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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도, ‘마한 옹관고분군’ 세계유산 잠정 목록 등재 신청

    전남도, ‘마한 옹관고분군’ 세계유산 잠정 목록 등재 신청

    전라남도와 나주시, 영암군과 함께 ‘마한 옹관고분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를 신청했다. 큰 항아리 모양의 토기안 옹관은 시신을 넣어 땅에 묻는 장례용 관으로 동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주로 어린이나 일반인의 무덤에 사용했으나, 영산강 유역의 마한 사회에서는 이를 지배층만의 특별한 묘제로 발전시켰다. 마한 옹관고분군은 3~6세기 영산강 유역에서 길이 2m, 무게 300kg에 달하는 거대 옹관을 제작하고, 영산강 물길을 따라 운반해 지배층 무덤에 매장하는 체계를 완성한 유산이다. 생산·유통·매장을 하나로 연결한 이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마한만의 독창적 장례 문화다. 이번에 신청하는 유산은 나주 오량동 요지, 나주 반남고분군, 나주 복암리고분군, 영암 시종고분군 등 4개소로 구성된다. 오량동 요지는 77기의 가마를 갖춘 옹관 생산지며, 반남·복암리·시종고분군은 이 옹관이 실제 매장에 사용된 지배층의 무덤이다. 전남도는 2025년 4월 잠정목록 등재 연구용역에 착수해 자문회의와 실무협의를 거쳐 유산명,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구성유산 범위 등을 확정했다. 이어 9월에는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고 국내외 전문가의 자문을 더해 12월 17일 최종보고를 완료했다.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는 본등재를 위한 필수 선행 절차로, 신청서 제출 후 국가유산청 심사를 거쳐 이뤄지며 잠정목록 등재 이후에는 등재신청서를 작성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심사를 받는다. 강효석 전남도 문화융성국장은 “마한 옹관고분군은 문헌 기록이 부족한 마한 문화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라며 “잠정목록 등재를 시작으로 세계유산 본 등재까지 최선을 다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전남도는 2026년 상반기 국가유산청 심사를 거쳐 하반기 잠정목록 등재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후 세계유산 등재신청서 작성에 본격 착수할 계획이다.
  • ‘톰과 제리’ ‘함께 가는 저녁길’ 성우 송도순 별세…향년 77세

    ‘톰과 제리’ ‘함께 가는 저녁길’ 성우 송도순 별세…향년 77세

    교통방송(TBS) 라디오 ‘함께 가는 저녁길’과 MBC 만화영화 ‘톰과 제리’의 목소리로 유명한 성우 송도순이 지난해 12월 31일 별세했다. 향년 77세. 1일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전날 오후 10시쯤 서울 광진구 건국대병원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1949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 예술대학)에 재학하던 1967년 동양방송(TBC) 성우 3기로 입사했다. 1980년 언론통폐합 후 KBS에서 성우로 활동했으며, TBS 개국 후 1990년부터 2007년까지 성우 배한성과 함께 ‘함께 가는 저녁길’을 17년간 진행했다. MBC 만화영화 ‘톰과 제리’의 해설 역할을 맡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미국 애니메이션인 ‘톰과 제리’는 대사가 없는 슬랩스틱 코미디지만, 국내에 방영되면서 원작에는 없는 해설이 더해졌다. 송도순은 2021년 극장판 ‘톰과 제리’에서도 내레이션을 맡았다. 그밖에 ‘싱글벙글쇼’, ‘저녁의 희망가요’, ‘명랑콩트’ 등을 진행했으며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내레이션과 ‘생생 정보통’의 해설 등을 맡았다. 드라마 ‘산다는 것은’, ‘사랑하니까’, ‘살맛납니다’에서는 직접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세바퀴’, ‘공감토크쇼 놀러와’ 등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자주 모습을 비췄다. 2015년 한국관광 명예홍보대사를 맡았으며 배한성, 양지운씨 등과 함께 스페셜스피치아카데미(SSA)를 개설해 후배들을 양성했다. 1975년 대한민국 방송대상 라디오부문 대상, 2020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은 남편 박희민씨와 아들 박준혁, 박진재, 며느리 채자연·김현민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3호실, 발인 3일 오전 6시 20분.
  • 불의 기운 지닌 ‘붉은 말’처럼 힘차게 달려라 [2026 적토마의 해]

    불의 기운 지닌 ‘붉은 말’처럼 힘차게 달려라 [2026 적토마의 해]

    천간과 지지 모두 ‘불의 성질’ 지녀생명력·활동성·변화가 강조되는 해현대차 포니·美 머스탱 등 ‘말 상징’인간과 신을 잇는 매개체로도 인식‘푸른 뱀의 해’ 을사년(乙巳年)을 보내고 ‘붉은 말의 해’ 2026년 병오년(丙午年)을 맞았다. 말은 털빛에 따라 다양한 표현이 있는데, 이 가운데 털빛이 붉은 말을 부르는 한글식 표현은 ‘절따말’이다. ‘붉은 말의 해’는 동아시아 전통 역법 체계에 근거한다. 하늘의 기운을 풀어낸 열 개 천간(天干)과 땅의 기운을 나타내는 열두 개 지지(地支)로 시간과 우주의 질서를 표현한다. 천간 중 병(丙)은 오행에서 불, 동물 상징과 연결된 지지 중 오(午)는 말을 상징한다. 오 또한 불의 성질을 지닌 지지로 분류되기 때문에, 병오년은 천간과 지지 모두 불의 기운을 지닌 해로 해석된다. 불은 붉은 색, 태양, 열, 생명력, 확산과 표출의 의미를 갖는다. 계절로는 여름, 시간으로는 정오에 해당한다. 이런 불의 속성이 말이라는 형상과 결합한 병오년은 전통적으로 활동성과 변화가 강조되는 시기로 인식됐다. 말은 인류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동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인간은 야생마를 길들여 타고 다니면서 이동의 범위를 크게 확장했다. 이는 전쟁과 교역, 탐험을 가능하게 한 이동 수단이자 노동력이었으며, 문명이 형성되는 데 핵심 요소로 작용했다. 근대 이후 운송수단이 기차와 자동차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옛 기억은 분명히 남아있다. 현대자동차가 처음 독자 생산한 승용차는 포니(조랑말)였고, 에쿠스 역시 라틴어에서 말을 뜻한다. 미국 자동차 머스탱도 북미 지역 야생마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탈리아 자동차 페라리는 도약하는 말을 상징으로 쓴다. 속세의 이동 수단인 말은 또한 다양한 문화에서 생과 사, 인간계와 신성한 세계를 잇는 경계의 존재로 여겨졌다. 신라 천마총에서 출토된, 하늘을 힘차게 날아가는 말 그림인 천마도(天馬圖)가 대표적이다. 동아시아 전통에선 십이지지 동물들을 방위와 시간을, 인간의 삶을 수호하는 존재로 형상화해 십이지신(十二支神), 또는 십이신장(十二神將), 십이신왕(十二神王)이라 불렀다. 열두 동물은 각각 의미를 갖는다. 자신(子神·쥐)는 지혜와 다산, 축신(丑神·소)은 인내와 성실, 인신(寅神·호랑이)은 용맹과 용기, 사신(巳神·뱀)은 통찰과 신비, 유신(酉神·닭)은 성실과 경계 등이다. 이중 오신(午神)은 수행과 안락, 자유,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관장하는 존재로 설명된다. 한국 무속에서는 말을 탄 신(神)을 표현한 형상이 자주 등장한다. 하얀 말을 탄 백마신장은 장군신으로서 공동체를 수호하는 존재로 여겨졌으며, 무신도에는 붉은 말을 탄 장군의 모습도 나타난다. 말 색깔은 달라도 인간과 신을 매개하는 역할은 동일하며, 붉은 말은 불의 힘과 전투성을 강조하는 상징으로 사용된다. 불교 회화에서도 말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태고사 시왕도와 같은 불교 탱화에는 저승사자가 말을 타고 망자를 인도하는 장면을 묘사해놨다. 이는 죽음 이후의 이동과 이행을 상징한다. 장례 행렬에 사용된 상여 장식 꼭두에 말 탄 인형들이 있는데 역시 이런 인식과 연결된다. 이육사는 시 ‘광야’에서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며 고난과 희생 속에서도 미래를 향한 강한 믿음을 노래하기도 했다. 말과 관련된 속담도 많다. ‘말은 타 봐야 알고 사람은 사귀어 봐야 안다’는 경험을 통한 판단의 중요성을, ‘말이 천 리를 가고 고삐는 손에 있다’는 능력에 대한 통제와 책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좋은 말은 마구간에 있어도 빛이 난다’는 본질적 가치가 환경과 무관하게 드러난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한반도 역사에서 병오년에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병오박해다. 1846년(조선 헌종 12년)에 발생한 병오박해는 다른 박해에 비해 희생자가 적었지만 한국 최초의 가톨릭 사제이자 성인으로 시성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순교한 사건으로 중요도는 크다. 띠로 성격을 파악하거나 십이간지에 색깔을 입혀 해석하는 게 과학적이지 않다는 건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사소한 의미라도 붙잡아 마음을 다잡고 싶은 게 새로운 시작, 새해를 맞이하는 심정이기도 하다. 붉은 말의 해에는 달리되 고삐를 쥐고, 불타오르되 소진되지 않는, 속도 속에서도 쉬어가고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배울 수도 있다. 말의 등에 어떤 마음으로 올라탈지는 각자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 [부고]

