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잡스
    2026-07-09
    검색기록 지우기
  • 성화
    2026-07-09
    검색기록 지우기
  • 전문대
    2026-07-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505
  • 북은 쌀수송 육로도 개방하라(사설)

    북한에 제공되고 있는 우리쌀의 수송항로가 동해안에서 서해안으로 확대된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남북한은 쌀 인도항구를 기존의 청진·나진 외에 같은 동해안의 원산과 서해안의 해주·남포를 추가,5곳으로 늘리기로 합의했다.이것은 우리정부의 요청을 북한당국이 수용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쌀 인도항구가 3곳 늘어난 것 그 자체는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또 북한당국은 그들의 필요에 따라 우리정부의 요청을 수용했을 수도 있다.그러나 우리는 북한이 동해안 북쪽항구로만 국한했던 쌀 인도장소를 서해안항구까지 확대하는 데 동의한 것은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남포는 평양의 관문으로 북한당국이 개방하기를 가장 꺼리는 곳이다.그런 곳을 비록 쌀을 받기 위해서지만 우리선박의 입항에 개방한 것은 변화의 조짐으로 평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차제에 해상뿐만 아니라 육로도 개방할 것을 촉구한다.북한당국은 주민에게 남쪽쌀을 받게 된 사실을 알리지 않기 위해 해상수송만 고집하고 있는 것같지만 영원히 숨길 수는 없을 것이다.북한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중국 연변의 조선족이 이 사실을 알고 있고 또 이들을 통해 북한주민도 결국은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당국이 우리쌀의 육로수송을 굳이 기피할 이유가 없다.비용도 적게 들고 시간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북한당국이 하기에 따라서는 체제의 동요없이 북한주민을 적절히 통제할 수도 있을 것이다.인공기강제게양사건으로 오는 8월10일까지 우리쌀 15만t 전량을 북한에 수송키로 한 당초의 남북합의가 차질을 빚고 있기도 하다. 우리 정부는 북의 눈치를 살피며 쌀을 보내는 데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북한의 상응한 조치를 당당하게 촉구해야 한다.그런 의미에서 오는 15일로 예정된 2차 남북쌀회담의 장소도 멀고 번잡스러운 북경이 아니라 판문점에서 하도록 하고 쌀수송을 위한 육로도 개방하도록 북한측에 요청해야 할 것이다.그리고 북한도 이번 항구개방확대처럼 우리의 합리적인 요청에는 적극 호응하는 성의를 보여주기 바란다.
  • 르완다비극의 배경은 식민통치(해외사설)

    르완다도 지금처럼 비극적으로 살지 않았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후투족과 투치족은 지난 30년간 부족간의 반목과 외세의 인위적인 조종 결과로 추잡스런 난민 수용소등에서 서로 죽이는 「인종청소」의 대학살을 반복해 왔지만 그 전에는 목가적이진 않더라도 마을단위로 행복하게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그것은 아마도 한세기 이전의 시대로 독일인들이 이곳에 상륙하기 이전의 일이다. 르완다와 부룬디는 1897년부터 1919년까지는 독일의 동부아프리카 식민지의 일부였고 1차대전이후는 벨기에에 이양됐으며 그후 국제연맹을 거쳐 국제연합의 신탁통치를 받아왔다.중요한 것은 금세기 초부터 어떤 세력이 이곳을 통치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문제는 유럽의 국가들이 이곳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인위적으로 귀족정치를 해왔다는 사실이다.즉 소수 인종인 투치족을 두드러지게 선호한 반면 다수족인 후투족은 피지배계급으로 삼았던 것이다. 벨기에가 르완다에 준 것이라고는 소수 투치족을 특권지배계급으로 하고 다수 후투족은 못배우고 빈곤한 상태로 내버려둔인종차별의 가혹한 계급체계라는 카드뿐이었다.이같은 체계는 한쪽이 다른 쪽을 살해하는데 쓰인다.한세기가 넘는 동안 지속된 식민지 착취와 무관심은 오늘날 르완다가 겪는 참담한 상황을 낳은 원인이 됐다. 르완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못할 짓을 해왔다.후투족은 수백·수천명이 소수 투치족에게 칼을 휘두르고 총격을 가하고 돌을 던져왔다.한 후투인은 한번에 9백여명을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또 수백명의 후투인들도 투치족이 휘두른 총·칼에 죽었다.이같은 유혈분쟁의 기저에는 외세가 오랜 동안 통치해온데서 기인한 두인종간의 경쟁심이 놓여있다. 지금 르완다는 아제르바이잔이나 보스니아·남부수단·터키와 쿠르드족등의 상태와 같이 돼가고 있다.서방세계는 이들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고 있으며 화해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을 놓고 양손을 부여잡고 해결책을 짜내고 있다.그러나 사람들은 『그곳에서 비극이 벌어질 때 유엔은 무엇을 했느냐』고 물을 것이다.
  • 미래컴퓨터산업 이끌 50걸/한국인 2명 선정

    ◎미 뉴스워크지/미·일서 활약 강신학·손정의씨 미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21일 발매된 최신호에서 21세기의 컴퓨터산업 분야를 주도해 나갈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로 미국과 일본에서 활약하는 강신학씨(미국명 스티브 강)와 손정의씨(일본명 마사요시 손)등 50명을 선정했다. 뉴스위크는 특히 강씨를 사진과 함께 크게 소개하면서 파워 컴퓨팅사를 운영하는 그가 처음으로 애플사의 매킨토시 컴퓨터 호환기종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강씨가 생산할 매킨토시 호환기종은 처음에는 주문판매만 응할 예정이지만 성공할 경우 월마트등 대형 체인을 통해 대량으로 판매하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위크는 손씨를 가리켜 「일본의 빌 게이츠」라고 칭하면서 최근 인터페이스사로부터 세계최대 컴퓨터전시회인 컴덱스 운영권을 매입했다고 밝혔다. 뉴스위크가 선정한 50명 가운데는 애플사를 세웠던 스티브 잡스와 불과 28세로 멀티미디어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있는 제이미 레비를 비롯,최근 악명높은 컴퓨터해커 케빈 미트닉을 추적,FBI가 체포하는데수훈을 세운 컴퓨터 보안전문가인 시모무라 쓰토무도 포함됐다.
  • 빌 게이츠/컴퓨터 황제 숨겨진 얘기

    ◎새달 내한… 관련서적을 통해 본 면모/9살때 백과사전 외우려던 책벌레/자본금 1천5백달로 20세에 창업/외국출장 전세기 사절… 구두쇠재벌 세계컴퓨터 산업계의 신화 빌 게이츠가 전국에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다음달 5일 내한,대중강연을 펼치게 될 빌 게이츠의 전기를 비롯,그가 운영하고 있는 세계최대의 소프트웨어업체인 마이크로 소프트사 등에 관한 책들이 잇따라 출간되고 기존의 나온 책들도 최근 판매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 최근에 출간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책으로는 미국의 컴퓨터 전문 칼럼니스트 스테펀 메인즈와 시애틀 타임스의 하이테크 담당기자 폴 앤드루가 공동집필한 「빌 게이츠 훔치기」를 꼽을 수 있다. 빌 게이츠에 대한 관심이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높은 이유로는 그가 젊은 나이에도 천재적인 능력으로 MS-DOS·윈도즈 같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일약 세계최고 갑부의 반열에 들어섰기 때문이다.우리나라에도 얼마전 컴퓨터에 미쳐 빌 게이츠 같은 프로그래머가 되겠다는 학생들이학교를 그만두는 등의 일이 일어났던 적이 있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대단하다.빌 게이츠는 하버드대학을 다니다 중퇴하고 사업에 뛰어들었었다. 전세계적으로 PC사용자들의 3분의 2이상이 사용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인 MS­DOS와 윈도즈를 개발한 빌 게이츠이지만 그의 사생활은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이 책은 그러나 빌 게이츠가 어린시절과 학생시절에 보여준 흥미로운 에피소드들과 복합적인 성격탐구들을 통해 그가 컴퓨터업계의 일인자로 부상하게된 과정을 꼼꼼하게 밝혀내고 있다. 아홉살때 이미 세계대백과사전을 암기하려 애쓴 책벌레였다든가,부모들이 그를 독립된 인격체로 키우려 노력했다는 점 등은 장난꾸러기이기도 했던 이 소년이 컴퓨터업계 거물로 성장한 게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려준다. 소문난 구두쇠로 알려진 빌 게이츠는 현재 미국 최고의 재산가이면서도 1달러라도 그냥 쓰는 법이 없다.타고난 자유분방한 기질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기업의 회장으로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잡무를 처리해주는 여비서도 한명 고용하지 않고 있다.「기술조수」가 한두명 있을 뿐이다.외국으로 출장을 갈때도 전세비행기를 이용하지 않는다.동료들과 함께 비행기를 갈아타며 여행을 한다. 이 책은 또 빌 게이츠 개인사일 뿐 아니라 그가 건설한 마이크로 소프트사라는 왕국의 발전사이기도 하다.스무살의 나이에 친구 폴 앨런과 함께 자본금 1천5백달러를 가지고 마이크로 소프트사를 차린 후 스물다섯되는 해 당시 세계최고의 컴퓨터업체인 IBM과 정식거래를 맺었다.서른 두살에는 도스와 윈도즈로 「컴퓨터황제」에 등극하게 되는 이야기가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또한 개인용 컴퓨터 혁명의 역사와 진행과정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를 끈다. 남들보다 한발앞서 각 개인들이 컴퓨터를 사용할 날이 올것을 예견하고 PC산업에 뛰어들었던 폴 앨런,매킨토시선풍을 일으켰고 아직까지도 빌 게이츠의 가장 강력한 적수로 남아 있는 스티브 잡스 등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곁들여진다.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마이크로 소프트사와 빌 게이츠」(세종서적),「빌 게이츠」(다음세대),「마케팅황제와 존스컬리의 성공신화­펩시에서 애플로」(청년사),「Apple & 스티브 잡스」(비앤씨) 등도 인기이다.
  • 로마/카타콤베(아랍서 지중해까지:18)

