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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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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 총장 지지」 담화 발표/현승일 국민대총장(인터뷰)

    ◎“총장 1주만 하면 운동권 심각성 느껴”/주사파 엄청난 악영향 차제에 발본색원/학생지도에 공동 노력… 학사관리도 강화 박홍 서강대총장의 발언과 관련,23일 상오 있은 전국 20개 대학총장 간담회에서 대표로 담화문을 발표한 현승일 국민대총장은 『각 총장들이 주사파학생운동의 문제점을 제기한 박총장의 발언을 비롯,최근 사태의 심각성을 깊이 공감하고 있으며 앞으로 학생들의 올바른 지도를 위해 공동노력을 펼치자는 데 뜻을 같이 했다』고 말했다.다음은 현총장과의 일문일답. ­이번 모임을 마련하게 된 배경은. ▲박홍총장이 주사파학생들의 배후를 얘기하고 난뒤 납치설까지 나돌아 동료로서 서로 한번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중앙대 김민하총장이 모임을 제의해 연락이 닿는 총장들끼리 우선 만나기로 했으며 어제(22일)전화로 연락을 받았다. ­박홍총장은 모임에서 어떤 얘기를 했는가. ▲지난 8일 무주에서 열린 대학교육협의회 세미나에서도 학생운동의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하는등 대부분의 총장들이 오래전부터 박총장과 공감대를 형성해왔기 때문에 특별한 얘기는 없었다.단지 동료교수들과 친구들이 지지해줘서 고맙다고 말했으며 자신의 발언직후 협박과 공갈전화도 있었으나 이는 격려전화의 20%도 안됐다고 했다. ­모임에 참석한 총장들의 견해는. ▲현재의 학생운동,특히 주사파학생들에 대한 걱정을 했다.이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은 완전히 북한 주체사상을 맹종하는 것으로 지난번 남총련학생들의 열차정차사건과 대학건물 파손행위 등은 학생으로서 용납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었다.소수의 주사파학생들이 학원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학교주변과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이 엄청나다는데 인식을 같이 했으며 차제에 좌경폭력학생들은 이 사회에서 발본색원 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들을 했다.물론 학생들이 과오를 범할 수 있고 젊은 혈기로 때로는 폭력사용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현재의 주사파는 정도를 넘어서도 한참 넘어선 정신이상의 상태에까지 와 있다고 본다. ­문민정부하에서 대학총장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학생운동에 대해 공식적으로비판한 것은 이례적인 일인데. ▲박홍총장의 발언은 총장들이 평소 모이면 항상 해온 얘기들이다.단지 언론의 각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크게 부각되지 못했을 뿐이다.과격한 좌경폭력학생운동의 폐해는 총장을 1주일만 해보면 누구나 느낄수 있을 만큼 심각하다.박총장의 발언으로 주사파학생들의 행태가 사회적인 관심사로 등장한 만큼 이번 기회에 학원에서 주체사상을 갖고 비뚤어진 행동을 하는 이들을 완전히 뿌리뽑자는 생각에서 총장들이 적극 나선 것이다. ­최근 학생운동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금의 학생운동,특히 주사파들은 이전의 학생운동과는 달리 본질적으로 도덕적이지도 않고 순수하지도 않다.과거의 학생운동은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자기희생적인 성격이 강했는데 주사파는 남한 정부를 교란·파괴시켜 궁극적으로 적화통일을 이루려는 파괴적이고 이기적인 동기가 강하다.주사파학생들이 최근 과격한 행동을 자주 보이는 것도 대다수 학생들이 이들을 외면하니까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서 하는 것들이다. ­앞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 ▲일부 학생들이 좌경폭력으로 기운데에는 대학교수들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통감,각 대학이 학생들에 대한 학사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실력없는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는 일이 없도록 대학들이 공동으로 학칙을 바꾸고 학사행정을 강화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들 좌경학생들을 계도하는 것은 사회전체의 몫이라고 본다.이번 사태를 계기로 귀중한 청년들이 잘못된 병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가정·학교·사회가 공동의 노력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본다. ◎20개대 총장모임서 오고간 말/주사파는 적화 노리는 한국식 실천공산주의/제자는 사랑하되 병까지 사랑해선 절대안돼 서강대 박홍총장의 「주사파 비판발언」을 지지한 20개 대학총장들의 이례적인 모임은 예정시간보다 1시간 가량을 넘길 정도로 계속돼 그동안 총장들이 학생운동에 「할 말」이 많았음을 드러냈다. 약속시간 10여분 전에 이미 모인 부산대 장혁표총장등 대부분의 총장들은 박총장의 발언,가뭄문제등을 화제로 얘기를 나누었으며 약속시간 보다 5분정도 늦은 상오7시5분쯤 신부복차림의 박총장이 나타나자 박수로 박총장을 환영했다. 『뉴스를 타 스타가 되니 기분좋으시죠』(울산대 이상주총장)라는 인사말이 나오자 박총장은 웃으며 『발언이후 많은 격려도 받고 이 가운데 공갈도 있었다』고 답했다.또 이에 『박총장은 공갈에 넘어가지 않는 분 아니냐』(동국대 민병천총장)는 소리가 나오는등 간담회 시작은 가벼운 담소로 시작됐다. 담화는 그러나 약속시간 보다 8분 정도 늦게 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인 서울대 김종운총장이 도착하고 『주사파는 남한을 적화통일시키려는 한국식 실천공산주의』(박총장)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진지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박총장은 『젊은이들을 올바르게 인도하기 위해 동조해주신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언론에 감사한다』며 취재기자들에게 자리를 비켜줄 것을 부탁. 참석 총장들은 이날 관심사인 박총장의 발언과 관련해 『박총장의 발언내용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알 고 있는 일이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사회에 알리지못하고 있던 터에 용기있게 박총장이 얘기를 해 공감한다』고 지지입장임을 서로 교환했다. 특히 이들 참석 총장들은 『대화도 안되고 폭력을 휘두르는 과격한 행동을 하는 학생운동의 심각성은 대학총장을 1주일만 해보면 체감할 수 있다』(전북대 김수곤총장등)는등 많은 총장들이 일부 학생들의 좌경화 경향이나 폭력적인 집단행동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안타까워 하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일부 참석자들은 『어떻게 된 것이냐.무엇을 논의하는 것이냐』(서울대 김총장),『대교협 이사회를 소집해서 공식적인 발표를 하자』(동국대 민총장),『총장들의 행동은 사회파급효과가 크니 신중해야 되고 권위가 있어야 한다』(고대 홍일식총장)는등 발표주체및 형식을 놓고 약간의 이견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총장은 간담회를 끝내고 나가면서 주사파 비판발언을 놓고 찬성하는 지지입장과 「오히려 신공안정국을 조성시킨다」는등 비판적인 두가지 입장이 있는 것에 대한 입장을 묻는기자에게 『환자는 사랑하되 병까지 사랑하면 안된다』고 말해 소신에 변화가 없음을 시사했다. 이날 담화문 작성및 발표는 다른 원로총장들에 비해 젊은 점을 고려,현총장이 한 것으로 전해졌다.
  • “김일성 유언 남겼을까” 궁금증 증폭

