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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공교재」 강좌 폐강/경상대/2학기부터

    ◎집필교수 9명은 자체징계/“한국사회의 이해” 공저자 밝혀져 경상대(총장 빈영호)는 3일 이적성을 띤 대학 교양교재에 대한 검찰의 국가보안법 위반혐의 수사와 관련,문제가 된 교양과목의 강좌를 2학기부터 폐강키로 했다. 교육부와 경상대학에 따르면 인문사회계열의 학생에 대한 한국사 교양선택과목인 「한국사회의 이해」에 대한 강좌를 오는 2학기부터 폐강,다른 과목으로 대체하고 이 교재를 공동저술한 장상환조교수(43·경제학)등 9명에 대해 자체징계를 내리기로 했다. 이와관련,빈총장은 이날 교육부에 전화를 걸어 『검찰 수사가 본격화됨에 따라 문제가 된 해당과목의 폐강조치와 교수들의 징계문제를 다룰 교무위원회와 징계위원회를 곧 소집할 계획』이라고 통보했다. 교육부의 관계자는 『이 대학이 국립대이고 교수들의 신분 역시 국가공무원이기 때문에 검찰의 사법처리와 별도로 자체징계가 불가피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현행 국가공무원법(73조2항)은 국립대 교수가 수사당국에 의해 기소되면 학교측이 반드시 직위해제 조치를 하도록규정하고 있다. 이에따라 경상대는 검찰의 수사결과 기소되는 교수에 대해서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직위해제하는 한편 나머지 교수에 대해서는 정직등의 중징계와 감봉·견책등의 경징계를 내릴 방침이다. 교육부는 이와함께 문제의 대학교재 채택과정에서 거치게 돼있는 「교양과목위원회」의 결정과정과 총·학장등 고위관계자들의 책임소홀 등을 가려 잘못이 드러나면 총장을 포함,관련자들을 문책할 방침이다. 또한 「한국사회의 이해」라는 교재를 저술한 교수들은 모두 30∼40대로 경제학·사회학·법학·한국사를 전공한 교수들로 구성돼 있다. 특히 저자 가운데 장교수는 지난 79년 서울 수유리 아카데미사건과 관련,2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는등 대부분의 관련 교수들이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있는 것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문제의 책 공동저술 교수명단은 다음과 같다. ▲장상환 ▲정진상(36·사회학) ▲최태용(39·사회학) ▲이창호(40·법학) ▲송기호(38·경제학) ▲백좌흠(41·법학) ▲김준형(41·한국사) ▲김의동(38·국제경제학) ▲이혜숙(37·사회학)
  • 장군 57명 내년 탄생/국방부,인원확정

    국방부는 2일 내년 1월 진급예정인 육·해·공군 준장및 영관장교에 대한 진급예정 인원을 확정,발표했다. 계급별로 보면 준장의 경우 97년까지 정원수준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육군은 지난해 46명에서 올해 43명으로,공군은 8명에서 5명으로 각각 줄었으며 해군은 9명으로 작년과 같다. 대령은 ▲육군 1백80명(작년 1백90명) ▲해군 48명(〃 48명) ▲공군 48명(〃 58명)이며 중령은 ▲육군 5백명(〃 5백40명) ▲해군 1백10명(〃 1백15명) ▲공군 1백45명(〃 1백55명)이다.
  • 르완다 난민/30만명 이질 감염/콜레라보다 위험…2만명 사망 위기

    【고마(자이르) 로이터 연합】 굶주림과 콜레라로 수많은 난민들이 쓰러져 가는 르완다난민촌에 이질까지 창궐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2만여명이 이질 감염으로 죽게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유엔관계자가 31일 경고했다. 유엔 난민고등판무관(UNHCR)실의 전염병학자인 세르게 말레씨는 『현재 콜레라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자이르동부의 국경도시 고마에 멀지 않아 이질 전염병이 나돌기 시작,두세달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노스 모움지스 UNHCR 대변인도 30만여 난민들이 이질에 감염되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이중 2만명 정도가 사망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난민 5만명 사망 【제네바·런던 AFP 연합】 지난7월중순 르완다난민의 대자이르 대탈출이 시작된 이후 질병과 탈진등으로 죽어간 난민은 5만명이 넘는다고 유엔아동보호기금(UNICEF)대변인이 프랑스군장교들의 보고를 인용해 1일 밝혔다.
  • 러,극동지역 방사능 증가/5월 군수창고 폭발여파

    【블라디보스토크 이타르 타스 연합】 지난 5월 폭발사고가 일어난 러시아극동지역의 태평양함대 항공군수창고건물과 대지에 방사능수준이 증가했다고 블라디보스토크지가 29일 보도했다. 신문은 『노보네지노마을 인근 사고지역 장교들의 7월분 배급품에 반방사성음료인 드라이 와인이 포함돼 있었다』면서 부대 신임사령관도 단지 일주일전에서야 방사능이 위험할 정도로 늘어난 것에 대해 관련자들에게 경고했다고 전했다.
  • “박보희씨 이적행위” 육종전우회서 제명(조약돌)

    ○…6·25당시 육군장교 양성기관인 육군종합학교 출신자의 모임인 육군종합학교 전우회(회장 문재곤)는 명예회장인 세계일보 사장 박보희씨(육종 2기)를 제명,명예회장직을 박탈한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전우회는 지난 22일 각 기별 회장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를 열고 박씨가 북한을 방문,전범인 김일성의 장례식과 추도식에 참석해 조의를 표한 것은 묵과할 수 없는 이적행위라며 참석자 전원의 만장일치로 이같이 결정했다는 것이다.
  • 목성­혜성 충돌 자료분석 관심/태양 생성과정 규명 가능할듯

    ◎분출된 목성물질서 구성성분 단서 기대/“3∼4년내 목성고리 추가형성” 관측 유력 인류에게 최대의 우주쇼를 선사한 슈메이커­레비혜성의 목성 충돌은 그동안 베일에 가려진 목성의 구조성분과 미래상,그리고 태양계의 신비를 규명하는 단서를 제공해줄 것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모은 채 22일 막을 내렸다. 특히 일련의 이번 충돌은 그 충격이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엄청나게 커 목성의 안쪽까지 파고들어가 폭발함으로써 그곳의 물질이 밖으로 튀어오르는 예기치 않은 효과까지 낳았다.따라서 천문학자들은 밖으로 분출된 물질을 분석하면 미지의 영역인 목성 내부의 구성성분도 알아볼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천문학자들은 지금까지의 충돌자료를 분석해볼 때 목성의 구성성분은 기존에 추정했던 것과 큰 차이가 없지만 앞으로의 목성의 대기구성등에는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태양계의 최대 행성인 목성은 수소·헬륨·암모니아·메탄·물등으로 이뤄진 가스행성으로서 우리가 보고 있는 표면은 대기의 상층이지 지면이 아니다.우선대기층에는 암모니아와 황화수암모늄의 구름이 떠 있고 그 대기 아래에는 얼음과 액체 암모니아로 된 액적(액적­액체의 작은 방울)이 떠도는 추운 세계이며,그 아래로 더 들어가면 액체수소와 액체헬륨의 광대한 바다가 펼쳐져 있을 것으로 추정해 왔다.따라서 우리가 「단단한 표면」을 지면이라고 한다면 수소와 헬륨의 바다를 「목성의 표면」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또 수소와 헬륨으로 이뤄진 바다 아래로 들어가면 높은 압력의 영향으로 액체수소는 금속상태가 되며 그 아래에는 얼음의 핵이 존재할 것이라고 추정해왔다. 서울대 천문학과 이시우교수는 이와관련,『슈메이커­레비혜성이 충돌한 뒤 목성에 2천㎞이상의 불기둥이 치솟은 것은 목성의 주요 구성성분인 수소가 산화된 결과』라고 전제,이는 목성이 75%의 수소,그리고 헬륨·암모니아·물등으로 구성됐다는 기존의 가설을 입증해주는 것이라고 밝혔다.그러나 그는 목성의 수소성분이 산화하는데 필요한 산소가 어디에서 공급됐느냐가 현재로서 가장 큰 관심의 초점이라고 덧붙였다.즉 산소성분이 목성내부의 「바다층」에서 나왔는지 아니면 혜성의 얼음파편에서 나왔는지가 규명되면 곧 목성의 내부구성의 신비가 완전히 풀릴수 있다는 설명이다. 천문학자들은 이처럼 목성의 구성성분이 현재로서는 기존의 가설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잠정 결론내리고 있는 반면 이번 충돌로 인해 목성의 대기층엔 상당한 변화가 따를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천체과학자들은 우선 충돌이후 혜성 꼬리에서 나온 얼음조각과 우주먼지들이 목성의 고속회전에 힘입어 3∼4년내에 목성 주위에 또 하나의 고리를 형성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설령 고리를 따로 만들지 않더라도 현재 2개인 목성의 고리중 비교적 희미한 바깥쪽의 고리가 훨씬 더 커질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또 목성의 내부가 충돌에 따른 우주먼지로 가득참으로써 전자및 이온성분이 대기분자와 충돌하면서 생겨나는 오로라 현상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즉 먼지들이 전하를 띠면서 목성의 전파발생을 방해,목성의 특징중의 하나인 오로라의 광채가 급속히 약화될수 있다는 관측이다.실제로 지난 19일 K핵 충돌때 일어난 자기장교란현상은 이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해 주었다.이교수는 『이번의 충돌에 관련된 모든 자료가 종합될 경우 목성과 구성성분이 비슷한 태양의 생성과정은 물론,외계물체가 지구와 충돌했을때 생기는 여러 현상을 예견하는데도 유용하게 쓰일 것』으로 전망했다.
  • 중견작가 신작 여름문단 장식

