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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홀로 걷다 보니, 태곳적 신비가…

    홀로 걷다 보니, 태곳적 신비가…

    ‘한국의 지붕’ 강원도 평창 인근엔 산이 많습니다. 산은 높고 골은 깊으니 당연히 빼어난 숲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 가운데 인상적인 숲 두 곳을 소개합니다. 한 곳은 낙엽송, 다른 한 곳은 잣나무가 우거진 숲입니다. 발단이야 전혀 달랐지만 두 숲 모두 사람이 조성했다는 점만은 같지요. 봉평읍 인근에 붓꽃섬이 있다. 예부터 붓꽃이 많이 자생했다는 섬이다. 한데 산골짜기 봉평에 웬 섬일까. 붓꽃섬 양옆으로는 무이천과 흥정천이 흐른다. ‘섬’은 두 개천을 경계로 뭍에서 ‘고립’돼 있다. 크기야 턱없이 작아도 하중도(河中島)인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에 캠핑장이 조성돼 있다. 붓꽃섬 캠핑장이다. 붓꽃의 영어 이름을 따 아이리스 캠핑장 혹은 아트인 아이리스 아일랜드라고 불린다. 캠핑장 대표는 이학박사 박정희(53)씨다. 한데 이곳 주인장, 참 독특하다. 보다 정확히는 스스로 ‘합리’와 ‘원칙’을 정확히 지키려 하는데 보편적인 잣대를 들이대니 다소 유별나 보이는 거다. 우선 여느 캠핑장보다 입장료가 비싸다. 계절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2인 기준으로 1박에 4만원쯤 된다. 게다가 1박 2일은 안 받는다. 최소 2박 이상이어야 한다. 납득이 잘 안 된다면 일반 회사의 ‘휴가 명령제’를 연상하면 알기 쉽다. 허겁지겁 와서는 텐트 펴고 접다 시간 보내지 말고 푹 쉬다 가라는 뜻이다. 아울러 철저하게 예약제로 운영된다. 캠핑 사이트가 남더라도 당일 내주는 법은 없다. 캠퍼의 신분 확인은 필수고 예약료도 받지 않는다. 캠핑장에선 커플보다 가족이 우선시된다. 아이들이나 부모와 함께 오면 알게 모르게 혜택을 준다. 하다못해 유기농 호박 하나라도 선물로 챙겨 준다. 캠핑장 안엔 식당과 매점이 없다. 캠핑장에서 편의시설까지 독식하면 인근 주민들에게 돌아갈 몫이 없기 때문이다. 화장실도 유아용만 있을 뿐 섬 밖으로 밀려나 있다. 캠핑장 청소 또한 인근 주민들에게 번갈아 맡긴다. 그래야 지역 공동체에 보탬이 된다. 까다롭긴 하지만 장점도 많다. 우선 캠핑 사이트가 넓다. 당연히 캠퍼들 간에 자리 두고 얼굴 붉힐 일 없다. 체험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계절에 따라 고로쇠와 산나물, 표고버섯 등을 채취하거나 감자, 호박 따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전부 무농약으로 재배한 것들이다. 비료조차 치지 않는다. 요즘엔 잣 줍기 체험이 제격이다. 체험장은 캠핑장에서 2㎞쯤 떨어진 잣나무숲이다. 이동 수단은 사륜오토바이(ATV)다. 한데 주인장의 운전 테스트를 먼저 거쳐야 한다. 안전하게 산길 주행을 할 수 있겠다 싶을 때 오케이 사인이 난다. ‘면허시험’에 떨어지면 ATV는 포기해야 한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모든 체험 프로그램이 무료라는 점이다. ATV 기름값만 캠퍼가 부담하면 된다. 여느 캠핑장에 견줘 입장료가 비싼 것도 이 때문이다. 잣나무숲은 넓다. 앞산 뒷산 ‘눈에 보이는’ 게 죄다 잣나무다. 숲은 1932년 박 대표의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조성됐다. 아들이 태어나면 대량으로 기념식수를 했고 그 아들이 아들을 낳으면 또 잣나무를 심었다. 체험장으로 쓰이는 숲은 그중 일부에 불과하다. 잣나무 아래에선 표고버섯이 자란다. 가을철 수확기에 들면서 크기가 호떡만큼 커졌다. 잣나무는 피톤치드를 많이 내뿜는다. 편백나무에 이어 두 번째다. 청량한 피톤치드 맡으며 잣, 표고버섯 등을 수확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캠핑장 이용자들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잣나무숲에서 흥정계곡을 끼고 돌면 곧 불발령길이다. 일부 산악자전거 동호인들이 알음알음으로 찾는 곳이다. 불발령(1052m)은 옛 진한(辰韓)의 마지막 임금인 태기왕의 고사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불발현 혹은 불바래기 등으로 불린다. 현지 주민들에 따르면 태기왕이 “불을 밝히라” 명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일종의 축약어인 셈인데 화공을 펴라는 뜻이었는지, 불을 밝혀 경계를 강화하라는 뜻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산 중턱 마을의 지명이 ‘화명동’(火明洞)인 걸 보면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닌 듯하다. 이 일대엔 태기왕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평창과 횡성이 경계를 이루는 태기산은 태기왕이 산성을 쌓고 신라 박혁거세에게 대항하던 곳이다. 태기산에서 발원한 갑천은 태기왕이 더러워진 갑옷을 씻었다는 곳, 횡성 쪽 어답산은 ‘(태기)왕이 오른 산’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불발령길은 줄곧 흥정계곡을 따라간다. 길이는 약 16㎞. 계곡 초입에 들어선 펜션만 70개 정도다. 그만큼 놀기 좋고 볼 것 많다는 뜻이겠다. 마지막 펜션을 지나면 풍경은 확 바뀐다. 적막강산이다. 한 구비 돌고 나면 그간 사람의 발길이 얼마나 드물었는지 단박에 알 정도다. 과장 좀 보태 태곳적 풍경 속으로 드는 느낌마저 든다. 길은 계곡을 따라 이리저리 휘었다. 나라 안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길이다. 한데 풍경은 다소 이질적이다. 사방을 둘러친 낙엽송들이 미인의 다리처럼 늘씬하게 솟았다. 북미의 어느 숲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든다. 낙엽송들은 대개 수령이 비슷하다. 45년 전, 그러니까 이 일대에 화전민 소개령이 내려진 1968년 무렵 식재된 것들이다. 당시 불바래기에 살았던 이동옥(61)씨는 “낙엽송 군락이 곧 마을이 있던 자리”라고 했다. 정부에서 마을을 없앤 뒤 그 자리에 속성수인 낙엽송을 심었다는 것이다. 당시 흥정계곡엔 300여 가구가 여기저기 마을을 이뤄 살았다. 화전 등에서 나온 소출도 제법 많아 “흥정리 이장은 해도 봉평면장은 안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다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터졌고 주민 소개령이 내려지면서 현재 모습으로 남게 됐다. 계곡은 하류에 견줘 수량만 다소 줄었을 뿐 넉넉한 자태 그대로다. 가마 타고 불발령 넘던 새색시가 빠져 죽었다는 각시소, 이름조차 없는 3단 폭포 등 간간이 볼거리도 뛰쳐나온다. 불발령 정상에 서면 홍천 너머의 크고 작은 산들이 마루금을 좁힌 채 물결치는 모습과 마주할 수 있다. 박정렬씨의 모정을 기리는 추모비도 서 있다. 비문에 새겨진 사연이 애틋하다. 1978년 3월 12일, 박씨가 여섯 살짜리 딸과 함께 홍천군 내면의 친정으로 가기 위해 불발령을 넘을 때였다. 돌연 폭설이 쏟아졌다. 박씨는 길을 잃고 헤매다 쓰러졌고, 자신의 옷을 벗어 어린 딸에게 입힌 뒤 숨을 거뒀다. 엄마 품에 안겨 있던 딸은 다행히 목숨을 건져 외지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 사진 평창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 :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영동고속도로 장평나들목으로 나와 봉평면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봉평읍내에서 무이예술관 방향으로 2.5㎞ 가면 붓꽃섬 캠핑장이다. 캠핑 사이트는 40면, 펜션은 11개 객실이다. 캠핑과 달리 펜션은 1박이 가능하다. www.irispension.co.kr, 336-1771. 불발령은 아이리스 캠핑장에서 이효석 문학의 숲 방면으로 가다 흥정계곡을 끼고 곧장 가면 된다. →맛집 : 봉평읍내 미가연은 메밀요리 전문점이다. 이대팔메밀국수, 메밀싹육회비빔국수 등 별미를 맛볼 수 있다. 335-8805~6. 토담숯불구이는 주인이 직접 기른 한우를 잡아 파는 곳이다. 아침에 맛보는 백반도 정갈하다. 336-2227. →잘 곳 : 흥정계곡 주변에 펜션들이 늘어서 있다. 이 가운데 허브솔 펜션은 복층식 구조의 목조 가옥으로 가족들이 묵어 가기에 맞춤하다. 334-4445. →주변 볼거리 : 6~22일 효석문화제가 열린다. 시차를 두고 메밀밭을 조성한 만큼 언제 가도 메밀꽃 핀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335-2323.
  • 아동돌봄시설 안전지킴이 보육교사엔 ‘인간CCTV’

