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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인천에서 내려오는 학도의용대입니다”

    “우리는 인천에서 내려오는 학도의용대입니다”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4)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임시로 탈영병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아들 이규원(인천 소재 치과 원장) 씨의 도움으로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 1명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는 부산까지 걸어가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000명과 참전 스승(심선택 소위, 신봉순 대위)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 소위·24세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 ■권유상 인터뷰 ●일시 1998년 1월 19일 ●장소 인천 부평외국어고등학교 교장실 ●대담 권유상 이경종(6·25 편찬위원) 이규원(6·25 편찬위원장·이경종 아들)[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 1회] ■권유상 인천학도의용대 제3대대장 서울대 사범대학 2학년생1928년 12월 21일: 인천 화수동 출생 1942년: 인천송림국민학교 5회 졸업 1948년: 인천공업중학교 졸업 후 서울대학교 입학 1950년 9월 20일: 인천학도의용대 제3대대장 취임 1950년 12월 18일: 경남 통영의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를 향해 남하 1951년 1월 10일: 국민방위군 사건을 듣고 최종목적지를 통영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에서 부산의 육군 제2 훈련소로 변경 1951년 1월 15일: 23살의 서울대학교 2학년 학생이어서 육군 중위 장교임관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하고 중학생들과 같이 사병으로 자원입대 1956년 2월 25일: 5년 1개월을 복무하고 만기 제대 #나와 인천학도의용대(仁川學徒義勇隊) 1928년 12월 21일 인천 화수동 147번지에서 태어난 나(권유상)는 인천송림국민학교와 인천공업중학교(현 인천기계공고)를 졸업했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때 6·25 사변이 일어났다. 9·15 인천상륙작전 후 인천지역은 북한 인민군치하에서 학정에 시달리던 우익학생들이 모여서 인천학도의용대를 만들어 활동 중이었고 그 본부는 용동에 있었다. 1950년 9월 20일쯤 인천학도의용대에서 나를 3대대장으로 임명하여 나는 인천주안국민학교를 대대본부로 정하였다. 우리 3대대 구역은 남구, 남동구, 연수구였고 대원은 약 1000명이었다. 우리 3대대의 대대부관은 인천공업중학교 4학년 조태휘였고 1중대장은 인천상업중학교 6학년 권용훈, 2중대장은 인천중학교 6학년 이용구, 3중대장은 고려대학교 2학년 최수보였다. #국민방위군 소위를 따라 통영을 향해서 남하 1950년 11월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군과 UN군이 밀린다는 소문이 들렸다. 1950년 12월 18일, 인천학도의용대의 전 대원 3000여명이 인천축현국민학교에 모두 모여서 인천 병사구 사령부(현재 병무청)에서 파견 나온 국민방위군 소위의 인도에 따라 경상남도 통영의 충렬국민학교(국민방위군 제3수용소)를 목표로 남하 행진을 시작했다. 그 날은 함박눈이 왔고 국도를 따라서 수원, 대전, 대구, 청도, 밀양, 삼랑진을 거쳐 통영의 충렬국민학교를 향하여 매일 25㎞(동인천역에서 영등포역 거리 정도)씩 20일간 500㎞ 거리를 인천지역의 6년제 중학교 학생들 약 3000명이 대학생 형들을 따라 도보로 남하했다. #“우리는 인천학도의용대입니다” 우리 인천학도의용대는 걸어서 내려가다가 밤이 되면 농업조합(당시 농민을 위한 기관)을 찾아가 “우리는 인천에서 남하하는 학도의용대입니다”라고 신분을 밝히면 밥을 해 주고 잠자리를 마련해줬다. 우리는 인천을 떠난 지 20일 만에 최종 목적지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에 가까운 마산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나는 국민방위군 사건을 보고 통영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로 가는 걸 주저한 채 마산에 있으면서 인천학도의용대(대장 이계송) 본부에 보고했다. #국민방위군과 국민방위군 사건 전시에 신속한 병력 동원을 위해 1950년 12월 제정한 국민방위군법에 의한 군대였으나 1951년 1·4 후퇴 때 국민방위군 약 9만명이 굶거나 얼어서 죽은 사건이 발생하여 관련 장성 5명이 총살당했고 국민방위군은 1951년 5월에 해체되었다. #“고향 인천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라” 1951년 1월 초 우리 3대대 부관 조태휘가 나에게 마산의 해병대 6기 모집에 관하여 보고했다. 대부분의 우리 3대대 대원들이 해병대에 지원했고 해병 신체검사가 끝난 후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6기 해병대원은 대부분 인천 지역 6년제 중학교 4~6학년 학생들이었다. 나는 우리 3대대의 합격자들에게 “해병대에 가더라도 인천학도의용대의 긍지를 잊지 마라. 그리고 다시 고향 인천에서 만날 때까지 모두 건강하라”는 당부의 말을 하였다. #해병6기는 거의 인천출신 중학교 4~6학년 학생 그때 해병 6기 모집에 합격한 대원은 6년제 중학교 4~6학년 학생들이었고 탈락한 대원들은 2·3학년 학생들이었다. 그때 나도 해병대로 자원입대할까도 생각했지만 나이가 어리거나 작아서 탈락한 대원들 때문에 도저히 해병대에 입대할 수 없었다. 탈락한 어린 대원들이 우리를 버리지 말라는 아우성에 나는 “너희들과 같이 행동 할 테니 우리 다 같이 어려운 고비를 함께 넘기자”며 어린 중학생들을 달랬다.#중학교 2·3학년 학생들이 갑자기 군인으로 통영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로 향하던 인천학도의용대는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인하여 부산 육군 제2 훈련소로 입소하기로 계획을 변경하였고 우리들은 마산항에서 배를 타고 약 8시간 걸려 부산항에 도착하여 육군 제2 훈련소에 1951년 1월 10일 날 입소했다. 부산진국민학교에 있었던 육군 제2 훈련소에 입소한 날부터 인천학도의용대란 존재는 사라졌고 갑자기 중학생에서 군인이 되었다. 그 후 부산 동대신동 육군통신학교로 가라 해서 많은 인천지역 중학교 2·3학년 학생들이 나를 포함하여 통신병 교육을 받고 통신병이 되었다. #인천 여학생들의 은인, 신봉순 대위님 인천에서부터 부산까지 같이 내려왔던 많은 여학생 대원들은 오갈 데가 없어서 매우 어려웠었다. 그때 부산육군통신학교의 신봉순 대위님은 여학생들을 통신학교 행정보조 업무를 하게 하며 보살폈고 4개월 뒤 여학생들은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갔다.#중학교 2·3학년 학생들이 통신병으로 신봉순 대위님은 8·15 해방 후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시다가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고 장교로 임관하여 부산육군통신학교 유선교육대장으로 있었는데 많은 인천학생들을 통신학교로 입교시켰다. 신 대위님은 지휘관 옆에 있는 통신병이 좀 더 안전할 거라는 생각에 어린 중학생들을 통신병으로 이끌어 주셨다. #“우리 대대장님 누룽지 드세요” 어느 날, 여학생 몇 명이 누룽지를 가져와서 ‘대대장님 드세요’라고 했던 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렇듯 서로를 감싸주고 생각해주는 따뜻한 마음들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아직까지도 나의 가슴에 남아 있다. #육군 중위 장교임관을 거절하고 사병으로 입대 1951년 1월 10일 나는 육군 중위 장교임관 제의를 거절하고 어린 중학생들과 함께 사병으로 자원입대하여 참전하였고 1956년 2월 만기 제대하였다. 국가위난의 6·25때 나라를 지키겠다고 뭉친 인천의 6년제 중학교 학생들은 부산까지 20일간 걸어가서 자원 입대 후 참전하여 청춘을 채 펴 보지도 못하고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을 전선에서 보냈다. #“내가 이끌었던 3대대 대원들도 많이 전사” 그때 나는 대학생이었고 인천학도의용대 3대대장으로서 어린 중학생들을 인천에서 부산까지 내 나름대로 판단하여 한 점 부끄럼 없이 이끌었지만 너무나 큰 국가 위기로 인하여 내가 할 수 있는 힘의 한계는 어쩔 수가 없었다. 우리 3대대 1000명 중에서 100명 정도 전사했다는데 시국이 너무 급박하여 형으로서, 대대장으로서 할 일을 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아직까지도 한(恨)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 있다. 아무쪼록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 역사 발굴 작업이 성공하기를 빈다.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다음 호에 2회 계속 참전기 1회를 마치며… ●이경종 위원이 전하는 말 권유상 옹은 육군 중위 장교임관 제의를 거절하고 어린 중학생들과 함께 23살에 사병으로 자원입대하여 5년 후 28살에 만기 제대한 인천지역 어린 중학생들의 훌륭한 형이었다. ●이규원 위원장이 전하는 말 살아 계시다면 올해 90살이 되신 권유상 인천학도의용대 3대대장님께 감사의 말씀 드린다. 1·4 후퇴 때 인천에 남아있었으면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가서 실종되거나, 국민방위군으로 끌려가서 굶거나 얼어 죽을 운명의 인천학생들을 안전하게 부산까지 이끌어서 훌륭한 일을 해냈다. 하지만 208명이 전사하여 제대 후 고향 인천에서 전사 학생 부모님들로부터 “우리 아들 전쟁터 데려가서 죽었다”라는 비탄의 말을 들었고, 일평생 동안 동생 같았던 전사 학생들을 가슴에 담고 살았던 참전 대학생 형들이 인천에 있었다.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 학생이었던 저의 아버지(이경종)를 안전하게 부산까지 이끌어주신 권유상 3대대장님께 지면으로나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개혁 넘어 환골탈태 필요한 국방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개혁 넘어 환골탈태 필요한 국방

