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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침몰 참사-눈물도 마른 가족들] 운구차 따라가며 “우리 대희 어떡해, 사랑해 아들아”

    “대희야, 엄마가 사랑한다. 우리가 같이 가니까 외로워하지 마.” 20일 오전 11시 경기 안산 온누리병원 장례식장. 세월호 침몰로 숨진 단원고 2학년 김대희군의 마지막 가는 길은 슬픔과 고통, 분노와 원망이 엇갈렸다. 더는 눈물 한 방울 흘릴 힘도 없어 보이는 유족들 주위로 노란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단원고 졸업생 학부모) 20여명이 서서히 모여들었다.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자 목탁 소리와 함께 스님의 염불 외는 소리가 들렸다. 김군의 친구, 친척들의 눈시울은 금세 붉어졌다. 여기저기서 서러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허망하게 떠난 김군의 마지막 가는 길이 외롭지 않기를 빌며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모았다. 위패와 영정은 김군의 동생과 친구로 보이는 남학생 2명이 들었다. 그 뒤로 유가족과 학생 30여명이 따라나왔다. 힘없이 축 처져 있던 가족들은 관이 운구차에 실리자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렸다. 서러운 통곡 소리가 안산 전체로 퍼지는 듯했다. 김군의 어머니는 “우리 대희 어떡해. 사랑한다. 내 아들아”라며 비통한 울음을 토해냈다. 김군의 할머니는 눈물을 훔치느라 수건에 파묻었던 얼굴을 들어 “나무아미타불”만 반복했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도 함께 울었다. 발인은 10분 만에 끝이 났다. 김군을 실은 운구차는 수원 영통구 수원연화장으로 떠났다. 김군이 떠난 자리에는 곧바로 또 다른 사망자 김건우군의 빈소가 차려졌다. 침통한 빈소에 소동을 피우는 주민도 있었다. 집에서 TV 뉴스를 보다 화가 나 나왔다는 50대 남성은 “그런 식으로 (사고를 수습)하는 게 정부냐”고 외쳤다. 그는 빈소에 나와 있던 교육청 관계자에게 삿대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가족들이 더 마음 아프니까 참으세요”라는 주변의 만류와 지구대 경찰의 제지로 이 남성은 식장 밖으로 끌려나갔다. 앞서 이날 오전 5시쯤에는 장진용군의 발인이 고려대 안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이른 새벽 장군의 발인식에는 유족 20여명과 친구 100여명이 참석했다. 안준혁군·전영수양의 발인도 뒤를 이었다. 이날 예정됐던 임경빈·정차웅군 등 사망자 6명의 발인은 유가족 요청으로 연기됐다. 이날 경기도교육청·경기도청·안산시청 합동대책본부는 오는 23일 오전 9시부터 안산 단원구 안산올림픽기념관에 세월호 침몰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마련한다고 밝혔다. 세부적인 운영방식은 학부모, 유족, 단원고 교사 등과 논의해 결정된다. 한편 제자들과 끝까지 운명을 함께한 교사들의 발인도 치러졌다. 19일 안산 제일장례식장에 안치된 단원고 최혜정(24·여) 교사에 이어 20일에는 남윤철(35), 김초원(25·여) 교사의 발인이 엄수됐다. 마지막까지 배에 남아 학생들을 대피시키다 목숨을 잃은 남 교사는 고향인 충북 청주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했다. 남 교사의 아버지는 “끝까지 학생들을 살리려고 노력하다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아들이 자랑스럽다”며 오히려 장례식에 참석한 조문객들을 다독였다. 남 교사의 친척은 “어려서부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다”면서 “강직한 성격에 어린 제자들을 두고 홀로 탈출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산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한기호 “북괴 지령 놀아나는…” 세월호 참사에 ‘색깔론’…장군 출신 맞나?

    한기호 “북괴 지령 놀아나는…” 세월호 참사에 ‘색깔론’…장군 출신 맞나?

    한기호 세월호 침몰 사고로 온 국민이 패닉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한기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부적절한 ‘색깔론’을 꺼내 논란이 일고 있다. 한기호 최고위원은 20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드디어 북한에서 선동의 입을 열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북괴의 지령에 놀아나는 좌파 단체와 좌파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이 정부 전복 작전을 전개할 것입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육군 장성 출신인 한기호 최고위원은 이어 “국가 안보 조직은 근원부터 발본 색출해서 제거하고, 민간 안보 그룹은 단호히 대응해 나가야합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가뜩이나 더딘 구조·수색과 오락가락 발표로 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해 있는 상태에서 나온 여당 최고위원의 색깔론에 일제히 비난을 퍼붓고 있다. 네티즌들은 “새누리당 폭탄주 먹은 것도 모자라 이제 실종자 가족들을 빨갱이로 모는구나”, “정부를 비판하면 무조건 종북이냐” “군단장까지 지낸 장성 출신의 인식 능력이 겨우 이 정도 밖에 안되다니” 등의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한기호 최고위원은 네티즌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북한이 이번 참사 수습을 무능한 정부 탓이라고 비난한 것이 사실 아닌가요? 여기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는 데 문제가 있나요?” 라고 반박했지만 파문이 점차 커지자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고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맹골수도, 머구리 “수경 벗겨질 정도로 조류 세”…국내서 울돌목 다음으로 조류 센 곳

    맹골수도, 머구리 “수경 벗겨질 정도로 조류 세”…국내서 울돌목 다음으로 조류 센 곳

    ‘맹골수도’ ‘머구리’ ‘울돌목’ 세월호가 울돌목 다음으로 조류가 센 곳인 ‘맹골수도(孟骨水道)’에서 침몰하면서 수색작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나흘째인 9일 오후 1시. 여전히 수색 작업이 어려운 상황이다. 여객선이 침몰한 곳은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맹골도와 거차도 사이에 있는 길이 6km, 폭 4.5km 규모의 수도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곳인 ‘울돌목’ 다음으로 조류가 센 곳으로 알려진 이곳의 물살은 최대 6노트(약 11km/h)에 달한다. 이 때문에 세월호 수색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머구리(잠수대원)들이 수색에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맹골수도의 조류와 물살이 너무 세 수경이나 산소마스크가 벗겨질 정도라는 것. 조류가 세고 안개 때문에 항만업계 안전운항 규정에 ‘위험항로’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해 3월 LPG 운반선이 조업 중인 어선을 들이받아 배가 침몰하고 선원 7명이 실종됐다. 이를 포함해 지난 2002년부터 10년간 근처 해상에서 모두 58건의 해난 사고가 발생했다. 물살이 세지만 황해로 통하는 주요 항로로 통행량이 많다. 섬 주변에는 암초가 많지만 항로로 이용되는 수로는 깊이 30m 이상으로 암초 등 장애물은 없어 인천 등 황해에서 남해로 가는 여객선, 대형 선박이 주로 이용한다. 전문가들은 조류가 빠른 맹골수도에서 급선회하다가 사고가 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진도 여객선 침몰 참사] “중학교 수학여행땐 재밌게 놀았는데…”

    [진도 여객선 침몰 참사] “중학교 수학여행땐 재밌게 놀았는데…”

    “중학교를 졸업한 뒤론 얼굴 한번 못 봤는데 마지막 인사도 못 전해서 어떡해요.” 세월호 침몰 사고 사흘째인 18일 고려대 안산병원의 공기는 무겁고 엄숙했다. 이날 병원에 추가로 안치된 장준형(이하 17·안산 단원고 2학년)·황민우·김주은(여) 학생의 가족들은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온 자녀들의 모습을 보고 오열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불러도 대답 없는 친구의 영정 사진을 바라본 아이들 역시 비통한 울음을 쏟아냈다. 황군과 같은 중학교를 다녔다는 여학생은 “민우는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운동과 게임을 좋아하는 활발한 아이였다”면서 “중학교 수학여행 때 둘이 장난치고 투닥거리면서 재밌게 놀았었는데 너무 안타깝다”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한 학생은 함께 조문하러 온 친구에게 “(빈소에) 못 들어가겠어. 마음이 너무 아프다”라고 말하며 한동안 바깥을 서성였다. 장군을 조문하러 온 한 중년 여성은 “같은 동네에서 살아서 가족들끼리 다 알고 지냈는데 꽃 다운 아이를 이렇게 떠나보내서 같은 엄마 처지로서 너무 슬프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장군의 중학교 동창생인 이재윤(17)군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다고 하기에 기념품 꼭 사오라고 말했었는데 이제 못 본다고 생각하니 믿기지 않는다”면서 “준형이에게 못 해준 것만 생각이 나서 미안하다는 말을 꼭 전해주고 싶다”며 울먹였다. 민간 봉사단체인 안산소방서 여성의용소방대의 최춘화 대장은 “학생들이 꽃망울도 제대로 피워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 마음이 너무 무겁다”면서 “우리 대원 한 분도 자녀가 실종돼서 현장에 내려갔는데 남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대원 10여명과 함께 장례식장 1층에서 조문객들을 안내하는 등 유가족들에게 힘을 보탠 최 대장은 “유가족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찾아 성심성의껏 도울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전날 안산병원에 안치된 정차웅(이하 17)·임경빈·권오천 학생의 넋을 기리기 위한 조문객 행렬도 이어졌다. 숨진 정군을 조문하러 온 중학교 동창생 이푸른산(17·안산 동산고 2학년)군은 “차웅이는 친구들이 짓궂은 장난을 쳐도 다 받아줄 정도로 진짜 착한 친구였다”면서 “모든 친구들이 차웅이를 좋아했는데 사망자 명단에 차웅이가 있어서 너무 놀라 눈물도 안 나왔다”며 안타까워했다. 한편 안산병원 측은 낮 12시 30분 현재 단원고 학생 72명을 포함해 모두 76명의 구조자가 입원 중이라고 밝혔다. 이들 대부분은 중증도 이상의 심한 스트레스 증상과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사고당시 항해사, 세월호 ‘경력 5개월’ 3등항해사

