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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주 폭발사고 현장서 잘린 호스관…고의 사고 가능성

    양주 폭발사고 현장서 잘린 호스관…고의 사고 가능성

    20kg LP가스통 가스관 절단 흔적…사고 아닌 고의 폭발에 무게2명의 목숨을 앗아간 양주 주택가 가스폭발 사고는 20kg짜리 LP 가스통에서 잘린 가스관을 통해 집안으로 누출되며 발생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사고 현장 잔해 속에서 가스가 누출된 LP 가스통과 잘린 흔적이 있는 가스관을 발견해 국과수에 조사 의뢰했다. 8일 경찰과 소방 당국에 따르면 폭발은 사고로 숨진 이모(58)씨의 집 실내에서 시작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파악됐다. 사고 당시 이씨의 집 외부에 20kg LP가스통이 있었다. 가스통과 실내에 있는 가스레인지가 가스관으로 연결된 구조였다. 절단된 가스관에서 LP가스가 누출되며 실내에 상당량 쌓였고, 이후 알 수 없는 발화 원인으로 폭발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파악됐다. 소방 관계자는 “폭발의 규모로 봤을 때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누출이 진행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LP 가스통은 폭발 방지용 밸브가 있어 가스통 자체가 갑자기 폭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라며 “현장에서도 가스통이 폭발한 흔적은 없어 가스 누출이 폭발 원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LP 가스 1kg의 폭발 위력은 TNT 화약 약 300g과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TNT 화약은 물속에서 1kg만 폭발해도 수십미터 이상의 물기둥이 솟구칠 만큼 위력이 상당하다. 실제 폭발 직후 집 2채가 흔적만 남기고 완전히 무너졌고, 수십 미터 떨어진 곳까지 지붕 잔해와 벽돌이 날아갔을 정도다. 이날 오전 현장 합동감식을 통해 잘린 가스관을 발견한 경찰은 고의사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수사를 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LP 가스는 냄새가 강해 소량만 누출돼도 금방 알 수 있는데, 이 정도 많은 양이 새 나왔을 동안 집 안에 있던 이씨가 몰랐을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며 “가스관이 잘린 경위에 대해서는 정밀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7일 오전 11시 15분쯤 경기도 양주시 봉양동의 주택가에서 LP가스 누출로 추정되는 폭발사고가 일어나 벽돌로 된 단독주택 2채가 완전히 무너졌고, 집 안에 있던 김모(68·여)씨와 이모(58)씨가 각각 숨진 채 발견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양주 폭발현장 “왜 하늘은 착한 사람만 먼저 데려가는지..”

    양주 폭발현장 “왜 하늘은 착한 사람만 먼저 데려가는지..”

    7일 오전 LP가스 폭발로 추정되는 사고가 난 경기도 양주시 봉양동 주택가 현장에서 숨진 김모(68·여)씨의 소식에 그와 가까이 지냈다는 박양화(62·여)씨는 “병수발을 해주느라 병원에서 지내다가 어젯밤에 잠깐 집에 왔다고 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느냐”며 울먹였다. 박씨에 따르면 숨진 김씨는 이웃 중에 허리를 다친 사람이 있어 못 움직이게 되자 최근 약 열흘간을 병원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하며 병간호에 나섰다. 이웃 주민 A(89·여)씨도 김씨 소식을 전해 듣고 “착해도 너무 착했다. 큰 소리가 나서 무슨 일이 났을 줄을 알았지만, (김씨가) 죽다니 이게 무슨 일인 줄 모르겠다. 왜 하늘은 착한 사람들만 먼저 데려가는지..”라며 안타까워했다. 숨진 김씨의 이웃집에 살던 이모(58)씨도 폭발로 건물 잔해물이 깔려 숨진 채 발견됐다. 이 폭발사고로 김씨와 이씨의 집 두 채가 완전히 무너지고 이웃집 2채가 부서졌으며, 차량 2대도 파손됐다. 1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작은 마을에서 사고가 나 2명이 숨지면서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양주 LP가스 폭발 ···주택 4채 파손 1명 숨져

    양주 LP가스 폭발 ···주택 4채 파손 1명 숨져

    경기 양주시의 한 마을에서 LP가스 폭발로 추정하는 사고가 나 주택 4채가 완파 또는 반파되고 60대 여성 한 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7일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15분쯤 양주시 봉양동의 한 시골주택에서 LP가스 폭발로 추정하는 사고가 나 주택 2채가 완전히 부서지고, 다른 2채는 일부 파손됐다. 완파된 주택 한 곳에서는 A(67·여)씨의 시신이 119구조대에 의해 발견됐으며, 나머지 3곳은 빈집으로 확인됐다. 사고가 난 주택가 현장은 전쟁터를 떠올리게 했다. 이웃 주민들은 ‘북한에서 포를 쏜 줄 알았다’며 폭발 당시 충격을 전했다. 사고현장 건너편에서 자동차공업소를 운영하는 김우용씨는 “처음에는 우리 가게에서 가스가 폭발한 줄 알았다”면서 “너무 큰 소리에 깜짝 놀라 119에 곧장 신고했다”고 말했다. 농사일을 하러 나왔다가 폭발 사고를 목격했다는 이기원씨는 “뿌연 연기와 함께 폭발 잔재물들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면서 “수십m 높이 솟아오른 것 같다”고 전했다. 폭발 현장은 슬레이트로 된 지붕이 휴지조각 처럼 구부러져 바닥에 나뒹굴었고, 콘크리트 잔재물이 가득 쌓여 있어 희생자를 찾는데 만 2시간 가까이 걸렸다. 폭발사고가 난 주택 뒤편으로 주민들이 일구는 밭에도 기왓장과 벽돌 등이 날아들어 사고 당시 충격을 가늠케 했다. 사고가 나자 소방당국은 소방차량 17대와 구조견 등을 투입해 현장 수습과 인명수색 작업을 진행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양주서 LP가스 폭발로 60대 여성 숨져…주택 4채 파손

    양주서 LP가스 폭발로 60대 여성 숨져…주택 4채 파손

    7일 오전 11시 15분쯤 경기 양주시 봉양동의 주택가에서 LP가스 폭발로 추정되는 사고가 나 주택 2채가 완전히 부서져 무너지고 또 2채가 일부 부서졌다.소방 당국은 완파된 건물 한곳에서 60대로 추정되는 여성 A씨의 시신을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다. 나머지 3곳은 현재까지 빈집으로 확인됐다. A씨의 시신이 발견된 곳에서는 추가 인명피해 가능성이 커 소방 당국은 수색 인력을 집중하고 있다. 또, 중장비 등 차량 17대와 구조견을 투입해 사고 지역 수습과 인명수색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부서진 주택 잔해가 많아 수색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폭발 당시 주변에는 ‘쾅’하는 굉음이 들렸으며 희뿌연 연기가 수십미터 위까지 치솟았다. 폭발이 화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조선에 주자학 시대 열다…세계의 퇴계학으로 발전하다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조선에 주자학 시대 열다…세계의 퇴계학으로 발전하다