    인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문명이 시작된 이래 인류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전쟁을 치러왔다. 수많은 전쟁을 거듭하면서 인류는 전략과 전술, 그리고 무기를 다듬고 발전시켜 왔다. 이러한 발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선도했던 국가들은 역사의 주인이 되었고, 그렇지 못한 나라들은 대부분 도태되거나 참담한 비극을 맞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듯 군대가 국토방위라는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군사전략과 무기체계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화·발전시켜야 한다. 전략이 뒤떨어진다면 아무리 좋은 무기를 많이 가지고 있더라도 전쟁에서 이길 수 없고, 무기가 뒤떨어진다면 전략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전투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군은 외형적으로는 규모와 전력(戰力) 면에서 세계 10위권 이내의 강군(强軍)으로 평가 받고 있다. 하지만 시대에 뒤떨어지는 군사전략과 뒤떨어진 개념의 무기체계, 그리고 기형적 군 구조로 인해 미래 안보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제대로 지켜내기 어렵다는 안팎의 지적에 따라 새 정부는 고강도 국방개혁을 예고하고 나섰다. 기형적 군대의 ‘최강 치트키’ 60만 대군을 유지하며 매년 400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국방예산을 지출하고 있는 한국군은 외형적으로 볼 때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 즉 공식적 핵무기 보유국을 제외하면 재래식 군사력으로는 세계 어느 나라도 쉽게 넘볼 수 없는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40만 이상의 병력과 1500여 대를 훌쩍 넘는 3세대 전차, 2000문에 가까운 자주포와 500여 대의 헬기를 보유한 지상군은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 초강대국에 견주어도 크게 밀리지 않을 정도의 가공할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해군은 최첨단 이지스 구축함을 비롯한 중대형 전투함 수십여 척과 고성능 잠수함을 20여 척 가까이 보유한 전력을 운영하고 있고, 공군에는 F-15K와 KF-16 등 200여 대 이상의 신형 전투기와 공중조기경보기까지 버티고 있다. 이렇게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국민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안보 불안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북한의 도발이 발생하면 전쟁이 발발해 전 국토가 불바다가 될 것을 걱정해야 하고, 중국이 사드 보복 운운하면서 무력시위를 벌이면 중국에게 얻어맞을까 두려움에 떨곤 한다. 이는 국민들이 군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같은 문제의 원인으로 한국이 처한 안보 환경의 특수성, 그리고 지난 수십 여 년 간 우리 군 수뇌부를 지배해 온 동맹에 대한 과잉 의존성, 여기에 더해 지난 30여 년간 군의 헤게모니를 틀어쥐어 온 특정 군의 자군 이기주의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사실 한국이 아프리카나 중남미, 동남아시아 어딘가에 있는 국가라면 현재 수준의 군사력만으로 지역을 제패하고 강대국 대접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한국은 핵으로 무장하고 거대한 병영국가 체제로 유지되는 현존 최악의 범죄 정권과 대치하고 있고, 인접한 국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력을 가진 강대국들뿐이다. 주변 안보 환경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약자이기 때문에 국민들 스스로 “우리 군사력만으로는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어렵다”는 불안감에 떨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한미 동맹에 대한 군 수뇌부의 과잉 의존과 특정 군의 자군 이기주의 역시 우리 군을 사상누각(沙上樓閣)의 군대로 만드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6.25 전쟁 이후 한국군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했을 때 지상전은 한국군이 맡고, 해·공군은 미군이 맡는다는 고정관념 속에 살아왔다. 경제 사정이 넉넉지 않았던 60~70년대에는 전투기와 군함을 구입하고 유지하는데 많은 돈이 들어가니 가난한 한국군은 지상군 위주의 병력 집약적 군대로 육성해야 한다는 논리가 통했다. 그 결과 한국군은 전체 병력의 3/4 이상이 지상군인 기형적 형태의 군대로 성장해 왔다. 하지만 한국 경제가 크게 발전해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된 이후에도 한국군은 해·공군에 대한 투자에 소홀했다. 12.12 쿠데타 이후 확고부동하게 헤게모니를 장악한 군내 기득권 세력은 북한이 ‘서울 불바다’ 위협을 들고 나오자 수천 문의 자주포를 만드는 대응책을 내놓으며 세(勢)를 더욱 불렸고, 북한이 핵미사일 위협을 들고 나오자 수 백기의 지대지 미사일을 만드는 카드를 꺼내며 더 많은 예산과 인력을 차지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실제 전쟁에 대비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전시용(戰時用) 군대가 아니라 세를 늘리고 과시하기 위한 전시용(展示用) 군대를 만들다보니 한국군은 덩치만 비대할 뿐 북한은 물론 주변 그 어느 나라와 싸워도 승리를 보장할 수 없는 허울뿐인 군대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북한의 장사정포에 대비한다며 만든 대규모 포병전력은 외형적으로는 이미 노후화된 북한 포병 전력을 질적으로 압도했고, 초강대국인 미국과 러시아, 중국의 포병 전력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탄약 재고가 턱없이 부족해 통제보급률(CSR·Controlled Supply Rate)에 따라 하루에 정해진 양만큼만 포탄을 써도 며칠 못가 탄약이 떨어져 장기전을 수행할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공중 전력은 최신 4세대 전투기를 다수 보유한 막강 전력으로 홍보되지만, 보유 전투기의 절반은 노후 전투기이고, 자체 전력만으로는 지하 수십 미터에 강화 콘크리트 방공호를 지어놓고 버티고 있는 북한 지도부를 효과적으로 타격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바다에서는 최근 건조된 한국형 구축함과 신형 호위함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현역 전투함들이 싸구려 음파탐지기를 달고 수중 위협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된 채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위풍당당한 한국형 구축함들의 미사일 발사대는 적지 않은 수가 텅텅 비어있거나 미사일이 채워져 있더라도 한 번 쏜 뒤 다시 채울 재고탄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바다와 하늘에서 현대적인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고, 비축 탄약과 물자가 부족해 전쟁을 장기간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문제점은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군 수뇌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단칼에 해결할 수 있는 사실상의 ‘치트키’(Cheat code)를 가지고 있다. 바로 ‘연합전력’이다. 탄약과 물자가 부족한 것은 사전배치전단과 주일미군이 준비하고 있는 것을 끌어다 쓰면 되고, 수송기와 헬기가 없어 적지 후방에 ‘공수’를 못하는 ‘공수특전여단’은 미군 수송기와 헬기를 지원 받으면 된다. 텅텅 비어 있는 군함의 미사일 발사대는 미군 보급함에서 미사일을 보급 받아 채우면 되고, 평양 지하 수십 미터의 김정은 전쟁 지휘소는 미군 폭격기와 벙커버스터가 알아서 해결해 줄 것이니 걱정할 것이 없다. 필요한 건 연합자산을 가져다 쓰면 된다는 이 논리는 정보자산이나 해·공군 전력 강화를 위한 소요제기를 깔아뭉개고 특정 군이 예산과 보직 등에서 절대적 헤게모니를 장악하며 기형적 군 구조를 만드는데 ‘전가의 보도’(傳家寶刀)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안보-자주성 교환 모델(Autonomy security trade-off model)에 따라 한국군은 미군에게 의존하는 만큼 자주성을 잃어야 했다. 전시작전통제권을 단독으로 행사할 수 없고, 매년 막대한 예산을 미국제 무기를 구입하는데 지출해야 했으며, 한미 안보 협력을 논하는 자리에서 주도권을 쥐고 우리의 국익과 안보를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관철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군내에서 이 같은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금기시되어 왔고, 그렇게 군은 지난 수십여 년 간 점차 머리와 몸통이 따로 움직이는‘기형아’가 되어왔다. 과감한 국방개혁이 필요한 때 지난 10여 년 사이 한반도 안팎의 안보 상황은 대단히 심각하고 위중하게 변모했다. 북한의 군사 위협은 재래식 군사 위협을 넘어 4세대 전쟁 수행을 위한 비정규전·사이버전 영역까지 확장됐고, 여기에 더해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이라는 카드도 추가됐다. 급격한 세력 팽창을 꾀하고 있는 중국은 급속도로 군사력을 강화하며 한국의 해양주권과 권익을 침탈하는 것은 물론 경제 보복과 군사적 압박을 통해 노골적인 내정간섭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 집단적 자위권 행사라는 명분으로 법령을 개정한 일본은 군국주의의 빗장을 조금씩 풀어가며 주변국을 겨냥한 공세적 군사력 증강에 여념이 없다. 