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장교
    2026-08-11
    검색기록 지우기
  • 박성훈
    2026-08-11
    검색기록 지우기
  • 거품
    2026-08-11
    검색기록 지우기
  • 저수지
    2026-08-11
    검색기록 지우기
  • 양양
    2026-08-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799
  • 금천구, ‘제6회 금천구 어린이 영어동화 구연대회’ 25일 개최

    금천구, ‘제6회 금천구 어린이 영어동화 구연대회’ 25일 개최

    서울 금천구는 오는 25일 오전 10시 구청 12층 대강당에서 ‘제6회 금천구 어린이 영어동화 구연대회’를 개최한다고 24일 밝혔다. 영어동화 구연대회는 영어 읽기와 말하기를 통해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발표력을 향상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로, 2013년 시작됐다. 이번 대회엔 지난달 18일 예선을 거쳐 선발된 초등학교 3~6학년생 16개 팀 총 31명이 참여한다. 스토리텔러상, 인기공연상, 창의발표상, 맑은목소리상, 표현력상 등 5개 분야를 시상한다. 분야별 3개 팀씩 총 15개 팀을 선정해 시상하고, 합산 최고 점수를 받은 1개 팀에 대상을 수여한다. 후원기관으로 참여하는 주한호주문화원에서 1개 팀에게 특별상으로 호주문화원장상도 수여한다. 초·중·고등학교 영어교과 부장교사와 원어민교사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스토리 해석과 전달력, 무대 몰입도, 무대 예절, 청중 호응도 등을 평가한다. 시흥글로벌인재학당 초등학생들이 대회 개막 축하 공연으로 중국어 동화 ‘무뽑기’를 구연한다. 대회 전 참가자들의 긴장을 풀어줄 풍선아트 레크리에이션이 진행되고, 행사장 입구에선 페이스페인팅, 소원나무 꾸미기 등 가족 단위 관람객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도 열린다. 박오임 금천구 교육지원과장은 “금천구 아동·청소년들이 세계 무대에서도 거침없이 활동하는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6·25 참전 미군 지갑, 60여년 만에 가족 품으로

    6·25 참전 미군 지갑, 60여년 만에 가족 품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미군이 귀국 길에 분실한 지갑이 무려 60여년 만에 가족에게 돌아왔다.미국 뉴햄프셔주에 사는 여성 샤론 무어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지갑을 최근 우편으로 돌려받았다고 AP통신 등이 21일(현지시간) 전했다. 그녀의 아버지 로버트 매커스커는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당해 ‘퍼플하트’ 훈장을 받은 참전용사로 1983년 숨졌다. 무어는 지난달 낯선 프랑스인에게서 지갑의 주인을 찾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몇 장의 흑백사진이 첨부된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았다. 그 사진 중에서 무어 어머니의 젊은 시절 모습과 함께 35년 전 숨진 아버지의 사회보장카드, 매사추세츠주 운전면허증, 1950년 9월 날짜가 찍힌 전투식량 허가증도 있었다. 무어는 “아버지의 운전면허증과 어머니의 사진을 바로 알아보고 아버지의 지갑이란 걸 알았다”고 말했다. 메시지를 보낸 프랑스인은 파리 남서부에서 300㎞ 떨어진 소도시 샤텔로에 있는 한 건물주이자 프랑군 소속인 파트리크 코베트였다. 그는 건물 개조 공사 중 인부들이 내다 버린 갈색 지갑을 발견하고 주인을 찾아 나섰다. 지갑에 든 사진들을 보고 주인을 찾고 싶었던 코베트는 파리에 있는 한 프랑스군 사무실의 도움으로 지갑 주인에 대해 알게 됐고, 페이스북을 통해 자녀들과 연락이 닿았다. 이 지갑이 어떻게 프랑스까지 흘러오게 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코베트는 이 건물에 과거 미국 장교들의 사교클럽이 존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라오스 현지 맞춤형 새마을리더 초청 벼 재배 기술 교육

    라오스 현지 맞춤형 새마을리더 초청 벼 재배 기술 교육

    경상북도 새마을세계화재단은 라오스 농촌지역의 새마을운동 활성화와 성과증진을 위한 ‘2018 라오스 새마을시범마을 지도자 초청 벼 재배 기술교육’ 수료식을 지난 20일 재단 본부에서 개최했다. 라오스 현지정부가 지속가능한 농촌개발을 위해 경북의 벼 재배 기술 공유를 요청하여 시행된 교육으로, 새마을시범마을 조성사업을 진행 중인 돈방포, 타드아싱홈, 막히아오 3개 마을주민 7명과 라오스 빡음구에서 초청된 공직자 1명, 총 8명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경상북도 새마을운동의 성공경험과 현지 맞춤형 벼 재배 기술 교육을 위해 경상북도 농업기술원과 각 시군(경주, 포항, 칠곡) 농업기술센터의 협조를 받아 친환경 미생물 생산시설, 우렁이 농법 제초기술 등의 선진 농법을 체험했다. 또한 경상북도 칠곡군에 위치한 선진농가(한백황토쌀 작목반 이기식 대표)를 방문하여 드론을 이용한 약제 살포 시연회, GAP 인증 도정시설 현장교육을 실시하였다. 이지하 대표이사는“10일 간 진행된 금 번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새마을정신의 올바른 이해와 경상북도 선진 농가들의 성공경험, 사례들을 라오스 현지에 적용할 수 있도록 방안을 찾는 좋은 기회가 되었기를 희망한다”며“새마을 리더들의 실천을 통해 시범마을 농업기술 전파와 소득증대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교육은 새마을의 이해, 현지 벼 재배 문제점 및 개선방향, 관리에 관한 전문교육 및 실습, 현장견학 그리고 한국을 이해할 수 있는 문화탐방으로 구성하여 실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미경의 사진 산문] ‘어제’의 사진이 아니라 이제야 만나는 ‘오늘’의 사진

