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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 낳은 듯…8만분의1 확률로 태어난 쌍둥이

    알 낳은 듯…8만분의1 확률로 태어난 쌍둥이

    양막에 쌓여 출산한 쌍둥이산모·태아에 위험하지 않아태아도 안전 스페인에서 양막에 쌓여 태어난 쌍둥이의 모습이 공개됐다. 양막이 손상되지 않은 채 아이가 태어나는 확률은 8만분의1로 알려졌다. 27일(현지시간) 영국 메트로 등에 따르면 최근 스페인 발렌시아 동부 카스텔론 주 비나로스 시의 한 병원에서 제왕절개 수술 중 쌍둥이가 양막이 찢어지지 않은 채 태어났다. 당시 제왕절개 수술을 담당했던 산부인과 의사 아나 테이젤로가 분만 장면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영상으로 공유하면서 이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보호자로부터 영상 게시 허락을 받았다고 밝힌 테이젤로는 “너무 아름다운 순간이다. 수술에 참여한 의료진들의 열정이 함께 했다”며 “아이들은 모두 건강하게 태어났다”고 했다. 이어 그는 “이 순간을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의료진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고 말했다.태아를 덮고 있는 얇은 막을 의미하는 양막은 보통 분만 과정에서 파열된다. 양막 내부는 양수로 가득 차 있는데, 양수는 태아를 보호하고 온도를 조절해주는 역할을 한다. 신생아 8만명당 1명꼴로 양막이 파열되지 않은 채 태어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양막이 터지지 않은 채로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산모와 태아에게는 위험하지는 않다.
  • 4·3 다랑쉬굴 유해 11구는 왜 바다에 뿌려졌나… 진상규명·성역화 필요

    4·3 다랑쉬굴 유해 11구는 왜 바다에 뿌려졌나… 진상규명·성역화 필요

    “이렇게 허망하게 섬을 떠나고자 40년 세월 참아온 건 아닌데 이렇게 억울하게 한라산을 등지자고 칠흑 어둠에서 두눈 부라리고 기다려 온 건 아닌데 허나 서러워 마라, 내 아주 떠나는 건 아니니 그 좋은 날에 억새꽃 따라, 그대들 곁으로 다시 오리니 서러워 마라, 서러워 마라.” 독립영화 ‘다랑쉬굴의 슬픈노래’에서 마지막 유해를 뿌리러 바다로 떠나는 장면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제주 4·3의 참혹함과 학살의 실체적 모습을 응축하고 있는 다랑쉬굴이 발견되고 그 유해가 공개된 지 올해 30주년을 맞아 지난 26일 제주4·3 어린이체험관 평화교육강당에서 “다랑쉬굴 발굴 30년, 성찰과 과제”를 주제로 특별세미나가 열렸다.  구좌읍 세화리 남서쪽 6㎞지점으로 해발 170m에 위치한 다랑쉬굴에서 지난 1992년, 유해 11구가 발굴됐다. 4.3 당시 진압작전을 피해 굴속으로 피신했다가 참화를 당한 구좌읍 하도리와 종달리 피란민들이었다. 아이 1명과 여성 3명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유해는 정식·정밀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발굴 45일 만에 화장돼 바다에 뿌려져 진상규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다랑쉬굴의 발굴은 그동안 말로만 듣던 4·3학살 피해의 쇠망치 같은 것이었다. 1992년 4월 2일 제주4·3연구소에서는 제주경찰서 정보과에 다랑쉬굴 발견 사실을 통보했다. 경찰, 행정기관, 언론사에서 이날 현장 검증했다. 그러나 현장 검증 후 제주도지방경찰청은 죽음의 원인을 집단자살,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 발표했다. 경찰은 또한 이들 희생자들을 세화리 습격사건 무장대로 지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설득력이 없었다. 발굴 유해 중에 9세의 어린아이와 4·3 당시 굴 밖에서 희생되어 이미 수습되었던 시신 중에 7,9세의 어린이들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4·3학살의 광풍을 피해 피란했던 주민들임이 명백했다.도민들과 국회의원, 도의원들도 다랑쉬굴 4·3희생자 유해를 ‘도민장’으로 하고 합동묘역을 조성해 한과 상처를 치유하여 화합의 징표로 보존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러한 4·3연구소를 비롯한 도내 각계의 염원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바로 관계기관이 개입이 본격화된 것이다. 또한 4·3 당시 무장대에게 피해를 당한 유족들도 동원돼 “폭도들의 무덤을 만들 수가 있느냐, 만약 무덤을 만든다면 그냥 둘 줄 아는냐”라는 색깔론이 불거졌다. 4·3의 트라우마를 일깨워 공포의 공작을 펼친 것이다. 그리고 5월 4일 결국, 도민장으로 가져갈 것을 목표로 했던 유해의 처리는 졸속으로 처리되어 한줌의 재로 김녕리 앞바다에 뿌려지고 말았다. 박경훈 제주4·3평화재단 전시자문위원장은 “다랑쉬굴 유해 발굴은 그 자체가 역사적 사건이기도 했지만, 발굴과 유해의 처리의 전 과정이 또 다른 살아 있는 4·3이었다”며 “공안정국 하에서 은폐와 왜곡으로 재빨리 이 사안을 숨기려했던 당시 당국의 조처는 4·3이 끝난 지 40여 년이 흐른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던 레드아일랜드의 시각으로 제주사회를 바라봤던 지배세력의 시각을 드러낸 사건이기도 하며, 그들의 공작으로 40여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가해자와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일깨워까지 이용하고자 했던 제주사회 단면을 드러낸 또 다른 사건이었던 것이다”고 설명했다. 다랑쉬 입구를 봉쇄한 지 30년, 이 사건은 마치 그 현장처럼 그 당시의 진실여부도 드러나지 못한 채 봉인돼 있다. 제주4·3평화재단 양정심 연구실장도 “당시에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발굴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만 발굴하느라 뼈 잔해와 놋그릇, 물허벅, 솥 같은 유물 같은 게 아직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4·3평화공원에는 다랑쉬굴 특별전시관이 조성되어 있지만, 정작 실제 현장인 구좌읍 세화리 다랑쉬굴은 여전히 토지 소유권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30년간 아무런 공적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박 위원장은 “4·3 당시 다랑쉬 피란민 상태 및 학살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뿐만 아니라, 다랑쉬굴 유해발굴 및 처리과정에 대한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며 “제주특별자치도 자체 예산, 또는 국비를 활용해 현 소유주인 이화재단을 설득하여 토지를 매입하고 4·3의 비극을 상징하는 공간 중의 하나인 다크투어리즘의 현장으로 차후 주변 정비 및 성역화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이효근의 파란 코끼리] 두 명의 학생이 고속도로로 질주하오/정신과의사

    [이효근의 파란 코끼리] 두 명의 학생이 고속도로로 질주하오/정신과의사

    인천의 대학에 진학한 동네 친구가 있었다. 집에서 통학하기엔 거리가 좀 되었던지라 친구는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며 주말에만 집에 왔다. 모처럼 동네에서 마주친 어느 날 그가 이런 제안을 했다. “너 우리 학교 안 와 봤지? 가자. 내가 구경시켜 줄게. 주말 아침이라 안 막히고 금방 가.” “지하철 아니고 차 타고 가게?” “응, 아버지 차 몰래 타면 돼.” “운전면허는 있냐?” “지난달 땄어. 나 이제 운전 잘해.” 호기롭게 출발한 초보 운전자와 나. 어찌어찌 경인고속도로는 올라탔는데, 그때부터 진땀과 고난의 드라이빙이 시작됐다. 예나 지금이나 공항과 항구로 가는 거대한 트레일러들이 많은 경인고속도로. 주말 아침이라 한갓진 터에 한껏 속도를 올린 트레일러가 가득한 경인고속도로. 친구가 모는 차는 하필 질주하는 트레일러에 앞뒤좌우로 둘러싸였다. “우리 지금 몇 킬로냐? 120킬로인데 괜찮아?” “좀 무서워. 사실 100킬로 이상은 지금이 처음이야.” “그럼 속도를 줄여.” “못 줄여. 앞뒤좌우가 다 120킬로야. 게다가 다 트레일러잖아. 이 속도에선 닿기만 해도 큰일나. 아까 브레이크 밟았을 때 뒤차가 빵빵거리는 거 봤지?” 충격과 공포 속 고난의 드라이빙이 어떻게든 끝났다. 기진맥진해 인천 자취방에 도착한 우리는 문자 그대로 뻗어 버렸다. 애초 계획했던 학교 구경도 포기한 채 짜장면과 군만두를 시켜 먹는 것으로 인천 구경은 끝. 꽤 오래전 일인데도 그날을 여태 기억하는 이유는 요새 나의 출퇴근길인 영동고속도로 또한 그날의 경인고속도로처럼 대형 화물차의 통행이 많기 때문이다. 그날처럼 과속하는 화물차들을 자주 보니 본의 아니게 그날이 자주 회상되고, 그러니 잊혀지지 않을 수밖에. 원래 사람의 기억은 불완전한 법이라 우리는 과거에 경험한 많은 것을 망각하는데, 망각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그 기억을 다시 회상하는 것이니까. 최고 학습법 중에서 복습이 빠지지 않는 이유도 이것이다. 강렬한 감정이 동반된 기억은 유난히 더 오래간다고도 하니 그날의 드라이빙은 아마도 오래도록 내 기억에서 잊히지 않을 것이다. 물론 지금의 나는 나름 원숙한 드라이버가 됐으니 그런 상황이 발생해도 별로 긴장하진 않지만. 기호지세(騎虎之勢)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달리는 호랑이에 올라탔다는 뜻이다. 호쾌한 질주를 찬탄하는 말 같지만, 원래 뜻은 일단 시작해 버려서 중간에 멈출 수 없는 상태라는 뜻이다. 내리면 바로 호랑이에게 잡아먹혀 버리고 말 테니까. 굳이 출퇴근길이 아니더라도 그날의 경인고속도로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은 많다. 뉴스를 틀면 기호지세로 질주하는 사람들의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심정은 조마조마하다. 그들이 친구 한 명만을 태우고 달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회사 직원을 다 태우고 달리고, 때로는 온 나라를 다 태우고 달린다. 가끔 그때 친구가 운전이 좀더 익숙해진 다음에 나를 태우고 학교 구경을 떠났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아마 우리는 오가는 길에 음악을 들으며 신나게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고, 학교 캠퍼스를 즐기며 맛있게 식사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의 기억은 오래도록 유쾌한 추억으로 남았겠지. 이제 곧 우리 모두를 태우고 고속도로 운행을 시작할 이가 이 작은 후회를 꼭 염두에 두고 임기를 시작하기를 기대한다. 호랑이 등에 잘못 올라탔다가 내리지도 못하고 난감해하던 몇몇 전임자들의 모습이 회상되는 건 나의 기우이길 기원한다. 앞으로 우리의 5년이 편안하고 유쾌한 드라이빙이 되길 나 또한 간절히 바라니까.
  • 기타 치는 법 배운 ‘기타 노동자 1’… 복직 희망 노래한 언니의 4464일