안보 위협에 대한 인식과 해법 논리, 그리고 군 구조가 60~80년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한국군으로는 변화하는 안보 위협에 대응할 수 없으며, 이 때문에 국민들은 안보 불안 상황이 발생하면 발 뻗고 잘 수 없는 상황이다. 10여 년 전,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심각한 문제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6년 12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연설을 통해 군 수뇌부를 질타했다. 그는 스스로 군 수뇌부가 작전통제도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놓고 국방장관, 참모총장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 거들먹거린다며 이러한 군 수뇌부의 행태는 직무유기이며,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노 전 대통령은 말뿐만 아니라 행동도 보여주었다. 참여정부 첫 국방장관으로 갑종장교 출신인 조영길 장관을, 두 번째 국방장관으로 해군 중장 출신의 윤광웅 장관을 기용해 고강도 국방개혁을 추진했다. 당시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국방개혁의 핵심은 미래 안보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육군 위주의 군 구조를 해·공군 중심으로 바꾸고 이를 위해 해군력과 공군력을 크게 강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결국 국방개혁에 실패했다. 5년에 불과한 임기로는 개혁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기기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고, 오랜 시간 단단하게 고착화된 군내 헤게모니 구도 타파는 장관 하나 바꾼다고 해서 쉽게 이루어질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방개혁은 이제 더 미룰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안보 위협의 양상이 바뀌었고, 그 상황이 대단히 위중하기 때문에 더 이상 개혁을 미루다가는 국가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위기가 닥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군이 내부 밥그릇 싸움에 매달리고 과거 북한 군사위협의 잔상에 사로잡혀 시대착오적이고 기형적인 군사력을 건설하는 동안 북한은 핵과 미사일이라는 전략적 무기뿐만 아니라 기존 한반도 전장 환경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재래식 무기들을 속속 내놓으며 재래식 전쟁에서의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가령, 북한이 핵미사일로 후방 전략시설들을 타격하고, 방사포와 특수부대로 주요 지휘소와 공군기지를 제압한 뒤 전면 남침을 감행하면 손발이 묶인 한국군으로서는 이를 막아낼 재간이 없다. 주변국 위협도 문제다. 중국과 일본의 군사 위협은 점차 노골화되어가고 있으며, 이들은 미국이라는 보호자가 사라지면 언제든지 한국에게 달려들어 물어뜯을 준비를 하고 있다. 중·일 양국이 한반도를 노리는 이유는 한반도 주변 해역의 해양 자원도 자원이지만, 점차 격화되어 가는 미·중 패권 경쟁에서 한반도는 완충지대이자 상대방에게 강력한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전진기지로서 전략적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미국의 방관 하에 중·일 양국이 한국의 주권과 권익을 침해하고 최악의 경우 군사적 조치를 취하더라도 현재의 한국군 전력으로는 막아내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중국이나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이들 국가가 제주 남방 해역에서 한국에 대한 해상 봉쇄를 시도한다면 현재의 해·공군 전력으로는 이에 대응하기 어렵고, 일본이 자위대를 동원해 독도를 무력으로 점거하더라도 현재의 군사력으로는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안보 위협의 변화 양상을 꿰뚫고 이에 상응한 적절한 군사전략과 무기체계를 갖추지 못하는 군대는 전쟁에서 반드시 위태로워진다. 고려 말 정지(鄭地) 장군과 임진왜란 직전 이순신 장군은 앞으로의 안보 위협은 바다로부터 올 것이니 바다에서 오는 위협은 바다에서 막아야 한다는 이른바 ‘방왜해전론’(防倭海戰論)을 펴고 이를 위해 해군력을 정비할 것을 강조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를 귀담아 듣지 않았던 조선은 전 국토가 전란의 참화에 휩싸이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대한민국 역시 변화하는 안보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군 구조와 군사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반드시 위태로워질 것이다. 21세기 한국의 안보 환경을 뒤흔들 수 있는 위협은 대부분 바다에서 오며, 이 때문에 한국은 지상군 중심의 군 구조를 탈피해 강력한 원거리 투사 능력과 방어 능력을 갖춘 해군력과 이와 보조를 맞추는 공군력 중심으로 군사력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 이러한 개혁의 선봉장은 당연히 바다와 해군을 가장 잘 아는 해군 출신이 맡아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이며, 다행스럽게도 문재인 대통령의 인재풀에는 이러한 책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인사들이 있다. 그 중에서 문 대통령이 새 정부 첫 국방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송영무 전 해군참모총장의 경우 비록 능력 이외의 부분에서 여러 의혹이 제기되어 논란에 휩싸여 있기는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가 국방장관이 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낙마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음해하는 세력까지 있다는 풍문이 돌고 있다. 송 후보자의 군 개혁에 대한 의지와 신념, 추진력은 무서울 정도라는 평가가 많다. 현재 대한민국의 안보 상황은 위중하다. 군 통수권자의 강력한 군 개혁 의지, 그리고 미래 전장 환경에서 필승의 전략을 가진 개혁적 국방 수장, 나아가 개혁에 국민적 열의와 지지가 그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한 시기이다. 이일우 군사 전문 칼럼니스트(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사설] 도덕성 문제 분명히 드러낸 송영무 청문회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어제 국회에서 열렸다. ‘국방개혁의 적임자’인지를 검증하는 자리였지만, 얽히고설킨 갖가지 개인적 의혹을 해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야당인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국민의당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송 후보자가 장관으로 역량을 발휘할 바탕이라고 할 수 있는 도덕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그동안 송 후보자를 둘러싸고 제기된 의혹은 위장전입과 논문표절부터 군 납품 비리 무마, 법무법인 율촌 고문과 LIG넥스원 자문역으로 받은 거액의 활동비, 자녀의 국방과학연구서(ADD) 채용 등 나열하기조차 숨찰 지경이다. 청문회 직전에는 영관급 장교 시절 면허 취소 기준을 넘는 만취 운전을 하고도 사건을 덮은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불거졌다. 더불어민주당만이 송 후보자를 엄호하려 애쓰는 모습이었지만, 이해가 쉽지 않은 것은 여당 의원들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여당 의원들은 청문회에서 “6·25 이후 북한과의 전쟁에서 유일하게 승리한 장군”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제1연평해전 승리의 주역’임에도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 적절치 않다는 야당의 주장에는 모멸감이 든다는 주장도 있었다. 물론 송 후보자가 해군에 몸담았던 시절 북한과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능력 있는 장수라는 사실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전역 이후 그의 행적이 국방부 장관이라는 막중한 소임에 걸맞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다른 의혹을 모두 떠나 법무법인 율촌과 LIG넥스원에서 각각 받은 9억 9000만원의 고문료와 2억 4000만원의 자문료만으로 국한해도 국민의 눈높이에는 못 미친다. 그는 청문회에서 “거액 자문료가 부담스럽지 않더냐”는 의원들의 물음에 “나도 깜짝 놀랐다”고 답했다고 한다. 송 후보자는 놀랄 만한 거액의 ‘사례금’을 챙기는 순간 공직 진출은 ‘나의 길’이 아니라는 다짐을 했어야 옳았다. 청문회에서 야당 의원은 송 후보자가 19대·20대 총선에 나서려 했고, 지난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 캠프에 있었던 사실을 언급하기도 했다. 군인 출신이라도 전역 이후 정치권에 몸담는 것은 보장받아 마땅한 기본권에 속한다. 하지만 군인의 명예를 뒤로하고 돈을 추구했던 사람이 다시 권력까지 욕심을 부리는 것은 도덕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야당의 ‘자진 사퇴’ 요구를 정체 공세로만 볼 것도 아니다. 같은 날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의원 프리미엄’을 고려해도 정책 질의 위주로 본질에 충실하게 이루어졌음을 보지 못했나.
  • 대한해협 해전 승리를 기억하며…

