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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진하의 시골살이] 자아의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라

    [고진하의 시골살이] 자아의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라

    초저녁부터 집 주위를 맴돌며 울어 대던 고양이 울음소리가 잠잠해졌다. 이 혹한의 날씨에도 짝을 부르던 암고양이 울음소리. 뜨거운 몸의 부름이니 어쩌랴. 나는 긴 겨울밤을 주로 책을 읽으며 보내는데, 아기 울음을 닮은 고양이 울음소리 때문에 책 읽기를 자주 멈추어야 했다. 고양이 소리가 잦아드니 만기 잠잠하다. 화목난로에 넣을 장작을 가지러 나와 흘깃 뒷집을 보니 독거노인은 벌써 잠이 드신 모양이다. 늦도록 켜 두곤 하던 TV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돌담 너머 동쪽 하늘에는 주먹만큼 큰 별들이 떠올라 시리게 눈을 찌른다. 마당 한쪽에 우뚝 서서 총총한 별들을 바라보노라니, 머릿속이 다 맑아진다. 조금 전에 읽고 있던 책에 나오던 사하라 사막의 밤하늘 풍경이 어른거린다. 사실 지난 연말에는 사하라 사막에 다녀오고 싶었다.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으로 포기하고 말았지만, 대신 그곳 풍경을 담아낸 책을 읽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스티븐 도나휴의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요즘 나는 이 책에 폭 빠져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사막은 인생의 여로에 대한 은유에 다름 아니다. 즉 인생이라는 사막, 변화라는 사막을 건너는 효과적인 방법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유익한 제안을 던지고 있다. 사하라 사막 같은 곳에서 숱한 고통과 죽음의 고비를 넘으면 현자나 품음 직한 이런 잠언을 쏟아낼 수 있는 것일까. “자아에서 공기를 조금만 빼면, 꼬이고 꼬인 인간 관계의 사막에서 헤어 나와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치유의 오아시스로 들어설 수 있다.” 누구나 일생을 사는 동안 몇 번의 궁지를 경험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리. 도나휴도 숱한 장애물이 도사린 사하라 사막을 차를 타고 건너다가 어느 날 모래 속에 차가 빠져 꼼짝달싹 못 하는 궁지에 몰린다. 모래 속에 갇힌 차를 빼내기 위해 뜨거운 모래 먼지를 뒤집어 쓰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하지만 실패한다. 결국 누군가의 제안으로 타이어의 바람을 빼는 모험을 감행하는데, 그러고 나서야 모래에서 차를 끄집어내어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여기서 그는 자기가 얻은 소중한 깨달음을 이렇게 갈파한다. “사하라 사막에서 부딪히는 문제는 공기 부족이 아니라 공기 과잉 현상이다…이처럼 정체된 상황은 우리의 자신만만한 자아에서 공기를 조금 빼내어야 다시 움직일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타이어에서 공기를 빼고 차의 높이를 낮춰라…우리의 자아에서 공기를 조금 빼면, 현실 세상과 좀더 가까워지고 좀더 인간적이 될 수 있다.” 우리의 타성을 깨우는 멋진 잠언이 아닌가. 우리가 인생이라는 사막을 건널 때 타이어에서 공기를 빼듯이 겸허해져야 한다는 것. 이때 겸허란 우리는 결코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 유한한 존재라는 것, 우리 자신의 약점까지를 포함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이런 겸허한 삶의 태도를 통해 변화무쌍한 인생이라는 사막을 헤쳐 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평소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거품을 북적이며 사는가. 허세, 허영, 허풍 같은 말은 곧 우리 삶의 거품을 드러내는 말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런 거품은 때가 되면 잦아들기 마련이고 그렇게 거품이 잦아들면 우리의 알몸은 드러나고 만다. 우리가 지닌 소유든 명예든 지위든 지식이든, 그런 걸로 알몸을 가리려 해봐야 결국 그건 사그랑주머니에 불과하지 않던가. 영하 10도 이하로 곤두박질친 혹한의 밤에, 내가 이런저런 걸 지녔다고 아무리 우쭐거려 봐야 화목난로에 넣을 장작 몇 개비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 온몸이 와들와들 떨려 책도 읽을 수 없고, 인생의 사막을 건너는 지혜 한 잎 건질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우주의 주재이신 분이 우리의 알몸을 드러내기 전에 자아의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고 인생의 사막을 건너야 하지 않을까. 지금 창밖엔 한겨울 찬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집 앞의 가로등 불빛이 겨우내 매달렸던 대추나무의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을 비춰 준다. 알몸을 드러낸 겨울나무들을 보며 모처럼 깊은 묵상에 잠겨 보는 밤이다.
  • ‘나’로부터 ‘우리’까지 희망 읽기

