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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들도 ‘나눔세상’

    기업들도 ‘나눔세상’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기업들이 사회공헌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KT는 19일 ‘2005년 KT 사랑나눔기금 모금’으로 16억 2000만원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임직원의 74%인 2만 8000명이 참여한 결과이며 모금만큼 회사가 금액을 지원하기 때문에 기금은 총 32억원 이상이 조성된다. 기금은 ‘청각장애아 소리찾기’ 등 KT의 공익사업에 사용된다. 삼성전자는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40여개 사회복지 단체를 선정해 ‘2005 작은나눔 큰사랑’ 지원금 4억원을 전달했다. 한화그룹은 19일 서울 중구 장교동에서 ‘장기기증 콘서트’를 가졌으며 이날 행사를 통해 임직원의 12%인 350여명이 각막기증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또 헌혈 캠페인과 시각장애인 체험행사를 갖기도 했다. 한편 포털 다음을 운영하는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이날 비영리 문화사업을 위해 10억원의 자금과 50억원 상당의 배너광고 등 인프라 및 컨설팅 등 인력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미디어ㆍ커뮤니케이션의 혜택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는 사업이나 사회개선을 위한 정보 네트워크 사업 등이 수혜 대상이다.”고 말했다. 공모 접수는 인터넷(good.daum.net/donation60)을 통해 20일부터 받는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공무원 ‘현장교육’ 대폭 강화

    공무원 ‘현장교육’ 대폭 강화

    참여정부가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정부혁신의 초점이 ‘사람’에 맞춰지고 있다. 사람을 먼저 혁신하지 않으면 시스템을 혁신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공무원 교육의 패러다임도 바뀌어 국내·외 교육훈련 전반에서 혁신이 시도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중앙공무원교육원을 중심으로 혁신교육이 추진되고, 국외 교육훈련은 성과지향형으로 개편된다. ●‘성과’와 ‘실천’중심의 교육 당장 눈에 띄는 변화는 ‘액션러닝(Action Learning)’ 기법의 도입이다.12일 교육원에 따르면, 공무원 교육훈련에 액션러닝이 14일부터 전격 도입된다. 중앙부처 국장급을 대상으로 한 ‘고위정책과정’에서 액션러닝 기법이 선보인다. 교육원측은 “기존의 공무원교육은 이론위주의 주입식 교육이었지만, 이제는 ‘성과’가 강조되고 있고 특히 혁신의 기본 이념은 ‘실천’이기 때문에 액션러닝 기법을 도입하게 됐다.”고 밝혔다. 액션러닝은 혁신교육기법의 하나로 현장중심의 팀 단위 실천학습이다.GE,IBM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에서 그 효과가 나타나 이미 민간에서는 보편화돼 있다. 예를 들어 골프장 설립의 규제개선책을 과제로 선정한다면, 건교부·환경부·산림청 등의 관련부처 국장들을 한 팀으로 짜 민원신청부터 완결까지의 과정을 직접 체험하게 하고, 체험학습 내용을 바탕으로 개선책을 모색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교육원 관계자는 “액션러닝을 통해 현장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고, 도출된 해결책을 실제로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성과측면에서 효과가 높다.”고 말했다. 중앙공무원교육원뿐만 아니라 노동부, 특허청·조달청 등 각 부처에서도 이달부터 자체 교육훈련시 액션러닝을 도입하는 등 교육내용이 달라지고 있다. 교육원은 또 ‘혁신선도자과정’ 등의 교육과정에 성공사례 중심의 케이스스터디와 팀별 학습을 도입하는 등 교육의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해외연수성과도 평가” 국외훈련제도도 대폭 개선된다. 학위위주의 훈련과정을 직무훈련 중심으로 내실화하겠다는 것이다. 중앙인사위원회는 해외연수의 훈련성과를 인사에 반영하고, 훈련성과에 따라 부처별 훈련인원 배정을 차별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즉, 앞으로는 공무원들의 해외연수 성과에 평가 잣대가 적용된다. 인사위측은 “지금까지 공무원들의 해외연수에서는 평가 등의 제한적 요소가 없었지만, 앞으로는 훈련성과에 따라 평점을 차등 부여해 개인 또는 부처 평가 자료로 활용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선발과정도 보다 까다로워진다. 직무와 관계없는 자기계발차원의 해외연수는 막겠다는 취지다. 인사위 관계자는 “국외훈련을 통해 학위를 받은 후 몸값을 올려 민간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MBA(경영학),JD(법학) 과정의 경우 훈련계획서를 면밀히 검토해 업무와의 연관성을 판단, 승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위는 향후 연구계획서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는 한편,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해외연수기관에 대한 현장점검도 실시하는 등 평가 및 사후관리 기능을 강화하기로 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여수~고흥 ‘다리 박물관’ 탄력

    여수~고흥 ‘다리 박물관’ 탄력

    전남 여수와 고흥반도의 섬과 육지를 다리 11개로 잇는 ‘다리 박물관’이 여수 백야대교 완공을 시발점으로 탄력을 받고 있다. 주전자 모양의 넬센아치교(주탑없이 아치로 상부지탱)로 멋을 낸 백야대교는 뭍인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와 섬인 화정면 백야리를 연결한다. 전남도는 377억원을 들여 길이 325m, 너비 12m로 착공 5년만인 14일 준공식을 한다. 가막만에 접한 백야도(인구 476명)는 전복과 해조류 양식장 등 해산물이 풍부한 곳으로 교통까지 편리해져 소득증대에 획기적 발판을 마련했다. 백야도 백호산(해발 283m)에 올라서면 주변에 점점이 떠 있는 섬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 이를 보려는 관광객들과 바다 낚시꾼들이 밀려들고 있다. 전남도는 현재 공사중인 여수 돌산읍∼화태도(길이 460m)는 서해대교와 같은 사장교로, 또 고흥군 영남면∼적금도(길이 1340m)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와 같은 현수교로 2011년까지 완공한다. 또한 화태도∼화정면 월호리∼개도 2곳은 기본설계중이고 나머지 6개는 기본계획중으로 2011년까지 완공된다. 다리 사업비는 국도 77호선에 접해 있어 전액 국비로 충당된다. 전남은 유인도 280개, 무인도 1689개 등 1969개의 섬(전국 62%)이 있는 ‘섬의 천국’이다. 박준영 전남지사는 “국내 최대 해양수산도인 전남이 21세기 신 해양시대를 맞아 서·남해안의 섬과 섬, 섬과 육지를 잇는 연륙, 연도교 건설을 통해 세계적인 해양 관광지로 발돋움하겠다.”고 강조했다. 여수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⑤- 현대중공업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⑤- 현대중공업

