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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차대전 일장교출신/세균무기개발 첫 실토

    ◎“「증거인멸」 지시공문 갖고 있다” 일본군의 전 장교가 2차 대전이 끝날 당시 일본의 세균 무기개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자신이 관련 서류 등 증거 인멸을 명령했다고 시인함으로써 일본의 세균 무기 개발과 관련한 50년 가까운 침묵이 깨졌다. 올해 84세인 이 예비역 중령은 4일 일교도(공동)통신과의 회견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나 일본이 항복한 지난 1945년 8월 15일 자신이 세균 무기 개발과 관련한서류 및 기타 증거 파괴를 명령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미국이 일본의 세균 무기 개발 사실을 알았다면 국제법상 아주 골치 아픈문제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동경에 살고 있는 이 퇴역장교는 2차 대전 당시 일본 국방부에서 과학 정보 관리를 담당했으며 세균 무기 관련 증거를 인멸토록 한 공문의 사본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명령을 받은 기관에는 만주에서 인체를 대상으로 비밀 세균 실험을한 것으로 악명이 높은 731부대도 포함됐다고 말했다. 731부대에서는 한국인·중국인·러시아인·몽골인들이 강제 수감돼 세균 실험을당한 결과 수천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일본정부는 관련 서류의 부족으로 2차 대전 당시 일본이 세균 무기를 개발하거나 사용했는지를 확인할 수 없다고 발뺌해 왔다. 교도통신은 731부대 연구에 평생을 바친 가나가와 대학의 츠네시 케이치 교수를 인용해 세균 무기 관련 증거 인멸을 명령한 공문의 사본을 보관중이라는 일본군전장교의 고백은 일군이 국제법을 위반하면서 세균무기를 개발·연구했다는 증거라고 결론지었다.
  • “중국공산당,군 장악”/강택민,창당 73돌 기념식 참석

    【북경 AFP 연합】 강택민 중국국가주석은 1일 인민해방군 고위장교들이 참석한 중국공산당 창당 73주년 기념식에서 행한 연설에서 『중국 군대는 공산당의 완전한 통제하에 놓여있다』고 강조했다. 강주석의 이날 연설은 관영 인민일보및 주요 일간지의 머리기사로 자세히 실렸는데 강주석이 중국군 통제에 대해 발언한 것은 3주만에 2번째이다. 군총사령관및 중국공산당 총서기를 겸하고 있는 강주석은 또 『인민해방군 내의 공산당조직이 매우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함께 『새로운 시대에는 중국식 사회주의및 군양성에 관한 등소평 지도자의 이론에 대한 연구에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고 밝혔다. 한편 강주석이 『새로운 시대』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정치분석가들은 몇몇 공산당지도자들에게 있어서는 이미 「등사후 체제」가 시작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논평했다.
  • 여군사관후보 임관식

    제39기 여군사관후보생 임관식이 1일 상오 오영우교육사령관을 비롯한 군관계자및 후보생 가족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방부 영내 여군학교에서 열렸다. 이날 임관된 여군장교들은 보병·전산·정보·정훈·경리등 13개 병과별로 선발된 대졸출신의 전문인력으로 지난 3월12일 여군학교에 입교,16주간 훈련을 받았다. 임관식에서 국방부장관상은 이행숙소위(24·전남대졸)가 수상했고 육군참모총장상은 최성이소위(25·성심여대졸),교육사령관상은 정희형소위(23·전남대졸)이 각각 받았다.
  • 군관할관 형면제권 폐지/보통군사법원 80개서 35개로 축소

    ◎개정 군사법원법·군형법 새달 발효 군관할관(지휘관)의 형면제권 폐지와 군사법원의 축소를 골자로 하는 개정 군사법원법과 군형법이 7월1일부터 발효된다. 국방부는 27일 지난해 국회본회의를 통과,지난 1월5일 공표된 군사법원법및 군형법 개정안을 내달 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새 군사법원법에 따르면 현재 사단급단위로 80개소가 설치돼 있는 보통군사법원을 35개로 축소하고 국방부와 육·해·공 3군본부에 하나씩 모두 4개가 설치돼있는 고등군사법원도 1개로 통합한다. 그동안 군관할관의 발부로 위헌시비를 빚어온 구속영장발부절차는 군검찰관이 소속부대장의 사전승인을 받아 군판사에게 청구,군판사의 명의로 발부하도록 했다. 또 군관할관의 확인조치권도 대폭 손질,보통군사법원(1심)에서 군관할관의 형면제권을 없애고 감형권만 행사할 수 있도록 했으며 고등군사법원(2심)에서는 확인제도 자체를 삭제했다. 재판부의 구성은 1심을 현재의 군판사 1명,일반장교 2명에서 군판사 2명,일반장교 1명으로 변경하고 군판사 3명,일반장교 2명으로구성되던 2심도 원칙적으로는 군판사 3명으로 바꿨다. 이와함께 단순사건 피의자에 대해서는 간이재판을 통해 벌금을 부과토록 하는 「약식 명령제도」가 군형법에 신설되고 수사전문인력인 검찰수사관제도가 새로 도입된다. 각종 군범죄에 대한 법정형도 대폭 손질해 ▲군무이탈죄는 3년이상 10년이하징역에서 2년이상 10년이하 징역으로 ▲총포·탄약등 군용물에 대한 재산범죄는 10년이상 징역에서 5년이상 징역으로 완화하는 반면 ▲초령(보초근무 관련명령)위반은 1년이하 징역에서 2년이하 징역으로 ▲항명죄는 2년이하 징역에서 3년이하 징역으로 처벌을 강화한다.
  • “「성희롱」 잘못처리” 인준제동/미태평양군 사령탑 공백우려

    ◎지명자 아더제독,의원반대에 포기결정 빌 클린턴대통령에 의해 미태평양군사령관에 지명된 스탠리 아더제독(59)은 여군장교에 대한 성적 학대사건을 잘못 처리했다는 비난에 부딪쳐딛혀 상원에서 인준받기를 포기,태평양군사령관직에 공백이 우려된다고 미해군이 24일 밝혔다. 미해군은 24일 아더제독이 자신에 대한 상원의 인준이 지연되고 있는데 대해 유감을 표시하면서 상원의 인준을 포기했다고 밝히고 상원의 인준지연으로 중요직책인 태평양군사령관직에 공백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아더제독은 그동안 태평양군사령관직에 무난히 임명돼 북한의 핵사찰 거부로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한국에서의 군작전통제권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었다.아더제독은 현재 해군 현역서열 2위인 해군참모차장이다. 아더제독이 인준받기를 포기한 것은 데이비드 두렌버거 상원의원이 성적 학대 사건처리가 잘못됐다는 이유를 들어 그에 대한 인준을 보류시킬 것이라고 경고하는등 인준과정에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레베카 한센 소위(28·여)는 지난해 텍사스에서 있은 헬리콥터 비행훈련기간중 교관이 자신에게 성적 학대를 가했다고 주장하는 진정서를 상부에 제출했으며,문제가 된 교관은 처벌을 받고 해군을 떠났다. 그러나 피해자인 한센소위도 정신감정을 받으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은데 이어 그후 플로리다주 해군헬리콥터비행학교에서도 낙제점수를 받게됐다.아더제독은 당시 한센소위의 낙제점수를 확인하고 그의 낙제를 최종결정했다. 두렌버거의원은 이같은 결정에 반대하지는 않았으나 한센소위가 정신감정을 받게된 경위를 묻는 자신의 질문에 대해 해군측이 무책임한 반응을 보인데 큰 불만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채명신장군이 말하는 「우리를 지키는 길」

