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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담여담] 테러가 낳은 불편한 일상/윤창수 국제부 기자

    전세계 뉴스에 촉각을 세우고 사는 국제부 기자들의 귀에 요즘 가장 크게 들리는 단어는 ‘폭탄’이나 ‘테러’다. 국제부에서 일한지 석달쯤 된 기자는 처음엔 ‘폭탄’이란 단어에도 경기를 일으켰으나 이젠 테러도 몇명이나 사망했는지부터 따지게 된다. 그런데 여전히 수사가 진행 중인 런던 테러의 경우에는 테러의 잔혹상보다 런던 시민들의 침착함이 더 놀라웠다. 방금 폭탄이 터진 지옥 같은 지하철을 빠져나온 시민도, 조금 전에 무고한 시민이 경찰에게 8발의 총알을 맞고 죽는 현장을 목격한 시민도 모두 침착하게 사건 정황을 방송 카메라에 전달했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전혀 수선스러움이나 당황함이 묻어나지 않았으며, 정확한 사건 목격자 역할에 충실했다. 여러 테러 목격자 가운데 가장 목소리가 높았던 사람은 한국 교민으로 추정되는 런던 시민이었다. 런던 시민들의 침착함은 35년간 아일랜드공화군(IRA)의 무장 투쟁에 단련된 데다 성숙한 시민의식에 따른 태도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상황이 한국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해볼 때, 런던 테러처럼 연기가 피어오르고 암흑으로 변한 지하철에서 20여분간 갇혀 있어야 했던 2003년 대구지하철 사고를 떠올려 보면 우리가 영국인들처럼 침착하기란 힘들지 않을까 싶다. 한국 경찰은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테러가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전쟁과 불화를 반복한 것이 인류의 역사이고 보면, 테러와의 전쟁도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보통 시민들에게 남은 일은 결국 테러의 위험에서 항상 스스로를 보호하고, 위기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법을 익히는 것일 게다. 런던 테러 이후 영국의 한 기자는 칼럼을 통해 공항과 비행기에서 좀 더 날카로운 눈을 가질 것을 스스로 다짐했다. 공항의 보안검색이 ‘불편하고 비인간적’이란 불평에 앞서 수상한 가방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내부자에 의한 테러’가 평일 출근길에 일어나는 시대에 지구인이 사는 법이 아닐까 싶다. geo@seoul.co.kr
  • 공포영화 ‘첼로’ 주연 성현아

    공포영화 ‘첼로’ 주연 성현아

    “옴싹달싹 못하던 저를 자유롭게 뛰놀도록 손잡아 준 고마운 존재가 영화예요. 제가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죠. 이 안에 계속 있고 싶고, 절대로 나가고 싶지 않아요.” 그녀의 얼굴에 생기가 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녀에겐 ‘공포’영화가 아니라 공포‘영화’가 고팠던 게다. 여전히 따라다니는 ‘마약’과 ‘누드’라는 유쾌하지 못한 이미지. 그로 인한 여러 빗나간 추측과 오해들. 이를 극복하는 심적인 여유는 영화를 향한 열정속에서 찾을 수 있었기에, 장르와 역할 비중에 상관없이 카메라 앞에만 서면 행복하다는 그녀다. 성현아(30)가 다시 관객들을 찾는다. 새달 18일 개봉하는 공포 영화 ‘첼로-홍미주 일가 살인사건’(감독 이우철·제작 영화사 태감)를 통해서다. 데뷔 이후 첫 공포물, 그것도 첫 단독 주연이다.‘첼로’는 서로 다른 시간·장소에서 일가족이 잔혹하게 살해된 사건에 얽힌 죽음의 실체를 공포의 선율로 풀어내는 영화. 성현아는 유일한 생존자이자 목격자인 첼리스트 홍미주 역을 연기했다. 서울 광화문의 한 커피숍에서 마주한 그녀에게 먼저 “왜 자꾸 음침하고 무거운 이미지로만 치닫나?”“밝은 배역을 맡지 못해 서운하지는 않나?”라고 물었다. 이번 영화에서 그녀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주홍글씨’에 비해 더 침울하고 핏기 없는 얼굴을 보여준다. 이내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핀다.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된 측면도 있지만…후회는 없어요. 좋은 감독님과 배우 등 최적의 스승을 만나는 게 더 중요한 일이죠. 아직 시작단계니까 앞으로 기회는 많을 거구요, 다음엔 밝은 역할을 해볼 수 있겠죠.” 그녀는 처음 대본을 보고 ‘공포물임에도 드라마틱한 색깔이 짙은 작품’이라는 느낌이 너무 좋아 꼭 출연하고 싶었다고 했다. 엉뚱하게 시작해서 엉뚱하게 끝나는 여느 공포 영화들과는 다르다는 것. 또 “연기경력에 공포 영화 출연 경험을 새겨 넣을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라며 미소지었다. 북치고 장구칠 정도는 아니지만, 영화속 그녀의 역할 비중은 독보적이다. 하지만 그녀는 “심리적 부담보다는 힘든 연기에 더 신경이 쓰였다.”고 말한다. 공포 영화이다 보니 일상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을 뽑아내야 하는 일이 많아 힘들었단다. 촬영 내내 핏물을 뒤집어 써야 했던 일도 무척 고생스러웠다. “주고 받는 대화는 별로 없고… 혼자 연기가 많았어요. 게다가 주어진 상황에 대한 표정, 행동 연기가 중요했죠. 혼자 상상속을 헤매며 연기해야 했어요.” 특히나 단순 피범벅의 영화가 아닌, 관객의 감정 이입이 필요한 공포영화라 ‘오버’하지 않는 절제된 무서움을 표현해내는데 주력했단다. 그녀는 ‘첼로’가 개봉하기도 전인 새달 7일 낯선 남녀가 우연히 만나 벌이는 꿈같은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그린 차기작 ‘애인’ 촬영에 들어간다. 지난 1년반 동안 영화 3편을 찍었고, 올 10월이면 또 한편의 그녀 영화가 개봉된다.2년 만에 4편을 찍는 강행군인 셈.“욕심이 아니라면, 무언가에 쫓기는 ‘조급함’으로 보인다.”고 말했더니 목소리 톤이 올라간다. “오래 쉬는게 성격상 맞지 않아요. 아직 여유를 찾지 못해 그렇다고 말씀들 하시는데… 성격이 예민해서 쉬다보면 자꾸 잡생각이 떠오르고, 활력도 줄어들면서 병이 나더라고요. 힘들어도 일하면서 집중하는 게 더 편하답니다.(웃음)” 미스코리아에서 탤런트로, 가수에서 다시 영화배우로… 하지만 ‘인기 연예인’이라는 말을 듣기보다는 그냥 ‘배우’라는 수식어를 오래 간직하고 싶다는 그녀. 이번에도 자신의 연기가 “여전히 생경한 느낌”이라고 겸손해 한다.“전 아직 완벽한 영화 배우가 아니에요. 하다보면 제게 꼭 맞는 옷을 입을때가 있겠죠. 그때까지 제 연기실험은 계속될 거예요.” 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토요영화]

    ●소나티네(EBS 오후 11시40분) 폭력에 곁들인 잔혹한 유머, 그리고 바다의 푸른 색을 활용한 뛰어난 색조 감각 등등…. 코미디언으로 출발해, 세계적인 감독으로 떠오른 기타노 다케시의 트레이드 마크다. 이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기타노 다케시는 1970년대 사회적 통념에 대해 신랄한 독설을 퍼붓는 코미디언으로 인기를 모았다.1983년 오시마 니기사 감독의 ‘전장의 크리스마스’를 통해 영화 배우로 데뷔하기도 했다.5년 뒤 누아르 ‘그 남자 흉폭하다’의 주연과 연출을 맡아 감독 대열에 입성했다.1997년 만들어진 ‘하나비’는 베니스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따내며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떠오르게 했다.‘하나비’는 한국에서 공식 상영된 첫 일본 영화이기도 하다. ‘소나티네’로 유럽 등에서도 인정받은 그는 1994년 오토바이 사고로 죽음 직전까지 갔지만,2년 뒤 자전적인 영화 ‘키즈 리턴’으로 재기했다. 지금도 토크쇼 사회자와 스포츠 해설가, 영화감독과 배우 등을 넘나드는 만능 엔터테이너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무라카와(기타노 다케시)는 냉혹한 야쿠자다. 조직의 내분으로 부하들과 함께 오키나와 해변에 머무르게 된다. 이들은 평소 잔인했던 모습과는 달리, 아이들처럼 장난을 치며 시간을 보낸다. 어느날 무라카와는 강간당할 뻔한 미유키(고무마이 아야)를 구해주나 이들을 제거하려는 음모는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어느날, 낚시꾼으로 변장한 킬러가 찾아와 무라카와의 부하들을 살해한다. 무라카와는 복수를 위해 야쿠자 보스들을 찾아가는데….1993년작. 약 104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콜래트럴 데미지(SBS 오후11시55분) 세계를 경악케 한 9·11테러로 인해 개봉 20일을 앞두고 상영이 무기한 미뤄져 화제를 모았던 영화다. 미국 도심에서 테러리스트들이 폭탄 테러를 일으킨다는 내용이 실제 사건과 유사하다는 게 이유. 테러로 인해 무고하게 가족을 잃은 한 남자의 복수 과정을 그렸다. 비탄에 빠진 테러 희생자 가족의 슬픔과 분노가 담겨 있다고 포장을 하고 있지만, 역시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원맨 액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언더시즈’(1992),‘도망자’(1993) 등으로 알려진 앤드루 데이비스 감독이 연출했다. 영화 제목은 전쟁이나 테러 등 군사행동으로 무고하게 희생당한 민간인을 의미한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LA의 소방관 고디 브루어(아널드 슈워제네거)는 콜롬비아 반군 테러리스트들이 시내 한복판에서 일으킨 폭탄 테러로 인해 눈앞에서 아내와 어린 아들을 잃고 만다. 그는 테러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복수하기로 작정하고 테러리스트들이 숨어 있는 콜롬비아의 정글로 향한다.2002년작. 약 120분.
  • [여성&남성] “여자가 어디서 담배를…”

