 두루 경험 쌓은 중량급 포진­변호인 26일 열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서는 검찰과 변호인단의 「격돌」도 주목거리다. 검찰측은 정통 수사통으로,변호인단은 재조·재야에서 두루 경험을 쌓은 중량급으로 진용이 짜여졌다.상대적으로 젊은 검사들의 「패기」와 변호사들의 「노련함」의 한판 승부로 표현된다. 검찰쪽에서는 서울지검 특수3부가 공소유지를 맡았다.김성호 부장검사를 비롯,최찬영·홍만표·임상길 검사 등 4명이다.임검사를 뺀 3명은 지난번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때 대검에 파견돼 수사를 맡기도 했다.충분히 「노 하우」를 쌓았다는 평가다. 김부장검사는 이철희·장영자 사건,명성그룹 어음부도사건에 이어 문민정부 초기 대검중수부에서 사정을 주도,이름을 날렸다.한번 잡은 「먹이」는 끝까지 놓치지 않아 「악바리」란 별명이 붙었다. 최검사도 마찬가지.지난해 서울시 구청 세무비리사건 때 중하위직 공무원들을 수십명 옭아넣었다.공무원 사이에서는「악명」이 익히 알려진 상태다. 홍검사는 의정부지청 검사로 있으면서 인지사건의 실적을 가장 많이 올려 특수부로 발탁됐다.노씨 비자금사건때 능력을 인정받았다. 변호인단 10명의 면면도 화려하다. 5공 말기에 청와대 사정수석을 지낸 이양우 변호사를 비롯,부산지법원장·대법관 출신의 전상석 변호사,대검 특수3과장을 역임한 석진강변호사 등 5명이 전씨의 법정 대리인으로 나온다.김유후·한영석 변호사 등 두 명을 선임한 노씨보다 3명이 많다.그만큼 「총력전」을 예고한다.이 가운데 이변호사는 5공청산 때부터 8년여동안 전씨 곁을 지켜온 핵심측근.12·12 및 5·18사건 재판에서도 「주역」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피고인 5명의 변호인들도 재조시절 쟁쟁했던 인사들이다.안무혁 전 안기부장의 변호인은 서울고법원장을 지낸 윤승영 변호사와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의 이보환 변호사.이들은 노씨 재판때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과 삼성 이건희 회장의 변론을 각각 맡아 치밀한 변론을 펼쳤다. 「검찰의 꽃」이라는 서울지검장과 대전고검장 출신의 전재기 변호사와 서울지법 형사수석부장을 지낸 정상학 변호사는 각각 사공일 전 재무부장관과 안현태 전 경호실장의 변호인으로 나온다. ◎법정·공판절차/재판장이 호명후 피고인 차례로 입정/모두 진술이어 검찰 1백60개항 신문 26일 상오 10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 법정 경위가 『일어서십시오』라고 외친다.1백90석을 가득 메운 방청객들이 일제히 일어서고 재판장인 김영일 부장판사와 주심 김용섭판사,좌배석 황상현판사가 입정한다. 김재판장이 「96고합12 피고인 전두환」을 호명하자 검사석 옆 피고인 출입구를 통해 엷은 하늘색 수의를 입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경위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와 피고인석 왼쪽 끝에 선다. 안현태 전 청와대경호실장 등 5명의 피고인도 재판장의 호명에 따라 차례로 입정한다. 이때 사진기자들은 40초 동안 쉴새없이 플래시를 터뜨린다. 전씨의 비자금 사건에 대한 첫 공판이 시작된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주소 등을 일일이 묻는 인정신문을 한다.피고인의 신원을 확인하는절차다. 이어 피고인들의 모두진술.피고인들이 혐의사실에 대해 의견을 밝히는 기회다.모두진술이 끝나면 검찰의 직접신문.전 전대통령이 재임 중 받은 돈이 뇌물임을 입증하려고 준비한 1백60개 신문사항이 열거된다.전 피고인은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뇌물이 아닌 성금이었다』고 주장한다. 검찰이 직접신문을 마치자 재판부는 변호인 반대신문을 2차 공판으로 연기해달라는 변호인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재판을 끝낸다.