    ◎기독교도 숨던 지하무덤… 미로수백㎞/「쿼바디스」의 아피아가도 주변에 산재… 땅굴 곳곳 교인들 수난 흔적 길 모퉁이에 있는 작은 가게를 구경하다 깜박 카메라를 놓고 나왔는데 두어 블록이나 걷고 있을때 『시뇨레! 시뇨레!』하면서 주인이 쫓아왔다.베네치아에서 만들어와 판다는 세라믹 액세서리들의 그 담백한 아름다움에 잠깐 정신을 놓았었던 것 같다.자리까지 비운 채 여기까지 유실물을 갖다주러 오다니 싶어 얼굴이 붉어진 것은 비단 그 가게주인이 예쁜 아가씨였던 때문만은 아니다.잊은 물건 으레 찾으러 들이닥치겠지 싶어 필자 같았으면 오불관언 그냥 버티고 앉아 있었을 것이다.아무 것도 아닌 이런 사소한 일이 실은 한 나라의 민도랄까 문화적 수준을 제풀에 측정케 만들고 절감케 한다.이탈리아 사람들은 너무 친절해서 모르는 것도 아는 척 곧잘 나서기 때문에 골탕을 먹는 수가 있다고도 하지만(하긴 필자도 그 때문에 엉뚱한 길을 헤맨 적이 한번 있기는 하다),이 아가씨의 친절은 여태까지도 쉬이 잊혀지지가 않는다.남의 얼굴에다 제 얼굴 디미는 간판들이나 판을 치는 대도시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미덕이요 소양이다.피곤한 신경으로 거리를 걷다보면 간판들의 그런 번잡스러움 같은 것까지가 그 나라의 수준을 금세 헤아리게 만든다. ○친절한 시민 인상적 소위 앞서간다는 나라들의 그것은 대체로 그저 눈에 뛸 정도의 글씨로 숨듯이 얌전한 반면 후진 나랄수록 그 요란함과 새치기는 극성스럽다.TV나 신문·잡지의 광고 역시 예외일 리가 없다.잠자리에 들기전 하다못해 잠깐이라도 TV를 켜는 새버릇이 이번 여행중에 붙은 것도 순전히 그 탓이었을 것이다.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책광고·상품광고 같은 것이 우리처럼 허풍스럽고 요란한 나라가 또 있을 것 같지 않아 겸연쩍고 창피했다.2등은 쓰레기처럼 잊혀지는 존재므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제1이어야 한다느니,「정복할 것이냐 당할 것이냐」하는 따위 히틀러의 발악이 무색할 지경의 광고까지 태연히 횡행하는 사회이니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 로마 국립공원 뜰은 장식삼아 여기저기 놓인 세계 유명인사들의 대리석 흉상들로도유명한데 관광온 이쪽의 원로 하나가 이승만 대통령의 흉상도 있을지 모른다는 농담을 듣고 열심히 그것을 찾아다녔다는 얘기가 있다.결국 찾지 못하자 귀국해서는 그 얘기를 글로까지 썼다는 것이다.이런 얘기의 우스꽝스러움은 「유명인사」라는 그 개념상의 차질에 있다.독재를 했건 뭘 했건 유명하기만 하면 「문화적 인물」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이 원로는 착각을 한 것이다.인도의 간디수상도 신청을 했다가 거절을 당했는데 이 무슨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일까보냐는 개탄이 나올 법도 하다.이 얘기를 해준 것은 60년대에 이주해서 30여년째 로마에서 살고있는 H씨이다.문청(문청)시절 어울려 다니던 친구로 이번에는 10여년 만의 해후인데 불혹의 연치가 완연한데도 그 유머러스하고 직재적인 사고방식은 여일했다.그 무렵의 친구들이 모르는 새 모두 소원해졌는데도 이 H씨만은 예 그대로 와락 반가운 느낌부터 앞선 것도 그 탓이었을 것이다.끝내 로마에다 뼈를 묻을 작정이냐는 농담에,집과 차와 가재도구를 다 정리해 귀국해봤자 강남에서 몇달이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되레 역습이다.자녀들이 장성하자 사위만은 모국청년으로 골라야겠다 싶어 몇 차례나 기회를 만들었으나 돈 타령,땅타령,줄리어드다 하버드다 하고 외국유학 얘기만 나오다 대화가 끊겨 끝내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사돈될 사람들 간에도,당사자들 새에서도 대화가 그 모양으로 단절돼 내심으로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데이트 몇번하면 으레 제 소유물로 알고 자질이야 있건 없건 유학물 먹은 일이나 자랑삼으면서 연애 따로,결혼 따로를 당연한 듯이 생각하는 이쪽 젊은이들의 그런 사고방식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근교의 아파트단지 식당에서 제대로 된 한국음식을 모처럼 배불리 먹여주고 그녀가 차로 데겨간 곳은 카타콤베 앞이었다.로마에 와서 뭘 봤느냐는 물음에 실은 아무 것도 보고싶지 않았다는 필자의 동문서답이 마음에 걸려서 였을까.카타콤베는 옛 로마 서민들의 지하무덤이다.왜 아무 것도 보고싶지 않았느냐고 이번에는 그녀도 묻지 않았다.숙소에서 확인한 TV채널만도 20여개가 넘고 인근 지방의 유선방송까지 합하면 천여 채널이 넘는다는 각종 정보홍수에 에워싸여 살다보면 문명이니 문화적인 혜택이니 하고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그런 온갖 빤히 눈에 보이는 세계가 되레 지겨워질 나이에 그녀 역시 이르른 것같다.정부 각 기관과 문화관과 대기업의 본사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로마의 신시가지 에우르 구역을 도중에 거치면서 필자는 과천을 제풀에 연상하고 있었는데,카타콤베들은 그 너머 구아피아가도 인근에 흩어져 있었다. ○10만명 매장된 곳도 로마제국 때 닦여진 길이다.붉은 언덕과 짙은 색깔의 나무들이 갑자기 사방을 에워싸면서 차량마저 끊기다시피해 한적한 시골을 연상시키는 이 가도는 아닌게 아니라 「모든 길은 로마로」라는 속담을 역으로 연상시켰다.지금은 관광자원이 돼버린 옛 제국의 영화가 하층민들의 무덤까지도 그냥 버려두고 있지 않는 것이다.물론 이 무덤들이 특별히 유명해진 것은 박해를 받던 그 무렵 기독교도들의 지하 은신처요 포교활동의 근거지였다는 까닭이 더 크다.도망을 치던 베드로가 예수의 환영을 만나 저 유명한 대사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를 읊조리던 데가 아피아가도였고 그때 남은 예수의 발자국모형이 보존된 도미네 쿼 바디스교회가 이 인근에 있다.예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쿼 바디스」나 「성의」 같은 것에도 물론 카타콤베가 나온다.지하 2·3층,어떤 것은 5층까지 파내려간 이 부근의 수십기 카타콤베들은 복잡한 미로와도 같아서 혼자서는 들어갈 수가 없고,10만여명이나 매장된 곳도 있으며,그 길이를 합하면 수백㎞에 이른다고 한다. 입구에서는 각국 언어별의 가이드들이 여남은명씩 되는 관광객들의 조를 짜고 있었다.어쩌다 네덜란드어 가이드를 무심코 따라들어가 설명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으나 구태여 그런 것이 필요한 것같지도 않았다.사람 하나가 간신히 비집고 들어갈만한 흙벽의 좁다란 통로와 역시 흙으로 된 계단을 몇번이나 꼬부라지며 내려갔는지 알 수가 없다.가이드의 랜턴불빛에 기괴하고 참담한 낙서와 그림들이 홀연히 벽에서 나타나는가 하자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모를 샛길들이 곁으로 불쑥불쑥 들이닥치곤 했다. 이런지하에서 길을 잃고 미아가 돼버린다는 제풀의 상상은 기묘한 것이었다.나는 왜 여기 있는가,이번 여행은 뭐땜에 떠나왔는가 하는 따위 상투적인 의문들이 그제야 근거를 찾고 입지를 얻은 듯한 느낌이랄까,갑자기 천지가 막막했다.초기 기독교도들의 그것뿐 아니라 중세의 여러 종교적인 박해에도 이곳은 피난처가 됐던 모양으로 지상으로 올라오는 중간중간의 작은 방들에는 그 수난의 표상들과 기념물들이 흔적이나 조각들로 새겨지거나 놓여 있거나 했다.화살에 목이 꿰인 성 아무개,칼로 순교당한 누구 하는 식의 그런 전시물들 역시 숭엄한 분위기이기는 해도 청량한 느낌은 아니다.로마시내에는 4천여 승려들의 해골을 수백년에 걸쳐 모아놓은 해골사원이라는 으스스한 곳도 있지만,이런데를 특별히 찾는 사람들 역시 일반적인 심성의 그런 관광객들은 아닐 것도 같다. ○중세에도 피난처로 겨우 한시간 남짓이나 머물다 나온 지하에서 로마라는 한 도시의 허상을 통째로 별견한 듯한 느낌이었다고 하면 아마 과장일 것이다.사람사는 세상에는 으레 있게 마련인 그 말할 수 없이 구질구질한 거래와 아귀다툼들이 이를테면 로마라 해서 어떻게 이런 지하세계 같은데로 깨끗이 모두 매몰될 수가 있겠는가.필자가 카타콤베 속에서 저절로 떠올린 로마의 그 허상이란 것도 실은 숙소근처의 가게에서 사흘째 눈독을 들이고 있던 싸구려 골동품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우리 돈으로 2만여원쯤 되는 그 놋쇠물병은 연륜이랄 것도 쓸모도 별로 없어 보이는 얄팍한 물건 같았으나 이탈리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어떤 곡선형태라는 그 한가지 점만으로도 어딘가 정답고 신선하게 느껴져 값을 깎자느니 안된다느니 하고 며칠째 줄다리기를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도무지 무뚝뚝해 보이기만 하는 가게의 뚱보주인은 필자가 들를 때마다 『적당하고 좋은 값』이라면서 배짱을 부리고 있었다.이쪽 역시 기어이 에누리를 해서 그것을 손에 넣고야 말겠다는 집념에 들떠 있었다는 것도 아니다.구태여 따지기라도 한다면 한계가 빤한 피조물인 인간들에게 눈곱 정도로나 허용된 소위 그 「자유」라는 명제나 「자유스럽고 싶다」는 감정을 두고 필자도,그도 사실은 줄다리기흉내를 즐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 재계풍토 쇄신돼야(사설)

