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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필순에 무릎 꿇었지만 동물학대 고소” 반려견 사망 업체의 항변

    “장필순에 무릎 꿇었지만 동물학대 고소” 반려견 사망 업체의 항변

    가수 장필순이 호텔링 서비스에 맡겼던 반려견 까뮈가 10시간여 만에 숨지자 반려견 호텔링 업체 측을 공개 저격한 가운데, 업체 대표가 억울함을 호소하고 나섰다. 업체 대표 A씨는 31일 장문의 입장문에서 “주말 사이 장필순님의 반려견 까뮈의 사망 사실에 대한 기사가 나간 이후, 저희뿐 아니라 저희 가족과 지인들의 신상이 밝혀지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이 가득한 댓글과 메시지로 고통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가 잘못한 부분에 있어서는 장필순님에 대한 도의적 책임과 법적 책임을 다할 예정이지만, 사실관계가 왜곡된 부분들이 있어 정확한 사실과 알려지지 않은 내용에 대해 말씀드린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A씨는 까뮈를 맡게 된 경위에 대해 “장필순님의 반려견 까뮈는 분리불안이 심했다. 장필순님 역시 분리불안에 대해 많이 걱정하셨고 저희 업체에 몇 차례 호텔링을 맡기셨다”고 했다. 반려견 호텔 2곳을 부부가 나눠서 운영하고 있는 이 업체는 사업장 1곳의 2층에 부부가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A씨는 “까뮈는 분리불안이 심해 우리 부부가 거주하는 집으로 데려와 함께 재웠다”며 “장필순님이 지난 23~25일 호텔링을 문의했을 때 23일 양가 부모님과 식사 자리가 예정돼 있었지만 까뮈가 다른 반려견 호텔에 가는 걸 어려워할 것 같다는 생각에 호텔링이 가능하다고 안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희가 양해를 구하고 예정된 일정으로 호텔링이 불가능하다고 말씀드렸어야 했으나, 저녁 식사 시간 정도 자리를 비우는 것을 괜찮을 것이라 안일하게 생각했다”라고 후회했다. A씨는 “장필순님이 함께 호텔링을 맡기신 다른 두 반려견인 멜로디와 몽이와는 달리 까뮈는 호텔에 입실하자마자 몹시 불안해하며 5~6회 정도 펜스를 뛰어넘으며 당시 업체에 상주 중이었던 직원에게 오려고 했다”며 “까뮈는 호텔 룸 안에 들어가는 것을 몹시 싫어했기 때문에 예정된 식사 시간에 어쩔 수 없이 까뮈를 캔넬에 넣고 차에 실어 식당까지 동행했다”고 까뮈를 승용차에 싣고 식당으로 데려간 이유를 설명했다. A씨는 “식당 내부의 동행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캔넬 안에 있는 까뮈를 차량에 뒀다”며 “이 때 차량 시동을 켠 후 에어컨을 켜둔 상태였고, 이 부분은 장필순님의 지인들이 차량 블랙박스로 확인했다”고 전했다. 그는 “(저녁을 먹고 돌아온) 이때만 해도 까뮈의 상태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식사를 하고 물을 마신 뒤 까뮈는 저와 함께 침대에서 잠들었다”고 했다. 24일 오전 5시 20분쯤 잠에서 깬 A씨는 까뮈가 침대에서 떨어져 낙상사고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까뮈를 캔넬에 넣어 거실에 뒀다고 했다. A씨는 “전날 저녁 9시부터 거실에는 에어컨을 켜둔 상태여서 온도가 많이 낮았고, 까뮈가 약 9~10살 정도의 노령견인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갑작스런 온도 변화로 체온조절이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하여 에어컨을 껐다”며 “까뮈가 캔넬 안에서 불안해 할까봐 캔넬 위에 이불을 덮어 뒀다”고 설명했다. A씨는 이불을 덮어 놓은 데 대해 “반려견의 시야를 가려 불안을 낮추고 안정감을 주는 방법으로 반려견 교육에 보편적이고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이기에 까뮈의 불안감을 낮춰주기 위한 적절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A씨는 “배가 아파 화장실을 왔다갔다 하다 보니 까뮈를 잘 챙기지 못했다. 중간에라도 캔넬에서 꺼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과실을 인정했다. A씨는 “오전 7시에 확인했을 때 까뮈는 이불을 이빨로 캔넬 안으로 끌어당겨 물어 뜯은 상태였고 의식이 희미해진 상태였다”고 했다. 이날 오전 7시 30분에 A씨가 까뮈를 응급병원으로 데려가 수의사와 함께 3시간가량 심폐소생술과 쿨링용법 등 응급처치를 실시했으나 까뮈는 오전 10시 30분에 결국 숨을 거뒀다. A씨는 “24일 오전 병원으로 향하는 중에라도 장필순님께 전화 드렸어야 했으나, 까뮈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미처 전화를 드리지 못했다. 제가 잘못 판단했다”라며 연락이 늦었던 점에 대해 해명했다. 그런데 A씨 부부도 참석한 까뮈의 장례식 이후 장필순의 지인으로부터 폐업을 강요받았다고 A씨는 주장했다. A씨는 “26일 오후 1시 30분쯤 장필순과 그의 지인 4명이 연락 없이 찾아왔다”며 “장필순님은 당일 밤 12시까지 소셜미디어(SNS) 계정에 모든 사실관계를 공지할 것과 폐업할 것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어 “저와 저의 아내는 장필순님께 무릎 꿇고 사과를 드렸고 ‘당연히 (까뮈를 맡은 업체) B는 폐업할 것이지만 (부부가 운영하는 다른 업체) C와 C 직원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간청했지만, 장필순님과 지인분들은 모두 폐업할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A씨에 따르면 장필순과 지인들은 당일(26일)까지 A씨가 SNS에 자신의 자신의 과실로 까뮈가 사망했다고 올리지 않으면 경찰에 동물학대·재물손괴 등으로 신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저희는 장필순님과 그 지인들이 요구한 대로 계속해 사과드렸다. 저희 사업장에 오셔서 어떤 요구를 하셔도 그에 따랐고, 까뮈의 사망과 아무런 관련 없는 개인사에 대한 질문에도 모두 답변드렸다”며 “사과문을 올리라고 하시기에 올렸고, 사업장 두 곳을 모두 폐업하라고 하시기에 모두 영업 종료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과문 게재와 영업 종료 등 요구를 따랐음에도 장필순 측이 A씨를 ‘매장’시키려 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A씨는 “저희가 사과문을 올렸음에도, 저희 사업장을 모두 영업종료하였음에도 장필순님은 방송국과 인터뷰를 하셨고 개인 SNS 계정에는 마치 저희가 고의로 까뮈를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것처럼 글을 올리셨다”며 “폐업하지 않으면, 사과문을 올리지 않으면, 본인과 그 남편의 영향력을 이용해 저희를 사회에서 매장시키겠다는 말씀이 무서워 시키는 대로 했는데 지금 장필순님의 영향력을 이용해 저희를 매장시키고 있다”고 강변했다. 다만 A씨 측은 ‘매장’이라고 표현한 행위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A씨는 “저희가 무엇을 더 해야 할까. 저희가 죽어야 끝이 날 것 같다”며 “장필순님과 그 지인들은 저희를 동물학대로 고소하신다고 한다. 저희는 경찰조사에도 성실히 임하고, 죄가 있다면 벌을 달게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장필순은 지난 3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헤어짐에 대한 마음의 준비는 전혀 없었던 까뮈, 가족이었던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는것, 그 절차나 과정조차 이곳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글과 함께 여러 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장필순은 “제가 없으면 불안해 보이던 까뮈는 특히 원장과 사택 침대에서 함께 데리고 자는 시스템인 스페셜케어를 선택하곤 했고, 지난 23일 오후 입실한 까뮈는 다음날 아침 그곳에서 심한 탈수로 인한 열사병과 같은 증세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중한 저의 까뮈가 겪은 고통 속에서의 죽음, 더는 다른 생명들이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이들에겐 함부로 자격이 주어지지 않기를. 인간의 욕심에 순수한 생명들이 희생되지 않기를”이라고 업체 측에 대한 비판을 내비쳤다. 제주동부경찰서에 따르면 장필순은 A씨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지난 28일 경찰에 고소했다.
  • [데스크 시각] 학부모님들, 이젠 교실에서 나가 주세요/이창구 전국부장

