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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혜영의 첫소설집 ‘아오이’

    편혜영의 첫소설집 ‘아오이’

    사람의 첫 인상이 그렇듯 작가가 세상에 내놓는 첫 책의 인상은 두가지다. 평범하거나 강렬하거나. 편혜영(33)의 첫번째 소설집 ‘아오이가든’(문학과지성사)은 의심할 것 없이 후자다. 썩어가는 시체들, 배를 가른 고양이, 우글거리는 구더기떼 등 책장을 넘길 때마다 툭툭 튀어나오는 엽기적인 하드고어의 이미지는 또래의 젊은 작가들은 물론 한국 소설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낯설고, 새롭다. 문학평론가 이광호씨는 “한국 소설의 특별한 ‘또다른 시작’”이라고 이 도발적인 작가의 등장을 평했다. 표제작 ‘아오이가든’은 역병이 도는 어느 도시의 끔찍한 참상을 다루고 있다. 시민들은 집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고, 거리는 동물들의 시체와 배설물로 가득 찬다. 희망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을 길 없는 폐허의 형상은 디스토피아를 묘사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연상시킨다. 단편 ‘저수지’는 연쇄 실종자들의 사체를 찾기 위해 저수지 일대를 수색하는 사건과 외진 방안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세명의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단백질을 섭취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실험용 쥐(마술 피리), 구더기 천지 속에서 삶과 죽음이 구별되지 않는 존재(문득) 등 소설집에 실린 여타의 작품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처럼 독특하고, 개성적인 상상력은 어디에서 온 걸까.“등단(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후 다양한 유형의 작품을 습작했는데 의외로 이런 스타일이 재밌고, 잘 맞았어요. 쓸 때는 재미있었는데 막상 책으로 묶여 나오니 독자들이 읽기 편한 작품들은 아닌 것 같아 걱정이에요.” 언젠가 친지의 시신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낯설지가 않았다. 시체는 이승의 육신이 빠져나간 잔해일 뿐 무서운 느낌이 안들더라고 했다.‘산 사람이 사람인 것처럼 죽은 사람도 사람이야. 자기가 살아 있다거나 죽었다고 느끼는 건 어느 한 순간이야.…그 순간을 제외하면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똑같이 살고 있는 거야.’(‘문득’,110쪽) 그의 엽기적 상상력은 우리가 살고 있는 불온한 현실과 맞닿아 있다. 그는 “내 소설이 끔찍하고, 무섭다고 하는데 어쩌면 현실은 더 잔혹한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주위에 엄연히 존재하는데 우리가 애써 외면한 것뿐이라는 얘기다.‘아오이가든’은 홍콩의 사스 전염병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흰 마스크를 쓰고 유령처럼 거리를 배회하는 홍콩 시민들은 충격적이었다.‘아오이가든’은 사스 감염자가 집단적으로 발견된 아파트의 이름이다. 마찬가지로 ‘저수지’도 실제 있었던 사건의 뉴스 보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일본 괴기소설처럼 엽기적인 이미지로만 남는 소설이 되지 않을까 경계하고 있다.”면서 “지금은 팬터지적인 측면이 강한데 앞으로는 좀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평범한 인상보다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강렬한 인상이 더 기억에 남듯 그의 데뷔작도 독자의 뇌리에 강한 충격을 남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추락 공군전투기 원인규명 공군 - 유족 조사주체 갈등

    지난 13일 발생한 공군 전투기 추락사고의 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 주체를 둘러싸고 유족들과 공군측이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북 군산시 어청도 인근 해상에서 추락한 공군 제10전투비행단 소속 F-5F(제공호)에 탑승했던 고 김태균 중령·김종수 소령의 유족들은 민·관 동수의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현재 공군은 사고 직후부터 배창식 참모차장을 위원장으로 2개 팀의 자체 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 사고 현장 인근에서 수거한 전투기 잔해 및 사고 전투기 교신록 등을 중심으로 추락 원인을 조사 중이다.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시신없는 영결식

    지난 13일 발생한 전투기 연쇄 추락사고로 희생된 조종사 4명의 영결식이 15일 소속부대인 수원과 청주비행단에서 부대장(葬)으로 거행됐다. 공군은 사고기 조종사들의 유해를 찾지는 못했지만 조종복과 기체 일부 등이 사고 인근 해역에서 발견됨에 따라 전원 사망으로 판단하고 유족들과의 협의를 거쳐 사고 사흘째인 이날 영결식을 거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희생 조종사들에 대해서는 훈련 중 순직한 고인들의 위국 헌신의 뜻을 기려 모두 1계급씩 진급이 추서됐다. 이에 따라 F-4E 팬텀기를 몰았던 이해남(36·공사 40기)·김동철(34·공사 42기) 소령은 중령으로,F-5F 제공호에 탑승했던 김태균(35·공사 40기) 소령과 김종수(30·공사 46기) 대위는 각각 중령과 소령으로 각각 진급했다. 영결식 후 희생자들은 모두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순직 조종사들의 유해를 찾지 못한 만큼 전투기 추락 등 불의의 사고에 대비해 고인들로부터 미리 확보해 둔 머리카락과 손톱 등으로 유해를 대신해 안장했다. 공군은 이날 영결식과는 별도로 고인들의 유해와 추락한 전투기 잔해에 대한 수색작업은 계속할 방침이다. 이날 영결식에는 유족을 비롯해 윤광웅 국방장관과 이상희 합참의장, 이한호 공군참모총장 등 주요 군 지휘관들이 참석했다. 앞서 공군은 지난 14일 추자도 인근 해상에서 김동철 중령의 조종복과 기체 잔해, 신체 일부 등을 찾아낸 데 이어 일부 기름띠가 목격됐던 충남 보령시 인근 해상에서 전투기 꼬리 부분 잔해를 추가로 찾아냈다. 배창식 공군 참모차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공군 사고조사위는 수거된 전투기 일부 잔해와 조종사들의 음성기록 등을 기초로 추락 원인 조사를 사흘째 계속하고 있다. 공군은 또 이들 순직자에 대한 추모를 위해 자체 인터넷 홈페이지(www.airforce.mil)에 사이버 분향소를 마련했다.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추락 F-5F 부유물 발견

    13일 밤 실종된 F-5F(제공호) 전투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부유물이 발견됐다. 14일 오후 1시쯤 충남 보령시 오천면 외연도 북서방 3마일 해상에서 낚시중이던 대양호 선장 장모(52)씨가 바다 위에 떠있던 가로 51㎝, 세로 35㎝ 크기의 부유물을 발견, 태안해양경찰서에 신고했다. 해경은 공군에 이를 인계했으며 공군은 이 부유물이 전투기 꼬리부분 잔해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보령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전투기 연쇄추락 미스터리