    대한해협 해전 승리를 기억하며…

    26일 오후 부산 앞바다에 열린 대한해협 해전 전승 67주년 기념행사에서 구축함 문무대왕함(4400t)을 탄 해군 장교들이 백두산함 전사자를 추모하며 해상헌화하고 있다. 대한해협 해전은 대한민국 해군 최초의 전투함인 백두산함이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6일 새벽 무장병력 600여명을 태우고 부산으로 침투하던 북한 1000t급 무장수송선을 격침한 해전이다. 부산 연합뉴스
  • ‘애국페이’ 해소 효과 있지만… “사병 봉급에만 年1조 더 필요”

    ‘애국페이’ 해소 효과 있지만… “사병 봉급에만 年1조 더 필요”

    2022년까지 67만원 단계 인상 내년에만 7600억원 추가 필요 시설·급식 등서 구조조정 시급 “소비 늘어 경제 활성화” 기대 “나랏돈 남아날지 걱정” 우려도 내년부터 군 복무 중인 병사의 월급이 병장을 기준으로 최저임금의 30% 수준까지 오른다. 이에 따라 병장 월급은 현재 21만 6000원에서 내년에는 두 배에 가까운 40만 5669원이 된다.새 정부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26일 문재인 대통령의 국방 분야 공약대로 병사 급여 인상안을 이같이 확정했다. 박광온 대변인은 “2020년엔 최저임금의 40%, 2022년엔 50% 수준까지 순차적으로 병사 월급을 인상하겠다”고 말했다. 국정기획위의 결정에 따라 내년 병사 월급은 올해 최저임금인 135만 2230원을 기준으로 인상된다. 올해 최저임금 기준 병장 급여는 각각 2020년엔 54만 892원, 2022년엔 67만 6115원이 된다. 박 대변인은 “이런 방침은 군의 현대화, 정예 강군화 기조에 맞춰 정한 것”이라면서 “또 장교와 부사관의 수는 늘리되 사병의 수를 줄여 가겠다는 계획과도 연결되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사병 복무기간 단축과도 연계가 되느냐는 질문엔 “예산 면에서는 연동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박 대변인은 “아울러 병사들이 전역할 때 목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관계 부처와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가 내년부터 장병 월급을 올려 주기로 한 것은 현재 병사 급여가 최저임금에 한참 미치지 못해 청년들에게 이른바 ‘애국페이’(애국심으로 노동력을 착취한다는 뜻의 신조어)를 강요하고 있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며, 급여를 올려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면 더 강한 군대를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작용했다. 다만 재원 마련이 관건이다. 이날 국정기획위 발표대로 최저임금의 30%까지 맞추려면 내년에 7600억원이, 5년간 4조 8600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이수훈 국정기획위 외교안보분과위원장은 “국방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예산당국은 적지 않은 부담이라고 우려한다. 매년 국방 예산이 1조 5000억원(전년 대비 3.5~4.0%)가량 늘어나는데, 병사 봉급 인상으로만 해마다 1조원 가까이를 쓴다면 첨단 무기 구입, 국방 연구개발(R&D) 등 군 전력 향상을 위해 쓸 수 있는 나랏돈은 나머지 증가분인 5000억원 안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북핵 대응, 첨단 무기 구입 등 반드시 필요한 예산을 제외한 나머지인 군 시설 및 급식 개선, 장비 교체 등의 사업 예산을 줄이거나 미루는 ‘예산 구조조정’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병사 봉급 인상에 추가적으로 더 많은 재원이 투입될 수도 있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 수준으로 높인다는 문 대통령의 공약이 실현된다면 더 인상된 최저임금에 비례해 병사 월급도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여론은 찬반으로 엇갈렸다. 오는 8월 입대를 앞둔 박모(21)씨는 “훈련을 하다가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데 의무라는 이유로 ‘애국페이’를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면서 “병사의 월급을 올려 주면 사기와 자존감도 덩달아 오를 것”이라고 월급 인상에 찬성했다. 반면 군 복무를 마친 아들 2명을 둔 안모(56·여)씨는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 본 사람으로서 병사 월급이 부족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가능한 한 올려 줘야 한다”면서도 “월급을 한번에 너무 많이 올리면 나랏돈이 남아날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서울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서울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서울 강신 기자 xin@seoul.co.kr 세종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육군 최초 준사관 헬기 조종사 父子

    육군 최초 준사관 헬기 조종사 父子

    육군 역사상 처음으로 준사관 헬기 조종사 부자가 탄생했다.육군은 25일 “육군 항공작전사령부 1항공여단 소속 공격헬기 AH1S ‘코브라’ 조종사인 양성진(51) 준위의 아들 양한솔(26) 준위가 지난 23일 항공 준사관 교육 과정을 마치고 임관했다”면서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장교로 항공 조종사 임무를 수행한 적은 있지만, 현역에서 같은 계급인 항공 준사관으로 복무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준사관은 전문성을 갖춰 사관(장교)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임관부터 전역까지 준위 계급장을 단다. 양한솔 준위는 지난해 11월 항공학교에 입교해 항공 준사관 훈련을 받는 동안, 외박·외출 때마다 아버지로부터 헬기 조종과 정비 ‘노하우’를 전수받은 덕에 2등으로 임관했다. 양 준위는 UH1H 헬기를 타고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아버지 양성진 준위는 5000시간 무사고비행 기록을 가진 전문 조종사로, 2008년에는 최고의 헬기 조종사인 ‘톱 헬리건’에 뽑힐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양성진 준위는 아들에 대해 “항공 조종사의 길이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걱정도 많이 했다”면서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는 최정예 항공 조종사가 되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아들 양한솔 준위는 “조국의 하늘을 아버지와 함께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미래 전장의 주역이 되겠다”면서 “나중에 공격헬기 조종사가 돼 꼭 ‘부자 톱 헬리건’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능력사회로 가자] “청년들 中企 오게 하려면 교육으로 미래 보여줘야”

    [능력사회로 가자] “청년들 中企 오게 하려면 교육으로 미래 보여줘야”

