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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모레 서민정·보광 홍정환, 약혼식 포착…삼성가 총출동(종합)

    아모레 서민정·보광 홍정환, 약혼식 포착…삼성가 총출동(종합)

    아모레 서민정·보광 홍정환, 신라호텔 약혼식 서경배(57)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큰 딸 서민정(29)씨와 홍석준(66) 보광창업투자 회장의 큰 아들 홍정환(35)씨가 27일 오후 6시쯤 서울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약혼식을 올렸다. 이날 서민정씨는 오후 3시30분쯤 단아한 원피스 차림을 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드레스에 긴 머리를 풀어서 스타일링한 서민정씨는 홍정환씨와 대화를 나누며 약혹식을 준비했다. 오후 5시10분쯤부터는 양가 친척들이 등장했다. 홍라희·이부진 등 ‘삼성가 총출동’ 약혼식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부인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부부 등이 참석했다. 또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 장남인 홍정도 중앙일보·JTBC 사장과 홍석조 BGF그룹 회장, 홍석규 보광그룹 회장 등이 참석했다. 홍석준 회장은 홍라희 전 관장, 홍석현 전 회장, 홍석조 회장 등의 동생이다.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경영권 승계 과정을 둘러싼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아온 만큼 약혼식 참석 여부에 관심이 쏠렸지만, 이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서민정씨는 미국 코넬대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2017년 1월 아모레퍼시픽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해 오산공장에서 일하다 그해 6월 퇴사했다. 중국 장강상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쳤다. 중국 2위 전자상거래기업 징동닷컴에서 일했으며 지난해 10월 아모레퍼시픽에 재입사, 뷰티영업전략팀 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그룹 지분 2.93%(보통주 기준)를 보유하고 있어 서경배 회장에 이어 2대 주주다. 홍정환씨는 홍석준 회장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보광창업투자에서 투자심사 총괄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지주사 BGF(0.52%), BGF리테일(1.56%) 등 친가인 보광그룹 관련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아모레·보광 사돈 맺는다…서민정·홍정환 27일 약혼식

    아모레·보광 사돈 맺는다…서민정·홍정환 27일 약혼식

    아모레퍼시픽그룹과 보광그룹이 사돈지간이 된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서경배(57)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의 큰딸 민정(29)씨가 홍석준(66) 보광창업투자 회장의 큰아들 정환(35)씨와 오는 27일 약혼식을 올린다. 두 사람은 올해 초 지인의 소개로 만났으며 서로에 대한 호감 속에서 만남을 이어왔다. 서씨와 홍씨의 약혼식은 27일 양가 친척들이 모인 가운데 소규모로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약혼식에는 고(故) 홍진기 회장의 장녀이자 홍석준 회장 누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여사 등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한다. 또 홍정환씨의 고종사촌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서씨는 미국 코넬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지난해 10월 아모레퍼시픽에 재입사해 현재 국내 화장품 채널 조직인 뷰티 영업 유닛의 뷰티영업전략팀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서씨는 아모레퍼시픽그룹 지분 2.93%를 보유하고 있다. 서 회장(53.90%)에 이어 그룹 2대 주주로 알려졌다. 홍씨는 보광창업투자 회장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보광 창투에서 투자 심사를 총괄하고 있다. 지주사 BGF(0.52%), BGF리테일(1.56%) 등 친가인 보광그룹 관련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후계자는 신동빈”… 신격호 유언장 나왔다

    “후계자는 신동빈”… 신격호 유언장 나왔다

    롯데 “형제 후계 구도 명확히 확인된 셈”지난 1월 별세한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의 유언장이 나왔다. 20년 전 차남인 신동빈 회장을 후계자로 지목한다는 내용이다. 최근 신 명예회장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일본 도쿄 사무실의 금고에서 신 명예회장이 2000년 3월 자필로 작성하고 서명한 유언장이 발견됐다고 24일 롯데지주가 밝혔다. 코로나19로 사무실과 유품 정리가 지연되다 최근 발견된 이 유언장은 이달 일본 법원에서 법정 상속인인 네 자녀의 대리인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개봉됐다. 사후에 한국과 일본, 그 외 지역의 롯데그룹 후계자를 신동빈 회장으로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장남인 신동주(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SDJ코퍼레이션 회장에 대해서는 연구개발에 참여하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으며 유산 분배와 관련된 내용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신 명예회장 말년에 후계 문제를 놓고 형제간 갈등이 극심했을 당시 신 명예회장의 정신건강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다. 롯데그룹은 “신 명예회장이 20년 전 정신건강 문제 없이 정상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을 때 유언장이 작성돼 신 명예회장이 생전 생각했던 후계 구도가 명확하게 확인된 셈”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빨갱이 가족이란 낙인 두려워…금정굴 쪽은 쳐다도 안 봤어요”

    “빨갱이 가족이란 낙인 두려워…금정굴 쪽은 쳐다도 안 봤어요”

    “어려서는 내가 금정굴을 하루이틀 걸러 다니면서 무섭지도 않은지 거길(굴 위를) 건너뛰고 그랬지요. 그런데 아버지 죽고 나서 한 20여년 동안 한 번도 가지를 않았어요. 그쪽은 쳐다도 안 보고 얼씬도 안 하고 싶더라고요.”(이병순 금정굴유족회 고문)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일산동 황룡산 자락에 있는 18m 깊이의 수직 폐광 ‘금정굴’. 한때 ‘금구뎅이’라고 불렸던 영광의 기억도, 동네 꼬마들이 폴짝폴짝 뛰놀던 추억도 온데간데없다. 금정굴은 이제 ‘무덤’이다. 1950년 10월 9일부터 25일까지 고양·파주 지역의 민간인 160여명이 ‘빨갱이’로 낙인찍혀 재판 한 번 받지 못하고 학살당한 채 금정굴에 버려졌다. 70년이 지났지만 희생자들은 한 몸 온전히 누일 곳 없이 떠돌이 신세다. 1995년 유족들이 발굴 작업을 벌여 153구 이상의 유해가 세상에 나왔다.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만 76명이다. 유해를 모실 곳이 마땅치 않아 지금까지 납골당만 세 차례 옮겼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금정굴 민간인 학살 사건을 “경찰에 의한 불법적인 집단학살”로 결론 내렸지만, 희생자들의 넋은 위로받지 못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권고했던 평화공원 설립도, 영구적인 유해 안치소 설치도 아직 이뤄지지 못했다. 유족들은 애가 끓는다. 부역 혐의자 가족이라는 낙인이 두려워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금정굴 쪽은 애써 외면했다. 억울한 죽음을 애도할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살아온 세월이 수십 년이다. 서울신문은 24일 채봉화(74) 금정굴유족회장과 이병순(87) 고문을 만났다. 1950년 10월 9일. 당시 열일곱 소년이었던 이 고문의 뇌리에는 70년 전 모습이 스틸사진처럼 남아 있다. 집 앞에서 두 사람씩 삐삐선(군용통신선)에 묶인 채 이동하는 행렬을 목격했다. 맨 뒤에 아버지 이봉린이 있었다.보리밭 갈다 끌려간 아버지… 유해안치소도 없이 ‘떠돌이 신세’ 한국전쟁이 터지고 3일 만에 수도를 빼앗긴 국군이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한 무렵 이봉린은 능곡국민학교에서 열린 유엔군 환영대회에 나갔다가 치안대에 끌려갔다. 인민군이 마을을 점령한 시기 ‘농촌위원장’을 맡아 공출량을 계산하는 부역을 했다는 이유였다. “우리 아버지가 일산리 구장(區長)을 했었거든. 동네에서 추켜세우는 사람이잖아. 주변에서 ‘형님이 일 봐야지’ 하니까 맡게 된 건데….” 어머니와 7남매는 잡혀간 아비의 끼니 걱정에 매일 번갈아 수십 킬로 걸어 밥을 날랐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경찰서에서 “(부역 혐의자들이) 문산으로 좌익 심사를 받으러 가서 오늘은 밥을 안 받는다”고 했다. 이 고문은 “문산을 가는 줄 알았지 금정굴로 가는 줄 누가 알았겠느냐”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행렬을 몰래 뒤따랐던 다른 희생자 유족을 통해 이 고문 가족은 진실을 알게 됐다. “아이고, 심사가 뭡니까. 그 구뎅이로 가서 다 쏴죽였어요!” 장남이었던 이 고문은 그 길로 작은아버지, 마을 어른들과 함께 사다리와 밧줄을 챙겨 금정굴로 향했다. 시신이라도 수습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시신은 찾지 못했고 피투성이가 된 채 금정굴에 떨어져 “살려 달라”고 외치는 한 사람을 구했다. 총알을 빗맞은 덕에 목숨을 건진 동네 주민 이경선이었다. 금정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이씨는 이후 죽을 때까지 고향 땅을 밟지 않았다. 금정굴에서 학살이 처음 벌어진 이날 이봉린을 포함해 46명이 희생됐다.희생자 가족은 공포에 사로잡혀 침묵해야 했다. 그날 밤 이 고문의 집에 들이닥친 경찰은 “시체 가져왔느냐”, “빨갱이 찾으려고 금정굴에 갔다 왔느냐”고 화를 내며 장작 더미며 아궁이 구멍이며 죄다 창으로 쑤셔 댔다. “그날 금정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누가 고발을 했는지 자전거를 탄 태극단 놈들이 서넛 올라오고 있더라고. 길이 엇갈려서 망정이지 거기서 마주쳤다면 우리도 다 죽는 거야. 일곱 사람이 갔었는데…. 그래서 잠자코 살았던 거지.” “이제는 시대가 달라져 말이라도 하지, 예전에는 아버지가 ‘빨갱이’로 돌아가셨다고 어디 가서 말도 못해….” 채 회장은 45년의 세월 동안 아버지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 아버지 채기동은 보리밭을 갈다가 총을 멘 치안대 3명에게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 그때 고작 네 살이었던 채 회장은 아버지와의 기억이 없다. 그는 졸지에 과부가 된 어머니와 금쪽같은 외아들을 잃은 할머니의 넋두리로 부친을 기억한다. “우리 엄마가 맨날 그러셨지. 봉화야, 네 아버지 금정구뎅이 가서 죽었다. 남들이 그런다.”채 회장은 금정굴과 가까운 파주에서 평생을 살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고 45년이 지난 1995년에서야 처음으로 금정굴을 찾았다. 뉴스로 유해 발굴 소식을 전해 듣고 동생과 함께 갔다. 채기동은 6년 동안 강제징용을 당했다가 해방 이후 돌아왔다. 채 회장은 “9척 장신에 원체 기운이 장사라 인근에서 아버지를 당해 낼 사람이 없었다더라”고 했다. “총을 멘 치안대가 당신을 찾으니 도망가라”는 말에도 채기동은 “잘못한 것이 없다”며 당당했다. ‘부역자 가족’의 삶은 매 순간 고통으로 점철돼 있었다. 채 회장은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봇짐 장사를 하려면 도민증이 필요했는데 우리한테는 도민증 허가를 안 내줘서 어머니가 ‘꼼짝없이 죽겠다’며 우셨다”며 “핍박받으면서 세 딸을 키운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고 했다. 채 회장이 끝까지 파주를 떠나지 않은 건 어머니의 유언 때문이다. 채 회장 가족은 시간이 흘러 아버지에게 부역 혐의자라는 누명을 씌운 마을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됐다. 어머니는 “내가 죽어도 넌 반드시 이 동네에 살면서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나 두고 보라”는 말을 남겼다.“신도시 주민들은/발 밑이 저승인 사실은 모른 채/오래전 이 마을을 휩쓸고 간/역병보다도 더 고약한 숙청은 모른 채/두개골 정강뼈 쇄골 잘근잘근 밟으며/황솥밭 샛길을 오갈 뿐이다”(손세실리아, ‘뼈무덤’) 용기를 내 세상에 나온 유족들은 긴 싸움을 했다. 승리도 수차례 맛봤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실 규명을 결정하면서 “최종 책임은 국가에 있고 희생자 상당수는 도피한 부역 혐의자 가족이거나 이와 무관한 지역 주민이었다”고 했다. 2012년에는 국가 배상 소송에서 승소해 “희생자 2억원, 배우자 1억원, 부모·자식 각 5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확정됐다. 수차례 무산됐던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조례안’도 2018년 고양시의회에서 통과됐다.그럼에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희생자가 제대로 된 위령시설 없이 떠돌고 있고 유족이 겪는 고통도 여전하다. 일부 보훈단체 회원들은 아직도 희생자를 ‘토착 빨갱이’라고 부른다. 보수 정당 시의원은 조례 제정을 반대하며 “(희생자들은) 김일성 앞잡이 노릇을 했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금정굴 현장에 조성될 계획인 평화공원은 “납골시설이 들어오면 집값 떨어진다”는 일부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채 회장은 “지금 희생자들을 임시 안치한 세종추모공원은 너무 멀다. 가까운 곳에 희생자들을 모시고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게 유족들의 소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죄도 없이 잡혀가 죽고, 설령 죄가 있다고 해도 재판 한 번 열지 않고 죽은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고문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게 한 전쟁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완전 다른 내용” 신동주, ‘신동빈=후계자’ 신격호 유언장에 반발