    전투기 연쇄추락 미스터리

    13일 밤 발생한 공군 전투기 2대의 연쇄 추락사고 원인은 뭘까. 현재로선 전문가들도 원인을 추정하기 힘들 만큼 미스터리 투성이다. 사고 전투기가 서로 다른 상공에서 훈련을 한 데다, 당일 기상도 그리 나쁘지 않았던 터여서, 전투기 2대가 잇따라 추락한 원인에 대해 군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당일 2대의 전투기는 청주와 수원 비행장을 이륙, 남·서해안 상공에서 적의 해상 전력 침투를 막기 위한 야간 근접지원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전투기가 고도 8000피트 이상에서 비행하다가 적선(敵船)이 발견되면, 해군이 조명탄을 터뜨리고 그 사이 4000피트 상공까지 급강하해 표적을 폭격하는 내용으로, 조종사들은 모두 야간 투시경(NVG)을 끼고 있었다. 추락 직전 남해안 상공을 비행하던 F-4E 팬텀기는 공격 목표 식별후 첫 공격을 시도하던 중이었고,F-5F 전투기는 한번의 모의공격을 끝내고 2차 공격에 돌입하던 상황이었다. 일반적으로 전투기 추락사고의 원인으로는 기체결함, 조종사의 비행착시, 기상악화 등이 꼽힌다. 사고가 난 F-4E 팬텀기는 제작된지 35년이 됐고,F-5F는 22년 된 노후 전투기다. 공군 관계자는 “F-4E의 경우 세계에서 6개국이 운용 중이지만 우리 항공기가 제일 오래 됐다.”며 전투기의 노후에 따른 기체결함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내놓았다.F-5F의 경우 추락 직전 섬광을 목격했다는 주민 제보도 있어 추락 직전 전투기의 폭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함께 전투기 조종사들의 일시적인 ‘비행착각’ 가능성도 거론된다. 전투기 조종사들이 저공비행을 할 경우 바다나 육지 표면과의 거리와 방향감각이 크게 무뎌져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고 전투기 조종사들은 추락직전 “가상 적 함정을 발견했고, 공격하겠다.”는 내용의 교신을 남겼다. 추락 직전까지 위험상황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이젝션(비상탈출)’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공군측은 사고 전투기 조종사들이 편대장급 및 교관 조종사들로 비행기량이 매우 우수했다며, 비행착각 가능성은 매우 낮게 보고 있다. 이밖에 사고 당일 기상도 당초 알려졌던 것과는 달리 비교적 양호했던 것으로 밝혀져 사실상 기상이 사고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전투기는 일반 항공기와 달리 블랙박스가 없어 전투기 잔해를 일일이 수거해 분석해야 하는 만큼 원인 규명에는 적잖은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공군은 현재 모든 기종의 비행훈련을 전면 중지한 상태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책꽂이]

    ●41년생 소년(문순태 지음, 랜덤하우스중앙 펴냄) ‘내 삶의 중심에는 굶주리고 나약한, 상처투성이 소년이 살고 있다. 소년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의 공포에 떨고 있다’.6·25전쟁 마지막 체험세대인 41년생 저자가 오래 벼르고 별러 떠나는 과거로의 여행길. 전쟁의 상처가 절망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9000원.●오메르타(마리오 푸조 지음, 이은정 옮김, 늘봄 펴냄) ‘대부’의 작가 마리오 푸조(1920∼1999)의 마피아 3부작 완결편. 미국 마피아 패밀리 돈 코를레오네가를 다룬 1969년작 ‘대부’는 전세계적으로 2100만부가 팔렸다.1996년 발표한 ‘마지막 대부’에 이어 생애 마지막 3년간 집필한 ‘오메르타’는 마피아 조직원들의 생리와 계율을 파헤친다.9800원.●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이기인 지음, 창비 펴냄) 2000년도 신춘문예 당선작 ‘ㅎ방직공장의 소녀들’로 등단한 시인의 첫 시집. 외설적이고 엽기적인 코드로 자본주의의 폭압적인 구조를 정조준하는 품새가 사뭇 도발적이면서 묘한 비애를 느끼게 한다.장석남 시인은 ‘쇠잔해가는 한 왕국을 들여다보는 매우 희귀한 발견이고 고백’이라고 평한다.6000원.●세상을 다 가진 남자(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 지음, 송병선 옮김, 문학수첩 펴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과테말라 작가의 청소년과 성인을 위한 동화.잠을 자는 동안 몸안의 자석이 작동해 금속을 끌어당기는 마술적 힘을 가진 남자가 온갖 금은보화를 끌어당겨 부자가 되지만 아들이 원하는 아보카도나무의 씨앗을 구하려다 아보카도 나무로 변해버린다는 환상적 이야기.8500원.●톨킨의 환상 서가(더글러스 앤더슨 엮음, 김정미 옮김, 황금가지 펴냄) ‘반지의 제왕’의 작가인 톨킨에게 영향을 준 19·20세기 환상문학을 가려뽑았다.스코틀랜드 작가 조지 맥도널드는 ‘호빗’에 영향을 주었고, 영국 작가 허거슨의 ‘새끼 고양이 뮤’에 등장하는 나무도깨비 삽화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엔트족의 모델이 됐다.1만 9000원.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4)태평양전쟁과 남양군도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4)태평양전쟁과 남양군도

