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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삼 정부 30개월/김 대통령에 바란다/각계인사 제언

    ◎계파·지역 떠나 전문인력 적소에 배치를/환경·교육·복지 등 생활개혁에 역점둬야 ○박정희 전서울 YMCA회장 앞으로 인재등용은 그 폭을 넓혀 계파,지역을 불문하고 전문성·도덕성·정직 그리고 신뢰가 가는 인물을 써야 한다.공식적인 조직을 통해 열성·책임감·실천력을 가진 사람을 찾아야 한다.국가 예산도 해마다 몇 %씩 관례적으로 올리기 보다는 모든 문제를 제로 베이스에 놓고 국정운영의 우선 순위를 정해 새로이 배정해야 한다.이때 환경보전·교육·복지·기술개발 등에 획기적인 예산배정이 되어야 한다.또한 윤리와 도덕성 회복에 역점을 둬 인간과 생명이 존중되는 정의와 평화의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바른 제도 개선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올바르게 사는 국민이 피해를 입는 세제는 개혁되어야 할 것이다. 지방자치제를 제대로 실시하려면 중앙정부와의 권한 상충문제를 잘 해결해야 할 것이다.위험한 시설,혐오시설을 내집 뒤뜰에는 둘 수 없다는 님비현상과 지역이기주의를 고칠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주민들을 위한 시설 때문에고통을 받는 지역에는 이에 상응하는 보상혜택이 주어져야 하겠으나 무조건 데모하면 정부도,법도 힘을 못쓴다는 잘못된 지역이기주의는 없어져야 한다. 김영삼 대통령의 이번 사면조치는 크게 환영을 받았다고 본다.화합정치,결단과 포용으로 다시 중지를 모으고 국민이 원하는 뜻을 헤아려 후반기 개혁을 추진해 주길 바란다. ○오석홍 서울대 교수 문민정부 전반기에 있어서는 김대통령의 과거 정치 경력때문인지 그 참여인원이 한정돼 있었다.정부와 전문성있는 인사들과의 연계가 원활하지 못했다.앞으로는 정책수행이라든지 인력동원에 있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적재적소에 참여하기를 바란다.많은 지식인들에 대해 문호가 개방되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되어야 한다.새 정부가 들어선 뒤 상해임시정부 관련인사들의 유해를 봉환하고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기로 결정한 것은 잘했다고 본다.이러한 일제잔재의 청산작업은 김대통령이 하지 않으면 우리 국민 성향으로 볼때 앞으로도 제대로 못했을 것이다.그런 문제는 다수결로 할문제가 아니다.대통령 자신과 지도층이 지닌 역사관에 따라 일관성있는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과거,현재,장래에 어떤 역사가 이어지는지를 통찰,확고한 정책을 수립해 과감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개혁추진으로 만인을 만족시키기는 힘들다고 본다.선거에서의 지지기반만 생각하다가는 개혁도 제대로 안되고 결국은 표도 잃게 된다.통치세력이 줏대를 세우고 밀고 나가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학수 서강대언론연소장 앞으로는 생활개혁에 중점을 둬야 된다.1년동안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1만4천명에 이르고 있다.우리가 월남전에 10년동안 참전해 4천3백명이 희생됐는데 1년에 월남전을 3번씩 치르고 있는 셈이다.자동차 안전 기준을 외국에 수출하는 것만큼 높이는 간단한 문제 하나도 해결 못해서야 다른 개혁이 되겠는가.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물건이 플라스틱,석면 등으로 이루어져 재생이 불가능하다.이런 것들을 종이로 전환시켜 재생이 가능한 환경제품으로 만들어야 한다.그것이 가능하려면 정부가 재벌들의 눈치를 보지말고 어느 수준까지 재벌들을 컨트롤해 생산주체가 스스로 국민들의 불편을 덜어주는 쪽으로 돌아서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 가정의 고체쓰레기 대부분이 신문이다.그에 대한 확고한 대책도 세워져야 한다.또 우리나라 언론의 대부분을 재벌이 소유하거나 언론사 스스로가 재벌화되고 있다.이런 언론 풍토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다양성이 존재하지 못하고 제대로된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작은 신문이 살아남고 작은 목소리가 반영되는 다양화된 사회가 되어야 한다.
