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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해운대 ‘한 지붕 두 호텔’

    부산의 대표적 관광지인 해운대 중동의 해운대 씨클라우드호텔에서 2개 업체가 동시에 숙박영업을 하게 됐다. 부산지법 행정2부(부장 강후원)는 해운대 씨클라우드호텔이 부산 해운대구를 상대로 제기한 ‘숙박업 영업신고 반려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피고가 원고에게 한 영업신고 반려처분을 취소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13일 밝혔다. 원고는 2010년 11월 객실 안에 거실, 세탁실, 주방 등을 갖춘 일종의 레지던스 호텔인 해운대 씨클라우드호텔의 객실 28개를 이용해 숙박업을 하겠다며 영업신고서를 제출했다. 이 호텔은 호실별로 개별 분양된 집합건물이다. 그러나 해운대구는 이미 같은 해 8월 초 K사가 씨클라우드호텔의 전체 객실(416실) 중 91%인 380실을 위탁받아 숙박업 영업신고를 마쳤다면 이를 반려했다. 보건복지부가 “1개의 집합건물에는 1개의 숙박업 신고만 가능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해운대구는 “숙박업자가 업소 내에 숙박업 신고증을, 접객대에 숙박요금표를 게시해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토대로 공중위생관리법령이 정한 신고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도 내세웠다. 재판부는 그러나 “공중위생관리법 또는 그 하위 법령 어디에도 집합건물 통틀어 1개의 숙박업 신고와 영업만 가능하다는 규정은 없다.”면서 “원고의 영업신고에 별다른 하자가 없는 한 복지부의 유권해석은 적법한 처분근거가 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시설 미비 주장과 관련해 “현행 법령에 따르면 숙박업은 잠을 자고 머물 수 있는 시설 및 설비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행정관청은 이러한 본질 내지 속성을 충족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설 내지 설비를 갖췄는지만을 숙박업영업신고 심사대상으로 해야 하며 접객대, 로비는 그 범주에 들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K사와 해운대 씨클라우드호텔이 동시에 숙박업을 할 수 있게 됐다. K사 관계자는 “아직 판결문을 보지 않아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이들이 우리 회사에 위탁 관리를 맡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K사와 해운대구는 판결문을 검토한 뒤 항소를 제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띠동물 민속학자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김문이 만난사람] 띠동물 민속학자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Q. 올해는 왜 ‘흑룡의 해’라고 하나요? A. “오행과 오방색에 따라 갑진년은 청룡(靑龍), 병진년은 적룡(赤龍), 무진년은 황룡(黃龍), 경진년은 백룡(白龍), 그리고 임진년을 흑룡(黑龍)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임진년을 ‘흑룡의 해라고 부른다’는 말은 역사 자료나 문헌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연말연시를 맞아 현대적 속설과 어떤 상술이 결합돼 갑자기 만들어진 것입니다.” #의문 “열두 띠 동물 중에 왜 쥐가 가장 먼저인가요.” #풀이 “설화에 등장합니다. 아주 먼 옛날이었습니다. 하늘의 천황이 새해 첫날 세배 오는 순서대로 벼슬을 주겠다고 천하에 알렸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쥐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날개도 없고 다리도 짧은 쥐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생각하던 쥐는 충직하게 떠날 채비를 하던 소를 보게 됐습니다. 꾀를 낸 쥐는 섣달 그믐날 소 외양간에 들어가 소 꼬리에 찰싹 매달렸습니다. 이윽고 날이 새기 전부터 부지런히 걸은 소는 천상의 문에 맨 먼저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이때 쥐가 소보다 먼저 폴짝 뛰어내려 천상의 문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소는 아깝게 2등이었고 뒤이어 호랑이 토끼 등이 들어오면서 지금의 열두 동물 순서가 정해졌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밖에 동물의 출몰 시간과 생활 특성에 근거해 순서를 정했다는 설도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자시(오후 11시~새벽 1시)에는 쥐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간이고, 축시(오전 1~3시)에는 소가 아주 편안하게 되새김을 하는 시간이며, 호랑이는 오전 3~5시(인시)에 가장 많이 활동하며, 마지막 순서인 돼지는 오후 9~11시(해시)에 가장 잠을 많이 자는 시간이라는 것 등등이다. 올해는 용의 해. 용은 열두 동물 가운데 다섯 번째에 해당한다. 전설에 의하면 용은 주로 오전 7~9시(진시)에 비를 내렸다고 해서 그렇게 순서를 정했다는 것이다. 하여 수신(水神)인 용은 예부터 왕을 상징하며 태몽으로서 가장 좋은 꿈으로 여겨 왔다. 그만큼 최고 권위를 가진 최상의 동물이 바로 용이다. 하지만 용은 용이로되 ‘흑룡의 해’라고 한다. 말 그대로 ‘검은 용’이다. 왜 이런 얘기가 나올까. 60갑자 중 용띠해는 다섯 번 든다. 용띠해가 10간(干), 오행 오방색 등과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라 색깔별로 표현할 수 있다. 임진년(壬辰年)의 천간(天干)인 임(壬)이 오행으로는 수(水)이고, 오방색으로는 검은 색(玄 또는 黑)에 해당돼 ‘흑룡의 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흑룡의 해가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오며, 또 어떤 오해와 진실이 있을까.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경복궁 내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천진기(51) 박물관장을 만났다. 그는 띠 동물 민속학자로 알려져 있으며 ‘운명을 읽는 코드 열두 동물’ 등 띠 동물들과 관련된 책을 다수 펴냈고 13년째 민속박물관에서 띠 동물 전시를 열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용, 꿈을 꾸다’라는 제목으로 ‘용띠해 특별전’(2월 27일까지)을 마련하고 있다. 그는 1988년 국립민속박물관 연구원으로 들어간 이후 지금까지 경복궁에서 입·퇴궐(출·퇴근)하는 흔치 않은 기록을 세우고 있다. 박물관장실에서 만난 그는 이런 기록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저는 외부강의를 나갈 때마다 ‘24년 똥 펐다’라는 말을 먼저 한다.”며 웃는다. 이어 그는 “임금님이 쓰던 변기를 뭐라고 하는지 아느냐.”고 반문했다. 고개를 갸우뚱하자 ‘매화틀 또는 매우틀’이라고 궁금증을 풀어 준다. 이어 “궁궐 보수를 할 때 궁궐에서 사용하던 화장실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나와야 하는데 아직까지 한번도 그런 적이 없는 까닭은 다들 이동식 변기를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옛날 궁궐에서 24시간 살았던 사람은 아마도 이동식 변기에서 똥 푸는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천 관장은 자기 스스로 (경복궁에서) ‘똥 푸는 사람’이라며 웃는다. 임금님이 큰 일을 보던 이동식 변기 ‘매화틀’은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화제를 ‘띠 동물’로 옮겼다. “보통 한국인은 한 해의 운세나 평생의 운명을 열두 띠 동물로 예견해 왔습니다. 한 해 또는 평생의 수호 동물이라 할 수 있는 띠 동물의 성정과 덕성을 따져 새해의 운세와 평생의 팔자를 미리 점쳐 왔지요.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판단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지만 이보다 훨씬 앞선 것이 바로 ‘띠’였어요. 이처럼 한국인에게 띠는 중요한 문화적 요소로, 자기 띠 동물의 생태와 특징을 자신의 팔자와 동일시해 왔습니다.” 예로부터 전해 오는 ‘띠 동물’의 의미와 해석은 세월을 거치면서 변하는데, 띠 동물에 색깔이 입혀진 것은 최근의 일이라는 설명. 특히 ‘백말띠 여자는 드세다.’라는 속설은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손녀가 백말띠(경오생)였는데 성격이 어찌나 거세고 드셌는지 웬만한 남자는 접근조차 못했단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말띠에 색깔을 입힌 ‘백말띠’가 지금까지 구전되고 있다고 한다. 천 관장은 “백말띠라는 말은 일본에서는 싫어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면서 “황금돼지띠는 중국에서, 백호띠와 흑룡띠는 우리나라에서 자가발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자가발전’에는 10천간(天干)에서 비롯된다. 즉, 갑을(甲乙)은 푸른색이며 동쪽을 뜻하고, 병정(丙丁은 붉은 색과 남쪽, 무기(戊己)는 황색과 중앙, 경신(庚辛)은 백색과 서쪽, 임계(壬癸)는 검은색과 북쪽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동서남북 방향의 의미는 그쪽의 기운이 왕성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임진년은 북쪽의 수(水) 기운이 왕성한 흑룡의 해로 풀이해도 틀렸다고 할 수 없다는 게 천 관장의 해석. 다만 지난친 상술에 의해 과·포장된 것들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띠 동물에 색깔을 입혀서 인간의 길흉화복이나 한 해 운세에 영향을 미친다는 역사적 자료나 근거를 찾기 어렵습니다. ‘흑룡’이라는 말도 올해 처음 나온 것입니다. 하여튼 새해 초에 그해 수호 동물이라고 할 수 있는 띠 동물의 좋은 덕성과 상서로움을 덕담이나 축원으로 나누는 것이 우리네 전통 민속이지요. 용은 바람을 부르고 구름을 일으키며 비, 천둥, 번개와 함께하는 장엄한 비상과 승천에 있습니다. 용이 갈구하는 최후의 목표와 희망은 구름을 박차고 승천하는 일이거든요.” 또한 ‘본 뱀은 못 그려도 안 본 용은 그릴 수 있다.’는 속담을 꺼내면서 “용은 다양하게 우리 문화사에 등장하고 있다. 용은 생물학적 존재가 아니라 문화적 동물이다.”라면서 본초강목의 구절을 인용한다. ‘머리는 낙타 같고 뿔은 사슴 같고, 눈은 토끼 같고, 귀는 소와 같으며, 목은 뱀과 같고, 배는 신(큰 조개)과 같고, 비늘은 잉어와 같고, 발톱은 매와 같으며 발바닥은 범과 같다. 그리고 등에는 81개의 비늘이 있어서 9·9의 양수를 갖추었으며….’ 이렇듯 여러 동물이 가진 최대의 강점들만 모았으니 최고의 존재가 되고도 남음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아울러 용은 민간신앙에서 비를 가져오는 우사(雨師)이고 사귀를 물리치며 복을 가져다주는 벽사의 착한 신으로 여겨 왔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국토지리정보원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지명 150만여개 가운데 십이지(十二支) 동물 중 가장 많이 쓰인 것이 ‘용’이다. 용 지명은 전국 1261곳에 쓰여 호랑이(虎) 관련 지명 389곳의 3배, 토끼(卯) 관련 지명 158곳보다 약 8배 많다. 용이 들어간 지명 중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용산’으로 서울의 용산 등 전국 70곳에 쓰인다. 이 밖에도 용동(52곳), 용암(46곳), 용두(45곳), 용전(38곳), 용강·용정(27곳) 등이 있다. 경복궁 건물에 남아 있는 동물 모습 가운데 가장 많은 것 또한 용이다. “우리 민속박물관을 찾는 관광객은 한해 236만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외국인은 125만명(2011년)에 달합니다. 매년 연말연시를 맞아 띠 동물을 전시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관심과 호응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요. 현재 전시 중인 ‘용, 꿈을 꾸다’에는 특히 중국인들이 많이 찾고 있습니다.” km@seoul.co.kr ●천진기는 1962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안동대학교 민속학과를 졸업하고 영남대학교 대학원 문화인류학과 석사(민속학 전공), 중앙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고전문학 전공) 과정을 수료했다. 1988년 국립중앙박물관 연구원으로 들어간 이후 유물관리부,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연구실,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등에서 근무했고 가톨릭대, 한국전통문화학교 등에 출강했다.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관장으로 몸담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동물 민속론’(2002, 민속원), ‘한국 말 민속론’(2006, 한국마사회), ‘운명을 읽는 코드 열두 동물’(2008, 서울대출판부) 등이 있다. 문화체육부장관 표창(1994), 대통령 표창(2000) 등 다수의 수상 경력도 있다.
  • 환락의 홍콩 뒤에는…‘새장’서 사는 사람들 충격

    세계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도시이자, 쇼핑과 소비의 도시로도 알려진 홍콩의 이면을 담은 충격적인 사진이 공개됐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11일, 토끼장이나 개장 등을 연상케 하는 척박한 환경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홍콩인들의 모습을 소개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이들의 모습은 호주 출신 사진작가인 브라이언 케세이가 촬영한 것이다. 데일리메일은 “환락의 도시 홍콩의 반대편에는 터무니없이 비싼 집값 때문에 살 곳을 구하지 못하고 철망으로 만든 간이집에 사는 빈민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사진 속 홍콩사람들은 몸을 간신히 눕히거나 앉을 수 있는 좁은 철제망 ‘새장집’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새장집’은 방 한 칸에 3층 높이로 약 20개 정도가 구비돼 있다. ‘방값’은 맨 아랫칸이 가장 비싼데, 이유는 공간의 높이가 다른 층에 비해 높아서 움직이기가 자유롭기 때문이다. 수 십 명이 공동화장실을 써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방으로 활용할 공간조차 없어 음식을 조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데일리메일은 “일부 집주인들은 집이라고 볼 수 없는 좁은 새장집 조차도 매달 200달러의 집세를 받고 있다.”면서 “홍콩 내 이러한 집이 프랑스 파리 내에 있는 명품 브랜드인 루이비통 매장보다 많다.”고 꼬집었다. 이어 “홍콩의 인구밀집도와 집값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탓에 주거지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면서 “이러한 새장집은 10년 가까이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삼수이포 지역의 새장집에 사는 한 주민은 “새장집의 온도가 외부보다 2~3도 가량 높아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다.”면서 “쥐나 기생충, 바퀴벌레 등의 피해도 엄청나다.”고 호소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국대’의 새벽 뜨겁게 열렸다

    ‘국대’의 새벽 뜨겁게 열렸다

    태양도 아직 떠오르지 않은 한겨울 새벽 6시, 운동장에 모인 선수들이 에어로빅으로 몸을 푼다. 잠 들었던 세포가 깨어날 때쯤 종목별로 나눠 새벽 훈련프로그램을 소화한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태릉선수촌의 아침 풍경. 다만 느낌과 각오는 사뭇 달랐다. 9일로 런던올림픽 개막이 200일 앞으로 다가온 것. 선수들의 심장 박동과 발걸음도 덩달아 빨라진다. 대한체육회는 이날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에서 ‘국가대표 훈련 개시식’을 열었다. 연초에 하던 행사를 올림픽 D-200에 맞춰 늦췄다.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는 15개 종목, 426명의 선수들이 오륜관에 모여 결의를 다졌다. 런던올림픽을 반년 앞둔 시점이라 그런지 매해 열리던 훈련 개시식보다 더 북적거리고 들뜬 분위기였다.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각종 경기단체·유관단체 인사들이 참석해 선수들과 신년 인사를 나눴다. 최 장관은 “스포츠는 정직하다. 런던올림픽에서 그동안 흘린 땀과 눈물, 노력이 아름다운 결실로 맺을 수 있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박용성 회장은 ‘금메달 10개 이상으로 세계 10위권 달성’이란 목표를 강조하면서 “다시 한 번 대한민국 스포츠를 세계 중심에 서게 해달라.”고 말했다. 박종길 태릉선수촌장은 “선수촌에서 ‘나태’와 ‘안주’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남은 기간 더 진지한 자세로 훈련에 매진해야 한다.”고 선수들을 독려했다. 양궁 김우진과 유도 황예슬은 대표선서를 하며 “필승의 신념으로 강화훈련에 임할 것”을 다짐했다. 김우진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올림픽에서 개인전 금메달을 따는 게 꿈”이라고 했다. ‘효자종목’ 양궁이지만, 아직 올림픽 남자 개인전에서 금메달이 없다. 김우진은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과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에 오르며 런던의 기대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대표선서를 하면서 각오와 다짐이 더욱 확고해졌다. 불안하기도 하지만 설렌다.”고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빛 바벨을 들어올렸던 역도 장미란은 “대회가 얼마 안 남은 게 피부에 와닿는다. 메달 욕심을 부리기보다 최선을 다하다 보면 결과는 자연히 따라올 것”이라며 웃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거실에 1.7m 악어가 있어요!” 화들짝

    이른 아침 거실에서 1.7m 크기의 악어와 대면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호주 뉴스닷컴의 보도에 의하면 호주 북부 다윈에 살고 있는 믹코 슬비노브스카(42)와 아내 조 도드(42)는 7일 아침 5시30분경(현지시간) 깜짝 놀랄 일을 당했다. 아직 이른 아침 침실에서 잠을 자고 있던 아내 도드는 애완견의 짓는 소리에 잠을 깼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거실로 나온 도드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침실 문에서 3m 떨어진 거실에 1.7m 크기의 바다악어 한마리가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을 깨웠고, 슬비노브스카도 바지를 걸친 후 손에 집히는 대로 무기 될 만한 것을 집어 들었다. 그가 들고 나온 무기는 침대 맡에 있던 기타. 그는 기타를 들고 조심스럽게 거실을 지나 악어 관리대에 전화를 했다. 연락을 받은 악어 전문가 대니 베스트가 도착했고, 익숙한 솜씨로 악어를 제압했다. 악어는 인근 악어 농장에서 탈출한 놈으로 밝혀졌다. 인근농장에서는 지난 5년간 15마리의 악어가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내 도드는 “거실에 있는 악어를 발견한 순간 너무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고 당시 심정을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호주통신원 김경태 tvbodaga@hanmail.net
  •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황금똥 보셨습니까

