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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서 ‘미확인 우주 물체’ 추락

    러시아서 ‘미확인 우주 물체’ 추락

    러시아 시베리아의 한 작은 마을에 미확인 우주 물체(Unidentified space object)가 떨어져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고 21일 러시아투데이 등 현지 외신이 전했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그 물체는 지난 18일 밤 11시 30분께 하늘에서 추락하는 모습이 포착됐으며 다음 날 아침 발견됐다. 일부 매체에서는 그 미확인 물체가 무게 90kg 정도에 폭 2~3m 정도의 거대한 실린더 형태이며 우주선 잔해나 탄도 미사일의 연료통일 것이라고 전했다. 조사 결과 그 물체에서는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지 않았으며 재질은 티타늄 합금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러시아연방우주청은 소유권을 부인하며 “그 물체가 로켓이나 우주선 잔해는 아니지만, 최종 판단은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아스팩 통신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북 광명호3호 발사] 군 당국 궤도추적 어떻게

    군 당국이 북한의 광명성 3호 위성 궤도 추적에 나섰다. 궤도 추적에 성공한다면 북한 탄도미사일 기술에 대한 자료 분석이 가능하고 로켓의 잔해 회수도 가능하다. 우리 군의 정보 능력을 평가할 기회인 셈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19일 “한·미 연합 정보 감시 태세를 강화해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을 중심으로 감시하고 이지스함 등을 통해 궤도를 추적하도록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로켓의 발사 감지는 미국의 DSP조기경보위성과 KH12 정찰위성이 맡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DSP조기경보위성은 고도 3만 6000㎞의 정지궤도에서 고성능 적외선 센서로 탄도미사일 발사를 탐지할 수 있다. 1999년 8월 북한 대포동 1호가 시험 발사됐을 때 이를 확인한 것도 이 위성이다. 우리 군이 현재 실전 배치한 이지스구축함은 두 척이다. 2007년 5월 진수한 세종대왕함(7600t급)은 이미 2009년 4월 북한의 광명성 2호 위성 발사 당시 발사 후 15초부터 로켓의 궤적을 성공적으로 추적했다. 두 번째 이지스구축함인 율곡이이함(7600t급)은 2008년 11월 진수했다. 율곡이이함은 나로호 2차 발사 때 궤도를 추적했다. 이지스함은 표적의 탐지 및 추적, 위협 순위 평가, 결정 및 미사일 발사 유도 등을 동시 다발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대공방어 체계를 갖추고 있다. 세종대왕함은 강력한 이지스 레이더인 SPY1D로 사방 360도를 감시할 수 있으며 최대 1054㎞ 떨어져 있는 항공기 등 목표물 900개를 동시에 찾아내 추적할 수 있다. 해군 관계자는 이 이지스함 두 척을 서해에 투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편 한·미 군 당국은 북한 로켓의 1단 추진체 잔해가 서해 변산반도 서쪽 140㎞ 인근 해상에 떨어질 것으로 예상해 로켓 잔해 회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해는 수심이 평균 40m로 얕아 동해상에 떨어진 대포동 2호 발사 당시와는 달리 기술적으로 회수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난지물재생센터 가스폭발… 6명 사상

    난지물재생센터 가스폭발… 6명 사상

    경기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난지물재생센터에서 16일 오전 11시 5분 발전기 교체 작업 중 가스가 폭발했다. 이 사고로 발전기를 교체하던 근로자 전모(52)씨가 숨지고, 김모(60)씨 등 5명이 2도 화상 등 중경상을 입어 인근 명지병원과 일산병원 등에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전씨의 시신은 무너진 건물 벽 잔해 속에서 발견됐다. 사고가 난 곳은 난지물재생센터 내 가스발전기동이다. 이곳은 분뇨처리과정에서 생기는 메탄가스로 발전기를 가동해 센터내 전기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지난 14일부터 지역난방공사와 함께 외부에도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발전기 교체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소방당국은 외부에서 유입되는 가스관의 밸브는 이미 전날부터 잠겨 있었으나 가스배관이나 건물 내 남아있던 가스가 배관 절단 작업 도중 유출, 불꽃이 튀면서 폭발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고 당시 안전관리자는 사무실에서 업무처리를 하느라 자리를 비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고로 인해 가스발전기동 건물 외벽 400㎡가 무너지고 창문이 모두 파손됐으며, 반경 50m 내 건물 4개동의 유리창이 부서지고, 외벽 곳곳이 뒤틀리는 등 마치 폭격을 맞은 듯한 모습이 빚어졌다. 사고가 발생하자 소방당국은 소방차 11대와 83명의 인력을 동원해 5분 만에 진화했다. 경찰은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방서, 가스 전문가 등과 함께 합동 감식중이다. 한상봉·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 후쿠시마 주민 ‘열도 왕따’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오는 11일로 1년이 되지만 후쿠시마 주민들은 불신의 벽에 또 한 번 좌절하고 있다. 방사능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옮긴 후쿠시마 이재민들은 방사능에 전염된다는 풍문에 현지 주민들로부터 냉대를 받고 있고, 재해 지역 쓰레기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접수를 거부해 언제쯤 처리할 수 있을지 모를 처지다. 대지진과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직후 위급한 상황에서도 ‘매뉴얼’에만 집착하는 정부와 지자체에 대한 불신은 더욱 깊어만 가고 있다. 야마나시현 고후 지방법무국은 지난 3일 야마나시현으로 피난해 온 후쿠시마 주민이 부당한 차별을 받았다며 구제를 요청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 피난민은 아이를 거주지 근처 보육원에 보내려 했으나 방사능 오염을 염려한 다른 학부모들의 반대로 거절당했다. 이에 야마나시현 법무국은 후쿠시마 피난민에 대해 근거 없는 편견을 갖거나 이들을 차별하지 않도록 촉구하고, 관련 포스터와 전단지를 제작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이 같은 계몽 활동은 거의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일본 법무성이 지난 2일 발표한 전국의 집단 따돌림 건수는 3306건으로 전년보다 21.8% 증가했다. 이 가운데 491건이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다른 곳으로 전학한 학생들의 신고 사례다. 특히 산케이신문이 최근 후쿠시마현 지자체장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77.8%가 풍문으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고 응답했다. 실제로 원전 사고 이후 다른 지역에 피난 중인 후쿠시마 주민들로부터 택시 승차, 호텔 숙박, 병원 진찰을 거부당했다는 신고가 잇따랐다. 현 내에 가득 쌓인 쓰레기 처리 문제도 피해 지역 주민들에겐 시급하다. 이와테현과 미야기현, 후쿠시마현에서 대지진과 쓰나미로 건물이 부서지면서 발생한 잔해와 생활 쓰레기, 침수된 산업 쓰레기는 모두 2252만 8000t에 이른다. 이 가운데 지금까지 소각과 매립, 재이용 등으로 처리가 끝난 쓰레기는 약 5%(117만 6000t)에 불과하다. 하지만 피해 지역 쓰레기를 전국에 분산 처리하려는 정부 방침은 지자체의 반발로 난관에 부딪혔다.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대지진 피해 지역의 쓰레기를 수용할지에 대해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지자체의 86%가 수용을 거부했다. 피해 주민들의 불신이 높아지고 있는데도 매뉴얼만 고수하는 정부와 지자체의 ‘탁상 행정’은 여전하다. 5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후쿠시마현과 주변의 지자체 가운데 83%는 원자력 사고 재해 시 갑상선암을 방지하기 위한 안정 요오드제를 비축하고 있지만 정부로부터 배포 지침과 복용 지시가 없다는 이유로 주민들에게 나눠 주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키노 에이지 호세이대학 교수는 “방사능이 전염된다는 풍문 때문에 후쿠시마현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편견과 차별을 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면서 “방사능은 인체에 전염되지 않는데도 이기적인 사회 풍토로 인해 일본 사회가 근대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혹시 UFO…英 상공서 미확인 불덩어리 포착 소동

