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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3)정감록과 혹세무민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3)정감록과 혹세무민

    ‘정감록’ 때문에 민중이 울었다. 정감록은 민중의 희망이었지만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정감록을 이용해 자기 한 몸의 안락과 치부(致富)를 꾀하는 못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정감록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지배층의 평가는 늘 부정적이었다.‘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는 것이다. 이런 평가는 지배층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잣대로 삼은 것이었다.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판단이 내려질 수도 있었다. 그렇다 해도 상당수 민중이 정감록 때문에 재산을 잃거나 심지어 목숨을 앗기는 일도 심심치 않았다. ●백백교(白白敎)의 아전인수(我田引水) 일제시대 백백교 사건은 그야말로 혹세무민의 대표적인 사례다.1937년 백백교 간부 150여명이 집단살인사건으로 검거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조사 결과 핵심 간부 18명이 최소한 신도 314명을 살해한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이경득은 61회에 걸쳐 166명을 살해했고, 문봉조도 129명이나 되는 교인을 죽여 암매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의 백백교는 교단 이름부터 ‘정감록’을 빌렸다. 정감록에 보면 말세에 사람이 다 죽은 뒤 “사람의 종자를 양백(兩白)에서 구한다.”고 했다.‘양백’은 곧 백백(白白)으로 풀이된다. 백백교에서는 이 구절을 끌어다 구원을 받을 사람들은 오직 백백교도뿐이라고 내세웠다. 또 한 가지. 정감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라도운봉두류산(全羅道雲峰頭流山) 성인출어함양림중(聖人出於咸陽林中)”이란 대목이 있다. 글자 그대로는 “전라도 운봉에 두류산 즉, 지리산이요, 성인은 함양 땅 수풀 속에서 나온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백백교에선 색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앞부분은 “전(全)씨가 도(道)를 열(라)고 운(運)을 만(逢)난다.”고 보았다. 뒷부분은 성인이 출현하기로 예정된 ‘함양림’이란 장소를 백백교가 창시된 함(咸)경도 운림(林)면 마양(陽)리로 풀이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란 말이 있긴 하지만 이쯤 되고 보면 정말 기발한 해석이었다. 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억지 춘향이다. 그러나 20세기 초 많은 한국 사람들은 백백교 식의 정감록 해석을 환영했다. 그들은 도리어 기상천외한 해석에서 비결의 힘과 매력을 발견했다. 그만큼 순리대로 살기가 어려웠다는 뜻이다. ‘백백’이란 “한 가지 흰 것으로 천하를 희게 만들자(一之白將欲白之於 天下地).”는 구호를 요약한 것이기도 했다.‘흰 것’은 정감록에서 말하는 “계룡산 바위가 희어진다.”는 구절과 관련이 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흰 바위란 전통적으로 미륵을 상징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 가지 흰 것”은 정씨 진인이 출현할 시기이자 미륵부처나 다름없는 백백교의 교주를 가리켰다. 요컨대, 새 종교 백백교와 더불어 이 세상이 완전히 바뀐다는 선동적 믿음이 구호에 담겨 있었다. 백백교의 남자 신도들은 “백백백의의의적적적”이라는 주문을 줄곧 외워댔다. 그러면 무병장수하고 말세에 살아남는다고 했다. 그들은 말세에 서양은 불로 망하고, 동양은 물로 망한다고 했다. 불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본래 기독교 성경에 나와 있다. 그런 이유로 기독교의 본고장 서양은 불로 망한다고 보았다. 동쪽은 서쪽의 반대라 물에 약하다고 풀이했다. 중요한 점은 백백교를 믿는 사람만이 무사히 살아 남는다는 주장이었다. 교단 측은 신도들에게 일단 한국의 53개 성지에 들어가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다 말세의 심판이 닥치면 곧바로 금강산으로 들어가라 했다. 금강산엔 ‘피수궁’(물의 재난을 피하는 궁궐)이 있고 거기서 잠시 기다리면 백백교의 교주 대원님이 하강해 신도들을 이상향으로 인도한다는 것이었다. 백백교의 이상향은 동해의 섬이었다. 동해 바다 한 가운데 3000리나 되는 영주란 섬이 있다고 했다. 그 섬엔 봉황과 기린이 살고 불로초도 있다. 신선처럼 살고 싶은 백백교 신도는 누구나 그리로 인도된다. 그러나 만일 부귀영화를 한껏 누려보고 싶은 이라면 계룡산으로 안내된다. 백백교의 수장인 대원님이 새 세상의 왕이 되어 교단에 대한 공헌도에 따라 신도들에게 관직을 준다고 했다. 교단에 재산을 많이 헌납한 사람은 당연히 큰 벼슬을 받게 된다. 이런 감언이설로 백백교 지도층은 세상 삶에 지친 민중을 유혹했다. 백백교를 세운 이는 가난한 농부 전정운(全廷雲)이었다. 본래 동학교도였던 그는 1900년 평안남도 영변군 근산면 화현동에서 백도교(白道敎)란 간판을 걸었다. 얼마 뒤 그는 앞에서 설명한 이유로 교명을 백백교로 바꿨다. 그는 1904년 6월 사상 초유의 대홍수가 한국을 휩쓸어 말세가 된다면서 이상향에서 살고 싶으면 무조건 백백교에 입교하라고 선동했다. 물론 전정운의 예언은 빗나갔다. 그럼에도,1905년 강제로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지는 등 세상은 무척 어수선해졌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백백교의 거짓 예언을 뿌리치지 못했다. 교주 전정운이 늙어 죽자 아들 전해룡이 뒤를 이었다. 전해룡은 1923년 경기도 가평에 궁궐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교당을 지었다. 교단에 대한 일반의 신뢰를 높이려는 술책이었다. 그는 평소 단식을 잘했다.20일 동안 단식한 뒤에도 평소와 같은 기력을 과시해 신도들 사이에 신비감을 조장했다. 이 역시 28수라는 그의 허다한 고등 사기수법의 하나였다. 전해룡은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해 신도들의 재산을 갈취했다. 그뿐 아니었다. 만일 신도들의 자녀 가운데 아직 미혼인 여성이 있으면 성적 노예로 삼아 착취했다. 유부녀라 해도 용모가 아름다우면 마음껏 유린했다. 전해룡은 변태성욕자가 분명해 자기의 정사(情事) 장면을 숱한 여신도들이 지켜보게 했다. 그는 이를 신(神)의 행사라고 불렀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신도가 있으면 이상향에 보낸다며 산으로 끌고 가 남몰래 살해했다. 살인을 담당한 간부들은 벽력사(霹靂使)라는 명칭으로 부를 만큼 백백교 지도층은 집단광란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들의 살인극은 무려 14년간 지속됐다. 만일 교주 전해룡의 명령을 따르지 않거나, 교단을 배신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엿보이는 경우는 물론 간부나 첩이라도 태도가 변한 기색이 보이면 즉시 살해되었다. 또한 신도들은 재산을 전액 헌금하게 돼 있었는데, 이를 조금이라도 어길 경우 생매장 당했다. 엄청난 범죄행위에도 불구하고 백백교는 무사했다. 교단 간부들이 해마다 거액을 상납했기 때문에 일제 경찰은 눈을 감아준 것이었다. 그러다 1937년 우연한 일로 백백교의 비리가 세상에 폭로된다. 백백교 사건의 충격과 파장은 컸다. 소설가 박태원은 ‘금은탑(金銀塔)’이라는 제목으로 이를 소설화해 장안의 화제가 됐다. 이런 사건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일제시기 한국의 민중은 정치에 실의하고 생활에 궁핍했다. 근대 한국 민중의 불안한 사회심리를 이용해 우후죽순 격으로 뻗어난 것이 바로 백백교 따위의 악질적인 사이비 종교단체였다.1930년 6월 현재 정체불명의 그런 사이비 단체가 55개, 신도 수는 10여만명을 헤아렸다(동아일보 1930년 6월16일자 사설). 백백교 같은 사이비 종교단체는 암울한 시대배경 속에서 자라난 독버섯이었다. ●정감록을 이용한 재물 뺏기 ‘정감록’을 이용한 사기행각은 식민지 시기 사회 전반에 꽤 널리 퍼진 병리현상이었다.1930년께 김창하라는 사람은 ‘천병만마’(千兵萬馬·무수한 군대)를 격퇴할 해인(海印)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만병통치약이라며 가짜 약을 판매하다가 검거됐다. 비슷한 무렵 경상북도 봉화군 내성면에 살던 경호창과 최성기는 태백산 기슭의 벽촌을 돌아다니면서 곧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보천교도 외에는 살아남을 수 없으니 입교하라고 강요했다. 물론 입교 시에는 소정의 돈을 납입하게 돼 있었다. 경호창 등은 유언비어를 살포한 죄로 20일의 구류처분을 받았다(중앙일보 1932년 3월16일자). 이런 일은 식민지 사회에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비슷한 사건은 조선 후기에도 많았다.1826년(순조 26) 충청도 청주에서 정상채라는 사람이 붙들려 처벌을 받았다. 그는 여러 고장을 들락거리며 나이와 이름을 멋대로 속였다고 했다. 도술을 부린다고 거짓을 늘어놓고 ‘환묘문(幻妙門)’과 같은 도술 책을 친구에게 주어 타인의 물건을 빼앗게 했다. 마침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자 그것은 전주곡에 불과하며 진짜 난리는 얼마 뒤에 일어난다며 민심을 선동했다. 그러면서 정상채는 진인이 이미 섬에 와 있다고 황당한 말을 꾸미는 한편 진인의 당에 가입하려면 이름을 직접 서명하라고 사람들을 졸라댔다. 뿐만 아니라 섬에 있는 진인의 군대에 군복을 지어 입힌다며 군자금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모은 돈을 그가 착복했음은 물론이다. 정상채의 동료 박형서도 비슷한 혐의로 체포돼 사형을 받았다. 주된 죄목은 남의 재물을 속여서 빼앗고 ‘흉언(凶言)’ 즉 거짓 소문과 예언을 지어내 인심을 소란케 했다는 것이다. 그 역시 전쟁이 박두했다는 둥, 해도(海島)에 진인이 있다는 둥 거짓 예언을 퍼뜨리며 자기가 살길을 아노라 했다(실록·순조 26년 10월27일 을해). 비슷한 예는 정말 많았다. 박형서나 정상채 같은 사람들을 변호하는 입장에서는 그들은 조선왕조를 전복시키기 위해 군자금을 마련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변호인들은 왕조사회의 한계와 모순을 지적하면서 ‘범인들’이야말로 실은 ‘혁명아’였다고 강변하겠지만, 과연 그랬을까? 남의 호주머니를 털어 마련한 군자금을 생활비와 용돈으로 소비한 사람들이 과연 혁명아일지 의문이다. 그들이 말한 진인은 결국 환상적인 존재였을 뿐이다. 그들에게 금품을 건네준 사람들의 기대는 처음부터 어긋났다. 한마디로 그들은 사기꾼이었다. ●홍경래의 난 그런데 어떤 경우엔 도무지 이것이 ‘혹세무민’인지, 사기행각인지 또는 진정한 의미로 민중의 투쟁이었는지를 잘라 말하기가 어렵다. 결코 백백교와 동렬에 놓일 성질은 아니지만 경계 짓기의 어려움을 확인하기 위해 홍경래의 난을 예로 들어 보겠다. 결코 홍경래 난을 매도하려는 뜻은 아니란 점을 다시 강조한다. 홍경래 난은 1811년(순조 11) 12월18일 시작됐다. 반란군은 순식간에 청천강 이북을 장악했다. 그러나 전열을 재정비한 관군의 반격을 받고 곧 정주성에 갇혀 버렸다. 정주성 싸움은 이듬해 4월19일까지 제법 오래 계속됐지만, 결국 관군의 승리로 끝났다. 장기간 싸움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반란군 측은 여러 차례 격문을 내걸었다. 격문엔 정감록이 예언한 정진인(鄭眞人)도 언급됐다. 서북 사람들에 대한 차별대우를 철폐하라, 세도정권의 가렴주구는 악행이라는 등 그 시대 서북 사람들의 고민과 희망도 모습을 드러냈다. 참고로 정감록과 관련된 부분만 발췌하면 대개 이런 식이었다. “지금 나이 어린 국왕과 주위의 간악한 무리들 때문에 나라가 어지럽다. 그런데 다행히도 세상을 건질 성인이 청북 선천 검산 일월봉 아래 군왕포 위 가야동 홍의도에서 탄생하셨다. 성인은 나서부터 비범하신데 평안도 지역은 성인의 고향이라 직접 손을 대지 못하시고 우리들에게 명하여 반란을 일으키게 하셨다.” 정감록이 예언한 새 왕조의 창건자가 이미 홍경래의 곁에 와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로써 반란이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인식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격문을 짓게 한 홍경래 자신은 각종 병서(兵書)와 술서(術書), 특히 ‘정감록’에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그는 풍수지리에도 능통해 전국을 유람했다고도 전한다. 홍경래 일당은 정감록에 의지하는 바가 컸다. 그런 까닭이겠지만 난이 실패로 돌아간 다음에도 사람들은 정감록과 해도 진인에 대해 더욱더 이야기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홍경래가 아직 살아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홍경래 난은 무려 10년 동안 사전에 준비됐다고 했다. 조직적인 반란이었던 셈이다. 풍수 전문가 홍경래를 비롯해 우군칙, 김사용, 김창시 등 유랑지식인 또는 몰락 양반들이 반란군의 지도부를 구성했다. 그들은 중국과 무역을 통해 벼락부자가 된 이희저의 가산 다복동의 사저를 거점으로 삼아 평안도 각지의 부자들과 연합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운산에 광산을 열어 빈농과 유이민 등을 모아 훗날 군사로 동원했다. 이 당시는 청나라와 국경무역이 활발했을 때라 평안도 출신 가운데는 이희저의 경우처럼 대상인이 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수요에 맞춰 평안도엔 유기(鍮器) 등 수공업이 발달했으며 광산 개발도 상당히 활발한 편이었다. 홍경래 일파는 이런 시대상황을 정확히 파악해 이 기회에 서북지역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서울로 진격해 일거에 정권을 장악하려 했다. 연구자들이 지적하듯 홍경래를 지지한 계층은 민중이라기보다는 평안도 각지의 부호들이었다. 좌수와 별감을 비롯한 향임(鄕任·행정보조집단)과 별장(別將)과 천총 등 무임(武任·군사 및 치안담당자) 가운데 재산이 넉넉한 사람들이 홍경래를 후원했다. 민중의 지지는 정주성을 지킬 때 엿보이는 정도였다고 한다. 본래 유랑지식인이었던 홍경래나 자칭 제갈공명이라 불렀던 우군칙은 반란을 모의하는 과정에서부터 갖은 방법으로 부자인 이희저를 포섭하는 데 주력했다. 결과적으로 이희저는 반란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책임지게 됐으며, 비슷한 처지에 있던 평안도 유지들을 후원자로 끌어들인다. 그런 점에서 홍경래 난은 일부 유랑지식인과 상층부 인사들이 주도했다고 볼 수 있다. 홍경래 등은 서북지방의 숙원이던 지역차별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했고, 그 점에 있어 해당지역 민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만했다. 하지만 일반 민중과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평안도의 부호들이 반군을 가장 강력하게 지지한 점으로 보아 실상은 평안도 지배층의 정치적 이해를 반영하는 반란이었다. 실제로도 격문을 분석해 보면 소농과 빈농 등 하층민의 요구를 반영하는 내용은 거의 없다.1894년의 동학농민운동과는 천양지차가 있다. 만일 이 점을 확대 해석한다면 홍경래의 난은 평안도 지배층이 중앙정부를 상대로 한 싸움이었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홍경래 등이 자주 거론한 ‘정진인의 출현’은 민중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민중을 동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조선왕조의 입장에서 보면, 홍경래 난은 두말할 나위 없이 ‘혹세무민’이었다. 왕조의 입장은 그렇다 해도 반란이 실패로 끝난 뒤 한때 홍경래 일파를 적극 지지했던 평안도의 부자들은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한마디로 판단하기는 참 어려운 문제다.‘사물은 하나지만 해석은 구구하다.’라 했던 어느 역사가의 주장이 문득 뇌리에 떠오른다. 홍경래의 난은 복잡했다 해두자. 어쨌거나 틀림없는 한 가지 사실은 때로 정감록은 민중에게 고난과 아픔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시대가 어려울 때일수록 그런 경향이 심했다. 이 점을 인식한 듯 근세의 종교지도자 소태산은 이렇게 말했다.“근래의 인심을 보면 사술(邪術)로 대도를 조롱하는 무리와 모략으로 정의를 비방하는 무리들이 세상에 가득하여, 각기 제가 무슨 큰 능력이나 있는 듯이 야단을 치고 다니나니, 이것이 이른바 낮도깨비니라. 그러나 시대가 더욱 밝아짐을 따라 이러한 무리는 발 붙일 곳을 얻지 못한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박기철의 플레이볼] 박찬호 100승의 평가