    ‘나’로부터 ‘우리’까지 희망 읽기

    문화계 인사들이 각자 가슴에 품고 있던 ‘말’과 그들이 추천한 한 권의 ‘책’을 통해 새해 첫 책면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들이 꼽은 올해 화두는 ‘나’로부터 출발해 ‘우리’로 나아갑니다. 영화 ‘내부자들’을 연출한 영화감독 우민호,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생태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책 전문가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최근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장편소설 ‘한 명’을 펴낸 소설가 김숨, 지난해 유일한 천만 영화 ‘부산행’을 연출한 영화감독 연상호, 시인이 시를 골라 주는 책방 ‘위트앤시니컬’ 주인장인 유희경 시인, 원조 스타PD로 유명한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의 프리마 발레리나 김주원의 화두에는 성찰과 우리 사회를 치유하고픈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미래를 만들어 가는 힘은 확신이 담긴 말과 그리고 고집스러운 실천일 것입니다. 절망에 맞서는 한 방법은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그 희망은 결국 나의 희망이 될 것입니다. 희망은 그렇게 시작되지 않을까요.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희망] ‘내부자들’ 우민호 감독 ‘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지음/정영목 옮김/문학동네 커트 보네거트는 미국의 풍자가이자 휴머니스트이며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이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독일 드레스덴 폭격에서 살아남게 된 작가가 쓴 자전적인 반전 소설로 부조리와 모순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거대한 변혁을 겪고 난 주인공이 아침에 눈을 뜨고 일하러 나가고 저녁에 다시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잠에 드는 하루하루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희망은 큰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한 개인의 삶이 행복하려면 일상이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상이 무너지는 순간 한 인간의 행복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요즘 우리 국민들의 일상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상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또 그 일상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말해 주는 책이다. 우리나라도 나름의 일상이 있을 텐데 그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대선] ‘부산행’ 연상호 감독 ‘송곳’ 최규석 지음/창비 최규석 작가는 우리 시대 청춘의 모습을 그린 ‘습지 생태보고서’, 이주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우리 현대사를 다룬 ‘대한민국 원주민’과 ‘100℃’ 등 여러 작품에서 사회 부조리를 파헤쳐 온 작가다. ‘송곳’은 부당 해고에 맞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섬세하면서도 날카롭게 다루고 있다. 다음달부터 마지막 5부의 연재가 시작되는데 단행본으로는 3권까지 나온 상태다.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는데 이 책을 이 시점에서 추천하는 까닭은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노조에 대한 이야기이고, 지금 시국 상황에 다시 읽어 보면 또 다른 의미와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어서다. 대학 동창인 최 작가와는 맥주 한 캔을 놓고 밤새도록 창작 이야기를 할 정도로 막역한 사이다. 첫 장편 ‘돼지의 왕’을 비롯해 ‘사이비’ 그리고 지난해 ‘서울역’에서 캐릭터 원안, 디자인 등을 맡아 줬다. 영화 ‘부산행’의 마지막에 흐르는 ‘알로하오에’도 최 작가가 추천했다. [다양성] 최재천 이대 석좌교수 ‘문명의 붕괴’ ‘국가는 왜…’ 재러드 다이아몬드 지음/강주헌 옮김/김영사 대런 애스모글루·제임스 로빈슨 지음/최완규 옮김/시공사 ‘총, 균, 쇠’로 풀리처상을 수상한 UCLA 지리학과 교수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는 인류 문명의 탄생과 발전을 총, 균 그리고 쇠로 재분석한 전작과 달리 문명 사회가 어떤 이유로 붕괴했는지를 분석한 책이다. 그는 크게 다음의 다섯 가지 이유를 들었다.?인간이 환경에 끼치는 악영향, 기후 변화, 우방의 부재, 적대적 이웃 국가의 출현, 무너진 정치 시스템과 문화 인프라.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정국을 총체적으로 경고하고 있는 것 같아 섬뜩하기까지 하다. 여기에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분석은 우리를 더 두렵게 한다. 경제학자와 정치학자인 두 저자가 찾아낸 국가가 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포괄성이다. 국가 행정과 경제 사회가 포괄적(inclusive)인 국가는 융성했고 반대로 폐쇄적(exclusive)인 국가는 망했거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저자들은 대한민국과 북한을 가장 극명한 예로 들어 설명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많은 결정도 점점 더 폐쇄적으로 이뤄지는 걸 본다. 이런 역주행을 과감히 끊어내야 한다. [공화]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비통한 자들을 위한…’ 파커 파머 지음/김찬호 옮김/글항아리 자율. 자기 행동의 서사를 스스로 창조하고 실천하다. ‘촛불’과 함께 민주주의가 우리 스스로에게 명령되었다. 자율적 주체인 시민을 통치의 대상인 신민으로 여기는 어떠한 정치사회 시스템도 연대를 통해 곧바로 무력화할 것임을 선포했다. 아고라에서 자율적으로 평화를 이룩한 성숙한 시민의식에 바탕을 두고, 더이상 대의제 선거에만 의존하지 않는 공화(共和)의 원리를 국가와 사회 전반에서 시험할 때다. 이 책은 정치의 새로운 얼굴을 그리려는 사람들에게 생각의 지렛대를 제공한다. 저자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공동체가 생겨날 수 있도록 시민들 개개인의 마음을 일일이 살피는 공론장(느리고 비효율적이지만 흔하게 기적을 일으키는)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자기 나라 안에서 난민이 되면서 마음이 부서진 이들에 주목하고, 그 찢긴 마음을 서로 공유하여 공감을 일으킴으로써 치유를 바느질하고 연대를 생성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의 참된 토대이자 공화로 가는 오솔길이다. 사회의 뿌리로부터 꽃을 향해 분출해 올라가는 소통의 흐름을 원활히 하면서도, 이를 자율적으로 조절하고 필요한 일에 집약할 줄 아는 미시 정치의 실현이 촛불의 교훈이다. 독서공동체와 같이 일상에서 성찰적 토론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시민 공동체를 고민할 과제가 우리 앞에 있다. [리셋] 유희경 시인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엄기호 지음/창비 어지러운 시절을 보내고 있다. 도대체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지경에 이르게 된 것 같다. 마땅한 귀결처럼 패배감과 허무가 유령처럼 우리 곁을 떠돈다. 그리고 지친 우리는 자신도 몰래, “이러느니 다 망했으면 좋겠어”라고 내뱉고 만다. 이른바 ‘리셋 증후군’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리셋은 필요하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앞도 뒤도 대책도 없는 ‘처음’은 바라서도 이야기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리셋이 아니라 실패다. 엄기호의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는 낙담과 포기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역사 위에서 진단한다. 그리고 그 다음을 위한 논의를 “처방”한다. 다시 역사의 위로 올라서, 우리가 더 나아지고 있음을 확신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 책을 통해 확인해 보았으면 좋겠다. 포기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어쩌면 뻔한 ‘진리’를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마는 것은 아닌지. 진정한 리셋은 지속할 힘을 찾아내는 노력에 달려 있다. [그래도]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 ‘겐샤이’ 케빈 홀 지음/ 민주하 옮김/ 연금술사 마음이 ‘우물’이면 말은 ‘물’이다. 더러운 우물에서 맑은 물을 퍼 올릴 순 없다. 내가 사는 동네 인근에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있다. 시인이 젊은 날 머물던 하숙집터도 있다. 하기야 시인에겐 늙은 표정이 없다. 서른이 되기도 전에 총총히 떠나버려 영원한 청년의 얼굴로 남았다. 딱 백 년 전에 태어난 윤동주에겐 별이 말이었다.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를 새겨 넣었다. 이제라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가슴에 품고 싶다면 얇은 책 ‘겐샤이’에서 방법을 익히자. 고대 힌디어 ‘겐샤이’는 어느 누구든 스스로를 작고 하찮은 존재로 느끼도록 대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말 한마디에도 다 정신이 깃들어 있다. 정신없이 살다 보면 정신없는 날을 맞게 된다. [윤리] 소설가 김숨 ‘나와 너’ 마르틴 부버 지음/표재명 옮김/문예출판사 윤리 의식의 부재는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지난 가을과 겨울 내내 내게서 떠나지 않던 질문이었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망각한 데서 나오는 태도, ‘너’라는 타자를 존귀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는 수많은 ‘너’를 만나고, 어떠한 관계를 맺는다. 그 과정에서 너를소유나 도구로 대하기도 한다. ‘나와 너’는 유대인 철학자 마르틴 부버의 책이다. 너와 나의 관계에 대한 깊고 신비로운 성찰을 담고 있다. “근원어 ‘나―너’는 오직 온 존재를 기울여서만 말해질 수 있다…. ‘나’는 너로 인하여 ‘나’가 된다. ‘나’가 되면서 ‘나’는 ‘너’라고 말한다. 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다.” 나와 너의 관계 회복은 자연스럽게 윤리 의식의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너와 나의 만남은 은혜로 이루어졌다”는 문장을 새해 첫 문장으로 심장에 새긴다. [성찰] 발레리나 김주원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톨스토이 지음/이상원 옮김/조화로운삶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에게 중요한 2017년을 위해 누군가에게 조언을 얻을 기회가 생긴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톨스토이의 책을 권할 것이다. 모두가 갈구하는 행복은 가까운 데서 찾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순간은 내가 존재하고 있는 현재이며 가장 소중한 사람은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는 톨스토이가 생전에 펴낸 마지막 저서다. 그의 지혜와 성찰이 담긴 잠언집으로 그가 느낀 행복과 사랑, 삶과 죽음 등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책을 보면서 지식을 얻게 되지만 실제 나의 것이 되지는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서는 진짜 스스로 발견한 진리,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진리에 대해 깨달을 수 있다. 인생의 마지막 2년을 남겨 두고 있던 러시아 대문호가 쓴 주옥 같은 유산들은 나침반과 같은 존재가 되지 않을까.
  • [지금, 이 영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지금, 이 영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민정(이유영)은 카페에서 카프카 단편집 ‘변신·시골의사’를 읽는다. 재영(권해효)과 만날 때도, 상원(유준상)과 만날 때도 그녀는 이 책을 들고 있다. 이때 민정은 민정이 아니다. 말장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두 남자는 그녀를 보고, 예전에 자신과 안면 있던 민정이라고 생각하고 말을 걸었다. 그런데 민정은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본인은 민정이 아니라고 답한다. 재영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는 민정과 일란성 쌍둥이라고. 그녀의 말은 참일까 거짓일까. 그런 물음은 둘 중 하나만 정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물음이 둘 다 정답이 될 수도 있다. 카프카를 전유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변신’에서 ‘그’가 벌레인 동시에 사람일 수 있듯이. 카프카의 소설과 함께하는 순간, 민정은 민정이면서 민정이 아니다. 이처럼 모호하게 쓸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녀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민정이 아니라고 말할 뿐, 자기 이름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이러면 아무도 그녀의 정체를 규정할 수 없다. 민정이지만 민정이 아닌 것이다. 민정은 애인인 영수(김주혁)와 다투고 당분간 연락하지 말자고 한 상태다. 그가 친구들의 말―민정이 영수 몰래 술을 마시고 돌아다닌다는 소문을 믿고 그녀를 의심한 탓이다. 영수는 민정에게 소리 지르고 욕까지 했다. 그 뒤 그는 왼쪽 다리를 깁스하고 목발에 의지한 채, 종적을 감춘 그녀를 찾아 헤맨다. 징벌을 받은 영수가 속죄의 과정을 거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한참을 애태우던 그는 마침내 민정과 마주치게 된다. 그렇지만 그녀는 영수가 아는 민정이 아니다. 자신이 민정이 아니라고 하는 그녀. 어이없어하며 그는 너의 모든 것을 말하라고 그녀를 다그친다. 그러자 민정 아닌, 민정 같은 그녀가 차갑게 대꾸한다. “자신도 없으면서.” 영수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모든 사실을 알고 그것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인가. 모든 사실을 모르는 대로 놓아두고 그것을 감당할 것인가. 영수는 후자를 고른다. 그는 그녀에게 말한다. “당신이 너무 좋아서 당신을 믿을 겁니다.” 이것은 의미심장한 발언이다. 이전의 영수였다면 “당신이 진실하다고 여겨서 당신을 믿을 겁니다”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에게 진실은 상관없다. 단지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영수는 민정 같(지 않)은 그녀를 온전히 믿을 수 있다. 카프카는 이런 잠언을 남겼다. “진실 된 길은 공중 높이 팽팽하게 당겨진 줄 위가 아니라, 땅바닥 바로 위에 낮게 쳐진 줄 위로 나 있다. 그것은 딛고 가게 되어 있기보다는 오히려 걸려 넘어지게 되어 있는 듯하다.”(프란츠 카프카, 이주동 옮김, ‘꿈같은 삶의 기록’, 솔, 2004, 498쪽) 영수는 여기에 걸려 넘어지지 않았다. 10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 청강문화산업대 뮤지컬스쿨, 창작뮤지컬 ‘템페스트-번지점프를 하다’ 무대에

    청강문화산업대 뮤지컬스쿨, 창작뮤지컬 ‘템페스트-번지점프를 하다’ 무대에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창작뮤지컬을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중 창작뮤지컬은 2014년 기준으로 39.4%로, 대부분 해외 유명작품을 수입해 공연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뮤지컬스쿨이 프로제작자들도 어려워하는 창작뮤지컬을 선보여 화제가 되고 있다. 청강대 뮤지컬스쿨은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창작뮤지컬 ‘템페스트’와 화제의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를 무대에 올린다. 10월 26일부터 11월 2일까지 무료로 만날 수 있는 ‘번지점프를 하다’는 청강대 뮤지컬스쿨의 제작역량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 ‘번지점프를 하다’는 순수하게 학생들로만 이뤄진 프로덕션을 통해 새로운 시각의 연출이 돋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 2015년 뮤지컬스쿨에서 초연 이후 재연이 될 정도로 개성 있는 연출과 탄탄한 제작시스템이 호평을 받았다. 주인공 인우 역은 뮤지컬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주인공으로 화제가 됐던 박준휘 졸업생이 캐스팅됐고, 그 외 2~3학년 전공심화 재학생 17명이 출연하며 제작에도 19명의 학생들이 참여한다. 11월 12일과 13일 무대에 오르는 ‘템페스트’는 청강대 뮤지컬스쿨 전공심화과정의 최문경 학생이 극본을 맡았고 총감독 및 연출은 뮤지컬스쿨 원장인 최성신 교수가 책임졌다. 오랜 연기 경험과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스쿨 출강교수, 졸업생, 재학생으로 구성된 배우들과 무대제작, 조명, 음향, 영상의 재학생 스텝의 뜨거운 열정으로 탄생한 ‘템페스트’는 청강 뮤지컬스쿨의 교육과정 내에서 창작된 우수한 극본을 청강 뮤지컬스쿨의 공연프로덕션 시스템으로 제작하여 상업공연장에서 선보인다는 점에서 특히 눈길을 끈다. ‘템페스트’는 세익스피어가 은퇴하기 전에 지은 희극으로 세익스피어의 마지막 잠언이 담긴 최후의 걸작으로 불린다. 음모로 쫓겨난 밀라노 대공 프로스페로가 마법의 힘을 얻어 복수의 기회를 얻지만, 화해와 용서를 택하고 모든 것을 원상태로 돌려놓는 것이 주요 줄거리다. 현재 국내 대학에서 만들어지는 창작뮤지컬 공연은 대학 내에서 실험하는 수준이거나 졸업 공연으로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선보이는 이벤트성 공연이 대부분이다. 반면 청강대뮤지컬스쿨의 창작공연은 대학생 아마추어 공연의 수준을 훨씬 뛰어 넘어 상업공연 수준의 작품성과 대중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뮤지컬스쿨 원장 최성신 교수는 26일 “본교의 창작뮤지컬은 현장공연 프로덕션 시스템과 동일하게 제작되기 때문에 다른 대학공연에서 찾아보기 힘든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며 “2014년부터 뮤지컬 1차 창작에 대한 미래전략사업을 수립하고 극본부터 무대, 연출, 연기 등 전분야에 걸쳐 심도 있는 교육을 진행한 결과, 뛰어난 작품이 탄생하게 됐다. 이번 작품을 통해 우리는 앞으로 예술을 토론하고 뮤지컬을 창작하는 교육공동체로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결혼, 그 아슬아슬하고도 처절한 일상의 민낯

