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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군포로 송환(정직한 역사 되찾기)

    ◎‘실종 45년’ 2,000명 생존 추정 올해는 6·25전쟁 발발 48주년,종전 45주년이다.반세기 동안 죽은줄로만 알고 있던 국군포로들이 버젓이 살아서 돌아오는 현실은 우리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이는 그동안 무대책으로 일관해온 우리의 국군포로 송환 문제 인식에 일대 각성의 전기를 가져왔다.18일은 이승만 정부의 반공포로 석방 45주년이기도 하다 최근 梁珣容 일병의 귀환은 94년 趙昌浩 소위의 귀환과 함께 생존 국군포로의 존재를 명확히 했다.100여명의 생존자 명단까지 확인되고 있다.북한에 억류돼 강제노역 등 어려운 삶을 연명해온 이들은 대부분 70세 전후.더이상 기다릴 여유도 없다.이들의 송환노력에 박차를 가하는 것야말로 민족상흔 치유의 첫걸음이 된다.그 현실과 대책을 살펴본다. ◎정부의 해결방안/송환문제는 남북관계 진전 봐가며 추진/정착돕게 연금지급 근거법 등 제도 정비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 문제와 관련,정부는 두갈래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1차적으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강구중이다.북한은 6·25전쟁 포로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때문에 전쟁포로의 존재 유무를 놓고 소모적 공방을 벌이기 보다는 우선 생사확인부터 해보자는 취지다.송환은 남북관계의 진전을 보아가면서 추진키로 했다. 또 지난해 탈북자보호법을 만든데 이어 올 가을 정기국회에서 ‘귀환자지원법’을 제정키로 했다.국군포로나 강제납북자는 대한민국 국민이다.이들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경우는 북한 주민의 귀순과 다르다. 지원내용도 달라야한다.정부는 지난해말 귀환한 梁珣容씨 같은 국군포로에게 정당한 수준의 연금을 지급할 근거규정도 마련키로 했다. 인도적 차원에서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 송환 추진이 당연하다.제네바 포로협약을 근거로한 송환 공식요구,유엔 총회 및 안보리에서 문제제기 등을 생각할 수 있다.남북경협과 포로송환을 연계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를 쟁점화함으로써 지금도 어려운 남북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를 가능성을 정부는 염려한다. 曺龍男 통일원 인도지원1과장은 “북한은 현재 국군포로가 없으며 강제납치한 경우도 없다고주장하고 있다”면서 “남북관계의 확실한 진전 없이는 국군포로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고 밝혔다.유가족들이 여러 국제기구를 통해 개인 차원에서 국제여론을 환기시키는 방법도 있으나 실효성이 의문이라는 것이다. 국군포로 및 강제납북자 유가족과 민간단체들은 정부의 태도가 불만이다.李哲承 건국50주년기념사업준비위 회장은 “국군포로와 함께 6·25 당시,그리고 그 이후 강제납북된 민간인들을 송환하기 위해 유엔과 국제적십자사를 통해 정정당당하게 우리의 주장을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기념사업준비위는 국군포로 송환 촉구 100만 서명운동도 벌이고 있다. ◎2만2,562명 전사/6·25 희생국군 분류/1만7,020명 실종처리/민간 7,000여명 남북 국방부는 6·25전쟁에서 실종된 국군숫자가 4만1,954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중 2만2,562명이 추후에 전사처리 되었다. 나머지 1만7,020명을 실종으로 처리했고 2,372명을 미확인으로 분류했다. 국방부의 실종자 분류는 정확한게 아니다.주로 유가족 증언을 토대로 한탓이다.유가족이 신고해오면 전사로 처리하고 제보가 없는 경우 실종으로 분류했다. 현재 생존 국군포로는 2,000명 안팎일 것으로 관계당국은 추산하고 있다. 6·25전쟁 기간동안 납북된 민간인을 뜻하는 실향사민(私民)은 7,000여명이다.동진호 선원 등 전쟁후 납북억류자는 450명이다. ◎기고/지만원 군사평론가/‘戰士일생 관리’시스템 갖춰라 ○희생자 보상 형편없어 군이 무기를 구매할 때는 무기의 일생을 관리하기 위한 ‘종합군수지원’(ILS;Integrated Logistic Support)시스템을 운영한다.그러나 정작 전사(戰士)들의 일생을 관리하는 ILS시스템은 만들어져 있지 않다.군이 스스로의 일생을 관리하는데 게을리해온 것이다. 94년 10월 趙昌浩 소위가 64세의 나이로 귀환했다.그에게는 밀린 봉급,퇴직금,연금조로 1억6,000만원이 지급됐다.조국을 위해 아까운 일생을 송두리채 희생당하고 탈출해온 노전사에게 주어지는 돈 치고는 너무나 초라했다. 98년 4월 梁珣容씨가 72세의 나이로 귀환,기자회견을 가졌다.그에게는 45년간 밀린 사병봉급 200만원이지급됐지만 그는 이 돈을 군에 반납했다.그에 대한 국가의 대접이 겨우 이런 식이냐는데 대한 섭섭함과 항의의 뜻이었을 것이다.결국 그에게는 탈북자지원법에 따라 6,400만원 지급이 결정되긴 했지만,이 또한 국가의 도리가 아니었다. ○희생의 대가 충분히 정부는 ‘국군포로(귀환자)특별법’을 연내로 제정하고 적십자 기구나 유엔 등의 협력을 얻어 북한에 남아 있을 포로의 귀환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지만 포로송환 문제를 전적으로 담당하는 주관 주체도 아직은 만들지 않고있는 듯하다.전사들의 일생을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이 준비돼 있지 않은 것은 바로 군 자신들의 수치요,직무유기다.그러나 더 부끄러운 것은 전우애의 실종이다. 200만원을 돈이라고 지급하는 군수뇌의 식견에도 문제가 있지만 더 큰 문제는 군전체가 72세의 나이로 적진을 탈출해온 기막힌 영웅들을 열열이 환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현역 장병들과 향우회에서는 실직자들에게는 봉급의 10%를 떼어주면서도 그 기막힌 고통을 치르고 돌아온 전우를 위해 단 한푼의 성금도 갹출하지않았다.눈만 뜨면 외치는 전우애는 과연 무엇이며 이들이 목숨바쳐 따랐던 상관이란 과연 무슨 존재들이란 말인가. 전쟁이 나면 70만 현역은 누구나 다 포로가 될 수 있다.그들도 포로가 되면 두사람의 노병들처럼 북에서는 아오지탄광에서 혹사 당하고,남에서는 불청객에 가까운 대우를 받게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희생당하는 자만 억울하다.그러면 다음 전쟁에는 누가 나가 싸우려 할 것인가.국가는 위기에 처했을때 국민에게 국가를 위해 목숨 바쳐달라고 당당히 호소할 수 있어야 한다.그러나 지금의 우리 국가는 그런 입장에 서있지 못하다. ○보병전 개념 수정해야 이번 기회를 통해 군은 두가지 교훈을 얻어야 한다.하나는 전사의 일생관리를 책임지는 곳은 군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집행은 다른 행정부처에서 하더라도 마스터플랜과 시스템은 군이 만들어야 한다.아울러 월남전에 참가했던 병사가 고엽제 질환과 유사한 질환을 앓으면 무조건 보상해주어야 한다. 또다른 하나는 실속없이 사상자와 포로를 대량으로 양산할 수 밖에 없는 지금의 보병전 개념을 수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지금의 전쟁은 전자전과 화력전이다.군은 이에 대한 충분한 장비를 구비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군은 현대적 장비를 가지고도 19세기식 보병전에 집착하고 있다.세상이 모두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한국군만 변화의 사각지대가 아닌지 생각해주기 바란다. ◎작년 탈북 국군포로 梁珣容씨 인터뷰/“편지왕래 물꼬라도 텄으면”/북에 남겨진 전우 생각하면 가슴 찢어져/정확한 숫자 조사·국제여론 유도 아쉬워 지난해말 북한을 탈출한 국군포로 梁珣容씨(72)는 경남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고향집에서 살고 있다. 실명한 왼쪽 눈,몇 개만 남은치아,절룩이는 다리….45년간 긴긴 억류의 흔적은 아직도 그를 괴롭힌다. 그러나 북녘에 남겨진 동료들을 생각하면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프다. ­귀환후 첫 6·25를 맞는 느낌은. ▲지금도 미귀환 포로로 북한 공산체제 아래서 온갖 고난을 당하고 있을 동료들이 생각납니다.제네바협정을 지키지 않는 북한당국에 대해 우리 정부의 대응이 너무 미약한 것 같습니다. ­정부에 바라는 사항은. ▲미국은 6·25전쟁 전사자들의 유골까지 본국으로 송환하고 있는데 우리는 포로는 물론 전사자 조사 조차 제대로 안돼 있어 실망을 금할 수 없습니다.이는 역대 대통령들이 성의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백발노인이 자식의 생사를 알기 위해 찾아와 눈시울을 붉히는 것을 봤을 때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북한을 상대하려면 처음부터 너무 크게 시작하면 안됩니다.우선 편지왕래라도 하여 살아 있다는 사실만이라도 확인해야 합니다. 한국도 국력이 신장됐으니 국제여론을 환기시켜 북한이 전쟁포로들의 생사여부라도 확인해주도록 해야 합니다. ­지원금 수령을 계속 거부할 것인지요. ▲지난 4월 귀환 기자회견을 마치고 동생(병용·64)이 연금수령을 거절하며 국방부관계자에게 거칠게 항의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여기가 조국이구나’하는 것을 새삼 느끼기도 했지요.북한에 억류됐던 세월동안 조국이 그리웠고,나이가 들면서 고향 선산에 묻히겠다는 일념 밖에 없었습니다.돈이 탐나서 돌아온게 아닙니다.하지만 46년전에 일등병이었는데 지금도 일등병 연금을 준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정부가 관련법을 고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바뀐 법에 의해 책정된 연금은 받아야지요.
  • 美 “차세대 비아그라” 개발 경쟁/화이저 등 대형제약사