    #1982년 5월 19일 ‘기업인’ 정몽준씨에게 생애 최고의 날일 것 같다. 부친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이날 현대그룹 계열사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크고, 세계 최대의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 사장에 그를 앉히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이때가 그의 나이 31세. 현대그룹 후계구도에서 형들보다 한발 늦게 출발한 몽준씨가 가장 먼저 부친에게 인정받은 비결은 뭘까. 고 정 명예회장은 현대그룹 창립 25주년 행사에서 그 배경을 자세하게 풀어놓았다.“어떻게 보면 파격적이지만 길게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저서 ‘기업경영이념’을 읽어보면 우리나라의 어떤 젊은 경영진보다 확실히, 모든 것을 잘 분별해서 회사를 끌고 나갈 겁니다. 우리 아이들간에도 서열이 굉장히 낮기 때문에 가족회의를 열어 몽준 사장이 충분히 직책을 수행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결정을 했습니다.” 고 정 명예회장은 이에 앞서 몽준씨가 미국 MIT 석사학위 논문을 보완한 경영서적 ‘기업경영이념’ 서문을 읽고 “정말 잘 썼다.”며 “사장 자리에 앉아도 될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몽준씨는 훗날 가장 아끼는 그의 저서로 ‘기업경영이념’을 꼽으면서 “서문만 읽어도 충분하다.”고 곁들이기도 했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부친에게 기업가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던 점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2002년 12월 18일 ‘정치인’ 정몽준씨에게 생애 최악의 날일지 모른다. 그는 이날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의 공조 파기를 선언, 사실상 ‘백의종군’의 첫 발을 내디뎠다. 정권의 공동 주인으로 향후 5년간 막강한 정치적 실세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마다한 셈이다. 이 때가 ‘하늘의 뜻을 알수 있다’는 지천명(知天命)을 갓 지난 나이(51)였다. ●아버지에게 바가지 씌운 아들 정몽준(54). 현대가(家)의 여섯번째 아들.5선의 중진 의원. 대한축구협회 회장. 자산규모 재계 9위(지난해·공기업 제외)인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지분 10.80%). 국내 재벌가에서 정 의원만큼이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도 드물다. 일각에서는 “잘난 집안에 태어나 순탄하게 성장한 대가”라고 폄훼하기도 하지만 그는 스스로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정 의원은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산에서 3년 가량 살다가 서울로 올라와 장충초등학교와 중앙중·고교를 거쳐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그의 초등학교 동기 동창이다. 그는 초·중학교 시절 놀기를 좋아하고, 장난이 심했다고 한다. 중학교 담임 선생이었던 임환씨는 “몽준이는 놀기를 좋아해 친구들과 수업을 빼먹고 야외로 놀러갔다가 종아리를 맞기도 했다.”면서 “전혀 부잣집 티를 내지 않았으며, 학교 도서관을 지을 때 시멘트 1만포대를 지원받은 뒤에야 비로소 아버지가 고 정 명예회장임을 알게 됐다.”고 술회했다. 정 의원의 학생시절 별명은 ‘꺼벙이’다. 큰 키에 소탈하고, 겸손하지만 우유부단하다는 뜻에서다. 그러나 부친한테는 다른 형제처럼 어려워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대하곤 했다. 부친에게 ‘바가지’ 씌운 일화 한 토막.1970년대 초반 어느 날. 정 의원은 아버지에게 한잔 쏘겠다며 명동 생맥주 골목으로 모시고 갔다. 고 정 명예회장은 오랜만에 접하는 생음악과 젊은이들의 웃음소리에 흥에 겨워했다. 자리가 파할 무렵, 정 의원은 아버지에게 “1차는 제가 샀으니,2차는 아버지가 사시라.”고 제안했다. 고 정 명예회장도 유쾌한 기분으로 흔쾌히 응했다.2차 행선지는 정 의원이 정한 강남의 한 술집. 그러나 2차가 끝나고 계산서를 받은 정 명예회장은 술값에 놀랐다. 먹은 것에 비해 족히 여섯배의 술값이 청구됐기 때문. 그렇다고 재벌 회장이 술값을 놓고 시비를 걸기도 뭐했지만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 종업원에게 물었다. 돌아온 답은 “아드님이 전에 드셨던 외상 술값까지 계산하라고 해서 그렇게 됐습니다.”“허허 이것 참….”고 정 명예회장은 아들에게 된통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 의원은 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서울대에 진학했다. 고 정 명예회장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울산으로 변형윤, 이현재 교수 등 당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초청해 크게 ‘한턱’을 냈다. 고 정 명예회장은 “우리 몽준이가 혹시 사무착오로 합격한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하면서 우리 아들을 잘 지도해 달라고 수차례 부탁했다고 한다. 현대 고위 관계자가 밝힌 허물없는 부자관계를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일화는 이렇다.“한번은 고 정 명예회장이 아들들과 골프를 치는데 티샷을 하고는 먼저 그냥 걸어갔습니다. 다른 아들들은 머뭇거리다 채를 들고 뒤따라 가는데 유독 정 의원만 얼른 공을 놓고 티샷을 했죠. 그러자 고 정 명예회장이 ‘저놈∼.’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을 짓더라고요.” ●아내 자랑하는 ‘팔불출’ “나는 나의 아내가 고맙고, 때로는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친구들은 종종 내가 대통령 감이라기보다 내 아내가 ‘퍼스트 레이디’ 감이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아내는 바쁜 나의 생활을 잘 이해해 주고, 조용히 내조를 하는 스타일이다. 아내는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싫어한다. 밖으로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정 의원이 그의 저서 ‘꿈은 이루어진다’에서 밝힌 부인 김영명(49)씨에 대한 평이다. 정 의원은 1978년 여름 넷째 형수(이행자·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 부인)의 중매로 영명씨를 미국에서 만났다. 당시 두 사람의 첫 인상은 이랬다. 영명씨는 “우선 키(정몽준 182㎝·김영명 174㎝)가 커서 좋았어요. 제 키가 큰 편이라 어머니가 ‘너는 키 큰 신랑감이 없으면 시집도 못 갈거다.’고 곧잘 농담을 하곤 했어요. 첫 인상은 나이 차이가 다섯살이나 나서 그런지 듬직했어요. 믿고 의지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재벌가 사람답지 않게 소탈한 것도 좋았고요.” 정 의원은 “약속 장소에 나갔는 데 키 큰 여자들이 쭉 지나가기에 미국 사람들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모두 나에게 오더라고요.”고 당시 상황을 이렇게 술회했다. 이들은 틈틈히 테니스를 치며 1년 가량 연애끝에 잠시 귀국해 서울 정동교회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영명씨는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의 2남4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부친의 외교관 활동 덕분에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17년간 일본과 미국에서 살았다. 미국 웨슬리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했고, 부전공으로 미술사를 공부했다. 웨슬리대학은 힐러리 클린턴 미국 상원의원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나온 전통의 명문 대학이다. 영명씨는 외교관인 부친을 닮아 사교성이 뛰어나다.‘88 서울올림픽’ 유치전에서는 고 정 명예회장을 현장에서 보좌했고,1992년 대선 때는 변중석 여사를 대신해 시아버지의 파트너 역할을 했다.‘2002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는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 부인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행사장에서는 미소와 화술로 친분을 쌓기도 했다.‘미스 스마일월드컵’이라는 애칭은 이 때 얻었다. 이 때문인지 정 의원의 부인 자랑은 유별나다.‘김영명이 없으면 오늘의 정몽준도 없다.’는 우스갯말이 떠돌 정도다. 그의 저서 ‘꿈은 이루어진다’에서 계속되는 자랑 하나.“아내는 나보다 영어를 훨씬 잘한다. 유머를 곁들인 자연스러운 영어는 외국에서 처음 만나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할 때 곧잘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주곤 한다. 그동안 4남매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아내는 아이들이 크자, 뜻있는 분들과 함께 우리의 ‘옛’것을 ‘올’바로 알자라는 의미를 가진 ‘예올회’를 만들어 문화재 보존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영명씨가 밝힌 애처가 해프닝은 이렇다.“첫 아이를 가졌을 때였어요. 입덧이 심했던 제가 걱정스러웠던지 남편은 며느리들만 모인 자리에 와서는 제게 ‘밥 먹었니.’하고 묻는 거예요. 좀처럼 없는 일이라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고, 그 한마디 때문에 남편은 ‘애처가’라는 별명을 얻었죠. 그 꼬리표는 지금까지 따라 다닙니다.” 그도 신혼 초에 시아버지인 고 정 명예회장에게 혼이 났다고 한다.“철부지 며느리 시절, 저는 식사 중에도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데 불쑥 끼어들어 참견을 하곤 했어요. 아버님이 어느 날 저에게 ‘밥 먹을 때 말을 많이 안하는 게 좋은 거다.’며 조용히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어요.” 자녀는 2남2녀. 장남인 기선(23)씨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올 초 아버지의 뒤를 이어 ROTC 장교로 임관했다. 장녀 남이(22)씨는 연세대를 휴학하고, 현재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유니버시티에 유학 중이다. 차녀 선이(19)씨도 미국 디어필드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다. 막내 예선(9)군은 경기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영명씨는 늦둥이인 막내 임신과 관련해 병원에서 무안당한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임신해서 병원에 가면 의사가 초음파 검사를 하잖아요. 한번은 의사가 ‘아들이 없으세요. 왜 이렇게 애를 많이 낳으세요.’라고 물어 난감한 적이 있었어요.” 시중에는 예선이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축구 예선전이 한창일 때 태어나서 이름을 예선이라고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 의원은 최근 ‘예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의미와 돌림자 ‘선’을 합쳐 예선으로 지었다고 밝혔다. ●정치인 정몽준 “내가 처음 국회의원이 되고자 한 것은 11대 국회의원 선거 때였고,1984년 12대 국회의원 선거 때도 출마하려고 했다. 그런데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내가 나가면 여당 의원이 떨어진다고 나가지 말라고 했다. 결국 나는 그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단념해야 했다. 하지만 공적 서비스를 하기 위해 정치에 입문했다는 생각은 내가 지금까지 흔들림없이 지켜온 가장 기본적인 정치철학이다.”정 의원이 밝힌 정치 입문의 배경이다. 정 의원은 1988년 울산 동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지금은 5선의 중진 의원으로 확실한 입지를 구축했다. 한때는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반으로 대통령 선거에 나서기도 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본 정치인 정 의원은 어떨까. 지난 대선기간 내내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던 정 회장도 ‘피’는 어쩔 수 없었던지 그 속내를 내보인 적이 있었다.“몽준 의원은 우리 형제들 가운데 제일 똑똑하고 잘 생겼다. 미국 MIT 대학원도 졸업하고, 월드컵도 성공적으로 잘 치렀다.” 그러나 정 회장은 이 발언 이후 정치권으로부터 호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정치인 정 의원의 평판은 극과 극을 달린다. 일각에서는 직선적이고 엄격하다고 지적한다. 그를 보좌했던 비서관의 얘기다.“정 의원은 성격이 급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을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다.”정 의원은 이에 대해 “지금까지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쪽에서는 합리적이고 매너가 깨끗하다는 평이다.“정 의원은 서구식 매너가 몸에 배어 있다. 직원들이 떠나는 차에 인사를 하면 ‘왜 차에다 대고 절을 하느냐. 하지 말라.’고 말린다. 또 비서를 시키지 않고 직접 자신이 동료 의원에게 전화를 한다.”며 다른 전직 비서관이 전했다. ●현대중공업의 핵심 브레인 민계식(63) 현대중공업 부회장은 가장 부지런한 CEO, 백발의 마라토너 CEO로 불린다. 아침 6시 출근, 새벽 2시 퇴근하는 일과를 20년째 이어오고 있다. 비서를 퇴근시키고 저녁 6시부터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새벽까지 사업구상이나 신제품 개발 계획에 열중한다. 그의 이런 노력은 국내외 학술지 및 학술대회에 150편의 논문을 발표토록 했으며,48건의 국내 및 국제특허를 보유토록 했다. 우주항공학 및 조선공학(석사), 해양공학(박사) 등을 넘나드는 그의 해박한 전문지식은 현대중공업의 연구개발(R&D) 부문을 업그레이드시켜 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민 부회장은 또 60대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건강을 과시하고 있다. 그의 최고기록은 2시간 23분 48초. 비록 20대 초반 시절에 일궈낸 기록이지만 지금도 2시간대의 기록을 내고 있다.42.195㎞의 완주기록도 100회를 넘었다. 유관홍(60) 현대중공업 사장은 그룹내에서 경영 합리화의 귀재로 통한다.1999년 침체에 빠진 현대중공업 건설장비부문의 사업본부장을 맡아 세계 각지를 직접 뛰는 영업활동을 전개, 직원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 결과 만성적자였던 건설장비 부문을 2001년 국내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는 국내 1위의 건설장비 업체로 탈바꿈시켰고, 중국시장 점유율 25%를 기록하는 중국 최대의 건설장비 공장으로 성장시켰다. 그의 이런 경영능력을 두고 지난해 6월 미국의 권위있는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유 사장을 ‘기업회생 전문가’라고 평했다. 이연재(63) 현대삼호중공업 사장은 1976년 현대중공업 간부로 입사한 이래 30년간 조선과 해양플랜트의 해외영업 부문에서 일해 왔다.1999년 부도 위기에 처했던 옛 한라중공업을 현대중공업이 위탁경영하면서 대표이사로 선임돼 흐트러진 조직을 안정시켰다. 단기간에 70여척의 선박을 수주했으며, 중단된 사원 복지향상에도 노력을 기울여 사원아파트와 스포츠문화센터 등을 조성했다. 파산 직전까지 이르렀던 회사를 2001년부터 4년 연속 흑자경영을 실현하고 있다. 최길선(59) 현대미포조선 사장은 평사원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최 사장은 설계·생산·기획 등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조선 현장에서 33년을 보낸 최고의 조선전문 경영인이다.‘항상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원칙아래 내실을 강조한다. 최 사장은 올해 슬로건을 ‘창사 30주년, 새로운 도약의 해’로 선포하고, 선박 60척 생산체제 구축을 마련하는 등 제 2도약을 위한 전략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현대중공업 탄생 일화 ‘옥스퍼드 박사가 낳은 현대중공업’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평소에 즐겨 썼던 “이봐, 해봤어.”라는 말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준 곳이 현대중공업의 설립 신화다. 그야말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고 정 명예회장의 ‘원맨쇼’였다. 고 정 명예회장은 1971년 조선소 차관 도입을 위해 영국 런던의 바클레이즈 은행을 찾았다. 그러나 ‘듣도 보지도 못한 한국의 작은 회사가 언감생심 어딜 넘보는 것이냐.’는 바클레이즈 은행의 태도에 기가 질렸다. 그렇다고 포기 할 수는 없었다. 그가 기댄 곳은 당시 기술협조 계약을 맺은 영국의 A&P 애플도어 엔지니어링사. 그는 500원짜리 지폐로 애플도어사의 롱바톰 회장을 감동시켰다.“이것은 한국 지폐입니다. 여기 그려진 것이 거북선이죠. 한국은 이미 1500년대에 이런 철갑선을 만든 실적과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영국의 조선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1800년대이니 한국은 무려 300년이나 앞선 셈입니다.” 그는 롱바톰 회장의 도움으로 바클레이즈 은행 부총재를 만났다. 그러나 콧대 높은 영국 은행의 부총재를 설득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옥스퍼드 박사’ 일화는 여기서 나왔다. 고 정 명예회장은 ‘전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임기응변으로 “어제 제가 이 사업계획서를 들고 옥스퍼드대학에 갔더니 한번 들쳐보고 바로 그 자리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주더군요.”라고 말했다. ‘옥스퍼드 유머’에 부총재는 껄껄 웃으며 “옥스퍼드대 경영학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도 이런 사업계획서는 못 만들거요. 당신은 그들보다 훨씬 더 훌륭합니다. 당신의 전공은 유머 같소. 우리 은행은 당신의 유머와 함께 이 사업계획서를 수출보증국으로 보내겠소.” 고 정 명예회장은 ‘거북선 지폐’와 ‘옥스퍼드 박사’로 바클레이즈 은행 벽을 넘었지만, 아직 영국 수출보증기구(ECGD) 총재의 보증을 받아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그러나 이것도 울산의 초라한 백사장 사진 한장 들고 그리스 선사인 ‘선 엔터프라이즈’사의 리바노스 회장을 설득, 선박을 수주 계약함으로써 무사히 통과했다. 이로써 세계 조선 역사상 최초로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가 동시에 진행하는 신화가 나오게 됐다. 고 정 명예회장과 리바노스 회장이 당시 맺은 인연은 지금도 대(代)를 이어 지속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MJ 처가의 ‘화려한 혼맥’ 정몽준 의원의 처가인 고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가계도를 보면 한국 상류사회의 ‘족보’를 엿볼 수 있다. 슬하에 2남 4녀를 둔 고 김 장관과 송두만(83) 여사는 자식교육 뿐 아니라 혼사까지 성공한 케이스. 자녀 모두 외교관 출신인 부친의 영향으로 영어와 일어 등을 유창하게 구사하며, 외국의 명문대를 졸업했다. 특히 장녀인 영애(60)씨와 차녀인 영숙(59)씨는 일본 최고의 여성 사립명문인 세이신대학을 졸업했다. 장남인 대영(57)씨는 미국의 암허스트대학을 졸업했으며, 차남인 민영(51)씨는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을 졸업한 뒤 컬럼비아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땄다. 자녀 가운데 재계 가문으로 시집간 이는 삼녀인 영자(55)씨와 막내인 영명(49)씨. 영자씨는 GS그룹의 허씨가인 허광수(59) 삼양인터내셔널 회장과 결혼했다. 허 회장의 형제로는 허남각(67) 삼양통상 회장과 허동수(62) GS칼텍스 회장이 있다. 또 허창수(57) GS그룹 회장과는 사촌간이다. 허 회장의 부친인 고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은 LG그룹 경영의 한 축을 맡았던 고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의 맏형이다. 고 허 명예회장은 일찌감치 삼성물산의 창립멤버로 참여,LG 구씨가와 손잡은 고 허준구 명예회장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영명씨는 정몽준 의원과 1979년 결혼, 현대가의 일원이 됐다. 이로써 고 김 장관의 집안은 국내 대재벌인 삼성과 현대,LG,GS가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차녀인 영숙씨는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낸 손원일 제독의 장남인 손명원(64)씨와 결혼했다. 손씨는 30대 초반에 ‘손컨설팅 엔지니어링’이라는 회사를 설립했으며 현대미포조선과 쌍용자동차, 맥슨전자에서 CEO(최고경영자)를 역임했다. 그는 현재 스카이웍스솔루션 코리아 고문이다. 장녀인 영애씨는 자수성가한 국제 금융계의 거물급 인사로 미국 모건스탠리의 부사장이다. 남편인 최융호(62)씨는 해양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제너럴 마리타임 사장이다. 장남인 대영씨는 부친인 고 김 전 장관의 아호(海吾)를 딴 해오실업을 경영하고 있으며, 차남인 민영씨는 한국외국어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부인인 정다미(44)씨도 명지대 교수다. 김 전 장관의 집안은 또 언론계와도 각별하다. 손녀 사위들이 언론계에 몸담고 있다. 셋째 사위인 허 회장의 장녀인 유정(31)씨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아들인 준오(31)씨와 결혼했다. 둘째 사위인 손 고문의 차녀인 정희(31)씨는 1999년 헤럴드미디어 사장인 홍정욱(35)씨와 화촉을 밝혔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사악함을 회개합니다”