    결혼, 그 아슬아슬하고도 처절한 일상의 민낯

    롤러코스터를 탄 듯 하루도 안온하지 않고 지뢰밭을 걷는 듯 위기의 연속이다. 어떤 날은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는 공포가 잠식하고, 어떤 날은 ‘영혼의 짝’을 ‘잘못된 인연’으로 결론 내기도 한다.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47)이 들여다본 결혼의 적나라한 민낯이다. 그의 새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행나무)에서 결혼은 이처럼 낙관보다 비관이 넘쳐 흐른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키스 앤 텔’ 등 연애 3부작 이후 21년 만에 쓴 소설은 작가가 결혼 이후 쓴 첫 소설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작가는 결혼이라는 ‘도박’에 나선 이후 진행되는 모든 사건들을 특유의 성찰과 위트를 첨가해 능숙하게 해설해 나간다. 주인공 라비와 커스틴의 시작은 상대에 대한 매혹과 열망으로 뭉친 ‘낭만주의’ 그 자체였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활시위가 당겨진 이후 두 사람 사이에는 서서히 균열이 일어난다. 잘 때 창문을 닫느냐 마느냐, 이케아에서 어떤 컵을 사느냐로 사활을 건 싸움을 시작한 부부는 육아에 매달리면서 섹스에 활기를 잃고 불륜까지 저지른다. 결혼 16년차, 신용카드 대금을 두고 말다툼을 벌이던 두 사람은 의자를 부수면서 부부 상담을 받기에 이른다. 보통은 소설과 에세이가 거듭 교차하는 특유의 화법으로 결혼 생활에 대한 예리하고도 위트 넘치는 통찰을 전한다. ‘대부분의 러브스토리를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 자신의 실제 관계는 거의 다 하자가 있고 불만족스럽다’고 전제하는 그는 ‘가끔은 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몇 번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바로 러브스토리’라며 현실을 일깨운다. “사랑은 감정이라기보다 기술”이라며 “낭만주의를 박차고 나오라”는 그의 주문은 그런 현실에 땅을 디딘 만큼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이야기 사이 불쑥불쑥 등장하는 그의 잠언은 남편인 라비의 시선으로 쓰인 만큼 여성 독자들에겐 불편할 수도 있겠다. ‘사랑과 섹스의 분리가 친밀함이 만든 무거운 짐들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거나 ‘배우자에게 깊은 관심이 있기 때문에 불륜을 벌인다’는 식의 주장들이다. 결말은 오랜 시간 축적된 앙금과 부풀려진 균열을 급히 봉합하는 느낌이 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일’이 또 결혼이 아니던가. 작품을 “낭만주의에서 현실주의로의 이행”이라고 압축하는 역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다. 보통에게 결혼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면 카카오 하트펀딩을 찾으면 된다. 1일부터 열리는 하트펀딩 페이지(알랭 드 보통에게 ‘사랑 이후’를 묻다)에 질문을 남기면 작가가 이달과 다음달 두 차례 답을 건네줄 예정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롤러코스터를 탄 듯 하루도 안온하지 않고 지뢰밭을 걷는 듯 위기의 연속이다. 어떤 날은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는 공포가 영혼을 잠식하고, 어떤 날은 ‘영혼의 짝’을 ‘잘못된 인연’으로 결론내기도 한다.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사진?·47)이 들여다본 결혼의 적나라한 민낯이다.  그의 새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행나무)에서 결혼은 이처럼 낙관보다 비관이 넘쳐 흐른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키스 앤 텔’ 등 연애 3부작 이후 21년 만에 쓴 소설은 작가가 결혼 이후 쓴 첫 소설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작가는 결혼이라는 ‘도박’에 나선 이후 진행되는 모든 사건 다툼들을 특유의 성찰과 위트를 첨가해 능숙하게 해설해 나간다.  주인공 라비와 커스틴의 시작은 상대에 대한 매력과 열망으로 뭉친 ‘낭만주의’ 그 자체였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활시위가 당겨진 이후 두 사람 사이에는 서서히 균열이 일어난다. 잘 때 창문을 닫느냐 마느냐, 이케아에서 어떤 컵을 사느냐로 사활을 건 싸움을 시작한 부부는 육아에 매달리면서 섹스의 활기를 잃고 불륜까지 저지른다. 결혼 16년 차, 신용카드 대금을 두고 말다툼을 벌이던 두 사람은 의자를 부수면서 부부 상담을 받기에 이른다.  보통은 소설과 에세이가 거듭 교차하는 특유의 화법으로 결혼 생활에 대한 예리하고도 위트 넘치는 통찰을 전한다. ‘대부분의 러브스토리를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 자신의 실제 관계는 거의 다 하자가 있고 불만족스럽다’고 전제하는 그는 ‘가끔은 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몇 번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바로 러브스토리’라며 현실을 일깨운다. ‘사랑은 감정이라기보다 기술’이라며 ‘낭만주의를 박차고 나오라’는 그의 주문은 그런 현실에 땅을 디딘 만큼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이야기 사이 불쑥불쑥 등장하는 그의 잠언은 남편인 라비의 시선으로 쓰인 만큼 여성 독자들에겐 불편할 수도 있겠다. ‘사랑과 섹스의 분리가 친밀함이 만든 무거운 짐들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거나 ‘배우자에게 깊은 관심이 있기 때문에 불륜을 벌인다’는 식의 주장들이다. 결말은 오랜 시간 축적된 앙금과 부풀려진 균열을 급히 봉합하는 느낌이 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일’이 또 결혼이 아니던가. 때문에 작품을 “낭만주의에서 현실주의로의 이행”라고 압축하는 역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에게 결혼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면 카카오페이지를 찾으면 된다. 1일부터 카카오페이지에 질문을 남기면 보통이 이달과 다음 달 두 차례 답을 건네줄 예정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씨줄날줄] ‘공초’(空超) 오상순/강동형 논설위원

    [씨줄날줄] ‘공초’(空超) 오상순/강동형 논설위원

    시인 공초(空超) 오상순(1894~1963)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담배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 때까지 담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지인들은 ‘공초’라는 아호보다 ‘꽁초’라는 별호로 불렀고, 그도 그렇게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결혼식 주례사를 하면서도 담뱃불을 끄지 않았고, 술에 취해 지갑은 잃어버려도 담배 파이프는 손에 쥐고 있었다는 웃지 못할 일화가 있다. 그는 담배와 하나가 됐다는 의미의 ‘연아일체경’(煙我一體境)이란 말로 자신의 애연관을 정리했을 정도다. 술집에서도 담배를 마음대로 피울 수 없는 요즘 세태를 공초가 봤다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그의 아호 공초는 비움을 초월했다는 뜻이니 불가에서 말하는 공즉시색(空卽是色)을 넘어선 해인(海印), 화엄(華嚴)의 경지가 아닐까 한다. 공초는 아무래도 불교적인 색채가 강하다. 그런 그가 젊은 시절에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윤동주 시인이 다닌 일본 교토 도시샤대학 종교철학과를 졸업한 그는 전도사로 일한 적도 있다. 계모와의 갈등으로 집을 나와 범어사와 조계사를 전전하며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그 자신은 탈기독교적, 탈불교적이었다. 구상 시인은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을 평하면서 그를 무교리의 종교가이며, 사상가라고 규정했다. 그는 당대의 많은 문사에게 영향을 미쳤다. 1950년대 초반부터 약 10년 동안 서울 명동에 있던 청동다방과 서라벌다방 구석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터줏대감 노릇을 했다. 이때 그를 찾아온 손님들에게 종이쪽지를 내밀어 낙서를 하게 했는데 이를 엮은 낙서첩이 ‘청동산맥’이다. 한국 문학의 보고이며 잠언집으로 평가받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펄벅도 다방을 찾아 담배 두 갑을 내놓고 ‘어둠을 불평하기보다는 차라리 한 자루의 촛불을 켜라’는 촌철살인의 글을 남겼다. 공초를 기리는 ‘공초 문학상’ 시상식이 그제 서울신문사 주관으로 열렸다. 1991년 서울갤러리에서 개최된 기금 마련 전시회에서는 서정주, 박두진 등 원로 시인과 김기창 화백 등 내로라하는 문화예술인 70여명이 글과 그림을 내놓았다고 한다. 공초가 죽은 지 30주년이 되던 1993년부터 23년째 이어지고 있다. 고은, 김지하, 이성부, 정호승, 신달자, 도종환, 유안진 등이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올해의 수상자는 나태주 시인이다. 구상 시인의 ‘꽃자리’는 공초의 평소 이야기를 시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야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공초처럼 세상사를 잠시 내려놓고 시 한 편 읽는 여유를 갖는 것도 삶의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 [길섶에서] 주인과 나그네/구본영 논설고문

