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잔재
    2026-06-18
    검색기록 지우기
  • 내홍
    2026-06-18
    검색기록 지우기
  • 60만원
    2026-06-18
    검색기록 지우기
  • 사무처
    2026-06-18
    검색기록 지우기
  • 본적
    2026-06-1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970
  • 소 대통령자문위원 메드베데프 강연 내용

    ◎“소,한반도 비핵지대화 추진”/주변 강대국과 군축보증 참여 용의/남북한대립 해소 없인 극동평화 불가능/아태지역 다자간협의체 창설 시급 소련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평화안정은 군사적 대립의 본질적 해소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아래 한반도의 비핵지대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소련은 태평양함대의 실질적인 감축을 위한 아태지역에서의 소련군 철수를 단계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다. 방한중인 메드베데프 소련 대통령자문위원은 22일 롯데호텔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두개의 한국 정부간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소련이 한반도 전체를 비핵지대로 바꾸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소련은 가까운 장래에 국경을 접하는 아시아국가에서 소련군을 완전 철수시킬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메드베데프 자문위원의 연설요지이다. 세계는 냉전의 시대가 무너지고 세계공동체의 발전이라는 인류공통의 목적을 향해 급변하고 있다. 이는 최근의 미소 관계,유럽에서의 군축,지역분쟁의 사례가 짧은 기간에 근본적인변화가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태지역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 지역은 전세계인구의 3분의 2와 세계무역의 절반 및 세계공업생산의 50% 이상을 차지하며 전자·마이크로프로세서·산업용로봇·우주항공기술 등 분야에서 선도적인 위치에 서 있다. 소련이 아태지역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같은 권역에 위치한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소련은 과거 초강대국간의 경쟁·팽창주의·지역분쟁의 개입과 결부됐으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져 소련 사회생활의 전면적이고 혁명적인 개혁과 대외정책의 급진적 페레스트로이카를 표방하고 있다. 우리는 아태지역에 있어 냉전의 잔재를 결정적으로 해체할 시기가 지금이라고 생각하며 이는 고도의 정치적 안정아래서 가능하다고 본다. 우리는 노태우 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이 한소 협력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 미·소·일·인도 등 아태지역의 주요 5개국의 관계형성에 따라 달라질 이 지역의 안정은 명백히 호전되고 있다. 이 지역의 안전보장체제를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조성해야 한다는 정치·사회적 필요성 외에도 태평양경제협력회의 등 강력한 국제경제체제가 형성되고 있다. 소련은 최근 블라디보스토크·크라스노야르스크 선언에서 이 지역의 「평화 안정 협력」을 표방했으며 「공동의 집」 구상을 제안한 바 있다. 우리 견해로는 아태제국의 최우선 당면과제는 하루빨리 다자간 협의체를 구성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이 지역의 평화·안정으로의 전진은 군사적 대립의 본질적인 해소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굳게 믿고 있다. 반면 이 지역의 안정을 해치는 형태로 군비강화 및 군사비 지출 증가 등이 일부에서 행해지고 있다. 아태지역도 세계의 다른지역에서 이미 지지받은 바 있는 군비감축을 통한 안전보장과 정치적 수단 등의 합리적 노선으로 안정을 꾀해야 한다. 소련은 이 지역의 무장해제를 위해 미국과 중국 등과 군사적 신뢰구축을 꾸준히 해나가고 있다. 아시아지역의 중거리 핵미사일의 해체는 물론 국경을 접하는 아시아국가에 소련군이 주둔하지 않도록 정책을 추진할 생각이다. 오는 92년 몽고 인민공화국에서모든 병력이 철수하고 캄란만 주둔군도 실질적으로 제한,아시아병력은 20만명 감축되며 태평양함대의 병력도 현저히 축소될 것이다. 이를 위한 우리의 앞으로의 행동계획은 ▲핵무기감축과 핵무기·화학무기·미사일 및 미사일기술의 확산금지 ▲재래식 무기분야의 군사적 대립을 감소시키기 위한 전세계적 차원의 대책 ▲아태지역서의 해군력 감축을 협의과정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지역의 군사·정치적 안전을 향상시키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군사력 분야에서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또 태평양경제협력회의등 정부간의 협력에 참여할 계획으로 최근 대외경제활동의 개혁을 단행하고 있다. 한소 외교관계는 이 지역 전체의 평화·안보·진보에 부응하고 있다. 우리는 한반도문제의 전면적인 조정은 아태지역의 평화와 안보·협력을 보장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생각한다. 한국과 북한간의 군사·정치적 대립의 완화와 나아가 완전 해소가 한민족의 평화통일을 실현해줄 것으로 확신한다. 우리는 한국과의 무역경제·과학기술관계·합작사업의 발전·시베리아극동의 천연자원개발을 위한 한국의 자본·기술·경험의 유치에 관심이 크다. 우리는 북한과의 전통적인 우호선린관계를 계속 발전시키고 지난 5월의 북한측이 제안한 남북의 군사력 감축 등을 통한 통일접근방식을 지지하지만 한국의 긍정적인 접근방식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최근에 열린 남북총리회담이 상호간의 평화적이고 건설적인 대화로 새로운 남북간의 상호관계의 규범을 만든 것으로 평가하면서 이를 환영하고 있다. 두개의 한국정부간에 긴장을 완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한반도 전체를 평화적인 비핵지대로 바꾸는 구상을 검토하고 있다. 이를 위해 소련은 다른 강대국들과 함께 한국을 비핵지대로 만들기 위한 보증인이 될 준비가 돼 있다.
  • 외언내언

    우리의 기업문화 가운데 일본식 잔재가 적지 않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의 하나가 「접대문화」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이른바 바이어 접대 명목으로 돈을 지나치게 많이 쓰고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접대를 핑계로 회사돈을 물쓰듯하는 사용족들의 작태가 우리 사회에 과소비와 향락풍조를 이식시키는 역기능마저 야기시키고 있다. ◆한 경제연구소가 12월말 결산법인 4백44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89년 회계연도의 기부 접대비 실적은 우리 기업들의 접대비 과다지출을 다시 한 번 확인해주고 있다. 89년중 이들 기업의 기밀비를 포함한 접대비가 15.7%가 늘었고 기부금은 3.4%가 줄어들었다. 이해 전체매출은 9.9%밖에 늘지 않았다. ◆이들 업체의 총매출액에 대한 접대비의 비율은 0.13%이고 기부금의 비율은 0.19%였다. 결국 기부 접대비 비율은 0.32%가 된다. 이들 업체의 평균 접대비 규모는 2억9천만원,기부금은 4억2천만원. 한햇동안 기부 접대비 명목으로 업체당 평균 7억1천만원의 돈을 썼다. 이것은 평균치이고 어느 대기업은 접대비로 무려 51억원을,기부금으로 88억원을 지출했다. 서민들에게는 천문학적 숫자이다. ◆기업들이 접대비를 과다하게 지출하자 국세청이 내달부터 연간 외형이 1백억원 이상인 대기업 가운데 일부를 골라 세무조사를 실시키로 했다. 조사대상 기업은 경비를 가공으로 계상하는 수법으로 세금을 포탈하는 것은 물론 사치성 과소비와 퇴폐ㆍ향락 분위기를 조장하는 기업들이다. ◆우리 기업들이 기업환경을 정화하는 한편 올바른 기업문화를 창달시키려 하지 않는 한 세무조사는 그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기업들이 기업문화뿐이 아니라 건전한 소비문화의 창출을 위하여 낭비적 지출을 자제해야 한다. 정부 또한 일과성의 세무조사보다는 근본적인 세제개편을 통하여 기업이 접대비를 줄이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 청와대 새 관저 준공

    ◎“대통령 일가 살림집”… 팔작지붕 전통미 살린 단층/내년 집무실 완공되면 일제의 잔재 씻는 셈/노 대통령,“옛 중앙청 이전,경복궁 복원해야” 전통 한옥형태에 청기와를 올린 새 대통령 관저가 청와대내에 마련됐다. 청와대는 25일 상오 노태우 대통령 내외,비서실 직원,공사관계자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통령 관저 준공식을 가졌다. 노 대통령은 금명간 새로 마련된 관저에 입주,비록 짧은 거리이지만 지금까지 1,2층 계단을 오르내리던 출퇴근에서 차량으로 출퇴근하는 맛을 느끼게 됐다. 현재의 청와대 본관건물은 1층이 집무실이고 2층이 살림집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현 청와대 본관건물 동쪽 약간 뒤편 계곡에 자리잡은 새 관저는 본채(2백44평),접대시설이 마련된 별채(1백50평)와 사랑채 부속건물 등으로 이뤄져 있으며 대지면적은 1천2백60평이다. 전통 한옥형태로 4면에 추녀를 달아낸 팔작지붕(까치박공이 달린 삼각형의 벽이 있는 지붕)에 청기와를 올려 전통미를 살린 단층인 이 관저는 얕은 담장을 둘러 별도의 살림공간 분위기를 내고 있고 솟을 대문에는 「인수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지난해 8월28일 착공,4백25일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이날 준공된 신축 관저는 총 공사비 60억원에 연인원 8만1천명과 연 2천3백대의 장비가 동원됐다. ○…노 대통령은 이날 준공테이프를 끊은 뒤 별채에서 참석자들과 다과를 나누면서 『과거 같았으면 대통령이 새 집을 짓는다면 장기집권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을지 모르나 나는 그럴 염려가 없는 사람 아니냐』고 반문한 뒤 『처음 신축 건의를 받았을 때는 임기만료 6개월 전쯤 완공하면 된다고 했는데 예상보다 빨라졌다』고 피력. 노 대통령은 기자들이 『항간에 대통령 관저가 훌륭하게 건축되고 있는 점을 들어 앞으로 내각제를 하기는 어렵다는 농담이 나돌고 있다』고 말하자 『말레이시아에 가보니 국왕과 수상이 있는데 수상은 국정의 온갖 일을 다하느라 위세를 부릴 시간도 없다고 하더라』고만 말해 청와대 관저 및 집무실(내년 7월 완공) 신축과 내각제문제는 연관이 없음을 시사. 노 대통령은 또 『청와대의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를 한국식으로 새로 짓고 경복궁도 옛 모습대로 복원하면 일제 침략의 역사로부터 나라의 위신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앞으로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일제 총독 부청사였던 옛 중앙청(현 국립박물관) 건물도 다른 곳으로 옳겨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 청와대 본관건물은 1937년 3월 제7대 조선 총독 미나미(남차랑)가 일본 식민통치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경복궁을 정면으로 내려다보는 이곳에 총독 관저용으로 착공,2년 만에 완공했던 것. 독립한 지 40여년이 된 국가의 대통령이 식민통치하의 총독 관저를 집무실로 사용한다는 것은 민족의 자존심을 손상시키는 것이라는 인식이 청와대 집무실과 관저를 신축하게 된 배경이라고 한 관계자는 설명.
  • 시장경제 압력에 「주체경제」 붕괴(평양의 변화 이렇게 본다:1)

