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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동산 간접투자시장 벌써 꿈틀

    부동산 간접투자시장 벌써 꿈틀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계기로 부동산금융투자시장에서 리츠와 펀드의 불꽃 대결이 예상되고 있다. 선발 주자인 리츠(REITs)업계가 투자매물 부족으로 고사 위기에 몰렸다가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리츠에 대해 부동산 취득·등록세 감면 혜택이 주어진 것도 힘을 실어주고 있다. 후발주자이면서도 리츠를 제치고 인기를 모으고 있는 부동산 펀드업계는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됐다. ●8조 7000억원을 잡아라 26일 부동산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건설교통부에 등록된 8개 리츠 자산관리회사는 지난 9일 협의체(AMC협의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투자자 유치 경쟁에 나섰다. 공공기관들이 지방 이전 이후 남는 현 부지를 부동산시장에 섣불리 내놓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질좋은 매물을 우선 확보하기 위해 공공기관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이에 맞서 부동산펀드업계는 현재 금융감독원에 등록된 55개 펀드의 인기를 바탕으로 투자자의 입맛에 맞는 신규상품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할 태세다. 리츠회사의 현재 자산 규모는 1조 5068억원인 반면 운용 중인 펀드의 설정액은 12조 3000억원에 이른다.176개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한 이후 청사 및 부지매각 시장의 규모는 8조 7000억원으로 추산된다. 부동산 리츠 자산관리회사인 리얼티어드바이저스코리아의 이국환 차장은 “공공기관 이전 작업이 1∼2년 뒤 본격화되기 때문에 벌써부터 들썩인다고 말하기는 이르지만 부동산 간접투자시장이 호기를 맞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리츠는 부동산투자, 펀드는 금융투자로 간주 리츠는 2001년 국내에 처음 소개되면서 부동산 간접투자 수단으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6월 부동산 펀드가 등장하고 좋은 매물을 찾기도 어려워지면서 급격히 시들었다. 리츠회사들이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빌딩 등 16개 빌딩으로부터 거둬들이는 수익률은 8∼10%에 이른다. 반면 지난해 6월 선보인 부동산 펀드는 판매액이 초기 1390억원에서 10월 3960억원,12월 8610억원으로 늘더니 지금은 1조 3000억원을 넘었다. 증권사 등이 펀드를 내놓기가 무섭게 매진될 정도다. 리츠와 펀드는 둘 다 투자자를 끌어모아 부동산에 투자한 뒤 수익금을 나눠 갖는 점에서 운용방식은 같다. 그렇지만 리츠는 부동산투자회사법에 따라 부동산투자로 간주돼 여러가지 규제를 받는다. 하지만 펀드는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에 따라 저금리시대에 매력적인 투자상품으로 대접받고 있다. 리츠는 자산관리회사들이 투자자를 모아 자산 규모 1000억원 안팎의 명목회사(리츠회사)를 한시적으로 설립한 뒤 빌딩 매입후 임대수입, 매각차익 등의 수익을 추구한다. 반면 펀드는 증권사 등이 설정액 1000억원 안팎의 펀드를 만들어 개발자금 대출, 임대수입, 경매물 매매수익 등 다양한 투자가 가능하다. 리츠는 일반인 투자가 제한받지만, 펀드는 공모·사모 모두 가능하다. 그러나 지난 4월 부동산투자회사법이 개정되면서 리츠도 펀드처럼 취득세·등록세를 50% 감면받을 수 있다. 회사설립 기준도 자산 규모 500억원에서 250억원으로 낮아졌다. 펀드처럼 개발단계 투자도 가능해져 과거의 인기몰이를 다시 한번 기대하고 있다. ●위험성은 어디든 도사려 대표적인 리츠인 ‘코크랩2호’가 임대 수입원이던 하나로빌딩 등을 모두 매각하고 29일 주주총회에서 청산된다. 리츠 도입 이후 첫 청산으로, 예정 청산일보다 2년 이상 빨리 없어진다. 경기침체로 사무실 공실률이 높아지고, 임대료 수입도 급감하고 있는 것이 청산의 이유다. 부동산 펀드도 위험성이 도사린다. 얼마전 K자산운용이 내놓은 펀드는 부동산 소유권을 확보하지도 않고 투자자를 서둘러 모집했다가 중도하차했다. 일부 부동산중개업체 등이 불법적으로 투자자를 모집하는 유사 투자상품이 활개를 치고 있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토요영화]

    [토요영화]

    ●에너미 엣 더 게이트(MBC 밤 12시) ‘불을 찾아서’(1981),‘장미의 이름’(1986),‘베어’(1988),‘연인’(1992) 등 예술성과 상업성을 넘나드는 작품을 만들어 온 프랑스의 장 자크 아노 감독이 실존했던 소련의 전쟁 영웅 바실리 자이체프를 소재로 만든 영화. 당시로는 유럽 최고 제작비 8400만 달러를 들여 말끔하게 만든 대작이다. 미국에서는 평단의 호평을 받았으나, 정작 프랑스에서는 쓴소리가 많았다. 귀족적 매력이 흠씬 풍기는 영국의 미남 배우 주드 로가 ‘태양은 가득히’를 리메이크한 ‘리플리’(1999)를 통해 대중적인 지명도를 얻은 이후 출연한 작품. 주드 로의 맞수로 나오는 애드 해리스나 조지프 파인스, 밥 홉킨스 등 연기파 배우들의 모습도 인상적이다.1942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군은 소련 스탈린그라드로 침공을 감행한다. 연이은 패배에 몰린 소련군의 선전장교 다닐로프(조지프 파인스)는 우연히 바실리(주드 로)의 뛰어난 사격 솜씨를 목격하게 되고, 사기가 저하된 소련군에게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 그를 영웅으로 만들고자 한다. 다닐로프의 계획에 따라 바실리는 나치 장교들을 하나씩 없애가는 저격수로 변신하게 되고 평범했던 그는 어느새 전설적인 영웅으로 재탄생하게 되는데….2001년작.140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42년의 여름(EBS 오후 11시40분) 첫 사랑과 섹스에 대한 환상을 지니게 되는 청소년기의 혼란을 그린 전형적인 성장 영화다. 성인이 된 주인공의 담담한 내레이션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작품에서 젊은 미망인으로 나오는 브라질 출신 배우 제니퍼 오닐은 올리비아 핫세나 브룩 실즈, 실비아 크리스텔처럼 데뷔 초기 세계의 남성 영화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청춘 스타.70년대 스크린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나, 이후 TV로 무대를 옮겼다. 하퍼 리의 퓰리처상 수상작 ‘앵무새 죽이기’를 1962년 명배우 그레고리 펙과 함께 스크린(국내 개봉 제목은 ‘앨라배마에서 생긴 일’)으로 옮겨 아카데미 주연상과 각색상을 받았던 로버트 멀리건 감독이 연출했다. 1942년, 전쟁과는 동떨어진 조용한 여름을 보내고 있는 열 여섯의 허미(게리 그라임스)와 오시(제리 하우저) 벤지(올리버 코넌트) 등은 언제, 어떻게 총각 딱지를 뗄까 고민하는 친구 사이. 특히 허미는 연상의 유부녀 도로시(제니퍼 오닐)를 좋아하게 되고, 적극적인 사랑 표현에 나선다. 어느날 전장에 나간 도로시의 남편이 전사했다는 통지서가 날아온다..1971년작.113분.
  • ‘부적격’ 범위·처리 진통클듯