    “아니, 재수없게 여자가 길바닥에서 담배를 피워.” 지난달 30일 자정 전북 전주에 사는 A(28·여)씨는 생면부지의 남자에게 폭행을 당했다. 집 근처 편의점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에게 40대 남자가 다가와 다짜고짜 담배를 끄라고 했다.A씨는 “나도 내일 모레면 서른이다. 내 담배 내가 피우는데 왜 기분 나쁘게 그러느냐.”고 대꾸하자 남자의 폭행이 시작됐다. 경찰까지 출동했지만 남자는 당당했다. 그는 붙들려가는 과정에서 “너희들이 뭔데 선량한 시민을 잡아가느냐.”며 경찰관들에까지 주먹을 휘둘렀다. 지난 2월에도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서 여자들이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노점상 유모(26)씨가 주먹을 휘둘렀다 경찰에 입건됐다. 우리나라에서 여자가 드러내놓고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위의 사례는 지나치게 보수적인 남자와 당당한 여자가 충돌한 이례적인 경우지만 폭력 부분을 제외한다면 흡연여성들은 비슷한 경험이 한 두번쯤은 있을 듯하다. ●“담배 피우는 여자는 그냥 싫다.” 흡연여성들은 “남성들에게는 그저 기호품일 뿐인 담배가 유독 여성에게는 혐오나 금기의 대상이라는 이중잣대가 존재한다.”고 토로한다. 컴퓨터 하드웨어 정보를 제공하는 파코즈(www.parkoz.com)에서 남녀 네티즌 1270명을 대상으로 ‘담배 피우는 여자를 어떻게 보는가.’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53.4%(678명)가 ‘싫다.’ 또는 ‘매우 싫다.’고 답했다.‘좋아 보인다.’는 4.3%(55명)에 그쳤다. 부정적인 답변을 한 사람 중 49.1%는 ‘그냥 이유 없이 싫다.’고 답해 뚜렷한 이유 없이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그저 그렇다.’ 또는 ‘상관 안 한다.’는 33.7%(429명)이었다.‘예쁘면 상관없다.’는 대답도 5%를 차지해 여성의 흡연을 성적 매력 차원에서 접근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설문을 진행한 사이트의 주된 이용자가 여성 흡연에 비교적 관대할 것으로 예상되는 20∼30대란 점을 감안할 때 그 이상의 연령층을 포함하면 여성 흡연에 대한 우리사회 인식은 더욱 부정적일 것으로 추정된다. ●여성흡연자 “국내 여성흡연율 2.8%?” 이런 탓에 여성흡연자는 죄라도 짓는 듯 숨어서 담배를 피우는 일이 많다. 지난해 대기업에 입사한 최모(25·여)씨는 담배가 급할 때는 회사 화장실이나 인근 카페를 찾는다. 사내 흡연장소가 따로 있기는 하지만 남자선배나 회사간부들의 따가운 눈총을 참아가며 담배를 피우는 것은 차라리 안 피우는 것만 못하다. 그는 “입사 초, 호기 있게 흡연실이 어디냐고 물었다가 골초 여사원으로 찍혀 몇달간 입방아에 오르내렸다.”면서 “사내 분위기를 감지한 이후로는 스스로 숨어 피울 곳을 찾지만, 내가 왜 이래야만 하는지는 아직 혼란스럽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5일 국내 여성의 흡연율이 2.8%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부분의 흡연여성들은 이 통계치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실제 흡연율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이란 얘기다. 대학생 정모(21·여)씨는 “카페 등에 가면 담배 피우는 여자는 많은데 정작 주변에 흡연여성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으냐.”고 반문하며 “남자친구는 물론 때로는 동성친구에게도 숨기는 흡연이 여론조사를 통해 제대로 측정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흡연권 보장이 금연권 보장” 지난해 ‘흡연여성 잔혹사’라는 책을 낸 서명숙(48·여·오마이뉴스 편집국장)씨는 한국사회에서 여성들 자신의 담배에 대한 금기와 속박은 깨졌지만 ‘외부의 금기’는 여전하다고 말한다. 그는 여성 흡연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에 대해 “우리사회가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여성 흡연에 대해 여전히 봉건적인 사고와 관습법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자신도 어렵게 금연을 했다는 서씨는 “금연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지 여성에게만 강제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면서 “흡연의 자유가 허락될 때 자연스럽게 금연의 자유도 허락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탐하면 발목잘려 죽는다’분홍신’

    ‘분홍’이란 색감이 주는 이미지는 다분히 이중적이다. 뜨거움과 차가움의 느낌이 혼합되면서 타협성을 지녔다. 인간 심리에 빗대면 순수와 개방, 미성숙과 성숙, 순정과 욕정, 도덕과 부도덕 사이를 부단히 오가며 흔들리는 상태일 게다. 30일 개봉한 김용균 감독의 영화 ‘분홍신’(제작 청년필름)은 이같은 ‘분홍’이 주는 심리적 이미지를 담아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특히 공포영화의 상투적 관습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공포를 만들어내는 도식의 끈은 놓지 않았다.‘원혼’과 ‘복수’를 내세워 공포로 연결시키는 기존 영화들과 다른 방식으로 공포에 접근한다. 머리풀어 헤친 귀신도 없고, 피비린내 풍기는 시체들도 없다. 등장 인물들이 비명과 함께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도망치는 장면도 별로 찾아 볼 수 없다. 다만 익숙한 호러 공식을 중간중간 적절한 타이밍에 집어넣고, 극적인 반전을 시도하면서 지루함에서 벗어나려 했다. 영화는 응징을 부르는 가해자를 등장 인물 밖이 아닌 내면에 위치시키면서 공포감보다는 불안한 긴장감을 조장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 응징의 대상이 되는 실체는 ‘탐욕’과 ‘질투’다. 영화속에는 여성들로 그득한데, 모두 이중적 심리 상태를 지니고 있다. 평소엔 어머니와 딸, 선배와 후배 등 우호적·수직적 관계. 하지만 ‘분홍신’과 맞닥뜨리게 되면서 ‘소유욕’과 ‘집착’이 생겨나고, 이 때부터 이들은 ‘여성 대 여성’이란 대립적·수평적 관계로 전락한다. 재밌는 점은 분홍신을 주워 신는 것 만으로는 결코 죽음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 남이 가진 분홍신을 빼앗으려 할 때 비로소 저주가 찾아온다. 안데르센의 동화 ‘분홍신’에서 모티프를 얻은 영화는 구두 수집광인 이혼녀 선재(김혜수)가 우연찮게 분홍신을 주워 집으로 가져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딸인 태수(박연아)가 그 분홍신에 집착하고, 선재의 여자 후배도 마찬가지로 분홍신을 가지려 안달한다. 이후 둘에게는 참담한 비극이 닥친다. 감독은 분홍신을 탐한 여성은 모두 다 발목이 잘려 죽는 이유를 영화 막판까지 주인공과 관객이 함께 풀어가도록 요구한다. 감독은 여기에 60년 전 일제시대때 ‘분홍신’에 대한 탐욕으로 파멸한 무용수의 ‘원죄’를 끌고 들어와 관객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극적인 막판 반전을 통해 공포를 극대화 시키려 한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힘에 부치는 느낌이다. 중반 이후까지 ‘공포’와 ‘잔혹’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 제 갈길을 찾지 못한 영화는 역사적 원죄와 동화적 모티프를 마지막까지 정교하게 결합시키지 못한다. 마지막 반전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다. 다만 남편에게 버림 받는 아내, 딸과 티격태격하는 엄마 등 여성의 이중심리를 생생한 표정연기를 보여준 베테랑 연기자 김혜수의 열연은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15세 이상 관람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 안보윤씨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 안보윤씨