    박찬호의 100승 투수 대열 합류는 메이저리그 통산 542번째여서 별 가치가 없는 것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메이저리그 초일류 투수를 가늠하는 기준인 300승에 견줘 이제 겨우 100승인데 호들갑을 떨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500명 넘는 투수들은 대부분 먼 옛날의 투수들이다. 최다승 투수(511승)로 남아 있는 사이 영이 던지던 시절은 한 팀의 투수가 많아야 4명 이하였다. 세월만 가면 승수가 축적되던 시절이었다. 명예의 전당 헌액 기준인 300승 이상을 따낸 투수들은 모두 22명. 데뷔 연도를 살펴보면 1919년 이전에 데뷔한 투수들은 그 절반인 11명이다. 그 해를 기준으로 삼는 이유가 있다. 야구에서 1920년은 베이브 루스가 자신의 괴력에다 ‘래빗 볼’이라는 탄력이 강한 공에 힘입어 10개 안팎이던 한 시즌 홈런 기록을 54개로 바꿔 놓으며 홈런이 야구판을 지배하는 시대를 연 해다. 이후 300승 투수는 1950년대까지 단 3명밖에 나타나지 않았다.60년대에 이르러서야 6명의 300승 투수가 출현했다. 그러나 투수들의 시대는 짧게 막을 내렸다. 타자들의 근력이 늘어난 것은 물론 좌석 수를 늘리는 대신 파울 지역을 줄이는 등 새로운 설계가 도입된 신축구장에서는 8번 타자도 홈런을 노리게 됐다. 이 때문에 70년대 이후 데뷔 투수 가운데 300승을 올린 투수는 로저 클레멘스와 그레그 매덕스 단 두 명뿐이다. 현대 야구에서는 300승은 고사하고 200승도 손가락에 꼽힐 정도다.542번째의 100승이지만 의미가 큰 이유다. 과거엔 없던 선발-중간-마무리 체제가 확립된 현대 야구에서는 선발 로테이션을 꿰차는 것 자체가 힘들다. 매년 드래프트에서 선발된 50여명의 신인 가운데 메이저리그 등록 명단에 올라가는 비율은 5%밖에 안 된다. 심지어 1라운드에 지명 받은 선수의 3분의1은 빅리그 마운드조차 밟아 보지 못하고 사라진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신인을 평가하면서 마이너리그급-메이저리그급-올스타급-사이영상이나 MVP급의 단계로 성장 가능성을 예측한다. 박찬호는 사이영상을 수상할 가능성이 있는 선수로 분류됐다.2000년 18승을 거둘 때까지만 해도 평가는 유지됐다. 하지만 이후엔 대표적인 ‘최악의 계약’ 사례로 거론되며 돌변했다. 따라서 박찬호에게 100승의 의미는 승수 그 자체보다 성공적으로 재기했다는 평가를 스스로에게 분명히 내릴 수 있는 잣대라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 신체적인 능력에선 이미 훌륭한 투수라는 것을 증명했다. 또 다른 100승은 지금껏 해 온 것처럼 성실한 자기 관리에 달려 있다.‘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tycobb@sports2i.com
  • 自保料 손보사따라 최고2배 차이