    [데스크 시각] 학부모님들, 이젠 교실에서 나가 주세요/이창구 전국부장

    농사일에 바쁜 부모님은 1년에 한 번쯤 학교에 오셨다. 두 분은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듣고만 있다가 마지막에 꼭 당부를 하셨다. “때려서라도 사람 만들어 주세요.” 선생님 중에는 유독 ‘교편’(敎鞭)을 강조하는 분이 많았다. “이놈들아 교편의 ‘편’ 자가 무슨 뜻인지 아느냐. 채찍 편 자다.” 대다수 선생님은 채찍으로 회초리를 들었지만, 애정이 과한 분은 당구 큐대를 들었다. 성격이 급한 분은 바로 손바닥으로 귀싸대기를 갈겼다. 몇 해 전 고등학교 동문이 사회관계망서비스에 한 선생님의 퇴임 사진을 올렸다. 그분 얼굴을 보자 울화가 치밀었다. 체육 시간에 시계를 차고 운동장에 나왔다고 그분에게 야구방망이로 허벅지를 맞았다. 부친상을 치르고 오느라 주의 사항을 듣지 못했다고 하니 “무슨 변명이 그리 많냐”며 스윙 강도를 더 높였다. 이랬던 교실이 정반대의 극단으로 변하는 10여년의 과정을 나는 뒤늦게 초등학교 교사가 된 아내를 통해 간접경험했다. 서른 중반에 교대에 편입할 정도로 아내는 교사라는 직업에 애착을 가졌다. 그러나 애정과 열의는 점점 방전돼 갔다.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의 부모들에게 시달리다가 얼이 빠진 채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귀가한 적도 있다. 퇴근 시간만 되면 전화를 걸어 1시간씩 괴롭히는 학부모 때문에 신경쇠약에 시달리기도 했다. ‘부모가 포기한 아이까지 살린다는 마음으로 참고 견디라’는 나의 응원도 이젠 ‘가급적 엮이지 마라’는 냉소로 바뀌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가 학교에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아내는 국화 한 송이라도 올리고 싶다며 검은 옷을 입고 나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수많은 교사가 비좁은 학교 골목으로 찾아가 눈물을 흘렸다. 죽은 교실에 대한 교사들의 장례식처럼 보였다. 사건 이후 교권 회복을 위한 온갖 방안이 제시됐다. 정부와 여당은 진보 교육감들이 주도한 학생인권조례를 주범으로 지목했지만, 학생인권을 누른다고 교권이 저절로 회복되지는 않는다. 교편이란 이름으로 행사되던 폭력의 시대는 이미 저물었다. 학생의 인권과 교원의 인권이 조화롭게 보장돼야 교실 공동체가 살아날 수 있다.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학생의 일탈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방안도 고려되고 있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입시에서 자식의 불이익을 막고자 소송에 더 집착할 것이다. 학생이 스스로 잘못된 행동을 반성하고 고쳐 나가는 게 성적보다 더 중요한 교육의 목표인데, 아무런 소통 없이 기계적으로 ‘감점 처리’만 하고 끝내는 것은 비교육적이다. 더욱이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는 학생 대부분은 가정 등에서 얻은 깊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교사들은 논란을 피하면서도 효과를 볼 수 있는 방안으로 학생지도가 곧바로 아동학대로 옮겨 가지 않도록 아동복지법, 아동학대처벌법 등을 개정해 차단장치를 마련하는 것을 꼽고 있다. 또 학부모 민원 상담과 징계 업무를 담임에게서 분리하는 것도 시급하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죽은 교실을 살리려면 학부모의 도움이 절실하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가꾸는 교실 공동체에 함부로 개입하지 않는 것. 이게 바로 지금 학부모가 할 일이다. 교실은 어른들처럼 서로를 짓밟으며 각자도생하는 정글이 아니다. 자식은 부모의 분신이 아니며, 교실에서 학부모는 엄연히 제삼자다. 많은 교사가 카카오톡 프로필에 검은 리본을 달았다가 “우리 아이가 충격을 받으니 삭제해 달라”는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자식의 안위를 위해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애도까지 틀어막는 이런 태도가 교실을 죽이고 아이를 망친다. 학부모가 교실에 개입할수록 교사는 교실에서 멀어진다.
  • [부고]

