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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상·공중 동시 상륙작전 ‘노적봉함’ 해군에 인도

    해상·공중 동시 상륙작전 ‘노적봉함’ 해군에 인도

    방위사업청은 21일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차기상륙함(LST-Ⅱ) ‘노적봉함’을 해군에 인도한다고 밝혔다. 방사청이 해군에 인도하는 노적봉함은 2014년 11월 첫 번째 차기상륙함인 천왕봉함을 시작으로 천자봉함, 일출봉함에 이은 마지막 네 번째 함정이다.노적봉함은 기존에 해군이 보유한 고준봉급 상륙함보다 기동속력과 탑재능력 및 장거리 수송지원 능력이 향상된 것이 특징이다. 4900톤급 규모의 노적봉함은 최대속력 23노트(약 40㎞)로 항해가 가능하고 120여 명의 승조원이 탑승해 운용하게 된다. 또 함 내에 국산 전투체계와 지휘통제체계를 갖춘 상륙작전지휘소를 보유해 지휘관의 효과적인 작전지휘가 가능하다. 또 병력 300여 명과 상륙주정 3척, 전차 2대, 상륙돌격장갑차 8대를 동시에 탑재할 수 있고 함미갑판에 상륙기동헬기 2기가 이착륙이 가능해 해상과 공중으로 동시에 전력을 전개하는 ‘초수평선 상륙작전’ 수행능력을 보유한 함정으로 평가받고 있다. 노적봉함은 국내에서 지명도가 높은 산의 봉우리를 상륙함의 함명으로 사용해 온 해군의 관례에 따라 전남 목포 유달산의 ‘노적봉’에서 이름을 착안했다. 방사청은 “노적봉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노적봉 바위에 볏짚을 덮은 후 군량미로 위장하여 왜군의 침략을 저지하고 아군의 사기를 높인 역사적 의미를 가진 곳”이라고 설명했다. 노적봉함은 2015년 11월 현대중공업에서 건조를 시작해 인수 시운전과 국방기술품질원의 정부 품질보증을 받아 앞으로 4개월간 해군의 승조원 숙달훈련 등의 과정을 거쳐 내년 전반기 중 실전 임무에 투입될 예정이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폐허 속 부산 재건’ 위트컴 장군 조형물 세운다

    ‘폐허 속 부산 재건’ 위트컴 장군 조형물 세운다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부산 재건에 헌신한 리처드 위트컴(1894~1982·준장) 장군을 기리는 기념조형물 건립사업이 추진된다.부산시는 유엔군 참전용사 가운데 장군으로 유일하게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위트컴 장군 조형물을 건립하기로 하고 건립추진위원회, 부산보훈청, 남구, 김정훈 국회의원 등과 협의하고 있다고 20일 밝혔다. 시는 22일 오후 2시 부산시청에서 이들 관계자와 함께 조형물 건립 추진 방안에 대해 회의한다. 설치 장소는 유엔기념공원 인근 유엔평화공원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비 10억원은 국·시비와 시민 모금 방식으로 조달할 예정이다. 추진위는 내년 3월부터 기금 모금에 들어가고 11월 11일 제막식을 할 예정이다. 위트컴 장군은 부산지역 군수사령관으로 재직하던 1953년 11월 27일 부산역전 대화재 때 군수물자를 이재민에게 나눠줬다. 이 일로 미국 의회 청문회에 선 그는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게 진정한 승리”라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박수와 함께 구호물자까지 얻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부산 메리놀병원과 고아원 시설 건립 등 전후 부산지역 재건에 앞장섰다. 전역 뒤에도 한국으로 돌아와 한미재단을 만들어 수많은 전쟁고아를 도왔고 북한지역 미송환 병사 유해 발굴에 힘썼다. 유언에 따라 1982년 서울에서 타계하자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다. 부산시 관계자는 “전 세계에 하나뿐인 유엔기념공원과 함께 평화의 상징으로 위트컴 장군을 세계인이 기억하고 추모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미군 학살의 상징 필리핀 ‘발랑기가 종’ 귀환...한국 경유해 반환

    미군 학살의 상징 필리핀 ‘발랑기가 종’ 귀환...한국 경유해 반환

    미국이 117년 전 필리핀과의 전쟁 중 전리품으로 빼앗은 ‘발랑기가의 종’ 3개를 마침내 필리핀에 반환하기로 했다. 이 종들은 1899~1902년 미·필리핀 전쟁 중 미군이 자행했던 민간인 대학살을 상징하는 역사적인 ‘종’(鐘)이다. 필리핀 매체 스타 글로벌과 GMA 뉴스는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와이오밍주 샤이엔 워런공군기지에서 열린 발랑기가 종의 반환 기념식에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이 종들이 곧 필리핀으로 귀환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필리핀 대통령궁은 곧바로 성명을 내고 “발랑기가 종들의 반환에 환영한다”면서도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해 “필리핀으로 종 3개가 모두 돌아올 때까지 (종들은) 반환된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발랑기가의 종’은 한 세기 넘게 응어리진 미군의 ‘필리핀 살육’이라는 피의 역사를 품고 있다. 필리핀 사마르섬 발랑기가의 성당 종탑에 있던 이 종들은 양국이 전쟁 중 미군이 빼앗은 전리품이다. 원래 성당 미사 시작을 알리는 종이었지만 1901년 9월 28일 필리핀 반군이 현지에 주둔 중인 미군 9연대를 공격하는 신호로 사용했다. 당시 반군 300여명은 여성으로 변장해 무기가 든 목관을 성당으로 가져갔고, 이튿날 아침 종소리를 신호로 삼아 공격해 미군 48~76명이 숨졌다. 이 사건은 미·필리핀 전쟁에서 미군이 경험한 최악의 패전으로 기록됐다.하지만 이 공격은 피의 보복을 불렀다. 9연대는 최소 2500명에서 1만명에 달하는 원주민을 살해한 뒤 시신과 성당, 마을들을 불질러 초토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종 3개도 사라졌다. 미군은 그동안 9연대가 반란군을 성공적으로 진압했으며 1902년 4월 9일 발랑기라를 떠날 때 원주민들로부터 종들을 선물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영국인 작가 봅 쿠티가 2004년 발표한 ‘개들을 교살하라(Hang The Dogs): 발랑기가 대학살 역사의 진실’이라는 책을 통해 미군이 전리품으로 빼앗은 것으로 드러났다. 필리핀 정부는 지속적으로 종 반환을 미국에 요구했고, 두테르테 대통령도 강력하게 영구 반환을 제기해왔다. 결국 매티스 국방장관은 지난 8월 미 의회에 종 반환 계획을 보고했다. 필리필 언론들에 따르면 현재 종 2개는 와이오밍주 워런공군기지에 있고, 마지막 종 1개는 한국의 주한미군 2사단 영내 박물관에 있다. 필리핀에서 9연대가 빼앗은 종 3개 중 2개는 미국으로 보내졌지만, 1개는 9연대가 보관하다 한국에 주둔하면서 넘어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미 국방부는 조만간 워런공군기지에 있는 종 2개를 항공편이나 배편으로 한국에 보낸 후 최종적으로 종 3개를 이르면 연내 한꺼번에 필리핀에 반환할 것으로 알려졌다. 발랑기가의 종의 반환은 1871년 신미양요 당시 미군에 빼앗긴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진중에 세워진 대장의 군기)’를 떠올리게 한다.국제적으로 전쟁 중 획득한 노획품은 반환하지 않는 게 통례다. 수자기는 강화도 광성보의 조선군 지휘관 어재연 장군이 사용했던 깃발이었다. 함포와 야포를 쏘며 상륙하는 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어져 어재연 장군을 포함해 조선군 243명이 전사하고, 미군 3명이 숨졌다. 미군이 강탈한 수자기는 메릴랜드주 애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이 보관하다 136년 만인 2007년 10월 한국에 돌아왔다. 하지만 영구 반환이 아닌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해 최장 10년만 대여하는 조건이었다.어재연 장군기는 문화재청에서 2010년부터 강화역사박물관으로 이관돼 전시 중이다. 김명주 강화역사박물관 학예사는 1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관된 후 2012년 미측과 상의해 기간을 연장했고, 2014년 갱신할 때 2020년까지 대여하는 것으로 다시 기간을 늘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수자기는 그림으로만 전해졌는 데 미국이 대여한 어재연 장군기를 통해 실물을 볼 수 있게 됐고, 현재 국내에 있는 거의 유일한 보존 가치가 탁월한 진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김 학예사는 “대여 기간의 연장을 요구하면서도 미 측에 영구 반환해달라고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아 내부적으로 검토만 하고 있다”면서 “지방의 박물관이 홀로 나서기 쉽지 않은 만큼 정부가 관심을 갖고 영구 반환을 적극 추진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2019학년도 수능] “당락 승부처는 ‘킬러문항’… 수학, 4개 문항서 1~3등급 갈릴 것”

