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장맛비
    2026-08-12
    검색기록 지우기
  • 공강
    2026-08-12
    검색기록 지우기
  • 스케줄
    2026-08-12
    검색기록 지우기
  • 아사히
    2026-08-12
    검색기록 지우기
  • 선행
    2026-08-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64
  • 오늘 전국 장맛비…남부 밤새 집중호우

    12일에도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남해안과 제주도를 비롯한전국에 비가 내리겠다. 기상청은 11일 “장마전선을 동반한 비구름대가 12일 남부와 제주지방을 중심으로 한반도에 비를 뿌리겠다”면서“13일 이후에도 사나흘간 한반도에 비가 이어지겠다”고예보했다. 12일까지의 예상 강수량은 제주도와 부산·경남,전남북지방 60∼100㎜(많은 곳 120㎜ 이상),경북지방 10∼40㎜(〃60㎜ 이상),서울·경기와 충청·강원도가 5∼20㎜ 등이다. 한편 11일 밤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부산·경남과 전남북지방에는 12일 새벽까지 곳에 따라 1시간에 30㎜ 이상의국지성 집중호우가 내렸다. 전영우기자 anselmus@
  • [기고] 무령왕릉 발굴 30주년

    1971년 7월 5일은 백제사 연구의 신기원을 연 무령왕릉(武寧王陵)이 발견된 날이다.따라서 5일은 왕릉 발굴 30주년이되는 뜻깊은 날이다.때마침 이날은 무령왕이 즉위한 지 1,500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무령왕릉은 학술적 가치와 역사적인 의미가 너무도 커서 발굴 당시 국내외 학계를 긴장시켰다.특히 장엄하면서도 연꽃무늬로 치장한 완전한 유구의 정교한 벽돌무덤과 묘지석 (墓誌石)을 비롯한 다종 다양한 부장품들은 그 질과 양에 있어서 백제미술의 정수만을 집대성한 보물들이다.백제미술의 아름다움을 확인한 국민들은 감동과 경탄으로 흥분했다.잊혀진 웅진(熊津)시대 백제문화의 화려한 부활이기도 했다. 무령왕릉의 첫번째 공헌은 학술적으로 유형·무형의 발견자료가 묘지석을 동반함에 있다고 할 것이다.묘지석의 발현은삼국시대 고분 중에서 유일한 금석문(金石文) 자료로서 무덤의 주인공을 밝힌 보물적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둘째로 무령왕릉은 이미 알려진 벽화 전축분인 6호분과 함께 중국 남조 제(齊)·양(梁)의 전축묘제를 수용해 조영한것임을 알 수 있고,원상대로 남아 있는 부장품은 그 배치와장법(葬法)을 명확하게 밝힐 수 있었다. 셋째,풍부한 내용의 미술공예품은 자료 부족에서 오는 백제미술의 빈곤성을 일신케 했을 뿐 아니라,출토지와 발견상태,그리고 연대가 뚜렷한 국보급 유물이다. 넷째,무령왕릉의 발굴은 그동안 백제고분에서 제기됐던 여러 문제 해결의 기초가 될 것이다.동시에 이를 계기로 백제문화의 고고학·미술사적 연구가 확고한 기준 아래 활발하게 전개될 것이다. 다섯째,무령왕릉의 발굴은 백제문화 연구의 기준 설정뿐 아니라 5∼6세기 한·중·일간의 국제적인 문화교류와 상호 영향관계를 규명하고 이해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러나 무령왕릉의 발굴은 분명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것이아니었기에 아쉬운 점도 많았다.학술적 가치와 비중이 높은사적13호 백제고분군의 6호분과 5호분의 내부에 스며드는 습기를 제거하기 위한 배수시설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긴급 발굴의 형식으로 이뤄진 것이다.우선 파괴되지 않은 처녀분으로 확인된 왕릉에 교란된 채로 내장된 막중한보물들이 행여 장맛비로 더욱 부식되지 않을까 염려됐다.이같은 상황은 발굴단으로 하여금 유물 수습을 서두르게 했고 수습과정의 신중성 결여로 이어져 비판의 대상이 됐다.이같은 사례는 그후 고고학계가 학술적이고 체계적인 발굴 체제로 전환하는계기가 됐다. 오늘날 무령왕릉의 사후의 평안한 능침(陵寢·왕의 무덤)이 발굴돼,영원한 안침(安枕·편안한 잠자리)을 깨웠다.온몸에 화려하게 치장된 장신구들은 각각 분류돼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정말 송구스러운 일이다.그러나 왕릉까지 송두리째내놓고 찬란했던 한국 고대문물을 온누리에 빛내주고 있으니 이 또한 참으로 위대한 민족의 대왕이 아닐 수 없다.우리모두 머리숙여 경건한 마음으로 예의를 갖추고,문화민족이란 긍지를 가지고 민족문화의 창조적 계승·발전을 다짐할 일이다. △박용진 충청매장문화재연구원장
  • 열대야… “夜 짜증”

