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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반기경제 어떻게 되나­전문가 긴급 대담

    ◎“침체경제 극복 노사정·국민 모두 나설때”/금융산업 개편통해 금리인하 적극 유도/개방속도는 우리경제 감내할 수준서 조절/과도한 임금상승 정부차원 대책 마련을/기업 규제완화실태 재점검… 실효성 제고 시급/과소비 우려할만… 합리적 소비패턴 제시해야 국제수지에 적신호가 켜진 가운데 하반기 경제운영방향이 제시됐다.성장(7∼7.5%)과 물가(4.5%)는 당초 목표를 견지했으나 경상수지 적자폭 억제목표는 당초 50억∼60억달러의 두배인 1백10억∼1백20억달러로 수정됐다.경제위기라는 성급한 진단마저 나오고 있다. 서울신문사는 2일 장승우 재정경제원 제1차관보와 이윤호 LG경제연구원장의 대담을 통해 정부의 경제운영방향을 분석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원장=업계나 언론에서 현재의 경제상황이 위기국면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장차관보=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에 비춰볼 때 경제가 어려운 상황인 것은 분명합니다.그러나 위기상황으로 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위기라고 자주 얘기하면 경제를 어렵게만드는 측면이 있는 데다가 시간을 갖고 대응하기 보다는 단기대책에 얽매게 하는 압박요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원장=현재의 경제상황은 경기 하강국면과 엔화약세라는 두가지 측면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같습니다.엔화약세는 구조적인 문제라서 풀기가 어렵습니다.경제위기라고 언론이 과도하게 부각시키는 것은 정부의 과민반응과 정책혼선을 초래하고,국민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며,한국의 대외신용도를 저하시켜 외국기업으로 하여금 한국진출을 꺼리게 만드는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경기 연착륙 국면 ▲장차관보=1·4분기 성장률이 7.9%를 기록하고 4·5월 산업생산 증가율도 8.9%인 것을 보면 당초 우려와는 달리 경기가 연착륙하고 있습니다.당초 예상과 가장 다른 것은 무역·무역외수지 악화입니다.경기가 호조를 보여 수입은 꾸준이 늘어나는 데 무역수지는 당초예상보다 나빠지고 자율·개방화에 따라 무역외수지 적자도 늘었습니다. ▲이원장=성장과 물가는 무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만 경상수지 적자폭이 2배이상 조정돼 정부의 예측이나 대응책마련이 미진하지 않았나 하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장차관보=상반기에만 90억달러 적자를 기록,예측을 빗나간 것이 사실입니다.구조적인 경쟁력의 문제도 있습니다.반도체 가격이 작년 동기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60억달러의 수출 차질이 빚어졌습니다.무역외수지가 불어난 것도 작년부터 이뤄진 개방과 자율화의 효과가 올해부터 본격화되는 것을 간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임금상승률 높아 ▲이원장=사실 반도체의 공급과잉과 수요둔화 문제는 업계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습니다.수요가 줄고 엔저로 일본과의 경쟁제품이 타격을 입어 수출이 둔화됐지만 대만·홍콩·일본 등보다는 아직도 수출증가율이 높습니다.과거 30%를 웃도는 수출증가는 초기성장단계에서는 가능해도 우리나라 정도의 경제규모에서 증가율이 좀 떨어졌다고 해서 비명지를 단계는 아니라고 봅니다. ▲장차관보=올해의 7∼7.5% 성장과 수출 10∼15% 증가가 경제규모를 감안할 때 정상이라고 봅니다.우리도 이제는 잠재성장률 범위내에서 정상적인 성장을 해야 합니다.위기의식을 갖고 단기적으로 대응하다 보면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하게 마련이죠. ▲이원장=우리경제의 구조적 취약점 요인을 짚어보면 금년 제조업 임금상승률이 15%로 생산성 향상 범위를 벗어납니다.이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경제가 지탱할 수 있을지,제조업체들이 계속 국내에서 영업을 할지 걱정됩니다.과도한 임금상승에 대해 정부의 대책마련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저축분위기 유도 ▲장차관보=과거 10년간 임금상승률이 계속 두자리수였고 85년대비 94년 임금은 3.8배입니다.국제수준이나 국민소득에 비춰 높은 수준입니다.고비용·저효율구조의 최대과제로서 노사관계 제도와 관행,의식의 새틀을 짜야 합니다.근로자의 요구와 기업의 경쟁력 강화 요구를 균형있게 반영하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이원장=우리 금리수준은 일본의 4배이고,공단분양가나 물류비용도 경쟁국에 비해 턱없이 높습니다. ▲장차관보=경제성장과 양적팽창에 비중을 두다보니 각분야의 균형발전이 안된 것이 사실입니다.90년대 들어 사회간접자본시설 투자를 하느라고 했으나아직 가시적인 효과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앞으로는 통화관리 중심보다는 금리안정 중심으로 노력하면서 금융산업 개편과 경쟁촉진을 통해 금리 인하를 유도할 계획입니다. ▲이원장=경제와 관련,사회분위기가 이완되고 있습니다.국민소득 1만달러시대,2020년 G7 진입 등 정부가 홍보성 정책으로 과소비를 조장한 측면도 없지않은 것같습니다.국민소득 1만달러에 비해 소비수준은 3만달러 수준입니다. ▲장차관보=억제돼온 소비가 폭발하고 자율·개방화와 맞물리면서 건전·합리적이기보다 과시·낭비적으로 흐르는 것이 사실입니다.그러나 과거처럼 소비억제나 단속보다는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속에 선진국 수준의 건전하고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특히 최근 저축률이 떨어져 장래를 걱정하는 분들이 많은 데 개인연금 세제혜택을 늘리는 등 대안을 마련해 저축분위기를 유도할 계획입니다. ▲이원장=하반기 경제운영계획상 우선순위는 어디에 두고 있는지요. ▲장차관보=상반기에 비해 물가안정과 경상수지 적자폭 축소에 비중을뒀습니다.잠재성장률 달성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원장=국제수지에 과잉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우려했는 데 물가안정을 최우선 정책으로 삼은 것은 옳다고 봅니다.특히 공공요금과 관련,공기업의 경영 효율화와 생산성 향상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민영화계획 마련 ▲장차관보=정부와 지방자치단체까지 공공요금을 올리고 경영상 문제를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정부 스스로 군살을 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민영화계획을 본격추진하기 위해 8월까지 계획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이원장=궁극적으로 우리경제의 문제는 고비용·저능률 문제입니다.국내 기업의 물류비용은 매출액의 17%나 됩니다.사회간접자본 투자는 예정보다 모두 연기되고 있습니다. ▲장차관보=그동안 정부는 SOC 재정 확보에 역점을 둬 왔으나 앞으로는 재원배분 효율화에 역점을 두겠습니다.공단이나 항만과 직접 연결된,물류비용과 직접 관련된 부분에 우선순위를 둘 계획입니다.재원은 담배인삼공사 등 공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확보할 것입니다. ▲이원장=기업들의 투자심리 고취 대책이 거의 없어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원화 환율 운용도 문제입니다.원화절하가 장기적으로 좋지는 않지만 자본수지의 흑자로 인한 절상은 막아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엔화절하 효과가 우리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데는 1년정도 시차가 있습니다.작년 3·4분기에 엔화절하가 본격화된 점을 고려할 때 하반기 수출전망도 밝지는 않습니다. ▲장차관보=개방과정에서 자본유입이 증가하면 장기적으로 환율절상 압력이 생기고 결국 장기적으로 원화 절상에 대비,기업들은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환율을 신중히 운용할 것입니다. ▲이원장=경상수지 적자중 무역외 수지가 70억달러나 됩니다.무역외 수지가 무역수지 적자보다 큰 것은 처음있는 일입니다.이중 여행수지가 25억∼30억달러나 됩니다.과소비 분위기를 보여주는 단적인 지표라고 봅니다. ○관광산업 활성화 ▲장차관보=정부는 과소비 분위기가 지속되지 않도록 허용된 범위내에서 합리적인 소비가 이뤄질 수 있도록 사후관리를철저히 할 계획입니다.월드컵대회를 앞두고 관광산업을 개편,활성화시킬 계획입니다. ▲이원장=문민정부 들어 경제규제 완화를 꾸준히 실시해오고 있지만 본질적인 규제완화는 안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장차관보=기업활동 및 국민생활과 관련,그동안 추진해온 규제 완화실태를 점검해 실효성을 높일 계획입니다.규제의 기초가 되는 법령도 자의적 판단에 따라 규제가 가능한 부분이 있어 법령을 구체적으로 개정,투명하고 객관적으로 운영되도록 할 방침입니다. ▲이원장=일부에서는 정부가 OECD가입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소리도 나옵니다. ▲장차관보=우리의 경제규모나 경제적 수준에 비춰볼 때 OECD안에 들어가 세계 경제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서 90년대 들어오면서 단계적으로 추진해왔습니다.개방속도는 남북대치라는 특수상황 등을 고려,우리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조절해나갈 것입니다. ▲이원장=이번의 수출둔화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점을 드러낸 것입니다.기업은 경영혁신,근로자는과도한 임금인상요구 자제,국민은 근검절약으로 정부와 함께 어려운 국면을 극복해야 할 때입니다. ○정책 일관성 유지 ▲장차관보=위기이기 보다는 개방과 치열한 경쟁을 앞두고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는 전기가 될 것입니다.정부 혼자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습니다.기업과 근로자,국민의 동참을 유도하는 계기가 돼 경제적 어려움을 논의하는 생산적인 기회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대응책을 마련해 나가겠습니다.〈정리=김주혁·김균미 기자〉
  • 전남 나주 불회사 암장승(한국인의 얼굴:73)