    ◎「사망직전 상황」으로 추정한 「가능성」/왕성한 활동하다 급성 심근경색 돌발/의식 있었어도 「단순 부탁」에 그쳤을듯 김일성은 죽기 전에 유언이나 유서를 남겼을까.남겼다면 어떤 내용이었을까.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지난 8일 새벽 김일성이 사망한 뒤 북한에서 흘러나오는 정보와 방송,신문,외국 언론인,여행자등 어느 누구로부터도 그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고 통일원은 밝히고 있다. 북한의 중앙방송은 김일성의 유언이나 유서 대신 생전에 남긴 가르침인 「유훈」을 방송하고 있다.『김정일을 중심으로 단결하고 그의 영도를 충성으로 받들어 나가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김일성이 사망하기 직전까지의 행적과 상황을 더듬어 보면 유언을 남겼는지 그 가능성을 추정해볼 수 있다.김일성이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공식석상에 나타난 것은 지난 6일.그는 광업관련 행사에 참가,「패기와 정열에 넘쳐」 경제발전 방향등에 대해 교시를 내렸다고 내외통신은 보도했다.따라서 이때에는 유언을 준비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7일 김일성은 갑자기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주석궁 내실로 옮겨졌다.이때 김일성의 상태는 매우 악화돼 회복불능이라는 판단을 김정일등 지도부는 내린다.조총련에 김주석에게 변고가 있을 가능성을 전달한 것등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그렇다면 이때 김일성의 주위에는 그의 임종을 지켜볼만한 인물들이 모여들었을 것이다.아들이며 후계자인 김정일,오랜 동지인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부인 김성애,딸 김경희등이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다.만일 이 때 김일성이 조금이라도 의식이 있었다면 대부분 가족이면서 북한의 통치자들이기도 한 그들에게 유언을 남겼을 가능성이 많다.물론 의식이 없었다면 유언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통일원 관계자들은 김일성이 입을 열었다 하더라도 『정일이를 잘 돌봐줘라』하는 정도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김일성주석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의 지도자들은 한번 집권하면 죽을 때까지 권력을 지켰다.이 가운데 유서를 남긴 것으로 기록된 대표적인 인물은 소련의 레닌과 중국의 모택동이다.그러나 이들이 남겼다는 유서는 발표된 뒤 안팎으로부터 끊임없이 조작의혹을 받아왔다. 레닌이 사망한뒤 스탈린은 『레닌이 「스탈린을 후계자로 지명한다」는 편지형식의 유서를 당 중앙위원들에게 남겼다』고 밝혔다.스탈린은 권력의 승계과정에서 일부에게는 그 편지를 보여준 것으로도 전해지고 있다.그러나 사가들은 이 편지가 레닌을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한 스탈린에 의해 조작됐을 것으로 단정하고 있다.레닌은 죽기 2년전부터 『스탈린은 성질이 난폭해 권력을 잡으면 안된다』는 말을 되풀이 해온 사실이 밝혀진 때문이다. 지난 76년에 사망한 모택동도 임종을 지킨 장모여인에게 여섯글자의 시 형식을 빌려 「당신이 있어 나는 든든하다」는 글귀를 적어줬다.모가 죽자 장여인은 이 글을 화국봉에게 건네줬다.화는 모가 자신을 후계자로 지명한 유서라고 내세워 집권했다. 김정일이 어떤 형식이든 김일성으로부터 유서를 받았다면 권력기반을 다지는데 순조롭지 못한 상황이 올 때 공개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그 유서의 진위는 확인되지 않을 것이다.
  • 「시어머니…」(외언내언)

    우리 속담을 보면 「시어머니…」로 시작되는 것이 많다.단일 단어로는 빈도가 가장 높을 것이다.그것들이 또 거의 모두가 시어머니를 나쁘게 풍라하거나 원망하거나 비난한 것들뿐이라는 것도 흥미있다.심술맞고,가혹하고,지겨운 것의 총체가 시어머니인 것같다.시부모 모시는 일을 최고 덕목으로 가르쳐온 우리가 심정적으로는 시어머니를 이렇게 미워하고 있었다니. 예부터 시부모와의 관계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었음을 나타내는 속담들을 보면 오늘처럼 며느리 인권이 강해진 시절에야 더 말해 무얼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그러니 마침내는 혼수를 탈잡아 며느리를 구박한 시어머니가 그런 일로 이혼하는 며느리에게 위자료를 물게되고,시어머니를 구박한 며느리는 불리한 조건으로 이혼판결을 받는 현실이 된 것이다.잘되어가는 세상은 아니지만 어쩔 도리도 없어진 것이다. 여류소설가로 이름있는 한 여성이 공식에 준하는 자리에서 피력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는데 그는 모든 「시」자가 든 사람은 소름이 끼치도록 싫어서 병이 난 일이있노라고 했다.그런데 그의 피력에 대해 참석한 많은 여성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았다.도대체 시집식구가 어쨌다고 며느리들이 그모양이냐고 반론이라도 제기했다가는 뭇매를 맞을 것같은 분위기였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서는 사위가 장모를 살해하는 경우가 늘고,여론조사를 통해서는 장모를 살해하고싶은 충동을 느꼈었다는 대답을 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사랑하는 배우자의 부모가 이렇게 미워죽겠는 관계로 변할수 있는 것이 인간이 지닌 모순성인 모양이다. 영원한 갈등의 관계면서 운명의 관계인 의이의 부모와 자식 사이.스스로 마음을 다스려 원만하게 노력을 하기 전에는 묘수가 없을 것이다.죽도록 미워하기보다는 억지로라도 사랑하는 편이 구원이 될수 있지않을까 싶다.
  • 며느리사랑은 시아버지라 했는데(박갑천 칼럼)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사위 사랑은 장모』라고 했다.프로이트식 심리가 깔린 때문일까.대체로 맞는말 같긴 하다.시아버지 마음에 상처 입힐까 저어하여,장모 얼굴에 그늘 드리울까 마음쓰면서 어려운 부부생활 이어왔다는 넋두리도 더러 듣는 것이니 말이다. 시아버지 위하는 효부는 오늘에도 있으니 옛날이야 더 말할 것이 없다.그 중에서도 호랑이까지 감동한 효부 얘기가 이원명의 야담집「동야휘집」에 보인다.­안효부는 17세에 단양최씨에게 시집갔다.얼마후 남편이 죽으니 살림을 도맡으면서 눈먼 시아버지를 지성으로 봉양한다.그를 안쓰럽게 여긴 친정부모가 병이 났다고 속여서 불러들인 다음 개가시키려 했다.거짓 승낙한 그는 밤중에 도주한다.발이 부르터 못걷게 되자 호랑이가 나타나 태우고 갔다.며칠후 함정에 빠진 호랑이를 안효부가 살려주고 호랑이는 죽은 시아버지의 묘자리까지 잡아준다.「청구야담」에도 실려있다. 물론 몹쓸 며느리도 있었다.「어우야담」에 보이는 역관 신응주의 아내 같은 여자다.역시 역관이었던 아버지 신연은 80노령에 여러 아들집을 돌면서 의탁한다.응주는 효성이 부족했고 그 아내는 간악하여 시아버지에게 음식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어느날 찾아왔을 때도 그랬다.응주가 밖에서 돌아와 이를 알고 나무랐으나 아내는 벼락맞을 일이라면서 부인한다.이튿날 응주가 외출한 사이 그집에 벼락이 떨어져 아내와 딸·종이 모두 죽었다.불효가 알려진 응주 또한 형장아래 죽는다. 박대에 그치지 않고 시아버지를 아예 죽여버리는 경우도 있다.「추관지」(추관지:상복부)에 보이는 옥지라는 며느리가 그 여인이다.­시아버지(귀남)가 나병에 걸려 온몸이 곪자 움막을 지어 집에서 내친다.그러고도 자연사하게 내버려두면 자손들에게 전염된다는 속설을 믿고서 남편(■남)·시누남편(김기)·아들(어둔금)과 함께 무명베로 둘둘 말아 항아리속에 집어넣음으로써 숨막혀 죽게 했다.무지의 소치였다고는 하겠으나 소름끼치게 하는 패륜 아닌가.「강릉부지」에도 나오는 얘기인데 그 사건으로 해서 고을을 강등시켜 버린다. 어버이를 찔러죽인 후레자식이 나오더니 이번에는 시아버지를 몽둥이로 때려죽인 독부도 나온다.술버릇 사납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고 한다.하늘이 두렵지 않았던 것인지.절망스러워지면서 서글퍼지는 것은 우리 사회가 이런 일에 신경이 무디어져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세상이 어디로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 것인지 앞이 캄캄해진다.
  • “가출딸 숨겨준다”/사위가 장모살해