    장맛비가 일시 멈춘 가운데 2일 전국적으로 30도를 넘는무더위가 기승을 부려 서울 등 대부분의 지역에서 열대야현상이 나타나 밤에도 더위가 계속됐다.서울 한강시민공원등 강변이나 공원, 대형 할인점 등은 찜통 더위를 식히려는 시민들로 3일 새벽까지 북적거렸다. 2일 기상청에 따르면 낮 최고 30.9도를 기록한 서울의 기온은 밤 9시 26.8도,밤 10시 26.7도로 밤늦게까지 25도를웃돌았다.강릉 35.5도,포항 35.1도,대구·금산 34.0도,전주 33.9도,대전 32.5도,부산 31.3도로 전국 대부분의 지역이 30도를 넘어섰으며 밤에도 더위가 지속됐다.습도까지높아 불쾌지수가 80을 넘어서 올들어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이에 따라 이날 하루 전력 수요도 올 여름 들어 최고치인 3,990만㎾를 기록했다. 기상청은 4일에는 중부 이북지방을 중심으로 비가 내리기시작, 5일까지 이어지겠다고 내다봤다. 전영우기자 anselmus@
  • [대한광장] 초여름날의 수학여행

    고단한 생활에 지쳐 있다가도 문득 어린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머금을 때가 있다.장년의 나이에 이를수록 유년의 기억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그것은 메마른 일상을 적셔주는 한줄기 시원한 청량음료와 같다. 지난 겨울에 나만의 내밀한 추억을 되새기며 섬진강 상류의 옥정호 주변을 찾았다.그 호수는 내가 처음으로 수학여행을 갔던 곳이다.지난 60년대에 궁벽한 산촌에서 학교를다닌 사람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겠지만,그때 우리는 ‘수학여행’이란 단지 도회지 아이들에게나 해당되는 일로만 여겼다. 6학년 초에 아마 담임선생님이 처음 수학여행 이야기를 꺼내셨던 것 같다.오십명 남짓 되던 우리들 모두는 다같이 좋아서 날뛰었고,그 다음날부터 학교생활 자체가 여행계획을중심으로 짜여졌다.방과후에 뒷산에 올라 싸리나무를 베던일,그 나무들을 한데 묶어 빗자루를 만들던 일,그리고 인근면소재지의 장이 열리면 교대로 나가서 내다팔던 일이 기억에 새롭다. 드디어 6월 어느날 이른 아침에,우리는 그동안 모은 돈을밑천삼아수학여행을 떠났다.말이 수학여행이지 그건 하루종일 산길을 걷는 도보여행이었다. 몇 봉우리의 산을 넘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어쨌든 저녁무렵에 칠보 수력발전소에 이르렀으니 무척 많이 걸었던 모양이다.그 다음날 버스를 타고 넓은 호수를 구경했다.마침이전 댐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큰 새로운 댐을 건설하고 있었다.공사감독의 배려로 현장에서 사용하는 케이블카를 타는행운도 누렸다.원래 계획으로는 그날 버스편으로 돌아와야했다.그러나 때마침 쏟아진 장맛비로 도로가 막히면서 공사판을 떠날 수 없었다. 우리는 공사판 근처의 허름한 음식점에서 함께 기숙했다. 그렇게 사흘을 머물렀다.식사 때마다 우동과 자장면을 번갈아 시켜먹는 것이 무척 신이 나기도 했다.식사가 끝나면 빗발 때문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널따란 방에서 끼리끼리화투를 치며 놀았다.비가 그친 후에 마을로 돌아오기는 했지만,예상치 못한 비용 때문에 우리는 얼마씩 돈을 더 거두어야 했다. 일부는 담임선생님이 부담하셨다고 들었다.이것은 가난하고 고달팠던 한 세대 전의이야기다.나는 졸업 후에 곧바로고향을 떠났으므로,그 선생님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나는 지금도 삶이 고달플 때,또 요즘처럼 주위를 둘러보아도 답답한 일들만 가득차 있을 때,가끔 그 수학여행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는다.그러나 그 웃음 속에는 눈물이 깃들어있다.눈물을 글썽이는 순간 사람은 순수해진다고 한다.그순수한 마음으로 그 시절의 교육을 생각한다.그 당시에도도회지 학교에 비해 ‘뒤처진’교육을 받았겠지만,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내게는 황금기였던 모양이다.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 선생님을 생각한다.아무래도교육자로서 나의 자질은 그 분보다 뒤떨어지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 분은 자신의 삶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에게무언가를 가르쳐주시지 않았나 싶다.그 시절에는 그런 분위기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가난한 농투성이 아이들에게 진솔한 사랑을 베풀어주시던 모습이 눈물과 함께 어른거리곤 한다. 하나,느리게 살아가던 학교생활과 농군 복장을 하고 틈만나면 막걸리를 마시던 선생님의 모습과 그리고 모두 가난하기 때문에 서로 친근했던 친구들이 요즘 들어 더욱더 선연한 기억으로 다가오는 것은 잃어버린 시절에 대한 아련한향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도대체 교육이란 무엇인가.삶 자체를 배우는 것 말고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교육의 황폐화와 교실붕괴를 개탄하는기획기사들이 신문지면에 가득한 지금 다시 한번 되묻고 싶다.도대체 교육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영석 광주대교수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