    ◎“남·오용따른 부작용 100% 제거/혀밑에 넣으면 수분만에 효과” 【뉴욕 AP 연합】 미국에서 발기부전 치료제 개발경쟁이 한창이다. 처음으로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를 개발했던 미국 화이저사는 부작용이 없는 차세대 비아그라 개발에 착수했다.조나겐 등 다른 제약사들도 복용후 곧바로 약효가 나타나는 제품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화이저사는 15일 ‘비아그라 라이트’를 연구,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주성분은 실데나필로 지금의 비아그라와 같지만 부작용을 없앤 제품이라는 설명이다. 차세대 비아그라는 일부 심장병 치료제 등과 함께 사용해도 부작용이 없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복용하는 대신 혀 밑에 넣고 몇분만 기다리면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 미국에서는 비아그라를 복용하고 부작용으로 16명이 숨졌다.이중 일부는 심장병 치료제를 함께 투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화이저사의 카프리노 대변인은 이날 당뇨병·우울증·다발성 경화증 환자,그리고 성욕이 감퇴된 여성들도 비아그라를 이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조나겐 제약회사는 30분에서 길게는 1시간까지 걸리는 비아그라보다 효과가 빠른 발기불능 치료제 ‘바소막스’를 개발해 올해 말부터 시판할 계획이다.펜테크 제약회사도 비아그라와 같은 약효의 약을 개발해 마지막 단계의 임상실험을 하고 있다.또 엘리 릴리와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퀴브같은 대형 제약회사들도 발기부전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편 지난 3월 비아그라가 처음으로 일반에 선보인 이래 지금까지 의사의 처방은 170만건에 이르렀던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 현역군인 낀 이적단체 적발

    ◎사병 5명 포함 “인제대 활동가” 14명 검거/‘기무사,대학가 사찰’ 허위문건 제작유포 국군기무사령부는 16일 민·군 연계 지하 이적단체인 ‘인제대학교 활동가조직’의 일원으로 기무사가 대학가를 사찰하는 것처럼 거짓 문건을 만들어 유포한 공군 방공포사령부 1방포여단 소속 孔鍾培 병장(23·인제대 미생물 3년 휴학) 등 현역 군인 5명을 국가보안법의 이적단체 구성 및 허위사실 날조·유포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남지방경찰청도 金석호씨(25·92년 인제대 법학과 입학) 등 민간 조직원 9명을 붙잡아 검찰에 송치했다. 孔병장은 지난해 6월2일 소속 부대 행정반에서 컴퓨터에 저장돼 있던 공문서 양식을 바꿔 ‘제5기 한총련 출범식 정보수집 동향’이라는 기무사 명의의 허위 공문을 만든 뒤 외박을 나와 6일 하오 1시쯤 ‘인제대 활동가 조직’ 교육국장 吉모씨(26·구속)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孔병장은 당시 공안기관이 한총련 탄압하는 것처럼 꾸미면 위기에 몰린 한총련의 출범식이 정당화될 것으로 여기고 TV 뉴스보도 및장병 정훈자료집인 ‘공군’책자에 실린 내용을 토대로 기무사가 한총련의 동향을 수집한 것처럼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무사는 “문제의 문건은 이후 한총련 중앙조직에 보고됐으며,한총련은당시 李석씨 치사사건으로 수세에 몰린 상황을 반전시킬 목적으로 일부 언론사에 이를 흘려 보도되도록 했다”고 밝혔다. 孔병장은 함께 구속된 7사단 소속 金鍾根 이병(23·인제대 기계공학과 3년휴학),68사단 金寅湖 일병(24·〃 경제학과 4년 휴학),5군단 劉漢相 상병(24·〃 법학과 4년 휴학),육군 항공사령부 金成恩 일병(22·〃 기계공학 3년 휴학) 등과 편지를 교환하며 주체사상 학습을 독려하는가 하면 휴가나 외박 때조직 총회에 참석,투쟁방향을 논의하는 등 군복무 기간 중에도 지속적으로 활동해 왔다.
  • 통일대교 오늘 개통/자유의 다리 상류/서울∼평양 연결 중심 육로