    ‘부적격’ 범위·처리 진통클듯

    24일 교육부와 교원·학부모단체 등이 이르면 올해 안에 ‘부적격 교사’ 퇴출 방안을 도입하기로 합의했지만 세부 방안을 마련하려면 많은 난관을 뚫어야 한다. 부적격 교사의 구체적인 범위나 퇴출 방법에 대한 교육부와 단체들의 생각이 다른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단체들은 퇴출 방안이 발표된 첫날부터 이견을 드러내 도입되기까지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교육부가 사례로 제시한 부적격 교사의 범위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학업성적을 조작하거나 성폭력, 금품수수, 폭력 행사, 상습 도박 등 명백히 비리·범법 행위를 저질렀거나 정신적·신체적 질환 등으로 도저히 아이들을 가르치기 어려운 교원이다. 김진표 부총리는 “범법 교원은 퇴출시키고 건강상 문제가 있는 교원은 치료를 받은 뒤 다시 교단에 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부적격 교사 문제를 공정하게 처리하기 위해 각 시·도교육청 산하에 학부모와 교원·시민단체,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가칭 ‘부적격교원심사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부적격 교사의 범위를 둘러싼 논란은 갈수록 증폭될 것으로 예상된다. 학부모단체와 교원단체의 의견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참교육학부모회 박경양 회장은 “과도한 체벌이나 인격을 침해하는 경우도 일부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이수일 위원장은 “비리 척결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교육환경은 개선하지 않고 제재만 가하는 대증요법에 불과하다.”고 합의 내용을 깎아 내리며 교권침해 가능성을 우려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윤종건 회장은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큰 틀에서 합의만 했을 뿐 학부모들이 속시원하게 느낄 만큼 확실한 대책을 아직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교육부가 제시한 안대로라면 부적격 교사는 2002년 5월 이후부터 지난달까지 최근 3년 동안 촌지수수와 횡령, 금품비리로 걸린 123명과 성적조작 등으로 문제가 된 32명 등 징계를 받은 155명에 불과하다. 학부모들의 생각과는 큰 차이가 나는 수치다. 학부모들은 명백한 비리·범법행위를 저지른 교원도 문제지만 아이를 아무 이유없이 무시하거나 벌을 주는 등 금품수수를 목적으로 은근히 압력을 넣는 교원도 부적격 교원이라고 보고 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부적격 교사의 문제인식과 개선방안을 위한 토론회’에서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교사 스스로 부적격 교사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원 인사제도의 쟁점과 대안’ 보고서에 따르면 교사와 교육 전문가 등 교육계 인사 10명 가운데 8명은 이른바 ‘부적격 교사’를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개발원이 최근 교원과 교육 전문직, 전문가, 학부모 등 36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교육계 인사의 79.3%가 ‘부적격 교원 사례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없다.’는 응답은 20.1%에 불과했다. 교육 전문직의 경우 86.3%로 가장 높았으며, 교장·교감 80.1%, 부장 교사 70.4%, 교사 68.3% 등의 순이었다. 학부모는 43.4%로 경험 비율이 비교적 낮았다. 부적격 교사를 퇴출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온정주의가 꼽혔다. 한국교육개발원 김이경 연구원이 이 의원에게 제출한 ‘교사평가 시스템 연구’에 따르면 전체 교사의 43%가 온정주의적 교육풍토를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특히 부적격 교사를 퇴출시킬 수 있는 인사권이 있는 교장은 51.6%로 가장 높았고, 교감 44.1%, 부장교사 42.8%, 교사 42.3% 등으로 직위가 높을수록 온정주의를 퇴출의 걸림돌로 생각하는 비율이 높았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전방부대 우리 아들도 혹시… ”

    “전방부대 우리 아들도 혹시… ”

    서정민(48·여·충남 아산)씨는 25일 주말을 맞아 최전방 강원도 양구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는 아들에게 면회를 간다. 원래 아들이 ‘100일 휴가’를 나오기 전에는 면회를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응석받이로 자라 참을성이 부족한 아들이 좀더 성숙해질 수 있도록 냉정한 모습을 보이려고 했다. 하지만 내무반 총기난사 사건 이후로 생각이 바뀌었다. 혹시 매를 맞는 것은 아닌지, 험한 욕을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졌다. 서씨는 “언제든 힘들면 숨기지 말고 엄마에게 말하라고 당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남 목포에 사는 김민선(44·여)씨도 같은날 강원도 철원 군부대로 아들을 보러 간다. 아들은 상병이 돼 군생활에 적응이 됐을 것으로 생각된 데다 철원까지 가는 데 10시간이나 걸려 제대할 때까지 면회갈 계획이 없었다. 그러나 총기난사 사건을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박씨는 “졸병 때를 떠올려서 후임병들을 괴롭히거나 스트레스를 주지 말라고 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후임병들에게 먹을 것을 많이 사주라고 돈도 두둑히 주고 올 작정이다. ●부대내 으슥한 곳에서 맞지나 않는지 이번 주말 전후방 군부대는 아들을 면회하러 오는 부모들의 발길로 어느 때보다 붐빌 것으로 보인다. 총기난사 사건 이후 아들 걱정에 잠을 못 이루던 부모들이 아들 얼굴도 보고 문제없이 복무를 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려는 것이다. 특히 토요일에 면회를 가면 아들과 하루 외박을 할 수 있다. 지난 1월 경기도의 한 부대에 막내아들을 입대시킨 임모(50)씨는 한 달 전 면회를 갔지만 이번 주에 또 갈 생각이다. 그는 “이번에 사고를 친 일병이 우리 아들과 비슷한 시기에 입대한 아이여서 마음이 더 좋지 않다.”고 말했다. 걱정스럽기는 상병·병장 등 선임병들의 부모도 마찬가지다. 자칫하면 후임병에 대한 가혹행위자로 몰릴 수 있는데다 총기와 폭탄류가 있는 곳에서 후임병들의 군기를 잡다가 이번과 같은 일을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소대장이 희생되면서 장교의 부모들도 좌불안석이다. 충북 충주에 사는 이미경(55·여)씨는 아들이 장교로 군에 입대했기 때문에 그동안 면회 한번 가지 않았지만 이번 주말에 처음으로 찾아보기로 했다. 이씨는 “소대장으로 근무하는 아들에게 사병들을 동생처럼 따뜻하게 대해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일러주고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후임병 스트레스 주지말라” 당부 할 것 서울대 임현진(사회학과) 교수는 이러한 부모들의 집단적 면회 움직임에 대해 “군이 조기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해 불안감이 확산되고 증폭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면서 “군이 신뢰를 주지 못하는 이상 부모들이 직접 나서는 현상이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대 신광영(사회학과) 교수는 “어머니들의 면회는 총기난사 사건으로 인한 정서적 과잉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군이 사회와의 벽을 허물고 신뢰성과 투명성을 높이지 않는다면 부모들의 불신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총기난사 사건 시간대별 재구성

    ▲2005.1.21∼3.31. 전 근무지인 ○○○GP 근무 김 일병, 정 모·김 모 상병으로부터 멱살을 잡힌 채 “개새끼”라는 욕설 들음.▲5.11.○○○GP투입 이후 김 일병, 신 모 상병 등으로부터 사사건건 질책과 “미쳤냐, 돌았냐, 개새끼”라는 욕설을 듣는 등 선임병 10여명으로부터 잦은 질책당함.▲6.13 김 일병, 선임병들로부터 잦은 질책 및 욕설 등 인격모욕에 앙심 품고 “GP소대원들 모두 죽여야겠다.”고 결심.▲6.18.15:00께 농구시합시 “응원을 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 상병으로부터 질책.▲17:00께 취사장 청소시 또 다시 질책당하자 범행 결심.▲18:00시께 동료 천 모 일병에게 “수류탄 까고 총으로 쏴죽이고 싶다.”고 말함.▲6.19.02:30 김 일병, 후방초소 근무 중 후번 근무자를 깨운다는 명분으로 이병삼 상병에게 보고 뒤 내무실 이동(수류탄 1발 및 각각 25발들이 탄창 2개 휴대).▲02:33 김 일병, 내무실 도착, 근거리 관물대에 있는 정모 상병의 K-1 소총을 절취해 화장실로 잠입.▲02:34 김 일병, 화장실에서 소총에 탄창 장전, 조정간을 연발로 위치, 수류탄은 방탄복 좌측 주머니에 휴대 후 내무실로 이동.▲02:36 김 일병, 수류탄을 이모 상병을 향해 투척 후 내무실을 이탈해 상황 근무자를 살해할 목적으로 상황실로 이동.▲02:39 김 일병, 체력단련장에서 나오는 소초장 김종명 중위에게 난사, 사살 후 상황실로 이동, 상황실에서 나오는 신임소대장 이모 중위를 향해 난사. 이 중위는 상황실로 다시 들어가 화를 면함. 후임 GP장 이 중위, 상황 확인 차 상황실 이탈시 피격(피해 없음). 상황실 복귀 후 연대 상황실에 “나도 공격을 받음. 피ㆍ아 구분 불가” 보고.▲02:41 김 일병, 취사장에서 조정웅 상병 다리를 난사하고 쓰러진 피해자를 확인 사살.▲02:43 김 일병, 피격으로 소란한 내무실로 이동. 병력들을 향해 25발 전량을 난사한 뒤 전방 초소로 이동. 같은 시각,1대대 인사장교,1대대 의무지대 상황병에게 출동 지시.▲02:45 김 일병, 전방초소 이강찬 상병과 마주쳐 사격했으나 실탄 고갈로 미수, 이 상병이 “너 왜 여기 왔느냐.”고 묻자 “이병삼 상병이 가 있으라 해서 왔다.”고 허위 답변 후 원위치 하라는 지시에 근무지였던 초소로 복귀.▲02:50 신임소대장이 “전투복 입은 사람을 봤다.”며 전투복 입은 병사 5명을 집합시킨 후 무장해제해 관측장교실로 집결조치. 이후 이들 5명이 대기하던 중 이강찬 상병과 이병삼 상병의 상황 설명이 모순되자 김 일병을 추궁해 자백받고 체포.
  • 美·베트남 상흔씻고 ‘워싱턴 포옹’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처절한 전쟁을 치렀던 미국과 베트남이 과거를 접고 미래를 향한 본격적인 협력관계에 들어갔다. 미국을 방문 중인 베트남의 판 반 카이 총리는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과 ‘역사적’ 회담을 가졌다. 베트남의 정상급 인사가 미국을 방문한 것은 지난 75년 베트남전이 끝난 뒤 30년만에 처음이다. 미국에서는 지난 2000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한 바 있다. 베트남과 미국은 다음달 11일 관계정상화 10주년을 맞는다. 이날 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카이 총리에게 베트남의 오랜 숙원이었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지원하겠다고 ‘최고의 선물’을 선사했다. 또 부시 대통령은 내년 하노이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베트남을 방문하겠다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베트남 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에 협력하고 베트남전 당시 전사한 미군 병사들의 유해발굴 작업이 지속될 수 있도록 도와준 데 대해 사의를 표했다. 이에 대해 카이 총리는 “두 나라는 잠재력을 가진 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다.”면서 양국간에 존재하는 문화ㆍ역사적 차이를 극복하고 관계 증진을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부시 대통령과 합의했다고 말했다.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부시 대통령과 카이 총리가 인권 개선과 종교 자유 확대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논의했다며, 베트남 정부가 이들 분야에서 취해온 조치들을 환영하지만 아직은 개선의 여지가 남아 있다고 밝혔다. 카이 총리는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도 만났다. 두 나라는 최근 미 군함이 베트남 항구에 정기적으로 정박하고 미군이 베트남군 장교들에게 교육훈련을 실시키로 하는 등 군사 협력관계를 급속히 발전시키고 있다. 양국의 군사안보 분야 협력은 중국을 겨냥한 측면이 강하다. 미국은 베트남이 초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을 ‘봉쇄’하는 데 한몫해주기 바라며, 역사적으로 중국과 잦은 분쟁을 빚어왔던 베트남도 중국 견제 심리가 강하다는 것이다. 카이 총리는 이날 베트남항공의 보잉787 여객기 4대 구매계약 서명식에 참석했다.24일에는 뉴욕의 증권거래소를 방문, 개장을 알리는 종을 울리는 등 미국과 경제협력 및 경제개방 정책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계획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과 카이 총리가 회담을 하는 시간 백악관 부근에서는 베트남인 200여명이 옛 월남기를 흔들며 “베트콩은 물러가라.” “베트남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증진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여 베트남 전의 상흔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음을 나타냈다.dawn@seoul.co.kr
  • 대전대 세계최초 ‘군사학’ 학사학위 인정