    [박미경의 사진 산문] ‘어제’의 사진이 아니라 이제야 만나는 ‘오늘’의 사진

    갓 결혼식을 올린 신부가 상기된 얼굴로 카메라를 바라본다. 젊은 연인이 손을 잡은 채 강변을 걷고, 가방을 비스듬히 멘 여자아이가 아빠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간다.어디에나 있을 법한 흔한 광경이다. 다만 다른 것은 신랑·신부가 걷는 강변이 대동강변이고 닿을락 말락 손을 잡은 연인들은 평양의 대학생들이라는 점이다. 아이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가는 아빠는 군복 차림의 ‘북한군’이다. 이 사진 이미지들은 우리가 그동안 생각했던 북한의 ‘이미지’를 뒤흔든다. 북녘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찍은 사진 110여점이 전시 중인 북녘 사진전 ‘사는 것이 다 똑같디오’. 사진을 찍은 이는 사진가 임종진이다. 그는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사진기자의 자격으로 여섯 차례에 걸쳐 북녘 땅을 밟았다. 당시가 남북 정상회담 등으로 인해 평화로운 분위기였다고는 해도 북은 사진에 민감했다고 한다. 그런데 임종진은 처음부터 “나는, 우리가 서로 공감할 만한 무엇을 찍고 싶다”고 밝혔다. 전 세계적으로 이질적이거나 낙후된 북한의 좋지 않은 이미지들만이 보도되던 시절이었다. 평양의 일상과 그 속에 담긴 ‘우리네, 우리 것’을 사진에 담으려는 그에게 유례없이 자유로운 촬영 허가가 떨어졌다. 평양 시내 곳곳을 별다른 제지 없이 다니며, 정치나 이념에 의해 삭제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그들의 민낯을 사진으로 기록했다.그는 고무줄놀이하는 아이들, 장을 보는 어머니, 자전거에 아이를 태운 아버지 등 특별할 것 없는 모습에 취해 ‘카메라가 춤을 추었다’고 회고한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북녘 동포들의 일상을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담아낸 수백 점의 사진이 이렇게 해서 얻어졌다. 사진마다 이미 우리는 잃어버린 듯한 어떤 정서와 순정한 빛이 20년 전의 버내큘러와 함께 가득하다. 사진가는 두 번째 방북 때 북측 안내원들로부터 “왜 우리 늠름한 장교 동무를 동네 아저씨처럼 찍었느냐”는 투정과 웃음 섞인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빈곤과 폭압적 체제라는 단면적 시선을 거두고 한 민족의 정서적 일치점을 찾고자 하는 그의 관점은 계속된 방북 취재 동안 신뢰로 이어졌다. 후에 자신들의 삶을 ‘민족적 입장에서 바라본 사진가’로, “김정일 위원장이 남녘 사진기자로서는 유일하게 림 선생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 20년 전 평양의 일상을 담은 이 사진은 시간을 뛰어넘어 남과 북에 가로놓인 ‘닫힌 정서의 길’을 열어 준다. 그래서 ‘어제의 사진’이 아니라 이제야 만나는 ‘오늘의 사진’이다. 가려져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 주고 왜곡된 인상들을 바꾸며 더 나아가 미래지향적인 한반도를 꿈꾸는 지금의 시점에서 남과 북을 정서적으로 더 가깝게 이을 사진인 것이다. 8월 1일부터 열린 전시에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오는 부모들부터 고령의 어르신들, 젊은 연인들까지 류가헌 갤러리를 찾는 관람객의 층도 무척이나 다양하다. 전시에 맞춰 발행한 임종진 북녘 사진집 ‘다 똑같디오’ 초판 800부가 전시가 열린 지 2주 만에 완판돼 2쇄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집 출판계에서는 몹시 이례적인 일이다. 전시도 9월 9일까지 연장된다. 언젠가는 평양에서도 이 사진들이 전시되기를 꿈꾼다. 그것이 이루지 못할 ‘꿈’만은 아닌 것 같은 2018년 여름이다.
  • 주한미군·중동 사령관 등 美 군 수뇌부 대대적 교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동 및 유럽, 중남미 관할 사령관과 특수작전사령관 등 군 수뇌부를 대거 교체한다. 빈센트 브룩스 현 주한미군사령관도 퇴임 대상에 포함돼 있는 등 트럼프 정부 출범 후 대대적인 군 수뇌부 변화가 예상된다. ●‘빈라덴 작전’ 클라크 중장, 특전사령관 전망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일(현지시간) 이같이 전하면서 현 합동참모본부장인 케네스 매켄지 해병대 중장이 내년 봄 퇴임하는 조지프 보텔 현 중부사령관의 자리를 물려받을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중부사령관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등 중동 지역을 책임지는 미 지역사령관 가운데 가장 비중 있는 자리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만간 후보자 인선을 공식화한 뒤 내년 봄부터 단계적으로 수뇌부를 교체해 나갈 것으로 알려졌다. 미 유럽사령부 사령관 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연합군 최고사령관에는 토드 월터스 미 공군 장군이 물망에 올랐다. 월터스 장군은 합참 작전장교를 지냈으며, 최근 몇년 동안 러시아에 대응하는 미국의 군사 정책에 집중해 왔다. 현재는 유럽과 아프리카의 미 공군과 나토의 동맹공군사령부(AIRCOM)를 이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선 리처드 클라크 육군 중장을 특수작전사령부 사령관으로 공식 지명할 전망이라고 WSJ는 전했다. 특전사령부는 해군 소속 특수부대인 네이비실, 육군 소속 특수부대인 그린베레 등 고도로 훈련된 정예 특수병력을 통제 지휘한다. 클라크 중장은 2011년 이슬람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인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에서 기획과 훈련, 실행 등에 크게 기여했으며 합참 전략계획·정책 책임자로 있다. ●트럼프, 중간선거 앞두고 보수 지지 확보 이 밖에도 퇴임을 앞둔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과 폴 셀바 합참차장의 후임자 인선도 진행 중이며, 존 니컬슨 주아프간미군사령관도 퇴임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제임스 매티스 국방부 장관은 지난 16일 백악관이 관타나모만 등 중남미 지역을 책임지는 남부사령부 수장에 국방장관 선임 군사보좌관인 크레이그 폴러 해군 제독을 임명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나온 이 같은 대대적인 군 수뇌 교체 계획 소식은 보수 계층의 지지를 계속 확보해 나가면서 트럼프 2기를 준비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어제’의 사진이 아니라, 이제야 만나는 ‘오늘’의 사진

    ‘어제’의 사진이 아니라, 이제야 만나는 ‘오늘’의 사진

    갓 결혼식을 올린 신부가 상기된 얼굴로 카메라를 바라본다. 젊은 연인이 손을 잡은 채 강변을 걷고, 가방끈을 비스듬히 맨 여자아이가 아빠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간다. 어디에나 있을법한 흔한 광경이다. 다만 다른 것은, 신랑신부가 걷고 있는 강변이 대동강변이고 닿을락 말락 손을 잡은 연인들은 평양의 대학생들이라는 점이다. 아이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가는 아빠는 군복 차림의 ‘북한군’이다. 이 사진 이미지들은 우리가 그동안 생각했던 북한의 ‘이미지’를 뒤흔든다. 북녘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찍은 사진 110여 점이 전시중인, 북녘 사진전 ‘사는 것이 다 똑같디오’. 사진을 찍은 이는 임종진이다. 그는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사진기자의 자격으로 여섯 차례에 걸쳐 북녘 땅을 밟았다. 당시가 남북 정상회담 등으로 인해 평화로운 분위기였다고는 해도, 북은 사진에 민감했다고 한다. 그런데 임종진은 처음부터 “나는, 우리가 서로 공감할 만한 무엇을 찍고 싶다”고 밝혔다. 전 세계적으로 이질적이거나 낙후된 북한의 좋지 않은 이미지들만이 보도되던 시절이었다. 평양의 일상과 그 속에 담긴 ‘우리네, 우리 것’을 사진에 담으려는 그에게 유례없이 자유로운 촬영 허가가 떨어졌다. 평양 시내 곳곳을 별다른 제지 없이 다니며, 정치나 이념에 의해 삭제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그들의 민낯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는 고무줄 놀이하는 아이들, 장을 보는 어머니, 자전거에 아이를 태우고 가는 아버지 등 특별할 것 없는 모습들에 취해 ‘카메라가 춤을 추었다’고 회고한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북녘 동포들의 일상을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담아낸 수백 점의 사진이 이렇게 해서 얻어졌다. 사진마다 이미 우리는 잃어버린 듯 한 어떤 정서와 순정한 빛이 가득하다. 사진가는 두 번째 방북 때 북측 안내원들로부터 “왜 우리 늠름한 장교 동무를 동네 아저씨처럼 찍었느냐”는 투정과 웃음 섞인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후에 자신들의 삶을 ‘민족적 입장에서 바라본 사진� ?�, “김정일 위원장이 남녘 사진기자로서는 유일하게 림선생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 20년 전 평양의 일상을 담은 이 사진들은 시간의 개념을 뛰어 넘어 남과 북 사이 가로놓인 ‘닫힌 정서의 길’을 열어준다. 그런 점에서 ‘어제의 사진’이 아니라 이제야 만나는 ‘오늘의 사진’이다. 가려져서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고 왜곡된 인상들을 바꾸는 데서 더 나아가 미래지향적인 한반도를 꿈꾸는 지금의 시점에서 남과 북, 서로를 정서적으로 보다 가깝게 이을 사진들인 것이다. 8월 1일부터 열린 전시에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중이다. 임종진 북녘사진집 ‘다 똑같디오’가 전시가 열린 지 2주 만에 완판되어 2쇄를 준비하고 있고, 류가헌에서 전시도 9월 9일까지 연장되었다. 언젠가는 평양에서도 이 사진들이 전시되어지기를. 그것이 이루지 못할 ‘꿈’만은 아닌 것 같은, 2018년 여름이다.글: 박미경 류가헌 갤러리 관장
  • 이탈리아 제노바 교량 붕괴 “밀가루처럼 무너져내려”…부실공사 논란

