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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남 ‘독액 스프레이’에 피살…말레이공항서 여성 2명에 독살 추정(종합)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46)이 지난 13일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됐다. 14일 복수의 정부 소식통과 현지매체 더스타(The Star) 온라인에 따르면 김정남은 이날 오전 9시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 제2청사에서 오전 10시 이륙하는 마카오행 항공편을 이용하려다 신원 미상의 여성 2명에 의해 독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BBC방송과 미국의 북한전문 인터넷 매체인 ‘NK뉴스’도 각각 말레이시아 총리실 관계자와 현지 경찰 관계자를 인용해 김정남의 사망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현재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부검을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AP통신과 교도통신은 현지 경찰 간부를 인용해 김정남이 얼굴에 스프레이가 뿌려져 고통스럽다며 공항 의료실을 찾았다고 전했다. 김정남은 푸트라자야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숨졌다. 현지 매체 더스타는 누군가 김정남에게 액체를 뿌렸다고 보도했다. 국내 항공사 관계자에 따르면 김정남은 쿠알라룸푸르 공항 내 저비용항공사(LCC) 전용 터미널에서 출국을 위해 셀프체크인 기기를 사용하던 중 묘령의 여성 2명으로부터 미확인 물질을 투척받고 사망했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는 정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독침에 의거해 피살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박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소집한 심야 긴급 대책 회의에서 “(용의자는) 두 여성이다. 그런데 폐쇄회로(CC)TV에 잡힌 것은 북한 사람으로 보이나 확정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택시를 타고 도주한 것으로 알려진 여성 2명을 추적하는 등 사건 수사를 진행 중이다. 김정남은 위조여권을 사용해 경찰은 신원확인에 어려움을 겪었고, 시신은 추후 북한 대사관으로 송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살해의 배후는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정황상 북한체제의 잠재적 위협 세력에 대한 제거 작업의 일환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 간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김정남의 내연녀가 말레이시아에 거주한다는 설이 있었다. 과거 김정남은 2014년 1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한식당에 모습을 드러냈고, 같은 해 5월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레스토랑에서 30대 여성과 함께 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김정남은 김정일과 그의 본처 성혜림 사이에서 1971년 5월 10일 출생했으며, 김정은은 김정일의 셋째 부인인 재일교포 출신 무용수 고용희에게서 태어났다. 김정남은 1981년 스위스 베른 소재 국제학교에서 유학한 뒤 1980년대 중후반 제네바종합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권력을 물려받던 선례에 따라 1990년대까지 ‘황태자’로서 후계수업을 받아왔다. 1990년 조선컴퓨터센터(KCC) 설립을 주도하고 1998년 조선컴퓨터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정보기술(IT) 및 군사 분야의 주요 직책을 맡았던 김정남이 낙마한 결정적인 계기는 일본 나리타(成田)공항 밀입국 미수사건이었다. 2001년 5월 아들 및 두 명의 여성을 대동하고 도미니카 가짜 여권을 소지한 채 나리타공항을 통해 일본에 입국하려다 체포돼 추방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김정일의 눈 밖에 난 김정남은 이후 권력의 주변부로 밀려나 마카오와 베이징(北京) 등지를 오가면서 해외생활을 해왔다. 특히 2013년 12월 장성택이 처형된 후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 주로 거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집권 후 김정남이 북한의 권력 세습을 비판해왔다는 점에서 김정은이 자신의 우상화를 위한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이복형을 암살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김정은의 ‘공포통치’가 자신과 같은 백두혈통까지 겨누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남은 김정은이 후계자로 확정된 2010년 10월 일본 TV아사히와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3대 세습에 반대한다”며 “(다만) 해외에서 언제든지 동생(김정은)이 필요할 때 도울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정남은 이복동생 김정은의 집권 체제가 굳어진 이후 최근에는 북한 내 정치상황에 대한 공개적인 언급을 자제해왔다. 외교부는 김정남 피살설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고, 통일부 관계자는 “김정남 관련 첩보는 있으나 확인 중이어서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14일 외교·안보라인으로부터 관련 보고를 받은 뒤 내부적으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김정남 피살, 김정은 지시 확률 100%…마지막 위협 제거”

    북한 전문가들이 김정남 피살에 대해 김정은의 지시가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고 분석했다. 김정은이 권력을 위협하는 마지막 가능성을 제거했다는 것이다. 또 김정은이 집권 5년차에 이복형 김정남을 죽인 것을 두고 김정남의 망명 가능성이나 최근 북한 내 모종의 사태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연합뉴스를 통해 “근본적으로 김정은이 권력을 위협할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을 원천 제거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면서 “김정남은 해외를 떠도는 데다가 외신에 북한의 개혁·개방과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김정은 입장에서는 그의 통제 밖에서 이런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면서 “궁극적으로는 왕조국가인 북한에서 권력의 정당성은 백두혈통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그 관점에서 김정일의 장자인 김정남은 북한 내 권력 엘리트들이 그를 중심으로 결집할 수 있는 상징이다. 김정은은 애초부터 이런 북한 내 엘리트들의 저항을 봉쇄하기 위해 뭉칠 수 있는 구심점 자체를 없애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북한 내부에서 동요가 있는 것 같진 않다. 그것보다는 김정은이 권력에 대한 자신감이 정점에 올라있기 때문일 것”이라면서 “이미 권력을 장악하고 북한 내 엘리트들이 저항할 수 없게 해놨기 때문에 최종 마무리 단계로 김정남을 죽인 것으로 보인다. 단 1%의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마지막 싹을 자른 것”이라고 밝혔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김정남 피살은 100% 김정은의 지시”라면서 “김정남 피살은 최근 북한 내 ‘모종의 사태’와 관련 있을 수 있다. 사태를 움직이는 데 김정남이 주도했거나 간접적으로 연루된 것이 아니라면 이 정도로 무리할 일이 없다”고 분석했다. 이어 “북한에서 김정남을 옹립하려는 움직임 있었다든지, 아니면 김정남이 내부 정치 관여하려는 모종의 시도가 있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김정남 암살은 김정은의 직접적인 승인이나 동의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면서 “최근 국내 한 언론이 2012년 김정남 망명 시도를 구체적으로 보도한 것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김정남 망명 시도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그 같은 보도를 보고 김정은이 격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정 실장은 “김정남의 피살에는 북한의 정찰총국이 직접 관여한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그동안 북한 정찰총국이 김정남 감시를 맡아왔고, 정찰총국은 요인 암살에 관여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남이 더는 북한에서 자금 지원도 안 되고 해외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아들의 진로 등과 관련지어서 태영호처럼 망명을 모색할 수도 있었다”면서 “그런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 나는 이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고 교수는 “권력 안에서 후견했던 장성택도 제거됐고, 관련 기관도 없어서 (북한에) 들어가서 권력을 구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문성묵 국가전략연구소 통일전략센터장은 “김정은 소행으로 봐야 한다. 김정은이 지배체제를 확고히 하는 데 김정남을 걸림돌이라고 판단했을 것이고, 계속 계기를 노리다가 기회를 포착해서 그런 조치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문 센터장은 “김정남은 계속 김정은을 비판해왔다. 비판의 목소리가 커진다면 언젠가는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김정남이 정통성으로 봐서는 장자 아닌가”라고 설명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권력과 연결해 본다면 김정은에게 김정남은 결국 잠재적인 불안요인”이라면서 “당장에 북한의 권력 엘리트를 이반·이탈시킬 정도로 위협적인 인물은 분명 아니었다. 잠재적으로 구심력을 만들어 낼 요소가 될 수 있는 불안감이 작용한 정도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김정은 정권이 많이 불안정해 마구잡이 숙청과정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기보다는 이미 김정은이 끊임없이 김정남을 제거하려고 시도했다가 이번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정남 아들 김한솔, 프랑스서 학업 마치고 돌아가…신변 위협 가능성(종합)

    김정남 아들 김한솔, 프랑스서 학업 마치고 돌아가…신변 위협 가능성(종합)

    14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이자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이 피살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의 아들인 김한솔의 신변에도 관심이 쏠린다. 김한솔은 프랑스에서 대학을 다녔고, 학업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김한솔은 지난해 마카오 또는 중국 등지로 돌아간 것으로 보이며, 현재는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김정일의 맏손자인 김한솔은 2013년 9월 프랑스의 명문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르아브르 캠퍼스에 입학해 기숙사 생활을 했다. 파리에서 두 시간가량 떨어져 있는 이 대학은 다양한 국가에서 유학온 학생이 200명가량으로 유럽과 아시아의 정치, 국제관계, 경제, 역사, 법 등과 관련된 학과들이 있다. 수업은 대부분 영어로 진행된다. 프랑스 학제에 따라 교육기간은 3년이며 2년간 르아브르에서 공부하고 나서 나머지 1년은 이 학교와 제휴를 맺은 400여 개 외국 학교에서 유학하거나 현장 실습을 한다. 김 군은 2013년 5월 보스니아의 국제학교인 유나이티드 월드 칼리지 모스타르 분교를 졸업한 뒤 자택이 있는 마카오에서 머무르다 프랑스로 건너와 이 학교에 들어갔다. 입학 직후인 그해 10월에는 핀란드 TV와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어떻게 김정일의 후계자가 됐느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 아버지(김정남)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이는 할아버지(김정일)와 삼촌(김정은) 간의 문제였고 두 사람 모두 (내가) 만난 적이 없어서 그(김정은)가 어떻게 독재자(dictator)가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군은 김정남의 후견인 역할을 하던 장성택 전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처형된 직후인 2013년 12월부터 신변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프랑스 당국의 밀착 경호를 받았다. 2학년때인 2014년 10월에는 캠퍼스를 찾은 연합뉴스 취재진의 학교생활 등에 대한 질문에 침묵을 지키다 “그만하시죠”라고 말하며 기숙사 문을 닫고 들어가기도 했다. 짙은 색 외투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김군은 보통 한국 대학생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기숙사에서 불과 100여m 떨어진 학교를 오갈 때 사복요원이 김군을 경호하고 이들의 차로 학교에 오가는 모습이 포착되는 등 프랑스 정부의 강도 높은 보호를 받아왔다. 김정남은 아들이 2014년에 파리 시내의 한 호텔에 머무는 모습이 출장 온 한국 대기업 직원에게 목격되기도 했다. 그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프랑스를 수차례 다녀간 것으로 추정된다. 학제에 따라 김군은 2015년 9월까지만 파리에 있고 나머지 1년은 다른 국가에서 교환학생을 지낸 뒤 졸업을 했다는 것이 학교 측의 설명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정남은 누구?…김정은에 밀린 ‘백두혈통’, 3대 세습 반대하기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46)이 지난 13일 오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피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은 김정일과 그의 본처 성혜림 사이에서 태어났다. 1980년대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학을 하면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김정남은 20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아버지 김정일의 자리를 물려받을 가장 강력한 후계자였다. 김정일이 김일성으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선례에 따라 오래전부터 ‘황태자’로서 후계수업을 받았다. 북한이 강조하는 ‘백두혈통’인 김정남은 1988년부터 2001년까지 줄곧 보위부에서 근무하며 간부를 역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유분방한 성격과 잦은 돌출 행동 탓에 김정일의 눈 밖에 났다. 김정남이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결정적인 계기는 일본 나리타공항 밀입국 미수사건이다. 2001년 5월 아들과 두 명의 여성을 대동하고 도미니카 가짜 여권을 소지한 채 나리타공항을 통해 일본에 입국하려다 체포돼 추방된 것이다. 이후 중국과 마카오 등을 전전하던 김정남은 2009년 1월 베이징에서 외신 기자들에게 “후계 구도는 아버지가 결정할 문제”라며 자신은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사흘 뒤 마카오에서는 “중국이 자신을 후계자로 선호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하며 아버지 김정일의 건강상태가 양호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하고 김정은이 권력을 장악하자 북한의 김정남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사실상 끊겼다. 김정남이 호텔 숙박비도 내지 못할 정도로 자금난에 시달린다는 언론 보도까지 나왔다. 김정은은 적통이자 백두혈통인 김정남의 존재 자체를 껄끄러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정남은 2010년 아사히TV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3대 세습에 반대한다”고 발언하는 등 김정은의 심기를 계속 건드렸다. 김정남을 챙겨온 것으로 알려진 고모부 장성택이 2013년 12월 처형되면서 가뜩이나 입지가 좁던 김정남은 더욱 궁지에 몰리며 중국과 동남아시아, 유럽 등을 전전했다. 이런 정황을 미뤄볼 때 이번 김정은이 권력 유지를 위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는 김정남을 제거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북한 김정은 이복형 김정남 피살…“말레이시아 공항서 여성 2명에 독침 맞아”(종합)