    아동돌봄시설 안전지킴이 보육교사엔 ‘인간CCTV’

    ‘돌봄 시설 안전 지킴이’ 제도에 대한 보육 교사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안전 지킴이가 교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인간 폐쇄회로(CC) TV’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정부는 “감시가 아닌 모니터링”이라며 동참을 설득하고 있지만, 자발적인 참여를 기대하기 어려워 시범 사업이 미뤄지고 있다. 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 하반기부터 인천과 대구, 광주시 등의 어린이집과 아동·노인 복지시설을 대상으로 안전 지킴이 100명을 배치하기로 했다. 안전 지킴이는 시설에 출근해 보육 교사들이 아동을 돌보는 것을 지켜보고, 이 과정에서 폭행과 폭언 등 학대 행위가 있는지를 점검하는 역할을 한다. 복지부는 이를 노인 일자리 사업과 연계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기존의 노인 일자리사업은 소득이 낮은 수준으로 우선권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돌봄 시설 안전 지킴이는 퇴직 공무원이나 지역 아동위원 등 일정 자격을 갖춘 분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 초 부산의 공립어린이집 원장이 17개월 된 여자아이를 폭행하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보육시설의 아동 학대가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자 복지부는 지난 5월 ‘돌봄 시설 학대근절 대책반’을 꾸렸다. 이어 전국의 어린이집과 아동복지시설, 노인요양시설 등에 안전 지킴이와 옴부즈맨을 배치해 학대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이에 대해 보육 교사들은 “모든 보육 교사를 잠재적인 학대 행위자로 간주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측은 “비전문가의 잣대로 보육 교사들의 보육과 교육 과정을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연합회 관계자는 “전문가들이 봤을 때 교육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자녀를 키웠던 안전 지킴이의 주관적 경험으로 판단할 우려가 있다”면서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아이 사랑 부모 모니터링단’ 등과 겹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김희원(44·여·가명) 원장은 “교실 안에 앉아 아이들과 교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안전 지킴이가 곧 ‘인간 CCTV’ 아니겠느냐”면서 “교사들 사이에서는 ‘시어머니를 모셔 놓고 아이를 돌보라는 것과 같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복지부 측은 “안전 지킴이의 활동 범위와 역할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고 충분한 사전 교육을 통해 문제점을 보완할 것”이라고 밝혔다. 복지부 노인지원과 관계자는 “전문성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최대한 유사한 경력을 가진 분들을 찾아서 배치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면서 “감시가 아니라 국민의 눈으로 지켜보면서 안전한 돌봄 시설을 만들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땜질교육 끝내자] 사라진 컨트롤타워

    [땜질교육 끝내자] 사라진 컨트롤타워

    “이념적 지향성을 잣대로 제도를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제기되는 여러 문제점을 분석해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학생과 학부모 부담을 줄이고 공교육을 정상화시킬지 고민했습니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시안)을 발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전 이명박 정부가 ‘평준화 교육’보다 엘리트 양성 위주인 ‘수월성 교육’을 강조했다면 새 정부의 교육정책 목표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서 장관의 답변은 과거 교육정책을 둘러싼 진보와 보수의 이념논쟁에서 교육부가 한 발 떨어진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호응을 얻었지만, 한편으로 이날 발표한 대입제도 발전방안이 미래교육의 청사진 제시에 미흡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원은 “이번 정부는 전두환 정권 이후 교육과 관련된 대통령 자문기구를 두지 않은 유일한 정권”이라면서 “각종 회의석상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 따라 교육정책이 좌지우지하는 현상이 지속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국공립대 본고사 폐지’를 천명한 김영삼 정부의 ‘5·31교육개혁’이 대통령자문기구인 교육개혁위원회 논의 끝에 나왔고, 김대중 정부의 ‘석·박사 양성 BK21 사업’과 ‘학부제 도입’ 역시 새교육공동체위원회라는 대통령자문기구 논의를 거쳐 나온 것과 대비된다는 얘기다. 반면 이번에 교육부와 함께 대입제도 발전방안을 협의한 ‘대입제도 발전방안 연구위원회’는 교육부 장관의 자문기구 역할을 하는 연구위원회로 대통령자문기구에 비해 격이 낮다. 사회 원로보다 실무진 위주로 구성됐다. 연구기간도 지난 4월부터 5개월 남짓에 불과해 1년 이상 논의와 공론화 과정을 거친 끝에 정책을 발표한 역대 정권과 차이가 났다. 교육부가 일주일 전까지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문·이과 구분을 없애는 방안을 가장 유력한 방안으로 검토하다가 발표 직전에 돌연 입장을 바꿔 현행 수능체계를 유지하는 방안을 최우선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입장을 바꾸는 등 스스로 만든 정책에 대한 의지도 약해 보인다. 서 장관이 “현장 중심”이라고 했지만, 정작 교육현장에서는 사교육 증가와 대입 수시 체제의 혼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배경으로 교육부가 박 대통령이 언급한 현장에만 정책 역량을 집중했기 때문이란 비판도 제기됐다. 실제로 박 대통령이 지적했던 대입 전형 간소화 방안, 한국사 수능필수, 전문대와 지방대 역량강화, 자율고의 신입생 선발권 박탈 등의 정책은 새 정부 출범 6개월 만에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가뜩이나 46년간 38번 대입제도가 바뀌었다는 집계가 나오는 가운데 박 대통령 의중에 따라 갑작스럽게 교육제도가 변하는 상황에 정작 현장은 피로감을 호소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측은 “교육은 국민생활의 일부이자 삶과 밀접하므로 차분한 가운데 국민적 혼란과 갈등을 최소화하며 개혁해야 한다”면서 “제도의 장단점을 떠나 수시로 바뀌는 교육정책과 입시제도 자체가 국민이 가장 혐오하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서울광장] 변화는 의지가 관건이다/박현갑 논설위원

    [서울광장] 변화는 의지가 관건이다/박현갑 논설위원

    의지가 관건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의지 유무에 따라 삶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변화는 의지가 행동으로 구체화될 때 생긴다. 실천하지 않는 의지는 꿈일 뿐이다. 방향성도 중요하다. 미래로 인도할 가훈이나 국정운영지표 같은 지도와 나침판이 필요하다. 의지가 잘못 표출되면 그런 가정과 국가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주목할 만한 상반된 사례가 둘 있다. 지난달 시행에 들어간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이 한 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97년 대법원에서 확정한 2205억원의 추징금 중 1672억원을 내지 않고 있다. 17년째다. 그런데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 집과 친·인척 사무실 압수수색에 처남 구속 등 전광석화 같은 검찰 수사 압박에 놀랐는지 추징금을 낼 기미를 보이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아예 추징금 230억원을 다 내겠단다. 보통의 국민이라면 수천억원대 추징금을 부과받을 일이 없다. 이보다 적게라도 있다면 빚을 내서라도 갚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게다. 전 전 대통령이 최소 7000억원대로 추정되는 비자금을 17년간 굴렸다면 이자 수입만 해도 원금에 버금갈 정도로 쌓였을 터. 그런데 추징금엔 법정이자도 물릴 수 없다. 노 전 대통령은 동생과 사돈을 상대로 맡긴 비자금 350억원과 불어난 이자를 돌려 달라고 요구하다 두 사람이 자기가 낼 추징금을 대신 내는 조건으로 이에 대한 권리를 포기한다고 한다. 이자까지 치밀하게 계산하는 전직 대통령과 추징금은 형벌이 아니어서 원금 외에 체납에 따른 가산금리 부과 등 후속조치를 할 수 없다는 정부를 쳐다봐야 하는 국민들로서는 자괴감만 쌓였다. 이런 불만은 전직 대통령 추징금 환수 촉구로 이어졌고,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가 의지를 갖고 해결하려 한다. 과거 정부는 뭘 했는지 모르겠다”고 화답했다. 이런 화답에는 박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 간 악연도 한몫했을 법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후보 선출 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자택은 예방했으나 연희동은 외면했다. 집권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한 전 전 대통령에 대한 불만의 표시였을 듯하다. 결국 전두환 추징법은 사회정의를 바라는 국민 여론과 이를 받아들인 박 대통령의 의지가 빚은 성과물인 셈이다. 추징금 환수조치가 원칙 있는 사회 만들기라는 국민 의지의 실천이라면, 최근 복지정책과 세제 개편을 둘러싼 혼란은 민심과 동떨어진 지도자의 의지가 가져올 폐해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기초노령연금을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노인에게 준다는 대선공약을 대폭 축소하면서 비판을 받았기 때문인지 박 대통령은 증세 없는 복지 실현이라는, 지키기 어려운 공약에 매달리고 있다. 증세가 아니라던 세제개편안은 증세안이었다. 게다가 증세 대상은 고소득층이 아니라 중산층과 서민층이었다. 여론 질타에 하루 만에 세제개편 수정안을 내는 국정운영도 그 진정성을 의심케 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의 중산층 잣대로 증세대상을 삼았다지만 조령모개 행정의 전형 같아 우울할 따름이다. 살림살이가 늘면 쓸 돈도 늘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국민은 복지 수혜자이면서 납세자이다. 세금은 피하고 싶고 무상보육과 급식, 무상교육에는 환호한다. 이 같은 이중적 정책환경을 인식하고 복지공약을 줄이든지, 세금을 더 걷든지 합리적 방향으로 정책을 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복지위기에 따른 폐해가 먼 나라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 될 수 있다. 국가부도 위기사태에 처한 그리스에서는 앞치마 대신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성매매에 나서는 가정주부들이 부쩍 늘고 있다고 한다. 아버지가 실직하면서 버스요금 1.20유로(약 1800원)가 없어 몰래 버스에 탔던 19세 학생이 무임승차 단속원을 피해 달리던 버스에서 뛰어내려 결국 숨지는 사태가 있었다. 국민을 성매매로, 죽음으로 내모는 일만은 피해야 하지 않겠나. eagleduo@seoul.co.kr
  • [서울광장] 언제부턴가 우린 다시 돌을 들었다/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언제부턴가 우린 다시 돌을 들었다/진경호 논설위원