    “뭘 쓰고 싶은지, 뭘 쓸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그냥 제 만족을 위해서 쓸 뿐이에요. 현실에선 평생 하지 못할 생각과 행동, 말들을 소설로 풀어내는 거지요. 그래서 소설을 써서 먹고 살겠다는 욕심은 아직 내면 안 될 것 같아요.” 장편소설 ‘악어떼가 나왔다’로 제10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한 안보윤(25). 당선소식을 전해온 수화기를 든 채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믿기지 않아서였다. 문학동네작가상은 김영하, 조경란, 전혜성, 박현욱, 박민규 등 역량 있는 작가를 발굴해온 신인작가 등용문. 그는 역대 수상자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 명지대에서 사학을 전공한 그는 현재 같은 대학 대학원 문예창작과에 재학 중이다. 중·고교 때 백일장에 나가 곧잘 상을 타긴 했지만 글쓰는 사람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대학 3학년 때부터 단편을 쓰기 시작했고, 석달 걸려 완성한 첫 장편으로 덜컥 상을 받았다. 나직한 말투에서 배어나오는 차분한 인상과 달리 각각 독립된 네개의 글이 하나로 엮이는 그의 소설은 자못 엽기적이고, 잔혹하다. 소설에는 언제 실종될지 모를 아이들을 위해 몸 구석구석에 특별한 문신을 새기고, 실수로 죽인 여성의 몸을 절단해 한강에 내다버리고, 자신의 다리를 혐오해 녹슨 못이 박힌 각목으로 자해하는 인물들이 너무나 태연하게 등장한다. 그는 “‘현실에선 이보다 더한 일들도 일어나는데 이쯤이야….’하는 생각으로 썼는데 주변에서 너무 잔혹하다고 지적해 놀랐다.”면서 “전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어이없는 사건이고, 등장인물들이지만 이게 인간 본성의 모순이며, 당신 혹은 나의 모습일 수도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극중 등장인물들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않은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심사를 맡았던 소설가 서영은은 “가공의 현실과 있을 법하지 않은 인물들에게 옷을 입히는 상상의 활력은 눈부실 만큼 매혹적”이라고 평했고, 문학평론가 성민엽은 “강렬한 작의와 거침없는 발상, 통쾌한 추진력 그리고 이것들을 가지고 세상과 맞서는 치열한 태도를 높이 샀다.”고 밝혔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찬성하는 美의원 난치병 가족 때문?

    조지 부시 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 집권 공화당의 적잖은 의원들이 줄기세포 연구 확대에 앞장 서고 있는 것은 동병상련의 경험 때문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칼럼니스트 제프리 번바움은 30일자 워싱턴포스트에 ‘개인적인 상실이 일을 변화시킨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알렌 스펙터(펜실베이니아)·고든 스미스(오리건)·로버트 돌(캔자스) 상원의원의 예를 들면서 이들은 난치병으로 가족을 잃거나 평생 불구로 지낸 주위사람들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항암 치료를 받느라 머리털이 다 빠진 스펙터 의원은 “최선의 의학 치료를 받지 못하게 하는 것 자체가 잔혹 행위”라며 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해왔다.2차 세계대전 중 부상을 당해 평생 오른손을 쓰지 못했던 돌 의원도 새로운 의학적 돌파를 고대해 왔다. 정신병을 앓던 아들의 자살에 충격을 받은 스미스 의원도 연구의 위험보다 혜택을 강조해왔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징용 조선인 유골 반환 韓日 25일 첫 정부협상

    |도쿄 이춘규특파원|한국과 일본 정부가 식민지 시기 강제징용 조선인 희생자 유골반환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오는 25일 도쿄에서 첫 심의관급 협상을 개최한다고 마이니치신문이 22일 보도했다. 협상에는 한국측에서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측 간부가, 일본측에서는 외무성과 후생노동성, 내각관방 당국자가 각각 참석할 예정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9월부터 강제징용에 관여한 108개 기업을 상대로 유골 확보 여부를 조사, 이달 초 현재 조사기업 3분의1로부터 답변을 받았으며 이 중 2개 기업이 100위 가량의 유골을 사찰에 안치한 사실을 확인했다. 일본측은 별도로 전국 사찰과 조선인 징용자가 일했던 탄광 등의 현장조사를 실시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신문은 조사가 진행되면 징용자들이 잔혹하게 노동을 강요당한 실태가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일본 정부의 배상을 요구하는 한국측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 소식통은 “식민지 지배로 인한 배상협상을 다시 하자는 운동이 펼쳐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른 관계자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taein@seoul.co.kr
  • [무슨 영화 볼까]

    ●코치 카터 장르/예매율 드라마/0.64%(15세) 감독/배우는 토머스 카터/새뮤얼 L잭슨 어떤 줄거리 오합지졸 고교 농구팀의 감동 성공기. 이래서 좋아 응원석에 앉은 듯 운동감이 전해오는 스포츠 영화. 이래서 별로 역경 끝에 인간승리하는 빤한 줄거리. 홈피 반응은 “음악이 정말 신나고 재밌다.” ●혈의 누 장르/예매율 스릴러/13%(18세) 감독/배우는 김대승/차승원·박용우 어떤 줄거리 19세기 조선시대 외딴 섬에서 벌어진 연쇄살인. 이래서 좋아 한국 사극스릴러의 새 장을 열다? 이래서 별로 잔인한 장면이 많으므로 임산부와 노약자는 ‘요 주의’. 홈피 반응은 “반전보다는 인간의 추악한 내면에 방점” ●남극 일기(19일 개봉) 장르/예매율 스릴러/52.57%(15세) 감독/배우는 임필성/송강호·유지태·강혜정 어떤 줄거리 남극 도달불능점 정복에 나선 여섯 대원들의 미스터리 탐험기. 이래서 좋아 이런 스케일의 영화를 우리도 만들 수 있다니! 이래서 별로 주인공을 미치게 만든 실체는 도대체 뭐야? 홈피 반응은 “입김까지 표현하다니…디테일 끝내준다.” ●댄서의 순정 장르/예매율 코믹드라마/8.2%(15세) 감독/배우는 박영훈/문근영·박건형 어떤 줄거리 첫사랑에 눈뜬 스무살 옌볜 소녀의 라틴댄스 정복기. 이래서 좋아 깜찍한 문근영, 춤도 잘 추네∼ 이래서 별로 문근영만 도드라지는 신파 멜로. 홈피 반응은 “상상 이상의 춤솜씨” ●킹덤 오브 헤븐 장르/예매율 서사액션/6.01%(15세) 감독/배우는 리들리 스콧/올랜도 블룸·에바 그린·리암 니슨 어떤 줄거리 12세기 십자군 전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스펙터클 영웅담. 이래서 좋아 ‘글래디에이터’못지않은 사실적 전투장면. 이래서 별로 액션의 규모에 눌려 녹아버린 드라마. 홈피 반응은 “좀 지루하네요…” ●하우스 오브 왁스(20일 개봉) 장르/예매율 공포/4.56%(18세) 감독/배우는 자움 세라/엘리샤 커스버트·채드 마이클 어떤 줄거리 시체로 밀랍인형을 만드는 미치광이와 젊은이들의 사투. 이래서 좋아 영화가 전개될수록 강도가 높아가는 잔혹성. 이래서 별로 충분히 무섭지만, 이야기의 재미는 부족. 홈피 반응은 “공포영화가 줄 수 있는 모든 것” ●우리, 사랑일까요?(20일 개봉) 장르/예매율 로맨틱 코미디/5.66%(15세) 감독/배우는 나이젤 콜/애시튼 커처·아만다 피트 어떤 줄거리 티격태격,7년이 흘러서야 사랑을 확인하는 남녀 이야기. 이래서 좋아 콩닥콩닥 가슴 뛰게 하는 ‘사랑과 우정 사이’. 이래서 별로 문득문득 환상을 깨는 부조화한 남녀 캐릭터. 홈피 반응은 “재기발랄해요.” ●연애술사(20일 개봉) 장르/예매율 로맨틱 코미디/8.9%(15세) 감독/배우는 천세환/연정훈·박진희 어떤 줄거리 ‘몰카’를 소재로 헤어진 남녀가 사랑을 회복하는 이야기. 이래서 좋아 섹시한 매력으로 돌아온 박진희의 내숭연기. 이래서 별로 밋밋한 스토리에 뻔한 결말. 홈피 반응은 “10분에 한번씩 웃다가 마지막에 크게 웃는다.”
  • [영화속 수능잡기] 데드맨 워킹