    [2019학년도 수능] “당락 승부처는 ‘킬러문항’… 수학, 4개 문항서 1~3등급 갈릴 것”

    “국어, 9월 모평보다 어려워 체감 난도 상승 수학가형, 작년보다 쉽고 영어는 어려워 복잡한 계산보다 개념 요구 문제 많아 ”올해도 ‘불수능’(난도가 높아 변별력이 큰 대학수학능력시험)이었다. 특히 1교시 과목인 국어영역이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어려워 수험생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국어의 문학과 독서영역 문제가 학생 간 성적 차를 가를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수학영역의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을 잘 풀었는지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국어영역에서는 화법·작문이 상대적으로 쉽게 출제됐고 문학·독서는 어려웠던 지난해 경향이 유지됐다. 조영혜 서울과학고 교사는 “올해 국어 난이도는 지난해 수능과 비슷하고, 지난 9월 모의평가보다 다소 어렵게 출제됐다”면서 “낯선 지문 등으로 인해 수험생들이 체감하는 난도는 상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수환 강릉 명륜고 교사는 “화법이나 작문 문제는 익숙한 지문과 문제 유형이 많아 어렵지 않게 느껴졌을 것”이라면서 “다만 유치환 시인의 ‘출생기’는 EBS 교재에 등장하지 않아 낯설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설과 시나리오를 함께 묶어 출제하는 등 통합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고난도 문제도 있었다”고 덧붙였다.EBS 연계율은 예고대로 70% 수준을 유지했다. 문학에서 현대시(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고전소설(임장군전), 고전시가(일동장유가)가 EBS와 연계돼 출제됐고, EBS 교재에 실렸던 현대소설 ‘오발탄’이 각색된 시나리오 작품도 지문으로 나왔다. 수학영역은 “어렵다”고 평가됐던 지난해와 전체적인 난도는 비슷했지만 개념을 알면 풀 수 있는 문제가 많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학교 현장에서 “지난 수능 때보다는 학생들의 수학 평균 점수가 높아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손태진 풍문고 교사는 “(인문계 학생들이 푸는) 수학 가형에서 고난도로 출제된 4문항이 전년 ‘킬러문항’과 비교하면 계산이 덜 복잡해 수험생 입장에서 접근(풀이)이 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입시업체인 종로학원하늘교육도 “수학 가형은 지난해보다 쉬워 상위권 학생들의 변별력이 전년보다 떨어질 것”이라면서 “(자연계 학생들이 보는) 나형은 지난 수능과 비슷했다”고 평가했다. 수학 가형은 21, 29, 30번이 고난도 문제로 꼽혔고 20번은 신유형으로 분류됐다. 나형은 20, 21, 29, 30번이 ‘킬러문항’이었다. 손 교사는 “수학 30개 문항 중 26개는 전체 학생의 75% 정도가 풀 수 있는 난도로 나왔고 4개는 상위권 변별력을 갖추는 형식으로 출제됐다”면서 “4개 문항에서 몇 문제를 맞히느냐에 따라 1~3등급이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영어영역은 지난 수능보다 조금 어려웠다는 평가가 많았다. 유성호 인천숭덕여고 교사는 “올해 영어는 전년보다 어려웠고, 지난 9월 모의평가 난도와 비슷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처음 절대평가로 치러진 영어영역은 1등급(90점 이상) 비율이 10.03%로 쉽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9월 모의평가 1등급 비율은 7.92%였다. 전문가들은 “가채점 결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12월 5일 통지되는 성적을 확인한 뒤 차분히 정시 지원전략을 짜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박문수 성원여고 교사는 “원점수가 낮게 나왔어도 실제 등급은 표준점수(평균 점수를 바탕으로 보정한 점수)에 따라 갈리기 때문에 낙심할 필요는 없다”면서 “영어는 지난해보다 다소 어렵게 출제된 만큼 이에 맞게 입시전략을 고민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정부 방안은 ‘무늬만 재정분권’… 지자체 참여해 전면 수정해야”

    “정부 방안은 ‘무늬만 재정분권’… 지자체 참여해 전면 수정해야”

    지난달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재정분권 추진 방안이 지방자치 구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방 4대 협의체(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는 지금이라도 정부가 재정분권 추진 논의에 지방자치단체를 참여시켜 ‘제대로 된 방안’을 짜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재정분권 국회 대토론회자치분권국가 실현을 위한 재정분권 강화 방안’에서 참석자들은 지난달 30일 ‘제6회 지방자치박람회’에서 발표된 정부의 재정분권 방안을 비판했다.박원순(서울시장)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은 “정부가 2022년까지 국세 대 지방세 비율을 7대3으로 조정하겠다고 했지만 (이번 발표에는) 지방교부세 인상이 빠져 ‘무늬만 재정분권’이 될 우려가 있다”면서 “지금의 ‘2할 자치’(국세 대 지방세 비율이 8대2인 우리 지방자치 현실을 상징)에서 일본의 6대4, 유럽의 5대5 수준까지 가야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치분권의 핵심인 재정분권에 대해 국회와 정부가 ‘(자신의) 팔다리 하나를 잘라낸다’는 심정으로 결단해 달라”고 호소했다.최형식(전남 담양군수)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부회장은 “국세 대 지방세 비율을 조정했다는 이유로 교부금·보조금을 내려주지 않으면 우리(상대적으로 재정자립도가 약한 기초지자체)는 다 죽는다”면서 “중앙정부는 자신이 주도해 지방을 살리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지자체에 지방재정 입법권을 보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최 부회장은 “이 정부에서도 광역지자체와만 소통할 뿐 기초지자체는 외면하는데, 이래서는 제대로 된 현실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나. 이럴 거면 더이상 우리가 ‘지방 4대 협의체’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고 토로했다. 기조발제를 맡은 라휘문 성결대 행정학부 교수는 “정부 발표대로 지방소비세율이 내년 4% 포인트, 2020년 6% 포인트 오른다고 해도 실제 지방재정 순증 규모는 3조 7000억원에 불과해 실질적 지방재정 확충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지금이라도 재정분권 방안을 전면 수정·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는 국세 대 지방세 비율 ‘6대4’ 조정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중앙의 지방재정 통제 권한도 내려놓지 않았다. 국세를 지방세로 이양할 때 지자체 간 재정 격차 문제가 불거질 수 있음에도 지방교부세 배분 규모를 확대하지 않아 재정불균형을 방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정훈 재정정책연구원장은 “우리나라에서 ‘지방세’라는 용어부터 잘못 쓰이고 있다. 지방정부 스스로 과세권을 행사해야 지방세라고 할 수 있는데 대한민국에서는 이조차도 중앙정부가 걷는다”면서 “재정분권의 목적이 없는 것도 문제다. 재정분권이 왜 좋은지부터 공유해야 하는데 (현 재정분권 논의는) 8대2니, 7대3이니 등 세수 비율이 지상 목표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헌법에 지자체는 오직 ‘법령이 정하는 범위’ 안에서만 자치를 할 수 있다. 정부부처와 국회가 지방자치의 모든 것을 규율하게 돼 있는데 분권국가가 어떻게 가능한가. 헌법 개정 없는 분권 논의는 그저 분권국가를 흉내 내려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손희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지방자치위원장은 “국세 대 지방세 비율 7대3을 달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통교부세를 자치분권세로 전환하면 지방재정이 더욱 열악해져 자치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다”면서 “예를 들어 지방소비세율을 부가가치세의 40%까지 큰 폭으로 인상하는 등 획기적 조치에 나선 뒤에 자치분권세 도입 등을 논의하는 것이 순리”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부 측 패널로 참석한 강성조 행정안전부 지방재정정책관은 “지난달 공개한 정부의 재정분권 추진 방안은 완결된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추진 중인 현재진행형”이라면서 “기본적으로 지방의 자주재원 확충이 우선돼야 한다는 점을 정부도 잘 알고 있다. 내년부터 논의되는 2단계 추진방안 논의 때 지자체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틀을 갖추겠다”고 답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국립공원 사진공모전 대상에 ‘한여름의 꿈’

