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장수
    2025-12-3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5,375
  • 96세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서거…차기 왕 찰스 즉시 즉위(종합)

    96세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서거…차기 왕 찰스 즉시 즉위(종합)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8일(현지시간) 서거했다. 향년 96세. 왕위 계승권자인 여왕의 큰아들 찰스 왕세자가 즉각 국왕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영국 왕실은 8일(현지시간) 여왕이 이날 오후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떴다고 밝혔다. 여왕은 25살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뒤 영국의 군주와 영연방의 수장 자리를 지켜왔다. 영국 최장수 군주이면서 세계 역사상 두번째로 오랜 기간 재위하며 세계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온 여왕은 즉위 70년 만에 임무를 내려놓게 됐다. 건강 문제에도 불구하고 6일에 신임 총리를 임명하는 등 최후까지 역할을 충실히 다했다. 이날 왕실이 여왕의 건강이 우려된다는 의료진의 판단을 공개한 후 왕실 직계 가족들은 속속 밸모럴성에 모여들었고 BBC가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여왕 관련 소식을 생중계로 전하는 등 전국이 긴박하게 움직였다.앞서 영국 왕실이 “폐하의 건강이 우려스럽다”는 주치의들의 판단이 나왔다고 언론에 공개한지 5시간여 만이다. 당시 찰스 왕세자 등 왕실 직계가족들이 일제히 여왕이 있는 밸모럴성으로 이동하는 등 영국 왕실이 긴박하게 움직이면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지됐다. 로이터·AP·AFP통신 등에 따르면 주치의들은 “여왕은 의료적 관찰이 필요하다”며 건강에 대한 우려를 언급한 소견을 밝혔다. 왕실 버킹엄궁은 “주치의들이 이날 아침 더 살핀 뒤 폐하의 건강이 우려스럽다는 판단을 내놓고 의료진이 지켜봐야 한다는 권고를 내놨다”고 발표했다. 왕실은 주치의 의견이 나왔을 때만 해도 “여왕은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현재 안정된 상태”라고 전했지만 이후 위급 상황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된다. 밸모럴성은 통상 여왕이 여름을 보내는 곳이다. 6일 이곳에서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의 사임을 보고받고,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를 임명하는 행사를 치렀다.여왕은 통상 런던 버킹엄궁이나 윈저성에서 총리들을 만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96세 고령의 여왕이 1600㎞를 왕복하지 않고 총리들이 이동했다. 여왕은 앞서 7일 휴식을 취하라는 의사들의 권고로 하루 일정을 취소했었다. 현지 언론들은 왕실 직계가족이 여왕의 건강 상태를 통보받았다. 직후 찰스 왕세자 부부와 앤 공주,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 등 여왕의 네 자녀와 윌리엄 왕세손이 이동 중이며 해리 왕자 부부도 스코틀랜드로 갔다. 앞서 여왕의 건강이 위중하다는 소식이 퍼지자 리즈 트러스 총리는 나라 전체가 소식에 크게 우려하고 있으며 위로를 전한다고 말했고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 등 주요 정치인들과 성공회 수장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 등이 속속 회복을 기원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트러스 총리는 의회에서 에너지 위기 대책을 내놓는 중에 보고를 받았고 하원의장은 잠시 논의를 중단하고 소식을 전달하기도 했다. 당시 스카이뉴스는 의원들의 표정을 보면 사안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다고 전했다. BBC 등도 정규방송을 끊고 여왕 건강 소식을 보도했다. 영국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왕실 발표 후에 접속이 폭주하며 왕실 홈페이지가 마비됐고 밸모럴성 밖에는 여왕을 안녕을 비는 지지자들이 모여들었다. 여왕 소식을 함께 들은 영국 의회의 한 직원은 기자에게 “정말 사랑받는 분이었다. 너무 슬플 것 같다”고 말했다.
  • 기시다 “아베 사망해 통일교 접점 파악하기 어렵다”

    기시다 “아베 사망해 통일교 접점 파악하기 어렵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8일 국회에 출석해 오는 27일 도쿄 부도칸에서 열리는 아베 신조 전 총리 ‘국장’(國葬)에 대해 “일본이 폭력에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확고히 지켜나가겠다는 각오를 다지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가 일본 내 국장 반대 여론을 정면 돌파하기 위해 직접 국회를 상대로 설명에 나섰지만 16억 6000만엔(약 162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세금이 투입되는 데 대한 비판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날 일본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은 각각 운영위원회를 열고 정부를 상대로 아베 전 총리 국장 개최에 대한 질의를 진행했다. 기시다 총리는 “아베 전 총리는 역대 최장수 총리로 많은 업적을 남긴 데다 해외 각국이 조의를 표했고 선거 중 총격을 받아 사망한 것에 대해 국가가 나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며 국장을 결정한 배경을 밝혔다. 그러자 입헌민주당 등 야당을 중심으로 기시다 총리가 국장을 결정한 데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이즈미 겐타 입헌민주당 대표는 “정부가 국장을 결정한 기준이 불분명하다”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기시다 총리는 “국제 정세와 국내 상황에 따라 정부가 (국장 결정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게 바람직하다”라며 국장 실시에 대한 법 제정은 필요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국장 비용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기시다 총리는 “지난날 여러 행사와 비교해서도 타당한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시오카와 데쓰야 공산당 의원은 “기시다 총리는 정치권이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과 관계를 끊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이곳과 깊은 관계가 있던 아베 전 총리에 대해 국가적으로 경의와 조의를 표하는 국장을 치르도록 하는 건 모순”이라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해당 종교와의 관계는 본인이 사망한 지금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한편 기시다 총리는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외에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앤서니 알바니스 호주 총리,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상임의장 등이 아베 전 총리 국장에 참석한다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일본을 방문하는 각국 요인과 집중적으로 회담을 갖고 아베 전 총리가 키운 외교적 유산을 제대로 이어받아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내외에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도 이날 오전 정례 기자회견에서 해리스 부통령의 방일을 공식 발표하고 “해리스 부통령의 방일은 이번이 처음으로 미일 동맹을 새롭게 더 높은 곳으로 이끈 아베 전 총리의 공헌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며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말했다.
  • 추석과 전(煎), 그리고 남녀

    추석과 전(煎), 그리고 남녀

    일제강점기인 1936년 나온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은 ‘조선에 둘도 없이 하나뿐인 신식 요리법’을 기록한 책이다. 밥부터 나물, 찌개, 젓갈 등 전통음식에 카레라이스, 사과파이 등 서양요리까지 다양한 조리법이 나온다. 전은 ‘煎油魚’(전유어)로 표기돼 있다. 전의 재료로 비빔밥 등 다양한 재료가 소개됐지만 얇게 저민 생선이 많이 쓰였기 때문이다. 고종이 1905년 9월 20일 미국 제26대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딸 앨리스 루스벨트에게 대접한 오찬 메뉴판에도 ‘전유어’가 있다. 전은 조선 시대에 귀한음식이었다. 당시 황해도, 평안도, 강원도 등에서 밀이 재배됐지만 품질이 썩 좋지는 않았다. 밀가루는 외세가 들어오면서 보편화됐다. 일제가 한반도를 쌀 보급기지로 쓰면서 밀 재배와 소비를 장려했고, 그 여파로 호떡 장수가 늘었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저서 ‘백년식사-대한제국 서양식 만찬부터 K푸드까지’에서 조선에 들어온 중국인이 독점했던 호떡 판매가 중일전쟁 이후 조선인에게 대거 허용됐다고 썼다. 오랑캐 ‘호’(胡)가 붙어 호떡이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밀가루 무상원조가 이뤄지면서 밀가루가 쌀보다 많이 소비됐다.  전통 요리기구에 프라이팬은 없다. 프라이팬이 국내에 들어오기 전에는 전을 부칠 때는 무쇠솥 뚜껑을 뒤집어쓰거나 이와 비슷한 번철을 썼다. 조선무쌍신요리제법에는 전을 부칠 때 쓰는 기름으로 돼지고기 비계나 껍질을 가열해 나온 기름(제육발기름), 들기름이 언급됐다. 참기름도 종종 쓰였는데 대량 생산이 쉽지 않아서다. 조선 시대 튀김요리가 발달하지 않은 이유다. 식용유의 대중화는 미국이 우리나라에 제공하는 잉여농산물에 1956년 식용유를 포함시켰고 미국은 대두를 사라고 요구하면서 이뤄졌다.  전은 이제 제사 음식의 기본이 됐다. 설이나 추석, 또는 기제사 때 신문지를 깔고 전을 부치는 모습이 일상이 됐다. 몇 시간씩 전을 부치면 기름냄새가 집 안에 진동을 한다. 그런데 전을 차례상에 올리지 않아도 된단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가 지난 5일 기자회견까지 열어 발표한 추석 차례상 음식은 송편, 나물, 구이(적), 김치, 과일, 술 등 6가지였다. 최영갑 성균관의례정립위원장은 “잘못된 의례문화가 명절증후군이나 명절 뒤 이혼율 증가 같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관행처럼 내려오던 예법을 바꾸지 못했다”고 말했다. 늦어도 너무 늦은 반성문이다. 명절 노동이 여성에게 집중되면서 명절증후군, 명절 뒤 이혼율 증가는 수십년 전부터 나온 얘기다. 사회는 변해 제사음식을 배달해주는 업체도 있고, 데우기만 하면 되는 반(半)조리식도 늘었다. 아예 제사를 안 지내는 집도 있다. 최 위원장의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성별 및 세대 갈등을 해결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는 발언이 “유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줄여달라”로 들린다. 성균관이 다음에는 유교에서 비롯됐다고 오해받는 남녀차별의 진실을 따져봤으면 한다.
  • [나우뉴스] 머리 2개인 채 25년…스위스 유명 거북, 최장수 기록 경신

