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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 나서 죽을 거 같아, 사랑해”…엄마 울린 아들의 마지막 말

    “불 나서 죽을 거 같아, 사랑해”…엄마 울린 아들의 마지막 말

    “불이 나서 죽을 것 같아. 엄마 아빠 모두 미안하고 사랑해.” 25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날 오후 ‘부천 호텔 화재’ 희생자 A(25)씨의 어머니가 경기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장례식장에서 아들의 생전 마지막 문자를 공개했다. 대학에 재학 중인 A씨는 지난 22일 부천시 원미구 중동 모 호텔 객실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A씨는 불이 나고 15분 뒤인 오후 7시 49분 어머니에게 ‘엄마 사랑해’라고 문자를 보냈다. 2분 뒤인 7시 51분에는 ‘나 모텔 불이 나서 죽을 거 같아’라며 당시 긴박한 상황을 알렸다. 이어 7시 57분에는 ‘엄마 아빠 OO(동생 이름) 모두 미안하고 사랑해’라며 마지막 문자를 보냈다. 아들의 문자를 본 A씨의 어머니는 곧바로 아들에게 전화했지만 응답이 없었다고 한다. 오후 8시 2분 ‘아들 어디야’, 오후 8시 25분 ‘일찍 와’라고 문자를 보냈지만 아들은 끝내 답이 없었다. A씨 어머니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문자를 확인하고 아들한테 계속 연락했는데 끝내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며 가슴을 쳤다. 이어 “아들이 떠난 다음 날이 내 생일”이라며 “생일을 아들 장례식장에서 보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눈물을 흘렸다. A씨 유족들은 화재 초기 소방 당국의 대응에 불만을 제기했다. 소방 선착대가 화재 사고 당일 오후 7시 43분에 호텔에 도착했고, 14분 뒤인 오후 7시 57분까지도 A씨가 가족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는 이유 등에서다. 유족들은 구조 작업이 신속하게 이뤄졌다면 A씨가 살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A씨를 포함해 부천 호텔 화재 사고 희생자 7명의 발인은 26일까지 모두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번 화재 사고는 지난 22일 오후 7시 34분 부천시 원미구 중동의 한 호텔에서 발생했으며 7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쳤다.
  • [부고] 황순관(기획재정부 국고국장)씨 모친상

    ●김광순씨 별세, 황순관(기획재정부 국고국장)씨 모친상, 이지원(기획재정부 재정성과평가과장)씨 시모상, 24일 충북 옥천 성모장례식장, 발인 26일 오전 6시 (043)733-0808
  • 첫 아이 출산 앞뒀는데… ‘신서유기’ 이주형 PD, 야근 후 교통사고 사망

    첫 아이 출산 앞뒀는데… ‘신서유기’ 이주형 PD, 야근 후 교통사고 사망

    상암동 택시 사고로 숨져… 택시기사는 경상tvN 여러 예능 연출… 이직 후 ‘풀카운트’ 제작나영석 등 “맡은 일에 책임감 가진 성실한 후배” 한밤중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택시가 주차된 관광버스와 주행 중이던 경차를 잇따라 들이받는 사고로 택시 승객 1명이 사망한 가운데 사망자가 ‘삼시세끼’, ‘신서유기’ 등 연출에 참여했던 이주형(35) PD인 것으로 전해졌다. 24일 미디어오늘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이 PD는 지난 22일 자정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던 도중 사고를 당해 숨졌다. 이 PD가 퇴근하며 탑승한 택시는 상암동 구룡사거리에서 월드컵경기장 방면으로 향하는 월드컵로에서 0시 25분쯤 주차된 관광버스에 이어 주행 중이던 경차와 잇따라 충돌하는 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이 PD는 현장에서 숨졌고, 택시기사는 경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차 운전자는 생명에 지장이 없으며, 버스는 탑승객이 없는 미운행 상태였다. 이 PD는 오는 12월 첫 아이 출산을 앞둔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CJ ENM tvN 제작 PD로 입사한 이 PD는 ‘삼시세끼 고창편’, ‘신서유기’ 시즌 2·3, ‘대탈출4’, ‘코리안 몬스터’, ‘어쩌다 어른’, ‘코미디빅리그’ 등 예능 프로그램 연출에 참여했다. 지난해 7월 쿠팡플레이가 인수한 영상제작사 보더리스필름으로 이직했으며, 디즈니플러스(디즈니+)에서 방영된 스포츠 다큐멘터리 ‘풀카운트’ 제작에 참여했다. 이 PD 부고가 알려진 뒤 방송가에선 고인을 애도하는 동료들의 메시지가 나왔다. 나영석·신효정·박현용·윤인회 PD 등 ‘신서유기’ PD 7명 일동은 “이주형 PD는 맡은 일에 누구보다 큰 책임감을 가지고, 항상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달리던 성실한 후배였다”며 “항상 가장 먼저 불이 켜지던, 늘 프로그램에 필요한 것들을 세심하게 체크하고 정돈해 두었던, 그의 자리를 기억하겠다. 이주형 PD와 함께 신서유기를 할 수 있어서 기뻤다”는 애도의 글을 남겼다. 이 PD 빈소는 서울 구로성심병원 장례식장 6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4일 오후 2시다.
  • ‘부천 호텔 화재’ 유족 “빈소 찾아 밤새워… 정부·지자체 도움 없었다”

    ‘부천 호텔 화재’ 유족 “빈소 찾아 밤새워… 정부·지자체 도움 없었다”

