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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코드를 버려야 소통이 있다/정무성 숭실대 교수 통일사회복지대학원장

    2006년 여름은 잔혹하다. 폭우에 이은 폭염으로 각종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데, 여기에 청와대발 ‘코드’ 논리가 정국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최근의 자연재해는 대부분 인간이 자연을 거스른 데 그 원인이 있다. 자연에 순응하기보다는 지배해 보려는 욕심에서 발생한 것이다. 무분별한 개발이 폭우로 인한 피해를 더 키웠고, 도시화가 가속되면서 대도시를 중심으로 열대야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환경친화적인 생활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권에서 발생한 인위적 재해도 정치가 민심을 거스르고 군림하려는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다. 국민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이념과 정서가 통하는 자기 사람 쓰기에만 치중하는 인사가 화근이 되고 있다. 과거 우리의 정치권은 학연·지연 중심적인 정실인사로 국민을 화나게 했다. 현 정부는 이념과 정서의 코드인사로 여름을 더 덥게 만들고 있다. 이제 코드를 버리고 소통을 이루어야 국민에게 다소나마 위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변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폐쇄체계에서 개방체계로의 전환이다. 폐쇄체계란 외부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내부적으로 통제적 관리를 하는 조직형태이다. 이러한 조직에서는 주로 수직적인 관계들이 형성되며, 지위에 따라 주어진 권한이 절대적인 힘을 갖는다. 자신들의 권력을 지속시키기 위하여 자기 사람들만으로 지배구조를 형성하고자 하는 것도 특징이다. 폐쇄체계는 산업사회 개발독재 과정에서는 조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형태일 수 있다. 그러나 창의성과 유연성이 요구되는 오늘날 정보화 사회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직이다. 오히려 사회발전의 발목을 잡는 체계이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수평적인 마인드를 갖고 외부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려는 자세가 요구된다. 외부세계에 빗장을 거는 코드인사와 같은 행태로는 소통을 이룰 수 없다. 개방체계의 변화를 가정 먼저 경험하는 곳이 학교이다. 아동·청소년들이 정보화에 가장 민첩하게 적응하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보다 훨씬 빠르게 수평적 사고를 습득하고, 외부 세계와의 소통을 확대해 나간다. 이에 뒤지는 교사들 입장에서는 교권이 상실된 것 같고, 학교가 붕괴되는 것 같지만 우리의 아동·청소년들은 국제수준에 뒤지지 않고 사회화되어가고 있다. 아직도 많은 학생들이 선생님을 존경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이 존경하는 선생님은 수직적 사고로 군림하는 선생님이 아니고, 수평적인 사고로 눈높이에서 같이 대화해주는 선생님이다. 따라서 존경받는 선생님이 되려면 학생들을 탓하고 나무라기 전에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태도가 요구된다. 지난해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에서는 학교의 담을 허물고 그 자리를 주민들에게 내주어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드는 공사가 있었다. 물리적인 의미의 개방체계를 만든 것이다. 오랜만에 학교를 찾은 사람들은 깜짝 놀랄 정도의 변신이 이루어졌다. 캠퍼스의 담을 허물고 난 후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지역 주민들의 학교 출입이 많아진 것이다. 대학이 담을 쌓고 있을 때에는 주민들이 캠퍼스에 들어오는 것을 주저했으나, 담이 허물어지자 많은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캠퍼스에 들어와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곤 한다. 가족단위로 캠퍼스의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대학의 전경을 정겹게 만들기까지 한다. 지난 월드컵 때는 대운동장에서 학생과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대한민국을 힘차게 외치기도 하였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소통인가. 우리의 담을 허물면 이웃이 들어오고, 그곳엔 평화로운 소통이 일어난다. 개인 간의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반응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상대방에 관심을 갖고 그 가치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이는 정치권과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국민의 말을 귀담아 듣고, 국민에 관심을 갖고 국민의 정서를 이해하는 것이 정치권에서 취해야 하는 소통을 위한 기본자세이다. 이제 코드로 걸어 잠근 빗장을 풀어 소통의 시원한 바람을 불게 하여야 할 것이다. 정무성 숭실대 교수 통일사회복지대학원장
  • 연쇄살인 부르는 ‘실업의 고통’

    ‘참으로 괘씸한 고품질 블랙코미디로세.’ 1960∼80년대 제3세계 군부독재의 잔혹함(계엄령, 의문의 실종)을 고발하고, 이후에는 종교(아멘), 미디어(매드시티) 등의 광폭함을 영화에 녹여온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이번에는 자본주의를 꼬집었다.10일 개봉한 ‘액스-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Le Couperet)에는 자본주의 속에서 취업난, 구조조정, 실업 등의 고통을 겪는 약자들의 왜곡된 생존법칙에 대한 풍자가 가득하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미스터리 소설 ‘액스(The Ax)’가 원작. 기본 줄거리 위에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 대신 자본주의에서의 빗나간 자아실현을 담았다. 평범한 가장, 성실한데다 한때 잘 나가던 직장인 브뤼노(호세 가르시아)는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는다. 화려한 경력이 있기에 재취업이 쉬울 줄 알았는데,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게다가 사방이 온통 경쟁자투성이다. 그러면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죠? 천만에. 브뤼노는 ‘경쟁자 제거’라는 황당한 수단을 선택한다. 경쟁자들은 모두 실업의 아픔을 안고 있다. 열심히 노력해도 여전히 무직이다. 가족은 고통을 받고 심지어 흩어져버린다. 거리에는 고급 스포츠카, 멋진 몸매의 여인, 커다란 보석이 박힌 반지 등의 화려한 광고판이 걸려 있다. 노동자들이야 피 터지게 싸우든 말든 관심없다는 듯. 얄밉도록 무심한 자본주의의 모습이다. 경쟁자를 없애야 실현되는 취직, 그 뒤에는 여전히 또 그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있다. 치열한 현실이다. 잇따른 실업자의 죽음으로 사회는 연쇄살인사건의 공포에 휩싸인다. 하지만 주인공을 향한 시선은 잔혹한 연쇄살인마를 향한 분노보다는 ‘오죽하면 그랬을까.’하는 동정이 더 크다. 어리숙하고 황당한, 용의주도하지도 않고,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하며, 형사 앞에서 주눅 들어 있으면서도 애써 당당한 척하는 모습에서 묘한 동질감도 느껴진다. 2시간이라는 다소 긴 상영시간이 지루하지 않는 것은 기발하지만 당황스럽고, 씁쓸하지만 우스꽝스러운, 나름의 스릴과 긴장감을 주다가 맥을 놓게 하는 노장 감독의 완성도 높은 기교 덕일 듯.18세 이상 관람가.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32) 같다는 것과 다르다는 것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32) 같다는 것과 다르다는 것

    우리는 오랫동안 ‘같다는 것’(同)과 ‘다르다는 것’(異)이 서로 대립적인 것으로 여기도록 사회생활을 해 왔다. 이런 생각은 아주 긴 세월동안 반복되어 왔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같다는 것(同)은 다르다는 것에 반대하는 것(反-異)이 아니고,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非-異)이고, 다르다는 것(異)도 같다는 것에 반대하는 것(反-同)이 아니고, 같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非-同)이다. 이 말은 같다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대립적 사이로 읽지 말고, 상관적 사이로 읽어야 함을 말한다. 같다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적대적 대립의 관계로 읽는 논리는 내가 이 글을 통하여 줄곧 비판해 왔던 택일적 사유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택일적 사유는 분별력을 귀하게 여겨온 지성의 논리와 별개의 것이 아니다. 과거의 철학사상에서 지성보다 더 고귀한 가치로 취급받은 개념이 없었다. 대학을 ‘지성의 전당’으로 명명했던 종래의 사고방식이 지성에 최고의 예우를 우리가 전통적으로 바쳐 왔다는 증거가 아닌가? 지성의 논리는 택일적 판단에서 빛난다. 택일적 판단은 늘 정/오와 선/악의 대결양상을 띠고 나타난다. 그 대결이 자의적인 개인적 심리에 기인한 호/오 대결이 아님을 과시하기 위하여, 전통적 지성의 논리는 그 대결을 보편적 논리에 의거한 정/오 대결인 양 호도해 왔었다. 그래서 심리적 호/오 대결은 비이성적 감정적 대결이라 폄하하고, 논리적 정/오 대결은 이성적이고 품격이 높은 지성의 대결이라고 사람들은 착각해 왔다. 서양철학은 이런 지성적 판단의 정당성을 제공하기 위하여 개인의식이 아닌 ‘의식일반’(consciousness in general)인 보편의식을 논리적으로 정립했다. 그러나 의식일반은 개인의식의 심리적 호오 판단을 아주 희석시키기 위한 먼 우회의 전략을 수행한 것에 다름 아니다. 즉 의식일반도 심리적 호오 판단을 아주 깊숙이 무의식에 감춘 논리적 명분이라는 것이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융이 그의 저작 ‘심리학적 유형론’에서 이미 통찰했듯이, 논리적 정/오 판단의 가장 깊은 저변에 심리적 호/오 판단이 숨어 있다 하겠다. 심리적 호/오이든, 논리적 정/오이든, 거기에는 자기동일성(self-identity)에 대한 강한 애착이 숨어 있다. 자기 것에 대한 감정적 동일성이든 이성적 동일성이든, 자기동일성은 다른 것과 대립된 자기 것이 실재한다는 착각에 근거해 있다. 자기동일성이 자기중심주의를 낳는다. 이 자기중심의 논리는 타자중심의 논리와 반드시 대결한다. 소유론적 사회생활은 마르셀이 잘 통찰하였듯이(29회 글), 자기중심주의(heauto-centrism)와 타자중심주의(hetero-centrism)를 동시에 생산한다. 이 자/타의 중심주의적 사고방식에 의한 같음과 다름의 대립적 사이는 꼭 경제적 물질적 이해관계에서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도덕적, 종교적, 정치이념적 차이가 대립을 자아내는 경우도 많다. 정신적 대립이 경제적 대립보다 더 극렬한 경우가 많다. 예컨대 단순한 물질적 대립은 이해관계 당사자들 사이에 타협의 길을 찾게 하지만, 정신적 이념적 대립은 타협의 길을 거의 배제하는 자가성(自家性) 충족률로 채워지기 쉽다. 이런 충족률이 역사상 잔혹한 종교전쟁과 정치이념전쟁을 초래했다. 특히 종교전쟁은 늘 절대적 진리의 이름으로 싸운다. 이 말은 정신적 이념의 동일성이 자기와 다름을 상관적 차이로 보지 않고, 적대적 차이로서 여기는 공격성을 더 강하게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의 위험성은 경제적 이해관계의 대립에서 오는 것보다 더 정신적 이념들이 나라를 산산이 파편화시켜 가는 데 있다 하겠다. 소유는 물질적인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정신적 소유론이 더 위험하다. 정신적 소유론은 형이상학적이고 이념적이어서 소유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정신적 소유론은 자가성의 사회적 지배를 위하여 같음과 다름을 적대적 차이로서 생각하도록 만인을 선동한다. 여기서 사회적 여론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사실상 여론은 철학적으로 사유하기가 단순치 않다. 자연에는 자연적 필연성이 있듯이, 사회에도 그 사회가 어겨서는 안 되는 규범이 있다. 이미 내가 앞 글(19회)에서 그 규범을 여론이라고 말했다. 나는 여론이 곧 사회적 진리 자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적 진리는 여론으로 나타나지 않고 다른 곳에 외롭게 실존할 수 있다. 특히 여론이 일진광풍(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나치즘, 페로니즘)으로 회오리바람을 일으킬 때, 진리와 여론과의 괴리현상이 생긴다. 그러나 사회적 진리가 여론과는 다른 곳에 존재하더라도, 사회적 진리는 결코 여론을 등지고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적 진리는 만인이 싫어하는 바를 거슬러서 결코 나타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론이 진리 자체는 아니지만, 진리가 여론의 틀을 떠나서 현실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여론이 완전지배나 점유를 위한 열광의식(fanaticism)으로 미쳐 있을 때에, 그 여론은 약성보다 독성을 더 강하게 분비한다고 생각한다. 열광적 소유의식으로서의 의견들은 자기와 다른 것을 적대감으로 대한다. 이것은 정치적 견해에서뿐만 아니라, 종교적 신앙에서도 마찬가지다. 인류는 오랜 세월동안 이런 정치투쟁과 신앙행위를 용기있는 신념으로 존중해 왔다. 다행히 자유민주주의적 가치관의 도입으로 열광적 정치투쟁과 의견이 일방적인 방향으로만 진행되지 않고 반대방향의 의견 개진도 가능하게끔 제도화되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가 자기중심주의와 타자중심주의와의 상충적 소유론을 다 허용한 점에서, 그것은 대립적 내지 적대적 차이론의 상대화를 이끈 소유론적 제도이지, 같음과 다름을 상관적 차이로 엮어주는 존재론적 사유를 구체화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종교적 세력확장의 문제에서 자가성의 절대주의가 대단히 심각하다. 초월적 절대자를 믿는 종교에서는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사고가 급한 곡선을 긋고 상승한다. 그 절대자는 사랑인데, 다른 종교를 배척하며 신도수를 확장하고 점유하려는 열광의식과 그 사랑과의 이율배반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신도수의 확장점유는 정치적으로 다수의 지지를 양적으로 얻으려는 정치투쟁과 대단히 유사해 보인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같은 것과 다른 것, 동일성(同一性)과 이타성(異他性)이 대립적 차이가 아니고, 상관적 차이로 엮어지는 그런 존재론적 사유를 구체화할 수 있을까? 이것은 꿈꾸는 또 하나의 공상적 낭만주의에 불과할 것이 아닌가? 나는 앞 글(2회)에서 세상을 헌집 수리하듯이 고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세상은 객관적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은 세상을 보는 만인의 마음이 그리는 사이버(cyber) 시공간이므로 마음을 소유론에서 존재론으로 전향하지 않으면,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정치적, 종교적 소견을 소유론에서 존재론으로 어떻게 바꾸나? 나는 여기서 가톨릭 철학자 마르셀이 그의 저작 ‘존재의 신비’(II)에서 한 사유를 도입한다. 그에 의하면 정치적, 종교적 소견이 소유론적인 마음에서 발동하는 것일수록, 그 소견은 남들 앞에서 선전하듯이 이 생각은 국민의 생각이나 민족의 생각이나 민중의 생각, 또는 어떤 절대자의 생각과 일치한다고 ‘주장한다’(pretending)는 것이다. 그런 주장은 적어도 남들 앞에서 자기 믿음의 ‘확신’(conviction)을 전파하여 자기 생각과 일치하는 자들을 ‘국민’,‘민족’,‘민중’이나 또는 ‘절대자’의 이름으로 소유하려는 ‘열광적 추상의 정신’(the spirit of fanatic abstraction,19회 글)에 다름 아니다. 그런 정치적 종교적 확신은 이미 그가 소유하고 있는 소견을 개진하여 자기 소견과 다른 소견을 확실히 적대적으로 구분하여 문을 빗장으로 잠가버린 ‘판결선고’나 ‘내적 철책’을 치는 것에 비유된다. 아무리 민족적, 정치적, 종교적 통일을 주장해도 그 주장은 겉으로 떠드는 명분이고, 속으로는 다름을 완전히 거세시켜 버린 자기들만의 끼리끼리 잔치에 불과하다. 독재를 싫어한다는 독선주의보다 더 무서운 소유주의는 없다. 결국 소유론에서 존재론적 사회를 일구는 길은 마음을 존재론적으로 전향시키는 길밖에 없겠다. 그러기 위하여 정치도 종교도 다 소유론의 수압에서 잠자는 인간본성을 일깨워주는 역할만 하면 된다. 미래의 종교는 신자수의 양적 확대를 겨냥하기보다 종교건물의 벽을 넘어 오히려 인간본성의 자각을 도와주는 것으로 집약돼야겠다.(6회 글) 어떤 이가 무슨 종교신자라는 것은 전혀 부차적이다. 무종교의 종교가 최적의 종교겠다.20세기 가톨릭 성녀 테레사는 일생을 인도에서 빈자들의 간호사로 생애를 바쳤는데, 그녀는 단 한 번도 힌두교 빈자들에게 가톨릭으로 개종하라고 선교하지 않았다 한다. 성녀 테레사, 그녀는 존재론적 사유의 화신이다. 그녀는 자기 종교를 소유물 자랑하듯 타인들에게 선전하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이 그리스도로 존재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같음과 다름은 단지 상관적 차이에 불과했으리라. 이 점에서 그녀의 사유는 중국 화엄학의 3대 조사인 법장이 그의 ‘화엄경의해백문(華嚴經義海百門)’에서 ‘지금 자타(自他)라고 말하지만, 별도로 다르게 보는 것이 아니다. 자기는 곧 타자의 자기고(自是他自), 타자도 곧 자기의 타자다(他是自他). 자타가 한 사이(一際)에 불과하다.’고 언명한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또 20세기 프랑스의 해체 철학자인 데리다가 그의 저서 ‘표지와 차이’에서 밝힌 ‘같음은 다름의 다름이고, 다름은 같음과 다르게 같은 것’이라는 사유와 맞먹지 않는가? 즉 같음은 다름의 타자고, 다름도 같음과 다르지만 같이 동거하는 사이라는 의미가 데리다의 정의이리라.7세기 중국의 법장과 20세기 프랑스의 데리다는 분명히 같은 사유를 전개하고 있다. 이 사유를 그동안 인류는 비사회과학적이라고 도외시해 왔다. 근대세계는 소유론적 사회과학이 지배적이었다. 개인주의/전체주의, 자유주의/사회주의의 대결에서 전자가 이겼다.21세기 사회과학은 전자의 소유론마저 극복하는 지혜를 모색하는 시절로 접어들 것이다. 그 지혜는 필연코 존재론적인 사유를 화두로 삼을 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범죄피해 유가족 방치실태] “불안·공포, 약물중독·자살로 이어져”

