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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ve & Wedding] 김대호·고수민

    [Love & Wedding] 김대호·고수민

    1995년 12월30일. 이듬해 1월로 예정된 입대를 앞두고 대학생활과 입대 전의 생활을 정리하고 있던 중, 예기치 못한 자리에서 발랄하고 귀여운 그녀를 만나게 됐다. 입대하기 전이라 그녀에 미련을 두고 싶지 않아 마음을 비우자는 다짐을 했으나, 감정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입대 일주일전 그녀의 “보고 있어도 보고싶다, 그러나…”라는 말에 가슴이 쓰라려 입대하는 날 새벽까지 잠 한숨 못 자고 고민하던 난 훈련소로 따라와준 그녀가 한없이 고마웠고 그리워졌다. 입대 뒤, 편지로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사랑의 감정을 키웠다. 그녀는 나와 4시간을 함께 있고자 10시간을 투자해 강원도 양구까지 몇차례나 면회오는 등 나의 군 생활을 뒷바라지했다. 그렇게 2년 2개월의 기다림과 사랑의 시간이 흘러갔다. 복학 뒤 캠퍼스 커플은 아니었지만 거의 캠퍼스에서 함께 지내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뒤 그녀의 대학원 입학과 나의 바쁜 회사생활로 서로가 지쳤던 탓인지 2002년 7년 동안 키워온 사랑에 위기가 왔고, 소중한 시간들이 묻혀버리는 듯했다. 결국 참기 힘든 2년간의 이별의 시간. 무수한 고민과 많은 아픔 끝에 결국 서로 떨어질 수 없음을 확인한 우리는 다시 만났다. 이별 전의 열정어린 사랑보다는 진한 정과 서로의 깊은 마음을 느끼며, 자신의 발전보다는 상대방의 발전을 기원했다. 또한 분위기 좋은 카페보다는 길커피를 즐기며, 외모보다는 진실을 추구하며 서로를 감싸안게 됐다. 만난 지 정확히 9년이 되는 2004년 12월30일 “만난지 3287일 기념 파티하자.”고 불러낸 그녀에게 난 추억어린 수십장의 사진과 사진마다의 편지, 그리고 목걸이를 전하며 “나랑 살자. 이쁘게 이쁘게 같이 만들면서 살자.”라는 프로포즈를 날렸다.2005년 6월16일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수민이와 대호는 또 하나의 삶, 그리고 하나의 긴 여행. 그리고, 서로의 꿈을 하나로 모아 정진해 나아가야 하는 그런 인생항로를 그리고자 한다. 꽃다운 대학 1년때 멋모르고 만나 오랜 연애 끝에 시집오게 된 우리 예비 아내,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받아주신 부모님, 예비 장모님께 무한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이를 위해 많은 사랑과, 많은 행복을 위해 달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한다. 그리고 이렇게 바로 오늘이 바로 우리 사랑의 시작임을 알리며….
  • 포르노사이트 운영자로 몰려 자살기도…

    “인터넷이 뭔지도 모르는 제가 ‘포르노 대부’로 불리게 되면서 온 가족이 고통 속에 살아 왔습니다.” 포르노 사이트 운영자라는 오명을 쓰고 자살소동까지 벌였던 트위스트 김(본명 김한섭·69)씨가 또 한번 오열을 터뜨렸다.15일 오후 3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4층 콘퍼런스홀에서 열린 ‘정보통신 윤리와 성숙한 사회’ 토론회. 그는 지난 5년간의 억울했던 심경을 거친 목소리로 토해냈다. 시민단체 ‘성숙한 사회 가꾸기모임’ 주최로 열린 이번 행사는 땅에 떨어진 인터넷 윤리를 회복하자는 뜻에서 마련됐다. 김씨는 “포르노 사이트 운영자라는 소문이 돌면서 ‘너는 돈이 그렇게 좋아서 그런 걸 하느냐.’는 식의 협박전화에 시달렸다.”면서 “영화 캐스팅도 끊기고 7개의 광고출연도 모두 무산되는 등 출연제의가 뚝 끊어져 버렸다.”고 말했다.3년째 아내와 함께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는 그는 “손녀가 학교에서 울면서 돌아와 ‘아이들이 학교에서 너희 할아버지가 벌거벗은 여자 장사를 한다고 놀려서 학교 안 가겠다.’고 했을 때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사이버 테러의 충격으로 가출한 딸을 찾고 싶어 토론회에 나왔다는 장모씨는 눈물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장씨의 딸은 2003년 9월 교사로부터 체벌을 당한 뒤 한달가량 병원치료를 받았다.이후 학교분쟁조정위원회에서 이 문제가 다뤄졌지만 양호교사가 ‘학생이 아픈 것은 교사에게 맞았기 때문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장씨는 경찰에 진정서를 냈고 이듬해인 작년 4월 양호교사가 심적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이후 인터넷에는 딸에 대한 협박이 쇄도했다. 장씨는 “단순한 욕설이 아니라 ‘시멘트에 얼굴을 갈아버리겠다.’‘만나면 아파트 옥상에서 던져버리겠다.’는 식의 글들이 수천건이 올라왔다.”면서 “이를 견디다 못한 딸아이가 지난 3월 집을 나가 지금껏 돌아오지 않고 있다.”며 눈물을 토했다. 서울대 황경식 교수는 이날 주제발표를 통해 “인간의 얼굴을 한 정보소통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돼야 한다.”면서 “가상 공간의 해방적·치료적 기능은 극대화하고 범죄적·퇴폐적 기능은 극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보통신부는 최근 인터넷상의 명예훼손과 스토킹, 욕설 등 ‘사이버폭력’이 위험수위에 다다랐다고 보고 오는 10월까지 정부차원의 ‘사이버 폭력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인터넷 실명제가 적극 검토되고 있다.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동양그룹 지주회사 된 ‘골프장’

    지주회사인 동양메이저의 부실로 위기를 맞은 동양그룹이 ‘골프장’을 지주회사로 내세워 활로를 뚫고 있다. 자본금 10억원짜리 ‘가족기업’이 자산이 5조원에 가까운 대그룹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동양그룹은 최근 그룹 지주사 격인 동양메이저가 실시한 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비상장 계열사인 동양레저가 459억원을 참여,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이 동양메이저에서 동양레저로 바뀌었다. 동양레저는 이번 유상증자로 지분율이 24.55%(보통주 기준)에 달하게 돼 현재현 회장(15.09%), 부인 이혜경씨(10.66%), 장모 이관희씨(2.04%) 등을 제치고 동양메이저의 단독 최대주주에 올랐다. 동양메이저는 동양종금증권 16.9%, 동양캐피탈 99.7%, 동양시멘트 82%, 동양매직 46.4% 등 주요 계열사 지분을 대거 갖고 있는 지주회사. 이번에 동양레저가 최대주주로 부상하면서 동양그룹은 ‘현재현 회장-동양레저-동양메이저-동양캐피탈-동양레저’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구축하게 됐다. 이재용 상무-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순환되는 ‘삼성식’ 지배구조와 닮았다. 동양은 이 과정에서 상호출자를 피하기 위해 동양메이저가 갖고 있던 동양레저 지분 15%를 동양캐피탈에 넘겨줬다. 자본금이 10억원에 불과한 동양레저는 동양캐피탈(50%), 현재현 회장(30%), 외아들인 현승담씨(20%)가 지분을 나눠 보유하고 있다. 동양레저는 이번 증자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달 말 삼척의 골프장 부지를 600억원에, 지난해 3월에는 순장부가액이 1330억원인 경기도 안성의 ‘파인크리크CC’를 동양생명에 1533억원에 매각했다. 결국 고객들의 돈인 금융계열사 돈으로 오너일가의 지배권만 강화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에 대해 동양그룹 관계자는 “자본잠식을 피하기 위해 실시한 유상증자에 참여할 만한 계열사가 동양레저뿐이었다.”면서 “동양메이저는 이번 유상증자 전에도 최대주주 지분이 45%에 달했기 때문에 지배권 강화와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동양레저는 또 금융계열사의 ‘핵심’인 동양종금증권 지분을 꾸준히 늘려 10.76%까지 끌어올렸다. 동양종금증권은 동양오리온증권, 동양창투, 동양파이낸셜, 동양생명 등의 대주주로 동양의 ‘금융지주회사’격이다. 고 이양구 회장이 시멘트와 제과 중심의 제조업 기반으로 설립한 동양그룹은 지난 1986년부터 큰사위인 현재현 회장의 주도로 운영됐으며 2001년 9월 둘째사위인 담철곤 회장이 이끄는 제과 중심의 오리온그룹이 분리된 이후에는 금융중심 그룹으로 급속히 재편됐다. 자산 4조 8600억원으로 효성, 코오롱 등과 함께 재계 30위권(공기업포함) 수준이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2일 TV 하이라이트]

