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잔혹
    2026-06-18
    검색기록 지우기
  • 일본인
    2026-06-18
    검색기록 지우기
  • 호적
    2026-06-18
    검색기록 지우기
  • 꾸준
    2026-06-18
    검색기록 지우기
  • 안성재
    2026-06-1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903
  • 콜롬비아 마약왕/에스코바르 피살/현상금 70억원 걸린“천의 얼굴”

    남미 콜롬비아 출신의 세계적인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44)가 지난해 교도소를 탈출한지 16개월만인 2일 콜롬비아 메데인시에서 보안군의 총에 맞아 「화려했던」 생을 마감했다. 콜롬비아 RCN라디오방송은 그동안 집중 추적작전을 벌여온 보안군이 메데인 도심지의 대형 상가 안에서 에스코바르를 발견,옥상으로 달아나는 그를 사살했다고 보도했으며 이와 때를 같이해 콜롬비아 검찰총장도 에스코바르의 사망을 확인했다. 콜롬비아 최대 마약조직이며 한때 세계 최대 코카인 수출조직이었던 메데인 카르텔의 두목인 에스코바르는 지난 91년 자수했다가 92년 7월 교도소를 탈출한뒤 3천명으로 구성된 보안군 추적팀과 경찰 등으로부터 집중적인 추적을 받아왔다.미국과 콜롬비아는 에스코바르 체포에 8백70만달러(약70억원)의 현상금을 걸기도 했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에스코바르는 한때는 자선사업가로,정치인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다국적 기업을 거느린 마약조직의 잔혹한 대부노릇을 하면서 대통령후보를 비롯,판사·신문 발행인·경찰등 수많은 인명을 살상했다. 49년 메데인 근교에서 농민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에스코바르는 10대때 묘지의 비석을 훔쳐 팔아 범죄와 인연을 맺었으며 20대부터 마약조직에 뛰어든뒤 세계곳곳에 마약밀매망을 조직,마약조직의 두목으로 일대 변신했다. 에스코바르의 부인과 두 자녀는 최근 독일망명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현재 보고타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치욕의 사적」 철거로 얻는것/홍기삼 동국대 교수(정경문화포럼)

    ◎과거은폐 아닌 민족정신 바로 세우기/남북통일 대비 민족박물관으로 신축 한일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떨쳐버릴 수 없는 글 한편이 있다.양계초의 「조선멸망과 이유」(1910)라는 글이다.아마도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대해 비판한 글중에서 이처럼 잔혹하게,가차없이 구체적으로 비난한 글은 그 짝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조선인을 멸시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양계초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합병조약이 발표되자 이웃나라의 백성들이 오히려 조선을 위하여 많은 눈물을 흘렸는데 조선 사람은 기뻐하고 만족해 하였으며 고관들은 날마다 출세를 위한 운동을 하여 새 조정의 명예스런 벼슬 얻기를 바랐으며 가볍게 즐기었다.무릇 조선사람 천만명 중에 안중근과 같은 사람이 하나 둘쯤 없었던 것은 아니다.내가 어찌 일률적으로 멸시하겠는가』 천만명중에 한둘쯤 있는 안중근정도를 제외한다면 조선인 전체를 일률적으로 멸시하기에 충분하다는 내용이다.웃어넘기자니 걸리는 대목이 한두군데가 아니고 정색을 하고 받아들이기엔 안하무인격인 그의 난폭한 비난을 견디어 내기가 어렵다.다음과 같은 대목은 더 구체적이다. 『중국편은 수년이 못되어 일본편이 되고 또 수년이 못되어 러시아편이 되고 또 변하여 일본편이 되었으니 오직 힘이 강하여 보살펴주거나 옹호해줄 수 있는 자면 따랐던 것이다.대개 전세계에서 개인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는 조선이 그 으뜸이다.(중략)조선사람은 화를 잘 내고 일을 만들기를 좋아한다.한번 모욕을 받으면 곧 팔소매를 걷어올리고 일어난다.그러나 그 성냄은 얼마 안가서 그치고 만다.한번 그치면 곧 이미 죽은 뱀처럼 건드려도 움직이지 않는다』 한민주에 대한 모멸은 이 정도로 그치지 않고 여러 부면에 대한 원색적 비난으로 계속된다.소위 근대 중국의 위대한 사상가·문학가로 명성 높은 양계초는 우리나라의 개화기 문사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친 사람중의 하나이다.그런 그가 조선은 가장 붕당이 많고 음모를 좋아하는 나라이며 외국의 전쟁이나 일어나게 하는 매우 상서롭지 못한 나라라는 것이다.뿐만 아니라 조선사회는 음험하고 부끄러움이 없는 자가 항상 우수한 세력을 이루고 있다고도 하였다.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이제 오직 더럽고 비린내나며 음침하고 어두운 낭패와 치욕의 사적만이 남았다.길이 백두산의 눈빛(설색)을 더렵혀서 씻을 수가 없게 되었다…』 「총독부」철거문제가 찬반양론으로 크게 갈리면서 치욕의 역사도 역사다라는 논리가 대두되었다.양이 말한 「치욕의 사적」을 상기하게 하는 대목이다.그런데 치욕의 역사도 역사라는 논리에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속의 과거사를 의미하는 부분도 함축되어 있다.그러나 이점은 곰곰 생각해봐도 매우 이상하다.「총독부」건물과 그 기능은 과거라는 시간의 화석속에 묻혀버린 역사의 퇴적층이 아니며 이미 과거 속으로 사라져간 사건도,산골이나 이름모를 들녘 어느 구석에 버려져있는 작은 비석같은 것도 아니다.그것은 여전히 우리나라의 심장부에 우뚝서서 경복궁을 가로막고 있다.그것은 과거완료형으로 종결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한국인의 삶속에서 구성적 기능을 수행하는 현재진행형의 「치욕의 사적」이다.치욕의 역사도 역사다라는 논리의허구성은 이 점을 간과한 것에 있다. 「총독부」를 헐자는 것은 치욕의 사적을 헐자는 것이지 과거를 은폐하자는 것이 아니다.그렇게 해서라도 민족의 비뚤어진 정신을 바로 세워보자는 것이지 어리석게 뒤늦은 분풀이를 하자는게 아니다.없앰으로써 얻어야할 소중한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며 양과 같은 사람들로부터 참혹한 비난을 벗어나 당당한 민족의 미래를 지향해 가자는 뜻이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제 정부의 방침이 선철거 쪽으로 정해졌다하니 다음과 같은 두가지 문제를 지적해 두고자 한다. 첫째,단시일내에 박물관을 건립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점이다.수십년이 걸리더라도 부실한 공사를 해서는 안된다.그것은 또 하나의 범죄를 저지르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둘째,남북통일을 대비해서 명실상부한 민족박물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통일이 되면 남북의 유물은 물론이고 만주일대 고대유물의 풍부한 유입도 예상해야하기 때문이다.관련 당사자들의 진지한 사명감을 거듭 촉구하는 바이다.
  • 윤금이씨 배상금 7천여만원 받아/공대위 새달 해체

    「주한미군의 윤금이씨 살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와 유족측은 26일 미국측으로부터 7천1백45만3천75원의 손해배상금을 지난 23일 받았으며 이로써 지난해 10월말 경기도 동두천시 미군클럽 여종업원으로 있다 케네스 마클 이병에게 잔혹하게 살해된 윤씨의 손해배상건이 완료됐다고 밝혔다. 「공대위」및 윤씨의 유족측은 지난해 12월 법무부 산하 국가배상심의위원회에 가족 배상금 1억원,위자료 3억5천만원 등 모두 4억5천2백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배상심의위원회측이 유족 배상금 6천4백66만7천1백75원,위자료 4백55만원 등 7천1백여만원을 산정,미국측에 통보하고 미국측이 이를 수용함에따라 배상을 받게 되었다. 유족과 공대위측은 배상금이 기대에 못미친 것이나 거부할 경우 본격적인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하며 이 경우 한미행정협정의 규정상 피고 개인에게 배상이 청구돼 절차가 매우 까다로워 이를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말했다.
  • “국경탈출자 화형” 중국인들 폭로(북한 이모저모)

