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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픈 삶 한 잔… 술 푼 詩 한 잔

    슬픈 삶 한 잔… 술 푼 詩 한 잔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 번도/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정호승 ‘술 한잔’ 중) 백석, 허수경, 기형도, 이병률, 박준 등 시인들이 사랑한 술에 관한 시선집이 출간됐다. 국내 최초의 시 큐레이션 애플리케이션 ‘시요일’이 엄선한 시선집 ‘잔을 부딪치는 것이 도움이 될 거야’(미디어창비)다. 시요일 기획위원(박신규·박준·신미나 시인)이 고른 52편의 시는 현실 도피의 도구이면서 다양한 삶의 이면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매개, 술을 노래했다.술에 관한 이야기 첫머리는 역시 고단한 인생을 달래는 술 한잔에 대한 헌사다. 시선집에 실린 시인들 중 맏형 격인 백석 시인은 평안도를 기행하며 쓴 연작시 ‘구장로(球場路)-서행시초(西行詩抄)1’에서 비 맞고 배고픈 여행자를 달래는 술을 칭송한다. ‘그 뜨수한 구들에서/따끈한 삼십오도(三十五度) 소주(燒酒)나 한잔 마시고/그리고, 그 시래기국에 소피를 넣고 두부를 두고 끓인/구수한 술국을 뜨근히/사발이고 왕사발로 사발이고 먹자’. 국밥에 소주 한잔으로 인생사를 달래는 ‘국밥 빌런’(무언가에 집착하는 사람)은 요즘 세대들과 다를 바 없다. 술이 환기하는 대표적 정서인 사랑과 이별도 빠질 수 없다. 백석 시의 계보를 잇는 박준 시인은 ‘당신이라는 세상’이라는 시에서 ‘술이 깨고 나서 처음 바라본 당신의 얼굴이 온통 내 세상 같다’고 읊는다. 그러나 사랑의 시작보다도 끝에서, 술의 영향력은 더욱 농밀해진다. 동이 틀 때까지 함께 술을 마신 애인을 다독여 들어온 집. 애인의 손전화에서는 알지 못하는 이름이 여러 번 떠오른다. ‘이제 나는 어떤 말도 상처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어떤 말도 인제 상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상처받았다.’(이현호 ‘만하(晩夏)’)맥주병과 잔을 그려 넣은 표지로 시작하는 시집에는 다양한 주종이 등장해 술맛을 돋운다. 싸락눈이 내리는 날 ‘반쯤 허물어진 포장마차에 들어 뜨끈한 정종을 마시’고(박소란 ‘기침을 하며 떠도는 귀신이’), 포도주를 들다 ‘나는 너무 썩었고 오래 썩었다’고 반성하기도 한다.(천양희 ‘세상을 돌리는 술 한잔’) ‘뻘밭에 갈매기만 끼룩대는 폐항’에서는 ‘사람들이 돈 대신 막걸리 한 주전자씩을 들고 와 진정서와 고발장을 써 받는다’.(신경림 ‘줄포-농사꾼 대서쟁이 김장순씨에게’) 대놓고 ‘소주는 달다’(김사인)는 시도 있다. ‘닿을 수 없는 옛 생각/돌아앉아 나는 소주를 핥네.’ 책의 표지 뒷면에는 한 주에 시 한 구절을 만날 수 있는 ‘2020년 주간 달력’을 수록했는데 주종이 직접 등장하는 시의 경우에는 구절 옆에 맥주나 소주, 와인과 전통술 이미지를 추가했다. 주력(週曆)이자 주력(酒曆)인 셈이다. ‘와인이 도움이 될 거야 잔을 부딪치는 것이 도움이 될 거야/나도 돕는다 같이 마신다’. 시집 제목이기도 한 이수명 시인의 ‘물류창고’ 중 한 대목이다. 세밑이라도 과음은 절대 삼가야 하지만, 잔을 부딪치며 같이 마시는 일이 팍팍한 인생사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박원순은 소셜 디자이너, 송하진은 탄소 전도사, 김경수는 실세 도지사...단체장 CEO브랜드 살펴보니

    박원순은 소셜 디자이너, 송하진은 탄소 전도사, 김경수는 실세 도지사...단체장 CEO브랜드 살펴보니

    박원순(63) 시장은 검찰로 출발해 시민운동가를 거쳐 첫 3선 서울시장으로 선출됐지만 가장 내세우는 직함은 ‘소셜 디자이너’다. 다소 생소한 이 직함은 박 시장이 희망제작소 이사 때 만든 것으로 참신한 아이디어와 정책으로 사회를 바꾸는 사람을 뜻한다. 실제로 그는 지난 8년 동안 여러 가지 상상력 실험을 단행했다. 마포구 매봉산 자락에 버려진 석유비축기지를 2013년 시민 아이디어 공모전을 거쳐 복합문화공간으로 2017년 9월 탈바꿈시켰다. 2017년 5월에는 서울역 고가도로를 공중정원인 ‘서울로 7017’로 변신시켰다. 지난해 4월엔 자전거 친화도시를 선포하며 종로에 자전거도로를 개통했다. 일각에서는 종로 자전거도로에 자전거 통행량이 많지 않아 도심 교통 혼잡만 가중한다거나, 서울로 7017이 기존의 고가도로가 부담하던 교통 수송의 기능을 상실토록 했고 사람들도 별로 찾지 않는다며 ‘반쪽짜리 성공’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서울시를 기존 자동차 중심에서 사람 중심의 보행친화도시로 혁신시켰다는 박 시장의 철학이 돋보인다는 평가도 많다. 김경수(52) 경남지사는 본인 의사와 상관 없이 지역과 중앙에서 모두 ‘실세지사’로 불린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척해서 모신 인연이 있고 김 지사에 대한 문 대통령의 믿음도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김 지사가 도지사로 취임한 뒤 경남·북 숙원사업이 속속 풀렸다. 경북 김천~경남 거제를 잇는 ‘남부내륙고속철도 건설사업’이 확정된 게 대표적이다. 최근 경남도와 시·군이 정부 각종 공모사업 등에서 성과를 거둔 것도 ‘실세지사’ 덕분이란 평이다. 다른 시도에서는 ‘경남이 독식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송하진(67) 전북지사는 ‘탄소전도사’를 자임한다. 전주시장 재임때부터 전주시 산하에 탄소산업기술원을 설립하고 대기업 효성을 유치해 가벼우면서 강도는 높은 탄소섬유 생산기반을 구축했다. 민선 6기 전북지사로 당선된 뒤에도 탄소산업을 전북의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으나 속도는 더디다. 탄소산업은 대통령 공약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여당과 정부 반대로 국회에서 탄소진흥원 설립법안이 표류하고 있다.운동화를 즐겨 신어 ‘운동화 도지사’로 불리는 이철우(64) 경북지사는 양복을 입고도 운동화를 신는다. 민선7기 취임식 때 경북도 공무원노조로부터 ‘도민을 위해 열심히 뛰어달라’는 뜻에서 운동화 한 켤레를 선물받은 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표시로 늘 신고 다닌다. 이 지사는 “정말 죽어라 뛰어다녀도 운동화가 잘 안 닳는다”며 운동화 지사로 불리는데 자부심을 보인다.‘지방분권 전도사’로 불리는 염태영(59) 수원시장은 지난 6월 226개 기초 지방정부를 대표하는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회 대표회장을 맡은 뒤 ‘지방분권’의 필요성을 알리며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방분권 개헌국민행동 공동의장, 전국자치분권개헌추진본부 공동대표 등도 맡고 있다. 그는 “지역의 문제는 지역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지역에 권한과 책임을 줘야 한다”고 외친다. 원희룡(55) 제주지사는 ‘전기차 전도사’다. 2014년 7월 첫 취임 후 전국 자치단체장과 정부 기관장 통틀어 처음으로 관용차로 전기차를 도입하한 데 이어 제주를 카본프리 아일랜드(탄소 없는 섬)로 만들겠다고 말한다. 제주도는 지난달 전기차충전서비스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돼 전기차 선도도시로 앞서가고 있다. 최문순(63) 강원지사는 스스로 ‘감자’라는 별칭을 부르며 다양한 마케팅에 활용한다. 강원도를 대표하는 농작물 감자를 애칭으로 사용하며 친근감을 주기 위해서다. 취임 초에는 못생긴 감자에 빚대어 ‘불량감자’라고 불르다 최근에는 ‘개량감자’라며 너스레를 떤다. 감자 애칭으로 강원도를 홍보하는 ‘굴러라 감자원정대’도 만들어 강원도내 재래시장을 다니며 홍보활동도 펼친다. 허석(56) 순천시장 애칭은 ‘설화 시장’이다. 허 시장은 전남 22개 시·군을 직접 돌며 각 지역 인물과 고장에 얽힌 설화를 책으로 발간하고 수년동안 지역 신문에 기재할 만큼 설화 전문가로 꼽힌다. 신동헌(67) 경기 광주시장은 ‘도시농업 전문가’라는 애칭을 얻었다. 방송국 PD로 20여년 근무한 신 시장은 ‘농어촌 지금’, ‘맛따라 길따라’ 등의 농촌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연출해 농업에 지식이 풍부하다. 그의 아이디어로 개최하는 ‘행복밥상 문화축제’는 쌈 요리 경연대회, 쌈 이야기, 쌈 골든벨 등 친환경 쌈채소 관련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신 시장이 제안해 국회안에 조성된 국회생생 텃밭에는 국회의원 50여명이 참여해 봄부터 다양한 농작물을 재배한다. 해마다 연말에 수확한 배추로 어려운 이웃과 함께 ‘김장나눔행사’도 한다. 자치단체장마다 자칭·타칭으로 내세우는 ‘별칭’이 있다. 단체장의 일하는 방식이나 강조하는 시책은 물론, 리더로서의 장점, 위상, 정치력 등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CEO브랜드’인 셈이다. 전시행정이라는 비판도 있으나 단체장과 주민 간 거리를 좁히고 행정에 친근감을 갖도록 하는 측면도 있다는 평이다. 김순은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1970~80년대 발전행정시대에는 중앙정부 중심으로 국가발전 이뤄왔다면, 오늘날 지방분권을 지향하는 시대에는 단체장이 힘을 나누고 각자가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 집중해 지역 사정과 특성을 살린 행정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CEO브랜드 현상은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서울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동정] 고려대 의무부총장·의료원장에 김영훈 교수

