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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주영 칼럼] 수렁에 빠진 한국무역

    [염주영 칼럼] 수렁에 빠진 한국무역

    한국무역의 앞날이 어둡다. 요즘의 상황은 급전직하다. 중국시장이 특히 그렇다. 원고와 엔저가 위력을 발휘하며 우리 수출산업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중국특수는 빠른 속도로 소멸중이다. 우리의 경쟁상대가 아니라며 쳐다 보지도 않았던 중국의 토종기업들이 이제는 우리 자리를 위협한다. 악명 높은 강성노조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한국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수렁에 빠지는 조짐들이 뚜렷해지고 있다. 한국상품은 일본의 기술에 밀리고, 중국의 저가공세에 또 밀린다. 중·일 양국의 협공에 포위돼 옴짝달싹 못할 지경이 됐다. 세계가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던 현대차가 별안간 뒤뚱거리는 오늘의 모습에서 한국무역의 불안한 내일을 읽을 수 있다. 오죽하면 세계최강 기업중 하나로 성장한 삼성의 이건희 회장마저도 “일본은 달아나고 중국은 쫓아와 한국은 이들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라고 한탄했을까. 지난해 일본과의 무역적자는 늘어나는 반면 중국과의 무역흑자는 5년 만에 처음 감소세로 돌아섰다. 특히 경상수지 흑자액이 60억달러 수준으로 격감했다. 우리는 1998년 한 해 400억달러의 흑자를 낸 적이 있다. 그때와 비교하면 흑자액은 7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게다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은 올해 9년 만에 처음으로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고 전망한다. 경상수지 흑자시대는 지금이 끝물이다. 그런데도 도무지 위기의식이 없다. 정부는 턱 없는 낙관론에 젖어 있고, 정치인들은 정권쟁탈전에 여념이 없다. 기업들만 전전긍긍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이러니 국민도 제모습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해외여행 다니고 자녀들 해외유학 보내느라 펑펑 써대기 바쁘다. 그 바람에 서비스수지 적자폭이 연간 180억달러로 불어났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수출은 3000억달러 고지를 돌파했다. 고유가, 원고, 엔저, 그리고 악성 노사분규 등 온갖 악조건 속에서 거둔 값진 결실이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이처럼 불안하다. 상황은 급전직하하는데 우리는 수출 3000억달러 돌파에 도취되어 상황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상황변화 자체를 감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중국시장이 멀어지고 있다. 중국특수 호시절은 이미 끝났다고 말하는 기업인들이 많다. 중국은 우리에게 지난 10년간 1100억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무역흑자를 안겨준 황금시장이었다. 그러나 한때 40%를 상회하던 대중국 투자와 수출 증가율이 근래에는 10%대까지 격감했다. 미·일·EU의 선진기업들에다 중국 토종기업들까지 가세한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우리 기업들이 점차 수세에 몰리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를 방치하면 우리의 황금시장이 경쟁국 기업들에 넘어가고 말 것이다. 한국무역이 직면한 위기 극복의 해법도 중국시장에서 찾아야 한다. 중국시장 사수 전략을 새롭게 가다듬어야 할 시점이다. 수출기업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기술과 부품을 들여와 국내에서 조립해 중국에 수출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런 구태의연한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토종기업들이 빠른 속도로 조립형 산업을 장악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8년간의 경상수지 흑자시대를 마감하고 적자시대로 들어가는 문턱에 서 있다. 지금이 중요하다. 둑이 터지기 전에 대비해야 한다. 일단 적자시대로 들어가면 흑자시대로 다시 되돌리기는 어렵다는 점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논설실장 yeomjs@seoul.co.kr
  • [OUR STORY] 강원도 고성 항·포구 여행

    [OUR STORY] 강원도 고성 항·포구 여행

    유명세를 떨치는 거대한 여행지가 있는 곳은 아니다.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곳도 아니다. 강원도 고성군. 남한 땅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관광지 속초시 옆에 옹색하게 붙어 있으면서,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는 곳. 게다가 미시령 터널이 뚫려 당일 여행객들이 늘어나면서부터는 아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만 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곰곰이 살펴보면 고성은 산과 바다, 그리고 호수의 정취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드문 여행지다. 구비구비 진부령을 넘어 만나는 겨울철새들의 낙원 화진포 등 아름다운 호수들과 명태잡이 전진기지 거진항에서 맞는 싱싱하고 맛있는 아침, 그리고 소박하고 아름다운 항·포구 등, 이곳저곳 부지런히 노닐다 보면 하루해가 짧다. 황량한 바람이 도로를 휩쓸고 가는 겨울밤엔 거진읍내 뒤편의 ‘나이트’를 찾아도 좋겠다. 밝은 웃음, 화려한 조명 뒤에 어딘가 음습함이 도사리고 있는 도시의 그곳과는 달리, 이제는 찾아보기조차 힘든 촌스런 회전조명 아래 한낮의 시름을 맥주 한모금으로 털어내는 어촌 사람들과 마주할 수 있다. 고무장화 신은 어부와 ‘땡땡이 무늬 몸뻬바지’ 입은 아낙들. 한낮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차림새 그대로다. 100년 만에 찾아왔다는 따뜻한 겨울 때문이라선가. 예전 이맘때면 ‘개도 물고 다녔다.’는 거진항 명태도, 물과 얼음의 경계에서 우아한 자태로 유영을 하고 있어야 할 화진포호 큰고니(백조)도 없었다. 그렇다고 실망스러울 것 또한 없다. 올해의 아쉬움은 내년에 더 큰 기대를 안고 이곳을 찾게 해줄 것이므로. 글 사진 고성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아름다운 호수가 가득한 곳 “속초가 속초일 수 있는 것은 청초와 영랑, 두 개의 맑은 눈동자가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한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고성이 고성일 수 있는 것은 화진포호와 송지호란 두 개의 맑고 아름다운 석호(潟湖)가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화진포호 등 동해안의 석호들은 내륙의 자연호수와는 달리 담수와 해수가 뒤섞인 기수호(汽水湖). 약 3000년전쯤 지금과 같은 호수의 형태를 갖춘 것으로 추정된다. 석호에는 거센 파도와 해일로 바닷물이 호수로 들어오거나, 장마철 등에 민물이 모래언덕을 넘어 바다로 나가는 ‘갯터짐’ 현상이 교대로 일어난다. 이때 민물과 바닷물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 언제 가도 아름다운 풍광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화진포는 면적만도 72만평에 달하는 국내 최고의 석호다. 호숫가에 해당화가 많아 화진포란 이름이 붙여졌다. 멀리 뒤쪽 백두대간의 설원이 잔잔한 호수위에 투영될 때면 눈부신 절경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호수 주변에 이승만, 김일성 등 당대 권력자들의 별장이 있다는 사실이 이곳의 아름다움을 웅변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201호 큰고니(백조) 등 수많은 겨울 철새들의 낙원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 곳. 거진항에서 화진포호까지 이어진 해안도로가 작년 말 완공돼 보는 즐거움을 한층 더해주고 있다. 고즈넉하고 아름답기로 치자면 7번국도변 송지호도 뒤질 것이 없다. 이름처럼 해송 등에 둘러싸인 송지호는 둘레가 약 4㎞(20만평)에 달하는 고성의 대표적 관광지 중 한 곳. 물색이 워낙 맑아 스쿠버 다이버들에게 인기가 높다. 오후보다는 바람이 잠을 덜 깬 이른 아침에 방문하길 권한다. 때마침 안개라도 끼면 맑은 하늘색, 물색과 어우러져 ‘선경(仙境)’이란 단어가 상투성의 옷을 벗게 됨을 느낄 수 있다. 조개나 물고기 화석 등을 전시해 놓은 화진포 해양박물관도 들러볼 만하다. 연중무휴. 어른 5000원, 중·고등학생 4000원, 초등학생 3000원.(033)680-3352. # 금강산 설경을 눈에 담고 고성 여정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통일전망대’. 전망대 난간에 서면 금강산과 해금강이 손에 잡힐 듯 지척으로 다가오고, 말무리 반도 끝자락의 만물상, 부처바위, 백바위 등 북녘땅의 절경들이 줄을 선다. 남한 ‘최북단’이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를 떼내려는 듯, 동해북부선 철길과 도로가 나란히 선 채 북쪽을 향해, 그리고 통일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사자바위는 사자가 갈기를 세우고 남쪽을 향해 달리는 듯한 형상. 바다에서 보면 코끼리를 닮았다 해서 만물상이라고도 불린다. # 명태와 도치, 그리고 물미역 대진항에서 만난 물미역의 비릿한 갯내음이 구미를 돋웠다. 겨우내 곰삭은 김치만 대하다 보니 그럴 법도 하다. 잘 손질한 물미역에 쪽파와 조개 등을 포개 엊은 다음, 초고추장 듬뿍 찍어 입에 넣어 보시라. 그 상큼한 맛이란.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소리며 갈매기의 날갯짓까지 입안 가득 들어 차는 느낌이다. 물미역은 억세지기 전 이맘때가 제맛. 음력 정초쯤 되면 부드럽고 들척지근한 맛이 최고조에 달한다. 잎보다 줄기부분의 오톨오톨 씹히는 맛이 각별하다. 활동량이 적어지는 겨울철, 집안에서 이리저리 뒹굴거리며 맛있는 음식만 탐하다 보면 금세 살이 찌기 십상. 물미역 등 겨울철 해조류는 칼로리는 낮고 무기질과 섬유소는 풍부해 겨울철 다이어트에도 적잖은 도움을 준다. 요즘엔 양식 미역이 대부분이지만, 대진항에 가면 바위에 붙어 자생하는 물미역을 맛볼 수 있다.70여명의 해녀들이 매일 아침 채취한 싱싱한 자연산이다.500g 한묶음에 1500원. 택배도 가능하다.1kg 두 묶음에 4000원. 택배비용 4000원은 별도다. 여러 가정에서 한꺼번에 주문하는 것이 택배비용을 절약하는 방법이 될 듯. 대진항 나잠 영어조합법인 (033)682-0583. 오용분 회장 (011)379-0026. 명태는 ‘맛좋기는 청어, 많이 먹기는 명태’라는 말이 전해올 만큼 우리와 친숙한 생선. 거진항 등 동해안 항포구에서 겨울철이면 흔히 볼 수 있었다. 요즘엔 많이 달라졌다. 날이 갈수록 어족자원이 고갈되는 마당에 해수온도마저 높아져 냉수성 어종인 명태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을 지경. 오죽하면 동해안 일대에서 잡히는 명태를 ‘금태(金太)’라 부를까.2월하순에 열리던 명태축제가 예년과 달리 지난 4일 서둘러 막을 내린 것도 해수온도가 더 오르는 것을 저어한 때문이다. ‘1魚4色4味’라는 표현만큼이나 명태는 어디하나 버릴 것이 없는 알뜰한 생선이다. 한류성 어종이면서도 지방이 적은 명태의 살은 국이나 찌개 등에 넣어 끓여 먹거나, 무 등과 곁들여 찜을 해먹기도 한다. 알은 명란젓, 창자는 창란젓을 만들고, 간장은 어유(魚油)를 만드는 데 쓴다. 말린 껍질과 눈알은 튀기거나 구워서 먹는데, 겨울밤 술안주로 그만. 이밖에 칼슘이 멸치만큼 많은 아가미는 식해로, 곤이라 불리는 정자덩어리는 찌개 등에 넣어 먹는다. # 제철만난 도치 생김새가 심통맞게 생겨 ‘심퉁이’라고도 불리는 도치. 마치 올챙이를 뻥튀겨 놓은 듯 이만저만 ‘불친절’하게 생긴 게 아니다. 고집도 세서, 배에 있는 빨판을 이용해 바위 같은 곳에 달라붙어 있으면, 어부들이 발로 차도 안 떨어진다. 하지만 ‘못생겨도 맛은 좋아’라는 광고문구가 도치에겐 대단히 적절한 표현이다. 쫄깃거리긴 하지만 질기지 않고, 부드럽긴 하지만 풀어지지 않는 뽀얀 살. 기름기 없이 담백하고 비린내 없는 생선이다. 게다가 오도독 씹히는 맛이 일품인 도치알은 별미중의 별미. 그래서 예전부터 고성8미(高城八味) 중의 하나로 불리기도 했다. 사실 명태가 많이 나던 시절엔 생선취급도 못받았다. 그물에 걸리면 재수없다고 버려지기 일쑤. 하지만 지금은 특유의 담백한 맛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귀족생선’이 됐다. 도치는 요즘이 딱 제철이다.2월이 지나면 뼈가 굵어지고 단단해져 제맛을 잃기 때문이다. 겨울철 그물에 잡혀 올라온 도치는 뼈가 연해 숙회로 먹기에 알맞다. 뜨거운 물에 살짝 담갔다 꺼내 껍질의 진액을 완전히 제거한 다음,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다시 뜨거운 물에 데쳐내면 도치숙회가 된다. 암도치에서 나온 알에 소금을 뿌려 하루 정도 재워둔 다음, 이튿날 젤리처럼 탱탱해진 알을 적당한 불에 쪄내면 도치알찜이 된다. 또 내장을 제거한 채 1주일 정도 말려 꾸덕꾸덕해진 도치(수토치를 주로 쓴다)에 양념을 한 다음 쪄내면 맛깔스러운 도치찜이 된다.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도치 두루치기(도치알탕). 묵은 김치 위에 알과 고기를 얹은 다음, 찜보다 조금 많다 싶을 정도의 물을 넣고 조려낸다. 양념이 밴 쫄깃한 도치살을 오도독 씹히는 알과 함께 먹다 보면 어느덧 밥한공기 뚝딱. 주의보가 내려져 어선들이 오래 출어하지 못하면 도치요리를 맛보지 못할 수도 있으니, 미리 전화로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고성군청 문화관광과 (033)680-3350. 고성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여기도 좋아요 ●대조영 촬영장 설악씨네라마 미시령 자락에 자리잡은 한화리조트 설악씨네라마(seorakcinerama.co.kr)가 새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114억원에 달하는 제작비용 전액을 국내 최초로 민간자본으로 충당한 오픈 세트장. 당나라 황궁과 중국 4대정원 중 하나인 졸정원을 모델로 한 측천무후원, 당나라 전통 주거지 사합원 등 이국적 정취를 풍기는 건물들이 3분2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고구려 성곽과 관아, 저잣거리 등도 고증을 거쳐 사실적으로 재현해 놓았다. 현재 촬영되고 있는 것은 KBS드라마 ‘대조영’. 여느 세트장과 달리 드라마 촬영이 있는 날도 입장이 가능하다. 주연배우들이 실제 연기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안겨줄 듯하다. 입장료는 어른 6000원, 어린이 4800원. 지역주민 50%, 한화콘도 투숙객 20%, 성인단체 30명 이상 20% 등 각종 할인혜택도 준비했다.(033)632-8711. ●부처 진신사리 봉안 건봉사 고성군 오대면 금강산 자락에 자리잡은 거찰. 부처의 치아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다. 진리는 둘이 아니라는 가르침을 새긴 불이문,18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능파교, 그리고 바라밀 문양 돌기둥 등은 건봉사가 품고 있는 보물들.(033)682-8100. ●태백준령과 동해 조망 마산봉 만이천 금강의 봉우리 가운데 남한 제2봉이라는 곳. 진부령 알프스 스키장 뒤편에 우뚝 솟아 있다. 해발 1052m 정상에서 바라보는 눈덮인 태백준령과 동해바다가 장관을 이룬다.
  • 우리소설 스웨덴서 ‘오디오북’ 부활