    ◎자동차 등 연료 메탄가스로 대체 ○생활고로 탈출 빈발 ○…지난해 북·중국경지역에서 탈출하다 체포된 북한주민이 「화형」에 처해진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화형식」을 직접 목격한 중·북국경거주 중국인들이 북한의 잔혹성과 비인간성을 최근 폭로함에 따라 드러났다. 중국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지난해 10월 북·중국경지역 자강도 서산에서 중국으로 탈출하다 체포된 한 북한주민의 「화형식」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화형에 처해진 북한주민은 수심이 얕고 강폭이 좁은 강변을 이용하여 중국으로 탈출,민가에 들어가 「곡식」을 훔치다가 주인에게 붙잡혀 북한으로 송환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화형식을 진행하기 앞서 국경지역 중국인들에게 『지난번에 도둑질한 사람을 처형하니 와서 보라』고 선전까지 한다. 화형식은 강가 모래밭에 말뚝을 박고 여기에 탈출자를 묶어 꿇어앉혀놓고 휘발유를 뿌린 후 불을 질러 화형에 처했다고 증언자들은 밝히고 있다. 북한은 최근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주민들의 국경탈출이 빈발하자 탈출주민들에 대한 처벌을 한층 강화하고 있는데 「화형식」은 이같은 처벌강화의 한 수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선 현장 보급 주력 ○…북한은 최근 전반적인 에너지난 해소의 일환으로 자동차·트랙터 등의 연료를 메탄가스로 대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방송들에 의하면 북한은 각종 부유물들을 썩혀서 만드는 메탄가스를 활용할 때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효율과 에너지대체효과를 감안,전국 각지에 중·소형 메탄가스 발생로·저장탱크 등을 건설토록 독려하는 한편 과학기술자들을 동원,새로운 활용방안을 연구하면서 그 성과 및 경험을 학교·일선현장 등에 보급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복날도 “가을날씨” ○…올 여름철 북한지역에서도 전반적 저온현상과 시기별·지역별 강수량차가 극심한 이상기후가 계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정부기관지 민주조선 최근호에 의하면 지난 6월 북한전역의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섭씨 0.5도,7월 평균기온은 섭씨 1∼2도가 낮았으며 대부분지방의 초복∼중복간 기온이 평년보다 2∼3도 낮게나타나는 등 『마치 가을날씨처럼 선선한 날씨가 계속됐다』는 것이다. 평양지방의 경우 7월 평균기온은 섭씨 22.3도로 평년보다 1.9도가 낮았으며 낮 최고기온이 29도가 넘는 날은 7월중 2일에 불과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또 강수량에 있어서도 6월중 강수량은 북한전역에서 평년의 1백30∼2백%로 증가한 반면 7월중에는 평년보다 현저히 감소,『파동성이 매우 심하게 나타났다』면서 6월엔 가뭄이,7월엔 장마가 드는 전통적인 북한날씨를 고려할 때 『올해 날씨는 보통날씨와 현저한 차이가 있다』고 이 신문은 강조했다.
  • 방송위,「오박사…」「특종…」 중징계/비도덕적 대사·잔혹한 장면방송

    방송위원회(위원장 김창열)는 지난 16일 열린 정기총회에서 SBS­TV 「오박사네 사람들」에 대해 「시청자에 대한 사과」명령과 「해당 프로그램 연출자의 3개월간 연출정지」를,그리고 MBC­TV 「특종!TV연예」에 대해서는 「시청자에 대한 사과」명령과 「해당 방송 책임프로듀서에 대한 경고」결정등 중징계처분을 내렸다. 「오박사네 사람들」은 지난달 19일과 27일 방영분을 통해 장모와 사이 사이에 비도덕적인 대화가 오고가고 의료기구를 이용해 비속한 장면을 연출하는등 선량한 풍속을 해치고 방송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이같은 조치를 받았다.「특종!TV연예」는 총격전,칼을 휘두르며 벌이는 잔인한 격투장면등이 지적됐다.한편 SBS측은 지난 12일 「오박사네 사람들」 담당자를 주병대 PD에서 윤인섭 PD로 교체했다.
  • 「생명문화연」 소장직을 떠나며 정의채 신부(인터뷰)

    ◎“인명 존중의식 확대돼 기뻐”/서강대 석좌교수로 연구 계속할터 『이제 생명의 개념이 사회전반에 어느정도 자리가 잡혔다고 봅니다.건강도 좀더 돌보고 연구에도 전념할겸 연구소장직을 떠날까 합니다』 오는 26일 「사회적 환경과 생명」세미나를 끝으로 서강대부설 생명문화연구소 소장직을 떠나는 정의채신부(68).그는 『지난 91년말 연구소가 출범하던 당시의 사회는 몇년 내리 발생한 어린이 유괴사건,잔악한 살인사건,낙동강 페놀사건등 생명파괴행위가 극에 달하던 시기였습니다.그러나 다행히도 생명문화연구소가 생명이 인간 최고의 가치임을 지향해오는 동안 유괴살해사건과 잔혹한 행위등이 많이 사라져 큰보람을 느낍니다』라고 술회했다. 『더욱이 이제는 범학문적 범종교적 범민족적으로 자연보호와 생명존중에 대한 국민의식 변화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는 그는 사임후에도 연구소 상임고문으로,또 서강대 석좌교수로 남아 연구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카톨릭대를 나와 로마 올바노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수여한학자신부로 서강대교수·카톨릭대학장등 학문의 길과 불광동성당·명동성당 주임신부등 성직자의 길을 함께 추구해왔으며 「생명연구」「형이상학」「중세철학사」등을 비롯,많은 저서를 갖고 있다. 『건강을 다시 추스려 원래의 전공인 철학연구에 더욱 매진할까 합니다.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아우구스티누스의 중요저서를 번역하는등 할일은 많습니다』
  • 일가족 등 살해범 2명에 사형 선고

    서울형사지법 합의25부(재판장 양삼승부장판사)는 3일 동거녀와 셋방주인인 전안기부직원 지양렬씨(61·서울 성북구 석관동) 일가족 3명등 모두 4명을 살해한 박기태피고인(28·서울 성북구 석관동)과 이필완피고인(40·서울 동대문구 제기동)등 2명에게 살인죄 등을 적용,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박피고인등은 사전에 범행을 모의하고 결박당해 항거할 수 없는 피해자들을 차례로 목졸라 숨지게 하는 등 범행수법이 잔혹해 극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 유고 전범재판소 안보리 설치 의결

    【유엔본부 로이터 연합】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5일 국제 유고전범재판소 설치를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옛 유고슬라비아 지역에서 자행된 살인 강간 고문 인종청소등 잔혹행위 관련자들에 대한 재판을 담당할 이 국제법정은 모두 11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네덜란드의 헤이그에 설치된다.
  • 마클이병 무기선고/윤금이양 살해사건