    영국의 찰스(56) 왕세자와 카밀라 파커 볼스(58) 커플이 9일 낮 12시30분(한국시간 저녁 8시30분) 결혼한다. 두 사람은 런던 인근 윈저시청 대강당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윈저궁으로 이동, 결혼 기도와 축복 예배에 참가하게 된다. 둘은 결혼식에서 영국 성공회의 기도서 가운데 ‘회개의 결의’ 구절에 따라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지은 많은 죄와 사악함을 인정하고 회개합니다.”라고 낭독하게 된다. 예배는 둘의 결혼을 성사시킨 캐리 전 캔터베리 대주교가 집전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않지만 예배에는 참석한다. 여왕은 예배가 끝난 뒤 하객들에게 축하연회도 베풀 예정이다. 찰스와 카밀라는 1970년 윈저궁에서 열린 폴로 경기 때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다. 찰스의 나이 스물 하나, 카밀라는 스물 셋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사랑에 확신이 없던 찰스가 이듬해 해군에 입대하고 카밀라가 기병대 장교였던 앤드루 파커 볼스와 결혼하면서 각자 다른 길을 가게 됐다. 카밀라는 남편 앤드루와의 사이에서 아들과 딸을 두었고 찰스 역시 1981년 11세 연하의 다이애나와 결혼, 윌리엄과 해리 왕자를 낳았다. 그러나 둘은 서로를 잊지 못해 결혼생활 중에도 만남을 이어왔고 마침내 1995년 카밀라가 이혼하고 이듬해 찰스가 다이애나와 헤어지면서 ‘불륜 커플’의 결혼 임박설이 나왔다. 둘의 결혼은 그간 두 차례나 미뤄졌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현지美軍, 펜타곤에 늑장보고 탓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서울 조승진기자|미국 국방부가 한국의 자이툰 부대 274명 감축과 관련해 민감한 반응을 나타낸 것은 최근 한·미간에 조성된 ‘불신감’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주미 한국대사관의 정무 및 국방 관계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자이툰 부대의 병력 철수와 관련해 한·미간의 공조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라크 북부에 주둔하고 있는 자이툰 부대는 수도 바그다드의 다국적군(MNF) 사령부에 연락장교를 파견하고 있다. 이 연락장교를 통해 우리측 병력 상황이 수시로 미국측에 전달된다는 것이다. 자이툰 부대측은 최근 병력이 감축된 규모와 이유도 그때그때 설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지의 미군측은 이를 특별한 사항으로 생각하지 않아 펜타곤에 즉각 보고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펜타곤의 한국 담당 부서 실무자들은 뒤늦게 자이툰 부대 병력 수백명이 한꺼번에 감축됐다는 보고를 받자 깜짝 놀라 민감하게 반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펜타곤 관계자들은 우리 대사관측에 사실 관계를 문의하는 한편, 주변을 통해 언짢은 심경도 표시했다고 한다. 주미대사관측도 자이툰 부대의 병력 감축 사실은 사전에 알지 못했기 때문에 서울에 문의해본 뒤에야 펜타곤측에 감축 규모와 이유를 설명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병력 감축은 철저하게 한국측에 달린 문제여서 펜타곤 관계자들이 우리측에 정식으로 항의하지는 않았다고 대사관 관계자는 전했다. 지난 5·6일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SPI) 준비를 위해 펜타곤 한국 담당자들과 계속 접촉했던 주미대사관 관계자는 “미국측에서 별다른 말이 없었다.”고 밝혔다. dawn@seoul.co.kr
  • 선고 매년감소… 집행 7년간 ‘0’

    선고 매년감소… 집행 7년간 ‘0’

    국가인권위원회가 6일 폐지를 권고할 사형은 어떻게 선고되고 있을까. 누가, 어떤 범죄로 사형을 받을까. 서울신문이 2002∼2004년 사형 사건을 분석한 결과, 대법원은 피해자 2명 이상을 계획적으로 살해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시체를 훼손하며 범행을 뉘우치지 않는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 파기 사례 많아 흉악 범죄는 늘고 있지만, 사형 선고는 거꾸로 줄고 있다.1심이나 항소심에서 사형을 선고받더라도 대법원이 파기하는 사례가 많다.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은 2000년 20명에 이르렀지만,2004년 8명으로 감소했다. 대법원도 2000년에는 13명에게 사형을 선고했지만,2004년 2명으로 줄였다. 하지만 살인죄로 기소된 피고인은 2000년 736명에서 2003년 823명으로 증가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윤병철 부장판사는 ‘생명 침해범에 대한 양형’이란 논문에서 2002년 육군 장교인 손모(29)씨 사건을 기준점으로 사형선고가 엄격해졌다고 진단했다. 손씨는 한 여성(18)을 살해하고 9명을 강간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1심,2심은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02년 2월 원심을 파기했다. 인터넷 교관으로 활동하던 손씨가 무분별하게 음란물에 접촉하며 성적 망상에 빠져 범행을 저질렀다고 분석했다. 이에 정신치료를 통해 손씨를 교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사형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마지막 형벌이기에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손씨는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범행은 치밀하게, 피해자는 2명 이상 사형 확정선고를 받은 피고인들의 주요한 범행 동기는 성욕·재산탐욕이었다.2003년 사형이 확정된 도모(34)씨는 현금 3억원을 가로채기 위해 70대 노인 3명을 둔기로 때려 죽였다. 지난해 사형을 선고받은 김모(24)씨도 신용카드 빚 7000만원을 갚아주지 않는다며 어머니를 목 졸라 살해하고 할머니도 같은 방법으로 죽였다. 사형사건의 또 다른 특징은 범행이 계획적이고 피해자가 2명 이상이란 점이다. 지난해 사형이 확정된 유영철(35)은 노인과 여성 20명을 연쇄적으로 살해했다. 식당종업원 허모(27)씨도 열흘 동안 6명을 강도살인했다. 영생교 신자 나모(63)씨도 교단을 이탈했다는 이유로 6명을 죽였다. 한 사람을 죽였다고 사형이 선고된 사례는 없었다. 일가족을 한꺼번에 살해,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김모(47)씨는 10년 동안 의붓딸(20)을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집행유예형으로 풀려난 그는 아내 집을 찾아가 잠자던 일가족 4명을 둔기로 내리쳐 살해했다. 김씨의 친아들과 친딸도 함께였다. 사형수들은 대부분 시체를 훼손, 범행을 숨기고 반성하지 않았다. 자수했는데도 사형이 선고된 경우는 없었다. 가족을 죽인 대학생 김모씨도 범행 후 여자친구에게 “오늘 식구들 작업했다가 실패했어.”라고 태연히 이메일을 보냈다. 유영철도 법정에서 “너무 일찍 붙잡혔다.”고 말하는 등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피해자와 화해하거나 피고인 가족이 전폭적으로 교화를 지원하면 사형을 선고하지 않는다. 범행 당시 피고인의 건강상태도 상세히 점검한다. ●범행후 반성하지 않는다 절도죄로 복역한 최모(28)씨가 출소 후 7개월 만에 강도강간·살인 등 13건의 범죄를 저지르자 1심,2심에서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고인이 교통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친 직후 범행을 저질렀다.”면서 “교통사고 후유증인지 알아봐야 한다.”고 원심을 파기했다. 최씨는 결국 무기징역형을 확정받았다. 교제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여자친구의 가족 3명을 살해한 문모(28)씨도 사형을 면했다. 대법원은 “피고인 아버지와 누나들이 교화에 정성을 다하겠다고 호소해 사형을 선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우리 법원은 사형을 선고할 때 잔인하게 다른 사람을 살해했다는 객관적 측면과 더불어 피고인의 연령, 성장환경, 뉘우침 등 주관적 사정을 깊이 고려한다.”면서 “이것이 사형수가 감소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현재 법원에서 사형을 확정받고 수감 중인 기결수는 유영철을 포함해 60명이며, 집행은 1997년 12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23명이 마지막이었다. 정은주 김효섭기자 ejung@seoul.co.kr
  • 배양일 전 駐교황청대사 ‘내가 만난 교황’

    그토록 바라시던 북한방문의 꿈을 못 이루신 당신을 그 무엇으로도 위로할 수 없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상대리자로서 첫 임무를 받으시고 지구상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25년 6개월간의 재위를 마치신 제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서거를 한없는 슬픔 속에서 추도드립니다. 2002년 2월말 주교황청 대사의 임기를 마치면서 이임인사차 마지막 알현했을 때 3년간 정든 저를 보내는 아쉬움으로 묵주를 건네면서 손을 꼭 잡고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 칭찬하시던 그 체온과 음성이 아직 제 곁에 머물고 있기에 슬픔은 더욱 강하게 느껴옵니다. 교황께서는 폴란드 출신으로서 조실부모하고, 성장기에 조국이 위기에 처하였던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시대의 비극을 경험했고 소비에트 공화국 침공의 쓰라림을 이겨내면서 조국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을 위하여 살아오셨기에 강인함 속에서도 인자로운 풍모를 지녀 역대 교황 중에서 가장 활동적이면서 서민적이고, 철저한 반공주의자이셨기에 주재국 대사들에게도 남다른 인기를 보여주셨습니다. 1978년 10월22일 264대 교황에 즉위,2년반 만인 81년 5월 베드로광장에서 터키 청년으로부터 피격당해 최대의 위기를 맞은 교황께서 그 청년을 만나 “우리는 인간으로서 형제로서 만났으며 오늘에 사는 나는 그를 용서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라고 용서를 실천하셨습니다. 세계 평화, 사랑, 일치, 용서를 표명하신 평화의 사도, 당신에게 전 세계가 호응을 보내고 종교를 초월한 일치운동에서도 진전의 계기가 되고 있음을 우리 주변에서 보고 있습니다. 교황께서는 한국천주교 200주년인 1984년 5월3일 가톨릭 신자와 한국민 모두를 위해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평화의 사도로 한국에 오셔서 미사를 비롯한 전례를 집전하시고,103위 한국 순교복자의 시성을 거행하셨습니다. 이는 시성식이 바티칸에서 거행되는 전례를 깨고 파격적인 해외에서의 대규모 시성식이었습니다. 당시 공군장교였던 저는 헬기로 교황님을 모시면서 지방행사를 수행했습니다. 광주, 소록도, 대구, 부산을 거쳤고 특히 소록도에서 나병환자를 직접 위로, 기도하시는 당신의 모습에서 살아계신 예수님을 보는 듯하였습니다. 또한 당신께서는 1989년 세계성체대회 때도 한국을 방문하시어 한국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보여주셨습니다. 해외 순방 일정상 두 번이나 같은 곳을 방문한 것은 조국 폴란드 외에는 드문 일이기에 한국 사랑이 남다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군 예편 후 한국을 대표하는 주바티칸(교황청)대사로 보임되어 1999년 3월 교황께 신임장을 증정할 때 사실 기쁨과 걱정이 교차되었습니다. 그 기쁨은 1984년 한국방문 때 헬기로 수차례 모신 인연을 가진 제가 주재국 대사가 되어 대희년(2000년)의 가장 영광된 기간에 당신을 모시면서 대한민국의 대사로 보임된 것이었습니다. 반면, 걱정은 방한 때의 건강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기억을 더듬어 반가워하시며 우리 국민의 IMF 극복 노력을 칭찬하시는 모습을 통해 정신적으로 건강하심에 감사했습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교황청을 국빈방문했을 때 영국여왕에게도 부여되지 않은 방문의 격을 통상 공식방문에서 국빈방문으로 상향해 맞아주셨고 베드로성당의 순시 때에도 교황 특별통로로 승용차를 사용케 하신 것은 한국에 대한 배려 없이는 불가능한 것임을 한없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정상회담 때 “북한방문은 기적”으로 표현하신 말씀에서 남북화합을 바라는 높은 뜻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토록 바라시던 북한방문의 꿈을 못 이루신 당신을 그 무엇으로도 위로할 수 없는 사실이 못내 안타깝습니다.
  • [교황 서거] 요한 바오로 2세의 생애