  • 신임 부총리­청와대 비서실장 인터뷰

    ◎나웅배 경제부총리/“민생 역점… 신경제정책 일관 추진”/국민 생활 안정 뒷받침에 최선 『국민이 안심하고 일상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선의 뒷받침과 노력을 하겠습니다』 신임 나웅배 경제부총리는 20일 개각발표 직후 민생에 역점을 두어 경제를 운용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그는 『새로운 경제정책을 제시하고 약속하기보다는 문민정부에서 추진해오던 신경제정책을 일관성을 갖고 하나하나 착실히 실천하겠다』며 『신경제정책의 테두리 내에서 신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신임부총리는 옛 재무장관과 상공장관 및 경제기획원장관을 다 거친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통」이다.이들 경제부처장관을 역임하면서 그는 재무부는 힘있는(powerful) 부처,상공부는 화려한(colorful) 부처,그리고 경제기획원은 명예로운(honorable) 부처로 작명했었다.지금도 경제부처에서 회자되는 말이다.그가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합쳐진 재정경제원장관에 발탁됨으로써 명예롭고 힘있는 자리에 앉게 됐다.서울상대 교수 출신으로 해태제과·한국타이어사장을 지냈고 4선의원에다 장관을 5회나 역임(부총리 3회)한 팔방미인이다. 서울대 교수를 지내다 한때 재계에 입문,변신한 동기에 대해 그는 『실천을 전제로 한 경영학을 공부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사석에서 『6남2녀의 장남이어서 교수봉급만으로는 부족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그의 실물경제경험과 합리적·보수적 경제관으로 인해 비자금사건으로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재계는 일제히 환영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늘 웃는 얼굴이며 소탈하다.논리도 정연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다채로운 경력도 경력이지만 품성과 자질 때문에 그를 알고는 「쓰지 않고 못배길」 정도의 사람이라는 호평을 듣기도 한다. 그가 기용된 것에 대해 『경제운용의 중심축이 청와대에서 재경원으로 옮겨지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82년의 이철희·장영자 사건으로 재무장관에서 5개월여만에 물러났으나,상공장관시절인 86년에는 처음으로 국제수지가 흑자를 기록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부인 박효균씨(60)와 은행에 근무하는 장남,미국 유학중인 차남이 있다. ◎권오기 통일부총리/“「국민의 소리」 담긴 통일정책 도출”/북의 자력개혁 우리가 도와야 『통일로 향해 한발 두발 다가가고자 합니다』 20일 현직 언론사 사장에서 통일안보팀의 좌장으로 전격 발탁된 권오기 신임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의 취임 일성이었다.그의 이같은 다짐은 통독의 초석을 다진 옛서독의 헤르베르트 베너 전내독성장관의 「작은 발걸음 정책」을 연상케 했다.아울러 점진적·현실적 대북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시사로도 받아들여졌다. ­취임 소감과 각오는. ▲나 자신도 얼떨떨하다.대통령의 간곡한 권유에 대해 사양하다 결국 맡게 됐다.맡은 이상 재임중 통일을 내손으로 다 이루겠다는 것은 거짓말이고,한발 두발 가까이 다가가도록 하겠다.국민의 목소리를 한데 묶어서 통일정책을 추진하겠다. ­자신의 대북관이 진보·보수중 어느쪽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제는 그러한 양분법적 잣대로 봐서는 안되는 시대라고 생각한다.민주화·시장경제화·인권과 환경존중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게 세계화라고 한다면 통일도 그러한 기조에 맞게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생각이 자칫 흡수통일을 추구한다는 오해를 살 소지도 있는데. ▲흡수통일은 좋지 않다.