    ◎내일 鄭周永씨 소몰고 통과 자유의 다리 대신 남북을 이어 줄 통일대교가 15일 하오 3시 개통된다. 건설교통부는 이산가족 방문과 남북 물자교류에 대비해 지난 93년 762억원을 들여 착공한 통일대교 6차로 90m를 4년 6개월 만에 완공했다고 14일 밝혔다. 통일대교는 자유의 다리에서 임진강 상류쪽 1㎞의 지점에 건설됐으며 서울과 평양을 직접 연결하는 육로로 활용될 예정이다.기존 자유의 다리는 남북연결 철도 복원 계획에 따라 앞으로 경의선 철도노선으로 쓰인다.건설교통부와 육군 공병부대 장병들이 토목공사와 교량·포장공사를 각각 맡았다. 건교부 관계자는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통일대교가 서울과 평양을 직접 연결하는 중요한 육로 기능을 하게 될 것”이라며 “16일 소 500마리를 이끌고 북한으로 떠나는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처음 이 다리를 통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해병대 장병들 위문편지 쓴다

    ◎IMF로 어려움 겪는 전국 1,000여 업체에 “힘 내세요” 격려 보내 【포항=李東九 기자】 해병대 제 1사단(사단장·李哲雨) 장병들이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체에 “경제 살리는데 최선을 다해달라”는 내용의 위문편지를 보내고 있다. 위문편지를 받기만 하던 장병들이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기업체에 위로편지를 보내자 기업체 관계자들이 크게 고무되고 있다. 해병 장병들은 지난 5월 말부터 포철,강원산업 등 포항지역의 33개 업체와 군장병들이 입대전 근무했던 전국 1,000여 기업체에 격려편지를 보내고 있다. 해병 3266부대 金泰熙 일병은 자신이 근무했던 한라중공업이 부도 난 것을 가슴 아파하며 “옛 동료 직원들과 경영진이 다시한번 회사를 살려주길 바란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해병 장병들의 이같은 위문편지에 대해 기업체들은 “장병들의 격려에 힘이 생긴다”는 답신과 전화가 쇄도 하고 있다. 해병장병들은 지금까지 2000여통의 편지를 보낸데 이어 앞으로 기업체뿐만 아니라 양로원,보호시설 등에도격려 편지를 보내기로 했다.
  • 올해 建軍 50주년/국제에어쇼·시가행진/전국서 기념행사 다채

    국군의 날 경축행사를 비롯,건군 50주년 기념행사들이 이달부터 10월 사이에 연이어 개최된다. 국방부는 9일 건군 50주년을 맞아 오는 10월1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도보 및 기계화부대 등 2만2,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국군의 날 기념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이어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현역 및 예비역 장병,상이군경과 최신 군장비 등이 함께 참여하는 시가행진이 94년 이후 4년만에 펼쳐진다. 이밖에 참전 선배전우 모(母)부대 초청행사(9.1∼9.30),호국영령 추모 문화제(7.27),대학생 21세기 평화캠프(8.11∼8.15),휴전선 155마일 사진전,서울 국제에어쇼 등 65개 행사가 잇따라 열린다. 국방부는 또 육·해·공군의 화합과 군의 발전된 모습을 형상화한 기념 엠블렘을 선정·발표했다.
  • 장성급 대화에 기대한다(사설)

    유엔군사령부와 북한군의 장성급 대화가 판문점에서 곧 재개될 것이란 소식이다.지난 91년 유엔사가 군사정전위 수석대표에 한국군 장성을 임명한데 반발하여 북한이 일방적으로 정전위 회담을 거부한 이후 7년만에 군사적 고위대화 채널이 복원되는 셈이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위기사태가 발생했을 때 정전협정에 따라 처리할 수 있는 장치가 다시 가동하게 됐다는 점에서 우선 환영한다. 북한은 그동안 당사자인 남한을 배제한채 미국을 상대로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와 군사정전위의 무력화 공세를 집요하게 펴왔었다.군사정전위 불참선언에 이어 체코·폴란드 등 중립국 감시위원회 대표단들을 철수시켰고 정전협정을 파기하겠다고 언급하기까지 했다.무장병력을 여러차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진입시키고 미군헬기를 격추시키는 등 긴장을 의도적으로 고조시켜 왔다.군사정전위가 기능을 할 수 없게 됐으니 미군과 북한군 대표가 만나 군사적 위기문제를 논의하고 관리하자는 논리로 북·미 장성급 접촉 등미국과의 단독대화를 노리는 의도였다. 북한의 이같은 공세에 대해 한미 양국은 어떠한 대화도 당사국인 남한을 배제할 수 없다는 원칙으로 계속 맞서왔다.그러나 정전위가 맡아왔던 한반도 위기관리기능을 되살려야 할 필요성은 절실한 형편이었다. 판문점 장성급대화의 재개를 환영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지난 몇년동안 더욱 경색돼 가는 듯했던 남북관계가 金大中 대통령의 취임이후 실질적이고 전진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이번 장성급 대화의 재개만하더라도 북측의 요구는 대부분 묵살해왔던 이전의 경직된 정책에서 벗어나 군사적 대화의 필요성을 충족시키면서 미·북간의 단독 접촉은 막는 방향으로 실리를 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鄭周永 현대그룹명예회장의 판문점 통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이런 점에서 장성급대화 재개와 鄭회장의 판문점 통과를 계기로 판문점이 긴장을 조성하는 ‘대결의 장(場)’이 아니라 남북간 화해를 실현하는 ‘대화의 장’으로 변하기를 기대해본다. 다만 재개되는 장성급대화는 어디까지나정전협정의 틀안에서 군사적인 문제만을 논의해야 된다는 점을 강조해둔다.북한이 노리는 평화협정의 논의는 기왕에 진행되고 있는 4자회담에서 다룰 성질이다.필요하다면 남북당국자간 직접대화도 좋을 것이다.
  • 예산절감 아이디어 내세요/인센티브제 하반기부터 실시

    ◎채택땐 월급 200%까지 성과급 재정경제부의 한 사무관은 요즘 예산절약 방안을 짜느라고 고심하고 있다. 국민세금의 쓰임새를 알차게 하자는 뜻도 있지만 예산을 절약할 경우 기본급의 200% 안에서 성과급을 받을 수 있도록 정책이 바뀌었기 때문이다.보너스는 5급 12호봉을 기준할 때 최대 3백40만원으로 결코 적지 않다. 예산청은 능률적인 업무수행으로 고객인 국민에게 만족도를 높이고 국민의 세금인 예산을 절약하기 위해 예산절약 인센티브제를 하반기 예산집행 및 내년도 예산편성 때부터 적용할 계획이라고 25일 밝혔다. 예산청이 마련한 예산절약 성과금제는 인건비나 기준경비(차량유지비 등) 및 주요사업비(사회간접자본)를 절감할 경우 각각 절감액의 100%,50%,30%,10% 이내에서 성과급으로 해당부서나 개인에게 주되 절감되는 금액만큼 다음 해 예산편성에서 빼도록 하자는 게 골자다. 예산청 관계자는 “기본경비가 최우선 대상이 될 것 같다”면서 “이 제도가 정착되면 예산수요처인 부처의 살림살이가 빠듯해 질 것”이라고 전망했다.예산집행이 알뜰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인건비 절감의 경우 연봉 3,000만원이 지급되는 직원 20명이 정원인 부서가 3,000만원을 절약할 경우 그 금액만큼 해당부서 성과급으로 지급되지만 다음 해 예산편성 때는 1명의 정원이 줄어들게 된다.또 2명이 6개월간 빠진 상태로 운영될 경우 6개월분 인건비의 반,즉 1명이 줄게 된다. 그러나 절약에 기여한 공무원은 후한 보너스를 가져가게 된다.기본급의 200% 안에서 지급된다.공무원 전체 평균으로는 기본급(120만원)의 2배인 240만원을 탄다.5급(사무관) 12호봉(12년차)은 기본급 170만원의 2배인 34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특히 국방부 공무원에게 수혜가 많이 갈 것으로 보인다.장병들에게 필요한 내의,군화 등을 현물로 주지 않고 현금으로 줄 경우 물류비용 감소 등으로 예산지출이 줄어들고 각종 단체수의계약을 경쟁입찰로 전환할 경우 상당한 금액을 절약할 수 있다. 한편 이번 제도에서 꼭 해야 하는 사업을 수행하지 않고 남기는 돈이나 정부차원의 조직축소,민영화 및 공사화로 사업이 이관되는 데서 예산이 절약되는 경우나 추후 절약액보다 더 많은 지출이 예상될 경우는 대상에서 빠진다.
  • 해병대 장교·사병 머리 길어진다