    ◎으스스한 표정뒤로 계면쩍은 웃음이/주름투성이 코·왕방울 눈… 두번보면 친근감 나주시 다도면 마산리 불회사 어귀의 돌장승은 풍채가 당당하다.이 절장승은 절에 부정이 들지않게 절 초입을 지키는 수문장격의 돌장승이라서 좀 무서운 얼굴을 했다.그래서 범접한 잡귀를 한차례 쯤을 쫓아버릴 수 있겠으나,두어번 만나 낯이 익고나면 잡귀도 그리 두려워할 얼굴은 아니다. 그렇듯 무서워 보이면서도 곧 친해질 수도 있는 불회사 돌장승.그 연유는 본래의 천성이 특악하지 않기때문일 것이다.절장승의 특성이 바로 여기 있다.불교와 무속신앙이 어우러진 불회사 돌장승 한 쌍은 짐짓 으스스한 표정을 짓고나서 오히려 계면쩍어 했다.그러다 보니 웃음이 흘러나올 수밖에….암장승은 소 웃음 같은 웃음을 흘렸는데,달관한 웃음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암장승 주장군키는 1백80㎝로 수장승 키(3백15㎝)에 비하면 작다.자연석 생김새를 그대로 살려 장승을 다듬었다.돌 생김새를 살려 장승을 만드느라 암장승인 데도 머리는 그만 민대머리가 되었다.하기야 암장승 코 밑에 몇 가닥의 수염까지 달렸으니까 민대머리를 이러고 저러고 할 처지는 아니다.그리고 돌장의 치장을 말하면 암장승 보다 수장승이 더 화려한 터여서 암장승 코를 밋밋하게 비워두기가 섭섭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불회사 돌장승 얼굴은 대체로 희한하게 생겼다.코와 눈이 다른 지역의 돌장승들과 특이하게 구별되었다.이마에 지는 주름이야 어쩔 수 없지만,콧 날에 가로 세 줄의 주름을 잡았다.그것도 모자라 코허리에도 주름을 잡아 코는 온통 주름 투성이다.눈은 왕구슬을 박아놓은 듯 컸다.코허리에서부터 둥글게 시작하여 관자놀이 쪽으로 돌았으니 엔간히 큰 눈이다.눈 위에는 두 줄의 선각이 있다.가느다란 실금은 장승눈의 쌍꺼풀이고 깊게 골이 진 선각은 눈썹이다. 이빨 여러 개가 박혔으나 윗 이빨 치열은 고르지 않아 듬성듬성 했다.그러나 돌장승에 흔히 보이는 송곳니는 드러내지 않았다.불회사 암장승 얼굴에 나타난 특징 하나는 눈과 코,입가를 따라 오목새김한 선각이다.그 선각은 장승 얼굴의 광대뼈를 강조하면서 입 밑으로 내려와서는자연스럽게 턱을 그렸다.이는 자칫 통째로 붙어버려야 했을 얼굴과 몸통을 구분하는 선이 되었다. 그리고 오랜 나날을 같이 늙어 해로해온 수장승 하원당장군은 암장승에 비해 치장이 대단했다.콧방울을 고사리 무늬로 돌리고 턱수염은 댕기머리를 땋듯 촘촘히 땋아내렸다.수염이 얼마나 긴지 왼쪽 옆구리로 치렁치렁 내려왔다. 이들 불회사 돌장승 한쌍과 사촌쯤은 되어 닮아보이는 장승이 이웃에 있다.덕룡산을 끼고 이쪽은 불회사이고 저쪽은 운흥사인데,두 절의 장승들이 서로 닮았다.한 사람 석수의 솜씨인지는 몰라도 조각 수법이 비슷했다.다만 운흥사 돌장승에는 1719년에 해당하는 숙종45년에 세운 사실을 밝히는 간기가 들어있다.그래서 불회사 돌장승도 그 무렵에 세웠을 가능성이 많다.〈황규호 기자〉
  • 일 도요타사 안식월 도입/과장승진 3년째 사원대상 새달부터

    일본 최대 자동차업체인 도요타사는 빠르면 다음달부터 과장으로 승진한지 3년째 되는 중견사원을 대상으로 자기계발을 위한 「자기연찬 휴가제도」를 실시한다. 안식휴가 성격을 띠고 있는 이 휴가는 기간이 1개월로 유급이며 이 기간 동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지 도전할 수 있다. 회사측은 3백명을 대상으로 한 이 휴가제도로 위·아래로부터 압력을 받는 중간 관리직 사원들이 일을 떠나 충분한 시간을 가짐으로써 창조성과 도전의욕을 기를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휴가를 이용하려는 과장급은 휴가원을 내기전에 간단한 휴가이용 계획서를 내야하며 휴가후에는 성과를 적은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또한 휴가중 필요한 경비도 40만엔(약 2백90만원)까지는 회사측이 부담한다.
  • 남제주군 성읍 돌하루방(한국인의 얼굴:71)

    ◎“두둑한 용코 자랑하듯 근엄한 표정”/머리에 눌러쓴 벙거지는 「남성의 상징」인듯 한국인의 얼굴 제주도는 지질학적으로 환태평양조산대 뒤쪽에 자리한 화산도다.5단계 화산활동에서 마지막으로 분출한 현무암이 지표의 90%를 덮었다.그래서 제주도의 돌은 구멍이 숭숭 나 거칠어 보이는 이른바 다공질 현무암이다.하루방을 만든 돌 또한 다공질 현무암이어서 돌하루방은 오늘날 제주도 풍물을 대표하는 마스코트가 되었다. 그만치 유명세를 많이 물고있는 돌하루방은 요즘와서 새로 만든 모조품이 웬만한 자리면 으레 서 있다.그러나 옛날에는 제주목과 정의현,대정현에나 가야 돌하루방을 만났다. 조선조 태종10년(1416년) 한라산을 경계로 북쪽 경사면에 제주목,남쪽 경사면은 고근산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 정의현을 설치했다.그리고 고근산 서쪽을 대정현이라 하여 제주도의 행정구역을 3현으로 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제주도 돌하루방은 벽촌 마을장승은 아니다.굳이 신분을 따진다면 읍장승이다.오늘날 남제주군 표선면 성읍리는 정의현 고을자리인데,12기의 돌하루방이 남아있다.옛 정의현성 동·서·남문터 앞에 각각 4개씩이 자리잡았다.제주시 돌하루방 보다는 작고 대정읍 것과 비하면 조금 크다.평균치가 1백40㎝를 조금 넘고보면 어른키에 휠씬 못 미치는 단구라 할 수 있다. 성읍리 돌하루방 인상을 한마디로 말하면 몽땅하다.더구나 키 절반 가까이를 머리통이 차지했다.그렇듯 기형을 이루었음에도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근엄해 보이는 이유가 어디있는가 했더니 바로 코였다.코허리가 아예 윗 이마에서부터 시작한 코가 무척 실했다.그리고 콧날이 두둑하게 내려왔으니 이른바 용코(용비)가 아닌가.콧날이 두둑하여 콧방울은 반대로 빈약하나 용코이고 보면 한번쯤 거드름을 피워볼만도 하다. 한마디로 코값을 단단히 하는 돌하루방이다.용코는 자주성도 운세도 강한 사람의 코라 했다.또 남성의 코는 남근과 비례한다는 속설도 전해오는 터이고 보면 성읍리 돌하루방의 코자랑은 대단한 편이다.머리 덮어 쓴 벙거지도 남성의 심벌로 여겨봄직 한데,장승 자체가 남근석의 변형이라는 견해도 나와있다.우리나라의 돌장승격인 그리스의 석상 헤르마 몸통에는 남근을 상징한 돌기를 솔직히 곧추 새겨놓았다. 우리의 옛 사람이나 먼 오리엔트에 살던 옛 사람들의 사고는 그게 그것이었는지,역시 경계표석이었다.땅의 경계를 구획하여 그 안을 지킨 수호신 기능이 엿보인다.성읍리 돌하루방도 정의현성 성문 밖에 세운 것은 성을 지키도록 하기위함이었을 것이다.그러나 근엄한 성읍리 돌하루방을 제주시내의 돌하루방과 같은 시기에 세웠다는 정황은 없다.제주의 것과도 다르고 오늘날 대정면 돌하루방과도 서로 비교되기 때문이다. 이들 돌하루방이 있는 남제주군 표선면 성읍리는 통틀어 국가가 지정한 민속마을이다.그 안에는 제주도 냄새가 물씬 풍기는 초가 따위의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들이 촘촘히 박혀있다.〈황규호 기자〉
  • 제주시 이도1동 돌하루방(한국인의 얼굴:70)