    우리소설 스웨덴서 ‘오디오북’ 부활

    김동인의 ‘감자’, 황순원의 ‘소나기’와 ‘학’, 한말숙의 ‘장마’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단편소설들이 스웨덴에서 ‘오디오북’으로 부활했다. 2003년 스웨덴에서 번역출판된 ‘한국단편선집’이 시각장애인과 노인들을 위한 ‘오디오 콤팩트 디스크(CD)’로 제작돼 스웨덴 각지의 도서관에 보급됐다. 스웨덴 유명 성우인 안나 되블링이 직접 녹음한 이 CD는 5시간44분 분량이다. 스웨덴 문화성은 50여년 전부터 30여만명의 시각장애인과 노인들을 위해 유명 문학작품을 오디오북으로 제작, 보급해 왔다. 동양권에선 처음으로 한국 단편소설들이 오디오북의 주인공이 됐다. 이번 오디오북 제작에는 스웨덴의 교포작가 최병은(70)씨가 큰 역할을 했다. 최씨는 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문학을 스웨덴어로 번역해 소개하는 등 ‘한국문학 불모지’였던 스웨덴에 우리 문학을 알리는 일에 매진해 왔다. 오디오북의 모태가 된 ‘한국단편선집’도 그의 번역으로 태어났다. 지금까지 최씨가 번역해 현지에 소개한 우리 문학은 조병화(1993년)와 구상(1997년)의 시집,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옥중수기’(1999년), 고은의 ‘선시집’(2002년) 등이 있다. 지난해에도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박완서의 ‘나목’을 소개했다. 여섯 차례에 걸쳐 서정주, 구상, 조병화, 김소월, 이육사, 윤동주 등의 시화전을 현지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스웨덴한인회장을 역임한 최씨는 스톡홀름 문단과 스웨덴 왕가, 정·관계 등에도 발이 넓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등에도 일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은 시인이 재작년과 지난해 2년 연속 노벨문학상 유력후보에 오른 것도 이런 그의 ‘한국문학 알리기’와 무관치 않다. ‘하얀사슴’(白鹿) 등의 소설을 쓴 작가이기도 한 최씨는 “북유럽권에서 이제 한국문학의 진가가 차츰 알려지기 시작했다.”면서 “특히 이들 지역에 있는 수만명의 한국인 입양아들에게 한국문학을 읽혀 정체성을 찾게 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진실씨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수잔브링크의 아리랑’ 촬영 때 자신의 집을 촬영장소로 제공하는 등 입양아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1968년 단돈 70달러를 들고 유학을 가 현지 대학에서 해양법을 전공한 뒤 석유회사 등에서 근무한 그는 자신의 소설 제목처럼 ‘하얀사슴’이 뛰어노는 연못(백록담)이 있는 제주에 핀란드의 ‘산타마을’(노마노마)을 재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전설과 허구에 불과할 뿐이지만 ‘산타마을’은 연간 6조원의 관광수입을 올립니다. 우리 문학작품에 녹아 있는 전설들을 관광상품화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요.”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박성서의 가요X파일](2)‘산너머 남촌에는’의 박재란

    [박성서의 가요X파일](2)‘산너머 남촌에는’의 박재란

    ‘삼천만의 연인’이었던 ‘꾀꼬리가수’ 박재란씨는 빼어난 외모만큼이나 당시 옴니버스 음반들의 커버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데뷔 때부터 전성기였던 196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음반 재킷을 장식했던 가수가 바로 박재란씨로 필자가 확인한 것만도 무려 100여종. 아울러 스크린에도 진출,1959년 박종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손석우씨가 주제가를 맡은 영화 ‘비오는 날의 오후 세시’에서는 미남, 미성의 가수 손시향씨와 함께 특별 출연해 주제가와 함께 연기를 선보였고 이어 1961년, 영화 ‘천생연분(박성호 감독)’에서는 타이틀 롤을 맡아 열연했다. 또한 1962년 발표된 히트곡 ‘님’은 가사 중 ‘창살 없는 감옥’이라는 단어를 타이틀로 이듬해 영화로까지 제작되었다. 아울러 이 노래 ‘님’은 2001년, 작사가 차경철씨 출생지인 울산의 대운산 입구에 노래비까지 건립됐다. 방송과 영화, 취입과 공연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시절, 전국을 누비던 ‘박재란 쇼’는 언제나 몰려드는 관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무리한 일정으로 인해 폐가 나빠져 약으로 버티면서도 하루에 무려 30곡이나 되는 노래 연습과 취입을 해야 했어요. 젊었을 때니까 가능했던 일이었겠지만 무엇보다 대중들의 환호가 가장 큰 힘이었지요.” 무대에서 생긴 병은 다음 무대에서 치유되었을 정도로 그에게서 노래는 어려움을 이겨낸 치료제이자 면역력을 키워준 힘이었다.‘대중들 앞에서의 삶’이 전부였던 그에게도 비로소 ‘자신만의 인생’이 펼쳐진다.1959년, 영화주제가 ‘장마루촌의 이발사’를 연습하기 위해 작곡가 김광수씨 집에 갔다가 운명처럼 남편 박운양씨를 만난 것. 동갑내기이자 당시 성균관대생이었던 박운양씨는 작곡가 겸 연주인 김광수씨가 출연하는 ‘무학성 카바레’의 단골로 서로 의형제를 맺은 사이. 그와의 사랑이 시작되면서 행복과 불행이 동시에 찾아왔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바로 1989년 ‘한번만 더’로 사랑받았던 가수 박성신씨다. 아울러 남편이 영화제작에 손을 댔다가 결국 사기를 당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시작된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함께 쇼 단체를 만들어 전국 공연에 나서기도 했지만 세상일을 모르고 살았던 이들에게 결코 만만치 않았다. 결국 100평 남짓하던 서울 후암동 2층집에서 용산 단층집으로, 또 갈현동 전셋집으로 전락하며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갔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부간의 불화로 인해 결국 이혼을 택한 뒤 1973년 혼자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LA에 도착한 그는 나이트클럽 ‘타이거’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시작으로 재기에 안간힘을 썼다. 동시에 한국을 오가며 음반을 발표하며 방송에도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무렵 미국 시민권을 가진 연예인들이 이따금씩 귀국해 활동하는 것에 대해 ‘국고를 해외로 빼돌린다.’는 투서사건이 발생, 국내 활동이 일체 중단되자 그 역시도 점차 대중들로부터 잊혀져 갔다. 더구나 1979년, 아파트 화재로 모든 걸 잃는다. 밑바닥까지 내려간 그의 생활은 재기에 집착할수록 오히려 그 집념이 병이 되어 심장과 신장에 이상이 오는가 싶더니 급기야는 악성 위궤양으로 발전, 음식물을 삼킬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유년시절 숱한 잔병치레를 통해 강한 면역력을 키운 동시에 어려웠던 시대를 향해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던 가수 박재란. 이제 그는 스스로 ‘긍정적으로 대할수록 긍정적으로 되는’, 이른바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를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듯 여겨졌다. 너나없이 어려운 시절이었기에 오히려 밝은 모습으로 대중들 앞에 나섰던 그, 스스로의 ‘피그말리온 효과’는 지금에 와서 새삼 그를 지탱해주는 에너지이다. 현재는 선교활동을 통해 ‘노래하는 전도사’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전북 관광 100선 ‘F-TOUR’ 기억하세요

    전북도가 주요 관광·문화자원을 유형별로 묶은 관광상품을 개발해 국내·외 관광객 유치에 나선다. 도는 29일 주요 문화 및 관광자원을 7개 테마로 묶어낸 ‘100대 F-TOUR 관광상품’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F-TOUR는 먹거리(FOOD), 발로 찾아다니며 볼거리(FOOT), 지역 축제와 연계된 놀거리(FESTIVAL), 농촌체험(FARM) 등을 관광상품으로 엮은 것이다. 테마별 100대 상품은 ▲명소=전주 한옥마을 등 16개 ▲문화=가을문학산책 등 14개 ▲레저=환상의 레저체험 등 11개 ▲학습=새만금 수학여행 등 15개 ▲웰빙=여자들의 미용여행 등 12개 ▲축제=김제 지평선축제 등 17개 ▲그린=임실 치즈체험 등 15개다. 도는 이들 관광상품을 테마별로 다양하게 연계해 관광객들이 지루하지 않게 곳곳을 여행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예를 들면 전주 한옥마을을 체험한 뒤 부안 변산반도에서 천혜의 절경을 감상하며 백합죽을 먹는 코스, 임실 느티마을에서 송아지 우유주기와 치즈 만들기를 한 뒤 치즈 돈가스로 점심식사를 하고 순창 고추장마을에서 고추장과 된장 만들기 체험을 하는 코스 등이다. 또 관광상품은 가족여행객과 직장 동호회, 노인 관광객 등으로 대상을 세분화하고 여행 일정도 1박에서 2박3일까지 다양화했다. 특히 단순히 구경하는 관광이 아닌 직접 체험하고 느끼는 관광으로 기획하고 시설과 공급자 중심에서 콘텐츠 및 소비자 중심의 관광으로 전환했다. 이번에 개발한 관광상품을 홍보하기 위해 국내·외 여행사와 협력·지원하고 중국어와 일본어, 영어로 된 전용 홈페이지를 개설키로 했다. 전북도 이옥진 관광진흥과장은 “100대 상품은 전북의 맛과 멋, 문화를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준비된 새로운 관광 브랜드”라며 “전북은 이제 스쳐가는 관광지에서 체류형 관광지로 변모할 것”이라고 말했다.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프렌치 리포트] (14) 못말리는 시위 마니아들

    [프렌치 리포트] (14) 못말리는 시위 마니아들

    지난 연말 보도됐던 재미있는 해외 뉴스 한토막. 프랑스의 포나콩(FONACON·새해반대전선)이라는 조직이 12월31일 밤 서부도시 낭트에서 2007년이 오는 것을 축하하지 말고 저항하자고 촉구하며 시위를 벌인다는 것이다.“세월의 흐름을 축하하는 행위는 비논리적이다. 한해를 마감하면 무덤으로 한발짝 더 다가가는 것이다. 이는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니라 비극이다.” 이런 주장을 하면서 포나콩은 자기들의 뜻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모두 거리에 나와 2007년이 오는 것에 반대하자고 촉구했다. 오는 해를 막겠다니, 참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하겠지만 프랑스인들의 시위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프랑스인들은 정말 아무도 말릴 수 없는 시위 마니아들이다. ●시위는 신성한 국민의 권리 프랑스인들이 새해 반대 시위를 한다는 소식을 전한 영국의 일간 인디펜던트는 “프랑스인들은 불가피한 일에도 저항하는 아주 오랜 ‘훌륭한’ 전통을 자랑한다.”고 비아냥하면서 장폴 사르트르가 작고했을 때의 일화를 소개했다. 프랑스인들의 존경을 받았던 좌파 철학자 사르트르가 땅에 묻힌 1980년 4월19일 5만여명의 파리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사르트르의 죽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 위해서였다. 프랑스인들처럼 시위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아마 없을 것이다.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있었다는 얘기는 들은 바 없지만 프랑스에서 살아 본 사람이라면 이들의 시위문화가 독특한 프랑스인들의 기질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인들은 사사건건 따지기를 좋아하고, 불평거리를 찾아내는 데 능숙하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과 감정을 무척 중시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논쟁을 서슴지 않는다. 권리 주장이 강하다. 시위는 이런 프랑스인들에게 자신의 의지와 신념을 강력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여럿이 모이면 의미전달은 더욱 효과적이다. 정치적 성향, 남녀노소, 직업을 떠나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자유와 권리를 가진다. 이 때문에 프랑스에서 시위는 자유·평등의 정신에 따른 신성한 국민의 권리로 인정된다. 프랑스에서 시위가 많을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민주주의 발전의 에너지 프랑스가 ‘혁명의 나라’가 된 것도 프랑스인들이 시위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영국의 역사가 로저 프라이스가 프랑스의 근대정치사를 ‘혁명과 반동의 역사’라고 했을 정도다. 국민주권 시대를 연 1789년의 대혁명을 비롯해 의회민주주의 발전의 토대를 닦은 1830년 7월 혁명, 보통선거제를 확립한 1848년 2월 혁명, 노동자 권리신장으로 이어지는 1870∼1871년 파리코뮌 등이 대표적이다.2차대전에서는 나치 독일에 항거하는 레지스탕스 운동으로 주권을 지켰으며 1968년 5월의 ‘68혁명’을 통해 기성세대가 일궈놓은 자본주의 산업사회와 권위주의에 도전했다.68혁명은 프랑스 정치는 물론 사회·문화적 변화를 수반하면서 2차대전 이후 프랑스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2002년 대선에서 네오파시스트로 불리는 국민전선의 장마리 르펜 당수가 2차 결선투표에 진출했을 때 그를 반대하기 위해 벌어진 대규모 시위도 역사의 한장으로 기록됐다. 프랑스인들의 저항정신이 빚은 시위문화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게 한 토양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지나치게 잦은 시위로 인한 사회·경제적 부담과 함께 일부 시위가 폭력양상을 띠는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축제 같은 시위, 그러나… 파리에서 시위는 주로 주말 오후에 열린다. 그래야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고, 특히 내 주장을 펴기 위해 뜻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파리에서는 주로 주말에 크고 작은 시위가 여기저기서 열리는데 이를 하루 평균으로 계산하면 매일 3건씩 벌어지는 셈이라고 한다.1년이면 1000건 이상이라는 얘기다. 워낙 시위가 많다 보니 시위하는 사람들이 다양하고, 주장도 다양하고, 방식도 다양하다. 노동자들은 안정된 일자리를 요구하며 정부의 개혁안을 반대한다. 경찰이나 공무원도 각자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시위한다. 학생들은 교육여건을 개선해 달라고 한다. 매춘부들의 시위도 간혹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노동권을 보장하라고 주장한다. 외국인들은 인종차별을 반대하고, 불법 이민자들은 거주증명서를 달라고, 집없는 사람들은 거주권을 달라고 주장한다. 각양각색이다. 그런데 우리와는 달리 프랑스의 시위는 대부분 평화적으로 진행된다. 화창한 날 어린아이를 무동 태우거나 유모차를 밀고 나와 시위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축제에 참가하는 분위기마저 풍긴다. 인상적이었던 시위 중의 하나는 게이 퍼레이드다. 동성애자들 수천명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가장행렬을 하는데 각 단체별로 꾸미고 나온 모습들이나 주장하는 바가 정말 다양했다.‘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의 차별을 철폐하라’‘에이즈확산반대 동성애자단체에 재정지원을 해달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금발에 짙은 화장, 금방 터질 듯 과장된 가슴과 엉덩이가 다 드러날 초미니 스커트,20㎝는 족히 될 높은 굽의 부츠를 신고 나온 여장 남자 등 수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게이퍼레이드는 매년 엄청난 인파를 불러 모은다. 시위에 대응하는 방식도 조직화됐다. 시위 진압을 전문적으로 하는 경찰도 있다. 시위진압전문경찰은 공화국안전수비대(CRS)라고 하는데 이들의 임무는 ‘시위로부터 시위대를 보호하는 것’이다. 시위도중 불상사를 막아주는 것 외에 진압경찰은 평화적인 시위대가 예정된 코스로 이동하도록 교통을 막아주기도 한다. 한번은 영·미국식 학제도입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시위를 취재하며 끝까지 따라가 본 적이 있다. 파리의 대학건물들이 모여 있는 생미셸 지역에서 시작해 교육부까지 행진하는 것이었다.CRS는 시위대가 대열에서 이탈되지 않고 폭력사태로 번지지 않도록 감시의 눈을 번득였지만 충돌은 없었다. 시위대의 꼬리 부분을 보니 200m 정도 사이를 두고 청소차와 청소원들이 따라오면서 시위대가 흘리고 간 전단이나 쓰레기를 흔적도 남기지 않고 치우고 있었다. 시민들은 시위하고, 경찰은 보호하고, 청소부들은 치우고…정말 재미난 나라다.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장애인들의 ‘발’ 허무한 죽음