    △ 제15대 고려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에 김영훈 순환기내과 교수가 임명됐다. 임기는 이달 1일부터 2021년 9월 30일까지다. 김 신임 의무부총장은 심방세동 치료를 위한 ‘전극도자절제술’과 ‘24시간 응급 심장마비 부정맥 시술 시스템’ 등을 국내에 도입한 부정맥 분야 권위자다. 그는 1983년 고려대 의과대학을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받았다. 안암병원 부정맥센터장, 순환기내과장, 제26대 고대안암병원장 등을 역임했다. 취임식은 20일 오후 3시 고려대 의과대학 본관 유광사홀에서 있을 예정이다.
  • 한파 뚫고 돌린 산더미 전단지… 10개 동 돌자 후들후들 떨렸다

    한파 뚫고 돌린 산더미 전단지… 10개 동 돌자 후들후들 떨렸다

    겨울이 왔음이 실감 나는 이맘때면 청춘들은 분주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친 고3 수험생과 방학을 앞둔 대학생으로 아르바이트 구직 시장이 붐비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편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공공기관 등 이른바 ‘꿀알바’, 카페나 패스트푸드점 등 실내에서 하는 알바 자리는 경쟁이 치열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10~20대들은 전단 배포, 주차 요원, 행사 안내를 비롯해 ‘겨울 알바의 꽃’이라 불리는 스키장 등 추운 날씨에 바깥에서 떨어야 하는 일터로 몸을 던진다. 서울신문 이태권(27) 기자가 청소년 알바 시장에 뛰어들어 ‘요즘 것들의 극한알바’를 체험했다.지난달 24일 오후. 전단지 820장이 든 가방을 둘러멘 어깨는 내려앉았고, 계단을 오르내리던 다리는 후들후들 떨렸다. 두꺼운 패딩과 양말로 온몸을 감쌌지만 4시간 30분 동안 얼굴을 때렸던 바람의 흔적은 고스란히 몸살로 되돌아왔다. ‘왜 일을 한다고 했을까’라고 후회를 되뇌다 보니 고통의 시간은 끝났다. 전단을 나눠 주느라 바빴던 손에는 일당 4만 5000원이 들려 있었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선택하는 알바였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난해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 학생 노동인권 실태조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10대 학생 중 24.8%가 ‘전단 알바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일자리를 구하는 과정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알바를 구하기까지 꼬박 5일이 걸렸다. 하루짜리 알바를 구하려고 알바 포털을 샅샅이 뒤졌지만 택배 상하차, 청소, 철거, 드라마 단역, 전단 알바 정도만 눈에 띄었다. 대부분 문자나 온라인으로 지원해야 했다. 지원하고서 마감일까지도 합격했는지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12번이나 지원서를 넣고 나서야 서울 도봉구 소재 한 병원의 신장개업 전단 배포 알바를 구하는 담당자의 연락을 받았다. “알바 지원하셨죠? 24일 가능하세요?”라는 짧은 질문에 대답하고 나니 ‘오전 10시부터 시작하니 10분 전까지 늦지 않게 오세요’라는 문자가 왔다. 공지받은 시간에 병원 앞에 도착하자 담당자가 산처럼 쌓여 있는 전단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통증치료, 재활운동을 통해 근본원인 치료’와 같은 문구들이 적힌 병원 홍보 전단물이었다. “오늘은 두 줄만 하시면 돼요.” 함께 전단 알바를 한 2명은 이미 여러 번의 경험이 있는 20대였다. 군 제대 이후 용돈을 벌러 나왔다는 김모(23)씨는 “좀 힘들어도 운동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마음 편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창업을 했다가 실패한 이모(27)씨는 “가방 두 개를 다 들고 하면 힘드니까 하나는 꼭대기층에 숨겨두고 하면 좀 편할 거예요”라며 ‘꿀팁’을 알려 줬다.병원 인근 아파트 2개동, 360가구에 전단을 돌리자 팔다리가 저렸다. 자신하던 체력이 고갈된 건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닦으며 꼭대기 층부터 훑어 내려왔다. 그러다 아파트 복도 사이로 찬 바람이 불면 금세 몸이 추워졌다. 전단 뭉치를 던져 버리고 도망갈까 몇 번이나 고민했다. 부지런히 오르내리다 보니 10개동을 돌 때쯤 전단이 모두 사라졌다. 함께 전단을 붙였던 두 사람은 상대적으로 구하기 쉽고, 시급이 높아서 이 일을 한다고 했다. 이씨는 “정해진 할당량을 돌리면 빨리 끝나기도 한다. 조금만 부지런히 움직이면 시급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구인구직포털 알바콜이 지난달 6~16일 대학생 54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전체의 84%는 이번 겨울방학에 알바를 할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또 선호하는 알바로는 사무직(24%), 매장관리(24%), 서빙(15%), 과외(15%) 등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자리가 대부분이었다. 대학 병원에서 주차요원 알바를 했던 강모(24)씨는 “다른 알바 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워 야외 주차장에서 차량을 안내하는 일을 했다”며 “작은 초소가 있었지만 밀려드는 차량 때문에 대부분 시간을 밖에서 보냈다”고 말했다.주차 요원뿐 아니라 대형 물류센터에서 짐을 트럭에 싣고 내리는 택배 상하차 일도 대표적인 극한 알바다. 일당이 9만~12만원 수준으로 높은 편이지만 “너무 힘들어 일하던 중간에 도망쳤다”는 회고담이 온라인 공간에 여럿 올라올 만큼 노동 강도가 세다. 일하다 도망치는 행위를 놓고 ‘상하차 추노’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다. 대학생 박정현(20)씨는 지난해 12월 여행비를 마련하려고 인천의 한 물류센터에서 열흘간 알바를 했다. ‘팰릿’이라고 부르는 플라스틱 판에 상하차한 택배 물품을 쌓고 지게차가 옮기기 쉽게 비닐로 감싸는 일이다. 지게차와 창고를 오가며 작업하는 과정에서 찬바람을 계속 맞다 보니 장갑을 껴도 손이 트고 피부가 갈라졌다. 박씨는 “힘들긴 하지만 항상 자리가 있고 단기간에 돈 벌기에는 좋다”며 “이번 겨울에도 여행비를 모으기 위해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구인구직포털 알바몬이 2017년 야외에서 일하는 알바생 42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야외 알바를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다른 알바에 비해 급여가 높아서(38.5%)였다. 실내 알바보다 쉽게 뽑힐 수 있어서(11.9%), 다른 알바를 구할 수가 없어서(9.3%) 등도 선택 이유였다. 실내가 답답하다는 이유로 오히려 찬 바람을 쐬며 야외 알바하는 것을 즐기는 10대, 20대도 있다. ‘겨울 알바의 꽃’이라 불리는 스키장 알바는 돈을 벌며 근무 시간 외에는 무료로 스키까지 탈 수 있다. 스키장마다 모집 인원이 적지 않지만, 지원자는 그보다 더 많아 알바 포털에서는 스키장 알바 전문 채용관까지 따로 만들 정도다. 3년째 겨울만 되면 강원도의 한 스키장에서 일하는 김모(21)씨는 “좋아하는 스키를 타며 돈까지 벌 수 있다”고 말했다. 스키장 알바는 숙식이 해결된다는 장점도 있다. 산간 지방에 있는 스키장 특성상 알바생 대부분 별도 제공되는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자취를 하거나 생활비를 직접 벌어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숙식하면서 월 180만원쯤 벌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자리다. 하지만 스키장 알바는 ‘꿀알바’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스키장 패트롤(안전요원)로 일한 마모(27)씨는 “크리스마스나 신년 등 대목에는 하루에 1만명이 올 정도로 바쁘고, 이 경우에는 24시간 연속으로 일하기도 한다”며 “슬로프 쪽으로 올라가면 체감온도가 영하 10도가 넘기 때문에 추위를 버티기가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특히 개장 전인 오전 4시쯤부터 나와야 하는 제설 담당의 업무 강도는 악명이 높다. 추위 속 야외 노동은 사고와 질병을 동반한다. 스키장 알바를 했던 김모(21)씨는 “발에 꽉 들어맞는 스키 부츠를 신고 장시간 눈밭에서 일하면 부츠가 꽝꽝 얼어버려 동상에 걸리거나 발이 눌려 발가락이 다치기도 한다”고 했다. 10대, 20대는 어리다는 이유로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노동자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기 일쑤다. 지난겨울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한 박모(20)씨는 “회사에서 지급한 방한용품은 아예 없었다. 추우면 알아서 챙겨야 했다”며 “아무리 패딩을 껴입어도 차가운 철봉을 옮길 때면 손이 너무 시렸다”고 말했다. 고교 1학년 때부터 배달 대행 알바를 하는 유건우(17)군은 “땅이 얼어 오토바이가 미끄러져 사고가 난 적도 있다”며 “배달 대행은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일하는 경우가 많고, 산재 처리도 쉽지 않아 최근 라이더유니온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는 “심한 한파가 몰아치는 경우에는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야외 노동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며 “최소한 적절한 온도 유지를 위한 장갑, 머플러, 귀 덮개, 핫팩 등 한파 예방을 위한 보호구 지급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권 기자 rights@seoul.co.kr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지난해 내한공연 취소하더니 라트비아 명지휘자 얀손스 76세에 타계

