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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산자교 주변에 버스주차장

    서울 성동구는 19일 “청계천 하류 고산자교∼제2마장교 주변에 대형버스 주차장을 만들기로 하고 시에 사업비 13억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구는 내년 3∼6월 이 구간의 제2 마장교→적십자사 방향 도로 2개 차로 가운데 1개와 청계천 둑 비탈길, 기존 인도 등을 활용, 대형버스 25대가 들어갈 수 있는 주차장을 만들 계획이다.구는 또 이 구간 안에 위치한 성동구 제설 발진기지와 마장동 437,438번지 일대 무허가 음식점이 늘어서 있는 2500여㎡에 2007년 상반기까지 식당가, 화장실, 쉼터 등의 시설을 조성할 예정이다.
  • 청계천 8곳에 ‘100원 화장실’

    하루 평균 방문객이 수만명에 이르지만 화장실 부족으로 불편을 주고 있는 서울 청계천에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사용할 수 있는 9000만원짜리 8개의 무인 화장실이 설치된다. 서울시는 시비를 집행하고 사업은 해당 자치구가 맡는다. 설치 장소는 삼일빌딩 앞 장통교 인근인 종로구 관철동 10의2와 관수동 94의1 한국전력 변전소 앞, 중구 장교동 베를린광장과 하나빌딩(옛 청계천홍보관) 부근, 성동구 황학교 우안(右岸)과 마장동 고산자교 우안, 동대문구 황학교 좌안(左岸)과 청계천과 성북천의 합류지점에 내년 2월까지 각각 설치된다. 화장실은 전자동으로 출입통제나 냉·난방, 음성안내 등이 인터넷으로 제어된다. 또 변기와 바닥 세척·소독이 자동으로 이뤄지며 남녀·장애인 모두 쓸 수 있다. 다만 청계천∼성북천 합류지점에는 트레일러에 실려 이동이 가능한 무료 화장실이 설치된다. 특히 새로 만들어지는 화장실은 24시간 개방, 야간시간대에 청계천을 방문하는 시민들의 화장실 이용 불편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서울시는 기대하고 있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이사람] 이종격투기 도전 신종우 한양증권 이사

    [이사람] 이종격투기 도전 신종우 한양증권 이사

    요즘 바쁘게 생활하는 직장인 중에도 틈틈이 운동을 하며 건강을 챙기는 이들이 많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선 체력도 실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업 경쟁이 치열한 증권사의 40대 임원이 가장 격렬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이종격투기(MMA)에 흠뻑 빠져 있다면 보통의 경우는 아닐 것 같다. 신종우(41) 한양증권 법인영업팀 이사가 그 주인공이다. ●내년엔 링에서 1승이 목표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근처의 한 스포츠센터. 각종 스포츠 단련장이 즐비한 이곳에 이종격투기 체육관도 있다.K-1 선수로 변신한 최홍만 덕분에 이미 눈에 익숙한 포즈로 땀을 흘리는 동호인들이 제법 많다. 여성 회원들을 포함해 거의 대부분 직장인들이다. 한쪽 링에서 다부진 덩치(키 173㎝)의 신 이사가 키가 좀 커 보이는 회원과 맞붙었다. 신 이사는 링에 오르자마자 상대방의 무차별 주먹을 안면에 허용했으나 왼발 ‘미들킥’으로 옆구리를 차고 재빨리 목조르기(암트라이앵글초크)에 들어갔다. 이종격투기는 복싱, 레슬링, 무예타이 등 갖가지 무술의 장점을 합친 종합무술이다.K-1과 경기방식이 거의 똑같지만, 선 채로만 경기를 하는 K-1과 달리 레슬링처럼 누워서 조르기 등을 할 수 있다. 신 이사는 법인영업 업무 특성상 저녁식사 약속이 많지만 약속이 없으면 일주일에 2∼3번씩 체육관을 찾는다. 약속이 있어도 오후 3시 주식시장이 끝난 뒤 꼭 몸풀기 훈련이라도 하고 약속 장소에 간다.2년째 이종격투기에 매료된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년의 꿈은 아마추어 대회에서 1승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고픔 잊으려고 다시 운동 신 이사는 어릴적부터 운동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운동이 한때 자살충동에 빠질 만큼 망가졌던 자신을 수렁에서 건져주었기 때문에 지금은 삶의 일부로 여기고 있다. 대구에서 자란 신 이사는 1984년 영남대 법학과에 입학하기 전에 공인 유도 3단, 합기도 2단의 실력을 갖췄다.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그는 대학축제의 ‘A급 MC’로도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대학생의 월 수입이 600만∼700만원이나 돼 술집 출입도 잦았다. 학사장교로 군에 입대, 육군 특공연대에서 특공무술도 익혔다. 군 전역후 투자신탁증권사에 입사했다. 동료들을 앞질러 능력을 발휘하며 몇년 만에 핵심 영업점인 압구정동 지점장으로 나갔다. 적립식펀드와 비슷한 주식형수익증권을 판매하면서 ‘원금보전기법’의 상품을 ‘원금보장’상품이라고 둘러대고 목돈 유치에 과욕을 부리다 그만 사고를 친다. 주가하락으로 각서까지 써주고 끌어들인 고객 계좌와 선후배들의 채무보증이 빚으로 바뀌었다. 갚아야 할 빚이 5억원이나 됐다. 월급은 차압을 당하고 가족과 함께 수원의 월세 단칸방으로 밀려났다. 볼모로 직장생활을 하며 외환위기를 맞았다. 신 이사는 “주머니에 돈이 없어서 직장 동료들이 점식을 먹으러 나가면 혼자 수돗물로 배를 채우고 배고픔을 잊기 위해 회사 체력단련장에서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면서 “바벨을 들면서 대학 때 흥청망청 돈을 쓰고, 하루에 수십억원을 주무르던 투신사 지점장의 처지가 처량하고 또 부끄럽기도 해서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운동이 재기의 투지를 불러 그러나 운동을 시작하자 ‘다시한번 해보자.’는 투지가 생겼다. 퇴근하면 증권가에서 ‘투자의 귀재’로 통하는 전문가를 찾아가 돈 버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떼를 썼다. 딱한 사정을 이해한 전문가로부터 장외주식거래, 파생상품 투자 등에 대한 노하우를 배웠다. 또 새벽 3시에 수원 집을 나와 과천의 청계산을 4시간 동안 등반하고 회사에 출근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6개월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차츰 돈벌이가 좋아져 3년여 만에 5억원의 빚을 모두 갚았다. 그는 “빚을 다 갚고 회사를 그만두는 날 남은 재산은 760만원뿐이었다.”면서 “앞으론 빚 없는 세상에서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자문사 등을 거쳐 3년전 한양증권에 둥지를 틀었다. 브라질 유술인 ‘주짓수’ 등 운동은 계속했다. 법인영업은 펀드매니저, 연금 담당자 등을 상대로 수천만원에서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기관 자금의 주식매매를 유치하는 업무다. 어떻게 하든 ‘큰손’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기부는 즐거움이며 책임감 때문 신 이사는 법인영업을 하며 자신이 건네준 명함이 그 자리에서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경험을 수없이 했다. 그러나 그 정도에 기가 죽을 그가 아니었다. 언젠가 한 법인 사무실에 들어선 그는 무작정 한 책임자의 옆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당신 누구냐.”고 책임자가 묻자,“이곳에 아는 사람이 없어 창피해서 그러니 잠시만 앉아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몇분 뒤 꾸벅 인사만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신 이사는 “3∼4번 그렇게 행동하자 나중에 그 책임자가 ‘뭐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고 먼저 말을 걸더라.”면서 웃었다. 신 이사는 지금 증권가에서도 손꼽히는 수억원대 연봉의 영업전략 전문가다.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가까운 사찰을 찾아 시주하는 게 즐거움이다. 매월 사회복지재단과 노숙자단체에 상당한 금액을 기부하는 것은 힘겹게 보낸 과거를 되돌아보며 어떤 책임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며 말을 아꼈다. 그는 “결코 다시는 인생의 링 위에 쓰러지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눈에 띄네 이 얼굴] ‘태풍’의 이정재