    ■이민경씨 별세, 유해근씨 부인상, 성호(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성심(기영약품 약사)성욱(제주지법 부장판사)씨 모친상, 홍경호(법무법인 화우 변호사)씨 장모상, 김은준(광진구 약사회 이사)나인훈(역삼생생본의원 원장)씨 시모상=30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 8월 2일. (02)2072-2016 ■백순자(축복로교회 집사)씨 별세, 문석조씨 부인상, 문동진·동권(신한카드 대표이사 사장)·동욱(변호사)씨 모친상, 최수진·홍은영·김세진씨 시모상=30일, 부산전문장례식장 VIP 4호실, 발인 8월 1일. (051)312-4444
  • 선우은숙 “유영재, 집에 女동창 2명 데려오려 해”

    선우은숙 “유영재, 집에 女동창 2명 데려오려 해”

    배우 선우은숙이 재혼한 남편 유영재의 거짓말을 폭로했다. 선우은숙은 29일 방송된 MBN ‘속풀이쇼 동치미’에서 유영재가 거짓말하고 술자리를 간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남편은 거짓말하면 다 들킨다. 남편이 얼마 전 누가 돌아가셔 장례식장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근데 돌아가신 분이 직계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지인의 지인의 지인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같이 집에 있고 싶었는데 남편은 아무래도 다녀와야겠다더라. 그래서 밤 12시까지만 들어오라고 하고 저녁 8시쯤 보내줬다”고 회상했다. 선우은숙은 유영재가 고인과 친하지 않았던 만큼 한 시간 안에 귀가할 줄 알았지만, 유영재는 12시 넘어 겨우 집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는 “집에 늦게 들어온 건 장례식에 들렀다가 곧바로 다른 곳에 간 것”이라면서 “직감이 들어 물어보니 유영재는 이유 없이 헛웃음을 치며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더라. 말을 잘하는 사람도 거짓말을 하면 표가 난다”고 말했다.선우은숙은 유영재가 집에 여성 동창을 데려오려고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초등학교 동호회에서 불륜이 자주 발생한다’는 이지훈 변호사의 말에 선우은숙은 “유영재가 얼마 전 초등학교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나는 남자들끼리 술을 마시는 건 줄 알고 오케이했다. 한참 뒤에 우연히 생각나 여자는 없냐고 물었는데 ‘두명 있다’고 하더라. 그때도 별 생각 안 했는데 지금 변호사님 말을 들으니까 이건 오지 말라고 해야겠다”고 했다.
  • “일회용품 없는 페스티벌” 아임에코 ‘친환경 다회용기’ 도입으로 폐기물 감축 앞장

    “일회용품 없는 페스티벌” 아임에코 ‘친환경 다회용기’ 도입으로 폐기물 감축 앞장

    국내 최초 100% 사탕수수로 만든친환경·저탄소 다회용기 개발 성공“다회용기를 바이오가스로 전환해자원의 ‘END OF LIFE CYCLE’ 구현” 엔데믹 전환 후 첫 여름을 맞아 다양한 페스티벌이 줄을 잇고 있다. 대학축제를 비롯해 각종 콘서트, 음악 페스티벌을 넘어 식품 및 유통업계도 소비자들의 브랜드 경험을 확대하고자 오프라인 행사를 잇따라 개최하고 있다. 올해 페스티벌에서 눈에 띄는 점은 ‘친환경 페스티벌’이라는 점이다. 필(必)환경 시대가 도래하면서 일회용품 사용 및 분리수거 없는 쓰레기 배출 등 환경을 고려하며 환경보호에 적극 동참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 정부와 지자체는 물론 주최 측에서도 다회용기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으며, 탄소배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친환경적인 페스티벌 문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친환경 브랜드 ‘아임에코’(i’m eco)는 친환경 다회용기 ‘그린 리유저블’(GREEN REUSABLE)을 출시해 이목을 끌고 있다. 28일 회사에 따르면 아임에코의 친환경 다회용기는 2021년부터 약 20개 이상의 국내 페스티벌에서 무색 페트병 회수 캠페인을 진행해온 경험에서 착안했다. 대부분의 페스티벌 F&B 존에서 일회용품을 사용해 왔고, 다회용기를 사용하더라도 여러 소재의 용기들이 혼재돼 재활용 및 쓰레기 분류 및 수거에 어려움이 따랐다. 이에 아임에코는 PLA 컴파운딩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에코패키지솔루션과 협업해 지난 1년 여간 친환경 저탄소 소재로 다회용기 제품 개발에 매진한 끝에 100% 사탕수수용기 그린 리유저블 용기를 출시했다. 그린 리유저블 용기는 국내 최초로 100% 사탕수수로 만든 친환경 플라스틱 용기이다. 세계 최초로 재생원료(R-PLA) 20%를 적용해 만들었으며, 사용 후 폐기 단계에서 재활용이 어려운 타 다회용기와는 달리 신재생 에너지화가 가능해 소각 시 탄소배출이 걱정이 없다. 자체 친환경 소재 기술력을 적용해 인체에 무해하며, PP 소재 용기 대비 약 65.9%의 탄소배출량 낮다. 5만명 관람객이 1인당 1개의 아임에코 다회용기를 사용했을 때 석유계 플라스틱(PP) 대비 636그루의 나무를 살릴 수 있는 셈이다. 내열성 및 내구성면에서도 기존 소재보다 우수하다. 그린 리유저블 라인은 80도에서 120회 동안 고온고압 세척 테스트를 거치면서 내구성과 지속 가능성을 입증했다. 또, 80도 이상의 건조 온도에서도 변형 없이 빠른 시간에 건조된다. 관람객들이 음식이 담긴 용기를 안정적으로 잡을 수 있도록 인체공학적 손잡이 디자인을 적용해 사용 편의성도 극대화했다. 블랙 컬러를 채택해 색배임이 적으면서도 음식이 돋보일 수 있도록 했다. 그린 리유저블 다회용기는 두께감이 있어 일상에서 자연 퇴비화는 어렵지만, 향후 혐기성 소화 기술을 통해 퇴비화 및 바이오가스 생산이 가능하며, 바이오가스 에너지전환 재활용을 위해 혐기성 바이오가스 플랜트 시범 설비를 준비 중에 있다. 다회용기 개발뿐 아니라 아임에코는 다회용기와 폐기물을 함께 처리하는 통합솔루션 시스템을 도입해 기존 운영인력 대비 약 20%의 미화 운영 인력 절감 및 다회용기 회수율을 높이기도 했다. 실제로 2023년 서울파크뮤직페스티벌에서 효율적인 운영을 한 바 있다. 또한 폐기물과 다회용기 반납을 하나의 부스에서 수거하면서 99% 이상의 높은 다회용기 회수율을 보였다. 아임에코 관계자는 “아임에코는 탄소배출량 및 폐기물 감축을 위해 장례식장 다회용기, 다회용컵 등 일상 속 스며든 일회용품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저탄소, 친환경 제품 개발을 이어가겠다”며 “사용이 다한 친환경 저탄소소재의 다회용기를 활용해 고부가가치 재활용인 에너지 자원(바이오가스)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자원의 ‘END OF LIFE CYCLE’을 구현하겠다”고 전했다.
  • ‘이글스’ 창립멤버 랜디 마이즈너 ‘한계에 이르다’ [메멘토 모리]