    지난해 10월 경기도 동두천시 미군클럽 여종업원 윤금이씨를 살해한혐의로 기소된 미 제2사단 소속 케네스 마클 이병(20)에게 검찰의 구형량과 같은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서울형사지법 합의24부(재판장 변동걸부장판사)는 14일 이 사건 선고공판에서『검찰의 공소사실이 모두 인정된다』며 마클피고인에게 살인죄를 적용,이같이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자신이 휘두른 음료수병에 맞아 실신해 쓰러진 피해자의 신체에 잔혹한 행위까지 한 것은 인간으로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반인륜적인 행위인데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엄성마저 저버린 것으로 비난을 면키 어렵다』며『특히 이같은 범행을 저지르고도 법정에서 반성은 커녕 자신의 죄를 축소·은폐하고 제3자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행위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마클피고인은 이날 자신의 공소사실이 재판부에 의해 모두 유죄로 인정되자 침울한 표정으로 재빨리 법정을 빠져나갔다. 마클피고인은 지난해 10월28일 새벽 1시께 경기도 동두천시의 미군전용 클럽에서 윤씨를만나 함께 술을 마신뒤 윤씨의 방으로 갔다가 사소한 시비끝에 윤씨를 실신시킨후 신체 일부에 콜라병과 우산을 꽂고 합성세제를 뿌리는 등 잔혹행위를 하며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었다.
  • 마클이병 법정밖의 「여론재판」/박성원 사회부기자(현장)

    ◎방청객들,불평등 한­미행협 성토 『살인미군 처단하고 민족자존 이룩하자』 14일 상오 서울형사지법 417호 대법정. 동두천 미군클럽 여종업원 윤금이씨 살해사건 선고공판은 재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청석의 대학생·시민들이 케네스 마클 피고인(20·미제2사단소속 이병)을 향해 육탄돌격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1백92석의 방청석과 빈 공간을 가득 메우고도 모자라 법정 밖에서 선고를 기다리던 이들 학생·시민 8백여명이 구호와 함께 마클 이병을 향해 달려들자 법정에 나와있던 미군범죄수사대(CID)요원등은 마클을 데리고 황급히 법정을 빠져나갔다.난감해하는 재판장을 앞에 두고 정이및 전경들과 방청객들이 뒤엉켜 몸싸움을 벌였다. 이날 재판의 쟁점이었던 난행부분에 대해 재판부는 『사체에 뿌려진 세제위에 피가 여러 방울 떨어져 있는 점등으로 볼때 윤씨를 병으로 내리친 피고인의 소행임이 분명하다』고 유죄를 인정했다.그러나 이날 법원 1층 로비는 사형을 구형하지 않은 검찰과 한·미행정협정(SOFA)을 성토하는 방청객들의 농성장으로변했다. 한 학생이 벌떡 일어났다.그는 『오늘 우리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미군범죄를 공개재판에 끌어올려 국법으로 단죄하는 작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라며 『그러나 잔혹하고 반인륜적인 만행을 무기징역 구형으로 그쳤던 한국 검찰을 각성시키는 싸움을 우리는 시작해야 합니다』고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윤금이살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찬국씨(67·전연세대부총장)가 나섰다. 『지금까지 우리 법원이 형을 선고한 1백여건의 미군범죄는 거의 모두 교도소시설 미비 등을 이유로 한미행정협정상의 「호의적 고려」조항을 내세운 미군측에 신병을 빼앗겨 왔습니다』 방청객들은 이날 공판보다도 훨씬 오래 걸린 법정밖의 여론재판에서 미국측의 공식사과를 꼭 받아내고 말겠다는 결의에 차 있었다. 숨진 윤씨 어머니 강공례씨(53)를 앞세우고 「민족해방가」를 부르며 플래카드를 들고 전철역까지 행진을 벌이는 이들의 시위를 보고 아직 재판은 끝나지 않았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 마클이병 무기구형/윤금이씨 살해 공판

    서울지검공판부 김정기검사는 24일 경기도 동두천 미군클럽 여종업원 윤금이씨 살해사건과 관련,불구속 기소된 미제2사단소속 케네스 마클 이병(20)에게 살인죄를 적용,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날 논고문에서 『피고인이 윤씨를 잔혹하게 살해하고도 법정에서 범행사실을 부인하는등 반성의 빛이 없어 현역 군인신분을 감안하더라도 극형에 처해야 마땅하나 나이가 어리고 범행이 우발적이었던 점을 참작,무기징역을 구형한다』고 밝혔다.
  • 안혁·강철환씨가 말하는 참상(요덕15호 북한정치범수용소:16)

    ◎지상의 생지옥:라/함경도 월광령 99고개 넘어 수용소에/멀미하는 9·6살 철부지 밤새 운송/살아선 못건넌다는 「마의 입석천」이…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쓴 웃음이 나온다.수용소로 끌려가던 날,「죽음의 고개」를 넘던 날의 황당했던 경험은 지금까지 아픈 기억으로 가슴에 못박혀 있다.우리 앞에 잔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철부지는 훗날 얼마나 가혹한 운명의 나락으로 떨어져야 했던가. 처음 보는 산과 나무들은 9살밖에 안된 어린애에겐 가슴설레게 하는 것들이었다.울창한 숲,맑은 내,신기한 나무와 꽃들은 한여름의 정취를 흠뻑 담고 있었다.북한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다는 평양.그곳 중심지에 있는 「교통소아파트」에서 살아온 나에겐 그런 모든 풍경들이 신기했을 뿐이었다. 이삿짐을 실은 소련제 트럭도 그랬다.간단한 짐 속에 끼어 한없이 산길을 달리는 기분은 어린 나를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그땐 차도 흔하지 않았을 뿐더러 소련제 트럭을 한번 타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평양을 떠나 꼬불꼬불한함경도 산길을 달릴때만 해도 철모르던 나와 동생은 이러한 기분에 휩싸여있었다.『야,저런데서 고기잡고 놀면 재미있겠다』 우리에겐 그때가 여름방학이었다. 그렇게 6∼7시간을 달리다 보니 해가 지고 칠흑같은 어둠이 찾아들었다.울퉁불퉁한 황톳길을 마냥 달린 탓인지 「좋아라」하던 동생은 언제부터인지 심한 차멀미에 시달려 얼굴이 창백했다.나도 견디지 못해 토하기 시작했다.소련제 트럭은 이에 아랑곳않고 헤드라이트를 환하게 켠채 한없이 산속을 향해 달려만 갔다.『우리 집에 다시 가자』 6살박이 동생이 기어코 울음을 떠뜨렸고 엄마를 찾았다.엄마는 우리가 끌려오기 달포전 『출장을 간다』며 집을 떠나 우리와 동행하지 않았다.뒤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혁명열사의 딸로 분류된 어머니는 반동인 아버지와 이미 강제이혼 당해 우리 곁을 떠난지 오래였다.그것도 모르고 나와 동생은 그 엄마를 찾은 것이다. 소련제 트럭은 아무 것도 보이지않은 산길는 계속 뒤뚱거리며 앞으로 나가기만 했다.인가의 불빛은 물론 지나치는 차조차 없었다.그저 어둠뿐이었고 소련제 트럭이 내는 굉음이 전부였다.참다못한 할머니와 아버지가 『애들이 다 죽는다』며 앞좌석에 탄 책임자같은 사람에게 조금만 쉬어갈 것을 간청했다. 깡마른 체구의 책임자는 인상이 참 험상궂고 나이는 30대 초반쯤 되어 보였다.허리에 권총을 찬 그는 『거의 다왔다』고 톡 쏘아붙인뒤 더이상 말이 없었다.할머니는 우리를 껴안으며 『어린 것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말도 제대로 못이었다.그저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만을 훔치고 있었다.그때서야 나는 어렴풋이 「뭔가 잘못되어 가는 구나」하는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였다. 언제부턴지 차의 속도는 눈에 띄게 떨어져 걷는 것보다 조금 빨라보였다.길도 겨우 트럭이 지나갈만 만큼 좁았고 거기다 가파른 경사였다.수도 없는 모퉁이를 따라 도느라 트럭의 뒤뚱거림은 한결 심해졌다.움푹 패인 웅덩이로 이어진 듯한 길옆을 자세히 보니 깎아지른듯한 벼랑이었다.자칫 굴렸다하면 산산조각이 날 것만 같았다. 아흔 아홉고개,북에선 「죽음의 길」로 통하는 정치범수용소로 통하는 월광령 고개에 다달은 것이다.산등성이 너머로 방향을 바꿔가며 이쪽 저쪽을 비추는 희미한 불빛이 아스라히 보였다.그 서치라이트 속에서 내가 10년을 갇혀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꿈에나 알았겠는가. 어렵사리 고개 정상 부근에 다다르자 길고 두꺼운 나무 차단기가 설치된 초소에서 보위원들이 우리 가족을 검문했다.소련제 트럭운전사는 아버지가 준 일제시계를 뇌물로 받고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우리는 3개의 초소를 더 거쳤다.그때마다 보위부원들이 물건을 빼앗아가는 바람에 이삿짐은 한결 가벼워졌다. 길솟은 풀숲 사이를 헤치고 나서니 그림책 속에서 본것과 비슷하게 생긴 「귀틀집마을」이 나타났다.사방은 숲으로 우거진 칼날같은 산이 에워싸고 있고 곳곳에 깊은 소가 있는 폭 10여m쯤의 강이 마을을 에워싸듯이 흐르고 있었다.살아선 건널수 없다는 「마의 입석천」이었다.마을 앞에 난 가느다란 둑이 이 강을 건너는 유일한 통로였다. 배정받은 흙벽집에 짐을 풀어놓으니 어느새 먼동이 떠 올랐다. 수용소 생활에서 죽음같은 고통이 뒤따를 때마다 나는 월광령 너머,입석천 건너의 세상을 언제나 꿈꾸었다.그리고 끌려오던 날이 꿈속에 나타나는 가위눌림에 몸부림쳤다.
  • 올 아카데미상 시상식 29일 개최/최우수작품상 3파전 양상