    [눈에 띄네 이 얼굴] ‘태풍’의 이정재

    축구 경기로 치면, 간판 스트라이커를 뛰어 넘는 기량으로 기대밖 역전골을 작렬시켰다고나 할까. 영화 ‘태풍´(감독 곽경택, 제작 진인사 필름)의 이정재 얘기다. 여타 영화라면 ‘원톱´ 주연으로 전혀 손색 없는 그이지만, 영화 개봉전까지는 장동건이라는 초특급스타의 한발짝 뒤에 서야 했다. 그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는 걸까. 영화속 이정재의 카리스마는 단연 돋보인다. 그가 맡은 역할은 탈북자 출신의 현대판 해적 ‘씬´(장동건)에 맞서는, 철저한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엘리트 해군 장교 강세종역.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을 거듭해 온 그답게 이번 작품에서는 ‘분출´이 아닌 ‘억제´하는 감정 연기를 훌륭히 해냈다. 장동건의 ‘뒤틀린´ 카리스마 연기보다 더 잔상에 남는다는 것이 시사회 반응. 노력도 많이 했다. 촬영 중 웬만하면 대역을 쓰지 않고 위험한 액션 연기를 해냈고, 단 몇 초로 지나가는 바닷가 ‘전투 럭비´ 장면을 찍기 위해 1년 넘게 술, 담배를 끊고 근육을 만들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후세인 재판 속개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이 “처형당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재판부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등 전날 파행이 빚어졌던 후세인 등 8명에 대한 특별 재판이 6일 속개됐다. 바그다드 특별법정에서 계속된 이날 4차 공판에는 ‘증인 A’와 ‘증인 B’라 불린 여성 증인 2명이 장막 뒤에서 목소리를 변조한 채 지난 1982년 두자일 마을에서 벌어졌던 학살극에 대해 증언했다. 당시 16세였던 증인 A는 지난달 암으로 사망한 정보장교 출신 와다 알 셰이크가 자신에게 옷을 벗도록 명령한 뒤 공포탄을 발사하는 등 끔찍한 가혹행위를 저질렀으며 전기 고문과 구타도 자행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바그다드 소재 경찰학교에서는 여성 2명에 의한 자살 폭탄테러가 발생, 경찰 등 40명이 숨지고 75명이 다치는 등 11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신군부, DJ구명 美와 물밑거래”

    ‘5·17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형집행 여부를 놓고 신군부와 미국 백악관 사이에서 ‘거래’가 오갔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가 처음 공개됐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은 6일 백악관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뒤 인도적·정치적 차원에서 김 전 대통령의 구명에 나섰다는 내용의 기밀문서와 이희호 여사가 백악관에 보낸 탄원 서신 등 미공개 사료를 공개했다. 미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책임자 도널드 그레그(전 주한미대사)는 1980년 10월 이 여사의 탄원 편지를 받고 백악관 안보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에게 서신의 내용과 자신의 의견을 더해 문서로 보고했다. 이 여사는 1980년 10월1일 그레그에게 재판의 부당성을 알리고 DJ의 구명을 바라는 영문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는 “사형을 면하면 정치를 포기하고 기독교 신앙을 보급하는 일을 하겠다.”는 계획을 함께 적었다. ‘DJ를 구명해야 한다.’는 보고를 받은 브레진스키는 같은 달 20일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에게 “김(DJ)의 구명을 위해 사적인 방법을 동원해 한국 정부에 지속적으로 강력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편지를 전달했다. 이 편지에는 1980년 8월 대통령에 당선된 전두환씨가 10월 미국 수뇌부의 정황을 살피려고 ‘믿을 만한’ 장교를 미국에 밀사로 보냈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다. 정권 창출의 정당성과 미국의 ‘승인’이 필요했던 신군부는 대외적으로 DJ를 사형하겠다고 위협을 하면서도 밀사를 미국에 파견,‘DJ카드’를 손에 쥐고 미국과 협상을 시도한 것으로 풀이된다.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실전 논술] 사회속에서 개인의 책임과 역할

    ●다음은 전광용의 (꺼삐딴 리)에서 발취한 글이다 이 글에 등장하는 이인국의 행적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아 사회 속에서 개인의 책임과 역할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유의사항 1)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600자 내외(±200)로 쓸 것. 2)이인국이 친일 행동을 했다는 점에 대한 비판으로 일관하지 말 것. 3)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의견을 진술할 것. 4)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개인의 윤리 덕목을 제시할 것. (가)벌써 육 개월 전의 일이다. 형무소에서 병보석으로 가출옥되었다는 중환자가 업혀서 왔다. 휑뎅그런 눈에 앙상하게 뼈만 남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환자. 그는 간호원의 부축으로 겨우 진찰을 받았다. 청진기의 상아 꼭지를 환자의 가슴에서 등으로 옮겨 두 줄기의 고무줄에서 감득되는 숨소리를 감별하면서도, 이인국 박사의 머릿속은 최후 판정의 분기점을 방황하고 있었다. 입원시킬 것인가, 거절한 것인가……. 환자의 몰골이나 업고 온 사람의 옷매무새로 보아 경제 정도는 뻔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마음에 켕기는 것이 있었다. 일본인 간부급들이 자기 집처럼 들락날락하는 이 병원에 이런 사상범을 입원시킨다는 것은 관선 시의원이라는 체면에서도 떳떳지 못할뿐더러, 자타가 공인하는 모범적인 황국신민(皇國新民)의 공든 탑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그는 이런 경우의 가부 결정에 일도양단하는 자기 식으로 찰나적인 단안을 내렸다. 그는 응급 치료만 해 주고 입원실이 없다는 가장 떳떳하고도 정당한 구실로 애걸하는 환자를 돌려보냈다. 환자의 집이 병원에서 멀지 않은 건너편 골목 안에 있다는 것은 후에 간호원에게서 들었다. 그러나 그쯤은 예사로운 일이었기에 그는 그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버렸다. 그런데 며칠 전 시민 대회 끝에 있는 해방 경축 시가 행진을 자기도 흥분에 차 구경하느라고 혜숙이와 함께 대문 앞에 나갔다가, 자위대 완장을 두르고 대열에 끼인 젊은이와 눈에 마주쳤다. 이쪽을 노려보는 청년의 눈에서 불똥이 튀는 것 같은 살기를 느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어리벙벙하던 이인국 박사는, 그것이 언젠가 입원을 거절당한 사상범 환자 춘석이라는 것을 혜숙이에게서 듣고야 슬금슬금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집으로 이거 들어왔다. 그 후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거리로 나가는 것을 피하였지마는 공교롭게도 어제 저녁에 그 벽보 앞에서 마주쳤었다. (나)나는 코 허리에 내려온 안경을 올리면서 눈을 부릅떴다. 그의 시각은 활자 속을 헤치고 머릿속에는 아들의 환상이 뒤엉켜 들어차 왔다. 아들을 모스크바로 유학시킨 것은 거지의 억지에서였던 것만 같았다. 출신 계급, 성분, 어디 하나 부합될 조건이 있었단 말인가. 고급 중학을 졸업하고 이과 대학에 입학한 바로 그 해이다. 이인국 박사는 그 때나 지금이나 자기의 처세 방법에 대하여 절대적인 자신을 가지고 있다. “얘, 너 그 노어 공부를 열심히 해라.” “왜요?” 이들은 갑자기 튀어나오는 아버지의 말에 의아를 느끼면서 반문했다. “야 원식아, 별 수 없다. 왜정 때는 그래도 일본말이 출세를 하게 했고 이제는 노어가 또 판을 치지 않니.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바에야 그 물 속에서 살 방도를 궁리해야지. 아무튼 그 노서아 말 꾸준히 해라.” 아들은 아버지의 말에 새삼스럽게 자극을 받은 것 같진 않았다. “내 나이로도 인제 이만큼 뜨내기 화화쯤은 할 수 있는데, 새파란 너의 낫세로야 그걸 못하겠니?” “염려 마세요, 아버지…….” 아들이 대답이 그에게는 믿음직스럽게 여겨졌다. 이인국 박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디 코 큰 놈이라구 별것이겠니, 말 잘 해서 징정이 통하기만 하면 그것들두 다 그렇지…….” 이인국 박사는 끝내 스텐코프 소좌의 배경으로 요직에 있는 당 간부의 추천을 받아 아들의 소련 유학을 결정짓고야 말았다.(중략) “가만 있어요, 호랑이두 굴에 가야 잡는 법이오. 무슨 세상이 되든 할 대로 해 봅시다.” “그래도 저 어린 것을 어떻게 노서아까지 보낸단 말이오.” “아니 중학교 아이들도 가지 못해 골들을 싸매는데, 대학생이 못 가 견딜라구.” “그래도 어디 앞일을 알겠소…….” “괜한 소리, 쟤가 소련 바람을 쏘이구 와야 내게 허튼소리 하는 놈들도 찍소리를 못 할 거요. 어디 보란 듯이 다시 한 번 살아 봅시다.” 아들의 출발을 앞두고, 걱정하는 마누라를 우격다짐으로 무마시키고 그는 아들의 유학을 관철하였다. ‘흥, 혁명 유가족도 가기 힘든 구멍을 친일파 이인국의 아들이 뚫었으니 어디 두고 보자…….’ 그는 만장의 기염을 토하며 혼자 중얼거리고 희망에 찬 미소를 풍겼다. 그 다음 해에 사변이 터졌다. 잘 있노라는 서신이 계속하여 왔지만 동란 후 후퇴할 때까지 소식은 두절된 채로였다. 마누라의 죽음은 외아들을 사지로 보낸 것 같은 수심에도 그 원인이 있었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이인국 박사는 신문 다찌끼리 속에 채워진 글자를 하나도 빼지 않고 다 훑어 내려 갔다. 그러나 아들의 이름에 연관되는 사연은 한마디도 없었다.‘이 자식은 무얼 꾸물꾸물하느라고 이런 축에도 끼지 못한담……. 사태를 판별하고 임기 응변의 선수를 쓸 줄 알아야지, 맹추같이…….’ ● 지문의 분석 이 소설은 정신적 지조 없이 시류(時流)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오로지 자신의 영달과 안일만을 추구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우리나라 지도층을 신랄하게 비판한 작품이다. 지문으로 제시한 부분은 일제 강점기하에서 모범적인 황국신민(皇國新民)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사상범 춘석의 입원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장면과 소련군 장교를 배경 삼아 아들의 모스크바 유학을 결정짓는 장면이다. 왜정 때는 일본말을, 이제는 노어를 해야 버젓이 살 수 있으며,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바에야 그 물 속에서 살 방도를 궁리해야 한다는 말에서 이인국의 성격이 잘 드러나고 있다. 식민지 통치, 해방,6·25전쟁, 산업화 등등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오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가, 사회 속에서 개인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주인공 이인국은 일제 때 의과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회중시계를 상품으로 받는다. 그는 의술이 뛰어났지만 권력층만 상대하면서 그의 자녀를 일본인 학교에 보내는 것은 물론 시의원에다가,‘국어(國語) 상용(常用)의 가’라는 칭호를 받는 등 철저한 친일파로 살아간다. 해방 후 소련군이 진주해 오고 그는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앞날을 알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감방에 돌던 전염병을 퇴치하고 러시아어를 힘써 배운다. 그러던 중 소련군 장군 스텐코프의 혹 제거 수술을 성공적으로 해 주고 그의 신임을 얻어 석방된다. 뿐만 아니라 소련군 장군의 후원에 힘입어 아들을 모스크바로 유학 보낸다.6.25 전쟁이 터지자 그는 월남하여 병원을 개업하는데, 병원은 종합 병원을 방불케 할 만큼 성공한다. 그는 이제 영어를 열심히 배우고 미국 대사관 직원과 교분을 쌓아 그의 추천으로 미국무부 초청을 받아 미국 길에 오른다. 결국 이 작품은 시류에 타협하면서 일신의 안녕만을 추구하는 인간형에 대한 비판이라는 주제 의식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출제의도 이 문제는 현대와 같은 경쟁 사회에서 개인은 사회에 대하여 어떤 책무를 지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요구한다. 이것은 장차 사회 속의 개인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소양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연대감이 무너지고 개별화, 분자화되어 가는 시대적 병폐를 치유하는 길을 모색하는 일이기도 하다. ● 생각하기 먼저 이 지문에 나타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한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이인국이 일제 시대와 해방 직후의시기를 지내 오면서 사회 속에서 어떤 처세를 하였느냐 하는 점이다. 사상범 춘석의 입원을 거절하고 아들을 모스크바로 유학 보낸 이유가 무엇인가에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잇다. 그리고 현대 사회의 특징과 개인 윤리의 개념을 생각해 본다. 현대 사회가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고 그 특징이 무엇인지를 확정해야 거기에 적합한 개인 윤리를 탐색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대 사회의 특징과 관련지어 개인에게 요구되는 윤리적 덕목이 무엇인지 확정한다. 희생, 봉사, 친절 등 실로 다양한 개인의 윤리적 덕목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인이 왜 그런 덕목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가를 현대 사회의 특징에 비추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 어떻게 쓸까 논제에서 주어진 내용과 연관지어 주제의 방향을 정할 수 있는데, 문제를 삼고 있는 내용으로 보아 건전한 개인 윤리 함양이라는 정도로 정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주제문의 방향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은 개방적 제도와 건전한 판단력의 윤리가 필요하다.’는 방향에서 잡을 수 있다. 글의 서론 부분에서는 논제에서 주어진 것과 관련하여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하여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면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물론 주인공의 행적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논의의 과제를 제시하면 훨씬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다. 본론 부분에서는 먼저 주인공 이인국의 성격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극단적인 이기주의자, 기회주의자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를 토대로 반사회적 행위로 지탄받는다는 점을 제시하면 된다.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하여 현대 사회의 특징에 대한 일반적인 언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는 다원화와 개방화를 지향한다는 점을 언급하면 된다. 그런 다음, 현대인에게 필요한 개인 윤리가 무엇인지 중점적으로 언급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 가치와 더불어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생활 태도와 건전한 판단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내용 이외에도 스스로 현대인에게 필요한 윤리가 무엇인지 성찰을 하여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부분에서는 앞서서 논의한 내용을 마무리하면서 건전한 개인 윤리 함양의 노력이 필요함을 제시하면 된다. 이 논제와 관련하여 ‘이인국이 시대에 따라 변신하게 된 이유를 서술하고, 현대 사회에서 건전한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교육적 조치가 어떤 것인지 논술하시오. 사회 환경 속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법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와 같은 논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석록 서울 대치메가스터디 원장
  • “딸 만나면 부하인 내가 먼저 경례”