    서울 성동경찰서는 2일 가출한 부인을 숨겨준다는 이유로 장모를 살해한 연성웅씨(32·충남 온양시 읍내동)를 살인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연씨는 지난 6월26일 하오 부인 김모씨(24)가 부부싸움끝에 가출하자 처갓집에 찾아가 장모 장모씨(55)에게 『왜 딸을 숨기느냐』며 행패를 부리다 미리 준비해간 칼로 장씨의 옆구리와 등을 마구 찔러 숨지게 하고 이를 말리던 처남과 조카의 목을 찔러 각각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 양측정상TV통해 간접회담/청와대·주석궁에 예비접촉 생중계

    ◎“수용”·“거부”등 일일이 전화로 지시 28일 상오10시부터 판문점 우리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을 위한 예비접촉은 청와대의 김영삼대통령과 평양주석궁의 김일성주석에게 TV로 상세히 생중계됐다. 김대통령과 김주석등 쌍방 정상이 TV화면을 통해 회담광경을 지켜보다 수시로 대표들에게 『수용하라』 『거부하라』등의 지시를 내리며 사실상 협상을 진두지휘,간접정상회담이 됐다. ○…이날 판문점에는 남북한 사전합의에 의해 KBS의 중계팀 20명이 회담장 내부의 모습을 서울은 물론 북측지역에도 송출. 평화의 집 2층회의실은 본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보도진의 접근이 차단됐으나 사전 설치된 TV카메라는 회담테이블을 세 방향에서 에워싸고 낱낱이 촬영·녹음. 카메라에 잡힌 회담장모습은 평화의 집앞에 설치된 대형중계차로부터 판문점지역내에 남북으로 매설된 광케이블을 통해 북측 통일각으로 보내졌다. ○…판문점 북측지역에서는 북한관영 중앙TV팀이 우리측이 보낸 NTSC주사선방식을 PAL방식으로 전환,평양의 주석궁으로 송출. 김일성주석은 주석궁에서 TV를 지켜보며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지시를 내리고 이 지시들은 다시 통일각과 우리측 평화의집 사이에 연결된 직통전화로 북한수행원들의 대기실로 전달. ○…북한측의 「8월 평양」안과 우리측의 「7월 서울안」이 팽팽히 맞서던 상오11시쯤 북측 수행원들은 김용순북측단장에게 수분간격으로 흰쪽지를 건넸다고 관계자들은 전한다.곧이어 양측은 회담시기를 7월25일로 합의했다.
  • 양기탁선생 묘소를 찾기까지/백범이 남긴 약도로 사후56년만에 확인