    [영화속 수능잡기] 데드맨 워킹

    레니 쿠싱, 그는 미국의 하원의원 출신으로 살인범에게 아버지를 잃은 아픈 기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쿠싱은 아버지의 피살로 충격에 시달리다 아버지를 살해한 사람을 사형에 처하는 것이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처럼 사형제를 반대하는 살인사건 유가족을 만나 모임을 꾸리기 시작했다. 쿠싱은 현재 ‘화해를 위한 살인피해자 유족회’ 대표로 전세계를 돌며 사형제도 폐지의 정당성을 홍보하고 있다. 그가 2004년 11월 한국을 방문해 국회 의원회관에서 강연을 가졌다. 레니 쿠싱은 “사형으로는 죽은 자를 되살릴 수 없으며, 사형은 폭력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또 다른 살인의 멍에를 덧씌우는 폭력일 뿐이다.”라며 “사형이라는 폭력적인 행위보다 우리가 먼저 신경써야 할 일은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를 위한 사회적 치유”임을 강조했다. 일벌백계(一罰百戒), 죄를 범한 한 사람에게 큰 벌을 내림으로써 백 사람에게 따끔한 교훈을 주겠다는 것이 형벌제도의 목적이다. 인간의 목숨을 빼앗는 사형은 법이 보장하는 살인이다. 죄에 대한 징벌 혹은 예방적 차원에서 사형제도의 필요성을 주장하지만, 역사적으로 사형은 사회적 안전장치로서보다는 정치적 의도에 따라 집행되는 경우가 많았다.1975년 ‘인혁당’ 사건은 사법살인의 대표적인 예다. 훗날 이 사건 판결의 부당성이 드러났지만 당시 사건 연루자 8명은 선고가 있은 지 하루도 안 돼 사형이 집행됐다. 잘못된 판결로 인한 피해는 대체 누가 보상할 수 있는가.6·25때 한강다리 폭파사건으로 사형당한 최창식 대령의 경우 10여년 후 오판임이 밝혀졌다. 오판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김대중씨는 후에 대통령이 됐다. 유엔에서는 사형폐지 권고안을 내놓고 있으며, 유럽연합에 들어가려면 의무적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이미 130개국이 넘는 나라가 사형제를 폐지했다. 이런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지난달 6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제17대 국회와 노무현 정부에 사형제 폐지 권고안을 내놓기도 했다. 영화 ‘데드맨 워킹’. 매튜 폰스렛은 연인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다. 그는 자신의 죄를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다. 하지만 헬렌 수녀를 만난 매튜는 가난 때문에 변호사를 대지 못해 주범은 사형을 면하고 자신만 억울하게 사형선고를 받았을 뿐, 무죄라고 주장하며 도와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 영화는 그의 범죄사실 여부를 묻지 않는다. 영화의 초점은 사형수가 죄가 있건 없건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있다. 영화의 주인공 헬렌 프리진 수녀는 이렇게 말한다.“사형이 존속한다는 것은 범죄자의 생명이 전혀 가치 없기에 죽여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뜻합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죄를 범했다 할지라도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을 죽일 권리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형제도는 반드시 없어져야 합니다.”팀 로빈스 감독, 수전 서랜든·숀 펜 출연,1996년작. 김보일 서울 배문고 교사
  • [베트남전 종전 30주년] “분노의 30년…위령비 찾는 한국인 이젠 친구”

    ■ 가족잃은 피해자들의 용서 “36년 전 총질을 해대던 그들에게 난 이미 죽었어. 하지만 정말로 눈 감기 전에 당신들이 날 찾아와 줬구먼. 우리 손자가 살아 있다면 딱 당신들 또래일 텐데….” 김현아(38·여)씨는 베트남 할머니 응웬티니의 마지막 말을 잊을 수 없다. 뙤약볕이 내리쬐던 2003년 8월 어느날, 베트남 쾅남성의 시골마을 투이보촌. 마을 어귀에서 위태롭게 지팡이를 짚고 서 있던 응웬티니 할머니는 그의 손을 꼭 감싸쥐었다. 반밖에 남지 않은 턱을 힘겹게 움직여 짓는 희미한 미소. 한국군에게 가족을 모두 잃고 증오와 절망의 세월을 지내온 할머니는 그렇게 원수의 나라와 화해를 했다. 그리고 그해 12월 85세로 세상을 떴다. 김씨를 비롯한 시민단체 ‘나와 우리’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99년. 우연히 베트남의 항구 도시 다낭에 갔다가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를 전해듣고 현장을 찾았다. 응웬티니 할머니를 통해 들은 67년 12월21일의 이야기는 참혹했다. 한국군 1개 소대가 닥치는 대로 총을 쏘며 마을로 밀고 들어왔다. 그러고는 땅굴로 숨은 주민들을 밖으로 끌어내 무차별로 총질을 했다.145명이 죽었다. 응웬티니 할머니는 아들과 딸, 사위를 잃었고 3살배기 손자는 품안에서 두개골이 산산조각났다. 자신도 왼쪽 턱과 혀 반쪽이 날아갔다. 쾅아이성 푹빈촌에서 만난 응웬리(75) 할아버지는 “66년 9월 한국군을 피해 사탕수수밭에 숨어 있다가 집에 와보니 부모와 형제, 조카 등 9명이 처참하게 죽어 있었다.”면서 내내 손가락으로 바닥을 긁으며 울부짖었다. 같은 마을 레티티엣(64) 할머니는 “갓난 아들을 보여주며 살려 달라고 애원해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가족을 모두 잃고 아들은 뇌손상을 입었다.”며 눈물을 훔쳤다. 끔찍한 기억을 가진 베트남 사람들과 그 말을 믿기 어려웠던 한국인의 첫 만남은 서로에게 당혹스러웠다. 마을 어귀부터 서럽게 울면서 따라다니는 할머니도 있었고, 간간이 노려보거나 원망을 토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2000년부터 매월 할머니·할아버지 10명에게 생활비를 지원하고, 피해 지역 묘지 조성과 위령비 건립, 베트남 평화 기행, 한-베트남 평화 캠프 등을 통해 ‘속죄’를 구하면서 얼어붙은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66년 10월 112명이 죽은 쾅아이성 지엔니엔촌 사건의 생존자 팜티메오(85) 할머니도 그랬다. 가족 11명이 죽었고 자신도 가슴에 커다란 총상이 남아 있다. 나직이 말을 이어가다 울음을 터뜨린 할머니는 “내가 우니까 부담스럽지 않으냐.”며 오히려 마주앉은 한국 사람들을 걱정했다. “한국인인 제가 밉지 않으세요.” “그때의 한국 군인들은 증오하지. 하지만 당신들은 그때 겨우 태어난 사람들인걸. 그동안 아무도 묻지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찾아와 주니 정말 고마워.” 69년 10월 쾅남 빈영사 사건에서 일가족 8명을 잃은 판반카(72) 할아버지는 “30년간 한국 사람들에게 치를 떨었지만 2002년부터 꾸준히 찾아와 위령탑에 진심으로 참배하는 한국인들을 이제는 친구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벌인 전쟁에 군대를 보내야 했던 한국 역시 전쟁의 피해자라는 인식도 깔려 있었다. 그래선지 한 할머니는 2003년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소식에 또다시 같은 일을 한다며 걱정해 주기도 했다. 김씨는 “우리가 먼저 화해니 용서니 하는 것을 얘기할 수는 없지만 마음과 마음이 서로 전해지면 얼마 남지 않은 그들의 삶에 작으나마 위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전쟁 피해자인 우리나라 위안부 할머니들도 동참하고 있다. 평화 박물관 사업은 2000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명금(당시 83세)·김옥주(당시 77세) 할머니가 “더 이상 우리 같은 전쟁 피해자가 없기를 바란다.”며 낸 성금 7000만원을 종자돈으로 해서 추진됐다. 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금은 이옥선(79) 할머니가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나와 우리’ 김정우 사무국장은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한국군의 행위를 무조건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라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것”이라면서 “그래야만 우리도 일본의 역사 왜곡이나 과거사 감추기에 당당하게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아직도 베트남전을 반공성전이나 국위선양으로 표현하곤 하는데 그렇다면 일본의 인접국 ‘진출’도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베트남전을 진실되게 조명하는 노력이 진정한 한·베트남 관계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포용의 戰前세대’ 딩반득 교수 “이제는 과거를 닫고 더 나은 미래를 열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올 2월부터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딩반득(62) 교수. 그는 “죽는 순간까지 베트남 전쟁을 기억에서 완전히 지울 수는 없겠지만 한국이나 미국에 대해 크게 나쁜 감정은 없다.”고 말한다. ●베트남 복구위해 평화 택한것 “한국인이 미안하다고 얘기할 때면 저는 늘 괜찮다고 말합니다. 물론 전쟁 직후에는 한국이 싫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평화를 원했고 썩은 시체와 말라버린 초목만 남은 나라를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 놓고 싶었기에 베트남은 증오를 버리고 평화를 선택했다고 딩 교수는 전했다. 그는 전쟁 당시 하노이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4년간 학생들과 산에서 숨어 지냈지만 도시에 떨어지는 폭탄, 곳곳에서 들려오는 총성 등 전쟁의 기억은 또렷합니다. 산 아래로 내려가면 썩어가는 시체들조차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도 잠을 설치게 만드는 전쟁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게 그에게는 커다란 괴로움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고개를 내젓는다. 그는 “사과는 감정적인 문제”라면서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이 과거에 대한 사과보다 더 값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과 같은 한국의 베트남 투자, 영화, 한류(韓流)로 대표되는 문화적 교류로 양국이 함께 발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고엽제 피해 대물림… 꼭 해결돼야 그는 양국의 우정을 강조하는 것만으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딩 교수는 “고엽제로 인한 고통은 전후 세대까지 대물림되고 있다.”면서 “우리를 식민지로 삼았던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미국 역시 베트남의 동반자로 인정하지만 이 문제만큼은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냉정한 戰後세대’ 원지통 “한국 정부의 공식 사과를 받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아니어도 의료·교육 등 어떤 식으로든 베트남에 한국은 보상을해야 합니다.” 고려대 국제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베트남 학생 원지통(26)은 한국에 대해 전쟁 세대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전쟁을 직접 겪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에 대해 얘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그는 한국인의 모습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전쟁에서 수많은 베트남 사람들을 죽이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우리를 인간 이하로 취급했죠. 한국·베트남 우호 관계를 말할 때 흔히 투자를 얘기하지만 그건 한국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지 베트남을 위해 선행을 베푸는 것은 아니지요.” ●“한국 투자가 우리를 위한 선행인가” 원지통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좋아하고 눈물나게 매운 불닭을 즐기며 세련된 차림의 한국사람들에 호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 과거 문제는 별개다. 그는 “윗세대들은 전쟁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꺼린다.”면서 “증오심을 꺼내 보이면 과거 악몽이 떠올라 자신이 더 괴로워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우리는 동반자’라는 미명 아래 모든 문제를 덮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달 미국 법원이 고엽제 소송을 기각한 데 대해 “고엽제 문제는 누가 누구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는가의 차원이 아니다.”라면서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가족이 고통받고 있는 만큼 미국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 대해 나쁜감정은 없다” 베트남전에 참가했던 한국군의 잔혹한 이미지까지 바꿀 수는 없겠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에게까지 나쁜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어떤 사람들은 한국이 일본에 대해 갖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베트남 사람들이 느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면서 “베트남 사람들은 독도 분쟁과 비슷한 문제로 중국에는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5월의 독립운동가’ 한성수 선생