    해병대 창설 56년 만에 처음으로 부사관인 아버지와 장교인 딸이 한 부대에 근무하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화제다. 주인공은 해병대 교육훈련단에 근무 중인 이명기(사진 왼쪽·51·해병부사관후보생 113기) 원사와 이미희(오른쪽·26·사관후보생 97기) 대위. 이들 부녀가 한 부대에 근무하게 된 것은 연평도 전투부대에서 근무하던 이 원사가 지난달 초 딸이 근무하는 이 부대로 전입해오면서부터다.해병 생활 30여년째로 베테랑 해병인 이 원사는 이 부대에서 행정지원업무를 맡고 있으며, 이 대위는 해병 초임장교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이 한 부대에서 같이 근무하게 된 것은 부녀지간을 넘은 또 다른 인연 때문이었다. 해병 최전방 부대인 연평도에서 2년여간 근무하던 이 원사는 1개월여전 자신의 고향이자 딸이 지난 2002년 임관 이후 군 생활을 하는 포항으로 전출을 신청했다.해병 1사단으로 전입해 온 이 원사는 우연하게도 딸이 근무하는 부대로 배치를 받았다. 부녀는 이 때부터 서로 고민 아닌 고민을 했다. 아버지와 딸이 혹시라도 서로에게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앞섰기 때문. 특히 이 대위는 군에 입대한 이후 해병대 최초 여 훈련교관 직책을 수행하는 등 안팎으로 많은 관심을 받아왔던 터라 염려는 더 컸다. 이 대위는 “처음에는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아버지께서 한 부대에서 함께 근무하는 것이 서로 버팀목이 될 수 있다고 격려해 오히려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이 원사는 “부대 내에서 상관인 딸과 마주칠 때면 아무런 부담없이 경례를 한다.”면서 “딸이 더 멋진 해병이 되는 것을 희망하기 때문에 주위에서 적극 돕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이 대위는 1일자로 해병 대위로 진급, 부녀의 같은 부대 근무에 이어 겹경사가 됐다. 진급 신고식에 참석한 이 원사는 부대측의 배려로 딸의 계급장을 어깨에 직접 달아주는 뜻깊은 시간도 가졌다.포항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또 안타까운 ‘제2의 노충국’

    예비역 병장이 만기 전역 20여일 만에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힘겹게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사실이 당시 소대장에 의해 1일 공개됐다. 2002년 육군 학사장교로 임관해 모 사단에서 소총소대장으로 복무하고 지난 9월 전역한 예비역 육군 중위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철기(29)씨는 “안타까운 사연과 함께 당시 지휘자로서 반성으로 이 글을 올린다.”는 얘기를 시작으로 국방부 홈페이지에 자신의 소대원이었던 윤여주(26)씨의 사연을 소개했다. 김씨와 윤씨의 부친에 따르면 윤씨는 지난해 4월 말 만기 전역한 지 20여일 만에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세 차례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지만 병원에서도 더이상 손쓸 도리가 없어 집에서 하루하루 근근이 버티고 있다. 김씨는 “군대에 있으면서 배가 아프거나 어지럽다고 했을 때 단순히 의무대에서 진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정밀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윤씨 가족은 지난해 국가보훈처에 원호대상자 신청을 했지만 근거 불충분으로 기각됐고, 급기야 다음달 15일 행정재판을 앞두고 있다.윤씨의 부친은 “전역 뒤 간암 말기 판정 사실을 해당부대 대대장에게 알렸더니 ‘도와줄 것 있으면 도와줄테니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하더라. 그런데 그 뒤로는 내 휴대전화를 일절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육군은 “윤씨는 2002년 6월12일과 7월5일 두 차례에 걸쳐 국군벽제병원에 가서 혈액검사와 간기능검사를 받았으나 정상이었다.”면서 “해당 대대장도 윤씨가 수술을 받은 뒤 윤씨의 부친과 한두 차례 전화통화를 하면서 ‘도와주겠다.’고 한 적은 있지만 그 뒤로는 연락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고 해명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스포츠 포커스] 한국 복싱 ‘부활의 노래’