  • 한국에선…/일본어 잔재(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16)

    ◎왜색 말 공사장·음식점 등 곳곳 난무/가꾸목·시다·시마이 모르면 일 못해­공사장/사시미·야끼만두·사라 일상용어로­음식점/조사 「의」자·수동태 함부로 쓰는것도 일본 말투 『히야시 잘된 맥주 있어요』 동네구멍 가게 등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히야시」는 「차게」라는 일본어다. ○생활속 뿌리내려 광복 50주년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치러지고 있지만 우리의 입가에는 일본의 냄새가 여전하다. 「곤색」이 「감청색」보다 자연스럽고 「기지」(옷감)라고 해야 더 잘 알 수 있다고 양복전문가들은 말한다. 「사시미(생선회) 2인분」,「야끼(군)만두」,「와리바시(소독저·나무저)」,「다마(알·구슬)」,「가라(가짜·헛)」,「요지」(이쑤시개),「우동」(가락국수)과 「다꾸앙」(단무지),「사라」(접시),「지라시」(낱장·광고)….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몰아낼 수 있는 일본말들이 일상용어에 헤아릴 수 없이 남아있다. ○지식인도 즐겨써 공사판 용어들은 더하다.「가꾸목」(각목·각재),「가다밥」(틀밥·찍은밥),「가다와꾸」(거푸집),「가도기레」(모서리천),「겐치석」(축댓돌),「노가다」(공사판 노동자),「데모도」(허드레꾼·조수),「마도와꾸」(문틀),「시다」(밑일꾼·보조원),「시마이」(마감),「십장」(감독·반장·조장),「쓰미」(벽돌공) 한참듣고 있노라면 우리말에는 없는 고유명사의 나열처럼 들린다. 『처음엔 거부감도 일었지만 이런 말을 모르고는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어 무의식중에 일본말을 배우게 됐습니다』 여름 방학동안 공사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대학생 김승경군(20)에게 이제 일본말은 전혀 낯설지 않다고 말한다. 공사판 뿐만이 아니다.그가 들었다는 한 운전사의 넋두리는 차라리 희화적이다.『기름을 「만땅꾸」(가득) 넣고 「빠꾸」(물러나다)하다가 벽에 부딪쳐 차에 「기스」(흠)가 났다』 그는 이표현을 소개하면서 씁쓸하다 못해 울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지식인이나 문인들이 「예삿일」이나 「흔한일」대신 「다반사」를 즐겨 쓰고 「담합」(짜다)과 「부지」(터)가 신문지면에 남아있는 현실에서 완전한 우리말 찾기는 결코 쉽지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쓰메끼리」(손톱깎이),「아다리」(수·적중),「오야봉」(우두머리),「와꾸」(틀·테두리),「쿠사리」(면박),「기도」(문지기),「파지」(종이부스러기),「히키」(끌기) 등도 이미 회사원의 하루 일과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일본식 발음 못지않게 우리말을 병들게 하는 것이 일본말법이다. 『1922∼1925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서울역사를 소개하는 역앞 표지판에 쓰인 글귀다.하지만 「지어진」은 「지은」으로 고쳐야 우리 어법에 맞는 표현이다.행동의 주체를 드러내길 꺼려 「지다,되다,되어지다,불리다」 등 수동태를 함부로 쓰는 것은 대표적인 일본말법이다.「교육악법도 반드시 개정되어야」와 「유망주에게 기대가 모아집니다」는 「개정해야」,「모입니다」로 고치는 것이 바른 말법이다. 조사(토씨) 「의」를 마구잡이로 쓰는 습관도 우리 언어감각을 마비시키고 있다.「만남의 광장」은 「만나는 자리·곳」이 옳은 쓰임이다.「나의 살던 고향」은 내가살던으로 고쳐야 한다.「헌혈의 집」은 「헌혈하는 집」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 이처럼 일제 식민지시대가 남긴 일본말의 찌꺼기는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깊숙하게 일상생활속에 자리잡고 있다.심지어 일본 영화나 대중가요 수입을 반대하는 지식인들조차 왜색 언어에서는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나랏말은 곧 정신 부산시 부산진구 당감1동에 있는 순수 민간단체 「한국글쓰기연구회」는 지난 83년 창립된뒤 달마다 「우리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라는 회보를 내고 있다.교사·학부모·대학생 등 회원은 7백여명에 이른다.알음알음으로 연구회를 찾는 이가 많아 회원은 갈수록 늘고 있다.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살아있는 우리말로 정직하고 가치있는 글을 써서 참된 삶을 가꾸게 하자는 것이 연구회의 목적이다.93년부터 경기도 과천에서 「우리말 살리는 모임」을 이끌어온 이오덕(70)옹은 지난 3월 효과적인 활동을 위해 모임을 이 연구회에 합쳤다.하루빨리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우리말을 이어줘야 한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지난 44년 이후 주로 농촌지역의 국민학교에 근무하면서보고 느낀 점을 바탕으로 글쓰기를 통한 교육을 연구·실천해온 이옹은 바른 글쓰기를 위한 책자를 여러 권 펴내기도 했다.그는 『지난 반세기동안 정신없이 남의 흉내만 내면서 겉치레에 몰두하다 보니 다리와 집·길·배·차들이 다 무너지고 불타고 가라앉고 떨어지고 하는 판이 됐습니다』며 『우리가 쓰는 말과 글도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말이 곧 정신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말은 병들고 『무엇보다 문인이나 지식인들이 퍼뜨리고 있는 어려운 일본말·말법은 마치 암세포 같이 우리말을 잡아먹고 우리말의 뿌리를 말려 죽이고 있습니다.딱하고 답답한 노릇이지요』 식민지시대를 체험한 구세대 뿐만 아니라 해방이후 세대인 소장학자나 대학생들사이에서도 일본말의 잔재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교과서와 참고서,외국번역서적을 접하면서 미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일본말과 말법에 물들고 마는 것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정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미 우리말처럼 굳어 버린 일본말 한·두마디를 바꾸는 것이현실적으로 무슨 이득이 있느냐고 반문한다.그러나 한 민족의 언어가 정신 생활의 토양이 된다는 점에서 광복 50주년이 되도록 떨쳐 버리지 못하는 일본말의 유령이야말로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라는 주장도 만만찮다.