    [범죄피해 유가족 방치실태] “불안·공포, 약물중독·자살로 이어져”

    “범죄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면 잠재적 범죄군(群)으로 고스란히 되돌아오게 됩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인권피해자를 위한 오픈클리닉’ 사무실에서 만난 류현미(32) 팀장은 “연쇄살인범 유영철에게 딸과 동생이 잔혹하게 살해된 피해자 가족들은 경찰 수사와 TV에서 생생하게 전달된 시체 발굴 과정 등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유가족들은 죄책감과 불안, 공포에 시달리며 약물에 의존해야 했고 알코올 중독과 자살로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류 팀장은 유영철 사건 피해자 가족들을 심리치료하면서 범죄 피해자를 위한 보호체계 부족을 몸소 느꼈다. 이후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각종 인권 피해자들을 위한 오픈클리닉을 열고 있다. 클리닉에선 PTSD의 대표적인 치료법인 ‘노출치료’ 등으로 충격을 점점 사라지게 해준다. 노출 치료는 피해자들이 충격 자체를 회피하지 못하게 조금씩 직면시킴으로써 충격을 천천히 극복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정부에 대책을 촉구하는 비정부기구 역할을 하기 위해 범죄 피해 전반에 대해 연구한다. “정부가 심리학계를 통해 PTSD를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고 이 인재풀을 활용해 지원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31) 은유법과 환유법의 철학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31) 은유법과 환유법의 철학

    우리는 매일 말을 하는데, 그 말이 무의식적으로 어떤 법칙을 띠고서 나타난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법칙이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라캉이나 러시아의 언어학자 야콥슨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은유법(metaphor)과 환유법(metonymy)이다. 우선 은유법과 환유법을 간략히 설명한다. 수사학적으로 은유법은 ‘백합화 같은 처녀’나 ‘사자 같은 소년’ 등으로 소녀의 순결성과 소년의 용맹성을 표현하는 것을 뜻한다. 단적으로 소녀의 순결성과 순진성과 아름다움들이 백합화로 ‘압축´됐고,‘상징적´으로 그 소녀가 백합화로 ‘대체´됐으며, 대체이유는 소녀와 백합화 사이에 정신적으로 같은 계열에 속한다는 ‘계열체적 집합´(paradigmatic set) 또는 ‘유사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표시는 은유법과 환유법의 의미를 알리는 핵심적 개념이다. 그래서 은유법(隱喩法)은 소녀와 소년을 보고 그 현장에 없는 유사한 숨은(隱) 단어를 상징적으로 찾는다는 점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환유법(換喩法)은 ‘술 마시자.’를 ‘한 잔 하자.’로,‘30척의 배’를 ‘돛 30개’로 표현하는 법인데, 이것은 술과 술잔과의 상호 ‘인접성´과, 전체(배)와 부분(돛)과의 양적 대소비교에서 장소를 ‘치환´(換)시키는 사고방식에서 생긴 수사법이다. 환유법은 은유법과 달리 이미 현장에 다 출현되어 있는 대상들을 보고서 술을 술잔으로, 배를 돛으로 ‘장소이동´해서 두 낱말의 생각을 결합시켜 나가는 ‘결합체적 맥락´(syntagmatic context)을 중시하기에 말의 이동이 필수적이다. 이런 은유와 환유의 수사학은 인간이 세상을 보다 더 잘 이해하고 지시하기 위한 소유의 방편에서 생긴 언어활동이다. 은유법이 세상에 대한 ‘내면적´ ‘정신적 이해´와 연관되어 있고, 환유법은 세상을 ‘외면적´으로 결합시키거나 분석하는 ‘과학적 지시´의 방법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그것은 수사학이 세상을 인간중심으로 더 잘 소화하기 위한 소유욕의 표현임을 말한다. 은유법과 환유법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철학은 도가와 불가나 서양의 해체철학에서보다도 오히려 유가와 신학 또는 서양의 구성철학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 왜냐하면 세상을 인간중심적으로 구성하는 지성의 철학은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로 세상을 장악함에서 무의식적으로 은유적이고 환유적인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상주의는 은유법적으로, 현실주의는 환유법적으로 세상을 소유하려 한다. 은유와 환유에 의한 소유의 두 양식을 프랑스 실존철학자 마르셀 철학용어로 바꾸면, 각각 함유(implication)와 점유(possession)에 해당하겠다. 전자는 정신적 소유를, 후자는 물질적 소유를 의미한다. 은유적 이상주의와 환유적 현실주의를 가장 잘 대변하는 철학사상으로서 우리는 맹자와 순자의 유가철학을 내세울 수 있겠다. 맹자의 유학은 천명(天命)과 성인(聖人)을 일치시키는 사유의 틀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 천명이 세상을 바로 세우는 불멸의 도며, 그 도가 곧 인의(仁義)로 표현된다. 맹자가 말한 인(仁)은 ‘인간의 마음’(人心)이고, 의(義)는 ‘인간의 길’(人路)이라고 해석했다. 또 그는 ‘인(仁)은 인간의 편안한 집(安宅)이고, 의(義)는 인간이 다니는 올바른 길(正路)’이라고 표명했다. 이런 맹자의 비유가 이미 은유적이다.‘인간의 마음’이 바로 ‘인간의 편안한 집’과 동격으로 비유된 것은 인간의 마음이 ‘논어’에서 말하는 ‘어진 마을’(里仁)과 같아야 된다는 것을 함의한 것이겠다.‘편안한 집’은 부모형제가 동고동락하는 공동체와 같다. 마음은 화기애애하게 부모형제가 사는 ‘편안한 집’이나 ‘어진 마을’처럼 공동체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맹자가 내린 마음의 정의겠다. 의(義)는 그 공동체를 마비시키지 않고 혈액순환하게 하는 올바른 길이다. 인의는 바로 천명이 명령한 자연성의 법도다. 그 자연성의 법도가 사회성의 법도로 ‘대체´되면, 그것이 곧 성선(性善)의 사회라고 맹자는 생각했다. 그런 천명의 법도인 인의를 의인화한 것이 요순과 같은 성인이다. 맹자가 생각한 자연성은 ‘시경’(詩經)의 시구처럼,‘물고기가 뛰고, 솔개가 하늘에서 날듯이’ 인(仁)의 생의(生意)가 천지에 가득하고, 각각의 생물이 다 제 마땅한(宜=義) 길을 가고 있는 그런 낭만적 자연관에 입각해 있다. 그런 자연적 인의(仁義)의 의인화로서의 요순은 성선(性善)의 ‘압축´인 셈이다. 요순은 단순히 성선의 압축인 것만은 아니다. 요순은 자연성인 생의(仁)와 자연만물의 마땅한 행로(義)를 ‘대체하는´ 인의적 인성의 표본이고, 그 인성은 자연성과 ‘유사하지만´ 자연성이 인성에 현전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단지 상징적으로 ‘숨어 있을´ 뿐이다. 맹자는 ‘인간이 다 요순이 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그런 긍정의 증거로서 그는 인간이 다 잔인한 짓을 감히 하지 못하는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참아 하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인간의 본성으로 두고 있다고 보았다. 인간이 이 ‘불인인지심’의 본성을 회복할 수만 있다면, 인간은 누구나 다 요순이 되고, 사회적 이욕심의 악을 이겨낼 수 있다고 여겼다. 후천적 사회생활의 이욕심이 인간의 본성을 흐려 놓기에 인의예지의 마음을 확충하는 도덕심으로 무장하여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기 위한 당위의 의지를 맹자는 아주 강조했다. 도덕의지로 복성(復性)한 인물이 탕무(湯武)임금이다. 이것이 맹자의 낭만적 이상주의다. 그의 이상주의는 인의를 자연성에서 빌려 인간본성으로 은유화시켜 놓고, 그 은유적 이상의 가치가 사회를 장악하도록 이기적 이욕심에 흔들리지 않는 도덕적 지성의 판단을 강조했다. 요순처럼 무위적 자연성과 인성이 일치하는 지고지선의 순정무구한 역사가 다시 생기하지 않으므로, 맹자는 탕무의 도덕적 노력의 길을 대안으로 제시하지 않을 수 없었겠다. 그러나 문제는 탕무 이후에 대성(大成)으로 상징되는 공자를 제외하고 아무도 그 탕무의 길을 다시 회복한 현실적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공자와 맹자가 도를 밝혀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공맹의 도를 숭상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해도 세상에 인의의 도가 실현되려는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지 율곡은 심각한 질문을 던졌다. 지금까지 맹자의 길은 늘 꿈꾸는 낭만주의자의 헛된 이상의 투사로 끝나든지, 아니면 참담하게 실패할 수밖에 없는 지상 유토피아 건설의 혁명적 열병으로 오염되든지 해왔다. 사람들은 맹자의 사상이 형이상학적 함유의 소유론인 것을 모르고 존재론인 것으로 착각해 왔다. 인간중심주의는 존재론이 되기 어렵다. 맹자의 형이상학이 헛된 정열로 끝난 가장 큰 이유는 인간들에게 요순의 본성을 회복시키는 방식에서 도덕의식의 고취만을 강조하는 당위윤리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요순의 본성은 도덕적 지성의 판단에 의하여 사회악과 대결하는 의식에서 회복되기보다 오히려 모든 지성적 분별심을 쉬는데서 피어난다고 생각된다. 그래야만 분별심을 끝없이 흥분시키는 무의식의 뿌리가 고요해질 수 있다. 맹자가 자연을 본성적 성선의 차원에서 읽었다면, 순자는 자연을 본능적 생존투쟁의 잔혹한 경쟁으로 보았다. 맹자의 천(天)은 목적론적 하늘(heaven)이지만, 순자의 천은 그냥 기계론적 하늘(sky)에 불과하다. 맹자는 자연성과 인성의 일치를 겨냥한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생각했으나, 순자는 ‘천인지분’(天人之分)으로 자연과 인간을 완연하게 구별했다. 이것은 자연의 본능과 인간의 지능을 분리시킨 사상이다. 순자에게 있어 자연의 본성은 오히려 본능에 해당하고 인간의 지능은 인위적인 능력이다. 그는 또 ‘성위지분’(性僞之分=본능과 지능의 구분)을 주장했다. 여기서 위(僞)자는 거짓의 뜻이 아니고, 인위성을 가리킨다. 지능은 자연적인 것을 가공하여 사회적인 것으로 전환시키는 능력이다. 그런 능력을 가진 지도자를 순자는 ‘지인’(至人)으로 보았다. 지인은 도덕적 성인이 아니고, 지능적 기술인이다. 이 지인은 야생적 자연을 기술적 문명으로 변환케 하는 능동적 지성의 참여인 ‘능참’(能參)을 실시하는 자다. 자연적인 것은 모두 본능적인 생존투쟁을 마다하지 않는 이기심의 경향이 있기에 순자는 이 자연의 본성인 본능의 이기심을 성악(性惡)이라 보았다. 인간의 지능이 사회생활을 경영하기 위하여 저 이기적 소유욕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그는 사회가 파괴되지 않고 생기나게 돌아갈 만큼 그것을 ‘양적으로 감소´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자연의 소유욕은 대개 물질적 점유욕이므로 그 점유욕을 다소 둔화시키는 방법을 순자는 ‘예법’(禮法)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자연과 사회를 구분했으나, 그것은 보통 생각하듯이 완전히 쪼개지는 것이 아니다. 순자는 지인의 경제정책을 ‘천양’(天養), 복지정책을 ‘천정’(天政), 경험적 인식을 ‘천공’(天功) 등으로 표상했다. 완전한 분리라면, 그가 지능적 사회경영의 개념에 자연(天)의 의미를 덧붙여 명사화했을 리가 없겠다. 이것은 순자가 자연적 본능과 사회적 지능을 상호 ‘인접´개념으로 여겨, 자연에서 사회로 ‘장소이동´(置換)을 시킨 환유법적 사고를 했다는 것을 뜻한다. 베르그송이 말한 바처럼 본능과 지능이 다르지만, 생존술이라는 공통점이 있음을 순자가 이미 간파한 것이겠다.(1회 글) 그리고 그는 자연적 본능을 없애지 않고, 그것을 예법으로 조절된 사회적 욕망으로 ‘결합´시켰다. 그는 정치의 요체를 ‘화성기위’(化性起僞=본성을 변화시키는 인위적 지능을 일으킴)라고 생각했다. 맹자의 철학이 의사 소유론(함유적 소유론=형이상학적 소유론)이라면, 순자의 철학은 진짜 점유적 소유론(형이하학적 소유론)이겠다. 환유법은 은유법처럼 낭만적 마음으로 세상을 화학적으로 영구히 바꿔 보려 하지 않고,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현실적 물리적 대처방안을 임시적으로 강구한다. 소유론적으로 세상을 보면, 맹자보다 순자의 사상이 훨씬 더 유효하고 실질적이다. 그러나 존재론적으로 보면, 순자의 철학은 적과 싸우는 전쟁사령관의 심리처럼 너무 냉엄하고 승부욕에 집착되어 있다. 세상은 전쟁터인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공상적 낭만파로 되돌아가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존재론적 사유는 맹자와 순자의 길이 아닌 제삼의 길을 사유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우간다 소년병들의 비극

