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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아버지의 뒷모습/황성기 논설위원

    친구가 오랜만에 보자며 친구들을 모아 달라 한다. 날짜를 맞춰서 알려 주자 모임을 제안한 친구는 “자식이 직장을 잡아서 한턱 낼까 한다”고 수줍은 듯 얘기한다. 취업 빙하기에 외동딸인 친구 자식의 취업이 제 일인 듯 기쁘다. 회사 동료가 과거 고락을 함께했던 선후배를 불러 저녁 하자고 청했다. 옛 동료를 모아 식사하고, 좌중에 취기가 돌 때쯤 “딸이 신문사에 들어갔다”고 자리를 마련한 까닭을 설명했다. 후배 자식의 취업도 기쁘려니와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다니 대견스럽다. 아이가 1998년 2월 유치원 졸업 무렵 만든 ‘우리 가족 신문’을 발견했다. ‘김대중과 이회창 명예총재 회동’이란 구절이 있다. 외환 위기를 맞아 김 당선자가 이 총재에게 초당적 협력을 당부한 뉴스를 베꼈을 것이다. 가족신문에 엉뚱한 정치 뉴스이건만 삐뚤빼뚤 쓴 ‘황○○ 기자’에 콧날이 시큰했다. 지금은 다른 길을 걷는 그 아이가 대학생 때 잡지 동아리에 들어간 적이 있다. 싫든 좋든 아비의 뒷모습을 보고 컸나 싶어 은근히 흐뭇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데스크 시각] 1947 3·1절과 2017 내우외환/이지운 국제부장

    [데스크 시각] 1947 3·1절과 2017 내우외환/이지운 국제부장

    눈으로 보진 못했지만, 70년 전 3·1절이 이랬으리라 싶었다. 3·1운동 제98주년을 세종대로에서 목도하면서 ‘이렇게 갈라졌겠구나, 훨씬 더 심하고 격렬했겠구나’ 생각했다. 1947년에는 앞서 2·7사건이 있었다. 미·소 공동위원회 회의가 좌·우익 간 격렬한 대립으로 1, 2차 모두 결렬되고 신탁통치안이 무산됐다. 유엔은 1947년 9월 남북 통일 선거를 실시해 통일 합법정부를 세우는 안을 가결했으나 소련과 북한은 선거 반대 무장투쟁에 나섰다. 미국은 1948년 2월 26일 남한 단독 선거안을 유엔에 재상정했고 5월 10일 남한 총선거가 결정됐다. 이에 박헌영이 남한 단독 정부를 막기 위해 무장투쟁을 전개한 것이 2·7사건이다. 남로당 당원 30만명이 나섰다. 2월 7일부터 2월 20일까지 2주간 전국적으로 다리를 폭파하고, 기관차와 전신주를 파괴했다. 각종 파업과 학생 동맹 휴학으로 이어져 전국적으로 파업이 30건, 맹휴 25건, 충돌 55건, 시위 103건, 방화 204건으로 집계된다. 8479명이 검거됐다. 그러고 맞은 3·1절이었다. 1948년 단독 선거 후 대한민국이 수립됐지만, 혼란은 줄지 않았다. 군으로 잠입한 남로당은 곳곳에서 반란을 주도했다. 여수14연대, 광주 4연대 산하 여러 중대들, 군산 12연대 5중대, 마산 15연대, 대구 6연대의 3차 반란 등이 발발했다. 여수순천 반란 사건으로 통칭된다. 제주 4·3사건은 1948년 4월 3일 시작해 1949년 6월 7일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뒤이은 게 1950년 6·25다. 북한은 6일에도 미사일을 네 발 쏘아 올렸다. 실로 내우외환(內憂外患)이다. 미국이 이달 내로 새 대북 정책을 내놓겠다고 했고, 한반도에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것도 검토했다는 보도가 나온 다음날이다.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VX라는 독가스로 피살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중국의 사드 보복은 예상을 뛰어넘는 강도로 이어지고 있다. 2017년 정부 업무보고에 ‘한국’이라는 단어를 뺄 만큼 대한 관계의 전면적인 재구상을 준비해 온 줄 감도 잡지 못했다. 일본은 위안부 소녀상을 문제 삼아 자국 대사를 불러들이더니 두 달 가까이 돌려보내지 않고 있다. 그 어느 하나 녹록지 않은 일들인데, 각 나라 속을 들여다보면 ‘이 일이 어떻게 되려나’ 상상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미국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종잡기 어려운 상태다. 중국은 시진핑의 장기 집권을 준비하느라 좌우를 돌아보고 강약을 조절할 여력이 없어 보인다. 막 장기 집권의 터를 닦은 일본의 아베는 ‘해 오던 대로’ 더욱 힘차게 내달리려 하고 있다. 북한은 어디까지 가려는지 관측을 불허한다. 사안별로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해법은 고사하고 이렇다 할 분석도, 전망도 찾아보기 어렵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어떻게 되는 건지, 중국에 진출한 기업과 교민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정부도 눈만 껌뻑이고 있다. 일대일 관계도 이럴진대 3각, 4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정세는 두말할 것도 없다. 1947년 3·1절의 재현은 막지 못했다. 태극기와 촛불이 낮밤을 교차해 세종대로로 쏟아져 나온 게 몇 주째인지 모르겠다. 탄핵 심판이 곧 나올 것이라 한다. 1948년으로 진입해선 안 된다. 1947년에서 1950년으로 이어지는 대혼란의 현대사를 되짚어 볼 때다. jj@seoul.co.kr
  • 인터넷 스타 트럼프 차녀, 로스쿨 진학에 ‘금수저’ 논란

    인터넷 스타 트럼프 차녀, 로스쿨 진학에 ‘금수저’ 논란

    티파니, 하버드·컬럼비아 등 관심 완벽 가까운 학점·시험 점수 필요 진학 앞두고 온라인 뜨거운 논쟁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차녀 티파니(23)의 로스쿨 진학을 놓고 미국에서 ‘금수저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티파니는 지난해 5월 펜실베이니아 대학을 졸업한 이후 로스쿨 입학시험을 쳤으며 하버드, 컬럼비아, 뉴욕대 등 미국 일류 로스쿨 3곳을 둘러봤다고 워싱턴포스트가 6일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둘째 아내인 말라 메이플스 사이에서 태어난 티파니는 부유한 상속녀의 삶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74만명의 팔로어를 얻었다. 팝 가수, 유명 패션잡지 인턴 등 주로 엔터테인먼트 관련 경력을 가진 티파니는 지난해 늦여름 로스쿨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티파니는 인스타그램에 로스쿨 입학시험(LSAT) 참고서와 ‘내가 이걸 가지고 있어’라는 슬로건을 든 금발 아바타를 올렸다. 한 네티즌은 그가 참고서에 적은 연습문제 답 중 상당수가 ‘오답’이라는 것을 밝혀 내기도 했다. 티파니의 로스쿨 진학 계획이 알려지자 영화 ’금발이 너무해‘가 현실화할지 온라인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티파니가 바라는 하버드, 컬럼비아, 뉴욕대 등 일류 로스쿨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완벽에 가까운 학점과 시험 점수를 제출해야 한다. 대학 학점은 3.75 이상, LSAT 점수는 180점 만점에 172점 이상이어야 입학할 수 있다. 대통령의 딸이라는 이유로 색안경을 쓰고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와 함께 티파니가 학부에서 올 A를 맞고 LSAT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더라도 결국 트럼프란 이름 때문에 합격했다고 여겨질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나아가 학점 취득과 유명 법률회사 인턴십 등을 놓고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을 이겨낼지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무슬림 혐오 뚫고 ‘할랄 음식’ 세계화… 美 매출만 23조 1300억원