    돌밖에 없었다. 그것 말고는 내던져 저항할 수단이 없었다. 모두가 나와 돌을 던졌다. 그렇게 1987년 민주화 체제를 만들었다. 돌로 불의(不義)를 깼고, 그 돌을 모아 민주의 초석을 놓았다. 20여년이 흐르고 6명의 최고권력을 내 손으로 뽑아 더는 돌 들 까닭이 없을 듯한 지금, 우리는 돌을 들고 있다. ‘공공의 적’이 사라진 자리에 ‘그들’, 네 편을 세워놓고 연신 돌을 던진다. 엄혹했던 시절의 단일대오는 깨졌고, 오로지 내 편과 네 편이 남았다. 민주주의는 정치 체제가 아니라 사회의 상태를 뜻한다는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말이 옳다면 우리는 여전히 민주화의 과정을 밟고 있을 뿐이다. 사회는 날로 다원화되고 있으나 모 아니면 도만 있을 뿐 개, 걸, 윷은 없는 우리에게 민주는 아직 기다릴 대상일 뿐 누릴 대상이 아니다. 오랜 무명에서 벗어나 ‘직렬 5기통’ 막춤을 신나게 추어대기 시작한 크레용팝 다섯 아이들에게 ‘일베충’ 어쩌고 하며 돌을 던지고, 몇 마디 트위트로 ‘개념 연예인’에 오르면 그 뒤론 하품만 해도 수천, 수만의 ‘닥치고 지지’를 받거나 ‘묻지마 저주’를 받는, 누구나 마녀이고 마녀사냥꾼인 이 땅엔 아직 민주의 날이 오지 않았다. 나와 다름을 포용하는 민주주의를 우린 아직 갖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정치? 그래 맞다. 정치가 문제다. 대권을 차지한 쪽과 잃은 쪽만 있을 뿐, 너도 옳고 너도 옳다고 말할 황희 정승을 갖지 못한 정치가 문제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의 실체를 규명하겠다며 청문대에 세운 증인에게 “광주 경찰이냐”고 따지고, 맞은편 증인에겐 “당신은 진골TK”라고 일갈하는, 천박하고 악한 편 가르기 정치가 문제다. 그렇게 갈라놓고 그 틈새에 제 둥지를 틀려 드는 싸구려 정치가 정말 문제다. 한데, 한데 정녕 정치만 문제일까. 이런 정치를 부추기는 언론은 어떤가. 새해가 열리면 큼지막한 사설로 사회 통합을 목청 높여 부르짖고는 이튿날부터 툭툭 손 털고 남은 364일을 아무런 가책 없이 편 가르고 쪼개는 데 몰두하는 언론은 정녕 문제가 아닌가. 200여년 전 서구 정당의 당보에서 출발한 태생의 한계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언제부턴가 우리 신문은 정파지의 본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곤 사회 갈등의 첨병이 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자랑스러워하는 존재가 됐다. 비판이라는 소명을 앞세워 ‘적진’을 매도하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내 편의 적의(敵意)를 일깨운다. 진영의 논리만 앞세울 뿐 사회를 하나로 묶으려 아등바등하지 않는다. 5년 전 소고기 촛불시위 때에도, 그 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논란 때에도, 그리고 국정원 대선 개입 논란으로 정국이 후끈 달아온 지금도 언론은 편을 가르느라 동분서주한다. 갈등 속에서 정치와 언론이 먹고살고, 먹고살기 위해 다시 사회를 갈라 놓는다. 언론학자 터크만은 “뉴스란 세상을 향한 창이며, 사람들은 그 창으로 세상을 보고 알게 된다”고 했다. 언론이 어떤 잣대로 세상을 보고 전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보는 세상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언론이 세상을 그리고 만든다는 말이다. 아전인수에 침소봉대로 무장한 언론이 박수를 받는 한 우리는 늘 뒤틀리고 갈라진 세상에서 허덕이게 된다. “권위가 사라진 세상에서 평등화에 대한 대중들의 욕구는 자기 의사를 저버리고 오로지 다수의 의견을 추종하게 만들 것”이라고 토크빌은 우려했다. 그래서 결국 다수의 횡포가 민주주의를 전제적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걱정했다. 어른이 없는 사회다. 심판이 돼야 할 언론마저 공을 차고 있다. 민주주의의 변질, 즉 ‘머릿수가 곧 권력’인 속성으로 인해 저마다 ‘다수’가 되려 두 손에 돌을 쥐고 마주 서는, 왜곡되고 병든 민주주의로 우리가 가고 있다. 대체 지금 누가 이 만인을 향한 만인의 투석전을 말릴 것인가. 언론에 기생하는 정치를 탓하기 전에 언론을 탓하고, 그런 언론이 먹고살 수 있도록 만든 우리를 탓해야 한다. jade@seoul.co.kr
  • [데스크 시각] 특허전쟁, 오바마의 ‘판단 미스’/최용규 산업부장

    [데스크 시각] 특허전쟁, 오바마의 ‘판단 미스’/최용규 산업부장

    단순하게 보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생각이 크게 틀리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에서 오바마가 애플 손을 들어준 것 말이다. 오바마가 최근 삼성의 표준특허를 침해한 애플 제품에 대해 미국 수입을 금지한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의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오바마가 ‘애플 편을 든 것’은 표준특허를 형식논리로만 접근한 데서 기인한다. 표준특허는 상용특허와 달리 특허권자가 누구에게나 무조건 허여(許與)해야 할 대상으로만 본 것이다. 오바마가 표준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애플 제품의 수입 금지를 신청한 삼성이나 이를 수용한 ITC에 대해 ‘이것은 로열티 협상의 문제이지, 수입 금지 대상은 아니다’고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이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오바마의 이런 시각은 형식 그 자체에 매몰돼 형식이 담고 있는 내용을 보지 못했다는 오류를 안고 있다. 표준특허는 상용특허와 달리 공공성과 돈(특허료), 양자가 섞인 개념이다. 표준특허, 즉 표준기술이 없으면 제품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표준기술 정신은 문턱을 낮추고 개방하는 데 있다. 그럼 ITC가 표준특허와 상용특허도 구분하지 못했겠는가. ITC는 허여 못지않게 ‘문턱’도 인정했다는 사실을 오바마가 간과한 것은 아닐까 싶다. ITC의 애플 제품 수입 금지 결정의 잣대가 표준특허와 상용특허라는 구분이 아니라 표준특허라 해도 문턱, 즉 협상을 통한 합당한 특허료를 내야 한다는 뜻임을 오바마가 직시했어야 했다. 애플은 삼성의 표준특허를 쓰면서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사와 비교할 수 없는, 그야말로 ‘똥값’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이는 애플이 삼성의 표준특허 가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대접에 삼성이 ITC에 애플 제품 수입 금지 신청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사달이 나기 전에 애플은 삼성의 특허권을 무시할 게 아니라 삼성이 제시한 특허료를 놓고 성실하게 협상을 벌였어야 했다. ITC도 애플의 불성실한 협상에 문제를 삼았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오바마의 거부권 행사는 강한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오바마 개인으로 볼 때도 득 될 게 없다. 왜냐하면 오바마의 거부권 행사는 보호무역주의의 대표적인 판정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보호무역주의의 선봉에 선 것으로 낙인 찍힐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번 일이 오바마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오바마 식대로라면 표준특허를 갖고 있는 기업은 누구도 수입 금지 신청을 할 수 없게 된다. 문제는 미국에 애플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많은 표준특허를 갖고 있는 퀄컴 등 미국의 다른 기업들이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들 회사가 중국이나 인도 등 다른 나라에서 특허권을 사용하려고 하면 다른 나라 정부 역시 오바마와 똑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오바마의 거부권 행사에 미국의 무역 및 외교 관계자들이 미국의 전반적인 무역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걱정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심지어 두개의 상업적 플레이어(삼성과 애플)가 정면으로 대립하는 상황에 미 정부가 개입한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직설적인 비판까지 받고 있다. 이런 사정들을 고려할 때 이번 오바마의 결정은 ‘판단 미스’다. ykchoi@seoul.co.kr
  • [사설] 3년째 혁신기업 한곳도 배출 못한 한국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100대 혁신기업’에 우리나라는 올해도 끼지 못했다. 상위권은 고사하고 100위 안에 든 기업이 단 한 곳도 없다. 2011년부터 명단을 뽑고 있으니 3년째 입성 실패인 셈이다. 포브스의 순위가 혁신을 재는 절대 잣대는 아니지만 조사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그 어떤 한국 기업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기업환경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쫓아 가는 일본이 11개, 우리를 쫓아 오는 중국이 5개를 배출한 것과도 대조된다. 포브스가 밝힌 ‘혁신’ 평가기준은 최근 1년간 매출 성장률, 5년간의 연간 투자 총수익, 자체 산정한 혁신지수 등이다. 아시아 기업 가운데 가장 높은 등수인 6위를 차지한 중국 검색포털사 바이두는 외형(매출 성장률 44.6%)과 내실(5년간 투자총수익률 32.8%), 혁신지수(60.6점)에서 괄목할 만한 성적을 냈다. 1위를 차지한 미국 소프트웨어사 세일즈포스닷컴은 1999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한 신생기업이지만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최우선순위에 두면서 제품이 아닌 서비스(소프트웨어)를 빅히트시켰다. 반면,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 사후 혁신이 사라졌다는 평가를 듣는 애플은 79위로 추락했다.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곧바로 도태되는 게 혁신의 요체인 것이다. 현 정부는 창조경제를 핵심 의제로 내세우고 있다. 아직도 개념 정의가 분분하기는 하지만 창조경제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혁신이다. 혁신기업이 없다고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부터 치우는 게 우리나라의 급선무다. ‘이러이러한 것만 해라’(포지티브 방식)에서 ‘이러이러한 것만 하지 마라’(네거티브 방식)로 한 단계 진화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넘쳐나는 규제들과 공정경쟁을 저해하는 기업환경 등이 혁신 의욕을 꺾는다. 벤처 1세대로 꼽히는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가 “혁신은 보상하되 혁신이 없는 과도한 수익은 제한하라”고 촉구한 것이나, ‘혁신의 아이콘’ 구글이 ‘나쁜 짓을 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다’고 강조한 것은 각각에 따르는 논란을 떠나 이런 점에서 새겨들을 만 하다. 갈수록 희미해져 가는 기업가정신의 회복도 혁신의 필수요소임은 말할 것도 없다.
  • FX사업 탈락사들 “수긍 못해” 반발… ‘불합리한 잣대’ 주장도