    “언니 빈소를 찾아 온 가족이 밤새울 동안 정부나 지자체에서 도와준다는 연락이 온 적은 한차례도 없었습니다.” 23일 오후 경기 부천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부천 호텔 화재’ 유족 김모(26·여)씨는 이렇게 말하며 울먹였다. 전날 화재로 친언니를 잃은 김씨는 “사고 직후 언니의 마지막 전화연락을 받고 가족들이 큰 슬픔과 혼란 속에 있었지만, 공공기관에서 장례 절차 등 지원을 위해 연락해온 게 전혀 없었다”며 “언니가 심정지 상태로 실려갔던 인천 성모병원에 시신이 임시 안치됐다가 가족들이 밤새 전화를 돌린 끝에 부천 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꾸릴 수 있단 소식을 듣고 아침일찍 옮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유족 입장에서는 사고 원인에 대한 소식을 알고 싶은데, 원인이 전기적 요인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기사나 지인을 통해서 듣고 있다”며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아무 설명도 없어 너무 답답하고 원통하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경찰의 유족 대응 방법에 대해서도 압박감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고 이후 경찰관이 오더니 갑자기 이런 중대한 사안은 무조건 부검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더라”며 “가족들은 당초에 부검을 할 의사가 있기도 했는데, 경찰의 말을 듣고는 마음이 바뀌었다”고 했다. 김씨는 언니가 사고로 명을 달리하기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네식구가 단란한 한 집에 살았다고 했다. 언니 김씨는 전날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와 전날 부천 호텔을 찾았다가 오후 7시 39분쯤 발생한 화재로 인해 객실에서 심정지 상태로 함께 발견됐다. 언니는 사고 직후 휴대전화로 어머니께 연락을 해 “구급대원들이 안 올라올 거 같다”며 “나 죽을거 같다. 5분뒤면 숨 못 쉴 것 같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들은 현장에 사다리차가 없었다는 점 등을 들어 경찰과 소방의 화재 대응이 빨랐다면 화를 면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이번 화재로 김씨를 포함한 총 7명이 사망했고 12명이 다치는 등 총 1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희생자 빈소는 아직 완전히 꾸려지지 못한 상태다. 부천시는 유족에게 담당공무원을 1대 1로 배치하는 등 지원 계획을 23일 발표했다. 시 관계자는 “시청 직원이 새벽 1시쯤 인천성모병원에 나가 유족과 만나 장례 절차 등을 안내했으나 가족들이 먼저 빈소를 예약했다”며 “현재도 교대 근무를 하면서 빈소에 대기해 유족 측이 도움을 요청하면 지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조용익 시장 “부천 호텔 화재 희생자 유족에 공무원 1대 1 배치”

    조용익 시장 “부천 호텔 화재 희생자 유족에 공무원 1대 1 배치”

    전날 7명이 숨지고 12명이 부상당한 호텔 화재사고와 관련, 경기 부천시는 희생자 유족을 지원할 담당공무원을 일대일로 배치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23일 밝혔다. 조용익 부천시장은 이날 오전 11시 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은 내용을 포함한 ‘부천 호텔 화재’ 피해자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조 시장은 “전날 저녁 지역 내 호텔 화재 사고로 소중한 생명을 잃은 희생자 7명과 유족에게 깊은 애도와 위로를 드린다”며 “희생자마다 담당공무원을 일대일로 배치해 장례부터 발인까지 모든 상황을 수시로 점검, 빈틈없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중상·경상 등 부상자에 대해서도 입·퇴원 관리 등을 지원해 혼란이 없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조 시장은 “부천시는 화재사고 직후 통합지원본부를 설치 운영하고 이날까지 대책 회의를 진행했다”며 “재난 피해자 지원 전담기구인 지원 센터를 설치해 피해자 치유와 장례, 법률상담 등 실무반을 구성했다”고 했다. 화재가 난 호텔은 2003년 준공되면서 객실에 스프링클러가 없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다수 나왔다. 스프링클러는 관련법이 개정된 2017년에야 6층 이상 모든 신축 건물에 층마다 설치하도록 의무화됐다. 객실 내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숙박업소 현황을 묻는 질문에 조 시장은 “숫자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부분은 여러 기관과 협의해 확실히 현황을 파악해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다. 현재 부천시는 화재가 발생한 호텔 맞은편에 지원센터를 설치하고 사상자 외 투숙객들의 민원을 접수하고 있다. 대피하는 과정에서 일부 투숙객이 짐을 미처 빼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부천시와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부천 호텔 화재 사고로 인한 사상자는 사망자 7명, 중상자 3명, 경상자 9명이다. 중상자 3명 가운데 1명은 상태가 호전돼 귀가했으며 2명은 여전히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사망자는 부천순천향대학병원 3명, 부천성모병원 3명, 부천장례식장 1명 등에 안치된 상태다. 빈소는 유족들과 협의해 꾸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2일 오후 7시 39분쯤 부천시 원미구 중동에 있는 9층짜리 호텔 8층 객실에서 불이 나 20∼50대 투숙객 등 7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망자 7명은 모두 내국인이며 남성은 4명, 여성은 3명으로 확인됐다. 소방 등은 810호 객실에서 불길이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불이 호텔 전체로 번지진 않았지만, 순식간에 건물 8~9층 내부에 검은 연기가 가득 차 유독가스로 인해 인명피해가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남녀 투숙객 2명은 불이 나자 8층 객실에서 호텔 외부 1층에 설치된 소방 에어매트로 뛰어내렸으나 에어매트가 뒤집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 배움의 밭 일구기까지… ‘뒷것’의 뒤를 밟아 본다