    사고당시 항해사, 세월호 ‘경력 5개월’ 3등항해사

    여객선 세월호 침몰 당시 조타실을 맡았던 항해사가 경력 1년이 조금 넘은 박모(26) 3등 항해사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박 항해사는 세월호에 투입된 지 5개월이 안 된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가 한 달에 8차례 제주와 인천을 왕복하는 것을 고려했을 때 박 항해사의 세월호 운항 경험은 40회 남짓하다. 항해사는 조타실에서 조타수에게 키 방향을 명령하는 역할을 한다. 항해사의 지시 없이는 조타수가 타각을 변경할 수 없다. 그만큼 배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다. 세월호는 침몰 당시 자동운항이 아닌 수동운항을 했다. 배가 지그재그로 움직였다는 일부 승객들의 증언과 침몰 원인으로 ‘급격한 변침(變針)’이었다는 해경의 결론이 이를 뒷받침한다. 자동항해 때 배가 지그재그로 운항할 수는 없다. 변침은 여객선이나 항공기 운항 항로를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 항로 변경이라는 말은 타각을 변경했다는 의미로 항해사와 조타수의 역할이 중요했다. 더구나 사고가 발생한 곳은 맹골수도 해역이다. 이곳은 조류가 빠르기로 유명하다.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전남 해남과 진도 사이 울돌목 다음으로 조류가 세다. 20년 경력의 조타수는 “맹골수도는 물살이 수시로 바뀌어서 타각을 계속해서 변경해야 한다. 아무래도 경력이 짧다면 이곳을 빠져나가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장 이준석(69)씨도 2급 항해사 면허 보유자로 결격 사유는 아니지만 국내 최대급 규모의 여객선 운항을 책임지는 선장이 1급 항해사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진도 여객선 승무원 조타수는 경력 1년여의 3등 항해사

    진도 여객선 승무원 조타수는 경력 1년여의 3등 항해사

    ’조타수’ ‘진도 여객선 승무원’ ‘3등 항해사’ 여객선 세월호 침몰 당시 조타실을 맡았던 항해사가 경력 1년이 조금 넘은 박모(26) 3등 항해사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박 항해사는 세월호에 투입된 지 5개월이 안 된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가 한 달에 8차례 제주와 인천을 왕복하는 것을 고려했을 때 박 항해사의 세월호 운항 경험은 40회 남짓하다. 항해사는 조타실에서 조타수에게 키 방향을 명령하는 역할을 한다. 항해사의 지시 없이는 조타수가 타각을 변경할 수 없다. 그만큼 배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다. 세월호는 침몰 당시 자동운항이 아닌 수동운항을 했다. 배가 지그재그로 움직였다는 일부 승객들의 증언과 침몰 원인으로 ‘급격한 변침(變針)’이었다는 해경의 결론이 이를 뒷받침한다. 자동항해 때 배가 지그재그로 운항할 수는 없다. 변침은 여객선이나 항공기 운항 항로를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 항로 변경이라는 말은 타각을 변경했다는 의미로 항해사와 조타수의 역할이 중요했다. 더구나 사고가 발생한 곳은 맹골수도 해역이다. 이곳은 조류가 빠르기로 유명하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전남 해남과 진도 사이 울돌목 다음으로 조류가 세다. 20년 베테랑의 한 조타수는 “맹골수도는 물살이 수시로 바뀌어서 타각을 계속해서 변경해야 한다”며 “아무래도 경력이 짧다면 이곳을 빠져나가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 길은 글이다

