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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예장교 산실/육사 50기 졸업생 배출

    ◎45년 군사영어학교로 출발… 엘리트 양산 육군 정예장교의 산실인 육군사관학교가 2일 50기 졸업생을 배출했다. 지난 45년 군사영어학교로 출발,51년 진해에서 4년제 사관학교로 다시 개교한 육사는 그동안 수많은 군 엘리트를 배출했고 이들은 우리 정치권에서 최대의 파워그룹으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른바 화려한 「육사의 시대」는 61년 5·16에 김종필민자당대표등 육사 8기생들이 주도하면서 열렸다. 그후 11기인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육사시대는 제3공화국을 기점으로 30여년동안 계속되다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막을 내렸다. 제14대 국회의원 가운데 육사출신은 8기생인 김민자당대표를 비롯,민자당에 20명,민주당에 5명,국민당과 새한국당·무소속에 각각 1명씩 모두 28명이 진출해 있으나 5·6공때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이와함께 과거 내각의 주류를 이루었던 육사출신 관료는 현재 육사17기 출신의 이병대국방부장관과 18기 오명교통부장관등 2명밖에 없다. 한편 이날 졸업·임관식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은 정관소위(24·광주 진흥고)가 수상했으며 국무총리상은 윤봉희(23·경북 점촌고),국방부 장관상은 조훈희(23·충남 서령고),합참의장상은 구삼회(24·충남 연무고),참모총장상은 서정혁(22·서울 화곡고),유엔군사령관상은 유상범(22·전남 순천고),학교장상은 박성훈(22·충남 대천고),대표화랑상은 윤만영(23·대전 중앙고)소위가 각각 받았다.
  • 법조계 우먼파워 시대/어제 사법연수원 23기 수료식

    ◎전체 2백91명중 19명 여성/역대최고… 10명 판사지원 법조계에서도 앞으로 본격적인 「우먼파워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14일 하오2시 윤관대법원장,김두희법무부장관,이세중대한변협회장 등 법조계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서초동 사법연수원 대강당에서 열린 제23기 사법연수생 수료식에서는 역대 수료식중 가장 많은 19명의 여성법조인이 탄생했다. 이날 수료한 2백91명 가운데 판사를 지원한 40명중 25%인 10명이 여성인 것으로 나타나 법원의 새로운 세력군을 형성할 조짐이다. 임용서열 3위로 판사임용이 확실시되는 최혜이씨(29)는 90년 10월 부산지법 배호근판사(30)와 결혼한 상태여서 조만간 10번째 부부판사의 기록을 세울 것이 확실하다. 최씨 이외에도 우라옥씨(25),김세연씨(25),김경란씨(25)등 3명이 임용서열 10위권 안에 들 정도로 좋은 성적을 얻었다. 한편 이날 수료식에서는 김문관씨(30)가 대법원장상을 받은 것을 비롯,엄상필씨(29)가 법무부장관상을,김무겸씨(30)가 대한변협회장상을,이현종씨(25)·백강진씨(25)·이재권씨(25)등이 사법연수원장상을 각각 수상했다.또 최고령합격자였던 장진호씨(48)는 표창장을 받았으며 전서울대총학생회장으로 「운동권」이었다가 사시·외시·행시 등 3개 시험에 합격,화제를 모았던 이정우씨(32)는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이번 수료생중 법관및 검사등 분야별 지망수는 40명이 법관을,55명이 검사임용을 각각 차지했으며 1백21명은 군법무관으로 입대하게 된다.
  • 수도꼭지·샤워용구 생산/(주)성진 김영애사장(맹렬여성)

    ◎“다품종·고품질로 외국제품 이기겠다” 『중소기업 제품이라도 다품종 소량생산에 품질만 좋으면 대기업 제품과 능히 겨룰 수 있습니다』 수도꼭지 및 샤워용구 전문 생산업체인 (주)성진의 김영애사장(38·경기도 김포군 김포읍 장기리438)은 20여년전 고등학교에 진학하겠다는 생각만으로 무작정 상경한 당찬 소녀였지만 이제는 연간 매출액 46억원을 올리는 탄탄한 중소기업의 여사장으로 올라섰다. 『오직 한가지 제품에만 전념한 결과입니다.맨주먹으로 사업을 시작,뼈아픈 경험을 많이 했지만 보잘것 없는 중소기업이라도 품질만 좋다면 대기업 제품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김사장이 이 사업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당시 오지였던 강원도 원통에서 고학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낮에는 구로공단의 직공으로 일하면서 야간 실업학교를 졸업한 뒤 수도꼭지를 연마·도금하는 회사에 취직하면서부터였다.같은 회사의 직원이던 박성호씨(41)와 결혼하고 사업자금을 모아 80년 허름한 공장을 인수,각종 밸브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업규격 표시허가를 받지 않아 제품 대부분이 「불량품」 취급을 받았다.다른 업체 제품을 모방해 생산하다 고발당하기도 했다.이를 계기로 자체 상품 개발만이 살길이라고 생각,일본에 견학도 가고 전시회를 찾아 다니며 아이디어를 짜냈다. 다행히 개발한 연탄보일러의 공기를 빼는 장치가 특허를 따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독자적으로 만든 샤워용구는 92년 상공부의 「굿디자인 마크」와 함께 환경처 장관상을 받았다.수압에 따라 돌아가지 않도록 벽걸이 접속부에 홈을 파내고 샤워 헤드에 버튼을 달아 꼭지를 잠그지 않고도 물을 멈추도록 한 간단한 제품이지만 절수 효과에다 편리한 제품으로 평가받았다. 『시장 개방으로 외국제품들까지 밀려들어 더욱 치열해지는 경쟁속에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 내지 않으면 대처해 나갈 수 없다』며 『관리가 복잡하더라도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승부를 걸겠다』고 말한다.공장을 새해초 김포 하성으로 넓혀 옮기고 9월에는 인도네시아 현지공장의 가동에 들어간다.새해부터 경영 무대를 세계로 넓히기 위해서이다.
  • 조각가 유영교씨(이세기의 인물탐구:39)