    보험회사에 따라 같은 차종의 자동차보험료가 두배 가까이 차이가 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8일 금융감독원 및 손해보험협회 인터넷 사이트에 게재된 ‘자동차보험료 비교공시’에 따르면 차종·연령별로 14개 손해보험사의 자동차보험료가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차(배기량 2000㏄ 초과)를 보유한 만 19세 미혼 남성 운전자가 최초 가입할 때 차량 가격을 200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연간 보험료는 AIG손보가 574만 5390원으로 가장 비싸다. 반면 교원나라는 303만 8660원으로 가장 싸 보험료 차이가 270만 6730원이나 됐다. 중형차(1500㏄ 초과∼2000㏄ 이하)를 보유한 35세 기혼 남성이 보험에 최초 가입하고 차량가격이 1500만원이라면 보험료가 AIG손보는 158만 9340원인 반면 대한화재의 직판상품은 98만 2900원에 불과했다. 소형차 B형(1000㏄ 초과∼1500㏄ 이하)을 갖고 있는 26세 미혼 여성이 보험에 처음 가입하고 차량 가격이 1000만원일 때 보험료는 AIG손보(115만 6320원)가 가장 비싸고, 동부화재(직판 74만 6020원)가 가장 싸다. 인터넷 비교공시(www.knia.or.kr)는 사고 유무, 교통법규 위반 경력 등 가입자 개인의 세부 내역은 주된 가입층의 조건을 일괄 적용했다. 또 에어백,ABS 등 차량별 안전장치 등을 비교 조건에서 제외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료가 비싸면 서비스가 훌륭하고 싸면 보상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고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면서 “보험료나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보상책임을 믿고 맡길 수 있는 회사 신인도가 보험사 선택의 중요한 잣대”라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MLB] 100승 박찬호, 한국야구史 다시썼다

    1996년 4월6일 미국프로야구 LA 다저스-시카고 컵스의 경기.2회 다저스의 선발 라몬 마르티네스가 부상으로 강판되자 낯선 동양인 투수가 마운드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약관 23세의 투수는 시카고 타선을 4이닝 동안 7탈삼진 무실점으로 틀어막아 미국땅에 발을 디딘 지 2년여 만에 첫 승을 낚아냈다. 그렇게 ‘코리안 특급’ 박찬호(32·텍사스 레인저스)의 메이저리그 정복은 시작됐다. 이듬해인 97년,‘노장’ 톰 캔디오티를 밀어내고 5선발을 꿰찬 박찬호는 본격적인 승수쌓기에 돌입했다.8월12일 시카고 컵스전서 첫 완투승 등 승승장구를 거듭,14승(8패)을 기록했다. 풀타임 선발 첫해 두자릿 승수와 3.38의 방어율로 단숨에 수준급 선발로 부상한 셈.98년엔 7월 한달간 4승무패, 방어율 1.05의 ‘사이영상 스터프’를 뽐내 내셔널리그 7월 MVP로 뽑혔고, 결국 ‘특급 투수의 잣대’인 15승고지에 도달했다. 99시즌을 앞두고 연봉조정 신청 자격을 얻은 박찬호는 23억원(230만달러)의 ‘잭팟’을 터뜨렸다. 하지만 ‘호사다마’였을까. 시즌 초 세인트루이스전에서 페르난도 타티스에게 1이닝 만루포 2방을 맞는 수모를 당하는 등 시즌내내 밸런스가 맞지 않아 고전했다. 결국 빅리거가 된 이후 첫 5점대 방어율과 최다패(11패)를 남기며 주춤했다. 선수생활 내내 발목을 잡은 ‘허리부상의 악몽’도 이때 찾아왔다. ‘밀레니엄’과 함께 박찬호는 생애 최고의 해를 보낸다.9월30일 샌디에이고전서 첫 완봉승을 비롯, 무려 18승(10패)에 방어율 3.27,217탈삼진(리그 2위)의 눈부신 피칭으로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후보에 올라 마침내 ‘특급투수’ 반열에 올랐다. 자유계약선수(FA)를 앞둔 2001년에도 거침없이 강속구를 꽂아넣어 5년 연속 두자릿 승수를 챙긴 박찬호에게 시즌뒤 큰 변화가 생겼다. 그해 FA 최고대우인 5년간 총액 650억원(6500만달러)의 ‘메가톤급 대박’을 터트리며 텍사스 유니폼을 입게 된 것. 텍사스로 옮긴 첫 해부터 하향곡선을 그렸지만, 누구도 부진의 터널이 그렇게 길 줄은 몰랐다.2002년 9승,2003년 1승, 지난해엔 4승에 머물러 ‘FA먹튀’의 대명사로 전락했고, 지역언론과 팬, 동료들마저 등을 돌렸다. 지난 5년간 평균 213이닝을 던지며 혹사한 탓에 허리에 무리가 온 것. 하지만 ‘코리안 특급’은 그대로 무너지지 않았다. 올시즌을 앞두고 신무기 투심패스트볼을 가다듬었고 흔들리던 제구력도 비로소 바로잡았다. 시즌 초 두번의 선발 등판에서 호투를 펼쳤지만,‘저러다 또 무너지겠지….’란 시선이 팽배했던 게 사실. 하지만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 등 최강의 팀을 연파하며 승리를 지켜내자 현지에서도 ‘돌아온 에이스’에 대한 예우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어 3전4기 끝에 휴스턴전에서 4승을 챙긴 뒤, 최강팀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잡고 통산 99승까지 거침없이 달린 박찬호는 마침내 캔자스시티를 제물로 100승을 일궈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신연숙칼럼] 표준화 지상주의에서 벗어나기

    [신연숙칼럼] 표준화 지상주의에서 벗어나기

    대입시제도에 있어서도 표준화 평가에 의지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특별한 개성과 창의력을 가진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으면 한다. ‘표준’이 없다면 오늘날의 문명생활은 이뤄질 수 없을 것이다. 볼트, 너트의 크기에서부터 휴대전화의 전파송출 방식에 이르기까지 규격과 품질의 표준화는 재화 이용의 편리성과 신뢰성 확보의 관건이다. 표준의 선점은 시장확보의 필수조건이 되었다. 근대사에 있어 서양의 승리는 자신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표준을 세계표준화함으로써 가능했다는 국제정치학적 분석도 있다. 이토록 ‘표준’은 효율과 통합의 효과적 수단이었으나 획일화와 차별, 일방적 지배 기제로 작용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특히 국가의 개입이 줄어들고 다양성과 창의성, 자율성이 중시되는 탈근대 사회에 들어와 표준의 지위는 크게 흔들린다. 정신적 영역인 문화와 교육, 학문 분야에서는 특히 그렇다. 표준어에 밀렸던 방언의 복권이 그 한 예라 할 수 있다. 흔히들 표준어는 옳은 말, 사투리는 틀린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표준어의 개념은 국민국가 형성기에 사회통합 수단으로 나왔다. 우리나라에서의 표준어란 ‘수도권의 교양있는 사람들이 쓰는 품위있는 말’일 뿐이다. 이 잣대 속에 지방의, 혹은 하위 민초들의 언어들은 비표준어로 전락하고 만다. 우리말을 갈고 닦는 많은 시인과 작가들은 방언을 사용해 한국인의 삶을 형상화했고, 오늘날 언어학자들은 이 언어의 가치에 새삼 주목한다. 표준어와 더불어 이러한 현실어들이야말로 우리말을 풍부하고 섬세하게 만드는 보물창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준에 대한 권위의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 듯하다. 신문사에서도 방언을 이용한 표현들이 곧잘 ‘교열’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표준의 가치에 대한 믿음, 혹은 집착은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작년 가을 근현대사교과서 왜곡 논란이 있었을 때 교과서 검인정제도 자체에 대한 의문 제기가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근현대사교과서는 역사의 객관적 서술과 다양한 해석의 관점을 보장하는 세계적 흐름에 맞게 국사교과서를 국정체제에서 검인정체제로 전환한 첫 결과였다. 그러나 이념적 편향성문제가 제기되며 논란이 격화되자 우리의 지적 풍토에서 검인정체제는 시기상조가 아니었나 하는 회의론이 나왔다. 다원화 사회를 지향하는 마당에 교과서발행이 국정체제로 회귀할 수 없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또하나 표준화에 대한 믿음이 굳건한 분야가 교육평가 분야다. 국민교육 개념 역시 국민국가 형성기에 국민의 일체성 확보를 목적으로 시행됐던 것은 다 알려져 있는 바다. 그러나 오늘날 교육은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교육의 목적 역시 전인교육과 개인의 개성실현에 둔다. 이렇게 볼 때 획일적인 입시교육보다는 다양하고 자유로운 학교교육이 이뤄져야 함은 너무도 자명하다. 그럼에도 우리 교육의 평가제도는 표준화된 평가에 집착해 학교교육을 이에 종속시키고 만다. 최근 한 학부모 여론조사에서는 서울대학이 수능을 자격 기준 정도로 사용하겠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입시에서 가장 많이 반영해야 할 성적으로 수능 52%, 내신 29%, 논술 및 면접 19%를 꼽았다. 똑같은 잣대에 집착해 수능점수에 목을 매다 보니, 국가가 전 국민(학생)을 상대로 똑같은 내용을 강의하는 EBS 수능특강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창의적이고 독자적인 사고력이 요구되는 시대에 모든 학생이 하나의 정답만을 생각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게 수능이요,EBS수능 강의다. 미래를 개척하려면 특별한 답이 없는 문제에 도전하도록 하라는 해외 석학의 말은 이런 상황에서는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표준화에 대한 과도한 믿음은 이제는 접어둘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대입시제도에 있어서도 표준화 평가에 의지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특별한 개성과 창의력을 가진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으면 한다. 수석논설위원 yshin@seoul.co.kr
  • [MLB] 최희섭, 6월엔 슬럼프 끝날까