    ◎후보 5편… 「용서받지…」 등 3편 유력/주연상/여­에머 톰슨 물망 남­알파치노 등 각축/감독상/조단·앨트먼·아이보리·이스트우드 경합 올해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은 어느 영화가 차지할까.또 최우수 주연여우상과 남우상의 영광은 누구에게 돌아갈까.오는 29일 개최될 제65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보름여 앞두고 세계영화팬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17일 미영화아카데미가 발표한 주요11개 부문 가운데 최우수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는 「하워드가의 종말」「용서받지 못한자」「센트 오브 어 우먼」「어 퓨 굿 맨」「크라잉 게임」등 5편. 이중 수상이 가장 유력시되는 영화는 감독상 여우주연상등 9개부문상 후보에 오른 「하워드가의 종말」과 주연남우상 감독상등 역시 9개부문상 후보에 오른 「용서받지 못한자」,그리고 「어 퓨 굿 맨」의 3파전이 될것으로 할리우드 영화관계자들은 점치고 있다. 「하워드가의 종말」은 20세기초 판이한 배경과 사고를 가진 두 집안을 통해 계급갈등,인간의 탐욕,사랑과 화해를 밀도짙게 그린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용서받지 못한자」는 무법자생활을 청산한 한 총잡이가 부패보안관에 대항,다시 잔혹한 킬러로 변해가는 과정을 강렬한 메시지를 담아 묘파한 리얼리즘영화로 평가받고있다. 또 「어 퓨 굿 맨」은 한 젊은 해군법무관이 군수뇌부의 회유와 압력속에서 병사의 억울한 사망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과정을 매우 예리하면서도 이지적으로 묘사한 수작이란 찬사를 받고있다. 감독상후보에는 「크라잉 게임」의 닐 조단,「하워드가의 종말」의 제임스 아이보리,「플레이어」의 로버트 앨트먼,「센트 오브 어 우먼」의 마틴 브레스트,「용서받지 못한자」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등이 올라있는데 이중 제임스 아이보리와 마틴 브레스트 로버트 앨트먼의 경합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세계영화팬들의 가장 큰 관심을 모으고있는 여우주연상에는 에머 톰슨(하워드가의 종말) 수잔 서랜던(로랜조의 오일) 미셸 파이퍼(러브 필드) 패숀 피시(마리 맥도넬) 카트린느 드뇌브(인도차이나)가 경합중인데 이중 제일 유력시되는 여우는 에머 톰슨.그녀는 이미 「하워드가의 종말」을 통해 아카데미상의 지표가 되는 골든글로브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데다가 경합중인 여배우들이 그녀에 필적할만한 연기력을 인정받지 못하고있어 수상이 거의 확실시된다는 분석들이다.그러나 남우주연상은 이와는달리 클린트 이스트우드(용서받지 못한자)알 파치노(세트 오브 우먼) 덴젤 워싱턴(말콤X)이 각축을 벌일것으로 예상하고있다. 이밖에 남우조연상에는 잭 니콜슨(어 퓨 굿 맨)과 진 헤크먼(용서받지 못한자)이,여우조연상에는 바네사 레드그레이브(하워드가의 종말)와 조앤 플로라이트(황홀한 4월)의 경합으로 압축될것으로 영화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 세르비아 강경지도자 단죄 처리/유엔 결의 「유고전범재판소」 기능

    ◎전세계 분쟁지 인권유린도 심판/신병확보가 난제… 실효 미지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2일 유고내전 전범 처벌을 위한 국제전범재판소를 설치하기로 결의한 것은 세계 분쟁지역에서 자행되고 있는 잔혹행위에 철퇴를 가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국제전범재판소설치는 비단 옛유고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곳에서나 반인륜적 잔학행위를 자행한 책임자들에게도 적용될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이번 전범재판소설치는 제2차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한후 독일 뉘른베르크와 일본의 도쿄에 설치된 전범재판소와는 판이하게 다른데다 그후 처음으로 승전국이 아닌 유엔결의를 통해 설치된 것이어서 더욱 주목되고 있다. 미국·프랑스등 서방국가들이 주축이 돼 채택된 이번 전범재판소 설치결의안은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에게 전법재판소의 기능에 관한 세부적인 제안을 60일 이내에 마련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이 제안이 마련돼 다시 안보리의 승인을 얻게 되면 구유고연방의 인종청소,강제수용소,조직적인 강간행위및 대량학살에 책임이 있는자들을 심리대상으로 하게 된다. 현재까지 유엔전범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지목한 전범은 없지만 미국무부가 지난해 12월 전범으로 지목한 인물들은세르비아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세비치와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주민 지도자 라도반 크라드지치,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민병대사령관 라트코 몰라디치와 7명의 세르비아계및 크로아티아계 민병대 지휘관,그리고 포로수용소장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때 전범재판에서 내려진 형벌은 교수형이나 종신형이 대부분이었다.2차대전에서 잔악한 행동으로 악명높았던 나치전범들을 처벌하기 위한 뉘른베르크국제군사재판에서는 레지스탕스와 유태인등 4천명을 학살한 리옹의 백정 클라우스 바르비와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독가스로 유태인 6백만명을 학살한 나치의 친위대당 아이히만등이 모두 교수형에 처해졌다. 또 패전국 일본에서 연합국 최고사령관 맥아더원수가 개설한 군사재판소에서는 관동군 사령관으로 남경학살의 주역을 담당했고 총리대신을 지낸 도조 히데키등이 사형을선고받았다. 그러나 2차대전이후에는 전범에 대한 단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과거 「킬링필드」라 불리는 캄보디아의 폴 포트정권이 자행한 대량학살도 국제재판에까지는 이르지는 못했다. 2차대전이후 처음으로 본격적인 전범재판을 하겠다고 나선 유엔의 이번 결의가 유고내전종식에 얼마나 도움이 되고 세르비아측에 과연 정치적인 타격을 안겨줄지는 미지수다. 전쟁직후의 군사재판과는 달리 유고전범재판은 실제 재판소설치까지 수개월이 걸릴뿐더러 인권유린의 당사자를 가려내는 문제와 전범자의 신병확보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엔의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번 결의가 냉전이 붕괴된이후 잔혹한 인권유린을 일삼고 있는 지역에 더이상의 범죄행위를 예방하고 억제하는데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 윤금이씨 살해미군 오늘 첫 공판/서울지법 재판부 판결에 관심