    기타 치는 법 배운 ‘기타 노동자 1’… 복직 희망 노래한 언니의 4464일

    영화에서 끊임없이 귀를 거슬리게 하는 건 도로를 쌩쌩 달리는 자동차의 소음이다. 지금은 주유소로 변해 버린 인천의 옛 공장터에서, 해고 무효확인 소송이 걸린 대법원 앞에서, 오체투지 행진과 천막 농성이 이어지는 광화문과 종로에서, 말소리가 묻힐 정도로 시끄러운 차 소리가 쉴 새 없이 관객의 귀를 때린다. 일터로 돌아가게 해 달라, 법 안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 외치는 이들은 내내 길 위에 서 있다. 오는 31일 개봉하는 ‘재춘언니’는 대한민국에서 최장기 노동 투쟁으로 기록된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의 4464일을 담은 이수정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콜트·콜텍은 한때 세계 점유율 1위를 차지할 만큼 유명한 기타 브랜드였지만 2007년 경영상 이유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이후 노조가 결성되며 시작한 복직 투쟁은 노사 합의가 이뤄진 2019년 4월까지 계속됐다. 이 감독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를 다룬 ‘깔깔깔 희망버스’, 세월호 참사 이후 유족들의 진상규명 투쟁을 담은 ‘나쁜 나라’ 등의 다큐를 통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해 왔다. 이번 작품에선 30년 동안 기타 기능공으로 일한 노동자 임재춘씨를 조명하며 소심하고 내성적인 그가 어떻게 복직 투쟁에 나섰는지 돌아본다. 이 감독은 “2012년 촬영 시작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찍게 될 줄 몰랐다”면서 “언제부턴가 조급해하지 말고 싸움이 끝날 때까지 함께하자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다큐는 ‘이럴 수밖에 없다’ 또는 ‘이래야 한다’는 당위적이고 비장한 설명을 가미하지 않는다. ‘투쟁’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격한 장면 대신 밴드 연주와 연극, 시, 그림 등 예술 활동을 하며 거대 자본, 법에 맞서는 이들의 모습을 담는 데 집중했다. “노동 운동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를 버리고 싶었다”는 게 감독의 설명이다. “기타 공장 사람들이 하루 12시간씩 일할 때는 정작 기타를 칠 줄도 몰랐대요. 그런데 회사에서 잘린 뒤에야 투쟁하면서 기타를 배우는 과정이 흥미로웠죠.” 노조 지부장 등 명함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임재춘이란 ‘노동자 1’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임씨는 “쑥스러움을 정말 많이 타고, 남 앞에 나서는 걸 싫어하는데 복직 투쟁을 하며 조금씩 바뀌었다”며 “기타를 실제로 배우고, 연극을 하고, 일기를 쓰기도 하다 보니 매일 노조끼리 집회를 여는 것보다 더 연대가 잘된 것 같다”고 했다. 제목이 ‘재춘언니’인 건 임씨가 2013년 해고 노동자들과 선보인 연극 ‘햄릿’에서 오필리아 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요리를 담당하고, 천막 농성장에 오는 모든 사람을 따스히 맞는 것 역시 그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지점이다. 배려와 보살핌이 여성만의 일은 아니지만, 노동계에서 일반적인 ‘형’, ‘동지’ 대신 ‘언니’로 불리는 임씨의 모습에선 멀리 떨어진 노조 대신 우리 주위의 동료가 보인다. 작품은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회특별상,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비프 메세나상을 받는 등 평단의 호평을 받고 있다. ‘귀족 노조’, ‘강성 노조’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쓰이고 노조 혐오가 극에 달한 이 사회에서 노동자는, 노동자와 연대하는 우리 모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돌아보게 한다. 97분, 12세 관람가.
  • 사전 감지 어려운 이동식발사대… 北 기습도발 위협 더 커졌다[뉴스 분석]