    ◎돌로 빚어내는 생명력… 인간미 “물씬”/풍만한 인체·단순화된 형태의 구상 즐겨 표출/연속 국전특선… 완벽한 조형술로 정상의 명성/요즘은 고난·번뇌 초월한 「평화의 표정」 형상화에 집착 「인생은 석재다.그것으로 신의 모습을 조각하든가 악마의 모습을 새기든가 모든것은 자유다.그러나 다만 생명이 깃든 조각인가?」이는 영국철학자 허버트 스펜서의 말이다. 유영교는 강한 석재로 생명이 깃든,살아있는 사람의 표정을 만드는 작가다. 알찬 마스(양괴)와 신선한 정감표출의 단아한 나부상,예술가가 품은 그 어떤 상념도 돌이라는 재료에 의해서 표현되지 않는것은 없다는 것이 그의 신조다. 그는 작품화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 끊임없이 데생하고 데생한다.또는 수채화로 그리거나 유화나 파스텔로 그린다.그리고 하나의 회화로서 만족할만한 결과를 보였을때 이번엔 점토로 이를 빚는다. ○실패확률 거의 없어 형태의 완성과 완벽성을 석고 모형으로 경험한다음 비로소 돌작업에 들어가기 때문에 실패의 확률은 거의 없다.표정조차도 이미 모형에서 이미지를 또렷하게 살려내고 있다. 그러나 그가 그린 그림이 조각에 닮아있으면 그것은 대부분 성공적인 것이지만 만일 조각이 그림에 닮아있을땐 이건 낭패일수밖에 없을 것이다.작품에 관한한 완벽추구자이며 영원히 만족을 모를수도 있다. 작품에서 그가 중점적으로 파고드는 테마는 언제나 인간의 이야기다.인간의 고뇌하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여러형태의 모습을 어디서 찾느냐는 것과 이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조각으로 표현하느냐는 것이 과제다. 같은 고뇌라도 성자의 고뇌인가 범상한 인간의 가족애적인 것인가.사랑도 신의 사랑과 남녀의 사랑,자비는 베풀때와 베풀음을 받은 은총일때가 다르듯이. 한때는 구도자나 수도자의 얼굴을 만들기도 했다.또는 어둡고 그늘진 어부나 농부의 삶에 찌든 표정이 그의 작품의 한 구릉을 이루기도 한다.그러나 「삶의 이야기」시리즈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아들을 보고 기절한 어머니의 모습,가톨릭의 고통과 고난과 수난은 끝이 없음을 그는 새삼 느낄수밖에 없었나보다. 이에비해 경주 불상에서 온화한 평정의 모습을 발견했다.미술이론을 모르는 이름모를 석공이 원만함과 무심과 풍요를 그려낸 것이다. 이때부터 헤르만 헤세의 「싯달타」를 다시 읽고 노자·장자에 심취하면서 초탈·초월의 경지를 갈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풍만감이 넘치는 인체에다 반가사유상의 양식을 적용한 극기와 무상,번뇌를 떨쳐버린 초월적 명상,마음의 갈등씻긴 평화로운 표정을 작품마다에 햇살처럼 아로새겨 나갔다. 유영교는 데뷔때부터 지금까지 비교적 순탄하게 일류작가의 대열에서 한치도 뒤처진 적없이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예술가의 한 사람이다. ○첫 개인전 찬사 일색 아직 대학2학년때인 66년 국전 3회 연속 입선,이어서 목우회 공모전서 문공부장관상 국전 국무총리상 국회의장상 국전 연속특선으로 삼십을 갓넘긴 나이에 국전추천작가·초대작가등 남보다 배나 빠른 정상가도를 똑바로만 달려왔다. 추천작가가 되던해인 77년 첫개인전과 함께 수많은 찬사·호평에 둘러싸여 다음해 이탈리아로 유학,국립로마미술아카데미와 르네상스 조각의 본고장으로 일컬어지는 카라라에서도 거장 에밀리오 그레코와 페레클레 파시니를 사사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때 「지중해」 「일드 프랑스」의 작가인 마욜과 아르프,오슬로의 후로그넬 공원에 있는 비게란드의 화강암으로 된 「조각군」을 보고 그는 자신의 구상조각에 대한 집착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부조에서 환조에 다다른 아르프의 아르 콩쿨레(구체예술)를 수용하면서 구상·추상 사이를 넘나들다가 차츰 추상의 경지를 뛰어넘어 그만의 구상인체에 망설이지 않고 정착할수 있었다.진위를 가릴수없는 모호한 추상의 세계보다 손으로 만져지는 구상세계가 그의 투명한 성격에도 거부감이 일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그가 아끼는 재질인 대리석도 인체의 아름다움과 당당함,사유와 풍요를 표현하는데 어떤 부족감도 없었다. 2년전 선보인 성숙·풍요·동반 시리즈에 이어 최근에는 점점 더 불교적으로 된 작품의 표정들이 무심을 지나 열반의 경지를 보이는 것이 그 좋은 예다. 더구나 밑그림이 철저하게 뒷받침된 표정들은 하나하나가 서로 다르고 하나하나마다에 생동감이 담긴다.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텅빈 무심이 아니라 청순이라든가 순백·환희가 눈부신 것도 특징이다. 고흐의 해바라기 같은 이미 다른 작가가 그려온 소재를 그는 그 나름대로의 천진무구를 강조하여 행복의 꽃다발로 재창조한 경우도 있다. 미술평론가 김복영은 이를 「회고」와 「번안」의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유홍준은 『살아숨쉬는 듯한 생명체의 덩어리』라든가 자신의 작품을 되물으며 의식을 심화시켜 나가는 자세는 『예술의 성실성』내지 『예술의 진지함』이라 평하고 있다. 그의 작업장은 금강 남쪽,충남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에 자리잡고 있다.그가 살고 있는 대전시내에서 버스로 20분거리.많은 조각가들이 교외별장과도 같은 아기자기한 건물을 지닌 것과는 달리 야산을 깎아 만든 2천평 대지에 세운 이 간이작업장은 거대한 석물공장을 방불케한다. 10t의 무게를 들어올릴수 있는 빔설치,돌을 썰거나 마광할수 있는 전기모터와 체인 블록,바이트와 드릴과 리머와 탭 등 수백가지의 절삭공구들과 마당구석구석에 사람의 키만한 대리석 화강암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는 이리나 문경,여수를 돌며 자연석을 직접 사오기도 하고 이탈리아 대리석을 현지에서 주문해다 쓰기도 한다. 남들이 직장에 출근하는 것처럼 아침8시에 도시락을 싸들고 출근,데생에서 흙반죽,석고 뜨고 돌자르고 드릴로 뚫고 다듬고 깎고 하루종일 돌가루와 흙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채 중노동에 시달리다 밤9시가 넘어서야 귀가한다. 사방이 청명한 가을인 요즘,드넓은 벌판엔 외딴 작업실에서 내는 그의 기계소리 돌을 다듬는 소리외엔 주변은 온통 적막강산이다. 간간이 브론즈나 나무를 다루기도 하지만 돌만이 갖는 차갑고 강한 느낌,정발 하나하나로 확실하게 작가의 손에서 작업이 끝나는 확인은 돌이 아니고서는 맛볼수 없는 희열의 하나다. 유영교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그 어떤 경우에도 세속에 물들거나 부당함에 타협하지 않는 결벽증이다. 일찍이 그가 국전추천작가가 됐을때 화단에서 까다롭기로 유명한 평론가 원동석씨는 「평론가 10인이 추천하는 신예작가」의 한 사람으로 유영교를 추천하면서 「아집이나 고집때문이 아니라 그의 천성적인 순결과 자신감은 세파에 쉽사리 물들거나 외세에 섣불리 휩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대로다. 스승·선배들에게 예의 바르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끝까지 관철하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엉뚱한 말을 들으면 그의 의도를 명료히 제시하여 시정을 요구한다. 또 대학의 전임강사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가르치는데 시간을 뺏기다보면 그의 예술을 할수 없기 때문이다. ○세속의 욕망을 거부 돈이 될수 있는 모뉴망이나 설치미술등의 주문에도 응하지 않는다.건물주의 몰취미에 억지로 맞추기도 싫고 번거로운 계약과정이나 브로커들이 중간에 끼는 것도 마땅치 않다. 그는 언제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작품,온 몸과 마음으로 몰두할수 있는 대상에만 철저하게 파고든다. 그는 충북 제천군 청풍면장이던 유상종씨와 정효옥여사의 5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났다.면소재지이긴 하지만 국민학교 3학년때 마을에 들어온 버스를 처음 볼만큼 산골동네에서 투박하게 자라났다. 국민학교때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하고 충주고 2학년때 홍대가주최한 전국고교미술실기대회에서 1등상 수상.그날 조각실에서 작업복을 입고 흙을 만지는 선배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 계기가 되어 후에 조각과를 지망하게 됐다. 이탈리아 유학중 그곳의 조각가들이 야외작업장을 가진 것을 부러워한 나머지 고향청풍에다 작업장을 짓는 것이 소원이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고향이 수몰되어 목원대교수인 부인 이은기씨(서양미술사)를 따라 86년 대전에 정착했다.슬하엔 3남매. 유영교조각은 양감의 풍요에서는 마욜,극도의 단순한 형태추구면에서는 때때로 아르프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그가 다다르고 싶은 것은 순연한 조각이다. 그러나 연전에 그의 작품전을 보고 이탈리아 카라라 아카데미 교수이자 평론가인 피에르 카를로 산티니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형태면에서는 영혼의 영원과 가치에 대한 신념』,『작업의 전과정에서 보여주는 것은 투명한 영감의 세계』라고. 남보다 빨리 화단에 입문해서 일사천리로 예술의 정상에 이른 것처럼 그는 남보다 빠르게 그가 원하는 순정한 순연의 경지에 이미 이르고 있음을 산티니는 예고하고 있는것 같다. □연보 ▲1946년 충북 제천 출생 ▲1964년 충주 고교졸업 ▲1965년 홍대 미대조각과 입학 ▲1966∼68년 국전연속3회 입선(대학재학중) ▲1969년 홍대 미대졸업 ▲1975년 국전 특선 ▲1976년 국전 특선,홍대대학원 졸업 ▲1977년 국전 추천작가및 초대작가,전국조각가초대전 목우회초대전출품 ▲1977년 제1회 개인전(미술회관) ▲1978년 제2회 개인전(진화랑),이탈리아 로마 미술아카데미 유학 ▲1980년 제3회 개인전(로마) ▲1980년 제4회 개인전(진화랑) ▲1982년 제5회 개인전(미라노),국제청년작가 야외전(미라노) ▲1983년 제6회 개인전(현대화랑) ▲1984년 이탈리아 로마 미술아카데미 조소과졸업(거장 에밀리오 그레코 펠리클레 화시니 사사),한국조각가 13인전 한·이조각가교류전,재이한국조각가전출품 ▲1985년 재이한국조각가15인전,토스카넬로의조각전,국제청년조각가전 ▲1986년2월 귀국개인전(제7회·강남현대화랑) ▲1986년10월 제8회 개인전(현대화랑) ▲1987년 이탈리아 문화원개원기념 초대전,재이 한국조각가초대전(갤러리 현대및 이탈리아 뤼기 루소) ▲1988년 제9회 개인전(현대화랑),현대조각 초대전 ▲1991년 제10회 개인전(현대화랑) ▲1992년 제11회 개인전(갤러리 신현대)홍대및 목원대 서울교대강사 현재 충남대 예술대 출강 미술회관 개관기념초대전·한국 현대조각초대대전·목우회초대전·평론가10인이 추천한 신예작가초대전·한국구상조각회 로마전 주관·국제청년작가 야외전·한이조각가교류전·한국조각가협회전및 해마다 홍익조각회전·한국구상조각회전·국전초대작가전·현대미술초대전·원로중진조각초대전·MBC구상조각대전·대한민국 미술대전초대작가 국내외 그룹초대전에 수십차례 참가 목우회공모전 동아일보사장상·목우회공모전 문교부장관상·국전국무총리상·목우회공모전 최고상·국전 국회의장상 수상 국립현대미술관 호암미술관 어린이대공원 워커힐미술관 럭키·금성사옥 제천시청 한일은행본점 한흥증권본점 남해화학 대전교구장 아라리오미술관 신라호텔 야외조각 전시장
  • 「과학탐구 어린이 실험왕」 서울 일원국교 김은기양(인터뷰)