    북한 김정은 이복형 김정남 피살…“말레이시아 공항서 여성 2명에 독침 맞아”(종합)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46)이 13일(현지시간) 오전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됐다고 정부 소식통이 14일 밝혔다. 김정남은 이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여성 2명에 의해 독침으로 살해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남은 김정일과 그의 본처 성혜림 사이에서 출생했다. 김정은은 김정일의 셋째 부인 재일교포 출신 무용수 고용희에게서 태어났다. 김정남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권력을 물려받던 선례에 따라 오래전부터 ‘황태자’로 후계 수업을 받아왔다. 1990년 조선컴퓨터센터(KCC) 설립을 주도하는 등 IT 분야 및 군사 분야의 주요 직책을 맡았다. 하지만 김정남은 일본 나리타(成田)공항 밀입국 미수사건이 낙마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김정남은 2001년 5월 아들 및 두 명의 여성을 대동하고 도미니카 가짜 여권을 소지한 채 나리타공항을 통해 일본에 입국하려다 체포돼 추방됐다. 이 사건으로 김정일의 눈 밖에 난 김정남은 이후 권력의 주변부로 밀려났다. 마카오와 베이징(北京) 등지를 오가면서 해외생활을 했다. 2013년 12월 장성택이 처형된 후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 주로 거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집권 후 김정남이 북한의 권력 세습을 비판해왔다는 점에서 김정은이 자신의 우상화를 위한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이복형을 암살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김정남은 김정은이 후계자로 확정된 2010년 10월 일본 TV아사히와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3대 세습에 반대한다”며 “(다만) 해외에서 언제든지 동생(김정은)이 필요할 때 도울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정남은 이복동생 김정은의 집권 체제가 굳어진 이후 최근에는 북한 내 정치상황에 대한 공개적인 언급을 자제해왔다. 외교부는 김정남 피살설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통일부 관계자는 연합뉴스를 통해 “김정남 관련 첩보는 있으나 확인 중이어서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본 교도통신은 “말레이시아 정부가 쿠알라룸푸르공항에서 쓰러져 사망한 북한 남성을 검시했다고 발표했다”며 “신원은 확인이 안됐고 김정남과 관계도 불확실하다”고 보도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김정남 피살…아들 ‘김한솔’ 신변 위협 가능성

    김정남 피살…아들 ‘김한솔’ 신변 위협 가능성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46)이 현지시간 13일 오전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 등 가족들의 신변도 위협받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현지시간 13일 오전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됐다고 정부 소식통이 14일 밝혔다. 김정남의 갑작스런 죽음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결국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이복형을 암살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TV조선에 따르면 복수의 정부 관계자가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북한 여간첩에게 독살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 등 가족들 신변에도 이상이 생기는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김한솔은 2012년 핀란드 공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삼촌 김정은을 독재자라고 표현한 적도 있다. 당시 김한솔은 “살면서 (김정일과 김정은을)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삼촌이 어떻게 독재자가 됐는지도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김정남과 둘째 부인 이혜경 사이에 태어난 김한솔은 아버지가 권력에 밀려나면서 해외를 전전했다. 마카오와 중국 등지를 떠돌다가 2011년 말부턴 보스니아의 유나이티드월드칼리지 모스타르 분교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이후 프랑스 파리정치대학에 입학했다. 2013년 말 장성택이 숙청되면서 신변 이상설이 돌았지만 프랑스 정부의 밀착 경호 덕에 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한솔은 김정남의 영향을 받아 개혁개방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정남 피살…말레이시아서 누구와 뭐 하고 있었나

    김정남 피살…말레이시아서 누구와 뭐 하고 있었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46)이 현지시간 13일 오전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됐다고 정부 소식통이 14일 밝혔다. 이날 TV조선에 따르면 복수의 정부 관계자가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북한 여간첩에게 독살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정남은 전날 오전 9시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2명의 여성에게 독침을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관심이 쏠린다. 2014년 1월 김정남이 말레시이아에 머무를 때 일본 정부와 언론에 포착된 장소는 쿠알라룸푸르의 한국 식당이었다. 장성택 숙청 뒤 신변위협설이 나도는 시기였던 만큼, 나름 안전한 장소를 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남은 4개월 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목격됐고, 같은해 10월엔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 언론과 즉석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정통한 대북소식통은 “김정일 생전엔 김정남이 매달 수백만 달러의 체제비를 지원 받은 것으로 안다”고 TV조선을 통해 밝혔다. 김정일 사망 뒤 김정은이 권력을 장악하자 김정남에 대한 지원이 사실상 끊긴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남이 무기거래나 IT 분야 등 여러 사업을 시도했지만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은 주로 말레이시아에 체류하면서 내연녀가 있는 싱가폴을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첫째 부인 신정희나 둘째 부인 이혜경, 아들 한솔과 딸 솔희와는 따로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김정남 암살 이유는?…김정은, 절대적 입지 강화 위해 이복형 암살 관측

    김정남 암살 이유는?…김정은, 절대적 입지 강화 위해 이복형 암살 관측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현지시간 13일 오전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됐다고 정부 소식통이 14일 밝혔다. 김정남의 갑작스런 죽음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결국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이복형을 암살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TV조선에 따르면 복수의 정부 관계자가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북한 여간첩에게 독살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정남은 전날 오전 9시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2명의 여성에게 독침을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은 김정일 사후 후계구도에서 김정은에게 밀려났고, 이후에도 끊임없이 신변 위협을 받아왔다. 앞서 베이징에서도 암살 위기를 넘겼다. 또 중국이 김정남을 김정은의 대안으로 여겨 보호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김정은이 이 사실을 알고, 김정남은 자신에게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남은 2011년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도 김정은이 두려워 아버지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2013년 장성택이 처형된 후 김정남 ‘망명설’까지 돌았다. 보호막이었던 장성택이 사라지자, 김정남의 신변이 더욱 위험해졌다는 관측도 나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장성택 처형 주도한 北실세 김원홍 ‘토사구팽’

    장성택 처형 주도한 北실세 김원홍 ‘토사구팽’

    김정은 최측근 최룡해와 암투설 관측도 우리의 국가정보원장 격인 북한 김원홍 국가보위상이 지난달 노동당 조직지도부의 검열을 받은 이후 해임됐다고 통일부가 3일 밝혔다. 김 보위상은 2013년 김정은의 고모부로 2인자로 군림하던 장성택 처형을 주도한 핵심 실세다.통일부 정준희 대변인은 “지난 1월 중순쯤 김 보위상이 당 조직지도부의 조사를 받고 대장(별 4개)에서 소장(별 1개)으로 강등된 이후에 해임됐다”고 밝혔다. 정 대변인은 “현재 당 조직지도부가 김원홍과 보위상에 대해서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처벌 수위와 대상자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 보위상의 처벌 원인은 월권, 부정부패 등으로 알려졌다. 북한 정권 핵심 실세인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의 권력 암투설도 제기된다. 정 대변인은 “표면적으로는 보위상이 조사 과정에서 자행한 고문 등 인권유린과 월권, 부정부패 등이 처벌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면서 “지도부 간의 알력과 갈등 문제 등도 추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권력관계 완비와 관계없이 앞으로도 (고위 간부에 대한 숙청이) 지속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덧붙였다. 통일부의 ‘2017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에 따르면 김 보위상은 1946년 황해북도에서 태어나 김일성정치군사대학을 졸업했다.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인 2012년 4월 보위상에 오르며 북한의 권력 실세로 떠올랐다. 일각에서는 김 보위상이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재판을 받은 것이 아닌 계급 강등이라는 측면에서 향후 복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친박 핵분열 조짐… 정갑윤 “탈당” 서청원 “무법자 印 떠나라”

    친박 핵분열 조짐… 정갑윤 “탈당” 서청원 “무법자 印 떠나라”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 핵심인 정갑윤 의원이 4일 탈당을 선언했다. 이정현 전 대표에 이은 친박 핵심의 두 번째 이탈이다. 반면 또 다른 핵심인 서청원·최경환 의원은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의 탈당 요구에 반발하며 버티기에 돌입했다. 이런 친박 핵심들의 엇갈린 행보가 친박계의 붕괴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정 의원은 이날 울산 중구 당협 신년 하례식에서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을 구하기 위해 탈당해 무소속으로 남겠다”고 밝혔다. 정 의원은 “스스로 책임지기 위해 탈당하는 것이며 그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탈당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서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 위원장은 무법적이고 불법적인 일을 벌이며 당을 파괴하고 있다. ‘거짓말쟁이 성직자’ 인 위원장은 이제 당을 떠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인 위원장이 주인 행세를 하는 한 당을 외면하고 떠날 수 없다”며 탈당을 거부했다. 서 의원은 “인 위원장이 새로운 패권주의로 의원들을 전범 ABC로 분류하고 정치적 할복자살을 강요하며 노예 취급을 하고 있다”면서 “인민재판식 의원 줄 세우기는 김정은이 장성택을 처형한 뒤 공포정치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는 듯한 행태”라고 비난했다. 이어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커 ‘성직자’를 모셔 왔더니, 정치인보다 더한 거짓말 솜씨를 보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함께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정통성 있는 진짜 리더십’을 세우자”고 제안했다. 친박 의원들이 청산 ‘저항파’와 ‘순응파’로 나뉘면서 친박계가 ‘핵분열’할 조짐이 감지된다. 이날 정 의원의 탈당도 저항파인 서·최 의원의 탈당을 유도하기 위한 순응파의 전략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인 위원장과의 교감 아래 대거 탈당해 서·최 의원의 탈당을 이끌어 낸 뒤 다시 당으로 돌아온다는 시나리오다. 이날 정우택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홍문종 의원은 어떤 처분도 감수하겠다며 자신의 거취를 인 위원장에게 맡겼다. 한 친박계 의원은 “서·최 의원만 책임지고 탈당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말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김정은, 5년간 340명 숙청… 핵·미사일에 3600억 사용”

    “우상물에 2160억 국고 탕진… 당·정·군 전방위로 간부 처형”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2011년 집권 이후 5년간 총 340명을 숙청했다는 집계가 나왔다. 또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에는 3억 달러(약 3600억원)가량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29일 김정은 집권 5년을 맞아 펴낸 ‘김정은 집권 5년 실정(失政) 백서’에서 “김정은이 3대 세습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고모부 장성택을 비롯한 고위 간부와 주민 340명을 공개 총살하거나 숙청하는 반인륜적인 행위를 자행했다”고 공개했다. 백서에 따르면 간부들의 경우 연도별 숙청 인원이 2012년 3명, 2013년 30여명, 2014년 40여명, 2015년 60여명으로 매년 증가했다. 올해는 고위 간부 3명을 포함해 모두 140여명이 숙청된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원은 “처형 대상 범위도 당·정·군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어 고위 간부 처형이 일상화되고 있다”면서 “올해 공개 처형된 일반 주민 수는 8월 기준 60여명으로 김정은 집권 이후 연평균 처형자 수보다 2배 이상 많다”고 전했다. 김정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자 2011년 12월 30일 북한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됐다. 이후 고모부 장성택을 포함한 고위 간부를 잇달아 숙청하며 ‘공포정치’를 이어 왔다. 다만 일각에서는 내년부터는 숙청을 앞세운 공포정치가 잦아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김정은이 지난 5월 제7차 당대회를 통해 당·정·군을 아우르는 최고지도자로 자리매김했으며 지난 5년간의 숙청으로 체제 안정성도 어느 정도 확보했다는 데 따른 분석이다. 아울러 백서에는 김정은 정권이 집권 5년간 핵미사일 개발 등에 막대한 국고를 탕진했다는 지적도 담겼다. 연구원은 “경제 회생을 외면하고 29차례의 핵 실험·미사일 발사에 3억 달러, 김씨 일족 동상 건립 등 460여개의 우상물 제작에 1억 8000만 달러(약 2160억원)를 쏟아부었다”고 분석했다. 이 밖에 사회 전반의 부정부패 심화, 남북대화 거부, 개혁·개방 없는 허구적 투자 유치, 저질 외교 등도 대표적 실정 사례로 거론됐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기자간담회 전문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기자간담회 전문