    [나우뉴스] 머리 2개인 채 25년…스위스 유명 거북, 최장수 기록 경신

    하나의 몸통에 머리가 두 개 달린 수컷 그리스 거북이 ‘야누스‘가 25번째 생일을 맞았다. 3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스위스 제네바 자연사박물관은 이날 쌍두거북 야누스 형제가 25세를 맞았다고 밝혔다. 머리 두 개를 달고 태어난 전 세계 거북 중 최고령에 해당한다.야누스 형제는 1997년 제네바 자연사박물관 내 부화장에서 태어났다. 두 개의 머리가 달린 모습을 본 사육사들은 고대 로마 신화 속 두 얼굴의 신 야누스라는 이름을 형제에게 붙여줬다. 태어나자마자 많은 사람의 관심을 독차지했지만, 박물관 관계자들은 “거북이 오래 생존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머리 외에도 심장과 폐 등도 각각 2개여서 보통 거북이처럼 정상적인 수명을 유지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런 예상은 벗어났고, 이 거북은 지난 25년간 박물관의 명물이자 마스코트로 자리매김했다. 사실 야누스를 키우는 일은 만만치 않다. 담당 사육사들은 매일 형제에게 일광욕과 온수 목욕을 해준다. 먹이는 토마토와 꽃상추 등 유기농 채소로 만든 샐러드가 제공되는데 흥미롭게도 야누스는 머리가 두 개인 만큼 식성도 성격도 제각각이다.한쪽 머리가 좋아하는 채소는 시금치지만 다른 한쪽은 시금치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늘 꽃상추만 먹는다. 형제는 가끔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갈지를 놓고 싸우기도 한다. 박물관 관계자는 “만일 야누스가 야생에서 태어났다면 포식자를 피해 머리를 등껍질 안으로 넣을 수 없어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비결은 사육사들의 관심과 보살핌 덕분”이라고 말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문화마당] 담장 수리/손택수 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시인

    [문화마당] 담장 수리/손택수 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시인

    돌담 사이로 난 올레길이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유장하게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내 굳은 어깨에도 직선에는 없는 곡선의 부드러운 리듬이 실려 왔다. 아마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평소에 낯선 이에게 말을 건네는 걸 필요 이상으로 망설이는 소심한 위인이 돌담을 수리 중인 사내 쪽으로 주춤주춤 다가섰다. 사내는 무너진 돌담의 돌을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으며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렇게나 돌을 올려놓거나 틈 사이에 끼워 넣으면 될 것 같은데 그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쌓아 올린 돌들을 다시 허물어서 퍼즐을 맞추듯 작업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걸 망설이지 않았다. 공들여 쌓은 탑을 무너뜨리면서까지 재구축을 하는 질서에 무슨 비의가 담겨 있을까. 언뜻 대수롭지 않아 보이기도 했으나 그 일거수일투족에서 한 분야에 천착하는 장인들 특유의 고집스러움과 오랜 세월 갈고닦은 기술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유한 여유 같은 것이 느껴졌다. 옆에서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지켜보고 있던 나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기대와는 달리 단순했다. ‘뭘 찾긴? 보면 몰라? 돌들은 끼워 맞출 수 있는 모가 최소한 여덟 군데는 있거든. 뚫어져라 잘 봐. 축담의 기술은 바로 돌과 돌의 궁합을 찾는 일이야.’ 돌과 돌 사이에도 궁합이 있다니! 저마다의 다른 개성과 곡절을 지닌 돌들이 여덟 개의 각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세상의 모든 돌들이 자신의 체질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요철의 결합 가능성에 따라 전체에 복무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거기에 쓸모없는 돌은 있을 수 없을 것이었다. 모가 나서 정 맞는 일도 없을 것이었다. 매사에 원만치 못해 외로움을 자처하며 사는 나로선 여간 위로가 아닐 수 없었다. 돌담의 어디에 나도 슬쩍 끼어 있고 싶어졌다. 그 속에서라면 못난 것도 모난 것도 다 아름다운 일일 것만 같았다. 가던 길을 접고 장인의 일을 거들고 나선 데에는 여행자의 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교감이 있었다고 해야 한다. 그에 따르면 인연 없는 돌들의 친교를 맺어 주는 공정 가운데 빠질 수 없는 것이 틈을 빚는 일이었다. 돌과 돌 사이의 틈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에 따라 바람이나 지진 같은 외부의 충격을 슬기롭게 조절할 수 있다. 충격이 오면 틈을 따라 돌들이 흔들리고, 흔들림은 돌담을 새떼의 군무처럼 구불거리게 하면서 충격을 리듬으로 전환한다. 그리하여 돌담은 숨골처럼 뚫린 수많은 틈들로 하여 들고나는 바람과 미세하게 변화하는 땅의 굴곡을 놓치지 않고 반응을 하는 반죽물의 상태를 살아간다. 이 틈들이 더러 결정된 구조물을 허물어 불편케 하는 것도 사실이나, 미완의 구조물을 수리하는 수고를 기꺼이 떠안음으로써 세계의 변화에 참여하는 보람을 누리게 된다. 또한 자신의 몸과 정신을 대지와의 근원적 연대감 속에 단련시킬 수 있다. 돌이 장인의 기호라면 돌과 돌 사이의 틈은 돌들이 기호로 굳어져 있으면서도 꿈틀거리면서 숨을 쉬게 하는 여백이었다. 그것이 바로 숨쉬는 담이었다. 편하기로 따지면 보르크벽도 있겠지만, 놀라운 것은 숨구멍을 틀어막힌 벽들이 오히려 태풍에는 약하다고 했다. 유년 시절 고샅으로 난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돌과 돌이 투박한 입술로 부르는 휘파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추석 앞 태풍에 얼마 남지 않은 그 돌담들 무사할까. ‘좋은 담장은 좋은 이웃을 만든다’고 했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담장수리’를 펼쳐 본다.
  • 제주, 다시 이중섭을 기리다...이중섭이 그리다