    27년간 재임, 가톨릭 사상 세번째로 장수한 교황으로 기록된 요한 바오로 2세는 가톨릭사를 완전히 새롭게 쓴 인물이다. 비(非) 이탈리아계 교황의 선출은 1523년 네덜란드 출신 하드리아노 6세 이후 455년 만에 그가 처음이었다. 공산 국가인 폴란드에서 교황이 나온 것도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는 선출 당시 58세로 최근 123년 동안 추대된 교황 중 가장 젊은 나이에 취임했다. 교황은 취임 이후 교회 업무뿐만 아니라 세계 문제를 자신의 일로 여겨 104차례에 걸쳐 각국을 방문, 인권문제·이념갈등 해소 등을 위해 노력했다. 그의 사목 순방은 역대 교황 가운데 가장 횟수가 많아 거리로 환산할 경우 지구를 27바퀴 돈 것과 맞먹는다.‘행동하는 교황’으로 불린 것은 이 때문이다. 교황은 지난 세기 가톨릭이 저지른 과오를 머리 숙여 사죄하고 다른 종교와 화해를 모색해 성(聖)과 속(俗) 모두에 대단한 영향을 미쳤다는 평을 듣고 있다.8개 국어에 능통했던 그는 바티칸에 안주하며 바깥 세상과 거리를 두었던 전임 교황들과 달리 뛰어난 친화력을 발휘했다. 수요일마다 일반인들을 상대로 해온 그의 강론을 듣기 위해 바티칸에 온 순례자는 무려 1780만명에 이른다. ●그늘진 유년기 취임 34일 만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타계한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의 뒤를 이은 그의 발탁은 당시 파격적이었다. 바티칸 내부에서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던 그는 추기경들의 8번에 걸친 투표 끝에 78년 10월16일 제264대 교황에 선출됐다. 교황은 1920년 5월18일 폴란드 바도비체에서 군장교 출신의 양복사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름은 카롤 요제프 보이티야.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그의 유년기는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9세 때 어머니가,12세 되던 해에는 의사였던 형 에드문트마저 성홍열(猩紅熱)로 각각 사망,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헌신적이었다. 구멍난 옷을 기워 입히고 헝겊 조각으로 만든 공을 차며 아들과 축구를 할 정도로 다정다감했다. 동시에 집중력과 강인함을 길러주기 위해 차가운 방에서 공부를 하도록 하는 엄격한 면도 있었다. 가톨릭 가정에서 자란 보이티야는 다른 폴란드인들과 달리 반유대주의적 시각을 갖지 않았다. 당시 바도비체에는 2000명에 달하는 유대인이 거주했다. 보이티야는 이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렸고 이는 훗날 교황이 유대교에 화해의 손짓을 보내는 바탕이 됐다. 그는 교황으로서 유대교 성전과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희생자를 기리는 아우슈비츠 기념관을 최초로 방문해 유대인을 “우리의 형제들이여….”라고 지칭, 가톨릭과 유대교의 오랜 반목에 마침표를 찍었다. ●재능있는 사제 젊은 시절 보이티야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일 뿐 아니라 스키, 산악 등반, 카약, 수영 등 모든 운동에 뛰어난 만능 스포츠맨이었다.38년 아버지와 함께 크라쿠프로 이주해 야젤로니안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시 낭송, 노래, 연극에도 재능을 보였던 그는 극단에서 활동했으며 한때 전문 배우를 꿈꾸기도 했다.39년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 대학 문을 닫자 강제이주와 징집을 피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40년부터 4년 간 채석장에서 일했고 이어 화학공장 공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41년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신의 종으로 살라.”는 부친의 평소 가르침을 따라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신학공부를 시작했다. 46년 사제 서품을 받고 48년 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이듬해 크라쿠프에서 보좌신부로서 본격적인 성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제로서의 그의 삶은 탄탄대로였다.58년 크라쿠프 부주교,64년 주교,67년 추기경 자리에 올랐으며 78년 마침내 교황으로 선출됐다. ●‘세계의 양심’ 구심점 그의 교황 선출이 공표되자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유리 안드로포프 의장은 앞으로 상당한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고 그의 예측은 들어맞았다. 평신부 시절부터 공산주의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던 교황은 취임 이후 조국 폴란드의 자유노조 운동을 적극 지지해 공산정권의 붕괴를 가져왔고, 이는 구소련 몰락과 냉전종식의 기폭제가 됐다. 당시 사제들은 교황의 비밀 메시지를 사제복에 숨겨 투옥돼 있던 노조 지도자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또 인권 침해를 일삼는 칠레의 아우구스트 피노체트, 필리핀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와 같은 독재자들을 공개적으로 비난, 반정부 운동을 고취시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서방국가도 예외는 아니었다.81년 첫 미국 방문에서 교황은 미국 사회의 물질만능주의와 세속주의를 강력히 경고하는 한편 제3세계의 빈곤을 외면하는 이기주의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2년 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도 미국의 결정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보수주의의 기둥 교황의 피임과 낙태, 안락사에 대한 거부는 절대적이었다. 그는 산업국가가 이같은 ‘죽음의 문화’를 조장한다고 비판하면서 에이즈 예방을 위한 콘돔 사용에 반대해 원성을 샀다. 성경 교리를 들어 여성의 사제 서품을 허용하지 않아 교회 안팎에서 독재적이라는 비난도 잇따랐다. 81년 3월 바티칸 광장에서 한 터키인으로부터 복부와 양손에 총격을 받아 중태에 빠졌다. 당시 KGB가 배후 조종을 했다는 의혹이 있었지만 암살 동기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한편 교황은 83년 이 터키인이 복역중인 감옥을 직접 방문, 그를 용서하는 자비를 베풀어 세계인을 다시 한번 감동시켰다. ●쇠약한 말년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두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긴 교황은 성인이 되어서도 어깨 골절, 대퇴골 교체수술, 종양 제거수술 등을 받았다. 말년엔 암살 후유증에다 파킨슨씨병, 무릎 관절염 등으로 거동은 물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한 세월을 보냈다. 감기에 따른 호흡곤란 등의 합병증으로 고령에도 불구, 기관 수술까지 받아야 했고 빠르게 기력을 잃어갔다. 그리고 건강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사임설에 시달려야 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시론] 스와핑 후에도 마주보고 살수 있나/김영희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시론] 스와핑 후에도 마주보고 살수 있나/김영희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미국과 서구사회의 해괴한 성행위로 여겨지고 있는 ‘스와핑’이 어느새 우리 주변에 밀려와 급속히 확산되면서 범죄를 유발하고 있다. 스와핑 중개 사이트를 개설하여 회원 5000여명을 모아 부부들이 서로 맞바꾸거나 집단으로 성관계를 맺게 한 사이트 운영자가 경찰에서 “스팸메일이나 전화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앞다퉈 회원가입을 해와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한다. 또한 며칠 전엔 아내의 스와핑 상대였던 현역 장교와 대기업 간부에게 이 사실을 가족과 직장에 알리겠다고 협박하여 수천만원의 금품을 뜯어낸 남자가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스와핑이 풍속을 해치는 면은 있지만 부부 합의하에 금전거래 없이 성 관계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들을 처벌할 법률적 근거가 없다.”고 했다는데 더 큰 사회문제가 생기기 전에 법적규제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건전한 성문화를 위해 스와핑을 한 사람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과 스와핑은 개인의 사생활이므로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수는 있지만 법적으로 처벌받는 것은 지나치다는 견해가 네티즌들 사이에 오가고 있다. 부부가 상대를 바꿔 성관계를 맺고도 어떻게 얼굴을 마주하며 살 수 있을까? 인간은 누구나 동물적인 본능을 지니고 있다. 배우고 못 배우고 빈부의 격차를 떠나 성욕은 인간의 본능인 것이다. 부부에게 성관계만큼 몸과 마음을 하나로 밀착시키는 방법은 없을지 모른다. 만족한 성 생활은 부부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며 생활에 활력이 넘쳐 삶을 즐겁게 해주지만 성생활이 만족치 못한 부부는 몸과 마음이 화합하지 못하고 제 각각이어서 사소한 일에도 불평불만이 쌓여 가정파탄이 나는 경우가 많다. 옛말에 ‘아무리 심한 부부싸움을 했더라도 같은 이불 덮고 자라.’ 했고 ‘부부싸움 칼로 물 베기.’란 말도 있는데 살 섞고 살다 보면 작은 섭섭함과 미움쯤이야 금세 풀어진다는 뜻이 아닌가 싶다. 결혼은 남녀가 섹스를 즐기기 위해 만나는 인간관계가 아니다. 성생활은 결혼생활에서 있어야 할 하나의 중요한 요소이지만 전부가 될 수는 없다. 부부사이에 존엄성 없이 섹스가 전부라면 하급동물과 인간이 다를 것이 없다. 왜 현대인들은 섹스에 열광들을 하는 것일까? 날로 황폐화되는 도덕성 때문일까. 아니면 각박한 삶에 지쳐 돌파구를 찾기 위한 몸부림 때문일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여자에게 섹시하다는 말을 건네면 당사자인 여성은 자신이 천박한 여자로 비하된 것 같아 수치심으로 얼굴이 벌게지며 벌컥 화를 냈었다. 하나 요즈음 젊은 여성들은 섹시하다는 말을 최대의 찬사로 받아들이고 더 섹시한 여자가 되기 위해 몸매 가꾸기에 값비싼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눈물겨운 노력들을 하고 있다. 마약, 알코올, 커피도 가까이 하다 보면 중독이 되어 점차 그 양을 늘려가야 되듯이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권태스럽게 느껴진 부부가 스와핑을 하고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게 되면서 집단 섹스파티를 하고…. 언젠가 그마저 시들해지게 될 터인데 종내 그들이 갈 곳은 어디일까? 부부는 가슴과 가슴사이에 흐르는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 젊은시절의 불타는 정열은 잠시잠깐일 뿐,40∼50년을 함께하다가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오순도순 정답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버팀목은 섹스가 아닌 존경과 신뢰다. 스와핑은 분명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서구문화가 아니다. 호기심으로 해 볼 것이 못되며 더구나 권태를 풀어내는 방법이 될 수 없다. 건전한 성생활과 함께 한결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챙기는 부부가 진정 아름다운 부부일 것이다. 김영희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 인권위, 軍단체기합 금지 권고

    국가인권위원회는 31일 올해 초 발생한 ‘육군훈련소 인분사건’과 관련, 군대의 인권향상을 위한 제도개선을 국방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인권위는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대한 부하의 시정 건의와 상부보고 의무화 ▲단체기합 금지와 위반했을 때 처벌 명문화 ▲장병의 인권상담과 지도를 담당하는 인권보호관 제도 도입 등의 내용을 담아 ‘군인복무규율’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또 “장병의 인권침해 행위를 예방·적발할 수 있도록 감찰·기무·헌병 등 내부통제장치를 적절히 운영하고 소원수리 제도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권위 직권조사 결과 지난 1월 10일 육군훈련소에서 화장실 청결교육을 강조하면서 훈련병 192명에게 인분이 묻은 손을 입에 넣도록 강요했고, 정훈장교 등이 이를 알고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세상에 이런일이]걸작길옆 졸작

    |뉴욕 연합|프랑스 루브르박물관과 영국 테이트 미술관 등에 이어 미국 뉴욕의 유명 미술관들에서도 한 ‘낙서 작가’가 자신의 그림을 몰래 전시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현대미술관(MOMA), 브루클린 박물관, 자연사박물관 등 뉴욕의 4개 유명 미술관은 스스로를 ‘뱅크시’로 칭하는 유럽의 한 남성이 전시중인 명화(名畵)들 옆에 자신의 그림을 몰래 걸어놓은 것을 뒤늦게 발견해 철거했다고 최근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뱅크시’는 지난 13일 메트로폴리탄의 미국관에 방독면을 쓴 여성의 초상화를 부착한 것을 비롯해 며칠 사이에 잇따라 4개 박물관에서 경비원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의 ‘작품’을 몰래 전시하는 데 성공했으나 박물관 벽이나 다른 전시작품들을 훼손하지는 않았다. 그가 몰래 내건 ‘작품’은 반전 구호가 낙서처럼 적힌 바탕에 페인트 스프레이를 들고 있는 옛 대영제국 장교 차림의 남자 초상화나 제트기 날개와 미사일, 위성 안테나 등을 장착시킨 유리 상자안의 실제 딱정벌레 등 하나같이 장난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다. ‘뱅크시’는 뉴욕타임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수많은 미술관들을 돌아다니면서 ‘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다.”면서 “따라서 실제로 이를 시도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이같은 행위의 동기를 설명했다.
  • [씨줄날줄] 나일혁명/이목희 논설위원

    일부 역사학자들은 문명 서진론(西進論)을 주장한다. 이집트·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된 인류문명이 에게해를 거쳐 그리스·로마로 이어졌고, 다시 서유럽과 미국 등 서쪽으로 중심이 옮겨갔다는 것이다.5000년전 처음으로 절대왕조를 만들어 2000년 이상 중·근동 패자로 군림했던 나라가 이집트다. 로마의 침략을 받아 줄타기외교를 하던 클레오파트라 여왕이 자살로 생을 맺은 후 세계역사에서 이집트의 존재는 미미해졌다. 하지만 중동·아프리카에서는 지금도 작은 나라가 아니다. 인구가 7000여만명이고, 땅넓이는 한반도의 5배에 이른다. 유엔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늘릴 경우 아프리카 대표로 후보군에 당당히 들어가 있다. 1952년 청년장교 나세르가 ‘이집트혁명’으로 불리는 쿠데타를 일으켜 파루크 국왕을 쫓아냈다. 이후 사다트와 무바라크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군출신 인사들이 장기집권하고 있다. 대통령은 임기가 6년이지만 연임제한이 없다. 사실상 단일후보로 출마함으로써 무바라크의 24년 통치가 이어져왔다. 올 가을 대선을 앞두고 무바라크는 직선제를 수용했으나 대통령 출마자격은 여전히 까다롭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키파야’를 앞세워 연일 시위를 벌이고, 정부는 이를 막느라 고심하고 있다.‘키파야’는 ‘충분히 했다’는 뜻의 아랍어로, 이승만정권 당시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야당 구호와 비슷하다. 아랍·아프리카의 지도국 이집트가 민주혁명을 이룬다면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레바논, 키르기스스탄에 이어 벨로루시, 몽골로 민주화 열기가 확산되고 있지만 이집트가 갖는 비중은 격이 다르다. 인류문명이 태동한 나일강의 민주혁명이 동서남북으로 퍼져갈 수 있다. 리비아의 카다피는 물론 북한 김정일도 영향권이다. 무바라크는 북한과 가까워 남북 중재역을 시도했던 적이 있다. 미국이 민주주의증진법 입법에 앞서 바람만 잡는데도 이처럼 격랑이 일고 있다. 미국은 냉전시대에는 ‘친미(親美)’를 우선시했다. 정통성이 약한 권위주의정권이 다루기 편했던 측면이 있다. 소련이라는 주적(主敵)이 없어진 지금,‘친미’를 넘어 정치체제까지 ‘미국화’시키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미국의 전략과 시대적 추세가 맞아떨어지고 있는 국제상황에서 우리도 눈을 크게 뜨고 국익을 챙겨야 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학교폭력 어떻게 풀까 (2)

    학교폭력 어떻게 풀까 (2)