  • 한반도 평화구축 「기본틀」 제시/김 대통령 광복절경축사에 담긴 뜻

    ◎「당사자 원칙」­「주변국 협조」 분명히/비핵화선언 등 기존합의 준수 강조 김영삼 대통령은 광복 50주년 경축사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향한 기본원칙들을 제시했다. 한반도의 평화는 남북한 당사자간 협의와 대화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는 「당사자원칙」이 그 첫번째의 것이다.주변국들은 「협조」할 뿐 결코 평화협상의 당사자가 되지 못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또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선언 등 모든 남북간 합의사항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도 못박았다.이는 6공말 남북간에 이뤄진 합의사항 준수를 김대통령이 처음 강조한 것이서 더욱 의미를 갖는다. 북한은 정전 체제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한국을 제외하고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고 있다.우리는 정전협정을 준수하면서 남북한 당사자간 협의에 의해 새로운 평화체제를 모색하자는 입장이다.김대통령은 이같은 우리의 원칙을 다시한번 분명히 했다. 남북 양측의 견해가 팽팽하다.어느 일방의 양보없이는 교착상태 타개가 어렵다.이때 중요한 것은 국제 여론이다.어느 주장이 더 국제사회에서 설득력을 얻느냐가 관건이다. 그동안 우리는 주로 남북 당사자 원칙만을 강조해왔다.한반도에서 평화가 파괴될때 그 피해자는 바로 7천만 우리 민족임을 고려할때 지극히 당연한 생각이다. 그렇지만 6·25 참전국인 미국 중국 등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가의 태도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김대통령은 북한이 남북 당사자 원칙만 수용하면 주변국의 역할에 대해서는 추후 협의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2+2」 「2+4」등으로 관련국을 명시하지 않은 것은 북한과의 협의 과정에서 융통성을 갖자는 취지로 이해된다.아울러 최근에 이어졌던 북측의 비우호적 행위때문에 획기적이고 보다 구체적 제의를 담으려던 정부의 의지가 약화돼 대북 메시지가 다소 원칙론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북한은 김대통령의 광복절 연설이 있기 하루전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북­미 평화협정체결」을 되풀이 주장하는 고루한 자세를 보였다.하지만 북한이 국제사회의여론에 밀려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에 응했듯 멀지 않은 장래에 남북 당사자원칙을 수용하게되는 상황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대통령은 남북문제에 있어 특히 「인내」를 강조했다.쌀회담에서 보듯 북한의 태도는 종잡을수 없다.그에 일희일비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통일의 길은 멀어질 뿐이다.줏대를 갖고 일관성있는 정책추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새로운 제안보다 기본원칙을 정리하고 기존합의를 실행에 옮기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판단한것 같다.쌀회담등에 따른 비판을 흔쾌하게 수용한 결과로 볼수 있다. 한편 김대통령은 연설에서 광복 이후 50년 역사를 절대빈곤의 시대,남북대치와 군사독재의 어둠의 시대로 구분지은뒤 미래를 선진,통일의 시대로 규정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광복』이라고 강조했다.통일을 위해 남북문제 해결과 함께 우리 내부의 화합,그리고 일제 잔재 해소를 역설해 시선을 모았다. 국내 문제와 관련,김대통령은 「일류국가」를 만들기 위해 사회 각 분야가 선진화되고 세계화될것을 촉구했다.특히 정치에 있어 파당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정착,국민을 통합시켜야 한다고 강조한 대목은 시기적으로 보아 특별히 의미있는 언급으로 받아들여 진다.
  • 김 대통령 8·15 경축사/전문

    ◎광복반세기 올해 남북관계 새 장 열길/민족정기 회복위해 총독부 철거 마땅/지속적 개혁… 21세기엔 역사의 전면에 친애하는 국민여러분,북한동포와 해외동포 여러분,그리고 자리를 함께 하신 내외귀빈 여러분. 우리는 오늘 뜻깊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민족사에 새 지평을 열자는 굳건한 결의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지금 우리의 귓전에는 잃었던 국권을 되찾은 기쁨으로 독립만세를 외치던 반세기전 그날의 환호가 생생합니다. 우리의 가슴은 온갖 고난을 뚫고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반세기에 대한 깊은 감회로 가득 차 있습니다.다가오는 21세기를 우리 민족의 위대한 시대로 만들자는 굳은 다짐속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선열들의 축복과 7천만 겨레의 기대가 이 자리에 충만해 있습니다. 이 경하스러운 날을 맞아 나는 먼저 조국의 광복을 위해 신명을 바치신 애국선열들을 추모하며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오늘의 이 나라를 만들기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묵묵히 땀흘려 일해 오신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7천만 동포 여러분.우리 겨레에게 지난 50년은 가혹한 시련의 연속이었지만 우리는 불굴의 의지로 이를 극복해 왔습니다. 우리는 민족분단과 동족상잔이라는 엄청난 비운을 안은채 국가건설의 대장정에 나서야 했습니다.물려받은 빈곤과 전쟁의 폐허 위에서 생존마저 위협받아야 했던 「절대빈곤의 시대」를 헤쳐나와야 했습니다.극단적인 남북대치와 군사독재 아래 민주주의가 질식하던 「어둠의 시대」를 뚫고 나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식민통치의 사슬을 끊던 불같은 투혼과 강철같은 의지로 우리는 분연히 일어섰습니다.불과 한세대 남짓한 짧은 기간에 우리는 가장 가난한 나라로부터 이제는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뛰어올랐습니다. 민주의 씨앗이 싹트기조차 어렵던 그 메마른 땅위에 문민 민주주의를 활짝 꽃피웠습니다.민족의 자존을 크게 드높이고 민족사의 정통성을 확고히 세웠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의 당당한 중심국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자유와 풍요의 민주공화국을 세우고자 했던 선열들의 소망이 마침내 실현되고 있는 것입니다.우리 민족의 위대한 저력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것입니다. 내외동포 여러분.우리의 성취가 이처럼 빛나는 것임에도 우리의 광복은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 있습니다.남북의 민족성원 모두가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광복의 완성일 것입니다. 통일의 큰 길을 열기 위해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정착시키는 일입니다.평화없이는 통일된 조국은 물론 민족의 장래 또한 기약할수 없습니다. 나는 민족의 안전과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 다음과 같은 기본원칙을 제시하는 바입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는 반드시 남북 당사자간에 협의·해결되어야 합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지킬 책임은 궁극적으로 남북한 당사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관련 국가들의 협조와 뒷받침도 필요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 안정과 세계 평화에 크게 기여할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남북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을 비롯한 모든 남북간의 합의사항은 존중되어야 합니다.