    혹시 UFO…英 상공서 미확인 불덩어리 포착 소동

    지난 주말 밤 영국 상공에 미확인된 불덩어리가 나타나 영국내 한바탕 소동이 발생했다. 5일(이하 현지시각) 영국 대중지 더 선의 보도를 따르면 지난 3일 밤 스코틀랜드 북부에서 동남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날아가는 오렌지빛의 선명한 불덩어리가 영국 곳곳에서 목격돼 지역 경찰 및 긴급 구조대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다. 이 미확인 불덩어리는 오후 9시 40분에서 약 10분 동안 북에서 남으로 횡단했으며, 목격자들은 화재가 발생한 비행기이거나 미확인비행물체(UFO) 등을 목격했다고 신고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 미확인 불덩어리는 유성으로 보인다는 견해를 밝혔고 지난 30년간 영국 하늘에 나타난 유성 중 가장 밝고 아름다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첫 목격지인 영국 스코틀랜드 북해 연안에 있는 애버딘과 잉글랜드 타인위어에 있는 휘틀리 베이에서는 이 불덩어리가 실제로 사진으로 포착돼 눈길을 끌었다. 휘틀리 베이의 아마추어 사진가 마이크 리들리는 당시 야외 레이저쇼 촬영 도중 그 불덩어리를 포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리틀리는 “하얗고 오렌지색으로 빛나는 (유성) 꼬리를 찍었다.”면서 “정말 장관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이 불덩어리는 잉글랜드 북서부에 있는 맨체스터와 워링턴에서도 목격됐다. 맨체스터에서 기술 영업을 하는 데이비드 아이작슨(39)은 당시 상황에 대해 커다란 불덩어리가 자택 상공 위를 지나갔다고 말했다. 워링턴에서는 커다란 불덩어리의 모습이 카메라에 찍히기도 했다. 아마추어 천문학자들 역시 이 불덩어리에 큰 관심을 보였다. 서튼인애시필드의 필 랜달은 미국유성협회 홈페이지에 “지금껏 본 유성 중 가장 길고 밝은 것”이라고 보고했다. 또 노섬벌랜드 킬더 관측소에서 세미나를 주최한 게리 필즈 역시 당시 초청했던 40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약 40초간 걸쳐 그 불덩어리를 목격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천문학자인 데이비드 화이트하우스 박사는 그 물체는 주먹 정도 크기였고 아마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행성의 잔해였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더 선 캡처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커버스토리] 아직도 절망 그 속의 희망

    [커버스토리] 아직도 절망 그 속의 희망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11일로 1주년을 맞는다. 일본은 2일 현재 1만 5854명이 숨지고, 3276명이 실종되고 17조엔(약 238조원)에 이르는 재산 피해를 낸 전대미문의 대지진과 쓰나미, 원전 사고를 겪었다. 지금도 피해 지역인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현에서는 34만 3935명의 주민이 집을 잃었거나 피난 생활을 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대기에 방출된 방사성 세슘의 총량이 최대 약 4경(京·조의 1만배) 베크렐(㏃)이라는 어림잡기 힘든 추산도 최근 공개됐다. 후쿠시마현 내에서는 여전히 높은 수치의 방사능으로 엄혹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원전에서 100여㎞ 떨어진 미야기현에서는 방사능 수치가 시간당 0.050마이크로시버트(μS)로, 지난해 원전 사고 전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지난 1년간 남쪽 후쿠시마 원전에서 불어온 방사능이 토양과 물에 얼마나 쌓여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재앙과 위기 속에도 온기와 희망이 움트고 있었다. 지난달 29일과 지난 1일 미야기현을 1년 만에 다시 찾은 기자는 절망에서도 희망을 찾는 사람들의 눈빛과 맞닥뜨릴 수 있었다. ●폐허속 위령소엔 추모 꽃… 향… 센다이공항에 인접한 나토리시에는 수마가 핥고 간 잔해가 여전했다. 공항 내륙 지역은 대지진 전만 해도 해안림과 채소 재배지로 유명했다. 하지만 눈발이 흩날리던 이날 드넓은 벌판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복구 작업을 하다 멈춘 불도저와 쓰나미의 거센 공격을 견뎌낸 흑소나무 십수 그루뿐이었다. 그래도 사람들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의외였다. 나토리시 기타가미에 사는 모리 기요(57)는 새로 빌린 농토에 비닐하우스를 세워 겨우내 시금치 재배에 빠져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이 사라졌지만 무서움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마이너스 출발이어서 마음이 홀가분합니다. 반드시 다시 일어서겠습니다.”라며 위로의 말을 건네던 기자를 오히려 머쓱하게 했다. 센다이를 거쳐 북쪽으로 45번 국도를 타고 이시노마키시 쪽으로 가다 보니 재해의 참상은 더욱 뚜렷했다. 해안가에 바로 인접해 있어 쓰나미의 먹이가 돼 버린 기타가미 출장소 건물은 철골 구조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출장소 앞에는 쓰나미가 닥칠 당시 주민들의 대피를 독려하느라 피하지 못한 공무원 20명을 위로하는 위령소가 설치돼 있었다. 차를 타고 20분 정도 더 북쪽으로 올라가니 오자시마치가 들어왔다. 쓰나미로 10척의 배가 파손됐다. 그중의 한 척은 동네 마을 한가운데까지 떠밀려 들어와 방치돼 있었다. ●“반드시 다시 일어서겠다” 미역을 자르는 작업에 한창이던 가쓰야 사와고(53)는 “산 사람이라도 살아야지요.”라는 말로 재기의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최근 남편과 함께 해발 40m에 세워진 현대식 부흥 주택에 입주해 가족들과 다시 만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시노마키·나토리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日 대지진 그후 1년] 희망 ‘한땀’ 재기 ‘월척’ 미래 ‘한그루’… 다시 시작합니다