    ◎「하나의 조선」­김일성 절대권력 포기 불가피 북한도 마침내 개방과 개혁의 변화로 나선 것인가. 남북총리회담,축구교류 합의,아시안게임에서의 개방적 자세,방북 소외무장관 냉내 등은 분단 45년 만에 처음 보는 북한의 변화다. 김일성주석이 중국을 방문하고 일본 자민당 중진 가네마루(김환신)의원이 이끄는 대표단이 도쿄ㆍ평화 직항편으로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다. 평양에서 전해지는 소식통도 그동안과는 같지 않은 변하고 있는 북한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북한은 정말 변하고 있는가,변하고 있다면 어떤 변화인가,결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내외전문가들의 시각을 통해 진단해 본다. 북한이 변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는 우선 깊은 인식이 필요하다. 북한이 변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은 북의 권력 그 자체인 김일성이라는 정치인격이 변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라는 점이다. 현재까지는 북한과 김일성과는 같은 실체이며 양자가 분리될때만이 북한은 변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 가능하다. 독일의 통일은 소련이 변함으로써 가능하였다. 반면 대칭적으로 북한은 김일성이 변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역설적으로 북한의 과거 잔재적인 기독교문화를 기초하여 거의 「은혜」롭고 「자애」로운 기독교의 「아버지 하나님」에 가까운 「어버이 수령」의 나라라는 「신성국가」를 구축하여 왔다. 동독의 울브리히트는 처음부터 전 독일의 「공산주의화」 또는 「주체사상화」라는 생각은 없었다. 울브리히트 초기부터 「두개의 독일」정책으로 시발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분단」된 것이 아니라 두개의 독일이 「탄생」하였다는 이론이었다. 그러나 동독은 소련의 「인조」국가였기에 소련이 변하면서 독일의 통일은 가능한 것이었다. 이를 대신하거나 극한적으로 대칭적인 것이 북한의 「하나의 조선」정책이었다. 「하나의 조선」정책을 「민족통일」이라는 개념과 대비하여서는 안된다. 그것은 계급을 기초로하는,민족국가의 개념을 초월하는,세계혁명의 이론에서 출발한 북한의 「민주기지」였으며 노동당규약에 규정한 「전 조선의 공산주의화」였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조선」정책은 실질상 권력적 의미에서는 김일성이 북한을 통치하는 「대내용」 정치권력의 논리였다. 북한에게 있어서 김일성이라는 권력적 인격이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하나의 조선」정책에 치명적인 결함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폐쇄를 기초로 한 「주체경제」를 유지하기에는 북한의 주변 즉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나라들이 강력한 「개방경제」 체제를 형성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산주의 「4원칙」을 유지하는 중국마저도 경제면에서는 철저하게 개방체제를 형성시키고 있다. 북한의 이념적이며 경제적인 동맹을 유지해온 소련이 이미 시장경제라는 개방체제로 이행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북한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북한과 대칭적인 남한이 거의 완벽하게 개방체제를 형성하고 성공했다는 점이다. 과거에 있어서 동서진영의 체제적 이념의 차이는 실은 시장경제를 기초로 하는 「개방체제」인가 아닌가 하는 차이였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 주변의 미국은 물론 일본 중국 소련이 정치경제적인 「개방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에 형성되는 개방체제는 자본과 기술 나아가서 인적인 교류라는 체제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경제적 생활양식은 북한의 「주체경제」라는 체제를 갖고서는 적응할 수 없게 됐다. 북한은 포위되고 있는 것이다. 소련이 과거 사회주의권의 물물교환을 기초하는 바터제를 거부하고 시장경제주의 현금주의를 요구하고 있으며 중국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대외적인 개방체제의 형성은 불가피하게 북한의 사회체제를 「폐쇄」에서 「개방」으로 길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방체제로의 이행에는 북한이 피할 수 없이 넘어야 할 하나의 장벽이 있다. 이것이 「하나의 조선」이라는 기치를 내려 놓아야 한다는 점이다. 남한을 해방해야 한다는 북한인민을 통치하던 권력적인 「논리」를 내려 놓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오늘의 북한이 「권력적인 고립」을 맞고 있는 이유다. 둘째,이러한 북한을 개방체제로 재촉하는 시장경제를 기초로 하는 정치경제적인 동북아시아의 국제환경의 변화는 안전보장면에서도 깊이작용하고 있다. 한반도의 냉전을 구축하고 있었던 중국과 소련이 이 지역의 부의 생산에 참여하기 위해서 시장경제와 이에 따른 개방체제로의 길을 서툴기는 하나 꾸준히 구축하고 있으며 「사회주의 모델」대신 거꾸로 남한의 시장경제를 모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당연히 군사적인 개방체제로의 길을 유도할 수밖에 없었으며 소련이 지난 셰바르드나제의 일본방문에서도 양국간의 문제를 동북아시아의 「안전보장」이라는 측면에서부터 접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동북아시아 「시장경제」의 형성과 동북아시아의 「안전보장」은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또 시장경제를 위해 소련과 중국이 북한과 같이해 온 「세계혁명」이라는 논리와 정책의 기치를 지금 내려놓고 있어서 이 지역의 안전보장의 조건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하나의 조선」(전조선의 공산화)을 실천해 보려 했었고 실패했던 한국전쟁 이래 최대의 시련기에 접어 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북한이 동독처럼 서독에 「흡수」되거나 루마니아처럼 「혁명」을 통해서 붕괴되리라는 전망은 어렵다는 점일 것이다. 북한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다. 그 이유는 북한의 체제적인 측면에서 김일성이라는 권력적인 인격은 몰락할 수 있으나 그가 구축하여 놓은 북한이라는 정치체제는 간단하게 무너질 수 없게 되어 있다고 분석되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의 군사체제는 정치체제를 기초로 하는 중요한 체제적인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김일성 이후에도 지속될 북한의 「군사체제」는 북한사회를 다시 얼마간 지탱할 중요한 김일성 이후의 정치적 기반이기 때문이다. 비교의 기준은 판이하나 1961년의 남한의 군사체제가 18년 이상 유지된 것과 비교하는 것이 북한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준이 되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김일성 이후 북한의 변화는 군사적인 뒷받침이 이뤄질 때에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일성과 특히 김정일의 권력적인 한계는 이미 세계청년축전이라는 비생산적인 투자에 47억달러를 허무하게 낭비하고 김정일의 명령으로 보통강변에 1백5층으로 건설중인 시멘트 블록의 고층건물(유경호텔)의 건설이 중단된 데서 이미 그 한계는 나타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북한의 변화는 「김일성의 변화」에서가 아니라 「북한의 변화」에서 시작되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미 김일성이 북한과 동일시 될수 없는 북한체제의 전환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 “소,북한ㆍ쿠바와 관계 청산해야”/솔제니친,프라우다지에 기고

    ◎새러시아 건설 위한 4가지 방안을 제시/“공산당은 착복한 재산 국가에 반환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소련의 저명한 반체제 작가인 알렉산데르 솔제니친(71)은 18일 자본주의의 착취와 같은 서방 문화의 쓰레기를 배제한 상태에서 인민 민주주의와 러시아 정신을 부활시키고 슬라브족만으로 구성된 새로운 소련을 건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솔제니친은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지에 게재된 「어떻게 러시아를 살기좋은 나라로 만들 것인가」라는 제목의 4페이지에 걸친 기고문에서 물질주의 보다는 유심론에 대한 오랫동안의 선호,통합된 슬라브 국가에 대한 열망,서방 대중문화에 대한 경멸,민주사회는 강력한 지도자 아래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 등을 피력했다. 솔제니친은 『공산주의의 시대는 끝났다』고 강조하고 『그러나 공산주의의 실질적인 구조는 아직 붕괴되지 않았으나 우리는 그 잔재 아래 남을 것이 아니라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러시아ㆍ백러시아ㆍ우크라이나 등 3개 공화국만으로 구성된 단일국가,즉 러시아 연방을 건설할 것을 제안하면서 『거대한 왕국(소련)을 유지하는 것은 인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솔제니친이 조국 소련에 대한 희망을 밝힌 이 기고문은 지난달 그가 복권된데 이어 소련 사회에서 그의 공식적인 재등장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주목되고 있다. 그는 이어 소련의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소련이 해야할 가장 시급한 일을 4가지 꼽았다. 첫째 사람들에게 일하는 맛을 줘야 하고 둘째 러시아의 부를 축내고 있는 모든 정권,특히 쿠바 및 북한과 관계를 끊는 일이다. 셋째 공산당이 착복해온 엄청난 부와 재산을 국가에 반환하는 일,넷째 현 소련정부 부처의 5분의 4를 폐지하고 공산당이 경제와 국가운영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했다.
  • 빛바랜 범아랍주의 깃발/박봉식 서울대교수(서울시론)

    ◎미·소의 공동대응으로 설 자리 잃어 미국과 소련이 국제분쟁을 맞아 공동행동을 취하기는 이번이 세번째인 것 같다. 1941년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했을 때,1956년 수에즈운하 전쟁,그리고 이번의 대이라크 제재조치가 그것이다. 이번의 미소간의 협조는 유엔 안보리의 결정이란 형식에서 수에즈운하 전쟁때와 비슷하다. 1956년에는 미국이 전통적인 우방인 영국 프랑스 그리고 이스라엘을 유엔 총회에서 침략자로 규정하여 이들을 배격하는 데 소련과 협력하였다. 중동에서 식민주의의 마지막 잔재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유엔 역사상 완벽 조치 이번에도 미국의 외교적 이니셔티브와 군사력을 배경으로 하는 점에서는 비슷한 상황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번 이라크에 대한 제재조치는 수에즈운하 전쟁때와 달리 유엔 안보리의 전 이사국의 찬성으로 안보리의 결의로 제재조치가 결정되었다는 면에서 1950년 한국전쟁 때와 비슷한 점이 있다. 물론 한국전쟁 땐 소련이 불참했지만. 이렇게 보면 이번 유엔의 이라크에 대한 제재조치는 유엔 역사상 가장 완벽한 형식과 실질을 갖춘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소련이 군사적으로 얼마나 협력할는지는 불분명하나 1988년 12월7일 고르바초프는 유엔총회 연설에서 유엔의 평화유지기능의 강화를 강력히 촉구한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그러나 소련은 오늘날 국내 사정으로 군사적으로 실질적 협조는 어려울 것이나 소련이 이라크와 그동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사실에서 본다면 유엔을 통해서이나 이라크제재에 소련이 처음부터 참여하였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이라크 후세인대통령이 쿠웨이트 합병조치가 그의 메소포타미아제국 수립이 목적이었는지 경제적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확실치 않으나 국제사회의 한 주권국가를 합병해 버리고도 무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형제국 내세우며 분란 그런데 후세인을 비롯하여 아랍사람들의 서로간의 관계개념은 보통 국제관계와 다른 데가 있다. 그들은 유독히 형제국가임을 강조하고 범아랍주의를 주장한다. 그래서 1958년엔 이집트와 시리아가 합하여 통일아랍공화국을 만들었다가 3년 만에 또 분리되고 말았다. 아랍은 하나이다라는 구호를 항상 내세우면서 그들간의 분쟁은 끊일 날이 없다. 이라크는 대산유국이면서 6백억달러의 빚을 지고 있으며 쿠웨이트에도 1백여억달러의 빚을 지고 있는데 이번 합병조치로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라크와 쿠웨이트를 합치면 세계석유생산의 4분의1을 차지하며 세계산업을 위한 85%의 석유가 이 지역에서 수출되기 때문에 세계석유시장의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된다. 중동지역의 분쟁은 그 사이 강대국의 큰 관심표명없이 간간이 일어나고 있었다. 8년간 계속된 이라크­이란전쟁은 그 대표적인 것이었고 레바논에 대한 시리아의 침공에도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점령한 것은 그 지역 군주국들에게 큰 위협이 아닐 수 없으며 이미 군사대국이 된 이라크의 위협을 견딜 나라가 이 지역엔 없다.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마저 미국의도움없이는 그 안전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쿠웨이트는 70만명의 인구인데 연간 소득이 1백40억달러로서 1인당 2만3천달러이다. 합병직후 1인당 1천여달러의 소득밖에 안되는 요르단은 쿠웨이트에 대해 불평하면서 요르단 사람에 대한 차별대우를 비판하였는데 합병당한 것은 같은 알라신의 자손으로서 혼자 번영을 누린 데 대한 질투심의 작용도 큰 것 같다. 걸프연안국들은 공통적으로 근대국가의 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인구의 반 또는 3분의2가 외국인이고 같은 아랍족인 경우라도 국민으로서 동화시키는 일이 없다. 항상 전근대적인 왕족간의 거래와 세력다툼이 벌어지며 국민의식이나 국가의식이 약한 곳이다. 따라서 외부 강대국의 보호없이는 이라크의 공화주의적 아랍내셔널리즘은 이곳 민중들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1961년에 이라크가 처음 쿠웨이트를 장악하려 했을 때 군대는 7만5천명 뿐이었으며 화학무기도 갖지 않았다. 지금은 아랍의 어느 나라도 여기에 대적할 나라가 없다. 시리아와 이집트가 합쳐도 이라크를 당할 수 없다. 이란과의 전쟁에서 잘 단련된 군사대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보호없이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라크의 공격앞에 하루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아랍왕족들은 알라신이 내려준 석유 득으로 일하지 않고도 잘 사는 생활을 해왔다. 이것이 석유가 없는 아랍국들의 반감을 사왔다. 이제 석유의 현상보존과 지역적 현상유지를 위해 강대국들은 유엔의 이름으로 아랍의 왕족들의 보호에 나선 셈이다. 설혹 이라크의 침공을 물리친다 하더라도 쿠웨이트는 물론 걸프연안의 제후들은 정치적 개혁을 단행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열강의 압력 못 견딜 것 그런데 후세인이 쿠웨이트에서 쉽게 물러날 것 같지 않다. 강대국들은 후세인의 영웅주의에 의한 남의 영토합병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태도이다.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의 경험으로 본다면 최강국이 아닌 나라에 의한 영토변경은 최강국들이 이를 허용하려 하지 않았다. 걸프연안지역에 민족 또는 국가개념이 확실치 않아 이라크에 의한 아랍내셔널리즘의 성공가능성은 없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이라크에 의한 석유의 지배를 가져오기 때문에 이를 거부하는 열강들의 압력을 이라크가 배겨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미소가 같이나서는 일이라 이라크가 다른 활로를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 외언내언

