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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광식의 천문학+] ‘기상천외’ 운석 이야기 - 금값 10배 운석 발견시 매뉴얼

    [이광식의 천문학+] ‘기상천외’ 운석 이야기 - 금값 10배 운석 발견시 매뉴얼

    작년 12월 남극에 있는 우리 장보고 과학기지 남쪽 300㎞ 청빙지역에서 우리나라 연구팀이 대형 운석을 발견하는 행운을 잡았다. 그동안 찾아낸 남극 운석 중 가장 큰 운석(사진)으로, 가로 21㎝, 세로 21㎝, 높이 18㎝, 무게 11㎏이나 나간다. 남극 운석은 우주 공간을 떠돌던 암석이 지구 중력에 이끌려 떨어진 것으로, 태양계 탄생 초기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화석이라 할 수 있다. 원래 남극은 지구상에서 운석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지역이다. 흰 눈벌 위에 시커먼 돌덩어리가 눈에 띈다면 운석일 가능성이 높다. 극지연구소는 2006년부터 지금까지 여덟 차례 남극운석 탐사를 벌여 42개의 운석을 확보하여, 우리나라는 모두 282개의 남극 운석을 보유하고 있다. 작년 3월에는 진주에 운석이 여러 개 떨어져 너도 나도 운석 찾으러 나서는 통에 온 나라에 운석 바람이 불기도 했다. 왜 사람들이 운석을 찾으러 그렇게 법석을 떠는 것일까? 운석이 무게로 따져 금값의 10배가 되는 것도 있다니, 그럴 만도 하다. 물론 모든 운석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그리고 운석을 발견한 후에도 뒤처리를 잘못하면 운석 가치는 뚝 떨어진다. 매일 1백 톤씩 떨어지는 운석 그런데 이런 운석이 매일 평균 1백 톤, 일년에 4만 톤씩 지구에 떨어지고 있다. 먼지처럼 작은 입자의 우주 물질은 1초당 수만 개씩, 지름 1㎜ 크기는 평균 30초당 1개씩, 지름 1m 크기는 1년에 한 개 정도씩 지구로 떨어진다. 하지만 그 3분의 2가 바다에 떨어지고, 나머지는 대부분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에 떨어지는 통에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날마다 지구를 찾아오는 외계 손님, 운석이란 과연 무엇인가? 운석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별똥별, 곧 유성체가 타다 남은 암석이다. 그래서 운석을 '별똥돌'이라고도 한다. 그러면 이런 유성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대부분은 지구에서 약 4억km 떨어진 화성과 목성 사이에 위치한 소행성대에서 온다. 소행성이란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보다 작은 천체를 말한다. 소행성대에는 크기가 트럭만한 것에서부터 수백km나 되는 거대한 우주 암석들이 빽빽이 모여 있는데, 2010년 1월 30일 현재 23만 1,665개가 등재되어 있다. 이 수많은 소행성들은 모두 45억 년 전 태양계가 형성될 때부터 존재해온 물질들이다. 이것들은 잘하면 행성이 될 수도 있었는데, 목성의 조석력이 하도 크다 보니 행성이 채 되기도 전에 바스라져버린 행성 부스러기라 할 수 있다. 행성 간 공간에 혜성이나 소행성이 남긴 파편들이 떠돌아다니다가, 초속 30km의 속도로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지구로 끌려들어오면, 초속 10~70km의 속도로 지구대기로 진입, 대기와의 마찰로 가열되어 빛나는 유성이 된다. 이를 화구(火球, fireball)라 한다. 대부분의 유성체는 작아서 지상 100km 상공에서 모두 타서 사라지지만, 큰 유성체는 그 잔해가 땅에 떨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운석이다. 공룡 대멸종도 운석 충돌로... 매일 1백 톤씩 지구에 떨어지는 운석. 생각해보면 이 우주 안에서 100% 안전한 곳은 하나도 없다. 그 확률이 희박할 따름이지, 운석은 지금 이 순간도 내 뒤통수를 후려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주에서 날아온 운석이 지붕을 뚫거나 차를 찌그러뜨리는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하지만 당신이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지만 않는다면, 그건 횡액이 아니라 엄청난 행운이다. 운석이 지붕 수리비나 찻값보다 적어도 10배 이상의 값어치가 나가기 때문이다. 오염되지 않은 희귀 운석은 이처럼 ‘우주의 로또’가 되기도 한다. 화성에서 온 운석이나 지구 물질에 오염되지 않은 운석 등은 1g당 1000만 원을 호가한다. 그러므로 운석이 떨어진 걸 발견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재빨리 비닐 장갑을 끼고 운석을 수거해서는 밀봉한 다음 냉동고에 집어넣는 일이다. 46억 년 지구의 역사 중에서 가장 유명한 운석 충돌은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칙술루브에 떨어진 소행성 충돌일 것이다. 지름 10km의 소행성이 떨어져 지름 180km의 크레이터를 만들었다. 약 6500만 년 전 백악기 말 공룡을 비롯한 지구 생명체의 약 70%가 멸종했는데(K-T 대량멸종 사건), 그 원인이 바로 칙술루브 소행성 충돌이라고 한다. 운석 충돌이 한 나라에 거대한 부를 안겨준 희귀한 사례도 있다. 운석 충돌로 인한 고열과 압력으로 엄청난 규모의 다이아몬드가 생성되었던 것이다. 그 행운의 나라는 바로 러시아다. 러시아 동부 시베리아에 전 세계 매장량의 10배에 달하는 다이아몬드 수조 캐럿이 매장돼 있다는 사실이 지난 2012년 언론에 보도되었는데, 그 장소가 바로 운석이 충돌한 크레이터라는 것이다. 매장량은 자그마치는 향후 3000년간 시장에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지구 종말은 소행성 충돌로? 이처럼 다양한 얼굴을 가진 운석이지만, 문제는 그 가공스러운 충돌이 가져올 대재앙이다. 지름 10km짜리 소행성 하나가 초속 20km 속도로 지구와 충돌하기만 해도 강도 8 지진의 1000배에 달하는 격동이 지구를 휩쓸 것이며 대재앙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연유로 지구 종말은 소행성 충돌에 의한 것이라는 공포가 광범하게 퍼져 있는 실정이다. 시속 수 만km의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는 운석의 파괴력은 실로 가공스러울 정도다. 지름이 수백 미터의 운석이 지상에 떨어지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 순간의 파괴력은 히로시마 원자폭탄을 수십만 개를 한꺼번에 터뜨린 것과 맞먹는 끔찍한 상황이 연출된다. 이러한 대재앙을 피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최선의 방법들을 찾아내는 데 여념이 없다. 지구로부터 0.05AU(지구-태양 거리 1AU=1억 5천만km) 이내에 접근하는 천체를 지구접근천체(Near-Earth Object, NEO)라 하는데, 지구에 잠재적인 위협을 줄 수 있는 소행성 100만 개 중에 발견된 건 단 1%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에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 있는 100만 개 이상의 소행성은 아직 찾지 못한 상태이다. 주목! 2029년에 접근하는 소행성 아포피스 특히 천문학자들이 우려의 눈길로 주목하고 있는 소행성이 하나 있다. 축구장보다 큰 이 철광석 소행성 아포피스는 2029년 4월 13일 금요일, 3만 5,000km 이내로 근접 통과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는 지구-달 사이 거리의 1/10 수준으로 거의 충돌이나 마찬가지다. 그 접근 거리는 지구 표면과 정지 위성 사이를 통과할 정도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응책은 무엇인가? 과학자들은 위협 천체와 지구가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연구하고 있다. 고출력 레이저로 소행성을 태우는 방안은 그중 하나다. 비행기에서 고출력 레이저를 쏘아 소행성 한쪽 면에 태워버림으로써 소행성 무게 평형을 깨뜨려 궤도를 뒤틀리게 하는 방법이다. 우리나라도 내년부터 지구위협천체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작년 12월 국회에서 ‘우주개발 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면서 우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로 우주환경감시기관이 설립될 예정이다. 원래 우주는 폭력적인 장소이다. 우주 안에서 100% 안전한 장소는 없다. 소행성 충돌은 백만분의 1초 만에 모든 게 끝장날 행성 충돌이나 중성자별 충돌, 블랙홀 충돌, 그리고 은하 충돌에 비하면 씹던 껌에 얻어맞는 정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지구로 향해 꽂힐 때는 말 그대로 지구 종말이 될 것이다. 과연 지구는 소행성 충돌로 끝장날 것인가? 그것이 신의 시나리오인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인류는 이 광포한 우주 속에서 오로지 우연과 행운, 그리고 신의 가호에 의지한 채 살아가야 할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만은 확실한 듯하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24] 까치밥, 똘레랑스 그리고 정신건강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24] 까치밥, 똘레랑스 그리고 정신건강