    사전 감지 어려운 이동식발사대… 北 기습도발 위협 더 커졌다[뉴스 분석]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기동력과 은밀성을 담보한 이동식발사대(TEL)에서 직접 발사하는 영상을 공개하면서 위협이 극대화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TEL에 탑재된 ICBM은 사전 감지가 어려워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아울러 한미는 지난 24일 북한이 발사한 ICBM이 신형 화성17형이 아닌 기존의 ‘화성15형’이라고 결론을 낸 것으로 27일 알려졌다. 북한이 지난 25일 공개한 영상을 보면 ICBM은 격납고에서 바퀴 22개를 장착한 이동식발사대에 실려 발사장으로 옮겨졌다. 이후 발사대가 수직으로 세워지고 지지대가 땅에 내려진 뒤 ICBM이 발사됐다. 이는 지난 2017년 화성15형 발사 때보다 한층 진전된 기술인데 당시에는 이동식발사대로 미사일을 옮긴 뒤 실제 발사는 별도 거치대에서 이뤄졌다. 북한이 이번 영상을 공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실제로 이동식발사대에서 ICBM을 발사할 능력을 보유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동식발사대가 ICBM을 운반하고 수직으로 세우는 역할을 했으니 사실상 발사 가능한 수준까지 고도화됐다는 평가와 함께 실제 발사엔 별도 거치대가 필요할 것이라는 관측이 공존했다. 그러나 북한이 4년 4개월만에 재개된 이번 발사에서 별도 거치대 없이 이동식발사대에서 ICBM을 쏘는 모습을 공개하면서 논란은 마무리됐다. 이에 따라 ICBM의 위험도 더욱 커졌다. 유사시 발사대가 은폐된 상태에서 이동한 뒤 미사일을 기습적으로 발사할 수 있어 사전 포착이 어려운 만큼 선제타격의 위험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전하기 때문이다. 이동식발사대를 이용하면 액체연료를 쓸 경우 15분가량, 고체연료라면 5분으로 발사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군의 킬체인(Kill Chain)은 미사일 진지와 이동식발사대 등을 30분 안에 탐지해 타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미국 정보자산의 도움을 받지 않고 북한 전역을 탐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은 “이동식발사대를 이용하면 미사일 발사 준비에 걸리는 시간이 단축되기 때문에 사전 포착이 어렵다”며 “한국군 스스로가 독자적 정보 감시정찰(ISR) 능력을 조기에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복수의 군 및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한미는 이번 ICBM을 정밀 분석한 결과 화성15형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적외선 열감지 센서가 있는 위성 등으로 확보한 정보를 종합한 결과 당시 발사된 ICBM의 엔진 노즐이 화성15형과 동일한 2개로 확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화성17형은 엔진 노즐이 4개다. 군 당국은 화성15형의 탄두 중량을 감소시켜 발사해 화성17형과 유사한 궤적을 구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같은 미사일이라도 탄두 탑재 중량이 줄면 상대적으로 더 멀고 높게 날 수 있다. 북측은 발사 직후 대내외 매체를 통해 화성17형 발사 성공을 대대적으로 자축했는데, 지난 16일 화성17형 발사 실패를 만회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전문연구위원은 “북한이 지난 25일 공개한 발사 장면은 2월 27일 오전 7시쯤 촬영한 영상일 가능성이 높다”며 “짜깁기 영상을 공개한 것은 지난 16일 3차 발사 실패로 태양절에 맞춰 과시하려던 빅이벤트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인 듯하다”고 분석했다.
  •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가 89세를 일기로 26일 별세했다. 서울신문은 2013년 5월 ‘명사가 걸어온 길’이라는 인물탐구 기획 코너를 통해 고인이 밟아온 삶의 궤적을 2회에서 걸쳐 집중적으로 조명한 바 있다. 고인은 당시에도 만 80세 고령이었지만, 스트레이트로 5시간에 걸친 짧지 않은 인터뷰를 정력적으로 소화해 냈다. 자신의 인생을 채워온 수많은 사건들과 사람들을 대부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인터뷰 전문을 그대로 소개한다. ========================== [명사가걸어온 길] (11)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해방·전쟁·좌우 분열… 격동의 시대, ‘책벌레 소년’ 헌법에 눈을 뜨다유신헌법 참여 협박에도 정치권 러브콜에도… 학자의 양심 지켰다열두 살 되던 해 일제가 패망했다. 환희에 천지가 요동쳤다. 해방. 어렸지만 그게 뭔지 너무도 잘 알았다. 그러나 조국의 운명은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혼돈과 분열이었다. 국토는 남북으로 찢기고 민중은 좌우로 갈렸다. 얼마 전까지 ‘조국 해방’을 외치며 함께 어깨를 걸었던 동지들이 생각이 다르다고, 처지가 다르다고 원수가 돼 등을 돌렸다. 어제까지 한 교실에서 공부했던 친구가 좌익 프락치로 몰려 책상을 비웠다. 해방 공간의 극심한 무정부 상태를 보며 소년은 결심했다. 국가 시스템의 뼈대가 되는 헌법을 공부하겠노라고. 그 다짐대로 헌법 연구는 평생의 업이 됐고, 소년은 우리나라 헌법학의 ‘태두’(泰斗)가 됐다.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한국헌법연구소에서 만난 김철수(80) 서울대 명예교수는 5시간에 걸친 긴 인터뷰에도 피로한 기색 없이 꼿꼿하게 여든 성상의 인생과 철학을 얘기했다. 유복한 친구 둔 덕에 책 실컷 읽고...극렬한 좌우 대립 지켜보며 성장1933년 7월 대구에서 빈농(貧農) 집안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책 읽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유복한 친구를 둔 덕에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책 읽느라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 통학 기차 안에서도 그의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 있었다. “친구 아버지가 당시 대구지역 마사회 회장이었어요. 경마장에는 일본 사람들이 자기들 나라에서 가져온 세계 문학대전집, 세계 사상대전집 같은 책들이 그득그득 꽂혀 있었지요. 그때 읽은 책 중 가장 감명 깊었던 게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었어요. 강의 중에 ‘레 미제라블’을 말하면 학생들은 ‘아 장발장이 빵 하나 훔쳤다가 탈옥하는 거요?’ 정도의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사실 이 책은 대단한 책입니다. 무려 26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형벌, 정치, 법철학 등 다양한 사회 문제와 고민이 담겨 있으니까요.” 책에 빠져 살던 김 교수의 관심이 사회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은 나라가 광복을 맞으면서였다. ‘민주국가 건설’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어떤 민주주의를 택하느냐를 두고 극심한 분열 양상이 온나라를 휩쓸었다.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나라가 완전히 엉망이었지요. 특히 제가 살던 대구는 당시 공산주의의 총본산인 모스크바(소련의 수도)에 빗대어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렸을 정도예요. 좌익의 활동이 국내 어떤 도시보다도 활발하고 강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극렬한 좌우 대립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았어요. 경찰이 사람을 잡아가고 때리고, 또 반대되는 공공기관 테러가 일어나고. 우리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바로 헌법이었던 것이지요.” 1947년 제헌(制憲) 헌법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법대생이나 학자들이 보던 고시 잡지 등을 읽으며 헌법학자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때가 우리 나이로 열다섯이었다.시력 나빠 전쟁터 끌려가지 않아...대학 입학 천막 강의실 공부 1950년 전쟁이 터졌다. 고도근시로 고생하던 그는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았다.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전쟁 탓에 서울의 대학들이 부산으로 피란 온 터였다. 부산의 허름한 판자촌에서 법학 강의를 들었다. 법학도들이 ‘천막 강의실’에서 힘겹게 공부하던 이 시기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불법적인 개헌을 추진한다. 이른바 ‘발췌개헌’의 시작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으로 피란 가 있는데 거기에서 임기 4년이 만료됐어요. 이 대통령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헌법을 고치려 들었는데, 이걸 야당이 반대했고 그 결과로 야당 의원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어요” 이 대통령은 “전시에 부산에 침투한 간첩이 많으니 소탕을 해야 한다”는 이유를 대며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내 속셈을 드러냈다. 간첩을 잡겠다던 당초 주장과 달리 야당 의원과 무고한 시민에 대한 검거와 폭력이 이뤄졌다. “야당 지도자였던 장면 선생도 잡아넣었어요. 3명 이상 모이면 잡아갔어요. 국회로 출근하는 버스가 있었는데 버스에 탄 채로 계엄사령부에 끌려 가기도 했어요. 옛 경남도청에 무덕관이라고 해서 유도 연습장 같은 곳을 국회의사당으로 썼는데 그 일대에 ‘백골단 깡패’들이 쫙 깔려 있었어요. 이 대통령에 반대하는 의원은 전부 계엄사령부로 소환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김 교수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질곡의 상당 부분은 친일파 등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지만 일부 불가피한 대목도 있었다고 말했다. “광복 이후 친일파 척결은 예견된 수순이었습니다. 그래서 친일파를 처벌하는 법률도 만들었는데 법률로 처벌하려다 보니까 당시 정부관료, 경찰, 군인 등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걸렸던 거죠. 일제강점기 때는 외국 유학자를 비롯해 능력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이 대통령이 보기에 친일파를 다 쫓아내면 행정이나 정치를 못하겠다 싶었던 거죠. 반민특위에 걸렸던 경찰들을 풀어주고, 결국 그 경찰들이 치안 등 최소한의 사회 시스템을 유지해 전쟁통에 질서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죠. 일부 사람들은 이 대통령이 반민특위를 없앴다는 이유로 친일파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 당시의 사정도 일부 헤아릴 필요는 있을 겁니다.”이 대통령은 연임에 성공했고 1953년 전쟁이 끝났다. 김철수는 스무 살의 청년이 됐다. 김철수는 한 살 아래 학과 동기를 만나 사랑을 키워갔다. 궁핍과 혼돈의 시대에 서울대 법대 커플의 사랑은 주위의 부러움과 시샘을 샀다. 하지만 당사자들을 포함해 그 누구도 이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대화 주제가 ‘첫번째 아내’로 옮겨가자 김 교수의 목소리톤이 낮아졌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첫 아내’ 전혜린과 캠퍼스 커플...뮌헨대 유학중 결혼 김 교수의 첫 번째 아내는 한국 문학계와 여성 예술인들 사이에서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으로 회자되는 전혜린이다. 두 사람은 부산에서 맺은 인연을 서독(독일 통일 전) 뮌헨에서 키워나갔다. 전혜린이 1955년 먼저 뮌헨대 유학길에 올랐고 김 교수는 이듬해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이역만리에서 기쁨과 고통을 나눴다. 문학가가 꿈이었지만 아버지의 성화로 법대에 진학했던 전혜린은 독문학과에 입학해 그토록 바랐던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체계적인 법 공부에 목 말랐던 김 교수는 법학 공부를 이어갔다. 하지만 전쟁국가 출신 동양인에게 서독은 마음 놓고 공부만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은 아니었다. 당시 누구나 그랬듯 너무도 가난했다. 나라를 벗어나 공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택받은 삶이 됐던 시절이었다. 대통령의 허가가 있어야만 외국 송금이, 그것도 최고 50달러까지만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두 사람은 장학금과 통·번역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전혜린은 훗날 유학생활의 궁핍에 대해 “물을 마시니까 죽지는 않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인에 대한 시선은 싸늘했다. 지구상에 한국, 코리아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코리아’라고 그러면 아프리카 콩고에서 왔냐고 그랬어요. 그 나라에 기차는 있느냐, 뭘 먹고 사느냐 등 질문을 해대는데, 미개인 취급을 하더군요. 교수들도 저를 보며 전쟁 중인 나라에서 공부는 무슨 공부를 했겠느냐며 일본 학생들과도 크게 차별을 뒀습니다. 약소국 국민의 설움이란 게 뭔지 당해 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소외감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했다. 1957년 그들은 뮌헨에서 결혼을 했다. 생활은 결혼 전과 다름 없이 곤궁했지만 함께한다는 것만으로 의지와 위안이 됐다. 그러던 중 전혜린은 1959년 딸을 낳고 한국으로 돌아가 이듬해 성균관대에서 강사로 둥지를 틀었다. 김 교수는 2년 뒤 모교 교수 자리를 제안받고 서울로 돌아왔다.이혼 1년 뒤 전혜린 작가 스스로 목숨 끊어 배 고프고 힘들었던 서독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에 왔지만 서울에서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5·16 쿠데타가 터졌다. 박정희 당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무력으로 청와대를 장악했다. 당시 박정희 군부가 취한 여러 조치 가운데 ‘군 미필자는 공무원이 되지 못한다’는 게 있었다. 시력이 나빠 군대에 못 간 김 교수는 공무원인 서울대 교수에 임용되지 못했다. 서울대는 물론 어디에서도 군 미필자인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내와의 관계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입국한 전혜린은 대학에서 강의하며 서울의 문인들과 어울렸다. 밤 늦게까지 명동에서 삶과 죽음, 예술을 논했다.“아내가 언제부턴가 문인의 죽음을 동경했어요. 처음에는 나는 사회규범과 질서를 중시하는 법학자이고 아내는 사회의 틀보다는 자유와 이상을 갈망하는 문학가라서 서로 다르겠거니 했는데 이 사람이 자꾸 ‘니체도 카프카도 일찍 죽었다’ 이러면서 빨리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거예요. 수면제도 많이 갖고 다니고. 그러다 보니 저도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결국 두 사람은 1964년 합의이혼을 했다. 그리고 1년 뒤 전혜린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그는 교수 임용 제한이 풀리면서 서울대 법대 학생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고교 교사와 재혼...꼬박꼬박 ‘그 사람’ 제사 챙기는 아내 그로부터 2년 뒤 김 교수는 고교 교사와 재혼을 했다. “아내는 지금도 꼬박꼬박 그 사람(전혜린)의 제사를 지내고 있어요. 자기가 낳은 아이들에게도 제사에 꼭 참석하라고 그러고. 참 고마운 사람이죠.” 그는 사별한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반평생 이상을 함께하고 있는 지금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함께 표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큰 시련을 겪고 난 그는 다시 연구에 매진했다. 체계적인 헌법학 이론과 정력적인 강의, 활발한 저술활동으로 헌법학계에서 빠르게 자신의 입지를 굳혀갔다. 이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새롭게 부상하는 법학자에 대해 점차 날카로운 감시의 눈초리를 들이대도록 만드는 빌미가 됐다. 드디어 등장한 유신헌법의 시대. ‘학자 김철수’는 어떻게든 이 난국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3년 12월 17일부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스러진 1979년 10월 26일까지 15년 10개월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잘살아보세~”라는 한목소리 외의 다른 의견과 생각은 용납되지 않는 시대였다. ‘지성인의 전당’인 대학에는 사복 경찰과 정보원들이 교수와 학생들을 감시하며 일거수 일투족을 ‘상부’에 보고했다. 이런 박정희 정권에도 대학과 언론의 비판이 제한적이나마 가능했다. 적어도 잡아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1962년부터 3년간 서울대 학생과장...‘중정’과 맞서“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수로 임용되지 못하고 학교에서 무급 조교로 일하다가 1962년 9월 취업 제한이 풀리면서 학생과장을 맡았어요. 요즘 같으면 학생담당 부학장쯤 되는데 그걸 만 3년 했어요. 3년 동안 중정(중앙정보부) 사람들이랑 참 많이도 싸웠었죠. 학교에 출입하던 중정 사람 중 훗날 안기부(중정의 후신 국가안전기획부)의 장까지 하고 그랬는데 이 사람들은 어느 교수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뭘 가르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낱낱이 기록해 상부에 보고했어요. 그때 중정의 한 간부가 ‘당신에 대한 기록이 엄청 쌓여 있다. 중정에서는 당신이 학생들 선동하는 걸로 보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하기도 했었죠. 하긴 그땐 법대 학생들이 제일 열심히 데모했고, 그 학생들에게 우리 법이 잘못됐다고 가르친 것도 나였으니….” 교수들로부터 정의와 바른 법치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은 거리로 나갔다. 김 교수의 말대로 당시 서울대에서는 법대생들을 중심으로 학생운동이 조직됐다. 이때 서울대 총학생회장도 법대 소속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실장을 지낸 정정길(71)씨다. 서울의 대학생들은 연합해 정권의 부당함에 맞섰다. 대표적인 사건이 1964년 한일기본 협정 반대 시위다. 박 대통령이 일본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정을 추진하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굴욕 외교’라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시위 세력은 들불처럼 번지면서 그해 ‘6·3 사태’가 터졌다. 1964년 한일협정 반대시위 선봉 고려대 이명박-서울대 정정길 박 대통령은 6월 3일 시위대 해산을 위해 서울시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서울 시내에 4개 사단병력을 투입해 시위 학생들을 잡아들였다. 이때 시위대 선봉에서 정정길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함께 나선 인물이 이명박 고려대 상대 회장이다. 김 교수는 “당시 단과대 회장은 훗날 대통령이 되고 다른 학교 총학생회장은 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됐는데 어찌 보면 거꾸로 된 거 같기도 하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재미있는 인연이죠. 노태우 정권에서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13~15대 국회의원)도 시위단 사이에서 격문 쓰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죠”라며 웃어 보였다. 학생들을 거리로 이끈 것은 바른 정치와 민주화를 향한 학생들의 뜨거운 열망과 굳은 의지였지만, 중정에 끌려간 그들을 빼오는 것은 교수들의 몫이었다. 6·3사태로 정정길을 비롯한 수많은 서울대생들이 중정과 경찰 등에 잡혀갔다. 법대 학장이 학생들에 대한 보증서를 써 주고 김 교수 등이 중정 등을 찾아가 사정해 수감된 학생들을 빼왔다. “그땐 시위가 끊이지 않았는데 시위만 했다 하면 학생들이 청와대로 가야 한다고 해서 중앙청(현 경복궁 자리)으로 가곤 했죠. 저는 학생 관리도 제 일이었으니까 관리 차원에서 같이 중앙청으로 따라가고 하면서 치안국 보안과장과 서울 정보분실장과도 자주 마주쳤죠. 한 놈은 중학교 동기고 또 한 놈은 대학 동기였는데 그놈들이 저한테 ‘너는 학생 과장이라면서 왜 학생 선도도 못하냐’고 난리를 피우고 그러면 저는 ‘니들이나 똑바로 해라’며 목소리를 높이곤 했어요.” 정보요원이 수업을 감시하고 학생들이 중정과 경찰서 유치장 등을 드나들었어도 김 교수는 ‘그나마 괜찮았던 시절’이라고 했다. 여기에 더해 1960년대에 몇 없었던 ‘낭만적인 에피소드’도 소개했다.창경궁 통째로 빌려 이대생들과 미팅 주선 “그때라고 해서 학생들이 시위만 하고 돌 던지고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하루는 총학생회장 정정길이 우리가 종합대학이니까 종합대 축제를 하자면서 서울대생 전원과 이화여대생 전원 미팅을 제안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지만 청춘 남녀들에게 좋은 일이겠다 싶어서 제가 창경원(현 창경궁)을 빌려볼 생각으로 창경원장을 찾아갔어요. 창경원장도 학교 선배였거든요. 창경원장도 암울한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좋은 일이라며 흔쾌히 승낙하면서 날을 잡아 ‘창경원 오후 휴원’이라고 걸어놓고 두 학교 학생들만 무료 입장시켰죠. 지금 보면 대규모 미팅 같은 것인데 순 남학생 판에 여학생은 몇 없고 그런 모습도 어찌나 재밌던지… 그래도 훗날 그 만남을 계기로 결혼한 사람이 10쌍도 넘더라고요. 우리한텐 재미고 낭만이었지만 다음 날 청소하시는 분들 애 많이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캠퍼스의 소소한 낭만도, 학자 김철수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도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1972년 10월 박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선포한다. 박정희 정권은 김철수에게 유신헌법에 근거한 탄압에 앞서 유신헌법 제정 공신이 되기를 강요했다. “정권이 유신헌법 만들려고 여러 가지 작업을 했어요. 몇몇 교수는 해외에 보내서 자료 수집을 담당하게 하고 나를 포함한 야당 성향 교수들도 법무부 자문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그걸 하라고 강요했죠. 나는 절대로 못한다고 했더니 정부 쪽에서는 쉽게 말해 까불지 말라는 식이었고 일부는 참여를 거부하면 항명죄라며 협박까지 했죠. 그게 다 나중에 유신헌법이 각계의 자문위원들이 참여해 만든 것이라는, 정당성 부여를 위한 계략이었던 거죠.” 김 교수는 갖은 협박성 설득에도 학자의 양심을 지켰다. 하지만 이어 유신헌법 홍보에 나서 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말이 제안이지 명령과 강압이었다. 정권은 중정을 통해 김 교수가 방송과 라디오에서 유신헌법 홍보를 맡도록 압박했다. 유신헌법 찬양 글·홍보방송 안하고 버텨 “하루는 학교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해서 나갔는데 식사 마치고 저를 TBC(동양방송) 앞에 내려주더군요. 방송에 출연하라는 뜻이었죠. 결국 정문으로 들어가 바로 후문으로 빠져나갔죠. 방송은 저 대신 다른 분이 출연했는데 중정에서는 방송 펑크 냈다고 난리가 났고, 그때 제대로 찍혀 저에 대한 탄압도 시작됐습니다.” 당시 김 교수는 한 언론사의 논설위원을 겸하고 있었다. 역시 유신헌법을 찬양하는 글을 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김 교수는 학자의 양심에 반하는 글은 쓸 수 없었다. 결국 해당 언론사의 정치부장이 찬양 글을 대신 썼다. 이후 김 교수를 대신해 유신을 찬양했던 한 인사는 국회 배지를 달았고, 또 한 인사는 장관까지 올랐다. 반면 김 교수에게는 정권의 보복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저술 활동이 금지됐다. “청와대 쪽 사람들과 법학자들과 저녁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저한테 ‘절대로 책 쓰지 말라. 책 쓰면 큰일 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때 이미 제3공화국에 관한 헌법책을 다 써놨고 유신헌법이 나오면서 유신헌법의 문제점까지 다 정리한 상태였거든요. 출간을 강행했죠. 그게 1973년 1월 10일이었습니다.” 저술활동 금지당한 후 미·독 떠돌아 하지만 책은 출간 즉시 전량 몰수됐고 김 교수는 중정에 끌려갔다. 일주일간 회유와 압박이 이어졌다. 박 대통령을 ‘독재적인 대통령’, 유신헌법을 ‘현대판 군주제’라고 비판한 대목에 대해서는 북한과 내통한 것 아니냐는 억지도 부렸다. 결국 김 교수는 정권이 문제 삼은 부분의 수정을 약속하고 풀려났다. 1년간 집필이 금지됐고, 연구비도 끊겼다. 김 교수는 더 이상 한국에 머무를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과 독일 등지의 방문 교수를 지원해 국외를 떠돌며 박정희의 시대가, 유신의 시대가 저물기만을 바랐다. 철권(鐵拳) 같았던 박정희의 시대가 저물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찾아왔다. 유신헌법으로 유린된 헌법을 바로잡을 논의가 시작됐다. 이때 김 교수도 헌법 개정에 참여했다. 김 교수 등이 제안한 개정안은 최규하 당시 대통령도 만족했다. 그러나 곧 전두환이라는 걸림돌을 만나 헌법도 정치적 의도로 변질됐다. 그래도 김 교수는 1987년 헌법재판소 설치를 ‘유신 이후 헌법적 발전’으로 꼽았다. 대화는 자연스레 헌법재판소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김 교수는 애정 어린 쓴소리를 늘어놨다. “요즘 헌재의 결정을 보면 재판관들이 얼마나 헌법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야간 옥외집회 금지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이런 것들은 또 질서 유지의 관점으로 보면 필요하거든요. 판검사들이 재판관이 되는데 판검사 때는 헌법을 읽을 일이 없어요. 오히려 연구관들이 재판관보다 헌법을 더 잘 알아요. 재판관 임명 시 헌법에 대한 이해도를 반영할 필요가 있어요.” 최근 긴급조치 위헌에 대한 해석 권한을 놓고 헌재와 대법원이 갈등을 빚은 데 대해서는 헌재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독일은 최고 사법부가 헌법재판소입니다. 학자들은 우리나라도 헌법 만들 때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로 둬야 한다고 주장해 법원에서 결사반대했던 건데 헌법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헌법 해석권한을 가진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에 두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유신시절 정권에 저항했던 모습에 비하면 상당히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대중의 평가에 대해서는 ‘공동체 주의’를 강조했다. “30대에 진보적이지 않고 40대에 보수적이지 않으면 이상하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아무래도 젊을 때는 개인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갖기 쉽죠. 그런데 나이가 들다 보면 아무리 똑똑하고 잘해도 개인은 모래알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찰을 2만명 증원하겠다고 했는데 생각해 보면 국민이 질서를 지킨다면 이런 사회 비용을 쓰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결국 개인주의에서 공동체 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판관 임명시 헌법 이해도 반영 필요”여든의 노학자는 헌법 연구에만 매진한 인생을 조용히 돌아봤다. 그는 학자가 대통령이 될 게 아니라면 정치권에 진출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학자가 정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 학자의 소신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교수는 1980년대 여야를 막론하고 정부에서도 관료로 ‘러브콜’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저는 대학교수가 관료나 정계로 가는 걸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어요. 학자나 언론인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할 수 있지만 관료나 정치인이 되면 조직 논리가 우선하거든요. 소신을 지키려면 쓴소리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공직에서 그런 사람은 살아 남기 힘들죠. 정치권은 특히 더 심하고요. 어떤 정치인이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당수와 싸울 수 있겠어요” 장시간의 인터뷰는 젊은 기자도 피로감을 느낄 정도였지만 김 교수는 여전히 생기가 넘쳤다. 헌법과 사회 질서에 대한 고민에서는 좌익 프락치로 몰려 잡혀가는 친구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소년 김철수의 고민도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인터뷰를 마치며 책장 가득한 그의 저서를 보며 “인세도 많이 받으셨겠다”는 농담 섞인 질문을 던졌다. “옛날엔 꽤 들어오더니만 요즘은 학생들이 책을 안 사긴 참 안 사네요”라며 웃어 보였다. ■김철수가 걸어온 길 1933년 경북 대구 출생(6남 1녀 중 장남) 1956년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1957년 서독 뮌헨에서 전혜린과 결혼 1961년 서독 뮌헨대 졸업 1962년 서울대 법과대학 조교수 1967년 미국 하버드대 법과대학원 수료 1971년 서울대 법학박사 1972년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1998년) 1988년 한국공법학회 회장(~1989년) 1990년 한국헌법연구소 소장(~2001년) 1995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국제헌법학회 이사 1998년 제주 탐라대 총장(~2000년)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1998년~) ■주요저서 헌법학(1972) 현대헌법론(1979) 비교헌법론(1980) 법과 사회정의(1982) 한국헌법사(1988) 법과 정치(1995) 정치개혁과 사법개혁(1998) 헌법정치의 이상과 현실(2012)
  • 범인이 삼켜버린 ‘여성 몰카’ 메모리칩, 항문 내시경으로 빼냈다가... [김태균의 J로그]

