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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日 참의원 선거 압승한 여당, 한일관계 적극 나서야

    [사설] 日 참의원 선거 압승한 여당, 한일관계 적극 나서야

    어제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여당이 압승을 거뒀다. 자민당 내 최대 계파를 이끈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사망 전에도 자민·공명당이 과반을 차지할 것이란 관측이 있었는데 그의 사망으로 동정표까지 몰린 것으로 보인다. 압승한 여권이 ‘평화헌법’의 개정에 나서고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으로 방위비를 증액할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의 식민지배나 침략을 받았던 우리나 중국으로선 긴장하며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아베 전 총리는 두 차례나 총리를 역임하고 최장수 총리를 지내면서 일본의 보수화를 이끌었다. 총리직에서 내려온 뒤에도 국내 정치 및 외교에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한일 관계에도 일정한 소리를 내왔다. 그의 사망으로 일본의 보수화가 주춤할 것이라는 전망은 이르다. 일본 지도층에는 그 이외에도 보수적인 정치인들이 견고히 자리잡고 있어 아베 전 총리의 공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일 관계는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 등 일본 사회 전반의 조문 분위기로 잠시 주춤은 하겠지만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머지않은 시점에 움직일 공산이 크다. 한일 최대 현안은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다. 정부는 지난주 민관협의체를 발족시키는 등 해법 모색에 나섰다. 한일 양국에서 공동기금을 조성해 피해자들에게 보상하는 방식과 현금화 명령이 나면 한국 정부가 원고에게 배상액을 지급하고 추후에 일본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대위변제’ 방안도 거론된다. 지난 10년간 정체된 한일 관계를 풀려는 자세는 윤석열 정부가 어느 때보다 강하다. 일본은 과거 어느 정부보다 진정성을 갖고 있는 윤 정부가 내미는 손을 잡아야 한다. 더불어 강제징용이란 반인권적 행위에 대해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고 피해자를 어루만지는 자세도 필요하다.
  • 충무공 흉탄 맞자 대신 함대 지휘…진중 온갖 일 논의 참모 중의 참모[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충무공 흉탄 맞자 대신 함대 지휘…진중 온갖 일 논의 참모 중의 참모[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이 방답진첨절제사 이순신(李純信)의 부임 인사를 받은 것은 1592년 1월 10일이다. 그런데 1월 16일자 ‘난중일기’에는 ‘병선(兵船)을 수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답진의 군관과 관리에게 곤장을 쳤다’는 내용이 보인다. 훗날의 충무공(忠武公)이 역시 무의공(武毅公)이 되는 신임 첨사의 군기를 단단히 잡은 모양새다. 무의공은 이후 충무공의 가장 충실한 참모가 되어 모든 해전의 선봉에 섰고, 노량에서 충무공이 흉탄에 맞아 쓰러지자 대신 수군 함대를 지휘하기도 했다. 무의공 이순신(1554~1611)은 태종의 세자이자 세종대왕의 큰형인 양녕대군의 6대손이니 조선 왕실의 혈통을 이어받은 종친이다. 충무공 이순신(1545~1598)과 우리말 이름이 같지만 무의공은 전주, 충무공은 덕수로 본관부터 다르다. ●임기 초 긴장관계 빠른 시간에 극복 조선시대에는 남자가 성인이 되면 이름이 아닌 자(字)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충무공의 자는 여해(汝諧), 무의공의 자는 입부(立夫)다. ‘난중일기’에는 ‘이(李)입부가 다녀갔다’거나 ‘입부와 무엇무엇을 했다’는 글귀가 140차례나 나온다. 무의공이 임기 초의 긴장관계를 빠른 시간에 극복하고 충무공의 ‘측근 중 측근’으로 떠올랐음을 알 수 있다. 경기 광명시 일직동에 있는 무의공의 무덤은 KTX가 서는 광명역에서 가깝다. 입부의 집안은 양녕대군의 3대손인 증조할아버지 이윤의 때부터 당시의 시흥땅에 살았다. 입부는 아버지 이진과 어머니 복주 김씨 사이 다섯 아들의 막내로 태어났다. 입부 형제의 이름은 순서대로 이순인·이순의·이순례·이순지·이순신이다. 맹자가 인간 본성의 네 가지 덕(德)이라 지칭한 인(仁)·의(義)·예(禮)·지(智)에 믿음을 뜻하는 신(信)을 보탠 것이다. 입부의 넷째 형 비변랑 이순지는 충무공이 한성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나왔을 때 옥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난중일기’에 적혀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무의공도 거쳐 간 비변랑(備邊郞)은 비변사의 종6품 무관이다. 입부의 두 아들 이탁과 이숙도 1603년 계묘 정시에서 무과에 급제했다. 미수 허목(1595~1682)은 입부의 묘갈(墓碣)에 ‘공은 젊었을 때에 유학에 전념했으나 공을 이루지 못하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혀 25세에 알성시 을과에 급제했다’고 했다. 무의공도 처음에는 문과 급제를 꿈꿨지만 여의치 않자 무과로 선회한 것 같다. 무인에 대한 차별이 심하지 않았던 조선 중기까지는 양반사회에서 이런 현상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무의공의 둘째 아들 이숙이 아버지만큼이나 충무공의 측근이었던 흥양현감 배흥립의 사위가 됐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왜란 당시 이순신(李舜臣)을 정점으로 하는 조선수군이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데는 충무공의 리더십에 무의공과 효숙공 같은 참모진의 서로에 대한 신뢰가 더해지면서 ‘화학적 결합’이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하게 한다. 효숙(孝肅)은 배흥립의 시호다. 무의공은 충무공보다 아홉 살이 적다. 충무공은 31세이던 1576년(선조 9), 무의공은 24세이던 1577년(선조 10) 각각 무과에 급제했다. 두 사람의 ‘관계 개선’은 부임 다음달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2월 8일자 ‘난중일기’에는 ‘우후 이몽구가 방답에서 돌아왔는데, 첨사가 방비에 진력하더라고 극찬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우후(虞侯)는 수군절도사나 병마절도사의 보좌관이다. 충무공은 2월 19~27일 전라좌수사 휘하의 순천·광양·낙안·보성·흥양과 방답진·사도진·여도진·발포진·녹도진에 대한 검열에 나섰다.방답진 검열은 5관 5포 가운데 마지막으로 26~27일 이루어졌다. 충무공은 ‘장편전(長片箭)은 쓸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걱정했으나, 전선(戰船)은 어느 정도 완전해서 다행이었다’고 했다. 장편전은 긴 화살인 장전(長箭)과 작은 화살인 편전(片箭)을 가리키니 ‘화살 준비가 매우 불충분하다’는 표현이다. 충무공은 검열을 마치고 북봉(北峯)에 올라 진성 안팎의 지형을 살펴보고는 ‘외롭고 위태로운 섬이라 사방에서 적의 공격을 받을 수 있고, 성안의 연못 또한 지극히 엉성하여 참으로 걱정스러웠다. 첨사가 애는 썼으나, 미처 시설을 갖추지 못했으니 어찌하랴’고 했다. 한 달 전 부임한 첨사가 진성의 방어 시설까지 완벽하게 갖출 수는 없다는 것은 충무공도 잘 알고 있었다. 방답진은 여수 앞바다 돌산도에 있었다. 방답진성 자리는 이제 어항(漁港)이자 여수시의 돌산읍 소재지로 명맥을 이어 가고 있다. 다만 방답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옛 진성 주변은 군내리로 불린다. 그러니 동헌과 군관청, 비석 등이 남아 있는 방답진의 흔적을 둘러보려면 내비게이션에 ‘군내리’를 입력해야 한다. 미수의 묘갈에는 ‘공은 처음에는 별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김성일 공이 한번 보고는 그의 현명하면서도 재능이 뛰어난 것을 알아 극력 추천한 것’이라고 했다. 학봉 김성일이라면 1590년 조선통신사의 부사로 일본에 다녀온 뒤 침략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해 왜란 발발 이후 파직되기도 했지만, 이후 경상도초유사로 전란 수습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참모장으로 충무공 출정명령 하달 그해 4월 13일 왜군선이 부산포 앞바다에 몰려오면서 무의공의 존재는 뚜렷해지기 시작한다. 출정 직전인 5월 1일자 ‘난중일기’에는 ‘진해루에 앉아 방답첨사 이순신, 흥양수령 배흥립, 녹도만호 정운 등을 불렀다. 그들은 모두 매우 분하여 격동했으며, 자기 한 몸을 잊어버릴 정도였으니, 과연 의로운 사람들이라고 할 만하다’고 했다. 행간에서 한시라도 빨리 전선으로 나가자고 재촉하는 참모들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마침내 5월 3일 녹도만호 정운과의 대화에서 결심을 굳힌 충무공은 중위장인 방답첨사 이순신을 불러 다음날 새벽 출정한다는 명령을 전군에 하달토록 한다. 중위장(中衛長)이라면 참모장이다. 당시는 순천도호부사 권준이 전라좌수영의 중위장이었으나 전라도관찰사가 호출하는 바람에 자리를 비워 무의공이 대신한 것이다. 도호부사와 첨절제사는 종3품으로 품계는 같지만 순천부사는 광양·낙안·보성·흥양을 모두 휘하에 거느리고 있었던 만큼 전라좌수영에서는 선임이었던 듯하다.무의공은 옥포·합포·적진포로 향한 1차 출전에서 왜적의 대선(大船) 1척씩 모두 3척을 깨뜨리는 눈부신 전과를 거두었다. 사천·당포·당항포로 2차 출전한 5월 29일에는 권준이 중위장으로 복귀함에 따라 무의공은 전부장(前部將)으로 나선다. 6월 5일 당항포해전에서 조선수군은 26척으로 이루어진 적 함대를 공격해 25척을 가라앉혔다. 무의공은 남은 한 척이 도주할 것으로 예상하고 다음날 새벽 잠복하고 있다가 적선을 침몰시키고 100명 남짓한 왜적을 몰살시켰다. 무의공은 직접 활을 쏘아 왜장을 사살했다. 무과 시험장에서 선조의 눈에 들었던 그의 활쏘기 실력은 충무공을 앞섰다. 7월 6일 3차 출전은 한산대첩으로 이어진다. 충무공은 조정에 올리는 장계에 ‘방답첨사 이순신은 왜적의 대선 1척을 바다 가운데서 온전히 사로잡아 왜군의 머리 4급을 베었는데, 다만 사살하기에만 힘쓰고 머리를 베는 데는 힘쓰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 2척을 쫓아가서 일시에 불살랐다’고 썼다. 당시 전공을 평가하는 기준은 적의 머리, 곧 수급의 숫자였다. 그런데 충무공은 적을 사살하고 적선을 분멸(焚滅)하는 데 초점을 맞추되 공로를 인정받고자 무리하게 접근해 적의 머리를 베는 데 급급하지 않도록 했다. 이렇듯 무의공은 충무공이 제시한 전투 원칙에도 가장 충실한 장수였다. 무의공은 1594년 4월 충청수사에 오른다. 삼도수군통제사 겸 전라좌수사 이순신, 전라우수사로 줄곧 충무공을 지원한 이억기와 더불어 충무공이 가장 신뢰하는 무의공이 서·남해 방비를 책임지는 지휘부가 완성된 것이다. 하지만 이 환상의 지휘 체계를 깨뜨린 원균이 칠천량에서 처참하게 패한 것은 우리가 모두 안타까워하는 사실이다. 무의공은 통제사에 복귀한 충무공이 명량해전에서 승리하고 두 달 남짓 지난 1597년 11월 다시 경상우수사에 임명됐다. 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은 1598년 11월 19일 새벽 시작됐다. 통제사 이순신을 잃었지만 조선과 명나라 연합수군은 200척 남짓한 적선을 쳐부수는 대승을 거뒀다. 무의공은 1604년 선무공신 3등에 올랐고 1607년 완천군(完川君)에 봉해졌다. 전라도병마절도사 시절 군영에서 세상을 떠났다.
  • 40년 만에… 女테니스 가장 높이 올랐다

