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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뢰받는 군을 위하여] (3) 초급장교 양성 실태

    [신뢰받는 군을 위하여] (3) 초급장교 양성 실태

    “작전참모 등 좋은 보직은 대부분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 맡아요. 학군단(ROTC)·학사 장교 출신들은 좋은 보직을 받는 기회가 많지 않은데, 나중에 그것이 능력으로 연결돼 진급에서 불리한 평가를 받게 됩니다.”(ROTC 출신 예비역 장교) “사단장 입장에서 육사 출신과 비육사 출신 중 누구를 더 쓰고 싶을까요. 육사는 군 간부 양성을 위해 우수한 애들을 뽑아 4년 동안 훈련시킨 자원들이고 ROTC·학사 장교 출신은 수준이 천차만별인 데다가 요즘엔 장기복무자 가운데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출신도 별로 없어요.”(육사 출신 현역 장교) 출신별로 진급과 보직을 둘러싼 군 조직 내 알력은 개개인의 능력을 떠나 화합을 저해하는 암적 존재다. 문제는 이 같은 갈등이 군의 말초신경 역할을 하는 초급장교(소위) 양성체계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군 당국이 육·해·공군 사관생도 양성 교육에만 치중하고 초급장교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ROTC·학사 장교 출신들의 질적 향상에 소극적이라 비사관학교 출신들의 입지도 그만큼 좁아지고 군이 활력을 잃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현행 군 인사체계는 모두에게 만족스럽지 못하다. 30일 새정치민주연합 진성준 의원실에 따르면 육군의 경우 올해(2015년도)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한 58명 가운데 육사 출신이 45명(77%), ROTC와 3사관학교 출신이 각각 5명(8.6%), 학사사관 출신이 1명(1.7%)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진급 대상자(대령) 대비 진급률로 비교하면 육사 출신은 753명 중 45명(5.97%), ROTC는 200명 중 5명(2.5%), 3사관학교는 207명 중 5명(2.41%), 학사 장교 출신은 15명 중 1명(6.67%) 등이다. 비육사 출신들은 장성 진급이 육사 출신에 편중됐다고 지적하고 육사 출신들은 능력에 비해 역차별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 육사 출신 장성은 “중령까지는 출신을 배제하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진급하지만 장성 진급 인사는 출신별로 배려해 어느 정도 할당한다”고 말했다. 학사 장교 출신 인사는 “육사 출신들로 편중돼 있어 우수 자원들이 학사 장교 지원을 기피하는 악순환이 심화되고 있다”고 반발했다. 문제는 군 안팎에서 출신을 막론하고 ROTC 등 비육사 출신 장교들의 자질이 예전에 비해 떨어졌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육군은 올해 ROTC 후보생(대학 1+2학년)으로 3960여명을 모집하는데 1만 7600여명이 지원해 4.44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울 주요 대학(남자 기준)에서 ROTC의 인기는 평균 이하다. 서강대가 1.7대1, 서울대 1.73대1, 연세대 1.89대1, 고려대 2.5대1, 중앙대 3.23대1, 한양대 3.56대1, 성균관대가 3.72대1로 집계됐다. 취업난이 심각함에도 주요 대학 출신들은 장교 임관에 대해 별 매력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최병욱 상명대 군사학과 교수는 “학벌과 학력이 반드시 장교로서의 자질로 직결된다고 할 수 없지만 똑똑하고 유능한 인재들이 군에서 장기 복무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군 관계자는 “병사들과 군 경험도 얼마 차이 나지 않는 소대장들이 똑똑해진 병사들을 가르치기가 예전보다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철휘(ROTC 13기) 예비역 대장은 “1961년 ROTC 1기생을 처음 배출한 이후 20기 정도까지 ROTC 출신은 유능한 인재로 꼽혀 전역 후 기업에서도 인기가 많았다”면서 “현재는 청년 실업이 늘어나는 데 비해 ROTC 출신에 대한 우대도 없고 동기 부여도 없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군 당국의 인력 획득 정책은 여전히 소수의 사관생도 육성에 치우쳐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관학교는 키우되 ROTC, 학사 장교 출신들은 많이 뽑은 뒤 단기간 활용하다 전역시키는 소모품 정도로만 인식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새정치연합 안규백 의원실에 따르면 장교 1명당 양성 비용은 육사가 2억 3000만원인 데 비해 3사관학교는 5800만원, 학군 장교(ROTC)의 경우 1600만원, 학사 장교는 1100만원에 그쳤다. 육사와 3사는 품위유지비로 월 41만 4100원을, 교재지원비로 월 6만 8120원을 받는 반면 ROTC 출신들은 월 5만원의 교재지원비를 받을 뿐이다. 한 예비역 대령은 “사관 생도뿐 아니라 단기 복무자가 대부분인 ROTC, 학사 장교 후보생들에게까지 굳이 인센티브를 줄 필요가 있느냐는 인식이 만연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학 교육과 병영훈련을 통해 유능한 초급간부를 양성한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의 경우 ROTC를 대부분 4년 과정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 매년 1만 2000명의 장학생을 선발하고 학년별로 300~500달러씩의 수당을 지급하는 등 다양한 동기 유발 제도를 실시한다. 콜린 파월(전 국무부 장관) 전 합참의장이나 마크 밀리 현 육군참모총장 등 ROTC 출신 군 고위직의 진출도 활발하다. 한국군에서 대장(4성 장군)까지 오른 ROTC 출신 인사는 5명에 불과하다. 이대로 가면 더이상 대장을 배출하기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군 당국은 현재 28개월인 ROTC 복무 기간을 단축해 우수 인재를 끌어들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군 소대장들이 대부분 병사에서 올라와 군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우리 군 초급장교들의 숙련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최 교수는 “초급장교는 병력과 장비를 다루는 관리자이자 유사시 병사들과 호흡해야 하는 군의 말초신경”이라면서 “소수의 육사 출신들이 독식하는 구조를 바꾸려면 우수 인재를 키울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고달픈 육백리 끝에… 마중 나온 가을