    장애인들의 ‘발’ 허무한 죽음

    지난 5년간 중증장애인의 ‘발’이 돼 헌신적으로 일해 온 한 장애인콜택시 운전기사가 최근 거동이 불편한 중증장애인을 병원에서 집으로 태우고 가다 갑자기 심장마비로 숨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더욱이 이 운전기사는 서울시설관리공단 소속으로 장애인콜택시를 운전해 왔지만 신분이 근로자가 아닌 운전봉사자여서 4대 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아 자칫 한 푼도 보상을 받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하루 10~12시간씩 병원가는 장애인 도와” 장애인콜택시 기사 김모(61)씨는 지난 18일 오후 3시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에서 한 중증장애인을 태우고 출발한 직후 쓰러졌다. 놀란 승객이 곧바로 신고를 했지만 김씨는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부인 김모(52)씨는 “남편이 하루 10∼12시간씩 일하면서도 항상 자기 아니면 병원에도 못가는 어려운 장애인들을 도와줘야 한다며 쉼없이 일을 해 왔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는 단골 장애인 고객들로부터 ‘퇴직하면 시골집에 놀러 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헌신적이었다. 김씨가 처음 장애인콜택시 운전을 시작한 것은 서울시 장애인콜택시가 출범한 2003년 1월. 김씨는 당시 공단측으로부터 월 95만원의 보조금을 받고 운행 수입을 가져갈 수 있는 ‘운전봉사자’로 운전을 시작했다. 하루 10시간씩 4일 근무하고 하루를 쉬면서 일반 택시의 절반 이하 요금에 1·2급 중증장애인을 태우고 다녔다. 그러나 근로자의 권리인 4대 보험과 연월차, 퇴직금 등을 전혀 보장받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 왔다. ●법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김씨는 장애인콜택시 운전자를 근로자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법정 공방이 진행중인 상태에서 사망했다.2004년 장애인콜택시 운전기사로 활동하다 해고된 운전자 7명이 서울행정법원에 낸 소송에서 법원은 “장애인콜택시 운전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결을 내렸고, 고등법원도 지난해 이를 인용했다. 하지만 고법이 해고는 정당했다고 판결을 내려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현재 장애인콜택시 기사는 120여명에 이른다. 시설관리공단은 “당초 봉사정신이 필요한 근무라 운전봉사자로 계약했고 대법원 판결이 나기도 전에 근로자로 인정할 수는 없었다.”면서 “김씨 본인이 스스로 근무시간을 초과해 일했고, 현재로서는 위로금 지급에 대해 결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김씨의 동료 박모(56)씨는 “장애인콜택시는 중증장애인을 태우는 만큼 더 어렵고 주의를 요하는 일인데도 공단측이 의무만 지우고 권리는 보장하지 않고 있다.”면서 “더이상 김씨와 같은 쓸쓸한 죽음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2007 자치구 핫이슈] (1)관악구 도림천 복원

    [2007 자치구 핫이슈] (1)관악구 도림천 복원

    황금돼지해인 2007년을 맞이해 서울시 25개 자치구마다 도약의 기틀을 다지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해가 ‘기획의 해’였다면 민선 4기 2년째인 올해는 ‘실천의 해’라고 할 수 있다. 자치구의 역점사업을 ‘2007 구정 핫 이슈’라는 제목으로 심층 보도한다. 관악구는 ‘도림천 복원’을 올해 역점사업으로 정했다.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심에 생명의 씨앗을 심겠다는 계획이다. 김효겸 관악구청장은 22일 신림2교 아래 도림천을 거닐며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도시를 꿈꾼다.”고 말했다. 어린시절 그가 행복한 시간을 보낸 도림천을 말하는 듯하다. 도림천은 서울 서남권의 대표 하천이다. 관악산에서 발원해 안양천을 거쳐 한강까지 흐른다. 하천 규모도 폭 20∼90m, 길이 11㎞로 청계천(길이 5.84㎞)의 2배에 이른다. 1953년 봉천7동에서 태어난 김 구청장은 도림천변에 얽힌 추억이 많다.1960년대 도림천 맑은 물에서 친구들과 미역을 감고, 가재와 붕어를 잡았다. 여름철에는 하천물이 넘쳐 수영과 다이빙을 즐겼다. 인근 초등학교 육상부 선수들은 도림천 모래밭을 달리며 체력을 다졌다. 어머니들은 빨랫감을 방망이로 두드리며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곤 했다. 김 구청장의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증조·고조 할아버지도 이런 추억을 간직했을 터이다. 도림천은 400여년간 관악의 터줏대감이었던 김 구청장 집안과 함께 흘렀던 셈이다. 1970년대 하천 발원지에 서울대가 들어서고 도심이 우후죽순으로 개발되면서 도림천은 시들어갔다. 지하수를 마구 뽑아내고 대지를 콘크리트로 뒤덮어 관악구의 젖줄이 말라버렸다. 어린아이의 웃음소리도, 어머니의 빨랫방망이 소리도 사라졌다. 늘어나는 차량에 밀려 도림천은 구간별로 완전복개되거나 부분복개돼 주차장으로, 도로로 변했다. 새천년이 시작되자 사형선고를 받은 도림천을 되살리자는 움직임이 꿈틀거렸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하천을 청소하고 옹벽에 벽화를 그렸다. 장마로 물이 불어나면 어린아이들이 수영하러 찾아왔다. 청계천 복원이 성공하면서 ‘도림천 살리기’는 더욱 힘을 얻었다. 지난해 9월 서울시는 관악·영등포·구로·동작구를 관통하는 도림천을 단계별로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그해 12월 도림천 실시설계 용역을 발주했다. 복원은 도림천이 발원하는 관악구간(관악산입구 주차장∼삼성고교) 1.4㎞부터 실시한다. 우선 서울대 정문 앞 완전복개구간(527m)을 철거하고 다리 2개를 놓는다. 또 도림교 옆 반복개구간(285m)을 재정비하고 휴식공간과 자연풀장을 조성한다. 하천변도 자연친화적으로 바꾼다.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자연석으로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를 만들 계획이다. 매년 관악산을 찾는 600만명이 자전거로 도림천을 달리다 관악산을 등반하고, 관악산을 내려와 도림천에서 물장구치도록 고안했다. 부족한 물은 관악산주차장에 설치한 저류조(3t)와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 터널 지하수(하루 1만 6000t)를 활용하기로 했다.1단계 공사는 2009년 12월에 끝날 계획이다. 총 사업비는 152억원. 서울시와 자치구가 공동으로 부담한다. “도림천이 생명의 싹을 틔워 거목으로 성장하면 그 속에서 우리 아이들도 건강한 꿈을 키울 거예요. 그게 행복한 생활 아니겠습니까.”김 구청장의 ‘도림천 프로젝트’가 힘찬 달음박질을 시작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애완견 키우면 스트레스 감소”

    “건강하게 살려면 애완견을 키워라.” 영국 퀸스대학 연구팀의 조언이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의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와 혈압이 보통 사람보다 더 낮고 더 건강한 삶을 산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개와 함께 산책하는 습관이 큰 도움이 된다는 진단이다. BBC방송 인터넷판은 21일 영국 ‘건강심리학’ 저널에 실린 보고서를 통해 개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줄 뿐 아니라 갑자기 일어나는 심장마비나 간질 증상을 예방하고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소개했다. 드보라 웰스 박사가 말하는 애완견의 장점은 일상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의 완충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주는 기능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또 개를 키우면 운동량이 늘게 되며 건강한 사회관계를 유지하는 데도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집에 홀로 남겨진 어린이와 은퇴한 노인들에게도 꼭 필요한 존재라고 조언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정동영 탈당 시사… 與 분당 ‘기로’

    정동영 탈당 시사… 與 분당 ‘기로’

    열린우리당내 강경 신당파의 탈당설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19일 법원의 열린우리당 당헌개정 무효화 결정 이후 ‘전당대회 개최를 통한 질서 있는 통합신당 추진’에 대한 회의론이 증폭되면서 온건 신당파로 분류돼온 정동영 전 의장마저 21일 탈당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탈당파가 세를 얻는 형국이다. 현재 탈당론에 공감하는 의원 수는 공개적으로 탈당의사를 밝힌 염동연 의원을 비롯, 이계안·최재천·천정배 의원 등 40∼50명에 달한다는 게 주승용 의원 등 신당파 일각의 주장이다. 정 전 의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자청, 오는 29일 중앙위 소집을 통해 기간당원제 폐지를 관철하기로 한 비대위의 결정을 ‘마지막 비상구’라고 지칭하면서 “이 마지막 비상구조차 소수개혁모험주의자의 방해에 의해 좌초된다면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결단을 각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를 것”이라고 탈당 가능성을 강력 시사했다. 만약 당내 최대계파인 ‘정동영계’가 탈당 대열에 합류할 경우 여당의 분열은 일부의 탈당 수준을 넘어서 분당사태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염동연 의원이 22일 귀국한 뒤 이르면 이번주 중 탈당을 실행에 옮길 것이란 관측과 함께 상당수 의원들의 탈당 결행 시점은 29일 중앙위를 전후한 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이번 주가 탈당정국의 고비가 될 전망이다. 천정배 의원측도 중앙위 논의 결과를 지켜본 뒤 거취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전병헌 의원은 “중앙위원회의는 비대위가 당을 수습하고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반면 사수파의 이화영 의원은 “나가겠다고 말만 하고 있는데 시원하게 나갈 사람은 빨리 나가면 좋겠다.”며 탈당을 촉구, 대립이 심화되는 형국이다. 더욱이 당헌개정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던 기간당원들은 중앙위가 당헌 개정안을 재의결할 경우 또다시 가처분 신청을 내겠다는 입장을 밝혀, 사태가 수습되기는커녕 분당을 재촉하는 사태로 치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김근태 의장 등 지도부는 이날 강경 신당파의 탈당을 적극 만류하는 한편 강경 기간당원들에게도 자제를 촉구했으나, 사태가 진화될지는 극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김상연 나길회기자 carlos@seoul.co.kr
  • 천안서 또 고병원성 AI

    천안서 또 고병원성 AI

    충남 천안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했다. 충남도는 21일 발병농장 인근에 하천이 통과, 철새에 의한 감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하천 주변에서 가금류 사육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해 줄 것을 농림부 장관에게 건의했다고 밝혔다. 농림부는 이번 AI가 발생한 마을 옆 풍세천에서 수거한 야생 청둥오리 분변을 검사한 결과,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충남도는 지난 19일 낮 천안시 풍세면 용정리 신모(52)씨 양계농장에서 157마리가 집단 폐사해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진단 결과, 고병원성 AI로 판명됐다. 이번 겨울 들어 5번째 발생이다. 한달 전인 지난달 21일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아산시 탕정면 갈산리 오리농장과는 8㎞ 떨어져 있다. 용정리는 2003년 말부터 이듬해 2월 초까지 6개 농가에서 잇따라 AI가 발생,31개 농가 닭 80여만마리와 돼지 4500여마리가 살처분된 뒤 ‘AI 발병 집중관리지역’으로 지정돼 농장마다 철새방어 그물망을 치는 등 적극적인 예방활동을 해왔다. 충남도는 신씨의 3만마리 등 발생농장 500m 이내 10개 농가의 닭 27만 3000여마리를 살처분했다. 아산지역 발병으로 운영하던 방역통제초소를 20곳에서 30곳으로 더 늘리고 닭, 오리 등 가금류와 차량 이동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신씨의 농장에서는 발병전 2주 동안 달걀 43만 2000여개가 외부로 출하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천안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문인 복지수준 향상에 힘쓸 것”

    “문학인들이 더욱 넉넉한 환경에서 창작활동을 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24대 한국문인협회(이하 문협)이사장으로 선출된 시인 김년균(金年均·65)씨는 21일 “임기 동안 문인들의 복지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전념할 것”이라고 당선소감을 밝혔다. 김 이사장은 “현재 문학인들의 생활수준은 제대로 된 창작활동을 하지 못할 정도로 열악하다.”며 “특히 평생 작품활동을 해온 원로문인들에 대해서는 사회가 함께 나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체적인 ‘문인 복지사업’ 계획으로 ▲문인복지조합 설립 ▲문학관 건립 ▲문인묘지공원 조성 등을 제시했다. 김 이사장은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제적 안정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정부와 기업 등에 적극적인 도움을 요청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협회 기관지인 ‘월간문학’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도 함께 제시했다.“지금까지 월간문학에 기고하는 문인들의 원고에 대해 제대로 된 대가를 지급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앞으로 문학성 높은 작품에 대해서는 충분한 원고료를 지급하겠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문학이 위기라는 말이 있으나 그것은 문인들과 독자들이 함께 노력하며 타개해 나가야 할 부분”이라며 “앞으로 문협도 대중들과 함께 호흡해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전날 실시된 선거에서 총투표수 5868표(무효 541표) 가운데 2794표를 얻어 회원 8600여명의 문협을 4년간 이끌게 됐다. 전북 김제 출신으로 구 서라벌예술대를 졸업하고 1972년 월간 ‘풀과 별’ 추천으로 등단해 월간 한국문학 편집장, 한국현대시인협회 부회장, 월간문학 편집국장 등을 역임했다. 시집 ‘장마’(1974) ‘갈매기’(1977) ‘바다와 아이들’(1979) ‘사람’(1983) 등이 있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치매 어르신 길 잃을 염려 없어요”