    ◎“노벨상 탈 과학자 될래요”/“부모님과 자연현상 자주 토론한 것이 크게 도움” 『자연책에 들어 있는 딱딱한 내용들도 관찰과 실험을 통해 하나씩 익혀 나가다 보면 저도 모르게 친해지는걸 느낍니다』 88 서울올림픽대회처럼 각자 소질있는 과학분야에서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수 있도록 올해 처음 마련된 전국학생과학탐구올림픽에서 「어린이 실험왕」에 뽑힌 서울 일원국교 김은기양(12).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금상(교육부장관상)을 받게 되었다』며 과학주임인 송강규교사와 윤원숙교장선생님의 지도를 고마워했다. 『평소에 과학책을 읽으면서 필요한 내용은 수첩에 적어두고 모르는 자연현상은 부모님과 토론하는 습관을 들인 것이 좋은 결실을 맺게된 것같다』고 자신의 공부 해온 방법을 밝힌다. 그는 과학꿈나무일 뿐 아니라 학교성적도 줄곧 전체 수석을 해온 리더십이 뛰어난 전교 어린이회장. 이번의 과학탐구실험부문은 전국의 국민학교 6학년 어린이중에서 시도예선을 거쳐 선발된 88명이 9일 서울교육대학에 모여 과제에 따라 분류하기,측정하기,예상하기,추리하기,가설 형성하기,변화요인 조절하기등의 다각적 실험솜씨를 겨룬 대회. 과학 전반에 걸친 필기평가와 함께 자기장 탐색및 모래,쇳가루,나프탈렌등이 섞인 혼합물 분리 실험을 책에서 배운것을 되새겨가며 차분히 해내 금상의 영예를 안은것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노벨상을 탈 만한 위대한 과학자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갖고 있는 그는 『과학시간마다 실험실습을 하는것이 소원』이라는 말로 21세기 과학한국을 이끌 어린이과학자들의 소리를 대신했다.
  • 총리상/「좀상날 억지다리 뺏기」/전국 민속예술경연 폐막

    【청주=이용원기자】 민속예술의 큰잔치 제34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가 8일 하오 충북 청주 종합운동장에서 막을 내렸다. 이번 대회의 대통령상은 충남의「결성농요」가 차지했으며 국무총리상은 강원도의 좀상날억지다리뺏기」가 받았다.이날 폐막식에는 이민섭문화체육부장관이 참석해 시상했다. 「결성농요」는 충남 홍성군 결성면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농사소리로 심사위원들로부터『농요의 다양성이 충분히 발휘된 높은 수준의 노래』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 문화체육부장관상에는 ▲경북 금릉빗내농악 ▲함남 토성관원놀이 ▲전남 대화들노래 ▲충북 동평들노래 ▲경남 거창삼베일소리가 뽑혔다. 이밖에 공로상은 ▲광주 광산들노래 ▲경기 왕곡동제 ▲부산 동래고무가,장려상은 ▲대구 서촌상여소리 ▲인천 두루메기떼뜨기잡이,입장상은 서울 만리현돌팔매놀이가 각각 받았다.개인연기상은 ▲대화들노래의 박균찬씨 ▲빗내농악의 손영만씨 ▲거창 삼베일소리의 송봉임씨에게 각각 돌아갔다.
  • 산업디자인/대만·홍콩에도 뒤져/절반이 OEM… 자체개발 25%뿐

    ◎정부,「우수」개발 제조업수준 지원/디자인대전/대통령상에 「금성 김장독냉장고」 우리나라의 산업디자인 수준이 선진국은 물론 경쟁국에 비해서도 크게 뒤져 있다. 우리를 1백으로 할 때 일본은 2백57,미국 2백35,대만 1백43,싱가포르 1백28,홍콩 1백21 등이다.제품디자인 전문업체가 일본은 4백개나 되지만 우리는 25개에 불과하다.산업디자인의 50%가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이며 자체개발은 25%밖에 안된다. 정부는 우리 상품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우수디자인의 개발이 절실하다고 보고 산업디자인개발에 대한 지원을 제조업의 기술개발수준으로 강화하기로 했다.우수디자인으로 선정된 제품은 공업발전기금을 우선지원하며 정부기관이 우선구매하기로 했다.제품디자인에 대한 기업과 국민들의 인식제고를 위해 올해를 「산업디자인 발전의 원년」으로 정하고 오는 9월1일부터 7일까지를 디자인주간으로 지정,우수디자인상품전시회와 디자이너의 밤,산업디자인 세미나,개발성공사례 발표 등 다채로운 행사를 갖는다. 디자인주간 첫날인 9월1일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상공자원부장관과 문화체육부·환경처·경제4단체·디자인 관련인사와 수상자 등 5백여명이 참가하는 「디자인주간」기념식이 열리며 이어 서울 동숭동 「산업디자인포장개발원」에서 산업디자인전과 우수디자인상품전시회가 열린다.2일에는 스위스 그랜드호텔에서 삼성전자 등 8개 업체가 디자인개발 성공사례를 발표하고 4일 저녁에는 디자인 관련인사들이 참가하는 「디자이너의 밤」행사도 있다.6일과 7일에는 한·일양국의 강사 6명이 참가해 「차세대 세계시장의 디자인정책」을 주제로 한·일공동산업디자인 세미나도 개최된다. 한편 올해 개발원이 공모한 우수디자인상품 심사에서 금성사의 「김장독 냉장고」가 대통령상을,한국타이어의 「제트2000」이 국무총리상을 각각 받았다.또 삼천리 자전거의 「빅맨」 등 7개가 상공자원부장관상을,세인전자의 「전자식 혈압계」 등 6개가 산업디자인포장개발원장상 등을 탔다.
  • 18회 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에 김의식의 「16나한도」

    ◎국무총리상 손대현의 「나전 일월문 문갑」/입상작 10월 경복궁내 전통공예관서 전시 문화체육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주관하는 제18회 전승공예대전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은 「16 나한도」를 출품한 김의식씨(34·서울 노원구 상계2동 404)가 차지했다. 국무총리상은 「나전 일월문 문갑」을 출품한 손대현씨(43·서울 강동구 성내2동 515)에게,문화체육부장관상은 「자물쇠」를 출품한 박문렬씨(43·서울 마포구 도화1동 376)와 「화각함」을 출품한 이재만씨(42·인천시 남구 주안동 주안주공아파트 41동402호)에게 각각 돌아갔다. 이밖에 김기찬씨(38·전남 승주군 송광면 신평리 12)등 8명이 특별상을 받았으며 장려상 74점과 입선작 4백52점이 선정됐다. 올 전승공예대전에는 9개 부문에 3백17명이 9백66점을 출품,출품자와 작품수가 지난해보다 많이 늘었으며 작품수준도 예년에 비해 크게 향상됐다는 평을 받았다. 입선작은 10월4일부터 11월15일까지 경복궁내 전통공예관에서 전시된다. ▷입상자 명단◁ ◇특별상 ▲김기찬(불자) ▲이은임(수의) ▲최교준(철제 금은입사 철퇴) ▲박성규(칠피 서류함) ▲신재렬(거문고) ▲황순희(자수 몽유도원도) ▲정병호(어피 갑게수리) ▲이학수(질그릇 큰 항아리)
  • 몸매·창의력·끼 겸비한 춤의 요정(이세기의 인물탐구:30)