    지난해 내한공연 취소하더니 라트비아 명지휘자 얀손스 76세에 타계

    구스타프 말러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해석에 탁월했던 명지휘자 마리스 얀손스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떴다. 향년 76세. 한국을 여러 차례 찾았고 특히 지난해 내한공연을 얼마 앞두고 취소해 건강이 좋지 않구나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세상을 등질지 미처 몰랐다. 1일 발트 3국 뉴스통신 BNS와 AFP통신,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 홈페이지 등에 따르면 얀손스는 전날(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자택에서 지병인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AFP는 유족의 지인들을 인용해 심장마비가 사인이라고 전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성명을 내고 “우리는 마리스 얀손스가 사망했다는 슬프고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고 밝혔다. 20세기 위대한 지휘자 에프게니 므라빈스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게 배운 그는 이들을 잇는 ‘명장 중의 명장’으로 손꼽힌다. 러시아 음악에 정통했으며 특히 쇼스타코비치 스페셜리스트로 통했다. 1943년 라트비아 리가에서 지휘자 아버지 아르비드 얀손스와 유대계 소프라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1956년에 레닌그라드 콘서바토리에 입학, 지휘와 피아노를 익혔으며 1969년에는 카라얀에게 지휘를 배웠다. 1971년 카라얀 지휘자 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했다. 이듬해 아버지를 이어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지휘자가 돼 20세기 전설적인 지휘자 므라빈스키로부터 직접 지휘를 배웠다. 쇼스타코비치의 친구이기도 했던 므라빈스키를 사사하며 그는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탁월한 해석으로 여러 명반을 남겼다. 무명이던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유럽 정상급 악단으로 끌어올려 노르웨이 국왕으로부터 외국인에 수여되는 최고의 훈장을 받았다. 피츠버그 교향악단을 이끌면서는 해리 예술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불혹을 넘긴 2000년대를 맞이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2003년부터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상임 지휘자를 맡았으며 2004년부터 2015년까지는 네덜란드 최고 오케스트라인 로열 콘세르트허바우를 이끌었다. 이 기간 세계 10대 교향악단 두 곳을 감독하며 당대 최고의 지휘자로서 명성을 떨쳤다. 명지휘자들만을 초대하는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에도 2006년, 2012년, 2016년 등 세 차례나 초청받았다. 2006년 프랑스풍 폴카 ‘전화’를 지휘하다가 중간에 전화 벨소리가 울리게 연출했고, 2012년 폴카 ‘틱톡’의 연주가 끝날 즈음에 시계를 꺼내서 직접 돌리는가 하면, 2016년에는 빠른 폴카 ‘Mit Extrapost’를 지휘하기 전, 집배원이 무대에 난입해 얀손스에게 지휘봉을 건네고 얀손스는 악장의 옷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주는 퍼포먼스로 웃음을 선사했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어 지난 2010년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하는 등 여러 차례 한국에서 연주했다. 2016년 12월 바이에른방송 교향악단 공연에서는 하이든 교향곡 100번 ‘군대’ 4악장 도중 ‘I LOVE KOREA’라고 적힌 대고를 치는 이벤트를 벌이는 등 한국에 호감을 갖고 있었다. 지난해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을 이끌고 내한하려다 건강 이상이 생겨 주빈 메타로 지휘자가 교체된 일도 있었다. 그는 1996년 오슬로에서 오페라 ‘라보엠’ 지휘 중 심장발작으로 쓰러졌는데 한 손에 지휘봉을 쥐고 있었던 일화로 유명하다. 그 뒤 수술을 받고 회복했다. 당시 병원이 불과 2분 거리에 있어 목숨을 구했다는 뒷얘기가 전해졌다. 심장 이상 소문 등이 따라다녔다. 그의 아버지도 1984년 영국 맨체스터 연주 도중 세상을 갑자기 떠났고, 2001년에 아이다를 지휘하다 쓰러진 주세페 시노폴리, 1960년에 브람스 교향곡 1번 리허설 도중 쓰러진 에두아르 판 베이눔 등 공연 도중 심장이 좋지 않아 세상을 접는 지휘자들이 많았다. 그나마 가족이 지켜보는 앞에서 편안히 눈 감았길 기원할 따름이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음료 버릴 수 있도록 버스정류장에 간이 쓰레기통을”

    “버스에 음료 반입은 안 되지만 음료를 처리할 수 있는 환경은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서울 강북구 버스정류장은 음료를 버릴 수 있는 간이 형태의 쓰레기통이 있어 편리합니다. 이런 간이 폐기함을 정류장마다 설치하면 시민들의 불편도 덜고 버스나 도로도 깨끗해지지 않을까요.” 서울시의회는 10월 의정모니터링 시민 의견 심사회의에 접수된 69건 가운데 박수영씨의 ‘음료 처리가 힘든 버스정류장’을 포함한 10건을 우수 의견으로 선정했다고 27일 밝혔다. 박씨는 “무의식적으로 음료를 들고 버스정류장에 온 사람들이 허겁지겁 마신 뒤 빈 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정류장에 방치하면서 폐기물이 도로에 나뒹굴게 된다”며 “쾌적한 환경을 위해 플라스틱, 일반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쓰레기통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박호언씨는 시교육청 산하의 학교 도서관을 학생들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제도가 갖춰져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박씨는 “시교육청 산하 학교 학생들이 자신의 학교에 없는 책을 다른 학교에서도 빌릴 수 있게 하면 학업 환경에도 차별이 없어지고 도서 구입 예산도 절감될 것”이라며 “학교 도서관 공동 이용제는 학교 경쟁력 강화나 학생들의 평등한 자원 이용, 복지 차원에서도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시의회는 의정 발전과 선진 의회 구현을 위해 20세 이상 시민 237명을 모니터로 위촉해 시 정책이나 의정 활동에 대한 의견을 매달 듣는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대만계 캐나다 배우 가오이샹, 중국 예능프로그램 촬영 도중 실신해 사망

    대만계 캐나다 배우 가오이샹, 중국 예능프로그램 촬영 도중 실신해 사망

    대만계 캐나다 모델 겸 배우 가오이상(高以翔, 영어 이름 고드프리 가오)이 중국에서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촬영하다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향년 35세. 27일 중국 시나연예와 영국 BBC 등에 따르면 가오이샹은 중국 동부 저장성 닝보에서 저장 위성 TV의 예능 프로그램 ‘추아파(날 쫓아봐)’ 게스트로 출연하던 중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소생하지 못했다. 이 프로그램은 심야 도심에서 두 팀으로 나눠 쫓고쫓기는 대결을 펼치는데 가오이샹은 이날 달리던 도중 차츰 느려지더니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스태프가 응급 소생술을 실시하며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일부 카메라맨은 쇼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촬영을 계속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과로에 의한 심장마비로 추정되고 있다. 전날 아침 8시 30분쯤부터 이날 새벽 2시까지 17시간 넘게 촬영이 이어진 것으로 알려져 혹사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 프로그램은 이전부터 출연자들을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 고층 건물을 기어오르게 하거나 짚라인으로 하강하게 하기도 했다. 또 이른바 ‘몸짱’ 참가자들만 출연시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소속사인 제트스타 엔터테인먼트는 “3시간 동안 그를 살리려고 노력했지만, 불행히도 우리 곁을 떠났다. 우리는 너무 슬프고 충격을 받았으며, 이 일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1984년 대만에서 태어난 그는 지난 2011년 아시아 남성 최초로 루이뷔통 모델 전속 계약을 맺었다. 2년 뒤 할리우드로 진출, 영화 ‘섀도우 헌터스-뼈의 도시’로 연기에 데뷔했다. 이어 중국 TV 드라마 ‘Remembering Lichuan’ 주인공으로 발탁돼 중국에서도 이름을 알렸다. 영화 ‘스파이더 맨-파 프롬 홈’에 출연한 호주 배우 레미 히는 그가 없는 아시아 연예계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눈 감기 전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이들과 맥주 한잔 꿈 이룬 할아버지

    눈 감기 전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이들과 맥주 한잔 꿈 이룬 할아버지

    마지막 순간 사랑하는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과 어울려 맥주 한 모금만 홀짝이면 소원이 없겠다. 미국 위스콘신주 애플턴에 살던 노버트 스킴(87) 할아버지가 필생의 소원을 이루고 지난 20일(이하 현지시간) 눈을 감았다. 할아버지가 가족들과 더불어 웃고 떠들며 맥줏병을 들이키는 모습을 아들 톰이 촬영했는데 세계 곳곳의 낯선 이들에게까지 잔잔한 감동을 안기고 있다고 영국 BBC가 25일 전했다. 스킴 할아버지가 눈을 감은 지 몇 시간 안돼 손자 애덤이 왓츠앱 등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렸는데 트위터에서만 31만 7000개의 좋아요!와 4000개의 댓글, 3만 회의 리트윗을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 관심을 끌었다. 애덤은 “할아버지는 상대적으로 건강 하셨는데 지난 17일 입원했을 때 살 날이 많지 않음을 알아차리셨다. 다음날 손주들을 불러 모은 뒤 사진을 찍자고 하셔서 19일 밤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20일 대장암 4기로 세상을 뜨셨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가 우리에게 할아버지가 맥주 한 잔을 원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제 사진을 보면 적이 안도가 된다. 할머니도 미소 짓더라. 그는 늘 원하던 일이어서 즉석에서 제대로 된 사진이 나왔다”고 덧붙였다. 애덤 자신도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리는 것을 처음엔 달콤쌉싸래하다고 느껴 망설였지만 그저 아름다운 순간이란 생각에 올렸다고 했다. “우리에게도 제법 위안이 된다. 할아버지 부부와 자녀와 손주들이 그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했다.” 또 사진이 얼마나 먼곳까지 여행하는지 지켜보며 그렇게 많은 이들이 공유하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살아온 동네도 다르고 아무런 인연도 없는 사람들이 따듯한 댓글을 달아줘 할아버지도 영예롭게 여길 것이라고 했다.세계 곳곳에서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사진을 올리는 일이 유행처럼 번졌다. 인디애나폴리스의 벤 릭스는 2015년 할아버지 레온이 86세 삶을 접는 마지막 순간 시가와 맥주를 함께 즐긴 사진을 올렸다. 벤은 할아버지가 알츠하이머를 앓아 차츰 기억력이 희미해져 생의 마지막 소원을 잊어버린 듯했지만 자신과 아버지는 잊지 않고 들어줬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아버지와 형제들이 함께 임종하며 사진을 찍었는데 불행히도 아버지 마이크가 다음날 심장마비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러나 벤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진 모두 위안이 된다고 털어놓았다.필라델피아의 브리기드 레일리는 애덤의 트윗에 지난달 84세를 일기로 심장과 신장 문제로 영면한 할머니 테레사 미헌 사진을 올렸다. “할머니가 호스피스에 들어가자 끝이 다다랐음을 안 가족들은 그녀가 좋아하는 스시, 프랭크 시내트라의 음악, 우리 모두를 모았다. 할머니는 음료로 베일리를 택했다. 마지막 순간에 모두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셨다.” 브리기드는 사진을 현상해 뽑아 할머니 장례식에 전시했다. 또 추모 동영상을 만들었는데 사진을 편집해 넣었다. “이렇게 마지막 순간을 할머니와 함께 한 것은 대단히 운이 좋았다.” 책 ‘좋은 죽음’을 쓴 앤 노이먼은 “우리 모두가 갈망하는, 마지막 순간 사랑하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생을 마감하는 일이라 위안이 된다. 이 사진은 우리네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게 하고 이 심오한 순간에 ? 가족과 어울리게 만들기 때문”이라며 “그러면서도 그들과 함께 슬퍼할 기회도 제공한다. 우리네 사랑하는 이들, 나이 들고 아프고 죽어가는 그리고 죽은 이들을 생각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정말 생각해보라. 이렇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미국 호스피스 재단의 케네스 도카 박사는 “생을 마감하는 순간 가장 중요한 일은 누군가에 귀 기울이는 일이며 그 순간의 의미를 공유하는 일”이라며 벤의 사진이 갖는 행복한 기운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애덤은 “할아버지가 의도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라면 한바탕 웃고 말았을 것이다. 내 생각에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큰 교훈, 그리고 할아버지가 전하고 싶었던 가르침은 ‘친절하게 굴고, 서로 사랑하고, 가족이 소중한단다’ 였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美서 39명 죽음 부른 전자담배… “문제는 액상형 아닌 THC”