    중소기업 근로자 비중은 전체 근로자의 88%, 기업 수는 전체의 99%를 차지하지만 구직자들의 기피로 중소기업 구인난은 해마다 심화되고 있다. 2015년 중소기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80.5%가 ‘인력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가장 큰 이유는 ‘임금’이 낮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연구원이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중소기업 임금총액은 323만원으로 대기업(513만원)의 62.9%에 그쳤다. 격차는 20년 전과 비교해 14.4% 포인트나 더 벌어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임금 외에도 중소기업 기피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많다고 지적한다. 강순희 경기대 교수와 안준기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이 지난달 ‘2017 고용패널조사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대졸자들은 왜 중소기업을 기피하는가’ 보고서에 따르면 직무교육훈련, 근무환경, 현재 일자리와 일에 대한 사회적 평판 등 미래 성장 환경과 관련한 지표들이 중소기업 기피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 기피 요인을 보완할 수 있는 ‘일·학습 병행제’에 주목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김우종(44) 대건테크 부장은 25일 “학습과 업무를 병행하는 학습 근로자 중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2년간 현장근로를 병행하는 ‘산학일체형 도제학교’ 근로자의 취업 유지율이 비교적 높다”며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대학에 진학하고 싶으면 한국폴리텍대에서 이뤄지는 전문과정 교육도 정부에서 지원해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건테크는 경남 창원에 있는 중소기업이다. 케이블 등 산업용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로 현재 3D프린터도 개발하고 있다. 김 부장은 전체 근로자 184명 중 10명인 학습 근로자를 담당하는 현장교사다. 전체 중소기업 근로자의 27.0%는 1년 이내 이직을 고려하지만 이 기업의 학습 근로자는 적어도 5년 이상 이직하지 않을 정도로 기업 적응도가 높다고 한다. 김 부장은 “처음에는 고등학교나 대학의 깔끔한 교육장만 경험한 학생들이 적응에 어려움을 겪지만 2년 정도 숙련자와 함께 업무를 하다 보면 진로를 스스로 찾아 나갈 정도로 자신감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현장 경험 차원에서 3개월가량 ‘맛보기식 학습’이 이뤄졌다면 지금은 최소 2년 이상 일반 근로자와 함께 근무하면서 학습을 병행하기 때문에 만족도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4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일·학습 병행제 참여 인원 2만 3025명을 대상으로 중도 탈락률을 분석한 결과 16.7%에 그쳤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구직자가 대기업만 원하고 있어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한 과감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김 부장은 설명했다. 그는 대학에서 재료 분야를 전공한 뒤 2001년부터 중소기업에서 근무했지만, 지금은 묵묵히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마치 잘못된 선택을 한 것처럼 비치고 있다고 토로했다. “청년이 중소기업에서 5년 이상 근속하면 세제를 감면해 주고 30~40년 된 고숙련자에 대한 재정 지원을 확대해야 이중구조 격차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6·25전쟁 도솔산 전투서 난데없는 제주어 ‘비밀 작전’

    6·25전쟁 도솔산 전투서 난데없는 제주어 ‘비밀 작전’

    “글로 죽 가당 보믄 큰큰헌 소낭이 나옵니다게. 그듸서 노단펜으로 돌아상 돌으멍갑서” “알아수다. 온 덴 헌 건 어떵 됨수과?” 6·25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6월 강원도 도솔산 고지 쟁탈전에서는 난데없이 이같은 말들이 무선 교신을 타고 오갔다. 암호문 같지만 제주도 말이다. 연대와 대대 등 각 통신병을 제주사람으로 두고 제주어로 교신하도록 하는 ‘비밀 작전’이 있었다. 인민군이 교신을 들어봤자 뜻을 모르기 때문에 안심하고 교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용은 이런 것이다. “그리로 죽 가다가 보면 커다란 소나무가 나옵니다. 거기서 오른편으로 돌아서서 달려가십시오” “알겠습니다. 지원 온다고 한 것은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도솔산 전투는 무전기를 적에게 빼앗기는 일로 우리 해병의 작전상의 비밀 유지가 어려웠다. 당시 대대장이던 공정식 전 해병대 사령관은 2008년 3월 국방일보 기고문에서 “몇 대의 무전기를 빼앗겼다고 해서 연대 전체의 통신기를 다 바꿀 수 없는 노릇이었다”며 “우리의 통신 내용을 적이 훤히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걱정이 큰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평소 태평양전쟁사를 즐겨 읽었다는 공 전 사령관은 태평양전쟁 때 비슷한 처지에 놓인 미군이 인디언 ‘나바호(Navajo)’ 족의 언어를 암호로 이용했던 것을 떠올렸다. 1942년부터 전쟁이 끝난 1945년까지 미 해병대에 배치된 나바호족 인디언 400여명은 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고유 언어를 구사하며 전령 역할을 톡톡히 했다. 공 대대장은 제주어 교신을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이후 포대 지원, 병력 이동 사항, 부상병 발생 사항 등 모든 교신이 제주어로 대대에서 연대로, 연대에서 대대로 전달됐다. 당시 해병대의 주축인 해병 3기와 4기생 3000명이 모두 제주사람이어서 제주어로 대화가 가능해 지휘 체계에서 메시지 전달이 수월했다.제1연대 1대대 통신병을 한 강용택(86)씨는 “당시에는 제주사람들이 다른 지역에 많이 진출하지 않았던 데다, TV 등 미디어가 없어서 제주어를 난생처음 듣는 경우가 많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강씨는 “제주어는 ‘~라고 햄쪄’(한다) 등 서술어가 짧고 표준어와 전혀 달라서 무슨 말을 하든 제주어를 모르는 사람은 알아듣기 어려울 것”이라며 “상부의 결정에 따라 중요사항이든 가벼운 사안이든 모든 교신을 전부 제주어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비밀 교신작전은 해병대 역사관에 전시되거나 해병대 70년사 등에 수록되지 않았다. 당시 참전한 장교 등 장병들의 증언은 있으나 문헌으로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9년 작고한 해병대 종군기자인 고영일씨는 해병대 3·4기 전우회가 발간한 ‘인천상륙·서울수복 작전의 주역’에서 “한국전쟁으로 서울이 적에게 점령되었을 때 염리동의 미군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인 무선전화기가 적에게 뺏겨 부대 간 통화는 도청됐을 것”이라며 제주 출신 해병대가 작전에 동참한 인천상륙작전에서도 제주어 교신 작전이 진행됐다고 증언했다. 해병대 역사관 관계자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해병대 3·4기생 가운데 제주 출신이 많았고 공정식 전 해병대 사령관 등 장병들의 증언으로 제주어 교신작전은 사실로 확인됐다”며 “이런 사실에 대한 채록 등의 기록을 체계적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재인 대통령 “6·25 전쟁 노병들께 특별한 존경 바친다”

    문재인 대통령 “6·25 전쟁 노병들께 특별한 존경 바친다”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국군과 유엔군의 노고를 언급하며 “특별한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노병들께 바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전날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전 67주년 국군·유엔군 참전유공자 위로연에 참석한 소회를 전하면서 이날 행사에 함께했던 최영섭 씨와 제임스 길리스 유엔참전용사 대표의 사례를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최 어르신은 백두산함의 갑판사관으로 대한해협 해전에 참전했고 네 아들이 모두 장교로 복무했다”면서 “해군이 된 손자가 부축하고 함께 참석한 모습은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군인 가족의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길리스 대표는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고 한국전쟁의 가장 위대한 구출작전 중 하나였던 흥남철수 현장에도 유엔군 일원으로 참여했다”며 “흥남철수로 수많은 이들이 새 삶을 꾸리게 됐는데 그중에 저의 부모님도 계셨다”고 적었다. 문 대통령은 “전쟁의 기억과 이름 없이 사라져 간 전우에 대한 미안함을 나누던 두 분이 늙고 불편한 몸을 일으켜 서로를 포옹하던 순간 많은 참석자가 눈물을 훔쳤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나라를 지키는 데 앞장선 젊은 국군용사들,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나지도 못한 사람들’을 위해 먼 곳에서 날아와 희생하신 유엔군들이 있기에 오늘 우리가 우리답게 살아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제44회 서울보훈대상] 6·25 참전유공자 안수옥

    [제44회 서울보훈대상] 6·25 참전유공자 안수옥

    안수옥(83)씨는 참전용사로서 6·25전쟁의 실상을 바로 알리는 데 큰 노력을 쏟았다. 그것이 국민들의 애국정신을 고양하는 길이라고 생각한 터이다. 참전유공자회 서울시지회 관악구지회장을 맡고 있는 안씨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관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6·25전쟁 바로 알리기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신림중을 비롯해 관내 9개 학교를 찾아 연중 수시로 안보교육을 실시했는가 하면 지난해 7월에는 미래의 장교들이 모여 있는 서울대 학군단에서 호국 강연을 통해 그들의 안보의식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관악구청과 협의해 참전유공자 사망위로금 제도를 신설하고, 명절 및 호국보훈의 달에 회원들에게 위문품이 전달될 수 있도록 앞장섰다. 봉사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국립서울현충원과 관악산, 낙성대 등 회원뿐 아니라 시민들이 많이 찾는 곳에서 청소봉사 등을 주기적으로 하고 있다.
  • 대학생들 장준규 육참총장에 ‘성소수자 차별 반대’ 기습시위