    ◎조정래 「아리랑」/유현종 「제곡의 별」/안정효 「나비소리를…」/김원두 「어느 개의 인간…」/작가 자신의 체험·작품세계 응축/「아리랑」·「제국…」:일제하 민초·엘리트 삶/「나비…」:재미 한인들의 사랑·사는 방식/「어느개…」:개의 시각 빌어 쓴 자전소설 작품 활동이 뜸했던 중견문인들이 잇따라 소설을 발표,여름 문단을 장식하고 있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씨(51)가 대하소설 「아리랑」의 1부 3권을 해냄에서 펴낸 것을 비롯,유현종씨(56)는 근대사를 소재로 삼은 「제국의 별」(우석간),안정효씨(53)는 미국체류 한국인들의 사랑과 사는방식을 소재로 한 「나비소리를 내는 여자」(현암사간),김원두씨(52)는 자신의 자전적 소설 「어느 개의 인간적인 추억」(솔간)을 거의 비슷한 시기에 펴냈다. 일반 독자들에게 오랜만에 선보인 이들 신작은 대부분 체험을 살려 쓰거나 작가의 작품 세계를 축약 해 보여 중견의 역량을 과시하고 있는 흐름이다. 소설 「태백산맥」의 뒤늦은 이적성 시비에 휘말린 조정래씨가 태백산맥 이후 선보이는 「아리랑」은 19 04년부터 해방까지의 민중사를 촘촘하게 엮어내 일제치하 수난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해 가는 역작.전체 4부로 구성,올 연말까지 완간될 예정이다. 19 48년부터 53년까지에 걸친 해방공간을 다룬 태백산맥의 이전 역사를 다룬 셈으로 민중들의 항거와 행태가 이루어 내는 역사의 진행 방향을 집요한 취재와 자료를 토대로 엮어나간다. 이번 발간된 1부 「아,한반도」는 일본의 교묘한 조선침략의 와중에 휘말려 살아가는 민중의삶을 사실적으로 그린 도입부.자리다툼에 연연한 조정대신과 대비되는 가운데 국내.외에서 이름없는 싸움을 벌이다 숨진 민초들의 삶이 사실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유현종씨의 「제국의 별」은 일제하 민초들의 작지만 외로운 투쟁을 더듬어간 「아리랑」과는 달리 조선무관학교와 일본육사에서 교육받은 한국인 엘리트들의 행적을 흥미롭게 추적한 장편. 을사보호조약에 따른 군대해산과 장교 양성소인 조선무관학교 폐지,무관학교학생들이 일본육사 유학후 벌이는 비밀결사와 독립투쟁이 박시찬 홍사익 이청천 김준원영친왕 김정렬 이광수 송진우 등 실제 인물에 얽힌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구성이다. 고아출신으로 신기료장사를 하며 살던 주인공 김범이 본의아니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복역,조사받던중 자신의 아버지가 일본육사 출신임을 알게되고 수소문끝에 얻은 아버지의 일기장을 통해 아버지와 함께 교육받은 동기생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이다. 이에비해 안정효씨의 「나비소리…」와 김원두씨의 「어느 개의…」작품은 작가의 체험을 토대로 쓴 소설들로 색다른 소설맛을 전하는 작품들. 안정효씨가 재미 한국인들의 삶을 취재하던 지난89년 현지 한국인들의 행태에서 착안한 「나비소리…」는 충실한 삶에 실패한 교포들이 미국에서 벌이는 행각들을 현실감 있게 그렸다. 고국에서 실패한 삶을 이국땅에서 보상받기 위해 모여든 비정상적인 이민자들의 파행적인 사랑과 좌절된 꿈등을 고발하면서도 남의 이야기만으로 돌릴 수 없는 비극성을 진지하게 깔고있다. 김원두씨의 「어느개의…」내면은 고교2년 재학중 대한일보 전신인 평화신문 신인문학상에 소설부문 당선후 파란만장하게 살아왔던 작가의 철저한 자전소설. 김씨는 서라벌예술대 문예창작과 졸업후 출판사에 근무하다 자신이 예언한 친구의 죽음을 맞아 국군영화제작소 객원PD직을 버리고 입산,다시 하산해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뒤 영화사를 설립,사장까지 지냈다. 수많은 흥행작을 냈음에도 결국 영화제작능력에 한계를 느낀채 낙향하게 된 자신의 인생 역정을 함께 살고있는 곰지라는 진돗개의 시각을 빌려 극적으로 풀어나간 흐름이다.
  • 북한 군부쿠데타 가능성 희박/일지,한국군 시뮬레이션 보도

    ◎부대마다 정치장교 배치… 동향 감시/대대급 이동땐 보고 필수… 꼼짝 못해 김일성이 죽은 북한에는 그의 아들 「김정일시대」가 열리고 있다.김정일체제의 최대의 관건은 군부와의 관계라 할 수 있다.군은 과연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계속할 것인가.아니면 반기를 들 것인가.그러나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군의 심리작전담당부서가 최근 북한에 군사쿠데타 가능성에 대한 시뮬레이션(도상연습)을 실시한 결과 실질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산케이(산경)신문이 20일 서울발로 보도했다. 쿠데타의 최대 걸림돌은 각부대에 배치된 정치장교.권력중추와 연결되어 있는 정치장교들은 각부대내 감시망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그 감시망을 피해 쿠데타를 일으킨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감시망의 눈을 피해 전술적으로 최대한 순조롭게 세력을 모았다고 가정해도 쿠데타 성공의 최소단위라 할 수 있는 연대규모(약1천여명)로 쿠데타를 시도할 경우 그 성공률은 20%에 지나지 않는다. 쿠데타 부대가 사단규모(약1만명) 정도면 성공률은 거의 1백%.그러나 군출신 망명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1개대대(약3백명)를 이동하는데도 인민최고사령관(김정일서기)의 결재가 필요하기 때문에 권력핵심부가 모르게 부대를 이동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부대에서는 권력에 충성심이 강하고 병을 지휘하는 장교를 어떻게 장악하는가가 최대의 과제다.그러나 1개 연대에는 40∼50명의 장교가 배치되어 있으며 사단에는 장교수가 더욱 많기 때문에 그들 모두를 「배반」못하게 하며 쿠데타에 가담시키거나 속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장교와 일반병 사이에는 더욱이 충성도가 높은 스파이가 비밀리에 배치되어 있는등 부대 전체가 상호 감시체제아래 놓여 있다.특히 장교에 대해서는 출신지역을 고려,지역적 반발심을 이용한 상호견제의 교묘한 감시망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돌출행동은 극도의 심리적 규제를 받는 시스템이다. 김정일은 군부 장악을 위해 인민군의 「참모부」「정치부」「정치안전부」등 3개의 감시루트를 통해 「1일3전」이라고 불리는 보고체제를 만들어놓고 있다.사단장등 지휘관 장군들의 동향은 인민무력부의 「총정치국」에서 파악되며 총정치국은 당조직지도부의 감시를 받고 있다. 북한의 군은 정치 우선의 당지배이며 특히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개인숭배를 강조하는 사상교육에 의한 이데올로기 통제가 강하기 때문에 쿠데타등 군부에 의한 정치적 반란이 일어나기 어려운 체제이다. 최근 망명자가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북한은 루마니아 사태를 거울 삼아 일반부대와는 별개로 김일성·김정일 직속의 친위대로 있는 「호위총국」의 병력을 1개군단(3개사단규모)에서 2개군단으로 증강했다.호위총국은 본래 김부자의 신변·관저·별장등을 경비하는 부대이다.하지만 최근에는 미사일·방공전투기·전차등으로 중무장,군의 반란에 대비한 대규모 진압부대로 바뀌었다.그러한 친위부대의 전력증강도 쿠데타를 어렵게 하는 요소라 할 수 있다.
  • 떨어진 꽃은 줍지 않는다 1·2·3·4/김정섭 지음(화제의 소설)

    ◎전인민군 간호장교 증언 토대 실화소설 현재 중국 연길시에 살고 있는 북한 인민군 간호장교 출신의 증언을 토대로 한국전쟁을 묘사한 장편 실화소설. 17세로 인민군 육군 소위로 임관,간호군관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주인공 리복순의 일생을 통해 북한의 시각에서 본 한국전쟁을 그려 나간다. 전쟁중 참담한 생활을 이어가는 북조선인민들의 삶,전쟁후 북한 권력층의 부침하는 모습,인민군의 승리와 패배가 체험담으로 생생히 드러나고 있고,전쟁후 권력다툼에 얽힌 비화와 인민들의 힘겨운 재건활동등 한국전쟁의 감춰진 반쪽 모습이 그려진다. 중앙일보사 각권 5천원.
  • 영문학자 장왕록교수 속초해수욕장서 숨져

    【속초=조한종기자】 원로 영문학자인 한림대학교 영문과 장왕록교수(70·서울대 명예교수·서울 마포구 연남동 250의7)가 17일 하오 4시10분쯤 강원도 속초시 조양동 속초해수욕장에서 수영을 하다 물에 빠져 숨졌다. 장교수는 16일 상오 속초에 도착,설악프라자패밀리 콘도 5410호에 투숙한후 이날 하오 강릉에 사는 제자 임성민씨(27)를 만나 함께 등반한뒤 혼자 수영을 하다 변을 당했다. 임씨는 『교수님이 숙소에 가서 카메라를 가지고 오라고 심부름을 시켜 갔다 오니 교수님이 변을 당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장교수가 혼자 속초에 온 사유와 정확한 사고경위를 조사중이다.
  • 러시아 첩보장교 대한제국에 오다/카르네프등 지음(화제의 책)

    ◎러 첩보장교 19세기 대한제국 여행기 19세기 말 대한제국을 여행하며 정보수집 활동을 벌였던 러시아의 육군대령등이 각각 쓴 여행기록 4편을 모았다.한국의 행정·사회체제를 비롯 지리·기후등 자연조건과 민중의 사는 모습들이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또 당시 발생했던 일본인의 명성황후 시해,아관파천,동학혁명,갑오개혁등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보고들은 내용과 그에 따른 분석도 곁들였다.러시아와 일본이 한반도에서 세력경쟁을 하던 시대상황을 반영하듯 일본에 대한 민중의 혐오감을 강조하기도 했다. 기록자들이 군인·관리등 공직자였고 여행 목적이 정보수집에 있었던 만큼 기록이 자세하고 객관적이란 인상이다.사료적 가치와 함께 읽는 재미도 뛰어난 책이다. 이르계바예브등 옮김 가야미디어 5천원.
  • 반김정일세력/군부소장파·유학생 주축