    [日 대지진 그후 1년] 희망 ‘한땀’ 재기 ‘월척’ 미래 ‘한그루’… 다시 시작합니다

    ■ 뜨개질로 희망 한땀… 서로 돕는 이웃들 “하트모양 브로치 등 악세서리 만들어 국내외 수출… 함께 슬픔 극복 했다” 지난 1일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 가설주택단지에 들어선 기자는 난데없이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순간 당황했다. 6개월전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와 후쿠시마시 마쓰가와 가설주택단지를 찾아 고달픈 이재민들의 생활을 취재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들이지만 엄청난 피해 앞에 슬픔과 불안, 분노가 한데 어우러진 표정을 지었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시노마키 가설주택단지 맨 앞에 위치한 공동 주택에는 생동감마저 느껴졌다. 이곳에는 대지진과 쓰나미의 피해를 본 20여명의 여성들이 모여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다양한 색깔의 하트 모양 브로치 등 액세서리를 만들고 있다. 일본 전역은 물론 외국에도 수출하고 있다. 이곳을 포함해 이와테현의 리쿠젠다카다시 등 피해지역 5곳에서 1만점을 공동생산해 지난해 11월까지 1100만엔(약 1억 5000만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아키야 마리카(47)는 “뜨개질이 없었다면 슬픔과 외로움을 이기기가 힘들었을 거예요.”라며 활짝 웃는다. 엔진 기술자인 남편이 대지진 이후 간사이 지방으로 떠난 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뜨개질을 시작했다는 그는 “돈도 벌지만 아픔을 당한 이재민들이 공동작업을 통해 서로 위로받을 수 있는 점이 제일 좋다.”고 말했다. 매일 10개 정도의 액세서리 세트를 만들면 4000엔(약 5만 5000원)을 손에 쥘 수 있다. 아이들도 없고 남편이 직업이 있어 생활이 궁핍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손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자랑스럽다고 한다. 이 프로젝트는 2006년부터 ‘공정무역’ 사업을 하고 있는 다카쓰 다마에 ㈜후쿠이치 대표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그는 “재해 이전에 알지 못하던 사람들과 가설주택에 생활하는 이재민들이 공동작업을 통해 이웃이 됐다는 사실을 느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부흥주택서 재기 월척… 어부 가쓰야 가족 “친척집 전전하다 8개월만에 거처…모든 가족들 모여 살 수 있었으면…” 동일본 대지진으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은 2일 현재 34만 3935명에 달한다. 대부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마련한 가설주택에서 지낸다. 하루속히 번듯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지역마다 3~4년이 걸릴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런 가운데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 교외인 시라하마에서는 1년 만에 항구적인 부흥주택이 지어져 주목을 끌고 있다. 서구풍으로 지어진 11개동의 주택단지는 태평양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해발 40m의 언덕 위에 지어졌다. 지난달 8일 이 주택단지로 이사한 가쓰야 사사키(55).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 오자시마치에서 주로 미역을 채취하는 배를 소유한 선주다. 인근 고도마리에서 상당히 넓은 집에 살았지만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뒤 친척집을 전전해야 했다. 그는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고지대 주거계획이 몇년이 걸릴 지 몰라 부흥주택 입주를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매달 2만엔(약 27만 4000원)~2만 7000엔(약 37만원) 정도의 월세를 내면 생활할 수 있는 이 주택은 입주민이 원하면 몇년이라도 거주할 수 있다. 또한 입주민이 임대 뿐 아니라 매매도 할 수 있다. ‘항구적인 부흥 주택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이 주택 건설사업은 도쿄 고가쿠인 대학의 고토 오사무 건축학부 교수와 구마가이 아키오 구마가이산업 대표 등이 힘을 합쳐 이뤄졌다. 정부의 지원에 의지하지 않고 민간으로부터 기부를 받아 아름다운 목조 주택을 완성했다. 대지진이 발생한 지 불과 8개월만에 입주가 시작돼 최근 11개동이 완성됐다. 이 마을의 관리 운영은 시민단체가 맡는다. 가쓰야는 “저희 가족도 그렇지만 뿔뿔이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서둘러 이재민들을 위한 주택을 지어 모든 가족들이 모여 살 수 있는 날이 하루속히 오길 기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해안림 조성 미래 한그루… 요시다 도시미치 “숲이 있던 지역 그나마 피해 적어… 남은 인생 후손위해 소나무 심겠다” 미야기현 나토리시에 위치한 센다이공항은 쓰나미의 직접적인 피해를 본 곳이다. 쓰나미 피해를 입기 전에는 흑소나무와 야채 재배단지로 유명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발생한 거대한 쓰나미는 태평양 연안의 해안숲을 전부 삼켜버렸다. 미야기현내 피해를 입은 해안숲 지역은 무려 1753㏊에 이른다. 400년전부터 정비된 센다이 일대 해안숲은 바다염분, 높은 파도, 강풍, 모래바람 등으로부터 시민들의 생활을 지켜왔다. 지난해 대지진때도 해안숲이 쓰나미의 흐름을 막아 주택지로 밀려드는 시간을 늦춰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센다이공항 일대 숲 지대를 다시 살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공익재단법인 OISCA를 중심으로 주민들은 미야기현 나토리시 연안에서 이달 말부터 50만 그루의 흑송 묘목의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 지금은 흑소나무가 사라진 허허벌판이지만 10년을 내다보고 다시 숲을 일군다. 해안림 재생 프로젝트를 지휘하고 있는 요시다 도시미치는 “지금까지 해안에 숲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며 “하지만 막상 해안숲이 사라지고 나니 우리 모두가 이 소나무 덕분에 안전하게 생활해 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해안숲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묘목 사업은 이달부터 잔해물 더미와 콘크리트를 분류해 바닥에 까는 바닥 정리작업부터 시작한다. 그 위에다 다른 곳에서 가져온 흙을 2~3m 정도 쌓아 올린다. 단지 삼림사업 차원이 아니라 재해민들이 주도적으로 식목사업을 맡아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농가의 생계 지원에도 연결된다. 나토리시 기타가마에서 태어나 평생 거주하다 쓰나미 피해를 당한 스즈키 에이지(71)는 “여생을 이 사업에 진력하는 것은 물론 내가 죽더라도 후손들에게 해안숲을 다시 일구도록 당부하겠다.”며 대지진 이전의 풍성한 숲 모습을 담은 사진을 가리키며 눈시울을 붉혔다. 글 사진 이시노마키·나토리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신원 식별 못한다고 9·11 희생자 시신일부 쓰레기장에 버렸다