    범인이 삼켜버린 ‘여성 몰카’ 메모리칩, 항문 내시경으로 빼냈다가... [김태균의 J로그]

    일본에서 한 남성이 여성의 집에 몰래 침입해 목욕 장면을 촬영했다가 현행범으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 남성은 범행을 숨기기 위해 영상 파일이 들어 있는 마이크로 SD카드(메모리칩)를 입 안에 넣고 삼켰다. 경찰은 항문 내시경을 이용해 SD카드를 강제로 꺼냈다. 이에 용의자 측은 ‘위법적인 강제 증거 수집’이라고 반발했다. 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여 SD카드 속 데이터의 증거 능력을 부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27일 증거물 수집의 적법성이 뜨거운 쟁점이 됐던 ‘피고인 체내 메모리 카드 강제 채취’ 관련 사건에서 피고인의 주거침입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지바현 경찰은 2018년 10월 18일 모르는 여성의 집에 들어가 목욕하는 모습을 도촬한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경찰에 검거될 당시 A씨는 촬영에 쓰였던 비디오 카메라를 소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찰이 확인했을 때 카메라에 꽂혀 있어야 할 중요 증거물인 SD카드는 어디론가 사라진 상태였다. 경찰은 이를 A씨가 삼킨 것으로 보고 컴퓨터단층(CT) 검사를 통해 SD카드가 몸 안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몸 밖으로 배출시키기 위해 여러 차례 설사약 등을 먹였지만, SD카드는 그의 장 안에서 걸려 나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한달 넘게 지속됐다. 결국 경찰은 “항문 내시경을 통해서 빼내야 한다”는 의사의 자문에 따라 11월 26일 체내 SD카드 강제 채취를 허가한다는 영장을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았다. 이틀 후 의사는 A씨를 수면 상태로 만든 뒤 항문을 통해 내시경을 80㎝가량 장내에 삽입, 가로·세로·두께 1.5㎝×1㎝×1㎜ 크기의 SD카드를 밖으로 끄집어냈다. 메모리칩은 40일이나 몸 안에 있었음에도 크게 손상되지 않았고, 피해 여성의 목욕 장면 동영상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이에 A씨의 변호인은 강제적 증거 채취의 위법성을 주장하며 증거로 인정하지 말아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고, 이는 판결의 최대 쟁점이 됐다.1심 재판부인 지바지방법원은 2020년 3월 “SD카드의 데이터가 불법으로 수집됐다”며 증거능력을 부정하고 A씨의 주거침입 등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도주 과정에서 발생한 상해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해 집행유예형을 내렸다. 재판부는 “내시경에 의한 증거물 강제 채취는 신체에 큰 부담을 동반하는 것으로, 대장 등이 손상될 경우 중대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도쿄고등법원도 같은 취지의 판단을 내리며 검찰 측 항소를 기각했다.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판결은 최종적으로 확정됐다. 형사소송법 전문인 후치노 다카오 리쓰메이칸대 교수는 “강제 채혈, 강제 채뇨 등은 금지약물 복용이나 음주운전 등 혐의의 조사에 널리 쓰이고 있지만, 외과수술을 통한 개복 등으로 증거물을 꺼내는 방법은 ‘인간의 존엄에 반하는 것’이어서 원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게 일반적”이라고 아사히에 말했다. 그는 “이번 법원 판결은 내시경에 의한 강제 채취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는 의미보다는 강제 채취의 필요성과 위험성 등을 더욱 신중히 검토해야만 한다는 점을 법원이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노동운동 혐오 여전…‘투쟁’ 고정 이미지 탈피하고 싶어”