    무채색 일색인 한겨울에 만나는 찬란한 금빛. 그 오롯한 쾌감을 기억하시는지요. 고구마가 주는 배설의 기쁨입니다. 이른 아침, 얼요기 삼아 막 퍼올린 샘물을 몇 모금 마시면 뱃골이 싸 한게 인체라는 유기체와 융합하려는 자연의 의지가 느껴집니다. 페트병에 담긴 ‘비싼 물’이 아니라, 정수기가 걸러낸 ‘인조 물’이 아니라 지층의 위엄이 빚어낸 그 물 한모금의 은혜를 안다면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깨우침일 수 있습니다. 공복에 마신 정화수, 아직 남은 잠의 찌꺼기를 씻어내더니 혈관을 타고 심신의 말단으로 스며들어 마침내 대장의 끝 괄약근에 힘을 미칩니다. 괄약근을 압박하는 그 묵직하고 은근한 힘이야말로 살아 숨쉬는 생명의 징후이지요. 측간에 들어앉아 자리를 잡으면 가래떡 같은 고구마똥이 호기롭게 밀고 나옵니다. 똥 얘기가 황당하다고요. 천만에요. 구린 똥이야말로 자신의 건강일지입니다. 그것만 잘 챙겨봐도 오장육부의 건강 상태를 꿸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대장이 안 좋으면 물똥을 쨀쨀 누고, 붉은 피가 섞여나오면 대장이나 항문 쪽에 문제가 있으며, 검은 혈변을 눈다면 위·십이지장 출혈을 의심할 수 있다는 식입니다. 그런 점에서도 황금빛 고구마똥은 위장관의 복음입니다. 황금똥, 심심파적으로 고구마 한두 개 먹는다고 누어지는 게 아닙니다. 아침은 거무튀튀한 보리밥으로, 점심은 삶은 고구마에 익은 김치 척척 얹어 먹고, 저녁은 청국장에 동치미와 밑반찬 두어 가지로 때웁니다. 저녁 먹고 두어 식경이 지나면 출출해 소쿠리에 담긴 삶은 고구마를 몇개 얼렁뚱땅 해치웁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식간에 주전부리 삼아 날고구마 깎아 먹는 건 덤입니다. 이렇게 하루 먹거리의 절반 정도를 고구마로 채우면 똥이 달라집니다. 싯노랗게 숙성해 우직하게 밀고 나오는 그 쾌변의 기쁨은 도시풍의 얄팍한 식사를 기꺼이 포기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똥을 누고 나면 뱃속이 텅 빈 듯 가뿐해 뭔가를 먹어야 한다는 식욕의 당위가 느껴지고, 그렇게 건강한 하루가 시작됩니다. 우리가 살아내야 할 1년은 그 하루의 누적일 뿐입니다. 임진년 새해, 그 삼백 예순 닷새를 잘 먹고 잘 싸는 해로 만들어 보는 건 어떨는지요. jeshim@seoul.co.kr
  • ‘공포의 번지점프’ 111m 점프중 줄이 ‘뚝’

    ‘공포의 번지점프’ 111m 점프중 줄이 ‘뚝’

    111m 높이의 번지점프 중 줄이 끊어지는 아찔한 사고 발생했다. 더군다나 다리 아래는 악어가 득실대는 잠베지 강(江). 호주 채널9 뉴스 보도에 의하면 이 사고는 새해 전날인 12월 31일 아프리카 잠비아와 짐바브웨의 경계를 흐르는 빅토리아 폭포에서 발생했다. 호주인 여행객 에린 랭워시(22)는 111m 높이의 번지 점프대에서 뛰어내렸다. 순간 번지점프의 줄이 끊어지면서 랭워시는 강아래로 곤두박질 했다. 다행히 목숨을 잃지 않은 랭워시는 발이 묶인 채 짐바브웨 쪽 강어귀로 수영을 해 나가는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했다. 랭워시는 당시 상황을 전하며 “줄이 바닥의 바위같은 것에 걸려 물밖으로 나오지 못할 때는 굉장히 무서웠다.”고 말했다. 랭워시는 강어귀에서 구조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녀는 심한 타박상과 찰과상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병원으로 옮겨져 1주일 동안 치료 받았다. 보도에 의하면 랭워시는 번지 낙하 후 수면 위 20m 정도에 도달했을때 줄이 끊어져 강물과의 충격이 적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잠비아 관광부 장관인 기븐 루빈다는 “이 곳은 지난 10년 동안 한해 5만여 명이 번지점프를 한 곳” 이라며 “이번 사고는 50만 분의 1의 사고로 이곳 번지점프는 안전하다.”고 말했다. 잠비아 경찰과 관광부는 정확한 사고원인을 조사중이다. 사진=채널9 서울신문 나우뉴스 호주통신원 김경태 tvbodaga@hanmail.net
  • ‘왕따’ 소녀 감싸주고 자살기도 아버지 돕고

    ‘왕따’ 소녀 감싸주고 자살기도 아버지 돕고

    2003년 겨울 울산 중구 남외동의 낡은 주택가. ‘한 중년 남성이 술에 취한 채 소리를 지르며 문을 두드린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울산 병영지구대 소속 김성욱(41) 경사가 현장에 출동했다. “이 집 아줌마가 애들한테 엄마 없는 우리 딸하고 놀지 말라고 그랬대서….” A(49)씨는 말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김 경사는 처음 이렇게 그를 만났다. ●“애들 앞에서 부끄러운 짓 하지 마세요” 곰팡이 핀 춥고 눅눅한 반지하 월셋방. 옹기종기 모여 있던 A씨의 5세와 6세, 7세인 세 딸. A씨를 데려다 주러 함께 집을 찾았던 김 경사는 할 말을 잃었다. 신문 배달과 폐지 수집으로 근근이 먹고살던 A씨가 목디스크로 거동이 불편해지자 김 경사는 수시로 A씨 집을 찾았다. 퇴근길에 들러 라면과 생필품을 사다 줬다. 또 아이들을 순찰차에 태워 주며 아픈 동심을 어루만졌다. 그렇게 인연을 맺어 오던 2004년. 아이들이 잠든 틈에 A씨가 목을 매 자살을 시도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큰딸이 발견해 줄을 자르고 119에 신고했다는 것이었다. “애들 앞에서 부끄러운 짓 하지 마세요.” 김 경사는 처음으로 A씨에게 화를 냈다. “죄송합니다. 애들 엄마도 집을 나가고,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술이 없으면 잠을 잘 수 없어요. 이런 제가 어떻게 아이들을 잘 키우겠습니까. 제가 죽어야 아이들을 나라에서 잘 키워 주겠죠.” 절규 어린 대답이 돌아왔다. ●‘감동 치안 페스티벌’ 최우수상 받아 그 뒤 김 경사는 A씨를 설득해 알코올중독 전문 치료병원에 입원시켰다. 놀란 아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 따뜻한 밥을 먹이며 보살폈다. 다행히 퇴원한 A씨도 다시 마음을 잡았다. 김 경사는 이웃들에게 도움을 호소하며 A씨 가족의 수호천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지역 어린이집 원장도 A씨 집을 찾아 아이들을 돌봤다. 한 교회에서는 음식을 보내 주고 청소를 하기도 했다. 김 경사 소개로 A씨는 집 근처 주유소에서 배달 일을 하게 됐다. 2년 전 A씨가 사소한 시비 끝에 주먹질을 하다 벌금형을 받고 구치소에 들어갔을 때는 “아빠가 멀리 일하러 갔다.”며 다독인 뒤 매일같이 애들을 보러 갔다. 아이들이 기가 죽을까 봐 운동회 날에는 과자와 음료수를 싸들고 학교를 찾았다. ‘혹여나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소외되지는 않을까’ 친구들을 데리고 경찰서에 오면 견학을 시켜 주고 “누가 또 놀리면 바로 아저씨를 찾으라.”며 힘을 줬다. 그의 사랑은 친자식 이상이었다. ●“아이들이 잘 자라줘 그게 기쁠 뿐” 김 경사는 그렇게 10년을 A씨 가족과 인연을 맺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면서 지난해 11월엔 경찰청이 주관하는 ‘감동 치안 페스티벌’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감동 치안 페스티벌은 경찰관들이 일선에서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사례를 매년 선정하는 것이다. 김 경사는 “부끄럽기만 하다. 별일 아니다.”면서 “애들이 잘 자라 줘서 그게 기쁘다.”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내일이 오면(SBS 토요일 밤 8시 40분) 작은 케이크를 들고 은채의 신혼집에 찾아간 일봉과 보배. 온통 술병으로 가득 찬 방 안의 모습을 보고 놀란다. 일봉도 쓰러져 있는 은채를 보고 놀란다. 손도 안 댄 음식과 술병이 가득한 냉장고를 본 보배.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일봉에게 은채를 업으라고 한다. 그리고는 은채의 옷가지들을 챙겨 집으로 향한다. ●걸어서 세계속으로(KBS1 토요일 오전 9시 40분) 고대문명의 발상지이자 인류문명의 보고인 이집트. 그 명성답게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적과 유물이 많지만 역시 이집트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건 피라미드가 아닐까. 교과서에서 봤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상상보다 더한 크기와 생생함, 그리고 역사와 함께 사는 이집트 사람들의 순수한 웃음을 따라간다. ●오작교 형제들(KBS2 토요일 밤 7시 55분) 창식에게 뺑소니 범인이 백인호라는 사실을 듣게 된 복자는 충격을 받는다.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한편 갑년은 자은을 손자며느리 대하듯 예뻐하며 태희와 빨리 결혼하라고 재촉한다. 태범은 혜령을 만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차수영이라고 얘기하며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한다. ●아모레미오(KBS2 일요일 밤 11시 25분) 1985년 해창(정웅인)이 가짜 대학생임을 들킬 뻔한 순간, 해창의 정체를 알고 있는 민우(김영재)가 등장한다. 한편 수영(김보영)은 해창에게 호감을 느낀다. 해창은 결국 같이 하숙하는 한국대 학생인 영식의 학생증에 자기 사진을 붙이고 다시 학교를 찾는다. ●늘 푸른 인생(MBC 일요일 오전 6시 10분) 상큼한 참다래와 자연의 맛 취나물로 유명한 경남 고성군에 송천참다래마을이 있다. 4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못 잊는 그때 그 사건. 순진한 새색시가 마음 졸인 사연과 한평생 고생만 시킨 남편이라도 다시 돌아오면 잘해주겠다는 세 여자의 애교 대결까지, 물 맑고 인심 좋은 이곳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런닝맨(SBS 일요일 오후 5시) 신년 프로젝트 제1탄. 사상 최강의 킬러들이 온다. 소리 없이 잠입한 킬러 4인의 정체는 바로 김성수, 이천희, 지진희, 주상욱이다. 이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런닝맨을 전격 제거하라.’는 것. 치밀한 작전과 기습, 런닝맨을 유린하는 킬러들의 파상공세, 그리고 숨겨진 엄청난 반전으로 승부는 미궁에 빠진다.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 ●인삼로드 2부(OBS 일요일 오후 6시 45분) 조선 인삼은 세계로 전파되며 국부의 중요한 한 축을 이뤘다. 그러나 인삼으로 부를 거둘수록 견제도 커져간다. 조선이 인삼으로 돈을 챙길 무렵 유럽 출신 선교사들은 북미 지역에서 자생하는 인삼인 북미삼을 찾아낸다. 조선인삼은 저가의 중국 삼, 북미 삼과 경쟁을 벌이게 되는데….
  • [씨줄날줄] 담배 이야기/우득정 수석논설위원

    “담배는 일본에서 생산되는 풀인데 그 잎이 큰 것은 7, 8촌(寸)쯤 된다. 가늘게 썰어 대나무통에 담거나 은, 주석으로 통을 만들어 담아 불을 붙여 빨아들이는데 맛은 쓰고 맵다. 가래를 치료하고 소화를 시키지만 오래 피우면 간의 기운을 손상시켜 눈을 어둡게 한다.” 인조실록에 나와 있는 담배 기록이다. 담배는 병진년(1616) 일본에서 전파되어 신유(1621), 임술년(1622)에는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흡연인구가 급속히 확산됐다고 한다. 차나 술 대신 담배로 손님을 접대해 연다(煙茶), 연주(煙酒)라는 말도 생겨났다. 당시 인구 1839만명 중 360만명 이상이 담배를 피웠다고 하니 흡연율이 요즘과 비슷한 20% 이상인 셈이다. 조선 중기 학자 장유(張維)가 지은 수필집 ‘계곡만필’(谿谷漫筆)에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자가 천명, 백명 중 한명”,하멜표류기에는 “조선에는 4, 5세 때부터 담배를 시작하여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남녀를 보기 드물다.”라고 기록돼 있다. 효종의 장인인 장유는 조선 최고의 골초로 꼽힌다. 그는 “담배를 피우면 취한 사람은 술이 깨고 배 고픈 사람은 배가 부르게 된다.”고 강변했다. 열렬한 애연가였던 정조는 “담배는 더위를 씻어주고 추위를 막아준다. 식후에는 소화를 시켜주고 변을 볼 때 악취를 막아주며 잠 안 올 때 잠을 자게 해준다.”고 왕의 어록(일득록·日得錄)에 기록됐을 정도다. 정조는 “여러 식물 중에 사람에게 유익한 것은 남령초(南靈草·담배)만한 게 없다.”며 흡연을 장려하는 책문을 내리는가 하면, 금연 상소는 모조리 물리치고 시험 주제로 담배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는 ‘청정관전서’에서 어른들 몰래 숨어서 피우는 어린아이들의 흡연 실태를 개탄했다. 이익은 흡연이 가래와 소화불량 해소 등 5가지 장점이 있는 반면 정신과 눈·귀, 혈색을 흐리게 하는 등 해악은 10가지라고 지적했다. 조선 말기 흡연으로 인한 피해가 연간 1260만냥이라는 기록도 있다. 흉년 때 온 백성을 구제하고도 남을 액수라고 한다. “벼는 지대가 높고 건조한 곳에서 가꾸고 좋은 땅엔 담배를 심는다.”고 할 정도로 담배의 해악은 컸다. 보건복지부가 성분·광고·판매·가격 등 담배와 관련한 포괄적 규제를 담은 ‘담배안전관리 및 흡연예방제(가칭)’ 입법을 통해 담배 첨가제의 성분 공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성분 공개가 금연 분위기 조성에 어느 정도 기여할지 기대된다. 우득정 수석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클래식 팬들 올핸 지갑 ‘텅텅’ 비겠네!

    클래식 팬들 올핸 지갑 ‘텅텅’ 비겠네!

    클래식 팬이라면 임진년 2, 6, 11월에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우열을 가늠하기 어려운 세계 유수의 교향악단 공연이 봇물 터지듯 열리기 때문. 2008년 영국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이 발표한 ‘세계 오케스트라 톱 20’ 중 네덜란드 로열콘세르트허바우(1위), 영국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4위), 독일 바이에른방송 교향악단(6위), 러시아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14위) 등이 한국 팬을 찾아온다. 포트폴리오를 짜지 않고 ‘질러대면’ 낭패보기 십상이다. ●잔인하거나 행복하거나 첫 테이프는 2월 21~22일 로열콘세르트허바우(RCO)가 끊는다. 브람스 교향곡 2번,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3번 등을 연주한다. 그라모폰 랭킹이 절대적인 잣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독일 베를린필과 오스트리아 빈필을 제친 ‘넘버 1’이다. 2010년에 이어 2년 만의 방한이다.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 지휘봉을 잡는 점이 눈에 띈다. 2010년 11월 이후 국내 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영국 리즈 콩쿠르의 한국인 첫 우승자 김선욱이 피아노를 맡는다. 같은 달 23일에는 세계 최고(最古)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성 토마스 합창단이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들려준다. 1750년 바흐 서거 이후 도서관에서 잠을 자던 악보가 빛을 본 건 1829년 멘델스존에 의해서다. 당시 멘델스존은 거의 2년 동안 예행연습에 매달렸다. 바로크 음악의 모든 형식을 망라한 대작인 만큼 연주시간만 3시간이 필요하다. 2004년과 2008년에 이어 세 번째 내한하는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성 토마스 합창단의 무대에 기대가 쏠리는 까닭이다. 런던심포니는 러시아 출신 수석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온다. 6년 만의 내한공연이다. 프로코피예프(피아노협주곡 3번), 쇼스타코비치(교향곡 5번·바이올린 협주곡 1번), 차이콥스키(교향곡 6번) 등 러시아 레퍼토리의 정수를 들려준다. 깊이와 쇼맨십을 두루 갖춘 게르기예프의 능력을 잘 보여줄 선곡이라는 평가다. 피아노 협연은 러시아 출신 데니스 마추예프, 바이올린은 한국 출신 사라 장이다. 마니아들의 공연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3가지 요인(상임지휘자의 직접 지휘, 가장 자신 있는 프로그램 선곡, 협연자와의 궁합)을 모두 충족하는 셈. 1980년대 후반 개혁과 개방의 물결 속에 옛 소련의 오케스트라들은 재정난에 시달린다. 서방으로 짐보따리를 싸던 레닌그라드필과 모스크바방송 교향악단의 악장·수석급 연주자들을 붙잡아 설립한 게 1990년 창단된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RNO)다. 산파를 맡은 사람은 명(名)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인 미하일 플레트네프. RNO는 객원지휘자에 대해 낯을 가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여년을 함께한 플레트네프가 3년 만의 내한공연 지휘를 맡는다. 한국 관객은 운이 좋다. ●게르기예프와의 최적 궁합은? 11월에는 게르기예프가 한국을 다시 찾는다. 이번에는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와 함께다. 1860년 개관한 마린스키극장은 러시아 황실의 오페라·발레·오케스트라로 황금기를 보냈다. 그렇다고 옛 소련 체제 막바지의 침체기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88년 게르기예프가 총감독을 맡으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각기 다른 악단을 만나 게르기예프의 지휘가 어떻게 변주되는지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할 터다. RCO 내한 때 상임지휘자 마리스 얀손스가 오지 않는다고 실망한 팬이라면 11월을 노려볼 만하다. 바이에른방송 교향악단이 얀손스와 함께 온다. 바이에른의 내한은 처음. 1949년 창단 때부터 초대 지휘자 오이겐 요훔의 헌신과 방송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이 악단은 동유럽의 유능한 연주자를 대거 영입하면서 급성장했다. 2차대전 이후 작곡가 말러가 재평가를 받는 데 공헌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첫 내한공연도 반가운데 베토벤 교향곡(2·3·6·7번)을 들고 온다. 기대치가 한껏 치솟는 까닭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호텔방에 침입한 강도, 하필 ‘핵주먹’ 타이슨 방에…