    우간다 소년병들의 비극

    “그들은 그 아이를 깨물라고 했어요. 살점이 떨어지고 피가 났어요. 숨이 끊어질 때까지 이빨로 그 아이를 깨물었어요.”(15세 소녀 제니퍼),“밤마다 마을을 습격했어요. 우리는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였어요.”(12세 소년 샘) 전세계가 레바논에서 속절없이 죽어가는 아이들의 비극에 경악하는 동안, 아프리카 우간다에서도 소년병들의 참혹한 비극이 매일 되풀이되고 있다. 유엔 보고서는 해마다 전세계에서 8000∼1만여명의 어린이가 전쟁과 내전, 분규로 숨을 거두고 있다고 밝혔다. 샘의 아침은 악몽에서 깨어나면서 시작된다. 재활 치료를 받고 있는 샘은 심각한 트라우마(정신적인 외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6살때 반군단체인 ‘신의 저항군(LRA)’에 납치됐다. 반군이 그에게 가장 먼저 가르친 건 살인이었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강요했다. 죽이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게임’이었다. 샘은 지난 4월 정부군에 생포될 때까지 무려 6년 동안 제 또래 아이들을 죽이는 ‘살인 병기’ 노릇을 했다. 워싱턴타임스는 31일(현지시간) 샘과 같은 처지의 우간다 소년병이 처한 비극을 현지 르포로 전했다.1987년 창설된 LRA는 20년 동안 수천여명을 살해했다. 이 지역 난민만 150만명.LRA는 소년·소녀 납치로 악명이 높다. 납치된 소년들은 병사로, 소녀들은 성폭행의 대상이 됐다. 국제전범재판소에 반인륜 전범으로 기소된 LRA 지도자 조제프 코니(46)의 부인만 50여명.200곳의 난민촌에선 매달 1000여명의 어린이가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숨지고 있다. “매일 6명씩 아이들이 죽고 있다. 지금 오전 11시인데 벌써 2명이나 숨졌다. 이런 일이 어떻게 20년 동안이나 계속될 수 있나.”난민촌장 르와트의 절규다. 정부 관리 나하만 오즈베는 국제 사회가 우간다의 고통에 눈길도 주지 않는다고 울분을 토했다.“우간다는 다이아몬드도 석유도 없다. 미국과 유엔은 이웃 나라인 수단에는 적극 개입하면서도 우리를 외면하고 있다. 매일 어린이들에게 벌어지는 잔혹한 범죄를 보라.”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이 운영하는 굴루의 소년병 재활센터. 그동안 2만여명의 소년병이 치료를 받고 가족 품에 안겼다. 그러나 샘은 아직 기약이 없다. 소년은 제니퍼, 토니 등 다른 7명의 소년·소녀병들과 함께 센터 생활을 하고 있다. 부모는 샘을 데려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 이유는 샘이 무섭다는 것이다. 부모와의 상봉을 기다리던 샘은 센터 한 쪽에서 서러운 울음을 터트렸다. 전쟁의 광기속에서 잃어버린 소년의 삶을 되찾을 수 있을까.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킬링필드 도살자’ 타목 사망

    캄보디아 ‘킬링 필드’의 주역 타목이 21일 새벽 사망했다.80세. 크메르 루주 정권 때 가장 잔혹해 ‘도살자’로 악명을 떨친 그는 지난주 고혈압과 결핵, 호흡기 질환이 심해지면서 군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고 변호인이 밝혔다. 남부 타케오 지방에서 태어난 그는 16살인 1940년 프랑스에 항거하는 레지스탕스에 가입했다. 이후 폴 포트가 이끄는 공산당에 가입했다.1998년 폴 포트가 사망한 이후에도 작은 부대를 이끌며 저항을 계속하다 1999년 태국 접경지에서 체포돼 군 교도소에 수감됐다. 크메르 루주 정권에서 군사령관을 맡은 타목은 당시 옛 정부군과 관료, 시민 등 1만 7000여명을 학살한 혐의를 받고 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삶의 일탈 낯선 세상으로