    신원 식별 못한다고 9·11 희생자 시신일부 쓰레기장에 버렸다

    미군이 2001년 9·11 테러 희생자들의 시신 일부를 쓰레기장에 버렸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 미국 전역을 경악게 했다. 미 국방부는 28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어 델라웨어의 도버공군기지 시신안치소와 계약한 의료 폐기물 업체가 9·11 테러 희생자들의 시신 일부를 쓰레기 매립지에 폐기했다고 밝혔다. 폐기된 시신들은 당시 공격을 받은 3곳 가운데 국방부 청사인 펜타곤에서 사고를 당하거나 테러범에게 납치됐던 민항기 유나이티드에어라인 93에 탑승했다 펜실베이니아 생스빌에 추락해 숨진 이들의 것으로 드러났다. 9·11 테러 사망자 3000여명 가운데 문제가 된 2곳에서 숨진 사람은 224명이다. 국방부는 “버려진 시신들은 신원을 식별할 수 없다고 분류된 것”이라면서 “몇구의 시신이 이런 식으로 버려졌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테러 발생 2개월 뒤인 2001년 11월부터 미확인 유해는 전사자 유해를 처리하는 도버기지로 옮겨진 다음 화장된 뒤 밀폐 용기에 담겨 계약업자인 의료 폐기물 회사에 넘겨졌다. 이후 컨테이너로 수송돼 소각됐다. 당시에는 화장이나 소각 과정 뒤에 남은 것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도버기지 시신안치소 관리들은 나중에 잔해가 있었으며, 계약업자들이 이를 쓰레기장에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밝혀졌다. 도버기지는 지난해 11월에도 전사자 시신을 함부로 훼손한 사실이 폭로돼 호된 비난을 받았다. 당시에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전에서 전사한 미군 274명의 시신 일부를 버니지아 매립지에 버린 것으로 드러났다. 유골 폐기 정책은 2008년부터 새로운 규정에 따라 화장된 다음 바다에 수장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백악관은 성명을 내고 “용납할 수 없는 도버기지의 시신 처리에 깊이 우려하고 있다.”면서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국방부가 취할 구조적인 개혁을 전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안은 2월 초 러시 홀트 하원의원(민주당·뉴저지)이 리온 패네타 국방장관에게 9·11테러 희생자들도 쓰레기장에 묻힌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서한을 보내면서 불거졌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후쿠시마현 등 피해 지역 현금 습득물 700억원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난해 3월 이후 후쿠시마현에서 습득물로 경찰에 신고된 현금이 약 166억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돈을 은행에 저축하기보다 집에 쌓아두는 일본인의 특성으로 집에 보관된 현금 대부분이 쓰나미로 쓸려간 잔해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후쿠시마현 경찰 당국에 따르면 쓰나미로 파손된 집 등의 잔해에서 습득한 현금으로 12억 11만엔이 신고됐다. 이는 평상시인 2010년 1억 5700만엔의 7.6배에 이른다. 현금은 대부분 흙투성이인 금고나 배낭 등에 보관돼 있었고, 86%는 이미 주인에게 반환됐다. 현내 6개 경찰서는 821개의 금고를 습득물로 보관했고 이 중 631개는 주인의 품에 안겼다. 100만엔(1399만원) 이상의 현금이 들어있던 금고는 모두 128개였다. 이와키시에서 발견된 한 금고에서는 6000만엔이 나왔다. 대지진이 발생한 직후 후쿠시마현을 비롯해 미야기·이와테현 등 피해 지역에서는 모두 50억엔(700억원) 정도의 현금이 발견됐지만 이를 습득한 주민 대부분이 경찰에 신고하는 사례가 잇따라 외신으로부터 ‘정직한 일본인’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지구 주위 우주쓰레기 치우는 ‘청소부 위성’ 쏜다

    지구 주위 우주쓰레기 치우는 ‘청소부 위성’ 쏜다

    지구 주위를 떠돌고 있는 각종 위성 잔해 등 ‘우주 쓰레기’를 청소할 ‘청소부 인공위성’ 개발이 추진된다. 스위스 로잔 연방공과대학(EPFL) 스위스 우주센터는 15일(현지시간) “3~5년 안에 우주 쓰레기를 회수할 위성을 발사할 계획”이라며 “약 1100만달러(약 120억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스위스 과학자들이 발표한 이번 계획은 ‘클린스페이스 원’(CleanSpace One)으로 불리며 지구 주위에서 약 50만개 이상 떠도는 무수한 ‘우주쓰레기’ 처리가 주임무다. 이 ‘청소부 위성’의 쓰레기 처리방식은 단순(?)하다. 발사된 위성이 지구 궤도에 진입한 후 목표인 ‘우주 쓰레기’에 접근, 포획해 다시 지구로 떨어지는 것.      스위스 우주센터의 볼카 게스는 “이 위성은 역사상 첫번째 청소부 위성이 될 것”이라며 “지구 주위의 수많은 쓰레기들을 환경파괴 없이 제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 계획으로 우리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갈 것” 이라며 “2009년과 2010년 발사된 스위스 위성 2개의 쓰레기를 포획하는 것이 첫번째 임무”라고 덧붙였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성인남성 상체보다 큰 ‘괴물급 대구’ 잡혔다