    한국 복싱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난 20일 중국 미안양에서 막을 내린 복싱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이룬 이옥성(24·보은군청)의 금메달 획득을 계기로 침체돼 있던 한국 아마복싱계가 활기를 띠고 있는 것이다. ●아, 옛날이여 한국 복싱은 지난 80년대 말까지 국제종합대회의 ‘효자종목’이었다. 올림픽에선 1948년 런던대회 한수안이 동메달을 처음으로 목에 건 이후 금3개와 은6개, 동메달 9개를 벌어들여 한국의 메달레이스를 도왔다. 아시안게임은 메달밭이었다. 첫 출전한 마닐라대회(1954년) 금 1개(박장현) 은 2개(이장교 이삼용) 동 1개(김윤서)를 시작으로 2002년 부산대회까지 금 56개와 은 19개, 동 26개를 수확했다. 어느 종목보다 많은 메달수다.86년 서울대회에서는 12개 전 체급 금메달을 싹쓸이하는 기록도 세웠다. 같은해 문성길은 미국 리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내 이른바 한국복싱의 전성기를 열었다. ●기형아에 빼앗긴 링 그러나 한국 복싱은 90년대 접어들면서 스포츠계의 지각 변동과 격투 종목에 대한 기피 현상이 맞물려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선수의 절대 숫자와 국민의 관심이 줄어들면서 98년 방콕아시안게임 노메달의 수모와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전 체급 예선 탈락이라는 쓴 잔을 들어야만 했다. 프로복싱의 쇠락도 한 몫 거들었다. 종합대회 메달리스트들의 최종 목표였던 프로 무대도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것. 아시안게임 첫 메달리스트였던 김기수 이후 박찬희 변정일 문성길 김광선에 이어 조인주를 마지막으로 아마추어 출신들의 프로 변신은 막을 내렸다.‘헝그리 복서’들의 밥줄이 끊긴 셈. 더욱이 요즘 젊은 층들이 열광하고 있는 K-1 등 국적불명의 유사 종목들에 ‘링’을 빼앗겨 과거 한 때의 영화를 되찾을 거라는 기대조차 가질 수 없는 게 한국 아마복싱의 엄연한 현실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그럼에도 “희망은 버리지 않는다.”는 게 한국 복싱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일단 이옥성이 꺼져가던 불씨를 되살렸다는 것. 그의 소속팀인 보은군청이 단 1명의 선수만 보유하는 등 서울시청과 영주시청을 빼면 변변한 모양새를 갖춘 실업팀이 몇 안되는 현실에서 일궈낸 쾌거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 데 눈을 팔지 않는’ 선수들의 복싱에 대한 자긍심이 돋보인다. 유도 씨름 등의 몇 몇 선수들의 종합격투기로 선회했지만 아직 복싱만은 예외다.“복싱은 마약과도 같더라.”는 이옥성의 실토가 든든하다. 두껍지는 않지만 22명 대표팀 선수들의 모양새도 본격적인 부활의 시발점으로 삼는 내년 아시안게임을 기대케 한다. 이옥성이 한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는 동갑내기 김기석(플라이급·서울시청)을 비롯, 김원일(23·대전중구청)-조석환(페더급), 홍우원(24·원주시청)-구승혁(22·청양군청) 등 각 체급의 라이벌들이 한국 복싱의 ‘금맥’을 잇기 위해 샌드백을 두들기고 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기무사 “산업스파이 꼼짝마”

    국군기무사령부는 군사·방위산업의 핵심기술을 빼돌리는 산업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군 수사인력을 대폭 보강키로 했다. 기무사는 28일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는 각종 군사기밀 유출 사고를 막기 위해 전문 조사능력을 보유한 ‘보안조사팀’을 편성,24시간 상시 운용하고 기밀 유출 관련자를 끝까지 추적해 색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무사는 이를 위해 기존 방첩업무를 담당해온 일부 요원들을 산업스파이 색출을 위한 수사팀에 보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IT(정보기술)와 정보통신 발달로 해킹과 사이버테러 위험성이 증가하는 시대 흐름을 감안,‘정보전 대응팀’을 보강하고 모든 국방정보통신 시스템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기무사는 또 업무와 조직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계급과 서열을 파괴한 ‘팀제’를 도입, 다음달 1일부터 전면 시행키로 했다. 이에 따라 기존 ‘3처 3실 26과 117계’로 구성된 기무사 조직은 다음달부터 ‘3처 3실 42팀’으로 전환된다. 기무사는 또 대령과 중령이 주로 임명되는 팀장에 소령급 7명을 비롯한 부대 창설 이후 처음으로 군무원 6명을 팀장으로 선임하고, 위관급 장교나 준·부사관도 해당분야의 전문성이 있으면 팀장으로 보직시킨다는 방침이다. 이화석(대령) 기획관리실장은 “팀제 도입으로 본부 인원을 5.4% 줄이는 효과를 얻었으며, 앞으로 예하 부대에도 팀제를 확대 적용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실장은 또 “기존의 1직책 1계급 원칙과 계급·서열 위주의 조직운영에서 벗어나 전문성 있는 우수 인력을 과감히 발탁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총기난사 김동민일병 사형선고

    경기도 연천 최전방 GP(감시초소)에서 총기를 난사해 장교와 사병 등 8명을 살해한 혐의(상관 살해 등)로 기소된 김동민(22) 일병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육군 제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 심판부는 23일 김 일병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피고인의 범행 동기·죄질·범행 후 정황 등에 비춰 극형이 불가피하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김 일병의 변호인은 “범행에 사용됐다는 총기와 탄창 등에서 피고인의 지문이 한 점도 나오지 않는 등 의문점이 많다.”며 항소 의사를 분명히 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벌써 2100명” 이라크 미군 한달새 100명 더 죽어

    이라크에서 사망한 미군 숫자가 22일(현지시간) 2100명을 넘어선 가운데 미군이 관리하던 사담 후세인의 대통령궁을 이라크인들에게 돌려주는 기념식장에 박격포탄이 떨어졌다. 이날 후세인 고향인 티크리트에서는 대통령궁을 이라크 정부에 반환하는 의식이 브라스 밴드까지 동원된 가운데 성대하게 열리고 있었다. 갑자기 머리 위에서 공포스러운 신호음이 들리면서 무장세력이 발사한 것으로 보이는 박격포탄이 떨어졌다. 폭탄이 터지진 않았지만, 이라크 주둔 미군사령관인 조지 케이시 장군 등 주요 인사들이 황급히 대피하는 모습이 아랍 위성방송을 통해 방영됐다. 이라크 북동부 키르쿠크에서는 이날 자살폭탄 테러로 21명이 죽고,24명이 다쳤다. 테러범은 이라크 경찰에게 총격을 가해 경찰들을 유인한 다음 폭탄을 터뜨렸다. 다음달 15일 총선을 앞두고 격렬해진 자폭 테러로 지난 18일부터 160여명의 이라크 민간인이 사망했는데 대부분 시아파였다. 미군 희생자 숫자도 갈수록 늘어 지난달 25일 2000명을 돌파한 지 불과 한달도 안돼 2100명을 넘어섰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존 머서 민주당 하원의원의 즉각적인 철군 요구로 공방이 뜨거운 가운데, 한 설문조사 결과 이라크인 90%가 미군의 철군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라크 권력을 잡은 시아파 정당은 해외 주둔군의 철수 시간표를 요청했다. 이런 가운데 워싱턴 포스트는 23일 미 국방부가 내년 초 이라크 주둔 18개 전투여단 가운데 3개 여단을 시험적으로 감축하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고 복수의 고위 장교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하지만 영국의 비정부기구 옥스포드 리서치 그룹은 이라크전이 10년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애경그룹-장영신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애경그룹-장영신 회장家