    ◎북,김일성 사망직후 「불온분자」 색출령 북한은 「정적」이라든지 「반체제」라는 개념이 없는 이른바 「유일사상·유일체제」의 사회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전문가들은 「김정일체제」가 얼마나 오래 가느냐 하는 것은 반금정일세력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정권 스스로도 「불온분자」가 있음을 인정한다.북한은 지난 9일 정오 김일성의 사망을 보도하기 직전 북한 전역에 반금정일세력을 색출하도록 긴급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한국과 미국·일본 3개국 정보기관이 파악한데 따르면 북한의 국가사회안전국은 각 지방지부에 「불온분자에 대해 즉각 대응하고 색출하라」는 지시를 시달했다는 것이다. 김정일에 반대하거나 그를 비판하는 세력으로서 우선 주목되는 대상은 북한군부이다.군은 당장 무력을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군부의 핵심세력은 3부류로 나누어진다.첫째는 오진우 인민무력부장과 최광 총참모장등 이른바 빨치산세대이다.이어 오극렬 전총참모장,김광진 인민무력부부부장,이봉원 인민무력부총정치국부국장등 60대의 장성그룹이 있다.마지막으로는 수천명에 이르는 해외유학 경험이 있는 영관급 장교들이다. 이들 가운데 김정일체제를 위협하는 계층은 유학파 장교들이다.그들 다수는 러시아및 동구의 변화를 보면서 북한도 변해야 한다는 합리적 사고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다.그에 비해 빨치산세대가 김정일에게 등을 돌릴 가능성은 낮다.60대의 장성들도 김에게 충성하며 군원로들의 자리를 차지하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과 내각에서는 김일성의 총애를 받던 친·인척이 잠재적으로 김정일의 적대세력이다.김일성의 동생과 부인인 김영주와 김성애,그리고 김성애의 아들 김평일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정일체제를 위협하는 것은 일반유학생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지식분자」들의 반금정일세력화이다.이들이 본 외국의 「신세계」가 입과 입으로 전해지면서 김정일에 대한 불만층의 폭이 넓어져 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 정부는 누가 반금정일세력인가에 대해 신중한 편이다.최근 들어서는 유일하게 국방부측이 이와 연관된 자료를 내놓았다. 이병대국방부장관은 지난 11일 국회국방위에 제출한 비공개자료를 통해 김정일에 대한 「비판세력」이 5백77만여명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수용소에 갇혀 있는 정치범,당원이 못된 감시대상자,유학생출신,지주등 출신성분이 나쁜 사람등을 뽑아 보니 그정도 수치가 나왔다는 것이다.모스크바 타임스지도 14일자 사설에서 북한주민가운데 5백만명은 김일성조문에 동참하지 않았다고 썼다.우리 국방부와 비슷한 추정을 하는듯 싶다. 그렇다고 북한의 나머지 1천7백만명이 김정일을 지지한다는 얘기는 아니다.그들은 김에 반대할 엄두를 못내고 있다고 보는게 정확할 것이다.김이 경제정책에 실패,북한주민들을 지금보다 더 못먹인다면 잠재적 반대세력은 더 늘어나고 표면으로 나올 수도 있다.북한사회가 개방되면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커져가리라 예상된다. 김정일은 20년전부터 김일성의 비호아래 후계작업을 진행시켜 왔다.자기에게 충성하는 인사들을 이미 당·정·군에 많이 박아놓았다.따라서 스탈린,모택동사후의 소련이나 중국처럼 「대숙청」은 없으리라고 북한전문가는 전망한다.
  • 한반도 새상황 수주일내 첫 신호/미 스칼라피노의 「김일성사후」진단

    ◎핵문제 ·대미화해 등 유산 김정일에 부담/지도자 자질의 불확실성 불식도 과제로/미 ·중·일 등 주변국,국익따라 「두개의 한국」 유지 희망 정치,특히 전제정치에서는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느냐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김일성의 경우 적절한 시기를 택했는가.우선 그가 19 12년에 태어난 것은 시기적으로 매우 적절한 것이었다.그가 항일투쟁에 한 몫을 할 수 있게 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그나마 그의 항일활동은 훗날 북한관변사가들에 의해 과장기록되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의 사망시기에는 문제가 많다.따라서 역사의 평결을 기다려야만 할 것같다. 김일성이 남북한,그리고 미·북한간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고 착수하는 단계까지 생존했다는 것은 일단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카터를 통로로 그는 새로운 관계를 이끌 수도 있는 남북한정상회담을 추진했고 심각한 핵문제해결과 미·북한화해를 위한 새로운 시도를 했다.그러나 그는 새길이 열리기 전에 죽었다. 그의 아들 김정일이 이 새로운 시도를 이어받아 성공으로 이끌어갈 능력이 있는가.상당한어려움에 빠져있는 북한사회를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자질이 있으며 또한 충분한 지지를 받고 있는가.김정일에 대해서는 루머인지 분명한 사실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많은 얘기들이 전해진다. 김정일에 대한 평판은 그가 서구영화와 경주용차,그리고 예쁜 여자들에 깊이 빠져있다는 것이다.이러한 평판들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때문에 반드시 성공적 지도자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진실로 우려되는 것은 그가 과거 북한이 추구했던 테러정책노선의 핵심이었다는 일부의 지적이다.다만 북한의 국제적 테러들이 그의 아버지 김일성과 무관하게 실행될 수는 없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김정일이 극도의 은둔생활을 해왔다는 것이다.그는 외국인들과 거의 만나지 않았으며 실질적 대화에도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따라서 다른나라 지도자들을 상대하는 그의 능력과 보다 큰 세계에 대한 그의 지식,심지어는 그의 전반적 지도자자질과 능력은 북한국민들에게조차 불확실한 점으로 남아있다. 북한의 권력구조,정책결정과정과 관련하여 다양한견해들이 제시되고 있다.왕조정치적 특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김일성일가 내부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을 중시한다.20년 가까이 연금상태에 있다가 얼마전 갑자기 정치국에 복귀한 김일성의 동생(김영주)의 역할,또한 점점 더 정치적 활동이 늘고 있는 김일성의 처 김성애,김정일의 이복동생으로 최근 핀란드대사직을 마치고 평양으로 귀환한 김평일 등이 이들이다. 북한정권의 엘리트는 아버지(김일성)와 장남(김정일)이라는 두개의 권력라인에 따라 배치돼 있다.이들이 합병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가족라인을 형성,마찰과 적대관계에 놓이게 될 것인가. 또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군부와 관련된 것인데 극도로 군사화된 북한사회에서 최상의 권력은 이들에게 있기 때문이다.김정일은 군부의 핵심인사들로부터 필요한 신임을 받고있는가 아니면 앞으로 받게될 것인가.김정일이 지지획득노력을 계속해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2년전 인민군총사령관 지위에 오른뒤 김정일은 많은 장교들을 장군으로 진급시켰었다. 그러나 새 정권,더 나아가 북한이란 체제의장래와 관련해 최대로 중요한 이슈는 거의 틀림없이 정책관련일 것이다.김정일은 심각한 난국에 빠진 경제,보다 젊은 인물들을 중요직책에 포진시겨야 하는 정치적 세대교체,북한에 별로 유리하지 않은 국제위치 등을 물려받게 된다.북한당국은 경제상황의 심각성을 인정,수년동안 중국을 부분적 모델로 한 개혁프로그램의 윤곽을 그려왔다.특별경제구역설정,해외자본유치법제정,유럽및 아시아기업가들을 초청하여 북한투자에 대한 흥미끌기 노력 등등. 하지만 현재까지 이 프로그램은 별 성과를 올리지 못한 도상계획일 따름이다.경제협력논의에 있어 나쁜 전력이 꼬리표로 따라다니는데다 북한이 스탈린식 경제체제의 골격을 지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이와 함께 정치·군사분야에 있어서의 정책들 특히 핵시설사찰을 둘러싼 북한과 국제사회의 대립,북한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집착 등이 경제프로그램을 무력화해 버렸다.이같은 모순들이 제거될 수 있을 것인가. 북한으로선 최대의 도전이라 할 이같은 문제들은 김일성이 생전에 해결할 수도 있었으나 이제 그의아들 김정일에게 이 과업이 넘겨졌다.물론 많은 사람들은 김일성의 마지막 대화제스처가 제재를 피하면서 핵무기개발프로그램을 계속하려는 벼랑끝 외교전술,지연작전이었다고 믿고 있다.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만족할만한 사찰을 받아들이고 가능한한 빠른 시일내 경수로원자로로 전환하는지 여부로 북한의 성실성을 시험하기로 했다.또 그같은 한·미양국의 입장은 계속 견지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몇달은 북한체제가 안정될 것인지 혼란에 빠질 것인지,또 북한이 여전히 국제적 고립상태에 놓일 것인지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인지를 가늠하는데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이에 관련된 이해관계 역시 모든 당사자들에게 매우 중요하다.한국으로선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물론 북한이 급격히 붕괴하는 것도 원치 않고 있다.한국으로서 가장 바람직한 일은 경제·문화분야의 남북한간 상호교류가 점진적으로 확대돼 결국 한반도평화통일을 가능케 하는 북한내부의 경제·정치적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북한이 붕괴,이를 한국이흡수하게 되는 경우 그에 따른 정치·경제적 부담은 엄청날 것이다.또한 북한의 정치적 위기가 계속돼 동북아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느냐 여부도 큰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문제다. 마찬가지로 미국도 북한에서 합리적 시나리오가 전개되기를 기대하고 있다.이같은 시나리오중 하나는 북한지도부내에서 새로운 군사·기술분야 엘리트들의 영향력이 커져 시장경제로의 점진적인 개방과 탈이데올로기정치노선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중국·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도 이같은 상황전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질 것이다.중국은 북한의 핵무기보유를 원치 않을뿐 아니라 북한이 붕괴,한국의 지배아래 들어가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중국은 완충국가로서의 북한을 유지하기 위해 이미 많은 희생을 치렀다.일본은 친북한성향의 조총련과 마찰을 최소화하기를 원하고 있으며 가능하면 「2개의 한국」정책을 유지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그러나 김일성사후 한반도상황전개는 결국 북한의 사태진전에 달려 있다.한반도 상황을 예측게 할 첫번째 신호는 수주내,길게 잡아야 수개월내에 나올 것이다. ▷약력◁ ▲1919년생,하버드대 졸업 ▲48년 하버드대 강사 ▲49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교수 ▲동 동아시아문제연구소장 ▲「현대 일본의 정당정치」등 아시아관계저서 다수
  • “자유체제로 이행” 요구하라/최평길(대북정책 새 접근)