    “노동운동 혐오 여전…‘투쟁’ 고정 이미지 탈피하고 싶어”

    4464일. 해가 열두 번 바뀌고 계절이 마흔 번은 바뀌었을 시간 동안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은 길 위에 있었다. 법원에 해고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하고 항소와 상고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오는 31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재춘언니’에는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의 이런 투쟁과 연대의 시간이 기록돼 있다. 이수정 감독은 대전 공장에서 기타 기능공으로 일했던 임재춘씨 등 해고노동자들의 길 위의 삶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회특별상,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비프 메세나상을 받는 등 평단의 박수를 끌어냈다. 이 감독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2012년 촬영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복직 투쟁이 이어질 줄 몰랐다”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록 작업을 조급해하지 말고 계속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고 회고했다. 콜트·콜텍은 한때 세계 점유율 1위를 차지할 만큼 유명한 기타 브랜드였다. 그러나 지난 2007년 경영상 이유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복직 투쟁에 들어간 해고노동자들의 싸움은 노사 합의가 이뤄진 2019년 4월까지 이어졌다. 영화는 노동자들의 격한 투쟁 장면보다는 이들이 밴드·연극·시·그림 등 예술 활동을 하면서 사측과 해고 제도를 비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 감독은 “사람들이 ‘투쟁’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기타를 만들던 사람들의 복직 투쟁이어선지 많은 예술가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고 한다. 뮤지션들은 ‘밴드를 만들자’고 했고 배우들은 ‘연극을 해보자’고 했다. 이 감독은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은 사람들에게서 잊히고 고립되는 걸 매우 두려워했다”며 “연극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게 투쟁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스스로 치유하는 경험 또한 했다”고 말했다. 작품 이름이 ‘재춘언니’인 이유는 임재춘 씨가 동지들과 선보인 연극에서 여자 캐릭터인 오필리아 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임씨가 솔직한 마음을 써 내려간 농성 일기도 등장한다. 그를 딸들과 갈등하고 집안일을 하는 평범한 가장으로 그리기도 했다. 이 감독은 “해고노동자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내 아버지’ 같은 사람으로 관객들이 느꼈으면 했다”고 했다. 그는 앞서 희망버스와 그곳에 탄 사람들을 그린 다큐멘터리 ‘깔깔깔 희망버스’(2012)를 통해서도 비슷한 메시지를 던졌다. 2015년에는 세월호 이후 1년여간 유족들의 삶을 기록한 ‘나쁜 나라’(2015)를 선보이는 등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꾸준히 귀를 기울였다. 이 감독은 “자기 몫이 없고 결함이 있는 존재를 대신해 목소리를 내주는 게 예술”이라고 강조했다.
  • ‘김정은 주연 ICBM 뮤비’ 민족의 운명 건 도박 웃어넘길 일인가

    ‘김정은 주연 ICBM 뮤비’ 민족의 운명 건 도박 웃어넘길 일인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뮤직비디오 주인공처럼 나온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동영상을 25일 처음 봤을 때 느낌은 당혹스러움 자체였다. 국내 뉴스채널 YTN이 ‘※배꼽 주의보’라고 경고를 달았는데 민족의 운명을 바꿀지 모르는 도박에 나선 북녘 지도자에 대한 실망을 그렇게 표현해야 하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 매체 허프포스트,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은 북한의 선전 동영상이 밈(Meme, 패러디나 재창작의 소재로 유행하는 이미지나 영상) 열풍을 낳고 있다고 전했다. 허프포스트는 대폭발이라고 이죽거리기도 했다. 조선중앙TV가 방영한 신형 ICBM ‘화성 17형’의 시험발사 성공 영상은 파격적인 구성과 화려한 편집기법, 박진감 넘치는 음악을 동원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는 번쩍이는 가죽점퍼를 걸친 채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다 검정색 선글라스를 멋지게 벗으며 “시작합시다”라고 명령을 내리는 것처럼 화면에 나왔다.가디언은 김 위원장의 모습이 1986년 할리우드 영화 ‘탑 건’의 톰 크루즈나 2012년 K팝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의 싸이를 흉내낸 것 같다며 누리꾼들이 ‘탑 김정은’이나 ‘평양 스타일’로 비유하더라고 전했다. 한 누리꾼은 문제의 영상에 싸이의 ’‘강남스타일’ 음악을 깐 뒤 35초쯤을 주목하라고 주문했는데 김 위원장이 초조하게 시계를 들여다보다 선글라스를 벗는 순간 ‘오빤 강남 스타일’ 가사가 흘러나오게 편집했다. 김 위원장이 순안국제비행장 격납고 문이 열리자 두 장군(장창하 국방과학원장, 김정식 군수공업부 부부장)과 함께 신형 ICBM인 화성포 17형이 실린 이동식 발사대(TEL) 앞에서 걸어 나오는 장면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붙인 별명이며 엘튼 존 경의 노래 ‘로켓 맨’을 깐 누리꾼도 있었다. 김 위원장의 시계와 선글라스에 대한 궁금증을 지나치지 못해 ‘움짤’을 만들고 ‘별말씀을, 인민 여러분’이라고 이죽거린 이도 있었다. “웃다가 나중에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힘들었다”고 털어놓는 이도 있었다. 제3자라면 김 위원장이나 북한의 이런 선전물에 이죽거리면 그만이겠지만 민족 전체의 운명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위험한 행동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생각하면 막막하고 착잡해진다. 가디언은 나아가 “김정은의 통치 아래 북한은 디지털 효과로 국영 방송에 변화를 주면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더 현대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듯 하다”고 지적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도 “북한은 ICBM을 발사해 세계를 놀라게 하는 한편 이 뉴스가 국영TV에서 방송되는 방식도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방송은 이어 “의기양양하지만 진부한 어조 대신 북한 주민들은 이번에는 가죽 점퍼와 짙은 선글라스를 쓴 주인공에 영상 효과, 극적인 음악이 버무려진 ‘할리우드 방식의 영화’를 뜻밖에 접하게 됐다”면서 적발되면 혹독한 처벌이 따르는 해외 밀반입 영상을 제외하면 북한에서 이런 종류의 영상이 소개된 적이 거의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한 당국은 북한 시청자들을 위해 새롭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만들었고, 이것은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높이고, 최근 살을 빼 역동적인 액션 배우 역할에 좀 더 어울리게 된 김정은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효과를 낸다”고 분석했다. 영국 매체 더타임스 또한 북한이 이번 시험발사 장면을 할리우드 영화처럼 극적으로 연출했다고 소개했다.그러면 김 위원장이나 북한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뭘까? 당초 국내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정찰위성 성능 시험이니 하는 핑계를 대지 않고 곧바로 신형 ICBM 미사일이라고 공개한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BBC는 완벽한 자신감을 표현하고 싶어서였다고 분석했다. 평양에서 25㎞ 밖에 떨어지지 않은 순안국제공항에서 발사해 실패하면 공항 자체는 물론 주변 주민들에게도 재앙이 될 뻔했으며 화성 17형이야말로 김 위원장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신무기였다고 전했다. 이런 점에서 북한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 어느 나라나 도발하면 어디든 타격할 능력을 갖췄다는 점을 전달하려 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소풍 가자”며 용병 모은 푸틴…우크라 참전 거부자 ‘숙청’

    “소풍 가자”며 용병 모은 푸틴…우크라 참전 거부자 ‘숙청’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직속 준군사조직인 국가근위대(내무군) 소속 군인 12명이 우크라이나 참전을 거부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국가근위대의 경우 엄밀히는 사회 치안 유지, 주요 국가 시설 및 재산 방호, 영토 방어, 국경 수비, 대테러 작전 등 국가 내부의 적을 상대하는 데 치중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이유로 우크라이나 파견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는 24일(현지시간) 러시아 인권단체 아고라의 말을 인용해, 국가근위대 소속인 파리드 치타프 대위와 그가 이끄는 병사 11명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튿날인 지난달 25일 우크라이나 파견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파견을 명령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사유로 들었지만 결국 해고됐다. 현재 불법 해고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아고라의 치코프 회장은 SNS에 ”국가근위대의 공식 임무는 러시아 영토로 한정됐다. 누구도 여권을 소지하지 않았고, 러시아 영토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라며 “누구도 ‘특별군사작전’에 참여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영토에서의 임무에 대한 통지를 받지 못했고, 이 작전에 관련된 임무에 대해서도 듣지 못했으므로 결국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우크라이나 파견을 거부한 군인들은 모두 러시아 남부 크라스노다르 지방 출신으로 지난달 6일부터 크림반도에 배치돼 훈련을 받아왔고, 국가근위대에는 모두 35만명의 병사가 복무하고 있다.러, 전과자·채무자까지 모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싸울 용병들을 모집하기 위해 자국에서 사회적으로 취약할 수 있는 이들에게 집중적으로 접근했다. 러시아의 비밀 사병조직 ‘와그너 그룹’의 퇴역 용병 상당수가 SNS인 텔레그램의 특정 단체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증언했고, 이들은 우크라이나 전통요리인 ‘살로’(Salo)를 맛보자며 ‘우크라이나 소풍’에 초대한다는 내용이 담긴 메시지를 받았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이나 크림반도에서 온 사람들을 진심으로 초대한다는 말도 있었다. 침공 초기 며칠간 우크라이나 제2 도시 하르키우(하리코프)에서 임무를 수행한 뒤 귀국했다고 밝힌 용병은 BBC에 “아무나 모집하고 있다”며 새로 들어오는 용병들의 전문성이 더 낮다고 말했다. 미국 안보 싱크탱크인 수판센터의 선임연구원인 제이슨 블레이자키스는 “용병들은 총알받이처럼 사용되기 때문에 러시아 정부에서 전사자 통계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숙청설’ 푸틴 측근 국방장관러, 국영TV로 회의장면 공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초기에 점령하는 데 실패하면서 지도부를 중심으로 책임론이 불거지는 가운데 푸틴의 최측근인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은 2주 가까이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숙청설이 돌았다. 푸틴의 또 다른 측근인 빅토르 졸로토프 러시아 국가근위대 대장 역시 비슷한 시점에 사라졌다. 미 전쟁연구소는 푸틴이 FSB 정보요원과 군 장교 등을 숙청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국방장관의 행방을 놓고 서방 언론의 취재가 이어지자 국영 방송 ‘러시아24’에 푸틴과 화상 회의를 진행하는 쇼이구 국방장관의 모습을 내보냈다. 다만 해당 회의가 언제 진행됐는지는 밝혀지지 않아 의구심을 자아냈다.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의 곁을 떠나려는 고위층에 대해 ‘배신자’라고 낙인찍으며 탄압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고위층의 이탈은 가속화하는 모양새다. 최근 옛 소련 붕괴 후 러시아의 시장경제화 개혁을 이끈 설계사로 알려진 아나톨리 추바이스 대통령 특별대표가 사임한 뒤 출국한 것으로 확인됐고, 옐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는 최근 사임 의사를 밝혔으나 푸틴이 반려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로 인해 쿠데타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의 한 내부고발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실패하고 전쟁이 격화하면서 FSB 소속 정보요원들 사이에서 푸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 호국영령 잠 든 현충원에서 ‘지루박?’…쌍쌍춤 추태