    ◎사병 앞머리카락 3㎝… 장교는 가르마 타도록 윗머리만 조금 남기고 ‘빡빡’ 깎는 해병대의 ‘‘헤어스타일’이 바뀐다. 해병대는 24일 병사는 물론 장교,장성들까지 옆과 뒷머리카락을 완전히 깎는 머리모양이 복제규정에 어긋난다는 지적에 따라 개선키로 했다. 해병대 머리모양은 빨간 명찰,팔각모와 함께 해병대의 3대 상징.머리카락은 전투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지시에 따라 장병들 모두 짧게 깎아왔다.하지만 장교들 사이에서는 헤어스타일 때문에 대인관계에 지장이 많다는 불만이 있었다. 이에 따라 최근 취임한 李甲珍 사령관은 지나치게 짧은 머리를 규정대로 바꾸도록 지시했다.규정에는 병사는 앞머리카락은 3㎝ 이내로 하고,옆은 귀 위 5㎝까지,뒷머리는 모자를 썼을 때 긴머리가 보이지 않도록 올려 깎도록 돼있다.간부들은 기름을 바르고 가르마를 탈 수 있도록 했다.
  • 美 전몰장병 추모일 메시지/金 대통령

    金大中 대통령은 25일 미국 전몰장병 추모일을 맞아 주한미군장병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대한민국을 대표해 세계의 평화와 민주주의를지키기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친 미합중국 전몰장병들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특히 오늘의 우리 대한민국 안보와 민주주의는 미군장병들의 숭고한 헌신과 희생에 힘입은 바 크다”고 지적하고 “한미연합군은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보를 위협하는 그 어떤 도전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비아그라 복용 사망 위험/美서 6명 숨지고 이집트선 3명 입원

    【워싱턴·카이로 외신 종합】 기적의 발기불능 치료제로 인기를 끌고 있는 비아그라의 부작용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22일 이 약을 복용한 뒤 숨진 사람이 6명에 이른다는 미 식품의약국(FDA)발표에 이어 이번에는 이집트인 3명이 비아그라를 복용한 뒤 부작용을 일으켜 입원,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이스마일 살람 보건장관이 23일 밝혔다.살람 장관은 문제의 환자들이 어떤 증세로 치료를 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중동통신(MENA)은 전했다. 화이저사의 주가는 비아그라에 대한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소식들이 전해진 직후 10% 하락세를 보였다. 이 약의 사고와 관련 FDA의 맥휴 대변인은 현재 FDA와 화이자가 이들의 사망원인을 밝히기 위해 공동조사에 나섰다고 밝혔는데 화이자는 그동안 약품설명문이나 광고 등을 통해 비아그라는 심장병약인 니트로그리세린이나 니트레이트(질산염)계통의 약품과 함께 복용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해왔다.
  • 새 대통령 내년 3월 선출/印尼 대학생 시위 軍 동원 봉쇄

    【자카르타 외신 종합】 인도네시아는 내년 3월쯤 새 대통령을 선출한다. 수하르토 대통령의 한 측근은 20일 내년 1월쯤 총선거를 실시해 새 대통령을 선출할 국민협의회(MPR)를 구성하게 된다고 밝혔다. 또 인도네시아 정부는 수하르토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약속한 개혁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해 초대위원 명단을 21일 발표키로 했다. 의사당으로 하르모코 의장을 방문했던 학생 대표들은 하르모코 의장이 수하르토 대통령에게 22일까지 사임할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대학생들은 수라바야,반둥,족자카르타,메단 등지에서 수하르토의 즉각 사임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였다.특히 수하르토의 고향인 요가카르타에는 25만명의 시위군중이 몰리기도 했다.그러나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운 무장병력이 15만명이 동원된 자카르타는 시위가 원천 봉쇄되면서 대체로 평온했다. 회교지도자로 대표적인 재야인사인 아미엔 라이스는 이날 상오 돌연히 학생 지지 시위 다짐을 번복했다가 정오쯤 의사당 시위현장을 방문해 “현 체제에서의 개혁은 있을 수 없다”며 군 지휘관들에게 학생들의 시위를 지지해 줄 것을 당부했다.
  • 프랭크 시내트라 사망/가수 겸 배우… 심장병으로

    ‘마이 웨이’‘뉴욕 뉴욕’ 등 수많은 히트곡을 통해 불멸의 명가수로 추앙받던 프랭크 시내트라가 15일 하오 10시50분(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에서 지병인 심장병으로 사망했다.향년 82세. 1915년 12월 미국 뉴저지주 호보켄에서 이탈리아 이민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있는 연예인으로 평가받아왔다. ‘마이 웨이’를 비롯,‘밤의 이방인’‘나의 아기를 위하여’ 등 감미로운 바리톤 음색으로 부른 노래들이 세대를 이어가며 사랑받은 대표적 노래들.71년 공식 은퇴할 때까지 그가 내놓은 앨범은 200여장이나 된다. 50년대 초 그의 전성기는 끝나는 듯 했다.그러나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에 출연,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불멸의 엔터네이너로 부활했다.다만 사생활은 자유분방했다.4차례 결혼을 통해 수많은 자녀를 갖는 등 가족관계가 복잡했으며 범죄조직에 속한 친구들을 많이 둔 것으로 유명했다.지난해 11월 심장병으로 입원한 뒤 4명의 부인과 자녀들이 2백억달러(18조2천억여원)에 달하는 그의 재산을 두고 소송을 벌이는 바람에 우울한 말년을 보내기도 했다.
  • 裵洵勳 정통부장관 인간개발연 강연 요지