    치매를 5년째 앓고 있는 박모(75·서울 종암동) 할머니는 밤이면 집 밖으로 몰래 나간다. 신설동이나 북악산 입구까지 배회하다가 경찰에 발견돼 돌아오기 일쑤다. 지난해 4월에는 밑반찬과 과일을 한아름 들고 딸네 간다고 나갔다가 돌부리에 넘어졌다. 갈비뼈와 이가 부러져 1개월간 병원 신세를 졌다. 할아버지 등 가족들이 할머니를 돌보지만 24시간 쫓아다니기는 역부족이다. 연락처를 적은 팔찌를 착용했지만 인적이 드문 곳에 가면 무용지물이었다. 할아버지는 “밤마다 가족들이 할머니를 찾아 골목을 뒤지는 데 지쳤다.”고 한숨지었다. 오는 3월부터 박 할머니 가족도 한시름 놓게 됐다.16일 성북보건소와 고려대 의과대학 연구팀이 위성위치추적시스템(GPS)을 활용한 ‘치매환자 위치추적시스템’을 개발, 운영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환자 쓰러지면 ‘응급상황´ 통보 추적시스템은 휴대전화 위치추적과 비슷한 원리다. 다만 치매 환자가 휴대전화 대신 위치추적 단말기를 착용한다. 보호자가 지정한 장소를 벗어나면 단말기가 작동하면서 경보음이 울린다. 그리고 환자의 정확한 위치가 보호자에게 전달된다. 필요하면 환자 사진과 인적·병력사항이 경찰서와 보건소에 전달된다. 경찰은 휴대용단말기(PDA)를 통해 환자의 인적사항과 위치를 확인, 쉽게 찾을 수 있다. 위치추적 단말기는 지금은 손바닥(5×10㎝)만 하지만,3월까지 손가락 2마디 크기로 축소할 계획이다. 경보음이 울리는 기준점은 집밖·경비실밖·아파트 단지밖 등 보호자가 임의로 설정할 수 있다. 단말기에 가속도 센서도 부착했다. 이 센서는 환자가 사고를 당했을 때 신속하게 대처하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치매 환자가 넘어지거나 쓰러지면 맥박 등 건강상태를 측정해 보호자와 의료기관에 응급 상황이라고 알려준다. ●중풍환자까지 점진 확대 위치시스템 대상자는 성북구 65세 이상 노인 3만 6056명 가운데 보건소가 관리하는 치매 환자 166명이다. 우선 박 할머니 등 치매환자 2명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하고,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황원숙 성북보건소장은 “집을 잃고 헤매는 치매 어르신이 매년 3000명을 웃돈다.”면서 “추적시스템을 통해 어르신도, 가족도 편안하게 생활하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적시스템을 개발한 고려대 의과대학 박길홍 교수는 “심장마비, 뇌졸중 등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신속히 대처하면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서 “가속도 센서는 심혈관 질환자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지리산에 ‘동식물 레저 클러스터’

    전북 남원시 지리산 자락에 ‘동식물 레저산업 클러스터’가 조성된다. 남원시는 전주기전대학, 광동한방사료㈜와 공동으로 올해부터 2012년까지 지리산을 끼고 있는 운봉읍 일대에 ‘동식물 레저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협약을 체결했다고 16일 밝혔다. 이는 자치단체와 대학, 기업이 손을 잡고 승마체험장과 애견공원, 애완동물 관련 대학, 한방사료 생산공장 등을 조성하는 복합관광개발 사업이다. 협약에 따르면 시는 77억원을 들여 운봉읍에서 바래봉을 오가는 13㎞ 길이의 승마체험코스와 함께 마장마술쇼를 즐길 수 있는 공연장 등을 만들기로 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미녀삼총사’ 김형은 끝내 하늘로

    ‘미녀삼총사’ 김형은 끝내 하늘로

    TV 개그 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 ‘미녀삼총사’로 인기를 끌었던 개그우먼 김형은(26)씨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투병을 하다 10일 끝내 숨졌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교통사고로 목뼈가 탈골돼 지난달 26일 7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던 김씨가 결국 회복되지 못하고 과다출혈로 인한 심장마비로 이날 오전 1시쯤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달 16일 강원도 평창군 용평리조트에서 예정된 공연을 위해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해 이동하던 중 승합차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1981년생인 김씨는 동국대 영화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SBS 7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12일 오전 6시. 고인의 시신은 화장된 뒤 경기도 고양시 청아공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개그우먼 김형은, 심장마비로 끝내 사망

    개그우먼 김형은, 심장마비로 끝내 사망

    촉망받는 개그우먼 김형은의 죽음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실력과 끼를 겸비한 차세대 개그우먼으로 인정받던 터라 그의 죽음이 안기는 충격은 더 크다. 김형은은 지난 2003년 SBS 공채 개그맨 7기 대상으로 연예계 입문해 TV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 동료 개그맨 심진화, 장경희와 함께 ‘미녀삼총사’ 코너를 이끌며 인기를 얻었다. 이후 ‘미녀삼총사’란 이름으로 가수를 결성하고 음반 ‘운명’을 발표한 뒤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음반에서 김형은은 수준급 가창력을 선보여 다시 한 번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달 16일 오후 공연 참석차 강원도 용평리조트로 향하던 중 때마침 내린 폭설로 강릉방향 영동고속도로에서 타고 있던 승합차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대형 교통 사고를 당했다. 사고 당시 뒷자석에 앉아 잠을 자던 김형은은 빠르게 방어하지 못해 함께 탔던 장경희, 심진화보다 부상이 심각했다. 사고로 목을 크게 다쳐 전신마비가 우려된다는 소견을 받았지만 지난달 26일 7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고, 이후 서울 아산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해왔다. 회복을 바라는 주위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결국 10일 오전 1시경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김형은의 한 측근은 “수술 이후 산소호흡기로 생명을 잇고 있었지만 며칠동안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하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빈소는 치료를 받아오던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됐다. 노컷뉴스(www.nocutnews.co.kr)
  • 인스턴트 라면 개발 안도 닛신식품 회장 별세

    |도쿄 이춘규특파원|‘즉석(인스턴트) 라면’을 세계 처음으로 만든 안도 모모후쿠 일본 닛신식품 회장이 5일 오사카부 이케다시의 한 병원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96세. 즉석 라면은 현재 전세계에서 한 해 857억개나 팔리는 대중소비식품. 1910년 타이완에서 태어난 안도 회장은 1933년 일본으로 건너왔다. 대학시절 타이베이와 오사카에 의류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2차대전 종전 직후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던 일본 국민을 위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라면을 개발하기로 마음먹고 1948년 닛신식품의 모태를 설립했다. 전후 자신이 이사장을 하던 신용조합이 도산, 한때 무일푼의 나락에 빠지기도 했으나 추운 밤 라면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선 것을 보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라면을 개발하기로 작심했다. 이런 배경에서 자택 실험실에서 1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하루 3∼4시간씩 실험을 계속한 끝에 48세이던 1958년 즉석라면인 ‘치킨라면’ 만들기에 성공했다. 59년에는 ‘라면에서 미사일까지’ 판매한다는 미쓰비시상사와 판매제휴에 성공, 당시 부상하던 슈퍼를 통해 즉석라면을 판매하며 불티나게 팔려나가 ‘식품대량소비시대’를 열었다. 무일푼에서 성공한 경험을 토대로 ‘기상천외의 발상’이란 책을 내 새롭게 사업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미국 출장 중 자신의 즉석라면을 미국인이 종이컵에 넣은 뒤 물을 부어 먹는 것을 보고 착안,1971년에는 뜨거운 물만 부으면 되는 ‘컵라면’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안도 회장은 닛신식품을 매출 27억달러(약 2조 5000억원)의 회사로 성장시켰으며 2005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2005년에는 주위에 “올해 골프 라운딩을 100회 하겠다.”고 다짐,101회나 소화했을 정도로 건강체질이었다고 주치의가 밝혔다. 타계 전날인 4일에도 회사 신년회에서 30분간 신년사를 하기도 했다.taein@seoul.co.kr
  • 강원도 ‘雪’ 홍보 외국인 녹였다

    강원도 ‘雪’ 홍보 외국인 녹였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눈(雪)을 팝니다.” 강원도내 스키장을 찾는 아랍권 및 동남아시아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다. 강원도는 3일 동남아시아권과 아랍권을 대상으로 겨울 시즌 눈과 스키를 주제로 다양한 상품과 이벤트를 개발, 현지 홍보를 강화한 결과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밝혔다. 용평에서는 지난달 10일부터 올 3월 초까지 용평에서 ‘펀스키 페스티벌’이 펼쳐진다. 이 기간 중 홍콩·싱가포르·타이완·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태국 등에서 모두 1만 700여명이 찾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지난달 7일부터 10일까지 보광 휘닉스파크에서 열린 일본 스키연맹 스키캠프에 일본인 150명이 참가했다. 올 2월에도 강원랜드 하이원 스키장에 일본인 200명, 용평리조트에 홍콩·싱가포르 관광객 200여명이 스키 이벤트를 예약했다. 이같은 이벤트 외에 여행사에서 모집해 강원도를 찾는 겨울 관광객도 스키장마다 일주일 평균 200명에서 1000여명이나 된다. 아직 구체적인 통계는 없지만 예년에 비해 배 가까이 늘었다는 것이 스키장 관계자들의 얘기다. 이번 겨울 처음 문을 연 원주 오크밸리에는 지금까지 3000여명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은 것을 비롯해 춘천 강촌리조트에 250명이 찾아 지난 겨울 200여명선을 벌써 넘어섰다. 특히 지난해부터 이슬람권의 무슬림을 대상으로 한 각종 관광상품을 내놓으면서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 무슬림들은 종교적인 이유 등으로 유럽·미주를 꺼리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쪽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어 강원도의 ‘눈’ 홍보가 적절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까지 1100여명의 이슬람 관광객을 모집했으며 연말까지 2000여명 이상이 강원도를 찾을 것으로 보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2월4일부터 16일까지 대폭 확대돼 열리는 ‘드림 프로그램’도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한몫할 전망이다. 눈이 내리지 않는 나라의 청소년들을 초청해 각종 동계스포츠를 가르치는 이 프로그램에는 아프리카·중남미·유럽·아시아 등 33개국에서 143명이 찾는다. 함형남 강원도 관광홍보계장은 “눈을 관광 상품으로 개발, 꾸준한 해외 홍보전을 펼친 결과 상당한 효과를 얻고 있다.”말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희곡당선작] 문득, 멈춰 서서 이야기 하다- monologue Quartet/김정용