    ‘빅초이’ 최희섭(26·LA 다저스)이 안타 갈증에 목이 바싹바싹 타들어가고 있다. 최근 18타수 무안타. 지난달 21일 LA 에인절스와의 경기에서 안타를 기록한 이후,6경기 동안 1루 베이스를 단 한 번도 밟지 못했다. 지난 31일 리글리필드에서 열린 시카고 컵스와의 원정경기에선 상대선발이 우완 그렉 매덕스임에도 올메도 사엔스에게 1루를 내주고 선발에서 제외됐다. 표면적으로는 왼팔 근육이 뭉친 탓이라고 발표됐지만, 짐 트레이시 감독이 이를 핑계삼아 슬럼프에 빠진 최희섭을 제외한 것으로 보인다. 5회 대타로 나섰지만 좌익수플라이로 힘없이 물러났다. 무더기로 얻어내던 볼넷도 완전 실종됐다. 최근 10경기를 놓고 보면 타율 .107에 29타수 3안타 2타점, 볼넷 없이 삼진만 8개를 당했다. 한때 .313까지 치솟았던 타율도 31일 현재 .262까지 곤두박질쳤다. 지독한 ‘홍역’을 앓고 있는 셈. 부진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타격페이스에 하향곡선을 그릴 때가 온 것이다. 또 하나는 상대투수들의 집중견제가 시작됐다는 것. 올시즌 미완의 대기에서 ‘왼손 거포’로 거듭난 최희섭의 약점이 몸쪽이란 점을 간파하고 인사이드에 집중적으로 공을 뿌리고 있다. 물론 ‘플래툰시스템’의 신봉자인 트레이시 감독의 들쭉날쭉한 기용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송재우 Xports 해설위원은 “얼만큼 빨리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도 빅리거 타자를 평가하는 잣대”라면서 “커리어가 쌓인 만큼,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김홍신의 세상보기] 민족의 자존심을 위하여

    [김홍신의 세상보기] 민족의 자존심을 위하여

    소백산 깊은 골의 해맑게 흐르는 실개천 물로 목을 축이면 금세라도 온몸이 산소덩어리가 된 듯했다. 노승은 흐르는 물을 보고 왜 흐르느냐고 물었다. 무어라 대답할 말이 마뜩찮아 그냥 웃었다. “이놈아, 땅이 비뚤어졌으니 흐르지.” 노승의 이 한마디에 참 많은 걸 한꺼번에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 땅이 비뚤어지지 않고 평형을 유지한다면 어찌 물이 흐르겠는가. 물이 그러하다면 인간사는 오죽하겠는가. 그런데도 우리들은 매사를 평형을 유지하는 게 정도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가장 큰 숙제와 화두는 북한문제였다. 어떤 때는 뜨거운 물잔 같아서, 놓자니 깨질 것 같고 끌어안자니 델 것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누구라도 명쾌하게 해법을 제시하기도 어려운 문제였다. 근래에 북핵문제가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지만 국민은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눈치이다. 옛날 같으면 식료품과 생필품 사재기로 세상이 시끄러웠을 것이다. 미국 대통령과 고위 정책당국자들이 연일 대북 강경발언을 쏟아놓으며 북한을 윽박지르고 있는데도 한국 국민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하다. 일부 서방 언론은 미국의 북한공격을 기정사실화하기도 했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한발 빼고 나면 다음 수순의 공격지점이 북한일 수밖에 없다는 예측이 나도는 판이다. 많은 국민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미국을 비판했고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반대한 속사정은, 이라크 침공 다음 수순이 북한일 거라는 신빙성 있는 논거 때문이었다. 이라크가 소유한 대량살상 무기 때문에 이라크를 침공할 수밖에 없다고 했지만 미국의 속셈은 다른 데 있었다는 게 드러난 셈이다. 이라크 전역을 그리 샅샅이 뒤져도 대량살상 무기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 탓에 미국은 도덕적 패배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북핵문제 역시 미국의 잣대로 분석하고 미국의 잣대로 재단하려 한다는 데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묵은 필름을 돌려볼 필요도 없이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건 뻔한 이치이자 역사적 사실이다. 만약 미국이 북한을 공격한다면 한반도에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북한의 무기와 병력은 대부분 남쪽에 배치되어 있으며 공격받는 순간 자동으로 남쪽을 공격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수도권 일대는 엄청난 피해지역이 될 것이다. 사태가 최단시일에 수습된다 해도 한국 현대사는 치명적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럴 리도 없고 그래서는 더욱 안 되지만, 만약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게 된다면 과연 북한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전문가들의 견해는 놀랍게도 남북통일이 아닌 북한의 중국화를 열거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강대국들의 흑심을 충족시켜주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다급한 사정을 감안하여 비료지원을 결정한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북한의 절대빈곤을 조건 없이 도와주는 것은 통일비용을 엄청나게 절감케 된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우리는 지금보다 담대하게 북한문제를 풀어나가는 지혜를 숙지해야 한다. 북한이 자력으로 식량을 해결하고 자력으로 경제를 부흥하고 안정적인 외교력을 발판으로 미국과 타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유익한 방법임을 자각해야 한다. 남과 북이 평형을 유지하면서 통일을 앞당길 수는 없다. 지금은 평화공존이 우선이고 어느 한쪽이 기울어져 물이 자연스레 흐를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북한에서 남쪽으로 기울어지는 것보다 남한에서 북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물은 언제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마련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전쟁은 결코 창조적일 수 없다. 오로지 파괴를 통한 굴복과 원한만 남기 마련이다. 밖에서 보면 북핵문제가 위태로워 보이는데 안에서 보면 으레 그렇고 그런 통과의례쯤으로 치부하고 있는 점도 이참에 되짚어 보았으면 한다. 미국의 북핵 관점도 우리 국토와 우리 민족과 우리나라의 문제임을 분명하게 천명하면서 민족 자존심의 관점에서 생각했으면 한다.
  • 카드사 ‘두얼굴’

    카드사 ‘두얼굴’