    배움의 밭 일구기까지… ‘뒷것’의 뒤를 밟아 본다

    고작 스물한 살의 나이에 권력에 의해 ‘금지’된 청년, ‘뒷것’이라 자신을 낮추다 마침내 어둠 속 신화가 된 남자, 김민기. 늘 청춘일 것만 같았던 그가 지난달 우리 곁을 떠났다. 저마다 김민기에 대한 기억은 다를 것이다. 그를 추억하고 보내는 방식도 다를 터다. 기자는 ‘뒷것’의 뒤를 밟는 여행을 선택했다. 먼저 간 이가 걸었던 길을 되짚어 걷다 보면 슬그머니 위로가 찾아온다. 이는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 체득한 바이다. 지금 ‘김민기’라는 큰사람의 뒤안길을 따라 그 위로를 찾으러 나선 길이다. 애초 목적지는 세 곳이었다. 육신의 고향 익산(옛 이리), 삶의 텃밭 서울, 영혼의 집 천안. 이번 여정에선 익산과 서울만 돌아본다. 이유는 나중에 다시 전하기로 하자. 여정에 앞서 밝혀 둘 게 있다. 지명 등은 전부 옛날 표기법을 따랐다. 요즘 표현으로는 당최 당대의 분위기가 살지 않아서다. 이 여정에 김민기의 동네 형이자 그와 관련된 무수한 이야기의 증인이 된 여장수 전 백제고 교장, 김세만 익산문화관광재단 대표, 조상익 한국민족예술연합회 익산지회(익산민예총) 회장 등이 도움을 줬다. 금지곡 ‘상록수’에 얽힌 사연축가가 아닌 졸업식 노래였나김민기가 태어난 곳은 전북 이리시다. 1995년에 익산군과 합쳐지면서 익산시로 바뀌었다. 이리(裡里)는 ‘속으로 들어간 마을’이란 의미다. 사실 이리도 원래 이름은 아니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솜리’라고 불렸다. 지금도 옛 이리에 속했던 곳에선 ‘솜리’라는 표현이 담긴 상호나 입간판 등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선 가장 큰 오해부터 풀자. 각종 검색 사이트에 올라 있는 익산 함열읍 출생설이 그렇다. 여장수 교장은 어림도 없는 소리라며 손사래를 쳤다. 김민기는 이리의 중심부였던 중앙동에서 태어났다. 갈산동과 경계를 이룬 곳으로, 그의 생가는 중앙동에, 그가 다닌 학교와 교회 등은 갈산동에 속했다. 그가 다닌 이리중앙국민학교(현 이리중앙초등학교)에서 함열읍까지는 직선거리로 14㎞나 떨어져 있다. 버스가 오가지 않던 시절에 ‘국민학생’이 매일 걸어 다니기엔 불가능에 가까운 거리다. 함열읍은 이리시와 통합되기 전 익산군에 속했던 곳이다. 현재도 익산시에 속해 있긴 하지만 김민기의 생애와는 거의 관계가 없다. 그의 대표곡 중 하나인 ‘상록수’가 야학에 다니던 노동자 커플의 결혼식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이야기도 사실과 거리가 있는 듯하다. 여 교장은 그의 생전 발언을 빌려 “야학 노동자의 졸업식을 앞두고 만든 곡”이라 단언했다. 전체적인 가사의 흐름으로 볼 때도 결혼식보다는 졸업식이 어울리는 듯하다. ‘상록수’에도 얽힌 사연이 있다. 김민기는 평소 자신의 노래를 부르지 않기로 유명하다. 한데 여 교장의 기억에 딱 하루만은 달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열렸던 1979년 11월 3일 밤이 그랬다. 여 교장과 함께 ‘평소와 다름없이’ 대취한(김민기는 대단한 애주가다) 그가 이날만큼은 스스럼없이 기타를 잡더란다. 그리고 ‘상록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죽음 이후 수많은 언론에서 썼던 그 사진, 그러니까 세상 환한 표정으로 기타를 치는 사진은 바로 이날 찍은 것이다.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어린 김민기 뛰놀던 배산일지도이리는 참 독특한 지형의 도시다. 여느 도시에선 산자락을 한 굽이 돌아서야 들녘이 나오기 마련이다. 산이 많은 나라라서 그렇다. 이리는 다르다. 들녘이 앞에 있고 산들은 멀찍이 나앉았다. 김민기는 야트막한 산에 올라 이 너른 들녘을 굽어보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배산(86m)이다. 배산은 이리시에 속한 학교들의 단골 소풍 장소다. 김민기가 다닌 이리중앙국민학교도 해마다 배산으로 소풍을 갔다. 그러니 배산공원 솔숲 어딘가 어린 김민기가 보물을 찾던 나무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청년으로 성장한 뒤에도 배산을 즐겨 찾았다. 특히 해거름의 풍경을 좋아했다고 한다. 배산에 올라서면 사방으로 너른 평야가 펼쳐진다. 해는 서쪽, 군산 앞바다로 진다. 이쯤에서 그의 노래 ‘봉우리’의 가사를 살펴보자.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해 줄까/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생각지를 않았어/나한테는 그게 전부였거든/중략/저기 부러진 나무등걸에/걸터앉아서 나는 봤지/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중략/혹시라도 어쩌다가/아픔 같은 것이 저며 올 때는/그럴 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봉우리란 그저/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봉우리’는 1984년 LA올림픽 당시 메달을 따지 못한 한국 선수들을 위해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가사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는 저물녘 배산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아주 흡사하다. 조상익 회장은 “날씨가 좋을 때면 배산에서 군산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인다”고 했다. 김민기 역시 청춘의 어느 시점에 보았던 배산 풍경을 심상 깊은 곳에 갈무리해 뒀던 건 아닐까. 생전 한 인터뷰에서 노래 ‘작은 연못’은 유년기에 겪었던 전쟁의 공포가 밑바탕이 됐다고 밝힌 것처럼 말이다. 김민기는 1951년 6·25 전쟁 때 10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 북한군에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는 삼산의원의 의사였고, 어머니는 유명한 산파였다고 한다. 산부인과 병원이 없던 시절엔 산파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여 교장에 따르면 “당시 김민기의 어머니가 1만쌍의 아이들을 받아냈다”고 한다. 과장이 좀 섞였다 쳐도, 당시 이리에서 태어난 아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김민기 어머니의 손을 거쳤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김민기가 태어난 곳은 삼펜사이다 공장 내 사택이다. 