    차기 전투기(FX) 사업의 가격 입찰이 끝난 지 사흘이 흘렀지만, 탈락 업체의 반발 등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총사업비 8조 3000억원을 초과한 입찰가를 적어 내 경쟁에서 사실상 배제된 F35A(록히드마틴)와 유로파이터 타이푼(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의 반발이 예상 외로 거세 새달 방위사업추진위원회까지 논란은 증폭될 전망이다. 유로파이터의 입찰 서류에 하자가 발생해 부적격으로 처리했다는 방위사업청 발표와 관련, 크리스티앙 셰러 EADS 해외사업본부장은 19일 “한국의 제안요청서(RFP) 범위에서 계약을 위반한 사항이 없으며 법적 자문에서도 문제가 없다고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전날 방사청의 긴급 발표에 대한 반박인 셈이다. 셰러 본부장은 “그동안 한국 당국이 유로파이터에 요구하는 복좌기(2인승) 대수가 과도하다는 입장을 밝혀 왔고 (유로파이터는) 15대 복좌기를 약속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부적격 사유가 된 ‘무장체계 통합’ 문제에 대해서는 “방사청이 요구한 추가 성능에 따른 비용인데, 사업비에 추가 부담하라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도 이날 ‘록히드, 한국의 전투기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란 기사에서 “록히드마틴은 성명을 통해 ‘한국 정부로부터 아직까지 가격입찰 결과에 대한 공식 통지를 받지 않았다. 우리는 한국에 F35A를 제안한 미국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하는 작업을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앞서 록히드마틴 고위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입찰 가격이 총사업비를 초과하더라도 결국에는 김관진 국방장관과 그 위의 ‘시니어그룹’에서 올바른 판단을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입찰 결과와는 무관하게 정부가 F35A를 선택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어서 향후 방추위의 결정이 주목된다. 이 같은 논란은 방사청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방사청은 최근에야 전체 배점의 15%에 불과한 총사업비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다른 항목에서 아무리 좋은 점수를 받아도 적격 기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발표했다. 또한 입찰이 시작된 이후에도 예산 증액을 시도한 탓에 참가 업체들의 신뢰를 잃었다. 유럽계인 유로파이터에 대해 미국의 F15SE(보잉)나 F35A보다 상대적으로 불합리한 잣대를 들이댔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방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복좌기나 무장체계 통합 개발 등 경쟁사(F15SE·F35A)에 하지 않은 요구를 유로파이터에 한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휴가금지 을지연습 때 외유성 출장…지방의회·사무처는 감사 사각지대

    공무원들의 휴가가 금지되는 을지연습 기간에 충남도의회가 외유성 해외방문에 나서면서 지방의회와 사무처의 예산 낭비를 견제할 만한 수단이 없다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2011년부터 시행된 지방의회의원 행동강령에 따라 국민권익위원회는 각 의회 특성별로 조례를 제정하고, 징계 등을 하는 행동강령자문위원회를 설치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17개 광역자치단체 의회 가운데 조례를 제정한 곳은 한 군데도 없다. 227개 기초의회 가운데 10%도 안 되는 24곳만 조례를 제정했다. 공무원 행동강령을 따라야 하는 지방의회 사무처는 감사의 사각지대로, 시민단체인 위례시민연대의 정보공개청구 결과에 따르면 17개 광역지차체 가운데 감사 실적은 3곳밖에 없다. 국민권익위 관계자는 19일 “을지연습 기간에도 공무원들의 해외출장은 가능하기 때문에 충남도의회의 해외방문을 도덕적으로는 비난할 수 있지만 법령 위반 사실은 없다”며 “1인당 757만원의 해외방문 경비도 직무관련 단체의 여비 지원을 받지 않았고, 예산 승인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권익위는 지방의회에 대한 부패 신고가 들어와야만 위반사항에 대한 점검이나 조사에 나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윤화섭 전 경기도의회 의장도 여행경비를 지원받아 프랑스 여행을 다녀왔다는 의혹이 언론을 통해 제기된 가운데 행동강령 위반신고가 들어와 권익위가 조사를 했다는 것이다. 윤 전 의장은 권익위의 행동강령 위반 통보로 결국 지난달 사퇴했다. 권익위는 전국시도의회 의장단협의회에서 의원 행동강령 조례안을 “의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볼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제정하지 않기로 한 것에 대해 ‘일종의 담합’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윤 전 의장의 사퇴를 계기로 광역의회 가운데 최초로 경기도의회에서 조례안이 운영위윈회를 통과하는 등 행동강령 제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 권익위 측은 “도덕적 잣대인 행동강령 조례는 청렴하고 공정한 지방의회의 토대”라고 설명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MLB] 홈 경기·팀 상승세… 괴물 12승에 한걸음 더

    ‘도깨비 방망이 경계령’ 류현진(26·LA 다저스)이 14일 오전 11시 10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리는 미프로야구(MLB) 뉴욕 메츠와의 홈 경기에 선발 등판, 시즌 12승에 도전한다. 전반기 마지막 등판에서 5실점하며 2점대 평균자책점이 깨졌던 류현진은 지난 9일 세인트루이스전에서 11승째(3패)를 챙기며 후반기 4경기에서 4연승을 내달렸다. 특히 구위의 잣대인 평균자책점에서 2점대(2.99)로 복귀해 무서운 상승세임을 한껏 과시했다. 류현진 승리의 청신호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우선 메츠는 류현진이 상대하기 버기운 강팀이 아니다. 여기에 다저스가 패배를 잊고 연일 승전고를 울리는 데다 절대 강세인 홈 경기여서 기대치가 더욱 높다. 류현진은 이미 메츠와 한 차례 격돌했다. 데뷔 5번째 등판이던 지난 4월 26일 뉴욕 원정에서 비록 승리를 따내지는 못했지만 7이닝 동안 삼진 8개를 솎아내며 3안타 1실점으로 막았다. 갈수록 위력을 더하는 류현진의 슬라이더와 체인지업까지 감안하면 상대 타선을 잠재우기에 충분하다. 현재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3위인 메츠는 팀타율 .238로 리그 15개 팀 중 14위이다. 팀홈런은 101개로 10위, 장타력도 .374로 13위에 그쳐 타격은 약체로 평가된다. 메츠의 간판 데이비드 라이트(타율 .309, 홈런 16개)가 부상으로 빠진 것도 호재다. 그러나 메츠는 득점력 7위로 찬스에 무척 강하다. 만루에서 홈런을 4방이나 폭발시켜 ‘도깨비 타선’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물론 ‘한 방’을 자랑하는 거포도 있다. 말론 버드가 류현진의 경계 대상이다. 우타자 버드는 타율 .279에 그쳤지만 17홈런, 60타점으로 중심 몫을 거뜬히 해내고 있다. 특히 좌투수 상대로 타율 .314를 기록하고 있고 4월 첫 대결에서도 1안타를 뽑아 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류현진은 홈에서 진가를 더한다. 다저스타디움에서 5승 1패에 평균자책점은 1점대(1.83)이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6승 4패, 평균자책점 1.59)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게다가 다저스는 13일 메츠전에서 4-2로 역전승을 거둬 6연승을 질주했다. 후반기 21승 3패 등 6월 23일 이후 벌어진 46경기에서 38승 8패(승률 .826)라는 기적 같은 성적을 내고 있다. 결국 류현진이 마운드에 서 있는 동안 팀 타선이 상대 선발 맷 하비를 얼마나 두들기느냐가 류현진 12승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사설] 불명확한 중산층 기준이 과세혼란 키운다