    오는 27∼28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종전 60주년을 기념해 남양군도의 사이판을 방문한다.6000여 일본인들도 이때 함께 이 작은 섬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극우 대변지인 산케이신문은 벌써부터 광분하며 기획특집을 쏟아내고 있다. 정말 ‘대단한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원래 일왕은 팔라우와 마셜군도 등 태평양 섬들을 두루 둘러볼 참이었으나 미국령인 사이판만 찾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지난주, 옛 일본 육군 제30사단 소속 야마카와 요시오(87) 중위와 나카우 스스키(83) 상등병이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 인근 산악지대에서 숨어살다가 발견됐다는 오보 사태로 일본 열도가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인 일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지난 1972년 괌의 요코이 쇼이치(당시 56세)에 이어 74년 필리핀에서 오노다 히로오(당시 51세)가 종전 30여년 만에 생환했었다. 당시 요코이는 “부끄럽게도 살아 돌아왔습니다.”라는 귀국 일성을 토해내 일본 군국주의자들을 열광케 했는데, 이번에 ‘발견’된 이들은 또 무슨 말을 내뱉을까. 이래 저래 일본인들의 해묵은 관심이 태평양에 쏠리고 있다. 그 태평양과 우리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머나먼 태평양에 수만의 무주고혼들이 떠돌고 있다. 신혼여행지의 대명사로 불리는 사이판 같은 곳에서도 수많은 조선인들이 군인과 군속,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죽어갔다. 그들이 ‘덴노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몸을 던졌다는 일명 만세절벽은 일본인 참배객의 메카가 되었으며, 일왕은 여기에 세워질 신사 준공식을 겸해 이곳을 찾는 것이다. 2차대전은 곧 태평양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주, 중국, 버마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전선이 확대되고 있었고, 같은 시기 남양군도에서는 바다의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남양군도란 오늘날 미크로네시아를 가리킨다. 지도를 펼치면, 일본 남쪽으로 괌, 사이판 등이 포함된 북마리아나군도가 있고 그 밑으로 얍과 팔라우 등이 자리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마셜군도가 있는데 이곳을 총칭하여 미크로네시아(Micronesia) 라 부르며, 여기에는 2106개의 섬이 포함돼 있다. 태평양의 일본군 최대 근거지였던 팔라우를 찾았다. 연전에 어느 정신없는 탤런트가 ‘정신대를 기리는’ 누드촬영을 하겠다고 나서 온 사회를 벌컥 뒤집어 놓은 바로 그곳이다. 육·해·공군을 관장한 팔라우 집단사령부와 식민청인 남양청 본청, 법원, 병원 등이 있던 매우 중요한 전략기지였다. 흔히 일본이 2차대전 무렵에 이곳으로 진출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일본의 태평양 진출은 이보다 앞선 19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콜럼버스의 이른바 ‘아메리카 발견’ 이후 스페인과 포루투갈의 식민지 쟁탈전을 조정하기 위해 태평양쪽은 스페인이 독식하는 것으로 합의된다. 그리하여 필리핀을 위시한 팔라우도 16세기에 스페인에 예속된다. 19세기 중반에는 카이저황제와 비스마르크의 강력한 후원에 힘입어 이곳에 독일 자본이 밀어닥쳤다. 독일의 스페인에 대한 도전은 1899년에 드디어 성공한다.1898년 미국과 스페인 전쟁에서 스페인이 패함에 따라 힘을 잃게 되자 스페인은 파리에서 비밀협정을 맺어 독일에 이 섬들을 팔아넘긴다. 이에 1914년 10월, 일본은 영국과 연대해 독일에 대항하면서 미크로네시아를 넘본다. 사실, 일본의 태평양 탐욕은 훨씬 전부터 드러났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을 거치면서 북방 대륙 진출에 여념이 없던 일본으로서는 남쪽 바다를 향한 야욕을 잠시 유보했을 뿐이다.1880년대에 다케코시 요사부로는 “적도를 얻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외치지 않았던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지 두달도 채 되지 않아 일본 해군은 캐롤라인과 마리아나, 마셜군도의 주요 섬에 상륙한다.1914년 10월7일, 수백명의 일본군이 폰페이섬의 성당에 들이쳤으며, 이곳에 기관단총을 설치하고 팔라우 공격에 나섰다. 1919년에 국제연합은 공식적으로 이곳의 일본 지배를 인정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전리품으로 남양군도를 획득했으니, 일본의 태평양 식민사는 이로부터 근 100년에 이르는 것이다. 종교와 교육, 그리고 경제적 개발은 식민지를 건설하는 중요한 축이었다. 남양청을 세우고 식민 관료들이 섬을 지배한다. 일본인 이민이 급증했으며 그들은 전력산업, 알루미늄광산, 진주양식과 카사바 같은 상업적 농업에 종사했다. 일본 정부의 지원 속에 1935년까지 5만여 일본인들이 섬 곳곳에 흩어져 살았는데, 이들 대부분은 오기카와로부터 이주해 왔다.1940년에 일본인 인구는 7만 7000명까지 늘었으며,2년 뒤에는 9만 6000명을 헤아렸다. 미국과 전쟁이 시작되면서 군인·군속들이 속속 집결, 일본인 수는 거의 2배로 불었는데, 팔라우와 사이판이 주요 거주지였다. 일본 식민청은 이곳에서 각 섬마다 이른바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한반도에서 하던 방식과 똑같이 원주민의 토지 개인소유는 인정하되, 바닷가나 산의 공유지는 모두 식민청 소유로 돌렸다. 한마디로 ‘털도 벗기지 않고’ 대부분의 땅을 먹어치운 것이다. 전쟁이 벌어지자 이 땅의 대부분은 군사기지로 징발된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것도 기실은 일본과 미국의 태평양을 둘러싼 이해대립 때문에 생긴 필연적 귀결이었다.2차대전이 벌어지기 훨씬 전부터 양국은 서로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었으며 급기야 미크로네시아에서 태평양전쟁 중 가장 혹독한 전투가 치러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사실이 또 하나 있으니, 괌이 2차대전 때 미국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괌은 1898년에 미국과 스페인 전쟁의 부산물로 미국으로 넘어갔다. 미국은 이 전쟁을 계기로 태평양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1783년에 무역선 차이나호(Empress of china)를 통해 태평양에 본격 등장했다. 배에는 무역 상인과 선교사, 뉴잉글랜드의 포경업자, 해군 장교 등이 타고 있었다. 미국은 괌에 더해 20세기 초반에는 필리핀, 하와이, 사모아제도 등을 추가로 얻는다. 하와이에서는 1893년에 미국 상인과 선교사들이 반란을 일으켜 왕조를 전복시키기도 했다. 그 후 이곳에서 사탕수수 산업이 시작되었고, 한국인 이민도 비슷한 시점에 이뤄진다. 