    ◎정보화 투자로 고비용 구조 개선 한국인간개발연구원(회장 崔昌洛)은 7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裵洵勳 정보통신부 장관을 초청,‘IMF경제환경에서의 정보화 역할과 정보통신 정책방향’이란 주제의 강연회를 가졌다.裵장관은 “고비용·저효율의 경제구조를 개선하려면 정보화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려야 한다”면서 “앞으로 자유시장 원리에 따라 투명하고 개방된 정보통신 정책을 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다음은 강연요지다. ○시장경쟁 촉진·구조 혁신 우리 경제의 어려움은 일시적 경기순환 국면의 문제라기보다 고비용·저효율의 경제구조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이러한 고비용·저효율의 경제구조는 80년대 후반 국제수지 흑자를 기술개발 및 투자생산성 향상으로 연계하지 못함으로써 비롯됐다.여기에 반도체시장 침체에 이은 대기업의 경영 난맥,아시아 시장에서의 종금사의 단기 투기성 채권투자 실패로 그 정도가 심화되더니 마침내 외환위기까지 겹쳐 IMF 구제금융을 받기에 이르렀다. 정보화는 정보기술을 활용해 시장경쟁을 촉진하고 조직구조를 혁신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누적된 고비용 구조를 개선하고 경제효율의 극대화를 도모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수단이다.요소·생산·유통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을촉진,투자와 노동의 생산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미국이 90년대 불황기에도 성장률보다 훨씬 높은 증가율의 정보화 투자를 단행,경제구조를 개혁한 뒤 지속적인 성장과 사상 유례없는 저실업을 달성한 것이 대표적인 본보기다. 정부는 2002년까지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정보선진국으로 도약한다는 목표 아래 지식정보사회를 향한 정보화의 촉진과 정보통신산업의 강도높은 구조개혁에 역점을 둘 방침이다. 우선 생산요소 시장의 자유경쟁 촉진을 위한 방안으로 구인·구직 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물류활동 정보를 신속·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물류정보화 시스템을 완성해 물류비용을 크게 줄여 나갈 것이다.은행망과 보험망을 연계해 금융정보를 공동 활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수익성 분석에 근거한 대출관행을 뿌리 내리게 하겠다. ○경제난 극복·성장 견인차 또 99년까지중앙부처 뿐 아니라 시·군·구 행정기관까지 전자결재 제도와 기관간의 전자문서유통제도를 도입,공공부문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정보화를 강도높게 추진할 계획이다. 언제,언디서나 컴퓨터와 인터넷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2002년까지 전국 144개 통화권역에 초고속기반전송망을 건설할 예정이다. 정보통신분야는 90년 이후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고용·수출·물가안정을 주도해 온 국가전략산업으로,IMF체제에서도 경제위기 극복 및 지속적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그러나 최근의 각종 보고서는 국내 정보통신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무엇보다 산업의 구조개혁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특히 자본 생산성의 경우 구조개혁이 따르지 않는한 앞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면치 못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보통신산업의 구조개혁을 위해서는 시장개방을 통한 외국인 투자유치의 활성화가 시급하다.이런 맥락에서 통신사업에 대한 외국인 지분한도를 현재 33%에서 99년 말까지 49%로 확대하고,한국통신의 정부 보유주식을 외국인에 과감히 매각하겠다.또 멀티미디어단지에 외국인 전용공단 설립을 지원하고 정보통신 벤처기업에 대한 합작투자를 적극 유도할 방침이다. ○외국인 투자유치 시급 이밖에 경쟁력 있는 기업만이 성장할 수 있는 자유경쟁체제를 마련하기 위해 통신요금 규제를 완화하고,전전자교환기(TDX)·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이동전화시스템 따위의 수출경쟁력 있는 품목을 선별,중점 지원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이다. 정부의 지원없이는 정보통신 전문인력의 양적·질적 공급기반 확충도 어렵다.대졸 이상 고학력 실업자의 정보통신 재교육을 지원하고 군장병에게도 정보통신교육을 강화하겠다. 국가적 파급효과가 큰 기초기반기술은 정부출연 형태로 지원하고 투자위험이 큰 기술은 민간과 정부가 공동 개발하는 방식으로 경쟁력 있는 기술개발을 촉진할 계획이다. 기업은 이제 망하지 않는 신화보다 망함으로써 새로 일어나는 신화를 창조해야 할 것이다.실리콘 밸리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이유는 하루에 수천개의 기업이 창업되면서도 아울러 수천개 기업이 망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中 魏京生 심장병 입원/加 몬트리올병원

    【몬트리올 AFP 연합】 중국의 저명한 반체제인사 웨이징성(魏京生)이 5일 캐나다 몬트리올에 도착한 직후 심장병으로 입원했다고 퀘벡 펜클럽이 밝혔다. 퀘벡 펜클럽은 이날 웨이징성이 인권문제에 관한 회의에서 연설을 하기 위해 몬트리올에 도착했으나 구급차에 실려 세인트 룩 병원으로 후송됐다고 전했다. 웨이징성은 병원에서 심장 검사를 받을 예정이며 퇴원 시기는 아직 정확히 알수 없다고 퀘벡 펜클럽 관계자가 말했다.웨이징성은 지난 80년 이후 17년간 투옥과 연금생활을 되풀이했으며 지난해 11월 석방된 직후 신병 치료차 미국으로 건너왔다.
  • 비아그라 돌풍/黃炳宣 논설위원(外言內言)

    남성(男性)수난시대,‘고개숙인 남자’들이 양산되고 있다고 한다. IMF한파속에 생존하느라 스트레스가 쌓여 ‘남자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남성이 계속 늘고 있다는 보도다.지난해 발표된 한 의학계 조사는 발기부전(勃起不全) 등 성생활장애로 고통받는 한국 남성이 3백만명 가량 된다는 것이었는데 요즘 다시 조사한다면 그 보다 훨씬 더 늘어났을 게 분명하다. 비단 IMF가 아니더라도 남성을 결정하는 Y염색체가 환경오염과 생태계 변화에 약해 남아 출산율이 꾸준히 줄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미국·영국 의학학술지에 발표되고 있다.정자(精子)의 평균 숫자나 고환(睾丸)크기도 줄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여성의 평균수명이 긴 것과 연결지어 여성의 생물학적 우위론(優位論)도 제기된다. 세계의 이 불쌍한 고개숙인 남성들에게 뉴욕의 제약회사 파이자가 희소식을 전하고 있다.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아 비아그라(Viagra)라는 발기부전 치료제를 시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한개에 10달러(1만4천원 상당)나 하는 이 알약이 미 전역에서 하루 4만개나 팔리는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는 외신보도다. 건강식품이나 정력제에 대한 열성(熱誠)에 있어 한국인은 지구상 어느 민족에도 뒤지지 않는다.세계의 곰 사슴 물개 코브라,심지어 아프리카의 코뿔소는 한국인을 천적(天敵)쯤으로 알지 모른다.몸에 좋다면 국제적 보호조(保護鳥)든 오소리 고라니 개구리를 가리지 않고 먹어 치운다.국내에서 뿐 아니라 동남아,뉴질랜드,캐나다 어디든 찾아가 야생동물들을 잡아 먹는다. 숙여진 고개를 쳐들겠다는,강정(强精)에의 집념은 처절할 지경이어서 졸부들의 보신관광 못지 않게 ‘현대판 불로초’로 선풍을 일으키는 수입약품도 많다.불면증 치료제인 멜라토닌,세포의 노화를 막는다는 DHEA 등 호르몬제가 신비의 약,불로초로 한때 인기를 모으며 한국인의 싹쓸이 쇼핑으로 미국 제약회사들이 짭짤한 재미를 봤다. 이번엔 비아그라가 또 엉뚱한 선풍을 일으킬까 걱정된다.3백만의 진짜 고개숙인 남자들이 아니라 ‘변강쇠 환상’에 빠진 남자들이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어서다.참고로 FDA 인터넷 홈페이지에 실린 비아그라의 내용을 소개하면 이 약은 의사 처방에 따라 복용해야 하는 치료제다.병적인 발기부전은 고쳐주지만 결코 정력제가 아니어서 정상인을 변강쇠로 만들어 주는 효과는 전혀 없다.심장병 환자에게는 위험하고 두통 복통 설사 등 부작용도 우려된다고 경고하고 있다.보신족들에겐 큰 실망일지 모르겠다.
  • 국군의 발자취(대한민국 50년:15)