    ●조중근씨 별세, 조길호(전 문화일보 기자)·일호·영호(금강산업)씨 부친상, 정미영·황인순·이명희(국민일보 논설위원·종교전문기자)씨 시부상, 조원재(수원 포에버의원 의사)씨 조부상=2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1일 (02)3410-3151 ●임성기(전 대전방송 대표)씨 별세, 최려자씨 남편상, 임진아·수아·준구씨 부친상=28일 순천향대학교 서울 장례식장, 발인 31일 (02)797-4444 ●오광철(전 인천일보 대표이사)씨 별세, 이인숙씨 남편상, 오창익씨 부친상 = 29일 인천 길병원 장례식장, 발인 31일 인천가족공원 (032)460-3444
  • 50여년을 한옥 건축 한 길…김정락 대목장 별세

    50여년을 한옥 건축 한 길…김정락 대목장 별세

    50여 년간 호남 지역의 한옥 건축을 주로 지어온 척당 김정락 대목장이 29일 오전 1시 10분께 전북 부안군 노인요양병원에서 별세했다. 90세. 대목장(大木匠)은 집 짓는 일부터 재목을 마름질하고 다듬는 공술(工術) 일체를 기법에 따라 발휘하는 목수를 말한다. 문짝이나 가구 등을 만드는 소목장과 구분해서 대목장이라고 한다. 부안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당에 다닐 때부터 도편수 김형오, 김영선, 국가무형유산 대목장 고택영 등을 사사했다. 전북 전주 한옥체험관 세화관, 김제 대성리 학성강당, 정읍 고부향교, 임실 필봉농악전수관, 전주 부채문화관, 부산 여산 송씨 세덕서원, 충남 거익선생 신도비각 등을 짓거나 수리했다. 유족은 부인 강연순 씨와 사이에 2남 6녀(김춘화·계화·택호·명화·경화·순화·만숙·동석)와 사위 노환도·안병일·이광재·이준화·나재희(MBC 조명감독) 씨, 며느리 김미경·황희정 씨 등이 있다. 빈소는 부안 호남장례식장 1호실이며, 발인은 31일 오전 10시다. (063)581-1004.
  • ‘가족’에 천착했던 황영성 화백 별세

    ‘가족’에 천착했던 황영성 화백 별세

    조선대 명예교수이자 원로작가인 황영성 화백이 27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84세. 고인은 지난 60년 동안 일관되게 고향과 가족, 초가집 등 정감 있는 소재에 천착해왔다. 1941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난 고인은 6·25 전쟁 당시 전남 광주에 정착해 평생 터전으로 삼았다. 조선대 미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1965년 나주 영산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1967년 국전에 입선했으며 6차례 특선과 1973년 국전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받았다. 1969년부터 조선대에서 강사, 부교수, 교수로 강단에 섰다. 1997년 조선대 미술대학장, 1999년 부총장을 역임했다. 2011∼2014년에는 광주시립미술관장을 지냈다. 이후 광주 동구에 있는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등을 지냈고, 이탈리아 나폴리 현대미술관, 독일 드레스덴 미술관, 프랑스 생테티엔 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2024년 2월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작품 활동 60년을 돌아보는 ‘우주 가족이야기’전을 열었다. 1970년대 초기 작품인 ‘회색시대’부터 1980년대의 ‘녹색시대’, 2010년대의 ‘모노크롬 시대’를 거치면서도 작품 중 상당수의 주제는 고향과 가족이었다. 유족으로 부인 김유임씨와 1남 2녀가 있으며 빈소는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발인은 30일.
  • 현정은 회장 모친, 김문희 용문학원 명예이사장 별세

    현정은 회장 모친, 김문희 용문학원 명예이사장 별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모친인 김문희 용문학원 명예 이사장이 지난 24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97세. 고인은 1928년 경북 포항에서 고 김용주 전남방직 창업주의 장녀로 태어났고, 1949년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966년 재단법인 겸산학원과 강문고등학교를 인수해 1970년 용문학원 및 용문고로 명칭을 변경했다. 고인은 1970대와 1980년대에 사단법인 전문직여성 한국연맹(BPW코리아) 및 한국여성유권자연맹 회장, 한국걸스카우트연맹 총재,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청소년 교육사업과 여성의 권익 신장을 위해 헌신했다. 1998년부터 2017년까지 용문학원 이사장을 지냈고, 10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해 용문학원을 명문 사학으로 육성하는 데 힘썼다. 2005년에는 임당장학문화재단을 설립해 초대 이사장으로 12년간 재직했다. 청소년 선도 유공 국민훈장 ‘동백장’과 ‘김활란 여성 지도자상’을 받았다. 고인은 남편인 고 현영원 전 현대상선 회장과의 사이에 차녀인 현 회장(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배우자) 등 4녀를 뒀다. 고 김창성 전방 명예회장과 김무성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가 동생이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7일.
  • 구석 구석 돌고 돌아 찾은 곳… 설렘도 아픔도 마음에 오롯이