    ◎상호사찰 강조… 불응땐 핵보유카드 써야 집권 50년­역대의 군왕 가운데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장기집권이다.김일성의 죽음은 그만큼 북한은 물론 남한에도 6·25이래 최대의 역사적 사건으로 여겨지고 동북아시아에 준 충격도 크다. 조카 김정일의 20년 견제를 받아온 김영주는 김일성왕조를 공멸의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김일성 생전의 간곡한 요청으로 수양대군이 단종을 보호하듯 가족단결의 대부로 앞장서고 있다. 김일성은 50년 장기집권동안 사돈·겹사돈·사촌·재종·조카·9촌까지 연계시켜 장관급인 노동당중앙위원회의 정위원·후보위원 2백41명 가운데 물경 20%에 달하는 50명 가까이를 친인척으로 앉혔다. 그들은 헤어지면 죽는다는 가족적 공포감,남한에 의한 흡수통합,체제붕괴,핵무기개발로 인한 전쟁공포등 삼중사중의 기득권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김일성이 살아 생전에 치밀하게 조직하고 간곡히 부탁한 김정일을 8순의 게릴라출신이 볼 때는 못가에서 노는 아이처럼 보이고,60∼70대의 전쟁복구세대는 온실에서 자란 김정일화로,50대이하는 아비의 업적에 무임승차하는 그저 물려받은 창업 2세대로 볼 것이다. 때문에 김정일이 김일성 뒤를 이어 창업을 이루어갈 것인가는 그가 2백여명의 핵심간부와 2백만의 기득권세력의 이합집산을 막으면서 하루 두끼의 강냉이죽과 밀가루국수라도 배불리 먹일 것인지,장기집권한 빨치산 원로군부,젊은 장성,영관장교등 신세대군부를 조직계통으로나 덕으로 얼마나 장악하느냐에 달렸다. 지난 90년 비내리는 7월 여름날 모스크바 국방부 신청사 앞에서 모스크바군사대학에서 5년 동안 장기유학중인 3백명 대위·소좌그룹중 한명인 현준민소좌를 만났다.그는 평양을 떠나올 때 전인민군중에서 부대통솔력에서 제일이고 김일성주석을 하느님으로 모시는 충성심으로 선발,파견된 군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루마니아 차우셰스쿠가 처형되고 고르바초프·옐친이 직선제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고 북한의 노동당이 유일집권당이려면 국민투표를 해야 하고 김정일이 주석이 되려면 공개적으로 많은 후보를 내세운 직선제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그 이후 3백명의 유학군인은 모조리 평양에 소환되고 말았다. 유학생,유학파군인,해외근무 경험이 있는 외교관,연합기업소관리장,노동신문·민주조선의 지성있는 언론인등도 잠재적 개혁세력이다. 이들은 현저히 약해져가는 북한통치관료조직에서 서서히 자기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고 군부개혁신진세력은 명분만 생기고,허점이 보일 때 독자적으로 연합전선을 펼치려 할 것이다. 그러한 모의는 김정일이 노동당 중앙위원 2백46명을 평양 만수산의사당에 집합시켜 놓고 만장일치로 총비서에 오르기 위해 물밑설득을 하는 이 순간에도 동시다발로 일어날 것이다.오히려 이들보다 먼저 김영주·강성산·연형묵·김환·김달현등 친인척 측근그룹이 김정일은 안되겠다고 정변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김일성주석의 사망으로 북한의 1인집권체제의 붕괴작용이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할 이 시기에 한국의 김영삼대통령은 확실하고도 자신있는 대북정책을 정력적으로 밀고나가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사유재산 인정,다당제에 의한 의회민주주의를포함한 진보적 문화복지와 자유민주가 통일코리아의 기본이념이며 그 방향으로 북한도 발전되고 궁극적으로 통일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중기적으로는 임가공과 경제특구건설등 경제원조를 하고 경제협력의 물꼬를 트는 현실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할 때 과거의 핵투명성보장과 함께 핵무기개발을 중지할 것을 증명하는 남북핵상호사찰을 반드시 실천해야 된다.만약 북한이 고의로 이를 회피하고 핵개발을 계속할 경우 한국은 북한에 앞서 핵무기제조를 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여주어야 한다.그리고 이 점에 있어서는 미국과 확실한 공조체제를 유지하여 현수준에서의 핵동결에 만족하지 말고 한국과 미국이 핵무기개발에 한자·한획도 떨림이 없는 공동보조를 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계속될 정변에서 새롭게 북한최고지도자가 부상할 때마다 김영삼대통령을 만나 정상회담을 요청할 것이다.북한최고지도자의 정통성을 부여하는 이니셔티브를 김대통령이 갖게 되었으니 이제는민주주의를 가르쳐주는 한반도의 문민대통령위상을 보여줄 때다.
  • 3대혁명 소조/만경대혁명학원/김정일 버팀목 “쌍벽의 두집단”

    김일성 사망후 북한의 세습군주로 부상하고 있는 김정일에게는 그를 지탱해주는 2개 특수집단이 있다.만경대혁명학원 출신집단과 3대혁명소조가 바로 그것이다.만경대학원 출신들이 일종의 두뇌집단이라 한다면 혁명소조는 친위조직으로서 김정일을 돕고 있다. ◎김의 모교… 소장졸업생 대부분 직계 활약/주도권 쟁탈전땐 「돌격대」역 맡을 가능성 김정일의 모교로 졸업생들 가운데 소장그룹 대다수가 김정일의 측근을 형성하고 있다.극소수 김정일과 소원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40∼50대는 대개 김정일파로 분류된다.김정일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만경대혁명학원이다. 만경대혁명학원은 혁명유가족의 자녀들과 당·정 고위간부들의 자녀들에게만 입학이 허용되는 특수학교다.아니 귀족학교라는 표현이 더 옳다.북한의 특수학교로는 또 강반석혁명유자녀학원 해주혁명유자녀학원이 있다. 만경대혁명학원은 지난 47년 10월21일 평남 대성군에서 문을 열고 3백35명을 수용했다가 다음해인 48년 현재의 평양 만경대로 이전하면서 수용인원도 5백22명으로 늘렸다.요즈음 학생수는 9백여명.교육기간은 유치원 상급반 1년,인민학교 4년,고등중학교 6년을 포함해 모두 11년이다.인민무력부 소속으로 학생들은 재학기간동안 장교복장을 하고 의무적으로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한다.졸업후 최우선적으로 김일성종합대학에 진학하거나 장교임관 또는 당·정의 초급간부로 기용된다.원하면 해외유학을 갈 수도 있다.이 학교에 입학만 하면 북한사회의 엘리트코스를 밟을 수 있다. 졸업생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정일말고도 강성산(정무원총리)서윤석(평남도당책겸 인민위원장) 전병호(당비서) 최태복(당비서) 연형묵(자강도당책겸 인민위원장) 김환(부총리겸 화학공업부장) 윤기정(재정부장) 오극렬(전군총참모장) 김광진(인민무력부부부장)등이 있다.김정일 오진우(인민무력부장)에 이어 당서열 3위인 강성산과 연형묵 오극렬 최태복 전병호 김광진등 사방을 둘러봐도 대부분 김정일의 직계들이다.정무원총리를 역임했으며 남북고위급회담 단장으로 서울에 왔던 연형묵도 김정일의 사람으로 분류된다.김정일과 나이가 비슷하거나 젊은 층은 당·정에 폭넓게 포진해 김정일이 혁명 1세대들에 맞서 권력을 쟁취해가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앞으로 북한 내부에 헤게모니 쟁탈전이 벌어질 때 김정일의 돌격대로 나설 공산이 크다.상류층의 자제들로 구성돼 김정일과 마찬가지로 개방적인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김정일의 술친구들은 대부분 김정일 또래의 만경대혁명학원 동창생들이다. ◎혁명2세대 「친위조직」… 2인자부상 기여/총10여만명… 73년 김영주 축출에 앞장도 이른바 북한의 혁명 2세대는 바로 3대혁명소조를 가리키는 것이다.김정일이 김영주 김성애를 누르고 김일성 다음가는 2인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데는 3대혁명소조의 뒷받침이 눈부셨다.김정일이 책임자인 부장에 매제인 장성택을 임명한 것을 보아도 그가 얼마나 이 조직에 애착을 갖고 있는지 금새 알 수 있다.장성택은 김정일과 함께 김정숙에게서 태어난 김경희의 남편이다.당서열 1백위권 밖에 머루르고 있지만 실력자로 알려져 있다. 3대혁명소조는 지난72년 북한의 사회주의헌법에 규정된 「3대혁명」에 따라 73년 2월 발족됐다.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72년 12월 노동당 중진들의 비밀회의가 있은지 두달남짓만이다.「3대혁명」이란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을 이르는 것으로 3대혁명소조 역시 이들 3분야로 나누어져 있다.소조원은 당원과 국가기관종사원 대학생 대학교원 기술자 과학자 가운데 미혼남녀로 구성돼 있다.지난 83년 9월 개최된 3대혁명소조원 대회에서 현인원 4만6천명,소조를 거쳐간 인원 11만명으로 발표된 바 있으나 그 뒤에는 정확한 숫자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3대혁명소조는 당정책의 관철이라는 표면적인 명분 아래 간부들의 보수주의 경험주의 요령주의 기관본위주의 관료주의를 개조하기 위한 사상투쟁을 활동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중국으로 치자면 문화혁명을 주도한 홍위병인 셈이다.김정일의 직접 지휘 아래 각급 생산단위는 물론 행정기관 문화기관 학교등에 파견돼 기존의 당조직과 더불어 활동해왔다.하지만 사상투쟁의 실질적인 목적은 김정일의 반대세력 견제와 그의 후계체제 구축이다.3대혁명소조는 사실상 노동당 조직과는 따로 움직이는 김정일의 사조직인 것이다. 김정일은 3대혁명소조를 김영주를 제거할때 제일 먼저 이용했다.73년 당시 당조직부장이었던 김영주를 그릇된 사상의 찌꺼기를 가진 사람으로 몰아 마침내 한직으로 축출하는데 성공했다.김정일은 여맹위원장이었던 계모 김성애를 견제하는 데도 3대혁명소조를 동원했다. 하지만 유사시 김정일의 명령에 따라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칠 준비가 돼있는 김정일의 수족으로 알려져 있다.
  • “북한붕괴 사실상 시작됐다”/아르바토프(특별인터뷰)