    ‘Art of War’. 같은 제목의 영화까지 개봉된 터라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손자병법의 영문 표기다. 여기서 눈에 띄는 점은 兵‘法’인데도 영문으로는 ‘Science’가 아닌 ‘Art’로 표기됐다는 사실이다. 어떤 법칙적인, 학문의 연구대상이 되는 무엇이라기보다는 현장에서 그때 그때 응용가능한 기술이나 처세술적인 성격이 짙다는 생각이 반영된 결과이다. 아직은 생소한 ‘군사학’은 여전히 이런 시각에 얽매여 있다. 한마디로 학문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떻게 사람 죽이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느냐.’는 점잖은 훈수까지 끼어든다.70년대말 ‘자주국방’ 개념과 함께 군사학의 정립이 논의된 지 30여년이 됐으나 우리나라 사관학교의 교육과정에서 군사학은 여전히 이론보다 실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기에는 지나치게 경직된 우리의 군문화가 개입하고 있다는 설명도 있다. 조금 심하게 말해서 여전히 ‘짬밥순’이 절대적인 군에서 젊은 장교들이 군사학 어쩌고 떠들어 대는 것을 곱게 받아들일 고위급 지휘관들이 몇이나 되겠느냐는 지적이다. 지난해 3사관학교 한 졸업생이 “군은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다.”며 임관을 거부하고 항명죄로 처벌받은 것도 크게 봐서 이런 군문화가 반영된 사례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최근 변화의 바람이 서서히 불고 있다. 대전·충남권을 중심으로 군사학이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 대전대·대덕대·충남대 등이 학부나 대학원 과정을 개설했다.2004년 군사학과를 만든 대전대가 군사학 ‘학사학위’를 인정한 것은 세계 최초의 사례다. 충남대 평화안보대학원은 올해 처음으로 석사학위자들을 배출했다. 첫 걸음은 뗐지만 풀어야 할 숙제는 많다. 부대 운용과 지휘권에 그치느냐,‘전쟁과 평화’까지 확장하느냐를 둘러싼 군사학의 범위 논란은 여전하다. 또 남북 대치상황 등으로 인해 군이 지나칠 정도로 보안에 얽매이다 보니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도 연구의 걸림돌이 된다. 여기다 아직까지는 민간인보다 현역 군인이나 예비군 연구자가 많은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삼국지 전쟁 중심으로 다시 쓴다” 군사학 측면에서 재구성한 김성남씨

    “삼국지 전쟁 중심으로 다시 쓴다” 군사학 측면에서 재구성한 김성남씨

    지난 1월 출간된 ‘전쟁으로 보는 한국사’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전쟁을, 그것도 우리 선조들이 치른 전쟁을 군사학적인 시각에서 분석한 최초의 대중 역사서였기 때문이다.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임에도 군사학적 지식을 동원해 때로는 기존 통설과 맞서는 해석을 제시하는 등 역사적인 전쟁들을 독특한 시각으로 재구성해내 전쟁사에 관심이 높았던 밀리터리 마니아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샀다. 책의 저자는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중국사를, 연세대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김성남씨. 그가 이번에는 삼국지에 도전하고 있다. 유비·조조·손권에 대한 식상한 인물론이나 이들의 행동양태를 분석한 처세론이 아니라 군사학적으로 삼국지를 다뤄 올 늦여름이나 가을쯤 선보이겠다는 것이다. 알려졌다시피 삼국지는 ‘촉한(蜀漢)정통론’에다 경극 형식이라는 대중화 과정을 거치면서 ‘뻥튀기’가 심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34살의 신진 연구자임에도 녹록지 않은 내공을 보였던 김씨가 이런 삼국지를 어떻게 복원해 낼지, 또 군사학적 작업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그가 몸담고 있는 우리역사문화연구소에서 직접 만났다. ▶많은 비판이 있어 왔던 삼국지를 선택한 이유는. -삼국지는 지나치게 ‘인물’만 부각됐다. 구체적인 전쟁 상황이 없다. 기존의 인물론은 참고만 하고 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싸우고, 왜 승리하거나 패배했는지를 꼼꼼하게 따져볼 생각이다. ▶김운회 교수도 ‘삼국지 바로 읽기’라는 책을 통해 인물론을 비판했는데…. -삼국지를 용인술이나 처세술로 보지 말자는 김 교수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김 교수의 책 역시 인물론의 폐해를 지적하는 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넓게 봐서 인물론의 또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전쟁으로 보는 한국사’에서 보듯 사료 부족이 큰 문제인 것 같은데 이번 작업에서는 참고할 만한 사료들이 있나. -중국과 일본 문헌 등을 많이 참고하고 있다. 문헌마다 관점의 차이도 있고, 문헌의 절대량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전쟁에는 시대를 뛰어넘는 공통성이 있다. 주력부대 구성과 기동부대를 통한 우회전략 등과 같은 것들이다. 그런 군사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전쟁을 재구성해 볼 수 있다. ▶지난 역사를 군사학적으로 복원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삼국지와 비슷한 시기였던 로마는 재미있는 기록을 많이 남겼다. 예를 들자면 52세 군단병이 30여년의 군생활을 일기 형식으로 정리해둔 것이 있다. 장군이나 정치가가 아니라, 일반 병사에게 전쟁이 어떻게 비춰졌는지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삼국지는 모든 사건을 장군의 인품과 대의명분으로 설명한다. 진짜 칼과 창을 들고 들판을 달렸던 일반인들의 얘기는 없다. 군사학적 접근은 부족하나마 이런 측면을 되살리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한마디로 ‘졸(卒)의 복권’이다. ▶우리는 반공과 민족주의라는 명분 때문에 더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문제다. 군대문화라는 것이 그렇지 않나.‘까라면 까라.’에서 ‘안 되면 되게 하라.’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희생과 정신력만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전쟁에서 정신력은 핵심이라기보다 ‘플러스 알파’에 지나지 않는다. 패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의 정신력이란 다 같이 죽자는 말이다. 노련한 지휘관이라면 이 점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우리에게도 군사학적 지식이 필요할 것 같은데. -맞다. 군사학적 연구가 결합됐을 때 군은 최대의 힘을 낼 수 있다. 미 국방성은 90% 이상이 민간 연구자들이다. 이들이 국방 독트린을 생산해 낸다. 장군들은 이 독트린의 충실한 집행자일 뿐이다. 이는 역사에서도 증명된다. 유목민족의 전투력은 어느 시대에서나 최강이었다. 생활습관 자체가 전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승리하는 쪽은 정주민이었다. 유목민에게는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연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군의 문민화’라는 개념이 나왔는데 우리 군은 거북하게 여기는 것 같다. -폐쇄적이라 그렇다. 꼭 군이 아니더라도 연구집단과 실행집단은 어느 정도 분리돼야 좋다고 본다. 연구집단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군이 쓸모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연구결과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고급장교 집단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순경출신 승승장구 女청장1호