    ●TV 책을 말하다-책으로 즐기는 축구(KBS1 오후 10시) 열광적인 축구팬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2002년 월드컵의 뜨거운 함성을 기억할 것이다. 이번시간에는 41억 인구가 함께 즐겼던 ‘2002 월드컵의 달’ 6월을 맞아 축구의 열정이 그대로 살아 있는, 축구장을 벗어나 책으로 즐기는 축구책을 말한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SBS 오후 8시55분) 부산에는 소문난 대가족이 있다. 주인공은 바로 300여 마리의 개와 고물상 할머니. 버림받은 생명들을 위해 유기견들의 어머니가 될 것을 자청한 고물상 할머니의 ‘사랑의 집’을 찾아간다. 또 뽑기 기계만을 찾아 헤매는 뽑기 8년차 ‘홍제동 뽑기아저씨’도 만나본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후 1시25분) ‘라그나 로크’라는 게임으로 유명한 한국의 ‘그라비티’게임업체가 미국 나스닥 시장에서 주주들로부터 집단소송을 당했다. 주주들은 회사측이 경영 상태를 과대 포장해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하고 있다.‘그라비티’의 소송 결과는 한국 기업들의 미국 증권시장 진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문화센터(EBS 오전 11시) 날로 편리해져 가는 생활 속에서 우리의 하체 근력은 점점 약해져 가고 있다. 태권도의 다양한 발동작을 통해 하체를 단련시키고, 다리 근육을 늘려 예쁜 각선미까지 만들어 주는 하체 기본동작을 단계별로 배워본다. 또한 운동 후 수분을 보충하는데 도움이 되는 건강음료를 만드는 요령도 소개한다. ●내 이름은 김삼순(MBC 오후 9시55분) 진헌의 레스토랑에 취직이 결정된 삼순을 위해 환영식이 열린다. 모두들 신나게 파티를 즐기고, 마이크를 건네받은 삼순은 춤을 추며 진헌에게 다가간다. 한편, 한국행 비행기에서 희진은 3년 만에 한국에 돌아오는 감회에 젖는다. 공항에 내린 희진은 3년 전의 구형 휴대폰을 꺼내 켜는데…. ●인간극장-연속10부작 ‘시묘살이’(KBS2 오후 8시55분) 사위가 시묘를 1년 더 산다는 말에 서산까지 한 걸음에 달려 온 장모는 움막에서 범수씨와 한바탕 설전을 벌인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이혼이라도 하라며 혼쭐을 내주고 싶지만 초췌한 모습으로 부모님 산소를 지키고 있는 사위를 대하니 그만 마음이 찡해지고 만다.
  • 인천 TV경마장 설치 갈등

    한국마사회가 인천시 남구 숭의동에 TV경마장 설치를 추진하자 인근 주민들이 반대와 찬성으로 나뉘어 갈등을 빚고 있다. 26일 한국마사회에 따르면 숭의1동 343의 건물에 TV경마장을 설치·운영하기 위해 빌딩 소유주와 협의를 하고 있다. 건물주인은 지난달 25일 건물 2∼3층 600여평에 TV경마장이 들어설 수 있도록 건물용도를 문화 및 집회시설로 변경하는 신고서를 구에 접수시켰다. 상업지역인 이곳은 문화 및 집회시설로 용도변경될 경우 구청에 신고만 하면 된다. 소유주는 이어 인근 주민 100여명의 동의서를 받아 마사회에 제출했으며, 마사회는 주민동의서 등을 근거로 농림부에 TV경마장 설치 승인을 신청한 상태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이 일대 주민들은 TV경마장이 들어설 경우 사행심을 조장하는 등 건전한 주민정서를 해칠 우려가 크다며 반대하고 있다. 주민들은 특히 경마가 열리는 토·일요일에 경마장을 찾는 사람들의 차량으로 인해 주택가가 심각한 주차난을 겪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모(43·여)씨는 “경마는 명백한 도박행위인 만큼 대다수 주민들의 동의가 없는 경마장 설치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주민은 경마장이 들어설 경우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방세 수입 등 긍정적 효과가 크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김모(47·상업)씨는 “이 지역은 상업지역이지만 건물의 절반 이상이 비어 있는 등 상권이 낙후돼 있다.”면서 “경마장이 들어설 경우 지역경제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조폭도 점조직… ‘떴다방’ 식 이권 개입

    특별한 활동거점을 두지 않고 ‘점조직’으로 운영하다 이권이 있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찾아가 폭력을 휘두른 폭력조직이 적발됐다. 조직폭력사범 전담 서울지역 합동수사부는 22일 서울·경기도·대전 등의 재개발 아파트 이권, 해병전우회 중앙회장 선거 등에 개입해 폭력을 휘두른 신흥 거대 폭력조직 ‘연합 새마을파’ 77명을 단속, 두목 김모(38)씨 등 34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고문 장모(39)씨 등 44명을 수배했다. 연합 새마을파는 1999년 3월 목포 새마을파, 청계파, 무안파, 해제파 등 전남지역 4개 조직 폭력배들을 결합해 만들었다. 이들은 다른 지역의 조직폭력배들에 비해 수적으로 밀리고 세력도 약해지자 ‘몸집’을 키워 활동 범위를 넓혔다. 수배된 고문 장씨는 대형 나이트클럽과 룸살롱 운영을, 두목 김씨는 상가재개발 이권에 개입했다. 부두목급 이상은 조직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개별적인 사업을 하면서 이권을 챙길 수 있는 ‘건수’가 생기면 서울·경기도·대전 등 전국 9곳의 숙소에서 합숙하던 조직원들을 불러 폭력을 행사하는 ‘점조직’ 형태로 운영됐다. 이들은 재건축 아파트 관련 이권을 주로 노렸다. 2000년 6월 서울 중구 구민회관에서 열린 황학동 재개발조합 주민총회와 관련, 조합장 반대파에 고용된 ‘판문이파’ 소속 폭력배들과 함께 조합장측 조합원들을 상대로 폭력을 휘둘렀고 2000년 12월에는 서울 성북구 월곡 4지구 재개발 아파트공사 철거 현장에서 폭력조직 ‘쌍택이파’‘오비파’ 등 폭력배 300여명과 합세해 철거반대 주민들과 대치하기도 했다. 합수부 관계자는 “과거에는 폭력조직들이 학연ㆍ지연 등으로 세력을 만들어 ‘나와바리’로 불리는 특정지역을 근거삼아 영역을 침범하는 조직과 혈투를 벌이곤 했다.”면서 “하지만 연합 새마을파의 경우 지역근거 없이 전방위로 활동하며 이권을 위해서는 대립관계의 조직과도 연계한 점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세상에 이런일이]火낸들 화 풀리나?

    화가 나면 불을 지르는 남자들이 나란히 쇠고랑을 찼다. 11일 인천 남동경찰서는 10일 애인과 다퉈 화가 난다는 이유로 남의 집에 불을 지른 최모(22·배달원)씨에 현주건조물방화 혐의로 구속했다. 최씨는 지난 9일 오전 5시30분쯤 인천시 남동구 김모(71·여)씨 집에 불이 붙은 휴지를 던져 500여 만원 상당의 재산 피해를 입히는 등 최근까지 모두 8차례에 걸쳐 남의 집에 불을 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최씨는 경찰에서 “여자 친구와 크게 다투고 난 뒤 화를 삭이지 못해 남에 집에 불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같은 날 대구 중부경찰서는 기름을 팔지 않는다며 주유소에서 불을 지른 혐의로 장모(43)씨를 현주건조물 방화 미수혐의로 불구속입건했다. 장씨는 10일 자정쯤 중구 남산동 한 주유소가 영업이 끝나 기름을 판매하지 않자 행패를 부리다 주유기 옆에 있던 휴지통 속 쓰레기에 라이터로 불을 붙인 혐의를 받고 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U사 대표 불러 1억 출처 조사