    이 길은 글이다

    참, 조심해야 할 것도 많다. 남도 얘기다. 여수 가서는 돈 자랑 말고, 순천에선 인물 자랑 말고, 벌교 가선 주먹 자랑 하지 말라고 했다. 그뿐인가. 진도 가서는 ‘귀 명창’ 소리 들을 망정 제 소리 자랑일랑 아예 말랬다. 밭고랑에서 풀 뽑던 아낙도 앉은 자리에서 곧잘 소리 한 가락 뽑아낸다니 말이다. 전남 장흥에선 함부로 글 자랑 하지 말라고 했다. 발 닿는 곳마다 시인 묵객들이 빼곡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자취를 되짚어 가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여정이 될 터. ‘문학관광기행특구’로 지정된 장흥에서 문향(文香) 좇는 여행 해 보자는 건 이런 뜻에서다. 글 자랑 말라는 얘기는 먼먼 섬 청산도에도 전해진다. 한데 전후 사정이 장흥과는 다소 다르다. 옛 청산도는 고등어 파시 등으로 비교적 부유한 섬이었다. 섬 사내들은 똥지게 지고도 곧잘 한시를 읊조렸고, 요족한 집안에선 아들 일본 유학 보내길 주저하지 않았다. 이는 청산도에 이른바 식자층이 두꺼웠다는 뜻이다. ●발길 닿는 곳마다 작품의 배경 이에 견줘 장흥은 글 짓는 이가 많았다. 위로 우리나라 최초의 기행 가사 ‘관서별곡’을 지은 백광홍(1522~1556)을 비롯해 이청준(1939~2008), 한승원(75), 송기숙(79) 등 당대의 문장가들에다 차세대 노벨 문학상 후보로 꼽힌다는 소설가 이승우(54) 등 신진에 이르기까지 작은 고장 안팎이 문인들로 차고도 넘친다. 백광홍에서 비롯된 문맥은 이청준의 ‘눈길’ ‘축제’ ‘선학동 나그네’(천년학), 한승원의 ‘포구’ ‘앞산도 첩첩하고’, 송기숙의 ‘녹두장군’, 이승우의 ‘샘섬’ 등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그러니 장흥 어디를 돌아봐도 문향(文香)과 맞닿아 있지 않은 곳은 찾기 어렵다. 장흥을 문향(文鄕)이라 이르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천관산 아래 천관문학관에서 대략의 내용을 먼저 짚는 게 순서다. 장흥에서 나고 자란 문장가는 누군지, 그에게 문학적 영감을 제공한 무대는 또 어디인지 등을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다. 문학관 위쪽으로는 15m 높이의 문탑과 문학공원 등이 조성돼 있다. 문탑 밑엔 구상, 박완서 등 작가들의 친필 원고 50여점과 연보 등이 캡슐에 쌓여 묻혔다. 문탑 아래쪽은 천관산문학공원이다. 친필 원고에 적힌 글들을 50여개 문학비에 각각 새겨 놓았다. 주민들의 가훈을 모은 가훈탑 등의 돌탑들도 무리 지어 있다. ●남도의 갯마을 한눈에 들어온 천관산… 소설길을 몸으로 읽다 무르팍에 힘이 남았거들랑 가급적 천관산까지는 힘써 오르길 권한다. 한 시간 남짓 오르면 장흥은 물론 남도의 갯마을들이 한눈에 잡힌다. 문인들에게 깊은 영감을 안겨준 득량만이 얼마나 너른지, 그 안에 깃들여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또 어떤지 낱낱이 굽어볼 수 있다. 이대흠 천관문학관 관장에게 어떤 경로로 돌아봐야 할지 자문했다. 그는 이청준의 생가에서 출발해 ‘문학 자리’로 여겨지는 이청준의 묘와 선학동, 회진마을, 덕도의 한승원 생가, 정남진 전망대 등을 둘러본 뒤 남포마을과 한승원 해산토굴에서 여정을 마치라고 권했다. 이 길을 쭉 이으면 그가 주창했던 이른바 ‘소설길’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 관장은 오가는 길에 오래된 교회들을 잊지 말고 살피라 주문했다. 동서양의 사상이 녹아든 교회도 문향 형성에 한몫 거들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청준, 한승원의 생가 인근에 각각 100년을 헤아리는 연혁의 교회가 서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장흥엔 100년 넘은 교회만 4곳이라고 한다. 이청준 생가 주변의 진목교회는 장흥 지역의 근대교회 도래지로 꼽힌다. 한승원 생가 인근의 명덕교회도 얼추 그쯤의 내력을 지니고 있다. 들머리는 진목리의 이청준 생가다. 그의 대표작 ‘눈길’에 등장하는 바로 그 집이다. 이청준은 청소년기를 보내는 동안 두 차례 집안이 ‘거덜 나는’ 시련을 겪는다. 당시 그의 영혼과 몸의 안식처였을 생가도 빚쟁이의 손에 넘어가고 만다. 그걸 2005년 장흥군이 매입해 복원했다. 생가는 마을의 좁은 고샅길 중턱에 있다. 사면이 산자락에 둘러싸여 외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방과 장독대가 가지런하고 마루와 뜨락도 정갈하다. ●장흥 문학의 자궁 회진포구… 이청준 ‘눈길’의 무대 많은 이들이 “장흥 문학의 자궁”이라고 표현했던 회진포구에서 진목리에 이르는 길은 소설 ‘눈길’의 무대가 됐다. ‘눈길’은 이청준의 자전적 소설이다. 주인공인 ‘내’가 고교 1학년 때 전답과 선산, 심지어 고향집까지 남의 손에 넘어간다. 어머니는 타향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이 주인이 바뀐 고향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빈 고향집에서 기다린다. 새 집주인에겐 물론 통사정을 했다. 옛집에서 하룻밤 아들을 재운 어머니는 이튿날 새벽 다시 ‘나’를 대처로 내보낸다. 어머니와 함께 걷던 눈 덮인 새벽길, 어찌 뇌리에서 사라질 수 있으랴. 소설 속의 ‘나’는 물론 이청준이고 집이 넘어간 것은 그가 광주일고 1학년이었을 때쯤이라고 한다. ‘눈길’은 바로 이 참담한 이른 아침의 기억이 모태가 된 작품이다. 진목리에서 회진포구 쪽으로 돌아 나오면 선학동마을이다. 원래는 산저마을이었는데 이청준의 ‘선학동 나그네’에서 모티브를 얻어 마을 이름을 바꿨다. ‘선학동 나그네’는 이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으로 재해석된다. 회진리 바닷가에 ‘천년학’ 세트장이 남아 있다. 정남진(正南津) 전망대가 있는 신동은 소설가 이승우의 고향이다. 그는 멀리 바다 위로 뜬 ‘가슴앓이 섬’을 바라보며 ‘샘섬’ 등의 작품을 썼다. 한승원의 생가가 있는 덕도는 동학군의 후예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만큼 주민들의 자부심도 세고 문향도 짙다. 할미꽃이 무리 지어 핀 한재에서 마을 전경을 굽어볼 수 있다. 용산면 남포마을은 일출 명소 소등섬으로 유명한 곳이다. 마을 자체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의 주 촬영지 노릇을 했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건 이청준이 지은 동명의 소설이다.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삶의 여러 군상을 그려내고 있다. 안양면은 ‘아제아제 바라아제’ 등을 발표한 한승원의 문학 터전이다. 율산마을에 ‘해산토굴’이라는 집필실을 마련한 그는 여전히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여닫이해변 앞엔 ‘한승원 문학 산책로’도 조성됐다. 한국관광공사가 ‘깨끗한 갯벌이 숨 쉬는 아름다운 바닷가’로 선정한 곳이다. ‘어등’ ‘모래알’ 등 그의 글이 새겨진 비석들이 700m 정도 이어진다. 이 지역의 공식 주소가 ‘한승원산책길’로 정해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싶다. 글 사진 장흥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지역번호 061) →가는 길: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호남고속도로~익산포항고속도로~순천완주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남해고속도로 영암·순천 구간으로 갈아탄 뒤 장흥나들목으로 나가는 게 가장 알기 쉽다. 빠르게 가려면 다소 복잡하긴 해도 광주, 화순 등을 거쳐 가는 게 낫다. 호남고속도로 동광주나들목으로 나와 외곽순환도로로 갈아탄 뒤 29번 국도를 타고 화순 쪽으로 빠진다. 화순읍 지나 이양면소재지에서 장평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여기서 유치 방면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면 장흥 쪽으로 가는 23번 국도와 만난다. →맛집:요즘 제철 해산물은 바지락과 갑오징어다. 해산토굴 근처 수문해수욕장은 바지락이 많이 나는 곳이다. 특히 바지락회무침이 봄철 미각을 자극한다. 바지락을 살짝 데쳐 초고추장과 함께 따뜻한 밥에 썩썩 비벼 놓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바다하우스(862-1021)가 그중 알려졌다. 갑오징어는 이즈음 살이 오르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는 몸통에 먹물이 섞이지 않게 해서 먹는데 장흥에선 부러 먹물을 섞어 가무잡잡하게 해서 먹는다. 보기엔 먹음직스럽지 않지만 그래야 비릿한 향이 살점에 돌고 건강에도 좋다고 믿기 때문이다. 제 목숨 지키려는 갑오징어가 먹물을 터뜨리기 전 재빨리 명줄을 끊는 게 요령이다. 그래야 먹물이 몸통 구석구석 고르게 스민다. 읍내 싱싱횟집(863-8555) 등에서 맛볼 수 있다. 한 접시에 4만원 선. →잘 곳:회진면에도 숙박업소가 몇 개 있으나 가급적 장흥 읍내에서 자는 게 좋겠다. 크라운모텔(863-0777)이 깨끗한 편이다. 편백숲 우드랜드(864-0063)도 늘 인기 상종가다.
  • 올해부터 시민들이 직접 충무공 제사상 차린다

    올해부터 시민들이 직접 충무공 제사상 차린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뜻이다.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은 임진왜란 때 명량해전을 하루 앞두고 장수들에게 이런 각오로 싸우도록 독려했다.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군을 격파한 명량해전을 비롯해 옥포대첩, 사천포해전, 당포해전, 노량해전 등 23전 23승의 기록을 세웠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충무공이 오는 28일 탄신 469주년을 맞는다. 중구는 오는 17~28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는 광화문광장과 청계천,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탄신 기념 축제를 연다고 14일 밝혔다. 올해부터는 주민들이 직접 준비한 음식을 제사상에 올려 충무공의 호국정신을 이어가자는 행사에 의미를 더한다. 이순신 장군은 지금의 중구 인현동1가(한성부 건천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다. 아버지 이정과 어머니 초계 변씨의 셋째 아들로, 현재 중구 초동인 옛 명보극장 앞에 그의 생가터 표석이 설치돼 있다. 첫 행사인 친수식은 17일 낮 12시 광화문 충무공 동상 앞에서 갖는다. 충무공이 살았던 충남 아산 옛집 우물인 ‘충무정’과 전사한 장소인 경남 남해 바닷물을 떠와 동상을 목욕시킨다. 최창식 중구청장과 복기왕 아산시장, 정현태 남해군수, 중구 주민대표가 참석한다. 18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청계천 모전교~광통교 구간에서 지역 12개 초등학교 학생 360여명이 모형 거북선을 띄운다. 시민과 청소년들의 꿈을 담은 희망 오색종이배 1000여개도 띄워 분위기를 한껏 북돋운다. 임진왜란 당시 수군들이 먹었던 주먹밥과 전통차를 시식하는 체험 코너도 마련됐다. 28일 오전 10시부터 남산골 한옥마을에서는 기념 다례식이 손님을 맞이한다. 성균관의 고증과 협조로 전통방식 그대로 진행된다. 15개 동에서 준비한 15종의 제사 음식이 상에 오른다. 구 관계자는 “덕수이씨 13대손과 탄생지인 중구, 성장지 아산, 치열한 전투를 벌인 남해 주민 등이 자리를 함께한다”며 “왕궁 수문장 취타대 거리 공연, 국악연주단 연주 등에 시민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미국에 피라미드가?…옛 핵방어 시설 화제