    은행원 김모(38)씨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자사 신용카드 회원을 10명 이상 모집하라는 지시에 따라 친구, 친척 등에게 구걸하다시피 해 겨우 10명을 채웠으나 3명이 발급심사에서 ‘부적격’으로 판정났다. 더욱 놀랄 일은 부적격자 3명 중에 자신도 포함돼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 3월 정기예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고, 주식투자로 인한 손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카드론’ 대출을 받은 ‘전과’ 때문에 카드 발급이 거부됐다. 동료들로부터 웃음거리가 된 김씨는 “나마저 발급이 거부될 줄은 몰랐다.”면서 “발급 기준은 터무니없이 강화해 놓고, 무조건 신규 회원을 확보하라는 것은 도대체 무슨 논리냐.”며 한탄했다. ●카드사 흑자 전환, 카드 모집인 다시 활개 ‘카드 대란’에서 한숨을 돌린 신용카드사들이 다시 신규회원 모집에 열을 올리는 한편 무리한 잣대로 카드 발급을 거부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카드사들은 “새로 시작된 마케팅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신규 회원 확보와 엄격한 리스크(위험) 관리는 ‘양날의 칼’과 같은 필수불가결한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카드사들의 행태로 카드가 꼭 필요한 소비자들까지 골탕을 먹는 부작용도 나오고 있다. 삼성카드가 지난달 29개월 만에 처음으로 179억원의 월간 흑자를 기록하면서 은행계는 물론 전업계 카드사들도 모두 흑자기조로 돌아섰다. 연체율도 계속 낮아져 롯데와 BC 등 일부 카드사들은 5% 이하의 연체율을 기록하고 있다. 나머지 카드사들도 10%대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카드 모집인들이 다시 활개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30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5월 현재 카드 모집인수는 1만 9732명으로 지난해 8월의 8194명과 비교하면 3분기 만에 2배 이상 증가했다. ●과도한 신용관리…선의의 피해자 속출 그러나 카드사들은 직원과 모집인을 동원해 일단 엄청난 수의 잠재 고객을 끌어모은 뒤 ‘입맛’에 맞는 고객에게만 카드를 발급해 주고 있다. 온갖 리스크 심사기법을 동원, 연체 가능성이 거의 없는 고객에게는 ‘맞춤형 서비스’로 호객행위를 한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위험한 고객은 카드에 접근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대기업인 H건설 황모(42) 부장은 지난달 주유시 적립 포인트가 높다는 A카드사의 광고를 보고 카드 발급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본인 명의 휴대전화 요금이 연체됐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황한 황 부장은 이동통신사에 확인한 결과 중학생 아들의 휴대전화 요금이 연체된 사실을 알아내고 즉시 납입했지만 어떤 카드사도 자신이 원하는 카드는 발급해 주지 않았다. 황씨는 “직장이 확실한 사람도 퇴짜를 맞는데 신용이 약간이라도 불안한 사람들은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카드사들은 은행연합회 등이 제공하는 신용정보 조회 서비스를 많이 이용하거나, 한 번도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신용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판단해 신규카드를 발급해 주지 않고 있다. 특히 카드사별로 비금융권 대출 이용자, 휴대전화 요금 연체자, 타 금융기관과 거래가 없는 25세 미만의 남성 등에게는 획일적으로 카드를 발급해 주지 않는다. 카드사들의 과열경쟁을 조사하고 있는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최근 카드사들은 출혈 양상의 부가서비스 혜택과 지나치게 엄격한 리스크 관리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면서 “출혈 경쟁은 카드사의 손실로, 타당성 없는 카드발급 제한은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의회]서울시 주요 정책 OECD 평가 받는다

    [의회]서울시 주요 정책 OECD 평가 받는다

    청계천 복원사업, 대중교통체계개편 등 서울시의 주요 도시정책들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로부터 객관적인 평가를 받는다. 서울시는 27일 열린 제156회 서울시의회 임시회 재정경제위원회(위원장 성하삼) 업무보고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국제도시간 경쟁력 파악 척도 OECD평가는 서울시의 정책전반을 OECD에 속한 선진 30개국의 주요 도시들과 비교해 객관성을 부여받는 것으로 국제도시로서의 서울의 경쟁력을 파악할 수 있는 잣대가 된다. 평가는 파리에 본부를 둔 OECD내 전문가들로 구성된 평가단이 서울시에서 제출한 배경보고서를 점검한 후 현장 실사를 통해 최종 평가 보고서를 낸다. 평가 내용은 청계천 복원사업, 지역균형발전사업, 대중교통체계 개편, 환경개선 등 역점시책을 중심으로 도시경쟁력 부분과 거버넌스(governance)부분으로 나눠 진행된다. 또 평가를 통해 서울시 주요정책의 효과성을 진단하고 경쟁력 있는 정책방향을 제시하게 된다. 이를 위해 시는 이미 청계천복원사업 등 29개 과제 86개 항목에 대한 배경 보고서를 제출했다. 지난 1월에는 OECD 실사단 6명이 서울을 찾아 대학교, 주한 외국인 등 42명을 인터뷰하고 월드컵경기장 등 현장을 실사했다. ●올 10월 결과 발표 서울시는 다음달쯤 OECD 지역개발정책위원회에 검토 보고서가 보고·승인되면 오는 10월 청계천복원사업 완공을 기념하는 ‘서울세계대도시시장 포럼’을 통해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안준호 서울시 심사평가담당관은 “서울시의 도시정책이 국제적으로 알려질 수 있을 뿐 아니라 OECD의 다른 유명도시들과도 비교, 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며 평가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서울광장] 한국이 왕따 당하고 있다는 우려/김경홍 논설위원

    [서울광장] 한국이 왕따 당하고 있다는 우려/김경홍 논설위원

    최근 정치인과 학자, 재미교포 등이 어울린 자리에서 이런 화제가 올랐다. 주한 미국대사가 공석이 된 지 석달이 다 됐는데 미국은 왜 후임자를 내정하지 않는가. 한 정치인은 “미국이 한국에 대해 심기가 불편하니까 대사 임명에 신경쓰지 않는 것”이라며 정부의 외교정책을 공격했다. 한·미동맹이 불안하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는 상황이어서 그의 분석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런데 미국에 거주하는 한 학자는 다른 분석을 내놨다. 미국이 대사를 임명하는 데는 절차가 있다는 것이다. 원칙과 프로세스의 문제이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잣대와 다르다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그렇지만 그도 미국이 한국에 대해 썩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는 데는 동감했다. 한·미관계가 껄끄럽다는 일치된 지적들이 목에 가시로 남는다. 오는 6월11일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주요 의제는 북핵문제와 한·미동맹의 점검이 될 것이다. 북핵은 평화적 해결에 대한 공동노력을 약속받아야 할 문제다. 한·미동맹도 오해를 줄이고 협력체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외교통상부의 김숙 북미국장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얘기를 꺼냈다. 김 국장은 한 방송인터뷰에서 “동북아균형자론에 대한 얘기를 나눌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지금 한·미 정상회담에서 동북아균형자론을 꺼낼 때인가. 동북아균형자론은 발설 단계부터 웃음거리가 됐다. 균형자의 역할이란 싸움을 말릴 수도 있고, 붙일 수도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북한이 우리의 중재에 귀를 귀울이지 않고, 중국과 미국, 일본도 마찬가지다. 중재자가 아니라 홀로 중간자가 되고 만 것이 현실이다. 외교는 힘이고 실리다. 구호나 주장만으로는 얻을 게 없다. 오죽하면 일본 외무성의 야치 쇼타로 사무차관이 “미국이 한국을 충분히 신뢰하지 않고 있어 일본도 한국과의 정보공유 협력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겠는가. 분명히 야치 차관의 발언은 오만하고 비아냥거리는 투가 섞여있다. 깊숙이 들여다보면 한국이 이 발언으로 들끓으리라는 것도 염두에 두었음직하다. 그렇다면 우리도 좀더 속내깊게 대처해야 한다. 과연 우리가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정보협력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가. 당하고 있다면 어떻게 실리를 되찾을 것인가를 먼저 심사숙고했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야치 차관의 발언을 전한 한나라당의 사과를 요구하고, 야치 차관의 문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심지어는 다음달 열릴 한·일 정상회담과 연계하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국내외에 온통 얼굴을 붉힌 꼴이다. 야치 차관의 발언은 외교관례상 무례임은 틀림없지만, 못할 말을 한 것은 아니다. 의도야 어떻든 ‘쓴소리’로 받아들일 성숙한 외교적 역량이 있어야 한다. 야치 차관의 발언은 독도나 교과서왜곡 문제와는 본질이 다르다. 정부의 정치적 대응에 속시원해 할 사람보다 걱정하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최근 중국이 한국의 대북유화정책이 계속되는 한 북한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미국측에 전달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또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미국측이 의외로 냉랭할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한 재미 인사는 워싱턴의 분위기가 과거 부시 대통령이 한국의 대통령을 ‘디스 맨‘이라고 불렀을 때와 비슷하다고도 한다. 한국정부가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지적들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적어도 왕따를 자초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웃음 뒤에 칼날을 숨기고, 동쪽을 보면서 서쪽을 챙기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김경홍 논설위원 honk@seoul.co.kr
  • [독자의 소리] 대학 4학년으로 산다는 것/홍혜진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말이 절로 실감나는 요즘 아침에 눈을 뜨면 한숨부터 쉬게 된다.4학년의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현시점에서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오고 신경성 알레르기가 생기는 등 몸에서부터 스트레스의 정도를 체감하게 된다. 취업을 하기 위해서라면, 한 학기는 기본이고 1년을 통째로 휴학하는 것이 요즘 대학생들에겐 선택 사항에 불과하다. 이력서에 어학연수경력이 한줄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라고 하는 현실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연수를 가는 동기들을 나무랄 수만은 없는 것 아닌가. 언젠가부터 대한민국은 토익·토플 공화국이 되어가고 있다. 방학이 되면 알 만한 영어학원들은 미어터지고 잠깐의 기간을 이용해 해외에 나갔다 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사회에서는 영어 실력뿐 아니라 제2외국어 능력, 한자능력, 한국어능력, 학점, 외모 등 갖가지 조건들을 갖춘 졸업생들을 원한다. 최근엔 취업을 하기 위해 성형을 하고 다이어트를 감행하는 학우들도 더러 있다. 외국학생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너무나 암울하고 비정상적인 현실이다. 현재 대학 4학년생들은 학교나 집에서 취업에 대한 압박감과 주위의 시선 때문에 그들 현재의 위치가 불안하고 하루하루가 힘들다. 사회에서 그들에게 바라는 것은 어쩌면 ‘맞춤형 로봇’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사회의 잣대로 판단하여 그 흐름에 따라가지 못한다고 주눅들어 마치 죄인처럼 살아갈 순 없지 않은가. 그들이 현재 갖추고 있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부족한 능력을 갖춰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홍혜진
  • “국회의원도 품질인증 받아야죠”