    ◎김정일 권력 잡지만 결국 몰락할것/주민들 외부와 교감땐 변화 불가피 □아르바토프 약력 ­1923년 우크라이나 공화국서 출생. ­소련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로 제2차 세계대전 참전. ­모스크바국제관계연구소서 역사학 박사 학위 받음. ­고르바초프 외교참모 역임. ­소련과학원 정회원. 김일성 사후 북한의 장래는 어찌 될 것인가.독재자의 죽음 뒤에 그 체제의 몰락이 오게 돼있는 것은 스탈린 등의 예에서 보듯 필연적이나 김정일의 권력 승계까지는 일단 순조롭게 이루어지리라는 것이 러시아의 게오르기 아르바토프 미국·캐나다연구소장의 견해다.북한의 내부사정에 정통한 그를 이기동 모스크바 특파원이 인터뷰했다. ­김일성 사후 북한의 변화방향에 대해 여러가지 가설들이 제기되고 있다.변화가 일어난다면 그 폭과 속도는 과연 어느 정도일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동구의 변혁과정을 북한에 곧바로 대입할 수는 없다.극단적인 예로 루마니아의 경우를 비교해 보자.그곳에서는 독재자 차우셰스쿠에 반대하는 큰물결이 선행됐다.그것은 반혁명에 가까운 것이었다.그러나 김일성은 단순히 노령으로 죽었다.그리고 오랫동안 자신의 죽음을 준비해 왔다.오래 전부터 자신의 아들에게 권력이양 준비를 차근차근 해두었다.물론 정부내에서 몇가지 갈등이 있을 것이지만 적어도 최고권력은 순조롭게 김정일에게 넘어갈 것이다. ­김일성이 죽은지 수일간의 평양 분위기를 보면 주민들이 진정으로 이 지도자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이런 것을 보더라도 김정일이 자기 부친의 정책을 급격히 바꾸려들지는 못할 것같은데. ▲평양의 애도분위기는 솔직히 묘한 데가 있다.설사 김정일의 반대세력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같은 분위기에서는 다른 생각을 하기 힘들 것이다.확실히 북한은 독특한 나라이다.여기에는 아시아 국가들이 지닌 독특한 전통도 분명 작용한다고 생각한다.그러나 한가지 명심해야할 것이 있다.체제에는 문화적,전통적 관습을 뛰어넘는 그 자체의 보편적 논리가 있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모택동 사후 중국을 보자.당시 서방 전문가들 사이에선 유교적인 가부장 전통과 모택동이 생전에 누린 독특한 카리스마 때문에 그의 사후 중국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했다.그러나 모의 유지를 이어받은 소위 4인방의 운명이 어떻게 됐나.그후 지금까지 계속돼온 등소평의 개혁정책을 보라. ­북한에서도 변화는 필연적으로 일어난다는 이야기인가. ▲이런 체제의 논리는 독재국가일수록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전체주의 체제의 국가경영방식은 역피라미드를 연상하면 된다.제일 아래쪽에 최고지도자 1인을 기반으로 하고 그가 내리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모든 국가조직이 그위에 존재한다.제일 아래쪽 최고지도자가 사라지면 그위의 모든 조직은 필연적으로 무너지게 돼있다.알렉산더 대왕 이후 마케도니아왕조의 몰락,가까이는 1956년 헝가리에서 최고지도자 사후 몰려온 변혁의 소용돌이,체코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소련에서도 스탈린이라는 독재자가 죽은 뒤부터 사실상 몰락의 과정이 시작됐다. ­스탈린체제의 소련과 김일성의 북한체제의 비교는 북한의 장래를 점쳐보는데 유용한 잣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스탈린 사후 모스크바의 애도분위기는 지금 평양보다 더 애절했다.정치범 수용소(굴락)의 수감자들이나 이 독재자의 죽음을 기뻐했지 일반국민들은 그에게 마지막 조의를 표하기 위해 시신이 안치된 곳으로 수백만명이 몰려들었다. 경찰과 군대가 동원돼 질서를 유지하려 했지만 결국 수백명의 압사자까지 생겼었다.그러나 그가 죽은 뒤 불과 2년이 지나면서부터 언론에 그에 대한 비판기사가 실리기 시작했다.그리고 3년뒤 제20차 당대회에서 흐루시초프가 역사적인 스탈린 비판연설을 했다.이 당대회에서 스탈린은 거의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김일성은 거의 절대적인 전체주의 체제를 북한에 세웠다.그는 자기의 권좌를 유지하기 위해 정적은 물론 조금이라도 이견을 말하는 사람은 가리지 않고 제거했다.이를 위해 심지어 동족전쟁까지 감행했다.국민들은 외부세계와 완전 격리됐다.북한의 변화는 그곳 주민들이 외부세계와의 교감을 시작하고 국민들이 보다 자유롭게 사고하기를 배우는 순간 체제발전의 논리가 작동을 시작할 것이다. ­북한은 김일성 장례후 미국과의 고위급회담을 재개하겠다고 했다.이를 김정일을 중심으로 한 새 지도부가 외부세계와의 관계발전에 주도적으로 임할 것이라는 징조로 풀이할 수 있는지. ▲만약 새 지도층 내부에 변화를 주장하는 세력이 있어 권력내부에 갈등을 유발시키고 이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면 자연적인 체제발전 과정이 촉진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새지도부는 단기적인 과제로는 경제개선,고립탈피,핵문제의 종식,남한과 정상회담 개최등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이다. ­김일성 사후 러시아는 북한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가. ▲솔직히 말하면 러시아는 새북한의 변화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정책프로그램도 갖지 않고 있다. 경제난,군사개혁등 산적한 국내문제 때문에 한반도문제에 깊이 신경쓸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러시아 정부의 최근 입장은 한반도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기 위한 국제회의를 열자는 것이다.하지만 우리가 지금도 이 주장을 고집하는지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는지는 확실치 않다. ­한때피살설,정변설등 김일성의 죽음과 관련,여러 소문들이 나돌았는데. ▲그의 죽음과 관련된 의혹들은 잘못된 정보라고 본다.그는 오랫동안 심장질환을 앓았고 누구든 그 정도의 고령이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 아닌가. ­남북정상회담등 남한과의 관계개선도 북·미회담과 같은 맥락에서 계속 추진될 것으로 보는지. ▲권력내부에 갈등만 없다면 남한과의 대화는 조만간 재개될 것이다.새 지도부는 전세계를 상대로 남한과 대화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과시할 필요가 있다고 느낄 것이다.역사적으로 볼때 새지도자는 국민들에게도 새것,변화,과거와는 다른 희망을 심어주고 싶은 의욕을 갖는 게 순리이다.그것이 대외정책에도 나타날 수 있다. ­군부의 역할이 변수가 될 것으로는 보지 않는지. ▲스탈린 사후 군은 당·KGB·군지도부에 절대복종을 맹세했다.북한의 군도 지금 똑같은 상황이다.특히 김일성은 군대를 거의 완벽하게 통제했다.돌발사고가 없는한 군내부에서 반대세력이 표면화하기는 힘들 것이다. ­새 북한지도부가 핵게임을 계속할 것으로 보는지. ▲그러기는 힘들 것이다.다른 할일이 많기 때문이다. 흐루시초프는 스탈린이 죽고 권좌에 오른지 몇개월 뒤 곧바로 주민복지를 개선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사업을 펼쳤다.전국에 값싼 아파트를 건설했고 국민연금도 6배로 올려주었다.무언가 새것,좋은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물론 김정일이 자기 아버지가 고수해온 노선을 하루아침에 비난하거나 뜯어고치려고 나서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독제체제의 발전논리로 본다면 새정책은 불가피하다.더구나 북한은 경제난이 극도에 달했고 그로 인한 사회적 불만이 팽배해 있다.북한도 결국은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 공중촬영·통신감청… 북동태 파악/한미연합사 정보수집 어떻게

    ◎첩보위성·유무선 통신채널 총동원/병력·장비이동 등 24시간 감시 가능/안기부도 우방국과 공조 구축,별도활동 우리 군은 북한내부상황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수집할까.국방부가 김일성사망후 북한의 동정을 매일 브리핑 하고 있어 대북정보수집방법에 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 한미연합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대북정보수집방법은 공중정찰과 통신감청등 크게 두가지로 나눠진다. 공중정찰은 지상 2백∼5백㎞ 상공에서 북한군의 움직임등 지상상황을 샅샅이 촬영해 보고하는 KH 9·11·12등 첩보위성이 핵심이다. 미국이 보내주는 이 위성의 사진은 잔디밭의 골프공을 구별할 정도로 정밀해 군장비와 병사들의 이동움직임은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또 휴전선근처에 U2R,OV1D,RF4등의 정찰기를 띄워 우리측 영공을 선회하며 북의 군사동태를 감시하고 있다. 하루 한차례이상 출동하는 U2R정찰기는 24㎞의 고공에서 휴전선에서 1백㎞ 북쪽의 북한후방지역까지를 샅샅이 훑고 적기의 교신을 잡아내 폭격에 이용하는 역할을 한다. OV1D정찰기와 국군의 전술정찰기인 RF4기도 휴전선일대를 비행하며 북한군의 동태를 파악한다. 유사시에는 일본 오키나와기지에 있는 공중조기경보관제기인 AWACS가 출동한다.이 정보수집기는 제주도상공에서 한반도전역을 커버할 수 있다. 통신감청은 RV1D,RC12H등 통신정보수집항공기와 전방지역의 통신감청소에서 맡는다. 통신감청은 공중촬영보다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때가 많다.그러나 통신감청은 근본적으로 유선통신이나 육성은 감청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이번 김일성의 사망은 공중정찰로는 물론 확인이 불가능한 것이었고 통신감청이나 인적인 정보에 의해서만이 파악될 수 있었으나 이 또한 근본적으로 불가능했음이 밝혀졌다. 북한당국은 김의 사망을 극소수 상부인사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도록 극비에 부쳤고 사망에 관한 정보를 통신으로 누설하지도 않아 감청망을 통해 확인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김일성사망이후 합동참모본부를 중심으로 한미양국군의 정보채널을 최대한 활용,북한의 동향을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국방부 지하벙커에 있는 합참지휘통제실은 상황장교를 10여명 늘려 24시간 풀가동중이고 정찰기출격을 하루 4∼5회에서 11회로 늘리는 등 공중정찰활동을 강화했다. 또 전방관측과 해상초계활동의 강도를 높이는 한편 이 모든 정보를 종합해 2백60여개의 남침징후항목을 일일이 점검하고 있다. 군과는 별도로 대북정보를 수집·판독하고 있는 국가안전기획부에는 2∼3개 북한관련 전담부서를 두고 있다.특히 이들 대북관련 부서는 거의 인사이동이 없어 수십년씩 일해오고 있는 베테랑들만 모여있다는 것이 안기부의 설명이다. 안기부의 정보수집방법은 사람에 의한 수집,첨단장비에 의한 수집,다른 군정보기관과의 협조,우방국과의 정보공조체제등 크게 4가지로 나눠진다.최고급 정보를 얻는 수단으로는 사람에 의한 방법을 꼽을 수 있지만 아직은 가장 취약한 분야로 알려진다.또 자체 첩보위성통신이 없다보니 자연 미국에 정보를 의존하고는 있지만 최근들어 선진국수준의 감청장치를 확보,대미의존도가 상당히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 “김일성사후 군소장파서 쿠데타”/종로 등 대형서점 특설코너 마련

