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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로병사의 비밀’ 20주년 기획…한국 의료 혁신가들 집중 조명

    ‘생로병사의 비밀’ 20주년 기획…한국 의료 혁신가들 집중 조명

    ●생로병사의 비밀(KBS 1TV 밤 10시) 2002년 첫 방송 이후 20년 동안 건강하게 장수하는 방법과 최신 의학 정보를 다루며 우리나라 의료의 발전과 혁신을 영상으로 기록해 온 ‘생로병사의 비밀’이 20주년을 맞아 특별 기획된 ‘한국 의료의 혁신가들’ 2부작을 통해 우리나라 의료의 혁신가들을 집중 조명했다. 1편 ‘암과 맞서다’에서는 암 치료 패러다임을 바꿔 온 5명의 외과 의사들을 만난다. 노도영 전 서울대병원 암병원장, 이승규 서울아산병원 간이식 및 간담도외과 석좌교수, 심영목 전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장, 김남규 아시아태평양대장암학회 초대 회장, 노성훈(사진) 전 세브란스병원 연세암병원장으로부터 우리나라 암 치료의 혁신이 어떻게 이뤄져 왔고, 향후 과제는 무엇인지 알아본다.
  • 직접 잠수해 ‘바닷속 문화재’ 찾아내…수중발굴 경험 연구인력 전국 9명뿐

    직접 잠수해 ‘바닷속 문화재’ 찾아내…수중발굴 경험 연구인력 전국 9명뿐

    낚시꾼들이 팽팽하게 걸린 손맛에서 희열을 느끼듯 양순석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뿌연 물속에서 손끝에 전해지는 유물을 찾는 손맛을 찾아 바다를 뒤진다. 그렇게 바닷속에서 잠자고 있던 조선 중기 개인용 화기였던 소소승자총통(小小勝字銃筒)과 고려청자를 비롯한 유물 수만 점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3일 인사혁신처 도움을 받아 20년째 수중문화재 발굴 한 길을 걷는 공무원을 만났다.-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국내에서 유일한 수중문화재 발굴 기관이다. 전남 목포시는 사실 연구소를 두기에 최적지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부산, 전남 여수에서 개경이나 한양으로 갈 때는 모두 목포 앞바다를 지났다. 중국을 오가는 무역선도 목포 주변을 많이 지났다. 1975년 전남 신안군에서 이른바 ‘신안선’을 발견한 게 우리나라 수중발굴의 첫 사례였다. 당시는 문화재관리국 시절이라 문화재는 모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고 선체와 목재 보존을 위해 만든 목포보존처리장이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뿌리가 됐다. 신안선 보존 처리가 1990년대 완료되면서 해양유물전시관으로 정식으로 새 출발한 게 1994년이었다. 전시관 소속 학예연구실로 있다가 기관 및 연구 기능을 확대하면서 2009년에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수중발굴과도 그때 생겼다.” -수중문화재발굴은 언제부터 하고 있나. “목포대 환경공학과에서 보존과학을 전공했다. 석사를 마치고 우연한 계기로 1994년 국립해양유물전시관 학예연구실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그 뒤에 잠수도 배우고 물리탐사장비를 맡았다. 수중발굴에 참여한 건 2002년부터였다. 고고학이나 역사학 관련 공부는 일하면서 독학으로 했다고 할 수 있다. 발굴부터 보고서 작성까지 모든 단계가 우리 업무에 속한다.”-바닷속에서 유물을 찾아내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수중문화재 발굴은 장비부터 시작해 성격 자체가 육상과는 완전히 다르다. 수중에선 해양물리탐사장비를 사용해 해저지형을 본다거나 해저지층을 단면으로 자르면서 탐사를 한다. 그다음에 수중문화재를 육안으로 확인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장비가 있더라도 문화재인지 아닌지 확인하려면 잠수해서 육안으로 확인해야 한다. 연구소 직원들은 모두 잠수사 자격증이 있다.” -유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기분이 남다를 것 같다. “2007~2008년 충남 태안에서 도자기 운반선 발굴할 때는 주꾸미가 건져 올린 도자기가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5월에 갔는데 도자기가 많이 흩어져 있었다. 긴급발굴해야 한다고 보고를 했다. 바로 발굴허가를 받아 한 달가량 발굴을 했다. 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이었다. 고려청자 2만 5000점에 묻혀 있던 선박까지 발굴했다. 제주 신창리 앞바다에선 13세기 남송 도자기 운반선 유물을 조사했는데 도자기 2000여점을 찾아냈다. 특히 납으로 봉한 함 안에 들어 있는 나무 인장, 그리고 인장에 묻은 인주까지 확인할 수 있었던 건 특히 보람 있었다.” -언젠가 거북선 유물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진도 울돌목에서 남쪽으로 4~5㎞ 떨어진 곳에 있는 벽파진에서 발굴작업을 하고 있는데 현재 목표에 비해 20%도 채 하지 못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유물이 골고루 나오고 있다. 아직까진 판옥선이나 거북선 유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찾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유물은 어떤 것인가. “지금도 2012년에 소소승자총통 3점을 최초로 발견했을 때 느꼈던 희열을 잊을 수 없다. 바닷속에선 앞이 거의 안 보이는데 제토를 하다가 손에 막대 같은 게 잡혔다. 쇠 종류인 것 같다는 느낌만 있었다. 물 위로 갖고 올라와서 보니 총통 종류였다. 총통에는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4년 전인 1588년에 전라좌수영에서 제작했다는 명문도 나왔다.” -출장이 엄청나게 많을 것 같다. “발굴뿐 아니라 신고가 들어오는 현장을 조사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1년에 200일 넘게 출장을 한 적도 있다. 과거엔 출장비는 적고 일은 해야 하니까 아예 현지파견근무 형식으로 근무하곤 했다. 출장수요에 출장예산을 맞추는 게 아니라 출장비 예산에 출장수요를 맞추는 식이었다. 지금은 출장비 예산이 늘어서 다행이다. 나는 행정업무도 해야 하니까 출장은 줄었지만 그래도 1년에 두세 달은 출장이라고 보면 된다. 다른 직원들은 지난해에도 발굴현장에서 150일가량 출장을 했다.” -앞으로 과제가 있다면. “태안 해역과 울돌목 등은 발굴해야 할 수중문화재가 얼마나 많이 갯벌에 묻혀 있을지 짐작조차 안 된다. 현재까지 발굴한 난파선이 14척인데 거북선이나 판옥선이 나올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할 일이 엄청나게 많은데 일할 사람이 부족한 게 아쉽다. 연구인력 충원과 교육프로그램 확보가 특히 시급하다. 우리나라에 수중발굴 경험과 능력 있는 연구인력이 나를 포함해서 연구사 6명, 전문임기직 3명으로 전국에 9명밖에 없다. 그나마 수중문화재 발굴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가르칠 교육 프로그램이 전무하다 보니 직원들이 새로 들어오면 선배들이 하나씩 알려 주는 식이다. 10명도 안 되는 인력으로 1년에 9건가량 신고 들어오는 걸 조사하고 정기적인 발굴도 하고 있다.”-그런 와중에 연구보고서에 논문까지 쓰려면 부담이 클 듯한데. “책임운영기관이다 보니 학예연구관들은 의무적으로 2년에 한 편은 논문을 써야 한다. 현장에서 작업하다 보면 연구논문 쓸 시간이 부족하다. 잠수 자체도 힘든데 유물 발굴해서 분류하고 정리하는 것까지 하면 자정을 넘기기 일쑤다. 유물 발굴과 정리, 보고서 작성으로 1년이 다 간다. 민간 잠수사 하루 인건비가 최소 30만원은 되는데 우리는 위험수당으로 한 달에 5만원 받는 게 고작이다. 우스갯소리로 공무원 퇴직하고 민간잠수사로 아르바이트하는 게 급여가 몇 배는 더 될 것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보람과 자부심으로 일하긴 하지만 솔직히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 
  • [대만은 지금] 92세 한국 김밥 할머니 6억 기부 소식에 대만인 감동