    아름다움운 국립공원을 담은 사진공모전 대상에 북한산의 노을을 담은 김규완씨의 ‘한 여름의 꿈’이 선정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11일 제17회 국립공원 사진공모전 수상작으로 김씨의 작품을 포함해 80점을 선정했다. 수상작에는 상장과 상금이 수여된다. 올해 공모전에는 자연공원의 경관, 생태, 역사문화 등을 소재로 4610점이 접수됐다. ‘한여름의 꿈’은 폭염 속 화룡 한 마리가 북한산을 휘돌며 산의 정기를 불어 넣는 순간을 포착한 독창적인 사진으로 호평을 받았다. 최우수상은 김주현씨의 ‘소매물도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와 이순섭씨의 ‘물 속의 장군봉’이 각각 선정됐다. 국립공원 공모전은 자연 훼손·동물 학대·통제구역 출입 등 위법 촬영 사실이 드러나면 당선 취소는 물론 과태료가 부과된다. 촬영을 위해 야생화나 수목을 베어내는 등 자연을 훼손하거나 야생동물의 보금자리를 강제 이동시키거나 연출해 촬영한 행위 등이다. 수상작은 국립공원관리공단 누리집(www.knps.or.kr)에서 공개되며, 비상업적 용도의 개인 활용에 한해 사진을 내려 받을 수 있다. 공단은 내년부터 지리산 등 전국 국립공원에서 국립공원의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사진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사령관 솔레이마니, 이란의 영웅·미국엔 악마

    사령관 솔레이마니, 이란의 영웅·미국엔 악마

    외신 “중동 최강 장군·스파이 대장”미군 사령관 “그는 진짜 악마”트럼프와 거침 없는 설전 벌여미국은 그를 ‘악마’라고 부른다. 그는 이란인들의 영웅이다. 그는 거셈 솔레이마니(63), 이란 정예군 혁명수비대 최정예 부대인 쿠드스군 사령관이자 군부 최고 실세다. 미국 대테러센터(CTC) 최신 보고서는 “솔레이마니는 의심할 여지 없는 현존 중동 최강의 장군”이라면서 “그는 이란에서 최고로 사랑받는 사람이자, 유력한 대선 주자”라고 평가했다. 두바이 방송 알아라비아는 솔레이마니를 “어둠의 장군이자 스파이 대장”이라면서 “강력한 정치인이자 이란 민중의 영웅”이라고 묘사했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솔레이마니를 “혁명의 살아있는 순교자”라고 칭찬했다. 이란의 적국인 미국의 시선은 다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최근 아랍에미리트(UAE) 매체 더내셔널과의 인터뷰에서 “솔레이마니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면서 “그 때문에 우리는 돈을 더 써야 했다”며 부정적으로 평했다. 이라크 전선에서 솔레이마니와 대치했던 미군 사령관은 솔레이마니를 ‘진짜 악마’라고 불렀다. 솔레이마니는 책략과 모략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9년 이란 혁명이 일어났을 때 혁명 수비군에 가담하여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는 데 일조했다. 그리고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진행된 이란-이라크 전쟁에 참전해 수많은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어 명성을 쌓았다. 솔레이마니가 쿠드스군 사령관이 된 것은 1998년 3월로 추정된다. 솔레이마니는 이후 직접적 군사 개입보다 민병대 등을 활용한 대리전을 벌여 시리아와 이라크, 예멘 등 중동 전역에서 이란의 영향력을 키웠다. 레바논의 막강한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그 대표적인 예다. CTC는 “헤즈볼라는 무장 세력을 정치화한 독특한 전략”이라면서 “헤즈볼라의 건축가는 솔레이마니”라고 분석했다. 헤즈볼라는 국경지대에서 국지전을 벌여 이란의 적국인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있다. 솔레이마니는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미군을 공격했다. 당시 솔레이마니가 미국을 공격한 것에 대해 CTC는 “이라크 다음 표적이 이란이 될 것이라고 계산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솔레이마니는 쿠드스군을 활용해 이라크에 수많은 시아파 민병대를 조직했다. 이 민명대들은 미군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2006년 창설한 한 민병대는 2011년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하기까지 6000건 이상의 공격을 감행했다. 이는 하루 평균 3회씩 5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공격했다는 얘기다. 솔레이마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도 거침없는 설전을 벌여 화제를 일으켰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에 “역사를 통틀어 아무도 경험해본 적 없는 중대한 결과를 겪고 고통받을 것”이라고 이란을 위협하자, 솔레이마니는 “당신은 도박꾼”이라면서 “당신이 전쟁을 시작할지는 몰라도 그것을 어떻게 끝낼지를 결정하는 쪽은 우리”라고 맞받았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 완전 복원이 임박한 지난 2일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전신사진과 ‘제재가 오고 있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자, 솔레이마니는 자신의 옆모습 사진과 ‘내가 당신과 맞서겠다’라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응수하기도 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해군이 손원일 제독의 빛바랜 사진을 꺼낸 이유는

    해군이 손원일 제독의 빛바랜 사진을 꺼낸 이유는

    11월 9일은 대한민국 해군의 창설기념일이었다. 해군은 손원일 제독의 빛바랜 사진 한 장을 처음으로 꺼내 들었다. 인천상륙작전 직후 미 해군의 스트러블(Arthur D. Struble) 제독과 악수하는 장면이다.(사진) 지난 3월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미 해군 역사·유물사령부에서 이 사진을 입수해왔다고 전했다. 또 진해지역 부대는 이날 손 제독의 동상에 참배했다. 손 제독은 해군의 아버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위태로울 때 대한민국을 지켜낸 최초의 해군 제독이기 때문이다.해군 관계자는 10일 “인천상륙작전을 말할 때 흔히 맥아더 장군은 기억하지만 거기엔 손 제독의 숨은 공도 있었다”며 “그는 6·25 전쟁에서 벌어진 최초의 해전에서 승리한 영웅이었다”고 설명했다. 1945년 11월 11일 서울 관훈동에서 해군의 모체인 해방병단이 생겼다. 육·해·공군 중 첫 창설이었다.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장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손정도 목사의 아들 손원일이 해방병단 총사령관에 올랐다. 그는 이후 해군 제독, 국군 최고지휘관, 5대 국방부장관 등을 역임했다. 손 제독은 젊은 시절 민족 번영의 방법이 바다에 있다고 봤다. 중국 상하이에 위치한 대학에서 항해과를 나왔고 중국 및 독일 해운회사에서 승선 생활을 하며 항해술을 습득했다. 이후 그는 1946년 해군사관학교의 전신인 해군병학교를 창설해 초대교장이 됐고 미국과 협상해 37척의 비전투 함정을 인수했다. 이후 전투함 보유를 위해 모금운동을 벌였고 이 돈으로 미국에서 4척의 전투함을 구입했다. 이중 하나가 우리나라의 첫 전투함인 ‘백두산함’이다. 백두산함은 6.25전쟁 발발 당일 동해로 긴급히 출동하다 부산 동북방 해상에서 무장병력 600여 명이 탑승하고 남하하는 함정을 발견하고 격침했다. 6·25 전쟁에서 벌어진 최초의 해전이었고 첫 승리였다. 또 맥아더 장군이 이끈 인천상륙작전은 영흥도와 덕적도를 탈환해야 구사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 손 제독의 지휘 아래 한국 해군은 1950년 8월 두 섬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고, 손 제독은 인천상륙작전부터 9·28 서울 수복작전까지 전장에서 함정과 해병대를 진두지휘했다. 서울 수복 작전 후 “국군과 유엔군은 수도 서울을 탈환했다”는 포고문을 발표한 것도 그였다. 1980년 운명한 손 제독은 “나라 없는 서러움보다 더한 것은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다시는 내 조국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잘 지켜주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일병이 말하고 사령관은 듣고 “이런 장면 처음이야”