    ◎유족들,제자와 함께 정확한 위치 찾아/“유해봉환위해 정부차원 지원 있어야” 『대한사람에 우리들은요­산과 골이야 아무리 깁허도 우리마음은 당할수 없누나/대한사람에 우리들은요­물과 불이야 아무리 겁나도 우리마음은 해할수 없누나/대한사람에 우리들은요­달과 놀이야 아무리 발거도 우리마음은 빗칠수 없누나/대한사람에 우리들은요­총과 칼이야 아무리 무셔도 우리마음은 뚜룰수 없누나/…』(양기탁 「아해들 노래」 중에서) 독립운동가이자 문인이자 언론선각자로 평생을 민족에 대한 끝없는 사랑으로 일관한 우강 양기탁선생(1871∼1938)의 묘소가 중국 강소성 율양현의 한 시골마을에서 후손들에 의해 발견됐다. 상해에서 내륙쪽으로 7시간 이상 버스로 달려가는 강소성 남부의 작은 마을 대부진 남문두에는 아직도 우강의 가르침을 기억하는 제자들이 생존하고 있어 그들의 증언을 통해 우강이 기거하던 고당암터와 묘소터를 확인할수 있었다는 것이다. ○상해서 7기간 거리 우강은 구한말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 전신)를 창간하여 외세의 침입에 항거,「행동하는 필봉」으로 민족자존의 횃불을 드높였다.또 일제치하에서도 굴하지 않고 만주와 중국대륙을 무대로 민족적 자각과 독립을 위해 앞장섰던 인물이다.이번에 그의 묘소가 사후 56년만에 유족들의 노력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것은 오는 7월18일 대한매일신보 창간 90주년을 앞두고 더욱 뜻깊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동안 우강의 묘소는 정확한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가족들은 물론 애국선열들의 유해봉환을 추진해오고 있는 정부와 뜻있는 이들의 애를 태워왔다. 우강의 묘소를 찾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것은 백범 김구선생이 해방후 유족들에게 건네주었던 묘소의 약도였다.백범은 우강과는 5년 연하로 신민회 활동에 이어 상해 임시정부등에서 함께 활동해와 남다른 교분을 갖고 있었으며 해방후 우강의 유족인 장남 효손(6·25때 납북)에게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보라며 현장의 위치를 그려 갖다 주었다는 것이다.이 약도는 우강이 말년에 기거하던 고당암과 주변의 뽕나무밭,묘소위치등을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난 3월 이 약도를 들고 묘소를 찾아나섰던 우강의 자부 최선옥씨(76)는 『납북된 남편의 뜻을 40여년만에 이루게돼 여한이 없지만 어서 유해를 모셔와 고국에서 편안하게 영원히 쉬시게 하는 일이 남아있다』며 울먹였다. ○농지개선작업때 이장 우강의 묘소를 찾는 작업은 독립운동가 박은식선생의 손자이자 최씨의 사위인 박유철씨(56·건설공무원교육원장)가 4∼5년전부터 모친(최윤신·77)의 중국에 사는 친척들을 통해 수소문하면서 시작됐다.그 결과 대략적인 위치가 파악됐으며 이번에 박씨가 모친·장모와 함께 현장을 답사,백범의 약도와 비교해보고 생존한 제자들의 증언을 통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게 된것이다. 우강의 묘소는 원래 고당암 앞의 뽕나무밭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60년대 모택동이 대대적으로 전개한 농지개선작업때 4∼50ⓜ 남쪽으로 이장했으며 오늘날에는 밭 한가운데 거의 형체를 알아볼수 없게 방치돼 있다는 것이다. 유족들이 이 마을에서 만난 제자이자 이장을 역임했던 번정재씨(79·농업)는 『선생은 키가 크고 하얀 얼굴에 수염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으며 학문이 높고 기공의 경지가 높아 많은 존경을 받았다』고 회상하고 『선생이 기거하시던 고당암에는 늘 기공을 연마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덧붙였다. 우강의 유족측은 올 가을쯤 다시한번 강소성의 묘소를 방문,구체적인 유해봉환을 위한 절차를 현지정부와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광복 50주년을 맞는 내년까지는 반드시 유해봉환이 이뤄질수 있도록 정부차원에서도 관심을 기울여 줄것을 강력히 촉구했다.◎양기택선생의 항일 족적/대한매일신문 창간… 국권회복 앞장/신민회 결성… 독립군 양성 등 무장투쟁 말 외세의 침략이 노골화돼가던 1871년 4월2일 평양에서 태어난 우강은 소년시절 한학을 배운뒤 15세때 상경,한성외국어학교에서 영어를 배웠고 25세때 부친과 함께 미국인 게일의 한영사전 편찬작업에 참여했다.그 과정에서 일본 미국등을 다니며 선진문물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 이어서 1898년 독립협회에 가담하였고 개혁당 당원으로 활약하는등 활발한 구국운동을 전개했다.러일전쟁이 일어난 1904년에는 대한제국 황실의외교담당부서인 궁내부 예식원 직원으로 임명돼 영어통역을 맡기도 했다. 우강의 가장 큰 업적은 대한매일신보의 창간이다.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조선의 관할권을 내세우는등 침략을 노골화하자 이를 견제하고 국민을 교육시키기 위한 신문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따라서 당시 영국 데일리뉴스의 임시특파원으로 서울에 와있던 어니스트 베델(1872∼1909)을 사장으로 하고 자신은 총무를 맡아 새신문을 창간했던 것. 국한문 혼용의 국내용 신문과 별도의 영문판도 발행한 대한매일신보는 일제의 잔혹한 통감정치 하에서도 전국각지의 의병활동을 상세하게 다루고 국채보상운동을 펴는등 국운이 쇠하여가는 절망적 상황에서도 끝까지 민족에게 항일의식과 애국계몽의식을 심어 국권회복운동의 불씨를 재우지 않으려 노력했다. 우강은 또 안창호·이동휘·이동령·노백린·이시영·김구등과 함께 신민회를 창립,해외독립기지 건설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대한매일신보 사무실내에 본부를 두고 활동을 벌이던 신민회는 1909년 전국대회를 열고 해외에 독립군기지를 세우고 무관학교를 설립해 독립군을 양성하는 한편 국내진입작전을 펼쳐 독립을 쟁취한다는 「독립전쟁전략」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어서 한일합방을 앞둔 1910년 3월에는 신민회가 만주 망명을 결정하고 서간도에 기지를 마련,자치기관인 경학사를 설치하고 신흥강습소를 설립했다.이같이 신민회의 활동이 해외거점을 확보하자 일제는 1911년 7월 「양기탁보안법위반사건」을 날조,신민회 중앙간부 16명을 모두 체포하고 신민회를 해체해버렸다.이어 13년에는 총독암살사건(일명 「105인사건」)으로 6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했다. 4년만에 감형으로 출소한 우강은 16년 주거제한지인 평남 강남군 쌍용면 신경리를 탈출,만주로 가서 신흥무관학교와 광복회에서 활동했다.그러나 2년뒤 18년에 천진에서 일본경찰에게 다시 체포돼 국내로 압송,전남 거금도로 유배됐다. 20년 4월 유배를 끝나고 서울에 와있던 우강에게 새로 창간된 동아일보가 고문및 편집감독으로 추대를 제의해 왔지만 언론을 통한 독립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있던 그는 거절했다. 34년 제26회 의정원 회의에서 우강은 김규식 조소앙과 함께 국무위원으로 선임되었고 이어 주석으로 선출되었다.그러나 그는 주석직도 얼마 가지 않아 사임했으며 모든 관직을 떠나 강소성 율양현으로 들어가 선도에 몰입하다 38년 4월,67세로 이국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았다. 우강은 이같은 공로로 62년 독립유공자중 건국공로훈장 「복장」을 수여받았으며 86년 독립기념관의 독립유공자 임정위원 42인에 추대됐다. ▷연보◁ △1871 평남 평양 소천출생 △1885 한성외국어학교 영어수학 △1895 게일의 영어사전편찬 도움 △1900 나가사키 유학 △1904 베델과 대한매일신보 창간 △1907 신민회 조직 △1913­5 「양기탁 보안법 위반사건」 및 「105 사건」등으로 투옥 △1916 만주로 탈출 △1918 전남 거금도 유배 △1922 만주에서 의성단 조직 △1926 임정 국무령 추대,거절 △1934 임정 주석 선출 △1938 강소성 담양현 고당암에서 선도연구중 사망
  • 바그다드·암만/“세계적 명소” 사해(아랍서 지중해까지:6)