    지난해 마지막날 강도가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방에 침입했다. 호텔방에 투숙한 손님의 금품을 갈취하고자 했던 것. 그러나 강도는 투숙객의 얼굴을 보자마자 줄행랑을 쳤다. 하필 그 손님이 전 헤비급 세계챔피언인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45)이였기 때문. 영화 속에나 등장할 황당한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지난달 31일 타이슨은 스티비 원더의 콘서트를 관람한 후 가족과 함께 하룻밤 180만원 하는 고급 호텔방에 묵었다.  곤히 잠든 타이슨은 그러나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고 손전등의 불빛을 보게됐다. 강도가 타이슨에게 손전등을 비춘 것. 단박에 타이슨임을 알아본 강도는 화들짝 놀라며 순식간에 도망쳤다. 타이슨 측 관계자는 “강도가 타이슨이 깨어 있었을 때 마주쳤다면 핵주먹을 맞을 뻔 했다.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행운의 강도”라고 밝혔다. 호텔측 홍보담당자는 “현재 사건을 보고받고 자세한 경위를 조사중”이라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소 굶겨 죽이는 농가] 농민들 “FTA 비준 후 축산물값 모두 하락”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비준되니까 송아지 가격이 폭락하지 않았습니까.”(이승호 낙농육우협회장) “아직 발효도 안 됐는데 한·미 FTA 때문에 가격이 내렸겠습니까.”(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4일 농림수산식품부가 주최한 한·미 FTA 보완 대책 농어업단체장 간담회. 한·미 FTA 추가 보완 대책이 나온 뒤 처음 열린 간담회에서는 새해 덕담이 오갔지만 최근 폭락한 송아지값이 화제가 되자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농식품부가 발 빠르게 한우 관련 대책을 내놨지만 육우 등 다른 축산물은 대책에서 배제됐다는 푸념이 나왔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날 축산 관련 협회 가운데 육우협회·양돈협회·오리협회·양계협회·계육협회 등은 간담회에 참석했지만 한우협회는 불참했다. 이승호 협회장은 “한·미 FTA가 통과된 뒤 돼지를 제외하고 육우·오리·닭 등 축산물 가격이 모두 하락했다.”면서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고 농가가 알아서 하라는 식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어 “농식품부가 소 가격 폭락 관련 대책을 마련했지만 한우 관련 대책만 있다.”고 덧붙였다. 김준봉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장도 “한우와 젖소, 육우 등 대책을 세분화해 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정부가 FTA 대책을 마련했지만 농민 입장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 거들었다. 서 장관은 “육우에 대한 대책이 없을 리 없다.”고 달랬다. 그는 “이번에 밭농업 직불제를 도입했는데 이를 통해 낙농가의 사료 가격이 떨어지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 장관은 또 “외국에서는 1년 미만 송아지 고기를 비싸게 파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 농가에서도 사육 기간과 사료값을 줄이고 질 좋은 고기를 생산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에 대해 연구를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잠시 동안의 언쟁은 한 참석자가 “한·미 FTA와 같은 위기 국면에서는 농업 협회끼리 합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중재에 나서면서 정리됐다. 오전 11시에 시작된 간담회에는 서 장관을 비롯해 농식품부 국장, 분야별 협회장 등 40명이 참석했으며 예정된 50분을 훌쩍 넘겨 2시간 가까이 진행됐고 회의 뒤에는 늦은 오찬이 이어졌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4일 TV 하이라이트]

    ●스카우트(KBS1 밤 7시 30분) 2012 임진년 새해 꿈의 기업 프로젝트 ‘스카우트’를 위해 전통과 예술의 혼이 넘치는 도예 전공 학생들이 뭉쳤다. 전국 특성화 고등학교 중 5개 학교의 도예 학과 관련 인재들이 ‘대림바스’ 디자인실 입사를 앞두고 한판 승부를 펼친다. 과연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실력으로 중무장한 5명의 결선 진출자 중 최종 선택은 누가 될까. ●파워 마스크(KBS2 오후 4시 30분) 진호는 게임 속의 괴물을 물리치기 힘들자 용에게 도움을 처한다. 용은 처음으로 하는 게임의 재미에 푹 빠져 밤을 새운다. 결국 용은 차원의 문이 열릴 시간까지 게임을 하고, 잠이 모자라 제대로 싸우지 못한다. 한편 게임 속의 ‘푸푸 괴물’이 강하다는 이야기를 엿들은 다크는 ‘푸푸 괴물’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계략을 세운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MBC 밤 7시 45분) 지원은 오랜만에 스쿠터가 타고 싶다. 하지만 내상으로부터 키를 빼내올 길이 없어 난감해한다. 그러던 중 돈이 필요한 수정이 안예술에서 같이 아르바이트를 해 주면 스쿠터 키를 빼내 주겠다며 거래를 한다. 한편 지석은 자신이 하선에게 준 편지가 두 집 사람들에게 돌고 돌아 모두 봤다는 걸 알게 된다. ●한밤의 TV연예(SBS 밤 8시 50분) 2012년 새해를 맞아 야심차게 특별 코너를 준비했다. 이름하여 ‘올해 뜰’ 용띠 스타들이라는 코너다. 행운의 상징이라는 ‘흑룡의 해’를 맞아 대박 조짐이 강하게 보이는 용띠 스타들이 다 모였다. 승천하는 검은 용처럼 올 한 해 승승장구 연예가를 휘어잡을 용띠 스타들은 누가 있는지 ‘한밤의 TV연예’에서 만나 본다. ●극한직업(EBS 밤 10시 40분) 새벽 어둠이 가시지 않은 아침, 터널 굴착 작업 준비가 한창이다. 이들에게는 계절은 물론 주야의 구분도 없다. 공사 기간 단축을 위해 24시간 1분도 쉬지 않는 교대 체제로 투입되기 때문이다. 극한의 상황을 빗댄 ‘막장’이라는 단어. 저마다 두툼한 마스크를 착용하고 ‘막장’으로 들어가는 근로자들의 얼굴엔 결연함이 가득하다. ●송영길 시장에게 듣는다(OBS 밤 10시) 2012년 새해, 도약의 물꼬를 준비하는 인천시가 세계 속에서 우뚝 서기 위한 전략과 방안은 무엇일까. OBS는 신년특집 ‘송영길 시장에게 듣는다’를 통해 인천시가 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 본다. 또 지역과 세계를 연결하는 인천시의 현재와 미래를 송영길 인천시장에게 직접 들어 본다.
  • [깔깔깔]

    ●하마를 보고 나서 귀동이가 울면서 선생님에게 달려갔다. 귀동:선생님, 희영이가 제 뺨을 때렸어요.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이 희영이에게 물었다. 희영:귀동이가 1년 전에 저더러 하마라고 했기 때문에 때린 거예요. 희영이가 분이 가라앉지 않는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러자, 정확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던 선생님이 다시 물었다. 선생님:아니, 1년 전 얘길 갖고 왜 지금 친구를 때리니? 그러자 희영이 하는 말. 희영:어제 동물원에 갔다가 하마를 처음 봤거든요. ●잠의 3대 법칙 ▶아인슈타인 법칙:잠을 자면 시간이 빨리 간다. ▶뉴턴의 관성 법칙:한 번 자면 계속 자고 싶다. ▶도미노 법칙:옆 사람이 자면 나도 자고 싶다.
  •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 모기/ 하우 (본명 신광수)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 모기/ 하우 (본명 신광수)