    [대만은 지금] 92세 한국 김밥 할머니 6억 기부 소식에 대만인 감동

    평생 김밥을 팔아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한 박춘자 할머니의 사연이 3일 대만 주요 언론들을 통해 보도돼 대만인들을 감동시켰다. 대만 언론들은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가 페이스북을 통해 밝힌 할머니의 일화를 보도했다. 대만 자유시보는 92세 박춘자 할머니가 남한산성 길목에서 김밥을 팔아 힘들게 모은 전 재산 6억5000만원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에 기부했다고 YTN을 인용해 전했다. 신문은 할머니가 어렵사리 모은 돈에 연연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만 중국시보는 조선일보를 인용해, 이티투데이는 국민일보를 인용해, 지난달 3일 청와대에 함께 남궁인 교수가 페이스북을 통해 전한 박춘자 할머니의 이야기를 상세히 전했다. 박춘자 할머니는 청와대에서 “나는 가난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어머니가 없었다. 아버지와 함께 힘든 삶을 살았다. 10살 때부터 경성(서울)역에서 순사(경찰)의 눈을 피해 김밥을 팔았다. 그렇게 밥을 사 먹을 수 있는 돈이 생겼을 때 너무 행복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신문은 이어 “박춘자 할머니는 그 감정이 너무 좋아서 다른 이들도 이 감정을 느꼈으면 해서 돈 없는 사람들에게 돈을 기부하면 이 행복을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남과 나누는 것보다 즐거운 일은 없다면서 나이 90 넘게 나눔을 했지만 청와대에 발을 들일 기회가 있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고령이 된 박 할머니는 셋방 보증금 2000만원 마저 기부한 후 기부한 복지 시설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도 보도했다. 신문은 박춘자 할머니가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를 만나 손을 꼭 잡았을 때, “어릴 적 부친이 이렇게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었다”고 말해 할머니와 김 여사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이 소식을 접한 대만인들은 “감동적이다”, “위인이다”, “위대하다”, “감사하다. 곁에 사랑이 가득하길 기원한다”, “한국판 천수쥐 할머니”, “인간보살”, “나누길 원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 “기사 읽다 너무 감동적이어서 울었다”, “위대한 할머니, 한 평생 고생이 많으셨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된 것이다”, “인간보살님, 건강과 장수를 진심으로 기원한다”는 등의 댓글이 쏟아졌다. 한 대만인은 “이것은 세상에 와서 온갖 일을 겪은 모든 사람에게 가장 어렵고도 값진 선택이다. 분쟁이 끊이지 않는 사회에서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며, 이로 인해 세속적인 분쟁에서 갑자기 자유로워지는 사람도 거의 없다”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제한된 삶에서 선택하고 실천하는 것이야 말로 스스로 확신하고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자 헌신한 사람이 전하는 가장 순수한 믿음”이라고 적었다.아울러, 대만 민스와 이티투데이는 기사 제목에 박춘자 할머니를 ‘한국판 천수쥐’(陳樹菊)라고 표현했다. 천수쥐(71) 할머니는 대만에서 기부 천사의 대명사로 꼽힌다.  천 할머니는 대만 동부 타이둥현에서 야채를 팔아 번 돈을 사회에 주저 없이 기부를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생 야채를 팔아 1000만 대만달러(약 4억 2천만 원) 이상을 기부했다.  2010년 포브스는 그를 아시아 자선 영웅으로 선정했고, 같은 해 타임지도 영향력있는 100대 인물에 그를 올렸다.  천 할머니의 어머니는 그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여동생을 낳은 뒤 세상을 떠났다. 그는 13세에 학교를 그만 두고 가족 부양을 위해 타이둥시 중앙시장에서 야채를 팔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2018년 6월 건강 악화로 수술을 받은 뒤 야채가게를 처분했다. 야채 가게를 처분한 뒤에도 그는 지난해 8월 50년 이상 가입한 저축보험금 1500만 대만달러(약 6억 3000만 원)를 현정부에 기부했다.
  • 김형실-김호철, 동병상련일까 동상이몽일까

    김형실-김호철, 동병상련일까 동상이몽일까

    프로배구 V-리그 원년 사령탑이었던 김형실(70), 김호철(67) 감독은 서울 대신중·고등학교~한양대 선후배 사이다. 김호철 감독이 ‘형님’으로 깍듯이 모시는 이유다.김형실 감독은 2021~22시즌을 앞두고 창단된 여자부 ‘제7구단’ 페퍼저축은행의 지휘봉을 잡았다. 김호철 감독은 ‘조송화 사태’로 엉망이 된 IBK기업은행의 러브콜을 받고 지난해 12월 중순 생애 첫 여자배구팀 감독이 됐다. 둘은 네트를 사이에 두고 마주설 일이 없었다. 김형실 감독은 1986년 태광산업에서 지도자로 첫 발을 내딛은 뒤 여자배구 조련에만 매달렸고, 반면 김호철 감독은 1995년 이탈리아리그 파르마를 시작으로 국내 남자배구 팀에서만 15년을 몸담았기 때문이다. KGC인삼공사의 전신인 한국담배인삼공사를 1992년부터 맡아 2006년까지 한 팀에서 무려 14년간 장수한 김형실 감독은 V-리그 원년인 2005년 팀을 초대 챔피언에 올려놓았고, 김호철 감독은 역시 V-리그 원년부터 도합 12년 동안 현대캐피탈을 지휘하면서 두 차례의 챔피언결정전과 세 번의 정규리그, 두 번의 컵대회 우승길을 팀과 함께 했다. 그러나 두 감독은 지금 목이 타들어간다. 페퍼저축은행은 새해 첫날 대전 경기에서 14연패에 빠졌다. 지난해 11월 9일 창단 첫 승을 일군 뒤로 승리는 감감무소식이다. 시즌 시작 전 “첫 시즌 5경기는 건질 것”이라던 김형실 감독의 장담이 무색하다. 김호철 감독도 지난해 12월 18일 ‘여자부’ 데뷔전 포함 네 경기를 모두 내주고 승점만 달랑 하나(2-3패) 건졌다.같은 처지지만 승수를 위한 셈법은 다르다. IBK기업은행은 6일부터 오는 15일까지 GS칼텍스와 현대건설, 흥국생명 등 하나같이 쉽지 않은 일정을 소화한 뒤 18일 페퍼저축은행과 만난다. 김호철 감독으로선 자타가 인정하는 ‘최약체’를 상대로 한 여자부 첫 승의 ‘마지노선’이다. 김형실 감독도 내심 6연패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는 IBK기업은행을 두 번째 승전고의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공교롭게도 페퍼저축은행은 IBK기업은행의 안방인 경기 화성에서 첫 승을 일궈냈다. 이번엔 자신들의 안방인 전남 광주다.
  • 정기룡 장군 일대기 정리한 책 ‘新매헌실기’ 출간

    정기룡 장군 일대기 정리한 책 ‘新매헌실기’ 출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뛰어난 장수로 이름을 떨친 경남 하동 출신 충의공(忠毅公) 정기룡(鄭起龍·1562∼1622) 장군의 일대기를 기록한 책 ‘新매헌실기’가 출간됐다. 매헌(梅軒)은 정기룡 장군의 호다.하동군과 (사)충의공정기룡장군기념사업회는 하동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인 하동군 공무원 김회룡(52)씨가 3여년 집필 작업 끝에 ‘新매헌실기’를 집대성했다고 4일 밝혔다. ‘新매헌실기’는 조선시대 개별 의병장들의 문집과 역사서를 비롯한 다양한 자료에서 정기룡 장군의 생애와 주요 활동상황을 찾아내 연령별·연대별로 정리했다. 가계도, 임진왜란·정유재란 이전과 이후, 광해군시대, 1622년 사후 기록 등으로 구성돼 있고 모두 490여쪽 분량이다. 책 편저자인 김씨는 “정기룡 장군에 관한 일대기를 사실적으로 기록한 책이 한 권도 없는 점이 늘 아쉬워 직접 역사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했다”며 “장군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고자 하는 모든 분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충의공정기룡장군기념사업회는 “‘매헌실기(梅軒實記)’와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충의공의 전적을 찾고 연구하고 있으나 사료가 부족해 안타까웠는데 김씨가 각종 조선의 전적에서 장군의 기록을 찾아내 방대한 역작을 엮었다”면서 “이 책을 2022년 장군의 순국 400주년에 봉헌하고자 한다”고 책 출간 취지를 밝혔다. 2019년 출범한 충의공정기룡장군기념사업회는 하동군과 함께 탄신제 등 다양한 정기룡 장군 기념사업 및 선양사업을 한다. 책을 집필한 김씨는 지역 향토문화연구에도 매진해 그동안 ‘하동의 토속어’ 등 3권의 책을 펴냈다. 2020년 하동문화원 향토문화상을 수상했다.
  • 119년을 산다는 건 어떤 기분?…세계 최고령 日 할머니, 생일 맞아

    119년을 산다는 건 어떤 기분?…세계 최고령 日 할머니, 생일 맞아

    러일전쟁이 시작되기 1년 전에 태어난 일본의 세계최고령자가 지난 2일 119세 생일을 맞이했다. 교도통신 등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다나카 가네(119)는 1903년 1월 2일 후쿠오카현에서 태어나 일본의 메이지, 다이쇼, 쇼와, 헤이세이, 레이와 시대를 직접 겪은 세계최고령자다. 영국 출신의 유명 소설과 조지 오엘과 같은 해에 태어난 셈이다. 9남매 중 일곱째인 다나카 할머니는 19세에 결혼해 평생 가정을 돌보는데 최선을 다했다. 1937년 남편과 큰아들이 청일전쟁이 참전했을 당시에는 국숫집을 차려 가족을 부양하기도 했다.그녀는 90세가 되던 해에는 백내장 수술을, 103세 때에는 대장암 수술을 받는 등 ‘세계최고령자’ 타이틀을 달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꾸준한 건강관리로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일본의 격정적 시기들을 직접 보고 몸소 체험한 다나카 할머니에게는 5명의 손자와 8명의 증손자가 있다. 손자 중 한 명인 에이지(62)는 “할머니가 고령이 되어서도 매일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시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전했다. 할머니의 가족은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연세 탓에 직접 대화는 어렵지만) 요양원 직원들과 주로 몸짓으로 소통하신다. 숫자 퍼즐을 즐기시며, 초콜릿과 탄산음료를 좋아하신다”고 전했다. 다나카 할머니는 2019년 3월 당시 116세 세계 최고령 생존자로 기네스북 세계기록에 등재됐다. 태어난 지 117년 261일이 지난 2020년에는 일본 역사상 최고령자로 기록됐다.한편, 지난해 기준 비공식 세계최고령자는 중국의 알리미한 세이티 할머니였다. 신장위구르자치구 위구르족인 세이티 할머니는 1886년 6월 25일에 출생해 2013년 중국 정부가 공인한 중국 최고령자가 됐다. 비록 공인받지는 않았지만 세계에서도 최고령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세이티 할머니는 지난해 12월 16일, 13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또 다른 비공식 최고령자는 터키에 거주하는 쉐케르 아슬란 할머니로, 일본의 다나카 할머니보다 1세 더 많은 1902년 6월 27일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직 기네스 인증 절차가 진행 중인 만큼, 현존하는 공식 세계최고령자는 일본의 다나카 할머니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세계 최장수인은 1875년 2월 21일 태어나 1997년 8월 4일 122세로 사망한 프랑스 진 칼멘트 할머니다.
  • “목숨 다할 때까지 싸운 조선군”…선교사가 본 정발은 용맹했다