    삶의 일탈 낯선 세상으로

    북적거리는 도시, 스트레스를 한아름 안겨주던 일에서 뛰쳐나와 “나 이번 휴가에는 정말 푹 쉬고 싶어∼.”라며 울부짖고 있다면. 조금은 독특한 추억과 경험이 담긴 여행을 하고 싶다면. 갈 때마다 다른 느낌을 주는 태국, 그 중에서도 깐짜나부리의 자연에 나를 맡기자. 깊은 산 속, 콰이강가에 걸린 해먹에 누워 좋아하는 음악을 귀에 꽂고 책 한 권 펼치는 순간. 세상만사 모든 시름을 다 벗어버린 ‘나’만이 존재한다. 글 사진 태국 깐짜나부리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태국 콰이강의 깐짜나부리 정글 래프트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수풀이 무성한 밀림 사이를 흐르는 연한 갈색의 강물, 그 위에 둥실둥실 방갈로가 떠있는 그림을 상상해보라. 어둠이 내려앉으면 전등 대신 호롱불에 의지해 길을 밝힌다.TV도, 에어컨도, 컴퓨터도 쓸 수 없다. 완벽하게 세상에서 벗어나 있다. 혹, 그래서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것은 당신이 들어갈 만한 그림이 아니다. 강가에 쳐놓은 흔들거리는 해먹(그물침대)에 누워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극도의 한가로움’이 그려지고, 어느 순간 그런 여유를 동경하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이곳에 당신을 던져보라. # 자연 속에 그려넣은 한가로운 나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로 5시간 남짓 떨어진, 멀지 않은 태국에는 방콕, 푸껫, 파타야, 치앙마이 등 유명한 여행지가 많다. 방콕에서 서북쪽으로 120여㎞ 떨어진 깐짜나부리도 어떤 면에서는 꽤나 잘 알려진 곳이라 하겠다. 우리나라에는 다소 생소한 지명이지만, 면적상으로는 태국에서 3번째로 큰 지역인데다, 그 유명한 콰이강의 다리가 있으니. 이런 곳에서 어떻게 ‘휴(休)’를 즐길 수 있겠냐고? 성급한 판단은 잠시 접고, 깐짜나부리 시내에서 서북쪽으로 차를 몰고가자. 태국에서도 손꼽히는 천혜의 밀림, 사이욕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길이다.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연갈색 물이 흐르는 콰이강을 만난다. 이 강변에 있는 작은 선착장에서 롱테일 보트를 타고 달려가면, 바로 그 ‘그림’이 나온다.‘리버콰이 정글 래프트(River Kwai Jungle Raft)’다. # 머리를 비우고, 그냥 자연에 맡기자 콰이강의 연갈색 물은 울창한 밀림, 정글 래프트의 나무 방갈로와 한데 어우러져, 자연스럽고 안정된 그림을 만들어내는 가장 적합하다. 들뜨고 지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연한 베이지톤의 그림이다. 이런 곳에서 누군가 내게 전화를 하지 않았을까, 연락을 해야 한다는 걱정은 필요하지 않다. 당장 컴퓨터를 켜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버렸다. 방갈로 기둥 사이에 매달아 놓은 해먹에 누워 MP3플레이어에 가득 채운 음악을 듣는다. 일에 치여 읽지 못했던 책을 폈다.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가끔씩 지나는 롱테일 보트가 만들어내는 파도에 해먹이 움직인다. 그네처럼 흔들흔들, 재미있다. 책을 읽다가 눈이 피로해지면 눈 앞에 펼쳐진 울창한 밀림을 바라보며 달래준다. 시력까지 좋아지는 듯하다. 테라스에 누워 선탠을 즐기는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어둠이 내려앉고, 호롱불이 리버콰이 정글 래프트를 은은하게 밝힌다. 저녁식사는 양꿍, 쁘리오 완 등 태국음식으로 차려져 있다. 작은 불빛에 의지해야 하는 어둠이 약간 불편하고, 어색하더니 어느새 적응이 됐다. 오히려 아늑한 느낌이다. 강가에 있어 푹푹 찌던 도심의 더위는 이곳에 없다. 바람이 살랑이며 불어와 에어컨이나 선풍기 따위는 필요 없다. 눈을 뜨는 아침부터 잠자리에 드는 밤까지, 스트레스를 벗어버린 편안함과 시간에 쫓기지 않는 넉넉함, 자연에 동화되는 여유를 그저 만끽하면 된다. # 정글 탐험, 몬족 마을 여행도 좋아 이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활동적인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다면-그럴 일은 없어보이지만 혹 지루해졌다면- 콰이강으로 뛰어들어 보자. 카누를 타거나, 대나무로 만든 뗏목을 타고 조금 더 멀리 나가서 수영을 즐기는 대나무 래프팅을 해도 좋다. 구명조끼를 입고 잔잔한 물결에 몸을 맡겨 흘러흘러 가는 것도 꽤나 재미있다. 물살이 세지 않아 조금만 발장구를 치면 원하는 방향으로 쭉쭉 전진한다. 방갈로 뒤편 밀림 속에 태국의 소수민족 ‘몬족 마을’을 돌아보는 코끼리 트레킹을 해도 되겠다. 전통 생활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이들의 마을을 찬찬히 둘러보는 것도 이국적인 문화를 만끽하는 방법. 단, 모기약은 필수다. ■ 이곳에서 休~ 리버콰이 리조텔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 속의 산책, 세상에서 벗어난 여유, 여기에 약간의 ‘문명 생활’을 추가하고 싶다면 ‘리버콰이 리조텔(River Kwai Resortel)’이 딱이다. 사이욕 국립공원 선착장에서 롱테일 보트를 타고 달려가면 밀림을 배경으로 한 목조 건물이 나타난다. 이곳이 리버콰이 리조트다. # 밀림을 정원 삼아 산책하는 맛 선착장에서 보면 그리 넓어보이지 않는 2층 건물이 이 리조트의 본관이다. 롱테일 보트에서 내려 로비로 올라가는 곳곳에 태국 전통 장식품들이 놓여있어 작은 박물관 같다. 로비 한쪽에 맑고 푸른 물이 가득한 수영장과 콰이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레스토랑이 있고, 방갈로로 가는 길에는 ‘매점’도 있다! 확실히 정글 래프트보다는 현대적이다. 50여채의 방갈로가 숲 속에 난 좁은 길을 따라 띄엄띄엄 놓여있다. 함부로 나무를 자르거나 길을 내는 등 밀림을 훼손하지 않고 방갈로를 짓다 보니 이렇게 방갈로들이 멀찍이 놓여졌단다. 자연을 보호하고자 함이었지만, 결국은 울창한 밀림을 리조트의 정원으로 만들어버린 셈이 됐다. 다양한 허브를 재배하는 허브공원이 가까이 있어, 은은한 허브향이 풍겨온다. 밀림을 정원 삼아 산책도 하고, 자연 아로마 요법으로 마음까지 다스린다. 조금 더 걸어가면 태국에서 손꼽히는 규모(길이 280m)의 ‘라와동굴’ 표시가 나온다.107개의 계단을 올라 동굴로 들어갔다. 온갖 기이한 형상으로 만들어진 자연 인테리어로 동굴 안이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 동굴 안 햇빛이 들어오는 곳에 불상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도 독특하다. 역시 독실한 신자가 많은 불교국가답다.(어른은 200바트, 아이는 100바트) # 여유 속에서 찾는 알찬 즐거움 평상시에 태국식당에서 먹어본 얼큰한 국물 ‘양꿍’과 볶음국수 ‘팟타이’를 직접 만들어보는 시간은 이곳에서 준비한 독특한 코스다. 주방장이 직접 나와 태국의 채소, 양념 등을 소개하며 만드는 법을 설명한다. 커다란 팬을 들고 온갖 재료를 넣으며 요리를 직접 만들어 보고, 한끼를 즐기는 재미있는 시간이다. 통돼지 바비큐 뷔페와 캠프파이어가 이어지며 리조트의 밤이 저문다. 연갈색의 콰이강물과 대조되는 깨끗한 수영장에서 물장구를 치거나, 햇살을 즐기는 선탠을 해도 좋다. 콰이강에서 카누, 수영, 대나무 트레킹을 즐기고 온 뒤 피곤함이 밀려온다면 산들바람을 느끼며 태국 전통 마사지를 받아보자. 호사가 별건가. 몸이 노곤해지며 피로가 풀리고 정신이 맑아지는, 여기서 누리는 이것이 바로 호사다. # 여행 정보 ■ 가는 길:태국 방콕의 북부터미널에서 깐짜나부리로 가는 에어컨버스(120바트·100바트는 약 2600원)가 매일 오전 2차례 출발한다.3시간 정도 소요. ■ 여행상품:㈜황금깃털여행(마타하리)는 태국전통안마, 바비큐 파티, 코끼리 트레킹, 뗏목 트레킹(또는 카누), 태국 전통음식을 만드는 쿠킹 클래스 등이 포함된 ‘리버콰이 리조텔’상품을 89만원에 준비했다.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리버콰이 정글 래프트’ 는 79만원. 두 상품 모두 콰이강의 다리, 담넌 사두악 수상시장, 사이욕 너이 폭포, 전쟁박물관 등의 일정이 포함돼 있다.3박5일. 1577-2585,www.goldtravel.co.kr ■ 이곳 뺀다면 아니온만 못하리 # 휘파람이 들려오는 듯, 콰이강의 다리 제2차 세계대전에 지어진 미얀마로 넘어가는 철도용 다리. 영화 ‘콰이강의 다리’(1957년)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푸른 숲으로 둘러싸여 흐르는 연갈색의 콰이강은 전시 상황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고즈넉하다. 다리 위를 걸으면 멀리서 경쾌하면서도 비장한 콰이강의 휘파람 행진곡이 들려오는 듯하다. 다소 허술하게 관리되는 곳도 있어, 발 아래 흐르는 황토빛 강물이 그대로 보이기도 한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경우라면 다리 전경만 보는 것이 좋을 듯. 난간의 모양이 아치형이 아닌, 사다리꼴로 된 곳이 폭파 이후 복구된 부분이다. 콰이강의 다리 위를 달리는 기차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운행한다.20바트. 기차가 지날 때에 대비해 곳곳에 대피공간이 있다. 주로 일본인이 많이 오는 편. 적어도 다리를 만들 당시는 일본이 ‘패전국’이 되기 전 ‘점령국’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근처 수상 레스토랑(Floating Restaurant)에서 콰이강을 보며 맛있는 태국음식을 먹을 수 있다. 유명 관광지의 식당인 만큼 다른 곳에 비해, 또 보통 태국의 물가에 비해 약간 비싼 편이다. 대다수의 메뉴가 100바트 이상. # 전쟁 관련 갤러리, 전쟁박물관 콰이강의 다리 근처에 ‘제쓰 전쟁박물관(JEATH War Museum)’이 있다. 세계대전 당시 태국에서 일어난 전쟁에 참가했던 일본(Japan), 영국(England), 미국(America), 태국(Thailand), 네덜란드(Holland)의 앞글자를 딴 이름이다. 당시 일본군의 무기와 사진들을 전시해 놓았다. 또 콰이강의 다리 건설 당시의 열악하고 잔혹한 환경을 밀랍인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조악해보이는 인형의 모습이 오히려 더욱 잔인하고 사실적으로 보인다. 입장료 20바트,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 ‘태국스러운’ 시장, 담넘 사두악 서민의 생활을 보고 싶다면 시장을 가라고 했다. 태국인의 순수함이 남아있는, 방콕 근처에서 가장 크고 활발히 움직이는 수산 시장이 바로 이곳. 황토빛 짜오프라야강 곳곳에 나무로 지어진 주택들과 배를 타고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모인다. 비좁은 수로를 황야우라는 배들이 부대끼며 다니는 진풍경이 펼쳐진다.1시간 정도 구경을 하면서 싱싱한 과일, 먹을거리, 수공예품들을 즉석에서 구입할 수도 있다. 황야우 빌리는 데 500∼1000바트 정도. # 사이욕 너이 폭포 깐짜나부리 외곽 열대밀림 지대인 ‘사이욕 국립공원’ 안에 있는 폭포. 큰 규모의 폭포가 ‘사이욕 야이’, 그보다 작은 것이 ‘사이욕 너이’다. 비가 많이 오는 우기에는 사이욕 너이가 폭포의 웅장함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경관을 연출해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 축제의 천국 말레이시아 말라카 ‘치트라와르나 말레이시아(citrawarna malaysia)’.‘말레이시아의 색깔’이란 뜻의 말레이어로 다인종·다문화 국가인 말레이시아의 다양한 색깔을 한껏 뽐내는 축제다. 지난 8일 개막돼 말레이시아 전역을 뜨겁게 달궈가고 있다. 독립기념일 축제나 메가세일 축제 등 연이은 축제의 신호탄이기도 하다. 이 축제의 개막식에서 사이드 시라주딘 말레이시아 국왕은 2007년을 ‘말레이시아 방문의 해’로 공식선포하기도 했다. 내년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 그동안 이룩한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풍요 등의 바탕위에 관광지로서의 명성 또한 한층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것이다. 엄격한 회교율법이 지배하는 말레이시아 여행에 매력을 못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조용하고 자연친화적인 분위기속에 다양한 색깔을 숨겨둔 말레이시아의 관광지들에 주목하는 사람들 또한 점차 늘고 있는 추세. 그중의 한 곳이 말라카다. 스펙트럼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빛처럼 동서와 고금을 아우르는 다양한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말레이시아의 심장, 쿠알라룸푸르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여행지. 세계적 랜드마크인 페트로나스 트윈빌딩 등의 현대적 건물이 눈을 부시게 하는가 하면, 도심에서 1시간거리인 부키팅기 같은 고산지역의 원시림이 폐부를 씻어주기도 한다. 그곳에 야자수 늘어진 해변은 없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의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느껴보고 싶다면, 그네들만의 다양한 전통과 생활상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결코 지나쳐서는 안 될 곳이다. 팔색조의 현란한 날갯깃과 같은 다양한 색깔을 가진 나라 말레이시아. 물이랑 열대과일 몇개 싸들고 팔색조의 중심부를 관통해 보자. 글 사진 말레이시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역사의 향기 가득한 말라카 말라카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의 도시.‘말라카의 역사는 말레이시아의 역사’라는 말처럼 옛것과 새것, 동양과 서양이 절묘하게 융화되어 있는 곳이다.14세기말 수마트라섬에서 쫓겨온 한 왕자에 의해 세워진 말라카 왕조는 해상 실크로드의 동방거점으로 성장하며 풍요로운 시절을 구가했지만,1511년 포르투갈의 침공으로 멸망한 이후, 수백년에 걸쳐 네덜란드와 영국 등 유럽열강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이같은 외세 통치기간의 역사가 토착화되면서 동서양의 문화가 혼재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게 된 것. 말라카 관광은 현지인들이 에이 파모사(A´ Famosa)요새라고 부르는 산티아고 요새(porta de santiago)에서 시작된다. 포르투갈의 점령 직후 세워진 난공불락의 요새.1641년 네덜란드의 침공으로 파괴됐다가 정복자들의 손에 의해 복원된 다음, 다시 영국과 일본 등의 공격을 받아 정문외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질곡으로 점철된 말레이시아 역사를 웅변하고 있는 곳이다. 하모니카를 불며 관광객들의 동정을 자극하는 악사를 뒤로하고 산티아고 요새 뒤쪽 언덕을 오르면 세인트 폴 처치(St.Paul´s church). 포르투갈의 그리스도교 포교 거점지였지만, 이곳 역시 가톨릭을 박해하던 네덜란드와 영국의 공격으로 파괴되어 벽만 남아있다. 요즘엔 ‘밤이면 밤마다’ 말라카 해협을 배경삼아 내레이션 쇼가 진행되고 있다. 세인트 폴 교회앞에 서 있는 프랑스 신부 성 사비에르(St.Xavier) 동상의 왼쪽손이 가리키는 대로 언덕을 내려오면 스태더이스 광장이다. 말라카 왕국부터 외세 통치시절과 현재까지의 유물들이 보관된 스태더이스기념관, 네덜란드 건축 양식의 크라이스트 처치 등이 있는 곳이다. 얼핏 보기에도 유럽의 시골마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인상을 받는다. 스태더이스 광장 왼쪽의 존커 스트리트(Jonker Street)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골동품 골목이다. 수백년된 골동품을 파는 가게들과 불교·이슬람교·힌두교 사원이 모여있는 평화의 거리, 그리고 기념품 등을 파는 가게 등이 뒤섞여 있다. 이곳 상권을 주름잡는 사람들은 화교. 그래서인지 중세유럽식 건물에 중국식 홍등이 매달려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조그마한 기념품은 이곳에서 준비하는 것이 좋다. 공항 면세점보다도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유적지외에 특별한 관광코스가 없는 이곳에서 말라카 강(강이라기보다는 수로에 가깝다)을 따라 뱃놀이를 즐겨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 강변에 빼곡히 들어선 전통가옥들과 허름한 현대식 건물에 매달린 빨래들, 그리고 개흙을 뒤져 조개를 잡는 사람 등 현지인들의 생활상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 거리가 다소 짧은 것이 흠. 날은 무더운 데다 이곳저곳 구경 하며 돌아다니느라 다리는 아프고…. 숙소까지 편하게 가는 방법을 찾는다면 트라이쇼(trishaw)가 제격이다. 트라이쇼는 세발 자전거 모양을 한 일종의 인력거. 스태더이스 광장이나 존커 스트리트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꽃으로 장식된 트라이쇼에 앉아 야자수 나뭇가지에 걸린 석양을 바라보자면 남국의 정취가 여실히 느껴진다. # 말레이시아의 심장 쿠알라룸푸르 “자동차 기름값보다 사먹는 식수값이 비싼 나라”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귀를 의심케했다. 휘발유는 1ℓ에 600원-그것도 최근에 올랐기 때문이란다- 정도. 식수는 300㎖가 채 못 되는 페트병에 800원 가까이 된다. 혹시 이 나라 부자들은 물을 낭비하는 자식들에게 “물을 돈쓰듯 한다.”고 야단칠는지도 모를 일이다. 서울 뺨치는 차량숲을 지나 세계적인 랜드마크, 페트로나스 트윈타워앞에 섰다. 높이가 452m에 달하는 세계 2위의 마천루다. 쌍둥이 건물로는 세계 최고층 건물이다. 이슬람 모스크 형태를 하고 있는 둥그런 지붕을 밑에서 올려다 보자니 뒷목이 뻐근할 지경. 하지만 이 건물 한쪽을 국내의 한 건설업체가 지었다는 설명에 뻐근함은 곧 으쓱거림으로 바뀌어 졌다. 쿠알라룸푸르 전경을 감상하기에는 KL타워만한 곳이 없다. 특히 야경이 아름다워 ‘다이아몬드 인 블랙(diamond in black)’으로 불리기도 한다. 선웨이 라군(sunway lagoon)리조트도 그냥 지나치면 서운한 곳.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와 경기도 용인의 캐리비안 베이를 합쳐놓은 듯한 대형 테마파크다.2m에 달하는 파도풀장과 170m짜리 인공해변, 그리고 공원 전체를 가르는 길이 400m의 초대형 현수교가 이곳의 자랑거리. # 서늘한 고원(高原) 부키팅기 푹푹 삶는 듯한 도심의 열기를 피하고 싶다면 쿠알라룸푸르에서 불과 1시간 거리에 있는 부키팅기를 찾아가 보자. 말레이어로 ‘높은 언덕’이란 뜻을 가진 곳. 해발 1400m 고원에 위치해 우리나라의 초가을 날씨를 연상케 할 만큼 선선하다. 연평균 기온은 18∼20℃정도. 현지인들이 ‘여름에는 가죽점퍼, 겨울에는 밍크코트’를 입고 찾는단다. 그래서인지 ‘밍크코트’는 몰라도 긴팔옷을 입은 사람들은 간간이 눈에 띈다. 말을 빌려타고 울울창창한 밀림지대를 둘러보는 프로그램이 권할 만하다. 유의할 점은 음료수나 과자 등의 가격이 쿠알라룸푸르 시내보다 무려 6∼7배에 달할 만큼 비싸다는 것. 또 다른 자랑거리는 골프코스다. 동남아 골프 여행객들 사이에 간간이 회자되는 곳.18홀 규모에 총길이는 6312m다. 페어웨이의 기복이 심해 난이도는 높은 편이다. 하지만 워낙 시원한 곳이니 잘 안 맞는다고 ‘열받을’ 일은 없을 듯하다. # 싱마타이 여행 떠나볼까 10일이상의 동남아시아 배낭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그리고 태국 등 3개국을 돌아보는 ‘싱마타이 여행’을 고려해 볼 만하다.3국을 연결하는 철도와 선박, 버스 등의 교통편이나 게스트 하우스 등 숙박시설이 잘 정비되어 있어 별다른 불편함없이 여행할 수 있다.3개국 모두 우리나라와 비자면제 협정이 맺어져 있는 것도 장점. 체류기간이 30일 이내라면 별도의 비자가 필요없다. 싱가포르(visitsingapore.com), 말레이시아(mtpb.co.kr), 태국(tatsel.or.kr) 관광청 홈페이지에서 자세한 여행정보를 얻을 수 있다. 말레이시아 현지여행사인 FM투어(myfmtour.com)의 윤지환씨, 싱가포르 룩 싱가포르여행사(65-6270-8812)의 정 실장(looksingapore@yahoo.co.kr), 그리고 태국 필그림 여행사(66-1-510-0101)의 임 실장(pilgrimthai@hotmail.com ) 등을 통해서도 현지정보를 얻을 수 있다. 엔투어(www.ntour.co.kr) 등의 여행사에서는 ‘싱마타이 기차 배낭여행’ 상품을 팔기도 한다.90만∼120만원선. # 여행정보 ●말레이시아는 차량통행 방향이 우리와 반대. 횡단보도 또한 없는 곳이 많다. 도로를 건널 때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고온다습한 아열대 기후지만, 호텔 등에 냉방시설이 잘돼 있어 긴팔 옷 하나쯤 준비하는 것이 좋다. ●물인심이 짠 편이다.4성급 호텔인 데도 음료수가 비치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심지어 미니바가 텅 비어 있기도 하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음료수 등은 미리 사둘 것. ●사먹는 식수는 ‘drinking→air mineral→mineral water’ 등 3등급. 물갈이 등에 민감한 사람이면 ‘air mineral’이상을 마시는 것이 좋다. ●욕실에 드라이어나 면도기 등 생활용품이 비치되지 않은 경우도 흔하다. ●전기용품을 사용하려면 국내에서 3핀 어댑터를 준비해 가야 한다. 전압은 220v. ●호텔 등에서 지급하는 영수증은 반드시 확인하고 꼼꼼하게 챙겨둘 것. ●국제전화 요금이 엄청 비싼 편. 출국전에 국제전화 카드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 싸고 재미난 해외여행 본격적인 여름휴가철이 시작된다.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올여름 가볼 만한 해외 여행지를 소개한다. 유럽, 남태평양 등 좋은 곳도 많지만 시간과 경제적인 여건을 생각하면 동남아나 중국쪽을 권해본다. 동남아를 제집 드나들듯 돌아다녔다는 엔투어(02-775-0900,www.ntour.co.kr)의 김신철 동남아 팀장이 일반적인 패키지 여행이 아닌 저렴하고 새로운 여행 방법과 여행지를 소개한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태국, 가이드없이 떠나보자 가족이 함께 해외를 간다면 ‘돈’이 만만치 않게 드는 것이 사실이다. 태국 전지역을 싸게 여행할 수 있는 타이항공의 에어텔 프로그램인 로열오키드 할러데이스(ROH)를 이용해보자. 어른 두명이 ROH를 이용하면 12세미만의 아이 한명은 ‘공짜’로 경제적인 부담이 확 줄어든다. ROH는 패키지 여행이 아닌 전 일정에 가이드나 인솔자가 없이 오붓하게 가족들만이 즐기는 자유여행이다. 옵션이나 쇼핑의 강요도 없고 팁을 요구하는 것도 없다. 미리 가고 싶은 곳과 일정을 정해서 움직이면 된다. 공항과 호텔이나 여행지로 픽업서비스가 포함되어 있어 자유여행을 처음 떠나는 가족이라도 전혀 어려움이 없는 새로운 상품이다. 가능한 도시는 방콕, 푸껫, 파타야, 크라비, 코사무이, 치앙마이 등 태국의 주요 관광지이며 상품가격은 왕복항공료와 조식이 포함된 숙박 2박, 그리고 픽업서비스를 포함하여 1인 45만원부터다.(02)775-0900. # 열차를 타고 떠나는 동남아 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을 잇는 철로를 이용해 이들 나라를 돌아보는 ‘싱마타이.’ 전세계 배낭여행객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동남아 3개국의 관광청이 오랜기간 준비해 온 야심찬 프로젝트다. 유럽여행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야간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 기차여행의 낭만을 동남아에서도 즐길 수 있게 됐다. 각국의 서로 다른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 또 앙코르와트가 있는 캄보디아나 홍콩 등 동남아 전 도시로의 연결이 가능해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여행이다.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은 ‘싱마타이 simple 푸껫 10일’. 싱가포르나 쿠알라룸푸르 같은 대도시 여행과 야간열차 이동으로 피곤해진 심신을 태국 푸껫의 아름다운 해변에서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상품이다. # 아름다운 자연과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 모여라 깨끗한 산과 바다, 문화 유적지가 어우러진 맥주의 도시 중국 칭다오(청도)는 요즘 인기 상한가. 칭다오가 관광지로 주목 받는 이유는 아름다운 산과 해변·섬뿐 아니라 시내에는 여러 나라의 독특한 문화를 담은 건물들, 다양한 쇼핑거리와 저렴한 해산물 그리고 무엇보다 빠질 수 없는 칭다오 맥주까지 세계적인 여행지로서 모든 조건을 갖춘 곳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대표 맥주 칭다오 맥주의 고장인 칭다오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해수욕장인 제1해수욕장에서 물놀이뿐 아니라 칭다오의 상징인 잔교를 걸으며 산책도 하고 저녁엔 시원한 칭다오 맥주 한 잔으로 일상을 잊고 쉬기에 그만이다. 특히 매년 8월에 열리는 ‘칭다오 맥주 페스티벌’은 전 세계 20개 유명 맥주 회사들이 참가하는 세계 최대 맥주축제.10일이 넘는 축제 기간동안 온 도시에 맥주 파티가 열려 우리를 더욱 즐겁게 한다. 올해는 8월13일에 축제가 시작된다. # 세계 7대 불가사의 앙코르와트로 떠나는 사원여행 영화 툼레이더의 촬영 장소로 잘 알려진 앙코르와트는 동남아 전체를 호령했던 크메르 제국의 수도인 시엠리아프, 그리고 그 속에 남아있는 수천 개의 사원들을 가리킨다. 신을 위해 지어진 신전인 이곳은 분명 인간의 세상이 아닌, 신의 세상이다. 유럽과 동남아 여행을 한 사람이라면 이번 여름 꼭 앙코르와트에서 ‘신’들을 느끼며 세속의 때를 벗기를 권한다. 앙코르와트 유적군 외에도 시엠리아프 시내에 있는 올드(old)마켓에서는 현지인들의 생활상을 엿보고 저렴한 기념품도 살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관심이 있는 여행지 중 하나이다. # 유토피아 ‘샹그릴라’를 찾아서 영국의 작가 젬스 힐턴의 베스트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의 배경이 되었던 중국 윈난성. 태곳적 웅장한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실존하는 유토피아’라고 불린다. 미얀마, 베트남, 라오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윈난성에는 티베트, 리수족, 라오족 등 약 26개 소수 민족이 살고 있다. 이들이 함께 만들어 가고 있는 독특한 전통과 풍습도 전세계 여행객들이 운남성을 찾게 하고 있다. 윈난성의 대표 도시인 다리와 리장에는 마치 수천년전으로 돌아간 듯한 고성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고, 특히 윈난성의 쿤밍은 세계 배낭 여행자들이 모여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같이 여행을 떠나는 곳으로 변신하고 있다.
  • [데스크시각] 호우 피해에 하늘·예산 탓만 하나/류찬희 산업부 차장