    청계천변 재개발 특혜의혹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유재만)는 양윤재(56·구속) 서울시 행정2부시장이 설립한 도시설계용역 벤처업체인 U사 대표 김모(31)씨를 상대로 U사의 수주 내역 및 양 부시장 집무실 등에서 발견된 김씨 명의 통장 2개에 입금된 1억원의 출처 등을 집중 조사했다. 양 부시장의 제자인 김씨는 2003년 12월 U사 대표이사에 취임했으며 양 부시장의 추가 수뢰 혐의가 알려진 뒤 잠적했다가 이날 변호인과 함께 검찰에 자진출두했다. 검찰은 또 세운상가구역 32지구 재개발 시행사인 H사 대표 장모(50)씨가 양 부시장 친구의 동생인 광고업체 대표 서모(52)씨를 통해 양 부시장에게 로비를 한 정황과 관련, 양 부시장 집무실에서 발견된 서씨의 청탁메모에 적힌 대형 건설업체 P사 간부의 개입 여부를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메모 앞면에는 용적률 확대와 (심의)일정단축 등의 내용이 적혀 있고, 뒷면에는 시공사인 P사 임원 이름이 기재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양 부시장이 건축설계업체인 N사에서 1억여원을 받은 정황을 추가 포착, 돈의 성격을 조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N사 대표 박모씨는 지난 11일 검찰의 압수수색 직전 필리핀으로 출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Love & Wedding] 주범진(32·주현정보통신 대표) 이현주(32·학원강사)

    [Love & Wedding] 주범진(32·주현정보통신 대표) 이현주(32·학원강사)

    추석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인 2004년 9월24일. 명절 날만 돌아오면 결혼문제로 시달려온 나에게도 드디어 기회가 아 왔다. ‘결혼하라.’는 부모님의 꾸지람에 밥이 귀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불편한 밥상을 끝나게 해줄 나만의 그 사람을 만난 것이다. 아는 선배 소개로 만난 그녀. 처음 만났는데도 어디서 한번쯤은 만났던 것 같은 단아한 모습. 빼어난 미모는 아니지만 단정하고 참하다는 단어가 생각나는 첫인상을 가진 그녀였다. ‘저 사람이다….’ 나의 사랑하는 반쪽을 았다는 설레임에 추석연휴가 이렇게 지루한 적은 없었다. 추석 연휴가 끝나는 마지막날 우리는 두번째 만남을 가졌다. 뭔가 기억에 남을 만한 멋진 선물을 주고 싶은데 도대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뭘 좋아할까 고민하다 나는 결정했다.‘떡’으로. 다소 생뚱맞은 선물이었지만 그녀가 좋아할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만남의 하이라이트는 노래방. 저녁식사와 시원한 맥주를 마신후 마지막 코스로 노래방에 갔다. 그녀가 박신양의 ‘사랑해도 될까요?’의 마지막 구절인 ‘내가 그대를 사랑해도 될까요?’를 부를 때 나도 모르게 “네! 당연하죠.”라는 우렁찬 기합소리가 나왔다. 첫 데이트 치고는 성공적이라는 생각에 나는 집에 오면서 ‘오늘 즐거웠습니다. 내일 전화해도 될까요?’ 라고 문자를 보냈다.1분후에 온 답장은 ‘아뇨. 내일 전화하면 안되는데요.’ ‘아∼ 끝났다.’라며 한숨을 내쉬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데 또 한번의 메시지.‘지금 전화하면 봐줄게요. ’ 처음엔 내가 사업을 하다보니 사업을 해보신 장인·장모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이제는 제일 든든한 후원자가 되셨다. 특히 나를 너무 사랑했던 그녀의 라이벌 5살짜리 조카도 유치원에서 새로 생긴 남자 친구때문에 나를 곱게 이모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이제껏 출장때문에 못만난 2일 빼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우린 만났고, 드디어 6월12일 낮 12시 목동 현대 41타워 컨벤션 웨딩홀에서 나의 반쪽임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맹세할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우리가 만나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리고 우리 앞날에 언제나 축복만이 가득하기만을 바란다.
  • ‘고도완화’ 20억 광고로비 의혹

    청계천변 재개발 사업과 관련, 양윤재(56·구속) 서울시 행정2부시장에게 광고를 미끼로 재개발 사업자가 로비를 한 정황이 포착됐다. ●세운상가 32지구 로비 정황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유재만)는 17일 세운상가구역 32지구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H사가 양 부시장과 친분이 있는 광고업자에게 20억원대 분양광고를 몰아주는 대가로 양 부시장에게 고도제한을 완화해 주도록 로비를 했다는 정황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H사 대표 장모(50)씨 등에 대한 조사에서 이같은 단서를 포착했으며 광고업체인 S사 대표 서모(52)씨를 불러 양 부시장에 대한 청탁 명목으로 분양광고를 수주했는지 등을 집중 조사했다. 이들 업체간에 아직 돈은 오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지난 4일 회의에서 세운상가구역 32지구의 고도제한을 85m(지상 21층)에서 109m(지상 32층)로 완화해주고, 용적률도 789%에서 1000%로 높여주는 안건을 승인했다. 검찰은 당초 10일로 예정됐던 회의가 4일로 앞당겨진 경위도 석연치 않다고 보고 있다. ●양 부시장,“타워팰리스 100층은 올렸어야” 검찰은 양 부시장이 학계에 있을 때부터 ‘도심 고층화론’을 주장한 사실에도 주목하고 있다. 이와 관련, 양 부시장과 절친한 사립대교수 O씨는 “1980년대 중반부터 도심개발과 관련,20∼25층짜리 건물을 병풍식으로 짓지 말고 40층 정도의 건물을 타워형으로 쌓고 중간중간 공원 등 트인 공간을 만들자는 게 양 부시장의 구상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양 부시장은 타워팰리스(42∼69층)도 최소한 80∼100층으로 지었어야 했다며 안타까워 했다.”고 덧붙였다. ●층고완화 과정에 ‘입김’? 양 부시장은 2002년 초 청계천복원 관련 연구포럼에서 건물을 높이 짓게 하되 녹지공간을 확보하는 자신의 구상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서울시의 청계천 주변 고도제한 완화 과정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날 검찰에 참고인 신분으로 나온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정모 연구위원은 “지난해 3월 서울시 주택국이 갑자기 모든 도심재개발 지역에서 고도제한 완화의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진술했다. 이 방안은 청계천복원추진본부 등을 거쳐 같은 해 9월 확정됐다. 당초에는 전략재개발지역(미래로RED의 을지로2가 5지구 등)에만 고도제한 완화의 인센티브를 주도록 돼 있었는데 서울시가 ‘공공용지를 제공할 경우, 기준 높이의 최대 50%까지 인센티브를 줄 수 있다.’는 방안을 제시, 층고제한 완화가 모든 도심재개발 지역으로 확대된 것이다. 정씨는 당시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가 해당 연구에서 배제됐다. ●U사 역할 궁금 양 부시장이 2001년 5월 설립한 U사에도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U사는 주로 주상복합아파트 사업자, 아파트 건설업체 등으로부터 단지 설립계획, 도시환경계획 등의 연구용역을 수주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서울시에 발탁된 이후에는 제자인 정모씨가 운영을 맡아왔으며 그는 이번 사건 수사 이후 잠적했다. 검찰은 또 다른 제자 명의 통장 2개에 입금된 1억원과 U사 압수수색에서 발견한 장부에 기재된 1억원 등 2억원의 출처를 쫓고 있다. 또 양 부시장과 함께 서울시 도시계획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 사립대 교수가 U사의 등기이사로 등재된 사실을 확인,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다. 김유영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안귀옥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처가의 행패 더 이상 못참겠어요