    선경·삼환·한진등 재벌그룹계열의 건설회사들이 맡고 있는 전국 주요도시의 지하철공사현장에서 적발된 불실시공사례가 지난 한달여의 기간에만도 무려 82건에 이른 것으로 건설부가 집계했다.또 벽산건설에 의해 공사가 진행되던중 2년전 붕괴돼 재시공에 들어간 신행주대교는 복구설계도면도 없이 공사가 이뤄져 안전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얼마전 동아건설이 80억원의 비자금을 뇌물로 써온 사실이 폭로돼 검찰수사를 받는 것과 관련,재벌에 대한 일반국민 불신감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라 아니할 수 없다.재벌건설회사들이 직접 시공신고를 한 뒤 계약금액보다 훨씬 낮게 불법하도급을 주고 차액을 비자금으로 챙김으로써 각종 공사가 부실해지고 또 검은 돈의 사슬이 좀처럼 끊어지지 않게끔 복잡스레 얽혀 있음을 이제는 많은 국민이 알게 된 것이다.이밖에도 인천북구청 사건에 일부 그룹계열사들이 연루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재벌에 대한 일반의 눈길이 더욱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국민계층간 불신과 위화감을 없애고 건전한 자본주의경제체제를 확립해나가기 위해서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는 재벌의 못된 구태에 제동이 걸려야 한다.더욱이 국민으로부터 가장 혹독한 지탄을 받게 마련인 공무원사회의 비리가 상당부분 재벌급기업과 관련되고 있는 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므로 개혁과 사정차원에서 재계의 풍토를 쇄신하는 조치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은 이번 정기국회를 통해 거의 모든 재벌그룹들이 업종전문화등의 정부시책에는 아랑곳없이 문어발식확장을 계속하고 비제조업분야에 대거진출함으로써 생산제품의 국제경쟁력강화와는 거리가 먼 경영행태를 보이고 있는 관계부처의 보고내용에 크게 실망하고 있다.이들 재벌그룹은 자기자본비율은 매우 낮은 상태에서 거액의 은행 돈으로 경제력집중현상을 심화시켜 국민경제를 무리하게 독과점하는 폐해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게다가 요즘 들어 이윤극대화만을 노려 정부의 산업시책에 심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등 자사이기주의를 고집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물론 재벌이 성토만 당해야 하는 사악한 대상일수만은 없다.그들은 과거 열악한 조건에서도 경제성장의 훌륭한 견인차 역할을 해냈다.그렇지만 우리의 재벌기업들은 정부로부터 받은 많은 특혜와 상대적인 국민의 희생에 대해 충분히 보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질책이 끊이지 않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문민정부 출범이후 우리 경제정책의 대명제로 등장한 국제경쟁력제고를 위해서 재벌기업들은 과거타성에서 완전히 벗어나 하루속히 창의력 있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국민경제발전의 주체로 다시 나야 할 것이다.
  • 유적탐방 바캉스/지건길 국립경주박물관장(굄돌)

    프랑스 사람들은 여름 한철의 멋진 바캉스를 보내기 위해서 1년동안을 열심히 일한다고 할만큼 바캉스에 대한 기대와 집념이 대단하다.짧은 부활절 휴가가 끝나면서부터 돌아올 여름을 기다리며 가족끼리,혹은 친구들끼리 바캉스 이야기로 들떠 있는 모습들을 흔히 볼 수 있다.여름이 시작되기 무섭게 파리지앵들은 대부분 파리를 비우고 거대한 도시는 외국인들로 북적댄다. 근년에 이르러 우리의 바캉스 열기도 그들 못지않게 뜨거워져 가고 있다.한여름의 휴가철이 되면 서울등 대도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가 평소와는 달리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 시간의 교통사정이 훨씬 수월해진다.대신 이곳 경주 같은 관광지는 갑자기 불어난 여행객들로 붐비면서 심한 몸살을 앓게 된다.곳곳에서 모여든 차량들로 유적지 주변은 물론 시내길도 온종일 복작거리고 평소 넉넉하게 보였던 주차장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만다. 이러한 북새통 속에서도 이곳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서는 그런대로 어떤 여유로움을 보게 된다.시원한 계곡과 바닷가를 찾아 잠시 더위를 떨쳐버리려는 피서여행도 좋지만 박물관이나 유적지를 둘러보면서 한때나마 여가를 보내는 것이 더욱 값진 휴가일 수도 있을 것이다.햇볕에 잔뜩 그을린 건강한 모습으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니는 걸음걸이에서 여느 피서지에서와는 다른 즐겁고 보람된 표정을 읽을 수가 있다. 그토록 뜨거웠던 이번 여름도 이젠 막바지에 이르러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다.여기를 다녀간 이들이 경주의 많은 것을 배워 느끼고 갔다면 경주사람들은 지난 여름에 겪었던 혼잡스러움도 그만한 값어치가 있었다고 여길 것이다.
  • 다이어트 아침결식/국민 31.9%가 “영양부족”

    ◎보사부 92년 조사결과 발표/인구 10.9%는 과다섭취로 비만증 국민의 42.8%가 잘못된 식생활로 영양부족이거나 영양과다인 것으로 나타나 정확한 식생활이 요구되고 있다. 보사부가 7일 발표한 「92년도 국민영양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민 1인당 하루 권장섭취열량이 2천1백㎉인데도 영양부족으로 분류되는 1천5백75㎉(75%)미만을 섭취하는 국민이 전년도보다 7.7%포인트나 높은 31.9%였고 영양과다인 2천6백25㎉(1백25%)이상을 섭취하는 비율은 10.9%(91년 12.2%)로 42.8%가 잘못된 식생활을 하고 있다. 영양과다비율이 떨어지고 특히 영양부족상태로 분류되는 비율이 전년에 비해 7.7%포인트나 높아진 것은 지나친 다이어트나 번잡스러운 도시생활에 따른 식사걸르기등 나쁜 식습관에 기인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전국 2천가구 7천2백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조사에 따르면 또 대상자의 3.3%가 하루 한끼를 걸렸는데 직업별로는 군인 결식률이 11.1%로 가장 높고 관리직 8.3%,전문직 4.3%,판매직 3.8%,교통체신업 3.7%·학생 3.2%등이다. 결식률은 아침이 6.3%,점심이 2.7%,저녁이 0.9%였다.아침결식률이 이처럼 높은 것은 아침을 먹지 않아야 건강해진다는 그릇된 인식이 일부에 퍼져 있는데다 아침 출근길이 바빠 먹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민비만지수(BMI지수=몸무게의 ㎏수치를 m로 표시한 신장의 제곱치로 나눈 것)를 보면 25·1이상으로 비만증세를 보인 국민이 19.6%로 전년의 18.7%에 비해 늘어났다. 주요영양소별로는 단백질·철분·비타민B·C등의 섭취는 충분한 반면 비타민A는 권장량의 81.5%,칼슘 85.1%로 다소 낮게 나타나 녹황색채소,동물의 간,알의 노른자위등과 같은 비타민A식품과 우유등 유제품·잔뼈생선 같은 칼슘함유식품의 섭취가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또한 하루에 섭취하는 식품량은 1천97g으로 그 가운데 식물성이 8백82g,동물성이 2백15g으로 전년과 비슷했다.그러나 식물성 식품중에서도 곡류·감자류등 전통식품은 줄어든 반면 과일류·채소류및 조미료의 섭취는 증가추세를 보였다. 동물성 식품의 경우는 육류가 91년의 52.5g에서 58.1g으로 늘어난 반면 우유는 58.1g에서 오히려 51.6g으로 줄었다. 우리 국민의 영양실태조사가 처음으로 실시된 69년과 비교해보면 육류는 6.6g에서 58.1g으로 8.8배,어패류는 18.2g에서 85.4g으로 4.7배가 증가,식생활이 서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사부 관계자는 『우리 국민들의 영양섭취상태는 칼슘·비타민A등의 경우 권장량에 비해 다소 낮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면서 『그러나 80년이후 식생활형태의 서구화에 따라 성인병증가등이 우려되므로 곡류 영양섭취율을 현재와 같은 65∼70%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우리 실정에 맞는 식사형태를 연구발전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두산음료 서울공장/우리기업에선:17(녹색환경가꾸자:52)

    ◎제품용기 재질 재활용 쉽게 교체 두산그룹계열인 두산음료 서울공장(구로구 독산동)의 직원들은 환경관리가 생활화되어 있다.환경문제를 전담한 15명은 물론 2백여명의 전직원들이 저마다 폐기물을 줄이고 재활용하는 방안에 골몰한다. 두산음료는 지난해부터 재활용이 용이하도록 코카콜라 등 음료수병의 밑바닥까지 하나의 재질로 된 용기를 개발했다.종전까지는 받침과 다른 부분의 재질이 달라 재활용하는 데 번잡스러운 문제가 많았다. 이처럼 단일재질로 된 PET(플라스틱병)용기를 지난해에는 3만9천상자(상자당 24개)를 생산했으나 올해에는 76만상자로 늘리기로 했다.재활용의 폭이 넓어지는 셈이다. 또 최근에는 비닐로 된 포장끈을 쓰지 않고도 트럭에 음료수병 등을 적재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춰 연간 3t의 폐기물을 줄였다.평소부터 환경에 신경을 쓰는 직원들이 이런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두산음료 서울공장에서는 콜라·환타·하이씨·암바사·네스카페 등 음료수와 켄터기 후라이드치킨(KFC)을 만든다.지난해 1천5백70만상자의 음료수를 생산하고,2백31만마리의 닭을 기름에 튀겼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하루 2천t의 폐수를 말끔히 정화한다.정화이전의 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BOD)은 6백∼1천ppm이지만 정화하면 15∼20ppm으로 떨어진다.법적인 허용치 1백50ppm,이 회사의 기준 50ppm보다 훨씬 낮은 것이다. 폐식용유와 폐수 등 폐기물을 재사용하는 노력도 돋보인다.지난해 1천t의 식용유를 사용함으로써 생긴 4백50t의 폐식용유로 7만6천개의 무공해비누를 만들어 시민·소비자단체·견학자·KFC고객 등에 나눠주었다.올해에는 36만개로 늘릴 계획이다. 정화된 폐수의 일부는 20여마리의 비단잉어가 노니는 양어장으로 흘러들어간다.또 세차와 냉각수로도 재활용한다.이밖의 폐기물들은 유기질비료,재생타이어로도 쓰인다.지난해 폐기물의 재활용률은 93%였다.못쓰는 폐기물(?)이 거의 없는 셈이다. 이 회사의 서울공장은 매주 금요일을 「재활용의 날」로 정해 직원들이 모은 캔과 PET를 회사가 수집한다.지난해에는 7만개의 캔과 PET를 모았고 올해에는 50만개를 모을 계획이다.또 40t의 음식폐기물을 비료화하는 등 재활용을 보다 적극적으로 할 계획이다. 또 환경홍보책받침과 책자를 펴내 시민과 방문객·직원들에게 나눠주고 있다.환경전문가를 초청해 강연회를 갖는 등 교육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서울공장에는 재활용품·환경마크제품·폐기물보관창고 등을 갖춘 환경교육장이 있는데 매달 2∼3개의 견학팀이 이곳을 찾는다. 환경과의 이재석대리(34)는 『내년에는 연료를 현 저유황 경유에서 액화천연가스(LNG)로 바꿔 대기오염물질을 줄일 계획』이라며 『환경교육장도 그 내용과 규모를 보다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두산음료 서울공장은 지난 91년만 빼고 87년부터 94년까지 계속 환경관리모범업체로 뽑혔다.
  • 자연과 나와의 관계/하지홍(굄돌)