    구석 구석 돌고 돌아 찾은 곳… 설렘도 아픔도 마음에 오롯이

    광복 80주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기릴 것이 참 많은 한 해였습니다. 올해도 ‘서울신문 렛츠고’는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쉼 없이 돌았습니다. 여정은 혼자였으되 독자들의 시선은 등에 늘 묵직하게 매달려 있었지요. 올해 찾았던 곳 가운데 되새길 만한 곳을 추려 봅니다. 지난 시간의 단순 복기가 아닌, 발견의 기쁨을 새삼 각인하고 공유해 보려는 것이어서 느낌이 각별합니다. 흔히 발견의 시대는 저물었다고들 하지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여행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새로이 보는 눈을 갖는 것이니까요. 1 [지리산 종주:전남 구례~경남 산청] 버킷리스트 하나를 채우다 올해 시작은 어수선했습니다. 비상계엄 여파로 주변에 ‘밤새, 안녕’을 물어야 하는 고통의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혼돈의 와중에 평소 꿈꿨던 지리산 종주를 떠올렸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한 해를 견딜 힘을 얻기에 제격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지리산 종주 코스는 대체로 들머리의 앞 글자와 날머리의 앞 글자를 딴 이름으로 정합니다. 저는 ‘성중종주’를 추천합니다. 전남 구례군 성삼재에서 출발해 노고단과 최고봉인 천왕봉(1915.4m)을 찍고 경남 산청군 중산리로 내려섭니다. 거리는 34㎞, 보통 새벽에 성삼재를 출발하는 1박2일 여정을 택하지만 몸에 근육이라곤 없는 도시인의 수준을 고려해 2박 3일로 늘려잡았습니다. 대신 좀 더 여유있게 첫째 날 노고단, 둘째 날 천왕봉 해돋이를 감상했습니다. 겨우 한 번 종주하고 지리산의 참모습을 알 수는 없을 겁니다. 사실 고통의 기억만 선연할 뿐 가슴과 머리에 맺힌 게 있기나 한 지는 지금도 묘연하니까요. 이런 여정들이 반복되면 왜 지리산을 어머니의 산이라고 하는지 깨닫는 때도 오겠지요. 2 [경북 문경] 일제와 해방 공간의 영웅들 올해 가장 의미 있는 수확은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에서 활약한 영웅들을 무수히 만난 것입니다. 고구마 줄기를 캐듯, 한 명의 영웅이 또 다른 영웅을 끌어내는 형국이었습니다. 실마리는 일제에 맞선 박열 의사와 아내 가네코 후미코였습니다. 경북 문경시에 있는 박열의사기념관을 찾은 날,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라는 충격적인 시를 쓴 박열, 이 시에 빠져 그와 연인이 된 가네코를 만났습니다. 둘은 훗날 일본 국왕 폭살 미수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지요. 둘 다 무기징역으로 감형됩니다만, 가네코는 이감된 감옥에서 23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습니다. 가네코는 우여곡절 끝에 생전 소원이었던 박열의 고향 문경에 묻힙니다. 다만 박열이 북한 땅에서 영면 중인 탓에 함께 묻히고 싶다는 바람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네요. 홀로 ‘영혼의 피앙세’의 고향을 지키는 모습이 애처로웠습니다. 문경 외에도 일본 도쿄와 세종시 등에 둘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둘이 옥중 결혼을 하고, 일본 조야를 발칵 뒤집은 ‘괴사진’을 찍은 곳이 일본 도쿄 신주쿠 요초마치의 ‘이치가야 형무소 터’입니다. 비록 작은 기념비가 고작이지만, 신주쿠에 간다면 들르시길 권합니다. ‘도시락 폭탄’ 이봉창 의사도 이 곳에서 순국했습니다. 3 [충북 청주 예술기행] 예술·문화로 다시 본 ‘노잼 도시’ 가네코의 이야기는 충북 청주시로 이어집니다. 청주는 예부터 ‘노잼 도시’로 알려진 곳이지요. 최근의 변화는 무척 놀랍습니다. ‘청주의 테이트 모던’이라 할 문화제조창, 냉전 시대 산물이었던 ‘당산 벙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등 문화예술 분야 볼거리가 넓고 깊어졌습니다. 특히 일본의 목판화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가 ‘청주행’을 이끈 강력한 요인이었습니다. 진품 소장처인 일본 야마나시현에서도 지난 20년 동안 딱 3주만 공개할 정도로 애지중지하는 작품이 충북도와의 ‘결연’ 덕에 한국으로 처음 건너 온 겁니다.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진행된 이 전시를 통해 조선을 사랑한 야마나시 출신 아사카와 노리타카, 다쿠미 형제를 알게 된 것도 수확이었습니다. 미술교사였던 형 노리타카는 전국을 돌며 조선 도자기 연구에 매진했고, 동생 다쿠미는 조선통독부 임업연구소에서 일하며 한반도 녹화사업에 헌신했습니다. 다쿠미는 1941년 40세로 요절하면서 남긴 “조선의 장례로 조선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현재 서울 중랑구 망우리공원에 묻혀 있습니다. 한국 민화의 중시조라 할 대갈 조자용(1926~2000) 선생을 만난 것도 이 여정에서였습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 세계인에 각인된 호랑이와 도깨비 등 우리 전통의 가치를 수십 년 전에 꿰뚫어 본 분입니다. 청주 바로 옆 보은 속리산에 그의 유산을 전시한 ‘조자용 민문화관’이 있습니다. 4 [베일에 쌓인 제주 돌하르방] 문화유산 돌하르방과의 조우 제주 돌하르방을 모두 ‘알현’한 순간도 기억에 남습니다. 돌하르방은 사실 지금도 모르는 것 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저마다 손 모양이 다른지, 뭘 상징하는지 등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지요. 시도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돌하르방은 ‘조선시대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의 성문 앞(혹은 성문 밖)에 세웠던 현무암 석인상’을 말합니다. 제작 연대는 1754년(영조 30년)이 유력합니다. 총 48기였는데 현재 제주도에 45기,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에 2기가 남아있습니다. 1기는 행방불명입니다. 돌하르방이 있는 곳이 대부분 제주의 대표 관광지인 만큼 한 번쯤 모두 찾아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5 [서울 종로 한옥마을 ‘북촌’] ‘레트로의 힘’ 근대 셀럽들과의 만남 서울 종로구 북촌 일대를 오가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짓던 근현대의 셀럽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단초는 지난해 세상을 뜬 ‘뒷것’ 김민기였습니다. 전북 익산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 가회동에 정착한 그의 뒤안길을 밟다가 수많은 인걸과 만났습니다. 그와 한국의 모던 포크를 함께 일군 양희은, 한국의 1세대 건축가 김수근, 1990년대 문화 대통령 서태지, 명동 백작 박인환, ‘모란이 필 때까지’의 시인 김영랑과 엇갈린 사랑을 나눈 무용가 최승희 등 수많은 인물들이 갈래를 치며 뻗어나갔습니다. ‘레트로의 힘’이 얼마나 세던지요. 압권은 ‘북촌의 설계자’ 정세권이었습니다. 경남 고성군의 시골 능참봉에서 일약 ‘경성 건축왕’에 오른 인물입니다. ‘일제강점기 부동산 개발업자’에서 민족자본가의 위상으로 재평가받고 있습니다. 6 [마산, 딱 100년간 존속했던 도시] 문인·사상가의 숨결을 마주하다 옛 경남 마산(현 창원시)에서 마주한 인물의 스펙트럼도 현란했습니다. 마산은 1910년부터 2010년 6월 30일까지 딱 100년 동안 존속했던 도시입니다. 물 좋고 공기 맑아 일제 때부터 ‘결핵 치료의 메카’였습니다. 나도향, 김지하, 서정주, 김춘수, 함석헌 등 셀 수 없이 많은 문인과 사상가가 마산결핵요양소(현 국립마산병원)를 거쳐 갔습니다. 그 중 한 명이 ‘하얀 나비’의 가수 김정호였습니다. 광주에서 태어나 1970~80년대를 풍미하다 결핵 탓에 서른세 살에 마산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조선의 루돌프 발렌티노(할리우드 최고의 미남 배우)’라 불리던 임화와 마산 유지의 딸 지하련의 애사,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마산에 왔던 시인 백석 등도 있지요. ‘마산의 명동’ 불종거리에 가면 이들이 알알이 새겨 놓은 이야기들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7 [화마가 할퀸 경북 의성] 새순 돋듯 치유의 봄날 기다리며 경북 의성군 고운사 들머리엔 해마다 분홍빛 법계도림이 펼쳐집니다. 법계도림은 화엄사상을 210개 글자의 시로 축약한 뒤 이를 54개 굽이(角)의 사각형으로 만든 미로입니다. 봄이 되면 법계도림에 꽃잔디를 심고 예쁘게 장식하곤 했지요. 하지만 지난 3월 발생한 경북 북부 산불은 모든 것을 집어삼켰습니다. 천년고찰 고운사의 범종이 깨지고, 아름다운 누각들이 재만 남긴 채 사라졌습니다. 상처는 아직 치유되지 않았지만 새순이 돋는 기색은 역력했습니다. 새해엔 화마의 아가리에서 앙버틴 지역들을 한 번쯤 방문하길 권합니다. 8 [숨겨진 유산 품은 전남 고흥] 예술·비경이 안겨 준 뜻밖의 감동 전남 고흥군에선 화가 천경자의 생애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행사가 열린 데 이어 올해도 전시회 등이 고흥 곳곳에서 열렸습니다. 고흥군이 천경자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지속해 벌인다고 하니, 새해 진행될 이벤트를 기대해도 좋을 듯 합니다. 숨겨진 자연 유산을 만나는 기쁨도 쏠쏠했습니다. 금강죽봉의 자태가 압도적이었지요. 우리나라에선 보기 드문 흰빛의 응회암 주상절리입니다. 아쉽게도 현재 도보로 접근할 수는 없습니다. 9 [로컬 문학의 재발견 전남 장흥] 10대째 詩 쓰는 오헌고택 사람들 전남 장흥군에 10대째 시를 쓰는 집이 있다면 믿겠습니까? 장흥 위씨 종갓집인 오헌고택 사람들입니다. 오헌 위계룡부터 시작해 10대가 시인입니다. 굶어 죽기 딱 좋은 게 글 짓는 예술가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해하기 쉽지 않은 가문입니다. 장흥은 문학으로 돌아보기 좋은 고장입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남도의 깡촌’ 장흥이 가진 문학의 힘을 많은 이들이 진심으로 다시 보고 있지요. 10 [전통 소주 되살리는 경북 안동] 한국의 ‘SOOL’ … 세계인과 ‘짠 이제껏 우리 전통술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죄다 사라졌다는 게 통설이었습니다. 한데 1000년 넘게, 최소 수백 년은 이어 온 지혜가 기껏 수십 년의 통제에 소멸한다는 건 어불성설일 겁니다. 경북 안동시처럼 지역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었지요. 우리에겐 반드시 되돌려야 할 술의 역사가 있습니다. ‘소주’가 특히 그렇습니다. 희석식 소주에 밀려 있는 전통 증류식 소주를 제자리로 바로잡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언젠가 ‘SOOL’도 ‘KIMCHI’처럼 세계인의 보통명사가 되는 날도 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 [부고]박기인 호남대 설립자 겸 명예이사장 별세