    국가보훈처(처장 박유철)는 29일 일제 강점기 중국에서 광복군 제3지대 화남(華南)지역 책임자로 독립운동을 전개한 한성수(1920∼1945) 선생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발표했다. 1920년 평북 신의주 태생인 선생은 1944년 초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강제 징집돼 중국 장쑤성(江蘇省) 인근에 배치됐으나 같은 해 3월 탈출에 성공, 안후이성(安徽省)의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해 일본군내 한국인 장병 포섭, 군자금 확보 등 활동을 펼쳤다. 1945년 3월13일 상하이 주둔 일본군 헌병대에 체포돼 잔혹한 고문을 받았지만 군법회의 재판정에서 법정투쟁을 전개하는 등 기개를 잃지 않았다. 선생은 사형을 선고받아 같은 해 5월13일 유명을 달리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역사물 스크린 점령할까

    새달 4일 동서양 역사물이 나란히 간판을 건다.100여년 전 조선시대가 배경인 국산 액션사극 ‘혈의 누’와,12세기 십자군 원정길로 카메라를 옮긴 리들리 스콧 감독의 서사액션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 미스터리 스릴러의 현대적 감각을 버무린 국산 퓨전사극, 장중한 사실액션이 화면을 압도하는 스콧 감독의 신작 사이에서 관객은 어느 쪽 손을 들어줄까. ●혈의 누 사극과 스릴러.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어감의 조합이다. 영화 ‘혈의 누’(감독 김대승, 제작 좋은영화)의 파격은 이뿐만이 아니다. 근대와 현대, 이성과 광기, 과학과 무속, 양반과 상민 등 격변의 시대를 배경삼아 다층적인 충돌구조가 일으키는 스파크가 기존 어느 영화보다 강렬하다. 여기에 작정하고 덤벼든 잔혹한 연쇄 살인장면 묘사는 고개를 돌리고 싶을 정도다. 조선 후기인 1808년, 제지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외딴 섬 동화도. 조정에 바칠 제지를 실은 수송선이 원인 모를 화재로 불에 타는 사건이 발생하자 뭍에서 수사관 원규(차승원) 일행이 파견된다. 그런데 이들이 섬에 도착한 첫 날부터 참혹한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범상치 않은 살인 행각을 목도한 마을 주민들은 7년 전 ‘천주쟁이’로 몰려 온가족이 참형을 당한 강객주(천호진)의 원혼이 저주를 내린 것이라며 술렁거린다. 냉철한 이성과 과학수사를 표방하는 원규와 사사건건 대립하며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인물은 제지소 주인의 아들 인권(박용우).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대립구도일뿐 극이 진행되면서 섬에 얽힌 비밀이 하나씩 베일을 벗을수록 원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적을 직감하고, 무력감에 시달린다. 그건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남의 목숨까지 거침없이 해하는 인간의 탐욕에 대한 처절한 확인이다. 영화가 내포하는 상징이나 감독이 의도한 다층적인 의미구조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좀더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려는 관객들에게 ‘혈의 누’는 논리적으로 쉽게 이해되거나 감성적으로 충분히 설득당할 만한 작품은 아니다. 중반 이후 극적 긴장감이 급격히 떨어지는 건 스릴러 장르로서의 이 영화가 지닌 치명적인 결함. 촘촘하게 덫을 놓아 관객의 두뇌게임을 부추기던 영화는 갑자기 클라이맥스에서 원규의 입을 빌려 범인을 드러내는 게으른 방법을 택했다. 중요한 건 누가 범인이냐가 아니라 스스로 지옥을 만들어낸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라는 감독의 설명은 이 지점에서 구차한 변명처럼 들린다. 비주얼한 화면과 끊임없이 뇌를 자극하는 청각적인 효과는 기존에 보아온 여느 사극과 비교해 월등히 낫다. 흥행 코미디배우로 각인된 차승원은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듯 기대 이상의 밀도있는 연기를 펼쳤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햄릿형 인간’ 원규를 100% 표현하기에는 아직 힘이 달려 보인다. 캐릭터를 충분히 체현하지 못하기는 두호역의 지성도 마찬가지. 다만 인권역의 박용우는 모처럼 제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다.18세 관람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킹덤 오브 헤븐 ‘글래디에이터’로 아카데미 5개 부문상을 휩쓸었던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역사에 스케일의 외피를 입히는 주특기를 또 한번 화면에 구현했다. ‘킹덤 오브 헤븐’의 시간적 배경은 십자군 원정대가 활약했던 12세기 초. 스펙터클 서사액션을 다시 보여주고 싶었던 감독은 성지 예루살렘을 놓고 기독교와 이슬람이 세력다툼하는 중세전쟁의 소용돌이 깊숙한 곳으로 앵글을 돌렸다. 결론부터 귀띔하자면,‘글래디에이터’‘트로이’류의 장중한 서사액션을 챙겨보는 관객에겐 기본적 흥미요건을 무리없이 갖춘 영화로 다가갈 듯하다. 예루살렘을 차지한 기독교도들이 급속히 세력을 키운 이슬람 군대에 압박당하자 영주 출신의 십자군 노장 기사 고프리(리암 니슨)가 젊은 대장장이 발리안(올랜도 블룸)을 찾아온다.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진 발리안 앞에 갑자기 나타난 고프리는 자신이 친아버지라는 사실을 밝히고, 함께 성지를 수호하러 떠나자고 제안한다. 이야기 아귀를 맞추려 느닷없이 돌출된 가족사의 비밀에 실소가 터진다. 하지만 이후 착실히 서사액션의 강도를 높여가는 영화의 공력에 그쯤은 눈감아 줄만하다. 고프리 영주에게서 기사 작위를 받은 발리안이 예루살렘 사수에 나서고, 일관되게 그 영웅담을 쫓아가는 것이 줄거리 얼개. 서사액션물에서 빠질 수 없는 멜로 요소도 물론 끼어있다. 예루살렘의 국왕 볼드윈 4세에게 충성을 맹세한 발리안은, 교회 기사단의 우두머리 루지앵과 정략결혼한 국왕의 여동생 시빌라(에바 그린) 공주와 금지된 사랑에 빠진다. 이 영화의 특기는 속도감이다. 시대물(상영시간 2시간17분)은 장황한 서사 때문에 빠른 진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통념을 깨부순다. 사실적인 대규모 전투를 잇달아 펼쳐 놓으면서도 영화의 몸놀림은 대단히 재빠르다.‘글래디에이터’‘반지의 제왕’‘트로이’ 등 서사액션 블록버스터들의 스펙터클을 압축해 놓은 듯한 전투장면들은 그 자체가 톡톡한 감상포인트다. 할리우드의 많은 감독들이 엄두를 못 내고 밀쳐온 시나리오를 선뜻 스크린에 옮긴 감독의 용기는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전투의 엄청난 규모 말고 ‘리들리 스콧의 것’을 보여주는 데는 실패했다. 서구 기독교적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한 편향된 시각으로 십자군 전쟁을 묘사한 것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 예컨대 당시 이슬람의 대영웅이었던 살라딘(살라흐 앗딘)의 존재는, 주인공 발리안을 영웅으로 띄워올리는 부속장치로 볼품없이 주저앉아 있다. ‘반지의 제왕’에서 요정 레골라스로 나와 여성팬들을 사로잡은 빅스타 올랜도 블룸의 또 다른 가능성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은 영화의 소득이다. 강인함과 비애를 함께 지닌 그의 캐릭터는 ‘트로이’의 브래드 피트와 견줄 만하다. 나병으로 죽어가는 가면 속의 볼드윈 국왕은 에드워드 노턴이 연기했다.15세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교복입은 고딩들 안방극장 접수!?