    60년 경찰사상 지방경찰 첫 여성 수장이란 기록을 세웠던 김인옥 제주지방경찰청장이 운전면허증 위조사건에 휘말리면서 낙마했다. 지난 1월21일 청장에 임명된 지 다섯달 만이다. 첫 여성 치안감에도 도전해 신화를 이어가려던 김 청장의 꿈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김 청장은 ‘성매매 업소 강력 단속’으로 유명한 김강자 전 총경과 여성경찰의 양대축을 이뤄왔다. 김강자 전 총경에 다소 밀린 적도 있었지만 김 전 총경이 정치판에 뛰어들면서, 첫 여성 경무관의 기록은 그의 차지가 됐다. 부산 동아대 1학년이던 1972년 경찰에 투신한 그는 서울 용산경찰서 경무과에서 시작해 형사, 정보, 수사, 보안, 경무 등 분야를 두루 거치면서 승승장구 했다.99년 3월 총경으로 승진, 경남 의령경찰서장과 경기 양평경찰서장을 지냈다.2003년 불과 9개월간 서울 방배경찰서장을 지내면서 ‘강력사건 100일 작전’에서 전국 5위, 서울 강남권 1위를 기록하는 등 업무 열정과 꼼꼼한 일처리를 인정받았다. 경찰이 비리의혹이 불거진 지 채 하루도 되지 않아 김 청장에 대한 직위해제를 결정한 것은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앞두고 여론 악화를 막기 위한 의도로 분석된다. 실제로 경찰청은 제주도에 있는 김 청장을 서울 본청으로 부르지도 않고 전화로만 감찰을 실시, 바로 인사조치를 했다. 경찰은 “김 청장은 경찰 고위간부로서 김씨가 수배자란 사실을 알고서도 강 경위에게 소개했고, 금품을 받은 점은 유용 여부에 상관 없이 직무수행이 곤란할 정도의 부도덕한 행위로 판단된다.”고 직위해제 결정 배경을 밝혔다. 이날 구속영장이 청구된 강순덕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강력4팀장(경위) 역시 군 장성·장교가 관련된 대형비리 사건에서 공을 세워 ‘장군 잡는 여경’으로 불린 스타 여경이었다.2003년 12월 경찰청 구내 커피숍에서 노무현 대통령 부부에 관련된 뜬소문을 말한 게 인터넷에 오르면서 좌천되기도 했으나 지난해 의병 전역에 연루된 현역 장성의 비리를 밝혀내면서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 그러나 ‘검은 돈’도 잡는 두 얼굴이 드러나면서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있다.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기수 1000기 돌파 해병전우회

    기수 1000기 돌파 해병전우회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 전국의 시·군·면을 가면 어디서나 해병전우회 사무실을 볼 수 있다. 컨테이너로 된 어설픈 건물이지만 타 군 출신들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전우애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이어지고 있다. 무슨 비결이 있기에 젊은 날 잠시 군문에서 맺은 인연이 ‘사회’에서까지 끈끈하게 이어지는 것일까. 해병 기수 1000기 돌파를 맞아 해병 출신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신화’를 파헤쳐 본다. ●전국 231개 지부… 봉사단체로 맹활약 서울에 있는 해병전우회중앙회 산하에는 16개 광역 시·도별로 연합회가 형성돼 있으며 각 시·군·구에는 231개의 해병전우회 지부가 자생적으로 생겨나 활동하고 있다. 해외에도 60개의 지부가 있다. 해병 전역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이들 전우회 및 직장·학교 등 그룹별로 구성돼 있는 모임에 참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친목단체는 물론 사회봉사단체로서도 존재 이유를 밝힌다. 지부별로 야간 방범순찰은 기본이고 응급구조대·기동봉사대·환경봉사대 등을 편성해 활동하고 있다. 지역에 따라 기능의 편차를 보여 바다가 인접한 곳에서는 해양사고 인명구조를, 산악지역에서는 등반사고 구조 등에 주력한다. 이들은 군대에서 익힌 강도 높은 훈련과 정신력을 바탕으로 전문가 못지않은 활동을 펴고 있다. 야간순찰 시에도 해병대 출신은 범법자에게 경찰 못지않은 위압감을 주기에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둔다. 이들이 공식활동을 할 때의 복장은 해병의 상징인 빨간 명찰과 팔각모, 얼룩 무늬의 위장복 등 현역과 별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해병 출신들은 아직도 군시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곱지 않은 시각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군에 대한 긍지가 대단한 회원들에게는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불가사의한 단결력 전우회의 일이라면 자다 일어나서라도 달려가는 것이 이들의 생리다. 너무 단합이 잘 돼 호남향우회, 고려대동문회와 더불어 잘 뭉치는 3대 집단으로 회자된다. 여느 친목회들이 상부상조를 통해 본질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측면이 있는 데 비해, 해병전우회는 이익이나 반대급부에 상관없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돌쇠형’에 가깝다. 군대 시절부터 익히고, 제대해서도 선배들로부터 듣고 배운 것이 이런 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요즘과 같은 개인주의 사회에 아직도 이런 구시대형(?) 결합이 가능할까. ●지옥훈련 속 고도의 동질감 형성 우선 해병의 단일화된 기수체계를 들 수 있다. 훈련소별로 기수가 다른 육군과 달리 해병대는 하나의 훈련소에서 배출된 단일기수여서 일체감이 형성된다. 생면부지의 해병 출신이라도 만나자마자 기수부터 확인하고, 긴 말이 필요없이 금방 선·후배 사이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현재 해병전우회에서 활동하는 사람 가운데 최고참은 80∼85기(대략 65∼70세), 아래로는 900기(25∼27세) 밑으로까지 내려가나 기수가 ‘나이의 골’을 메운다. 이채로운 것은 기수체계가 다른 장교나 하사관 출신도 전우회에서는 입대연도에 따라 사병 기수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전관예우를 못 받는 억울한 측면이 있지만 어차피 ‘해병은 하나’임을 강조하는 마당이기에 이런 사정은 중시되지 않는다. 해병을 뭉치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은 전통에서 오는 자부심이다. 해병이 6·25전쟁이나 월남전 등에서 만들어낸 신화는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자랑스러운 전통은 해병들의 뇌리에 각인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작용을 일으킨다. 이 때문에 ‘짬밥’ 출신이든 기술병 출신이든 누구나 ‘귀신 잡은 해병’인 것이다. 어떤 이들은 해병 출신들의 유난스럽기까지 한 단결력에 대해 ‘논리가 필요없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훈련받을 때부터 ‘해병은 하나다.’라는 주입식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해병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형제처럼 움직일 수 있는 시스템이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정기인(64·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엄청난 기합과 지옥훈련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스스로 엘리트 의식을 가지며, 이러한 의식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타 집단이 이해할 수 없는 고도의 동질감이 형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권 및 정치와는 거리 멀어 특이한 점은 해병전우회가 사회단체로서의 적지 않은 영향력에 비해 ‘사고’를 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역마다 전우회가 만들어진 지 수십년이 넘었지만 이권에 개입하는 등 불미스러운 일로 말썽을 일으킨 적이 없다. 해병 출신들이 다소 ‘폼’을 잡는 경향이 있음을 비춰볼 때 이례적인 일이다. 권오현(權五顯·50) 김포해병전우회장은 “해병 출신들은 사회정의에 대한 가치관이 뚜렷한 데다, 해병의 명예를 실추했을 때 매장된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전우회 간부직함 등을 무기삼아 지방의원 등 정치권에 진출하는 사례도 찾아보기 힘들다. 아예 내부 정관으로 회원들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한 전우회도 많으며, 선거 때는 중앙회 차원에서 선거 개입을 금지하는 지침을 내려보낸다. 또한 단체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전우회 사무실 운영비를 다른 곳의 특별한 지원없이 대체로 회원들의 회비로 충당한다. 수도권지역 한 해병전우회는 수년 전 회원들이 야간순찰 도중 술집에서 술을 먹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상자들을 징계했다. 이 단체 간부는 “말썽의 싹을 자르기 위한 차원”이라며 “해병대가 존재하는 한 누구도 범할 수 없는 명예를 후배들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것들이 거름이 돼 해병대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져 한때 ‘개병대’로 불리며 취직과 결혼조차 잘 안되던 것은 이미 전설이 된 지 오래고, 지금은 대학생들 사이에 ‘가장 가고 싶은 군대’로 꼽히는 등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노병은 사라지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이성금(李成金·64) 해병전우회 서울연합회장은 오전 9시면 출근, 연합회 일을 보는가 하면 저녁이면 전우들의 경조사를 챙기는 등 바쁘기만 하다. 이 회장은 “죽는 날까지 전우회 일을 하겠다.”며 강한 의욕을 보였다. ▶해병 출신이 강한 결속력을 발휘할 수 있는 요인은. -해병이 수행하는 상륙작전 등은 뭉치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 이러한 임무적 특성에다 단결을 중시하는 해병의 전통이 오늘의 해병정신을 만들었다. ▶요즘 주안점을 두는 활동은. -지난 4월부터 주말이면 연합회 회원 60여명이 한강시민공원에서 야간순찰을 돌고 있는데 시민들의 반응이 좋다. 또 다음달 4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서울 여의도부터 춘천까지 한강청결 캠페인을 벌이는 등 환경정화 활동에도 주력하고 있다. ▶군에서 대형 총기사고가 발생했는데. -군기가 빠질수록 사고가 많이 생긴다. 해병전우회에서는 60세를 넘겨도 선후배 관계가 분명하다. 요즘은 내 자식만을 위하는 가정교육부터 잘못된 것 같다. ▶향후 활동 방안은. -육·해·공군 가운데 유일하게 해병대만 전용회관이 없어 불편을 겪고 있는데 전우들과 힘을 합해 건립하도록 노력하겠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 [軍 총기난사 ‘충격’] 새벽 잠든 부대원에 수류탄 투척