    영국의 한 남성이 생애 최초로 도전한 낚시에서 엄청난 크기의 대어를 낚아 ‘영국해협서 잡힌 최대 대구’ 기록을 경신했다.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16일자 보도에 따르면, 크리스 프록토(31)라는 남성은 영국 해협에서 난생 처음 낚시에 도전해, 무게가 약 20㎏에 달하는 ‘괴물급’ 대구를 낚는데 성공했다. 크리스는 “처음 낚싯대에 반응이 왔을 때에는 난파선의 잔해가 그물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무게가 상당했기 때문”이라면서 “무려 30분가량 낚싯대를 사이에 두고 거대 대구와 힘겨루기를 해야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대구를 보트로 끌어올리는 데에도 상당한 힘과 시간이 필요했다.”면서 “나를 포함한 젊은 남성 여럿이 힘을 합쳐 간신히 배 위로 대구를 들어올렸다.”고 덧붙였다. 그는 엄청난 몸집과 힘을 자랑한 대구와 사투를 벌이느라 몸 여기저기에 멍이 들 정도의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지난 2000년 영국해협서 잡힌 대구의 최대 기록은 15.8㎏이며, 크리스는 생애 첫 낚시로 단번에 기록을 경신하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한편 영국 낚시협회매거진에 따르면, 영국에서 잡힌 가장 큰 대구는 1992년 잉글랜드 노스요크셔 카운티의 휘트비에서 잡힌 것으로, 무게가 26.5㎏에 달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발트 해저서 2번째 UFO 잔해 발견

    발트 해저서 2번째 UFO 잔해 발견

    발트 해저에서 미확인비행물체(UFO)로 추정되는 물체가 또다시 발견됐다고 전해져 관심을 끌고 있다. 26일(현지시각) 미국 CNN 방송 등 외신은 지난해 발트 해저에서 UFO로 추정되는 물체를 발견했다고 발표한 스웨덴 해저탐험대가 최근 인근 지점에서 두번째 잔해를 포착했다고 보도했다. 해저탐험대를 이끄는 피터 린드버그 대장은 지난해 6월께 해저 91m 지점에서 지름 19m가량의 원형체가 침몰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면서 UFO로 추정된다고 언론을 통해 밝힌 바 있다. 난파선 사냥꾼인 이들 탐험대는 지난 18년간 침몰한 고선박, 보물선 등을 잇달아 찾아내며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들이 음파탐지기를 통해 난파선을 찾던 중 미확인물체를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수중음파탐지기술의 정확성을 의심하는 일부 의견에 대해 과거에는 비록 기술 수준이 낮아 바위를 낯선 물체로 혼동하는 오류가 있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밝혔다. 탐험대는 미확인물체를 확인하는 작업에 필요한 여러 재정적 비용을 후원해줄 스폰서를 찾고 있으며 이르면 오는 봄께 탐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한편 발트해는 해적과 해상무역으로 명성을 떨쳤던 바이킹 족의 주무대로 알려져 보물선과 같은 난파선의 보고다. 음파탐지 전문가 아드레아스 올슨은 “현재 발트해에 약 2만척의 난파선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난 대략 10만여점의 유물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허핑턴포스트 캡처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벽 뚫고 거실에 ‘무개념 주차’ 황당사고 포착

    이게 무슨 날벼락?! 영국 엑세스주에 사는 안드레 바르(55)는 며칠 전 저녁 편안한 복장으로 거실에서 주방으로 가다 마치 번개가 내리치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뒤를 돌아보니 평온하고 아늑한 거실은 온통 검은 연기와 먼지로 뒤덮여 있었고, 무너진 한쪽 벽으로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70대로 추정되는 한 운전자가 그녀의 거실 외벽으로 돌진해 방안에 주차를 한 이 사고로 거실 내부의 집기가 상당부분 훼손되고 화재가 발생했지만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황당한 사고를 당한 바르는 “주방에서 뒤를 돌아보니 몇 발자국 앞에 차 한 대가 들어와 있었다. 차의 3분의 2 가량이 거실 벽에 박힌 상태였다.”면서 “내가 거실에서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긴 지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발생한 일”이라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어 “신의 은총이 있어서 다행히 거실로 들어온 차에 치이지는 않았지만, 계산하기 힘들 만큼 엄청난 금액의 수리비가 나왔다.”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집이 엉망이 됐다.”고 덧붙였다. 현재 바르의 집은 당시 사고로 벽이 부서져 내리면서 생긴 돌과 각종 집기 잔해로 사람이 살기 어려운 지경이다. 현지 경찰은 해당 운전자가 음주상태에 있는지, 거주지가 어디인지 등 신상파악에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최대 번영기 로마인의 삶 속으로 가상여행

    고대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통치하던 기원전 27년부터 기원후 180년까지의 기간을 뜻하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평화’로 불리는 이 팍스 로마나는 가장 평화로웠던 로마 전성기의 상징이지만 그 방대한 제국의 규모를 떠올리게 한다. 제국의 심장부인 로마에 들어섰던 개선문만 해도 40개. 여기에 포럼 12개, 도서관 28개, 일반 공중목욕탕 1000개, 신전 100개, 4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 투기장 2개, 2만 5000석 규모의 대형 극장 4개…. 로마시를 여행하다 보면 곳곳에서 고대 로마의 흔적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며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유적지라는 말을 실감케 된다. 어마어마한 건물의 잔해며, 찬란했던 문화 유산들. 때로는 흉물스럽게, 때로는 믿기지 않을 만큼 온전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그 흔적들은 아쉽게도 먼 옛날의 도시 풍경만을 상상 속에 그리게 할 뿐이다. 정작 그곳에서 살아 숨 쉬었던 고대 로마인들을 더듬어 볼 생생한 체험에선 먼 채. ‘고대 로마인의 24시간’(알베르토 안젤라 지음, 주효숙 옮김, 까치 펴냄)은 과거의 것으로만 존재하는 죽은 공간과 흔적에 고대 로마인을 부활시켜 로마를 찬찬히 볼 수 있게 안내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가장 넓은 영토를 보유하고 있었던 투라야누스 황제가 집권하던 기원후 115년의 로마. 제국의 국경선이 지구 원주의 4분의1에 달하는 1만여㎞를 뻗어 있었던 당시 로마의 주민은 150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책은 로마 제국의 최대 번성기였던 시절, 로마와 로마 주민들의 생활상을 서민의 입장에서 샅샅이 훑어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상상 속의 화자가 여명의 시간부터 24시간 동안 로마 구석구석을 다니며 체험하는 실제 로마인의 삶. 그곳의 집이나 거리, 그리고 마치 군중들 사이에 서 있다고 착각할 만큼의 생생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2000년 전 로마인의 하루는 놀랄 만큼 풍요롭고 여유롭다. 부자들의 저택에서 벌어지는 귀족 남성의 몸단장과 여성의 화장 비법, 그리고 그들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노예들의 삶. 현대의 아파트와 흡사한 공동주택이며 상상을 초월하는 사교의 장이었던 공중목욕탕과 공중화장실, 거리의 포럼들…. 그런가 하면 죄인들을 공개 처형했던 콜로세움에서는 맹수와 인간, 그리고 목숨을 건 검투사들의 시합까지도 생생하게 재현돼 당시 로마인들의 충격과 흥분을 고스란히 맛보게 한다. 고고학 연구와 결과물을 토대로 구성한 가상의 공간과 가상의 인물들. 하지만 세세한 역사적 사실들을 들춰내 제공하는 과거로의 여행 길은 독자들의 상상에 따라 무한하게 뻗칠 수 있을 것 같다.1만 8000원.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화재 12일만에 시신 발견