    고달픈 육백리 끝에… 마중 나온 가을

    가을이 왔나 싶었습니다. 어서 오시라며 버선발로 뛰어 나가 맞고 싶었습니다. 한데 아직 일러 가을은 오지 않았고 대신 초가을 풍경이 먼저 와 있었습니다. ‘외씨버선길’이라고 부릅니다. 경북의 오지 ‘BYC’(봉화·영양·청송)와 강원 영월을 잇는 트레일을 일컫는 말입니다. 초가을 정취 내려앉은 그 길을 걸었습니다. 정확히는 경북 영양과 봉화를 잇는 ‘치유의 길’ 구간이었습니다. 고달팠던 여름을 털고 치유의 가을을 맞기에 이만한 곳도 없지 싶습니다. ●선비들이 숨어 살기 좋은 곳… 승무 같은 산길·숲길·들길 영양은 나라 안에서 대표적인 오지 중 하나로 꼽힌다. 구주령과 황장재, 창수령 등 사방을 둘러친 높은 산마루 안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영양의 옛 지명이 ‘선비들이 숨어 살기 좋은 곳’이란 뜻의 고은(古隱)이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외씨버선길 ‘치유의 길’ 구간은 이처럼 험한 영양 땅을 두루 거친 뒤 봉화로 넘어간다. 외씨버선길은 봉화·영양·청송의 영문 이름 첫 글자를 딴 ‘BYC’와 영월의 두메마을들을 연결하는 트레일이다. 13개 테마코스와 2개 연결코스를 합해 전체 길이가 240㎞나 된다. 청송 주왕산 입구에서 시작해 영월 관풍헌에서 끝난다. 이번에 걸은 외씨버선길은 일곱번 째 길이다. 영양 쪽 월악산자생화공원이 들머리, 봉화 우련전(雨蓮田)이 날머리다. 길이는 8.3㎞. 체력이 달린다면 봉화에서 시작해 영양에서 마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영양 쪽 구간과 달리 봉화 쪽에선 2㎞ 남짓 오르막이 이어지다 줄곧 내리막이다. 외씨버선길 이름은 조지훈의 시 ‘승무’ 중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구절에서 따왔다.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지는 조붓한 산길, 보일 듯 말 듯 휘어지고 돌아가는 숲길과 들길, 움직이는 듯 마는 듯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승무의 춤사위 같은 길이 바로 ‘외씨버선길’이다. 오이씨처럼 볼이 조붓하고 갸름해 맵시가 있는 버선이 바로 외씨버선 아니던가. 길의 형태도 외씨버선을 닮았다. 이름의 모티브가 된 ‘조지훈 문학길’은 외씨버선길 여섯번째 구간으로 조성됐다. ●전국 최대 일월자생화공원… 일제강점기 선광장 유적에 세워 들머리는 일월자생화공원이다. ‘전국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야생화 공원’이란 자찬보다, 공원 뒤편 산자락에 흉물스럽게 남아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눈길을 확 잡아 끈다. 1939년 일제강점기 때 일월산에서 채굴한 금·은·동·아연 등 광물을 처리하기 위해 만든 ‘용화광산 선광장’이다. 나라 안에서 유일하게 남은 일제강점기 선광장 유적으로, 2006년 근대문화유산(제255호)으로 등록됐다. 1976년 폐광된 이후 독성 강한 물질들을 내뿜다가 2001년에야 밀봉됐고, 2004년부터 자생화를 심어 공원으로 꾸몄다. 광산 주변으로 목재 데크를 조성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광산 위편에 남아 있는 탄차까지 조목조목 살필 수 있다. 용화2리는 아랫대티와 윗대티로 나뉜다. ‘대티’란 영양에서 봉화로 넘어가던 일월산 ‘큰 고개’를 뜻한다. 윗대티에서 칡밭목까지 4㎞ 가까운 그윽한 산길이 이어진다. 2009년 사단법인 생명의 숲이 주최한 ‘아름다운 숲길’ 공모에서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된 길이다. 오래전 이 길은 영양군 일월면과 봉화군 재산면을 잇는 번듯한 31번 국도였다. 안내판은 “일제강점기에 일월산에서 캐낸 광물을 봉화 장군광업소로 옮기기 위한 수탈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적고 있다. 해방 이후 한동안 쓸모없이 버려졌던 도로는 1960년대 들어 일월산과 영양 지역 국유림에 대한 대대적인 산판(벌목)이 활기를 띠면서 다시 분주해졌다. 한국전쟁 판에서 흘러나온 이른바 ‘제무시’(GMC사 트럭)가 곧고 미끈한 육송을 가득 싣고 이 도로를 쉴새 없이 넘나들었다. 당시 삶의 애환과 땀방울이 조붓한 산길에 고스란히 서려 있는 듯하다. ●접신의 땅 일월산… 음기가 모여 있는 용화선녀탕 석굴 길은 일월산 기슭을 따라간다. 일원산은 무속인들이 ‘접신(接神)의 땅’이라 부르는 영험한 산이다. 계곡 곳곳에 돌탑, 기도처 등 치성의 흔적을 쌓아뒀다. 대티골은 그 가운데 무속인의 본거지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일반적으로는 용화선녀탕이 ‘기가 센’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옥황상제를 맞기 위해 선녀들이 머물던 곳이라는데, 작은 폭포가 오랜 세월 흘러내리며 만든 욕조 모양의 소(沼)가 인상적이다. 현지 무속인들이 정말 기가 세다고 믿는 곳은 따로 있다. 선녀탕 위쪽의 석굴이다.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석굴 앞에 서면 뒷목이 서늘해지고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듯하다. 숲길 주변에선 가을철 송이버섯이 많이 난다. 길목마다 송이 도둑을 잡기 위해 주민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킨다. 실수로 송이버섯 하나라도 채취했다간 크게 욕볼 수 있다. 간혹 입산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다. ‘영양군 일월면’과 ‘봉화군 소천면’ 경계를 알리는 옛 국도 표지판을 지나면 시멘트 포장길이다. 종착지인 우련전까지 이어진다. 시멘트길은 다소 볼썽사납지만 주변 낙엽송숲은 깊고 아늑하다. 영양엔 은근히 볼거리가 많다. 영양의 명소 두들마을에서 5㎞쯤 떨어진 곳에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1872~1933) 지사의 생가가 있다. 남 지사는 영화 ‘암살’의 여주인공 안옥윤(전지현 분)의 실제 모델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1895년 남편이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하자 유복자를 키우며 의병활동을 지원하던 남 지사는 1933년 일제의 무토 노부요시 만주국 전권대사를 암살하려다 중국 하얼빈에서 체포돼 그해 8월 순국했다. 입암면 산해리 강가엔 봉감모전오층석탑이 홀로 서 있다. 국보 제187호. 탑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모전석탑이다. 안내판에 따르면 기단의 모습과 돌을 다듬은 솜씨, 감실의 장식 등이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정연한 축조방식 덕에 균형 잡힌 자태와 장중한 아름다움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청송에 ‘꽃돌’이 있다면 영양엔 ‘폭포석’이 있다. 검은 현무암 사이에 석영 등 흰빛의 광물질이 섞인 돌로, 실제 폭포를 보는 듯하다. 오래전 화산 폭발 때 용암과 섞여 올라온 석영 등이 식으며 형성됐다고 한다. 입암면 선바위관광지 안의 분재수석야생화전시관에 다양한 형태의 폭포석이 전시돼 있다.영양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숲이 두 곳이다. 감천 측백수림(천연기념물 제114호)은 측백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 측백나무가 중국에서 도입됐다는 학설을 부인하는 중요한 학술적 증거라는데, 현재 오토캠핑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석보면 주남리엔 시무나무, 비술나무숲(천연기념물 제476호)이 있다. 시무나무 최고수령은 350년 정도다. 글 사진 영양·봉화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4) ▲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중앙고속도로 서안동나들목으로 나와 34번 국도를 따라가다 안동시내, 임하호를 거쳐 청송군 진보에서 31번 국도로 갈아타고 곧장 가는 게 일반적이다. 중앙고속도로 풍기, 영주 나들목으로 나와도 비슷하다. 5번 국도를 따라 영주 거쳐 36번 국도를 타고 직진, 춘양 들머리 지나 31번 국도 만나 우회전해 일월·영양 쪽으로 간다. 봉화터널과 영양터널을 거푸 지나면 용화2리 자생화공원이 나온다. 경북북부연구원 외씨버선길 탐사팀 683-0031. ▲ 맛집 영양에선 흑염소 전문집들을 종종 본다. 흑염소 한 마리를 통으로 잡아 1박 2일 여행기간 동안 먹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맛보다는 보신에 가까워 보인다. 영양보양탕(682-9924)은 1인분 단위로 흑염소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집이다.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맛집이기도 하다. 흑염소 수육도 좋지만 맑게 끓여낸 탕이 일품이다. 읍내 끝자락에 있다. 한울가든(682-7300)은 가자미찜, 다슬기국 등 시골밥상을 내는 집이다. 영양군청 앞에 있다. ▲잘 곳 두들마을 석계종택(682-1480), 영감댁·병암고택(682-8050) 등에서 고택 체험을 할 수 있다. 모텔 등 일반 숙박업소는 읍내에 몰려 있다. 가족 단위라면 한화리조트 백암온천을 권한다. 영양에서 구주령 넘어가면 나온다. 온천과 숙박을 겸할 수 있다. 787-7001.
  • [新국토기행] 경기도 안성