평화의 첫걸음은 신뢰구축이며 신뢰는 서로 약속한 것들을 지키고 실천에 옮기는데서 생기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같은 기본원칙을 밝히면서 남과 북이 지금의 정전협정을 준수하는 가운데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적절한 대책을 함께 강구해 나갈 것을 촉구합니다. 광복 50주년이 되는 올해야말로 남북관계에 새로운 장을 여는 역사적인 해가 되어야 마땅합니다.나는 북한이 조속히 안정되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나오고 남북간에도 신뢰가 증진되기를 기대합니다. 아울러 국민여러분께 당부 드립니다.평화통일은 우리 모두의 절실한 염원이지만 그것을 추진하는 것은 냉엄한 현실의 과제입니다.통일문제에 대해서는 환상적인 기대도,성급한 포기도 모두 금물입니다.꾸준한 인내심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그것이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7천만 동포 여러분.광복 반세기라는 역사의 장을 넘기는 오늘 우리의 눈앞에 새 하늘,새 땅이 열리고 있습니다.우리 민족에게 무한한 희망을 주는 21세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역사의 전면에 나설 아시아·태평양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선조들의 꿈과 후손들의 소망이 담긴 민족의 꿈을 활짝 펼칠 때가 왔습니다.우리는 이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안됩니다. 이제 나는 7천만 겨레의 여망을 모아 민족이 나아갈 길을 역사앞에 엄숙히 선언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조국을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는 「일류국가」로 만드는 것,이것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진 민족사적 소명입니다.21세기를 우리 민족의 위대한 꿈을 실현하는 세기로 만들어 나갑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나라의 각 분야가 선진화되고 세계화되어야 하겠습니다.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고루 확산되어야 하며 한차원 더 높은 발전이 이루어져야 합니다.파당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국민을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통합하는 정치가 나와야 할 것입니다. 낡은 틀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와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는 새 정치가 나와야 합니다. 우리의 경제 또한 선진경제권에 진입해야합니다.경제의 규모가 더욱 커질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고도화되어야 하겠습니다.또한 성장의 과실이 국민 모두에게 고루 나누어지고 삶의 질을 존중하는 경제가 되어야 합니다. 정당한 부가 존경을 받고 분배의 정의가 존중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통일에 대비하는 경제역량 또한 구축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진정한 문화국가를 건설해야 하겠습니다.무엇보다 인간과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제도와 관행이 확고하게 정착되어야 하겠습니다.정신문화가 존중되고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실현되는 투명한 사회가 되어야합니다.민족정기를 드높이고 자랑스런 민족문화를 꽃피워야 하겠습니다. 셋째,인류와 세계의 발전에 더욱 기여하는 민족이 됩시다. 우리는 지금 역동적인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우리는 평화와 번영의 아시아·태평양 공동체를 만드는데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합니다.나아가,민족의 웅대한 꿈을 저 넓은 세계무대에서 펼쳐야 합니다. 세계의 모든 나라와 긴밀하게 협력하고당당하게 경쟁해 나가야 하겠습니다.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진정으로 기여하는 나라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역사는 청산과 계승을 통한 창조의 과정입니다.우리는 오늘 옛 조선총독부를 철거하는 역사적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이 건물이 철거되어야만 우리 민족사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경복궁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식민잔재를 깨끗이 청산하고 우리의 민족정기를 회복하자는 온 국민의 뜻과 의지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옛 조선총독의 관저를 철거한 것도 같은 취지에서 입니다. 옛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는 단순히 식민잔재의 외형적인 청산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그것은 우리 모두의 의식속에 남아있는 그릇된 역사의 잔재로부터 진정으로 해방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한·일 두나라 관계가 불행했던 과거의 그늘로부터 벗어나 미래지향적으로 발전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이 과거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건전한 한일관계의 구축은 일본의 과거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에 대한 건전한 반성의 토대위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오늘 광복 50주년을 계기로 애국선열 등 1천4백여분을 새로 독립운동 유공자로 모셨습니다.나라와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신 선열들의 애국애족정신은 우리가 이어 받아 후대에 전해야 할 소중한 유산입니다. 나는 광복 전반세기와 후반세기를 잇는 대통령으로서 역사의 창조적 발전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거대한 문명사적 변혁 앞에서 우리가 가야할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습니다.우리는 지금 안으로는 내실을 다지면서 밖으로는 21세기를 향한 역사의 격랑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더이상 미움과 분열과 갈등으로 소모할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미움을 사랑으로,분열을 통합으로,갈등을 조화로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나는 오늘 대통령으로서 헌법에 따라 대대적인 특별사면과 복권을 단행하였습니다.국회의 동의절차를 거쳐 대규모의 일반사면도 실시할 계획입니다.이는 뜻깊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우리 국민 모두가 대화합을 이루어 새출발하는 역사적 계기를 만들겠다는 충정에서 내린 결단입니다. 그러나 문민정부 출범이후에 이루어진 부정부패 관련자는 이번 조치에서 제외했습니다.이것은 부정부패는 반드시 척결한다는 정부의 단호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이제 온 국민이 하나되어 세계로 미래로 힘차게 전진해 나가야 합니다. 조국과 민족의 앞날이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를 통해 위대한 국민만이 위대한 역사를 창조한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었습니다.우리 모두 다시 한번 한민족의 위대한 21세기를 향해 힘차게 나아갑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을 세계화합시다.변화와 개혁을 힘차게 추진합시다.그리하여 세계의 중심에 우뚝서서 인류공영에 기여하는 「일류국가」의 꿈을 실현합시다. 50년후 광복 한 세기가 되는 그날,우리의 후손들이 오늘의 우리를 진정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합시다.감사합니다.