    12월 8일, 아침에 분매(盆梅)에 물을 주라고 하셨다. 유시(오후 5~7시)에 푸른 하늘에 갑자기 흰 구름이 몰려와 지붕 위에 모이더니 눈이 한 치 남짓 쌓였다. 잠시 뒤에 선생이 자리를 정돈하고 부축해 일으키게 하시고 일어나 앉아서 서거하시니, 곧바로 구름이 흩어지고 눈이 그쳤다.1570년 음력 12월 8일 조선의 대학자 퇴계 이황(李滉·1501∼1570년)이 세상을 떠나는 광경을 제자 이덕홍이 보고 기록한 것이다. 참으로 성자의 장엄한 낙조라 아니할 수 없다. ‘고칠현삼’(古七現三)이란 말이 있다. 현대에 나온 책을 세 권 읽으면 고전은 일곱 권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고전은 오랜 세월 많은 사람이 읽은 책이라 이미 검증돼 믿을 수 있다고 보증된 책이다. 우리나라 고전 중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널리 영향을 끼친 책은 무엇일까. 신라 원효의 ‘대승기신론소’는 중국 화엄종에서도 채택돼 ‘해동소’(海東疏)로 불리고, ‘십문화쟁론’은 당나라 때 이미 인도에서 번역됐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읽히지 못했다. 우리나라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많이 읽힌 고전은 아마 이황의 저술인 ‘퇴계집’이 아닐까 싶다. 퇴계집이야말로 조선에 본격적인 주자학 시대를 연 저술로 후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우리 고전 중 고전이라 평가할 수 있다. 이황의 저술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가 일찍부터 간행됐다. 일본에서는 이황을 ‘주자 이후 일인자’로 칭송했다. 그중에서 1811년 무라지 교쿠스이가 편집한 ‘이퇴계서초’(李退溪書抄·전10권)는 이황의 편지를 가려 뽑은 책이다. 중국에서는 1945년 이전에 북경 상덕여자대학 재단에서 이황의 ‘성학십도’를 인쇄해 판매한 일도 있었으니, 유학의 본고장에서도 이황은 크게 존숭받은 셈이다. 현대에 와서는 대만 국립사범대학에 퇴계학연구회가 부설됐고, 미국과 독일에도 퇴계학연구회가 생겼다. 또한 국제퇴계학회가 창설돼 1976년 이래로 거의 해마다 한국·일본·대만·미국·독일·홍콩 등지에서 국제학술회의가 열린다.#주자학 시대 연 대학자 조선은 주자학의 나라라 하지만 이황 이전에는 주자학의 정밀한 이론이 학자들 사이에 수용되지 못했다. 고려 때 크게 유행한 불교의 영향도 남아 있었다. 이황 이전에도 ‘심경’, ‘근사록’, ‘성리대전’ 등 성리학 저술이 있었지만, 조선에서 ‘주자대전’을 최초로 완독하고 연구한 학자는 이황이다. 주자대전 완질은 중종 18년(1523년) 교서관에서 처음 간행됐으나, 20년 후인 1543년 43세의 이황이 처음 그 책을 입수했다. 이황은 주자대전을 읽고 연구한 지 13년 만인 56세 때 편저인 ‘주자서절요’를 완성했다. 주자대전의 편지 중에서 정수를 추려 모은 것으로, 비록 편저이지만 이황의 주자학 연구의 깊이를 유감없이 보여 준 명저다. 학자들이 방대한 주자대전을 다 읽지 않아도 주자학의 정수를 습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책이 간행되자 학계 신진 학자들이 크게 호응해 이 책을 통해 주자학에 입문했으니, 조선에 본격적인 주자학 시대를 연 것이 바로 이 책에서 비롯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주자서절요는 조선에서만 도합 8차례 활자와 목판으로 간행됐고, 일본에서도 4차례 목판본으로 간행됐다. 실로 ‘사서삼경’에 버금가는 권위와 영광을 누린 것이다. 한편 이황은 호남 선비들과의 우정이 특히 각별했다. 33세 때 성균관에서 하서 김인후와 만나 의기투합한 이후 환로에서 면앙정 송순, 석천 임억령, 금호당 임형수, 칠계 김언거 등과 사귀었다. 성균관 대사성으로 재직하던 58세 때에는 고봉 기대승을 만났다. 이황과 기대승이 주고받은 편지는 100여통이 넘지만, 기대승은 불과 세 차례 서울에서 이황을 만났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황은 문하에 출입한 제자 중에서 도산서당의 강석에서 직접 배운 영남의 많은 학자를 제치고 기대승을 가장 높이 인정했다. 그래서 이황이 벼슬을 그만두고 조정을 떠날 때 선조가 조정 신료 중 누가 학문이 뛰어난 사람인지 묻자 “기대승은 글을 많이 보았고 성리학에도 조예가 깊어 통유(通儒)라 할 만합니다”며 기대승을 추천했으니, 그가 기대승을 내심 가장 뛰어난 제자로 인정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황과 기대승은 유명한 ‘사칠논변’(四七論辯)을 펼쳤다. 이황은 기대승과 토론을 거쳐 “사단은 리가 발해 기가 이를 따르고 칠정은 기가 발해 리가 이를 탄다”(理發而氣隨之 氣發而理乘之)고 하는, 소위 ‘리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했다. 하나이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인 사단과 칠정의 관계와 개념을 더욱 분명히 분석하고 정의한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주자학을 한층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한편, 향후 학계에 오랜 세월 토론할 큰 쟁점을 던졌다. 실로 주자학 역사에 대서특필할 큰 학문적 성과라 아니할 수 없다.#도산서원에서의 만년 꽃은 바위 벼랑에 피고 봄 고요한데 새는 시냇가 나무에 울고 물은 잔잔해라 우연히 산 뒤로부터 제자들을 데리고서 한가로이 산 앞에 이르러 서당을 보노라. 계상의 집에서 산을 넘으며 도산서당에 이르러 읊은 시로, 이황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회갑 해인 1561년에 지은 시로 학문이 원숙한 경지에 이른 노학자의 정신세계가 담담한 필치로 잘 그려져 있다. 이 시는 눈에 보이는 경치를 읊었을 뿐이라 일견 단조로워 보인다. 그렇지만 오히려 자신의 상념을 개입하지 않고 자연이 주는 잔잔한 감동을 그대로 그려낸 데에서 시의 울림은 오히려 크다. 우연히 본 경치를 그대로 읊어 놓은 작품인 데도 오래 두고 욀수록 작자의 깊은 정신세계가 느껴지면서 더욱더 좋다. 신유년(1561) 4월 15일에 선생이 조카와 손자 안도(安道) 및 덕홍(德弘)과 더불어 달밤에 탁영담(濯纓潭)에 배를 띄워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서 반타석(盤陀石)에 배를 정박했다가 역탄(灘)에 이르러 닻줄을 풀고 배에서 내렸다. 세 순배 술을 마신 다음 선생이 옷깃을 바루고 단정히 앉아 마음을 고요히 가다듬고 한참 동안 가만히 계시더니 ‘전적벽부’(前赤壁賦)를 읊으셨다. 제자인 이덕홍이 기록한 글이다. 이 무렵이 이황으로서는 도산서당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가장 안온하고 행복한 삶을 누렸던 시절이었다. 이후로 임금의 부름을 받아 출사와 사직, 상경과 귀향을 반복해야 했던 이황은 노병을 이유로 누차 간곡히 사임한 끝에 1569년 3월에야 69세 나이로 우찬성을 벗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 해 뒤에 세상을 떠났으니 나이 70세, 1570년 12월 8일이었다. 1569년 3월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이듬해 12월에 세상을 떠났으니, 꿈에도 그리던 도산서원에서 안돈한 지 2년이 채 못 되었다. 이황이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을 듣자 선조는 3일간 정무를 보지 않음으로써 애도했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문순의 시호를 받아 문묘에 배향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최고의 추앙을 받고 있다. 이상하 한국고전번역원 교수 ■ 퇴계집 해제 총 63권…편지에 학문·인간적 면모 잘 나타나퇴계집은 도합 63권의 방대한 분량이다. 이 중에서 이황의 학문과 인간적 면모를 잘 보여 주는 것은 편지들이니, 어떤 것은 아름다운 문학 작품이 되고 어떤 것은 깊은 철학 논문이 된다. 이 중에서도 기대승과 주고받은 편지들이 특히 중요함은 말할 나위 없다. 이 밖에 68세 때 어린 선조 임금에게 올린 ‘무진육조소’와 ‘성학십도’는 이황의 대표적 저술이다. ‘천명도설서’, ‘심경후론’, ‘전습록변’ 등도 이황의 저술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다. 도연명과 두보, 주희의 시를 배웠다고 하는 이황의 시도 매우 격조와 문학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이황의 인품은 대개 근엄하고 신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편지들을 보면 매우 자상하고 진솔하며 인정이 많고, 의외로 활달한 면도 보인다. 현재 퇴계학연구원에서 이황의 저술들을 샅샅이 모아 정리하는 정본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정본에는 ‘퇴계집’을 간행할 때 빠진 글들을 다 수록하는데, 학문적인 가치는 그다지 크지 않을지 몰라도 이황의 일상과 인품을 읽을 수 있는 글이 많다. 오늘날 우리가 읽기에는 오히려 더 수월하고 재밌다. 끝으로 그중에서 이황의 해학을 엿볼 수 있는 짧은 편지 한 부분을 소개한다. 손자 안도가 과거에 급제한 것을 두고 겸사로 한 농담이다. “안도 녀석이 과거에 급제했고 게다가 혹 높은 등수를 차지할 수도 있다고 하니, 쑥대 그물에 범이 잡혔고 장님이 문지기를 선 셈이로군. 마음이 기쁘면서도 괴이쩍다.”
  • 유럽우주국, 우주쓰레기 간 충돌 시뮬레이션 연구 시작