    대학생들 장준규 육참총장에 ‘성소수자 차별 반대’ 기습시위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이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을 향해 20일 기습 시위를 벌였다. 최근 육군은 장 총장의 지시 아래 지시 아래 성소수자 군인을 색출하고, 영내가 아닌 사적인 공간에서 합의 하에 동성과 성관계를 맺은 장교에게 유죄를 선고해 논란이 되고 있다.장 총장은 이날 서울 용산구 국방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육군력포럼’에 참석했다. 서강대 육군력연구소와 육군이 공동 주최한 이번 포럼에서 장 총장이 인사말을 하려던 순간 서강대 학생 9명이 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한다는 기습 시위를 했다. 학생들은 행사에 참석한 300명의 군인들 사이에 앉아 있다가 장 총장이 강단에 오르자 자리에서 일어나 “게이 군인 마녀사낭, 즉각 중단하라”,“동성애 혐오 환영사가 서강대서 웬말이냐”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성소수자 차별 반대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다 곧바로 군인들에게 밖으로 끌려 나왔다. 장 총장은 예상치 못한 시위에 잠시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이다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한 뒤 예정대로 환영사를 시작했다.앞서 육군 보통군사법원은 지난달 24일 군형법상 추행 혐의로 기소된 동성애자 A대위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권고에도 불구하고 한국 군대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동성간 성관계를 처벌하는 조항인 군형법 제92조의6 조항을 근거로 성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조국의 땅·하늘·바다 지키는 우리는 군인가족”

    “조국의 땅·하늘·바다 지키는 우리는 군인가족”

    아버지와 아들, 딸이 현역 부사관과 장교로 복무하며 각각 영토와 영공, 영해를 지키는 군인가족이 있다. 어머니도 육군 부사관으로 복무한 뒤 전역했다. 가족 전체가 직업군인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18일 육군에 따르면 3사단 혜산진연대의 어윤용(49·특전부사관 74기) 주임원사 가족이 그 주인공이다. 어 원사는 1989년 특전부사관으로 임관해 7공수특전여단, 39사단 등에서 특수전 화기담당, 교관 등을 지냈다. 3사단에서는 2008년부터 근무했다. 아들 어시영(23) 공군 소위는 지난 5월 공군 학사사관후보생 임관식을 거쳐 장교가 됐다. 딸 어연우(22) 해군 하사도 같은 달 임관식을 통해 아버지의 뒤를 잇기 시작했다. 아버지 어 원사는 아들과 딸의 임관식에 참석, 자녀들의 군 입성을 축하했다. 어 소위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군인다운 모습을 동경하며 군인의 꿈을 키워 왔다고 한다. 중·고교 시절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힐 정도의 배드민턴 유망주였던 어 하사는 어머니의 군 복무 당시 사진을 보며 자신도 군인이 되겠다고 생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어 원사는 “가족 모두가 각 군을 대표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맡은 바 소임을 다할 수 있어 최고의 명예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 해군 첫 여성 함장, 명 받았습니다

    해군 첫 여성 함장, 명 받았습니다

    첫 여군 고속정 편대장 선발…안미영 소령, 고속정 2척 지휘 해군 사상 최초의 여군 함장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안희현(37·해사 57기) 소령이다. 해군은 18일 “안 소령이 최근 전반기 장교 보직 심사위원회에서 450t급 소해함 ‘고령함’ 함장으로 선발됐다”고 밝혔다. 1945년 창설한 우리 해군에 여군 함장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또 2001년부터 여군 장교를 함정에 배치하기 시작한 지 16년 만에 여군이 함정의 최고 사령탑에 올랐다. 여군들의 높은 역량이 입증되면서 마지막 남았던 금녀(禁女)의 영역마저 무너뜨린 것이다. 1999년 해사 첫 여생도로 입교한 안 소령은 2003년 임관한 뒤 구조함 항해사, 구축함 유도관, 초계함 작전관, 호위함 전투정보관, 2함대 전비전대 대잠전술반장, 정보작전참모, 상륙함 부함장 등을 거치면서 함정 지휘 역량을 키워 왔다. 고령함은 기뢰 탐색·제거 함정으로 승조원은 50여명이다. 안 소령은 “첫 여군 함장으로 임명됐다는 자부심도 크지만 나의 지휘 능력이 여군 전체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것이라는 부담에 어깨가 무겁다”면서 “부여된 임무는 100% 완수하고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부대를 만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해군은 또 이번에 안미영(37·사후 98기) 소령을 해군 최초의 여군 고속정 편대장으로 선발했다. 편대장은 고속정 2척을 지휘한다. 안 소령은 다음달 중순 남해를 지키는 3함대 예하 321 고속정 편대장에 취임해 부산항만 방어와 남해 경비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2003년 해군사관후보생으로 임관한 안 소령은 구축함 전투체계보좌관, 상륙함 갑판사관, 함대 지휘통제실 당직사관, 전투전대 훈련관, 고속정 정장, 초계함 부함장 등을 지냈다. 안 소령은 “부하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지휘관으로 인정받아 대한민국의 바다를 철통같이 지켜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해군 내 여군 비율은 장교 중 7.6%, 부사관 중 5.0%로 잠수함과 특수전부대(UDT) 등을 제외한 전 영역에서 1100여명이 복무하고 있다. 해군은 2020년 무렵 도입할 3000t급 잠수함에는 여군을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 [능력사회로 가자] 나, 특성화고 나온 남자야…정정당당하게 ‘특혜’ 받다