    언젠가 녹색평론에 실린 인디언 추장 「시에들」의 연설문을 읽고 깊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워싱턴에 있는 백인 대추장(미 대통령)의 협박에 조상 전래의 땅을 팔지 않을 수 없는 약자의 변일수도 있는 이 연설문은 시적이며 종교적이며 그러면서도 대단히 생태학적인 글이었다. 『대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우리에게는 이 대지의 모든 부분이 신성한 것이다.우리가 죽어서도 이 아름다운 대지를 결코 잊지 못하는 것은 여기가 바로 우리 홍인(인디언)의 어머니 품속이기 때문이다.우리는 대지의 한 부분이고 대지는 우리의 한 부부인 것이다』 문명화된 백인 기병대장의 시각으로 볼 때 벌거벗고 야만적인 인디언의 이같은 외침은 허공을 울리는 메마른 소리 쯤으로 들렸음에 틀림 없었을 것이다.그러나 어찌하랴,세기가 바뀐 지금 생태학자들은 인디언 추장의 시각이 지극히 옳았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을,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그들의 소박한 통찰이 베토벤을 낳고 미켈란젤로를 낳고 이미 뉴턴까지 낳은,그래서 기술과 과학을 앞세워 세계를 지배하려 들던 서구 문명인들 보다 훨씬 더 고매한 것을. 20세기의 마지막 10년을 살고 있는 우리는 이제와서야 우리 몸이란 환경과 격리된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우리 몸 속을 흐르는 혈관은 몸속에서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몸 밖의 큰 혈관인 한강·낙동강,그리고 세상의 모든 강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자연과학의 도움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최근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 쓰레기 줄이기나 자원 재활용운동은 온 국민의 중대한 관심사가 되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만 할 운동임에 틀림 없다.그러나 이러한 운동이 더 큰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인식의 대전환,즉 자연과 나와의 관계 정립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우리 모두가 자신과 환경에 대해 올바른 인식만 갖게 된다면 낙동강 오염이니,땅투기니,녹지대 규제니 하는 번잡스런 말들로부터 마침내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지 않겠는가.
  • 운전 실기시험 한달 기다린다(생활개혁 이것부터)

    ◎면허 발급절차 너무 까다롭고 번잡/원서접수에만 2시간 “짜증 대기”/시험장 대폭 늘려 적체 해소해야 운전면허 따기가 무척이나 힘들다.원서접수에서부터 시험을 치르고 면허증발급까지의 과정과 절차가 아직도 번잡스럽고 까다롭다는 지적이다. 면허재교부나 적성검사를 받는 절차도 번거롭기는 매한가지다. 운전면허원서접수를 위해 시험장에 나가 신체검사를 받고 학과시험을 접수하는 데만 보통 2시간 걸리기 일쑤다. 1일 상오 서울강서면허시험장의 지하1층 신체검사장에는 2백여명이 1백여m 줄을 서서 1시간여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시력,색맹,손가락 오그렸다 펴기등의 신체검사를 받는 데 걸리는 3분을 위해 20배가 넘는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신체검사를 받은 뒤 1층에서 원서를 작성하기 위해 수입인지를 사는 데 또 20여분을 기다려야 한다.다음에는 원서를 접수시키러 2층으로 올라간다.이곳에서도 기다리는 의식은 여전히 남아 있다. 더욱이 운전면허시험은 주거지 면허시험장에서 치러야 하는 규정 때문에 이를 잘 모르는 신규응시자들은 되돌아가기가 다반사다. 경기도 광명시 소화동의 우종만씨(27·회사원)는 이날 강서면허시험장에서 신체검사등 원서접수를 위한 절차를 밟고 원서를 접수시키려 했으나 시험장 직원의 『주소지가 아니어서 접수가 안된다』는 말에 맥빠진 표정이었다. 우씨는 『직원들이 신청서를 여러차례 볼 기회가 있었는데 2시간이나 기다려 막상 접수하려니까 안된다니… 하루를 완전히 헛되이 보냈다』며 무성의한 직원들의 태도와 까다로운 응시제도를 원망했다. 최근에는 방학을 맞은 대학생들이 몰려 각 면허시험장은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고 있다.원서를 접수하고 시험을 보려면 20∼30일이 걸리는 게 보통이라는 면허시험장 관계자들의 얘기다. 야간시험장 운영으로 학과필기시험은 7일안에 볼 수 있지만 코스와 주행시험은 최소한 한달이 걸린다. 면허종류에 따라 3∼5년에 한번씩 받아야 하는 적성검사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강남면허시험장에는 현재 1천여명의 적성검사대상자가 신청서를 내놓고 있다.이들은 신청서·면허증·주민등록증에다 반드시 뒷배경이 없는 증명사진을 첨부해야 한다.이러한 구비서류 가운데 하나라도 하자가 있으면 접수자체가 어렵다. 특히 적성검사기간이 다가와 재교부할 때도 주민등록증,신청서,신체검사서,수수료 1만1천원,사진 2장을 제출해야 하며 기간을 경과하면 3개월이내에 한해 벌금 3만원과 별도로 내야 하고 주민등록등본,사진 6장을 제출해야 하며 30일간 면허정지처분을 받는다. 경찰관계자는 이같은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면허시험장을 늘리는 것이 급선무이나 부지 및 예산확보의 어려움으로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청은 오는 4월부터 운점면허시험의 주소지제한을 개선,응시자의 주소와 관계없이 가까운 면허시험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한편 지난해말 현재 면허소지자는 1천3백30만1천6백10명으로 집계됐다.또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운전면허학과시험은 5백3만4천7백97명,코스와 주행시험에는 8백7만여명이 각각 응시했다.
  • 분장미술가 전예출씨(이세기의 인물탐구:33)