말이 이민이지 노예수출에 지나지 않았다.1899년에는 미국령 사모아에 미국 해군이 진을 친다. 괌에서도 미국은 ‘어머니 나라(Mother Country)’로 등장했다.1941년 12월7일 일본이 진주만을 때린 것은 이처럼 태평양을 둘러싼 해묵은 패권 다툼의 발화였을 뿐이다. 거의 동시에 일본 육군은 홍콩을 공격한 데 이어 42년 2월에는 영국군 거점인 싱가포르까지 먹어치운다. 이런 일련의 사태로 태평양전쟁은 종말을 향해 치달았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독립기념관) 김도형 연구원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1936년,15살 어린 나이의 한국인 위안부 10여명이 처음 팔라우에 끌려온다. 그 후 코롤섬 토목공사를 위해 전라·경상도에서 노무자 200여명이 왔다. 코롤시 동쪽 끝에 위치한 ‘아이고브리지’는 한인들이 다리를 놓을 때 너무 혹독하게 시달린 나머지 ‘아이고, 아이고’를 연발해 붙은 이름이라는 내력이 슬프다. 한인 노무자와 더불어 조선총독부는 농업이민도 보냈다. 모두 13회에 걸쳐 1266명이 이주됐다. 중부 태평양의 중심기지인 트럭섬이 궤멸되자 1944년 2월25일 관동군과 조선군에서 선발된 정예부대 29사단이 팔라우에 진주했다. 이때 중국 관동에서 1만 2000여명이 왔는데, 대부분 한인 병사들이었다는 설이 있다. 팔라우의 한인 가운데 가장 많은 이들은 군속이었다. 말이 군속이지 해군에서 토목작업을 시키기 위해 끌고온 노무자들이었다.1943년 5월20일, 부산을 거쳐 팔라우에 800여명의 한인이 도착했다. 이들은 처음에 일본 본토와 남양과의 수송시설 건설에 종사하다가 미군의 공격이 심해지자 진지 구축에 투입된다. 인근 무인도에서는 남양척식주식회사에서 갈매기 배설물인 인광을 채굴하여 비료를 만드는 일에도 이들이 투입됐다. 1944년 8월, 연합국이 중부 태평양의 마지막 공격지 팔라우에 들이쳤다. 미 제1전대의 공격으로 일본 육군 7212명 중 6766명이 전사하고 466명만 살아남았다. 해군도 3400명 중 단지 10명만이 생존했다. 물론 그 일본군 중에는 징병으로 끌려온 한인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미군 폭격이 거세지자 일제는 팔라우의 일본인 1만7800여명을 본국으로 강제소환한다. 그렇지만 강제 징용된 한인들은 송환 대상에서조차 제외된 채 전쟁이 본격화되어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식량보급이 끊기면서 한인들에게는 식량도 주어지지 않았다. 굶주림에 지쳐 식량을 훔치다 총을 맡고 숱한 한인들이 죽어 나갔다. 정신대로 끌려온 조선의 딸들도 곳곳에서 죽어나갔다. 창고에서 건빵을 훔치려다 들킨 한인을 나무에 매단 뒤 귀나 코를 베는, 임진왜란 때 왜군의 만행과 흡사한 짓을 자행했다는 믿기 어려운 증언도 전해진다. 팔라우 주둔 일본군이 미군에 공식 항복한 것은 1945년 9월2일이었다. 총알받이로 수많은 한인들을 끌고 왔다 수세에 몰리자 나몰라라 내팽개친 뒤 자신들만 빠져나간 것도 일제 만행의 일부로 기록돼야 한다. 그 불바다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아 귀환한 사람이 2만 5773명이었고, 팔라우에서는 3000여명이 귀환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많은 이들이 죽어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팔라우에서도 ‘천상의 바다정원’으로 소개되는 록 아일랜드로 스피드보트를 타고 나가 무인도에 배를 댔다. 물 속으로 들어가자 ‘물 반 고기 반’이다. 산호섬답게 산호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너무도 아름다워 ‘용궁’이 본디 이런 풍경이었을까 여겨지는 곳. 그러나 물 밑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탱크와 항공기, 선박의 잔해가 즐비하다. 전쟁은 끝났지만 아직도 역사의 시간은 진행 중임을 이 잔해들이 말해주고 있다. 과거, 잠시 적이었고 이후 해양 패권의 든든한 동지로 미국에 보조를 맞춰 온 일본의 왕이 미국의 비호를 받으며 미국령 사이판을 찾는다. 태평양의 바다 속에 잠긴 탱크들이 다시금 포신을 곧추세우기 시작했다.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경의 태평양을 다시 피바다로 만들 작정이다. 이 막막한 타국을 떠돌고 있을 한국인들의 넋에 대한 최대의 모욕이 일왕에 의해 지금 다시 시작된 것이다.
  • ‘호국의 달’ 전쟁 특집프로 풍성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케이블 채널에서 전쟁 관련 특집프로그램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슈퍼액션은 6일부터 한달 동안 매주 월요일 오후 8시30분 ‘전쟁영화 특집’을 편성했다. 6일에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베트남 3부작 가운데 첫 편인 ‘플래툰’(1986)이 방영된다. 미국 우월주의 시각에서 벗어나 인간 내면의 고통과 파괴되는 인간성에 초점을 맞춰 87년 아카데미상뿐 아니라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13일에는 멜 깁슨이 미국 독립전쟁의 투사로 나오는 ‘패트리어트:늪속의 여우’(2000)가 이어진다.20일에는 오우삼 감독, 니컬러스 케이지 주연의 ‘윈드토커’(2002)를 방영한다.27일에는 영국 특수부대 SAS 대원의 실화를 영화화한 ‘브라보 투제로’(1999)가 준비됐다. 영화오락채널 XTM은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골랐다.7일부터 4일 동안 매일 오후 10시 ‘대한민국을 지켜라!’는 주제로 한국 영화 4편을 내보낸다. 첫날에는 신라와 백제의 전투를 소재로 걸쭉한 사투리 대결로 인기를 모은 ‘황산벌’(2003)을, 이후 중국 대륙을 무대로 고려 무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김성수 감독의 ‘무사’(2001),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는 청년들의 이야기 ‘아나키스트’(2000),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는 가상의 미래를 소재로 한 ‘2009 로스트 메모리즈’(2002)를 차례로 방영된다. 다큐멘터리 전문채널 내셔널지오그래픽은 다양한 시각으로 세계 2차대전을 조명한 테마기획 ‘D-데이’를 마련했다.6일부터 5일 동안 매일 오후 10시 방영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나치의 악몽에서 벗어나기 직전 열흘 동안 10명의 특별한 인물들이 겪었던 전쟁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승리의 카운트다운’ 1·2부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전쟁 설비·도구들의 활약을 파헤친 ‘비밀병기’ 1·2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세(戰勢)를 뒤집은 날 활약했던 영국 전투기의 잔해를 찾아 발굴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잊혀진 전투기’ 등으로 구성됐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보훈의 달’ 2차대전 특집기획