     *일시: 2016년 12월 27일 오후 2시~오후 4시 30분  *장소: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    태영호 전 공사: 진실을 알리기 위해 밤낮으로 뛰는 기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 저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김정은 정권을 위해 남북외교 대결 최전선에서 뛰어온 태영호다. 북한에서도 잘 살던 저희 가족이 왜 귀순했는지 여러가지 추정하며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유학하고, 평양 국제국제학교에서 외교관 양성교육을 받았다. 영국, 덴마크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해외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경험하면서 북한 정권은 미래가 없다는 걸 점차 알게됐으나 북한에 남겨둔 가족과 일가 친척에 대한 연좌제 두려워 차마 박차고 나오지 못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유학을 오래한 김정은이 세상 돌아가는 걸 잘 아니 합리적 이성적 판단을 내려줄 거란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살았다. 그러나 시간 흐를수록 고모부 장성택, 측근들도 무자비 처형하는 행태를 보며 절망감 빠져들었다. 지난 5월 7차 당대회를 계기로 한·미 대선 등 정치적 변환기를 이용해 핵개발을 2017년 말까지 무조건 완성하는 광신적 정책 채택하고 질주하는 모습을 보며 빨리 남한으로 가서 무엇이든 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분, 지금 김정은 체제는 겉으로는 공고한 거처럼 보이지 안은 썩어 들여가 대내외 심각한 위기다. 낮에는 김정은 만세를 외치지만 밤에는 이불쓰고 한국 영화 보는 게 현실이다. 김정은 삼수갑산에서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듣게 해달라며 간부들 일거수일투족를 감시하고 공포 정치를 한다. 이런 미친광이 행태를 보면서 태양과 너무 가까이 가면 타죽고 멀어지면 얼어 죽는다는 기회주의적 생각을 한다. 노예 생활이 40, 50년 증손자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저는 제 가족들에게 이 순간 내가 노예 사슬을 끊어주니 자유롭게 살아라라고 말했다. 진작 오지 못했을까 후회까지 했다. 김정은 정권을 누가 무너뜨러주지 않을까 살아온 과거가 부끄럽다. 김일성 김정일 때도 핵개발을 중단하지 않았지만 김정은은 완성 시간표까지 정해놓고 위험 천만한 핵질주의 마지막 직선주로에 들었다. 손에 핵무기가 주어지면 우리는 영원히 핵의 인질이 될 것이다. 이 한몸 숨길 곳 없는 자그마한 영토는 구석기 시대로 돌아갈 것이다.  북한에 계신 여러분, 쭈뼛거리지 말고 들고 일어날 때 김정은 물먹은 벽처럼 허물어질 것이다. 김정은을 쳐내고 통일된 나라에서 행복하고 자유롭게 삽시다. 해외에서 고생하는 북한 주민 여러분, 이미 수만명이 남한으로 왔습니다. 탈북 면허증이 주어져 있는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대한민국으로 오시라. 외교관 여러분, 자식들을 인질로 잡아둔 김정은을 순한 양처럼 따르지 말고 다같이 들고 일어납시다. 자식에게 노예 사슬을 끊어주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탈북자 여러분은 통일 선봉이다. 통일되는 날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 마을 사람들에게 통일 선봉 투사, 노예 해방자라는 명예로운 칭호 받을 것이다. 통일 앞장설 때 김정은 연좌제 허물어 질 것이다. 3만명 탈북민의 김정은 타도 외침이 망배단에서 울려 퍼질 때 통일의 아침은 밝아올 것이다. 통일된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온 간단한 소회? 자녀 하나는 평양에 두는데 온 가족이 다 올 수 있었던 이유?  -언급한 거처럼 김정은 정권은 부모 자식간 가장 숭고한 사랑마저 악용해 해외에 나간 주재원의 자식 한명을 인질로 잡아둔다. 그러나 저는 천망다행스럽게 제 자식들을 다 데리고 올 수 있었다. 제가 어떤 경로, 과정 거쳐서 제 자식들 데려 올 수 있는지 문제는 현재 북한에 계시는 여러분들 생명하고 관련된 문제라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적절하지 않다.    2017년말 핵 완성 관련 설명 부탁한다. 또 영국에서 하던 업무 뭐였나?  -2017년까지 핵개발 완성 대해서는, 김일성, 김정일 때도 북한은 핵개발을 중단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 단 김정일 때까지만 해도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거짓 외피를 뒤집어 쓰고 핵개발을 은밀한 방법으로 해왔다. 김정은은 핵경제 병진노선을 공식 채택했다. 여기서는 경제는 세계와 주민 기만하기 위해 붙인 것이라고 사실상 핵 최우선 정책이라고 보면 정확하다. 7차 당대회 이후 김정은은 가장 빠른 시일내 핵완성할 것을 당 정책으로 명했다. 왜 2017년말을 완성 시간표로 정했느냐는 문제다. 북한이 핵개발 적기로 보는 거는 한국 대선 진행되고 미 대선 후 정권 인수 과정인 2016~2017년말을 가장 적기로 봤다. 왜냐면 정치적 국내 일정 때문에 미국과 한국이 북한 핵개발을 중지시킬 수 있는 물리적, 군사적 조치를 취하지 못할 거라는 타산이 깔려있다. 북한은 자유 민주주의 체제의 2가지 단점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미국, 한국에서 보수든 진보가 집권하면 새 정권은 반드시 북한과 새로운 정책을 시도할 것, 두번째는 정권 바뀌면 사람도 바뀐다는 타산이다. 북한은 한국에서 대선 끝나고 미국에서 새로운 대북 정책 팀이 꾸려진다면 필경 북한과 새로운 정책 시도할 것으로 간주한다. 이럴 때 북한은 빨리 핵개발 완성해서 새 미국, 한국 정부와 북한이 도달한 핵보유국 지위에서 새로운 대화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한미가 유지해온 선 비핵화 후 대화 도식을 깨고, 새로 집권하는 한미 정부와 북한이 핵동결 대 제재 해제, 한미 합동 군사 해제 등 북한 요구 사항 들이대 핵보유 인정받는 전략이라고 보면 된다. 영국 있을 때 북영 간 쌍무 관계 위주로 담당했다. 북한의 주요 대외정책, 김정은 우상화 핵 정책 관련 입장을 영국에 알리는 일이다. 공관원들이 업무 관련 없는 행동 하지 않느냐고 했는데 옳다. 자기 업무와 관련없는 여러가지 외화벌이에 동원된다.    6,7차 핵실험 관련 공문 받았다고 했는데, 과거에도 받았나, 구체적 방침은? 외화벌이 구체적 활동은 뭐냐?  -국회 정보위에서 언급했다는 공문 문제는 제 의도와는 다르게 보도됐다. 북한은 해외 공관에 언제 핵실험한다고 공문 내보내지 않는다. 단 저는 정보위에서 핵개발 관련된 정책적 측면을 얘기한 것이다. 구체적인 국가 기밀에 속하는 내용을 공문에 쓰지 않는다. 당 정책을 설명한 거다. 언제 하느냐와는 별개의 문제다.  -북한 공관에는 다양한 부서 사람이 나온다. 외무성도 있고 무역성 등 다른 기관에서 나온 사람들이 있다. 매 기관에서 나온 사람 따라서 부과된 ´외화벌이 과제´는 다 다르다. 경제부서에서 나온 분들은 구체적인 과제를 주고 그 과제를 집행하지 못할 때는 상부에서 추궁이 제기된다. 그러나 외무성 외교관한테는 그렇게 구체적으로 과제를 주지는 않는다. 가령 이번달에 10만 달러 받쳐라 그런 식으로 안준다. 단 매달 사후 총화를 통해서 어느 공관이 어느 정도 외화를 벌어서 평양에 바쳤나를 총화한다. 외교관들이 지닌 과제와 부담은 다르다. 경제부서 분들은 부담이 높고, 그거 못 벌어 바쳐서 상당한 심리적 압박 받는다.    구체적인 액수?  -공관별 할당 액수는 없다. 단 개별적인 할당량이 있다. 그거는 제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한국에 들어온 시기 언제, 경로는? 빨치산 후손 맞나?  -도착 시기, 경로 관련해서 한국 언론과 외국 언론이 보도한 많은 부분은 사실 아니다. 여름에 와서 첫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가족이야기인데, 저는 태가이지만 북한 대장이던 태병렬과 아무런 혈연 관계가 없다. 아내는 오백룡 가문이 맞다. 아내 가족이 다 북한에 있는 상황에 가족 얘기 하기가 곤란하다.    귀순 시기가 7월? 8월?  -구체적 시기는 곤란하다. 여름으로 이해해 달라.    미국으로 안가고 한국온 거는 미국에서는 가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인가?  -시기, 경로 대해서 언론 보도된 거는 대부분 사실과 맞지 않다. 대부분 내용이 사실 아니다.    공개 활동 결심한 배경은? 신변 걱정 안하나?  -서두 발언에서 언급했지만 저는 우리 민족을 핵참화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뭘 할지 고민했다. 저는 한국에 도착한 순간부터 저는 공개활동을 진행해서 김정은 정권 빨리 붕괴 시키고 우리 민족을 핵참화에서 구원하겠다는 생각으로 첫 순간부터 공개 활동 하기로 맘 먹었다. 물론 북애 두고온 가족과 피해 입은 동료 생각하면 마음 아프다. 방구석에 앉아서 눈물이나 흘리고 해서 도움될 거 없다. 제가 싸울 때만이 통일의 아침을 불러올 수 있다.    망명지 한국 외 다른 곳 선택할 생각?  -비록 우리 한반도가 분단된 지 70여년 지났지만 하루 빨리 제 세대에 나라 통일하는 걸 평생 숙원으로 생각한다. 빨리 통일하기 위해서는 북한과 지리적으로 제일 가깝고 같은 민족이고 언어, 피가 통하는 대한민국에 와서 통일을 위한 투쟁 벌이는 게 나라 통일 앞당기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김정은 하나만 어떻게 하면 체제 무너질 거라 생각하는 이유는?  -단마디로 말하기는 복잡한 문제다.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거는 김정은 대까지 김씨 일가가 3대에 왔다. 공산정권 수립이 70년 됐다. 물론 인류 사회 발전 역사를 볼 때 새 제도가 수립되면 한동안 무질서도 존재한다. 그러나 사회 제도가 수립되고 7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공포정치와 처형으로만 유지되는 사회는 예가 없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계급투쟁에 기초한 공산주의 이론에 플러스, 조신시대의 지도자에 충효 강조하는 사상에 유지되는 사회다. 정체성과 명분을 중시하는 사회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에 와서 명분과 정체성을 잃었다. 집권 5년이 되는 이때까지도 북한 주민들에게 자기가 집권하게 돼 명분과 정체성을 명백히 밝히고 있지 못하다. 김정은이 마지막이라는 건 확고하게 말할 수 있다.    북한 고위 엘리트들도 운명공동체 의식 없어졌나?  -그렇다.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을 계속 봐왔을텐데 이런 정책이 본연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보나?  -한국 와서 언론을 보면 현 대북 정책에 대해 상당히 논쟁 많은 걸 봤다. 한 부류는 계속 대북 제재 정책을 계속해서 얻을 게 뭐냐, 핵질주로 계속 가지 않냐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과, 일부는 지금의 정책을 계속 강경 모드 유지해서 김정은을 고립, 위기로 몰아가야 한다는 의견도 봤다. 저는 현재 김정은의 핵개발 정책을 포기시키느냐 마느냐 문제는 어떤 인센티브의 양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김정은이 있는한 절대로 북한은 핵무기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1조달러, 10조달러 준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 핵개발 현재는 어디까지 왔나?  -저는 북한 핵개발 정책적 측면 말했다. 저는 핵 전문가가 아니다. 현재 어느 시점에 와 있는지 저는 잘 모른다. 체제 특성상 외무상이 아니라 더 높은 분들도 핵개발이 어느 수준인지 모른다.    탈북의 결정적 계기? 김정철 동선 노출과 관련해서 책임 문제가 불거졌다는 보도 있었는데?  -저는 오래전부터 북한 체제는 미래 없다는 거 알고 있었지만 선뜻 박차고 나오지 못했다. 북한 정권 단죄하고 핵참화에서 구하는데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한다. 김정철도 개인이기 때문에 개인 신상 관련 정보는 제가 보호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인권유린하고 민족에 해를 끼쳤다면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 형이라는 이유로 욕하거나 개인 신상 공개하면 연좌제 실시하는 김정은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제 탈북 관련해 북한이 말하는 것들은 다 사실이 아니다.    해외에서 주로 어떤 사람 만나 선전활동했나? 그들 반응은?  -저를 포함해 북한에서 엘리트층도 기회주의적으로 살고 있으며 저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 있다. 낮에는 김정은 만세 외치고 저녁에서 이불 쓰고 한국 영화 본다고 말했다. 저 역시 북한 정권 몸 담고 있을 때 겉으로 김정은 만세 외칠 수밖에 없었고, 기회주의적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거 부끄럽게 생각한다. 영국에서 다기(다양)한 견해 가진 사람들과 북한 체제 홍보할 때면 제 앞에서 북 체제 비난하고 어떻게 그런 체제를 홍보할 수 있냐고 말했다. 저는 직무상 옹호해야 되기 때문에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이해하면 된다.    북한이 중국 어떻게 보고 있나? 전략적 인내에 대해 북한 입장은?  -북한이 상당히 중국에 대해 자주적인 거처럼 보인다. 중국은 전혀 북한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이 자주적인 거는 사실이다. 북한이 어떻게 자주적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가. 북한은 중국의 약점을 알고 있다. 중국 앞에서 북한이라는 동생이 형 앞에서 배짱 부려도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은 북한을 동북아의 완충지대로 간주하고 있다. 북한이 어떤 짓을 해도 중국은 이 죤을 유지하기 위해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중국은 결심만 하면 북한 정권 끝내는 건 일도 아니다. 아직 중국은 압록강, 두만강으로 다가올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와 미군이라는 물리적 전진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북한 김정은 정권을 비호해주고 있다.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을 북한 핵개발을 다그칠 수 있는 면죄부로 지금까지 간주해왔다.    외교관 이력은? 마지막으로 평양 떠난 온 거 언제?  -근무기간 밝히는 건 그렇고, 90년대 말에는 덴마크, 스웨덴, 2000년대에는 영국에서 근무했다. 북한 마지막 다녀온 거는 2014년이다.    북한의 경제 모델은? 김정일 시대와 김정은 시대 정책 결정 방법 다른가?  -북한이 직면한 아킬레스건 하나는 올바른 경제 정책을 주민들에게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집단주의 정신과 생산 수단의 사회적 소유에 기초한 사회다. 이런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떠나서 점차 시장에 의거한 경제로 변화한다. 김일성, 김정일이 내놓은 사회주의 계획경제 이론에 기초했지만 실정은 원시적 자본주의인데 상부구조는 사회주의 계획경제, 집단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상부구조, 하부구조 마찰이 큰 아킬레스건의 하나다. 왜 공식적인 정책으로 바꾸지 못하고 있나. 북한은 수령 신격화에 기초한 사회다. 수령은 신과 같은 존재이며 모든 주민들의 의식주 문제는 수령이 보장해 주어야 한다. 북한 노동당이 시장 경제 정책 받아들여서 수요, 공급에 의해 좌우되는 경제 정책 만들면 김정은이 서 있을 위치가 어디에 있겠나. 이 문제 때문에 아직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 현실에 맞지 않는 이론은 주민들로 하여금 북한 등돌리게 한다.  -한국에 와서 가장 많이 당한 질문이 북한이 의사결정에서 가장 핵심 기구, 컨트롤 타워는 어디 있느냐고 여럿 물었다. 외부에서 볼 때는 국방위인지 국무위인지, 모든 사람들이 이 문제 물어봤다.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사회, 종속 관계에 집중돼 있다. 가운데에서 나라 컨트롤하는 타워라는 건 북한에 없다, 오직 김정은이라는 신, 수령과, 정책 집행 부서가 종적으로 연결된 사회다.    영국에 있을 때 대북 제재 효과 체감 했나?  -대내외적 심각한 위기 몰렸다. 이중에는 대북 제재로 인해 김정은 정권이 상당한 위기에 몰리고 있다는 걸 저는 말하고 싶다. 현재 대북 제재 효과 얼마나 내고 있는가 판단할 때 절대 경제적 형편이나 숫자 가지고 제재 효과성 여부를 판단하면 안된다. 제재 효과 판단은 2가지다. 북한 주민 심리가 어떻게 변하고 있나, 그리고 김정은 정책을 어떻게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는가 봐서 판단해야한다. 올 3월 김정은이 제재 나오자 전체 간부 모아놓고 려명거리 건설을 지시했다. 10월 10일 전까지 완성하여 대북 제재가 물거품이라는 거 보여주라고 호통쳤다. 여명거리는 10월10일까지 완성하고 입주했어야 한다. 북한 사람들은 제재 심화되는 속에서 상당한 동요를 느끼고 있다. 나선 지대처럼, 북한 변두리 지역에 내놨던 경제특구를 북한 종심 지역으로 확대한다는 경제특구 개발 정책 내놓고, 원산지구를 세계적 관광지로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수많은 자본 투하. 이런 정책이 대북 제재 속에서 실현 가능할까? 김정은 꿈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놨다.    인권 압박 효과는?  -북한 가장 위축시키는 게 인권 문제다. 핵은 어디 가서도 당당하게 말한다. 많은 나라들이 내심으로는 북한이 어떤 방법으로 핵을 개박하고 핵보유국 지위에 올라가는가, 우리도 혹시 북한 예를 따를 수 없는가 북한에 물어본다. 그러나 인권 문제 대해서는 북한 지지하거나 동조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인권 애기 나오면 외국인들 첫 질문이 뭔지 아냐(미소) 북한에서 만민이 법앞에 평등하냐고 물어보나고 하면 저는 무슨 그런 질문을 하냐고 하면. 그럼 김정은 어떻게 병원 애육원에서도 담배를 피우느냐. 이게 법앞에 만민이 평등한 사회냐. 인권 문제 논쟁 벌이면 벌일수록 어려움 빠졌다. 3월 제네바 인권이사회에서 북한이 공식 표 대결을 포기했다. 한국 정부가 추진해온 대북 인권 공세의 커다란 승리다. 북한은 인권에서 승산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이런 결의안에 리더십이라고 한 거 아쉬운 문제다. 앞으로 김정은 이름이 들어갈 것으로 생각한다.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에 넘기는 게 중요하다. 북 주민들은 이게 먼지 모른다. 단 무슨 재판에 넘겨진다는 소문이 북한 내부에 퍼진다고 생각해보라. 북한 아이들도 재판 나간다는 건 범죄자가 잘못해서 끌려간다는 걸 안다, 이건 곧 김정은이 범죄자이며 북한의 미래가 없다는 걸 뜻한다. 북한은 김정은 세글자가 유엔 결의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 언론 접촉한 적 있나?  -주성하 기자가 한국에서 쓴 기사 100% 다 보고 큰 힘 얻었다. 인터넷에 쓴 서울에서 쓰는 편지보고 눈물 흘린 거 한두 번이 아니다. 아이들도 같이봤다. 저는 주성하 기자가 쓴 글 보면서 주성하씨도 한국 가서 노력해서 그야말로 한국에서 알려진 분이 됐는데 우리도 한국 가서 하바닥에서 한층한층 노력하면 우리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한국 왔다. 제가 한국 온 거는 선생님 도움이 컸다. (웃음)  최고의 영광을 제가 주셨다.(웃음)  -딱 보니까 인터넷에서 본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진보다 낫다. (웃음) 북한 외교관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처음 컴퓨터를 켜고 보는 게 뭔지 아느냐. 연합뉴스다. 북한란을 보면 그날 하루동안 한국, 해외 언론이 북한에 대해 뭘 썼다는 걸 다 안다. 