    이탈리아 제노바 교량 붕괴 “밀가루처럼 무너져내려”…부실공사 논란

    이탈리아 제노바 고속도로 교량 붕괴로 최소 35명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14일(현지시간) 오전 이탈리아 서북부 리구리아 주 제노바 A10 고속도로에서 모란디 다리가 붕괴, 최소 35명이 숨졌다고 ANSA 통신이 구조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1968년 완공된 모란디 다리는 탑에 교량을 케이블로 연결한 사장교로 총 길이가 1.1㎞에 달한다. 무너진 교량 구간은 길이 약 80m 길이로 당시 다리 위에 있던 승용차와 트럭 등 약 35대의 차량이 한꺼번에 추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무너진 교량 아래와 인근에는 주택과 건물, 공장 등이 있었지만 불행 중 천만다행으로 콘크리트 더미가 주택과 건물 등을 덮치지는 않았다. 이탈리아 당국은 300여명의 소방대원과 구조대원, 구조견을 투입해 사망자와 부상자 수색에 나섰다. 밤샘 구조작업을 통해 생존자 7명을 구조했다. 그러나 잔해더미가 뒤엉켜 있어 구조 작업이 더딘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소방대의 루카 카리 대변인은 AP통신에 “마치 지진 현장 속에서 구조 작업을 하는 것 같다”며 “잔햇더미를 제거하는 것, 구조대원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가장 큰 장애”라고 말했다.프랑스, 밀라노를 잇는 A10 고속도로에 있는 이 다리는 제노바를 포함한 이탈리아 북부 도시들과 리구리아 해변을 연결하는 분기점에 위치해 있어 통행량이 많은 곳이다. 한창 휴가철인데다 다음날이 성모승천대축일로 휴일이이서 A10 고속도로에 차량 통행이 붐볐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교량 위에 있었던 운전자 알레산드로 메그나는 RAI 라디오에 “갑자기 다리가 그 위에 있던 차들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며 “정말 종말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한 여성은 RAI TV에 “사고 당시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엄청난 굉음이 들렸다”면서 “다리가 마치 밀가루 더미처럼 무너져 내렸다”고 전했다. 다리 밑에 서 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한 남성은 AP통신에 “교량이 무너지면서 생긴 충격파로 몸이 10m 이상 날아갔다”면서 “자신이 살아남은 것은 기적”이라고 전했다. 한 버스 운전자도 현지 언론에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맨발로 뛰쳐나와 달렸다. 너무 끔찍했다”며 몸서리를 쳤다. 모란디 다리는 2016년 보강공사를 마쳤던 터라 2년 만에 대형 사고가 터진 것은 결국 부실공사 때문 아니겠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편으로는 다리가 건설될 당시부터 구조적 결함을 지니고 있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제노바 대학의 안토니오 브렌치크 교수가 지난 2016년 한 인터뷰도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AP 등에 따르면 브렌치크 교수는 인터뷰에서 모란디 다리의 디자인에 대해 “공학기술의 실패”라며 당장 교체하지 않으면 유지 비용이 더 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장을 찾은 다닐로 토니넬리 이탈리아 교통부 장관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참사”라면서 인재로 확인된다면 그 누구라도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토니넬리 장관은 사고 구간의 영업권을 지닌 회사 측이 최근 보수가 이뤄졌다고 했지만 2000만 유로 규모의 안전 진단 사업을 발주하려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1960년대 건설된 많은 다리와 사장교를 대상으로 충분한 보수, 점검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이탈리아 제노바 고속도로 교량 붕괴로 최소 35명 사망…부실공사 논란

    이탈리아 제노바 고속도로 교량 붕괴로 최소 35명 사망…부실공사 논란

    이탈리아 제노바 고속도로 교량 붕괴로 최소 35명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14일(현지시간) 오전 이탈리아 A10 고속도로에서 모란디 다리가 붕괴, 최소 35명이 숨졌다고 ANSA 통신이 구조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1968년 완공된 모란디 다리는 탑에 교량을 케이블로 연결한 사장교로 총 길이가 1.1㎞에 달한다. 이탈리아 당국은 200여명의 소방대원과 구조대원을 투입해 사망자와 부상자 수색에 나섰다. 그러나 잔해더미가 뒤엉켜 있어 구조 작업이 더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사고 발생 당시 차량 10여대가 추락했다고 전했다.한창 휴가철인데다 다음날이 성모승천대축일로 휴일이이서 프랑스, 밀라노를 잇는 A10 고속도로에 차량 통행이 붐볐던 것으로 전해졌다. 모란디 다리는 2016년 보강공사를 마쳤던 터라 2년 만에 대형 사고가 터진 것은 결국 부실공사 때문 아니겠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장을 찾은 다닐로 토니넬리 이탈리아 교통부 장관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참사”라면서 인재로 확인된다면 그 누구라도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토니넬리 장관은 사고 구간의 영업권을 지닌 회사 측이 최근 보수가 이뤄졌다고 했지만 2000만 유로 규모의 안전 진단 사업을 발주하려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1960년대 건설된 많은 다리와 사장교를 대상으로 충분한 보수, 점검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광저우 독립운동가 33인… 역사마저 그들을 묻었다

    광저우 독립운동가 33인… 역사마저 그들을 묻었다

    경기 안양에 사는 김기용씨는 1988년 출판한 가문 족보에서 자신의 작은할아버지 김근제(1904~1927·추정)에 관한 기록을 발견한다. ‘독립투사, 독립군장교, 흑룡강전투에서 순국했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김씨는 어렸을 때부터 작은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길 수차례 들었다. “과묵한 성격으로 힘이 셌고, 3·1 운동 때 일본 순사를 때려눕히고 독립운동을 하러 만주로 갔다. 상하이에서 독립군 장교 교육을 받고 독립투사로 활약하다 하얼빈에서 23세의 어린 나이에 돌아가셨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확인하려 여러 종친을 찾아다니며 물어보고 250여권의 책을 뒤졌다. 그러나 어떤 증거도 찾기 어려웠다. 그러다 한상도 건국대 교수에게서 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중국 광저우에 사는 강정애씨가 “황푸군관학교 묘비에서 ‘김근제’라는 이름을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2013년 8월 독립기념관 중국남부지역 독립운동유적지 실태조사 일행과 함께 광저우의 황푸군관학교를 방문한다. 벅찬 마음을 억누르며 묘비를 어루만진 김씨는 준비한 태극기와 국화꽃을 묘비 옆에 세우고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 한 병을 부어 참배를 올렸다. 강씨가 김근제에 관한 행적을 다수 발견했지만, 김근제 지사는 여전히 독립운동 유공자 명단에 들지 못한 상태다. 묘비가 광저우에 있지만 족보에는 순국지가 흑룡강전투라고 기록된 탓이다.중국 광저우의 역사연구가 강씨가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33명을 발굴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 자료는 강씨가 10년 동안 중국 지역의 서적과 자료를 뒤지고 발품 팔아 찾은 것들이어서 순도가 높다. 강씨의 연구로 인해 그동안 어긋났던 사료들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이들 가운데에는 공산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였다는 이유로 우리 학계가 외면했던 이들에 관한 행적이 다수 담겼다. 이들의 행적이 사실로 드러나면 독립운동사 관련 연구에 큰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강씨가 발굴한 33인 가운데 신해혁명에 참여한 첫 한인으로 알려진 범재 김규흥을 제외하고 32명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다. 일부는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학계의 외면을 받기도 했다. 예컨대 황푸군관학교에서 항공 비행사 교육을 받은 뒤 중국 공군에서 활동하고,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장교를 지냈던 박태하의 경우 해방 후 북한을 택하면서 남한에서 거론이 되지 않았던 사례다. 강씨는 광저우에서 입수한 자료와 1922년 조선일보 기사 등을 토대로 그의 행적을 밝혀냈다. 박태하는 1916년 12월 스물다섯의 나이로 중국으로 망명한 이후 1917년 쑨원이 광저우로 남하해 설치한 대원수부 항공처 산하의 비행기 수리공으로 취업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에 취업이 가능했던 이유는 ‘김복’(金復·본명 김규흥)의 주선 덕분이었다. 김복은 1908년부터 광저우에서 쑨원의 혁명 활동에 참여해 신해혁명이 성공하자 광둥성 정부의 고관이 된 인물이다. 쑨원 정부 아래에서 여러 공을 세운 박태하는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으로 1926년 5월 옛 소련으로 유학을 간다. 소련에서 항공 교육을 마쳤지만 박태하는 중국으로도 조선으로도 귀국하지 못하고 파블로프스키 촌에 남아 공산청년회 책임서기를 지내다 광복 후 북한에서 인민군 공군 사령으로 활동했다.이름이 알려진 이라 하더라도 그동안 밝혀지지 않은 행적을 비롯, 학계의 논란이 될 만한 사실도 다수 확인됐다. 박태하와 마찬가지로 황푸군관학교에서 항공 비행사 교육을 받은 차정신은 강씨가 현지의 여러 중국어 사료를 대조한 결과 남한 군인 김진일로 밝혀졌다. 김진일은 우리 공군 창설의 주역으로, 당시 행적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씨의 자료 가운데 불교계 독립 운동가들로 현지에서 사망한 이들, 한국에 돌아왔으나 알려지지 않은 세 명의 승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대목에서는 ‘이육사가 광저우 중산대학에 재학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강씨가 발굴한 33명의 독립운동가에 관한 자료는 내년 초쯤 출판사 수류산방이 묶어 책으로 낼 예정이다. 심세중 수류산방 편집장은 “자료가 워낙 방대한 데다 교차 확인을 거치느라 3년 가까이 걸렸다”면서 “우리에게 알려진 상하이, 미국 등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 외에 그동안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을 구축하는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伊 고가도로 붕괴…차량 20여대 추락