통독 직전의 동독 총리인 드 메이지에르는 언젠가 개혁을 하고 있는 체코는 활력이 넘치는 반면 개혁을 당하고 있는 동독은 활기가 없었다는 지적을 한 적이 있다.북한이 개혁 당하지 않고 스스로 개혁하도록 우리가 도와주는 것이 통일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역대 정권에서 여러 차례 입각을 제의받았으나 언론의 외길을 걸어온 원로 언론인.자유당 시절인 지난 56년 경향신문 기자로 언론인 생활을 시작,동아일보 워싱턴 및 동경특파원,정치부장,편집국장 등을 거쳐 사장에까지 올랐다. 동아일보 사장 자격으로 TV광고에 나갈 정도로 호감이 가는 마스크에 대화를 좋아하고 주위에 적이 없는 원만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지난 70년대 동아일보정치부장 재직시 기사와 관련해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협박과 테러를 당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경북 안동 출신으로 부인 최영주씨와 1남2녀. ◎김광일 비서실장/“대통령의 「국정 결정」 소신껏 보좌”/「청와대에 대한 비판」 적극 반영 『역사바로세우기라는 중대한 과업을 진행하고 있는 김영삼 대통령을 충실히 보좌해 나가겠습니다』 신임 김광일 대통령비서실장은 2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신한국당 의원·지구당위원장회의 참석도중 인선소식을 듣고 이같은 각오를 밝혔다.그는 이어 『역사바로세우기의 목표는 확고하다』면서 『방법론이나 대통령의 직무수행 방식에 대해 일부 비판들이 있다면 모두 전하겠다』고 덧붙였다. 재야 인권변호사 출신의 김실장은 76년 명동사건때 김대중 국민회의총재의 변호를 맡아 한때 동교동계로 분류되기도 했다.그러나 13대 국회때 김대통령과 인연을 맺어 원내에 진출한 뒤 우여곡절에도 불구,「YS사람」으로 불리울 만큼 김대통령의 신임을 받아왔다. 13대 총선으로 이루어진 여소야대 정국에서 통일민주당 기조실장으로서 악법개폐와 청문회등을 맡으면서 김영삼 총재를 가까이 보좌했다.그러나 3당 통합 과정에서 민주당에 잔류한 뒤 국민당에입당하는 등 한때 다른 길을 걷기도 했다.이에 대해 『합당 때 잠시 떨어져 있게 된 것도 정치적 견해차이였을 뿐』이라면서 『김대통령은 수단으로서 합당을 했고 지금 역사바로세우기를 통해 그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지난해 행정개혁의 획기적 기구로 발족한 국민고충처리위 초대위원장을 맡아 탁월한 업무추진력을 인정받기도 했다.그는 최근 신한국당 서울 송파갑지구당위원장을 맡고 김대통령으로부터 『내년 총선에서 중요한 수도권을 지켜 달라』는 당부를 받은 뒤 5·18특별법 기초위원으로 맹활약했으나 이제 다시 15대 총선출마 대신 대통령 곁을 지키게 됐다. 김실장은 15대 원내복귀 기회가 없어진 데 대해 『개인적으로서는 희생일 수 있지만 국회의원이 되는 것 못지않게 대통령을 보좌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또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비서실을 통할하고 국민의 소리와 정당의 의견,내각의 정책집행이 제대로 조화·종합되도록 대통령의 결정을 보좌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문책임원도 은행장 선임”/징계뒤 3∼7년후… 자격 완화/은감원

    앞으로 문책경고 이상의 징계를 받은 금융기관 임원도 징계를 받은 뒤 3∼7년이 지나면 은행장에 선임될 수 있다. 은행감독원은 4일 정부의 일반사면 조치에 따라 금융기관 임원 중 문책을 받은 사람도 은행장 후보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후보자격 요건을 완화했다고 발표했다. 은감원은 은행장 후보 결격사유는 지금과 같이 두되 문책임원에 대한 은행장후보 자격제한 기간을 새로 정해 징계정도에 따라 징계 후 3∼7년이 지나면 은행장 후보가 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장영자씨 사건과 관련돼 문책경고 받은 서울은행의 김용요 전무와 장만화 전무 등 전·현직 은행임원 13명이 은행장 후보자격 제한에서 벗어나게 됐다.