    [軍 총기난사 ‘충격’] 새벽 잠든 부대원에 수류탄 투척

    경기도 연천군 전방부대 총기 난사사건은 범인 김모(22) 일병에 의한 계획적인 범행임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군 수사당국이 이날 오후 실시한 현장검증과 김 일병의 진술 등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해 보면 이런 정황은 또렷해진다. 군 당국은 20일 사고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다음은 국방부 관계자가 전한 사건 경위다. 김 일병을 포함한 병사 4명은 이날 0시부터 최전방 경계초소(GP) 건물 옥상에 설치된 초소 2개에 2명씩 경계근무에 투입됐다. 이들은 오전 2시 45분까지 경계근무를 선 뒤 다음 근무자 4명과 근무를 교대할 예정이었다. 2시 30분쯤 김 일병은 함께 근무중이던 이모 상병에게 “교대 근무자를 깨우러 가겠다.”며 자신의 K-2소총을 초소에 두고 25명이 잠을 자고 있는 내무반으로 갔다. 내무반에 도착한 그는 관물대에 걸쳐져 있던 전모 상병의 K-1소총을 집어들고 내무반 옆의 화장실로 가 자신의 수류탄 케이스를 제거한 뒤 제1 안전핀을 제거했다. 이어 절취한 K-1소총에 탄창을 장전하고 내무반으로 되돌아왔다. 그는 당초 소지하고 있던 25발들이 탄창 3개 중 1개는 초소에 남겨 두고 2개를 갖고 있었다. 내무반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수류탄 안전핀을 풀어 내무반 침상에 투척한 뒤 재빨리 내무반을 빠져 나왔다. 이어 복도 끝에 있는 상황실을 장악하기 위해 이동하던 그는 체력단련실 겸 휴게실에 있던 소초장 김종명 중위를 소총으로 살해했다. 다시 상황실로 향한 김 일병은 소총을 난사했다. 당시 상황실에는 업무 인수인계를 위해 후임 소초장 이모 중위가 근무중이었다. 이 중위를 살해하는 데 실패한 김 일병은 인근 취사장에 있던 취사병 이건욱 상병을 소총으로 사격해 살해했다. 이어 수류탄 폭발로 난장판이 된 내무반으로 다시 들어가 실탄을 난사했다. 김 일병은 옥상 초소로 다시 돌아가 자신의 초소 전방에서 경계 근무중이던 2명의 근무자들에게도 사격을 시도했으나 탄창에 장전됐던 25발들이 실탄이 이미 다 떨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김 일병의 범행을 알아채지 못한 근무자들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김 일병에게 “적이 침투한 것 같으나 빨리 초소로 돌아가라.”는 얘기를 건네자 김 일병은 태연하게 초소로 돌아가 근무를 계속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적의 공습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후임 GP장 이 모 중위는 내부소행일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라 당시 군복을 입고 있던 5명을 옥상의 연병장으로 집합시켰다. 이 중위는 이들 중에 범인이 있을 것으로 보고 무장을 해제시킨 뒤 이들을 모두 관측장교 방에 감금시켰다. 이 중위의 집중적인 추궁 끝에 김 일병은 결국 자신의 범행임을 털어놨다. 사건 발생 뒤 약 20∼30분 만의 일이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軍 총기난사 ‘충격’] 휴일 날벼락… “병원 잘못 알려줘” 분통

    [軍 총기난사 ‘충격’] 휴일 날벼락… “병원 잘못 알려줘” 분통

    내무반 총기난사 사건의 희생자 유가족들은 숨진 자식의 시신을 확인하며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19일 사고 직후 양주·일동·벽제 등 경기도 4개 국군병원에 분산됐던 8구의 시신은 이날 밤 성남 국군수도통합병원에 함께 안치됐다. 유족들은 군 당국의 무성의에 분통을 터뜨렸다. ●“부모님 커플반지 해준 효자” 이날 밤까지 조정웅·이태련·이건욱 상병의 시신이 안치돼 있던 양주병원에서는 비보를 듣고 찾아온 유가족들의 오열이 이어졌다. 조 상병의 어머니는 정문 앞에서 “내 아들 살려내라.”고 울부짖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태련 상병의 어머니 배옥자(49)씨는 “태련이가 지난번 휴가 나와서 월급이랑 위험수당 받은 걸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서 아버지, 어머니에게 커플 금반지를 해줬다.”며 눈물을 훔쳤다. 고양 벽제병원도 유족 20여명이 영정을 붙잡고 오열해 눈물바다를 이뤘다. 김인창 상병의 아버지 김길남(53)씨는 “제대해서 아빠 일을 돕겠다던 효자였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면서 “그동안 용돈을 제대로 못 준 게 너무 가슴 아프다.”고 슬퍼했다. 전영철 상병의 이모 장영숙(42)씨는 “언니(전 상병의 어머니)가 지체장애자여서 군에 있는 영철이가 엄마를 부탁한다고 전화를 자주 했는데 언니가 어떻게 이겨낼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군 당국의 무성의에 크게 분노했다. 시신이 일동병원에 안치돼 있던 소대장 김종명 중위의 유족들은 “소대장이라는 이유로 시신을 따로 떼어놓은 것은 물론이고 일부 고위장교들이 이번 일이 소대장 책임이라고 주장하는 등 망자를 욕되게 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성남 수도통합병원에 합동분향소 전영철 상병의 유족은 “군이 오전 6시50분 수도병원으로 안치장소를 알려줘 가봤더니 병원에서 금시초문이라 했고 뒤늦게 벽제병원이라고 통보해 몇시간을 도로에서 허비했다.”면서 “영안실을 둘러보니 시설이 너무 나빠 우리 영철이를 두번 죽이는 것 같다.”고 울먹였다. 유족들은 이날 오후 5시30분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이 합동분향소가 마련돼 있던 양주병원에 오자 거칠게 항의하며 ▲8명의 시신 한 곳에 안치 ▲납득할 수 있는 사건경위 설명 ▲현장 방문 허용 등을 요구했다. 윤 장관은 이들의 요구를 수용한 뒤 방문 1시간여 만에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또 20일 오전 유족들에게 사건 경위를 자세히 설명하고 이어 유족 대표 2명이 연천군 중부전선 GP 사건현장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유족들은 전영철 상병의 외삼촌 김흥렬(40)씨를 유족 대표로 하는 임시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양주·고양 한만교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깔깔깔]

    ●누구를 쏴야 할까? 신참 군인이 위병소 근무 첫날 군용차량 한 대가 들어오자 차를 세우고 물었다.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김 대령이다!” “대령님 죄송합니다. 출입허가 스티커가 없는 차량은 통과시킬 수 없습니다.” 장교는 신참의 말을 무시하고 운전병에게 지시했다. “시간 없다. 빨리 들어가자!” 신참이 다시 막아섰다. “정지하십시오! 스티커 없이 들어가는 차량은 발포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화가 난 장교가 다시 운전병에게 소리쳤다. “빨리 들어가!” 그러자 신참이 뒤쪽 창문으로 다가가 장교에게 조용히 말했다. “저, 대령님. 제가 오늘 처음이라서 그러는데 대령님을 쏴야 하나요? 운전병을 쏴야 하나요?”
  • 국내 最長 12.3㎞ 인천대교 착공