  • “일제청산… 이젠 통일에 나서자”/옛 총독부 첨탑 철거 각계 반응

    ◎「식민통치」 응어리 뽑아 가슴후련/민족의 자존·긍지 높이는 계기로/“오욕의 역사 다시는 없어야” 새다짐 일제 식민지 36년,오욕의 역사는 절단되었다.광복50주년을 맞은 15일 식민통치의 상징이었던 구 총독부청사의 첨탑이 철거된 것이다. 이날 상오 「왜의 상투」가 잘려나가던 장면을 지켜본 각계 인사,시민,학생들은 가슴속 깊이 응어리진 분통을 이제야 삭이게 됐다며 감격해 했다. 이들은 그러면서도 첨탑제거의 진정한 의미는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를 깨끗이 청산하는 것은 물론 다가올 「광복1백년」을 향해 「통일로 미래로」로 온 국민이 함께 전진할때 승화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온도표(68·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부회장)씨=이제야 일제잔재에서 벗어나 완전한 대한민국이 탄생했다는 감명을 받았다.앞으로 우리 민족은 힘을 길러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나보다는 나라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는 지혜를 기대한다. ▲이태동(서강대 문과대학장)씨=일본 제국주의의 잔재를 씻고 민족의 자존심과 긍지를 되찾는다는 의미에서 대단히 잘한 일이다.민족정신과 문화는 우리 스스로가 찾아야 한다. ▲손기정(84)옹=어서 통일이 되어 고향인 신의주에 가고 싶다.우리의 국력이 세계무대에서 신화를 이룩해 한민족의 기상을 만천하에 알리길 바란다. ▲박한(고려대 농구감독)씨=해방동이로서 너무 늦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일제의 망령처럼만 느껴졌던 구 총독부건물의 철거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진정한 광복인 통일을 향한 첫 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기도(민자당 국회의원)씨=광복 반세기만에 참된 광복과 통일의 길로 이어질 수 있는 계기로 받아들인다.첨탑철거를 계기로 심기일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그러나 과거를 무시해서는 안되며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아픈 역사의 교훈도 가르쳐야 한다. ▲박이도(시인·경희대교수)씨=통일된 조국의 세종로광장에서 광복 50주년 축하행사가 이루어졌으면 얼마나 기쁠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남과 북의 대결구도를 허물기 위해서는 우리의 국력을 신장해야 한다. ▲신명호(재정경제원 제2차관보)씨=과거 한많은 시대를 마감하고 미래를 향해 재도약할 시기가 왔음을 절감했다.이제는 과거의 반일감정을 청산하고 평화통일을 이루어 자랑스런 역사를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양호철(동서증권 부사장)씨=일제의 상징을 없앤 것은 당연한 일로 환영한다.이를 계기로 경제의 질적인 면과 사회복지,군사,외교 등에서도 앞서가는 나라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백승우(백승우·14·성재중1년)군=학교와 어른들로부터 일제가 나쁜 짓을 많이 했다고 배웠는데 왜 지금까지 총독부건물을 남겨두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공부를 열심히 해 나라의 힘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유순애(유순애·57·주부·강북구 미아2동 791의1142)씨=늦은 감은 있지만 잘한 일이다.이번 철거작업이 단순히 광복50주년을 기념하는 일회성 행사로 그쳐서는 안된다.우리 생활속에 알게 모르게 남아 있는 일제잔재를 없애기 위해 앞으로도 국민 개개인의 의식개혁과 더불어 체계적이고도 구체적인 사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우철(21·한민족축전 참가학생·수리남공화국)군=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6살때 이민을 갔지만 아버지에게서 우리역사에 대해 종종 들어왔다.수리남에 살고 있는 7가구의 한국이민 가족들에게 오늘 보고 느낀 것을 빠짐없이 전하겠다. ▲반제만(24·육군사관학교 4년)군=군의 젊은 간성으로서 다시는 힘이 없어 나라를 빼앗기는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
  • “한민족 기맥 끊기”… 경복궁에 터잡아/총독부청사 약사