    ◎“국민 깨어있어야 불행 막는다”/“유사시 나부터 희생” 각오로 뭉쳐야/군에 따뜻한 애정과 격려 절실한 때/탄광속 학살 등 공산군의 잔학행위 지금도 생생… 북 평화손짓 늘 경계를 최근 북한핵문제로 한반도 정세가 극히 미묘해 지면서 올해 6·25는 예년과 달리 새로운 의미로 다가서고 있다.6·25와 월남전에 참전한 「국군의 산 역사」 채명신 전주월한국군사령관(69·예비역중장)역시 이번 6·25를 맞아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나 않을까 며칠째 밤잠을 설치고 있다.채장군은 황해 곡산 출신으로 46년「같이 일하자」는 김일성의 권유를 뿌리치고 공산치하에서 1년반만에 남하,47년 소위로 임관(육사5기)한뒤 야전을 누빈 맹장.6·25 44돌을 앞두고 자그마한 정원이 깔끔하게 가꿔져 있는 용산구 후암동55 자택에서 채장군을 만났다. ­6·25 개전 당시 상황을 말씀해주십시오. ▲당시 북한병력은 20만여명으로 한국의 2배에 이르렀습니다.공산군은 일요일 새벽 4시 주공격 방면을 의정부·개성일대로 삼고 최신형 T34전차 1백50여대를 집중시켜 남침에 나섰습니다.한국은 이 지역을 7사단이 맡고 있었으나 예하 1개연대는 온양에 위치해 2개연대만이 방어를 하고 있었습니다.더욱이 5월이후 비상경계상태에 있던 군은 전쟁발발 며칠전 경계령을 해제,농촌병사들은 농번기일손돕기를 위한 휴가중이어서 전후방 병력은 평소 절반수준이었습니다.또 연대장 이상급 장교들은 24일 저녁 서울 육군본부 장교클럽 낙성식 축하 댄스파티에 참석,새벽녘까지 술을 마시고 취해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댄스파티에 만취 특히 전방에서 새벽 6시쯤 국방장관에게 전화로 비상을 알리려 했으나 보좌관이 『장관님은 일요일에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전화를 연결시켜 주지 않았으며 육군총장집에서도 『주무시고 있어 깨울 수 없다』고 전화를 끊는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 병사들의 사기등 의식은 어땠는지요. ▲전쟁초기 북한군의 사기가 남한에 비해 훨씬 높았습니다.그러나 대한민국의 운이 좋아 미국이 전쟁발발 한달여만에 조속히 참전하게 됐으며 북한이 3일만인 28일 서울을 점령한뒤 이상하게 7월3일까지 더이상 남하하지않고 시간을 허송세월해 아직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 남아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미군의 참전이후 국군도 사기가 충천해 북한을 다시 밀어붙일 수 있었습니다. ­6·25당시 소대장과 중대장·대대장으로 직접 전투를 벌였는데 공산군에 대해 기억에 남는 점이 있다면. ▲공산군은 참으로 잔혹했습니다.국군이나 민간인은 물론 동료전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북한군에 밀리다 반격에 나설 당시 대대장으로 죽령점령을 위해 전투를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치열한 격전끝에 죽령을 확보했는데 죽령터널안에서 시꺼먼 연기가 치솟으며 악귀형상을 한 사람들이 엉금엉금 기어나오고 있었어요.처참한 전쟁에 단련된 부대원들도 이들을 진짜 귀신으로 생각하고 깜짝 놀랐습니다.가까이 다가가 확인해보니 이들은 북한군 부상병들이었습니다.터널을 야전병원 겸 유류저장창고로 사용하던 북한군이 후퇴하기 직전 부상병이 잔뜩 있는 그 곳에 불을 지른 것입니다.터널 입구에 있던 부상병들이 살겠다는 의지로 화상을 입고 피범벅이 된채 간신히 기어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전장병들은 통곡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때 북진이 늦어지면 그만큼 동포들이 흘리는 피가 많아진다고 말하던 일이 생각납니다.탄광등에 갇혀 떼죽음을 당한 동포들도 엄청났습니다. ○역사교훈 배워야 ­최근 전쟁에 대한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있는데 전쟁을 막기 위해 국민들은 과연 어떻게 해야될까요. ▲역사의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히틀러는 영세중립국 스위스를 침공하려 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스위스 국민들은 일치단결해 전쟁이 나면 최후의 한사람까지 싸울 것임을 행동으로 히틀러에게 보여주었던 것입니다.한마디로 스위스 국민들은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화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경험으로 보아 장병정신무장의 지름길이 무엇입니까. ▲장병들이 의식은 몇시간의 정훈교육이나 높은 계급자의 훈시로 절대 전환되지 않습니다.경험을 얘기하면 4·3폭동때 처음 일선 소대장으로 제주에 부임하자 모든 소대원의 눈빛이 적대감으로 가득 차있었고 중대장은 이미 나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려놓은 상태였습니다.그래서 어떻게 해야하나 하고 밤새 기도하다 새벽녘에 『좋다.그들사이로 뛰어들자』고 결심하고 숙소를 소대막사로 옮겼습니다.아픈 병사를 보면 죽을 끓여다 주며 간호하고 잠자다 모포를 걷어차는 사람은 모포를 덮어주고 해서 친동생처럼 병사들을 대했습니다. ○「골육지정」 필요 그 결과 일주일만에 병사들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당시 중대장이 저격병을 보냈으나 몰래 신변보호를 해주던 소대원들이 그들을 먼저 쏴 목숨을 건진 일도 있었습니다.그때 부대통솔은 골육지정임을 깨달았습니다.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전쟁은 병사들이 하는 것이고 병사들은 소대장·중대장을 위해 싸웁니다.그 것이 전력입니다.여순사건을 일으킨 반란군 3천명도 모두 빨갱이는 아니었습니다.주동자들이 그렇게 이끌었습니다.그러나 전제조건이 하나 있습니다.전쟁에서 다친 사람들을 돌봐줘야 합니다.월남전 고엽제후유증환자들이 보상을 받으려면 얼마나 힘이 듭니까.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을 냉대하면 누가 전쟁에서 목숨을 내놓고 싸우겠습니까.다치면 나만손해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입니다.북한의 핵이 걱정이 아니라 위기때 전방 소·중대장과 병사들이 얼마나 싸워줄 것인가를 염려해야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김영삼대통령과 김일성주석간의 정상회담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주십시오. ▲며칠전만해도 김영삼대통령에게 험담을 퍼붓던 김일성이 태도를 하루아침에 바꾼 것은 놀랄만한 일입니다.만나는 것 자체는 좋은 일입니다.그러나 지금까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해온 김일성이 회담을 갑자기 제의해온 것은 유엔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평화제스처로서 미국으로부터 호의적 반응을 얻어내자는 속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앞으로 진전될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경계를 흩뜨리지 않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채장군은 『전쟁이 다시 일어나면 우리 민족은 모두 망하게 된다』며 국민이 단결해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거듭 말했다.또한 요즘 군을 나쁜 존재로 보는 시각에 대해 0.01%만이 잘못된 사람이라면서 언론의 바른 역사인식이 전쟁을 막는데 중요하다고 몇차례씩 강조했다.노장군이 제시한 전쟁방지의길은 로마의 격언이었다.『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 6·25 그때와 오늘의 남북한 경제·군사력 비교