    제주, 다시 이중섭을 기리다...이중섭이 그리다

    1956년 9월 6일, 나이 마흔살에 요절한 천재화가 이중섭을 기리는 특별전이 제주에서 다시 열린다. 서귀포시는 올해 이중섭미술관 개관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시리즈 전시를 개최하고 있는 가운데 이중섭특별전 2부 ‘정직한 화공, 이중섭’ 전시를 이중섭 화가의 기일인 지난 6일 시작해 내년 2월 26일까지 상설전시실에서 개최한다고 7일 밝혔다.#정직한 화공 이중섭의 유화, 드로잉 등 18점 소개 이번 전시는 상반기 진행된 1부 전시 ‘청년 이중섭, 사랑과 그리움’에 이어 개최되는 전시로, 이중섭미술관이 지난 20년간 기증과 구입을 통해 확보한 이중섭 원화 소장품 60점을 모두 소개하기 위한 시리즈 전시 중 마지막 2부 전시이다. 지난 1부에서는 이중섭과 연인 이남덕(야마모토 마사코) 여사와의 사랑의 연서(戀書)인 엽서화, 가족에 대한 이중섭의 사랑과 그리움을 담은 은지화와 편지화를 소개했다면, 이번 2부 전시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림에서 손을 떼지 않았고, 그림 재료의 선택에 있어서 어떠한 구애도 받지 않고 치열하게 작업했던 정직한 화공 이중섭의 유화, 수채화, 드로잉 등 18점을 소개한다. 그가 제주 서귀포에 머문 기간은 불과 1년. 그는 서귀포 피난 시절 바닷가 게를 너무 많이 잡아먹어 미안한 마음에 게를 그리기 시작했을 만큼 어렵게 살았다. 하지만 힘들고 어려운 시절에 게, 가족, 아이들, 물고기 등 서귀포 관련 소재들은 결국 작품으로 승화됐다. 이번 전시되는 1951년 서귀포에서 그린 ‘섶섬이 보이는 풍경’, 서귀포의 추억을 연상시키는 ‘해변의 가족’, ‘환희’, ‘아이들과 끈’, ‘여인과 게’ 등이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여인과 게’ 첫 공개… 고인이 된 이남덕 여사의 애틋한 편지와 사진 등도 전시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해에 미술관이 구입한 작품 ‘여인과 게’를 처음으로 공개한다. 이 작품은 일부 선 위를 손가락으로 문지른 흔적 외에는 전혀 색채를 쓰지 않았으나 이중섭 화가의 유려하고 속도감 있는 드로잉 솜씨로 인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지난달 13일 노환으로 별세한 이남덕 여사를 추모하기 위한 전시 공간도 일부 마련돼 눈길을 끈다. 고인은 이중섭과 1936년 일본 문화학원의 미술부 선후배로 인연을 맺고 1945년 결혼식을 올려 이남덕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쓰게 됐다. 고인은 이중섭의 뮤즈이자 미치도록 사랑하는 그리움이었다. 결혼사진을 비롯, 1978년 이중섭 은관문화훈장 받을 때 모습, 2012년 11월 화가의 유품인 팔레트 기증, 2016년 이중섭 100주년 기념 전시때 친필 메시지 등 10여점과 1955년 5월 10일 이중섭에게 보낸 편지 등을 함께 전시하여 의미를 더한다. 이 편지에는 요즘 연락이 없어 걱정되며 빨리 만나길 학수고대하고 아이들이 아빠 소식을 궁금해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여사는 1945년 이중섭과 결혼하여 아들 둘을 낳았으며, 1951년 서귀포에서 1년을 지내고, 1952년 두 아들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갔다. 1953년 일본에서 이중섭과 약 1주일간 재회한 후 1956년 이중섭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2016년 이중섭 탄생 100주년 전시에서 “다시 태어나도 당신과 함께 하겠어요. 우린 운명이니까”라는 소감을 밝혀 이중섭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23일부터 창작 오페라 이중섭 공연… 예술제 등도 준비중 창작 오페라 ‘이중섭’도 오는 23~24일 서귀포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열린다. 지난 2016년 대향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오페레타로 제작되었으며 2019년부터 창작 오페라로 발전시켜 서울과 제주에서 성공리에 공연됐다. 올해 공연은 ‘서귀포 환상’이라는 부제로 오페라 업계의 저명한 장수동 연출가가 기존 작품과는 다른 시각으로 서귀포에서의 이중섭 예술혼, 파란만장한 생애를 풀어낼 예정이다. 한편 오는 28일에는 제25회 이중섭세미나를 통해 이중섭 화백의 삶과 예술세계 조명, 미술관 시설확충에 따른 발전방향을 논의하고, 이중섭예술제(10월 중)를 개최하여 전도학생 그림그리기 대회 및 부대공연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 [포착] 세계 최고령 멕시코 할머니...옷도 무려 ○○○년 전 제품

    [포착] 세계 최고령 멕시코 할머니...옷도 무려 ○○○년 전 제품

    진짜 세계 최고령 할머니는 멕시코에 살고 있었다.  최근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날’을 맞은 멕시코의 언론은 산루이스 포토시 탄라하스에 살고 있는 할머니 마리아 콘셉시온 산토스를 소개했다. 1903년 5월 15일 태어난 할머니는 올해 만 119살. 기네스가 공인한 세계 최고령 할머니 뤼실 랑동(1904년 2월 11일생, 118살)보다 1살 많다.  자타가 인정하는 ‘기네스의 국가’ 멕시코는 산토스 할머니를 세계 최고령 할머니로 공인해달라고 기네스에 요청할 계획이다.  기네스가 공인하면 산토스 할머니는 생존하는 최고령 할머니이자 역대 3번째 최장수 할머니로 등재된다. 최장수 1위는 1997년 사망한 프랑스의 잔 칼망(122살), 2위는 올해 사망한 일본의 다나카 가네(119살) 할머니다.  산토스 할머니의 일생은 멕시코의 역사를 보는 듯하다. 할머니가 7살 때 멕시코혁명이 일어났고, 13살 때 지금의 헌법에 제정됐다.  할머니의 개인사에도 역경이 많았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고아로 자라면서 숱한 고생을 했다. 50년 전 사망한 남편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들 일곱과 딸 하나 등 8남매를 뒀지만 1명을 제외하면 자식들마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올해 70살이 된 며느리와 함께 사는 할머니는 다행히 건강한 편이다. 보행기를 이용하긴 하지만 혼자 이동하는 건 물론 텃밭에 채소를 심어 재배한다. 하루 한 잔 라테커피를 챙겨 마시는 것도 할머니의 일상이다.  산토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날을 맞아 살고 있는 도시에서 ‘할머니 여왕’이라는 특별상을 받았다. 산토스 할머니는 97년 전 남편으로부터 선물을 받고 결혼식 때 입은 옷을 입고 행사에 참석, 또 다른 화제를 뿌렸다.  하지만 할머니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은 57살 된 손녀와의 만남이었다. 산토스 할머니를 소개한 언론의 보도를 본 손녀 비르히니아 곤살레스 로페스는 “TV를 보는 순간 내가 그토록 찾던 할머니시구나라는 생각에 전율이 오고 오열을 했다”면서 바로 할머니를 알아봤다고 했다.  손녀 로페스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무슨 이유에선지 할머니를 만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친할머니가 꼭 보고 싶었던 로페스는 아버지가 가진 할머니 사진 1장을 훔쳐 살아 계신지, 생존해계시다면 사는 곳은 어딘지 수소문했다고 한다. 그러나 60년 가까이 왕래나 연락이 끊긴 할머니를 개인이 찾는 건 불가능했다.  로페스는 “그토록 찾았고, 그토록 열망했는데 이제야 꿈이 이뤄졌다”면서 할머니를 꼭 안았다.  한편 할머니가 살고 있는 탄라하스 당국은 할머니에게 집을 선물하기로 했다. 당국자는 “할머니가 나무로 만든 허름한 집에 살고 계셔서 살고 계신 곳에 집을 한 채 지어드리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 두 달 뒤면 매장에서 1회용컵 못 쓰는데…안 줄어드네