    ◎천의얼굴 재현하는 분장의 마술사/작품 철저히 검토,배역에 꼭맞는 “인물 창출”/재료 직접제조… “생명력 깃든 화장기법” 정평/50년대부터 불모지 개척… 골상학 등 관련분야에도 조예 「배우란 한시대의 축소판이자 간결한 연대기지.죽어서 묘비명이야 어떻게 씌어지던 살아 있을 때 구설은 듣지 않는 게 상책이오」 어둠침침한 푸른 조명속에서의 햄릿의 절규는 세상의 끝은 바라보는 듯한 흐느끼는 눈빛으로 인해 더욱이나 관객을 전율케 한다.우수에 찬 눈동자엔 형용할 수 없는 번뇌와 오뇌가 꿈틀거리고 허공에 메아리지는 그의 독백은 메마른 입술에서 터져나오는 검붉은 피와도 같다.머리카락 한올,클로디어스왕을 저주하는 손가락 마디마디에도 주인공의 참담한 절망과 갈등이 흩날린다. 검은 그늘이 짙게 드리운 검푸른 눈동자,검붉은 피를 토해내는 듯한 메마른 입술,증오심과 원망어린 칙칙한 잿빛 금발,허공중에 허우적거리는 야윈 손가락 등등 이를 표현해내는 것이 전예출씨의 예술영역이다. ○눈썹 한올에도 신경 그는 남을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귀여운 여인 올렝카가 사샤를 희생적인 모성으로 사랑하고 그리고 늙고 병들어 쭈그러들 때까지,또 「내일은 또 내일의 바람이 불겠지」의 스칼렛 오하라가 오만방자한 얼굴을 퇴색시키고 한사람의 여성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무대위에 재현시키는 바로 천의 얼굴,수만의 표정을 그려내는 분장의 마술사다. 대본을 받으면 배우들이 대사를 외고 동작연습에 임하는 것처럼 그도 똑같이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대한 성격분석,작품에서의 비중과 조화를 세밀하게 파고든다. 몇차례씩 작품을 읽어보고 다시 소리내어 대사를 외어보면서 그 인물이 주변의 인물들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가,연극속에는 등장하지도 않는 부모와 학교친구,취미와 일상적인 일거일동을 철저히 연구하여 디자인에 들어간다.연극에 등장하지 않는 부모까지 연구하는 이유는 그것이 만일 「대학교수」일 경우 학자집안에서 나온 교수와 장사꾼의 집안에서 나온 교수는 그 인상과 표정에 미묘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분장실에서 배우를 분장시킬 때의 그의 열정은 조각가나 화가 못지않게 엄숙하고 진지하다.주름살 하나에도 배우의 피부조직을 살펴 50대의 주름살,60대의 주름살을 어느때는 곱게,어느때는 짙은 골을 파면서 역할이 살아온 성장배경,인생역정,앞으로의 변화를 선명하게 구별해나간다. 또 단순하게 인위적으로 그려진 선이 아니라 분노와 울화,기쁨과 성취,절망과 좌절의 강도에 의한 눈썹 한올에도 생동미와 처절미를 연출해낸다. 조각가가 인체해부학적 측면을 고려하듯이 그는 해부학과 골상학,세포조직과 근육분포,미술에서의 색채학에도 전문가 못지않은 안목을 지니고 있다.그리고 내가 구상한 비극적·희극적 인물,냉소적이며 초연한 것,모반을 꾀하거나 사색적 인물들이 붉은 조명아래서 당초 시도했던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는가,카메라 앵글에 의해 효과적인 신을 이루고 있는가를 치밀하게 계산하여 염두에 둔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지 않고는 누구나 그 일에 파고들 수 없을 것이다.한낱 「분장사」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분장의 불모지이던 50년대부터 홀로 외롭게 몸부림쳐왔다고 할 수 있다.그래서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유별난 편이다. ○일에 강한 긍지지녀 공연작품이나 영상작품에 이르기까지 작품분석 없이는 손댈 수 없다는 시각에서는 「분장」은 연극적 요소를 지니고 있지만 모든 테크닉이 미술을 동반한다는 점에선 어디까지나 특수한 미술분야에 속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그는 물론 분장이 해야 하는 의상·소도구·조명을 모조리 꿰뚫고 있다.그리고 어떤 대상을 만나도 흑을 백으로,세모를 원으로 변모시킬 수 있으며 분장을 거치지 않고는 어떤 상황에서도 극중인물로 등장할 수 없음을 투철히 믿고 있다.지금 현역에서 뛰고 있는 30대이상의 연기자는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분장에 관한 한 그는 도무지 남의 간섭을 용납치 않는다.「분장을 어둡게 하라」 「밝게 하라」는 주문을 받아들여본 적이 없다.이미 작가·연출가와 모든 의논을 끝낸 뒤 분장기법을 정리한 다음엔 배우가 만일 『여긴 강조하고 볼은 좀 죽이고 싶다』고 말하면 그는 두말없이 『네가 하라』고 붓을 던져버린다.상대방이 극구 사과해도 묵묵부답,두번다시 상대하지 않는다.주문하는 사람은 그때그때 즉흥적인 기분과 감상을 말하지만 그로서는 한달이상 신중한 검토와 구상을 끝낸 마당이다.여러 변명이 필요없었다.전체적인 구도와 조화가 깨지기 때문이다. 아집과 고집,자기주장이 강하다.그런 그의 고집불통으로 인해 주변에서는 간혹 곤혹스러워할 때가 많다.그런 상충된 의견으로 인해 격돌이 오갈 때도 있다.그러나 그의 오랜 경륜과 노련미는 짧은 안목을 묵살시킨다.결국 그가 옳았고 그의 손에 맡기는 것이 완벽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모든 예술하는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그는 다방면에 다재다능한 편이다. 황해도 황주 중농의 아들 3형제중 막내.황주남중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부터 그는 연극반을 조직하여 학생들에게 연극을 지도했다.직접 극본을 각색하여 연출을 맡았고 목재상을 경영하는 형님(전창신씨)가게에서 나무를 얻어다가 세트를 만드는 등 연극에 열을 올렸다. ○다방면에 다재다능 일상적인 평범한 얼굴이 전혀 다른 여러개의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점때문에 분장에매료됐는지도 모른다.「베니스의 상인」이 될 수도 있고 「벚꽃동산」의 트로피모프,또는 라스콜리니코프,레트 버틀러나 애슐리가 될 수도 있다. 아버지를 독살한 삼촌에 대한 복수와 원한,「사느냐 죽느냐」를 외치는 햄릿의 광기에 번뜩이는 눈빛을 그리며 그도 언젠가 무대에 설 날을 기다려 왔다. 6·25가 나기 1년전 그는 형의 친구가 부소장(윤묵)으로 있는 북조선촬영소로 찾아간 적이 있었다.부소장은 그에게 교통성산하의 교통성극단에 소개해주었다.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후에 월남해서 영화배우로 활약한 김칠성씨. 「춘향전」으로 데뷔후 50년6월 소련 번역극을 가지고 원산공연,외금강공연이 갑자기 취소되고 함흥공연길에 올랐다가 6·25를 만나 1·4후퇴때 월남했다. 부산 피란지에서 그가 할 것이라곤 연극밖에 없었다.어렵게 극단 「아랑」을 조직하여 분장에 출연까지 겸하면서 경상도일대를 유랑했다.분장을 하다보니 자연 일어로 된 화장품제조에 관한 서적 등을 구해 읽어야 했고 문득 화장품을 만들어 팔면 먹고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들었다.립스틱공장을 차렸으나 제품보다 케이스가 조잡스러워 망해버리고 말았다. 서울에 올라와 본격적으로 분장에 손댈 때도 그는 직접 화장품을 만들어 쓰곤 했다.분장에 필요한 화장품이 전무상태인데다가 외국제품들이 우리피부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더구나 유럽이나 중국은 창백미를 강조하는 데 비해 우리는 깊고 그윽한 유백화장술이 무대에서 자연스러웠다.지나치게 붉은 터치인 미국 화장품은 무대에서 튀고 조명아래서 겉돌았다. 여러가지 재료를 배합해서 만든 화장품을 피부에 발라 테스트를 해본 다음 다음날 분장에 사용했다.그래서 그만의 독특한,남에게 공개되지 않는 수십여종류의 비법을 비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의 특수분장중 대표적인 것은 TV문학관 「등신불」 「에바다」에서의 문둥병환자의 이그러진 얼굴이다.출연자의 열굴형을 여러 각도로 본뜬 다음 이를 다시 모자이크해서 흉터를 만들고 여기에 면도거품을 발라 분장,열을 가해 거품이 녹는 것과 동시에 피부가 정상회복하는 화면을 만들어 호평을 받았다. ○연극·오페라에 집착 거의 매일이다시피 방영되는 TV드라마외에 그가 집착하는 것은 연극·오페라 등 무대분장이다.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배우의 분장한 모습은 또렷한 명암과 윤곽을 드러내면서 서양화를 보는 듯한 감동을 준다.그리고 광기어린 배우의 눈빛,외로운 그들의 몸부림은 그가 그려내고 싶던 무대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도 멜방달린 바지에 베레모,아침9시면 동숭동 그의 작업실에 나와 청년같은 정열로 강의와 작업에 임한다.그에게 배우려는 제자·후배들에게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한가지라도 더 가르치고 싶어서다.그는 겉모습의 분장보다 표정 하나하나가 살아숨쉬는 생명력 깃든 분장을 지도한다.그리고 그가 그랬던 것처럼 동서고금,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모든 인간상들이 「분장을 통해서만 극중인물로 재현」되고 「탄생」된다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심어준다.그가 존재하는 한 이 분야에서 단연 선두주자이며 독보적 위치지만 든든한 뒤를 잇는 후배들로 인해 이제 그는 더이상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연보◁ ▲1927년 황해도 황주 출생(본명 전윤신) ▲1942년 황주농업중학교졸업 ▲1945년 경성법정대 졸업 ▲1945∼48년 황주남중 교사 ▲1949∼50년 교통성극단 단원 연극 「춘향전」 데 뷔 ▲1951년 부산에서 극단 「아랑」 창단 ▲1953년 극단 「신청년」 단원 ▲1954년 극예술협의회 회원 ▲1955년 영화 「안중근」으로 분장 및 연기 ▲1956년 국립극단 단원(국립극단·드라마센터분장담당) ▲1961년 KBSTV로 입사 ▲1961∼88년 서라벌예대·한양대·동국대 출강 ▲1963년 TBC 입사 ▲1981년 방송통폐합으로 KBS복귀 분장실장역임 ▲1988년이후 프리랜서 독립기념관 임정요인 33인 분장 ▲1989년 개인작업실 아트파워 개업 ▲1993년 개인작업실 동숭동이전 전예출 프로메이크업 설립 ▲현재 영화·연극·TV·CF 및 오페라공연 분장및 한양대음대 특강. 장준옥여사와 1남3녀 국립극단·드라마센터·민중극장 공연작품중 연극­「햄릿」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빌헬름텔」 「죄와 벌」 「뜨거운 양철지붕의 고양이」「결혼중매」 「대수양」 「베니스의 상인」 「리어왕」 「태양을 향하여」 「산불」 「욕망」 「국물있아옵니다」 「갈매기」 「세자매」 「벚꽃동산」 「파우스트」 「천사여 고향을 돌아보라」 「세인트 존」등 1백50여편. 오페라­김자경오페라·국립오페라·서울오페라·글로리아오페라 공연작품중 「토스카」 「라보엠」 「카르멘」 「춘희」 「나비부인」 「마적」 「돈 조반니」 「돈 카를로」 「아이다」 「사랑의 모약」 「카바렐리아 루스티카나」 「트란도트」 「피가로의 결혼」 「파우스트」 「심청」 「삼손과 데릴라」 「코지 판투테」 「라 조콘다」 「리골렛토」 「천지창조」 「운명의 힘」 「세빌리아의 이발사」 「펄리아치」등 2백여편. 영화­「황성옛터」 「대지」 「황혼열차」 「고려장」등 40여편,TV드라마(문학관등) 1천여편.
  • 권위주의 탈피 시민불편 덜었다/지방청와대 5곳 개방 의미