    [新국토기행] 경기도 안성

    경기도 남쪽에 자리한 안성시는 다양한 즐거움을 지닌 매력적인 도시다. 메트로 시티인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이지만 자연환경과 풍경을 농촌의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한 곳이 많다. 지역 여기저기가 느리지만 정성스러운 완곡한 우리 민족의 ‘흥’을 느낄 수 있는 예술문화도시이다. 국가 지정 또는 도 지정의 무형문화재가 7명이 있고 300명이 넘는 유·무명 예술인들이 활동하고 있는 곳이다. 아슬아슬 손에 땀을 쥐는 어름산이의 공연과 신명 나는 가락이 어우러지고, 볼거리와 먹거리 또한 가득하다. 아이들은 물론 어르신까지 복합적인 세대가 한 가족이라면 이들의 오감을 만족하게 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 바로 안성이다. >>볼거리 ●아슬아슬한 흥겨움 선물, 안성남사당 공연장 전통공연과 문화예술을 체험하는 안성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이다. 안성에 가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안성남사당공연장’을 비롯해 도심 속 천문대로 각광받는 안성맞춤천문과학관, 안성맞춤공연문화센터, 사계절 썰매장, 잔디공원, 분수광장, 야생화단지, 수변공원 등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남사당공연장에서는 조선 최초이자 유일한 여자 꼭두쇠 바우덕이의 생애를 중심으로 무동놀이, 버나놀이 등 남사당놀이 여섯 마당 공연을 볼 수 있다. 특히 외줄에 올라 걷고, 뛰고, 하늘로 솟구치다가 줄 위에서 재담을 펼치는 바우덕이 역의 어름산이 묘기는 아슬아슬하면서 감동적이다. 공연이 끝난 후에 풍물단과 관객이 함께 어우러지는 신나는 뒤풀이와 기념사진 촬영을 할 수 있다. 상설공연은 3~11월 매주 토요일 오후 4시, 일요일 오후 2시에 진행된다. 공연을 본 후 많이 찾는 인근 안성맞춤천문과학관은 국내 최대 구경을 자랑하는 300㎜ 굴절망원경과 3축식 4D 영상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어린이들에게는 천문과학에 대한 꿈과 희망을 키우고 바쁜 일상에 지친 어른들에게는 어릴 적 별자리를 바라보던 추억을 되살릴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안성맞춤공예문화센터에는 도자·금속·목공·섬유·한지·페인팅 등 6개 분야 8개 공방이 입주해 시민과 학생들에게 다양한 공예기술을 전수한다. ●유기 제작 과정 볼 수 있는 안성맞춤박물관 유기는 안성의 대표 상품이다. ‘안성맞춤’이라는 말도 안성 유기에서 비롯됐다. 안성맞춤박물관에서는 유기그릇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한다. 고운 빛깔을 내기 위해 장인이 직접 놋쇠를 수천 번 두드려 형태를 잡는 초기 제작에서부터 완성에 이르는 과정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유기의 제조 방법으로는 두드려서 만드는 ‘방짜기법’과, 쇳물을 녹여서 만드는 ‘주물기법’, 그리고 그 중간 형태인 ‘반방짜기법’ 등이 있다. 안성은 이 중 일제강점기 이후 주물유기 제작으로 유명했다. 유기전시실에서는 이와 같은 주물기법 유기의 제작 과정과 특성을 모형과 영상을 통해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몽환적 풍경에 매료되는 금광·고삼 호수 안성은 호반의 도시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호수(저수지)가 많다. 이 가운데 금광호수는 빼어난 경관으로 뭇사람들의 시선을 잡을 만하다. 새벽 물안개가 피어오를 무렵이면 호수의 경치는 절정을 이룬다. 차를 멈추고 호숫가를 바라보면 반짝이는 은빛 물결이 마음에 평온을 선사한다. 고삼호수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섬’의 촬영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른 아침 물안개가 선사하는 몽환적인 풍경과 저수지 물 위에 떠 있는 수상 좌대, 그 위에서 세월을 낚는 강태공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그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안성 8경’에도 이름을 올렸다. 물안개 속 연꽃처럼 피어오르는 일출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주말이면 수많은 사진작가가 몰려온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014년 고삼지를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선정했다. 금광호수와 고삼호수는 붕어 등 씨알 굵은 민물고기가 잘 낚이는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호반을 따라 연결된 드라이브 코스는 낭만을 더해 준다. 주변에 장어구이집, 매운탕집 등 솜씨 좋은 맛집이 많아 당일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어사 박문수·궁예의 흔적 간직한 칠장사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칠현산 자락에 자리를 잡고 있는 천년 고찰이다. 신라 선덕여왕 5년(636년)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졌다. 국보 296호인 오불회괘불탱과 칠장사 혜소국사비(보물 488호), 인목왕후어필(보물 1627호) 등 귀중한 문화재들이 많다. 조선 명종 때 임꺽정이 스승 병해 스님과 함께 10여년간 머물던 사찰로,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 나오는 일곱 도적과 갖바치 스님 이야기의 배경이 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어사 박문수가 칠장사 나한전에서 기도를 드리고 난 뒤 장원급제했다고 해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후고구려 왕이었던 궁예는 칠장사에 머물며 불교 수행과 무술을 익혔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을 키웠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칠장사에는 한눈에 ‘궁예’를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벽화들이 있다. ●남사당패 본거지 청룡사·워터월드 갖춘 청룡호 고려 공민왕 13년(1364년)에 나옹화상이 중창한 유서 깊은 고찰로 경내에 대웅전, 영상회괘불탱, 감로탱 등 많은 불교문화 유적이 있다. 특히 청룡사는 전국을 떠돌며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 주었던 남사당패의 본거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청룡사 주변은 우리나라 포도의 주된 생산지로 당도 높은 포도를 맛볼 수 있다. 인근 청룡호수는 수질이 깨끗하고 주변 경관이 수려한 것으로 유명하다. 모터보트, 수상스키 등 수상레포츠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워터월드가 있어 주말 가족 나들이 코스로 인기가 있다. 진천 방향 38번 국도는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하다. 청룡사를 품은 선운산(547m)은 산세가 부드럽고 아담해 당일 산행지로 손색이 없다. ●임진왜란·병자호란의 격전지 죽주산성 죽주산성은 고려 때 몽골군으로부터 여러 차례 공격을 당했고, 임진왜란·병자호란 때도 격전지로서 조상들의 호국정신이 깃든 역사의 현장이다. 안성시 북동쪽에 있는 해발 372m 높이의 비봉산 동쪽 자락에 있다. 금강 유역에 속하는 진천, 청주지역과 안성천 유역권에 속하는 안성·평택지역과 접하고 있어 타 지역으로 나가는 관문 구실을 했다. 이런 지리적 조건 덕분에 고대부터 죽산은 교통의 중심지, 군사적 요충지로 주목받았다. 성안은 사방이 나무로 둘러쳐진 오목한 산세가 비바람을 막아준다. 산성 안에는 고려 때 죽주산성에서 몽골군을 물리쳐 좌우위장군(左右衛將軍)에 오른 송문주 장군 사당이 있다. 세월의 흔적을 말해 주는 이끼 낀 성곽 둘레길을 걷다 보면 안성은 물론 이천·장호원이 시야에 시원스럽게 들어온다. ●김대건 신부의 시신 안장된 미리내성지 1846년 병오박해 때 순교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시신이 이곳에 안장되면서 순교 사적지가 되었다. 천주교 103위의 성인 시성을 기념하려고 세운 웅장한 성당이 있다. 성지로 가는 길은 입구부터 숨이 멎을 만큼 고요하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미리내성지에 도착하면 각각의 의미를 지닌 조각상들이 길을 안내한다. >>먹거리 쌀과 포도, 한우, 배, 인삼은 안성 5대 특산물이다. 특산물은 ‘안성마춤’이라는 공동브랜드를 달고 소비자들에게 간다. 소비자들이 귀하게 대접한 덕분인지 안성마춤 브랜드는 전국 지자체 가운데 최초로 9년 연속 퍼스트브랜드 대상을 차지했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다. 안성에는 맛집도 즐비하다. ‘안성국밥’, ‘한우탕’,‘안성쌀밥’ 등이다. ●품질경영시스템으로 엄격 관리하는 안성쌀 안성 쌀은 청정지역의 기름진 들에서 생산해 최신식 도정시설인 미곡종합처리장에서 가공했다. 좋은 원료로만 엄선해 최신 설비와 최고의 기술로 돌, 뉘, 겨 등의 물질을 제거한 청결미이다. 생산-보관-가공-판매의 전 과정을 ISO 9001에 의한 품질경영시스템과 이력제, 우수농산물인증(GAP)으로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입안 가득 톡 터지는 단맛 쏟아내는 포도 안성은 국내 포도 재배의 효시 지역으로 알려졌다. 드넓은 포도밭에서 당도 높은 고품질의 포도가 생산된다. 특히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이어지는 제철에 서운면 일대의 대단위 포도농장을 찾으면 입안 가득 톡 터지며 단맛을 쏟아내는 안성 포도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안성마춤 포도는 경기도 품평회에서 2년 연속 대상을 받았다. ●사포닌 함량에서 앞서가는 6년근 인삼 안성은 차령산맥 기슭에 있어 온난하며 강수량이 적고, 특히 밤낮의 기온차가 높아 6년근 인삼(홍삼) 재배의 최적지로 인정받고 있다. 몸체가 길고 단단하며 지근이 잘 발육된 안성인삼은 향이 강하고 사포닌 함량이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높다. 소비자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안성의 인삼재배 시초는 1945년이다. 피난민 윤석품씨가 경기도 장단구에 인삼재배를 한 것에서 유래를 찾는다. 1961년부터 재배 지역이 대덕면 건지리, 삼죽면 미장리, 내강리 등지로 확산돼 본격적인 대규모 경작이 시작됐다. 안성의 인삼은 최고의 성숙기인 6년근이 되면 몸체가 길고 단단한 것이 특징이다. ●달고 육질 부드러워 궁중에 진상되던 배 안성은 전국의 5대 배 주생산지다. 안성 배는 당도가 높은 데다 과즙이 풍부하고 육질이 부드럽다. 저장력이 강해 궁중에 진상되던 한국 배의 대명사이다. 빛깔이 담황색이고 열매껍질이 고와서 아름답고 무게는 개당 500~700g으로 크다. 과육은 순백색으로 연하다. 당도는 평균 13도 이상이다. 2008년 ‘전국으뜸농산물 전시회 및 품평회’에서 대상을 받으며 전국 최고의 품질을 인정받았다. ●바코드로 출생부터 사육 관리받는 명품 한우 안성 한우는 출생에서부터 바코드를 부여해 성장과정과 사육관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안심클릭시스템으로 특별관리하고 있다. 특히 지방이 얇고 육질이 부드럽고 감칠맛이 뛰어나 최상품 한우로 손꼽힌다. 안성은 소를 사육하기에 알맞은 구릉지, 목야지 등이 많아 일찍이 축산업이 발달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프로야구] 특명, 호랑이를 때려라

    [프로야구] 특명, 호랑이를 때려라

    지난 18일 5위 자리를 재탈환한 KIA가 1주일째 자리를 지키면서 ‘가을 야구’ 진출 경쟁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그러나 아직 30경기 이상 남아 있어 안심할 수는 없는 처지다. 한화와 SK에 롯데까지 엉겨 붙어 4파전 양상으로 확대된 5위 다툼 최종 승자는 이들 팀 간 맞대결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25일 56승55패로 승률 .505를 기록 중인 KIA와 2경기 차로 쫓고 있는 6위 한화는 아직 네 차례 대결이 더 남아 있다. 다음달 1~2일 대전에서 2연전이 펼쳐지고 나머지 2경기는 다음달 15일 이후 편성된다. 한화가 이들 4경기에서 3승1패를 거둔다면 승차 2경기를 줄일 수 있다. 반면 2승2패에 그치면 승차를 줄일 수 없어 5위 탈환이 쉽지 않다. 한화가 KIA전에서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7위 롯데도 다음달 3~4일 광주에서 KIA와 2연전을 치르는 등 4경기가 남아 있다. KIA와의 승차가 4경기로 다소 많지만 맞대결에서 이기면 순식간에 따라붙을 수 있다. 특히 올 시즌 롯데는 KIA와의 상대 전적에서 7승5패로 앞서는 등 강한 모습을 보였다. 최근 10경기에서 7승3패로 상승세를 탄 롯데로서는 지금의 분위기를 계속 이어 가야 한다. 롯데는 다음달 10~13일 SK, 한화와 잇달아 경기를 치러 이들을 따라잡거나 밀어낼 기회로 삼을 수 있다. 8위로 주저앉은 SK는 KIA와 5경기나 남아 있어 따라잡을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다. 다만 올 시즌 KIA에 3승8패로 크게 열세인 게 걱정이다. 최근 10경기에서 2승8패로 가라앉은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게 우선이다. 지난 22~23일 한화와의 2연전에서 1승1패 장군멍군을 부르며 5위 수성에 성공한 KIA는 5위 경쟁 팀과의 맞대결에서 싹쓸이 패배만은 피해야 한다. 다음달 1~4일 한화, 롯데와 치르는 4경기가 올 시즌 농사를 좌우할 중요한 일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이날 KIA는 문학구장에서 SK를 맞아 연장 10회 나온 고영우의 결승 득점에 힘입어 1-0으로 이겼다. 후반기 SK와 치른 6경기를 모두 승리로 장식했다. 10회 초 1사에서 3루타를 친 이홍구의 대주자로 들어간 고영우는 백용환의 중견수 플라이 때 홈으로 쇄도했다. 처음에는 아웃 판정을 받았으나 심판 합의판정 결과 세이프로 번복됐다. 10회 말 등판한 윤석민은 세 타자를 깔끔하게 처리하고 25세이브째를 올렸다. 두산-롯데(잠실), kt-넥센(목동), LG-NC(마산), 삼성-한화(대전) 경기는 제15호 태풍 고니의 영향으로 취소됐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신뢰받는 군을 위하여] 부사관 사기·처우 높이고… 장교 소수·장기복무 정예화로