    얼마 전 평생 몸담았던 공직을 떠난 지인의 이임 인사에서 잊고 있었던 법어를 접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중국 선승이 남긴 말이다. 직역하면 “어디를 가든지 주인이 되면, 그곳이 참된 자리다”라고 새겨진다. 성경의 잠언이 다채로운 여운을 남기듯 불가의 법어도 다의적 울림을 준다. 다만 20여년 지기인 그는 지위가 높든 낮든, 보수가 많든 적든 매사에 책임감을 갖고 일해야 한다는 뜻으로 그 법어를 인용했단다. 그도 그런 주인 의식으로 일했기에 대과 없이 공직을 마쳤을 법하다. 지하철 구의역의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9세 청년의 희생이 그래서 안타깝다. 그 청년이야말로 누가 강요하지 않았지만 끝까지 주인 정신으로 최선을 다했지 않았나. 그런데도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공무를 수행했던 청년의 희생까지 정쟁 거리로 삼는 정치권을 보면 여간 딱하지 않다. 대선 주자급까지 가세해 “정부 책임”이라느니 “서울시가 문제”라느니 하며 남 탓 공방이나 하고 있으니…. 문득 일제에 나라를 뺏긴 후 동포들에게 “그대는 주인인가, 나그네인가”를 외쳤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자후가 생각난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김성호 기자의 종교만화경 26〕말기 암 老스님의 5억 기부

    [김성호 기자의 종교만화경 26〕말기 암 老스님의 5억 기부

     “비록 생전엔 나누고 살지 못해도 사후에라도 남에게 준다면 아름다운 죽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평생 장기기증 운동을 하면서 살아온 노 목회자로부터 얼마 전 들은 말이다. “지금 사람들은 남의 어려움에 너무 몰인정한 것 같다.”는 목사의 일갈에 고개를 끄떡였었다. 그 공감의 전언에 딱 맞춘 것처럼 나눔의 선덕(善德)을 베푼 80대 노 스님의 미담이 화제다. 췌장암으로 입원 투병 중인 전 부산 정주사 주지 지인 스님이 평생 모은 5억원 전액을 인재 양성에 써달라며 동국대에 기부했다는 그 이야기다.  ‘스님이 뭔 돈이 그리 많아?’ 세간 대중들의 의문이 쏠리는 대목인 것 같다. 그런데 그 사연을 알아보니 절절하다. 17세에 머리를 깎고 출가한 스님은 30년 넘게 교도소며 군 병영에서 봉사활동을 펼쳐 온 납자(衲子·입다가 버린 낡은 헝겊으로 기워 만든 옷을 입은 수행승)다. 차량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전국 곳곳을 다니며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고 휴지 한 장도 말려 쓸 만큼 청빈한 생활로 유명한 출가승이다. 암 세포가 간까지 전이돼 거동이 힘든 형편인데도 직접 은행을 찾아 예금통장을 해지해 동국대 기부금 계좌로 돈을 모두 이체했다는 후담이 잔잔한 울림을 전한다. 스님에겐 마지막일지도 모를 ‘속 깊은 기부’가 제대로 쓰여지길 바란다.  지인 스님의 덕행에 얹어 불교계에선 자주 회자되는 고사 하나를 떠올려본다. 명대 선승 운서 주굉의 ‘죽창수필’에 등장하는 유명한 이야기다. 군인이 죽어서 좋은 세상으로 가라며 천도재를 지냈는데, 정성이 모자란 탓인 지 음계(陰界)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아내의 꿈에 나타나 모처에 가 염불을 해달라고 부탁하면 정성들여 해줄 것이란 말을 전했다. 적은 돈을 갖고 그곳에 갔더니 돈 상관 없이 정성껏 염불을 해주었고 그날 밤 꿈에 죽은 남편이 나타나 음계를 벗어났다며 고마워했다는 이야기다. 불교 세계에 맞춰진 이야기지만 죽은 사람조차 배려와 나눔이 긴요하다는 교훈 쯤으로 들린다.  ‘요즘처럼 나 먹고 살기도 버거운 시절에 남 도울 여력이 어디 있나’ 거개의 대중들이 갖는 생각일 것이다. 하물며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얻는다는 경제 논리에 휘둘릴 수 밖에 없는 무한 경쟁의 세상에서 내 것을 모두 줘 남을 돕는다고? 얼마 전 알파고와 이세돌이 펼쳤던 세기의 바둑 대결 때 자주 등장했던 그 ‘아생연후 살타(我生然後殺他)’가 더 설득력을 갖는 세상 아닌가. 그래서 나보다 남을 배려하고 나누는 덕행은 동서고금을 통해 고귀한 덕목으로 여겨져왔다.  특히 ‘인류가 가진 최고의 도덕률’이라는 종교에서 그 나눔과 배려는 종파와 교리의 구별 없이 우선시되는 공동 선(善)의 으뜸 가치로 꼽힌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복음 10:8)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잠언 3:27)…. 불교에서 생사의 고해를 건너 열반의 피안에 이르기 위해 닦아야 할 여섯가지 실천덕목이라는 ‘육바라밀’속 보시(布施)도 그 성경 경구와 맞닿아 있다. 재(財)보시, 법(法)보시, 무외(無畏)시의 세 보시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집착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무조건 베푼다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는 최고의 경지로 존중된다.  나에게 이롭지 않으면 쳐다보지도 않는 각박한 세상이다. 그래도 분분한 설이 있긴 하지만 인간 심성의 바탕엔 분명히 착한 마음이 버티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그 선한 심성은 기부와 기증이라는 배려의 나눔으로 도처에서 뻗치고 있다. 비록 노 스님의 5억원 기부처럼 많진 않더라도, 남을 위해 내 것을 다 내주진 못하더라도 조금 씩의 배려는 세상을 훨씬 더 좋게 만들어 놓지 않을까.김성호 선임기자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혜민스님이 알려주는 나를 사랑하는 법

    혜민스님이 알려주는 나를 사랑하는 법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혜민 지음/수오서재/300쪽/1만 4800원 베스트셀러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저자 혜민 스님이 4년 만에 낸 신작이다. 인생의 길목마다 부딪치는 많은 문제들과 그 문제에 직면했을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가슴 따뜻한 이야기로 풀어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가족과 친구, 동료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 불완전하고 모순적인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세심하게 다뤘다. 혜민 스님은 “여전히 많이 부족하지만 자비한 시선 속에서 나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면서 순간순간 찾아온 생각들을 모았다”고 소개했다. 책에는 살면서 곱씹어볼 만한 잠언들로 가득하다. ‘내가 먼저 나를 아껴줄 때, 세상도 나를 귀하게 여기기 시작합니다.’(25쪽) ‘인간관계를 원활히 하고 싶으면 계산하는 버릇을 멈추세요. 나는 이만큼 해주었는데 왜 상대는 나에게 그만큼 해주지 않는가 하고 계산하면, 관계에 자꾸 브레이크가 걸려요.’(80쪽) ‘완벽하진 않아도 85퍼센트 정도 괜찮다 싶으면 넘기고 다음 일을 하세요. 완벽하게 한다고 한없이 붙잡고 있는 거, 좋은 거 아닙니다. 왜냐하면 완벽이라는 것은 내 생각 안에서만 완벽한 거니까요.’(137쪽) 혜민 스님은 “제 부족한 글이 삶이 가져다주는 절망 속에서도 옆에서 잡아주는 따뜻한 손이 되고, 혼돈의 시간 속에서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고요함이 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이해인 수녀는 “종파를 초월해 스님의 책이 사랑받는 이유는 짧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생활 속 잠언들, 친구처럼 손잡아주는 다정함과 공감을 끌어내는 스님의 따뜻한 인간미 때문”이라며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서 선과 사랑이 넘치는 사람으로 성숙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김동률 교수의 1980’s 청춘의 재발견] 난 ‘이문열 키드’였다