    ◎연운영비 6억원… 한해 한번도 사용 안해/주변 건축규제·고도제한도 곧 해제할듯/부산·전남북·경북 등에 분산… 제주는 외빈사용때만 통제 대통령의 지방공관으로 분류돼 있는 이른바 「지방청와대」는 충북의 청남대를 비롯,부산·전북·전남·경북·제주등 6곳에 분산돼 있다.여기에 공식적으로는 군시설로 돼있는 진해앞바다 저도의 청해대까지 합치면 7곳이 된다. 청와대는 13일 지방공관 6개 가운데 청남대를 제외한 5곳을 개방하겠다고 발표했다.다만 제주공관은 외국귀빈을 위한 영빈관으로 사용할 때에만 통제하겠다는 방침이다.또 청해대도 해군에 돌려줘 해군장병들을 위한 시설로 활용토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따라 「지방 청와대」는 청남대1곳만이 남게됐다. 이번 조치는 김영삼대통령취임과 함께 단행된 청와대전면개방,청와대소유 안전가옥(안가)폐지등과 취지를 같이한다.문민정부 출범에 맞춰 권위주의적이고 낭비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미이다. 앞으로 개방될 지방공관 5곳은 총1만9천평의 규모로연건평은 2천6백평이다.관리인원 46명에 운영비는 연간 6억8천여만원이 소요됐다. 그런데도 역대 대통령들은 이시설을 1년에 한차례정도도 사용하지 않았다.그만큼 낭비라는 지적이 많았다.또 전북,전남지역 공관의 경우 주변건물에 대한 건축규제와 고도제한(2층으로 제한)등 통제에 따른 민원도 잦았다. 청와대는 개방되는 5개 지방공관 가운데 제주를 제외한 4곳은 도서관,박물관,유아원등 공공시설로 사용토록 하고 정원은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인근 주민의 재산권행사에 불이익을 준 건축규제와 고도제한도 전면해제될 것이라고 밝혔다. 4개공관 가운데 전남·경북지역의 공관은 도지사공관이 시설안에 포함되어 있다.정부는 시설개방에 따라 도지사공관은 아파트나 주택으로 옮기도록 할 방침이다. 정부내에서도 반대의견은 있었다.대통령이 지방순방을 할 때 호텔을 이용할 경우 경호상의 번잡스러움과 더불어 호텔이용객들도 많은 불편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4개 공관은 실제로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전면개방하기로 결론이 내려졌다. 다만 제주공관은 고르바초프구소련대통령 방한당시 숙소로 사용하는 등 지역특성상 외국귀빈의 사용빈도가 잦을 것이라는 판단아래 영빈관으로 계속 사용키로 했다는 것이다.현재처럼 제주지사의 공관을 겸하도록 하되 평소에는 일반인의 자유로운 통행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이다. 해군에 돌려주기로 한 저도의 청해대는 박정희전대통령 당시에는 여름휴가때마다 사용하던 곳이다.저도규모는 13만평정도로 본래는 거제군에 속했으나 대통령의 하계휴양지로 사용되면서 행정구역도 경남 진해시로 바뀌었다.주변에서의 어로작업은 물론 선박의 통과도 통제를 받았다.거제출신의 김대통령은 지난 1월 TV에서 이에대한 문제점이 제기되는 것을 보고 『거제도 사람들의 불평이 많다.풀어야겠다』고 말했다고 이경재청와대대변인은 전했다.이 시설은 해군장병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토록 하고 해양소년단등 민간단체에도 사용기회를 주겠다는 것이 청와대의 방침이다. 5공당시에 세워진 충북의 청남대는 1곳정도의 별장시설은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현재대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청와대측은 설명했다.그러나 대통령이 사용하지 않을때는 통행제한을 적정수준까지 푸는등 인근 주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청와대측이 정부종합청사내에 마련돼 있는 대통령실을 폐쇄하고 일반 사무실로 사용키로 한 것도 탈권위주의를 위한 당연한 조치로 환영받고 있다.
  • 교통체증과 「코리안타임」/안필준 보사부장관(굄돌)

    필자는 어릴적부터 약속장소에 예정보다 항상 미리 나가있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그래서 학창시절이나 40년 공직기간을 통틀어 약속시간을 어긴 적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간혹 모임장소에 너무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기가 무료하거나,늦게 오는 사람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필자를 보고 당황해할 것 같은 생각이 들때는 가까운 서점에 들러 시간을 보내거나 승용차안에서 책을 읽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일찍 도착해서 얻은 얼마간의 여유시간을 나름대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이 여유시간이라는 것을 참으로 예상하기가 어렵다.조금 일찍 나서면 교통체증도 없고,신호도 잘 떨어져 예정보다 1시간이나 일찍 도착할 때가 있는가 하면,어떤 때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차들이 밀리는 바람에 아주 곤혹을 치르는 경우도 있다. 모임에 나가보면 일행중에 몇명은 꼭늦는데,필자가 겪은 바로는 대개 늦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모임에 늦게 등장하는 사람들은 으레 들어서면서 『오늘따라 왜 이렇게 교통이 혼잡스러운지 모르겠다.정말 문제야,문제』라고 한마디 내뱉고는 자리에 냉큼 앉는다.그러고는 다른 사람들이 30분 이상씩이나 자기를 기다린 것에 대해서는 미안하다는 말한마디 없다. 어떻게 보면,거짓핑계가 아니라면 피치 못하게 늦는 것을 가지고 왈가부할 수는 없다.그러나 요즈음의 교통체증이 엉뚱하게 시간을 낭비하게 하고,또 약속시간을 본의 아니게 어기게 만드는 요인임에 틀림이 없다.그러나 그렇다 해도 그것이 다른 많은 사람들을 기다리게 할 정도로 정당한 이유는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약속시간을 지키기 위해 여유있게 미리 출발해서 시간맞춰 도착한 사람들에게도 교통체증은 있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날 「코리안 타임」이라는 불명예를 씻기 위해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인 적도 있고,꽤 성과도 거두었다.그래서,요즘 젊은이들 중에는 「코리안 타임」이라는 말이 생소한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그러나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교통체증이란 변수때문에 멀지않아 「코리안 타임」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단어가 다시 우리사회에 유행될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시간안지키는 국민」이라는 소리를 또 듣지 않으려면,지하철이나 기차를 타서라도 약속시간은 꼭 지킨다는 마음가짐을 굳게 가져야 할 것이다.
  • “국민속의 YS” 체질적 신념/김 대통령당선자의 행동양식

    ◎안가·방탄차 등 사양… 서민적생활 고수/“대단합에 역행” 당선축연도 전격 취소 김영삼 대통령당선자가 삼청동의 안가(안전가옥)를 집무실로 사용하지 않기로 한것은 그가 추구할 정책방향의 일단과 그의 「체질」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당선자는 그동안 정부당국과 주변인사들로부터 안가에서 거주하며 집무할 것을 권유받아왔다.이는 신변보호와 취임준비보안도 문제려니와 당선이후 찾아오는 사람이 너무 많아 거의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김당선자가 그같은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하다.박희태민자당대변인은 이날 김당선자의 결정을 『변화와 개혁을 추구하려는 모습의 하나로 보아달라』면서 『그동안 여러 곳을 집무실로 물색했으나 YS의 이미지에 맞는 곳이 없었다』며 함축적인 말을 던졌다. 박대변인이 시사했듯이 가장 큰이유는 역시 국민들과 「벽」을 만들지 않겠다는 뜻인 것으로 읽혀진다.국민들 속에서 국민들의 편달과 사랑으로 커온 정치지도자로서 안가에 들어가는 것이 마음에 차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국민들과 거리를 두는 것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한측근은 『고기가 물을 떠나 살수 없듯이 김당선자의 심경도 같은 차원에서 이해해야 할것』이라고 짐작했다. 김당선자의 속마음은 당국에서 신변의 안전을 위해 리무진방탄차를 제공하겠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과 조깅을 계속하고 있는데서도 잘나타난다.특히 조깅은 신변을 보호해야 하는 경호팀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한 어려움을 수반하는 것이지만 김당선자는 계속해서 새벽 조깅을 고집,그의 「국민적 체질」을 보여주고 있다. 오는 29일 한국무역종합전시관에서 가질 예정이었던 대규모 대통령당선축하연을 이날 전격 취소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김당선자는 『신한국창조와 개혁을 위해 단합해나가는 시점에서 호화로운 행사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두번째로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뜻으로 짐작된다.김당선자는 선거유세과정에서 『40여년동안 정치를 하면서 땅한평 늘린적이 없다』면서 『당선되더라도 퇴임때 상도동집 그대로의 모습으로반드시 되돌아오겠다』고 누차 다짐했었다. 김 당선자는 그동안에도 상동동집이 좁으니 자택을 늘리라는 주위의 권유를 뿌리쳐왔다.27년간 같은 집에 살면서 「청렴한」생활을 해왔고 그같은 모습을 대통령취임때는 물론 임기를 마친뒤에도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 주변사람들의 설명이다. 세번째로는 노태우대통령의 임기중에는 가급적 권력의 축을 흔들지 않으려는 배려가 포함된 것으로 해석된다.안가에서 집무하면 취임준비위및 예비내각과 현내각및 청와대가 갈등을 겪는 것으로 비쳐질수도 있을 것이다.그럴 경우 정권이양기의 혼란이 가중될 것임은 뻔한 사실이다.또한 안가에서의 집무가 체계적인 정권의 인수·인계에는 도움이 될수도 있겠으나 공인으로서 최소한의 범위내에서 편의를 제공받겠다는 뜻에서 기존의 정당시설을 이용하기로 한것이다.김당선자로서는 한마디로 요란하지 않고 번잡스럽지 않게 정권을 인수하겠다고 생각했을 법하다. 내면적으로는 현정권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시동」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취임전까지는 노태우대통령이 통치하는 것이고 취임후부터 본격적으로 김당선자의 통치를 보여준다는 것이다.해석하기에 따라서는 현정권과의 「차별화」라고도 할 수 있다. 어쨌든 이같은 일련의 결정은 작은 일에 불과하지만 김당선자의 정책방향의 일단과 「체질」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다고 할 수 있다.
  • 중국경제개방 시범지역(광동성을 찾다:2)