    저는 결혼한 지 10년째이고 7살난 딸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저는 공무원으로 12년째 근무 중이고 아내는 외국인회사에서 간부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뿐인 아이마저 거의 얼굴을 볼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제가 경제력이 없다는 이유로 둘째아이 낳기를 거부했습니다. 아내는 집안 살림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아이의 유치원을 처가 근처로 정하고는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아이를 친정에 데려다 주고 저녁에는 처가에서 아이와 함께 지내다가 밤 10시가 넘어야 집에 오거나 아예 집에 오지 않고 처가에서 자고 출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희 부부는 이러한 문제로 자주 다투었는데 아내는 말다툼만 일어나면 친정 식구들을 불러들였고 장모는 상황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무조건 제가 돈을 많이 못벌기 때문에 딸이 직장을 다니는데 그도 이해를 하지 못하느냐면서 갖은 욕설을 퍼붓고 심지어는 처남과 달려들어 구타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창피해서 다른 데는 이야기도 못하겠고 이제는 이혼마저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가 식구들의 이런 행패도 이혼 사유가 되나요 -장진영(가명)- 정말 마음이 답답하시겠습니다. 우리 부모들은 자식을 결혼시키고도 심리적으로 떠나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식을 늘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나 다 있겠지만 일단 성장한 자녀들에게는 특히 혼인까지 시킨 경우라면 스스로 심리적으로 자립을 하도록 떼어놓는 훈련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더구나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아이를 다른 사람 손에 맡기는 것보다는 친정 식구들이 돌보아 주면 안심도 되고 경제적인 면에서도 도움이 되니까 친정에 더 치우치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친정에서 적절히 조절을 해야 하는데 일단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로 생각해서 딸이 직장에 다니는 것도 사위의 잘못이라고만 몰아붙인다면 이는 정말 어려운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우선은 처가 식구들과 화합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서로 마음이 통하면 처가 식구들도 함부로 하지는 않을 것이고 진영씨도 처가에서 하는 것이 간섭으로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가족간의 갈등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부부가 중심이 되는 가정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것이고 두 부부의 마음이 우선 하나가 되어야 친정 식구들에게든 시댁 식구들에게든 대화가 될 것입니다. 진영씨의 경우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아내에게 서로 잘 살아보자고 만난 것이 아니냐는 원론적이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두 사람이 이렇게 갈등 상태에 있다가 결국 헤어지게 되는 것이 두 사람을 위해서나 아이를 위해서나 바람직하지 않다는 기본적인 문제에 협의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합의에는 처가 식구들의 도움이 절실한데 처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경우이니 우선 어렵더라도 처가 식구들과 자주 대화와 전화로라도 접촉을 하도록 해보세요. 처음에는 어색하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할 것이나 먼 미래에 진영씨 가족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한번 시도해 보세요. 처가 식구들에게 우선은 아이를 양육해 주어서 고맙다든지, 장모님이 딸에게 맛있는 음식을 많이 해주셔서 아이가 건강하다든지, 아내를 직장에 다니게 해서 미안하다든지, 칭찬 거리를 만들어서 장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해보세요. 장모도 어느 정도 마음을 여는 기회가 생길 것입니다. 이렇게 처가식구들과 자주 대화를 해서 서로의 마음이 열리게 되면 서로 심리적으로 분리해서 생활을 할 수 있는 요령이나 기회도 만들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질문하신 이혼 문제는 최악의 경우에 선택하실 것이나, 재판상 이혼 사유로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것’이라는 조항과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것’이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따라서 진영씨가 위와 같은 노력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장모나 처남들의 횡포가 계속되고 아내와의 화합도 되지 않는다면 위 조항에 따라 이혼을 하실 수는 있습니다. 가족 갈등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상담은 사단법인 한국행복가족상담소(032-862-7119,www.e-happy home.or.kr)에서도 하실 수 있습니다. ●가족클리닉의 상담 의뢰는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에서 받습니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前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前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씨