    “뭐라고?국회의원도 ISO 9001(국제품질경영시스템) 인증을 받는다고?” 통상 기업체나 상품에 주어지는 ISO 9001 인증이 현직 국회의원에게 부여될 예정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경기 김포 출신인 한나라당 유정복 의원으로, 국회의원이 ISO 인증을 획득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유 의원은 25일 보도자료를 통해 “오는 30일 한국품질인증센터(KFQ)로부터 ISO 9001 인증을 획득하게 된다.”면서 “이를 계기로 국민을 위한 의정활동의 품질을 한층 더 높여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회의원의 ISO 인증 획득은 그동안 기업체를 대상으로 해 온 품질경영평가 기준이 의정활동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향후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평가하는 객관적 잣대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유 의원측은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 지난해 9월부터 의원회관 및 지역사무소 구성원 모두가 ISO 인증 획득에 필요한 소양교육과 함께 수차례 토론 및 세미나를 통해 품질매뉴얼과 규정집을 만들어 실행해 왔다.”면서 “그 결과, 지난 4일부터 13일까지 실시된 KFQ의 문서심사 및 현장심사에서 합격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이의원 ‘斷指해명’ 논란 가열

    이의원 ‘斷指해명’ 논란 가열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이 19일 단지(斷指) 논란과 관련해 홈페이지에 해명글을 올렸지만 파문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네티즌들은 ‘거짓말쟁이’라며 이 의원을 성토하고 있다. ID ‘souliver’는 “(학생)운동하고 군대간 사람들은 바보인가.”라면서 “양치기 소년처럼 거짓말을 하니까 이제는 믿지 않는다.”라고 성토했다.‘루팡’은 “운동권들은 자기에겐 관대하면서 왜 박정희 등 다른 사람들의 전후사정과 시대상황에 대해선 그리 엄격한가.”라고 반문했다. ●“거짓말쟁이” “그시대 안겪은 사람은 몰라” 반면 ‘붐’은 “이 의원의 단지는 80년대 대학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이해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반박했다.‘진하니’는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유신이라는 이름의 무서움을 믿지 못할 것”이라고 가세했다. 앞서 이 의원은 홈페이지에 “(당시)입영을 한다 해도 즉시 보안사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할 것이고, 고문을 못 이겨 동지의 이름을 불게 되면 동지들이 잡힐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고, 배신의 기억을 지니고는 정상적인 인간으로 살 수 없을 것 같았다.”고 ‘입영이 어려웠음’을 털어놨다. 그는 “손가락을 버리고, 태극기에 ‘절대 변절하지 않는다.’는 혈서를 썼다.”면서 “피 묻은 태극기는 이화여대 선배에게 주었다.”고도 했다. 그리고 “앞뒤의 문맥, 시대 상황을 버리고 군 기피를 위한 단지라고 비난한다면 달게 받겠다.”면서도 “지금도 저의 행동을 결코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부인 “오늘의 잣대로 단죄 않기를” 이 의원의 부인 이정숙씨도 이날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정치적인 입장이 다르더라도 단지 부분에 대해 오늘의 잣대로 아무렇게나 언급하시지 않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그는 “(이 의원을)만난 지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물어보지 못했던 일”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이 의원은 2003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재직 당시 “주물공장에서 사고로 손가락이 잘렸다.”고 말했다고 한 일간지가 보도했으며 이에 대해 “불필요한 논란을 끄집어내지 않기 위해 비켜가려고 했던 것으로 안다.”고 이 의원측은 해명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치료용 배아줄기세포 배양 성공] 학계평가와 윤리적 논란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 성과는 또다시 윤리적 논란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연구내용을 단독으로 게재한 ‘사이언스’는 이례적으로 미국 스탠퍼드대 밀드레드 조 교수팀이 주장한 윤리적 문제점도 함께 실었다. 조 교수는 윤리적 문제점으로 ▲미국이나 한국 어느 곳에서도 정부기관의 승인을 받지 않았다는 것 ▲의학적 용도로 기증된 난자가 연구용으로 사용된 것 등을 꼽았다. 조 교수는 “난자 공여에 대한 기준이 나라마다 다른 상황에서 공동연구의 윤리적 잣대를 어디에 맞출 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면서 “한국에서는 이번 세포연구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어서 풀스케일의 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를 거치지 않고 면제가 됐지만 미국의 경우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황 교수팀이 난자를 기증한 환자의 동의를 얻어 이를 의학적 용도로 쓰겠다고 했지만 실제는 연구용으로만 사용됐다.”면서 “난자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난자에 대한 과잉자극과 난포제거 등은 분명히 기증 목적과 다르다.”고 덧붙였다. 국민대 사회학과 김환석 교수는 “난치병 치료를 위한 사명감으로 연구를 한 점은 인정하지만 버려진 난자와 배아에 대한 윤리적 책임은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윤리적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국내 줄기세포 전문가들은 “진일보한 과학적 성과”라며 높게 평가했다.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 소장은 “환자 자신의 체세포로 면역거부반응이 없는 줄기세포를 만든 것은 지난해에 이은 과학적 쾌거”라며 “앞으로 배아줄기세포의 특정 분화 배양기술만 확립된다면 난치병 치료를 한발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코리아 여군단 ‘얇아진 지갑’

    올시즌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집단 부진에 빠진 ‘코리아 여군단’의 지갑이 초라한 성적만큼이나 얇아졌다. 투어 상금은 세계 랭킹과 더불어 선수를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빅3’와 ‘빅4’ 등의 용어도 상금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통산 60승 달성에다 최다 상금까지 쓸어담고 있는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 ‘여제’로 불리는 이유도 승수와 상금 등 양면에서 프로의 진면목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올시즌 한국 선수들의 상금은 투어 성적과 비례하며 추락을 거듭했다. 지난해까지 최고 금액 경신을 거듭하며 꾸준한 상승세를 이은 이들은 당초 올시즌엔 총상금 1000만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지난해엔 830만 1560달러. 그러나 17일 현재까지 벌어들인 액수만 보면 전망은 어둡기만하다. 특히 ‘빅4’ 중에서는 올시즌 8개 대회에서 세차례 ‘톱10’에 입상한 한희원(27. 휠라코리아)만이 지난해보다 조금 웃돌았을 뿐 박지은(26·나이키골프) 박세리(28·CJ) 김미현(28·KTF)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형편없이 떨어졌다.20위권은 물론,50∼60위권까지 오르락내리락하는 ‘널뛰기 성적’에 그친 결과다. 지난해 2승을 거두며 소렌스탐에 이어 최종 상금 랭킹 2위를 차지한 박지은은 지난해 5월 같은 기간까지 벌어들인 상금의 30%에도 못미치는 15만 500달러로 21위로 추락했다. 김미현은 15만 7753달러에 그쳐 7위에서 20위로 밀려났다. 박세리의 경우는 충격적이다. 올시즌 6개대회에 출전했지만 두 차례나 컷 통과에 실패,4개대회를 통틀어 고작 2만 3725달러에 불과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엔 47만 7886달러. 랭킹도 무려 78계단이나 떨어진 89위로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상황이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기고] 올바른 교사평가가 이루어지려면/황선주 경북기계공업고등학교 교사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 재임시절, 약속한 바 있는 교사평가제가 2007년부터 강행 실시될 모양이다. 교육부안을 보면 교장, 교감은 교육청이 직무수행능력 등을 평가하고 교사는 동료교사와 학생, 학부모 등에 의해 평가한다고 한다. 다면평가를 통한 ‘교사들의 지도능력 계발’과 ‘전문성 신장’ 등을 주요 목적으로 들고 있다. 모양새를 보니 교육부로서는 교원단체의 반대에는 모르쇠하는 것 같다. 워낙 학부모들의 지지세가 크니 말이다. 따라서 교원단체 쪽의 ‘학교종합평가방안’이나 ‘수석교사제’ 방안에는 아예 귀를 막고 있는 형국이다. 대부분 언론매체와 국민들도 반기는 기색이 역력하다. 실력 없는 교사들이나 부적격 교사가 교단에서 쫓겨날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교사들의 불만이 높다는 교총(교육총연합회) 설문조사가 나오자 ‘철밥통 교사(?)’ 매도에 거침이 없다. 그러나 여러 일간 신문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대부분 교사들이 무조건 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이미 알려진 바 있다. 단 그 평가의 전제로 현행 왜곡된 교원승진제도(교장자격증제) 개혁과 교사들의 교재편성권과 교사별평가권(교사의 학생에 대한 학습내용의 평가권) 보장 등을 들고 있다. 이러한 사전 전제 없이는 공정한 수업평가가 지난(至難)하다는 지적이다. 무엇을 평가하고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관한 세부적 사항이 빠져 있어 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성급하지만 현직 교사로서 교육부의 교사평가방안에 대해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먼저, 수능시험 대비를 위한 입시위주의 교육하에 제대로 된 수업평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입시위주의 학교현장에서 수업평가가 이루어진다면 ‘보여주기 위한 위장 수업’이 될 공산이 크다. 때문에 교원들의 자질향상이라는 명분과 동떨어진 채 ‘형식적 교사평가’에 치우치게 되고 오히려 ‘올곧은 교사 죽이기’의 방편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따라서 언론이 앞서가듯 무조건적인 교원평가는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 것이 뻔하고 교사들의 수업의 질 향상이라는 본래의 취지를 무색케 할 것이다. 언론이 지적하듯 문제교사를 추릴 방법도 되지 못한다. 다음으로 지적할 것은, 교사들의 수업재량권이 전무한 상태, 다시 말해 교재편성권이나 교사별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무엇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도리어 교단을 반목과 질시의 장으로 만들고 교사의 생활지도에 불만을 가진 학생이나 학부형들의 교사길들이기의 방편으로 흐를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더구나 현행 승진제도의 변화 없이 교사평가가 이루어진다면 승진을 위해 교장에 충실히 복무하는 교사들과 그렇지 않은 교사에 대한 교장의 평가 잣대가 달라질 수 있다. 이는 교단 양단을 가중시킬 원인이 될 수 있고 학생에 대한 교사의 수업권이 침해될 수 있으며 생활지도가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왜곡된 현행 승진제도에 의해 선출된 교장이 학교의 모든 교육활동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가운데, 그에 복무하는 교사가 판치는 학교에서 과연 교장이 중립적인 입장에 서서 수업평가가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교사평가 이전에 왜곡된 우리 학교 구조와 교육행정 전반의 구조에 대한 점검이 전제돼야 한다. 때문에 교장보직제로의 교장선출방식의 변혁을 통한 학교자치를 이루어 교사회, 학부모회, 학생회의 구성으로 자율적인 민주적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 수업 평가가 가능하려면 교사들에게 교재편성권 및 교사별 평가권도 주어져야 한다. 그래야 평가할 것이 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현 승진제도하에서 교장이 학교의 전권을 쥔 상태에서 교사평가가 이루어진다면, 과연 객관적이고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우리 학교에서 행해지는 모든 교육활동이 교육부와 교육청, 교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현 왜곡된 학교 상황이 이를 여실히 웅변해주고 있는 것이다. 황선주 경북기계공업고등학교 교사
  • [길섶에서] 행복이란/우득정 논설위원