    중산층 봉급생활자의 세 부담을 늘린 세제개편안을 놓고 불만이 팽배하다. 박근혜 정부는 애초 공약이행 예산 135조원을 증세 없이 세출 절약, 지하경제 양성화 등으로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새 정부 출범 6개월 만에 경제불황 등으로 ‘증세 불가피’로 입장이 바뀌었고, 우리도 일정 부분 이를 수긍할 만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번 개편안이 증세의 부담을 중산층과 저소득층에 지운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효율성을 고려한 전체적 방향은 맞지만, 중산층의 기준을 너무 낮게 잡은 것이 문제다. 정부는 고소득자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 서민과 중산층에 나눠 주겠다고 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이런 인식의 차이는 중산층의 기준을 너무 낮게 잡은 데서 비롯된다. 정부가 세 부담을 늘릴 대상으로 판단한 중산층의 기준은 연소득 3450만~5500만원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잣대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국민이 체감하는 중산층은 다르다. 대출 원리금, 건강보험료 등 경직성 경비와 교육비 등을 빼고 나면 5000만원을 벌어도 쓸 수 있는 돈, 즉 가처분소득은 많이 줄어든다. 통계적으로는 중산층에 속할지라도 ‘무늬만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1년에 16만원을 ‘거위 깃털’ 정도로 볼 수 없을 만큼 저소득 서민층과 다름없이 이들의 생활은 각박하다. 중산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중산층이라며 세금을 올리려 하니 반발을 사는 것이다. 국민이 생각하는 중산층 기준은 더 높다. 한 민간연구소의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4%가 연간 총소득 7000만원은 돼야 중산층이라고 답했다. 더욱이 정부는 그때그때 다른 기준을 적용해 혼란을 부추겼다. 2008년에는 중산층 기준을 과세표준액 8800만원으로 잡았다. 연소득으로 치면 1억 2000만원이다. 4·1 부동산 대책을 발표할 때는 연소득 6000만원까지를 중산층으로 봤다. 어제 박근혜 대통령은 세법개정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당정은 세 부담을 늘리는 기준점을 345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앞으로 서민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끌어내도록 머리를 맞대기 바란다. 결국 부족한 세원을 메우려면 소득세 최고구간을 상향 조정하는 등 고소득층의 세금을 늘리는 길밖에 없다. 더불어 고소득 전문직종의 탈세도 철저히 단속해 세원을 확보하면서 봉급생활자들이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 [한국형 창조경제 성공으로 가는 길] (1부) ⑥ 한국형 ‘히든 챔피언’을 꿈꾼다 - 韓·獨 정부연구소 비교

    [한국형 창조경제 성공으로 가는 길] (1부) ⑥ 한국형 ‘히든 챔피언’을 꿈꾼다 - 韓·獨 정부연구소 비교

    “연구회 본부가 뭘 하는지 정확히 모릅니다. 때맞춰 충분한 예산을 집행하고, 우리는 연구를 충실하게 진행하면 되는 거죠.” 독일 막스플랑크 정보학연구소의 베르람 소미에스키 박사는 연구소의 총괄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뮌헨에 있는 막스플랑크연구회 본부의 체제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소미에스키 박사는 “연구회 본부가 독일 전역에 있는 90여개의 막스플랑크 연구소들을 지원하고 운영하는 책임을 맡고 있지만, 100년 넘게 안정적으로 운영돼 온 만큼 연구소들이 본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뮌헨 연구회 본부 역시 산하 연구소들이 어떤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지 매년 세세하게 보고를 받거나 챙기지 않는다. 한국의 과학기술 관련 25개 정부 출연 연구소들이 연간 사용하는 예산은 4조원, 고용 인원은 2만여명에 이른다.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설립되면서 태동한 출연연은 자동차와 컴퓨터 등 한국 산업의 기초를 닦았고, 한국을 정보통신산업(ICT) 강국으로 도약하게 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출연연은 표류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출연연이 무엇을 하는 곳인가에 대한 역할 논란이 이어지고, ‘누가 출연연을 컨트롤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지배구조 역시 누더기다. 과거 ‘정부 주도 과제’를 맡았던 출연연의 역할이 축소된 데 따른 당연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출연연의 한 관계자는 “한국 출연연과 국책연구소들은 독일식 연구회 체제를 모태로 해 탄생했지만, 형식만 빌려 왔을 뿐 내용은 전혀 벤치마킹이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출연연은 ‘중소기업 기술이전’, ‘특허 상용화’, ‘창조경제 과제 발굴’ 등의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막스플랑크, 프라운호퍼, 라이프니치, 헬름홀츠 등 독일 4대 연구회는 한국에 기초기술연구회, 산업기술연구회, 경제인문사회연구회 등으로 변형돼 도입됐다. 기초, 응용, 거대과학 등의 임무 아래 특화된 연구소들을 운용하고 있는 점, 이사회 체제까지 비슷하다. 하지만 연구회의 권한이나 역할, 운영방식, 예산조정 등은 전혀 다르다. 가장 큰 문제는 독일 연구회의 근간인 ‘하르나크 원리’가 한국에 없다는 점이다. 1911년 아돌프 폰 하르나크가 제안한 하르나크 원리는 ‘해당 분야의 연구와 관련된 인사 및 예산 권한은 그 분야의 탁월한 학자에게 일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드레스덴에 위치한 프라운호퍼 비파괴연구소의 지그프라이트 크라우스 부소장은 “연구회는 적합한 소장을 뽑는 절차만 진행하고, 나머지는 다 맡기는 만큼 역할 논란은 있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독일 연구회 모토의 기반은 ‘신뢰’라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는 미래창조과학부가,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총리실이 전권을 갖고 있다. 수장이 연임되는 경우는 드물고 정권이 교체되면 경질 논란에 시달린다. 이사장은 물론 소장들까지도 ‘낙하산’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정치력이 중요한 잣대이다 보니 ‘대표적인 학자’가 소장이 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연구회가 힘이 없으니 연구소의 자유 역시 보장되지 않는다. 꼭 필요한 정규직 직원 한 명을 뽑을 때도 기획재정부, 안전행정부, 미래부 등에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평가 시스템 역시 문제다. 독일 연구회는 평상시 연구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지만 5년마다 강도 높은 연구소 성과평가를 실시한다. 당초 연구소 설립 목표가 충족됐거나 가망이 보이지 않는 연구소는 곧바로 ‘폐쇄’ 절차에 들어간다. 반면 한국의 출연연은 매년 평가와 감사를 받지만 예산 유용이나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조차 경고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독일과 한국의 또다른 차이는 ‘투자 방식’이다. 프라운호퍼에는 1973년부터 ‘프라운호퍼 모델’이 적용되고 있다. 전체 예산의 40%에 해당하는 정부 지원금은 모두 ‘불확실하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연구’에 투자한다. 기업이나 개인으로부터 지원받는 나머지 60%의 예산은 명확한 결과물이 나와야 하는 만큼 미래를 위한 투자는 정부가 맡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출연연은 당초 연구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예산을 안정적으로 받고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애초부터 도전적인 연구는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기초연구에 투자하는 막스플랑크의 경우에는 별도의 ‘기금 재단’을 운용하고 있다. 개인이나 기업의 지원을 받아 모은 연구비를 사회적 가치가 있는 연구나 혁신적인 연구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방식이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막스플랑크재단이 기부나 자산 운용을 통해 조성한 기금은 3000만 유로(약 445억원)를 넘고 모두 연구비로 투자됐다. 바스프, 바이엘 등 독일 대기업들도 정기적으로 기금 조성에 나선다. 기부금을 낸 개인은 ‘자신이 원하는 연구’를 막스플랑크에 제안하거나 연구소 정기 방문, 노벨상 수상자와의 만남 등의 혜택을 받는다. 글 사진 자르브뤼켄·드레스덴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 연보·계보나무·통계 그래프·미술관 웹사이트까지…독창적인 눈으로 들여다본 ‘시각적 표상’