    무슬림 혐오 뚫고 ‘할랄 음식’ 세계화… 美 매출만 23조 1300억원

    “(폴린) 핸슨 대표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그를 ‘할랄 스낵 팩’(Halal snack pack) 가게에 데려가겠습니다.”지난해 7월 호주 총선 상원의원 선거에서 극우 정당 원네이션의 폴린 핸슨 대표가 당선되자 노동당의 샘 다스티야리 상원의원은 핸슨 대표에게 함께 할랄 음식을 먹자는 독특한 축하 인사를 건넸다. 할랄 스낵 팩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만들어진 대표적인 호주식 이슬람 음식이다. 요구르트 소스를 얹은 양고기(혹은 닭고기) 케밥, 감자튀김, 음료수로 구성된 이 스낵 팩은 호주에서는 햄버거 세트 못지않은 대중적인 음식으로 30년 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이슬람권 동남아 국가 이민자들이 처음 전파했다. 다스티야리 의원의 제안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호주가 무슬림 이민자로 뒤덮일 위기에 직면했다. 호주식 삶의 방식을 원하지 않는다면 출신지로 돌아가라”는 등 반(反)이슬람 발언을 일삼아 논란을 빚은 핸슨 대표를 향한 일침이었다. 그러나 핸슨 대표는 “고맙지만 나는 할랄 음식에 관심이 없다”면서 “98%의 호주인도 그럴 것”이라며 거절했다. 호주의 무슬림 인구는 약 5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2%를 차지한다. 할랄 음식을 두고 정치적 언쟁이 오가자 뜻밖에 호주에서는 할랄 스낵 팩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할랄 스낵 팩을 파는 노점이 눈에 띄게 늘어났으며 멜버른에서는 ‘폴린 핸슨’의 이름을 딴 할랄 스낵 팩 메뉴까지 새로 등장했을 정도였다. 백호주·반다문화주의를 내세운 핸슨 의원이 18년 만에 정계에 복귀했을 정도로 반이민 정서가 가열된 호주 사회지만 무슬림의 식단인 할랄 음식의 인기는 오히려 치솟았다. 매쿼리 사전은 할랄 스낵 팩을 2016년 호주 사회를 읽을 수 있는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고 영국 BBC가 지난달 1일 보도했다. 호주에서의 예와 같이 할랄 음식이 지구촌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호주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에서도 반이민 정서가 확산되면서 현재 전 세계 16억명에 달하는 무슬림에 대한 혐오가 극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음식 세계’에서 이슬람교는 더이상 경계의 대상이 아니다. 음식 트렌드는 보통 정치적인 흐름과 일치하기 마련이지만 현재 할랄 음식의 인기는 반이슬람이라는 정치적 트렌드와 반대로 가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분석했다. 할랄 음식은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2주 만에 ‘반이민 행정명령’에 서명한 미국에서 특히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1998년 미국에서 할랄 음식을 찾을 수 있는 웹사이트를 처음 만든 샤헤드 아마눌라는 “당시 미국에서 할랄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는 가게는 200여곳에 불과했지만 2016년 7600개 이상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美 소매업체 1년간 매출만 약 2조 1973억원 미국의 할랄 음식 매출 규모도 해마다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넬슨은 지난해 8월까지 1년간 미국의 식품점 및 편의점 등 소매업체에서 팔린 할랄 음식의 매출이 19억 달러(약 2조 1973억원)라고 발표했다. 이는 2012년 같은 기간보다 15% 증가한 수치다. 또 할랄 음식 인증·교육기관인 이슬람 음식 및 영양위원회(IHC)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전역의 할랄 음식 매출은 200억 달러(약 23조 1300억원)에 달했다. 2010년 매출과 비교하면 3배가량 뛰었다.●트렌디·건강식 ‘두 토끼’… 월마트도 판매 돌입 할랄 음식이 이처럼 인기를 끄는 것은 미국에서 가장 트렌디하며 건강에 좋은 ‘웰빙 음식’으로 각광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유기농 식품 매장인 홀푸드마켓은 2011년 처음 할랄 식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건강한 식재료를 찾는 미국의 중산층은 홀푸드마켓에서 장을 보며 거리낌 없이 할랄 음식을 집어 들었다. 홀푸드마켓 글로벌 식품 담당자인 릭 핀들레이는 “사람들은 홀푸드마켓을 음식 시장의 트렌드세터로 보고 있다”며 “홀푸드마켓에서 할랄 음식이 성공하자 사람들이 할랄 음식을 단순한 무슬림 식단이 아니라 트렌디한 음식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홀푸드마켓 할랄 식품은 2011년부터 현재까지 해마다 두 자릿수의 판매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홀푸드마켓이 할랄 음식으로 대성공을 거두자 월마트, 크로거 등 대형 유통업체에서도 할랄 음식을 차례로 도입했다. 이 같은 인기에는 미국 내 무슬림 인구의 증가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미국의 이슬람교도는 330만명이었지만 2050년까지 무슬림 인구는 810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퓨리서치센터는 전망했다. 이는 미국에서 가장 큰 비기독교계 종교단체인 유대인 인구를 능가하는 숫자다. 그러나 미국 전역의 마트 1만 2000여곳에 할랄 냉동식품을 납품하는 애드넌 두라니 아메리칸 할랄 컴퍼니 최고경영자(CEO)는 “(할랄 냉동식품 브랜드인) ‘새프론 로드’를 구매하는 사람의 80%는 무슬림이 아니다. 이들은 단지 마트에서 더 맛있는 냉동식품을 찾는 사람들일 뿐”이라며 “단순히 무슬림 인구의 증가로만 할랄 음식의 인기를 설명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캐나다 시장 규모도 약 8541억원 추정 미국뿐만 아니라 캐나다에서도 할랄 시장의 규모는 꾸준히 늘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따르면 캐나다 할랄 시장 규모는 10억 캐나다 달러(약 8541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할랄 음식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뭐니 뭐니 해도 ‘맛’이다. 전문가들은 ‘푸드트럭’의 신화인 할랄가이스가 뉴요커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했다면 오늘날의 할랄 음식 대중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할랄가이스는 1990년 뉴욕 웨스트 53번가와 6번가의 교차로에서 이집트 출신 모하메드 아부엘레네인을 비롯한 3명이 푸드트럭으로 처음 문을 열어 현재 미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에 약 200개의 매장을 둔 글로벌 레스토랑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할랄가이스 창업자 아부엘레네인이 처음부터 미국인에게 할랄 전문 음식을 선보이려 했던 것은 아니다. 무슬림인 아부엘레네인은 처음엔 핫도그를 팔았다. 그러나 장사를 하면서 할랄 음식에 대한 무슬림 택시 기사의 수요가 막대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슬람 율법에서 허용한 방식대로 도축한 닭과 양을 중동 지역에서 흔히 먹는 향신료로 양념하고 요리해 밥에 얹거나 밀전병(피타빵)으로 둘둘 말아 팔았다. 값싸고 푸짐한 데다 먹기 편한 할랄가이스의 음식은 무슬림뿐만 아니라 현지인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순식간에 할랄가이스는 뉴욕을 방문하는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인에게도 필수 맛집 코스로 자리잡았다. 이후 할랄가이스처럼 ‘아메리칸 할랄 음식’을 표방하는 푸드트럭이 차례로 생겼다. 한국에서도 할랄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은 젊은이 사이에서 가장 트렌디한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 이태원에 첫 번째 지점을 연 할랄가이스를 비롯해 현재 할랄 음식 전문점은 이태원, 홍대, 연남동 등 20~30대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을 중심으로 20여곳이 성업 중이다. 할랄가이스는 한국에서 올해에만 10개의 신규 가맹점을 오픈할 예정이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할랄 음식이란? 할랄 음식은 이슬람 신자인 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섭취가 허용되는 음식’을 뜻한다. 무슬림이 평생 먹어선 안 되는 음식은 ‘하람’이라고 한다. 할랄 음식에서는 돼지고기를 제외한 육류를 먹을 수 있으나 소·양·닭고기라 하더라도 할랄 방식으로 도축되지 않았다면 먹을 수 없다. 할랄 방식의 도축 방법은 도축하고자 하는 동물의 머리를 이슬람 성지(聖地)인 메카가 있는 방향으로 두고 죽음을 기리며 기도를 한 뒤 동물의 목을 칼로 내려쳐 죽인 다음 몸 안에 있는 모든 피가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할랄 방식으로 도축한 육류뿐 아니라 돼지나 알코올 성분이 없는 가공식품은 모두 ‘할랄 푸드’로 가능하다.
  • 성인잡지 6톤의 무덤…일본 50대의 ‘슬픈 고독死’

    주변 사람과 단절된 채 홀로 살다가 고독한 죽음에 이르는 고독사. 우리나라보다 먼저 고독사 문제가 사회 문제가 된 일본에서는 10년간 그 수가 3배가 늘어 한해 사망자가 3만2000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 일본 가나가와 현에서는 한 50대 남성이 자신이 모아놓은 야한 성인 잡지 더미 사이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고 일간 스파 등 외신이 최근 보도했다. 한때 일본 자동차 대기업에서 일한 것으로 알려진 이 남성은 사망한 지 1개월 만에 발견됐다. 그가 살던 작은 집에는 방과 거실에 성인 잡지가 허리 높이까지 쌓여 있었고 벽면에는 성인 비디오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이 남성의 사인은 심근경색으로 알려졌다. 특수 청소 및 유품 정리 업체의 한 관계자는 “고독사라고 한마디로 말해도 사망한 사람의 방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혼자 사는 남성은 이렇게 자기 세계관에 빠져 있는 경우가 흔하다”면서 “방 2개에 부엌 1개인 아파트였지만, 성인 잡지만 6t 분량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인의 치부가 되지 않도록 방에 있던 성인장난감 등은 유족에게도 존재를 알리지 않고 처분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점은 방에 있던 성인 잡지 더미가 시신에서 나온 체액을 흡수하는 역할을 해 아래층에는 피해가 전혀 없었다. 일반적으로 사망한 지 1개월 뒤면 아래층까지 체액이 스며들어 수리 비용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는 “그중에는 아래층에서 잠을 자던 주민의 얼굴에 체액이 떨어져 고독사가 드러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의 고독사 사례 중에는 어떤 취미나 성적인 것에 집착하던 이들이 꽤 있으며 아이돌 상품으로 넘쳐나는 집도 가끔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엠마 왓슨, 노출 논란에 “페미니즘, 다른 여성 때리는 도구 아니다”

