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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 화살 무형문화재 ‘궁시장’ 유영기씨 별세

    전통 화살 무형문화재 ‘궁시장’ 유영기씨 별세

    70년 넘게 한국 전통 활과 화살을 만들어 온 국가무형문화재 ‘궁시장’ 유영기씨가 지난 18일 오후 별세했다. 87세. 1936년생인 고인은 열세 살 때부터 아버지인 유복삼씨에게서 화살 작업을 전수하기 시작해 줄곧 전통 화살 장인의 길을 걸었다. 선대로부터 화살을 제작하는 공방인 ‘살방’을 물려받아 전국 유명 활터에 화살을 공급했다. 민예품경진대회, 전승공예대전 등에서 수십 차례 입상했고, 일본과 영국 등 세계 각국에 한국 전통 화살을 선보였다. 또 육군사관학교의 의뢰로 전통 궁술 재현, 무기 제작과 시연에도 여러 차례 참여했다. 1977년에는 전통 화살의 종류와 제작법 등을 정리한 ‘한국의 죽전’을 집필했고, 1990년대 ‘우리나라의 궁도’를 발간했다. 효시, 박두, 편전, 통아 등을 복원하는 등 전통 예술에 헌신한 공로로 1996년 궁시장 기능 보유자가 됐고 2020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아들 유세현씨도 지난해 궁시장 보유자로 인정됐다. 빈소는 경기 파주시 메디인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0일.
  • 美 대학, 챗GPT로 미시간대 총격 애도문 썼다가 ‘뭇매’

    美 대학, 챗GPT로 미시간대 총격 애도문 썼다가 ‘뭇매’

    미국의 한 대학이 지난 13일 최소 3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시간주립대 총격 사건에 대한 애도글을 대화형 인공지능(AI)인 ‘챗GPT’로 쓴 사실이 드러나 사과했다. 미 경제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18일(현지시간) “미국 테네시주 밴더빌트대학교의 피바디 교육대학 사무국은 지난 13일 발생한 미시간주립대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해 학생들에게 보낸 이메일 애도문 마지막 줄에 ‘이 문구는 오픈AI의 챗GPT에서 발췌했다’는 문장을 포함시켰다”고 보도했다. 이메일 애도문은 학생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동생이 미시간주립대에 다니는 밴더빌트대학 4학년 학생 리스 카얏은 “공동체에 대한 메시지를 컴퓨터가 쓰도록 시키는 것은 역겹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학부생 잭슨 데이비스는 “사무국이 총격 사건에 대한 애도문을 쓰는 데 챗GPT를 이용했다는 사실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5개 문단으로 이뤄진 이메일은 “최근 미시간대 총기 난사 사건은 서로를 잘 돌봐야 하는 포용적인 환경 조성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며 “우리는 모두를 위한 안전하고 포용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학의 니콜 조지프 부학장은 “잘못된 판단이었다”며 “비극적 사건을 애도해야 할 시기에 챗GPT를 사용한 것은 우리 대학 가치와 모순된다”고 사과했다. 그는 “이번 사례는 고등 교육에 영향을 미치는 신기술을 다룰 때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앞으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성찰할 기회를 준다”고 했다. 경찰은 “학교와 아무 관련이 없는 43살 남성 앤서니 맥레이가 지난 13일 저녁 수업 중인 버키 홀에 들어와 총기를 난사했다”면서 “이후 그는 자택까지 수킬로미터를 걸어갔고 경찰과 맞닥뜨려 극단 선택을 하기 전까지 아무 말도 안 했다”고 밝혔다. 그의 유서에는 자신이 학교와 기업으로부터 무시당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고로 학생 3명이 현장에서 사망했고 4명은 중태에 빠진 상태다. 1명은 의식을 회복했다. 총기 사고로 희생된 학생들의 첫 장례식이 열렸다고 AP가 보도했다. 2학년 브라이언 프레이저의 장례식이 디트로이트주 교외에 있는 레이크 성당에서 치러지는 등 다음주까지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엄수된다.
  • 전통 활 복원전문가 유영기 선생 별세

    전통 활 복원전문가 유영기 선생 별세

    70년 넘게 한국 전통 활과 화살을 만들어 온 국가무형문화재 ‘궁시장’ 유영기 선생이 지난 18일 오후 별세했다. 87세. 궁시장은 활과 화살을 만드는 기능과 그 기능을 갖춘 사람으로 활을 만드는 사람은 궁장,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시장으로 불린다. 1936년생인 고인은 13살인 1949년부터 부친인 유복삼 선생으로부터 화살 작업을 전수받기 시작해 전통 화살 장인의 길을 걸었다. 이후 선대로부터 화살을 제작하는 공방인 ‘살방’을 물려받아 운영하며 전국 유명 활터에 화살을 공급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전국 및 경기도 민예품경진대회, 전승공예대전 등에서 수십차례 입상했으며 일본, 영국, 스위스, 뉴질랜드 등 세계 각국에 한국 전통 기술로 만든 화살을 선보이기도 했다. 또 육군사관학교 의뢰로 전통 궁술재현, 무기 제작과 시연에도 여러 차례 참여했다.1977년에는 전통 화살 종류와 제작법, 재료 등을 정리한 ‘한국의 죽전’을 집필했고 1990년대에는 ‘우리나라의 궁도’를 발간했다. 효시, 박두, 편전, 통아, 장전, 유엽전, 신전, 영전 등을 복원하는 등 전통 화살의 복원과 계승·발전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궁시장 기능 보유자가 됐다. 2020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아들인 유세현씨가 아버지에 이어 국가무형문화재 궁시장 보유자로 인정됐다. 빈소는 경기 파주시 메디인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0일로 장지는 경기 고양시 벽제승화원.
  • 바이든, 인종차별 다룬 영화 ‘틸’ 상영 “침묵 안 돼, 현실 부정은 더 나빠”