    ◎검찰,살인 등 유죄입증 자신감/형확정땐 한국교도소 수감 동두천시 미군클럽 여종업원 윤금이씨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미 제2사단 소속 마클 케네스 리이병(21)에 대한 첫 공판이 17일 하오 서울형사지법 합의24부(재판장 정호영부장판사)심리로 열렸다. 당초 이 사건은 윤씨가 살해된 뒤 신체일부에 콜라병과 우산이 꽂히고 합성세제가 뿌려지는등 범행수법이 잔혹한데다가 우리 수사당국이 마클이병의 신병을 미군측에 넘겨준 채 불구속기소함으로써 논란을 빚었던만큼 재판과정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건발생직후 「한국교회여성연합」등 재야단체들로 구성돼 마클이병의 구속수사를 요구하며 서명운동까지 벌였던 「윤금이살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동대표 김찬국목사)는 『이번 재판은 단순히 한 미군의 범죄에 대한 판결의 의미를 넘어 미군범죄에 대한 우리민족의 자존심과 주권이 심판받는 중요한 재판』이라며 공명정대한 재판과 처벌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재판부에 보내기도 했다. 재판부도 이 사건에 쏠리고 있는 여론을 감안,법정을대법정으로 지정하고 경찰에서 1개중대 1백50여명의 병력을 지원받아 법정주변에 배치토록하 는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또 원활한 재판진행을 위해 지금까지 주로 통역대학원생들을 통역사로 쓰던 것과 달리 미군 법무관실에 근무하는 한국인을 통역사로 지정해 놓기도 했다. 마클이병의 살인혐의부분은 수사관계에서 마클이병이 자백한 만큼 이에대한 유무죄여부는 다툼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살해후의 난행부분은 마클이병이 완강히 부인하고 있어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마클이병의 구두에 묻어있던 합성세제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식결과 윤씨의 사체위에 뿌려진 것과 동일한 것으로 판명돼 검찰은 난행부분 입증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현재 경기도 평택시의 「캠프 험프리」에 있는 미육군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마클이병은 최종형이 확정되면 우리 교도소로 이감된다. 또 형확정 이전이라도 재판부가 증거인멸및 도주의 우려등을 이유로 마클이병을 법정구속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한미행정협정(SOFA)에 따라 미군당국과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한다. 어쨌든 우리땅에서 우리 국민을 무참히 살해하고서도 3개월여만에야 우리 법정에 서게 되는 마클이병에 대해 재판부가 어떤 심판을 내릴지 주목된다.
  • 동구권 헝가리계 자치권 요구(세계의 사회면)

    ◎루마니아 등 거주 3백만명 캠페인 전개/세르비아 인종청소에 생존 위기감/민족분규로 비화땐 “제2유고사태”/“헝가리정부의 음모”… 각국,강경대응 경고 유럽 여러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헝가리계 소수민족이 유고내전의 영향을 받아 자치권획득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이같은 헝가리계 소수민족의 움직임은 민족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유고내전에 이어 또다른 민족분규로 비화돼 자칫 유럽전역이 혼미의 소용돌이에 휩싸일지 모른다는 우려감마저 나돌고 있다. 그동안 잠잠하던 이 지역에 소수민족의 자치권획득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세르비아계가 유고지역에 살고 있던 회교도등 타민족에 대한 인종청소를 하면서 헝가리계인들을 살해하거나 함께 내쫓았기 때문이다. 옛 유고에서 쫓겨난 헝가리계인들은 현재 집을 떠나 난민생활로 전락하기도 하고 그중 약 2만명은 헝가리로 피란해 있는 실정이다. 유고내의 인종청소가 헝가리계 소수민족에까지 미치자 인접 루마니아와 슬로바키아에 살고있는 헝가리계 소수민족도 이대로 있다가는 언제 이런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나머지 자치권획득을 위한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여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헝가리계인들이 이처럼 인접국에 살게 된 원인을 굳이 따지자면 헝가리가 1차대전을 치르면서 영토의 상당부분을 잃게 되면서 자국인이 그 지역에 살게 된 것이다. 현재 자치권획득에 열을 올리고 있는 헝가리계 소수민족은 헝가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세르비아등 3곳이다.이들을 국별로 분류해 보면 루마니아에 약 2백20만명,슬로바키아에 60만명,유고슬라비아에 약 38만명으로 모두 3백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들이 내세우고 있는 자치권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영토를 자치령으로 설정해 모든 업무와 행정에 자국 언어를 사용하겠다는 것. 이에대해 헝가리정부 또한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요세프 안탈 총리는 최근 자신이 1천5백만 헝가리계인의 총리임을 전제,인접국에 있는 3백만명의 자국민보호에 소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헝가리의 한 고위관리도 『관련 인접국들이 헝가리계 소수민족이주장하는 자치권을 무시한다면 결국 민족분규를 일으켜 또다른 난민들의 행렬을 몰고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고내에서 자국민들이 추방당하는 사태를 잘 알고있는 헝가리계인들 역시 인접국들의 부당한 처사에 못마땅해 하고 있다.이들은 필요하다면 인접국들에 대한 좀더 강경한 군사적인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루마니아를 비롯한 관련인접국들은 소수헝가리계인들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어림없는 일이라며 시큰둥하고 있다. 이들은 헝가리계인들의 자치권획득은 결국 헝가리가 부추기고 있는 음모라고 몰아붙이면서 헝가리계인들이 이를 행동에 옮길 경우 그만두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다. 관련인접국들이 이처럼 강경한 입장을 밝힌 것은 옛날의 원한에 뿌리를 두고 있다.이들은 헝가리가 1차대전당시 빼앗긴 영토의 회복을 위해 2차대전때 독일 나치에 가담해 자신들에 가한 잔혹한 행위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헝가리계 소수민족의 자치권을 둘러싸고 헝가리와 관련당사국들이 갈등을 해소하지 않고 구원에 얽매여 물고 늘어질 경우 자칫 제2의 유고사태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는 상황이다.
  • 여성불안 추방(신한국 원년:22)