대외 활동 할려면 사전 정보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스마트폰에 연합뉴스 앱을 설치해 다 본다. 제가 오늘 말하는 것도 거의 그대로 북한 외교관, 해외에 있는 사람들은 즉시 다 본다. 제가 가장 북한에 있을 때 한국 오기로 결심하고 힘을 준 게 뭐냐면 이미 저보다 먼저 한국와서 활동하고 계시는 탈북민 활동이다. 고영한 전략연구원 부원장이나, 주성하 기자, 강철환 등이 쓴 글 다 본다. 한국 TV에서 나오는 이만갑, 모란봉클럽. 몰라수다 북한수다. 탈북민들이 활동하는 건 100% 다 본다. 가서 어떻게 사는가. 탈북민 생활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북한에서 1순위다. 불어라 미풍아 mbc 드라마는 모든 사람들이 본다. 제가 이걸 보면서 딱 우리 가족의 지난 날을 본 거 같은 느낌이다. 덴마크 생활할 때 한 학급에 저희 큰애와 한국애가 같은 학급에 있었다. 카톨릭 영어 학교. 하루는 우리 큰 애가 집에 와서 가방을 바닥에 던지면서 아버지 이순신이 누구냐고 물었다. 북한은 역사 교육을 잘 안한다. 역사를 알면 현실과 비교하게 된다. 제가 깜짝 놀라서 이순신을 어떻게 알지 했는데. 이순신 앞에 위대한이라는 글자를 붙일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학교에서 선생이 매 나라마다 자기 민족에 제일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름을 써내고 왜 위대하냐고 이유를 써냈다. 우리 아이는 김일성이 위대하다고 말했다. 나라를 해방시키고 일본을 내몰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 애는 이순신이라고 말했다. 일본을 내몰았으니까. 선생님이 같은 일본을 내몬 것인데 왜 한쪽은 김일성이고 한쪽은 이순신이냐고 했다. 애들은 임진왜란이고 그런 거 모르니 그렇게만 한 거다. 근데 아이한테 제가 이걸 잘못 말하면 애가 잘못될 수 있다. 그때 제가 그건 복잡한 문제인데 크면 말해줄게라고 했다. 불어라미풍아 보며 생각했다. 이념 문제는 어릴 때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어린 나이가 이순신이 위대해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거, 드라마를 해외 나온 사람들이 많이 보면 그런 생각했다. 불어라 미풍아 마지막 장면이 미풍이가 통일을 위해 망배단으로 촛불을 들고 가는 모습이 됐으면 좋겠다 (웃음)    외부 정보 유입되는 경로?  -북한 사회는 외부로부터 정보 유입이 차단된 조건에서만 존재가 가능한 사회다. 북한에 외부 정보가 유입되는 날 북한은 스스로 허물어진다. 수령에 대한 신격화에 기초해서 유지되는 사회다. 김정은은 김정일의 여러 여인 중 하나에서 난 아이다. 그런 정보가 내부에 들어가면 수령 신격화가 유지 되겠나. 유지될 수 없다. 어떻게든 외부 정보 차단하기 위해 별이별 조치 다 취한다. 인터넷 열어놓지 못하는게 허구성 밝혀지는 날 스스로 무너지게 돼 있다. 어떻게 외부 세계 생각과 정보, 김씨 가문 허구성 알려줄 수 있겠는가. 저같이 외부에 나가 있던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북한에 들어가서 말하지 못한다. 외국에서 살다 들어왔다면 자동적으로 보위부 파견 감시요원 붙인다. 외부에 나갔던 사람들은 그 실상을 다 알지만 그 정권 밑에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은 절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단기 출장 와서 들었다는 사람들도 자기 동료들, 친구들한테 그런 말 안한다.    고영희가 김정은 생모 맞나?  -간단히 설명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김정일, 김정은 후계 구도 과정은 다르다. 김정일 구도는 상향식 후계 구도다. 김정일은 자기가 공식 후계자 될 때까지 10여년 동안 탄탄한 대로 다졌다. 삼촌 쳐냈고, 김성애 형제들, 이복 동생들 하나하나 걸림돌 쳐내면서 후계자까지 갔다. 북한은 공산주의+유교 사회. 명분과 정체성 중시해. 김정일이 후계자 될 명분은 뭐냐. 김정일은 후계자 되기 전까지 그 능력을 충분히 보여줬다는 명분이다. 정체성은 아버지는 빨치산 대장, 어머니는 항일 영웅. 피가 좋다. 김정일 보다 좋은 정체성 가진 사람 내놓을 수 없다. 유교 사회의 장자 세습 원칙. 김정은은 백두혈통 강조하는데, 집권 5년차인 오늘날까지도 생모 이름 주민들에게 공개못하고 있다. 김정은 어머니를 선군조선의 어머니라고만 공개. 이름이 뭔지는 내놓지 못했다. 늙은 아버지 동료들이 옆에 있는데 거기 앞에서 자기 어머니가 공식적인 김정일 부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서 활동 열심히 하겠다고 했는데 신변에 대한 두려움 없나?  -저는 이렇게 생각한다. 통일이란 건 어떤 개인이나 집단 희생 없이는 되지 않는다. 통일의 재단에 바친 몸인데 그 길로 가다가 테러로 죽는다면 그것이 곧 통일을 위한 기폭제가 돼서 더 많은 동료들이 저와 같은 길에 들어서지 않겠느냐 생각한다.    해외 나가면 다 인터넷 볼 수 있나?  -지금은 스마트폰 시대다. 해외 주재원들과 애들은 다 스마트폰 쓴다. 버젓이 인터넷 켜고 연합뉴스 보는 건 업무상 유리한 점도 있지만, 해외에 있는 사람들이 인터넷 보는 건 어려운 일 아니다. 보위원들이 다 따라다니며 감시할 수는 없다. 고영숙 인터뷰가 났을 때 절대 보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오기도 했다. 인터넷 접근하는 사람 통제하는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고 김정은도 알고 있다.    평양 엘리트층이 해외 정보 어느 정도 아나? 김정철 정신이 불안한 상태라는데?  -북한은 외부 정보의 유입이 철저히 차단된 속에서만 존재가 가능하다. 이런 원칙은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아무리 중앙단 부부장 과장 정치위원 이런 분들이 제 목을 쥐고 있다고 해도 당에서 제공해주는 정보만 본다. 나머지 정보에는 접근할 수 없다. 반면에 외무성이나 대남 부서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는 정책 짤 수 없으니 제한된 사람들에게 정보를 열어준다.  -김정철은 개인이기 때문에 개인과 관련된 사안은 밝히기 부적절하다.    한달 월급 얼마였나? 한국 드라마 뭐 봤나?  -차마 월급을 공개하기는 여러분들 앞에서... 한국분들이 들으면 생존이 가능하냐고 생각할 정도다. 나라마다 다른데 대사는 900~1100불, 참사, 공사는 700~800불다. 1000불도 안 되는 돈으로 영국에서 어찌 살 수 있나 의문 제기되는데, 북한은 말하자면 사회 자체가 수용소고 병영이냐. 대사관은 축소판이다. 북한 외교관들은 대사관 안에서 집체 생활을 한다. 전기세, 물세 등 국가가 부담한다. 월급은 본인 식생활, 옷만 하면 돼. 생존이 가능하다. 또 가능한한 모든 수단 방법 동원해 돈 번다.  -한국 드라마는 사람, 계층마다 다르다. 북한 사람치고 한국 영화, 드라마 못 본 사람은 제가 아는 사람 중에는 없다. 공부한 사람들은 역사물 좋아한다. 불멸의 이순신, 육룡이 나르샤, 정도전. 일반 주민들은 겨울 연가, 가을 동화, 풀 하우스 등등. 이를 차단하는 조치가 간단치 않다. 지하철 공공버스 이런데 109대 소속이 나가서 수시로 검열한다. 북한 애들은 너무 남한 드라마 많이 봐서 말투도 바뀌었다. 자기야 오빠야, 할꼬야? ㅋㅋㅋ, 이런 거 북한에는 전혀 없던 표현들이다. 선전원이 잡아서 텍스트 딱 보고 한국 말투 있으면 바로 ´가자´고 한다. 근데 이게 또 돈벌이가 됐다. 전화 뺏기면 20~30달러. 살려주십쇼 하면 보위부원들이 다 지우라고 해서 돌려준다. 새로운 거 보려고 하고 없는 것 추구하려는 속성은 막을 수 없다. 북한이 주민 통제 하다하다 막지 못하는 건 2가지다. 마약과 한류다.    공포정치 사례는? 감시 지령 받은 적 있나?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그 어느때라도 숙청이 중단된 적이 없다. 공산주의는 계급투쟁, 상호 비판 통한 불순분자는 밖으로, 수용소든, 배출하는 과정 통해서 북한 체제는 존재한다. 신진대사 과정 통해서 이단자 부단히 숙청하는 과정 통해서만 북한 사회는 존재한다. 김정은은 공포 심리를 앞장서 조성해서 일반 대중이 들고 일어날 꿈도 못 꾸게 한다. 공포 선행 통치. 김정일 만세 행사 한다고 하면 그때는 보안요원들이 넥타이 메고 나와 공손히 검열했다. 지금은 군복 입고 총을 차고 신분증 검열하고 들여보내는데, 거기에 기관총구를 들이대고 있다. 총구가 제 가슴을 통과한다고 생각해보라. 저 군인이 아차 실수해서 방아쇠 당기는 죽을 수도 있으니 이상한 행동 조금이라도 하면 안되겠다. 이게 공포 선행 통치다.  -북한의 감시 체계는 말단까지 다 미치고 있다. 북한 주민이 100명 이상일 때, 반대로 영국 유럽처럼 현지에 나간 인원이 10명도 안되는데는 당비서나 안전요원이 안 나와 있다. 그런 데서는 대사가 있고 두번째 외교관이 당비서겸 안전보위 업무를 한다. 감시해서 상부 보고 기능 수행한다. 다 인간 세상이기 때문에 매일 보는 동료를 감시해서 보고한다는 거 힘들다. 적당히 눈감아준다고 보면 된다. 북한의 모든 사람들은 기회 주의적으로 움직이고 있고 하나의 세트장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보면 된다.    대외 정책 결정 체제?  -원리적으로 북한은 조선노동당이 영도하는 사회다. 외무성에서 작성에서 당 국제부에 보고하고 국제부에서 김정은에게 보고하는 게 순리다. 그러나 북한은 특수한 체제다. 결국 당 국제부와 외무성은 전혀 별개의 기관. 두 기관은 서로 개입 안한다. 당 국제부는 조선 노동당과 다른 나라 정당 관계만 관할한다.    박근혜 탄핵 목도 했는데 소회는?  -사람이 살아가고 나라 운영하는 데서 시스템이라는 게 대단히 중요하구나라는 건 한국 정치 정세 보면서 느꼈다. TV 보면 당장 나라가 끝날 거 같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평온하게 지내고 아무 일 없는 거처럼 사회가 가동된다. 세계적으로 100만명이 모였다 흩어질 때 경찰 연행이 없고 시위 후 청소하는 장면 보고 대단한 감명 받았다. 한국이 세계 민주화 과정을 새로운 단계로 선도해서 끌고 나가고 있지 않느냐, 한국이 민주화 선두로 바뀌는 과정이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이민탈북 얘기 많이 나온다. 대화 나눌 때 생각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한국 바라보는 시선은 모순된 심정 하나는 한국은 정말 30, 40년간 압축적인 성장과 짧은 시일내 민주화 이뤄낸 대단한 나라구나 그러나 또 역시 한국 드라마 문화 콘텐츠 보면 한국은 대단히 경쟁력 심한 사회다 경쟁 없는 북한 사회서 살다가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 수 있을까 이런 고민 많이 하게 된다. 생계형 탈북과 이민형 탈북문제 이야기했다. 엘리트층 견주에서 보면 한국 온다 갈까 생각할 때 제일 첫번째 생각하는 게 본인이 가진 사회적 지위 한국에 가면 밑으로 내려갈 수 있지 않느냐. 북한에서 양반 지위 살았는데 누구도 누리지 못하는 특권에서 살다가 한국가면 천민으로 떨어질지 이런 심리적 부담 내가 어떻게 극복해 나갈까 가정 내에서 애들도 아버지가 누구도 받을 수 없는 교육 시키고 가장으로서 지위 높았는데 한국 사회가면 지위 떨어지고 심리적인 담벽 어떻게 넘겠는가 이문제 많이 고심해. 한국 드라마 영화 보면 아이들때부터 배낭매고 학원다니며 공부 열심히 하고 대학 교육 굉장한데 북한도 물론 돈있는 집 중점학교 넣고 공부는 시켜. 제 아들도 한국 가서 대학 가 수십년 머리 싸매고 공부한 애들과 경쟁해 이길 수 있겠나 이런 부담감 많이 갖고 있다. 이민 온 탈북민 어떻게 사는가 많이 봐 연구원 자료 홈피 등. 물론 한국에 와 잘 정착하는 분들도 있지만 탈북민 평균 소득 146~7만원 한국 근로자 절반도 안된다 등 한국에 와서 실제 생활하며 보니 제가 생각했던 거와 많이 달랐다. 제가 사회 배출되면 한국에서 물론 자본주의 사회지만 자본주의 사회 경쟁 기초로하고 있고 생존 치열하지만 북한 주민과 사람들에게 한국에 와서 본인만 열심히 살면 여러 가능성 열려 있고 이미 한국 정부가 탈북민들 위해 어떤 시스템 있는지 알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 한국 사회를 동경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성공단을 어떻게 바라봤나?  -개성공단은 북에 있어 맨 처음 시작할 때 김정일이나 북한 당국 고충이 상당히 컸다.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제일 처음 공단 시작할 때 북은 공단 통해 중공업과 화학공업 등 덩치큰 공업 들어올 거라 생각 들어오면 한강 기적처럼 순리 밟지 않을까 탄산해 시작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중화학공업 안들어오고 소비재공업만 들어와 우리가 한국에 당한 거 아니냐 내적 논리 생겼다. 개성공단 북한 사회 미치는 여파 줄일 수 이겠느냐가 관점이었는데 다행히 개성공단 휴전선 지대 있어 다른 말로 북한 주민 일반 주민들 개성시에 갈 수 없어 개성시 주민 맘대로 다른 지역 갈 수 없어 전연지대 특별 통행증 발급받아야 개성시까지 올 수 있다. 해?는데 결국 북한 모기장 치니 모기 들어오는 거 막을 수 있었다. 이게 북의 판단이다. 이 모기장에서 모기가 새어나가지 않았나 개성공단 가면 많은 경우 노동자들에게 물자를 준다. 기름, 초코파이를 준다. 우대물자가 많은 경우 평양 비롯한 외부 시장으로 흘러들어가 초코파이 시장 인기 상품 잘사는 사람들 등산갈 때 초코파이 사갖고 가야 잘 사는 애에 속한다. 대놓고 팔면 걸리니 장마당 밑에 놓고 판다. 여자들 다가가면 돈 있는 거 알아 그럼 초코파이 몇개 살래 물어봐 개성공단은 북한의 남한발전 실상 일리는 데 커다란 역할 했다고 볼 수 있다. 현 시점에서 개성공단 어떻게 하나 개인적으로 한국 정부가 개성공단 폐쇄했는데 만일 북한 핵질주 멈추기 위해 남한 정부서부터 폐쇄 선전 조치 안 취했다면 다른 나라가 제재 따라왔을까 그렇지 않았을 거다.    공사 직무는 북한에서 어떤 직급?  -부국장급 사이 국장급보다 높지 않다    탄핵 정국 탄핵 이후 대선으로 이어져 정치적 해석도 나온다  -처음으로 공개활동 시작해 국회 정보위 분들하고 만나고 보도 나온 거 보니 일부 티비서 왜 지금 이 시점이냐, 보수계에서 쓰는 마지막 수 아니냐 , 또 현 정국 물타기 위한 국정원 작전이라고 티비 나오는 거 봤다. 이야기하고 싶은 건 전 통일하러 왔다. 한국 정치 개입할 의사 없고 한국 정치 잘 모른다. 한국 도착 순간부터 함께 다니는 분들한테 내가 언제 나가 공개활동 할 수 있고 자유롭게 할 수 있느냐 물어보니 그분들이 한국은 법치국가 모든 거 법과 규정 원칙대로 한다, 현재 우리가 가진 원칙에 의해 태 공사 11월 말 사회에 배출될 거 같다, 저 애들 생각할 때 애들 매일 인터넷하고 맘대로 다니는 애들 답답한데 정확한 원칙 규정에 복종해야 한다, 이건 국가가 세운 규정이니 누구도 어길 수 없다. 규정 시일에 맞춰 이 시점 여러분들과 기자간담회 한다.    사회배출 시점 언제 설명 들었나  -제가 한국 도착해 첫 질문이 내가 언제 배출되나, 활동하냐. 절차 쭉 설명했다. 단언하는 건 새해 전 설 전 나갈 수 있다고.    여름에 그 얘기 들었나  -네    대북제재 효과?  -직접 느낀 팩트만 얘기하겠다. 영국에 있으면서 보험 영국 조선국영보험 회사 지점 있어 북한 보험 95% 자금이 런던 보험시장서 들어간다. 세계서 제일 큰 보험 시장이 런던이다. 수십년간 북한 런던 재보험시장서 엄청난 돈 빨아들어가 이번 대북제재로 이유 유럽동냉 영국 정부 보험 런던재보험 시장 추출 결정하고 북한 보험 쫓겨났다. 하내 수천만불 빨려들어간 북한 보험 줄 막혔다. 국제기구 대사관 2명 외무성 파견 아닌 국가해사안보청 해운업 하는 부서에서 나와 외교관으로 imo에서 근무했다. 이분들 재정사정 외무성하고 달라 배 움직이니 외화 많다 대상 안되는 넉넉한 생활하는데 올해 초부터 이분들에 대한 유지비 생활 돈 나오지 않아 집주인으로부터 집 내놔라 전화 끊겠다 재정적 어려움 겪는 거 보면서 한국에 와 북한 가장 큰 외화벌이 원천 보험 해운업 제가 일하는 동료들 직접당한 고통이다. 대북제재 현주소 설명해줬다.    북미정상회담 가능성 질문에 대해 개인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김정은 5년간 시진핑 못만나 체제 끄는 김정은 외교력은?  -미국 양당제 그러나 지금까지 북한 문제에 대한 접근 법은 공화당과 민주당 완전히 달랐다. 북한이 미국 행정부와 처음 핵문제 합의한 것도 클린턴 민주당 때 일 그 이후 북한은 민주당 여러 인사와 대화채널 갖고 민주당과 계속 거래 대화 진행해왔다. 반대로 미 공화당 기본 대북 팀은 일반적으로 강경파 네오콘으로 꾸려졌다. 네오콘 가장 높은 분 존볼튼은 북한에 대해 상당히 적대적이다. 일반적 미 공화당 본능적으로 거부감 가졌다. 94년 제네바 합의 나왔을 때 미 공화당 즉시 입장 발표 정권 잡으면 제네바 합의 휴지조각 만들겠다고 했고 부시 올라가 다 뒤집어 엎었다. 북한 본능적으로 공화당에 거부적 인식이 상당하다. 앞으로 트럼프의 대북제재 라인 국무성 라인 어떻게 꾸려질지 봐야하지만 공화당 속성을부터 대북팀 강경파 네오콘 세력 다시 차지할 것이다. 중국 시진핑 관계에 대해 김정은로선 중국 하루라도 빨리 방문하지 못해 몸살 날 것이다. 김정일 김정은 후계자 내세우기 위해 중국 찾아가 그런데 김정은은 핵 개발 하겠다는 거 공개적으로 선언해 결국 지금까지 조선반도 비핵화 은폐된 구호를 들고 핵무기 개발하던 북한이 중국에 대해고 핵무기 갖겠다고 공개 선언했고 이건 중국 뺨친거 랑 같다. 시진핑 위치에서 만일 김정은 중국 초청한다면 가장 기본적 문제 답 달라 할 것 핵무기 포기 선언해라, 김정은 중국에 가서 내가 핵무기 포기할게 이런 약속 현재 못한다. 근본적으로 핵무기 걸림돌 앞에 김정은 중국 방문 성사 매우 어려울 것이다.    김양건은 어떻게 죽었나?  -김양건 어떻게 죽었나 북한 내부에서도 상당히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그러나 단지 주민들 속에서 돌아가는 말은 김양건이가 저녁에 김정은한테 가 술먹고 술 완전히 깨지 않은 음주상태서 차 몰다가 다른 차 사고로 새벽에 죽었다. 일반 주민들 속에서 도는 얘기 사실인진 모른다. 북한 대남 관련, 북한은 한국 대선 미국에서 정권 인수 과정 진행될 때 복잡한 정치 일정 맞물린 2017년 핵개발 계획표 정했다. 전술적으로 북한 어떻게 이 목표 다가설까 전술적으로 북한은 대북제재 무용론 확산시키려고 한다. 그것은 끊임없는 도발과 핵실험 해서 한국언론 미국이 북한에는 정말 약이 없다. 이방법 안된다 해서 대북제재 무용론 기울어지게 만들어 한국정부 미국 정부 계속 괴롭히면 새로 올라간 정부 정세 안정 방향으로 기조 바뀔 것이다. 한국 수출 위주 국가로 경제 불안하면 작동 못해 새로 올라간 정부 정세 안정관리 방향으로 바꿀 것이다. 그러면 북 바라는 핵동결 핵보유국 지위 얻을 수 있다. 대북제재 무용론 확대가 북의 전술이다.    장성택 처형 관련 왜 죽었는지?  -중요한 건데 목격하지 않았으니 정답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장성택 처형 문제는 북한 사회에 큰 충격 준 사건이다. 지금까지 김씨 가문 내 권력 투쟁 계속 있었다. 김정일 때도 김정일과 삼촌 김성혜 김평일 곁가지 치는 가문내 싸움 있었지만 절대 북은 공개 안한다. 다 외적으로 처리했다. 북한에서 예를 들면 김정은 올라갈때 김성혜 칠 때 곁가지 치는 거 뭘보고 곁가지라고 할까 가문 내 권력...장성택 일사천리로 회의해 처리하고 처형했다. 김정은이가 이렇게 한 게 거수인가 아닌가 두고봐야 할 일이지만 대단히 충격적 사건이다. 조용한 방법 아닌 공개적 방법으로 했을까 제 생각엔 장성택 사회 미친 영향과 권력 범위가 너무 컸다. 당 회의에서 공개하고 전 사회 운동으로 단시간에 처리 안했으면 큰 반발 있었을 것이다. 당내 정파 많이 제거했지만 당 한개부서 정파 집단 몰아 없앤 역사 없었다.    해외 공관 인권문제 진행돼 곤란하다고 했는데 탈북자 감시 공관 지시 내려왔나?  -북한은 일반적으로 탈북자와 절대 접촉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한국에 온 뒤 언론서 탈북자 만나고 이렇게 보도 나왔는데 그건 사실과 다르다. 단 최근 탈북자 정책에서 북한이 하나 취했다가 취소한 결정 탈북해온 분들 셰계 도처에서 인권 청문회 유엔 각나라 국회서 영국도 하고 탈북민 단체가 청문회 하는데 지금까지 북한은 탈북민 위주 인권청문회 외교관 주동적 참가해 인권 정책 설명하는 청문회 북한 표현으로 수라장으로 만들라 이게 북 정책이다. 몇 곳에서 해봤다. 북한 외교관 발언권 주지 않으니 연설문 읽고 탈북민 퇴장하고, 영국도 많은 해외가 그렇다. 해외 나온 외교관 제기했다. 이거 국제사회 나가 국가 대표하는 북 외교관들이 탈북민들과 1대1로 공개장소에서 싸우니 출연하는 탈북민들이 망명정부 북한 대표하는 망명정부처럼 보여지고 북한 취약성 국제사회 더 보여준다. 탈북민 주최 행사 외교관이 나가서 1대1 싸우는 거 바람직하지 않다. 건의해 승인됐다. 지금은 탈북민들 국제인권청문회 내부 행사 북한 외교관 참가해 수라장 만드는 건 찾아볼 수 없다. 탈북민이 얻은 큰 승리로 평가한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일문일답] 태영호 “北, 핵질주 마지막 직선 주로 들어섰다”