    바이든, 인종차별 다룬 영화 ‘틸’ 상영 “침묵 안 돼, 현실 부정은 더 나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68년 전 백인에게 린치 폭행을 당해 숨진 흑인 소년을 다룬 영화를 백악관에서 상영하며 미국 사회가 인종 차별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16일(현지시간) 당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영화 ‘틸’ 상영회를 개최했다. 지난해 8월 개봉한 이 영화는 1955년 린치를 당해 사망한 14세 흑인 소년 에밋 틸의 어머니 마미 틸모블리의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 얘기를 담았다. 린치는 사법 권한이 없는 집단이 자의적으로 사람을 처형하는 행위로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과거 미국 남부에서 백인들이 흑인을 상대로 저지리는 일이 잦았다. 틸은 1955년 8월 친척들이 사는 미시시피주 소도시의 식료품점에서 백인 기혼 여성 캐럴린 브라이언트에게 휘파람을 불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의 남편 일행에게 끌려간 지 사흘 만에 처참히 훼손된 시신으로 발견됐다. 틸의 어머니는 사람들이 시신을 볼 수 있도록 관 뚜껑을 연 채로 장례식을 진행했고, 그 뒤 백인 배심원단이 틸을 살해한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이 사건은 민권운동의 촉매로 작용했다. 그의 이름을 딴 ‘에밋 틸 반(反)린치’ 법안에 지난해 3월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상영에 앞서 “린치는 ‘누구는 미국에 속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이 평등하지는 않다’는 거짓말을 강요하는 순전한 테러”라며 반린치법을 서명한 것이 큰 영광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좋은 것과 나쁜 것, 진실, 국가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조명하는 것”이라며 위대한 국가는 역사를 전부 알아야 하며 그래서 이 영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도 흑인이란 이유만으로 차별과 폭력을 당하는 이들이 많다면서 “우리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 현실 부정은 더 나쁘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상영회에는 영화 제작진과 틸의 친척 프리실라 스털링을 비롯한 가족들이 참석했다. AP 통신에 따르면 미시시피주 법원이 1955년 캐럴린 브라이언트에 대해 발부한 체포영장이 집행되지 않은 채로 지난해 발견됐다. 스털링은 미시시피 사법당국이 지금이라도 체포영장을 집행하고 브라이언트를 기소해야 한다며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한편 틸의 어머니 마미를 빼어나게 연기한 다니엘 데드와일러가 지난달 오스카 여우주연상 최종후보에서 탈락하고 감독상 최종후보에서 단 한 명의 여성도 언급되지 않자 이 영화를 연출한 나이지리아계 미국인 여성 영화감독 치논예 추쿠가 “흑인 여성들을 향해 부끄러움을 모르는 여성혐오(misogyny)”를 드러냈다고 비난해 화제를 모았다.
  • ‘신춘문예 3관왕’ 오탁번 前시인협회장 별세

    ‘신춘문예 3관왕’ 오탁번 前시인협회장 별세

    고려대 명예교수이자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낸 지천(芝川) 오탁번 시인이 15일 별세했다. 80세. 1943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고려대 영문학과와 동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국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재학 중이던 1966년 동화 ‘철이와 아버지’, 시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 소설 ‘처형의 땅’이 각각 동아일보, 중앙일보,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신춘문예 3관왕’으로 등단했다. 1971년에는 당시 금기시된 정지용 시인을 연구한 석사 논문을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육군사관학교 국어과 교관, 수도여자사범대 국어과 조교수를 거쳐 1978년부터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강단에 섰다. ‘아침의 예언’, ‘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 ‘생각나지 않는 꿈’, ‘1미터의 사랑’ 등 시집과 ‘처형의 땅’, ‘새와 십자가’, ‘저녁연기’ 등 소설집, 평론집, 에세이 등을 내며 끊임없는 창작 활동을 했다. 1998년에는 시 전문 계간 ‘시안’을 창간했고, 2008~2010년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냈다. 2020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다. 공초숭모회와 서울신문이 선정하는 공초문학상을 비롯해 한국문학작가상, 동서문학상등을 받았고, 2010년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7일이다.
  • [부고]

    ●김정자씨 별세, 김정우(KT 북부고객본부 도봉지사 CM1팀 차장)·정희씨 모친상, 이호준(전자신문 편집국 부국장)씨 장모상, 강아영씨 시모상 = 15일 서울 경희의료원 장례식장, 발인 17일. (02)958-9545
  • 한국사 지평 넓힌 사학자 한영우 교수 별세