    “목숨 다할 때까지 싸운 조선군”…선교사가 본 정발은 용맹했다

    임진왜란이라는 미증유의 국난을 극복하는 데 있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존재는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결정적이다. 하지만 이 엄청난 국가적 변란에서 벗어나기까지는 전국 곳곳에서 목숨을 바쳐 싸운 수많은 사람들의 역할이 있었다. 갈수록 잊혀져 가는 임진왜란의 또 다른 주인공들을 기억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순신과 권율, 그리고 언제나 논란의 복판에 있는 원균은 다루지 않는다. 순절했으되 이름을 남기지 못한 민초에 대한 추모의 마음 또한 담고자 한다. 임진왜란이 시작된 부산에서 영웅들의 흔적을 찾아나서는 여행은 지하철을 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부산역에서 오늘의 주인공 정발(1553~1592) 장군을 만나려면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해 노포 방향으로 한 정거장만 가면 된다. 걸어가도 10분이면 초량시장을 막 지난 초량교차로 광장에서 장군의 동상과 마주하게 된다. ‘나를 따르라’는 듯 오른팔을 치켜올린 동상의 정발 장군은 왜군에게 맞서 부산진 수성(守城)에 나선 군사를 독려하는 모습이다.왜란의 첫 번째 교전인 부산진 전투에 대한 오해는 ‘조선왕조실록’이 부추긴 것이나 다름없다. 선조실록 1592년 4월 13일자는 ‘적선이 바다를 덮어 오니 부산 첨사 정발은 마침 절영도에서 사냥을 하다가, 조공하러 오는 왜라 여겨 대비하지 않았는데 미처 진(鎭)에 돌아오기도 전에 적이 이미 성에 올랐다. 정발은 난병(亂兵) 중에 전사했다’고 적었다. 절영도는 오늘날의 영도다. 위기가 닥쳐왔는데도 한가하게 놀러 나갔다가 어이없이 죽었다는 투다. 당시 일본에서 포교활동을 하던 예수회의 포르투갈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1532~1597)가 ‘일본사’에 서술한 부산진 전투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아우구스티노(왜장 고니시 유키나가의 가톨릭 세례명)는 성 안에 있는 장수에게 목숨을 살려줄 테니 항복하라는 전갈을 보냈다. 하지만 성 안의 병사들은 비웃으면서, 먼저 조선 국왕에게 사람을 보내 그렇게 해도 되는지 물어볼 테니 기다리라고 거짓으로 답했다.’ 조선군은 시간을 벌면서 전투준비를 하고 있었다. 프로이스의 기록은 이어진다. ‘조선군은 매우 용감하고 과감하게 저항했으며 전투는 3시간 가까이 지속됐다. 해자에는 모두 마름쇠가 부설됐거나 사람의 키 정도로 물이 차 있었기 때문에 일본군은 수없이 많은 마름쇠에 발이 찔리지 않도록 해자 위에 널판을 놓아 건넜다.…중략… 훌륭한 장수와 국왕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히 높은 조선군 거의 모두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싸웠고, 오직 소수만이 살아남아 포로가 되었다. 조선군 중 가장 먼저 전사한 이는 그들의 총대장이었다.’ 선조수정실록에서는 분위기가 조금 바뀐다. 선조실록 내용에 대한 성찰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선조실록은 광해군 시대, 선조수정실록은 인조 반정 이후 편찬된 것이다. ‘정발은 절영도에 사냥하러 갔다가 급히 돌아와 성에 들어갔는데 전선은 구멍을 뚫어 가라앉히고 군사와 백성들을 모두 거느리고 성가퀴를 지켰다. 이튿날 새벽 적이 성을 백 겹으로 에워싸고 서쪽 성 밖 높은 곳에 올라 포를 비 오듯 쏘아댔다. 정발이 서문을 지키면서 한참 동안 대항하여 싸웠는데 적의 무리 중 화살에 맞아 죽은 자가 매우 많았다. 정발이 화살이 다 떨어져 적의 탄환에 전사하자 성이 마침내 함락되었다.’정발은 무능하고 게으른 장수일 수 없다. 위원군수이던 정발은 1589년(선조 22) 비변사가 무인을 불차채용(不次採用)할 때 추천을 받았다. 서열과 관계없이 능력 있는 장수를 발탁하는 인사 제도다. 함께 추천된 정읍현감 이순신은 1591년 전라좌수사에 올랐고 정발도 못지않게 고속승진해 부산진수군첨절제사에 임명된 것이 왜란이 발발한 바로 그해 초다. 정발이 왜군 침입의 위기의식을 못 느끼고 있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선조실록에는 ‘임진년 3월 부산 첨사 정발이 급하게 보고했는데 대마도주 평의지의 배가 포구에 와 정박하고 첨사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에 길을 빌린다는 따위의 말이 있었다. 그 글을 물리치고 이들이 변경에서 머물러 기다리는 것을 허가하지 않았더니, 평의지는 절영도에 배를 대었다가 며칠 만에 앙심을 품고 떠났다’는 대목이 있다. 임진왜란 일어나기 불과 한 달 전에 일어난 일이다. 부산진과 동래부를 지키려 목숨을 걸었던 조선군의 분투는 명나라가 ‘조선이 왜국과 담합해 우리를 치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했을 때 오해를 풀어주는 수단이 됐다. 정발은 1594년 병조판서에 추증됐지만, 의로운 죽음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다 1597년 통신사행이 상당한 변화를 만든다. 명나라 사신 양방형·심유경과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황신(1560~1617)의 전언 때문이다. 부산진성 전투에 참가했던 왜군 장수 야나가와 시게노부는 “우리는 부산에서 크게 기세가 꺾일 수밖에 없었다”고 조선군의 필사적인 저항을 높이 평가했고, 정발의 첩 애향이 순절한 것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발은 1686년(숙종 12)이 되어서야 충장공이라는 시호를 받았다.정발 동상이 있는 초량역에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부산진역 다음 좌천역에서 내리면 정공단이 있다. 정공단은 부산을 대표하는 가구거리인 좌천동의 좁은 골목으로 언덕길을 조금만 오르면 나타난다. 정발 장군이 수성군을 지휘하다 숨을 거둔 부산진성 서문 터라고 한다. 정공단은 1766년(영조 42) 부산진첨사 이광국이 세운 것이다. 정공단은 정발 장군을 비롯해 그의 막료 이정헌, 첩 애향, 노비 용월과 이름 없는 수군 순절자들을 배향하고 있다. 앞서 1761년(영조 37)에는 경상좌수사 박재하가 ‘충장공정발전망비’(忠壯公鄭撥戰亡碑)를 영가대에 세웠다. 충장공 정발의 순국을 추념하는 비석이라고 할 수 있다. 전망비는 지금 정공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총병력은 최소 16만명 이상이었다. 부산진성을 공격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선봉대는 1만 8700명이었다. 반면 부산진성의 조선군은 500~600명이었으니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정발에게는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했을 것이다. 우리는 왜란의 비극을 겪은 원인을 ‘방비 없이 당한 조선의 총체적 무능’에서 찾는다. 개인적으로는 ‘위기의식도 적지 않았고 대비도 했지만 국력은 미치지 못했고, 대비가 충실했어도 100년의 전국시대를 거친 왜군의 전투력은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것이 실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조선군도 이후 전투 경험을 쌓으며 반격에 나설 수 있었다. 왜군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것은 치명타였다. 조정은 일본이 섬나라인 만큼 수군이 강하고 육전에 약할 것이라고 거꾸로 생각했다. 수군에게 해전을 포기하고 육지에 올라와 전투에 임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도 이 때문이다. 경상좌수영 소속인 정발 휘하 부산진수군이 위기상황에 해전(海戰)이 아니라 절영도에서 사냥을 겸한 육전(陸戰) 훈련을 하고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오히려 ‘수륙(水陸)의 전투와 수비 중 어느 하나도 없애서는 안 된다’며 수군을 지킨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매우 예외적이었다. 당시 부산진성 앞에는 군선의 정박지가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부터 야금야금 간척이 이루어져 지금은 바다가 꽤 멀다. 부산진성은 왜란 직전 성벽을 높여 쌓고 해자도 깊게 팠지만 왜군의 공격능력에는 결과적으로 미치지 못했다. 왜군이 애써 점령한 부산진성을 버려 두고 뒷산에 증산성, 해안에 보조성(자성·子城)을 새로 쌓은 것도 이 정도의 성곽으로는 방어가 가능하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조선은 그만큼 전쟁 경험이 없었다. 조선은 왜란 이후 자성 일부를 활용해 새로운 부산진 첨절제사영을 구축했다. 새 부산진성은 좌천역에서 걸어가도 되지만 지하철 1호선 범일역에서 내리면 좀더 가깝다. 이곳에서는 일본식 성 특유의 경사진 성벽을 만날 수 있다. 가파른 성벽 위에는 부산진성의 진남루가 세워졌다. 수군기지로 썼지만 이곳에도 포구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전선의 정박지를 조성하느라 준설한 흙을 쌓아올리고 지었던 누각 영가대도 사라졌다. 지금 조선통신사역사관 옆에 보이는 영가대는 최근 재현한 것이다. 지금 부산에서는 임진왜란의 상처인 자성대라는 이름 대신 부산진성으로 부르자는 시민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정발 장군의 시신은 찾지 못했다. 무덤은 고향인 경기 연천군 미산면 백산리에 있다. 옷가지로 의관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우암 송시열의 묘갈명을 새긴 비석을 비롯한 석물은 6·25전쟁 와중에 모두 사라졌다. 지금 보이는 석물들은 1982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 올림픽 보이콧했지만 경제는… 中과 관계 안정 강조한 기시다