    미국에 피라미드가?…옛 핵방어 시설 화제

    과거 미국이 옛 소련의 핵미사일을 탐지하고 선제타격하기 위해 구축했던 피라미드형 방어 시설을 촬영한 여러 장의 사진이 해외 매체들을 통해 소개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 과학매체 기즈모도와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미국의회도서관이 보유 중인 피라미드 형태의 미사일방어체제 시설물을 상세히 보여주는 흑백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작가 벤자민 할펜이 정부 요청으로 촬영했던 이 사진들은 미국 노스다코타주(州) 네코마의 한 지역에 남겨져 있는 ‘스텐리 R. 미켈슨 세이프가드 컴플렉스’(SRMSC)라는 명칭의 미사일 탐지 및 타격 시설이다. 북미방공사령부 스텐리 미켈슨 장군의 이름을 따서 1975년 완공됐던 이 시설은 최첨단 레이더 장비를 비롯한 탄도요격미사일 격납고와 발사대를 갖추고 있다. 당시 여기에는 스파튼 미사일 30발과 이보다 단거리인 스프린트 미사일 16발이 보관돼 있었다. 이곳은 1960년대인 냉전 시절, 미국이 옛 소련으로부터 핵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한 전략인 ‘세이프가드’ 프로그램 계획으로 미국 여러 주(州)내에 구축된 시설 중 하나로 당시 이 지역의 건설 비용만 6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시설은 운용을 시작한지 불과 1년도 못된 1976년 2월 10일 공식 폐쇄됐는데 정책의 변화에 따른 예산 부족으로 알려졌다. 오늘날 지역 관광지로 전락한 네코마 피라미드는 냉전 시대의 유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미국의회도서관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장군님 시원하시죠”

    “장군님 시원하시죠”

    10일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옆에서 서울시 직원들이 고압분무기로 동상에 물을 뿌리며 겨우내 묵은 때를 청소하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떠나가기 전에… 당신께 숨겨진 벚꽃을 전송해 드립니다

    떠나가기 전에… 당신께 숨겨진 벚꽃을 전송해 드립니다

    올봄 벚꽃과 얽힌 독특한 현상이 화제였다. 중심은 서울 윤중로 벚꽃이었다. 철없이, 그것도 보름 가까이 일찍 피었다. 제주나 경남 진해 등보다도 다소 빠를 정도였다. 그 때문에 여기저기서 ‘벚꽃 엔딩’ 운운했지만 사실 남녘의 벚꽃 명소들에선 제철보다 늦지도 이르지도 않게 벚꽃이 피고 또 지는 중이다. 한데 최근 회자되는 벚꽃 경승지 가운데 세간의 관심에서 쏙 빠진 곳이 있다. 경북 경주다. 여기 벚꽃 만만치 않다. 품은 내력도 그렇고, 드러낸 풍모도 그렇다. ‘벚꽃 왕도’란 표현에서 단 반 푼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다. 대한민국 벚꽃의 최고봉을 꼽으라면 단연 경남 진해(현 창원시)다. 35만 그루에 달하는 벚꽃이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런데 경주 벚꽃도 숫자에서 다소 뒤질지언정 품고 있는 풍경의 수려함에선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진해 벚꽃이 항도(港都)의 서정과 맞닿아 있다면 경주 벚꽃은 고도(古都)의 유장한 아름다움과 어우러졌다. 그 덕에 그윽하고 고색창연하다. 경주가 벚꽃의 도시로 탈바꿈한 건 1970년대부터다. 1971년 경주관광개발 계획에 따라 10년생 안팎의 벚나무들이 경주 일대 가로수로 식재됐다. 그때 심은 벚나무들이 이제 수령 50년의 아름드리로 자라났다. 경주 주요 도로와 사적지 외에도 꾸준히 벚나무가 식재됐다. 그 덕에 경주 전역의 벚나무가 30만 그루를 넘나들 정도가 됐다고 한다. 경주는 도처에 벚꽃이다. 이즈음 경주를 찾는다면 발 닿는 곳 절반은 유적지, 절반은 벚꽃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경주시내로 진입하는 순서로만 보자면 충효동의 김유신 장군묘 진입로가 첫손에 꼽힌다. 450m쯤 되는 구간의 아름드리 벚꽃들이 화려하게 꽃등불을 내걸었다. 밤에는 한결 요염해진다. 울긋불긋 밤을 밝히는 경관 조명 덕이다. 다만 60여개에 달하는 노점상 때문에 소란스럽다고 느낄 수 있다. 경주 한복판으로 들면 어디나 벚꽃이 흐드러졌다. 그 가운데 대릉원과 첨성대, 반월성 일대는 유독 도드라진 풍경을 선보인다. 보문호 일대는 호수와 벚꽃이 어우러져 화사한 풍경을 펼쳐 낸다. 벚꽃의 규모, 탐화 인파 등 여러모로 경주 벚꽃의 ‘갑’이다. 여기에 이제 막 움이 돋기 시작하는 수양버들이 연초록빛 추임새로 박자를 맞춘다. 숱한 사람의 발길이 머무는 보문관광단지 안에서도 경주 사람조차 잘 모르는 경승지가 있다. 바로 보문정이다. 수양벚꽃과 왕벚꽃, 그리고 아담한 정자 등이 작은 연못과 더불어 데칼코마니 같은 풍경화를 펼쳐 내는 곳이다. 힐튼 호텔에서 대각선 방향의 버스 정류장 뒤편에 있다. 예전엔 일부 사진작가들만 알음알음 찾던 곳이다. 하지만 휴대전화의 카메라 성능이 일반 카메라에 버금가는 수준에 이른 지금, 장삼이사라도 이 같은 풍경 앞에 서면 능히 작가가 될 터다. 피안앵(彼岸櫻)이 아름다운 절집으로는 기림사가 꼽힌다. 벚꽃 숫자야 몇 그루 안 되지만 절집과 어우러져 장중한 풍경을 선보인다. 특히 대적광전의 소박한 자태는 정말 일품이다. 풀 한 포기 없는 뜨락과 황토빛 일색의 건물이 기막히게 어울렸다. 기림사 가기 전 골굴사도 둘러볼 만하다. 밤 풍경도 곱다. 경주시는 장군교, 흥무로, 보문로 등 3개 구간에 경관 조명을 설치했다. 동궁원에서 보문교 구간, 불국사 등에도 발광다이오드(LED)등을 조성했다. 그 때문에 매일 밤 12시까지 고도는 잠이 들지 않는다. 복원 공사 중인 월정교도 13일까지 오전 10시~오후 9시 임시 개방한다. 신라 경덕왕 19년(760년)에 축조된 석조 교량으로 왕경(궁성)의 주요 통로로 사용됐다. 경주최씨 집성촌과 맞닿은 월정교는 원효대사에 얽힌 일화로 유명하다. 삼국유사는 원효대사가 월정교를 건너 요석공주와 만나 설총을 낳았다고 적고 있다. 월정교가 ‘사랑의 다리’라고 불리는 이유다. 월정교도 밤에 경관 조명을 켠다. 여기까지는 익히 알려진 벚꽃 명소. 경주엔 덜 알려진 명소도 적지 않다. 먼저 덕동호에서 암곡동 무장사지로 이어지는 벚꽃길이다. 경주 주민과 일부 사진작가만 찾을 뿐 이곳에서 일반 관광객은 찾기 어렵다. 그만큼 호젓하게 벚꽃을 완상할 수 있다. 개화 시기도 경주시내의 벚꽃보다 다소 늦다. ‘지각 꽃놀이’를 즐기기 맞춤하다. 다만 길이는 다소 짧다. 안강읍의 풍산 공장도 주민들 사이에서 명소 반열에 든다고 한다. 방위산업체라 평소엔 문을 닫아걸지만 벚꽃 축제가 열리는 13일까지는 문을 연다는 것. 경주시내에서 차로 20분 남짓 걸린다. 경주까지 와서 꽃만 보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검푸른 동해바다까지 휘휘 돌아보는 게 좋겠다. 경주시내를 벗어나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일별하고 나면 곧 갈림길이 나온다. 경주의 등줄기를 두루 꿰고 달리는 31번 국도다. 왼쪽은 포항 방향. 감포 등 작은 포구들이 연이어 펼쳐진다. 오른쪽은 울산 방향이다. 이쪽에 볼거리가 많다. ‘동해의 꽃’이라 불리는 양남면 주상절리군(천연기념물 제536호)과 문무대왕릉, 읍천항 등이 늘어서 있다. 읍천항과 하서항 사이 1.7㎞ 구간엔 ‘주상절리 파도소리길’도 조성됐다. 해안을 따라 자박자박 걸으며 싱싱한 동해의 봄을 만끽할 수 있다. 글 사진 경주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지역번호 054)] ■맛집:경주엔 오랜 역사만큼이나 정갈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소문난 곳이 많다. 식도락 기행, 시쳇말로 ‘먹방 로드’를 즐겨도 좋겠다. 경주최씨 집성촌인 교촌마을 초입의 요석궁(775-7557)은 경주최씨 14대 종부가 만드는 반가 음식으로 유명하다. 다만 음식에 따라 10만원을 넘는 것도 있어 부담스러울 수 있다. 바로 옆 최가밥상(772-3347)은 경주최씨 집안에서 대대로 전해 오는 육개장 등을 맛볼 수 있는 집이다. ‘나 홀로 여행자’에게도 기꺼이 1인분을 내주는 흔치 않은 집이다. 육개장 1만 3000원. ‘눈 내리는 갈비찜’은 경주 사람들이 부모님 생신상에 케이크 대신 올린다는 소갈비찜이다. 갈비찜 위에 찹쌀을 뿌려 눈이 내리는 것처럼 장식했다. 흰눈소갈비찜(772-8450)이 알려졌다. 3만 2000~4만 2000원. 삼릉 일대엔 칼국수집이 몰려 있다. 삼릉고향칼국수(745-1038), 옛집칼국수(745-1129) 등이 유명하다. 시내 성동시장엔 정식골목이 형성돼 있다. 뷔페식 한정식 등을 판다. 우엉김밥도 별미다. 김밥에 우엉을 곁들여 먹는다. 보배김밥 등이 알려졌다. ■잘 곳: 벚꽃 개화 시기의 교통 체증에 대한 우려를 덜려면 보문호 주변에 숙소를 잡는 게 낫다. 대명리조트는 건물 자체가 풍경 전망대다. 숙소 안에서 보문호 일대의 벚꽃 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화리조트는 보문호에서 다소 떨어져 있지만 아름드리 벚꽃들이 시립한 보문관광단지 가로수길을 정원처럼 삼은 게 장점이다. 블루원리조트는 고도가 높아 부감으로 보문호 전체를 굽어볼 수 있다. 경주시내에서 숙소를 잡겠다면 고속버스터미널 쪽이 좋다. 다만 지나치게 화려한 모텔들이 많아 한 블록 뒤로 빠져야 조용한 숙소를 구할 수 있다.
  • 부산 좌천동 일대 ‘역사마을’로 재탄생