    ◎남 GNP 북의 16배… 수출은 80배 6·25전쟁이 발발한지 어언 44년.전차와 야포등 고성능 화력을 앞세우고 38선을 돌파,남침을 개시한 북한군앞에 우리국군은 무기력 할 수 밖에 없었다.가까스로 낙동강교두보를 형성한뒤 유엔군과 함께 북진을 계속,잃었던 땅을 회복하고 휴전을 맞았지만 44년이 흐른 지금도 통한의 6월25일을 잊을 수 없다.50년6월과 94년6월.44년 전후 남북한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국방부와 한국은행,민족통일연구원등의 자문을 중심으로 비교해본다. ◎군사력/현 한국군 독자 군사력 북의 71% 수준/해군함정수 남 251척·북 460척/1994년/군인수 남 65만·북 1백3만명/1950년/북한,병력 2배·장비 3배 앞서 6·25당시를 보면 북한이 남한에 비해 병력은 약 2배,장비는 약 3배가량 많아 전력이 훨씬 강했다. 개전초기 북한의 총병력수는 19만8천여명으로 이중 18만명이 육군 10개 사단으로 편성돼 있었다. 장비도 박격포 1천7백여문을 비롯,남한에는 없던 전차 54대,자주포 1백76문,고사포 36문을 갖고 있어 각종 화력이 모두 3천3백37대에 이르렀다. 북한 보유 포들은 대부분 1백20㎜이상의 대구경이었다. 반면 남한은 총병력 10만5천여명으로 육군이 8개 사단 9만4천여명이었으며 장비는 장갑차 27대를 비롯,박격포·곡사포·대전차포등 3종의 포 1천1백91문이 전부였다.이 포들은 그나마 최대구경이 1백5㎜로 북한의 화력에 비해 크게 뒤졌다. 당시 북한군은 양적 측면뿐아니라 군사훈련등 질에서도 남한을 크게 앞서고 있었다. 북한군은 3명중 1명꼴로 중국내전등에서 실전경험을 쌓았으며 육군은 8개 사단중 7개 사단이 사단급 연습을 끝마쳐 놓고 있어 전투력이 최고수준이었다. 장비와 보급품도 당시로서는 최신인 47∼50년식 소련제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남한은 고급장교중 문관이 상당수를 차지하는등 대부분 장교들이 전투경험이 없었다. 육군의 경우 공비토벌작전을 펼치느라 소규모로 흩어져 있어 겨우 4개 사단만이 대대급 훈련을 끝냈으며 나머지 4개 사단은 중대훈련이 고작이었다. 장비등도 미군이 2차대전중 사용하던 중고품이나 일본제 소총등이 주종이었으며 보급품 비축량은2일분에 불과했다. 주한미군도 치안유지에 적절한 수준으로 전면전을 치르기에는 전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남한과 미국측은 이처럼 현저하게 열세인 전력으로 전쟁초기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전쟁이 끝난 뒤 20여년쯤 70년대초반.남한은 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고속경제성장가도를 달리면서 비로소 군사력건설을 위한 율곡사업을 시작,지난 20여년 약 21조원을 투자했으나 주한미군을 제외한 한국군 독자군사능력은 북한의 71%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94년도 북한의 병력은 1백3만명으로 정규사단이 53개,후방침투등 특수전을 위한 여단이 99개등이며 전차는 3천8백대,1백70㎜자주포등 야포는 무려 1만3백문에 이르고 있다. 해군도 전투함이 4백34척이고 잠수함도 26척이나 된다.공군은 전술항공기가 8백50대로 지원기·헬기를 포함하면 1천3백30대에 이른다. 이같은 북한의 군사능력은 6·25당시에 비해 병력은 5.2배가 늘어났으며 전차는 15.7배,각종 포는 3.4배,함정은 25.7배,항공기는 7.7배 늘어난 셈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병력이 65만5천명으로 육군사단은 50개,여단이 21개이며 전차는 1천8백대,장갑차 1천9백대,야포 4천5백문이다. 함정은 전투함 1백90척을 비롯해 잠수함 1척등 2백51척이며 항공기는 전술기 5백90대와 헬기 6백대등 1천3백10대다. 한국의 군사력은 6·25당시에 비해 병력은 6·2배,야포는 3.8배,항공기는 29.8배가 늘어난 것으로 특히 공군전력이 강화됐다. 이처럼 남북한의 군사력이 엄청나게 확대됨에 따라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할 경우 한반도는 거의 초토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경제력/무역량 남 1천6백억불로 북의 63배/철도길이 남 1.3배… 44년간 같아/1955년/북한 발전시설용량 남의 8배/1993년/자동차생산량 남이 2백5배 ▷국민총생산(GNP)◁ 93년 한국의 GNP는 3천2백87억달러로 북한(2백5억달러)보다 16배에 이른다.53년에는 남한 13억5천달러,북한 4억4천만달러로 3배의 차이가 났다가 60년대 말까지 그 격차가 좁혀졌다.그러나 남한에서 본격적인 경제발전 정책이 추진되면서 70년 2배,80년 4.5배,90년 10배 등 격차는 더 벌어졌다.이제는 북한이 도저히 따라올수 없게 된 것이다. 1인당 GNP는 더 큰 변화를 보였다.74년을 분기점으로 남저북고가 남고북저로 역전됐다.53년에는 남한이 다소 앞섰지만 그뒤부터는 역전돼 60년에는 남한이 94달러로 북한의 1백37달러의 70% 수준이었다.그러나 74년 남한이 5백35달러로 북한(4백61달러)을 앞지르기 시작해 93년에는 남한 7천4백66달러,북한 9백4달러로 8배가 넘었다. ▷대외무역◁ 60년대 중반까지 수출·입을 합한 무역 규모는 남북한이 비슷했다.그러나 남한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본 궤도에 오르면서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지난 73년 5배의 차이에서 20년이 지난 93년에는 1천6백60억달러 대 26억4천만달러로 남한이 북한의 63배나 됐다.수출은 80.6배,수입은 51.7배이다. ▷광공업◁ 70년대 초까지는 북한이 중공업 분야에서 우위를 지켰다.전쟁 직후 남한이 경공업 중심의 성장정책을 편 반면 북한은 군수산업과 연관된 중공업을 우선시 했기 때문이다.지난 55년 북한의 발전시설 용량은 80만8천㎾로 남한(10만㎾)의 8배였다.총 발전량도 남한의 4배 가까이 됐다.60년의 제강능력도 66만t 대 5만t으로 북한이 앞섰다. 그러나 70년대 중반부터 남한이 중화학 부문에 투자를 늘리면서 상황은 역전됐다.우선 지난 해 남한의 발전시설용량은 2천7백65만㎾로 북한(7백14만㎾)의 4배이다.총 발전량도 남한이 북한의 6배나 된다.제강능력은 남한이 3천3백25만t으로 북한의 1백86만t을 18배나 앞질렀다. 93년 남한의 자동차 생산량은 2백5만대인 반면 북한은 1만대 수준에 그쳤다.선박 건조량도 남한이 북한의 66배나 됐다.화학비료 생산량은 60년대 중반까지는 비슷했지만 지금은 남한이 4백11만t으로 북한보다 3배가 많다.풍부한 지하자원으로 철광석 생산량은 북한이 4백76만t으로 남한의 21만t 보다 여전히 많다. ▷식량생산◁ 쌀 생산량은 다른 부문보다 격차가 크게 벌어지지 않았다.지난 65년 남한이 3백50만t,북한 1백25만t으로 2.8배의 격차를 보였다.지난 해에는 4백75만t 대 1백31만t으로 남한이 3.6배 많았다. 전체 경지면적은 65년에는 남한이 2백55만6천㏊로 북한(1백99만㏊)보다 넓었지만 90년에는 북한이 2백14만1천㏊로남한(2백1만9천㏊)을 앞질렀다. ▷수송수단◁ 도로 총 연장은 남한이 55년 2만6천6백㎞에서 93년 6만1천2백95㎞로 2배 이상 늘었다.북한은 1만7천6백82㎞에서 2만3천㎞로 늘었다.철도 총 연장은 50년대부터 줄곧 남한이 북한보다 1.3배 정도가 많다.
  • “나는 한국전에 이렇게 참전했다”/구소군의 증언