    한국사 지평 넓힌 사학자 한영우 교수 별세

    조선시대와 근대사 연구로 한국사의 지평을 넓힌 원로 사학자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가 15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85세. 충남 출신인 고인은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85년부터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를 지냈고 한국사연구회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경기문화재단 이사, 서울대 인문대학장 등을 역임했다. 1992~1996년 서울대 규장각 초대 관장을 맡았으며, 규장각이 소장한 의궤 등을 약 10년간 연구한 것을 집대성한 ‘조선왕조 의궤’를 발간했다. 이런 공로로 고인은 옥조근정훈장(2003)등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18일 오전이다.
  • 오탁번 전 한국시인협회장 별세

    오탁번 전 한국시인협회장 별세

    한국시인협회는 고려대 명예교수이자 전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낸 지천(芝川) 오탁번 시인이 별세했다고 15일 전했다. 80세. 1943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고려대 영문학과와 동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국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재학 중이던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철이와 아버지’,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 1969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처형의 땅’이 당선되며 ‘신춘문예 3관왕’으로 화려하게 등단했다. 1971년에는 당시 금기시된 정지용 시인의 연구 석사 논문을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1974년까지 육군사관학교 국어과 교관을 지냈으며 1974~1978년 수도여자사범대 국어과 조교수를 거쳐 1978년부터 모교인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강단에 섰다. 후학을 양성하며 시와 소설, 평론을 오가며 수많은 문학 작품을 발표했다. 시집으로 ‘아침의 예언’과 ‘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 ‘생각나지 않는 꿈’, ‘겨울강’, ‘1미터의 사랑’, ‘벙어리 장갑’, ‘손님’, ‘우리 동네’, ‘시집보내다’ 등이 있다. 소설집으로 ‘처형의 땅’과 ‘새와 십자가’, ‘저녁연기’, ‘혼례’, ‘겨울의 꿈은 날 줄 모른다’, ‘순은의 아침’ 등을 냈다. 2018년에는 등단작 ‘처형의 땅’을 비롯해 절판된 창작집과 이후 발표작까지 60여 편을 묶은 ‘오탁번 소설’(전 6권)을 펴냈다. 평론집 ‘현대문학산고’를 비롯해 ‘한국현대시사의 대위적 구조’, ‘현대시의 이해’, ‘시인과 개똥참외’, ‘오탁번 시화’, ‘헛똑똑이의 시읽기’, ‘작가수업-병아리시인’, ‘두루마리’ 등 다양한 산문집도 냈다. 고인은 1998년 시 전문 계간 ‘시안’을 창간했다. 2008∼2010년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냈다. 2020년부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했다. 한국문학작가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한국시협상, 고산문학상, 김삿갓문학상, 목월문학상, 공초문학상, 유심문학상 특별상을 받았다. 2010년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고인의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303호에 마련됐다. 장지는 고인의 고향인 제천시 개나리추모공원이다. 발인은 17일이다.
  • 한국사 지평 넓힌 원로사학자 한영우 서울대 교수 별세

    한국사 지평 넓힌 원로사학자 한영우 서울대 교수 별세

    조선시대와 근대사 연구로 한국사 지평을 크게 넓힌 것으로 평가받는 원로 사학자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가 15일 오전 숙환으로 자택에서 별세했다. 85세. 충남 출신인 고인은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85년부터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한국사연구회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경기문화재단 이사, 서울대 인문대학장 등을 역임했다. 고인은 ‘조선 전기 사학사 연구’, ‘조선 전기 사회경제연구’, ‘우리 역사와의 대화’, ‘미래를 위한 역사의식’ 등 다양한 학술 서적을 펴내며 조선시대와 근대사를 주로 연구한 대표적인 역사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서울대 규장각 초대 관장을 맡기도 했다. 고인은 규장각이 소장한 의궤 등을 약 10년간 연구한 것을 집대성한 ‘조선왕조 의궤’를 발간했다. 의궤는 조선시대에 왕실이나 국가의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기록이다. 지난해에는 ‘홍길동전’ 작가로 알려진 조선 중기 문신 허균(1569~1618)의 생애를 정리하고 재평가한 ‘허균 평전’을 출간했다. 학계에서는 실증 연구를 통해 식민사관에 의해 부정적으로 왜곡된 역사상을 바로잡고 한국인의 역사의식을 높이는데 이바지했으며 우리 문화유산과 관련한 학술연구 분야 발전에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런 공로로 고인은 옥조근정훈장(2003년), 대한민국문화유산상 대통령표창(2005년), 한국출판문화상 저술상(2006년), 민세 안재홍 학술상(2012년) 등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발인은 18일 오전이며 장지는 서울추모공원.
  • 참사현장 달려간 한식당 사장님 “정착 때 받은 도움, 돌려줄 때” [튀르키예 참사의 기록]