    근대역사의 보물창고인 부산 동구 좌천동 일대가 ‘산복도로 휴먼빌리지’로 재탄생한다. 부산시는 산복도로 르네상스 4차연도 좌천·수정·주례구역의 시범마을 조성사업을 공모한 결과 ‘좌천동 역사마을 조성사업’이 최종 대상지로 선정됐다고 9일 밝혔다. 좌천동은 임진왜란 때 정발장군을 기리는 정공단, 3·1 만세운동을 주도한 일신여학교, 1891년 설립된 부산진교회, 6·25 전쟁 때 부상자를 치료한 일신기독병원, 김말봉 문학가 집필지 등 역사자원과 지역연계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이에 따라 시는 근대역사 보물창고인 이 지역을 산복도로 휴먼빌리지로 재생하기로 했다. 휴먼빌리지는 기존 문화예술의 마을 재생 방식에서 태양열 같은 친환경에너지와 폐가 또는 공지 등에 소공원 등의 녹색사업을 추가하는 것이다. 시는 시범사업으로 일제 강점기 무기고로 사용하던 동굴 2곳을 복원해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한다. 근현대 한국문학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여성 작가이자 대표적인 신여성으로 활발하게 여성운동을 한 김말봉 작가가 작품 ‘찔레꽃’을 집필했던 곳의 주변 빈집을 고쳐 집필책 전시와 함께 게스트하우스를 조성한다. 주변 계단 길을 찔레꽃 길로 조성하는 등 문학마을 풍경으로 만들고, 좌천동 도시철도역에서 일신여학교에 이르는 골목길도 정비한다. 이와 함께 인근 자개 골목에서 체험공방을 운영해 관광객 유치와 자개 공예 브랜드를 홍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할 방침이다. 이종원 시 창조도시본부장은 “마을이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개발돼 관광객이 유입되고 주민 공동체가 활성화돼 활력을 되찾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김관진 국방 ‘北 무인기’ 언론 보도 후 알았다

    김관진 국방 ‘北 무인기’ 언론 보도 후 알았다

    국회 국방위원회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전체회의를 열어 북한제로 추정되는 소형 무인기에 대한 군의 늑장 보고와 미숙한 대응을 질타했다. 4성 장군 출신인 백군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무인기 최초 수사가 나흘이나 걸린 점을 지적하며 “무인기에 낙하산도 있고 대공 용의점이 있는데 최초 수사는 최대한 신속하게 했어야 한다”면서 “장관에게도 보고가 안 돼 장관이 모르는 가운데 며칠이 흘러갔다”고 질타했다. 군 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경기 파주에서 정체불명의 무인기가 발견되자 국군 기무부대와 국가정보원, 관할 군부대, 정보사령부, 경찰 등 5개 유관기관이 참여하는 지역 합동정보조사팀이 가동됐다. 기무부대가 간사를 맡은 지역 합동조사팀은 같은 달 27일까지 나흘간 조사를 벌였지만 대공 용의점 등 북한과의 관련성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해 28일 국정원이 간사를 맡은 중앙합동조사팀으로 사건을 이관했다. 이재수 기무사령관은 국방위에서 “지역 합동조사에서는 대공 용의점에 대한 최종 결심을 내리지 못해 기술적인 조사를 할 수 있는 중앙합동조사팀으로 넘기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지역 합동조사에서도 하늘색 바탕에 흰색을 덧칠한 위장색과 배터리에 쓰인 북한말 ‘기용날자’, 군에서만 사용하는 낙하산 사용 등 무인기를 북한 제품으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식별됐는데도 상부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일각에서 축소·은폐 의혹을 제기하는 이유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백령도에서 북한제 추정 무인기가 추락하면서 파주에서 발견된 무인기도 북한 제품일 가능성이 커졌다고 언론에 보도된 다음날인 이달 2일에서야 ‘북한 소행이 농후하다’는 내용의 1차 중앙 합동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기무사령관은 지역 합동조사 내용을 김 장관에게 보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결론이 나지 않아) 보고할 단계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지역 합동조사 내용은 관할 부대의 지휘계통을 통해서도 제때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3성 장군 출신인 한기호 새누리당 의원은 “풍선 하나를 발견해도 그것을 보러 간다고 지휘관에게 보고하는데 이걸 몰랐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김 국방부 장관은 “북한은 우리가 갖고 있는 대공 레이더 시스템이 소형 무인기를 포착하지 못한다는 것을 교묘하게 이용해 침투했다”면서 “군사적으로 보면 하나의 기습”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미연합군사령부와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의 무인기 도발에 대한 대응 방안을 작전계획과 작전예규에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열린세상] 독일의 기술개발 파트너 된 한국/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열린세상] 독일의 기술개발 파트너 된 한국/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에 비해 병력이나 경제력이 뒤져 있던 독일 나치 정부는 이러한 열세를 획기적인 무기 개발로 극복하려고 시도했다. 히틀러의 지시에 따라 독일의 모든 공장은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전환됐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영국 해군을 괴롭힌 잠수함 유보트(U-boat), 독일 전쟁 영웅 에르빈 롬멜 장군의 타이거 전차, 세계 최초의 로켓과 제트 전투기가 이때 개발됐다. 종전 이후 로켓 기술은 미국 등으로도 이전됐다. 기술을 이어받은 미국은 20년 이상의 기간을 단축하며 세계 최초의 ‘아폴로 우주계획’을 구상할 수 있었다. 이처럼 획기적인 기술들이 단기간에 개발될 수 있었던 것은 독일의 높은 산업기술 역량과 제조기반이 뒷받침했기에 가능했다.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독일의 산업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독일 자동차는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고, 광학기술, 신재생에너지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3월 대통령의 독일 순방 시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독일의 연구지원기관인 연합산업협력연구회(AiF)와 공동펀딩형 기술개발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공동펀딩형 기술개발사업이란 양국 정부가 자국에 있는 기업의 공동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선진 기업의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 개발에 들어가는 자금을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이 일방적으로 투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R&D 파트너가 될 독일 기업에 대한 지원을 독일 정부 쪽에서 맡는다. 일방적 지원이 아닌 호혜적 지원 시스템으로 전환된 셈이다. 양국 정부는 당장 올해부터 10개 내외의 프로젝트를 지원하기로 합의했고, 앞으로 지원 규모를 늘려나갈 예정이다. 이러한 변화는 일견 사소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통상과 산업기술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한 필자에게는 엄청난 변화로 느껴진다. 50여년 전만 해도 기술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을 독일이 동등한 기술협력의 파트너로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 정부가 한국과의 공동 연구개발에 정책자금을 지원한다는 것은, 곧 우리 기업과의 협력이 독일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러한 변화는 유럽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독일뿐만 아니라 프랑스, 스위스에서도 독일과 유사한 방식의 공동 연구개발 협력을 원하고 있다. 해외 선도기업과의 공동기술 개발은 독자 방식에 비해 좋은 점이 많다. 우선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 수준을 따라 잡는 데 효과적이다. 중소·중견기업이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목표 기술을 개발했어도 막상 선진기술의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는 것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활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둘째로는 현지 진출에 용이하다. 해외 파트너의 도움이 있으면 현지시장에 적합한 콘셉트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이는 수출을 해야 살 수 있는 국내 기업들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공동개발을 통해 막대한 개발비와 위험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나라의 글로벌 기술협력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국 중 중간 수준인 16위에 불과하다. 국제적 인지도가 있는 대기업의 경우에는 그나마 해외 파트너들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지만, 해외 파트너를 대부분 직접 찾아나서야 하는 중소·중견기업은 공동R&D가 말처럼 쉽지 않다. 기업이 현지 파트너를 찾아 협력 분야와 협력 방식을 결정하는 과정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이를 돕기 위해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은 중견기업연합회와 공동으로 독일 슈타인바이스 재단과 기술사업화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슈타인바이스재단은 1868년에 설립된 독일 최대 기술사업화기관이다. 앞으로 우리 중소·중견기업의 독일 현지 파트너 발굴, 협력전략, 시장진출을 도와주기로 했다. 내수시장이 좁은 우리 현실에서 해외 진출은 선택이 아니라 숙명이다. 우리의 중소·중견기업들도 자체 보유 기술에 자부심을 갖고 독일 등 기술 선도국과의 대등한 기술협력을 위해 신발끈을 고쳐 매야 할 때다. 이제 적극적인 국제 공동 기술개발을 위한 지원 환경이나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실질적인 성과를 위해 앞으로 정부를 비롯한 여러 주체가 힘을 모아 중소·중견기업들의 도약을 위해 발벗고 나서야 하겠다.
  • 헝가리 총선도 극우 돌풍