    “자네가 얼마나 행복한지 아나.”2년만에 만난 검사장 출신 J변호사가 대뜸 묻는다. 개업 후 대형 사건을 도맡아 돈벌이가 괜찮다고 소문까지 났었는데 무슨 망언(?)이냐는 생각이 일순간 스친다. 얼굴에 나타난 뜨악한 표정을 간파한 듯 “나는 지금까지 허상만 좇으며 살아온 것 같아.”하면서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그는 현직에 있을 때 악착같이 승진과 보직에 매달렸고 개업 후에는 한동안 돈벌이에 정신이 없었지만 요즘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는 것이다.“내 것도 아닌데 내 것인 듯 착각을 했단 말이야.”그러면서 움켜쥐려고만 했던 손바닥을 펴고 보니 비로소 사물이 바른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등바등하면서 허비한 지난 세월이 후회된단다. “내 생각에 동의하느냐는 다음 문제일세. 매일 자신의 생각을 담아 발표할 그릇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야.”그는 과거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생각을 가다듬을 여유를 가졌더라면 환갑을 맞아 이처럼 공허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내 인생을 남과 비교하지 말게. 남의 잣대로 재단하면 항상 불행해진다네.”J변호사의 눈길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녹색공간] 핵산업에도 봄은 오는가/안병옥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

    쇠락의 길을 걷던 핵산업이 두 번째의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고 한다. 이 주장의 진원지는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다. 간혹 이중잣대 논란에 휩싸이곤 하는 이 기구는, 작년 6월 장밋빛 통계가 실린 보고서 한권을 내놓았다. 전 세계적으로 모두 27기의 핵발전소가 건설 중이며, 기후변화 변수까지 고려하면 2030년에 핵산업은 2.5배 성장하리라는 것이다. OECD 산하기구인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와는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현재 세계 에너지생산에서 약 8%를 차지하는 핵에너지가 2030년에는 5% 정도로 감소한다는 것이다. 근거는 수명을 다해 폐쇄를 앞둔 핵시설은 많은 반면,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놀랄 만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핵에너지 감소추세는 특히 전력산업 민영화로 진입장벽이 사라진 나라들에서 뚜렷하다고 한다. 통계는 과학을 빙자한 미신이라는 말도 있지만, 국제기구들이 이처럼 상반된 예측을 내놓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논란거리의 이면에는 언제나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동원하는 정보가 있기 마련이다. 한쪽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근거로 제시된 정보의 진실성부터 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21세기 핵산업 시장의 기상은 과연 겨울인가 봄인가? 구미사회에서 신규 핵발전소를 건설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미국에서는 핵발전소 건설이 30년 동안 중단되어 있는 상태다. 독일 영국 네덜란드에서도 22년간 핵발전소를 새로 짓는 일은 없었다. 이미 오래전 핵에너지 탈피를 결정한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폴란드에서도 핵에너지 부활을 검토한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핵에너지 메카’라는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예외가 있다면 최근 핵발전소 1기를 건설하기로 한 핀란드가 유일하다.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었던 스웨덴의 경우는 특별한 편이다.1980년 국민투표로 핵에너지 탈피를 결정한 이래 법률 제정에만 17년이 걸렸다. 야당과 핵산업의 집요한 뒤집기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1999년에는 최초로 ‘바세백’핵발전소가 폐쇄됐다. 한때 찬핵론자들의 목소리가 커진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작년 11월 정권교체로 다시 핵에너지 탈피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가 핵산업 르네상스의 근거로 드는 27기의 신규 핵발전소 중 14기는 첫삽을 뜬 지 17년에서 29년이 지난 것들이다. 절반 이상이 터만 잡아놓은 상태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는 대가로 북한에 건설하려던 2기의 원자로까지 포함하면, 완공을 기약할 수 없는 핵발전소는 총 16기로 늘어난다. 핵발전소를 실제로 짓고 있는 곳은 인도 일본 중국 대만 그리고 우리나라뿐이다. 핵산업에 르네상스가 도래했다는 국제원자력기구의 주장이 옳지 않다는 사실은 스스로 만든 통계에서도 드러난다.1990년에는 총 83기의 핵발전소가 건설 중이었지만 1998년에는 36기로 감소했다. 현재 건설중인 핵발전소는 27기(대만 포함 29기)이며, 그나마 절반은 완공조차 기약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르네상스는커녕,‘장기불황’이라고 해야 어울리지 않겠는가. 정작 르네상스를 만끽하는 것은 태양력·풍력·소수력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다.1993년 독일 전력산업계는 모든 언론매체를 광고로 도배한 적이 있다. 신재생에너지의 비율이 수십년 후에도 4%는 절대로 넘지 못하리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미 신재생에너지의 비율은 10%에 달한다. 최근 통과된 신재생에너지촉진법은 202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최소한 50%까지 확대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중국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속도도 무서울 정도다. 재작년 풍력에너지의 신장률이 46%에 달했으며, 곧 독일의 신재생에너지촉진법을 본떠 법률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2010년이면 중국에서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10%를 상회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핵발전은 수명을 다한 에너지 낭비시대의 낡은 모델이다.” 독일 환경부장관 위르겐 트리틴이 체르노빌 참사 19주년을 맞아 한 연설문의 일부다. 미래는 에너지절약, 에너지효율, 신재생에너지의 확대에 달려 있는데, 핵발전이 이들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핵산업에 봄이 온다는 주장은 일부 찬핵론자들의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이 사실을 우리 정부 당국자들도 알았으면 한다. 안병옥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
  • [정부산하기관·공기업 임원 인사 논란] 415곳 1497개 직위 인사개입 가능