    [부고]박기인 호남대 설립자 겸 명예이사장 별세

    학교법인 성인학원 호남대학교 설립자 겸 명예이사장인 성인(省仁) 박기인 박사가 24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 박 명예이사장은 1934년 12월 24일 전북 전주시 중앙동에서 부친 박병옥 선생과 모친 이애주 여사 사이에서 태어났다. 6남매 중 차남으로, 지난 2015년 별세한 고 이화성 박사와 함께 1978년 학교법인 성인학원을 설립하며 지역 고등교육 기반 구축에 나섰다. 박 명예이사장은 1968년 전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을 이수했으며, 대학 설립 이후 교육과 지역사회 발전에 헌신해 왔다. 1995년 필리핀 아담스대학교 교육학 명예박사학위, 2003년 대만 문화대학교 상학부문 명예박사학위를 각각 받았다. 특히 체육을 통한 인재 양성과 지역 스포츠 발전에도 남다른 열정을 기울였다. 1982년 대학 설립 4년 만에 축구부를 창단해 선수 육성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호남대 축구부는 전국대회 8회 우승을 기록하며 ‘축구 명가’로 자리매김했다. 1985년에는 권투부를 창단했으며, 1987~1989년 광주·전남 육상경기연맹 회장을 맡아 지역 체육계 발전에도 기여했다. 호남대학교는 1978년 6월 15일 교육부로부터 설립 인가를 받은 뒤, 1992년 5개 단과대학을 갖춘 종합대학으로 승격했다. 2015년에는 쌍촌캠퍼스의 기능을 광산캠퍼스로 통합 이전해 단일 캠퍼스 체제를 완성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유족으로는 장남 박상학 씨, 장녀 박경희 씨, 차남 박상건 학교법인 성인학원 호남대학교 이사장, 삼남 박상철 호남대학교 총장이 있다. 장례는 학교법인 성인학원 호남대학교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호남대학교 중앙도서관 국제회의실에 마련됐다. 조문은 24일 오후 5시 이후부터 가능하며, 영결식은 28일 오전 10시 30분 호남대 문화체육관에서 열린다. 호남대는 1978년 6월15일 교육부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은 뒤 1992년 5개 단과대학을 갖춘 종합대학으로 승격했으며, 2015년 3월에 쌍촌캠퍼스의 기능을 광산캠퍼스로 통합 이전해서 단일 캠퍼스 체제를 완성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연극은 그에게 ‘가장 진실한 땅’이었다”

    “연극은 그에게 ‘가장 진실한 땅’이었다”