    美서 39명 죽음 부른 전자담배… “문제는 액상형 아닌 THC”

    미국발 전자담배의 유해성 논란이 한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 지난 1일 기준 전자담배 흡연자 중 39명이 폐질환으로 사망했고, 연관된 폐질환자가 2015명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하지만 전자담배가 일반담배보다 건강을 해치지 않는다는 학계의 연구보고서가 발표됐고, 또 미국의 전자담배 관련 폐질환 사망자와 환자 대부분이 THC(대마 중 환각을 일으키는 주성분)가 함유된 비정상적인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후폭풍도 거세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전자담배의 시장 점유율이 치솟으면서 이를 우려한 담배회사의 로비 등이 작용하고 있다는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다. ●“전자담배 견제 담배회사의 로비” 음모론도 지난 9월 11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가향 전자담배를 전면 금지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전자담배 유해성 논란에 불씨를 댕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부인 멜라니아와 알렉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 노먼 샤플리스 식품의약청(FDA) 청장대행 등과 같이한 자리에서 가향 전자담배 퇴출을 전격 선언했다. 당시 뉴욕타임스 등은 포도 슬러시, 딸기 코튼 캔디, 풍선껌 등 10대 청소년들을 겨냥한 달콤한 맛의 첨가제는 물론 멘톨·민트가 첨가된 가향 전자담배까지 전면 금지될 것이라고 전했다.이는 미 고교생 중 전자담배 흡연자가 2017년 11.7%에서 지난해 20.8%로 껑충 뛰었고 올해는 27%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등 청소년의 전자담배 흡연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13살의 막내아들을 둔 트럼프 대통령 부부가 청소년의 전자담배 흡연 급증을 크게 우려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전자담배 유해성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현재까지 전자담배 관련 폐질환 사망자와 환자의 발병 원인을 구체적으로 밝혀내지는 못했고, 발병 원인을 여러 복합적인 물질 때문으로 추측하고 있다. 현재 많은 다른 물질과 제품 출처는 여전히 조사하고 있으며 밝혀진 한 가지 사실은 모든 발병 환자들이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CDC에 현재 보고된 환자 대부분이 불법 내지 편법으로 THC가 함유된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CDC에 따르면 지난 10월 15일 기준 환자 867명 중 86%가 THC 성분이 포함된 제품을 이용한 적이 있다. 결론적으로 CDC가 피지 말 것을 권하는 건 액상형 전자담배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THC 성분이 함유된’ 액상형 전자담배다. 또 암시장에서 파는 인증받지 않은 액상형 전자담배류(특히 THC 포함)를 사거나 정식 판매제품에 임의로 다른 물질을 추가하지 말 것을 경고하기도 했다. CDC와 FDA는 “일반담배를 끊기 위해 액상형 전자담배를 피는 성인은 궐련형 담배로 돌아가지 말고 FDA에서 허가한 다른 니코틴 대체 요법을 고려해 볼 것”을 권하고 있다. 정치전문매체 워싱턴이그재미너는 “액상형 전자담배로 인한 폐질환 사망은 합법적인 액상형 전자담배와 연관성이 없다”면서 “아직 FDA가 승인한 합법적인 액상형 전자담배 제품과 관련된 사망이나 질병은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일반·전자담배 모두 건강엔 해로워” 지난 19일 미 심장학회지에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공개됐다. 제이콥 조지 영국 던디대 교수와 연구진이 ‘일반담배에서 액상 전자담배(베이핑)로 전환하면 잠재적으로 심장마비와 뇌졸중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11월 초 학계에서 발표된 ‘전자담배가 혈관 기능을 손상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연구를 책임진 조지 교수는 “일반담배에서 전자담배로 전환하면 한 달 이내에 혈관 기능이 크게 좋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11월 초 발표된 전자담배의 혈관 손상 연구는 규모가 작고 결함이 있다”고 주장했다. 조지 교수 연구팀은 114명의 성인을 3개 그룹으로 나눴다. 114명은 최소 2년 동안 하루에 최소 15개비의 담배를 피운 성인으로 구성됐으며 모두 심장 혈관 질환 징후가 없었다. 이들 중 40명으로 구성된 한 그룹은 일반담배를 끊고 싶어 하지 않는 이들로만 구성됐다. 일반담배를 끊고 싶어 한 나머지 74명 중 절반인 37명에게는 니코틴이 함유된 전자담배를, 나머지 37명에게는 니코틴이 포함되지 않은 전자담배를 사용하도록 했다. 이들 114명을 한 달 동안 조사한 결과, 일반담배를 계속 피운 그룹은 혈관 기능에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전자담배를 사용한 이들은 니코틴 유무에 관계없이 혈관 기능이 20% 이상 상대적으로 좋아졌으며 일부는 비흡연자와 동등한 수준으로 혈관 기능이 향상된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한 달 만에 나온 이 개선이 장기적으로 이어진다면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던디대 연구팀은 또 “이번 연구 조사 결과가 일반담배에 비해 베이핑이 혈관 기능과 관련, 덜 유해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지만 전자담배가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흡연자가 베이핑으로 전환할 경우 혈관 건강이 한 달 내에 향상된다는 것을 보여 줄 뿐이라는 의미다. 연구팀 관계자는 “비흡연자가 베이핑을 시작하는 것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이번 연구 결과는 혈관과 관련해서 전자담배가 일반담배보다 덜 유해하다는 사실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베이핑이 심장마비와 암 등 심혈관 질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려면 더 장기간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미국과는 달리 영국 공중보건국은 일찌감치 전자담배를 ‘금연의 징검다리’로 활용하고 있다. 공중보건국은 연간 최소 2만명이 전자담배로 금연에 성공하거나 상당한 건강 혜택을 얻는다고 분석했다. 또 보건국은 2015년 외부 전문기관의 검토 등을 거쳐 전자담배가 일반담배에 비해 95% 덜 해롭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반면 미 보스턴대 연구팀은 액상 전자담배가 심장질환에 위험도를 높인다고 경고했다. 보스턴대 연구팀은 전자담배와 심장질환 위험도 간 연관성을 알아보기 위해 평소 심장에 문제가 없던 21~45세 성인 476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LDL콜레스테롤(저밀도 콜레스테롤, 혈관을 막히게 하는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가 일반담배 사용자(86.1㎎/㎗)보다 전자담배 사용군(97.7㎎/㎗)에서 11.6㎎/㎗ 높게 나타났다. 연구팀 관계자는 “LDL콜레스테롤이 혈관에 쌓이면 혈액순환을 방해해 심장마비, 뇌졸중 등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 의학계 관계자는 “일반담배나 전자담배 모두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과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라면서 “전자담배의 유해성 논란에 종지부를 찍으려면 빨리 FDA나 CDC에서 정확한 조사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 이것이 소모적인 논란을 막고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심장병 발병 확률,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50% 더 높다”

    “심장병 발병 확률,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50% 더 높다”

    가난한 사람들이 왜 부유한 사람들보다 심장질환에 잘 걸리는지를 수면 부족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과학자들이 주장하고 나섰다. 스위스 로잔대 두샨 페트로비치 박사팀이 유럽인 총 11만1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해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심장마비나 뇌졸중 등 심혈관계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50% 더 높은 경향을 발견했다. 이는 특히 여성(58%)의 경우 남성(48%)보다 두드러졌는데 원인은 수면 부족 탓일 수 있다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이에 대해 페트로비치 박사는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직업과 수면 시간의 관계가 약하기 때문일 수 있다”면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여성은 종종 신체적이고 심리사회적인 부담을 받는 수작업이거나 저임금 직업을 갖고 있는 데다가 가정의 책과 스트레스를 함께 짊어지는 데 이런 영향이 남성보다 수면과 건강 회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수면 부족이 사람들의 심장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기존 연구자료 8건을 분석했다. 연구 참가자들은 다양한 요인에 관한 설문조사에 답했다. 따라서 연구진은 이들 참가자가 하룻밤에 평균적으로 얼마나 자는지(평균 수면 시간)부터 직업은 무엇이고 소득은 얼마나 되는지(사회경제적 지위), 그리고 의료기록 등을 통해 심혈관계 질환 발병 여부를 알 수 있었다. 또한 모든 참가자는 심장 건강 상태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았다. 그 결과, 저소득층 남성의 약 13.4%는 자신의 심장질환이 지속적인 수면 부족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고로 이 연구에서는 밤 사이 수면 시간이 6시간 이하인 경우를 짦은 수면 즉 수면 부족으로 봤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빈곤층은 생활비를 마련하거나 청구서를 지불하기 위해 투잡 이상을 뛰어야 해서 잠잘 시간조차 부족할 수 있다면서 이들은 또 돈 걱정에 잠을 설치거나 층간 소음 등 이웃에 의해 잠에서 깰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페트로비치 박사도 “사람들이 잠을 더 잘 수 있게 하려면 사회 각층의 구조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면서 “예를 들어 수면 장애의 중요한 원인인 소음을 줄이려면 새로 짓는 모든 주택에 이중 유리창의 설치를 의무화하거나 교통량을 제한하고 또는 공항이나 고속도로 근처에는 주거지 조성을 제한하는 정책 등을 펼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유럽심장학회(ESC)가 발간하는 학술지 ‘심혈관 연구’(Cardiovascular Research) 최신호(22일자)에 실렸다. 사진=123rf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음원 사재기 저격’ 박경, 팬사인회 당일 연기… 소속사 “실명 거론 사과”