    한 때 우리 사회에서 ‘똘레랑스(Tolerance)’라는 말이 회자됐었지요. 프랑스 사람들이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이 아닌 타자, 자기 것이 아닌 다른 문화과 관습을 능동적으로 포용한다는 것인데, 저는 오래 전 홍세화씨의 책에서 이 말을 실감나게 접했습니다. 이 말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것은 이타적인 삶, 타자를 위한 배려가 부럽기도 했고, 그렇게 너그러운 그들의 삶에 자꾸 낯설게만 투영되는 ‘나’와 ‘내 주변’의 옹색한 현실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의 이런 생각이 한 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한 유럽의 강대국들이 전세계에 이식시킨 패권적 이념에 길들여진 식민적 속성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국을 ‘신사의 나라’로 여기지도 않고, 프랑스 문화가 재밌을지언정 우월하다고 믿지도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국부(國富)나 인종적 특성이 부러운 게 아니라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그들의 열린 자세가 부럽고, 그로부터 발원한 그들의 치열하면서도 자유분방하고, 발랄하면서도 격조가 있는 삶의 자세를 부러워합니다. 아마 그런 그들의 삶이 상당 부분 똘레랑스와 결부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게 필자의 생각입니다.  ●가지지 못한 자의 아름다운 나눔 언제부턴가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매몰되어 살아 왔습니다. 그 정도가 지나쳐 톨레랑스의 가치를 알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마치 ‘문명 밖의 문명’처럼 낯설거나 이질적으로 비치기도 할 것입니다. ‘나만 좋으면 된다’거나 ‘항상 내가 우선’이라는 이 몰염치한 습속은 일제 암흑기와 한국전쟁 등 독하지 않으면 살아 남기 어려운 핍진한 환경을 헤쳐나오면서 체득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바둑의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먼저 내 말을 살린 뒤 상대방의 말을 공격하라)’라는 격언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명도생부터 해야 했으니, 그 참담한 삶 속에서 다른 사람이나 다른 것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던 것이지요.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에서 보듯, 항상 궁핍하고 불안정한 일상 속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챙겨야 했고, 그렇게 아등바등 뺏고, 감추며 살았지만 쌀독은 항상 비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들 했으니, 그런 터수에 언감생심 무언가를 베풀면서 사는 여유를 갖는다는 게 호사이고 꿈일 뿐이었지요. 그렇다고 우리네 삶이 똘레랑스와 전혀 무관했던 것은 아닙니다. 아니, 우리 조상들은 유럽의 똘레랑스보다 훨씬 본원적인 베풂을 알았고, 그런 가치를 존중했습니다. 가진 자의 시혜보다 가지지 못한 자의 배려가 더 아름다운 것은 먹고 쓰고 남은 것을 덜어 주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허기와 필요를 덜어야 하는 일이고, 최소한의 자기 몫을 쪼개는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았고, 그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이는 개국 이래 단 한번도 국통이 끊이지 않았던 장구한 역사가 증언하는 사실입니다. 시골집 뒤란의 늙은 감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까치밥’은 또 어떻습니까.  ●‘오로지 주고자 했던’ 까치밥의 철학 ‘초록이 지쳐 단풍 들더니’ 가을이 깊어져 갑니다. 이슬이 서리로 변하면서 이내 살풍경한 겨울이 되어 온 산야를 흰눈이 뒤덮을 무렵이면 텅 비어 삭막한 풍경 가운데에다 마치 누군가 작심하고 붉은 물감으로 방점이라도 찍어놓은 듯 선연한 붉음이 눈길을 끌곤 했지요. 바로 까치밥입니다. 가을걷이의 마지막은 감을 따 갈무리하는 것인데, 개량되기 전의 예전 감은 겉이 붉어보여도 속살을 베어물면 여간 떫지 않았습니다. 그걸 따모아 항아리나 석작 속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가 달디 단 홍시가 되면 하나씩 꺼내 먹곤 했던, 요긴한 겨울 군입거리였지요. 요즘의 개량종 단감과 달리 예전의 토종 감나무는 집안의 조왕신 같은 것이어서 크게 키워 비바람을 막고, 시원한 그늘도 드리우며, 먼 동구밖에서 봐도 한 눈에 우리 집임을 아는 장소성까지 부여했으니 감나무가 바로 산이고, 정자이며, 스카이라인이고, 랜드마크였지요. 스무 척, 서른 척 키를 키운 탓에 감을 딸 때면 큰 가지를 타고 올라가 간짓대로 투덕거리곤 했는데, 해거리를 하지 않을 때는 워낙 많이 열려 그걸 따는 것도 일이었습니다. 정신없이 따다 보면 어느 새 가지가 텅 비고, 꼭대기 가지 끝에 잔챙이 감이 서른 개, 마흔 개씩 남습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그건 까치밥하자. 그만 내려와라”시며 일을 매조졌지요. 아닌 게 아니라 날이 추워 먹거리가 마땅찮으면 까치가 가지 끝에 내려앉아 남은 감을 쪼곤 했는데, 그래서 까치밥이라고 불렀겠지요. 찬서리에 익어서 더 붉어진 까치밥이 얼음 들어 푸르딩딩한 하늘을 배경으로 매달린 모습을 보노라면 문득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곤 했는데, 그런 느꺼운 마음이 미물에게라도 뭔가를 베풀 수 있다는 은전의 여유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까치를 위해 가지 끝에 감을 남겨두는 일은 어떤 강제나 규율도 없이 온전히 스스로 결정하는 있이었는데, 지금보다 훨씬 궁핍하게 살았던 예전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표도 나지 않게 그런 덕성을 실천함으로써 스스로의 체온을 느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루 하루 끼니 걱정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빈 콩밭에 ‘참새 몫’으로 수수목을 남겨두거나, 대보름날 정성껏 무친 나무새를 이것 저것 바가지에 덜어 소에게 먹일 턱이 없지요. 까치든, 소든 사람에 견주면 하찮은 미물이고 축생인데도 말이지요. 우리의 핏속에는 미물일지라도 곁에 머무는 것이면 무엇이든 챙기고 걱정해주는 미덕이 있었습니다. 제 목구멍으로 무엇을 넘겼는지도 모를 궁핍 속에서 살면서 그런 짓이 가당키나 하냐고 생각한다면 조상들의 정신세계를 더 찬찬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들이 넉넉하지 못한 것도 맞고, 그래서 짜디 짠 자반 한입 못 먹어보고 해를 넘기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그걸 그다지 아쉽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는 말처럼 살림이 요족해 육고기를 줄창 먹고 살았다면 간사한 입맛이 남아 ‘땡기기라도’ 했겠지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원래의 삶이 안빈(安貧)에 길들여진 탓에 배만 채울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했지요. ‘사흘 고기맛을 못 보면 소증 난다’는 말은 덜 떨어진 권문세가의 논다니들 말이지, 하냥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살았던 사람들의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까치 같은 미물까지 챙기며 살았으니 그걸 먼 유럽의 똘레랑스와 견준다는 게 오히려 이상합니다. 유럽의 똘레랑스가 관습과 제도의 결과라면, 우리의 나눔은 태생적인 끌림의 결과이니까요. 예전에 흔했던 보시(布施)는 어떻습니까. 불교의 수행법으로, 베푸는 모든 행위를 이르는 보시는 불가에서 이타정신(利他精神)의 정점으로 이해합니다. 더러는 보시를 복을 받기 위해 하는 ‘이기적인 이타’라고도 보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설령 보시를 하면서 되받을 일을 생각했더라도, 그 복이라는 게 실체도 없고, 아무도 담보할 수 없는 불확실한 대가여서 거기에 기대 자기 것을 나눌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보다는 자기 것을 나누면서 스스로 위로받기 위해 ‘복’을 생각했다는 게 현실적이지요. 마찬가지로 까치밥 역시 ‘오로지 주고자 했던’ 아가페적인 나눔의 실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서구의 똘레랑스 정신을 ‘우리는 갖지 못한 포용이자 관용’이라고 부러워만 할 일은 아니지요.  ●정신 건강 혹은 영혼의 안식 이치가 그렇지 않습니까. 프랑스의 똘레랑스는 1789년의 대혁명 이후에 사회적 통합을 위해 주창한 근대화의 기제 속에서 체화된 개념인데, 우리의 그것은 어떤 이념이나 사상도 작용하지 않은 자연발생적 정서였고, 또 모르긴 해도 자연의 모든 것에 정령이 깃든다는 원시 토테미즘과도 무관하지 않을 터이니 비록 우리의 정서가 반듯하게 각이 잡혀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하단들 제도적 산물인 똘레랑스와 같은 선에서 견준다는 게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 까치밥을 보면서 궁핍하지만 영혼이 건강하게 사는 지혜를 배웁니다. 지혜라고 했지만, 대단한 사유나 거창한 논리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그냥 물이 흐르듯, 아니면 밥 먹고 숨 쉬듯 자연스럽게 마음의 부름에 따르면 되는 일이고, 거기에 대단한 결심이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하지요. 필자가 어렸을 때의 경험입니다. 유월 더운 날, 온가족이 나서 산비탈 보리밭에서 보리를 베고 있었지요. 거진 다 베어갈 무렵, 갑자기 까투리 한 마리가 요란하게 꿩꿩 거리며 나대는 게 아니겠습니까. 시골에 흔한 게 꿩이라 대수롭게 여기지도 않았는데, 그 때 할머니가 허리를 펴시더니 “오늘은 여기서 손 털자”고 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직 베지 못한 보리가 예닐곱 평이나 남았는데 마치자는 말에 다들 의아해 하자 할머니는 “저 쪽에 새끼를 쳐놨길래 꿩이 저 난리지”라며 “한 이레면 새끼 데불고 나갈테니 그 때 와서 마저 베면 된다”고 확실하게 선을 그으시더군요. 집안 어른 말씀에 가타부타할 수도 없어 그렇게 일을 마쳤는데,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보리밭에 다녀 오신 아버지가 “꿩이 산으로 갔는지 둥지가 비었더라. 내일 가서 남은 보리 정리하면 되겠다”고 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돌이켜 생각하면, 할머니는 그 일을 통해 우리에게 두 가지를 가르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하찮은 꿩이라도 새끼를 거느릴 때는 해코지해서는 안 된다는 공생의 철학이 하나이고, 보리밭 어름에서 꿩이 우짖는 걸 보고 사연을 헤아릴 줄 아는 지혜가 둘입니다. 보리야 며칠 뒤에 베어도 축날 일이 없으니 흔쾌히 그리 한 것이지만, 그렇더라도 나 아닌 남을 생각하는 일은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할머니와 어머니는 김장김치나 간장·된장 등을 넉넉하게 준비해 이웃들과 나누기도 했는데, 그렇게 나눈 뒤에는 항상 “전답이 넉넉치 않아 가을이라고 거둔 것도 없을텐데, 겅개라도 좀 나누니 맘 편하다”며 기꺼워들 하셨지요. 그래선지 할머니는 그 시절의 여건을 생각하면 무병장수하셨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집안 일을 하시는 등 강건하셨습니다. 그게 어디 제 할머니만의 일이겠습니까. 살림이나 품성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확실히 예전에는 다들 그렇게 나누고, 살피며 살았습니다. 그런 삶은 확실히 건강했습니다. 필자가 낳고 자란 마을이 100여호 쯤 됐는데, 치매를 겪은 노인은 딱 두 사람만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더러는 ‘노망’이니 ‘망령’이니 수근대기도 했지만, 삼이웃이 너나 없이 돈독했고, 우애가 깊었지요. 그러니 온 마을이 떵떵거릴 만큼 크게 잘 사는 집은 없었어도 굶주릴 일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오고가다 마주치면 살갑게들 인사를 나눴고, 철부지들이라도 위, 아래를 알았습니다. 쌀독이 비면 아무 집에나 찾아가 손을 벌렸고, 장날이 되어 뭐든 돈을 바꾸면 식량을 곧 되갚았습니다. 농투산이들 사이에 흔한 물꼬싸움을 해도 악다구니가 없었습니다. 늙수그레한 노친네들이 다툴 일 없도록 거중조정을 해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더러는 앓거나 다치기도 했지만, 젊은 나이에 폐병으로 요절한 누구를 빼고는 흉변이랄 게 거의 없었습니다. 그 시절엔 다들 가난을 팔자라고 여겼으니 유리걸식하는 처지만 아니라면 그걸 딱히 불행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차고 넘치지는 않았지만, 욕심이 없으니 많든 적든 자기 처지가 요족하다고 여기며 살았고, 그런 중에 서로 보듬고 나누었으니 심화를 끓이거나 안달복달할 일도 없었지요. ●“당신은 건강한 삶을 위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지금이야 ‘칠십 청춘’이라고들 하지만, 예전에는 태어나 육십갑자를 다 채우고 맞는 환갑이 흔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환갑잔치는 놀이판이기도 했지만 혈족들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평생 농삿일로 허리가 굽은 채 환갑을 맞은 마을 어르신이 말합니다. “내가 육십평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모를 일이다. 한눈 안 팔고 살아 전답도 장만했고, 자식 대학도 보냈는데, 그러느라 허리는 휘고 낯바닥은 감탕이 되었지만 못 살았다는 생각은 안 든다. 헤프지도 않았지만, 필요할 땐 인심도 쓰면서 산 덕분에 죽어서 연옥은 면할 듯도 하고…”. 그 어르신은 술로 목을 축인 뒤 말을 이어갑니다. “나야 배우지 못해 세상의 이치를 알 턱이 없지만, 사는 게 별것 아니다. 혼자 사는 세상이란 없으니 형제끼리는 우애로, 이웃끼리는 정으로 살믄 될 일이다. 죽고 사는 것이야 인력으로 어쩔 수 없으니 그건 걱정할 것 없고, ‘나 하나 잘하믄 세상이 다 좋은 것이다’고 믿고 살았는데, 진짜로 내가 그렇게 살았는지는 나보다 식솔들과 이웃 지기들이 더 잘 알 일이다.” 건강하게 사는 많은 조건들 중에서 당신은 무엇을 첫 손에 꼽겠습니까.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각자 주관적인 판단이 있을 뿐이지요. 무섭다는 암도 피하고 싶고, 암 아니라도 안 아프고 살기를 바라기도 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죽을 때까지 자기 몸 자기가 건사하기를 바랄 것이고, 또 어떤 부류는 돈 좀 많이 모아 쭈글거리지 않은 노후를 보내고 싶어할 수도 있습니다. 모두 옳고, 부러운 바람이지만 저는 여기에 한 가지만 보태고 싶습니다. 스스로 가진 능력 이상을 거머쥐려는 욕심은 좀 덜고, 가진 것 조금이라도 떼어서 베풀며 살았으면 하는 소망이 그것입니다. 물론 의무감으로 할 일은 아니고, 떼돈 들여 큰 일을 벌이자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어버이가 그러셨듯이 감나무 가지 끝에 까치밥 몇 알 남겨두거나 꿩의 처지를 살펴 보리 베는 일 며칠 늦춰주는 그런 일을 하며 살자는 뜻입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자기 배만 채우려 하지 않고 욕심을 덜어내는 일이며, 자기 주장만 하지 않고 이기의 벽을 허무는 일이며, 좀 번거롭더라도 남의 처지나 형편에도 한번쯤 따뜻한 눈길을 주는 배려입니다. 빨갛게 언 발가락을 털어가며 겨울을 나야 하는 까치 등속의 미물에 대해 갖는 측은지심이 어디 불가(佛家)만의 가르침이겠습니까. 그 사소하다 못해 하찮기까지 한 까치밥에서 서구의 똘레랑스에는 없는 ‘우리다운 나눔과 배려’의 원천을 봅니다. 그럴 수 있다면 조금씩 베풀면서 남들의 따뜻한 시선 속에 머무는 것, 그리고 편안한 자기 위안을 얻는 것, 그런 삶이 건강한 삶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정신세계가 강퍅하지 않고 풍요로워서 갈수록 환자가 늘어난다는 우울증이나 착란, 도착 그리고 치매까지도 사회적 유병률이 훨씬 낮아질 것이고, 그런 변화가 우리들 개개인의 건강으로 확인되지 않겠습니까. 병이야 의사가 고치는 것이지만, 병문(病門)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니까요. 베풀며 산다고, 여유롭게 산다고 모든 병마를 피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정신의 세계만큼은 훨씬 정갈하고 넉넉해질 것이며, 그렇게 살다보면 흔히 말하는 세상의 번뇌와도 조금은 멀어지게 되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병마도 피할 수 있어 우리의 삶이 더 따뜻하고 안온할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 마음의 병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양지가 되지 않겠습니까. jeshim@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테크노밸리·삼봉신도시 건설… 市 승격 향해 완주해야죠”

    [자치단체장 25시] “테크노밸리·삼봉신도시 건설… 市 승격 향해 완주해야죠”

    박성일(60) 전북 완주군수는 ‘범생이 단체장’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모든 군정을 꼼꼼하게 예습하고 복습한다. 원리·원칙을 준수하고 인기에 영합하기 위한 꼼수도 쓰지 않는다. 그러나 ‘살맛 나는 완주시대’를 구현하겠다는 욕심은 하늘을 찌른다. 그는 새정치민주연합 텃밭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인물과 정책으로 승리한 만큼 ‘오직 군민을 위한 행정’에 올인한다. ‘군민을 제대로 섬기고 대한민국 으뜸도시를 만들겠다’며 머리를 짜내고 발로 뛰는 박 군수의 하루를 지켜봤다. 지난달 30일 오전 8시 30분 군청 4층 군수실. 간부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박 군수의 주문이 쏟아진다. 그는 “올해도 이제 석 달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실·과별 역점 사업과 현안 사업을 챙기기 시작했다. 한가위 연휴로 다소 느슨해진 군정에 고삐를 바짝 조이려는 것이다. “소병수 과장! 와일드푸드 축제 준비는 잘되고 있나요? 축제는 주민 화합과 참여가 목적이지 ‘매출 장사’를 하는 게 아녜요. 결과 못지않게 과정이 중요하니까 성공적인 축제가 될 수 있게 현장을 다시 한번 점검하도록 하세요”, “유형수 과장! 테크노밸리 2단계 사업 추진상황은 어떤가요? 오늘 현장에 나갈 테니까 현재 상황과 문제점을 보고하세요.” 박 군수는 주문할 때 간단명료하면서 핵심만 꼬집는다. 이어 핵심사업으로 추진하는 교통복지 사업도 점검과 보완을 지시한다. 이미 오전 6시 종합복지관에 나가 배드민턴 동호회와 면담하고 장날을 맞은 봉동읍 시장을 돌아보면서 시내버스와 택시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출근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 군수는 완주를 ‘교통 복지 1번지’로 변화시킨 장본인이다. 전주시와 완주군의 버스요금 단일화를 추진해 최고 7800원이던 시내버스 구간요금을 1200원으로 통일하는 성과를 거뒀다. 오지 주민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500원 으뜸택시, 통학택시, 부르면 달려가는 콜버스, 장애인 콜택시, 안심택시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들은 우수사례로 전국에 소개됐고 타 시·군들이 앞다퉈 벤치마킹했다. 각 실·과의 핵심사업을 점검한 박 군수는 대면 결재를 시작했다. 담당 과장과 계장의 설명을 자세히 듣고 “어떤 시책이 진정으로 군민을 위한 것인지 실무 책임자 선에서 더 고민하라”고 주문했다. 결재 후 삼례문화예술촌 현장 점검에 나서려던 박 군수가 갑자기 일정을 바꿨다. 군수를 직접 만나게 해달라는 민원인들이 찾아와서다. 소양면과 구이면에서 찾아온 민원인들은 마을 안길 확장, 농로 포장, 가뭄 대비 관정개발 등을 건의했다. 박 군수는 곧바로 인터폰으로 해당 부서 직원들을 불러 주민들의 민원을 함께 듣고 수첩에 적은 뒤 내년 예산에 최대한 반영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자녀 취업부탁 등 개인적인 민원은 정중히 거절했다. 점심을 간단히 마친 박 군수는 가장 역점을 둔 테크노밸리 조성 사업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는 “현재 야산과 농경지인 이곳이 앞으로 완주군을 먹여 살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라며 “하루빨리 공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행정력을 집중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 토지보상에 착수하고 연말까지 산단 개발계획변경과 실시계획 인가를 완료해 내년 2월에는 착공을 할 수 있도록 하라”는 로드맵도 제시했다. 테크노밸리는 1·2단계를 합해 총 343만 9000㎡ 규모다. 이곳은 자동차·기계 관련 부품 기업들이 입주해 완주군은 물론 전북의 성장동력이 될 전망이다. 지난해 완공된 1단계 부지 131만 4000㎡는 박 군수 취임 후 1년 만에 분양률 96%를 기록했고 활력도 평가에서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최근 관광객들이 느는 삼례문화예술촌을 방문했다. 일제강점기 쌀보관창고를 예술촌으로 리모델링한 현장을 두루 살펴본 박 군수는 “2단계 사업 부지에는 관광객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고 주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쉼터와 먹거리촌을 조성하는 계획을 서둘러 추진하라”고 김미경 관광진흥팀장에게 지시했다. 또 1단계 부지에는 그늘이 없는 점을 감안해 큰 나무를 보식하고 옛 골목길의 정취가 살아 있는 후정리 일대 등을 3단계 사업지구로 개발하는 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그는 1970년대 새마을사업 당시 쌓은 담장, 일본식 가옥 등도 잘 보존해 근대문화유산으로 가꾸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박 군수는 수행비서로부터 아파트 르네상스 간담회 주민대표들이 기다린다는 메모를 받고 삼례읍을 빠져나오면서도 재래시장을 살펴보는 꼼꼼함을 잃지 않았다. 최근 전남에서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가 유입되지 않도록 방역과 예찰을 철저히 하라고 담당 과장에게 전화로 지시했다. 아파트 르네상스 간담회는 박 군수가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는 자리다. 단절된 아파트 생활에 신바람을 불어넣고 소통을 이끌어내겠다는 그의 공약사업이다. 박 군수는 “주민 10명 이상이 모여 취미활동을 하겠다고 하면 적극 지원해줘 주민화합과 소통을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봉동읍 주공아파트 주민대표와 다문화가정 자원봉사자가 참석한 간담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웃음꽃이 가득했다. 주민들은 박 군수를 이웃집 아저씨처럼 격의 없이 맞이하고 대화하며 어린이 축구단 등 각종 프로그램 지원을 건의했다. 박 군수도 두서없이 터져 나오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청취하고 메모했다. 그는 군청으로 돌아온 뒤에도 다시 결재와 민원인 접견을 이어갔다. 소통을 중시하는 그는 주민들의 민원은 퇴근 시간이 지난 뒤에도 제한 없이 경청했다. 땅거미가 내려앉은 시간까지 박 군수의 하루를 동행한 뒤 청사를 나서면서 테크노밸리를 3단계까지 확대하고 삼봉신도시를 건설, 시 승격의 기반을 다지겠다고 청사진을 펼쳐 보이던 박 군수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진솔하면서 강력한 실천의지로 충만해 있는 박 군수의 얼굴에서 완주의 밝은 미래가 보였다. 글 사진 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초고속열차 속도경쟁… 국내 600㎞/h 기술 개발중