    연표란 역사적 사실을 순서에 따라 표로 정리한 것이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시기와 바뀌어 온 모습, 역사의 전반적 흐름을 알기 쉽게 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책으로 된 것, 보관하기 쉽게 가로로 만든 것, 그림이나 사진을 넣어 만든 것 등 그 모양도 다양하다. ‘시간 지도의 탄생’은 한마디로 ‘연표의 역사서’다. 저명한 역사학자들인 두 저자는 “역사가들이 문자로 기록된 사료만을 중요한 분석 대상으로 삼아왔을 뿐 시각적 표상이 제기하는 형식적이고 역사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면서 “시각적 표상이 정보를 조직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 가운데 하나인데도 역사 차트나 도표에 관한 저술은 거의 존재하지 않아 이 같은 책을 낸다”고 밝히고 있다. 책은 서구의 고대와 중세, 근대, 오늘날을 종횡으로 오가며 연보, 계보나무, 지도, 통계 그래프, 미술관 웹사이트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시각적 표상에 대해 꼼꼼하고 독창적인 해석의 잣대를 들이댄다. 지은이들이 이처럼 다양한 이미지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하는 시간의 흔적은 다름아닌 선(線)이다. 역사가들은 강의실에서 흔히 타임라인(timeline)이라고 부르는 간단한 선형(線形) 도표를 활용해 무겁고 따분한 역사서를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책으로 멋지게 변신시킨다. 미국 시카고대 W J T 미첼 교수(미술사)의 말마따나 우리는 시간이 ‘길다’ ‘짧다’고 말한다. 또 시간의 ‘전’과 ‘후’를 얘기하고 시간의 ‘간격’을 말한다. 시간의 선들은 어느 곳에서는 노골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다른 곳에서는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있지만, 어쨌든 그 모든 시간의 시각적 표상 속에 확고하게 존재한다. 연보 등의 자료와 관련해 서구의 것들만 사용하고 한국, 중국 등 동양의 것들이 전혀 눈에 띄지 않은 점이 다소 아쉽다. 하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나 역사학자, 역사학도라면 책이 다루는 내용의 방대함과 수준 높은 논의에 시선을 줄 만할 것 같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 [시론] 부정청탁 금지법, 이젠 국회가 나설 때/최진욱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시론] 부정청탁 금지법, 이젠 국회가 나설 때/최진욱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한국은 세계 15위권의 경제력을 보이고 있다. 1960년대 초반만 해도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채 되지 않은 최빈국에서 선진국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경제 성장을 한 것은 가히 기적과도 같다. 반면 2012년 정부의 부패 정도를 나타내는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는 세계 45위에 그쳤다. 최근 전·현직, 직위, 부처를 막론하고 연일 쏟아져 나오는 공직 사회의 부패 사건은 청렴에 관한 우리나라의 현 주소이다. 부패에는 거의 필연적으로 공직자가 개입되어 있다. 공직 사회의 부패를 척결하지 않는 한 부패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부패가 발생하는 복잡성만큼이나 그 해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패에 가담한 공직자에 대한 예외 없는 처벌과 함께 부패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중요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부패 인식에 관해 선진국 수준으로 평가받는 홍콩과 싱가포르도 과거 극심한 부패를 그렇게 해결했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는 부패 방지를 위한 중요한 법 제정을 추진하였다. 공직자가 알선·청탁이나 사적인 이익에 매몰되어 공직을 개인적 이익 추구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부정청탁 금지법)이 그것이다. 그렇게 추진되었던 이 법이 입법예고 이후 1년 동안 논의를 거쳐 드디어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국회에 제출되었다. 입법예고 기간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것에 비해 과잉처벌을 우려하는 정부 부처와 협의를 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국무회의를 통과한 정부안이 원안보다 후퇴했다는 비판적 시각도 제기되고 있는 등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부분은 공직자가 금품을 수수할 때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에 대한 규정이다. 원안에서는 100만원을 초과한 금품을 수수한 경우에는 형사 처벌, 100만원 이하인 경우에는 과태료를 물리도록 하였다. 이번에 국회에 제출된 정부안에서는 직무와 관련하여 또는 직위나 직책 등에서 유래하는 사실상의 영향력을 통하여 금품을 수수한 경우는 형사 처벌하는 것으로 조정되었다. 그 외에 직무와 관련 없는 금품은 기부, 후원 등 명목 여하를 불문하고 과태료로 제재한다. 정부안은 무조건 공직자를 형사 처벌하는 것보다, 엄하게 처벌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기준점을 무엇으로 정할 것인지를 고민한 결과물이다. 직무관련자가 제공하는 금품은 향후 청탁을 위한 일종의 ‘보험적 성격’이 있기 때문에 100만원보다 적은 금액이라고 해도 엄격한 잣대로 처벌해야 하는 것이 옳다. 이번 정부안은 이러한 부분이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원안에 비해 약화된 것만은 아니다. 후퇴, 반쪽짜리 논쟁보다는 우리 사회의 청탁 관행과 공직부패 근절을 위해 향후 국회에서 부정청탁금지법의 취지가 훼손되지 않고 국민의 기대를 담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 할 때이다. 실제 이 법은 대가성 없는 금품수수 금지만이 아니라 부정청탁의 금지,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라는 의미 있는 장치들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부정청탁 금지는 일반 공직자보다 국회의원 등 정치인이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조항이다. 최근에도 한 국회의원이 지역구 교육감에게 인사 청탁하는 문자를 보낸 것이 문제된 적이 있다. 이제 이 법의 통과는 국회에 달려 있다. 우리 사회의 불신 중 국회와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가장 무겁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특권을 내려놓고 이 법의 통과에 나서야 할 때이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에 제출된 부정청탁금지법이 국회의원의 손에서 온전히 그 초심을 지켜갈 수 있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희망해 본다.
  • 독일서 만난 ‘낯선 자아’와의 더부살이

    독일서 만난 ‘낯선 자아’와의 더부살이

    ‘이 동네 민들레꽃은 너무 크고 징그러워/언제든 비교하는 내 안의 이방인, 너를 데리고 다니기가 버겁다’(이방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지원하는 레지던스 작가로 지난해 봄과 여름을 독일 베를린에서 보냈던 김이듬(44) 시인. 스스로를 ‘열려 있다’고 생각했던 그는 그곳에서 ‘내 안의 이방인’과 더부살이를 했다. “사물이나 사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가 있던 곳과 비교해 뭐가 더 낫고 낫지 않은지 잣대를 들이대고 있더라고요. 편견이 많고 이물덩어리인 나, 지질한 자아가 자꾸 보였어요.” 이렇게 낯선 자아와 인연, 풍경, 사건들과 조우했던 5개월여의 시간이 67편의 시로 쓰여졌다. 그의 네번째 시집 ‘베를린, 달렘의 노래’(서정시학)다. 시편들은 전작에서 보여줬던 팽팽한 긴장과 불안, 격렬한 사유를 한 움큼 덜어냈다. 대신 “자유의지로 선택한 유배지에서 겪었던 수많은 순간들을 지상중계로 전한다”는 허수경 시인의 발문처럼 자유롭게 부유하며 때로는 감성 어린 기행에세이로, 때로는 상냥한 편지로 날아든다. ‘저는 환희 속에 시를 써 본 적이 없어서/당신을 만난 기쁨 때문에 시를 쓸 수 없어서/편지를 씁니다’(손수건 나무) 시의 고백대로 시인은 그간 괴로움과 슬픔 속에서 시를 잉태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방의 땅에서 그는 변화를 겪었다. “그간 투덜거리는 시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파독 광부·간호사 등 이민자, 유학생 등 추운 땅에서 고생해온 분들을 만나니 내가 생각했던 잔혹함이 더 큰 잔혹함을 겪었던 사람들 속에선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더군요. ” 베를린에서 맺은 인연들은 “네가 해를 가져왔다”고 시인을 담뿍 반겼다. 이제 남겨두고 온 사람들에게 떠나온 시인은 시로 태양을, 온기를 건넨다. ‘나보다 훨씬 가난한 여자들이 나를 위해 곰 인형을 샀다 아마도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싱거운 소리를 하다가 가을이 오면 같은 유행가를 큰소리로 부르는 거 그들이 읽어주는 시를 듣고 인상 쓰는 거 울지 않고 포옹하는 거 먼저 뒷모습을 보여주는 거 돌아와서 불을 켜고 더 깊이 외로울 거’(태양이 머무는 곳) 급할 때면 터지던 모국어가 태아를 길러낸 자궁 속 양수처럼 자신이 발현한 물과 같다는 깨달음도 찾아왔다. ‘목 근처에 오크목보다 좋은 향기가 나는 이온수로 가득 찬 이동식 욕조가 있습니다 이 안에 태아가 있다면 푸르스름하고 미성숙한 뼈를 가진 아가가 있다면 그 애는 자궁으로 가게 하세요(…중략) 몸을 씻은 후에 들어오지 말고 눈물과 오물, 고름을 닦아내지 말고 오세요(…중략) 욕을 할 때의 모국어는 나를 지원합니다 슬프게 합니다 당신은 여러 면에서 불결하고 매력적인 모국입니다’(모국어)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사설] 애플 감싼 美, 삼성 어떻게 대할지 지켜보겠다