    ◎왕방울 눈·굳게 다문 입에 정감이…/훤칠한 키·비껴쓴 벙거지에 멋도 잔뜩 제주도의 돌하루방은 육지로 말하면 돌장승이다.옛날 기록에는 돌하루방을 일러 옹중석이라했다.돌하루방은 돌할아버지라는 뜻을 가진 제주도 사투리다.어린 아이들이 돌하루방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 이름으로 굳어버렸다.어딘가에 정감이 어린 이름이기도 하거니와 실제 돌하루방에서는 온화스럽고 푸근한 체취가 우러난다. 제주도에 돌하루방이 처름 등장한 시기를 확실히 밝힐 수는 없다.다만 김석익의 「탐라기년」을 보고 어렴풋 짐작할 뿐이다.영조30년(1754년) 김몽규가 성문밖에 세웠다는 기록이 그것이다.그는 당시 제주 방어사로 전해인 영조29년에 관덕정(보물 322호)을 중창한 인물이기도 하다.그러나 전에도 있었는 데 다시 세운 것인지,또 처음 새로 세운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어떻든 「탐라기년」을 18세기 중엽 제주에 돌하루방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일러주고 있다.제주도내에 옛날부터 전해내려온 돌하루방은 현재 45기에 이른다.모두 제주도 민속자료2호로 지정 받았다.제주목과 대정현,정의현을 행정구역으로 한 조선시대 제주 삼현소재지에 집중 분포되었다.그래서 제주시내에 21기,대정면 인성·안성·보성리와 표선면 성읍리에 각각 12기씩이 남아있는 것이다. 옛 제주성 성문밖이 본래 제자리였던 제주시 돌하루방은 시내 여러 군데로 뿔뿔히 흩어졌다.제주시의 돌하루방은 대정면이나 표선면 성읍리 것들에 비해 우선 키가 크다.평균치가 1백80㎝를 넘는 훤칠한 키를 했다.그리고 대정면 돌하루방과는 달리 기단을 밟고 서 있다.제주도 돌하루방 하면 얼핏 그것이 그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지역 단위로 특성을 지닌터라 지역별로 비교하면 조금씩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제주시 이도1동을 지키고 있는 돌하루방은 아주 멋이 든 돌할아버지다.제주시 이도1동은 제주목의 제주성 옛 터전인지라 이 돌하루방이야 말로 적자격의 돌하루방이라 할 수 있다.제주도 섬 전체의 돌하루방이 그렇듯 벙거지를 썼으나 멋을 부려 비스듬이 머리에 걸쳤다.닷새장 저자거리에 나갔다가 거나하게 한잔을 하고 손자 주전부리를 사들고 오는 흐뭇한 할아버지 얼굴이다. 퉁방울눈은 이를데 없이컸다.눈이 하도 커서 눈을 만드느라 오목새김한 가장자리 선각이 자루병처럼 생긴 코와 아주 닿아버렸다.병자루 같이 생긴 코허리는 물론 코방울에까지 눈 가장자리가 맞물렸으니 크기는 큰 눈이다.역시 선각으로 표시한 큰 입을 굳게 다물었다.위엄을 갖춘 얼굴은 분명한데 무섭기 보다는 온화한 쪽에 비중을 더 실었다.그러니까 아주 인간화한 섬의 돌장승이 돌하루방일 것이다. 돌하루방을 성문밖에 세웠다는 기록과 본래의 자리 성문 앞길이 방어상 유리한 S자형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육지의 장승들처럼 돌하루방 또한 수호신 기능이 부여되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황규호 기자〉
  • 전남 곡성 가곡리 돌벅수(한국인의 얼굴:69)

    ◎눈·눈썹에도 이파리 무늬… 입은 오목색김 얼굴의 주요 부분과 머리가 이파리처럼 보이는 돌장승이 있다.전남 곡성군 오산면 가곡리 돌장승 한 쌍 가운데 암장승이 그런 모양을 했다.마을에서는 돌벅수라 불렀다.마을을 50여m 남겨둔 마을 초입의 밭둑에 서서 북쪽의 수장승을 마주한 이 암장승은 매봉과 오지봉 산자락에 빙 둘러싸인 가곡리 마을 만큼이나 평화로웠다. 가곡리 돌벅수 암장승은 어른 키를 재보기라도 하듯 제법 큰 키를 했다.커다란 돌기둥에 부조형식을 빌려 장승을 다듬었다.그래서 암장승은 마치 제키에 비해 더 크고 무거운 돌기둥을 등에 짊어진 것처럼 보인다.마을 업보모두를 지고 오랜 인고의 세월을 견디었는지 모른다.장승은 그토록 무거운 짐을 졌으나 얼굴에는 한 가닥 내색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면 그렇지,다른 지역 여느 돌장승들과는 달리 보살을 닮은 장승이 아닌가.가곡리 암장승이 보살일 것이라는 짐작은 머리에 쓴 삼산관에서 어렵잖게 볼 수 있다.우리 불교조각에 나오는 보살은 흔히 삼산관을 썼다.그런데 가곡리 장승은 분명히 삼산관을 썼으나 좀 별다른 삼산관이다.세 이파리를 머리 위로 올려 상징적 삼산관을 만들었다.기발한 착상의 초문삼산관인 것이다. 장승은 이파리로 만든 초문의 삼산관을 쓰고도 모자라 눈과 눈썹도 이파리 무늬로 돌렸다.타원형 이파리 두쪽을 포개어 놓은 것 같은 눈과 눈썹은 온화하다 못해 천진스럽기까지 했다.미간에서 시작한 콧등이 잠깐 콧날을 이루다 콧방울이 두둑이 퍼져나갔다.모나지 않은 코가 장승 얼굴을 더욱 순후한 인상으로 가꾸었다.가로로 굵게 오목새김한 입은 우람하지 않았다.비록 장승이라고는 하나 여성다운 입이다. 귀는 무척이나 커서 길게 늘어졌다.범상치 않은 귀에서도 보살의 체취를 느낄수 있다.갸름하고 통통한 얼굴은 대승불교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구도자보살이다.더러 미륵이라는 이름으로 장승신앙과 불교가 습합했지만,유독 가곡리에서는 보살과 장승이 만나는 민속신앙을 보았다.그래서 곡성 땅 가곡리 마을이 평화롭게 눈에 드는 까닭을 터득했다. 몸매가 단정한 장승은 손을 안쪽으로 가지런히 모았다.그것은본격적인 불교조각 보살상들이 공양을 올리는 자세와 너무 흡사했다.팔은 단조로웠으나 길어보이도록 윤곽만을 오목새김하고,그런대로 릴리프한 손가락이 예뼜다.별난 기법으로 돌을 다듬으면서 보살을 우회적으로 상징한 가곡리 암장승,그것은 가곡리 장승의 매력이기도 했다. 곡성에는 가곡리 암장승 말고도 예쁜 얼굴을 한 민속신앙 대상이 하나 더 있다.곡성군 옥과면 옥과리 서낭당 당집의 목조남녀상 가운데 여인상이 그것이다.삼산관처럼 생긴 고깔을 썼는데,정갈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했다.산자수명 한고을이라서 이들 어여쁜 신상들이 태어났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황규호 기자〉
  • 눈부신 봄날 화사한 춤판