    [김동률 교수의 1980’s 청춘의 재발견] 난 ‘이문열 키드’였다

    나는 문학인이 아니다. 당연히 특정 작가의 작품에 대해 평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다. 아니 그럴 만한 능력도 아예 없다. 내가 지금부터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순전히 1980년대를 살아온 일개 독자로서의 쓸쓸한 회고에 불과하다는 것을 미리 밝혀 둔다. 청춘의 재발견이다. 80년대는 이문열의 시대였다, 이문열을 얘기하지 않고 80년대를 넘어가기 어렵다. 지금의 중년이 이문열을 떠올린다는 것은 지나온 젊은 날의 고비고비를 떠올리고 추억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나온 많은 세월의 어느 순간에서도 이문열은 지금의 40~50대와 함께하고 있다. 실제로 그의 소설은 이 땅의 중년에게 가늠할 수 없는 충격과 영향을 주었다. 비록 우리 위 세대지만 그는 듬직한 길동무이자 우리를 열광케 한 생의 멘토였다. 그로 인해 우리는 사랑과 인생을 고민했고 남루한 현실을 생각하며 밤잠을 설쳤다.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시구절 ‘대추야자 꽃피는 아름다운 시절, 추락하는 모든 것은 날개가 있다’에서 제목을 따온 소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를 읽고 지독히도 광기 어린 사랑에 진저리를 쳤으며 책 서두에 등장하는 오스트리아 그라츠는 나에게 동경의 도시로 자리잡게 했다. 지금은 국민 배우쯤으로 인정되는 최민식을 알게 된 것은 강수연, 손창민이 등장하는 동명의 영화가 한몫했다. 젊은 날 누구나 한번쯤 근원적인 고민에 빠지게 했을 ‘사람의 아들’, 유장한 고어체 문장의 아름다움에 숨을 멎게 했던 ‘황제를 위하여’나, 권력과 인간의 위선적 속성을 통렬하게 까발린 ‘필론의 돼지’는 또 어떠했던가. 삶에 대한 고뇌와 불안으로 밤을 새우게 한 ‘젊은 날의 초상’은 나로 하여금 부끄러움에 떨게 했다. 얼마 전 EBS틀 통해 본 동명의 영화가 끝난 그날 밤 자정, 나는 속절없이 사라져버린 젊은 날을 생각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처럼 80년대를 거쳐온 우리들의 생의 마디마디에는 이문열이 함께하고 있다 그러나 80년대, 그 시절 청춘을 휘어잡았던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극단적인 찬사와 더불어 그에 비견하는 비판이 교직하고 있다. 작품 그 자체보다는 그가 드러낸 정치적인 주장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정치적인 견해를, 그것도 직설적으로 내뱉은 데 대한 거부감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진보 쪽 젊은 비평가들의 경우 가장 과대평가된 작가로 그를 첫손가락에 꼽았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문학적 성과에 비해 지나친 권력 보유’와 ’정치적 발언의 파장에 대한 책임 있는 태도 결여’가 이유라고 했다. 비판자들은 또 이문열의 숲에 들어서는 독자들이 그가 가꾸어 놓은 보기 좋은 나무들과 꽃들을 바라보는 데 취해 그 숲 전체가 내뿜는 이념 혐오의, 아니 탈현실의 독기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비판자는 이문열의 엄청난 대중적인 인기를 두고 당시 독재권력하에 엄혹했던 민중의 현실을 적당히 건드리면서 사실상 관념적인 낭만주의 세계로 80년대 준열한 사회의식을 희석시키거나 호도시켰다고 깎아내린다. 문학 문외한인 나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반론할 능력이 안 되고 또 일정 부분 공감이 가는 대목도 있다. 그러나 비평가들의 이 같은 전문가적인 지적과는 별개로 이문열은 그 시절 젊음을 열광케 한 괴력의 작가였다. 그가 보여준 허무주의, 낭만주의, 교양, 취미, 엘리티시즘 등등이 주는 매력을 우리는 정녕 무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소설은 물론이고 ‘레떼의 연가’ ‘사람의 아들’ ‘구로아리랑’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등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수많은 영화를 보고 울고 웃게 된다. 우리는 순전히 정치적인 지향 태도의 문제로 문학적 성과를 폄훼하는 일부의 비평에 마땅치 않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한 인간의 삶이 극렬한 치달음에 이르렀을 때 어떤 식으로 발화되는지를 문장으로 보여주는 흔치 않은 작가였기 때문이다. 이문열 키드쯤 되는 나는 매 학기 첫 강의시간에 나눠 주는 강의계획서 끝에 예외 없이 ‘더 베스트 이즈 옛 투 비’(The best is yet to be)라는 한 구절을 슬쩍 붙여 놓았다. 더러는 무심히 지나치기도 하지만 결국은 수강생 중 누군가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그럴 경우 그 구절의 의미를 뭉클한 맘으로, 내심 기다렸다는 듯이 설명해 준다. “우리가 동경 낡은 하숙집에서 굶주리며 조국 해방을 꿈꾸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쫓겨가야 하다니…” “아닐쎄…좋은 것은 언제나 미래에 있지 않은가. 미래에 올 그 무엇을 위해 우리는 시작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이문열의 초기 작품인 영웅시대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한국전쟁이 나고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전쟁 동안 북한 정권이 임명한 수원농대 책(서울농대 학장)으로 있던 주인공과 동료가 북으로 쫓겨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주고받은 대화다. 소설 속 주인공은 일제시대 동경 유학까지 다녀온 식민지 지식인으로, 작가의 월북한 친아버지가 모델이다. 더없이 극한 상황에서도 ‘좋은 것은 미래에 있다’는 주인공의 한마디는 당시 20대 청춘인 나에게 무한한 의미를 던져 주었다. 인터넷이 없던 80년대, ‘좋은 것은 언제나 미래에 있다’는 구절을 찾기 위해 도서관을 샅샅이 뒤졌고 결국은 로버트 브라우닝(1812~1889)의 시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아내게 된다. ‘영웅시대’가 이데올로기를 고민케 하는 작품이었다면 ‘젊은 날의 초상’은 80년대를 관통한 청춘의 성장통이었다. 서가에서 찾아낸 빛바랜 책에는 내가 20대 때 읽으며 밑줄을 그은 대목들이 불현듯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받은 잔은 마땅히 참고 비워야 한다”는 대목으로 인해 나는 지금껏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폭탄주를 이를 악물고 마시게 되었다. 또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그 진정한 출발이다”라는 대목을 무슨 탈무드의 잠언처럼 외우고 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특별히 드러내 놓을 것도 없는 나의 삶에도 이처럼 이문열의 영향을 받은 바가 적지 않다. 그래서 쏟아지는 비난의 대상이 된 그를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나의 심정은 안타깝다. 한때 더없는 구애의 대상이었으나 이제 초라해진 옛사랑을 마주하듯 비감스럽다. “비록 턱없는 감상과 애정 때문에 극적인 과장과 미화의 폐해를 입고 있긴 해도 이 갈피갈피에는 무슨 열병처럼 지나온 내 젊은 날들이 영원한 그리움과 회한으로 숨쉬고 있다”는 작가의 후기가 마치 변변치 않은 삶을 살아온 나의 고백 같아 부르르 떨린다. 계절은 어느새 겨울의 막바지에 와 있다. 문밖에 서성이는 봄은 각시방 영창에 달아 놓고 싶었던 수정 고드름을 녹이고 있다.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봄이 온다는 말이 실감 나는 계절이다. 봄은 만물을 소생케 한다지만 그 대상에 인간은 빠져 있다. 지난 시절은 장려했지만 새봄을 맞는 지금의 중년은 외롭고 허전하다. 그러나 옷을 벗은 산들이 다가올 봄의 신록을 거부하지 못하듯이 힘듦 속에서도 희망의 씨는 자라고 있다. 설날이다. 더없이 곤고한 상황에서도 그가 ‘영웅시대’를 통해 던진 한마디를 새겨 보자. 그래도 가장 좋은 것은 언제나 미래에 있으리 (The best is yet to be). 그때 종로 코아 빌딩 언저리 맥주집에서 ‘영웅시대’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던 그 시절 우리들의 청춘이 문득 그립다.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 yule21@empas.com
  • [옴부즈맨 칼럼] 전 대통령 국가장과 난민 아이의 주검/이인재 행정자치부 지방행정정책관

    [옴부즈맨 칼럼] 전 대통령 국가장과 난민 아이의 주검/이인재 행정자치부 지방행정정책관

    지난 한 주 동안 우리나라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면을 기리는 슬픔에 휩싸였다. 고인은 4반세기에 걸친 우리나라 민주화 대장정의 거산(巨山)이었다. 권위주의 통치를 종식시키고 금융실명제와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를 도입했으며, 아울러 불행했던 과거사를 정리하려 했던 시도는 국민들의 뇌리에 깊숙이 남아 있다. 한편 지난 9월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와의 내전을 피해 가족과 함께 바다를 건너다 익사해 해변에 쓸려 나온 빨간색 반소매 티셔츠의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에일란 쿠르디의 가슴 저린 주검 사진이 필자에게는 우리 국민이 함께 치러낸 장엄했던 국가장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다가온다. 국민과 난민의 차이는 무엇일까. 전쟁이나 재난을 당해 일정한 거처 없이 이리저리 떠도는 사람들 즉 국가가 지켜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 국민이 바로 난민이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우리나라도 비슷한 아픔이 있었다. 36년 동안의 피나는 대일항쟁, 6·25전쟁과 분단으로 점철된 동족상잔의 비극이 그것이다.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억제함으로써 주권과 평화를 수호하고 내부적으로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몫이다. 그 무엇보다도 국가가 먼저 건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행히 1930년대 세계 6위 부국에서 사실상 디폴트 상태로 추락한 아르헨티나나 전후 경제 대국에서 후진국으로 쇠퇴한 필리핀(11월 26일자)과 달리 우리는 전후 최빈국에서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일구어 낸 세계속의 한국이 됐다. 프랑스 파리에서 대규모 테러가 지구촌을 뒤흔든 이 시점에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조사되기도 했다(서울신문 11월 18일자 넘베오닷컴의 발표). 뿐만 아니라 2009년 골드만삭스의 보고서는 한국이 통일되면 2050년까지 독일, 프랑스, 일본을 앞지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통일한국은 세계 5대 경제대국”, 서울신문 11월 6일자). 하지만 어떤 국민이든 난민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현재 우리 사회는 젊은 세대의 일자리와 고령화 세대의 복지와 같은 이율배반적인 가치를 동시에 실현해 내야 하는 몹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저성장, 고령화, 이념·세대·지역 간 갈등 등 사회적 난제들도 부지기수다. 지정학적으로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있고 국제 정치·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미국이라는 주요 2개국(G2) 체제 속에도 끼어 있다. 박근혜 정부가 3년 6개월 동안 중단됐던 한·중·일 정상회의를 재개시키고 한·미·일 안보협력과 각종 정상회담을 통해 절실하게 외교적 성과를 도출했던 것은 열강 속에 ‘끼어 있는’ 우리나라의 처지를 발전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서울신문 11월 3∼6일자). 이제 개인의 이익과 정파의 이익에만 매몰돼 국가의 미래를 보지 못해서는 안 된다. 정치권과 정부 그리고 국민 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시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가 ‘통합과 화합’이었다. 그 메시지는 치열한 국제 정세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국가의 경쟁력을 키워 나가야 할 절박한 시점임을 강조한 잠언으로 다가온다. 공공성을 강조하는 서울신문이 우리 국민들의 성숙한 국가 의식을 견지해 내는 내용을 중장기적인 기획 기사나 캠페인을 통해 꾸준히 제기해 주기 바란다.
  • [씨줄날줄] 샤보프스키의 역사적 실언/구본영 논설고문