    “완전 다른 내용” 신동주, ‘신동빈=후계자’ 신격호 유언장에 반발

    롯데지주 “유언장과 내용은 모두 사실”신동빈 “막중한 책임감…창업주 뜻 따를 것”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차남 신동빈 회장을 후계자로 지목했다는 유언장에 대해 장남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부친의 생전 의사와 완전히 다른 내용”이라며 “법적 효력이 없다”고 강력 반발했다. 지난 1월 별세한 신 명예회장이 20년 전 작성한 유언장은 일본에서 처음 공개됐다. 신동주 회장은 24일 오후 입장자료를 통해 “해당 유언장은 고 신격호 명예회장이 생전에 표명한 발언과 의사에 반하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유언장의 존재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후계자로 한다’는 문구 자체는 실재하지만, 이후 신 명예회장의 뜻이 바뀌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효력이 없다는 설명이다. 신동주 회장은 “유언장은 2000년 3월 4일자로 돼 있지만 그 이후 2015년에는 신 명예회장의 롯데홀딩스 대표권의 해직돼 이사회 결의의 유효성을 다투는 소송이 제기되는 등 상황이 크게 변했다”면서 “2016년 4월 촬영된 신 명예회장의 발언에도 반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해당 유언장의 날짜 이전부터 오랜 세월에 걸쳐 신 명예회장의 비서를 지낸 인물이 증언한 신 명예회장의 후계자 관련 의사에 대해서도 반한다”고 강조했다.신동주 “유언장 없다더니 5개월 뒤 발견”“금고 매달 내용물 확인…있을 수 없다” 롯데 측 “법적 효력 없으나 신 명예회장 생각한 후계구도 문서로 명확히 확인” 신동주 회장은 롯데그룹이 스스로 ‘유언장은 없다’고 발표하고 5개월 뒤에 ‘유언장이 발견됐다’고 입장을 바꾼 저의에 대해서도 강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신 회장은 “롯데그룹은 1월 19일 신 명예회장의 서거 후 ‘유언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언론에 공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5개월 가까이 지나고 나서 롯데홀딩스가 지배하는 부지 내(신 명예회장의 집무실 내 금고)에서 유언장이 발견됐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랜 세월 신 명예회장의 비서를 지낸 인물에 의하면 해당 금고는 매달 내용물에 관한 확인 및 기장이 된다”면서 “이제 와서 새로운 내용물이 발견됐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신 회장은 롯데그룹이 동생 신동빈 회장의 적통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유언장을 조작했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은 “법적 효력이 없는 것은 맞다”면서도 “법적 효력보다는 신 명예회장이 생전 생각했던 후계 구도가 문서로 명확히 확인됐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롯데그룹은 무엇보다 유언장 작성 시점이 신격호 명예회장이 정상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을 때라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롯데 “신동빈·신동주 등 가족 4명 확인” 롯데지주에 따르면 신 명예회장의 유언장은 최근 일본 도쿄 사무실 금고 안에서 발견됐다. 2000년 3월에 작성된 유언장에는 ‘사후에 롯데그룹(한국·일본 및 그 외 지역)의 후계자를 신동빈 회장으로 한다’는 자필이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유언장은 이달 일본 법원에서 법적 상속인의 대리인인 네 자녀가 모두 참석한 자리에서 개봉됐다. 롯데지주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 등 창업주의 가족 4명의 대리인이 유언장을 확인했다”면서 “유언장과 내용은 모두 사실”이라고 일축했다. 롯데지주는 “롯데그룹의 후계자를 신동빈 회장으로 한다는 내용과 롯데그룹의 발전을 위해 협력해 달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한편 신동빈 회장은 이날 단독으로 7월 1일자로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직과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다. 이로써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는 신동빈 회장 ‘1인 경영 체제’ 아래로 재편됐다.신동주 제기 신동빈 해임건도 부결경영권 분쟁 사실상 종식…신동빈 승리 신동빈, 한국·일본 롯데 ‘1인 경영’ 재편“선대회장 정신계승 필요…다시 시작” 신동빈 회장은 이미 4월 롯데홀딩스 회장에 취임한 상태로, 7월부터 롯데홀딩스의 회장과 사장, 단일 대표이사, 이사회 의장직을 모두 맡으며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경영권을 더욱 확고히 하게 됐다. 신동빈 회장은 이날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와 이사회가 끝난 뒤 화상회의 형식으로 이런 내용을 한일 양국의 롯데그룹 임원에게 전달했다. 신 회장은 유언장 내용을 소개하며 “더더욱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면서 “창업주님의 뜻에 따라 그룹의 발전과 롯데그룹 전 직원의 내일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 “대내외 경제 상황이 어려운 만큼 선대 회장의 업적과 정신 계승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면서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롯데그룹을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열린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도 신동주 회장이 제기한 신동빈 회장 이사 해임 안건이 부결되면서 경영권 분쟁은 사실상 종식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빨갱이’ 가족이란 낙인 두려워 금정굴 쪽은 쳐다도 안 봤어요”