    [정부산하기관·공기업 임원 인사 논란] 415곳 1497개 직위 인사개입 가능

    공직사회의 인사개혁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부산하기관과 공기업 임원 인사를 놓고 잡음이 다시 일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경우 사장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4차 공모에 들어간 상태다. 아울러 ‘낙하산 인사’에 대한 논란도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이전 정부와 달라진 게 없다.”며 공세의 고삐를 풀지 않고 있다. 이에 정부는 많이 개선됐는데도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정부산하기관 및 공기업 임원 인사의 문제점과 삼고초려제의 효율성 등을 짚어 본다. 논란의 핵심은 “공정한 절차에 따라, 적임자가 임명됐느냐.”이다. 과거 밀실이나 정실로 전문성 및 경험이 없는 사람이 자주 임명되다 보니 이런 기준이 ‘중요한 잣대’가 된 것이다. ●잇단 재공모… 짜고 치는 고스톱? 최근 수차례에 걸쳐 재공모 절차가 진행되면서 참여정부의 인사기조인 ‘적재적소(適材適所)’원칙이 구호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 선정한 후보자들을 상급 기관이 분명한 이유도 대지 않고 계속 거부하는 것은 ‘특정인을 앉히기 위한 의도’라는 얘기다. 이미 정해 놓고 공모를 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을 떨치기 어려울 듯하다. 실제로 인천공항 사장 선임이 세차례나 무산되면서 유언비어가 난무한다. 공사측은 두 번의 재공모를 거쳐 사장추천위원회가 선정한 후보 3명을 건설교통부에 승인을 요청했으나 거푸 거부당했다. 인천공항의 한 관계자는 “(상부에서)정확한 거부 사유도 밝히지 않았다.”고 씁쓸해했다. 재공모를 한 곳은 이곳만이 아니다. 한국조폐공사, 국민연금관리공단, 산업안전관리공단, 지역난방공사 등도 같은 과정을 거치고 있다. 코트라도 재공모를 한 끝에 선임했다. ●‘낙하산 인사’ 논란도 꿈틀 지난해 11월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 선임 과정에 최종 후보군에 든 3명이 갑자기 사퇴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후보 추천위원 1명은 정부 고위층으로부터 ‘압력성 청탁’을 받았다고 주장, 낙하산 논란도 제기됐다. 결국 재공모를 거쳐 이영탁 전 국무조정실장이 선임됐다. 한나라당은 그가 17대 총선에 여당 후보로 출마한 경력을 들어 낙하산 인사로 규정하기도 했다. 앞서 문화부 산하인 한국언론재단 이사장 선임때 재단 이사회가 당시 이사장을 다시 선출하자 정부가 ‘연임불가원칙’을 들어 거부하는 사태도 있었다. 한나라당은 낙하산 인사의 ‘구태’가 여전하다고 주장한다. 여권 정치인과 전직관료 출신이 공공기관의 대표나 임원에 임명된 이른바 낙하산 인사가 95건이나 된다며 자료를 제시했다. ●문제점과 개선 움직임 종합적인 관리체계가 없는 실정이다. 산하기관 운영에 대한 관리·감독 기능이 여러부처에 산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원 선임때만 되면 각기 다른 채널로 ‘제사람 심기’현상이 생긴다. 투명성 부족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인 절차가 진행되지 않는 곳이 많고, 공개적으로 한다 해도 추천위원회 운영 등 명시적인 규정이나 투명성을 담보해낼 장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감사 또한 투명성이 없다 보니 ‘대우좋고 할일 없는 보직’으로 인식되곤 한다. 이런 탓에 부패방지위원회는 지난달 사장추천위원회를 전원 민간인으로 구성토록 권고했다.11명의 위원 중 6명을 정부부처 장·차관이 맡기 때문에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감사도 공모제를 하도록 했다. 한나라당 박재완 의원은 법개정안을 이미 제출한 상태다. 퇴직공무원은 유관기관에 2년간 취업을 못하고, 상근감사 임명 때 정부투자기관운영위원회가 서면결의를 금지하도록 하고 있다. 임원의 최소한 적격요건을 규정해 무분별한 낙하산 인사를 막자는 취지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재공모 느는 건 엄격한 심사 때문” 정부는 ‘낙하산 인사’ 지적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과거에 비해 훨씬 개선됐는데도 그런 시각으로 보는 것을 억울해 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이런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자 대책 마련에 나섰다. 권혁인 인사관리비서관은 청와대브리핑에서 “정실인사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공개모집을 일반화하였고, 민간인으로 구성된 추천위원회에서 후보자 추천을 위한 심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개적이고 광범위하게 공직 후보자를 발굴하기 위해 삼고초려제도도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재공모’를 하는 것은 ‘입맛’에 맞는 사람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비해 엄격한 심사를 거치다 보니 적격자를 찾지 못해 재공모가 늘고 있다.”고 주장한다.“‘입맛’에 맞는 사람을 임명하려면 입맛에 맞는 사람을 처음부터 응모케 하고 바로 선발하면 된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낙하산 인사’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다양한 인력들이 경쟁을 통해 유입될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있다.”면서 “산하기관의 성격에 맞추어 적재적소의 인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효율성이 중시되는 기관은 전문가가, 공공성이나 개혁성이 필요한 기관은 정치권 등 공공분야에서 잘 훈련된 인재가 상대적으로 적격이라고 평가했다. 때문에 ‘적격성’여부에 대한 고려 없이 무조건 출신배경만을 문제 삼아 ‘낙하산 인사’로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중앙인사위원회 정진철 인사정책국장도 “퇴직공무원이 정부산하기관에 부적절하게 재취업하는 관행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려고 노력한다.”면서 “산하기관에 퇴직공무원이나 외부인사가 임명됐다고 해서 그 자체만을 가지고 부적절한 인사라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적임자 여부와 인선 절차, 임명 뒤 한 일 등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재공모는 적임자가 아니라고 판단되거나 검증과정에 문제가 된 경우, 이중으로 응모해 선임자를 임명 못할 때 등 여러 형태가 있다.”고 소개했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정부 관여 얼마나 정부가 인사에 개입할 수 있는 산하기관은 모두 415곳이다. 기관장 413개, 상임이사 377개, 비상임 315개, 감사 392개 등 1497개 직위가 있다. 이는 정부가 2003년 마련한 ‘정부산하기관 인사운영쇄신 지침’에 따른 것이다. 정부투자기관·출자기관 등 공기업과 정부출연·보조기관 또는 정부업무 위탁기관 등으로서 임원의 인사운영에 소관부처 장관의 제청·임명·승인 등이 이뤄지는 기관이 그 대상이다. 유형별로 보면 정부 출연기관이 29.6%로 가장 많다. 이어 정부보조기관(21.9%), 정부위탁기관(20%), 정부출자기관(4.8%), 정부투자기관(3.1%) 등의 순이다. 인력은 50명 미만이 35.7%인 148곳,50∼100명 미만이 59곳(14.2%),100∼500명 미만이 119곳(28.7%),500∼1000명 미만 32곳(7.7%),1000명 이상 57곳(13.7%) 등이다. 2003년 기준 예산별로 보면 10억원 미만이 31곳(7.5%),10억∼100억원 미만이 117곳(28.2%),100억∼1000억원 미만이 159곳(38.3%),1000억∼1조원 미만이 78곳(18.8%),1조원 이상이 30곳(7.2%) 순이다.2004년 발간한 ‘공무원인사개혁백서’에 따르면 이 중 68%인 282곳은 어떤 형태로든 인사에 관여하며,133곳(32%)은 관여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곳이 46개 기관(16.3%), 장관이 승인·보고·동의·협의하는 기관이 150곳(53.2%), 장관이 임명하는 기관 75곳(26.6%), 국무총리가 임명하는 기관 5곳(1.8%), 장관이 지명하는 기관 4곳(1.4%), 장관이 추천하는 기관 2곳(0.7%) 등이다. 기관의 성격에 따라 공공성 330곳(79.5%), 효율성 63곳(15.2%), 개혁성 9곳(2.2%), 미분류 13곳(3.1%)으로 돼 있다.415곳 가운데 기관장 추천위원회가 있는 곳은 22.2%인 92곳으로, 아직 없는 곳(77.8%)이 훨씬 더 많다. 임원 추천위원회가 구성된 곳은 10.6%에 불과하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삼고초려’ 제도 효과있나 참여정부가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제도를 위해 새로 도입한 것이 ‘삼고초려(三顧草廬)’제도다. 일종의 인재추천제도이다. 청와대·중앙인사위 홈페이지(www.csc.go.kr)를 통해 장·차관, 정부산하기관장 등 훌륭한 인재를 추천받아 검증한 뒤 임명하는 것이다. 특정한 직위 또는 분야에 적임자라고 생각하면 본인은 물론 주위에서도 추천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제도로 임명된 경우가 많고, 인사의 공정성에 기여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삼고초려로 발탁됐다고 해서 뒷말이 없는 것도 아니다. 관료 출신이나, 여권과 가까운 인물이 이 제도로 많이 발탁되자 ‘통과의례’가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부는 공개경쟁을 통해 선임됐다고 말하지만, 삼고초려로 발탁된 인사 가운데 여권이나 정치권과 관련된 인사가 많고, 추천한 사람 역시 정부 고위직에 있는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다. 지금까지 산하기관장 선임때 삼고초려로 추천된 것은 모두 32개다. 이 중 18개 직위에 삼고초려 추천자가 낙점됐다.4월말 현재 삼고초려에 오른 사람은 총 1252명이다. 자천이 329명(26%)이고, 타천이 923명(74%)이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사설] 예산, 성장·분배로 재단할 일 아니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중기 재정운용계획을 협의하면서 복지와 국방예산은 연 9% 이상 늘리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증가율은 연평균 1.6%로 억제하기로 했다고 하자 분배를 위해 성장잠재력 확충을 희생시키겠다는 발상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파이를 키워야 할 판에 선진국형 복지모델을 흉내내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민소득 1만 5000달러에 이른 지금도 성장주도형 개발시대의 잣대로 예산을 재단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노무현 대통령도 연두 기자회견에서 천명했듯이 ‘동반성장’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실현하려면 양극화 해소가 무엇보다 시급한 시점이다. 성장주도론자들은 파이를 키우면 분배는 절로 된다는 논리를 내세우지만 분배정의 실현은커녕, 양극화만 더욱 심화됐던 게 지금까지의 경험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장의 그늘에 가려졌던 소외층과 복지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복지분야의 예산 증가율을 높이겠다는 것은 올바른 정책방향이라고 평가된다.2001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 지출은 8.7%로 미국(14.8%)이나 일본(16.9%)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의 주요 선진국(20% 이상)보다 월등히 낮다. 지난 40년간 개발지상주의가 낳은 결과다. 우리는 민간부문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복지분야는 재정에서 맡되 SOC나 성장동력분야는 민자 유치나 민간의 자율에 넘기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본다. 이는 성장·분배논리와는 별개다. 다만 ‘협력적 자주국방’이라는 구호에 얽매여 국방예산을 매년 9∼10% 증액할 필요가 있는지는 신중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다. 더구나 열린우리당은 정부안보다 더 높일 것을 요구했다니 정치적 의욕 때문에 불필요한 비용을 치르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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