    전국을 강타한 집중호우 피해 현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다. 모조리 쓸려가 뭐 하나 건질 것이 없다.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엔 참혹한 상처만 남았다. 잔혹한 전쟁터보다 더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반갑지 않은 행사를 지켜보노라면 울화가 치민다.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의 마음이 이럴진대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은 오죽하랴. 이념 갈등 아니면 눈앞의 치적을 놓고 아귀다툼에 여념이 없는 정치권과 행정부는 수재민들에게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게다. 치산치수(治山治水)는 예로부터 민생(民生)에 직접 관련돼 흔히 정치의 요체로 비유했다. ‘서경’에 따르면 중국 순임금이 왕위에 오를 때 ‘동방의 천자’를 알현해 예를 올렸다고 한다. 그런데 순임금이 찾아간 동방의 천자는 바로 고조선 단군왕검이다. 당시 중국은 9년 홍수로 양쯔강이 범람하는 등 위기에 빠졌는데, 단군왕검이 맏아들을 보내 순임금의 신하였던 우에게 금간옥첩(金簡玉牒)을 전수해 주었다고 전한다. 금간옥첩에는 산과 물을 다스리는 비결인 오행치수법을 비롯해 나라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아홉 가지 큰 법도가 담겨있다. 치산치수는 국가 지도자의 경영 덕목이었던 것이다. 4년 전 여름으로 거슬러간다. 당시 태풍 루사가 빠져나간 뒤 엄청난 재앙이 찾아왔다. 강원 지역을 강타하고, 한강 유역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집중호우의 원인과 피해 심각성이 지금과 너무나 똑같았다.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 복구에 나서는 등 야단법석을 떨었다. 토목공사 설계기준을 강화하고 물관리를 철저히 해 더이상 후진국형 재난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다음해 태풍 매미가 상륙했을 때도 같은 피해를 입었고,3년 뒤 한반도에서 같은 유형의 재앙이 되풀이됐다. 정부는 정확한 사고 원인이 밝혀지기도 전에 불가항력으로 몰아세우려 하는 것 같다. 설령 시설물을 100년·200년, 그 이상 빈도에 맞춰 설계했더라도 같은 재앙이 연례행사처럼 일어나는데 이를 천재(天災)로만 몰아붙일 수 있을까. 한반도에 이상기후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또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다. 집중호우에 따른 재앙은 오래전부터 예견됐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하늘만 탓한다. 집중호우는 막을 수 없다. 하지만 피해는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정부는 진작 설계 기준을 강화하고,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엄청난 피해를 몰고온 주범인 산사태만 해도 그렇다. 산사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사방댐’ 건설이 가장 효율적인데, 산림청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8700여개의 사방댐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고작 1700여개만 설치됐을 뿐이다. 도로 경사면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선 설계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사방댐 건설이나 경사면 설계기준 강화를 지적할 때마다 정부는 예산타령으로 일관했다. 건설업체는 공사비 줄이는 데 집착했고, 감독기관은 팔짱만 끼고 있었다. 이번 피해를 천재로만 몰고갈 수는 없는 이유다. 더 이상 하늘과 예산부족 탓으로 돌리지 말자. 복구비만으로도 홍수 피해를 줄이는 시설을 보강하기에 충분하다. 우리의 지도자들은 치산치수행정을 다른 나라에 전수할 정도로 훌륭했다. 정치 지도자가 할 일은 우선 국민을 안전하게 지키고 배불리 먹이는 것이다. 비록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격이지만 인재(人災)를 인정하고, 되풀이되는 재앙을 막을 수 있는 완벽한 대책을 내놓아야 할 때이다. 류찬희 산업부 차장 chani@seoul.co.kr
  • K2TV ‘포도밭 사나이’ 촬영 현장에서 만난 오만석