    ◎이정희무용단 「국토순례 봄날 문밖에서 춤」/한국현대춤협회의 「현대춤작과 12인전」/이정희현대무용단­마라도·철원 등 문화소외지역 12곳 순회/현대춤협­40∼50대 초반의 중견무용인 초대무대 우리춤의 현주소가 어디인지를 짚어보고 춤으로 우리 땅을 쓰다듬어 보는 의미있는 춤판 두개가 잇따라 펼쳐진다. 이정희현대무용단이 오는 30일부터 5월10일까지 마라도와 제주도 철원 등 전국 12개 지역을 찾아 마련하는 「국토순례 봄날 문밖에서 춤 96­마라도에서 비무장지대까지」와 한국현대춤협회(회장 조은미)가 26일부터 28일까지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개최하는 「96 현대춤작가 12인전」. 「국토순례…」는 지난 84년부터 매년 봄,아파트단지나 도심의 공원,강가 등을 찾아 「봄이 왔음을 알리는 춤」을 파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선사해온 이정희 교수(중앙대)의 13번째 기획춤판.『이제까지 거리공연이 순수무용의 대중화를 위한 것이었다면 이번 공연은 문화생활에서 소외된 지역을 직접 방문,우리의 땅과 그속에 스며있는 역사를 보듬는데 의의가 있다』고 이교수는 설명한다. 30일 국토의 최남단 마라도에서 2회공연을 시작으로 5월 1일에는 제주도 애월읍 한라산 중턱 초원(낮 12시)과 서귀포해변(하오 2시30분),애월읍 어촌(하오 5시)을 찾아 세차례 공연한다.또 3·4일에는 독도를 찾고 5일 서울 예술의 전당,6일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7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빌딩 앞뜰,8일 경기도 안성 문화예술회관앞에서 춤판을 벌인다.이어 9·10일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의 노동당사 등 몇곳에서의 공연을 끝으로 12개 지역의 야외공연을 마무리한다. 「현대춤작가 12인전」은 한국현대춤협회가 지난 87년부터 주목받는 무용가들을 초청,그들의 춤세계를 조명해온 무대.10주년을 맞는 올해 공연에는 국내 무용계에서 중추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40대∼50대 초반의 무용인들이 한무대에 초대됐다. 26일 출연자와 작품은 김영희(이대교수)씨의 「아무도」,남정호(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씨의 「신부」,박인자(숙대〃)씨의 「가만히 있는 눈물」,이정희(중대〃)씨의 「풍경 1」.이가운데 이정희교수의 무대에는 올해 환갑을 맞은 무용평론가 김영태씨가 무대에 올라 함께 탱고춤을 출 예정이어서 벌써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27일에는 전홍조(미래춤학회 이사)씨가 「시클라멘이 있는 창가」를,이홍이(성대무용학과 교수)씨가 「향음(향음)을,김복희(한양대〃)씨가 「장승과 그림자」를,김현자(부산대〃)씨가 「생춤6­메꽃」을 무대에 올린다.28일에는 김해경(현대춤협회이사)씨의 「화이트」와 임학선(수원대 교수)씨의 「새다림」,조승미(한양대 〃)씨의 「최승희여라,그리고」가,국수호(국립무용단장)씨의 「북한강가에서 2」가 공연된다.〈김수정 기자〉
  • 전남 무안 달산리 돌장승(한국인의 얼굴:68)

    ◎“원숭이 닮은꼴”… 인간적 친근감/“아들 낳는다” 부녀자들 등쌀에 코 망가져 전남 무안군 몽탄면 달산리 돌장승 한쌍은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했다.법천사와 목우암으로 가는 갈림길에 한쌍이 마주섰다.오른쪽이 수장승이고 왼쪽이 암장승이다.새김솜씨가 무척 단순하나 다른 지역 돌장승에 비해 보다 분명히 사람모습으로 다가온 장승이기도 하다. 이 장승을 세우면서 법천사와 목우암,어느 절이 화주 노릇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다만 분명한 것은 절을 위해 세운 절장승이라는 점이다.이들 달산리 돌장승을 돌아보고 온 어떤 민속학자는 장승을 구경도 하지 않고 만든 무명의 시골석수 작품일 것이라고 했다.절의 주지는 마을석공을 불러 귀신을 닮은 사람모습의 장승을 본대로 일러주었다.그러면서 한쌍의 돌장승을 주문했다. 석수는 귀신을 본 적이 없다.귀신과 사람중에 아는 것은 사람뿐이었다.평생 구경도 못한 귀신을 애써 상상해보았지만 허사였다.막상 정을 들고 나서도 귀신이 떠오르지 않았고 마을사람들의 얼굴만이 머리속에 자꾸 맴돌았다.결국은 사람얼굴을 만들어냈다.그것도 무섭기는커녕 양순하기 그지없는 얼굴이다.연민의 정이 가득한 얼굴로 절에 오는 사람을 맞고 보내고 있는 돌장승은 대웅전부처 못지않게 자비로웠다. 한쌍이 다 그렇지만 오른쪽 수장승은 더욱 선량한 눈매를 했다.석수는 눈을 크게 만들 심산으로 눈자위를 넓게 잡았다.그리고는 오목새김 선각으로 원형의 눈을 돌렸다.그런데 볕이 들면 눈 아래 오목새김 선각에 그늘이 져 눈을 슬쩍 내리깐 것처럼 보인다.또 둥근 눈자위는 눈두덩이 되어버렸고,눈 위쪽 오목새김 선각은 눈썹으로 변했다.그저 둥글게 오목새김한 눈망울이 명암에 따라 조화를 부렸다. 수장승 코는 길어 장비형이다.그러나 아들 낳기를 바라는 부녀자들의 속신은 장승의 코를 내버려두지 않았다.코가 많이 망가져 콧날이 없어졌지만 입가에 약간 머금은 웃음은 여전했다.그 입가 인중언저리가 많이 튀어나왔다.얼핏 원숭이입이 연상되었다.돌장승이 풍기는 전체적인 인상에서 원숭이 얼굴,후상의 그림자가 어른거린 것도 바로 입 때문이었을 것이다. 돌장승을 맡은 석수는 주지스님이 요청한 귀신의 얼굴을 깡그리 저버릴 수가 없었다.그래서 궁리 끝에 떠올린 것이 사람을 닮은 짐승,원숭이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열두개의 띠를 가리는 십이지의 하나,원숭이얼굴 정도면 귀신과 흡사할 것이라고….원숭이는 비록 남방동물이었지만 십간과 십이지를 망라한 간지가 삼국통일을 전후하여 들어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 생김새는 어렴풋 짐작했을 터였다.그리고 15세기 조선시대에 실제 원숭이가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다.17세기 화가 변상벽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군후도」에도 실물원숭이가 묘사되었다. 어떻든 달산리 돌장승은 원숭이가 연상되는 사람얼굴,보다 인간화한 장승이라 할 수 있다.〈황규호 기자〉
  • 경남 창녕 관용사 돌장승(한국인의 얼굴:67)

    ◎둥글납작 큰 코… 장난기 물씬/삐죽 드러낸 송곳니에 천진함이… 돌장승이나 나무장승을 통틀어 장승의 얼굴에서 정형의 틀을 찾아내기는 어렵다. 얼굴이 제각각이다. 굳이 공통요소를 뽑아 내라면 형태가 다를지라도 눈이 왕방울만하고 송곳니를 드러내보인 정도다.무서워보이라고 부러 한짓이다.사람얼굴을 닮은 석룸에 신격을 불어넣자니 별 도리가 없었던 모양이다. 장승의 눈은 클뿐더러 대체로 둥글었다.그런데 눈이 크고 둥근 것까지는 좋았으나 코도 거의 둥글어 보이는 장승이 있다.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의 관용사 돌장승 한쌍 가운데 수장승의 그러했다.그냥 둥그렇게만 보이는 코는 실상 콧방울과 콧날을 구분했다.그러나 둥그란 이파리 네 개를 끝끝이 포갠듯 한 모양이어서 전체적인 인상은 둥글다.코허리도 작은 동그라미를 돋을 새김한 원을 이루었다. 그러니까 얼굴에서 미우 중요한 눈과 코가 한복판으로 동글동글 몰렸다.마치 도안화한 어떤 문양을 연상시켰다.그럿은 풀과 꽃을 주제로 디자인한 초화문 마스크였다.또 코허리를 몸통으로삼아 세깨의 방울을 단 삼두령이 붙여놓은 얼굴같기도 했다.눈썹은 눈자위를 깊이 파고 관자놀이 쪽으로 삐쳐 만들었다.관자놀이 쪽으로 눈썹을 휘어붙인 까닭은 좀 무섭게 보이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입은 지극히 단순하게 표현하고 입위로 송곳니를 빼냈다.위아래 입술을 통틀어 한쪽밖에 없는 입술위에 송곳니를 삐죽 드러냈다고 해서 위협적인 것은 아니다.턱마저도 둥글어 귀신으로 보이기에는 역부족이다.오히려 돌장승 얼굴은 장난기가 흠씬 밴동자상 정도로 다가왔다.이 관용사 절장승은 표현방법이 전혀 다르기는 했지만 경북선 산군 산동면 도중리 돈자석 돌장승에 보이는 천진난만한 그늘이 어렸다. 그래도 벙거지처럼 생긴 관모를 갖추었다. 관모와 이마를 구분하기 위해 오목새김으로 선을 두그로 관모에 주름한 줄을 잡아 멋을 부렸다. 풍화가 막심한 것으로 미루어 오랜세월을 버티어 온 돌장승인 듯 싶다. 동쪽의 암장승을 바라다 보기만 하면서 자신을 후세에 알릴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새김글씨 명문이 없는 것이다. 이 돌장승을 지나 절로 가다 보면 돌무지가 나온다.그 옆에는 당간을 받쳐주었던 버팀돌기둥 지주가 서있다.다만 그 당간지주에는 건융38년 게사 10월이라고 쓴 글씨가 나온다.건융 38년은 1773년이다. 돌장승과 당간지주가 다절이 소유한 것이고 풍화정도가 서로 비슷하다는 점에서 돌장승도 같은 시기에 세웠을 가능성은 있다. 지난 1938년에 경상남도 민속자료로 지정 받았다. 이 절장승이 있는 관용사에는 석조여래좌상등 2점의 보물급 문화재가 소장되었다.훌륭한 북상을 모셔두고도 돌장승을 세운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그것은 민중들의 기층신앙과영합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시대 상황이 아닌가 한다.
  • “기선잡자”곳곳서 등록순위 신경전(4·11총선 후보등록첫날표정)