    ◎14년 걸려 1926년 완공… 전각 4백칸 훼손 조선왕조의 정국 경복궁앞에 버티고 선 옛 조선총독부건물은 우리민족의 「정수리에 박힌 말뚝」.일제가 북악에서 종로 남산으로 이어지는 맥을 끊으려는 의도에서 건축했다.작약꽃송이 모양의 명당에 위치한 경복궁을 가로막고 있다.일제는 공사를 위해 건축학자와 사학자들로 구성된 고건축조사단을 파견해 조선의 궁성을 모두 조사한뒤 조선의 궁맥을 끊을 수 있는 최적지로 경복궁을 선택했다. 이 건물이 들어선 것은 지난 1926년10월1일.1911년 초대총독 데라우치(사내)의 지시로 4년간의 설계와 10년간의 공사끝에 완공됐다.기초설계는 독일인 게오르그 라란데가 맡았고 세부설계는 대만총독부를 설계한 노무라(야촌)와 구니에다(국지)가 했다.설계에만 4년이 걸린 것은 영국의 인도총독부나 네덜란드의 보르네오총독부보다 크고 웅장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기 때문이다.공사도 예정보다 2년이나 늦어졌다. 총독부건물의 규모는 대지 4만7천평에 동서로 2백42칸,남북으로 1백42칸.이 공사로 인해 경복궁의 강령전교태전 등 전각 4백여칸이 헐렸다.이는 경복궁 전체면적의 4분의1에 해당하는 것이다. 총독부건물은 「일」자 형태를 띠고 있다.일부 학자들은 『「대」자형인 북악산과 「본」자형인 서울시청건물과 아울러 공중에서 보면 「대일본」의 형상을 나타낸다』고 말한다.위치선정과 설계등 모든 점에서 우리 민족사의 기맥을 절단하고 식민통치를 영구화하려는 치밀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총독부건물은 10대총독 아베(아부)에 이르기까지 20년간 잔혹한 일제의 사령탑으로서 군림했다. 일제는 총독부건물과 함께 1927년 경복궁내 과거장등을 허물고 총독관저(구 청와대)를 지었다.풍수지리로 보면 총독부자리는 인체의 「입」,그리고 총독관저자리는 「목」에 해당한다.따라서 경복궁을 허물고 총독부와 총독관저를 지음으로써 왕조와 민족의 숨통을 억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광복후 총독부건물은 미군정청사로 사용됐다.과도 입법의회가 사용하기도 했으며 이승만대통령 정부출범이후 정부청사로 사용됐다.제헌국회 개회식,초대대통령 취임식,9·28수복 등 역사적 사건들이 이 건물에서 이루어졌다.중앙청이라는 이름은 과도 입법의회가 중앙홀을 사용하면서부터 비롯됐다. 이 건물은 6·25때 대파된후 그대로 방치돼 「유령의 집」으로도 불렸다.제대로 복구돼 정부청사로 다시 활용된 것은 5·16후인 지난 62년11월부터. 그러나 건물을 철거하자는 주장이 줄기차게 제기돼 왔다.아예 폭파하자는 강력한 주장도 있었다.하지만 재정형편이 감당할 수 없었다. 이 건물에 정부기관이 철수하고 국립중앙박물관이 들어선 것은 5공때인 지난 86년.정부청사 이전과 총독부건물 철거여론이 거세게 일자 정부는 3년여에 걸쳐 2백77억원의 개조비를 들여 박물관 개관을 일방적으로 강행했다.철거주장은 6공때도 제기됐으나 1천억원에 이르는 철거및 박물관 이전비용 부담때문에 무산됐다. 이같은 우여곡절끝에 50주년 광복절에 비로소 중앙돔 첨탑부터 철거가 시작된 것이다.총독부건물은 약 68년10개월간 서울 한복판에 버티고 서있었던 셈이다. ◎총독부 첨탑 철거 지휘 유원우씨/“준비해온 2개월 긴장의 연속… 무사히 들어내려 다행” 『일제잔재 청산의 상징적인 작업인 구 조선총독부 건물 중앙돔 첨탑 해체를 무사히 끝내게 돼 감회가 새롭습니다』 조선총독부 철거작업을 2개월전부터 총지휘해온 철거현장 소장 유원우(44)현대건설 건축부장은 15일 아침 첨탑이 들어내려져 국립중앙박물관 광장에 안착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영남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78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유씨는 아랍토후국 유전시설 공사장 근무등 해외근무 2년간을 빼놓곤 줄곧 국내 공사장에서 17년간을 보낸 현장통.건축과장 시절인 지난 86년 경희궁 개보수 공사를 관리하면서 유적지 현장 공사와 인연을 맺게 됐고 지난해 8월 조선왕궁역사박물관 신축공사를 현대건설이 맡으면서 현장 총책임자가 됐다. 『조선왕궁 역사박물관이 완공되는 내년 상반기에는 구 조선총독부 건물전체에 대한 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약 6개월이 소요될 이 작업은 첨탑해체보다 더 중요하고 위험한 만큼 신중한 준비작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첨탑 해체작업이진행되던 지난 2개월간은 긴장의 연속이었다』는 유씨는 『최근 다발하는 건축사고는 비양심적인 건설인의 소치』라며 조선왕궁역사박물관 완공과 구 조선총독부 건물이 완전철거되는 내년말까지 양심있는 건설인으로 현장을 지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 책으로 되새겨보는 광복 50주년/대형서점 「특별코너」를 살펴보면