    ‘이글스’ 창립멤버 랜디 마이즈너 ‘한계에 이르다’ [메멘토 모리]

    ‘호텔 캘리포니아’, ‘데스페라도’ 등의 명곡을 내놓은 미국의 전설적 록밴드 이글스 창립 멤버였던 베이시스트 랜디 마이즈너가 26일(현지시간)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AP 통신이 다음날 전했다. 이글스는 성명을 통해 마이즈너가 만성폐쇄성 폐질환으로 로스앤젤레스(LA)에서 사망했다며 “랜디는 이글스에 필수적인 부분이었으며 초기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테이크 잇 투 더 리밋’에서 알 수 있듯 그의 보컬 폭은 놀라웠다”고 안타까워했다. 네브래스카주(州) 출신인 마이즈너는 1971년 드러머 돈 헨리, 기타리스트 글렌 프레이, 버니 리든과 함께 이글스를 결성했다. 초기 컨트리록 장르의 음악을 내놓았던 이글스는 나중에 하드록으로 바꿨고 ‘테이크 잇 이지’, ‘데스페라도’, ‘호텔 캘리포니아’, ‘라이프 인 더 패스트 레인’ 등의 히트곡을 연달아 내놨다. 특히 ‘호텔 캘리포니아’는 현재 대중음악 역사상 위대한 곡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이글스의 성공기를 이끌었던 마이즈너는 1976∼1977년 호텔 캘리포니아 투어 중 향수병에 시달렸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1977년 여름 테네시주 녹스빌에서 열린 콘서트 도중 프레이와 크게 다툰 직후 밴드를 탈퇴했다. 마이즈너는 그 뒤 솔로 활동을 하며 ‘하츠 온 파이어’, ‘딥 인사이드 마이 하트’ 등의 노래를 발표했다.이후로도 멤버 간 의견 차이를 보였던 이글스는 1980년 해체했다가 1994년 재결합해 지금도 전 세계를 돌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마이즈너는 이글스의 재결합에 합류하지 않았다. 그의 빈자리를 채운 티머시 B 슈미트는 지금도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1998년 뉴욕에서 열린 로큰롤 명예의전당 입회식에서 ‘테이크 잇 이지’, ‘호텔 캘리포니아’를 들려줄 때 잠깐 옛 친구들 옆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거의 마지막이었다. 그는 2013년 ‘히스토리 오브더 이글스’ 월드 투어에 초청됐지만 건강 문제가 계속 생겨 합류하지 못했다. 창립 멤버로 재결합한 밴드에서도 활약한 프레이는 대장염, 폐렴 등의 합병증으로 지난 2016년 세상을 떠났다. 마이즈너는 두 번 결혼했고 세 자녀를 뒀다. 비교적 최근에는 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고, 지난 2016년에는 아내 라나 레이를 총기 오발 사고로 여의는 비극도 겪었다. 이글스의 전 멤버 돈 펠더는 마이즈너에 대해 “음악계에서 가장 다정한 남자”라고 표현했다. 이글스 성명에 따르면 마이즈너 장례 일정을 잡는 중이라고 있다.
  • [생생우동] 반려동물도 요람에서 무덤까지…버리지 말고 함께 돌봐요

    [생생우동] 반려동물도 요람에서 무덤까지…버리지 말고 함께 돌봐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정작 우리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는 쉽게 접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딱딱한 행정 뉴스는 매일 같이 쏟아지지만 그 안에 숨겨진 알짜배기 생활 정보는 묻혀버리기 십상입니다. 서울신문 시청팀은 서울시와 자치구가 내놓은 행정 소식 중 우리 일상의 허기를 채우고 입맛을 돋워줄 뉴스들을 모은 ‘생생우동’(생생한 우리 동네 정보)을 매주 전합니다.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서울시민 중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가정은 22.2%다. 반려동물은 정서적인 안정과 활력있는 생활을 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만큼 반려인도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다만 반려동물 진료비 등 경제적 부담 등을 이유로 양육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의 ‘동물 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반려동물 양육자의 22%가 양육을 포기하거나 파양을 고려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26%는 양육 포기·파양을 고려한 이유로 ‘예상보다 지출이 많아서’라고 답했다. ‘약자와의 동행’을 시정 철학으로 내건 서울시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취약계층이 돌봄 부담을 덜고 반려동물과의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건강 검진 등 의료 서비스부터 집을 비울 때 잠시 맡길 수 있는 위탁 돌봄, 장례 대행 서비스까지 다양하다. 목욕·산책·돌봄 서비스 필요할 땐 ‘우리동네 펫돌보미·펫위탁소’ 시는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 계층 시민을 대상으로 ‘우리동네 펫돌보미·펫위탁소’를 운영하고 있다. 시가 운영하는 우리동네 펫돌보미는 관련 교육 과정을 수료한 전문가를 펫돌보미로 위촉해 가정을 직접 방문해 반려동물의 목욕과 산책, 위생 미용 등의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구당 5~7회씩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또 ‘우리동네 펫위탁소’를 통해 반려견과 반려묘를 최대 20일까지 무료로 돌봐준다. 지난해에는 반려견만 대상으로 시범 운영했으나 올해는 반려묘까지 지원 대상을 확대했다. ‘우리동네 동물병원’에서 저렴한 비용에 건강검진, 예방 접종 지원 시는 취약계층의 반려동물 진료비 부담을 덜기 위해 ‘우리동네 동물병원’ 사업도 선보이고 있다. 기초 건강 검진을 비롯한 필수 예방 접종, 심장 사상충 예방약 등 필수 진료와 선택 진료(기초 검진 중에 발견한 질병 치료, 중성화 수술) 등을 지원한다. 보호자는 필수 진료는 1회당 진찰료 5000원(최대 1만원), 선택 진료는 20만원을 초과하는 금액만 부담하면 된다. 보호자 부담금을 제외한 비용은 서울시와 자치구에서 지원한다. 지원 대상은 주소지 관할 자치구 내에서 개나 고양이를 기르는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 계층, 한부모 가족이다. 시와 자치구가 지정한 재능기부 동물병원인 우리동네 동물병원을 방문하면 진료를 받을 수 있다. 2021년 시범 운영한 후 지난해에는 21개 자치구가 참여했고 현재까지 취약계층 반려동물 1679마리가 지원받았다고 시는 전했다. 올해는 서울시 25개 전 자치구가 동참한다. 지정 병원도 68곳에서 92곳으로 확대했다. 반려견 장례 대행 서비스도… 올해 12월까지 600마리 지원 시는 반려견 장례 대행 서비스도 올해 12월까지 시범적으로 운영한다. 동물 장례 비용에 대한 부담을 덜고 올바른 동물 장례 문화를 확산할 수 있도록 올해 이 서비스를 처음 선보였다. 지원 대상은 국민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한부모가족, 기초연금수급자인 독거노인이다. 장례 대행 서비스를 신청하면 반려동물 장례지도사가 직접 가정에 방문해 반려동물 사체를 수습하고, 일정 기간 냉장 보관 후 경기도의 동물화장장으로 이송해 화장한다. 사체 수습과 보관, 이송 등 반려견 장례 대행 비용은 서울시가 부담한다. 화장 등 기타 비용은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시는 총 600마리까지 장례 대행을 지원할 예정이다.
  • [부고] 김소희 서울신문 기자 조부상