    육군은 창군 이래 처음으로 병사들이 발표를 주도한 ‘장군에게 전하는 용사들의 이야기’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7일 개최했다. 과거 병사들이 가만히 앉아 지휘관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던 형식에서 탈피해 직접 지휘관 앞에서 발표 주체로 나선 것이다. 이날 병사들은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해 육군본부 주요 직위자와 야전군사령관, 군단장, 사단장 등 장성급 지휘관들 앞에서 장병 인식과 군 문화 개선, 정책 제안을 주제로 열변을 토했다. 28사단 안정근 일병은 “육군이 ‘왜’라는 질문을 하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분위기는 갖춰지지 않고 있다”며 “병사를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데 이런 상황에서 병사와 그 가족이 군과 간부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5사단 김승욱 병장은 “자율성과 책임성을 구비한 병사는 자율과 책임이 강조되는 병영문화에서 훈육되며 그 시작은 병사들을 자율과 책임의 주체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병사들은 세미나에서 나름대로 구상하고 있는 군 정책도 적극 제안했다. 야전수송교육단 박지민 병장은 육군이 편제 중심의 병사 배치에서 벗어나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는 ‘워리어퀘스트’(warrior quest) 사이트 도입을 통해 부대의 인력 수요와 용사 역량을 맞춰 복무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육군항공학교 박동하 병장은 군 복무기간 18개월 중 총 2회의 사회파견제가 포함된 탄력근무제를 실시하면 그 기간 동안 사회와 학업과의 단절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서울 자치구 25곳 중 15곳 사회복지예산 ‘절반’

    서울 자치구 25곳 중 15곳 사회복지예산 ‘절반’

    노원·강서구 60% 넘어… 증가세 확연 69개 區 평균 52%… 82개 郡은 19% 기초단체 중 군·구 격차 갈수록 벌어져 “특별·광역시 국고보조사업 가장 피해”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15개 구가 사회복지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어섰다. 7일 ‘서울신문’이 행정안전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사회복지예산 평균은 50.2%(2018년도 기준)로 나타났다. 2013년만 해도 사회복지예산 비중이 50%가 넘는 자치구가 7곳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복지예산 증가세가 확연하다. 노원구(61.0%)와 강서구(60.1%)는 60%를 넘겼다. 5년 전에는 각각 57.7%와 56.4%였다.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도 군과 구 격차는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결산 기준으로 비교한 결과 69개 구에선 사회복지예산 평균이 52.1%에 이른 반면 82개 군 지역은 사회복지예산 평균이 19.2%에 불과했다. 자치구 가운데 사회복지예산 비중이 가장 낮은 중구가 31.9%였지만 군에서는 비중이 가장 높은 부산 기장군이 38.3%에 그쳤다. 전국 최하위는 경북 울릉군(7.9%)이었다. 서울 자치구 복지비중 증가와 지자체 간 격차 확대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갈수록 확대되는 국고보조사업이다. 중앙정부 복지사업이 국고보조사업 방식을 취하다 보니 복지수요가 가장 많은 특·광역시 자치구로 부담이 몰리는 양상이 계속되는 셈이다. 기초연금과 아동수당, 기초생활수급이 대표적이다. 유태현 한국지방재정학회 회장(남서울대 세무학과)은 “현재 국고보조사업 제도는 특·광역시 자치구가 국고보조사업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복지 확대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는 하지만 기초연금이나 아동수당, 생계급여 등만 100% 국가사무로 환원해도 지역 간 격차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고보조사업은 개혁이 시급한데도 최근 정부가 발표한 자치분권 종합계획에서도 제대로 거론이 안 됐다”면서 “국가사무 지방이양 논의에 발맞춰서 국고보조사업 제도개혁 논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당신 마음 아플까 봐… 이불 덮고 혼자 울려 해”

    “당신 마음 아플까 봐… 이불 덮고 혼자 울려 해”

    엄앵란 “다시 만나면 선녀같이 공경할 것” “하늘의 별 되어 영화계 앞날 밝혀주시길” 신영균·김동호 등 영화인 150여명 참석한국 영화계의 ‘큰 별’ 신성일이 영화 같은 인생을 뒤로한 채 영면에 들었다. 지난 4일 새벽 타계한 신성일의 영결식이 6일 오전 10시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부인 엄앵란과 유가족·친지를 비롯해 원로배우 신영균,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이장호 감독, 오석근 영화진흥위원장, 배우 이덕화·독고영재·김형일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고인의 영정이 영결식장에 들어서고 ‘맨발의 청춘’, ‘초우’, ‘안개’, ‘장군의 수염’, ‘별들의 고향’, ‘길소뜸’ 등 고인의 생전 모습이 담긴 대표작이 상영됐다. 영결식장에 입장한 엄앵란은 “가만히 앉아서 사진을 이렇게 보니 당신도 늙고 나도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울면서 보내고 싶지는 않다. ‘왜 안 우느냐’고 하는데 울면 망자가 마음이 아파서 걸음을 못 걷는다고 한다. 억지로 안 울고 있는데 집에 가서 밤 12시에 불 끄고 이불 덮고 실컷 울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희로애락도 많지만, 그간 엉망진창으로 살았다”며 “남편이 다시 태어나 또다시 산다면 정말 선녀같이 공경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배우 안성기와 함께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은 지상학 한국영화인총연합회장은 추도사에서 “선배님처럼 시대의 아이콘으로 불린 대스타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며 “만인의 연인으로 살아보셨으니 이 세상에 미련은 버려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지 회장은 이어 “당신이 있었기에 행복했고 같은 시대에 산 것이 행운이었다”며 “이제 하늘의 별이 되셨으니 사랑하는 지상의 가족을 잘 보살피고 우리 영화의 앞날을 잘 밝혀 달라”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선생님은 500편이 넘는 수많은 영화로 사람들의 가슴에 가장 아름다운 별이 됐다”고 추도했다. 또 “오직 영화를 위해 살아간 선생님의 진정과 열정을 절대 잊지 않겠다”며 “선생님이 그토록 사랑한 한국 영화가 세계 영화의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 하늘에서 행복하고 평안하길 간절히 기원한다”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추도사 뒤에는 분향과 헌화가 이어졌다. 엄앵란이 고인 앞에 국화 한 송이를 바쳤고 조문객들이 그 뒤를 따랐다. 영결식을 마친 후 영정과 고인이 누운 관은 운구차로 옮겨졌다. 손자가 영정을 들고 배우 안성기·이덕화·김형일·독고영재 등이 관을 옮겼다. 고인의 유해는 서울추모공원으로 옮겨져 화장된 뒤 장지인 경북 영천에 안치됐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프로야구] ‘다승 선두’ 이용찬 vs ‘두산 킬러’ 켈리