    유럽우주국, 우주쓰레기 간 충돌 시뮬레이션 연구 시작

    우주과학이 발전하면서 각국이 발사한 위성 중 미션이 끝난 ‘우주쓰레기’의 위협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전문가들이 우주 공간에서의 우주쓰레기 충돌과 관련한 시뮬레이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알려진 우주쓰레기는 약 350만 개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우주쓰레기는 지구 궤도를 떠돌다가 지구의 중력에 이끌려 추락하면서 사고를 유발하기도 한다. 우주유영 중이던 우주비행사가 유영 중 손에서 놓친 공구나 위성 또는 우주선의 잔해도 우주쓰레기에 포함되며, 이러한 우주쓰레기는 지구 궤도를 초속 8㎞의 빠른 속도로 돌고 있다. 각국의 우주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우주쓰레기는 점차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유럽우주국(ESA)는 우주 상공에서 버려진 위성 2개가 충돌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보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 예컨대 거대한 우주쓰레기에 속하는 위성 2대가 충돌할 경우, 충돌 시 발생하는 잔해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잔해는 몇 개나 발생하는 지 등을 알아보는 것이다. 연구진은 2가지 타입의 시뮬레이션을 실시한다. 첫 번째는 두 위성이 우주공간에서 충돌했을 때를 가정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충돌로 인한 위성의 작은 조각들이 어떻게 미세한 입자로 변해버리는지를 확인할 예정이다. 두 번째는 우주선이나 위성을 이루는 큰 부품들, 예컨대 커다란 금속판이나 화물, 추진제 탱크 등이 충돌로 인해 어떻게 파편으로 부서지는지 등을 시뮬레이션 할 예정이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앞으로 발사할 우주선이나 위성의 퀄리티 및 예측도를 높여 업그레이드 된 우주기기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지금까지 우주에 발사된 위성이 다른 위성이나 소행성과 충돌하는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앞으로는 더욱 잦아질 것”이라면서 “이 분야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미지의 분야”라며 앞으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최장수 북극곰 ‘이누카’를 아시나요? 안락사 위기 처해…

    최장수 북극곰 ‘이누카’를 아시나요? 안락사 위기 처해…

    열대지방에서 태어난 유일한 북극곰, 싱가포르의 최장수 동물로 유명한 ‘이누카’가 최근 사망 위기에 처했다. 20일(이하 현지시간) 싱가포르 언론 더 스트레이츠 타임은 인간 나이로 70에 해당하는 27살 수컷 북극곰 이누카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하면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전했다. 싱가포르 야생동물 보호구역(WRS)에서 태어난 이누카는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될 정도로 현지 유명 인사였다. 이누카는 귀여운 재롱으로 동물원 방문객들에게 많은 총애를 받았고, 매년 그의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누카도 흘러가는 세월 앞에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난 3일 연례 건강 검진에서 그의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누카는 3개월 동안 약물 혼합제를 맞으며 관절염 치료를 받고 있었고, 치아 문제와 잦은 이염으로 고생 중이었다. 이누카는 북극곰 평균 수명(20~25세)보다 2년이나 더 살았다. 야생 북극곰 평균 수명(15~18)보다 훨씬 더 장수했다. 싱가포르 동물원은 2006년 전시중인 북극곰 ‘이누카’의 노사 이후 더 이상 북극곰을 전시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이누카를 마지막으로 동물원에서 북극곰을 볼 수 없게 된다. 수의사 아브라함 매튜는 “이누카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으며 집중적인 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이누카가 호전되고 약으로도 나아질 수 있다고 느끼면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의 상태가 계속해서 악화되면 그를 편안하게 놓아주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물원측은 “사랑하는 북극곰 이누카의 최근 건강 검진 결과 몸이 많이 쇠잔해졌다. 오는 20일 복지팀이 수의사, 동물학자와 함께 치료방법을 변경해 그를 살릴 수 있는지 평가할 것”이라며 “이누카에게 아낌없는 기도와 지지를 보내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값비싼 ‘불꽃놀이’였던 시리아 공습작전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값비싼 ‘불꽃놀이’였던 시리아 공습작전