    “‘빨갱이’ 가족이란 낙인 두려워 금정굴 쪽은 쳐다도 안 봤어요”

    “어려서는 내가 금정굴을 하루이틀 걸러 다니면서 무섭지도 않은지 거길(굴 위를) 건너뛰고 그랬지요. 그런데 아버지 죽고 나서 한 20여년 동안 한 번도 가지를 않았어요. 그쪽은 쳐다도 안 보고 얼씬도 안 하고 싶더라고요.”(이병순 금정굴유족회 고문)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일산동 고봉산 자락에 있는 18m 깊이의 수직 폐광 ‘금정굴’. 한때 ‘금구뎅이’라고 불렸던 영광의 기억도, 동네 꼬마들이 폴짝폴짝 뛰놀던 추억도 온데간데없다. 금정굴은 이제 ‘무덤’이다. 1950년 10월 9일부터 25일까지 고양·파주 지역의 민간인 160여명이 ‘빨갱이’로 낙인찍혀 재판 한 번 받지 못하고 학살당한 채 금정굴에 버려졌다. 70년이 지났지만 희생자들은 한 몸 온전히 누일 곳 없이 떠돌이 신세다. 1995년 유족들이 발굴 작업을 벌여 153구 이상의 유해가 세상에 나왔다.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만 76명이다. 유해를 모실 곳이 마땅치 않아 지금까지 납골당만 세 차례 옮겼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금정굴 민간인 학살 사건을 “경찰에 의한 불법적인 집단학살”로 결론 내렸지만, 희생자들의 넋은 위로받지 못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권고했던 평화공원 설립도, 영구적인 유해 안치소 설치도 아직 이뤄지지 못했다. 유족들은 애가 끓는다. 부역 혐의자 가족이라는 낙인이 두려워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금정굴 쪽은 애써 외면했다. 억울한 죽음을 애도할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살아온 세월이 수십 년이다. 서울신문은 24일 채봉화(74) 금정굴유족회장과 이병순(87) 고문을 만났다. ●“묶여서 끌려가던 행렬 속 아버지, 금정굴 저승 가는 길이었네” 1950년 10월 9일. 당시 열일곱 소년이었던 이 고문의 뇌리에는 70년 전 모습이 스틸사진처럼 남아 있다. 집 앞에서 두 사람씩 삐삐선(군용통신선)에 묶인 채 이동하는 행렬을 목격했다. 맨 뒤에 아버지 이봉린이 있었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3일 만에 수도를 빼앗긴 국군이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한 무렵 이봉린은 능곡국민학교에서 열린 유엔군 환영대회에 나갔다가 치안대에 끌려갔다. 인민군이 마을을 점령한 시기 ‘농촌위원장’을 맡아 공출량을 계산하는 부역을 했다는 이유였다. “우리 아버지가 일산리 구장(區長)을 했었거든. 동네에서 추켜세우는 사람이잖아. 주변에서 ‘형님이 일 봐야지’ 하니까 맡게 된 건데….” 어머니와 7남매는 잡혀간 아비의 끼니 걱정에 매일 번갈아 수십 킬로 걸어 밥을 날랐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경찰서에서 “(부역 혐의자들이) 문산으로 좌익 심사를 받으러 가서 오늘은 밥을 안 받는다”고 했다. 이 고문은 “문산을 가는 줄 알았지 금정굴로 가는 줄 누가 알았겠느냐”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행렬을 몰래 뒤따랐던 다른 희생자 유족을 통해 이 고문 가족은 진실을 알게 됐다. “아이고, 심사가 뭡니까. 그 구뎅이로 가서 다 쏴죽였어요!” 장남이었던 이 고문은 그 길로 작은아버지, 마을 어른들과 함께 사다리와 밧줄을 챙겨 금정굴로 향했다. 시신이라도 수습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시신은 찾지 못했고 피투성이가 된 채 금정굴에 떨어져 “살려 달라”고 외치는 한 사람을 구했다. 총알을 빗맞은 덕에 목숨을 건진 동네 주민 이경선이었다. 금정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이씨는 이후 죽을 때까지 고향 땅을 밟지 않았다. 금정굴에서 학살이 처음 벌어진 이날 이봉린을 포함해 46명이 희생됐다. 희생자 가족은 공포에 사로잡혀 침묵해야 했다. 그날 밤 이 고문의 집에 들이닥친 경찰은 “시체 가져왔느냐”, “빨갱이 찾으려고 금정굴에 갔다 왔느냐”고 화를 내며 장작 더미며 아궁이 구멍이며 죄다 창으로 쑤셔 댔다. “그날 금정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누가 고발을 했는지 자전거를 탄 태극단 놈들이 서넛 올라오고 있더라고. 길이 엇갈려서 망정이지 거기서 마주쳤다면 우리도 다 죽는 거야. 일곱 사람이 갔었는데…. 그래서 잠자코 살았던 거지.”●“유해 발굴’ 뉴스 보고 45년 만에야 금정굴을 찾았어.” “이제는 시대가 달라져 말이라도 하지, 예전에는 아버지가 ‘빨갱이’로 돌아가셨다고 어디 가서 말도 못해….” 채 회장은 45년의 세월 동안 아버지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 아버지 채기동은 보리밭을 갈다가 총을 멘 치안대 3명에게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 그때 고작 네 살이었던 채 회장은 아버지와의 기억이 없다. 그는 졸지에 과부가 된 어머니와 금쪽같은 외아들을 잃은 할머니의 넋두리로 부친을 기억한다. “우리 엄마가 맨날 그러셨지. 봉화야, 네 아버지 금정구뎅이 가서 죽었다. 남들이 그런다.” 채 회장은 금정굴과 가까운 파주에서 평생을 살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고 45년이 지난 1995년에서야 처음으로 금정굴을 찾았다. 뉴스로 유해 발굴 소식을 전해 듣고 동생과 함께 갔다. 채기동은 6년 동안 강제징용을 당했다가 해방 이후 돌아왔다. 채 회장은 “9척 장신에 원체 기운이 장사라 인근에서 아버지를 당해 낼 사람이 없었다더라”고 했다. “총을 멘 치안대가 당신을 찾으니 도망가라”는 말에도 채기동은 “잘못한 것이 없다”며 당당했다. ‘부역자 가족’의 삶은 매 순간 고통으로 점철돼 있었다. 채 회장은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봇짐 장사를 하려면 도민증이 필요했는데 우리한테는 도민증 허가를 안 내줘서 어머니가 ‘꼼짝없이 죽겠다’며 우셨다”며 “핍박받으면서 세 딸을 키운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고 했다. 채 회장이 끝까지 파주를 떠나지 않은 건 어머니의 유언 때문이다. 채 회장 가족은 시간이 흘러 아버지에게 부역 혐의자라는 누명을 씌운 마을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됐다. 어머니는 “내가 죽어도 넌 반드시 이 동네에 살면서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나 두고 보라”는 말을 남겼다.●아직 끝나지 않은 금정굴 사건 “신도시 주민들은/발 밑이 저승인 사실은 모른 채/오래전 이 마을을 휩쓸고 간/역병보다도 더 고약한 숙청은 모른 채/두개골 정강뼈 쇄골 잘근잘근 밟으며/황솥밭 샛길을 오갈 뿐이다”(손세실리아, ‘뼈무덤’) 용기를 내 세상에 나온 유족들은 긴 싸움을 했다. 승리도 수차례 맛봤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실 규명을 결정하면서 “최종 책임은 국가에 있고 희생자 상당수는 도피한 부역 혐의자 가족이거나 이와 무관한 지역 주민이었다”고 했다. 2012년에는 국가 배상 소송에서 승소해 “희생자 2억원, 배우자 1억원, 부모·자식 각 5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확정됐다. 수차례 무산됐던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조례안’도 2018년 고양시의회에서 통과됐다. 그럼에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희생자가 제대로 된 위령시설 없이 떠돌고 있고 유족이 겪는 고통도 여전하다. 일부 보훈단체 회원들은 아직도 희생자를 ‘토착 빨갱이’라고 부른다. 보수 정당 시의원은 조례 제정을 반대하며 “(희생자들은) 김일성 앞잡이 노릇을 했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금정굴 현장에 조성될 계획인 평화공원은 “납골시설이 들어오면 집값 떨어진다”는 일부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채 회장은 “지금 희생자들을 임시 안치한 세종추모공원은 너무 멀다. 가까운 곳에 희생자들을 모시고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게 유족들의 소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죄도 없이 잡혀가 죽고, 설령 죄가 있다고 해도 재판 한 번 열지 않고 죽은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고문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게 한 전쟁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연희동 자택 기부채납” 법원 권유...전두환 측, 1년 넘도록 무반응