    40년 만에… 女테니스 가장 높이 올랐다

    ‘한국 여자 테니스의 희망’ 장수정(27·대구시청)이 생애 첫 여자테니스협회(WTA) 대회 정상에 올랐다. 한국 선수로는 1982년 이덕희의 WTA 투어 포트마이어스 오픈 이후 무려 40년 만의 WTA 대회 우승이다. 세계랭킹 155위 장수정은 지난 9일(한국시간) 스웨덴 베스타드에서 열린 노디아오픈(총상금 11만 5000달러) 단식 결승에서 리베카 마사로바(146위·스페인)를 2-1(3-6 6-3 6-1)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장수정이 WTA 대회 정상에 오른 건 처음으로 종전 최고 성적은 2017년 하와이오픈 준우승이다. 하와이오픈과 이번 노디아오픈은 모두 WTA 투어보다 한 등급 낮은 WTA 125K시리즈 대회지만 세계랭킹 100위권 이내 선수들이 여럿 참가한 수준급 대회다. 남자프로테니스(ATP)와 비교하면 투어 바로 아래 등급인 챌린저에 해당한다. 조윤정 코치가 선수 시절인 2002년과 2003년, 2006년에 WTA 투어 대회 단식 결승에 세 차례 올랐지만 모두 준우승했다. 장수정의 최근 흐름은 좋았다. 지난 1월 호주오픈 예선에서 3연승을 거두고 생애 첫 메이저 대회 본선에 진출했고, 4월 호주 캔버라에서 열린 국제테니스연맹(ITF) 액트 클레이코트 인터내셔널에서는 단·복식 모두 우승했다. 지난달 영국 브래드퍼드에서 열린 ITF 일클리 트로피 복식에서도 정상에 올랐던 장수정은 드디어 WTA 대회 첫 우승까지 일궈 냈다. WTA 투어는 10일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장수정의 우승 소식을 전하며 “1982년 이덕희가 WTA 투어 포트마이어스 오픈에서 우승한 이후 한국 선수가 단식에서 우승한 가장 큰 대회”라고 평가했다.이날 결승 상대인 마사로바는 지난 1월 호주오픈 예선 결승에서도 장수정에게 무릎을 꿇었다. 장수정은 언론 인터뷰에서 “상대가 서브가 좋아 1세트에 고전했다”며 “2세트부터 리턴 리듬이 맞기 시작해 경기를 잘 풀어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오늘 긴장이 많이 됐고, 바람도 세 경기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면서도 “WTA에서 처음 우승해 너무 기분이 좋다”고 덧붙였다. 장수정은 이번 노디아오픈 1회전에서 클라라 버렐(95위·프랑스), 3회전에서 판나 우드바르디(100위·헝가리) 등 상위 랭커들을 연달아 격파해 세계랭킹도 113위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다음달 말 개막하는 US오픈 본선에 직행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전 개인 최고 순위는 2017년의 120위다.
  • 尹, 日대사관 분향소 찾는다… 한덕수·정진석 앞세워 ‘조문외교’도

    尹, 日대사관 분향소 찾는다… 한덕수·정진석 앞세워 ‘조문외교’도

    윤석열 대통령이 주한 일본대사관에 마련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분향소를 조만간 찾아 조문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정진석 국회부의장, 중진 의원 등으로 구성된 조문 사절단도 일본에 파견할 방침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0일 언론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조만간 주한 일본대사관에 차려질 분향소를 찾아 아베 전 총리를 조문할 계획”이라며 “분향소가 차려지는 11일에는 한 총리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박진 외교부 장관 등도 조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통령 특사 성격의 조문 사절단은 이달 하순이나 8월 초에 일본 정부와 자민당이 합동으로 여는 공식 추도식에 참석한 뒤 아베 전 총리 묘소를 참배하고 귀국할 계획이다. 지난 8일 윤 대통령은 유족인 아키에 여사에게 “일본 헌정 사상 최장수 총리이자 존경받는 정치가를 잃은 유가족과 일본 국민에게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한다”는 내용의 조전을 보낸 바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직접 일본에 가서 조문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현재로서는 대통령이 방일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다만 공식 추모식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애도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분들을 생각해서 보내기로 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가 조문 외교로 한일 관계 개선의 뜻을 이어 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 부의장의 경우) 한일정책협의단장으로 한일 관계와 관련해 대통령의 의사를 전달한 분이라 조문단에 포함시켰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정부의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행보가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제기된다. 당초 10일 참의원 선거 압승 이후 ‘평화주의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자기 색깔을 낼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아베 전 총리의 추모 분위기 속에서 한일 관계에서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아베 전 총리는 과거사 문제에서 ‘1965년 한일 협정으로 끝났다’는 입장을 강조했기에 이를 뒤집기는 쉽지 않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한일 관계는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며 “아베 전 총리의 추도 기간 중에 그의 정치적 색깔과 다른 방향으로 가겠다고 하면 일본 국민 정서상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행보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당초 박 장관은 이날 참의원 선거가 끝난 뒤 일본 방문을 검토했지만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선 장기적으로는 자민당 내 파벌 구도가 기시다 총리에게 유리해지면서 한일 관계 개선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해법을 모색하는 민관협의회의 2차 회의는 오는 14일 개최될 예정이다.
  • ‘아베 피살’ 후폭풍… 日자민당 압승, 개헌발의선 확보