    [일문일답] 태영호 “北, 핵질주 마지막 직선 주로 들어섰다”

    지난 7월 귀순한 태영호 전 주(駐)영국 북한대사관 공사가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태 전 공사는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통일부 출입기자단과 공개 간담회를 하고 “김정은은 위험천만한 핵 질주의 마지막 직선 주로에 들어갔다”면서 “김정은의 손에 핵무기가 쥐어진다면 우리는 영원히 김정은의 핵 인질이 되고, 한반도에서 핵 전쟁이 일어난다면 자그마한 영토는 잿더미로 변해 구석기 시대로 되돌아 갈 것”이라고 밝혔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의 핵개발 의도와 함께 자신의 망명 이유와 김정은 체제의 실상도 밝혔다. 태 전 공사는 “우리 민족을 핵 참화에서 구제하기 위해 오래 고민했다”면서 “어떻게 하면 김정은 정권을 붕괴시키고 우리 민족을 다가오는 핵 참화에서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공개 활동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태 전 공사와의 일문일답. ▲모두발언몇 달 전까지만 해도 김정은 정권을 위해 남북 외교대결 최전선에서 활약해 온 태영호다. 해외에서 자유민주 체제의 우월성을 실감하면서, 그리고 인터넷 등을 통해 한국의 진화하는 민주화 과정을 목격하면서 북한 정권에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 북한에 남겨둔 가족과 일가 친척들이 연좌제로 처벌받을 것이 두려웠다. 김정은이 해외에서 공부해 북한과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려 줄 것이라는 한 가닥 희망을 갖고 살았다. 그러나 고모부(장성택)는 물론 측근도 무자비하게 처형하는 행태를 보고 점점 절망감에 빠졌다. 특히 김정은이 제7차 당 대회를 기점으로 한국과 미국 대통령 선거의 정치적 교란기를 이용해 핵 개발을 2017년 말까지 무조건 완성한다는 정책을 채택하고 핵 질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빨리 한국으로 가서 민족을 핵 참화에서 구원하기 위해 무엇인가 해야 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됐다. 지금 김정은 체제는 내부적으로 썩어들어가고 있다. 낮에는 김정은 만세를 외치지만 밤에는 이불을 쓰고 한국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이런 동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정은은 주민과 간부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면서 공포통치를 하고 있다. 저는 북한 대사관을 벗어나는 순간 (가족에게) 내가 너희의 노예 사슬을 끊어 준다고 말했다. 통일을 하는 것은 우리 민족을 위한 새로운 도약 기회이기에 앞서 저와 여러분의 생사 전반이 달려 있는 중대한 문제다. 지금 김정은은 핵개발 완성 시간표까지 정해놓고 위험천만한 핵 질주의 마지막 직선 주로에 들어섰다. 김정은의 손에 핵무기가 쥐어진다면 우리는 영원히 김정은의 핵 인질이 되고, 한반도에서 핵 전쟁이 일어난다면 자그마한 영토는 잿더미로 변해 구석기 시대로 되돌아 갈 것이다. (북한 주민에게) 김정은을 가볍게 쳐내고 통일된 나라에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자. 이미 수만 명의 북한 주민이 대한민국으로 왔다.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어서 대한민국으로 와라. 통일이 되면 탈북민은 통일의 선봉 투사, 노예 해방자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받게 될 것이다. 3만 명 탈북민의 김정은 타도 외침이 울려퍼질 때 통일의 아침은 반드시 밝아 올 것이다. ▲질의응답-북한이 보통 해외에 파견하는 간부들은 자녀 1명은 평양에 두도록 하는 것으로 아는데 예외였나.→김정은 정권은 부모와 자식 간의 가장 숭고한 사랑마저 악용해 해외 상주 직원은 자녀 중 1명을 북한에 인질로 잡아놓고 있다. 저는 천만다행으로 자식을 모두 데리고 올 수 있었다. -북한이 2017년 말까지 핵 개발을 완료한다고 했는데 더 설명해달라.→북한은 김일성이나 김정일 때도 한 번도 핵 개발을 중단한 적이 없었다. 다만 김정일 당시는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라는 거짓 외피를 뒤집어쓰고 은밀히 핵 개발을 했다. 김정은은 핵·경제 병진 노선을 당 정책으로 공식 채택했다. 경제는 세계와 주민을 기만하기 위한 것이고 사실상 핵 최우선 정책이다. 김정은은 핵 개발을 가장 빠른 시간에 완성할 것을 당 정책으로 규정했다.북한은 한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고, 미국에선 대통령 선거 이후 정권 인수가 진행되는 2016년부터 2017년 말까지를 핵 개발의 적기로 본다. 이 기간에 국내 정치일정 때문에 미국과 한국이 북한의 핵 개발을 중지시킬 수 있는 물리적, 군사적인 조치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타산(계산)이 깔렸다. 북한은 한국에서 대선이 끝나고 미국에서 새로운 대북 정책팀이 꾸려지면 북한과 새로운 정책을 시도할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럴 때 북한은 빨리 핵 개발을 완성해서 새로 집권한 미국, 한국 정부와 북한이 도달한 핵보유국 지위에서 새로운 대화를 시도할 것이다. 미국과 한국 정부가 유지한 ‘비핵화 후 대화’ 도식을 깨고 제재 해제와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내세워 핵 보유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려는 전략이다. -언제 핵실험을 실시할 것이니 구체적으로 대응하라는 방침이 (재외공관에) 있었나.→국회 정보위에서 (제가) 언급했다는 공문 문제는 의도와 다르게 보도됐다. 북한은 해외 공관에 언제 핵실험을 한다는 등 구체적인 국가 기밀에 속하는 것을 공문으로 보내지 않는다. 국회 정보위에 나가서는 북한의 현재 핵 개발과 관련한 정책적 측면을 얘기했다. -한국에 도착한 시기와 경로는. 빨치산 가문 출신인가.→여름에 한국에 와서 (지금이) 첫 겨울이다. (항일 빨치산 1세대이자 김일성의 전령병으로 활동한) 태병렬과는 어떤 혈연적 관계가 없다. (부인) 오혜선은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이자 노동당 군사부장을 지낸) 오백룡과 혈연관계다.탈북 시기나 경로와 관련해서 언론에 보도된 대부분의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언론에 나서고 적극적으로 공개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북한 내 가족의 신변은 걱정되지 않았나.→우리 민족을 핵 참화에서 구제하기 위해 오래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김정은 정권을 붕괴시키고 우리 민족을 다가오는 핵 참화에서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공개 활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북한에 두고 온 가족과 저 때문에 피해를 본 동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제가 방구석에서 눈물을 흘려도 소용이 없다. 김정은 정권과 싸울 때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 -미국은 망명지로 생각하지 않았나.→한반도가 외세에 의해 분단된 지 70여 년이 지났지만, 하루빨리 저의 대(代)에 나라를 통일하는 것을 평생의 숙원으로 생각하고 있다. 북한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대한민국에 와서 통일을 위한 투쟁을 벌이는 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김정은이 사라지면 북한이 붕괴한다고 말한 이유는.→북한에서 공산정권 수립 70년이 됐다. 사회제도가 수립돼 70년이 지난 오늘까지 공포정치와 처형으로 유지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북한은 계급투쟁에 기초한 공산주의 이념에 더해 지도자에게 충(忠)과 효(孝)를 강조하는 조선 시대 ‘선비학’에 기초해 유지됐다. 정체성과 명분을 중시한다. 김정은 시대에 와서 북한은 지금까지 유지되던 명분과 정체성을 잃었다. 김정은까지 겪고 본 북한 주민은 물론 엘리트층도 북한 세습 체제는 미래가 없다고 느끼고 있다. 저는 김정은이 마지막이라고 확고히 이야기할 수 있다. -현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보나.→전문가 사이에서 현 대북정책에 대해 논쟁이 많은 것을 한국에 와서 언론을 통해 봤다. 대북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과 대북정책을 강경 모드로 유지해서 김정은 정권을 고립으로 몰고 가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김정은의 현재 핵 개발 정책을 포기시키느냐 마느냐는 (경제적) 인센티브의 문제가 아니다. 김정은 정권은 곧 핵무기다. 김정은이 있는 한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1조 달러, 10조 달러를 준다고 해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현재 북한의 핵 개발이 어떤 상태까지 왔다고 보나.→핵 개발의 정책적 측면을 말씀드린 것이다. 핵 개발의 수준이 어느 지점에 왔는지는 잘 모른다. 북한은 체제 특성상 외무상이나 더 높은 사람도 핵 개발이 어느 수준에 왔는지 모른다. -영국에서 체제 선전을 할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북한의 일반 주민은 물론이고 엘리트층도 기회주의적으로 살고 있다. 저도 ‘김정은 만세’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고 기회주의적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영국에서 각이(各異)한 계층을 만나면 대부분의 사람은 어떻게 그런 북한 체제를 홍보할 수 있느냐고 얘기한다. 직무상 북한 체제를 옹호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외무성에서 일했는데 북한이 중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정은은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북한이 중국에 자주적인 것은 사실이다. 북한은 중국의 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라는 ‘동생’이 배짱을 부려도 중국은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북한이 어떤 일을 해도 중국은 ‘버퍼 존’(완충지대·buffer zone)을 유지하기 위해 끌려갈 수밖에 없다.중국이 결심만 한다면 북한 정권을 끝내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다가올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와 미국이라는 물리적 존재를 막기 위해 아직도 김정은 정권을 비호하고 있고,김정은 정권은 이를 잘 알고 있다.북한은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핵 개발에 대한 ‘면죄부’로 생각하고 있다. -외교관 경력과 마지막으로 평양을 떠난 시기는.→1990년대 말에는 덴마크와 스웨덴, 2000년대에는 영국에서 근무했다. 북한에서 마지막으로 (해외 근무를) 간 것은 2014년 초다. -북한 당국이 경제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이 있다면.→북한이 현재 직면한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올바른 경제정책을 주민에게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북한은 점차 시장에 의거한 경제로 변화하고 있다. 북한 경제는 원시적 자본주의인데 정책은 사회주의 계획정책이다. 북한이 현실을 인정하고 경제정책을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시장경제에 의한 정책으로 바꾸는 것이 순리다.김정은과 노동당은 왜 정책을 바꾸지 못하느냐는 질문이 제기된다. 북한이라는 사회는 수령의 신격화에 기초해서 움직인다. 수령은 신과 같은 존재고 모든 의식주는 수령이 보장해 줘야 한다. 경제정책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움직이게 하면 북한 사회에서 점차 김정은의 존재는 없어진다. 그래서 현실에 맞지 않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유지하고, 주민이 세뇌 교육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효과를 낳고 있다. -핵실험 등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김정일과 김정은의 차이점은.→북한의 의사결정에서 가장 핵심기구, ‘컨트롤 타워’가 어디냐고 모든 사람이 물어봤다. 정책을 통합·조정해서 김정은에게 보고하는 컨트롤 타워라는 것은 북한에 없다. 북한은 김정은이라는 신(神)과 모든 정책부서가 종적으로 연결된 사회다. -한달 월급 얼마였나?→차마 월급을 공개하기는 여러분들 앞에서 그렇다. 한국분들이 들으면 생존이 가능하냐고 생각할 정도다. 나라마다 다른데 대사는 900~1100불, 참사, 공사는 700~800불. 1000불도 안 되는 돈으로 영국에서 어찌 살 수 있나 의문 제기되는데, 북한은 말하자면 사회 자체가 수용소고 병영이다. 대사관은 그 축소판이다. 북한 외교관들은 대사관 안에서 집체 생활을 한다. 전기세, 물세 등 국가가 부담하고 월급은 본인 식생활, 옷만 하면 돼 생존이 가능하다. 또 가능한 한 모든 수단 방법 동원해 돈을 번다. -한국 드라마는 뭘 보나?→한국 드라마는 사람, 계층마다 다르다. 북한 사람치고 한국 영화, 드라마 못 본 사람은 제가 아는 사람 중에는 없다. 공부한 사람들은 역사물 좋아한다. 불멸의 이순신, 육룡이 나르샤, 정도전. 일반 주민들은 겨울 연가, 가을 동화, 풀 하우스 등등, 이를 차단하는 조치가 간단치 않다. 지하철 공공버스 이런데 109 소속이 나가서 수시로 검열한다. 북한 애들은 너무 남한 드라마 많이 봐서 말투도 바뀌었다. 자기야 오빠야, 할꼬야? ㅋㅋㅋ, 이런 거 북한에는 전혀 없던 표현들이다. 선전원이 잡아서 텍스트 딱 보고 한국 말투 있으면 바로 ‘가자’한다. 근데 이게 또 돈벌이가 됐어. 전화 뺏기면 20~30달러 주면서 살려주십쇼 하면 된다. 보위부원들이 다 지우라고 해서 돌려준다. 새로운 거 보려고 하고 없는 것 추구하려는 속성은 막을 수 없어. 북한이 주민 통제 하다하다 막지 못하는 건 2가지. 마약과 한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목도했는데?→사람이 살아가고 나라 운영하는 데서 시스템이라는 게 대단히 중요하구나라는 건 한국 정치 정세 보면서 느낀다. TV 보면 당장 나라가 끝날 거 같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평온하게 지내고 아무 일 없는 거처럼 사회가 가동된다. 세계적으로 100만명이 모였다 흩어질 때 경찰 연행이 없고, 시위 후 청소하는 장면 보고 대단한 감명 받았다. 한국이 세계 민주화 과정을 새로운 단계로 선도해서 끌고 나가고 있지 않느냐, 한국이 민주화 선두로 바뀌는 과정이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요즘 北에선 지방 간부들까지 “난 1번 동지”