    1980년 2월4일 오후 서울 서빙고동 국군보안사령부 분실장실.50여일 동안 감방생활을 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운명적으로 만났다. 장 사령관은 전 사령관보다 장교임관 5년선배였다.. “장 선배, 그동안 고생이 많았습니다. 건강은 어떠신지요?” “나야, 이래저래 죽을 몸인데 건강이 뭐가 중요하겠소. 그런데 전 장군, 난 수경사령관이오. 나의 임무(반란군 진압)가 뭔지 잘 알잖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전 사령관은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정승화 육참총장이 김재규 사건과 관련이 있는데도 조사에 불응했습니다. 정 총장께서 총장직을 내놓고 6개월정도만 집에서 쉬고 계시면 국방부장관이나 더한 자리를 보장해드릴 생각이었습니다.” 순간 장 사령관은 쿠데타 계획이 매우 치밀하게 짜여져 있음을 직감했다. 전 사령관의 얘기는 계속됐다. “장 선배가 한강다리를 막는 바람에 지금 금값이 얼마인 줄 아십니까.3만원하던 것이 7만원으로 뛰었고, 국제여론도 좋지 않습니다.” 무슨 생뚱맞는 얘기인가. 장 사령관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그쳐 물었다. “전 장군, 정 총장은 나를 수경사령관으로 임명한 상관이요. 총장을 연행해 갔다는 사실을 왜 안 알려줬소.” “장 선배, 사실은 밑에 사람들이 장 선배를 사전에 연금시키자는 것을 내가 야단을 쳤어요.‘그 어른은 우리가 모시고 큰 일을 함께 할 분인데 그렇게 하면 되겠나.’라고 했지요. 장 선배가 그러지만 않았다면 우리들은 그 다음날 장 선배를 중장으로 진급시켜 군단장으로 내보내려 했습니다. 사정을 이해해주시고 6개월 동안 집에서 쉬고 계시면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장 사령관은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너무나 분하고 억울했다.6.25전쟁도 겪지 않은 후배한테 철저하게 유린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장군, 군인이 군생활을 마치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일자리는 무슨 일자리요. 자, 이제 그만합시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소. 승부는 깨끗하게 합시다. 이 패장을 죽이지 않고 집으로 보내준다니 나가야지.” 장 사령관은 다시 감방으로 돌아왔다. 수사관들이 전역지원서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령관님, 이거 예편서입니다. 써주셔야 하겠습니다.” “뭐라고 쓰면 돼?” “네, 일신상의 사유로 인해 예편을 상신합니다.” “알았어.”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일제때 태어나 광복의 기쁨도 채 가시기 전 19세 어린 나이에 구국의 일념으로 6.25에 참전했다. 또 베트남전을 겪으며 무수히 많은 사선을 넘었다. 명예롭기는 커녕 12.12 군사반란을 진압하지 못한 불충의 죄인으로 30년 동안 몸담았던 군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전역지원서를 쓴 장 사령관은 연행돼 올 때 입었던 소장 계급장의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때마침 노을지는 저녁무렵이었다. 서울 봉천동의 집에 도착하자 아들과 딸 부인과 누나 내외, 그리고 장모가 울음으로 맞이했다. ●드라마서 전두환을 유비·관우처럼 취급 이후 장 장군의 집안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우선 장 장군은 강제로 전역된 뒤 자택에서 2년동안 가택연금을 당했다. 또 TV뉴스를 통해 보안사에 끌려가는 장 장군의 모습을 본 시골의 아버지는 곡기를 완전히 끊고 매일 막걸리만 마시다가 80년 4월 세상을 뜨고 말았다. 또 82년 2월에는 외아들이 장 장군의 곁을 떠나버렸다. 그것도 할아버지의 산소 근처에서 꽁꽁 얼어붙은 채로. 꼭 25년 세월이 흘렀다. 쿠데타 세력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장 장군은 재향군인회장,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 등을 지내며 뒤늦게나마 명예회복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가슴에 묻어둔 천추의 한을 어찌 씻을 수 있으랴. 특히 요즘 TV드라마 ‘제5공화국’으로 그날을 생생하게 되새기고 있다. 서울 대치동 자택에서 장 장군을 만났다. “쿠데타를 하고 나서 집권을 위해 어느 한쪽을 손을 봐야 했지. 그래서 민주화를 외쳐대는 전라도 광주를 친 거야. 서빙고에서 알았지만 놈들은 정부운용 계획까지 치밀하게 짜놓았더군.” 카랑카랑한 특유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그는 “이제와서 무슨 말을 해. 날 좀 내버려둬.”하면서 처음에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거실 의자에 앉자 “아무리 드라마라고 하지만 문제가 많아”하면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전두환을 무슨 유비나 관우처첨 취급하고 있어. 나머지는 다 샌님이야. 잘 모르는 젊은 세대들은 어떻게 생각할거야.” 또한 “쿠데타는 5·16이나 12·12에서 보듯 불과 200∼300명의 군인이 저질러. 이런 것이 미화되면 누가 아들을 군대에 보내겠으며, 목숨으로 나라를 지킨 호국영령들을 욕되게 하는 거야.”라고 했다. 그가 지적한 드라마 ‘제5공화국’의 오류. 첫째 쿠데타의 배경과 대통령 유고 상황에서 국가적 시스템이 전혀 작동되지 않은 부분을 쏙 빼버렸다는 것.5·16으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권좌의 안위를 위해 전두환씨를 보안사령관에 임명한 배경과 하나회를 통해 전씨에게 힘이 쏠린 과정, 그리고 10.26때 모든 요직의 책임자들이 우왕좌왕해 사실상 직무유기한 부분 등 교훈적 가치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안사서 정보 완전 장악, 12·12진압 못해 두번째는 국가운영에 필요한 정보가 한곳으로 모아지면 안된다는 부분을 간과했다는 것.10·26직후 보안사령관이 군과 경찰 정보는 물론 중앙정보부까지 완전히 장악, 대통령에게 정보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12·12가 성공할 수 있게 된 결정적인 요인임에도 드라마에서는 이를 놓치고 말았다고 꼬집었다. 또한 군사반란이란 어떤 것이며, 발생했을 경우 방어와 진압의 수순 등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수경사는 대통령령으로 방패계획에 의해 창설됐지. 또 수경사의 사전 허락없이 수도권에 군병력이 절대 들어올 수 없어. 지휘관이 몰래 수경사 예하 30경비단을 장악한 그 자체가 중대 반란이야.” 12·12를 진압하지 못한 결정적인 원인을 묻자 “무슨 명령만 내리면 저놈들이 죄다 알고 있는거야.”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어 “마지막으로 수경사 소속 전차를 출동시키려고 부대 정문을 나서는데 이희성 당시 중앙정보부장 서리가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를 걸어와 ‘출동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하더군.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하게 감시당했어. 또 휘하의 지휘관들은 이미 저쪽으로 많이 기울어졌어. 정말 기막힐 노릇이지.”라고 한탄했다. ●일과의 60% 독서… 쿠데타 막는 법 책낼 것 장 장군은 경북 칠곡에서 3남3녀 중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대구상고를 다니던 중 6·25가 터지자 육군종합학교(11기)에 지원, 사선을 넘었다. 육군대학 졸업논문으로 보안사령부 해체를 주장했다가 베트남 참전때 ‘사상 불순자’로 찍히기도 했다.71년 1월 별을 단 그는 5군단 참모장-수경사 참모장-26사단장 등을 거쳐 10·26 직후 수경사령관이 됐다. 요즘 장 장군은 쿠데타를 막지 못한 ‘한’ 때문에 동서고금의 쿠데타 자료를 모으고 있다.1799년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군력(軍力)으로 정부를 뒤집은 데서 유래한 쿠데타 막는 법을 생전에 책으로 엮어내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요즘에는 일과의 60%를 독서에 쏟아붓고 있다. “죽기보다 더 괴로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다시는 쿠데타가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제갈공명은 강류석불전(江流石不轉)이라고 했다. 강물은 흘러도 그 안의 돌은 물결따라 이리저리 구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 그가 걸어온 길 ▲1931년 경북 칠곡 출생 ▲50년 대구상고 재학 중 6·25참전. 육군종합학교 11기 졸업. 육군 소위 임관 ▲53년 조선대학교 법학과 졸업. ▲54년 보병학교 전술학교관 ▲71년 장군진급 ▲72년 5군단 참모장 ▲73년 수경사 참모장 ▲75년 26사단장 ▲78년 육본 교육참모부차장 ▲79년 11월 수경사령관 ▲80년 육군소장 예편 ▲82년 한국증권전산 사장 ▲91년 육군종합학교전우회 회장 ▲94년∼2000년 제27대,28대 재향군인회 회장 ▲2000년 새천년민주당 입당 ▲2000∼2004년 전국구 국회의원 ■ 상훈 충무무공훈장, 보국훈장 천수장, 자랑스런 한국인상(96년) ■ 저서 12·12쿠데타와 나(93년, 명성출판사) km@seoul.co.kr
  • 儒林(337)-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儒林(337)-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퇴계의 묘갈문에 의하면 아버지 식은 초야에 묻혀 사는 독지역학의 선비. 학문에 관심이 있었을 뿐 과거에는 인연이 없어 계속 떨어지다가 간신히 진사시에 합격하였던 백면서생(白面書生)이었다. 그러나 퇴계의 아버지 식이 묘갈문의 내용처럼 ‘군서를 박람하고 학문에 흥미를 갖게 된 것’에는 그의 첫 번째 처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첫 번째 부인이었던 김씨의 부친은 예조정랑 겸 춘추관을 지낸 김한철로, 집에 모아둔 서적이 매우 많았다. 그가 죽은 후에 장모 남씨는 식이 선비라 하여서 그 많은 서적을 모두 사위에게 물려주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선군의 학은 더욱 해박하게 되었다.” 퇴계가 묘갈문에 쓴 내용처럼 아버지뿐 아니라 이 서적들은 퇴계에게도 자라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접하게 함으로써 자연 학문의 길로 나갈 수 있도록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특히 아버지는 막내로 태어난 퇴계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아내 박씨가 퇴계를 배었을 때 공자가 대문을 두드려 문을 열어주자 집안으로 들어왔다는 말을 전해들은 순간 아버지는 이것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 공자의 현몽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박씨 부인은 퇴계를 노송정(老松亭)의 본가에서 낳았다. 노송정은 퇴계의 할아버지 계양을 가리키는 것으로 퇴계의 아버지 식은 퇴계가 태어난 태실(胎室)을 훗날 ‘성인이 찾아온 문’, 즉 ‘성임문(聖臨門)’이라고 명명하였던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연산군의 포악한 정치에 관리가 되는 것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고려 말기부터 선조들이 살고 있던 온계리의 초야에 묻혀 학문에만 정진하던 가난한 선비 이식은 평소 자신의 소원대로 ‘학도들을 모아놓고 학문을 가르쳐 주는 자신의 뜻’을 계승할 수 있는 아들을 얻게 된 것이었다. 퇴계는 아버지처럼 벼슬에는 관심조차 없었고 실제로 아버지처럼 번번이 낙방하였다. 그러나 퇴계에게 과거를 보아 입신출세하라고 강권한 사람은 어머니 박씨뿐 아니라 퇴계의 둘째 형인 대헌공(大憲公). 연보에 의하면 대헌공은 어머니 박씨를 부추겨 퇴계에게 과거를 보도록 압력을 가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34세의 늦은 나이로 신신당부하는 어머니의 말대로 죽령을 넘어 한양으로 가던 퇴계의 마음은 어찌하였을까. 이미 퇴계는 6년 전인 중종 23년(1528년) 4월. 한양에서 치르는 진사회시(進士會試)에서 2등으로 합격하지 않았던가. 이 회시는 지방의 향시에서 합격한 자들을 이듬해 봄에 한성에 모아서 예조에서 주관하던 과거시험. 그러나 퇴계는 시험을 본 후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고향으로 향했다고 한다. 고향으로 가기 위해서 한강을 건너려 하던 중에 합격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대로 사공으로 하여금 노를 젓도록 하고 강을 건넜다고 한다. 훗날 사람들은 부귀영화와 출세가 보장된 합격소식, 그것도 2등으로 합격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학문의 진리에 몰두하기 위해서 빈 배를 타고 그대로 강을 건넌 퇴계의 모습을 장자풍(長者風)이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이는 ‘빈 배는 도인을 가리킨다. 즉, 도인은 자기를 비워서 세상에 처한다.’는 장자(莊子)의 말을 연상시킬 만큼 속세에 초탈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국왕 친림하에 시행하는 대과전시, 즉 알성시(謁聖試)를 볼 수 있는 여러 조건들을 구비하고 있었음에도 퇴계는 차일피일 시간을 끌고 있었던 것이다.
  • 도난카드 카드사가 60% 배상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8부(부장 신성기)는 신용카드를 도난당해 피해를 본 장모씨와 김모씨가 카드사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카드사들은 원고들에게 범인이 현금 서비스로 빼돌린 액수의 60%인 1000여만원을 돌려주고 범인의 카드 대출금에서 같은 비율만큼을 공제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카드사가 관리하는 회원정보에서 비밀번호가 유출됐을 수 있다.”면서 “회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전에 카드사가 연회비 등으로 카드사고 위험 부담을 분산시키고 사고방지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⑦-한라건설·성우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⑦-한라건설·성우그룹