    참사현장 달려간 한식당 사장님 “정착 때 받은 도움, 돌려줄 때” [튀르키예 참사의 기록]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 국경지역을 강타한 규모 7.8의 대지진 여파로 곳곳이 폐허로 변해버렸다. 아직 수 많은 이들이 건물 잔해에 갇혀 있는데도 구조 작업은 더디고 시간만 빠르게 흐르면서 살아남은 이들을 더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 한 순간에 가족, 친구, 보금자리를 모두 잃은 생존자들은 질병, 추위, 굶주림이라는 또 다른 재난과도 싸워야 한다. 이 곳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싶지만 폐허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이들은 우리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제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한 재난의 현장에서 서울신문은 절망이 아닌 희망의 기록을 써내려 간다는 심정으로 현지 상황을 기록한다.튀르키예에서 8년째 한국 음식점 프랜차이즈를 운영 중인 김아람솔(31)씨는 지진 발생 사흘째인 9일(현지시간) 이스탄불에서 짐을 챙겨 지진 피해 지역인 하타이주 안타키아로 갔다. 김씨 아내가 안전을 우려해 만류했지만 “돕고 싶다”는 김씨를 막아서진 못했다. 김씨가 함께 갈 직원을 모집했는데 30명 이상이 자원했다고 한다. 김씨는 음식점 운영과 안전 등을 고려해 11명의 최소 인원을 꾸렸다. 김씨 팀은 매일 1000인분씩 만들어 지진으로 삶의 터전과 가족을 잃은 이재민들에게 나눠줬다. 주민들은 긴 줄을 서서 따뜻한 한끼를 받아갔다. 경황이 없을텐데도 김씨에게 초콜릿, 과자 등 음식을 주며 감사 인사를 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봉사를 끝내고 이스탄불로 복귀하기 전 아다나 공항 근처에서 만난 김씨는 “튀르키예인 도움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면서 “지금은 이 감사함을 돌려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어 “돈이 없어 며칠 간 라면으로 한 끼를 떼우던 시절 평소 친하게 지내던 튀르키예 지인 ‘아슬란’이 제 모습을 보고 3000달러를 그냥 주고 갔다. 그 이후 항상 베풀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지난해 하타이주에서 열린 ‘하타이 엑스포’에 참석한 적이 있어 이번 참사가 더욱 가슴 아프다고 했다. 당시 한식 부스를 운영해달라는 초대를 받고 처음 하타이 지역에 방문한 김씨는 시리아 국경과 맞닿아 종교적 색채가 강하고 보수적일 것이라 생각했던 하타이 주민들이 개방적이고 정이 많은 사람들이란 걸 깨닫고 애정이 갔다고 한다. 기억 속 하타이는 밝았지만 김씨가 하타이를 다시 찾았을 땐 기억과 정반대로 건물이 파괴돼 있고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도시가 돼버렸다.그 중에서도 하타이에서 3㎞ 정도 떨어진 시외에 살다가 남편의 왼발 염증을 치료하러 온 한 아주머니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위급한 병은 아니었지만 아주머니는 빨리 치료를 하자며 하타이의 한 병원에 남편을 입원시켰는데 하필이면 이튿날 지진으로 병원이 가루처럼 무너지면서 남편도 건물에 갇혔다. 남편을 찾지 못해 병원 앞에서 노숙을 하는 아주머니는 자기 자신을 원망하며 “내가 천하의 죄인이다. 희망을 놓고 싶지는 않지만 사망했을 것 같아 시신이라도 찾아 매장해주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씨는 “하타이의 상황을 직접 본 입장에서 무슨 말을 해도 하타이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뒤 “아직 텐트가 없어 밖에서 자는 사람들이 많다. 여전히 지진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다. 한국 돈 1만원이 튀르키예에서는 10만원의 값이니 여유가 되신다면 작은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혼자 간 것도 아니고 팀을 꾸린 게 쉽지 않았을텐데. “지진 소식 듣고 곧바로 가려고 했는데 지진 발생한 초기에는 튀르키예 정부가 함부로 민간인이 진입을 못하게 했다. 사방팔방 뛰어다녀 혼자 가는 것까지는 허가를 받았는데 팀을 데려가려고 하니 안 될 수도 있다고 하더라. 포기를 해야 하나 싶었는데 며칠 지나니 통제가 없어졌다. 그래서 이스탄불 본점 직원 7명과 아다나 점주 3명 그리고 저까지 이렇게 11명으로 팀을 꾸렸다. 하루 1000인분씩 요리하려면 최소 8명이 필요하다. 가서 끓이는 것만 할 수 있게 아다나 식당에서 협조를 해주셨다.” -하타이 도착했을 때 상황은 어땠나. “지진 사흘째인 9일 출발해 이튿날 하타이에 도착했다. 그때는 이재민이 천막도 없었고 음식도 없었다. 지금은 구호물품이 각지에서 오니까 많지만 그때는 없었다. 이재민 중심으로 도우면서 대한민국 구조대에도 불고기, 김치, 밥 위주로 드렸다. 라면이랑 인스턴트 드시는 것 같던데 다들 좋아하셨다.” -현지 배급 어려움은 없었나. “이스탄불에서부터 준비를 많이 해서 갔다. LPG 가스통도 5개 챙기고, 물도 20L짜리 세트로 챙겼다. 모자란 재료는 아다나에서 가져갔다. 막상 하타이에 가니까 다행히 치안은 괜찮았다.” -숙소 구하는 것도 어려웠을텐데 어디서 묵었나. “원래는 하타이에 숙소를 잡을 예정이었다. 이스켄데룬에 있는 호텔에 예약까지 하고 갔는데 ‘오늘 군인들이 묵을 예정이라 여기 묵을 수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결국 아다나를 베이스캠프 삼아 매일 오전 7시쯤 하타이에 갔다가 돌아오는 식으로 진행했다.”-여진 우려도 있는데 가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튀르키예에 8년 있었는데 이렇게 큰 일은 있으면서 처음이다. 저는 튀르키예인들이 도움을 줘서 이만큼 성장했고 사람 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건 해야겠다. 그래서 가게 됐다. 직원들도 “동포들을 구하러 가야 한다. 여기서 발 뻗고 자는 게 오히려 편하지 않다”며 가고 싶다고 했다. 내 아내는 튀르키예인인데 처음에 가겠다고 하니 ‘이혼도장 찍고 가라고. 거기 얼마나 위험한데 가냐’고 만류했다. 아내를 설득해서 도장은 안 찍고 왔다(웃음). 어머니는 하타이 봉사 간다고 했을 때 반대는 하지 않으셨고 ‘그냥 조심히 갔다오라’고 하셨다.” -하타이에서 기억에 남는 일은. “깜짝 놀랐던 게 여기 사람들은 본인들이 힘들텐데도 잘 베푸신다. 아시다시피 건물 앞에서 가족 못 찾고 불 피우고 앉아 계시는데도 저희한테 차도 끊여 주시고 케이크도 주고 그러셨다.” -가슴 아픈 사연도 있었을 것 같다. “하타이에서 5~8㎞ 떨어진 곳에 사는 아주머니가 남편이 왼발에 염증에 생겨서 병원에 오셨는데 이튿날 지진이 나서 병원이 형체도 없이 가루가 됐다고 하더라. 그래서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계셨다. ‘내가 천하의 죄인이다. 희망을 놓고 싶지 않지만 남편이 살아있을 것 같지 않다며 시신이라도 찾아서 땅에 묻어주고 싶다’고 하셨다.” -이전에도 하타이에 가보셨을 것 같다. 지진 이후 도시가 어떻게 달라졌나. “지난해 하타이 엑스포가 열려서 초대받아 참석한 적이 있다. 도시가 엄청 예쁘고 아기자기했다. 엑스포 가기 전에는 사람들이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색채도 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가보니 사람들이 밝고 개방적이고 정이 많아 보였다. 이스켄데룬 바다는 너무 아름다웠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건물이 다 부서져서 안타깝다. 하타이 주민들은 애향심이 강해서 나중에 재건되면 5년 뒤, 10년 뒤에는 다시 고향으로 오겠다고 하더라. 어떻게 보면 뿌리에 대한 자긍심이 있는 거 같다.” -튀르키예 상황 바라보는 한국에 하고 싶은 말은. “이 상황이 마음 아프고 안타깝다. 아직도 차에서 지내는 분이 많다. 텐트가 없어서 길에서 비닐봉지 안에 들어가 주무시는 분도 계셨다. 밤에 엄청 추운데 지진 피해 입은 주민들은 친지 장례식 치를 때까지는 거기 계속 계실 것 같다. 저 같아도 만약 가족이 잔해에 갇혀 있으면 그 앞에 있을 것 같다. 그 마음을 이해한다. 한국 분들도 도움을 많이 줬으면 한다. 돈이 아니라도 텐트라도 보내주시면 좋을 것 같다.”
  • 중형받고 수감된 러 갱단 두목 3명, 용병 참전했다가 사망 [우크라 전쟁]