    호국영령 잠 든 현충원에서 ‘지루박?’…쌍쌍춤 추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 지난 24일 호국영령이 잠 든 국립대전현충원에서 남녀 한 쌍이 춤 추는 추태를 부리는 장면이 포착됐다.대전 서구에 사는 박모(53)씨는 25일 서울신문과 통화에서 “어제 현충원에 추모하려고 갔다가 묘역 앞에서 50대로 보이는 남녀가 손 잡고 ‘지루박’인지, ‘탱고’인지, ‘블루스’인지 쌍쌍춤을 춰 깜짝 놀랐다”며 “엄숙해야할 곳에서 춤 추는 게 볼썽사나워 몰래 사진을 찍어 일부 온라인 매체에 제보했다”고 말했다. 박씨에 따르면 24일 오후 5시 30분쯤 장군제1묘역 바로 앞 공터에서 남성이 여성의 손을 맞잡고 거침없이 춤 동작을 가르쳤다. 이 묘역은 현충원 뒤편에 있지만 둘레길과 가까워 시민들 눈에 띄기가 쉽다. 박씨는 “이 뿐 아니라 대전현충원에서는 운전연습, 취식, 흡연 등도 자주 목격되고, 여름에 텐트까지 치는 모습도 봤다”며 “호국영령이 잠든 엄숙한 곳이니 만큼 좀더 단속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전현충원 관계자는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이 열리기 하루 전이어서 준비 때문에 경내 곳곳을 돌았지만 발견을 못했다. 대전현충원이 100만평에 이를 정도로 드넓은 데다 인력이 부족해 단속에 한계가 있다”면서 “오토바이 순찰을 더 자주 돌고, 오는 10월 인력을 충원해 인적이 드문 곳에 초소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 허구연 신임 KBO 총재 “지자체가 구단 깔보면 연고지 버리는 강단도 필요”

    허구연 신임 KBO 총재 “지자체가 구단 깔보면 연고지 버리는 강단도 필요”

    경기인 가운데 첫 한국프로야구의 수장이 된 허구연 KBO 신임 총재는 “솔직히 나는 한국인 빈 스컬리가 되고 싶었다. 버드 셀리그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고 털어놨다. 빈 스컬리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캐스터다. 버드 셀리그는 1998∼2015년 메이저리그 사무국 커미셔너(총재)로 일하며 미국 야구의 전성기를 열었다.KBO는 25일 “서면 표결을 통해 구단주 총회 만장일치로 허구연 위원을 제24대 총재로 선출했다”고 밝혔다. 허 신임 총재는 KBO 발표 직후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해설위원으로 야구 인생을 마감하는 게 내 꿈이었다. 그런데 정말 어려운 시기에 총재 자리에 올랐다”며 “우리 한국야구에 긍정적인 부분이 더 많이 보이도록 노력하겠다”고 취임사를 전했다. 허 신임 총재는 야구계 현안을 훤히 꿰뚫고 있다. 최근 화두가 된 ‘강정호 복귀 추진 파문’도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 중이다. 그는 “강정호 문제를 신중하게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았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어려운 시기에 취임한다. 솔직히 마음이 무겁다. 그래도 난제를 풀어가야 하는 게 총재의 역할이다. 우리 한국야구에 긍정적인 부분이 더 많이 보이도록 노력하겠다. ▲가장 시급한 일은. -정규시즌 개막이 다가왔다. 김광현(SSG 랜더스), 양현종(KIA 타이거즈)의 복귀, 김도영(KIA) 등 신인의 등장, 야시엘 푸이그(키움 히어로즈) 등 개성 있는 외국인 선수의 입단 등 호재가 많다. 이런 긍정적인 부분이 주목받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키움이) 강정호 복귀를 추진하면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데, 문제를 신중히 살피겠다. 한쪽의 이야기만 듣지 않고, 법률적인 부분 등을 잘 들춰보겠다. 내가 또 법대(고려대 법학과 학사·석사) 출신이지 않은가. 지금 KBO 규약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 KBO 실무진의 보고를 받고, 법률 자문 등도 구해서 신중하게 판단하겠다.▲야구인 최초 KBO 총재라는 무게감도 느낄 텐데. -커미셔너(총재)는 팬, 구단, 선수의 동의를 구하며 리그를 발전시키는 자리다. 각자 입장이 다른 상황에서 절충안을 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 구단과 선수들에게 ‘팬 퍼스트’를 강조하고 싶다. 선수들은 프로다운 경기력을 보여줘야 하고, 많은 구성원이 ‘스피드 업’ 등 야구의 재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팬 서비스도 선수와 구단의 중요한 임무다. KBO리그의 인기가 하락세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 한다. 2022년이 한국 야구의 터닝 포인트가 되길 기원한다. ▲팬들은 인프라 확충‘을 기대한다. -내가 ’자연인‘일 때도 지자체 관계자를 만나서 야구장 등 인프라 구축을 강조했다. 최근까지도 꾸준히 지자체장과 만났다. 대전, 부산, 서울 등에 야구장 신축이 절실하다. 이 부분을 독려할 것이다. 또한, ’남해안 벨트‘를 조성해 국내에서 ’2군 캠프‘가 가능하게 하겠다. 이렇게 되면 아마추어팀도 활용할 수 있다. 지방에 야구 붐이 일어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지자체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기업이 운영하는 KBO리그 상황을 고려하면, 구단은 지자체에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총재인 내가 지자체에 목소리를 높이겠다. 싸움도 불사할 생각이다. 약속만 하고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자체가 ’우리는 야구단의 연고지‘라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면 한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지자체가 불성실한 태도로 야구단을 대하면 구단이 연고지를 떠나는 강단 있는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해설위원 허구연’을 그리워할 팬도 많을 텐데. -내 꿈은 해설위원으로 야구 인생을 마감하는 것이었다. 나는 빈 스컬리가 되고 싶었지, 버드 셀리그가 될 생각은 없었다. 2022시즌 KBO리그와 메이저리그 중계를 위해 준비도 많이 했다. 그런데 한 달 전에 갑작스럽게 KBO 총재 제의를 받았고, 결국 KBO 안으로 들어가게 됐다. 팬들에게 방송으로 인사드릴 기회도 없이 떠난다. 그 점이 참 아쉽다. 40년 동안 팬들께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한 번도 ’퍼펙트한 해설‘을 하지 못했다. 최선을 다 해도 완벽하지는 못했다. 마이크를 놓는 지금, 아쉬운 장면이 더 많이 떠오른다. 총재 자리에서 야구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 디지털 공간, 누군가 당신을 노리고 있다[OTT 언박싱]

    디지털 공간, 누군가 당신을 노리고 있다[OTT 언박싱]

    1995년 개봉한 영화 ‘네트’는 휴가를 떠난 한 여성이 위험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적대 세력에 의해 디지털 공간에서 개인 정보가 완전히 지워진 여성은 휴대전화와 여권을 도둑맞은 순간 세상에 자신을 증명할 길이 없어진다. 이 때문에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고 위험에 노출된다. 당시 큰 충격을 줬던 이 작품에 등장한 디지털 범죄는 27년이 지난 현재 더욱 교묘해지고 강력해졌다. 이를 잘 보여 주는 드라마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클릭베이트’(2021)다. ‘클릭베이트’는 클릭(Click)과 미끼(Bait)의 합성어로, 자극적인 제목과 이미지 등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콘텐츠의 클릭을 유도하는 행위를 말한다.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디지털 공간에 접속할 수 있는 요즘 클릭베이트는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 만약 이 행위가 범죄에 활용되면 어떻게 될까. 어느 날 온라인 공간에 건실한 가장 닉의 동영상이 올라온다. 누군가에게 납치당한 그는 자신이 성범죄자이며 동영상 조회수가 500만을 넘어가면 목숨을 잃는다고 말한다. 매스컴은 앞다퉈 이 사실을 보도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빠르게 퍼진 닉의 영상은 조회수가 급상승하기 시작한다. 클릭을 멈춰 달라는 가족의 호소와 달리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이러한 모습은 SNS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의 범죄 양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SNS 범죄에는 특정한 가해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불특정 다수가 어디에선가 흘러나온 허위 사실, 비방, 모욕에 가담한다. 이들은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거나 피해자가 극단적인 상황에 직면한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발을 뺀다. 또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자정을 운운한다. 하지만 미끼와 자극이 가해지면 똑같은 현상이 반복된다. 닉은 온라인상에서 좋은 먹잇감이 된다. 네티즌들은 자신의 클릭 한 번으로 성범죄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그릇된 정의감에 빠진다. 범인은 닉의 개인정보를 도용해 온라인 범죄를 저지른 건 물론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네티즌에게 돌리는 일종의 게임을 설계한다. 게임 속에서 네티즌들은 살인을 유희처럼 즐긴다. 열심히 버튼을 누르면 퀘스트를 깨는 오락처럼 클릭을 반복해 한 개인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범인이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코드이자 악플로 대표되는 온라인 인격 살인이 발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웨이브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영국 BBC의 6부작 드라마 ‘더 캡처’(2019)는 디지털 범죄의 새로운 형태로 떠오르는 딥페이크가 소재다. 딥페이크는 특정 인물의 얼굴 등을 인공지능(AI) 기술을 사용해 영상에 합성한 편집물을 말한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아이리시맨’(20 19)이 이 기술을 활용해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의 젊은 시절 모습을 담아내며 호평을 들은 바 있다. 이처럼 딥페이크 기술은 영상 제작에 있어 획기적인 발전을 보여 주지만 범죄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더 캡처’는 한 군인이 딥페이크로 인해 범죄자로 몰리는 과정을 그린다. 전쟁범죄로 재판을 받던 숀은 무죄를 선고받은 다음날 자신을 변론한 변호사 해나의 살인 용의자가 된다. 서로 키스만 나누고 헤어졌을 뿐인데 폐쇄회로(CC)TV에는 그가 해나를 폭행한 뒤 끌고 가는 장면이 찍혀서다. 기억과 영상이 배치될 때 우리는 영상을 믿는다. 기억은 변질될 수 있는 반면 영상은 진실을 복제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거짓과 진실의 영역은 점점 흐려진다. 소통을 위한 SNS와 환상을 실현시키는 딥페이크가 행복이 아닌 두려움의 대상으로 변질돼 버렸다는 점은 이 두 작품이 현실에 보내는 경고다. 디지털 공간이 우리에게 더 많은 시간과 정보를 요구할수록 디지털 범죄의 공포는 더 가까이 다가올 수 있다. 8부작으로 완결한 ‘클릭베이트’와 시즌2 소식이 들리는 ‘더 캡처’의 이야기는 다가올 미래가 아닌 이미 펼쳐진 현실이다. 각각 청소년 관람불가, 15세 이상 관람가. 김준모 키노라이츠매거진 편집장
  • 자율주행·인간성, 공존할 수 있을까