    지역 소왕국 구축… 권력 휘둘러 北 당국 외화벌이 힘들어지자 몽골 광산에 노동력 수출 타진 북한의 최고계급을 뜻하는 ‘1번 동지’라는 호칭이 지방 간부들 사이에서 유행한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2일 보도했다. 함경북도의 한 소식통은 RFA에 “이제는 도당 책임비서나 부서 책임자들까지 모두 ‘1번 동지’로 통한다”며 “이러한 변화는 아첨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지방 하급 간부들이 자신의 상관이 최고라는 의미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출신성분이 좋은 간부들의 경우 지역에서 자신만의 소왕국을 구축하고 ‘1번 동지’로 행세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특히 함경북도 부령군당 책임비서 고응선은 함경북도에서 ‘1번 동지’로 알려진 대표적인 인물”이라며 “그는 광복 전 김일성과 함께 중국 길림육문중학교를 다닌 고재룡의 손자로 부령군 일대에서 ‘1번 동지’로 행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소식통도 “부령군의 군당 책임비서는 무지막지한 성격을 가진 ‘1번 동지’로 알려져 있다”면서 “지난 7월 그의 지시로 (무리한) 산림 조성 사업이 진행되면서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한 적이 있다”고 언급했다. 북한에서 ‘1호’나 ‘1번’은 ‘1호 행사’, ‘1호 도로’ 등 최고지도자에게만 붙이는 수식어로 주민들에게 인식돼 왔다. 그러다가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고모부였던 장성택 전 국방위 부위원장이 북한의 실권을 쥐고 있을 당시 간부들 사이에서 최고지도자를 뜻하는 ‘1번 동지’라고 불리다 ‘불경죄’로 처형됐다. 한편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외화벌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 당국이 몽골 광산에 노동력을 수출하는 방안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몽골의 한 건설 관계자는 RFA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 당국이 최근 북한 노동력을 활용하는 방안을 세우고 몽골 측과 계속 접촉을 시도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몽골은 2008년부터 북한 노동자를 대규모로 고용해 왔으며, 2013년에는 5000명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4년부터 시작된 몽골의 경제 불황으로 현재 몽골 내 북한 노동자는 1000여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장성택, 北이익보다 중국과 호텔 경영 더 열 올려”