    중형받고 수감된 러 갱단 두목 3명, 용병 참전했다가 사망 [우크라 전쟁]

    살인 등 각종 흉악한 범죄를 저질러 중형에 처해진 러시아 갱단 두목 3명이 모두 와그너 그룹에 합류했다가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언론 ‘우크라인스카 프라우다’(Ukrainska Pravda)는 안드레이 베레즈니크(55), 세르게이 막시멘코(59), 이고르 쿠스크(55) 등 3명이 모두 전장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모두 한때 러시아 각 지역을 공포에 떨게했던 갱단 두목으로 각각 20년 형 이상을 받고 복역 중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러시아 용병단인 와그너 그룹에 합류하면서 감옥에서 나와 모두 전장에 보내졌다. 세 인물 중 가장 유명한 갱단 두목은 베레즈니크로, 그는 러시아 중서부에 위치한 사라토프주를 무대로 각종 살인 및 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1990년 대 중반 발라코보에서 갱단을 조직해 거의 20년 간 지역 내 사업가 등을 포함해 수많은 살인과 암살을 저질렀다. 특히 그는 1994년에는 동료들과 반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채 체육관을 떠나는 청년들을 공격해 3명을 살해하기도 했으며 2003년에는 지역 TV방송국을 유탄발사기로 공격하기도 했다. 결국 지난 2013년 베레즈니크는 25년 형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보도에 따르면 베레즈니크는 와그너 그룹에 합류한 지 한 달 만인 지난해 12월 8일 우크라이나와의 전투 중 사망했다. 이후 지난달 발라코보 지역 대성당에서 그의 죽음을 기리는 장례식이 열린 것으로 알려졌다. 세르게이 막시멘코는 지난 1997년부터 러시아 펜자시에서 올림피안이라는 갱단을 이끌며 살인을 비롯 매춘, 사채업 등을 벌여왔다. 특히 2000년 대 초반에는 지역 사업가와 라이벌 갱단을 대상으로 연쇄 살인을 저지르기도 했다. 결국 막시멘코 역시 2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지난해 9월 와그너 그룹에 합류해 3달 후 사망했다. 이외에 쿠스크는 지난 1998년 타타르스탄에서 자신의 이름를 딴 갱단을 조직해 주로 청부살인 등을 벌여왔다. 특히 쿠스크를 포함 조직원 상당수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한 군인 출신으로 알려졌다. 쿠스크 역시 징역 23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지난해 여름 와그너 그룹에 합류했으며 이후 사망했다.한편 일명 ‘푸틴의 그림자 부대’로 불리는 와그너 그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인 프리고진이 운영하는 러시아 민간군사기업(PMC)이다. 푸틴 정권을 대리해 각종 전쟁에서 민간인 학살 등 잔혹한 전쟁 범죄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되는 병력이 부족해지자 그 자리를 용병들이 채우고 있는데, 이를위해 와그너 그룹은 전국의 러시아 교도소를 돌며 죄수들까지 모집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 [부고]