    자율주행·인간성, 공존할 수 있을까

    운전하는 철학자 매슈 크로퍼드 지음/성원 옮김시공사/448쪽/1만 8000원 핸들을 잡고 액셀과 브레이크를 밟아 가며 도로 위를 달리는 행위. 운전을 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겐 별 감흥 없는 일상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크나큰 위로를 주기도 한다. 자동차든 오토바이든 자전거든, 무언가를 타고 운전을 한다는 것과 인간성, 윤리와 신뢰, 책임과 권리 등 철학적 요소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만나 다채롭고 심도 있는 이야기를 펼친다. 미국 버지니아대학교 고등문화학술원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며 세계 각지에서 강연을 하는 정치철학 박사이자 모터사이클 수리점을 운영하는 정비사이기도 한 매슈 크로퍼드(57)는 “운전을 통해 우리는 가장 인간다워지고, 가장 나다워진다”고 예찬한다. 우리 몸으로 페달을 밟고 핸들을 돌리는 ‘움직임’과 원하는 방향을 선택해 원하는 속도로 달리는 ‘판단’들이 모두 인간성의 발현이라는 이유에서다.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현실에 적극적으로 능숙하게 참여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을 주고 인간의 손아귀 안에 진보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어린 시절 킥보드부터 시작해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 등을 타며 만끽하는 ‘마음대로 돌아다니기’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자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많은 사람들이 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상대 운전자에게 들리지 않을 솔직한 말들을 쏟아 낸다. 도로 위에서 각 차들은 함께 있는 동시에 각자의 차에 고립돼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정해진 사회규범에 따라 질서 있게 움직이며 공공재인 도로를 나눠 쓴다. 저자는 특히 교차로를 예로 들어 “경쟁과 협력이 동시에 일어나는 장소”라며 도로와 운전자 사이의 관계를 함축적으로 설명한다. 원활한 경쟁과 협력을 위해 운전자들의 도덕성과 임기응변 기술은 오랜 시간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다져온 규범과 서로 적절히 어우러져야 한다. “운전은 유기적인 시민 생활의 한 형태”라고 말한 저자는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마이너리티 리포트’, ‘월-E’ 등 디스토피아적 영화에서 자율주행차가 두드러진 역할을 하는 것도 ‘시민이라는 기분의 상실’이 영화 분위기를 살리는 데 핵심이기 때문이라고도 봤다. 그러나 영화 속 장면들은 점점 현실이 된다. 자율주행차는 우리의 손과 발을 핸들과 브레이크에서 멀어지게 하고 도로 위에서 발휘해야 할 순발력과 판단능력도 기계의 것으로 돌린다. 완벽한 시스템을 갖춘 자율주행차 속 우리는 인간이 아닌 스마트한 기계 안에 탄 ‘승객’이 된다.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의 모든 정보가 축적되고 이는 곧 감시자본주의를 키운다. 저자는 “자율주행차가 당신에게 어느 정도 실질적인 효용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목적은 당신을 위해 더 좋은 자동차를 만들고 그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라면서 “자율주행차가 통행의 효율성과 안전성을 높일 수도 있지만 그 발전의 동력은 그런 공공 정신이 아니다”라고 꼬집는다. 그렇다고 기술을 다시 퇴보시킬 수는 없는 일. 대신 저자는 “결국 문제는 주권”이라고 강조한다. 이미 자율주행을 향해 달리고 있는 세상에서 ‘운전하는 인간’을 빼놓아선 안 된다는 지적과 함께 예를 들어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내는 기업이 아닌 국가와 같은 다른 공공의 주체가 알고리즘을 책임지고 공익적인 목표에 맞는 방식으로 자율주행 시대를 꾸려 가는 방안 등을 제시한다. ‘도로 위 주권’을 반드시 지키며 기계의 조종을 받는 승객이나 짐짝이 아닌 인간으로 남아야 한다는 경고가 꽤 묵직하다.
  • “추락 중국 여객기, 시속 1000km로 추락”

    “추락 중국 여객기, 시속 1000km로 추락”

    블룸버그, 항로 추적 사이트 ‘플라이트레이더24’ 데이터 근거로 추정 지난 21일 승객과 승무원 132명을 태운 채 추락한 중국 동방항공 여객기가 음속과 비슷한 시속 1000km의 빠른 속도로 낙하한 것으로 보인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24일 추정했다. 블룸버그는 항공기 항로 추적 사이트 ‘플라이트레이더24’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고 여객기가 시속 966km 이상으로 추락했고, 순간 시속 1126km를 넘기기도 했을 것으로 봤다. 음속은 온도 등 주변 환경에 따라 달라지며, 해수면에서는 시속 1224km이지만 1만m 상공에서는 1066km 정도 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항공학 전문가 존 한스먼 교수는 “초기 데이터에 따르면 항공기는 음속에 가까웠다”고 평가했다. 블룸버그는 이러한 수치가 추락 장면이 담긴 영상에 따른 분석과도 일치한다고 밝혔다.中 추락 여객기 블랙박스 발견 앞서 인민일보 등 중국 관영 매체들은 23일 사고 여객기의 블랙박스 중 하나가 이날 광시좡족자치구 우저우시의 사고 현장에서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발견된 블랙박스가 객실 후미에 장착돼 있던 데이터기록기(FDR)인지, 조종석 대화기록기(CVR)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블랙박스 발견으로 사고 당시의 기체 급강하 원인 등 사고 원인 규명 작업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 소주병 날아든 돌발상황…‘손번쩍’ 경호원의 순발력

    소주병 날아든 돌발상황…‘손번쩍’ 경호원의 순발력

    박근혜 전 대통령이 24일 대구 달성군 사저에 도착해 대국민 인사말을 시작한지 1분여만에 소주병이 날아드는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액체가 들어 있던 소주병은 박 전 대통령 왼쪽 앞 3m 지점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났다. 당시 소주병 파편이 박 전 대통령앞 1m까지 튀었으나 다친 사람은 없었다. 10여명의 경호원들이 순식간에 박 전 대통령을 에워쌌으며 소주병을 던진 40대 남성은 현장에서 체포됐다. 박 전 대통령 지킨 경호원의 ‘순발력’ 자칫 끔찍한 사태로 이어질 수 있었지만, 경호처 경호원들의 빠른 대처가 돋보이던 순간이었다. 특히 경호원 A씨의 발빠른 대처가 눈길을 끌었다.이날 오후, 온라인상에는 한 지지자가 올린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이 공유됐다. 영상을 보면 소주병이 날아오기 직전, 전면에 서있던 A경호원이 팔을 번쩍 들어 위험 신호를 보낸다. 그러자 다른 경호원들이 즉각 움직이고, 이때 A경호원은 소주병이 깨져 파편이 튀는 것을 발로 막는다. 이후 곧바로 추가 위험을 막기 위해 몸으로 박 전 대통령을 감싸는 모습이다. 해당 장면을 접한 시민들은 “대단하다”, “순발력 칭찬해”, “엄지척”, “경호원의 센스가 더 큰 사고를 막았다”등 반응을 보였다. 약 2분간 놀란 가슴을 추스린 박 전 대통령은 다시 발언을 이어간 뒤 인사하고 사저로 들어갔다. 소주병을 던진 B씨는 박 전 대통령이 사저에 도착하기 1시간 전부터 경찰들이 설치해둔 취재진 대기구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박근혜 사저 소주병 투척자, 인혁당 사건과 무관” 경찰 조사에서 B씨는 자신이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혁당 사건 희생자 추모기관인 4·9통일평화재단은 B씨에 대해 “사건 피해자들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이날 4·9재단은 “1975년 4월 8일에 형이 확정된 인혁당 사건의 피해자는 사형수 8인을 비롯해 총 25명”이라며 “당사자들 또는 당사자의 배우자들은 현재 모두 70세를 넘긴 고령이고 자녀·손자녀들 중에도 B씨와 같은 분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B씨가 활동하고 있다는 ‘HR_인민혁명당’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해서도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들과는 전혀 무관한 곳”이라고 밝혔다.
  • 초유의 인수위 업무보고 거절…당황한 기색 역력한 법무부

    초유의 인수위 업무보고 거절…당황한 기색 역력한 법무부

    법무부는 24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업무보고를 거부하자 일단 ‘침묵’으로 대응했지만 내부에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인수위가 초유의 강경 대응을 했으나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검찰 공약에 대한 기존 입장을 뒤집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박 장관은 이날 예정됐던 업부보고가 유예된 것과 관련해 극도로 말을 아꼈다. 지난 23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취재진과 만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주요 사법개혁 공약에 대해 조목조목 이유를 들어가면서 반대 목소리를 냈던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앞서 박 장관은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검찰의 예산권 독립’, ‘검찰 직접 수사 확대’ 등이 입법사항이고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며 인수위 측 구상과 엇박자를 냈다. 박 장관은 출근길에 취재진이 업무보고 일정에 대해 묻자 “드릴 말씀이 없다. 변수가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사법개혁을 놓고 법무부와 대검의 견해차에 대해선 “크게 다르다고는 생각 안 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점심시간에는 법무부 청사를 나오며 차후 보고를 수정할 가능성을 묻자 “오늘은 침묵하겠다”면서 “말씀을 다 드렸다”고 말한 뒤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이후 퇴근길에는 “어제 밤까지 보고 문건을 만들었고 다른 주제가 더 추가될런지는 모르겠으나 특별한 다른 변동사항은 없다”며 업무보고 내용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을 시사했다.법무부 내부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일부 업무보고 준비단 멤버들은 이날 오전 인수위 보고를 위해 과천을 출발하려다 업무보고 2시간쯤 전에 갑작스레 통보를 받고 사무실로 출근했다고 한다. 실무진들에게도 추후 업무보고 방향과 관련해 아직 윗선에서 별다른 지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장관의 의중대로 법무부 업무보고에는 윤 당선인의 사법개혁과 정반대의 주장이 들어갔는데 인수위가 강경하게 나오자 실무진들은 양쪽 눈치를 모두 보는 모양새다. 내부에선 갈등이 극심했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와 윤석열 검찰총장 대결 시절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법무부 업무보고는 일단 오는 29일 이전에 다시 날짜를 잡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큰틀에서 보고 내용이 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내부 전언이다.법무부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중점과제로 밀어붙였던 검찰개혁에 대해 이제와서 입장을 바꾸기가 옹색하기 때문에 박 장관 입장에서도 쉽게 물러서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검찰 간부는 “인수위 업무보고는 당선인의 공약을 각 부처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방안을 마련하는 자리”라면서 “국민이 선택한 미래 권력이 내놓은 공약에 대해 언론 앞에서 전면 반대한 것은 잘못”이라고 꼬집었다. 법무부와 달리 대검찰청은 이날 서울 종로구 통의동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수위 정무사법행정분과 업무보고에서 윤 당선인의 검찰 공약에 대해 대체로 찬성하는 취지의 내용을 담아 보고했다. 다만 인수위원 중에서는 일부 검사들이 정치적인 행태를 보인다며 질책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 “희대의 지도자”...日아베, 학생들 앞에서 민망한 자화자찬