    ◎일부후보 현수막 자리싸고 한때 소동­서울 동작갑/야후보 3명 모두 옥천 조씨 문중 “눈길”­순천을/26살 대학 1학년생 “세대교체” 출사표­마산 합포 4·11총선 후보등록이 시작된 26일 전국 각 지역의 선관위 등록창구에서는 등록순서를 놓고 후보자들이 신경전을 벌이는 등 치열한 선거전을 예고했다. 각 후보들은 목이 좋은 곳에 먼저 선거홍보 현수막을 걸기 위해 후보등록을 서둘러 단 2분만에 마치는가 하면 곳곳에서 먼저 등록하려고 실랑이를 벌였다. 일부 후보들은 등록이 끝난 직후 명함을 돌리거나 유세에 나서기도 했고 최첨단 멀티비전이 설치된 특수 유세차량까지 동원,재빨리 유세에 나섰다. ▷수도권◁ ○…서울 성북 갑·을 선거구 후보등록 창구가 마련된 성북구청 5·6층에는 등록시작 4시간전인 새벽 5시부터 각 후보 관계자들이 몰려 제일 먼저 등록을 마치기 위해 신경전. 후보들의 선거운동원들은 등록업무가 진행되는 동안 휴대폰으로 선거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몇번째 등록을 하게 됐다.몇시 몇분까지 현수막 설치 장소로 가서대기하라』는 등 연락을 주고 받는 등 분주한 모습. ○여성 도우미 동원 ○…후보 등록 첫날인 이날 정치1번지 종로구에 출마한 신한국당 선을 모았다. 이후보는 장학로 청와대 부속실장 파문 등 최근 잇따르는 악재를 의식한듯,『부모 못났다고 부모 버리는 자식 없다』며 『자식이 잘 돼서 부모를 칭송받게 해야 한다』며 지지를 호소. 국민회의 이종찬후보는 하오 2시 첫 유세장으로 서민들이 많이 사는 창신동 재개발지역을 선택,『여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이 정권을 잡는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 자민련의 김을동후보도 창신시장 일대를 돌면서 『아버지가 옳지못한 정치 현실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의사당에 오물을 던졌는데 지금 정치판에 그만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 어디있느냐』며 『그 역할을 내가 하겠다』고 강조. ○…서울 송파갑 홍준표(42·신한국당) 후보의 자원봉사자에는 막노동을 하며 올해 서울대 인문계에 수석 합격해 화제가 됐던 장승수씨(25·법학1)와 동생 승대씨(23·고대 경제4)가 끼여있다. 지난 22일부터 선거사무실에서 편지 쓰기 등 봉사활동을 하는 장씨는 『검사 시절의 홍후보가 권력에 맞서 용감히 싸우는 모습에 감명받아 자원봉사자로 나섰다』고. ○…서울 동작구청 동작구의회 회관에 마련된 동작 갑 후보등록 창구에서는 이날 상오 8시30분쯤 현수막 걸 자리를 놓고 한때 소란. 맨먼저 서류를 제출한 민주당의 장기표 후보 관계자들이 몰려와 『장승백이 로터리에 선관위의 검인을 받지 않은 신한국당의 서청원 후보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며 격렬하게 항의.장후보측은 등록을 가장 먼저 마치자 서후보의 현수막을 떼어 내고 끝내 같은 자리에 현수막을 내걸었다. ▷중부권◁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선거구에서 후보등록을 마친 신한국당의 홍재형후보(58)와 자민련의 구천서후보(45)가 상당구의 한복판인 철당간 앞 광장에서 하오 1시와 2시에 각각 개인연설회를 가져 이곳이 승부처로 관심을 끌었다. ○…최종 등록을 하루 앞둔 강원도 영월·평창 선관위는 이날 정당 공천자 5명,무소속 6명 등 무려 11명의 후보가 등록,전국에서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자 합동연설회 유세시간을 30분에서 20분으로 단축. ▷호남권◁ ○…전북 전주시 덕진구 선거구에서는 신한국당의 이현도후보(57)가 등록 시작 2분만에 후보 등록을 마쳐 전국에서 첫 후보등록을 기록했다. 이후보와 함께 출마한 새정치국민회의의 정동영후보(43)와 관계자들도 등록시간전에 나와 기다렸으나 추첨으로 후보등록 순서를 결정해 「전국 첫 후보등록 기록」을 놓쳤다. ○…광주시 서구 선관위에서는 각 당 후보자들이 추첨으로 등록순서를 결정해 정동채 국민회의 후보,강성상 자민련 후보,이환의 신한국당 후보 순으로 결정지었다.그러나 자민련의 강후보측은 막상 등록차례가 되자 『중앙당에서 보내주기로 한 기탁금이 아직 입금되지 않았다』고 중앙당을 원망하며 등록을 하오로 미루는 해프닝을 연출. ○…전남 순천시 선관위에 등록한 순천을 선거구 야당후보 3명이 모두 옥천 조씨 문중.신한국당의 김영근후보(42)를 제외한 국민회의의 조순승 현의원(66),자민련 조동수후보(56),무소속의 조충훈후보(42) 등이다.이들 가운데 무소속의 조후보는 국민회의 조후보의 손자뻘이고 자민련의 조후보는 조카뻘이어서 문중대결 결과가 주목. ○재산 1천2백억 ▷영남권◁ ○…대구·경북지역에서 후보등록을 마친 후보가운데 최고 재력가는 전 쌍용그룹 회장 김석원후보(신한국당·대구 달성군)로 1천2백77억원을 등록. 선관위 관계자는 김후보의 재산규모가 이번 총선에 출마한 후보들 가운데 전국 최고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 다음으로는 사조그룹 회장 주진우후보(신한국당 성주·고령)가 2백30억원을 신고했고 이승무후보(무소속 문경·예천) 1백30억원,정호용후보(무소속 대구서갑) 83억원,이상득후보(신한국당 포항남·울릉) 57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대구에서는 후보등록을 마친 후보들이 일제히 개인유세에 나서 치열한 선거전을 예고. 수성을에서 출마한 신한국당의 윤영탁후보는 상오 11시 수성구 파동 대자연아파트 유세를 시작으로 하룻동안 지역 7곳을 누볐다.윤후보는 특히 2.5t 트럭을 개조해 멀티비전까지 갖춘 유세차량을 동원하는 한편 유세에 앞서 드보르자크의 「신세계」교향곡 4악장을 확성기로 방송해 유권자를 모으기도. 한편 수성 갑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민헌후보는 등록 하루전인 25일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이날 무소속 후보로 등록.이후보는 무소속으로 출마할 것이면서도 탈당을 미뤄 의원직을 유지하며 지금까지 무려 1백50여회의 의정보고회를 가져 「현역의원의 프리미엄을 한껏 이용했다」는 촌평. ○…경남 마산 합포구 선거구에서는 26살의 대학생이 후보로 등록해 눈길을 끌었다.경남대 경영학부 1학년인 김병수후보는 직장을 다니다 대학에 입학한 만학도로 이 지역 10명의 출마 예상자 가운데 6번째로 등록. 『나이도 어린 대학생이 총선에 출마하는 것이 너무 이른 것 아니냐』는 주위의 시선에 『세대교체를 원하는 국민들의 열망에 부응하기 위해 출마했다』고 기염.〈전국 종합〉
  • 「무기선고」46년만의 재심/7순 할머니「빨갱이」몰려 24년 복역