    헝가리 총선도 극우 돌풍

    올 들어 스위스 이민제한 국민투표와 프랑스 지방선거를 휩쓴 ‘극우 돌풍’이 헝가리까지 덮쳤다. 다음 달 치러지는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유럽연합(EU) 해체를 주장하는 극우 정당들이 선전하면 EU는 최대 위기를 맞을 전망이다. 6일(현지시간) 실시된 헝가리 총선에서 우파 여당인 청년민주동맹(피데스)은 지지율 44.8%를 얻어 199석 중 132석을 확보했다. 피데스 당수인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3선이 확정됐다. EU와 대립각을 세워 온 ‘독불장군’ 오르반은 외국기업 적대 정책을 더 강하게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사적연금을 국유화했고, 외국은행으로부터 ‘금융위기 세금’을 걷어 대출자들을 지원했다. 외국전력 회사를 압박해 전기료를 낮추기도 했다. 우파 싹쓸이는 극우 민족주의 세력에게도 달개를 달아줬다. 극우 정당인 조빅(Jobbik·더 나은 헝가리를 위해)은 21.0%를 득표해 24석을 차지했다. 좌파연합은 25.5%(38석)에 그쳤다. 미국 조지아대학의 카스 머드 교수는 “조빅의 이번 득표율은 EU 각국 선거에서 극우정당이 얻은 최고의 성적”이라고 말했다. EU 탈퇴를 공약으로 내세운 조빅은 극우 이미지를 최대한 숨겨 유권자의 마음을 얻었다. 당수 가보르 보나는 동료 의원이 “의회 내 유대인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즉각 이를 사과하는 한편 최저임금 인상, 일자리 창출 등 기존 정당과 비슷한 공약을 내세웠다. 프랑스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FN)이 지난달 지방선거에서 11개 시장을 석권하며 돌풍을 일으킨 것과 비슷한 전략이다. ‘극우 돌풍’이 주목받는 이유는 다음 달 22~25일 유럽의회 선거가 치러지기 때문이다. EU 회원국 국민들은 자기 나라에 할당된 숫자만큼의 의원을 뽑아 유럽의회에 보낸다. 각국 대표들은 정치 성향에 맞춰 유럽의회에서 정치 그룹을 형성하는데 이번 선거에서는 극우 정당의 후보들이 대거 당선돼 강력한 반EU 그룹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로이터는 “조빅의 부상은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예견하는 징조”라면서 “조빅과 프랑스 국민전선, 네덜란드 자유당이 파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근대 태동기 유럽·신대륙엔 무슨 일이

    근대 태동기 유럽·신대륙엔 무슨 일이

    근대의 탄생 1·2/폴 존슨 지음/명병훈 옮김/살림/1권 936쪽, 2권 800쪽/각 4만원 중세의 신(神) 중심 세계관이 깨지고 14~16세기 르네상스, 17세기 종교개혁을 거쳐 도달한 18세기 후반. 인간 이성으로 구습을 타파하려는 계몽주의와 산업혁명,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천명한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이 시기에 근대가 출발했다고 보는 게 정설이었다. 하지만 영국 역사학자 폴 존슨은 19세기 초반, 좀 더 구체적으로 1815년부터 1830년까지 15년 동안 근대가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그의 역작 ‘근대의 탄생’에 따르면 지난하고 파괴적인 나폴레옹의 전쟁이 근대의 실질적 탄생을 늦췄으며, 1815년 6월 18일 워털루 전쟁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웰링턴 장군이 이끄는 영국·프로이센 연합군에 패배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급격하고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길고 긴 전쟁 뒤에 사람들이 강렬하게 원했던 것은 ‘안정’이었다. 근대적 변화는 그 요구의 바탕 위에서 솟구쳐 올랐으며 그 변화들은 사람들의 신념, 열정, 가치, 사고방식을 근대적으로 변화시켰다.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존슨은 다양한 자료들을 토대로 정치·군사·과학·종교·철학·예술 등을 뒤흔든 인물들을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딱딱한 현대사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풀어 낸다. 우선 예술 사조가 바뀌었음을 언급한다. 나폴레옹이 끔찍하게 좋아했던 고전주의 예술이 물러가고 그 자리를 빅토르 위고 같은 낭만주의 예술이 채운다. 프랑스가 세계 지성계에서 리더십을 상실하면서 문화가 국제화되기 시작한다. 유럽은 칸트의 관념론 철학, 괴테의 서정시와 희곡, 실러의 시극 등 독일 문화에 빠져들게 된다. 통신과 교통의 급격한 발전은 근대를 꽃피우는 데 크게 기여했다. 대륙을 넘나드는 인구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유럽인들이 대거 신대륙인 미국으로 이민했다. 유럽은 인구 급증과 기후 이상으로 인한 대재앙은 면한 반면 미국의 인디언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고, 신대륙은 유럽에서 유입된 가축과 농산물, 동물과 해충, 곤충과 질병 등에 휩싸였다. 방적기 개발과 함께 목화 수요가 급증하면서 미국 남부에서는 노예제도가 정착한다. 네이선 로스차일드라는 런던 금융계의 거목이 등장했고, 신용 거래와 주식 거래가 늘어나면서 1825년엔 세계 최초의 금융위기가 찾아오기도 한다. 1820년대 중반 무렵부터 민중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함으로써 세계는 민주주의 시대로 이행할 단계를 밟는다. 근대의 출발점에 대한 존슨의 주장은 책장을 넘기면서 점점 더 설득력을 얻어 간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軍·孝·天·性 조선에선 그림으로 多 배웠소