전북 일대에선 꽤 유명한 청량음료 업체였다는데 일본인이 세운 회사를 아버지가 사들여 운영했다고 한다. 삼펜사이다 공장은 이후 한 산부인과 의원에 팔렸고, 지금은 아파트 신축 공사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가 1978년 낙향해 3년여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는 석암리 농가 역시 공업단지가 들어서며 사라졌다. 그의 자취가 다소나마 남은 곳은 이리중앙초등학교와 바로 옆의 옛 성락교회(현 하나님의 교회)다. 김민기의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김민기 역시 이 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다. 교회에서 성탄절 행사가 열릴 때면 오프닝 멘트는 늘 김민기 차지였다고 한다. 귀엽게 생긴 데다 또박또박 말까지 잘해 교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는 것이 여 교장의 회상이다. 어린 김민기가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놀았을 중앙동 일대는 ‘문화예술의 거리’가 됐다. 원도심 재생 사업 덕이다. 그의 아버지가 다녔다는 삼산의원 건물은 지금도 남아 익산근대역사관이 됐다. 이 일대는 아트센터 등 레트로풍의 볼거리들이 꽤 있다. 김민기 어머니의 교육열은 남달랐던 듯하다. 그의 형제 모두 국민학교 5, 6학년만 되면 서울로 올려 보냈다. 서울에 친척이나 지인 등 기댈 곳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 어머니 혼자 벌어 그 많은 교육비를 부담했을 터다. 김민기도 국민학교 5학년이 되면서 형제들처럼 서울로 올라가게 된다. 33년간 대학로 공연 문화의 산실학전 사라져도 ‘뒷것 정신’은 남아이제 서울로 올라온 김민기의 행적을 따라간다. 그가 거쳐 간 곳 상당수가 근대 문화유산이어서 볼거리도 풍성하다. 서울에서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은 대학로다. 김민기는 젊은 시절 대부분을 이 언저리에서 보냈다. 이리에서 올라온 그는 종로구 가회동의 재동국민학교를 거쳐 이웃한 화동의 경기중·고등학교(현 정독도서관)를 다녔다. 그리고 서울대 미대에 진학했다. 당시엔 서울대가 대학로에 있었다. 그러니까 대학로에서 반경 1㎞ 남짓한 공간에서 학창 시절 대부분을 보낸 셈이다. 이후로도 33년 동안 대학로에서 소극장 학전을 지켰으니, 일생 대부분을 이 일대에서 보냈다고 해도 틀리지 않겠다. 그가 일군 ‘배움의 못자리’ 옛 학전(學田)까지는 조붓한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아가야 한다. 대학로 특유의 붉은 건물과 연극 티켓 부스가 줄줄이 늘어선 길이다. 한 편의점 옆엔 배롱나무가 꽃을 피웠다. 보기 드물게 꽃잎이 흰색이다. 김민기도 이 배롱나무가 흰 꽃을 틔울 때마다 찾아와 한참을 머물렀을 게 틀림없다. 대학로 공연 문화의 산실이란 평가를 받던 학전은 지난 3월 15일 문을 닫았다. 김광석의 라이브 콘서트 1000회, 뮤지컬 ‘지하철 1호선’ 4000여회 등 무수히 많은 기념비적인 공연들이 이 공간에서 열렸다. 학전이 사라진 자리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아르코꿈밭극장’이 들어섰다. 33년이란 긴 시간을 머물렀던 곳인데, 그의 흔적은 남은 게 거의 없다. ‘학전’이란 이름과 연혁이 새겨진 작은 동판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그야말로 자신의 시간과 이야기를 깡그리 거둬 간 거다. 그나마 그의 자취가 선명하게 담긴 건 담벼락에 선 남천나무다. 2021년 3월 15일 학전 30주년을 기념해 직접 심은 것이다. 남천나무 옆엔 고 김광석의 모습을 새긴 노래비가 있다. 김민기가 남긴 사진 중에 남천나무와 김광석 노래비 사이에서 찍은 사진이 유독 많다. 그가 이 작은 공간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는 걸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남천나무·학림다방·정독도서관…그의 자취 따라 걸어본 서울 도심학전 옆 마로니에공원은 대학로의 상징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연출가 임영웅, 무대 인생 60년의 오현경과 윤소정 배우 부부, 고시원 단칸방에서 생을 마감한 무명배우 등 무수히 많은 문화예술인의 장례식이 이 공원에서 열렸다. 공원 이름은 복판에 서 있는 마로니에 나무에서 따온 것이다. 나무가 처음 식재된 건 일제강점기인 1929년이다. 얼추 100년 가까운 세월이다. 그러니 현재를 살아가는 그 누구보다 많은 역사와 인물들을 이 나무는 알고 있을 터다. 학림다방도 들른다. 1956년에 문을 연 찻집이다. 김민기를 비롯한 수많은 문화예술인의 아지트 구실을 했던 공간이다. 학림사건 등 서슬 퍼런 역사도 다방 기둥 곳곳에 새겨져 있다. 그의 죽음이 공식 발표된 곳도 여기다. 내친걸음 정독도서관까지 간다. 고교생 김민기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을 곳이다. 정독도서관의 전신인 옛 경기고는 1938년에 지어졌다. 입구의 포치형 현관이 인상적이다. 고관대작 등이 자동차라는 신문물을 타고 건물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든 구조다. 정면과 측면, 세 개의 아치 기둥이 만들어 낸 모습은 많은 이들이 인증샷으로 즐겨 찍는 배경이 됐다. 현관 입구의 ‘수위실’의 유리창도 눈길을 끈다. 예전엔 표면이 휘어진 유리를 생산하는 기술이 없어 평면 유리를 몇 조각으로 나눠 모서리를 장식했다. 그 시대적 흔적이 유리창이다. 건물 안 대칭형 유턴 계단의 난간은 반들반들하다. 오랜 세월 수많은 학생이 거쳐 간 흔적이다. 김민기도 그중 하나일 터다. 여정은 여기까지다. 옛 경기고 건물까지 돌아보고 나니 예전 경남 통영의 박경리기념관에서 읽은 글귀가 떠오른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통영에서 태어나 통영에 묻힌 박경리 선생과 달리 김민기는 이리에서 태어나 충남 천안에 묻혔다. 왜 고향에 묻히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다. 남겨진 가족들이 알려지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천안에 가지 못한 것에 조금의 아쉬움도 없다. 시간은 또 흐를 것이고, 그를 추억할 여지 하나 더 남겨 뒀으니 말이다.
  • [부고]이병주(국민일보 사진부 선임기자)씨 부친상