    ◎소금물 호수엔 반나관광객 “둥둥”/호텔 시설·음식 서구의 일류 못지않게 훌륭 물 위에 사람이 누워서 한가롭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고무튜브를 띄워놓고 그 위에 앉았거나 누워있는 사람도 있다.사해는 호수지만 바다처럼 넓었다.한낮인데 햇빛은 그다지 뜨겁지 않았고 이따금 실바람까지 불어왔다.야자나무 잎사귀로 지붕을 엮어 만든 파라솔 아래는 벌거벗은 유럽의 관광객들이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방금 물에서 나온 어떤 여인은 팽팽한 몸매에서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자기 일행이 기다리는 파라솔 쪽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호수 이쪽으로 먼곳에 길게 누워있는 요르단 계곡이 바라다 보이고 그보다 가까이 느보산교회가 있는 느보산 한자락이 손에 잡힐듯 선명하게 보였다.느보산 교회는 모세가 마지막 시절을 보낸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호수 건너편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땅이 사이좋게 나란히 있었다.우리가 보고 있는 저 푸른 야산이 최근 자치권을 얻어낸 예리코의 땅이라고 안내자가 일러줬다. ○암만서 20㎞거리 사해는 요르단강물이 바다로 흘러들지 못해 생겨난 소금바다로 염도가 보통 바다의 7∼8배가 된다고 한다.그 때문에 사람이 알몸으로 누워서 책을 읽어도 끄떡없는 부력을 갖게 된 것이다.암만에서 사해까지 대략 20㎞거리인데 이 길은 심한 표고의 차이 때문에 내리막길의 연속이었다.암만이 해발 7백m의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인데 반해 사해는 해발 0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이 추상적 이미지로 가득한 호수를 향해 차를 달리는 동안 나는 자꾸만 나락으로 떨어져 가고 있는 듯한 느낌속에 빠졌다.그러나 사해의 휴게소 레스토랑에 앉아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는 동안 나는 지옥이 아닌 밝고 아늑하기만한 천국에 와서 있다는 기분을 느꼈다.그것은 내가 한동안 사막을 헤매다가 비로소 푸근한 바다와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바그다드에서 암만까지 무려 15시간동안이나 차를 몰아 우리를 무사히 데려다준 순박한 이라크인 기사는 우리가 사례금조로 5달러를 주었을 때 너무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글썽거렸다.마흔 안팎의 이 남자는 손에 받아든 미화 5달러가 믿어지지 않는 듯 자꾸만 그 지폐를 확인하곤 했다.우리는 새벽 5시에 암만으로 들어왔는데 새벽 어스름 속에 나타난 이 작은 왕국의 수도는 동화의 나라를 연상시켰다.온통 흰색 뿐인 작고 아담한 집들이 높이가 각각 다른 여러개의 언덕둘레에 띄엄띄엄 자리잡고 있는데 그 풍경은 크레파스로 그려진 그림이었다.중심부 시가지도 인공도시답게 잘 정돈되어 있었고 주변의 큰 건물들은 아랍풍의 특징있는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우리가 숙소로 정한 인터콘티넨탈 호텔은 서구의 어느 일급호텔 못지않게 시설이 훌륭했고 음식도 훌륭했다.몇시간 잠을 자고 조반을 들기 위해 일행과 함께 호텔의 뷔페식 식당으로 들어섰을 때 진열된 음식들을 보고 나는 갑자기 눈이 부셨다.품질이 좋은 여러종류의 빵과 파이들,우유와 과일주스,각종 고기요리들,그리고 색깔이 다채로운 야채 샐러드,이런 음식들이 내 눈에 몹시 설게 느껴진 것이다.바그다드에는 이런 음식들이 없었다.일류라는 라시드호텔에도,알 만수르 호텔에도 이런 음식은 구경하기 어려웠다.작년에 바그다드에 다녀왔던 친구가 보름만에 암만의 호텔로 돌아와 처음 식탁을 마주했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었다는 경험담을 내게 들려줬을 때 나는 내 친구가 너무 감상적이라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이제 내가 같은 경험을 하고있는 것이다.그런데 이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기껏 몇날동안 잘 먹지 못하고 돌아온 자신에 대한 연민일까? 혹은 바그다드에서 우유와 약품 부족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아이들과 노인들에 대한 동정의 눈물인가? 나는 둘 모두 아니라고 생각한다.그보다는 차라리 오랜만에 마주친 풍성한 음식에 바쳐진 눈물이란 말이 한층 그럴듯하게 들린다.그러나 이것도 맞지 않을 것이다. 로라의 집에 저녁초대를 받았던 날도 이 비슷한 주제로 친구와 잠시 논쟁을 벌였던 일이 있었다.전직 주한대사이자,현재 이라크 상무부 자문관인 가잘씨는 우리가 바그다드를 떠나기 전날 저녁 우리를 자택으로 초대했다.사실은 이라크 사람의 가정 분위기를 보고 싶다는 우리의 요청에 못이겨 저녁 식사에 우리를 부르기로 한 것이었다.이 초대가 내게 특히 반가웠던 것은 로라를 다시 만날 수 있을거란 기대감 때문이었다.로라는 무스탄시리아대학 영문과 1학년생이다.그녀를 처음 본 것은 바그다드 도착 하루 뒤였다.그때 가잘씨가 연락을 받고 자기 아내와 두 딸과 함께 호텔로 찾아왔었다.가잘부인은 상류사회 귀부인다운 품위와 미모를 지니고 있었고 영어도 유창하게 사용했다.장녀인 로라는 아빠 뒤에 숨어 있다가 가잘씨가 자신을 우리에게 소개하려고 돌아서자、그제서야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그녀는 자그마한 몸매의 귀여운 아가씬데 얼굴에는 총명이 넘쳐 흘렀다.정체 모를 깊은 슬픔을 감추고 있는 듯한 그녀의 크고 한없이 맑은 눈,그 눈을 봤을 때 나는 왠지 낯이 익다고 생각했다.그렇다.레바논 가수 마즈다 루미의 눈을 닮았다.나는 바그다드에서 그 얼굴과 만날 수 있기를 막연하게 기대했었는데 드디어 그녀를 만난 것이다.그러나 어리고 수줍은 로라에게 그런 따위 얘기를 들려줄 수는 없었다.그대신 가잘부인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 『따님은 내가 바그다드에 와서 만난 가장 예쁜 사람입니다』 ○염도 바다의 7배부인은 고맙다는 인사를 했고 로라는 얼굴만 붉혔다.그뿐이었다.가잘씨 가족은 곧 집으로 돌아간 것이다.로라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저녁초대를 받은 것이다.가잘씨는 차를 몰고 가면서 현재 거주하는 집은 장모님 댁이고 자기집은 수리중이라는 말을 들려줬다.홀로된 장모님은 풍채가 좋은 노인인데 사실은 아주 불행한 할머니였다.가잘씨에게 처남이 되는 그의 두 아들은 이라크군의 장성들이었는데 공군장성은 이란과의 전쟁때 전사했고 육군은 한쪽 눈을 잃고 상이용사가 되어 있었다.가잘씨는 가족앨범에서 자랑스런 처남들의 좋았던 한시절 사진들을 보여줬다. ○월급 다털어 대접 식탁에는 낯익은 카밥과 코르사가 나왔다.샐러드도 나왔고 후식으로 과일과 보기 드문 아이스크림까지 나왔다.식사를 끝내고 담소를 하는데 무슨 얘기끝에 가잘씨가 자기 봉급이 하급공무원의 십배쯤은 된다는 말을 했다.십배라면 약3천 디나르,미화로 10달러가 채 안되는 돈이다.그때는 그 얘기를 그냥 흘려들었다.가잘씨가 너무 태연하게 그말을 했던것이다.나는 로라와 주로 얘기를 나눴다.이것은 그녀의 훌륭한 성품 탓이겠지만 로라는 고맙게도 나와 얘기하는데 진지한 흥미를 보여줬다.내 서툰 영어를 이해하려고 그녀는 무척 애썼다.로라의 꿈은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그녀는 아랍어와 영어로 시를 쓰고 있다고 내게 말했다.그 때문인지 내가 다소 추상적인 표현을 했을 때도,서툰 영어탓에 더 그렇게 되었지만 그것을 곧잘 이해하고 적절한 반응을 보여왔다.로라,네가 쓰는 시는 어떤 시일까? 그게 몹시 궁금하다.그걸 읽어보고 싶다고 내가 말하자.로라는 이 담에 시를 적어서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우리는 친구가 되기로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비록 길지않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눈 셈이다.신앙얘기도 했는데 회교에 대해서만은 로라는 양보하려 들지 않았다.그녀는 기회가 주어지면 내게 자기네의 그 신앙을 가르쳐주고 싶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가잘씨 가족과 헤어진 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그 3천 디나르 얘기가 떠올랐다.나는 가잘씨가 우리에게 아이스크림을 곁들인 저녁 한끼를 대접하기 위해 자신의 한달 봉급을 다 써버렸을 거라고 생각한다.반드시 그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음식을 먹을때 목에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았던 사실이 기억된다.호텔로 와서 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하자 친구는 그것은 로라에 대한 특별한 감정(?)탓이거나 지나치게 감상적인 태도일 뿐,사실에 근거한 정상적인 반응은 아니라고 나를 비난했다.일반 서민들에 비하면 가잘씨는 그래도 상류층 생활자인데 동정의 표적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그러나 나는 그때 내 감정이 동정도 연민도 아닌 것을 알고 있다.동정이나 연민은 고약한 버릇이다.로라에게 연민이란 말은 더구나 걸맞지도 않다.그렇다면 고난을 겪고있는 이라크인 전체에게 나는 동정과 연민을 느낀 것일까? 암만 호텔의 식탁에서 흘린 눈물에도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인가? 나는 자신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가 없다.잔잔한 사해의 수면을 바라보며 나는 이런 부질없는 생각에 젖느라고 시간 가는줄 모랐다.안내차 함께온 암만대사관 친구가 좀 지루한 듯 소금물에 몸을 담글 생각이 없으면 그만 암만으로 돌아가자고 내게 말했다.그제서야 나는 사해에서 눈을 떼고 휴게소 건물 밖으로 나왔다.파라솔 아래 있던 몸집 좋은 유럽인들도 어느새 떠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 내무부 화요광장/사무관 주축,주요현안 열띤 토론