    오는 11월 9일.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이다. 1989년 그날 저녁, 뜻밖의 인물이 결정적 장면을 연출했다. 동독 공산당 신출내기 공보담당 정치국원이었던 귄터 샤보프스키였다. 여행 자유화 조치에 대한 동독 정권의 의중을 잘못 읽은 그가 기자회견장에서 얼떨결에 한 답변이 수많은 동독 주민을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가게 하면서다. 지난 1일 베를린의 한 요양원에서 86세의 일기로 눈을 감은 샤보프스키. 일찍이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공인들의 경솔한 언행을 경계했다. 즉 “입을 닫아 바보로 보이는 게 입을 열어 모든 의심을 해소하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고. 그런 견지에서 샤보프스키는 그날 엄청난 실수를 했다. 붕괴 직전의 체제를 지키려 안간힘을 쓰던 동독 정권의 입장에서는…. 그는 여행 자유화 조치가 언제부터 시행되느냐는 기자들의 빗발치는 질문에 더듬거리며 답했다. “내가 알기로는, 음, 지금 당장.” 호네커 정권은 헝가리 국경을 통한 동독 주민들의 탈주극을 보면서 마지못해 여행법 개정안을 만든 뒤 시간을 끌 요량이었으나, 샤보프스키가 사고를 친 것이다. 그의 실언은 장벽 붕괴의 도화선이 됐고 이듬해 10월 3일 독일은 통일됐다. 물론 통독의 주역이 한두 명일 순 없다. 이른바 ‘서방정책’으로 경제력과 삶의 질 등 모든 부문에서 동독과의 격차를 벌린 콘라트 아데나워 서독 총리는 그 주춧돌을 놓았다. 동서독 간 교류 확대로 서독 체제의 우월성을 알게 한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도 통독의 밑거름이었다. 그 기반 위에서 헬무트 콜 총리는 옛소련 등 2차대전 승전국을 설득해 “통일 열차가 플랫폼에 도착하면 올라타야 한다”는 지론을 실현할 수 있었다. 기승전결의 논리로 보면 베를린 장벽을 부수고 투표로 서독과의 흡수통합을 결의한 이름 없는 동독 주민들이 최종 주역일지도 모르겠다. 통독을 앞당기는 데 샤보프스키도 ‘의도와 달리’ 큰 구실은 했다. 그가 나중에 동독 공산당에서 축출되고, 통독 후에는 서독으로 탈출하는 시민들을 사살하도록 명령한 죄목으로 옥살이까지 한 것을 보면. 하지만 영국 사학자 버터필드는 “역사적 사건에는 역사의 진로를 사람들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돌리는 성질이 있다”고 했다. 그의 잠언에 비춰 보면 샤보프스키는 통독의 빛나는 조연이었음은 분명하다. 독일인들에게 각인된, 20세기 최고의 ‘아름다운 실언’과 함께 말이다. 올해로 독일 통일 25주년을 맞았지만, 한반도의 통일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다. 주민들의 배를 곯리면서 핵무장에 여념이 없는 북한이나 이에 둔감한 우리 내부를 보면 통일의 길은 아득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둠이 깊으면 새벽 또한 멀지 않다고 했다. 샤보프스키가 본의 아니게 예고한 역사의 격변이 한반도에 들이닥치기 전에 우리의 내실을 다질 때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당신도 마음이 아팠군요

    당신도 마음이 아팠군요

    상상병 환자들/브라이언 딜런 지음/이문희 옮김/작가정신/380쪽/1만 8000원 2009년 약물 과용 심장마비로 사망한 대중가수 마이클 잭슨은 평생 과도한 성형수술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심한 여드름, 아버지를 닮은 ‘왕코’, 유난히 검은 피부…. 그 치부(?)를 대중에게 감추려는 회피의 몸부림에 온갖 잡담이 쏟아졌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그 무성한 소문과 잡담 이면에 숨은 그의 개인적 고통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마이클 잭슨이 앓았던 그 고통은 의학적 용어로 말하자면 ‘심기증’에 해당된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건강염려증’이다. ‘뒷받침할 만한 의학적 증거가 없는데도 몸에 질환이 있다고 의심하거나 더 심한 경우 의심이 반복되면서 행동양식으로 굳어지고 멈추라는 무수한 암시 따위에 아랑곳없이 같은 생동과 실수를 반복하는 경향.’ 이렇게 정의되는 심기증은 모든 시대에 걸쳐 존재했다고 한다. 18세기에는 근대적 사치의 과잉에서 비롯됐고, 21세기 들어서는 과도한 여가와 의학 지식, 혹은 사이비 지식을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환경에서 기인한다고 여겨지기 일쑤이다. ‘상상병 환자들’은 예술문화 계간지 ‘캐비닛’ 영국지부 편집장이 심기증을 앓았던 유명한 위인들을 들춰 흥미롭다. 제임스 보즈웰, 샬럿 브론테, 찰스 다윈,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앨리스 제임스, 다니엘 파울 슈레버, 마르셀 프루스트, 글렌 굴드, 앤디 워홀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 가운데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몇몇 인물을 한번 들여다보자. ‘제인 에어’의 작가 샬럿 브론테는 늘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만성통증과 불안에 시달린 신경병 환자였고,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사람들과 어울리길 꺼려 고독한 시간을 간절히 원한 소화불량증 환자였다. ‘백의의 천사’로 널리 알려진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자신을 ‘병사들의 어머니’로 여긴 지독한 일 중독자였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미국 작가 앨리스 제임스는 질병마저 예술작업의 일부라 믿었던 감각과민증 환자였고, 프로이트가 논문 제목으로 이용했다는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 저자 다니엘 파울 슈레버는 여자가 되고 싶은 나르시시스트로 성기와 털이 사라지는 망상에 빠졌다고 한다. 이 밖에도 책에는 이른바 이름난 상상병 환자들의 이야기들이 소상하게 풀어진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약초 연기 자욱하고 빛이 들지 않는 집필실에 스스로를 가둔 천식 환자였으며, 캐나다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타인과의 신체접촉을 극도로 싫어해 손가락을 다칠까 봐 악수까지 거부하는 강박증 환자였다. 또 팝 아트 선구자 앤디 워홀은 여드름투성이에 딸기코인 얼굴과 왜소한 몸을 부끄러워한 외모 콤플렉스 탓에 미용 시술에 극도로 의존했다. 책은 주로 작가나 예술가, 혹은 많은 글을 남긴 저자를 대상으로 삼았지만 심기병을 앓는 사례들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어 흥미롭다. 그리고 그 상상병의 환자들은 군주며 정치인, 재계 거물 등에도 폭넓게 포진했을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하면 모든 이들이 앓고 있을 마음의 병이라는 것이다. 책의 특징은 그 마음의 병이 어떻게 유래했는지를 밝히는 데 있지 않다. “심기증의 역사는 더 확실하고 친숙한 의학사의 엑스레이 사진이다. 그 사진은 몸에 대한 우리의 희망과 두려움의 숨은 구조를 드러낸다.” 그 말처럼 마음의 병이 어떻게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독자들이 파악하게 만들고 있다. 종전 고통과 불안, 질병을 위인들의 위업을 돋보이게 하는 부속물로 여긴 것과 달리 상상병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관점의 역전’이 돋보인다. 그러면 그 심기병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저자는 유명인사의 유명한 명구로 답을 대신한다. “건강은 없다. 우리는 기껏 중립 상태를 누릴 뿐이라고 의사는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결코 건강하지 않으며 건강할 수도 없음을 아는 것보다 더 나쁜 병이 있을까”(존 던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이 세상에서 내 생각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은 바로 내 몸이다”(게오르크 크리스토프 리히텐베르크 ‘잠언집’) 옮긴이의 말은 조금 더 구체적이다. “어머니의 자궁에서부터 시작되고 주입되는 진단과 검사와 처방과 의심과 불안과 공포가 내면화되고 일상화된 세계에서 우리의 불안을 가장 기뻐할 이들은 누구일까.” 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새 책] 다윈-워홀-마이클 잭슨이 앓았던 병은?-상상병 환자들

    [새 책] 다윈-워홀-마이클 잭슨이 앓았던 병은?-상상병 환자들

      상상병 환자들, 브라이언 딜런 지음/이문희 옮김/작가정신/380쪽/1만 8000원    2009년 약물과용 심장마비로 사망한 대중가수 마이클 잭슨은 평생 과도한 성형수술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심한 여드름, 아버지를 닮은 ‘왕코’, 유난히 검은 피부…. 그 치부(?)를 대중에게 감추려는 회피의 몸부림에 온갖 잡담이 쏟아졌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그 무성한 소문과 잡담 이면에 숨은 그의 개인적 고통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마이클 잭슨이 앓았던 그 고통은 의학적 용어로 말하자면 ‘심기증’에 해당된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건강염려증’이다. ‘뒷받침할 만한 의학적 증거가 없는데도 몸에 질환이 있다고 의심하거나 더 심한 경우 의심이 반복되면서 행동양식으로 굳어지고 멈추라는 무수한 암시 따위에 아랑곳없이 같은 생동과 실수를 반복하는 경향.’ 이렇게 정의되는 심기증은 모든 시대에 걸쳐 존재했다고 한다. 18세기에는 근대적 사치의 과잉에서 비롯됐고, 21세기 들어서는 과도한 여가와 의학 지식, 혹은 사이비 지식을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환경에서 기인한다고 여겨지기 일쑤이다.  ‘상상병 환자들’은 예술문화 계간지 ‘캐비닛’ 영국지부 편집장이 심기증을 앓았던 유명한 위인들을 들춰 흥미롭다. 제임스 보즈웰, 샬럿 브론테, 찰스 다윈,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앨리스 제임스, 다니엘 파울 슈레버, 마르셀 프루스트, 글렌 굴드, 앤디 워홀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 가운데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몇몇 인물을 한번 들여다보자. ‘제인 에어’의 작가 샬럿 브론테는 늘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만성통증과 불안에 시달린 신경병 환자였고,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사람들과 어울리길 꺼려 고독한 시간을 간절히 원한 소화불량증 환자였다. ‘백의의 천사’로 널리 알려진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자신을 ‘병사들의 어머니’로 여긴 지독한 일 중독자였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미국 작가 앨리스 제임스는 질병마저 예술작업의 일부라 믿었던 감각과민증 환자였고, 프로이트가 논문 제목으로 이용했다는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 저자 다니엘 파울 슈레버는 여자가 되고 싶은 나르시시스트로 성기와 털이 사라지는 망상에 빠졌다고 한다.  이밖에도 책에는 이른바 이름난 상상병 환자들의 이야기들이 소상하게 풀어진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약초 연기 자욱하고 빛이 들지 않는 집필실에 스스로를 가둔 천식 환자였으며, 캐나다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타인과의 신체접촉을 극도로 싫어해 손가락을 다칠까 봐 악수까지 거부하는 강박증 환자였다. 또 팝 아트 선구자 앤디 워홀은 여드름투성이에 딸기코인 얼굴과 왜소한 몸을 부끄러워한 외모 콤플렉스 탓에 미용 시술에 극도로 의존했다.  책은 주로 작가나 예술가, 혹은 많은 글을 남긴 저자를 대상으로 삼았지만 심기병을 앓는 사례들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어 흥미롭다. 그리고 그 상상병의 환자들은 군주며 정치인, 재계 거물 등에도 폭넓게 포진했을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하면 모든 이들이 앓고 있을 마음의 병이라는 것이다.  책의 특징은 그 마음의 병이 어떻게 유래했는지를 밝히는 데 있지 않다. “심기증의 역사는 더 확실하고 친숙한 의학사의 엑스레이 사진이다. 그 사진은 몸에 대한 우리의 희망과 두려움의 숨은 구조를 드러낸다.” 그 말처럼 마음의 병이 어떻게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독자들이 파악하게 만들고 있다. 종전 고통과 불안, 질병을 위인들의 위업을 돋보이게 하는 부속물로 여긴 것과 달리 상상병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관점의 역전’이 돋보인다.  그러면 그 심기병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저자는 유명인사의 유명한 명구로 답을 대신한다. “건강은 없다. 우리는 기껏 중립 상태를 누릴 뿐이라고 의사는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결코 건강하지 않으며 건강할 수도 없음을 아는 것보다 더 나쁜 병이 있을까”(존 던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이 세상에서 내 생각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은 바로 내 몸이다”(게오르크 크리스토프 리히텐베르크 ‘잠언집’) 옮긴이의 말은 조금 더 구체적이다. “어머니의 자궁에서부터 시작되고 주입되는 진단과 검사와 처방과 의심과 불안과 공포가 내면화되고 일상화된 세계에서 우리의 불안을 가장 기뻐할 이들은 누구일까.”  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열린세상] 광복과 분단의 소중한 교훈/정성윤 통일연구원 연구부장