    伊 고가도로 붕괴…차량 20여대 추락

    보수공사 2년 만에 사고… 부실시공 의혹이탈리아 서북부 항구도시 제노바에서 고속도로 다리 일부 구간의 상판과 교각이 무너져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로이터통신 등은 14일(현지시간) 오전 11시쯤 제노바의 A10 고속도로에 있는 모란디 교량이 무너져 차량 20여대가 추락했다고 보도했다. AP 등은 현지 ANSA통신을 인용해 “현재 22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고 5명이 위중한 상태로 발견됐다. 소방대원 200명이 무너진 다리 상판의 콘크리트 잔해 더미에 매몰된 생존자들에 대한 구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내무부 관계자의 발언을 전했다. 구조당국은 모란디 교량 아래에 위치한 산업단지에는 추락한 트럭과 승용차들이 뒤엉킨 상태에서 생존자를 찾고 있지만 단지 내 가스 파이프라인이 파손돼 추가적인 피해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고 밝혔다. 1966년 완공된 모란디 교량은 이탈리아에서 처음 건설된 지상 100m 높이의 사장교(斜張橋)다. 전체 1.1㎞ 길이의 다리 중 200여m가 붕괴됐다. 2016년 보수공사를 했지만 2년 만에 무너져 부실시공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이탈리아 제노바서 고속도로 교량 붕괴…“수십 명 사망”

    이탈리아 제노바서 고속도로 교량 붕괴…“수십 명 사망”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14일(현지시간) A10 고속도로에 있는 모란디 다리 일부 구간의 교각과 상판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지 언론은 다리 아래로 차량 약 10대가 추락했고, 사망자 수가 수십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정확한 사상자 수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사고 현장엔 구조대와 소방차가 출동해 구조작업을 진행 중이다. 1962년 착공돼 4년 만에 완공된 모란디 교량은 이탈리아에서 처음 건설된 사장교다. 사장교는 양쪽에 기둥을 세우고 케이블을 비스듬히 늘어뜨려 지탱하는 다리를 말한다. 교량 상판은 지상에서 100m 정도 높이에 있다. 다리가 붕괴한 지점 아래에는 산업단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들은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로 인해 산업단지의 가스관이 파손되면 추가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현지 경찰은 다리가 붕괴할 당시 강한 폭풍이 불고 있었다고 알렸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시민단체 “기무사 개혁 창설지원단, 100% 기무사 요원... 셀프개혁 중단하라”

    시민단체 “기무사 개혁 창설지원단, 100% 기무사 요원... 셀프개혁 중단하라”

    국군기무사령부를 해체하고 새로 창설할 ‘군사안보지원사령부’의 조직개편과 인적청산을 기존 기무사 요원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폭로가 나왔다. 또 기무사 요원 원대복귀에 대해, 서류상 복귀라는 꼼수를 준비 중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군인권센터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10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무사 요원들로 구성된 국가안보지원사령부 창설지원단이 기무사의 조직개편과 인적 청산을 담당하고 있다”면서 “기무사는 셀프 개혁을 멈추고 새 사령부 구성에 기무사 요원을 배제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내부 제보 등을 통해 기무사 요원이 개입해 ‘셀프개혁’을 하고 있다는 정황을 확인했다”면서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창설준비단 산하의 부대창설 지원TF가 100% 기무사 요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창설준비단에 소속된 21명의 기무사 소속 인원 중에는 기무사 소속이 1명 뿐이지만 그 준비단을 지원하는 지원단이 기무사 요원들이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기무사는 TF에 새 사령부 창설 기획을 맡긴 후, 인원선발위원회를 둬 새 사령부에 잔류할 인원을 선발하는 업무도 맡겼다”면서 “창설준비단은 기무사를 잘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조직개편작업에 이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군인권센터 등이 확보한 내부 제보에 따르면 창설지원단은 70여명의 중대령급 장교로 구성돼 있고 이들 대부분은 조현천 전 사령관 재임 당시 진급했다. 이들 단체는 “창설지원단 단장 전모 준장이 새 사령부의 참모장으로 임명될 가능성이 높은데, 전모 준장은 계엄령 문건 작성자라는 의혹을 받은 소강원 참모장과 대위 때부터 동고동락한 사이”라면서 “장군 진급시에도 조현천 전 사령관의 비서실장이었던 소강원의 추천을 받았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또 “창설준비단이 발표한 2100명 수준의 인원 감축안 역시 해당 TF에서 만들었다”면서 “기무사 요원들은 전원 원대복귀 후 일부만 새 사령부에 참여하기로 되어있지만, 실제로는 인사선발위원회가 자체적으로 잔류 1500명을 선발하고 8월 20일에 서류상으로만 원대복귀 시킨 뒤 다시 새 사령부에 배치하는 꼼수를 준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개혁 전반에서 기무사 요원들의 참여를 원천 배제할 수 있도록 창설지원단을 즉각 해체하고 창설준비단 역시 재구성해야 한다”며 “기무사가 만든 군사안보지원사령부안을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국방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기무사 해편’ 지시에 따라 새달 1일 군사안보지원사령부를 창설하기로 하고 지난 6일 남영신 신임 기무사령관을 단장으로 창설준비단을 구성, 군사안보지원사령부령 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기무사 새 이름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새달 창설

    정치 중립·민간인 사찰 금지 등 신설 수사단, 이석구 전 사령관 소환 조사 국군기무사령부 해체 후 다음달 1일 창설될 군 정보부대의 명칭이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정해졌다. 1991년 윤석양 이병의 민간인 사찰 폭로로 보안사령부에서 명칭을 바꿨던 기무사가 27년 만에 진정한 역사적 단절을 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정섭 국방부 기획조정실장은 6일 “기무사를 해체하고 과거와 역사적으로 단절된 새로운 사령부를 신속히 창설하기 위해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창설준비단’을 구성하고 신규 부대령인 ‘군사안보지원사령부령’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고 밝혔다. 그는 “새로운 사령부 창설에 준비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9월 1일 창설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영신 신임 기무사령관이 단장을 맡은 창설준비단은 기획총괄팀, 조직편제팀, 인사관리팀, 법무팀 등 총 21명으로 구성됐다. 기무사 개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최강욱 변호사는 민간인 특별자문관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창설준비단의 주요 임무는 안보지원사의 임무·기능 정립 및 조직 편성, 운영 훈령 제정, 인사 조치를 통한 인적 쇄신 등이다. 특히 새로 제정한 안보지원사령 제3조는 ‘사령부 소속 모든 군인 및 군무원 등은 직무를 수행할 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관련 법령 및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명시했다. 세부적으로 ▲정당이나 정치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행위 ▲직무범위를 벗어난 민간인에 대한 정보 수집 및 수사, 기관 출입 등 행위 ▲군인과 군무원 등에 대해 직무수행을 이유로 권한을 오·남용하는 행위 ▲국민 기본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행위 등을 금지했다. 기존 기무사령에는 이러한 금지 규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안보지원사의 업무를 규정한 조항은 기존 기무사령과 유사한 것으로 파악됐다. 안보지원사는 ▲군사보안과 관련한 인원의 신원조사 ▲국내외 군사 및 방위사업에 관한 정보 ▲대(對)국가전복, 대테러 및 대간첩 작전에 관한 정보 ▲방위산업체 및 국방전문 연구기관에 관한 정보 ▲장교·부사관·군무원 임용 예정자에 관한 불법·비리 정보 등 군 관련 정보의 수집, 작성, 처리 업무를 할 수 있다. 한편 군·검 합동수사단은 지난 5일 이석구 전 기무사령관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해 지난 3월 계엄 문건 작성 태스크포스(TF) 원들이 이 전 사령관에게 보고한 경위와 내용에 대해 조사했다고 밝혔다. 또 지난 3일 장준규 전 육군참모총장의 집을 압수수색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SBA, 구직자 실무역량강화 프로그램 ‘취업핵심역량양성소’ 운영