    지난 13일(현지시간) 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를 비롯한 주요 도시와 군사시설 인근에서 연이은 폭음이 청취됐다. 곳곳에 배치된 시리아군 진지에서는 대공포탄과 지대공 미사일이 하늘로 솟구쳤고, 지상은 물론 공중에서도 폭음과 화염이 관측됐다.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응징으로 미·영·불 연합군이 공습에 나선 것이었다. 현지 시각으로 토요일 새벽 4시를 기해 일제히 실시된 공습에는 미·영·불 3개국의 해군력과 공군력의 최첨단 장비들이 대거 동원됐다. 가장 먼저 불을 뿜은 것은 홍해와 페르시아만에서 대기 중이던 미 해군 이지스함들이었다. 홍해에서 작전 중이던 이지스 순양함 몬터레이(USS Monterey), 이지스 구축함 라분(USS Laboon), 페르시아만에 있던 이지스 구축함 히긴스(USS Higgins) 등 4척의 함정에서 66발의 토마호크(Tomahawk) 미사일이 연달아 발사됐다. 지중해에서는 미 해군 최신예 공격용 원자력 잠수함 존 워너(USS John Warner)와 프랑스 해군 스텔스 구축함 아키텐(FS Aquitaine)이 토마호크와 스칼프(SCALP) 순항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키프로스섬에서는 영국공군 토네이도 GR.4(Tornado GR.4) 전투기 4대가 최신형 공대지 미사일 스톰 섀도우(Storm Shadow)를 장착하고 이륙했고, 요르단에서도 프랑스 공군 라팔(Rafale)과 미라지 2000(Mirage 2000) 전투기가 공대지·공대공 무장을 장착하고 출격했다. 카타르의 우데이드(Udeid) 공군기지에서도 미 공군 B-1B 초음속 폭격기가 스텔스 순항 미사일인 JASSM을 가득 탑재하고 이륙했고, 시리아 국경 인근 상공에는 러시아·시리아군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연합군 전투기들을 보호하기 위해 EA-6B 전자전기가 대기했다. 구축함과 잠수함, 전투기와 폭격기에서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발사된 105발의 미사일은 타이밍을 맞춰 동시다발적으로 시리아 내 미리 설정된 표적으로 쇄도해 들어갔다. 대량으로 동시 발사된 이들 미사일이 향한 곳은 시리아의 화학무기 제조시설과 지휘통제시설이었다. 동구타 화학무기 공격에 사용된 신경가스를 생산한 것으로 의심되어온 바르자(Barzah) 과학연구센터에는 무려 76발의 미사일이 쇄도했고, 힘 신사르(Him Shinsar) 지휘통제소에는 22발의 미사일이 집중됐다. 공습 이후 케네스 메켄지(Kenneth McKenzie) 미 합참 전략기획부장은 “바르자에는 3개의 건물과 격납시설이 있었지만 지금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표적이 초토화되었다고 평가했다. 공습 다음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임무완수(Mission accomplished)”라며 작전이 성공적이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연합군의 이러한 평가와 달리 공습 직후 시리아는 너무도 멀쩡했다. 공습 다음날 시리아 정부군은 동구타 지역을 비롯한 주요 전선에서 대규모 공습을 동반한 총공세를 펼쳤다. 그 결과 반군이 장악하고 있던 주요 도시 몇 개가 순식간에 정부군의 손에 떨어졌다. 바샤르 알 아사드(Bashar al-Assad) 시리아 대통령 역시 언제 공습이 있었냐는 듯 태연하게 공개석상에 나타나 러시아 의회 대표단을 접견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그는 “1970년대 개발된 러시아제 방공무기로 대부분의 미사일을 요격했다”며 여유 있는 모습까지 보였다. 휴일 새벽 연합군이 시리아를 향해 날린 약 2000억 원 어치의 미사일이 아사드 정권과 시리아 정부군에는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시리아는 공습 직후 연합군이 발사한 105발의 미사일 가운데 무려 67%인 71발의 미사일을 요격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를 부정했지만 그럴 개연성은 충분하다. 시리아 정부군은 토마호크나 드론과 같은 소형 표적 요격에 특화된 최신형 방공체계인 SA-22, 일명 ‘판치르-S1E‘ 시스템은 물론 저고도-중고도-고고도에 걸친 중첩 방공망을 다수 운용 중이며, 여기에 최신형 방공무기로 무장한 러시아도 이번 방공작전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미국은 공습에 나서기 전 전자전기 등을 동원해 적 방공망을 마비시킨 뒤 미사일 공격을 퍼붓는 전술을 구사해 왔지만,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이러한 선제적 방공망 제압 작전에 매우 소극적이었다. 그 결과 2000억 원어치의 미사일을 쏟아 부었음에도 절반 이상의 미사일이 격추되고 고작 3개소의 표적 건물 몇 동만 파괴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얻고 말았다. 이런 황당한 결과의 배경에는 ‘명분’은 필요했지만 ‘확전’이 두려웠던 트럼프와 푸틴의 복잡한 셈법이 작용했다. 트럼프는 국내 정치적으로 여러 복잡한 사건에 얽혀있고 11월 선거 이전에 대외적으로 뭔가 확실한 ‘한방’을 챙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푸틴 역시 최근 재선에 성공했지만, 부정선거 시비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집권 초기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에 시동을 걸기 위해서 뭔가 강력한 ‘한방’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트럼프와 푸틴의 이해관계 접점은 시리아였다. 트럼프는 대대적인 시리아 공습을 통해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며 인권을 유린하는 전쟁범죄자를 응징했다는 명분을 챙겼다. 최근 무역 분쟁으로 관계가 소원해진 영국·프랑스와 공동작전을 통해 돈독한 동맹관계를 재확인했다는 명분은 덤이다. 푸틴은 이번 공습의 최대 수혜자다. 핵심 동맹국인 시리아를 서방세계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냈다는 명분도 챙겼고, 서방세계의 위협으로부터 우방국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되던 러시아 초음속 폭격기의 이란 공군기지 배치 협의도 급물살을 타게 됐다. 이는 중동 지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사드 대통령이 직접 나서 러시아제 무기의 우수성을 홍보해주는 홍보 효과는 덤이다. 이러한 전략적 이익을 위해 트럼프와 푸틴은 계획된 각본대로 움직였다. 미국은 러시아와 시리아가 공습 예정일을 예측하고 미리 대피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고 전투기와 군함을 눈에 띄게 이동시켰다. 표적 선정 과정에서도 러시아 관련 시설은 철저하게 배제됐다. 쇼맨십을 위해 대량의 미사일이 동원되었지만 대부분의 미사일은 동일 표적에 중복 사용되었다. 가장 많은 미사일을 얻어맞은 바르자 과학연구센터는 축구장 2개 정도 되는 면적 위에 고작 3개 동의 건물이 있었지만 여기에 무려 76발의 미사일이 날아갔다. 상당수는 요격되었지만, 집중 공격을 받은 바르자 연구센터는 잔해조차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초토화됐다. 연합군의 2순위 공습 표적이었던 힘 신사르 지휘소 역시 단 2개뿐인 강화 콘크리트 출입구에 무려 22발의 미사일이 집중되어 문자 그대로 잿더미만 남았다. 미군이 적의 지휘소를 공격할 때 통상적으로 퍼붓는 수준의 4~5배에 달하는 수준의 미사일이 불과 2개의 출입구에 집중된 것이다. 미·영·불 연합군의 공습이 시작되기 전 시리아군은 핵심자산을 타르투스와 흐메이님 등 러시아군 주둔 지역으로 대피시키는 한편, 야전군 부대들을 주둔지 밖으로 이동시켜 공습에 대비했다. 미군은 시리아군의 대피 상황을 위성과 정찰기를 통해 낱낱이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덕분에 연합군의 대규모 공습에도 불구하고 전력을 온전히 보전한 시리아 정부군은 공습 직후 반군을 향해 대공세를 펼 수 있었다. 이후 정부군은 연전연승을 거듭하며 반군을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는 중이다. 막대한 예산을 쓰며 시리아를 공습했지만 서방세계가 당초 예상했던 모습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영국 가디언(The Guardian)지의 지적대로 이번 공습은 값비싼 불꽃놀이(Expensive firework display)에 불과했다. 그 불꽃놀이의 수혜자는 푸틴과 아사드였고, 트럼프는 대통령의 군사력 사용권을 제한하는 전쟁권법 개정과 미국 안팎의 비판이라는 값비싼 청구서 앞에 내몰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일우 군사 전문 칼럼니스트(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아하! 우주] 초기 태양계에 화성만한 행성 존재…충돌로 사라져

    [아하! 우주] 초기 태양계에 화성만한 행성 존재…충돌로 사라져

    지난 2008년 10월 지름 4.1m로 추정되는 작은 소행성 하나가 아프리카 수단 상공에 진입해 37㎞ 상공에서 공중 폭발했다. 이 여파로 600여 개에 달하는 운석이 사막 곳곳에 떨어졌으나 다행히 사람이 살지않아 피해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당시 전문가들은 사막 곳곳에서 총 10.5kg에 달하는 운석을 수거해 분석했는데 흥미로운 사실이 확인됐다. 그 성분이 '유레일라이트'(ureilite)라는 매우 작은 다이아몬드 군(群)이 포함된 흔치 않은 조성을 가진 종류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는 지구에 떨어지는 모든 운석에 1%에 불과할 정도로 극히 희소한데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대부분은 암석으로 이루어진 석질운석이다. 최근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학 연구팀은 수단에 떨어진 이 운석이 태양계 형성 초기 존재했던 화성만한 행성에서 나왔다는 연구결과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최신호에 발표했다. 이 운석이 오래 전 사라져 버린 행성의 부산물이라는 주장의 핵심은 유레일라이트에 있다. 일반적으로 다이아몬드는 지구 내부에서 고도의 압력과 온도에서, 혹은 운석 충돌로 인한 고열과 압력으로 생성될 수 있다. 연구팀은 고해상도 현미경 분석을 통해, 이 운석에 담긴 다이아몬드가 화성이나 수성 크기의 내부에서 20기가파스칼(GPa) 정도의 압력 속에서 생성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연구팀의 주장은 여기서부터 과거에 발표된 가설의 증명으로 이어진다. 많은 학자들은 초기 태양계가 수많은 천체들이 서로 충돌하는 격렬한 시기였을 것으로 보고있다. 이들 천체 중 일부가 살아남아 현재의 수성과 금성, 지구, 화성과 같은 행성이 됐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연구팀은 논문을 종합하면 결과적으로 수단 사막에서 발견된 이 운석은 오래 전 사라진 행성에서 나온 잔해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연구를 이끈 파랑 나비에이 박사는 "달과 화성의 운석들도 많지만 초기 태양계에 있었던 원시 행성의 존재는 모두 파괴되고 사라졌다"면서 "오래 전 태양계에 거대한 크기의 천체가 존재하다 사라졌다는 강력한 첫번째 증거"라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우주를 보다] 빛으로 둘러싸인 ‘죽은 별’ 잔해 포착