    “장성택, 北이익보다 중국과 호텔 경영 더 열 올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고모부였던 장성택(1946~2013)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북한의 이익보다 훙샹(鴻祥)그룹 오너 마샤오훙(45·여) 총재와 중국 선양(瀋陽) 칠보산호텔의 공동운영을 중시했다”고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23일 보도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날 북한 관계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작성한 기사를 통해 “마 총재와 북한과의 관계가 깊어진 것은 2010년쯤으로 보인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신문은 “장성택이 영양보조식품 제조와 판매 계획을 세웠고 중국 내 기업에 설비 비용 견적을 의뢰한 결과 수백만 달러가 드는 것으로 나왔다”면서 “장성택은 ‘석탄판매 이익을 재원으로 한다’고 전하면서 이 계획을 당 노동행정부에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계약이 성사될 즈음 장성택은 돌연 계약사(社)를 마 총재 관련 기업으로 변경했다. 마이니치는 또 비슷한 시기 칠보산호텔 운영을 주도하던 북한 대외보험총국 중심인물이자 장성택의 측근인 “박순철 부총국장이 호텔 경영난에서 탈피하고자 장성택의 뜻에 따라 마 총재와 공동경영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 합의안은 마 총재로부터 5300만 위안(약 87억원)을 투자받아 호텔을 수리하고 영업권은 마 총재에게 양도하며 마 총재는 월 5만 달러(약 5500만원)의 임대료를 북측에 지불하는 것으로 정했다고 신문은 소개했다. 이와 관련해 북한 내에서는 “마 총재가 지불하는 임대료가 너무 적다”, “칠보산호텔을 마 총재에게 빼앗겼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칠보산호텔은 2012년 재개장했고 당시 마총재는 “경영권은 중국 측에 있다”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은 “장성택이 왜 북측의 이익보다 마 총재와의 공동경영을 중시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며 중국 측이 실태를 어디까지 파악할 것인지가 주목된다고 덧붙였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WSJ “김정은, 김일성 서민적 이미지 그대로 따라해”