    SBA, 구직자 실무역량강화 프로그램 ‘취업핵심역량양성소’ 운영

    서울시와 서울시 일자리 창출의 주역인 중소기업지원기관 SBA(서울산업진흥원)는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구직자 역량강화 프로그램인 ‘취업핵심역량양성소’를 구성하여 서울 우수 중소기업(스타트업) 취업을 희망하는 청년구직자들을 위해 적극 지원에 나선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는 SBA는 트렌드를 이루는 직무에 대해 적성 파악, 취업경쟁력 함양, 직무 실습, 기업과제 수행, 스피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구직자의 실무 역량강화를 통해 혁신기업과의 맞춤형 취업매칭 프로그램을 운영해나갈 예정이다. ‘취업핵심역량양성소’는 7월 18일부터 8월 1일까지 매주 수요일(1회 4시간) 전문과정이 진행되고 8월 16일 마지막 회차에는 부여된 과제에 대해 참여 구직자들이 기업 관계자를 대상으로 발표를 진행한다. 이번 기수에는 데이터 마케팅 분야 취업을 희망하는 구직자를 대상으로 직무 주제에 맞추어 운영될 예정이다. 1주차는 진로/직업 가치관, 나에게 맞는 기업 찾기, 기획안 작성법, 프리젠테이션 스킬 등 실무역량 강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년구직자들이 놓치기 쉬운 적성, 가치관 등을 파악하고 구직자들의 취업경쟁력 함양을 목적으로 한다. 2~3주차에는 데이터 마케팅과 CDJ(Consumer Decision Journey)의 이해, 데이터 분석 및 활용, 버즈데이터와 플랫폼 분석 등 데이터 마케팅 분야 기본지식 함양과 실습을 통한 실무역량 강화와 기업과제 수행이 진행된다. 마지막 회차는 주어진 기업 문제해결과제를 수행하고 검증된 인재를 발굴하기 위한 과제 스피치대회를 열어 스타트업에 대한 인식 개선과 기업의 현장 실무 이해도를 높여 일자리 미스매칭 문제를 해소하고 취업률을 제고할 예정이다. 향후에는 ‘취업핵심역량양성소’ 뿐만 아니라 캠퍼스 CEO TOK(CEO&구직자 현장교류), 미니인턴 등 구직자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개선은 물론 취업연계를 위한 매칭 서비스를 제공한다. 취업핵심역량양성소 이후에도 채용설명회, 기업과제 수행 프로젝트(PBL)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며, 구직자들의 입장에서는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의 정보 취득과 기업 구직 전략을 습득하고, 기업의 입장에서는 회사의 인재상 등을 공유한 인재의 발굴과 과제수행 검증을 통해 채용으로 연결하여 인력난 해소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실무역량을 개발하고 인증받은 구직자 대상으로 진행되는 헤드헌팅 서비스와 SBA서울신직업인재센터가 운영중인 채용지원사업의 뉴스레터를 통해 중소기업의 취업정보 등 다양한 취업 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다. SBA서울신직업인재센터 정익수 센터장은 “일자리 문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일자리 부족’이 아니라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 정보 미스매칭에 따른 취업기피’가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인 만큼, 이 프로그램을 통해 취업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핵심 인재의 실무역량을 강화시켜 혁신기업에 연결하는 체계적인 매칭시스템을 SBA서울신직업인재센터가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취업핵심역량양성소’와 관련한 문의는 SBA 일자리확산팀으로 하면 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기무사 간판 역사 속으로… 병력 30% 줄인다

    기무사 간판 역사 속으로… 병력 30% 줄인다

    존립근거 대통령령 등 제도적 장치 폐지 시·도에 배치된 60단위 부대 완전 해체 사령부 형태·국방부 본부·외청 중 결정 동향관찰권 유지… “미완의 개혁” 지적‘기무사’라는 간판이 폐기되는 등 국군기무사령부가 사실상 해체 수준의 쇄신 수순을 밟게 됐다. ‘계엄령 문건 파문’으로 상징되는 정치 개입과 세월호 유족 등 민간인에 대한 사찰, 군내 특권적 행태를 일삼아 비판을 받아 온 기무사의 존립 근거인 대통령령(기무사령부령) 등 모든 제도적 장치들이 폐지될 전망이다. 인원의 30%가 감축되고, 각 군부대 내 기무부대에 대한 지휘·감독 등을 명분으로 광역지자체 11곳에 배치된 ‘60단위’ 기무부대는 전면 폐지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무사가 군내에서 초법적 지위를 누리게 된 근거 중 하나인 ‘동향관찰권’에 대한 완벽한 폐지가 빠지는 등 미완의 개혁이란 지적도 나온다. 국방부 기무사 개혁위원회(위원장 장영달)는 기무사 조직을 전면적으로 재편성하는 내용의 개혁안을 2일 발표했다. 장 위원장은 “(향후 기무사) 사령부 형식을 유지할지, 장관의 참모기관(국방부 본부화)으로 운영할지, 미래적으로 입법을 거쳐서 외청으로 독립시키도록 할지 등 3개 안을 병렬적으로 장관에게 보고했다”고 밝혔다. 1안은 독립된 사령부 형태를 유지한 채 계급별로 30% 이상 줄이는 안이다. 2안은 ‘국방보안방첩본부’(가칭) 같은 국방부 본부조직으로 흡수하되 인력을 30% 이상 줄이는 안이다. 3안은 방위사업청·병무청처럼 외청으로 전환하되 청장은 민간인, 부청장은 현역 장군이 맡는 방안으로 전해졌다. 최종 결론을 유보한 채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에 맡긴 셈이다. 어떤 경우에도 ‘기무사’ 이름은 사라진다. 장 위원장은 “현재의 대통령령은 폐지되기 때문에 사령부(형태로 존치하더라도)의 명칭이나 운영의 전반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결국 특무부대, 방첩부대, 보안부대, 보안사령부 등 간판을 바꿔 가며 70년 동안 권력과 공생해 온 기무사란 이름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개혁위는 장군과 장교, 부사관 등의 사생활 첩보를 수집하는 ‘동향관찰’ 금지도 권고했다. 하지만 개혁위 관계자는 “보안·방첩에 이상징후가 포착됐을 땐 할 수 있다”며 여지를 열어 뒀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특전사 2명 질식사 ‘포로체험훈련’ 감독장교 2명 무죄 확정

    특전사 2명 질식사 ‘포로체험훈련’ 감독장교 2명 무죄 확정

    특전사 포로 체험 훈련 중 하사 2명이 질식사했을 당시 훈련을 관리·감독했던 영관급 장교 2명에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업무상과실치사와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모(46) 중령과 김모(43) 소령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2일 밝혔다. 2014년 9월 2일 충북 증평군 제13공수특전여단 예하 부대에서는 포로 체험 훈련 중 특전사 이모(당시 23세) 하사와 조모(당시 21세) 하사가 질식사해 숨졌다. 당시 손과 발을 포박하고 두건을 씌운 채 진행된 훈련 중 피해자들이 호흡 곤란으로 ‘살려달라’고 외쳤지만, 교관이었던 김 중령과 김 소령은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돼 기소됐다. 당시 이 훈련은 처음 도입돼 아무도 경험자가 없었다. 그러나 안전 대책은 특별히 마련되지 않았다. 한겨레는 “2014년 4월 3일 특전사에서 열린 ‘전투영화제’에서 간부들이 영국 특수부대를 다룬 영화 ‘브라보 투 제로’를 함께 보고 나서 차를 마시면서 ‘우리는 왜 저런 훈련이 없나, 우리도 하자’라는 의견이 나와 마련됐다는 보고를 군 당국으로부터 받았다”는 윤후덕 당시 국회의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불과 닷새 뒤인 4월 9일 예하 여단에 생존기술 등 특성화 훈련을 지시했고, 5월 2일 지휘관 토의, 5월 26일 특성화 훈련센터 개설 등 훈련 계획 진행이 일사천리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군은 당시 훈련 매뉴얼도 제대로 완성하지 않아, 얼굴에 씌운 두건조차 부대 앞 문방구에서 구입한 신발주머니였을 정도였다. 군 당국은 훈련을 지도했던 현장 교관 4명을 입건했고, 이어 훈련 계획을 세우고 훈련을 관리·감독했던 김 중령과 김 소령도 재판에 넘겼다. 1심에서 각각 벌금 2000만원을 선고받았던 현장 교관들은 국방부 고등군사법원 항소심에서 군 검찰의 항소가 기각돼 벌금형이 확정됐다. 김 중령과 김 소령의 경우 1심인 특전사 보통군사법원은 각각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인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은 “이들의 부주의가 특전사 하사의 사망으로 이어졌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2심 판단이 옳다고 보고 무죄를 확정했다. 결국 20대 하사 2명이 목숨을 잃었던 사건에서 실형을 받은 교관이나 책임자는 아무도 없게 됐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씨줄날줄] 기무사의 도·감청/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기무사의 도·감청/임창용 논설위원