  • 「공소권 없음」 결정한 공안부 배제/「특수팀」 어떻게 구성됐나

    ◎특수·형사·강력부 주축 15명 배정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가 특수부와 형사부·강력부 출신 검사로 구성돼 눈길을 끌고 있다. 특별수사본부는 본부장인 서울지검 이종찬 3차장검사와 주임검사인 김상희 형사3부장검사를 비롯해 특수부와 형사부,산하 지청 검사 등 15명으로 구성됐다. 수사의 총지휘권자는 최환 서울지검장.서울지검 공안2부의 박태식 검사를 제외하고는 공안사건의 사령탑인 한부환 1차장검사는 물론 공안1·2부의 검사 모두가 배제됐다.서울지검 지청과 지방에서 차출된 검사도 모두 자기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던 특수·공안통이다.한마디로 「특공특수·공안팀」이라는 것이 검찰 내부의 평가다. 시국사건을 전담하는 공안부가 빠지고 대형비리와 일반사건을 담당하는 특수부와 형사부·강력부 검사가 우리 현대사의 최대사건이라 할 수 있는 12·12와 5·18사건을 맡은 것은 전례에 없는 일이다. 최환서울지검장은 이같은 팀구성의 배경이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잘 알지 않느냐』라는 말로 대신했다.12·12사건을 기소유예처분하고 5·18사건을 불기소처분한 서울지검 공안1부에 다시 배당할 경우 쏟아질 비난을 고려해 진용을 갖췄다는 뜻이다. 지난해 12·12와 5·18사건을 담당한 검사 가운데 5명이 서울지검 공안1부에 남아 있지만,이들은 이 사건과 관련해 직무유기로 피소돼 적절치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는 후문이다.김재기공안2부장도 5·18사건 수사당시 대검 공안기획담당관으로 있다가 피소된 상태다. 크게 보면 수사의 주체는 공안부에서 특수부로 옮겨졌다.본부장에 서울지검의 특수1·2부와 조사부·강력부를 총괄하는 이차장검사에 배당됐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이 가운데 총괄기획팀은 분석력과 공안감각이 뛰어난 검사를,수사전담1은 직접 수사를 담당할 검사를 배정했으며 수사전담2는 「예비군」 성격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주임검사를 맡은 김부장검사도 서울지검으로 오기 전까지 서울지검 동부지청 특수부장으로 재직했다.검찰은 이들 가운데 지방에서 근무하고 있는 검사 모두를 서울지검으로 발령한다는 계획이어서 이 사건을 대하는 의지를 엿보이게 한다. ◎특수본부장 맡은 이종찬 검사/5공비리·장영자 사건 처리한 「미스터특수」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의 본부장을 맡은 서울지검 이종찬 3차장검사는 「미스터 특수」라고 불릴 정도로 검찰 안팎에서 인정하는 특수 수사의 베테랑이다. 사법시험 12회 출신인 이차장검사는 87년 대검 중수4과장을 맡은데 이어 서울지검 북부지청 특수부장,서울지검 특수 1·2·3부장,대검 중수1과장,초대 대검 수사기획관 등 검찰의 특수 수사와 관련한 요직은 모두 거쳤다. 지난해 9월 정기인사때 서울지검 제3차장검사로 발령받아 특수 1·2·3부와 조사부,강력부를 총괄하고 있다. 이차장검사는 특수수사 계통에 있는 동안 5공 비리를 비롯,이철희·장영자사건,범양상선사건 등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굵직굵직한 사건을 처리했다. 83년 서울지검 공안부와 85년 대검 공안2과장도 거쳐 공안사건에 대해서도 상당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
  • 서울신문에 미친 사회풍속도 세태 50년:Ⅱ(서울신문50돌 특집)

    ◎70년대/「보릿고개」 넘기자 미니스커트 상륙/비상계엄 후유증 「카더라 통신」 난무 70년대 70년대는 유신체제라는 스펙트럼이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잣대로 작용했다. 유신체제는 우선 「우리도 한 번 잘살아보세」라는 새마을운동 노래로 국민들의 새벽단잠을 깨우며 다가왔다. 전국 농·어촌에 새마을기가 나부끼기 시작했으며 동남아시아 국가등 해외에서도 새마을 붐을 불러 일으켰다. 