    ●김경석씨 별세, 김영일씨 부친상, 김소희(서울신문 사회부 기자)씨 조부상 = 27일 전남 고흥 고흥종합병원장례식장, 발인 29일. (061)830-3300
  • ‘이승만 예찬론자’ 유영익 전 국사편찬위원장 별세

    ‘이승만 예찬론자’ 유영익 전 국사편찬위원장 별세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1875~1965) 연구 전문가인 원로 역사학자 유영익 전 국사편찬위원장이 지난 26일 별세했다. 87세. 경남 진주 출신인 고인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 인문대학원 역사·동아시아언어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고려대 사학과 교수, 한림대 사학과 교수, 한림대 부총장,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한국학 석좌교수 등을 역임했다. 역사학회 회장, 연세대 현대한국학연구소 창립소장 등을 지냈으며 2013∼2015년에는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고인은 ‘이승만 예찬론자’로 불릴 정도로 이승만 연구와 재평가에 힘썼다. 이승만 연구에 천착하게 된 이유에 대해 그는 1964년 하버드대 도서관에서 우연히 이승만이 쓴 ‘독립 정신’을 읽게 된 뒤부터라고 밝히기도 했다. 고인은 ‘이승만의 삶과 꿈’(1996), ‘이승만 연구’(2000), ‘젊은 날의 이승만’(2002),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2006), ‘건국 대통령 이승만’(2013) 등의 다수의 책을 냈다. 그는 광복절을 이승만 정부 수립에 더 큰 의미를 두는 건국절로 바꾸자는 움직임에 앞장서고 ‘국부’(國父)로 칭하는 등 예찬에 일관하는 태도 때문에 학계에서도 비판받기도 했다. 빈소는 29일 서울 이대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다. 발인은 31일 예정이다.
  • [서울광장] 풍수의 명예를 위하여/서동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풍수의 명예를 위하여/서동철 논설위원

    최근 여의도 정치권의 갖가지 논쟁 가운데 가장 가슴 아픈 대목은 ‘풍수(風水)는 곧 미신’이라고 아예 등식을 만들어 공격하는 모습이다. 후손의 발복(發福)을 바라며 묫자리를 고르는 이른바 음택풍수(陰宅風水)는 개인적으로 관심도 없지만 조만간 재벌이나 권력자가 아니면 언급할 필요도 없는 분위기가 될 수밖에 없다. 완고하던 장례 풍습이 급속히 바뀌면서 망자(亡者)를 화장해 납골당에 모시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미 묫자리라는 단어 자체가 쓸모없어지지 않았나. 하지만 양택풍수(陽宅風水), 곧 산 사람의 집자리 고르기는 갈수록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에 따른 기록적 폭우로 많은 피해가 빚어진 상황에서 산사태에 휩쓸린 바로 그 자리에 다시 집을 지어 또 다른 피해를 부르는 방식의 수해 복구는 당연히 없어야 한다. 그러니 오늘날의 풍수이자 지관(地官)은 안전한 집터를 찾아 주고 새로운 집을 지을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도 아끼지 않는 존재여야 한다. 정부가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풍수가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줄임말이라고 어렵게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람을 갈무리하고 물을 얻는 명당(明堂)을 찾는 게 풍수라는 것이다. 좋은 땅을 찾는 방법을 일종의 학문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이런 주장이 나왔겠지만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은 소리로 들리는 것은 필자 한 사람만이 아닐 것 같다. 그보다 풍수는 글자 그대로 바람과 물이라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 있다. 풍수란 하늘과 땅의 생기(生氣)를 얻는 기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 생기라는 것은 땅이 필요한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정치권의 풍수 논쟁 속에서 “지금이 조선시대냐”는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래서 더욱 섭섭하다. 조선이 감언이설과 혹세무민에 국정이 좌지우지된 사이비 풍수의 시대라는 주장은 자신의 무지를 만천하에 드러낼 뿐이다. 조선왕조가 풍수를 과학으로 접근했다는 것은 개성에서 출범한 조선왕조가 한양을 새로운 수도로 정하고 국가의 핵심인 궁궐과 정부청사거리를 앉힌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한양에 도읍하면서 풍수지리 논쟁이 적지 않았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한마디로 국가의 안전과 미래지향적 발전을 도모하는 풍수세력이 개인의 생기를 우선시하는 풍수세력을 눌렀다고 본다. 그 결과가 북악산 아래 경복궁을 짓고 그 남쪽으로 육조거리를 조성한 오늘날의 모습이다. 북쪽은 북악이 가로막고, 동쪽과 서쪽에서는 중학천과 인왕동천이 청계천으로 합류하면서 자연 해자를 이루는 천혜의 안전지대에 국가 중요 시설을 한데 모은 것이다. 광복 이후 우리 손으로 중학천과 인왕동천을 복개하면서 풍수적 의미가 감춰졌을 뿐이다. 그럼에도 경복궁이 좋은 자리가 아니고 청와대는 더더욱 악지(惡地)라는 일부의 주장은 유감스럽다. 청와대의 역대 주인들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고 불행을 겪기도 했지만 그동안 국가는 줄기차게 발전했다. 대통령의 집무 공간이자 거주 공간이었던 청와대가 좋은 땅이 아니었다면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청와대가 대한민국을 부흥시킨 길지(吉地)라는 사실은 결과가 증명한다. 국민 전체가 아닌 몇몇의 불운을 두고 나쁜 땅으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공동체를 위한 학문으로 풍수의 발전 가능성을 막고 있다. 풍수 논쟁이 입씨름에 그치지 말고 우리 풍수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풍수는 공동체의 안전과 발전을 위한 학문이라는 각오를 다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풍수는 미신’이라는 목소리가 설자리를 잃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도 대학교수 타이틀을 달고 공동체가 아닌 개인 발복을 위해 집자리를 보러 다닌 사례는 없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 ‘남양주 16세기 여성 묘 출토복식’ 국가민속문화재 된다