    ‘아베 피살’ 후폭풍… 日자민당 압승, 개헌발의선 확보

    일본 최장수 총리를 지낸 아베 신조 전 총리가 피격 사망한 지 이틀 만인 10일 치러진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의 압승했다. 아베 전 총리가 내세우고 자민당이 계승한 방위비 증액, 자위대의 반격 능력 보유, 자위대의 존재를 헌법에 명기한 개헌이 이번 선거 승리 이후 속도를 낼지 주목된다. 참의원 임기는 6년으로, 3년마다 절반씩 교체한다. 이번 선거에선 전체 의석수 248석 중 125석을 뽑는다. 개헌을 하려면 중의원(하원) 재적 의원 3분의2(310석), 참의원 재적 의원 3분의2(166석) 찬성으로 개헌안을 발의하고 국민투표를 거쳐 과반 찬성이 나와야 한다. 개헌 찬성 세력은 자민당과 연립여당인 공명당,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이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중의원 선거에서 개헌 발의에 필요한 의석수를 확보했고, 이번 선거에서 82석 이상을 채우면 개헌안 발의가 가능하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개표 중간집계 결과 이날 밤 12시 현재 여당이 73석을 가져갔다고 보도했다. 자민당이 61석, 공명당이 12석이다. 이번 선거 대상이 아닌 의석(자민당 56석, 공명당 14석)을 합하면 여당은 과반을 훌쩍 넘겼다. 일본유신회와 국민민주당도 이번에 각각 10석, 2석을 확보하면서 개헌 가능성도 커졌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이 선거 이후 향후 3년간 대형 선거가 없어 이변이 없는 한 안정적으로 장기 집권할 수 있다. 기시다 총리가 외교 ‘온건파’로 꼽혀 한일 관계 개선에 탄력이 붙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자민당 최대 계파를 이끌던 아베 전 총리가 급작스럽게 사망하면서 당내 세력 분화와 권력 다툼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장수정 생애 첫 WTA 트로피, 한국 40년 만에 우승

    장수정 생애 첫 WTA 트로피, 한국 40년 만에 우승

    ‘한국 여자 테니스의 희망’ 장수정(27·대구시청)이 생애 첫 여자테니스협회(WTA) 대회 정상에 올랐다. 한국 선수로는 1982년 이덕희의 WTA 투어 포트마이어스 오픈 이후 무려 40년 만의 WTA 대회 우승이다. 세계랭킹 155위 장수정은 지난 9일(한국시간) 스웨덴 베스타드에서 열린 노디아오픈(총상금 11만 5000달러) 단식 결승에서 리베카 마사로바(146위·스페인)를 2-1(3-6 6-3 6-1)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장수정이 WTA 대회 정상에 오른 건 처음으로 종전 최고 성적은 2017년 하와이오픈 준우승이다. 하와이오픈과 이번 노디아오픈은 모두 WTA 투어보다 한 등급 낮은 WTA 125K시리즈 대회지만 세계랭킹 100위권 이내 선수들이 여럿 참가한 수준급 대회다. 남자프로테니스(ATP)와 비교하면 투어 바로 아래 등급인 챌린저에 해당한다. 조윤정 코치가 선수 시절인 2002년과 2003년, 2006년에 WTA 투어 대회 단식 결승에 세 차례 올랐지만 모두 준우승했다. 장수정의 최근 흐름은 좋았다. 지난 1월 호주오픈 예선에서 3연승을 거두고 생애 첫 메이저 대회 본선에 진출했고, 4월 호주 캔버라에서 열린 국제테니스연맹(ITF) 액트 클레이코트 인터내셔널에서는 단·복식 모두 우승했다. 지난달 영국 브래드퍼드에서 열린 ITF 일클리 트로피 복식에서도 정상에 올랐던 장수정은 드디어 WTA 대회 첫 우승까지 일궈 냈다. WTA 투어는 10일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장수정의 우승 소식을 전하며 “1982년 이덕희가 WTA 투어 포트마이어스 오픈에서 우승한 이후 한국 선수가 단식에서 우승한 가장 큰 대회”라고 평가했다. 이날 결승 상대인 마사로바는 지난 1월 호주오픈 예선 결승에서도 장수정에게 무릎을 꿇었다. 장수정은 언론 인터뷰에서 “상대가 서브가 좋아 1세트에 고전했다”며 “2세트부터 리턴 리듬이 맞기 시작해 경기를 잘 풀어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오늘 긴장이 많이 됐고, 바람도 세 경기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면서도 “WTA에서 처음 우승해 너무 기분이 좋다”고 덧붙였다. 장수정은 이번 노디아오픈 1회전에서 클라라 버렐(95위·프랑스), 3회전에서 판나 우드바르디(100위·헝가리) 등 상위 랭커들을 연달아 격파해 세계랭킹도 113위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다음달 말 개막하는 US오픈 본선에 직행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전 개인 최고 순위는 2017년의 120위다.
  • 尹대통령, 아베 분향소 직접 조문 예정…조문단도 파견

    尹대통령, 아베 분향소 직접 조문 예정…조문단도 파견

    윤석열 대통령이 주한일본대사관에 마련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분향소를 조만간 찾아 조문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정진석 국회부의장, 중진 의원 등으로 구성된 조문 사절단도 일본에 파견할 방침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0일 언론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조만간 주한 일본대사관에 차려질 분향소를 찾아 아베 전 총리를 조문할 계획”이라며 “그에 앞서 11일에는 한덕수 국무총리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박진 외교부 장관 등도 조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가족 장례식) 이후 치러지는 (아베 전 총리의) 공식 추모식 일정이 확정되면 한 총리와 정진석 국회 부의장, 중진 의원들이 조문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지난 8일 윤 대통령은 아베 전 총리의 사망이 공식 확인된 뒤 유족인 아키에 여사에게 “일본 헌정 사상 최장수 총리이자 존경받는 정치가를 잃은 유가족과 일본 국민에게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한다”는 내용의 조전을 보낸 바 있다.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직접 일본에 가서 조문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현재로서는 대통령이 방일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다만 공식 추모식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애도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분들을 생각해서 보내기로 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가 조문 외교로 한일 관계 개선 뜻을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 부의장의 경우) 한일정책협의단장으로 한일관계와 관련해 대통령의 의사를 전달한 분이라 조문단에 포함시켰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정부의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행보가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제기된다. 당초 10일 참의원 선거 압승 이후 ‘평화주의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자기 색깔을 낼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아베 전 총리의 추모 분위기 속에서 한일관계에서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아베 전 총리는 과거사 문제에서 ‘1965년 한일 협정으로 끝났다’는 입장을 강조했기에 이를 뒤집기는 쉽지 않다.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한일 관계는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며 “아베 전 총리의 추도기간 중에 그의 정치적 색깔과 다른 방향으로 가겠다고 하면 일본 국민정서상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도 “아베 전 총리의 정치적 유산을 더 강해질 수 있다”며 “강제 동원 등 과거사 문제의 해법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본이 한일 관계개선에 서두를 이유는 많지 않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4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배상문제를 논의하는 민관협의회 첫 회의를 여는 등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드러냈지만 차질이 불가피하다. 당초 참의원 선거 이후로 검토되던 박 장관의 일본 방문 일정 협의도 길어질 수 있다. 반면 일각에선 장기적으로는 자민당 내 파벌 구도가 기시다 총리에게 유리해지면서 한일 관계 개선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신짱, 신짱!” 부인의 호소에도…아베 전 총리 마지막 순간