    국내 最長 12.3㎞ 인천대교 착공

    인천 송도경제자유구역과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를 잇는 제2연륙교인 인천대교가 16일 착공됐다. 송도∼영종도간 12.3㎞(해상교량 11.7㎞)를 왕복 6차선으로 잇는 제2연륙교는 최대 교각 간격이 800m, 주탑 높이가 230m에 이르는 사장교로 2009년 10월 완공된다. 인천대교는 국내 최장으로 서해대교(7.3㎞)보다 5㎞가 더 길며, 세계적으로도 일본 다타라, 프랑스 노르망디에 이어 3번째로 긴 다리다. 공사비 1조 2467억원은 민자사업 최초로 시행사와 시공사를 분리해 시행사인 코다개발은 자금조달과 사업관리를, 삼성VJ는 설계와 시공을 담당하며 건설이 끝나면 시행사가 30년간 운영한 뒤 국가에 기부한다. 이 사업은 국내 최초의 사회간접자본(SOC) 외자유치 사업으로, 송도경제자유구역 개발의 핵심적 사업이이다. 인천대교는 송도를 거쳐 건설 예정인 제3경인고속도로 및 서해안고속도로와 연결된다. 서울 강남 및 수도권 남부지역에서 인천공항까지의 통행시간이 40분 이상 단축될 전망이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국내 最長 12.3㎞ 인천대교 착공

    국내 最長 12.3㎞ 인천대교 착공

    인천 송도경제자유구역과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를 잇는 제2연륙교인 인천대교가 16일 착공됐다. 송도∼영종도간 12.3㎞(해상교량 11.7㎞)를 왕복 6차선으로 잇는 제2연륙교는 최대 교각 간격이 800m, 주탑 높이가 230m에 이르는 사장교로 2009년 10월 완공된다. 인천대교는 국내 최장으로 서해대교(7.3㎞)보다 5㎞가 더 길며, 세계적으로도 일본 다타라, 프랑스 노르망디에 이어 3번째로 긴 다리다. 공사비 1조 2467억원은 민자사업 최초로 시행사와 시공사를 분리해 시행사인 코다개발은 자금조달과 사업관리를, 삼성VJ는 설계와 시공을 담당하며 건설이 끝나면 시행사가 30년간 운영한 뒤 국가에 기부한다. 이 사업은 국내 최초의 사회간접자본(SOC) 외자유치 사업으로, 송도경제자유구역 개발의 핵심적 사업이이다. 인천대교는 송도를 거쳐 건설 예정인 제3경인고속도로 및 서해안고속도로와 연결된다. 서울 강남 및 수도권 남부지역에서 인천공항까지의 통행시간이 40분 이상 단축될 전망이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日종군위안소 상하이만 149곳

    |상하이 연합|중국 상하이(上海)에 과거 일본군을 위한 종군위안소가 149곳 있었으며 이중 1931년 11월에 세워진 사상 최초의 위안소 건물이 원형 보전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상하이 사범대학 역사학과 쑤즈량(蘇智良)교수(중국 위안부 연구센터 주임)가 지난 13년 동안 상하이 지역을 집중적으로 조사한 결과 이같은 사실이 밝혀졌다. 쑤 교수는 16일 “13년간 연구·조사한 결과 상하이는 일본군 위안소가 가장 먼저 운영되고, 가장 많은 위안소가 있었던 곳으로 확인됐다.”며 “확인 과정에서 위안소 숫자가 너무 많은 데 놀랐다.”고 말했다. 쑤 교수가 확인한 149곳의 위안소는 일본 해군 사령부가 있었던 훙커우(虹口)의 70여곳을 비롯, 충밍(崇明), 푸둥(浦東), 우쑹(吳淞), 자딩(嘉定) 지역에 집중돼 있었다. 특히 훙커우구(區) 둥바오싱(東寶興)로 125룽(弄)에는 당시 일본군 장교를 위한 위안소였던 ‘대일살롱(大一沙龍)’ 건물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전돼 있다. 대일살롱은 일본군의 상하이 침공 뒤인 1931년 11월부터 일본군이 패전한 45년 8월까지 운영됐다. 또 근처의 쓰촨베이(四川北)로 1746룽에는 일본군 사병을 위한 집단위안소인 ‘메이메이리(美楣里) 위안소’ 건물도 그대로 보존돼 있다. 위안소 건물에는 대부분 일본식 미닫이 창문과 후지산 모형 등 조각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특히 36년부터 당시 이곳에 체류하던 조선인 상인들이 운영하던 술집 등이 일본군 위안소로 대거 활용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쑤 교수는 덧붙였다.
  • 국방부 첫 민간 법무관리관 박동수 변호사

    “마지막으로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각오로 일할 작정입니다.” 국방부가 사상 처음으로 민간에 문호를 개방한 법무관리관에 임용된 박동수(56·법무 2기) 변호사는 10일 임용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국방부는 그동안 현역 장성이 보임돼 오던 법무관리관 직위를 개방형으로 전환하고 지난 4월 공채공고를 냈으며, 응모한 3명의 변호사 중 중앙인사위원회 심사를 거쳐 박 변호사를 최종 선발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으로 법무법인 일신에서 일하고 있는 박 변호사는 성균관대 법대를 나와 군 법무관시험에 합격 수도군단사령부 검찰관과 37사단 법무참모, 육군 법무감실 송무장교 등을 역임한 뒤 소령으로 예편했다. 군을 떠난 뒤엔 부산·마산지방법원 판사를 지냈으며, 사법연수원에서 군 법무관시험 합격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도 해 왔다. 그동안 국방부는 법무관리관 직위를 개방형으로 바꾸기로 한 뒤 예우문제로 적잖은 고민을 해왔다. 억대 연봉을 받는 변호사들에게 고액의 연봉을 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박 변호사는 연봉 6000만∼7000만원을 받는 국방부의 다른 국장들보다 약간 많은 액수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군 사법 업무에 종사한 지 24년이 흘렀고, 제도와 환경이 많이 변한 것 같다.”면서 젊은 법무관들과 머리를 맞대고 연구해 국가와 국민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업무를 수행하겠다.”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법무관리관 직위와 함께 개방형으로 전환된 국방부 인사국장에는 최운(54·육사 30기) 예비역 준장이 임용됐다. 현역 소장이 보임되던 인사국장에 민간인이 임용된 것도 처음이다. 지난 98년 국방부 인사국을 떠난 뒤 7년여 만에 민간인 신분으로 국방부에 돌아온 그는 “군 진급제도 개선과 효율적인 인사 관리, 군 양성 교육제도 개선 등에 힘쓰겠다.”라고 말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아프간동맹군에 ‘한글 열풍’

    한국군 공병·의료 지원단인 다산·동의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항구적 자유작전’을 수행중인 미군을 비롯한 동맹군들 사이에 ‘한글 열풍’이 불고 있다. 9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동의ㆍ다산부대가 18개 동맹군과 함께 주둔하고 있는 아프간 바그람기지 안에 마련한 ‘다산교육관’에 지난달 말 한글강좌가 개설됐다. 바그람기지 게시판을 통해 수강생 모집이 이뤄진 강좌는 3일 만에 정원 20명이 모두 채워졌다. 현재 동맹군을 대상으로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1시간30분씩 기초 한국어를 교육하고 있다. 바그람기지의 ‘한글 열풍’에는 다산부대 통역장교인 이영석(34·학군 32기) 대위의 노력이 매우 컸다. 업무 협조 등으로 동맹군과 접촉이 잦은 이 대위가 일부 동맹군의 요청으로 한글을 한두 마디씩 가르쳐 준 게 계기가 돼 한글강좌까지 생기게 된 것. 현재 바그람기지 안에서는 동맹군들과 한국군 장병들이 서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는 게 흔한 일이 됐다고 한다. 한글 강좌에 등록한 동맹군 중에는 한국 근무 경험이 있거나 아프간에 이어 한국에서 근무할 장병, 그리고 어머니나 부인 등 가족이 한국계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 오거스(32) 대위는 “아프간 근무 이후 한국에서 근무할 예정”이라며 “한국인에게 한글로 말을 하면 더욱 친근해질 수 있을 것 같아 한글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동의·다산부대는 아프간 현지 동맹군에 대한 지원은 물론, 현지인 의료지원을 위해 2003년 2월과 2002년 2월 각각 파병됐으며 현재 다산부대 5진과 동의부대 7진 등 총 200여명이 임무를 수행 중이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7억원 어치 황금의 배를 몰고 온 사나이