    올림픽 보이콧했지만 경제는… 中과 관계 안정 강조한 기시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올해 9월 중국과 일본의 수교 50주년과 관련, “원래라면 축하할 기분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긴장감을 갖고 양국 관계를 어떻게 안정시킬지 일본 외교의 결기가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1일 닛폰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피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중국의 해양 진출과 신장위구르자치구, 홍콩의 인권 문제들을 언급하며 “확실히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도 “일본의 많은 중소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어 (중국과의) 관계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이 중국의 군사력 강화를 견제해야 하지만 경제 교류를 위해 최악의 상황은 만들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는 “(일본의 베이징 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이후 (일본의) 움직임은 올림픽 이후 어떤 분위기가 될지 살펴보고 가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아베 신조 정권 시절 4년 8개월간 ‘최장수 외무상’을 지낸 기시다 총리는 “올해는 본격적으로 정상 외교를 시작할 것”이라며 자신의 특기인 외교에 집중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그는 올해 초 미국을 방문해 조 바이든 대통령과 대면 정상회담을 하려고 했지만 미국 측과 조율이 안 된 데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 확산으로 무산됐다. 기시다 총리는 여당인 자민당의 숙원인 자위대를 헌법에 명시하는 안을 포함한 ‘개헌’을 올해 가장 큰 과제로 꼽았다. 그는 연두 소감(신년사)에서 “헌법 논의는 국회 논의와 국민의 이해가 차의 양 바퀴”라며 “두 개가 서로 자극하며 나아가는 것이 헌법 개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편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지난 1일 요미우리신문에 “(중국의 공격으로) 대만이 유사 상황(비상사태)에 빠지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도 위기에 처한다. 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일본의 방위력을 증강해야 한다”고 강조해 기시다 총리와 온도차를 보였다.
  • “美정계, 로비스트가 장악:...중국 관영 언론들, 일제히 비판

    “美정계, 로비스트가 장악:...중국 관영 언론들, 일제히 비판

      미국의 국방비 증액 소식과 관련해 중국이 연일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중국 관영매체 CCTV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도 미국 국방비증액과 관련한 수권법안에 서명한 것을 겨냥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군방비 지출 규모"라면서 "미국이 전쟁 장수이자 무기 판매상으로의 정체를 다시 한 번 드러낸 것"이라고 31일 이같이 지적했다. 미 행정부는 해당 법안과 관련해, 미국의 내년 국방 관련 예산으로 역대 최대 규모인 7천680억 달러(한화 약 912조 원)이 편성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중국 관영 매체들은 수일 째 ‘미국이 세계 평화의 최대 위협인 존재감을 본색을 드러냈다,  ‘(미국의 국방비 증액은)중국 억제용’이라며 비난을 가했다.  관영매체들은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끝난 마당에 미국이 왜 이렇게 큰 국방예상을 편성한 것이냐"면서 "이는 방산 업체와 로비스트, 미국 정치인이 한데 뒤얽힌 미국 정계가 가진 고질적인 문제 탓"이라고 지적했다.  그 근거로 미국 버클리대학 라이커 교수의 발언을 인용, “지난 2020년 기준 미국 군수업체가 정치인들의 정치 자금으로 무려 4700만 달러를 기부했다”면서 “군수업체 등 이익집단의 정치 자금이 결국 로비 자금으로 사용됐고, 이로 인해 미국 정부는 지난 몇 해 동안 매년 큰 폭으로 상승하는 군비 지출을 하게 됐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무기상이 정계를 장악할 경우 미국 군은 결국 무기상들의 사익 도모를 위한 군비 지출을 하게 된다”면서 “이와 대조적으로 같은 시기 의료와 교육 등 시민들을 위한 복지 정책은 바이든 정권이 들어선 지 1년 가까지 시일이 흘렀지만, 여전히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무기상들의 로비를 기반으로 한 미국이 어떻게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또 중국 관영 매체들은 미국의 경제전문지 블룸버스의 사설 일부를 발췌해 "작금의 미국 정부는 빚더미에 올라 있다"면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저소득층은 심각한 물가 상승 문제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오로지 군사비 증진에만 집중해 국민 생활 전반의 절박한 문제를 도외시 하고 있다. 미국인들의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질 수 밖에 없는 형국이다"고 했다.  특히 내년도 미국 국방비 예산 중 무려 278억 달러 규모가 핵무기 개발을 위해 소요될 것이라는 점에 우려의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 전세계 각 국에서 활동하는 700여 명의 과학자들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핵 군비 경쟁 가속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담은 공동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중국 관영 매체들은 "미국 정부가 과학계의 우려를 담은 서한을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또, 50년 전 미국의 대표적인 인권운동가로 활동했던 지도자 마틴 루터 킹의 발언을 인용해 “1년 예산 중 시민들의 의료, 교육 등 사회 복지에 투자하는 비중보다 군사비에 더 많은 돈을 쏟는 경우 그 국가는 이미 망할 징조를 보이고 있는 것"이라면서 "바이든 행정부가 국방비 증액에만 치우친 나머지 민생 사업에서는 번번히 실패를 맛보고, 이로 인해 일반 국민들의 삶은 더욱 곤궁해지고 있다. 현재의 미국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미국 자국민들의 슬픔이자, 세계 평화의 가장 큰 위협"이라고 비난의 강도를 높였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영원히 우리를 웃길 것 같았던 베티 화이트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영원히 우리를 웃길 것 같았던 베티 화이트

    텔레비전과 스크린에서 늘 유쾌하고 활기가 넘쳐 우리를 영원히 웃길 것 같았던 미국 여배우 베티 마리온 화이트가 100세 생일을 2주남짓 앞두고 저하늘로 떠났다. 1922년 1월 17일(이하 현지시간) 일리노이주 오크 파크에서 출생했던 고인의 에이전트 제프 위트하스는 지난해 마지막날 한 잡지 인터뷰를 통해 “베티가 곧 100살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영원히 살 줄 알았다”며 안타까운 죽음을 알렸다고 로이터 통신과 영국 BBC 등이 전했다. 정확한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취재진에게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녀는 사랑스러운 숙녀였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질 바이든 여사도 “베티 화이트를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느냐”고 반문하며 “그녀의 죽음이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대공황 기간 가족과 함께 로스앤젤레스로 이주, 비벌리힐스 고등학교를 졸업한 화이트는 1930년대 후반 라디오로 데뷔했다. 열여섯 살때였는데 이미 그 때 자신의 이름을 프로그램에 넣었다. 2차 세계대전 때 전투보다 병사들 지원 업무를 하는 의용군으로 참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55년 TV에 데뷔했는데 ‘라이프 위드 엘리자베스’란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때 벌써 제작자로 변신해 있었다. 시트콤 ‘골든 걸스’와 ‘메리 타일러 무어 쇼’가 대표작이다. 80여년을 꾸준히, 늘 새롭게 변신하면서 적응해 온 현역 최장수 배우로, 최근까지도 프라임타임 에미상과 미국 배우 조합상 코미디부문 여우주연상, 그래미상 최고의 낭독 앨범상 등을 수상해왔다. 화이트는 2018년 에미상 시상식에서 “아직도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5년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에서는 “내가 이렇게 건강할 뿐만 아니라, 계속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냐”면서 “여전히 일할 수 있는 건 특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젊은 시절 두 차례 결혼이 모두 아주 짧게 끝났다. 마흔을 넘겨서야 평생의 반려를 찾은 행복에 젖었으나 20년 뒤 사별하는 고통을 겪었다. 친자녀도 없어 평생을 동물을 돌보며 지냈다. 로스앤젤레스 동물원에 재정적 도움을 주는 자선활동을 40여년 펼쳤고, 한때 자신의 집에서 13마리 반려견을 돌보기도 했다.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샤킬 오닐의 뺨을 내갈긴 일로도 유명하다. 서른아홉이던 오닐이 프로퍼즈를 했는데 여든아홉이었던 그녀는 “넌 청혼하기에 너무 나이가 많아” 2012년 10월 ‘강남스타일’로 글로벌 스타로 발돋움한 가수 싸이가 그녀의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레전드 앞에서 긴장한 듯 굳은 얼굴로 사진 촬영에 임한 일로도 화제가 됐다.
  • 유달산 뻗어나온 하늘 길… 호랑이의 氣, 박차오르다