    “신짱, 신짱!” 부인의 호소에도…아베 전 총리 마지막 순간

    “신짱, 신짱!” 지난 8일 일본 나라현 가시하라시에 있는 나라현립의대부속병원. 참의원 지원 유세 중 전직 해상자위대원의 총을 맞고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숨을 거두기 직전 부인 아키에가 그의 애칭을 간절하게 외쳤다. 하지만 부인의 호소에도 아베 전 총리는 곧 숨을 거뒀다. 10일 교도통신은 자민당 관계자를 인용해 아베 전 총리의 마지막 순간을 보도했다. 아베 전 총리가 피격된 이후 아키에는 낮 12시 25분 도쿄 시부야구의 자택에서 곧바로 나라현으로 이동해 4시 56분 병원에 도착했다. 이후 아베 전 총리는 5시 3분 사망했다. 아키에는 가까스로 남편의 임종을 지킬 수 있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병원에 있었던 자민당 아베파 의원들도 “총리”, “회장” 등의 호칭을 부르며 아베 전 총리가 깨어나길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아베 전 총리는 병원에 이송됐을 때 이미 심폐 정지 상태였다. 심장 박동이 없다는 의사의 설명을 들은 아키에는 “소생은 어렵다”라고 판단했다고 전해졌다. 1987년 아베 전 총리와 결혼한 아키에는 그의 정치적 동반자나 다름없었다. 둘 사이에 자녀는 없다. 과거 아키에는 “불임 치료를 받았지만 잘되지 않았다”며 고통스러운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 상주도 아키에가 맡는다.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은 참의원 선거(10일) 다음날인 11~12일 거행된다. 11일에는 친척과 지인들이 유족을 위로하며 밤을 새우는 쓰야(通夜)가 진행되고 12일에는 장례식이 치러진다. 자민당 관계자에 따르면 도쿄 미나토구의 조죠지가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장으로 검토되고 있다. 도쿄타워가 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이 절은 에도 시대(1603~1867년) 도쿠가와 막부의 쇼군(장군)들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가족장 외에도 일본 정부와 자민당 합동장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아베 전 총리가 8년 9개월을 총리로 재임하는 등 일본의 역대 최장수 총리였기 때문에 이에 맞는 별도의 장례식도 열릴 예정이다. 2020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의 장례식은 당시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장례위원장을 맡아 정부와 자민당 합동장으로 치러졌다. 이를 볼 때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도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장례위원장을 맡아 정부와 자민당 합동으로 치를 가능성이 크다.
  • 노량해전에서 경상우수사로 ‘충무공의 최후’ 지키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노량해전에서 경상우수사로 ‘충무공의 최후’ 지키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이 방답진첨절제사 이순신(李純信)의 부임 인사를 받은 것은 1592년 1월 10일이다. 그런데 1월 16일자 ‘난중일기’에는 ‘병선(兵船)을 수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답진의 군관과 관리에 곤장을 쳤다’는 내용이 보인다. 훗날의 충무공(忠武公)이 역시 무의공(武毅公)이 되는 신임 첨사의 군기를 단단히 잡은 모양새다. 무의공은 이후 충무공의 가장 충실한 참모가 되어 모든 해전의 선봉에 섰고, 노량에서 충무공이 흉탄에 맞아 쓰러지자 대신 수군 함대를 지휘하기도 했다.    무의공 이순신(1554~1611)은 태종의 세자이자 세종대왕의 큰 형인 양녕대군의 6대손이니 조선 왕실의 혈통을 이어받은 종친이다. 충무공 이순신(1545~1598)과 우리말 이름이 같지만 무의공은 전주, 충무공은 덕수로 본관부터 다르다. 조선시대에는 남자가 성인이 되면 이름이 아닌 자(字)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충무공의 자는 여해(汝諧), 무의공의 자는 입부(立夫)다. ‘난중일기’에는 ‘이(李)입부가 다녀갔다’거나 ‘입부와 무엇무엇을 했다’는 글귀가 140차례나 나온다. 무의공이 임기 초의 긴장관계를 빠른 시간에 극복하고 충무공의 ‘측근 중 측근’으로 떠올랐음을 알 수 있다.   경기 광명시 일직동에 있는 무의공의 무덤은 KTX가 서는 광명역에서 가깝다. 입부의 집안은 양녕대군의 3대손인 증조할아버지 이윤의 때부터 당시의 시흥땅에 살았다. 입부는 아버지 이진과 어머니 복주 김씨 사이 다섯 아들의 막내로 태어났다. 입부 형제의 이름은 순서대로 이순인·이순의·이순례·이순지·이순신이다. 맹자가 인간 본성의 네가지 덕(德)이라 지칭한 인(仁)·의(義)·예(禮)·지(智)에 믿음을 뜻하는 신(信)을 보탠 것이다. 입부의 넷째 형 비변랑 이순지는 충무공이 한성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나왔을 때 옥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난중일기’에 적혀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무의공도 거쳐간 비변랑(備邊郞)은 비변사의 종6품 무관이다. 입부의 두 아들 이탁과 이숙도 1603년 계묘 정시에서 무과에 급제했다. 미수 허목(1595~1682)은 입부의 묘갈(墓碣)에 ‘공은 젊었을 때에 유학에 전념했으나 공을 이루지 못하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혀 25세에 알성시 을과에 급제했다’고 했다. 무의공도 처음에는 문과 급제를 꿈꿨지만 여의치 않자 무과로 선회한 것 같다. 무인에 대한 차별이 심하지 않았던 조선 중기까지는 양반사회에서 이런 현상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무의공의 둘째 아들 이숙이 아버지 만큼이나 충무공의 측근이었던 흥양현감 배흥립의 사위가 됐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왜란 당시 이순신(李舜臣)을 정점으로하는 조선수군이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데는 충무공의 리더십에 무의공과 효숙공같은 참모진의 서로에 대한 신뢰가 더해지면서 ‘화학적 결합’이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하게 한다. 효숙(孝肅)은 배흥립의 시호다.  무의공은 충무공보다 9살이 적다. 충무공은 31세이던 1576년(선조 9), 무의공은 24세이던 1577년(선조10) 각각 무과에 급제했다. 두 사람의 ‘관계 개선’은 부임 다음달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2월 8일자 ‘난중일기’에는 ‘우후 이몽구가 방답에서 돌아왔는데, 첨사가 방비에 진력하더라고 극찬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우후(虞侯)는 수군절도사나 병마절도사의 보좌관이다. 충무공은 2월 19~27일 전라좌수사 휘하의 순천·광양·낙안·보성·흥양과 방답진·사도진·여도진·발포진·녹도진에 대한 검열에 나섰다. 방답진 검열은 5관 5포 가운데 마지막으로 26~27일 이루어졌다. 충무공은 ‘장편전(長片箭)은 쓸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걱정했으나, 전선(戰船)은 어느 정도 완전해서 다행이었다’고 했다. 장편전은 긴 화살인 장전(長箭)과 작은 화살인 편전(片箭)을 가리키니 ‘화살 준비가 매우 불충분하다’는 표현이다. 충무공은 검열을 마치고 북봉(北峯)에 올라 진성 안팎의 지형을 살펴보고는 ‘외롭고 위태로운 섬이라 사방에서 적의 공격을 받을 수 있고, 성안의 연못 또한 지극히 엉성하여 참으로 걱정스러웠다. 첨사가 애는 썼으나, 미처 시설을 갖추지 못했으니 어찌하랴’고 했다. 한달 전 부임한 첨사가 진성의 방어 시설까지 완벽하게 갖출 수는 없다는 것은 충무공도 잘 알고 있었다.  방답진은 여수앞바다 돌산도에 있었다. 방답진성 자리는 이제 어항(漁港)이자 여수시의 돌산읍 소재지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방답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옛 진성 주변은 군내리로 불린다. 그러니 동헌과 군관청, 비석 등이 남아있는 방답진의 흔적을 둘러보려면 내비게이션에 ‘군내리’를 입력해야 한다.  미수의 묘갈에는 ‘공은 처음에는 별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김성일 공이 한번 보고는 그의 현명하면서도 재능이 뛰어난 것을 알아 극력 추천한 것’이라고 했다. 학봉 김성일이라면 1590년 조선통신사의 부사로 일본에 다녀온 뒤 침략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해 왜란 발발 이후 파직되기도 했지만, 이후 경상도초유사로 전란 수습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이해 4월 13일 왜군선이 부산포앞바다에 몰려오면서 무의공의 존재는 뚜렷해지기 시작한다. 출정 직전인 5월 1일자 ‘난중일기’에는 ‘진해루에 앉아 방답첨사 이순신, 흥양수령 배흥립, 녹도만호 정운 등을 불렀다. 그들은 모두 매우 분하여 격동했으며, 자기 한 몸을 잊어버릴 정도였으니, 과연 의로운 사람들이라고 할 만 하다’고 했다. 행간에서 한시라도 빨리 전선으로 나가자고 재촉하는 참모들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마침내 5월 3일 녹도만호 정운과 대화에서 결심을 굳힌 충무공은 중위장인 방답첨사 이순신을 불러 다음날 새벽 출정한다는 명령을 전군에 하달토록 한다.  중위장(中衛長)이라면 참모장이다. 당시는 순천도호부사 권준이 전라좌수영의 중위장이었으나 전라도관찰사가 호출하는 바람에 자리를 비워 무의공이 대신한 것이다. 도호부사와 첨절제사는 종3품으로 품계는 같지만 순천부사는 광양·낙안·보성·흥양을 모두 휘하에 거느리고 있었던 만큼 전라좌수영에서는 선임이었던 듯 하다.  무의공은 옥포·합포·적진포로 향한 1차 출전에서 왜적의 대선(大船) 1척씩 모두 3척을 깨뜨리는 눈부신 전과를 거두었다. 사천·당포·당항포로 2차 출전한 5월 29일에는 권준이 중위장으로 복귀함에 따라 무의공은 전부장(前部將)으로 나선다. 6월 5일 당항포 해전에서 조선수군은 26척으로 이루어진 적 함대를 공격해 25척을 가라앉혔다. 무의공은 남은 한 척이 도주할 것으로 예상하고 다음날 새벽 잠복하고 있다가 적선을 침몰시키고 100명 남짓한 왜적을 몰살시켰다. 무의공은 직접 활을 쏘아 왜장을 사살했다. 무과 시험장에서 선조의 눈에 들었던 그의 활쏘기 실력은 충무공을 앞섰다.  7월 6일 3차 출전은 한산대첩으로 이어진다. 충무공은 조정에 올리는 장계에 ‘방답첨사 이순신은 왜적의 대선 1척을 바다 가운데서 온전히 사로잡아 왜군의 머리 4급을 베었는데, 다만 사살하기에만 힘쓰고 머리를 베는 데는 힘쓰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 2척을 쫒아가서 일시에 불살랐다’고 썼다. 당시 전공을 평가하는 기준은 적의 머리, 곧 수급의 숫자였다. 그런데 충무공은 적을 사살하고 적선을 분멸(焚滅)하는데 초점을 맞추되 공로를 인정받고자 무리하게 접근해 적의 머리를 베는데 급급하지 않도록 했다. 이렇듯 무의공은 충무공이 제시한 전투 원칙에도 가장 충실한 장수였다. 무의공은 1594년 4월 충청수사에 오른다. 삼도수군통제사 겸 전라좌수사 이순신, 전라우수사로 줄곧 충무공을 지원한 이억기와 더불어 충무공이 가장 신뢰하는 무의공이 서·남해 방비를 책임지는 지휘부가 완성된 것이다. 하지만 이 환상의 지휘 체계를 깨뜨린 원균이 칠천량에서 처참하게 패한 것은 우리가 모두 안타까워하는 사실이다.  무의공은 통제사에 복귀한 충무공이 명량해전에서 승리하고 두 달 남짓 지난 1597년 11월 다시 경상우수사에 임명됐다. 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은 1598년 11월 19일 새벽 시작됐다. 통제사 이순신을 잃었지만 조선과 명나라 연합수군은 200척 남짓한 적선을 쳐부수는 대승을 거뒀다. 무의공은 1604년 선무공신 3등에 올랐고 1607년 완천군(完川君)에 봉해졌다. 전라도병마절도사 시절 군영에서 세상을 떠났다.
  • 아베 사망 ‘좋아요’가 ‘슬퍼요’ 10배… 과거 발언 돌아봤더니 [넷만세]