    [열린세상] 광복과 분단의 소중한 교훈/정성윤 통일연구원 연구부장

    내일은 조국이 광복되고 분단된 지 70년이 되는 날이다. 민족사에서 광복만큼 큰 기쁨은 없었고 분단만큼 큰 아픔도 없었다. 광복을 우리의 힘만으로 쟁취하지 못했기에 큰 아쉬움이 남으며, 분단 또한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됐기에 회한이 밀려든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70년을 안타까워하고 뉘우치고 때로는 한탄하며 보냈다. 하지만 비록 조국은 분단됐지만 국가 정통성은 한국에 의해 보존됐다. 더욱이 지난 70년간 한국은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고속 성장과 민주화의 발전을 이룩했다. 1648년 근대 국가체제 성립 이후 국가의 평균 수명이 채 20년이 넘지 못하고, 종전 이후 한국만큼 성장한 국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한국의 지난 70년은 경이와 축복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의 현실은 지난 70년의 기적에 자족하며 안주할 정도로 그리 녹록지 않다. 국가의 성장은 지체되고 있고, 사회적 갈등은 국가의 권능과 제도의 기대를 넘어서고 있다. 심지어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북한의 안보 위협 속에서, 그리고 주변 강대국들과의 치열한 국익 다툼 속에서 때로는 국가의 생존에 대한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역사는 되풀이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들은 되풀이한다”라는 볼테르의 말처럼 이 땅의 우리가 무엇인가를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우리 한국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가. 아마도 이에 대한 해답은 우리 조국이 걸어온 광복과 분단, 그리고 이후의 70년 역사 속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미래를 알고 싶거든 과거를 보라”라는 처칠의 잠언(箴言)처럼 말이다. 첫 번째 교훈은 국가의 최우선적 목표는 바로 생존이라는 점이다. 생존 없이는 번영도 없다. 냉엄한 국제정치 현실에서 국가의 생존은 국력에 달렸다. 구한 말 우리의 조상은 국제정세의 흐름과 우리의 능력을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오로지 실체 없는 도덕적 이상과 기약 없는 타국의 호의에만 의지했다. 그 결과 1904년 러일전쟁 직후 이토 히로부미가 고종 황제에게 주권 포기를 강요하는 진실의 순간이 찾아오고야 만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일본이 그랬듯이 근대화를 통한 국력 배양에 힘썼더라면, 국가의 생존은 부국강병을 통해 쟁취해 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우리는 패망이라는 역사적 전환점을 비켜 나갔을지 모른다. 또한 광복이라는 단어가 낯선 세상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국력 배양이 생존과 번영의 충분조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소중한 교훈이다. 국가의 능력은 상대적이다. 따라서 국력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의 문제가 중요하다. 즉 국가가 선택한 정치체제하에서 지도자가 어떠한 국가 전략을 어떻게 추진해 나가느냐를 통해 국력 운용의 성패는 결정된다. 분단 이후 근 20년 동안 북한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한국보다 상대적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이후 반세기 만에 북한은 지구촌의 대표적 실패 국가로 전락했다. 국가의 안위는 위태롭고 주민들은 굶주리고 있다. 북한이 후진적 정치체제를 고수하며 잘못된 국가 전략과 퇴행적 리더십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디로 그리고 어떻게 가야만 하는가. 해답은 통일에 있다. 통일은 한민족 공동체의 평화로운 생존과 번영에 소중한 기반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국력 강화를 위해 배전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통일을 위해서는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와 협력 그리고 국제사회의 지지와 공감대 확산이 중요하다. 국력의 신장만이 외교 역량을 키울 수 있다. 외교를 위한 나침반으로 정교한 국가 대전략도 필요하다. 이 속에 통일 청사진과 함께 민족의 지속 가능한 번영을 위한 혜안들이 담겨야 한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86%는 통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국민의 기대를 실현해야만 하는 냉엄한 책임이 이 땅의 지도자들에게 있다. 통일이 되는 날, 분단은 종식되고 우리는 제2의 광복이라는 또 다른 역사의 진실의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광복 70년이 되는 이날 그러한 벅찬 환희를 고대한다.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미의 심리학(앨런 싱크먼 지음, 배충효 옮김, 책세상 펴냄) ‘인간은 왜 외모에 민감하게 됐을까’ 아름다워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인간의 욕망에 복잡하게 얽힌 미(美)의 심리를 심층 탐색했다. 저자는 먼저 예뻐지고 싶은 마음과 노력은 질병도, 사회적 문제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 대신 신체 이미지는 자기애며 자기정체성과 긴밀한 내적 역학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아름다움을 향한 본능이 잘못 인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뻐지려는 욕망이 정상적인 수위를 벗어나면 성형중독이나 거식증, 폭식증같은 병증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대중매체와 소비문화 확산 탓이라는 주장에도 정색하고 반대한다. 최근의 사회문화적 압력과 별개로, 아름다움은 인류가 시대를 초월해 추구해 온 보편적 가치이며 아름다워지려는 욕구는 건강한 정상적 충돌임을 강조한다. 여기에 덧붙여 아름다움의 반대인 추함과 그에 수반되는 부러움과 질투, 원한 등을 심리치료를 통해 어떻게 다룰 지도 점검한다. 372쪽. 1만 7000원. 요가 수트라(B.K.S 아헹가 지음, 현천 옮김, 禪요가 펴냄) 지난해 별세한 인도의 요가 수행자 아헹가가 해설한 요가경. 요가의 ‘첫 스승’이라는 파탄잘리의 ‘요가 수트라’를 오랜 수행을 통해 친절한 안내서로 소개했다. 파탄잘리는 ‘요가 수트라’에서 무용, 수학, 천문학, 점성술, 물리학, 심리학, 시간과 중력 등 방대한 주제들을 영적인 지식으로 풀어 나갔다. 간결하고 함축적인 문장의 경문을 아헹가가 현대적이며 실제적인 용어로 다시 설명했으며 요가 수행의 미묘함과 완전함을 명료하게 밝히기 위해 애쓴 흔적들이 역력하다. 이번에 번역 출간된 ‘요가 수트라’는 그 원문과 영문 번역, 아헹가 해설을 차례로 함께 실었다. 요가·파탄잘리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와 삼매·수행·속성및 신통력·해탈 및 자유 등 네 개의 장에 대한 해설을 담아 요가 전반에 대한 자세한 이해를 돕는다. 국내 ‘아헹가’ 연구의 독보적인 존재인 스님이 경문의 의미를 정확하고 쉽게 전달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519쪽. 2만 8000원. 지극히 인간적인 삶에 대하여(이동용 지음, 동녘 펴냄) 독일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년 저작 ‘인생론’을 중심으로, 중요한 문제들을 환기시켜 인간이 삶의 주체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귀띔한다. ‘인생론’은 쇼펜하우어의 사상이 집약된 수상록. 칸트 철학의 맥을 잇는 후계자로서 스스로 진정한 의미의 형이상학자라 규정했던 쇼펜하우어의 철학과 사상 전반이 잠언 형식으로 담겼다. 괴테, 니체 등 후대 학자들이 애독했던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쇼펜하우어의 철학 위상을 바로잡고 맹목적인 자본 숭배의 사회풍조에서 인간적 삶을 회복할 수 있는 인식의 자유를 강조한다. 특히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대변하는 염세주의 철학에 대한 인식 바로잡기가 돋보인다. 염세주의는 현실의 무가치를 가르치는 철학이지만, 그것이 염세주의 철학의 궁극적 목적은 아니라고 강변한다.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를 양성하기 위해 염세주의 철학을 펼친 것이 아니라 삶을 이롭게 하기 위해 염세주의 철학방식에 몰두했을 뿐이다” 291쪽. 1만 5000원. 과학한다는 것(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김재영외 옮김, 반니 펴냄) ‘과학을 대중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예술로 생각하라’고 주장한 과학소개서. 저자가 과학을 예술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명쾌하다. 과학과 예술 모두 우리가 대하는 사물에 대한 통찰을 담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 관계성이 양자역학의 기초를 세운 닐스 보어의 ‘상보성’ 개념을 통해 풀어진다. “자연은 예술적 관점에서 ‘대지의 어머니’이기도 하지만,이와 상보적으로 자연과학의 관점에선 ‘천연자원의 원천’이기도 하다.” 과학이 진정한 깨달음을 얻으려면 예술과의 상보적 관계 속에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특히 과학이 예술과 함께 대중적 교양이 되기 위해선 개별적이고 전문화한 과학 지식을 ‘전체성’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512쪽. 2만 3000원.
  • 균형 잃은 공직자는 정보에서 손 떼라/ 김종식(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