    ◎환상의 율동속 감성·지성 융해… 칠정묘파/「…슈퍼스타」로 데뷔… 문학성 짙은 작품 추구 폴 발레리는 이렇게 말한다.「우리의 걸음걸이는 너무 쉽고 익숙한 움직임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스텝을 결코 가치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신기한 것으로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박명숙은 최근 그가 번역한 샐리 베인즈의 「포스트 모던댄스」서문에 이 글을 인용하고 있다.그는 모든 것은 춤,모든 움직임은 춤이며 우리의 일상적인 보행조차도 이미 춤임을 알고있는 예술가의 한사람이다. ○보행도 춤으로 인식 지금부터 20년전 그가 「지저스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막달라 마리아를 처음 맡았을때는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손가락질 받는 한낱 외롭고 초라한 여인을 표현하는데 불과했다.그 무대는 청순한 처절미로 일관돼 있었다.그러나 지난해 국립극장 무대에 올려진 「…수퍼스타」 20주년 기념공연에서의 막달라 마리아는 인생의 고락과 희비,번뇌와 갈등을 넉넉하게 껴안는 아름다운 인간으로 승화되어 그날 관객들은 사랑의 힘으로 신에게다가간 절실한 기원을 절감할 수 있었다. 소설이나 시,연극이나 영화처럼 언어없는 춤이 신비한 주술임을 체험한 순간이었고 특히 하이라이트를 이룬 「어떻게 그를 사랑할지(I don’t know how to love him)의 박명숙솔로는 평자들로 하여금 「그는 해내고야 말았다」는 평을 하게 만들었다. 그의 춤은 대부분 짙은 문학성과 철학성,그리고 연극적인 요소와 장식적 요소를 작품전편에 깔고있는 점이 특징이다.흔해빠진 일상적인 것을 일순간에 초월하여 의외성과 경이로움으로 역작용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빗발치는듯한 눈부신 알레그로 콘브리오의 「비둘기만 날아가다」가 그랬고,그동안 끈질기게 추구해왔던 곡선과 직선을 사선으로 붕괴한 「시간기행」「풀잎환상」등이 그렇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어떤 일에도 의연하게 대처한 것같지만 실은 그의 내면은 언제나 당황하고 망설이고 거부하는 습관이 배어있다.그것은 섬약한 감성과 투철한 지성감이 복합적으로 대립되어 어느 한쪽의 우성을 끊임없이 주장하려는 투쟁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한 예로73년 육친같은 스승인 육완순씨가 영국의 록오페라 「…수퍼스타」를 현대무용으로 재구성·안무하여 그에게 막달라 마리아를 맡겼을때,그래서 모든 무용계가 육완순을 잇는 제2의 스타탄생을 기대하고 있을때 그는 개막을 앞둔 몇시간전 소리없이 도망쳐버린 적이 있었다.물론 소동과 곡절끝에 어렵게 막이 올려지긴 했으나 그후 자신의 작품이 막이 오를때도 바로 그곳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두려움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하는것 같았다. 그만큼 그의 성격은 소심하고 소극적이고 수줍음이 많다.그러나 연극계와 화단,음악 문학 사진 조각 각 분야의 사람들과 절친한 우정을 누려 공연장이나 전시장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얼굴의 하나이기도하다. 박명숙은 어릴때부터 춤췄다.사업을 하는 박승규씨와 김대순여사 사이의 3남매중 외동딸.어머니의 손에 끌려 국립국악원 김부남씨에게 고전무용,진명여중 2학년때 김정욱씨에게 발레,여고 2학년때 육완순씨의 현대무용발표회를 보고 그는 그가 선택해야 할 길을 「두눈을 크게 뜨듯」결정할 수 있었다.육완순씨는 박명숙의 극과극의 기질을 무엇보다 높이 샀다.부유한 가정에서 어려움 모르고 자랐으나 과묵하면서도 참을성 있고 화려하면서도 겸손하고,그리고 무엇보다 욕심이 도사린 승부근성이 대성의 지름길임을 간파한 것이다.더구나 나는 듯한,출렁이는 듯한 긴 팔의 선은 마치 하늘을 비상하는 새의 선회처럼 신선하기만 했다.그의 두 팔에 대해선 같은 경희대 교수이며 무용계 대선배인 김백봉씨도 「백만불짜리」라고 칭찬한 적이 있다.무용가가 아름다운 체구에다 재능,거기에다 번뜩이는 창의력까지 지녔다면 더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모두들 그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고 최욱경과도 절친 단지 한사람,연전에 타계한 화가 최욱경만은 예외였다.생전에 천재화가로 불리던 최욱경의 박명숙에 대한 사랑은 좀더 끈끈하고 각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외국에 나가 마사 그레이엄을 더 배우고 싶어하면 최욱경은 『네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라.그 사람의 것은 그의 것.외국은 여행만으로 충분하다』고 조언했다. 그가 결혼할 때도 「예술가의 결혼은 난센스」라고 쏘아붙였다.『춤이 있는데 결혼하다니,너는 너무 욕심이 많은가』라고.그후 결혼해서 남매를 낳고 이제부터는 「춤」을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회의에 빠지자 『결혼과 아이가 왜 춤에 방해가 되는가? 결혼과 아이는 네 예술을 더 살찌웠다.네가 무용가라면 죽을 때까지,그리고 죽을 때도 무대에 서라』고 충고했다. 광기와 신기없이 늘 조용한 박명숙도 최욱경의 천장까지 그림으로 들어 찬 여의도 화실에 들어서면 언제라도 즉흥무를 출수 있게 되었고 최욱경은 그런 박명숙을 모델삼아 춤추는 그림들을 얼마든지 남기고 있다. 최욱경이 타계하자 친형제를 잃은 것처럼 슬퍼했던 그는 작품 「결혼식과 장례식」에서 화려한 장례식춤을 만들어 사랑하던 화가 친구에게 바쳤다. 박명숙은 고지식하고 외곬인 성격으로 한곳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한다.또 한번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해내고야 만다. 무더운 여름인데도 굵은 실로 뜬 숄을 두르고 앉아 연습실에서 작은 막대기 하나만으로 「다시!」이렇게 지시하고연습한다.튀는 사람이 있으면 사정없이 몰아붙이되 상대방이 좋은 움직임을 보이면 작품에다 연결시켜 나간다.제자들은 하나같이 그런 그를 따르고 아끼고,그도 제자들이 「나의 재산,그래서 나는 부자」라고 말할 정도다. 1주일에 20시간의 강의,요즘은 26일로 다가온 춤발표회를 앞두고 연습에 쫓겨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오지만 부군 유대렬씨는 「춤만 제일이냐?」고 나무라는 법이 없다.오히려 일만 아는 아내가 애처로운 나머지 「내가 보호해주지 않으면 안될 사람」이라고 지켜보고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딸 희주(19·이화여대무용과)는 어릴때부터 남몰래 춤추어왔고 지난해엔 혼자서 동아무용콩쿠르에 나가 금상을 타왔다.그전까지는 한동작도 춤을 지도하지 않았으나 「피는 속일 수 없어」 비로소 감싸기로 마음먹었다. ○명분·사명감에 눈떠 이제 박명숙은 자기자신이 누구인지 알게됐다고 말한다.한사람의 아내·어머니이기도 하지만 그는 무용가이고 제자를 길러내야할 교수다.단 한번도 선생이 되리라고는 상상해본 적이 없지만 스승과선배들의 현대무용 30년을 잇기 위한 뼈저린 흔적이 자신에게 닿고 있음을 피하려들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뚜렷한 명분과 사명감에 눈뜨자 그 옛날의 두려움과 공포가 다시 움트려하고 있다.그래서 이를 씻어버리기 위해 열심히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몸속으로부터 솟구쳐나오는 묘한 힘에 이끌려 담담히 무대에 서게 되었다. 물론 그는 단 한순간도 긴장을 풀지 않는다.「언제나 박명숙,나의 방식대로」 춤추고 있을 뿐이다. 더글러스 던의 「춤추는 것은 말하지 않는 것」,케네스 킹의 「춤추는 존재가 되는 것」,그리고 이 세상에 살아있는 한 막달라 마리아처럼 신에게 다가가는 정신의 춤을 추는 것이 그의 궁극적인 꿈일 것이다. ▷연보◁ ▲1950년 서울 효자동 출생 ▲1972년 이화여대 무용과 졸업,동대학원 졸업 ▲1976년 N Y 머스커닝햄 마사 그레이엄 엘빈에일리 현대무용학교 수료,뉴욕대학 대학원 무용과 박사과정이수(NYU DA코스),한양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1981년부터 현재 경희대무용과 교수,박명숙 서울현대무용단 예술총감독,한국 현대무용 협회이사,한국무용협회이사,경희대 무용과교수 ◇공연 ▲1973년 팀라이스 작사·앤드루 웨버 작곡 육완순안무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막달라 마리아」역으로 데뷔이래 20년간 2백여회 출연.그외 박명숙 현대무용단(78년이래 해마다)제1회 한국현대무용향연(82년이래 해마다),한국컨템포러리 무용단 창단 10주년 기념공연,아시아무용제 참가,제10회 아시안게임 문화예술축전무용제,88서울올림픽 개회식(엠불렘춤)등 국내 해외공연등 수백회 ▲1993년6월26일 박명숙춤 「구십삼년6월」 문예회관대극장 예정 ◇대표작 「잿빛우울의 거리」「얇은사 하이얀 고깔은」「초혼 ⅠⅡⅢⅣ」「살풀이」「학ⅠⅡ」「소용돌이치는 영혼」「결혼식과 장례식」「그날새벽 ⅠⅡ」「비옷을 입은 천사」등 78편 안무 수 상 제1회 대한민국 무용제 문공부장관상,대한민국 무용제 안무상(80년)·개인상(82년),86예술가상,코파나스상(86년),서울무용제 안무상(91년)
  • 최우수작에 「나무와 종이컵」/환경처/환경생활수기공모 당선작 발표

    환경처는 25일 서울신문사후원으로 실시한 환경생활수기공모 당선작 7편을 확정,발표했다. 최우수작에는 환경처장관상과 상금1백만원,우수작은 장관상과 상금50만원,가작은 장관상과 상금30만원씩이 각각 주어진다. 수도권 당선작의 경우에는 환경처장관이 직접 전달하고 지방소재 당선작은 해당지역 지방청장이 전수할 예정이다. 수상작품은 모아서 소책자로 발간,7월중 관계기관등에 배포할 계획이다. 수상작은 다음과 같다. ◇최우수작(1편)=나무와 종이컵(이상희 직장인·서울 성동구 화양동 47의58)◇우수작(2편)=▲학생부문­청소부(김혜리·경남 마산시 성호국교 5학년 8반) ▲일반부문­엄마는 못말려(조정미·부산시 동구 태종대국교 교사)◇가작(4편)=▲학생부문­자원재활용과 우리집(이미지·서울시 용산구 용산국교 5학년5반)작은애국자(박상미·부산시 동래구 사직여고 1학년8반)오늘도 유달산을 오르며(전현정·전남 목포시 목포여상 2학년5반) ▲일반부문­윗물은 맑은데 아랫물은 더럽네(이미자·주부·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원종동 362의 9)
  • 전국 독서왕 뽑는다/국립중앙도서관,「5월 청소년 책잔치」