    ◎「성폭력 근절」 전사회적 대처/특별법 제정… 성범죄 처벌규정 강화/피해자 인권 보장… 고소·고발 활성화 최근 국제형사기구가 발간한 세계 각국의 성범죄 발생현황 자료는 우리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이 자료는 우리나라에서 1년동안 강간이나 추행을 당하는 여성은 25만명정도로 이는 세계 3위에 해당한다고 밝히고 있다. 성에 대한 얘기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거론하는 자체를 점잖지 못한 것으로 여겨왔던 우리사회의 도덕윤리관에 비쳐볼때 놀라운 일이 아닐 수없다. 그러나 여성단체들의 주장은 더 한층 심각하다. 우리나라의 성범죄 신고율은 2%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30%선에 이르는 미국등 외국과는 상대적으로 비교해볼때 우리의 성범죄율은 세계 최고라는 것이다. 형사정책연구원의 통계에 따르면 신고된 강간의 경우만해도 지난88년부터 90년 사이에 3배가 넘는 폭발적인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특히 피해자의 연령이 점차 낮아져 13세 미만의 피해자가 30%에 달하고 있으며 잔혹한 살인을 동반하는 사건이 갈수록 늘어나 96%의 여성이 강간의 두려움을 안고 생활하는 것으로 이 자료는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한 인간의 권리를 무참하게 짓밟고 더 나아가 한 가정의 질서를 파괴하는 반인륜적 행위인 성폭력에 대한 심각성은 성에 대한 남성위주의 가치관 등으로 인해 최근 2∼3년전부터야 사회적인 문제로 심각하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성폭력상담소의 최영애소장은 『성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방식은 본질은 피한채 눈가림식 정책으로만 일관하고 있다』면서 『법으로 다스리지 않으면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성범죄에 대한 처벌규정을 강화하고 성범죄의 발생을 예방하는 한편 발생한 범죄에 대한 고소·고발을 활성화하는 것이 이 법안의 골자를 이루고 있다. 또 이 법안은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측면에도 주안점을 두고 있다. 여성단체협의회 여성단체연합등 각종 여성단체에서는 특별법의 제정과 관련,▲친고죄 조항의 폐지 ▲여성이 저항할 수 없는 성폭력도 강간으로 인정할 것 ▲성폭력의 범위를 「성을 매개로 한 불안·공포·불쾌감 유발행위」로 확대할 것등을 강력하게 건의하고 있다. 여성의 취업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면서 직장내 성폭력도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난해 여성단체협의회가 조사한 바로는 직장내 성폭력의 유형이 언어폭력 83·6%,물리적 폭행 24·4%,강간등 직접적인 성폭행이 15·4% 등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특히 신체적 접촉이 일어나는 장소가 직장 안이 74·7%이고 남들이 있을 때가 28%로 직장내의 성폭력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와함께 여성계에서는 남편의 아내 구타도 성범죄의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낸 자료에 따르면 45·8%에 이르는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매를 맞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김차기대통령은 지난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성폭력피해자와 남편으로부터 학대받는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위기센터및 보호시설을 전국 15개 시도에 설치,운영할 것을 공약한 바 있다. 김차기대통령과 새정부는 또 성폭력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대중매체등 성폭력을 유발하는 사회환경을 정화하고 모든 형태의 폭력을 근절시켜 여성들이 안심하고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총체적인 대책수립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여성계에서는 이와관련,아직까지도 강간행위를 보호받을 만한 정조와 보호받지 못할 정조로 나눠 다루는 사회의 인식부터 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를위해 어린이가 학교에 입학하는 시점부터 연령에 맞는 성교육을 실시,남자는 공격적이고 여자는 방어적일 수밖에 없다는 그릇된 고정관념을 해소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여성계에서는 이밖에도 ▲경찰·검찰에 성폭력전담부서를 설치 ▲퇴폐유흥업소등 유해환경에 대한 지속적인 단속 ▲가정폭력에 관한 법률을 제정,가해자에 대한 처벌및 치료의 근거를 마련해줄 것 등을 건의하고 있다.
  • 희곡작가 박조열씨(이세기의 인물탐구:12)