    균형 잃은 공직자는 정보에서 손 떼라/ 김종식(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

    균형 잃은 공직자는 정보에서 손 떼라/ 김종식(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 정보는 분명 당면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예측하여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반면 정보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그 질적 가치에 따라 흥망이 크게 갈린다는 점이다. 우리 선조가 남긴 잠언 중에 ‘선무당 사람 잡고 반풍수(半風水) 집안 망친다’는 말이 있다. 얕은 생각이나 미완의 정보를 함부로 내세우다가 도리어 일을 망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즉 ‘잘못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는 오늘날 많은 분야에 적용되는 말이지만 정확성과 완전성, 적시성을 근간으로 하는 국가기관의 정보업무나 기업 또는 개인의 정보생활에 특히 부합되는 경구(警句)로 여겨진다. 경제학자 빌프레드 파레토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정보의 80%는 주변에 이미 널려 있다’고 하였다. 우리 주변에 수많은 정보가 범람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그러나 누구나 접근이 가능한 공개정보 중에는 혼란스럽거나 무가치한 것이 많이 섞여 있어 이를 어떻게 취사선택 할 것인지가 정보생활의 최대 관건이 되고 있다. 내가 본 것, 내가 들은 것 그 자체를 대단한 정보인 양 과신하여 바로 행동에 옮기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다가 망신한 사람의 수가 정보의 득을 본 사람의 수보다 많다. 정보는 ‘너무 가까이도 하지 말고 너무 멀리도 하지 마라’는 세속의 경험담이 정보의 속성과 형편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이렇듯 정보의 오류와 함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보의 신뢰성을 높일 이중출처를 활용한다거나 사안별로 ‘그럴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상상력과 함께 ‘그럴 수 있느냐’하는 의구심을 균형있게 가질 수 있는 뛰어난 통찰력이 요구된다. 이를 놓고 볼때 최근의 소위 ‘십상시 문건’ 파문은 첩보수집 또는 정보생산 과정에서 유지되어야 할 상상력과 의구심 간의 균형이 깨진 데서 초래된 정보 참사로 여겨진다. 이 정보보고서를 작성하거나 사용한 그들은 베테랑 정보맨들이었지만 ‘균형감각을 잃은 정보의 위태성’을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정보의 생명이 보안이라면, 정보의 가치는 균형에서 나온다는 말은 정보활동을 제대로해 본 사람이라면 실감하고 있다.. 미국ㆍ영국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정치ㆍ사회적 중요 쟁점이 있을때 정보의 평형(平衡) 유지를 위해 국가기관 스스로가 사립탐정(민간조사원)에게 민심이나 특정정보의 수집을 의뢰 하여 비교ㆍ보완 하기도 한다는 간절함은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 크다. 유달리 크고 작은 정보사고가 많았던 2014년을 회고하는 시민과 공직사회 주변에서는 부정확한 정보의 폐해를 빗대어 ‘무정보 상팔자(無情報 上八子)’라는 말까지 회자되고 있다. 이는 밤길에 네온사인 번쩍이듯 난무하는 과장정보나 허위정보, 역정보, 실기(失期)정보 등에 현혹되어 세상을 시끄럽게 했거나 그러한 유형의 일에 연루되어 조직에 누를 끼치는 등 창창하던 앞길을 망친 사람들을 바라보는 뼈아픈 교훈의 말 이다. 차라리 정보가 없었으면 팔자가 좋았을 텐데, 차라리 정보를 몰랐으면 편히 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와 탄식이 그것 이다. 그렇다 하여 정보를 외면하고는 하루도 살기 어려운 것이 오늘의 세상이다. ‘정보폭발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정보의 양(量)이 아닌 질(質)과의 싸움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않된다. 특히 오늘날 정보맨들은 정보선택의 문제와 함께 정보의 균형감각 유지 역량을 시험받고 있다. 정보는 선택과 균형의 적정 여부에 따라 보약이 될 수도, 독약이 될 수도 있음을 지난해 두눈으로 똑똑히 보아 왔다. 누구든 정보를 탓할 것이 아니라 ‘잘못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현명한 정보관(情報觀)의 재정립이 필요한 시대임을 특히 말하고 싶다. =========================================================== ※‘자정고 발언대’는 필자들이 보내 온 내용을 그대로 전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따라서 글의 내용은 서울신문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글의 내용에 대한 권한 및 책임은 서울신문이 아닌, 필자 개인에게 있습니다. 필자의 직업, 학력 등은 서울신문에서 별도의 검증을 거치지 않고 보내온 그대로 싣습니다.
  • 10년간 가장 사랑받은 시집… 류시화 ‘사랑하라… ’

    10년간 가장 사랑받은 시집… 류시화 ‘사랑하라… ’

    최근 10년간 국내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은 시집은 류시화 시인의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인 것으로 조사됐다. 27일 교보문고가 집계한 ‘2004~2014년 시집 판매 순위 톱20’ 자료에 따르면 류시화 시인의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 1위에 올랐다. 2005년에 출간된 이 시집은 치유를 주제로 동서양 시인들의 시 77편을 엮은 잠언시 모음집이다. 2위 역시 류시화 시인의 잠언시 모음집인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 차지했다. 류시화 시인이 2012년 15년 만에 펴낸 시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도 5위에 올라 그의 시집 3권이 20위 안에 든 것으로 나타났다. 3위는 2008년 타계한 박경리 작가의 유고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4위는 하상욱 시인의 ‘서울 시’, 5위는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이었다. 신현림 시인의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6위),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7위), 민예원 출판사에서 펴낸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시 100선’(8위) 등이 뒤를 이었다. 외국 시인 중에서는 일본의 할머니 시인 시바타 도요의 ‘약해지지 마’가 9위로 유일하게 20위 안에 들었다. 92세에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한 시인은 98세에 펴낸 시집이 일본에서 160만부 가량 팔리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고(故) 장영희 교수가 영미권 시인들의 시를 소개한 ‘축복’과 ‘생일’은 나란히 10위와 13위에 올랐다. 고전 시가 중에서는 통일신라 말기 학자이자 문장가인 최치원의 선집 ‘새벽에 홀로 깨어’가 19위로 2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병풍에… 두루마리 화장지에… 감동의 성경 필사

    병풍에… 두루마리 화장지에… 감동의 성경 필사

    서울 양천구 목동 기독교방송 CBS사옥에서 이색 전시가 성황리에 열려 화제다. CBS가 창사 60주년 기념으로 지난달 23일부터 목동 사옥 7층 전층에서 진행하고 있는 ‘한국교회 성경필사본 전시회’가 그것. 교인들이 일일이 성경을 옮겨 쓴 각양각색의 필사본 350점이 입소문을 타면서 연일 1000명이 넘는 관람객을 불러모아 주최 측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번 전시는 CBS가 3년 전부터 전북과 부산, 청주 등지에서 열어온 행사를 전국 규모로 확대해 처음 마련한 자리. 창사 60주년 기념 전시회 개최 소식이 알려지면서 전국의 필사자들이 참여했고 미국에서도 작품을 보내왔다고 한다. CBS 측은 “당초 작품성이 있는 필사본만 간추려 전시하려 했지만 접수된 작품마다 담긴 수고와 신앙고백이 예사롭지 않아 출품작 모두 전시하게 됐다”고 귀띔했다. 전시 초기엔 관람객이 하루 200명 정도에 머물렀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매일 1000여명씩 전시장을 찾고 있다. 전시회는 ‘한국교회 성경필사본 전시회’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성경 필사의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인천선린교회가 제공한 세계 최대 성경전서를 비롯해 교인들이 함께 힘을 모은 필사 성경, 희귀한 두루마리 필사본, 12폭 잠언 병풍 필사본, 두루마리 화장지에 쓴 필사본 등 다양한 성경 필사 작품들이 전시장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대한성서공회와 협력해 구한 사해사본이나 고어 성경, 대륙별 언어 성경 등 희귀성경 코너에도 발걸음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개신교계에서 성경 필사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차원에서 한 차원 더 발전된 각별한 신앙 표현의 하나로 인식된다. 국내에서 성경 필사가 크게 번지면서 대한성서공회가 이 같은 열기를 세계성서공회에 보고해 세계 기독교인들로부터 주목받게 된 풍속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전시된 필사 작품들은 하나같이 애틋한 사연을 담고 있어 관람객들의 시선을 모으며 감동을 자아낸다. 정확한 자간과 필체로 인쇄물을 보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필사본을 낸 전북 전주 동신교회 윤여선 권사는 “70세 때 필사를 시작해 20년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루 세 차례 7시간가량 필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삼덕교회 나순례 권사는 “까막눈이었지만 교회에서 성경공부 시간에 베드로전서를 숙제로 써가면서 한글을 터득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인천 참기쁜교회 강도성 권사는 “파킨슨씨병을 앓아 손 떨림이 심했지만 조금이라도 힘이 있을 때 성경을 가까이해야겠다는 결심으로 지난 10개월 동안 성경 66권을 필사해 전시회에 내놓았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재소자가 감옥에서 한 자 한 자 두루마리 휴지에 써내려간 성경 필사본이며, 성경 66권을 한 권 한 권 십자가 나무액자에 쓴 사연도 눈길을 끈다. 한편 전시장에선 전시 말고도 필사자들의 간증을 직접 듣는 시간을 포함해 청소년들이 파피루스에 성경구절을 직접 쓰고 그림으로 장식하는 ‘파피루스 체험코너’, 성경가훈 써주기 등 부대행사도 진행되고 있다.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무료로 이어진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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