    [신뢰받는 군을 위하여] 부사관 사기·처우 높이고… 장교 소수·장기복무 정예화로

    올해 약 33만명인 현역 가용자원은 출산율 저하로 인해 2025년에 약 20만여명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우수한 초급 간부 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질 것임을 예고한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부사관의 사기와 처우를 높이는 한편, ‘많이 뽑은 뒤 단기간 활용하는’ 방식의 초급 장교 인력 획득 구조를 적게 뽑아도 이들이 장기간 복무할 수 있도록 정예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윤중기 안동과학대 의무부사관과 교수는 “지난해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에서 관리·감독하는 부사관보다 가해 병사의 나이가 많았다”라면서 “현재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부사관이 될 수 있는 자격요건을 전문대졸 이상으로 개편해야 부사관이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현역 병사가 부사관으로 많이 지원해 병사 복무 경험을 살리도록 하고, 경륜이 풍부한 부사관들에게 소위·중위가 맡는 일선 소대장 직위를 맡기면 부사관의 사기도 오르고 단기복무 장교들의 부담도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병욱 상명대 군사학과 교수는 “우수한 자원을 장교로 끌어들이겠다고 무턱대고 학군장교(ROTC) 의무 복무기간을 줄여 버리면 오히려 군 생활을 하기 싫어하는 인력만 몰려들 것”이라면서 “군대라는 직장에 매력을 느끼도록 장기복무율을 높이고 금전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선진국형 직업군인제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종탁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부사관이 장기 복무자로 선발되면 의무적으로 7년을 복무해야 하지만 이 기간을 10년으로 늘리면 매년 새로 인원을 선발해야 할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면서 “제대 군인에 대한 과감한 전직 지원 교육 등 군 복무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군의 한 관계자는“전방 사단에 2~3명씩 배치되는 대령 계급의 부사단장들은 소위 ‘장군을 포기한 대령’(장포대)에게 주어지는 자리”라면서 “대령, 장군을 유지하기 위한 예산을 효율적으로 재배분해 우수한 초급 간부 상당수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종태 전쟁과 평화 연구소 연구위원은 “군은 근무여건 개선으로 우수인력 확보에 성공한 경찰의 사례를 참조해야 할 것”이라면서 “경찰 수뇌부는 과거 경장, 경사가 담당하던 실무 직위를 경위계급으로 상향 조정해 승진 기회를 대폭 늘리고 하위직 자동 승진제 등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영웅을 만나는 길, 강감찬 10리길

    영웅을 만나는 길, 강감찬 10리길

    관악구가 낙성대, 서울대학교 등 관악구의 명소를 엮은 ‘강감찬 10리길 투어’를 운영한다. 관악구는 20일 고려시대의 명장 강감찬 장군의 이야기가 많이 남은 관악구의 특성을 살려 ‘강감찬 10리길 투어’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유종필 관악구청장은 “낙성대공원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진 곳으로 낙성대란 바위에 새겨진 글씨도 박 대통령이 직접 썼다”며 “고려 역사와 대학의 낭만과 문화를 함께 느낄 기회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10만 대군의 거란에 맞서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강감찬 장군이 태어났을 때 하늘에서 큰 별이 한 집으로 떨어지는 것을 송나라 사신이 보게 된다. 강감찬 장군의 탄생 설화에서 낙성대란 이름이 생겼고, 옆에 있는 인헌동은 장군의 시호를 따른 이름이다. 1974년 박 대통령의 뜻에 따라 강감찬 장군을 기리고자 낙성대공원이 조성됐고, 1988년부터 장군의 정신을 기리는 인헌제가 매년 10월 열리고 있다. ‘강감찬 10리길 투어’는 모두 5개의 코스다. 1코스는 ‘강감찬 10리길’로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에서 시작해 강감찬 장군 생가터, 장군의 사당인 안국사, 서울시 과학전시관, 서울영어마을 관악갬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2코스는 ‘당신만을 위한 길’로 백설상상 어린이공원, 관악구민 운동장, 낙성대공원, 봉천로를 거쳐 낙성대역으로 돌아온다. 낙성대공원에는 금방이라도 말 박차를 차며 호령을 할 것처럼 역동적인 장군의 동상이 있다. 초등학생들은 사실적으로 묘사된 동상을 보며 “강감찬 장군은 정말 키가 작았나봐요?”라고 묻기도 한다. 3코스는 ‘도심 속 숲길’로 낙성대공원 둘레길과 전망대, 상봉약수터, 마애미륵좌불상 등을 볼 수 있다. 4코스는 낙성대 재래시장, 재즈골목, 낭만적인 벽화가 있는 행운동고백길을 둘러보는 ‘샤로수길’이다. 재치 넘치는 벽화가 있는 행운동고백길에는 여기서 고백하면 꼭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샤로수길’은 대학생들이 즐길 만한 카페와 술집이 있는 관악로14길을 서울대생들이 강남의 가로수길에 빗대어 부르는 별칭이다. 마지막 5코스는 ‘역사문화의 거리’로 관악구청 2층 갤러리관악, 서울대 미술관, 서울대 박물관, 서울대 규장각 등을 구경한다. 마을관광해설사들이 있어 투어에 참여하면 풍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관악구청은 앞으로 다도 배우기, 널뛰기, 투호 등 전통놀이와 전통혼례 체험을 추가해 역사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강감찬 10리길 투어’로 운영할 계획이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15년간 버무린 우리네 성장담 무지 재밌겄주?

    15년간 버무린 우리네 성장담 무지 재밌겄주?

    “워칙히 이르케 재밌을 수가 있대유?” 소설가 김종광(44)이 충청도 사투리로 능청스럽게 익살을 떤 작품을 내놨다. 15년간 공들인 청소년 장편 ‘별의별 나를 키운 것들’(문학과지성사)이다. 작가는 “15년 전 초고를 썼다”며 “그동안 발표한 소설들 중 가장 오랫동안 고치고 다시 쓴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70~80년대 충남 보령군 청라면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제목 그대로 마을에서 벌어지는 ‘별의별’ 사건과 인물들을 48편의 이야기에 담았다. 주인공 소년 ‘판돈’과 그의 친구, 가족, 마을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해학 넘치는 위트로 그려냈다. “나를 성장시킨 산천과 어른들과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다. 별의별 사람과 사건이 나를 키웠다. 성장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주위 어른들, 친구들 등 다양한 사람들을 비롯해 자연과 어울리며 더불어 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48편의 에피소드를 씨줄과 날줄로 삼아 조금 산만할 수도 있다. 약간 산만한 이야기들을 결합시켜 주는 문장이 없을까 생각하다 ‘별의별’을 떠올렸다. ‘나를 키운 것들’은 초고를 썼을 때 생각했다.” 소설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지역 주민들에겐 최고의 역사 영웅으로 존경받는 고려 말 충신 김성우 장군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때로는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고 때로는 순박하기 그지없는 소년 소녀들의 요절복통 성장담이 펼쳐진다. 마을 어른들의 무용담도 재미를 더한다. 취했을 때나 맨 정신일 때나 끝장 볼 때까지 떠들어대는 ‘고주망태 아저씨’, 44년 동안 쓴 일기 때문에 돌아가신 ‘범웅 할아버지’ 등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소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어른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 이면엔 당시 정부 정책에 시달려야 했던 농민들의 애환과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불거진 웃지 못할 실화도 투영돼 있다. 출판사 측은 “점점 잊혀 가는 농촌 풍경과 동학농민운동, 일제강점기 등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들을 해학과 풍자로 잘 버무려 냈다”고 설명했다. 김 작가는 “고향에서 자라면서 인상적으로 남아 있던 마을 사람들과 주위에서 들은 이야기를 합쳐서 썼다. 30%는 사실이고 70%는 허구다. 요즘 청소년들에겐 낯설고 불편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60~70년대 출생한 시골 출신 어버이 세대는 이렇게 자랐구나 하고 편한 마음으로 봐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연출가 4인이 뭉쳤다, 색다른 체호프를 위하여