    K2TV ‘포도밭 사나이’ 촬영 현장에서 만난 오만석

    “여러 무대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 크로스오버 연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쫓는다.’는 말이 있다. 쉽지 않은 일을 동시에 벌일 때 쓰는 말이다. 가수가 연기를 하고, 배우가 노래를 부르는 시대라 두 마리 토끼는 가벼운 이야기 같다. 그런데 뮤지컬 스타 오만석의 모자 속에는 네 마리 토끼가 담겨 있지 않을까 싶다. 뮤지컬, 연극, 영화, 드라마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그의 연기 폭을 보면 그 느낌이 든다.‘팔방돌이’지만 실력에 비해 대중적으론 크게 이름을 떨치지 못했다. 뮤지컬 ‘헤드윅’에선 더블 캐스팅된 조승우에게 가려졌다. 앞서 연극 ‘이(爾)’의 초연 멤버로 광대 공길을 연기했으나, 사람들은 ‘이’를 각색한 영화 ‘왕의 남자’의 이준기에게 핀라이트를 꽂았다. 그럼에도 알 만한 이들은 오만석을 다이아몬드 원석으로 평가한다. 지난 9일 대학로에서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 ‘김종욱 찾기’ 저녁 무대에 오르려고 숨을 고르고 있는 그를 만났다. 이미 익숙한 뮤지컬 무대라 드라마 주연을 꿰찬 기분에 대해 먼저 물었다.‘무인시대’ 단역과 ‘신돈’의 원현 스님을 연기한 이후 당당히 주연으로 발탁됐다. 오는 24일 시작하는 KBS 2TV 월화드라마 ‘포도밭 사나이’에서 주연을 맡았다. 고속 성장이다.‘궁’으로 한창 뜬 윤은혜의 상대역이다.“세 번째 드라마 만에 큰 역할이라 부담되죠. 촬영 분량도 많아요.”라면서 “어느 정도 드라마 시스템에 익숙해지고 있어요.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열심히 해야죠.”라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다. 서울 토박이라 경운기를 몰고, 포도밭을 일구는 순박한 시골 청년 역할에 애를 많이 먹는다고 했다.“동네 이장님이 자상하게 가르쳐 주고 있어요. 얼굴도 ‘까무잡잡’하고, 이름도 촌티나잖아요? 시골 총각과 어울리지 않나요?”라고 되묻는다. 바쁜 드라마 촬영 일정 속에서도 영화 ‘잔혹한 출근’ 우정 출연에 이어 재일교포 영화감독 최양일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수’의 크랭크인도 앞두고 있다. 주인공의 목숨을 노리는 킬러 역이다. 큰 역할은 아니지만 강한 이미지를 풍기는 캐릭터라 기대가 크다. 최근 다시 무대에 올려진 연극 ‘이’에서 공길을 트리플 캐스팅으로 재차 연기 한데 이어 오는 10월 뮤지컬로 변신하는 ‘이’에서는 연산으로 신분상승하게 된다. 여러 장르를 오가는 강행군이지만 연극 ‘이’의 초연 멤버였던 만큼 뮤지컬로 첫선을 보이는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욕심을 냈다. 오만석은 “다양한 무대에 등장하지만 캐릭터가 저마다 특성이 있기 때문에 헷갈리는 일은 없다.”면서 “체력이 문제다. 이전엔 축구로 체력을 유지했지만 요즘은 그렇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연극과 뮤지컬이 고향이지만 TV나 영화 출연에 거부감은 없다. 또 TV, 영화에 나온다고 해서 고향을 등지고 싶은 생각도 없다. 모두 같은 연기 장르로 고급, 저급을 따지는 것은 우습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인터뷰 말미에 감춰놨던 토끼 한 마리를 슬그머니 꺼내놓는다.‘헤드윅’에서 조연출을 겸했던 그는 조만간 연극이나 뮤지컬 연출에도 도전하고 싶다는 욕심을 드러냈다.“연기하는 게 너무나 즐거워 장르를 가리고픈 마음은 없어요. 어느 무대이든, 주역이든 단역이든 똑같은 마음으로 노력하겠습니다. 연출에 대한 꿈도 있는데 2∼3년 안에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알제리계 지단, 인종차별 발언에 발끈” “여동생 매춘부라 모욕”

    독일월드컵 결승전에서 지네딘 지단(34·프랑스)이 ‘박치기 퇴장’을 당한 뒤 하루가 흘렀지만 ‘설’만 무성할 뿐, 진실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브라질의 TV방송 ‘글로보’는 독화술(입술 모양을 보고 의미를 읽어내는 기술) 전문가를 동원, 분석한 결과 ‘마테라치(33·이탈리아)가 두 번이나 지단의 여동생을 매춘부라고 부르는 입술 움직임이 포착됐다.’고 11일 보도했다. 앞서 프랑스 인종차별 감시단체인 ‘SOS 라시슴(Racism)’은 축구계의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마테라치가 지단을 향해 ‘비열한 테러리스트’라 불렀다고 밝혔다. 사실이라면 지단이 회교국가인 알제리계 임을 간접적으로 비난한 셈. 영국의 타블로이드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마테라치가 지단의 벗겨진 머리를 보며 이탈리아어로 ‘바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지단은 매춘부의 아들’이라며 어머니를 모욕했다고 덧붙였다. 지단의 에이전트 알랭 미글리아시오는 “마테라치가 심각한 말을 했지만 지단은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며칠 안에 이에 대해 밝힐 수도 있다.”고 전했다. 지단도 속이 편치 만은 않다. 대표팀 동료들과 축구계 인사들은 대체로 지단을 편들고 있지만, 국내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다. 마테라치가 도발을 했더라도 패배의 빌미를 제공한 지단의 무모한 행동은 베테랑답지 못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단은 국제연합개발계획(UNDP)의 홍보대사로 매년 빈곤퇴치를 위한 자선경기를 열고, 신체 및 정신장애가 있는 어린이들을 돕는 ‘프랑스 어린이 긴급구호단체’행사에도 후원하고 있다. 어린 시절 친구인 베로니끄와 결혼해 4명의 자녀를 둔 잉꼬부부로 단 한 번도 스캔들이 없을 만큼 ‘깨끗한 이미지’가 팬들에 각인돼 있다. 하지만 그라운드 안에선 얘기가 달라진다. 데뷔 초인 AS칸 시절부터 관중들의 인종 차별적 야유에 시달렸던 그는 종종 돌발행동을 보였다. 중요한 경기에서 잔혹한 반칙을 해 레드카드를 받고 팀의 대사를 그르치는 일도 다반사였다. 미드필더로는 다소 많은 통산 14차례의 레드카드를 받은 것은 그의 다혈질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지단은 신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일 뿐’이라는 에이전트의 말처럼 그라운드 안과 밖의 행동이 한결 같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지단이 살아있는 축구의 전설이란 사실이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英어린이 정신 건강 “영 아니네”

    어린이들의 정신 건강에 빨간 불이 켜졌다. 영국의학협회(BMA)는 20일(현지시간) 보고서를 통해 경고했다. “어린이들의 정서 및 정신장애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10명 가운데 1명 이상에 해당하는 100만명이 넘는 어린이, 청소년들이 정서 및 정신장애로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할 처지”라는 것이다. 보고서는 11∼16세 가운데 남자 어린이와 청소년의 12.6%, 여자 어린이의 10%가 병원 치료가 필요한 정서 및 정신장애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5∼16세 어린이의 9.6%도 정서나 행동장애를 겪고 있다. ●우울증, 공포증, 행동장애 확산 이들은 집중력 결핍에서부터 우울증, 각종 공포증 및 혐오증, 절도 충동, 과도한 공격성과 갑작스러운 화냄, 동·식물들에 대한 잔혹성 표출 등의 증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영국 어린이들의 사례를 연구한 것이지만 결코 영국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21일 이같은 수치는 30년 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라면서 ‘(정신건강에서 볼 때)어린이들은 벼랑 끝에 서 있다.’고 경종을 울렸다. ●벼랑 끝에 선 아이들 늘어 이같은 현상은 어린이들을 정서적으로 감싸주고 안정감을 주던 가정적·사회적 보호장치들이 줄어든 반면, 아이들을 정신적 불안에 시달리게 하고 중압감을 느끼게 하는 ‘유해 환경’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할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지 못하고 있으며 문제를 키우고 있다고 보고서는 질타했다. 신문은 이혼 증가 등 늘고 있는 가정파탄, 경쟁 일변도로 치닫는 사회 분위기와 이에 따른 심적 부담의 가중, 알코올 음료 확산 등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두드러진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운동과 균형잡힌 식생활은 예방책 중 하나 정신건강재단(MHC)의 아비스 존스는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대다수 어른들도 그 문제는 어린 시절에 시작된 것”이라면서 “어린이들이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어른으로 크지 않도록 치료와 예방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BMA의 비비안 나산손은 “설탕이 많이 들어간 가공음식은 집중장애를 일으키는 등 잘못된 섭생과 건강하지 못한 생활습관이 정신적 문제를 악화시킨다.”면서 “운동과 균형 있는 섭생이 정신질환 예방에 도움을 준다.”고 지적했다. 영국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어린이 정신질환 환자들이 3년 전보다 40%가량 늘었다고 발표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24) 몸의 느낌과 구체적 사유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24) 몸의 느낌과 구체적 사유

    몸이 철학의 화두로 등장하게 된 것은 일생동안 몸을 의지해서 우리가 삶을 유지하기에 그렇다. 몸과 함께 세상에 등장했고 몸을 두고 우리가 세상을 떠나기에 몸은 이 세상을 사는 인간의 절대한계인 것 같다. 그 몸이 무엇일까? 서양철학에서도 19∼20세기의 생철학이나 실존철학이 대두할 때까지 몸은 영혼의 생각을 현실화시키는 객관적 도구 정도로 오랫동안 하찮게 여겨졌다. 프랑스의 베르그송이나 독일의 쇼펜하우어나 니체 등의 생철학자 시대를 지나 본격적으로 몸을 철학의 화두로 가장 먼저 떠올린 이가 20세기의 프랑스의 두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과 메를로-퐁티라고 나는 생각한다. 두 사람 다 철학적 현상학자다. 현상학은 세상의 진리가 의식현상 속에 숨어 있다고 여겨 의식세계의 모든 현상적 활동을 분석하는 철학의 방법론을 말한다. 의식이 생활세계에 축을 박고 있기에 생활세계의 의식현상은 몸을 떠나서 해명이 안 되므로 현상학은 몸을 의식활동 속에 내재화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몸은 의식의 실존화를 뜻한다. 실존화는 몸이 놓여 있는 ‘여기’와 ‘지금’의 구체적 상황을 떠난 의식은 단지 뿌리 없는 가공의 생각에 그칠 뿐이라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 죽을 때까지 자기의 몸을 떠날 수 없다는 인간조건은 죽을 때까지 실존적 생활세계의 상황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과 같다. 몸이라는 실존적 인간조건을 도외시하는 어떤 의식의 생각이나 관념도 다 허구적이라는 것이다. 몸은 직접 느끼고, 의식은 몸의 지각을 개념적으로 생각한다. 몸의 느낌(지각)이 의식의 생각으로 통일되면, 그것이 나의 느낌을 개념화한 나의 생각이다. 그런데 몸은 상황 속에서 느끼고 있는데, 개념적 생각은 선진외국에서 빌려 와서 몸의 느낌과 별도로 외국에서 배운 개념적 생각을 보편성의 이름으로 펼치게 되면, 몸의 느낌과 의식의 개념이 따로 놀든지, 아니면 개념이 실존적 느낌을 자기 식대로 왜곡하든지 한다. 이런 현상이 한국 대학의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일반적 모양새가 아닌가? 그래서 한국 대학에서 배운 학문이 헛돌거나 겉돈다. 이 말은 한국 대학의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이 땅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이 무심결에 토해내는 무의식적 정감의 형용사나 부사적 내용을 보편적 명사개념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본의 아니게 좌절시키거나 무의미한 것으로 취급하여 오히려 그 상황의 실존적 말을 봉쇄하는 결과를 빚게 한다는 것과 같다. 나는 세계적인 유수한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다 먼저 그 학문이 자란 몸과 같은 상황이 토해내는 정감적 언어를 보편적인 개념적 언어로 승화시키거나 승진시킨 것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몸과 실존적 상황은 유사한 뜻이다. 몸의 느낌은 실존적 상황의 분위기와 같다. 몸은 그 분위기를 직접 느낀다. 그리고 그 상황의 분위기가 몸에 쌓여 습기(習氣)를 이룬다. 몸은 단지 객관적인 이 몸뚱이의 물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죽은 시체를 우리가 몸이라 부르지 않는다. 여기서 나는 다시 저 율곡의 이통기국(理通氣局=보편적 理는 氣의 특수한 제약과 함께 실존함)(13회 글)과 기발이승(氣發理乘=氣가 발양하면 이미 理가 그 氣를 타고 있음)의 사상을 생각한다. 이통기국은 이(理)라는 생각의 보편성이 기(氣)라는 몸의 기질과 별개로 떨어져서 존재하지 않음을 가리킨다. 기발이승은 몸의 정감적 기질이 기운의 힘으로 바뀌어지면, 바로 보편적 이(理)의 개념어가 그 기운의 힘 속에 같이 타고 있음을 말한다. 이통기국은 보편적 생각이 상황이란 몸을 떠나서 실존하지 않음을 말하고, 기발이승은 기질이 기운의 힘으로 바뀌는 문화의 창조 속에 이미 보편적 이(理)가 깃들어 있음을 가리킨다. 기질은 보편적 생각(개념)을 늘 특수하게 제약시킨다. 특수한 기질이 장애가 되기도 한다. 그 기질이 운명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장애와 운명적 제약의 역할을 하는 그 기질이 동시에 우리를 일으키게 하는 기운의 힘을 주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땅으로 쓰러진 자가 그 땅을 다시 밟고 일어서는 것과 같이 기질의 제약으로 갇힌 자는 다시 그 기질을 기운으로 승화시켜야 다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질을 기운의 힘으로 돌리게 하는 것이 인문·사회과학이고 예술의 역할이겠다. 몸의 느낌을 배제한 개념적 생각은 생활세계에서 늘 공허하다. 몸의 느낌보다 앞선 경험은 없다. 몸의 느낌과 괴리된 개념의 생각은 빌려온 생각일 뿐이다. 빌려온 생각은 아무리 화려해도 그것은 가화(假花)에 불과하다. 마르셀이 그의 저서 ‘형이상학일기’에서 참다운 철학은 ‘자신의 몸이 느낀 한계경험(limit-experience)을 실현하는 역사’라고 말했다. 이 말이 의미심장하다. 철학사에 등록될 만한 가치를 지닌 철학들은 다 철학자들의 몸이 느낀 ‘한계경험’들을 보편적 의미로 승화시킨 것에 다름 아니겠다. 한계경험’이란 말은 경험의 시원적인 출발지인 한계상황과 같은 의미다. 인간은 몸을 벗어나지 못하듯이, 자기가 태어난 한계상황(역사적·언어적 상황)을 탈출하지 못한다. 이것이 인간조건이다. 그런데 그 한계경험인 한계상황이 괴롭거나 고통스럽지 않으면, 철학적 사유가 잉태되지 않는다. 창조적인 모든 철학사상은 몸이 느낀 한계상황이 주는 아픔에서 해방되려는 자기 치유의 과정과 다르지 않겠다. 마르셀은 몸의 느낌이 상황의 고통과 직접 접목함에 있어서 거짓이 거기에 끼지 않는다고 본다. 모든 거짓은 개념적으로 간접적인 생각에서 발동하는데, 느낌은 상황 속에 직접 ‘잠기는 관여’(immerged participation)라고 그의 저서 ‘존재의 신비’(1권)에서 말했다. 내 몸은 상황의 거짓 없는 역사요, 분위기다. 몸은 각자가 살아온 집안과 나라의 분위기를 나타낸다. 몸은 각자가 생각하기 이전에 이미 배어 있는 생활경험의 원초적 한계다. 그 원초적 한계를 넘어 인간은 개념적 생각을 비상시킬 수 없다. 몸은 자기와 상황과의 공동소속의 경험이므로 같은 한계상황 속에 살아온 사람들은 같은 몸의 행동양식을 공유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몸의 지각은 내가 느끼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반성 이전에 함께 느끼는 차원이 된다. 이런 공동지각을 메를로-퐁티는 ‘세상사람이 지각한다.’(It is perceived.)라고 언명했다. 마르셀이 말한 상황 속에 ‘잠기는 몸의 관여’는 메를로-퐁티가 그의 저서 ‘지각의 현상학’에서 몸을 ‘세상에 바쳐진 주체’(the subject devoted to the world)로서 표현하고 있는 내용과 닮았다. 몸을 주체로 표현하고 있으나, 그 주체의 개념은 자의식의 명징한 주체가 아니라, 의식과 세상이 애매하게 혼융되어 있는 개념으로서의 주체다. 메를로-퐁티에게 주체로서의 몸은 재래의 의식철학이 주장한 순수의식의 주체가 아니고, 생활세계와 뒤섞인 애매모호한 주체다.‘지각의 현상학’에서 메를로-퐁티는 ‘내 몸은 세상에 속하면서도 나에게 속한다.’고 말했다. 내 몸이 세상에 속하기에 생활세계가 안고 온 무의식적인 역사를 벗어나지 않고, 또 내 몸이 나의 것이므로 몸이 느끼는 것에 대한 반성이 가능하다. 몸은 생활세계의 역사적 무의식의 사실인 ‘반성되지 않은 것’(the unreflected)과 의식의 반성(reflection)과의 사이에 놓인 중간의 애매모호한 영역과 같다. 메를로-퐁티에게 철학은 의식의 반성인데, 그 반성은 반성되지 않고 있는 무의식적인 공동정감의 모호한 느낌을 철학적 반성의 토대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다. 이 말은 마르셀이 철학을 ‘한계경험을 실현하는 역사’라고 말한 것과 유사하다. 그러므로 학문이나 예술로서의 철학적 반성은 생활세계에 젖은 몸의 공동적 습관인 ‘반성되지 않은 것’을 반성해서 그것을 의미화하고 자유화하는 것이다. 몸은 생각을 낳는 모든 경험의 토대로서의 느낌을 뜻한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살아온 일생의 경험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내 이전의 역사가 배어 있는 생활공간의 분위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 몸의 경험을 우리는 업(業)이라 불러도 좋겠다. 그 느낌에서부터 생각이 발단된다. 철학은 우리의 몸에 공통적으로 배어 있는 역사적 공동업(共同業)에 대한 반성과 같다. 업은 기질이다. 철학은 그 업의 기질에 대한 반성이겠다. 철학은 업의 기질을 기운의 힘으로 승진시키는 개념적 생각이지만, 그 개념적 생각이 업의 기질을 100% 투명하게 반성할 수 없다. 왜냐하면 100%의 투명한 반성은 몸의 경험을 벗어난 순수 관념의 영역에서 가능한데, 인간의 철학적 사유는 그 몸의 한계상황을 초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철학은 몸을 통해 그 업의 괴로운 소리를 부분적으로 들으면서 그것을 기운의 힘으로 변형시키지만, 그 철학적 반성은 업이 지닌 무의미의 짐을 다 내려놓게 할 수 없다. 그래서 철학적 반성인 업의 해방은 무의미의 어둠을 온전히 지울 수 없으므로 마치 선악의 이중주(3·4회 글)처럼 늘 현실에서 의미와 무의미가 분리되지 않고 같이 따라다닌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겠다. 평화의 유지는 부드러운 선의지로서만 가능하지 않고, 잔혹한 폭력을 가장 잘 제어하는 보다 덜 잔혹한 폭력이 용인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100% 진선진미한 역사현실을 이룩한다는 주장은 다 현실성이 없는 가공의 공상에 불과하다. 철학사에 등장한 구체적 철학사상은 각 철학자의 몸이 느낀 원초적 역사의 경험을 토대로 아픈 몸의 느낌을 치유하고자 하는 의학사상과 다를 바 없겠다. 그러나 모든 병을 다 치유하는 완전한 해방으로서의 반성은 몸을 지닌 인간조건에서 불가능하다. 철학사상은 어떤 부분적 업의 아픔을 처방했을 뿐이지, 모든 정치문화적 아픔을 일시에 다 제거하겠다든지, 할 수 있다고 여기면 큰 오만이다. 점진적인 치유가 있을 뿐이다. 우리의 기질은 대박을 공상한다. 정치적·경제적으로 성질 급한 대박의 공상적 기질이 장구하고 원대한 원력의 기운으로 승화되기 위하여 우리는 냄비에서 가마솥으로 요리하고 인내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그 철학의 처방은 역사적 상황을 통해 몸이 절실하게 느낀 무의식적 말을 잘 들으려고 고요히 사색하는 자에게 가능하지, 빌려온 관념에 사로잡힌 유식한 이들이 화끈하게 큰소리치는 마당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씨줄날줄] 독배/우득정 논설위원