    [우주를 보다] 빛으로 둘러싸인 ‘죽은 별’ 잔해 포착

    별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존재를 가장 화려하게 보여준다. 무거운 별은 초신성 폭발과 함께 최후를 맞이하는데 짧은 순간이지만, 이때는 별 하나가 은하 전체와 비슷한 수준까지 밝아진다. 초신성 폭발과 폭발 후 잔해의 확산은 지구같은 행성과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를 구성하는 무거운 원소를 생성하는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유럽 남방 천문대 (ESO)의 과학자들은 칠레에 설치된 ESO의 거대 망원경 (VLT)의 MUSE 장비와 나사의 찬드라 X선 위성 데이터를 이용해 지구에서 20만 광년 떨어진 초신성 잔해인 1E 0102.2-7219을 다양한 파장에서 조사했다. 독특하게 생긴 초신성 잔해는 대략 2000년 전쯤 폭발을 일으킨 초신성 잔해로 생각되며 우리 은하의 위성 은하인 소마젤란 은하에 위치한다(사진). 이 초신성 잔해는 작은 이웃 은하의 진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번 연구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과거 관측에서 확인할 수 없었던 중성자별을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중성자별은 초신성 폭발 시 중심부의 무거운 원소가 중력으로 압축되어 형성되는 천체로 태양보다 무겁지만, 그 지름은 매우 작아 수십km에 불과하다. 그래도 강력한 에너지를 방출하는 펄서나 혹은 동반성을 지닌 중성자별은 관측이 쉽다. 문제는 혼자 있으면서 자기장도 약한 경우에는 가까이 있는 경우가 아닌 이상 관측이 어렵다는 것이다. 1E 0102.2-7219에서 확인된 중성자별은 이런 종류의 중성자별 가운데서 우리 은하 밖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것으로 의미가 있다. 과학자들은 이를 통해 외부 은하의 초신성과 중성자별의 특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E 0102.2-7219는 이미 죽은 별의 잔해이지만, 아직 뜨겁기 때문에 다양한 파장에서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죽은 별이 중심부 물질이 모여서 형성된 중성자별이 존재한다. 과학자들은 이를 빛에 둘러싸인 죽은 별 (Dead star circled by light)라고 표현했는데, 마치 사람의 얼굴 같기도 한 독특한 모습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초신성 잔해는 주변 성간 가스에 희석되어 사라진다. 하지만 이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별의 재료가 되어 우주를 순환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죽은 별의 잔해와 동시에 새로운 별의 재료를 보고 있는 셈이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 [핵잼 라이프] 쓰촨성 지진 속 생존 ‘콜라 소년’… 트라우마 딛고 진짜 ‘코크맨’ 됐다

    [핵잼 라이프] 쓰촨성 지진 속 생존 ‘콜라 소년’… 트라우마 딛고 진짜 ‘코크맨’ 됐다

    2008년 5월은 중국인에게 가장 아픈 날 중 하나로 기억된다. 쓰촨성에 규모 7.9의 지진이 덮치면서 최소 6만 9000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여전히 쓰라린 날들로 기억되는 쓰촨 대지진이 발생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눈물 없이는 듣고 볼 수 없는 수많은 사연이 쏟아졌던 가운데, 기적적으로 생존한 생존자들의 현재가 다시금 조명되고 있다. 그중 한 명인 쉐샤오(薛梟)는 당시 18살 소년이었다. 지진이 발생한 지 3일 무려 80시간 동안 건물 잔해 더미에 갇혀 있던 이 소년은 기적적으로 구출된 뒤 구조대원에게 “아저씨, 콜라가 먹고 싶어요. 차게 얼린 콜라 좀 주세요”라고 외쳐 화제를 모았다. 언론은 쉐샤오를 ‘콜라 소년’이라고 칭하며 앞다퉈 구조 과정을 상세히 보도했고, 쉐샤오는 끔직한 재난 현장에서 인간 승리의 기적을 보여 주며 ‘중국을 웃게 한 소년’이라 불렸다. 10대 소년이었던 쉐샤오는 지진의 공포를 딛고 1년 뒤 상하이재경대학에 입학해 금융경제를 전공했고, 2013년 졸업과 함께 한 회사에 취직해 지금까지 근무 중이다. 쉐샤오가 입사한 회사는 다름 아닌 코카콜라 중국지사. 생사의 갈림길에서 콜라를 외쳤던 소년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진짜 ‘코크맨’이 된 것이다. 인턴 과정을 거쳐 최근에는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는 기쁨도 얻었다. 물론 자신이 평소 좋아하는 음료회사의 직원이 되는 길은 쉽지 않았다. 쉐샤오의 가족은 지진으로 터전을 잃었고, 쉐샤오 자신은 당시 입은 부상으로 오른쪽 팔을 잘라 내야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진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은 그에게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 하지만 누구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공부를 쉬지 않았던 그는 자신이 겪은 아픈 과거를 당당하게 드러내 일자리까지 얻는 데 성공했다. 그는 청두비즈니스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지진으로 폐해 더미에 깔렸고, 이 과정에서 피부가 다 벗겨지고 팔이 잘리기까지 했다. 이런 일들도 극복했는데, 내가 헤쳐 나가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라며 ‘무한 긍정’의 모습을 보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트라우마와 싸우는 것은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일과 다르지 않다. 지난 10년간 쉐샤오는 끊임없이 두려움에 떨었고, 잘려 나간 오른팔을 보며 좌절감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희망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콜라를 좋아했던 소년은 그렇게 ‘코크맨’이 됐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쓸모 다해 버려진 잔해들, 인간의 삶 되새기다

    쓸모 다해 버려진 잔해들, 인간의 삶 되새기다

    기이한 생명력 뿜어내는 형상들 인간과 질곡의 역사 들여다보기 “자갈이 침목에 부딪혀 낸 상처들이 아름답지 않나요. 견딤의 미학을 보여 주는 것들이죠. 시련이 잘 들러붙은 침목을 보면서 에너지와 숭고함을 느낍니다.”기차의 육중한 하중을 떠받치고 자갈에 사정없이 갈려 가며 세월을 인고한 철길 위 침목들이 인간의 형상으로 우뚝 섰다. 일렬로 세워진 높이 3m의 침목 조각들은 쓸모를 다한 것들이 뿜어내는 기이한 생명력으로 관람객들을 압도한다. 침목, 아스팔트 콘크리트, 잡석 등 현대사회에서 용도가 끝나 버려진 잔해들로 인간의 삶을 되새기게 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는 조각가 정현(62)의 작업들이 전시장에 나왔다. 다음달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금호미술관 전관(총 7개 전시실)에서 열리는 기획초대전 ‘정현’에서다. 2016년 프랑스 파리에서의 대규모 전시 이후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현대사회에서 고난과 시련을 겪다 버려진 재료들로 인간과 질곡·시련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그의 시선이 응축돼 있다. 관람객들은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경남의 한 서원에서 나온 거대한 소나무 대들보를 처음 대면하게 된다. 흰개미들이 수없이 드나들며 좀먹은 구멍들로 빼곡한 7m 길이의 대들보는 찬란했던 단청이 희미해지도록 300여년간 천장을 떠받쳐 왔다. 하지만 수직의 혹독한 무게를 견뎌 온 대들보는 이제 수평으로 내려앉아 새 가지를 뻗어 내고 있다. 주택계발예정지구에 포함되면서 철거된 작가의 옛집을 쌓아 올렸던 나무 잔해들은 굴착기에 찢기고 부서지면서 한껏 예리하게 벼려진 날을 갖게 됐다. 작가는 그 목재들에 먹물을 입히고 원을 그리며 쌓아 올리거나 파도처럼 일렁이는 운동감을 주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돌출시킨다. 석탄 찌꺼기인 콜타르로 그린 5~6m 길이의 대형 드로잉 작품에서는 하찮게 여겨지는 것들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작가의 철학이 고요하지만 힘있게 깃들어 있다. 다음달 13일 오후 3시 금호미술관 세미나실에서는 정현 작가의 작품 세계를 탐색할 수 있는 ‘작가와의 대화’ 시간도 열린다. 정현 작가와 심상용 미술평론가 간의 대담으로 이뤄지며 인터넷 사전 접수, 당일 현장 접수로 참여할 수 있다. (02)720-5114.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송혜민의 피플스토리+] 지진 속 80시간 갇혔던 中 ‘콜라 소년’ 근황