    ●이영호(전 혜화여고 교장)씨 별세, 권열(동군산병원 치과 과장)·권태(금융소비자뉴스 부사장, 전 서울신문 광고국장)·권희(캐나다 거주)·미현씨 부친상, 김기근(자영업)씨 장인상, 김순옥·이혜숙·최자영씨 시부상, 대훈(행정안전부 공무원)·성훈(완주군 군무원)씨 조부상 = 14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 16일. (02)2072-2020
  • 7살 때 사준 내복 입고 숨진 12살…계모·친부는 고가 패딩 입었다

    7살 때 사준 내복 입고 숨진 12살…계모·친부는 고가 패딩 입었다

    계모와 친부의 학대로 온몸에 피멍이 든 채 숨진 12세 남아가 ‘7세 때 사준 내의를 입고 있었다’는 증언이 나와 안타까움을 더한 가운데, 계모와 친부가 고가의 브랜드 패딩 점퍼를 입고 법원에 출석하는 모습이 공분을 사고 있다. 14일 경찰에 따르면 인천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대는 지난 10일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아동학대치사로 계모 A(43)씨를, 아동복지법상 상습 아동학대 등 혐의로 친부 B(40)씨를 구속했다. A씨는 지난 7일 오후 인천 남동구 논현동 한 아파트 집에서 의붓아들인 C군을 때려 숨지게 하고, B씨는 아들 C군을 평소 상습적으로 폭행하는 등 학대한 혐의를 받는다. 사망 당시 C군의 몸무게는 또래 남학생들보다 15㎏ 넘게 적은 30㎏에 불과했다. 온몸에서는 타박흔(외부 충격으로 생긴 상처)으로 추정되는 멍 자국이 발견됐다. A씨와 B씨는 초기 경찰조사에서 아이의 몸에 든 멍이 자해해서 생긴 상처라고 주장했다가, 경찰 추궁에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 때렸다”며 폭행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훈육 목적이었다”며 학대 혐의를 부인했다. 초등학교 5학년생인 C군은 지난해 11월 24일부터 최근까지 학교에 나오지 않아 교육 당국의 집중 관리대상이기도 했다. 재혼가정인 A씨와 B씨 사이에는 C군 외에도 3세, 4세 딸 2명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이들의 학대 및 방치 속에 숨져간 C군의 발인식은 지난 11일 오후 인천의 한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C군 발인식에는 친모 D씨를 비롯해 외가 친인척들만 참석했고 친가 측은 장례식장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친모 D씨는 C군이 병원에 옮겨졌을 당시 7세 때 입던 내복을 입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가 같이 살던 7살 때 사준 내복을 12살 죽는 날에도 입고 있었다”면서 “어릴 때는 잘 먹어 통통했는데 부검 후 보니 엉덩뼈가 살을 뚫고 나올 정도로 말라 있었다”라며 오열했다. D씨는 친부 B씨가 수감된 유치장을 찾아가 B씨에게 ‘아이를 저렇게 만들 거면 내가 그렇게 보내달라고 했을 때 보내지 왜 안 보냈느냐’라고 따졌다고 했다. 하지만 B씨는 “나는 (학대 사실을) 몰랐다”라며 변명만 늘어놓았다고 D씨는 전했다. B씨는 지난 10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가 열리는 인천지법에 들어서기 전 A씨보다 먼저 도착했다. B씨는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느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미안하다”면서도 ‘아들을 때렸느냐’는 질문에는 “저는 안 때렸고 (아내가 때리는 모습을) 본 적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취재진이 ‘친모는 왜 만나지 못하게 했느냐’고 묻자 “(친모와) 연락이 안 됐고, 연락도 오지 않았다”는 취지로 답했다. B씨는 ‘왜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도 “(그 결정도) A씨가 다 했다”고 책임을 회피했다. 뒤이어 도착한 계모 A씨는 남편과 같은 질문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당시 A씨와 B씨는 각각 브랜드 N사와 R사의 고가 패딩 점퍼를 입고 있었다. 한창 성장기에 7살 때 입던 내복을 5년간 입은 C군과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 윤기원, 11세 연하 교수 여자친구 최초 공개