    교복입은 고딩들 안방극장 접수!?

    ‘교복’이 안방극장을 휘젓고 있다. 고등학교를 주요 배경으로 ‘학원 폭력’과 ‘사제간의 사랑’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모티프로 한 이른바 ‘고딩 드라마’가 잇따라 전파를 타고 있는 것. 최근 들어 드라마 소재의 성역이 끝없이 무너지면서 나온 새로운 트렌드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대부분 학교 문제보다는 연상녀와 연하남의 사랑이야기에 천착하는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KBS 2TV는 새달 2일부터 월화드라마 ‘러브홀릭’(극본 이향희, 연출 이건준)을 방영한다. 가수에서 연기자로 변신한 강타와 김민선이 주연을 맡은 이 드라마는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여선생님과 남학생의 ‘지독한 사랑’을 그린 멜로물. 드라마는 사고뭉치 남학생이 ‘기면증’이라는 수면장애를 갖고 있는 여선생을 사랑하면서 시작된다. 남학생이 자신을 괴롭히던 학생을 실수로 살해한 여선생을 대신해 교도소에 가 5년간 복역한 뒤 출소, 약혼한 여선생과 애틋한 사랑을 나눈다는 쇼킹한 설정이 화제다. 지난 13일부터 전파를 탄 SBS 수목 드라마 ‘건빵선생과 별사탕’(극본 박계옥, 연출 오종록)에서도 ‘사제간의 사랑’이 펼쳐지고 있다. 학창시절 ‘쌈짱’으로 통하다 퇴학 당한 뒤 임시교사직으로 모교로 되돌아온 여선생(공효진)이 문제 남학생(공유)과 나누는 특별한 사랑 이야기가 스토리 전개의 중심축이다. 앞서 KBS 2TV 드라마 ‘쾌걸춘향’과 ‘열여덟 스물아홉’에서도 드라마 전반부에 고등학교를 주요 무대로, 고등학생을 주요 캐릭터로 삼았다.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안방극장에서 전파를 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2년 MBC드라마 ‘로망스’부터. 이 드라마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여선생(김하늘)과 남학생(김재원)의 사랑을 그려 종교단체와 시민단체의 항의를 받는 등 화제와 함께 시청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상대적으로 소재의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는 영화에서는 일찌감치 이와 같은 트렌드가 반영됐다. 지난 2001년 개봉 당시 ‘학원액션로망’이라는 장르명을 표방하기도 한 ‘화산고’부터 ‘두사부일체’,‘동갑내기 과외하기’,‘말죽거리 잔혹사’에 이어 최근 개봉된 ‘잠복근무’ 등 여러 작품이 그랬다. 그러면 ‘학원 무협(폭력)’과 ‘사제간의 사랑’이 드라마의 주요 소재로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러브홀릭’의 이향희 작가는 “사회와 분리된 또 다른 세계인 학교안에는 다양한 이야깃 거리가 생겨날 수 있으며, 특히 ‘여선생-남제자의 사랑’은 사회적 금기로서 시청자의 눈길을 끄는 매력적인 소재가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방송전문가들은 “하나의 드라마가 성공한 뒤 그 드라마와 비슷한 소재, 포맷의 드라마들이 앞다퉈 기획되는 추세가 늘고 있다.”면서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시류에 편승하지 말고 ‘작품성’으로 승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신연숙칼럼] ‘망언’의 자유 제한

    [신연숙칼럼] ‘망언’의 자유 제한

    한승조, 지만원 등의 일제관련 망언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와 함께 반박 글을 쏟아냈다. 그러나 “백범 김구는 빈라덴, 일본경찰을 이유없이 죽인 살인범” “일본 대사관에서 집회를 하는 할머니 가운데 80%는 가짜” “전쟁 중에 여성을 성적 위안물로 이용하는 것은 일본만이 아니며, 그것도 일시적이고 예외적 현상이었다.”는 등의 터무니없는 주장이 나올 때마다 일일이 반박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짜증스러운 일이다. 정말 이런 망언이 나오지 못하게 하는 수는 없을까.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가 방안을 내놓았다.‘일제찬양 행위자 처벌 특별법’을 제정하여 망언을 처벌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한나라당 원희룡의원도 ‘일제침략행위 왜곡 및 옹호방지법안’제정 구상을 밝혔다. 친일진상규명법에 따라 진상규명위가 친일범죄, 또는 친일 반민족 행위로 규정한 행위를 옹호·찬양하는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별도 법률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러한 제안은 아직까지 별다른 관심을 끌지는 못하고 있다. 반응을 보인 곳은 오히려 반대의사를 표명한 쪽이다. 표현의 자유 침해가 우려되고 폐기돼야 할 국가보안법의 찬양죄 조항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런 법을 제정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전쟁범죄 청산에 철저했다고 알려져 있는 프랑스조차 게소법(Gayssot Law)을 제정해 전범 부인행위를 처벌하고 있는 것을 보면, 친일청산이 되지 못한 우리의 경우 그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망언이 되풀이된다면, 미래세대 역사의 눈은 흐려지고 말지 않겠는가. 프랑스의 게소법은 뉘른베르크 국제 전범재판이 정의한 반인도범죄를 부인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한다. 독일과 동맹국이 자행한 잔혹행위와 잔혹행위 혐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공개적 발언, 출판, 방송, 인터넷 유포, 판매자까지 처벌 대상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던 극우 정치인 르펜은 1987년 “가스실은 2차대전 역사에서 극히 사소한 부분”이라고 말했다가 120만프랑(20만달러)의 벌금형을 받았다. 르펜은 10년후 독일에서 열린 한 출판기념회에서 ‘사소한’부분에 대한 설명을 요구받고 “1000여 페이지의 2차대전에 관한 책에서 가스실은 15줄 정도 된다는 뜻”이라고 망언을 되풀이했다가 투옥과 함께 법원 판결문의 12개 신문 게재비용 20만프랑(5만달러)을 부담하라는 명령을 받기도 한다. 르펜은 이후 스스로 ‘망언’은 다시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이밖에 수정주의 홀로코스트 사학자 포리송, 철학자 가로디, 국제법 교수 골니시 등 많은 사람들이 “유태인 학살은 거대한 정치적 사기” “독일군은 보호자”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진짜인가”등의 발언을 했다가 처벌되었다. 게소법은 언론의 자유와 인권침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반대자들은 이 법을 유엔인권위원회에 제소했지만 유엔인권위원회는 인권규약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뿐만 아니라 독일, 오스트리아, 벨기에, 스위스, 스페인 등도 게소법과 유사한 ‘홀로코스트 부인법’을 제정했다. 언론·표현의 자유는 기본권적 자유지만 무제한의 자유는 아니다. 우리 헌법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고,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했을 경우 피해자는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했다. 망언 제한법은 일제 피해자나 순국선열의 명예와 권리 구제를 현행법보다 좀더 확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프랑스처럼 국내에도 일제 식민지를 미화하는 ‘수정주의 사관’이 고개를 들고 있는 요즈음이다. 민족사관을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하는 이까지 생겼다. 식민 피해자들의 고통을 줄여주고 미래세대에 진실을 바로 알리기 위해 무엇을 할지를 깊이 생각할 때라고 본다. 수석논설위원 yshin@seoul.co.kr
  • ‘베트남 이해 젊은작가 모임’ 방현석교수