    좀 오래 됐지만 어린이만화를 보다가 낯선 단어에 부딪쳤다. 유리창 깨지는 소리를 표현하면서 써 놓은 「꽈당!」. 「쨍그랑」이 알맞을 자리 같았다. 한참 생각하다가 그 경우의 일본말 「가탕」을 떠올렸다. 일본만화를 베꼈던 것일까. 이젠 이 말이 일반화하여 쓰인다. ◆이 또한 좀 묵은 얘기긴 하다. 서울에서 발간되는 한 종합일간지의 사진설명에 『당가에 실려 나오는 피고인…』이란 대목이 있었다. 들것에 실려 나오는 사진이었다. 「당가」는 「담가」를 읽는 일본발음. 곧 「들것」이다. 이렇게 일본말인지 한국말인지 모르고 쓰는 말들이 많다. 「문화제」 「축제」의 「제」도 그런 것. 일본말은 「제사」와 「잔치」의 뜻을 함께 갖지만 우리는 본디 제사쪽만이었다. 그런데 이젠 「잔치」에도 쓰이는 글자로 되고 있다. ◆지금도 「이조」라고 쓰는 경우들을 더러 본다. 그렇다면 왕씨가 세운 고려는 「왕조」일까. 당연히 국호인 「조선」을 써야 옳다. 격하시킬 의도로 일본사람들이 쓴 게 「이조」 아니었던가. 무심코 「광주학생사건」 「을사보호조약」이라 쓰지만 그런 표현은 일제의 시각. 「광주학생운동」이 돼야 하고 「을사5조약」이든 「을사 침탈조약」이 돼야 한다. 바루어야 할 말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리 국민들은 스스로도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얼마전 서울대 인구및 발전문제연구소 교수팀이 행한 「광복 45주년 국민의식조사 연구」에도 나타난다. 그에 의할 때 잔재가 『많이 남아있다』가 30.1%,『일부 남아있다』가 53.7%였다. 합치면 83.8%. 일상 쓰는 언어에도 그 잔재는 많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잔재를 털기는커녕 새로운 일본말까지 받아들인다. 「단지」 「고수부지」… 따위가 그런 사례이다. ◆광복 45주년. 잃어가던 우리 말도 「광복 45주년」이지만 아직껏 혼혈의 잔영이 적잖이 어른거린다. 거기에 협상차로 벌어져 가는 남과 북의 말. 「통일되고 순수한 배달겨레의 말」을 생각케 한다.
  • 통일의 기틀 마련을/여야,광복 45주 성명

    여야는 15일 광복절 45주년을 맞아 진정한 광복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분단된 조국의 통일이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각각 발표했다. ▲박희태 민자당대변인=북은 시대의 진운에 순응하여 더 이상 통일을 열망하는 민족비운을 이용하여 남한분열과 적화통일의 호기를 조성하려는 케케묵은 전략을 집어치우고 다시 한번 민족적 양심을 회복하여 자유로운 남북왕래를 받아들여 통일의 기초를 닦는 길에 나서기를 촉구한다. ▲김태식 평민당대변인=해방된 지 45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통일을 이루지 못한 현실은 참으로 통탄스러운 민족의 슬픔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같은 고통스러운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반통일적 일제잔재를 과감히 청산하여 진정한 광복과 민족통일의 기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장석화 민주당대변인=우리당은 이 땅의 광복을 완성시키기 위한 통일운동에 혼신의 노력을 경주할 것임을 천명한다.
  • 투자·무역·과기협정/한­루마니아 체결

    우리나라와 루마니아가 7일 투자보장협정·무역협정·경제과학기술협력협정 등 3개 협정을 체결했다. 루마니아를 공식방문중인 최호중외무장관은 이날 상오 9시30분(현지시간) 루마니아의 스토로잔재무장관과 투자보장협정을,그리고 나스타세외무장관과 무역협정및 경제과학기술협력협정을 각각 체결했다고 외무부가 이날 발표했다. 양국간에 이날 체결된 투자보장협정은 ▲상대국투자에 대한 내국민및 최혜국대우 부여 ▲상대국투자 수용,또는 국유화시 신속하고도 충분한 보상 ▲투자관련 분쟁 발생시 워싱턴협약에 의한 투자분쟁 해결을 위한 국제센터이용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또 무역협정은 교역상 최혜국대우및 자유태환성통화에 의한 교역대금 결제등을,경제과학기술협력협정은 경제·과학 및 기술협력의 장려·촉진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 노대통령 「국민과의 대화」 서두연설

    ◎“민주ㆍ번영ㆍ국민통합이 통일의 바탕”/북한물자 직반입 전면허용/불로소득ㆍ상속재산 중과세/복지요원 4천명 배치… 저소득층 자립지원 3년전 오늘,온 국민의 열화와 같은 뜻을 받들어 「6ㆍ29선언」을 발표한 것을 시발로 한국의 정치적 민주화는 시작되었습니다. 민주화의 과정은 법질서가 흔들리고 지켜져야 할 가치와 권위마저 훼손되는 전환기적 현상을 거쳐야 했으나 우리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북한변화 대비할 때 앞으로는 자율에 따라 전개되는 새로운 상황을 새로운 의식으로 대응해야 하는 사회전반의 변화가 이루어졌으며,밖으로 한국은 거리낄 것 없는 민주국가로 세계속에 새로운 위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하고 번영하는 나라가 되었기 때문에 동유럽의 많은 사회주의 국가와 수교를 하고 지난날 생각할 수 없던 한소 정상회담도 하게 되었다고 믿습니다. 이제 소련과 중국,사회주의국가와 우리나라의 관계가 정상화되고 있는 현실은 우리가 사는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을 열 중대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90년대는 우리가 평화통일을 이루는 연대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의 변화와 통일의 전기가 어느때 우리앞에 닥치더라도 이에 대비할 태세를 이제 구축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국민 각 계층의 갈등을 해소하여 화합된 사회를 이루는데 모든 힘을 결집해야 합니다. 우리가 90년대에 이 두가지 과제를 성취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통일과 21세기 우리 민족의 장래가 결정될 것입니다. 90년대 한 단계 더 높은 발전과 국민통합을 우리가 이루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을 해내야 합니다. 첫째,평화적 통일을 지향하고 통일에 대비하는 경제체제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민족성원 모두의 행복과 번영을 이룰 수 있는 경제력을 키워가야 합니다. 경제분야에 있어서는 정치성을 초월하여 남북한간에 서로가 필요로 하는 물자ㆍ기술ㆍ자본을 교류하고 경제협력을 추진할 것입니다. 이를위해 북한을 통해 들어오는 항공기와 선박을 비롯한 수송수단과 물자의 반입을 제한없이 허용할 것입니다. 소련ㆍ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와의 경제협력은 우리의 통일과 번영을 실현한다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되도록 지원,권장해 나갈 것입니다. ○물가상승 한자리로 둘째,우리 경제가 정부주도의 개발단계를 벗어남에 따라 기업ㆍ근로자ㆍ소비자와 정부 등 모든 주체가 역할을 분담하여 경제의 선진화를 이끌어가야 합니다. 정부는 물가상승률을 한자리수에 머물게 하는데 정책의 우선을 두고 건실한 성장이 이루어지도록 모든 정책적인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시장경제체제에서 번영을 이루는 주체는 민간부문의 기업이며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모든 국민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은 첨단ㆍ선진산업과 기술ㆍ인력개발에 더 많은 투자를 해나가야 하며,근로자는 생산성을 향상해야 합니다. 이처럼 기업과 근로자 그리고 정부가 힘을 모아 경쟁력을 강화하여 수출을 늘리고 연간 8∼9%의 건실한 성장을 해가면 1997년까지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우리 경제의 앞날은 산업평화에 달려 있습니다. 셋째,발전의 기반을 확충하고 국민 모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과제를 본격적으로 해결해가야 합니다. 경부선의 고속전철화 사업,교통혼잡을 빚고 있는 경인ㆍ경수간 등의 고속도로 확충,서해안 고속도로 건설 등은 국민생활의 편익뿐 아니라 경제발전을 위해 당장 해야할 일입니다. 넷째,이 사회의 계층간ㆍ부문간 갈등의 요인을 해결하여 국민의 통합기반을 튼튼히 하지 않고서는 더이상의 발전이 어렵다는 인식하에 땀흘려 일하는 모든 국민에게 더 밝은 내일을 보장해 주는 「희망의 사회」를 이룩해야 합니다. 정부는 자유시장경제의 창의와 효율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규제와 간섭은 대폭 축소하면서 시장기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분배와 사회정의를 적극적으로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이를위해 정부는 불로소득과 상속재산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도록 세제를 개혁하고 주택ㆍ의료ㆍ교육분야에 과감한 투자를 해나가는 한편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 올 가을 세제개혁을 통해 근로소득에 대해서는 세금을 줄이는 대신,땀흘리지 않고 번 소득과 상속재산등에 대하여는 세금이 무겁게 부과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세제개혁에는 집이 없는 저소득 근로자에 대한 특별공여제도를 마련하여 전ㆍ월세값 인상에 다른 근로자의 부담을 덜어주고 의료비 공제혜택을 넓혀 서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주택문제가 우리 근로자와 서민들의 가장 절실한 소망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근로자주택등 공공부문에서 짓는 90만호의 서민주택 입주가 올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어려운 계층의 주택사정은 눈에 띄게 나아질 것입니다. 국민들이 집값이 올라 어려움을 겪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부동산투기는 이번 기회에 반드시 근절되도록 하겠습니다. 대기업이 내놓은 불요불급한 부동산은 반드시 처분이 되도록 하고,기업이 비업무용 부동산을 사들이지 못하도록 철저히 대처해 나갈 것입니다. 현재 강력한 대책으로 부동산 투기가 진정되었다고 정부는 방심하고 있지 않으며,부동산 거래를 실명화하는 법률을 제정하여 투기행위를 제도적으로 봉쇄할 것입니다. 작년부터 전국민 의료보험이 실시된 이후 국민의 의료복지는 획기적으로 향상되었습니다. 병실부족을 개선하기 위해 앞으로 3년간 2만개의 병실을 늘리도록 민간병원의 신증설을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하고,응급환자가 언제 어디서나 즉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내년까지 응급의료체제를 완비하겠습니다. ○응급의료체제 완비 잘사는 농어촌을 만들기 위한 종합발전대책은 작년에 발표하여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당장 영세농어가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일이 시급하기 때문에 이들의 농외취업 직업훈련을 확대하고 추곡등 정부수매는 이들 농어가에 대해 우선적으로 실시할 것입니다. 우리들 주변의 어려운 소외계층을 돕는 일은 국민화합의 바탕입니다. 오는 92년까지 대학에서 사회복지 분야를 전공한 전문요원 4천명이상을 채용,전국의 저소득층 밀집지역 읍ㆍ면ㆍ동에 배치하여 가구별로 실정에 맞는 자립책을 지원할 것입니다. 국민 모두가 소외됨이 없는 복지사회는 우리 사회가 안정위에서 발전을 이룩하는 굳건한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남은 임기 2년반동안 복지사회의 모든 것을 이룩할 수 없다고 해도 반드시 균형된 사회의 바탕은 이룩해 놓을 것입니다. 다섯째,국민이 안심하고 생활을 영위하며 신뢰를 나누는 사회를 이룩해야 합니다. ○민생치안확립 다짐 정부는 민생치안의 확립을 다짐하고 범죄와 폭력에 대해 강력히 대처하고 있으나 전환기를 거치면서 아직은 새로운 질서가 자리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론의 자유,국민 각계의 거침없는 목소리로 부정과 비리는 그 설 자리가 좁아졌으나 우리 사회 일각에는 아직 지난날의 타성이 잔재해 있습니다. 정부는 이 모든 문제에 대해 결연한 의지로 대응해나갈 것입니다. 이 모든 사회적 불안을 제거해 가는데 있어서도 민주주의의 새로운 환경속에서 국민의 참여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맞고 있는 이같은 일을 해결하여 선진국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사회 각계의 의식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기의 몫을 주장하기 전에 자기가 할 일을 생각하고 자제하고 협조하여 그가 맡은 직분을 다할 때 민주주의와 발전,국민의 화합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몇년동안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선진국이 될 수 있느냐,없느냐… 통일을 이룰 수 있느냐,없느냐가 결정될 것입니다. 저의 임기 절반에 가까워 옵니다만,저는 남은 임기,저의 모든 것을 바쳐 겨레의 소망을 이루는 데 앞장설 것입니다.
  • 분단 45년… 북한의 생활상 어떻게 이질화됐나