    ‘남양주 16세기 여성 묘 출토복식’ 국가민속문화재 된다

    16세기 중기 복식과 장례 문화를 생생히 보여주는 ‘남양주 16세기 여성묘 출토복식’이 27일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됐다. 이번에 지정되는 복식 유물은 2008~2009년 경기 남양주 별내 택지개발사업 부지에서 발견된 무연고 여성 묘에서 나왔다. 당시 출토된 52건 71점 중 사료적 가치가 있는 10건이 대상에 선정됐다. 이 가운데 ‘직금사자흉배 운문단 접음단 치마’는 조선전기 연금사(속심 실에 납작한 금실을 돌려 감아 만든 실)로 비단 바탕에 무늬를 짜 넣어 만든 사자 흉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주목된다. 흉배는 조선시대 문무관의 관복에 날짐승이나 길짐승 무늬를 직조하거나 수놓아 품계를 표시하던 사각형 장식이다. 사자 흉배는 궁궐 수비를 맡은 장수가 사용했다고 한다. 흉배가 관복이나 저고리 등이 아닌 치마에 활용된 사례로는 이 유물이 최초다. 승려의 겉옷 또는 양반층 부녀들이 예복으로 착용한 ‘장삼’ 역시 기존과 형태가 다르고, 장삼에 사용한 넓은 띠인 ‘대대’ 또한 상태가 양호해 연구 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문화재청은 30일의 예고 기간을 거쳐 의견을 수렴한 후 국가민속문화재로 최종 지정할 예정이다.
  • 축구 전문 캐스터 서기원씨 별세

    축구 전문 캐스터 서기원씨 별세

    축구 전문 캐스터 서기원 전 아나운서가 27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86세. 경기도 오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4년 동양방송(TBC) 1기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1988년 KBS 서울올림픽 개회식을 비롯해 월드컵 등 굵직굵직한 국제스포츠 행사 중계를 맡았으며 편안한 화법의 중계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성모장례식장, 발인 29일.
  • [부고]

    ●홍은희씨 별세, 김화자씨 남편상, 홍산(사업)·정민·정은씨 부친상, 김재홍(연합뉴스 콘텐츠책무위원)씨 장인상, 심영애씨 시부상 = 27일 경기 고양 명지병원 장례식장, 발인 29일. (031)810-5477 ●소종근씨 별세, 김순기씨 남편상, 소영주(뉴스워치 전문위원)씨 부친상 = 27일 전북 정읍 장례문화원, 발인 29일. (063)535-7777
  • 47년 탄광노역 탈북 국군포로 별세… 국내 생존 12명

    47년 탄광노역 탈북 국군포로 별세… 국내 생존 12명

    6·25전쟁 때 국군포로로 북한에 끌려가 강제노역의 고초를 겪다가 탈북한 A(93)씨가 지난 26일 사망했다. 이로써 국내에 생존한 탈북 국군포로는 12명으로 줄었다. 27일 사단법인 물망초 등 북한인권단체에 따르면 탈북 국군포로 A씨가 전날 밤 노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정전협정을 한 달 앞둔 1953년 6월 강원도 금화지구 전투에서 싸우다 북한군의 포로가 됐다. 이후 47년간 탄광에서 강제노역의 고초를 겪다가 2001년 탈북해 22년간 조국 땅에서 지내다 별세했다. 유가족의 요청으로 성명과 사진은 공개되지 않았다. 빈소는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29일 오전 8시이며 장지는 서울현충원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조화를 보내 조의를 표했다. 국내에 남아 있는 탈북 국군포로 생존자 12명은 80~90대의 노령이다. 일부 탈북 국군포로는 북한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실제 배상금을 받지는 못했다.
  • ‘47년 탄광노역’ 탈북 국군포로 별세...국내 생존 12명

    ‘47년 탄광노역’ 탈북 국군포로 별세...국내 생존 12명

    6·25전쟁 때 북한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의 고초를 겪다가 탈북한 90대 국군포로가 지난 26일 사망했다. 국내에 생존한 탈북 국군포로는 12명으로 줄었다. 27일 사단법인 물망초 등 북한인권단체에 따르면 탈북 국군포로 A(93)씨가 전날 밤 노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정전협정을 한 달 앞둔 1953년 6월 강원도 금화지구 전투에서 싸우다 북한군의 포로가 됐다. 이후 47년간 탄광에서 강제노역의 고초를 겪다가 2001년 탈북해 22년간 조국 땅에서 지내다 별세했다. 유가족의 요청으로 성명과 사진은 공개되지 않았다.빈소는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29일 오전 8시이며 장지는 서울현충원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조화를 보내 조의를 표했다. 국내 남은 탈북 국군포로 생존자 12명은 80~90대의 노령이다. 일부 탈북 국군포로는 북한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실제 배상금을 받지는 못했다.
  • 국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이순신 장군…영정·동상 모습이 약간씩 다른 이유 [한ZOOM]  