    다큐멘터리 전문 채널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보훈의 달을 맞아, 새달 6일부터 5일 동안 매일 밤 10시 특집 테마기획5 ‘D-데이’를 방영한다.‘D-데이’는 나치의 악몽에서 벗어나기 직전 10일 동안을 그린 ‘승리의 카운트다운’과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을 뒷받침한 전쟁 설비와 도구들을 살펴보는 ‘비밀병기’, 영국 전투기의 잔해를 찾아가는 내용을 담은 ‘잊혀진 전투기’ 등으로 구성됐다.
  • “北 핵실험 아닌 미사일발사 준비”

    “北 핵실험 아닌 미사일발사 준비”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북한의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포착된 ‘수상한’ 움직임은 핵 폭발 실험이 아니라 인공위성을 탑재한 장거리 미사일 ‘대포동 2호’를 발사하기 위한 준비 작업일 가능성이 크다고 워싱턴의 군사 소식통이 9일(현지시간) 말했다. 북한은 지난 1998년 8월31일 ‘대포동 1호(북한 명칭은 백두산 1호)’ 미사일에 ‘광명성 1호’로 이름 붙인 인공위성을 실어 지구 궤도에 쏘아올리려다 실패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발사체의 잔해가 알래스카 앞바다에까지 떨어지면서 일본과 미국이 큰 충격을 받고 북한과의 대화에 나섰다. 북한이 대포동 1호의 정확도와 사거리, 탄두 탑재능력 등을 개량한 미사일을 통해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려는 것이 북한의 의도로 보인다고 이 소식통은 설명했다. ●北미사일 발사 국제적 제약 안받아 특히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에 인공위성을 탑재해 발사할 경우 ▲유엔이 인정하는 ‘우주 이용 권리’를 근거로 미사일 발사에 대한 비난을 피할 수 있고 ▲발사에 성공할 경우 지구 궤도에 도달하는 미사일은 핵탄두를 싣고 미 전역에도 도달할 수 있다는 강력한 공포감을 줄 수 있으며 ▲인공위성의 궤도 진입에 실패하더라도 장거리 미사일의 위력을 과시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북한은 미사일기술통제기구(MTCR)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미사일 발사에 국제적 제약을 받지는 않는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가 핵 폭발 실험을 했을 경우 닥칠 엄청난 ‘후폭풍’을 피해 가면서도 미국을 상대로 거의 비슷한 정치적 효과를 얻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소식통은 분 석했다. 북한이 지난 2월10일 핵 보유를 선언한 이후 위기를 고조시키는 과정에서도 ▲선(先) 미사일 발사 ▲후(後) 핵 실험의 개연성이 크다고 이 소식통은 말했다. 그는 최근 북한이 동해에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매년 4월 거행되는 정례적인 군사훈련으로, 핵 위기 고조를 위한 시도가 아니라고 진단했다. 북한이 98년에 발사했던 광명성 1호는 3단계 추진 로켓을 장착했으나 1,2단계까지 점화에 성공한 뒤 마지막 3단계에서 로켓이 점화되지 않았다고 소식통은 설명했다. 북한은 이후 당시 실패했던 3단계 로켓의 고체연료를 향상시킨 로켓 엔진을 개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소식통은 “길주군에서 발견된 정황이 핵 실험으로 보기에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면서 “무엇보다 핵 실험 장소 부근에 시찰대를 설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핵 전문가들은 지하에서 핵 실험을 하더라도 흙먼지가 화산처럼 분출하기 때문에 방사능 낙진에 오염될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오히려 시찰대는 미사일 발사를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98년 대포동 1호를 발사할 당시에도 양강도 김형직군 영저리의 미사일 발사 장소에서 시찰대가 관찰된 바 있다. ●핵실험에 시찰대 설치는 어불성설 또 워싱턴의 정보 전문가는 “북한이 실패할 가능성이 큰 첫 핵 실험을 공개리에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파키스탄도 몇 차례 실패를 겪고서야 핵 실험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3월2일 발표한 외무성 비망록에서 미국의 적대정책의 포기를 6자회담 복귀 조건으로 내세우면서 “우리는 미사일 발사 보류에서 그 어떤 구속력도 받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김정일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알려진 김명철 박사는 지난 3월 월간 ‘말’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협상에 불응하면 북한은 지하 핵실험을 실시하거나 혹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할 것”이라며 “발사된 ICBM은 뉴욕 앞의 대서양 공해상에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능력과 발사 가능성에 대해서는 미국측에서도 주시해 왔다. ●대포동 2호 美본토까지 도달 로웰 자코비 미 국방정보국(DIA) 국장은 지난달 29일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의 2단계 미사일은 알래스카와 하와이에는 확실히 도달할 수 있고, 미 본토의 북서부 지역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며 “3단계 미사일은 미 본토의 거의 모든 지역에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리언 러포트 한·미연합사령관은 지난 3월8일 미 상원 군사위의 새해 예산안 청문회에서 “북한은 이동식 발사대를 사용하는 소형 미사일은 수시간이면 발사할 수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대포동 2호나 그보다 큰 미사일은 고정 발사대가 필요한데 현재로서는 미사일이 발사되리라는 징후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dawn@seoul.co.kr
  • “낙산사 창건 당시 모습 복원”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6일 “낙산사는 이번 화재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철저한 고증을 거친 뒤 불나기 이전의 상태가 아니라 통일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할 당시에 가깝게 복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 청장은 이날 오전 강원도 양양 낙산사를 찾아 1시간 가량 화재 현장을 둘러본 뒤 “아름다운 우리 문화재를 지켜내지 못해 죄송하다.”면서 “철저한 복원을 위해 낙산사 복원추진단을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 청장은 “어제는 낙산사의 보물 3점에 피해가 없다고 보고를 받았는데 오늘 새벽에야 동종이 소실됐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면서 “동종은 이른 시일 안에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소실된 보물 제479호 동종은 지난해 서울대 기계공학과에 의뢰해 실측한 자료가 있어 복원은 어렵지 않다.”면서 “다만 원형을 잃었다는 점이 안타깝고 우리의 귀중한 보물을 잃은 것은 틀림 없다.”고 침통해했다. 유 청장은 “녹아 버린 동종의 잔해는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옮겨 성분을 분석하여 앞으로 문화재 복원의 지표자료로 삼도록 할 것”이라면서 “하지만 복원을 한다고 해도 이미 원형이 훼손됐기 때문에 문화재 지정은 해제되며 해당 보물번호는 비워둔 채로 남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낙산사의 국가지정문화재 3점 가운데 보물 제1362호 건칠관음보살좌상은 가까운 유스호스텔 지하로 옮겨뒀고, 보물 제499호 7층석탑은 기단부가 10×30×2㎝ 가량 떨어져 나갔다.”면서 “이번 기회에 이 부분을 복원하고 그동안 복원을 미뤄놨던 추녀 4개도 함께 복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 청장은 낙산사의 원형 복원을 위해 발굴조사를 실시할 방침임을 분명히했다. 그는 “현재의 낙산사는 1953년 6·25전쟁 이후에 급히 지어진 것으로 원형에 맞춰 복원된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중창된 것”이라면서 “원통보전을 비롯해 중요한 전각터를 발굴해서 원형을 찾아 복원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양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식목일 산불] 낙산사 화재 현장