    두 달 뒤면 매장에서 1회용컵 못 쓰는데…안 줄어드네

    오는 11월 24일부터는 매장 내에서 컵, 빨대 등 1회용품을 사용할 수 없다. 1회용컵 사용 금지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매장에서 사용이 줄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국 환경운동연합은 지난 8월 4일부터 지난 4일까지 한 달 동안 전국 모든 카페를 대상으로 매장을 이용하는 경우에도 1회용컵으로 음료를 제공 받았던 사례를 제보 받아 ‘매장 내 1회용컵 사용실태’를 조사했다고 6일 밝혔다. 조사 결과, 한 달간 카페를 이용한 시민들이 매장을 이용하는 경우에도 1회용컵을 제공받았던 경우가 무려 387건이나 됐으며, 358개 매장 내에서 한 달 동안 920개의 1회용컵이 버려진 것이 확인됐다. 지역별로 매장내 1회용컵 사용 제보가 가장 많은 곳은 서울(141건)로 확인됐다. 그 다음으로 경기(68건), 경북(19건), 충남(19건), 충북(18건) 순으로 나타났다. 환경운동연합 측은 인구수와 매장수를 고려하더라도 서울과 경기에서 많은 제보가 들어왔다는 것은 제보되지 않은 사례까지 감안했을 때 매장내에서 버려지는 1회용컵 쓰레기 양은 엄청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보된 카페들 업종을 살펴보면 개인 카페가 55.2%, 프렌차이즈 카페가 44.8%로 나타났다. 일부 매장에서는 컵 홀더로 1회용 종이컵을 사용하고 있다는 제보도 있는 만큼 실제 사용된 1회용컵 양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됐다. 대형 프렌차이즈는 1회용품 사용 금지에 대한 대응 메뉴얼과 가이드라인이 있음에도 개인카페와 사용량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은 프렌차이즈 본사가 매장 내 1회용컵 사용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고 제도 역시 제대료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환경운동연합은 지적했다. 한편 매장 내에서 제공받은 컵의 종류는 플라스틱컵이 153회, 종이컵이 75회, 둘 다 제공된 경우는 151회에 달했다. 전국 환경운동연합은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 “매장내 1회용 플라스틱컵 사용금지 과태료 부과 같은 처벌 계도기간을 언제까지 유지할 것인지 환경부는 명확히 밝히고, 빠른 시일 내에 1회용컵 사용금지 제도가 제대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오는 11월 24일에 시행되는 카페나 식당 등에서 1회용품 규제와 12월에 시행될 1회용품 보증금제를 제대로 시행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제천·남원·경주… 농촌공간정비사업 대상 28개 시·군 선정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농촌공간정비사업 대상 지구로 27개 시·군을 선정했다고 6일 발표했다. 농촌 주거지 근처 유해시설 철거·이전을 지원하고 이렇게 정비한 부지를 생활서비스 시설이나 주거단지, 마을공동시설 등으로 활용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2021년 충북 괴산·영동, 경북 상주, 강원 영월, 경남 김해 등 5개 시범지구에서 시작된 이번 사업의 목표는 올해부터 매년 40개소씩, 2031년까지 총 400개소 정비로 커졌다. 올해 1차 공모에선 충북 제천·영동·괴산·음성, 충남 부여·청양, 전북 김제, 전남 화순·장흥, 경북 상주(함창읍)·상주(중동면)·고령, 경남 김해·고성·산청·합천이 선정됐다. 이어 2차 공모를 통해 충남 서천(화성지구), 전북 남원·장수, 전남 해남, 경북 포항·경주, 경남 진주(명석면·수곡면)·의령(대의면)·함안·창녕 등이 지원을 받게 됐다. 지금까지 확정된 사업 지구 32개소를 분석한 평균 사업비는 155억원 규모이다. 정비 대상은 축사가 27개소로 가장 많고 빈집(10개소), 공장(7개소), 폐창고(4개소) 등이 포함되었다. 정비 이후 공간을 활용하는 사업에는 귀농귀촌인·청년 등을 위한 주택단지 조성사업과 보육·교육·문화·체육 등 생활서비스 시설 조성사업, 주민 쉼터 등이 많았다. 농식품부는 올해 327억원이던 예산 규모를 내년 776억원(정부안)으로 증액하는 한편 사업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농촌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상만 농식품부 농촌정책국장은 “농촌공간정비사업 확대를 통해 우리 농촌이 매력적인 공간으로 재탄생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 태풍 지나간 전북, 피해속출…243가구 정전되고 가로수 쓰러졌다

    태풍 지나간 전북, 피해속출…243가구 정전되고 가로수 쓰러졌다

    제11호 태풍 ‘힌남노((HINNAMNOR)’의 영향으로 전북에서도 각종 피해가 속출했다. 6일 전북도와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기준으로 243가구가 정전이 되고 가로수 전도 35건, 배수지원 1건 등 모두 45건의 피해가 접수됐다. 태풍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날 새벽 남원에서는 125가구가 정전으로 불편을 겪었고 고창 78가구, 군산 어청도에서도 40가구가 한때 전기공급이 중단됐다. 한전 등 관계기관은 신속히 현장에 출동해 복구작업을 마쳤다.전주와 익산, 군산 등에서는 강풍에 나무가 쓰러져 도로를 덮쳤다는 신고가 잇따랐다. 익산 남성고 인근에선 가로수가 전신주 방향으로 쓰러져 일시적으로 도로가 통제됐다. 전북도 관계자는 “피해 상황 신속 파악·접수 및 피해 발생 시 신속한 응급조치 등에 나설 것”이라며 “태풍의 영향범위가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지속 모니터링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전주기상지청에 따르면 전날부터 이날 오전 9시까지 누적 강수량은 남원 뱀사골 228.5㎜, 무주 설천봉 173.5㎜, 무주 덕유산 167.5㎜, 정읍 120.1㎜, 부안 83㎜, 무주 82.5㎜, 고창 75.8㎜, 장수 74㎜, 군산 72.4㎜, 전주 63.3㎜ 등을 기록했다.
  • 머리 2개인 채 25년…스위스 유명 거북, 최장수 기록 경신

    머리 2개인 채 25년…스위스 유명 거북, 최장수 기록 경신

    하나의 몸통에 머리가 두 개 달린 수컷 그리스 거북이 ‘야누스'가 25번째 생일을 맞았다. 3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스위스 제네바 자연사박물관은 이날 쌍두거북 야누스 형제가 25세를 맞았다고 밝혔다. 머리 두 개를 달고 태어난 전 세계 거북 중 최고령에 해당한다.야누스 형제는 1997년 제네바 자연사박물관 내 부화장에서 태어났다. 두 개의 머리가 달린 모습을 본 사육사들은 고대 로마 신화 속 두 얼굴의 신 야누스라는 이름을 형제에게 붙여줬다. 태어나자마자 많은 사람의 관심을 독차지했지만, 박물관 관계자들은 “거북이 오래 생존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머리 외에도 심장과 폐 등도 각각 2개여서 보통 거북이처럼 정상적인 수명을 유지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런 예상은 벗어났고, 이 거북은 지난 25년간 박물관의 명물이자 마스코트로 자리매김했다.사실 야누스를 키우는 일은 만만치 않다. 담당 사육사들은 매일 형제에게 일광욕과 온수 목욕을 해준다.  먹이는 토마토와 꽃상추 등 유기농 채소로 만든 샐러드가 제공되는데 흥미롭게도 야누스는 머리가 두 개인 만큼 식성도 성격도 제각각이다. 한쪽 머리가 좋아하는 채소는 시금치지만 다른 한쪽은 시금치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늘 꽃상추만 먹는다. 형제는 가끔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갈지를 놓고 싸우기도 한다. 박물관 관계자는 “만일 야누스가 야생에서 태어났다면 포식자를 피해 머리를 등껍질 안으로 넣을 수 없어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비결은 사육사들의 관심과 보살핌 덕분”이라고 말했다.
  • “尹대통령 추석선물 팝니다”…중고가 ‘최고 30만원’