    국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이순신 장군…영정·동상 모습이 약간씩 다른 이유 [한ZOOM]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조선을 침략한 왜장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세 가지 변수가 등장한다. 첫째는 선조 임금의 피난이었다. 전국시대 일본의 전쟁은 상대방 다이묘(영주)를 붙잡아 처형하면 승리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왜군은 조선을 침략하자마자 선조를 붙잡기 위해 파죽지세(破竹之勢)로 한양을 향해 진격한다. 그러나 왜군이 한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선조가 궁궐을 버리고 피난을 가버리고 난 후였다. 둘째는 의병이었다. 왜군 병사인 사무라이들은 원래 농민이었다. 사무라이들은 농번기에 농사를 지어야 했기 때문에 다이묘(영주)들은 농한기에만 전쟁을 했다. 그래서 ‘오다 노부나가’는 농번기에도 전쟁을 할 수 있는 직업 군인을 만들어 군인과 농민을 분리시켰다.이 병농분리(兵農分利) 덕분에 ‘오다 노부나가’와 그의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강력한 군대를 만들어 전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은 농번기에는 농사를 짓고 농한기에는 군역을 지는 병농일치(兵農一致) 사회였다. 왜군은 군인이 아닌 농민이 의병이 되어 싸울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심지어 살생을 금지하는 승려들까지 승병을 조직하여 왜군과 싸웠다. 실제 임진왜란의 승리는 의병의 활약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셋째로 가장 큰 변수는 이순신 장군이었다. 체계적으로 훈련된 수군, 완벽에 가까운 전략 그리고 1592년 5월 사천해전부터 등장한 거북선의 활약으로, 왜군은 후방보급이 막힌 것은 물론 이순신과의 모든 전투에서 대패하면서 그 이름만으로도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이름만으로도 왜군을 떨게 했던 이순신 장군의 존재 이순신 장군과 의병의 활약 그리고 명나라의 참전으로 전황은 역전되기 시작한다. 명나라와 일본이 종전협상에 들어가지만 조선의 절반을 달라는 등의 무리한 요구조건을 제시한 일본 때문에 결국 협상은 결렬된다. 그 동안 군대를 재정비 한 일본은 다시 조선을 침략하는 정유재란(丁酉再亂)을 일으킨다. 그런데 일본에게는 걱정거리가 있었다. 바로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이었다. 그래서 일본은 이순신 장군을 처리할 계략을 짠다.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하 ‘요시라’가 조정에 ‘1597년 1월 11일 가토 기요마사의 부대가 부산을 통해 들어올 것이다’라는 거짓정보를 흘린다. 이 정보를 믿은 선조는 이순신 장군에게 출정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거짓정보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고민에 빠진다. 이대로 출정하면 분명 수군이 피해를 입을 것이었다. 그러나 출정을 하지 않으면 자신은 왕명을 어긴 대역죄인이 될 것이었다. 결국 이순신 장군은 수군을 지키기 위해 출정하지 않는다. 분노한 선조는 왕명을 어긴 이순신 장군을 한양으로 압송해 모진 고문을 한 후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해임하고 도원수 권율 장군의 부대에서 백의종군하라는 명을 내린다. 지금으로 따지면 해군참모총장을 이등병으로 강등하고 군복도 없이 부대를 따라다니며 잡일을 하게 한 것이었다. 그 동안 수많은 전장에서 왜군을 격퇴해 나라를 지킨 이순신 장군 입장에서는 치욕적인 일이었다. 수군 피해를 막기 위해 택한 ‘백의종군’ 1597년 4월 1일 백의종군 명을 받은 이순신 장군은 모진 고문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도원수 권율 장군이 있는 경상남도 합천으로 향한다. 그런데 겨우 마음을 다스리던 그에게 비보가 전달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어머니의 장례를 위해 고향 충청남도 아산에서 약 보름을 머문 이순신 장군은 다시 합천으로 먼 길을 떠난다. 얼마 후 이순신 장군이 없는 조선 수군은 같은 해 7월 경상남도 거제 칠천량 해전에서 왜군에게 궤멸된다. 전장에서 수없이 많이 죽음을 느끼면서, 매순간 암살의 위협을 느끼면서, 자신을 따르는 병사들과 백성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면서, 병사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임금의 명을 어기는 결정을 하면서, 이순신 장군은 수많은 고뇌와 함께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지킨 임금과 조정으로부터 느낀 배신감, 억울한 누명으로 계급까지 강탈당한 모멸감, 어머니 죽음 앞에서 느낀 슬픔까지, 백의종군 길을 걸으며 이순신 장군이 가졌을 수없이 많은 감정은 감히 생각할 수조차 없다. 아마도 이순신 장군의 얼굴은 이렇게 많은 고뇌와 고통 속에서 점점 변해갔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 훼손·도난 당한 이순신 장군 영정 ‘이순신 장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충남 아산 현충사에 있는 표준 영정이다. 이 표준영정은 장우성 화백의 1953년 작품으로, 1973년 표준영정으로 지정되었다. 장우성 화백 친일 논란으로 표준영정 해제 논의 중에 있다고 한다. 표준영정 외에도 이순신 장군 초상화가 전해내려 왔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대부분 일제강점기 때 훼손되었거나 도난 되었다고 한다. 한편, 경상남도 통영에 있는 충렬사와 한산도 제승당에는 또 다른 영정이 있다. 이 영정은 ‘왜군과 치열한 전쟁이 있었던 역사적인 곳인 만큼 표준영정보다는 군인에 가까운 모습의 영정이 필요하다’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1977년 정형모 화백이 그린 작품이다. 두 화백 모두 이순신 장군의 실제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설명하는 사료가 너무 부족해 상상력에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초기에 이순신 장군의 모습은 나라와 백성을 위한 따뜻한 마음과 정갈하고 온화함이 느껴지는 이 영정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전쟁이 계속되면서 이순신 장군의 얼굴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수많은 전쟁을 거치면서 이순신 장군이 느낀 고뇌가 주름으로 그려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더구나, 모진 고문, 백의종군의 억울함,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까지 한꺼번에 겹치면서 고뇌와 슬픔이 이순신 장군의 얼굴을 뒤덮었을 것이다. 사람은 시련을 겪으면 외모가 바뀐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을 명 받았을 당시 그의 나이는 52세였다. 당시 평균수명이 35~45세라는 일부 연구결과에 비춰본다면 고령인 이순신 장군의 외적변화는 더욱 크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영화 ‘한산’과 ‘명량’에서 보여준 이순신 장군의 모습 김한빈 감독 영화 ‘한산:용의 출현’(2022)과 ‘명량’(2014)’은 전쟁 초반 학익진(鶴翼陣)이 등장하는 ‘한산대첩’ 그리고 전쟁 후반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된 후 남아있는 12척의 배로 전쟁의 판세를 다시 뒤집은 ‘명량해전’을 그린 작품이다. ‘한산’에서는 박해일 배우가, ‘명량’에서는 최민식 배우가 이순신 장군 역할을 맡았다. 박해일 배우가 진지하고 과묵하며 정갈한 모습의 전쟁 초기 이순신 장군을 보여준다면, 최민식 배우는 모진 고문과 백의종군의 고난을 거치면서 겪은 고뇌가 얼굴에 드러나는 전쟁 후기 이순신 장군을 보여준다.  국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이순신 장군의 흔적 부산에서 시작해 서해방향으로 가면 통영, 남해, 여수 등 남해안 대부분의 도시에서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만나볼 수 있다. 다시 목포, 군산, 인천까지 이르는 서해안 도시에서도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만나볼 수 있다. 해안도시뿐만 아니라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을 위해 걸었던 서울에서 경상남도 합천에 이르는 수많은 내륙 도시들에서도 이순신 장군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 도시들을 여행하면 늘 만감이 교차한다. ‘이순신 장군을 관광상품으로 너무 우려먹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잠깐 들면서도, 그 만큼 그 분의 행적과 업적이 이 땅 구석구석 남아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에 잠시 동안이지만 그런 생각을 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 6·25때 포로로 잡혀 ‘47년 탄광노역’… 국군포로 별세