    ◎軍 정치적 중립 5·16구데타로 무너져/65년 월남 파병 계기로 환골탈태/軍장비 현대화­전투력 강화 한몫/6·25 직전 10만서 69만 大軍으로 한국전쟁 발발 직전 대한민국 국군의 총병력은 10만5천여명이었다.이 가운데 지상군이 9만6천여명,해군 7천여명,공군 2천명가량이다.참고로 북한 인민군은 총 19만8천명 규모였다. 국군은 6·25를 거치면서 미국의 원조와 지원 아래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엄청나게 성장했다.전쟁중에는 최고 80만에 이르기도 했지만 종전 무렵에는 60만 대군으로 자리잡았다.게다가 사회 각 부문의 성장이 더딘 상태에서 군은 미국식 교육·관리제도를 도입,운영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앞서가는 조직이 되었다. ○李承晩의 정치이용 거부 그러나 덩치가 커지긴 했어도 군은 정치적인 영향력을 벗어나지는 못했다.제1공화국 시절 李承晩 대통령은 자신의 취약한 정치적 기반을 보완하고 집권을 연장하는 도구로 군을 이용하려 했다.이에 따라 정치권이 인사에 개입하고 부정선거를 강요했으며,정치자금 조달을 요구하기도 했다. 갓 독립한신생국가에서,4억달러쯤에 이르는 미국의 군사원조와 국가예산의 40%가량을 이용하는 군만큼 재정능력이 풍부한 집단은 없었다.따라서 정치권으로서는 군이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자유당 정부 때의 군이 일방적으로 정치에 끌려다닌 것만은 아니다.1952년 임시수도 부산에서 발생한 ‘부산 정치파동’ 당시 이종찬 장군은 육군훈령을 내려 군의 정치개입을 공식적으로 금지했다.60년 4·19가 일어났을때도 군은 질서유지에만 나섰을뿐 정치적으로는 철저하게 중립을 지켰다. 그러나 나름대로 정치권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던 군의 자세는 5·16군사쿠데타가 터지면서 일시에 무너진다.인사문제를 비롯한 군 내부의 부정부패가 누적되고 정치불안이 야기한 사회혼란이 이어지자 이를 빌미삼아 朴正熙 소장과 일부 영관급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5·16은 朴正熙 집권 18년에 이어 全斗煥·盧泰愚로 연장되는 군사정권 시대의 출발점이 됐다.이 기간 군출신 정치세력은 특유의 기획력과 추진력으로 일정부분 경제성장을 이룬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경제발전’이라는 미명아래 민주주의 발전은 억압됐고 인권탄압이 공공연히 자행됐다.국민의 군대여야 할 군은 국민에게 사랑받기 보다는 경원의 대상이 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특히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은 군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됐다. 한편 대한민국 국군은 월남파병을 거치면서 다시 한번 환골탈태한다.1965년 1월8일 朴正熙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어 월남에 국군 2천명을 파견하기로 결의했다.다음달 24일 비둘기부대장병 583명이 첫 전투부대로 파병됐다.이에앞서 64년 9월11일에는 의료진과 태권도 사범 164명이 부산항을 떠나 열하룻만에 월남 사이공(현 호지명시)에 도착했다. 한국군의 월남 파병은 1961년 11월 朴正熙 당시 최고회의 의장과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 사이에서 처음 논의됐다.파병의 명분은 ▲한미 양국은 자유우방으로서 아시아의 집단안보에 공동책임이 있고 ▲월남의 안전은 한국의 안보와 직결되며 ▲한국으로서는 6·25때 우방 16개국의 도움을 받았으므로 이제 빚을 되갚아야 한다는것 등이었다. ○8년간 31만2천명 파병 하지만 파병이 쉽게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다.우리 정부로서는 파병에 따른 제반조건을 보다 유리하게 얻어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한미간의 줄다리기는 월남전 내내 계속됐고,이같은 상황은 65년 5월17일 미국에서 열린 朴正熙 대통령과 린든 B 존슨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전후의 사정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여하튼 65년 6월14일 월남공화국 수상이 우리 정부에 1개 전투사단 지원을 공식요청한 것을 계기로 국군의 월남 참전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그해 10월16일 첫 전투사단인 맹호부대가 부산항을 떠났고 이어 백마부대·백구부대·청룡부대가 속속 파병대열에 합류했다. 1973년 3월23일 마지막 부대가 귀국하기까지 8년동안 대한민국 국군은 모두 31만2천여명을 월남에 파견했다.그땅에서 국군은 대대급 이상 작전만 1천100회를 실행했고,민간지원 사업으로는 3천500여채의 건물을 지어주고 1천700㎞의 길을 닦아주는 노력을 기울였다. 월남파병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종적으로 내리긴 아직 이르지만 국군장비 현대화와 전투력 강화라는 측면에서만 따질 때 크게 기여했음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아울러 국군이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드높이는 데도 한몫을 했다. 최근 국군은 UN평화유지활동(PKO)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93년 7월 소말리아에 공병대대를 파견한 것을 시발로 그동안 앙골라,서부사하라,인도·파키스탄,그루지아 등지의 분쟁지역에서 평화유지군 활동을 벌였으며 이에 따른 국제사회는 그 증거라 할 만하다. 6공화국에서는 헌법에 군의 정치적 중립을 명시했다.이어 문민정부는 하나회 조직을 정비하는 등 군의 정치개입을 용납하지 않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했다.군도 국방백서를 발간,군의 실상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군내 민주화를 이루고자 군인복무규율을 개정하는 등 국민의 군으로 거듭 태어나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국군은 지상군 56만,해군 6만7천,공군 6만3천 등 총 69만병력에 이른다.이에 견줘 북한군 규모는 1백14만7천명이다. ◎朴正熙­존슨 대통령 65년 월남 파병 담판/“전투병력 추가 파병 안하면 주한美軍월남으로 빼겠다”/“對韓 경제원조 확대 한국 군장비 현대화 해달라” 65년 5월 미국에서 만난 朴正熙 대통령과 존슨 미국 대통령은 한미 양국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확인한 뒤 동아시아 안보에 관해 깊이있는 논의를 나누었다.그러나 실질적인 초점은 단연 한국군의 월남 증파 건에 맞춰졌다. 존슨은 공산주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한국군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이어 한반도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데 한미상호방위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가를 역설했다.이때는 한국이 전투부대로 비둘기부대 2천명을 파견한 정도였기 때문에 존슨의 치하처럼 월남에서 큰몫을 담당하지 못한 상태였다.존슨의 언사는 결국 한미상호방위에 더욱 관심을 가질테니 한국도 월남에 병력을 더 많이 보내라는 정치적 요구에 다름아니었다.이 자리에서 존슨은,한국이 병력 파견을 늘리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월남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는 암시도 함께 했다. 두 정상은 이 만남에서 미국의 한국에 대한 경제원조와 한국군 현대화를 추진하는 군사원조를 늘이기로 합의했다.또 주월한국군 유지비용의 인상과 주한미군 유지 약속 등에도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다음해 3월7일 브라운 주한 미대사는 국군의 월남 추가파병에 따른 미국측 보상조치를 약속한 14항목의 문서를 한국정부에 전달했다.주요 내용은 ▲추가파병 비용은 미국이 부담 ▲한국 육군 17개 사단과 해병대 1개 사단의 장비 현대화 ▲월남 재건 및 구호사업에 한국업체 참가 ▲미국의 차관·군사원조 계속 및 신규차관 제공 등이다. 이 각서이후 곧바로 국군은 2만여명을 월남으로 보냈고,월남전이 끝날 때까지의 병력 31만여명은 월남전 참전국 가운데 미군에 이은 두번째 규모 였다.또 민간업체의 월남에 대한 수출액 할당도 연 6천만달러로 늘어났으며 건설사업 등에의 참여도 활발해져 우리 사회는 ‘월남특수’를 노렸다.그러나 월남에서 숱한 한국청년들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하였다든지,참전용사와 그 자녀들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일따위는 월남파병에 따른 손실이기도 하다.
  • 커피 정말 해로울까