    따사로운 봄볕, 아련한 음악. 그리고……. 명일, 고개를 숙인 채 힘없는 걸음으로 등장, 어디론가 걸어간다. 신내, 꽃다발을 들고 환한 얼굴로 등장, 어디론가 걸어간다. 두정, 병원복 차림으로 휠체어를 타고 등장, 잠시 휠체어를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어디론가 간다. 신흥, 전화기를 들고 등장, 상대가 받지 않는지 계속 버튼을 눌러대다가 퇴장한다. 다시 명일이 등장했다 사라진다. 다음엔 신흥, 신내, 두정 차례로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그들은 서로 인식하지 못한 채,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어느새, 각자 자리를 잡고 서 있는 네 사람. 모두들 잠시 망설이다, 각자 어딘가를 향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네 사람: (동시에)저기……. 짧은 암전. 명일: 그녀를 처음 본 건 두정: 치악산이었습니다. 신흥: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군요. 신내: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 멋졌어요. 신흥: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명일: 노을이 너무나 아름다웠던 해질무렵이었는데, 지금도 기억나요. 두정: 그날 따라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신내: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명일: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요? 남들이 뭐라하건 전 그때 운명을 느꼈습니다. 두정: 이렇게 될 운명이라 그랬던 걸까요? 신흥: 앞이 깜깜하더군요 신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 사람 모습만 보이는 거 있잖아요. 신흥: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것부터 수습해야 할지, 그때만 생각하면……. 두정: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날 일은. 명일: 그날이 제 생애에서 가장 큰 기적이 일어난 날입니다. 신내: 제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편이라……, 그래도 용기를 내야겠죠? 신흥: 용기가 나질 않더군요, 어떻게 마누라 얼굴을 봐야 할지, 술이라도 먹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술은 입에도 못 대고……. 두정: 술요? 입에도 대지 않았습니다. 산행하는 날은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내려와서 마시면 모를까. 명일: 시간 되시면 저랑 술 한 잔 하실래요? 명일 주변이 밝아지고, 나머지 사람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명일: 이 말이, 제가 그녀에게 처음 건넨 말이었어요,‘술 한 잔 하실래요?’ 참 바보 같았죠, 머릿속에 별별 말이 다 떠돌았는데, 막상 나온 말이 그거였어요, 말을 해놓고 아차 싶었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런데 그녀가 뭐라고 한 줄 아세요? ‘한잔만요?’(미소) 그렇게 시작 했어요. 우리들. 정말 행복했어요, 너무 행복해서 불안할 정도로,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좋은 일만 계속 생기면 왠지 불안해지고 그러는 거. 육상 경기복 차림의 신내 등장. 얕은 숨으로 몸을 푼다. 명일: 하지만 그런 불안도 그녀의 미소 앞에선 힘을 잃고 말았죠.(신내 환하게 미소 짓는다.) 우린 언제나 함께였어요, 몸이 떨어져 있는 시간에도 마음만은 늘 붙어 있었죠. 신내: 그만해, 더는 못 들어주겠다. 그래서 대학 떨어지면 누구 탓하려고? 아빠가 그러시더라고요. 많이 놀랐어요, 원래 말씀을 거침없이 하시는 편이시지만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리라곤 생각지 못했거든요, 제가 원하는 일에 반대 한번 안 하셨던 분인데, 아빠도 제가 고3이 되는 게 스트레스가 되셨나봐요, 사실 전 아무렇지도 않은데. 육상하면서 공부 열심히 할 수 있다고 아무리 말해도 들으실 생각조차 안 하세요 명일: 그런 우리를 하늘이 시샘했는지 신내: 그만해 명일: 불안함을 현실로 만들어 버리더군요. 신내: 그래서 그만두기로 했어요. 명일: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이야. 신내: 낼 모레가 마지막 시합이에요. 오빠가 와 줄까요?(호루라기 소리) 예, 가요! 암튼 쉬는 꼴을 못 본다니까.(급하게 달려 나간다.) 명일: 다 제 잘못이에요, 급하게 달려 나가는 연수를 잡았어야 했는데, 연수가 제 눈앞에서 붕 떠오르더니 바닥으로 나뒹굴었어요, 아주 잠깐 사이였는데……, 두정: (휠체어를 타고 등장) 그렇게 몇 바퀴를 굴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깨어나 보니 병원이더군요. 명일: 수술실 앞에서 내내 기도했어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두정: 멀리서 누군가 절 부르는 것 같은 소리에 눈을 떴는데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하얀 천장, 그보다 더 하얀 형광등뿐이었죠,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명일: 잠깐만 쉬었다 하면 안 될까요? 저 세수좀 하고 올게요. 죄송합니다.(나간다.) 두정: 이제 에베레스트는커녕 문턱하나 넘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을 하니 죽고 싶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결과가 나와봐야 안다고, 설령 잘못 되더라도 열심히 재활하면 될 거라고 말했지만, 제 몸은 그 누구보다 제가 잘 압니다. 저는 걷지 못할 겁니다. 이제 에베레스트는 제게 있어 그림엽서 속에서만 존재하는 산일 뿐입니다. 신흥: (통화하며 등장)아니라니까 그러네, 왜 내 말을 못 믿어, 다 잘 될 테니까 너무 걱정마……, 나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끝나지 않아,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그깟 일로 안 무너져……, 여보 나 믿지? 그래 내가 알아서 잘할게, 그리고 내 전화 말고는 다른 전화는 절대 받지마……, 알아, 알아 당분간 친정에 가 있어, 애들은……, 그래, 너무 걱정마.(끊는다.) 두정: 너무 걱정마, 모두들 저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라도 그렇게 말했을 거예요, 인간이란 동물은 원래, 남의 불행에 대해서는 지나치리만큼 관대한 법이니까요. 이렇게 되고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관대함이란 게 무관심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요,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하시죠? 그것도 다 여러분이 사고를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드는 생각입니다.(사이)저도 며칠 전까진 여러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상상도 못하고 있었죠. 정말 순식간이었습니다. 절망이란 놈은 순식간에 저를 이곳에 앉혀 놓고는 두 다리를 옭아맸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신흥: “너무 걱정 마”,“걱정하지 마세요.” 도대체 이 말을 몇 사람에게 몇 번이나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길거리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붙잡고 걱정 말라고 당부하는 꿈을 꿀 정도였으니까요, 근데 웃긴 건, 그 어느 누구도 저에게 이 말을 해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 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은 저인데도 말이죠. 가해자 취급만 당했어요, 물론 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저 잘못 했어요, 그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딱 까놓고 말해서, 저만 좋자고 프로젝트 진행시킨 겁니까! 다 같이 잘되자고 한 일인데, 일이 틀어지고 나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든 사람들이 피해자로 돌변하더군요, 같이 진행한 동료들까지도 말이죠, 정말 순식간이었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두정: 다 필요 없습니다. 신흥: 다 필요 없어요. 신내: (등장)꽃이 필요할 거예요, 그쵸? 신흥: 그래서 준비한 게 있습니다. 두정: 전……, 이곳에서 탈출할 생각입니다. 신흥: (약병을 꺼낸다)저만 없어지면 됩니다. 두정: 제가 없어지면 모두들 걱정하는 척하다가 금세 잊어버릴 겁니다. 다리병신 하나쯤 없어졌다고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요 신내: 아니야, 그건 아니야.(두정 나간다.) 여자가 먼저 꽃을 주는 건 좀 그렇겠죠? 신흥: (병뚜껑이 열리지 않는다.) 이게 왜 이래. 신내: 어떡하지? 신흥: 어떡하지? 신내: 오빠가 와주긴 할까요? 신흥: 깨버릴까? 신내: 용기내서 말하긴 했는데 대답을 못 들었거든요 신흥: 용기가 깨질 때 유리 파편이 섞이면 먹기 힘들 텐데.(열심히 뚜껑을 돌린다.) 신내: 다시 한 번 말해 볼까요? 이상한 애로 보이면 어쩌죠?(사이) 안 되겠어요. 신흥: 안 되겠어. 수건 같은 게 있으면 좋겠는데. 신내: 무슨 수를 써야지……. 명일, 나가는 신흥과 교차되며 들어온다. 신내: 아하! 다시 말하기는 그러니까, 편지가 좋겠어요. 그렇죠? 좋은 생각이죠? 마지막 시합에 오빠가 와주면 더 힘내서 뛸 수 있을 것 같다고 쓰는 거예요. 역시 솔직한 게 좋겠죠? 그래, 그래야겠어요. 명일: 죄송합니다. 어디까지 얘기했었죠? 신내: 편지 명일: 편지 얘기는 아직 안 하지 않았나요? 신내: 우선 펜하고 종이가 필요하겠죠? 명일: 적지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그냥 듣기만 하시면 안 될까요?(신내, 고개를 끄덕인다.) 감사합니다.(신내, 나간다.) 그럼 얘기가 나왔으니 편지 얘기를 할게요.(잠시 머뭇거리다) 사귀기로 한 날부터, 저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뭐 그렇다고 대단한 연애편지를 쓴 건 아니고요, 일기 쓰듯이 오늘 하루 무슨 일이 있었나 써서 메일로 보냈어요. 하루도 빼먹지 않았어요, 단 하루도.(웃음) 어떤 일이 있었냐면요, 어느날 술을 잔뜩 마셔서 떡이 된 적이 있었는데요, 그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아차 싶은 거예요, 하루도 빼먹지 않겠다고 약속했었거든요, 늦었지만 변명이라도 해볼 양으로 부랴부랴 컴퓨터 앞에 앉았죠, 그리고 메일을 쓰려고 로그인을 했는데 수신 확인 창이 뜨는 거예요, 그래서 뭔가 하고 봤더니, 글쎄 제가 전날 밤에 메일을 보냈더라고요, 무슨 말을 썼는지 궁금해서 메일을 열어 봤는데(피식거린다.) 그게, 영어도 아니고 한글도 아니고 그런 거 있잖아요.fhufhㅈ뎌???ㄷew 이런 거 (웃는다.) 더 웃긴 건, 제목이 뭐였는지 아세요? fhi롤fwqo어ㅈㅇ……. 명일, 말을 잊지 못하고 정신없이 웃는다. 무대 뒤에서 두정과 신흥의 절규가 들려온다. 명일: (무안해 하며)죄송합니다. 신흥, 두정 서로 반대편에서 등장 신흥, 두정: 이럴 순 없어 두정: 병원 정문도 못가서 잡혀버리다니. 신흥: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신흥, 두정: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내가 아무리 이런 꼴이 됐어도 두정: 병원문턱 하나 신흥: 병뚜껑 하나 신흥, 두정: 내 맘대로 두정: 넘지, 신흥: 열지-못하다니, 왜 하필 이런 일이 나한테 닥친 거야, 왜 하필이면 나냐구, 내가 뭘 잘못했게! 내가 바라던 삶은 이런 게 아니었어.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명일: 다시 시작하죠. 두정: 그만하자, 그만해,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내 꼴만 더 우스워지지. 두정, 신흥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신흥: (병을 내밀며) 저……, 이것 좀. 명일: 네? 두정: 뭘 봐! 휠체어 탄 사람 처음 봐! 명일: 네. 신흥: 죄송합니다. 이것 좀 열어 주세요, 부탁 좀 드릴게요.(병을 건넨다.) 두정: 씨발.(술병을 꺼내 마개를 따려한다.) 이건 왜 이렇게 안 열려 신흥: 잘 안 열리죠?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명일: 무리라뇨, 전 괜찮아요.(사이) 알겠습니다. 내일 오면 되는 거죠? 같은 시간에 두정: (술병을 집어던진다) 젠장, 젠장, 젠장! 신흥: 그렇게 까지 하실 필요는 없는데,(사이) 안 열리면 할 수 없죠 뭐(병을 받는다) 감사합니다. 명일: 안녕히 계세요. 아련한 음악 다시 흐른다. 명일, 천천히 무대를 돌고. 신흥 뚜껑을 열기 위해 애쓰며 퇴장, 두정 지친 듯 어깨를 늘어뜨리고 퇴장, 신내 편지를 들고 등장, 음악이 끝나면 명일과 신내 각자 자리를 잡는다. 신내: 편지 다 썼어요, 들어 볼래요?(편지를 꺼내 읽는다.) 오빠 명일: 연수야, 야! 신연수 신내: 잘 지내고 계세요? 명일: 난 잘 지내고 있어, 너는 잘 지내고 있는 거야? 신내: 전 무지무지 잘 지내고 있어요. 제가 며칠 전에 오빠에게 했던 말 기억나세요? 명일: 기억난다. 너랑 여기 자주 왔었는데, 신내: 죄송해요, 갑작스럽게 말하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도망쳐 버려서, 놀라셨죠? 명일: 아니야. 네가 미안할 건 없어, 붙잡아 주지 못한 내가 미안하지. 신내: 그래서 말인데요. 오빠가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제 얘기를 못 들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편지를 써요. 저, 내일모레 있을 시, 도 대항 육상 대회에 시 대표로 나가게 됐어요, 아마도 제 인생의 마지막 경기가 될 것 같아요, 아빠가 육상을 못하게 하시거든요. 마지막 경기를 오빠가 꼭 보러 와줬으면 좋겠어요, 그럼 힘이 불끈 불끈 날거 같아요 어쩌면 한국 신기록을 세울지도 몰라요, 그렇게 되면 아빠도 더는 반대 못하시겠죠.-제발 그렇게 됐으면-, 자라나는 한국 육상 꿈나무의 앞길을 열어 주세요, 네 오빠! 우리가 대기하는 곳이 3번 게이트 쪽이거든요, 그쪽 스탠드 앞쪽에 계시면 제가 오빠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꼭 와주셔야 해요, 오빠가 오지 않으면 저는 실망한 나머지 다리에 힘이 풀려 꼴찌를 할지도 몰라요, 꼭 와야해요, 꼭 꼭 꼭. 명일: 가고 싶어, 그곳에…….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 들려온다, 신내 재빨리 편지를 감춘다. 명일: 저 소리 들려? 우는 소리가 괴상하니까 분명 생긴 것도 이상한 새일 거라고, 확인해 보고 싶다고 몇 시간이나 헤매고 다녔었잖아. 결국 확인도 못해보고…….(목이 멘다.) 두정, 훈련복 차림으로 호루라기를 불며 걸어서 등장. 두정: (버럭)지금 뭐하는 거야! 정신이 있어 없어!(신내 얼른 뛰어 나간다.) 그런 정신 상태로 뭘 하겠다는 거야, 응! 그것밖에 안 되는 놈이었냐? 정말 실망이다. 네놈만은 꽤 괜찮은 녀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너 같은 녀석은 에베레스트를 입에 담을 자격도 없어! 명일: 미안, 그때 널 잡았어야만 했는데. 두정: 에베레스트는 고결한 자에게만 허락된 곳이다, 약해 빠지고 결점투성이인 인간에게는 절대로 그 하얀 살결을 허락하지 않아! 명일: 그렇지 않아, 다 내 탓이야. 두정: 그깟 집안일 때문에 술에 절어 사는 게 부끄럽지도 않냐? 네가 말했던 꿈이라는 게 고작 이런 거였어? (사이) 그래, 나 이해 못한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 네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것 같지? 얼빠진 놈.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어떤 인간인 줄 알아? 바로 너 같이 환경 탓, 상황 탓 하는 것들이야. 우리는 최악의 상황을 뚫고 나가야 하는 사람들이야. 별것도 아닌 일에 주저앉아 버리는 너 같은 놈은 필요없어! 당장 내 눈 앞에서 사라져, 무슨 염치로 훈련장에 나타난 거야, 나타나길. 다른 팀원들이 너 보면 사기 떨어지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얼른 꺼져라, 그리고 다시는 우리 앞에 나타나지 마. 명일: 제발 나타나줘, 한번 만이라도 좋으니까, 제발 내 앞에 나타나줘. 암전. 빛 속에 홀로 있는 신흥 신흥: (반쯤 줄어든 약병을 들고 허탈하게 웃으며) 안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겨우겨우 열어가지고 스무알을 넘게 먹었는데……, 뭐? 고통 없이 갈 수 있다고? 나쁜 새끼들.(꺽꺽댄다.) 이딴 걸 20만원씩이나 주고 산 내가 미친놈이지.(전화 벨이 울린다, 병을 내려놓고 전화를 확인하고는 배터리를 빼버린다.) 미안해 여보. 날 용서하지 마.(사이) 한심하죠? 저도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습니다. 하기야 태어날 때부터 한심한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살다보니까, 어찌어찌 하다보니까 한심해지는 거지.(사이) 돌아가신 저희 아부지께서 술만 드시면 어린 저를 붙잡고 늘상 하시던 얘기가 생각나네요. 두정: (빛 속에서 등장) 너 같은 놈은 필요 없어.(사라진다) 신흥: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근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알겠더군요, 그게 무슨 말이었는지, 아부지가 어떤 심정이었을지.“넌 어른이 되지 마라,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추악한 동물이 바로 어른이란 동물이다.” 백번 맞는 말인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사이) 그나저나 이제 어떡해야 하죠? 수습할 수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고, 빌어먹을 죽지도 못하고, 어떡해야 하죠? 신내: (빛 속에서 등장) 그럴 땐 초콜릿을 먹으면 돼요, 그것도 아주 진한 다크 초콜릿, 아무리 우울해도 한두 조각이면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한두 번 혼난 것도 아니고 뭐. 괜찮아요. 초콜릿 하나면 땡이에요.(사라진다.) 신흥: 그 생각도 안해본 건 아닙니다. 근데 제가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예? 그건 너무 고통스럽지 않을까요? 제가 아픈건 딱 질색이라. 명일: (목소리) 연수야, 연수야 신흥: 쉿! 지금 누가 제 이름 부르지 않았나요? 설마 놈들이 여기까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제발 좀 도와주세요, 잡히기라도 하는 날엔……,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명일: (목소리)아! 꿈이었구나. 신흥: 윽!(배를 움켜쥔다.) 아 배야, 갑자기 왜 이러지? 뭐 먹은 것도 없는데. 