    한라건설이 역사속으로 사라진 한라그룹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재기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풀무질에 매진하고 있는 주인공은 정인영(85) 전 한라건설 명예회장의 차남인 정몽원(50) 회장이다. 한라는 정주영 전 현대 명예회장의 바로 아래 동생인 정인영 한라그룹 전 명예회장이 황무지에서 일궈낸 그룹이다. 형님과 함께 현대건설 초석을 다지는 동시에 독자적으로 창업했다. 소비재·경공업 제품보다는 장치산업 중심으로 키웠고 21개 계열사를 거느리면서 재계 12위를 기록할 정도로 성장했던 기업 집단이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계열사끼리 상호출자·지급보증이 족쇄로 작용, 그룹 전체가 한꺼번에 쓰러지는 운명을 맞게 되면서 계열사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현재는 한라건설이 간신히 명맥을 잇고 있다. 한라건설은 연간 매출 규모 8000억원 규모인 중견업체로 자회사도 없다. 그래서 한라건설은 한라그룹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정 회장의 직책도 ‘한라건설 회장’이고, 정 명예회장 직책도 ‘한라건설 명예회장’이다. ●미군 공병대 일감 현대건설 연결 정 명예회장은 동아일보 신문기자 출신이다.14세에 무작정 상경, 야간 YMCA야간 영어과 2년을 다닌 뒤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학으로 아오야마(靑山)학원대학 야간 영어과 2학년을 중퇴하고 귀국, 동아일보에 둥지를 틀었다. 운명은 한국전쟁이 갈라놓았다. 외신부 기자였던 그는 형과 둘이서 피란길에 올랐다. 대구에서 한 일간지 편집일을 했고, 형은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부산까지 내려간 두 형제는 두 끼 먹을 밥값밖에 없어 유일한 재산이던 손목시계를 잡히기 위해 전당포를 들렀다가 미군 사령부 통역 모집 광고를 접했다. ‘왕 회장’은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동생이 미군 통역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인영이가 통역으로 취직하면 미군 식당에서 나오는 빵부스러기를 가져와도 먹는 것은 해결될 것이라면서 통역 취직을 했다.”고 회고했다. 자서전은 “아우가 공사라도 해서 밥을 먹어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공병대 장교 통역을 자원했는데 일이 뜻대로 잘 풀렸고, 공병대 일감을 현대건설에 연결해 줬다.”고 적고 있다. 이것이 현대건설이 미군 공사를 휩쓸면서 기업을 키울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이를 인연으로 정 명예회장은 1951년 현대건설 전무로 입사,61∼76년 현대건설 사장을 맡아 ‘왕 회장’과 함께 현대건설의 초석을 다진 장본인이다. 휴전 이후에는 국내 공사 수주에도 적극 나선다. 그러나 공사를 잘못 수주하는 바람에 미군 공사에서 알뜰하게 벌어들인 돈을 몽땅 털어넣고도 모자라 ‘왕 회장’은 자신의 집과 동생, 매제(김영주 한국프랜지공업 명예회장·85) 집까지 팔아 공사비를 충당했지만 엄청난 적자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57년 한강 인도교 공사를 수주,40%의 이익을 거두면서 ‘건설 5인조’에 들어갈 만큼 성장했다. 그 뒤 해외건설 시장에 진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자신감과 경쟁력을 기르고 ‘세계속의 현대건설’로 성장하는 데 한 축을 맡았다. ●현대양행에서 출발, 중공업에 치중 한라그룹은 정 명예회장이 1962년에 세운 현대양행에서 출발한다. 이 때는 정 명예회장이 ‘왕 회장’과 함께 현대건설의 초석을 다질 때였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건설 사장으로 일하면서도 “부존자원 없는 나라에서 중공업 개발 없이는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없다.”면서 62년 경기도 군포에 독자적으로 세운 기업이 바로 현대양행이다. 그는 76년 현대건설 사장직을 내놓았지만 현대양행은 80년 정부의 산업합리화 조치에 따라 포기해야 했고, 대신 중공업을 중심으로 그룹을 구성하게 됐다. 단일 공장으로 최대 규모인 130만평 부지에 창원종합기계공장(현 두산중공업)을 건설해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후 시멘트와 건설, 조선소, 제지, 자동차 부품, 중장비 등을 생산하는 기업을 잇따라 설립하면서 한라는 장치산업 중심의 그룹으로 우뚝 섰다.96년에는 자산 6조 2000억원, 매출 5조 3000억원, 종업원 2만여명이 딸려 있는 재계 12위의 대기업 군으로 성장했다. 주력 기업은 만도기계, 한라중공업, 한라건설, 한라시멘트 등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그룹을 키우는 동안 입버릇처럼 달고 다닌 말이 있다.“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는 것이야말로 경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까이서 그를 본 사람들은 유별난 ‘독서광’이라고 말한다. 출장길이나 차안에서도 영자 신문은 물론이고 경제경영 관련 책이 손에서 떠나질 않았다.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캐내 읽을 정도였다. 집무실에서도 불편한 손으로 영어단어를 외우고 돋보기를 들이대면서까지 셰익스피어전집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정신력도 대단했다. 중풍으로 쓰러진 뒤에도 의지를 갖고 치료를 받았으며, 경영에 소홀하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썼던 기업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휠체어의 부도옹’‘오뚝이 기업인’‘프런티어 기업인’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명예회장 자신이 왕성하게 활동하였던 터라 2세에게는 계열사 사장을 맡기는 것으로 족했다. 그러나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휠체어를 타고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경영권을 2세에게 물려주기 위한 수순을 밟았다. ●재계 12위그룹, 건설이 명맥 유지 96년 말 한라그룹의 상황은 다른 대기업 집단과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계열사간 상호 출자와 지급보증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었다.96년 말 한라의 경영상태는 부채비율이 현상유지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도로 악화됐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만도기계는 수익성이 높고 지주회사 성격을 지녔다. 역시 자동차 부품 회사인 한라공조와 한라건설, 한라시멘트 등이 흑자를 기록했다. 반면 주력기업에 속했던 한라중공업은 적자를 면치 못했다. 중공업을 뺀 수익성이 좋은 3개 주력사는 다른 계열사의 지급보증과 채무를 떠안아야 했고 특히 중공업에 발목이 잡혔다.8000억원 이상이 투자된 삼호공단 조성 및 조선소, 플랜트 공장 건설이 뒤따랐다. 이 때 시작된 자금난이 그룹 부도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보아도 된다.96년 조선소가 가동되기는 했으나 막대한 투자비를 일시에 회수하지 못하고 외환위기를 맞았다. ●그룹 총수도 전셋집, 기업의 사회적 책임 충실 한라그룹이 쓰러질 때는 정몽원 회장 체제였다.97년 1월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구조조정을 단행했지만 외환위기 파고 때문에 자신의 뜻을 펼쳐보지 못하고 그룹 해체라는 상황을 맞게 됐다. 외환위기라는 복병을 만나는 바람에 아버지가 공격적으로 펼쳤던 사업을 추스르기에도 바빴다. 결국 정 회장은 어려운 결단을 내린다. 우량 회사와 적자 회사를 가릴 것 없이 모든 계열사를 매각하거나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기업인으로서 사회적·도의적 책임을 통감하고 자신의 집은 물론 명예회장의 집까지 팔아치우면서까지 모든 것을 버렸다. 재계 12위 그룹 총수였던 명예회장은 지금 전셋집에서 살고 있다. 잘 나가던 만도기계, 한라건설, 한라시멘트 등을 팔고 싶어도 중공업에 서준 지급보증 때문에 매각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발상의 전환을 했다. 외국자본을 들여와 기업을 정상화시키는 방안을 찾던 중 미국계 투자은행 로스차일드가 10억달러 정도를 투자, 주력 업체를 살리는 프로그램을 내놓았고 이를 따랐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사회적 파장을 최소화했다. 기아나 한보 등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종업원들을 거리로 내몰았지만 한라는 종업원을 그대로 유지했다. 부도 이후에도 생산성이 올라갔고 기업가치도 떨어지지 않았다. 매각된 계열사들이 곧바로 정상을 되찾고 우량 기업으로 태어나는 계기가 됐다. ●그룹 경영권 차남에게 지명 정 명예회장의 장남 몽국(52)씨는 89년부터 92년까지 한라그룹 부회장을 맡았다. 그러나 94년 말 정 명예회장은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차남을 그룹 후계자로 지명하면서 형 몽국씨는 95년 초부터 그룹 경영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유학갔다. 한때 배달학원(한라대학교)이사장을 맡고 부인 이광희(51) 여사가 총장을 맡기도 했다. 정 회장은 정 명예회장의 2남으로 고려대 상대를 졸업하고 지난 79년 현대양행에 입사해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89년 만도기계 사장을 거쳐 92년 한라그룹 부회장으로 부친과 함께 한라를 키웠다. 차남 몽원씨가 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후 형제간에 약간의 갈등도 있었다.2003년 형 몽국씨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본인도 모르는 사이 그룹 기획실에서 임의 처분했다며 민형사고소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은 형사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민사건은 형제간의 원만한 화해로 ‘왕자의 난’을 비켜갔다. 전문 경영인으로는 김홍두 사장이 있다.78년 한라 공채로 입사,96년 관리 분야 부사장에 올랐다.2003년 이후 사장을 맡고 있다. 한라그룹의 부침을 지켜본 몇 안되는 사람으로 판단이 빠르고 부지런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단조로운 혼맥, 독실한 기독교 집안 한라그룹의 혼맥은 다른 현대가처럼 얽혀있거나 거물급이 눈에 띄지 않는다.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색다른 맛이 없다. 결혼은 자유로웠고 상대 집안도 평범했다. 몽원 회장의 어머니인 고 김월계 여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자연히 두 형제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중매쟁이도 교회였다. 두 형제가 모두 교회에서 만나 결혼했다. 장남 몽국씨는 이광희 여사와 만나 연애 결혼을 했다. 평범한 가정으로 알려졌다. 동생 정 회장도 역시 교회에서 아는 사람의 소개로 홍인화(48) 여사를 만났다. 홍여사는 TBC아나운서 출신이다. 장인·장모가 약사였고 굳이 따지자면 장모가 서상목 전 국회의원 누나다. 정 회장은 최근 다니던 교회 장로로 취임했다. 명예회장도 늦게 교회를 나왔고, 몸이 불편한 관계로 최근에는 집에서 가족 예배를 드리곤 한다. chani@seoul.co.kr ■ 성우그룹 성우그룹의 모태는 현대시멘트다. 1970년 1월 정주영 전 현대명예회장의 둘째 동생인 정순영(83) 당시 현대건설 부사장이 현대건설에서 떨어져 나온 현대시멘트㈜ 사장을 맡으면서 성우그룹의 역사는 출발한다. 당시는 성우그룹이 아닌 현대시멘트라는 단일 회사였다. 현대 방계가 대부분 그렇듯이 성우그룹도 ‘왕 회장’이 덩치가 커진 현대건설의 일부 사업을 떼어주면서 시작됐다. 경제개발 호재를 안고 있을 때라서 출발은 순조로웠다. 현대건설이 국내 시장과 해외시장에서 뿌리를 내릴 즈음이라서 분가도 쉬웠다. 성우그룹이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부터다. 성우리조트를 설립하고 사옥을 현재의 서울 서초동으로 옮기면서부터다. ●그룹 우산 키우기 미미 정순영 당시 현대시멘트 사장은 5년 동안 시멘트 단일 품목에만 손을 댔다. 그러다가 75년 현대종합금속을 세워 그룹의 덩치를 키운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룹의 위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추가 사업 영역을 넓히기 위해 고심하던 끝에 찾은 것이 자동차 부품산업이었고,87년 성우오토모티브를 설립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자동차 산업 발전 추세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그룹 우산을 제대로 펴기 시작한 것은 현대시멘트를 독립 운영하기 시작한지 20여년이 지나면서부터다.95년에 성우종합레저를 설립, 강원도 둔내에 대규모 레저시설을 짓기 시작했다. 같은 해 사옥을 지금의 서울 잠원동에서 서초동으로 옮겼다. 이 때부터 ‘성우그룹’이 통용되기 시작했다.92년에는 성우종합건설을,96년에는 성우전자를 잇따라 그룹사로 편입시켰다. 그러나 시멘트와 자동차 부품사, 건설을 뺀 다른 업체들의 경영실적은 영 신통치 않았다. 몇몇 업체는 부도를 맞기도 했고 그룹 위상도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결국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다른 그룹보다 경영권 이양작업을 서둘러 진행했다. ●경영권 이양, 순조롭게 마무리 정 명예회장은 2세들에게 외국 유학을 다녀온 뒤 일찍부터 경영수업을 받도록 했다. 주로 시멘트를 거치도록 했다. 다만 딸과 사위들은 성우그룹 경영과 거리를 두었다. 장녀도 사위가 먼저 세상을 떴지만 단지 현대시멘트 고문으로 있다가 최근 별세했다. 차녀도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사위 역시 개인사업을 한다. 경영권은 97년 1월에 이전됐다. 경영권을 넘기는 과정에서 잡음이 거의 없었다. 정 명예회장은 가급적 자식들이 경영 수업을 받을 때 맡았던 분야를 떼어주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단순 주식분배 차원이 아닌 전공을 찾아 맡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계열분리가 이뤄지도록 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었다. 정 명예회장은 장남 몽선씨에게 그룹의 주력 기업이던 현대시멘트를 잇도록 했다. 자신과 정 회장이 오랫동안 경영에 참여했던 분야다. 현대시멘트는 시멘트 사업부와 성우리조트를 개발·운영하는 레저사업부를 포함하고 있다. 현재 국내 시장 점유율 3∼4위를 지키고 있다. 성우종합건설도 장남의 몫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일반 건설사처럼 민간 공사 수주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자체 공사와 관계사 공사를 벌일 정도다. 신생 회사 성우이컴도 정 회장이 지휘한다. 골프장 관리·운영 전문 업체라고 할 수 있다. 2002년 4월에는 형제간 계열 분리도 마쳤다. 주력기업인 현대시멘트는 부실기업인 성우전자 성우정보통신 성우캐피탈 등 3개사를 계열사에서 제외해버렸다. 정몽훈(46) 성우전자 회장이 지분을 갖고 있던 회사다. 이로써 형제간 지분정리까지 마치게 됐다. 둘째아들 몽석(47) 회장은 현대종합금속을 받았다. 포항 공장에서 용접봉과 카바이트를 만들어내는 회사다. 현재는 용접봉만 생산한다.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에 많은 양을 납품한다. 3남 몽훈 회장은 성우전자, 성우캐피탈을 넘겨받았다. 그러나 사실상 경영에서 물러서 있다. 막내 몽용(44) 회장은 88년 성우오토모티브와 현대 에너셀을 맡아 왕성한 경영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로 자동차 부품생산업체를 물려받았다. 오토모티브는 자동차 시트, 알루미늄 휠 등을 생산하는 회사. 포항공장에서 자동차용 주물을 생산, 현대자동차에 납품하고 있다. 충주공장에서는 자동차 알루미늄 휠을 전문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시트 생산 부문은 지난해 말 현대자동차 계열사에 매각했다. 에너셀은 자동차용 배터리 생산업체다.㈜성우는 육상 시멘트 화물 운송 회사다. ●드러내기 싫어하는 성우그룹 혼맥 현대가의 혼맥이 그렇듯이 성우그룹에도 특별히 튀는 집안이 없다. 그런데도 성우그룹은 혼맥이 드러나는 것을 극구 꺼린다. 혼맥이 비치는 자체를 싫어한다. 장남인 현대시멘트 몽선 회장과 결혼한 김미희 여사(작고)는 집안이 학교 교장 선생님이었다. 장남 결혼을 시키면서 말 그대로 평범한 교육자 집안과 사돈을 맺었다. 장인 김태휴씨는 뒤에 현대성우리조트 고문을 지냈다. 김수진 서울대 교수, 차연택 현대백화점약국 대표, 최동일 연세산부인과원장, 정 회장, 전동진 경원대 교수 등이 동서지간이다. 하지만 김 여사는 93년 10월 태릉 아이스링크 선수 대기실에서 둘째딸과 함께 불의의 화재사고를 당했다. 이때 대한항공 조중훈 회장이 전용기를 내주어 일본 행림대학 병원으로 후송, 치료를 받았으나 아깝게도 함께 세상을 달리했다. 이를 계기로 사업상 앙금이 있던 왕 회장과 조중훈 회장이 화해하는 계기가 돼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재혼한 진영심(36) 여사 역시 평범한 집안으로 알려졌다. 둘째아들 현대종합금속 몽석 회장 처가도 대구에서 작은 기업을 하던 평범한 집안이라는 정도밖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셋째 몽훈 성우전자 회장의 장인은 직업군인이었다. 장성으로 예편한 뒤 공기업 임원으로 근무했다는 정도만 알려진다. 하지만 넷째 몽용 성우오토모티브 회장의 결혼 때는 좀 다르다. 잘 알려진 로열 패밀리 가운데 하나인 인촌 김성수가와 사돈을 맺는다. 몽용 회장의 장인이 체육계 원로인 김상겸 박사다. 김 박사는 동아일보와 고려대를 설립한 인촌 김성수의 막내아들이다. 한국 체육 발전에 평생을 바친 전 고려대 명예교수이며 지난해 별세했다. 김 박사는 대한체육회 부회장과 대한스키협회회장, 나가노동계올림픽 한국선수단장, 고려대 사범대학장 등을 지냈다. 장녀, 차녀도 평범한 집안과 결혼했다. 그룹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전문 경영인 전문 경영인은 많지 않다. 직접 경영을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김희대(44) 현대시멘트와 성우종합건설 대표이사 부사장은 정 회장의 매제. 미국 하트포드대학원 경영·경제학과를 졸업한 유학파.88년 현대시멘트에 입사, 총괄 부사장을 거쳐 올 1월부터 대표이사 부사장을 맡고 있다. 성우리조트는 엄준섭(53·부사장) 본부장이 정 회장을 돕고 있다. 성우이컴 김연문(55) 대표이사 사장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74년 입사해 경리파트를 맡으면서 명예회장과 정 회장을 지근에서 보좌했다.2001년 부사장에 오른 뒤 2002년부터 이컴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 골프장 개발 운영업을 이끌고 있는 전문 경영인이다. chan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빚독촉 옛애인 생매장