    ◎구소군 장교 2인의 회고담 북한의 남침은 소련의 지원 아래 준비되고 감행되었다.한국전쟁 개전후에는 지상전투부대를 보내지는 않았으나 공군력과 정보장교등을 비밀리에 참전시켰다. 오늘날 러시아가 관련 극비 문서까지 한국에 넘겨줄 정도로 양국간의 관계는 크게 변했다.이렇듯 상황이 달라졌고 또 당시 한국 전투병력과의 직접접촉이 거의 없었기 때문인지 참전자들은 자신들의 체험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이들은 체험담에서 당시 소련군이 참전 사실 자체를 숨기려 중공군으로 위장했음을 증언하고 있다. ◎알렉산드르 올로프/“특수임무” 받고 단동서 중국군에 합류/수풍발전소 방어지원… 미 포로 심문도 전쟁 발발 이듬해인 1951년 나는 정보장교로 모스크바에서 근무하고 있었다.계급은 육군대위였다.2월말 어느날 총참모부에서 나를 포함,우리부대 장교 몇명을 호출했다.해당자 모두 영어를 할줄 알고 전자정보분야에 근무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한밤중에 우리를 면담한 게르만 말란딘 참모차장은 우리에게 특수임무를맡기기로 했다고 통보했다. 며칠 뒤 우리는 민간인 복장을 하고 모스크바­만주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7일만에 만주역에 도착했고 거기서 이틀만에 북경에 도달했다. 우리가 탄 열차에는 모두 민간인 복장을 한 공군장교와 군사고문단등이 가득 타고 있었다.북경에 도착하자 주중 소련군사고문단장이 우리 목적지가 중국의 안동(단동)이라고 알려주었다.그로부터 며칠 뒤 안동으로 갔다.안동은 전선을 방불케했다.한국전선으로 가기 위해 중공군들이 곳곳에 집결하고 있었고 병력·군장비들은 모두 위장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배속된 안동주둔 소련군 제64비행단의 임무는 압록강 철교들과 수풍화력발전소에 대한 공중지원,국경으로부터 반경 75㎞내 북한영토에 대한 공중지원이었다.소련군 조종사들은 북위 39도선 이남과 서해상공에는 출격하지 못하도록 지시를 받았다.소련군의 한국전 참전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안동에는 야간에는 등화관제가 실시됐고 미군 폭격기 B­29기,B­26기들의 밤낮으로 압록강철교 상공에 출현했다.안동에 도착한 이튿날 우리는 견장·표식이 전혀없는 중공군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64비행단 소속 모든 전투기들은 중공군이나 북한군 표식으로 바꿔 달았다.전투중 소련조종사들은 모두 중국어로 교신토록 명령을 받았다.그러나 실제전투에서 우리 조종사들은 대부분 중국어를 잊어먹어 러시아어로 교신했다.소련당국의 은폐기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참전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미군 조종사들은 공중전 중 육안으로 우리를 식별할 수 있었고 우리가 러시아어로 교신하는 것을 모두 들었다.그럼에도 미군측은 우리의 참전을 공식적으로 문제삼지는 않았다. 우리 정보팀은 미공군의 조직·배치·전투능력등을 사령부에 보고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미공군이 사용하는 암호를 판독해 미군기들의 정확한 이륙시기등도 즉시 사령부에 보고했다.우리 사령부는 세이버기를 미그­15의 가장 무서운 적으로 생각했다.우리는 포로로 잡힌 미군들도 심문했다.나를 포함해 영어를 할 줄 아는 장교 몇사람이 북한내 포로수용소로 보내졌다.미군과의 직접접촉은 금지돼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서면으로 심문했다.그러는 중에 나는 몇차례 그들을 직접심문할 기회가 있었다.그중 51년 5월에 격추된 B­29기 조종사 블랙 중령이란 사람의 이름이 기억난다.3개월간 미군포로 심문 임무를 마치고 나는 다시 안동으로 돌아왔고 그해 10월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왔다.9개월여의 참전기간중 중공군측은 우리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했다.음식·잠자리 모두 나무랄 데가 없었다.소련·중공·북한군들간의 사이도 아주 좋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발렌틴 골루베프/중국공군 위장… M15로 미군기와 교전/51년 안산 이동,북한조종사 기술교육 1950년6월 나는 모스크바방공군 소속 공군중위로 모스크바 북서쪽 칼리닌시(현트베르시)부근 비행대에 근무하고 있었다.나는 항공기 기술장교였다.우리는 49년말부터 새 전투기인 미그­15기의 관련기술을 습득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어느날 모스칼렝코 방공군대령이 우리 부대를 방문했다.모스칼렝코대령은 우리 부대가 특수임무를 부여받았다고 말했다. 일체의 휴가가 중지됐고 휴가중인 군인들은 조속히 귀대하라는 명령이 하달됐다. 그로부터 우리는 매일 24시간 주야로 근무하며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전투기들을 해체해 기차에 싣는 작업을 했다.해체된 비행기는 특수컨테이너에 넣어 열차에 실려졌다.모든 부대원들에게 무기가 지급됐고 대신 당원증,콤소몰 회원증,신분증은 모두 사령부에 반납했다.그때부터 부대원간에 절대 계급을 부르지 말고 이름,그것도 가능한 한 성만 부르도록 엄명이 내려졌다. 그해 8월초 우리는 해체된 비행기를 실은 열차에 함께 타고 출발했다.열차는 남쪽으로 계속 달려 중국국경쪽을 향해 갔다.마침내 국경을 지나 만주역에 도착했다.만주역에서는 중공군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최종목적지는 목단이었다.50년8월말부터 우리는 목단의 한 행대에서 첫 임무를 시작했다. 그곳에서 소련군은 3개의 비행연대를 운영했다.부식조달,막사등은 전부 중공군이 맡아서 했다.우리의 생활은 비교적 자유로웠다.신문·잡지등이 본국으로부터 배달됐고 시내 나들이도 간혹 했다.시내 나들이를 할 때 우리는 민간인복장을 했는데 국민당 잔당들이테러를 자주 저지른다고 신변보호를 위해 중공군 2∼3명이 반드시 우리 뒤를 따라다녔다.10월말 우리는 중국인민해방군복장을 지급받아 겉으로는 중공군이 됐다.중국말 교습도 받았다.우리 공군기들의 표지도 중공군으로 바뀌었다. 12월 우리는 전투기들과 함께 안동(현 단동)으로 이동했다.그곳에서 우리는 압록강철교와 수력발전소 보호를 위한 공중지원을 맡았다.안동에 도착한 바로 이튿날 우리 부대는 미군기의 폭격을 받았으나 큰 피해는 없었다.조종사들은 매일 2∼3회,일요일이면 3회이상씩 출격해야 했다. 한번 출격하면 쌍방 모두 합쳐 60∼80대가 맞붙었는데 항상 미군기의 수가 더 많았다.서해 상공에서도 자주 공중전이 벌어졌다.당시 미군 세이버기는 우리 미그­15기에 비해 다소 성능이 앞섰다. 51년4월 우리 부대는 안산시 비행대로 옮겨가서 중공군과 북한군의 조종사·기술자들을 교육하는 새 임무를 맡았다.당시 젊은 북한 여군들이 통역으로 따라온 기억이 난다. 우리는 51년10월 한국전 임무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왔다.우리 연대에서 모두4명의 조종사가 전사했고 전투기 6대를 잃었다.본국에서 우리는 모두 무공훈장을 받고 일계급 특진됐다.중공정부로부터도 친선훈장을 받았다.
  • 유엔 휴전중재안 수락 불구/남북예멘 아덴 포격전 여전