    ●이종길씨 별세, 이병주(국민일보 사진부 선임기자)·이희양씨 부친상= 22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9호실, 발인 24일(02)3010-2000
  • 서동주 “父서세원 영정사진 앞 ‘숭구리당당’ 춤춘 김정렬에 오열”

    서동주 “父서세원 영정사진 앞 ‘숭구리당당’ 춤춘 김정렬에 오열”

    방송인 겸 미국 변호사 서동주가 자신의 부친인 개그맨 서세원 장례식에서 ‘숭구리당당’ 춤을 췄다가 악플 피해를 입은 개그맨 김정렬에 감사를 전했다. 서동주는 21일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작년은 제게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기였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냥 평볌하게 돌아가신 게 아니었다. 제 입장에서는 의문사였다. 아버지를 발인하는 날 키우던 16살짜리 강아지가 죽어 바로 강아지 장례식도 치렀고, 어머니는 암 투병을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서동주는 “보통 사람들은 인생 전반에 걸쳐 천천히 겪을 일을 몰아서 겪다 보니 아무리 내가 회복력이 좋아도 우울해질 것 같았다”며 “못 일어나는 것 아닌가 걱정을 많이 했는데 잘 지나간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서동주는 “당시 감사한 건 아버지 빈소에 많은 사람들이 와 주셨는데 그분들 얼굴이 다 기억난다. 평생 은혜 갚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면서 논란이 됐던 개그맨 김정렬의 ‘숭구리당당 댄스’를 언급했다. 서동주는 “그분께 나중에 악플도 달리고 그랬다. 저는 당시 그 자리에 있었다”며 “숭구리당당 춤을 추셨을 때 웃긴 게 아니라 저는 오열을 했다. 고차원적인 예술 같은 거다.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이 춤을 췄을 때 거기서 오는 감동이 현장에서 굉장히 컸다. 다 같이 울었는데 (악플이 달려) 속상했다. 당시 느낌은 감사하고 그랬다”고 밝혔다. 서세원의 장례식 당시 김정렬은 “탄생도 기쁨이고, 죽음도 가야 될 길이라서 기쁘다. 제 숭구리당당으로 가시는 길 잘 가시라고 밀어드리겠다”며 춤을 췄다. 한편 서세원은 방송인 서정희와 결혼해 서동주 등 1남 1녀를 뒀지만 2015년 이혼했다. 이후 서세원은 23세 연하 해금 연주자와 재혼을 해 딸을 낳았다. 서세원은 재혼 후 캄보디아로 이주해 미디어 및 대규모 부동산 건설, 호텔, 카지노 사업 등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지난해 4월 현지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 “내 입장에서는…” 서세원 사망에 딸 서동주가 한 말은

    “내 입장에서는…” 서세원 사망에 딸 서동주가 한 말은

    방송인 겸 변호사 서동주가 부친인 고 서세원의 사망에 대해 언급했다. 21일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서동주는 “작년이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기였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또 평범하게 돌아가신 게 아니었다. 해외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고 내 입장에서는 의문사였다”며 “그때 내가 키우던 열여섯살짜리 강아지도 아버지 발인하는 날 죽어서 연달아서 강아지 장례식을 치렀다. 또 어머니도 암투병하고, 미국 집도 똥값이 됐었고, 너무너무 힘들었다”며 당시 상황을 털어놨다. 서세원은 지난해 4월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한인병원에서 링거를 맞던 중 사망했다. 서세원은 2015년 모델 출신 방송인 서정희와 이혼한 뒤 이듬해 재혼해 캄보디아로 이주했었다. 다만 서동주는 괴로웠던 시기를 잘 넘겼다고 했다. 그는 “보통 다른 사람이 인생에서 하나씩 하나씩 겪을 일을 몰아서 겪다 보니까 이번에는 내가 아무리 회복력이 좋은 사람이어도 우울할 것 같다, 못 일어나는 건 아닐까 하고 스스로 걱정도 많이 했는데 잘 버티는 스타일이라 그래도 잘 지나간 거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감사했던 게 있다”며 “아버지 빈소에 사람들이 많이 왔다. 얼굴이 하나하나 다 기억나고 은혜 갚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위로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 [부고]

    ●김미자씨 별세, 김성우(MBC 주간뉴스팀 부장)·태한(상계동 다메섹교회 목사)·보경(토론토대 연구교수)씨 모친상 = 19일 경기 김포 뉴고려병원 장례식장, 발인 21일. (031)998-4414
  • 헤즈볼라 최고위 지휘관, ‘전화 한 통’에 낚여 암살된 사연[핫이슈]

    헤즈볼라 최고위 지휘관, ‘전화 한 통’에 낚여 암살된 사연[핫이슈]