    “연희동 자택 기부채납” 법원 권유...전두환 측, 1년 넘도록 무반응

    서울 연희동 자택의 압류를 두고 검찰과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이 재판부의 ‘기부채납’ 권유에도 1년이 넘도록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송영승 강상욱 부장판사)는 24일 오전 전 전 대통령의 재판 진행에 관한 이의 신청 속행 심문기일을 열었다. 해당 심문은 반란수괴 등 혐의로 2200여억원의 추징금이 확정된 전 전 대통령 측이 검찰의 추징금 집행이 위법하다며 신청한 사건이다. 이날 검찰은 지난해 재판부가 검찰과 전 전 대통령 양측에 권한 기부채납과 관련해 “변호인 측에서 의사를 밝혀주기를 기다렸는데 상당 시간이 지나도록 명확한 입장이 없다”며 재차 입장을 물었지만, 변호인은 “언급할 것이 없다”고 답했다. 다만 변호인은 재판 후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법리적으로도 불가능하고 위법한 방법”이라며 기부채납 가능성을 일축했다. 앞서 지난해 4월 재판부는 2013년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가 밝힌 기부채납 의사를 언급하며 양측에 “두 분(전두환 내외)이 생존 시까지 거주하는 조건으로 기부채납하는 게 가능한지 유관 기관과 확인해보라”고 권유했다. 당시 ‘전두환 추징법(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조항의 위헌성 심리가 헌법재판소에서 장기간 공전하는 상황에서 재산을 추징할 수 있는 ‘쉬운 길’을 찾아보자는 의미였다. 검찰은 재국씨가 가족 명의로 된 재산이 사실상 전 전 대통령의 재산이라고 진술한 만큼 연희동 자택이 부인인 이순자 씨 명의로 돼 있더라도 전 전 대통령 재산으로 보고 압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편, 헌재가 올해 2월 불법 재산임을 알면서 취득한 재산의 경우 제3자에게서도 추징할 수 있도록 한 ‘전두환 추징법’ 조항을 합헌으로 결정하면서, 4년 동안 심리가 열리지 않았던 별도의 이의신청 사건도 이날 첫 심문이 진행됐다. 이 사건에서는 전 전 대통령 일가가 과거 소유했던 이태원 빌라와 경기 오산 일대의 토지 등 5곳의 부동산에 대한 추징 적법성이 다퉈지고 있다. 검찰은 “이 사건 부동산들이 모두 전두환이 수수한 뇌물이 유입돼 마련된 불법 재산에 해당한다”며 “자산신탁 회사와 전두환 일가의 오랜 거래 지속 관계를 볼 때 (신탁회사도) 불법 재산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전 전 대통령 측은 “공무원범죄몰수법이 신설되기도 전에 압류신청이 됐기에 위법성이 명백하다”며 “토지들이 이미 1970년대부터 (이순자씨 부친) 이규동 씨 소유였고 그 후 아들에게 증여된 것으로, 시기적으로 불법 재산과는 관계없는 재산임이 명백하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오는 8월 26일로 예정된 다음 심문 기일까지 검찰 측에 해당 부동산이 불법 재산임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와 증거를 제출하라고 밝혔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형제의 난…김홍걸 “동교동 자택 상속은 이희호 어머니 유지”

    형제의 난…김홍걸 “동교동 자택 상속은 이희호 어머니 유지”

    “유언장, 법적 절차 안 밟아 무효됐지만이희호 여사 유지 담겨 김홍걸이 받들 것”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3일 모친 고 이희호 여사의 유지에 따라 ‘서울 동교동 자택이 본인에게 상속돼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동교동 자택은 감정가액 32억원 상당으로 형제의 난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재 김 의원과 이복형인 DJ의 차남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은 노벨평화상 상금 8억원, 동교동 사저 등 유산을 놓고 분쟁을 벌이고 있다. 김 의원의 법률 대리인인 조순열 변호사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 의원은 이희호 여사가 남긴 모든 재산을 상속받을 유일한 합법적 상속인 지위가 있다”며 이 여사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장에는 노벨평화상금을 김대중 기념사업을 위해 사용하고 동교동 자택을 김대중 기념관으로 사용하라고 돼 있다. 또 소유권은 상속인인 김홍걸에게 귀속하되 매각할 경우 대금의 3분의 1을 김대중기념사업회(이사장 권노갑)를 위해 사용하고 나머지 대금을 김홍일(장남), 김홍업, 김홍걸 삼형제가 3분의 1씩 나누라는 내용이 담겼다. 조 변호사는 “유언장은 서거 3년 전 작성됐으나 후속 절차를 밟지 않아 법적으로 무효가 됐다”면서도 “그러나 법적 효력을 떠나 여사님의 유지가 담겼다고 판단해 김 의원은 그 유지를 받들 것”이라고 말했다.“김홍업, 자택 9분의 2 지분 등기 요구” “권노갑, 총선 전 상속재산 입장 밝히라며 협박” 조 변호사에 따르면 앞서 김홍업 이사장은 동교동 자택에 대한 9분의 2 지분 소유권 이전 등기를 요구했으며, 김 의원은 ‘지분을 나누는 것은 이 여사의 유지가 아니고 법적으로 공동상속도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권노갑 김대중기념사업회 이사장이 ‘4·15 총선을 앞두고 상속재산 이전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으면 소송에 돌입하겠다’고 “명백한 위협을 가했다”는 것이 김 의원 측 주장이다. 총선 당시 김 의원은 비례대표 후보 신분이었다. 조 변호사는 “노벨평화상 상금은 기념사업을 위해서만 사용할 것이며, 동교동 자택을 김홍걸 명의로 상속 등기를 마친 뒤 김대중·이희호 기념관으로 영구 보존하기 위해 기부를 포함한 여러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 변호사는 이와 관련 함세웅 신부와 유시춘 EBS 이사장 등이 참여한 기념관 설립 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고 덧붙였다.김홍업 “김홍걸이 유언 어기고 유산 강취” DJ의 아들 삼형제 중 고 김홍일 전 의원과 김홍업 이사장은 첫째 부인인 차용애 여사의 자녀다. DJ와 재혼한 이 여사의 자녀는 김홍걸 의원이 유일하다. 민법 규정에 따르면 DJ 사망 이후 이 여사와 친자 관계가 아닌 김홍일 전 의원과 김홍업 이사장 사이의 상속 관계는 사라진다. 앞서 김 이사장은 김 의원이 노벨평화상 상금을 가져간 데 대해 “노벨상 상금 11억원 중 3억원은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 기증했고, 나머지 8억원은 해마다 12월에 이자를 받아 불우이웃 돕기와 국외 민주화운동 지원에 써왔다”면서 “이런 돈까지 가져가니 너무하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특히 김 의원이 법의 허점을 이용해 유언을 어기고 유산을 모두 가져가려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이사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언장 내용에 3형제가 모여 합의를 했다”면서 “변호사 공증 같은 것은 안했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때릴지 몰랐다”고 비판했다. 김 이사장은 “김 의원이 당시에는 합의에 다 동의해놓고 법의 맹점을 이용해 유언을 어기고 유산을 강취한 것”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앞서 김 이사장은 동교동 사저에 대해 부동산 처분금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지난 1월 법원의 인용 결정을 받았다. 김 의원은 이에 불복해 법원에 이의 신청을 제기한 상태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노태우 장남 “父, 5·18에 무한책임…‘내가 희생되는 게 낫다’”

    노태우 장남 “父, 5·18에 무한책임…‘내가 희생되는 게 낫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인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은 23일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아버님께서 (1987년) 6·29민주화선언 며칠 전 가족들에게 ‘다시는 광주(사태)같은 일이 일어나면 안 되고 차라리 내가 희생되는 게 낫다’는 비장한 뜻을 밝힌 기억이 난다”고 했다. 노 원장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6·29 선언에 광주 5·18의 정신이 씨앗이 돼 녹아있다고 생각하고, 아버님도 6·29 선언을 하겠다고 말씀하시며 ‘이제 더이상 우리 국민들의 뜻을 물리적이거나 강압적인 힘으로 제압할 수는 없다. 그런 때는 지났다’고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아버님은 항상 본인이 역사에 대해서는 무한책임을 갖고 있다고 생각을 했고, 5·18과 관련해서 어떤 역할을 하든지간에 책임을 회피하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며 “5·18을 둘러싸고 북한국이 개입됐다든지 하는 사실이 아닌 엉터리 뉴스를 통해서 국론이 분열되는 것에 안타깝다는 표현을 많이 하셨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와 올해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 노 원장은 “사실 아버님이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상황이 오면서 참배를 하고 사죄의 행동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는데 지난해 어느 날 갑자기 ‘더이상 미루지 말고 참배하러 가자’는 생각이 떠올라 무작정 내려갔다”며 “사죄에 대한 아버님의 말씀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대신 저와 저희 가족이 나서서 치해와 화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릴 수 있다면 100번이고 1000번이고 사과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노태우 장남 “5·18 천번이라도 사과…아버지도 마음 아파했다”