서울신문도 71년부터 정부의 본격적인 사업전개에 앞서 새마을가꾸기 선두부락을 소개하는 기획물 「번영을 가꾸는 희망가족 시리즈­의욕의 현지,북돋는 자립,땀흘린 보람의 합창」이란 고정컷으로 본지 최초의 새마을운동 기획물을 72년초까지 50회에 걸쳐 연재함으로써 이 운동의 확산에 큰 몫을 담당했다. 72년 3월24일자 사설에선 이 운동을 「농민들이 스스로 잘살기 위해 자조·자립·협동하는 정신의 계발」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70년 7월7일 경부·호남고속도로 개통에다 71년 3월31일 서울·부산 자동전화 개통은 「일일생활권」이라는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정부의 이러한 불도저식 경제 최우선 정책으로 국민들의 배고픔도 어느 정도 해결되기 시작해 국민들의 얼굴에 미소가 띠기 시작했다. 환해진 모습은 먼저 옷차림에서 띠였다.67년 가수 윤복희씨가 선보인 미니스커트는 73년에는 무릎위 17㎝위까지 올라갔을 정도로 그 길이가 짧아져 경찰이 경범죄처벌대상에 미니스커트 길이를 포함시켜 자를 들고 다니며 이를 단속하는 진풍경을 빚기도 했다.남자들의 긴 머리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생들을 비롯한 청년들은 청바지를 즐겨 입고 통기타와 생맥주로 이어지는 이른바 「청통맥문화」를 만끽했다.「사랑해」「왜불러」등의 포크송이 거리를 메웠으며 「아침이슬」「고래사냥」등 금지곡도 양산됐다. 72년 7·4 남북공동성명은 통일을 염원해 온 국민들에게 벅찬 감격과 흥분으로 소용돌이쳤다. 이날자 본지는 「피맺힌 4반세기…이제 전쟁은 사라지는가! 3천리에 벼락환성」「대화있는 남·북대결의 시대 열리다」라는 제목으로 당시 시민들의 반응을 실감있게 전하고 있다. 강하면 부러진다고 했던가. 70년 11월 13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근로조건개선을 요구하며 평화시장 교복공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씨의 분신자살 사건은 이러한 고도성장 드라이브 정책이 필연적으로 맞을 수 밖에 없는 종착점을 예고한 사건과 다름 없었다. 72년 10월 17일에는 비상계엄선포로 국회가 해산되고 대학이 문을 닫고 신문·통신마저 사전검열을 받으면서 국민들은 「카더라 방송」「유비통신」으로 불리는 소문에 귀를 기울이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행정부의 시녀로 전락한 유신국회의원들이 장충체육관에서 「체육관 대통령」을 뽑는 「거수기」로 변한 것이나 비상계엄 아래서도 반체제 인사들의 저항과 민주회복운동,양심선언 등이 계속된 것도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사건을 예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유신정권은 「그때 그사람」이라는 노랫가락 속에 울린 몇발의 총성과 함께 79년 10월26일 막을 내렸다. 10·26사태 뒤엔 「한다면 합니다」란 말과 5·17후의 떡고물 얘기가 유행했다.부정축재자로 지목된 L씨가 자신은 떡(정치자금)은만졌으나 고물(부스러기돈)만 떨어졌다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70년대 종반은 79년 12월 12일 신군부의 군사반란에 이어 80년 5·17일 쿠데타로 또 다른 군사정권 시대를 예고하고 있었다. ◎80년대/“금융사기” 장영자에 “큰손” 조롱/테러범 김현희에 구혼 줄잇고/“탁치니 억하고 죽었다”엔 분노 79년 10월26일 독재자 박정희의 죽음을 뒤로 하고 80년대를 앞두고 있을 때만 해도 국민들은 비로소 「서울의 봄」을 맞게 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79년 12월12일 이른바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탈취를 노린 신군부는 압제와 서슬 퍼런 군사독재의 시대로 80년대를 열고 있었다. 80년 5월17일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군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18일 군부독재 연장기도에 맞서 광주에서 발생한 항의시위를 공수부대 특전단을 동원해 총검으로 유혈진압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결국 신군부는 그해 9월1일 전두환 정권을 탄생시킨다.그리고 이날부터 TV에는 「땡전뉴스」가 등장하게 된다.9시 뉴스는 어김없이 『전두환 대통령께서는…』으로 시작됐던것이다. 80년 11월12일에는 언론통폐합과 언론기본법 등이 제정돼 기자들은 강제해직을 면치못했고 언론은 통폐합 됐다. 이같은 압제는 학생운동의 흐름에도 영향을 미쳤다.학생운동은 광주항쟁에서의 좌절을 계기로 반미라는 새로운 흐름으로 표출됐고 급기야 82년3월18일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발생했다.