    1975년 ‘꿀맛’으로 데뷔 ‘50년 열정’뮤지컬·드라마에서도 전천후 활약투병 중 ‘토카타’ 출연 마지막 무대 “윤석화 선생님에게 연극은 언제나 ‘가장 진실한 땅’이었다. …오늘 우리는 한 명의 배우이자 한 시대의 공연계를 이끈 위대한 예술가를 떠나보낸다.” 21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예극장(옛 정미소) 앞마당에서 엄수된 고 윤석화의 노제에서 길해연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이 슬픔에 겨운 듯 떨리는 목소리로 추도사를 이어갔다. 동료 예술인들은 곳곳에서 흐느꼈고, 고인과 평소 자매처럼 지냈던 배우 박정자와 손숙은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닦았다.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후배 배우들이 고인이 생전에 즐겨 부른 정훈희의 ‘꽃밭에서’를 부르자 흐느낌은 더욱 커졌다. 이 자리엔 유족과 손진책 연출가, 프로듀서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등 고인과 친분이 두터웠던 동료 예술인, 한국연극인복지재단 관계자, 시민 등 약 1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무대에서 뜨겁게 연기했고 무대 밖에선 공연 생태계를 만들어간 ‘연극계 슈퍼스타’ 윤석화는 그의 고민과 헌신, 예술적 발자취가 깊이 새겨진 대학로를 떠나 이날 영면에 들었다.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난 윤석화는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데뷔한 뒤 ‘신의 아그네스’, ‘햄릿’, ‘딸에게 보내는 편지’ 등에 출연하며 연극계 스타로 발돋움했다. 뮤지컬, 드라마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약했고, 연극 제작과 연출에도 적극적이었다. 그가 제작에 참여한 ‘톱 해트’는 2013년 영국 로런스 올리비에상을 받았다. 1999년에는 경영난을 겪던 공연 전문 월간지 ‘객석’을 인수했고, 2002년 건축가 장윤규와 함께 소극장 정미소를 개관하며 실험적 연극을 선보였다. 아이들을 입양해 입양문화를 환기시키기도 했지만, 2000년대 중반 학력 위조 논란에 휩쓸리는 부침도 겪었다. 네 차례에 걸친 백상예술대상 여자연기상, 동아연극상, 이해랑 연극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2022년 “작은 역할이란 없다”며 단역으로 출연한 연극 ‘햄릿’을 끝낸 후 악성 뇌종양 수술을 받았다. 투병 중에도 무대에 대한 열정을 보이며 연극 ‘토카타’에 5분 가량 우정 출연한 것이 마지막 무대가 됐다. 이날 오전 서울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에서 치러진 영결식에서 박상원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은 “윤석화 누나는 누구보다도 불꽃 같은 삶을 살았다. 누구보다도 솔직했고, 멋졌다”며 “3년간의 투병과 아팠던 기억은 다 버리고 하늘나라에서 마음껏 뛰어노시길 기원한다”고 추모했다.
  • ‘신의 아그네스’ 윤석화, 헌신과 예술적 발자취 새긴 대학로 떠나 영면

    ‘신의 아그네스’ 윤석화, 헌신과 예술적 발자취 새긴 대학로 떠나 영면

    “윤석화 선생님에게 연극은 언제나 ‘가장 진실한 땅’이었다. ‘대답될 수 없는 대답을 던지는 예술’이라 말하며 관객에게 질문은 건넸고, 그 질문이 삶 속에서 계속 이어지기를 바랐다. …오늘 우리는 한 명의 배우이자 한 시대의 공연계를 이끈 위대한 예술가를 떠나보낸다.” 21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예극장(옛 정미소) 앞마당에서 엄수된 고 윤석화의 노제에서 길해연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이 슬픔에 겨운 듯 떨리는 목소리로 추도사를 이어갔다. 동료 예술인들은 곳곳에서 흐느꼈고, 고인과 평소 자매처럼 지냈던 배우 박정자와 손숙은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닦았다.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최정원, 배해선, 박건형 등 고인이 제작한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에 출연한 후배 배우들이 고인이 생전에 즐겨 부른 정훈희의 ‘꽃밭에서’를 부르자 흐느낌은 더욱 커졌다. 고인의 남편인 김석기 전 중앙종합금융 대표와 딸도 함께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이 자리엔 손진책 연출가, 프로듀서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등 친분이 두터웠던 동료 예술인과 한국연극인복지재단 관계자, 시민 등 약 10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무대에서 뜨겁게 연기했고 무대 밖에선 새로운 길을 찾았던 ‘연극계 슈퍼스타’ 윤석화는 그의 고민과 헌신, 예술적 발자취가 깊이 새겨진 대학로를 떠나 영면에 들었다.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난 윤석화는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데뷔했다. 미국 뉴욕에서 공부할 때 접해 번역에도 참여했던 ‘신의 아그네스’를 비롯해 ‘햄릿’, ‘딸에게 보내는 편지’ 등에 출연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여러 광고 음악을 불렀고 커피 광고에선 ‘저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여자예요’라는 대사를 유행시킨, 연극계 스타였다.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과 ‘명성황후’, 드라마 ‘우리가 만난 기적’ 등 장르를 가리지 않았고, 연극 제작과 연출에도 적극적이었다. ‘토요일 밤의 열기’를 비롯해 여러 뮤지컬을 직접 연출·제작했고, 그가 제작에 참여한 ‘톱 해트’는 영국 로런스 올리비에상을 받았다. 공연 생태계를 고민하며 1995년 종합엔터테인먼트사 돌꽃컴퍼니를 설립해 만화영화 ‘돌아온 영웅 홍길동’을 제작했고, 1999년에는 경영난을 겪던 공연 전문 월간지 객석을 인수해 발행인이 됐다. 2002년 건축가 장윤규와 함께 개관한 소극장 정미소에선 ‘19 그리고 80’, ‘위트’ 등 실험적 연극을 제작해 선보이기도 했다. 아들과 딸을 입양하며 입양 문화를 환기시키며 사회적 책임을 이어갔다. 2000년대 중반 문화예술계 전반에 번진 학력 위조 논란에 휩쓸리는 부침도 겪었다. 네 차례에 걸친 백상예술대상 여자연기상, 동아연극상, 이해랑 연극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2022년 “작은 역할이란 없다”며 박정자, 손숙과 함께 단역으로 출연한 연극 ‘햄릿’을 끝낸 후 악성 뇌종양 수술을 받았다. 투병 중에도 무대를 사랑한 그는 2023년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손숙 주연 연극 ‘토카타’에 5분가량 우정 출연한 것이 마지막 무대가 됐다. 이날 오전 8시에는 서울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에서 유족과 동료 예술인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결식이 열렸다. 박상원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은 조사에서 “(영결식이) ‘윤석화 권사 천국환송예배’라는 제목이 연극 같아서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잠시 후에 어디선가 등장해 대사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석화 누나는 누구보다도 불꽃 같은 삶을 살았다. 누구보다도 솔직했고, 멋졌다”며 “3년간의 투병과 아팠던 기억은 다 버리고 하늘나라에서 마음껏 뛰어노시길 기원한다”고 추모했다.
  • “천국에 가서도 배우하겠다”던 윤석화 별세