    모기/ 하우 (본명 신광수) 등장인물 무영(30대 초반·공무원시험 준비 중) 약희(20대 후반·백화점 화장품 매장 직원) 방역업체 직원 1(40대·제로버그 팀장) 방역업체 직원 2(20대·제로버그 사원) 집주인(40대·중반 여성) 매니저(소리·화장품 매장 관리인) 무 대 왼쪽에 침실과 작은 거실이 딸린 반지하 공간. 햇살을 느낄 수 없으며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이다. 거실 벽면 위로 창이 있으나 방충망은 찢기고 구멍도 뚫려 있다. 거실 한편에는 컴퓨터, 벽에는 벽시계가 걸려 있고 밑에는 커다란 동그라미가 그려진 달력이 걸려 있다. 침실에는 침대와 화장대, 구석에는 아기 침대와 모빌이 달려있다. 중장비의 굉음이 멀리서 들려온다. 중장비 소음은 인물들이 등장하여 대화할 때에는 잘 들리지 않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점점 크고 뚜렷하게 들린다. 중장비 소음이 들릴 때마다 무영은 귀를 후비는 습관이 있다. 희미한 침실 조명이 켜져 있고 ‘탁’ 하는 짧은 박수소리 한두 번 들린다. 조명 밝아진다. 무영 저희가 안 나가겠다는 겁니까? 아니잖아요. 아무리 월세를 제때 못 낸다 해도 그렇지 사람이 살 수가 없잖아요. (약희의 눈치를 보며) 알았어요. 그러니까요, 사모님께서 먼저 계약서대로 모기부터 해결부터 해주세요. (사이) 네, 네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무영은 수화기를 휙 던지며 클렌징을 하는 약희의 눈치를 살핀다. 약희 뭐래? 무영 (말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알았대. 약희 (순간 울컥함을 참고 몸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이것 봐, 이것 보라구. 어! 여기도 물렸네. 아이 가려워. 에이 정말, 여름만 되면 이놈의 집구석은 모기가 온통 벽에 온통 도배를 해요, 도배를… 얘네들은 날개를 폼으로 달았나? 날개가 있으면 날아올라야지,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요 앞 40층짜리 탑궁전 아파트 사람들은 놔두고 (무영을 보며) 바닥보다 낮은 이런 곳으로 기어 들어와서 피곤한 사람, 잠도 못 자게 한담. 무영, 약희를 힐끗 보다 다시 허공에 시선을 응시하며 손뼉을 친다. 약희 잡았어? 무영 어 (씩 웃으며 약희에게 빈 손바닥을 펴 보인다.) 약희(다시 거울을 보며) 그 한 마리를 잡아서 집안의 모기를 도대체 언제 다 없애겠어? (사이) 다 없앨 수나 있겠어? 좋아, 설사 집안의 모기를 다 잡았다고 쳐. 그럼 뭐해, 좀 있다가 집 밖에 있는 모기들이 주택청약 대기자처럼 얼씨구나 들이댈 거 아냐? 무영 미안해. (표정을 바꿔 자신감 있는 태도로) 그래도 오늘 밤만큼은 기필코 밤을 새워서라도 자기랑 울 희망이, 내~가 책임진다. 약희 허구한 날 또 그 소리 (무영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자기랑 울 희망이, 내~가 책임진다. 테이프 같으면 벌써 늘어져서 내~~가 책~임진~다. 책임이 뭔지나 아나? 무영 뭐!? 약희 됐어. 그건 그렇고, 난 정말 못 참겠어. 가뜩이나 모기소리가 나면 불면과 신경쇠약에 시달렸는데 이젠 편두통까지, 앵앵거리는 소리만 들으면 미쳐버릴 것 같다구. 이번 여름, 아니 딱 일주일만이라도 모기가 없는 곳에서 살고 싶어. 무영 (혼잣말로) 난, 자기 잔소리 없는 곳에서 단 하루만이라도 살고 싶다. 약희 뭐야! 잔소리? 그럼 지금 당장 짐 싸. 무영 아니, 내 말은… 약희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잔소리 안 하게 생겼니? 무영(한참 동안 약희의 눈을 피하며) … 약희 이제 집은 어떡할 거야? 이제 보름도 안 남았어. 무영 … 약희 (울컥 치솟는 것을 참으며) 아이 참, 오늘 밤은 또 왜 이리 덥담. 무영 (약희의 눈치를 살피다가) 미안해, 여봉~ 내가 이번 시험만 붙으면… (약희를 안으며) 그리고 오늘 밤만큼은 자기하고 울 희망이, 내가 밤 새워서라도 모기들한테서 지켜줄게. 약희 (무영을 뿌리친 후) 더워 더워, 끈적거려, 붙지 말래두. 에어컨도 없는 집에서… 어! 빨리 손 안 치워? 무영 (머쓱한 듯 손을 빼며) … 약희 그리고 ‘이번 시험만 붙으면’ 이라는 말 도대체 몇 번째야. 이제 지긋지긋하니까, 먼저 모기 다 없애기 전까지 내 몸에 손도 대지 마. 무영 (약희를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다가) 이놈의 모기들 오늘 밤 다 (목소리를 낮추며) 죽었어. 무영은 약희를 계속 쳐다보다가 ‘앵’ 하는 소리와 함께 순간 ‘탁’ 하고 박수를 친다. 그리고 잠시 광기 어린 무영의 얼굴이 살짝 비친 후 조명 꺼진다. 조명 켜지면 창밖에는 매미 울음소리와 함께 보다 커진 중장비 소음이 들려온다. 반바지 차림에 부스스한 몰골의 무영은 처음에는 귀를 후비다가 나중에는 귀를 막는다. 이후 한참 만에 전화벨이 울리는 것을 확인하고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는다. 약희 지금까지 잔 거야? 무영 아, 아냐, 진작 일어났지. 지금 기출 문제 동영상 강의 듣고 있어. (사이) 정말이야. 자 들어봐. (아이 젖병을 꺼내면서, 목소리를 바꿔) 네, 지난 5년간의 기출문제 유형을 종합하여 정리한다면, 이번 10월에 있을 공무원 9급 공채시험의 경향을 파악할 수 있겠죠. 그래서 이번 7주차 강의는~ 약희 됐어, 됐어. 소리 좀 줄여. 무영 거봐, 날 뭘로 보구. 흠 약희 잊지는 않았지? 자기가 한 약속,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무영 또 또 시작이다. 알았어요. 남자로 아니 가장으로, 아니 좋다. 울 희망이 이름을 걸고 약속한다. 약희 애는? 무영 엉, 지금 분유 타서 먹이려… 때마침 아이 우는 소리 약희 뭐야, 애 분유는 시간 맞춰 먹여야 한다고 했잖아. 그리고 알고 있지? 유아들한테 전자 모기향이나 에프킬라, 절대 안 되는 거. 무영 알아 알아. 약희 그저 말로만… 저기 그런데, 오늘 연락… 왔어? 무영 … 약희 (울컥 차오르는 것을 누르며) 아이 진짜, 그보다 먼저 진짜 집에 있는 모기 좀 당장 어떻게 좀 해봐. 나 지금 코끝을 물려서 완전 딸기코야. 며칠째 모기가 앵앵거려 잠을 설치니까, 얼굴이 부어서 화장으로도 안 가려지잖아. 무영 … 약희 (갑자기 너스레를 떨며) 그것 때문에 고객들하고 상담할 때 자꾸 얼굴을 숙이니까 매니저가 자꾸 눈치 주는 거 있지. 내가 말했지? 그 사람 성질 더러운 거. 뭐냐, 뉴월드 백화점의 얼굴인 슈넬화장품 직원 태도가 뭐냐구… (사이) 내말 듣고 있지? 무영 … 어. 약희 그리고 집주인이 많이 삐친 것 같으니까 자기가 먼저 전화해서 어떡해서든 집주인 비위 잘 맞추고 우리 사정을 잘 말해봐. 무영 (말없이 잠시 침묵하다가) 저기 자기야, 사실… 약희 어? 무영 사실은, 자기 출근하고 바로 집주인한테 연락이 왔었어. 약희 그래! 뭐라구 해? 아니, 자긴 뭐라고 했어? 무영 먼저 모기를 싹 없애 주겠대. 약희 야! 진짜? … 무영 그리고… 약희 그리고? 무영 이번 달까지… 약희 …나가래? 무영 … 약희 그러‥면, 결국 자기 뜻대로 하겠다는 거잖아. 그, 그러면 우리는? 우리는 어떡하구. 완전히 길바닥에 나앉아 죽으라는 거잖아. 그래서 자긴 뭐랬어? 무영 … 그, 그래도 우리집 구조상 모기를 싹 없애긴 쉽지 않을 거야. 그건 자기가 더 잘 알잖아. (사이) 그럼 작성한 계약서대로 모기를 다 없앨 때까지 나갈 수 없다고 버텨봐야지 뭐. 약희 (끓어오르는 것을 다스리며)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그리고 집주인이 집안에 있는 모기를 진짜 다 없애면 그땐 어떡할 거야? 무영 그땐, … 사정이야기를 해봐야겠지. 그리고 우리는 우리대로… 약희 당신, 분명히 자기가 책임진다고 했어. 그럼 이번에야말로 가장의 책임감이 뭔지 보여줘. 아니면 우리 가족 모두 그냥 확! 무영 … 약희 아 네~ 팀장님. (목소리를 낮추며) 나 오늘 저녁에 늦어. 무영 어! 잠깐 …안 되는데. 전화가 끊기자 무영은 뚜뚜뚜뚜 소리를 한참 동안 멍하니 듣다가 전화를 끊는다. 이후 젖병을 든 채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침대와 창문 등,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본 후 아기 침대 쪽에서 모기 잡는 시늉을 하며 한참 동안 좁은 거실을 서성거린다. 이때 귀를 후비면서도 전화기에 시선을 놓지 않는다. 그 후 결심한 듯 전화기로 다가가 전화기를 들었다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전화기를 내던진다. 그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무영 (조심조심 다가가 전화기를 들며) 여, 여보~세요? 목소리 이무영씨 댁 맞습니까? 무영 그, 그런데요. 목소리 집주인이 김수영씨 맞으시죠? 제로버그입니다. 무영 제로버그? 그런데… 목소리 이 집 주인께서 의뢰하셨습니다. 그럼,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 당황한 무영이 문을 열자 방역업체 직원1, 2 등장. 방역업체 직원은 빨간 모자에 동일한 유니폼(모기 박멸 프린팅)과 헤드셋 마이크를 착용하였고, 직원1은 고글을 쓰고 지시봉을, 직원2는 특이한 가방을 들고 있다. 방역업체 직원1 제로버그입니다. 고객님, 잘 아시겠지만 저희 회사는 ‘고객님의 건강과 행복’이라는 슬로건 아래 타업체와 비교할 수 없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하여 해충 없는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저희 회사가 하는 일을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바퀴벌레, 개미, 진드기, 거미, 모기, 집게벌레, 이, 좀벌레, 파리 등등을 박멸하는 곳이죠. 직원1이 이야기하는 동안 직원2는 무영을 가볍게 밀치며 돋보기를 들고 분주히 집안 구석구석을 관찰하며, 수첩에 무엇인가를 적고 있다. 무영은 그런 직원2를 힐끗 보다가 다시 직원1을 다시 본다. 무영 (벙벙한 표정으로) 아, 네. 그런데 어떻게 벌써… 방역업체 직원1 (말을 자르며) 스피듭니다, 저희 팀 모토는 스피드 앤 퍼펙트, 다시 말해서 신속 완벽. (명함을 주며) 저희는 스카~이 파트입니다. 무영 스카이요? 방역업체 직원1 네, 스카이. 하늘, 다시 말해서 날아다니는 해충 중, 피를 빠는 모기만을 전문으로 하고 있죠. 무영 모기를요? 방역업체 직원1 (고글을 벗고 주변을 둘러보며) 들은 바대로 이곳은 모기들이 살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네요. 무영 누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방역업체 직원1 (말을 끊으며 짧게) 아! 걱정 마십시오. 방역업체 직원2 팀장님. 이 집에는 모기가 23마리, 파리가 12마리, 바퀴벌레가 44마리, 그리고 쥐 4마리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방역업체 직원1 그래, 위치는? 방역업체 직원2 다 파악됐습니다. 방역업체 직원1 그럼 바로 시작하지. 방역업체 직원1과 2. 가방에서 정체 모를 장비와 파리채를 꺼낸 후, 집안을 돌아다니며 체크한 후 구석구석에 커다란 모기박멸 스티커를 붙인다. 그 후 갑자기 책을 꺼내 천장으로 던지고, 파리채를 마구 휘두른다. 이때 무영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과 불안한 몸짓으로 그들의 행동을 지켜본다. 무영 어어, 저저, 저걸 (이때 방역업체 직원1과 눈이 딱 마주치자) 저, 저기요… 혹시 살충제 같은 것을 뿌리나요. 우리 아이가 아직 어려서… 방역업체 직원1 (순간 단호한 표정으로) 걱정 마십시오. 저희 회사는 그런 비과학적인 방법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때 방역업체 직원2는 두세 차례 손뼉을 치며, 모기를 잡는 행동을 한다. 무영 (방역업체 직원2를 보며) 아, 네에. 방역업체 직원2 어어, 거기 팀장님. 순간 방역업체 직원1, 재빠른 동작으로 손뼉을 친다. (손뼉을 칠 때의 동작은 전통 무예의 한 동작과 유사하다.) 잠시 후 손바닥을 펴 무영에게 보여주며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띤다. 무영도 마지못해 웃음을 짓는다. 방역업체 직원1 (약간 고압적인 자세를 띠며) 잠깐만요, 이무영씨. 이 집에서 모기를 완전히 뿌리를 뽑고 싶으시죠? 무영 무물, 물론~이겠죠. 방역업체 직원1 음, 현실적으로 이 집의 구조상 모기를 완전히 박멸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무영 (화색을 띠며) 그, 그런가요? 방역업체 직원1 하지만, 저희가 누구입니까? 해충박멸의 신화 제로버그의 스카이팀. 괜히 스카이가 아니죠. 저희에게 불가능은 없습니다. 무영 아 아, 네. 방역업체 직원1 그럼, 먼저 이무영씨에게 모기를 완전히 박멸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몇 가지 자세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며) 첫째, 모기는 우리 가족의 피를 빠는 적이다. (무영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무영씨, 지긋지긋한 모기를 박멸하고 싶지 않으시나요? 무영 그, 그렇긴 하지만… 방역업체 직원1 (말을 끊으며) 그렇다면 마지막은 복창해 주세요. (굳은 표정으로) 피를 빠는 적이다. 무영 … 방역업체 직원1 (무영을 지그시 응시하며) 피 무영 (고개를 순간 돌리며) … 방역업체 직원1 (아주 낮은 저음으로) 피 무영 피, 피 방역업체 직원1 피를 빠는…적이다. 무영 (위세에 눌려 마지못해) 피이…를 빠는 적이다. 방역업체 직원1 (분위기를 바꿔 경쾌하게) 일부 모기가 나와 가족의 피를 머금었다고 해서 피를 나눈 형제처럼 여기는 감상적인 생각이나 동정은 금물입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적개심만이 필요하죠. (다시 힘 있게 주먹을 조금 치켜들며) 둘째, 모기는 애완동물이 아니다. 무영 … 방역업체 직원1 (강압적인 어투로) 애, 애 무영 애, 애 방역업체 직원1 애완동물이 아니다. 무영 (동작마저 따라하며) 애완동물, 애완동물이 아니다. 방역업체 직원1 취향이 아주 아주 독특한 일부 사람들 중에는 개와 고양이와 같은 일반적인 애완동물에 싫증을 느껴, 모기를 애완용 곤충쯤으로 여기고 사육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영을 보며) 자기 몸으로 말이죠. 물론 극소수의 사람들입니다. 하하하. 무영 (억지웃음을 지으며) 아, 네. 방역업체 직원1 (큰 동작으로 손끝을 하늘로 뻗다가 날갯짓을 하며) 셋째, 모기는 천사가 아니다. 무영 … 방역업체 직원1 (무영을 노려보며 힘을 주며) 천사가… 무영 천, 천사가 아니다. 방역업체 직원1 가끔 자신의 옥탑방을 천당이라고 우기는 사람들 중에는 모기의 앵~ 하는 소리를 천사의 음성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살짝 무영을 응시하며) 이런 사람의 특징은… 무영 (멈칫하다가 손을 내저으며) 아니, 아니에요. 방역업체 직원1 넷째, 모기는 여자가 아니다. 무영 (조금 놀라며) 여자, 여자가 아니다. 방역업체 직원1 (무영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알고 계시죠? 흡혈을 하는 것은 모두 암컷들인 거. 무영 (어색한 웃음) … 방역업체 직원1 (무영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그들의 정신세계는 아주 독특해서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암컷들에게만, 그래서 모기를 아내나 애인처럼 생각하죠. (몰입하며) 모기가 자기의 몸에 빨대를 꽂는 바로 그… 순간을 즐기죠. 무영 아, 네에. 방역업체 직원1 마지막으로… 모기는 집주인이 아니다. 무영 (침을 삼키며) 모기는 집주인, 이…다. 방역업체 직원1 (가늘게 실눈을 뜨며) 흠… 극히 일부의 세입자 중에는 집안에 모기를 대할 때 당황하거나 조금 심한 경우는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마치 집주인을 대하듯 말이죠. 지난달에는 모기에게 안방을 내주고도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발만 동동 구르는 세입자를 봤습니다. 물론 그와 반대인 상황도 있습니다. (무영을 지그시 응시한 채로 점점 다가가며) 그럴 경우 모기소리와 집주인의 목소리를 동일시합니다. 그래서 모기소리만 나면 히스테리를 부리죠. 그간 당했던 설움과 쌓였던 분노를 집주인에게 마구마구 쏟아 내듯 말이죠. (갑자기 표정을 확 바꾸며) 네, 고객님께서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제 경험에 비춰봤을 때 이런 경우도 있다는 겁니다. (자신감 있는 웃음을 지으며) 이런 경우를 제외한다면 모기는 100% 박멸 가능합니다. 이때 방역업체 직원2가 다가온다. 방역업체 직원2 팀장님, 이제 모기를 완전히 퇴치했습니다. 무영 벌, 벌써요? 방역업체 직원1 스피드 앤 퍼펙트, OK? 방역업체 직원2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들며) 이게 끝까지 남아 있던 놈으로 23마리째입니다. 방역업체 직원1 음, 좋아. (무영을 보며) 그럼 여기 점검 내역에 서명을 부탁드립니다. 무영 … 무영이 마지못해 받은 내역서를 살피며 서명을 망설이자 방역업체 직원1은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무영이 주변을 둘러보며 계속 머뭇거리는 태도를 보이자, 방역업체 직원들의 태도가 서서히 위압적인 태도로 바뀐다. 이에 무영은 마지못해 서명을 하고, 방역업체 직원1은 뭔가를 해낸 듯한 표정을 지으며 방역업체 직원2에게 서류를 건넨다. 무영 그런데, 저기… 방역업체 직원1 네? 무영 (쭈뼛쭈뼛 머뭇거리다가) 아! 쥐나 바퀴벌레 같은 거는… 방역업체 직원1 음. (단호한 표정으로) 스카이, 아까 말씀드렸죠, 저희는 모기 전문입니다. 무영 아하! 스카이 방역업체 직원1 혹시 다른 해충을 박멸하시려면, 바닥 쪽이나, 구멍 쪽으로 연락주세요. 그 팀들도 프롭니다. (절도 있는 자세로) 저희 제로버그는 과학적이고 완벽한 서비스를 통해 100% 고객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추후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사이) 물론 완벽하겠지만요. 방역업체 직원1, 2 목례 후 바로 퇴장하자 전체 조명이 어둡게 깔린다. 무영은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본 후,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 후 잠시 우스꽝스럽게 모기 흉내와 함께 모기를 잡는 행동을 한 후 한참 동안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다. 매미소리와 중장비 소음은 점점 크게 들려온다. 무영은 갑자기 귀를 후비기 시작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세게 귀를 후빈다. 이때 오른쪽 조명이 들어오면 백화점 유니폼을 입은 약희,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약간은 울먹이며 매장 매니저에게 경고를 받고 있다. 매니저 이것 보세요. 김약희씨, 이게 도대체 이게 말이나 됩니까? 매장에서는 절대 기대거나 의자에 앉으면 안 되는 거, 사적인 통화 금지, 그리고 제일 중요한 비주얼, 비주얼 관리, 잘 아시잖아요. (사이) 그런데 그걸 잘 아는 사람이 술 마신 사람 마냥 코끝이 벌겋게 부풀어 있어요? 약희 그게 모기가… 매니저 그 핑계 그만, 이게 벌써 며칠쨉니까? 고객들이 퉁퉁 부은 코에 억지 웃음을 짓는 당신을 보고 우리 화장품을 사서 바르고 싶겠어요? 도대체 어쩌자는 겁니까? (사이) 죄송 죄송 그러지 말고 속 시원히 말을 해보세요. (사이) 요즘 김약희씨를 보니까 서비스 마인드 교육이 아주, 정말, 매우 필요한 것 같군요. (사이) 계약서 내용은 잘 알고 있죠? 약희 …네 매니저 계약 위반 시에는… 약희 … 매니저 됐어요. (사이) 이만 됐구요, 서로 피곤해질 것 같으니까 이만 하죠. 다음 주부터는 서로 볼일이 없으면 좋겠네요. 약희 네!? 매니저 제 말 뜻 아시죠? 김약희씨. 흐느끼며 털썩 주저앉는 약희, 조명이 점차 어두워진다. 매미소리와 중장비 소음, 그리고 아이 칭얼거리는 소리와 알 수 없는 이상야릇한 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무대가 점점 밝아지면 무영은 헤드셋을 끼고 책상에 엎드려 졸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때 현관 문소리가 나면서 약희가 들어온다. 현관 문소리에 무영은 순간 벌떡 일어나 부스스한 얼굴을 하고 거실로 나온다. 무영 왔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벽시계를 돌아보며) 어! 뭐야, 오늘 늦는다며 일찍 왔네? 약희 (모든 의욕을 상실한 표정으로) 나한테 말 시키지 마. 무영 뭔 일 있나? 아님, 땡땡이! 약희 (고개를 떨구며) … 무영 (살짝 건드리며) 내가 보고 싶어서 땡땡이 쳤구나. 그렇구나, 맞지? 약희 (말을 끊고 매섭게 노려보며) 나한테 말 시키지 말랬지. 무영 (움찔하다가 눈치를 보며) 왜 그래? 약희 당신은 도대체 뭐야? 마누라는 매일 뼈 빠지게 일하는데, 가장이란 사람이 1시가 넘도록 잠이나 퍼질러 자고, 그러고도 당신이 우리집 가장이라고 할 수 있어? 울 희망이 아빠냐고? 무영 약희야, 왜 그래, 농담한 걸 가지고 약희 됐어. 오늘은 아무 이야기도 하지 마. 듣고 싶지 않아. 무영 자기, 무슨 일 있어? 갑자기 일하다 말고 집에 와서 약희 듣고 싶지 않다고 했지. (몸서리를 치며) 당신은 몰라. 아무도 내 맘 모른다구. 무영 (순간 당황하며) 아 참, 낮잠 좀 잤다고 그러는 거야? (약희를 달래며) 오늘 동영상 강의 듣다가 너무 졸려서, 알잖아. 며칠째 밤새 자기랑 울 희망이 옆에서 모기 잡은 거. (사이) 매일 힘들게 고생하는 자기하고 울 희망이한테 남편과 아빠로서 해줄 게 있어야지. (가슴을 두드리며) 나만 믿어. 내가 이번 시험만 붙으면… 이때 이상한 야릇한 소리가 더 분명하게 들린다. 그러자 무영과 흐느끼던 약희, 동시에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영이 컴퓨터 앞으로 뛰어간다. 허둥거리며 마우스를 잡는 무영. 잠시 후 무영에게 서서히 다가가는 약희. 무영 아니, 그게 말이야. 있잖아. 아이 참 (표정을 바꾸며) 자기야 미안. 약희 (이를 악물고 쓴웃음을 지으며) 미안하다는 말, 하지도 마. 당신, 나한테 아니 우리 희망이한테 부끄럽지도 않아? 무영 (머뭇거리며) 약희야, 내 말도 좀 들어봐. 그렇잖아, 내 사정이… 내가 자기한테 붙으면 덥다고, 피곤하다고, 도대체 이게 며칠째야. 석 달은 된 것 같다. 그래서 동영상 강의 듣다가 잠깐, 머리 식히려고… 그냥… (살짝 웃으며) 남자들은 원래 다 그러잖아. 약희, 어이없는 표정 후 분을 삭이는 표정을 짓다 지그시 눈을 감는다. 이때 아이의 칭얼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자 약희는 눈물을 훔치며 젖병을 챙겨 아이에게 물리나 칭얼거리는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약희 아가 아가, 괜찮아, 괜찮아. 무영 (약희에게 다가가며) 그러니까… 약희 가까이 오지 마, 당신 불결해. 무영 약희야, 저기… 약희 말하지도 마. 다, 당신, 말소리, 굶주린 모기가… 앵앵거리는 것 같아. 무영 (더 가까이 다가가며) 미안해, 내가 약희 (조금 더 악을 쓰며) 가까이 오지 말랬지. 피를 노리는 굶주린 모기…아니 모기보다도 못한… 무영 (멍한 듯 말을 잇지 못하며) 아무리 그래도… (순간 쓴웃음 지으며) 남편한테 모기는 너무, 너무했다. 약희 (어이없는 표정으로) 너무하다고, 너무하다고, 내가 너무하다고. 김약희 내가? 으흐…흐…흑 난 처음에 당신이 생각이 깊은 줄로만 알았어, 또 누군가를 진정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사이) 생각이 깊어? 흐… (손가락을 흔들며) 오, 노~ 당신은, 당신은 우유부단했던 거야. 다른 사람을 배려, 흐흐, 당신은 원래 당신의 밥그릇조차 지킬 용기나 배짱이 없는 사람이었어. 흐…흐 이젠 지긋지긋해. 