    軍·孝·天·性 조선에선 그림으로 多 배웠소

    그림으로 본 조선/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이영경 책임기획/글항아리/464쪽/2만 5000원 한 장의 그림이 때로는 1000권의 책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던가. 선과 면, 색의 조화를 통해 보이는 것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움직임과 소리, 정신까지도 이미지에 담을 수 있는 까닭이다. 조선 시대를 살았던 우리 선조들은 이미지의 효과를 십분 활용했다.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의 규장각 교양총서 제10권 ‘그림으로 본 조선’은 이미지를 통해 조선의 역사를 들여다봤다는 점에서 충분히 관심을 모을 만하다. 기존 문헌 자료 위주의 역사 읽기에서 조금 비켜 나간 것인데 그 조금의 차이가 매우 큰 의미로 다가온다. 조선 시대 사람들에게 이미지는 단순히 예술적 감상을 위한 회화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기록 속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과학, 군사, 사상, 교육, 문학, 종교, 춘화(春畵) 등 사용 범위에 제한이 없었다. 문자로는 미처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그림이라는 수단을 통해 더욱 생생하고 정확하게 기록을 남긴 셈이다. 하늘 아래 땅을 딛고 살았던 조선 사람들도 우주에 관심은 많았지만 당시의 도상들을 보면 과학 인식 구조가 전통 시대의 틀에 머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천지도(天地圖)는 천원지방,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난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를 좀 더 정교하게 다듬은 것이 하늘은 공(球)처럼 둥글고 그 안쪽에는 물이 절반 정도 채워져 있으며 물 위에 네모난 땅이 떠 있다는 혼천설이다. 조선 전기의 우주론이 동시대 중국에 비해 무척 단순하고 수준이 낮은 이유는 유학자들이 우주의 구조 자체보다는 유가의 가르침 안에서 우주를 이해하려 했기 때문이다. 하늘이 구형일 뿐 아니라 음양의 기가 하늘에서 순환하고 정육면체의 땅이 기에 의해 중앙에 떠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조선 시대 군사 서적은 이미지 활용 기록의 백미라 할 만하다. 조선이 문치주의를 표방한 선비의 나라였던 까닭에 군사력이 취약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왕조 500년을 지탱한 근간이 조선의 전쟁 기술이었음을 수많은 이미지들이 보여주고 있다. 신숙주 등이 집필한 ‘국조오례서례’ 중 하나인 군례(軍禮)에는 창검, 총통완구, 장군화통 등 무기에서부터 병사들이 입는 갑옷까지 상세히 그려져 있다. 1598년 편찬된 조선 최초의 무예서인 ‘무예제보’와 1759년 간행된 ‘무예신보’의 내용에 새로운 훈련 종목을 추가해 1790년(정조 14년) 펴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는 예술 차원으로 성숙한 조선 후기 전투술을 자세히 보여준다. 정조가 직접 편찬 방향을 잡은 후 박제가, 이덕무 등 규장각 검서관이 작업한 무예도보통지는 장창, 기창, 쌍수도, 월도 등 다양한 무기를 사용한 24가지 근접 전투 기술의 병기와 개별 동작 및 전체 움직임에 대해 매우 사실적인 그림과 해설을 붙여 정리했다. 이미지가 보조 역할에 머물지 않고 주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글을 잘 몰랐던 우매한 백성과 시골 아낙들에게 유교적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만든 ‘삼강행실도’가 대표적인 예다. 조선이 건국되고 유교 국가로서 기틀을 다져 나가던 때에 일어난 패륜 사건이 국가 차원에서 백성을 교화시키려는 목적으로 1434년(세종 16년) 삼강행실도를 편찬한 계기가 됐다. 1428년(세종 10년) 진주에 사는 김화(金禾)라는 이가 아버지를 살해한 패륜 사건이 조정에 보고되자 관료들은 유교질서와 가치관을 알릴 수 있는 책을 제작해 백성이 항상 보고 배우도록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중국과 우리나라 역대 사적에서 삼강의 절행이 뛰어난 충신, 효자, 열녀를 110명씩 추려 3권 3책으로 펴낸 책은 그 행적을 먼저 그림으로 그리고 뒷면에 한문 설명과 시, 찬이 덧붙여진 방식이다. 그림이 들어간 이유는 문맹의 백성을 가르치기 위한 방편이었으나 그림의 역할은 그 이상이었다. 하나의 이야기를 몇 개의 장면으로 형상화한 다원적 구성 방식으로 독자의 감성에 호소함으로써 교화의 효과를 배가시키는 핵심 역할을 했다. 처자식이 눈앞에서 죽어 가도 절의를 꺾지 않는 충신, 손가락을 끊고 허벅지를 베어 부모의 병을 고치려 한 효자, 청상과부가 돼 개가를 권유받자 코와 귀를 베어 가며 거부한 영녀(令女) 등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끔찍함과 충격이 묻어나는 이야기들이 숱하게 실려 있다. 조선 시대 기록 자료인 도(圖), 도설(圖說), 도해(圖解)도 빼놓을 수 없다. 글과 그림을 섞어 사물이나 개념을 설명한 것으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림을 사용한 사례다. 궁중의 각종 행사 장면을 그린 반차도(班次圖), 제례 관련 도설은 글과 그림으로 조화롭게 설명한 조선 기록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부산시, 전국 첫 원전 통합 방호 매뉴얼

    부산시, 전국 첫 원전 통합 방호 매뉴얼

    고리 원전이 있는 부산에 전국 처음으로 원전통합 방호 매뉴얼이 제정돼 운영된다. 현재 전국에는 고리, 영광, 월성, 울진 등에 원전이 있다. 부산시는 오는 7일 기장군 고리원자력본부에서 원전통합 방호 매뉴얼 제정 선포식을 연다고 4일 밝혔다. 선포식 뒤 부산시 원자력시설 방호협의회 의장인 허남식 부산시장을 비롯해 방호협의회 위원 17명이 참석한 가운데 ‘원자력시설 방호협의회’를 개최한다. 회의에서는 ▲고리원전 통합 방호 매뉴얼 신규제정 보고 ▲고리원전 방호태세 개선대책 보고 ▲ 물리적 방호시설 현장점검 등이 이뤄진다. 매뉴얼에는 방호태세 단계별 민·관·군·경 조치 사항을 공동조치부호 91개로 작성해 유사시 단계별 조치 부호에 따라 관련기관의 공동조치 등 공조활동을 하도록 돼 있다. 특히 평상시 비행체를 활용하는 동호인에 대한 공역통제와 경량비행체 등록, 북한의 초경량비행체를 포함한 무인기에 대한 기관별 조치 사항을 명확히 했다. 최근 북한의 무인항공기가 청와대 상공까지 촬영하는 도발 사례를 볼 때 부산 지역의 선제 대응은 앞으로 다른 원전 방호 매뉴얼 제정의 본보기가 될 전망이다. 또 지난달 핵 안보 정상회의에 따라 원자력 방호법 개정 논란이 국가 차원의 큰 이슈가 됐는데, 지역 차원의 원자력 시설에 대한 완벽한 방호태세 확립을 위한 노력은 매우 의미 있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시에 따르면 그동안 정부 주도로 통합 방재 매뉴얼을 갖췄으나 사고를 예방하는 방호 매뉴얼은 해당 기관별로 마련하는 데 그쳤다. 시는 원자력 특성상 사고가 일어났을 때보다 사고가 일어날 것에 대비하는 편이 더욱 중요하다고 보고 통합 매뉴얼 제정 작업을 벌였다. 고리 원전 내부 방호는 그동안 한국수력원자력이, 외부는 향토사단인 53사단이 지역 방위 차원에서 맡는 등 개별적으로 진행했다. 이번 매뉴얼은 이를 체계화해 통합 시스템으로 구축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26일 처음으로 열린 부산시 원자력시설 방호협의회에서는 각 기관이 통합 방호 매뉴얼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기관별 대응 매뉴얼을 작성해 이를 통합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한편 시는 원자력 안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올 초 조직개편 때 원자력안전계를 원자력안전실로 확대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신동엽-윤종신-김경호, 어린 시절 공개 ‘그 얼굴 그대로 남아있네’

    신동엽-윤종신-김경호, 어린 시절 공개 ‘그 얼굴 그대로 남아있네’