화장실, 화장실……, 크 아퍼, 먹은 거라곤 이것뿐인데,(무언가 떠올라.) 약! 이 약! 개새끼들.(배를 부여잡고 달려 나간다.) 빛 속에 덩그러니 남겨진 약병. 빛이 점점 번져 공간을 환하게 만든다. 밝아지면 테이블에 앉아 있는 신내. 신내: 이 시간이면 항상 이곳을 지나가는데 (두정 등장) 어! 태령 오빠! 두정: (신내의 맞은편에 앉는다.) 왜 불러낸 거야? 신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드릴 게 있어요. 두정: 뭔데 신내: (편지를 건네며) 이거 두정: (받으며) 이게 뭔데? 신내: 나중에 읽어 보세요(얼굴이 붉어진다.) 두정: (읽은 후) 각서……, 야! 지금 너 장난하냐? 신내: 아니에요, 안 빨개요 두정: 이딴 종이 쪼가리를 어떻게 믿어? 신흥 한손에 휴지를 들고 등장, 처절한 소리를 지르며 부리나케 테이블을 지나쳐 반대편으로 사라진다. 신내: 전엔 죄송했어요, 제 말만 하고 멋대로 가버려서. 두정: 죄송하다면 다야? 신내: 예, 그치만 오래 기다리진 않았어요. 두정: 그 말을 어떻게 믿어. 신내: 오빠. 두정: 이제 날 그렇게 부르지 마. 더 이상 난 네 대장이 아니다 신내: 호, 혹시……, 여, 여자친구……, 있으세요. 두정: (단호하게) 없어, 추호도. 난 한번 결정한 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꾸지 않아. 마음 같아서는 널 죽도록 패주고 싶지만 옛정이 있어 참는다. 신내: 다행이다. 제가 얼마나 조마조마했다고요. 두정: 더 할 말 없으면 나 간다. 훈련중이었거든, 네놈이 그렇게 하찮게 여겼던 그 훈련 말이다. 신내: 그러세요, 예, 가보세요, 편지 꼭 읽어 보시고요, 두정: 두 번 다시 널 만나는 일이 없길 바란다.(각서를 구겨 테이블에 던진다.) 신내: 저도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신내 꾸벅 인사하고는 떠나는 오빠(두정)의 뒷모습을 눈으로 는다. 두정 나간다. 신내는 오빠의 모습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자리를 뜬다. 신흥 허겁지겁 등장, 숨을 곳을 찾는다. 급하게 숨을 곳을 찾고는 몸을 숨긴다. 신흥: (숨을 몰아쉬며) 하필이면 화장실에서 마주칠 건 뭐야, 그나마 나오는 길에 마주쳤기에 망정이지 들어가는 길에 마주치기라도 했어봐. 아유아유 죽겠네.(두정이 버렸던 병을 발견) 뭐야? 새거잖아.(너무나 쉽게 병을 열고는 벌컥벌컥 마시고는 다시 뚜껑을 닫아 제자리에 놓는다.) 햐 시원하다.(허탈하게 웃으며) 안좋은 일만 생기는 것 만은 아니구나.(제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제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아부지 말처럼 어른이 돼버려서 이렇게 된 걸까요? 가장 더럽고……, 후후후.(사이) 네? 어른이 되기 전에요? 글쎄요, 어른이 되기 전이라……. 그러고 보니 제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네요. 그땐 뭐, 다들 그렇겠지만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많고 그랬는데, 샐러리맨 따위가 될 거라고는 상상이나 했겠어요, 그 때의 저한테 미안한 생각까지 드네요,(사이) 그럼요, 뭐였냐면요……, 막상 말하려니까 쑥스럽네요, 웃지 마세요, 가수예요, 가수 (웃음) 웃기죠? 가수를 꿈꾸던 청년 도망자 되다! (웃음 소리속에 점점 슬픔이 담긴다.) 명일: (초췌한 모습으로 등장) 꿈이었어, 꿈. 연수야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연수야.(컴퓨터를 켠다, 윈도 시작음악) 언제까지 너한테 편지를 쓸 수 있을까? 언제 와서 이 편지 읽어 줄래,(창 뜨는 소리, 몹시 놀란다.) 어, 어! 신흥: 아, 아! (배를 움켜쥐고) 또야? (뛰어 나간다.) 명일: (흥분) 틀림없어요. 그녀가 읽은 거예요. 그녀가 읽은 거라고요! 연수는 살아 있어요. 죽은 사람이 어떻게 메일을 읽어요, 안 그래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게 아니었던 거예요,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짧은 사이)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신흥: (등장) 지독한 놈들, 왜 화장실 앞에서 죽치고 있는 거야, 아, 미치겠네.(반대쪽으로 달려 나간다.) 명일: 봤죠, 네 봤어요, 근데 제가 본건 사고 나서 실려 가는 것까지였어요, 죽은 연수를 본 건 아니잖아요. 장례식요? 어……, 그건……, 아 그래그래, 필요했던 거예요 장례식이, 연수는 큰 사고를 당했어요, 죽지는 않았겠지만 몸이 성치는 않을 거예요, 왜 그런 것 있잖아요, 영화나 소설 보면 죽은 걸로 하고 숨어서 지내는 거, 그래 그거야, 그거.(짧은 사이) 비약요? 그건 선생님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다시는 여기 오지 않겠어요, 연수가 살아있어요! 제 우울증 따위는 한방에 끝났다고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연수를 데려가지 않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어떤 모습이라도 좋아요 살아 있기만 하다면요, 신흥: (퀭한 얼굴로 등장) 살았다……. 두정: (목소리) 야! 야! 신흥: (소리 나는 쪽을 보며) 젠장! (도망친다.) 두정: (휠체어를 타고 등장. 낮은 목소리로) 거기 서! 뭐 나한테 속이는 거 있지? 틀림없어, 귀신은 속여도 나는 못 속이지. 뭐야? 사실대로 말해봐. 뭐야 대체? 명일: 예? 두정: 뭐라고 했어 지금? 다시 한 번 말해봐. 명일: 몇 번을 얘기해야 알아들으시겠어요, 지금은 연수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짧은 사이) 선생님! 왜 자꾸 그러세요? 선생님은 연수가 살아 있는 게 싫으세요? 비밀 번호를 아는 사람은 연수밖에 없어요, 그런 건 철저한 애였어요, 수신확인이 됐다는 건 연수가 열어 봤단 소리예요. 다른 가능성은 없어요. 두정: 그래 알았어, 너희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거 이해한다. 알았어, 알았어,(짧은 침묵) 잘 가라, 참 그리고 앞으론 문병 같은 거 오지마라, 훈련에만 전념해, 나 들어간다. 명일: 안녕히 계세요. 연수를 찾아봐야겠어요.(나간다.) 두정: (가다 멈춰서) 개자식들! 신흥: (온 몸엔 상처, 옷은 쥐어뜯겨 엉망인 채로 등장) 개새끼들! 두정: 의리 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내가 이렇게 된지 얼마나 됐다고……, 그 자식을 끌어들여? 신흥: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이렇게 패냐 두정: 씨발, 씨발 씨발,(거친 웃음) 신흥: 아, 진짜 아프다, 돈 몇 푼에 아주 사람을 죽이려고 환장을 했구먼, 도망치지 않았으면 골로 갈 뻔했네.(어이없다는 듯이 웃다가 흐느끼기 시작한다.) 씨발 새끼들, 아부지, 여보, 나 아퍼.(울음소리 점점 커진다.) 두정: 그만해, 그만해!(울먹인다.) 두정과 신흥의 울음소리가 무대를 가득 메운다. 신내 허겁지겁 들어온다. 신내: 뭐하는 거예요 대체,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요 얼른 일어나요 (두정, 신흥 울음을 그친다.) 자 초콜릿 (두정과 신흥 앞에다 놓는다.) 이거 먹으면 힘나거든요, 씹어 먹지 말고 천천히 녹여 먹어요.(사이) 자 가요, 가서 멋지게 1등하고 돌아오면 되잖아요. 그럼 분명 코치님도 기뻐하실 거예요, 얼른 일어나세요. 시간 다 됐어요. 우리 몸도 풀겸, 경기장까지 뛰어 가요! 오케이.(나간다.) 두정, 신흥 꾸역꾸역 자리를 털고 일어나, 신흥은 두정의 자리로, 두정은 신흥의 자리로 간다. 둘은 동시에 바닥에 떨어져 있는 초콜릿을 발견하고 집어든다. 신흥: 아깐 음료수 이번엔 초콜릿? 두정, 신흥: (하늘을 올려다보고 주변을 둘러보고는 다시 초콜릿을 본다.) 뭐야? 둘, 초콜릿을 까서 입에 넣는다. 마법같은 음악 잠깐. 알 수 없는 미소가 둘의 얼굴에 감돈다. 두정, 신흥: 그래, 힘내자, 신흥: 약을 스무 알씩이나 먹고, 그렇게 맞았는데도 안 죽었는대. 두정: 어차피 이렇게 될 일이었던 거야, 발버둥 쳐 봤자지. 두정, 신흥: 뭔가 길이 있을 거야. 두정: 그렇지? 신흥: 그렇지. 둘, 서로 반대편으로 퇴장, 신내 다른 곳으로 들어온다. 신내: 자! 우리 파이팅하는 거예요! 코치님도 병원에서 틀림없이 우릴 지켜보고 있을 거예요.(몸을 풀며 두리번거린다.) 아직 안 왔어요, 조금 있으면 시작인데 설마 안 오는 건 아니겠죠? (관중석으로 손을 흔들며 웃는다.) 엄마, 아빠 여기, 여기.(사이) 차가 막히나? 설마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지? 아닐거야. 그래, 그래. 오빤 틀림없이 올 거야. 자! 힘내자 연신내. 멋지게 달려서 일등 하는거야, 알았지? (더욱 열심히 몸을 푼다.) 명일 등장. 신내: 어! 오빠! (명일에게) 여기에요, 여기.(환하게 웃으며 인사) 오빠가 왔어요, 오빠가 왔다고요. 좋았어, 아자아자! 명일: 어디서부터 시작하지? 친구들은 모를 테고, 부모님을 찾아뵈어야 하나? 그래, 일단 아이피 추적부터 해보자, 좋았어, 아자아자! (컴퓨터 앞에 앉는다.) 소리: 여자 800미터 예선전 참가자들은 본부석 쪽으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신내: (오빠 쪽을 향해) 꼭 일등 할게요! (나간다.) 두정 등장, 휠체어를 세우고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 재활운동을 시작한다. 각자의 일에 열심인 두 사람. 명일: 안 되네, 이렇게 하는 게 아닌가? 두정: 헛 둘, 헛 둘. 한참을 하다 지친 둘. 명일: 아, 모르겠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야? 두정: (숨을 몰아쉬며) 두고 봐 꼭 해내고 말 테니까. 기다려라 에베레스트, 내 네놈을 꼭 밟아주고 말 테다. 소리: 딩동댕동.601호 특실 환자분 면회객이 와 있습니다. 속히 병실로 돌아와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명일: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어디서 공사하나? 집중을 할 수가 없잖아 집중을. 두정: 면회? 누구지? (휠체어에 오른 후 퇴장.) 명일: 도저히 안되겠다. 누구 컴퓨터 잘하는 사람 없나? 아 그렇지! (휴대전화를 꺼내 건다.) 여보세요? 문정이냐? 응, 나 명일인데·…….(통화하며 나간다.) 나가는 명일과 교차하며 신내 등장. 긴장을 풀기 위해 몸을 턴다. 소리: 여자 800미터 세번째 경기가 시작되겠습니다. 선수들은 입장해주시길 바랍니다. 신내 앞으로 나와 몸을 푼 다음 놓여 있는 병을 들고 마시고는 (두정이 버렸던 병) 출발선에 선다. 소리: 차렷, 준비. 소리2: 거기 서 개새끼야! 소리: (총소리) 탕 출발과 동시에 터지는 응원과 환호성 속에서. 슬로 모션으로 출발하는 신내.“안 서면 죽어!” 소리를 등지고 신흥 슬로로 뛰면서 등장. 신내와 신흥 같은 방향으로 뛴다. 혼신의 힘을 다해 뛰는 두 사람. 신흥이 점점 신내를 따라잡아 이윽고 나란히 뛰게 된다. 신흥이 신내를 앞서가려는 찰나. 신흥의 발이 꼬여 중심을 잃고, 그런 신흥에 걸려, 비명을 지르고 넘어지는 신내. 신흥은 얼른 추스르고 멀리 달아난다. 엎어진 채 그대로 있는 신내에게 빛이 모아진다. 빛은 점점 작아진다. 암전. 다시 서서히 밝아지면 신내의 자리에 서서 홀로 빛을 받고 있는 신흥 신흥: 하하하, 꼴좋다, 내 그럴 줄 알았어. 내가 한번은 잡혀도 두 번은 안 잡힌다! 이래 봬도 왕년에 한달리기 한 사람이야 왜 그러셔.(사이) 그나저나 이제 뭘 어떡해야 하지? 집에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렇게 길거리에서 전전긍긍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약만 안 샀더라도 좀 더 나았을 텐데 (뒤적거려 지갑을 꺼낸다.) 육 만원. 육 만원이라, 이걸 갖고 뭐해……, 인생 허무하다, 나이 서른여덟에 가족 버리고 수중에 딸랑 육 만원 들고서 고민하는 꼴이라니……, 아니다, 아니다. 돈 한푼 없는 것 보다 낫지,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육 만원으로 새출발하는 거야! 까짓 인생 대역전이 별거야, 나라고 뭐 육 만원의 신화 만들지 말라는 법 있어? (절규한다.) 젠장, 근데 뭘 하냐구! 세 개의 빛이 동시에 들어온다. 빛 속에 나란히 있는 명일, 신내, 두정, 신흥. 명일은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고, 신내, 입 주변이 피에로처럼 초콜릿이 범벅인 채로 무지막지 멍하게 앉아 있다. 두정은 한 곳을 응시한 채 얼어있다. 지하철 환승 멜로디가 경쾌하게 울린다. 소리: 이번 역은 전동차를 갈아타실 수 있는 환승역입니다. 다른 전동차를 이용하실 손님께서는 빠뜨리신 물건이 없나 잘 살펴보시고 다른 열차로 갈아타시길 바랍니다. 넷. 각자의 자리를 떠나 각기 다른 사람이 있던 자리로 이동한다. 두정과 신흥 쪽의 빛이 어두워진다. 명일: 틀림없다니까요, 증거요? 몇 번이나 말씀드려야 돼요, 제가 보낸 메일이 수신 확인이 되어 있었다고요, 왜 그게 증거가 안 되는 건데요, 비밀번호는 연수 말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른다니까요.(사이) 그러니까 한번만 조사해달라는 거예요, 저기요, 무슨 얘긴 줄 알겠는데요, 사망신고가 됐다고 해서 꼭 죽었다고 볼 수는 없잖아요.(사이) 말이면 답니까! 제가 미친놈으로 보입니까? 당신들 시민의 요청을 거절하는거 그거 직무 유기야 알아? 민중의 지팡이라며? 친절봉사라며! 이따위로 일할 거야! (사이) 제발요, 딱 한번만이라도 좋으니까 조사해 주세요. 연수는 살아 있어요, 죽은 사람 살리는 셈치고 아니, 정말로 죽은 사람 살릴 수 있는 일이니까 한번만 도와주세요? 네? 한번만요. 신내: 안 돼! 안 돼! 아무리 초콜릿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아,(흐느낀다.) 마지막 시합이었는데, 다시는 달릴 수 없는데……, 오빠가 보고 있었어, 정말 잘하고 싶었는데……, 끝이야, 전부 끝장나버렸어. 명일: 이대로 끝낼 순 없어. 신내: 코치님 얼굴을 어떻게 보지? 입원하실 정도로 열심이셨는데. 명일: 이젠 뭘 어떡해야 하지? 신내: 이젠 뭘 어떡해야 하지? 모두들 나한테 손가락질할 거야, 부모님도 친구들도 오빠도 모두들 한심하게 생각할 거야. 내가 전부 망쳐버린 거야. 어떡해. 멀리서 신흥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한 손에 낡은 기타를 들고 등장하는 신흥 미친 듯 웃으며 무대를 휘젓고 다닌다. 신흥: 하하하, 이거야 이거! (기타를 튜닝하며 흥얼댄다.) “나는야 돈 한푼 없이 기는 도망자라네 하지만 나에겐 낡은 기타와 노래가 있어 둥기둥가.” 가수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요? 육 만원으로 어떻게 새 삶을 시작할까 고민해 봤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더군요, 이럴 때 의지할 마땅한 친구도 없는 내 자신이 한심했습니다. 갈 곳은 없고 배는 고프고, 그러고 있자니 일단 배라도 채우고 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눈에 띄는 포장마차에 들어가 오뎅을 집어 들었습니다. 터진 입술에 닿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한입 베어 물었는데,(웃음) 오백원짜리 오뎅이 그렇게 맛있는 거예요, 사실 길거리에 서서 쩝쩝거리며 먹는 사람들을 보면 손가락질 했었는데……, 아! 이래서들 먹는 거구나, 이해가 되더라고요. 막 세 개째 꼬치를 집어드는데 낯익은 노래가 들려왔어요, 포장마차 앞에 있는 레코드 가게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노래였어요, 렛잇비였는데, 너무 유명해서 촌스럽게까지 느껴졌던 그 노래가 전혀 다르게 들리는 거예요, 길거리 오뎅과 렛잇비, 저한테는 그냥 그저그런 뻔한 것들에 지나지 않았거든요……, 뭐 암튼, 오뎅을 질겅거리며 노래를 들었어요. 렛잇비가 그대로 두라는 뜻이라면서요? 어렸을 때는 왜 그대로 두라는 건지 이해를 못했었는데, 그 순간에 아! 그런 거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그래서 그길로 곧장 중고 악기상으로 달려가 이놈을 장만했습니다. 지금 제 수중에 있는 거라곤 이 녀석과 단돈 삼천원이 전부입니다. 기타와 삼천원이라 뭔가 고독하기도 하고 낭만적이지 않나요? 그래서 결정했습니다.20년 만에 만들 노래의 제목.“기타와 삼천 원” 하하하, 놀라셨죠? 저도 놀랐습니다 이런 완벽한 제목을 만들어 내다니, 제목부터 뭔가 확 필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명일: 뭐라고요? 다시 한 번만 말씀해 주세요. 신흥: 기타와 삼천원 명일: 설마……. 신내, 신흥 쪽을 바라보다 ‘흑’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려 뛰쳐나간다. 신흥: (신내가 나간 방향에 대고) 놀라시긴……, 노래가 완성되면 여러분은 지금보다 열배는 더 놀라실 겁니다. 명일: 잘 알겠습니다.(사이) 흥신소요? 아닙니다. 그냥 개인적인 일 때문에 찾는 겁니다. 그러니까 서둘러 이사를 간 것 같은 느낌을 받으셨다는 거죠.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신흥: 일단은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만들었던 노래로 시작할 겁니다. 장소는 뭐, 찾아봐야죠, 설마 서울 하늘아래 제가 노래할 만한 곳이 없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부터 저는 가숩니다. 불행한 샐러리맨이 아니라 어릴적 꿈을 이룬 멋진 사람이 된 거죠. 하하하. 자! 그럼 저를 기다리는 무대를 찾으러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신흥, 큰 소리로 웃으며 퇴장, 명일 쪽지와 주소들을 확인하며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두정 휠체어를 타고 등장. 두정: (놀람을 감추며) 웬일이냐? 명일: 여기가 16-28번지 맞죠? 두정: 용케도 올 생각을 했구나. 명일: (떨리는 목소리로) 연수네 집 맞죠? 두정: 다 알고 온 거 아니야? 그런 건 왜 물어. 명일: 저는 연수 남자친구 명일이라고 합니다. 두정: 팀을 맡게 됐다고, 축하한다. 명일: 힘드시겠지만 저도 어렵게 마음먹고 온 것이니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두정: 너하고 할 얘기 없으니까 그만 가봐. 명일: 그 심정 이해합니다. 하지만……. 두정: 사실대로 말하지, 네 얼굴 두번 다시 안 봤으면 좋겠다. 명일: 잘 알겠습니다. 오늘 이후 찾아뵙는 일은 없을 겁니다. 대신 한 가지만 대답해 주십시오. 두정: 꼴 좋다고 웃고 싶겠지, 웃고 싶으면 웃어. 명일: 연수……, 연수 살아있죠? 네? 두정: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명일: 사실대로 얘기해 주십시오. 사고 이후에도 매일같이 연수에게 메일을 보냈었는데 며칠전 그 메일이 모두 수신 확인이 됐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전에 살던 집에서 이사 하실 때 도망치듯 떠났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연수가 살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두정: 상상력이 풍부하구먼. 그따위 소리는 집어치워, 보시다시피 난 글러먹었어. 명일: 그렇다면 제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연수 찾는 걸 포기하지 못합니다. 두정: 내가 그런 소리를 했던가? 그래 그런 말을 했겠지……, 하지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 상황 탓, 환경 탓 하는 게 아니야, 현실이 그렇다는 거지. 네 놈이 그런 말을 하는 저의를 모르겠다. 더 이상 널 마주하고 얘기하고 싶지 않다. 조심해서 가라.(나가려 한다.) 