    “천국에 가서도 배우하겠다”던 윤석화 별세

    “아마 천국에 가서도 나는 배우를 하고 있을 거예요.” 배우 윤석화가 별세했다. 69세. 19일 연극계에 따르면 뇌종양으로 투병해 온 윤석화가 가족과 측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과거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일흔 살이 넘으면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동네 꼬마 세 명이 관객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언제 어디서든 설 수 있는 무대, 나눌 수 있는 무대만 있으면 서겠다”고 했던 그다. 윤석화는 2022년 7월 연극 ‘햄릿’ 이후 그해 10월 악성 뇌종양 수술을 받았다. 당시 햄릿에서 배우 박정자, 손숙과 함께 단역으로 출연했다. 2016년 햄릿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버지를 잃고 결국 물에 빠져 죽는 오필리어 역을 맡았던 그지만, 단역도 마다하지 않았다. 윤석화는 “연극다울 것이라는 기대감만 있으면 행인을 해도 좋고 반대라면 주인공 역이라도 마다할 수 있다”며 “이전 역을 그대로 맡으면 편했겠지만, 이런 게 새로 작품 하는 묘미”라고 말했다. 투병 사실을 공개한 뒤 2023년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연극 ‘토카타’에 5분가량 우정 출연한 것이 마지막 무대가 됐다.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난 윤석화는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데뷔했다. ‘신의 아그네스’, ‘햄릿’, ‘딸에게 보내는 편지’ 등에 출연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그는 연극계에 처음으로 등장한 스타였다. 선배 손숙, 박정자와 함께 연극계를 대표하는 여성 배우로 자리를 잡았다. 커피 CF에 출연해 ‘저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여자예요’라는 대사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대표작인 연극 ‘딸에게 보내는 편지’(1992)에서 재즈 여가수 멜라니를 연기했고, ‘마스터 클래스’(1998)에서는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 역을 맡았다.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1994), ‘명성황후’(1995), 드라마 ‘우리가 만난 기적’(2018)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쳤다. 연극 제작과 연출에도 관심을 두고 활발하게 활동했다. 2002년 서울 대학로에 건축가 장윤규와 함께 개관한 소극장 ‘정미소’는 실험적 연극으로 유명했다. 2019년 ‘19 그리고 80’, ‘위트’ 등을 공연하며 신선한 작품들을 관객에게 소개했다. 그는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를 연출했고, 그가 제작에 참여한 ‘톱 해트’는 영국 로렌스 올리비에상을 받았다. 이외에도 1995년 종합엔터테인먼트사 돌꽃컴퍼니를 설립해 만화영화 ‘홍길동 95’를 제작했고, 1999년에는 경영난을 겪던 공연예술계 월간지 객석을 인수해 발행인으로 활동했다. 아들과 딸을 입양한 고인은 입양기금 마련을 위한 자선 콘서트를 꾸준히 개최하는 등 입양문화 개선에 앞장섰다. 백상예술대상 여자연기상을 네 차례 받았고, 동아연극상, 서울연극제, 이해랑연극상 등을 받았다. 2005년 대통령표창과 2009년 연극·무용부문에서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유족으로 남편 김석기 씨, 아들과 딸이 있다.
  • 아산시 공설 자연장지 2027년 3월 준공…9000기 규모

    아산시 공설 자연장지 2027년 3월 준공…9000기 규모

    송악면 거산리 일원 3만2280㎡ 용지에3만 2548기 봉안당, 2026년 4월 착공 충남 아산시는 송악면 거산리 공설 봉안당 일원에 ‘공설장사시설 조성사업’ 일환으로 자연장지를 착공했다고 15일 밝혔다. 자연장지는 봉안당 건립에 앞서 우선 추진되는 사업으로, 송악면 거산리 산 56-11번지 일원 3만2280㎡ 용지에 마련된다. 해당 시설은 잔디형 자연장지로 9000기를 안치할 수 있다. 시는 국가유공자 전용 장지(834기), 산분 추모시설, 산분장 공간도 별도로 마련한다. 총 사업비는 58억원이며, 준공은 2027년 3월이 목표다. 자연장은 화장한 유골의 골분을 수목·화초·잔디 등 주변에 묻는 장례 방식으로, 봉분이나 석물(비석 등)을 설치하지 않아 자연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는 친환경 장사 문화로 주목받고 있다. 아산시는 기존 공설 봉안당이 만장에 이를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2022년 11월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장사시설 확충을 추진해 왔다. 아산시 관계자는 “이번 자연장지 조성을 통해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친환경적이고 품격 있는 장사 공간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아산시 공설장사시설 확충사업(봉안당·자연장지)에는 총 286억 원이 투입되며, 봉안당 3만 2548기, 자연장지 9000기 등 총 4만 1548기가 확충될 예정이다. 봉안당 건립사업은 2026년 4월 착공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 마지막 말은 “보고싶다 사랑한다”…故 김지미에 ‘금관문화훈장’

    마지막 말은 “보고싶다 사랑한다”…故 김지미에 ‘금관문화훈장’

    정부가 지난 7일 미국에서 별세한 고(故) 김지미 배우에게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추서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4일 오후 2시 김지미의 추모 공간이 마련된 서울 충무로 서울영화센터를 찾아 고인에게 추서된 금관문화훈장을 유족 대표에게 전달했다. 고인의 딸 최영숙씨는 현지에서 장례 절차 등을 밟고 있어 수여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최씨는 고인이 가족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 “보고 싶다. 사랑한다”였다고 한국영화인협회를 통해 전했다. 문체부는 “고인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한 시대의 영화 문화를 상징하는 배우였다”며 “한국 영화 제작 기반 확충과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한국 영화 생태계 보호와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는 데도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양윤호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은 “김지미 배우는 우리 영화계 후배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과감한 잔다르크였다”며 “한류라는 개념이 형성되기 이전, 한국 영화 산업의 토대를 만들어낸 선배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이자 제작자, 아티스트였다”고 회고했다. 김지미는 지난 2016년 10월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바 있다. 문화훈장은 문화예술 발전과 국민 문화 향유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별세한 고(故) 이순재 배우에게도 사후에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이외에 금관문화훈장을 받은 배우로는 2021년 윤여정, 2022년 이정재가 있다. 김지미는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1957)로 데뷔해 700여편의 작품을 남긴 한국 영화계 대표 스타 배우다. ‘토지’(1974), ‘길소뜸’(1985) 등 수많은 작품에서 주연을 맡으며 한국영화의 성장기를 이끌었다. 그는 멜로·사회극·문학 작품 영화화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여성 중심 서사가 제한적이던 시기에도 그는 폭넓은 역할을 소화하며 스크린 속 여성 인물상의 지평을 넓혔다. 청룡영화상과 대종상, 백상예술대상 등 국내 주요 시상식에서 여러 차례 여우주연상을 받은 경력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함께 인정받은 배우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연기 활동을 넘어 제작 현장에서도 활동 반경을 넓혔다. 김지미는 ㈜지미필름을 설립해 제작자로 나서 한국영화 제작 기반을 넓히는 데 힘을 보탰다. 작품 선택과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하며 배우와 제작자가 함께하는 모델을 보여줬고, 한국영화가 산업으로 자리를 잡는 과정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체 활동과 제도 개선을 향한 역할도 이어졌다. 그는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을 맡아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했고, 스크린쿼터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참여해 자국 영화 보호 장치를 지키는 데 앞장섰다. 아울러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을 역임하며 정책 논의에도 참여하는 등 한국영화 생태계 보호와 제도적 기반 강화에 실질적인 역할을 해왔다.
  • [부고]

    ●김영소(전 충북서예협회 명예회장)씨 별세, 송우근씨 남편상, 김세현(옥천 청산고 행정실장)·주현(삼성전자 근무)씨 부친상, 최명신씨 장인상 = 6일 청주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 8일. (043)210-5186 ●조정관씨 별세, 차금녀씨 남편상, 조춘화씨 부친상, 권혁순(강원일보 논설주간·상무)씨 장인상 = 6일 교원예움 강원장례식장, 발인 9일. (033)261-4441 ●유재례씨 별세, 김일환·세용·혜연·주은·혜정·보윤·태은·미선(주택도시보증공사 센터장)·서현씨 모친상, 진인희씨 시모상, 김영길·정상래·김상덕·최영근·이상재(중앙일보 경제산업부국장)·이석호씨 장모상 = 7일 전주뉴타운장례식장, 발인 9일. (063)284-4444 ●원요안씨 별세, 원종현(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 선수)씨 부친상 = 7일 군산 은파장례문화원, 발인 9일. (063)445-4444
  • ‘시그널’ 출연 배우 이문수, 폐암 투병 중 별세…향년 76세