    미 무역대표부(USTR)가 어제(현지시간) 삼성전자의 특허를 침해한 애플의 구형 스마트폰 제품을 미국 시장에 수입하지 못하도록 한 국제무역위원회(ITC)의 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사실상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조치다. 이에 힘 입어 애플은 특허 침해에도 불구하고 아이폰4와 아이패드2 등 중국에서 생산되는 구형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제품을 계속 미국으로 수입해 판매할 수 있게 됐다. USTR이 ITC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1987년 이후 26년 만의 일로, 미 행정부가 자국 기업의 이익을 지키려 노골적인 보호무역주의를 불사하고 나선 셈이다. 이로써 지난 2011년 4월 애플의 제소와 이후 삼성의 맞제소로 시작돼 세기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은 2년 만에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귀결될 공산이 커졌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과 국제 무역질서에 미칠 파장을 가늠하기 이전에 당장 오는 9일 삼성의 애플 특허 침해 여부에 대한 ITC의 최종 결정과 이에 따른 향배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ITC는 예비판정을 통해 삼성의 몇몇 제품이 애플 특허를 침해했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예비판정이 최종판정에서 뒤집어지는 경우가 희박한 점을 감안하면 삼성으로선 특허 침해 결정과 함께 갤럭시S2와 넥서스10 등 몇몇 구형 스마트폰을 미국 시장에 내다 팔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릴 것으로 보인다. 삼성 특허를 침해한 애플은 미 정부의 극단적 보호조치 아래 버젓이 자기 제품을 미국 시장에서 팔고 삼성은 등을 떠밀리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지난 2년의 삼성·애플 간 특허소송에서도 미국 법원의 배심원 평결은 영국이나 독일 등과 달리 과도하게 애플 편향으로 기울어 국제적 빈축을 사온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미 행정부의 거부권 행사는 이를 넘어 세계 공정무역 질서의 근본을 뒤흔드는 일방통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으로서는 미국 시장 판매 여부를 떠나 애플과의 손해배상 맞소송전과 막후 협상 등에서 지극히 불리한 처지로 내몰리게 됐다. 일각에선 올해 안에 애플에 백기투항하든지, 아니면 출혈을 감수하고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장기전으로 끌고 가든지 최악과 차악의 선택만 남았다는 관측도 나온다. 두 기업이 어떤 선택을 하든 미 행정부가 지구촌 최대의 보호무역국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으려면 삼성에 대해서도 애플과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야 할 것이다. USTR 측은 거부권 행사 이유로 “미국 경제의 경쟁 여건과 미국 소비자들에게 미칠 영향을 감안했다”고 했다. 경쟁은 공정해야 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은 보장돼야 한다는 논리는 삼성에도 적용돼야 할 것이다. 정부도 비상한 관심을 갖고 미 행정부 움직임에 적극 대응해야 할 것이다.
  • ‘사초 수사’ 檢, 이지원 정밀분석 착수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참여정부의 청와대 업무관리 시스템인 ‘이지원’(e-知園)에 대한 분석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김광수)는 이지원과 국가기록원의 대통령기록물 영구관리 시스템인 ‘팜스’(PALMS)를 확인하기 위해 앞으로 1~2주간 사전 조사에 들어간다고 29일 밝혔다. 앞서 검찰은 지난 주말 이지원 개발자 등을 참고인으로 불러 시스템의 구조와 열람 가능한 항목, 열람 방법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지원 확인을 이번 사건의 핵심 절차로 보고 있다. 당시 대통령 기록물은 ‘이지원→비서실 기록관리시스템(RMS)→이동식 하드디스크→팜스’를 거쳐 국가기록원으로 옮겨졌다. 이지원은 기록물을 최초로 생성, 관리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대화록의 실종 여부를 판단하는 잣대가 될 전망이다. 검찰은 당초 곧바로 이지원 확인 작업에 착수하려 했지만 장소에 따라 프로그램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등의 문제로 충분한 사전준비 기간을 가진 뒤 한 번에 조사를 마치기로 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지원과 팜스 시스템을 살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면 결론을 낼 수 있을 것”이라면서 “관련 전문가들을 참고인으로 불러 협의하며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검찰은 지난주 고발인 조사를 한 데 이어 조만간 피고발인 조사도 착수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이르면 이번 주부터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 임상경 전 대통령기록관장, 김만복 전 국정원장 등을 불러 기록물의 생산·관리 경위를 추궁할 예정이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이슈&논쟁] 제한상영가 등급제

    [이슈&논쟁] 제한상영가 등급제

    영화가에 ‘제한상영가 등급제’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논란의 불씨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뫼비우스’. 이 영화는 지난 6월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의 첫 번째 심의에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아 일반극장 상영이 불가능했다. 극 중 아들과 어머니의 성관계 장면 등이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의 이유였다. 감독은 20여컷을 수정하거나 삭제해 재심의를 요청했으나 지난 16일 영등위는 다시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렸다. 이에 감독은 초강수로 맞서고 있다. 필름을 더 잘라내 영등위에 세 번째 심의를 신청하되 오는 26일 영화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시사회를 연 뒤 찬반투표에서 30% 이상 반대하면 아예 개봉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은 제한상영가 등급 전용관이 없는 현실에서 제한상영가 등급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영등위원장의 퇴진운동을 벌이겠다는 입장이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贊] “외부로 표현되는 예술의 자유는 그 사회가 용인하는 한계 지켜야” 이우승 변호사·영등위 감사 김기덕 감독의 영화 ‘뫼비우스’가 “직계 간 성관계를 묘사하는 등 비윤리적, 반사회적 표현이 과도하여”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두 차례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 이를 두고 영화계 일부에서는 제한상영가 결정이 ‘사전검열’이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이는 표현의 자유와 등급분류 제도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외부에 표현되지 않은 채 내부에 머무는 한 절대적인 자유에 속하는 양심의 자유, 신앙의 자유와는 다르다. 외부적으로 표현되는 예술의 자유는 그 사회에서 용인하는 한계를 넘는 경우 법률로 제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절대적 자유가 아니다. 영화계 일부에서는 “모든 예술적 표현이 가능해야 하며 어떤 영상물이든 자유롭게 상영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대한민국 헌법 제21조는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더욱이 헌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표현의 자유라 할지라도 언제나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표현물이 공개되고 유통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여기서 제한상영가 등급의 헌법적 권위가 확인되는 것이다. 제한상영가 등급은 성인도 견디기 어려운 폭력적, 선정적 표현이 담겼거나 일반적인 사회윤리나 국민정서에 끼칠 부정적 내용이 담긴 영화라면, 이를 충분히 감안하여 제한된 공간(제한상영관)에서 상영하라는 제도이다. 영국, 호주 같은 선진국들이 제한상영가 등급을 운영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공공성에 기반하고 있다. 현재의 우리나라의 등급제도는 이미 완성된 영상물에 대한 어떠한 변경도 요구하지 않으며 단지 관람에 적절한 연령별 등급을 결정하고 내용 정보를 제공할 뿐이다. 그것도, 대중을 상대로 상업적 상영을 할 영화에만 적용된다. 그럼에도 최근 영화계 일부에서는 “예술에 등급을 매기는 것은 위헌”이라며 등급분류의 공익적 가치와 신뢰를 부당하게 흔들고 있다. 현 등급분류제도가 “사전검열이 아니며 청소년 보호 등을 위한 이용연령분류 절차”라는 합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남용이 아닌지 생각해 볼 대목이다. 등급제도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널리 채택한 제도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0년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세르비안 필름’이란 영화가 좋은 예다. 2012년 영국에서는 이 영화의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성행위 및 아동 성폭력 장면 등이 문제가 돼 4분 11초를 삭제한 후에야 18세 이상 관람가를 받았다(영국은 등급기구에 영화 삭제 권한이 있음) 호주에서는 ‘등급거부’ 결정이 나와 상영을 하지 못했고 스페인에서는 이 영화를 상영한 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재판을 받고 있다고 한다. ‘표현의 자유’ 선진국에서도 그 나라의 공공적 가치를 저해하는 표현에 대해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한상영가 등급제도는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이해를 조정하는 타협과 절충의 산물이며, 표현의 자유와 공공적 이해의 중재 역할을 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국내에 제한상영관이 없어 사실상 상영할 곳이 없다는 문제는 원칙적으로 등급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정부에서 제한상영관 운영에 대한 새로운 청사진을 내놓았으니, 이는 별도로 해결할 문제다. 제한상영가 제도의 근본적 취지를 이해한다면 ‘표현의 자유’ 논쟁은 쉽게 종식될 것으로 기대한다. [反] “제한상영 등급은 상영불가 판정… 도덕적 잣대 시험 관객에 맡겨야”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1996년 무렵 나는 영화주간지 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때 그 매체의 기자들은 지속적으로 수년간 끈질기게 검열철폐 캠페인 기사를 썼다. 그때까지 한국의 심의제도는 원성이 높았다. 조금씩 규제기준이 완화되긴 했으나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검열이었다. 검열과 심의는 다르다. 심의는 관람등급만 매기는 것이고 검열은 제작주체에게 삭제를 강요하는 것이다. 독재정권 시절에 확립된 완고한 기준은 질긴 관성을 발휘해 누구에게는 금기를 깨는 예술적 표현인 것이 다른 누구에게는 사회적으로 유해한 불량품으로 보였다. 2000년 헌법재판소가 당시의 심의제도가 사실상 검열이라며 위헌판결을 내린 것은 시대정신의 반영이었다. 그때 이후로 한국영화는 확대된 표현의 자유를 업고 르네상스를 누렸다. 한참 영화심의제도 개선 문제로 시끄러웠던 그 시절,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을 때를 기억한다. 그 영화는 예매 개시 직후 삽시간에 표가 매진됐고 극장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외설 판정을 받고 극장개봉이 불투명했던 그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어떤 이들은 시큰둥했고 어떤 이들은 흥분했다. 가장 위선적인 반응을 보인 이들의 대답은 이랬다. “이 영화는 극장개봉을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이 보기엔 부도덕하고 유해합니다.”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과 발품을 팔아 영화를 봤을 어떤 시민들의 이런 반응을 방송 인터뷰에서 보고 나는 아연실색했다. “당신은 봐도 되고 우리는 보면 안 되나”라고 즉각 반문하고 싶어진다. 우리 중 일부 사람들에게는 오랜 세월 내면화된 검열관의 마음이 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가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착각을 받는다. 요즘 영화인들 사이에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기준이 퇴행적이라는 불평을 많이 듣는다. 강우석의 ‘전설의 주먹’은 학교 폭력이 나온다는 이유로 18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이 영화에는 분명 학교 폭력이 나오지만 주제는 청소년기에 잘못된 폭력을 휘두르면 인생이 잘못될 수 있다는 걸 친절하게 설득하는 건전한 가족영화 쪽이다. 요사이 김기덕 감독의 신작 ‘뫼비우스’는 두 차례나 영등위로부터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을 받았다. 제한상영가 등급을 내린 것은 상영불가 판정이다. 한국에는 제한상영가 등급 전문상영관이 없으니 일반 극장에서 상영하려면 심의위원들이 지적한 부분을 잘라야 한다. ‘뫼비우스’에 상영불가 판정을 내린 심의위원들에게 항변하고 싶다. 당신들은 판단해도 되고 우리는 판단하면 안 되나. 명색이 영화평론가인 필자도 아직 이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존재하지 않는 극장에서 상영하라니 김기덕의 ‘뫼비우스’는 사실상 포르노나 극악무도한 스너프 필름과 같은 대접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다. 나는 김기덕의 영화에 대체로 동의하지 않는 평론가지만 그가 위험한 예술가라는 점만은 존중한다. 그가 도덕적 금기를 깨는 묘사를 일삼는 감독이고 그의 영화의 표현수위가 우리를 매우 불편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그가 금기시된 묘사를 할 때 그럴 만한 예술적 동기를 제시하는 통찰의 소유자라는 점은 인정한다. 아마도 ‘뫼비우스’는 이전까지의 김기덕 영화에 비해 더 과격한 묘사가 들어있을 것이다. 영화평론가이자 관객으로서 나는 이 영화가 건드리는 도덕적 잣대의 시험에 기꺼이 들고 싶다. 이미 예술적으로 인정받는 한 영화감독의 신작을 밀실에서 몇 명이 자기들 마음대로 상영불가 판정을 내리는 제도에 동의하지 않는다. 김기덕은 최근 보도자료를 돌려 관계자들을 모아 시사한 뒤 여론청취라도 하겠다고 읍소했다.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도덕적 금기와 혼동하는 이런 상황에서 문화선진국 운운은 비극이다.
  • [전두환 재산 환수 수사] 전씨 일가 미술품 선호 왜