    [프로야구] ‘다승 선두’ 이용찬 vs ‘두산 킬러’ 켈리

    이용찬, 평균 자책점 3.63 기량 과시 켈리, 두산 상대 선발로 3승1패 거둬 KBO리그 한국시리즈(KS·7전4승제)에서 ‘장군 멍군’을 주고받은 두산과 SK가 7일 오후 6시 30분 인천에서 2승 고지 점령을 위한 맞대결을 펼친다. 3차전에선 토종 에이스와 외국인 에이스의 치열한 자존심 대결이 펼쳐질 전망이다. 선발투수로 두산은 이용찬, SK는 메릴 켈리를 예고했다. 특히 역대 1승 1패로 맞이한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승리한 팀이 92.9%의 확률로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에 둘은 팀의 명운을 걸고 마운드에 오르게 됐다. 마무리와 선발을 오가다 올 시즌 선발로 전환한 이용찬은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정규리그 25경기 중 24경기에 선발로 나서 15승3패, 평균자책점 3.63이라는 ‘커리어 하이’ 기록을 세웠다. 특히 국내 투수 가운데 다승과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해 리그를 대표하는 토종 에이스로 우뚝 섰다. 다만 KS의 향방을 결정할 3차전에서 ‘인천 악몽’을 극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그는 지난 7월 26일 인천 SK전에서 선발 등판해 평균자책점 7.94를 기록, 최악의 투구를 했기 때문이다. 올해 SK를 상대로도 3경기 1승1패 평균자책점 5.68로 좋지 않다. SK 상대 피안타율은 .333으로 9개 구단 중 가장 나쁘다. SK 타선 중 특히 최항(6타수 3안타)과 한동민(6타수 3안타)에게 고전했다. 반면 켈리는 올해 ‘두산 킬러’ 면모를 보였다. 올 시즌 28경기에 선발등판해 12승7패, 평균자책점 4.09를 기록했지만 두산을 상대로는 5경기에 선발등판해 3승1패, 평균자책점 3.03을 기록했다. 올 시즌 역대 최고 팀타율을 올린 두산을 상대로 3승을 거둔 투수는 켈리가 유일하다. 두산전 피안타율도 .241로 자신의 시즌 전체 피안타율(.250)보다 좋다. 인천 홈경기에서도 9승2패, 평균자책점 2.79로 압도적인 기록을 갖고 있다. 그나마 두산에선 오재일과 양의지가 11타수 5안타 1홈런 1타점, 11타수 4안타 1홈런으로 켈리를 잘 공략했다. 그러나 켈리는 ‘가을 야구’에선 그렇게 위력적이지 못하다. 켈리는 역대 포스트시즌 4경기에 등판해 1패 1홀드, 평균자책점 9.75를 기록했다. 지난달 28일 넥센과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선발로 나서 4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으나 오른손 저림 증상으로 강판됐다. 이용찬이 역대 포스트시즌 18경기에 등판해 2세이브, 평균자책점 2.38을 올리며 ‘가을 사나이’로 불리는 것과 반대다. 이용찬과 켈리 모두 KS 선발 등판은 이번이 처음이다. 3차전이 끝난 뒤 ‘생애 첫 KS 승리’를 따낼 주인공은 누가 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故신성일 오늘 6일 발인…영화계 떠나 ‘하늘의 별’ 되다

    故신성일 오늘 6일 발인…영화계 떠나 ‘하늘의 별’ 되다

    故(고) 신성일의 영결식 및 발인식이 오늘 6일 오전 엄수됐다. 이날 오전 10시에는 故신성일의 영결식이, 오전 11시에는 발인식이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아내 엄앵란을 비롯한 가족들의 참관 속에 진행됐다. 이후 서울 양재 추모공원에서 화장을 진행될 예정. 장지는 고인이 마지막을 보냈던 경북 영천 선영이다.故신성일은 지난 4일 오전 2시 25분쯤 지병이었던 폐암의 악화로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고, 고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장례는 영화인장(3일장)으로 거행된다. 故신성일의 장례식에는 연예계와 정계를 아우르는 수많은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첫날인 4일에는 동료 배우인 최불암과 이순재, 신영균, 안성기,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전 이사장, 문성근, 선우용여, 김수미, 박상원, 임하룡, 조인성, 이창동 감독, 정지영 감독, 한복연구가 박술녀 등이 장례식장을 찾았다. 이어 5일에는 방송인 송해와 정은아, 이상용, 배우 김창숙, 김형일, 전원주, 장미희, 이정섭, 조형기, 강석우, 나영희, 이보희, 김혜선, 배슬기, 전무송, 이장호 감독, 이종격투기 선수 김동현 등이 조문했다. 그뿐 아니라 이회창 전 국무총리와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서청원 의원,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과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 등 정계 인사들이 대거 장례식장을 찾아 고인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 신성일은 1937년생으로 1960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했다. 본명은 강신영이었으나 데뷔와 함께 신상옥 감독이 지어준 ‘신성일’이라는 예명을 써왔다. 1964년에는 당대 톱 여배우였던 엄앵란과 결혼했고, 슬하에 1남 2녀를 뒀다. 이후 강신성일이라는 이름으로 제16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잠시 정치권에 몸을 담기도 했다. 대표작으로는 ‘길소뜸’(임권택 감독), ‘내시’(신상옥 감독), ‘맨발의 청춘’(김기덕 감독), ‘별들의 고향’(이장호 감독), ‘안개’(김수용 감독), ‘장군의 수염’(이성구 감독), ‘초우’(정진우 감독), ‘휴일’(이만희 감독) 등이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김해시 ‘국제슬로시티’와 ‘김해슬로라이프 4.0’ 비전 선포

    경남 김해시는 3일 김해문화의전당에서 국제슬로시티 선포식을 하고 ‘김해 슬로라이프 4.0’ 비전을 선포했다. 시는 선포식에서 ‘도시와 농촌, 빠름과 느림, 첨단과 옛것, 자연과 기술의 조화’를 통해 슬로시티의 진정한 가치인 ‘사람 중심’ 도시를 실현한다는 비전을 밝혔다. 시는 슬로라이프 비전 실현을 위해 ‘균형 있고 조화로운 김해! 행복으로 물들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지역경제, 자연, 문화, 사람’ 등 4대 분야 핵심사업과 사업별 전략 및 실천과제 등을 수립했다. 사업은 성격과 필요성 시급성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단기, 중기, 장기 등 단계별 실천계획을 우마련했다. 지역경제 분야는 도시형 슬로비즈니스를 전략 목표로 삼아 ‘내 삶이 변화하는 행복한 도시, 스마트도시 김해’, ‘아시아 슬로비즈 어워즈 개최’, ‘안전한 먹거리, 슬로푸드 플랜’ 등의 세부 실천과제를 마련했다. ‘자연’ 분야는 김해 온통생태 프로젝트를 전략목표를 정해 ‘공원 전자파 제로지대’, ‘도시숲 가꾸기 사업 확대’, ‘화포천 습지보전 관리센터 및 생태촌 조성’, ‘미세먼지 감축대책 수립’ 등의 실천과제를 정했다. ‘문화’ 분야는 김해 2000년 플러스 유산을 전략 목표로 ‘가야건국 2000년 세계도시 프로젝트’, ‘가야역사문화 환경정비사업’, ‘허왕후 신행길 관광자원화 사업’, ‘낙동강 뱃길복원 등 슬로레저 활성화’ 등의 실천과제를 세웠다. ‘사람’ 분야에서는 가야 슬로공동체를 전략 목표로 ‘명상센터 조성’, ‘김해 슬로학교 개설’, ‘사회적 기업 발굴 프로젝트’, ‘사람중심 행복도시 김해 프로젝트’ 등의 실천과제를 수립했다. 내년부터 당장 시행할 단기사업과 세부 추진계획도 마련했다. 시는 ‘콘텐츠 권역 주민협의회 구성’, ‘시민 교육 플래너 및 프로젝트 매니저 그룹 육성’, ‘김해 슬로기업 협의체 구성 및 아시아 슬로비즈니스 포럼 개최’, ‘교차로 슬로시티 랜드마크 설치(달팽이 슬로존)’, ‘김해 20% 플러스 녹색지대 만들기(작은 녹색정원 만들기)’, ‘공무원 슬로시티 경진대회’, ‘지역문화특화사업(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 등을 단기 사업으로 정해 내년부터 추진한다. 시는 슬로시티는 시민이 중심인 행복공동체운동이므로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사업을 많이 발굴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허성곤 시장은 선포식에서 “우리시는 2000년 가야왕도의 중심지로 장군차, 화포천, 분청도자, 김해가락오광대 등 우수한 역사문화를 많이 간직하고 있다”며 “이러한 전통과 문화, 자연 유산을 바탕으로 시민이 행복한 사람 중심 도시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며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포식에는 허 시장과 김형수 김해시의회 의장, 손대현 한국슬로시티본부 이사장, 시민 등 600여명이 참석했다. 슬로시티는 199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행복공동체운동으로 현재 세계 257개 도시가 가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주시와 하동군 등 15개 도시가 가입했다. 김해시는 지난 6월 23일 세계 245번째, 국내 14번째로 국제슬로시티연맹에 가입했다. 김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1000여명의 대규모 행렬로 남이장군 출진 재현한다