    전설적인 종군여기자이자 소설가인 오리아나 팔라치는 자전적 2인칭 소설 ‘한 남자(A Man)’의 도입부를 소크라테스의 말로 장식했다.“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왔다. 나는 죽음의 길로, 당신은 삶의 길로. 하지만 어느 길이 옳은지는 신만이 알 뿐.”아테네도시가 숭배하는 신을 숭배하기를 거부하고 도시의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이유로 법정에 고발된 소크라테스가 죽음의 독배(毒杯)를 들기 전 탈옥을 권유하는 친구들에게 남긴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죽음 대신 추방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비극은 죽음이 아니라 불명예”라면서 진리에 대한 신념을 꺾기를 거부했다. 수많은 독재자들을 인터뷰하면서 독재의 잔혹함을 추상같이 추궁했던 팔라치는 그리스의 반체제 풍운아 파나굴리스와의 첫 만남에서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든다. 그리고 3년 후 파나굴리스가 의문의 암살을 당한 뒤 전설적인 영웅으로 다시 되살린 것이 ‘한 남자’라는 소설이다. 십자가에 못박힐 것 같은 비극적인 운명을 예감하면서도 숙명적인 인연의 끈을 끊지 못하는 팔라치 자신의 독백이기도 하다. 그래서 팔라치는 아무런 주저없이 독배를 든다. 훗날 팔라치는 1980년대 초 레바논 주둔 미군과 프랑스군 사령부의 자살폭탄 테러를 그린 소설 ‘인샬라’에서 참혹한 전쟁터를 헤집고 다니며 찾던 삶의 방정식 해답을 얻는다.“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살면서 체험해야 할 신비이다. 그 말은 바로 인샬라, 신의 뜻대로.”삶의 방정식을 찾아 레바논 근무를 자원한 이탈리아 병사 안젤로에게 해답을 전한 니네트는 밤 길거리를 헤매다 무참하게 살해된다. 다음 날 안젤로를 싣고 철수하던 이탈리아 군함은 속수무책인 상태에서 자살보트의 공격을 받는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최고위원이 5·31 지방선거 참패로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내몰린 당을 구하기 위해 “독배라도 마시겠다.”며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고 한다. 김 최고위원에 대한 ‘좌파 이미지’ 등 거부 시각에 대해 ‘김근태의 변명’이 없어 자세히 알 길은 없으나 진실에 대한 믿음, 순수한 열정 등으로 성난 민심을 되돌리겠다는 각오가 아닌가 추정된다. 하지만 ‘싸가지’들이 그동안 국민들의 가슴에 남긴 생채기를 열정만으로 치유할 수 있을까.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오늘의 눈] 라틴아메리카의 고독/이세영 국제부 기자

    1982년 노벨문학상 시상식장에 등장한 가브리엘 마르케스는 열정적이고 단호한 어조로 ‘라틴아메리카의 고독’이란 수상연설문을 읽어내려갔다. “서구인들만이 독립과 독창성을 추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문학의 독창성은 그렇듯 쉽게 인정하면서 우리가 시도하는 사회변혁은 왜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까.” 이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가를 절망케 한 것은 라틴아메리카를 미개하고 잔인하며, 비합리적 열정에 사로잡힌 땅으로 낙인찍은 서구의 오만이었다. 4일(현지시간) 치러진 페루의 대통령선거 결선투표 결과를 전하는 서구 언론의 반응에서도 ‘1세계 문명인들’의 무례함은 어김없이 묻어난다. 중도좌파 알란 가르시아를 선출한 페루인을 향해 이들은 “최악을 피해 차악을 택했다.”며 냉소했다. 특히 월스트리트저널과 블룸버그통신 등 경제매체들이 최근까지 보여준 보도행태는 특정 후보의 낙선을 노렸다는 혐의를 두기에 충분했다. 이들은 급진민족주의자 오얀타 우말라가 선두로 부상한 3월부터 그의 집권이 가져올 ‘재앙’을 경고하며 선거구도를 ‘공포와의 대결’로 몰아갔다. 과연 라틴아메리카인들은 외국인과 부자에 대한 적대감에 정치적 잔혹극을 일삼는 우중(愚衆)일 뿐인가. 자원 국유화와 부의 분배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주권행위를 음험한 포퓰리스트와의 야합으로 단죄한다면, 대체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의 경계는 어디인가. 24년 전 마르케스는 ‘다른 세계’를 향한 노력을 용인치 않는 서구의 편협함이 라틴아메리카를 고독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들이 20년 전 페루 경제를 거덜낸 가르시아에게 재차 기회를 준들,16년 전 미국에 의해 ‘축출’된 다니엘 오르테가에게 니카라과의 운명을 다시 맡긴들 또 어떤가. 이미 그들은 피노체트와 콘트라, 워싱턴 컨센서스로 상징되는 서구의 개입으로 충분히 고통받았다. 이제 지긋지긋한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그들을 해방시킬 때도 됐다. 이세영 국제부 기자 sylee@seoul.co.kr
  • [깨미동과 떠나는 생각여행](13)영화속 학교 폭력, 무엇이 현실과 다른가?

    ■ 생각열기 영화 ‘싸움의 기술’,‘말죽거리 잔혹사’,‘방과후 옥상’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혹시, 주인공이 멋있게 느껴졌는가? 약자였던 주인공이 악당 같은 학생을 응징할 때 쾌감을 느꼈는가? 이러한 영화를 보면서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조금이라도 생각해본다면 우리의 마음은 곧 불편해져야 한다. 먼저, 이러한 영화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첫째, 학교를 배경으로 폭력장면이 나타나고 있다. 주로 학교 옥상에서 싸움을 많이 한다. 둘째, 집단폭력과 따돌림을 자행하는 못된 학생들이 있다. 이런 학생들은 대부분 끝이 안 좋다. 주인공으로 인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셋째, 그 학생들에게 직간접적 피해를 입은 주인공이 어떤 계기에 의해서 멋지게 응징하면서 마무리된다. 넷째, 싸움이 벌어지는 동안 나머지 학생들은 구경을 하고 있다. 집단따돌림이 벌어지거나 싸움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방관한다. 영화속 학생들은 누가 싸움에서 이길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다. 다섯째, 싸움이 벌어질 때 선생님들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주로 싸움이 완전히 끝난 뒤 뒤늦게 수습하러 온다. ■ 생각에 날개달기 학교폭력을 다루는 영화는 현실 세계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영화에서는 갈등의 정점에서 단판의 싸움으로 모든 것이 해소되지만 실제로는 더 큰 폭력을 불러오거나 깊은 상처를 가져온다. 폭력을 폭력으로 갚았을 때 영화에서는 해피엔딩이 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증오와 보복이 반복될 수 있다. 영화에서는 폭력이 영상 미학과 결합되어 주먹과 다리를 한대 날려도 멋지게 날리고, 승리의 결과만을 나타내지만, 맞는 이의 고통에 대해서는 철저히 생략해버린다. 영화에서는 싸우는 이들과 구경하는 이들로 나누어진다. 싸우게 되면 당연히 패배자와 승리자가 생긴다. 영화에서는 약자였던 주인공이 어찌어찌해서 강한 상대방을 이긴다. 승리자와 패배자는 과연 누구인가? 필자가 보기에 진정한 의미의 패배자는 싸움을 구경했던 학생들이다. 이들은 마치 무술의 달인들 중 누가 최강자인가를 생각하면서 K1을 즐기듯, 학교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구경한다. 적어도 영화에서는 누구 하나 싸움을 말리는 이들은 없다. 폭력 자체가 우발적으로 벌어졌다고 해도 구경하는 학생들은 그 싸움을 말려야 했다. 말릴 용기가 없었다면 적어도 교무실로 달려가거나, 몰래 나가 경찰서에 휴대전화로 신고라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영화속에서 그런 용기있는 학생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은 비겁한 고자질이 아니다. 폭력의 피해를 막기 위한 지극히 인권적인 행동이다. 폭력은 그것을 용인하는 구성원들의 문화와 가치에 의해 발생되기 때문이다. 폭력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 확고한 개인적 신념이 있다면 폭력의 싹이 나오지 않게 할 수 있다. 영화는 폭력 이후의 결과에 대해 현실과 큰 차이를 나타낸다. 영화에서는 폭력을 손쉽게 사용하고, 결말을 맺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폭력의 결과로 법적·경제적·사회적·교육적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 즉, 싸움 잘했다고 사람들이 박수쳐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형법에 의하면 단순폭행죄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과료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집단폭력을 행했거나 무기를 들고 싸운 경우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며, 상습적인 경우 처벌이 가중된다. 학교폭력대책 예방법도 가해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가해자는 피해학생에 대한 서면 사과, 학급교체, 전학, 학교에서의 봉사, 사회봉사, 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특별교육이수 또는 심리치료, 출석정지, 퇴학처분까지 감수해야 한다. 지금 학교폭력문제는 검찰과 경찰, 국가청소년위원회, 교육부와 교육청, 언론, 국회 등에서 대책을 고심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다. 따라서 갈수록 가해자와 가해자 부모에게 법적·경제적·사회적 책임을 묻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에 대해서 들어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성경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서 크게 다쳐 길에 쓰러졌는데, 제사장과 레위사람들은 그를 무시하고 모른 체하였다. 그런데 당시 하층민으로 취급받던 사마리아인이 그를 구해주었다. 이 법은 누군가가 위해를 입거나 입을 수 있는 상황에서 구조를 하지 않은 사람들을 처벌하자는 것이다.‘착한 사마리아인 법’에 의하면 제사장과 레위사람은 처벌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 법을 채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프랑스나 독일의 경우 이 법을 시행하고 있다. 영화처럼 폭력이 얼마 뒤 발생될 것을 알고, 교실에서 집단따돌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면서도 이를 방관하고,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착한 사마리아인 법’에 비추어볼 때 구경꾼과 방관자들에게도 가해자처럼 법적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할지 모른다. 비록 이러한 가상의 법이 아니어도, 우리의 양심과 도덕과 윤리와 인권의 관점에서 본다면 폭력의 늪으로 친구들이 빠져들지 않도록 어떤 식으로든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근래 들어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 교내에 CCTV를 설치했지만 그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결국 학생들 한명 한명이 폭력을 예방하고 감시하는 인간 CCTV가 되어야 한다. 진정한 승리자는 자신에게 치밀어 오르는 상대방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주먹이 아닌 합리적 대화로 풀어나가는 사람이다. 또한, 더 큰 승리자는 싸움에 이긴 자가 아니라 싸움을 말릴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이다. ■ 생각 주머니 넓히기 1. 착한 사마리아인법 개정에 대해서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2. 학교 폭력과 집단 따돌림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3가지 이상 찾아보자. 3. 매스미디어가 학교 폭력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가? 자신과 친구들의 경험을 나누어보자. 김성천 깨끗한 미디어를 위한 교사운동 안양충훈고 교사
  • 꽃미남 이미지 벗고 ‘비열한 거리’서 건달역 조인성