    ◎다른 길로 달린 「남과 북」… “한핏줄의 이방인”/서울신문 6ㆍ25 40주 특집 한핏줄의 남북한은 하나의 역사,하나의 언어,그리고 공통된 생활관습 등을 지켜왔다. 그러나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분단의 길로 들어선 남과 북은 6ㆍ25전쟁이라는 민족최대의 비극을 겪으면서 분단이 고착화됐고 이 결과 전쟁후 40년이 지난 오늘까지 삶의 모든면에서 이질화가 심화되어 왔다. 최근 동서독이 통독의 길로 나아가는등 세계의 냉전구조가 타파되면서 세계유일의 분단국이 되고만 한반도에도 냉전의 장벽을 허물어 뜨릴 수 있는 변혁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다. 분단 45년,전쟁발발 40년이 지난 오늘 제각기 달려온 남과 북의 삶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됐고 이질화됐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언젠가는 맞이할 통일에 대비해 서로가 극복해야 할 과제로 삼고자 한다. ◎문화ㆍ예술/인간개조의 도구화… 순수예술 명맥 끊겨 지난해 우리는 두개의 서로 다른 경험을 했다. 그 하나는 비록 결렬되고 말았지만 북경아시안게임 출전을 위한 남북단일팀 구성논의에서 「아리랑」을 단가로 하자는데 양측이 비교적 손쉽게 합의,문화적 민족정서의 공유가능성을 확인한 일이다. 또 하나는 남북이산가족의 재회를 무산시킨 이른바 북한의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와 「피바다」 공연여부를 둘러싼 논쟁에서 실감했던 남과 북의 현저한 문화ㆍ예술관의 차이다. 이렇듯 남과 북의 문화ㆍ예술은 공감대를 같이하는 한 뿌리에서 출발했으나 분단이후 45년간 서로다른 이념과 사회체제 속에서 이질화의 과정을 밟아옴으로써 오늘의 남과 북사이에는 엄청난 높이의 문화적 장벽이 가로놓이게 됐다. 한국의 문화정책이 이어령 문화부장관의 구상처럼 『후기산업사회로의 급격한 전환에 따른 세대간ㆍ계층간ㆍ지역간ㆍ성별간의 이질화와 갈등현상을 문화의 힘으로 치유』하는데 놓여져 있다면 북한의 문화ㆍ예술은 주체사상과 3대혁명에 입각한 공산주의적 정치사회화의 수단적 목적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북한의 문화예술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기초하에 체제보위 및 최고통치자에 대한 우상화 및 공산주의적 인간개조를 위한철저한 도구로 기능함으로써 전통적 순수예술의 성격은 물론 대중예술과도 거리가 먼 주체예술ㆍ혁명예술ㆍ이데올로기예술로 변모돼 있다. 가령 북한가요 45년사에서 3대명곡으로 꼽히고 있는 「조선의 별」,「김일성장군의 노래」「동지애의 노래」 등이나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시작 「묘향산의 가을날에」,80년대 최고의 미술작품이라는 「강선의 저녁노을」 등은 모두가 김일성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북한의 문화ㆍ예술의 성격을 대변해 주고 있다. ▲사상성이 좋고 ▲가사가 좋으며 ▲선율이 부드럽고 지루하지 않다는 점에서 불후의 「혁명송가」라는 「조선의 별」은 김일성이 항일빨치산 투쟁을 할때 그의 추종자들이 김일성을 흠모해 지었다는 노래이며,「동지애의 노래」는 김일성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촉구한 노래이다. 「강선의 저녁노을」은 남포시 강선제강소를 소재로 김일성을 찬양한 조선화이며 주체예술의 상징인 5대혁명가극의 하나인 「피바다」는 항일혁명투쟁을 주제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앞세운 목적극이다. 특히 6ㆍ25전쟁 전까지 순수예술과 목적예술간의 대립속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지 못한채 주로 소련에 의존해왔던 북한의 문화ㆍ예술은 전쟁중 전쟁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의 전쟁영웅 형상화에 몰두,목적예술적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전후복구와 「주체」의 슬로건 등장등 상황적 요청에 따라 문예정책은 사회주의 건설에 역점을 두는 새로운 전형을 형상화하는 한편 소련식 문화활동에서 탈피,김일성체제를 뒷받침하는 혁명전통확립과 주민들에 대한 공산주의 교양을 주제로 한 창작활동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또한 자연만을 노래하거나 예술지상주의 태도는 반혁명적이고 형식주의적인 문화예술이라는 인식하에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와 ▲당성ㆍ계급성ㆍ인민성의 구현이 모든 창작활동중에서 반드시 지켜야할 원칙으로 대두됐다. 현재 북한에서는 이러한 문화예술의 원칙과 과제의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작가 미술가 영화인 연극인 무용가 사진가 등 모든 예술인들을 망라한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이란 조직이 결성돼 있으며 당은 이 조직을 통해 각 분야 종사자들에게 창작 및 공연활동계획서의 제출을 강요,▲혁명전통(30%) ▲전쟁(30%) ▲사회주의건설(20%) ▲조국통일(20%) 등 4개 주제별로 창작활동을 하도록 하고 있다.◎의식구조/어휘마다 정치색… 전투ㆍ파괴적 성격 강조 『서울말은 남존여비사상과 썩어빠진 부르주아적 생활이 지배하는 말로서 오늘 남조선방송에서는 여자들이 남자에게 아양을 떠는데 쓰이는 코맹맹이 소리를 그대로 쓰고 있으며,그것마저 고유한 우리말은 얼마 없고 영어 일본말 한자어가 반절이나 섞인 잡탕말이다. 우리는 혁명의 수도이며 요람지인 평양말을 기준으로 해야한다. 오늘 평양말은 서울말보다 비할 바 없이 우월하다』 김일성이 1969년 평양말을 「문화어」로 삼은 이유를 설명한 교시의 내용으로 북한의 언어정책을 잘 보여준다. 김일성은 또 「표준말」이란 용어 대신 「문화어」를 쓰는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표준어라고 하면 마치도 서울말을 표준하는 것으로 그릇되게 이해될 수 있으므로 그대로 쓸 필요가 없다. 「문화어」란 말도 그리 좋은 것은 못되지만그래도 그렇게 고쳐쓰는 것이 낫다』 특히 북한은 「언어를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의 힘있는 무기」로 보는 언어관을 토대로 일찍부터 용의주도하고 치밀한 언어정책을 펴옴으로써 분단 45년이 지난 현재 남북한간에 벌어지고 있는 언어의 이질화는 단순한 언어 자체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간의 사고와 행동양식 및 의식구조의 이질화에까지 파급되고 있다. 실제 북한에서는 언어를 씩씩하고 힘있는 무기로 다듬는다는 명분하에 『미제의 각을 뜨자』『돌탕을 쳐 죽이자』는 등의 살벌하고 소름끼치는 말들이 공공연히 사용되고 있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와 성격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않음을 감안할때,북한의 이같은 극단적인 언어관과 언어정책은 결과적으로 이러한 언어를 쓸 수 밖에 없는 북한주민자신을 공격적이고 전투적이며 파괴적인 성격으로 만드는 잠재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남북한간의 언어이질화에서 빚어지는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북한의 언어정책은 1949년에 단행된 한자폐지와 이에 따른 한글전용정책에서 시작된다. 문맹퇴치와 인민대중의 조속한 사상교육을 목표로 추진된 한자폐지는 결과적으로 한글전용화로 이어졌고 이결과 북한의 각급학교 교과서 문예작품 신문 및 대중매체에서 한자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다만 한자교육은 통일후 남한문헌을 읽기 위해 또한 고전연구를 위해 하나의 외국어처럼 전공과목으로서만 남게됐다. 한글전용에 이어 가로쓰기도 시행되었으나 한자어의 어원을 가진 낱말을 한글로만 표기,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속출하면서 「말다듬기운동」이 새로 일어났다. 이에 따라 1954년 일제하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수정한 「조선어철자법」이 생겨났고 1966년에는 「조선말규범집」과 함께 「문화어」라는 새로운 개념의 어휘까지 등장했다. 문화어의 등장은 남북한간 언어이질화의 본격적인 시발점이 되고 말았는데 그 성격은 서울말을 배격하고 평양말을 토대로 다듬은 그들의 공용어를 표준어로 삼는 데 있다. 한편 한자폐지와 한글전용,말다듬기운동의 결과 새로운 사전의 편찬이 불가피하게 됐는데 1968년 나온 「현대 조선말사전」의 경우 18만어휘가 수록됐던 「조선말사전」(61년)에 비해 어휘가 5만으로 크게 줄었다. 그 이유는 한자가 하나도 없고 옛말 사투리 고유명사 및 이른바 「퇴폐적 사상표현」등을 완전히 제외했기 때문. 또 어휘마다 정치성이 담겨져 있어 김일성의 인용구는 굵은 활자에 별표까지 달아놓았다. 현재 남북한의 언어는 발음의 차이,리듬의 차이,억양의 차이 등과 같은 음성학적인 차이를 비롯해 어휘ㆍ문법ㆍ의미ㆍ문체 및 맞춤범 등 언어전반에 걸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가장 심각한 차이는 어휘부문에서 나타난다. 예를들면 산책길→유보도 채소→남새 화장실→위생실 고기잡이→추어전 개고기→단고기 도시락→곽밥 레코드→소리판 대중가요→군중가요 투피스→동강옷 커튼→창문보 그룹→그루빠 소년단→삐오네르 주제→쩨마 등이다. ◎경제생활/「남농북공」무너져 GNP 남한의 12%/생필품 부족… 암시장 쌀값 배급의 18배 8ㆍ15해방 당시 남북한의 산업배치는 「남농북공」으로 일컬을 만큼 지역적 보완관계가 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남북분단으로 이같은 보완관계는 무너졌으며 설상가상으로 6ㆍ25가 남과 북 모두의 각종 산업시설을 파괴,경제활동의 토대조차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말았다. 이후 남과 북은 40여년간 천연자원 및 산업구조의 불균형이라는 악조건속에서 통합적 발전이 아니라 개별적이고 분리적인 발전을 계속해왔다.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로 굳어진 한국과 북한은 각기 다른 경제질서를 형성ㆍ유지하면서 치열한 체제경쟁을 벌여왔고 이 결과 88년을 기준으로 국민총생산액(GNP)의 차이는 한국이 북한에 비해 8배나 앞서는 비교우위로 나타났다. 한국은 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착수한 이래 고도의 경제성장을 거듭,개발도상국에서 일약 중진국의 일원으로 도약했다. 1960년 1백달러 미만이었던 1인당 국민소득은 89년말 현재 5천달러에 육박해 있다. 반면 6ㆍ25로 인해 공업생산 수준이 1949년에 비해 3분의 2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출발했던 북한경제는 전후복구 3개년계획(1954∼56년)과 뒤이은 5개년계획(1957∼61년)에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성장을 기록했으나 그후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이에 따라 북한은 70년대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비해 부분적인 비교우위내지는 형평을 유지해 왔으나 이후부터는 전분야에서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체제가 다른 북한의 국민총생산액등 각종 경제지표의 개념은 우리와 크게 다를 수 있지만 국토통일원이 북한의 각종 선전자료를 검토ㆍ분석해 추정한 수치는 다음과 같다. 국민총생산액은 88년을 기준으로 2백6억달러로 우리의 1천6백92억달러에 비해 8분의 1 수준이며 1인당 GNP는 9백80달러(한국 4천40달러),자동차 생산능력은 연간 2만대(한국 1백70만대),TV보유율은 10%(한국 1백%),전화는 7%(한국 67%),냉장고는 6.5%(한국 79%) 등이다. 한편 북한주민의 의ㆍ식ㆍ주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평등한 방식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직종과 직급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급되는 임금과 그 임금에 따른 불균형한 소비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임금은 당간부 및 고위직 군인의 급료가 상대적으로 높으며 사무직보다는 기술직이 높다. 또 경노동 보다중노동이,중노동 가운데도 위해노동종사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으며 85년부터는 「사회주의적 노동보수제」가 도입돼 동일직종이라도 숙련도나 생산성 등 노동의 질에 따라 급수를 달리하는 「차등임금제」가 실시되고 있다. 북한은 이같은 화폐소득의 차이를 완화하기 위해 보건ㆍ교육분야를 국가예산으로 충당하는 한편 대중소비물자의 가격을 낮게 책정하고 사치품의 가격을 높게 매기고 있다. 이에 따라 쌀ㆍ채소ㆍ옷감ㆍ비누ㆍ치약 등 생필품의 경우 아주 싼값으로 공급되는데 가족수와 연령,직업에 따라 품목과 수량,종류가 정해진 구입카드에 의해 국영상점에서 구입한다. 그러나 최근 몇년간 「먹는 문제」의 해결이 최우선 과제이듯이 국가에서 싼 값으로 공급하는 생필품의 배급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일반주민들은 부족분을 구하기 위해 1㎏당 8전에 불과한 쌀을 「장마당」이라고 부르는 암시장에서 이 가격의 18배가 넘는 1㎏당 15원에 구입하려해도 어려운 실정이다. 주택은 협동적 소유로 행정당국에 의해 직업과 직급에 따라 차등적으로배분되며 그 보급율은 70% 안팎. 북한은 주택건축률이 경제발전을 대변하는 전시적 기능이 크고 남북한 사회비교의 중요한 징표가 된다는 점에서 70년대 이후 평양ㆍ남포ㆍ원산ㆍ함흥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현대식 고층아파트를 신축하는 한편 농촌의 문화주택을 2층 3가구용,3층 5가구용으로 다양화하고 문화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등 주거양식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북한은 지난 40년간 중공업위주의 경제정책을 펼친 결과 주민들의 소비생활이 크게 압박을 받아 불만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해를 「경공업의 해」로 지정하는 등 최근 경공업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생활풍습/“봉건잔재 없앤다” 관혼상제도 통제ㆍ규격화 북한은 우리민족의 전통적 예의범절에 대해 『봉건지배계급이 착취하는데 편리하게 만들어 놓은 규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민족 고유의 예절이나 유교적 도덕관은 북한의 사회주의체제와 당의 이익에 맞도록 변형되어 있다. 또 관혼상제를 포함한 전통적인 민속과 세시풍속 등도사회주의적 내용으로 변질됐다. 북한에서의 결혼은 『철저히 동지적이고 혁명적인 관계에 의해 이뤄지며 일생을 동지로서 당과 수령께 충성할 수 있는 정신적 풍모가 조건이 된다』고 정의되고 있다. 따라서 결혼연령도 노동과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남자 29세 여자 26세로 제한해 놓고 있으나 불만이 많아 80년대 이후에는 조혼추세가 묵인되고 있다. 배우자선택은 중매(60%)와 연애(40%)가 병행되고 있으나 최근 북한의 남녀대학생들은 서로 손을 잡기도하고 데이트를 즐기는 등 연애결혼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 노동자계층의 남녀가 만나는 채널은 연애보다는 부모 친척 등을 통한 중매가 지배적이다. 신랑감으로는 직업에 관계없이 평양거주총각이 최고의 배우자로 꼽히고 있으며 길흉을 가리는 결혼의 택일 풍습은 사라져 대개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치러진다. 회갑이나 생일,돌잔치는 50년대에는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와 식량절약이라는 명분으로 일체 금지되었으나 60년대 후반기부터 묵인되고 있다. 그러나 「60청춘 90회갑」이라는 구호아래 공식적인 회갑잔치는 거의 치르지 못하고 있으며 고위간부의 경우에만 김일성이 하사하는 일정한 규격의 회갑상을 받는다. 장지는 지정된 공동묘지만을 쓰도록 돼있다. 상복은 따로 만들어 입는 것이 없고 머리에 건을 쓰고 팔에는 검은 천을 두른다. 장례식과 매장은 도시의 경우 녹화사업소,편의협동조합 등이 맡아서 처리해 주며 직계존속이 사망했을 경우 상주에게는 3일간의 공식휴가와 장례보조금 10원,쌀 1말이 배급된다. 제사도 다른 풍습과 같이 6ㆍ25전까지는 별다른 통제를 받지 않았으나 휴전후부터 단속대상이 되었었다. 그러나 60년대 후반기부터 추석에 성묘하는 것과 직계존속에 대한 탈상까지의 제사는 묵인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60년대 중반까지 「봉건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김일성 교시에 따라 추석등 고유의 세시풍속을 공식명절에서 제외하고 김일성의 생일,김정일 생일,북한정권 창건일,노동당 창건일,사회주의 헌법제정일 등을 「사회주의 명절」로 지정,공휴일로 해왔으나 지난 88년부터 추석 음력설 단오 한식 등을명절로 부활시켰다. 또한 70년대까지만 해도 인민복,검은 통치마 차림이었던 주민들의 옷차림이 두드러지게 바뀌기 시작해 80년대 중반이후부터는 남자는 양복이나 잠바,여자는 양장이나 짧은 치마차림이 보편화됐으며 머리모양이 다양해지고 화장을 한 여자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러나 올해초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이던 주민들의 부분적 여행자유화 조치가 전면 보류됨으로써 일반 주민들의 북한내 여행 및 휴가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금강산ㆍ묘향산 등 유명관광지의 이용자는 주로 외국인 관광객이며 주민들의 경우 공장ㆍ직장별 단체관광 정도일 뿐 가족단위의 여행은 거의 없다. 따라서 북한주민들의 주요한 오락수단은 TV와 라디오이다. 또 최근 바둑협회가 새로 결성되고 실내 골프장이 생기는 등 부분적인 변화가 있으나 대중이용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며 주민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놀이는 주패놀이로 불리는 서양식 카드놀이와 장기이다. 가정생활은 지난 80년 『셋은 양심이 없습니다. 둘은 많습니다. 하나가 좋습니다』라는 김정일의 지시이후 가족계획이 보편화되기 시작해 점차 대가족에서 핵가족 형태로 옮아가고 있다. 남녀평등권에 관한 법령이 제정되는 등 남녀평등이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으나 실제로는 가부장적 사회가 유지되고 있으며 여자들이 가정경제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남편들이 봉급을 타서 여자들에게 넘겨 주기는 우리와 마찬가지다. ◎언론ㆍ교육/비판기능은 무시… 선전ㆍ선동의 매체로 활용 최근 북한은 소련언론들의 잇따른 대북한 비난보도에 대응,소련의 평양주재 기자들에 대한 취재봉쇄조치를 취한데 이어 타스통신기자 1명을 추방함으로써 내외의 관심을 끌었었다. 특히 북한은 『우리 혁명을 지지하는 기사를 쓰라,그러면 당신들의 요청이 충족될 것』이라고 주장한데 반해 소련언론들은 북한언론들의 보도태도와 관련,「목적지향성」보도에만 집착할뿐 진실을 숨기고 있다고 비난해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북한과 소련의 언론관이 상이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현재 북한에서 발행되는 신문은 노동당기관지인 「로동신문」과 정무원기관지인 「민주조선」을 비롯해 도단위 일간지 등 모두 30여종. 방송은 TV의 경우 「조선중앙TV」(평양TV)「만수대TV」「개성TV」 등 3개가 있고 라디오는 「조선중앙방송」「평양방송」「구국의 소리방송」「평양인민 FM방송」 등이 있다. 북한에 있어 언론이란 「김일성의 교시와 당의 정책을 해설ㆍ선전하며 그것을 철저히 비호ㆍ관철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가일층 강화하여 인민들을 수령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우는데 복무해야 한다」는 정치사전(73년도판)의 규정처럼 정치선전도구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또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기사가 아닌 모범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로써 사람들을 교양해야 한다는 김일성의 교시(1960년 11월)에 따라 우리의 사회면 기사에 해당되는 범죄나 비행ㆍ사고 등의 기사는 신문ㆍ방송 등 언론매체에 일체 실리지 않는다. 우리의 언론들이 사회의 비리ㆍ부조리 등을 파헤침으로써 비판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데 반해 북한은 긍정적ㆍ모범적인 기사를 통해 사회를 계도하겠다는 언론관을 고집하고 있다. 또 북한의 언론은 자본주의언론이 중시하는 속보성보다는 매스미디어의 이념적 이용,즉 당의 정책적 선전에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정론성」과 「당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정론성이란 어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선전ㆍ선동ㆍ조직ㆍ교육ㆍ동원에 필요한 요소들을 가미하여 「사실」을 각색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북한의 방송은 정무원직속 조선중앙방송위원회의 지도아래 운영되고 있는데 이 기구는 조직ㆍ편제상 정무원에 속해 있지만 당중앙위 선전선동부의 지시와 통제를 받고 있어 사실상 2원화 되어 있다. 북한의 새 학기는 우리와 달리 9월에 시작된다. 북한은 지난 75년부터 유치원 1년,인민학교 4년,고등중학교 6년과정으로 된 「11년제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우리의 국민학교에 해당하는 인민학교의 취학연령은 만6세. 그러나 만4세부터 시작되는 2년과정의 유치원교육중 「높은반」부터 의무교육기간에 포함되므로 실질적인 의무교육은 만5세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11년제 의무교육기간에는 수업료는 물론 면제이며 교과서ㆍ교복ㆍ학용품이 무상 또는 일부 부담으로 지급된다. 16세부터 시작되는 고등교육단계로는 2∼3년 과정의 고등전문학교와 교원대학(3년),종합ㆍ단과ㆍ사범ㆍ공장대학(4∼6년) 등이 있다. 현재 북한에는 인민학교 5천여개,고등중학교 4천2백여개,전문학교 5백여개,대학 2백70여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북한은 80년중반부터 낙후된 과학기술을 진흥하기 위해 각 시도별로 「제1고등중학교」를 세우는 한편 기술계 대학의 수를 크게 늘리고 있다. 학생들은 또 「한가지 이상의 기술과 기능을 소유해야 한다」는 당의 방침에 따라 예능 또는 실업 등의 실기과목을 배우고 있으며 소년단이나 사로청 등의 조직에 의무적으로 가입,단체활동을 한다. 특히 의무노동이 중시돼 인민학교는 연간 2∼4주,고등중학교는 4∼8주,대학교는 12주정도씩 생산현장노동에 참여한다. 한편 북한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이것을 주체적,창조적으로 적용했다는 「주체사상」을 교육이념으로 삼고있다. 또 계급투쟁을 위해서는 「공산주의적 인간」이,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생산기술적 인간」이,전쟁승리를 위해서는 「체력이 튼튼한 인간」이 바람직하다는 「이상주의적인 인간상」때문에 정치사상교양 및 과학기술교육,그리고 국방체육이 북한교육내용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 동북아평화 “태풍의 눈”… 북한 「핵개발」