    미국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1998년)는 무차별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국가안보국(NSA)에 맞서 싸우는 한 변호사(윌 스미스)의 이야기다. NSA는 테러리즘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영장 없는 도청을 허용하는 법률 제정을 추진했고, 이를 반대하는 정치인을 제거한다. 우연히 피살 장면이 찍힌 테이프를 갖게 된 주인공 윌 스미스를 인공위성으로 감시하고, 부인과의 사적 대화까지 도청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누구든 정보기관의 타깃이 되면 빠져나갈 수 없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던 기억이 난다.요즘 터져 나오는 우리 정보기관의 불법 사찰과 도·감청 관련 뉴스를 보면 마치 이 영화가 재현된 듯한 느낌이 든다. 안보를 명분으로 정보기관의 감시가 특정 개인이나 기관의 사욕을 위해 사용될 때 얼마나 폐해가 큰지를 잘 보여 주기 때문이다. 정보 수집 권한을 무한대로 늘리고자 하는 정보기관들의 속성은 영화 속 NSA나 우리 기관들이나 마찬가지인 듯싶다. 2년 전 박근혜 정부는 대테러 활동에 필요한 경우 국정원이 통신사 협조를 받아 카카오톡이나 휴대폰 메시지를 감청할 수 있도록 한 테러방지법을 만들었다. 긴급한 경우가 아니면 법원 허가를 받도록 했지만, 법안 시행 이후 감청집행 건수가 83%나 증가했다고 한다. 군 정보기관인 기무사는 촛불 정국에서 작성했다는 계엄 문건 파문에 더해 최근 민간인과 정치인들에 대해 대대적인 사찰과 도·감청을 벌여 온 의혹까지 불거져 파장이 크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방부 장관과 노 전 대통령의 통화까지 감청했다고 하니 모골이 송연하다. 기무사가 군 전화에 대한 감청 권한을 갖고 있다고는 하나, 대통령의 대화까지 엿들을 정도면 대한민국에서 기무사 감시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계엄 문건도 자신들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무소불위 의식의 산물일 듯싶다. 기무사 간부들은 올 초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손을 씻는 이른바 ‘세심’(洗心) 의식을 가졌다. 구태를 반성하고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준수하겠다는 다짐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 국회에서 이석구 사령관과 수하 장교가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맞선 장면은 그 다짐이 허구란 사실을 확인시켰다. 기무사의 권력이 국방부 위에 있다고 시위하는 듯해 볼썽사나웠다. 기무사는 1949년 육군 방첩대로 출발해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90년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의 ‘청명계획’을 폭로해 불법사찰 의혹이 터졌을 때 이들은 개명과 함께 개혁을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이젠 국민으로부터 개혁을 넘어 해체 압력까지 받고 있다. 다 사필귀정이다.
  •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 13회] “인민군 치하에서 지옥 같은 삶… 학생선도·치안확보 등 호국 활동”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 13회] “인민군 치하에서 지옥 같은 삶… 학생선도·치안확보 등 호국 활동”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1926년 10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병 소위로 참전하여 1950년 11월 12일 24세 때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한영희는 1934년 10월 20일 인천 답동 5번지에서 태어나서, 인천서림국교를 졸업하고, 인천여자상업중학교 3학년 때 인천학도의용대 용동분대 대원으로 호국(護國)활동을 하다가, 후발대를 따라서 1950년 12월 24일 원저호를 타고 인천항을 출발하여 부산항에 도착하여 부산육군통신학교에서 신봉순 교육대장의 보살핌으로 5개월 머무르다가 1951년 5월 인천으로 귀향하였다. ■한영희 인터뷰 일시 1998년 10월 2일 장소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편집실 대담 한영희 이경종(6·25 참전사 편찬위원)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 6·25 사변의 발발과 지옥 같았던 인공 치하 인천여자상업중학교 3학년 때 6·25전쟁을 맞은 나는 북한 인민군(人民軍) 치하에서 지옥 같은 삶을 겪었다. 9·15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우익학생 이계송(고려대 2학년생)의 주도로 인천학도의용대가 생겨나서, 우리 동네에 조직되어 있는 용동 분대에 가입하여 호국활동(학생선도, 치안확보, 피난민 안내 등)을 하였다. 당시 용동 분대장은 인천동산중 6학년 신현기였고, 감찰부장은 인천공업중 5학년 최기준이었다. 대원으로는 인천해성중 3학년 한세창이 기억난다. 1950년 12월 18일 인천학도의용대의 남하 압록강까지 북진했던 국군과 UN군이 갑작스런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하여 후퇴를 거듭하여 1950년 12월 중순이 되었을 때 인천학도의용대가 남쪽으로 내려간다는 소문이 있었다. 인천학도의용대가 남하하기로 결정되었으니 남하 집결 장소인 인천축현국교로 1950년 12월 18일 날 모두들 모이라는 전갈이 왔다. 1950년 12월 18일 인천축현국교에 가보니 인천학도의용대 대원 약 3000명이 모여서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많은 인천학도의용대 여학생 대원들이 남학생 대원들과 같이 따라간다고 말하면서 가는 것을 봤지만 나는 따라가지는 않았다.1950년 12월 24일 배(윈저호)를 타고 남하 남자 대원들을 배웅하고 집에 돌아와 며칠 있으려니까 이번에는 인천상업중학교 밴드부와 여학생들이 인천항에서 윈저호라는 배를 타고 부산을 향하여 후발대로 남하하는데 나에게 같이 남하하자고 나오라는 연락이 왔다. 그때 나는 남하 할 준비를 하고 인천항에 나가 인천상업중학교 밴드부와 여학생들과 같이 배에 올라탔다. 이후 서해 바다를 거쳐 남해를 지나 부산항에 도착하여 부산극장 옆에 있는 가마니 공장 창고에 들어가게 되었다. 추운 겨울 가마니 창고 안에서 가마니를 바닥에 한 장을 깔고 한 장은 덮고 자면서 지냈다. 그렇게 며칠 지나려니까 이번에는 부산육군통신학교로 우리 인천학도의용대 여학생 대원들을 보내는 것이었다. 당시 부산육군통신학교에는 우리들보다 먼저 내려와 자원입대한 인천학도의용대 대원들이 육군통신학교에서 통신병 교육을 받고 있을 때였으며 그때 우리 여학생 대원들은 육군통신학교 옆의 농림부 관사에서 지내게 되었다. 사실 그때 부산까지 내려온 여학생들은 딱히 머물 곳이 없었는데, 마침 다행히도 부산육군통신학교에 신봉순 교육대장님이 계셨었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신봉순 선생님의 도움 그때 부산육군통신학교에 있었던 신봉순 대위님은 8·15 해방 후 공립인천상업중학교에서 과학 선생님을 하시다가 뜻하신 바 있어 교직을 사직하시고 육사 8기로 임관하여 그때 마침 부산육군통신학교에서 교육대장으로 근무 중이셨다. 그런 인연으로 오갈 데 없었던 인천학도의용대 여학생 대원들의 숙식을 해결해 주신 잊지 못할 선생님이셨다. 5개월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다 나와 이인숙(인천여중 1학년), 전전숙(박문여중 2학년), 박경순(박문여중 4학년), 이은영(인천여중 3학년) 등 5명은 인천항에서 원저호를 함께 타고 부산항에 도착하여 부산육군통신학교에서 같이 행동했던 여학생들이었다. 당시 우리들이 숙소로 쓰던 방은 부산육군통신학교 장교 침실 일부로 칸을 만들어 주어 그곳에서 지냈으며 여자들이 입는 군복과 담요로 만든 자주색 잠옷도 보급 해 주어 우리 인천학도의용대 여학생들은 비교적 편하게 지냈다. 그리고 식사 시간이 되면 장교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다. 이후 군산 헌병대에 근무하고 있었던 아버지로부터 인천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여러 여학생과 같이 고철을 실어 나르는 한양호라는 배를 부산항에서 타고 인천으로 왔다. 그때가 1951년 5월 말쯤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슬픈 일 1951년 2월 부산육군통신학교 옆 농림부 관사에 머무를 때 있었던 일이었다. 3년 선배 언니가 간호장교 시험을 치를 때 나도 그 간호장교 시험을 치러서 합격하였다. 그때 사정으로 내가 가지를 못 하고 박문여자중학교에 다니는 박경순이 나 대신 간 일이 있었는데, 나중에 철원 전쟁터에서 포위되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많은 죽음이 항상 곁에서 발생했던 어두운 시대였는데, 가까운 친구의 죽음은 세월이 48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 아프다. 자원입대하여 전사한 친구들 인천학도의용대 용동분대에서 같이 활동하였던 학생들이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 후 참전하여 몇 명이 전사했다고 하는데, 그때도 많이 슬펐고,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흐른다. 지금까지도 이름이 잊혀지지 않는 전사 학생은 이중수이다.6·25 참전 전사 인천학생 이 중수 인천영화중학교 4학년(당시 대건고교 1학년) 재학 중이던 1950년 12월 18일 인천축현국민학교를 출발하여 마산까지 20일간 걸어가서 해병 6기로 지원하여 입대 후 참전하여 1952년 6월 12일 서부전선 문산지구전투에서 전사하여,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서-16-911)에 묻혀있다.남기고 싶은 말 너무 오래전이고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지만, 6·25 당시 인천 중학생이던 우리들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 나름 호국활동(학생선도, 치안확보, 피난민 안내 등)을 했었고, 자원입대하여 많이 전사했다. 웬일인지 다른 지역의 학도병들은 많이 알려져 있고 기념관도 있다는데, 인천은 기록도 없고, 기념관도 없고… 늦었지만 나와 같은 인천서림국민학교를 졸업한 이경종 동창생과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이 우리들의 슬펐던 옛날 일을 기록하여 준다니 기쁘기 그지없고, 그저 고마울 뿐이다.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다음호에 14회 계속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숲 거닐다 구름 보면 ‘내가 너구나’ 생각 들어···이게 걷는 거야” 上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숲 거닐다 구름 보면 ‘내가 너구나’ 생각 들어···이게 걷는 거야” 上