    초고속열차 속도경쟁… 국내 600㎞/h 기술 개발중

    1980년대 초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서~’라는 가사를 듣자마자 일본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를 떠올릴 것이다. 은하계를 횡단하는 인공지능 고속열차를 타고 모험을 떠나는 내용의 이 만화가 방영되는 일요일 아침엔 골목에서 어린아이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요즘은 변신열차로 악당을 물리친다는 내용의 ‘파워레인저 트레인포스’라는 일본 드라마가 어린이들 사이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7080세대뿐만 아니라 1990년대에 청춘을 보냈던 사람들은 춘천행 기차를 타고 MT를 가던 기억이 새록새록 날 것이다. 실제로 한 여행사의 조사에 따르면 낭만적 여행 하면 ‘기차’를 떠올리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고 한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아이들이 기차에 열광하는 이유는 ‘어른들의 통제를 벗어나는 일탈을 원하기’ 때문이고, 성인들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열망과 현실도피에 대한 욕망을 투영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이런 인간의 욕망을 반영하듯 1814년 영국에서 스티븐슨의 증기기관차가 세상에 선보인 이래 철도기술은 ‘더욱 빠르고 안전하게’라는 목표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각종 오염물질이 지구온난화의 원인물질로 지적받으면서 청정 철도기술을 도심·광역 교통시스템과 연계시키려는 시도도 활발하다. 배터리와 무선전력으로 전차선 없이 도심을 달리는 ‘친환경 무가선 트램’, 전용궤도와 일반도로를 모두 이용할 수 있는 ‘바이모달 트램’, 고가의 궤도를 시속 40~65㎞ 속도로 환승이나 정차 없이 운행하는 ‘무인자동운전 소형열차’(PRT·personal rapid transit) 등이 대표적이다. 철도기술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고속화’에 있다. 철도는 중·장거리 도시 간 여객수송 분야에서 항공기와 경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고속철도의 속도를 끌어올려 여행시간을 비행기의 70%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초고속 열차 시장 선점을 위해 속도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은 지난 4월 21일 자기부상 방식의 신칸센이 주행 테스트에서 시속 603㎞를 찍었다. 프랑스 테제베(TGV)는 2007년 4월에 이미 시속 574.8㎞를 기록했다. 중국은 지난해 1월 시속 605㎞의 초고속 열차를 시험운행하는 데 성공했다. 국내에서도 현재 운행되고 있는 KTX보다 승차 인원을 2배로 늘릴 수 있는 통근형 2층 고속열차, 무선으로 전력을 공급받아 시속 600㎞까지 속도를 낼 수 있는 레일형 초고속 열차 등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그렇다면 고속열차는 빠르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사람을 태우고 움직이기 때문에 속도만큼 안전도 중요하다. 이 때문에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 다양한 공학기술이 숨어 있다. 고속열차라고 하면 시속 300~400㎞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고속열차는 20량의 차량이 연결돼 있어서 길이만 380~400m, 무게는 780t에 이른다. 빨리 달리기만 하고 멈추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승객들의 생명을 담보로 한 파괴적 무기로 돌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고속열차는 보통 3중, 4중 제동장치를 갖고 있다. 고속으로 달리던 열차의 운동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바꿔 외부로 방출하는 발전제동과 각 차량의 전자밸브를 작동시켜 제동 압력을 제어함으로써 속도를 늦추는 저항제동이 있다. 또 고속으로 달릴 때 만들어진 전기를 전차선을 통해 보내 인근에 운행 중인 차량이 사용하도록 만들어 속도를 늦추는 회생제동이 있다. 고속열차가 사용하는 총 소비전력 중 10% 정도는 회생제동으로 인근 열차에서 얻은 전력이다. 이런 전기적 제동장치들이 고장날 경우 고속열차는 자전거나 자동차에서 사용하는 브레이크처럼 바퀴 측면 디스크에 마찰을 가하는 기계적 마찰 제동으로 열차를 멈춘다. 고속열차를 제때 멈추기 위해서는 정확한 운행속도를 알아야 한다. 열차의 정확한 속도를 알아내기 위해 고속열차는 차축마다 속도 발전기가 설치돼 있다. 여기서 측정된 속도 정보가 엔진이 실려 있는 앞쪽 동력차량의 메인 컴퓨터로 보내지고, 컴퓨터는 바퀴 상태 등을 고려해 열차의 정확한 현재 속도를 계산해 낸다. 요즘 철도기술은 정보통신과 환경기술 등과 융합해 운송과 안전을 뛰어넘어 예상 밖의 신기술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같은 트렌드에 발맞춰 우리나라 철도 관련 연구개발(R&D)을 수행하고 있는 한국철도기술연구원도 마이크로파를 이용해 기름에 오염된 토양을 정화하는 기술과 열차와 관련된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한 ‘자가발전 무선센싱’ 기술을 개발해 지난 10일 시연했다. 마이크로파 이용 정화기술은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음식을 데우는 원리로 기름으로 오염된 토양을 600~700도까지 높여 기름을 증발시켜 제거하는 것이다. 마이크로파를 쓰기 때문에 기존의 열(熱) 정화기술과는 달리 휘발유, 경유, 등유, 윤활유 등 모든 종류의 기름 오염에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자가발전 무선센싱 기술은 열차가 달릴 때 발생하는 진동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열차 부속장치들의 상태를 실시간 측정해 기관실과 열차 사령실 등에 무선 전송하도록 한 것이다. 열차 주행 진동으로 자가발전을 하기 때문에 차량에 전원시설이 없는 화물열차는 물론 고속열차나 전동차 등 다양한 철도에 적용할 수 있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 관계자는 “철도기술은 기계, 전기, 전자 등 첨단기술이 복합된 종합시스템으로 다양한 분야에 파급효과를 낼 수 있는 중요한 기반산업”이라며 “친환경이라는 트렌드에 발맞춰 선진국들은 다양한 첨단 철도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新국토기행] 전남 담양군

    [新국토기행] 전남 담양군

    전남 담양군은 예부터 대나무가 많이 나서 ‘죽향’으로 불린다. 한때 죽제품과 죽물시장이 전국 상인을 불러들일 만큼 번창했으나 지금은 플라스틱 제품과 수입품에 밀리면서 쇠락을 거듭하고 있다. 군은 죽향을 널리 알리기 올가을 세계대나무박람회를 준비 중이다. 담양은 산과 물, 계곡이 어우러진 산자수려(山紫水麗)한 고장으로도 이름 높다. 주변을 둘러보면 호남정맥이 빚어낸 산성산, 추월산 등이 북서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산과 계곡 곳곳엔 조선조 가사문학의 산실인 누정들이 산재한다. 자연과 역사 문화가 어우러진 천혜의 조건이다. 먹거리 역시 풍부하다. 영산강 상류의 실개천 등에서 나오는 미꾸라지·메기 등 민물고기 요리와 대통밥, 떡갈비 등도 전통음식으로 자리잡았다. ‘10경’, ‘10미’, ‘10 정자’의 고장으로 불릴 만큼 풍광과 맛, 역사의 현장이 즐비하다. 광주광역시와 남서쪽으로 경계를 이루며, 이런 입지 조건 때문에 휴양과 전원생활 배후단지로 떠오르고 있다. 담양은 1895년 이후 현재의 창평면인 창평군과 남원부 소속으로 양립하다가 1914년 담양군으로 통합됐다. 볼거리 ●연인들이 즐겨 찾는 대나무 정원 죽녹원 2003년 담양읍 향교리 성인산 일대에 31만여㎡ 규모로 조성된 대나무 정원이다. 주말엔 평균 2000여명의 탐방객이 찾는다. 블로그 등을 통해 전국에 알려지면서 연인들이 많이 모여든다. 죽녹원에 들어서면 분죽, 왕대, 맹종죽 등이 자생하는 울창한 대숲이 펼쳐진다. 운수대통길, 죽마고우길, 사랑이 변치 않는 길, 철학자의 길, 추억의 샛길 등 총길이 2.4㎞의 8개 테마별로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산책로는 왕대숲에 가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여서 죽림욕장으로도 인기가 높다. 전망대에 오르면 담양천과 수령 300년이 넘은 고목들로 이뤄진 관방제림과 담양의 명물인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등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오는 9월 세계대나무박람회를 앞두고 생태전시관, 인공폭포, 생태연못, 야외공연장 등 시설물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정원 안에는 죽향정, 의향정, 예향정 등 한옥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주말마다 대나무 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죽로차 시음 등 각종 체험 행사가 이어진다. 매년 5월엔 대나무축제가 열리는 등 전국의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강과 숲이 어우러진 천연기념물 관방제림 영산강 상류인 담양천변에 쌓은 제방 숲이다. 천연기념물 제366호로 지정돼 있다. 조선조 1648년(인조 28년)에 강 주변 마을의 홍수 방지를 위해 축조한 제방으로서, 당시부터 나무 식재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엔 수령 350년의 느티나무, 푸조나무, 팽나무, 은단풍 등 177그루가 보호수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강과 숲으로 둘러싸인 관방제림은 아름드리 노거수 길이 어우러진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제방의 산책로는 사계절 가족 나들이 코스로 인기 만점이다. 벚꽃으로 가득한 봄과 매미 울음소리 자지러지는 여름 등 언제 찾더라도 운치가 넘쳐난다. ●담양의 상징 ‘가장 아름다운 거리 숲’ 메타세쿼이아 길 이 길에 들어서면 마치 동굴을 지나는 느낌이다. 길 양편으로 곧추 자란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터널을 연상케 한다. 담양읍~전북 순창 경계에 이르는 24번 국도 8.5㎞ 구간에 펼쳐져 있다. 이 가운데 담양읍 학동리 2.1㎞ 구간이 전용 숲길로 조성됐다. 우회도로가 생기면서 폐선된 구간을 산책길로 만든 것이다. 2007년 개봉한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주인공 김상경이 택시를 타고 달리는 장면을 연출한 이후 방송국의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영화촬영 명소로 자리잡았다. 담양군이 1974년 가로수 조성사업을 하면서 선택한 수종으로서 40여년이 지난 지금은 높이가 30~40m에 이르는 아름드리 나무로 자랐다. 주변에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이 길이 한때 사라질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주민들이 나서 지켜냈다. 산림청과 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본부가 ‘가장 아름다운 거리 숲’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정철 사미인곡 등 가사문학의 산실된 누와 정 담양읍~봉산면~고서면~남면 무등산 자락으로 이어지는 계곡과 광주호 주변 곳곳엔 조선조 가사문학의 터전인 누(?, 누각)와 정자(亭子)가 즐비하다. 봉산면 면앙정은 송순(1493~1582)의 면앙정가가 탄생한 곳이다. 당대의 지식인 그룹인 고경명, 기대승, 임제, 정철 등이 송순을 사사하며 교류했던 현장이다. 이곳과 이웃한 고서면 송강정은 1548년(선조 17년) 송강 정철이 대사헌을 지내다 당쟁으로 물러나 머물며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지은 곳이다. 무등산 북동 끝자락인 남면 식영정은 1560년 서하당 김성원이 장인인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이다. 송강이 이곳에서 성산별곡을 지었다. 인근엔 양산보(1503~1557)가 조성한 한국의 대표적 정원인 소쇄원이 자리하고 있다. 소쇄원 입구 계곡 건너편엔 행정구역은 광주 북구이지만 이들 시인과 묵객들이 풍류를 즐겼던 환벽당을 만날 수 있다. 고서면 명옥헌 원림과 남면의 독수정 원림 등 선비들의 자취가 담긴 누정이 널려 있다. ●푸른 호수 보며 절벽길 만끽할 수 있는 추월산·산성산 추월산(해발 731m)은 산봉우리가 보름달에 맞닿을 정도로 높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전북과 전남의 도계인 담양군 용면에 있다. 산 전체가 깎아지른 듯한 기암괴석으로 이뤄져 있고, 절벽 사이로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보리암이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다. 정상에 서면 담양호 전경과 금성산성, 백암산과 내장산, 무등산 등 호남의 명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단풍나무, 노송군락, 참나무류, 느릅나무 등 활엽과 침엽수가 숲 터널을 이룬다. 담양호 동쪽 편엔 산성산(해발 603m)이 자리하고 있다. 삼국시대부터 축성과 중건과 보수를 거듭해온 성터는 역사 탐방코스로 인기가 높다. 정유재란 때 시체 2000구를 남문 아래 협곡에 옮겨 태웠다고 해서 이 계곡을 ‘이천골’(二千骨)이라 부른다. 이 산성은 시루봉(504m)을 정점으로 남문~노적봉~철마봉~서문~동문~운대봉~연대봉~북문~서문으로 계곡을 감싸는 포곡형이다. 외성과 내성으로 나뉘어 있으며, 특히 적이 침투하기 쉬운 서문 계곡은 옹성으로 쌓았다. 내성엔 동헌, 내아, 연환고, 보국사, 민가터 등이 남아 있다. 담양호를 사이로 우뚝 선 이들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운무는 신비감을 자아낼 정도로 절경이다. 먹거리 ● 대나무 향기 그윽한 대통밥 읍내 웬만한 식당에서는 ‘대통밥’을 즐길 수 있다. 지름 10㎝의 왕대 속 부분에 쌀과 각종 씨앗류를 넣고 쪄내는 대통밥은 남녀노소가 좋아한다. 최근 웰빙 바람을 타고 대나무 향기가 스며든 ‘대통밥’이 인기를 더하고 있다. 대통을 감싼 한지를 벗겨 내면 쌀과 밤, 대추, 은행, 잣 등과 함께 막 쪄낸 밥이 입맛을 돋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죽순 나물이나 산채류에 고추장을 더해 비벼 먹어도 일품이다. 한정식집이나 고깃집에서도 대통밥을 판다. 죽순 초무침과 산나물, 해물 등이 밑반찬으로 나오며, 특히 두부를 썰어 넣은 된장국과 잘 어울린다. ●혀끝에 달콤하게 달라붙는 떡갈비 청정지역에서 기른 한우를 엄선해 재료로 쓴다. 소고기를 갈아서 양파, 마늘 등 갖은 양념과 버무려 구워낸다. 식사 도중 잘 익은 고기가 식지 않도록 열에 달궈진 돌판 등에 얹어 내놓는다. 죽순 나물과 푸성귀 무침 등이 곁들여진다. 이가 약한 노인이나 어린이도 맘껏 즐길 수 있다. 양질의 단백질 식품인지라 무더위 보양식으로도 그만이다. ●전국적 명물 담양식 숯불 돼지 갈비 점심이나 해질 무렵 담양읍 반룡리 일대를 지나다 보면 구수한 고기 굽는 냄새가 구미를 당긴다. 이 일대는 숯불 돼지갈비집이 즐비하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숯불 갈비집이 한 집 두 집 생기면서 한곳으로 몰렸다. 담양식 돼지갈비는 갖은 양념에 버무린 갈비를 겉이 거뭇거뭇할 정도로 숯불에 구워 내는 방식으로 밥상이 차려진다. 구울 때 진동하는 구수한 냄새가 식욕을 부추긴다. 바싹 구워낸 갈비는 기름기가 거의 없을 정도로 담백하고 쫄깃하다. ‘담양식’이란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지친 발길 사로잡는 창평 시골장터 국밥 슬로시티로 지정된 창평 전통시장은 국밥집 천지이다. 어느 시골 장터나 국밥집은 성업했지만 창평 시장처럼 명맥을 이어가는 곳은 드물다. 5일, 10일 열리는 장날이면 국밥을 먹기 위해 광주, 곡성 등 인근 지역 주민들도 차를 몰고 일부러 찾아 나선다. 평일에도 국밥을 찾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신선한 돼지 내장과 머리 고기, 암뽕순대 등을 이용한 푸짐한 국밥은 인기 만점이다. 몇 해 전부터 장터에 10여개의 국밥집이 자리하면서 ‘창평국밥거리’가 생겼다. 업소들끼리 원조를 내세우지만 맛은 엇비슷하다. 돼지 내장 특유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 한약재 등 각종 비법을 사용해 가마솥에 끓여 낸다. 찾는 손님이 많은 만큼 매일 공급되는 신선한 재료가 맛을 내는 비법으로 꼽힌다. 담양 투어를 마치고 들러 주린 배를 채우면 딱 좋다. 담양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新국토기행] 충남 금산군