    엠마 왓슨, 노출 논란에 “페미니즘, 다른 여성 때리는 도구 아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실사판 영화 ‘미녀와 야수’로 돌아온 배우 엠마 왓슨(26)이 토플리스 차림의 패션 화보로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을 받았다. 엠마 왓슨은 최근 패션 잡지인 배너티 페어와의 인터뷰에서 노브래지어 차림으로 흰색 재킷만 걸친 화보를 촬영했다. 이를 두고 방송인 줄리아 하틀리 브루어는 자신의 트위터에 “페미니즘, 페미니즘… 남녀 임금 격차… 왜 날 심각하게 여겨주지 않나요… 페미니즘… 아 여기 내 가슴 있어요!”라면서 “(왓슨이) 여성이 성적으로 비친다는 점을 불평해놓고서 자신을 스스로 성적으로 보이게 한 것은 위선”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왓슨은 영국 BBC와의 인터뷰를 통해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선택권을 준다는 것이다. 자유와 해방, 평등에 관한 것이다. 내 가슴이 이것과 무슨 상관이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혼란스럽다”면서 “그들은 내가 페미니스트인 동시에 가슴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는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지 다른 여성을 때리는 도구가 아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놀라게 된다”고 말했다. ‘해리포터’로 스타가 된 엠마 왓슨은 UN여성친선대사이면서 페미니즘 독서 문화 커뮤니티인 ‘공유책장(Our Shared Shelf)을 개설하는 등 활발한 양성평등 운동을 펼치고 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김욱동 창문을 열며] 인공지능 번역은 가능한가

    [김욱동 창문을 열며] 인공지능 번역은 가능한가

    기계 번역 또는 인공지능(AI) 번역과 관련해 십여 전 년 일본에서 있었던 일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영어 속담 ‘Out of sight, out of mind’를 컴퓨터를 이용해 기계 번역을 시켰더니 뜻밖에도 ‘Confined to insane asylum’으로 해놓았다. ‘out of sight’라는 표현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고, ‘out of mind’라는 표현이 정신 나갔다, 즉 미쳤다는 뜻이니 ‘정신병원에 감금시켜 놓았다’고 번역한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결과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훌쩍 지났고, 그 사이 인공지능 기술은 그야말로 눈이 부실 만큼 많이 발전했다. 단적인 실례가 지난해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이다. 구글 자회사인 인공지능회사 구글 딥마인드에서 개발한 컴퓨터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는 이세돌 기사를 4승 1패로 이겼다. 이세돌 기사는 한 개인 기사가 패배한 것일 뿐 인간이 기계에게 패배한 것은 아니라고 애써 변명했다. 그런데도 인공지능이 지금껏 인간의 고유 기능이라고 간주해 온 논리적 사고와 추론에 도전장을 던진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번역 분야에서는 어떨까. 지난달 국제통번역협회와 세종대·세종사이버대는 AI 번역기와 인간 번역사들 사이에 번역 대결을 주최했다. AI 대표로는 구글 번역기, 네이버 파파고와 세계 제1위의 기계번역 기술업체인 시스트란의 서비스가 나섰다. 반면 인간 측에서는 5년 이상 경력의 전문 번역사 4명이 참여했다. 수백 단어 분량의 비문학(기사·수필)과 문학(소설) 구절을 영어·한국어 2개 언어로 옮기는 대결이었다. 그러나 국내에서 이뤄진 인공지능과 인간 사이의 첫 번역 대결은 인간의 ‘싱거운 승리’로 끝났다. 인간 번역사가 평균 합계 49점을 받아 19.9점을 받은 인공지능을 압도적으로 이겼다. 물론 평가가 불공정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AI의 번역 기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가령 ‘세월은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간다’는 ‘Time flies like an arrow’라는 영어 속담을 예로 들어보자. AI 번역기는 모르긴 몰라도 아마 ‘시간 파리는 화살을 좋아한다’로 옮길지 모른다. ‘시간 파리’가 무슨 의미냐고 따질지 모르지만 AI 번역기는 파리의 일종으로 파악하고 그냥 넘어갈 것이다. 더구나 ‘Flying planes can be dangerous’라는 영어 문장에 이르러서는 문제가 훨씬 더 복잡해진다. 변형문법을 창시한 노엄 촘스키가 언어의 표층구조와 심층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예로 든 문장이다. ‘flying’을 ‘planes’를 수식하는 현재분사로 해석할 것인지, 명사절을 이끄는 동명사로 해석할 것인지에 따라 그 의미는 크게 차이가 난다. 전자로 해석한다면 ‘하늘에 날아가는 비행기는 위험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후자로 해석한다면 ‘비행기를 이륙시키는 일은 위험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숙달된 전문 번역가가 아니라면 이 두 가지 중 어느 쪽으로 옮겨야 할지 적잖이 헷갈린다. 전후 맥락을 잘 살펴서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자칫 오역할 위험이 아주 크다. AI 번역기는 알파고 같은 로봇과는 사뭇 다르다. 알파고가 인간처럼 사고력과 추리력을 갖출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인간처럼 사물을 직관적으로 처리하고 감성을 지닐 수는 없다. 번역에는 무엇보다 직관과 감성이 필요하다. ‘어 다르고 아 다르다’는 속담이 있지만 번역에서만큼 이 말이 피부에 와 닿는 경우가 없다. AI 번역기는 신문이나 잡지 기사를 비롯해 과학 또는 기술과 관련한 논문, 광고 문안이나 상품 이용 안내서 같은 기술 번역 분야는 몰라도 적어도 문학 번역에서만큼은 아직 인간 번역사를 따라잡을 수 없다. 그렇다고 인간이 자만할 수만은 없다. AI 번역기가 언제 직관력과 감성 기능을 갖추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아침에 눈을 뜨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에 먼저 손이 가는 추세가 계속된다면 인간 번역사가 AI 번역기에 두 손을 들 날이 예상 밖으로 빨리 올지도 모른다.
  • 日 50세 남성, 6톤 성인잡지 더미에 깔려 고독사

    日 50세 남성, 6톤 성인잡지 더미에 깔려 고독사

    일본의 한 중년 남성이 자신의 좋아하는 성인잡지에 깔려 숨진 채 발견됐다. 최근 미국 뉴욕포스트 등 해외언론은 비극적으로 고독사한 한 남성의 사연을 일제히 보도했다. 올해 50세의 조지라는 이름으로만 알려진 숨진 남성은 전직 자동차 회사 직원이다. 오래 전 부터 홀로 살아온 그는 얼마 전 집을 청소하러 간 청소회사 직원들에게 발견됐다. 당시 그는 수많은 잡지 밑에 깔려 숨진 채 발견됐으며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심장마비 혹은 질식사로 추정된다. 안타까운 점은 그가 숨진지 이미 6개월이나 지났다는 사실로 또 하나의 고독사 사례로 기록됐다. 그의 죽음이 해외언론의 주목을 받고있는 것은 방을 가득 채웠던 잡지가 바로 성인잡지였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그의 집에서 수거된 성인잡지만 무려 6톤. 청소회사 직원은 "집주인의 요청을 받고 집을 청소하러 갔다가 숨진 남자를 발견했다"면서 "수많은 잡지 밑에 깔려있어 만약 의식이 있었더라도 소리를 쳐 도움을 요청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3低 시대 투자처 ‘미술금융’ 눈이 번쩍 뜨였다