    [식목일 산불] 낙산사 화재 현장

    천년사찰엔 불에 탄 잔해만이 가득했다. 5일 오후 화마가 지나간 낙산사에는 의상대와 관음전, 곡예문만 남은 채 주요 건물이 모두 사라졌다. 눈에 보이는 것은 숯으로 변한 목조건물의 잔해뿐 천년고찰의 장엄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다만 무너져내린 기와조각과 인근 담에서 아직 손을 대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남아 화마의 엄청난 기세를 느끼게 했다. ●사찰내 건물 15채중 11채 소실 일주문과 스님들이 머물던 요사채가 전소됐고, 대웅전격인 원통보전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처참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보타전과 원통보전(圓通寶殿)을 에워싸고 있는 원장(垣墻·시도유형문화재 34호), 홍예문(虹霓門·시도유형문화재 33호) 등 목조 건물들 대부분이 없어졌고 보물 479호인 ‘낙산사 동종’도 범종각과 함께 불에 타 훼손됐다. 낙산사 경내에 있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지불인 ‘건칠관세음보살좌상(보물 1362호)’을 비롯한 신중탱화, 후불탱화 등 3개의 문화재는 이날 오전 지하 창고로 옮겨져 일단 안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 당국이 파악한 낙산사의 화재 피해는 홍예문, 일주문 등 사찰 내 건물 15채 중 11채가 소실된 것으로 집계됐다. 바닷가쪽에 위치한 의상대, 관음전은 간신히 화마를 피했다. ●바닷가쪽 의상대·관음전 화면해 산불은 이날 오전 7시쯤 강풍을 타고 양양과 속초 사이 7번 국도를 넘어 낙산 해수욕장 내 송림 단지에 옮겨붙었다. 헬기 10대와 소방 인력 800여명을 투입, 총력 진화작전을 펼친 끝에 오전 10시쯤 불길이 집히는 듯했지만 오후 3시쯤 초속 15∼30m에 이르는 강풍을 타고 다시 급속히 번져나갔다. 수백년 된 소나무숲은 송진을 머금고 있어 불길이 낙산사로 번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낙산사 스님들이 긴급 대피한 후 송림쪽에 가까운 낙산사 서쪽 일주문에 불이 붙었고, 화마는 순식간에 천년사찰의 대부분을 삼켜 들어갔다. 당시 낙산사 종무실에서 근무하다 불길을 피해 긴급 대피했던 전희경(26·여)씨는 “원통보전 뒷산에서 불길이 치솟아 아무것도 치우지 못하고 동료들과 함께 황급히 뛰쳐나왔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낙산사측은 이날 오전 긴급 구입한 소화기 150개를 이용, 자체 진화작업을 폈지만 양양 지역을 휘감은 산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낙산사 주지스님은 “오늘 아침에 헬기가 물을 뿌린 다음에 잔불 정리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성으로 옮겨갔다.”며 “‘낙산사에 유물이 많으니까 확실히 소화를 하기 위해 헬기를 남겨달라.’고 부탁했지만 너무 빨리 철수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유홍준씨 “불타기 이전모습 복원 가능하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산불로 사찰 내 건물을 많이 잃었으나 다행히 보물 등 주요 문화재는 안전하다.”며 “소실된 건물은 6·25 이후 복원된 건물인 만큼 불타기 이전 모습으로 회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양양 조한종 유지혜 이재훈기자 bell21@seoul.co.kr
  • “1분만에 모든 것 붕괴”

    리히터 규모 8.7의 강진이 강타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북부 니아스섬에서 30일 생존자 수색 및 구호작업이 계속됐고 각국의 구호 손길도 미치기 시작했다. 이날 오전까지 발굴된 시신은 340여구이고 인도네시아 재난방재센터가 공식 확인한 숫자는 430명이지만 이 센터는 1000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했다. 전일 유숩 칼라 부통령이 사망자가 2000여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한 것과 다소 차이가 나지만 AP통신 등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 수치에 근접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장비없어 맨손으로 구조작업 단전으로 이 섬에서 가장 큰 마을인 구눙 시톨리에서는 구조대원들이 촛불을 켠 채 생존자를 찾고 사체를 발굴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중장비가 없어 농기구와 맨손으로 건물 잔해를 헤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교회나 이슬람사원 앞에는 흰 천에 덮인 시신들이 줄지어 있었다. 헬기로 섬 일대를 돌아본 현지 언론은 축구장이 임시 부상자 대기소로 이용됐으며 중상자 10여명이 나무 문짝에 누워 헬기를 기다리는 장면을 보도했다. 이 마을 건물의 30%가, 두번째로 큰 텔룩 달람 마을은 80%가 파괴됐다. 한 주민은 지난해 쓰나미 때보다 훨씬 심각했으며 “1분만에 모든 것이 무너져내려 손 쓸 겨를조차 없었다.”고 허탈해했다. 생존자들은 지난 28일 밤부터 15차례나 계속된 여진 공포 때문에 고지대에서 노숙했다. ●부시 지난해와 달리 발빠른 애도 성명 지난해 쓰나미때 사흘만에 애도 성명을 발표, 너무 인색하다는 비난을 샀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하루만인 29일 성명을 내고 애도의 뜻을 밝혔다. 인접국 싱가포르가 지난해 참사때와 마찬가지로 가장 먼저 헬기와 의료팀, 구호요원을 보내왔다. 인도와 호주, 중국 정부가 각각 50만∼200만달러 규모의 지원을 약속했고 영국은 반다아체에서 활동중인 구호단체 옥스팜을 통해 헬기를 보내왔다. 그러나 공항 활주로가 파손돼 구호팀은 피해지역 접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주민들도 의료진 부족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딥 임팩트’땐 한국 위험도 높다

    지구와 지구접근천체(NEO·Near Earth Objects)가 충돌하는 ‘딥 임팩트’가 벌어질 경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위험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결과는 최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엔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위원회’(COPUOS) 회의에서 영국 러더퍼드애플턴 연구소의 리처드 크라우더 박사가 ‘NEO 충돌 위험에 관한 보고서’를 통해 발표했다고 한국천문연구원 한원용 우주과학연구부장이 16일 밝혔다. ●한국,‘딥 임팩트’ 위험도 OECD국 10위권 크라우더 박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면적과 인구,NEO의 크기 및 분포, 충돌 확률 등을 기초로 지구와 NEO 충돌에 따른 사회적 위험률을 예측했다. 그 결과 한국은 미국, 일본 등과 함께 상위 10위권에 들었다. 특히 NEO가 육지에 떨어졌을 경우 한국은 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 등과 함께 사회적 위험률이 ‘국가관용한계’(재난 발생시 국가기능 유지 여부의 경계선)를 넘어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은 국토 면적이 넓지는 않지만 인구밀도가 높아 영국 및 프랑스와 비슷한 수준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 NEO가 바다에 떨어지면 한국은 노르웨이, 스웨덴 등과 함께 10위권 이내로 분류됐다. 호주, 캐나다, 미국 등은 최고의 위험국가군으로 꼽혔다. 크라우더 박사는 보고서에서 “각국 정부는 국가관용한계와 자연재해 발생 비율을 고려해 NEO 육상 낙하에 따른 사회적 위험률을 비교·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 “인접국가간 협력을 통해 NEO 재난의 특성을 파악하는 한편 더욱 정밀한 분석방법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자원과 예산을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충돌 에너지는 무한대 대부분의 작은 운석은 지구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순식간에 타버려 밤하늘을 수놓는 별똥별이 된다. 별똥별이 빛을 발하는 높이는 100∼200㎞, 빛이 사라지는 높이는 70∼90㎞ 정도이다. 그러나 지름이 1∼10㎞인 NEO는 빛의 속도(초속 30㎞)에 버금갈 정도로 빨라 대기권에 들어온 뒤 1초 이내에 지면과 충돌하게 된다. 특히 NEO는 지구(지름 1만 2700㎞)와 비교할 수조차 없을 만큼 작지만, 운동에너지는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기 때문에 그 충격은 어마어마하다. 예컨대 지름 10㎞의 운석이 초속 20㎞로 지구에 부딪쳤을 경우 에너지량은 리히터지진계로 진도8 규모 지진의 1000배에 해당하는 1억메가t에 달한다는 것. 이는 핵전쟁에서 핵겨울을 일으키는 에너지인 5000메가t의 2만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실제로 6500만년전 멕시코 유카탄반도에 떨어져 공룡 멸종을 가져온 것으로 추정되는 소행성의 지름은 10㎞로 추정된다. 게다가 NEO의 빠른 속도는 앞쪽에 있는 공기를 압축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 때문에 NEO 앞부분에 있는 공기는 태양 표면 온도의 10배에 이르는 절대온도 6만K(섭씨 10만 7540도)까지 상승, 피해를 키울 수 있다. 지난 1908년 시베리아 퉁구스카지역에 날아든 혜성은 8㎞ 상공에서 폭발했음에도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2000배에 해당하는 위력을 발휘, 서울 면적(약 600㎢)보다 넓은 1000㎢의 산림을 폐허로 만들었다. 이같은 직접적인 영향권에서 벗어났더라도 충돌에 의해 발생한 먼지가 햇볕을 차단하고 지진과 화산 폭발, 해일 등의 ‘후폭풍’도 유발하게 된다. ●실제 충돌 가능성은 희박 지구와 NEO가 충돌하려면 각각의 공전 궤도가 서로 영향을 미칠 정도로 접근해야 한다. 이는 지구∼태양간 거리의 1.3배인 1억 9500만㎞로 추산된다. 또 NEO의 지름이 1㎞ 이상이면 지구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같은 조건을 충족시키는 NEO는 모두 700여개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100만년 안에 충돌할 확률은 0.5%가량인 것으로 추정됐다. 이중 ‘2002NT7’이 오는 2019년,‘1999AN10’이 2039년에 각각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 및 NEO의 속도와 궤도 등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오차 범위가 수천만㎞에 달해 실제 충돌 확률은 수만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는 게 크라우더 박사의 설명이다. 한편 영화 ‘딥 임팩트’처럼 소행성을 폭파시키면 영화에서와 달리 그 잔해들이 지구를 향해 날아와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도윤희 개인전 ‘Being’