하루 종일 햇빛도 안 드는 비좁은 이 집, 매니저와 손님의 비위 맞추느라 짓는 억지웃음, 매일 말뿐이고 책임감도 없는 무기력한 당신, 그런 당신을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나, 그리고, 그리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우리의 미래 (팔을 휘젓다가 순간 신경질적으로 신발과 책 등을 벽과 천장에 마구 내던지며) 특히 이놈의 성가신, 성가신 모기들도, 그리고 당신도… (폭발하며) 모두 모두 다 내 눈앞에서 사라져, 사라져버리라구. 무영 … 약희야! 어찌할 바를 모르던 무영이 세차게 흐느끼고 있는 약희를 보며 용기를 내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 하자 약희가 무영의 손을 가로막으며 돌아선다. 무영은 한참을 멍하게 서 있다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이때부터 조명은 무영의 행동에 집중되며 중장비 굉음이 점점 크게 들려온다. 이때 전화벨이 울리자 무영은 한동안 심장박동이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짐을 느끼며 전화를 받는다. 무영 여, 여보, 여보세요 집주인 (소리만)마침 집에 있었네. 그쪽이 사인한 것 봤어요. 그럼 이제 그쪽이 약속을 지킬 차례네요. 제 말뜻 아시죠? 그럼 이만. 무영의 심장박동은 더욱 요동치며 점차 조명이 점차 어두워진다. 조명이 거의 사라질 무렵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무영에게 조명이 집중된다. 무영 그런데, 그런데, 이건 너무 일방적이지 않습니까? 무조건 정해진 날까지 집을 비워달라니요. 저희 세입자 입장을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생각해 주세요. 집주인 (소리만)계약서, 계약서, 몰라요? 무영 그래서, 그래서, 조금만 더 배려를… 배려를 부탁드리는 것 아닙니까. 이번 가을까지, 아니, 다음 달까지라도… 집주인 (소리만)…… 배려라? 누굴 배려? 내가 당신들을? 난, 여태 배려했어요. 내 집에서 살도록 해줬잖아요? 물론 월세지만, 그리고 집세도 못 내는 당신들이 우긴, 그 말도 안 되는 그 요구, 그래서 이렇게 방역업체까지 불러 모기소리도 싹 없애 줬어요. 이만하면 집주인으로서의 충분한 배려 아닌가? 무영 네, 네 맞습니다. 하지만 저…저도 (침을 삼키며) 몇 년간 여기 살면서 집세를 올려달라면 달라는 대로, 수도세 전기세 밀린 적 한번 없이, 때 맞춰 군말 없이 해드렸습니다. 한겨울에 보일러가 터져도, 장마철에는 방바닥에서 물이 올라와 곰팡이가 온 벽을 뒤덮어도, 한여름에는 방충망이 찢겨져서 온갖 해충들이 득실거려도, 그리고 지금처럼 하루 종일 공사 소음에 시달려 귀가 멍멍해져도 아무 불평 없이 지냈습니다. (사이) 작년 겨울 실직만 안 했어도 이런 부탁까지는 드리지 않았을 겁니다. 어떻게든 이번 가을에 치를 시험까지라도, 아니 다음 달 우리 애 돌까지만이라도 (무릎을 꿇으며)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집주인 (소리만)그래요, 듣고 보니 안타깝기는 하네요. 하지만 이를 어쩌나. 부탁은 내가 해야 되겠는 걸. 지금 공사가 지연된다고 재개발 조합에서 난리네요. 계약서대로 세입자를 내보내 집을 비우라구요. 그쪽이 용안 4동 재개발 구역에 거의 끝까지 남은 세대라는 거, 알고는 있었죠? 당신들이 나가야 우리 구역 철거가 마무리되거든요.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도 투자를 한 입장에서 손해 볼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이제 당신들은 계약서대로 나가주면 되는 거예요. 내 말 알아듣죠? 배려라? 배려라면 이번에는 당신들 차례인 것 같은데 무영이 털썩 주저앉자 바로 조명 꺼진다. 어둠 속에서 한동안 귀를 막고 머리를 감싸던 무영이 어느 순간부터 어떤 소리를 집요하게 찾고, 약희는 집안을 정리한다. 무대가 점차 밝아지면 무대의 가재도구는 모두 정리가 되고 커다란 박스 두어 개와 여행용 가방이 무대 중앙에 있다. 약희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달력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일어나 벽에 걸린 달력을 뜯는다. 그러자 다음 달력에 커다란 동그라미가 보인다. 이때도 무영은 계속 귀를 후비며,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며 뭔가를 찾고 있다. 약희 (달력을 보며) 뭐해? 무영 … 약희 뭐하냐구? 무영 찾고 있어. 약희 (심드렁하게) 뭘? 무영 (잠시 머뭇거리다가) 있어, 지금 어딘가에 있어. 약희 그러니까 뭐가 있냐구? 무영 (주변을 계속 살피며) 모기 약희 (힐끗 보며) 모기? 무영 안 들려, 소리? 지금 막 몰려오고 있잖아. 봐, 앵~앵 약희 (무영을 쳐다보다가 잠시 귀를 기울이며) 도대체 무슨 소리? 무영 아, 미치겠네. 에이, 도저히 안 되겠다. 무영은 계속 구석구석 살피다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지갑을 뒤지기 시작한다. 이때 전화벨이 울리자 약희가 전화를 바로 받는다. 약희 여보세요? 집주인 아직 있었나보네. 약희 … 네. 집주인 하긴 이틀이나 남았으니까. 지금 문 앞에 있어요. 약희 네? 알이 큰 색안경에 명품가방을 든 40대 여성이 현관문으로 들어온다. 이때도 무영은 집주인을 본 체 만 체 한쪽 구석에서 뭔가를 찾고 있다. 집주인 (무영을 힐끗 본 후, 핸드폰을 가방에 넣으며) 댁 남편한테 이야기는 들었죠? 약희 … 집주인 (색안경을 벗고 여행용 가방의 손잡이를 잡으며) 그런데 갈 곳은 정해졌~ (손잡이가 쑥 들어가자) 어머! 나? 약희 걱정 마세요. 날짜 되면 알아서 나갈 테니까. 무영 (혼잣말로) 어딨더라. 여깄다. (명함을 보며) 오이제로에 제로제로제로제로.   핸드폰 발신 신호 후 제로버그회사의 경쾌한 컬러링이 들린다. 집주인은 자세를 가다듬고 눈을 내리깔며 집안 구석구석을 훑어본다.   집주인 (핸드백에서 봉투를 꺼내며) 여기, 이사비용하고 남은 보증금, 다 까먹고 얼마 남지도 않았지만 (약희가 신경질적으로 봉투를 받자) 거, 세어 봐요. 약희 (눈으로 대충 보며) 맞겠죠. 집주인 그런데 모기, 이제 더 없죠? (팔목과 다리를 긁적이며) 어휴, 그런데 왜 이렇게 간지러워. 하긴 이런 구질구질한 데서 내 피부에 트러블이 안 생기면 그게 이상한 거지. 소리 (경쾌한 소리로) 스피디하게 모시겠습니다. 제로버그입니다. 무영 (손짓을 하며) 있어요, 우리 집에 모기가 있어요. 커다란 모기떼가 몰려왔어요. 집주인 (깜짝 놀라 두리번거리며) 이게 무슨 소리야? 모기? 소리 네? 잠시 만요, 고객님. 담당자를 바꿔 드릴게요. 방역업체 직원1 네, 스카이 팀장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무영 지금 우리집에 난리가 났어요. 어마어마한 모기떼가 몰려오고 있어요. 집주인 (놀란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모기떼? 방역업체 직원1 네? 이무영씨 이무영씨, 맞죠? 그런데 모기가 있다구요? 그것도 떼로? 무영 (확신에 찬 목소리로) 네. 아주 어마어마한, 그리고 커다란 방역업체 직원1 그럴 리가요? 그럼 본인이 직접 눈으로 확인했나요? 무영 소리가 들려요. (핸드폰을 공중에 대며) 수십 마리 아니 수백 마리의 모기떼 소리가 마구마구 들려요. 방역업체 직원1 그래요? 음… 바로 출동하죠.   무영이 잠시 큰 동작으로 모기를 쫓는 시늉을 하다가 귀를 막는다. 약희는 이런 무영의 행동에 당황하나, 그렇다고 무영을 말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집주인은 무영의 행동에 많이 놀란 눈치이다. 그러다가 잠시 집주인과 무영의 눈이 마주친다. 이때 둘 사이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데, 갑자기 무영이 집주인에게 다가가 집주인의 뒷목을 찰싹 친다.   집주인 아! 뭐야? 무영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목이, 거기가 집주인 목! 모기요? 무영 그러니까 모기가 모게, 모기가 모게… 집주인 네? 모…모기!   집주인이 목 주변을 문지르며 긁다가 핸드백에서 거울을 꺼내 본다. 순간 멈추며 무영을 노려보지만, 무영은 무관심하게 계속해서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있다. 바로 이때 초인종이 울리고 방역업체직원1, 2가 등장한다.   방역업체 직원2 네, 제로버그입니… 무영 빨리요 빨리. 이 모기들 좀, 정말 미치겠어요. 얘네들 좀 보세요. (손가락으로 허공과 집주인을 가리키며) 여기 여기, 지금도 막 나한테 달려들잖아요. 방역업체 직원1 (무영을 응시하다가 직원2를 힐끗 보고) 확인하지.   직원2는 바로 장비를 들고 구석구석을 확인한다.   무영 이놈의 모기들이 처음에는 한두 마리가 앵앵거리다가 지금은 숨어 있는 놈들까지 몰려나와 날 쫓아오는 거예요. 방역업체 직원1 그래요? 본인이 눈으로 직접 확인하셨다고 하셨죠? 무영 그, 그럼요.   방역업체 직원1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집주인과 약희에게 동의하느냐고 묻는 손짓을 취하자 약희는 모른 척 눈길을 피하고 집주인은 계속해서 몸을 긁적이며 모기를 피하는 몸짓을 취한다. 이때 방역업체 직원2가 직원1에게 다가온다.   방역업체 직원2 팀장님, 확인 결과 이곳에는 모기는 물론 날파리 한 마리도 없습니다. 방역업체 직원1 역시 (무영을 보며) 들으셨죠? 무영 그럴 리가… 지금 이 소리 안 들려요? 지금 막 앵앵거리잖아요. 와, 미치겠네. 여길 보시라니까요. 여기 여기요, 이곳에서 났다가 아니 저기서… 방역업체 직원1 어디? 여기? 도대체 어디요? 한 마리라도 잡아보세요. 무영 (주변을 마구 돌면서 구석구석을 가리키다가 직원1을 돌아보며) 한…마리? 방역업체 직원1 (검지를 흔들며 단호하게) 한 마리! 우리 제로버그 스카이팀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리콜도 없는 퍼펙~팀입니다. 무영 퍼․펙․트! 방역업체 직원1 (짧게) 네, 퍼펙트. 집주인 그, 그럼 뭐야? 아까 내 목을 내리친 것은, 일부러… 이 사람들 안 되겠네. (뒷목의 부여잡으며) 이젠 폭행까지, 아이고 목이야, 아이고 목이야. 약희 폭행이라니요? 모기 잡을 때처럼 살짝 친 것을 가지고 집주인 살짝? 이게 살짝이야? (방역업체 직원2를 보며) 거기 젊은 총각, 이걸 보라고, 여기 여기, 보이지? 빨갛게 손자국 난 거. 방역업체 직원2 (집주인의 목 가까이 얼굴을 대고 살펴보다가) 제가 보기에는 그냥… 집주인 그냥? 그냥 뭐? 방역업체 직원2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냥 손톱으로 긁은 자국인데요.   어수선한 와중에 무영은 사람들의 대화에서 벗어나 있고 이러한 무영을 방역업체 직원1이 주의 깊게 살핀다.   방역업체 직원1 (곰곰이 생각하다가) 잠시, 잠시만요, 음, 제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이무영씨에게 들리는 모기 소리는 일시적인 환청인 듯합니다. 약희 (놀라며) 화,화, 환청이요? 방역업체 직원1 네, 맞습니다. 환청. 과도한 스트레스나 심리적 불안으로 인해 실제 없는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일종의 환각 현상이죠. 때에 따라서는 환영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약희․집주인 !? 방역업체 직원1 환청은 낮은 단계의 벌레 울음소리나 소음과 같은 단순한 잡음에서부터 단계가 높아질수록 뚜렷한 내용이 있는 특정한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기까지 합니다. 사람 말소리인 경우에는 불쾌감을 주는 간섭이나 욕, 또는 명령하는 소리가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사람을 즐겁게 하고 심지어 아첨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극히 일부의 사람들은 타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경우도 있죠. (사이) 음… 제가 보기에는 이무영씨는 아직까지 환청의 초기 단계로 보입니다만, 스트레스가 심해질수록 높은 단계의 환청을 넘어 마약 중독과 유사한 환각 증상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약희 그, 그럼, 지금 애아빠의 귀에 헛소리가 들린다는 말씀이에요. 방역업체 직원1 아무래도, 지금 상황에서는요. 약희 (무영의 모습을 멍한 듯 바라보며) 그, 그래서 아까도… 어이구, 세상에 집주인 (다리와 몸을 어색하게 긁다가 무영을 노려보며) 뭐야, 그럼 완전히 미친 거잖아? 어쩐지, 아까부터 눈빛이 퀭한 게 이상했어. 흥, 이제 정신병원에 가야겠네. 약희 (순간 노려보며) 함부로 말하지 마요. 당신이, 당신이 뭔데 남의 남편한테 미쳤다고 해요. 집주인 아니, 이 여자가 누구한테 당신이래. 그리고, 없는 소리가 난다고 우기면 그게 미친 거지. (사이) 아님 뻔한 거지. 모기 소리를 트집 잡아서 여기에 더 눌러앉으려고 하는 수작이겠지 뭐. 누가 그 뻔한 속셈 모를 줄 알아. 이래 봬도 나 산전수전 겪으면서 당신들 같은 사람 많이 상대해 봤어. 흥~ 약희 눌러앉는다고? 우리가? 여기에? 아무리 없이 산다고 자존심마저 죽지는 않아요. (단호하게) 걱정 말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날짜 되면 이곳에서 나갈 테니까. 사람을 도대체 뭘로 보고 그래요. (무영을 보며) 당, 당신도 뭐라고 좀 해봐. 집주인 뭘로 보긴, 내 눈에 보이는 데로 보지. (혼잣말로) 딱 보니, 말 그대로 갈 곳 없는 거지네 뭐. 흥~ 약희 뭐 뭐, 뭐라고, 거지?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우리가 집을 빌린 거지 언제 당신한테 구걸을 했어? 집주인 구걸? 흥, 구걸은 아니어도 (무영을 곁눈질하며) 애걸은 했지. 약희 뭐, 뭐라고? 이 여자가 정말 집주인 뭐, 이 여자, 이제 갈 곳도 없는 밑바닥 주제에 집주인한테 감히, 분수도 모르는 것들이 약희 (순간 집주인에게 달려가 악을 쓰며) 그래, 그래, 나 이런 밑바닥에 산다. 이젠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다.   방역업체 직원1, 2가 맞붙은 두 사람을 떼어 놓으며 진정시킨다. 그 와중에도 방역업체 직원1은 집주인 편을 간간이 든다. 이때도 무영은 계속해서 모기를 찾고 있다.   방역업체 직원1 자자자, 이제 그만, 그만하시고 진정하세요. 지금 뭣들 하는 겁니까? 집주인 놔놔, 이것 안 놔? 깡패처럼 무조건 힘이나 써서 해결하려고 하고. 흥, 가진 것도 없는 것들이 분수를 모르면 교양이라도 있어야지. 약희 (악을 쓰며 다시 집주인에게 달려들며 몸싸움을 하며) 뭐라구? 깡패? 교양? 그래, 나 없어. 아무것도 없어. (한동안 엉겨 붙어 있다가 약희가 순간 엉엉 오열하며) 이젠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다구. 방역업체 직원1 그만 그만들 두세요. 사모님, 사모님이 먼저 참으세요. 새댁도 진정을, 우선 진정부터 해요. (약희를 진정시키며) 그리고 새댁, 남편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시간이 조금 지나면 괜찮아, 괜찮아질 겁니다. (둘 사이가 조금 누그러지자) 음… 이런 말이 위로가 될지 모르겠는데… 사실 저도 집에선 모기소리와 마누라의 바가지 긁는 소리가 헷갈릴 때가 종종 있어요. 그러다 보면… 마누라가 모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되면 마누라를 보며 모기 때려잡는 생각을 합니다. (모기 잡는 동작을 취하며) 이렇게요. 이렇게라도 해야 스트레스가 풀리죠. (직원 2를 곁눈질하며) 안, 안 그런가? 방역업체 직원2 아 아, 네. (직원 1을 곁눈질하며) 사실 저도… 가끔 작업할 때 모기소리와 팀장님 목소리가 구별이 안 될 때가 있는데요, 그땐 이렇게… 방역업체 직원1 (싸늘한 미소로 직원2를 노려보며) 그래? 그래서 모기를 잡을 때 개잡듯이 후려치나? 방역업체 직원2 (뻘쭘한 표정) 그게 아니라 제 말은… 방역업체 직원1 (표정을 확 달리하며) 환청은 일시적인 현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주변 분들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절실하죠. 약희 (멍한 무영을 순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자기야, 무슨 말이든 말 좀 해봐. 집주인 이분들께서는 이 세상에서 배려와 관심이 가장 많이 필요한 사람들이에요. 흥~ 약희 (순간 매서운 눈매로 노려보며)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 방역업체 직원1 그만, 그만 (절도 있는 자세로) 그럼 이만, 저희 제로버그의 리콜 서비스는 고객님께서 만족하실 때까지 무제한 달려갑니다. 추후 문제가 생기면 다시 연락 주십시오. 집주인 어머나! 내 정신, 어머, 시간 좀 봐. 나도 늦었네. 오늘 계모임이 있었는데… 알죠, 내일 모레까지인 거. 약속이나 지켜요. 약희 맘 푹 놓으세요. 설사 붙잡아도 더러워서 나갑니다. 흥~ 방역업체 직원1, 2 퇴장. 집주인도 서둘러 따라 나선다. 무영은 계속 멍하니 있다가, 주변을 둘러보며 힘없이 모기 잡는 행동을 취한다. 그런 무영을 약희는 흐느끼며 바라본다. 이 와중에도 중장비의 소음은 계속된다. 얼마 후 무영은 축 처진 채로 의자에 앉는다. 약희 (맥이 풀린 듯 울먹이며) 그런데 자기야, 이제 우리, 우리, 어떡하지? 무영 진짜 들렸는데… 지금도, 지금도 분명히 들리는데 약희, 망설이다가 무영의 뒤로 가서 조용히 어깨를 감싸자, 잠시 후 무영은 약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조명이 꺼진다. 공사장 착암기 소리가 집안 구석구석을 울린다. 실내조명이 켜지자 두 사람은 침대에 누워 있고 시간이 갈수록 중장비 소음은 커지면서 간간이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약희 (몸을 일으켜 무영을 보며) 소리 들려? 무영 뭐? 약희 이 소리? 잘 들어봐. 무영 … 약희 이거 귀뚜라미 소리야.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니까 마음이 편해진다. 벌써 가을이 오려나? 무영 (심드렁하게) 나도 알아. 모기소리가 아닌 거, 귀뚜라미 소리인 거. 약희 (사이) 삐쳤어? 무영 뭐가? 약희 아니다. 무영, 약희… 이때부터 아주 조금씩 실내 연기가 차오르는 것이 보인다. 무영 맞다. 조금 전에 하려던 말, 뭐야? 약희 (망설이다가 잔기침을 하며) 그래서는 안 됐는데… 무영 뭐? 약희 (뜸을 들이며) 엊그제… 자기한테 모기 같다고 말하고 확 뛰쳐나간 거. (사이) 그때는 모든 게 자기 탓 같았어. 자기가 한없이 못나 보이고 원망스러워서 울컥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어쩔 수 없었잖아. 자기도 지금까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나라도 당신 편이 되었어야 했는데… (기침을 하며) 그래서 환청이 들렸나 싶어지구… (속삭이듯) 미안해. 무영 (홱 돌아서 등을 보이며) 스트레스가 확 더 쌓인다. 약희 (의아한 듯) 뭐? 무영 (귀를 파며) 환청이 들려. 예전에 상상할 수도 없는 이야기가 방금 내 귀에 들렸거든. 약희 (무영의 몸을 뒤집으며) 뭐야? 무영, 휙 뒤돌며 약희를 안는다. 그 후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애정이 담긴 작은 실랑이가 벌어진다. 이때 무영이 기침을 하자 약희의 구토가 시작된다. 약희 (구토를 참으며) 나… 나, 괜찮아. 무영 미안해. 약희 … 무영 고마워, 함께해 줘서… 약희 난 편안해. 아무 말 (기침을 하며) 하지 마. 무영, 약희… 약희 아, 덥다. … 우린, 우린 그 약속은 지킬 수 있을까? (사이) 집주인한테 무영 (한참 생각하다가) 아마도 이때 무영과 약희는 한참 동안 기침과 구토를 반복한다. 한참 후 쪼그려 앉아 있던 무영이 무엇에 집중을 하며 귀를 기울인다. 무영 소리 들려? 약희 … 뭐? 무영 그러지 말고 잘 들어봐. 약희 (기침을 하며) … 무영 자자, (기침을 하며) 정신을 집중하고 우리의 처음을 생각해봐. 약희 처음? (사이) 처음이라… (기침 후 구토를 하며) 우리한테도 처음이 있었나? 무영 생각 안 나? 5년 전쯤에, 왜 있잖아, 강촌으로 동아리 MT 갔었을 때, (기침 후 헛구역질을 하며) 전혀? 음… 무영이 한참 헛구역질을 한 후, 엎드려 있다가 조심스럽게 일어나 손가락으로 점점 크게 원을 그린다. 그러자 연기는 점점 사라지고 대신 비눗방울이 서서히 날리기 시작한다. 무영 그럼 이 소리 좀 들어봐. 약희 소리? 무슨 소리가 나? 무영 잘 들어봐. 약희 (짧지만 심한 구토 후 웃으며) 혹시 자기, 또 환청 아냐? 무영 (진지하게) 지금 장난 아니야, (기침을 하며)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 그리고 찾아봐. 약희 (조금 진지하게 살짝 눈을 감으며) 음… 들려. 물 떨어지는 소리랑, 계량기 돌아가는 소리, 음… 위층에서도, 어? 그 사람들, 그거 하나 부다. (애교 섞인 목소리로 기침을 하며) 에이, 부럽당~ 무영 참, 그런 소리 말고. 자, 마음을 편하게 눈을 감아. 그리고 천천히 집중해봐. 약희, 잠시 망설이다가 심호흡 후 진지하게 몰입한다. 점차 몽환적인 음악이 들릴 듯 말듯 울려 퍼지고, 이와 함께 환상적인 조명이 시작된다. 약희 음… 어! 이게 뭐지? 뭔가 들려, 음… 물소리랑, 바람소리 (일어나며) 어어, 잠깐 이건… 무영 들리지? 그럼 좀 더 주위 소리들을 찾아 봐, 그리고 느껴 봐. 약희 (다시 소리에 귀 기울이며) 음… 귀뚜라미랑 개구리 울음 소리, 어~어, 새소리도 들려. 이게 어디서 나는 소리지? (순간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시 눈을 감고 좀 더 깊이 빠져들며) 이 소리 이 느낌, 왠지 낯설지 않아. 무영 이제 그럼 눈을 감고 소리가 느껴지는 곳을 찾아가 봐. 약희 (무영의 어깨를 짚은 채 천천히 일어나 걸으며)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 내가 예전에 느꼈던 그 편안함, 그리고 설렘… 그러면, 그러면, 여기는… 아! 조명이 꺼진다. 환상적인 조명과 몽환적인 분위기의 음악이 한동안 계속되다가 점차 사라지면서 앳된 약희의 윤곽만을 확인할 수 있는 희미한 조명이 비춘다. 이때 분위기는 아늑한 꿈결 같은 분위기이다. 그 후 점차 계곡 물소리와 개구리소리, 새소리가 뒤섞인 자연의 소리가 함께 들리기 시작한다. 새소리는 뻐꾸기 소리이다. 약희 (황홀함과 나른함이 교차한 느낌, 그리고 혀가 약간 꼬인 발음으로) 여, 여, 여긴, 그러고 보니 개구리 소리가 들리고 … 새소리도 들리네. 음, 이게 무슨 새더라? 딱따구리 소린가? 아니면… 부엉이? (이때 ‘뻐꾹’ 하는 소리가 들리자 손뼉을 치며) 아, 맞네요. 뻐꾸기. 역시~ 무영 선배는 모르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조심스럽게) 근데… 저기요, 선배님. 자꾸 선배님라고 하니까 좀 어색하네요. 그, 그러니까, 저기… 저는, 위로 오빠가 셋인데요, … 오빠라고 부르는 것이 익숙해서요, 그러니까, 저기 (사이) 그냥 오빠라고 하면 안 돼요? … 왜, 왜 말씀이 없으세요? … 네에! 진짜, 진짜루요? (한참 후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하늘을 보며) 무영, 무·영·오·빠. 그런데요, 하늘에 별이, 별이 보여요. 아주 많이, 많이, 많·이, 많‥이… 무영 (소리)약희야! 야, 김약희, 너? 너! 약희 어… 어! 내 속에서 뭔가,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 같아. 잠깐만 여기서, 여기서 잠시 쉴래요. 약희 가 서서히 쓰러진 채로 눈을 감자 조명이 꺼진다. 잠시 후 급한 소방차의 경적소리와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날카롭게 울린다. 무전소리 오전 02시 18분, 용안 4동 재개발 B-02지구 상황 발생. 도로 사정으로 소방차는 진입 불가능하며, 가스중독으로 인한 일가족 3명은 현재 후송 중, 이상. 조명이 꺼진다.
  •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홍루/김가경(본명 김숙희)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홍루/김가경(본명 김숙희)