    [新국토기행] 충남 금산군

    금산군은 충남에서 가장 많은 산악군으로 이뤄졌다. 대둔산, 천태산, 양각산, 만인산, 수로봉…. 고려 문장가 이규보는 “산이 지극히 높아 들어갈수록 그윽하다”고 표현했다. 산이 모두 아름다워 ‘비단 뫼’(錦山)라는 지명을 붙였을 게다. 매년 4월 축제가 열리는 군북면 산안리 보곡산골의 국내 최대 산벚꽃 군락지는 지금까지도 이게 허명이 아님을 말해준다. 이맘때면 진달래, 산딸나무 등도 어우러져 꽃 천국으로 변한다. 산들 사이로 하천이 발달했다. 깨끗한 하천은 대전 등 인접 도시의 젖줄이 되고 있다. 산악이 많아 집중 호우가 잦고 한서(寒暑) 차가 심한 지형은 인삼과 약초 등 전국적 명성을 자랑하는 특산물 생산지로 자리잡게 했다. 전북에 속했던 금산군은 1963년 충남으로 편입됐지만 외톨이처럼 남쪽 끄트머리에 있다. 오히려 대전과 인접해 그곳이 생활권이다. 선거 때마다 매번 통합론이 불거져 나오듯이 대전시가 탐내는 곳이 바로 금산이다. 볼거리 ●사포닌 함량 높은 인삼의 성지 ‘인삼약초거리’ 장날이 아니어도 늘 장날 같다. 진품 금산인삼을 구입하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시장 곳곳에 산더미처럼 쌓인 인삼은 믿음을 더한다. 어디 인삼뿐이랴. 갖가지 약초도 넘친다. 1500여개 점포가 밀집된 국내 최대 인삼약초 시장이다. 인삼은 전국 유통량의 70%, 인삼약초 산업이 금산 경제의 60%에 이른다. 금산은 인삼 재배에 천혜의 조건을 지녔다. 요즘은 금산 사람이 경기 이천과 여주 등 외지에 나가 인삼을 많이 길러 갖고 오지만 정통 재배 노하우로 품질을 유지한다. 금산인삼은 사포닌 함량이 높고 약효가 뛰어나다. 몸이 길고 단단하며 색이 희다. 이를 곡삼이란 특유의 형태로 가공하는데 이게 전통 가공법이다. 금산 인삼농업은 지난 3월 국가중요농업유산 제5호로 지정됐다. 매년 가을 80만명이 몰리는 축제가 열린다. 금산은 약초의 메카이기도 하다. 서울 경동시장, 대구 약령시장과 함께 국내 3대 약초시장으로 꼽힌다. 자연 건강식품을 한자리에서 보고, 맛보고, 살 수 있는 곳으로 먼 미래까지도 외면받지 않을 건강의 성지다. ●산길의 아기자기한 매력… 충남 最高 ‘서대산’ 해발 904m로 충남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추부면과 군북면에 걸쳐 있다. 땅속에서 불쑥 솟아오른 듯 우람하고 높아 주위 산들을 압도한다. 바위산으로 기암괴봉과 깎아지른 낭떠러지 암반이 부지기수다. 산길은 가파르지만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다. 경관이 아름답다. 정상에 서면 민주지산, 덕유산, 대둔산, 계룡산 등 유명한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굽이치는 물길·그림 같은 풍광의 ‘천내강’ 제원면 천내리를 지나는 금강 물길을 일컫는다. 용틀임하듯 굽이치는 물길이 장관이고, 주변 풍광이 절경이다. 산수 좋은 금산의 대표 강변유원지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으로 왔을 때 경관이 하도 수려해 자신의 묘터를 잡은 뒤 세웠다는 용석과 호석이 서 있다. 인근 용화리 금강은 다슬기잡이를 즐기는 이들로 북적인다. 또 소문난 민물고기 음식점이 많아 미식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금산IC에서 10여분 거리다. ●붉은 바위산 적시는 ‘적벽강’… 물놀이 명소 부리면 수통리에 넓게 펼쳐진 기암절벽을 적벽이라 하고, 그 아래 흐르는 금강이 적벽강이다. 금강은 충청도를 흐르면서 일정 구간에서 이름이 바뀐다. 충남 부여군 부소산을 휘감는 물길이 ‘백마강’, 적벽을 적시는 것이 ‘적벽강’이다. 적벽은 절벽 바위산이 붉은색이어서 붙여졌다. 높이 30m가 넘는 장엄한 절벽의 강물 아래쪽에 굴이 뚫려 있다. 적벽강의 너른 자갈밭은 여름철에 많이 찾는 피서객이 자리잡고 물놀이를 즐기는 명소다. ●신선의 세계인 듯… 서늘한 여름 선물‘12폭포’ 남이면 구석리 골짜기의 무성한 숲과 절벽 사이를 누비며 쏟아지는 크고 작은 12개 폭포를 말한다. 가장 높은 것이 20m에 달한다. 성치산 성봉까지 6.5㎞의 등산로가 놓여 있고, 그 절반이 폭포들로 수 놓인 계곡으로 이뤄져 있다. ‘무자치골’이라 불리는 이 계곡은 한여름에도 서늘하다. 계곡 곳곳에 바위 웅덩이가 있어 물놀이하기 좋다. 마른하늘에 천둥 치듯, 때로는 눈발이 흩날리는 듯해 신선의 세계에 들어온 느낌이다. ●물놀이·캠핑·등산 한번에 ‘금산산림문화타운’ 금산생태숲, 남이자연휴양림, 느티골산림욕장, 산림생태문화체험단지 등이 어우러진 산림생태종합휴양단지다. 원시림과 같은 숲이 보존된 남이면 건천리에 자리잡고 있다. 숲속의 집이 있고 물놀이, 오토캠핑, 등산을 즐길 수 있다. 개수염, 푼지나무, 민백미꽃, 서어나무, 음나무, 부처손, 기름새, 솔새 등 보기 힘든 식물을 한꺼번에 관찰할 수 있다. 백령성, 육백고지전적지 등 문화유산도 탐방할 수 있는 중부권의 최대 테마휴양림이다. ●임진왜란 의병장 조헌 등 모신 칠백의총 임진왜란 때인 1592년 8월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의병장 조헌과 영규대사 등 700 의사의 유골을 모아 만든 무덤이다. 사당도 있다. 조헌의 제자 박정량과 전승업이 조성했고 이름도 지었다. 사적 105호로 금성면 의총리에 있다. 의총에서 뱀실재, 철쭉공원, 금성산 등을 거쳐 되돌아오는 6.6㎞ 길이의 둘레길도 인기가 꽤 괜찮다. 먹거리 ●향 짙고 뒷면이 자색인 금산 대표 ‘추부깻잎’ 1982년 서대산 아래 추부면에서 처음 기르기 시작해 브랜드화됐다. 지금은 금산 전역에서 재배해 전국 생산량의 42%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 식탁에서 먹는 깻잎의 절반 정도가 금산산인 셈이다. 인삼 다음 금산의 효자 특산물이다. 지난해 2600여 농가가 291㏊에서 깻잎을 길러 45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 할인점과 서울 가락시장 등을 통해 전국에 공급된다. 기후가 고랭지여서 향이 짙은 게 특징이다. 잎이 두껍고 뒷면이 자색을 띤다. 주로 무농약 등 친환경 농법으로 가꾼다. 깻잎 농사를 지으려고 귀농·귀촌자가 금산에 많이 몰린다. 중소기업청이 지난 4월 국내 엽채류 중 최초로 추부깻잎특구로 지정, 그 진가를 재확인했다. ●알싸한 인삼향 매력… 여름 보양식 ‘인삼어죽’ 천내리 등 제원면 금강변의 향토음식이다. 예로부터 허약한 사람에게 만들어 먹였다. 무더위에 지친 여름철 이열치열 음식으로 제격이다. 전혀 비리지 않은 데다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알싸한 인삼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금강 상류의 맑은 물에서 잡은 쏘가리, 메기, 잉어, 붕어, 빠가사리(동자개) 등에 인삼을 넣고 푹 고아 수제비나 국수를 곁들여 걸쭉하게 끓여 만든다. 애호박, 깻잎, 미나리, 풋고추 등도 들어간다. 죽이지만 한 그릇이면 종일 든든하다. 칼슘, 비타민 등 영양도 풍부하다. 아름다운 강마을 천내리 일대에 인삼어죽마을이 있다. ●매콤·고소·바삭한 피라미 요리 ‘도리뱅뱅이’ 인삼어죽과 찰떡궁합인 민물고기 요리다. 기름에 한 번 튀긴 피라미를 고추장 양념으로 조려내 매콤하고, 고소하고, 바삭하다. 민물고기를 꺼리는 이들도 부담이 없다. 피라미를 프라이팬에 동그랗게 빙 둘러놓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 천내리의 토속음식으로 어죽과 함께 먹으면 별미다. 여기에 ‘금산인삼주’를 곁들이면 금산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인삼주는 2000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때 세계 정상들이 “맛이 그윽하다”고 평가한 금산의 대표 토속주다. ●자연산 미꾸라지에 깻잎·부추로 맛 낸 추어탕 깻잎이 많이 나오는 추부면 마전리에 추어탕마을이 있다. 20여개 음식점이 몰려 있다. 미꾸라지를 푹 삶은 뒤 체에 거르거나 갈아서 만드는 것은 다른 지역과 별반 차이가 없다. 다만 자연산 미꾸라지를 많이 넣는 게 믿음직스럽다. 걸쭉한 탕에 깻잎과 부추도 많이 넣는다. 자연산 재료를 쓰고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60년 전통의 인삼 먹인 ‘복수 한우’ 대전과 경계에 있는 복수면 곡남~지량리 9㎞에 금산한우특화거리가 조성돼 있다. 이곳이 생고기구이의 원조로 알려졌다. 5년 전 작고한 현영숙 할머니가 해방 후 평양에서 내려와 장작불에 생소고기를 얹어 구워 팔던 게 효시라고 한다. 대략 60년 역사를 자랑한다. 이것이 전국으로 전파됐다고 한다. 이 일대는 예로부터 한우를 많이 길렀고, 일부는 사료에 인삼을 넣어 먹였다. 이곳에는 한우 전문 음식점이 8개쯤 되고,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원조 한우 숯불구이를 맛볼 수 있다. 지금은 공급이 달려 금산 전역과 충남 논산, 충북 옥천 등에서 한우 고기를 사다가 판매한다. 대전 등 인근 도시에서 찾아온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기 때문이다. 금산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문 닫은 모란시장 “메르스 진정되기를”

    문 닫은 모란시장 “메르스 진정되기를”

    장날인 9일 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해 휴장한 경기 성남시 모란민속시장이 손님들이 없어 한산해 보인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계파문제 끝내자”… 野 2일부터 1박2일 끝장토론

    “계파문제 끝내자”… 野 2일부터 1박2일 끝장토론

    ‘당내 계파 문제’가 ‘끝장 토론’으로 끝장날 수 있을까. 새정치민주연합이 경기 양평 가나안농군학교에서 2~3일 실시하는 의원워크숍에서 당내 계파 문제를 토론 테이블에 올렸다. 토론 문화의 국내 최고 권위자까지 섭외했다. 3일 진행될 토론의 정식 제목은 ‘4·29 재·보선 진단 및 당 계파의 문제점’. 이 자리에는 ‘토론 문화 전도사’로 알려진 강치원 강원대 교수가 초청돼 토론회를 이끈다. 먼저 강 교수의 ‘지도’ 아래 그룹별 토론을 하고 각 그룹 대표들이 패널로 나서 다시 토론을 벌이는 ‘이중 토론’으로 진행된다. 가능한 한 많은 인원이 토론에 참가하기 위해 이 같은 토론 방식이 도입됐다고 한다. 강 교수는 김상곤 당 혁신위원장이 경기도교육감으로 재직할 당시 경기교육청 산하 율곡교육연수원장을 맡은 인연이 있다. 당 교육연수위원장으로 워크숍 준비를 총괄하는 안민석 의원도 김 위원장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이번 워크숍은 김 위원장의 색깔이 묻어난 일정이란 평가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워크숍 첫째 날인 2일 당 혁신 방안에 대해 특강할 예정이다. 안 의원은 “참석 의원 현황은 워크숍 전날 확정될 것”이라며 “워크숍에 가지 않는 의원이 누구인지 ‘출석 체크’를 하겠다는 당원이 있을 만큼 관심이 높다”고 전했다. 당 지도부는 이번 워크숍이 전열 재정비와 당내 단합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모습이다. 가나안농군학교에 입교한 의원들은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퇴소가 불가능하고 술을 포함한 외부 음식 반입도 금지된다. 워크숍 장소가 가나안농군학교로 선택된 이유다. 특히 의원들의 휴대전화를 일괄적으로 수거할 예정이다. 원내 지도부는 이미 의원들에게 중도 퇴소가 불가능하니 이 기간에는 개인 일정을 잡지 말라는 공지를 전달했다. 민주통합당 시절 1박 2일 의원워크숍 등 사례를 소개한 당 관계자는 “선거 패배, 정치 혁신 등을 주제로 한 워크숍이나 토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라며 “당 내홍이 제대로 수습될지 여부는 향후 혁신위 활동 등을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수십번 담금질마다 서린 장인 손끝 ‘세월의 온기’

    [명인·명물을 찾아서] 수십번 담금질마다 서린 장인 손끝 ‘세월의 온기’