명일: 거짓말……, 거짓말이죠? 그럴 리 없어, 저를 포기하게 하려고 하는 얘기죠? 그렇죠? 두정: (멈춰서서 혼잣말로) 고결한 자만이 에베레스트에 오를 수 있다·……, 고결한 자라…….(쓴웃음) 에베레스트. 그런 게 있기는 한 걸까 (나간다.) 명일: (절망적으로) 잘 알겠습니다, 폐를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나가려다 멈춰서서) 연수야……, 너 정말 없는 거야? 명일이 나가자마자, 박수 소리와 함께 현란한 조명이 무대를 훑는다. 무대 중앙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선글라스를 쓴 신흥이 기타를 들고 마이크 앞에 서 있다. 신흥: 여러분 감사합니다. 다음에 들려드릴 곡은 지금의 저를 있게한 바로 그 노래입니다.20년 전 그러니까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가수의 꿈을 가득 품고 며칠 밤을 새우며 코피를 쏟아가면서 만든 노래입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좋은 노래는 세월이 흐를수록 그 가치를 더해간다는 얘기가 있죠, 그게 바로 이 곡을 두고 한 얘기란 걸 요즘 들어 새삼 느끼게 됩니다. 자 그럼 눈을 감고 제 목소리에 취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목은 “빌어먹을 인생.” 신흥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단조롭고 유치한 느낌의 멜로디. 신흥: 인생이란 무엇일까 인생이란 무엇일까 그것이 뭔지 몰라도,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야 산다는 건 무엇일까 산다는 건 무엇일까 각각의 빛을 받으며 세 사람 나타난다. 약통을 들고 있는 명일, 휠체어 위의 두정, 경기 중에 쓰러져 있는 신내. 신흥: 그것이 뭔지 몰라도 신내: 이건 아니야, 명일, 두정: 이건 아니야 신흥: 목적도 모른 채 공부를 하고, 의지와 상관없이 순위가 매겨지고 누구의 인생인데, 내 삶의 주인은 대체 누구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모두: 이건 아니야. 간주. 두정 굳은 표정으로 한곳만 응시하며 생각에 잠겨있다. 명일: 전부 제 착각이었습니다. 여동생이 혹시나 하고 비밀번호를 쳤는데 열렸대요, 계정을 없앤다고 그러더군요, 그렇다고 앞으로는 메일 보내지 말라고……, 근데 비밀번호가 뭐였는지 아세요? ‘엠, 와이, 유, 엔, 지, 아이, 엘’이었대요. 명일, 제 이름이었어요.(허탈하게 웃는다.) 연수야 조금만 기다려 내가 갈게.(약병을 바라본다.) 신내: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어떡하지, 일어날 수가 없어, 오빠, 엄마, 아빠, 코치님……. 일어나 달려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아요, 모두들 저만 바라보고 있겠죠, 고개를 들 수 없어요, 너무 무서워요. 신흥: 이른 아침, 아니 그건 해도 안 뜬 새벽이야. 흔들어 깨우며 하시는 말씀, 얼른 일어나, 얼른 일어나. 늦은 밤에, 아니 그건 달도 지는 새벽이야 지친 나에게 하시는 말씀, 공부 하다 자, 공부 하다 자, 조금만 더 자고 싶어요 제발. 잠도 못 자가며 난 무얼 하는 걸까. 누구의 인생인데, 내 삶의 주인은 대체 누구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야. 간주. 명일 결심한 듯 약을 꺼내 털어 넣는다. 신내는 여전히 그대로 엎드린 채다. 등이 들썩거린다. 두정, 휠체어에 브레이크를 걸고 수건을 감은 숟가락을 꺼내 입에 문다. 명일 쓰러진다. 두정, 있는 힘껏 일어나려 하지만 바닥에 쓰러지고 만다. 온힘을 다해 일어나려 한다. 신흥: 귓가에 맴도는 어머니 말씀. 일어나, 일어나, 어서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다 너를 위해 하는 말이야 인생이란 다 그런 거야, 좋은 말로 할 때 어서 일어나,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신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한다, 일어나려고 애쓰는 두정 신흥: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명일 갑자기 일어나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간다. 명일: 아 배야! 눈물을 흘리며 일어난 신내, 이를 앙다물고 슬로로 뛰기 시작한다, 두정 간신히 몸을 지탱해 휠체어에 오른다. 신흥을 제외한 나머지 빛이 사라진다. 신흥: 인생이란 그런 거야 이유는 없어, 모두들 다 그렇게 살아 일어나, 일어나. 얼른 일어나서 밥 먹고 학교가 빌어먹을! 일어나, 어서 일어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기쁨에 차 인사를 하다가 갑자기 표정이 굳는다.) 여, 여보……. 무대 밝아진다. 신흥 머뭇거리는 사이 신내 천천히 등장한다. 신내: 오빠 신흥: 여, 여보 신내: 어쩐 일이세요? 신흥: 당신이 어떻게 여길……. 신내: 잘 왔어요, 그렇지 않아도 할말 있었는데. 신흥: 그러니까……, 그게 신내: 아무 말 마세요, 부탁이에요, 제가 얘기할 테니 듣기만 하세요. 신흥: 미안해, 정말 미안해. 신내: 사실 저 오빠 좋아했었어요, 하지만 이제 아니에요. 신흥: 그게 무슨 소리야? 신내: 말 그대로예요, 이젠 오빠를 좋아하지 않아요. 신흥: 여보, 그러지 마, 제발, 응? 내가 잘못했어, 내가 죽일 놈이야. 신내: 고마워요, 진작 얘기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정말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 저 꼴찌해서 이런 거 아니에요. 정말 오빠에 대한 마음이 식어 버려서 그런 거예요. 신흥: 내 뭐든 할 테니까, 제발 죽는다는 소리는 말아줘, 부탁이야. 신내: 그러지 마세요, 오빠답지 않아요. 신흥: 난 이미 끝난 놈이지만, 당신하고 우리 창신이 수진이는 아니잖아. 남편, 아버지 잘못 만난 죄밖에 없잖아, 여보, 그러니까 그런 소리 두번 다시 하지마. 신내: 괜찮아요? (사이) 저요? 보세요 전 아무렇지 않아요. 신흥: 많이 생각해 봤는데 그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 신내: 그래요, 그렇게 해요. 신흥: 이혼하면 놈들도 더는 못 괴롭힐 거야, 자리잡히는 대로 연락할게, 당분간은 어렵겠지만 생활비랑 애들 교육비는 최대한 노력해 볼게. 어떻게든 아빠 노릇은 하도록 할게. 미안해 여보. 신내: 그럼 저 이만 가볼게요, 오빠도 조심해서 가세요. 안녕……, 안녕.(자리를 옮긴다.) 신흥: 놈들이 위치추적을 해서 전화기 못쓰니까, 내가 연락할게. 신내: 오빠도 제가 좋대요, 우습죠? 기껏 마음 정리했는데 고백을 받다니……, 조금만 빨리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괜찮아요, 저,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무렇지도…….(사이) 저 끝까지 달렸어요, 포기할까도 생각했었는데, 그 순간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어요,“일어나, 일어나! 어서 일어나서 레이스를 마쳐!” 목소리를 따라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어요, 사실 그 이후엔 아무 생각도 안나요, 어떻게 결승점을 통과 했는지, 어떻게 집으로 돌아 왔는지……. 정신이 들고 보니까 제 방에 덩그러니 앉아 초콜릿을 잔뜩 쌓아놓고 먹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거울을 봤는데 눈은 너무 울어서 퉁퉁 부어 있고, 입 주변은 초콜릿이 번져서 피에로처럼 되어 있더라고요, 순간 그 모습이 너무 우스워서 깔깔대고 웃어버렸어요, 한참을 그렇게 웃고 있는데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 왔어요,“일어나, 일어나! 어서 일어나서 레이스를 마쳐!” 눈을 감고 목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해서 들어 봤어요, 자세히 들어 보니까 제 목소리더라고요, 자기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 보면 처음엔 자기 목소린 줄 모르잖아요, 그런 것과 비슷한 거였어요, 조금 익숙해지니까 알겠더라고요, 제 목소리인지. 신흥: 그랬어? 그거 다행이네. 알았어 그러니까 그렇게 하자고.(사이) 내 걱정은 하지마, 당신하고 애들이 힘들지 나야 뭐……. 그만 가봐, 수일내로 전화할게, 조심해서 들어가고 (손을 들어 가볍게 흔든다.) 여보! (사이) 아, 아니야. 애들한테 안부 전해줘.(사이. 혼잣말로) 잘 살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평소에 안해 버릇해서 힘드네. 신내: 근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기는 이미 끝나버렸는데, 레이스를 마치라니,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그게 무슨 뜻일까 하고,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신흥: 자! 이젠 나의 무대를 찾아가 볼까,(기타에게) 가자 로시난테, 갈 길이 멀다. 서두르지 않으면 날이 저문다고.(나간다.) 신내: 800미터 경기는 트랙을 2바퀴 도는 거예요, 작전도 중요하긴 하지만 페이스 조절과 순간의 판단력이 그 어떤 종목보다 중요해요, 처음부터 너무 빨리 달려도 안 되고 페이스 조절한다고 천천히 출발해도 안 되죠, 작전대로 달리다가도 상황에 따라 작전을 포기하고 감으로 스퍼트하는 경우도 많고요. 생각해 봤어요, 나는 지금 어디쯤 달리고 있을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달려온 것보다 달려야 할 트랙이 더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낸다.) 알람이네요. 저 이제 그만 가봐야 해요, 중요한 일이 있거든요.(나간다.) 텅 빈 무대. 멀리서 전동차가 다가오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로 들려온다. 소리는 멈추지 않고 무대를 가로지른 후 점점 멀어져 간다. 두정 훈련복 차림으로 빈 휠체어를 끌고 등장한다. 휠체어를 세우고 한두 걸음 떨어져 선다. 두정: (휠체어에 대고) 너한테는 안 된 일이지만, 위로해 주고 싶은 맘은 추호도 없다. 잔인하게 들려도 할 수 없어. 다 네 잘못이야, 한 번 더 점검했어야지, 한 번 더 살폈어야지. 그 정신 상태로 에베레스트에 올랐다면 너 때문에 동료들 모두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어, 너 이렇게 된 거, 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목숨과 다리를 바꿨다고 생각해, 어찌 보면 이렇게 된 거 너한테는 축복일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를 한두 번 본 게 아닌 인생 선배로서 하는 얘기니까 귀담아 듣는 게 좋아, 휠체어 생활도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야, 괜히 재활한다고 힘 낭비하지 말고 그 다리에 적응하는 편이 나을 거다. 나같이 바른 말을 하는 선배를 만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라고. 이제 가봐야겠다, 돌아가서 합숙 준비를 해야 하거든, 들어가서 한 숨 자는 게 어때? (휠체어를 밀고 나간다.)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와 함께 두정이 나간 반대편에서 피골이 상접한 명일이 다리 힘이 풀린 채로 등장 명일: 이렇게, 이렇게 죽는 건가……. 정말 특이한 약이야. 고통스럽냐고 물었을 때 왜 그런 웃음을 지었는지 이해가 돼.(힘없는 웃음) 왜 죽으려고 했는지, 죽기로 결심한 내가 원망스러워지다니……, 아픈 배를 감싸고 변기 위에 앉아 있자니 살려달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군요, 그러다 알게 됐어요, 연수를 잃었을 때보다 변기 위에서 더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요.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는데 웃음이 나왔어요, 눈물은 줄줄 흐르고 웃음은 멈추지 않고, 아래도 멈추지 않고 (힘없는 웃음) 제가 연수를 사랑하지 않았던 걸까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는데, 배가 아프기 전까지만 해도 더 이상 아픈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걸까요?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 명일: 저 새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까요? (고개를 숙인다.) 서로 다른 곳에서 나오는 신흥, 신내, 휠체어 탄 두정. 각자 자리를 잡고 선다. 네 사람: 요 며칠 정말 힘들었어요. 세상에서 버려져, 혼자 어딘가에 버려진 것 같은 느낌, 세상의 모든 불행이 한꺼번에 나한테 달려든 것 같은 느낌, 빠져나오려 하면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진흙 구덩이에 빠진 것 같았죠. 두정, 신흥: 왜 하필 나야? 명일, 신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네 사람: 속으로 원망도 하고 고래고래 소리도 질러 봤습니다. 근데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당연한 얘기죠, 고민하고 소리 질러서 일이 해결 된다면 이 세상에 힘든 사람은 한 명도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신흥: (큰 목소리로) 가수가 되기로요! 두정, 명일: (바로 이어) 받아들이기로요 신내: (이어서) 다시 달리기로요. 네 사람: 많이 겁나고 솔직히 자신 없기도 하지만 어쩌겠어요? 일어나야죠, 신흥: (노래한다) 일어나, 일어나, 어서 일어나 네 사람: 변하는 건 하나 없지만 그렇다고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두정: 저, 결국 에베레스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휠체어를 뒤로 돌리자 자동차 번호판 모양의 판에 ‘에베레스트’라고 쓰여 있다.) 썰렁했나요? 지하철이 들어온다고 알리는 방송이 나온다. 지하철이 다가오는 소리, 멈추는 소리, 문 여는 소리. 모두 한발씩 앞으로 자리를 옮긴다. 다시. 따사로운 봄볕, 아련한 음악. 그리고……. 명일, 고개를 숙인 채 힘없는 걸음으로 어디론가 걸어간다. 신내, 힘찬 걸음으로 어디론가 걸어간다. 두정,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어디론가 간다. 신흥, 기타를 정성껏 보듬으며 어디론가 간다, 다시 명일이 등장했다 사라진다. 다음엔 신흥, 신내, 두정 차례로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그들은 서로 인식하지 못한 채,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어느새, 각자 자리를 잡고 서 있는 네 사람. 모두들 잠시 망설이다. 각자 어딘가를 향해 이야기한다. 네 사람: (동시에) 저기……. 암전. 어둠 속에서 신흥의 목소리 신흥: (목소리) 드디어 완성했습니다.‘빌어먹을 인생’을 이을 평생의 역작.‘기타와 삼천원’ 조명을 받으며 멋지게 등장한 신흥. 노래한다. 신흥: 옛날 어느 시골 마을에 가수를 꿈꾸는 소년이 살았다네 매일 밤 꿈속에서 노래하던 소년은 매일이 너무나 행복했다네 그러나 어느 샌가 소년은 노래하는 꿈을 꾸지 않게 되었네 그렇게,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갔다네. 서울 하늘 아래 어딘가 가수를 꿈꿨던 남자가 살고 있다네 꿈을 잊은 채로 살아가던 남자는 하루가 너무나 힘들었다네 그러나 어느 순간 갑자기 노래하던 꿈을 떠올렸다네 그렇게,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갔다네 아, 가진 건 사랑스런 기타와 단 돈 삼천 원뿐이지만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하다네, 아, 가진 걸 모두 잃어 남은 것 하나 없어 불행하지만 나에겐 기타와 삼천원 있네, 기타와 삼천원, 기타와 삼천원. 기타와 삼천원, 기타와 삼천원. 세상에 내 것이 하나 없어도, 노래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네, 기타와 삼천원, 기타와 삼천원, 기타와 삼천원 있어 너무 행복하다네. 너무 행복하다네. 박수 소리에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하던 신흥, 키스를 날리며 퇴장한다. 무대 한쪽에서 연수, 차분한 걸음으로 등장 어디론가 걸어간다. 태령, 꽃다발을 들고 환한 얼굴로 등장, 어디론가 걸어간다. 약장수, 전화기를 들고 등장, 상대가 받지 않는지 계속 버튼을 눌러대다가 퇴장한다. 다시 연수가 등장했다 사라진다. 다음엔 약장수, 태령, 차례로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그들은 서로 인식하지 못한 채,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어느새, 각자 자리를 잡고 서 있는 세사람. 연수: 그 사람을 처음 만난 건 약장수: 종로 5가입니다. 태령: 어찌 할 바를 모르겠더군요. 연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 멋졌어요. 약장수: 주로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고객이죠. 혹시 필요하신가요? 태령: 네, 그녀를 사랑했거든요. 연수: 사랑했어요, 그래서 많이 미안했고요, 혼자 남겨두고 떠나서 약장수: 미안한 마음은 들지 않습니다. 태령: 그녀는 떠났지만 전 아직 그녀를 떠나보내지 않았습니다. 연수: 이제 떠날 거예요, 명일씨를 놓아주려고요, 마음속에서 서서히 사라질 거예요. 약장수: 그 약을 먹게 되면 죽을 각오로 살게 되죠, 태령: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우선은 열심히 달리는 신내를 뒤에서 지켜보는 것부터 시작하고요 연수: 뒤에서 지켜본다는 거 그리 쉽지 많은 않더라고요, 많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다는 것이……. 약장수: 그것이 문제죠, 부작용이 너무 심해요, 설사가 장난 아니거든요,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네요, 하하하. 세 사람 모두 정지. 두정이 휠체어를 밀고 들어온다. 무대 중앙에 휠체어를 놓고 나간다. 휠체어 홀로 빛을 받는다. 휠체어: 전 에베레스틉니다. 제 주인님이 붙여준 이름이에요, 전 어디를 가나 주인님과 함께 하죠,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고나 할까요. 늘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주인님이 제게 이름을 붙여주고 난 뒤로 가끔이긴 하지만 웃는 모습을 보이시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제 이름이 좋습니다. 지하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휠체어: 지하철이 왔네요, 못다한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죠, 저는 지금 지하철을 갈아타야 하거든요. 경쾌한 음악과 함께 암전. ■ 등장인물 명일(25세, 대학생) 신내(18세, 고등학생, 육상부) 두정(32세, 산악인) 신흥(38세, 샐러리맨)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풍수지리·주역 대가 장태상 공주대 교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풍수지리·주역 대가 장태상 공주대 교수