    “尹대통령 추석선물 팝니다”…중고가 ‘최고 30만원’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추석선물 세트가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웃돈이 붙은 채 거래되고 있다. 5일 중고거래 사이트 ‘중고나라’ 등에는 ‘윤석열 대통령 추석 선물(대통령 내외)’ 등의 제목의 글이 여러 개 올라왔다. 판매자들은 별다른 설명이나 판매 이유를 밝히지 않고 선물세트를 직접 찍은 ‘인증샷’만 게재했다. 사진에는 선물 구성품과 함께 대통령의 카드도 동봉돼 있다. 판매 가격은 20만~30만원선이다.앞서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추석을 맞아 각계 인사 1만3000여명에게 각 지역의 특산물이 담긴 추석 선물과 메시지가 담긴 카드를 전달했다. 선물을 받는 대상은 국가와 사회발전을 위해 헌신한 각계 원로, 호국영웅과 유가족 및 사회적 배려계층 등이다. 특히 올해는 누리호 발사에 기여한 우주 산업 관계자들에게도 선물이 전달됐다. 구성품은 우리 농산물의 소비를 촉진하고 각 지역의 화합을 바라는 의미에서 매실·오미자청(전남 순천, 전북 장수)을 포함해 홍삼양갱(경기 파주), 볶음 서리태(강원 원주), 맛밤(충남 공주), 대추칩(경북 경산) 등으로 구성됐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는 카드를 통해 “어렵고 힘든 시기이지만 묵묵히 흘린 땀과 가슴에 품은 희망이 보름달처럼 환하게 우리 미래를 비출 것이다. 더 풍요롭고 넉넉한 내일을 위해 국민 한 분, 한 분의 마음을 담겠다”는 인사를 전했다. 한편 대통령의 명절 선물세트가 중고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해 초 문재인 전 대통령의 마지막 설 선물은 중고거래 사이트 등에서 17만∼30만 원에 거래됐다. 선물 내용물이 없는 빈 상자도 평균 5만원에 거래돼 화제가 됐다.
  • “국가 존망 위기 어찌 몸 아끼랴”…육순 老시인 구국 순절의 칼[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국가 존망 위기 어찌 몸 아끼랴”…육순 老시인 구국 순절의 칼[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고경명은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의 한 사람이다. 그의 시는 ‘바람을 읊고 이슬을 날리며 은하수를 뛰어넘고 안개를 올라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왜란이 일어나고 왜적이 도성을 점령하자 전라도관찰사 이광은 그에게 의병을 모으기 위한 격문(檄文)을 요청했다. 고경명은 그만큼 대(大)문장가인 동시에 호남을 대표하는 지성이었다. 고경명의 간절하면서 감동적인 격문은 이르는 곳마다 뜻있는 사람들의 궐기를 이끌었다. 60세 노(老)시인은 붓을 쥐던 손에 칼을 잡고 의병장이 됐다. ●간절하고 감동적인 마상격문 ‘임진년 6월 전라도 의병장 고경명은 삼가 각 도 수령과 백성들과 군인들에게 급히 통고한다. 근자에 국운이 불길하여 섬 오랑캐가 불시에 침입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와 약속한 맹세를 저버리더니 나중에는 통째로 집어삼킬 야망을 품었다. 우리 국방이 튼튼치 못한 틈을 타 기어들어 하늘도 무서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북상하고 있다.…경명은 비록 늙은 선비지만 나라에 몸바치려는 일편단심만은 그대로 남아 있어 밤중에 닭의 소리를 듣고는 번민을 이기지 못하여 강 한복판 배의 노를 치면서 스스로 의로운 절개를 지키려 한다. 한갓 나라를 위하려는 성의만 품었을 뿐, 자기 힘이 너무나 보잘것없음을 모르는 바 아니나 이제 의병을 규합하여 곧장 서울로 진군하려 한다.’ 마상격문(馬上檄文)의 한 대목이다. 고경명은 1592년 5월 29일 담양 추성관에서 전라도 21개 지역 61명의 사림 대표가 모인 가운데 전라좌도 의병장에 추대된다. 6월 1일 한양을 향해 출발한 6000명의 호남의병은 전주에 이르렀을 무렵 임진강 방어선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상황을 판단하고자 훈련을 하며 잠시 머무른다. 고경명이 다시 북상을 시작하면서 6월 24일 지은 것이 마상격문이다. 글자 그대로 ‘말 위에서 지은 격문’이라는 뜻이니 그만큼 급박한 위기상황이었다는 뜻이다. 고경명은 ‘국가존망의 위기에 어찌 감히 하찮은 제 몸만을 아끼려고 하겠느냐’고 마상격문에 적은 그대로 우리가 아는 것처럼 7월 10일 금산 전투에서 왜적을 공격하다 장렬하게 순절한다.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1533~1592)은 전라도 광주 제봉산 아래 압보촌에서 태어났다. 현재는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이다. 이곳에는 고경명과 두 아들 종후와 인후, 종사관 유팽로와 안영을 기리는 포충사(褒忠祠)가 있다. 1601년 세웠고, 1603년 사액됐다. 1865년 대원군의 서원·사우 철폐령에도 장성 필암서원과 함께 살아남았다.포충사는 지금 로제와인색 배롱나무꽃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포충사가 자리잡은 제봉산은 해발고도 165.5m로 높지 않지만 나지막한 곡선이 아름답다. 짐작처럼 제봉이라는 고경명의 아호는 이 고향 마을의 뒷산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런데 고경명의 무덤이 있는 전남 장성 영천리의 오동촌 뒷산 역시 제봉산이다. 장성 제봉산은 고경명의 무덤이 옮겨진 뒤 그를 기려 붙여진 이름이다. 광주 제봉의 정기가 고경명을 낳고 다시 그의 의기가 장성 제봉에 이식된 셈이다. ●“시 가운데 그림이” 明도 인정한 시인 고경명은 26세이던 1558년 식년문과에서 장원급제했다. 성균관 전적에 이어 홍문관 부교리, 부수찬, 교리에 이르는 5년 동안은 평탄하게 승진했다. 하지만 당대 대표적 외척의 한 사람인 이량이 사림의 탄핵으로 실각하는 과정에서 불똥이 튀었다. 이량의 전횡을 논죄하는 데 참여한 제봉은 관련 정보를 당사자에게 유출했다는 이유로 울산군수로 좌천되곤 곧 파직됐다. 이 사건으로 고경명은 무려 20년 가까운 세월을 조정에서 쓰임을 받지 못했다. 대신 낙향한 제봉은 호남의 문인들과 폭넓게 교유하며 산수를 유람하는 시간을 가졌으니 시인으로 크게 명성을 떨칠 수 있었던 것도 역설적으로 향리에서 한가롭게 머물던 시절이 그만큼 길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봉은 1581년(선조 14) 영암군수로 다시 기용됐다. 곧바로 종계변무주청사 김계휘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서장관(書狀官)이란 외교 문서의 기록을 담당하는 직책이다. 당대 명나라 문신 장응회(莊應會)는 고경명의 시를 두고 ‘시 가운데 그림이 있고 그림 가운데 시가 있는 것 같아서 원진(元)·백거이(白居易)·위응물(韋應物)·유우석(劉禹錫)과 비교해 명나라와 조선의 표준을 세울 수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제봉의 시가 명나라에서도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고경명은 이후 서산군수와 종부시 첨정, 한산군수, 사복시 첨정, 순창군수 등을 역임하고 1591년 동래부사에 임명됐지만 곧 파직돼 고향으로 돌아갔다. 후임 동래부사 송상현은 이듬해 부산포에 상륙한 왜군에 맞서 영웅적으로 수성전(守城戰)을 벌이다 전사한다. 천문에도 조예가 깊었던 제봉은 임진년 초 “올해는 장성(將星)이 분명히 보이지 않으니 장수(將帥)가 이롭지 못하겠다”며 국가의 환란을 예고했다. 장성은 북두칠성의 두 번째 별 천선(天璇)을 가리킨다. 고경명이 추성관 추대 직후 지은 격문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나는 경전의 장구(章句)나 따지는 우활한 선비로 병법에 어두우나 장수를 뽑는 이 자리를 위촉받아 망령되이 대장에 추대되었으니, 이미 흐트러진 사병들 마음을 수습하지 못해 동지들의 수치가 될까 두려워한다. 다만 신하의 의리로 마땅히 국난에 죽어야 하는 것이고, 군대는 의리상 곧은 것을 세다고 여기니 그 수효의 많고 적은 것에 달려 있지 않다.…무릇 우리 도내 사람들은 아비가 아들에게 일러 주고 형이 아우에게 권면하여 의로운 군대를 규합해서 함께 일어나, 용맹스럽게 결단을 내려 선(善)에 따를 것을 바라나니 미혹되어 자신을 그르치지 말게 하라.’신경(1613~1653)의 ‘재조번방지’(再造藩邦志)에는 ‘격문이 이르는 곳마다 사대부들이 감격해 울면서 분연히 궐기했다. 고경명이 개연히 의병장에 올라 늙고 병든 것을 사양치 않으니, 응모하는 자가 날로 모여들었다’고 했다. 고경명은 전라도 의병군의 결성 보고와 함께 왜적을 격퇴하겠다는 출사표를 서해 뱃길로 조정에 전달토록 한다. 의병군은 6월 22일 전주에서 여산으로 진을 옮긴 데 이어 27일 은진으로 북상해 왜적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는데 황간·영동의 왜적이 금산을 점령한 데 이어 장차 곡창 호남의 심장부인 전주를 침범할 계획이라는 정보를 입수한다. 휘하 장수들이 먼저 도내의 적을 토벌한 뒤에 북쪽을 정벌하자고 다투어 청하자 제봉은 당초 계획을 바꾸어 7월 1일 연산으로 군사를 돌린다. 의병은 9일 진산을 거쳐 금산성의 초입에서 전라도방어사 곽영의 관군과 좌·우익으로 진을 편성했다. 당시 금산의 왜군은 전주를 공격하려다 이치에서 황진 장군의 조선군에 크게 패하자 물러나 금산성에 웅크리고 있었다. 선조수정실록은 금산 전투의 전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그때 왜적은 금산으로 퇴각하여 진을 두터이 치고 있었다. 경명이 방어사 곽영과 재를 넘어 험한 곳으로 들어가 곧장 금산성 밖에 육박하였는데 곽영이 먼저 날랜 장사 수백 명을 보내어 적을 시험하다가 물러나자 경명이 북을 울리며 전투를 독려하여 도로 적병을 성 밖에서 위축시키고 화포를 쏘아 적이 주둔하던 관사를 불태우니 적이 감히 나오지 못했다.’ 이튿날 동틀 무렵 고경명은 다시 곽영과 군사를 진격시켜 각각 북문과 서문을 공격했다. 왜적이 군사를 총동원해 약해 보이는 관군진영을 공격하니, 관군 선봉장인 영암군수 김성헌이 말을 채찍질해 먼저 도망치자 관군이 크게 패했고 의병도 대오가 무너지며 흩어졌다. 이때 제봉이 말에서 떨어졌는데 말이 달아나 버리자 종사관 안영이 자기 말을 타게 하고는 걸어서 따라갔다. 또 다른 종사관 유팽로는 대장이 나오지 못했다는 소식에 말을 채찍질해 어지러운 군사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수정실록은 이들의 최후를 이렇게 적었다. ‘이에 경명이 팽로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나는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그대는 말을 달려 빠져나가라’ 했다. 팽로가 ‘어떻게 차마 대장을 버리고 살기를 구하겠습니까’ 하고는 안영과 함께 경명을 에워싸고 있다가 모두 전사했다. 경명의 둘째아들 인후도 달려가 싸우다가 전사했다’. 큰아들 고종후는 복수군(復讐軍)을 조직해 제2차 진주성전투에 참전해 순절한다. 고경명의 시신은 40일 만에 찾아 금산 산중에 묻었다가 10월 화순 흑토평에 장사지냈고, 1609년 3월 임금이 내린 사패지(賜牌地)인 장성 오동촌 산 아래로 이장했다.