    윤기원, 11세 연하 교수 여자친구 최초 공개

    배우 윤기원이 ‘조선의 사랑꾼’을 통해 여자친구를 공개했다. 지난 13일 오후에 방송된 TV조선 예능 프로그램 ‘조선의 사랑꾼’에서는 ‘나이(든) 아저씨’를 통해 열애 사실을 밝힌 윤기원이 여자친구를 최초로 공개했다. ‘돌싱 아저씨’ 윤기원은 지난 방송에서 최성국, 김광규, 심현섭 앞에서 현재 열애 중이라고 밝혀 시선을 모았다. 윤기원은 ‘나이 아저씨’에서 “여자라는 존재가 무서웠다, 혼자 살 수밖에 없는 팔자라고 생각했다”라고 운을 떼며 재혼을 포기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2022년 초부터 실수를 만회할 한 번의 기회를 꿈꾸기 시작했고, 때마침 지금의 여자친구와 만났다고. 윤기원은 “저도 이렇게 잘 맞을 줄 몰랐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윤기원은 여자친구 생일날, 함께 시간을 보내던 중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을 들었다고 고백, 아버지의 마지막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윤기원은 당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바로 장례식을 치르지 못했고, 여자친구가 이틀씩 자리를 지키며 자연스럽게 가족들과 대면했다고 전했다. 윤기원은 “이 친구랑 헤어지면 안 될 것 같다”라며 여자친구를 향한 애정을 표현했다. ‘조선의 사랑꾼’ 제작진과 윤기원 커플의 만남이 성사됐다. 윤기원은 “전 돌싱이라서 조심스럽기도 하다”라며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이혼이 큰 죄는 아니지만 상 받아온 건 아니잖아요, 방송에서 공개하는 것이 시청자분들에게 맞는 건가 싶기도 했다”라고 걱정했다. 윤기원은 여자친구가 모델학과 교수라고 소개했다. 모델 활동을 하다가 교수가 된 이력을 전한 윤기원은 “자기 일에 욕심 있고, 목표가 있어 좋게 보였다”라며 11세 연하라고 부연했다. 윤기원 여자친구 이주현이 모습을 공개했다. 제작진은 이주현에게 배우 이지아를 닮았다고 말하기도. 이주현은 원래부터 윤기원의 팬이었다고 밝히며 “저도 이혼을 해서 애가 있다”라고 고백했다. 두려움과 미안함으로 고백을 망설였던 이주현은 윤기원과의 만남이 시작되자, 이별을 각오하고 용기 내서 고백했다고. 이에 윤기원은 “너라는 사람이 좋은 건데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라며 이주현을 다독였고, 이주현은 그때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이주현은 “연예인들은 재혼하더라도, 초혼이랑 결혼하기도 하는데, 저는 그렇게 어린 것도 아니고, 오빠(윤기원)는 애가 없지만, 저는 애가 있다”라고 운을 떼며 “괜히 사람들이 ‘애 딸린 이혼녀 만난다’는 말 들을까 봐 조심스러웠다”라며 출연을 망설인 이유를 털어놨다. 윤기원은 여자친구의 고백에 “이렇게 다 큰 아이 데리고 와줘서 고마워, 나 든든한 아들 생겼다”라고 말했다고. 이에 이주현은 “셋이 행복하고 싶다”라며 고마움의 눈물을 흘렸다. 윤기원은 결혼 후, 여자친구와 아이를 위해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TV조선 ‘조선의 사랑꾼’은 혼자보다 둘이라서 더 아름다운 사랑꾼들과 그들의 달콤살벌한 러브스토리를 담은 리얼 다큐 예능 프로그램으로 매주 월요일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 [부고]

    ●오진환(한양대 명예교수·전 한국언론학회 회장)씨 별세, 정려순씨 남편상, 오희경·세현·여경·순경씨 부친상 = 11일 한양대병원 장례식장, 발인 15일. (02)2290-9462 ●주계숙씨 별세, 문경억씨 배우자상, 문재호(공정거래위원회 대변인)·재윤씨 모친상, 이우영씨 장모상 = 12일 서울성모장례식장, 발인 14일. (02)2258-5940
  • 월간 시전문지 ‘시문학’ 발행인 김규화 시인 별세

    월간 시전문지 ‘시문학’ 발행인 김규화 시인 별세

    월간 시문학사 대표이자 ‘시문학’ 발행인인 김규화 시인이 폐암 투병을 하다 지난 12일 낮 12시 50분쯤 별세했다. 83세. 전남 승주에서 태어난 김 시인은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66년 ‘현대문학’에 ‘죽음의 서장’, ‘무위’, ‘무심’이 추천돼 등단했다. 1977년 남편인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문덕수(1928~2020) 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과 함께 시문학사를 인수한 뒤 함께 ‘시문학’을 발행했다. 시집 ‘이상한 기도’, ‘평균서정’, ‘멀어가는 가을’, ‘망량이 그림자에게’ 등을 펴냈고, 도천문학상(1986), 동국문학상(1990), 현대시인상(1992), 한국문학상(1995), 펜문학상(2012) 등을 받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자문위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2020~2021) 등을 지냈다. 최근 발행한 시문학 2월호(통권 619호)에는 김 시인의 유작이 된 ‘순간이 움직인다’와 ‘동학농민운동의 들녘에 피는 꽃’이 실렸다. 그동안 결호 없이 발행되던 시문학은 이번 호를 끝으로 종간(終刊)하고, 다음달 하순 심산문학진흥회 이사회에서 속간(續刊)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빈소는 고려대안암병원 장례식장 103호실. 장례는 한국현대시인협회장으로 치러진다. 고인은 15일 남편이 묻힌 대전국립현충원에 영면한다.
  • [부고] 문재호(공정거래위원회 대변인)씨 모친상