    ‘시그널’ 출연 배우 이문수, 폐암 투병 중 별세…향년 76세

    tvN 드라마 ‘시그널’ 등에 출연한 배우 이문수가 폐암 투병 중 별세했다. 76세. 29일 한국연극배우협회 등에 따르면 이문수는 전날 밤 경기 양평군에 있는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고인은 2022년 폐암이 발병해 병원에 오가며 치료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1989년 국립극단에 합류해 ‘시련’, ‘문제적 인간 연산’, ‘세일즈맨의 죽음’, ‘1984’, ‘갈매기’, ‘리어왕’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드라마와 영화에도 꾸준히 참여했다. 2010년 영화 ‘헬로고스트’와 SBS 드라마 ‘대물’로 대중에 얼굴을 알렸다. 2016년에는 tvN 드라마 ‘시그널’에서 선 굵은 연기를 선보였다. 2010년에는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수훈했다. 유족은 부인 윤세숙씨와 아들 이주몽씨, 며느리 이영화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한양대학교병원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다음 달 1일이다.
  • ‘천상의 무대’로 떠난 국민배우… 이순재 70년 연기 인생 끝 영면

    ‘천상의 무대’로 떠난 국민배우… 이순재 70년 연기 인생 끝 영면

    김영철 “컷 소리에 일어나셨으면”하지원 “위로와 가르침 큰 힘 돼” “오늘, 이 아침이 드라마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선생님이 ‘오케이, 컷’ 소리에 툭툭 털고 일어나셔서 ‘다들 수고했다. 오늘 좋았어’라고 하시면 좋겠습니다.”(배우 김영철) 70년 동안 명연기로 국민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이순재가 27일 천상의 무대로 떠났다. 이날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국민배우 고 이순재 영결식’에는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한국 대중문화계의 산증인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대배우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했다. 드라마 ‘더 킹 투 하츠’로 이순재와 함께 출연했던 배우 하지원은 추도사를 통해 “선생님은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일 뿐만 아니라 연기 앞에서 겸손함을 잃지 않고, 스스로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던 진정한 예술가였다”고 기렸다. 대선배의 팬클럽 회장을 자처했던 하지원은 “연기를 할수록 어렵다는 고민을 털어놨을 때 선생님이 “인마, 지금 나도 어렵다”라면서 건넨 담담한 위로와 가르침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후배들은 평생 연극과 드라마, 영화를 오가며 식지 않는 연기 열정을 보였던 현역 최고령 배우에 대한 깊은 존경심과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영결식 사회를 맡은 배우 정보석은 “방송 문화계 연기 역사를 개척해온 국민배우”라면서 “배우라면 선생님의 우산 아래에서 덕을 입지 않은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1970년대 후반 TBC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김영철은 “선생님 곁에 있으면 방향을 잃지 않았다. 눈빛 하나가 후배들에게는 잘하고 있다는 응원이었고 정말 많이 그리울 것”이라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영결식장에는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비롯해 유동근, 최수종, 박상원, 이원종, 정동환, 정일우, 정준하, 정준호, 정태우 등 후배 연기자들은 물론 고인이 가르쳤던 가천대 연기예술과 학생들이 함께 했다. 이들은 고인의 나이에 맞춰 준비된 91송이의 흰 국화를 관 위에 놓으며 마지막 인사를 전하며 눈물을 흘렸다. 마지막에는 꽃이 부족해 묵념만으로 인사를 전하는 이들도 있었다. 고인의 생전 인터뷰를 모은 추모 영상도 상영됐다. ‘연기가 즐겁고 재미있느냐’는 질문에 “그래서 지금 하고 있잖아요”라고 유쾌하게 답하는 장면에 영결식 참석자들은 그리움에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으로 깊은 묵념이 이어지고 운구 행렬이 장례식장을 떠나자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운구 행렬은 별도 추모 공간이 마련된 KBS를 방문하지 않고 장지인 이천 에덴낙원으로 향했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해 지난해 드라마 ‘개소리’,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까지 이순재는 70년 가까이 쉼 없이 연기해 온 ‘영원한 현역’ 배우였다. 정부는 고인이 세상을 떠난 지난 25일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 [포토] ‘국민배우’ 이순재… 후배들 배웅 속 발인

    [포토] ‘국민배우’ 이순재… 후배들 배웅 속 발인

    27일 오전 5시 30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국민 배우 고(故) 이순재의 영결식이 거행됐다. 평생 연극과 드라마, 영화를 오가며 식지 않는 연기 열정을 보였던 현역 최고령 배우 이순재를 배웅하는 길은 후배들의 눈물로 얼룩졌다. 김영철은 “선생님 곁에 있으면 방향을 잃지 않았다. 눈빛 하나가 후배들에게는 잘하고 있다는 응원이었다”며 “정말 많이 그리울 것이다. 선생님 영원히 잊지 않겠다. 잊지 못할 거다”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배우 하지원도 추도사를 통해 “선생님은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일 뿐만 아니라 연기 앞에서 겸손함을 잃지 않고, 스스로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던 진정한 예술가였다”고 기억했다. 천상의 무대로 떠나는 고인의 마지막 길에는 김영철, 유동근, 최수종, 박상원, 이원종, 정동환, 정일우, 정준하, 정준호, 정태우와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인연이 있는 후배들이 함께했다. 또 고인이 애정을 갖고 가르쳤던 가천대 연기예술과 학생들이 함께 하면서 120석 규모의 영결식장이 가득 찼다. 고인은 지난해 역대 최고령으로 KBS 연기대상을 받았으며, 마지막 공식 석상이 된 시상식에서 “시청자 여러분께 평생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정부는 고인이 세상을 떠난 지난 25일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사진은 27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배우 이순재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 “가장 큰 스승이셨습니다” 후배들 눈물 속 마지막 길 떠난 故이순재 [포착]

    “가장 큰 스승이셨습니다” 후배들 눈물 속 마지막 길 떠난 故이순재 [포착]