    ◎「6개월안 제조설」의 충격과 파장/소 군원중단 대비한 자구책인듯/루마니아ㆍ동독서 원료ㆍ기술도입 추정/신데탕트 역행… 한반도 긴장 촉발 북한의 핵개발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가. 북한이 6개월 이내에 핵무기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는 외신 보도는 그동안 많은 논란과 함께 가설로만 무성했던 북한의 핵무기 개발 및 제조의 현실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냉전체제의 마지막 잔재로 남아있는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킴은 물론 동북아시아와 더 나아가 세계의 전반적인 군사균형을 크게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핵개발 가능성은 사실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설은 이미 수년전부터 꾸준히 흘러 나왔으며 특히 얼마전에는 미국의 위성사진을 통해 평양북쪽의 영변에 건설중인 원자력발전소 시설외에 핵폭발시험 용지와 핵연료 재처리공장으로 보이는 시설물등이 확인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및 서방국가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북한의 핵무기제조능력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지난 4월 월포위츠 미국방차관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며 제조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었다. 미국은 소련이 철저한 핵확산통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중국의 도움을 통해 핵무기를 제조한다 해도 적어도 5년은 걸릴 것으로 보고 있으며 북한의 자체기술로 핵무기를 제조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소련은 최근 원자로 4기의 대북한 판매를 중단시키고 기술ㆍ자재 등의 판매도 중지시킨바 있다. 일반적으로 북한의 핵능력에 대해서는 현재의 기술수준은 핵무기제조까지는 미치지 못하며 다만 제조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국제감시하에 두어야 한다는 정도로 논의가 돼 왔다. 특히 최근에는 북한 자신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안정협정체결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IAEA이사회에 참석한 정근모 과기처장관도 지난 14일 북한이 IAEA와 핵안정협정체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오는 7월에 대표단을 파견하겠다고 통보했다고 밝히고 이는 협정체결의 필요조건이 되는 의미있는 「진일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보도는지금까지 북한의 핵개발 능력에 대한 「정설」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특히 앞으로 5∼6년이 아닌 6개월내에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는 주장과 소련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는 동독과 루마니아의 구정권으로부터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기술과 원료를 입수했다는 지적은 매우 심각한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물론 뉴스 소스로 돼 있는 소련관리가 증거를 제시하지 않아 아직은 주장에 가깝다고 볼 수 있으나 북한의 핵무기제조 가능성이 소련으로부터 흘러나왔다는 점에서 관심을 높여주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지금까지 언급이 없었던 소련이 왜 갑자기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정보를 공개했는지에 대해 석연치 않게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핵안정협정체결을 하도록 국제적 압력을 겨냥한 전술이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지금까지 대남군사적 우위 확보를 위해 핵무기 개발에 심혈을 기울여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김일성은 특히 고르바초프의 신사고에 의한 동구개혁과 세계적 화해가 정착되면서 소련으로부터의 개방압력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핵무기보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김일성은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소련의 일방적인 통제나 영향력을 어느 정도 배제시킬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북한의 핵개발 노력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으며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안정협정에 서명한다해도 그들의 핵무기개발에 제동을 걸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는 견해도 밝히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 노력은 동서 화해시대에 역행하는 것으로 최근 한소 정상회담으로 긴장완화의 조짐이 보이던 한반도를 심각한 핵위험지대로 만들 개연성을 내포하고 있다.
  • 노대통령 일 국회 연설 요지