    청주의 한 화재현장에서 12일 만에 시신 1구가 발견돼 소방당국의 인명구조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 전망이다. 5일 청주 상당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3일 오전 청주시 상당구 석교동의 주택 화재현장에서 감식작업을 하던 경찰이 정모(45·시각장애 2급)씨의 시신을 찾아냈다. 불에 심하게 훼손된 시신은 이불에 싸인 채 화재잔해에 깔려 있었다. 불은 지난달 22일 오전 4시 30분쯤 발생해 30여분 만에 슬레이트 지붕 구조의 1층 주택(73.46㎡)을 모두 태웠다. 소방당국은 화재진압 다음날부터 현장에서 세 차례에 걸쳐 감식을 하면서도 시신을 찾지 못했다. 청주 동부소방서 관계자는 “정씨의 시신이 무너져 내린 지붕에 깔려 있었는 데다 이불과 옷가지가 함께 타면서 시신에 융착돼 찾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하늘서 거대 우주쓰레기 추락…中주민 화들짝

    중국 쓰촨성의 시창 위성발사센터에서 21일 나이지리아의 통신 위성이 성공적으로 발사된 가운데, 위성의 거대한 정류 커버 일부가 주거지에 추락하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인민망 등 현지 언론의 21일자 보도에 따르면, 새벽 0시 41분(현지시간) 발사한 위성 나이지리아컴새트(NIGCOMSAT) 1R호를 발사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위성을 감싸고 있는 외부막인 정류 커버가 장시성 수이촨현에 추락했다. 위성 정류커버는 일반적으로 위성 로켓 분리 단계에서 탈락해 대기층을 지나면서 불탄 뒤 소실되지만, 1R호의 정류커버는 두 쪽으로 분리돼 각각 다른 지점에 추락했다. 위성 잔해가 떨어진 한 곳은 주거지에서 멀지 않았지만 다행히 인명·재산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류 커버의 또 다른 반쪽 역시 수이촨현의 외각 지역에 추락했다. 수이촨현에서 발견된 정류 커버의 길이는 7m, 폭은 4m에 달하며, 안쪽은 불에 탄 흔적이 역력했다. 현장 조사에 나선 정부 관계자는 1R호의 정류 커버임을 확인한 뒤 곧장 회수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위성은 중국이 2007년 나이지리아의 의뢰를 받고 현지 통신사와 함께 개발·발사했지만 11년도 채 되지 않아 지구 궤도를 이탈한 뒤 실종되자, 중국이 ‘애프터서비스’(AS) 차원에서 무료로 재발사 한 것이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별 무덤에 핀 꽃”…장미 닮은 초신성 잔해 포착

    “별 무덤에 핀 꽃”…장미 닮은 초신성 잔해 포착

    별의 무덤에 꽃이 핀 것일까. 장미 한 송이처럼 붉은 먼지와 가스로 형성된 초신성 잔해가 포착돼 눈길을 끈다. 미항공우주국(NASA)은 최근 광역적외선탐사망원경(WISE)으로 촬영한 붉은 장미를 닮은 초신성 잔해(SNR) 사진을 9일(현지시각) 공개했다. 여기서 초신성 잔해는 거대한 별이 폭발하면서 방출하는 부유물을 뜻하며, 공개된 사진에서 이 붉게 나타난 먼지와 가스 구름은 고물자리(아르고호의 선미) 부근에 있기 때문에 ‘고물자리 A’(Puppis A) 초신성 잔해로 불린다. 이 고물자리 A 초신성 잔해는 약 3,700년 전 폭발한 것으로 지금도 초신성의 충격파가 주위의 먼지와 가스를 가열해 붉게 빛나게 한다. 특히 이 초신성 잔해 내부에는 시속 약 500만km라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회전하는 중성자별이 존재하는데, 천문학자들은 이 중성자별에 ‘우주 포탄’(Cosmic Cannonball)이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한다. 또한 사진에 녹색으로 나타난 먼지와 가스는 돛자리 부근에 있다. 이 돛자리 초신성 잔해는 약 1만 2000년 전 폭발했지만 고물자리 A와의 거리보다 지구에 4배가량 가깝다. 즉 두 초신성 잔해의 거리가 엄청나게 멀다는 것을 뜻한다. 한편 고물자리 A와 돛자리의 초신성 잔해는 X선으로 보면 우주에서 가장 밝고 큰 천체로 알려졌다. 사진=NASA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씨줄날줄] ‘9·11 트라우마’와 용산 빌딩/구본영 논설위원

    2001년 9월 11일. 미국 여객기 두 대가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에 부딪혀 폭발한 날이다. 미국인들에게는 엄청난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남긴 날임은 불문가지다. 빈라덴의 알카에다가 자행한 9·11테러는 미 본토가 유린된 첫 사례다. 미국인들에겐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 이상의 충격적 사건이었다. 오죽하면 미국 사회에서 9·11 이전(Before)과 이후(After)를 나누는 새 연대기가 회자됐겠는가. 누군가의 부모이거나 배우자였던 무고한 시민 2837명이 하루아침에 쌍둥이 빌딩의 잔해 속에 파묻혔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더욱 눈여겨볼 대목은 9·11테러가 미국의 군사안보 전략의 패러다임을 바꿔 세계사의 물꼬를 돌렸다는 사실이다. 2차대전 후 미국의 군사전략의 근간은 ‘억지전략’이었다. 즉, 압도적 군사력으로 가상적이 덤빌 엄두조차 못하게 한다는 개념이다. 하지만 자살테러처럼 비합리적 공세를 차단할 수 없는 게 한계였다. 뒷골목 세계에서도 목숨 걸고 덤비는 막가파 주먹에게는 큰 주먹의 위세가 안 먹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9·11 자살테러를 계기로 부시 행정부가 ‘선제공격론’으로 선회한 배경이다. 그러나 이에 따라 테러분자들을 미리 소탕하려고 벌인 이라크전에서 사망한 미군 수가 9·11 희생자 수를 넘어선 지 오래다. 빈라덴도 예기치 못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9·11테러의 후폭풍이 뜻하지 않게 서울로 불어오고 있다. 용산 국제업무지구에 들어설 쌍둥이 빌딩 ‘더 클라우드’가 9·11 테러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으로 국제적 시빗거리가 되면서다. 뉴욕데일리뉴스는 엊그제 “더 클라우드가 9·11 테러 직후 먼지와 건물 부스러기를 쏟아내던 WTC 건물을 연상시킨다.”고 보도했다. 이후 9·11테러 유족들의 항의가 빗발치면서 네덜란드 건축설계회사(MVRDV)가 홈페이지 글로 사과하기도 했다. 즉, “WTC를 형상화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으나, 디자인 때문에 가슴 아파했을 분들께 사과한다.”는 요지였다. 혹여 디자인 논란의 이면에 설계사 측의 소위 ‘노이즈 마케팅’ 전략이 깔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용산 주상복합빌딩이 완공될 2016년까지 아직 긴 시간이 남았다. 영국 사학자 버터필드는 “역사적 사건엔 역사의 진로를 사람들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돌리는 성질이 있다.”고 했다. ‘9·11 트라우마’가 빚은 이번 논란이 모두에게 사랑받는 한국의 랜드마크가 탄생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37) 질풍노도의 아이콘 ‘괴테’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37) 질풍노도의 아이콘 ‘괴테’