    유달산 뻗어나온 하늘 길… 호랑이의 氣, 박차오르다

    우리나라 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면 대양으로 뻗은 한반도 모퉁이가 유난히 날이 섰다. 바로 전남 목포다. 중국 만주를 할퀴는 호랑이 모양의 한반도 지도에도 목포는 강인한 뒷발톱이 된다. 검은 호랑이해 임인년을 코앞에 두고, 해양을 향한 전초기지이자 대륙으로 박차 오르기 위한 디딤 다리인 목포를 들여다보고 희망찬 새해 여행을 이야기해 본다.목포. 호남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중 하나다. ‘비 내리는 호남선’의 종착역이며 남해안을 가로로 긋는 경전선의 시발역이다. 국토 종횡의 국도 1, 2호선이 모두 목포에 모인다. 원래는 신라 때부터 무안군에 속했다. 아, 이름은 있었다. 조선 태종 때 목포진이 지금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무안의 일부였다. 대한제국 말, 일제가 개항을 요구하자 곳곳에 개항장을 설치했다. 1897년 10월 1일. 외국 자본을 들인 계획도시 목포항이 생겨났고 이후 무안에서 독립해 목포부가 된다. 항만과 철도, 도로가 놓이고 산업체와 학교가 들어섰다. 일본인, 자본가, 노동자, 학생 등 많은 이들이 목포로 몰려와 살았다. 1944년 인구(6만 9000명)는 당시 남북한을 합쳐 한반도 10대 도시 중 하나로 꼽혔다. 무려 조선 4대 항구였다. 4곳의 꼭짓점, 즉 부산, 인천, 원산, 목포였다. 바다와 내륙을 잇는 목포는 일본으로 쌀과 물자를 송출하기에도, 중국 등 외국으로 사람과 화물이 오가기에도 유리했다. 일제가 패망한 이후에도 목포는 남한 6대 도시로 명성을 유지했다.개항 덕에 무안에서 독립한 터라, 차지한 땅은 좁은 대신 돈과 일이 넘쳐났다. 지금도 목포는 전국적으로 면적이 작은 인구밀집 도시에 속한다. 목포보다 좁은 도시는 드물다. 구리, 과천, 군포, 광명, 오산밖에 없다. 유달산을 한 바퀴 뱅 돌고 나면 무안과 영암으로 빠지고 바다로 들어서면 신안이다. 하지만 문화와 행정, 교육, 정치는 주변 지역을 대표할 만큼 위용을 과시한다. 영암 삼호와 대불단지, 무안 남악신도시 등은 목포권으로 봐도 무방하며, 도서로 이뤄진 신안군에서 목포로 유입되는 인적·물적 교류도 상당히 많다. 한마디로 호남의 거점 도시로 실제 거주 인구보다 배후 인구가 많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전국 4대 관광거점도시로 선정된 이유도 그렇다. 작은 어촌 포구였던 목포가 이토록 성장하게 된 것은 개항부터다. 군산과 마찬가지로 목포에는 손이 큰 일본인 미곡상이 모여들어 나주평야의 쌀을 일본에 내다 팔았다. 시세가 들쑥날쑥한 미곡에 돈을 대는 미두(米斗)도 열려 투기꾼도 기승을 부렸다.●유달산 타고 무안·영암·신안 연결 거점도시 목포에 돈이 돌기 시작하자 시장과 식당 등 소비 산업도 발달했다. 은행이 들어서고 건물도 쑥쑥 올라갔으며 사통팔달 도로도 뚫렸다. 간척을 통해 땅이 널찍해지니 길을 놓기도 좋았다. 침강 리아스식 해안인 경남 통영과 남해, 거제 등 여느 남해안 도시와는 달리 바다 매립지로 이뤄진 평지 구획도 나름 많다. 현재 목포의 신도심인 하당지구와 무안 남악지구가 대표적인 간척 매립지다. 그렇게 100년의 세월이 흘러 목포는 서남해안의 중심도시가 됐다. 목포 여행의 볼거리는 역시 위성처럼 유달산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해상케이블카를 타고 유달산에 올라 멀리 태평양을 바라볼 수 있고 바다에선 요트를 즐길 수 있다.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곳곳의 카페에서 망망대해를 조망할 수 있다. 작은 항구도시 중앙에 치솟은 유달산은 해발고도는 그리 높지 않지만 근육질 암봉과 강한 기세로 시민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 온 영산이다. 2019년 9월 개통한 목포해상케이블카는 총연장 3.23㎞의 어마어마한 탑승 구간과 중간중간 달리 펼쳐지는 전망으로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목포의 중심부에 위치한 유달산 정상을 바로 올라갈 수 있고 사방팔방으로 다른 뷰가 펼쳐지니, 목포를 처음 찾았대도 마치 디오라마 전시물처럼 한달음에 목포에 대한 지형적·지리적 설명을 끝낼 수 있다. 남쪽 나라 목포는 따뜻하다. 실제 기온뿐만이 아니다. 풍경 역시 포근하다. 평평하고 동글동글한 섬들은 버럭 성을 내는 위압적 풍광이 아니라 따사로운 분위기를 낸다. 유달산 아래로 이어진 삼학도에는 목포자연사박물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등 박물관이 모여 있는 문화의 거리가 있어 겨울철에도 추위에 떨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많다.목포 앞바다에는 늘 어머니처럼 곁에 있는 고하도가 있다. 높은 유달산 아래 낮게 뻗은 긴 섬, 그래서 고하도(高下島)다. 충무공 이순신과 인연이 깊은 고하도는 목포대교로 이어져 더이상 섬이 아니라지만 해안과 접해 있어 서울에서 온 여행자의 바다결핍증을 당장 해소하기에 충분하다. 섬에는 걷기 좋은 용오름길도 있다. 오르락내리락 나지막한 길은 뫼봉으로 이어지며 유달산의 늠름한 일등바위와도 마주친다. 비록 한겨울이지만 훈풍이라도 불어닥치는 날이면 노을을 등에 두고 걷기 딱 좋은 코스다. 목포는 개항 당시 2개 권역으로 나뉘어 도시가 형성됐다. 그래서 옛 도심은 크게 남촌과 북촌 두 개 지역으로 나뉜다. 노적봉 공원을 가운데 두고 일본인들이 모여 살던 번쩍번쩍한 남촌과 조선인 거주 지역인 북촌이 있다.목원동과 북교동, 불종대, 만인계터 광장이 유달산을 향해 치닫는 가파른 언덕으로 이어진다. 이곳이 북촌이다. 마을을 한바퀴 돌아 나오는 ‘옥단이길’엔 실존했던 물장수 옥단이에 대한 이야기도 서려 있다. 목포역을 바라보고 민어의 거리 쪽으로 건너가면 분위기가 바뀐다. 유달동 목포근대역사관이 위치한 일대가 당시 융성했던 남촌이다. 경동성당, 유달동 사진관 등 곳곳에 남은 일본식 건물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근대역사문화 거리에선 과거의 영화를 살펴볼 수 있다. TV드라마 ‘호텔 델루나’로 낯익은 목포근대역사관(사적 제289호)에는 일제강점기에 시작한 목포항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당시 생활상과 변천사를 디오라마와 영상물 등으로 만날 수 있다. 역사관 인근 거리에는 전시물이 아니라 실재하는 ‘역사’가 오롯이 남았다. 올망졸망 키 작은 일본식 목조가옥 골목을 둘러보며 맛있는 식당이나 떡집, 빵집, 카페를 찾는 것도 겨울 도시 여행의 묘미다. 추운 겨울날, 쉬어 갈 수 있는 인프라가 많다는 것에서부터 여행자는 안도하게 마련이다. 이와 대비되는 곳은 온금동이다. 유달산을 등에 지고 푸른 바다를 앞마당에 둔 온금동과 서산동. 따스한 목포에서도 햇살이 가장 오래 비추는 곳이다. 양지바른 비탈에 낡은 집들이 층층 서 있고 실핏줄처럼 연결된 좁은 골목길. 마당과 지붕이 서로 이어진 달동네 다순구미다. 영화 ‘1987’에서 낯익은 ‘연희네 슈퍼’가 이곳에 있다. 1987년이라니. 그만큼 시간도 멈춰 버린 듯 낡은 도시 풍경이다. ●‘조금새끼’ 가난한 산동네, 문화·카페로 변신 일제강점기 목포항이 근대화 어항으로 자리잡은 이후, 가난한 섬사람들이 모여들어 이룬 산동네 마을이 이곳이다.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 이들은 늘 바다에 나가 고깃배를 타야 했고, 물때가 좋지 않은 조금(Neap Tide) 때만 집에 들어와 쉴 수 있었다. 그래서 조금 때 생겨난 아이들을 ‘조금새끼’라 불렀다. 사연은 서글프지만 해학적이다. 이들은 몇 명씩 엇비슷한 생일을 두고 있고, 또 몇은 제삿날도 같다. ‘한배를 탄 운명’이란 최악의 상황에서 한꺼번에 모든 것을 앗아가는 탓이다. 이 집 저 집 같은 날 제사를 지내고 또 같은 날 생일상을 받아드는 인생 군상이 바로 ‘조금새끼’의 삶이다. 온금동도 많이 변했다. 많은 ‘조금새끼’들이 동네를 떠났다. 길 아래 창고는 문화 공간으로, 식당 카페로 변신 중이다. 재정비 촉진지구 선정으로 ‘바다가 보이는 아파트’가 언제 갑자기 비죽 들어설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름처럼 언젠가는 다순(따뜻한) 바람이 불어 들 듯하다. 해양대 인근의 언덕배기 대반동은 유달산의 중턱이다. 옛날부터 그림 같은 전망을 자랑하는 곳이다. 요즘은 여기저기 밝힌 불빛 덕에 ‘백만불 야경’이 생겨났다. 유달유원지에 들어선 카페 대반동 201은 화려한 전망과 함께 다과와 ‘달다구리’ 디저트, 술 한잔을 즐길 수 있는 낭만 일번지다. 테라스와 전면 통유리에 투영되는 야경은 홍콩의 그것 못지않다. 세련된 인테리어와 음식을 맛보며 휴식을 즐길 수 있어 목포 여행 중 나이트라이프의 포인트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음료와 함께 곁들이는 무화과 케이크 등이 유명하다.  어느 집을 가든 즐거운 입… 남도의 맛, 벅차오르다 목포 신도심은 하당 평화광장이 중심이다. 평화광장에는 두 가지 명물이 있다. 바다분수와 갓바위다. 과거 해수욕장으로 이름을 떨쳤던 갓바위는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바닷길 데크를 통해 가까이 접근해 바라볼 수 있다. 삼학도에서 넘어와 평화광장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춤추는 바다분수’는 평화광장 한복판 바다에 있다. ●이름난 노포도 신흥 점포도… 맛집들 빽빽 구도심을 지키던 많은 가게들이 하당으로 옮기거나 분점을 뒀다. ‘미식도시’의 중심가답게 맛난 먹거리들로 빽빽하다. 이름난 노포도 많고 새로 인기를 얻은 신흥 점포도 많다. 프랜차이즈 체인점도 많이 보이지만 남도 특유의 로컬 음식을 내는 곳도 많다. 생닭발을 뼈째 두드려 곱게 ‘조사’(‘다지다’의 사투리) 파는 가게(88포장마차)도 이곳에 있다. 입맛 까다로운 목포 시민들이 꼽는 맛집도 수두룩하다. 금가루를 뿌려나오는 푸짐한 족발에 화려한 반찬을 자랑하는 목포황금족발과 깔끔한 초밥과 싱싱한 참치회 맛으로 젊은층에 인기몰이 중인 일식집 잇쇼우안, 한우낙지탕탕이를 전국적으로 히트시킨 하당먹거리, 서울에선 귀한 덕자병어와 삼치회를 맛볼 수 있는 별스넥 등이 신도시 하당의 먹거리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편의시설이 많고 숙소 역시 밀집해 있어 여행자들이 편하고 저렴하게 묵어갈 수 있다. ●덕자병어·삼치회… 먹거리 트렌드 이끌어 근대화가 시작된 개항 도시 목포, 대양으로 활짝 열려 거침없는 그곳에서 임인년 새해를 시작한다면 더없이 좋겠다. 내년엔 좀더 많은 것이 바뀌고, 또 보다 풍요로울 듯한 느낌으로 출발할 수 있겠다. 글·사진 놀고먹기연구소장 demory@naver.com금가루 황금족발 와우~ 특산 먹거리도 골라먹는 재미! ■갈치=갈치①는 겨울이 가장 맛있다. 목포 먹갈치는 두툼하고 먹을 게 많으며 살이 단단하다. 구워도 좋고 조려도 맛있다. 온금동 아래 선경준치회집에선 갈치와 준치회를 비롯, 다양한 생선구이와 조림을 맛볼 수 있다. ■중깐=채소, 돼지고기 등의 재료를 곱게 다져 춘장에 들들 볶아 얇은 면 위에 얹은 음식이다. ‘중깐’으로 알려진 코롬방 제과 건너편 중화루는 한자리에서 60년 이상 영업해 온 중식 노포다. 대를 이어 옛날 방식 짜장면과 짬뽕을 한다. ■꽃게무침=장터본가는 게살을 매콤하게 무쳐 놓은 대접에 밥을 비벼 먹는 꽃게무침 비빔밥②을 내는 집이다. 맛은 좋지만 까기 귀찮은 생꽃게살을 죄다 발라 담아 내니 고맙기까지 하다. 밥 한그릇이 뚝딱이다. ■초밥=잇쇼우안은 가볍게 정통 일식메뉴를 즐길 수 있는 집. 신선한 해물 재료를 사용해 초밥과 참다랑어회, 각종 일식 요리를 낸다. 칸막이 룸으로 이뤄져 있어 요즘 같은 방역 본위 시대에 주목받는 곳이다. ■카페=아침저녁으로 사람이 많지만 대반동 201은 일몰 즈음과 목포대교 야경이 끝내주는 집이다. 이때는 디저트③와 차뿐만 아니라 바다를 바라보며 낭만적인 술자리를 가질 수 있어 더욱 근사하다. ■조기찌개=자유시장 내 신흥회식당은 조기찌개④(매운탕)를 잘한다. 기름 많은 생선이라 평소 비리다 느꼈다면 목포에서 선입견을 깨 보는 것도 좋겠다.■홍어삼합=목포 음식 명가인 덕인관은 근대골목의 근사한 한옥터에 새 가게를 열었다. 홍어삼합⑤은 묵은지의 알싸한 맛과 녹진한 돼지 삼겹살, 그리고 차진 식감의 홍어를 함께 곁들이는 요리다. 삭힌 맛이 익숙지 않다면 생홍어를 달라면 된다. ■족발=목포에서 삼시세끼 생선만 먹으란 법은 없다. ‘목포족발’로 소문난 황금족발⑥은 깔끔하게 삶아 저며낸 족발이 주메뉴다. 남도 상차림답게 주먹밥과 순두부 등 다양한 곁들임을 제공해 푸짐하다. 보쌈김치와 매콤한 막국수도 입맛을 자극한다. ■낙지탕탕이=숟가락으로 편하게 산 낙지를 떠먹을 수 있는 탕탕이가 진화했다. 전복⑦과 육회까지 들어가 3가지 맛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전복육회낙지탕탕이는 옥암동 하당먹거리에서 판다. 탕탕이를 먹은 뒤 밥을 넣으면 그대로 비빔밥이 된다. ■쫄복탕=국제여객터미널 부근 ‘조선쫄복탕’⑧은 지역 술꾼들에게 든든한 해장집이다. 이른 아침부터 갖은 채소를 넣고 졸복을 어죽처럼 푹 고아 낸다. 뜨겁고 걸쭉하지만 후루룩 마시면 가슴이 탁 트이며 숙취가 대번에 날아간다. ■간식=목포 특산 먹거리 쑥꿀레⑨와 코롬방 제과 새우바게트(10)도 꼭 챙겨 먹어 봐야 할 아이템이다. 팥죽(11)과 찹쌀떡을 내는 유달동 한마음떡집도 돌아다니다 쉬어 가기 딱 좋은 집이다.
  • 삼성SDI 배터리 브랜드 ‘프라이맥스’ 론칭…“초격차 기술 전략”