    ◎항일투쟁사·일제만행 고발 서적 많아/해방후 현대사 다룬 책도 눈여겨 볼만 광복 50주년을 맞은 오늘 관련서적들을 읽으면서 지난날을 돌아보고 이 시대를 사는 의미를 되새기는 것도 뜻깊은 일일 것이다.대형서점이 정리한 관련도서 목록을 바탕으로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 주요서적들을 골라 본다. 올해는 한일관계를 다룬 책들이 유난히 많이 쏟아져나왔다.게다가 내용과 형식이 아주 풍부해 특정 사건·인물의 평가에서 양국 역사·문화의 본질 분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각이 연구서·소설·수기·비평 등 갖가지 형태로 선보였다. 올해 나온 관련도서들을 살펴보면 먼저 일제의 국토강점에 대항해 해외에서 벌인 항일독립투쟁을 소개한 것들이 돋보인다.독립유적지 기행을 비롯,독립운동가의 수기와 전기 등을 통해 자칫 세월에 묻힐뻔한 귀중한 증언들을 수록했다.또 일제의 침략정책을 분석한 연구서,친일파의 모습을 까발린 책도 여럿 나와 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만행도 집중 조명했다.종군위안부·징병·징용 등의 강제동원,한국인 원폭피해자의참상,관동대지진 때의 집단학살 등의 실상을 폭로하고 일본이 보상해야 할 부분은 하루빨리 해결하도록 촉구했다.이 가운데는 가해자측인 일본인들이 과거를 반성하는 뜻에서 낸 책들과 제3국인이 객관적 시각으로 일제를 비판한 것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일본은 없다」로 촉발된 일본비평서 붐은 올해에도 이어져 한·일 양국의 상대국 비평서가 많이 출간됐다.상대방의 약점만을 들춰내 비난으로 일관한 책들이 여전히 섞여 있지만 역사·문화를 깊이있게 분석한 책들도 여럿 나와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이밖에 아직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일제 잔재를 지적한 책도 여러권 나왔다. 광복이 「일제 마수로부터의 해방」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광복은 곧 민주주의로 상징되는 현대사회의 출발을 뜻하기도 한다.이런 점에서 광복이후 현대사를 다룬 책들도 눈여겨 볼만 하다.미군정 3년의 공과를 평가하거나,해방공간에서 남북의 어느 한켠에 서기를 거부하고 끝까지 통일 노력을 기울인 남북협상파의 궤도를 추적한 연구서들이 돋보인다.
  • 광복 50년/“조선 정궁” 경복궁 위엄 되찾는다

    ◎강녕전 등 8개동 완공… 10월 일반에 공개 광복50주년이 되는 올해 8월15일부터 조선의 정궁 경복궁도 그 위엄과 긍지를 되찾게 된다.경복궁을 가로막고 흉물스럽게 버티고 섰던 일제의 상징 구 조선총독부 건물의 중앙돔 첨탑이 이날 해체되면서 총독부건물의 철거작업이 본격화되기 때문이다.총독부 건물철거는 정부가 추진중인 경복궁 복원의 중추적인 작업으로 일제잔재 청산 뿐만 아니라 경복궁 복원 차원에서도 큰 의미를 담고있다. 문화체육부의 경복궁 복원 계획에 의하면 96년말까지 총독부 건물이 완전 철거되고 오는 20 09년까지 경복궁내에 모두 84개의 전각이 들어선다.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도 본래의 자리에 본디 모습에 따라 목조문으로 서게 된다.또 현재의 조선총독부 자리에는 회랑이 설치되며 조선총독부 미술관(구 민속박물관)도 98년까지는 모두 철거된다. 지난 91년 기공식을 갖고 시작된 경복궁 복원작업에 따라 지금까지 복원된 전각은 8개동 4백22평.강녕전·교태전·연생전·연길당·경성전·흠경각·응지당·함원전 등이다.왕과 왕비의 처소인 이 전각들에 이어 현재는 교태전 주변 행각들에 대한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당초 침전 복원계획의 85%에 달하는 공정이 마무리 된 셈인데 복원된 전각들은 오는 10월쯤 일반관람객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총 1천7백89억원의 예산이 드는 경복궁 복원공사에는 목재 약 4백50만재,기와 1백50만장이 소요되며 우리 전통건축술의 정수인 궁궐기축기법을 전승한 인간문화재 대목장·소목장·단청장 등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복원작업이 시작되기전 경복궁안의 전각은 일제의 훼손과 화재로 파손돼 36동에 불과했다.그러나 조선조 고종때만 해도 경복궁은 3백30여동의 전각에 7천여칸에 이르는 웅장한 궁궐이었다.13 95년 태조에 의해 창건될 당시엔 4백여칸 규모였으나 고종에 의해 18 67년 중건되면서 9천9백99칸에 이른다는 중국의 자금성 못지 않은 규모를 갖춘 것이다.오는 20 09년까지의 복원작업이 그 모두를 되살리지는 못한다 해도 잊혀진 조선 정궁의 당당한 모습은 재현해 내게 된다.