    【사나·두바이 AFP 로이터 연합】 북예멘정부는 14일 유엔이 제시한 남예멘과의 휴전중재안을 수락했으나 남예멘 수도 아덴부근에선 이날도 양측간에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져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유엔의 라흐다르 브라히미 예멘특사는 남북예멘이 양측 군장교를 포함시키는 다국적군사위원회 구성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브라히미특사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관영 WAM통신과의 회견에서 북예멘측이 공동군사위원회에 외국대표들을 참여시키는데 반대해왔으나 이를 철회함으로써 합의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 민주 불참속에 맥빠진 신문/상무대국조 스케치

    ◎군공사담당관 신문여부싸고 논란/“수주전제조건 청우에 유리” 추궁 11일 속개된 국회 법사위의 상무대 의혹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는 민주당 의원들이 끝내 불참한 가운데 절름발이식으로 진행됐다. 민자당은 이같은 파행국면에도 불구하고 조사시한인 오는 19일까지 단독으로라도 조사를 강행한다는 방침이다.민주당이 「보이콧」 방침을 철회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야당의 몫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정조사에서 야당의원 모두가 중도포기했으니 조사의 의미도 자동상실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조사자체가 제대로 되겠느냐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날 국방부에서 진행된 증인신문은 시종 맥빠진 분위기로 일관한 끝에 1시간30분만에 종료. 증인으로 나온 육군 중앙경리단의 전계약처장 정석용대령과 국방부 시설국의 전설계심의담당관 임명용공군중령이 엄격히 보면 조사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도 이같은 분위기를 뒷받침.이들은 상무대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특혜시비등에 연루돼 구속돼 있는 상태.국정조사의 목적인 정치자금 수수의혹을 규명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증인신문에 앞서 민자당 의원들끼리도 신문을 벌일 것인가를 놓고 논란. 현경대위원장등은 본회의의 위임을 받은 이상 조사활동을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본회의에서 어떠한 결정을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법사위가 일정을 변경하거나 연장할 수는 없다는 견해였다. 반면 강신옥의원등은 이날 증인 2명이 민주당에서 요구한 사람들이므로,민주당 의원들이 나오지 않았으니 신문할 의미가 없다고 주장.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선 끝에 결국 현위원장의 중재로 증인신문은 하기로 결론. ○…의원들은 정대령을 상대로 상무대 이전사업자 선정과정에서 청우종합건설측에 대한 특혜가 상부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를 집중추궁. 이인제의원은 『청우측이 특허를 갖고 있던 라크공법을 공사수주의 전제조건으로 한 처사가 위법이 아니냐』고 따졌고 박헌기의원은 『7%지분 밖에 없는 청우측에 현대측과 40대 60으로 지분을 과다배분한 것은 상부의 입김때문이 아니냐』고 질문. 박희태의원은 『2천억여원에 이르는 큰 사업결정을 정대령혼자 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몰아붙였다. 그러나 정대령은 상부의 지시는 물론 위법,특혜사실마저도 철저히 부인. ○…의원들은 이어 임중령에 대해 비슷한 질문을 던졌으나 역시 별무성과. 임중령은 상무사업과 관련해 청우측으로부터 1천만원짜리 약속어음을 받았다가 되돌려 주었기 때문에 정대령에 비해 연루정도가 약해 시원스런 대답이 나올 수가 없다는 것. 정상천,정장현의원등은 라크공법 채택과 관련,『청와대측이나 국방부장관등 상부로부터 지시가 내려왔다는 얘기를 직·간접적으로 들을 적이 있느냐』고 질문. 이에 대해 임중령은 『장교의 명예를 걸고 지시를 받은 적도,지시가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도 없다』고 단호하게 부인.
  • D데이와 독일인들(임춘웅칼럼)