    6·25때 포로로 잡혀 ‘47년 탄광노역’… 국군포로 별세

    6·25전쟁 때 북한에 포로로 잡혀 40년 넘게 탄광에서 강제노역하다가 탈북한 박모씨가 지난 26일 별세했다. 북한인권단체 물망초에 따르면 박씨는 정전협정을 한달 앞둔 1953년 6월 5사단 27연대 2대대 소속으로 강원도 금화지구 전투에서 싸우다 북한군의 포로로 잡혀 47년 동안 함경남도 단천 탄광에서 강제노역했다. 이후 고인은 일흔이 넘은 상황에서도 2001년 탈북해 22년 동안 조국 땅에서 지내다 별세했다. 고인의 별세로 국내에 남은 탈북 국군포로는 12명으로 줄었다. 빈소는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202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29일 오전 8시. 장지는 서울현충원이다.
  • [부고]

    ●황순옥씨 별세, 권용수(전 국방대 교수)씨 모친상 = 25일 충남 천안하늘공원장례식장, 발인 27일. (041)621-8012
  • “한국 발전에 자부심”… 한국전쟁·한미동맹에 온몸 던진 참군인

    “한국 발전에 자부심”… 한국전쟁·한미동맹에 온몸 던진 참군인

    6·25전쟁 참전 용사인 로버트 세네월드 전 한미연합사 및 주한미군 사령관의 장례식과 안장식이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엄수됐다. 장례식은 유가족과 옛 군 동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올드채플에서 진행됐다. 육군 참모총장에 지명된 랜디 조지 육군 참모차장이 장례위원장을 맡았고 존 틸럴리·월터 샤프·커티스 스캐퍼로티 전 주한미군 사령관 등도 참석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현동 주미 한국대사가 조화를, 이종섭 국방부 장관·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정승조 한미동맹재단 명예회장(전 합참의장) 등은 조전을 각각 보내 고인을 애도했다. 1929년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난 고인은 아이오와주립대를 졸업하고 1951년 학생군사교육단(ROTC) 장교로 임관한 뒤 포병 관측 장교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고인은 이후 베트남전에도 참전했으며 1982~1984년 한미연합사 사령관 및 유엔군 사령관을 지낸 후 1986년 예편했다. 그는 2015년 한미동맹재단과 주한미군전우회(KDVA) 창립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전역 후에도 한미동맹 강화에 힘을 쏟아왔다. 지난 3월 17일 버지니아주 포트 벨보어에서 93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고인은 2010년 당시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 알링턴의 한 호텔에서 주최한 행사에 참석해 “한때 미국 내에서 한국을 인정하지 않고 한국의 위치조차 몰랐던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으나 미국은 한국의 뛰어난 업적을 인정하며, 오늘날 한국이 세계 경제에서 우뚝 서고 역동적인 민주주의 국가가 된 점에 큰 자부심을 가진다”고 밝혀 감동을 안긴 바 있다.
  •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한석규와 CF’ 청안스님 입적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한석규와 CF’ 청안스님 입적

    1998년 당시 최고 인기 배우였던 한석규와 함께 CF에 등장했던 예천 용문사 주지 청안 스님(대종사)이 지난 23일 오전 5시 50분쯤 용문사 경내 동향각에서 입적했다고 용문사 측이 전했다. 87세(법랍 49세). 20대에 출가한 고인은 조계종 총무원장과 동국대 이사장을 지낸 녹원 대종사를 은사로 득도(得度)했다. 서울에서 도심 포교당을 운영하던 1998년 SK텔레콤 광고 촬영에 나섰다. 조계종 총무원장이던 월주 스님의 추천을 받은 뒤 ‘이것도 포교려니’라는 마음으로 촬영에 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광고의 내용은 이렇다. 두 사람이 말없이 조용히 대나무숲을 거닐던 가운데 한석규의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리지만 그는 곧바로 벨소리를 끄고 겸연쩍은 표정으로 다시 스님을 뒤따른다. 특히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광고 카피는 소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이후 알아보는 이들이 많아지자 스님은 예천 용문사로 들어갔다. 1999년부터 주지 소임을 맡아 절의 문화재를 보존할 성보박물관을 건립했으며, 2019년에는 이 사찰의 대정전과 윤장대를 국보로 승격시키기도 했다. 지난 4월 조계종 최고 법계인 대종사를 품수했다. 빈소는 용문사 내 영남제일강원에 마련됐다. 장례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장으로 치러진다. 27일 오전 9시 용문사 대웅전 앞마당 영결식을 거쳐 김천 직지사에서 다비장을 거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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