    이스라엘과 친이란 레바논 무자정파인 헤즈볼라의 무력 충돌이 이어지는 가운데, 헤즈볼라의 최고위 지휘관이 사망하게 된 경위가 공개됐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18일(이하 현지시간) “이스라엘은 ‘유령’을 어떻게 죽였나”라는 제하의 보도에서 헤즈볼라의 최고위 지휘관이자 유독 악명이 높았던 푸아드 슈크르가 사망하기까지 있었던 일들을 전했다. 슈크르는 이름이나 얼굴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유령’이라고도 불리는 인물이었다. 그는 사망 당일인 지난달 30일, 레바논 베이루트의 주거용 건물 2층에 있는 사무실에 있었다. 사망 몇 시간 전까지도 그는 헤즈볼라의 최고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여러 주요 작전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저녁, 슈크르는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같은 건물 7층에 있는 숙소로 피신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오후 7시, 슈크르가 머물던 숙소 4~6층에 이스라엘 폭탄이 날아들었다. 레바논 보건부에 따르면, 이날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인한 부상자는 70명 이상에 달했다. 슈크르와 그의 아내, 다른 두 여성과 두 아이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숙소로 피신하라는 전화를 받은 슈크르가 이를 그대로 이행했다가 결국 암살된 것이다. “누군가 헤즈볼라의 내부 통신망을 뚫은 듯”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도청을 막기 위해 내부 통신망에서도 암호화된 언어를 사용해왔다. 지난 2월에는 소속 전사와 가족에게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말라고 명령한 바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헤즈볼라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7층으로 올라오라는 전화는 고층 건물이 없는 베이루트에서 표적이 되기 쉬운 7층으로 유인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라면서 “아마도 헤즈볼라의 내부 통신망을 뚫고 건 전화였을 것”이라고 전했다. 헤즈볼라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슈크르는 피살 당일 오전, 자신의 지휘를 받는 다른 헤즈볼라 고위 지휘관들에게 해산 명령을 내렸다. 이스라엘이 대원 암살 작전을 벌일 가능성을 염두한 조치였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무심코 받은 전화 한 통에 목숨을 잃은 셈이다. 암살된 슈크르는 누구?‘한 통의 전화’로 결국 암살을 피하지 못한 슈크르는 1985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미국으로 향하던 미 항공사 TWA 847편의 납치를 기획한 인물로 유명하다. 당시 항공기를 장악한 시아파 무장세력은 미국을 상대로 이스라엘에 억류된 시아파 전사 700명을 석방할 것을 요구했고 이를 관철하고 나서야 승객들을 풀어줬다. 슈크르는 사건 직후 돌연 잠적해 지금까지 40년 가까이 은둔 생활을 이어왔다. 자신의 측근들과만 교류를 했고, 올해 초 이스라엘과 교전 도중 전사한 조카의 장례식도 단 몇 분만 참석했다. 슈크르가 암살된 아파트의 주민들도 그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다며 그를 ‘유령’이라고 불렀다. 얼굴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탓에, 슈크르의 피살 소식을 보도한 레바논 언론들이 엉뚱한 남성의 사진을 그의 초상이라고 썼을 정도다. 이스라엘군은 지난달 30일 헤즈볼라 최고 지도자 나스랄라의 ‘오른팔’인 슈르크를 표적 공습으로 제거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한편,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한 뒤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시작되자 헤즈볼라는 하마스 지지를 표명하고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댄 레바논 난부에서 무력 충돌을 이어가고 있다.
  • [열린세상] 기시다 총리의 퇴진과 한일 관계

    [열린세상] 기시다 총리의 퇴진과 한일 관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9월 말 예정돼 있는 자민당 총재 선거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20% 미만의 지지율과 70% 이상의 정권교체 요구, 당내 퇴진 압박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2021년 9월 말 아베파와 아소파의 지지를 얻어 자민당 총재에 당선된 기시다 총리는 그해 10월 4일 제1차 기시다 내각을 출범시켰다. 주요 당내 파벌을 안배한 균형감 있는 내각 구성으로 평가받았다. 이후 60%가 넘는 지지율로 안정된 정국 운영을 유지했다. 그러나 2022년 구(舊) 통일교와 자민당의 유착 관계가 드러났다. 국면 전환을 위해 2022년 8월 10일에는 제2차 기시다 내각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장례식을 국장(國葬)으로 치르면서 국민의 공분을 샀고 지난해 11월에는 기시다파를 비롯한 주요 파벌의 정치자금 문제가 드러나면서 지지율이 10%대까지 곤두박질쳤다. 기시다 총리는 자민당 파벌 개혁을 언급했으나 이에 동참하는 파벌은 없었다. 국민의 정치 불신이 해소될 만한 뾰족한 대책도 나오지 않았다. 기시다 총리는 국내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강점인 외교에 매진했다. 지난해 3월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로 한일 관계 개선의 물꼬가 트였다. 같은 해 5월에는 지역구인 히로시마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개최했으며, 지난 4월에는 일본 총리로는 9년 만의 국빈 방미로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미일 동맹을 구축했다. 아베 전 총리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을 계승하면서 공적개발원조(ODA)로 글로벌 사우스 국가를 견인한다는 자신만의 외교 구상도 만들었다. 이런 외교적 노력과 성과에도 일본 국민의 자민당을 향한 정치적 불신은 걷어 내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의석수를 잃기 시작하더니 지난 4월 28일 보궐선거에서는 3석 모두 패했다. 5월 27일 시즈오카현 지사 선거에서도 자민당이 추천한 후보가 탈락했다. 7월 10일 열린 도쿄 도의회 보궐선거도 8곳 중 6곳에서 패배했다. 이런 성적으로는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희박했다. 총재 당선이 어렵다고 판단한 기시다 총리는 재임에 실패한 총리보다는 자민당의 불신에 책임진 총리로 기억되고 싶었기에 자진 불출마를 결심한 것이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14일 퇴진을 언급하는 동시에 임기 동안의 성과도 밝혔다. 그는 대내적으로 경기부양을 위한 임금 인상과 투자 촉진, 저출산 대책, 방위력 강화를 꼽았다. 대외적으로는 미일 동맹 강화, 한일 관계 개선,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을 들었다. 한일 관계 개선은 기시다 총리에게도 중요하고도 어려운 과제였다. 지난해 3월 강제징용 해법안 발표 후 열흘 만에 윤 대통령이 방일했고 직후 5월에는 기시다 총리가 답방하면서 12년 만에 셔틀외교가 복원됐다. 두 정상의 노력으로 한일 관계가 정상화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유대 관계는 두터웠고 역대 어느 한일 정상보다 깊은 신뢰를 구축했다. 또한 두 정상 모두 내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한일 관계 새 도약의 계기로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한미일 협력의 제도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었다. 이런 시기 기시다 총리의 퇴진은 윤 대통령에게도 큰 아쉬움으로 남을 듯하다. 기시다 총리의 불출마 선언 이후 포스트 기시다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아베 전 총리 사망 이후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아베파의 구심력이 상실된 가운데 현재 자민당은 아소 다로 부총재와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의 양대 구도로 운영되는 모양새다. 이번 선거 역시 두 인사의 입김하에 총재가 결정될 듯하다. 현재로서는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차기 총리가 누가 되든 한일·한미일 협력이라는 큰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양호한 한일 관계 흐름을 이어 갈 인물이 차기 총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숙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 [부고]