    ‘음원 사재기 저격’ 박경, 팬사인회 당일 연기… 소속사 “실명 거론 사과”

    ‘음원 사재기’를 공개 저격한 그룹 블락비 멤버 박경()이 팬사인회를 갑작스럽게 연기했다. 소속사 세븐시즌스는 24일 오후 블락비 공식 팬카페에 “금일 오후 6시 예정되어 있던 팬사인회가 갑작스러운 내부 사정으로 인하여 부득이하게 일정을 연기하게 되었다”고 공지했다. 이어 “팬사인회를 기다려주신 BBC(블락비 팬덤명)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양해를 구하며, 예정된 일정대로 진행하지 못한 점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드린다”고 덧붙였다. 지난 10일 신곡 ‘사랑을 한 번 할 수 있다면’을 발표한 박경은 이날 오후 6시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카오스홀에서 팬사인회를 열 예정이었다.박경은 앞서 이날 오전 자신의 트위터에 “바이브처럼 송하예처럼 임재현처럼 전상근처럼 장덕철처럼 황인욱처럼 사재기 좀 하고 싶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는 현재 음원 차트 상위권에 있는 가수들이 음원을 사재기 했다고 저격하는 글로 해석됐다.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 멜론가 이날 업데이트한 일간차트에 따르면 바이브의 ‘이 번호로 전화해줘’는 4위, 송하예의 ‘새 사랑’은 10위, 임재현의 ‘조금 취했어’는 11위, 전상근의 ‘사랑이란 멜로는 없어’는 12위, 장덕철의 ‘있어줘요’는 14위, 황인욱의 ‘포장마차’는 20위 등에 올라 있다. 지난해 닐로, 숀 등이 음원 차트에서 급부상하며 음원 사재기 논란이 제기된 이후 지금까지 여러 가수들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이번처럼 특정 가수가 실명을 언급하며 저격한 경우는 드물었다. 박경은 이날 오후 논란이 된 해당 트윗을 삭제한 상태다. 소속사 측은 논란이 일자 사과 입장문을 냈다. 소속사는 입장문에서 “박경의 트윗에 실명이 거론된 분들께 사과 말씀드린다. 박경은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의도는 없었으며, 현 가요계 음원 차트의 상황에 대해 발언을 한 것”이라며 “직접적이고 거친 표현으로 관계자분들께 불편을 드렸다면 너른 양해를 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가요계 전반에 퍼진 루머에 근거해 사실관계 확인 없이 발언한 것으로 단순히 생각하면 아티스트 개인의 생각을 본인의 트윗에 올린 것뿐이지만, 구체적인 실명을 거론하여 당사자들께 불편을 드린 점 사과의 말씀드린다”며 거듭 사과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법서라] 윤석열의 ‘아픈 손가락’ 영화 ‘블랙머니’와 론스타 수사

    [법서라] 윤석열의 ‘아픈 손가락’ 영화 ‘블랙머니’와 론스타 수사

      [편집자주] 전국 최대 법원과 최대 검찰이 몰려 있는 서울 서초동에는 판사, 검사, 변호사뿐만 아니라 그들을 취재하는 기자들도 있습니다. 일반 국민의 눈으로 보는 법조계는 이상한 일이 참 많습니다. 법조의 뒷이야기와 속이야기를 풀어드리는 ‘법조기자의 서리풀 라이프’, 약칭 ‘법서라’를 토요일에 선보입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블랙머니‘는 론스타 펀드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을 다루고 있습니다. 외환은행은 대한은행으로, 론스타펀드는 스타펀드로 나옵니다. 영화와 실제 사건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등장 인물은 허구이지만, 배우 조진웅이 연기하는 ‘막프로’ 양민혁 검사는 여러모로 윤석열 검찰총장을 떠오르게 합니다. ‘막프로‘는 막나가는 검사라는 뜻인데, 양 검사는 우연한 기회에 대한은행 헐값 매각 사건 수사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 소속인 그는 대검 중수부가 수사하는 스타펀드 수사와 별개로 진실을 파헤치며 부당한 외압에 맞서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배우 조진웅과 윤 총장의 외모가 비슷한 편입니다. 극 중에서 양민혁 검사가 기자회견에서 수사 외압을 밝히는 장면은 윤 총장이 2013년 국정원 댓글 수사 당시 국정감사장에서 윗선의 수사 개입을 폭로한 장면을 연상하게 합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건 윤 총장이 2006년 대검 중수부에서 론스타 수사를 담당했다는 겁니다.   ●박영수, 채동욱, 윤석열…대검 중수부 전원 투입  당시 대검 중수부장은 박영수 특검, 수사기획관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었습니다. 윤 총장은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부부장검사였지만 현대차 비자금 조성 첩보를 듣고 중수부로 파견옵니다.  최고의 ‘칼잡이’들이 모여있는 대검 중수부는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에 배당된 사건을 가져왔고, 2006년 3월 30일 서울 역삼동의 론스타 본사와 임원 자택 등 8곳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으로 강제 수사의 신호를 알렸습니다.  오광수 중수2과장 등 4명의 검사로 출발한 수사팀은 그해 8월 중수1과 인력이 전부 투입됐고, 검사 20여명을 포함해 수사팀은 전체 약 100명에 달했습니다. 국정농단 특검팀의 규모가 검사 20명을 포함해 약 100명 상당인 것을 비교해보면 검찰이 얼마나 사활을 기울인지 알 수 있습니다. 중수 1과에는 최재경 과장, 윤석열 부부장, 이동열 부부장, 여환섭·윤대진·한동훈 검사가 있었고 중수2과에는 오광수 과장, 임진섭 부부장, 이복현·이영상 검사가 있었습니다.  론스타는 수사부터 재판까지 온갖 기록을 양산했습니다. 수사 때는 관련자 구속영장이 연거푸 기각되며 법원과 검찰이 강하게 충돌했습니다. 당시 이상훈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 부장판사, 민병훈 영장전담 부장판사와 박영수 대검 중수부장, 채동욱 수사기획관이 만나 영장 기각 관련 의견을 나눴다는 일화도 유명합니다. 영화 ‘블랙머니‘ 말미에는 ‘이 사건으로 구속된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문구가 나오는데,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은 기각됐지만,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이 구속됐습니다. 검찰은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에 대해 4차례, 변양호 전 국장에 대해 2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구속영장을 둘러싼 법원과 검찰의 갈등이 론스타 수사에서 시작됐다고 봅니다. 법원이 연달아 기각하자 검찰은 항의의 의미로 영장 내용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재청구하며 반박 성명을 내기도 했습니다. 정상명 검찰총장마저 “승복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냈고, 검찰 고위 관계자는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며) 검찰 수사에 인분을 뿌리고 있다”는 원색적인 말로 법원을 비판했습니다.   ●1·2·3심 전부 무죄…검찰의 완패  검찰은 약 9개월간 수사 끝에 2006년 12월,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검찰은 2003년 론스타가 한국의 대형은행을 헐값에 사들인 뒤 단기간에 팔아치워 이득을 보려고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과정에서 금융 당국 책임자들이 로비스트에 매수됐다고도 했습니다. 결국 검찰은 변 전 국장과 이 전 행장 등을 배임 등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영화 ‘블랙머니’의 시놉시스에는 ‘자산가치 70조 은행이 1조 7000억원에 넘어간 희대의 사건 앞에서 양민혁 검사는 금융감독원, 대형 로펌, 해외펀드 회사가 뒤얽힌 거대한 금융 비리의 실체와 마주하게 되는데…‘라고 돼 있습니다. 시놉시스 역시 검찰 수사 결과 내용과 일맥상통합니다.  법원 재판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당시만해도 사상 최다인 86차례 공판 끝에 1심이 마무리됐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1심이 100회의 공판을 진행한 것과 비견되는 수준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핵심 쟁점인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 자본 비율 전망치 산출과 론스타의 인수자격을 부여하는 과정에 변 전 국장의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시 외환은행은 BIS 비율 전망치를 비관적으로 작성했는데, 이는 인수 가격을 낮추려는 배임의 목적이 아니라 협상 결렬 가능성을 줄이려 한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론스타가 원하는 대로 매각하는 것이 불가피했다고 본 것이죠.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습니다.  이와 별도로 외환카드 주가 조작으로 증권거래법 위반 등 유죄판결이 확정됐지만, 핵심인 헐값 매각에서는 전원 무죄가 나왔습니다.   ●현 윤석열 사단, 대부분 론스타 수사팀 소속  윤 총장을 중심으로 당시 수사팀에 속했던 검사는 현재 ‘윤석열 사단’으로 불립니다. 검찰에 남아있는 대부분 검사가 중책을 맡고 있습니다. 당시 중수부에 있던 여환섭, 윤대진, 한동훈 검사는 검사장이 됐습니다. 1심 판결문에 주임검사로 이름을 올린 구본선, 심재돈, 조상준, 이복현, 이두봉, 윤석열 중 심재돈 검사를 제외하고 모두 현직입니다. 구본선, 조상준, 이두봉 검사도 현직 검사장입니다.  영화 ’블랙머니‘의 정지영 감독은 윤 총장을 시사회에 초청하려고 했지만 불발됐다고 합니다. 정지영 감독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윤 총장이 당시 론스타를 수사한 검사 중 한명이었는데, 실제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검사 중 착안한 게 있느냐’는 질문에 “실제 론스타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과 영화 속 검사들이 닮았을 수도 있고 전혀 아닐 수도 있다. 그건 관객의 몫으로 남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윤 총장은 검사 생활을 하면서 많은 부침을 겪었습니다. 중수부 시절 현대차 비자금과 론스타 수사, 그를 ‘강골 검사’로 알린 국정원 댓글 수사 이후에는 한직을 전전했습니다. 특검팀에서는 국정농단 수사를 담당했고, 서울중앙지검장 시절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심판대에 올렸습니다. 화려한 이력의 윤 총장이지만 론스타 수사만큼은 아쉬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윤 총장이 론스타를 수사하면서 사모펀드에 정통하게 됐고, 그때 경험이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모펀드 의혹에 대해 수사를 결심하게 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결국 론스타는 2012년 한국 정부때문에 매각이 지연됐다며 5조3000억원 규모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했습니다. 하나금융지주에 제기한 1조원대 손해배상 중재는 지난 4월 하나금융이 승소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정부에 제기한 소송도 유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연애의 맛3’ 강두, 이나래와 이별..2번째 만남 후 무슨 일이?