    채무변제를 요구한 옛 애인을 생매장해 살해한 범인이 1년 만에 검거됐다. 서울 도봉경찰서는 24일 빌린돈 1500만원을 갚을 것을 요구하는 옛 여자친구를 실신시킨 뒤 생매장해서 살해한 장모(25·무직)씨 등 2명을 강도살인 혐의로 구속했다. 장씨 등은 지난해 4월10일 새벽 4시쯤 빚 1500만원을 갚으라고 독촉하던 옛 애인 조모(28)씨를 식사를 하자며 불러내 수락산 쪽 한 사찰의 주차장에서 주먹으로 때려 실신시킨 뒤, 바위 틈에 넣고 돌 등으로 매장하고 현금 및 신용카드를 뺏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장씨가 2002년부터 조씨의 카드로 쓴 돈을 조씨가 갚으라고 하자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장씨는 범행 직후 범행을 은폐하려고 조씨의 가족에게 조씨의 휴대전화로 “강원도에 돈벌러 왔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문자메시지를 주기적으로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장씨 등은 조씨의 전화로 060 음란전화서비스를 이용하다가 음란서비스의 회원으로 여자가 가입된 것을 수상히 여긴 경찰의 수사 끝에 검거됐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골프공맞아 부상땐 골프장 책임”