    삼성SDI 배터리 브랜드 ‘프라이맥스’ 론칭…“초격차 기술 전략”

    삼성SDI가 배터리 브랜드 ‘PRiMX’(프라이맥스)를 29일 전격 공개했다. 프라이맥스는 ‘Prime Battery for Maximum Experience’의 약자로, 최고 품질의 배터리로 고객에게 최상의 경험을 선사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삼성SDI는 프라이맥스에 담긴 핵심 키워드로 ▲최고 안전성을 보유한 품질(Absolute Quality) ▲초격자 고에너지 기술(Outstanding Performance) ▲초고속 충전 및 초장수명 기술(Proven Advantage) 등 세 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품질과 관련해 삼성SDI는 배터리 개발 단계부터 제조, 출하까지 전 프로세스에 대한 품질 관리를 강화하고, 특히 제조·출하 단계에서 딥러닝 기반의 인공지능(AI) 검사를 도입해 불량 검출 알고리즘을 고도화했다. 또한 전 제조 공정에 걸쳐 500여 가지 품질 항복을 체크하는 등 엄격한 품질 검사도 진행하고 있다. 초격차 고에너지 기술은 하이니켈 양극, 실리콘 음극 등 최신 소재 기술과 제조 역량을 바탕으로 한 고용량·고출력 배터리 기술을 의미한다. 전기차 주행거리나 전동공구 출력 등과 같은 핵심 성능을 결정짓는 요소다. 초고속 충전 및 초장수명 기술과 관련해선 배터리 셀 내부의 저항을 줄여 리튬이온의 이동거리와 시간을 최소화한 기술을 선보였다.삼성SDI는 프라이맥스를 론칭하며 마이크로 사이트를 통해 브랜드 소개 영상도 함께 공개했다. 현재 프라이맥스는 국내는 물론이고 유럽까지 상표 등록이 완료됐고, 미국 상표 등록도 앞두고 있다. 삼성SDI 중대형 마케팅팀 손미카엘 부사장은 “프라이맥스는 삼성SDI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녹여낸 배터리 브랜드”라며 “기술의 정점을 지향하는 브랜드로 성장시켜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 “1년 꼬박 모은 돈”…기초수급비 아껴 기부한 80대 노부부

    “1년 꼬박 모은 돈”…기초수급비 아껴 기부한 80대 노부부

    80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노부부가 생활비를 아끼고 아껴 남은 돈을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며 기부했다. 29일 서울 금천구에 따르면 전날 박화성(80)씨 부부는 시흥2동 주민센터에 20만원을 전달했다. 부부가 전달한 20만원은 부부가 매달 지원받는 생계비 44만원 중 남는 생활비를 1년 동안 꼬박 모아 마련한 돈이다.청각장애가 있다는 박씨는 “나보다 더 어렵게 생활하는 장애인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성금을 모으게 됐다”며 “너무 적은 금액이라 부끄럽지만 앞으로도 매년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부 봉투에는 “작은 정성이지만 소외된 분들, 특히 장애인 분들을 위해 써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적었다. 유성훈 구청장은 “직접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해 주신 박화성 어르신 부부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 [주인의 날개달린 세상] DMZ에서 온 연하장/탐조인·수의사