    노태우 장남 “5·18 천번이라도 사과…아버지도 마음 아파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은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아버지가 본인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노재헌 원장은 2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치유와 화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100번이고 1천번이고 사과를 해야 하고, 할 수 있다. 직접 오지 못하는 아버지의 뜻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뜻을 담아 사죄와 참배를 하고 싶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노 원장은 지난해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했고,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들에게 직접 사죄의 말을 전했다. 그는 “아버지는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어떤 역할을 했든 간에 본인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5·18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부분에 대해 마음 아파했다”고 전했다. 노 원장은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고 어떻게든 풀어드려야 한다는 생각과 가슴 아파해왔던 세대로서 나 자신의 책무도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이 우리 현충원에 가서 6.25 전사자에 참배하듯이 우리 광주도 국립묘지고 민주 묘역인데 당연히 참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원장은 “아버지가 병상에 누우신 지 10년이 넘었다. 말씀과 거동을 전혀 못 하신 지도 꽤 오래됐다.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상태를 설명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정진석·박덕흠 의원 “우리 사돈 됐어유”

    정진석·박덕흠 의원 “우리 사돈 됐어유”

    미래통합당 정진석 의원과 박덕흠 의원이 사돈을 맺었다.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 의원의 장녀와 박 의원의 장남은 지난 21일 오후 서울 광진구의 한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에는 양가 가족과 가까운 친지 위주로 100명씩만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는 일절 청첩을 하지 않았으며, 의원실 보좌진의 참석도 만류했다는 전언이다. 이날 결혼은 충청권 의원 집안 간 혼사여서 더 눈길을 끌었다. 5선인 정 의원의 지역구는 충남 공주·부여·청양이며, 3선인 박 의원의 지역구는 충북 보은·옥천·영동·괴산이다. 두 의원은 국회 원 구성이 완료되지 않은 데다 코로나19가 확산함에 따라 결혼식을 조용하게 치르기로 했다고 한다. 이들은 22일 오후 동료 의원들에게 단체 메시지를 보내 결혼 소식을 전하면서 “많은 분을 모시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크다”고 밝혔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강서은 前 KBS 아나운서 결혼, ♥ 남편은 경동그룹 3세 [EN스타]

    강서은 前 KBS 아나운서 결혼, ♥ 남편은 경동그룹 3세 [EN스타]

    강서은 전 KBS 아나운서가 경동그룹 3세인 손원락 경동도시가스 경영총괄 상무와 결혼했다. 지난 21일 강서은 전 아나운서는 서울 모처에서 손 상무와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은 가까운 지인과 친척들만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들은 지난해 해외에서 결혼식을 한 차례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결혼식은 비공개로 치러졌으며 청첩장도 돌리지 않아 강서은 아나운서의 결혼을 아는 사람은 KBS 내부에서도 소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서은 전 아나운서의 남편 손 상무는 경동그룹 창업주인 고(故) 손도익 회장의 손자로, 손경호 경동도시가스 명예회장(경동홀딩스 회장)의 장남이다. 손 상무는 2017년 경동그룹의 지주회사인 경동홀딩스의 지분을 증여받아 최대주주에 올랐다. 강서은 아나운서는 MBN에서 아나운서로 재직하다 2014년 KBS 41기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강서은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로 라디오 DJ를 맡기도 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40년 만에 대법원 판례까지 바꾼 ‘독립유공자 후손’ 다툼

    40년 만에 대법원 판례까지 바꾼 ‘독립유공자 후손’ 다툼

    전원합의체 “증조부 친생자 확인 청구 자격 없어”가족제도 사회적 변화 따른 법적 판단 기준 변경 독립유공자 후손 자리다툼으로 시작된 소송이 40년 가까이 유지된 기존 대법원 판례까지 변경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례 변경은 친족의 친생자 확인 소송 청구 자격의 폭을 더욱 엄격하고 명확하게 제한한 것으로 가족제도에 대한 사회적 변화에 따른 법적 판단 기준 변경으로 풀이된다.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18일 독립유공자 A씨의 증손자인 B씨가 “장녀 C씨는 A씨의 친생자가 아님을 확인해달라”며 청구한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사망 이후인 지난 2010년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다. 그의 자녀로는 장남 D씨와 장녀 C씨 등이 있었는데 이들은 A씨가 독립유공자로 선정되기 전 모두 사망했다. 이 외 생존해 있는 A씨의 유족들은 장남 D씨의 손자인 B씨(A씨의 증손자)와 장녀 C씨의 딸인 E씨(A씨의 손녀), A씨의 손자인 F씨가 있다. 증손자인 B씨는 2011년 손녀인 E씨가 독립유공자의 ‘선순위 유족’으로 등록되자 “증조할아버지의 장녀는 친딸이 아니며, 따라서 그의 딸 역시 증조할아버지의 유족이 될 수 없다”라며 소송을 냈다. 현행 독립유공자 예우법은 유공자의 유족 중 나이순으로 연장자 한명만을 유공자 유족으로 인정하고 있다. 독립유공자 유족 혜택 또한 이 한명만 받는다. 앞서 1심은 C씨가 A씨의 친딸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고, 2심은 만약 E씨가 선순위 유족 자격을 잃게 되더라도 B씨가 아닌 F씨가 선순위 유족이 되기 때문에 B씨는 소송을 청구할 자격이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민법 777조상 친족관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친생자관계의 존부를 확인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대법원 판례는 유지될 수 없다며 B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친생자 관계의 존부를 다툴 수 있는 제3자의 범위를 넓게 보는 것은 신분질서의 안정을 해치고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당사자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라면서 “법령의 제한 등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1981년 10월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약 40년간 대법원은 민법 777조의 ‘친족’(8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배우자)이라는 신분관계만 있어도 친생자 관계 존부확인 청구 자격을 인정해왔다”라면서 “우리 사회의 가족형태가 이미 핵가족화되어 민법 777조의 친족이 밀접한 신분적 이해관계를 가진다고 볼 법률적, 사회적 근거가 약해졌다”고 설명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신흥무관학교 재원 조달, 독립군 양성… 만주 독립운동의 ‘숨은 공신’

    신흥무관학교 재원 조달, 독립군 양성… 만주 독립운동의 ‘숨은 공신’