이는 85년 서울·광주 미문화원 점거로 이어졌다. 82년 5월에는 장영자 금융사기 사건이 발생했다.6천억원대에 달하는 건국후 최대의 금융사기사건으로 이때부터 사람들은 씀씀이가 큰 사람을 「큰손」이라 일컫기도 했다. 분단의 아픔은 80년 대에도 지워지지 않았다.83년 9월1일에는 사할린 부근에서 항로를 이탈한 대한항공 보잉007기를 소련의 전투기가 공격,승객과 승무원 등 탑승자 2백69명 전원이 사망했고 그해 10월9일에는 서남아시아 순방에 나선 전두환 대통령을 수행하던 서석준 부총리 등 고위관리 13명이 미얀마 양곤의 아웅산묘소에서 북한공작원이 설치한 폭탄에 절명,분노를 자아냈다. 그같은 분노는 87년 6월 테러범 김현희가 대한항공 858기에 폭탄을 설치,1백51명의 승객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로 절정에 달했다.그러나 압송돼온 김현희의 미모에 반해 결혼하고 싶다는 남성들의 문의가 쇄도했다는 웃지 못할 뒷얘기도 남겼다. 87년 1월14일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도 시대의 아픔을 공유케 했다.「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발표는 폭력적인 공권력과 인권침해에 대한 국민적인 저항을 불러 일으켜 6·29선언을 낳게 했다.민주화를 염원하는 국민들의 요구에 굴복해 나온 이 선언은 후에 「죽이구」선언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이처럼 어두운 시대였지만 변화의 물결도 뚜렷했다.80년 컬러TV 시대가 개막됐고 82년에는 통행금지가 해제됐다.또 비디오문화가 새롭게 열리기 시작하면서 외설문화의 범람을 초래하기도 했다. 80년에는 또 대입본고사 폐지,대학정원의 졸업정원제 등을 내용으로 하는교육개혁조치와 함께 과외 전면금지가 단행 됐다.이에 따라 숨어서하는 과외가 성행,수백만원대의 과외풍조가 생겨났으며 「쪽집게과외」 등 돈으로 교육을 사는 세태를 낳기도 했다. 82년 중·고생 두발자율화,83년 교복자유화 등의 조치는 청소년들의 유흥업소 출입 등 많은 문제를 양산하기도 했으며 유니섹스모드의 유행을 가져오기도 했다. ◎90년대/3D기피 현상속 세계화 바람타고 외국어 수강 “붑” 93년 2월25일 제 14대 김영삼 대통령 취임과 함께 「문민정부」가 탄생했다.5·16 이후 30여년만에 민간대통령이 탄생한 만큼 90년대는 사회 모든 분야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안으로는 금융실명제 등을 통해 사회개혁의 기치를 높이 드는 사이 49년간 북한을 통치해온 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체제가 들어서는 등 안팎으로 많은 소용돌이가 있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90년대를 특징짓는 함축적인 표현은 이른바 「X세대 문화」다. 뒤돌아볼 겨를 없이 성장가도를 달려온 부모·선배 세대가 만들어 놓은 과실을 향유하는 신세대들의 시대인 것이다. 그들에게는 개인주의적이고 향락주의적이라는 부정적인 측면과 함께 개성적인 새대라는 의식이 공존 한다.알아들을 수 없는 「랩」을 흥얼거리며 록카페를 드나드는 「오렌지족」인가 하면 마음만 먹으면 배낭하나 덜렁 메고 유럽이고 미국이고 가고 싶은 곳은 어디라도 찾아나서 모험을 즐기기도 하는 세대들인 것이다. 컴퓨터 없이는 아무 것도 할수 없지만 정보화시대를 앞당기며 국제화와 세계화를 이끌 첨병도 바로 그들이다. 젊은이들의 문화가 인간성 상실로 인한 황금만능주의와 개인주의적 대중문화의 병폐를 양산하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그것은 컴퓨터나 외국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30∼50대 「컴맹세대」가 느끼는 세대간의 문화적 격차일 뿐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성수대교 붕괴사고,서울 아현동 가스폭발사고,삼풍백화점 붕괴 등 90년대 들어 빈발하고 있는 대형사고들은 선배세대들의 부정적 부산물일 뿐이며 그점에서 그들은 오히려 피해자인 것이다. 하지만 즐기는 신세대로서의 그들은 3D 기피현상이라는 어두운 한 단면을 90년대에 그려내고 있기도 하다.「고학력 구직난,저학력 구인난」현상과 외국인근로자의 양산도 바로 그들의 시대를 특정짓는 모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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