    연출가 4인이 뭉쳤다, 색다른 체호프를 위하여

    이윤택, 김소희, 오세혁, 정성훈 등 연극계의 주목받는 연출가 4명이 러시아 문호 안톤 체호프의 작품으로 뭉쳤다. 체호프의 단편소설 7편을 각자의 장점을 살려 10~25분 길이의 단막극으로 만들어 릴레이로 공연하고 있다. 2015 게릴라극장 해외극페스티벌 ‘체홉단편선-체홉의 단편은 이렇게 각색된다’ 무대를 통해서다. 체호프는 희곡작가이기 이전에 단편소설 작가이자 의사였다. 희곡작가로서 체호프는 인간 심리에 메스를 들이대는 듯한 섬세함으로 심리적 사실주의의 상징이 됐다. 소설가 체호프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인다. 오헨리, 서머싯 몸과 함께 세계 3대 단편소설 작가로 꼽혔는데, 그의 단편소설들은 희극성과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연희단거리패의 꼭두쇠이자 체호프전을 기획한 연출가 이윤택은 ‘사람 데리고 장난치지 마세요’(원작 ‘우유부단’)와 ‘철없는 아내’를 통해 해학미의 진수를 보여 주고 있다. ‘사람 데리고 장난치지 마세요’는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부당한 상황을 견디며 살아온 한 ‘가정교사’와 그런 삶의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며 혹독한 교훈을 주겠다는 명분으로 그녀에게 말장난을 거는 ‘나’의 이야기다. 극단 걸판의 대표인 극작가 겸 연출가 오세혁은 특유의 재기발랄함으로 ‘재채기’(원작 ‘어느 관리의 죽음’)와 ‘드라마’를 통해 체호프의 희극성을 돋보이게 한다. ‘재채기’는 중하위급 관리 체르비야코프가 오페라를 관람하다 갑자기 터진 재채기로 상급 공무원 브리잘로프 장군의 대머리에 침을 튀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갈매기’로 체호프에 대한 신선한 해석을 보여 준 연희단거리패 대표 겸 배우 김소희는 ‘적’을, 공연제작센터의 젊은 연출가 정성훈은 ‘베로치카’와 ‘혀를 잘못 놀린 사나이’를 각각 연출했다. ‘적’은 절망에 빠진 두 사람이 서로의 불행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입장만 고수하다 돌이킬 수 없는 적이 되고 만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윤택은 “그동안 우리나라의 체호프극은 정적이고 우울해 다소 지겹다는 인식이 있었다”며 “이번 공연은 역동적이고 개성적인 단막극으로 꾸며졌다. 우스꽝스럽고 솔직한 체호프극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30일까지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 1만 5000~3만원. (02)763-1268.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7] ‘지리산 시인’ 양대박과 실상사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7] ‘지리산 시인’ 양대박과 실상사

    청계(靑溪) 양대박(梁大樸·1543~1592)은 평생을 시인으로 살았지만 의병장으로도 유명하다. 남원 출신의 청계는 아버지가 종3품 사헌부집의를 지냈음에도 서자라는 신분상의 한계로 일찌감치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경제적 풍요를 바탕으로 명산대천을 유람하고 시를 쓰면서 청계도인(靑溪道人)을 자처하며 유유자적하게 살았다. 청계는 낮에는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히고 밤에는 병서를 읽기도 했다. 누군가 “태평성대에 어찌 병서를 읽습니까.”하고 물으면 “통달한 선비라면 모든 책을 다 읽어야 하고, 모든 일을 다 알아두어야 하지요.”라고 답했다. 남원부가 선조 16년(1583) 광한루를 대대적으로 중건하자, “십 년 안에 불타 버릴 터이니, 성밑에 도랑을 파거나 진지를 쌓느니만 못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임진전쟁이 일어나자 청계는 아들 경우와 50명 남짓한 집안 일꾼으로 의병을 일으킨다. 고경명이 담양에서 의병의 기치를 들자 흔쾌히 그를 상장군(上將軍)으로 세우고 스스로는 부장(副長)으로 몸을 낮추었다. 이들은 임실 운암에서 왜군과 대적하는데, 벤 적이 1300급에 노획한 말이 100필에 이르는 대승이었다. 임진전쟁 당시 호남의병이 거둔 최초의 승리로 기록됐다. 하지만 청계는 음력 6월 무더위에 시달리며 과로한 탓에 갑자기 병을 얻었다. 그는 진중에서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도 “내가 꿈에 하늘에 올라가 상제께 울며 빌었더니 상제께서 신병(神兵)을 보내 도적들을 모조리 소탕하라 명하셨다.”며 의병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승전을 거둔 곳에 ‘충장공 양대박 장군 운암승전비’가 세워졌다. 양대박 승전비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손에 훼손됐다가, 최근 새로운 터에 다시 세워지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청계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청계’(靑溪)는 한말 언론인 장지연이 1917년 발간한 ‘대동시선(大東詩選)’에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시는 선조 39년(1606) 조선에 온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이 ‘삼가 손을 씻고서 읽었다.’고 했을 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다. 청계의 생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유람이다. ‘금강산 기행록’과 30편의 한시를 남긴데 이어 모두 네 차례 지리산을 유람한다. 특히 선조 19년(1586) 가을에는 운봉과 황산, 인월, 백장사를 거쳐 실상사와 군자사, 용유담을 지나 천왕봉에 오르는 11일동안의 본격적인 지리산행에 나선다. 친구인 춘간 오적과 삼촌인 양길보에 소리꾼 애춘과 아쟁을 타고 피리를 부는 수개와 생이도 동행했다. 이 때 남긴 것이 ‘두류산 기행록’과 13편의 한시다. ‘폐허가 된 실상사 옛터’(實相寺廢基)도 이 가운데 하나다. 실상사는 양대박의 지리산 유람에 중요한 중간 기착지 역할을 했다.  흥하고 망함은 한결같이 참 사유의 지침이요  밝고 어두움은 천 겁 세월의 먼지이네  용천(龍天)들도 또한 사라져 없어지고  금지(金地)는 이미 잡목 숲이 되었네  돌이끼 무성한 비석에는 글자 하나 남아있지 않고  산은 텅 비었는데 불상만 덩그라니 앉아 있네  흐르는 시내 다정도 할사  울며불며 가는 길손 전송하네.   실상사는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 창건된 것으로 전한다. ‘두류산 기행록’에 따르면 실상사는 청계의 유람 당시로부터 100년 전 쯤 병화로 소실되었는데, 깨진 비석은 길옆에 쓰러져 있었고 전각은 모두 불타버려 철불도 벌판의 대좌 위에 그저 앉아있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양대박을 두고 왜 뛰어난 시인이라고 평가하는지는 이 시를 읽으며 실상사에 가보면 누구나 실감할 수 있다. 길손을 전송하던 실상사 동구의 시내는 청계의 시대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불타버린 절집에 외롭게 앉아있던 철불은 이제 실상사를 상징하는 존재나 다름없다. 글 서동철 수석논설위원 dcsuh@seoul.co.kr  
  • 둔전병제로 항일 무장투쟁 선도한 김규흥 장군

    둔전병제로 항일 무장투쟁 선도한 김규흥 장군

    항일 무장투쟁을 선도했던 범재 김규흥(왼쪽)의 활약상이 최초로 소개된다. 20일 밤 11시 40분 방영되는 KBS 1TV ‘발굴 추적! 항일무장투쟁의 선구자, 김규흥’에서다. 김규흥은 김복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일제 기밀문서에 숱하게 등장하지만 우리 역사책에선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중국을 근대화로 이끌며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 탄생을 알린 신해혁명에서 혁명군 수뇌부의 유일한 조선인 장군이었다. 김규흥은 조선 독립을 위해 중국 혁명 세력을 이용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동안 그의 이런 놀라운 행보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 자료가 부족했다. 제작진은 중국 초대 총통이자 신해혁명을 일으킨 쑨원과 김규흥의 교류를 확실히 증명할 자료를 발굴해 처음으로 공개한다. 김규흥의 독립운동 노선은 무장투쟁과 둔전병제였다. 강력한 일본과 싸우기 위해서는 둔전병제를 통해 장기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장소로 내몽골 포두진을 택했다. 김규흥은 원하는 둔전병제를 완성하진 못했지만 후에 도산 안창호가 그의 뜻을 이어받아 내몽골 포두진에서 둔전병제를 실시해 많은 조선인이 농사를 지으며 독립운동을 했다. 프로그램은 김규흥이 그토록 독립을 꿈꾸며 시행하고자 했던 내몽골 포두진 둔전병제, 역사 뒤편으로 사라진 과거 독립운동가들의 처절했던 외로움과 고난의 현장을 직접 찾아 그들의 후손을 만나 1920년대 둔전병제는 어떻게 실행됐는지 밀착 취재했다. 김규흥이 조선 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던 중국 룽징(龍井)에서 펼친 활약상과 그가 박용만(오른쪽)과 파트너를 이뤄 베이징에서 진행한 무장투쟁의 발자취도 조명한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역사 속 ‘영웅들’ 예술로 재조명