    ■ 가해학생 지원 프로그램 사례 문제행동을 일으킨 학생들을 위한 ‘가해자 지원 프로그램’은 국내에도 개발되어 있다. 하지만, 재정과 인력 부족 등 현실적인 한계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같은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맞춤형 프로그램으로 가해학생들을 치유하는 현장을 찾았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게 해주는 전문 상담 “그 아이를 밖으로 불러내는 것 말고 다른 해결책은 없었을까?다른 방법을 썼다면 너희들은 지금 이곳에 오지 않아도 됐을 텐데.” 지난해 서울 서초구 구립방배유스센터 상담팀을 찾은 A중학교 2학년 남녀학생 6명은 친구들에게 악의적인 소문을 내고다니던 같은 반 여학생을 뒷마당으로 불러내 집단폭행했다. 경찰은 이들이 사전에 조직을 이루지 않았고 우발적인 행동이었다는 점에서 처벌하지 않고 상담을 의뢰한 것. ‘치료’는 자신들이 저지른 폭력행위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상담원이 “너희들의 행동으로 피해자 친구는 어떤 상처를 입었을까, 또 너희들은 어떻게 됐니?”라는 질문을 던졌다. 아이들은 “친구가 잘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해결방법으로 폭력을 쓴 것도 잘못됐다.”면서 “친구들이 우리를 ‘폭력6인방’이라고 부르며 피해다니고, 선생님도 ‘실망했다.’고 해 속이 상했다.”고 털어놨다. 이들에 대한 상담치료는 두 달 동안 6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폭력적인 영화를 보고 자신과 영화속 주인공을 비교하면서 폭력의 위험성을 비판해 보는 미디어 상담도 했다. 두 달 뒤 3명은 스스로 상담팀을 찾아와 진로를 상담할 정도로 마음을 열었다. 센터에서는 10년째 청소년폭력예방재단과 연계해 학교 폭력 피해 및 가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집단상담을 비롯, 각종 프로그램으로 심리적 치유과정을 밟게 하고 있다. 상담은 청소년들이 저지른 문제행동의 유형, 문제행동을 시작한 시기 등 개별적인 특징에 맞춰 ‘맞춤형’으로 진행된다. 지난해 학교폭력 등을 저지르고 센터를 찾은 가해 청소년은 192명에 이른다. 강주현 상담팀장은 “우발적으로 친구를 때리다 숨지게 한 청소년 3명은 서로 말하기를 꺼리다가 상황을 재연하는 심리역할극을 마련하자 비로소 ‘말을 꺼내면 공포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모르는 척 지냈다. 그저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며 울부짖었다.”고 소개했다. ●‘방과 후 대안학급’운영… 인성·감성 교육 “학교에서 일어난 문제는 학교에서 해결해야지요. 교사는 못난 제자에게 더 필요한 것 아닌가요.” 경기 안양시 평촌공업고등학교에서는 폭행이나 음주, 흡연 등 학칙을 어긴 학생들은 처벌 대신 오후 10시까지 선생님과 학교에 남아 ‘대안 수업’을 받는다. 처음에는 “학생부 선생님과 밤 늦게까지 마주앉아 있느니, 매를 맞는 게 낫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즐거운 벌칙’은 학생들을 변화시켰다. 평촌공고에서 ‘방과후 대안학급’을 시작한 것은 2003년 1학기. 다른 학교보다 부적응학생의 비율이 높은 것을 고민하던 학생부 교사들이 내놓은 처방이다. 문제행동을 두차례 이상 보인 학생은 1단계 대안학급에 참여한다. 나흘 동안 부모님과 함께 역할극, 음악, 요가, 한문, 교양강의, 등산 등의 대안수업을 받는다. 대안학급의 성과를 묻자 교사들은 스크랩북을 하나 내놓았다.1단계 대안학급을 마무리하면서 학생들이 쓴 편지였다. 학생들은 마지막 날 촛불을 켜놓고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를 읽는다. 간간이 눈물자국이 번져 있는 편지들에는 “또 이렇게 돼버렸어. 그래도 나 믿어줄 거지?우리 가족 아니면 나 믿어줄 사람 누가 있다고….”,“스스로도 한심한 저를 항상 감싸주시는 부모님, 이젠 행동으로 보여드릴게요.”라는 학생들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감동의 1단계’를 끝마친 뒤에도 또다시 적발된 학생들에게는 산행이라는 2단계 ‘하드 트레이닝’이 기다리고 있다. 학생들은 처음 암벽등반을 시키고, 길도 나지 않은 곳으로 내모는 교사들에게 원망의 눈빛을 보낸다. 하지만 등반이 끝날 무렵 “지금 너희들은 잘못난 길로 걷고 있는데 힘들지 않니? 지금부터는 함께 바른 길로 가보지 않을래?”라는 말을 듣고서 비로소 산행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교사들의 열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일탈행위의 시작인 흡연을 막기 위해 300만원을 들여 일산화탄소 측정기와 소변검사기를 마련했고, 틈만 나면 학교를 구석구석 순찰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해마다 10차례씩 열리던 1단계 대안학급이 올해는 아직 한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지난해 6월까지 대안학급을 거친 학생 150명 가운데 문제행동을 되풀이한 학생은 5%밖에 되지 않는다. 학생부 전완근 부장교사는 “흔히 공고는 문제학교라고들 생각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새로 시작할 기회와 계기가 필요했던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유지혜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선진국 사례 학교폭력 문제를 우리보다 먼저 겪은 나라들은 가해 학생을 치유하는 프로그램도 앞서가고 있다. 일본은 학교, 경찰, 법원, 지역기관과 민간단체가 연계해 가해 학생을 지원한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다른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일단 가해학생을 출석정지시킨 뒤 ‘스쿨카운셀링’을 받게 한다. 각급 공립학교에 배치된 임상심리사, 정신과 의사, 심리학 전공의 대학교수 등 전문가들에게 상담을 받게 하는 것으로 1995년 도입됐다. 그 결과 일본 전국 공립학교의 폭력사건은 1997년 2만 3107건에서 1년 만에 2만 8489건으로 23.8% 늘었지만, 스쿨카운셀러가 배치된 학교에서는 1614건에서 1563건으로 3.2% 줄어들었다. 미국에서는 가해 학생이 심리적으로 고립감이나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고, 학교 폭력의 비인간성과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미주리주는 친구에게 폭력이나 폭언을 행사한 학생은 의무적으로 방과후 프로그램에 참여시킨다. 미국의 가장 보편적 분노·행동관리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폭력예방 심화커리큘럼’에서는 가해 학생이 매주 45∼50분짜리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토론과 역할극 등으로 이뤄진 이 프로그램에서 가해 학생은 감정이입, 충동통제, 분노조절 등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운다. 독일의 가해자 지원 프로그램 역시 가해 학생의 폭력성과 공격성을 조절하는 심리 상담에 역점을 두고 있다. 가해학생 지원센터에서는 먼저 가해 학생이 폭력을 휘두르게 된 동기를 찾아 상담을 시작한다. 이후 비폭력적인 감정의 특징을 비교 체험하게 해 가해 학생이 ‘폭력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교훈을 체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문제학생 선도 앞장 日 미즈타니 교사 “한국에는 학교폭력에 책임지는 어른은 없습니까. 아이들이 왜 그렇게 됐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나요.” 28일 오후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만난 미즈타니 오사무(49)는 “힘으로만 해결하려는 듯한 한국의 분위기가 아쉽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야간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며 14년 동안 일본 요코하마의 밤거리에서 청소년들을 만나온 그는 “한국에 오기 전 일진회에 대해 알아봤는데 이런 단체가 왜 생겼고, 아이들의 가정환경이 어땠는지에 대한 분석은 아무 데도 없더라.”면서 “태어날 때부터 남을 때리고,‘왕따’시키고 싶어하는 아이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의 저자인 그는 29일 신문로 서울교원연합회관에서 열리는 ‘한·일청소년 보호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이날 한국에 왔다. 미즈타니는 “일단 누군가를 믿게 되면 그 아이는 바뀐다.”고 경험을 털어놨다. 미즈타니는 자기 반 학생이 담배를 피우면 자진해서 벌금 1만엔을 내고, 폭력사건이 나면 사표를 내가면서 책임을 졌다. 그는 “처음에는 ‘왜 선생님이 나서느냐.’고 말리던 학생들이 나중에는 내가 잘못되는 게 무서워 말을 듣더라.”고 설명했다. 요즘 한국이 20년 전 일본을 보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는 미즈타니는 “일본에는 청소년 문제가 발생하면 교사·부모 등 어른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민간단체가 여럿”이라면서 “한국에도 그런 움직임이 활발해지면 상황은 좀 더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미즈타니는 “일본에서 가장 죽음에 가까이 있는 교사”라고 불린다. 야쿠자에게서 아이를 빼내려다 손가락 하나가 잘렸고, 마약상에게 옆구리를 찔렸지만 여전히 밤만 되면 아이들에게 다가간다. 그는 “가해자이든 피해자이든 괴로움을 당하는 청소년들이 과거는 다 잊어버리고 ‘오늘은 내일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면서 “아이들은 꽃을 피우는 씨앗이라 제대로 심고, 정성스레 가꾸면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강북구 ‘미혼직원 짝 찾아주기’

    “공무원 커플이 안정적이죠.” 서울 강북구는 30일 오후 6시 구청 강당에서 미혼직원들의 짝을 찾아주는 간담회를 개최한다. 강북구청 직원과 인근 도봉구청 직원, 관내 군부대 장교, 도봉소방서 소방대원 등 미혼남녀 직원 93명(남자 48명, 여자 45명)이 참가하는 간담회에서는 파트너게임, 명령 이행 게임, 커플댄스 대결, 노래자랑, 디스코, 기차놀이 등 짝을 이뤄주기 위한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된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자서전 ‘대화’ 낸 리영희 전 한양대교수 산행 인터뷰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자서전 ‘대화’ 낸 리영희 전 한양대교수 산행 인터뷰

    ‘아큐정전’의 저자 루쉰(魯迅)은 생전에 영국의 시인 바이런을 예찬했다.‘영국’이라는 속박에서 끊임없이 벗어나려는 저항정신을 사랑했다. 얼마전 중국은 네티즌 13만명을 상대로 20세기 중국사회에 가장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루쉰을 1위로 꼽았다. 한국의 루쉰으로 일컬어지는 사람이 있다. 누굴까.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한다. 파란과 곡절의 삶 그 자체이다. 주위에서는 ‘60% 저널리스트,40% 아카데미션’이라고 한다. 르몽드지는 ‘사상의 스승’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1999년 ‘연세대학원신문’이 교수와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20세기 영향력 있는 학자와 저작’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국내 학자 가운데 리영희(77)씨를 가장 으뜸으로 꼽았다. 또 모언론사에서 지난 한 세기동안 가장 영향력있는 100대 인물 중 리씨가 24위로 조사됐다. 리씨는 “나의 글은 루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루쉰을 좋아한다. 흥미로운 것은 루쉰과 리씨가 해양대학 출신의 지식인이라는 점. 리씨 역시 온몸으로 ‘저항’하며 한 시대를 깨우치려 했다. 또 올곧은 사상가의 길을 걷고자 했다. 경기도 군포시 수리동의 한 아파트. 초인종을 눌렀다. 신분을 밝히자 “문이 열렸으니 그냥 들어오세요.”라고 했다. 안으로 들어섰다.40평쯤 돼 보였다. 리씨는 식탁에서 혼자 과일을 먹고 있었다.“점심을 지금 막 먹었거든. 조금만 기다려주게.”라고 했다. 잡안에는 조수미의 ‘새야새야’가 조용히 울려퍼졌다. 이윽고 리씨와 마주앉았다. 이런저런 인사말이 오고갔다. 그는 “오늘 날씨도 좋은데 뒷산 구경이나 할까.”라면서 옷을 갈아입었다. 이때 전화벨이 울렸다. 본의 아니게 전화내용을 듣게 됐다.“요새 글 못써. 책도 안 읽어. 스트레스 받으면 재발하거든. 뭐? 대학에서 두번 쫓겨나는 바람에 연금도 없어. 내가 언제 감투를 써봤나. 요새 책도 안팔려, 전자매체로 다 보잖아.” 문득 벽에 걸린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손자손녀들과 밝게 웃는 모습의 사진도 보였다. 전화통화를 끝낸 리씨는 “가족이란 시간과 공간을 함께 해야 기억할 수 있지. 손자들은 서울 신촌에 살고 있어.”라며 노년의 외로움을 감추지 못했다. 잠시후 마을 뒷산인 수리산 입구에 들어섰다.“이 산은 말야, 해발 489m의 야트막한 산이지. 그런데 물이 좋아. 약수물 받으러 오는 사람 많아.” 리씨는 지팡이에 의지한 채 천천히 걸었다. ●이번 자서전이 마지막 글 최근 발간된 자서전 ‘대화’(한길사刊)에 대한 얘기가 먼저 나왔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직접 글을 다듬고 쓰지 못해 어려움이 많았지. 서울대 학생이 우리집에 기거하며 정리해 주었어.2년 걸렸지. 누락됐거나 생략된 것도 많아. 살아온 76년은 한마디로 ‘야만의 시대’였지. 일제와 해방후 50년은 반인간적 생존환경이었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싸우는 고결한 정신의 소유자들 돕기 위해 많은 글을 썼지. 문장으로는 꽤나 중국의 루쉰 같은 스타일로 써왔어.” 20분 가량 걸었다. 약간 힘들었는지 의자에 앉자고 했다. 푸른 소나무 사이로 새들의 소리가 귓전을 간지럽혔다. 자연이 그에겐 어떤 모습으로 다가갈까. 잠시 하늘을 쳐다보다가 “아름다운 경치야. 무심(無心)으로 걸어. 자연의 오묘한 변화를 새삼 느끼지. 몸이 불편하니까, 지난날의 정열과 행동양식이 내면화되니까, 정서가 합치돼.”라면서 지나온 세월을 잠시 돌이켜본다. “참으로 우역곡절과 파란만장이었어. 어떤 장면과 국면에 가까이 안가도 될 것을, 지성인의 본질적 책임을 위해 개인의 안락보다는 사회쪽으로 시선을 돌렸지. 가정위주로 산다는 것은 배반이었어. 자식들에겐 굉장히 미안해. 또 지나칠 정도로 논증적으로 빈틈없이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었지. 정서적 내면은 철저히 억압됐어.” 이같은 고통스러운 삶으로 술은 늘 곁에 끼고 있었다고 했다. 모언론사 외신부장 시절이다. 부원들과 팔당에서 야유회를 가졌다. 부원들은 정종을 마셨지만 리씨는 들고온 고량주(10홉짜리 큰병)의 뚜껑을 땄다. 안주없이 벌컥벌컥 5홉을 연거푸 마셨다. 정신을 잃었다. 이튿날 배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갔더니 위궤양이었다. 성인의 위두께가 보통 11㎜인데 9㎜까지 파고들었단다. 이후 15년 동안 위궤양으로 고생했다. 리씨는 인터뷰에 앞서 스트레스 받는 질문은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러나 온국민의 관심사인 독도문제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본은 모든 상황을 1945년 이전으로 롤백하려는 큰 구상 속에 영토문제를 꺼내고 있지. 우리는 고증과 실증을 통해 법률적 역사적 근거를 제시해야 해. 걱정되는 것은 우리 국민의 ‘냄비’ 정서야. 항상 반응적이거든. 그러나 독도문제만큼은 영국 국민처럼 뚝심으로 대처해야 해.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은 불독처럼 말야. 여기에 일본인 같은 교묘함도 염두에 두어야 해.” ●한·일 우익들의 밀착이 문제 이어 “이번 사태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의 친일파 우익과 일본의 우익단체간에 밀착내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라면서 “한국과 일본의 우익 뒤에는 항상 미국이 있지. 김대중 정권에서도 그랬지만 노무현 정권에 와서 미국은 남한의 우익을 더욱 부추기고 있어. 기독교 인사, 전직 장관, 군부세력 등 남한의 우익단체가 더 무서워. 자기 몸속의 벌레를 찾아내야 해.”라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혈압이 오르는 것을 느낀 듯 “그만두자.”고 했다. 화제를 돌렸다. 여생에 뭔가 또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자 “한 인간으로 할 수 있는 분량이 있어.40년간 범속한 지식인의 머리로 쓴 소리도 많이 했지. 국민들에게 시대의식과 세계관을 바로잡는 데 나름대로 기여했다고 봐. 또 우리 국가나 사회가 대체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이 기쁘고 행복해. 이만하면 분량을 다했어.”라며 말끝을 흐린다. ●광주 배후자로 몰려 수차례 고초 그는 1929년 평북 운산에서 3남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부친은 구한말 신식교육을 받은 선비형이었다.14세 때 경성의 ‘공립5학년제 갑종 중학교’에 입학한 뒤 1945년 11월 미국식 6년제가 된 고등학교에 5학년으로 편입했다. 이때 담배말이와 성냥장사를 했지만 겨우 입에 풀칠을 할 정도였다. 그러던 1946년 국비로 입혀주고 먹여준다는 말을 듣고 해양대학 1기생으로 입학해 1950년 3월 졸업했다. 6·25전쟁이 나자 연락장교에 지원해 7년 동안 전방근무를 했다. 전방 근무시절엔 권총을 잘 쏘아 명사수로 명성이 자자했다. 제대 1년전 56년 스물일곱에 하숙집 아줌마의 중매로 결혼했다. 제대후에는 합동통신사 외신부 기자로 취직했다. 슬하에 2남1녀를 두었는데 셋다 합동통신사 다닐 때 태어났다. 이후 72년 신학기부터 한양대 강단에 서면서 무섭게 글을 썼다.77년에 ‘8억인과의 대화’‘전환시대의 논리’‘우상과 이성’을 한데 묶어 2년 동안 투옥된다. 수감 중에는 ‘D검사와 리교수의 하루’라는 소설을 썼다. 대학에 복직됐으나 ‘광주폭동’ 배후자로 몰려 다시 해직되는 등 수차례 고초를 겪는다. 정년 퇴임후 그는 시대적 소임을 다했다고 자위하며 조용히 살았지만 2000년말 일흔나이에 뇌출혈로 쓰러졌다. 언어장애까지 겹쳤다. 다행히 요즘들어 건강이 다소 회복됐다. 그러나 오른손의 떨림과 손가락마비는 여전해 장마철만 되면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의 심한 고통을 느낀다고 했다. “내가 할 일은 다했다.”고 거듭 말하는 리씨. 그는 자신의 책이 더 이상 읽히지 않는 세상을 바란다며 저녁노을을 뒤로 하고 쓸쓸히 산을 내려왔다. ■ 그가 걸어온 길 ▲1929년 평북 운산 출생 ▲50년 해양대학 1기 졸업, 경북 안동중학교 영어교사로 재직중 6·25전쟁이 나자 연락장교 지원 ▲57년 대위로 군제대 ▲57∼64년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 ▲64∼71년 조선일보·합동통신 외신부장 ▲72년 한양대 문리과대 교수 ▲76년 박정희 정권때 해직 ▲80년 3월 복직됐으나 그해 여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다시 해직됨. ▲84년 재복직 ▲87년 미국 버클리대 부교수 초빙 ▲95년 한양대에서 정년퇴임 ▲99년 동대학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 역임 ■ 주요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74년), 우상과 이성(77년),8억인과의 대화(77), 분단을 넘어서(84년), 베트남전쟁(85년), 인간만사 새옹지마(91년) 등 km@seoul.co.kr
  • 음주단속에 음주운전자 투입 수원 “현장교육이 더 효과적”