    “엄마, 걱정마. 이 앞에서 학생들 상대로 뽑기장사하면 되잖아!”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실의에 빠져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자기도 잘 먹던 뽑기장사해서 먹고 살면 되니 엄마보고 걱정 말란 것이다. 너무나 대견하고 안쓰러워 큰아들을 끌어안고 그때 처음 울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울지 않는 엄마, 강한 엄마가 되어 내 아이들을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러운 아버지의 자식들로 키울 것을 결심했다. 아이들이 클 때까지 아버지의 유업을 잘 지키고 있다가 성년이 되면 물려주리라. 이렇게 생각을 발전시켜 애경을 내가 맡아 아이들과 똑같이 건실하게 성장시키기로 다짐했다. 국내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CEO)인 장영신(69) 회장이 자서전 ‘밀알심는 마음으로’에서 남편이 죽고 회사를 떠맡게 된 이야기를 이렇듯 생생하게 되짚었다. 아이들을 잘 키워야겠다는 강한 모성, 남편의 유업을 버려둘 수 없다는 아내로서의 의리, 애경 종업원들에 대한 책임감이 경영참여 이유라고 덧붙였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장 회장은 1970년 막내 아들을 낳은 지 사흘 만에 남편 고 채몽인 사장을 심장마비로 잃으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3남1녀의 어머니로 살림만 하며 지내던 12년차 주부가 국내 대표 생활용품 브랜드의 수장으로 거듭난 것이다. 애경 창립 17년 만의 일이다. 장 회장은 1971년 남편 타계 1주기가 끝나자마자 경리학원에서 복식과 부기를 배웠고 이듬해인 1972년 8월1일부터 출근했다.1954년 6월 남편 고 채몽인씨가 5000만환으로 세운 ‘애경유지공업주식회사’가 현재 LG그룹의 모태인 비누제조사 락희화학과 경쟁을 벌이며 사업확대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다. 장 회장이 경영참여를 선언하자 시댁과 친정 가족은 물론 회사 임원들까지 반대하고 나섰다.“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부터 “그만두겠다.”고 협박하는 임원들도 있었다. 주변에서는 “애경이 얼마 가지 않아 망하겠다.”는 말도 했다. 남편이 죽은 뒤 사장 자리를 맡고 있던 둘째 오빠 고 장성돈씨는 장 회장이 취임하자 회사를 나가버리기도 했다. 당시의 심경에 대해 장 회장은 “잠자리에 들면서 ‘이대로 영영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매일 일감을 집으로 가져와 밤늦도록 공부했고, 관청에선 담당공무원의 질문에 솔직하게(?) 답한다는 이유로 동행했던 회사 임원으로부터 책상 밑으로 구둣발에 차이기도 했다. 경제인 모임에서는 홀로 여자라는 자격지심에 기둥 뒤에 숨어 몇시간이나 서 있다 오는 일도 다반사였다. 잘해보겠다는 일념으로 겁없이 뛰어들었지만 기업환경도 나쁜 것뿐이었다. 경영에 참여한 1972년 말부터 오일쇼크에 따른 전반적인 경기 침체가 시작됐다. 그러나 장 회장은 더욱 힘을 냈다. ‘불황에 투자하라.’를 모토로 공장을 지방으로 확대 이전하는 한편 남편이 계획만 했던 석유화학 원료제조 분야를 애경의 미래 지표로 삼아 애경유화·애경화학·애경PNC(전 애경공업)·애경정밀화학·코스파 등 관련 회사를 속속 설립했다. 비누 산업에는 한계가 있지만 본격적인 화학공업은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분야는 지금까지도 애경에서 매출 비중 50% 이상을 차지하는 주력 사업군이다. 남편이 설립한 비누회사도 소홀하지 않았다. 제품을 고도화시키는 데 집중했던 만큼 히트 상품도 꾸준히 내놓았다.1975년에는 분말 합성세제인 ‘크린업’을, 이듬해에는 액체세제 ‘써니’를,1980년 들어서는 세제 ‘스파크’를,90년 들어서는 클렌징 화장품인 ‘포인트’ 등을 잇달아 히트시켰다. 트리오도 이름은 같지만 세척력을 높이고 공해도를 낮춰 지금까지도 1등 주방 세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수줍은 소녀…‘터프우먼 마담 장(張)’으로 장 회장은 어머니 고 문금조씨와 아버지 고 장회근씨의 4남4녀중 막내딸이다.1936년 7월22일 서울에서 태어나 종로구 명륜동 1가 등에서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당시 일본 와세다대에서 영문과를 졸업한 대지주의 아들. 어머니 문 여사도 당시 일본 귀족학교인 쓰다여대 영문과를 나온 재원이다. 장 회장은 혜화동성당 유치원을 나온 뒤 혜화국민학교를 다녔다. 노래를 잘해 전국 콩쿠르에서 상도 자주 받았다. 건강하고 공부도 잘해 반장을 도맡기도 했다. 부모님의 학구열이 강한 덕에 형제들 모두 공부를 잘했다. 큰오빠 고 장윤옥씨는 일본대 전문부 상과를 졸업한 뒤 감사원에 들어가 5국장(부이사관)까지 지냈고, 미국으로 이민간 큰언니 장영옥(81)씨는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둘째 오빠 고 장성돈씨는 애경유지 사장을 지낸 바 있고, 서울대 정외과 출신의 셋째 오빠 고 장위돈씨는 서울대 정외과 교수,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정치담당특별보좌관, 이집트 총영사, 에콰도르 대사를 지내는 등 이력이 화려하다. 애경유지 이사를 지낸 넷째 오빠 장기돈(75)씨는 성균관대 상대 출신이다. 장 회장의 집안은 일제시대 유학을 갔을 정도로 부유했지만 광복 후 실시된 토지개혁으로 가세가 기울었고 6·25가 터지자 집안 형편은 더욱 어려워졌다.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경기여중을 졸업하고 경기여고에 재학중이던 그는 돈 안들이고 대학을 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마침 고등학교 시절부터 외국어 재능을 인정받아 교장선생님이 일찌감치 유학을 준비시켰다. 전액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1955년 미국 필라델피아 체스넛 힐 대학 화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시절에도 합창단원으로 활동했고 당시 교내에서 오페라 하우스와 협연한 나비부인의 프리마돈나를 맡기도 했다. 애경이 쉘, 유니레버 등 다국적기업과의 합작을 무리없이 진행했던 배경에는 유학 생활로 다져진 영어실력과 당시 익혔던 외국 풍습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피란시절 여고생 신분으로 부산에서 사과장사를 한 적도 있다. 좌판을 벌여놓고 사과를 예쁘게 쌓아놓았지만 막상 손님이 와서 얼마냐고 물어보면 먼산 바라보기 일쑤였다. 부끄러움이 많았던 탓에 장사꾼이 아닌 척한 것이다. 그러나 애경을 경영하면서 그에게는 ‘호랑이’‘터프우먼’‘마담장’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80년대 들어 새로운 돌파구로 외국계와 합작에 집중했을 당시 그쪽에서 공동대표를 요구하면 그는 “여기는 한국 회사다. 너희가 한국에 대해 뭘 아느냐. 한국 문화를 이해할 때까지 너희들은 뒤에서 지켜봐라.”고 충고했다. 합작 기념식에서 태극기를 달지 말라고 요구받으면 애국가 봉창, 국기에 대한 맹세까지 순서대로 진행했다. 당시 외국인들은 이런 장 회장을 놓고 ‘마담장 터프우먼’이라고 외쳤다. 사내에서는 ‘호랑이’로 통했다. 화가 나면 직설적으로 퍼붓는 성격과 한번 결정하면 매몰차게 추진해 나가는 돌파력 때문이란 설명이다. 물론 풀어주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래서 ‘너그러우면서도 불같다.’는 평을 받는다. ●남편과는 어릴적 이웃사촌 장 회장과 남편 채몽인씨는 이웃사촌으로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고 채씨는 장 회장이 미국으로 유학가기 전부터 애정 공세를 퍼붓다 미국까지 따라가 무려 3년11개월 동안 구애 공세를 펼쳤다. 공개청혼으로 남편의 존재는 대학내에도 다 알려져 수녀 교수들로부터 “왜 저 좋은 사람과 결혼하지 않느냐, 이해를 못하겠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는 졸업후 약속대로 서울로 돌아와 23세이던 1959년 6월 신당동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자식들(3남1녀)의 혼사는 장 회장보다 더 빠르다. 대부분이 대학시절에 결혼을 모두 끝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모두 연애 결혼이다. 큰아들인 채형석 애경그룹 부회장(45)은 1982년 성균관대 경영학과 4학년 재학 당시 학교에서 만난 홍미경(43)씨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친구로부터 소개받아 교제 1년 만에 결혼했다. 당시 부인은 1학년에 재학중인 생활미술학과 새내기. 채 부회장은 1983년 졸업후 미국 보스턴대에 MBA를 받은 뒤 1985년 애경산업 생산부 마케팅부 등을 섭렵했다. 부인 홍씨도 함께 유학을 떠나 보스턴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홍씨는 전공을 살려 현재 종로에서 갤러리 ‘사간’을 운영 중이다. 불혹을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출중한 미모가 인상적이다. 장 회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평소 “우리 큰애(큰며느리)는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정말 착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전한다. 인천교대 음대 교수를 지낸 장인 고 홍종수옹은 서울시립교향악단,KBS교향악단 등에서도 활약한 음악가다. 장 회장의 맞손녀이자 큰아들인 채 부회장의 딸 문선(19)양은 할머니의 성악 실력과 외할아버지의 음악 재능을 모두 물려받아 현재 미국 맨해튼 음악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있다. 유통부문을 맡고 있는 둘째 아들 채동석(41) 애경백화점 사장은 성균관대 철학과 3학년 때 미팅으로 만난 동갑내기 이정은(41)씨와 결혼해 졸업하기 전 1년 동안 학생 부부로 지내기도 했다. 채 사장은 미국 조지 워싱턴대 국제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친 뒤 1991년 애경에 합류했다. 현재 애경백화점,AK면세점, 수원애경역사, 평택역사 등 애경의 유통부문을 맡고 있다.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이씨는 현재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프랜치 퓨전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이씨의 아버지 이병문(75)씨는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예편한 4성 해병대 사령관 출신으로 아세아시멘트 회장을 지냈다. 큰딸 채은정(42)씨는 외숙모가 같은 아파트에서 살던 안용찬(46) 애경 사장을 소개해줘 결혼한 경우다. 안 사장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MBA과정 재학 당시 잠시 한국에 들렀을 때 채씨 외숙모의 권유로 은정씨를 만났다. 은정씨도 대학 3학년때 결혼했다. 은정씨는 이화여대 조소학과를 나와 미국 애크리하트대에서 그래픽을 전공한 뒤 1998년 애경산업에 들어왔다. 애경 마케팅지원부문 상무를 맡고 있다. 채 부회장과 연세대 경영학과 77학번 출신인 안 사장은 이미 대학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채 부회장은 “안 사장이 나의 고등학교 동창들과 친구 사이여서 이미 대학시절부터 안 사장을 알고 지냈다.”면서 “성실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보니 여동생의 남자친구가 되어 있었고 유학을 끝낸 뒤 애경으로 꼭 와줄 것을 내가 청했다.”고 말했다. 안 사장은 1987년 애경산업 마케팅부에 입사하기 이전 유학을 마치고 미국 폰즈사에서도 마케팅 담당 업무를 맡았다. 통역 장교 1기 출신인 안 사장의 아버지 안상호(76)씨는 육군 참모총장 수석 보좌관, 미국 엔지니어링 회사 플로 코리아의 한국 대표 등을 지냈다. 막내 아들 채승석(35) 애경개발 부사장은 50만평 18홀 규모의 경기도 광주시 중부 컨트리클럽을 운영하는 애경개발을 맡고 있다. 애경개발은 1987년 출발 당시부터 애경의 계열사중 유일하게 주력인 세제·화학과 동떨어진 업종이다.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한때 SBS아나운서로도 활동했던 한성주(31)씨와 99년 6월 결혼,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단국대 사학과 89학번인 채 부사장은 형제들 중 유일하게 어머니를 닮아 노래를 잘한다. 당초 친정에서 장 회장의 경영참여를 반대했지만 앙금은 남아 있지 않다. 조카들도 여럿 애경에 몸담고 있다. 둘째 오빠인 고 장성돈 전 애경유지 사장의 큰아들인 장인규(53)씨는 과거 애경PNT(전 경신산업) 사장으로 일하다 미국으로 이민갔고, 둘째 아들 장인원(49)씨는 계열사인 코스파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장 회장의 셋째 오빠인 고 장위돈씨가 낳은 3형제 중 큰아들인 우영(37)씨는 애경 화장품사업부장으로 있다. ●애경백화점에 남다른 애착 장 회장은 회사를 맡은 이후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한번도 울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큰아들 채 부회장이 1993년 9월10일 애경백화점 개점식 인사말에서 “이 백화점을 돌아가신 아버님께 바칩니다.”라고 말한 순간 ‘마음이 온통 눈물로 범벅이 됐다.’고 회고했다. 애경백화점 본점인 서울 구로구점은 창업자인 남편 고 채몽인씨가 타계하는 순간까지 비누를 만들었던 창업 터전이다.1958년 우리나라 최초의 미용 비누인 ‘미향’을 만든 곳으로 70년대까지 ‘트리오’ 등 세제를 만들다 공장이 대전으로 옮겨가면서 계속 창고로 써왔다.“아버지가 물려준 땅이니 잘 연구해서 활용해보라.”고 맡긴 지 3년 만에 1만평 부지가 백화점으로 거듭났다. 장 회장은 애경백화점을 두고 ‘아버지와 아들의 만남´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지금도 두 아들이 사이좋게 이 백화점 5층에서 함께 사무실을 쓰고 있다. 장 회장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백화점을 다녀갈 정도로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이유다. 장 회장은 즐기는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다. 채 부회장은 장 회장에 대해 “희생하는 삶만 사신 분”이라면서 “항상 어머니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아왔다.”고 말했다. 장 회장은 여름휴가를 가본 적이 없고 남들이 취미를 물으면 ‘빨래’라고 대답할 정도로 아직도 집안 일을 혼자 한다. 말년에 잠시 정치에 참여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크게 어긋나는 길은 아니란 평이다.1997년 고사해 오던 여성경제인연합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여성들이 기업하기 불편한 환경을 고쳐야 한다고 마음먹었다.1999년 민주당 신당창당 준비위원 공동대표로 영입된 뒤 백화점이 있는 구로를 텃밭삼아 16대 국회의원으로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왜 정치를 하느냐. 이미지 버린다.”는 우려가 많았지만 여성경제인들을 도와야 한다는 선배로서의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더이상 정치에 참여할 뜻은 없다. ●가족간 우애는 애경의 힘 장 회장은 경영에서 손을 뗐다. 애경 창사 50주년을 맞았던 지난 2004년 구로동 본사 회장실을 비웠고 결재도 큰아들에게 모두 맡기고 보고도 받지 않는다. 애경복지재단 일에 관여하며 무역협회 부회장직만 맡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취미삼아 중국어를 배우고 있고, 순환기계통이 안 좋은 탓에 홍콩에 침을 맞으러 다니고 있다. 살아오면서 가장 보람된 일로는 “아이들이 잘 자라주고 화목하게 지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간 볼썽사나운 재산 분쟁이 많은 재계에서 애경가문 형제들은 함께 회사를 키워가며 우애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채 부회장과 동생 채동석 사장은 10년 넘게 한 사무실을 쓰고 있다. 채 부회장은 “인맥이랄 만한 사람들을 알지도 못하고 술을 먹거나 함께 어울리는 대상이 모두 형제들이다.”면서 “네 남자가 모여 술을 자주 먹는다.”고 말했다. 며느리들도 친하다. 큰동서와 작은 동서도 단짝 친구 같다. 형제들이 화목할 수 있는 주요 원인이란 지적이다. 채 부회장은 1985년 입사한 뒤 점차 그룹의 덩치를 키우는 데 주력했다.1993년 애경백화점 구로점을 열며 유통업계에 뛰어든 뒤 AK면세점(2001년) 애경 2호점인 수원애경역사(2003년)로 확대했고 3호점 평택역사는 2009년 완공된다. 제주도와 함께 설립한 ㈜제주항공을 통해 2006년 6월부터 민간항공 사업도 벌인다. 채 부회장은 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동생 채동석 사장은 유통부문을, 처남인 안용찬 사장이 생활용품 부문을 키우고 있다.2세대에 와서 생활용품과 기초화학의 양축을 키워가는 한편 유통과 항공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채 부회장은 고혈압이 있어 거의 매주 등산을 즐기고 있다. 유아세례를 받고 결혼식도 명동성당에서 올린 천주교 신자이지만 산을 자주 찾는 탓에 항상 절을 찾아 기도를 드리는 습관이 생겼다. 그는 산사를 찾을 때마다 “가족 모두 건강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것에 항상 감사드린다는 내용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다.”면서 “애경의 힘은 형제간의 우애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jhj@seoul.co.kr ■ 장회장 ‘유별난 시간개념’ 애경가(家) 사람들은 시간관념이 유별나다. 장영신 회장은 약속 시간보다 최소한 10분 먼저 도착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나는 사업상으로나 개인적으로 약속을 하면 꼭 10분 전에 나가 상대방을 기다린다. 약속 시간보다 단 5분이라도 늦는 사람은 첫 대면부터 뭔가 부족한 사람이란 평가를 하게 된다. 나는 부하 직원들을 평가할 때도 시간관념을 하나의 척도로 삼는다. 시간 하나 제대로 못지키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게 내 생각이다. 시간은 비즈니스를 포함한 모든 인간 관계에서 성패를 좌우하는 첫 관문이다. 약속 시간을 지키는 작은 사실 하나가 그 사람의 성격과 인격을 대변한다.”(자서전 ‘밀알심는 마음으로’에서) 그가 경영일선에 있을 때는 ‘나인 투 파이브’ 원칙을 지켰다.9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하는 게 아니라 늦어도 10시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5시면 기상하는 것이다. 일어나자마자 조간 신문을 읽고 그날의 주요 업무를 점검하고 계획했다. 새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것도 아침 시간을 이용한다. 회의도 결재도 오전에 처리한다. 관청과 은행이 문을 여는 아침 9시 이전에는 하루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일을 놓은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은 그대로다. 그래서 애경에는 오전 8시만 되면 결재를 받기 위한 줄이 이어지고, 오전 9시면 그날 결재받는 것은 포기해야 할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철저한 시간관념은 애경가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배어 있다. 아들 딸은 물론 며느리 사위 모두 새벽형 인간이다. 채형석 부회장은 한술 더 떠 새벽 4시면 일어나 아침밥을 꼭 챙겨먹고 출근한다. 약속 시간을 지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식구들끼리 밥을 먹기로 하거나 아버지 산소에 가기 위해 모일 때는 아예 30분 먼저 나갈 정도다. 채 부회장은 “식사 시간을 통해 가족 모임이 주로 이뤄지는데 식당 문을 여는 시간이 바로 우리 가족이 만나는 시간”이라면서 “예컨대 6시에 모이기로 해도 식당이 문을 여는 오후 5시 30분이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여 있다.”고 전했다. 급한 성격 탓에 식사를 시작하면 1시간내에 모두 끝내고 일어선다. 한 번은 막내인 채승석 부사장이 아버지 산소에 가기 위해 약속한 정시에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이미 식구들이 모두 제사를 지낸 뒤 산에서 내려오고 있더라는 일화도 있다. jhj@seoul.co.kr ■ 장영신 회장과 제주와의 인연 장영신 회장의 ‘제주 사랑’은 남다르다. 그의 제주 인연은 1970년 창업주인 남편 고 채몽인 사장이 타계하면서 더 각별해졌다. 장 회장은 남편의 조의금 전액을 제주도 재경장학회에 기증했다. 장학회는 이 돈으로 지금까지 매년 30명, 모두 1300여명의 제주 출신 대학생을 후원했다. 제주도는 고 채 사장의 고향이다. 큰아들 채형석 부회장도 최소한 1년에 세차례 이상 제주도에 간다. 선산이 모두 중문 색달동에 있다. 꼭 성묘가 아니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가끔 간다. 채 부회장은 “제주는 아버지의 고향이지만 저도 국민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건강이 안 좋아 제주도에 요양을 가셨을 때 동행했기 때문에 한동안 지낸 기억이 있어 친근하다.”면서 “할아버지가 조선시대 제주도에서 현감을 지내기도 했다는데 증조 할아버지까지만 기록이 있어 뿌리를 찾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장 회장도 제주에서 지낸 시절이 있다. 경기여고 재학시절 6·25때 제주로 피란가 1년간 지냈다. 장 회장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제주도 여성들을 보면서 여성이 얼마나 강한지를 깨달았다.”고 회고한 바 있다. 애경은 제주도와 손잡고 내년 6월부터 도민의 숙원인 저가항공 시대 대열에 동참한다. 애경은 제주도와 합작해 저가항공사인 ㈜제주항공을 만들었다.㈜제주항공의 왕복 비용은 기존 항공비용의 70% 수준인 11만원선.㈜제주항공의 애경 지분은 75%다. 채 부회장은 “이윤이 크게 나는 사업은 아니지만 중국과의 경쟁에서 영향을 받지 않을 영역이라고 보고 사업을 결심했다.”고 말하지만 주변에서는 “장 회장의 제주 사랑과 무관치 않다.”고 평가했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허술한 軍병원’ 또 목숨 앗았다