  • 대(大)시인, 붓대신 칼을 들어 국가를 보전하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대(大)시인, 붓대신 칼을 들어 국가를 보전하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고경명은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의 한사람이다. 그의 시는 ‘바람을 읊고 이슬을 날리며 은하수를 뛰어넘고 안개를 올라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왜란이 일어나고 왜적이 도성을 점령하자 전라도관찰사 이광은 그에게 의병을 모으기 위한 격문(檄文)을 요청했다. 고경명은 그만큼 대(大)문장가인 동시에 호남을 대표하는 지성이었다. 고경명의 간절하면서 감동적인 격문은 이르는 곳마다 뜻있는 사람들의 궐기를 이끌었다. 60세 노(老)시인은 붓을 쥐던 손에 칼을 잡고 의병장이 됐다. ‘임진년 6월 전라도 의병장 고경명은 삼가 각 도 수령과 백성들과 군인들에게 급히 통고한다. 근자에 국운이 불길하여 섬 오랑캐가 불시에 침입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와 약속한 맹세를 저버리더니 나중에는 통째로 집어삼킬 야망을 품었다. 우리 국방이 튼튼치 못한 틈을 타 기어들어 하늘도 무서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북상하고 있다.…경명은 비록 늙은 선비지만 나라에 몸바치려는 일편단심만은 그대로 남아있어 밤중에 닭의 소리를 듣고는 번민을 이기지 못하여 강 한복판 배의 노를 치면서 스스로 의로운 절개를 지키려 한다. 한갓 나라를 위하려는 성의만 품었을 뿐, 자기 힘이 너무나 보잘 것 없음을 모르는 바 아니나 이제 의병을 규합하여 곧장 서울로 진군하려 한다’  마상격문(馬上檄文)의 한 대목이다. 고경명은 1592년 5월 29일 담양 추성관에서 전라도 21개 지역 61명의 사림 대표가 모인 가운데 전라좌도 의병장에 추대된다. 6월 1일 한양을 향해 출발한 6000명의 호남의병은 전주에 이르렀을 무렵 임진강 방어선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상황을 판단하고자 훈련을 하며 잠시 머무른다. 고경명이 다시 북상을 시작하면서 6월 24일 지은 것이 마상격문이다. 글자 그대로 ‘말위에서 지은 격문’이라는 뜻이니 그만큼 급박한 위기상황이었다는 뜻이다. 고경명은 ‘국가존망의 위기에 어찌 감히 하찮은 제 몸만을 아끼려고 하겠느냐’고 마상격문에 적은 그대로 우리가 아는 것처럼 7월 10일 금산 전투에서 왜적을 공격하다 장렬하게 순절한다.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1533~1592)은 전라도 광주 제봉산 아래 압보촌에서 태어났다. 현재는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이다. 이곳에는 고경명과 두 아들 종후와 인후, 종사관 유팽로와 안영을 기리는 포충사(褒忠祠)가 있다. 1601년 세웠고, 1603년 사액됐다. 1865년 대원군의 서원·사우 철폐령에도 장성 필암서원과 함께 살아남았다. 포충사는 지금 로제와인색 배롱나무꽃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포충사가 자리잡은 제봉산은 해발고도 165.5m로 높지 않지만 나지막한 곡선이 아름답다. 짐작처럼 제봉이라는 고경명의 아호는 이 고향마을의 뒷산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런데 고경명의 무덤이 있는 전남 장성 영천리의 오동촌 뒷산 역시 제봉산이다. 장성 제봉산은 고경명의 무덤이 옮겨진 뒤 그를 기려 붙여진 이름이다. 광주 제봉의 정기가 고경명을 낳고 다시 그의 의기가 장성 제봉에 이식된 셈이다.  고경명은 26세이던 1558년 식년문과에서 장원급제했다. 성균관 전적에 이어 홍문관 부교리, 부수찬, 교리에 이르는 5년동안은 평탄하게 승진했다. 하지만 당대 대표적 외척의 한 사람인 이량이 사림의 탄핵으로 실각하는 과정에서 불똥이 튀었다. 이량의 전횡을 논죄하는 데 참여한 제봉은 관련 정보를 당사자에게 유출했다는 이유로 울산군수로 좌천되곤 곧 파직됐다. 이 사건으로 고경명은 무려 20년 가까운 세월을 조정에서 쓰임을 받지 못했다. 대신 낙향한 제봉은 호남의 문인들과 폭넓게 교유하며 산수를 유람하는 시간을 가졌으니 시인으로 크게 명성을 떨칠 수 있었던 것도 역설적으로 향리에서 한가롭게 머물던 시절이 그만큼 길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봉은 1581년(선조 14) 영암군수로 다시 기용됐다. 곧바로 종계변무주청사 김계휘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서장관(書狀官)이란 외교 문서의 기록을 담당하는 직책이다. 당대 명나라 문신 장응회(莊應會)는 고경명의 시를 두고 ‘시 가운데 그림이 있고 그림 가운데 시가 있는 것 같아서 원진(元稹)·백거이(白居易)·위응물(韋應物)·유우석(劉禹錫)과 비교해 명나라와 조선의 표준을 세울 수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제봉의 시가 명나라에서도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고경명은 이후 서산군수와 종부시 첨정, 한산군수, 사복시 첨정, 순창군수 등을 역임하고 1591년 동래부사에 임명됐지만 곧 파직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후임 동래부사 송상현은 이듬해 부산포에 상륙한 왜군에 맞서 영웅적으로 수성전(守城戰)을 벌이다 전사한다. 천문에도 조예가 깊었던 제봉은 임진년 초 “올해는 장성(將星)이 분명히 보이지 않으니 장수(將帥)가 이롭지 못하겠다”며 국가의 환란을 예고했다고 한다. 장성은 북두칠성의 두번째 별 천선(天璇)을 가리킨다.고경명이 추성관 추대 직후 지은 격문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나는 경전의 장구(章句)나 따지는 우활한 선비로 병법에 어두우나 장수를 뽑는 이 자리를 위촉받아 망령되이 대장에 추대되었으니, 이미 흐트러진 사병들 마음을 수습하지 못해 동지들의 수치가 될까 두려워한다. 다만 신하의 의리로 마땅히 국난에 죽어야 하는 것이고, 군대는 의리상 곧은 것을 세다고 여기니 그 수효의 많고 적은 것에 달려 있지 않다.…무릇 우리 도내 사람들은 아비가 아들에게 일러 주고 형이 아우에게 권면하여 의로운 군대를 규합해서 함께 일어나, 용맹스럽게 결단을 내려 선(善)에 따를 것을 바라나니 미혹되어 자신을 그르치지 말게 하라’  신경(1613~1653)의 ‘재조번방지’(再造藩邦志)에는 ‘격문이 이르는 곳마다 사대부들이 감격해 울면서 분연히 궐기했다. 고경명이 개연히 의병장에 올라 늙고 병든 것을 사양치 않으니, 응모하는 자가 날로 모여들었다’고 했다. 고경명은 전라도 의병군의 결성 보고와 함께 왜적을 격퇴하겠다는 출사표를 서해 뱃길로 조정에 전달토록 한다. 의병군은 6월 22일 전주에서 여산으로 진을 옮긴 데 이어 27일 은진으로 북상해 왜적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는데 황간·영동의 왜적이 금산을 점령한 데 이어 장차 곡창 호남의 심장부인 전주를 침범할 계획이라는 정보를 입수한다. 휘하 장수들이 먼저 도내의 적을 토벌한 뒤에 북쪽을 정벌하자고 다투어 청하자 제봉은 당초 계획을 바꾸어 7월 1일 연산으로 군사를 돌린다. 의병은 9일 진산을 거쳐 금산성의 초입에서 전라도방어사 곽영의 관군과 좌·우익으로 진을 편성했다. 당시 금산의 왜군은 전주를 공격하려다 이치에서 황진 장군의 조선군에 크게 패하자 다시 물러나 금산성에 웅크리고 있었다.  선조수정실록은 금산 전투의 전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그때 왜적은 금산으로 퇴각하여 진을 두터이 치고 있었다. 경명이 방어사 곽영과 재를 넘어 험한 곳으로 들어가 곧장 금산성 밖에 육박하였는데 곽영이 먼저 날랜 장사 수백 명을 보내어 적을 시험하다가 물러나자 경명이 북을 울리며 전투를 독려하여 도로 적병을 성 밖에서 위축시키고 화포를 쏘아 적이 주둔하던 관사를 불태우니 적이 감히 나오지 못했다’ 이튿날 동틀 무렵 고경명은 다시 곽영과 군사를 진격시켜 각각 북문과 서문을 공격했다. 왜적이 군사를 총동원해 약해 보이는 관군진영을 공격하니, 관군 선봉장인 영암군수 김성헌이 말을 채찍질해 먼저 도망치자 관군이 크게 패했고 의병도 대오가 무너지며 흩어졌다. 이때 제봉이 말에서 떨어졌는데 말이 달아나 버리자 종사관 안영이 자기 말을 타게 하고는 걸어서 따라갔다. 또다른 종사관 유팽로는 대장이 나오지 못했다는 소식에 말을 채찍질해 어지러운 군사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수정실록은 이들의 최후를 이렇게 적었다. ‘이에 경명이 팽로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나는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그대는 말을 달려 빠져나가라’ 했다. 팽로가 ‘어떻게 차마 대장을 버리고 살기를 구하겠습니까’ 하고는 안영과 함께 경명을 에워싸고 있다가 모두 전사했다. 경명의 둘째아들 인후도 달려가 싸우다가 전사했다’. 큰아들 고종후는 복수군(復讐軍)을 조직해 제2차 진주성전투에 참전해 순절한다. 고경명의 시신은 40일만에 찾아 금산 산중에 묻었다가 10월 화순 흑토평에 장사지냈고, 1609년 3월 임금이 내린 사패지(賜牌地)인 장성 오동촌 산 아래로 이장했다.
  • [포토] 윤석열 대통령이 마련한 추석 선물세트