    아베 사망 ‘좋아요’가 ‘슬퍼요’ 10배… 과거 발언 돌아봤더니 [넷만세]

    아베 신조(67) 전 일본 총리가 괴한의 총격에 충격적인 죽음을 맞이한 데 대해 국내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한목소리로 애도했다. 그러나 대중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온라인상에서는 사람의 죽음을 조롱거리로 삼지는 말자는 경계의 목소리도 나왔으나 일본 우익을 이끌어온 그의 사망을 반기는 분위기가 더 눈에 띄었다. 8일 국내 한 방송사 페이스북에 올라온 아베 전 총리가 총을 맞고 쓰러진 순간을 담은 영상에는 9일 오후 7시 현재 3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렀다. 반면 ‘슬퍼요’ 버튼을 누른 사람은 10분의 1이 채 안 되는 300명가량이었다. 다른 방송사가 유튜브에 올린 아베 전 총리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뉴스에도 8000개 이상의 ‘좋아요’가 확인됐다. 해당 게시물들에서 네티즌들은 우선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충격이다”, “참으로 인생무상을 느낀다” 등 갑작스러운 죽음에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인터넷에 의견을 남긴 다수의 네티즌들은 아베 전 총리의 생전 행적을 언급하며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마음 아프다는 생각이 1도 안 든다. 뿌린 대로 거두는 거다”, “슬퍼요를 왜 달지. 저 사람이 했던 짓을 모르나”, “하늘에서 위안부 할머니께 사죄드리면 되겠네” 등 반응을 보였다.반면 “우방국의 전직 총리가 총격 테러로 서거했는데 위안부 발언이니 독도 망언이니 반도체 수출 금지니 언급하는 사람들이라니”, “학습된 반일 정서 때문에 조롱하는 댓글이 있다” 등 아베 전 총리에 대한 비판이 시의적절하지 못하다는 반박도 일부 있었다. 익명의 온라인 커뮤니티들에서는 아베 전 총리의 사망 소식에 대해 훨씬 노골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에펨코리아(펨코), 클리앙, 오늘의유머, 보배드림 등 여러 커뮤니티에는 ‘아베 사망 짠하네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그러나 본문에는 맥주잔을 부딪히는 사진을 넣어 아베 전 총리의 죽음에 애도 대신 축하하는 분위기를 보였다. 해당 글들에서 네티즌들은 “저승 가서 실컷 혐한해라”,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을 차례다” 등 댓글을 달며 공감했다. 독도 영유권이나 과거사와 관련 반성의 기미를 조금도 보이지 않고 한국과 대립각을 세웠던 그의 과거를 조명하는 글들도 하루 사이에 많이 공유됐다.온라인 커뮤니티 더쿠에는 ‘독도는 일본 땅, 국제사회에 적극 알려야 한다’, ‘일본이 국가적으로 성노예를 삼았다는 근거없는 중상이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도 사실’, ‘전쟁 범죄 사과나 사죄 뜻은 전혀 없어’, ‘중국, 어처구니 없지만 이성적 외교 가능. 한국, 어리석은 국가일 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사죄편지 보낼 의향을 묻는 질문에) 털끝만큼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등 그간 아베 전 총리가 했던 ‘망언’들을 모은 게시물이 인기를 끌었다. 더쿠 이용자들은 “침략과 유린의 가해국 수장이 사과는커녕 조롱만 해왔는데 우리가 추모할 이유가 있나”, “추모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토착왜구, 매국노, 친일파”, “자위대 개헌하려던 놈을 왜 추모함” 등 비슷한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이미 죽은 사람 까봤자 무슨 의미가 있나. 조롱은 정도껏 하자”, “국제정세가 좀 걱정된다” 등 다른 시각의 의견도 소수 있었다. 이 같은 온라인상의 축제 분위기를 정면 비판하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극우 성향의 웹툰 작가로 알려진 윤서인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미국은 지금 조기까지 내걸고 아베 추모에 최선을 다하고 있음. 영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독일, 유럽연합(EU), 인도, 대만 등 지구상의 어지간한 나라들은 현재 모두 공식적으로 아베의 업적을 기리며 추모 중. 심지어 중국과 러시아까지 아베를 추모함”이라며 “지금 아베의 죽음을 조롱하느라 바쁜 한국의 반일투사들이 글로벌 기준으로 얼마나 한 줌도 안 되는 희한한 인간들인지 이번 기회에 제발 좀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적었다.네티즌들의 정제되지 않은 반응과는 달리 정치권에서는 아베 전 총리를 애도하는 메시지가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전날 아베 전 총리 배우자인 아키에 여사에 조전을 보내 “일본 헌정 사상 최장수 총리이자 존경받는 정치가를 잃은 유가족과 일본 국민에게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소식에 윤석열 정권과 여당인 국민의힘에 비판적인 커뮤니티에서는 “매국 친일 티 난다”, “존경이라는 말을 꼭 써야 하나. 국민정서가 있는데”, “존경이라는 단어 없어도 애도할 수 있음” 등 비난하는 반응이 쏟아졌다. 전 정권 인사들도 애도를 표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급작스러운 비보에 매우 안타깝고 비통한 마음”이라며 “아베 전 총리는 최장수 총리로 일본 국민에게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도 페이스북에 “아베 전 총리의 피격 소식을 접하고 그대로 밤을 세웠다”며 “인류가 수많은 희생을 치르며 성숙시켜 온 민주주의가 여기저기서 부서지는 것을 목도한다”고 썼다.허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전날 구두 논평에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큰 비탄에 잠겨 있을 유가족과 일본 국민께 위로를 전한다”며 “테러는 그 어떤 이유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신현영 민주당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아베 전 총리의 영면을 기원하며, 큰 충격에 빠져 있을 일본 국민과 유가족에도 심심한 위로와 애도의 말씀을 전한다”며 “민주당은 모든 형태의 정치 테러를 반대하고 규탄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고 전했다. 정의당 비상대책위원회 이동영 대변인은 “공동체의 안전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폭력과 테러는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며 “큰 충격에 빠져 있을 유가족과 일본 국민들에게도 깊은 위로를 전한다”고 했다. [넷만세] 네티즌이 만드는 세상 ‘넷만세’. 각종 이슈와 관련한 네티즌들의 생생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담습니다.
  • [르포] 삼엄한 경비 속 취재진 셔터 소리만…아베 도쿄 자택 앞 ‘침묵’

    [르포] 삼엄한 경비 속 취재진 셔터 소리만…아베 도쿄 자택 앞 ‘침묵’