    ‘연애의 맛3’ 강두, 이나래와 이별..2번째 만남 후 무슨 일이?

    “우리 만남은...여기까지...” TV CHOSUN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연애의 맛’ 시즌3 강두가 두 번째 데이트 만에 이나래와 이별하게 되는, 안타까운 사연이 공개된다. 지난 10월 31일 방송된 ‘연애의 맛’ 시즌3 첫 회에서는 강두와 이나래의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첫 번째 데이트가 펼쳐졌다. 강두는 한강 피크닉부터 단골 식당에서의 저녁 식사, 코인노래방에 이어 단돈 1만 원에 멜론과 소주를 즐길 수 있는 포장마차까지 돈이 많이 들지 않는, 풍성한 데이트를 선사했다. 더불어 “괜찮은 사람 같다.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먼저 말한 이나래와 “다시 보고 싶다. 근래 중 오늘처럼 웃은 날이 없다”는 강두의 수줍은 미소가 훈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와 관련 21일(오늘) 밤 11시 방송되는 ‘연애의 맛’ 시즌3 4회에서는 강두과 이나래의 마지막인지 몰랐던 ‘두 번째 데이트’가 펼쳐진다. 강두는 밤샘 야간 아르바이트로 고단했음에도 불구, 두 번째 데이트를 위해 이나래에게 달려갔던 터. 강두는 “만나고 싶었는데...”라며 이나래를 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터트리면서 그동안의 설렘과 기다림을 표현했다. 이어 데이트를 위해 이나래와 장소를 이동하려던 순간, 강두가 갑자기 “제작진 차타고 갈까요?”라며 기발한 제안을 건넸던 것. 강두의 신선한 발상에 스튜디오의 MC와 패널들은 “처음 보는 그림이다!”라며 박수를 치면서 폭소했다. 강두와 이나래는 데이트 장소인 동묘에 도착했고, 처음 와본 동묘시장이 신기한 듯 이나래는 연신 놀라워했다. 그리고 천 원짜리 토스트와 식혜부터 모자에 장갑까지, 이나래에게 뭐든지 사주고 싶은 강두는 본의 아닌 과소비를 하며 ‘동묘 만수르’의 면모를 발산했다. 두 사람이 동묘시장을 돌아다니며 알콩달콩 행복한 시간을 보낸 가운데, 강두는 미리 현금결제를 마친 택시에 이나래를 태워 보내며, 마지막 배웅까지 완벽하게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두 번째 데이트가 끝나고 열흘 뒤, 카페에서 강두를 기다리고 있던 이나래는 할 말이 있어서 어렵게 용기를 냈다며 조심스럽게 운을 떼 불안한 기운을 드리웠다. 이어 이나래가 강두에게 “우리 만남은...여기까지”라며 안타까운 이별을 고했던 것. 두 번째 데이트 만에 헤어짐이라는 충격적인 결말을 선택한 이나래의 속마음은 과연 무엇일지, 강두와 이나래의 마지막 만남은 어떤 모습일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제작진은 “서로 환하게 웃는 햇살 미소가 똑 닮았던 강두와 이나래가 두 번째 데이트 만에 이별하게 됐다”며 “진정한 사랑을 찾으려고 했지만, 이별을 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지, 두 사람의 이야기를 지켜봐 달라”고 전했다. 한편 TV CHOSUN 예능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연애의 맛’ 시즌3 4회는 21일(오늘) 밤 11시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홍준표·유시민, 다정한 커피 타임 포착… KBS1 새 토크쇼 ‘정치합시다’

    홍준표·유시민, 다정한 커피 타임 포착… KBS1 새 토크쇼 ‘정치합시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KBS1 새 토크쇼 ‘정치합시다’에서 대한민국 정치 현실을 이야기한다. KBS는 오는 22일 첫 방송하는 ‘정치합시다’의 포스터를 21일 공개했다. 포스터에는 그동안 주로 대립각을 세웠던 홍 전 대표와 유 이사장이 국회 앞에서 다정하게 커피를 마시는 모습, 함께 유쾌하게 웃는 모습 등이 담겼다.‘정치합시다’는 ‘지식다방’과 ‘민심포차’ 두 코너로 구성됐다. ‘지식다방’ 코너에서는 각 진영을 대표하는 논객과 학계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이 모여 정치의 본질을 알아본다. 틀에 박힌 이슈 중심의 단발성 토론이 아니라 정치·민주주의·선거·의회 등 키워드를 중심으로 시민의 정치 참여가 갖는 의미를 살펴본다. ‘민심포차’ 코너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각 지역을 순회하며 민심의 향배를 여론조사로 분석해본다. 믿거나 말거나 식의 여론조사가 아닌 신뢰도 100점의 여론조사를 통해 내년 실시되는 21대 총선까지 분석해낸다는 목표다.첫 방송에는 홍 전 대표와 유 이사장이 출연한다. 두 사람은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 등 용어를 놓고 대립하기도 했지만, ‘제 기능을 못하는 국회’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로 거침없이 비판한다. 첫 방송 촬영 당시 국회 의정관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토론은 여의도 포장마차로 밤늦게까지 계속됐다는 후문이다. ‘정치합시다’는 오는 22일 밤 10시 50분 KBS1에서 첫 방송된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여기는 호주] 집에 든 도둑 잡았는데 도둑이 사망…집주인은 무죄

    [여기는 호주] 집에 든 도둑 잡았는데 도둑이 사망…집주인은 무죄

    집안에 들어온 도둑을 발견하고 도주하던 도둑을 쫓아가 잡아 경찰에 넘겼지만 도둑이 사망하는 바람에 살인죄로 재판을 받던 남성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16년 (이하 현지시간) 3월 26일 토요일 새벽 3시 20분 뉴사우스웨일스주 뉴캐슬의 해밀턴에서 살고 있던 벤자민 배터햄(당시 나이 33, 요리사)와 친구는 집에서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배터햄의 약혼녀와 딸은 옆집 부모님 집에 있었다. 배터햄과 친구는 딸의 방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를 듣고는 딸의 방으로 갔다. 그때 도둑이 약혼녀의 가방을 훔쳐 들고는 딸의 방에서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도둑은 옆문을 통해 도주를 했고, 배터햄은 도둑을 쫓아 갔으나 놓쳤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한테 휴대전화를 빌려 경찰에 신고를 하는 중에 숲 속에 숨어 있던 도둑이 달아나는 것을 발견했다. 다시 추격전이 벌어졌고, 집에서부터 약 365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도둑을 덮쳐 바닥에 쓰러뜨렸다. 몸무게가 118kg에 이르는 도둑은 강한 저항을 했지만 배터햄이 가까스로 도둑의 머리를 바닥에 밀어 부쳐 제압했다. 이 와중에 도둑은 배터햄의 팔을 물어 배터햄을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배터햄은 “7살난 딸아이가 있는 내집에 들어와 도둑질을 해?”라고 소리쳤고, 도둑은 “숨을 쉴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당시 이웃 주민들이 “이제 경찰이 오니 그만해라”고 만류를 했지만 배터햄은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도둑을 바닥에 짓누르고 있었다. 당시 도둑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을 정도의 상당한 양의 마약에 취해 있는 상태였고, 비만으로 인한 심장질환을 가지고 있었지만 배터햄이 이를 알 수는 없었다. 경찰이 도착 했을 무렵 도둑은 거의 의식불명 상태였다. 심폐소생술을 하고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다음날 2번의 심장마비가 왔고 결국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사망했다. 도둑이 사망함에 따라 배터햄은 살인죄로 구속 되었다. 당시 언론과 페이스북에는 “집안에 들어온 도둑을 쫓아가 잡아 경찰에 넘겼는데 살인죄가 웬 말이냐“며 '배터햄에게 자유를' 이라는 서명 운동이 대대적으로 열렸다. 배터햄 무죄 석방을 위한 시위가 시드니 시청 앞에서 열렸고, 뉴사우스웨일스주 수상에게 배터햄을 풀어주라는 청원이 쇄도 하는 등 한동안 호주를 들썩이게 했다. 도둑의 이름은 리키 슬레이터(36)로 당시 상당한 양의 마약에 취해 있는 상태였고 그가 들고 있던 가방 안에는 흉기 세자루, 가위, 상당량의 마약이 있었다. 마약 소지죄, 절도, 주거침입 전과가 있었고, 심지어 2007년에는 16세 미성년자를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한 혐의로 감옥에 수감된 적도 있었다. 배터햄은 교도소에서 2개월 가량 수감 되었다가 그해 5월 2십만 호주달러 (약 1억6천만원)의 보석금을 내고 일단 가족에게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3여년이 지난 11월 4일부터 2주간에 걸친 재판이 열렸다. 법정에서는 도둑을 추적해 제압한 것이 정당방위인지 여부와 배터햄의 몸싸움이 과연 범인의 사망에 이르게한 인과관계가 있었는지에 대한 법정싸움이 벌어졌다. 슬레이터의 몸에 있던 치사량의 마약 성분과 비만에 의한 건강 악화로 심장마비가 올 수 있었다는 법의학자들 사이의 찬반증언도 있었다. 검사는 “배터햄은 주변사람들이 만류하는데도 계속 제압을 하는 등 슬레이터가 사망에 이르는데 충분한 인과관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배터햄은 “나는 단지 내 집에서 물건을 훔친 도둑을 잡아 경찰에 넘기는 시민의 의무를 다 하려고 했을 뿐이지 절대 살인의 의도가 없었다”고 진술했다. 배터햄의 변호사도 “배터햄은 법의 질서를 벗어날 수도 있었던 범인을 잡아 경찰에 인도했을 뿐이며, 당시 범인의 마약 상태나 심장질환등에 관해 전혀 알 수가 없었다”고 변론했다. 결국 20일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무죄를 인정했고, 배터햄은 무죄 판결을 받아 자유의 몸이 되었다. 무죄 판결을 받고 법정을 나온 배터햄은 “지난 3년 동안은 정말 힘든 시기였다. 무죄 판결을 받아 너무 다행이고 이제 보통의 삶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태 시드니(호주)통신원 tvbodaga@gmail.com
  • ‘동백꽃 필 무렵’ 이정은 모자에 담긴 이토록 슬픈 이야기 [SSEN리뷰]