    우리 선조들의 ‘삶’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대장간이 겨우 명맥만 유지되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읍·면마다 한곳 이상 있었으나 1980년대 들어 기계화 영농이 보편화되면서 하나둘 사라져 가고 있다. 한강·임진강·한탄강 등이 흘러 비옥한 농토가 산재한 한수 이북(경기 북부)에도 풀무질을 해가며 직접 손으로 두드려 낫·호미를 만드는 대장간이 고을마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근수(70)씨의 ‘파주대장간’이 유일하다. 파주 광탄시장 부근에 있다. 대장간 안은 매우 좁다. 겨우 38㎡(약 12평) 한쪽에 화덕이 있고 그 옆으로 모루와 각종 집게 등 작업도구들이 걸려 있다. 호미·낫·쇠스랑 등도 시렁에 쭉 걸려 있다. 마치 옛 농기구 박물관 같은 느낌이다. 한씨는 평생 해온 대장장이 일을 천직으로 생각한다. 대장장이 길로 들어서게 한 ‘곽산대장간’ 시절을 잊지 못한다. 요즘 만드는 물건에도 곽산대장간을 의미하는 ‘山’(산)자를 새겨 그 정신과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옛날 대장간의 모습과 지금 대장간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예전에는 낫 한 자루를 만들려면 철근을 잘라 화덕에 수십 번 담금질하고 모루에 대고 망치로 두들겨 모양을 잡아가는 과정을 거쳤지만, 지금은 기계가 두들김질을 대신하죠.” 이로 인해 낫 한 자루를 만드는 데 30분 정도가 걸린다. 화덕에 담금질을 12번 정도 하고 마지막에 물에 담가 강도를 높이면 완성된다. 한수 이북 마지막 대장간의 문을 차마 닫지 못하고 야장(冶匠)의 맥을 지키는 한씨는 1945년 파주 장단의 진동면 초리에서 태어났다. 6세 때 한국전쟁이 일어나 폭격으로 부모를 잃고 1·4 후퇴 때 누이, 남동생, 여동생 등 4남매와 정든 고향을 떠나 금촌 수용소 마을(현 금촌초등학교 근처)에 정착했다. 그러나 젖먹이였던 남동생이 죽고 뒤를 이어 여동생마저 굶주림으로 숨지고 말았다. 그는 금촌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서울 문래동에 사는 큰 아버지 댁으로 들어가게 된다. 큰아버지의 소개로 인근 영일동 곽산대장간에서 일을 배우게 됐다. 당시 14살의 어린 나이었지만 평생을 ‘업’으로 여기며 살게 된 대장장이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건축자재를 전문으로 생산하던 곽산대장간은 주로 건축에 필요한 꺾쇠 등을 만들었다. 20여명의 직원들 속에서 가장 어렸던 한씨에게 주어진 일은 풍구질. 화덕에 불을 지피며 눈치껏 다른 일들을 배워 나갔다. “한 10년 하니까, 대장장이가 갖춰야 할 웬만한 기술은 다 할 수 있겠더라고요.” 당시 곽산대장간 주인 김지명씨는 고향인 평안도 곽산을 대장간 이름으로 썼다. 곽산대장간에서 만든 물건에는 모두 ‘山’을 새겼는데 당시 서울에서는 꽤 소문나 있었다. 한씨의 대장장이 기술은 김지명씨로부터 전수받았다. 이 때문에 한씨는 지금도 ‘山’이란 로고를 쓰고 있다. 한씨는 유일한 피붙이인 누이가 혼인해 파주 용주골에 정착하자 1970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파주 법원리에 있는 ‘법원리대장간’으로 일터를 옮겼다. 당시 25살 청년의 눈에 비친 법원리대장간은 서울의 곽산대장간 분위기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시골이라 농기구 만드는 일이 주된 일이었다. 손에 익숙지 않은 일들이었으나 눈치껏 일을 배워 나갔다. 첫 월급은 22㎏짜리 밀가루 4포를 살 수 있는 3000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씨의 눈에 동료들이 낫자루 끝을 마무리하는 낫 당개미(나무로 된 낫 손잡이가 쪼개지지 않도록 자루 끝에 끼우는 고리 모양의 쇠붙이)를 몹시 어렵게 많은 시간을 허비해가며 만드는 것을 보게 됐다. 한씨는 당개미의 재료인 두꺼운 쇠판을 오릴 수 있는 가위를 만들면 작업 속도가 매우 빨라질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주인의 허락을 받아 낫 당개미 전용 가위를 만들자 작업이 한결 수월해지고 낫을 생산하는 속도 역시 매우 빨라졌다. 대장간 주인은 월급을 1만 5000원으로 5배 올려줬다. 그로부터 5년 후 한씨는 인접 마을인 광탄면 신산리 ‘파주대장간’으로 자리를 옮겼고, 3년이 지나자 이곳의 주인이 됐다. 1970년대 중반 당시 파주에도 새마을운동 바람이 거셌다. 농사일에 필요한 농기구 수요 역시 급증했다. 닷새마다 열리는 광탄 장날은 대목 중 대목이었다. 장날 하루에만 호미를 2만개나 팔았다. 혼자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직원 5명을 두고 일을 했지만 물량을 맞출 수 없어 다른 곳에서 구입하다 팔기까지 했다. 낫도 연간 1만개가량 팔려나갔으며 당시 인근 군부대에 도끼를 비롯한 여러 도구를 납품하기도 했다. “그때가 가장 호황을 누렸지요. 자녀 다섯을 대장간에서 번 돈으로 공부시켰으니까.” 그러나 호황도 잠시. 1980년대 들어서면서 기계화 영농이 시작되고 농약(제초제)이 보급되면서 호미·낫을 비롯한 농기구 사용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더욱이 큰 기업들이 기계로 찍어 내더니 5년여 전부터는 값싼 중국산까지 밀려들어 오면서 8000원짜리 호미는 연간 20개, 1만 5000원 하는 낫은 200개 정도만이 팔리고 있다. “중국산 호미가 3000원, 낫이 5000~7000원 합니다. 어쩌다 한 번 사용하는 호미와 낫을 5배, 2배씩 더 주고 사겠어요? 그렇다고 가격을 내릴 수도 없죠.” 요즘도 대장간을 찾는 사람들이 간혹 있지만 예전에 문전성시를 이뤘던 30~40년 전과 달리 한가롭기만 하다. 워낙 수입이 없어 기계로 만든 다른 철물들도 구색을 갖춰놓고 팔고는 있으나 한 달 수입이 고작 100만원도 안된다. 현실은 이래도 한씨는 한 번도 대장간 문을 닫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매일 같이 불을 지폈던 화덕은 이제 주문이 있거나 광탄 장날에만 가끔 불을 지피곤 한다. “나까지 돈 안된다고 문을 닫으면 한수 이북에 대장간은 아예 씨가 마르게 되는 거예요.” 글 사진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농촌 교통 복지 ‘100원 택시’가 연다

    농촌 교통 복지 ‘100원 택시’가 연다

    “우리는 100원 택시 타고 마실 가유.” 농촌지역에서 교통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시내버스보다 싼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택시와 집앞으로 태우러 오는 버스가 등장하는 등 인프라가 열악한 농촌 주민들을 위해 이색 교통수단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충북 영동군은 오는 7월부터 100원만 내면 면 소재지까지 이용할 수 있는 ‘무지개택시’를 운행한다. 버스 승차장까지 0.7㎞ 이상 떨어진 마을 가운데 5가구 10명 이상의 주민이 사는 30곳이 대상이다. 차액은 군이 지원한다. 군은 올해 1억 800만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무지개택시는 주민들이 요청한 날짜와 시간, 장소를 월별 운행 시간표로 편성해 1일 3회, 주 3일, 월 36회까지 운행된다. 양강면 구강리 주민들의 경우 12㎞ 떨어진 면 소재지까지 택시를 이용하면 1만 8000원 정도를 부담해야 했다. 일명 ‘100원 택시’로 불리는 복지택시는 2013년 충남 서천군이 처음 도입했다. 이후 ‘행복택시’ ‘마중택시’ ‘한방택시’ 등 다양한 이름으로 확산되면서 현재 30여곳에서 주민들의 발이 되고 있다. 경기도는 5월부터 이천, 안성, 포천, 여주, 양평, 가평 등 6개 시·군 112개 마을에서 100원 또는 시내버스 요금에 이용할 수 있는 ‘따뜻하고 복된(따복) 택시’ 98대를 운행한다. 100원 택시는 주민들은 물론 손님이 없어 울상을 짓던 택시업계도 환영한다. 전북도는 지난 3월부터 농어촌 중·고교생 518명에게 통학택시를 제공한다. 학생들은 등하교 때 3인 1조를 이뤄 1000원만 내면 된다. 울산시는 지난 1월부터 ‘마실 택시’를 운행한다. 도로 여건이 나쁜 울주군 옹태마을, 선필마을 등에 매일 4회까지 운행한다. 요금은 1000원이며 나머지는 울산시와 울주군이 부담한다. 시 관계자는 “오지마을 노인들은 3~5㎞를 걷거나 경운기 등을 이용해 보건소와 시장에 갔던 만큼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시내버스도 진화했다. 충남 당진시는 출발 1시간 전에 전화 예약하면 집앞으로 찾아와 버스운행이 많은 마을까지 태워다 주는 ‘해나루 행복버스’의 시범운행에 돌입했다. 요금은 버스요금과 같다. 전북 정읍시는 수요응답형 교통 시범사업을 진행한다. 오지마을 버스노선에 소형 승합차를 투입, 주민들이 필요로 할 때면 소재지까지 수시 운행하는 서비스다. 충북 괴산군은 늦은 밤 하교시간대 버스가 끊겨 불편을 겪는 고등학생들을 위해 버스업계와 손을 잡고 괴산고에서 오후 10시 1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운행한다. 버스비는 1000원. 옥천군은 장날마다 노약자의 승하차를 돕는 도우미를 배치했다. 군은 65세 이하 여성 12명을 도우미로 선발했다. 유용술(65) 옥천군노인회 경로부장은 “버스 탈 때 짐을 들어주고 부축도 해줘 노인들 모두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선영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이런 움직임은 맞춤형 복지서비스의 하나로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며 “지자체들이 아울러 장애인들의 이동권 확보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충고했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수원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놀이터에 밀린 국립현대미술관/함혜리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놀이터에 밀린 국립현대미술관/함혜리 문화부 선임기자

    이달 초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뉴미디어 소장품, 미술 한류를 일으키다’라는 타이틀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이탈리아 피렌체의 레 무라트 현대예술센터와 공동주최로 ‘한국 뉴미디어아트전’(New Media art from Korea)을 연다는 내용이었다. 지난달 19일 개막해 다음달 9일까지 열리는 전시는 한·이탈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이탈리아 로마의 국립21세기현대미술관(MAXXI)에서 개최한 ‘미래는 지금이다’전(2014.12.19~2015. 3.15) 출품작 가운데 6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지난주 밀라노에 출장을 갔던 길에 이 전시를 취재하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어 피렌체로 갔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이 보도자료에서 밝힌 대로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에서 선보이는 한국 뉴미디어 아트의 현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고, 베니스비엔날레를 앞둔 시점에서 한국의 뉴미디어 아트에 대한 이탈리아인들의 반응도 궁금했다. 전시가 열리는 레 무라트는 15세기에 수녀원으로 지어졌다가 후에 교도소로 사용되던 건물을 이탈리아인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리모델링했다는 점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어렵사리 찾아간 현장에서 이런 기대는 보기 좋게 무너졌다. 지난 17일 밀라노에서 기차를 타고 피렌체에 도착해 주소를 들고 길을 물어가며 레 무라트를 찾아갔다. 그런데 작품이 놓여 있어야 할 중앙홀에 인부들이 미끄럼틀 등 어린이 놀이기구를 설치하고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관계자는 어린이 이벤트를 위해서 며칠간 작품을 철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냥 넘기기엔 문제가 심각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이 어린이 놀이기구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을 보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작가들 입장에서 자신의 작품이 이런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안다면 얼마나 참담할까. 전시 작품에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초대작가인 문경원, 전준호의 작품도 포함돼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보도자료에서 “한국현대미술의 우수성을 해외에 알리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 오고 있으며 특히 소장품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기획전을 통해 미술 한류를 일으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오고 있다”며 피렌체 전시 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한국문화원을 거쳐 프랑스 마르세유의 라프리시벨드메 전시장에서 한·불수교 130년 기념전으로 소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시 기간 중인데 이렇게 작품을 마음대로 철수해도 되는 건 분명 아닐 터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대한민국의 얼굴이나 마찬가지다. 외교적 채널을 거쳐 유치한 전시회를 이렇게 함부로 취급하는 것은 관례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홍보도 제대로 되지 않아서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던 까닭에 이런 낯 뜨거운 현장을 들키지 않은 것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 현대미술을 해외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해외 전시를 유치하고, 미사여구를 동원해 자화자찬하면서 정작 현지에서는 제대로 관리도 못 하고, 제대로 대접을 받지도 못할 거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돌아서는 발길이 무거웠다. lotus@seoul.co.kr
  • [新국토기행] 전북 임실군