    3低 시대 투자처 ‘미술금융’ 눈이 번쩍 뜨였다

    지난해 11월 27일 홍콩 그랜드하얏트호텔. 노란색 전면점화 작품이 등장하자 참가자들의 눈이 커졌다.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왔다. 점, 선, 면 그리고 노란 색감으로만 표현된 이 작품이 63억 3000만원에 낙찰되는 순간,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제20회 서울옥션 홍콩세일’에서 국내 최고가로 낙찰된 김환기의 추상화 ‘12-V-70 #172’이다. 이 작품은 ‘환기 블루’로 불리는 그의 대표적인 색감인 파란색이 아닌 노란색을 활용해 새로운 시도를 한 작품으로 평가된다.큰손들은 잠재된 가치를 알아보고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최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것이 국내 미술시장이다. 전 세계적으로 저금리와 경제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부동산이나 주식이 아닌 새로운 투자처 발굴이 필요해진 데다 최근 국내 작가들의 작품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0여년 전 ‘반짝’ 했다 사라진 아트펀드가 최근 부활했다. 3일 한국미술시장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998년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품 경매회사인 서울옥션이 설립된 이래 20년도 안 돼 거래금액은 3억원(1998년)에서 지난해 168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거래 작품 수도 87점에서 1만 2863점으로 늘어났다. 국내에는 11개의 미술품 경매회사가 있다.●국내 현대 미술품 시장 작년 636억… 세계 11위 세계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도 국내 거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프랑스 미술시장 분석 전문회사인 아트프라이스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으로 1년간 우리나라에서 이뤄진 현대작품(1945년 이후 출생 작가)의 거래는 5600만 달러(약 636억원) 규모로 세계 11위다. 전년보다 거래 금액이 51%나 늘어났는데 이는 세계 500위에 포함된 7명의 한국 작가들과 서구 작가들로부터 나온 결과라고 아트프라이스는 분석했다. 투자자들이 미술품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금융시장 환경이 불안한 가운데 미술품이 대안 투자처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성환 금융연구원장은 “저성장, 저금리, 저소비 등의 특징을 보이는 뉴노멀 시대에 주식이나 채권 같은 전통적 금융자산에 대한 위험 대비 수익률을 향상시킬 수 있는 대체투자 자산에 대한 금융권의 수요가 높다”면서 “미술품은 부동산, 주식 등 기존 투자자산들과 상관관계가 낮아 분산 효과가 있고, 최근 미술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새로운 투자처로서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적으로 슈퍼리치가 증가하고 추상화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도 주요한 배경이다. 특히 2014년 소더비 뉴욕 경매에서 이우환의 ‘점으로부터’가 216만 5000달러(약 23억 7000만원)에 낙찰되며 한국 추상화에 대한 인기가 본격화됐다. 최윤석 서울옥션 미술품경매팀 상무는 “미술품은 유일무이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상승한다”면서 “특히 김환기를 비롯해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최근 국제시장에서 합당한 가격적 대우를 받기 시작하면서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투자 가치를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미술품은 유일무이… 시간 흐를수록 가치 상승 미술품은 동일한 작품이 없다는 점에서 다른 비슷한 것으로 대체가 불가능하고 무한한 잠재적 가치를 지닌다는 점도 특징이다. 1992년 처음 공개됐을 때 언론으로부터 ‘1억원짜리 피시앤드칩스’라고 조롱받았던 데미언 허스트의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은 2004년 미국 수집가에게 1200만 달러에 팔린 이후 영국의 대표작으로 꼽히게 됐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미술품은 2015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로 1억 7937만 달러(약 1968억원)이다. 하지만 이 같은 미술품을 직접 사고파는 거래는 위험 부담이 크고 거래 단위도 커 평범한 개인투자자들은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수요를 맞추기 위해 나온 것이 아트펀드인데 최근 미술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국내 더블유자산운용은 지난달 말 NH투자증권, 삼성증권, 하나금융투자, 우리은행 등 판매사 4곳을 통해 350억원 규모의 ‘W아트전문투자형사모펀드1호’를 설정했다. 서울옥션에서 매수 작품을 1.5배수로 추천하면 운용사에서 별도 자문단 의견을 거쳐 최종 매수 작품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이 펀드는 피카소, 김환기 등 국내외 대표화가 작품 30여점을 매입할 계획이다.●10여년 전엔 18개 아트펀드 수익률 -55% 2000년대 중반 18개의 아트펀드가 나왔으나 -55%라는 처참한 수익률을 기록하고 사라진 실패 사례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미술품 평가와 투자 운용에 대한 구분이 명확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금융연구원과 미술금융 활성화 방안에 대해 연구한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는 “아트펀드는 어느 정도 금융자산을 소유하고 있지만 개별 미술품에 투자할 정도의 규모가 아닌 개인 투자자들이나 장기 투자를 목표로 하는 기관투자가들에게 매력적”이라며 “전문가들이 운용하는 펀드를 통해 미술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이도 투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초기 실패한 국내 아트펀드들은 미술시장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고, 금융 지식이 부족한 화랑이 펀드에 깊이 관여하면서 운용의 효율성을 떨어뜨렸다”면서 “특정 화랑이 아닌 다양한 미술전문가들로 구성된 독립된 전문가집단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아트뱅킹·자문 서비스로 미술품 담보대출 개발을 자산가들을 위한 아트뱅킹이나 미술품 자문 서비스를 개발할 필요도 있다. 예컨대 미국의 씨티은행은 1979년 씨티미술자문서비스를 만들어 최초로 미술품을 담보로 하는 대출을 제공하고 있다. 당시 고액자산가들은 미술품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었고, 고객들이 미술시장에서 이를 거래하는 데 전문적인 조언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씨티은행은 자체적으로 숙련된 미술 전문가를 고용해 고객들에게 미술품 취득에서부터 판매와 소장품 관리에 대한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도이치뱅크 역시 1979년부터 근대미술품 수집을 시작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선도적인 기업 예술품 수집가로 평가받고 있다. 미술전문가와 화랑, 경매회사 등과 협업해 프라이빗뱅킹(PB) 고객을 대상으로 미술 자문 서비스를 진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반 대중들을 위한 미술카페를 설치하거나 잡지도 발행하며 미술작품에 대한 관심과 홍보를 병행한다. 최원근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미술품은 장기 투자 상품이어서 국내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아트펀드를 조성하기엔 어려운 부분도 있다”면서 “다만 신인작가들을 중심으로 미국처럼 작품 등록을 제도화해 미술품 담보대출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PB나 자산관리 업계를 중심으로 마케팅 차별화를 위한 미술시장 활용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미술금융이 활성화되면 미술품 위작 시비 등 거래 과정도 훨씬 투명해질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시장 참여자들이 많아지면 정보가 많아지고 지속적인 관심이 위작에 대한 감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미술 시장이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독점되고 있기 때문에 시장이 불투명한 것”이라며 “펀드 등 금융 상품을 통해 시장 참여자들이 많아지고 미술품 시장이 활성화되면 거래가 투명해지고 위작 논란도 많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노래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노래

    노래(Song) -크리스티나 로세티(1830~1894) 내가 죽거든, 사랑하는 이여, 날 위해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마세요; 내 머리맡에 장미꽃도 심지 마시고, 그늘진 사이프러스도 심지 마세요: 내 위에 푸른 잔디가 비와 이슬방울에 젖게 해주세요: 그리고 생각이 나시면, 기억하시고, 잊고 싶으면, 잊어 주세요. 나는 그림자도 보지 못하고, 비가 내리는 것도 느끼지 못할 거예요; 고통스러운 듯 노래하는 나이팅게일 소리도 듣지 못할 거예요: 해가 뜨거나 저물지도 않는 희미한 어둠 속에서 꿈을 꾸며, 어쩌면 나는 기억하겠지요, 어쩌면 잊을지도 모르지요 When I am dead, my dearest, Sing no sad songs for me; Plant thou no roses at my head, Nor shady cypress tree: Be the green grass above me With showers and dewdrops wet: And if thou wilt, remember, And if thou wilt, forget. I shall not see the shadows, I shall not feel the rain; I shall not hear the nightingale Sing on as if in pain: And dreaming through the twilight That doth not rise nor set, Haply I may remember, And haply may forget * 이런 시에는 해설을 쓰고 싶지 않다. 그냥 스치듯 들어도 가슴을 울리는 슬픈 노래 같은 시. 제목도 간단히 ‘노래’(Song)이다. 내 인생의 노래를 부른다는 심정으로 지은 시일 게다. 시를 다 지어놓고 죽 읽어 보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각운과 박자를 맞추느라 감상에 빠질 겨를이 없었을 수도 있다.자신의 묘비명 같은 노래를 썼을 때, 로세티의 나이는 서른두 살. 인생의 단맛 쓴맛을 맛보았겠지만 아직 파릇파릇, 상처도 싱싱할 때다. 푸른 잔디가 우거지고 이슬에 젖은 그녀의 ‘노래’는 슬프면서도 달콤하다. 장미의 붉은빛, 사이프러스의 침침함, 푸른 잔디…붉고 푸른 색채의 대비도 눈부시다. 장미는 사랑, 사이프러스 나무는 상중(喪中)임을 상징하는 목재로 장례식에 사용됐다. 장미도 사이프러스도 필요 없다고 선언하며 시인은 그녀의 연인이 사랑과 죽음에 얽매이지 말고 그의 인생을 살기를 바라는데, 잊고 싶으면 잊으세요라는 말투가 사뭇 간절하다. 나이팅게일은 낭만주의 시인들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새로 기쁨, 음악, 불멸과 관련된 상징이었다. 나이팅게일의 노래를 기쁨이 아니라 고통과 연관시키며, 로세티는 자연이 순수한 즐거움으로 가득한 세계라는 기존의 통념을 부정한다. *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 그리고 “내가 죽거든 When I am dead”으로 시작하는 도입부에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가 연상됐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71 내가 죽거든 싸늘하고 음산한 종소리(弔鐘)를 듣고 종소리보다 오래 애도하지 마세요 가장 역겨운 구더기와 살려고 내가 이 역겨운 세상을 떠났다고, 세상에 경고하세요. 이 시구를 읽어도 시를 쓴 손을 기억하지 마세요 당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차라리 그대의 향기로운 머리에서 잊혀지길 바라니까요. (후략) 기억과 망각의 또렷한 대비에서 셰익스피어의 영향이 감지된다. 기억과 망각, 생과 사의 차이를 즐기는 듯한 태도, 그 넘치는 자의식이야말로 현대성의 증거이며 수백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시가 살아남은 이유이다. * 크리스티나 로세티는 1830년 영국 런던에서 이탈리아 혈통의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도 시인이었고, 오빠는 저 유명한 라파엘전파의 화가인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이다. 문학과 예술에 둘러싸여 자란 크리스티나 로세티는 열두살 되던 해부터 시를 지었고, 스무살인 1850년 그녀의 오빠와 친구들이 만든 라파엘전파의 잡지에 7편의 시가 실렸다. 신비스럽고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그녀의 시 세계는 같은 해에 태어난 미국의 여성 시인 에밀리 디킨슨과 종종 비교되는데, 초자연적인 주제를 선호하는 경향은 비슷하지만 접근 방식은 상이하다. 디킨슨이 자신의 방에 갇혀 당대 어느 시와도 닮지 않은 독창적인 시를 썼다면, 로세티는 그녀에게 익숙한 영국의 시적 전통 안에서 세련된 기술을 구사한 시인이었다. 디킨슨처럼 로세티도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로세티가 열네 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병을 앓아 킹스 칼리지 교수직을 잃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어머니는 밖에 나가 교사로 일했다. 그녀의 언니도 입주 가정교사가 되어 집을 나가고 낮에 홀로 남겨진 로세티는 고독을 견디지 못해 신경쇠약에 걸려 학교를 그만두었다. 어려운 시절을 보내며 로세티 집안의 여자들-어머니와 언니 그리고 로세티는 영국 성공회에 심취했고, 이후 그녀의 인생에서 종교적 헌신이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오빠의 친구인 젊은 화가와 약혼했던 로세티는 약혼자가 가톨릭으로 개종하자 파혼을 선언했다. 혼자 살던 로세티의 생계는 오빠 윌리엄이 챙겨주었다. 오십대에 이르러 가정교사를 꿈꾸던 로세티는 갑상선 질환에 걸려 가정교사의 꿈을 접고 집안에 틀어박혀 종교적인 시와 산문을 집필했다. 암을 앓던 로세티는 64세에 런던에서 사망했다. 서른살에 ‘내가 죽거든’으로 시작하는 시를 쓴 시인치고는 오래 살았다.
  • 올림픽 메달 경매 내놓은 ‘옛 체조 요정’