    [포토] 윤석열 대통령이 마련한 추석 선물세트

    대통령실은 1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첫 추석을 맞아 국가와 사회발전을 위해 헌신한 각계 원로, 호국영웅과 유가족 및 사회적 배려계층 등 각계 인사 13,000여 명에게 각 지역의 특산물이 담긴 추석 선물과 메시지가 담긴 카드를 전달한다고 밝혔다. 특히 올해는 누리호 발사에 기여한 우주 산업 관계자들에게도 선물을 전달한다. 추석 선물은 우리 농산물의 소비를 촉진하고 각 지역의 화합을 바라는 의미에서 매실·오미자청(전남 순천, 전북 장수)을 포함해 홍삼양갱(경기 파주), 볶음 서리태(강원 원주), 맛밤(충남 공주), 대추칩(경북 경산) 등으로 구성됐다. 
  • 과거 ‘우결’ 배우 커플, 10년 만에 재회했다

    과거 ‘우결’ 배우 커플, 10년 만에 재회했다

    과거 우결 커플이 10년 만에 재회한다. 29일 방송되는 tvN STORY ‘운탄고도 마을 호텔’에 함은정이 2대 일꾼이자 스페셜 게스트로 출연해 이장우와 만난다. ‘운탄고도 마을 호텔’은 폐광지인 산등성이와 고원을 잇는 강원도 운탄고도에서 엄홍길, 정보석, 이장우가 마을 호텔을 운영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리얼 관찰 예능이다. 이장우는 2012년 함은정과 함께 MBC 예능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에 출연했다. 500일 장수 커플이었던 두 사람은 ‘운탄고도 마을 호텔’에서 10년 만에 재회한다. 최근 진행된 녹화에서 두 사람은 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변함없는 케미를 자랑했다. 이를 지켜보던 정보석은 “두 사람은 결혼해야 했다”고 말했다.
  • 전북 8개 시·군 여행 한꺼번에 즐기세요