    ◎장­하루 한 잔 천식 발병 막아.기분전환·변비치료 효과도/단­혈압 높이고 위산 촉진/많이 마시면 체내 칼슘 손실 커피는 항상 건강에 해로운가? 꼭 그럴 것 같지만 정답은 ‘NO’.질병과 증상에 따라 건강에 좋을 수도,또 나쁠 수도 있다는 것. 부산 백병원 가정의학과 이가영 교수의 도움말로 커피가 도움이 될 때와 해가 될 때를 알아본다. ▷커피가 도움이 될 때◁ 커피에 들어 있는 카페인은 기관지를 늘어나게 하는 효과가 있다.19세기에는 카페인을 천식치료제로 썼을 정도.규칙적으로 하루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면 천식의 발생 위험이 50% 줄고,두 잔을 마시면 23% 준다는 연구도 나와 있다.심지어는 천식의 응급치료로 블랙커피 두 잔을 권하기도 한다. 물론 세 잔 이상 마시면 그 이상의 이득이 없다. 또 커피를 마시면 정신이 맑아진다.뇌를 각성상태로 만들기 때문.적은 양의 커피를 마셔도 사고능력이 향상되고 정신적인 업무능률이 향상되는 효과가 있다.특히 식후의 커피는 식곤증을 예방한다.하지만 이런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커피를 마시는 것은 미련한 짓. 커피는 또 변비에 효과적이다.특히 아침 일찍 마시는 커피는 장운동을 촉진,변비를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이 효과는 카페인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오랜 기간 만성변비약을 복용한 경우는 오히려 변비가 나빠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커피는 기분을 좋게 한다.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커피를 마시는 대표적인 이유.카페인 때문인데 다행히 이런 심리적 흥분효과는 내성이 없다.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 더 많은 양의 커피를 마실 필요는 없다는 뜻. ▷커피가 해가 될 때◁ 커피는 먼저 위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위산분비를 촉진시키므로 위산분비가 많은 사람은 커피를 피해야 한다.이 경우는 카페인이 들어 있는 커피와 들어 있지 않은 커피 모두가 영향을 준다.위식도역류가 있는 경우와 과민성대장염이 있는 경우에도 커피가 증세를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절대 금물. 커피는 혈압을 일시적으로 올리는 효과도 있다.특히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상태에서 커피를 마시면 혈압이 더 올라간다. 심장병이 있는 경우,커피를 반드시 끊어야 한다는 객관적인 증거는 아직없다.다만 심장병의 위험이 많은 경우,섭취량을 줄이는 것이 낫다.이때도 굳이 카페인이 없는 커피로 바꿀 필요는 없고 하루에 두 잔 이하만 마시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담석증이 있는 경우에는 모든 유형의 커피를 끊어야 한다.커피는 담낭을 수축시켜 이것이 담낭 부위에 통증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또 하루에 세 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는 것은 뼈에서 칼슘이 더 잘 빠져나가게 한다.골다공증이 있는 사람이 지나친 커피 섭취를 피해야 하는 이유.
  • “무전기 얼어 구조 지연”/특전사 사고조사

    ◎장비준비 소홀도 원인/대대장 해임·여단장 징계 지난 1일 특전사 장병 6명이 훈련 도중 사망한 사건은 불가항력의 악천후와 훈련 준비 소홀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육군은 14일 “사고는 특전사 요원들이 충북 영동군 민주지산(해발 1천242m) 정상에 도착했을 때 예기치 않은 30㎝의 폭설과 시속 55㎞의 강풍으로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지면서 일어났다”면서 “특히 일부 장병들이 배낭무게를 줄이기 위해 속내의 등을 챙기지 않고 훈련에 나선 것도 사고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육군은 또 “P77 FM무전기가 쏟아지는 눈보라에 얼어붙은데다 장거리 교신체계인 AM장비마저 갖추지 않아 후송작업이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한편 육군은 이번 사고의 지휘책임을 물어 대대장 李春一 중령(3사15기)을 보직 해임하는 한편 千鍊宇 여단장(준장·육사29기)과 金鶴英 여단 정보참모(소령·단기15기)를 징계키로 했다.
  • 創軍(대한민국 50년:14)