    죽음의 문턱서 돌아온 박상설씨가 들려주는 ‘걷기’란그를 4시간 넘게 인터뷰하고 회사로 돌아오는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 ‘사는 게 뭘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삶인가’ ‘왜 사는가’하는 문제를 곱씹어 보게 됐다. 정답은커녕 답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게 이런 문제 아닐까. 그래도 사람마다 제각각 해답을 품고 살고 있으리라. 박상설씨, 1928년에 태어났으니 올해 91세다. 그는 자신의 삶을 찾고자 가족을 ‘내팽개치고’ 혼자 청년의 삶을 살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을 보니 가장 번민하는 것이 돈이 아니라 가족이더라구요. 가족끼리도 많이 싸우고. 하지만 저는 가족에 대해 ‘초월적 사랑’을 하기에 혼자 나와 삽니다.” 기자는 지난 26일 승용차가 아니라 대중교통으로 오라는 그의 당부대로 1호선 양주역에서 내렸다. 그는 양주역에 내려 “중 같은 빡빡머리를 찾으라”고 했다.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가벼운 배낭과 작은 가방을 걸친 등산복 차림이었다. 91세라기엔 걸음걸이나 서 있는 자세가 믿기지 않을 만큼 곧았다. 말투는 빨랐고 목소리는 컸으며 거침이 없었다. 같이 버스를 타고 30분쯤 가니 그의 아파트가 나왔다. 집으로 가는 것이 폐를 끼치는 것 같아 근처 카페로 가자고 해도 박씨는 “집으로 가자”며 한사코 소매를 끌어당겼다. 그는 6·25 한국전쟁 때 공병 장교로 참전한 덕분에 임대주택에 산다고 귀띔했다. 배낭에는 원두커피와 루소의 에밀이 들어 있다고 했다. ●빡빡머리 박상설씨, 원두커피와 에밀이 든 배낭 메고 다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집안은 남자 노인네가 혼자 산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정리가 잘 돼 있었다. 거실을 서재로 쓰는 듯 벽에는 인문학 서적과 지도, 사전과 등산 관련 책으로 가득 찼고 한쪽 벽에는 기사를 쓰기 위함인지 PC가 설치돼 있었다. 침실문을 열어 보여주기에 들여다보니 침대가 말끔히 정돈돼 있었다. 다른 한쪽 방은 ‘옷 방’으로 쓰는 듯 각종 옷이 반듯하게 걸려 있었다. 부엌은 설거지가 말끔히 돼 있었고, 세간은 깨끗하게 손질돼 있었다. 베란다에는 언제든지 나갈 수 있게끔 등산과 비박 장비들이 잘 꾸려져 한쪽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깔끔한 성격으로 보였다. 그에게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왜 가족과 같이 지내시지 않나요.☞ 건강을 크게 잃고 난 다음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혼자 살기로 했어. 가족회의에서 그렇게 결정한 거지. 그동안 살아보니 나머지 인생은 홀로 사는 게 옳다고 생각했지. 이렇게 혼자 산지가 30년이 넘었어. 혼자 사는 게 편해. 잔소리가 없잖아. 아들 하나, 딸 둘이 있는데 다 잘 지내. 막내딸이 서울 강남에 사는데 내가 딸네 집을 몰라.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거든. 집사람하고는 십수 년 전부터 연락을 안 하고 지내.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리를 들었는데···(부인에겐 짠하고 시린 듯 말끝을 흐렸다.) 김치도 식혜도 혼자서 잘 담가 먹어(직접 만든 식혜를 자랑하듯 김치냉장고에서 꺼내 한 사발 권했는데 시원하고 은근한 단맛이 일품이었다.) 둘째 딸이 가끔 여기를 방문해. 딸이 친구들과 같이 와서 식혜를 먹고 가기도 하고. - 가족과 연락을 안 하는 건 너무 한 것 아닌가요.☞ 내가 생일이라고 미역국 한 그릇 얻어먹은 적이 없어. 생일날 오라고 하지만 가본 적이 없으니. 그리고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잖아. 대신에 내가 아이들에게 아프다고 신세 한번 진 적이 없어. 요새 보면 늙은 부모가 요양원에 가는 바람에 자녀들이 죽을 고생들 하잖아. 난 그런 게 없으니 아이들 고생시키지 않았지. 옛날에 탈장과 전립선 수술을 했는데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수술했지. 그래서 가족에겐 ‘냉정한 사랑’이랄까 ‘초월적 사랑’이랄까 뭐 그런 것을 주는 셈이지. “너무 하다”고 비판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인생이 다른 사람들이 사는 삶과는 다르니깐. 그래도 애들이 미성년자일 때 부모 도리를 다 했지. 자식이 다 자라고나서 부부 간에 성격이 안 맞고 하니 내 성격대로 살고 싶었던거야. 집사람도 마찬가지였을 테고. 사랑은 바라는 게 아니니깐.●“뇌졸중에 1년 시한부 선고···길에서 죽자고 걸어” - 이렇게 건강하지만 크게 앓았던 적이 있다던데.☞ 30년도 더 전에 쉰여덟 살 때(1987년) 쓰러져 병원에 실려간 적이 있지. 건설회사 임원이었는데 그때 하루 담배 두 갑씩 피웠고, 며칠씩 밤샘도 했고, 스트레스가 엄청났지. 그러다가 갑자기 쓰러진 거지. 목덜미와 손발이 마비되기 시작했지. 한국에서 병명을 찾지 못해 3년 뒤 지팡이를 짚고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지. 미국서 ‘뇌간동맥경색(뇌졸중)’ 판정을 받았지. 길어야 1년밖에 못 산다고 했어. 죽음의 문턱에 섰던 거지. 수술을 못해 지금도 동맥이 막혀 있어(그는 컴퓨터를 켜서 목 부분의 뇌간동맥에 흰색이 선명한 MRI 촬영 사진을 보여줬다.) 대신에 모세혈관들이 피와 산소를 공급하고 있어. 그래서 살고 있는 거야. 의사가 아스피린 복용과 운동을 권했어. - 그래서 운동으로 등산을 시작한 건가요. ☞ 그땐, 등산보다는 생활 방식을 바꾸고 싶었던 거지. 1년밖에 못 산다기에 미국 간 김에 차를 렌터해서 종주를 한 거야. 길 위에서 죽자고 작정한 거지. 마비가 서서히 번져가고 있었지만 운전은 할 수 있으니. 가족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미국 종주를 서부에서 동부로, 남쪽 마이애미까지 4번 했어. 멕시코 캐나다 알래스카도 가고, 유럽과 인도, 네팔 등을 쏘다닌 거야. 죽을려고 하루 일고여덟 시간씩 걸었어. 나무 지팡이를 짚고서. 미국선 인디언들과 같이 지내고, 인도에선 거지들과 같이 잠자고 했어. 굶어가면서 사막과 오지를 찾아다닐 때 한 번도 호텔에 들어가지 않고 텐트를 치고 살았지. 렌트카에서 숙식을 해결하고(그는 자신의 말을 입증하듯 미국의 인디언과 인도 거지 소굴에서 지냈던 사진들을 찾아서 보여줬다.)- 사진을 보니 그때도 머리를 빡빡 미셨네요. ☞ 이러다가 길바닥에 쓰러져 죽을 텐데 멋있게 보이는 게 무슨 소용이야 싶어서 머리를 밀어버렸지. 그 뒤, 자연 속에 지내는데 꾸밈이 필요 없어 계속 머리를 밀고 다녔지. 황량한 사막, 북극 오로라, 빙하 탐험···. 나를 뒤돌아보게 하고, 사막의 무의미한 것들이 사방이 벽처럼 무섭게 느껴지더라고. 여행이 아니라 나를 버리러 간 것이지만 적막의 자유를 얻었지. 그걸 즐겼던 것 같애. 지금 생각해보면 엄두가 안 나. 늘 새로운 모험에 흥미를 건 만용이자 호기이지. ●“하루 7~8시간씩 서너달 걸으니 마비 풀려···지팡이 버려” - 환자가 그렇게 몸을 굴리면 건강이 더 나빠질 텐데.☞ 미국의 오지를 찾아 서너 달 다니니 마비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더라고. 지팡이 없이 다닐 수 있게 됐지. 아프다고 눕지 않고 떠돌아다닌 게 기적을 가져왔던 거지. 1년밖에 못 산다고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그 뒤로 유럽을 여행했어. 1년을 넘기자 이젠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어. 그 후 자연을 찾는 삶을 계속했어. 그래서 오지 체험, 등산, 자동차캠핑, 주말농원 등을 한 거야. 난 덤으로 사는 거야. 기적이지요. 건강은 발바닥에서 온다는 걸 깨달았지. 그걸 후학들에게 알려주고 있어(그는 요즘 공무원이나 기업 연수나 등산학교 등에 강사로 초청을 많아 받는다.)- 등산은 언제부터 했나요. ☞ 오지로 가는 게 등산이지. 숲 속에서 없는 길을 만들어 앞으로 갔지. 대학시절 불암산에 자주 갔어. 그때 서울대 공대가 공덕리(현재 공릉동)의 원자력병원 자리에 있었어. 30대 시절엔 화전민이 사는 곳을 찾아다녔지. 갇혀 사는 게 싫고 지시하고 지시받는 게 싫었지(그는 5·16쿠데타 직후 국토교통부 공무원을 지냈다고 한다.). 스무 네 살 때 부모와 일곱 식구를 먹여 살려야 했고, 서른한 살엔 열한 명의 가장이 됐지. 보릿고개 시절 죽기 살기로 일했고, 그때의 피난처가 산이었지. ☞ 하편 계속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국방개혁 2.0’ 발표…2022년까지 장군 76명 줄인다