    수원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며 근대교육자인 임면수는 이회영이나 이상룡과 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이다. 전 재산을 털어 수원 삼일학교를 설립했고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 재원 조달에 몸바치는 등 만주독립운동을 뒤에서 도운 숨은 조력자이기도 하다. 신흥무관학교 분교 교장으로 독립군을 양성하고 결사대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가 고문으로 반신불수가 돼 고향에 돌아왔을 때는 기거할 방 한 칸도 없었다. 임면수 선생은 1874년 6월 13일 경기도 수원군 수원면 매향리(현 화성시)에서 아버지 임진엽과 어머니 송씨 사이에서 2남으로 출생했다. 삼일학교 설립에 기부한 재산을 보면 그의 가계는 중농 이상의 부호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호는 필동(必東) 또는 필동(弼東)을 사용했다. 임면수는 19세 때 나중에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뒷바라지하고 독립운동가들을 돌본 전현석과 결혼했다.선생은 어려서는 향리에서 한학을 공부했지만 늦은 나이에 근대 교육을 받았다. 수원양잠학교를 졸업한 선생은 화성학교에 진학, 2년 동안 공부했다. 당시 화성학교 학생들은 일본군 군자금을 기부하는 등 일본에 협력하는 자세를 보였다. 러일전쟁에 통역으로 참가하는가 하면 각종 기관의 일어 통역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생은 항일투쟁이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주시경·이동휘 등 애국지사들과 교류 선생은 1905년 서울로 와서 한국사와 한국지리 등을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을 고취시키던 상동청년학원에 입학했다. 선생은 국어강습회를 열었던 주시경과 이동휘 등 애국지사들을 그곳에서 만나 교류했다. 경기 강화에서 사학을 30여곳 설립해 교육 사업을 하고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는 선생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선생은 수원에서 이하영, 김태제 등과 함께 국채보상운동에 뛰어들었다. 국한문 취지서를 자비로 발간해 동참을 호소하고 경기도 각 지역에 배포했다. 반향은 컸다. 수원에서는 취지서 발표 2~3일 만에 당시로서는 거금인 500여원이 모금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1903년 29세의 선생은 젊은 동지들과 함께 유명한 신여성 화가 나혜석이 졸업한 수원 삼일여학교를 설립했다. 학교는 북감리교회로 운영권이 넘어가면서 설립 후 3년이 지나자 재정난을 겪게 됐다. 부호 강석호는 1906년 5월 거금을 기부했고 나중석도 부지 900여평을 기증했다. 선생도 집터와 토지, 과수원을 내놓았다. 현 매향정보중고등학교가 자리잡은 곳이 그가 희사한 땅이다. 1909년 선생은 삼일학교 교장이 됐고 다른 사립학교 설립도 도왔다. 선생은 1907년 기호지방 출신 인사들이 조직한 기호흥학회에서도 활동했다. 서우학회, 교남교육회, 호남학회와 같은 교육진흥 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지역마다 학회가 조직됐는데 기호흥학회도 그중 하나였다. 광주와 수원 등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에 19개 지부가 있었고 수원 지역 교육자로서 선생은 교육과 계몽운동에 앞장섰다. 1910년 선생은 서울로 올라와 신민회에 가입하고 양기탁의 집에서 열렸던 구국운동회의에 참여했다. 신민회의 결의에 따라 모국을 떠나 만주에서 독립군을 양성하기로 결심했다. 삼일학교 운영은 나홍석에게 위탁했다. 경술국치 직후인 1910년 10월 초 선생은 극비리에 가족을 이끌고 만주 봉천성 환인현 횡도촌으로 망명했다. 그곳에 먼저 정착한 이회영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은 1911년 6월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해 농가 2칸을 빌려서 신흥강습소를 개설했고 1912년 통화현 합니하로 이전, 신흥중학으로 이름을 바꿨다. 신흥중학은 후에 신흥무관학교로 발전하는데 수만 평의 연병장과 수십 칸의 내무실은 생도들이 합심해 만들었다. 통화현 합니하는 독립군 무관 양성의 본영이 됐다. 선생의 역할은 재원 조달이었다. 신흥무관학교 유지비와 군사훈련비를 조달하고자 영하 40도의 한파와 폭설을 무릅쓰고 썩은 좁쌀, 강냉이, 풀나무 죽으로 연명하면서 동포들의 도움을 구하러 다녔다. 선생 부부는 객주업에 종사했는데 독립군의 연락소, 휴식소, 무기보관소, 회의실 공간으로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독립운동의 아지트였던 셈이다. 부인 전 여사는 수시로 방문하는 별동대, 특파대 등의 식사를 하루에 대여섯 번이나 내놓았고, 그들의 보따리와 총기를 맡아 챙겨 주는 등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독립군으로서 전 여사의 밥을 안 먹은 이가 없을 정도였다. 전 여사의 인내심과 온순함, 예의 바른 행동에 누구나 머리를 숙였고 ‘독립의 어머니’로 칭송을 받았다. 선생의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그 당시 독립운동가로 선생댁에서 잠을 안 잔 이가 별로 없고, 그 부인 전현석 여사의 손수 지은 밥을 안 먹은 이가 없으니 실로 선생댁은 독립군 본영의 중계 연락소이며 독립운동객의 휴식처요, 무기보관소요, 회의실이며 참모실이며 기밀 산실이었으니….” 만주의 한인자치기관 부민단에서는 1916년 3월 16일 독립운동가들의 근거지를 위협할 일본영사관 분관 설치를 제지할 방안을 논의했다. 그 방책으로 결사대 200명을 편성했고 7~8명은 통화현 시가에 잠입했는데 선생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1916년 9월 9일 안동 주재 일본영사가 일본 외무대신에게 보낸 ‘재만 조선인 비밀결사 취조의 건에 대한 회답’ 등에 선생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지(통화현)의 배일자 중 유력자인 결사대원 임필동”이란 표현에서 당시 만주 독립운동계에서의 선생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양성중학교 교장 일하며 제2 신흥무관학교로 선생은 1910년대 중반 통화현 합니하에 설립된 민족학교인 양성중학교 교장으로 활동했는데 이 학교는 제2 신흥무관학교 격이었다. 교수로 재직한 이세영과 재무감독 이동녕 등은 신흥무관학교의 실질적인 중심인물이었다. 3·1운동 이후 일본군들은 1920년 간도로 출병해 만주 지역의 독립운동가를 체포·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선생은 1920년 6월 12일 밤 해룡현 북산성자 삼도가 김강의 집에서 체포됐다. 일본 경찰관과 친일 조선인을 암살하고 동지들을 통해 상하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송금하려 한 혐의였다. 선생은 압송돼 가던 중 한국인 경찰 유태철의 도움으로 여관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선생은 낮에는 숨고 밤이 되면 걸어서 14일 만에 길림성 이통현 고유수 한인 농촌마을에 도착해 동포 박씨 집에 은둔했다. 그곳에 머물다 장춘을 거쳐 부여현에 도착해 안승식의 도움을 받았고 그의 집에서 겨울을 보냈다.●아담스기념관 건축 감독… 고문 후유증에 타계 그러나 1921년 2월쯤 길림시내에 잠입해 활동하다 밀정의 고발로 길림영사관에 체포된 뒤 평양감옥에서 심한 고문을 받았다. 전신이 마비될 정도의 위중한 상태가 되자 일제는 선생을 석방했고 수원으로 귀향했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독립운동가들이 대부분 그렇듯 그의 가족사도 불운했다. 만주에서 20세가 돼 독립운동에 가담한 장남 우상이 1919년 국내에 잠입해 군자금을 마련하고 만주로 돌아가다 동상을 입어 객사한 것이다. 선생은 1923년 삼일학교 아담스기념관 건축 감독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문 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돼 1930년 11월 29일 5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964년 세류동 공동묘지에 안장됐던 선생의 유골은 삼일상고 동산으로 옮겨졌고 기념비도 세워졌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고 묘소는 국립현충원으로 옮겨졌다. 2015년 기념사업회가 발족했으며 손자 임병무씨도 유품을 수원박물관에 기증하고 조부의 업적을 기리는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이희호 여사 1주기… 홍업·홍걸 형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이희호 여사 1주기… 홍업·홍걸 형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여성운동가이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의 1주기 추도식이 10일 엄수됐다.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고인 묘역에서 열린 추도식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유가족과 각계 인사 50명만 참석했다. 일반 시민 등 150여명도 묘역 아래에서 고인의 1주기를 함께 추모했다. 추도식에는 장남 고(故) 김홍일 전 의원의 부인인 윤혜라씨, 차남 김홍업 김대중 평화센터이사장, 삼남 더불어민주당 김홍걸 의원 등 유가족들이 참석했다. 유산을 두고 법적 분쟁을 벌이는 홍업·홍걸 형제는 나란히 앉았지만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와 이낙연·인재근 의원, 김부겸 전 의원, 동교동계 한광옥·박지원·최경환 전 의원 등이 참석했다. 정부에서는 정세균 국무총리와 추미애 법무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추 장관은 추도식 중간에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추도식 전 묘역을 미리 참배했다. 정 총리는 추도사에서 “여사님께서 꿈꾸셨던 국민의 행복과 평화통일을 위해 담대하게 앞으로 나가겠다”고 밝혔다. 인재근 의원은 “6월 10일은 민주주의에서 더 상징적인 날이 됐다”며 “여성 인권과 소외계층 보호, 한반도 평화 등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멀지만, 선생님이 주신 길로 조금씩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 재임 시 여성의 공직 진출 확대를 비롯해 여성계 인사들의 정계 진출의 문호를 넓힌 공로가 있다. 한 전 총리를 비롯해 추 장관, 이미경 한국국제협력재단 이사장 등은 김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구석구석 문학정신 스민 예술가들의 아지트

    구석구석 문학정신 스민 예술가들의 아지트

    서울 종로구 명륜1가 33의100 한무숙문학관은 소설가 한무숙 선생이 40년간 기거한 문학 산실이다. 골목길 하나를 사이에 둔 현대하이츠빌라 302호는 1998년 종로 보궐선거에 출마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살던 곳이다. 선생이 살던 시절 서울대 문리대가 가까워서 숱한 문인, 예술가들의 아지트 역할을 했다. 시인 천상병은 몇 년을 이곳에 기거했으며 박재삼 시인, 황동규 시인, 이어령 교수가 거의 매일 밤 모여 문학과 예술에 대해 토론했다. 한무숙문학관의 첫인상은 정원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첫눈에 들어오는 정원은 작가 본인이 직접 설계하고 철쭉, 모란, 무궁화 등 한국적인 나무들로만 꾸몄다. 소담하지만 철마다 피어오르는 꽃들과 연못 속으로 유영하는 알록달록한 물고기를 보는 것도 볼거리다. 조그마한 문학관이지만 구석구석에 이야기가 있고 작가의 문학정신, 인생철학이 스며 있다. 마치 아직도 작가가 집필실에서 글을 쓰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살아생전 그렸던 그림들, 일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다 야스나리 등 수많은 외국 작가들과 주고받았던 서신들, 집필했던 자료들, 식기들까지 정리돼 있다. 한무숙 작가의 장남 김호기(79) 관장은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이곳을 문학관으로 만들었지만 아마 그런 말씀이 아니었더라도 이곳을 문학관으로 만들어 어머니의 열정을 간직하고 싶었다”고 했다. 더 많은 사람이 찾아와 한무숙 작가의 열정을 확인해 주길 권했다. 선생이 세상을 떠난 1993년 은행장 출신인 남편 김진흥이 한무숙재단을 설립했다. 지난 1월에 열린 제25회 한무숙 문학상 시상식에서는 소설가 정용준이 상을 받았다. 김호기·김강옥 부부가 모친이 살던 안방에서 기거하며 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가야금 명인 고 황병기의 부인이자 소설가인 한말숙씨가 선생의 동생이다. 김 관장은 “한무숙문학관을 공공기관에 기증할 생각”이라면서 “우리나라의 젊은 문학가들이 한무숙 작가의 문학을 향한 치열한 열정과 창의성을 배우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희병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 [씨줄날줄] 비운의 홍범도 장군/오일만 논설위원