    지난달 20일 국회 법사위에서 신경민 민주당 의원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의 미술품 매입과 관련,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는 경기 오산에 엄청난 규모의 수장고가 있다는 ‘첩보 수준’의 이야기였으나 지난 16일 검찰이 경기 파주의 재국씨 소유 농장인 ‘허브빌리지’의 비밀 수장고에서 미술품 30여점을 압류하면서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18일 미술계에 따르면 당시 신 의원이 지목했던 전씨의 미술품 전문가 A씨와 B씨는 미술계에선 ‘주목할 인물’로 분류된다. A씨는 재벌가가 운영하는 대형 갤러리의 큐레이터 출신으로 전씨와 비슷한 또래다. 미술계 관계자는 “A씨가 전씨 소유의 시공사에서 화집을 만들 때 많은 조언을 해 줬다”면서 “지금은 경기도의 한 작업실에서 미술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중견 갤러리 대표를 지낸 B씨는 홍대 앞에서 레스토랑을 겸한 유명 북카페를 운영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시공사 운영은 물론 전씨 일가의 아파트 거래에까지 깊숙이 개입한 인사로 알려져 있다. 검찰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공개된 13~14세기 동남아 불상과 마오쩌둥 동상 등도 이들 같은 상당한 수준의 미술 전문가가 개입해 거래가 성사됐다는 후문이 파다하다. 서울 인사동 화랑가에서는 검찰이 압류한 390여점의 전씨 일가 미술품 목록에 박수근, 이대원, 천경자 등 작품당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에 이르는 고가의 미술품 외에 다양한 국내 중견작가들의 작품도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미술계 인사는 “재국씨 소유의 시공사가 1990년대 중반에 펴낸 개인화집 ‘아르비방’ 시리즈에 이름을 올린 한모, 주모, 배모, 구모씨 등 작가들의 작품이 많이 흘러들어 간 것으로 얘기된다”며 “때문에 작품 수는 많지만 전체 미술품의 시중가는 100억원이 넘지 못할 거라는 추측이 많다”고 말했다. 한편 화랑가 관계자들은 “그림 구입 자금은 관례상 출처나 소장이력 등을 따지지 않는다”면서 “하루 수십억원의 현금이 미술품 거래로 이동하지만 누가 사고 팔았는지에 대한 증빙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미술품에는 관세가 붙지 않는 데다 다운계약서를 통해 증여세를 최대 5분의 1 수준으로 낮출 수 있어 재벌가에서는 너나없이 미술품 구입을 재산 관리에 활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유럽이나 미국에선 미술품 투기에 대한 도덕적 잣대가 엄격하다”면서 “우리나라도 미술품 등록제를 도입하고 (선진국처럼) 미술품 부정 방지법, 양도거래 차익에 대한 과세 등을 하면 거래의 투명성이 상당 부분 확보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정기홍의 시시콜콜] ‘4대강 감사’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한계

    [정기홍의 시시콜콜] ‘4대강 감사’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한계

    2001년 개항한 인천국제공항은 8년이란 공사 기간 내내 논란에 휩싸였다. 8조원 가까이 투입된 이 사업을 두고 언론은 하루가 멀다 하고 허브공항의 허실과 부실공사 문제점을 캤다. 어느 날 대낮에 한 건물의 천장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연일 청와대 주재 대책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인천공항은 지금 세계적 국제공항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4대강 감사’ 논란을 접하며 10여년 전 기억이 되살아났다. 4대강 감사 논란의 꼭짓점은 ‘대운하를 전제로 공사를 했느냐’와 ‘정치 감사 여부’다. 기자가 접했던 감사원은 논란거리에 ‘모른다’고 할지언정 ‘거짓말은 안 하는’ 조직이다. 사실관계만은 확실히 집어 낸다. 아니나 다를까. 2011년 초부터 시작된 세 차례의 감사가 ‘미친Ⅹ 널뛰듯 한다’는 지적에 감사원의 입장은 단호하다. ‘정치 감사’ 의혹에는 결코 자유롭지 못하지만 세 차례의 감사 내용만큼은 틀리지 않다고 본다. 그런데 감사 과정에서 빠뜨린 게 있다. 대운하 중단 발표 이후 만든 균형위안과 기획단안, 중간보고안엔 사업 내용이 들어 있다. 낙동강만 떼놓고 보면 4대강 사업계획이 구체화된 중간보고안(2009년 2월)에 최소수심 4m에 중형보 5개를 건설하는 것으로 돼 있다. 4대강안(최소수심 4~6m, 중·대형보 8개)과 대운하안(6.1m, 대형보 6개)도 어렵지 않게 대별된다. 4대강안이 나왔던 때가 중간보고안 2개월 뒤였으니 이것만 파고들었으면 1차 감사 때 감사 의견을 내놓을 수 있었다. 시쳇말로 ‘알아서 긴’ 꼴밖에 안 된다. 감사원의 한계다. 감사원은 또 사업안 변경으로 당초 사업비(18조)보다 4조원이 더 투입돼 예산을 낭비했다고 밝혔다. 이 또한 이상하다. 어김없이 구사하던 ‘국책사업이기에 향후 변수’란 문구가 빠져 있다. 국책사업은 현재 잣대로 들이댈 수 없다는 것은 감사원이 더 잘 안다. 고속도로를 낼 때도 확장을 염두에 두고 예비도로를 만들고, 여분 터널도 기본 공사만 하고서 때를 기다린다. 이를 예산 낭비라 보지 않는다. 이명박정부가 잘한 건 아니다. 대운하 사업 포기를 약속한 마당에 대운하 사업계획을 4대강 사업에 원용했다면 국민에게 소상히 알려야 했다. 홍수 예방과 수자원 확보 등 4대강 사업의 가치는 무시할 수 없다. 거꾸로 이를 실현하지 못하면 단군 이래 최악의 사업으로 남을 수 있다. 변수는 많다. 1968년 경부고속도로 건설 때 차량은 10만여대밖에 안 됐다. 하지만 예산 낭비란 야권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해 경제 부흥의 주춧돌이 됐다. 세종시와 공공기관 지방이전 사업은 아직 제자리를 못 잡고 있다. 감사원에 당장 세종시 전면 감사를 요구한다면 견강부회일까. 4대강 사업에 대한 정치적 논란을 접고 공과에 대한 과학적 판단을 후세대의 몫으로 남겨 놓았으면 한다. 논설위원 ho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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