    올림픽 메달 경매 내놓은 ‘옛 체조 요정’

    냉전이 극심했던 1972년 뮌헨올림픽에 옛소련 체조 대표로 출전한 올가 코르부트(62·여·미국)는 2단 평행봉의 위쪽 바에서 뒤로 공중제비를 돌며 연기를 시작하는 ‘코르부트 플립’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보여 이름을 떨쳤다. 이후 시도하다 다치는 선수가 잇따르자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곧장 올림픽에서 금지됐을 정도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키 150㎝에 깜찍하고 날랜 동작을 취한 뒤 환하게 미소를 짓는 당시 17세 소녀는 단박에 서방세계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벨라루스 출신이어서 ‘민스크 참새’란 별명도 달았다. 뮌헨올림픽 여자 단체전과 평균대, 마루에서 금메달을 땄고 2단 평행봉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런데 1991년 옛소련 붕괴 이후 미국으로 이주해 애리조나주에서 조용히 살던 코르부트가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올림픽 메달 등을 경매에 부쳐 18만 3300달러(약 2억 800만원)를 손에 쥐었다고 영국 BBC가 러시아 매체 ‘가제타. ru’의 기사를 인용해 지난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메달이 코르부트를 굶주림에서 구해냈다’라는 제목을 붙인 기사였다. 뮌헨올림픽 단체전 금메달이 6만 6000달러(약 7500만원)로 가장 비싸게 팔렸다. 경매 물품 중에는 자신이 입었던 ‘리어타드’(몸에 착 달라붙는 체조복)와 1972년 BBC 올해의 선수상, 옛소련 대회 메달들과 본인이 서명한 스포츠잡지 표지가 있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문재인 인터뷰 동영상에 이재명 ‘화나요’…무슨 일?

    문재인 인터뷰 동영상에 이재명 ‘화나요’…무슨 일?

    페이스북에 올라온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인터뷰 동영상에 28일 이재명 성남시장의 이름으로 화난 표정의 이모티콘이 표시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이 시장 측은 “최근 SNS 해킹 의심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면서 이 시장이 한 일이 아니니 오해가 없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시장 측에 따르면 전날 문 전 대표의 인터뷰 내용이 담긴 JTBC 페이스북 계정 동영상 게시물에 이 시장 이름으로 ‘화나요’ 이모티콘이 표시됐다. 페이스북에서는 게시물에 ‘좋아요’, ‘최고예요’, ‘웃겨요’, ‘멋져요’, ‘슬퍼요’, ‘화나요’ 등의 6가지 감정으로 공감 표현을 할 수 있다. 이 시장 이름으로 ‘화나요’가 표시된 인터뷰 영상에서 문 전 대표는 당내 예비주자간 토론회 횟수를 두고 논란이 벌어진 것에 대해 “특검 연장도 안 된 상황에서 후보간 토론을 한다고 딴전을 피우면 국민이 납득하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처음 (대선도전을) 하시는 분은 토론하고 싶어 근질근질하겠지만 겪어보면 토론을 지겹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시장은 애초 당 선관위가 탄핵 전 방송토론 일정을 잡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을 나타낸 바 있다. 이 시장 캠프는 이날 오전 당의 토론회 관련 제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이 시장의 ‘화나요’ 이모티콘 표시는 사라진 상태다. 이 시장 캠프 대변인인 제윤경 의원은 “(문 전 대표 인터뷰가 진행되던) 당시 이 시장은 간담회를 진행 중이었고, 캠프 관계자 그 누구도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제 의원은 최근에도 이 시장의 페이스북 계정에 다른 지역에서 해킹으로 의심되는 로그인 시도가 몇 차례 감지된 적이 있었다면서 비밀번호를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건도 그런 우려가 있는 것으로 보여 현재 비밀번호를 변경했다. 혹시라도 오해가 없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벨라루스 체조 요정 코르부트, 올림픽 메달 등 팔아 2억 손에

    벨라루스 체조 요정 코르부트, 올림픽 메달 등 팔아 2억 손에

     옛소련 체조 대표로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금메달 셋과 은메달 하나를 목에 걸었던 올가 코르부트(61·미국)가 돈이 필요해 메달들과 트로피들을 미국 경매시장에 내놓아 18만 3300달러(약 2억 800만원)를 손에 쥐었다.    벨라루스에서 태어난 그는 1991년 미국으로 이주해 애리조나주에서 생활해 왔는데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어왔다고 영국 BBC가 러시아 매체 ´가제타. ru´의 기사를 인용해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뮌헨올림픽 금메달 둘과 은메달, 트로피 등을 경매에 내놓았는데 뮌헨올림픽 단체전 금메달이 6만 6000달러(약 7500만원)로 가장 비싸게 팔렸다. 경매에 나온 물품에는 리어타드(몸에 착 달라붙는 체조복) 하나와 1972년 BBC 올해의 선수상, 다양한 옛소련 대회 메달들과 본인이 직접 서명한 스포츠잡지 표지가 있었다. ´가제타. ru´의 기사 제목은 ´메달들이 코르부트를 굶주림에서 구해냈다´였다.   냉전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1972년, 키 150㎝에 깜찍하고 날랜 동작을 취하며 환하게 웃는 17세 소녀 코르부트는 순식간에 서방세계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민스크 참새´. 당시 단체전과 평균대, 마루에서 금메달을 땄고 2단평행봉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4년 뒤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단체전 금메달은 땄지만 당시 14세의 루마니아 요정 나디아 코마네치에 밀려 평균대 은메달을 하나 따는 데 그쳤다. 코마네치는 평균대와 개인 종합, 2단 평행봉에서 금메달을 휩쓸고, 단체전 은메달, 마루 동메달을 수확했다. 평균대에서는 10점 만점이란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고 코르부트는 이 대회가 끝난 뒤 은퇴했다.    그는 이단평행봉의 위쪽 바에서 공중제비를 돌며 경기를 시작하는 ´코르부트 플립´이란 기술을 선보였다. 지금은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올림픽에서 금지됐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978년 옛소련 시절 유명한 가수였던 레오니트 보르케비치와 결혼해 1991년 옛소련이 붕괴된 뒤 미국으로 함께 이주했지만 2000년 이혼했으며 그와의 사이에 아들 리처드를 뒀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전문] 박근혜 대통령 헌재 탄핵심판 최후진술 의견서