    2008년 5월은 중국인에게 가장 아픈 날 중 하나로 기억됩니다. 쓰촨성에 규모 7.9의 지진이 덮치면서 최소 6만 9000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쓰라린 날들로 기억되는 쓰촨대지진이 발생한 지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눈물 없이는 듣고 볼 수 없는 수많은 사연이 쏟아졌던 가운데, 기적적으로 생존한 생존자들의 현재가 다시금 조명되고 있습니다. 그 중 한명인 쉐하오(薛梟)는 당시 18살 소년이었습니다. 지진이 발생한 지 3일, 무려 80시간동안 건물 잔해더미에 갇혀있던 이 소년은 기적적으로 구출된 뒤 구조대원에게 “아저씨, 콜라가 먹고 싶어요. 차게 얼린 콜라 좀 주세요”라고 외쳤었죠. 언론은 쉐하오를 ‘콜라 소년’이라고 부르며 앞 다퉈 소년의 구조과정을 보도했고, 쉐하오는 끔직한 재난 현장에서 구조의 손길을 놓아서는 안 되며 그 노력의 결실은 생존자 발견으로 이어진다는 희망을 전했다는 의미에서 ‘중국을 웃게 한 소년’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10대 소년이었던 쉐하오는 지진의 공포를 딛고 1년 뒤 상하이재경대학에 입학해 금융경제를 전공했고, 2013년 졸업과 함께 취직해 현재까지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쉐하오가 입사한 회사는 다름 아닌 코카콜라 중국지사. 생사의 갈림길에서 콜라를 외쳤던 소년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진짜 ‘코크맨’(Coke man)이 된거죠. 인턴 과정을 거쳐 최근에는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는 기쁨도 얻었습니다. 물론 자신이 평소 좋아하는 음료회사의 직원이 되는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쉐하오의 가족은 지진으로 터전을 잃었고, 쉐하오 자신은 당시 입은 부상으로 오른쪽 팔을 잘라내야 했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지진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는 것은 그에게 가장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공부를 쉬지 않았고, 자신이 겪은 아픈 역사를 당당하게 드러내 일자리까지 얻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청두비즈니스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지진으로 폐해더미에 깔렸고, 이 과정에서 피부가 다 벗겨지고 팔이 잘리기까지 했어요. 이런 일들을 극복했는데, 제가 헤쳐 나가지 못할 일이 또 있을까요?”라며 ‘무한 긍정’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트라우마와 싸우는 것은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 10년간 쉐하오는 끊임없이 두려움에 떨었고, 잘려나간 오른팔을 보며 좌절감에 빠지기도 했겠죠. 하지만 희망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콜라를 좋아했던 소년은 그렇게 ‘코크맨’이 됐으니까요.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자연이 할퀴고 인간이 파괴했던 신라의 사찰… 파편으로 남은 역사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자연이 할퀴고 인간이 파괴했던 신라의 사찰… 파편으로 남은 역사

    강원도 양양 미천골을 과거에는 흔히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부르곤 했다. 그만큼 백두대간 동쪽 골짜기 첩첩산중에 깊이 자리잡은 동네다. 미천(米川)이란 쌀뜨물이 흘러내려 가는 시내라는 뜻이다. 대개 공양 시간이 다가오면 시냇물이 온통 허예질 만큼 많은 쌀을 씻어야 하는 큰 절에 비슷한 이야기들이 전해진다.미천골이라는 이름을 낳은 절이 선림원(禪林院)이다. 절터는 미천골자연휴양림 매표소에서 계곡으로 난 길을 따라 1㎞ 남짓 올라가면 나타난다. 이렇듯 깊은 산골짜기에 통일신라 시대로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는 사찰이, 그것도 바로 옆을 흐르는 시내에 미천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한 규모로 세워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런데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 이제 선림원 터를 찾기가 매우 편해졌다.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지난해 완전 개통됐기 때문이다. 서양양 나들목에서 선림원 터는 자동차로 10분 남짓 거리다. 미천골이 오지라는 이미지가 생긴 것은 육로(陸路) 중심의 사고 때문이기도 하다. 고속도로가 생기기 이전 양양에서 백두대간을 넘는 길은 두 갈래였다. 한계령을 거쳐 인제로 가는 44번 국도와 구룡령을 넘어 홍천으로 가는 56번 국도다. 한계령은 익숙해도 구룡령은 낯선 독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해발 1058m의 구룡령은 1004m의 한계령보다 높다. 그럼에도 수운(水運)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시절에는 구룡령이 큰길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구룡령은 한계령보다 넘어가는 길이 조금 평탄했다는 것이다. 구룡령 너머의 홍천강은 북한강으로 이어진다. 조선 시대에도 양양에서 한양으로 가는 가장 편한 방법은 홍천에서 배를 타는 것이었다. 구룡령 산길에서 멀지 않은 선림원은 과거 중요한 교통로 주변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선림원은 좁은 계곡에 축대를 쌓아 넓은 터를 확보하려 했던 모습이다. 1985년과 1986년 동국대 조사단의 발굴과 2015년 양양군이 한빛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한 발굴 조사 결과 전모를 알 수 있었다. 최근의 정비 사업으로 쌓은 돌계단을 오르면 균형 잡힌 모습의 삼층 석탑이 나타난다. 전형적인 신라 석탑으로 기단에 팔부중상을 네 면에 돋을새김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석탑은 발견 당시 무너져 있었다고 한다. 그 뒤편은 큰 법당 터다.삼층 석탑에서 절터 반대편을 보면 규모 있는 비석이 하나 보인다. 홍각선사비다. 홍각선사가 입적한 직후인 886년(신라 정강왕 원년) 세워진 것이다. 거북이 모양의 받침돌과 용틀임하는 모습의 지붕돌만 제 것이다. 몸돌은 2008년 복원했다. 그 앞에는 높이 2.92m의 석등이 보인다. 지붕돌의 귀꽃 조각이 몇 개 떨어져 나갔지만 거의 완벽한 모습이다. 동국대 조사단의 발굴 보고서에 따르면 선림원은 국립춘천박물관이 일부 잔해를 소장하고 있는 이 절 동종의 주조 연대인 804년(신라 애장왕 5년) 창건 이후 홍각선사 시대에 대대적인 중창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이후 10세기 전반 대홍수에 따른 산사태로 매몰됐고, 사찰의 기능도 정지됐다는 것이다.작고한 미술사학자 정영호 선생은 1966년 ‘지난해 처음으로 답사했을 때 석등의 각 부재가 원위치에서 흩어져서 반쯤 흙에 묻혀 있는가 하면 화사석은 축대 밑으로 굴러떨어져 있었지만 점검해 보니 복원이 가능함을 알 수 있었다’고 ‘양양 선림원에 대하여’라는 글에 적었다. 이렇게 삼층 석탑과 석등은 지금의 모습대로 복원할 수 있었다. 산비탈 초입에는 기단부만 남은 부도가 있다. 역시 팔각형의 전형적인 신라 부도다. 홍각선사탑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삼층 석탑과 석등은 물론 홍각선사탑과 탑비 모두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이다.선림원이라면 아무래도 비운의 신라 범종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선림원 터는 1948년 목기(木器)를 만드는 사람들이 집을 짓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알려진다. 범종은 명문(銘文)이 있어 일찍부터 주목 받았다. 2011년 세상을 떠난 미술사학자 황수영 선생은 ‘해방 이후 최초로 접한 중요문화재의 출토’라는 글에서 선림원 터와 범종의 발견 당시를 회상했다. 이야기는 그가 1948년 국립박물관에 취직이 되어 고향 개성에서 짧은 교직을 중단한 뒤 상경했고, 그 직후 출장 명령을 받고 양양 현지로 떠나는 데서 시작한다. 황 선생을 비롯한 조사단은 이해 6월 교통 사정으로 현장 직행이 불가능하자 평창 월정사로 가서 산행으로 선림원 터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월정사에 이르러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선림원 터는 당시 분단의 경계였던 38도선에서 10리(4㎞)도 떨어지지 않았고, 그 남쪽 오대산에서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조사단은 서울로 돌아와 ‘이 새로운 종을 군 장비를 이용해 보다 안전한 월정사로 후퇴시키는 좋겠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낸다. 황 선생이 당시 문교부로부터 ‘선림원 종을 군부대가 신설된 산중직로(山中直路)로 월정사에 옮겨놓았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1950년 1월 4일이었다고 한다. 황 선생이 월정사 칠불보전에서 범종을 마주한 것은 1월 6일이다. 그는 ‘그다지 크다고 할 수는 없으나 신라종으로서의 전형을 완비한 참으로 아담한 자태에 먼저 환희하였고, 또 안도하였다’고 적었다. 이어 ‘나는 즐거움이 솟아올라옴을 느꼈다. 성냥을 켜서 세부의 문양을 보았고 쌍비천 주악상도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세 번 조심스럽게 종을 울려 보았다. 맑고 깨끗한 신라의 종소리가 적막을 뚫고 산곡(山谷)에 반향되었다’고 회상했다. 선림원 종을 ‘아담한 자태’라 한 것은 용뉴를 포함한 높이가 122㎝, 용뉴를 제외한 몸체 높이가 96㎝, 구경이 68㎝로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황 선생은 ‘명문을 땅에 누워서 들여다 보고 탄성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는데, 이 종은 특이하게도 14행 143자에 이르는 명문이 몸체 내부에 양각되어 있다. 선림원 범종은 6·25 전쟁의 와중에 우리 스스로 파괴하고 말았다. 1951년 1·4 후퇴 당시 사찰 소각령에 따라 월정사의 모든 전각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렸고, 칠불보전의 범종도 녹아버린 것이다. 황 선생은 ‘후퇴에 앞서 그 넓은 마당에 굴리기만 하였어도 남았을 것 아닌가’하며 안타까워했다. 절반 이상 녹아버린 범종의 잔해는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지금 국립춘천박물관에서는 범종 파편을 포함해 다양한 선림원 출토 유물을 만날 수 있다. 홍각선사비의 비신 파편과 삼층 석탑의 기단 아래서 나온 소탑(小塔)들, 발굴 조사에서 수습한 용면와 두 점과 화려한 연꽃무늬 수막새 두 점도 전시하고 있다. 그러니 선림원의 역사를 제대로 확인하려면 춘천박물관을 찾는 것이 필수적이다. 선림원 터에서 춘천박물관까지 이제 고속도로를 타면 1시간 남짓 만에 도착한다. 수도권에서 출발한다면 양양과 춘천을 묶는 하루 여행 코스로도 무리가 없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공군 “ F15K 전투기 조종사 2명 순직 확인”...X레이 검사결과