    7억원 어치 황금의 배를 몰고 온 사나이

    자유를 보상 받은 방진호(方震昊)「총좌(總佐)」의 현주소는 전쟁이 한창 막바지에 이른 1950년 10월 14일 새벽 - 인천 앞바다에는 자욱한 아내를 헤치면서 북괴기가 펄럭이는 50「톤」급 발동선 한 척이 소리없이 미끄러져 들어왔다. 갑판 위에는 괴뢰군 총좌(대령급) 한 사람을 둘러싸고 20명의 북괴장교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대한민국 만세」를 목청이 터져라 소리쳐 부르고 있었다. 자유를 찾아 남하한 조그마한 발동선. 그러나 이 발동선에는 시가 7억원 상당의 금괴 1「톤」반이 실려 있는 황금의 배였다. 18년 전 영웅, 오늘은 왕초(王草) 거부(巨富)의 꿈 대신「평애원장(平愛院長)」 괴뢰군 방진호 총좌. 부하장교 20명과 황금덩어리를 싣고 자유를 찾았던 이 영웅은 자기와 자기 부하가 자유를 찾은 대신 황금은 몽땅 대한민국 정부에 바쳤다. 그러나 정부는 이 영웅의 값진 행위에 보답하기 위해 1억 3천만환(현화 1천 3백만원)을 보상금으로 지급했다. 1억 3천만환의 거액을 쥐고 거부의 꿈을 지닌 채 한때 군에서 문관으로 있다가 53년 가을 홀연히 자취를 감추어 버린 지난 날의 영웅 방진호 총좌는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오늘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경기도 평택군 송탄읍 신장(新場)리 경부선철도 연변에 30채의 집이 오밀조밀하게 들어서 있는 평애원. 고아원겸 양로원인 이곳에서 넝마주이 왕초라는 별명을 가진 50대의 허수룩한 한 사나이가 조용히 과거를 되씹으며 살아가고 있다. 평애원 원장인 이 사나이 - 이 사람이 바로 황금의 배와 부하장교 20명을 데리고 자유를 찾았던 지난 날의 영웅 방진호씨(49)이다. 1억 3천만환의 보상금 태풍 사라호로 일장춘몽 한때 거부의 꿈을 지니고 전남 목포 근해에서 간석지를 막아 염전을 만들었지만 예기치 않았던 「사라」호 태풍으로 방대한 염전을 하루 아침에 잃어버린 채 알거지가 되어버린 방씨. 그 후 이곳에서 넝마주이들을 모아 스스로 넝마주이 왕초로 전락(?)해버린 이 사나이의 기구한 운명은 글자 그대로 파란만장의 연속이다. 평안북도 신의주가 고향인 방씨는 해방 전 만주국 안동현(安東縣)에서 측량학원을 수료한 뒤 집안현(輯安縣)의 건설국 기사로 취직, 기구한 운명의 첫발을 내디뎠다.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누렸던 방씨는 그곳 요릿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요릿집 종업원「요리명」이라는 중국 사나이와 친히 사귀기 시작했다. 타향에서의 고독도 풀 겸「요리명」과 술자리도 같이하여 손님과 종업원의 관계가 아닌 서로의 심금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이국땅에서 해방을 맞은 방씨에게는「요리명」을 사귄 덕분으로 하루 아침에 큼직한 감투가 굴러들어왔다. 며칠 전까지 요릿집 종업원 행세를 하던 중국 공산당의 거물「요리명」이 집안현 수석(首席)의 자리에 있으면서 방씨를 집안현 평양변사처장(平壤辯事處長:영사)으로 임명한 것이다. 벼락감투를 뒤집어 쓴 방씨는 46년 2월 평양에 부임했다가 그 해 11월에는 소위 북조선인민위원회 조직에 관여, 평양철도경비사령부 총책 유경수(柳慶洙)중장(김일성의 매부)의 부책(副責)으로 중용되었다. 그 후 괴뢰정권의 내무성 정치보위부 직속기관인 진남포(鎭南浦)제련소 총책으로 영전한 방씨는 6·25 동란을 이 자리에서 맞았다. 원래부터 투철한 공산주의 사상자가 아닌 방씨는 차차 자유에의 향수를 느끼기 시작, 기회만 있으면 남하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뜻이 같은 부하장교 20명을 포섭한 방씨는 이왕이면 당시 진남포제련소에 보관되어 있던 백금 3「톤」, 금 1「톤」반, 수은 70「톤」까지 같이 싣고 자유를 찾기로 결심했다. 드디어 50년 10월 한창 패주에 정신 없던 괴뢰정권은 방총좌에게 진남포제련소의 금과 수은을 만주 여순(旅順)으로 운반하라는 긴급지시문을 띄웠다. 이 지시문을 받은 방총좌는 때가 왔다고 느꼈다. 3개월 전부터 탈출 모의를 진행해오던 부하 20명과 비밀회의를 거듭한 끝에 D「데이」를 10월 10일 밤 11시로 정했다. 10월 10일 밤 11시. 칠흑같이 어두운 진남포 부두에는 50「톤」급 발동선 2척이「엔진」소리마저 죽여가며 조용히 와 닿았다. 북괴 경비병 10여 명의 엄중한 감시 아래 한 척에는 황금 1「톤」반이 실려지고는 또 한 척에는 백금 3「톤」과 수은 70「톤」이 실려졌다. 방총좌와 부하장교 20명은 황금이 실린 앞배에 탔다. 배 두 척이 진남포항을 벗어나 망망한 서해에 들어서서 한 시간쯤. 선수를 중공방면으로 막 돌리려는 찰나. 방총좌는 선장의 뒷머리에 권총을 갖다 대고 조용히 그러나 엄숙하게 명령했다. 『선수를 남쪽으로 돌려라!』 이 때 경비병 10여명이 반항, 조그마한 발동선에선 교전이 벌어졌다. 20분만에 싸움은 방총좌의 승리로 끝나고 10여명의 경비병은 서해에 수장되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해전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총격 소리를 들은 북괴경비정 한 척이 추격, 또다시 해상총격전이 벌어졌다. 간신히 경비정의 추격을 벗어나 연평도 앞바다에 도달했을 때 수은과 백금을 실었던 뒷배가 총탄에 구멍이 뚫려 애쓴 보람도 없이 바다 깊숙이 수장되어 버렸다. 진남포를 떠난 지 나흘 만에 방총좌는 수은과 백금은 바다에 수장되었지만 부하장교 20명과 황금 1「톤」반을 이끌고 무사히 목마르게 그리던 자유를 찾은 것이다. 53년 봄 1억 3천만환의 거액을 쥔 북괴총좌가 아닌 민간인 방진호씨는 거부의 꿈을 안은 채 전남 목포 근해에서 간석지를 막아 염전을 만들었지만 4년간의 피땀나는 노력도「사라」호 태풍으로 일장춘몽 빈털터리가 되어버렸다. 수장(水葬)한 백금 3톤 수은 70톤 꼭 찾고 말겠다는 게 소원 돈하고는 인연이 없는 방씨. 이때부터 인생을 덤으로 생각한 방씨는 남을 위해 살기로 작정했다. 57년 가을 무작정 찾아온 것이 지금 그가 살고 있는 경기도 평택군 송탄읍 신장리 일명「쑥고개」라는 미(美)기지촌 주변이었다. 방씨는 우선 손수 흙벽돌을 찍어 경부선 철도연변에 조그마한 집을 짓고 거리에서 방황하는 걸인 20명을 수용했다. 1개월이 지난 뒤 평애원이라는 간판이 내걸리고 식구도 1백여 명으로 불어났다. 11년이 지난 오늘날 평애원은 30채의 집이 들어섰고 식구도 372명으로 불어났으며, 평택과 방성(彭城) 두 곳에는 분원도 마련됐다. 그 동안 이곳을 거쳐간 원생 중에는 현역 육군대위가 있는가 하면 수백만원을 치부한 어엿한 실업가도 10여명이나 된다는 것. 원장으로 보다는 넝마주이 왕초로 더 알려진 방씨. 방씨의 유일한 소원은 자유를 찾아 남하하던 당시 연평도 앞바다에 아깝게 수장되어버린 백금 3「톤」을 꼭 찾고 말겠다는 것이다. <수원 = 한의교(韓義敎)씨> [ 선데이서울 68년 10/13 제1권 제4호 ]
  • 잠깐 참으셔요 - 방년 20세의 겨울