    역사 속 ‘영웅들’ 예술로 재조명

    광복 70주년과 분단 70년을 맞는 올해, 역사 속에 묻혔던 인물들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다. 항일 무력 독립운동단체였던 의열단을 만든 약산 김원봉(1898~1958)이 대표적이다. 한국독립운동사에서 그 이름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지만 남과 북 모두에서 잊혀진 존재이다. 남에선 공산주의자로서 해방 후 월북한 인물로, 북에선 숙청을 당하면서 독립운동사에서 허전한 공백으로 남아버린 인물로 최근 영화 ‘암살’에서 영화배우 조승우가 역할을 맡아 대중적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역사의 지속성에 관심을 가져 왔던 작가 권순왕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대안공간 아터테인에서 여는 기획초대전 ‘약산 진달래’에서 김원봉의 역사적 의미, 의열단의 활동을 모티프로 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지인을 따라 우연히 참석했던 밀양독립운동사 연구소장의 취임식 때 약산 김원봉의 독립운동 활동과 연설 모습을 담은 기록필름을 보고 ‘찬란한 죽음’을 접한 듯 전율을 느꼈다는 권 작가는 “이념으로 잊혀진 인물의 명예를 시각 이미지로 회복시켜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역사의 그늘에 묻힌 그를 정서적으로 유연하게 불러내고 싶었고 민족주의자 김약산을 드러내고자 전시 제목엔 시인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붙였다고 덧붙였다. “기록영화에서 독립군의 죽음을 보면서 죄의식 같은 것을 느꼈고 그들의 피눈물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작가는 기록영화의 일부 장면을 출력해 붓으로 덧칠한 뒤 칼로 상처를 내고 캔버스 뒤에서 물감을 긁어서 밀어내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앞과 뒤에서 볼 수 있는 양면회화 작품으로 현상과 진실을 동시에 얘기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가려진 지속-약산’ 등 양면회화 작품 7점이 소개되고 있다. 전시는 25일까지. 실내와 실외, 사적인 영역과 공공의 영역, 평면과 입체를 종횡무진하는 설치작가 배수영은 전자 기기 안의 회로기판 등 소모되어 버려지는 산업폐기물을 활용하는 작품을 주로 제작한다. 종로구 북촌로 나무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 배수영은 유구한 세월 동안 대한민국을 지키고 빛낸 위인과 영웅들에 대한 오마주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영화 ‘어벤저스’의 제목을 본떠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 ‘코벤저스’(Co-Vengers)는 화면 중앙에 8·15와 3·1, 그리고 태극문양을 놓고 이순신 장군, 안중근 열사, 논개, 류관순 열사, 김구 선생, 명성황후 등을 표현하고 있다. 높이 3m가 넘는 작품으로 화려한 색채조명과 어우러져 웅장함과 숭고미를 풍긴다. 일본에서 수학하고 일본에서 활동해 온 작가는 “광복 70년을 맞는 뜻깊은 시점에 역사적 아픔에 대한 치유와 두 나라의 긍정적 문화 교류를 위한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복 천을 길게 늘어뜨린 설치작품 ‘자궁성’, 회로기판과 LED를 활용한 ‘생+생+생(재생+소생+상생)’ 등이 소개된다. 전시는 9월 21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취업 ‘블루오션’ 특성화 학과를 가다] “스스로 미래를 만드는 유쾌한 반란 꿈꿔 보길”

    [취업 ‘블루오션’ 특성화 학과를 가다] “스스로 미래를 만드는 유쾌한 반란 꿈꿔 보길”

    공군이 ‘4년 전액 등록금’ ‘장교 복무’ 등의 파격적인 혜택을 내걸고 계약 학과를 물색하면서 20여개 대학 중 굳이 아주대를 선택한 이유가 뭘까. 김동연 아주대 총장은 “국방과 정보기술(IT)을 융합하는 노력을 꾸준히 해 왔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김 총장은 1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주대의 장점인 융합에 더 힘을 쏟고, 국방 관련 학과들에 대한 지원을 넓혀 국방 분야 특성화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아주대가 국방 분야에서 강점이 있다면. -아주대는 10여년 전부터 국방 IT 분야의 역량 강화에 노력해 왔다. 국방디지털융합학과는 이에 따른 성과를 집대성한 학과다. 공군과 함께 항공 IT 전문 기술 장교를 양성하는 이 학과가 올해 신규 개설되면서 기존 국방 관련 학과들과 함께 ‘국방 IT 교육 클러스터’가 형성됐다. →‘국방디지털융합학과’라는 명칭이 생소한데. -현대전에서 공군은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핵심 전력이다. 최첨단 항공기를 비롯한 무기 체계들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려면 네트워크중심전(NCW) 환경이 구축돼야 한다. 그래야 신속하고 오차 없이 작전을 통제할 수 있다. →학생들에 대한 혜택이 상당하다. -우선 공군에서 4년간 등록금 전액을 지급한다. 학교에서는 4년간 기숙사비 및 해외 연수 장학금이 지원된다. 학습 효과를 높이기 위한 전용 실습실도 마련했다. 미국 등 국방 분야 선진국으로의 해외 인턴십도 계획하고 있다. →졸업 후 진로는 어떤가. -졸업 후에는 공군에서 7년간 의무복무를 하게 된다. 의무복무 후에 장군과 같은 고급 장교로 나갈 수 있다. 복무 기간에는 정보통신 분야 장교로서 국방 IT가 적용된 최첨단 무기 체계를 운용하며 복무 후에는 최고 수준의 전문가로서 국방 및 항공 방위산업체에 취업할 수 있다. 또 국방과학연구소 등의 연구기관으로도 진출할 수 있다. →지원을 희망하는 수험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유쾌한 반란’을 강조하고 싶다. ‘반란’은 현실을 극복하고 변화시켜 우리가 바라는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가장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이다. 남이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해서 하기 때문에 ‘유쾌한’이라는 표현을 쓴다. 특수한 국방 여건을 포함해 우리를 둘러싼 현실을 극복하는 반란, 나 자신을 바꾸는 반란, 나아가 우리 사회를 건전하게 바꾸는 반란을 일으켜 보길 권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신뢰받는 군을 위하여] “임기 보장되는 ‘장군 계급정년제’ 철폐…선후배 軍출신보다 민간에 개혁 맡겨야”

    우리 군의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비대하고 방만한 조직이 이익집단과 조직 논리에 휘둘려 제대로 된 개혁을 하지 못하게 됐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 초기인 1998년 정부는 군이 전투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하는 구조 개혁 방안의 하나로 4년제 국군간호사관학교를 폐지하고자 했다. 일반대학 간호학과를 졸업한 우수 인력 가운데 미취업 인력이 많다는 점을 들어 이들을 간호장교로 임용하기로 하고 1999년 가을 신입생 모집을 중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간호사관학교 출신 예비역의 거센 항의에 부딪혀 2년 만에 무산됐다. 당시 개혁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간호장교는 기능직이고 진급률도 낮아 대부분 단기 복무를 마치고 전역한다는 점에서 굳이 사관학교까지 둘 필요가 없다”며 “개혁을 적극적으로 무산시켰던 인물이 나중에 장성으로 진급하는 것을 보고 군 개혁이 작은 분야에서도 힘들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국방 전체보다 부서별 예산 확보에 사활 이명박 정부 시절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에 참여했던 김태우 건양대 초빙교수(전 통일연구원장)는 “군 개혁의 어려움은 구성원이 국방 전체를 생각하기보다 부서별로 갈라져 그 안에서 예산을 확보하고 진급하는 데만 사활을 건다는 점에 있다”고 지적했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은 “육군을 중심으로 인사사령부, 수송사령부, 의무사령부, 국방어학원 등 전투와 직접 상관없이 난립하는 각종 보직, 기관의 규모를 정리하거나 줄여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전면전이 발발할 때 예비군 등을 총동원할 경우 300만 병력이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군 장군 수는 400명 수준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장군 20% 전역만 기다려 과감한 인사 필요 군 조직 혁신을 위해서는 우선 상층부인 장군 정원을 급격히 줄이기보다 한번 장군이 되면 수년 임기가 보장되는 계급정년제부터 철폐해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정무직이라 보직을 못 받으면 전역해야 하는 대장, 중장과 달리 준장과 소장의 정년은 5년으로 보장돼 있다. 이들 가운데 2·3년차에 상위 계급으로 진급하지 못하는 장군들은 남은 임기 2년여 동안 일할 의욕과 지휘 통제력을 상실하지만 군 당국은 이들에 대해 배려 차원에서 부사단장 같은 ‘한직’을 배정한다. 하지만 이는 군의 활기를 떨어뜨리고 효율적인 조직 운영을 방해하는 ‘철밥통’을 양산하는 일이란 지적이 나온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우리 군 장성 숫자가 외국과 비교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실제 장군으로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은 80%에 불과할 것”이라면서 “정년을 채울 때까지 한직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며 전역을 기다리는 사람을 과감히 내보내고 군 인사에 숨통이 트이도록 개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초빙교수는 “장관이든 차관이든 사관학교 선후배 관계로 얽혀 있는 군인 출신들은 스스로 개혁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증명됐다”면서 “군 조직 혁신과 개혁을 주도하는 주체는 무엇보다 군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민간인 출신이어야 하고 군 통수권자도 여기에 힘을 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진도 명량대첩 축제서 재현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이 일본 수군을 대파한 명량대첩 축제가 오는 10월 9~11일 전남 진도군 울돌목에서 펼쳐진다. 417년 전인 1597년(선조 30) 벌어진 이 전투에서 이순신 장군은 판옥선 13척으로 10배가 넘는 왜선 133척을 물리치면서 세계 해전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주제 공연은 10월 9일 펼쳐지는 ‘진군의 판옥선 운명의 날을 준비하라’와 11일 진행되는 ‘명량의 약속’으로 정해졌다. 10일에는 복원된 판옥선 13척과 왜선 133척이 벌이는 해상전투가 울돌목에서 30여분간 재현된다. 수중 폭파와 헬 캠을 활용한 현장감 있는 전투 장면이 연출된다. 축제 기간 조선 수군, 의병, 일본 수군의 원혼을 위로하는 헌화의식과 만가 8채가 펼치는 상여행렬도 이어진다. 이 축제 후원기관인 해군과 해군 제3함대사령부는 군악대 공연과 해상 퍼레이드에 고속함정을 지원한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신뢰받는 군을 위하여] ‘관료형 군대’로 변해 가는 조직