    ◎「달아…」·「불바다」·「용의 날」 등 가상역사소설에 나타난 북한정변/“김정일 다시 남침 시도하다 축출 당해”/정을병의 「…붕괴」선 “95년에 멸망” 예상/남북관계·국제정세 예리하게 분석… 앍는 재미 더해 김일성 북한주석이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사망,남북관계 전망이 불투명해짐에 따라 북한권력층의 내분및 붕괴 과정등 김일성과 북한을 소재로 한 가상역사소설들이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서점가에 나와 있는 김일성관련 서적들은 모두 30여종으로 이 가운데 10여종이 올해 나온 가상역사물들이다. 이들 소설은 북한의 핵사찰거부로 남북관계가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던 때 나와서인지 「북한의 핵공격 위협­북한 내부분열에 따른 붕괴­남북통일」이라는 비교적 공통된 시나리오로 짜여 있다. 이 가운데서도 육군장교 출신인 홍용표씨(59)가 쓴 「달아 달아 밝은 달아」(전2권·시공사 간)는 지은이의 미사일·핵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정확한 국제정세 분석을 바탕으로 쓰여져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줄거리는 이렇다. 「북한이 리비아의 사막지대에서 비밀리에 핵실험을 한 사실을 한국과 미국의 정보기관이 알아낸다.이에 북한은 평택의 LNG기지를 폭파해 위협한 뒤 남북협상을 제의한다.그러나 평양에서 열린 협상은 결렬되고,북한의 소장파 장군들은 오극렬을 중심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김정일을 살해한다…」 작가 홍용표씨는 군 재직시 미국에서 미사일분야를 전공했으며 귀국후 한국군 미사일부대 창설에도 앞장선 경력의 소유자.또 예편후에는 건설회사 간부로 중동지역에서 장기간 근무해 이같이 다양한 경험이 작품 속에 적절하게 구사됐다는 평을 받았다. 지난 1월에 나온 정을병씨의 「북조선 붕괴」(전3권·오늘 간)는 95년에 북한이 망할 것이라고 예상한 소설. 「핵위협으로 남한을 굴복시키려던 북조선은 김일성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혼란에 빠진다.더욱이 중국이 등소평의 사망으로 분열되면서 위기감을 느낀 김정일은 전쟁을 일으킨다.인민군의 쿠데타와 북한 주민들의 폭동으로 김일성·김정일 부자는 미국으로 망명하며 북에는 오극렬정권이 들어선다」는 내용이다. 이밖에 「용의 날」(안봉선 작·밝은세상 출간)은 「김일성이 식물인간으로 살다 죽자 김정일은 권좌에서 쫓겨나고 김영삼대통령에 의해 남북통일 이루어진다」는 줄거리이며,올해 「한겨레문학상」수상작품인 「불바다」(노수민 작·향실 출간)는 「북한의 도발로 전쟁이 일어나지만 김일성의 심장마비사,오진우인민무력부장의 피살등으로 북한이 붕괴된다」는 시나리오이다. 이 소설들은 올해의 남북관계 진전과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남북관계및 국제정세에 대해 예리한 판단을 내리고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한편 「김일성사망」에 따라 이들 소설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자 서울의 종로서적·영풍문고등 대형서점들은 10일 매장 한쪽에 이 책들을 한데 모은 특설코너를 마련해 독서애호가들을 맞고 있다.
  • 개방파·「혁명소조」출신 친위그룹 주도/김정일의 적과 동지들