    충남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훈련병이 행군 도중 복통을 호소하다 숨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 훈련병은 몸속 과다출혈로 사망했으나 논산훈련소에는 CT 등 첨단의료장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사건 발생 지난 9월30일 오후 8시쯤 논산훈련소에 입소해 야간행군중이던 훈련병 길주형(20·우석대 경찰행정과·전북 완주군) 이병이 복통을 호소, 군의관은 그간 아픈 데는 없었느냐고 물은 뒤 소화제 3알을 처방했다. 길 이병이 행군을 못하겠다고 호소하자 2시간 가까이 길 이병을 앰뷸런스에 싣고 행군을 계속했다. 그러나 길 이병이 통증을 호소하며 구토, 실신을 반복하자 이날 오후 10시30분쯤 연대 의무실로 긴급 후송했다.●허술한 처방 실신한 길 이병을 의무병이 발견한 시간은 11시 30분쯤. 맥박과 혈압이 잡히지 않고 동공이 풀린 것을 확인한 의무병은 당직 의무관(이비인후과)에게 연락하고 국군 논산병원으로 후송했다. 다음 날인 10월1일 0시12분쯤 논산병원에서 수액 등을 공급받은 길 이병은 의식을 다시 되찾았다. 당직 군의관은 혈액검사와 X-레이를 찍어본 뒤 다음달 다시 검진해 보자고 했다.그러나 오전 8시쯤 길 이병의 혈압은 최고 60㎜Hg 최저 30㎜Hg까지 떨어졌다. 군의관은 CT촬영을 위해 오전 9시20분쯤 다시 국군 대전병원으로 옮겼다. 그러나 길 이병은 50분 만에 숨졌다. 군당국은 이날 오후 1시20분 길 이병이 숨졌다고 공식 확인했다. 복통을 호소한 지 16시간 만이었다.●유족 주장 길 이병의 아버지 길영배(49)씨는 허술한 군의료장비와 안일한 대처로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며 당시 00연대 군의관과 연대의무실 당직근무자, 간호장교 등 4명을 업무상과실치사와 직무유기혐의로 고소했다. 길씨는 “군당국과 법정투쟁을 벌여 제2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국군논산병원장 김신수 중령은 “훈련소 헌병대와 의무사령부에서 조사중”이라며 공식적인 입장을 유보했다.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해남~진도 제2진도대교 완도~명사십리 신지대교 마무리 작업… 새달 개통