    ‘미스터 피터팬’ 세 MC(신동엽, 윤종신, 김경호)들의 어린 시절 모습이 공개됐다. KBS 2TV 대표 파일럿 ‘미스터 피터팬’은 오는 4일 첫 방송을 앞두고 신동엽, 윤종신, 김경호의 훈훈한 어린 시절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 속 신동엽은 마치 세상만사 불만이 가득한 어린이처럼 한쪽 눈썹을 찡그리고 있다. 한 올 한 올 정성스럽게 탄 2:8 가르마로 귀공자 자태를 드러내는 동시에 특유의 표정만으로 개구진 악당을 연상케 한다. 윤종신은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볼터치라도 한 듯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귀여운 가운데 남다른 구강구조가 시선을 집중시킨다. 무엇보다 그 당시 핫 유행 아이템으로 꼽히는 멜빵바지를 착용함으로써 패셔니스타다운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또한, 김경호는 현재의 모습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포동포동한 볼살의 우량아 포스를 뽐내고 있다. 쭉 뻗은 각선미와 스키니 몸매를 자랑하는 지금과 사뭇 다른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으며, 장군감으로 손색없는 듬직한 모습이다. 이에 대해 ‘미스터 피터팬’ 제작진 측은 “‘미스터 피터팬’을 통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놀이 문화를 찾아가는 40대 남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서 “평범한 40대 남자들이 온갖 고생 끝에 새로운 놀이를 배우며 좌충우돌 변해가는 모습을 담아낼 예정이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한편 철부지 MC들이 아지트에 모여 새로운 놀이에 도전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파일럿 프로그램 ‘미스터 피터팬’은 4월 4일 금요일 10시 첫 방송된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준의 바다 맛 기행] 나른한 봄, 기운 돋우는 조기

    [김준의 바다 맛 기행] 나른한 봄, 기운 돋우는 조기

    제주 추자도 남쪽에서 겨우살이를 한 조기들이 흑산도 근해를 거쳐 갯골을 따라 칠산바다에 이른 것은 청명일이다. 전남 영광 법성포가 내려다보이는 구수산에는 진달래가 지고 철쭉이 붉게 피어올랐다. 목냉기 술집 초막에는 분 냄새를 풍기며 아가씨들이 자리를 잡았다. 이제 본격적인 조기잡이 철이다. 연평도 위도 대리마을 원당에서, 태안 황도리 당집에서 기 내림으로 받은 깃발을 이물에 꽂고 칠산바다로 향했다. 50여년 전 칠산바다의 조기잡이는 이렇게 시작됐을 것이다. ●참조기·보구치 등 우리나라 연해에 10여종 서식 조기는 농어목 민어과에 속한다. 종류가 자그마치 180여 종에 이르며 우리나라 연해에서는 참조기, 보구치, 수조기, 부세 등 10여 종이 서식한다. 이 중 굴비를 만드는 참조기는 몸이 두툼하고 길이가 짧으며, 몸통 가운데 옆줄이 선명하다. 또 배는 황금색이며 꼬리는 부채꼴이다. ‘세종실록지리지’의 ‘나주목 영광군’편은 “석수어(石首魚)는 군의 서쪽 파시평(波市坪)에서 난다. 봄, 여름 사이에 여러 곳의 어선이 모두 이곳에 모여 그물로 잡는데 그 세금을 받아서 국용에 이바지한다”라고 적고 있다. ‘석수어’는 조기를, 파시평은 칠산바다를 이른다. 일제강점기에는 칠산탄, 고군산군도, 녹도, 연평도, 용호도 등에 조기어장이 형성됐다. 춘삼월에 서해로 북상하기 시작한 조기는 칠산바다를 지나 오뉴월이면 해주와 진남포 앞까지 올라갔다. 조기가 지나는 길목의 섬이나 어촌마을의 후미진 해안의 모래밭에는 초막을 짓고 술과 웃음으로 뱃사람을 유혹하는 아가씨들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흑산도 예리, 법성포 목냉기, 위도 치도리, 연평도 등의 선창에 희미하게 그 흔적들이 남아 있다. 이를 두고 조기파시라 했다. 조기잡이가 활발했던 경기도와 충청도 일대의 어촌마을에는 임경업 장군을 마을신으로 모신 곳이 많다. 조선 인조 때 청나라를 치기 위해 중국으로 가던 임 장군은 연평도 물골에 가시가 있는 엄나무를 꽂아 조기를 잡아 병사들의 주린 배를 채웠다고 한다. 그 뒤 연평도 등 황해도 일대에서는 임 장군을 ‘조기잡이 신’이라 부르며 마을신으로 모셨다. 임 장군이 최초로 조기를 잡았다고 전하는 곳이 연평도 당섬과 모니섬 사이의 안목이다. 지금도 이 지역에선 10여명의 주민들이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고 있다. 조기잡이 배가 바람에 의존하는 풍선배에서 동력선으로 바뀌면서 서해안 전역이 하나의 조기잡이 어장권으로 바뀌었다. 연평도 등 황해도에서 활동하던 무녀의 세력권도 경기도와 충청도까지 확대됐다. 황해도의 조기잡이 어업기술과 어로문화 또한 자연스레 서해로 전파됐다. 임 장군이 충청도 일대의 마을신으로 모셔진 것이나 황해도의 ‘배치기소리’가 서해 전역으로 확대된 것이 이를 방증한다. ●3월 중순 조기는 알 배고 통통 ‘으뜸’ 조기는 청명과 입하 사이인 음력 삼월 중순 곡우에 잡힌 것을 으뜸으로 여겼다. 이때 잡힌 조기는 알이 배고 통통해 ‘곡우사리조기’ 혹은 ‘오사리조기’라고 했다. 영광에선 곡우사리에 잡은 조기 중 가장 크고 실한 조기를 조상과 집안을 지켜주는 성주에게 올린다. 이를 두고 ‘조구심리’라고 한다. 조구는 조기의 전라도 말이다. 조구심리를 하기 전까지 산 사람은 조기를 먹을 수 없었다. 이때 잡은 조기로 만들 굴비를 ‘오가재비’라 불렀다. 칠산바다 가운데 있는 송이도라는 섬에서 조기를 잡았던 한 노인은 철쭉이 필 무렵 참조기떼가 몰려오면 바다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대통을 넣어 소리를 듣고 길목에 그물을 치면 조기가 그물에 하얗게 들어 그물이 둥둥 떴다고 했다. 외지 사람들이 아무리 큰 배를 가지고 와도 바닷속을 훤하게 들여다보는 섬주민들을 당해내지 못했다고 한다. ●서해 간척사업 후 칠산바다 조기 사라져 부안 계화도에서 만난 한 노인은 봄이면 조기들이 갯골에 몰려와 줍기만 해도 한 동이가 됐다고 했다. 그 많던 조기들이 계화도 간척 이후 사라졌다. 천수만과 영산강, 금강 일대의 갯벌로 향한 물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조기가 칠산바다에서 사라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지금은 가거도나 추자도 심지어 동중국에서 월동하는 조기를 잡고 있다. 그래서 제대로 크지 않는 조기가 알이 밴 채로 잡힌다. 더 자라지 못하고 종족 보전을 위해 산란을 해야 할 운명에 처한 것이다. 동해를 대표했던 명태가 사라졌듯 서해를 대표하는 조기도 사라졌다. 조기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하나의 문화라 할 만큼 소리, 굿, 어업, 산업 등에 끼친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글 사진 전남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joonkim@jeri.re.kr ■ 어떻게 먹을까 볕·해풍에 말리면 굴비 냉장시키면 ‘간조기’ 고추장·보리와도 찰떡 조기는 기운을 돋우는 생선이라 해서 조기(助氣)라고 했다. 산모나 환자는 조기죽, 조기미역국으로 허한 몸을 추스렸다. 또 제사나 잔치에서 상의 맨 윗자리를 차지한 것도 조기였다. 특히 조기젓은 궁중에서 김치를 담글 때 사용할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다. 조기를 볕과 해풍에 말린 게 굴비다. 가공과정은 염장과 건조로 나뉜다. 칠산바다에서 곡우사리 때 잡은 조기와 천일염을 번갈아 가면서 쌓은 뒤 가마니로 덮었다. 이를 ‘섶간’이라 한다. 그렇게 며칠을 두면 조기의 내장까지 소금이 배어든다. 이때 꺼내 찬물에 헹궈서 열 마리씩 엮어 걸대에 두세 달씩 말렸다. 법성포에는 건조굴비 외에도 독 속에 오가재비와 겉보리를 넣어 만든 통보리굴비, 쌀고추장에 통째 박아 두었다 찢어 먹는 고추장굴비도 있다. 보리가 조기를 건조시키면서 기름기는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오래 보관할 수 있었다. 옛 건조굴비는 딱딱했지만 요즘엔 꾸덕꾸덕하게 냉장 보관하는 ‘간조기’로 바뀌었다. 부드러운 것을 좋아하는 요즘 사람들 입맛에 맞춘 것. 칠산바다에서 조기가 사라지면서 가거도, 추자도 일대에서 잡은 조기로 굴비를 만든다. 심지어 원양어선들이 잡아오는 조기를 이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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