    소설 당선작 - 홍루/김가경(본명 김숙희) 녀석이 톱밥 속으로 숨어들었다. 녀석은 밀크셰이크처럼 어감이 달콤한 밀크스네이크 종이다. 먹이 줄 것과 따뜻하게 해 줄 것, 간단한 러시아 단어로 적어 놓은 메모지를 들여다보았다. 이반이 출항하기 전 남긴 글이다. 이반은 녀석의 등을 쓰다듬고 마지막 선물처럼 케이지를 앞에 내려놓았다. 한국 사람과 러시아 사람은 닮은 구석이 많아, 이반은 러시아 사람들도 개나 고양이, 새 같은 애완동물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뱀이라니, 나는 검정 바탕에 노랑, 빨강 줄무늬가 있는 이국의 낯선 뱀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러시아에서 뱀은 집을 지키는 수호신과 같다고 생각해. 녀석을 보고 놀란 나에게 위로라도 하려는지 이반은 한국에도 그런 얘기가 있다는 걸 어디선가 들었다고 했다. 명자, 이반은 내 이름을 부르고 입으로 휘이휘이 휘파람 부는 흉내를 냈다. 그러면 집안이 텅 비게 돼, 녀석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종종 휘파람을 불던 내게 이반은 러시아 속담을 빗대 말했다. 나는 멀찍이 녀석을 내려다보며 이반의 익살에 웃음을 내보였었다. 이반을 만난 것은 클럽 로즈에서였다. 로즈는 P시에서 속칭 텍사스촌으로 불리는 외국인 거리에 있었다. 예전에는 주로 미군들이 드나들었는데 미군이 철수하고 러시아 선원과 상인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날도 나는 로즈에서 맥주를 마시며 립스틱이 번지지 않았는지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 젊은 러시아 청년 하나가 보드카를 들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마담 장 앞에서 한국 얘기를 듣던 선원 중 하나였다. 술을 마실 때 거울을 보면 안 돼요, 아름다움까지 먹어버리거든요, 귓불에 입술을 갖다 대며 그가 속삭였다. 흔한 작업멘트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그의 나긋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반이라고 했다. 그는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처음 출발하는 곳이 고향이라고 말했다. 나는 시베리아 열차가 끝없이 달리는 드넓은 숲과 초원을 떠올렸다. 그에게 러브 오브 시베리아란 영화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양손을 허공에 올려 내 얼굴을 길게 그려보였다.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왼쪽 손목에 새겨진 푸른색 돛이 펄럭였다. 그는 눈을 반짝이며 내가 여주인공과 닮았다고 했다. 나는 그가 그린 얼굴이 허공에 그대로 떠 있는 것처럼 시선을 옮기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러시아 사람과 첫 대면을 할 때 영화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면 사람들은 영화 속 여주인공을 만난 것처럼 이국의 여자들에게 마음을 열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대개 영화 속 지명이나 주인공의 이름을 들먹이는 선에서 끝이 났다. 러시아말로도, 한국말로도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순간에 이르면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가 턱을 괴고 조용히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눈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여행지처럼 나를 설레게 했다. 음악이 흘렀고, 클럽 로즈는 마치 떠나는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을 품고 있는 대합실 같았다. 그의 손목에 새겨진 푸른 돛 때문이었을까, 나는 문득 그라면 함께 여행을 떠나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같이 여행을 떠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월요일만 아니라면 언제라도 좋아요, 월요일 여행은 불행하거든요, 러시아 속담이에요. 느닷없는 제안이었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나는 벽면에 붙은 러시아 달력을 바라보았다. 그날은 금요일이었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는 마치 오래 전에 만난 사람처럼 손을 잡고 아무 손님도 잡지 못한 나타샤를 지나쳐 거리로 나왔다. 밤하늘에는 만국기가 꽃잎처럼 나풀거렸고 만국기의 행렬이 끝나는 곳에서 우리는 입을 맞추었다. 두 블록 떨어진 내 숙소로 걸어올 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지금도 이반이 러시아 속담을 말하며 내 입술에 입을 맞출 것만 같다. 시계가 밤 아홉시를 넘겼다. 녀석은 원색의 몸을 감춘 채 아직 기척이 없다. 나는 열선을 펴서 케이지 크기만큼 접었다. 그 위에 타월을 깔고 케이지를 얹었다. 사람 옷 입히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판매원이 열선 까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겨울철, 스스로 온도 조절을 하지 못하는 녀석에게 열선은 생명줄과 다름없다고 했다. 녀석에게 25도의 체온으로 이국의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불행일 수 있었다. 나는 콘센트에 코드를 꽂고 케이지에서 멀찍이 물러섰다. 거실의 불을 낮추고 이반이 남긴 메모지를 냉장고에 붙였다. 주방 창가로 가서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북향으로 나 있는 주방에서 밖을 보면 아래층에 있는 중국집 ‘홍루’의 뒤꼍이 훤히 보였다. 홍루 뒤꼍에 가로등 빛이 희미하게 새들었다. 쥐라도 쫓는지 고양이 한 마리가 쏜살같이 담자락을 타고 지나간다. 지난봄, 가게의 주인이 바뀌면서 홍루(紅樓)라는 간판이 내걸렸다. 홍루는 붉은 다락방이라는 뜻이지만 이곳에 사는 화교들은 늙은 기생의 방이라는 별칭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변두리 사거리의 허름한 중국집 이름 홍루를 몇 번이고 되뇌었다. 거리는 스산할 정도로 빛이 꺼져 가고 휑하니 바람만 몰아 불었다. 멀리 텍사스 거리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등 뒤로 손을 넘겨 자주색 민소매 드레스의 지퍼를 올렸다. 목선이 등 뒤로 깊게 파인 드레스였다. 이반을 만났을 때 이 드레스를 입었다. 이반이 긴 허리를 굽히고 마른 등에 입술을 댈 때면 나는 수줍은 소녀처럼 간지러움을 참아내곤 했다. 나는 거울을 보며 빨강 립스틱을 덧바르고 귓불 뒤에 향수를 뿌렸다. 구제를 구입해 수선한 밍크를 꺼내 걸치고 자투리로 만든 밍크 모자를 머리에 비스듬히 얹었다. 진주 귀걸이를 하고 장갑을 꼈다. 은색 스팽글이 촘촘하게 박힌 카우치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몹시 차가웠다. 텍사스촌에 접어들자 겨울 내내 공중에 걸려 있던 해진 만국기가 바람에 나풀댔다. 그 아래, 술에 취한 러시아 선원 두 명이 러시아 혁명가 스텐카 라진을 부르며 지나갔다. 나는 시애틀 노래주점을 지나고 캄차카 노래방을 지나 클럽 로즈로 걸음을 옮겼다. 로즈에는 러시아 민요인 백만 송이 장미가 흐르고 있었다. 낮고 고혹적인 중년 여가수의 목소리가 담배 연기와 흐린 불빛에 섞여 들었다. 손님이라고는 한국 선원 두 명과 러시아 선원 두 명이 전부였다. 마담 장이 표정 없이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반을 만났던 자리에 앉아 장갑을 벗어 테이블 위에 얹었다. 한국 선원과 함께 있던 나타샤가 다가와 서툰 한국어로 언니, 마셔? 라고 물었다. 나는 보드카와 러시아 닭 꼬치인 샤실릭을 시켰다. 담배를 피워 물고 천천히 로즈 안을 둘러보았다. 마담 장이 무료하게 하품을 해댔다. 필리핀에서 온 구잘은 러시아 선원과 섞여 백만 송이 장미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음악이 끝날 무렵 나타샤가 보드카와 샤실릭을 내왔다. 나는 담배를 끄고 보드카를 한 잔 따랐다. 보드카를 한 모금 마시자 뜨거운 열기가 순식간에 목까지 치닿았다. 이반은 보드카를 마시는 순간이면 고향을 떠났다는 것도, 추운 바다 위를 떠돈다는 것도 모두 잊는다고 했다. 나는 열기가 되뿜어져 나오는 목을 진정시키기 위해 샤실릭 꼬치에서 닭 가슴살 한 점을 빼 마요네즈에 찍어 입에 넣었다. 내가 보드카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미군이 철수하고 나서였다. 러시아 선원들이 골목을 차지하고 거리의 젊은 여자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짐을 꾸려서 떠났다. 고작 러시아 선원의 비위나 맞추며 살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마담 장도 미군을 따라 미국으로 갔던 여자였다. 나는 미군 대신 러시아 선원을, 맥주 대신 보드카를, 영어 대신 러시아어를 몸에 익혔다. 이 거리에 나타샤와 구잘이 찾아들었다. 나타샤는 러시아에서 발레리나였고 구잘은 필리핀에서 가수였다고 했다. 그렇게 누군가는 꿈을 찾아 이곳을 떠났고 또 누군가는 또 다른 꿈을 좇아 이곳으로 왔다. 하지만 텍사스촌으로 되돌아 온 사람들은 좀체 이 거리를 다시 벗어나지 못했다. 마담 장이 러시아 민요 대신 빠른 행진곡으로 음악을 바꾸었다. 선원들이 경쾌한 해군의 노래에 맞춰 무릎과 팔을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보드카 병이 순식간에 비어 갔다. 시계는 벌써 열한 시를 넘겼다. 한국 선원이 나타샤의 뺨을 비비며 등줄기를 훑었다. 선원 하나가 그녀의 치마 속으로 손을 넣는 순간 그녀가 마담 장에게 눈짓을 보냈다. 마담 장이 전화를 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 아가씨가 클럽 안으로 들어왔다.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는 여자였다. 계산을 마친 그들이 클럽 안을 빠져 나갔다. 손님은 이제 러시아 선원만 남았다. 유난히 손님이 없는 밤이었다. 살집이 많은 러시아 선원 하나가 보드카를 마시며 계속 나를 주시했다. 눈이 마주치자 선원은 보드카 병을 쥐고 일행을 벗어나 내 쪽으로 걸어왔다. 구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비틀거리는 선원보다 구잘이 먼저 내 테이블 앞에 와 선다. 러시아 선원이 들으라는 듯 러시아말로 이번에도 손님을 채 가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한다. 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선원이 멈칫거리는 사이 구잘이 밖으로 나갔다. 선원이 내 앞에 앉는다. 그는 잔에 보드카를 따르며 자신의 고향 이야기로 말을 건넸다. 나는 그에게 이반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어깨를 추켜올리며 자신이 이반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주색 드레스가 마음에 든다며 슬쩍 어깨를 감싸 쥐었다. 해군의 노래가 끝나고 러시아 혁명가가 시작되었다. 구잘이 필리핀 친구와 함께 나타났다. 구잘의 친구가 러시아 선원의 팔을 꿰찼다. 멍청이! 저 언니 나이 많아, 주름 많아, 구잘이 선원에게 하는 말이 들려왔다. 구잘의 말에 선원이 내 앞에 앉은 선원에게 손짓을 보냈다. 동료가 만류하는 손짓을 무시하듯 선원이 지갑을 꺼내 보드카와 샤실릭 값의 두 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지켜보고 있던 구잘이 거칠게 다가왔다. 언니 년 나빠! 그녀가 내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놀란 선원이 성급히 일어났다. 그리고 테이블의 돈을 챙겨 일행 쪽으로 가버렸다. 망할 년! 어린 년이! 마담 장이 구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언니 년, 나빠! 구잘이 악다구니 끝에 손을 풀었다. 그들이 모두 빠져나갔다. 샤실릭 꼬치가 꾸들꾸들 말라갔다. 러시아 혁명가가 끝나고 경쾌한 아코디언 연주와 함께 새로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유난히 손님이 없는 밤이었다. “이 짓도 이제 지긋지긋해, 러시아 년들을 한국 놈들에게 붙이고 필리핀 년들은 러시아 놈에게 붙이고, 이렇게 갈보 년들 불러대는 것도 신물이 난다구!” 그녀가 보드카를 마시며 넋두리를 해댔다. 쿨럭쿨럭, 천식 때문인지 잔기침이 뒤따랐다. “그래도 옛날에 이 바닥에서 명자, 하면 알아줬는데, 사내들을 홀리는 묘한 매력이 있었지, 그 시절에는 먹물 튄 년이 드문 때였으니…….” 그녀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담배를 피워 물었다. 흐릿한 불빛을 타고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거에 혹해서 사내놈들이 많이 찝쩍댔지…… 그때 한 놈 잡아 떠나지, 무슨 미련이 있다구…….” 그녀의 목소리는 무대 위에 홀로 앉은 재즈가수의 독백처럼 한없이 낮았다. “너나 나나, 진즉에 이 바닥을 떴어야 하는데……, 사나운 팔자는 이래도 저래도 막히니…….” 그녀는 마치 거울을 보듯 나를 보고 있었다. 손님은 더 이상 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코트를 걸쳤다. 카우치 백을 열어 계산을 마치고 조용히 로즈를 나왔다. 홍루의 간판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나는 홍루 앞에서 머리를 손으로 빗어 넘기고 모자를 반듯하게 썼다. 보드카 때문인지 속에서 열이 올랐다. 어두운 계단을 지나 2층 현관문을 열었다. 녀석은 아직도 톱밥 속에 파묻혀 있다. 녀석에게 다가가 케이지 밑에 조심스럽게 손을 갖다 댔다. 따뜻했다. 월요일에 길을 떠나면 여행이 불행하게 된다고 했던 이반은 정작 월요일에 떠났다. 이반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건 단순히 그가 월요일에 떠났기 때문이리라. 나는 욕실로 들어가 화장을 지우고 드레스를 벗었다. 거울에 깡마른 몸이 드러났다. 이반이 명자, 라고 이름을 부른 뒤 커다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그려 보이면 나는 러시아 회화 책을 뒤지듯 그가 허공에 그려낸 그림을 꼼꼼히 살폈다. 이반은 종종 그렇게 자신이 탈 배가 지나갈 곳을 손으로 그려 보여주었다. 그럴 때마다 이반의 손목에 새긴 푸른 돛이 허공에서 움직였다. 이반은 지금 어느 바다를 지나고 있을까, 나는 깡마른 몸에 샤워기의 물을 뿌렸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깬 것은 녀석 때문이었다. 문득 녀석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반이 떠나고 녀석을 제대로 본 적도 없다. 나는 가운을 걸치고 거실로 나갔다. 케이지에서 멀찍이 떨어져 톱밥 위를 보았다. 녀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반이 떠나고 녀석은 줄곧 톱밥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일까, 나는 케이지 안을 살폈다. 톱밥의 곡선이 흐트러짐 없이 처음 그대로였다. 나는 냉동실 문을 열고 이반이 사 놓은 먹이를 하나 꺼냈다. 먹이는 알루미늄 포장지에 싸여 있었다. 개수대에 따뜻한 물을 받아 포장된 먹이를 그대로 담갔다. 재스민 차를 우려내 창가로 간다. 눈이 흩날렸다. 홍루 지붕에는 엘피 가스통 4개와 물탱크,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작업복과 면장갑, 깨진 그릇이 나뒹굴었다. 그 낡은 지붕 아래 자장면과 짬뽕 옆으로 적힌, 익숙하나 한 번도 맛을 본 적 없는 횡서 끝자락의 낯선 메뉴를 떠올린다, 어쩌면 남자가 만들어 본 지 너무 오래되어 이제는 감조차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그 메뉴 밑으로 삐뚤삐뚤하게 적힌 러시아 음식들. 흑빵과 함께 홍루의 남자는 육개장과 비슷한 쌀단까나 빈대떡과 비슷한 블린 같은 러시아 음식도 만들었다. 종종 러시아 사람들이 중국 음식 중에 끼어 있는 러시아 음식을 주문하였다. 눈이 내려앉는 홍루 뒤꼍에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가 등을 보이고 양파 껍질을 벗기기 시작한다. 내가 보는 것은 언제나 남자의 등이다. 남자는 마치 그림 속에 들어 있는 사람처럼 묵묵히 앉아 양파를 깠다. 넓은 고무 대야를 가랑이 사이에 끼우고 물에 붇고 있는 양파 껍질을 벗겨 낸다. 인조털이 달린 두툼한 점퍼에 가려진 남자의 양 옆 어깨가 끊임없이 움직인다. 나는 껍질과 뒤섞인 혼탁한 물에 한 쪽 손을 깊숙이 집어넣고 남은 양파 알을 찾는 남자의 기울어진 어깨를 본다. 언뜻언뜻 삐져나오는 남자의 붉고 물에 불은 손. 남자는 허리를 펴고 위를 올려다보는 법이 좀체 없다. 남자의 등 뒤로 살금살금 나타샤가 다가간다. 그녀는 고양이처럼 허리를 익살스럽게 굽히고 남자의 등 뒤에 몰래 다가섰다. 나타샤가 두 손으로 남자의 눈을 가린다. 남자가 양파 껍질이 묻은 젖은 손을 차마 나타샤 손에 포개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나타샤가 손을 풀었다. 나는 뒤돌아보고 멋쩍어하는 남자의 표정을 바라보며 식어가는 찻잔을 볼에 대고 눌렀다. 나타샤가 남자 앞에 턱을 괴고 앉는다. 분홍색 털 스웨터에 청바지를 입은 그녀의 모습이 클럽에서와는 달리 앳돼 보였다. 남자가 양파 껍질을 벗기는 일을 멈추었다. 나타샤가 일어서더니 뒤꿈치를 모으고 양발을 벌려 발레의 폴리에 자세를 취한다. 두 팔을 뻗어 머리 위로 올리고 천천히 발 앞굽을 세워 잔걸음으로 뒤꼍을 옮겨 다녔다. 한눈에 봐도 그녀가 백조의 동작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타샤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총총걸음으로 뒤꼍을 돌아 남자 앞에 섰다. 그녀가 숨을 쉴 때마다 동그랗게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나는 남자를 향해 웃고 있는 나타샤를 보며 식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개수대에 던져놓은 녀석의 먹이가 녹았다. 먹이를 건져서 접시에 담고 알루미늄 포장지를 벗겨냈다. 손가락 한 마디를 좀 넘긴 연한 핑크색 먹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나는 숨을 멈추고 뒤로 물러섰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 쥐가 녀석의 먹이라니. 처음 기지촌에 왔을 때처럼, 처음 러시아 선원을 만났을 때처럼 무섭고 낯설었다. 나는 숨을 가다듬었다. 집게로 새끼 쥐를 집어 올려 녀석에게로 갔다. 톱밥 위는 아직도 텅 비어 있었다. 케이지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고 먹이를 내려놓았다. 휘파람을 분다. 녀석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휘파람을 분다. 어릴 적 나는 늘 혼자였다. 혼자 있는 시간이면 아무도 없는 집 마루에 앉아 허공을 향해 휘파람을 불어대곤 했다. 설령 어른들의 말처럼 뱀이 나온다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휘파람을 불면 곁에 누가 있는 것처럼 무서움이 가셨다. 이반의 말대로 휘파람을 불어서 집이 비었는지 집이 비어서 휘파람을 불었는지 지금도 알 수는 없었다. 나는 케이지에서 시선을 거두고 소파에 앉아 여행자를 위한 러시아 회화 책을 폈다. 90쪽 ‘거리’에서부터 120쪽 ‘모자 가게’까지는 이반이 떠나기 전 러시아어로 읽어주었다. 151쪽 기차여행 편을 한글로 따라 읽는다. ‘그제야 마구 쎄스츠 나 보예즈제?’ 어느 기차에 타야 합니까? 홍루 뒤꼍으로 함박눈이 쌓였다. 나는 눈을 밟으며 홍루로 갔다. 홍루에는 나타샤와 한국인 두 명만이 앉아 있었다. 주방 안으로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종업원에게 이반이 즐겨 먹었던 쌀단까와 흑빵을 주문했다. 종업원 대신 나타샤가 내 쪽을 힐금거리며 주방 입구로 갔다. 그리고 주방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주문을 받아 전해준다. 나는 낮은 선반 위에 펼쳐진 러시아 회화 책을 잠시 쳐다보았다. 남자도 틈틈이 회화 책을 뒤지며 러시아 말을 익히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습관처럼 폴리에 자세로 발을 벌리고 서 있는 나타샤의 뒷모습이 왠지 서글퍼서 고개를 돌렸다. 쌀단까와 흑빵이 나왔다. 이반은 홍루의 쌀단까 맛이 고향의 맛과 같다고 했지만 홍루의 쌀단까 맛은 육개장과 별반 다름없는 맛이었다. 천천히 흑빵을 뜯어 입에 넣었다. 흑빵이 입안에서 거칠게 씹혔다. 나는 반쯤 뜯어 먹은 흑빵을 남기고 홍루를 나왔다. 케이지 안에 먹이가 그대로 있었다. 녀석이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나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케이지의 뚜껑을 열고 먼지떨이를 거꾸로 찔러 넣어 천천히 톱밥을 휘저었다.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막대기로 커다랗게 원을 그은 뒤 안으로 조금씩 좁혀가며 톱밥을 감아 올렸다. 녀석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반이 곁에 있었다면 아마도 내가 휘파람을 불어 모든 게 텅 비어버린 거라고 말했을 것이다. 녀석은 어디로 간 것일까. 눈이 녹고 있었다. 녀석이 사라진 지 일주일째, 부두에 배가 들어왔다. 텍사스 거리는 러시아 선원들과 보따리 상인들로 붐볐다. 나는 클럽 문을 열었다. 로즈도 러시아 선원들로 북적였다. 여전히 러시아 음악 백학이 흘러나왔고 조명은 더 흐려 있었다. 나는 이반을 만났던, 거울이 걸린 자리에 앉았다. 장갑을 벗어 테이블 위에 올리고 카우치 백에서 담배를 꺼냈다. 언니 머? 구잘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나는 보드카와 샤실릭을 주문했다. 마담 장이 새로운 선원들을 앞에 두고 예전 텍사스 거리에 몰려들었던 미군들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선원들이 이야기를 채근하듯 마담 장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 시절 마담 장의 사랑을 구하려는 한 미국 병사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털어 백만 송이 장미를 사다가 거리에 뿌렸노라고 말하자 선원들이 속았다는 듯 몸을 털며 허탈한 웃음을 웃었다. 러시아에 전해 내려오는 백만 송이 장미에 얽힌, 가난한 화가의 슬픈 사랑이야기란 것을 이내 알아챈 모양이었다. 마담 장은 배가 들어올 때마다 선원들을 앞에 두고 그렇게 이야기를 만들어 내곤 했다. 선원들은 이국의 낯선 이야기에 자신들 나라의 이야기가 섞여 든 것을 알아채자 긴장이 풀렸는지 보드카를 연거푸 마셨다. 마담 장이 의자를 돌려 몸을 반쯤 틀고 있는 러시아 선원들을 달래듯 두 손을 들어 허공을 다독였다. 선원들이 다시 마담 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타샤는 한국인 선원들 사이에 섞여 있었고 이미 취해 보였다. 한국인 선원이 길고 곧은 나타샤의 등줄기를 더듬어 내려가다 허리를 감싸 안고 일어섰다. 마담 장이 재빠르게 나타샤와 눈길을 주고받았다. 나타샤와 한국인 선원이 계산을 마치고 클럽 밖으로 나갔다. 홍루의 남자가 클럽에 들어선 것은 내가 두 번째 담배에 막 불을 붙일 때였다. 남자는 이곳이 처음인 듯 두리번거리며 자리를 찾아 앉았다. 다소 들뜬 표정으로 구잘에게 주문을 했다. 그의 테이블에 맥주와 마른안주가 올려졌다. 나는 보드카를 한 모금 마셨다. 마담 장이 음악을 바꿨다. 빠르고 경쾌한 음악이었다. 러시아 선원들이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한다. 러시아인들의 춤은 마치 목각 인형이 줄에 매달려 움직이는 것처럼 무릎과 팔이 절도 있게 꺾어졌다. 격렬하면서도 율동 사이사이에 강한 매듭이 있는 러시아 춤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정신이 맑아졌다. 춤이 격렬하면 할수록 더 그랬다. 나는 선원들이 원무를 이뤄 추는 가팍을 보며 이반을 떠올렸다. 이반도 어디선가 함성을 지르며 저들처럼 가팍을 추고 있을까, 나는 보드카를 마시고 샤실릭을 한입 베어 물었다. 바에 앉아서 계속 몸을 흔들고 있던 마담 장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육중한 그녀의 몸이 빠른 리듬에 맞춰 민첩하게 움직였다. 선원들의 함성이 추임새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졌다. 음악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들의 춤은 자정까지 계속될 것이다. 구잘이 나타샤가 없는 빈자리를 대신하여 분주히 움직였다. 마담 장은 점점 술에 취하고 흥에 취해갔다. 가끔 이렇게 마담 장이 흥에 취해 선원들과 춤을 추면 그녀가 어김없이 해 오던 일, 러시아 아가씨를 한국 선원에게 붙이고 필리핀 아가씨를 러시아 선원에게 붙이는 일을 잊었다. 더불어 나의 존재도 잊었다. 그녀가 잊는 것은 단지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천식처럼 오래된 이 거리의 모든 것들, 그녀를 되돌아오게 만들었던 익숙한 모든 것들, 그녀의 생 모두를 잊을 것이었다. 이반의 말대로 휘파람을 불면 무언가 텅 비게 되는 것처럼 그녀도 텅 비어가는 것이리라. 원무에 끼어 점점 격렬하게 몸을 흔들 때마다 그녀가 한줌씩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기라도 할 듯 깡마른 손을 허공에 내밀었다. 홍루의 남자가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남자는 무릎 사이에 손을 찔러 넣고 눈은 줄곧 나타샤를 찾았다. 나는 마지막 보드카를 입에 털어 넣었다. 남자가 취했는지 점점 고개를 떨궜다. 녀석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문득 잊고 있던 녀석을 떠올리며 휘파람을 불었다. 남자가 고개를 든다. 거짓말처럼 녀석을 찾은 것은 소파 밑에서였다. 환전소에 가기 위해 러시아 동전을 지갑에 넣는 중이었다. 소파 밑으로 굴러들어간 동전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누렇게 바랜 벽지에 노랑 빨강 검정 색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소파 안쪽 벽 틈에 일자로 붙어 있었다. 나는 잠시 숨을 멈추고 가만히 녀석을 지켜보았다. 녀석도 움직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갔다. 냉장고에서 먹이를 꺼내 따뜻한 물에 담근 다음 물기를 닦아 소파 입구에 놓았다. 집게를 들고 소파 위에 웅크리고 앉아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녀석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숨을 삼켰다. 먹이 앞까지 조심스럽게 다가간 녀석이 고개를 들며 혀를 날름거렸다. 녀석의 여린 혀가 재빠르게 입속을 반복해서 드나들었다. 녀석이 먹이 앞으로 다가가 먹이를 덥석 무는 순간 집게로 녀석을 집어 케이지에 넣었다. 녀석의 입에는 삼키다 만 새끼 쥐의 여린 몸이 반쯤 물려 있었다. 로즈 앞에는 며칠째 클로즈라는 안내판만 달려 있었다. 겨울이면 도지는 마담 장의 천식 때문에 잠시 문을 닫았다고 했다. 나타샤도 가끔씩 목욕탕이나 환전소에서 마주치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에 한국 선원을 따라 이곳을 떠났다는 말도 있었고 임신을 해서 로즈에서 쫓겨났다는 소문도 있었다. 텍사스 거리는 다 해진 만국기를 걷어내는 상인들로 분주했다. 나는 만국기가 끝나는 곳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이반을 처음 만났던 날, 이반의 달콤한 입술이 나의 입술에 닿던 순간, 나는 내 여행이 이대로 끝이 나길 간절히 바랐었다. 이반은 지금 어느 바다를 지나고 있을까? 나는 만국기가 걷히는 하늘을 바라보며 블라디보스토크 행 비행기표 판매소를 지나 환전소로 갔다. 마지막 남은 먹이를 녀석에게 넣어주었다. 녀석이 조심스럽게 먹이에 다가간다. 잠시 목을 추켜세우더니 슬그머니 방향을 틀었다. 또 먹이를 먹지 않을 모양이었다. 온수에 목욕을 시키면 좀 도움이 될 겁니다. 수의사는 전화로 간단하게 처방을 내렸다. 소화불량이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정상적으로 탈피를 하기 힘들어진다고도 했다. 대야에 온수를 받아 케이지 옆에 놓았다. 케이지 뚜껑을 열고 널브러지듯 몸을 길게 풀고 있는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집게를 들다가 내려놓았다. 녀석의 외피에 손을 조심스럽게 갖다 댔다. 녀석의 차가운 체온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천천히 선을 그으며 머리 쪽으로 손가락을 옮겼다. 녀석의 입을 지나 턱쯤에 손가락이 닿았을 때 녀석이 감미로운 몸동작으로 손에 감겨든다. 소름인지 전율인지 무언가 몸속으로 울려들었다. 나는 녀석을 안듯 들어올려 온수에 담갔다. 녀석이 천천히 물속으로 스며든다. 나는 물끄러미 녀석을 보다가 물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미끄러지듯 내 손을 비켜나가는 녀석의 꽁무니를 따라가며 손을 저어 작은 물보라를 일으켰다. 녀석이 점점 생기를 찾은 듯 작은 원을 그리며 빠르게 움직였다. 잠시 뒤 작은 수건으로 민첩하게 손아귀를 벗어나는 녀석을 떠내 마른 수건을 깔아놓은 그릇에 옮겨 담았다. 녀석을 재빨리 수건 위에 굴린 뒤 케이지 안으로 털어 넣었다. 명자, 아주 잘했어, 이반이 보았더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는 홍루를 지나고 로즈를 지나 도로 건너편에 있는 수족관으로 갔다. 파충류 먹이 있음. 간판 옆에 적힌 글씨를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점원이 햄스터 케이지를 열다가 내 쪽을 본다. “뭘 드릴까요? 손님.” 점원이 케이지 안에서 햄스터를 꺼내며 물었다. “밀크스네이크 종인데……먹이 좀 사려고요.” 나는 나무토막을 기어오르는 비단뱀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한다. “뱀을 키운 지 오래되셨나 봐요. 처음 키우는 사람은 그렇게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거든요.” 점원이 손에 쥔 햄스터를 비단뱀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이렇게 한창 클 때는 녀석도 산 먹이를 찾아요, 그래야 탈피를 제대로 할 수 있거든요.” 나무막대를 기어오르던 녀석이 슬그머니 방향을 틀며 혀를 날름거렸다. 케이지에 던져진 햄스터가 꾸물꾸물했다. 움직임을 감지한 녀석도 먹이를 견준 채 꼼짝 하지 않다가 입을 벌리고 먹이를 물어 삼켰다. 나는 고개를 돌리며 점원에게 휘파람을 불면 뱀이 나온다는 말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런 속담이 있었나요?” 점원은 손에 묻은 햄스터 털을 털어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님, 냉동 쥐로 드릴까요?” 점원이 물었다. 나는 햄스터의 하얀 몸이 비단뱀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점원은 케이지에서 꿈틀거리는 분홍색 새끼 햄스터 한 마리를 꺼냈다. “녀석들이 종종 냉동 먹이를 먹지 않는데…… 그건 아마도 탈피를 하려고 그럴 겁니다. 제대로 크고 있다는 증거죠.” 나는 점원에게서 새끼 햄스터를 받아 골목으로 돌아왔다. 날이 풀리고 있었다. 곧 부두에 배가 들어온다고 했다. 나는 문이 닫힌 로즈를 지나 홍루에 들러 쌀단까와 흑빵을 시켰다. 남자는 여전히 등을 보이고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다. 탁자 위에는 너덜너덜해진 러시아 회화 책과 비닐도 뜯지 않은 발레 슈즈가 올려져 있었다. 나는 흑빵을 뜯어 쌀단까에 적셔 먹었다. 맞은편 거울에 흑빵을 씹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밥을 먹을 때 거울을 보면 안돼요, 아름다움까지 먹어버리거든요, 이반이 내 귓불 뒤에 입술을 갖다 대며 속삭일 것 같았다. 홍루의 간판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 NASA “종말은 없다”…당신은 믿으십니까?