    ◎매주 화요일 내무행정·시사쟁점 의견교환/타부처 관계자도 초청… 전문지식 익히고 대책 모색 『행정관리사무 혁신은 보고문서감축,결재행태개선,사무자동화 활용등 크게 세가지면에서 추진돼야 합니다』 매주 화요일이면 서울 광화문 종합청사 내무부 회의실에서는 이른바 내무부의 「화요광장」이 마련돼 열띤 토론이 벌어진다. 지난 21일로 15번째나 거듭된 「화요광장」은 행정실무의 브레인들인 계장(사무관)들이 주축이 돼 매주 화요일 상오 8시부터 50분동안 내무행정,혹은 시사성 있는 관심사항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토론을 벌이고 해결방안을 찾는 스터디구룹활동이다. 토론주제는 광화문종합청사에서 내무부가 쓰고 있는 13,14,15층 곳곳에 그때그때 미리 게시된다.화요광장 참석자 대부분은 계장들이지만 상·하급자나 외부인사 누구나 제한이 없다.때로는 타부처 관계자들이 참석하기도 하고 초청되기도 한다. 「화요광장」이란 명칭은 3월 세번째 화요일(15일)에 당시 핫이슈가 됐던 「지방자치법과 통합선거법」을 주제로 첫 토론활동을 가졌다해서 붙여졌다.문민정부 출범 2차연도를 맞아 공직자들이 개혁의 주변에서 맴돈다는 지적이 제기될때 계장들이 이같은 모임을 생각해냈고 실천에 옮겼다. 「시·군통합」이 토론주제가 되기도 했고 UR타결이 핫이슈가 됐을 때에는 농림수산부 최대휴 사무관을 초청,「UR농산물 이행계획과 대책과제」에 대해서 충분한 의견을 주고 받았다. 14번째 모임이었던 「화요광장」에서 참석자들은 관보나 회보로 대체될 수있는 내용까지 공문으로 일선 읍·면·동까지 무차별 하달되는 사례가 많았다고 자성을 감추지 않았다. 내무부의 이같은 화요광장모임은 본부에서는 어느새 뿌리를 내렸고 지방행정기관에까지 확산돼 몇몇 시·군·구에서 이같은 성격의 토론모임이 본부 못지않게 활발하게 운용되고 있다.
  • “관리태만이 빚은 인재”/김동구 전국부기자(현장)

    ◎포항청년회,폐기물유출 비난 목소리 「아수라장이 여기일까.아니면 연옥이 이같을까」 20일 새벽 삽시간에 10여만t의 산업폐기물이 쏟아져 덮친 포항 철강공단일대는 마치 활화산의 마그마가 흘러 넘치고 있는 현장모양 시커먼 오니토가 뒤덮었으며 잠시도 머물러 있기 힘들정도로 악취가 코를 찌르고 있었다. 유출된 폐기물은 사고가 난지 5시간동안이나 검은색을 띠며 공단의 넓은 도로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때마침 출근하는 공단 근로자들은 도로변에 흘러내린 폐기물과 악취에 아연실색하며 회사내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집으로 되돌아 갔다.또 도로변 하수구 맨홀에는 흘러내린 폐기물이 쉴새없이 흘러들어 인근 구무천을 통해 형산강으로 콸콸 쏟아져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이날 상오 8시쯤에는 유봉산업 근로자 1백여명이 긴급 보수작업을 펴고 있었으나 이때까지도 폐기물이 계속 흘러 복구작업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 역력했다.특히 유봉산업 회사내는 전체가 유출된 폐기물로 뒤엎인데다 심한 악취 마저 풍겨 사람들의 접근조차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날 회원 60여명과 현장조사를 위해 이곳을 찾은 포항향토청년회 한명희회장(39)은 검은색으로 뒤덮힌채 흉한 몰골을 하고 있는 회사건물을 가리키며 『그동안 몇변의 유출사고에도 별다른 대책없이 임기응변 식으로 대처하다 결국 이런 대형사고를 당했다』며 회사와 행정당국을 강하게 비난했다. 사고현장에는 2.5㎞ 떨어진 형산강과 구무천 합류지점의 배수펌푸장. 이곳에는 흘러온 폐기물을 물과 함께 퍼올려 형산강과 영일만으로 흘러보내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오염된 경물을 빨리 영일만으로 흘려 희석시키기 위한 행정기관의 사건축소 의도를 그대로 드러내기도 했다. 결국 이번 산업폐기물 대량유출사고는 유봉산업이 그동안 독점 운영해 오면서 『이곳이 아니면 어디서 폐기물을 처리할 것이냐』는 식으로 관리와 운영을 소홀히 했고 행정 당국은 최근의 환경업무 조정을 빌미로 이것의 관리를 태만히 했기때문에 일어난 인재였음을 느끼게 했다.
  • “난 어머니고생에 탈선 할수 없었어요”(조약돌)

    ◎편모슬하 여중생,비행사장딸에 편지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속칭 로데오거리에서 중학생들을 위협해 금품을 털어오다 경찰에 구속된 재벌기업 계열사 사장의 딸 장모양(16)에게 한 여중생이 21일 위로의 편지를 보내와 눈길. 서울 마포구 성산동 7평짜리 임대아파트에서 오빠와 함께 홀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는 김모양(14·J중2)은 편지에서 『남부러울 게 없는 가정환경에서 자란 언니에게,언니와는 비교조차 할수 없을 만큼 어렵게 살고 있는 우리집 얘기를 하겠다』며 아버지가 사업실패의 충격으로 목을 매 자살한 뒤 남은 가족이 겪었던 애절한 사연을 담담히 적어나갔다. 김양은 『어머니께서 남매의 학비를 대기위해 피까지 파는등 고생을 하시는 것을 보고 차마 삐뚤어질 수 없었다』며 『언니가 이번 일을 거울삼아 몸져 누우신 부모님의 심정을 헤아리는 예쁜딸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 철로점거 관련 3명에 구속영장

    20일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 벌인 여의도 UR반대집회및 영등포역 선로점거,동아일보앞 시위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은 21일 영등포역 선로를 점거했던 송모(19·서울대 농기계과2년)·장모군(19·한양대 독문과1년)등 3명에 대해 철도법및 집회및시위에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키로 했다.
  • 부유층자녀 5명 「유흥비강도」/중학생 30여명에 수백만원 노상강도