    9일 오후 일본 도쿄 시부야구 도미가야 1번지 아베 신조(67) 전 총리 자택 앞.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와 경찰 수십여명의 삼엄한 경비 속에 100여명이 넘는 일본 취재진의 카메라 셔터 소리만 울렸다. 전날 오전 일찍만 해도 살아서 자택 앞을 나섰던 아베 전 총리가 얼마 안 돼 전직 해상자위대원으로부터 피살돼 시신이 되어 돌아왔고 침묵만이 자택 앞을 가득 채웠다. 아베 전 총리의 시신은 부검을 마친 후 이날 오전 6시쯤 나라현립의대부속병원을 떠나 자택을 향했다. 운구차 조수석에는 부인 아키에가 탔다. 운구차는 오후 1시 30분쯤 도미가야의 자택에 도착했다. 자택 앞에는 미리 기다리고 있던 후쿠다 다쓰오 자민당 총무회장과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이 운구차를 맞았다. 다카이치 정조회장은 두 손을 합장하며 눈물을 글썽거리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어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아베 전 총리의 자택을 찾아 조문했다. 앞서 기시다 총리는 야마나시현에서 참의원 선거 지원 유세를 재개했다. 그는 아베 전 총리 피살 사건을 언급하며 “폭력에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 여러분 앞에 서서 지지를 호소하겠다”라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아베 정권 시절 4년 8개월 ‘최장수’ 외무상을 지내기도 한 각별한 인연이 있다. 그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부디 목숨을 건져 달라고 기도했는데 이런 바람도 헛되이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됐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이 밖에도 검은색 상복 차림의 자민당 관계자들이 잇따라 아베 전 총리 자택을 찾았다. 이때마다 일본 취재진을 비롯해 외신까지 일제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지역 주민들도 한두 명씩 모여 아베 전 총리 자택 앞을 지켜보기도 했다. 한 50대 여성은 삼엄한 경비와 취재진들을 보고 “굉장하다”며 혀를 차기도 했다. 또 조화를 들고 온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한 30대 남성은 “안타까운 마음에 추모하러 왔다”고 말했다.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은 참의원 선거(10일) 다음날인 11~12일 거행된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11일에는 친척과 지인들이 유족을 위로하며 밤을 새우는 쓰야(通夜)가 진행되고 12일에는 장례식이 치러진다. 상주는 부인 아키에가 맡는다. 자민당 관계자에 따르면 도쿄 미나토구의 조죠지가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장으로 검토되고 있다. 도쿄타워가 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이 절은 에도 시대(1603~1867년) 도쿠가와 막부의 쇼군(장군)들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가족장 외에도 일본 정부와 자민당 합동장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아베 전 총리가 8년 9개월을 총리로 재임하는 등 일본의 역대 최장수 총리였기 때문에 이에 맞는 별도의 장례식도 열릴 예정이다. 2020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의 장례식은 당시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장례위원장을 맡아 정부와 자민당 합동장으로 치러졌다. 이를 볼 때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도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장례위원장을 맡아 정부와 자민당 합동으로 치를 가능성이 크다. 한편 나라현 경찰은 9일 아베 전 총리를 부검한 결과 사인은 좌측 상완부를 총에 맞아 동맥이 손상된 데 따른 출혈사라고 밝혔다. 나라현 경찰에 따르면 목과 좌측 상완부 등 모두 두 곳에 총탄이 명중한 상처가 있었다. 경찰은 현장에서 두 발의 총성이 확인돼 발사된 총탄 수와 구조, 입사각도 등을 자세히 조사하고 있다.
  • 시진핑 ‘개인 조전’ 바이든 ‘조기 게양’… 아베 사망에 각국 정상 애도

    시진핑 ‘개인 조전’ 바이든 ‘조기 게양’… 아베 사망에 각국 정상 애도

    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아베 전 총리 피격 사망과 관련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조전을 보냈다고 중국 관영 CCTV가 보도했다. 시 주석은 중국 정부와 국민을 대표해 개인 명의로 보낸 조전에서 “아베 전 총리가 총리 재임 중 중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고, 유익한 공헌을 했다”며 “나는 그와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는 중일 관계 구축에 관한 중요한 합의를 했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깊은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썼다. 시 주석과 부인인 펑리위안 여사는 아베 전 총리 부인인 아키에 여사에게도 같은 날 조전을 보내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했다고 CCTV는 소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주미일본대사관저에 마련된 빈소를 방문한 데 이어 기시다 총리에게 위로 전화를 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양국 정상은 이날 오전 9시부터 약 10여분간 통화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베 전 총리의 서거에 대해 미국을 대표해 진심으로 위로를 전한다”고 조의를 전달했고, 기시다 총리는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지켜낼 것”이라고 답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아베 전 총리의 빈소가 마련된 워싱턴DC 주미일본대사관저를 찾아 조문했다. 그는 조문록에 “바이든 가족과 모든 미국인을 대신해 아베 가족과 일본 국민에게 진심 어린 조의를 표한다”고 적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조문과 별개로 미국 정부 기관에 조기를 게양하라고 지시했다. 조기 게양 기간은 오는 10일 일몰 때까지다.일본과 대립각을 세웠던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조전을 보내 유가족에게 조의를 전했다. 크렌린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아베 총리는 좋은 이웃 관계를 발전시키는데 많은 일을 했던 걸출한 정치인”이라고 평가하며 “무겁고,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손실을 견뎌낼 힘과 용기를 찾길 기원한다”고 전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망연자실하고 깊은 슬픔을 느낀다”며 “우리는 일본의 곁에 가까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역시 트위터로 “나라를 위해 그의 삶을 바치고 세계의 안정을 위해 일한 정치인”이라며 “일본이 훌륭한 총리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슬픈 소식”이라며 “미지의 시대에 그가 보여준 세계적 리더십을 많은 이들이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은 많은 면에서 그의 외교적 리더십의 결과”라면서 “아베는 세계 무대의 거인이었다”고 평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이번 범행을 규탄하며 “국제사회가 중요한 지도자를 잃었다”고 밝혔다.한편 윤석열 대통령도 전날 아베 전 총리의 유족인 아키에 여사에게 조전을 보냈다고 대통령실이 전했다. 윤 대통령은 “일본 헌정 사상 최장수 총리이자 존경받는 정치가를 잃은 유가족과 일본 국민에게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베 총리를 사망케 한 총격 사건은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라며 깊은 슬픔과 충격을 표했다. 아베 전 총리는 전날 오전 11시 30분쯤 일본 나라현 나라시 야마토사이다이지역 앞에서 참의원 선거 유세를 벌이던 도중 7∼8m 떨어진 거리에서 총격범이 쏜 총에 맞고 쓰러진 뒤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과다 출혈로 같은 날 오후 5시 3분에 숨졌다.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은 오는 12일 치러진다.
  • 아베 전 총리 12일 장례식…상주는 부인 아키에 (종합)

    아베 전 총리 12일 장례식…상주는 부인 아키에 (종합)

    8일 일본 참의원 선거 지원 유세 중 피살된 아베 신조(67) 전 총리의 장례식이 참의원 선거(10일) 다음날인 11~12일 거행된다. 9일 교도통신이 아베 전 총리의 지역구인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 지역 사무실을 인용해 아베 전 총리의 장례 일정이 이같이 정해졌다고 밝혔다. 11일에는 친척과 지인들이 유족을 위로하며 밤을 새우는 쓰야(通夜)가 진행되고 12일에는 장례식이 치러진다. 상주는 부인 아키에가 맡는다. 자민당 관계자에 따르면 도쿄 미나토구의 조죠지가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장으로 검토되고 있다. 도쿄타워가 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이 사찰은 에도 시대(1603~1867년) 도쿠가와 막부의 쇼군(장군)들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가족장 외에도 일본 정부와 자민당 합동장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아베 전 총리가 8년 9개월을 총리로 재임하는 등 일본의 역대 최장수 총리였기 때문에 이에 맞는 별도의 장례식도 열릴 예정이다. 2020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의 장례식은 당시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장례위원장을 맡아 정부와 자민당 합동장으로 치러졌다. 이를 볼 때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도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장례위원장을 맡아 정부와 자민당 합동으로 치를 가능성이 크다. 한편 나라현 경찰은 9일 아베 전 총리를 부검한 결과 사인은 좌측 상완부를 총에 맞아 동맥이 손상된 데 따른 출혈사라고 밝혔다. 나라현 경찰에 따르면 목과 좌측 상완부 등 모두 두 곳에 총탄이 명중한 상처가 있었다. 경찰은 현장에서 두 발의 총성이 확인돼 발사된 총탄 수와 구조, 입사각도 등을 자세히 조사하고 있다. 한편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이날 야마나시현에서 참의원 선거 지원 유세를 재개했다. 그는 아베 전 총리 피살 사건을 언급하며 “폭력에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 여러분 앞에 서서 지지를 호소하겠다”라고 말했다.
  • [서울포토] 아키에 여사, ‘운구차 타고’ 자택으로