    18세기의 끝자락, 독일의 청년들은 자신의 영혼이 세상과 불화한다고 느꼈다. 종교전쟁과 30년전쟁 등 장장 2세기에 걸친 소란 상태를 접고 독일은 간만에 평화를 맞이했지만 청년들은 도리어 미칠 지경이었다. 여전히 구시대의 귀족이 지배하는 강력한 신분제 사회에서 그들은 갈 길을 잃었다. 부모 세대들은 출세를 강요했고, 귀족과 법률가들은 궁정생활에 몰두할 뿐 어떤 비전도 제시하지 못했다. 새로운 삶, 자유와 독립의 길은 어디 있는가. 당시 청년들은 ‘망령을 본 것도 아니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 할 것도 아닌데’ 하나같이 햄릿의 독백을 암송했고, 망령에 찬 분위기와 망한 영웅들의 이야기, 비극적 로맨스에 탐닉했다. 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대. 괴테가 24세에 발표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바로 이 거대한 폭풍우의 한가운데 선 청년의 이야기다. ●질풍노도에서 부르는 노래 베르테르는 낯선 고장을 떠돌던 중 로테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약혼한 상태. 좌절한 베르테르는 새로운 삶을 시도해 보지만 허례허식으로 가득 찬 사회에 더욱 절망한다. 당시 독일의 청년들은 베르테르를 자신의 대변자로 느꼈다. 마음만이 “모든 행복과 불행의 원천”이라는 베르테르의 목소리는 계몽주의적 이성에 반발하고 자연과 순수한 마음으로의 회귀를 외치던 독일 젊은이들의 목소리였다. 그들은 베르테르와 함께 절망했다. 그들 모두 베르테르와 같은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이 병은 한편으로는 위선과 가식으로 점철된 구세대가 만든 것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열정을 쏟아낼 어떤 출로도 만들어 내지 못한 베르테르 자신이 만든 것이었다. 베르테르는 로테에게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지만, 그녀는 어떤 출구도 찾지 못한 베르테르의 열정이 도달한 막다른 골목이었다. 외부와 교감하지 못하는 열정은 결국 내파하여 베르테르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당시의 괴테 역시 그랬다. 그는 아버지로 대표되는 구세대에 대한 반항심으로 넘쳤고, 두 번에 걸쳐 배반당한 사랑에 절망한 상태였다. 그러니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절망에 빠진 자신의 문제를 바라보기 위해 괴테 스스로가 시도한 가상 여행이자 저 자신에게, 아니 길을 잃고 주저앉은 세상 모든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작은 선물, 깊은 공감의 노래다. 베르테르는 자살하지만 괴테는 살아간다. 1776년, 아우구스트 대공의 초청으로 신흥 공국 바이마르의 추밀외교관으로 일하게 된 괴테에게 온갖 업무들이 쏟아졌다. 그는 엄밀한 규칙과 질서가 작동하는 세계에 적응해 질풍노도기의 자기중심적 태도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1786년, 그는 돌연 10년간 머물렀던 바이마르를 빠져나와 이탈리아로 떠난다. 갇혀 있던 열정이 그를 어린 시절부터 꿈꾸었던 고전의 세계로 이끌었던 것이리라. 괴테는 다짐한다. 나 자신을 기만하지 말자. 부지런히 배우면서 나 자신을 수양시키자. 지중해의 자연은 괴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폐허가 된 폼페이 유적, 팔라디오의 건축물, 미켈란젤로와 라파엘의 그림들은 그를 울렸다. 편협한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존의 방식대로 사물을 포착하기를 멈추고 사물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괴테의 마음에 풀 한 포기, 돌 조각 하나, 무엇보다 무너진 과거의 잔해들이 어떤 ‘전체’로서 새롭게 들어왔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위대한 것과 하찮은 것, 자연과 예술이 빚어내는 질서와 조화의 세계. 이탈리아는 괴테에게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선물했다. 약 2년 뒤 바이마르로 돌아온 괴테는 한층 단단해져 있었다. 그는 바이마르 국정에 참여하여 광산사업과 문화 예술 업무에 집중했다. 그러다 천한 신분 출신인 크리스티아네와 동거해 아이를 낳았고, 고전적이면서도 관능적 사랑으로 충만한 ‘로마의 비가’를 발표했다. 사람들은 괴테가 타락했다고 비난했다. 베르테르의 음울함을 벗어 버리고 시대적 습속을 무시한 이 중년의 사내를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괴테는 흔들리지 않고, 그에게 새로운 빛을 보여 주었던 예술 및 자연과학 연구에 힘을 쏟기 시작한다. 이 무렵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이 독일 청년들을 뒤흔들 때도 정작 괴테는 담담했다. 전체의 조화와 사물의 유기적 변화, 발전을 믿었던 그에게는 오히려 혁명에 수반되는 폭력과 유혈사태가 저주스럽기만 했다. 바스티유의 파괴와 루이 16세 처형에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괴테는 당부한다. 스스로의 삶에 충실하라. 1792년, 프랑스 혁명군이 독일을 침공하자 바이마르의 공무원이었던 괴테 역시 출정에 동참해야 했지만, 그는 전장에서도 관찰자로서의 태도를 견지하면서 이렇게 질문한다. 폭력 없는 혁명, 평화로운 변화란 진정 불가능한가. 이런 문제의식은 실러와의 만남으로 심화된다. 실러 역시 혁명을 회의하며 ‘미적 교육’을 통한 인간 성장의 길을 모색하고 있었던 것. 두 사람은 공히 고대에서 그 길을 찾고자 했다. 그들은 1000통이 넘는 편지를 교환했고, ‘크세니엔’을 비롯한 공동작업에 착수한다. 특히 자연 전체의 고려 속에서 개별적인 것을 해명하려는 괴테의 비전에 끌렸던 실러는 그것이 작품으로 형상화될 수 있도록 괴테를 도왔다. 실러가 죽자 괴테가 “내 존재의 절반을 잃었다.”고 했을 만큼 실러는 또 다른 괴테였다. 실러와의 교류 속에서 탄생한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1796)에서 괴테는 인간의 삶이란 결국 ‘수업’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 삶에 무엇이 닥쳐올지는 알 수 없으나, 모든 것들의 상호작용 가운데서 한 송이 꽃이 피어나듯 인간 역시 온갖 사건과 관계들 속에서 성장한다는 것이다. ‘인류’니 ‘자유’니 하는 사명들은 내려놓고 오직 내적 충동에 몸을 맡긴 채 당당히 세상 속으로 향하라. 모든 것은 “오직 모든 사람을 합해서만”, “모든 힘을 통합함으로써만” 성장한다. 주인공 빌헬름이 그의 연극체험과 ‘탑의 결사’라는 공동체와의 만남을 통해 성장했듯이 괴테는 실러와 헤르더, 셰익스피어, 호메로스, 그리고 이탈리아의 무수한 사물,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성장했다. 중년의 괴테는 그렇게 모든 만남이 그를 성장시키는 위대한 사건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순간이여, 너는 참으로 아름답다” 세상은 여전히 소용돌이쳤다. 1806년, 프랑스 황제로 등극한 나폴레옹은 전 유럽을 압박했고, 라인동맹 가입을 거부하는 프로이센을 공격했다. 괴테는 홀로 남아 피난민들과 약탈자들로 혼란한 바이마르를 지켜보았다. 사람들은 그가 나폴레옹의 총애를 받으며 프랑스에 대해 침묵하고 있음을 비난했다. 하지만 “증오심이 없는데 어떻게 무기를 들 수 있겠나.”라며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삶을 바라보았던 괴테는 민족적 편견이 만들어내는 선악 시비에 동요하지 않았다. 조국을 사랑하는 방법은 오히려 그러한 편견들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묵묵히 바이마르 예술극장을 꾸렸고 예술과 고전, 자연의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 60살이 넘어 출간한 ‘색채론’과 ‘동물의 변형’에는 노년의 괴테가 깨우친 자연의 비밀이 담겨 있다. 그리고 ‘파우스트’. 사람들은 신과 같이 자연을 향유하고자 하였던 파우스트 박사가 인간의 한계에 절망하여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꼬임에 빠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악마와 계약하여 “자유로이 자연의 혈관 속을 흐르며 창조적으로 신의 삶을 향유”할 수 있었다. 오류와 시도, 성공과 실패, 선과 악은 약동하는 생명의 에너지가 매순간 만들어 내고 또 무너뜨리는 한 가지 형태일 뿐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이 순간적인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지속시키고자 하는 열망이다. 그러한 열망 너머 자연의 힘에 몸을 맡긴 자, 영원히 푸른 소나무로 살리라. 괴테는 오래 살았다. “사랑했고 증오했고 무관심했던 사람들과 왕국들, 수도들”보다도, “젊을 때 씨뿌리고 심은 숲의 나무들”보다도. 그는 그 모든 것들의 삶과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다. 때로는 아팠고, 분노하고 절망한 날들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깨닫는다. “순간이여, 너는 참으로 아름답구나!” 부패는 생명의 한 과정이며 죽음은 탄생이다. 가장 천한 것, 가장 혼란하고 절망스러운 것 속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것들이 함께 있으니, 이 혼돈 속을 첨벙거리며 계속 가는 것, 그 자체가 우리들의 숙명이며 또한 참된 기쁨이다. 그러니 부디 살아가기를, 천천히, 하지만 멈춤 없이 길을 나서기를. 우리, 세상 모든 베르테르들에게 주는 괴테의 가르침이다. 박수영 남산강학원 연구원
  • 용산빌딩 디자인 논란… “9·11 테러 연상케 해”