    1944년 6월6일은 2차세계대전중에 서방연합군이 나치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유럽대륙을 되찾기 위해 프랑스의 노르망디에 상륙작전을 개시한 날이다. 이날은 우리의 해방과도 적지않은 관련이 있어서 우리들도 기억해 둘 만한 날이기도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영국·캐나다·프랑스 등 서유럽국가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역사적인 날이다.우선 나치독일로부터 유럽을 해방시켰다는 의미가 있다.프랑스를 비롯한 대륙국가들은 나라를 되찾았으며 영국은 나치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난 날이다. 무엇보다 미국에게는 유럽을 해방시킨「십자군」으로서 세계 위에 군림하는 초강국의 위치를 확고히 한 역사적인 시점이다.영광스럽고 자랑스런 역사인 것이다.그래서 지난 6일과 7일 이틀동안 미국의 뉴욕 타임스 같은 신문은 50년전의 같은 날짜 1면기사 전면을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실어 감격을 되새기고 있다. 6일 노르망디에서 벌어진 50주년 기념행사도 그들의 영광된 역사만큼이나장중했다.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 등 19개국 수뇌가 참가했고 생존해있는 4만1천여명의 참전용사가 초대됐다.미국은 항공모함과 최신예 전함들을 오마하 해변에 배치해 미국의 위용을 과시했다. 관심이 가는것은 이처럼 요란한 행사를 지켜보는 독일인들의 감회다.이번 행사에 독일사람이 초대되지 않은 것은 당연한데 헬무트 콜 독일총리의 코멘트가 흥미롭다.콜총리는 이 행사에 초대되길 기대하지도 않았고 결코 요청한 일도 없다고 밝히면서 미국·캐나다·영국인들이 유럽을 해방시키기 위해 프랑스 해변에서 죽어간 그들 병사들을 추모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논평했다.그런데 그 논평 중에『나치 전체주의로부터 독일인의 해방을 포함해 모든 유럽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라는 대목이 있다. 최근 독일에서 실시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2차대전이후 태어난 독일인의 64%가 독일의 「항복」을 「해방」으로 보고 있다.이조사를 실시했던 여론조사 전문가는 「64%」가 예상보다 너무 낮았다고 분석하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독일인들이 나치즘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길은 「패망」이외의 다른대안이 없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독일인들이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어서 얻은 것보다 패배해서 얻은것이 더 많았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패배」를 자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그러나 독일인들은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일단의 군장교들이 히틀러를 암살하려했던 그해 7월20일을 「독일해방의 날」로 기념하려 계획하고 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한시대의 종언이었고 또한 한시대의 시작이었다.나치독일은 서방민주주의 국가로 재탄생했고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일원이 돼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같은 회원국가들 모두가 「노르망디 상륙」50주년을 자축하고 있던 날 뒷전에서 독일의 오늘과 역사를 되씹는 혼란속에 묻혀 지냈다.역사의 유산은 하루아침에 소멸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그러나 그들은 잘못된 역사를 스스로 반성하고 새출발 하려는 각고의 아픔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역사적 사실을 끈임없이 부정하고 은폐하려는 일본과의 차이점이다.
  • 한국 자체군사력 북의 71%/국방부,「문답 국방비」 책자 발간

    ◎주한미군전력 대체엔 20조원 추가소요/소령양성비 보병 2천만·조종사 3억4천만원/K1전차 23억·구축함 2,100억·F16기 334억원 육군 보병소령 1명 양성비용 2천만원,육군 정보소령은 9천5백70만원,공군조종사 소령은 3억4천4백20만원. 육군장교와 공군장교의 값이 대략 17∼4배 가량 격차가 있는 셈이다. 국방부는 9일 「문답으로 알아보는 국방비」라는 소책자를 발간,군의 예산사용실태를 이처럼 소상하게 밝혔다. 이 책은 처음으로 군인 양성의 「코스트」를 공개해 관심을 끌고 있다. 우선 전문인력 양성비용을 보면 하사관의 경우 육군보병 4백10만원,육군기갑은 9백20만원,해군 함포병은 9백40만원이 든다. 사병은 육군소총병의 경우 불과 40만원이 소요되고 공군항공정비는 5백60만원,해군통신은 2백10만원이 들어 육군이 가장 값싸게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장비의 값을 보면 육군의 K1 한국형 전차는 23억원,지대지유도탄은 14억원,자주포는 9억6천만원,장갑차는 2억7천만원이며 해군과 공군의 무기는 이보다 엄청나게 비싸다. 해군의 한국형 구축함은 2천1백억원,잠수함은 1천4백억원,하푼미사일은 13억3천만원이며 공군의 F16전투기는 3백34억원이나 된다. 따라서 차량화 보병사단을 창설할 경우 비용이 7천3백억원이지만 해군 1개 전투함대를 창설하려면 9천6백억원,공군 F16전투비행단은 2조1천5백억원이 든다. 그러나 북한은 사회주의권간에 염가로 무기를 수출입하고 있어 주력 T72탱크가 우리 탱크값의 22분의 1인 1억5천만원,미그29전투기는 F16의 절반값인 1백76억원이다. 그 결과 한국의 국방비 규모는 76년 38억달러(90년 불변가격)로 33억달러인 북한을 앞질렀으며 92년엔 북한의 2배인 1백11억달러에 이르고 있으나 자체군사력은 북한의 71% 수준으로 아직 열세에 있다는 것. 한국군 열세를 보완해주고 있는 전력이 바로 주한미군이며 이들의 전력을 한국군이 대체하려면 88년기준 2백59억달러(20조원)가 추가소요된다. 국방예산이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전력증강에 쓰임으로 장병 후생복지는 뒷전에 밀려 많은 병사들이 집에서 돈을 타다 쓰고 있는 실정이다. 군이 올초 병사 1천4백72명을 대상으로 월 추가용돈 사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전체의 45%가 월 3만∼5만원을 집에서 가져다 쓰고 있으며 15만원 이상도 2.2%로 「오렌지 병사」가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장교의 경우 대령이 되려면 적어도 20년 근무해야 하고 평균 12.4회 이사를 다닌다. 이처럼 근무환경이 열악해 직업군인 중 71%가 전역을 희망하고 있으며 하사관은 83%에 이르고 있다.
  • 화형(외언내언)

    인간이 생각해낸 처형방법중 가장 잔인한 것 중의 하나가 죄인을 불에 태워죽이는 화형이다.화형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확실한 기록은 없지만 고대이집트·소아시아등지에서 기원전부터 시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화형이 가장 성행했던 것은 로마제국때로 초기에는 기독교박해를 위해 사용됐으나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에는 이단을 겁주고 처형하는 방법으로 애용(?)됐었다. 그후 독일·프랑스·영국 등에서 행해졌는데 화형하면 떠오르는 가장 유명한 역사적 위인은 단연 프랑스의 애국소녀 잔 다르크이다.15세기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때 16살의 소녀 잔 다르크는 시민군을 이끌고 오를레앙성을 탈환했지만 3년뒤 영국군에게 체포돼 화형을 당했다.잔 다르크의 숭고한 죽음을 소재로한 오라토리오가 「화형대의 잔 다르크」.프랑스에서는 국경일이면 반드시 이 작품이 공연된다고 한다. 우리의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에도 화형제도는 있었다.일본의 경우 강호막부시대까지 존속했는데 방화범만 화형에 처했다.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없었다.그리고 지금은 세계의 어떤나라에서도 화형은 찾아볼수 없다.종교적·정치적 신념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분신자살은 간혹 일어나지만 국가의 형법상 처형제도로는 없어진지 오래다. 그 화형이 오늘의 북한에서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니 놀랍고 충격적인 일이 아닐수없다.지난2월 김일성부자 타도 모의를 하다 발각된 장교 10여명이 맨 앞줄의 가족등 1천여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 화형을 당했다고 한다.뿐만이 아니다.지난해 10월에는 굶주림에 못이겨 중국으로 탈출하려다 잡힌 주민 한명을 두만강 모래밭에 꿇어앉힌 후 산채로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 일도 있다. 잔인한 학살이 벌어진 르완다나 보스니아에서 보듯 인간이 극도로 잔악해질수 있는것은 인종이나 종교상의 이견·갈등때다.그도아닌 정치적 이유때문에 자기 동포요 주민을 어떻게 그처럼 잔혹하게 처형할수 있단 말인가.불행히도 우리는 지금 그런 북한공산독재정권을 상대하고 있다.
  • 북,반김장교 10여명 화형/지난 2월/대부분 위관급…타도모의 발각