    ●하영자씨 별세, 오세천(LG전자 홍보담당 전무)·선주·희정씨 모친상, 서영지씨 시모상, 정지선씨 장모상=17일 이대서울병원 장례식장, 발인 20일. (02)6986-4440
  • [부고]김성수(서울신문 편집인)씨 빙부상

    ●김지원씨 별세. 김남웅(전 삼성증권 부장)·해임·영주·수정(경희사이버대 교수)씨 부친상. 박현진씨 시부상. 김건(문천산업 대표)·김성수(서울신문 편집인)씨 빙부상. 김동준·동규·동욱씨 조부상. 김형준·오현민·김민지·김세린(백운중 교사)씨 외조부상 = 17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1호실, 발인 19일. (02)3010-2000.
  • 역사강사 설민석 부친상…“국회의원 지낸 유명 정치인”

    역사강사 설민석 부친상…“국회의원 지낸 유명 정치인”

    전 EBSi 역사강사이자 방송인 설민석이 부친상을 당했다. 설민석의 아버지 설송웅(82)씨가 15일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 연세대학교 신촌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17일, 장지는 국립4·19민주묘지다. 설송웅씨는 1942년 만주국 지린성 지린시에서 태어나 8·15 광복 후 귀국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60년 4·19 혁명에 참여했고 4·19의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시위 도중 총상을 입기도 했다. 경무대에서 이승만 당시 대통령을 만나 하야를 요구한 시민 대표 다섯 명 중 한 명이다. 설씨는 1987년 신민주공화당 창당에 참여,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서울 용산구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민주정의당 서정화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설씨는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용산구청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지만 이듬해 11월 탈당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직전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선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노리고 불출마했다. 이후 2000년 초 새천년민주당 창당에 합류해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용산구 선거에서 한나라당 진영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 [부고]

    ●이진희씨 별세, 백석기(교보생명 중앙GFP지점 팀장)·선기(전 KBS 기자)·숙기(전 아시아나항공 선임사무장)씨 모친상, 손관승(전 iMBC 대표이사)씨 장모상=15일 이대목동병원 장례식장, 발인 17일. (02)2650-2746
  • [서울인싸] 생존을 위한 제로웨이스트 서울

    [서울인싸] 생존을 위한 제로웨이스트 서울

    서울에서 근대적 기상관측을 시작한 1907년 이후 올해까지 118년 중 두 번째로 긴 24일 연속 열대야로 많은 사람이 밤잠을 설치고 있다. 지속된 폭염과 스콜처럼 변한 폭우 등 다양한 현상들이 기후문제가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실감케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의 폭염이 지속되면 사람들은 시원한 얼음 음료를 더 많이 찾고, 많은 이들이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사용해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 기후문제가 심각하고 우리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는 공감에도 불구하고 ‘기후위기대응’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어렵고 막막할 수 있다. 서울시는 시민의 삶과 가까이에서, 어렵지 않게,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크고 작은 기후ㆍ환경 정책을 펼쳐 왔다. 2022년 ‘제로웨이스트 서울’ 선언을 통해 일회용품 감량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 온 결과 지난 2년 동안 약 378t 규모의 일회용 플라스틱을 줄여 약 1039t의 온실가스 저감 성과를 달성했다. 지난해에는 ‘일회용 플라스틱 감축 종합계획’을 수립해 언제 어디서든 다회용기를 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노력해 왔다. 일례로 올해 4월 서울시 전체 스포츠시설 폐기물 발생량의 68.5%를 차지하는 잠실야구장에 다회용기를 전면 도입해 일회용품을 대체했다. 적극적인 시민 참여 덕분에 다회용기 회수율도 첫 주 30%대에서 도입 3개월 차인 지난달 말 현재 71%로 상승하는 고무적인 성과를 거뒀다. 또한 배달 주문을 다회용기로 제공하는 ‘제로식당’을 통해 시민들에게 폐기물 감량 경험을 제공하고 폐기물 배출의 번거로움도 해소해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많은 시민의 호응 덕에 서비스 지역이 지난해 10개 자치구에서 올해 15개 자치구로 확대됐다. 지난해에는 전국 최초로 서울의료원 장례식장에 ‘일회용품 없는 장례식장’을 도입했다. 지난달에는 민간 상급종합병원 최초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도 다회용기를 도입해 친환경 장례문화에 합류했다. 이처럼 서울시는 다양한 정책 추진을 통해 다회용기 사용 문화를 만들고 큰 결심이나 노력 없이도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다회용기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보다 적극적인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개인컵 사용의 날’ 캠페인도 추진하고 있다. ‘개인컵 사용의 날’은 개인컵을 가지고 오면 무료로 음료를 나눠 주는 캠페인으로 올해 상반기에만 총 15회의 ‘개인 컵 사용의 날’ 행사를 열어 2만 2000여개의 일회용컵 사용을 줄였다. 이달부터는 개인컵 사용 시 할인과 서울페이 적립이 가능한 ‘서울페이 개인컵 포인트제’도 본격 운영했다. 일회용품 줄이기에 앞장서 온 서울시는 이달부터 연말까지 ‘일회용컵 회수 시범사업’을 진행한다. 부득이하게 일회용컵을 사용하게 되더라도 회수를 통해 자원을 재활용하기 위한 취지로, 광화문~숭례문 일대 ‘에코존’에 있는 42개 매장에 일회용컵 회수함을 설치했다. 서울시는 ‘일상 속 혁명’을 통한 혁신을 지속하기 위해 시민의 삶이 숨쉬는 가까운 곳에서부터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자원순환 시스템 구축에 더욱 힘써나갈 예정이다. 성숙한 시민 의식과 서울시의 노력에 더해 전 세계적인 다회용기 사용 의무화 흐름에 따라 우리나라도 제도적인 변화를 통해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위한 지속적인 정책이 추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여장권 서울시 기후환경본부장
  • 독립 열망 서린 예배당… 100년 전 유관순 흔적이 오롯이[마음의 쉼자리]