    ◎연극계에 신풍일으킨 “지적작가”/발표하는 작품마다 주옥편·문제작·수작 일색/특유의 표현력으로 주제부각… 관객들 매료/「오장군의 발톱」으로 백상예술상대상·희곡상 수상 박조열이란 이름은 몰라도 희곡 「오장군의 발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이 희곡은 74년당시 예륜의 「공연불가」판정으로 연극계를 떠들썩하게 했고 88년 해금되어 문예극장대극장 무대에 올려졌을때 「역시 박조열 희곡」 찬탄을 금치못하게 했다. 탄탄한 극적 구성과 그 소재의 특이성,해학적이라 할 작가특유의 언어 표현의 탄력성은 여전한 저력을 과시했다. 그의 작가적 자존심은 연극의 어디에서도 잔재주를 부리거나 관객에게 아부하지 않는다.진지하게 대상에 정면 대결하면서 작품이 의도하는 바를 연극속에 용해시켜 설득력있게 관객의 심금을 움직이게 하고있다.어떤 소재를 어떤 시각으로 다루던 극의 테마를 작품 전편에 도도하게 깔고있으면서도 지성의 감성을 잃지않는 것도 대단하다.감상과 정조에 탐닉한 나머지 작품의 객관성을 파괴하는 일도 없다.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무대를 바라보면서 한정된 공간속에서 빚어지는 여러종류의 갈등을 저나름대로의 시각으로 판단하게 한다.그는 연극의 격조뿐아니라 이를 감상하는 관객을 그만큼 존중해주는 작가다. 연극계데뷔 28년만인 91년,첫희곡집 「오장군의 발톱」을 펴냈을때 평소 그를 총애해 마지않던 연극계의 원로 여석기씨는 그의 희곡집출간을 「기특하다」고 표현했었다.「기특하다」는 표현을 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지독하리만큼 「과작」인 그가 과연 「책한권」이 될만한 분량의 희곡작품을 썼느냐는 것이다.두번째는 「남달리 깐깐하고 결벽성이 강한 그가 자작품을 모아 한권의 책으로 엮어 세상에 선보이겠는가」하는 평소의 그의 사람됨과 성품을 꿰뚫어 알고있는 입장에서의 소견이다. 어쩌면 수년후로 미루거나 또는 영영 이루지 못했을 이 창작희곡집은 그를 아끼는 후배들의 권유와 강요에 못이긴 소산인 셈이다. ○30년간 쓴 희곡 9편뿐 박조열은 연극계에 몸담은지 30년동안 단 9편의 희곡을 썼을 뿐이다. 단9편의 희곡만으로 그는 연극계의두드러진 존재가 되었고 그의 희곡은 어떤 누구의 작품보다 많이 연극무대에 올려졌다.이는 뛰어난 작품성과 글에 대한 완벽주의,확고한 주관의 작가정신 때문임을 새삼스럽게 거론할 필요는 없다.세속적인 것에 대한 일체의 거부,불의와 뻔뻔스러움을 용납치않는 단호한 의지는 희곡을 쓰지않는 동안의 여러 글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그 좋은 예로 그의 대표작이자 문제작인 「오장군의 발톱」을 들수있다. 「오장군­」은 문예진흥원이 주는 첫번째 창작희곡지원작가로 선정되어 쓴 작품이다. 성은 「오」이고 이름은 「장군」인 이 땅의 무식하고 가난하고 순수한 심성을 지닌 한 농부와 군대에 간 아들 걱정으로 잠못이루는 따뜻하고 다감한 이땅의 모든 어머니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뚜렷한 명분없이 단지 주인공이 「소총병」이며 「반전」과 관련된 대목이 삽입됐다는 이유만으로 이 연극은 연습도중 발이 묶여 긴 어둠속에 사장됐었다. 공연이 좌절됐다는 실망도 실망이지만 이에 충격받은 작가는 이때부터 창작의욕을 잃고 붓을꺾다시피 긴 칩거에 들어갔다. 그 이전까지는 그의 희곡이 무대에 올려질 때마다 관객의 호응과 평자들의 주목을 받아 그때마다 「정신세계가 풍요로운 지적 작가」로 지적되곤 했다. 데뷔희곡인 「관광지대」는 당시의 국시인 「유엔을 통한 남북통일 정책을 위반」했고 「미국 대표를 냉소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논란되면서 대학극의 단골 레퍼토리가 되는등 젊은 연극도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또 작가로 하여금 「희곡의 재미」를 체험케하여 극작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게된 계기가 되게했다. 다음작품인 「토끼와 포수」는 달리 설명을 하지않아도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작품의 하나다.이 연극은 「우리 연극계에 일대 신풍을 일으킨 무대」로 평가받았다. 속도감있게 전개되는 극진행과 대사와 대사의 숨막힐 듯한 불꽃대결,연극만의 특권인 대사해학과 동작변화의 반전시도는 관객의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이 연극은 김정옥연출로 극단 민중극장이 초연하여 동아연극상대상·연기상·극본상을 휩쓸었고 지금도 각 극단들이,그리고 지방극단·대학극에서 다투어 무대에 올리고 있다. 이렇게 발표하는 작품마다 「주옥편­문제작­수작」일색이었다.그중에서도 「목이 긴 두사람의 대화」는 이른바 우리연극에서의 반연극·불조이극의 시범이라 할수있는 극작법이 특징이다. 통일문제가 극도로 터부시되던 시절,그 벽을 뚫기위한 방법으로 동문서답식의 모호성과 추상성을 의도적으로 구사하여 작품이 말하려는 진의를 맨끝장면에서 관객이 깨닫게하는 은유법으로 극을 만들어나갔다.이 연극을 통해 관객들은 흥미롭고도 자극적인 새로운 관극경험을 할수 있었다. ○흥미롭고도 자극적 「오장군­」의 「공연불가」방침에 못지않게 그를 분노케한 것은 오장군에 대한 연극계의 비겁한(?)침묵이었다.그것이 부당한 판정임을 알면서도 누구하나 부당함을 말하려하지 않았다. 생계수단으로 방송극에 손대는 동안에도 그는 그에게서 「연극」을 빼앗아간 분노가 앙금처럼 가슴에 남아 이를 회복하겠다는 일념에 불탔다.정신적으로 왕성하던 시기에 혼신의 힘을 쏟아 희곡에 손댔고 얼마든지 샘물처럼 글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에,누군가 그를 가로 막아버린 것이다.창작의 샘물줄기를 잔혹하게 절단시켜버린 것이다.그는 비수같은 노여움을 죽이고 오로지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드디어 86년 연극협이 처음 설치한 극작분과위 초대위원장에 추대되자 먼저 「규제 작품」들을 구제하는데 총대를 메기로 결심했다. 「남북문제」 「통일문제」에 대한 규제의 한계가 불투명하고 기껏 「단어 한자」에 신경을 곤두세우려는 그 법자체가 설득력이 없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래서 첫번째 시도로 그해 「한국연극」(4월호)에 「표현에 대한 한계장황과 개선책」공개서한을 발표했다. 글 자체는 부드러웠으나 「공연법자체가 헌법에 위반되는 법률」임을 전제,「공연윤에서 윤리적으로 잘못된 부분들을 가시적인 잣대로 규제하려들기보다 이를 오히려 자정기능에 맡기라」고 은근히 꼬집었다. 이를 기화로 신문·방송과 각분야전문지들은 일제히 「표현의 자유」를 다투어 보도하는등 이를 다각적이고도 집중적으로 조명하기에 이르렀다.그는 제11회 서울연극제 심포지엄에서도 『표현의 자유란 무엇인가를 적극적으로 생각하자』고 역설,이어서 「한국연극」 「공간」 「예술과 비평」지 등에 같은 논조의 글을 발표,일본연극전문지 「신극」에도 이후 4년간 한국연극계 동향에대한 평문을 기고하여 일반과 전문기관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당위성과 인식을 일깨우는데 앞장섰다.그는 표현의 자유를 부르짖기 위해 일본 동경대 교수인 오쿠다이라 야스히로(오평강홍)의 「표현의 자유」(전3권)등의 저서를 구입하여 밤새도록 세밀분석으로 독파한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1·4후퇴때 월남 88년 비로소 긴 어둠에 갇혔던 「오장군­」이 「햇빛」을 보게 되었다.그리고 극단 미추의 손진책 연출로 어렵게 막올린 「오장군­」 공연은 그의 가슴속의 울분을 속시원히 씻어줬을 뿐만아니라 전례없는 대호평으로 그해 백상예술상대상의 영광을 안겨주었다.그는 연극계에 돌아왔다.그처럼 아끼고 사랑해온 연극계 중심부에서 이제는 리더의 위치로 우뚝 서게 되었다. 박조열은 함남함주에서지주의 외아들로 출생,문학하는 친척이 집안에 있어 쉽사리 문학적 분위기에 빠져 들어갔다.도스토예프스키와 안톤 체호프,버나드 쇼와 몰리에르에 심취하여 그때까지는 막연히 소설가를 꿈꿨을뿐 극작가가 되리라곤 상상치 못했었다. 고향에서 중학교 교사로 있다가 「지주신분」을 숨긴 것이 드러나 산간오지로 좌천되면서 월남을 결심,1·4후퇴때 흥남부두에서 남쪽으로 가는 LST에 승선했고 묵호항 정착후 육군에 지원,12년간의 군복무시절의 삽화를 정리한 것이 연극 「오장군­」이다. 험준한 산악 최전방 소대원으로 근무하던 51년,허약체질인 그가 고된 산중의 강행군을 견디다못해 「자결」을 결심하려던 순간,어디선가 그를 황급히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는 「자결한 아들의 소식」을 듣게될 어머니의 한을 생각하면서 어려운 고비를 넘긴 과거를 간직하고있다. 그때 산중의 목소리는 「생사조차 알길없는 당신의 외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가이없는 정념이 천리길 첩첩산을 넘고 휴전선 지뢰밭을 넘어」그에게 와닿는 순간이었음을 그는 생생하게 기억하고있다. 그는 남편을 존경하고 믿는 부인 최선분여사(58)와 공부잘하는 외아들(현섭씨·31·서울대 대학원 박사과정)과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어머니 그리운 마음」에 밤새도록 술 마시며 눈물지을 때가 잦다고 말한다.그리고 고향을 등진지 40년이 지난 오늘도 어제일처럼 손에 잡히고 눈에 밟히는 두고온 산하,고향의 얼굴들이 잊힐리야 없다.따라서 남북통일문제는 그의 희곡속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커다란 기둥줄기가 될수밖에 없음을 이해할 만하다. 그는 요즘 15년만에 국립극장 가을공연 위촉작품과 태평양국제연극제를 위한 새 희곡 집필에 들어가 있다.그의 손으로 찾은 「표현의 자유」이후 주제를 마음껏 펼칠수 있는 최초의 작품이 될것이다.작가의 사명감과 투철한 작가정신,깐깐하고 곧고 불의와 세속을 거부하는 그의 작품세계는 연극의 자존심을 돌이켜 아마도 또하나 우리에게 「자랑스러움」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된다. □연보 ▲1930년10월 함남 함주군 하조양면 지주인 박승훈씨와 최한익여사의 1남4녀중 장남 ▲47년함남중학(구 함남고보)졸업 ▲49년 중등교원 자격시험합격(문학),원산공업학교교사­마전리중 전근 ▲50년 흥남철수때 월남,육군지원입대이후 12년간 군복무 ▲63년 육군예편,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 연구과정(극작수업),단막희곡 「관광지대」(단막희곡 28인선 수록) ▲64년 장막희곡 「토끼와 포수」극단 민중극장 초연 ▲65년 희곡 「소식」극단 민중극당 초연 ▲66년 단막희곡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극단「탈」초연 ▲67년 단막희곡 「불임증 부부」(저승에서 만난 부부)극단 「탈」초연 ▲70년 희곡 「흰둥이의 방문」 ▲74년 희곡 「오장군의 발톱」예륜 「공연불가」판정 ▲75년 여석기씨와 함께 한국극작워크숍 창설 ▲76년 희곡 「가면과 진실」(문예진흥원 창작희곡지원작가),희곡 「조만식은 아직도 살아있는가」 ▲79년 한국최초의 FM 음악드라마 「음락가의 소상」(11개월 집필) ▲80년 독립투쟁과 사상분열사를 다룬 장편다큐멘터리 「땅의 아들들」(10개월 집필) ▲83년 일본연극계 견문 ▲86년 한국연극협회 극작분과위원회 초대위원장 ▲88년 「오장군의 발톱」해금(극단 미추 초연) ▲89년 ITI(국제연극협회)헬싱키총회 참석 ▲92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산하 세계문학 연구소 심포지엄에서 「한국연극계의 글라스노스치」강연,일본마에바시(전교)예술제 심포지엄서 「한국의 현대연극」강연,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태평양국제연극제 극단 미추의 「오장군의 발톱」공연참관 ▲88∼현재 숭의여전 문창과 출강 동아연극상 대상(희곡상),제8회 대한민국 방송대상,백상예술상 대상(희곡상) 「오장군의 발톱」「총독 돌아오다」「한국현대단막극선」
  • 「빈국의 핵」 통제에 높은 실효성/화학무기금지협정의 영향력