    [전문] 박근혜 대통령 헌재 탄핵심판 최후진술 의견서

    박근혜 대통령은 27일 오후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최종변론에서 자신이 직접 작성한 의견서를 대리인 이동흡 변호사를 통해 대신 낭독하는 형태로 최후진술을 했다. 다음은 이 변호사가 대독한 박 대통령의 최후진술 전문. 대통령 의견서1. 들어가며존경하는 헌법재판관 여러분먼저, 국내외의 어려움이 산적한 상황에서 저의 불찰로 국민들께 큰 상처를 드리고, 국정운영에 부담을 더하고 있는 것을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최종변론을 준비하면서, 지난 4년의 대통령 재임기간을 돌이켜보았습니다. 부족한 점도 많았고, 제 스스로도 만족하지 못했던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지난 1998년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를 통해 정치에 입문을 하였습니다. 그 날 이후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단 한 순간도 저 개인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오로지 국가와 국민만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바른 정치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2004년 3월 한나라당의 대표최고위원으로 당선된 후 가장 먼저 여의도 공터에 천막당사를 설치하였고, 총선 이후에는 국민들께 드렸던 약속대로 당사를 매각하고, 천안 중앙연수원을 국가에 헌납하면서 약속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 드렸습니다. 저는 ‘정치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라는 신념아래 시장, 공장, 노숙자 쉼터, 결식아동 공부방 등 소외되고 어려운 서민들을 직접 찾아가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고, 지하 3,300미터의 갱도까지 내려가서 광부들의 어려움을 살폈으며, 중소기업인들과 재래시장 상인들의 애로사항은 더욱 세심하게 챙겼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이런 현장방문이 ‘얼굴비치기’가 아니라, 실질적인 ‘삶의 질’의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현장의 의견을 반영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법안과 예산으로 마무리하는 일련의 과정을 꼼꼼히 챙겼습니다. 민생현장에서의 약속들을 하나하나 기록하여 직접 점검했고, 2006년에는 대한민국 정치사에서는 처음으로 국민들께 드렸던 약속들이 ‘어느 정도 단계에 와 있는지, 아직 실천하지 못한 것은 어떤 것이며,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정리한 ‘대국민약속실천백서’를 발간하였습니다. 제가 이러한 약속실천 백서를 발간했던 이유는 ‘신뢰할 수 있는 사회와 선진국으로 인정받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얼마만큼 책임질 수 있는 약속을 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고, 국민과의 약속을 실천하는 데는 ‘협상’이 아니라 ‘노력’이 필요하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국민들께 드렸던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통일기반조성’ 등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왔습니다. 국민들의 믿음에 배신을 할 수 없다는 저의 약속과 신념 때문에 국정과제를 하나하나 직접 챙기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으로 국정을 수행해왔습니다. 어려운 국제여건에서도 우리 기업들의 활력을 되찾아주기 위해 과감하게 규제를 풀고 엄청난 투자를 해 왔으며, 북한의 위협과 주변국들의 갈등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키고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펼쳐왔던 많은 정책들이 저나 특정인의 사익을 위한 것이었다는 수많은 오해와 의혹에 휩싸여 모두 부정한 것처럼 인식되는 지금의 현실이 너무나 참담하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저는, 정치인의 여정에서, 단 한 번도 부정과 부패에 연루된 적이 없었고, 주변의 비리에도 엄정했습니다. 최순실을 비롯한 주변사람들의 잘못된 일 역시, 제가 사전에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 누구보다 앞장서서 엄하게 단죄를 하였을 것입니다. 이제, 저는 구체적인 사실관계나 법리적인 부분은 저의 대리인단에서 충분히 말씀드렸고 또한 최종적으로 정리해서 말씀을 드릴 것으로 알고 있기에, 탄핵심판의 피청구인이자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탄핵심판의 마지막 변론기일을 맞아, 소추사유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림으로써 최후의 변을 하고자 합니다. 2. 공무상비밀누설, 인사권 남용에 대하여 먼저 이번 사태의 발단인 최순실과 저의 관계,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된 공무상비밀누설, 국정농단 의혹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여러분들도 잘 아시듯이 어렵고 아픈 시절을 보내면서 많은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아픔을 겪었었습니다. 최순실은 이런 제게 과거 오랫동안 가족들이 있으면 챙겨 줄 옷가지, 생필품 등 소소한 것들을 도와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18대 대통령 선거 등을 치루면서 전국의 수많은 국민들에게 저의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각종 연설의 중요한 포인트는 보좌진과 의논하여 작성을 하였지만, 때로는 전문적인 용어나 표현으로 인해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말하는 사람의 진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가끔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러한 연유로, 저는 국민들이 들었을 때 이해하기 쉽고, 공감할 수 있는 표현에 대해 최순실의 의견을 때로 물어본 적이 있었고, 쉬운 표현에 대한 조언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그동안 최순실은 제 주변에 있었지만, 그 어떤 사심을 내비치거나 부정한 일에 연루된 적이 없었고, 이로 인해 제가 최순실에 대하여 믿음을 가졌던 것인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의 그러한 믿음을 경계했어야 했는데 하는 늦은 후회가 듭니다. 하지만, 제가 최순실에게 국가의 정책사항이나, 인사, 외교와 관련된 수많은 문건들을 전달해 주고, 최순실이 국정에 개입하여 농단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정부의 각료나 공공기관장 등의 인선의 경우, 여러 경로를 통해 적임자를 추천을 받아, 체계적이고 엄격한 검증절차를 거쳐 2, 3배수의 후보자로 압축이 되면, 위 후보자들 중에서 적임자를 최종적으로 낙점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인사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권자는 대통령이고 그 책임 역시 대통령의 몫입니다. 떠도는 의혹처럼 어느 한 개인이 좌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일부 공직자 중 최순실이 추천한 인물이 임명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저는 최순실로부터 공직자를 추천받아 임명한 사실이 없으며, 그 어떤 누구로부터도 개인적인 청탁을 받아 공직에 임명한 사실이 없습니다. 또한 공무원에 대한 임면권자로서,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성실히 수행하지 못하거나 공직자로서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비위 등이 있는 경우 정당한 인사권을 행사하여 당해 공무원들에 대해 책임을 물은 사실은 있으나, 최순실을 포함한 어느 특정인의 사익에 협조하지 않는다 하여 아무런 잘못이 없는 공무원들을 면직한 사실은 추호도 없습니다. 최순실은 오랫동안 유치원을 운영한 경험은 있지만, 국가 정책이나 외교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인 제가 그와 같은 최순실에게 국가의 주요 정책이나 외교 문제를 상의해서 결정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3. 재단법인 미르, 재단법인 케이스포츠 설립·모금에 대하여 무엇보다도, 저는 재임 중에 기업 활동을 옭아매는 규제를 풀어 어느 나라보다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으며, 기업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엄격하게 자제해 왔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한정된 예산만으로는 모든 정부 시책을 추진하기는 어렵고, 민간기업의 자발적 참여와 협조가 반드시 필요한 분야도 있습니다. 저는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부터 창조경제의 중요성을 역설해왔고, 문화융성을 통하여 한류를 확산하고 체육인재양성을 통하여 국위를 선양하여 국가의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면, 기업에도 이익이 되고, 이로 인해 일자리도 창출되어, 경제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세계경제가 제조업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현 시점에서, 문화는 미래의 대한민국을 지탱해 줄 중요한 고부가가치의 산업이라 여겼으며, 한 나라의 정신이자, 소프트웨어라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문화와 체육 분야의 성장을 위해 기업들의 투자를 늘 강조해 왔습니다. 기업인들도 ‘한류가 세계에 널리 전파되면 기업의 해외 진출이나 사업에 도움이 된다’며 저의 정책 방향에 공감해 주셨고, 그래서 저는 전경련 주도로 문화재단과 체육 재단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관련 수석으로부터 처음 들었을 때, 기업들이 저와 뜻에 공감을 한다는 생각에 고마움을 느꼈고, 정부가 도와 줄 수 있는 방안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와주라고 지시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뜻을 모아 설립한 위 재단들의 선의가, 제가 믿었던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왜곡되고, 이에 적극 참여한 우리나라 유수의 기업관계자들이 검찰과 특검에 소환되어 장시간 조사를 받고, 급기야는 국가경제를 위해 노력해오던 글로벌 기업의 부회장이 뇌물공여죄 등으로 구속까지 되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대통령으로서 국가경제를 위해 세계를 상대로 열심히 싸우고 있는 우리 기업들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비난과 질시의 대상으로 추락하게 하고, 기업들이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국가발전에 공헌한다는 차원에서 공익적 목적의 재단법인에 기부한 것을, 뇌물을 제공한 것으로 오해받게 만든 점은 너무 안타깝습니다. 저는 그간 누누이 말씀드린 것처럼, 공직에 있는 동안은 저 자신을 철저하게 관리하여 어떠한 구설도 받지 않으려 노력해 왔으며, 삼성그룹의 이재용부회장은 물론 어떤 기업인들로부터도 국민연금이든 뭐든 부정한 청탁을 받거나 이를 들어준 바가 없고, 또한 그와 관련해서 어떠한 불법적인 이익도 얻은 사실이 없습니다. 4. 중소기업 특혜, 사기업 인사 관여 의혹에 대하여 대통령이 특정 중소기업의 납품이나 수주를 도왔다거나, 사기업의 인사에 관여했다는 의혹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20대 초반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를 도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대행했을 때부터 청와대에 들어온 민원을 점검하고 담당부서들이 잘 처리하고 있는지를 일일이 확인해야만 마음이 놓였으며, 영세한 기업이나 어렵고 소외된 계층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이 국가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첫 경제일정이 중소기업중앙회를 방문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평소에도 우수한 기술을 갖춘 중소기업들이 국내외에 제품을 납품할 수 있는 기회 한 번 제대로 잡지 못하고 소중한 기술이 사장되는 것을 안타까워했었고, 그럴 때마다 합법적 범위 내에서 지원할 방안을 찾도록 관련 부서에 요청하였습니다. 대통령이 귀찮아하지 않고 우수한 중소기업들의 애로사항을 적극적으로 해결해 주는 것이 올바른 국정 수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수행하면서 현장을 방문했을 때, 중소기업들의 민원이나 지원 건의가 있으면 작은 부분이라도 챙겨주어야 하는 것이 대통령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을 하고 관련 부서에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이를 지원할 방안을 찾도록 지시를 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결코 누군가의 부정한 청탁을 위해서, 또는 누군가에게 개인적인 이권이나 이익을 주기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최순실이 제게 소개했던 ‘KD코프레이션’이라는 회사의 자료도 이러한 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을 도와주려고 했던 연장선에서 판로를 알아봐 주라고 관련수석에게 전달을 하였던 것이며, 위 회사가 최순실의 지인이 경영하는 회사이고 최순실이 이와 관련하여 금품을 받은 사실은 전혀 알지도 못했으며,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사기업의 인사에 관여하였다는 부분에 있어서도, 제가 추천을 했다는 사람 중 일부는 전혀 알지도 못하며, 제가 도움을 주려고 했던 일부 인사들은 능력이 뛰어난 데 이를 발휘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하여 능력을 펼칠 기회를 알아봐주라고 이야기했던 것일 뿐, 특정 기업의 특정 부서에 취업을 시키라고 지시한 사실은 없습니다. 5. 언론자유 침해 2014. 11.경 세계일보에서 ‘정윤회 국정 개입은 사실’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였고, 이후 그 근거로 청와대에서 작성된 감찰보고서를 공개하였습니다. 이 보도 이후에, 저는 같은 해 12. 초순경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기초적인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외부로 문건을 유출하게 된 것은 국기문란’이라는 취지로 발언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는, 당시 청와대의 비밀문건이 외부로 유출되어 보도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은 공직기강 차원에서 큰 문제라는 인식하에 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취지였을 뿐, 세계일보에 보도 자제를 요구하거나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 후 검찰수사를 통해 세계일보가 보도한 ‘정윤회가 국정에 개입하고 있다’라는 취지의 문건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 후 저의 비서진들에게 세계일보 조한규 사장의 해임을 요구하도록 지시를 하거나, 이를 알면서도 묵인한 사실이 없습니다. 6.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하여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저는 관저의 집무실에서 국가안보실과 정무수석실로부터 사고 상황을 지속적으로 보고를 받았고, 국가안보실장과 해경청장에게 ‘생존자 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수 회에 걸쳐 지시를 하였습니다. 다만, 재난, 구조 전문가가 아닌 대통령이 현장 상황에 지나치게 개입할 경우 구조 작업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체계적인 구조 계획의 실행에 방해만 된다고 판단을 하여 구조상황에 대한 진척된 보고를 기다렸습니다. ‘전원구조’라는 연이은 언론의 보도 및 관련부서로부터 받은 통계에 오류가 있는 보고로 인해 당시 상황이 종료된 것으로 판단을 하였다가, 전원구조라는 보도가 오보이고 피해 상황이 심각하다는 정정 보고를 받은 후에는 즉시, 중대본 방문을 지시하였고, 관계공무원들에게 “단 1명의 생존 가능성도 포기하지 말고 동원 가능한 모든 인력과 장비를 동원하여 보다 세밀한 수색과 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피해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조치라면 조금도 망설이지 말고 적극 협조하여, 사고 현장의 가족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살펴 달라”고 지시하는 등, 구조와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할 것을 독려하였습니다. 일각에서, 당일 제가 관저에서 미용시술을 받았다거나 의료처치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7. 마치며 저는 정치인으로서 지켜야 할 가치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믿고 살아왔습니다. 대통령으로 취임한 그 날부터 국민과의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 저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쏟아 일해 왔습니다. 저는 이 땅의 모든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펼쳐 나갈 수 있고, 모든 젊은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직장을 가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 우리 후손들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풍요로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 이 나라의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대통령으로서 책임지고 해야 할 사명으로 생각하였고, 이를 이룰 수 있다는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혼신의 노력을 다해왔습니다. 땀 흘린 만큼 보상받고, 노력한 만큼 성공하는 나라, 법과 원칙을 지키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상식이 통하는 그런 나라를 만드는 것이 저의 소명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돌아보면,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제게 주어진 소명을 수행하기 위해 보낸 지난 시간들은 국민과의 약속을 실천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주변을 제대로 살피고 관리하지 못한 저의 불찰로 인해 국민들의 마음을 상하게 해 드린 점에 대하여는 다시 한 번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지금껏 제가 해 온 수많은 일들 가운데 저의 사익을 위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으며, 저 개인이나 측근을 위해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하거나 남용한 사실은 결코 없었습니다. 다수로부터 소수를 보호하고 배려하면서,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있으며, 결과에 대한 정당성 못지않게 그 과정과 절차에 대한 정당성이 보장되는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와 역사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 어떠한 상황이 오든, 소중한 우리 대한민국과 국민들을 위해 갈라진 국민들의 마음을 모아 지금의 혼란을 조속히 극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나가겠습니다. 헌법재판관님들의 현명한 판단과 깊은 혜량을 부탁드립니다. 2월 27일 대통령 박근혜.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공무원 속의 공무원 이야기… 공무원들이 전합니다