    WSJ “김정은, 김일성 서민적 이미지 그대로 따라해”

     지난 9일 실시된 북한 5차 핵실험을 계기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단순히 어리고 미숙한 지도자가 아닌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 같은 ‘노련한 독재자’라는 평가가 다시 나오고 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서울발 기사에서 김정은이 북한에서 현재까지 숭배받고 있는 김일성의 선전과 경제정책, 심지어 옷과 헤어 스타일까지 따라 하고 있다면서 그가 미숙하다는 전반적 평가와 달리 계획적인 지도자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인용해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특히 김정은은 김일성과 마찬가지로 정적을 숙청하면서 굳어진 무자비한 이미지를 불식하려 서민적 스타일이나 실용주의를 활용하는 한편, 경제성장과 핵무기 개발을 동시에 꾀하는 ‘투트랙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WSJ가 분석했다.  김일성은 한국전쟁 뒤 중공업과 광물자원 개발에 집중하는 경제정책으로 북한의 번영을 끌어냈지만, 후계자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0년대 대기근에 직면해 군을 우선시하는 선군정치와 경제적 내핍정책을 펼쳤다.  그에 반해 김정은은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 아버지 대신 할아버지의 정책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은 최근 김정은이 경기부양을 목표로 평양에서 대규모 진행하고 있는 주택 및 도시 건설사업과 제한적이나마 시장경제도 허용하고 있다는 점을 대표적 예로 꼽았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사기업 활동을 금지해왔지만, 김정은은 장마당이나 소규모 자영업을 용인해 최근 북한에서는 그동안 거래가 금지됐던 중국제 스마트폰이 인터넷 접속이 불가능한데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또한 고모부 장성택 등 정적 100여명을 축출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잔인한 이미지를 가리려고 김정은은 잘못된 기상예보를 한 관리를 질책하거나 놀이공원에 쪼그려 앉아 잡초를 뽑는 등 서민적 모습을 의도적으로 노출하기도 했다.  WSJ는 군부 내 정적을 숙청하는 김정은의 행보는 노동당의 권위를 되살려 국민 지배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김일성의 정책을 되풀이한 것이라며 김정은은 줄어든 군대의 역할을 대신하기 위해 김일성의 꿈이기도 했던 대량파괴무기의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일성은 구소련의 도움을 받아 핵 개발 프로그램을 시작했지만, 북한은 김일성 사후인 1994년 제네바 핵협상을 통해 영변 핵시설 동결 등을 합의한 바 있다.  김정일은 핵무기 프로그램을 원조와 안보 협상 카드로 이용했지만 김정은은 이와 달리 군부 장악력을 강화하고 남한을 위협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를 활용한다는 점은 다르다고 WSJ는 설명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사설] 김정은 철권·공포 통치로 자멸 재촉하나

    북한 내각 부총리인 김용진이 지난 7월 공개 처형됐다고 한다. 지난 6월 29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석상에서의 자세 불량을 지적당한 뒤 보위부 조사를 통해 반당·반혁명분자, 현대판 종파분자로 낙인찍혀 총살당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통일부가 어제 밝혔다.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은 평소 고압적 태도를 보였던 데다 권력 남용까지 적발돼 8월 중순까지 한 달여간 지방의 농장에서 혁명화 교육을 받았고, 최휘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도 당 선전사업과 관련해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의 질책을 받은 뒤 5월 말 이후 지금까지 혁명화 교육을 받고 있다고 한다. 집권 이후 폭압적인 철권·공포 통치를 통해 권력 기반을 다져 온 김정은이 여전히 측근들의 목에 ‘칼날’을 들이대 가며 ‘억지충성’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김정은의 억지스럽고도 잔혹한 통치 스타일 때문에 현재 북한에서는 김정은을 제외한 그 어떤 권력층 인사도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처형된 간부는 지난해 말 기준 무려 1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파악하고 있다. 탈북자 단체 등 일각에서는 그보다 훨씬 많은 130여명까지 추정한다. 숙청 대상은 당·정·군은 물론 가족·측근도 예외가 아니다. 김정은은 2013년 12월 고모부이자 2인자로 군림하던 장성택을 전격 처형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지난해 4월에는 재판 절차도 없이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대공화기인 고사총으로 공개 처형해 그 잔혹성을 국제사회에 각인시켰다. 철권·공포 통치의 종착점은 결국 정권의 궤멸이라는 사실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를 꼽을 수 있다. 동유럽 변화의 거대한 물결에 역행하며 철권을 휘두르다 결국 성난 시민들에게 붙잡혀 처형당하지 않았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월 22일 을지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북한 김정은 정권이 지속적인 공포정치로 주민들을 억압하고 있어 엘리트층조차 무너지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김정은 철권통치의 강도가 권력 엘리트층이 감내할 수 있는 임계점을 벗어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탈북 도미노에 이은 정권의 궤멸이다. 그 과정에서 측근들 사이의 충성 경쟁이 본격화돼 극단적이고 무모한 대남 도발도 우려되는 만큼 우리는 여기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 ‘자세불량’하다고 처형… 北 엘리트 수난시대

    ‘자세불량’하다고 처형… 北 엘리트 수난시대

    김영철도 한 달가량 혁명화 교육 김정은 ‘통치 4년’ 100여명 처형 북한의 김용진 내각 부총리가 지난달 처형됐고,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지난달 중순부터 한 달가량 혁명화 교육을 받았다고 통일부가 31일 밝혔다. 김정은 집권 이후 최고위급들에 대한 숙청이 이어지며 ‘북한 엘리트 수난시대’라는 말까지 등장하는 등 북한 내부가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31일 정례브리핑에서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최휘도 혁명화 조치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김용진은 ‘자세 불량’의 죄목으로 처형을, 김영철은 ‘고압적 태도’, 최휘는 ‘지시 불이행’등으로 경질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2011년 말 집권 이후 기존 북한 권력층의 실세를 숙청하는 이른바 ‘공포정치’를 통해 간부들 길들이기에 나섰다. 김정은의 첫 표적은 김정일 사망 이후 군부 실세로 꼽히던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이었다. 리영호를 포함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장례식 당시 영구차를 호위했던 김정각, 김영춘, 우동측 등 ‘군부 4인방’도 김정은 시대 개막 이후 모두 숙청되거나 일선에서 물러났다. 특히 2013년 12월에는 자신의 고모부이자 김정일의 사망 이후 북한 2인자로 군림하던 장성택을 전격 처형했다. 이에 앞서 장성택의 측근인 이용하 당 제1부부장과 장수길 당 부부장도 비리 등 반당 혐의로 처형됐다. 이어 지난해 초에는 변인선 총참모부 작전국장, 조영남 국가계획위 부위원장도 김정은에게 이견을 제시했다는 이유로 처형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지난해 4월에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재판 절차도 없이 대공화기인 고사총으로 공개 처형되면서 김정은 체제의 잔혹성이 국제사회에 거듭 알려졌다. 현영철 처형 한 달 뒤인 지난해 5월에는 산림녹화정책에 불만을 드러낸 최영건 내각 부총리도 처형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의 ‘통치 4년’ 동안 처형된 북한 간부는 지난해 말 기준 무려 1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정보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한 대북소식통은 “최근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김정은 곁에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수명은 짧아진다’는 말이 돌고 있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北 김정은式 ‘공포정치’···고사총으로 내각 장관급 2명 ‘공개처형’

    北 김정은式 ‘공포정치’···고사총으로 내각 장관급 2명 ‘공개처형’

    북한의 농업과 교육 정책을 담당해온 내각상(相·장관에 해당) 두 명이 최고지도자에 대한 불경과 ‘반(反)혁명’ 등의 죄목으로 이달 초 공개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30일 중앙일보는 대북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처형된 북한 농업상은 지난 4년 간 내각의 농업 문제를 책임져온 황민이란 인물”이라면서 “그가 추진해온 사업이 김정은 체제에 대한 정책 도전으로 결론 나 처형당한 것으로 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황민에 대한 검열에 착수한 지난 6월말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후임 농업상(고인호)을 임명했다. 이 소식통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공개처형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특별지시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며 “형 집행은 평양 소재 강건종합군관학교에서 고사총(주로 항공기를 사격하는 데 쓰는 기관총) 사격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나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같은 노동당·군부 인물이 아닌 내각 전문부서의 장관급 엘리트 간부를 처형한 사실이 드러난 건 처음이다.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4~6월 주민 1인당 하루 360g(유엔 권장량의 62% 수준)의 식량을 배급해 2011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는 등 식량 사정이 여전히 어렵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인 1997년 아사자가 대량 발생하자 농업담당 당 비서 서관희를 간첩 혐의로 몰아 처형해 민심을 수습하려 한 적이 있다고 중앙일보는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이번 처형이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태영호 공사 일가의 탈북 사태 와중에 이뤄져 핵심 엘리트 이탈 방지를 위한 김정은 위원장의 강수란 분석이 나온다. 태 공사의 탈북은 이들의 처형 전인 지난달 말 평양에 보고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현학봉 평양 복귀 명령… 후임에 軍출신 내정된 듯

    현학봉 평양 복귀 명령… 후임에 軍출신 내정된 듯

    태영호 관련 문책 차원 관측 김정은 “장성택 흔적 모두 지워라”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 공사의 직속 상관인 현학봉 영국 주재 북한 대사가 본국 소환 명령을 받은 것으로 23일 알려졌다. 외교당국자는 “현 대사가 본국 소환 명령을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이는 신빙성이 있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북한은 현 대사의 후임으로 군 출신 외무성 국장을 내정하고 현재 아그레망을 진행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외무성 내 대표적 실력파로 알려진 현 대사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강화 국면에서 영국 언론과 인터뷰를 자청해 미국의 핵 공격에 언제 어디서든 핵공격으로 대응할 준비가 있다는 등의 발언을 하며 북한 입장을 서방에 알렸다. 그는 주 유엔 대표부 1등 서기관과 북한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을 거쳐 2011년 12월부터 4년 반 넘게 주영 대사를 지내고 있다. 현 대사는 태 공사 망명에 대한 북한 당국의 조사 결과가 나오는 10월쯤 평양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자신이 데리고 있던 태 공사가 한국으로 망명하면서 현 대사가 문책 차원에서 본국에 송환되거나 입지가 축소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다만 현 대사의 본국 송환 결정이 태 공사 망명 이전에 이뤄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불경죄로 처형한 고모부 장성택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은 장성택이 관여한 ‘대동강’, ‘해당화’가 명칭으로 들어간 시설에 과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면서 “지난 6월에는 평양 용성구역에 있는 ‘해당화김치공장’을 시찰하던 중 돌연 불쾌해하며 해당화가 들어간 시설 이름을 모두 ‘류경’으로 바꾸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평양의 유명 종합편의시설인 ‘해당화관’은 ‘류경관’으로, ‘해당화식품교류사’는 ‘류경식품교류사’로 각각 명칭이 변경됐다. 장성택은 세계 각국에 ‘해당화’라는 북한 식당 설립을 주도했으며, 식당 수익 중 일부를 비밀 자금으로 운용하다 김 위원장에게 적발됐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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