    서울중앙지법 민사24부(부장 김홍우)는 21일 뒤따르던 팀에서 날아온 골프공에 머리를 맞아 다친 장모(60)씨가 경기도 이천의 골프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캐디들이 주의 의무를 위반한 만큼 골프장은 869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앞팀 캐디와 뒤팀 캐디가 경기자의 안전확보 주의의무 등을 위반했다.”면서 “골프장은 캐디 사용자로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문제의 골프공을 친 정모씨에게는 “자신의 타구가 원고에게 날아갈 것을 예상할 수 없었고 사고 장소에서 앞 팀 경기자들의 이동 상황에 대해 주의의무가 없어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덧붙였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문희상 ‘자금5억 출처’ 논란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이 대통령 비서실장 재임 중인 지난 2003년 두차례에 걸쳐 출처가 불분명한 5억 3000만원을 받아 채무를 변제하는 데 사용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한 월간지가 보도해 논란이 예상된다. 신동아 5월호는 문 의장이 2003년 6월3일 1억 8500만원, 같은해 11월9일 3억 5000만원을 자신의 채권자 이모씨에게 갚았으나, 이 자금에 대해 17대 총선 후보자 등록과 국회의원 재산등록 때 공직자 재산(채무)신고를 하지 않았고, 증여세 납부절차를 밟지 않은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이 자금 가운데 3억 5000만원은 지난 총선 때 경기 의정부 지역 열린우리당 후보 공천을 신청한 Q변호사에 의해 채권자 이모씨에게 현금으로 전달돼 의혹을 더하고 있다고 신동아는 밝혔다. 이 보도에 의하면 문 의장은 괴자금 의혹에 대해 의원회관에서 인터뷰를 갖는 자리에서 “6월에 갚은 1억 8500만원은 장모가 돌아가시면서 나에게 쓰라고 주신 돈과 장모상 때 받은 조의금, 지인과 친척이 준 돈이 포함돼 있다.11월에 갚은 3억 5000만원은 지인, 친척 등이 마련해 준 돈으로 대가성이 전혀 없으며 문제될 게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문 의장은 지난 15일 신동아에 보낸 해명서에서 “1억 8500만원은 장모와 모친이 작고하면서 남긴 돈이다.3억 5000만원은 장모(1억 5000만원)와 모친상(1억 1500만원)때 받은 조의금에서 장례 비용을 뺀 나머지와 유산을 합한 1억 3000만원, 형제들이 준 1억 2000만원, 장남 6000만원,JC회원인 지인 홍모와 권모씨가 준 4000만원으로 마련했다.”고 일부 내용을 번복했다고 신동아는 보도했다. 이에 대해 문 의장측은 “억측과 예단으로 일관된 악의적 기사”라면서 “우리는 단돈 1만원도 소명할 수 있는 자료가 있다.”고 반박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학교폭력이 일가족 자살 불러”

    아들의 학교생활 부적응과 성적을 비관해 일가족이 동반자살한 사건(서울신문 4월13일자 8면)과 관련, 유가족들이 학교 앞에 시신을 놓은 채 “학교폭력을 철저히 수사해 달라.”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경찰도 폭력 여부에 대해 수사에 들어갔다. 이모(47·카센터 운영·경기도 수원시)씨의 친척들은 14일 충남 공주시 정안면 H고 앞에 이씨와 부인 장모(44), 딸(14) 등 3명의 시신이 든 관을 놓고 농성을 벌였다. 이씨의 동생(46·광주시 서구)은 “형님 집에서 교육부장관 등에게 보내는 탄원서가 발견됐다.”면서 “형님 가족은 하나뿐인 아들이 학교 폭력에 시달려 고통을 겪는데도 학교측에서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을 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숨진 이씨가 남긴 A4용지 6쪽 분량의 탄원서에는 ‘아들은 2003년 학교에 입학, 동급생들에게 수없이 폭행당하고 폭언을 듣는 등 학교폭력에 시달렸다.’‘학교에 도움을 청했지만 소용없었고, 너무나 기가 막혀 죽음을 안고 하소연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또 ‘이 학교에서는 매년 수명의 학생들이 보이지 않는 따돌림으로 병들어도 말하지 못하는 현상이 되풀이됐다.’고 덧붙였다. 이씨가 차에 휘발유를 뿌릴 때 피해 살아남은 아들 이모(18·고3)군도 “학교에서 정신과 치료를 강요했고, 내과 치료를 받았는데도 교사가 공개적으로 ‘쟤는 정신질환으로 위험한 애니까 상대하지 말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이날 오후 8시쯤 관을 장지인 전라도 광주로 옮겼다. H고 관계자는 그러나 “이군이 신체적 열등감과 정신장애로 인해 친구들을 각목으로 위협하는 등 오히려 가해자였다.”고 말했다. 한편 공주경찰서는 이날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 당장 수사에 착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장례 절차가 끝나는 대로 탄원서에 가해학생으로 나오는 3∼4명을 중심으로 학교 폭력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공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세상에 이런일이]술술술 꼬였네

    인천 동부경찰서는 지난 6일 술주정을 한다는 이유로 친구를 때려 숨지게 한 고교생 권모(17)군을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했다. 권군은 지난 3일 오전 2시쯤 인천시 남구 주안1동 길가에서 친구 한모(17)군이 여자 선배들에게 술 주정을 한다며 주먹으로 한 군의 얼굴을 폭행했다. 경찰은 한군이 쓰러지면서 바닥에 머리가 부딪쳐 뇌진탕으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경찰조사 결과 권군과 숨진 한군은 같은 학교 운동부원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 운동을 해 온 죽마고우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경기 성남에서는 술을 많이 마신다는 이유로 동거녀를 때려 숨지게 한 장모(37)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장씨는 5일 오전 8시쯤 성남시 집에서 동거녀인 최모(43)씨가 술에 취해 귀가하자 최씨의 온몸을 마구 때려 뇌출혈 등으로 사망케 한 혐의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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