    [씨줄날줄] 비운의 홍범도 장군/오일만 논설위원

    1919년 8월 대한독립군이 처음으로 두만강을 건넜다. 1910년 일제 병탄 후 절치부심하던 항일 무장세력의 첫 국내 진공작전으로 기록됐다. 대한독립군은 갑산과 혜산진 등 국경에 주둔한 일본군을 타격했고 그해 10월엔 압록강 너머 만포진과 강계까지 진출했다.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대한독립군의 총사령관이 바로 홍범도 장군이다. 장군은 이듬해 6월 7일 중국 지린성 봉오동전투에서 처음으로 일본 정규군을 섬멸했다. ‘하늘을 나는 장군’이란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무렵이었다. ‘홍범도 평전’의 저자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인물 중 첫째가 홍범도, 둘째가 김원봉, 셋째가 김구”라고 기술했다.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많이 싸우고 또 가장 많이 이긴 독립투사가 바로 홍범도다’. 도올 김용옥도 “독립무장투쟁 당시 일본을 떨게 만든 이순신과 같은 인물”이라고 극찬했다. 포수 출신인 그는 구한말인 1895년 을미의병을 시작으로 1907년 정미의병으로 유인석 휘하에서 본격적으로 항일전에 가담했다. 조국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쳤음에도 ‘홍범도’란 이름 석 자가 일반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전이 아니다. 친일파를 등용했던 이승만 정권은 물론 연장선상에 있던 박정희·전두환 군부정권에서도 그를 노골적으로 외면했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였던 최재형이나 임시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처럼 러시아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투사라는 것이 이유였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항일 무장투쟁에 가려 무시당했고, 남한에서는 반공의 잣대로 폄훼됐다. 장군은 말년에도 비참했다. 1922년 일제의 막후공작으로 소련 지역의 항일무장 투쟁단체가 해산되면서 연해주로 쫓겨갔다가 75세에 카자흐스탄의 극장 경비원으로 쓸쓸히 죽음을 맞았다. 가족사는 더 비극적이다. 첫 아내(이옥구)는 홍 장군의 행방을 좇던 일본군의 고문으로 사망했다. 장남 홍양순은 아버지와 함께 싸웠던 정평배기 전투에서 전사했다. 차남 홍용환도 일제의 고문후유증으로 고생하다 결핵으로 죽었다. 당시 독립투사와 그 가족들은 이런 고초 끝에 생을 마쳤다. 일본 육사 출신으로 간도 토벌대에 가담해 홍범도 같은 독립군들을 체포, 살해했던 친일파들이 대대손손 떵떵거리고 사는 작금의 현실이 비통하기도 하다. 지난 7일 봉오동전투 전승 100주년을 맞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에 잠들어 계신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모셔와 최고의 예우로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1995년 김영삼 정부가 장군의 유해 봉환을 추진했다가 무산된 전례가 있다. 이번은 반드시 성사시켜 민족의 정기가 바로 세워지길 기대한다.
  • “야구는 안 되는데 사업은 잘 되네”

    “야구는 안 되는데 사업은 잘 되네”

    한화 이글스 14연패 수렁… 감독 사퇴한용덕 감독 물러나고 최원호 감독대행한화시스템, 위성통신 안테나 사업 인수기지국 없는 오지에서도 와이파이 ‘팡팡’나스닥 상장 ‘니콜라’ 지분가치 7배 점프미국 수소에너지 시장까지 진출 ‘청신호’ “야구는 안 되는데 사업은 잘 되네.”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는 팀 최다연패인 14연패를 당하며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한화그룹 다른 계열사들은 사업에서 ‘연타석 홈런’을 팡팡 쏘아 올리고 있다. 기지국이 없는 오지에서도 와이파이가 팡팡 터지는 ‘우주 인터넷’ 사업에 진출할 뿐만 아니라 수소·전기트럭 투자에서도 ‘잭팟’을 터트렸다. 특히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사장이 한화의 약진에 역할을 톡톡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한화 이글스는 한용덕 감독이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함에 따라 최원호 퓨처스(2군) 감독에게 1군 감독대행을 맡겼다. 한국야구위원회(KBO) 리그 최대연패 기록은 1985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18연패다. 한화시스템, ‘우주 인터넷’ 실현에 박차 한화시스템은 지난 5일(현지시간) 영국의 위성통신 안테나 기술 벤처기업인 ‘페이저 솔루션’(Phasor Solutions)의 사업자산 일체를 인수했다고 8일 밝혔다. ‘우주 인터넷’ 실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다. 한화시스템 관계자는 “인공위성통신 안테나 사업 부문에 진출해 저궤도 위성 안테나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항공우주시스템 역량을 강화해 나가기 위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페이저 솔루션은 2005년 영국에서 설립된 위성통신 안테나 연구개발 전문회사다. 해상·육상·항공기 내에서 고속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전자식 빔 조향 안테나 시스템과 반도체 기반 차세대 위성통신 안테나 설계·개발에 힘써 왔다. 페이저 솔루션의 안테나 빔 조향 기술과 안테나 송수신 제어를 위한 반도체 칩 설계 기술은 독보적인 선행 기술이다. 특히 평면으로 된 전자식 빔 조향 안테나는 ‘우주 인터넷’을 실현하는 핵심 장비로 꼽힌다. 이 안테나를 항공기·선박·기차·자동차 등에 장착하면 인터넷 접속이 어려운 해상·오지·상공 등 세계 어느 곳에서도 저궤도 인공위성과 송수신을 통해 안정적인 통신이 가능하다.이 저궤도 인공위성 통신은 지구 상공을 도는 인공위성을 통해 5세대 이동통신(5G)·LTE 수준의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차세대 기술이다. 항공기 내 동영상 이용 등 고품질 무선 인터넷 서비스, 자율주행차의 텔레매틱스(차량용 무선 인터넷 서비스) 기술과도 접목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위성통신 안테나 관련 시장 규모가 2026년 5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아마존·스페이스X 등이 기지국이 필요 없는 위성 인터넷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상태다. 한화시스템은 이번 인수를 통해 페이저 솔루션의 전문인력과 기술자료·지적재산권·테스트 장비 등 유형자산을 포함한 원천기술까지 확보하게 됐다. 한화시스템은 지난해부터 안테나 사업 투자를 검토해 오다 페이저 솔루션이 경영난을 겪으며 파산 절차를 밟게 되자 적극적으로 인수에 나섰다. 김연철 한화시스템 대표이사는 “비록 코로나 여파로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지만, 성장 가능성이 큰 미래 전략 시장이라는 판단에 전격 투자를 결정했다”면서 “기존 첨단통신, 센서, 정보통신기술(ICT) 역량을 위성통신 안테나 기술 기반으로 더욱 확장해 기업가치와 경쟁력을 한 차원 높여나가겠다”고 밝혔다. 앞서 한화시스템은 지난해 7월 에어택시 시장 진출을 선언했고, 지난 2월 오버에어 개소식을 통해 에어택시 ‘버터플라이’ 공동개발에 착수했다.한화에너지·한화종합화학, 수소 시장 진출 본격화 한화는 수소전기차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도 마련했다. 한화는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수소트럭 업체 ‘니콜라’가 나스닥 시장에 상장하면서 한화가 보유한 니콜라의 지분 6.13%의 가치가 7억 5000만달러(약 9000억원)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한화에너지와 한화종합화학이 2018년 11월 투자한 1억달러가 1년 6개월 만에 7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니콜라는 ‘제2의 테슬라’로 불리는 수소·전기트럭 개발 스타트업으로 2023년 수소트럭 양산을 계획하고 있다. 2018년 초 한화의 미국 현지 벤처 투자 전담 조직은 니콜라에 대한 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당시 한화는 계열사 간 논의를 거친 뒤, 사업 연관성이 깊은 한화에너지와 한화종합화학이 니콜라에 공동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최종 결정 과정에서는 10여년간 태양광 사업을 담당해 온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사장(당시 한화큐셀 영업총괄 전무)이 핵심 역할을 했다. 당시 김 부사장은 투자 결정을 위해 평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미국 내 전문가 그룹을 통해 정보 수집에 나섰다. 실무진과 함께 니콜라 창업주 트레버 밀턴을 만나 ‘온실가스 배출 제로’를 목표로 하는 니콜라의 사업 비전을 듣고, 한화와 통하는 지점을 직접 확인했다. 니콜라의 나스닥 상장을 계기로 한화 주요 계열사는 미국 수소 시장에 진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한화에너지는 니콜라 수소 충전소에 태양광 발전으로 생산한 전력을 우선 공급하는 권한을 갖고 있고, 한화종합화학은 수소 충전소 운영권을 확보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한화큐셀은 수소 충전소에 태양광 모듈을, 한화솔루션은 첨단소재 부문에서 수소 충전소용 탱크를 공급할 수 있게 됐다. 한화솔루션 화학 부문에서도 물을 전기 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수전해 기술로 사업에 뛰어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화 관계자는 “기후 변화 적극 대응을 위해 태양광은 물론 수소까지 아우르는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 대표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진격의 한화’… 통신·수소차·에너지 사업 분야서 동시 ‘약진’

    ‘진격의 한화’… 통신·수소차·에너지 사업 분야서 동시 ‘약진’