    간밤에 붉은 돼지와 실컷 놀았다. 돼지는 헤어지면서 아쉬운 듯 “내꿈 꿔.”라고 했다. 실실 쪼개며 콧구멍이 벌렁벌렁거리는 모습이 못생겼지만 어찌나 귀여운지…. 정해년 새해가 ‘쨍하니’ 밝았다. 앵무새가 ‘부자 되세요.’라고 쫑알거린다. 어쩌면 올해에 가장 어울리는 말이다. 돼지해를 맞아 누구나 돼지꿈을 꿀 확률이 많기 때문이다. 돼지꿈이 돈된다는 얘기는 아마 한자로 돈(豚), 듣는 어감이 일단 좋지 않은가. 돼지 얘기를 약간 더하면,12지신 중 마지막으로 해(亥)이다. 오행으론 물(水)이며, 방향은 북쪽이다. 계절은 겨울이며, 색깔은 흑색이다. 성질은 지혜롭고, 숫자는 1과 6이다. 계절 중 10월에 해당한다.10월은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 화합을 하기에 상달로 여겨 예부터 제천의식이 많다. 돼지는 또 다산(多産) 동물이므로 풍년을 기원했다. 이 대목에서 ‘올 한해 운세는 어떻게 될까.’라는 물음에 솔깃하지 않을 사람 어디 있을까. 특히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으니 국운이 더욱 궁금해진다. 과연 누가 이 나라를 이끌어갈 것인지, 또 어려워진 경제사정은 좀 나아질 것인지, 집값은 어떻게 될지 등도 매우 궁금하다. 장태상(63) 공주대 교수(풍수지리학 전공)는 풍수지리와 주역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1970년 26세때 육임정의(六任精義)를 집필했고 2000년에는 국내 최초로 본격 현공풍수(玄空風水) 연구서인 ‘풍수총론’을 펴내 명성을 확고히 했다. 서울 양재동 ‘이산학당’에서 장 교수를 만났다. ●“대선까지 여당 곤경 계속”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나라에서 국민들한테 땅장사하고 집팔아먹는 경우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가면 종래에는 망하고 만다.”고 언성을 높인다.“정치인이나 선장(대통령)도 배가 그쪽으로 가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택할 수밖에 없는 이상한 형국”이라면서 이는 잘못된 서울의 터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고사에 따르면 조선 건국때 무학대사와 권중화(權仲和)는 철원이나 신경(新京-현 서울), 신도천(新都川-현 신도안) 등 세곳을 답사하고 신도안을 가장 명당으로 꼽았으나 배극렴, 정도전, 하륜 등 당시 혁명주체 세력들의 주장에 밀려 서울로 정했다. 장 교수는 “문제는 바로 서울에 대궐터를 정할 때였다.”면서 “무학대사와 권중화는 현 사직공원 자리에 유좌묘향(酉坐卯向)을 놓아야 한다고 했지만 정도전 등은 남향을 우겨 현재의 경복궁터에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결국 서울의 터 경복궁은 자리도 가짜, 좌향도 가짜, 용맥도 난립해 정래(正來)하지 못하기 때문에 조선 500년은 백성이 아닌 정치가를 위한 정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어 “엉뚱한 데로 흐르는 정치이념의 배에 동승해 있기 때문에 몇몇 훌륭한 정치가가 있더라도 뱃머리를 바로잡지 못했다.”면서 작금의 나라상황도 조선시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백년도 안돼 두번씩이나 대궐이 전소되는 사례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고 비유했다. 때문에 행정복합도시 자리도 신도안으로 정했어야 마땅한데 이를 놓쳐 결국 국민들만 속인 셈이 됐다고 했다. 지금이라도 신도안으로 정하면 20∼30년내에 일본보다 더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된다고 주장했다. 국운에 대해서는 “지난 600년 통계로 보면 주역의 9운 중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8운에 해당하며 9운 다음에 이어지는 1운이 되던 해에 망하게 된다.”고 말했다.20년 기한을 1운으로 치면 180년마다 한번씩 돌게 되는데 오는 2023년까지가 8운이다. 또 2024년부터 2048년까지는 9운, 그리고 2049년부터 20년 동안 1운에 해당하는데 이때 국가의 큰 위기가 닥친다는 것.1864년 경복궁을 지을 당시 1운이었는데 결국 조선이 망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면서 “국회건물만 보더라도 아무런 의지처도 없이 덩그렁하게 있어 이상한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와 관련해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여당이 굉장한 곤경에 빠지고 민심은 더욱 악화될 운”이라고 했다. 국운을 점치는 주역의 태을수(太乙數)에 따르면 쳐들어오는 쪽이 객(客)이고 방어하는 쪽이 주(主)인데 객산(客算)이 30수로 주산(主算) 5수에 비해 월등히 높아 객산인 야당은 더욱 강해지고 주산인 여당은 아주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여당은 바보여서가 아니라 바보짓만 골라서 하는 격이 더욱 많아지며 졸수만 두게 된다고 풀이했다.“손자병법에 보면 ‘패신(敗神)’에 홀린다는 말이 있듯이 올 대선 때까지 여당은 계속 곤란지경에 빠진다.”고 예고했다. ●“강골한 사람이 권좌 오를 것” 대통령 선거 얘기가 나오자 “반드시 객산에서 주인이 나온다.”면서 “현재 박근혜·이명박 두 예상 후보의 위치는 요지부동이며 사주로 봤을 때 박근혜씨가 좀 나은 편”이라고 했다. 또 다음 대통령은 교통문제를 해결해야 많은 표가 나올 것이라고 하면서 모 후보가 얘기하는 운하는 우리의 실정과 맞지 않으며 차라리 한강다리 넓히는 대책을 세우는 것이 낫다고 했다. 많은 국민들이 교통체증 때문에 울화증에 걸리다시피 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지금 거론되는 인물 외에 새로운 인물이 나타날 기세는 아니며 노무현 대통령처럼 탁골(濁骨)이라도 강골(强骨)한 사람이 권좌에 오를 것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박근혜씨는 귀골(貴骨). 이명박씨는 기골(氣骨)에 해당된다고 귀띔했다. 남북관계에 대한 전망을 물었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주에 있어 극귀(極貴)가 있어 권좌에 오르긴 했지만 2008년이 중요한 고비다. 사주에 의하면 그해에 운이 바닥나면서 2009년에 망하는 운이다.”면서 중요한 것은 김 위원장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잘 대처하는 일이라고 했다. 중국의 속셈은 황해도, 함경도, 평안도의 땅까지 손에 쥐려는 것이며 2008년이면 이를 더욱 노골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반도의 통일은 중국과 타이완이 이루어진 뒤에나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사정에 대해서는 “경제난으로 여당이 정치적 공박을 많이 당하며 서민의 주름살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올해는 풍해(風害)와 전염병이 많고 40대 이상인 경우 특히 심장마비를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정해년이 황금돼지해라고 한 것은 날조된 것입니다. 오히려 신해년이 황금돼지면 돼지지 정해년은 아무런 상관없지요. 그냥 붉은 돼지해라고 하면 됩니다. 다만 역사 이래 주요 인물들은 돼지띠와 뱀띠에서 많이 나왔습니다. 태조 이성계와 이승만 전 대통령이 돼지띠이고 박정희와 케네디가 정사년 뱀띠 출생입니다. 또 예수도 원래는 기사년(己巳年)생 뱀띠이지요.” ●중학생때 ‘풍수의 대가´ 되기로 결심 장 교수가 풍수지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선린중학교에 다니던 15세때. 개구쟁이에다 놀이를 좋아하던 그가 어느날 하숙집에 혼자 귀가하면서 문득 우리나라 최고의 풍수가가 되겠다고 마음 먹는다. 초등학교 시절 서당에 다니면서 논어를 익혀 일찍부터 한문에는 매우 밝았다. 19세가 되자 서울 태평로에 있는 한 중국서점에 들러 주역 등의 책을 한보따리 싸고 고향인 공주로 내려갔다. 당시 소문난 송인옥 선생을 찾아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했다.22세때 명리학과 주역을 터득하고 이듬해 ‘역술인’ 간판을 내걸었다. 생각보다 많은 손님들이 찾아왔고 그의 명성이 자자해졌다. 그러던 38세때 처갓집이 미국 뉴욕으로 이민가게 되자 함께 떠났다. 현지에서도 주역강의를 계속했다.1986년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다시 한국에 오게 됐고 2002년부터 공주대 대학원에서 초빙을 받아 강의를 하게 됐다. 현재 경기도 용인 동백지구 아파트에 큰아들과 함께 사는 그에게 “집 자리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축좌미향, 즉 서남향”이라고 하면서 풍수지리학상 좋은 위치라고 했다. “올 한 해는 그렇게 썩 좋은 운이 아니니 처변불경(處變不驚), 즉 어떤 상황이 닥쳐도 놀라지 말고 담담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아울러 집을 장만하려면 집값에 연연하지 말고 배산임수(背山臨水)와 서·동남향인 건좌(乾坐)·해좌(亥坐)이면 좋습니다. 올 한해는 다들 행복한 부자되세요.”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4년 공주 출생 ▲66년 자평명리학 터득 ▲70년 관악산에서 육임정의 집필, 방한암 스님의 수제자 장성해 스님을 만나 풍수지리 수업 ▲80년 경희대 한의대 현무회 회원에게 주역 강의 ▲82년 뉴욕 한국일보 주역 연재. 뉴욕 소재 원각사에서 2년간 주역 강의 ▲88년 김구암 선생의 태을수 전수받음 ▲96년 정신세계원에서 2년간 주역 및 풍수 강의 ▲2000년 국내 최초 현공풍수 연구서 ‘풍수총론’ 출간 ▲01년 퇴계선생 성학십도 역해서 출간 ▲02년 한국전통문화센터에서 주역 및 풍수, 기문, 육효 강의. 현재 국립공주대학교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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