    용산빌딩 디자인 논란… “9·11 테러 연상케 해”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에 들어설 주상복합아파트의 디자인이 9·11 테러 직후의 세계무역센터(WTC) 건물을 연상시켜 논란이 일고 있다. 네덜란드 건축설계회사 엠베에르데베(MVRDV)는 최근 용산에 조성할 23개 초고층 빌딩에 대한 ‘기획설계 결과 보고회’에서 60층(300m)과 54층(260m) 빌딩 2개를 고층에서 구름다리를 잇는 것처럼 하나로 연결하는 ‘클라우드 디자인’ 방식의 주상복합아프트 2개 동의 설계도를 공개했다. 이 같은 소식은 네덜란드 신문 ‘알헤메인 다흐블라트’의 9일자(현지시각)를 통해 “이 건물이 (9·11 테러 직후의) 쌍둥이빌딩(세계무역센터)을 연상시킨다”고 보도됐다. 이후 엠베에르데베 웹 사이트에는 각종 항의와 협박성 글이 빗발쳤고 심지어 “알카에다 추종자”라는 비난도 쏟아졌다. 이에 엠베에르데베는 이날 성명을 통해 “9.11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만들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고, 설계 과정에서 둘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했다.”며 “설계도를 보고 마음이 상한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유감의 뜻을 표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질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 뉴욕 데일리 뉴스는 엠베에르데베가 기존 설계도를 변경할 뜻은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고 10일 밝혔다. 9·11 테러로 소방관 아들을 잃었던 짐 리치스는 10일 이 신문을 통해 “거짓이다. 그들(설계자)은 테러 희생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없다. 선을 넘은 처사”라며 “설계가 건물 잔해를 토해내는 세계무역센터 빌딩과 너무 똑같다. 유명세를 타려고 선정적인 방법을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들 주상복합아파트 2개동은 세계적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설계한 용산국제업무지구 입구에 들어서는데 역설적으로도 다니엘은 재건되는 WTC의 종합계획을 완성한 사람으로 알려져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엠베에르데베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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