    ●주계숙씨 별세, 문경억씨 배우자상, 문재호(공정거래위원회 대변인)·재윤씨 모친상, 이우영씨 장모상=12일 서울성모장례식장. 발인 14일. (02)2258-5940
  • ‘시문학’ 발행인 김규화 시인 별세…83세

    ‘시문학’ 발행인 김규화 시인 별세…83세

    월간 시문학사 대표이자 ‘시문학’ 발행인인 김규화 시인이 폐암 투병을 하다 12일 오후 12시 50분쯤 별세했다. 83세. 전남 승주에서 태어난 김 시인은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66년 ‘현대문학’에 ‘죽음의 서장’, ‘무위’, ‘무심’이 추천돼 등단했다. 1977년 남편인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문덕수(1928-2020) 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과 함께 시문학사를 인수한 뒤 함께 ‘시문학’을 발행했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자문위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좋은시문학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2020~21년 엔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시집 ‘이상한 기도’, ‘관념여행’, ‘평균서정’, ‘멀어가는 가을’, ‘망량이 그림자에게’ 등을 펴냈고, 도천문학상(1986), 동국문학상(1990), 현대시인상(1992), 한국문학상(1995), 펜문학상(2012) 등을 받았다. 최근 발행한 2월호(통권 619호)에는 김 시인의 유작이 된 ‘순간이 움직인다’와 ‘동학농민운동의 들녘에 피는 꽃’이 실렸다. 그동안 결호 없이 발행되던 시문학은 이번 호를 끝으로 종간(終刊)하고, 다음달 하순 심산문학진흥회 이사회에서 속간(續刊)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고인은 지난달 말 이사장으로서 마지막으로 참여한 심산문학진흥회 이사회에서 ‘정기 구독자들에게 남은 기간의 구독료를 정산해서 돌려주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 이사장에는 아들인 문준동 공주대 교수가 선임됐다. 빈소는 고려대안암병원 장례식장 103호실. 장례는 한국현대시인협회장으로 치러진다. 고인은 15일 남편이 묻힌 대전국립현충원에 영면한다.
  • 튀르키예 배구시합 갔다가…학생 24명 시신으로 발견

    튀르키예 배구시합 갔다가…학생 24명 시신으로 발견

    튀르키예와 인접한 북키프로스의 한 학교 학생들이 배구 시합에 출전하기 위해 튀르키예를 찾았다가 강진으로 호텔이 붕괴돼 시신으로 발견됐다. 1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북키프로스 동부 연안 도시 파마구스타에서는 학생선수단 희생자 39명의 장례식이 엄수됐다. 북키프로스는 지중해 동쪽 사이프러스(키프로스) 섬의 북부 지역으로, 튀르키예의 영향권에 놓여있다.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지 못한 미승인국으로, 튀르키예만이 이곳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희생자들은 북키프로스에 있는 마리프칼리지(중·고등학교) 소속 배구팀 선수단으로, 토너먼트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튀르키예 남동부 아디야만을 찾았다가 변을 당했다. 이들이 묵고 있던 7층 높이의 호텔 건물이 지난 6일 새벽 튀르키예와 시리아 일대를 강타한 강진으로 무너져 내리면서 학생 24명과 학부모 10명, 교사 4명, 코치 1명이 숨졌다. 숨진 학생들은 11~14세 사이의 어린 청소년들이었다. 희생자 중 일부는 매몰 132시간 만에 건물 잔해 속에서 구조됐으나, 병원으로 이송된 후 안타깝게 숨졌다. 일행 중 4명은 건물이 붕괴되기 시작한 직후 스스로 빠져나와 살아남은 것으로 전해졌다.희생자 시신이 순차적으로 발견됨에 따라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간 열린 장례식에는 이들의 안타까운 희생을 추모하려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조문객들은 배구공이 놓인 희생자 관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기도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북키프로스에 주재하는 튀르키예 대사는 선수단이 묵은 4성급 호텔 이시아스 소유주를 상대로 부실 공사 등에 대한 정식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현지 매체들은 선수 전원이 시신으로 발견된 여자 배구 선수팀 외에도 현재 북키프로스 축구팀 소속 선수들 가운데 다수의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는 점에서 지진으로 인한 추가 인명 피해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 [부고]

    ●홍정자씨 별세, 김동희·남희·정은씨 모친상, 권재한(농림축산식품부 차관보)·에디킴씨 장모상 = 12일 평촌 한림대성심병원, 발인 14일. (031)382-5004 ●김연단씨 별세, 김돈환씨 부인상, 김기린(우리카드 상무, 전 우리금융지주·우리은행 홍보본부장)·기온(티쓰리큐 이사)·미경씨 모친상, 이영옥·최희경(분당서울대병원 연구원)씨 시모상, 강덕수씨 장모상 = 12일 강남성모병원장례식장, 발인 14일. (02)2258-5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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