    ◎책의 해 기념… 가족백일장도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5월 청소년 책잔치」행사가 오는 29∼30일 이틀동안 국립중앙도서관 본관및 분관에서 다양하게 펼쳐진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책의 해」를 맞아 마련한 이번 행사는 △전국 독서왕선발대회 △옛날이야기 대회 △뿌리찾기 가족백일장 △우리고전 독후감상문 쓰기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옛날이야기 대회」와 「뿌리찾기 가족백일장」은 가족단위로 참가할 수 있다. 또 「전국 독서왕 선발대회」는 국민학교 4∼6학년을 대상으로 퀴즈형식으로 진행되며 우리고전·위인전·국내외 동화등의 내용을 많이 아는 어린이를 독서왕으로 뽑게 된다. 「독후감 쓰기」는 청소년및 일반인이 우리고전 가운데 한권을 선정,그 독후감을 원고지 7장에 담아 보내는 방식이다. 이번 행사에서는 문화체육부장관상 8명등 모두 80명의 입상자를 뽑으며 푸짐한 부상이 준비돼 있다. 「독후감쓰기」는 30일까지,나머지는 26일까지 신청하면 가능하다. 문의는 국립중앙도서관 분관 열람봉사실(02­569­5637)로 하면 된다.
  • 정보문화상 등 4개부문/수상후보 30일까지 접수

    한국정보문화센터(사무총장 이중)는 오는 30일까지 정보화 관련분야에서 우수한 업적을 쌓은 개인과 단체를 추천받아 정보문화대상(국무총리상)·정보문화보급상(체신부장관상)·기술상·교육상 등 4개부문을 시상키로 했다.
  • 대천무역(앞서가는 기업)

    ◎시설 자동화로 원가절감·고품질화/“역경을 호기로” 섬유 경쟁력 회복/소량 다품종 위주,바이어와 직거래/창사 3년여만에 1천6백만불 수출/중동·남미·아프리카 등에 지사설립도 추진 갈수록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견직업계에 중소업체인 대천무역(주)의 돌풍이 일고 있다. 바이어와의 직거래,다품종 소량의 차별화 전략,생산공정의 자동화,설립 3년여만에 수출실적 1천6백만달러,30대 사장을 중심으로 한 노사화합….이 회사의 간략한 명세서이다. 김도균사장(37)은 『생산공정의 자동화를 통해 품질을 철저히 관리하며 원가를 낮춘 반면,납기는 반드시 지킴으로써 바이어들의 신뢰를 얻었다』고 말했다. 동남아국가의 저임금에 밀려 설 곳을 잃어가는 섬유업계에서 대천무역은 역경을 호기로 활용해 성공한 대표적인 기업이다.이 회사의 성공에는 우리 섬유업계가 본받아야 할 교훈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임금코스트를 낮추기 위해 하청 대신 생산공장을 직접 운영하는 방식을 택했으며,소량 다품종 위주로 수출선과 직거래를 함으로써 부가가치를 높였다.김사장이 대천무역을 설립한 것은 지난 88년6월.5천만원의 자본금으로 서울 남대문로 국제화재빌딩의 사무실을 빌려 사양산업으로 불리던 면직물 업계에 뛰어들었다.진주고와 서강대 외교학과를 나와 동국무역에서의 7년간의 근무,특히 비스코스 레이온의 생산에 참여했던 경험이 큰 보탬이 됐다. 처음부터 상품의 고급화 및 고부가가치에 목표를 두고 직거래를 추진,창업 1년여만인 89년 수출의 날에 1백만달러 수출탑을,90년에는 5백만달러 수출탑과 상공부장관상을 받았다. 김사장은 원단을 들고 연 1백일 이상 세계 각국의 섬유전시회를 찾아다니며 바이어들을 만났고 직원들은 제품의 끝처리와 납기준수를 위해 밤일을 마다하지 않았다.미국의 세계적인 실크회사인 앨버트 니폰,앤 테일러,엘란트레이시,이탈리아의 만테로사등과 수출계약을 맺은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모든 직원의 세일즈맨화를 위해 아침마다 회사에서 한시간 동안 미국인 강사를 모시고 영어회화를 배우며 40여명외로 사무직원들은 연 2차례 정도 해외로 출장을 나간다.또 직원들마다하루에 한개 이상의 거래처에 견본보내기 운동도 펴고 있다.현재 북미·호주·동남아등 30개국에 원단을 수출하고 있다.요즘은 중동·남미·유럽·아프리카 지역에 지사설치를 추진 중이다. 임가공 위주의 생산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기술개발을 통해 비약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지난 91년 4월부터 1년 간격으로 안산 한국실크단지의 날염공장과 반월공단의 2공장을 인수하면서부터. 1공장에서는 중국에서 수입한 실크원단에 자동날염기로 색깔을 입히며,2공장에서는 제품의 뒷처리와 결함을 최소화하는 체계를 갖췄다.이 자동화 설비에는 매출액의 10%인 25억원을 투자했다. 자동스크린 날염기와,후처리 공정에서수분을 없애고 촉감을 부드럽게 하며 구김을 펴주는 열처리기계의 설치로 거의 모든 공정이 수직계열화됐다. 시설자동화로 생산량은 월 30만야드에서 2배로,매출액은 월 3억원에서 4억5천만원으로 늘었으며 원가 및 인건비는 15% 가량 절감됐다.또 합성섬유와 면직·견직·비스코스 레이온등 50여종의 원단을 처리,전량 수출할 수 있게 됐다. 김사장은『자동화로 원가가 낮아진데다 품질이 훨씬 좋아짐으로써 대기업인 동국무역이나 동아견직보다 수출단가를 10% 쯤 높게 받을 수 있어 5년차 생산직 근로자에게 월 1백만원 이상의 임금을 지급한다』고 말했다. 수출액은 91년 1천만달러,지난 해 1천6백만달러로 늘어났고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유망 중소기업으로 뽑혔다.노조 없이 노사협의회만으로도 양측의 의사소통에 부족함이 없으며 김사장 역시 직원들과 함께 등산·볼링·축구를 함께 즐기며 형제처럼 지낸다. 김사장은 『중소기업은행의 자금지원을 받아 원단의 설계 및 제도의 자동화에 필요한 CAD 및 CAM기를 연내 설치,완벽한 일관 생산공정을 갖출 계획』이라며 『바이어가 원하는 디자인과 색상을 입혀 수출하는 방식으로 오는 95년에는 수출액을 5천만달러까지 늘림으로써 섬유산업이 유망업종임을 반드시 보여주겠다』는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 서예가 김기승씨(이세기의 인물탐구:21)