    [주인의 날개달린 세상] DMZ에서 온 연하장/탐조인·수의사

    연하장 철이다. 연하장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두루미. 신성과 행운과 장수의 상징으로, 우아하고 기품 있는 자태를 가졌다. 그 두루미를 실제로 본 적이 있는지? 실제로 본 두루미는 연하장에서 연상되는 모습보다 훨씬 크고 우아하고 압도적이고 아름답다. 뚜루뚜루 하는 소리는 마음의 곳간을 채우는 것 같고 보고 또 봐도 더 보고 싶어 매년 두루미를 보러 철원과 연천과 파주를 찾게 된다. 멸종위기 종이지만 약간은 더 흔하게 볼 수 있는 늘씬한 회색의 재두루미도 아주 멋지지만 역시 으뜸은 두루미다. 그래서 연하장에 재두루미가 아니라 두루미가 등장하는 것이겠지. 그러나 몹시 슬프게도 두루미는 지금 세계적으로 아주 심각한 멸종위기 상태다. 몸집이 큰 대신 빨리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인기척에 아주 예민해서 사람이 많은 도시 지역에서는 살기 어렵다. 그래서 밀리고 밀려 연천과 철원 DMZ 인근에 가장 많은 수가 머문다. DMZ는 우리에게는 분단으로 인한 아픔의 땅이지만 두루미들에게는 거의 마지막 남은 ‘쉴 만한 안식처’인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안식처도 위협받고 있다. 우선 두루미가 삵과 같은 포식자를 피해 밤에 쉴 수 있고 얼지 않는 여울이 사라졌다. 연천의 대표적인 두루미 쉼터인 장군여울은 군남댐 때문에 잠겼고, 망재여울도 군남댐의 수위가 높아지면 물에 잠긴다. 떠밀려 연천으로 온 두루미들은 내 몸 편히 쉴 곳도 줄어든 것이다. 둘째, 개발과 인삼 재배 등으로 먹이활동을 할 논습지 자체가 줄고, 기계를 써서 수확 수율이 좋아지고 볏짚도 모두 거둬 버려 두루미가 먹을 낙곡이 많이 사라졌다. 뜻있는 사람들이 먹이주기를 하고, 일부 농민들은 자발적으로 볏짚 더미를 말지 않고 남겨 두지만 서식지가 줄어 역부족인 것 같다. 그리고 도라산고속도로. 분단과 지뢰 때문에 그나마 남아 있던 두루미와 다른 야생동물을 위한 공간 DMZ의 습지로 고속도로를 낸다는 것이다, 굳이. 고속도로 옆은 시끄러워서 살 수 없다. 그러니까 새들의 무덤인 유리방음벽을 그렇게 계속 만들지. 행운을 상징하는 신선의 새 두루미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근하신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두루미 연하장에 쓰일 말들. 정작 연하장 속 두루미는 곧 지구에서 사라질 위험에 빠졌는데. 어쩜 연하장에 숨은 말은 ‘살려 주세요. 우리도 새해를 맞고 싶어요’일지도.
  • 올해 마지막날 100세 생일 맞는 미국의 일란성 쌍둥이 할머니

    올해 마지막날 100세 생일 맞는 미국의 일란성 쌍둥이 할머니

    좋은 일은 별로 없었던 코로나19 팬데믹 2년째를 떠나보내고 새해를 맞을 준비에 들뜨는 31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에 사는 일란성 쌍둥이 자매 캐슬린 스티븐슨과 앨린 채비스는 나란히 100세 생일상을 받는다. 뉴스 앤 옵저버가 지난 23일 보도한 데 따르면 두 자매는 하루에도 10번씩은 전화를 붙들고 수다를 떨 정도로 정정하다. 한쪽이 다른 쪽 집을 찾아도 둘이 소파에 딱 달라붙어 앉곤 헸다. 딸기 그림이 들어간 블라우스를 입는 등 차림새를 똑같이 하고 검정색 양말까지 깔맞춤하고 나란히 진주목걸이를 걸었다. 나고 함께 자라며 단 하루도 떨어져 지내지 않은 고향 롤리에서 100번째 생일상을 받는다니 이만한 행운과 복이 있을까 싶다. 상투적이지만 장수 비결을 묻자 채비스 할머니는 “젊은이들에게 뭔 얘기를 한다고 그래”라면서도 “교회에 가거라. 늦게까지 싸돌아 다니지 말라. 그래도 그 녀석들은 때때로 그러고, 때때로 말도 듣지 않는다”며 웃었다. 이 자매보다 더 오래 산 일란성 쌍둥이 자매도 있다. 기네스월드레코드에 따르면 현존 최고령 일란성 쌍둥이는 일본의 수미야마 우메노와 고다마 고우메 자매인데 지난 9월 107세 공인을 받았다. 하지만 롤리의 쌍둥이 자매도 전혀 기력이 줄지 않고 있다. 힘에 넘치는 스티븐슨 할머니는 “힘들여 일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했다. “걸음마를 떼기 시작할 때부터 농삿일을 시작해야 했다.” 두 분이 농삿일을 하며 자라난 농장 자리에는 지금 밀브룩 고교가 들어섰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스티븐슨 할머니는 살고 있다. 현관 문에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소작농이었던 부모 루터와 베티 헤이스 아래에서 태어났는데 여덟 살 때부터 목화 따고 소와 돼지, 말, 염소를 길렀다. 자급자족을 했는데 이것이 장수와 건강의 비결이라는 증거는 부족하다. 하지만 두 할머니의 아래 세 자매 모두 90대로 정정한 것만 봐도 어느 정도 섭생이 장수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겠다. 앨리스 보보는 96세, 매티 그리섬은 93세, ‘애기’라고 불렸던 댈리 데이비스가 92세다. 네 자매는 모두 랠리를 떠난 적이 없다. 유일하게 앨리스만 랠리를 떠나 더럼에서 살았다.다섯 자매 모두 남편들, 두 형제 존과 제임스, 서른두 살에 병으로 숨진 자매 핼시보다 오래 살아 있다. 매티 할머니는 “그거야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훨씬 센스가 넘치니까 그렇지. 우리는 사리를 더 잘 이해한다”고 말했다. 피붙이들을 모두 계산해보니 39명의 자녀, 76명의 손주, 98명의 증손주, 47명의 고손주가 있다. 아, 이 통계는 지난 2019년 월터 매거진이 제시한 것이니 지금은 더 불어났을 것이다. 채비스는 “우리는 좋은 음식을 먹었다. 맥도날드나 하디스 같은 것은 없었다. 우리는 그딴 거를 먹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스티븐슨은 “여러분이라도 좋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외에는 먹을 것이 없었다”고 동조했다. 스티븐슨이 먼저 결혼해 다섯 자녀를, 채비스가 나중에 결혼해 한 자녀를 뒀다. 둘 다 웨이크 채플 교회를 다니는데 자라난 농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팬데믹이 덮치자 서로를 보기 어려워져 힘들었다고 했다. 생일상도 각자 따로 차려 각자 친구들과 건배를 나눈 뒤 교회 앞에서 자동차에 탄 채로 스쳐 지나며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기로 했다. 두 할머니가 태어날 때보다 지금의 롤리 인구가 20배로 불어났다며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느냐고 물었다. “차이 같은 것은 모르겠다. 딱 쉰 살이었으면 좋겠다.”
  • 전북도의원들 “이젠 단체장 할랍니다” 시장·군수 도전 바람

    “도의회에서 활약한 풍부한 경험이면 단체장 업무도 충분히 잘 할 수 있습니다.” 제11대 전북도의원 가운데 40%가량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단체장으로 출마해 결과가 주목된다. 24일 전북 정치권과 도의회에 따르면 도의원 38명 중 10명이 시장·군수에 도전장을 내민다. 우선 도의회 의장인 송지용(완주 1) 의원과 초선인 두세훈(완주 2) 의원은 완주군수 더불어민주당 공천권을 놓고 집안싸움을 벌인다. 진안 이한기, 무주 황의탁, 임실 한완수, 순창 최영일, 부안 최훈열 의원은 군수 선거에 나선다. 김철수(정읍 1), 김대중(정읍 2), 박용근(장수) 의원도 지자체장 출마를 저울질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 사정으로 정호윤(전주 1), 오평근(전주 2) 의원은 재출마를 포기했다. 여기에다 각 정당의 비례대표 4명도 의원직을 놓고 다시 도전해야 한다. 이에 따라 의원직 상실로 공석인 전주 7선거구를 제외한 도의원 38명 가운데 16명(42%) 이상이 물갈이될 전망이다. 이들이 실제 시장·군수에 출마한다면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는 내년 초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 전북 정가 관계자들은 “상황에 따라 단체장 출마를 접는 의원도 있겠으나 대선 결과와 인물 교체론, 정치 지형 변화 등 복합적 영향으로 도의원 상당수가 바뀔 수 있다”고 분석했다.
  • 다시 만난 명·낙… 李 “넘어야 할 산 많으니 저를 많이 업어달라”

    다시 만난 명·낙… 李 “넘어야 할 산 많으니 저를 많이 업어달라”

    비전위 신설… 이낙연 공동위원장 맡아차기 정부 국정과제 설계 등 본격 등판호남서 주춤했던 李지지도 상승세 기대 與 이르면 다음주 열린민주와 합당 선언새달 1일부터 보름간 탈당자 복당 신청범여권 결속 다지며 ‘여권대통합’ 속도전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3일 이낙연 전 대표와 전격 회동한 데 이어 열린민주당 토크콘서트에 참여하며 범여권 진영 결속 다지기에 나섰다. 민주당은 다음주 열린민주당과의 합당 선언을 예고하고 내년 초 탈당자들의 일괄 복당을 추진하기로 하는 등 ‘여권 대통합’을 본궤도에 올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전 대표는 이날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이 후보와 오찬회동을 마친 후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서 이재명 후보와 제가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며 “국가비전과통합위원회(비전위)를 만들어서 이 후보와 제가 공동위원장으로 운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선거대책위원회 신설기구인 비전위 공동위원장을 맡아 차기정부 국정과제를 설계하는 등 이 후보를 본격 돕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당내에서는 당장 이 전 대표의 정치적 기반이자 민주당의 뿌리인 호남에서의 이 후보 지지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경선에서 치열하게 경쟁했던 두 사람의 이번 회동은 지난달 2일 선대위 출범식 이후 51일 만이다. 이 후보는 오찬 장소에 이 전 대표가 도착하자 “제가 여러 가지로 부족한 게 많아 대표님이 잘 보살펴 주시면 좋겠다. 넘어야 할 산이 많아서 대표님이 많이 좀 업어 주십시오”라며 예우했다. 이 전 대표는 오찬자리에서 ‘민주당다움’을 강조하며 “자긍심을 갖고 민주당을 지지했던 분들께 상처를 줘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민주당은 이 후보가 지난달 초 제안한 ‘당내 대사면’과 범민주진영 통합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은 전날 비공개 최고위 회의에서 내년 1월 1일부터 15일까지 보름간 탈당자 가운데 중앙당에 복당을 신청한 인사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전원 복당시키기로 했다. 2016년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 분당 사태 때 국민의당으로 대거 이동했던 호남 지역 당원들이 주로 구제될 전망이다. 민주당 당헌·당규에는 탈당자에 대해 공천심사 시 10% 감산하는 등의 페널티 규정이 있다. 이번에 복당한 당원이 공천을 신청할 경우 적용하는 페널티도 대선 기여도에 따라 감산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민주당은 이르면 다음주 열린민주당과의 합당을 선언하고 본격적인 실무 협상에 돌입한다. 이 후보는 이날 여의도에서 열린 열린민주당 당원 콘서트에서 “원래 우리 민주개혁 진영은 전통적으로 열세다.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 있다”며 “지금은 엄혹한 시기여서 우리가 힘을 합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열린민주당이 합당 조건으로 제시한 국회의원 3선 초과 금지, 면책특권 제한 등에는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본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향해 “검찰 집단의 반지성을 목도한 이상 그대로 넘어가면 ‘윤석열 검찰 쿠데타’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며 “검찰 쿠데타는 대선 사기다. 대선 사기를 미수에 그치게 하는 장수가 바로 저 추미애다”고 말했다.
  • 아파트 아닌 주택에서도 이젠 투명페트병 별도 분리배출하세요