    잠깐 참으셔요 - 방년 20세의 겨울

    늘어나는 여성자살 전체 사인(死因)의 제2위 「덴마크」10만명에 29명 한국은 25명의 자살률 자랑스럽지 못한 기록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마태복음 27장 5절) - 「유다」이후 많은 인간가족이 저마다의「절박한 이유」로 자살을 했다. 「클레오파트라」나「오필리아」,「마릴린·몬로」는 결국 자살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여심의 선각자지만 현대인에 있어, 특히 여자의 경우 자살은「아주 매력적인 것」으로까지 언제부터인가 심상에 뿌리 박혀져 버리고 말았다. 세계의 자살 추계는 10만에 대해 10명 꼴이 평균. 자살률이 제일 높은 나라는「덴마크」로 10만 명에 대해 29명이며 가장 적은 나라는 이태리,「스페인」으로 2명 꼴이다. 우리나라는 25명 정도로 자랑스럽지 못한 세계기록. 우리나라의 자살이「가난형」인데 반해「덴마크」같은 쪽은「부자형」으로 통하고 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너무나「스트레스」가 없어도 파멸적인 고적감을 느끼게 된다는데「덴마크」같은 선진국의 자살이 이런「케이스」. 일반적으로 자살 기도자는 여성쪽에 많은데 남자와의 비율은 1대 1.3 정도. 그러나 여자에겐「미수」가 많아 실제로 죽는 숫자는 남녀가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최근 자살추세를 보면 10대와 젊은 여성층에서 특히 자살자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은 한국 이외의 나라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너무나 한국적인 경향이라고-. 인간해약(解約) - 20세가 절정 67년 한 해 동안의 통계에 의하면 서울시내에서의 여성의 자살은 전체 사망원인의 제2위를 차지하고 있다. 1위는 결핵이며 3위는 암. 우석(友石)의대 산부인과 교실에서 최근 조사한 사인별 사망통계에 의하면 총 대상 1천 9백명 중 결핵으로 인한 병사는 309명이며 2위인 자살은 288명, 3위인 암은 209명이며 그 다음이 뇌일혈 167명, 모성사망 128명, 고혈압 110명의 순서로 되어있다. 자살자 중 36%인 105명은 겨울에 죽었으며 여름에는 80명, 가을에는 53명, 그리고 봄에는 50명이 각각 자신에 대한 살인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종전의 통계는 봄에 특히 자살기도자가 많음을 보여주었는데 이번 조사에서는 겨울이 단연 으뜸. 이것은 또 다른 뜻에서 겨울이 자살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최적의 계절이라는 의미도 된다. 자살을 가장 즐기는 여성군(群)은 어느 연령층일까? 우석의대의 이번 조사에 의하면 288명의 자살여성 중 33%인 95명은 20세에서 24세까지의 방년. 다음이 15세에서 19세까지의 10대 여성이며(47명), 25~29세는 46명, 30~34세는 36명, 35~39세는 21명, 40~44세는 18명, 그리고 45~50세는 21명으로 되어있다. 결국 많은 24세 이하의 꽃다운 처녀가 겨울이라는 낭만적인 계절을 택해 스스로「인간해약(人間解約)」을 하고 있다고 이번 조사를「리드」한 홍성봉(洪性鳳) 교수는 말하고 있다. 여자들은 왜 자살에 매료되는가? 장병임(張秉琳) 교수(서울문리대)는 가능한 자살예방수단으로「초자아(超自我)」를 역설한다. 『정신분석학상의「초자아」는 교육이다. 젊은 여성들의 자살은 90%가 애정문제에 원인이 있는데 이것은 가정교육이라는 하나의「절대수단」으로 극복될 수 있는 문제이다. 요즘 부모들은 딸에게 이성교제(정신적인)는 허용하면서 막상 정조관에 있어서는 애매하고 엄격한 자신들의 견해를 강요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결국 자살을 할 수 밖에 없는 젊은 여성들의「의식의 파탄」은 부모에게 절대적인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자살예비역 하루 20명꼴 「살 수 없어」아닌「싫어서」 예방센터 신세 4천여 성모병원 안에 있는 음독자살예방「센터」(소장 김종은(金鍾殷)박사)에는 해마다 약 9백명의 음독자가 들어온다. 67년 한 해 동안 이곳 신세를 진 자살기도자만 해도 남자 355명에 여자 488명 등 도합 843명. 그런가 하면 서울, 연세, 우석, 적십자 등 비교적 큰 종합병원의 응급실에 실려오는「자살예비역」만 해도 하루 20여명을 헤아린다. 김종은 교수에 의하면 지난 63년부터 67년까지 5년 동안 성모병원의 자살예방「센터」를 이용한(?) 음독자는 모두 4,548명에 이르고 있다. 남자는 1,975명이며 여자는 2,573명,「여성우세」는 여기서도 예외가 없다. 전체 자살기도자의 57%인 2,591명은 20대, 17.5%인 792명은 10대이며, 16.3%는 30대, 9.23%는 40대라는 것이 김종은 교수의 조사에서 밝혀지고 있다. 여성자살자에겐 자살원인, 자살방법, 연령분포 등 자살 주변에 얽힌 심리적「델리커시」가 현란하리만큼 많다. 한마디로 살 수 없어 죽는다는 것보다는 살기가 싫어서 죽는다는 것이 그녀들의 죽음의 변(辯). 20대 여성의 경우 자살원인의 46%가 애정 갈등으로 되어 있으나 간접적이고 충동적인 것까지 합하면 거의 90%가 애정문제에 귀착되고 있다.「도니제티」의「멜로디」같은「사랑의 묘약」이 그녀들의「목마른 상심」엔 필요하다는 얘기. 좀 묵은 통계지만 이 땅 춘향의 후예들에게는 거의「스폰테이녀스」할 정도로「자살에의 향수」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수년 전「가톨릭」의대에서 3천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여고생의 49%, 여대생의 62%가『자살을 할 수도 있다』는 우울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의지박약에서 오는 생활의 도피』라는「뒤르케임」의 자살론은 이젠 아무래도 너무 낡은 관념론인 것 같다. 한국 - 자살자의 천국 장병임 교수는 여자들, 특히 젊은 여자들의 자살을 최대한 막는 효과적인 처방으로『올바른 성교육의 실시』를 주창한다. 이성교제 자체를「타부」시 하든지, 그렇지 않을 바에야 최소한 정조관에 대한「개념의 정립」만큼은 딸들에게 세워 주어야겠다는 것이다. 한국「가이던스·센터」엘 찾아오는 여성 중「자살에의 의지」를 호소하는 층은「하이틴」과 25세 이전의 미혼여성들.「카운슬링」의 내용도 이상적인 상대를 얻기 위한 것보다는 이미 저질러진 사건들 - 이를테면 처녀성의 상실이라든지 혼전임신 같은 건강치 못한『어찌 하오리까』뿐이라고 장교수는 개탄한다. 「또 하고 말겠다」도 43%나 이유는 애정, 성교육 급무(急務) 김종은 교수는 이와는 좀 다른 각도에서 자살예방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전체 자살자의 반이 약물에 의한 자살을 기도하고 있으며 약물의 58%가 정신신경안정제인 만큼 이들 약품의 판매를 엄격히 규제하면 될 것 아니냐는 것이다. 김교수에 의하면 자살약으로 이용되는 정신신경안정제를 거의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와 대만 그리고「타일란드」정도 뿐이라고. 외국의 경우 한 번 자살을 기도한 사람은 으레 정신과에 입원시키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겨우 35%만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음독자살예방「센터」의 집계에 의하면 자살 재기도자는 전체의 10%이며『또 자살을 하겠다』는 사람만도 전체 자살기도자의 43%나 되고 있는 딱한 실정이다. 「딱한 여심(女心)」몇 가지 금년에 들어와서도 많은 생명이 자살의 길을 택했다. 현직 검사가 목매어 죽었는가 하면 대학교수가 채귀(債鬼:채무)에 시달리던 끝에 음독 자살했다. 국민학교 교장과 현직회사 사장이 빚에 쪼들려 투신을 했으며, 악명 높은 집단자살도 연달아 일어났다. 여자들의 자살은 그에 비하면 어울리지 않을 만큼 사뭇 분홍빛. 자살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딱한 여심」의 명세(明細)는 이러했다. <케이스·1> 최X순(32)여인. 어머니날인 5월 8일 세 딸과 함께 음독, 두 딸과 함께 자살했다. 작년 10월 남편과 사별한 최여인은『남은 두 아들을 공부시켜달라』는 요로에게 보내는 유서를 남겼다. <케이스·2> 김X자(27)양. 6월 5일 이룰 수 없는 결혼을 비관, 애인집의 연탄난로에 머리를 파묻고 자살했다. 노처녀인 김양은 애인과 깊은 관계까지 맺어 임신까지 했으나 사회적인 흠(전과자?)이 있는 남자에게는 딸을 줄 수 없다는 모정 앞에서 좌절, 자살했다.『엄마의 훌륭한 딸이 되고 싶었어요. 그러나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그분을 버릴 수는 없었어요…』김양의 유서. <케이스·3> 이X관(21)양. 6월 22일 조흥은행본점 12층에서 투신자살한 이양은 모 공대건축과 2년생. 2년 동안 서울대, 연세대를 계속 낙방한 것을 비관하고 자살했다. <케이스·4> 홍X정(35)여인. 1월 4일 애인 황모(24)씨와 인천 모 여관에서 권총 자살했다. 손아래 남자와의 사랑이 빚은 정사 사건. [ 선데이서울 68년 10/6 제1권 제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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