    공무원을 위한 프리미엄 월요 매거진 ‘퍼블릭 IN’은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기 위해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 명예기자를 위촉했습니다. 쌍방향 잡지를 지향하는 퍼블릭IN은 명예기자들이 직접 현장을 누비며 쓴 르포 기사는 물론 칼럼, 수필, 각 부처 소식 등을 담을 예정입니다. 다음은 1차로 위촉된 명예기자 명단입니다. ▲강수민(행정자치부 규제혁신팀장) ▲김광용(국민안전처 안전기획과장) ▲김민경(통일부 홍보담당관실 사무관) ▲김성희(해양수산부 대변인실 사무관) ▲김승태(인사혁신처 시험출제과 사무관) ▲김현우(농림축산식품부 대변인실 사무관) ▲민진기(인사처 대변인실 사무관) ▲박경수(문화체육관광부 주무관) ▲박재연(행자부 지방세정책과 사무관) ▲박재혁(기획재정부 대변인실 사무관) ▲박현정(교육부 운영지원과 사무관) ▲변수남(서울시소방학교장·소방준감) ▲서은혜(고용노동부 청주지청 주무관) ▲신동민(공정거래위원회 온라인홍보팀장) ▲안상균(국방부 정책홍보담당관실 주무관) ▲유삼술(국토교통부 홍보담당관) ▲윤세열(안전처 안전기획과 행정사무관) ▲윤장렬(총리실 사무관) ▲이대현(서울 성북구청 언론홍보팀장) ▲이재광(총리실 사무관) ▲이주영(외교부 정책홍보담당관실 사무관) ▲임형진(산업통상자원부 대변인실 서기관) ▲장광호(경찰청 범죄분석담당관실 경정) ▲조경래(미래창조과학부 홍보담당관실 사무관) ▲조성수(특허청 대변인실 행정주사) ▲채향석(법제처 대변인) ▲최중기(국가기록원 홍보팀장) ▲한순기(행자부 기획조정실 부이사관) ▲홍이정(지방세입정보과 주무관) ★명단은 가나다순
  • 취임 4주년, 씁쓸한 靑

    취임 4주년, 씁쓸한 靑

    기념행사는 물론 참모들과 티타임도 안 해 문고리 3인방 등 흉금 터놓을 측근도 없어 관저에서 차분하게 탄핵심판 법리대응만 특검 대면조사 이견 여전… 성사 힘들 듯 2013년 2월 대통령 취임사에서 ‘희망의 새 시대’를 역설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4주년을 막바지 탄핵심판 준비로 보냈다. 이렇다 할 기념행사는 물론 참모진들과의 티타임조차 없었다. ‘경제부흥’과 ‘국민행복’, ‘문화융성’ 등 박근혜 정부의 핵심 공약은 이미 탄핵 찬반 목소리에 덮였고 청와대에는 씁쓸한 분위기만 감돌았다.박 대통령은 취임 4주년인 지난 25일 별다른 일정을 잡지 않았다. 대신 관저에서 변호인단 등과 접촉하며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 대한 막판 대응 전략을 짜는 데 집중했다. 지난 2일 생일에는 참모들과 ‘칼국수 오찬’을 했지만 이번에는 이마저도 없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은 차분하게 법리대응 준비를 하는 것으로 안다”면서 “취임 4주년 관련 일정은 전혀 없다”고 전했다. 지난해 취임 3주년 당시 박 대통령은 대전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해 ‘창조경제’ 알리기에 주력하기도 했다. 대선 당시 51.6% 득표율로 출발했던 박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3년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 수사 당시 최고 지지율 67%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듬해 세월호 참사와 비선 실세 문건 유출,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등으로 지지율은 하락했고 지난해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후에는 역대 최저치인 4%를 기록했다. 국회의 탄핵안 가결 이후 박 대통령은 변호인단 회의를 위해 위민관을 방문하는 것 외에는 관저 앞마당 산책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핵심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문고리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마저 공중 분해되면서 흉금을 터놓고 얘기를 나눌 측근조차 없는 처지다.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이 주관하는 수석비서관회의는 매주 세 차례씩 열리고 있지만 회의 결과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보고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헌재의 탄핵심판 최종 변론일을 하루 앞둔 26일 불출석하기로 최종 결론을 냈다. 다만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대면 조사에는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은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특검의 1차 수사기간 만료를 이틀 앞둔 이날까지 대면 조사 방식 등을 두고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양측의 전격적인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박 대통령의 대면 조사 역시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탄핵심판 전 박 대통령의 ‘자진 하야’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박 대통령 취임 4주년…“오찬이나 차담 일정도 없어”

    박 대통령 취임 4주년…“오찬이나 차담 일정도 없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최종변론(27일)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취임 4주년을 맞았다. 박 대통령은 이날 관저에 머무르면서 변호인단 등과 수시로 접촉하고 법리 대응 문제에 대해 상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의 탄핵심판에 대응하는 막판전략 수립에 들어간 것. 헌재가 26일까지 박 대통령의 출석 여부를 알려달라고 했으나 박 대통령은 아직 최종 결심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측 관계자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헌재 출석 문제는 여전히 검토 중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내부적으로는 피청구인인 박 대통령이 헌재에 출석해 국민에게 탄핵 사유에 대한 입장을 직접 밝히는 것이 탄핵심판에나 국민 여론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헌재 재판정에서 서서 국회 소추위원들로부터 신문을 받는 모습이 좋지 않다는 지적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상황이 이런 만큼 박 대통령은 취임 4주년에 별다른 일정을 잡지 않았다. 지난 2일 생일 때는 청와대 참모들과 ‘국수 오찬’을 했지만, 이번에는 오찬이나 차담 일정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대통령께서는 관저에서 차분하게 법리대응 준비를 하는 것으로 안다”면서 “취임 4주년 관련 일정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취임 4주년을 조용히 보내는 까닭은 막바지에 와 있는 탄핵심판과 특검 수사에 대한 법리대응 준비와 함께 헌재에 탄핵 인용을 촉구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날도 TV 등을 통해 촛불집회와 함께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태극기집회 상황을 지켜볼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참모들도 평소 주말처럼 수석비서관 이상은 모두 출근해 집회 상황을 챙겼다. 다만 촛불·태극기 집회 자체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는 않았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사설] 80조원 쓰고도 40만명까지 떨어진 신생아 수