    ◎판결 불복 94년 청구… 26일 예비심리 6·25 때 인민군에 부역했다는 모함을 당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4년간 복역한 김복련 할머니(78·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한」은 풀릴까. 김할머니가 지난 94년 6월11일 제기한 재심청구 사건의 예비 심리가 무기징역 선고 46년만인 오는 26일 서울지법에서 열린다.담당은 형사 7단독 김동환 판사. 김할머니에 따르면 지난 50년 6월29일 인민군에 쫓기던 국군 5사단 3연대 소속 김현호 일병(69·당시 23세·전남 장성군 부기면)이 서울 종로구 인의동 자신의 집 창문을 넘어들어와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빨래줄에 널려있던 이웃집 양모씨의 옷을 입혀 피신시켰다. 그러나 이웃 김모씨와 양씨가 내무서에 이를 신고,김할머니는 반동 혐의와 함께 경찰관이던 남편 전영석씨의 소재까지 추궁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다행히 같은 해 7월9일 밤 경기도 양주군 백성면 조태훈씨(65) 집으로 달아났다. 서울이 수복된 직후인 50년 10월10일 아들과 함께 인의동 집으로 돌아왔다.하지만 양씨와 김씨 일가는 자신들의 부역사실이 두려워 오히려 김할머니가 부역했다고 신고했다. 김할머니는 종로경찰서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고 같은 해 12월 2일 서울지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24년간 복역했다.이 과정에서 아들 전학철씨(51·당시 5세·경남 장승포시 능포동)와도 생이별했다. 김할머니는 지난 93년 6월20일 TV에 출연해 억울함을 호소,그의 도움으로 생명을 구한 당시의 김일병,「부역시점」인 50년 7월30일에 경기도로 피신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줄 조모씨를 찾았다.〈박상렬 기자〉
  • 전북 순창 남계리 돌장승(한국인의 얼굴:66)

    ◎연지·곤지 찍고 수줍은듯 내민 혀/넓다란 눈두덩에 타원형 눈동자는 독특 전북 순창은 교통의 요지로 평야지대에 자리잡은 고을이었다.그래서 농업생산의 중요한 터전이 되었지만 지정학적으로는 도읍지에서 먼 변방이었다.또 거기서 흙과 더불어 살아온 사람들은 노동의 고뇌를 곱씹는 가운데 보다 나은 삶을 고대했다.그들은 우선 자신들 삶의 터전이 축복받는 땅이기를 갈구했는지 모른다. 오늘날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에 남아있는 돌장승에서 그런 사연을 읽을 수 있다.이 돌장승은 순창읍에서 남원으로 가는 도로로부터 1백여m 떨어진 둑에 서 있지만 본래의 자리는 옛 길가였다.순창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을이 평야지대에 자리한 탓에 북방이 허해서 기가 흐트러진다는 생각을 했다.그래서 허한 곳을 막아주는 비보의 필요성을 느낀 사람들은 동쪽과 북쪽에 돌장승을 세웠다.그러니까 동쪽의 장승이 남계리 돌장승인 것이다. 이 돌장승은 선돌(입석)모양의 자연석을 곧추세운 형상을 했다.돋을새김으로 돌 표면에 얼굴과 손을 만들었다.키는 1백75㎝나 되어 꽤 큰 편이나 새김글씨가 없어서 언제적 장승인지는 알 길이 없다.그저 허한 곳을 막아주는 비보장승 정도로 이해할 뿐 애력을 밝혀내지 못했다. 그래도 값어치가 높게 인정되어 이웃 충신리 돌장승에 바로 이어 국가가 중요민속자료 102호로 지정하는 등 제대로 대접을 받고있다. 이마에 제법 크게 릴리프한 동그라미 백호가 인상적이다.불교요소가 습합한 돌장승은 확실하지만 이를 뒷받침할만한 이름은 구전하지 않았다.그러나 다른 지역에서 더러 돌장승에서 미륵신앙을 곁들이는 것으로 보아 이 돌장승 역시 미륵신앙의 요소가 깔려있을 것이다.자고 깨면 고된 농사일이 기다릴 뿐 어떤 신분상승을 기대할 수 없었던 평야지대의 농민들.장차 세상 땅에 내려올 것이라고 믿은 미래불 미륵의 하생은 그들의 희망이자 염원이기도 했다. 이 돌장승은 백호 말고도 양쪽 볼에도 돋을새김한 큰 점이 있다.여인이 마치 연지를 찍은 것처럼 보였다.양볼의 점을 연지로 본다면 이마의 점은 곤지로 여겨도 좋을 것이다.오늘날도 더러 치르는 전통혼례 때 신부화장에 나타나는 연지곤지를 찍은 것 같은 희한한 얼굴이다.하기야 고구려 벽화무덤인 평북 용강 쌍영총채색 그림에도 연지화장한 여인들이 등장한다.그러고 보면 조선시대 돌장승에 연지 흔적이 보인다고 해서 깜짝놀랄 일은 아니다. 눈두덩은 아예 넓고 길게 자리를 잡아놓고 약간 튀어나오게 돋을새김했다.그리고 나서 눈두덩 안에 오목새김으로 타원형 선을 그었다.타원형의 선각이 눈동자다.이 장승의 눈은 양볼의 점과 더불어 다른 지역 대부분의 장승과 구분되는 독특한 표현양식인 것이다.돌장승은 혀를 날름 내밀었다.턱은 둥근 선을 둘러 표시하고 그 밑에 주름 두 개를 더 잡았다.손가락 다섯 개가 분명한 추상적인 손,엉뚱한 자리에 부호처럼 새긴 발바닥은 매력적이다. 옛날에는 정월대보름날 장승고사를 지냈다.요즘은 고사풍습도 사라져버려 거저 허한 구석을 막아주고 있다.
  • 청주 죽림동 미륵댕이 돌장승(한국인의 얼굴:65)

    ◎몸집 좋은 시골남정네 모습 보는듯/몸통보다 큰 머림·밋밋한 코 인상적 마을의 장승은 대개 한 쌍을 세우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그러나 짝수를 지키지 않고 하나 또는 셋과 같은 홀수의 장승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짝수와 홀수는 장승의 기능에 따라 구분되었다.마을이나 절을 수호하는 장승은 한 쌍으로 짝수를 이루었고,마을 풍수와 관련한 장승은 홀수로 세웠다.홀수의 장승은 마을 지세의 보강이나 방위상 허한 쪽을 막아주는 비보기능을 지녔던 것이다. 충북 청주시 죽림동 미륵댕이 장승은 홀로 있는 돌장승이다.마을사람들은 돌장승을 미륵이라 불렀고 자연부락 본래 이름도 미륵댕이다.죽림리는 청원군 남이면에 소속한 마을이었으나 근래에 청주시에 편입되었다.미륵의 키는 1백35㎝에 불과한 난쟁이다.그런데 몸통 길이는 얼굴과 머리부분 길이 75㎝에 비해 15㎝가 모자라는 60㎝다.난쟁이 키에 몸통보다 머리가 더 크고 보면 몸골은 이러고 저러고 할 처지가 못되는 미륵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미륵의 얼굴은 착해 보였다.전체 인상을 말하라면부족한 구석이 널려있지만 인정이 넘친다고 할까….눈두덩 위가 깊게 파여 눈섭이 그린 것처럼 도드라졌다.그리고 눈은 짓감았다.헤벌린듯한 입은 마치 콧구멍을 연상케 하는 두개의 구멍으로 표시했다.그 눈과 입이 어울려 우는지 웃는지를 분간할 길이 없는 표정을 지었다.코는 밋밋했다.입 위로 파인 한 줄기의 주름이 콧방울에 닿았다. 볼과 턱에 살이 꽤 붙었다.육덕이 좋은 중년의 시골 남정네 같은 미륵은 체면치레를 하느라 관모를 갖추었다.천질이 못났을 뿐 그런대로 학덕을 갖추어서인지 무식한 얼굴도 아니다.굽은듯한 어깨와 더불어 얼핏 문인석느낌이 와닿는 까닭도 여기 있다.또 팔을 앞으로 모아 놓은듯 몸통을 다음은 것도 문인석에 접근한 요소로 작용했다.사모까지 머리에 얹어 더욱 문인석을 닮았다. 그렇다고 문인석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정월 열나흘 저녁이면 사사롭게 지내는 제의가 있으니 바로 미륵동고사다. 죽림동 미륵에서 주목되는 것은 장승과 미륵불과의 신앙복합현상이다.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장승은 나무장승이 아닌 돌장승이다.장승과 미륵불이 신앙적으로 복합한 시기는 돌장승이 나타난 18세기 후반 이후가 아닌가 한다.조선시대 억불숭유정책은 불상조성을 어렵게 했을 것이다.그래서 돌장승을 세워놓고 미륵신앙의 의미도 부여했으리라는 추정을 해볼 수 있다.동양인들 전통심성에 자리잡은 미래불미륵은 메시아와 같은 존재였다.
  • 경남 사천 동자상 돌벅수(한국인의 얼굴:64)