    [능력사회로 가자] 나, 특성화고 나온 남자야…정정당당하게 ‘특혜’ 받다

    ‘일·학습병행 근로자’ 혜택은… ①대학 학비 지원 ②수업 날 조기 퇴근 ③병역특례 가능 ④졸업 뒤 정직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취업난이 만성화되자 청년들은 학점과 토익점수, 어학연수 경험, 봉사활동 등 소위 ‘스펙’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스펙은 거대한 교육시장과 맞물려 더욱 맹렬한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구직자와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의 괴리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공평한 기회와 안정된 직업을 추구하며 공무원 시험에 뛰어드는 이들도 급증했다. 각계 전문가들은 소모적인 스펙 쌓기에서 벗어나 실력이 제대로 인정받는 ‘능력사회’로 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맹목적인 진학과 스펙 쌓기, 취업이라는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꿈을 향해 나가고 있는 청년과 기업에서 그들을 교육하는 현장교사, 정책담당자, 학계 전문가를 만나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었다. 시리즈를 매주 한 차례 5회에 걸쳐 연재한다. 인천에 사는 윤영성(20)씨는 특별한 꿈이 없었다고 했다. 중학교 성적은 최상위권은 아니지만 늘 상위 20% 안에는 들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다른 친구들처럼 일반고로 진학하길 원했다. 하지만 그는 특성화고인 인천 송림동의 ‘재능고’로 진학하겠다고 선언했다.부모님은 펄쩍 뛰었지만, 아들의 ‘이유 있는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는 “놀든 공부하든 20살 이전에 뭐든지 시도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7대1의 경쟁률을 뚫고 특별전형에 합격하자 학교는 그에게 1년간 장학금을 줬다.윤씨는 기계 분야를 전공했다. 원하는 공부를 하다 보니 1학년 때는 반에서 1, 2등을 놓치지 않았고 졸업할 때까지 10위권을 유지했다. 그는 20살 이전에 다시 도전하는 길을 선택했다. 평일에는 인천의 직장에서 일하고, 토요일에는 경기 시흥의 4년제 대학인 한국산업기술대에서 공부하는 ‘일·학습병행 근로자’가 된 것이다. 일·학습병행 근로자는 고용노동부에서 학비를 전액 지원한다. 올해 대학 2학년이 된 그는 드디어 꿈이 생겼다고 했다. 컴퓨터를 활용해 기계를 설계하는 ‘캐드(CAD)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취업이 안 되면 군 부사관이라도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학교와 현장에 와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며 “NX라는 캐드 프로그램을 배우고 있는데 어렵긴 하지만 유망 분야라 꼭 자격을 얻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일하는 ‘한일프라튜’는 근로자가 60명 정도인 인천의 중소기업이다. 자동차 부품과 각종 플라스틱관을 생산하는데, 제조 설비 보수와 관리를 담당하는 윤씨는 2000만원이 조금 넘는 연봉을 받는다. ‘보수가 적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나’라는 질문에 윤씨는 손사래를 쳤다. 경력 2년차 능력만큼, 일한 만큼 받는다고 했다. 그는 “방학이나 캠퍼스의 낭만을 느낄 여유는 없지만 4년간의 학비와 늘어날 경험을 감안하면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고등학생 동생도 일·학습 병행 택해 윤씨는 “오히려 나를 배려하기 위해 회사가 병역특례 기업으로 신청서를 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며 “일·학습병행 근로계약이 끝나면 정직원으로 계약서를 다시 쓰고, 경험과 능력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기 때문에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윤씨가 토요일에 학업을 병행하는 점을 감안해 매주 금요일 1~2시간 일찍 퇴근하도록 배려한다. 형을 보고 자란 동생 윤현성(16)군은 아예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일·학습병행 근로자로 일하는 재능고 ‘유니테크 특별반’을 선택했다. 그는 현재 코스닥 상장사인 ‘유니셈’이라는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에서 현장 학습을 하고 있다. 그는 대학까지 무료로 일·학습병행 교육을 받고 졸업하면 협약 기업에 정직원으로 채용된다. 최수정 재능고 부장교사는 “외부의 오해와 달리 윤현성군이 밟는 유니테크 과정 학생들은 상위 28% 안에 들어가는 고급 인재들”이라며 “무엇이든 도전을 해봐야 하는데 많은 학생들이 도전을 포기하고 안정된 길만 바라는 것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청년도 기업도 교사도 만족도 높아 윤씨 형제와 같은 길을 가는 이들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고급 인력을 원하는 기업과 취업을 원하는 청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기업과 청년, 현장교사의 만족도는 5점 만점에 4점에 이른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2014년 제도 시작 당시 3197명이었던 일·학습병행 근로자는 지난달 4만 2098명으로 4년이 채 안 된 시점에 13배가 됐다. 참여 기업도 2079곳에서 1만 23곳이 됐다. 경험이 스펙인 사회는 그렇게 조금씩 우리 곁으로 오고 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해군 사상 첫 여군 함장·고속정 편대장 탄생…누군가보니?

    해군 사상 첫 여군 함장·고속정 편대장 탄생…누군가보니?

    우리 해군 최초 여군 함장·고속정 편대장이 탄생했다.해군은 18일 “여군인 안희현(37) 해군 소령이 최근 전반기 장교 보직 심사위원회에서 450t급 소해함 ‘고령함’의 함장으로 선발됐다”고 밝혔다. 1945년 해군 창설 이후 여군 함장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2001년 여군 장교가 함정에 배치되기 시작한 지 16년 만이다. 안희현 소령은 이달 중 해군교육사령부의 함장 보직 전 교육을 마치고 8월 초 고령함 함장으로 부임할 예정이다. 안 소령은 1999년 해군사관학교에 첫 여생도로 입교해 2003년 임관했다. 이후 구조함 항해사, 구축함 유도관, 초계함 작전관, 호위함 전투정보관, 2함대 전비전대 대잠전술반장, 정보작전참모, 상륙함 부함장 등을 역임했다. 안 소령이 지휘할 고령함은 기뢰를 탐색·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함정으로, 승조원은 50여명이다. 기뢰 처리 장비 외에도 20㎜ 함포로 무장하고 있다. 안 소령의 남편은 신주호(37) 해병 소령으로, 해병대사령부 정보상황실장이다. 두 사람은 해군사관학교 선후배 사이다. 안 소령은 “해군의 첫 여군 함장으로 임명됐다는 자부심도 크지만 나의 지휘능력이 여군 전체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것이라는 부담에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또 이번 해군 장교 보직 심사위원회에서는 해군 최초의 여군 고속정 편대장도 나와 이목을 끈다. 안미영(37) 소령은 다음 달 중순 남해를 지키는 3함대 예하 321 고속정 편대장에 취임해 부산항만 방어와 남해 경비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2003년 해군사관후보생으로 임관한 안 소령은 구축함 전투체계보좌관, 상륙함 갑판사관, 함대 지휘통제실 당직사관, 전투전대 훈련관, 고속정 정장, 초계함 부함장, 부산기지전대 정작참모 등을 지냈다.안 소령의 남동생 안승화(35) 소령도 해군 장교로, 2함대 소속 호위함 경기함의 작전관으로 근무 중이다. 그는 “대위 때 고속정 정장 직책을 수행한 경험이 있어 어려운 점은 없다. 임무를 잘 수행할 자신이 있다”면서 “부하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지휘관으로 인정받고 싶다. 전투전문가로서 대한민국의 바다를 철통같이 지켜내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현재 해군에서 여군이 차지하는 비율은 장교의 7.6%, 부사관의 5.0%로, 특수전(UDT), 잠수(SSU), 잠수함 등을 제외한 분야에서 점차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해군은 2020년 무렵 도입할 3000t급 잠수함에는 여군을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국방부, 전역 병사에게 1000만원 금전 지원 추진”

    “국방부, 전역 병사에게 1000만원 금전 지원 추진”

    국방부가 군복무를 마친 병사에게 전역지원금 등의 명목으로 1000만원 상당의 금전 지원을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한국일보는 16일 국방부 산하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종합적 군복무 보상 방안에 관한 연구’ 초안을 인용해 군복무로 사회진출이 지연되면서 병사 1인당 부담하는 경제적 손실액은 1600만원 수준으로 추산됐다고 보도했다. 이에 복무기간 동안 봉급과 학업 지원비로 600만원, 전역 후 교육과 취업, 복지 지원 등에 1000만원의 금전적 보상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손실을 보전해 준다는 방침이다. KIDA는 군 복무에 따른 노동 가치와 기회비용까지 감안하면 병사 1명당 3000만원 넘게 지원해야 하지만, 국가 재정을 감안해 실현 가능한 보상 규모를 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지원대상은 현역병과 전환복무, 상근예비역, 사회복무요원으로 한정했다. 단기복무 장교와 부사관, 산업기능요원 등은 제외된다. 전역병에게 1000만원의 금전적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은 3가지가 제시됐다. 전역지원금 500만원을 일시금으로 지불하고, 학자금 대출이자와 국가자격 시험 수수료 등으로 500만원을 추가로 지원하는 방안이 가장 선호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전역지원금 400만원과 교환권 300만원, 세금 감면 300만원으로 분배하거나, 지원금 대신 교환권 500만원과 세금감면 500만원을 지원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이렇게 할 경우 올해 예산은 1조 8000억원에서 3조원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추산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데스크 시각] 여전히, 앞으로도 영화는 극장에서/홍지민 문화부 차장