    젊은층이 결혼과 출산을 꺼린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정부가 혼인율과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그간 내놓은 대책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온갖 노력이 헛수고로 돌아갔다. 통계청이 어제, 그제 내놓은 지난해 출생·사망·인구 동향은 우리 사회의 저출산과 혼인 기피 현상이 위험 수위를 넘어 국가의 미래 운명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임을 여실히 보여 준다. 지난해 출생아는 40만 6300명으로 전년보다 3만 2100명(7.3%)이나 줄었다고 한다. 1970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소치다. 2002년 처음 50만명대가 무너지더니 14년 만에 40만명 선마저 위협받게 생겼다. 출산율은 1년 새 1.24명에서 1.17명으로 추락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평균 1.68명에 한참 못 미친다. 혼인 건수도 전년(30만 2828건)보다 2만건 이상 줄어든 28만 1800건에 그쳤다. 30만건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00년 월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혼인·출생 동반 감소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부는 2006년 이후 저출산 대책 관련 예산으로 80조원가량을 투입했지만 이 기간 출생아 수는 오히려 42만명이나 줄어들었다. 80조원이면 5000만 국민에게 1인당 160만원씩 돌아가는 돈이다. 그런 막대한 예산을 쓰고도 정부 저출산 대책이 헛바퀴를 돈 것은 정책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거나 근본 대책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 아니겠는가. 이제 와서 출산율과 혼인율이 왜 떨어지는가에 대해서는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그 원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선 10년간 80조원을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에 대한 심층적인 평가부터 해야 한다. 객관적인 기관의 주도로 백서를 펴냄으로써 관련 정책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인구정책개선기획단’을 만들 계획이라고 하나 그 정도로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혼인 기피와 출산율 저하는 고용, 주택, 보육·교육 문제가 얽혀 생기는 것인데 그동안 각 관련 부처가 생색내기식으로 대책을 따로 내놓다 보니 효과를 보지 못한 측면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차기 정부 부처 통폐합 과정 때 출산·혼인 전담 부서를 신설할 것을 제안한다. 새 부서가 부처별로 분산된 정책을 하나로 묶어 국정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되 고용부·국토부·교육부·여성가족부 등과 긴밀한 협의 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찾기 바란다.
  • AI·VR·AR… 모바일, 다음 세상을 만나다

    AI·VR·AR… 모바일, 다음 세상을 만나다

    ‘모바일. 그다음 요소.’ 오는 27일(현지시간)부터 나흘 동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모바일월드콩그래스(MWC) 2017’의 주제다. 전 세계 2200여개 정보통신(ICT) 기업이 참가하고 10만 1000여명이 방문할 예정인 올해 MWC에선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실감형 미디어 등을 당장 경험할 수 있도록 구현한 제품들이 대거 쏟아질 전망이다. 이에 올해 MWC에선 빠르게 진화하는 모바일·정보기술(IT) 제품이 상용화될 세계를 상상하는 데 역량을 쏟는다.‘콘텐츠’는 MWC 주최 측인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가 다급하게 찾은 주제 중 하나다. MWC 기간 중 개최되는 콘퍼런스에 콘텐츠 관련 기업인들이 대거 초청됐다. 전체 11개 콘퍼런스 가운데 4개 콘퍼런스가 콘텐츠 역량 확보에 관한 논의다. 리드 헤이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 존 스탠키 AT&T 엔터테인먼트 그룹 CEO, 포켓몬고 흥행에 성공한 나이앤틱의 존 행크 CEO, CNN의 모기업인 터너브로드캐스팅의 존 마틴 회장 등이 주요 연사로 나선다. 이 중 나이앤틱이 주도할 콘퍼런스의 제목은 ‘콘텐츠 골드러시’다. 미래기술 구현 제품과 통신망이 순조롭게 구축되는 가운데 콘텐츠의 양과 질이 결국 기술 대중화와 비즈니스 모델을 결정지을 것이란 관측에서 결정된 주제다.2020년 이후쯤 범용화될 5세대(G) 통신망은 올해 MWC 전시관 전체를 차별화시킬 기폭제로 꼽힌다. KT경제경영연구소의 홍원균 연구원은 23일 “4G 통신을 기반으로 한 지난해 MWC에선 고화질 동영상 콘텐츠, 앱 기반 플랫폼, 스마트폰과 태블릿 중심 디바이스가 각광받았다”면서 “5G 통신을 염두에 둔 올해 MWC에선 실감형 콘텐츠, AI 기반 플랫폼, AR·VR·로봇·드론 등을 활용한 디바이스를 전시관 도처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5G 표준을 선도하고 있는 국내 이통사들도 MWC에서 실력 발휘에 적극 나선다. KT는 주요 전시장인 이노베이션 시티 부스에서 AT&T, 화웨이, 시스코재스퍼 등과 함께 5G 역량을 선보인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공식 후원사인 KT는 올림픽에서 선보일 5G 융 합 서비스를 비롯해 지능형 보안서비스, 스마트에너지 솔루션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단독 부스를 설치하는 SK텔레콤은 VR과 AR을 영상통화에 접목한 홀로그램 통신 서비스 ‘텔레프레즌스’를 공개한다. 텔레프레즌스는 원격지 회의 참가자들이 마치 같은 방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AR 기반 홀로그래픽 통화 솔루션이다. SK텔레콤은 또 AR과 VR이 혼합된 혼합현실(MR)을 선보인다. 다수의 사람들이 공사 현장에서 건물 외관은 AR로, 건물 내부는 VR로 살피며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이다. IT 전문가들이 MWC에서 미래기술 트렌드를 읽는다면, 당장 시장이 주목하는 전시는 새 스마트폰에 관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차기 전략 스마트폰인 갤럭시S8 공개를 MWC 이후로 미뤘고, 애플은 MWC에 불참한 가운데 LG전자를 비롯한 3위권 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할 전망이다. 중국 기업들의 ‘물량 공세’는 이번에도 이어진다. 중국TCL은 블랙베리 알카텔 신형 모델을 25일 공개한다. 블랙베리 특유의 쿼티 자판과 구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운영체제(OS)를 탑재한 제품이다. 26일 공개될 중국 화웨이 P10은 홍채인식, 음성인식 AI를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모토롤라를 인수한 중국 레노버가 모토G플러스를, 대만 폭스콘이 노키아 P1을 공개한다. 27일에는 일본 소니 엑스페리아 신형 모델이 공개된다. 중국 오포도 같은 날 파인드9을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LG G6와 삼성전자의 태블릿PC 갤럭시탭S3도 공개 일정이 집중된 26일에 공개 행사를 연다. 국내 ICT 기업 수장들은 MWC에 총집결한다. 가전 사업을 지휘하다 올해부터 LG전자를 총괄하는 조성진 부회장은 올해 처음으로 MWC에 참석한다. LG전자 모바일커뮤니케이션(MC) 사업본부장인 조준호 사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직접 G6 제품 발표에 나서며 전면에 선다. 삼성전자의 신종균 대표, 무선사업부(IM) 본부장인 고동진 사장도 MWC에 참석하지만 언론 공개 일정은 잡지 않았다. 취임 두 달째인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MWC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황창규 KT 회장, 권영수 LG유플러스 회장 등 이통 3사 CEO도 MWC에 전원 참석한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시력상실 위기…원인은 20년 전 가슴 성형수술

    미국 성인잡지 ‘플레이보이’ 모델로 활약했던 여성이 20여 년 전 받은 가슴확대수술 때문에 시력 상실은 물론, 목숨까지 잃을 뻔했다고 밝혀 눈길을 모았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22일자 보도에 따르면 미국 애리조나에 사는 카렌 맥더걸은 22살이었던 1996년, 완벽한 외모를 꿈꾸며 가슴확대수술을 받았다. 가슴에 염분이 함유된 보형물을 넣는 이 시술을 받은 뒤 종종 통증이 있긴 했지만, 한동안 플레이보이 모델로 활동을 하는데 큰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갑자기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한 카렌은 앞이 잘 보이지 않기도 했고, 극심한 편두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급기야 모델 활동은커녕 일상생활도 어려울 정도의 통증에 시달렸고, 지난해 10월부터는 침대에 누워서 생활해야만 했다. 침대에 꼼짝하지 못하게 된 다음에야 시력감퇴 및 각종 통증의 원인을 알 수 있었는데, 이는 다름 아닌 가슴 보형물이었다. 지난 1월, 그녀는 가슴보형물 및 가슴보형물로 인해 생긴 염증 조직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고, 이후 건강은 빠르게 회복됐다. 카렌은 “지난해 말, 나는 침대에 누워 매일 밤마다 ‘곧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날들이 점점 더 많아졌고 빛과 소리에 민감해져갔다. 심지어 내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통증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소녀들처럼 나 역시 어릴 때에는 더 예쁜 외모를 위해 가슴 사이즈를 키우고 싶어했다. 의사들은 내게 수술이 안전하다 이야기했고, 평생 문제가 없을 거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달랐다”면서 “20년이 지난 후 나는 가슴 보형물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덧붙였다. 건강을 회복한 그녀는 여성들에게 가슴 보형물에 대한 위험성을 강조하고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캠페인에 앞장서고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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