    【북경 연합】 북한은 지난 2월하순 평양시 순안구역 신성동에 있는 김정일친위대양성기관인 강건종합군관학교 운동장에서 당간부및 주민 1천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비밀리에 김일성부자 타도모의를 하다가 사전에 발각된 이 학교소속 장교 10여명을 화형에 처한 것으로 7일 알려졌다. 북한사정에 밝은 이곳의 한 소식통은 『신변의 위협을 느껴 중국으로 탈출해온 한 평양시거주 화교로부터 이처럼 끔찍한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 화교가 목격한 바에 따르면 북한은 강제로 동원된 당간부및 주민 1천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학교 연병장에서 화형에 처해질 군인들의 가족들을 맨앞줄에 나란히 세운채 모의에 가담했던 장교들을 하나씩 불러내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여 처형했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이 화교는 당시 이들 장교의 화형현장을 목격하고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충격을 느낀 나머지 중국 관계당국에 이같은 사실을 알리는 편지를 보냈다가 북한당국의 서신검열에 걸렸으며 그뒤 북한 안전부요원이 집으로 찾아오는 등 신변에 위협을 느껴 최근 중국으로 탈출했다』고 전했다. 처형된 북한군장교들은 대부분이 소위에서 대위에 이르는 위관급장교들로 이들이 화형에 처해질 때마다 강제동원된 주민들은 당간부의 선창에 따라 「반역자」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이들에게 돌을 던졌다는 것. 한편 이들이 참혹하게 처형된뒤 일반주민들 사이에서 이들에 대한 화형식이 김정일의 직접지시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이들 장교가 소속됐던 강건종합군관학교 교장이 행방불명됐다고 이 소식통은 덧붙였다.
  • 동작동 국립묘지“만원”/일반묘역 12년전 바닥…특별묘역82기 남아

    ◎관리소,“여유있는 대전묘지 이용해줬으면”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도 만원을 이뤄 심각한 묘지난을 겪고 있다. 동작동 국립묘지의 경우 사병과 장교를 안장하는 일반묘역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82년부터 신규안장을 못하는데다 독립유공자·군장성등을 위한 특별묘역도 여유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55년 조성된 44만평의 동작동 국립묘지에 설치된 묘는 일반묘역 5만3천8백10기와 특별묘역 5백74기등 모두 5만4천3백84기다. 그러나 6일 국방부에 따르면 남아 있는 특별묘역의 묘는 1백18기에 지나지 않으며 지난해 8월 해외순국선열들의 고국유해봉환을 위해 긴급히 만든 임정요인·애국지사묘역 36기는 이미 안장대상자가 정해져 있어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묘는 82기뿐이다. 이 가운데 장군묘가 52기로 상대적으로 많이 남아 있고 이밖에 국가유공자묘 7기,경찰묘 23기정도가 남아 있다. 묘지 관계자들은 매년 이곳 특별묘역에 안장되는 경우가 20여기에 이르는 점을 감안할 때 특별묘역도 4∼5년내에는 모두 찰 것으로 보고 있다. 국립묘지가 만원을 이루자 일부 퇴역군장성들 사이에서는 『빨리 죽어야 동작동에 묻힌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돌고 있다. 이에 비해 79년 동작동 국립묘지가 찰 것에 대비해 만든 대전 국립묘지는 특별묘역을 포함,여유분묘가 3만8천5백38기에 달해 앞으로 20년간은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국립묘지측은 특별묘역대상 유가족들에게 은근히 대전 국립묘지를 권하고 있지만 수도권에 생활기반을 둔 대상자가 많고 동작동 국립묘지의 상징적인 권위등으로 거의 모두가 동작동을 원하고 있다. 강경순국립묘지관리소장은 『대전 국립묘지가 지형학상 명당자리이고 주변환경등 입지조건이 동작동 국립묘지보다 훨씬 뛰어난데도 불구하고 유가족들이 싫어해 고민』이라고 말했다.
  • 입법부수장 과연 바뀌나/국회 새 의장단 이달내 구성

    ◎김윤환·황낙주의원­황인성전총리 등 거론/이만섭체제 유임론 잠복… 부의장도 변수로 제14대 국회의 후반기를 이끌어갈 새로운 국회의장단이 이달 안에 국민앞에 선을 보인다.민자당은 이달 20일쯤 임시국회를 소집,국회법개정등 현안을 처리한 뒤 곧바로 후반기 원구성을 위한 의장단을 선출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과연 누가 국회의장과 부의장에 선출될 것인가는 아직까지도 예측을 어렵게 하고 있다. 새 의장단 구성의 핵심은 역시 새 국회의장의 선출이다. 얼마전까지는 김영삼대통령이 이만섭의장을 「유임」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정가의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지난해 4월 재산공개파동으로 물러난 박준규전의장의 자리를 이어받은 이의장은 정기국회에서의 날치기 거부등으로 몇차례 민자당 수뇌부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그러나 특유의 꼿꼿한 몸짓과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여야관계의 균형있는 조율을 추구하는등 문민시대 국회의 「대형」역할을 무난히 수행해왔다는 것이 그에 대한 평가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이의장의 교체설이 더우세해지고 있다.이의장교체설과 맞물려 나오는 것이 김윤환의원의 국회의장 진출설이다. 「김윤환국회의장설」에는 몇가지 정치적 복선이 깔려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민정계의 한 의원은 김윤환의장설이 신빙성을 갖는 이유를 세가지로 설명했다.첫째는 지난 92년 대선 때의 공헌에 대한 배려 차원이라는 것이다.김의원이 이만섭의장과 마찬가지로 대구·경북(TK)출신이라는 지역성도 들고 있다.국회의장직을 TK가 계속 유지하도록 배려,새정부들어 소원해진 이 지역의 정서를 달래려 한다는 것이다.셋째는 다가올 당직개편에서 선택의 폭을 넓히려는 민주계 핵심들이 김의원의 국회의장직을 지지하는 것 같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보다 비중있는 자리를 바라보는 것으로 알려진 김의원쪽에서는 별로 탐탁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의원과 함께 황락주부의장과 황인성전국무총리도 입법부수장의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6선의 황부의장은 7선의 김종필대표에 이어 당내 최다선으로 김영삼대통령의 개혁의지를 국회에 잘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추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황인성전국무총리도 다채로운 경력에서 나오는 경륜과 호남출신이라는 강점 때문에 거론되고 있으나 3선밖에 안된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여당몫의 국회부의장은 의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다양한 조합이 이루어게 마련이다. 이만섭의장이 재신임을 받게 된다면 국회부의장에 대한 선택의 폭은 매우 넓다.그 가운데서도 6선의 오세응·신상우의원등이 1순위라고 할 수 있다. 4선의 김윤환의원이 국회의장석에 자리잡는다면 부의장 선정에는 다소 혼선이 올 수도 있다.같은 4선인 민주계의 황명수전사무총장이 부의장에 기용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민주계인 황부의장이 의장으로 영전하게 된다면 민정계의 정석모의원이 부의장 자리를 차지할 공산이 크다. 민주당 몫의 국회부의장으로는 이기택대표계와 동교동계의 지원을 받고 있는 김봉호의원(4선)이 유력하며 5선의 홍영기의원과 「비호남」을 내세우는 충청도 출신의 김영배의원(4선)도 출사표를 던져놓고 있다.
  • “거북선은 2층아닌 3층구조”/해사 장학근교수 주장