    ◎가까운 이웃으로,믿음 나누는 친구로 평화와 번영,자유와 행복이 넘치는 세계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나는 한일 양국이 상호존중과 이해에 기초하여 이제 가깝고도 가까운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45년전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한국국민의 기쁨은 하루아침 국토분단의 슬픔으로 표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결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한 세대에 걸친 피땀어린 노력으로 한국은 이제 신흥산업국가로 발돋움 했습니다. 우리 국민은 서울올림픽을 12년만에 동서세계가 함께 모인 훌륭한 평화의 축제로 치렀습니다. 우리 국민이 이룬 또하나의 보람은 민주주의의 시대를 연 것입니다. 근40년간 안팎의 숱한 파란속에서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우리 국민의 뜨거운 염원과 투쟁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3년전 「6ㆍ29민주화선언」을 시발로 한국의 새로운 시대는 언론과 정치적 자유를 제한없이 열어 놓았습니다. 한국의 민주화는 헌법과 제도는 물론,사회의 가치체계와 국민의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민주화는 큰 대가를 치르고 있으나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이 오게하는 것은 우리 국민의 지상과업일 뿐만 아니라 세계와 이 지역에 우리가 기여할 으뜸가는 과제일 것입니다. 지난 한 세기동안 한국처럼 침략과 전쟁ㆍ대결체제로 고통받아온 나라는 이 지상에서 드물 것입니다. 평화는 한국민의 절실한 소망입니다. 우리는 평화를 이룸으로써 이 세계가 우리에게 준 시련에 답하려 합니다.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이 세기안에 반드시 이루려합니다. 냉전체제의 타율에 의한 민족의 분단상황은 다음 세기로까지 이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가 어렵다고 여겨온 동서 독일의 통일이 이제 현실이 되고 있듯이 전쟁의 위험이 도사린 분단된 땅에서 인류화합의 올림픽이 열렸듯이,한반도에 통일의 날은 올 것입니다. 이제부터 한일 양국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본격적으로 펼쳐가야 할 것입니다. 나는 1988년 유엔총회에서 「동북아 평화협의회의」를 제안한 바 있습니다. 이 협의체의 실현에는 북한의 태도변화등 정치적 여건의 성숙에 시일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가능한 나라,가능한 분야부터 공동 이익을 실현할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 동북아시아 국가들간의 협력은 아시아ㆍ태평양시대의 밝은 미래를 여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일본과 한국의 21세기도 아시아ㆍ태평양의 평화와 번영과 직결되어 있을 것입니다. 한일 두 나라는 동반자로서 태평양시대를 앞장서 열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를위해 우리는 이 지역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모든 나라에 도움을 주는 효율적인 협력의 틀을 이루어야 합니다. 한일 양국은 이제 서로 미국 다음가는 두번째의 교역국이 되었습니다. 세계10대 교역국에 들어선 한국은 일본 기업에 연간 1백70억달러의 시장이 되었습니다. 25년전 일본의 대한 수출이 불과 2억달러였던 것을 생각하면 한국의 발전은 일본의 번영에도 도움을 주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번영하는 나라가 가까이 있는 것은 일본의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것입니다. 한일간에는 만성적인 무역불균형의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은 미국과 유럽에 대해 시장개방과 무역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도 이처럼 정책적 의지를 갖고 불균형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조처를 취해주기 바랍니다. 일본이 경쟁을 꺼려하여 기술이전에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한국의 수출증대가 해외시장에서 일본기업에 다소의 경쟁을 불러오는 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견일 뿐 그것은 일본으로부터 더 많은 우리의 수입을 유발해 왔습니다. 한국의 경제발전이 일본의 국가이익에 합치한다는 인식하에서 일본의 기술이전과 기초과학 협력을 촉진하여 주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변화하고 많은 것이 발전하였음에도 우리 두 나라 국민간에 진정한 우정을 가로막는 마음의 벽이 남아 있습니다. 전후 45년이 지난 이제 세계대전을 치렀던 유럽 각국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이 시점까지,우리 두 나라 국민간에는 잘못된 과거에 대한 인식과 감정이 정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대의 잔재가 두 나라 관계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국민학교에 갓 들어간 한국 어린이가 일본식 이름 아닌 자기 이름을 썼다하여 어머니로부터 익힌 자기 나라말을 했다하여 선생님의 회초리를 맞아야 했던 아픔을 여러분이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지난날 어두웠던 시대,우리 민족이 겪은 더 큰 고통과 시련,그 엄청난 비극을 지금 이 자리에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의 우리는 나라를 지키지 못한 스스로를 자성할 뿐,지난 일을 되새겨 그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려 하지 않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진실에 바탕한 두 나라 국민의 참된 이해이며 그것을 바탕으로 밝은 미래를 열자는 것입니다. 프랑스인 독일인 영국인이 이제 하나의 유럽인이 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진실의 힘으로 잘못된 과거를 분명히 씻음으로써 새로운 역사의 창조에 함께 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일은 신도 바꿀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오늘의 우리가 지난 일을 어떻게 보고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하기에 따라 지난날의 속박을 끊고 과거의 잔재는 치울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용기와 노력이 필요할 뿐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내가 특히 이 자리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지난날의 역사로 인해 일본에 살게 된 70만 재일 한국인의 문제입니다. 이들은 일본국민과 함께 전쟁의 고통을 겪었으며 전후 일본의 재건과 발전에 참여하였습니다. 이들이 사이좋게 이웃으로 이곳에서 불편없이 살게 될 때 우리 두 나라 국민은 한일 우호를 가슴으로 느낄 것입니다. 일본은 지난날의 일본이 아니라 이제 새로운 일본이 되었습니다. 역사와 세계에 대해 열린 일본은 아시아와 세계의 인식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공통의 이상을 나누고 있는 우리 두 나라는 이러한 관계위에 세계로,미래로 손잡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가깝고도 가까운 이웃으로,믿음을 나누는 친구로 더욱 평화롭고 번영하며 자유와 행복이 넘치는 세계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 노대통령 만찬답사