    전남 해남과 진도를 잇는 제2진도대교와 완도읍과 명사십리 해수욕장을 연결하는 신지대교가 마무리됐다. 두 다리는 양쪽을 잇는 접속도로 공사가 끝나는 다음달 말에 개통된다.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과 진도군 고금면 녹진리를 잇는 제2진도대교는 제1진도대교와 10m 사이로 나란히 건설돼 새로운 볼거리로 등장했다. 제2진도대교는 526억여원을 투입해 길이 484m 폭 12.5m로 착공 4년 만에 완공한 복합사장교다. 차량 통과 중량이 43.2t으로 1등급 교량이다. 기존 제1진도대교는 건설된 지 올해 22년째로 중량 32.1t 이하 차량만 통과하는 2등급 교량이어서 농·수산물 수송에 어려움이 많았다. 더욱이 제1·2대교는 충무공의 명량대첩지로 유명한 울돌목을 지나고 있고 인근 녹진리에는 동상건립 등 충무공 공원 조성이 한창이다. 또 완도군 완도읍과 신지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을 잇는 신지대교도 상판 연결 공사가 모두 끝났다. 지금은 다리 양쪽을 잇는 접속도로(1454m)를 내고 있다. 사업비 818억여원을 들여 지난 1997년 착공한 이 다리는 8년 만에 길이 1110m, 폭 13.5m의 왕복 2차선으로 완공됐다. 기존에 신지도로 오가는 선착장에 들어오기 전 완도읍내 초입마을인 가용리에서 신지면 강독마을을 잇는다. 다리가 개통되면서 끝없이 펼쳐진 은빛 모래사장으로 유명한 신지도의 명사십리 해수욕장은 완도읍에서 5분만에 갈 수 있게 된다. 이로써 신지도는 특산물인 전복과 우럭·광어 등을 찾는 관광객들이 넘쳐날 것으로 보인다.진도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도덕교과서 없는게 더 도덕적이다

    겉으로 내세운 구호·명분과 그 속사정이 달라 야유와 비웃음거리로 전락하는 경우는 흔하다. 그런 의미에서 “도덕교육이야말로 가장 비(非)도덕적이고 반(反)도덕적”이라는 비판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과학적이고 법칙적인 수학과목에서도 정답보다 풀이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세상인데, 복잡한 인간세상의 문제를 다루겠다는 도덕과목에서만은 희한하게 오직 메말라 비틀어질 것만 같은 답안만 내놨다는 비판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이런 주장을 담은 전남대 김상봉 교수의 ‘도덕교육의 파시즘’(도서출판 길 펴냄)이 눈길을 끄는 것도 ‘관점의 참신함’보다 ‘서술의 적나라함’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를 콕 찍어서 “민방위훈련장에서 가소로운 정신훈화를 늘어놓는 것”에 비유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더 이상 국민들의 정훈장교 노릇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먼저 국민윤리교육과의 탄생 자체가 잘못됐다고 본다. 전두환 정권이 1981년 서울대에 설치한 뒤 여기에 도덕 교육에 대한 전권을 줬다. 왜 그랬을까. 답은 ‘도덕’에서 ‘국민윤리’로 과목이름이 바뀐 데서 짐작할 수 있다.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갖추라는 뜻이나 국민윤리 교과서는 ‘이래야만 한다.’는 잔소리로만 채워져 있다. 그 때야 시절이 그랬다손 치더라도 20년이 더 지난 지금 상황이 바뀌었을까. 물론 바뀐 측면도 있다. 각 대학에 있던 국민윤리교육과의 간판은 ‘국민’을 슬쩍 떼내고 윤리교육과가 됐고, 국민윤리 과목은 도덕과목이 됐다. 그러나 내용상으로 변한 것은 없다. 중학교 도덕교과서의 절반은 예절을 가르친다. 그런데 이 예절은 오직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따르라.’는 식으로 채워져 있다. 부당한 요구나 지시를 거부할 수 있다거나, 여러 개의 정당한 요구나 지시 사이에 갈등이나 충돌이 일어날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도덕이 보기에는 쉬워도 실천이 어려운 것은 이런 현실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고등학교 도덕교과서는 한 술 더 떠서 정권에 의해 위로부터 부여된 과제, 즉 새마을운동·정의사회 구현·신한국 건설·제2건국운동을 찬양한다. 공동체 붕괴를 막기 위한, 좋은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래로부터 솟아나는, 국가의 의무에 대한 요구와 관련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기에 “도덕적 의무라는 이름으로 권력에 순종하도록 한 노예도덕과 파시즘에서 단 한걸음도 진보하지 못했다.”는 저자의 결론은 당연해보인다. 이러니 도덕이 시험 때 답만 맞히면 그뿐인, 실생활에서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과목이 됐다.저자는 학생 스스로 도덕적 문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성찰적 교육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게 어렵다면? 도덕교과서를 없애버리는게 더 도덕적이라는게 저자의 생각이다.1만 8000원.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軍부대 수류탄 폭발 장교1명 숨져