    재벌그룹 계열사 사장의 딸을 포함한 부유층과 중산층의 10대 자녀들이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중학생들을 위협,수백만원의 금품을 뜯다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16일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 이른바 「로데오거리」 등에서 귀가하는 중학생들을 협박해 모두 50여차례에 걸쳐 4백여만원의 금품을 빼앗은 장모양(16·고교1년 자퇴)과 정모군(16·Y중3년)등 5명을 특수강도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중학교 동창 또는 친구사이인 이들은 지난해 11월 송모군(16·K중3년)에게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집에 불을 지르겠다』고 흉기로 위협,9만원을 빼앗은 것을 비롯해 송군으로부터 19차례에 걸쳐 70여만원을 뜯었다. 이들은 지난 92년부터 지금까지 강남구 K중·Y중에 다니는 30여명의 중학생들로부터 5천원에서 60여만원씩 모두 4백여만원의 금품을 뜯은 혐의이다.장양은 국내 중견재벌 회장의 고종손녀이자 아버지가 회사의 대표로 있으며 정군은 장안동 중고자동차 매매상의 아들로 밝혀지는등 대개 부유한 집안의 자녀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장양은 경찰에서 『하루 7만∼8만원씩의 용돈이 모자라 이같은 짓을 저질렀다』고 진술했으며 지난 4월 다니던 고교를 자퇴,미국 캘리포니아의 G고교에 유학가기 위해 준비중이었다.
  • 「개털」때문에…억울한 옥살이 99일/달러 바꾸려던 20대여인 봉변

    ◎옷에 붙은 털 떼려고 가위·테이프 꺼냈다가/「암달러상 강도」로 몰려 수감… 법정에서 “무죄” 『개털 때문에 99일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니…』 14일 서울형사지법에서는 웃지 못할 사건의 판결이 종일 얘깃거리가 됐다.판사도 웃고 재판을 지켜본 방청석도 웃었다. 그러나 정작 무죄로 풀려난 피고인은 씁쓸하고 억울한 심정을 가누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장모양(22·학원생)은 지난 2월25일 하오6시30분 남대문시장을 찾았다.동남아여행을 다녀온 아버지가 준 3백달러를 환전하기 위해서였다.장양은 암달러상인 이모할머니(75)의 안내를 받아 남대문로4가 K빌딩 사무실로 갔다. 할머니가 돈을 세는 사이 자신의 감색바지에 붙은 개털이 눈에 띄었다.개털이 화근이었다.장양은 털을 떼어내기 위해 손가방에서 가위와 접착테이프를 꺼냈다.집에서 취미로 기르는 8마리의 개를 손질하기 위해 늘 갖고 다니는 용품이었다.장양은 테이프를 뗐다.「찌지직」소리가 났다.순간,돈을 세다 가위와 테이프를 보고 놀란 할머니는 『강도야』라고 소리쳤다.장양은 할머니를 진정시켰다.그러나 할머니는 장양의 머리채를 붙잡고는 연거푸 고함을 질렀다.놀란 장양은 이내 문밖으로 피하려다 고함을 듣고 달려온 주위사람들에게 붙잡혔다. 장양을 강도로 오인한 할머니는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가위를 들이대며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고 말했다.고함소리만 듣고 달려간 목격자의 진술도 장양에게 불리했다. 장양은 『경찰은 범행을 부인하면 살인미수죄가 되지만 시인하면 죄가 가벼워질 것이라고 회유했고 검찰도 끝내 결백을 믿지 않았다』고 야속해 했다. 그러나 4차례의 공판끝에 서울형사지법 합의24부(재판장 우의형부장판사)는 이날 징역 4년을 구형받은 장양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여성 혼자서 접착테이프를 입에 붙이는 유치한 수법으로 강도짓을 했다는 공소내용은 납득키 어렵다』며 『이할머니도 피고인이 자신의 입에 테이프를 붙이지는 않았으며 돈에 손대지 않았다고 진술하는 점으로 보아 공소사실보다 장양의 진술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밝혔다.
  • 또 이런 패륜…/“왜 잔소리하나” 30대,장모살해/대검

    【대구=남윤호기자】 대구달서경찰서는 7일 집안문제로 다투다 장모를 때려 숨지게 한 강문하씨(34·식당업·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비둘기아파트 201동 1503호)에 대해 존속상해치사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강씨는 이날 상오2시40분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장모 이호순씨(68)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의붓딸문제로 다투다 자신을 꾸중하는 이씨의 머리를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하고 달아난 뒤 집부근에서 배회하다 이날 하오4시쯤 경찰에 붙잡혔다. 강씨는 경찰에서 『재혼한 뒤 부인 박모씨(39)가 데려온 의붓딸 김모양(13·S국교6)이 최근 공부도 하지 않고 말을 잘 듣지 않아 전날 하오 부인과 크게 다툰 뒤 이를 상의하던중 장모가 나무라는 데 격분해 이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 “「새마을」·중기협 등 보조 중단을”/감사원,기획원에 요청

    ◎갱생회·성인병협은 늘려야 감사원은 경우회·삼락회(퇴직교장모임)·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서울시의정회·중소기업협동조합·한국보이스카우트(이상 서울시지부)·한국에스페란토협회등 34개 민간보조단체에 대한 국가보조금지급을 내년부터 중단하라고 경제기획원에 요청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34개 보조단체에 대한 지원금은 연간 1백30억원 남짓된다. 감사원은 그러나 갱생보호회와 한국성인병예방협회등 2개 단체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확대해주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감사원의 한 고위관계자는 1일 『일부단체들은 처음 지원금을 받을 때와 비교하면 활동이 미약해지는등 더 이상 지원을 안해도 되는데도 관행적으로 보조금이 지급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와 함께 지원규모가 적어 명목에 그치거나 분산·중복지원에 따라 예산의 낭비가 심한 단체들을 대상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 목사부인,신도상대 3억대 낙찰계 사기

    교회 목사의 부인이 신도등을 상대로 수억원대의 낙찰계를 조직한뒤 믿돈을 가로채 잠적했다는 고소장이 제출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나모씨(47·수의사·서울 도봉구 미아8동)등 서울 도봉구 K교회 소속 신도 15명은11일 이 교회 목사 장모씨(51)의 부인 김모씨(52)가 자신들을 상대로 낙찰계를 조직,계원들로부터 3억여원의 믿돈을 받은뒤 달아났다는 고소장을 서울 종암경찰서에 제출했다.
  • 실명확인 간소화 내용/동일세대원인 친족 대리확인 가능