    “음주운전자들이 음주운전 단속에 나선다.” 수원보호관찰소는 20일 음주·무면허 운전으로 법원으로부터 준법운전교육 수강명령을 받은 대상자들을 경찰의 음주운전 단속 현장에 투입한다고 밝혔다. 수원보호관찰소는 21일부터 25일까지 수원보호관찰소에서 준법운전교육을 받게 될 80명 가운데 8명은 21일 밤 수원시 내 음주운전 다발 지역에서 경찰의 음주운전 단속을 돕고 음주운전 경고 캠페인을 벌인다. 이들 8명은 단속 현장에서 ‘음주운전 가족 불행’이라 적힌 어께띠를 두르고 가족사진을 넣을 수 있는 차량부착용 액자와 홍보전단을 운전자들에게 나눠줄 예정이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①-창업주 故정주영회장 일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①-창업주 故정주영회장 일가

    보는 이마다 다르겠지만 현대를 삼성보다 앞세우는 사람들은 현대의 창업 정신을 강조한다. 현대는 남이 일궈놓은 기업을 인수하기보다는 밑바닥에서부터 하나하나 주춧돌을 올렸다. 건설이 그랬고, 자동차가 그랬으며, 중공업이 그랬다.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회장은 이를 평생의 긍지요, 자랑으로 여겼다.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 시절,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끌려가서도 “사정상 어쩔 수 없었던 인천제철만 제외하고는 어느 하나 내 손으로 말뚝을 박고 길을 닦아 시작하지 않은 공장이 없다.”며 기업 강제 통·폐합에 맞섰을 정도였다. 1947년 5월25일 서울 중구 초동의 허름한 자동차 수리공장 한 귀퉁이에 ‘현대토건사’라는 간판을 내건 지 60여년. 삼성보다 10년 가까이 늦은 출발이었지만 현대는 이내 1위 기업으로 우뚝 섰고,‘경영권 다툼’이 일어났던 2000년까지 그 지위는 차돌만큼이나 단단했다. 이때 현대그룹의 자산규모가 87조여원. 계열사 수만 40개가 넘었다. 비록 그룹이 쪼개지면서 외형상의 규모가 작아지고 재계 서열은 떨어졌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전화위복’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동차(현대차그룹), 유통(현대백화점), 해운·제조(현대그룹), 조선(현대중공업), 금융(현대해상·현대기업금융) 등 각자 전문그룹의 길로 나서면서 경쟁력은 더 강화되고 동반 부실의 위험은 현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다른 그룹들이 이제서야 계열분리 등으로 홍역을 앓는 동안 현대의 대표주자들은 세계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 현대산업개발,KCC, 한라, 성우 등 창업주의 형제들이 이끄는 그룹들도 각자 독자영역을 굳혀가고 있다. 언뜻 봐도 느껴질 만큼 현대에 뿌리를 대고 있는 기업들은 유난히 굴뚝업종이 많다. 고용된 인원과 딸린 부품·협력업체가 많다는 얘기다. 국민경제 기여도로 따지면 현대가 여전히 1위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또 한 가지, 현대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현대정신’이다. 현대에는 일단 해보자며 덤비는 정신, 밀어붙이는 힘이 있다. 때로는 비합리성을 낳기도 하지만 현대맨들은 이를 “맨바닥에서부터 기업을 일군 현대만의 저력”이라고 자부한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이를 “진정한 기업가(起業家) 정신”이라고 불렀다. 제각각 ‘마이 웨이’를 걷고 있는 오늘날의 현대가를 묶는 보이지 않는 끈이기도 하다. ●담(淡)한 혼맥… 후한 연애결혼 다른 재벌가에 비해 현대의 혼맥은 의외로 소박하다. 낭만을 즐겼던 고 정 회장이 자식들의 연애에도 너그러웠던 영향이 가장 크다.‘왕 회장’이라는 별칭으로 더 자주 불렸던 그 자신, 강원도 통천의 평범한 고향처녀(변중석)와 결혼해 평생을 함께했다. 슬하에 9남매(8남1녀)를 두고 동생이 일곱(한명은 어려서 사망)이나 됐지만 눈에 띄는 혼사는 손가락을 꼽는다. 직계가족 중에 굳이 꼽자면 다섯째아들 고 몽헌(MH)씨와 여섯째아들 몽준(MJ)씨를 들 수 있다. 몽헌씨는 신한해운 현영원 회장의 딸 정은씨와, 몽준씨는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막내딸 영명씨와 각각 결혼했다. 오랜 세월 재계를 주름잡았던 현대의 위상에 견줘 혼맥이 조촐한 데는 창업주의 성공과정과도 무관치 않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부두 막노동꾼을 거쳐 대기업 총수에 오른 그는 살아생전 “세상에 공짜란 없다.”며 담(淡)한 마음을 갖자고 입버릇처럼 강조하곤 했다. 권력이나 부(富)를 결코 싫어하지 않았지만 굳이 혼사줄까지 대가며 공짜를 탐할 이유 또한 없었던 것이다. 정략결혼의 흔적이 적은 대신에 유난히 많은 손(孫)과 맞닥뜨리는 게 현대라는 집안이다. 이런 현대가 대(代)를 건너뛰면서 LG, 롯데, 한진, 이건, 비비안 등 내로라하는 그룹들과 사돈을 맺은 점은 흥미롭다. 현대가의 2세들이 ‘몽(夢)’자 돌림이라면 3세들은 딸이 ‘이(伊)’, 아들은 ‘선(宣)’자 돌림을 쓴다.4세는 ‘진’자(딸),‘창’자(아들) 돌림이다. ■ 현대의 핵심축 아들들 ●장남 몽필… 쌍용가와 인연 큰아들 몽필씨는 나이 50도 안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국영 적자기업 인천제철을 인수해 정상화에 여념이 없던 1982년 4월 어느날,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고속도로에서 그가 탄 승용차가 트레일러를 들이받았다. 이 때가 마흔아홉살. 수도여대 출신의 부인 이양자씨와 두 딸 은희·유희씨는 망연자실했다. 몽필씨가 떠난 지 한달 뒤, 정주영 회장은 동서산업 공장장이던 이영복씨를 사장으로 파격 승진시켰다. 이씨는 몽필씨의 처남, 즉 이양자씨의 친동생. 졸지에 가장을 잃은 장남 가족에 대한 배려였다. 하지만 이양자씨마저 91년 위암으로 눈을 감고 말았다. 큰딸 은희씨는 최근 미국에서 귀국했다. 둘째딸 유희씨는 김석원 쌍용양회 명예회장의 장남 지용씨와 결혼해 두 아들(진석·진하)을 두었다. 지용씨는 현재 용평리조트 상무를 맡고 있다. ●2남 몽구… 글로벌 현대차그룹 리더 몽필씨의 죽음으로 사실상 집안의 장남 역할을 도맡아 한 이는 둘째아들 몽구(MK)씨였다. 유희씨가 결혼할 때 부모 역할을 대신 한 사람도 몽구씨 부부였다.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사장 시절,‘갤로퍼 신화’를 만들어낸 그는 기아차마저 인수해 지금의 현대·기아차 그룹을 이끌고 있다.2000년 자동차전문 그룹으로 출범한 지 몇 년도 안돼 그룹을 세계 6위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출범 당시 10개였던 계열사 수는 28개로 불어났다. 그룹의 올해 매출 목표액은 지난해보다 17% 늘어난 85조원.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의 ‘소비자 보고서(컨슈머 리포트)’는 최근 현대차의 뉴쏘나타를 세계에서 가장 결함이 적은 차로 선정했다. 갤로퍼 신화 때부터 MK가 강조해온 ‘품질 경영’의 힘이다. MK는 평범한 집안의 딸 이정화씨와 결혼해 3녀1남을 두었다. 큰딸 성이씨는 저명한 정형외과 의사이자 영훈의료재단을 설립한 고 선호영 박사의 아들 두훈씨와 결혼했다. 둘째딸 명이씨는 정경진 종로학원장의 아들 태영씨와, 셋째딸 윤이씨는 미국 MBA(경영학석사) 출신인 신성재씨와 결혼했다. 둘째사위와 셋째사위는 그룹 계열사인 현대카드·캐피탈 사장, 현대하이스코 사장을 각각 맡고 있다. 막내이자 외아들인 의선씨는 지난 11일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룹내 직함은 현대·기아차기획총괄본부 담당 사장으로 기아차의 기획, 재무, 수출, 연구·개발(R&D) 등 핵심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일찍 결혼해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부인은 정도원 강원산업 부회장의 큰딸 지선씨다. ●3남 몽근… 소리없이 유통명가 키워 셋째아들 몽근씨는 일찌감치 유통을 넘겨받아 현대백화점 그룹을 이끌고 있다.‘빅3’(MK·MH·MJ)에 가려 조명은 덜 받았지만, 묵묵히 외길을 걸으면서 소리없이 유통 명가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현대백화점, 현대H&S(非 백화점 계열), 현대홈쇼핑 등 주력 계열사를 토대로 지난해 5조 5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문 최고경영자(CEO)들이 소신있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면서도 거의 매일같이 매장을 둘러봐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바로 위 형 몽구씨와는 고등학교(경복고)-대학교(한양대) 동문인 데다 선굵은 외모까지 비슷하다. 옛 현대그룹에서 고문을 지낸 우호식씨의 딸 경숙씨가 부인이다. 두 아들은 각각 부회장, 기획담당 이사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큰아들 지선씨는 고 황산덕 전 법무장관의 손녀인 서림씨와 결혼했다. 둘째아들 교선씨는 자동차부품 전문기업인 대원강업 허재철 부회장의 큰딸 승원씨와 지난해 말 깜짝 결혼식을 올렸다. 교선씨의 결혼식에는 큰아버지인 정몽구 회장을 비롯해 집안 어른들이 대거 참석해 모처럼 우애를 다지기도 했다. 현대가는 한때 딸만 남기고 떠난 몽필씨의 대를 잇기 위해 지선씨를 양자로 입양하는 방안을 의논했었다. 유교식 법도대로라면 바로 아래 동생인 몽구씨의 아들을 입양해야 했으나 의선씨가 외아들인 탓에 지선씨가 선택된 것.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실제 입적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주영 회장의 장례식때 의선씨가 ‘종손’ 자격으로 고인의 영정을 든 것은 이 때문이었다. ●외사위 희영… 천마산스키장 운영, 이건·비비안과 사돈 현대가는 자손이 많은데도 딸은 귀한 편이다. 외동딸 경희씨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재원. 그러나 바깥 활동은 없다. 대신 남편(정희영)이 선진종합㈜ 회장이다. 공교롭게 고 정주영 회장의 여동생 희영씨와 이름이 똑같다.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1965년 현대건설 공채로 입사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입사 동기다. 조선 수주에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 창업주의 눈에 들어 사위가 됐다. 정주영 회장은 딸 경희씨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자 희영씨를 도쿄법인 이사로 발령내 자연스러운 교제를 유도했다고 한다. 이후 희영씨는 조그만 해운회사(선진해운) 하나를 갖고 독립, 장인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천마산 스키장은 오롯이 그가 독립해 만든 회사다. 외아들 재윤씨가 선진종합㈜ 상무다. 두 딸은 각각 이건그룹과 비비안그룹으로 시집갔다. 큰딸 윤미씨의 남편이 이건창호 박승준 상무, 둘째딸 윤선씨의 남편이 비비안 남석우 부회장이다. ●4남 몽우… BNG스틸 통해 부활 넷째아들 몽우씨는 숙명여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인’ 이행자씨와 연애결혼했다.40대에 현대알루미늄 회장을 맡은 그는 그러나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결국 1990년 4월 45세의 젊은 나이에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겨진 유족을 돌보는 일도 사실상의 장남 몽구씨의 몫이었다. 조카 셋을 모두 현대차그룹의 계열사인 BNG스틸(전 삼미특수강)에 입사시켰다. 큰조카, 즉 몽우씨의 장남인 일선씨는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최근 BNG스틸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일선씨에 이르러 비로소 현대는 내로라하는 재벌가와 사돈관계를 맺는다. 일선씨의 부인은 구자엽 희성전선 부회장의 딸 은희씨다. 구 부회장은 구태회 LG전선 명예회장의 아들이자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조카이다. 일선씨의 동생 문선씨는 김영무 김&장 법무법인 대표변호사의 딸 선희씨와 결혼했다. ●5남 몽헌… 못다 이룬 꿈, 현 회장이 힘찬 날갯짓 ‘비운의 황태자’ 몽헌씨는 1998년 그룹 공동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화려한 비상을 시작했다.1983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설립해 4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으면서 아버지 정주영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끌어냈다.2000년에는 형들을 제치고 그룹 단독 회장에 추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북 송금’ 사건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던 중,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2003년 8월4일 서울 계동사옥에서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부인 현정은씨가 경영에 뛰어들었다. 급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황망히 그룹을 물려받았지만 사업가 집안의 딸답게 배포와 합리적 리더십으로 1년 만에 그룹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는 현대상선, 올해 첫 흑자를 넘보고 있는 현대아산, 주가 1000시대의 수혜주 현대증권 등을 축으로 재계 10위권 진입(현재 19위)을 눈앞에 두고 있다.2010년까지 매출 20조원을 달성해 10위권에 진입한다는 ‘2010’ 프로젝트를 가동중이다. 현 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이 직접 ‘점지한’ 며느리로도 유명하다. 현 회장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결혼 뒷얘기는 이렇다.“당시 현대상선 회장이던 아버지(현원영)를 따라 선박 명명식차 울산에 내려갔다가 남편을 처음 만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명예회장(정주영)께서 나를 선보러 미리 내려오셨었다. 명예회장께서 중매를 서신 셈이다.” 큰딸 지이씨는 현대상선 재정부 대리로 근무 중이다. 아버지를 잃었을 때 고3 수험생이었던 외아들 영선씨는 졸업후 미국 유학을 준비중이다. ●6남 몽준… 세계1위 현대중공업 ‘건조’ 지금은 정치인의 이미지가 더 강하지만 세계 일류 현대중공업의 뒤에는 기업인 몽준씨가 있다. 형제중에 학벌(서울대-미국 MIT 경영대학원)이 가장 좋아 ‘신문대학’(소학교만 졸업한 정주영 회장은 신문을 통해 지식의 대부분을 얻었다며 자신을 신문대학 출신이라고 소개하곤 했다) 출신인 왕 회장이 유난히 예뻐했다는 몽준씨는 31세에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전격 발탁되면서 집중 조명을 받았다.1988년 금배지를 처음 달면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시도했다. 경영은 CEO에게 맡기고 자신은 대주주로서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만 내리고 있는 것. 지금도 현대중공업의 어떤 직함도 갖고 있지 않다. 공식 직함은 5선의 국회의원이자 축구협회 회장. 아버지의 뒤를 이어 200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현대중공업의 올해 매출 목표액은 10조원. 웬만한 그룹과 맞먹는다. 부인 김영명씨와는 미국 유학시절에 만나 결혼했다. 큰아들 기선씨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와 올해 학사장교(ROTC)로 임관했다. 이로써 부자(父子)가 ROTC 선후배가 됐다. 두 딸 남이씨와 선이씨는 미국 유학 중이다.‘월드컵 베이비’로 유명한 늦둥이 아들 예선씨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우리나라가 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전을 최종 통과한 것을 기념해 이름을 ‘예선’으로 지었다고 한다. ●7남 몽윤… 현대해상으로 컴백 몽윤씨는 지난해 말 업계 2위의 손해보험회사인 현대해상의 등기이사 겸 이사회 의장으로 돌아왔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지 8년 만의 전격 복귀였다. 