    ‘동백꽃 필 무렵’ 이정은 모자에 담긴 이토록 슬픈 이야기 [SSEN리뷰]

    “엄마 이 모자만 벗자” ‘동백꽃 필 무렵’ 정숙(이정은)이 손자 필구(김강훈)의 야구 경기 응원을 가는 길에 썼던 이 촌스러운 모자. 방송 당시 지나쳤던 이 분홍색 모자에는 딸 공효진(동백 역)을 향한 그리움, 사무침, 미안함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었다.‘동백꽃 필 무렵’ 공효진이 기억하지 못했던 이정은의 마지막 부탁이 있었다. 돈을 벌어올 테니 보육원에서 딱 1년만 기다려 달라는 것. 눈물을 쏙 빼놓은 엄마의 진심에 전국 가구 시청률은 18.1%, 20.4%를 기록하며 전채널 수목극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2049 수도권 타깃 시청률은 9.9%, 11.5%를 기록했다. (닐슨코리아 제공) 지난 20일 방송된 KBS 2TV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극본 임상춘, 연출 차영훈, 강민경, 제작 팬엔터테인먼트)에서 동백은 연이은 이별에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고, 엄마 정숙(이정은)만큼은 자신을 떠나지 말아 달라 간절히 부탁했다. 자신을 버리기 전까지의 7년, 그리고 돌아와 3개월, 정숙은 동백에게 ‘7년 3개월짜리 엄마’였기 때문. 엄마 없이 보낸 세월을 고깟 보험금으로 퉁칠 수 없었던 동백은 자신의 신장으로 엄마가 수술을 받고 오래오래 옆에 있어 주길 바랐다. 하지만 정숙도 완강했다. 그동안 해준 것 하나 없는데, 자식의 신장마저 떼어 받기엔 너무도 염치가 없었다. 그렇게 애초부터 죽을 날을 받아 놓고, 자식을 보듬어 주기 위해 찾아왔던 정숙. 그런데 그 3개월간 보듬을 받은 건 도리어 자신이었고, 그 따뜻함에 자꾸만 더 살고 싶어졌다. 그 간절한 마음을 단념시킨 건 주치의(홍서준)의 청천벽력과도 같은 진단이었다. 정숙의 병은 유전이라 동백 역시 50%의 확률로 정숙과 같은 병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사람의 피를 다 뺀 후 갈아서 넣는 투석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잘 알고 있던 정숙은 “나는 그냥 내 딸 인생에 재앙이네요”라며 절망했다. 그리곤 동백을 떠나리라 다짐했다. 속도 좋은 동백이 자꾸만 자신의 신장을 떼어주겠다며 엄마를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했기 때문. 아니나 다를까, 유전병의 위험이 있다는 사실에도 동백은 “그냥 할래요”라며 신장 이식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았다. 여태껏 자신의 불운은 이미 다 썼고, 이제 행운만 받아낼 차례였기에 “그깟 오십 프로, 제가 이겨요”라며 자신한 것. 그렇게 행운이 오리라 철석같이 믿었는데, 병실로 돌아와 보니 정숙은 사라졌다. 심지어 투석도 받지 않은 상태. 당장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던 수치에 동백은 헤어진 용식(강하늘)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를 찾아 달라 애원했다. 그러나 용식이 정숙을 찾았을 땐, 정숙은 모텔 방 침대에 홀로 누워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었다. 그 곁에 놓여있던 정숙의 사망 보험금과 편지 한 통은 슬픔을 배가시켰다. 그 편지 속에는 정숙의 독살스러웠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 가정 폭력 때문에 어린 동백을 안고 무일푼으로 집을 뛰쳐나온 정숙, 애 딸린 여자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쪽방 딸린 술집에서 주방일을 돕는 것뿐이었다. 그곳에서 ‘아빠’도 배우지 못한 동백이 ‘오빠’를 배우고, 술집 여자 취급을 받게 되자 엄마의 마음은 썩어 문드러져갔다. 동백을 보육원에 ‘버린’ 이유도 그래서였다. 그래야 항상 배곯아 있던 동백이 배불리 밥을 먹으며 학교도 다닐 수 있었기 때문. 정숙은 돈을 벌어 올 테니 1년만 기다리라 부탁했다. 그러나 이 중요한 말을 잊은 동백은 미국으로 입양을 가게 됐고, 그렇게 두 모녀는 엇갈리게 됐다. 정숙은 동백이를 입양한 부모를 찾아가 감사의 마음으로 분홍색 모자를 전했지만, 이내 동백이가 파양된 사실을 알게 분홍색 모자를 다시 가져왔다. 동백이 있으나, 없으나 지난 34년간 동백을 하루도 빠짐없이 사랑한 정숙. ‘자신을 버린 엄마’ 때문에 평생이 외로웠던 동백에게 “허기지지 말고, 불안해 말고, 훨훨 살아. 훨훨”이라며 엄마의 마음이 온전히 담긴 편지를 남겼다. 안방극장에 애절한 눈물을 몰고 온 동백과 정숙 모녀는 이렇게 헤어지고 마는 것인지, 그 마지막 이야기에 관심이 집중된다. 한편, 연쇄살인마 까불이의 범행동기가 드러났다. 바로 철물점을 운영하는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들의 태도. 자신의 기름때 낀 손톱을 경멸하고, 땀자국을 멸시하고, ‘똥파리’ 취급해 살인을 저질렀던 것. 까불이는 열등감이 만들어낸 괴물이었다는 사실에 시청자들 역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동백꽃 필 무렵’ 최종회는 오늘(21일) 목요일 밤 10분 앞당겨진 9시 50분에 KBS 2TV에서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오늘부턴 출근 때도, 주말엔 수험생 이동 비상… 불편 더 커진다

    오늘부턴 출근 때도, 주말엔 수험생 이동 비상… 불편 더 커진다

    첫날 열차 운행률 75.3%까지 떨어져 퇴근길 열차 10분 이상 지연 ‘혼란’ 현장 구매 노인들 열차 이용 불편 호소 “평소 5분… 오늘 2시간 기다려 기차 타” 비상 인력 가동, 평시 62% 수준 그칠 듯인력 충원과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과 코레일 자회사 노조가 20일 오전 9시 연대 파업에 돌입하면서 열차 이용에 차질이 빚어졌다. 철도 파업은 2016년 ‘9·27 파업’ 이후 3년 만이며 자회사 연대 파업은 처음이다. 코레일에 따르면 파업 첫날 열차 운행률은 평시(3178편) 대비 75.3%(2394편)로 떨어졌다. 노조 파업이 출근 시간 이후 진행돼 혼란을 다소 줄일 수 있었지만 둘째 날(21일)부터 열차 이용 불편이 가중될 전망이다. 더욱이 열차 승무를 담당하는 코레일관광개발과 고객센터·매표·도심공항터미널 출국 업무 등을 수행하는 코레일네트웍스 노조도 파업에 들어가 철도 현장마다 혼란이 일었다. 서울역과 수서역 등 주요 역은 대란 수준의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열차표를 역보다 스마트폰 앱 등 온라인으로 구입하고 파업이 예보돼 미리 표를 변경했기 때문이다. 다만 노인들과 현장 구매에 나선 이용객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대구행 열차를 기다리던 최은수(56)씨는 “평소 5분쯤 기다리면 기차를 탔는데 2시간 이상 대기해야 했다”고 말했다. SRT는 전 석이 매진됐다. 저녁 퇴근길부터 혼잡이 가중됐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운행하는 1호선은 파업 여파로 열차 운행률이 평소보다 떨어지면서 열차 운행 간격도 벌어졌다. 신도림역 등에서는 “열차가 평균 10분 이상 지연될 수 있으니 양해를 구한다”는 내용의 방송이 나왔다.코레일은 비상수송체제로 전환하고 가용자원을 총동원하고 있다. 노조 파업에 따른 운용 인력은 필수유지인력 9630명과 대체인력 4686명 등 총 1만 4316명으로 평시(2만 3038명) 대비 62.1% 수준이다. 이용객이 많은 출퇴근 시간 광역 전철과 수송 인력이 많은 KTX에 대체인력을 집중 투입해 열차 운행 횟수를 최대한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수도권 전철은 평시 대비 82.0% 운행한다. 시민 불편을 줄이기 위해 출퇴근 시간대에 열차와 인력을 투입해 출근 시간에는 92.5%, 퇴근 시간에는 84.2%를 유지하기로 했다. KTX 운행률은 평시 대비 68.9%, 일반 열차는 새마을호 58.3%, 무궁화호 62.5% 등 필수유지 수준으로 운행할 예정이다. 필수유지 업무가 아닌 화물열차는 내부 대체기관사를 투입해 평시 대비 31.0% 운행한다. 다만 주말과 휴일 대학별 수시 면접과 논술, 면접고사 등이 예정된 가운데 열차 운행이 감소하면서 수험생들의 불편과 불안감이 높아질 수 있다. 코레일은 수험생이 열차 출발이 지연되거나 운행 도중 지연이 예상되면 KTX를 포함해 선행 열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 무료 환승 조치한다. 또 수험생이 탄 열차 운행이 늦어지면 하차역에서 시험장까지 긴급 수송할 수 있도록 경찰 등과 협조하는 한편 해당 대학에 수험생 도착 상황도 사전 통보하기로 했다. 손병석 코레일 사장은 철도노조 파업과 관련해 “국민 불편을 줄이기 위해 모든 자원을 동원해 안전하게 열차를 운행하고, 대화를 통한 빠른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사과했다. 노조와 파업 직원들에게는 “한꺼번에 관철하는 파업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면서 대화로 문제를 풀어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서울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트럼프, 조이는 탄핵 올가미에 건강이상설까지