    “희대의 지도자”...日아베, 학생들 앞에서 민망한 자화자찬

    자신의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아베 신조(68) 전 일본 총리가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자화자찬을 늘어놓아 빈축을 사고 있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24일 닛칸겐다이(日刊現代) 등에 따르면 아베 전 총리는 지난 19일 긴키대학(일본 오사카부) 졸업식에 깜짝 등장을 했다. 긴키대학 히가시오사카 캠퍼스에서 열린 코로나19 사태 이후 첫 대면 졸업식 도중 무대 정면 스크린에 돌연 ‘코로나19 긴급사태 선언’을 발표하는 아베 전 총리의 재임 때 모습이 나타났다. 아베 전 총리가 동일본대지진 부흥의 노래인 ‘꽃은 핀다’를 직접 피아노로 연주하는 장면도 영상으로 비쳐졌다. 이어 “희대의 지도자”라는 소개와 함께 아베 전 총리 본인이 연단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축사에서 학생들에게 “제1차 아베 정권(2006~2007년)은 단 1년으로 막을 내렸고, 당시 나는 정권을 스스로 내팽개쳤다며 온 국민의 비판을 받았다”며 “그러나 나는 결코 포기를 몰랐기 때문에 정권을 되찾았고 제2차 정권(2012~2020년)은 헌정 사상 최장기 집권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이어 “소중한 것은 실패에서 일어서는 것으로, 실패에서 배우는 것은 더욱 훌륭하다”고 강조했다.이에 대해 인터넷에서는 “중요한 것은 아베처럼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 “거들먹거리며 말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 “실패를 하면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 “이런 사람을 부른 긴키대학의 식견이 황당할 정도로 저열하다” 등 비판이 쇄도했다고 닛칸겐다이는 전했다. 닛칸겐다이는 “현재 일본은 아베노믹스(아베 정권의 경제정책)의 부작용에 의한 스태그플레이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밀월 관계를 연출한 일러 외교의 실패 등 아베 장기집권의 나쁜 유산에 시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주방에서 사라진 불, 요리가 가능할까/셰프 겸 칼럼니스트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주방에서 사라진 불, 요리가 가능할까/셰프 겸 칼럼니스트

    레스토랑 주방을 만들 때 했던 수많은 고민 중 하나는 ‘불’을 쓰느냐 쓰지 않느냐였다. 아니 요리라는 게 불을 이용해서 식재료를 익히는 행위일진대 무슨 어불성설이냐 싶겠지만 요즘이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오늘날엔 불 없는 주방이 가능하다. 전기를 이용한 인덕션 화구가 가정에서도, 전문 식당에서도 가스를 이용해 불꽃을 만드는 점화식 화구를 점차 대신하는 추세다. 아무리 그래도 불이 있어야 불맛도 내고 제대로 요리가 되지 않을까 싶지만 주방에서 불이 사라지면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다. 가스 공사 비용이 절감되고, 불이 불완전 연소하며 생기는 일산화탄소가 사라져 주방 공기질이 좋아진다. 열효율이 더 높은 데다가 청소도 간편해 여러모로 합리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불맛만 포기한다면 말이다.선사시대에는 불이 요리의 필수였다. 하지만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요리에 필요한 건 아니었다. 불꽃은 오히려 요리를 죽이는 킬러 같은 존재였기에 이를 통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불꽃의 온도는 대략 800도에서 1400도에 달한다. 무엇이든 불꽃에 닿으면 익는 것이 아니라 새까맣게 타 버린다. 노련한 원시 요리사들은 식재료를 불꽃에 닿지 않도록 해야 애써 잡은 고기가 타지 않고 적절히 익는다는 걸 알았다. 요리에 필요한 건 불꽃으로부터 나오는 250도 미만의 열, 언젠가 들어봤을 법한 복사열이다.성인이 갓 된 무렵 친구들과의 여행에서 불을 지펴 고기를 구워 본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호기롭게 불판에 서지만 어김없이 불판에선 불꽃이 화르르 일고 빨리 고기를 익히겠다며 타오르는 불꽃에 고기를 넣는 만행을 벌이기 마련이다. 갑자기 불꽃이 인 이유는 십중팔구 고기에서 흘러내린 지방 때문이다. 타오르는 불꽃에 고기를 올리면 검은 그을음이 묻게 된다. 그땐 영문도 모른 채 그은 고기를 맛있게 먹었겠지만 건강에는 분명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고깃집에선 고기를 불꽃이 아니라 숯불에서 나오는 복사열로 익힌다. 불이 아니라 열로 고기를 익힌다는 개념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서 벌어지는 일이다. 혹자는 불을 발견해 요리를 시작한 것이 인류에게 커다란 혁명이었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혁명적인 사건은 한참 후 벌어진다. 불꽃에서 음식을 보호할 수 있는 용기, 즉 토기 냄비의 발명이다. 불과 식재료만 갖고는 굽는 요리밖에 하지 못하지만 냄비가 있으면 불꽃으로부터 음식을 보호하며 삶거나 찌는 요리를 할 수 있다. 역사 시간에 무늬 있는 토기가 중요하다고 배운 것도 실은 이와 연관이 있다. 용기는 음식을 보관할 수도 있으니 불만 이용하던 시대와 열을 이용해 요리하던 시대는 먹는 데 있어 전혀 다른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은 오랫동안 열원을 나무에서 얻어 왔다. 요리를 하기 위해선 장작을 구해 불을 지폈다. 근대에 와 석탄과 연탄의 시대가 왔고, 머지않아 상대적으로 깨끗한 가스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제는 가스도 과거가 돼 가고 있다. 화석연료차에서 전기차 시대로 진입하는 것처럼 주방기기도 전기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현대의 최신식 주방이라고 하면 전기 오븐과 인덕션 화구가 필수다. 불을 굳이 피우지 않아도 열원이 되는 것이라면 어떤 것도 요리에 사용 가능하다. 프라이팬을 이용한 굽기나 끓이기는 인덕션에서, 대류열을 이용한 굽기는 에어프라이어나 오븐에서, 속부터 익히려면 전자레인지를 이용하면 그만이다. 튀김에 쓰이는 기름뿐만 아니라 파스타나 국수를 끓이는 물도 전기보일러로 대체된 지 오래다. 강력한 화력을 요하는 중식당에서조차 강력한 출력의 웍용 인덕션이 마련돼 있다고 하니 불 없는 주방은 이미 벌어지고 있는 장면이다. 흥미로운 건 이런 현상에 반기를 드는 요리사들의 행보다. 가스나 전기조차 쓰지 않고 땔감과 숯만으로 불을 피워 요리를 고집하는 이른바 우드 파이어 트렌드는 이미 요리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저마다의 철학과 이유는 다르지만 날것의 불을 이용해 전기기기로만 이뤄진 현대식 주방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풍미를 불어넣겠다는 전략이다. 아무래도 전기를 다루는 요리사보다 불을 다루는 요리사가 더 매력적으로 보여서일까.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맛에 소비자 반응도 긍정적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선 나름의 ‘하이브리드’ 주방이 일반적인 형태가 돼 가고 있다. 주요 화구는 인덕션을 쓰되 숯을 피울 수 있는 화로를 하나 두는 것이다. 값비싼 인덕션 장비도 마련해야 하니 업주는 울고, 숯불을 피워야 하니 요리사는 더 고단해졌지만 그래도 고객 만족을 위해서니 어쩌겠는가. 선사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열을 다루는 사람의 숙명일지니.
  • 셰익스피어와 만난 노자… 창극으로 재해석한 비극 ‘리어왕’ [공연리뷰]

    셰익스피어와 만난 노자… 창극으로 재해석한 비극 ‘리어왕’ [공연리뷰]

    “상선(上善)은 약수(若水)일러니 만물을 이로이 하되 다투지 아니하고 모두가 저어하난 낮은 곳에 처하노라.” 국립창극단이 지난 22일부터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선보이는 창극 ‘리어’는 영국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고전 비극 ‘리어왕’(1605)을 우리 고유의 말과 소리로 새롭게 풀어낸 작품이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는 리어의 대사에서 보듯 배삼식 작가가 삶의 비극과 인간에 대한 통찰을 물(水)의 철학으로 대표되는 노자의 사상과 조화롭게 엮어 냈다. 정영두 연출가는 물살에 휩쓸려 가지 않으려는 듯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2막 180분(인터미션 15분 포함)에 걸쳐 그려 낸다. 리어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왕국을 세 딸에게 나눠 주기로 한다. 하지만 리어의 환심을 사려 한 첫째 딸 거너릴, 둘째 딸 리건과 달리 막내딸 코딜리어는 진심 어린 조언과 충언만 전해 왕국에서 추방당한다. 리어의 충신 글로스터는 서자인 에드먼드의 음모에 속아 자신의 적자이자 장남인 에드거를 적대시한다. 권력을 얻은 리어의 두 딸이 자신을 눈보라 치는 벌판으로 내쫓자 그제야 막내딸 코딜리어의 진심을 깨닫는 리어, 두 눈을 잃고 비로소 에드거에 대한 오해를 푸는 글로스터의 이야기는 작품의 두 축을 이룬다. 작품은 권선징악과 무관하게 인물 각자의 욕망을 다층적으로 그려 내는 데 초점을 뒀다. “천지(天地)는 불인(不仁)이라. 불인한 천지여 자연이여 내 어머니여!”라는 에드먼드의 대사 등에서 인간의 본성을 자연을 대입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드러난다. 물의 다양한 속성은 시청각 효과에서 두드러진다. 리어의 감정에 따라 폭풍우가 몰아치는 장면을 비롯해 서사의 흐름에 따라 물이 찼다가 빠지거나 용솟음치며 철썩이기도 하는 풍경을 섬세하게 구현했다. 등장인물들은 무대 위 연못에서 첨벙대거나 허우적대며 격렬하게 싸운다. 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잔잔했던 물이 흔들리거나 반사되면서 왜곡되는 모습이 인간 본성을 보는 느낌이다. 지속적으로 흐르는 물은 되돌릴 수 없고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의 속성을 나타내며, 욕망을 지닌 인물들이 하나둘 쓰러지는 장면은 삶의 공허함을 강조하는 듯하다. 고정관념을 깬 캐스팅도 눈길을 끈다. 30대 초반의 젊은 소리꾼 김준수와 유태평양이 각각 리어와 글로스터 역을 맡았지만 판소리 기본기가 튼튼한 만큼 나이 든 역을 소화하는 데 무리가 없다. 국립창극단의 ‘작은 거인’ 민은경은 애처로운 코딜리어와 익살스러운 광대를 오가는 1인 2역 연기로 극과 극의 매력을 펼친다. 관객들의 박수갈채와 함께 막이 내린 이후에도 단순 명료한 창극 운율에 맞춘 목소리들이 여운으로 남는다. 공연은 오는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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