    ◎이제 우리는 신뢰받는 우방이 되기 위해/과거역사의 잔재를 씻는데 노력해야 그 아득한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일 양국은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살아 왔습니다. 두 나라 사이에는 좋은 일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근세에 들어와 고통을 받는 시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두 나라간의 오랜 선린우호의 역사에서 볼때,어두운 시대는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이었습니다. 역사의 진실이 지워지거나 망각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속박에 언제까지 묶여 있을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 두 나라는 참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잘못된 과거를 씻고 우호협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할 것입니다. 일본의 역사와 새로운 일본을 상징하는 폐하께서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여 주신 것은 의미깊은 일입니다. 이제 우리 두 나라가 가깝고도 가까운 이웃,신뢰하는 우방이 되기위해 양국관계 발전에 장애가 되어 온 과거역사의 그늘을 걷고 잔재를 치우는데 우리 모두 노력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두 나라간 훌륭한 관계를 후대에까지 물려주어야 합니다. 한일 두 나라가 다함께 추구해온 자유와 민주주의는 이 세계의 보편적 가치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한일 관계는 오직 우리 두 나라간의 관계에서만 중요한 데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동과서의 문화가 조화를 이룰 아시아ㆍ태평양지역이 인류의 새로운 문명을 이끌며 평화와 번영을 증진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나라는 더 나은 세계와 인류의 공동번영을 위해 큰 공헌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류와 역사에 대한 우리의 책무일 것입니다. 앞으로의 우리 두 나라 관계는 상호존중과 이해위에서 공동의 이상과 가치를 지향하며 발전할 것입니다.
  • 일왕,“불행했던 시대” 대목서 긴장/노대통령 방일여로 이모저모

    ◎도이 사회당위장도 “엄청난 과거사과”/가이후총리 “동년배끼리 대화로 풀자” 노태우대통령은 24일 낮 12시 특별기편으로 일본 하네다공항에 도착한 뒤 환영행사 참석,일왕 예방,도쿄도지사 접견,일본 유력인사 개별접견에 이어 가이후총리와의 1차 정상회담,일왕 주최 만찬참석 등 잠시의 틈도 없이 바쁜 일정. ▷일왕 주최만찬◁ ○…과거사에 대한 사과문제로 가장 관심을 모은 아키히토 일왕의 만찬사는 24일 저녁 8시40분쯤 시작. 미리 준비된 만찬사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던 아키히토 일왕은 과거사에 언급하면서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의 국민들이…』라는 대목에서 잔 기침을 해 다소 긴장한 듯한 모습. 그러나 아키히토 일왕은 젊은이들의 교류를 비롯한 양국의 장래문제를 언급하면서는 밝은 어조로 바꾸면서 『노대통령의 방일은 21세기로 이어지는 새로운 양국관계의 초석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 ○애국가 연주뒤 축배 만찬사가 끝난 뒤 애국가 연주에 이어 아키히토 일왕은 한국과 한국국민의 번영을 기원하는 축배를 제의. 이어 노대통령은 만찬답사에서 전후 일본의 발전과 아키히토 일왕의 즉위를 축하하고 고대로부터의 양국간 문화교류를 선린우호의 역사를 담담한 어조로 지적한 뒤 근세에 있어서의 어두웠던 과거에 언급. 노대통령은 『역사의 진실이 지워지거나 망각될 수는 없다』고 힘을 주어 강조하고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속박에 언제까지 묶여 있을 수 없다』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갈 것을 역설. 노대통령은 『일본의 역사와 새로운 일본을 상징하는 폐하께서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여주신 것은 의미 깊은 일』이라고 이날 아키히토 일왕이 과거사 문제를 언급한 데 대해 평가하고 『과거 역사의 그늘을 걷고 잔재를 치우는 데 모두 노력하자』고 다짐. 만찬이 진행되는 도중 노대통령 내외의 입장,아키히토 일왕의 만찬사,노대통령의 답사,민속공연은 보도진에게 공개됐는데 이때마다 취재기자들이 열띤 취재경쟁. ○…노대통령 내외는 이날 하오 7시50분쯤 일왕 궁성인 황거내 만찬장 호메이 덴(풍명전) 현관에 도착,기다리고 있던 아키히토일왕내외로부터 영접을 받고 반갑게 악수. 노대통령과 아키히토일왕은 만찬장인 호메이 덴 2층으로 오르면서 잠시 환담을 나누고 『오늘 만찬을 통해 반가운 사람들을 모두 만나게되어 기쁘다』고 인사. 이어 하오 8시35분쯤 노대통령과 아키히토일왕을 선두로 대통령부인 김옥숙여사,미치코왕비,나루히토(덕인) 왕세자부처,그밖의 왕족들 순서로 만찬장에 입장했는데 이순간 미리 테이블에 착석해있던 귀빈들이 일제히 일어섰으며 궁내청소속의 실내악단이 서울올림픽 공식가요 「벽을 넘어서」를 은은히 연주. 노대통령 내외와 아키히토 일왕 내외가 착석한 헤드 테이블에는 가이후총리 내외,사쿠라우치 중의원의장 내외,다케시타 나카소네 전총리 내외,쿠사바최고재판소장관 내외 등 일본측 인사와 최호중외무부장관등 우리측 수행장관들이 같은 열에 나란히 착석. 이날 만찬 음식은 제비집스푸 연어구이 등 주로 서양식이었으며 메인디시는 쇠고기였고 포도주와 일본주도 포함. ○…노대통령 내외는 하오 10시45분쯤부터 순쥬노바로 자리를 옮겨 일본 민속공연 「아악」을 일왕 내외와 약 20여분간 관람. 노대통령이 관람한 아악은 고대 한반도에서 전래한 고려악형식이었으며 노대통령은 민속공연이 끝난 뒤 연주자석으로 가 피리모양의 악기를 입에 대보기도 하며 연주팀을 격려. 이날 궁성만찬은 당초 하오 8시부터 10시30분까지 2시간30분간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노대통령과 아키히토일왕 사이에 환담이 길어지는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따라 45분이 길어진 밤 11시15분께야 종료. ▷1차 정상회담◁ ○…이날 하오 영빈관에서 열린 노대통령과 가이후총리간의 제1차 정상회담은 접견환담및 확대정상회담의 순서로 진행 ○가벼운 담소로 시작 하오 6시 정각 영빈관에 도착,접견실인 2층 사이란 노마홀에 들어선 가이후총리는 곧이어 입장한 노대통령과 환한 얼굴로 악수를 나누며 사진기자들을 위해 잠시 포즈. 노대통령과 가이후총리는 이어 2명씩의 배석자와 함께 자리에 앉아 가벼운 담소로 대화를 시작. 가이후총리는 이 자리에서 일본측의 사정으로 노대통령의 방일이 두차례씩 지연된 데 대해 송구스러움을 표한 뒤 한국내에 노대통령의 방일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방문을 결심한 데 대해 사의를 표명. 노대통령은 이에대해 『정달 어려운 방일이었다』고 털어놓고 『그런만큼 뜻있는 방문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며 『20세기를 깨끗이 정리하여 밝은 21세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강조. 가이후총리는 『각하께서 6ㆍ29 민주화선언의 선두에 나서 보통사람의 위대한 시대를 개척해 나가시는 것을 보고 신선한 인상을 받았다』며 『우리는 같은 연대 출신이므로 뜻을 나누면 대화로써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 가이후총리는 이어 『곧 있을 정상회담에서도 솔직히 말씀드리겠지만 과거의 역사를 깊이 반성한다』며 「공식 사죄」에 앞서 사죄의 뜻을 간략히 표명. 노대통령은 이에 「고맙다」고 응답한 뒤 자신가 가이후총리,아키히토 일왕이 가가가 32,31,33년생임을 들어 『서로 배짱이 통하는 동년배의 우리가 진정한 대화를 나누면 긴 역사속에서 짧고 불행했던 기간은 능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 ▷각계 인사접견◁ ○…노대통령은 영빈관에서 스즈키 도쿄도지사를 접견한 데 이어 나카소네(중증근),다케시타(죽하) 전총리,도이(토정)사회당위원장,이시다(석전)공명당위원장,오우치(대내) 민사당위원장 등 일 정계원로및 중진들을 차례로 접견. 다케시타 전총리는 노대통령을 만나 『이번 방문이 성공적이기를 빈다』고 했고 도이 사회당위원장은 『과거 양국간에 있었던 엄청난 일에 마음으로부터 사과한다』고 36년 식민통치등에 대한 사회당으로서 입장을 전달. ○일왕과 1호차 탑승 ▷환영식◁ ○…노대통령 내외는 이날 하오 1시20분 숙소인 영빈관 앞뜰에서 아키히토일왕 내외 나루히토(덕인)왕세자 왕족대표인 마사히토(정인) 일왕제 가이후 일총리부처 일본 전각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베풀어진 환영식에 참석,일 자위대 의장대를 사열한 뒤 일본측 환영인사들과 인사를 교환. 노대통령은 하오 1시19분 아키히토 일왕 부처와 영빈관 현관 입구에서 첫 인사를 교환한 뒤 붉은 카펫이 깔린 테라스에서 일왕 부처와 나란히 서서 의장대가 연주하는 애국가와일본국가를 들으며 새로운 한일 선린우호관계 발전을 다짐. 노대통령은 다나카 요시모토(전중의구) 수석영접위원의 안내로 사열대에 올라 의장대의 총례를 받은 뒤 도보로 의장대를 사열. 노대통령은 사열을 마친 후 환영식에 참석한 사쿠라우치요시오(앵내의웅) 일 중의원의장 쓰치야 요시히코(토옥의언) 참의원의장및 일 각료들과 차례로 악수를 나누며 인사. 노대통령은 10분간에 걸친 환영식이 끝나자 아키히토 일왕과 국빈 1호차에 탑승하면서 환영나온 도쿄 한국인학교 학생,일본국민교생,재일교민 등 2백명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했고 이들은 양손에 든 태극기와 일본국기를 흔들며 환호. ▷일 하네다 공항◁ ○…노대통령 내외는 24일 정오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에 도착,이원경 주일대사및 다나카 요시모토(전중의구) 일 외무성 의전장의 기상영접을 받은 뒤 21발의 예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트랩을 내려와 역사적 일본방문을 시작. 노대통령 내외는 이어 다나카 의전장의 소개로 나카야마다로(중산태랑) 일 외무장관 내외와 야나기 겐이치 주한 일본대사 내외등 일본측 영접인사들과 인사를 나눈 뒤 재일동포 화동으로부터 꽃다발을 증정받고 대기하고 있던 국빈차량에 탑승. 이날 하네다 공항에는 경호관계로 일반 환영객은 출입이 금지됐고 공항구내에는 일본경호요원들이 50∼1백m 간격으로 배치돼 삼엄한 경비를 펼쳤으며 일본 NHK­TV는 정오 뉴스시간에 생중계로 도착광경을 방영.
  • 일왕 “통석” 사과와 양국관계 앞날