    ◎해외근로자 급여이체 위임장·본인증표 없어도 개설 11일부터 간편해지는 실명확인 절차를 거래자 및 거래 유형 별로 알아본다. ▲가족 대리인의 범위 확대=지금은 직계 존비속 또는 배우자의 경우 본인의 실명확인 증표 없이 대리인의 실명확인 증표로 확인이 가능하다.그러나 삼촌·고모와 조카,형제·자매,장인·장모는 본인과 대리인의 실명확인 증표가 모두 필요하다.앞으로는 이들을 포함,주민등록상 동일 세대원인 친족과 의료보험카드상의 피보험자 또는 피부양자도 대리인의 증표만 있으면 실명확인이 된다.이 경우 본인과 대리인의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주민등록등본이나 의료보험카드가 있어야 한다. ▲해외근로자,외항 및 원양어선 선원=지금은 해외에 근무하는 근로자가 사업주를 통해 급여이체 및 재형저축 계좌를 개설하려면 위임장과 본인 및 사업주의 증표가 있어야 한다.앞으로는 위임장과 본인의 증표가 없어도 된다.다만 사업주가 악용할 수 있는 소지를 없애기 위해 사업자등록증,출입국관리사무소 등이 발행한 출국사실증명서,재직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재외국민=재일교포 등이 국내 금융기관에 계좌를 개설하려면 현재는 반드시 입국해야 한다.그러나 앞으로는 해당 금융기관의 해외 점포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이 경우 해외 점포는 신청인의 실명을 확인하고 실명확인 증표 사본 등 신규계좌 개설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받아 계좌를 개설하는 국내 금융기관 점포에 보내야 한다. ▲외국인투자 기업=신규 계좌를 개설하려면 현재는 여권,외국인등록증 또는 증권감독원장이 발행하는 투자등록증 등으로 실명을 확인했으나 앞으로는 외국인투자 신고수리서 또는 외국인투자 인가서로 실명확인이 가능하다. ▲사업주에 의한 금융거래=사업주가 종업원을 위해 사업주 부담으로 납입하거나 종업원의 급여에서 일괄 납입하는 재형저축이나 종업원 퇴직적립보험 등은 신규 계약체결,일괄 해약,만기 재계약의 경우 사업주가 종업원의 성명과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한 서류로 실명확인 증표를 대신할 수 있는데,이 사업주의 범위에 행정관서장·군부대장·경찰관서장도 포함시킨다. ▲종합통장에 의한 거래=한 통장으로 여러 개의 계좌를 동시에 거래하는 종합통장의 경우 현재는 계좌 수만큼 실명확인 증표 사본을 보관해야 한다.즉 이미 실명확인 증표를 제출한 기존 종합통장에 다른 예금 계좌를 추가로 개설하는 경우 실명확인 증표 사본을 다시 내야 하지만 앞으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국·공채 매입 및 공탁금 납입=법률의 규정에 의해 의무적으로 국·공채를 사거나 공탁금을 거는 경우 현재는 법무사나 변호사에게 의뢰하려면 본인의 실명확인 증표를 맡기고 위임장을 써줘야 하나 앞으로는 그럴 필요가 없다.거래신청서에 법무사 등 대리인과 본인의 실명을 기재하고 대리인의 실명을 확인하면 된다.
  • 효는 박애정신으로 이어진다(박갑천 칼럼)

    세상사에는 고개 갸우뚱거려지는 현상이 더러 있다.신비성을 부여 할 만한 경우들이다.우연이라 하기에도 그렇다고 필연이라 하기에도 불가해한 점은 남는 그런 오묘한 일이다. 근자에 주변사람(넷째처남 부부)에게서 그걸 본다.그들이 결혼한 지는 16년.그런데 아기가 없었다.그런 그들이 노모(나로서는 장모)를 모시고 살았다.요즈음 세상에서는 보기드문 효자·효부였다.장모님은 아흔이 넘게 사시다가 지난해 8월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실 무렵 해서는 대소변을 못가리는 치매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장모님은 당신을 모시는 넷째부부에게 자식이 없는 것을 늘 가슴아파 했다.그게 한이었다.그러던 그가 돌아가시면서 그들에게 아기를 점지해 주었다.따져보자니까 운명하시기 한달 남짓전 입원했을때 당신의 며느님은 임신한 것이었다.얼마전 이 40대의 임부는 제왕절개로 옥동자를 낳았다.장모님의 환생인가 싶게 닮아보인다.이를 보면서 신기하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효도를 버력이나 복락과 연관지어 생각할 일은 아니다.그와는 관계없이 자식으로서 다 해야할 덕목이기 때문이다.그러나 가령「삼국유사」에 보이는 손순·운오부부 얘기만 해도 사실여부를 떠나 그같은 연관성을 느끼게 한다.­그들의 어린아이가 노모의 음식을 가로채 먹으므로 민망히 여긴 부부는 아이를 묻을양으로 취산에 올라 땅을 판다.그러자 거기서 석종이 나오고 그들은 아이를 업고 귀가하여 종을 쳤더니 소리가 아름다웠다.이 종소리를 들은 흥덕왕은 사자를 시켜 알아보게 했고 감동하여 상을 내린다. 이 얘기는 한나라 때의 효자 곽거의 황금솥 고사와 비슷하다.그러니까 그를 본떠서 지어낸 얘기일수도 있다.그렇게 중국 것을 본뜬 얘기는 그밖에도 있는 것 아니던가.병든 노모가 한겨울에 잉어를 먹고싶다 하여 효자가 강에 가서 하늘을 보고 눈물지었더니 잉어가 얼음위로 뛰어오르고,역시 한겨울에 죽순이 먹고싶다 하여 대밭에 간 효자앞에 죽순이 솟아올랐다는 따위.설사 효를 장려할 목적으로 지어낸 얘기들이라 해도 효성에는 하늘도 감동한다는 교훈으로 받아들이는 뜻이 크다고 하겠다. 「예기」나「효경」은 자신의 노고를 잊고어버이 봉양하는 것을 가리켜 소효라 했다.이 작은 효도가 마침내 박애정신으로 발전하는바 그것이 대효다.제 어버이 위할줄 아는 사람이면 인의에 눈뜨면서 인류공영에도 이바지하게 된다는 뜻이었다.지상낙원이란 모든 어버이들이 기쁜 사회이다.내일이 어버이날이다.
  • 음주적발 가짜 보고서/서울서도 사용 가능성

    ◎구속 업자,“한달전 인쇄기 팔았다”/“서장 압인 찍어 사용을”/경찰청 【광주·전주=최치봉·조승용기자】 경찰관들의 가짜 음주운전적발보고서(스티커)파문이 광주·전남지역 및 전북에 이어 서울등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광주지검 목포지청은 25일 구속된 인쇄업자 이병식씨(42)가 위조에 사용한 「카본인쇄기」를 한달전에 서울의 인쇄업자에게 넘겨준 사실을 확인하고 판매경위와 서울에서도 위조스티커가 판매됐는지에 대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전남지방경찰청도 이날 구속된 강진경찰서 방범과장 방갑섭경감(56)이 장모씨(52·여)로부터 위조본을 건네받았다고 진술,장씨를 불러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또 전북경찰청은 25일 고창경찰서 경무과 심용보경장(31)과 해리지서 전신권경장(51)등 경찰관 2명이 고창경찰서 교통계에 근무하던 지난 92년 7월 고창읍내의 인쇄업자인 임동렬씨(46·고창동문광고사대표·전주시 완산구 효자동)와 이병식씨를 통해 가짜스티커 2장을 1장에 10만원씩에 사들여 사용한 사실을 밝혀냈다.이들은 근무도중 분실한 스티커를 채워넣기 위해 이 가짜 스티커를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전북경찰청은 도내 15개 전경찰서에 대해 위조스티커사용여부에 대한 감찰을 벌이기로 했다. 그러나 전북의 경우 통상 경찰의 비위수사는 검찰이 맡아오던 관례를 깨고 경찰이 수사를 하고 있어 『봐주기수사가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검찰과 경찰수사에서 드러난 경찰관들의 범죄수법은 주변의 부탁을 받고 위조본에 적발된 음주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를 허위로 기재한 뒤 진본과 갈아끼우거나 가짜 스티커에 측정치를 기록한 뒤 운전자가 보는 앞에서 이를 찢어버리고 금품을 수수했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금품수수에 대해서는 이들이 한결같이 부인하고 있어 수사에 애를 먹고 있다고 밝혔다. ◎긴급 교통과장회의 한편 경찰청은 26일 지방경찰청 교통과장회의를 소집,음주운전스티커의 위조 사용을 막기 위해 이미 인쇄된채로 남아 있는 음주운전 스티커에는 앞으로 경찰서장의 압인을 찍어 사용하도록 지시했다. 이밖에 경찰청은 앞으로 음주운전 스티커를새로 인쇄할때는 지폐처럼 비밀표시를 넣어 위조를 막는 방안등을 마련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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