    ◎「스타트Ⅱ」 이은 군축 대진전/북한 등 거부국가는 치명타 13일 전세계 1백20여개 국가가 참가한 가운데 조인된 화학무기금지협약(CWC)은 핵확산금지조약(NPT)과 더불어 군축을 위한 인류의 획기적인 성과로 평가된다. 이 협약은 특정종류의 대량파괴무기를 전면폐기하는 것으로서는 사상 첫 국제협정이 된다.특히 지난해 말의 제2단계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Ⅱ)에 이은 대규모 군축협정이라는 점과 1백개가 넘는 국가들이 참여하는 범세계적 협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화학무기는 핵무기와 더불어 가장 파괴적인 대량살상무기로 인간에게 잔혹한 피해를 안긴다는 점에서 비인도적 무기로 간주돼 왔다. 생산비용이 낮고 제조가 비교적 쉬워 「빈국의 핵무기」로 불려 온 화학무기는 제3세계 국가들까지 보유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사실상 핵보다도 인류에게 더큰 잠재적 위협이 돼왔었다. 이 협약은 북한을 비롯해 전쟁때 화학무기를 사용한 바 있는 이라크및 화학무기 보유국으로 추정되는 일부 아랍국들에 대한 견제를 우선적인 목표로 하고 있다.특히 이 협약에 참여하지 않고있는 북한등에 대해 큰 압력수단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9월 유엔군축위원회에서 최종합의된 이 화학무기금지협약은 발효후 10년안에 화학무기와 그 생산시설을 모두 폐기하고 필요할 경우 가입국은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유엔의 사찰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 협약에 따라 앞으로 특정국이 화학무기를 비축 또는 생산하고 있다는 의문을 어느 한나라라도 제기하면 조약 사무국은 즉각 사찰작업에 들어가게 된다.사찰단은 의심이 가는 시설주변에 48시간안에 차단선을 설치해 화학무기재료를 대상국가가 빼돌릴 수 없도록 하는 한편,5일안에 사찰을 끝내야 한다. 만일 해당국가가 사찰을 거부하면 즉각 화학무기 관련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돼 국제적 제재조치를 받게된다.이 강제사찰조항이 협약의 실효성을 한층 높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65개국 이상의 비준을 거쳐 오는 95년 1월 발효되는 이 협약에는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스라엘 베트남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 에티오피아프랑스 이집트 미얀마등도 참여할 뜻을 이미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화학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과 이스라엘의 핵무장을 두려워하고 있는 아랍권의 20여개 국가들이 비준을 거부하고 있어 당장 큰 성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다만 장기적으로 이들 국가가 협약가입을 계속 거부할 경우 무기제조는 물론 산업발전에 필요한 기타화학물질에 대해서도 금수조치등의 국제적 압력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여 화학무기 억지효과는 충분히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 일 작가,「20만 대학살」 증언록 발간

    ◎“남경의 일제병사 살인을 즐겼다”/당시 미 선교사의 생생한 일기 발굴/세딸 교대난행… 일가 13명 죽이기도 『일본 군인들은 집안에 있던 할아버지(75),할머니(74),한 어머니와 그의 세딸(16,14,?)을 포함해 모두 13명을 죽였다.그들은 딸 한명마다 3차례씩 강간한뒤 가장 소름끼치는 방법으로 죽였다』 남경 대학살 사건을 직접 본 몇 안되는 외국인이었던 미국 개신교 선교사 존 매기씨는 당시 일기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20세기에서 가장 잔인했던 이 사건에서 일본군은 남경을 손에 넣은 1937년 12월13일부터 6주동안 모두 20만명의 중국인을 죽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일기는 50년 넘게나 숨겨져 있다 지난 91년 뉴욕 교외에 살던 매기의 한 손자가 집 지하실에서 찾아냈다. 그후 이 일기는 일본의 작가 다키다니 지로가 지난달 발간한 「남경사건 목격자」라는 제목의 책에서 처음으로 햇빛을 보게됐다.이 책은 매기의 일기외에도 이 사건을 겪고 살아남은 당시 중국 군인과 민간인들의 이야기도 곁들여 놓았다. 그 6주동안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는 문제는 일본에서는 여전히 논란거리이다. 집권 자민당의 중의원 의원이자 우익성향의 작가인 이시하라 신타로(석원신태낭)는 지난 90년 미 플레이보이지와 회견하면서 이 사건에 대한 중국측 주장은 거짓이라고 주장했으며 일 교과서는 아무런 내용도 담고 있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나 다키다니씨가 펴낸 이 책을 보면 그 내용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일본군이 1937년 12월13일 중국의 당시 수도인 남경을 손에 넣자 일본당국은 외신기자 5명 등 22명의 외국인만을 그 곳에 남게 했다. 남경이 떨어지기 한달전부터 매기와 다른 사람들은 전투에서 도망쳐온 민간인에게 안전한 은신처와 음식 등을 주기위해 남경 도심에 특수지역을 만들었다.그 곳은 곧 사람들로 터질 지경이었으며 심지어 대학 건물들과 외국인의 가정에까지 수천명의 사람들로 붐볐다. 12월19일께 강간과 살인은 아주 버젓이 벌어졌다고 매기씨는 일기에서 그 때를 회고했다. 『살인과 강간으로 얼룩진 한 주일이었다.일본군은 눈에 띈 죄수들을 죽인 것은 물론 나이가 많건 적건 수없는 민간인들을 죽였다.그들가운데 대부분은 토끼사냥때의 토끼처럼 총에 맞고 죽었다』고 그는 증언했다. 그는 이어 자기가 서있던 곳 가까이에서 일본 군인 2명이 머리에 두차례나 총으로 쏴 사람을 죽였다면서 『그들은 마치 토끼를 사냥하듯 사람을 죽인 뒤 담배를 피우고 웃고 즐겼다』고 덧붙였다. 매기씨는 이와함께 일본군이 죄수들을 집단으로 걸어가게 해놓고 뒤에서 기관총으로 쏴 죽인 뒤 시체들을 한데 모아 불태워 버린 잔혹행위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또 안전지역안에서 일본군이 여성들을 강간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면서 성폭행을 벗어날 수 있는 단 한 방법은 여성이 음식물을 토해 방안을 더럽히는 것으로 그러면 군인들이 그들을 내쫓아 버리게 된다고 쓰고 있다. 매기의 일기는 다음해인 38년 2월3일로 끝을 맺고 있다.그러나 그는 남경에 계속 머무르면서 피난민들을 돕기위해 일한다. 그는 또 합쳐서 37분 정도 되는 필름 4통을 지니고 있다가 밖으로 몰래 빼낸다. 여기서 나온 사진들은 지난 38년 미국 언론을 통해 세상에 밝혀졌으나 필름 전체는 지난 91년에서야 비로소 햇빛을 보았다. 이 필름의 사본 한 벌은 당시 남경에서 함께 있던 한 독일인 외교관이 갖고 있다가 91년 베를린에서 발견됐다. 극동 도쿄 전범재판소는 지난 48년 일본군의 남경 대학살때 12월13일부터 6주동안 15만5천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추정했으나 실제로는 약 2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범재판 당시 중국측 대표는 성폭행과 살인 행위는 중국인의 항일운동을 없애기 위해 생각해 낸 폭력정책의 한 부분으로서 일본 최고위급의 승인을 받은 것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