    [신뢰받는 군을 위하여] ‘관료형 군대’로 변해 가는 조직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군 출신인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연이어 집권하면서 군은 30여년간 국가를 통치하던 최고 엘리트 집단이 됐다. 1993년 출범한 김영삼 정부가 군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척결하면서 비로소 군에 대한 ‘문민 통제’의 기틀이 마련됐다. 하지만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현재 군의 정치 개입 가능성은 줄었지만 ‘전투형 강군’보다 조직 이기주의와 복지부동이 만연한 ‘관료형 군대’의 경향만 심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창군 이래 군은 행정기관인 국방부 외에도 육해공군과 합동참모본부, 방위사업청과 병무청, 26개의 국방부 직할부대를 거느린 매머드 조직으로 변모했다. 소속원만도 군인 63만 700여명, 군무원 2만 6300여명에 달한다. 국방부 자산도 지난해 말 기준으로 171조 1475억원, 부채는 130조 9037억원에 이른다. 올해 예산으로는 37조 4560억원을 사용하고 내년 예산으로 무려 40조 1395억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 같은 양적 성장을 바라보며 군이 안보를 빌미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조직 확장에 목매는 것 아니냐는 비판적인 시선도 늘어나고 있다. 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가 지난해 11월 실시한 ‘2014 범국민 안보의식 조사’에서 ‘우리 군이 국방비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비효율적’이라는 응답이 49%로 ‘효율적’이라는 응답 17.8%보다 31.2% 포인트 높았다. 특히 전문가 집단에서는 비효율적이라는 응답이 60%로 효율적이라는 응답 10%보다 50% 포인트나 높아 방만한 운용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이는 ‘싸우는 군대’를 지향해야 할 군 조직이 진급과 보직에만 목을 매고 장성 자리를 지키는 데 급급하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군의 한 고위 관계자는 기자와 사석에서 만나 “미군 장성은 훈련이 어떻다, 새로운 무기체계가 어떻다는 식의 전쟁 관련 이야기를 즐겨 하는 반면 한국군 장성은 누가 참모총장이 되고 합참의장이 될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주로 한다”고 개탄했다. 군의 방만한 인력 관리는 상위 직급의 군살 빼기에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분명해진다. 국방부는 2011년 5월 국방 개혁을 통해 444명인 장군 수를 2015년까지 30여명 줄이고 2020년까지 부대 구조 개편을 통해 30명을 추가로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 권은희 의원실이 국방부에 요청한 자료에 따르면 장군 정원은 2013년에 불과 3명 줄어 현재까지 441명이다. 2003년 69만명 수준이던 군 병력이 올해 91%인 63만명 수준까지 줄었는데도 장군 정원은 큰 변동이 없다. 국방부 21세기 개혁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심동보 예비역 해군 준장은 “1995년에도 한국군이 병력집약형에서 기술집약형 군대로 변모하고 2012년까지 적정 병력을 40만명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지만 20년째 제대로 된 개혁을 못하고 있다”며 “육군 출신들이 장군 숫자를 줄이기 싫어하는 것이 근본 이유”라고 지적했다. 군 당국의 도덕적 해이는 국회의 지적을 무시하며 인력을 초과 운용하는 현실에서도 드러난다. 군 인사법 24조 3항은 부사관 중 하사로 5년 이상, 중사로 11년 이상 재직한 사람을 각각 중사와 상사로 근속진급시킬 수 있도록 하면서 근속진급 인원만큼 진급한 계급의 정원이 늘어나고 진급 전 계급의 정원이 감소한 것으로 보도록 규정했다. 이 같은 규정에도 육군은 지난해 중사 2만 2539명을 운용했고 이는 근속진급을 고려한 정원보다 1728명 많은 숫자다. 해군 하사는 25명 초과한 5548명, 공군 상사는 99명 초과한 5221명을 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군에 대한 입법부 통제가 확립된 미국은 의회가 선발예비군 정원을 포함해 매년 현역 군인 총정원을 인가하도록 규정한다. 또 부사관의 최상위 계급 정원의 상한을 정하고 장교 총정원 크기에 따른 영관장교의 군별·계급별 상한, 장군의 정원과 계급별 정원 상한을 정해 군이 함부로 정원을 늘리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국방 조직과 정원을 대통령령과 국방부 훈령 수준으로 관리하는 데 비해 미국은 구속력이 강한 법률로 규제하고 있다는 점이 얼마나 진정한 ‘문민 통제’를 구현하고 있는가의 차이임을 알 수 있다. 김종탁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우리 군도 장군 정원을 장교 총정원의 몇 % 이내로 제한하는 식의 ‘국군정원법’(가칭)을 제정해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나라말 빼앗긴 한민족, 광복 직후 한글날 기렸다

    나라말 빼앗긴 한민족, 광복 직후 한글날 기렸다

    달력은 인류 지혜의 산물이다. 인류는 해가 뜨고 지는 현상과 계절 변화가 규칙적으로 반복된다는 것을 깨닫고 수천 년에 걸쳐 달력을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중국 역법(曆法)을 들여와 달력으로 사용했고, 조선 세종대왕 때는 중국과 아라비아 천문학을 활용해 우리 실정에 맞는 최초의 자주적 달력 ‘칠정산’을 개발했다. 갑오개혁 이후인 1896년에는 고종의 칙령에 따라 태양력이 사용됐다. 일제는 1910년 우리나라의 주권을 빼앗은 뒤 역서의 발행을 중단시키고 조선총독부가 ‘조선민력’(朝鮮民曆)이라는 달력을 발간했다. 1937년부터는 ‘약력’(略曆)으로 이름을 바꿔 출간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으면서 이듬해 1946년 달력은 다시 우리 손으로 발간됐다. 서울신문은 14일 광복 70주년을 맞아 수원문화재단 문화사업부 조성면(50·문학박사) 창작지원팀장이 소장하고 있는 1946년 달력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어렴풋이 엿봤다. 이 달력은 동성사(東星社)가 발간한 ‘애국월력’(愛國月曆)이다. 가로 27㎝, 세로 39㎝의 종이 한 장에 1946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모든 요일이 표기돼 있으며, 단기(檀紀) 4278년을 서기(西紀) 앞에 명기했다. 달력 가장 밑부분에는 동성사의 위치로 보이는 주소가 적혀 있는데, 지금의 행정구역과 많이 다르다. ‘경성부(京城府) 중구 동사헌정(東四軒町·현재 장충동 1가) 26번지.’ 경성부는 조선총독부가 대한제국의 수도인 한성부를 경기도에 예속시키면서 만든 행정구역으로 일제의 잔재가 1945년 말 발간된 것으로 보이는 이 달력에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서울시사편찬위원회 등에 따르면 경성부는 광복 1주년인 1946년 8월 15일 미군정이 ‘서울시헌장’을 선포하면서 서울시로 이름을 바꿨다. 같은 해 9월 28일에는 경기도에서 분리돼 서울특별자유시로 승격했다. 1949년이 돼서야 지금과 같은 서울특별시가 공식 이름이 됐다. 동사헌정의 ‘정’도 일제의 잔재. 일본 발음으로 ‘마치’인 ‘정’은 전통 행정구역 동(洞), 리(里)와 유사한 개념이다.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지명 혼마치(本町·현 충무로)와 같은 행정 단위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에서야 이 같은 일제식 행정 명칭을 없애는 작업이 대대적으로 추진됐다. 달력 맨 위에는 태극기가 새겨져 있는데, 태극무늬와 4괘의 위치가 지금과 약간 다르다. 시계 방향으로 90도 누워 있다. 태극기는 1882년 5월 조선과 미국의 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 역관 이응준이 처음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복 직후에도 만드는 법이 약간씩 달랐다가 1949년 국기제작법이 공표되면서 통일된 양식을 갖추게 됐다. 태극기 양 옆에는 1945년 7월 26일 일본에 항복을 권고하고, 일본에 대한 전후 처리 방침을 표명한 ‘포츠담 선언’에 참가했던 미국과 영국, 중국, 소련 국기가 배치됐다. 달력의 중국 국기는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의 오성홍기가 아닌 중화민국(대만)의 청천백일만지홍기다. 당시는 중국 총통이던 장제스가 마오쩌둥과 치른 국공 내전에서 패하기 전으로 중화민국이 중국 본토를 통치하고 있었다. 5개국 국기 맨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개는 1946년이 병술년(丙戌年) ‘개의 해’임을 알리고 있다. 국기 밑에는 당시의 4대 기념일로 보이는 개천절과 한글날, 크리스마스, 조선개방일(朝鮮開放日)의 날짜가 차례로 적혀 있다. 개천절이 11월 7일로 명기된 게 특이한데, 당시는 개천절을 음력으로 쇤 것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부터 음력으로 기념하던 개천절은 1949년부터 양력을 쇠는 것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서울신문이 한국천문연구원의 음양력 변환을 통해 확인한 1946년 음력 10월 3일은 양력으로 10월 27일이어서 의문이 남는다. 이에 대해 조 팀장은 “당시에는 음양력 환산이 쉬운 작업이 아니어서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광복 직후에는 역법이 완벽하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991년 공휴일에서 제외됐다가 23년 만인 2013년 부활한 한글날이 광복 직후부터 기념일로 등재된 것은 한글에 대한 자긍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1946년은 훈민정음 반포 500돌을 맞은 해라 어느 때보다 한글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이해 한글날에는 덕수궁에서 2만여명이 참석한 대대적인 기념행사가 열렸다. 크리스마스가 기념일에 포함된 건 미국의 영향력이 그만큼 막강했다는 뜻이다. 한국은 1949년 국무회의를 통해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공식 지정했으나, 중국과 일본은 아직도 평일이다. 8월 15일로 표기된 조선개방일은 광복절로 유추된다. 달력 한가운데에는 애국가 가사가 있는데, 1절 마지막 소절이 ‘하느님의 능력으로 기리 보존하네’라고 돼 있는 등 지금과 약간 다르다. 조 팀장은 “애국가는 수십 종이 존재했으며, 달력의 애국가는 (안익태 선생이 작곡한 곡조가 아닌)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에 맞춰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사실 애국가 작사자는 아직도 논쟁거리다. 계몽운동가였으나 친일파로 돌아선 윤치호(1865~1945) 작사설과 독립운동가 안창호(1878~1938) 작사설이 대립하고 있으며, 정부는 아직껏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서울 정동 제일교회 한국인 최초 담임 목사를 지낸 최병헌(1858~1927), 교회음악가 김인식(1885∼1963), 을사늑약 체결에 분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민영환(1861~1905)도 애국가 작사 후보로 꼽힌다. 애국가와 함께 게재돼 있는 한반도 지도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신의주, 원산, 부산, 목포 등으로 뻗어 있는 철도가 그려져 있다. 조 팀장은 “남북 간으로 발달해 있으나 동서 간으로는 미흡한 모습을 보면 일제가 만주에 물자 공급을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철도를 개설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지도 밑에 있는 ‘조선의 힘’이라는 노래는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학평론가이자 삼국지 연구가인 조 팀장은 지난해 10월 고서적 가게에서 우연히 이 달력을 입수했다. 조 팀장은 “이 달력 뒷면에는 소유자가 쓴 것으로 보이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서평이 쓰여 있다. 소유자는 아마 서평을 보관하기 위해 달력을 버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광복 직후에는 종이가 귀해 일명 ‘똥지’로 불리는 재생지가 주로 사용됐다. 이 달력의 재질도 당시 흔히 쓰인 재생지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비록 한 장의 달력이지만 해방 당시 사회상을 유추할 수 있는 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매년 국치일엔 굶으며 치욕 곱씹어”