    ◎문관예복 차림의 도깨비 얼굴/작고 매서운 눈·처진 입 모습에 심술이… 돌장승에 불교적 요소를 가미한 현상은 여러 군데서 나타나고 있다.그저 돌장승을 만들어놓고 미륵이라는 이름을 붙여놓거나,실제 불상양식을 빌려 이마에 백호도 표현했다.그리고 불교조각에서 보이는 문수동자를 모방한 돌장승까지 만들어 세웠다. 경남 사천시 축동면 가산리에서 벅수라 하는 돌장승중에는 동자상이 끼어 있다.이 마을에는 전해오는 돌장승 8기 가운데 4기가 동자상이었으나 2기는 근래 도둑을 맞았다.동자상은 소로를 사이에 두고 약간 높은 언덕바지의 수장승 돌벅수 2기를 마주하고 섰다.돌벅수는 나이가 들고 동자상은 나이가 어려 장유유서의 층서관계를 따져서인지 높고 얕은 장소를 골라 세웠다. 동자상이 문수보살을 닮은 부분은 머리칼을 다듬은 헤어스타일이다.머리 위쪽을 쌍갈래로 따올려 마치 뿔처럼 보였다.그 유명한 강원도 평창 오대산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 221호) 두발과 흡사했다.그러나 옷매무새는 문인석에서 보이는 유교풍이다.더구나 홀을 끌어안아 쥔 포즈를 취해 유교적 체취가 짙게 우러났다.독특한 현상의 돌장승이다. 이들 동자상 돌벅수의 눈은 아주 작다.일반적으로 눈이 큰 돌장승양식의 통례를 벗어나 눈이 작을 뿐더러 매섭다.매서운 눈은 문수동자의 두발을 한 이 동자상이 지닌 외형상의 모순이기도 하다.작은 눈을 소복하게 양각해버려 감았는지 떴는지를 분간하기 어렵다.입은 꼭 다물었다.입가가 양쪽으로 처져내려와 심술궂어 보이는 구석도 있다.다른 지역의 돌장승의 입가가 위로 휘어올라간 것과는 대조를 이루었다. 눈썹을 포함한 눈부위와 앞으로 숙어진 큰 귀가 유난히 위로 올라붙었다.그리고 기다란 코에 매달린 듯한 가늘고 작은 입,빠른 하관이 가세하여 약간은 괴기한 얼굴이다.도깨비얼굴이 그럴까….그것도 날렵한 도깨비일 것이다.그 얼굴에 문수동자 머리를 올려주고 점잖기만 한 문관예복을 갖추어놓았으니 우스울 수밖에 없다.만든 사람 심성에 담긴 해학이 보인다. 도깨비를 잘 친해놓으면 재물을 안겨준다는 민담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가산리에는 얼핏 도깨비를 연상할 수 있는 동자상이 있어서인지 옛날에는 인근 7개군의 곡물이 몰려들었다.조선시대말까지 가산리 조창에서는 거두어들인 조곡을 갈무리했다가 뱃길로 제물포에 보냈다.당시는 마을도 번창하여 3백호에 이르는 대취락을 이루었다.조창에 조운의 뱃길이 있는 가산리에는 자연스럽게 사람이 몰려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민속도 풍요로웠다.정월 초하루 8기나 되는 돌장승 벅수 앞에서 지내는 용천제로 시작한 제의와 놀이는 정월 보름날까지 이어졌다.정월 보름날 마을에서 놀던 「가산오광대」탈놀이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73호로 지정되어 오늘날에도 맥을 잇고 있다.
  • 전북 남원 실상사 절장승(한국인의 얼굴:63)

    ◎커다란 안경 쓴 듯 “왕방울 눈 인상적”/키 230㎝의 수장승… 국내 최대급 우리 조상들의 심성에 수호신으로 자리잡았던 돌장승은 한강이남에 주로 분포되었다.호서지방에서 시작하여 호남과 영남지방에 주로 밀집했다.이 가운데 호서와 호남지방에 돌장승이 치중된 이유를 미륵신앙의 토착화현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그리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후 발전적으로 재편된 농업경제가 석조물 조성을 부추겼다는 견해도 제기되어 왔다. 전북의 경우 남원지역에 많이 몰려 현존하는 돌장승이 12기에 이른다.남원시 산내면 백일리와 입석리 실상사 일대의 돌장승들이 특히 유명하다.실상사 입구 해탈교 못미처에 1기,해탈교 건너 절 초입의 2기를 합뜨려 모두 3기가 있다.해탈교 못미처의 돌장승도 본래 한쌍이었으나 1930년말 장마에 넘어가 없어져 버렸다.그런데 짝을 잃은 외장승이 국내 최대급인 수장승 옹호금사축귀대장군이다. 이 옹호금사축귀대장군이 선 자리는 산내면 백일리다.해탈교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백일리와 입석리가 구획되었다.그래서 옹호금사축귀대장군은 백일리 장승인 동시에 입석리 장승 한쌍과 더불어 절장승인 것이다.백일리 장승은 암장승이 자리했던 서북쪽 빈자리를 향해 서있다.국내 최대급 답게 2백30㎝나 되는 헌칠한 키를 하고도 다리건너 입석리의 금실좋은 돌장승 한 쌍이 부러울이만큼 외롭다. 그래도 백일리 돌장승은 나도 한 때는 암장승을 거느린 적이 있다는 표정으로 빙긋이 웃었다.장승의 웃음은 양볼에 보조개마냥 패어 오목새김을 통해 지어냈다.가장자리를 깊게 새겨 마치 테 넓은 안경을 연상할 만큼 큰 눈을 했다.그러나 얼굴에 머금은 빙긋한 웃음으로 해서 사납지 않은 왕눈이 되었다.눈은 내면세계를 밖으로 드러내 보이는 마음의 창이다.그 창에 칼을 세우지 않았으니 백일리 장승 눈은 무서울리가 없다. 콧날이 서지 않게 큰 코를 새기고 코방울 역시 둥글둥글하게 커서 얼굴은 온통 눈치레 코치레다.이빨이 입술 밖으로 드러났다.더구나 송곳니를 여덟 팔자형으로 구부려서 내려뜨렸으니 무서울 법도한데,수염 정도로 보인다.긴 송곳니가 무섭지 않은 이유는 입가에도 웃음을 담아서일 것이다.돌장승들은 벙거지를 좋아해서 끝이 뾰족해보이는 벙거지 모자를 어색하지 않게 눌러썼다. 이름이 축귀대장군인지라 절집에 범접하는 잡귀를 쫓는 일이 백일리 돌장승의 임무다.그런데 웃는 얼굴을 하고 서 있는 것을 보면 그리 힘들이지 않고 대강대강 쫓아버릴 모양이다.하기야 해탈교를 건너 조금만 가면 영험한 실상사 부처님들이 계시니까 잡귀들이 우르르 몰려오지도 않을 것이다. 이 백석리 옹호금사축귀대장군에는 새김글씨 명문이 없다.그러나 해탈교 건너 입석리의 돌장승 대장군과 상원주장에는 만든 연대를 새겼다.옹정삼년을사삼월과 신해년오월이라는 명문이 각각 들어있다.1725년과 1731년에 해당하는 명문이다.그래서 옹호금사축귀대장군도 같은 무렵에 세운 절장승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 전북 부안 동문안 돌장승(한국인의 얼굴:62)