    국방부는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관하는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2022년까지 장군 정원을 76명 감축하는 내용을 담은 ‘국방개혁 2.0’ 기본방향을 보고했다.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는 송영무 국방부 장관, 정경두 합참의장을 비롯해 육·해·공군 참모총장과 각군 주요 지휘관, 국방부 직할부대 부대장 및 기관장 등 군 주요인사 143명이 참석했다. 청와대에서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등 19명의 참모들이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5월 국방부를 방문해 군 지휘부와 대면하는 자리를 가졌지만, 전군 지휘관회의를 직접 주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방부는 이날 국방개혁의 일환으로 현재 436명인 장군 정원을 2022년까지 360명으로 76명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1970년 중반 수준으로 장군 정원을 줄이겠다는 것으로, 각군별 감축 규모는 육군 66명, 해·공군 각 5명씩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전투부대 중심으로 장군 직위를 우선 편성하고 비전투분야 직위 중 민간 활용이 가능한 직위는 예비역 또는 민간전문가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감축 인원은 육군 1·3야전군 사령부 통합 등 부대 개편으로 인한 자연 감축과 국방부 및 방위사업청 일부 직위의 공무원 전환, 교육·군수·행정 등 비전투부대의 계급 적정화를 통해 이뤄질 예정이다. 다만 국방부는 장군 정원 감축에도 불구하고 군단 및 상비사단 등 전투부대의 부군단장, 부사단장 및 잠수함사령부 부사령관, 항공정보단장, 해병대 1·2사단 부사단장 등은 장군으로 편성해 전투력 유지 및 준비태세 역량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국방부는 부대개편 시기, 인력운영 여건, 법령 개정 소요기간 등을 고려해 올해부터 2022년까지 매년 15명 수준의 감축을 진행할 예정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감축 규모를 기존 2012년 계획인 60명과 2017년 계획인 46명보다 대폭 확대했고, 감축 완료 시기를 2030년 내에서 현 정부 임기 내로 단축했다는 점에서 개혁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또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임기 내 군복무기간 18개월로 단축’을 완료하기 위해 오는 10월 1일 전역자부터 병 복무기간 단축을 단계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이는 입대일 기준으로 지난 1월 3일 입대자부터 적용되며 현재 군 복무중인 현역병도 혜택을 받게 된다. 복무기간은 총 3개월이 단축된다. 이에 따라 육군·해병대는 21개월에서 18개월로, 해군은 23개월에서 20개월로 줄어든다. 다만 공군은 이미 복무기간을 1개월 단축했기 때문에 24개월에서 22개월로 2개월만 단축할 계획이다. 또한 사회복무요원의 복무기간은 24개월에서 21개월로, 산업기능요원은 26개월에서 23개월로 각각 단축할 예정이다. 복무기간 단축은 입대시기에 따라 복무기간에 큰 차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14일 단위로 1일씩 단계적으로 단축된다. 예를 들어 2017년 7월 27일 입대하는 육군병의 경우 당초 전역예정일보다 41일 빠른 2020년 3월 16일에 전역하게 된다. 국방부와 병무청은 이날 홈페이지에 세부 입대 일자별 전역일 도표를 게재하고, 다음달 1일부터는 입대일을 입력하면 전역일을 산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국방부는 이와 함께 국방개혁에 관한 법률을 개정을 통해 현재 합동참모본부의 공통 직위인 장군과 대령 88명, 장성급 국직부대 지휘관 20명에 육·해·공군을 동일한 비율로 균형 편성하고 같은 자리에 동일군이 연속해서 보직할 수 없게 할 방침이다. 육·해·공군의 합동작전능력을 강조해온 합참의 직위는 육·해·공군 2:1:1 비율 편성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그동안 3:1:1 수준으로 편성돼왔다. 이에 따라 특정군의 전담이 필요한 필수 직위의 경우 장군은 육군 6명, 해군(해병 포함) 2명, 공군 2명으로 편성됐고, 대령은 육군 13명, 해군(해병 포함) 5명, 공군 4명으로 구성됐다. 육·해·공군 장교가 공통적으로 보직할 수 있는 공통 직위의 경우에도 장군은 육군 10명, 해군(해병 포함) 4명, 공군 5명으로 구성됐고, 대령은 육군 35명, 해군(해병 포함) 17명, 공군 17명으로 짜여졌다. 3군의 합동성 발휘를 위해 1:1:1 편성을 원칙으로, 동일군이 2회 이상 연속 보직할 수 없는 법 개정이 이뤄질 경우 공통 직위 장군 19명과 대령 69명은 육·해·공군 각각 6명과 23명씩 나뉘어 편성될 전망이다. 그러나 기존 합참의 해·공군 직위 인사에도 각군 본부의 인원 부족으로 인한 고충이 있었던 만큼 향후 균형 인사가 이뤄지기 위해선 해·공군의 장군·대령 정원의 증원이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국방부는 전년 대비 7.0% 인상된 올해 43조 1581억원 규모인 국방 예산을 내년도 8.6% 증가된 46조 9000억원을 기획재정부에 요구하는 한편, 향후 연평균 증가율을 7.5% 산정해 국방 예산을 편성하겠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국방개혁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중기 소요재원은 2019~2023년 5개년 간 270조 7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이중 전력운영비는 176조 6000억원, 방위력 개선비는 94조 1000억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국방부는 전했다. 그러나 현재 61만 8000여명인 상비 병력이 육군 11만 8000명 감축돼 2022년까지 50만명으로 조정되는 상황에서 전체 국방 예산의 대폭 인상을 요구한다는 점에 대해선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남북 군사적 긴장완화 분위기 속에 군 기강 해이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군 조직의 신뢰 회복을 위한 자체 노력에 앞서 ‘전방위 안보위협 대응’과 ‘첨단과학기술 기반의 정예화’, ‘선진화된 국가에 걸맞은 군대 육성‘ 등 3대 목표 달성을 이유로 예산 증가부터 요구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이와 함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한 지휘구조 개편, 전방위 다양한 위협에 신속대응하는 부대구조 개편을 위한 내년 1월 1일 육군 지상작전사령부 창설 및 해군 기동전단과 항공전단 확대 개편 등을 함께 발표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