    “나의 작업은 현상의 배후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나에게 아름다움은 지식과 상관없는 직관에 의한 작용이지요. 직관은 자궁의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태아의 리듬과도 같은 것입니다.” 6년 만에 서울 청담동 카이스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 서양화가 도윤희(44)는 사뭇 철학적인 말로 자신의 예술정신을 대변한다. 도윤희는 그동안 작품을 발표하는 대신 인도, 티베트, 중국 등지를 여행하며 자기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그런 만큼 이번 전시에서는 한층 넓어진 시야와 심화된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초미립자의 세계를 파고든 지난 시절과 달리 최근엔 대상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현상을 바라보는 관조적인 태도를 취한다. ‘Being(존재)’이라는 전시 제목이 말해주듯 이번에 선보인 20여점의 신작은 모두 사색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작품들이다. 그 중에는 ‘내 안에 침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같은 폭이 7m가 넘는 대작도 있다. 흐르는 한강을 밤새도록 바라보며 자신의 삶에 대해 성찰한 바를 연필로 드로잉하고 유화물감으로 색을 입힌 작품이다. 중국 계림을 방문한 인상을 담은 ‘천국과 지상의 두 개의 침묵은 이어져 있었다’도 주목할 만한 작품. 시간의 흐름마저 멈춘 듯한 숭고한 자연 앞에서 작가는 천상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가 맞닿아 있음을 깨닫는다. 그런 마음속의 계림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일종의 서양화풍 관념산수다. 시들어가는 식물의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은 ‘식물성 잔해’라는 작품은 죽음으로써 거듭 태어나는 생명의 이치를 일깨워준다.4월 9일까지.(02)511-0668.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국제플러스] “104명 탑승 아프간여객기 추락”

    |카불·앙카라 AFP 연합|승객 104명을 태운 아프가니스탄 캄에어 소속 보잉 737 국내선 여객기가 카불 동쪽에 4일 추락했다. 아프간에 파견된 서방 치안담당자는 “사고기의 잔해가 카불 동쪽 35㎞ 지점에서 발견됐다.”면서 “생존자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고기는 승객 96명과 승무원 8명을 태우고 아프간 서부 헤라트에서 수도 카불로 가던 중 관제탑과 연락이 끊겼다. 사고기에는 아프간에 파견나온 미국인 3명과 터키인 9명이 승객 명단에, 러시아인 6명이 승무원 명단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김현희, KAL機 폭파범 확실”

    “김현희, KAL機 폭파범 확실”

    “재조사해도 KAL858기 폭파사건의 범인은 김현희라고 확신합니다.” 지난 1987년 11월29일 발생한 ‘KAL 858기 폭파사건’의 범인으로 알려진 김현희와 사건 발생 직후부터 1993년까지 7년 동안 24시간 함께 생활했던 당시 안전기획부 직원 김선미(가명·44·서울 거주)씨의 언급이다. 김씨는 국정원이 3일 ‘KAL 858기 폭파사건’을 과거사 우선 조사대상으로 결정하자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인 데다 10년 전 안기부를 나왔는데….”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면서도 “당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신념을 갖고 일했는데 의혹이니 공작이니 하는 말을 들으면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사건이 일어난 지 18년이 흘렀지만 숱한 의혹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가운데, 특히 김현희가 북한 공작원 출신인지 여부를 두고 유가족과 수사기관은 팽팽한 의견차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김씨는 김현희가 ‘범인’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단호했다. 김씨는 “만약 김현희가 제3국 국민이면 연고가 있어야 하는데 어디에도 김현희는 연고가 없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당시 귀순자나 남파된 간첩들이 이 사건을 두고 북한에서는 ‘실패한 공작’이라고 간주, 김현희 이후에는 여성 공작원이 효용 가치가 없어 양성하지 않았다는 말도 했다고 덧붙였다. 김현희는 남한의 생활양식이 익숙하지 않아 “내가 북에 있을 때”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고 김씨는 회고했다. 특히 김현희가 평양에서 찍었다는 화동(花童)사진 논란에 대해서도 “일본기자들이 가져온 사진 가운데 독특한 귀 모양을 한 아이가 있는 사진을 가리키더니 ‘입가에 점이 있었는데 팔자가 안 좋다고 해서 어렸을 때 뺀 적이 있다.’며 자기가 맞다고 두번이나 확인했다.”고 김씨는 전했다. 김현희는 평소 사적인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편이지만 재판정에 나갈 때는 유가족을 대면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재판 나가는 게 죽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했다는 말도 김현희가 범인임을 입증하는 정황이라는 게 김씨의 전언이다. 김씨는 “새롭게 의혹을 파헤쳐도 미진한 부분이 드러날지는 몰라도 사건의 본질은 바뀌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이 사건 기록공개 행정소송을 맡은 법무법인 정평의 심재환 변호사는 “김현희가 북한 사람이건 남한 사람이건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KAL858기는 폭파되지 않았고 김현희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이라면서 “이 사건은 폭파지점과 잔해 발견지점의 차이와 김현희의 행적 등 모든 면이 의문투성이며 당시 검찰 수사결과도 모두 허구”라고 반박했다. 한편 진실위원회 국정원측 간사위원인 김만복 기조실장은 대국민보고회에서 “김현희의 소재는 국정원이 모르고 있고 관리도 하고 있지 않지만 조사가 필요하면 수소문해 필요한 진술에 응하게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내일로 흐르는 강/김춘옥 지음