    독립 열망 서린 예배당… 100년 전 유관순 흔적이 오롯이[마음의 쉼자리]

    1885년 건립… 韓 감리교회 어머니 독립협회 모태 ‘협성회’ 조직된 곳 손정도 등 민족운동 지도자 거쳐가오르간 뒤편서 태극기 비밀 제작도 어릴 때는 유관순(1902~1920) 열사를 ‘누나’라고 불렀다. ‘열사’라는 다소 무거운 호칭으로 부르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무렵으로 기억된다. 유관순 ‘누나’가 생존했던 나이와 비슷해졌을 즈음이었던 듯하다. 우리가 기억하는 ‘유관순’의 이미지는 사실 대부분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투옥 중이던 ‘열사’의 모습이다. 모진 고문으로 퉁퉁 붓고 수심으로 가득했던 얼굴 말이다. 그런데 2019년에 이화여대가 공개한 사진은 달랐다. 청초하고 갸름한 얼굴의 소녀가 거기 있었다. 충남 공주 이인면의 한 마을에서 만난 벽화도 그랬다. 공주 영명학당에 다니던 유관순 열사의 13~14세 당시 추정 모습을 인공지능(AI)으로 복원했다는 벽화에선 앳된 모습의 유관순 ‘누나’가 예쁜 한복을 입고 헤드셋을 쓰고 있었다. 돌아보면 누구나 화양연화와 같은 시절이 있지 않은가. 서울 중구 정동의 정동제일교회는 유관순 ‘누나’의 화양연화를 추억할 수 있는 장소다.정동교회가 이 땅의 교회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꽤 묵직하다. 한국 최초의 감리교 교회로, ‘한국 감리교회의 어머니’라 불린다. 정동교회는 미국인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1885년 한옥을 사들여 세운 게 시초다. 신자가 늘면서 규모가 큰 석조 예배당이 필요해졌고, 1897년 현재의 벧엘예배당이 세워졌다. 6·25전쟁을 겪으며 일부 훼손되기도 했지만 벧엘예배당은 대부분 19세기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후 예배당 신관, 기념관 등이 들어서면서 일종의 신앙공동체 클러스터를 이루게 됐다. 구한말의 정동은 미국, 러시아, 독일 등 서양 열강의 공관이 줄지어 있었던 곳이다. 굵직한 역사적 사건도 많이 벌어졌다. 그 복판에 정동교회가 있었다. 1895년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했을 때 정동교회 초대 담임목사였던 아펜젤러는 이 교회에서 황후의 추모 예배를 드렸다. 나라의 독립을 바라는 사람들도 모여들었다. 갑신정변 실패 후 미국 망명길에 올랐던 서재필은 귀국해 정동교회 청년회를 중심으로 협성회라는 조직을 만들었는데 이는 독립협회의 모태가 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도 정동교회의 장로였고, 아펜젤러 사망 이후 이 교회를 이끈 노병선, 최병헌, 현순, 손정도, 이필주 목사 등도 개화기 개혁운동과 민족운동의 지도자들이었다.정동교회와 이웃한 이화학당에 다니던 유관순 ‘누나’도 신자였다. 비록 나라는 일제가 빼앗았지만 소녀의 꿈까지 뺏을 수는 없었을 터. 시골에서 상경한 소녀는 정동의 돌담길을 걸어 학교와 교회를 오가며 꿈을 키웠을 것이다. 하지만 조국은 앳된 소녀에게 ‘열사’의 무거운 짐을 안겼다. 특히 상하이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낸 손정도 목사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유관순 ‘누나’가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에 진급한 1919년에 3·1 운동이 일어났다. 여고생에서 조국 독립을 열망하는 열사로 변모한 유관순은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며 독립운동에 발을 내디뎠다. 벧엘예배당 내 파이프오르간 벽면 뒤에 송풍실이란 작은 공간이 있다. 유 열사와 친구들은 이 비좁은 공간에 숨어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몰래 인쇄하고 기도를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듬해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유 열사의 장례식도 이 교회에서 치러졌다. 정동교회는 서양식 혼례, 성찬식, 기독교 여성단체 등 ‘한국 최초’를 기록한 것들이 많다. 그 덕에 ‘붉은 벽돌로 쓴 역사서’란 상찬도 받는다. 빛바랜 붉은 벽돌, 야트막한 지붕, 약간의 장식으로 마무리한 창문···. 교회 건물 곳곳이 고풍스러우면서도 소박한 분위기여서 친근한 느낌을 준다. 안내판은 이런 건축 양식을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전원풍 고딕 양식’이라고 적고 있다. 정동교회에 갈 때는 덕수궁 쪽보다 배재학당 쪽에서 접근하길 권한다. 주변에 크기를 견줄 건물이 없던 시절에 세워진 정동교회의 모습을 상상하기 좋다.
  • [부고] 김광호(연합뉴스 경기취재본부장)씨 모친상

    ●손옥분씨 별세, 김경호·김민호·김광호(연합뉴스 경기취재본부장)·김진순·김순희씨 모친상, 김승구씨 장모상, 신재춘·이정순·서원율씨 시모상 = 15일 오전 5시, 대전 성심장례식장 특2호실, 발인 17일 오전 7시 10분, 장지 대전시립납골당. 042-522-4494
  • [부고] 김광호 (연합뉴스 경기취재본부장)씨 모친상

    ▲ 손옥분씨 별세, 김경호·김민호·김광호(연합뉴스 경기취재본부장)·김진순·김순희씨 모친상,김승구씨 장모상,신재춘·이정순·서원율씨 시모상=15일 오전 5시, 대전 성심장례식장 특2호실, 발인 17일 오전 7시 10분,장지 대전시립납골당. 042-522-4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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