    ‘베트남 이해 젊은작가 모임’ 방현석교수

    참 간사한 게 기억이다. 제가 저지른 것보다 당한 것만 담아두려 하기 때문이다. 일본 우익이 한 예다. 동아시아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과거가 아니라 핵폭탄이 투하된 과거만 기억하려 든다. 그런데 정작 한국은 과거를 공정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 젊은이들이 피 흘렸고 베트남 양민들이 눈물 흘렸던 베트남전이 대표적이다. 올해가 을사조약 100주년, 한·일수교 40주년이란 것만 알았지 베트남에는 종전 30주년이자 해방 60주년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을 10여년째 주도하면서 베트남과의 교류에 힘쓰고 있는 소설가 방현석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만났다. ●베트남과 참전군인 모두 피해자 베트남전에 대한 사과·배상은 일본 우익의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다.‘너희는 안하면서 왜 우리한테만 시비냐.’는 반론인 셈이다. 방 교수는 두 문제가 “차원을 달리한다.”고 설명했다.“대동아·태평양전쟁은 일본 스스로가 주체였고 지금도 군국주의 부활을 통해 꿈꾸고 있는 미래입니다. 그러나 베트남전은 미국이 주체였는 데다 우리 스스로 미화하거나 부정한 적이 없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유감의 뜻을 표시했었다. 또 한국군이 주둔한 베트남 중부 지역에 병원과 학교도 지어주는 등 “부족하지만” 한발짝씩 나아가고 있다. 이게 일본 우익과의 차별성이다. 방 교수는 그러나 더 적극적인 액션을 주문했다. 베트남과 참전군인들에게 국가가 정식으로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베트남전의 궁극적인 책임은 미국에 있었다는 점을 명백히 해야 한다. 한마디로 일본 우익들과 ‘노는 물’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방 교수는 참전군인 역시 강제적으로 전쟁터에 내몰린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했다.“그들 역시 까닭 모를 전쟁터에 내몰린 피해자들입니다.‘골수’ 베트남 게릴라의 책을 번역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화를 낼 것 같던 참전군인들조차 읽다가 눈물을 흘렸다며 전화를 해왔습니다. 피해자로서의 공감이었습니다.” ●일본 우경화, 동아시아로 막아야 방 교수가 이런 제안을 내놓은 것은 역사교과서와 독도문제로 표면화된 일본 우경화에 대한 궁극적인 해법이라 믿기 때문이다.“일본 우경화는 중국과 러시아의 ‘대항마’로서 일본을 키우겠다는 미국의 전략, 더이상 미국의 그늘에서 안주할 수 없다는 일본의 판단이 그 배경입니다. 결국 동아시아권의 연대로 이를 막아야 합니다. 베트남전에 대해 사과하고 배상함으로써 아시아의 모범국가로 다시 태어난 한국이 이것을 주도해야 합니다.”객관적인 국력 차이가 분명한 만큼 ‘평화와 공존’이라는 도덕적인 명분과 논리를 선점해야 일본 우경화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최근 일본의 우경화는 한국에 “위기이자 기회”다. 이 상황을 잘 다뤄나가면 한국의 발언권을 높일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우리나라는 대문을 열고 살아야 합니다. 개방성과 포용성을 과시해야 합니다. 일본이나 중국처럼 패권국가의 길을 걷지 않는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베트남은 우리와 동질감 느껴 다행히 베트남은 한국에 우호적이다. 한국군의 잔혹행위를 목격했다는 사람조차 “힘없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미국에 이용당했으니 오히려 더 불쌍한 것 아니냐.”고 말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중국·프랑스·미국 등 강대국들을 잇따라 물리쳤다는 자부심과 지금은 경제발전에 매진해야 한다는 현실이 배경에 깔려 있다. 또 실제 베트남전 참상은 미국의 무차별적인 폭격이 제일 큰 원인이었다. 방 교수는 “베트남은 한국과 베트남을 ‘아시아로 통하는 두개의 문’이라고 표현합니다. 동북아에 한국이 있다면 동남아에는 베트남이 있다는 말이지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열강의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왔던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뜻하는 겁니다. 이 때문에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그래서인지 지난해 베트남 작가 겸 기자 15명을 한국에 초대했는데 이들이 되돌아가서는 한국에 관한 호의적인 기사들을 대거 쏟아냈다. 북한쪽에서 “섭섭하다.”고 불평할 정도였다고 한다.“미국이나 일본이 아무리 돈을 뿌려대도 얻을 수 없는” 공감대가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심포지엄·문학작품 번역 모색” “베트남이 전쟁기념관을 크게 짓는데 일본이 돈을 대고 있어요. 말하자면 일본도 베트남처럼 ‘미제국주의자들’에게서 피해를 입었다는, 그런 의미겠지요. 그런데 한국은 어떤지 아세요? 한류 한류하지만 그 쪽 한국학 전공자가 보는 책이라곤 ‘월간 무역동향’이 전부입니다.” 방현석 교수는 동북아균형자론과 아시아속 한국의 지위에 대해 묻자 대뜸 이렇게 답했다. 이 때문에 최근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의 외연을 넓혀 ‘아시아문화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싸이더스의 차승재 사장, 연극배우 김지숙씨 등도 끌어들였다. 목표는 문화교류를 통한 동아시아 국가간 공감이다. 올해 6월 일단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4개국을 돌며 심포지엄을 연다. 한국 문학 서적도 기증하고 한국문학 특강도 진행한다. 가을쯤에는 ‘아시아작가포럼’을 열어 아시아 8개국 작가들을 한국으로 초청할 예정이다. 풍물 등 전통문화를 직접 배우게 하고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그 나라 노동자와 함께 직접 자국의 시나 소설 등을 한국어로 번역하게 하는 작업도 시도해볼 예정이다. 이게 바로 ‘동아시아의 연대’에 다가가기 위한 첫 발걸음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쪽에서 주최하는 행사와 비교해보면 항상 빈 주머니가 걱정이다.“한류를 민족의 자부심이나 돈벌이 수단으로 보면 몇년 못 갑니다. 그보다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길게 내다보는 투자가 아쉽습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가볼까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가볼까

    1908년 일제가 대한제국 시대에 ‘경성감옥’으로 만들어 1987년까지 ‘서울구치소’로 쓰였던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그동안 서대문감옥, 서울교도소 등 여러번 이름이 바뀌었지만 한국근현대사의 아픔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일제시대에는 4만여명의 애국지사들이 투옥됐고 해방 이후에도 민주화 운동자들이 수감됐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지난 98년 문을 연 뒤 현재 역사교육의 현장뿐만 아니라 드라마·영화 촬영지, 연인들의 데이트코스 등으로도 애용되고 있다. 특히 최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관련 망언 등의 문제와 맞물려 방문객은 하루 평균 2500여명에서 5000여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고증 거쳐 일제시대 상황 재현 역사관 양성숙 학예사는 “일제가 우리민족에게 저지른 일을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견학코스로 인기가 높다.”며 “국가기록원, 국사편찬위원회 문서 등을 바탕으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당시 상황을 재현해 놓았다.”고 말했다. 역사관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은 일제시대 때 ‘보안과 건물’을 개조해서 만든 ‘역사전시관’이다. 벽에 만들어진 관이라는 뜻에서 ‘벽관’으로 불렸던 고문기구에 직접 들어갈 수 있다. 김현지(공릉초6)양은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사흘 동안 이 곳에 갇히면 온몸이 마비되어 죽게 된다는 말이 실감난다.”고 몸서리를 쳤다. 밀랍인형이 잔혹한 고문장면, 옥중투쟁모습 등을 재현한 장면도 볼 수 있다. ‘제13옥사(공작사)’에서는 벽에 뚫린 구멍에 머리를 넣으면 전기고문을 당하는 착각이 들도록 의자가 부르르 떨리는 전기고문, 손톱을 빼는 고문, 상자에 가둬놓는 고문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유관순 열사가 순국했다는 여성옥사(일명 유관순굴)에서는 높이는 1.48m로 허리를 똑바로 펼 수도 없는 1평 미만의 독감방들을 볼 수 있다. ●‘모래시계’ 배경이 됐던 사형장 역사관 뒤편에 자리잡은 사형장은 80년대 암울했던 시대상을 그린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태수(최민수 역)가 우석(박상원 역)에게 ‘나 떨고 있니?’라는 유명한 대사를 남긴 곳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애국지사에 대한 성역화 작업과 유족들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이 곳을 개방하지 않고 있다. 사형장에 들어서면 사형수들이 붙들고 통곡했다는 ‘통곡의 미루나무’ 한 그루가 관람객들을 맞는다. 사형수들의 한이 서려 있어 미루나무가 잘 자라지 않는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일제시대 당시 400여명이 이 곳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것으로 추산된다. 사형장 안에는 사형수가 앉는 의자 위로 당시에 실제로 쓰였던 굵은 동아줄이 내려져 있다. 개폐식 바닥이 내려가면 의자가 떨어지면서 사형이 집행되는 방식이다. 사형장 바로 옆에는 일제가 사형을 집행한 시신을 형무소 밖 공동묘지까지 몰래 버리기 위해 뚫어놓은 비밀통로인 ‘시구문’이 있다. 일제가 만행을 감추기 위해 이 곳을 폐쇄했으나 92년 입구에서 40m까지 복원됐다. ●봄나들이 코스로도 가볼만 역사관에는 세월의 흔적을 알려주는 철근 녹슨 자국, 바래진 외벽 등이 남아 있어 사진동호회나 ‘디카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실제 수형시설이었던 ‘10·11·12옥사(獄舍)’는 역설적이게도 신혼부부들의 웨딩촬영장소로도 종종 쓰인다. 인물을 생생하게 보이게 하는 빨간색 벽돌건물이 시내에서 흔치않다는 게 이유다. 역사관인 영화 ‘친구’,‘광복절특사’, 드라마 ‘토지’ 등의 배경으로 쓰이기도 했다. 역사관은 2시간에 20만원의 장소이용료를 받지만 지나치게 상업적인 목적으로는 대여를 해주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며 매주 월요일 휴관한다. 관람료는 어른 15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500원.3호선 독립문역에서 내려 서대문형무소박물관 출구를 찾으면 된다. 문의 (02)363-9750. 글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그 영화 어때?] ‘블랙 아웃’ 7일 개봉