    공군 “ F15K 전투기 조종사 2명 순직 확인”...X레이 검사결과

    경북 칠곡군에서 5일 추락한 공군 F15K 전투기 조종사 2명이 모두 순직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공군이 밝혔다.공군 관계자는 6일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어제 공지한 바와 같이 사고기 잔해 주변에서 영현의 일부를 수습해 부대로 옮겼다”며 “어제는 한 명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알렸지만, 엑스레이(Xray) 검사 결과 2명으로 확인됐다. 2명 모두 순직으로 확인된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에 있는 공군 제11전투비행단 소속 F15K 전투기 1대는 5일 오후 기지에서 이륙해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던 중 칠곡군 골프장 인근 산에 추락했다. 이 전투기에는 조종사 최모(29) 대위와 박모(27) 중위가 타고 있었다. 공군 관계자는 “오늘 오전 8시 45분쯤 입산해 수색작업을 재개했다”며 “항공기 잔해와 블랙박스 비행기록장치 등을 수거하고 시신 수습도 계속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고 전투기는 다른 전투기 4대와 함께 2 대 2로 편을 짜 교전 연습을 하는 공중기동훈련을 하고 기지로 복귀하다가 추락했다는 게 공군 측 설명이다. 공군 관계자는 “어제 이륙 시정(視程)은 좋았고 기지 기상과 임무 지역 기상 모두 비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사고기는) 귀환 과정에서 계기 비행 절차를 적용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계기 비행은 안개 등으로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 항공기 계기판과 관제사 유도 등에 의존해 비행하는 것을 가리킨다.사고기에 타고 있던 조종사 2명은 사출(ejection) 등을 통한 비상탈출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공군 관계자는 “사출 정황은 없는데 이를 시도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고로 순직한 최 대위와 박 중위는 각각 890여 시간, 280여 시간의 비행기록을 갖고 있다. 최 대위는 부인이 공군사관학교 동기인 현역 공군 장교로 알려졌다. 공군은 유가족과 장례 절차를 협의 중이다. 공군 F15K 전투기가 추락한 것은 2006년 6월 F15K가 동해상에서 야간 비행훈련 중 추락한 이후 약 12년 만이다. 당시에도 사고 전투기에 타고 있던 조종사 2명은 순직했다. 이번에 추락한 F15K는 2008년 7월 도입된 전투기로, 비행시간은 2158시간이다.공군은 사고 직후 필수 작전 전력을 제외한 모든 항공기의 비행을 중단한 상태다. 공군 관계자는 “F15K의 비행 재개는 사고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판단할 것이며 다른 기종은 곧 비행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와우! 과학] 5억 년 전 생태계 엿보다…배설물 화석 발견

    [와우! 과학] 5억 년 전 생태계 엿보다…배설물 화석 발견

    화석은 동식물의 잔해가 썩지 않고 지층에 남아 광물화되어 영구적으로 보존되는 것이다. 하지만 생물 자체가 아니라 생물이 남긴 흔적도 귀중한 정보를 알려주는 흔적 화석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발자국 화석은 동물이 어떻게 걸었는지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과거 공룡은 꼬리를 끌고 걸어 다니는 도마뱀 같은 생물로 묘사되었으나 발자국 화석에서 꼬리를 끈 흔적이 없어 실제로는 꼬리를 들고 다녔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또 동물이 남긴 배설물이 단단하게 굳은 후 광물화된 분석(coprolite) 역시 이 동물이 무엇을 먹고살았는지, 기생충 감염은 없었는지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해 과학적으로 가치가 높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5억 년 전인 캄브리아기의 분석은 발굴도 어렵고 설령 발굴하더라도 어떤 동물의 배설물인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이 시기에는 작은 무척추동물이 해양 생태계를 지배했고 육지에는 동물이 없었기 때문에 배설물이 화석화될 기회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미국 캔자스 대학의 과학자들은 캄브리아기 중기 지층에서 분석과 화석을 찾는 데 성공했다. 이 화석의 주인공은 '히올리스'(hyolith)라는 벌레처럼 생긴 동물로 바다 밑에 10cm 정도 되는 구멍을 파고 여기에 숨어 지나가던 먹이를 잡아먹었다. 당시 생태계에서는 그렇게 작지 않은 포식자로 과학자들은 현재의 왕털갯지렁이(Bobbit worm)과 유사한 방식으로 생활했다고 보고 있다. 히올리스는 굴을 파고 사냥을 하다 사냥감이 떨어지면 다시 이동해서 새로운 굴을 파고 사냥했을 것이다. 따라서 볼 일을 보기 위해 굴 밖으로 나와서 자신의 위치를 노출하는 대신 그 안에서 배설물을 그대로 처리했을 것이다. 연구팀은 우연한 기회에 히올리스 무리가 굴속에서 한꺼번에 화석화된 지층을 발견했다. 아마도 피할 틈도 없이 한 번에 매몰된 것으로 보이는데 덕분에 과학자들은 해석에 어려움 없이 이 분석이 히올리스의 것이라는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분석을 세밀하게 분석한 결과 삼엽충처럼 고생대에 크게 번성한 생물의 잔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삼엽충 이외에 다양한 생물의 잔해가 섞여 있어 당시 바다 밑에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생물체가 살았음을 알 수 있었다. 연구팀은 이를 근거로 이미 5억 년 전에 해양 생태계가 복잡하고 다양한 먹이 사슬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보통 배설물이라고 하면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동물의 배설물은 토양을 기름지게 하고 자원의 순환을 돕는 귀중한 자원이다. 동시에 화석으로 남는 경우 다른 방법으로는 알 수 없는 정보를 제공하는 귀중한 화석이 된다. 세상에 필요 없는 물건은 없는 법이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 F15K 전투기 추락… 조종사 1명 시신 수습