    ◎주강삼각주 중부지역/중산·순덕·번우도 공업도시 탈바꿈/10년전 한적한 농촌이 이젠 “밀집공단”/중산/외자여관 이어 향진기업 설립 바람/순덕/3월 시승격… 용성냉장고공장 유명/번우/합작기업 1천개… 올 30% 성장 예상 주강삼각주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중산·순덕·번우시는 옛부터 농토가 비옥하기로 유명했다.손중산(손문)선생과 같은 선각자들이 태어난곳일뿐 아니라 서구열강의 침범으로 외국문물에도 일찍이 눈을 뜬 지역이다. 그러나 10여년전까지만해도 이 일대는 한가한 농어촌지역에 불과했다.공장이라곤 찾아보기도 어렵고 그 비옥한 농토의 농산물도 인민공사가 운영한 때문에 흉작만 거듭됐다.의욕상실증에 허덕이던 농민들은 어떻게든 이웃 홍콩이나 마카오로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었다. 이처럼 후미진 지역이 최고지도자 등소평의 개혁개방정책에 힘입어 요즘은 중국에서도 가장 활기찬 경제발전지역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불과 10여년만에 수많은 공장이 세워져 시커먼 굴뚝연기를 뿜어대는가 하면 아직도 군데군데 어지럽게 파헤쳐져빌딩과 아파트,공장들이 세워지고 있었고 강변과 해안에는 큰 배가 접안할수 있는 항만시설을 짓느라 소란스럽기만 했다. 외곽도로를 꽉 메운 화물차량들은 이곳이 이미 농촌지대가 아닌 살아움직이는 공업지대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격일제 급수니 정전이니 하는 일들은 어느새 옛날얘기가 되었으며 농민들이라해도 일년내내 농사만 짓는게 아니었다.고작해야 한두달 농사일을 보고나면 공장에 들어가거나 운전사 혹은 장사등으로 돈벌이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이곳 한중합자회사에서 1년동안 근무한 한 한국인은 『지난날 당에서 시키는대로 일하는 흉내만 내던 시절은 다 지나갔다.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돈나올 구멍을 찾는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 주민들은 정부가 주해·심수을 경제특구로 지정,온갖 특혜와 지원을 통해 활기찬 신도시를 건설해가는것을 지켜본뒤 스스로 발전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지난 10월 14차 당대회를 통해 시장경제를 선언했지만 이곳에선 벌써 여러해전부터 시범케이스로 적용해오고 있다.그래서 사방에개인상점들이 어지럽게 들어서고 각종 서비스산업까지 발전해가고 있어서 이곳이 과연 사회주의 나라인지 자본주의 땅인지 겉으로 보아선 구별이 안될정도가 되었다. ○손문선생 태어난 곳 ▷중산◁ 이곳은 바로 남쪽에 주해경제특구가 있고 바다 건너편으로는 홍콩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중국건국의 아버지 손중산선생의 호을 따서 중산시가 됐다. 이곳에는 요즘 중산생가등을 구경하기위해 연간 1백만명의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그가운데 40%는 홍콩 마카오 대만등지에서 오고 나머지 60%는 내륙인들이다. 중산시의 발전은 이 관광산업을 활성화시키는 것부터 시작됐다.공장지을 자본이 없기때문에 우선 관광객을 더 유치하는데 노력하고 여기서 모아진 돈으로 공장을 짓고 도로를 닦으며 항만시설을 갖춰가는 방안을 채택했다.그래서 개혁 개방이 시작된 80년대초 외국자본을 끌여들여 합작으로 지은 중국 최대의 「외자여관」이 이곳에 생겨났다. 이곳의 지역발전을 살펴보면 마치 한국의 새마을 운동과 비슷한 측면을 발견할수 있다. 당국은 80년대초 인민공사를 해체하고 농토를 농민들에게 돌려줬다.이에따라 농민들의 적극성이 되살아나면서 쌀 생산량이 2배가까이 늘었다.그러자 절반 가까운 농토가 사탕수수등 갖가지 특용작물 재배지로 바뀌었다.점차 돈을 번다는 의미를 알게되고 그런쪽으로 머리를 굴릴수 있게 된 것이다. 이같은 상황변화에 대해 중산시당의 정금찬선전부장은 『농촌개방으로 80만 농민이 농업에서 해방됐다』고 자랑했다.『농업에서 해방됐다는게 무슨뜻이냐』고 묻자 그는 『농사는 1년에 한두달만 짓고 나머지 시간은 공업·운수업·서비스업등에 종사하므로 이들을 농민이라 부르기 어렵지 않느냐』고 설명했다. 이곳 농민들은 지방정부 주도아래 농촌형 공장을 짓고 운영하는데도 적극적이었다.이른바 향진기업을 육성해가는 것이다.그래서 양말공장이나 전자부품공장등 향진기업이 시전체공업생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가 됐다. 조그마한 향진기업이 국가1급기업으로 발전한 곳도 있다.연간 1백30만대의 세탁기를 생산하는 중산위력집단공사는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이 회사의 한 방계업체는 유리를 생산,마카오시장의 1백%,홍콩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집단공사가 12개나 되는 기업체를 거느리고 한국의 재벌처럼 성장해가고 있는데 대해 엽소주부사장은 『배가 크면 풍랑을 만나도 끄덕없이 전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곳은 홍콩까지 1∼2시간이면 배로 건너갈수 있어서인지 각종 호화주택이나 별장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요즘 홍콩신문들의 광고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호화주택을 많이 지어 홍콩갑부들이 살게되면 이곳 노동자들과 위화감이 생겨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한 시당간부는 『그것은 우리당의 정책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간단히 대답했다.이곳 주택가격은 홍콩집값의 30% 가량에 그치고 있으며 지난해 홍콩인들의 이곳 부동산 투자는 1억5천만달러에 이르렀다. ○네마리 작은 호랑이 ▷순덕◁ 지난 79년부터 91년까지 이곳의 GNP성장률은 무려 18·8%였다.이는 중국전체평균이 8·6%,광동성전체가 12·4%라는 사실에 비춰 엄청난 것이다. 지난 3월 현에서 시로 승격했으며 8백6㎦의면적에 인구는 93만명으로 중소도시에 속한다.아직도 농업인구가 70%나 되지만 이곳도 중산처럼 농민을 순수농민으로 부르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중산시와 함께 광동성의 4마리 작은 호랑이로 꼽히는 순덕시는 지난78년 중국의 전체 현중에서 맨 처음으로 국제자동전화(IDD)가 설치된 곳으로 유명하다.인구 8·4인앞에 1대의 전화가 보급되어 있으며 휴대용전화 2천대와 무선호출기(삐삐)2만5천대도 시내에 깔려 있다. 순덕부시장인 오수호씨도 『우리는 2000년까지 한국을 따라 잡으려 한다』고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다.가는 곳마다 한국을 따라 잡겠다는 소리에 한편 부화가 나면서도 그들의 강한 집념에 섬뜩한 느낌마저 들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용성냉장고 공장을 취재진에게 보여줬다.84년에 창립,지난해 65만대의 냉장고를 생산,전국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한다.이 회사 공장장인 왕국단씨는 『한국산 냉장고를 평가해 달라』는 주문에 『대부분 우수한건 사실이지만 소리나는게 중국국가표준치보다 큰것 같다』고 밝혔다. ○부동산투기 붐 일고 ▷번우◁ 올해 경제성장률이 30%가 예상될 정도로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곳이다.지난봄 광주시소속 현에서 독립,인구 78만명의 시로 승격했다. 이곳에는 1천여개의 외국합자기업이 들어서서 전체공업생산의 30%를 감당해 내고 있다.지난해 10억달러어치의 공산품을 생산,절반가량을 수출했다.이런점에 비추어 이곳 경제는 수출주도형이며 완전히 외향성경제로 변모된 상태다. 이곳에서도 부동산투자가 한창 붐을 이뤄 지난해 4억달러어치의 주택이 팔려나갔다.연말에는 순환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연간 1억달러가 넘는 도로분야 투자가 계속되지만 시내교통은 항시 혼잡스럽고 꽉 막혀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중국 어디를 가나 가라오케가 많지만 이곳에는 시정부청사내에도 가라오케를 설치하고 있다.황복배부시장은 가라오케가 많은 이유에 대해 『각 공장이나 기관단위로 가라오케를 설치하는 것은 문화생활을 즐기고 놀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과거 좌파세력이 집권할 때만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반동적인 일들이 스스럼 없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열심히 일하다보면 스트레스가 쌓이고,이 스트레스를 풀어줄 최소한의 문화공간이 필요해진 것으로 여겨졌다.
  • “묵은 잡지 싸게 팝니다”/할인매장 등장

    ◎잡지전문서점 「매거진월드」,14∼23일 「골든브리지세일」 실시/컴퓨터·건강등 60여종 반값에 판매/두달에 1번꼴 개설… 잡지사들 환영 국내 전문잡지중 90∼91년에 발간된 과월호를 정가의 반값에 파는 잡지할인매장이 정기적으로 개설된다. 그 첫 시장이 14∼23일 열흘동안 서울 여의도동 여의도백화점 3층에 자리잡은 잡지전문서점 「매거진월드」에서 마련된다. 보다 많은 독자들을 전문잡지와 연결시켜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골든브리지 세일」로 이름붙여진 이 행사는 우선 컴퓨터와 실내장식,건축,건강,취미 등 전문분야의 잡지 60여종을 전시,판매한다. 앞으로 두달에 한번꼴로 열릴 이 행사는 무엇보다도 독자와 전문잡지와의 만남을 주요목표로 삼고 있다.즉 이 행사를 주최하는 「매거진월드」(대표 김병하)는 아직 많은 독자들에게 생소한 분야의 잡지를 망라하여 전시·판매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최소한 「이런 잡지도 발간되고 있었구나」하는 새로운 인식을 제공하는데 1차적인 목표를 두고 있다. 잡지 독자층의 저변확대와 함께독자들의 잡지에 대한 인식전환도 중요한 목표의 하나.주최측은 잡지가 단행본과 달리 한번 보고 버리는 「잡스런」 책이라는 독자들의 일반적인 인식을 바꾸게 하는 계기를 제공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즉 잡지도 일반 서적에 못지 않는 정보가 저장된 책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킨다는 바람이다. 이 「골든브리지 세일」 행사는 여성잡지와 시사잡지등 「인기잡지」는 배제하고 있다.이에 따라 월간이상(격월간,계간,연간등 포함)의 전문잡지 2천6백여종을 한 차례에 몇개 분야씩 묶어 순서대로 선보일 예정.이번에 진열되는 컴퓨터,실내장식등 이외의 분야,예를 들어 종교 음악 영화 전기전자 의학 화학 등의 분야도 앞으로 여러 차례에 나뉘어 제공된다.또 이 행사 중간에 창간호만 취급하는 자리도 마련할 예정이어서 특별한 책 수집을 취미로 하는 호사가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이번 「골든브리지 세일」 행사는 「매거진월드」 전체(2백평)의 4분의1에 해당하는 면적에서 실시된다. 주최사인 「매거진월드」는 첫 행사기간동안 약 3만부의 잡지가 팔려 5천만원 정도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또 앞으로 이 행사를 통해 잡지 독자층이 10∼15%정도 두터워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행사가 성공적으로 전개될 경우 그 동안 묵은 잡지의 보관문제로 골머리를 썩여온 잡지사들도 큰 도움을 받을 것으로 보이며 과월호 잡지들이 제 임자를 찾지 못하고 폐지로 처분됨으로 일어나는 자원 낭비의 문제도 한결 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 민의 떠받들며 “발로 뛴 1년”/오늘 취임 한돌맞은 정총리