    [서울포토] 아키에 여사, ‘운구차 타고’ 자택으로

    8일 선거 유세 도중 총격을 받아 숨진 아베 신조(67) 전 총리의 가족 등이 참석하는 장례식이 오는 12일 치러질 것으로 알려졌다. TBS와 FNN 등 현지 언론은 아베 전 총리가 이끈 집권 자민당 내 최대 파벌 ‘아베파’의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9일 보도했다. 참의원 선거 다음 날인 11일에 친척과 지인들이 유족을 위로하며 밤을 새우는 쓰야(通夜·밤샘)를 한 뒤 12일 장례식을 치를 예정이다. 아베 전 총리 사무소 관계자는 상주는 아베 전 총리 부인인 아베 아키에 여사가 맡는다고 전했다. 아베 부부에게는 자녀가 없다. 쓰야와 장례식은 도쿄 미나토구에 있는 사찰인 조죠지에서 치러질 예정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아베 전 총리의 가족과 친척, 가까운 이들만 참석하는 방향으로 조정되고 있다. 아베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는 이날 오전 6시께 나라현에 있는 나라현립의대부속병원에서 출발해 오후 1시 35분께 도쿄 시부야구에 있는 자택에 도착했다. 아베 전 총리는 전날 오후 부인이 나라현립의대병원에 도착한 지 10분도 안 돼 숨을 거뒀다. 경찰 부검 결과 아베 전 총리의 목과 왼쪽 어깨 총 2곳에서 총상이 발견됐다. 이 총상으로 좌우 쇄골하동맥이 손상되면서 과다 출혈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이날 오후 아베 전 총리 자택을 찾아 조문했다. 자택에서는 미리 기다리고 있던 후쿠다 다쓰오 자민당 총무회장과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이 아베 아키에 여사가 탄 운구차를 맞았다. 아베가 두 차례에 걸쳐 총 8년 9개월 총리로 재임한 일본의 역대 최장수 총리였기 때문에 추후 관례에 따라 기시다 총리가 장의위원장을 맡아 정부와 자민당이 합동으로 주최하는 장례식을 거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의 장례식도 당시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장의위원장을 맡은 가운데 정부와 자민당 합동장으로 치러졌다. 한국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전날 아베 전 총리의 장례 시 조문사절 파견 가능성에 대해 “일본 측에서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 정부 내에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아베 전 총리가 전날 피격된 나라시 야마토사이다이지역 앞 현장 주변에 마련된 헌화대에는 이날 한때 추모객의 줄이 50m 이상 길게 이어졌다고 요미우리신문이 전했다. 시민들은 꽃다발을 헌화대에 올리고는 손을 모아 기도했다. 나라시 주민인 60대 남성은 “(아베 전 총리가) 국민을 위해 일해 줘서 상실감이 사라지지 않는다”며 “용의자가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 배경을 확실히 밝혀달라”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아베 전 총리는 전날 오전 11시 30분께 나라시에서 가두 유세를 하던 도중 야마가미 데쓰야(41)가 7∼8m 떨어진 거리에서 쏜 총에 맞고 쓰러진 뒤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과다 출혈로 같은 날 오후 5시 3분에 숨졌다.
  • 아베 사망에… 文 “비통한 마음” 이낙연 “충격에 밤새워”

    아베 사망에… 文 “비통한 마음” 이낙연 “충격에 밤새워”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피격 사망에 애도를 표했다. 문 전 대통령은 9일 페이스북에 “아베 전 총리의 급작스러운 비보에 매우 안타깝고 비통한 마음”이라며 “아베 전 총리의 명복을 빌며 가족들과 일본 국민들께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문 전 대통령은 “아베 전 총리는 최장수 총리로 일본 국민에게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며 “본인과는 한일관계 발전과 동북아 평화·번영을 위해 20차례가 넘는 회담과 전화 통화를 통해 오랫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며 함께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이 전 대표는 아베 전 총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전날 “아베 전 총리의 명복을 빈다. 가족과 일본 국민께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이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충격이다. 아베 전 총리 피격 소식을 접하고 그대로 밤을 새웠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전 대표는 “아베 전 총리와는 국회의원으로 일하던 2000년대부터 총리로 함께 일하던 최근까지 서울, 도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여러 차례 만났고 회담도 몇 차례 했다”며 “정치·외교 문제에서 늘 생각이 같았던 건 아니지만 개인적 신뢰는 지키며 지냈다. 그런 만남의 기억이 하나하나 떠오른다”고 회고했다.이 전 대표는 그러면서 “아베 전 총리 피격에서도 민주주의의 위기를 느낀다”며 “인류가 수많은 희생을 치르며 성숙시켜 온 민주주의가 여기저기서 부서지는 것을 목도한다”고 적었다. 이어 “우리는 다시 지혜를 짜고 용기를 낸다”며 “극단세력의 무도한 폭력이나 일부 지도자의 일그러진 성정 등 그 무엇으로도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우리는 다시 경계하며 결의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 재직 시절 도쿄 특파원을 지냈던 이 전 대표는 지일파(知日派)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2019년 10월에는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에 맞춰 방일해 한일 총리 회담을 갖기도 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도 전날 아베 전 총리의 유족인 아키에 여사에게 조전을 보냈다고 대통령실이 전했다. 윤 대통령은 “일본 헌정 사상 최장수 총리이자 존경받는 정치가를 잃은 유가족과 일본 국민에게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베 총리를 사망케 한 총격 사건은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라며 깊은 슬픔과 충격을 표했다. 아베 전 총리는 8일 오전 11시 30분쯤 나라시에서 가두 유세를 하던 도중 7∼8m 떨어진 거리에서 쏜 총에 맞고 쓰러진 뒤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과다 출혈로 같은 날 오후 5시 3분에 숨졌다. 참의원 선거 다음날인 오는 11일 아베 총리의 친척과 지인들이 유족을 위로하며 밤을 새운 뒤 12일 장례식을 치른다.
  • [대만은 지금] “영원한 친구 잃었다” 아베 사망에 비탄에 빠진 대만

    [대만은 지금] “영원한 친구 잃었다” 아베 사망에 비탄에 빠진 대만

    친(親) 대만 행보를 이어온 아베 신조 일본 전 총리가 피격으로 사망하자 대만은 깊은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67세의 아베 전 총리는 지난 8일 오전 11시 30분경 일본 나라시(奈良市) 거리에서 선거 유세를 하던 중 뒤에 있던 한 남성이 쏜 총에 맞은 뒤 이날 오후 5시 46분경 사망했다. 대만 현지 언론들은 이날 아베 전 총리 피격 소식을 주요 뉴스로 다루며 그간의 행보에 주목했다. 아베 전 총리는 중국에 반기를 든 친대만파로 공개석상에서 매번 대만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더군다나 그는 이달 말 대만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그의 사망 소식은 많은 대만인들로부터 관심을 모았다. 대만 차이잉원 총통은 “국제사회가 중요한 지도자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대만도 중요한 친구를 잃었다”며 깊은 슬픔과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대만 정부는 폭력적이고 불법 행위를 규탄했다. 장둔한 총통부 대변인은 아베 총리가 수년 동안 대만과 일본 관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장 대변인은 이어 일본이 대만에 기증한 코로나 백신 뒤에는 아베 총리의 노력이 있었다고 밝혔다. 앞서 일본은 자국에서 생산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대만이 필요할 때마다 무상 공급했다. 대변인은 그러면서 “대만 사회와 국민들은 그의 대만 사랑에 대한 열정과 대만과 일본 관계에 대해 평생 공헌한 것을 항상 그리워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만의 랜드마크인 타이베이101은 이날 현지시간 저녁 8시부터 아베 신조를 추모하며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띄웠다. ‘아베 총리 추모’, ‘대만의 영원한 친구’, ‘대만을 위한 지지와 우정에 감사하다’라는 등의 문구가 타이베이의 밤하늘을 밝혔다. 타이페이101측은 “아베 총리는 대만이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항상 곁에 있었다”며 추모의 이유를 밝혔다.그의 사망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 대부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과 함께 아쉬움과 애도의 메시지를 쏟았다. 특히, 대만은 일본이 주도하는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을 희망하고 있으며 이에 대만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지역 농산물 금수 조치를 해제했다. 지난 3월 차이 총통은 처음으로 아베 전 총리와 화상 회담을 가졌다. 이들은 대만의 CPTPP 가입 문제 및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이 논의했다. 회담에서 아베 전 총리는 지역 정세를 비롯해 일본과 대만 간의 우호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전 총리는 대만해협 문제에 대해 “대만 문제는 곧 일본 문제”라며 중국에 날을 세웠다. 그는 지역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만과 일본이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이에 앞서 대만의 파인애플이 중국으로부터 금수 조치를 당하자 아베 전 총리는 대만산 파인애플과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며 홍보대사를 자처하는가 하면 “대만 힘내라”는 메시지가 쓰인 종이를 들고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또 미국의 한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의 대만 전략은 ‘전략적 모호성’에서 ‘전략적 명확성’으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52세에 최연소 총리에 올라 피격의 비운을 맞은 아베 전 총리는 두 번에 걸쳐 약 8년 9개월 동안 총리직은 맡은 역대 최장수 총리다. 여당 자민당에서 강경파 인사로 꼽히는 그는 자민당의 최대 파벌인 ‘아베파’를 이끌었고,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한 아베표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를 탄생시켰다.
  • 아베 전 총리 사인은 출혈사…12일 가족장 치른다