    우리가 선명하게 안다고 믿는 존재의 음습한 뒷면을 추적하는 스릴러 ‘블랙 아웃’(Black Out·7일 개봉). 화사한 태양이 비치는 휴양도시 캘리포니아를 안개 가득한 어두운 도시로 탈바꿈시켰듯, 영화는 선하다고 믿어온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끔찍한 잔혹성을 고발하고 있다. 강력반 최초의 여자경관이 된 제시카(애슐리 주드)는 동물적 감각과 뛰어난 머리로 모두에게 능력을 인정받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들의 질투를 받는다. 제시카에게 부장 존 밀스(새뮤얼 잭슨)의 든든한 후원은 큰 힘이다. 하지만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이던 제시카에겐 숨겨진 비밀이 있다. 어린시절 경찰관이던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고 자살했던 것. 그녀는 그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해 괴로워하고, 그 충격 때문인지 순간적으로 기억을 잃곤 한다. 그녀가 기억을 잃을 때마다 그녀와 하룻밤을 보낸 남자들이 살해되고, 그녀는 자신이 살인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큰 혼란에 빠진다. 파트너 마이크(앤디 가르시아)만이 옆에서 그녀를 돕지만, 이 연쇄살인사건 앞에서 알리바이를 댈 수 없는 제시카는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제시카가 살인범이든 아니든 충분히 그럴만한 개연성이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인간의 섬뜩한 이중성이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영화. 하지만 ‘지킬박사와 하이드’류의 소재는 지겹도록 많이 다루어져서, 이 영화 역시 특별히 새롭지는 않다. 게다가 범인을 찾는 치밀한 과정은 생략한 채 의외의 범인만 터뜨리려는 반전강박증에 매몰돼버린 느낌이다. ‘블랙 아웃’은 정신의학적 용어로 일시적인 기억상실을 뜻한다.‘레이더스’‘프라하의 봄’‘퀼스’의 필립 카우프만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15세 관람가.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김영기교수등 호암상 수상자 선정

    호암재단(이사장 이현재)은 제15회 호암상 수상자로 ▲과학상 김영기(43·여) 시카고대 교수 ▲공학상 김경석(53) 브라운대 교수 ▲의학상 김규원(53) 서울대 교수 ▲예술상 오태석(65) 극단 목화 대표,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단체) ▲사회봉사상 지득용(83) 소양보육원 이사장을 선정했다고 3일 발표했다. 이들에게는 각 부문별로 종전 상금의 두 배인 2억원씩 총 10억원이 주어진다. 호암재단에 따르면 과학상 수상자인 김영기 박사는 세계 최대의 고에너지 입자물리 실험시설인 미국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 ‘양성자-반양성자 충돌실험(CDF) 그룹’의 공동대표로 W입자와 톱쿼크의 정밀 질량 측정을 통해 힉스입자 탐색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함으로써 한국인 여성 과학자로서 노벨상에 근접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호암상 학술부문에서 여성 수상자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학상 김경석 박사는 단(單)접점 나노 접촉, 마이크로 접촉의 마찰현상을 전위(轉位)이론으로 설명함으로써 단접점 마찰법칙을 확립, 나노 역학 분야의 발전에 기여한 업적을 인정받았다. 의학상 김규원 박사는 산소농도에 따른 혈관생성 단백질 ‘HIF-1α’의 조절현상을 세계 최초로 발견, 새로운 혈관생성 분자기전(分子機轉)을 구명한 업적을 인정받았다. 예술상 공동수상자인 오태석 대표는 한국의 전통소재와 공연기법을 활용한 탈 서구적 연극을 지향하며 실험극, 제의극, 잔혹극, 놀이극, 역사극 등 다양한 장르의 연극을 시도해 우리나라 연극의 정체성 확립에 기여했다.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1988년 창단돼 짧은 기간에 국내 최고수준의 교향악단으로 발전했으며 특히 ‘말러 교향곡’ 기획 연주를 통해 우리 음악계의 큰 흐름을 연주해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회봉사상 지득용 이사장은 1946년 소양보육원을 설립한 이후 60여년 동안 보호와 양육이 절실한 아동들을 보살펴 온 업적을 높이 평가받아 수상자로 선정됐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칭기즈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잭 웨더포드 지음

    “등 위에 올라탄 사람의 의사와 관계없이 가고 싶은 대로 질주하는 말의 눈에 나타난 표정을 생각해 보라.” ‘테무진’이라는 이름을 묻는 저자 잭 웨더포드의 질문에 대한 한 몽골 학생의 대답이다. 테무진은 너무도 유명한 칭기즈 칸의 본명. 아마도 칭기즈 칸의 생애를 이처럼 잘 보여주는 설명은 찾기 힘들 듯 하다. 꼼꼼한 답사와 고증을 거친 ‘칭기즈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정영목 옮김, 사계절 펴냄)가 번역돼 나왔다. 제목(원제 ‘칭기즈 칸과 근대세계 형성’)에서 드러나듯 이 책은 서구의 시각에서 칭기즈 칸과 그 후손의 역사를 살펴본 책이다. 그러나 저자의 접근법은 ‘야만과 공포’를 강조하는 서구의 기존 접근법과 다르다. 이를테면 ‘내재적 접근법’에 가깝다. 번개 같은 기병으로 약탈과 방화만 일삼았던 잔혹한 몽골군이라는 표면적 인상 대신 어떻게 효율적으로 군대를 조직하고 사회를 유지했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저자가 보기에 몽골군의 잔인함은 필요 이상으로 과장됐다. 몽골군은 다만 굴복시킨 적 가운데 쓸모있는 사람과 쓸모없는 사람을 구분, 쓸모없는 사람을 죽였을 뿐이다. 쓸모없는 사람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권력, 돈, 지식을 가진 사람들, 바꿔 말해 지도층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은 반란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사람도 이들이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기록에는 이들의 호들갑과 공포, 동시에 자신들의 무능함과 나약함을 가리기 위한 변명과 책임회피가 가득할 뿐이다. 또 결정적으로 몽골은 쇠망했고 지금은 서구가 세계의 중심이다. 중국도, 유럽도, 인도도, 이슬람도, 그 어느 누구도 몽골을 좋게 말할 리 없다. 오죽했으면 영화 ‘반지의 제왕’의 우르크하이가 몽골군을 상징한다는 해석까지 나왔을까. 저자는 잔혹함보다는 칭기즈 칸이 부린 ‘통합의 마술’에 주목한다. 무기는 비밀리에 전해오던 몽골왕실의 기록 ‘몽골비사’와 수년간 직접 몽골을 둘러본 ‘현장답사’의 경험이다. 칭기즈 칸은 떠돌이 유목민에게 가장 중요한 혈연관계를 사회적 관계로까지 확장시킨다. 물론 이 관계가 혈연관계와 똑같을 수 없다. 여기에는 100% 계약의 개념이 개입한다. 칭기즈 칸은 대내적으로는 각종 차별을 철폐하고 거의 균등한 분배체계를 갖춘다. 대외적으로도 주변국들과 이런 관계를 철저히 지킨다. 항복하면 안전을 보장하지만 저항하면 처절하게 짓밟는다. 이 와중에도 지배층과 군인은 죽이되 나머지 피정복민은 양자 입적과 혼인 등의 방식으로 몽골에 동화시킨다. 자기네 왕에게 억압당하던 피정복민들에게 몽골이 제공하는 것은 평등한 분배체계의 혜택과 정치적 안정이었다. 이는 칭기즈 칸이 대법령을 제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침략과 야만’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칭기즈 칸 본인도 법에 따른다는, 일종의 법치주의 선언도 한다. 그 내용은 더 충격적이다. 출신에 따른 차별 금지, 완전한 종교의 자유 보장, 필수 공익사업자에 대한 면세 조치 등이 포함되어 있다. 칭기즈 칸의 폭발적인 힘은 분배체계의 개선을 통한 단합에서 나온 셈이다. 이런 서술을 쭉 읽다 보면 칭기즈 칸의 통치기술은 놀랍게도 로마제국의 그것과 비슷하다. 혈연관계의 확장이나 피정복민 융화정책, 교통과 통신의 중요성에 대한 깊은 이해 등. 여기에다 대제국 건설에 앞서 몽골의 지배권을 두고 20여년 동안 대립한 자무카와 칭기즈 칸의 얘기는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의 관계와 신기할 정도로 똑같다. 물론 이런 거창한 얘기만 담긴 것은 아니다. 저자의 전공이 부족민연구라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몽골인에게 말총과 남자의 허리띠는 어떤 의미인지, 결투를 할 때 씨름하는 것과 칼을 꺼내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등에 대한 각종 설명이 양념처럼 곳곳에 배어 있다.1만 3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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