    NASA “종말은 없다”…당신은 믿으십니까?

    2012년의 첫 날인 지난 1일, 한 영화전문 케이블채널은 ‘센스있게’ 영화 ‘2012’를 방영했다. 이 영화는 2012년 지구에 엄청난 지진과 해일이 닥치면서 지구 전체가 멸망하고 극소수만 살아남는다는 끔찍하고 잔혹한 이야기다. 미래에 불과했던 영화 속 2012년은 기어코 오고야 말았고, 1월 1일 잠 못 이루던 많은 사람들이 한 해의 시작을 지구가 멸망하는 영화를 보며 불안에 떨었다. 2012년 새해 첫날, ‘2012’를 방영한 국가가 과연 한국뿐일까. 물론 타국 방송사에 일일이 물어보진 못했지만, 전 세계인들이 2012년에 가지는 종말의 이미지는 상당히 짙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나서 “2012년에 종말은 없다.”고 말했지만 믿지 않는 분위기는 커져만 갔다. 이 때문인지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해명’에 나섰다. 과학전문매체인 스페이스닷컴에 따르면, NASA의 한 자문위원은 “2012년에 종말이 일어날 것이라는 이론은 형편없는 것”이라며 “미지의 행성이 2012년 지구와 충돌한다면, 이미 십 수 년 전에 과학자들이 추적에 나섰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다른 태양계의 행성 중 지구와 가장 가까운 것은 40억 마일 밖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미 현재가 되어버린 2012년에 충돌하기에는 매우 멀리 있다는 뜻이다. NASA의 지구근접물체연구소(Near-Earth Object Program Office)의 도널드 예먼스 박사도 “현재 일부 행성들의 위치가 계속해서 변하고 있지만 이것들이 지구와 충돌한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면서 “다른 행성이 지구에 큰 문제를 끼치진 않을 것”이라며 종말설이 터무니없는 ‘설’에 불과하다는 데에 한 표를 던졌다. 갖가지 종말설에 쐐기를 박은 것은 마야의 달력이다. 예지력을 갖췄던 것으로 추정되는 마야인들의 달력이 2012년에 멈춰 있다는 것.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분쟁이 일었다. 일부는 실제 종말의 가능성을 인정하는가 하면, 일부는 문제의 달력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는 법. 영화 ‘2012’는 마지막 장면에서 ‘0001년’의 시작을 알린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끝이 나자 새로운 것이 시작된다. 마야인들의 달력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는 것조차 종말론과 연결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예먼드 박사는 2012년에 종말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None, Zero, Zip, Nada“라고 답했다. 한마디로 ‘가능성 절대 없음’이다. 소행성이 지구로 오는지 오지 않는지, 거대한 지진과 해일이 발생할지 발생하지 않을지를 전혀 알 수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믿을 뿐이다. 다만, 영화처럼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일은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아직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영화로 직접 확인하시길.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런던 올림픽의 해 밝았다] 도마 신기술 ‘양1’ 창조… “금빛 세리머니 기대하세요”