    아베 전 총리 사인은 출혈사…12일 가족장 치른다

    8일 일본 참의원 선거 지원 유세 중 피살된 아베 신조(67) 전 총리의 사인은 출혈사로 밝혀졌다. 9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나라현 경찰이 이날 부검 결과 아베 전 총리의 사인은 좌측 상완부를 총에 맞아 동맥이 손상된 데 따른 출혈사라고 밝혔다. 고인의 시신은 부검을 마친 뒤 나라현 가시하라시에 있는 나라현립의대부속병원에서 도쿄의 자택으로 옮겨졌다.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은 오는 12일 치러질 것으로 알려졌다. TBS 등에 따르면 참의원 선거(10일) 다음날인 11일 친척과 지인들이 유족을 위로하며 밤을 새운 뒤 12일 장례식을 치를 예정이다. 장례식에는 아베 전 총리의 가족과 친척 등 가까운 이들만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베 전 총리가 8년 9개월을 총리로 재임하는 등 일본의 역대 최장수 총리였기 때문에 이에 맞는 별도의 장례식도 열릴 예정이다. 2020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의 장례식은 당시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장례위원장을 맡아 정부와 자민당 합동장으로 치러졌다. 이를 볼 때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도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장례위원장을 맡아 정부와 자민당 합동으로 치를 가능성이 크다. 한편 전날 아베 전 총리를 저격한 야마가미 데쓰야(41)는 범행 동기로 “특정 단체에 원한이 있는데 이 단체에 아베 전 총리가 연관이 있다고 믿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사히신문은 그가 특정 종교 단체 이름을 거론했다고 전했다. 그는 어머니가 이 단체에 빠져들어 많은 기부를 하는 등 가정생활이 엉망이 됐다는 이야기도 했다고 알려졌다. 그는 다만 “아베 전 총리에 대해 불만이 있어 죽이려 총을 겨눴다”며 “정치 신조에 대한 원한은 아니다”라고 경찰에 진술했다고 전해졌다.
  • 눈시울 붉힌 기시다…“부디 아베 목숨 건져 달라 기도했는데”

    눈시울 붉힌 기시다…“부디 아베 목숨 건져 달라 기도했는데”

    “부디 목숨을 건져 달라고 기도했는데 이런 바람도 헛되이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됐습니다. 정말 유감입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8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이같이 말했다. 앞서 이날 기시다 총리는 야마가타현에서 참의원 선거 지원 유세 중 아베 전 총리의 피습 소식을 듣고 급히 헬리콥터를 이용해 도쿄로 복귀했다. 기시다 총리와 아베 전 총리는 1993년 7월 중의원 총선에서 당선돼 의정 활동을 시작한 동기 사이다. 특히 기시다 총리는 아베 정권 시절 4년 8개월 ‘최장수’ 외무상을 지내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기시다 총리가 자민당 총재로 당선돼 총리가 된 데는 자민당 최대 파벌인 아베파의 수장인 아베 전 총리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베 전 총리가 기시다 총리의 ‘상왕’ 노릇을 한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두 사람은 정치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기시다 총리는 “당선 동기이자 국회의원이 된 후에도 동료 의원으로서 아베 내각을 떠받친 각료 중 한 명으로서 많은 시간을 함께한 좋은 친구이기도 했다”고 고인을 추모했다.기시다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큰 충격을 받은 듯 평소 막힘없이 말했던 태도와는 달리 굳은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잠시 머뭇거리듯 말했다. 그는 “위대한 정치인을 잃었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어 “나라를 사랑했고 항상 시대를 한발 앞서 내다보며 이 나라의 미래를 열기 위해 커다란 실적을 다양한 분야에서 남긴 위대한 정치인을 잃었다”며 “아베 전 총리의 생각을 확실히 받아들여 계승해 책임을 다하고 싶다”고 밝혔다.
  • [속보] 윤 대통령 “존경받는 정치가 잃은 유가족·日국민 애도” 조전

    [속보] 윤 대통령 “존경받는 정치가 잃은 유가족·日국민 애도” 조전

    尹 “아베 총격 사건,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한총리 “동북아 위해 열심히 노력하신 분”“아베, 어떤 형태든 한일관계 개선 의지 보여”아베, 유세 도중 총격 피습 당해 끝내 사망윤석열 대통령이 8일 유세 도중 총격을 받고 숨진 아베 신조(67) 전 일본 총리 사망과 관련, “본 헌정 사상 최장수 총리이자 존경받는 정치가를 잃은 유가족과 일본 국민에게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한다”며 조전을 보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저녁 아베 전 총리의 유족인 아키에 여사에게 이런 내용이 담긴 조전을 보냈다고 대통령실이 전했다. 윤 대통령은 “아베 총리를 사망케 한 총격 사건은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라며 깊은 슬픔과 충격을 표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이날 아베 전 총리의 사망에 대해 서울 종로보건소에서 코로나19 4차 접종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동북아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셨던 분이 돌아가셔서 상당히 아쉽다”며 유족에 조의를 전했다.한 총리는 “이웃 나라 지도자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굉장히 아쉬움이 있다”며 2013년 다보스포럼에 아베 전 총리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석했을 당시를 회고했다. 한 총리는 “아베 전 총리가 거기서 한일 관계를 어떤 형태로든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졌었다”면서 “박 전 대통령이 기조연설 할 때 50분 정도를 맨 앞 좌석에 앉아서 연설과 대담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박 전 대통령과 악수도 하고 노력하던 모습이 생각난다”고 전했다. 아베 전 총리는 이날 오전 11시 30분쯤 일본 나라현 나라시에서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가두 유세를 하던 도중 용의자 야마가미 데쓰야(41)가 수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쏜 총에 맞고 쓰러진 뒤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심폐정지 상태에 빠져 오후 5시 3분에 끝내 사망했다. 나라현립의대병원 의료진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아베 전 총리가 총상으로 인해 목 2곳과 심장에 손상이 입었으며 “병원 이송시 심폐정지 상태였고 살리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경찰은 일본 해상자위대 장교 출신 야마가미를 현장에서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압수한 총은 일반적인 총을 개조한 것으로 추정됐다. 용의자는 경찰 조사에서 “아베 전 총리에게 불만이 있어서 죽이려고 했지만 정치 신조에 대한 원한은 아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NHK와 교도통신은 전했다. 아베 두 차례 역대 최장기 총리보수·우익세력의 구심점  아베 전 총리는 두 차례 걸쳐 총 8년 9개월 총리로 재임한 일본 역대 최장기 총리 기록을 세운 보수·우익 세력의 구심점이었다.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아베파를 이끌었다.  2006년 52세에 전후 최연소 총리로 취임했다가 1년 만에 조기 퇴진했지만 2012년 재집권에 성공해 ‘아베 1강’(强)이라고 불리는 독주 체제를 유지하다 2020년 9월 건강 문제를 이유로 사임했다.그는 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개헌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았으나 여론 악화와 2020년 초 코로나19 확산 등의 영향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물러났다. 경제 측면에서는 잃어버린 20년을 회복하겠다면서 ‘아베노믹스’를 앞세웠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퇴임 후에도 그는 후임인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와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했다. 아베 전 총리 집권 기간 한일 관계는 악화 일로였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 노동자 피해 배상 문제에 대한 보복 차원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크게 훼손됐다.
  • 국민의힘 “아베 前 총리 명복 빈다…테러, 정당화될 수 없어”

    국민의힘 “아베 前 총리 명복 빈다…테러, 정당화될 수 없어”

    국민의힘은 8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피격 사건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큰 비판에 잠겨있을 유가족과 일본 국민께 위로를 전한다”고 밝혔다. 허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오후 구두 논평을 통해 “아베 전 총리가 일본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유세를 하던 중 괴한의 총에 맞아 쓰러져 병원에 이송됐지만,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며 이렇게 말했다. 허 수석대변인은 “아베 전 총리는 두 차례에 걸쳐 일본 역사상 최장수 총리로 재임했다”며 “‘아베노믹스 경제정책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는 장기 침체에 빠진 일본 경제의 부흥을 위해 노력한 정치인이기도 했다”고 평했다. 이어 “테러는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특히 민주주의의 축제가 돼야 할 선거를 테러로 물들이는 행위를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이라고 규탄했다. NHK 등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아베 전 총리는 이날 오전 11시 30분쯤 일본 나라현 나라시에서 선거 유세를 하다 산탄총에 맞아 쓰러졌다. 그는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그러나 이날 오후 자민당 간부는 NHK를 통해 아베 전 총리가 치료 중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또한 일본 의료진은 기자회견을 통해 아베 전 총리는 이송 당시 이미 심폐 정지 상태로 위급했으며 오후 5시 3분쯤 사망했다고 밝혔다. 목 두 곳과 심장에 손상이 가 출혈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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