    27일 영결식… 고인 나이 맞춰 91송이 헌화 한국 방송 역사를 함께한 ‘현역 최고령 배우’ 고(故) 이순재가 후배들의 배웅 속에서 마지막 길을 떠났다. 27일 오전 5시 30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는 고인의 영결식과 발인이 엄수됐다. 영결식 사회는 정보석, 추모사는 김영철과 하지원이 맡았다. 영결식에는 배우 김나운, 김영철, 김병옥, 박상원, 이무생, 이원종, 유동근, 유인촌, 유태웅, 원기준, 최수종, 정태우, 정일우, 정준호, 정동환, 정준하, 방송인 장성규 등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고인이 생전 석좌교수로 있던 가천대 연기예술과 학생들이 운구를 맡은 가운데 고인의 관이 영결식장으로 들어서자 곳곳에서 후배 배우들과 제자들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정보석은 “방송 역사와 연기 역사를 개척해오신 국민배우 이순재 선생님의 추모식을 진행하겠다”라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영결식을 시작했다. 정보석은 고인의 약력을 소개한 뒤 “선생님께서는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정치인으로도 활동하면서 저희 후배들의 권익을 위해 지대한 공헌을 하셨다”며 “선생님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우리 후배들이 따라갈 수 있는 큰 역사였고, 선생님은 항상 제일 앞에서 큰 우산으로서 우리 후배들이 마음 놓고 연기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셨다”고 강조했다. 하지원은 추모사에서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순재 선생님, 오늘 이 자리에서 선생님을 보내 드려야 한다는 것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선생님의 단단한 목소리가 지금도 어디선가 들려올 것만 같다”며 “선생님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이실 뿐 아니라 연기 앞에서 끝까지 겸손함을 잊지 않고 스스로 질문하길 멈추지 않았던 진정한 예술가였다. 저에게는 배우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행동과 태도로 보여주신 가장 큰 스승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선생님께 배운 마음과 자세를 앞으로 작품과 삶 속에서 꾸준히 실천해나가겠다. 작품 앞에서는 정직하고 사람 앞에서는 따뜻하게, 연기 앞에서는 끝까지 겸손함을 잊지 않는, 선생님께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겠다”며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깊이 기억하겠다. 선생님의 영원한 팬클럽 회장 하지원”이라고 추모사를 마쳐 듣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하지원은 2012년 MBC 드라마 ‘더킹 투하츠’로 고인과 인연을 맺은 후 이순재 팬클럽 회장을 자처하며 남다른 인연을 이어온 바 있다. TBC 시절부터 이순재와 인연을 맺은 김영철은 추모사에서 “어떤 하루를 없던 날로 지울 수 있다면 선생님 돌아가신 날을 잘라내고 싶다. 오늘 아침도 지우고 싶다. 거짓말 같다. 드라마 한 장면이라면 얼마나 좋겠나”라며 “‘오케이 컷’ 소리에 툭툭 털고 일어나 ‘다들 좋았어’라고 말씀하실 것만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 김영철은 이어 “선생님은 상황이 어떻든 누구 앞이든 항상 품위와 예의를 지키셨다. 그 한결같음 속에서 많은 사람이 위로를 받았고 조용히 배웠다”라며 “평소 보여주신 삶에 대한 자세, 일에 대한 태도, 사람을 대하는 너그러움과 엄격함이 우리 모두 안에 자리 잡아 앞으로를 밝힐 것”이라고 했다. 120석 규모의 영결식장은 가득 찼으며, 고인의 나이에 맞춰 91송이의 헌화가 끝난 뒤에도 묵념과 추모가 이어졌다. 운구 행렬은 영결식 후 장지인 경기 이천 에덴낙원으로 향했다.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한 후 평생 연극과 드라마, 영화를 오가며 70년 가까이 쉼 없이 연기해 온 ‘영원한 현역’ 배우였다. 국내 최초 텔레비전 방송국인 대한방송의 드라마 ‘푸른지평선’에서 얼굴을 알렸고, TBC 전속 배우로 시작해 100편이 넘는 드라마에 출연했다. 고인은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1991년)와 사극 ‘허준’(1999년)에서 각각 가부장적인 ‘대발이 아버지’, 따뜻한 스승 유의태 역할을 연기해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00년대에는 MBC 시트콤 ‘하이킥’ 시리즈를 통해 코믹 연기에 도전해 친근한 이미지를 쌓았고, 2013~2018년 tvN 여행 예능 ‘꽃보다 할배’를 통해 끊임없이 공부하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줬다. 고인은 연기 인생 출발점인 연극 무대로 돌아와 ‘장수상회’(2016), ‘앙리할아버지와 나’(2017), ‘세일즈맨의 죽음’(2017), ‘리어왕’(2021)에서 열연을 펼치며 고령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엔 역대 최고령으로 KBS 연기대상을 받았다. 고인은 당시 시상식에서 “시청자 여러분께 평생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정부는 고인이 세상을 떠난 지난 25일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 ‘영원한 현역’ 이순재

    ‘영원한 현역’ 이순재

    대발이 아버지·꽃할배… 천생 배우, 천상의 무대로 한국 대중문화계에 큰 족적을 남긴 국내 ‘최고령 배우’ 이순재가 25일 별세했다. 91세. 문화체육관광부는 최휘영 장관이 이날 저녁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고인에게 추서된 금관문화훈장을 유족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2018년 10월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바 있다. 배우가 금관문화훈장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2021년 윤여정과 2022년 이정재 이후 3년 만이다. 이순재는 지난해 말부터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에서 중도 하차했고, 지난해 말 KBS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수척해진 얼굴로 후배들의 부축을 받으며 무대에 올랐다. 이후 재활을 병행했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한평생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다양한 장르를 소화한 이순재는 ‘영원한 현역’으로 불린다. 그는 정통 사극부터 시트콤, 영화, 연극 등 폭넓은 영역에서 활동했고 눈을 감기 직전까지도 연기 열정을 불태웠다. ‘국민 배우’의 70년 연기 인생은 한국 방송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한 그는 1965년 TBC 1기 전속 배우가 됐다. ‘나도 인간이 되련다’, ‘동의보감’, ‘보고 또 보고’, ‘삼김시대’, ‘엄마가 뿔났다’ 등 출연 드라마만 140편에 달한다. 1991년부터 이듬해까지 방송되며 최고 시청률 65%를 기록한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는 가부장적인 인쇄소 사장 이병호 역을 맡아 호통치는 ‘대발이 아버지’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다. 그는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에 출마해 당선되기도 했다. 1970·80년대 사극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그는 1999년 MBC 드라마 ‘허준’에서 유의태 역으로 명연기를 펼쳤고 이후 ‘상도’, ‘불멸의 이순신’ 등의 작품에서 주·조연을 넘나들며 활약했다. 그는 2006년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을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기존의 근엄한 이미지를 벗고 괴팍하지만 권위의식 없는 한의원 원장을 연기했다. 그는 72세에 도전한 이 작품으로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2013년에는 tvN 여행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 출연하며 예능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기도 했다. 이순재는 타협을 모르는 완벽주의자이자 누구보다도 책임감이 강한 연기자였다. 평소 “배우라면 자신이 맡은 배역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연기 철학을 밝혔고 2008년 모친상 때도 연극 무대에 오르면서 “관객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공연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는 원로 배우로서 업계의 잘못된 관행과 상업주의를 꼬집는 ‘미스터 쓴소리’였다. 이순재는 생전 한 영화 인터뷰에서 “연예인에게 필요한 것은 특권 의식이 아니라 책임 의식”이라며 따끔하게 충고하기도 했다.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은 이순재는 연극 무대로 돌아와 ‘장수상회’, ‘앙리 할아버지와 나’ 등에서 열연을 펼쳤다. 특히 87세이던 2021년 ‘리어왕’에서 백발을 풀어헤치고 맨발로 200분 동안 방대한 대사를 완벽하게 소화해 극찬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31일 KBS 연기대상 시상식이 마지막 공식 석상이었다. 이순재는 생애 첫 연기대상을 받은 뒤 “시청자 여러분께 평생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다고 말하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2002년 보관문화훈장, 2018년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고 세종대와 가천대에서 연기를 가르치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희정씨와 아들 종혁, 딸 정은씨가 있다. 발인은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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