    ◎당 김용순·황장엽­적 「프라하 3인방」 포진/평일모자·빨치산출신 「잠재적」 반발세력 김정일이 일단 북한권력의 헤게모니를 장악할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그의 친위세력들이 대거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김일성이라는 절대권력자의 사망으로 인한 권력의 진공사태를 메우기 위한 필연적인 수순이다. 따라서 앞으로 김정일체제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긴 하나 당분간 북한정국은 친김정일 세력과 잠재적인 반대세력간의 물밑 암투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친김세력과 반김세력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북한이라는 특수체제의 성격상 쉽지 않다. 우선 김일성 생전에 김부자간 권력세습에 대한 공개적인 반발은 곧 파멸을 의미했기 때문에 김정일에 대한 불만이 있더라도 내연할 수 밖에 없었던 탓이다.그리고 김정일 친위세력은 대부분 김일성 추종세력과 겹치고 있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지난 72년 당중앙위 비밀 전원회의에서 공식 후계자로 낙점된 뒤 꾸준히 자신의 시대에 대비해온 것은 사실이다.당·정·군에 걸친 주요 포스트에 은밀히 자신의 세력을 심어온 것이다. 이같은 그의 측근세력은 크게 ▲3대혁명소조를 중심으로 한 소장 저변 친위세력 ▲당·정·군의 이른바 혁명2세대 간부 ▲혁명1세대 중 김정일과 잦은 사적인 교유를 갖는 인물군 ▲친족세력 등으로 대별된다.이들은 상당부분 중첩되는 것도 특징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노동당쪽에선 김용순·김기남·김국태·황장엽 등이 눈에 띈다.이중 대남담당 비서와 최고인민회의통일정책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김용순은 외교 및 대남관계 핵심브레인으로 등장할 전망이다.「주체사상」의 최대 이론가인 황장엽과 김정일의 각종 연설문 등을 대필해온 김기남 등은 김정일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우상화작업을 선도할 이론과 실무책임자로 부상할 공산이 크다. 김정일의 권력안정에 핵심적 열쇠를 쥐고 있는 군쪽에선 오극렬대장과 김강환·김두남 두 전현 당군사부장이 대표적 측근이다.이들 중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였던 오증흡의 아들인 오극렬이야말로 군부내 「혁명2세대」 중 김정일의 최측근 인사로 차기 인민무력부장이 유력시된다는 관측이다.그는 김정일의 비호하에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다 88년 오진우인민무력부장과의 마찰로 군총참모장직을 재임 10년만에 최광에게 넘겨준 바 있다. 행정 및 경제분야에선 프라하공대 출신의 3인방인 강성산·연형묵·박남기 등과 전현직 국가계획위원장인 김달현·홍석형 및 최영림 등이 측근인사로 거명된다.이들은 대부분 조심스럽지만 개방노선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있는 대표적 테크노크라트들이다. 이밖에 김정일을 위해 중국 문화혁명기의 홍위병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해온 3대혁명소조를 이끌고 있는 장성택도 빼놓을 수 없는 측근이다.그는 김정일의 친여동생인 김경희의 남편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김으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고 있는 측근세력과는 달리 반김세력들은 수면하에 잠재해 있다.더욱이 어차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북한권력의 속성상 측근세력중에서도 김정일세가 약화될 경우 언제라도 등을 돌릴 인사가 상당하다는 관측이다.이같은 관점에서 주목되는 잠재적 반김 세력들로는 군부와 당에 걸친 이른바 「혁명1세대」그룹 일부와 군부내 소장 및 중견 장교층,그리고 김성애·김평일 등 족벌세력들이다. 김정일의 권력장악에는 오진우를 정점으로 최광인민군총참모장과 이을설호위총국장·백학림사회안전부장·김철만 국방위원을 비롯해 「혁명1세대」의 막내격인 김광진차수 등 빨치산 원로급들의 협조가 절대적이다.그러나 이들중 상당수는 그동안 김일성이 카리스마에 눌려 침묵을 지켰으나 내심 김정일의 노선과 지도력에 회의를 품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때문에 이들 중 일부가 동구유학을 다녀온 중견장교들과 연계해 김정일체제가 대외적 고립과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반기를 들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표면적으로는 후원세력이나 언제든지 등을 돌릴 가능성도 있는 인물들로는 친삼촌인 김영주와 계모 김성애,이복동생 김평일 등 족벌세력들이다.특히 김정일과 후계경쟁에서 밀려나 18년의 은둔 끝에 지난해 일약 부주석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김영주는 일단 김의 후견인역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당정에 걸친 추종세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요주의 인물이라는 관측이다. ◎매부 장성택 가장 신임… 요직 앉혀/작년 재기한 숙부 영주의 향배에 관심/김정일과 족벌내 역학관계 김일성은 생전에 자신의 아들 정일을 둘러싸고 빚어지고 있는 가족간 갈등에 대해 심히 우려했었다고 전해진다.그만큼 김정일과 다른 가족간 대립이 심각했고 이는 자신의 사후 정권존립 자체에 위험요소가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김정일과 자신의 후처 김성애,자신의 친동생 김영주,김성애와 사이에 난 아들 즉 김정일의 이복동생 평일과의 관계였다. 지난 72년 이후 20여년간 후계자로서의 정권 정지작업을 다져온 김정일에 있어서 가족관계는 철저히 적과 아의 개념이 분명했다.권력장악의 걸림돌이냐 추종세력이냐가 그 기본선으로 특히 김일성과 자신의 생모 김정숙(49년 사망)사이 관계인 「기본가지」와 계모 김성애(김일성과 56년 결혼)와의 관계인 「곁가지」를 철저히 구분했다. 따라서 김정일이 가장 신임하고 있는 것은 친 여동생으로 북한 여성계의 참모역할을 하는 당 경공업위원장인 경희와 그의 남편 장성택이다.그는 실세로 불리며 중앙당 27개 부서 가운데 3대혁명소조부·근로단체부·청년사업부 등 핵심 3개부서를 맡고 있다.이밖에 신임하는 사람으로는 자신의 브레인으로 사상적 부족함을 메워주는 가정교사 황장엽(전 김일성대총장으로 사상담당 당서기·김일성의 조카사위),양형섭(최고인민회의 의장·김의 4촌동생 김신숙의 남편),김정숙 민주조선 책임주필(김의 4촌동생)등이 있다. 김정일이 배척,김일성의 우환거리를 제공했던 이들과의 「가족화해」를 시사한 일련의 사건들이 이어져 세계의 이목을 끈 것은 지난해.70년대 초반 남북조절위 공동위원장,10년간의 당조직위원장을 지내며 막강한 실력을 행사하다 75년 김정일에 의해 사실상 숙청된 김영주가 재등장한 것.당내 막강한 지원세력까지 김정일에 의해 「여독청산」란 이름으로 거의 제거돼 은둔생활에 들어간 그는 지난해 7월17일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 준공식에김부자등과 모습을 나타내고 이어 며칠뒤 당정치국서열 7위로 부상했다. 또 지난 71년 여맹위원장이 돼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다 김정일에 의해 73년 여사칭호를 박탈당하고 친동생 김성갑마저 평양시 인민위원장 자리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던 김성애도 마찬가지.80년 이후 줄곧 공식행사에 얼굴을 못내민채 평양근교 별장에서 두문불출해 오다 지난해 11월 노동신문에 쿠바여성대표단을 맞는 사진이 나오고 이어 여맹전원회의에서 「김정일지도자를 받들자」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지난달 김일성과 함께 카터 전미국대통령을 맞으며 내외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세계의 뉴스거리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한편 김평일은 김정일로부터 가장 박대를 받아온 인물.김일성을 닮은 건장한 체구와 카리스마적 얼굴,원만한 성격이 김정일로 하여금 그를 권력의 언저리에서 감시의 대상으로 올려 놓았던것. 불가리아 대사로,핀란드 대사로 겉돌며 북한주민들로부터 동정을 받았던 그가 최근 북한으로 돌아가 군요직을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도 그 하나다. 이같은 김정일의 관용이 김일성의 심기를 편하게 해주는 단순한 배려로 그치고 김일성이 사망한 지금 다시 이들을 숙청하거나 「안거」토록 할는지는 분명치않다. 일단은 복권된 이들 친족들이 「조카의,의붓아들의,형의,처남의 대권에 도전하지 않고 적극 밀어주겠다」고 약조한 끝에 나온 족벌정치강화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김정일족벌의 정확한 향배는 11일 이후 김정일이 정식 권력승계절차를 마치고 통치를 행사함에 따라 조만간 드러날 전망이다. ◎올들어 공식행사 6차례만 참석/「친필서한」은 부쩍 늘어… “충성경쟁 유도”/김정일 최근 어디서 뭘했나 김정일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아버지 김일성을 예우하는 차원이라는 분석도 있으나 몇가지의 콤플렉스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1백58∼1백62㎝로 추정되는 단신에다 그의 연설문이 육성으로 단 한 차례도 방송되지 않을 정도로 말을 더듬는 콤플렉스가 있어 대인 기피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김정일의 최근 행적 가운데 특별히 눈에 두드러지는것은 없다.평소보다 활동이 눈에 띄게 뜸했다거나 아니면 왕성했다거나 하는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김정일의 최근 행적에서 그의 권력승계 여부를 확인하는 단서를 찾기란 힘들다는 얘기이기도 하다.공식적인 자리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대신 뒤에서 조용히 기반을 다져 권력승계에 대비해온 것이다. 김정일이 올들어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여섯차례에 불과하다. 새해 벽두에 근로자들과 신년모임을 가진데 이어 2월 28일에는 조총련 책임부의장인 허종만과 면담했다.뒤이어 3월 5일에는 북한군 협주단 공연을 관람했고,4월 6일에는 최고인민회의 9기 7차회의에 참석했다. 4월 25일에는 군창건절을 맞아 아버지 김일성과 함께 564군부대를 시찰했고,5월 6일에는 조총련 제1부의장 이진규와 「친선담화」를 나눴다.지난달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김정일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처럼 의례적인 공식활동을 하면서도 실질적인 통치자로서의 정책지도 활동이라 할 수 있는 「현지지도」 및 외빈접견 활동은 김일성이 사망할때까지 단 한차례도 갖지 않았다. 올들어 김정일의 보이지 않는 행적 중 눈에 띄는 것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친필서한」을 보내는 숫자가 예년에 비해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친필서한이란 김정일이 주민들에 대한 「사랑」을 과시하고,이들을 고무·격려하기 위해 직접 쓰는 편지이다.지난 90년 11월 1일 「조선중앙통신사」 당원들에게 보낸 것이 효시이다. 올들어 지난 5월초까지 7차례의 친필서한을 보냈다.예년의 1년치와 맞먹는다. 전문가들은 친필서한이 잦아지고 있는 것을 김정일의 「인덕정치」를 부각시키고 그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속셈으로 보고있다.사상적으로 취약한 새 세대들에게는 김정일에 대한 「대을 이은 충성」을 확고히 하고,핵문제로 국제적 압력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청년 군인들에게는 김정일 체제 수호를 위한 긴장감을 불어 넣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이후 김정일의 외형적인 행적에서 변화를 찾는다면 생산현장에 대한 「현지지도」가 줄어든 대신 군관련 행사 참여가 늘고 있는 점이다.군후방일꾼대회·전승기념탑 제막식·공병대회 등에 참석하고,전승기념 퍼레이드를 관람하는 등 군관련 행사에는 매우 활발하게 참여했다.지난해 4월 국방위원장으로 선임된 이후 당연한 결과로 지적되고 있으나,권력승계에 대비해 군부를 미리 장악하려는 의도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 비정한 권력투쟁가… 유례없는 반세기 독재/김일성 82년의 인생역정