    ◎“힘차고 남성적인 운필” 원곡체 창안/한자명체 두루 통달… 독창적 변형경지 도달/고 최현배박사도 “한글 본연성품 표출” 칭송/성경구절 작품화 유명… 도산선생 묘비문 등 명필남겨 글씨를 이루기전 작업대앞에 선 원곡 김기승씨의 모습은 신을 향한 기도처럼 절실하고 경건하다. 눈부신 백지위에 붓길이 닿는순간 율동처럼 이어지는 묵향,어느때는 일필휘지,어느 때는 점 하나에도 혼신을 다해 멈출듯 흐느끼는 ▦황은 그 자체가 이미 통신의 경지다. 마치 자신의 손이 아니라 신에 의해 움직이는것처럼 힘차게 그어내린 획마다에선 맑고도 밝은 상서로운 향기를 뿜어낸다.그리고 그 몇순간의 긴장은 폭풍전야의 정적인듯 은은히 주위를 압도한다. 원곡의 문향실은 그가 38년간 머물렀던 종로구 적선동에서 이곳 워커힐 아파트로 옮긴지 올해로 만 10년이된다. 요즘도 여전히 새벽 4시에 일어나 기독교 방송을 들으면서 하루일과를 시작하고 근처 아차산에 올랐다가 내려와서 바로 작업에 임한다. 그리고 하루 2시간에서 3시간,전날 독서로 구상해두었던명언·명구를 마음속에 새겨 우러나오는 진한감동을 작품속에 담아낸다. 그는 글씨를 이루는데 있어 아름다움은 언제나 「선」이어야함을 전제하고 있다.이른바 선하지 않은 것은 미가 될 수 없다는 논리다.기술이 피부라면 인격은 근골이다.티없이 청정한 피와 살과 뼈대가 합일될때만 비로소 미의 영혼이 글씨와 글속에 첩식된다는 것이다.순수한 서체에서의 체삽이나 시속기는 천착스러움의 극치다.글이 뜻하는 바를 거르거나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타내기 위해선 심혼의 혈서로 성자에 임해야 한다고 말한다. ○글씨 내재의미 중시 「초학자시 불가진형세 선상자성의 재필전」­글씨는 처음 대할때 그 형세를 알수없으니 먼저 글씨가 이루어짐을 생각하면 뜻은 쓰기전에 있게 된다,즉 원곡은 서의 진수는 글씨의 모양에 두기보다 그 내부에 내재된 뜻을 소중하게 여기는 투철한 작가정신으로 일관되어 있다. 해서·행서·초서·전서·예서등 한자체에 두루 통달하여 일가를 이룬동안에도 그는 한때 중국말로 된 성경을 국전에 출품한 적이 있었다.막상 이를 내놓았으나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어 그때부터 그만의 독특한 원곡체를 창안,한문각체의 독창적 변형을 한글에 적용시킨 이 서체는 한자와의 대련 작품을 쓸때도 조화와 균형을 깨지않는것이 특징이다. 옛날 궁중에서 궁녀들이 소설을 베낄때 사용한 궁체가 부드러운 반흘림의 반행초의 실용글씨라면 원곡체는 한문보다 힘차고 남성적인 운필,구슬을 꿴듯한 우아미보다 먹물이 뚝뚝 듣는 힘의 분출이 돋보이는 서체다. 한글학자 고 최현배박사는 원곡의 한글체를 보고 『산같이 망막하고 강같이 줄기차다.우리의 한글이 제본연의 성품으로 온전히 나타났다』고 칭송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그의 독창성이 지나쳐 그 자신이 스스로 「전위예술」이라 일컬었던 「묵영기법」은 서예계에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큰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묵영기법이란 청묵의 번짐을 사용하거나 먹물의 농담으로 거듭써서 시각효과를 앞세운 일종의 회화적 서예 회화인 셈이었다. 서예계는 『전위예술,즉 묵영은 서예에서는 있을수 없다』고 발칵 뒤집혔고 심지어는 『전통을모르고 전통을 소화할 수 없기 때문에 나타난 예술』로 혹평되기도 했다. ○「묵영기법」 논쟁불러 이때도 젊은감각과 시대에 부응하는 예술을 지향해온 원곡으로서는 전통예술을 지키기 위해선 고루하게 전통만을 고집하기 보다 오히려 여러각도의 실험과 시도를 언해 새로운 조형언어를 발굴,전통의 소중함은 물론 각자의 개성과 특성을 살려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평생동안 그가 써온 작품은 개인전때마다 40점에서 60점씩 32회.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는 평소에 아끼는 성경구절들은 그때마다 아름다운 작품으로 담아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육당 최남선의 「삼·일독립선언문」을 비롯,제갈량의 「전후출사표」는 3천자이상,아가서8장 4천여자,무위자연의 노자 「도덕경」5천여언,특히 굴원의 「이소경」의 경우는 사적고증,한자구성·암기 등으로 6개월준비,집묵만도 10일이상 걸린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랜 연륜과 우수사려가 없는 마음가짐으로 인해 그의 글씨에는 향기는 물론 불가사의한 힘이 담겨 있다. 올해나이 84세.그러나 그 음성과 행동에서 연노의 기색은 찾아볼수 없다. 또 서예계 최고 원로의 권위의식 같은것도 없다.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격의없이 친절하고 편안하게 대한다. 1909년 충남 부여군 홍산면 조현리에서 김정현씨와 김취옥여사의 2남중 차남으로 출생.5세때부터 조부인 동효공이 설립한 한문서당 삼언재에서 글씨와 천자문을 배웠고 홍산소년백일장에 나가 한시짓기 장원,11세때 보통학교 2학년에 들어가면서 신교육을 받게됐으나 공주고보 2학년때 일인체조교사를 배척하는 맹휴의 주동자로 지목되는 바람에 서울 휘문고보로 전학,그후 만주로 건너가 봉천 문회고급중학과 상해중국공학대학 경제과에 다녔다. 상해유학시절 흥사단 원동위원부에 입단하여 도산 안창호선생을 모신 독립운동에 가담,국내신문의 주요기사를 발췌정리하여 국내정세를 보고하거나 흥사단 행사때마다 글씨를 잘 쓴다고 해서 식순을 쓰는 일 등을 맡아보기도 했다. ○흥사단서 독립운동 그때부터 대학에서 공부한 경제학보다 글씨 쓰는 일에 심취하여 졸업후 고향에 돌아오자 고장의 명필인 산정 신익선선생에게 본격적으로 글씨를 배웠다. 하루종일 쓴 글씨가 집안마당에 흰눈처럼 수북히 쌓였던 기억은 지금도 그에게 불길같은 작업의지를 당겨준다고 한다. 그후 다시 서울로 올라와 소전 손재형선생에게 사사.『재주는 있으나 헛 공부했다』는 혹독한 질책을 받으면서 그는 구양순 안진경 왕희지의 법첩으로 겨울밤이 지새도록 수련을 쌓아갔다. 봉천 문회고급중학교때 남경서 신학대학을 나온 백영엽목사의 영향을 받아 크리스천이 된 그는 조국에 돌아가면 목사가 되려했으나 글자 한자한자의 그 묘한 성자에 빠져 글씨쓰는 일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게 되었다.그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글씨로 전한다는 의도에서 성경구절을 작품에 담게 되었고 성경구절을 쓴 작품만도 6백여점에 이른다. 새문안교회에 다닌지 45년,출중한 건강을 타고난 그는 담배나 커피·술은 입게 대지 않는다. 산부인과 의사인 부인 차인실씨(82)와는 1939년에 결혼,외아들인 명호씨(53·미앨라배마에서 병원)와 4녀가 있다. 원곡은 주변을 조금씩 정리해 본다는 뜻에서 지난83년 그가 아끼던 자작품 2백87점을 골라 국립현대미술관에 보내던날,아들 딸을 결혼시켜 내보낼때보다 더 가슴저미는 허망함과 섭섭함에 그날밤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고 말한적이 있다. 지난 90년에는 그가 한평생동안 소장해왔던 추사 김정희의 「고시행서」위창 오세창·김구선생의 글씨,청전 이상범과 절친했던 운보 김기창,청계 정종여의 금물로 그린 「독수리」등 30억 상당의 골동서화를 아들의 모교인 연대박물관에 기증. 1958년 제1회 개인전을 필두로 신세계미술관이 주관하는 개인전이 끝나면 부인과 자녀들이 권유하는대로 이대와 고려대 중앙대등 각 대학에 작품을 나누어 보낸다. ○33회째 개인전 준비 그가 제정한 원곡서예상은 올해 16회째,오는 10월25일부터 제33회 원곡서예개인전을 역시 신세계미술관에서 갖게된다. 도산 안창호선생의 묘비문을 비롯,수백여개의 비문과 동상문 현판글씨 시비등 전국 방방곡곡에 그의 글씨가 산재해 있으나 단 한글자도 그는 허트로 내놓는 일은 없다. 그의 마음가짐은 「논어」에 나오는­ 「불지명이면 무이위군자야요 불지례면 무이립야요 불지언이면 무이지인야라(천명을 알지못하면 군자가 될수 없고 예를 모르면 세상에 나서 행세할수 없고 말의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지 못한다)」를 실천하며 앞만보고 살아왔다.분한이 있으면 향기로운 글,빛을 발하는 글에 이를수 없기 때문이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대덕약곡」(큰덕은 골짜기 같아야 한다)」에서 따온 그의 아호인 원곡처럼 그래서 나를 낮추고 남을 섬기고 마음을 텅비운 맑고 깊은 골짜기,세상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을 포용하면서 묵묵하게 자신의 일에 정진하는 예인의 자세를 지킬 뿐이다. □연보 ▲1909년 충남 부여 홍산출생 ▲1927년 만주 봉천 문회고급중학졸업 ▲28년 흥사단 원동위원부입단 안창호 김구 이동령선생이 이끄는 한국독립당입당 ▲1932년 중국 상해 중국 공학대학부 경제과 졸업 ▲1936년 소전 손재형선생사사 ▲1939년 조선서도 진흥회 주최 전국서도전 입선 ▲1942년 중국 상해서 전중국서화전 입선 ▲1946년 전국 서화전 이등상 ▲1949년 제1회국전 서예부 특선(문교부장관상) ▲53∼55년 국전 제2·3·4회 특선 ▲〃 대성 서예학원 설립 ▲〃 서울대·숙대·상명여대 출강(15년간) ▲56∼58년 국전 제5·6·7회 추천작가(출품) ▲58년 제1회 원곡 서예전 ▲59·60년 〃 제8·9회 초대작가(출품) ▲61∼82년 국전 제10∼30회 국전심사위원·운영위원 ▲59∼89년 원곡서예전 제2회∼29회 개최 ▲1976년 미국·유럽 미술여행 ▲78년 제1회 원곡서예상 제정 ▲79년 동아일보 주최 원곡서예 회고전 ▲79년 북유럽및 캐나다 미술여행 ▲〃 제1회 원곡 미술상 제정 시상 ▲79∼92년 제2∼15회 원곡서예상 시상 ▲83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자작 대표작(2백87점 기증) ▲84년 주일 한국 대사관 한국문화원 초대 서예전 ▲87년 봄베이·카이로등 유럽지역 여행 ▲기독교 미술인 협최 회장역임 고왕경·김강경·경천애인·시편23편·이소경·삼일독립선언문·애경·전후출사표·1오일삼성오신·불원천불우인·묵시록등 1천여점 은관문화훈장 한국서예사 원곡서문집
  • 해사 47기 졸업식/대통령상 박규백소위