    ◎대민행정 쇄신·공직자 기강확립 주력/정당과 관계 원만… 잡음없이 총선치러 정원식국무총리가 24일로 취임 한돌을 맞았다. 지난해 강경대군치사사건으로 어수선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출범했던 「정총리내각」이었지만 1년이 지난 오늘에는 그를 「조용하고 성실한 내각」의 수장으로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극렬했던 가두시위와 각종 분규가 눈에 띄게 줄었고 사회불안시비의 초점이던 민생치안사범도 한풀 꺾였다. 날로 치솟던 물가가 고개를 숙이고 있으며 주택및 부동산가격도 안정세를 되찾았다. 이같은 피부에 와닿는 안정분위기 조성과 함께 정총리는 4차부터 7차까지의 남북고위급회담을 이끌며 「고향방문」의 성과를 비롯,「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만들어 냈다. 또 행정규제완화·공직사회기강을 확립하려 애썼고 국민과의 실질적인 대화 등을 통해 국민의 소리에 귀기울였다. 그러나 이같은 안정기조가 보이기까지 정총리에게도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른바 「총리폭행사건」으로 불리는 돌발사태로재상이기 이전에 학자로서 제자들로부터 엄청난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했다. 정총리는 또 제14대 총선을 비롯,지난해 시도의회의원선거를 잡음없이 치러낸 내각으로 민감한 정치시기에 정당과의 관계 또한 원만했다는 평가다. 정부합동특감반을 설치 운영하며 내각의 사정업무를 통괄·조정,「새질서 새생활운동」에 한차원을 더했다.또한 각종 번잡스런 행정절차·규제에 과감한 메스를 가해 9백여건의 규제를 완화해가고 있는것도 국민복리를 위하는 것이란 소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무원의 본분에 엄한 정총리는 최근 자칫 무사안일에 빠지기 쉬운 대선정국에서 행정쇄신을 위한 지침을 시달해 대민행정업무를 비롯한 공무원사회안정을 강조했다. 공무원의 정치적중립·대민행정쇄신·공직자기강확립등이 바로 정총리국정운영의 골간이 되고 있으며 그의 「내각장악력」을 반증하는 것이다. 사실 범사회적으로 정총리 1년재임중 시작한 운동은 30분일더하기·10%씀씀이 줄이기·차량10부제운행·좋은식단제등과 교통사고줄이기·에너지절약운동 등 그 어느때보다도 적지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별다른 잡음이 일거나 공허한 메아리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꼭 필요한 작은소리를 들으려는 학자적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변사람들은 평가한다. 국무회의때 충분한 의견개진과 토론을 보장하고 지금까지 13개지역 국민들과 격의없는 대화를 나눠 정부의 입장을 진솔하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호소력있고 시의적절한 추진사업을 찾아냈기 때문이란 것이다. 정총리의 재임1년은 그 어느때보다도 많이 움직였으나 잡음은 들리지 않았다고 말할수있다.
  • 부도덕으로 포장된 선물(사설)

    가뜩이나 북적대는 교통난이 연말을 목전에 두고 더욱 혼잡스럽다.한해를 마감하면서 해야할 일들이 많기 때문이리라.그러나 연말 교통난심화의 주된 원인은 선물을 실어나르는 차량들의 급격한 증가탓이라고 한다. 지나간 1년동안의 고마움의 표시라든가 찾아가 인사할 겨를조차 없었던데 대한 최소한의 인정의 표현은 우리사회의 전통적 미덕일수도 있고 오히려 이것이 사회의 유대를 끈끈하게 해주는 연결고리 역할도 해 줄수 있어 좋다. 그러나 요즘의 세태는 오히려 연말연시의 선물풍조가 꼭 좋은 쪽으로만 볼수 없게끔 만들고 있다.5만원짜리 구두상품권은 보통이고,10만원이상의 갈비짝,비싼 양복상품권이나 고가의 보석류가 달린 장신용구까지 선물로 주고 받는 것이 예삿일처럼 되어 있다면 연말연시 선물의 의미를 따지기 이전에 한심스런 작태가 아닐 수 없다. 경제가 순탄하게 돌아가고 사회 구석구석에 우울한 면이 없다손 치더라도 지탄받아야 할 일들이 경제가 사상최악의 적자요 우울한 구석이 한 두군데가 아닌 상황에서 근래의 연말연시 선물행태는 가장 비판받아야 할 첫번째가 아닌가 싶다. 한마디로 몇십만원,몇백만원짜리선물은 선물이 될 수가 없다.그렇지 않아도 우리 경제사회의 오늘과 같이 일그러진,추악한 모습의 일단은 과소비로 비롯된 것이다.금년내내 경제·사회에서 비판받아온 것 중의 하나가 과소비요,그래서 뒤늦게나마 그 추방운동이 사회각층에서 일어나고 있다. 하다못해 국세청은 백화점등에서 대량의 선물을 주문하고 연말연시 호화송년파티등에 세무조사를 실시한다고 한다.그러한 행정적 규제가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모르되 최소한 과소비다,호화선물이다 하는 것은 규제에 앞서 국민 각자가 자제해야 하는 행동규범이 돼야 한다. 세속이 달라져 집에서 만든 음식이나 농산물은 선물로 보내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선물은 선물 그 자체에서 의미가 찾아져야지 값에서 찾아진다면 그것이 어찌 선물일수 있는가.그것은 하나의 뇌물이요,사회를 혼탁하게 만드는 독약과 같은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특히나 도서상품권을 제외하고는 모든 상품권의 발매가 금지되어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백화점이나 보석상,고급양복·양장점,제화점은 상품권의 변형인 교환권·인환권과 같은 유사상품권을 발행하기에 여념이 없다면 발행업소뿐아니라 그것을 사가고,그것을 받는 사람은 명백한 범법자이다.여기서 범법의 유무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우리사회의 부도덕한 행태의 하나가 연말연시의 선물풍조임이 분명하고 그것이 과소비로 내내 이어진다는데 오늘날 선물이라는 이름을 빙자한 물건 돌리기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연말연시의 선물은 나무랄수 없는 미덕일수 있다.책한권,고향의 특산품같이 값을 따지지 않는 정성을 보낼때에는 그렇다.부도덕과 물질만능을 포장한 선물은 선물이 아니다.
  • 「퍼스컴」 탄생 10년/연 매출 1천억불(경제화제)

    ◎1981년 개발이후의 추이/「노트북」등 초소형 PC도 속속 등장/지난해 국내생산 14억불… 절반 수출 20세기들어 인류생활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이기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퍼스널컴퓨터(PC)가 탄생한지 만10년이 됐다.81년 8월12일 미국의 IBM사가 처음으로 선보인 퍼스컴은 사무실에서 타자기와 잡다한 서류뭉치들을 몰아냈고 가정에서 회사일을 보는 것은 물론 시장보기까지 가능하도록 만들고 있다.기능도 점점 발달해 노트만한 크기의 PC를 서류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캐비닛만한 컴퓨터가 하던 일을 모두 처리할 수 있게 됐고 사무실 한개를 가득 채울만한 장부들을 거뜬히 외고 있기에 이르렀다. 퍼스컴을 처음 개발한 IBM자신도 예측하지 못했던 엄청난 변화를 이 조그마한 컴퓨터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엄청난 성공과 함께 PC의 판매량도 급증하여 10년만에 연간 판매액이 1천억달러를 넘어 컴퓨터관련산업의 대표적 제품으로 부상했다. 그동안 컴퓨터업계를 석권해온 대형컴퓨터는 PC에 밀려 소프트웨어와 주변기기의 판매액을 모두 합쳐도 연간 5백억달러정도로 선두자리를 완전히 내주고 말았다. 앞으로 10년이내에 PC가 전가정에 보급되고 현재와 같은 추세로 발전한다면 인간생활의 모든 분야에 더 놀라운 변화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IBM이 PC를 개발한지 10년이 지난 현재 그동안 PC업계의 라이벌이었던 IBM과 애플이 극적으로 전략적 제휴를 했다.또한 후발주자들인 일본업체들이 신기술로 시장석권을 노리고 있다.PC시장의 국제경쟁이 점점 가열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84년 IBM에 맞서 매킨토시를 개발,실리콘밸리의 신화를 창조했던 애플컴퓨터의 창업자인 스티븐 P 잡스와 PC 소프트웨어 분야를 장악한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창업자인 윌리엄 H 게이츠는 조만간 필사물(손으로 쓴 글)을 읽을 수 있고 영상을 편집,작동할 수 있는 퍼스컴이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PC이용자들이 세계 어느 곳에서나 PC를 매개로 의사전달을 할수있게 되고 사진·기록물·도안·필름클립(방송용 영화필름)서류등도 PC로 교환이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70년대말 청계천을 중심으로 한 중소업체들의 조립생산으로 시작된 국내 컴퓨터 산업도 지난해말 현재 14억1백만달러어치의 PC를 생산해 이중 6억3천5백만달러어치를 수출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복제 생산으로 출발한 국내 PC산업은 83년 삼보·삼성전자·대우통신등이 16비트짜리 퍼스컴의 개발에 성공,84년부터 본격적인 수출에 나섰다. 이후 88년 32비트기종을 생산한데 이어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노트북PC도 생산,국내보급은 물론 수출도 활발히 하고 있다. 지난해말 현재 국내 업체별 수출비중은 삼성전자가 28.6%로 가장 크고 대우통신이 26%,현대전자가 13.8%,금성사가 9.2%,대우전자 7.2%,삼보컴퓨터가 5.1%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89년 17억5천5백만달러 어치를 생산,9억7천6백만달러어치를 수출했던 국내 PC업계는 지난해 기술개발을 못한 결과 외국의 새로운 제품들에 밀려 수출이 크게 부진해 생산도 감소하는 시련을 겪고 있다.32비트위주로 점차 용량이 커져가고 있는 세계PC시장의 변화추세에 적응하지 못한데다 노트북PC의 경우 주요 부품의 80%를 일본에서 들여다 쓰고 있는 실정이다.특히 세계 PC시장에서 우리나라는 일본·미국과는 엄청난 기술격차를 보이고 있는것은 물론 주요 경쟁국인 대만에 비해서도 기술수준이 1∼2년정도 뒤지고 있는 형편이다. 이를 극복하기위해 상공부는 PC산업의 재도약을 위한 3개년 계획을 수립,핵심부품의 조기국산화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