    [新국토기행] 전북 임실군

    전북 임실군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복받은 땅이다. 면적 597.03㎢, 인구 3만명의 작은 군이지만 어디를 가나 산천이 아름답다. 섬진강 상류로 관광 입지가 좋고 특색 있는 먹거리도 풍성하다. 임실을 에워싼 성수산(해발 876m)과 회문산(775m), 백련산(754m) 자락은 빽빽한 삼림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경지가 적어 낙농업과 고랭지 농업이 발달했다. 비옥한 토질, 일조량이 많은 지형, 큰 일교차는 ‘열매가 튼실하게 영그는 동네’라는 임실(任實)의 지명에 걸맞게 어떤 작물을 재배해도 풍요로움을 가져다준다. 고추와 복숭아는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특산물이다. 충절의 고장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양재박이 의병을 조직해 왜적을 섬멸했다. 이석용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호남의병창의동맹단’을 결성해 항일구국운동을 펼쳤다. 들불 속에서 주인을 구한 충견도 임실군 오수면이 배경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박사를 배출한 임실군 삼계면도 있다. 명당도 많다. 고려 왕건과 조선 이성계가 성수산 상이암에서 기도하고 건국했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올 정도다. [볼거리] ●몽환적 아름다움 보여주는 인공호수 ‘옥정호’ 옥정호는 1965년 섬진강다목적댐 건설로 형성된 인공호수다. 임실군 운암면·강진면과 정읍시·순창군 등 3개 시·군에 걸쳐 있다. 노령산맥 오봉산과 국사봉이 양팔을 벌려 호수를 감싸 안은 형상을 하고 있다. 저수면적 26.3㎢, 저수량 4억 5000만t으로 호남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때 묻지 않은 빼어난 자연경관이 압권이다. 13㎞의 옥정호 순환도로는 ‘한국의 아름다운길 100선’ 가운데 우수상에 뽑힐 정도로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로 꼽힌다. 호수를 끼고 굽이치는 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는 맛이 일품이다. 국사봉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옥정호는 물안개가 장관이다. 몽환적 풍경이 아름다움의 극치를 자아낸다. 붕어섬은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 최고의 명소다. 푸른 물, 기암괴석, 울창한 수목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옥정호를 가로지르는 운담대교(길이 910m) 경관 조명도 새로운 볼거리다. ●계절별로 색다른 정취 자아낸 ‘사선대’ 관촌면 사선대는 경치가 아름다워 네 신선과 네 선녀가 내려와 노닐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관광명소다.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고 계절별로 다른 정취를 자아낸다. 봄이면 산개나리와 벚꽃이 장관을 이룬다. 여름에는 느티나무 그늘과 신록, 가을에는 오색 단풍과 낙엽, 겨울에는 설경과 천연 스케이트장으로 유명하다. 호수를 감아 도는 아기자기한 산책로, 조각공원, 시원한 물줄기를 쏘아 올리는 오색분수는 가족단위 나들이 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인조잔디 축구장, 테니스장, 강수영장, 청소년수련원, 눈썰매장 등 다양한 위락시설도 있다. 전주~남원 간 국도변에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아 동호인들의 모임 장소로 인기가 높다. 사선대를 뒤에서 받쳐 주는 산자락 정상에는 운서정(지방유형문화재 135호)이 자리잡고 있다. 운서정에 이르는 산책로 변에는 천연기념물인 가침박달나무와 산개나리 군락지가 눈길을 잡는다. ●김용택 시인 등 문학인들의 요람 ‘섬진강길’ 섬진강길은 그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카메라에 담으려는 문학인과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연중 맑은 물줄기가 유유히 흐르는 덕치면 진뫼마을, 천담마을, 구담마을은 강촌과 산촌의 풍경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섬진강 지류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철쭉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요즈음 이곳을 거닐다 보면 따사로운 햇살 아래 ‘고향의 봄’을 만끽할 수 있다. 진뫼마을은 ‘섬진강 시인’ 김용택 시인의 고향으로 국내 문학 창작의 요람이다. 마을 사람들이 손수 만들어 놓은 징검다리와 마을 수호신인 커다란 정자나무가 인상적이다. 마을의 모든 집에서 강까지 몇 걸음 되지 않는 전형적인 강촌 마을이다. 검은 바위 위를 유유히 흐르는 강물, 낮게 드리운 집들은 고향의 정취를 불러일으킨다. 진뫼마을을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은 산등성이로 병풍을 친 듯한 천담마을에서 고즈넉한 풍경화를 그려 낸다. 이어지는 구담마을은 섬진강다운 섬진강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산과 물이 서로를 비추고 적셔 주며 수더분한 자연의 정수를 보여 준다. 섬진강을 끼고 달리며 빼어난 풍광과 시골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자전거길도 자랑거리다. ●국내유일 체험형 관광지 ‘임실치즈테마파크’ 임실읍에 조성된 치즈를 테마로 한 국내 유일의 체험형 관광지다. 목장을 연상케 하는 전원 풍경 속에서 치즈의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다.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 먹거리가 있는 놀이문화 공간이다. 축구장 19개 넓이의 드넓은 초원 위에 체험관, 홍보관, 레스토랑, 가공공장, 판매장, 치즈연구소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는 치즈 만들기, 유럽 정통음식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임실에서 생산된 청정원유로 순수자연주의 치즈 제조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세계의 다양한 치즈 요리와 피자를 만들어 맛볼 수도 있다. 홍보관에서는 한국 치즈의 역사인 임실 치즈가 탄생하기까지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초원을 산책하며 여유로운 휴식을 즐기고 치즈캐슬에서는 동화 속 주인공이 돼 볼 수 있다.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 ‘필봉농악’ 전수관 임실 강진 필봉농악은 호남좌도농악의 대표적인 마을 풍물 굿이다. 400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어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마을 주민들의 생활과 노동의 문화 속에서 꽃피운 삶의 소리와 한민족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있다는 평이다. 1962년 필봉농악보존회가 설립됐고 1988년에는 국가지정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강진면 필봉농악전수관이 있는 곳에는 연간 6만명이 찾아오는 문화촌이 형성돼 있다. 필봉농악보존회는 전통 마을굿 보존을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필봉 굿은 앞굿 중심이 강한 다른 지방 농악에 비해 뒷굿 중심에 치중한다. 전체적으로 힘차고 꿋꿋하며 남성적인 느낌이다.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농악이다. 필봉 문화촌에서는 전통 한옥에 머물며 농악을 배우고 필봉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먹거리] ●맛·영양 둘 다 잡은 임실치즈 임실은 한국 치즈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1958년 선교사로 부임한 벨기에 출신 지정환 신부가 지역 농민 소득증대를 위해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1967년 조그만 산촌인 임실읍 갈마리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치즈를 생산했다. 청정 원유로 자연의 건강함을 담는 데 주력했다. 맛과 영양이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1990년대 들어 유명 브랜드가 됐다. 임실치즈피자는 전국적인 프랜차이즈가 됐다. 임실치즈농협은 50년간 쌓은 가공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소하고 담백한 각종 치즈를 생산하고 있다. 피자용 모차렐라 치즈는 물론 구워 먹는 치즈, 찢어 먹는 치즈, 양파 치즈, 단호박 치즈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임실치즈와 우리밀로 만든 치즈초코파이도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간다. 2000년대 들어 목장형 치즈 가공업체도 8곳이 생겼다. 젖소 사육 농가에서 직접 치즈를 생산하는 게 특징이다. 임실군은 치즈연구소를 설립해 고품질 치즈 생산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매콤하면서도 단맛 내는 고추 임실 고추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특산물이다. 섬진강 맑은 물과 뜨거운 햇볕이 만든 임실 고추는 전국으뜸농산물한마당대회 품평회에서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11년 연속 대상을 받았다. 자연이 키워 낸 고추는 맛, 향, 빛깔 등이 전국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임실은 다른 지역보다 연간 일조량이 188시간 길고 숙기의 온도가 2.3도 높아 고품질 고추를 생산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큰 일교차는 임실 고추가 알싸하게 매콤하면서도 단맛을 내도록 해 준다. 임실군은 최첨단 고춧가루 생산 공장을 건립해 품질관리도 철저히 하고 있다. ●국내 최다 박사 배출 마을의 특산품 삼계엿 국내에서 가장 많은 박사를 배출한 고을 삼계면에서 생산하는 특산품이다. ‘박사골 전통 엿’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예부터 쌀엿을 만들어 친지, 이웃과 주고받았던 삼계 지역 미풍양속이 전해 내려와 명품엿이 됐다. 박사골 전통 쌀엿은 지금도 옛날 방식 그대로 농가에서 주문 생산하고 있다. 질 좋은 쌀과 엿기름을 주원료로 하고 콩가루를 첨가해 만든다. 엿기름은 마을에서 직접 만들고 감미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무공해 식품이다. 더운 방과 차가운 방을 수십 번 오가며 늘인 엿가락은 바람구멍이 많아 바삭하고 입에 달라붙지 않는다. 당도가 높지만 물리지 않고 식감이 연하며 감칠맛이 일품이다. ●섬진강 민물고기 매운탕과 다슬기탕 섬진강 상류인 임실은 민물고기 매운탕과 다슬기탕이 미식가들을 불러모은다. 매운탕은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에서 잡은 메기, 동자개, 모래무지, 쏘가리, 새우 등을 무청 시래기와 함께 넣어 끓인다. 민물고기와 새우가 넉넉하게 들어간 매운탕은 임실 고춧가루로 만든 고추장이 깊은 맛을 더한다. 팔팔 끓는 매운탕은 들깻가루와 잔파를 넣어 비린내를 잡고 감칠맛을 더한다. 다슬기탕과 다슬기 수제비도 임실의 유명한 먹거리다. 강진면, 청웅면, 옥정호 주변에 유명 맛집이 즐비하다. 다슬기탕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부추, 호박 등 푸른빛 채소와 어우러져 쌉쌀하면서 개운한 맛을 낸다. 맑은 계곡 바위에 붙어 사는 임실 다슬기는 살이 탱탱하면서 풍미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40년 전통 돼지뼈 육수 순대국밥 임실 순대국밥은 40년 전통을 자랑한다. 돼지뼈를 우려낸 육수에 전통 순대로 정성스럽게 만든다. 임실에서 생산되는 고품질 고춧가루의 매콤한 맛과 진한 육수가 어우러져 얼큰하면서 깊은 맛을 낸다. 순대는 왕소금으로 주물러 하룻밤 물에 담가 놓은 막창에 선지, 양파, 대파, 부추, 깻잎, 마늘 등 속재료를 푸짐하게 넣어 잡내가 나지 않고 담백한 맛을 낸다. 쫄깃한 막창과 찰진 순대가 조화를 이룬다. 순대국밥은 막창순대와 머리 고기, 각종 내장을 섞어 푸짐하면서 구수한 맛을 낸다. 장날이면 줄을 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다. ●2년 연속 품질 우수상 받은 임실 복숭아 임실 복숭아는 최근 2년 동안 전국 복숭아 톱프루트 품질 평가회에서 2년 연속 우수상을 받았다. 과실이 크고 과육이 단단해 상품성이 높다.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알아주는 최상품이다. 농가들은 마도카, 천중도, 미홍, 오수황도 등 고품질 품종을 재배하고 엄격한 품질관리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임실군은 최신 재배기술을 교육하는 복숭아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임실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서천군 미디어문화센터 ‘소풍+’, 지역 문화중심지로 ‘우뚝’

    서천군 미디어문화센터 ‘소풍+’, 지역 문화중심지로 ‘우뚝’

    지난해 10월 공식 개관한 충남 서천군(군수 노박래) 미디어문화센터 ‘소풍+’(소풍플러스)가 지역 주민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문화 소통과 향유의 중심지로 뿌리내리고 있다. 소풍+는 군 단위 미디어문화센터로 전국 최대 수준이다. 서천군 장항읍 신창리 일원에 지하1층, 지상 3층의 연면적 2732㎡ 규모로 지어진 소풍+는 영화 상영관, 라디오 스튜디오, 영상 스튜디오, 편집실, 미디어 동아리실, 미디어도서관, 오픈스튜디오, 미니녹음실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소풍+는 미디어 교육, 미디어 지원(장비 대여 등), 문화사업(영화상영) 등 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다. 최근 장항고 방송반과 서천군의용소방대에 미디어 방송 제작 교육을 실시한 데 이어 현재는 장항중 학생들에게 라디오 제작 기초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 음반 제작, 촬영·편집 기초, 마을여행 신문 제작 등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다. 영화관에 직접 가기 어려운 주민들을 위해서는 경로당, 마을회관, 복지시설 등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찾아가는 영화관’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토요시네마’(매주 토요일 오후 3시), ‘불금에 만나는 핫한 독립영화’(매주 금요일 오후 7시), ‘3·8장날영화’(장항 장날 오후 1시) 등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오는 8월에는 정부 공모사업으로 2개관 150석 규모의 개봉관을 세워 5000원의 관람료로 주민들에게 다가갈 예정이다. 지난달 31일에는 다양한 특성을 살린 문화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관내 13개 기관과 업무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노박래 서천군수는 “문화 활동에서 소외된 지역민을 위해 설립된 소풍+가 앞으로 더욱 활성화돼 지역공동체의 공익적 가치를 강화하는 중심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42. 시동생과 함께 남편 살해한 17세 신부의 패륜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42. 시동생과 함께 남편 살해한 17세 신부의 패륜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사람이 대체 어느 정도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끔찍한 사건들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보험금을 노려 두 명의 남편과 시어머니를 독극물로 살해하고 자기 친딸까지 희생시키려 한 40대 주부가 온 국민을 전율케 했습니다. 그렇다면 아래의 남편 살인 사건은 어떻습니까. 1970년 여름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던 악녀와 시동생의 범행 일지입니다.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42. 시동생과 함께 남편 살해한 17세 신부의 패륜 (선데이서울 1970년 7월 2일자) 너무도 끔찍한 사건이 충남 금산의 어떤 외딴집에서 일어났다. 17세 짜리 형수와 19세 시동생이 28세의 친형을 살해하고 시신 옆에서 또 한번 불륜의 정을 통했다. 형수는 결혼 1개월도 못되어 시동생과 패륜에 빠지고 넉달만에 남편을 살해한 뒤 보따리를 들고 줄행랑을 쳤다가 드디어 쇠고랑을 차고 말았다. 가난한 신혼에 짜증내자 그때마다 시동생이 위로 김모(17)양은 전북에서 태어나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서모(庶母·아버지의 첩) 밑에서 자랐다. 3년 전부터 전주, 광주 등지에서 식모살이를 해오던 김양은 서모도 세상을 떠나자 식모살이를 청산하고 지난 1월 서외삼촌인 전모(38)씨의 금산 집으로 갔다. 이것이 비극의 출발점이었다. 전씨는 2월 초 같은 마을에 사는 박모(28)씨와 생질녀 김양의 혼담을 진행시켰다. “두 집이 가난하니 서로 결혼시켜 알뜰히 살도록 해주자”고 했다. 혼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돼 박씨와 김양은 2월 24일 약혼식을, 이틀 뒤인 26일 결혼식을 올렸다. 김양이 금산으로 온 지 1개월여만이었다. 신랑 박씨는 입이 딱 벌어지게 좋았다. 젊은 신부에 마음이 온통 쏠려 3만원의 이잣돈과 장리쌀 2가마를 누이 박모(32) 여인을 통해 얻어 동네사람들과 가까운 친척들을 불러 결혼식을 올렸다. 가난한 살림에 신혼여행을 갈 수 없었던 부부는 신랑집인 마을 맨끝 산마루집 흙담 2간의 아랫방에 신방을 차렸다. “내 비록 국민학교(초등학교)조차 못 나오고 가난하지만 몸뚱이 하나는 튼튼해. 젊은 몸뚱이니까 밥은 안 굶겨. 당신만은 꼭 행복하게 해줄게….” “재미있게 한번 살아보자고요. 저도 객지에서 식모살이 하다가 이렇게 시집을 오니 참 재미있고 즐겁네요.” 그런데 열일곱살 마누라는 싫증을 너무 빨리 느꼈다. 주된 이유는 남편이 촌스럽다는 것. 재산이라고는 겨우 인삼밭 3간(약 50평) 밖에 없고 남의 땅을 소작하고 있는 박씨. 게다가 남편은 왜 이렇게 촌스럽게 생겼는지. TV도 없고 전화도 없고. 도시에서 잘 사는 집 식모살이를 해봤던 김양은 시골에서의 이런 신혼생활에 며칠 못가 염증이 나고 말았다. 눈에 찰 것이 하나도 없었다. 결혼 10일이 지날 무렵부터는 남편에게 “촌사람 같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털어놓았고 이는 부부싸움으로 이어졌다. 그럴 때마다 시동생인 박모(19)군이 자기보다 두 살 어린 형수를 위로하며 싸움을 말리곤 했다. 패륜은 우연히 시작되고 현장들키자 살해를 공모 결혼하고 만 1개월에서 하루가 모자라는 지난 3월 25일. 아침부터 사소한 일로 김양과 박씨는 언쟁을 했다. 박씨는 집을 나가 마을로 갔고, 홀로 있는 시어머니 홍모(51) 여인과 13살 된 시누이는 인삼밭에 가고 없었다. 오후 4시쯤. 그날따라 봄 기운은 고사하고 매섭게 추운 날씨였다. 시어머니와 남편을 비롯한 다섯 식구 중 세 명이 집을 나가고 나니 남은 것은 두 살 차이 나는 형수와 시동생뿐. 김양이 부엌일을 끝내고 박군이 누워있는 이불 속으로 몸을 녹이려 파고든 것이 불륜의 출발점이었다. 갑작스럽게 형수의 온기를 느낀 박군은 참을 수 없는 충동에 형수를 부둥켜안았고, 김양도 순식간에 시동생에게 몸을 맡겼다. 남편에 불만이 있는 데다 박군이 항상 자기 편에서 두둔을 해주곤 했기에 호감이 가던 중 연령으로도 10여살 위인 남편보다 홀가분한 시동생의 품에 손쉽게 파고들고 말았다. 불륜은 거의 매일 같이 계속됐다. 식구들이 일하러 가거나 마을을 간 틈을 타 벼락같이 진행됐다. 이들은 남의 눈을 두려워할 겨를도 없이 인삼밭이 띄엄띄엄 있는 뒷산으로까지 장소를 옮겨 가며 불륜행각을 이어갔다. 그러던 지난 6월 5일 새벽 4시쯤. 논물을 보러 남편이 집을 나간 사이 시동생과 함께 어울리고 있다가 그 사이에 돌아온 남편에게 2개월 10일간이나 비밀리에 지속해 온 부정의 현장을 들키고 말았다. 그때부터 가정불화는 한층 심해졌다. ‘겨우 빚까지 얻어 맞아들인 아내를 쫓아버리자니 가난한 살림에 새로 장가를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남편 박씨의 고민은 깊어갔다. 결국 박씨는 부인과 함께 딴 집으로 이사를 나가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 이사 준비를 서둘렀다. 하지만 김양의 생각은 달랐다. 부정이 탄로난 그날부터 남편을 살해할 결심을 하고 그 방법만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시동생과도 머리를 맞댔다. 결국 형수는 시동생을 시켜 금산 장날인 6월 12일 읍내에서 15원을 주고 극약 한알을 사도록 했다. 이어 15일 남의 집 모내기를 하고 막걸리 두어잔을 먹고 울적해진 박씨는 같은 마을에 있는 누나네 집을 찾아가 “내일 방을 얻어 이사를 갈 테니 독 2개와 잔그릇 몇개만 장만해 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그날 자정 무렵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약 30분뒤 아내가 갖다주는 극약이 든 냉수를 아무 의심없이 벌컥벌컥 들이킨 박씨. 고통에 몸부림치는 형의 머리를 동생은 미리 준비한 몽둥이로 힘차게 내리쳤다. 박씨는 그 자리에서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날 밤 시어머니는 13세 된 딸과 인삼밭을 지키러 나가고 없었다. 죽여놓고 자연사를 위장 장례 치르고 도망쳤으나 박씨를 살해한 이들은 자연사를 가장하기 위해 시신을 마당으로 굴러뜨려 얼굴에 상처를 입게 한 뒤 다시 방으로 끌어들이는 등 잔인한 살인 연극을 꾸몄다. 박군은 16일 새벽 4시 30분쯤 동이 트자 같은 마을에 살고있는 누이집으로 달려가 “형이 소변보러 간다고 밖에 나가다가 넘어져 죽었다”고 태연히 말했다. 이 소식을 들은 누나가 허겁지겁 뛰어왔지만 동생은 이미 뻣뻣한 시신이 되어 있었다. 일단 자연사로 넘겨 날이 밝자 약 500m 떨어진 마을 뒤 밭에 시신을 묻었다. 이것으로 일단 사건은 일단락. 매장 다음날인 17일 낮 11시쯤 김양과 박군은 “남편과 형이 죽은 집에서는 살기 싫다”는 구실을 대며 옷가지를 싸들고 중매를 선 전씨 집에 들러 “집을 나간다”고 전한 뒤 자취를 감췄다. 뭔가 수상쩍다고 느끼고 있단 전씨는 의심이 깊어졌다. 박씨 어머니 홍 여인으로부터 이런 사실을 들은 박씨의 6촌형은 홍 여인과 함께 경찰의 문을 두드렸다. 박씨의 사망이 석연치 않다고 했다. 경찰은 연고지를 토대로 수사에 착수해 김양과 박군을 긴급수배했다. 박군과 김양은 금산읍의 한 하숙집에서 이틀 동안 단꿈을 즐기다가 돈이 떨어지자 금산군 군북면에 있는 고종사촌 형 황모(45)씨 집에 숨어 있다가 잡혔다. 이들은 경찰 앞에서 박씨가 숨지고 난 다음 시신 옆에서 성관계를 가졌다고 천연덕스럽게 진술했다. “약간 겁은 났지만 마음놓고 즐길 수 있었다”고.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 아라리~ 아라리요 ♬♬ 기차로 넘는 아라리 고개 차창 밖 절경에 ‘힐링’도