방카슈랑스(은행상품과 보험상품의 교차판매) 확대 시행 등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맞춰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보이고 있다.1981년 김진형 부국물산 회장의 딸 혜영씨와 연애결혼해 정이양과 경선군을 두었다. ●8남 몽일… 할부금융으로 내실 막내아들인 몽일씨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마친 뒤 현대상사 등에서 근무하다가 2000년 현대기업금융을 차려 독립했다. 기업대출 등을 주로 취급하는 회사다. 권영찬 현대파이낸스 회장의 딸 준희씨와 결혼해 고등학생인 현선(영국 유학중)군과 중학생인 문이양을 두고 있다. ■ 현대의 또 다른 축 형제들 고 정주영 회장의 형제들은 동생이기 이전에 창업 동지요, 사업 동료였다.6·25전쟁 직후 고령교(대구와 거창을 잇는 교량) 복구 공사를 덜컥 떠맡았다가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을 때, 내남없이 살던 집을 팔아 돈을 내놓은 것도 동생들과 매제였다. 이 때문에 20명이 넘는 대식구가 한 집(돈암동)에 모여 살아야 했지만 누구 한 사람 불평하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 독립해 각자의 그룹을 이끌고 있다. ●옛 영화 꿈꾸는 한라·성우 동아일보 외신부 기자로 활동하던 첫째 동생 인영씨는 1953년 현대건설 전무로 입사하면서 경영에 본격 합류했다.75년 말 중동 진출 때 신중론을 펴 형과 이견을 빚을 때까지 그룹의 초석을 닦았다. 당시 독립해 만든 한라그룹은 한라건설·한라시멘트·한라중공업·만도기계 등을 거느리며 재계 서열 12위로까지 도약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때 자금난이 가중되면서 그룹이 부도나는 시련을 겪었다. 지금은 둘째 아들 몽원씨가 한라건설 회장을 맡아 재기를 꿈꾸고 있다. 큰 아들 몽국씨는 94년 아버지가 동생을 그룹 후계자로 지목하자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한때 배달학원 이사장을 맡았으나 지금은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부인 이광희씨는 배달학원 계열인 한라대 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현대시멘트·성우종합건설·성우리조트·현대종합금속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성우그룹은 둘째 동생 순영씨 일가가 이끌고 있다. 순영씨는 명예회장으로 물러앉고 2세 경영을 정착시켰다. 큰아들 몽선씨가 현대시멘트와 성우종합건설을, 둘째아들 몽석씨가 현대종합금속, 셋째아들 몽훈씨가 성우전자, 넷째아들 몽용씨가 성우오토모티브를 각각 맡고 있다. 몽선씨는 사촌인 정몽윤 현대해상 이사회 의장과 함께 정몽헌 회장의 부검을 임관하기도 했다. ●‘기계박사’가 일군 한국프랜지 자동차부품회사인 한국프랜지공업의 김영주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의 유일한 매제다. 정주영 회장은 ‘이 땅에 태어나서’라는 두 번째 자서전에서 “그가 다가가기만 해도 기계가 저절로 고쳐졌다.”며 매제를 ‘기계박사’라고 불렀다.1946년 정주영 회장이 미 군정에서 불하받은 토지에 ‘현대’(현대자동차공업사)라는 상호를 처음 내걸었을 때, 감격적으로 지켜본 이도 영주씨였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로부터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기직종이던 운전기사 출신의 영주씨는 황해도 홀동광산에서 역시 운수업을 하던 정주영 회장과 뜻이 맞아 사업을 같이 도모했고, 매제까지 됐다. 부인 정희영씨는 2001년 정주영 회장이 노환으로 세상을 떴을 때 “대통령 한번 못해보고… 우리 오빠 불쌍해서 어쩔거나.”하며 가장 서글프게 울었던 동생이다. 장남 윤수씨가 회사를 물려받아 한국프랜지공업 회장으로 있다. 둘째아들 근수씨는 독립해 울산화학·퍼스텍 등의 계열사를 거느린 후성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윤수씨의 장남 용석씨가 프랜지공업 계열사인 서한산업(자동차부품회사) 대표이사 사장이어서 3세 경영체제를 갖춰 가고 있다. 둘째아들 용범씨는 이름을 용태로 바꿨다. ●‘포니 정’ 부자(父子)의 변신 ‘포니 정’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넷째 동생 세영씨는 외아들 몽규씨와 함께 1999년 3월 현대그룹에서 독립해 건설시장에서 영역을 확실하게 굳혔다. 꼼꼼한 시공과 치밀한 분양으로 현대산업개발을 국내 도급순위 4위 업체로 키워놓았다.‘포니 정’이라는 별명은 1976년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국산 고유모델 자동차 1호 ‘포니’를 만들어낸 데서 붙여졌다. 이같은 열정과 헌신을 인정받아 87년 형에게서 현대그룹 회장직을 물려받기도 했다. 분가한 뒤로는 현대산업개발 경영에만 매달렸다. 몇 년 전 폐암수술을 받았지만 지난해 희수연을 치렀을 만큼 건강을 되찾았다. 회사 경영은 아들 몽규(회장)씨가 책임지고 있다. 지금의 서울 삼성동 사옥은 몽규씨가 직접 지었다.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현대가 맺은 최고위층 사돈도 세영씨 집안에서 나왔다. 큰딸 숙영씨가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장남 경수(서울대 교수)씨와 결혼한 것. ●“아… 신영아”-교통사고 아닌 병으로 요절 다섯째 동생 신영씨는 고 정주영 회장이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동생이다. 서울대를 나와 동아일보 기자로 있다가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함부르크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 1962년. 처음에 어떤 기자가 교통사고사로 쓰면서 오랜 세월 세상에 잘못 알려졌지만 정확한 사인은 지병이라고 유족은 본지에 밝혔다. 당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잠시도 일에서 떠나본 적이 없는 정주영 회장이 일주일을 손놓았을 만큼 가족의 슬픔은 컸다. 서울대 음대 출신의 첼리스트였던 미망인 제수씨(장정자)에게 현대학원(현대고)을 경영토록 했다. 지금도 현대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장정자씨는 남북이산가족 상봉때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로 남한측 방문단장을 맡았었다. 장홍선 전 극동도시가스 회장의 누나다. 신영씨는 1남1녀를 두었다. 아들 몽혁씨는 32살의 젊은 나이에 현대정유(현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로 취임해 인천정유(구 한화에너지)를 인수하고 오일뱅크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등 두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외자유치와 함께 2002년 전문경영인에서 물러나 그 해 건축자재 유통회사 ‘에이치애비뉴앤컴퍼니’를 설립해 돌아왔다. 부인 이문희씨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동원 이홍근 선생의 손녀이다. 사업가이자 문화재 수집가였던 동원 선생은 평생 모은 문화재 4941점을 198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딸 일경씨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블룸버그대학 회계학과 교수인 남편 임광수씨와 함께 미국에서 살고 있다. ●‘리틀 정주영’이 이끄는 KCC 막내동생인 상영씨는 ‘불에 타지 않는 바닥재’ 등으로 유명한 자재 전문그룹 KCC를 이끌고 있다.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성격 등이 고 정주영 회장을 가장 많이 닮아 ‘리틀 정주영’으로 불린다. 큰형과 나이 차이가 21살이나 나 아버지처럼 따랐다. 장조카 몽구씨와도 2살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또 다른 조카인 고 정몽헌 회장이 자금난에 몰렸을 때 200억원을 선뜻 내놓았을 만큼 의리도 강하다. 그러나 조카의 죽음 이후 현정은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면서 다소 빛이 바랬다. 그룹 경영은 두 아들에게 맡긴 상태다. 큰아들 몽진씨가 대표이사 회장, 둘째아들 몽익씨가 대표이사 부사장이다. 셋째아들 몽열씨는 계열사인 금강종합건설 사장을 맡고 있다.KCC는 몽익씨를 통해 롯데·한진그룹과 사돈으로 연결된다. 몽익씨의 부인 은정씨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외조카(신 회장의 여동생인 정숙씨의 딸)이다. 은정씨의 언니 은영씨는 한진해운 조수호 회장의 부인이다. 몽익씨와 조 회장이 동서지간인 셈이다. ●현대가의 여자들 현대가의 딸이나 며느리들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화여대(정경희-이양자-현정은-김혜영-정유희 등) 출신에 해외유학(김영명-정지선-황서림-허승원 등)까지 다녀온 재원들이 적지 않지만 경영에 참여하거나 대외활동에 나서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다못해 남편을 따라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드물다. 유일한 경영자인 현정은씨도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전업주부’였다. 오너 일가를 가까이서 들여다본 한 관계자는 “지금도 명절 때면 청운동 집(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오랫동안 살던 집)에 몇 대에 걸친 며느리들이 모두 모여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음식을 직접 장만한다.”면서 “옷차림들도 수수하고 인상이 소박해 언뜻 봐서는 재벌가 며느리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한결같이 미인들이다. 어떤 이는 그 이유를 ‘유난히 많은 연애결혼’에서 찾는다. ●그룹분리 가속화시킨 ‘경영권 분쟁’ 2000년 ‘형제간 다툼’은 현대가를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핵분열시킨 결정적 계기였다.99년 12월 마지막 날, 고 정몽헌(MH) 회장쪽 인사로 분류되던 박세용 당시 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 정몽구(MK) 회장 계열의 현대차 회장으로 전격 발령나면서 시작된 형제간의 경영권 갈등은 그룹 후계자로 MH를 지목한 고 정주영 회장의 육성 테이프가 공개되기까지 석달여에 걸쳐 숨막히게 전개됐다. 효심이 남달랐던 MK는 아버지의 육성이 공개되자 깨끗이 승복하고 자동차 계열사를 이끌고 그룹에서 나왔다. 이 과정에서 아픔도 적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현대의 지배구조를 선진화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는 21일 왕 회장의 4주기에 모처럼 형제들 모두가 함께 제사를 지낼 예정이다. 이날은 공식적으로 가족화합이 됐음을 안팎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현대가에 정통한 소식통은 전했다. hyun@seoul.co.kr ■ 정주영 회장의 ‘빈대론’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은 ‘해당화가 찬란하고 눈(雪)이 많은’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에서 1915년 6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죽어라고 일해도 콩죽을 면할 길이 없는 농군이 진절머리나게 싫고 지겨워”(첫번째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소학교를 졸업한 열네살 무렵부터 줄기차게 가출을 시도했다. 무작정 길을 나서 보기도 하고, 아버지의 소 판 돈을 훔쳐도 봤다. 그러기를 네번째. 열아홉살 마지막 가출에 성공해 인천부두 막노동꾼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한 푼이 아까워 몸을 기댔던 곳이 노동자 합숙소. 뼈가 으스러지는 중노동으로 누가 떠메고 가도 모를 만큼 고단했지만 좀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빈대들의 공격 때문이었다. 궁리 끝에 밥상 위에 올라가 잠을 잤다. 빈대들의 공격이 잠시 뜸해지는 듯싶었다. 하지만 이내 밥상다리를 타고 기어올라와 온 몸을 물어 뜯었다. 다시 머리를 써야 했다. 무릎을 탁 칠 만한 묘안이 떠올랐다. 밥상다리 네 개를 물 담은 양재기 넷에 하나씩 담근 뒤 그 위에 올라가 잔 것이다. 빈대를 밥상다리로 유도해 양재기 물에 익사시키자는 계략이었다. 쾌재를 부른 것도 이틀여. 빈대들은 또다시 물어뜯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양재기 물을 건넌 것일까.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불을 켜본 젊은 정주영 회장은 기겁을 하고 말았다. 빈대들이 밥상다리 대신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 사람을 겨냥해 뚝 떨어져 목적 달성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역경에 부딪칠 때마다 정주영 회장은 ‘빈대의 노력’을 떠올렸다.“난관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이지, 걸려 넘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든지 “빈대만도 못한 놈”이라는 단골 지청구는 모두 여기서 비롯됐다. 아무것도 없는 백사장(울산 염포리)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조선소 투자금액을 유치할 때나,20세기 최대 역사(役事)로 꼽히던 중동 주베일 공사 입찰전에 뛰어들 때나, 직원들이 불가능하다고 도리질칠 때면 “이봐, 해봤어?”라고 불호령을 쳤던 것도 빈대의 집요한 노력을 떠올리면서였다. “자본가가 아니라 부유한 노동자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했던 정주영 회장은 근검과 노력을 평생의 신조로 삼았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평등한 자본금” “한강에 기적은 없다. 성실하고 지혜로운 노동이 있을 뿐” “고선지부지설(苦蟬之不知雪;여름철 서늘한 나무 그늘에 앉아 노래만 하다 겨울이 오기 전에 없어지는 매미는 한겨울 펑펑 쏟아지는 눈을 알 수 없다)” ‘아산 정주영 어록’에 실려있는 그의 유명한 말들이다. hyun@seoul.co.kr ■ ‘현대家 대모’ 변중석 여사 열여섯살에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여섯살 연상의 고향총각 정주영에게 시집온 변중석씨는 현대가의 산 증인이다. 올해로 84세. 젊어서 남편이 사준 재봉틀 하나를 자신 소유의 유일한 재산으로 여기며 한결같은 근검과 후덕함으로 ‘현대가의 여자’라는 상징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고 정주영 회장이 매일 새벽 5시의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동생들과 자식들에게 근검을 가르쳤다면, 변씨는 새벽 3시반부터 손아래 동서·며느리들과 아침 준비를 함께 하면서 “언제나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겸손하라.”고 일렀다. 가혹하리만치 자식 교육에 엄격했던 정주영 회장이 아이들을 자가용으로 등교시키는 며느리들을 보고 “젊었을 때 콩나물 버스에 시달려봐야 나중에 자가용을 샀을 때의 기쁨을 안다.”며 역정을 내자 “손주녀석들 키우는 문제에까지 시아버지가 잔소리를 할 거냐.”며 막아준 이도 변씨였다. 칭찬에 인색했던 정주영 회장도 아내를 가리켜 “늘 통바지 차림에 무뚝뚝하지만 60년을 한결같고 변함이 없어 존경한다.”고 자서전에서 고백했을 정도다.“아내를 보며 현명한 내조는 조용한 내조라는 생각을 굳혔다.”고도 했다. 그러나 자식을 먼저 땅에 묻는 참척의 고통과 여자로서의 마음고생을 거치면서 ‘살아있는 보살’도 탈이 났다. 거동이 불편해 10년 가까이 병원(현대아산병원) 생활을 하고 있다. 사실상 맏며느리인 이정화씨 등 며느리들이 틈날 때마다 병실을 들여다보고 있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변화하는 軍權] 靑·국정원, 사생활까지 ‘그물망 검증’