    해군사관학교 제47기 졸업및 임관식이 12일 하오 김영삼대통령과 권영해국방부장관·김철우해군참모총장등이 참석한 가운데 해사연병장에서 개최되었다. 이날 영예의 대통령상은 박규백소위(23·용산고·사진),국무총리상은 송효진소위(23·경희고)가 차지했다. ▲국방부장관상 이재욱소위(23) ▲합참의장상 김병익소위(22) ▲해군참모총장상 유병국소위(22)
  • 공사 41기 졸업·임관식/대통령상 진태범소위

    공군사관학교 제41기 졸업및 임관식이 10일 하오 김영삼대통령과 권영해국방부장관·이양호공군참모총장등이 참석한 가운데 공사연병장에서 열렸다. 이날 영예의 대통령상은 진태범소위(23·전주고·사진),국무총리상은 김성대소위(23·대구 청구고)가 각각 수상했다. ▲국방부장관상 고동철소위(23) ▲합참의장상 최명식소위(23) ▲참모총장상 이수우소위(23) ▲유엔사령관상 송봉주소위(23) ▲공사교장상 허강철소위(22)
  • 육사 49기 졸업식/대통령상 석용규소위

    육군사관학교 제49기 졸업식및 임관식이 5일 하오 태릉 화랑대연병장에서 김영삼대통령을 비롯한 3부요인,권령해국방부장관,이필섭합참의장,육·해·공군참모총장,유엔군사령관등 내외귀빈과 고위장성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이날 영예의 대통령상은 석용규소위(24·중동고·사진),국무총리상은 장진호소위(25·중대부고)가 차지했다. ▲국방부장관상=박재선소위(22·제주 남주고) ▲함참의장상=임원택소위(22·청량고) ▲참모총장상=황정윤소위(23·배문고) ▲유엔군사령관상=장안배소위(25·면목고) ▲학교장상=김경수소위(23·충남 금산고)
  • 「심마니의 허튼소리」펴낸 교육부 교원연수과장 장관주씨(화제의인물)

    ◎고교졸업 30여년만에 석사학위/면서기때부터 발자취 진솔하게 엮어/방송고 등선 졸업생들에 선물로 나눠줘 『가슴에 묻어두고 싶었던 이야기가 시련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용기를 붇돋워 주었다니 고맙기만 합니다』 방송통신고교나 일부 실업계 고교에서 올 졸업생들에게 앞다투어 졸업선물로 나누어 준 자서전적 수상집 「심마니의 허튼소리」를 펴낸 교육부 교직국 장관주 교원연수과장(54)은 『「지천명」의 나이라는 50을 넘기며 살아온 삶의 모습들을 되새김질 해보기 위해 서툰솜씨로 써본 책인데…』며 말끝을 흐렸다. 「심마니의 허튼 소리」는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김과장이 갖가지 어려움을 딛고 중앙부처 서기관으로 승진하고 행정학 석사 학위를 따낸 학자로 탈바꿈하기 까지의 과정을 진솔하게 적어논 수상집이다. 그래선지 가정형편이 어려워 제때 정규 고교과정을 밟지못했다가 뒤늦게 통신교육을 통해 고교과정을 이수하고 올해 졸업생을 배출한 일부 방송통신고교와 실업계 고교에서 졸업 선물로 각광을 받았다. 『할아버지로부터 농사일을 배우며 땅의 가르침을 배웠다』는 김과장은 「출세한 촌놈」이면서도 녹조 근정훈장을 비롯,국무총리·장관상을 두루두루 수상할만큼 자타가 공인하는 모범공무원이기도 하다. 『땅이 정직과 성실이라는 삶의 마음가짐을 가르쳐 주었다면 무한히 뻗어있는 길은 소망을 갖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의 원천이었습니다』 성실과 정직으로 일관돼온 김과장의 삶의 자세는 면서기로 시작한 공직생활에서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여 충남 교육청(당시 도 교육위원회)을 거쳐 교육부(당시 문교부)에 간부직원으로 김과장을 변신시켜 갔다. 『30리 길을 걸으며 다짐했던 향학열만을 나이가 들어도 잠재워지지 않았습니다.야간대학에라도 진학해볼까 생각했는데 혹시라도 직장생활이 소홀해질까봐 생각끝에 방송통신대학을 택했습니다』 고교를 졸업한이후 32년만인 83년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한 김과장은 입학한지 7년만에 꿈에도 그리던 학사모를 썼고 대학원에 진학해 92년엔 행정학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대학시절은 물론 대학원 공부에서도 김과장의 「정직과성실」이라는 생활철학에는 한치 어긋남이 없어 그의 석사학위 논문은 건국대학교 그해 대학원 졸업논문가운데 최우수논문으로 선정되기도 했었다. 『요즘세상에도 2남1녀의 가족들은 물론 며느리까지 꿰맨 양말을 신고 다닐만큼 아버지를 이해해주는 가족들이 고맙다』는 김과장은 『시련에 처한 청소년들에게 「그래도 세상은 살만 곳이다」라는 얘기를 들려 주고 싶다』며 말을 맺었다.
  • “김철준박사 독살설” 확인소동(조약돌)

    ◎“후처가 보약에 독극물” 유족 고소/3년만에 부검… 사인 동맥경화 판명 ○…지난 89년1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으로 재직중 작고한 고 김철준박사(당시 66세)의 유족들이 김박사가 독살당했다고 주장해 검찰이 지난해 12월 사체를 부검했으나 사인은 심장관상동맥경화증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수원지검은 18일 김박사의 조카 김일형씨(59·개인택시 운전사)등 유족들이 지난해 8월 『김박사가 후처인 한모씨(52·여)에 의해 독살당했다』고 고소장을 제출,그해 12월26일 경기도 포천군 내촌면 평원군민회공동묘지에 안장돼 있던 김박사의 사체를 발굴,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사체부검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최영식박사(36)등이 원자로를 이용한 분석법등 각종 독극물 조사를 벌였으나 독극물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으며 김박사의 사인은 심장관상동맥경화에 의한 것으로 결론났다고 밝혔다. 김박사 유족들은 이에앞서 지난 90년초에도 『한씨가 지난 81년7월부터 김박사 집에서 가정부로 일해오다 84년 3월 김박사 몰래 혼인신고를 했으며 사망당일 독약을 넣은 보약을 보온병에 담아 건네줘 김박사가 이를 마시고 숨졌다』면서 한씨를 검찰에 고소했었다.
  • 조각가 최종태씨(이세기의 인물탐구:15)