    1000여명의 대규모 행렬로 남이장군 출진 재현한다

    “비장(裨將) 남이 등이 돌격해 싸워서 적의 기치를 빼앗고 적 수백 명을 목베었다.”조선왕조실록 세조 13년(1467년) 9월 6일자에 기록된 문장이다. 그 해 5월 함경도 호족 이시애가 일으킨 반란에서 남이(1441-1468) 장군은 큰 공을 세웠다. 쉼없이 여진족 정벌에 나선 장군은 추장 이만주 부자를 사살하고 조선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27세에 병조판서 자리에 올라 승승장구하는 듯 했지만 결말은 비극으로 끝났다. 세조가 죽은 뒤 예종 1년(1468년) 한강변 새남터에서 유자광의 모함으로 사형당했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구가 비운의 주인공 남이장군을 기리는 ‘제36회 남이장군 사당제’(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0호)를 오는 5~9일 용산구 일대에서 연다. 2000여명이 참여하는 사당제는 걸립(5~7일), 전야제(7일), 꽃등행렬(7일), 당제(8일), 장군 출진(8일), 당굿(8일), 사례제 및 대동잔치(9일) 순으로 진행된다.먼저 건립패가 3일간 마을 곳곳을 돌며 풍물을 치고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당제, 당굿에 필요한 제례비용을 마련한다. 남이장군 사당(효창원로 88-10) 주변인 용문시장에서 열리는 전야제는 풍물패와 주민, 예술단이 함께 어우러진다. 당제는 장군의 업적을 추모하고 주민들의 무병 장수와 생업 번영을 기원하는 제사다. 성장현 용산구청장도 제관으로 함께 한다. 행사에서 가장 절정으로 꼽히는 장군 출진은 남이장군의 출진 모습을 재현한다. 장군은 이시애의 난과 여진족 정벌 때 현재 삼각지 일대에서 군병을 훈련시켰던 것으로 전해진다. 코스는 남이장군 사당→효창공원 입구→숙명여대 정문→숙대입구역→남영동 삼거리→삼각지역→용산소방서→신용산역→전자상가 사거리→원효로2가 사거리→남이장군 사당이다. 보존 회기를 선두로 용기, 대취타, 도원수기, 장군, 부장, 영기, 군졸, 재관, 연등 1000명 가까운 대규모의 행렬이 이어지며 장관을 연출한다.억울하게 죽은 장군의 넋을 달래는 12거리 굿, 당굿과 굿이 끝난 다음 날 지내는 제사 사례제도 이어진다. 굿이 열리는 동안 주민들은 국수 잔치를 벌이고, 제사가 끝나면 대동잔치를 열고 제물을 나눠 먹는다. 성장현 구청장은 “남이장군 사당제는 300년 이상 이어진 지역 대표 문화유산”이라며 “원형 그대로 보존할 수 있도록 주민과 꾸준히 함께 하겠다”고 전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부산 기장군 라돈측정기 무료대여로 전환 ..부산시선관위원회 기부행위예외