    F15K 전투기 추락… 조종사 1명 시신 수습

    칠곡 유학산 자락서 잔해 발견 소방당국 “안개로 수색 어려워” 주력 전투기 12년 만에 사고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F15K 전투기 1대가 5일 경북 칠곡군에서 추락했다. 공군은 “5일 오후 1시 30분 대구 기지에서 이륙한 F15K 항공기 1대가 임무를 마치고 기지로 귀환하던 중 오후 2시 38분쯤 경북 칠곡군에서 추락했다”면서 “수색 중 (전투기에 타고 있던 조종사 2명 중) 전방석 조종사의 시신을 수습했으며, 날이 밝는 대로 (다른 조종사에 대한) 수색을 재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군에 따르면 이 전투기에는 최모(29) 대위와 박모(27) 중위 등 임무 조종사 2명이 탑승했다. 전방석 조종사는 최 대위인 것으로 전해졌다. 공군은 앞서 조종사 2명 모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사고로 인한 민간인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사고 전투기는 대구에 있는 공군 제11전투비행단 소속으로 칠곡군 가산면 학하리의 가산골프장 인근 유학산(해발 839m) 자락에 추락했으며 소방 당국과 군 당국이 수색해 오후 5시쯤 잔해를 발견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칠곡·구미소방서 대원 50여명이 출동했으나 산속인데다 안개까지 많이 끼어 수색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공군은 통상적인 훈련이었다고 설명했지만 이날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는 등 안개와 우천 등의 기상 상황에도 불구하고 다소 무리한 훈련을 실시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F15K 전투기가 추락한 것은 2006년 6월 동해상에서 야간 비행훈련 중 추락한 이후 약 12년 만이다. 당시 사고 전투기에 타고 있던 조종사 2명은 순직했다. F15K는 2005년부터 전력화돼 현재 공군이 60여대를 운용하고 있다. 최대 속력은 마하 2.35이고 최고 상승 고도는 18㎞, 최대 이륙 중량은 36.7t에 달한다. 차세대 전투기 F35A가 등장하기 전만 해도 ‘동북아시아 최강의 전투기’로 꼽혔다. 공군 전투기 추락 사고는 2016년 3월 30일 경북 지역에서 F16D 전투기가 추락한 이후 약 2년 만이다. 당시 조종사 2명은 비상 탈출해 인명 피해는 없었다. 이번 사고의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기 전까지는 동일 기종의 운용이 중단된다는 점에서 이달 말까지 계속되는 한·미 연합 독수리훈련과 다음달 실시되는 한·미 연합 공군 ‘맥스선더’ 훈련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공군 “칠곡 추락 F-15K 임무조종사 2명 사망 추정”

    공군 “칠곡 추락 F-15K 임무조종사 2명 사망 추정”

    5일 오후 경북 칠곡군 유학산에 F-15K 전투기가 추락해 조종사 2명이 순직했다.이창인 11전투비행단 공보실장은 이날 사고 현장 부근인 가산골프장에 설치된 사고 수습상황실 앞에서 브리핑을 통해 “임무조종사 2명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사고 현장 주변에서 조종석 일부와 함께 시신 1구를 발견했고, 나머지 한구는 비행기 잔해 근처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폭발이 계속되고 연기가 계속 피어올라 접근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날 오후 2시38분쯤 훈련을 마치고 대구 기지로 귀환하던 F-15K가 경북 칠곡군 가산면 학하리 가산골프장 인근 유학산에 추락했다. 사고가 나자 육군 50사단 예하 병력과 경찰, 칠곡군청 직원, 소방대원 등 400여명이 수색작업을 벌이던 중 이날 오후 4시33분쯤 유학산 정상 부근의 저수지 등지에서 사고 전투기의 잔해를 발견했다. 소방구조대원들이 추락 전투기의 잔해가 발견된 지점 인근에서 사체 1구를 발견했다. 경북소방본부는 나머지 사고기 탑승 조종사 수색을 위해 대응2단계를 발령하고 소방구조대원 200명을 현장에 추가로 투입하고 긴급구조통제단을 꾸려 가동에 들어갔다.사고기는 이날 오후 1시30분쯤 대구 기지에서 이륙해 훈련을 마친 뒤 기지로 귀환하던 중 칠곡군 가산골프장 인근 해발 839m의 유학산에 추락했으며 사고 기체에는 최모 대위(29)와 박모 중위(27세)가 탑승하고 있었다. 한편 정재학 50사단장 등 장병들은 안전과 사고기의 현장 보존 등을 위해 잔해 발견 현장 일대에 통제선을 구축하고 기체 수거 작업을 지원하고 있다. 또 칠곡군은 석적읍에 있는 도봉사에 지원대책본부를 차리고 야간 수색작업에 나설 군과 경찰에 음식, 난방기구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F-15K 전투기 잔해 발견…조종사 2명은 수색 중

    F-15K 전투기 잔해 발견…조종사 2명은 수색 중

    경북 칠곡에 추락한 공군 F-15K 전투기 1대의 잔해를 소방당국이 발견했다. 사고기에 탑승했던 조종사 2명의 생사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구조대는 짙은 안개 때문에 수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소방당국은 5일 오후 4시 33분쯤 칠곡 가산면 학하리 일대 산 9부 능선에서 전투기로 보이는 잔해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군과 소방당국은 잔해 발견 지점 일대에 육군 50사단 예하 병력과 경찰, 칠곡군청 직원, 소방대원 등 400여명의 구조대를 집중 투입해 사고 비행기 조종사 2명을 찾고 있다. 공군 탐색구조팀도 투입됐다. 전투기에 탔던 조종사는 최모(29) 대위와 박모(27) 중위다.공군은 공군참모차장을 본부장으로 한 비행사고 대책본부를 구성해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대구 동구의 공군 제11전투비행단 소속인 이 전투기는 이날 오후 임무를 마치고 기지로 귀환하던 중 2시 38분쯤 산에 충돌해 추락했다. 공군 측에 따르면 이 전투기는 귀환 도중 교신이 끊기는 ‘컨택 로스’ 상황 이후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우리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F-15K가 추락한 것은 2006년 6월 이후 12년 만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톈궁 1호, 남태평양에 추락

    톈궁 1호, 남태평양에 추락

    고장난 중국 우주정거장 ‘톈궁 1호’의 잔해가 2일 오전 9시 16분(한국시간) 남태평양 바다에 추락했다고 미 군당국이 발표했다.한국천문연구원은 2일 “미 합동우주작전본부가 오전 9시 16분(한국시간) 톈궁 1호가 남태평양(동경 195.7도, 남위 13.6도)에 추락했다고 공식 확인했다”고 밝혔다. 중국 유인우주선 공정판공실(CMSEO) 역시 톈궁 1호가 오전 9시 15분(한국시간) 지구 대기권에 진입해 파편 대부분이 소멸했으며 잔해 낙하 지점은 남태평양 중부라고 밝혔다.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기체 대부분이 타버린 톈궁 1호의 잔해는 바다에 떨어져 인명 피해는 없었다. 이에 따라 국내에 내려졌던 우주위기경보가 해제됐다. 정부의 관계부처 합동 우주위험대책반 운영도 종료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30일부터 톈궁 1호의 잔해가 우리나라 주변에 낙하할 가능성에 대비해 ‘인공우주물체 추락·충돌 대응 매뉴얼’에 따라 우주위험 위기경보 수준을 ‘경계’로 높이고 관계부처 합동 우주위험대책반을 운영하면서 톈궁 1호의 추락상황을 모니터링해 왔다. 톈궁 1호는 중국이 쏘아 올린 실험용 우주정거장으로, 2011년 9월에 중국 주취한 위성발사센터에서 발사된 후 인공위성 및 유인우주선과 도킹하는 임무와 우주인 체류 실험 임무를 수행했다. 발사 당시 질량은 8.5t, 길이는 10.5m, 직경은 3.4m였고 약 7m×3m 크기의 태양전지 패널 2개와 부피 15㎥인 거주 실험용 모듈, 궤도 랑데뷰 및 도킹 실험용 모듈이 달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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