    아파트 아닌 주택에서도 이젠 투명페트병 별도 분리배출하세요

    오는 25일 크리스마스부터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 뿐만 아니라 전국의 단독주택 지역에서도 투명페트병을 별도로 분리해 배출해야 한다. 환경부는 오는 25일부터 다중주택, 다가구주택을 포함한 전국의 단독주택과 300세대 규모 이하의 공동주택에서도 재활용폐기물을 배출할 때 투명페트병을 일반 플라스틱류와는 구분해 배출하는 ‘투명페트병 별도 분리배출 제도’를 본격적으로 시행한다고 23일 밝혔다. 이번 제도 시행은 지난해 12월 25일 공동주택 투명페트병 별도 분리배출 의무화 시행 이후 후속조치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전국 어디서나 투명페트병은 반드시 따로 분리배출해야 한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한 공동주택 투명페트병 별도배출제 시행 결과 461t이던 민간선별장의 투명페트병 물량이 지난 11월에는 1233t으로 약 2.7배 늘었다. 이에 따라 투명페트병을 포함한 국내 고품질 플라스틱 재생원료 생산량은 전년에 비해 2.2배 증가했고 페폐트 수입량은 지난해 비해 올해 약 55%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별도 분리배출된 투명페트병은 섬유생산이 가능한 고품질 재생원료로 쓰여 옷이나 가방 등으로 만들어져 재활용시장의 활성화, 재활용 제품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트병 배출 편의성 개선을 위해 무인회수기 설치를 확대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수거된 투명페트병을 별도로 선별하기위해 전국 공공, 민간선별장에 투명페트병 별도 선별시설 구축사업도 진행 중에 있다. 환경부는 단독주택 지역의 배출여건을 비롯해 여러 요건을 고려해 1년 동안 계도기간을 두고 홍보 및 현장수거 여건을 보완해 제도를 정착시키겠다는 계획이다. 또 다른 플라스틱 품목과 혼합 수거하는 수거업체에 대한 현장점검에도 나설 계획이다. 이와 함께 별도 분리배출된 투명페트병으로 생산한 재생원료의 시장 수요처도 늘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투명페트병이 고품질 식품용기로 재활용될 수 있도록 관련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홍동곤 환경부 자원순환국장은 “투명페트병 별도 분리배출제도는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순환경제 구축의 기초인 만큼 제도의 조기정착을 위해 단독주택 지역 거주자들의 적극 동참을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 [와우! 과학] 동일본 대지진 당시 폐사한 ‘135년 장수’ 조개 발견

    [와우! 과학] 동일본 대지진 당시 폐사한 ‘135년 장수’ 조개 발견

    일본에서 135년을 살다가 10년 전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폐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개의 껍데기가 발견됐다. 아사히신문 22일자 보도에 따르면, 해당 조개는 과거에도 지진 해일을 극복하며 살아남았지만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이 일으킨 거대 해일에서는 죽음을 면치 못했다.이 조개는 국내에서 돌조개로 잘 알려진 비늘백합(학명 Mercenaria stimpsoni)으로,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과 사할린, 오호츠크해에 분포한다. 6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성장하고 2~5월에는 성장이 멈춰 나무의 나이테처럼 껍데기에 층이 새겨진다. 지금까지 나이가 확인된 조개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산 개체는 99년을 산 훗카이도산 조개였다.고베대와 도쿄대 등 연구진은 조개껍데기에 새겨진 일종의 나이테를 분석해 과거 해양 환경의 변화를 조사하고 있다. 죽은 조개껍데기 27개체 중 9개체는 마지막 층이 2010년에 새겨진 것이었다. 이에 따라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거대 해일에 휩쓸려 죽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 중 가장 오래 산 개체가 135년을 산 비늘백합이었다는 것이다.가장 오래 산 조개는 과거에도 거대 해일을 경험했다. 1896년 생후 20년 당시에는 사망자 약 2만2000명을 낸 메이지 산리쿠 지진, 57년 당시에는 3000여 명의 사망자와 실종자를 낸 쇼와 산리쿠 해역 지진으로 인한 해일을 겪었다. 연구 주저자인 구보타 가오루 고베대 조교수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이와테현 후나코시만 인근에는 25m짜리 해일이 습격했기에 이같이 오래 산 조개가 죽을 만큼 큰 서식 환경의 혼란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미국 과학저널 ‘라디오카본’(Radiocarbon) 최신호(11월 24일자)에 실렸다.
  • 中 여성 기대 수명 80.8세...도농간 임산부 사망률은 큰 격차

    中 여성 기대 수명 80.8세...도농간 임산부 사망률은 큰 격차

    중국 여성의 평균 기대 수명이 지난 10년 동안 꾸준한 상승세를 기록했다. 2020년 12월 기준, 중국 여성의 평균 수명은 80.88세로 중국 역사상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중국여성발전요강(2020~2021)’을 공개, 지난 2010년 여성의 평균 수명이 77.37세였던 것이 10년 만에 80.88세로 크게 증가해 유엔이 정한 세계여성(184개국 기준) 1인당 기대수명보다 4년 이상 긴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국가통계국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지역별로 상이한 여성의 건강, 교육, 경제, 의사결정권, 사회 보장, 거주 환경, 법적인 안정망 등 7가지 사항에 대한 조사를 실시, 이 같은 결과를 도출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는 특히 임산부의 사망률이 단 10년 사이에 무려 43.7% 이상 감소한 것에 집중했다. 조사 결과, 지난 2020년 기준 임산부 사망률은 지난 2010년 대비 도시와 농촌에서 각각 52.5%, 38.5% 급감했다. 이는 출산과 영유아 보건 의료 서비스 시설의 확충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결과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중국 전역에 소재한 여성 전문병원의 수는 약 3052곳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10년 807곳에 그쳤던 것 대비 2배 이상 급증한 수준이다. 또, 산부인과 전문 의료인의 수도 지난 2010년 대비 55.7% 증가한 28만 5천 명을 기록했다. 이와 함께,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의 수도 이 시기 급증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이 시기 각 분야 고등교육을 받는 여학생의 수가 남학생을 초과, 4년제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의 비율이 전체 입학생의 54.4%를 차지했다고 집계했다. 이는 지난 2010년 대비 약 27.9%이상 급증한 수치다. 석사 이상의 고학력을 가진 여성의 수도 지난해 기준 159만 9천 명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대학원생 남녀 성비 중 여성의 비중이 남성을 초과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이 같은 고학력 여성들이 급증하면서, 지난해 취업에 성공한 이들 중 여성의 비중도 크게 늘어난 상황이다. 지난해 취업자 10명 중 4명이 여성 취업자로 전체 취업자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43.5%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 중국 대도시를 중심으로 취업에 성공한 여성의 수는 총 6779만 4천명으로, 지난 2010년 1917만 9천명 대비 무려 39.5% 이상 늘어났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중국 당국은 회사에 재직 중인 여성 근로자의 권익 보호에 힘쓰는 등 여성의 노동환경에 주의를 기울이겠다는 방침이다. 이들은 지난 2012년 ‘여직원 노동보호특별규정’을 제정한 데 이어 지난해까지 해당 법률 강제 적용 기업의 수를 약 71.3%까지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여성의 실업 보험과 산업재해보험 가입자 수가 약 80% 이상 증가, 지난해 기준 실업보험에 가입한 여성의 수는 9207만 명을 기록해 지난 2010년 대비 약 78.8% 급증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산재보험에 가입한 여성의 수는 1억 300만 명을 기록, 지난 2010년(4570만 명) 대비 80.2% 증가했다. 다만, 이 시기 여성이 누릴 수 있는 권익 수준은 도시와 농촌 간에서 뚜렷한 격차를 보였다. 이 보고서는 도농간의 여성 권익 보장 격차가 여전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서 여성 권익에 대한 목소리가 도시에서만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지난해 농촌에서 사망한 임산부의 사망률이 도시의 사례 대비 큰 폭의 격차를 보였다는 점이 시정해야 할 부분으로 지적됐다.  지난해 농촌에서 사망한 임산부 수는 10만 명 중 185명 수준으로, 같은 시기 도시에서 거주했던 임산부 사망률이 14.1명에 그친 것과 큰 차이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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