    부산 기장군은 주민들에게 유료로 대여해온 ‘라돈측정기(제품명:라돈아이)’를 지난 1일부터 무료대여로 변경했다고 2일 밝혔다. 기장군은 방사능 ‘라돈’ 측정기 50대를 구매해 지난 9월 17일부터 5개 읍ㆍ면과 군청(원전안전과)에 분산 비치하고 라돈측정기 대여를 하고 있다. 기장군은 그동안 ‘라돈측정기 무료대여 사업‘을 두고, 공직선거법 제112조(기부행위)를 근거로 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해석에 따라 무료대여 방식에서 유료대여로 전환했었다. 하지만 최근 부산시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라돈측정기 무료대여는 공직선거법상 기부행위 예외 조항에 속한다는 공식입장을 밝혀옴에 따라 무료대여로 바꿨다. 부산 기장군 관계자는 “라돈측정기 무료대여가 그동안 선거법 위반 여부를 두고 지자체, 기관마다 입장차이로 인해 측정기대여 사업 초기 혼선이 빚어 졌다”며“앞으로는 부담 없이 주민들이 라돈측정기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며 환영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선농단 향나무는 기억한다 풍년 기원하는 왕의 손길을 빼앗긴 봄 암울했던 세월을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선농단 향나무는 기억한다 풍년 기원하는 왕의 손길을 빼앗긴 봄 암울했던 세월을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6회 청량리(약령시의 기억) 편이 지난 27일 동대문구 휘경동·전농동·청량리동·제기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가을이 농익은 서울시립대에서 낙엽이 흩날리는 캠퍼스의 낭만을 만끽했다. 또 청량리역을 중심으로 청량리 수산시장, 동부청과시장, 청량리 재래시장, 청과물도매시장, 서울약령시(경동시장) 등 끝도 없이 이어지는 5개 개별시장이 뭉친 슈퍼시장의 위용을 체감했다. 때마침 26일부터 이날까지 ‘제24회 서울약령시 서울한방문화축제’ 기간이어서 흥겨운 한방축제 분위기에 젖었고, 한방박물관 무료관람 혜택도 누렸다.이날 오전 10시 지하철 1호선 회기역에 집결한 투어단은 의병장 허위 장군의 호를 딴 왕산로를 따라 내려오다 110년 전통의 시조사를 보고 동광대장간을 들렀다. 떡 파는 가게가 즐비했던 떡전교를 지나 서울시립대에서 경농관과 자작마루를 둘러봤다. 사도세자의 능이 있던 배봉산은 건물과 아파트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청량리 육교 위에서 수십 갈래로 쪼개지는 철길의 행렬을 지켜본 뒤 청량리역~금강헤어라인~청량리청과물시장~서울약령시~제기동성당의 순서로 2시간 20분간의 바쁜 일정을 마무리했다. 해설을 맡은 김은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철저한 사전답사와 준비를 통해 만족스러운 투어를 선사했다. 서울시립대는 자작마루의 문을 열어줬고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동광대장간, 금강헤어라인의 장인으로부터 자부심 어린 뒷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가곡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같은 아리아가 흐른 10월의 마지막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였다.청량리는 조선시대 한성부 동부 인창방 청량리계에 속하는 고요한 성 밖 동네였다. 1911년 경기도 경성부 인창면 청량리, 1914년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청량리를 거쳐 1946년에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으로 자리잡았다. 서울과 경기도를 들락날락한 동쪽 교외(동교)였다. 겸재 정선이 남긴 ‘동문조도’(東門祖道)라는 진경산수화에 300년 전 동대문 밖 풍경이 등장하는데 낙산과 동망봉, 안암, 용마산 아래 동묘와 청량리 일대가 펼쳐져 있다. 조도란 길 떠나는 사람을 송별한다는 뜻이니 동대문 밖 청량리가 서울을 벗어난 첫 지점이라는 장소성이 내재돼 있다. 그러나 용두동·제기동·전농동 등 이른바 청량리 일대는 왕이 몸소 농사를 짓는 친경(적전)을 두고 제사를 모신 점에서 여타 교외 지역과는 격을 달리했다. 적전은 한성과 개성 2곳에 뒀는데 한성의 적전을 동적전, 개성의 적전을 서적전이라고 지칭했다. 김정호의 경조오부도를 비롯한 대부분의 고지도에 동적전을 안암천(성북천)과 정릉천 사이에 표시하고 있고 동적전의 관리청인 필분각이 있던 텃골과 곡식을 저장하던 창고마을인 창마을(倉村)이 오늘의 서울시립대 앞 전농로에 있었다. 선농단의 친농의례는 종묘제와 사직제, 환구제의 대사(大祀)에 이어 중사(中祀)의 위상을 가졌다. 조선 성종 6년(1475)에 적전의례가 처음 실행된 뒤 연산군, 중종, 명종, 선조, 광해군 때 1회씩 거행됐으며 이후 영조와 고종, 순종 때 자주 거행됐다. 선농대제가 끝난 뒤 소를 잡아서 참가자들에게 나눠 준 게 설렁탕(설롱탕)의 유래가 됐다. 청량리(淸凉里)는 신라 고찰 청량사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청량이란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청량산에서 따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삼각산(북한산)에 청량사가 있다고 적었다. 또 고려 예종 12년(1117) 왕이 남경(서울)에 행차하면서 청량사에 머문 사실도 전한다. 세종 5년(1423) “태조의 공신은 청량사에, 태종의 공신은 승가사에서 주상의 탄신일에 장수를 기원하자는 재를 열자”는 세종실록의 기록으로 보아 조선 초 청량사의 격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청량사는 1897년 명성황후가 홍릉에 들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선농단 일대는 참담한 변화를 겪는다. 고종은 영조 이후 100년 넘게 거행하지 않던 친경례를 부흥시켰고, 순종은 1909년과 1910년 두 차례 친경례를 행했지만 1908년 개정된 제사제도 칙령에 의해 선농단의 위패는 사직단으로 옮긴 뒤여서 사실상 폐지된 것과 다름없었다. 일제는 선농단 터에 느닷없이 잠업기술 및 기술자를 양성하는 잠업시험소의 전신 원잠종제조소를 설치했다. 또 1934년 경성여자사범학교 부지로 제공, 기숙사를 짓는 과정에서 원형을 잃었다. 일제강점기 선농단은 청량대(淸凉臺)라는 공원으로 훼손됐다.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책동이었다. 지금도 청량대라고 새겨진 빗돌 하나가 누워 있다. 광복 후 주민들이 넘어뜨려 울분을 달랬다고 안내문에 적혀 있다.선농단은 1950~60년대 서울사대부고나 서울사범대생들에게 개나리와 벚나무, 측백나무가 우거진 뒷동산으로 기억되고 있다. 선농단 터라는 사실은 알지 못하고 왕이 농사를 지은 장소 정도로 알았다. 휴식과 축제 장소로 사용했다. 대학신문 1961년 4월 27일자 ‘청량대 새 단장’이라는 기사에서 “왕이 백성들의 농사하는 모습을 살피려고 올라서곤 했던 청량대 비석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도록 그 위치를 옮긴다. 가장 큰 나무인 향나무에 중점을 두고 주위의 다른 나무들은 제거 혹은 이식시킨다”고 적혀 있다. 선농단 터는 제기동에 속하지만 1970년대까지는 제기동과 용두동 경계에 걸쳐 있었다. 이후 116개의 필지로 분할됐다. 우뚝 솟은 향나무 한 그루가 선농단의 존재를 말없이 증언하고 서 있다. 천연기념물 제240호로 지정된 높이 10m, 줄기의 둘레 2m에 이르는 600년 묵은 이 노거수는 다른 향나무처럼 휘어지지 않고 위로 곧게 자란 게 특징이다. 청량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청량리역, 588 집창촌, 서울약령시로 이름을 바꾼 경동시장 등이다. 주민의 삶이 아니라 외부인의 시각이다. 청량리의 두드러진 정체성은 철도이다. 청량리역은 1950~60년대 철도교통의 발달에 따른 도시적 확장 과정의 산물이다. 근대교통기관인 전차가 1899년 처음으로 홍릉까지 왕래했고, 수송의 중심이 전차에서 자동차로 이동하면서 1968년 70여년간의 전차운행이 중단될 때까지 전차노선의 중심이었다. 1911년 경원선 철도가 일부 개통됐고 1939년에는 경춘선이 성동역(제기역)을 기점으로 운행된 데 이어 중앙선까지 연결되면서 청량리는 물자 유통과 여객 수송의 요충지이자 철도 중심지로 명맥을 이었다. 1974년 개통된 지하철 1호선이 근대 전차의 첫 목적지였던 청량리 궤도를 여전히 달리고 있다. 관사주택과 부흥주택, 도시 한옥, 시민아파트에 이르기까지 도심주변부 근대도시 주거지의 역할을 해냈다.서울약령시는 1000여 한의약 관련 전문 업소가 모여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한약재 전문시장으로 전국 한의약 약재의 70%가 거래되고 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서울의 문학3(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 ●일시 : 11월 3일(토) 오전 10시~12시 ●집결장소 : 지하철 2호선 신촌역 3번 출구 앞 ●신청·안내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
  • 충무공 백의종군길 함께 걸어요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를 걷는 행사가 열린다. 전북 남원시는 오는 3일 백의종군로 가운데 시내 주요 구간을 걷는 행사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걷기 행사는 남원시내 백의종군로 53.1㎞가운데 뒷밤재~서남대~남원향교~용성초등학교간 8㎞ 구간이다. 이에 앞서 남원시는 백의종군로를 정비하고 주요 지점에 이정표와 설명판, 종합안내판 등을 설치했다. 백의종군로는 충무공이 임금의 명령을 거역했다는 누명을 쓰고 투옥됐다가 1597년 4월 1일 백의종군 처분을 받고 서울 의금부 옥문을 출발해 경남 진주에 도착하기까지 120여 일간 걸은 640.4㎞의 길이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의병 홍범도·시인 윤동주가 통탄할 너무 매끈히 덧입힌 ‘그날들의 흔적’

    의병 홍범도·시인 윤동주가 통탄할 너무 매끈히 덧입힌 ‘그날들의 흔적’