    ◎영혼 깃들인 조형세계 표출에 온힘/내면적 깊이서 「참예술」 찾는 미의 탐구자/「착한 사람」 형상화 일념… 순수 소녀상 집착/중3때 충남학생 미전서 수상계기로 예술의 길 걸어 오늘은 뭔가 될듯하다.뭔가 할 수 있을것 같다고 느낀다.그래서 손을 놓을 수가 없다.되는듯 싶다고 생각될 때 되지않으면 왠지 「암담」해진다.되고있는 「하루」를 얻기위해 그는 오늘도 지하실 작업장으로 내려간다. 처음부터 그랬고 지금도 집요하게 소녀상에 집착하고 있는 조각가 최종태씨.슬픔이나 미움이 묻어있지않은 얼굴속에서 그는 「좋은 사람」「착한 사람」을 끌어내고 싶다.그리고 그가 성취하고자하는 얼굴을 위해 끊임없이 그리고 끝없이 그리고자 한다.그는 실재하는 얼굴을 그리려할뿐 실재하는 얼굴의 외형을 원치는 않는다.이에 충실하면 할수록 그가 접근하려는 얼굴로부터 점점더 멀어지는 안타까움은 어쩔 수 없다. 부피가 느껴지지않는 식물성의 체구에 때묻지않은 시선,때묻지않은 표정,그러나 날카로운 예술가의 초상에는 고고함과 고통이 동시에 담겨져있다.만일 시인이 조각가보다 한수 위라면 그는 단순한 조각가아닌,「미의 탐구자같은 시인」이라 부르고 싶다. 그는 만사에 꾸밈도 변명도 없다.술수도 책략도 타협도 없다.오로지 「순수무결한 소녀」에 집착하는 해맑은 심성은 우리가 살고있는 오염된 현실에서 한줄기 다이아몬드 빛처럼 인간의 영혼을 정화시키려는 정령과도 같다. 프랑스의 파트리스 브로크 로랑 프상티는 그의 작품은 「극동의 지혜와 준엄함이 깃든 예술」,정병관은 「세계미술사적인 수준에서도 그는 독보적인 인물조각가로 불려 마땅하다」고 평한다. 아마도 동시대를 사는 생존작가중에서 최종태만큼이나 평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도 드물거라는 생각이다. 가장 높이 나르는 새가 가장 먼데를 보듯 그의 내면에 무한한 공간을 구성해놓고 작가의 마음속 먼데까지 높이 올라 늘 전체를 관망하려는 자세때문인지도 모른다.예술이 예술을 넘어선 경지,그는 조형의 단계를 지나 이미 초월을 꿈꾸는 위치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하마터면 소설가가 될뻔도 했다.서예가 또는 작곡가가됐을지도 모른다.그만큼 그는 다양한 재능을 타고났다.그러나 중학교 3학년때 야외사생이 충남학생미전에서 2등상을 탄 것이 계기가 되어 선택의 여지없이 화가의 길을 정했던것 같다. ○보수적 집안서 자라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보수적인 집안에서 아버지는 아들이 법대에 가기만을 완강히 우겼다.별로 좌절이라든가 타격을 받는 타입이 아니지만 이때만은 「큰 충격」이었음을 그는 여러 글에서 밝히고 있다. 대전사범 졸업후 미대에 진학,그는 『내가 왜 서도의 길을 내던지고 그림의 길을 갔는가,그림의 길을 내던지고 조각의 길을 갔는가 하는것 등은 내가 선택했다기 보다 수동적으로 그때마다 그렇게 조건이 지어졌다는 편이 옳다』고 말한다. 중학교때는 화가 이동훈씨가,대학교 1학년때는 장욱진씨,조각으로 돈것은 김종엽씨의 영향때문이다. 그는 스승인 김종엽씨를 부모처럼 따르고 존경해왔다.그러나 졸업할무렵 스승이 추상형태를 추구하자 스승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음에도 형태에 관한한은 자신의 길을 곧게 지켰다. 당시 서구 현대미술사의 한편에는 모딜리아니가 있고 루오와 자코메티,자드킨이 있고 또 현실을 살아가는 아픔과 거기 실존주의 철학과 동양철학이 있었다. 60년대초반의 그는 아르프와같은 유동하는 추상포름을 딱 한번 만들었고 후반에는 미니멀쪽에 빠지기도 했으나 그는 『「예속이나 편승」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음을 판단,「예술가의 삶은 참삶을 찾는것이며 따라서 형태의 선택은 자신의 진실이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외진 길이라도 그의 길을 고수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단 한번도 모델을 쓰지않은 작가로도 유명하다.조각은 물론 그림에서도 「모델」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그저 본대로 느낀대로 형태를 다루고 있다. 그는 최근 「소리를 듣는 사람」을 만들었다.손을 귀에다 대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까마득한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는 자세다.이는 70년대이후 두번째 시도다. ○모델 쓰지않는 작가 그무렵 사는것이 너무 힘든 절화의 상황에서 형태를 어떻게 다룰지몰라 고심하고 있을때 어디선가 끊임없이 그를 감전시키는 어떤 힘,바로 그의 「어머니의 목소리」였다.어머니의 소리를,어떤 천상의 소리를,들릴듯 들리지 않는 소리를 내면에서 확인키위해 그는 이와 비슷한 작품을 만든적이 있다. 『재산이라곤 쌀밖에 없었던 우리집,할머니와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쌀을 팔아서 물감·종이를 사주었다』아끼고 아껴도 1주일에 한곽씩 물감을 써야하는 그였기에 지금도 눈물없이는 「어머니」를 말할 수가 없다고 돌아본다.「소리를 들으려는 사람」은 어머니가 그에게 준 또하나의 구원의 선물이 된 셈이다. 그는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그중에서도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잊지못한다. 「인생의 문제는 무엇인가/싸우는 것이다.다음의 문제는 누엇인가/이기는 것이다.그 다음의 문제는 무엇인가/죽는 것이다」이 짤막한 서시는 「바로 레미제라블을 그대로 요약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인생과 예술의 전쟁에서 싸워 이긴 자코메티를 부러워하고 있다.특히 싸르트르가 자코메티에게 한말,「그는 매일 아니라고 하지만 그는 늘 승리하고 있다」는 예술가에 대한 최대의 찬사가 아니겠느냐고. 이제 나이 60이 넘어 「죽음」을 한번쯤 떠올려볼 시점에 서서 그는 「무궁한 세월의 흐름속에서 유한한 인간존재와도 같은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에도 문득 애틋함」을 느끼게 되었고 그가 사는 하루 하루가 매일같이 새로운 날이기를 기원하기도 한다.그리고 세상에서 처음보는 풀,처음보는 나무,아침에 눈을 뜨고 바라보는 신천지의 경이로운 광휘를 최초로 그리고 싶은 것이다. 「삶과 죽음사이에 그 이름할 수 없는 빈공간에서 파르르 떨고있는 풀잎처럼 나의 그림은 그렇게 존재한다」는 그는 이제 관조의 강가에 서서 그가 건너온 피안의 언덕을 중용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의 작품은 그것이 서있는 인물이건 얼굴상이건 한결같이 거룩하게 우뚝 솟아 정면을 향하고 있는것이 특징이다.늘 똑바로 서서 무엇인가를 계시하는 얼굴은 범속을 떠났으나 대지의 슬픔이 깃들어 있다.어느때는 절망과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도끼같은 얼굴을 내밀고 자유의 저편을 내다본다. 물론 최소한의 필요만 남기고 곁가지는 가차없이 생략되어 어느경우든 입체감의 거부를 강렬하게 강조하고 있다.그러나 직선의 작가이면서 자칫 단조로움에 빠질 위험에서 벗어나 얼굴상 조각은 매끄러운 곡면이 연출되고 측면의 선도 보일듯말듯한 곡선의 변화를 부여하고 있다. ○부인 헌신에 늘 감사 그는 대전에서의 교사시절 같은 학교 영어교사이던 부인 김절자씨와의 사이에 지영(이대대학원) 범락(서울대4)남매. 그는 조각일을 할뿐.부인은 예술가 남편에게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는다.작품을 파는 일도 싫어하고 작품흥정을 소름끼치게 거부하는 남편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 해온 부인에게 그는 어느 글에선가 「아내여 미안하다」고 쓰고있다. 술은 주사가 있을만큼 폭음.특히 시인 박용래를 좋아한다.그러나 이젠 나이먹고 실수할 것이 두려워 시인 소월처럼 「마누라를 건너편에 앉혀놓고」집에서 술마신다.끝없는 줄담배.대신 어디서든지 「글써달라」는 부탁만은 거절하지 않는다. 그는 이대뒤 노고산동 하꼬방,신촌역 전세집에 살다가 80년에 연남동에 정착하여 지난해 처음 작업실이 있는 집을 지었다.뭔지 부자가 된듯하지만 마당에다 천막을 치고 흙을 바르고돌을 쪼던 때가 진짜 작품을 하던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그러나 이런 일에는 이미 초연하여 여전히 「착한 사람」「훌륭한 사람」만드는 일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의 「착한 사람」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나 그의 작품들은 어딘가 그의 모습을 비슷비슷 닮아있는 것처럼 보인다.웅변보다는 침묵,발언보다는 경청하는,행동보다는 사변하는 모습등이 그렇다. 그리고 정연하게 늘어선 수많은 그의 소녀들을 바라보는 순간,그들이 하나같이 살아움직이는듯한,루크 브젱이 그에게 했던대로 「청동·목재·화강암으로 된 모습들에서 문득 심장뛰는 소리가 들림」을 실감할 수 있다. 그는 결국 그가 집요하게 추구한대로 어쩌면 정신세계를 가진 인체를 지금 이시간에 성취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인지도 모른다. □연보 ▲1932연12월 충남 대덕군 회덕면 출생 최명교씨와 임용자씨의 4남1여중 장남 ▲1952연 대전사범졸업(화가 이동훈씨에게 그림지도) ▲58연 서울대 미대 졸업(공주고­천안여고­숙명여중­천안고­대전 대성고에서 교사)▲59연 국전 입선 ▲60연 조각 「서있는 여인」으로 문교부 장관상에 이어 「어머니와 아들」「앉아있는 여인」으로 연3회 특선,국전 추천작가 ▲64연 대전 문화원서 제1회 조각 개인전 ▲65연 시인 임강빈 시화전 ▲66연 공주사대 교수 ▲67연 이대 미대 교수,서울대 미대 동문 이남규·이민회·이지휘·조영동과 5인작가전(서울신문회관) ▲68연 현대 공간회 창립(이후 15년간 해마다 클럽전) ▲70연∼현재 서울대 미대교수 ▲71연 유럽지역여행(이탈리아 조각가 파치니와 교류) ▲75연 조각개인전(미국 문화원) ▲76연 파스텔화·소묘·조각·목판·릴리프전시회(문헌화랑) ▲77연 조각과 목판화전(신세계 화랑) ▲81연 조각개인전(신세계 미술관)구미지역여행 ▲84연 파스텔 그림전(가람화랑) ▲85연 FIAC(국제견본시 현대 미술)85 조각·파스텔화·목판화 출품,조각개인전(가나화랑),FIAC86에 조각·파스텔화·목판화 출품 ▲87연 가나화랑주관 파리 샹프륄리 아틀리에서 오리지널 판화제작 서울대 연구교수 ▲88연 일본 광륭사 반가사유상·법륭사 백제관음상 감상 조각개인전(호암갤러리) ▲90연 조각·파스텔화 개인전(가나화랑) ▲91연 FIAC91 출품(부부가 유럽여행) ▲92연 파스텔화·테라코타·조각·연필화·먹그림 개인전(가나화랑),그외 「순교자를 위한 기념상」(서울양화진성당)「김대건신부상」(한강성당)「성모상」「콜롬바와 아그네스 자매상」「예수성심상」「십자가의길」(명동성당)장욱진 탑비(충남 연기)제작 충남문화상·국전추천작가상,서울시문화상 수필집 「예술가와 역사의식」「현장을 찾아서」「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다」열화당간 「최종태 화집」,가남아트간 「최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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