    꽃미남 이미지 벗고 ‘비열한 거리’서 건달역 조인성

    푸릇한 여명을 등에 업은 청춘. 핏방울 점점이 흩뿌려진 어깨, 붕대에 동여매진 주먹, 그 손끝에서 애타게 타들어가는 담배꽁초. 새벽이 오는 낯선 거리에서 주인공이 욕망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15일 개봉하는 ‘비열한 거리’(제작 싸이더스FNH, 감독 유하)의 포스터는 문득 소설적 감수성을 헤집는다.‘스타일리시’라는 형용사가 절로 튀어나오는 포스터. 시인 감독이 보여주는 농밀한 청춘비감(悲感) 에스프리. 청춘의 그늘을 누아르 스타일로 절규하는 포스터 속의 주인공은 조인성이다. 명품 이목구비의 충무로 제1 꽃미남. 유하 감독에 대한 두터운 신뢰, 멜로드라마의 우산에서 벗어난 조인성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그러나 묘하게도 기대치의 상승효과로 이어진다. 박제된 꽃미남으로만 갇혀 있을 것 같던 스타의 무엇에 시인 감독은 ‘필’을 꽂았을까. 또 스타의 어디에서 도전의 용기가 솟았을까. “감독에 대한 믿음으로 무조건 시작한 작품이었죠. 유하 감독은 배우들 사이에 시나리오의 몇배로 (연기를)뽑아내주는 사람으로 통하거든요.” 뒷골목 건달이 됐다. 홀어머니에 두 동생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삼류조폭. 깔끔한 이미지로 자동연결되는 그에겐 느닷없는 ‘설정’이다. 직설화법으로 물어봤다.‘말죽거리 잔혹사’의 권상우가 그랬듯 일시에 연기폭을 확장하는 지름길로 이 작품을 활용하겠다는 계산이 아니었냐고.“실은 ‘말죽거리 잔혹사’보다는 감독의 또 다른 전작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더 감명깊게 봤다.”는 그는 “나란 사람은 완성을 향해 걸음마를 시작한 배우이고, 연기의 디테일을 살려줄 노련한 조련사를 찾고 있었을 뿐”이라고 거침없이 대답했다. “흥행은 몰라도 작품의 퀄리티만큼은 자신있다.”고 장담하는 이번 영화에는 야망과 배신, 음모, 사랑 코드가 고른 비율로 배합됐다. 검사를 손봐달라는 후견인의 무리한 제안을 받아들여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지만, 믿었던 친구에게서 뜻밖의 배신을 당해 무너지는 비운의 캐릭터이다.“고교시절 태권도 유단자였던 덕분에 일절 대역없이 때리고 맞는 액션장면을 소화할 수 있었다.”며 “액션동작의 선을 살려내라는 요구보다는 단 한순간도 감정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감독의 주문이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단순한 건달 이야기가 아니라 비루한 청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겸손했다. 서너번쯤 스스로를 “운이 좋은 배우”라고 표현했다.“비정상적으로 빠른 속도의 성장을 하다보니 사람들이 실제 나이보다 훨씬 노숙하게 봐요. 속상한 적도 있었는데, 이젠 남자배우에게는 그게 오히려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에게 연기인생의 반전포인트는 어디였을까. 폐인을 만들며 인기끌었던 TV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이 아니었을까 넘겨짚었다. 답은 뜻밖이다.“전도연 선배와 출연했던 드라마 ‘별을 쏘다’를 잊을 수 없어요. 저게 바로 연기라는 거구나, 그 선배한테서 진짜 연기를 봤던 거죠.” ‘마들렌’‘클래식’같은 멜로영화들을 그 드라마 이후에 찍었다면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만들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다. 총 100회 촬영분 가운데 그가 참여한 분량이 무려 95회.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화면을 채우는 ‘조인성의 영화’인 셈이다. 지금은 어떤 시나리오를 고민중이냐고 물었다.“‘비열한 거리’가 개봉돼 평가를 받을 때까진 새로 들어오는 시나리오는 한줄도 읽고 싶지 않다.”고 했다. 순간, 그 완강함이 영화에 대한 기대치를 또 높여놓는다. 조인성을 새삼 돌아보게 만드는, 시쳇말로 ‘각’이 나오는 연기를 보여주겠다는 완곡어법이었다. 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코믹잔혹극 ‘구타유발자’

    코믹잔혹극 ‘구타유발자’

    31일 개봉한 한석규 주연의 ‘구타유발자’(제작 코리아엔터테인먼트)를 어떤 성향의 관객에게 추천해주면 좋을까. 코믹잔혹극이란 장르를 표방했으되 영화는 소개하기가 적잖이 난감하다. 평범한 감수성의 관객이라면 이 영화의 코미디 혹은 폭력 코드를 거부반응없이 흡수하기가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바람둥이 성악교수 영선(이병준), 내숭 9단의 제자 인정(차예련)이 벤츠를 타고 교외로 드라이브 나오는 장면에서 출발한 영화는 예측불허의 상황들을 나열한다. 인적없는 시골 강변에 차를 세운 영선이 검은 속내를 드러내자 숲길로 도망간 인정은 순박한 남자 봉연(이문식)을 만나고, 또 한편 영선의 주변으로는 육감으로 돼지를 때려잡는 오근(오달수) 등 정상에서 한참 비켜난 듯한 사내들이 모인다. 사람이 죽어나가도 모를 만큼 한적한 곳에서 마주친 등장인물들은 서로에게 긴장과 공포의 대상이 된다. 시골 강가를 무대로 한정된 시간 동안 벌어지는 스산한 상황극. 어떻게 하면 관객에게 낯설고 불편한 감정을 부추길 수 있을까를 연구한 듯하다. 권력에의 조롱, 폭력의 순환 등 적잖은 사회적 메시지를 동원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작위적인 상황이나 ‘오버’연출된 캐릭터 등이 1인치의 리얼리티조차 발견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한석규가 이름을 걸었으나 정작 그의 출연분량은 미미하다. 그의 역할은 교통위반 딱지나 떼며 근무시간을 채우는 한심한 경찰. 코미디 전문배우 이문식이 딴판 이미지의 캐릭터로 막판 반전을 책임진다. 감독은 지난해 공포영화 ‘가발’을 연출했던 원신연.18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무슨 영화 볼까]

    [무슨 영화 볼까]

    ●짝패 장르/등급 액션/18세 감독/배우 류승완/류승완·정두홍·이범수 줄거리 개발열풍에 휩싸인 지방 소도시. 두 사내의 피만큼 진한 우정. 20자평 몸으로 보여줄 수 있는 아날로그 액션의 끝장을 보여주마! ●다빈치 코드 장르/등급 미스터리 드라마/15세 감독/배우 론 하워드/톰 행크스·오드리 토투 줄거리 댄 브라운의 동명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 20자평 기자시사회 없이 개봉…원작에 없다는 반전…과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도 많을지. ●미션 임파서블 3 장르/등급 액션/15세 감독/배우 JJ에이브럼스/톰 크루즈·빙 라메스 줄거리 아끼던 후배와 약혼녀를 잇따라 인질로 붙잡힌 톰 크루즈의 맹활약. 20자평 한층 화려하고 강력해진 액션이 긴박감을 더한다. ●포세이돈 장르/등급 액션/12세 감독/배우 볼프강 페터젠/조시 루카스·커트 러셀 줄거리 북대서양 한가운데 파도가 덮친 유람선에서 탈출하기. 20자평 스펙터클에 초점 맞춘 전형적인 할리우드 재난 블록버스터. 눈요기로는 ‘딱’! ●헷지 장르/등급 애니메이션/전체 감독/배우 팀 존슨·캐리 커크패트릭/황정민·신동엽·보아(목소리) 줄거리 문명사회와 맞닥뜨린 동물들의 고난기. 20자평 눈 깜짝할 새 ‘유쾌·상쾌’하게 지나가버리는 76분. ●모노폴리 장르/등급 범죄스릴러/15세 감독/배우 이항배/양동근·김성수·윤지민 줄거리 컴퓨터 범죄를 소재로 두 남자와 한 여자가 엮는 두뇌게임. 20자평 웬만한 머리로는 아귀 맞추지 못할 어수선한 시나리오. ●구타유발자들 장르/등급 코믹잔혹극/18세 감독/배우 원신연/한석규·이문식·오달수·차예련 줄거리 인적없는 교외의 강가에서 빚어지는 비상식적 인간들의 비상식적 대립과 긴장. 20자평 끝없는 폭력의 고리에 대한 고발. 구토유발할 듯 극단적인 상황전개.
  • ‘美 양민학살 파문’ 확산

    “네살배기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에게도 총부리를…” 지난해 11월 미 해병대가 이라크 서부 하디타에서 민간인 24명을 보복 살해하는 과정에서 아기를 안은 여인까지 살해한 사실이 드러나 이번 사건이 아부 그라이브 포로 학대 파문을 능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현실화되고 있다. 미 의회에선 청문회를 벼르고 있고 지난 2월에야 뒤늦게 사건을 파악한 해병대 지휘부가 유족에게 희생자 1인당 2500달러를 지급, 진상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29일(현지시간) 제기돼 군당국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언론들은 군 조사 결과가 발표되고 청문회가 열릴 경우 미군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도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힐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반전운동 진영은 이 사건을 ‘이라크판 미라이 학살’로 규정, 철군 여론몰이에 나섰다. 미국 내 1400여개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정의평화연합(UFPJ)은 이날 성명을 내고 관련자 처벌과 점령 정책 포기를 촉구했다.이들은 “하디타에서 24명이 죽기 전인 2004년 팔루자에서는 600여명의 민간인이 살해됐다.”면서 “미국의 이라크 점령은 베트남에서와 마찬가지로 ‘잔혹행위를 야기하는 상황’을 불가피하게 만들어낸다.”며 철군을 압박했다. 군당국은 가담자에 대한 살인혐의 적용을 시사하는 등 진화에 나섰다. 피터 페이스 합참의장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진상 규명과 은폐 여부 조사가 함께 진행되고 있다.”며 “결과는 속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송은 소식통을 인용,“조사는 실질적으로 끝난 상태”라며 “조사단은 조직적 은폐가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학살극의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11월19일 아침 7시15분쯤 동료 병사 한 명이 매설된 폭탄에 절명하자 미 해병대원들은 택시를 타고 지나가던 18세에서 25세까지의 학생 4명과 운전사에게 총격을 가했다. 이들 모두 사망했다. 그 뒤 해병대원들은 민가로 쳐들어가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던 시아버지(77)와 시어머니 등 일곱 식구를 차례로 살해했다. 시아버지는 코란을 든 채 가슴과 복부에, 시어머니는 기도를 하던 자세에서 등에 총을 맞았다. 생존자 히바 압둘라(여)는 남편이 사살되는 것을 본 시누이가 아이를 안은 채 실신하자 다섯살 아이를 데리고 피신해 화를 모면했다. 압둘라는 나중에 돌아와보니 시누이와 조카가 숨져 있었다고 몸서리를 쳤다. 존 머서 민주당 의원도 아이를 안은 어머니가 총격을 당했다는 얘기를 군 소식통으로 들었다고 밝혔다. 군인들은 곧바로 다른 민가에 들어가 3살부터 14살까지 아이들을 포함, 여성 6명 등 일가족 8명을 사살했으며 다른 집에선 20세에서 38세까지의 남성 4명을 살해했다. 한편 현장에서 참극을 목격한 일부 해병대원은 지금까지 심각한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보도했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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