    ◎「과거사」 매듭… 선린우호의 새 지평 열다/주ㆍ객체 명시… 우리측 요구 대체로 수용/대 미ㆍ중국 사과보다 훨씬 더 강도 높아/경협ㆍ교포지위 등 현안타결 가시화가 진실성 좌우 새로운 한일 우호선린관계의 개막을 위한 최대의 걸림돌이 일단 제거되었다. 노태우대통령의 방일 첫날인 24일 저녁 아키히토(명인) 일왕은 그동안 한일 양국간의 최대쟁점으로 부각되었던 「과거사과」 문제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책임과 반성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만찬사에서 히로히토(유인) 일왕이 지난 84년 언급했던 「과거사유감」(금세기의 한 시기에 양국간에 불행했던 과거가 있었던 것은 참으로 유감된 일이며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발언을 상기시킨 후 『일본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의 국민들이 겪으셨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은 통석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고 밝혔다. 일왕의 이같은 과거사에 대한 강도있는 사과표명은 그동안 우리 정부가 요구해왔던 ▲일제식민지 지배에 있어 가해자와 피해자의 명시 ▲분명한책임과 반성의 표현을 대체로 수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사과문은 일 식민지배의 가해자가 일본이며 피해자는 「귀국의 국민」 즉 한국인임을 적시했고 사과의 주체가 「본인」 즉 일왕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반성의 정도는 『통석(일본용어이나 우리말로 풀어보면 「뼈저리게 뉘우치는」의 뜻)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심도있는 반성」을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아키히토 일왕의 이러한 「사과수준」은 그의 선왕인 히로히토 일왕의 지난 84년의 「유감」보다는 크게 진전된 것이며 히로히토 일왕 재위시 미국이나 중국에 대해 행한 사과수준 보다는 훨씬 강도가 높다. 이런 점에 비추어 이번 아키히토 일왕의 대한사과는 일단 평가할 수 있다. 더욱이 일왕 사과에 이어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 총리가 이날 하오에 있은 노대통령과의 1차 정상회담에서 과거사문제와 관련,『과거의 한 시기에 한반도의 여러분들이 우리나라의 행위에 의해 견디기 어려운 고난과 슬픔을 체험한 데 대해 겸허하게 반성하며 솔직히 사죄한다』고밝힌 점은 과거사에 대한 일측의 반성정도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같은 일본측의 사과에 대해 이수정 청와대대변인은 『솔직히 사과하고 반성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논평하고 『이러한 일본의 사죄와 반성의 정신이 각 분야에 반영되어 한일간에 상호존중과 이해ㆍ협력의 바탕이 굳건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이같은 공식논평은 일왕및 일 총리의 「과거사 사과」를 대승적 차원에서 수용한 것으로 해석되며 이로써 한일 양국은 「불행했던 과거」에 대한 역사적인 첫 매듭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측의 심도있는 사과는 대체로 2가지 이유에서 연유되었다고 보여진다. 첫째는 한일간에 있어 과거문제를 가지고 언제까지 끌고 갈 수는 없다는 인식이 일본정부 수뇌부에 그런대로 확산됐다는 것이다. 둘째는 동서간의 벽이 무너지는등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경제력에 상응하는 국제정치적 위상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일본으로서 우선 한국과의 우호협력관계를 구축할 필요성이 점층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침략군국주의의 대명사 쇼와(소화) 일본의 인상을 씻고 평화지향의 헤세(평성) 일본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접국인 한국과의 선린관계를 내외에 과시하는 게 급선무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촉진되는 아키히토 일왕의 한국방문이 성사되기 위해서도 과거사에 대한 종결은 불가피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일왕의 대한 사과는 그가 일본국가의 상징이자 일본 통합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한일양국 관계발전에 족쇄가 되어온 과거역사의 그늘과 잔재를 치우는 일대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부분인 「반성」과 「책임」을 표시하는 데 있어 일본식 표현인 「통석의 염」을 사용함으로써 우리측 요청사항을 교묘히 우회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왕의 사과발언은 우리국민 감정까지 감안할 경우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는 못했다고 지적된다. 여기에서 분명히 인식해야 할 대목은 일왕과 일 총리의 심도있는 사과만으로 과거청산의 완전종결이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말해 일본측이 얼마나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 사과수준에 상응한 실질적인 조치를 하느냐에 따라 사과의 진실도가 좌우된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과거사의 잔재라고 할 수 있는 재일 한국인 법적지위,특히 교포 1ㆍ2세에 대한 3세와 상응한 조치여부,원폭피해자ㆍ사할린 동포 지원에 있어 일본의 성의정도가 바로 사과의 진실도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일본의 사과수준에 대한 우리 국민의 증폭된 욕구가 조성되는 것도 일본의 「행동」 가시화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일 양국이 새로운 우호선린의 동반자관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과거잔재의 청산과 병행하여 미래지향적인 협력체제가 서서히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가령 만성적인 무역역조의 개선,통상ㆍ경제분야의 협력,특히 과학기술의 협력 등은 바로 그 징표가 될 것이다. 노대통령의 이번 방일과 관련,국내적으로 「큰짐」이 되었던 과거사 문제가 이런 수준에서 일단 타결된 것은 그의 일단계 방일성과가 가시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 “분명한 사죄ㆍ반성으로 평가”/이 청와대대변인

    【도쿄=강수웅ㆍ이경형특파원】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을 수행하고 있는 이수정 청와대대변인은 24일 아키히토 일왕및 가이후 총리의 과거 사과와 관련,『일본국가의 상징인 일본천황과 정부를 대표한 총리의 이같은 태도표명은 일본이 지난날의 잘못된 과거가 일본의 행위에 의해서 초래되었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우리국민이 겪은 고통과 슬픔에 대해서도 분명히 사죄하고 반성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논평했다. 이대변인은 『우리는 이러한 일본의 사죄와 반성의 정신이 각 분야에 반영되어 지난 어두운 시절의 잔재를 씻고 한일 양국 국민간에 상호존중과 우호협력의 바탕이 굳건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하고 『21세기를 앞둔 우리도 너그러운 아량으로 과거문제를 여기서 매듭짓고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열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노대통령,오늘 일본 공식 방문/2박3일 일정

    ◎가이후총리와 2차례 정상회담/일왕 주최 만찬서 “선린우호” 강조 노태우대통령 내외는 일본의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총리 초청으로 2박3일간 일본을 공식 방문하기 위해 24일 상오 대한항공특별기편으로 서울공항을 출발,일본으로 떠난다.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두번째로 일본을 공식 방문하는 노대통령은 이번 방문에서 가이후총리와 두차례 정상회담을 갖고 재일교포법적지위ㆍ원폭피해자 문제등 과거사 관련 현안과 복수비자발급 확대등 범국민적 차원의 교류확대방안을 논의한다. 노대통령은 또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주변 정세변화에 따른 동북아지역국가간의 협력및 아시아ㆍ태평양지역 국가간의 협력문제와 무역불균형시정및 첨단기술 이전등 경제ㆍ과학기술 협력문제도 광범위하게 협의할 계획이다. 양국간의 당면 최대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과거 일제식민지시대에 대한 일왕의 사과문제는 노대통령의 방일 첫날인 24일 저녁 아키히토(명인)일왕의 주최로 열리는 궁성만찬에서 일왕만찬사를 통해 표명될 예정이다. 노대통령은 방문 첫날인 이날하오 일본 도쿄 영빈관에서 개최되는 환영행사에 참석한 뒤 가이후총리와 1차 정상회담을 가지며 저녁에는 아키히토일왕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만찬답사를 통해 과거역사의 잔재 청산을 바탕으로 한 선린우호 관계 발전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은 방일 이틀날인 25일 상오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국회에서 연설,한일관계를 역사적으로 조명하면서 과거사 청산을 강조한 뒤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한일양국간의 미래지향적인 협력의 동반자 관계정립을 역설할 예정이다. 노대통령은 또 방문 마지막날인 26일 상오 가이후총리와 2차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실질협력문제를 집중논의하며 이날 낮에는 일본기자 클럽에서 오찬회견도 갖는다. 노대통령은 이날하오 귀국길에 오르면서 오사카(대판)에 들러 교민리셉션을 갖고 현지교민들을 격려할 예정이다. 이번 노대통령의 일본방문에는 최호중외무 이종남법무 박필수상공 정근모과기처장관과 이원경 주일대사내외 이현우대통령경호실장 정호근합참의장 김진재민자당총재 비서실장 김종인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김종휘대통령외교안보보좌관 노창희대통령의전수석비서관 이수정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 최규완대통령주치의 박건우외무부의전장 김정기외무부 아주국장등 16명이 공식으로 수행한다. 노대통령의 방일 주요 일정은 다음과 같다. ◇24일 ▲상오=서울항공출발 ▲하오=환영행사(일 영빈관),일본내외예방,1차정상회담,일왕주최 공식만찬 ◇25일 ▲상오=국회연설,경제단체주최 오찬연설 ▲하오=교민리셉션,일총리주최만찬 ◇26일 ▲상오=2차정상회담 ▲하오=일본기자클럽 오찬회견,교민리셉션(오사카),귀국.
  • “잘못된 역사 잔재 대국적 청산을”/노대통령

    ◎태평양국 보완협력 확대 필요/태평양경제협 TV위성토론 연설 노태우대통령은 20일 『태평양은 동과 서의 문화가 융합하여 21세기에 더 큰 번영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고 말하고 『우리는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배경과 경제구조의 차이등 역내 국가간의 다양성을 조화시켜 이 지역 특유의 상호보완적인 협력관게를 발견시켜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하오 일본 도쿄 NHK대강당에서 태평양경제협의회(PBEC)가 「90년대의 세계적 환경변화에 따른 태평양 역내 협력,성장과 조화」라는 주제아래 개최한 제23차 총회의 TV위성토론에 부시 미대통령등과 함께 출연,녹화연설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 『자유시장경제와 자유무역체제에 바탕한 태평양협력의 견인차는 바로 자유기업』이라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또 동아시아지역에는 과거의 잘못된 역사의 잔재가 깨끗이 씻어지지 못한 채 국민간의 불화와 편견의 요인으로 남아있다고 지적한뒤 『적대국으로 2차대전을 치른 유럽 여러나라가 경제·정치적 통합을 이루어 나가고 있는 현실에서 보듯우리는 이같은 지난날의 잔재를 전진적·대국적 입장에서 청산하여 우호협력의 굳건한 초석을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위성토론에는 노대통령과 부시대통령 이외에 아일윈칠레대통령이 이날 하오 2시 20분부터 녹화연설을 했고 이밖에 가이후 일본총리,호크 호주수상,살리나스 멕시코대통령,이광요 싱가포르수상 등이 직접 참가했다.
  • “내각제 논의할때 아니다/김영삼대표회견/총체적개혁으로 난국 극복”

    ◎“폭력통한 체제변혁은 불용” 민자당의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은 11일 상오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오늘의 총체적 난국은 총체적 개혁으로 극복해야 한다』며 『민주화를 위한 정치적 개혁을 꾸준히 추진하고 과거의 오랜 권위주의시대의 법적ㆍ제도적 잔재들을 청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대표는 대표최고위원 취임후 처음가진 이날 회견에서 『지자제는 연내에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 변함없는 당론』이라면서 『5월임시국회에서 선거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야협상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김대표는 이어 『나는 과거 대통령중심제와 내각책임제 어느것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고 설명하고 『그러나 지금은 난국타결에 당력을 집중해야 할 때지 내각제개헌을 논의할 시점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대표는 최근 격렬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반민자당시위에 대해 『민자당 타도는 반지성적 행위로 용납할 수 없는 상식밖의 일』이라고 비난하고 『정당을 만드는 것은 자유이고 그 심판은 국민이하는 것으로 우리는 92년 총선,93년대선에서 당당히 심판받겠다』고 말했다. 김대표는 특히 『급격한 개혁은 안정을 해칠 수 있으므로 개혁의 차원을 뛰어넘어 폭력 등을 통한 체제변혁을 추구하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하고 『우리당은 온건ㆍ보수ㆍ중도세력의 결집체로서 점진적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대표는 또 『경제난국의 근본원인 가운데 하나인 부동산투기는 당의 운명을 걸고 근절하겠다』며 『고급공무원ㆍ정치인 등도 부동산투기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나면 척결하겠다』고 말했다. 김대표는 당내계파갈등 해소방안 등에도 언급,『3계파를 초월해 당무를 운영하겠다』고 말하고 『국회직을 비롯,당직등 모든 부문에서 원칙과 능력및 서열을 중심으로 결정할 것이며 계파별 안배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대표는 이밖에 김대중평민당총재와의 대화를 위해 당3역을 통해 적극적으로 협상하겠다고 말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