    ◎해방 직후 좌우익 군사단체 60여개 난립/“치욕 되풀이 말자” 강력한 군사력 국민적 열망/미군정 견제속 육군·해군·해병대·공군 순 창설 대한민국 국군은,1948년 9월5일 남조선경비대가 육군으로 개편됨으로써 정식 출범했다.정부 수립 21일만이었다.해군도 곧이어 발족했고 해를 넘겨 49년에는 4월15일에 해병대가,10월1일 공군이 창설돼 초창기 4군체계를 확립했다. 나라를 세운 뒤 곧바로 창군(創軍)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그러나 대한민국 국군이 탄생하기까지에는 간단치 않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해방이 되자 우후죽순처럼 난립한 것은 정치단체만이 아니었다.각종 사설·유사 군사단체가 곳곳에서 깃발을 올렸다.이에는 까닭이 있다. 먼저 35년만에 국권을 되찾은 한민족에게는 ‘다시는 치욕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다짐과 함께 강력한 군사조직을 갖추어야 한다는 열망이 불타올랐다.아울러 해방정국에는 독립군 출신을 비롯해 일본군·만군·학도병·공산군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군을 경험한 인적 자원이 풍부했다.좌우 이념대립에따라 군을 선점하려는 양쪽의 경쟁이 작용한 것도 군사조직 난립에 큰영향을 미쳤다. ○사설 군사단체 끼리 충돌 해방 이틀 뒤인 45년 8월17일 서울 교동국민학교에서 귀환장병대(후에 국군준비대로 개편)가 발족한 것을 필두로 그달 말에는 일본 육사출신들이 주축이 된 조선임시군사위원회(위원장 李應俊)가,9월1일에는 좌익 성향의 학병동맹(위원장 王益權)이 잇따라 조직됐다.이밖에 학병단·학도대·광복군국내지대·보안대·한국혁명군·장병대·장총단·조선국군학교·대한민국 군사후원회·육해공군 출신 동지회·한국장교단 등 수많은 군사단체가 등장해 나름대로 활동을 벌였다. 45년 11월 현재 미군정청에 등록한 군사단체는 30곳을 넘어섰으며 비등록조직을 합하면 60여 단체가 존재했다. 이같은 군사조직의 난립에 당황한 미군정은 한국군 창설을 가시화하는 작업에 바로 착수했다.45년 11월13일 군정법령 제28호를 공포해 창군 기본계획 수립을 맡는 국방사령부를 설치한 데 이어 12월5일에는 군간부 양성을 목표로 군사영어학교를 세웠다. 그럼에도 군사단체들의 발호는 그치지 않았고 무력충돌도 적잖게 발생했다.46년 1월18일 학생동맹은 서울 도심에서 반탁전국학생총연맹 시위대를 습격했다.이에 따라 경기도경은 張澤相 부장의 지휘아래 다음날 새벽 학생동맹 본부를 기습해 해체시켰다.이날 金斗漢이 이끄는 우익단체 대한민청은 좌파그룹인 조선국군준비대(총사령관 李赫基)에 총공격을 감행하기도 했다. 미군정은 결국 46년 1월20일 사설군사단체해체령을 내려 강력한 단속에 들어갔고 그에 따라 각종 군사조직은 점차 퇴색했다. 한편 창군작업은 남조선국방경비대와 조선해안경비대를 중심으로 차근차근 진행됐다.국방경비대는 병력 600명으로 제1연대 제1대대를 편성,46년 1월15일 서울 태릉에서 입대식을 갖고 출범했다.2월7일에는 국방경비대 사령부를 구성했으며 그해 4월까지 병력을 8연대로 늘렸다. 국방경비대 사령부는 국방부를 거쳐 통위부로 이름을 바꾸었고 남조선국방경비대도 국방경비대­남조선경비대 순서로 개칭하면서 대한민국 육군의 모태로 자리잡았다.정부 수립 직전 남조선경비대의 규모는 5여단,15연대에 장교 1천403명,사병 4만9천87명이었다. 육군에 비해 해군 창설작업은 훨씬 순조로웠다.해방된지 며칠 지나지 않은 8월21일 孫元一을 중심으로 해사대가 조직됐다.孫元一은 중국 남경 중앙대농학원 항해과를 나와 외항선에서 선원생활을 한 인물로,뒤에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제5대 국방장관(53∼56년)을 역임한다. 해사대는 그해 11월11일 해방병단(海防兵團)으로 확대되면서 100t급 2척과 40t급 1척 등을 갖고 미약하나마 해안경비에 나섰다.46년 6월15일에 군정법령 제86호에 따라 조선해안경비대로 개편된 뒤 전국 주요항구에 기지를 건설하고 총사령부를 서울에 두는 등 위치를 확고히 했다. 해병대는,여순반란사건을 겪으면서 그필요성이 인정돼 49년 4월15일 해군에서 차출한 병력 400여명으로 경남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출범했다. ○공군 연락기 20대로 창설 공군은 가장 늦은 49년 10월1일 조직됐다.해방직후 국내외 항공계 인사들이 모여 한국항공건설협회로 출발했으며 48년 5월15일 육군항공부대로 탈바꿈했다.육군 예하 항공군으로서 기틀을 닦은 공군은 창설 당시 1천600여 병력과 연락기 20대를 보유했다. 창군을 전후한 시기에 군은 숱한 시련을 겪었다.근본적으로 한미간에 시각차가 있었다.정부수립에 앞장선 정치 지도자들은 내심 북진통일을 바래 강력한 군대를 원한 반면 전쟁을 원치 않은 미국은 일정수준 이상의 군사력 확보를 견제했다.군맥(軍脈)에 따른 내부갈등이 있었고,‘여순반란사건’‘대구 6연대 사건’ 등 군에 침투한 좌익세력에서 비롯된 상쟁도 여러차례 발생했다. 그러나 가장 큰 위기는 창군 2년이 채 안돼 발발한 6·25였다.소련의 강력한 지원아래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춘 북한 인민군의 공격에 국군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웠다.그럼에도 이 위기를 극복하면서 대한민국 국군은 짧은 세월에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게 됐다. ◎“美는 李承晩의 北侵을 경계했다”/초대 주한대사 무초의 진술서 첫 확인 대한민국이 처음 군을 조직할 때 한국과 미국 정부사이에는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다.한국은 당연하게 강력한 군대를 갖기를 원한반면 미국은 상당히 견제하는 태도를 보였다.이는 ‘한국이 강한 군대를 보유하면 38선을 넘어 북진하는 통일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미국의 이같은 의혹에는 당시 한국정부 고위인사들의 경솔한 언행도 크게 작용했다.李承晩 대통령이 1949년 9월30일 자신의 개인적인 정치고문인 로버트 올리버에게 보낸 편지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李承晩은 이 편지에서 “나는 지금이 북한에 있는 우리의 충성스러운 지지자들과 합세해 평양에 있는 잔당을 소탕하기 위해 공격하는데 가장 좋은 기회라고 강하게 느끼고 있다.우리는 金日成의 부하들을 산악지역으로 몰아내 거기에서 굶어죽게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면 두만강과 압록강을 따라 우리방위선이 강해질 것이 틀림없다”고 했다. 6·25 발발 아홉달전쯤에 쓴 이 편지는,李承晩의 ‘남한 단독정부 극복’이라는 통일의지를 드러낸 동시에 미국이 한국군 전력강화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질 근거가 있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 편지는 1950년 가을 유엔에서 공산측에 의해 ‘북침의 증거’로 제시되기도 했다.당시 미 정부는 편지가 가짜라고 주장했지만 후에 올리버는 진짜임을 확인해 주었다. 李承晩의 편지가 한국의 입장을 나타낸 것이라면 미국의 판단을 보여주는 자료로 무초의 진술이 있다.대한민국 주재 첫 미국대사인 무초는 1973년 12월 트루만 대통령도서관의 기록담당자에게 재임 때 경험을 토로했다. 현재 문서로 남아 있는 이 진술에서 무초는 “한국인들이 국토를 자체방위케 하는 한편 북한 진격이라는 그들의 열망을 억제해야 했다”고 회고했다.그는 “미국은 매우 어렵고 미묘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왜냐하면 우리가 李承晩과 한국군에게 원하는 것을 주었다면 그들은 북진을 개시했을 것이고,북한도 동일하게 남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오명은 우리몫이 됐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무초 대사의 진술서는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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