    전북 8개 시·군 여행 한꺼번에 즐기세요

    전북 전주시 등 8개 시·군 관광명소를 둘러보고 체험할 수 있는 여행상품을 선보인다. 전주시는 군산시·익산시·완주군·진안군·무주군·장수군·순창군과 공동으로 시·군 연계 여행상품 ‘2022 mymy travel’을 출시한다고 29일 밝혔다. ‘mymy travel’은 관광거점도시 전주의 시·군 연계 여행상품 브랜드다. 전주와 주변 시·군을 연계하고 지역 축제, 문화, 음식, 카페와 같은 콘텐츠를 발굴해 관광객들에게 제공한다. 전주시는 지난해 익산시, 정읍시, 완주군, 진안군, 부안군과 연계한 관광 상품을 선보여 높은 호응을 얻었다.개별여행을 즐기는 MZ세대가 선호하는 뷰 맛집, 로컬 맛집을 결합한 여행상품도 선보인다. 시는 시·군별로 현지인들만 알고 있는 맛집과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할 수 있는 감성카페들을 관광 상품화해 관광객 몰이에 나설 예정이다. 단체 여행의 경우 무주 반딧불 축제와 익산 미륵사지 미디어 페스타 등 관광객의 흥미를 끌어낼 수 있는 지역 축제를 힐링·체험 프로그램과 결합했다. 관광객이 전주 여행에 그치지 않고 주변 시·군에서 하루 더 머물 수 있도록 유도하는 데 중점을 뒀다. 또 이번에 출시하는 단체 및 개별 여행상품을 관광객들이 전주한옥마을에서 서비스와 품질을 인증 받은 전통한옥에 머물며 전주만의 멋스러움을 한껏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다. 국내 대형 소셜커머스인 티몬과 함께하는 마케팅 프로그램도 제공된다. 영상으로 소통하는 최근의 트렌드에 맞춰 맛집과 카페를 융·복합한 상품은 지역 영상 제작 전문가를 통해 지역색을 한껏 살린 영상을 통해 상품을 소개하고, ‘TVON’을 통해 라이브 방송도 할 예정이다. 전주시 관계자는 “앞으로도 지역 및 수도권 소재 전문여행사, 세대별·연령대별 선호하는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와의 협력을 통해 혁신적이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수반된 지역연계 관광상품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 ‘8월의 가을’ 곳곳서 역대 8월 최저기온

    때 이른 쌀쌀함이 찾아온 28일 한낮에도 30도를 넘지 않는 초가을 날씨가 이어졌다. 아침 기온이 뚝 떨어져 8월 기온으로 역대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한 곳도 있었다. 기상청은 이날 전북 군산시가 14.4도로 1972년 이후 50년 만에 8월 최저 기온을 경신했고, 전북 장수군 10.6도, 전남 순천시 13.2도, 경북 상주시 13.5도 등 일부 지역에서 8월 하루 최저기온의 가장 낮은 값(극값)을 갈아 치웠다고 밝혔다. 서울은 16.1도로 최저 기록을 경신하진 않았지만 평년 기온(21.1도)보다 5.0도 낮았다. 일부 경기 내륙과 강원 내륙·산지, 충북 북부, 전북 동부, 경북 북부 등은 아침 기온이 10도 이하로 떨어졌다. 북서쪽에서 차고 건조한 공기가 내려오는 가운데 고기압의 영향으로 밤사이 맑은 날씨가 계속되면서 열이 빠져나가 기온이 낮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기상청 관계자는 “밤사이 구름이 덮고 있었다면 기온이 덜 내려갔을 텐데 구름이 하나도 없어 에너지가 다 빠져나갔다”고 말했다. 29일에는 전국이 흐리고 아침부터 낮까지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비가 내리겠다. 30~31일까지 전국에 비가 내린 뒤 따뜻한 남쪽 공기가 유입되면 기온이 다소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 전국 곳곳 아침기온 ‘역대 8월 최저’ 기록…쌀쌀한 가을 성큼

    전국 곳곳 아침기온 ‘역대 8월 최저’ 기록…쌀쌀한 가을 성큼

    “차고 건조한 공기에 구름 없어 찬 공기”폭염과 폭우가 집중된 8월 마지막 일요일인 28일 한낮에도 30도를 넘지 않는 초가을 날씨가 이어졌다. 아침 기온이 뚝 떨어져 8월 기온으로는 역대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한 곳도 있었다. 기상청은 이날 전북 장수 10.6도, 전남 순천 13.2도, 경북 상주 13.5도, 충남 홍성 13.9도, 전북 군산 14.4도 등 일부 지역에서 8월 하루 최저기온의 가장 낮은 값(극값)을 갈아 치웠다고 밝혔다. 서울은 16.1도로 최저 기록을 경신하진 않았지만 평년 기온(21.1도)보다 5.0도 낮았다. 일부 경기 내륙과 강원 내륙·산지, 충북 북부, 전북 동부, 경북 북부 등은 아침 기온이 10도 이하로 떨어졌다. 북서쪽에서 차고 건조한 공기가 내려오는 가운데 고기압의 영향으로 밤사이 맑은 날씨가 계속되면서 열이 빠져나가 기온이 낮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기상청 관계자는 “밤사이 구름이 덮고 있었다면 기온이 덜 내려갔을 텐데 구름이 하나도 없어 에너지가 다 빠져나갔다”고 말했다. 29일에는 전국이 흐리고 아침부터 낮까지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비가 내리겠다. 30~31일까지 전국에 비가 내린 뒤 따뜻한 남쪽 공기가 유입되면 기온이 다소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 유럽 최대규모 자포리자 원전 단전… ‘방사능 누출’ 아슬아슬

    유럽 최대규모 자포리자 원전 단전… ‘방사능 누출’ 아슬아슬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자력발전소가 근처 포격에 따른 화재 때문에 일시적으로 우크라이나 전력망에서 완전히 차단됐다. 원자로 냉각에 쓰이던 전력이 끊기면 방사능 누출 등 ‘최악의 원전’사고 가능성이 높아진다. 유럽 최대 규모의 원전에서 발생한 이 같은 사상 초유의 사태를 두고 미국은 “러시아가 원전의 전력을 다른 곳으로 빼돌리려는 시도”라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방사능 재난 앞으로 유럽과 우크라를 몰아붙이고 있다”고 강력 반발했다. AP, AFP통신, BBC방송 등에 따르면 25일(현지시간) 자포리자 원자력발전소 인근 야산에서 발생한 화재 영향으로 발전소와 외부를 연결하던 마지막 송전선이 훼손됐다. 자포리자에는 송전선이 총 4개였으나 3개는 이번 전쟁으로 훼손돼 이미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자포리자에서 가동 중이던 2개 원자로와 우크라이나 전력망 연결이 차단됐다. 자포리자 지역 전력 공급도 그 즉시 중단됐다. 송전선 훼손으로 사상 첫 자포리자 원전 멈춰 방사성 누출 위기 우크라이나는 이번 사태 때문에 자포리자 원전의 가동이 중단돼 방사성 물질이 누출될 위기를 겨우 넘겼다고 주장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심야 연설에서 “러시아군의 공격에 마지막 송전선이 훼손돼 사상 처음으로 자포리자 원전이 멈춰섰다”며 “디젤 발전기가 즉각 가동해 발전소 자체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했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전 세계가 알아야 한다”며 “디젤 발전기가 가동하지 않았다면, 발전소 직원들이 전력 차단에 즉각 대응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이미 방사능 사고를 감당하고 있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AP통신은 원자로 냉각을 위한 전력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최악의 원전사고 원인이 되는 ‘원자로 노심용융’(멜트다운)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전 단지에서 사용후 핵연료봉을 냉각하는 저장수조 역시 포격에 매우 취약하다고 강조했다. 사용후 핵연료봉은 일정 기간 강한 방사능이 발생해 저장시설 밖으로 유출되는 경우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러-우크라 “우리 탓 아냐”...모두 국제원자력기구 사찰 촉구 원전에 전력망이 단절되도록 한 이번 화재를 두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서로 상대 소행을 주장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자포리자가 극도로 위험한 상황”이라며 “러시아가 (자포리자에) 오자마자 우크라이나, 유럽, 전 세계가 상상도 못 할 원자력 재난 우려에 몰렸다”고 말했다. 반면,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군이 자포리자 원전에 포격을 가해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관영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우크라이나 부대가 송전선을 훼손한 뒤 전력을 끊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가운데 양측 모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시찰을 촉구하고 있다. 자포리자 원전에 닥친 단전사태는 러시아가 원전의 전력을 크림반도 등 러시아 점령지로 가져가기 위해 전력망을 교체하려고 한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발생했다. 베던트 파텔 미 국무부 수석부대변인은 25일 기자회견에서 “(자포리자 원전이) 생산하는 전기는 우크라이나의 것이며, 발전소를 우크라이나 전력망에서 분리해 점령 지역으로 돌리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전력망 교체 또한 대규모 재난을 부를 수 있는 위험한 작업으로 평가된다. 우크라이나 국영 원전 운영사인 에네르고아톰의 페트로 코틴 대표는 “전력망 교체 작업 중 90분간 전력이 공급되지 않으면 원자로는 위험한 온도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