    [데스크 시각] 여전히, 앞으로도 영화는 극장에서/홍지민 문화부 차장

    며칠 전이다.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 데 한 영화평론가가 강의형 교양프로그램에 나온 게 눈에 띄었다. 데이비드 린 감독의 대서사극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 중 영국 정보국 장교 로렌스(피터 오툴)와 하리스 족장 알리(오마 샤리프)가 사막에서 처음 대면하는 장면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저 멀리 이글거리는 지평선에서 보일 듯 말 듯 작은 점처럼 모습을 드러내며 사막을 가로질러 다가오는 알리와 이를 지켜보는 로렌스를 교차편집해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3분 정도 롱테이크 형식으로 진행되는 장면은 영화 역사상 최고의 등장신으로 꼽힌다. 평론가는 대형 스크린이 아니라면 제대로 음미할 수 없다고 부연했다. 그리고 한마디.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권했다. 극장에서 봐야 잘 보이는 방식으로 감독들이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에는 명장면이 한두 개가 아니다. 아랍 정세와 관련해 특별 임무가 주어진 로렌스가 성냥 불을 입으로 불어 끄자 마자 붉은 태양이 묵직하게 솟아 오르는 웅장한 사막의 모습으로 바뀌는 컷의 연결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리모컨을 꾹꾹 눌러 대던 손가락을 멈추고 평론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은 최근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를 놓고 넷플릭스와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이 그린 평행선 때문이다. ‘옥자’에 600억원이나 투자한 넷플릭스 입장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기본이라 백번 양보해도 온라인 공개가 늦어서는 안 되고, CGV 등은 제아무리 봉 감독의 대작이라 해도 ‘선(先) 극장, 후(後) 온라인’의 룰을 깨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충돌은 영화를 처음 만나는 곳이 반드시 극장일 필요가 있느냐는 고민을 해 보게 만든다. 굳이 극장에 가지 않더라도 스마트TV, 태블릿, 스마트폰, PC 등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다. 넷플릭스가 지난 20년간 급성장한 것은 이러한 흐름을 십분 활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관객에게 좋은 쪽은 분명하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좋다. 그렇다고 일방을 편들고 싶지는 않다. 넷플릭스와 멀티플렉스 모두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라 각자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고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두 이윤 때문에 무엇인가를 하거나, 하지 않는다. 최근 넷플릭스가 마니아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워쇼스키 자매 연출, 배두나 주연의 드라마 ‘센스8’ 시즌3 제작을 포기한 것도 그래서다. 또 다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워 머신’의 국내 언론 시사가 ‘옥자 사태’에 가장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CGV에서 열린 것도 그래서다. 분명한 것은 또 하나 있다. 극장에서 보는 ‘옥자’와 손 안에서 접하는 ‘옥자’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감독이 그렇게 찍었기 때문이다. 필름보다 더 필름 느낌을 주는 최신형 디지털 카메라를 구해 촬영했을 정도다. 언제 어디서에서라도 편리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지만 극장만큼 압도적인 경험을 제공해 주는 곳도 없다. 관객 대부분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감독이 의도한 바를 제대로 전달하고 관객이 몰입해 작품에 빠져들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애쓴다면 멀티플랫폼 시대에도 극장을 찾는 발길이 잦아들지는 않을 것 같다. 광고를 줄이고, 마스킹 제대로 하고, 스크린 밝기도 적절하게 키우고, 냄새와 소리에 눈을 찌푸리지 않게 해 주고, 무엇보다 다양한 작품을 걸어 골라 볼 수 있게 해 주는 게 방법일 수 있겠다. 그렇게,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영화를 처음 만나는 곳이 극장이었으면 좋겠다. icarus@seoul.co.kr
  • 백혈병 환자에 생명 선사한 ‘빨간 마후라’

    백혈병 환자에 생명 선사한 ‘빨간 마후라’

    공군 F15K 전투기 조종사가 생면부지의 백혈병 환자를 위해 조혈모세포(골수)를 기증했다. 공군은 15일 “제11전투비행단 소속 송준희(30) 대위가 이날 대구의 한 병원에서 조혈모세포를 기증했다”고 밝혔다.2015년 6월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다며 조혈모세포은행협회에 기증 희망자로 등록한 송 대위는 지난 4월 조직적합성항원(HLA)이 일치하는 환자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유전자 검사와 건강 진단 등을 거쳐 이날 조혈모세포를 기증하게 됐다. 송 대위는 공군사관학교 58기로 2010년 임관한 뒤 2012년 F5 전투기 조종사가 됐고 이듬해 주력 전투기인 F15K 조종사로 뽑혔다. 지난해 미국 알래스카주에서 실시한 다국적 연합훈련 ‘레드 플래그 알래스카’에 참가하기도 한 송 대위는 F15K 500시간을 포함해 총 800시간이 넘는 비행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는 11전비 참모부인 정보처에서 임무계획담당장교로 근무하며 비행 임무를 하지 않고 있어 조혈모세포 기증이 가능했다. 송 대위는 사관학교 시절부터 헌혈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해 지금까지 헌혈 횟수도 총 28차례에 달한다. 부인의 출산을 5개월 앞둔 송 대위는 “한 아이의 아빠가 되기 때문에 환자 역시 누군가에게 소중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대한민국 하늘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전투조종사로서 생명을 살릴 값진 기회를 얻어 영광”이라고 말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서울시의회 이윤희의원 ‘이동노동쉼터 평가-운영방향 토론회’ 참석

    서울시의회 이윤희의원 ‘이동노동쉼터 평가-운영방향 토론회’ 참석

    서울시의회 이윤희 의원(더불어민주당·성북1)은 6월 14일, 서울시 중구 장교동 休이동노동자쉼터에서 노동권익센터(센터장 문종찬)가 개최한『서울시 이동노동자쉼터 평가와 운영방향』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서울노동권익센터 류한승 기획협력팀장의 주제발표를 시작으로 이윤희 서울시의원, 강석 서울시 노동정책담당관, 남우근 공인노무사,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김주환 정책실장이 토론자로 참석한 가운데 이동노동자쉼터 설치 1년의 성과를 정리하고 향후 발전방향을 논의했다. 이윤희 의원은 “서울시가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작년 3월 대리운전기사를 위한 서초이동자쉼터를 개소한 후, 대리기사 노동자들의 호응과 여론의 환기가 이루어진 결과 퀵서비스 노동자를 위한 장교동 쉼터2호점이 올해 2월부터 시범운영 중이고 합정동 3호 이동노동자쉼터가 개소를 준비하고 있다. 점차 쉼터의 이용대상과 사업영역이 확대되는 만큼 운영방향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 것 ”이라며 토론회의 의미를 밝혔다. 2015년 서울시 노동정책 기본계획인 ‘이동근로자 24시간 쉼터 조성 등 근로여건 개선 사업’과 서울노동권익센터의 ‘이동노동 종사자 지원방안 연구’에 따라 2016년 3월 서초이동노동자쉼터가 개소했고 월요일 오후 6시부터 토요일 6시까지 주5일 운영되어 하루 평균 60여명의 이동노동자들이 찾고 있다. 휴게 공간 제공과 더불어 이동노동자의 업무 및 생활상의 고충에 대한 기초상담 및 건강, 주거, 금융복지 전문상담을 통해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을 돕고 있다. 주제발표를 맡은 노동권익센터 류한승 기획협력팀장은 “현재 디지털 기술에 의한 플랫폼노동이 늘어나면서 이동노동 종사자의 영역과 규모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 대응하여 이동노동자쉼터도 단순 휴게공간보다 종합적 지원센터의 역할을 모색해야 하며 공간에 대한 활용도를 높이고 운영의 효율성을 위해 지역노동권익센터 와의 협업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리운전기사 대표로 참석한 김주환 실장은 “이동노동자 쉼터가 생겨 신용불량자였던 대리기사가 금융 상담을 통해 구제됐고 인문학 교육을 계기로 당사자 간 소통을 시작했다”며 이동노동자 쉼터의 확대와 이동노동자 특성에 맞는 맞춤형 지원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남우근 공인노무사는 “권리의 사각지대에 놓인 다수의 이동노동자가 해당되는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포괄적인 노동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법 개정도 필요해 보인다. 이동노동자 쉼터 법제화를 통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다 체계적인 쉼터 설치가 가능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윤희 의원은 “쉼터는 노동권 침해 및 감정노동 등에 노출되어 보호받지 못했던 이동노동자들의 휴게공간이자 또 하나의 커뮤니티 형성의 기반이 되고 있다. 이동노동자 쉼터가 더욱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이동노동자들의 노동성, 시민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노동권익센터 및 관계기관들의 다양한 협력방안 모색 및 당사자들의 네트워크와 역량 강화를 통해 특성에 맞는 조직을 공고히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며 지원정부와 당사자의 역할을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 시절 공직 한 컷] 당당한 ‘육군 브레인’… 제1회 육군대학 졸업식

    [그 시절 공직 한 컷] 당당한 ‘육군 브레인’… 제1회 육군대학 졸업식

    1952년 육군대학 제1회 졸업식 장면이다. 장교 이상에게 참모 교육을 하는 육군의 군사교육 기관으로 전신은 육군참모학교다. 대전 유성구에 있으며 2011년 합동군사대학교에 통합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5일 만에 정부부처 가운데 가장 먼저 국방부를 방문해 열렬한 환영을 받았지만,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관련 보고 문제를 놓고 국방부에 대한 대대적인 진상조사를 벌였다. 국가기록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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