    러시아 크라스키노에서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 훈춘시로 가려면 러시아, 중국 세관을 차례로 거쳐야 한다. 수백여m를 사이에 두고 두 곳은 극명히 비교된다. 낡고 허름한 러시아 세관에 비해 중국 세관은 최신 지문 인식 기계를 도입했고, 규모 역시 수십 배나 된다. 비포장도로도 중국으로 들어서면 매끈한 아스팔트로 바뀐다. 달라진 중국의 모습을 새삼 느낀다.지난 24일 훈춘시에서 하루를 보내고 투먼시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1시간 정도 더 가면 왕칭현 봉오동이다. ‘봉오저수지’라는 한글과 한자를 함께 적은 간판을 지나 10여분을 더 걸어가니 매끈한 화강암으로 만든 ‘봉오동 기념비´가 나온다. 2013년 투먼시 인민정부가 세운 것으로, 글씨 윗부분에 중국을 상징하는 붉은 별 문양이 붙었다. 그 뒤로 100m 정도 떨어진 흙바닥에 1993년 만든 낡은 기념비가 적벽돌 주춧돌을 그대로 드러낸 채 방치돼 있다.두 기념비는 문구가 조금 다르다. 새 기념비는 봉오동전투에 관해 “중국 조선족 반일무장이 여러 민족 인민들의 지지하에 처음으로 일본 침략군과 맞서 싸워 중대한 승리를 거둔 규모가 비교적 큰 전투”라는 부분을 추가했다. 두 개의 기념비에서 중국의 역사관을 어렴풋이 느낄수 있다. 기념비 왼편 계단을 올라 비탈길을 10분 정도 더 가면 봉오동 전적지를 볼 수 있다. 1970년대 후반에 댐을 만들며 많은 지역이 수몰됐지만, 그나마 저수지 너머로 당시 전투지가 남아 있다. 1919년 3·1 만세운동 이후 연해주를 비롯해 간도와 만주에서 수많은 독립군 부대가 일어났다. 이들은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나들며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일본 정규군과 싸워 최초로 승리한 전투가 바로 봉오동 전투다. ‘나는 홍범도´로 불리는 의병장 홍범도가 이끄는 부대와 난무의 대한국민회군, 최진동의 군무도독부가 연합한 ‘대한북로독군부’가 산에서 매복하다 두만강을 건너 독립군을 추격한 야스가와 지로 소좌가 이끄는 일본군 19사단의 ‘월강 추격대대’를 격파했다.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군 전사 157명, 중상 200여명 독립군 전사 4명, 부상 2명이라고 발표했다. 다만 이 숫자에 관해서는 의견이 여전히 갈린다. 버스를 타고 80㎞를 달려 옌지시로 향했다. 한 식당에서 옌볜에서 가장 유명한 역사학자로 꼽히는 김성호(67·전 조선력사연구소장) 옌볜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그는 1980년대 평양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에서 근현대사를, 1990년대는 인하대에서 조선근현대사를 공부해 박사 학위를 받은 독특한 이력이 있다. 그에게 봉오동전투 일본군 사상자 수가 왜 불명확한지 묻자 “하나의 역사를 두고 조선, 미국, 중국, 일본이 다 다르게 말했다. 자기 나라에 맞게 부풀리거나 줄이는 사례가 당시에는 흔했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는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전투’에 관해서도 “당시 독립신문이 일본군 2000명이 죽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장소에 직접 가 봤나. 2000명이 누울 자리 있던가”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과거와 달리 지금도 정권이 앞장서서 그런 식으로 주장하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남북이 갈라진 지금 역사 인식을 통해 분단 사관을 극복해야 한다”며 “안중근 의사, 일본군 위안부, 항일투쟁 등 남북 역사학계가 함께할 수 있는 주제부터 다뤄야 한다”고 충고했다.옌지시에서 룽징시를 향해 1시간 정도 더 달리면 명동학교가 나온다. 명동학교는 ‘간도 대통령’으로 불린 민족운동가 김약연이 세운 학교다. 그는 1908년 간도 명동으로 이주해 한인 집단 촌락을 건설하고, 명동학교를 세워 인재를 길렀다. 윤동주를 비롯해 문익환, 나운규, 송몽규 등이 이곳에서 공부했다. 1929년까지 모두 1200여명의 졸업생이 나왔다. 졸업생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는 윤동주다. ‘명동’, ‘윤동주 생가’라고 쓰인 큰 안내돌을 돌아 마을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윤동주 생가와 마주한다. 1932년 윤동주가 용정 은진학교에 진학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팔려 허물어졌던 것을 1994년 복원했다. 윤동주는 명동소학교, 은진중학교를 거쳐 평양의 숭실중학교에 편입해 공부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자퇴해 1941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 도쿄 릿쿄대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교토 도시샤대 문학부로 전학했다.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까지 했지만, 항일독립운동으로 1943년 일본 경찰에 체포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체실험을 당하다 옥사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게 살기를 바랐던 민족시인의 향취를 이곳에서 느끼긴 어려웠다. 명동촌은 봉오동 전적지와 마찬가지로 ‘연변조선족자치주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돼 관리 중이다. 집 인근에 윤동주의 시가 적힌 금색 조형물이 군데군데 박혀 있었다. 이곳에서 200여m 정도 떨어진 명동학교는 너무 번듯하게 새로 지어놔 어색하기까지 했다. 명동학교에 들어가니 교실에 윤동주 인형을 만들어 사진 촬영용으로 쓰고 있었다. 준수한 얼굴의 인형을 바라보며 실소가 났다. 명동학교의 옛 모습은 간데없고 인공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값싼 관광지를 찾은 느낌만 들었다. 현지 가이드가 ‘중국은 돈 되는 것이라면 뭐든 한다’며 농담을 건넸지만 웃을 수가 없었다.명동학교를 나와 가곡 ‘선구자’의 배경이 된 룽징시 비암산의 일송정으로 향한다. 버스를 타고 산 정상까지 오르며 조잡한 관광물을 계속 마주쳐야 했다. 일송정 역시 울긋불긋한 정자로 탈바꿈한 지 오래다. 독립운동가들이 바라보며 울분을 달래고 마음을 다잡았던 해란강이 시야에 들어온다. 흔적만 남은 러시아의 항일독립운동 유적지, 중국풍으로 바뀐 중국의 항일독립운동 유적지를 돌아보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해를 등지고 산에서 내려오며 ‘우리는 그동안 무얼 했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글 투먼·룽징(중국)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한글 잃은 고려인 후손, 한국 언어정책 확대 기대”

    “한글 잃은 고려인 후손, 한국 언어정책 확대 기대”

    연해주는 기회의 땅이고, 좌절의 땅이었으며, 재건의 땅이다.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고려인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1937년에 스탈린 강제 이주가 있었다. -홍 안톤(81) 내가 그때 태어났다. 어른들에게 들으니 그때 모두가 갑자기 화차에 실렸다고 한다. 문도 없는 기차였고 죽으면 그냥 그 자리에 버리고 갔다. 카자흐스탄에 도착했을 땐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였다. 그곳을 고려인들이 일궜다. →강제 이주됐다가 다시 이곳에 온 이유는. -최 마르가리타(69) 부모님께서 이곳이 참 살기 좋았다고 항상 말씀하셨다. 1953년 스탈린이 죽고 1955년부터 거주이전 자유가 생기면서 이곳으로 많이 돌아왔다. 사실상 이곳에서 다시 시작한 셈이다. →타향 살이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최 나제즈다 알렉산드로브나(83) 부모님이 두 살 때 돌아가셨다.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 나는 학위가 두 개이고 중·고교에서 교사로 56년 동안 역사·사회·정치를 가르쳤다. (훈장을 보이며) 러시아 정부에서 주는 ‘특별 교사상’도 두 번이나 탔다. 저기 계신 강 레오니바실리비치 선생은 ‘러시아 공로인 100인’에도 선정됐다. →이 지역에 독립운동 하셨던 분들이 많다. -최 마르가리타 안중근 의사 조카, 홍범도 장군의 외손녀 등이 러시아에 살고 있다. 독립운동으로 유명하신 분들은 고려인들에게 큰 자긍심이다.→고려인으로서 대한민국에 바라는 것은. -김 엘라시나예브나(72) 일제강점기에 우리는 한글을 잃었다. 스탈린 시대에도 우리말을 쓸 수 없었다. 고려인 3·4세대는 한국말을 쓸 수 있게 됐지만 미흡할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에서 언어 정책을 좀더 확대해야 한다. 남과 북, 러시아 동포 모두 같은 피를 받지 않았나. 통일에 대한 기대가 크다. 다 같이 잘사는 그날이 왔으면 한다. -최 나제즈다 알렉산드로브나 우리말을 못 쓰게 되면서 우리는 한국의 역사도 잘 모른다. 한국어로 된 역사책을 주면 우리가 보기 어렵다. 한국 정부가 러시아어로 역사책을 만들어 우리 후손에게 보급했으면 좋겠다. 글 사진 우수리스크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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