    이미지 시대를 살다 보니 언제부턴가 어린이 서가에도 내용보다는 볼거리에 치중한 동화책들이 많아졌다. 그 틈바구니에서 ‘내일로 흐르는 강’(김춘옥 지음, 김선미 그림, 청개구리 펴냄)은 오래 시선이 머무는 장편동화이다.“시류가 어떻게 흘러가든 이땅의 어린이라면 꼭 들어야 할 얘기가 있다.”고 팔소매를 걷어붙인 책 같다. 작가가 시선을 돌린 지점은 요즘 아이들에겐 낯설기만 한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언저리. 딴나라 얘기 같은 뼈아픈 현대사의 한 자락을 들춰보이며 ‘교훈’과 ‘감동’의 두 마리 토끼를 선물로 안긴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우리네 현대사 적십자사에서 걸려온 전화 한통에 열두살 ‘나’와 가족들은 통째로 술렁인다. 북한에 증조할아버지가 살아계시다는 확인전화를 받은 할아버지는 감격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하시고, 곧 상봉할 날을 손꼽으며 식구들은 증조할아버지께 드릴 선물을 준비한다. 이야기는 장편소설처럼 탄탄한 형식미를 갖추고 펼쳐진다. 증조할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하는 ‘나’에게 할아버지가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액자소설’ 방식을 빌렸다. 현재의 화자가 ‘나’라면 반세기 전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할아버지인 셈.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독자는,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가족애와 더불어 현대사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 할아버지의 회상을 통해 불려나오는 먼 이야기 속에는 3명의 어린 주인공이 있다. 당시 열두살이었던 할아버지 준태, 그 단짝친구인 승우와 난이. 독립운동가의 아들인 준태, 친일파 아버지를 둔 승우, 뱃사공의 딸인 난이의 가슴시린 사연들이 얼기설기 엮인다. 어린 주인공들의 에피소드가 잔잔한가 싶으면 어느새 그 틈새로 현대사의 격랑이 발톱을 드러내곤 한다. 친일행각으로 한때 이웃들을 그토록 괴롭혔던 승우의 아버지 이주사가 동네사람들에게 내몰렸을 때, 난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승우를 위로해준다. 서로 다른 이념과 가정환경에도 세 친구가 우정을 나누는 대목들에 자주 코끝 찡해진다. 시련은 끝이 없다. 아버지가 동굴에 숨어 죽자 승우는 준태와 난이에게 편지 한통만 덩그렇게 남긴 채 마을을 도망치듯 떠난다. 소양강이 남북으로 갈라지는 통에 난이의 어머니도 어처구니없이 목숨을 잃는다. 강 건너 외갓집을 다녀오는 길에 그만 군인들이 쏜 총에 맞아 돌아가시고 만 거다. ●남북문제에 대해 스스로 생각할 기회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이야기의 배경은 38선 근처 강원도 인제군 남면 부평리. 지금은 수몰된 곳이어서 전설 같은 사연은 한결 더 애잔해진다. “이산가족이 뭐예요.”“왜 우리는 남북으로 갈라졌나요.” 아이의 질문이 쏟아질 책이다. 지은이 김춘옥은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박물관 가는 길’로 등단했다. 초등생용.8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공룡 잡아먹던 포유류 있었다

    |워싱턴 외신|공룡을 잡아먹은 1억 3000만년 전 포유류 화석이 발견됐다. 13일 과학잡지 ‘네이처’ 최신호는 미국과 중국 과학자들이 중국 랴오닝(遼寧)성에서 1억 3000만년 전의 큰 고양이만 한 원시 포유류의 위(胃) 속에서 작은 공룡의 화석화된 잔해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과학자들은 이 유해들이 당시 포유류가 작은 공룡들을 사냥했다는 최초의 증거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화석의 발굴로 초기 포유류는 공룡을 공격하거나 잡아먹을 수 없었다는 종전의 학설을 뒤집을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는 공룡시대에는 포유류들이 몸집이 작아 쥐만 한 크기였으며, 공룡이 6500만년 전 멸종된 뒤에야 포유류들의 몸집이 커졌다고 믿어왔다. ‘네이처’에 따르면 이번에 발굴된 화석은 1억 3000만년 전의 ‘레페노마우스 로부스투스’로 불리는 포유류 화석의 위 부분에서 ‘프시타코사우르스’로 불리는 어린 공룡의 화석화된 잔해들이 발굴됐다고 전했다. 이 원시 포유류는 길이 60㎝, 몸무게 7㎏ 정도로 추정되며, 포유류에 잡혀 먹힌 ‘프시타코사우루스’의 새끼는 길이가 12㎝ 정도다.
  • “참혹한 유해… 삼풍때보다 더해”

    “헤아릴 수 없는 주검 속에서 어렵게 4구의 한국인을 확인했지만 아직 가족을 찾고 계신 분들에게는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지진해일 참사의 현장인 태국 푸껫에 파견됐던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감식반이 8일 오전 인천공항으로 귀국했다. 지난해 12월31일 출국한 이후 밤잠도 제대로 자지못한 채 수천구의 유해 사이에서 발이 붓도록 뛰어다녔지만, 박희찬(50) 경사는 거듭 “실종자 가족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직도 가족 찾고 계신 유족들께 죄송 태국 정부는 현재 시신의 부패를 이유로 피해국에 감식작업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박 경사를 포함한 경찰 및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요원 4명은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박 경사는 경력 23년의 베테랑 수사관. 그동안 강력사건 현장에서 숱하게 시신을 상대했지만,“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도 이렇게 참혹하지는 않았다.”고 머리를 흔들었다. 물이 빠지지 않은 잔해 속에 숨은 시신은 대부분 3∼4일이 지나서 발견됐다.30도가 넘는 무더위로 이미 시신의 부패가 상당 수준 진행된 상황에서 몇조각의 드라이아이스는 무용지물이었다는 것이다. 더욱 힘들었던 것은 굼뜨기만 한 태국 정부의 일처리. 태국 정부는 ‘업무를 단일화해야 한다.’는 등의 논리로 일부지역에서 외국 검시관의 접근을 봉쇄했다. 이 때문에 참사 당시 한국인이 적지않게 머무르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카오락에서는 실종자 확인작업을 할 수 없었다. ●태국정부 일처리 굼떠 검사활동 차질 박 경사는 “애타는 유가족을 위해 어떻게든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현지경찰을 피해 지문과 DNA 검사를 진행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들려주었다. 박 경사는 “11살짜리 아이의 시신 곁에 엄마의 시신을 나란히 눕혀 줄 수 있던 것이 그나마 슬프지만 가장 보람됐던 일”이라면서 “여건이 허락된다면 다시 현지로 가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것이 만리타국에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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