    아라리~ 아라리요 ♬♬ 기차로 넘는 아라리 고개 차창 밖 절경에 ‘힐링’도

    코레일이 강원 철도관광벨트 구축 사업의 하나로 추진한 정선아리랑열차 ‘A트레인’(이하 아리랑열차)이 22일 첫선을 보인다. 관광전용 열차로는 중부내륙관광열차(OV트레인), 남도해양열차(S트레인), 평화열차(DMZ트레인)에 이어 네 번째다. 개방형 창문과 넓은 전망창을 설치해 모든 좌석에서 강원 지역의 빼어난 풍경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원주~치악 구간, 예미~민둥산 구간, 정선~아우라지 구간에서는 산악 열차에서만 만끽할 수 있는 풍경들이 줄곧 차창 밖에 머문다. 아리랑열차는 새마을호 객차를 개조한 관광 열차다. 객실 4량과 기관차, 발전차 등으로 편성됐다. 정원은 200명이다. 열차는 일반석, 전망석, 카페 등 편의시설과 장애인용 휠체어석, 화장실 등을 갖췄다. 특히 1호, 4호차 전망칸에서는 그동안 볼 수 없던 기찻길과 주변 경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산과 계곡, 강과 들판을 가르며 달리는 열차와 어우러져 살아가는 주민들의 ‘기찻길 옆 오막살이’도 엿볼 수 있다. ●새마을호 객차 개조… 4량 객실 200명 승차 아리랑열차는 우리나라 여객열차 가운데 처음으로 지역 이름을 사용하고 열차에 정선의 삶, 자연, 춤사위와 소리를 고스란히 담았다. 열차 내에서 스토리텔링, 음악방송, 기념사진 서비스, 마술공연, 기다림 엽서 등 특별 이벤트도 진행한다. 무엇보다 열차 외관이 눈에 띈다. 영국의 디자인 기업인 탠저린이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유산인 아리랑과 정선의 정서, 문화를 모티브로 작업했다. 기관차와 발전차 부분은 보랏빛이다. 동강 할미꽃의 색채가 반영됐다. 객차는 빨강, 노랑, 파랑의 연결된 색채선으로 표현했다. 객차 내부의 의자 등 시설도 같은 색으로 통일했다. 코레일 측은 “정선아리랑의 근원적인 개념을 태극의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으로 표현하고 디자인했으며, 정선을 대표하는 ‘능선’ ‘동강’ ‘아우라지’ 등을 형상화해 ‘정선’과 ‘아리랑’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했다”고 밝혔다. ●서울 청량리~아우라지 하루 1회 왕복 운행 아리랑열차는 청량리∼정선∼아우라지 구간을 매일 1회 왕복 운행한다. 오전 8시 10분 서울 청량리역을 출발해 충북 제천, 강원 영월, 예미, 민둥산, 별어곡, 선평, 정선, 나전을 거쳐 종착역인 아우라지역에는 낮 12시 40분 도착한다. 자미원역에서 민둥산역 사이 구간에서는 시속 30㎞로 서행 운전한다. 주변 풍경을 마음껏 즐기라는 취지다. 풍경이 빼어난 민둥산∼정선∼아우라지 구간은 1회 더 왕복 운행한다. 오후 1시 40분 아우라지역을 출발해 민둥산역에 오후 2시 45분 도착한 뒤 다시 오후 3시 15분 민둥산역을 출발해 오후 4시 20분 아우라지역으로 돌아오는 패턴이다. 아우라지역 출발 시간은 오후 5시 10분, 청량리역 도착 시간은 밤 9시 32분이다. 화·수요일은 기본적으로 운휴지만, 정선 장날과 겹칠 경우 특별 운행한다. 이에 따라 정선 5일장에 맞춰 청량리역~아우라지역을 운행하던 종전 무궁화열차와 제천역~아우라지역을 오가던 무궁화열차는 지난 15일 운행이 중지됐다. 아리랑열차와 연계해 관광을 즐길 수 있는 패키지 프로그램도 출시됐다. 대표 1코스(정선레일바이크 코스)는 아우라지역에 도착해 정선 시골밥상으로 출출한 배를 채운 뒤 ‘칙칙폭폭! 풍경열차’를 타고 구절리역으로 이동한다. 이어 레일바이크를 타고 ‘구절리역~아우라지역’ 구간을 여행하며 정선의 자연을 몸으로 체감한다. 레일바이크에 이어 정선군 문화해설사와 함께하는 아우라지 뗏목 체험, 출렁다리, 아리랑 전수관, 주례마을 등을 둘러본 뒤 다시 아우라지역에서 청량리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아우라지 뗏목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 연계 대표 2코스(정선5일장 코스)는 정선역에서 내린다. 정선 전통시장을 구경한 뒤 ‘메나리’ 공연을 관람한다. 민족의 한과 상처를 달래는 과정을 정선아라리 가락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정선 장날이 아닐 경우엔 정선 스카이워크 체험으로 대치된다. 이어 화암동굴을 둘러본 후 정선역으로 이동해 청량리행 열차를 타는 일정이다. 대표 3코스(1박2일 코스)는 대표 1, 2코스를 아우르는 코스다. 첫날은 1코스를 마친 후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소개돼 유명해진 옥산장에서 여독을 푼다. 고산 지역에서 채취한 산나물 반찬과 감자붕생이, 곤드레밥 등 토속 음식으로 저녁을 먹은 뒤 정선아리랑 등 식후 공연을 감상하며 아늑한 시골 밤을 보낸다. 이튿날은 아라리촌을 둘러본 후 2코스와 동일하게 이뤄진다. 각 역마다 돌아볼 곳도 많다. 주변 풍경이 빼어난 아우라지는 자체로 훌륭한 관광지다. 구절리에서 흘러온 송천과 삼척에서 흘러온 골지천의 합수머리로,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인 정선아리랑의 대표적 발상지 중 한 곳이다. 선평역 일대는 조선 건국에 반대하며 낙향한 일곱 명의 고려 유신이 머물렀던 ‘거칠현동’(居七賢洞)이라 전해진다. ●열차에 정선의 삶·자연·문화 담아 아리랑열차 편도 요금은 청량리역∼아우라지역 2만 7600원, 아우라지역∼민둥산역 8400원이다. ‘정선아리랑 열차 패스’도 출시됐다. 어른 기준 당일권이 4만 8000원이다. 횟수에 상관없이 당일에 한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충청권에서 이용할 경우 대전역에서 오전 7시 42분 출발, 제천역에 9시 15분 도착해 4301호 무궁화 열차로 환승한다. 갈 때는 제천역에서 1716 무궁화 열차를 이용하면 된다. 글 사진 정선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겨울에 더 생각나는 맛! 관광공사 선정 ‘1월에 가볼 만한 맛집’

    겨울에 더 생각나는 맛! 관광공사 선정 ‘1월에 가볼 만한 맛집’

    겨울이 깊어간다. 꽁꽁 언 몸과 마음을 녹일 따스한 음식이 그리워지는 때다. 때맞춰 한국관광공사가 새해 1월에 가볼 만한 곳을 선정, 발표했다. ‘뜨끈뜨끈 겨울 음식’이 테마다. 강원도 고성의 대치, 도치, 장치 등 ‘겨울별미 삼총사’부터 경남 거제 외포의 대구탕까지, 전국의 겨울 별미가 다 모였다. 동해안 별미 ‘못난이 삼형제’… 강원도 고성 도치·장치·곰치 요즘 강원도 고성 앞바다는 도치, 장치, 곰치가 한창이다. 생김새가 추해 ‘못난이 삼형제’라 불리는 녀석들이다. 명태가 사라진 동해에서 겨울철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도치 요리는 수컷을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숙회, 암컷의 알과 내장, 데친 살에 신 김치를 넣고 개운하게 끓인 알탕이 대표적이다. 쫀득하고 꼬들꼬들한 도치 살은 식감이 여느 생선과 전혀 다르다. 장치는 바닷바람에 사나흘 말려 고추장 양념과 콩나물을 넣고 찌거나 무를 넣고 조린다. 아무 양념 없이 쪄도 맛있다. 나박나박 썬 무와 파, 마늘을 넣고 맑게 끓인 곰칫국은 최고의 해장국이다. 고성군 관광문화과 (033)680-3362. 언 마음 녹이는 ‘착한 음식’… 충북 청주 상당산성 두부·청국장 충북 청주의 상당산성에 한옥마을이 형성돼 있다. 현지 주민들이 ‘산성마을’이라 부르는 곳인데, 닭백숙을 비롯해 청국장, 두부 요리 등 토속 음식을 내는 식당들이 모여 있다. 그 가운데 입소문 난 집은 ‘상당집’이다. 직접 만든 두부 요리와 청국장찌개, 비지찌개를 내는 식당이다. 순두부는 겨울 추위를 녹여주는 따듯한 아이스크림 같다. 발효한 비지도 무료로 가져갈 수 있다. 국립청주박물관과 실내 놀이시설 청주에듀피아 등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함께 찾기 좋은 공간도 많다. 청주시 관광과 (043)201-2042. 과연 ‘눈 본 대구 비 본 청어’로구나… 경남 거제 외포 대구탕 ‘눈 본 대구 비 본 청어’라는 속담이 있듯, 대구는 찬 바람 부는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가 제철이다. 경남 거제 외포리는 전국 대구 유통량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집산지다. 이른 새벽 조업을 나간 배들이 하나둘 외포리에 모여 싱싱한 대구를 풀어놓는다. 크고 위협적인 입, 얼룩덜룩한 무늬가 인상적인 대구는 경매를 거쳐 인근 식당과 전국으로 팔려 나간다. 맑게 끓인 대구탕, 김치에 싸서 조리한 대구찜 등 생각만으로도 입에 침이 괸다. 생대구회는 산지이기에 맛볼 수 있는 별식이다. 거제시 문화관광과 (055)639-4172. 뜨끈한 국물 속 삶은 ‘약계란’ 좋구나!… 전남 담양 국수거리 전남 담양 국수거리는 물국수와 비빔국수, 삶은 달걀이 유명하다. 대부분 중면을 이용해 국수를 삶고, 여기에 반찬을 곁들여 낸다. 특히 ‘약계란’이라 불리는 삶은 달걀은 멸치 국물에 삶아 소금 없이도 짭조름하고 구수한 맛이 난다. 댓잎 가루를 넣은 댓잎물국수와 각종 한약재를 넣고 끓인 댓잎약계란도 겨울 별미다. 국수거리에서 멀지 않은 죽녹원은 초록 잎사귀 사이로 흰 눈이 내리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2007년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 타이틀을 단 창평면 삼지내마을에선 슬로푸드인 쌀엿을 맛볼 수 있다. 담양군 관광레저과 (061)380-3151. 고소한 피순대 품은 개운한 국물… 전북 순창시장 순대골목 피순대는 깨끗이 씻은 돼지 창자에 선지와 각종 채소를 가득 채워 만든다.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개운한 국물을 부어 팔팔 끓인 순댓국 한 그릇이면 추위에 언 몸이 단박에 녹는다. 전북 순창시장의 순대골목에는 피순대 전문집이 늘어서 있다. 2~3대째 가업을 잇는 집이 대부분이다. 장날이면 줄 서서 먹는 ‘2대째순대’, 순창에서 가장 오래된 ‘연다라전통순대’ 등 상호도 정겹다. 순창의 참맛은 장에 있다. 순창고추장민속마을에 가면 고추장 명인들이 저마다 비법으로 담근 장류와 장아찌가 입맛을 당긴다. 순창군 문화관광과 (063)650-1612. 장날 서민들 ‘추억’ 한 그릇… 대구 달성 현풍장터 수구레국밥 찬 바람 부는 계절이면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이 그립다. 대구 달성군 현풍장터의 겨울 별미는 수구레국밥이다. 수구레는 소의 껍질 안쪽과 살 사이의 아교질 부위를 일컫는다. 수구레국밥은 현풍 장날 맛볼 수 있던 이 지역 서민들의 대표 음식이다. 상설 시장인 현풍백년도깨비시장이 들어선 뒤에도 수구레국밥 식당들은 ‘수십 년 전통’ 타이틀을 내걸고 추억의 맛을 전하고 있다. 씹을수록 꼬들꼬들한 식감은 소의 다른 부위에서 전해지는 맛과는 차원이 다르다. 도동서원, 비슬산 등을 묶어 둘러보면 좋다. 달성군 관광과 (053)668-2481. 금강 민물고기와 인삼의 맛있는 만남… 충남 금산 인삼어죽 충남 금산은 나라 안의 대표적인 인삼 고장이다. 삼계탕, 인삼튀김, 인삼막걸리 등 인삼을 활용한 먹거리도 다양하게 발달됐다. 특히 제원면 일대 금강 변에는 인삼어죽을 내는 집이 즐비해 인삼어죽마을로 불린다. 금강 상류에 자리 잡은 제원면은 민물고기를 이용한 음식이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여기에 인삼이 더해져 인삼어죽이 탄생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천내리 용호석과 부엉산, 드라이브 코스로 제격인 적벽강 등 관광명소들이 인삼어죽마을 근처에 있다. 수삼 경매가 열리는 금산 오일장도 둘러볼 만하다. 금산관광안내소 (041)750-2626.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씨줄날줄] 화개장(場)과 ‘역마’/정기홍 논설위원