    [런던 올림픽의 해 밝았다] 도마 신기술 ‘양1’ 창조… “금빛 세리머니 기대하세요”

    청년은 경기 전날 잠을 뒤척인다. 떨려서가 아니다. 설레고 들떠서다. 관중들의 환호 소리를 들으면 심장은 쿵쿵 달아오른다. 즐기듯 뽐내듯 짧은 연기를 끝내면 순위 표 맨 위에 이름이 올라가 있다. 청년은 ‘사인받으러 몇 명이나 올까?’ 생각하며 뺨이 발그레해진다. 아직은 ‘소년’이란 단어가 잘 어울리는 ‘한국 체조의 간판’ 양학선(20·한국체대) 얘기다. 양학선은 지난해 10월 도쿄세계체조선수권 남자 도마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차 시기 때 받은 16.566점은 전 종목을 통틀어 최고점이었다. “실수 없이 평소대로 하면 금메달을 딸 줄 알았어요. 사실 도마 짚으면 딱 감이 오거든요.” 다시 생각해도 좋은가 보다. 장난기 가득한 눈이 반달 모양이 된다. 양학선은 세상에 없던 신기술 ‘양1’을 선보였다. 공중 3회전, 무려 1080도를 비틀어 돌아내리는 기술이다. 여홍철(1996 애틀랜타올림픽 뜀틀 은메달·현 경희대 교수)이 선보인 ‘여2’에서 반 바퀴를 더한 기술이다. 양학선이 창조했고, 성공했고, 세계가 놀랐다. 세계체조연맹(FIG)에 신기술로 정식 등재되면서 양학선의 성을 딴 ‘YANG’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난도 점수는 무려 7.4다. 세계에서 이 난도의 기술을 구사하는 선수는 양학선이 유일하다. ‘양1’의 위력은 어느 정도일까. 양학선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실수 없이 완벽히 착지한 선수랑 두 발을 움직인 선수가 있어요. 난도 7.4면 두 발을 움직인다고 해도 완벽히 착지한 선수를 이길 수 있는 높은 수준이에요.” 거침없다. 사실 세계 체조계를 뒤흔든 ‘양1’은 ‘베스트’가 아니었다. 다친 뒤 상태가 좋지 않은 발목을 고려해 그 정도로 자제(?)해 만든 것이다. 본인 스스로도 “완성도는 70%였다.”고 했다. 더 발전할 여지가 무궁무진하다는 뜻. 양학선은 더 진화된 ‘양2, 양3’를 만들겠다고 했다. “런던올림픽에서는 기술을 더 업그레이드해서 금메달에 도전할 겁니다.” 양학선은 일찌감치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두 살 위 형을 따라 우연히 체조를 시작했는데 이내 천부적인 소질을 보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국소년체전 이단평행봉 동메달, 이듬해 링 금메달을 따냈다. 작은 키(160㎝·51㎏) 때문에 놀림도 많이 받았다. “주변 친구들이 ‘애기야, 너 언제 클래?’ 하면서 놀렸어요. 체조하면 키가 쑥쑥 클 줄 알았는데…. 그래도 이제는 체조가 정말 좋아요.” 양학선의 체조 사랑은 이어졌다. “체조는 잘 모르고 그냥 봐도 멋있지 않아요? 5초, 10초에 승부가 나니까 지루하지도 않고, 박진감 넘치고요.”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 기구와 씨름하다 보니 양학선의 양손은 굳은살투성이다. 하지만 호랑이 코치들의 따끔한 훈련을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체조장에 들어설 때마다 목표를 정한다고. ‘오늘은 딱 세 번만 뛰겠다.’고 하면 정말 세 번 하고 끝이다. 그만큼 집중해서 고품질의 연기를 선보인다. 애늙은이(?)처럼 목표도 또렷하다. 양학선은 “일단 제가 (나이상) 나갈 수 있는 세 번의 올림픽에서 연속 금메달을 따는 게 목표예요.”라며 눈을 빛냈다. 은퇴 후에는 체조의 인기를 높이는 데 힘을 쏟고 싶단다. “재밌게 놀면서 운동하는 ‘체조클럽’을 만들고 싶고요. 그러다 보면 일본이나 중국처럼 체조가 인기 종목이 되지 않을까요?”라고 묻는다. 패기 넘치는 약속도 했다. “런던올림픽요? 금메달 따면 진짜 재밌는 세리머니를 할 거예요. 아직은 비밀이에요.” 우리를 체조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올해 런던 하늘을 태극기로 물들일 이 청년, 양학선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조은지·명희진·홍인기기자 zone4@seoul.co.kr
  • 양궁대표→파산→귀농→간호사로 새출발 “이웃 돕는 ‘봉사 국가대표’가 임진년 포부”

    양궁대표→파산→귀농→간호사로 새출발 “이웃 돕는 ‘봉사 국가대표’가 임진년 포부”

    지난해 12월 29일 경남 창원의 성균관대 삼성창원병원. 30대 남성이 노인의 시신을 천으로 조심스레 감쌌다. 코와 입을 정성껏 닦고 영안실로 옮겼다. 병실로 돌아온 뒤엔 거동이 불편한 70대 노인의 볼일을 돕고 말벗이 되어 줬다. 키 182㎝에 체중 95㎏의 다부진 체격, 병원보다는 체육관이 더 어울릴 법한 그는 전 국가대표 양궁선수 이태영(32)씨다. 지난해 51회 간호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뒤 현재 병동지원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씨는 “아직 정식 간호사로 채용된 것은 아니지만, 환자 이동부터 영안실 이송 준비, 재활지원 등 간호보조 업무를 맡으며 양궁선수에서 간호사로 새출발을 준비하고 있다.”고 쑥스러운 듯 말했다. 이씨의 길지 않은 삶은 험난했다. 엄마 얼굴도 모른 채 자란 그는 조부모 슬하의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1997년 유럽그랑프리 대회 3위, 1998년 세계주니어 선수권 대회 1위 등 주요 대회를 석권하며 ‘양궁 유망주’로 촉망 받았다. 중·고교 시절, 한국을 대표하는 윤미진 선수와도 같이 활동했다. 2000년엔 ‘바늘구멍’ 같다던 국가대표로도 발탁됐다. 당시 오교문(호주 국가대표 감독), 김청태, 장용호 선수 등과 태릉선수촌에서 라이벌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러나 2000년 시드니올림픽 선발전에서 컨디션 난조로 4위를 기록, 출전에 실패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2002년 제대한 이씨는 지인에게 사기를 당해 수천만원인 전 재산을 날리고 빚까지 떠안았다. 2004년 결혼과 동시에 경남 마산시 진동의 깊숙한 시골 마을로 도피하듯 내려갔다. 모자라는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새벽엔 신문을 돌리고 낮에는 과자를 배달했다. 월세로 얻은 집 인근에서 농작물도 키웠다. 하고 싶은 운동을 접고 뛰었지만 빚에 쪼들렸다. 좌절의 나날이 계속됐다. 은퇴한 지 한참이 지난 2005년 대통령 체육훈장을 받았을 땐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그러다 지인 권유로 지금 근무 중인 병원에서 간호보조 업무를 맡았다. 새로운 전환점을 맞은 것이다. 이씨는 “처음 시신을 닦았을 땐 하루 서너번 샤워를 하고 잠도 제대로 못 들었다.”면서 “나보다 더 힘든 환경의 환자들을 돌보고 시신을 마주하며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도 새벽에 신문을 돌리고, 쉬는 날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더없이 행복하다.”고 했다. 이씨의 도전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새해엔 정식 간호사가 되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 더 많은 이들을 돌보는 게 목표”라면서 “이젠 평생 아프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 봉사 ‘국가대표’로 살고 싶다.”고 임진년 새해의 각오를 다졌다. 글 사진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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