    심장마비설엔 “정례적 검진 불과” 반박 2주 차에 접어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외압 의혹에 대한 탄핵 조사 공개 청문회에서 대통령에 불리한 증언이 쏟아져 나왔다. 워싱턴포스트와 CNN 등에 따르면 19일(현지시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유럽 담당 국장으로 근무 중인 알렉산더 빈드먼 육군 중령은 이날 청문회에 출석해 “미국 대통령이 외국 정부에 미 시민과 정적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는 것은 부적절했다”고 말했다. 빈드먼은 지난 7월 25일 트럼프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의 통화를 직접 들은 직원 중 한 명이다. 함께 증인석에 나온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유럽·러시아 담당 특별보좌관인 제니퍼 윌리엄스도 증언에 앞서 내놓은 성명에서 당시 통화가 “이례적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즉시 반발했다. 공식 트위터를 통해 “빈드먼의 전 상사인 팀 모리슨은 ‘빈드먼의 판단에 대해 우려했다’고 증언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공화당 의원들은 구소련 우크라이나 공화국 출신인 빈드먼이 3살 때 가족과 함께 도미한 것을 언급하며 미국에 대한 충성심이 의심스럽다는 반응을 내놨다. 트럼프는 이날 백악관 내각회의에서 빈드먼에 대해 “나는 그를 모른다”면서도 그가 남색 육군 정복을 착용한 것이 발언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그런 것 같다는 식으로 폄훼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6일 메릴랜드주 월터 리드 국립 군 의료센터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것을 두고 일각에서 심장마비설 등 건강 이상설을 제기한 것에 대해 “정례적인 건강검진에 불과했다”며 우려를 불식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서울광장] 한일 지소미아 종료가 사필귀정인 까닭/오일만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한일 지소미아 종료가 사필귀정인 까닭/오일만 편집국 부국장

    한일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는 태생부터 뭔가 이상했다. 쫓기듯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 와중인 2016년 11월 22일 국무회의에서 졸속으로 처리됐다. 재추진 발표 20여일 만이다. 과장급 실무협의 두 차례가 전부였다. 다음날 기자들을 피해 한국 국방장관과 주한 일본대사 간에 비공개로 조인식을 가졌다. 카메라 기자들은 밀실 협정 체결에 반발, ‘제2의 을사늑약’이라고 항변하며 취재를 거부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당시 공군참모총장이던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자신도 모르게 협정이 체결됐다”고 국회에서 폭로한 바 있다. 이명박 정권 말인 2012년 6월에도 마찬가지였다. 비밀리에 지소미아 체결을 추진했다가 밀실행정이란 거센 반발 끝에 서명 50분을 앞두고 전격 취소됐다. 국민 정서에 역행하면서까지 밀어붙였던 것은 미국과 일본의 압력이 강하게 작용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한일 지소미아는 한미일 삼각 군사공조를 만들려는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 전략에 기반을 두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중국의 급부상과 북핵·미사일 사태 악화로 국제 정세가 급변한 것이 배경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고 동북아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 한반도 분단 상황을 이용해 ‘전쟁 가능한 국가’로 회귀하려는 일본의 군사대국주의가 결합한 산물로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한일 지소미아는 미국과 일본에는 ‘복음’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가치가 크다. 지소미아 종료(23일 0시)를 앞둔 시점에 한미 안보협의회(SCM), 한미 국방장관회의, 한미일 3자 국방장관회담 등을 통해 전방위 압박에 나선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입장은 좀 다르다. 군사정보는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서로 등가성 있는 정보 교환이 핵심이란 측면에서 우리로선 효용성이 현격하게 떨어진다는 평가다. 한일 지소미아 체결 이후 최근까지 30건의 정보 교류가 있었지만 대부분 일본이 필요해서 요청했다고 한다. 일본이 한국에 준 북한 관련 정보는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는 ‘그저 그런’ 수준이다. 군사 전문가인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일본이 절실히 원하는 휴민트(인적 네트워크)를 비롯해 한국의 고급 정보를 통째로 내놓으라는 것이 지소미아의 본질”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상황에서 ‘안보상 신뢰관계 훼손’을 이유로 경제 보복을 감행한 아베 정권이 지소미아 종료에 반발하는 건 참으로 어이가 없다. 일본 스스로 ‘안보 신뢰가 없다’고 커밍아웃한 마당에 지소미아를 유지하자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런 일본의 무도한 경제 보복과 외교적 결례·무시 속에서 미일 압력에 굴복해서 지소미아를 연장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로서는 굴욕일 수밖에 없다. 군사대국화를 꿈꾸는 일본의 야욕을 우리 정부가 앞장서서 도와주는 꼴이 돼선 안 된다. ‘일본의 수출 규제 철회 없이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번복할 수 없다’는 정부의 입장은 누가 봐도 타당하다. 그럼에도 일부 정치권과 보수 언론은 ‘지소미아 종료로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며 연일 안보 불안을 자극하고 있다. ‘억지 춘향이’ 격으로 한미동맹 균열이나 미군 철수 가능성으로 몰아 가는 것 자체가 정파적 이익을 노리는 책략이란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연구실장은 “현재 미국의 세계 전략상 중국 견제가 가장 중요한데 한국만 한 군사 주둔지를 찾기는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았다. 엘리엇 엥겔 미 하원 외교위원장마저 “주한미군 철군은 바보짓”이라고 일갈하는 마당에 안보 불안을 부추기는 이유를 묻고 싶을 뿐이다. 식민지의 아픔을 겪은 우리로서는 가해자인 일본으로부터 더이상 굴욕을 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많다. 지소미아 종료든 연장이든 우리 국익에 따라 결정할 수 있는 주권의 문제라는 의미다. 일본이 결자해지의 정신으로 수출 규제를 해제하면 언제든지 복원될 수 있는 협정인 것이다. 과거사 반성도 없이 군사대국화로 향하는 아베 정권 편에 서서 지소미아 재개를 압박하는 미국이 되레 한미동맹의 호혜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믿는 국민들이 적지않다. 한미동맹이 우리에게 소중한 대외 전략의 중추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대한민국의 주권과 국익에 앞설 수 없다는 것이 대다수 국민들의 생각이다. 단언컨대 주권을 포기하면서 국익을 지킨 사례는 동서고금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역사가 주는 냉엄한 교훈이다. oilman@seoul.co.kr
  • [부희령의 다초점 렌즈] 수능 유감

    [부희령의 다초점 렌즈] 수능 유감

    글쓰기 강좌를 할 때는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번역가 자격으로 전문대학원 번역 특강을 하게 됐는데, 강사료에 대한 안내문을 읽어 보다가 마음이 위축됐다. 번역 경력과 학력에 따라 강사료 등급이 달라지므로 학사인지 석사인지 박사인지 명기해 달라고 적혀 있었다. 번역 능력을 가늠할 뚜렷한 척도가 없으니 공부를 많이 한 사람에게 더 높은 강사료를 지급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며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그러나 쪼그라들었던 마음이 쉽게 펴지지 않았는지 가까운 선배를 만나 밥을 먹는 자리에서 농담처럼 하소연했다. “어떻게 감히 고졸에게 학력을 적어 넣으라고 하죠?” 선배는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고졸이라고 하면 화낼 사람 많을 거야. 너는 대학을 다니다가 그만뒀잖아.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을 졸업하는 것보다 들어가는 게 더 중요하니까.” 나를 위로하려는 말이었겠지만 그래도 이력서에 쓸 때는 똑같이 고졸이라고 반박했다. 선배는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내가 직장 다니다가 뒤늦게 대학에 들어간 거 알지? 친구들이 학력고사 보던 날, 나만 시험을 안 봤어. 시험 끝나고 친구들과 만나서 놀기로 한 자리에 내가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더라. 네가 그 심정을 알아?” 마침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날이었다. 30여년 전 내가 대입 시험을 치를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수능에 주술적 힘이라도 있는 양 전날 저녁이면 어김없이 언급되는 수능 한파라는 단어. 점수대로 줄 세우는 시험인 줄 빤히 알면서, 시험장마다 수험생 모두(?)를 응원한다고,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고, 마지막(?)까지 더 힘내라고, 대문짝만하게 내걸린 현수막들. 교통 혼잡을 피하려 출근 시간을 한 시간 늦췄음에도, 지각할 뻔한 수험생을 순찰차가 시험장으로 긴급 수송해 줬다는 ‘미담(?)’의 속출. “국가 차원의 행사예요. 그토록 중요한 일이라면 적어도 두세 차례는 치러야 하는 거 아닌가요.” 솔직히 대학에 다니다 말았던 사람으로서 나는 학문 연구가 적성에 맞고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라는 견해를 갖고 있다. 다른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굳이 대학에 가서 연구자 자질을 지닌 소수의 들러리 역할을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찬바람 부는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날 수능을 보지 않은 대한민국의 고3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학생 신분이라는 이유로 현장실습이라는 강도 높고 낮은 수당의 노동에 시달리는 중? 수험표를 할인 쿠폰 삼아 치맥을 즐기는 친구들 사이에 끼어 앉아 뻘쭘해하는 중? 얘들아, 쫄지 마. 나는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공부 잘하는 건 여러 사람이 나눠 지닌 다양한 자질 중 하나일 뿐이야. 심지어 이 아줌마가 평생 배운 귀중한 지식은 모두 길거리에서 얻어들은 거란다. 공부는 필요하면 정말로 하고 싶어지는 것이고. 설마 너희가 그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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