    경남 하동의 화개장터는 가수 조영남의 노래로 익히 알려졌지만, 김동리의 단편소설 ‘역마’(驛馬·1948)가 이곳을 배경으로 쓰였다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다. 소설은 이곳 장터에서의 장돌림들과 주모(酒母) 간의 ‘하룻밤 인연’을 모태로 3대(三代)에 걸친 우연과 운명을 펼쳐 낸다. 줄거리는 이렇다. 주모 옥희의 아들 성기와 남사당패(당시 체장수)의 딸 계연이 사랑을 하게 되지만 ‘한 핏줄’임이 밝혀지는 등 이들 간에 얽힌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윽고 성기는 계연을 뒤로하고 엿판을 멘 채 하동 쪽으로, 계연은 하동을 등진 구례 쪽으로 떠나면서 연을 끝맺는다. 화개장은 볼품없는 산협(山峽)의 일개 장터에 불과하지만, 한때 집산물들이 모여들던 곳이었다. 하동군사(河東郡史)에는 “옛적(조선시대)에 전국 7위의 거래량을 자랑한 큰 시장이었고, 전북 남원과 경북 상주 상인까지 와 중국의 비단과 제주의 생선까지 거래했다”고 적고 있다. 당시 돛단배가 섬진강을 따라 화개장 앞에까지 들어왔고 장날이면 지리산 화전민은 산채를, 구례의 황아 장수는 실과 면경 등 생활용품을, 섬진강 하류의 하동 해물 장수는 거룻배로 소금과 해산물을 실어 날랐다고 한다. 장(場)이 흥하면서 주막이 하나둘 생겼고 ‘떠돌이 삶’을 상징하는 곳으로 자리했다. 장터가 그러하듯 음담패설도 많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화개장은 한국전쟁 이후 지리산의 빨치산 토벌로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만다. 지금의 화개장터는 2001년에 복원한 것이다. 전통 장옥과 난전, 주막, 대장간 등이 자리하고 있다. 1988년에 가요 ‘화개장터’가 인기를 끌면서 영호남의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상징적인 곳으로 인식돼 전국적 명소가 됐다. 노랫말대로 ‘있어야 할 건 있고, 없을 건 없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지역산을 중심으로 300가지의 먹거리가 거래된다. ‘아랫마을 하동 사람, 윗마을 구례 사람’이 오가니 지역감정이 생길 리 없고, 따라서 영호남 화합 행사도 잇따라 열렸다. 18대 대통령선거 때는 경남과 전남선관위가 ‘깨끗한 선거 기원’ 행사를 이곳에서 열기도 했다. 화개장터에서 어제 새벽에 큰불이 나 80개 점포 가운데 장옥과 장터 명물인 대장간 등 41개의 점포가 홀랑 타 버렸다. 5000만원어치의 약초를 화마에 잃은 영세 상인도 있다고 한다. 시설물 보험엔 가입돼 있지만 타 버린 약초를 보상받게 될지는 판단하기 어렵다니 안타깝다. 상인들의 망연자실한 심정이야 오죽할까만 영호남 교류의 큰 뜻에 생채기가 날까 저어된다. 하동과 구례로 각각 떠난 ‘역마’의 두 연인이 이를 알게 된다면 안타까움은 더할 듯하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북한 특사 최룡해 접견 “평양 출발 직후 굴욕”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북한 특사 최룡해 접견 “평양 출발 직후 굴욕”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북한 특사 최룡해 접견 “평양 출발 직후 굴욕”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로 러시아를 방문 중인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18일(현지시간) 크렘린궁을 찾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면담했다. 크렘린 공보실은 이날 언론 보도문을 통해 “푸틴 대통령이 최룡해 특사를 접견했다”며 “최 특사가 북한 지도자(김정은)의 친서를 갖고 왔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과 최 비서의 상세한 면담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 비서가 푸틴 대통령에게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하고 최근 들어 긴밀해지는 양국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푸틴 대통령 예방은 러시아 도착 후 최 특사의 첫 일정으로 그의 모든 방러 일정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푸틴 대통령과 최 특사의 면담은 당초 이날 오후 5시로 예정돼 있었으나, 푸틴이 크렘린 외곽 정치조직인 ‘전(全)국민전선’의 포럼에 참석해 오랫동안 머물면서 예정보다 크게 늦은 저녁 7시 이후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면담은 약 1시간 정도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면담은 언론 초청 없이 비공개로 진행됐다. 최 비서는 전날 평양 출발 후 특별기가 고장을 일으키는 바람에 한차례 북한으로 회항했다가 출발하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예정된 시간보다 약 10시간 늦은 이날 0시쯤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평양에서 모스크바까지의 비행시간은 약 9시간이다. 현지 소식통들에 따르면 최 비서는 약 사흘 동안 모스크바에 머물 예정이다. 구체적 방러 일정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의 회담은 20일로 잡혀 있다고 러시아 외무부 공보실 관계자는 밝혔다. 최 비서는 모스크바 방문 일정을 마친 뒤 극동 하바롭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도 찾는 등 24일까지 러시아에 머물 예정이다. 네티즌들은 “북한 특사 최룡해 접견, 정말 황당하네”, “북한 특사 최룡해 접견, 어떻게 특사를 보내는 비행기가 고장날 수 있나”, “북한 특사 최룡해 접견, 본인도 어이없었겠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新국토기행] 하동군

    [新국토기행] 하동군

    경남 하동군은 경남지역 서남쪽 끝에 있는 농촌지역이다. 1개 읍과 12개 면이 있으며 지난 9월 현재 인구는 5만 79명이다. 면적은 675.5㎢로 경남 전체의 6.4%를 차지한다. 하동군은 경남지역만 놓고 보면 변방이다. 그러나 남해안 전체로 보면 중심지역이다. 영호남이 만나는 교통 요충지인데다 자연경관이 수려해 현재보다 미래가 더 기대되는 지역이다. 남쪽으론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아름다운 남해를 품고 있다. 한라산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지리산(해발 1915m)이 우뚝 솟아 북쪽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서쪽에는 깨끗한 섬진강이 전남도와 경계를 이루며 흐른다. 바다와 강, 산, 계곡이 어우러져 구석구석 절경과 명승지를 빚어 놨다. 특산물과 먹거리도 풍성하다. 문학에서도 섬진강과 지리산은 무한한 창작 공간이다. 문학인들에게도 다양한 작품 배경과 소재를 준다. 이병주의 ‘지리산’, 박경리의 ‘토지’와 같은 대한민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가와 작품을 탄생시켰다. 농업과 관광, 문학의 고장 하동군은 이제 갈사만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한 첨단산업을 접목, 하동시로의 야심 찬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하동이란 지명이 역사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신라시대 때다. 삼국사기지리지에 모래가 많은 지역이라고 해서 한다사군(韓多沙郡)으로 부르다가 신라 경덕왕이 ‘하동’으로 바꿨다(757년)고 기록돼 있다. 섬진강 동쪽에 있는 지역이란 뜻이다. 하동 여러 지역에서 고인돌이 발견됐다. 청동기 시대 문화 및 농경사회의 증거다. 청동기 시대 이전부터 크고 작은 강과 하천을 중심으로 취락이 형성돼 다사국으로 발전해 오늘에 이르는 유구한 역사의 고장이다. 고려사지리지에는 고려시대에 하동은 청하현으로 불렸고 진주목에 속해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또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조선 태종 때 남해현을 합쳐서 하남현(河南縣)으로 했다가 1415년에 다시 분리했다는 기록도 있다. 1704년 하동 도호부로 승격됐고 1895년에 진주부 하동군이 됐다. 하동군은 농업을 생활 터전으로 삼아 왔다. 농림어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70%가 넘는다. 지리산 등 산이 많은 지리 조건으로 공업은 발달하지 못했다. 고전·적량·진교면 등 3개 면 농공단지에 17개 업체가 입주했으나 150명 이하의 중소기업들이다. 현재 하동에 있는 가장 큰 산업시설은 금성면 가덕리의 하동화력발전소다. 1997년 1·2호기 준공을 시작으로 2009년 8호기까지 4조 2000여억원을 투입, 건립돼 주변 지역경제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올해 하동군 세수입의 23%에 해당하는 32억원의 세금을 냈다. 주변 금성·금남·고전 3개 면 지역에 장학·복지 등 사업으로 올해 27억 3900만원을 지원했다. 농업이 경제의 중심이던 시절에는 하동군 인구가 10만명을 훨씬 넘었다. 1965년 14만 3894명을 정점으로 경제개발과 도시화에 따라 인구는 줄고 고령화됐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8%에 이른다. 인구가 5만명에 턱걸이하고 있으나 곧 5만명 선이 붕괴될 것으로 보인다. 하동읍 출신인 전봉환(53) 기업지원담당은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5일마다 열리는 하동장날이면 읍내가 온통 사람으로 가득 찰 정도로 인구가 많았다”고 회상했다. 인구 감소로 2012년 4월 19대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사천·남해·하동 3개 시·군이 한 선거구로 통합되는 설움을 겪었다. 이후 12~17대 6번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번도 지역출신 의원을 배출하지 못했다. 남해 출신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13~17대 내리 당선됐다. 이 때문에 군민과 향우들 사이에 지역출신 의원이 없어 지역개발과 발전이 뒤떨어졌다는 자조와 한탄이 많다. 10여년 전부터 하동군은 인구 증가 시책의 하나로 귀농·귀촌인 유치에 발벗고 나섰다. 그 성과가 나타나지만 자연 감소와 유출 등으로 줄어드는 인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올 들어 상반기에 111가구가 귀농·귀촌했다. 최근 10년 새에 1000여 가구 2737명이 왔다. 30~50대의 비교적 젊은 귀농인들 가운데 억대의 높은 소득을 올리는 귀농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성공한 귀농인들이 새로운 귀농·귀촌인을 불러들이며 활력을 주고 있다. 또 하동군은 새로운 고소득 특산품을 발굴하고 있다. 군은 청암·횡천면 일대에 30만㎡에 이르는 미나리단지를 조성한다. 지리산 기슭이라 깨끗한 물이 풍부해 품질 좋은 미나리를 생산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하동 야생 녹차를 비롯해 딸기, 부추 등 친환경 청정 농산물은 하동의 새로운 소득원이 되고 있다. 하동은 영호남 길목으로 지리적 요충지여서 옛날부터 도로와 시장이 발달했다. 섬진강 물길은 하동포구로 불리며 육상교통이 발달하기 전까지 하동의 주요 교통수단이었다. 하동포구는 화개, 악양, 하동읍, 갈사 등지를 거쳐 바다에 이르는 하동의 섬진강 물길을 통칭한다. 예로부터 하동장, 화개장은 남원·구례 등 지리산 산간지역의 물산과 여수·삼천포·남해 등지의 해산물이 모이고, 보부상들이 모여들던 전국에서 손꼽히던 큰 장이었다. 외지인들은 장날이 되면 배를 타고 남해를 거쳐 하동포구를 통해 하동으로 들어와 물건을 사고팔거나 바꿨다. 육로가 발달하면서 포구 이용이 줄고 강바닥에 모래가 쌓이면서 섬진강 뱃길은 끊어졌다. 1968년 경전선 개통에 이어 1973년 하동을 거쳐 부산~순천을 잇는 남해고속도로 완공은 하동지역의 발전에 계기가 됐다. 1980년대 들어 인근 광양에 제철소가 들어서고 화개·악양면을 중심으로 한 지리산권 자연자원을 활용한 관광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지역 경제는 눈에 띄게 발전했다. 곳곳에서 지역 특색을 살린 축제가 열려 지역경제에 한몫하고 있다. 고로쇠축제, 화개장터벚꽃축제, 하동야생차문화축제, 술상전어축제, 북천면 코스모스 메밀꽃 축제, 악양 대봉감축제, 참숭어축제, 토지문학제, 이병주국제문학제 등이 해가 거듭될수록 유명해지고 있다. 특히 차와 문학의 고장 악양면은 2009년 슬로시티로 지정돼 느림의 여유를 체험하는 지역으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이제 하동 전역은 사통팔달의 도로망이 이어져 전국 어디서든지 편하게 오갈 수 있다. 진주~하동~광양으로 이어지는 경전선 철도 복선화 공사도 내년에 완공된다. 하동군은 10여년 전부터 대규모 산업단지 조성 사업에 나섰다. 농업과 관광만으로 지역경제 살리기와 인구 증가에 한계가 있어서다. 2003년 금성·금남면을 포함한 광양만권 일대가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면서 하동군은 갈사만 산업단지를 비롯해 대송산업단지, 두우레저단지, 덕천에코시티 등 4개의 대규모 단지조성 사업을 시작했다. 전체 면적은 1216만 5000㎡(약 369만평)이며 사업비 2조 8199억원이 투입된다. 1조 5970억원이 들어가는 갈사만 산업단지(해안매립 317만 4000㎡, 육지 243만 9000㎡)에는 해양플랜트, 에너지, 철강 등의 기업이 입주한다. 대우조선해양이 이미 66만 1000㎡를 분양받았다. 해양플랜트종합시험연구원이 16만 5000㎡의 부지에 건물을 짓고 있다. 이곳에 영국의 해양플랜트 명문대학교인 애버딘대학의 하동캠퍼스가 들어선다. 2016년 하반기 개교한다. 석·박사 등 145명의 전문인력 양성과정이 운영된다. 2개 산업단지는 현재 부지를 분양하고 있다. 골프장과 숙박시설 등이 들어설 두우레저단지와 단독주택, 아파트, 상업시설 단지로 개발되는 덕천에코시티는 사업자를 모집하고 있다.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인상공회의소 전석호 회장과 관계자 5명이 산업단지 조성현장을 둘러보고 군의 투자유치를 “적극 돕겠다”고 약속했다. 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고장난 우산에 새 생명 주는 서초

    고장난 우산에 새 생명 주는 서초

    서초구는 30일 구청 앞마당에서 열린 서초장날 행사에서 고장 난 우산을 무료로 고쳐 주는 ‘우산수선사업단’의 ‘찾아가는 우산수선코너’를 운영했다. 질 좋은 상품도 구경하고 고장 난 우산도 새 우산으로 고쳐 갈 수 있어 주민들에게 인기가 많다. 우산꼭지가 달아나거나 잠금장치가 고장난 우산, 우산살이 휘거나 부러진 우산 등 버려질 위기에 놓인 우산들이 구 자활사업단인 ‘우산수선사업단’의 손을 거쳐 마법처럼 새것으로 변신한다. 여기저기 망가진 우산을 새것처럼 재탄생시키는 것은 물론 주민들로부터 사용하지 않는 우산을 기증받아 수선 후 저소득층에게 선물하는 착한 나눔도 계획하고 있다. 갑작스럽게 비가 오는 날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주민들에게 무료로 우산을 대여해 주는 서비스도 실시할 예정이다. 2003년부터 매주 월∼금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 구립 양재종합사회복지관(양재역 5번 출구) 지하 1층에서는 우산수선사업단의 ‘서초우산수선센터’가 운영된다. 센터는 월평균 600여개의 우산을 고쳤다. 특히 장마철에는 한 달에 무려 1150여개를 수선하는 등 지금까지 모두 8만 5000여개의 우산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센터는 동 주민센터도 방문해 수선 코너를 꾸린다. 이달 중에는 지난 8일 방배본동 주민센터, 14일 반포1동 주민센터에서 모두 100여개의 우산을 수선했다. 구 관계자는 “서초우산수선센터는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 자원 재활용을 통한 환경 보호, 찾아가는 무료 서비스, 저소득층 주민을 위한 나눔 실천까지 네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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