    한화시스템, 영국 위성통신 안테나 사업 인수한화, 수소트럭 ‘니콜라’에 1억달러 지분 투자니콜라, 나스닥 상장… 지분가치 7.5억달러로 한화가 통신·수소차·에너지 사업에서 동시에 약진하고 있다. 친환경 태양광 에너지 사업을 비롯해 ‘우주 인터넷’, ‘수소·전기트럭’ 사업까지 주무르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사장이 한화의 약진에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시스템, ‘우주 인터넷’ 실현에 박차 한화시스템은 지난 5일(현지시간) 영국의 위성통신 안테나 기술 벤처기업인 ‘페이저 솔루션’(Phasor Solutions)의 사업자산 일체를 인수했다고 8일 밝혔다. ‘우주 인터넷’ 실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다. 한화시스템 관계자는 “인공위성통신 안테나 사업 부문에 진출해 저궤도 위성 안테나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항공우주시스템 역량을 강화해 나가기 위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페이저 솔루션은 2005년 영국에서 설립된 위성통신 안테나 연구개발 전문회사다. 해상·육상·항공기 내에서 고속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전자식 빔 조향 안테나 시스템과 반도체 기반 차세대 위성통신 안테나 설계·개발에 힘써 왔다. 페이저 솔루션의 안테나 빔 조향 기술과 안테나 송수신 제어를 위한 반도체 칩 설계 기술은 독보적인 선행 기술이다. 특히 평면으로 된 전자식 빔 조향 안테나는 ‘우주 인터넷’을 실현하는 핵심 장비로 꼽힌다. 이 안테나를 항공기·선박·기차·자동차 등에 장착하면 인터넷 접속이 어려운 해상·오지·상공 등 세계 어느 곳에서도 저궤도 인공위성과 송수신을 통해 안정적인 통신이 가능하다. 이 저궤도 인공위성 통신은 지구 상공을 도는 인공위성을 통해 5세대 이동통신(5G)·LTE 수준의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차세대 기술이다. 항공기 내 동영상 이용 등 고품질 무선 인터넷 서비스, 자율주행차의 텔레매틱스(차량용 무선 인터넷 서비스) 기술과도 접목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위성통신 안테나 관련 시장 규모가 2026년 5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아마존·스페이스X 등이 기지국이 필요 없는 위성 인터넷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상태다.한화시스템은 이번 인수를 통해 페이저 솔루션의 전문인력과 기술자료·지적재산권·테스트 장비 등 유형자산을 포함한 원천기술까지 확보하게 됐다. 한화시스템은 지난해부터 안테나 사업 투자를 검토해 오다 페이저 솔루션이 경영난을 겪으며 파산 절차를 밟게 되자 적극적으로 인수에 나섰다. 김연철 한화시스템 대표이사는 “비록 코로나 여파로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지만, 성장 가능성이 큰 미래 전략 시장이라는 판단에 전격 투자를 결정했다”면서 “기존 첨단통신, 센서, 정보통신기술(ICT) 역량을 위성통신 안테나 기술 기반으로 더욱 확장해 기업가치와 경쟁력을 한 차원 높여나가겠다”고 밝혔다. 앞서 한화시스템은 지난해 7월 에어택시 시장 진출을 선언했고, 지난 2월 오버에어 개소식을 통해 에어택시 ‘버터플라이’ 공동개발에 착수했다. 한화에너지·한화종합화학, 수소 시장 진출 본격화 한화는 수소전기차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도 마련했다. 한화는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수소트럭 업체 ‘니콜라’가 나스닥 시장에 상장하면서 한화가 보유한 니콜라의 지분 6.13%의 가치가 7억 5000만달러(약 9000억원)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한화에너지와 한화종합화학이 2018년 11월 투자한 1억달러가 1년 6개월 만에 7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니콜라는 ‘제2의 테슬라’로 불리는 수소·전기트럭 개발 스타트업으로 2023년 수소트럭 양산을 계획하고 있다. 2018년 초 한화의 미국 현지 벤처 투자 전담 조직은 니콜라에 대한 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당시 한화는 계열사 간 논의를 거친 뒤, 사업 연관성이 깊은 한화에너지와 한화종합화학이 니콜라에 공동 투자하기로 결정했다.이후 최종 결정 과정에서는 10여년간 태양광 사업을 담당해 온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사장(당시 한화큐셀 영업총괄 전무)이 핵심 역할을 했다. 당시 김 부사장은 투자 결정을 위해 평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미국 내 전문가 그룹을 통해 정보 수집에 나섰다. 실무진과 함께 니콜라 창업주 트레버 밀턴을 만나 ‘온실가스 배출 제로’를 목표로 하는 니콜라의 사업 비전을 듣고, 한화와 통하는 지점을 직접 확인했다. 니콜라의 나스닥 상장을 계기로 한화 주요 계열사는 미국 수소 시장에 진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한화에너지는 니콜라 수소 충전소에 태양광 발전으로 생산한 전력을 우선 공급하는 권한을 갖고 있고, 한화종합화학은 수소 충전소 운영권을 확보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한화큐셀은 수소 충전소에 태양광 모듈을, 한화솔루션은 첨단소재 부문에서 수소 충전소용 탱크를 공급할 수 있게 됐다. 한화솔루션 화학 부문에서도 물을 전기 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수전해 기술로 사업에 뛰어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화 관계자는 “기후 변화 적극 대응을 위해 태양광은 물론 수소까지 아우르는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 대표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우리 목에서 네 무릎 치워!” 플로이드 첫 추모식 8분 46초 ‘침묵의 애도‘

    “우리 목에서 네 무릎 치워!” 플로이드 첫 추모식 8분 46초 ‘침묵의 애도‘

    “우리의 목에서 네 무릎을 치워라!” 백인 경관의 무자비한 폭력에 희생돼 미국 전역은 물론 세계 각국에 인종차별 항의 시위를 촉발시킨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46)의 영면을 기원하는 첫 추도식이 4일(이하 현지시간) 플로이드가 숨을 거둔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거행된 가운데 앨 샤프턴 목사가 조사를 통해 외쳤다. 샤프턴 목사는 “플로이드의 이야기는 흑인들의 이야기가 됐다”며 “400년 전부터 우리가 원하고 꿈꾸던 사람이 될 수 없었던 이유는 당신들(백인)이 무릎으로 우리(흑인)의 목을 짓눌렀기 때문”이라고 규탄했다. 이어 “이제 우리는 조지 플로이드의 이름으로 일어나 (백인들을 향해) ‘우리의 목에서 너희들의 무릎을 치우라’고 말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날부터 플로이드의 발자취를 좇아 6일 노스캐롤라이나주 래퍼드 추모식, 8일 텍사스주 휴스턴 추도식, 9일 휴스턴 비공개 장례식으로 이어진다. 래퍼드는 플로이드가 태어난 곳이고, 휴스턴은 그가 삶의 대부분을 보낸 곳이다. 미니애폴리스 추도식은 노스센트럴 대학(NCU)에서 유족들과 시민, 지역 정치 지도자와 인권운동가들이 모인 가운데 거행됐다. 시민단체 ‘내셔널액션네트워크’ 주최로 열린 추도식에는 흑인 민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 고(故)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장남인 마틴 루서 킹 3세, 미네소타주가 지역구인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과 일한 오마르 하원의원 등이 참석했다. 플로이드의 형과 동생 등은 “우리는 플로이드를 위한 정의를 원하며, 플로이드는 그것을 갖게 될 것”이라면서 평화롭게 시위에 참여할 것을 거듭 당부했다. 유족의 변호인 벤저민 크럼프는 “우리는 백인과 흑인에 따로 적용되는 두 가지의 사법 제도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이컵 프라이 미니애폴리스 시장은 플로이드가 잠든 관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흘렸다. 연단 뒤에는 ”이제는 숨 쉴 수 있다“는 문구를 담은 플로이드의 대형 걸개그림이 걸렸다. 노스센트럴 대학은 시민들이 기부한 5만 3000달러(약 6400만원)로 흑인 청년을 위한 플로이드 장학기금을 조성했다. 추모식은 TV와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됐다. ‘침묵의 순간’으로 명명된 플로이드 애도 행사도 미국 전역에서 이어졌다. 백인 경찰의 무릎에 8분 46초 동안 목이 짓눌려 숨진 플로이드를 기리기 위해 미국 시민들은 같은 시간 일체의 활동을 중단하고 침묵으로 그의 영면을 기원했다.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들은 워싱턴DC 국회의사당 메인홀에서 침묵의 시간을 가졌고, 뉴욕주와 아이오와주도 이날 오후 2시를 기해 주전역에 ‘침묵의 애도’ 시간을 선포했다. 마이애미주의 한 병원에서는 의료진들이 한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8분 46초 플로이드의 명복을 빌었다. 이날까지 열흘째 항의 시위와 집회가 이어졌는데 밤마다 펼쳐지던 폭력 사태와 약탈 행위는 이틀 전부터 잦아들었고, 미국의 시위 사태는 경찰 폭력의 희생자 플로이드를 차분하게 추모하는 분위기로 전환되고 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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