    “매년 국치일엔 굶으며 치욕 곱씹어”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8월 29일은 우리 민족에게는 가장 수치스러운 날이었다. 1920~1930년대 만주에 살던 우리 동포들은 매년 이날이 되면 하루 종일 굶으며 그날의 치욕을 곱씹었다.” 임시정부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1888~1957) 장군의 막내딸인 지복영(1919~2007) 여사의 회고록 ‘민들레의 비상’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14일 출간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지 여사가 노년에 쓴 공책 세 권 분량의 회고록과 언론 기고문, 편지, 한시 등 육필 원고를 모아 한 권의 회고록으로 묶었다. 지 여사는 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중국 각지에서 생활했다. 19세부터 한국광복군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했고 해방 후에는 두 아들을 키우는 평범한 주부로 살았다. 지 여사는 1990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으며 2012년 5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지 여사의 회고록에는 만주에서 보낸 어린 시절 겪은 ‘조선인 동포 사회’의 풍경이 상세히 기술됐다. 특히 해마다 ‘국치일’(조선이 일본에 병합된 1910년 8월 29일)이 되면 동포들이 끼니를 거르고 치욕을 곱씹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또 낮에는 조선인 학교에 모여 ‘국치의 노래’를 부르고 밤에는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다룬 연극을 공연했던 것으로 기술됐다. 나라를 잃었지만 개천절이면 다 함께 음식 추렴을 해 마을잔치를 열었던 일, 1931년 만주사변 직후 중국인 패잔병들이 벌인 악행, 동포들 사이에서 나타난 지역감정과 분열상 등 당시 동포 사회의 이면을 가감 없이 보여 주고 있다. 부친 지 장군의 부정(父情)을 느낄 수 있는 일화도 소개됐다. 1924년 당시 다섯 살이던 지 여사는 어머니, 오빠와 함께 중국 지린으로 건너가 처음 아버지와 만났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버지였기에 어린 지 여사는 “아저씨,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고 지 장군은 그 자리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회고했다. 지 여사는 독립운동가의 딸답게 일제에 적극 항거한 여성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1932년 일제가 만주국을 수립하자 지 장군은 한국독립군 간부들과 중국 내륙으로 이동했다. 지 여사도 아버지를 따라 베이징으로 갔다. 19세가 되던 1938년부터 거리에서 ‘일제 타도’란 구호를 외치며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충칭으로 옮긴 이후에는 한국광복군 창군 대원으로 참여했다. 지 여사는 광복군의 기관지 ‘광복’을 편집·제작하고 대일 선무방송을 진행하며 일본군으로 끌려온 한인 병사들을 광복군으로 끌어들이는 임무도 맡았던 것으로 나타났다회고록을 펴낸 지 여사의 장남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후손들이 독립운동가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장물로 팔려 다닌 충무공의 국보급 유물

    장물로 팔려 다닌 충무공의 국보급 유물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사가 선조 등에게 임진왜란의 초기 전황을 알린 보고서로 국보급 유물인 ‘장계별책’ 등 충무공의 유물을 훔쳐 팔아넘긴 일당이 붙잡혔다. 대전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3일 김모(55·무직)씨와 국립해양박물관 학예사 백모(32)씨 등 5명을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김씨는 2007년 6월 초 교회를 다니면서 알게 된 충무공의 15대 종부 최모(59·여)씨가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종가를 신축하면서 “집안을 정리해달라”고 부탁하자 이를 도우면서 ‘장계별책’ 등 고서적 112권을 빼돌려 충남 천안 자신의 집으로 숨긴 뒤 팔아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장계별책’ 은 김씨에서 고물수집업자와 문화재 매매업자의 손을 거쳐 2013년 4월 해양박물관에 3000만원에 팔렸다. 장계별책의 정식이름은 ‘충민공계초’(忠愍公啓草)로 이순신 장군이 1592~1594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와 삼도수군통제사로 있을 때 선조와 세자 광해군에게 임진왜란 전황을 알린 보고서 68편을 충무공 사후인 1662년에 만든 필사본이다. 이는 난중일기나 임진장초에 없는 보고서 12건과 백사 이항복(1556~1618)이 장군을 추모한 ‘이통제비명’ 등이 포함된 국보급 유물이다. 경찰은 지난 4월 해양박물관에서 전시한 ‘충민공계초’가 충무공 종가에서 사라진 장계별책과 같은 책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수사를 벌였다. 충민공은 이순신 장군이 충무공 시호를 받기 전에 쓰던 시호다. 계초는 임금에게 올린 보고서 묶음집, 별책은 국보 76호 임진장초와 또 다른 문서집이란 뜻이다. 해양박물관은 경찰조사에서 “장물인지 몰랐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장계별책과 김씨 등이 팔다 남은 유물 등을 모두 압수, 소유권이 가려질 때까지 문화재청에 보관을 요청했다. 재판에서 관련자들이 유죄 판결을 받으면 충무공 종부에게 유물이 돌아간다. 종부 최씨는 소유권이 넘어오면 유물들을 현충사에 기탁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장계별책도 임진장초처럼 국보로 지정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대북 확성기 모든 전선 확대”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12일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지뢰 도발과 관련, 대북 확성기 방송을 모든 전선으로 확대하고 각종 심리전 수단을 동원한 추가 보복 조치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보고에서 “우선 조치로 2곳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시작했는데 전면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예비역 3성 장군 출신인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이 대북물포작전(생필품을 기구에 담아 북한에 보내는 것)과 전단 살포, 전광판을 통한 심리전 등 강도 높은 대응을 요구하자 한 장관은 “말씀하신 여러 가지 사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또 군 당국은 대북전단 살포는 2000년 4월부터, 확성기 방송은 2004년 6월부터 중단한 바 있다.  같은 당 유승민 의원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했는데 확성기 방송 재개가 전부냐”면서 “233GP(지뢰 폭발 현장과 가장 가까운 북한군 초소) 폭파·사격을 고려했느냐”고 묻자 한 장관은 “(폭파)하고 안 하고는 결정된 바 없다”고 답했다.  한 장관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시 여부와 관련한 질문에 대해 “그런 형태의 지뢰 도발은 그러한 (김 제1위원장의) 지시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청와대는 정부의 늑장·부실 대응 논란에 대해 브리핑을 통해 발생 당일인 4일 오전 10시 대통령에게 첫 보고가 이뤄졌고 9일까지 4번의 상황보고가 있었다고 공개했다. 북한이 매설한 목함지뢰에 의한 사건이라는 보고는 8일 오후에 이뤄졌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인천상륙작전’ 맥아더 리암 니슨 이어 이범수 “긍정적 검토 중” 호흡 맞추나

    ‘인천상륙작전’ 맥아더 리암 니슨 이어 이범수 “긍정적 검토 중” 호흡 맞추나

    영화 ‘테이큰’의 히어로 리암 니슨이 영화 ‘인천상륙작전’(감독 이재한)의 맥아더 장군 역으로 캐스팅을 확정 지으며 국내 배우들의 캐스팅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재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인천상륙작전’은 1950년 9월 15일 국제 연합군(UN)이 진행한 인천상륙작전을 배경으로 남한군과 북한군 사이의 치열한 첩보 작전을 아우르는 전쟁실화 블록버스터이다. 현재 제작비만 150억이 훌쩍 넘을 것으로 기대되는 이번 대작에는 헐리우드 톱배우 리암 니슨을 비롯해 국내 최고의 배우들도 캐스팅 물망에 올라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먼저 가장 확정적인 배우는 이범수다. 일찌감치 ‘인천상륙작전’ 시나리오를 받고 긍정적인 검토에 들어갔다고 밝힌 이범수는 소련에서 유학한 북한 엘리트 장교 역으로 북한 내에서 유일하게 인천상륙작전을 예측한 인물로 강렬한 카리스마의 주연을 맡을 예정이다. 여기에 남한군 첩보원으로 현빈과 이정재가 물망에 올라 있는 상태. 이정재 측은 시나리오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정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인천상륙작전’은 내년 6월 25일 한국전쟁 기념일을 목표로 올 하반기 크랭크 인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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