    ◎유년 평양·만주 전전… 20세에 빨치산 활동/해방후 구소점령군 배경업고 권력장악/도전세력 가치없이 제거… 1인체제 구축/민족통일 빙자 6·25남침… 「전범」 낙인/67년 주체사상 만들어 사회주의 통치도구로 활용하기도 김일성.현대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장기집권을 누린 독재자이다.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난 45년 소련군을 등에 업고 한반도의 절반인 북한땅의 통치자가 된 뒤 거의 반세기동안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둘러왔다.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주석과 당총비서라는 사회주의 체제 특유의 어마어마한 권력집중적 직책도 모자라 북한주민들에게 「위대한 수령」,「민족의 태양」으로 부르기를 강요한 전제군주적 독재자였다. 김은 어찌보면 사이비 종교집단의 교주처럼 전지전능하고 무오류의 존재로 인식되도록 주민들을 세뇌시켜왔다고 할 수 있다.먹을 것이 모자라 하루 두끼 먹기운동을 벌이면서도 철저한 사상무장과 외부 정보통제로 주민들로 하여금 지상낙원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믿도록 만드는능력을 갖춘 인물이 바로 김일성이기 때문이다. 김은 1912년 4월15일 평양의 한 농가에서 아버지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을 부모로 하여 철주와 영주를 동생으로 둔 삼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본명은 성주였으나 만주에서 빨치산활동을 할 때 일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기록은 우상화과정에서 지나치게 미화되거나 엄청나게 날조되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그의 출생지가 평남 대동군 룡산면 하리 칠골에 있는 외가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이름도 성주에서 일성을 거쳐 다시 일성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김일성의 「공식」생가는 평양 대동강변 언덕에 자리잡은 지금의 만경대이며 이른바 「혁명의 요람」으로 북한의 모든 주민들에게는 참배의 대상이 되어왔다. 김은 어린 시절 한때 외할아버지가 개신교 장로를 지내는 등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외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강반석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니기도 했다. 그는 만경대에서 짧은 유년시절을 보낸 뒤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했다.그후 김은 만주의 중국계 소학교인 모예산소학교,팔도구소학교와 평양근교 외가인 칠골에 있는 외조부 강돈욱이 교감으로 있던 창덕학교 등을 전전하며 파란많은 소년기를 보내다 26년 역시 중국계인 무송소학교를 졸업한다. 이후 32년 유격대활동에 적극 가담하기까지의 기간은 뚜렷한 활동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다만 북한에서 나온 그의 전기들은 이 기간중 장춘과 길림 사이에 있는 가륜에서 한인농민들에게 사상교화작업을 했다고 쓰고 있다. 그는 31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32년 중순부터 중국 공산당 산하의 항일 빨치산집단에 참여한다.이때 이름도 성주에서 일성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김의 항일투쟁경력은 그가 북한정권을 장악한뒤 유일체제를 강화하면서 그에 대한 우상화를 합리화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과장·미화되었다.북한의 선전용 김일성 전기들은 만주사변이 일어난 32년 그가 조선공산당을 창설했다고 하지만 당시 불과 19세였던 그는 당시 그럴만한 힘이 없었다. 그는 2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양세봉이라는 한인이 이끄는 유격조직에 들어감으로써 항일빨치산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후 그는 중국공산당 산하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에 사병으로 들어가 활동하다 우수한 중국어 실력을 인정받아 나중에 대대장급으로 승진했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만주 일대에서 소규모 유격활동을 벌이던 김은 37년 유격대원 2백명을 이끌고 국경 마을인 함남 보천보를 습격했다.일본경찰지서와 우체국 등을 방화하고 추격해오는 경찰서장을 비롯한 일경 7명을 살해한 이른바 「보천보전투」를 벌여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김은 이 전투가 자신이 참여한 빨치산 전투중 가장 성공적인 전투였다고 자랑하며 보천보에 자신의 동상과 혁명박물관까지 세우고 북한 주민들에개 참관을 강요했다.하지만 보천보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김일성이 아니라는 소수 의견을 내는 학자들도 있다.즉 보천보사건의 김일성은 그해 11월 죽었으며 그의 부하였던 사람이 소련으로 도피한 뒤 그의 이름을 도용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보천보사건 이후 일본이 중국 본토 침략의 전초전으로 만주의 빨친산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전에나서는 바람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히 와해되기 시작했다.때문에 김도 41년 8월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 서쪽으로 피신해야 했다. 소련은 이 무렵 만주에서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중국인과 한인유격대원들을 모아 블라디보스토크 근교 등지에 「88독립저격여단」이라는 부대를 창설했다.김도 김책,최용건,이동화 등 빨치산 동료들과 함께 이 부대에 들어가 43년에는 대위급으로 진급한다. 김은 여기서 만주에서 함께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김정숙과 결혼했다.그녀는 16세 때인 35년에 김일성의 빨치산부대에 가담해 주방일 등 잡일을 보았던 여자였다. 김은 42년 그녀와의 사이에 첫아들인 정일(소련명 유라)을 낳았다.하지만 그녀는 49년 평양에서 사산아를 낳다가 사망했다. 해방과 함께 무명의 소련군 장교로 평양에 입성한 그는 이후 소련의 절대적 후원과 타고난 권모술수로 재빨리 권력을 장악한다.소련 점령군은 친소세력에 의한 공산정권 수립의 필요성에 따라 자신들의 협조자들 가운데 하나를 북한지도자로 만들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고 김이 바로 그같은소련의 의도를 기민하게 포착한 것이다. 소련점령군이 46년 2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만들어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지명하면서 정치지도자로서의 그의 기반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1949년 3월에서 4월까지 한달동안 자신을 도와준 소련에 감사를 표시하기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인 6월 24일 북로당과 남로당 중앙위원회연석회의를 열어 당 위원장자리를 차지했다.이 회의에서 당의 명칭도 북조선노동당에서 조선노동당으로 바꾸었다. 당과 정부기관을 장악하는데 성공한 김일성은 자신에게 도전하는 세력을 가차없이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그는 자신에게 협력했던 인사도 자신에 도전할 정도로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숙청 또는 암살이라는 수단을 동원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는데 심지어 자신과 유격대활동을 함께했던 빨치산대원들까지 가차없이 제거하기도 했다. 그는 조만식과 같은 민족주의자뿐 아니라 박헌영,김두봉등과 같이 자신에게 협력했던 수많은 인물들을 한국전쟁에 대한패전책임을 덮어씌우거나 종파주의를 부추키고 있다는등의 갖가지 죄목을 걸어 제거함으로써 결국 북한정권을 족벌체제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소련의 힘을 빌려 48년 북한정권의 초대수상에,49년 조선노동당 초대위원장에 오른뒤 도전세력들을 가차없이 제거하기 시작했다.그는 조만식 등 민족주의자는 물론 현준혁 등 국내파,박헌영 등 남로당계,김두봉을 위시한 연안파,허가이 등 소련파를 차례로 숙청해 결국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김은 자신의 권좌가 어느 정도 다져진 50년 6월25일 한반도의 적화통일이라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마침내 무력 남침을 감행한다. 그 자신이 식은죽먹기라고 여겼던 적화통일이 유엔의 개입으로 실패로 끝났음에도 그는 전혀 책임을 느끼지 않았다. 김일성이 무력 적화통일이라는 야욕을 공공연히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47년부터였다.그는 신년사를 통해 『단합된 민주조선의 건설은 남한에 있는 반동적인 매국노들에 대한 궁극적인 승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인민군과 보안대를 강화시켜야한다』고 역설했다. 김일성은 모든 상황이 유리하다고 판단,밤도둑처럼 새벽야음을 틈타 남침을 했으나 유엔군이 참전하고 중국의용군이 자신을 도와주러 왔을때는 이미 전쟁이 자신의 관리능력 밖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되었다.국제정세를 너무 단순하게 보았던 판단착오의 결과였다. 김일성은 자신의 실수로 엄청난 결과가 빚어지자 동료들을 숙청했다.그는 1950년 12월 21일 강계에서 열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에서 그의 빨치산 동료들을 비롯한 거의 모든 사람들을 공격했으며 그 가운데서 김일,최광,임춘추,김열,무정등은 당에서 축출해버렸다. 김일성은 뒤이어 당의 재조직문제를 놓고 자신과 이견을 보인 소련파의 거두 허가이를 숙청했으며 박헌영을 비롯한 국내파들도 정부전복을 기도하고 미국을 위해 스파이활동을 했다는등의 죄목으로 체포해 사형에 처하는등 자신에게 도전하거나 더이상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는 세력은 여지없이 제거하는 비정함을 보였다. 김일성은 50년대 중반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도전하는 세력들을 숙청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래 67년에 「주체사상」을 만들어 냈으며 72년에 와서 북한의 사회주의헌법에 통치이념으로 명문화시켜 통치의 도구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같은 주체사상과 김일성에 대한 극단적인 우상화가 맞물리면서 북한정권이 안에서부터 서서히 허물어지는 요인이 됐다. 북한의 선전매체들이 김일성에 대해 『가랑잎을 띄우고 대하를 건너가는 만고의 영웅이며 그가 한번 노려보기만 하면 원쑤도 가을 풀같이 쓰러진다』고 보도할 정도로 북한은 이후 유사종교집단적 사회구조를 띠면서 경직적인 김일성 1인체제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70년대 이후 김일성은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완전히 밀리면서 철저한 폐쇄체제로 주민들을 통제하면서 다른 한편 아들인 김정일에게로 후계세습작업을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나름대로의 준비과정을 거쳐 지난 72년 12월 비공개리에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거쳐 김정일을 자신의 후계자로 내부적으로 결정했다.그도 소련의 스탈린 등의 전례를 보고 자신의 사후에 대해 대비를 시작한 것이다.다시 말해 스탈린 사망후 대대적인 격하운동에 충격을 받은 김이 사후 안전판으로 세계사에 유례없는 부자간 권력승계라는 희화적 구도를 상정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그는 자신에 대한 우상화 이상으로 김정일에 대한 상징조작을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가면서 권력을 하나씩 아들에게 이양하기 시작했다.김정일에 대한 호칭을 「당중앙」에서부터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향도의 별」 등으로 격상시켜나가면서 노동당 조직비서(73년),노동당 정치 상무위원회 위원(80년),인민군 최고사령관(91년),국방위원장(93년) 등 핵심요직을 하나하나 물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에게 「살아있는 신」으로 우상화작업을 펴온 김일성도 끝내 죽음을 거부할 수 없는,한 평범한 인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그 자신도 70년대 이후 각종 질병에 시달리면서 건강유지에 발버둥쳐온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김일성의 질환은 지난 73년께부터 확인된 뒷머리의 혹에서부터 고혈압·당뇨·난청·신경통·뇌일혈을 비롯해 그를 8일 새벽 마침내 죽음으로 몰고간 심근경색 등 10여가지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쨌든 그는 분단 반세기만에 초유의 역사적 사건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급사했다.그를 갑작스런 죽음으로 몰고간 원인이 그의 일생일대의 도박이라고 할 수 있는 정상회담에 대한 준비과정에서의 과로 때문인지,아니면 경제난과 대외적 고립에 따른 누적된 스트레스 탓인지는 아무도 모른다.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북한주민들에게 영생불사의 존재로 신격화된 그도 죽음 앞에 아무도 예외일 수가 없다는 철리를 그의 맹목적인 추종세력들에게 마침내 일께워 준것이다. 그의 공과는 후세의 사가가 엄정하게 평가해줄 것이다.그가 역사의 장에 어떻게 기록되든 과대망상에 빠진 권력의 화신이었다는 사실은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이미 뚜렷이 각인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일성 연표◁ △1912.4.15 평남 대동군 고평면 남리 만경대출생(본명은 김성주) △1923 만주 장백현 팔도구 소학교 졸업 △1926 만주 길림 육문중학 중퇴,재학중 공청 가입 △1930 김성주를 김일성으로 개명 △1931 중국공산당 입당 △1932 중국공산당 조선인부대 지대장 △1935 김일성으로 재개명 △1936 조국광복회 조직 △1937.6 함남 보천보 습격 △1937.9 함남 증평리 습격 △1940말 소련으로 망명 △1945.8 소련군 소좌 △1945.9 소련점령군 비호하 입북 △1945.10 조선공산당 서북5도당책임자 및 열성자대회 참석 △1945.10 「김일성장군」환영 평양시군중대회에 등장 △1945.12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책임비서 △1946.2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 △1946.7 북조선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장단 의장 △1946.8 북조선노동당 부위원장 △1947.2 북조선 인민위원회 위원장 △1948.8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1948.9 수상(제1차 내각) △1949.3 경제문화 협정체결차 소련방문 △1949.6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50.6 군사위원회 위원장 △1950.7 인민군 최고사령관 △1953.2 원솔칭호 △1953.7 영웅칭호 △1956.4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57.9 수상(제2차 내각) △1957.11 당 및 정부 대표단장으로 소련 10월혁명 40주년 기념식 참석 △1959.1 소련 제21차 공산당대회 참석 △1959.9 중국 정권창건 10주년 기념식 참석 △1961.7 우호협조 및 상호 원조조약 체결차 소련 중국 방문 △1961.9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및 정치위원회 위원장 △1961.10 소련공산당 제22차대회 참석 △1962.10 수상(제3차 내각) △1966.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 △1967.1 소련방문 △1967.12 수상(제4차 내각) △1970.11 노동당 총비서 겸 정치위원 △1972.12국가주석 △1972.12중앙인민위원회 위원겸 국방위원회 위원장 △1975.4중국방문 △1975.5루마니아·알제리·모리타니·불가리아·유고 순방 △1977.11국방위원회 위원장 △1977.11인민군 최고사령관(원수) △1977.12 국가주석 △1980.5 유고 티토대통령 장례식 참석 및 루마니아 방문 △1980.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1980.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총비서·군사위원장 △1982.4 국가주석 △1982.9 중국 방문 △1984.5 소련등 동구권 8개국(소련·폴란드·동독·체코·헝가리·유고·불가리아·루마니아)순방 △1986.10 소련 방문 △1986.12 국가주석 △1988.6 몽골 방문(중국·소련 경유) △1989.11 중국 방문 △1990.5 국가주석 △1991.10 중국 방문 △1992.4 대원솔 칭호 △1993.4 「전민족 대단결 10대강령」발표 △1994.4.8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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