    【진해=강원식기자】 임진왜란때 해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거북선의 구조가 2층이었다는 기존학설과는 달리 3층이라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돼 주목되고 있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장 장학근교수(사학·46)3일 「군선으로서의 원형거북선」이라는 연구논문을 통해 거북선은 3층구조로 된 군선으로 화력과 속력,안전성등이 다른 군선보다 매우 뛰어났다고 주장했다. 장교수에 따르면 거북선 1층에는 침실과 군량·무기고로 쓰인 선저가 있었고 2층에는 사부와 격군(노젓는 병사)이 위치했다.3층에는 포대를 설치,화포를 쏠 수 있도록 하는등 3층구조로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 연합국측 6일 기념행사/노르망디 상륙50주년 “축제분위기”

    ◎미·영·불·가정상 4만5천여노병 참가/3백50개 프로그램 마련… 언론 대서특필 제2차 세계대전당시 독일군에 대한 연합군의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 노르망디상륙작전이 오는 6일로 50주년을 맞는다. 노르망디상륙 기념일 행사는 그동안 매년 열려왔지만 이번에는 꼭 반세기가 흘렀다는 상징성에다 생존해있는 참전용사들이 참석할수 있는 거의 마지막 대규모 행사라는 점때문에 세계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을 비롯해 영국의 엘리자베스여왕,미국의 클린턴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이고 캐나다·벨기에·네덜란드등의 국가원수들이 초청돼 있다.당시 참전용사 가운데 생존해 있는 은발의 「노병」 4만5천여명도 행사에 참석키 위해 「왕년의」 낡은 군복들을 찾아입고 속속 프랑스로 몰려들고 있다.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지역에선 크고 작은 3백50여가지 다양한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부산한 거리 곳곳엔 미·영·불·캐나다등 연합군측 국기들이 나부끼고 있다.또 상륙작전 화보가 쏟아져나오는가 하면 참전용사들의 증언들이 연일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이런 축제분위기는 마치 연합군에 의해 해방된 직후인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참석하는 노병들은 가장 젊은 사람이 60대후반이고 당시의 장교나 장군은 대부분 작고해 거의 찾아볼 수 없다.최전선에서 독일군과 싸웠던 당시의 젊은 사병들이 대부분이다.이들은 컴퓨터를 통해 자신이 상륙했던 지점,그리고 4만명의 연합군이 안장된 묘지를 찾아 50년전 「D­데이」를 회상하기도 한다. 1944년6월6일 1천1백36대의 폭격기가 95㎞의 노르망디 지역(암호명 피카딜리 서커스)에 폭탄을 쏟아부으며 시작된 노르망디상륙작전에는 15만5천명의 군인과 2만대의 트럭이 투입됐다.그뒤 프랑스지역을 차례로 해방시킨 연합군은 2개월후인 8월26일 파리를 되찾기까지 20만명의 희생자를 냈고 독일군 피해는 그 두배였다. 50주년 기념행사로 관광업계는 때아닌 재미를 보고 있다.그동안의 기념행사는 3천여명 정도의 용사들이 모이는 3일정도 축제에 그쳤으나 올해는 부근의 칼레에 역이 개설된 영­불간 유러터널의 개통과 맞물려 엄청난 방문객이 밀려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패전국인 독일은 노르망디 지역에 6만명의 독일군 묘지가 있는데도 이번 행사에 초청되지 못했다.프랑스의 여론조사에서 헬무트 콜 독일총리 초청에 찬성이 35%인 반면 반대가 54%로 나타난데다 재향군인회가 강력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대신에 독일은 오는7월14일 프랑스혁명 기념일 행진(파리)에 자국의 군대를 파견할수 있게돼 체면을 살리게 됐다.미테랑대통령이 혁명기념일 퍼레이드에 유럽군단의 일원으로 독일군이 참가해주도록 콜총리에게 요청했던 것이다.대대적인 연합군의 승전 기념행사에 이어 독일군이 패전이후 처음으로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를 행진하는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 예비군훈련사망 세종대생 위로금/육군,강제모금 물의

    육군이 최근 예비군동원훈련중 실탄에 맞아 숨진 세종대생의 유족에게 전달할 위로금 마련을 위해 수도방위사령부등의 장성급 이하 모든 장교와 하사관으로부터 2천∼5만원씩 성금을 강제 모금해 말썽을 빚고 있다. 1일 육군에 따르면 지난달 3일 세종대생 장덕수군(23·경영3)이 숨지자 유족들과 위로금 1억원을 주기로 합의한뒤 18일 동원부대 관계관회의에서 수방사 예하부대의 하사관 이상 전체 직업군인과 전후방 예비군동원관련 부대 장교들에게 성금모금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동원관련 부대는 장성 5만원·대령 3만원·중령 2만원·소령 1만원씩 돈을 거뒀으며 수방사 예하부대도 하사관 2천∼5천원·위관장교 5천원∼1만원·영관장교 1만∼2만원씩을 모금해 육군본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은 장군이 수도권 57사단에서 동원예비군 훈련중 실탄을 맞고 숨진 것과 관련,사망보상금으로 중사1호봉월급 12개월분 6백96만원과 유족연금을 매월 31만6천원씩 지급하고 위로금으로 1억원을 추가지급키로 하고 유족들과 합의했었다.
  • 보스니아휴전회담 「세」계 첫 참석/새달 2∼3일 제네바 개최

    ◎금수해제 영토분할 등 논의 【사라예보·자그레브 로이터 AFP AP UPI 연합】 보스니아 세르비아계는 유엔감시요원들에게 가했던 감시활동의 제한조치를 철회한데 이어 사상처음으로 이번 주로 예정된 유엔감시하의 휴전회담에 참석할 것이라고 29일 발표했다. 사라예보의 유엔소식통에 따르면 세르비아계 지휘관들이 선의의 제스처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후원하고 있는 보스니아 동쪽 고라주데지역의 중무장 금지구역내의 자유로운 순찰을 허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카시 야스시 유엔특사는 세르비아계와 크로아티아계·회교계 등을 6월2∼3일 제네바로 불러 지난 26개월간의 전투를 끝내기 위한 휴전회담에 들어가게 된다. 라도반 카라지치 세르비아계지도자는 베오그라드의 탄유그통신과의 회견에서 세르비아계는 휴전회담과 관련,『금수조치 해제 등의 여하한 전제조건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금수조치와 관련,서방측이 어느 정도의 양보는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투즐라 공항 포탄 7발 대파 【투즐라 AFP 연합】 유엔군 관할지역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투즐라공항이 30일 집중적인 포격을 받아 유엔군병력이 전원대피했다고 유엔보호군(UNPROFOR)관계자가 밝혔다. 투즐라시에서 남서쪽으로 약 20㎞ 떨어진 공항의 당직장교는 『우리는 현재 포격을 받고 있으며 적색비상경계령이 내려져 전원이 대피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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