    ◎갓 쓰고 마을가는 이웃집 할아버지상/수장승이 암장승보다 키 작고 몸도 여려 한국의 인상이 각인된 풍물의 하나인 장승에는 가식이나 허식이 없는 어줍은 솜씨가 깃들였다.장승에서 자연스럽고도 소박한 민예의 정감이 우러나는 까닭도 여기있다.그런데 나무장승은 비바람에 오래 견디어 내지 못하는 수명의 한계성을 지녔다.이를 보완하기 위해 출현한 것이 돌장승이다. 돌장승은 조선후기인 17세기말부터 18세기전반에 걸치는 시기에 나타났다.돌장승에 새긴 기명이나 관련자료에 따르면 가장 이른 시기의 돌장승은 전북 부안군 부안읍내 두 군데에 자리한 돌장승들이다.이 가운데 조선시대의 부안읍성동문 청원루에서 가까운 부안읍 동중리3구의 돌장승 한쌍 동문안 장승이 있다.장승 유형을 굳이 분류하면 읍장승이라 할 수 있다.옛 고을에 읍성을 쌓고 그 앞에다 세운 장승이기 때문이다. 이들 암수 돌장승 한쌍은 동문안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다.모두 화강석으로 투박하게 깎아 기대석 위에 세웠다.여기 사람들은 수장승은 당산하나씨,암장승은 당산할머니라고 불렀다.당산하나씨 수장승은 당산할머니 암장승보다 50여㎝정도 작은 1백80㎝의 키를 했다.몸둘레도 수장승이 더 가늘다.수장승과 암장승에 상원주장군과 하원당장군이라고 각각 오목새김한 글씨가 희미하게 보였다. 수장승은 벙거지를 썼다.몸전체에 굴곡이 진 쪽도 수장승이다.암장승의 네모꼴 기둥형 몸통에 비해 동적 유연성이 수장승에서 더 엿보였다.얼굴은 달걀형으로 갸름한데 이마에는 백호를 새겼다.양쪽 귀는 본래 실했던듯 싶으나 지금은 흔적만 남았다.눈가장자리를 깊게 오목새김으로 파놓아 눈망울이 주먹만하게 보이고 이빨을 드러냈다.그리고 큼직한 콧방울께서 시작한 돋을새김 볼록선을 귓가를 향해 돌렸다.얼핏 수염인가 했으나 사실은 볼을 두드러지게 강조한 표현기법임이 이내 드러났다. 커다란 눈망울 위에 바짝 붙은 눈썹이 무척 가늘다.그래서 수장승 당산하나씨가 무섭잖게 보이는데 눈썹이 한몫을 거들었다.수장승에 비록 신성을 가미했겠지만 그저 갓쓰고 마을가는 부안사람 할아버지 표정에 지나지 않았다.그러나 현존하는 돌장승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그룹에 속한다.그같은 사실을 입증하는 간접적 징표가 있다. 이들 동중리 동문안 돌장승과 같은 시기에 세웠을 서외리 서문안 장승과 솟대당산 석간석의 새김글씨가 그것이다.이 석간석에는 청나라 연호로 강희 28년에 세웠다고 기록했다. 1689년의 일이다.그러니까 서문안 장승을 세우면서 같은 때 동문안 장승도 읍장승으로 함께 조성했을 가능성이 크다.동문안 장승을 일러 문지기장군이라 하는 것은 부안읍성 축조 당시 이미 지킴기능을 부여한 흔적일 것이다. 이들 돌장승 한쌍은 나이가 꽤 들어서인지 성에는 관대한 모양이다.정월 보름께 당산제 제의놀이로 그 앞에서 남녀가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할 때면 서로 심한 음담이 흉허물없이 오간다는 것이다.
  • 전남 순천 대흥리 나무장승(한국인의 얼굴:61)

    ◎유난히 큰 코… 암벅수 유혹하는듯/코밑·턱에는 수염 붙였던 대못자국 확연 우리의 목신 장승은 동구밖에서 마을을 지켰고,길가에 서서 나그네들에게 갈길을 일러주기도 했다.「경국대전」은 후를 큰 길가에 세워 이수와 지명을 새겨놓았다고 전한다.「경국대전」에 나온 후는 바로 장승이다.노정을 알리는 길장승인 것이다. 전남 순천시 송광면 대흥리 나무장승은 길장승 만큼이나 반가웠다.마을이 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퉁이 길에 서 있는 이들 장승.마을이 가깝다는 사실을 이내 알아 차리게 했다.모퉁이 길을 돌아서면 마을이 다가 오는데,암수장승 한쌍이 길마중이라도 나온듯 마주 서 있다.왼쪽은 수장승이고 오른쪽은 암장승이다.남좌여우의 음양이치를 따라 자리잡은 이들 장승을 마을 사람들은 벅수라 불렀다. 그야말로 장승의 키인지라 암수벅수는 키가 2m나 되었다.관모가 없는 수벅수 머리에는 그냥 머리털만을 새겼다.그러나 새긴지가 하도 오래되어 정수리 언저리가 푹 꺼져 버렸다.그토록 단단하다는 밤나무도 풍우의 세월에는 약이 따로 없어서 얼굴도 온통 갈라져ㅅ다.그래서 주름 투성이다.코 배기에는 밤나무 나이 테가 확연히 드러나 서러운 나이를 이야기하는데,세월은 자꾸 흘러갈 모양이다. 그럼에도 벅수의 코는 유난히 높고 컸다.처음 세웠을 때,말하자면 젊은 시절의 벅수는 인기가 제법이었을 것이다.코가 커서 건너편 암벅수가 좋아라 한 것은 물론이고,길가는 아낙들도 한번쯤은 흘깃 치켜올려 보았을 법 했다.그만큼 코가 실했다.우리네 속신에서 코는 성기와 한 통속이었다.「심청전」에 음녀로 등장하는 뺑덕어멈이 코가 큰 총각에게 떡을 사주는 대목도 그런 속신과 무관치 않다고 할 수 있다. 어떻든 대흥리 수벅수 코는 얼굴의 중심을 잡았다.코는 성을 상징할 뿐 아니라 인격의 구심점이 되기도 했다.서양에서는 눈과 마찬가지로 사물을 분별하는 지각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코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그런데 대흥리 수벅수의 눈은 호랑이 눈을 닮았다.그 눈의 윤곽을 오목새김으로 깊고 넓게 돌려 호랑이 눈이 한껏 살았다.코와 더불어 훌륭한 새김솜씨가 깃들인 부분이 눈이기도 하다. 입은 입술과 이빨이 맞물린 기묘한 형태여서 입술이 이빨이고,이빨이 입술로 보인다.그리고 입술 위쪽과 아래턱에는 가로로 대못 자국이 듬성듬성 나 있다.마마자국은 아니다.수염을 만들어 붙이면서 박았던 못자국인데,콧수염과 턱수염터럭이 실제 매달려 있었다고한다.그 수염은 얼마전에 불타버렸다.벅수입에 붙어살던 땅벌들이 마을 어린아이를 쏘았다고 화가 난 아버지가 수염을 불 살라버렸다는 것이다. 장승의 다양성을 본래 수염이 매달렸다는 대흥리 벅수에서 또 다시 느꼈다.장승은 김서방과 박서방 안면이 서로 다르 듯 만의 얼굴을 한 비정형이다.그러나 장승을 세운 민초들이 마음은 한결 같은 것이었다.
  • 막노동 서울대수석 장승수씨 온정 밀물

    막노동을 하며 5차례의 도전 끝에 올해 서울대 인문계 수석을 차지한 장승수씨(25·대구시 동구 불로동)에게 각계에서 온정이 잇따르고 있다.
  • 서울대 합격 장승수씨 김대통령이 축전 격려

    김영삼대통령은 31일 하오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좌절하지 않고 건설공사 현장에서 일하면서 공부해 서울대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장승수씨에게 축전을 보내 격려했다. 김대통령은 축전에서 『장씨의 합격소식은 어려운 여건속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물론 모든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었다』면서 『앞으로도 학업에 정진해 나라의 큰 일꾼이 되어달라』고 당부했다.
  • 장승수군의 훈훈한 인간승리(사설)

    막노동 6년만에 서울대 인문계 수석을 차지한 한 젊은이의 인간승리는 모처럼 우리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준다.집안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못가는 젊은이들은 얼마든지 있다.또 수석합격이라해서 우리를 특별히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다.공부하기 어려운 여건에서 좌절하지 않고 도전해 마침내 목표를 달성했다는 점에서 장승수군(25)의 성취는 값진 것이다. 공사판을 전전하고 가스배달을 하면서 학원엘 다녔다고 한다.역경을 딛고 그것을 극복하는 강인한 의지를 그의 생활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또한 패기에 찬 젊은이의 싱싱한 도전을 보게 된다.좌절없는 도전은 젊은이의 특권이자 미래를 약속하는 보증이다.온실속 화초처럼 과보호속에서 나약하고 인내심없는 요즘의 젊은 세대에서 찾아보기 힘든 덕목이다.목표를 향해 흔들리지 않고 매진하는 지향성도 높이 평가할만하다.대학졸업후 직장에서 조금만 힘들어도 감당못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이 아닌가. 학업과는 별도로 홀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심도 가상하다.삯바느질에 고달픈 어머니의 가계를 돕기 위해 그는 막노동꾼이 되었다.뿐만아니라 동생의 학비를 대기 위해 자신의 대학시험을 1년 포기할 정도로 도타운 형제애도 보여주었다.효심과 함께 아름다운 가족사랑과 희생을 실천 한 것이다.오늘날 부모에 대한 효나 가족에 대한 봉사와 사랑은 우리사회가 척박해지면서 점점 상실해가고 있는 미풍양속이다.이 점에서도 장승수군의 생활태도는 젊은이의 귀감이 된다. 헬멧에 작업복차림으로 공사장에서 동료인부들의 축하를 받는 그의 얼굴은 해맑고 밝았다.우리 주변에는 장군과 같은 혹은 그보다 훨씬 더 험난한 역경에서 강한 극복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청소년들이 많이 있다.역경과 싸우며 스스로 운명의 주인이 되려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장군의 드라마는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줄 것이다. 또다른 신화가 만들어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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