    9일 오전 6시25분쯤 전남 담양군 육군 모부대 영내 사무실에서 수류탄 1발이 폭발해 당직 근무 중이던 김모(24) 중위가 현장에서 숨졌다. 당시 부대 상황병이었던 강모 병장 등 2명은 “옆 사무실에서 갑자기 ‘펑’하는 소리가 나서 달려가 보니 사무실 집기가 부서지고 김 중위가 크게 다쳐 피를 흘린 채로 쓰러져 있었다.”고 말했다.사고는 영내 1층 건물 중앙부 사무실에서 발생했으며 내무반과는 거리가 멀어 다른 피해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탄약고 열쇠는 김 중위가 소지하고 있었으며 사고발생 전 김 중위와 함께 있던 당직부관은 김 중위의 지시로 영내 다른 곳에 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군 당국은 정확한 사고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사고 현장을 보존하는 한편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에 정밀조사를 의뢰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책꽂이]

    ●소리내어 읽고 싶은 우리 문장(장하늘 지음, 다산초당 펴냄)‘문장표현사전’‘한글바로잡기’ 등 아름다운 우리말글 가꾸기에 앞장서온 저자가 간암수술의 후유증을 이겨내며 집필한 문장교본.1920년대 이후 400여편의 산문 가운데 43편의 명문을 골라 저자의 감상과 해설을 달았다.1만 2000원.●날개 달린 물고기(이인휘 지음, 삶이 보이는 창 펴냄)2년 전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주장하는 노동자대회에서 분신자살했던 이용석씨의 삶과 죽음을 다룬 실명소설. 노동운동가 출신의 저자는 외딴 섬에서 태어나 육지의 하늘을 날아오르길 꿈꾸었던 한 소년의 희망과 좌절을 통해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인간 상실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1만원.●벽(장 폴 사르트르 지음, 김희영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실존주의 철학가이자 작가인 사르트르가 1939년 발표한 소설집.‘구토’라는 제목으로 1983년 국내 출간됐던 것을 사르트르 탄생 100주년을 맞아 새롭게 번역했다. 프랑코의 파시즘에 대항해 스페인 내전에 참여했다 사형을 선고받은 주인공의 고뇌를 다룬 표제작을 비롯해 중단편 5편을 실었다.1만원.●칼 같은 글쓰기(아니 에르노 지음, 최애영 옮김, 문학동네 펴냄)‘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하는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와 소설가 겸 평론가인 프레데르크 이브 자네의 대담집.‘단순한 열정’‘탐닉’‘집착’ 등으로 늘 논쟁의 중심에 서온 아니 에르노의 문학적 토대와 행보를 엿볼 수 있다.9800원.●사랑하거나 미치거나(권지예 지음, 시공사 펴냄)고흐, 로트렉, 피카소, 쉴레 등 누구보다 열정적인 생을 산 유명 화가들의 가장 아름다웠던, 혹은 가장 비극적이었던 순간을 문학적 상상력과 예술적인 감성으로 빚어낸 그림소설집. 이상문학상과 동인문학상에 빛나는 저자의 탁월한 글쓰기가 독자들을 매혹시킨다.1만원.●흙의 살들(김규태 지음, 아침나라 펴냄)1957년 ‘문학예술’로 등단, 이후 ‘현대시’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철제 장난감’‘졸고 있는 신’ 등의 시집을 발표해온 저자의 네번째 시집.‘원형에 이르는 꿈’으로 요약되는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7500원.
  • 국립박물관 이게 뭡니까

    국립박물관 이게 뭡니까

    준비가 아무리 철저하더라도 어디나 옥에 티는 있는 법. 국립중앙박물관도 예외는 아니다. 의자에 누워있거나 전시관에서 몰래 음식을 먹는 것은 애교에 속한다. 그러나 박물관 안이 음식점의 창고로 버젓이 사용되고, 지방 관람객들을 배려하지 않는 등 상식에 어긋나는 일들도 벌어지고 있다. 시설은 최첨단을 달리는데 운영하는 사람과 이용하는 사람은 첨단과는 거리가 멀다. ●‘국민의 조망권´ 침해 국립중앙박물관의 ‘얼굴’ 격인 열린마당. 세대와 지역을 뛰어 넘는 열린 공간으로 박물관을 설계한 건축가의 의도가 담긴 곳이다. 멀리 남산과 서울타워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남산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녹색 그물망에 가려서다. 박물관 뒤편 주한미군 기지의 골프연습장이 좁은 도로 너머에 붙어 있다. 미군 일부 장교들의 ‘스포츠’를 위해 국민들의 ‘조망권’이 침해를 받고 있는 셈이다. ●수십 미터 줄서기·적은 메뉴… 불편한 식당 박물관 식당은 모두 4곳이다. 푸드코트와 자율식당 ‘미르뫼’, 거울못 레스토랑 ‘아리수’, 그리고 한식당 ‘한차림’이 전부다.CJ푸드시스템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끼니 때 이곳에서 제대로 밥을 먹는 것은 불가능하다. 푸드코트 입구에서 전시실인 고고관 앞까지 수십미터의 줄이 늘어서 있기 일쑤다.30분 기다리는 것은 약과다. 비교적 한산한 편인 한식당도 이해가 안 가기는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점심 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육개장과 설렁탕 단 두 가지다. 메뉴판에는 10가지가 버젓이 나와 있다. 식당 관계자는 “개관 초기라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변명만 늘어놓는다. 더구나 이 식당은 음식을 직접 조리하지 않는다. 냉동식품을 데워서 팔고 있다. 맛은 악명 높은 예비군훈련장 식당과 호형호제할 정도다. 그런데도 1만원 가까이 줘야 한다. 더 심한 것은 식당 밖 전시관 한 구석을 버젓이 쓰레기장과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냉동식품 박스가 2m 넘는 높이로 쌓여 있다. 빈 박스와 쓰레기봉투도 방치돼 있다. 바닥은 붉은 색의 김치 국물로 얼룩졌다.‘국립’박물관 안의 유일한 한식당의 실태다. ●입장권 선착순 배부에 지방관광객 불만 어린이 박물관은 입장 시간을 하루 6회로 나눠 1시간30분 동안 150명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쾌적한 관람을 위해서다. 그러나 개인 관람객의 입장권을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배부해 지방에서 올라온 관람객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20인 이상 단체 관람객은 인터넷으로 예약할 수 있다. 개인 관람객은 오전부터 선착순으로 그날의 입장권을 모두 나눠주고 있다. 평일에도 오전 11시쯤이면 표가 모두 동이 난다. 오후에 지방에서 먼길을 올라온 개인 관람객들은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 지난달 31일 오후에는 단체 입장객들이 관람을 일찍 끝냈다.1시간30분인 관람 시간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산한 시간에도 개인 입장객을 추가로 들여보내지 않았다.‘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다리는 시민들은 불만이 팽배할 수밖에 없다. 전라북도 전주에서 오후 12시30분에야 박물관에 도착했다는 김현미(46·여)씨는 “마지막 회차 입장권까지 오전에 모두 나눠주면 지방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면서 “20명 이상만 예약할 수 있으니 어떻게든 20명을 모아 다시 올라와야 할 판국”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신대곤 학예연구관은 “개인들도 일부 예약을 할 수 있게 하는 등 여러 가지 개선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해명했다. ●식당이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인터넷 홈페이지상의 카페·식당 등의 위치도 헷갈리게 표기돼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은 동·서관으로 나뉘어져 있다. 동관이 더 낮은 곳에 지어져 서관 1층은 동관 3층, 서관 2층은 동관 4층이 된다. 하지만 출입구는 서관 하나뿐이다. 동관으로 넘어갈 때 같은 층으로 간다고 착각하기 쉽기 때문에 방문객들이 혼란을 겪는다. 서관 6층인 극장 ‘용’ 앞에서 만난 홍명희(40·여)씨는 “홈페이지에서 한식당인 ‘한차림’이 분명히 3층에 있다고 돼 있어 3층으로 올라왔는데 도대체 찾을 수가 없다.”고 불평했다. 홍씨가 올라온 ‘3층’은 박물관 홈페이지식 표기에 따른다면 서관의 6층이지만, 홍씨 역시 동관과 같은 층수로 착각해서 빚어진 오해다. ●나만 편하면 그만인 얌체족, 의자를 침대처럼 박물관 곳곳에는 지친 다리를 잠시 쉴 수 있는 의자들이 마련돼 있다. 특히 3층에는 1층부터 차례로 관람을 해 온 사람들이 갑자기 피곤함을 느끼기 때문에 앉아 쉬는 사람을 유독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3층 곳곳에 마련된 긴 의자에 몇몇 사람들이 누워 있는 모습이 종종 발견돼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시민들의 질서·문화 의식이 아쉬운 대목이다. 또 3층 미술Ⅱ관 가운데 쯤에 높이 2m 폭 30㎝ 정도의 틈이 곳곳에 있다. 채광과 미적 아름다움 등을 고려해 만든 것이다. 그러나 자칫 아이들이 다니다가 이 틈에 끼일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을 위한 주의 문구나 안내방송이 필요할 것 같다. 서울시청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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