    [변화하는 軍權] 靑·국정원, 사생활까지 ‘그물망 검증’

    오는 22일 국무회의에 오를 대장급 군 수뇌부 인사를 앞두고 전례없이 고강도 검증작업이 ‘전방위’로 진행되고 있다. 과거엔 군 인사 검증작업을 국군기무사령부가 거의 전담했지만, 이번에는 청와대·국정원까지 나선 게 특징이다. 장성 진급 비리의혹사건, 참여정부의 잇단 각료 낙마 파문에다 정부의 강한 군 개혁 의지와도 무관치 않다. 그물망식 검증 결과에 따라 의외의 인사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게 군 관계자들 얘기다. ●재산증식·여자관계도 조사 군 당국은 이미 수뇌부 인사와 관련해 밑그림은 모두 짜놓았으며, 이달 초부터 강도높은 검증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검증작업에는 국방부 직할기관인 기무사 이외에 국정원과 청와대까지 가세하고 있다. 정부와 군 당국은 인사 대상자들의 근무 평정과 군 내의 인물평은 물론 재산증식 과정, 여자관계 등 사생활까지 모든 면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대장급 인사 대상자들의 경우 그동안 진급과정에서 수차례 검증을 거치긴 했지만, 이번처럼 세밀한 부분까지 검증을 하다 보면 그동안 드러나지 않은 비리 의혹이 드러날 수도 있다.”며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문제가 생기는 인사도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인사 검증작업이 진행되면서 일각에서는 ‘모 장성의 경우 재산문제가 의심스럽다.’거나,‘모 장성은 부인이 지나치게 부대 일에 개입한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적지 않게 나돌고 있다. 정부가 이처럼 대대적으로 인사 검증에 나선 것은 이번 대장급 장성 인사가 잘못될 경우 진급비리 의혹사건으로 추락한 군의 이미지를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위기 의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또 최근 참여정부에서 잇따라 발생한 각료 낙마 파문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일각에서는 군 인사 검증을 주로 맡아온 기무사령부의 역량 부족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기무사는 지난해 가을 육군 장성 진급심사를 앞두고 사실관계를 둘러싸고 논란의 여지가 있거나 다소 주관적인 내용의 일부 인사자료를 육군측에 제공, 이 자료가 추후 심사 때 부적절하게 활용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와 함께 당시 인사에서 기무사 소속 준장 진급자가 청와대 재가 과정에서 뒤바뀐 것은 이례적인 수준을 넘어, 군 정보기관으로서 통수권자의 신뢰를 얻지 못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합참의장 이상희·양우천 경합 합참의장에는 일단 육사 26기인 이상희 3군사령관과 양우천 2군사령관이, 육군 참모총장에는 한 기수 아래인 육사 27기의 김장수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각각 유력하다. 연합사 부사령관에는 이상태 교육사령관, 이희원 항공작전사령관, 홍갑식 참모차장(이상 육사 27기) 등이 거론된다. 또 1·2·3군 사령관에는 김관진 합참 작전본부장, 김병관 7군단장(이상 육사 28기), 방판칠(ROTC 8기) 합참 인사군수본부장, 권영기(갑종 222기) 국방대 총장, 박영하(3사 1기) 11군단장 등이 거론된다. 이와 함께 해군 총장에는 해사 25기의 윤연 작전사령관과 동기인 김성만 해군사관학교 교장이 유력한 가운데 해사 24기인 오승렬 합참 차장도 거론되고 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기수·지역 안배… 소위~대령 23년 걸려 군 당국은 인사도 군대식 ‘형평’을 강조한다. 특히 대장급 등 고위직으로 갈수록 더 그렇다. 기수는 물론 출신지역, 임관 구분별(육사·ROTC·3사 등)로 ‘안배’를 원칙으로 한다. 현재의 군 수뇌부는 지역별로 영남 4명, 강원 2명, 서울 1명, 호남 1명이다. 영남이 좀 많은 편이다. 또 임관 구분별로는 과거처럼 한 명의 비(非)육사 출신이 포함돼 있다. 그래서 금명간 단행될 인사도 안배에 기초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이같은 인사방식이 군 발전을 크게 저해한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상명하복이 분명한 군 조직의 특성상 기수를 무시할 순 없지만 철저하게 기수를 따지다 보니 어느새 ‘늙다리’ 조직으로 변했다. 특히 군 인사법이 주요 지휘관의 임기를 2년으로 정하고 대장급 장성, 특히 합참의장과 각군 참모총장을 거의 매 기수별로 배출하다 보니 조직이 기형적으로 바뀌었다. 실례로 지난 1980년대 초만 해도 30대 중·후반이면 연대장(대령)이 됐으나 지금은 어림도 없다. 현재는 40대 중반이 돼야 가능하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소위 임관 후 대령까지 13∼16년이 소요됐으나, 지금은 평균 23년이 걸린다. 이에 따라 군 인사법의 주요 지휘관에게 부여된 2년 임기를 1년6월로 줄여 순환주기를 짧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 대장급 장성의 경우 임기제를 아예 없애고, 능력있는 인사는 미국처럼 기간에 상관없이 장기간 보직을 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매 기수별로 바통을 이어받는 인사문화를 없애지 않을 경우, 지금 같은 극심한 조직 적체를 해소할 길이 없다는 게 소장파 장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와 함께 출신지역이나 임관구분별 안배 역시 적잖은 부작용 가능성을 안고 있다. 군 발전에 보탬이 될 능력을 갖추고도 이런 안배에 밀려 발탁되지 못하거나, 역으로 능력이 뒤떨어지는 상황에서 이런 안배라는 요행수에 이끌려 진급하는 것 모두 군으로는 손해가 분명하다. 합참 관계자는 “안배가 무난한 인사방식임은 틀림없지만 , 조직 발전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조직도 건강하게 만들고, 인재도 발탁하는 인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오빠보다 멋있는 해군되겠습니다”

    해군사관학교 출신의 첫 남매 해군 장교가 배출됐다. 11일 해사(59기) 졸업과 동시에 임관한 이현주(사진 왼쪽·23) 소위의 친오빠 이창현(사진 오른쪽·26) 중위는 해사 57기로 현재 고속정 참수리호 부장으로 근무중이다. 이 소위는 해사 생도였던 오빠의 멋진 모습에 매료돼 해군 장교가 되기로 결심하고 고교 때부터 준비해 온 끝에 꿈을 이뤘다. 2년간 사관학교를 같이 다닌 남매에게는 말 못할 어려움도 많았다. 동생은 혹독한 훈련이 힘들어 오빠를 찾아가면 오히려 따끔한 충고를 듣고 눈물을 삼켜야 했다. 사소한 의견도 허심탄회하게 나눌 만큼 친근한 오빠였지만 동생이 강인한 해군 장교가 되도록 공과 사를 엄격하게 구분한 것이다. 이 소위는 “4년 간의 배움을 바탕으로 오빠보다 더 멋있고 훌륭한 장교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번 졸업식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은 여성 생도에게 돌아갔다. 주인공인 정은숙(23) 소위는 해군 고정익 항공기 조종부문을 지망했으며, 해군 항공전단장이 꿈이다. 1학년 때부터 1,2등을 놓치지 않을 만큼 학업성적이 우수했으며, 조정 대표선수로로 활동했다. 정 소위는 “해상 초계기(P-3C)와 링스(LYNX) 대잠헬기 조종사가 돼 바다와 하늘을 누비는 대양해군의 주역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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