  • 광복 50년의 반성과 과제/이만열 숙대교수·한국사(특별기고)

    ◎일제탓 그만하고 통일 힘쓰자/「식민콤플렉스」 벗어야 참된 극일/힘 커진만큼 「세계봉사」 눈돌려야 며칠전 지난 50년간의 우리 나라의 성장과정을 비교하여 작성한 「통계로 본 광복50년」을 보고 느낀 것이 많았다.이 괄목할 만한 성장발전의 터전이 우리 세대의 피땀어린 노력 못지 않게 조국광복을 위해 바친 선조들의 희생에 있음을 알고 먼저 감사드린다.어떤 열매에는 반드시 이를 위해 씨뿌린 선각자들과 그것을 가꾸는 데 땀과 눈물로 헌신한 봉사자들이 있게 마련이다.해방 당시 우리가 식민지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것은 내적으로는 빈곤·좌절·무지·무비였고 외적으로는 외세와 거기에 얽힌 분단·갈등이었다.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성장·발전한 것은 조국이 광복을 맞아 자유롭고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우리 민족이 노예민으로서가 아니라 자유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중요한 발전요인이라면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광복을 위해 투쟁하신 선조들이었다.여기서 우리는 조국광복의 역사적 의미를 민족의 생존·발전과 관련하여 다시 되새기게 된다. 광복 당시 우리는 신생 조국을 향한 이상을 갖고 있었다.그것은 분명 분단된 나라가 아니라 통일된 조국이었다.정직과 근면,신의와 절제의 정신이 빠져버린 자본주의체제도,빈곤의 평등을 전제로 인간의 창의성을 말살시켜 버린 사회주의체제도 아니었다.치열한 경쟁이 인간성을 마비시키고 개인이 공동체를 파괴하는 그러한 사회를 꿈꾸지도 않았다.우리의 이상은 넉넉하지 않더라도 서로 나누고 여유가 없더라도 서로 도우며 고통과 슬픔 중에서도 이웃의 아픔에 동참하는 두레정신의 실현과 그러한 공동체의 건설이었다.일제 침략자들에 의해 갈갈이 찢어지고 무너진 민족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러한 두레공동체정신의 회복을 절실히 필요로 하였다.한편 해방 당시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통일독립국가를 목표로 하고 있던 선조들은 멀리는 문화국가의 이상을 꿈꾸고 있었다.부강한 나라보다 아름다운 나라를 원했고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우리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였다.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고 하였다.오직 한없이 갖고 싶어한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었다.광복 당시의 이같은 이상으로 지난 50년간의 우리 사회를 돌이켜 볼 때 부끄러움을 금치 못한다.그러나 그 이상은 지금도 살아 있어서 우리의 목표가 되고 우리를 격려하고 있다. 며칠전 일본의 신임 문부상 시마무라(도촌의신)의 「망언」이 또 우리를 분노케 했다.일본 지도자들이 「치고 달아나고」「뱉고 사과하는」수법은 오랫동안 보아온 터이지만 그것을 일본인들의 탓으로만 돌리고 우리는 분통이나 터뜨리는 것이 과연 온당한 자세인지 적어도 광복 50주년의 이 시점에서는 좀 냉철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묻는다.우리 안에는 일본인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자세를 보여준 소위 지도자들이 없으며 지금도 식민주의사관에 젖어 있는 지식인들이 없는가.지금까지 우리는 일본에 대해서만 침략 사실을 인정·사죄·배상하라고 강박해 왔다.이 요구의 정당성은 「공소시효」를 무시하도록 만들 것이다.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우리 안에 있는 친일·반민족자들에게 얼마나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었으며,일제의 잔재를 스스로 청산하려고 애썼는가.우리 안의 이같은 문제를 두고 일본에 대한 요구가 관철될 수 있을까.또 분단을 식민지의 유산이라 하면서 일제를 원망해 왔지만,36년보다 긴 50년동안 그것도 같은 동족끼리 분단문제를 어떻게 처리해 왔는가.냉전시대에는 강대국 때문에 우리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했다고 하자.그러나 얄타체제는 무너졌고 남북이 주체를 외쳐온지가 벌써 수십년이 되었는데도 분단문제는 민족 전체의 염원과는 달리 더 악화되어 가고 있다.민족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이 부끄러움을 우리 세대는 후손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이런 점들을 알고 있는 일본이기에 그들은 자주 계산된 발언을 한다.그들은 우리가 잊을 만하면 망언으로 「경고」하면서,역설적으로 우리의 「역사의식」을 환기시켜 주고 있다. 지난 50년은 분단과 민주화의 시련이 겹친 시기였지만 그 연륜만큼의 성숙을 위해 애쓴 시기이기도 했다.정치의 후진성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은 확고해졌고 경제성장은 기적에 가까울 정도라고 한다.교육·문화와 과학·기술의 성장도 괄목할 만하다.그럼에도 이러한 성장에 알맞은 성숙을 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우선 대일관계에서 식민지 잔재청산의 요구 못지 않게 식민지 피해의식의 심리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우리 측에서만 보면 그런 심리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일본이라는 벽」을 넘지 못할 것이다.「식민지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이제는 경제·문화의 성장만큼이라도 이웃과 세계를 섬기는 봉사자로서의 책임에 눈뜨고 앞장서는 성숙한 민족이 되어야 한다.언제까지 제국주의 세력에 비판만 가하면서 세계를 향한 자신의 봉사적 책임을 외면해야 할 것인가.과거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민족을 차별·학대했던 역사를 상기하면서 이런 정도의 성장에 도취된 듯 벌써 그런 못된 전철을 밟고 있는 우리의 자세가 매우 안타깝다.쉬운 예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처우는 분노에 가깝다.나눔과 섬김이 없는 부와 명예는 자신을 부패하게 만들고 이웃을 더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광복 50년은 또 우리에게 해결해야 할 많은 숙제를 남겨 놓았다.50년간의 성장·발전에 가려져 있는 그늘진 부분들이 우리 공동체의 고민이요 과제다.21세기를 몇년 앞둔 우리는 대내적으로 정의와 인권에 바탕하여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대외적으로는 열린 민족주의에 근거하여 자주국가를 공고히 하면서 민족적으로는 평화통일을 수행해야 하는 민족사적 과제를 안고 있다.이 시대적인 소명에 제대로 부응할 때 우리는 민족사에 부끄럽지 않은 세대로 남게 될 것이다.
  • 교육현장 일제 찌꺼기 말끔히 씻자/「초등학교 10조」 보급 운동

    ◎「국교」명칭 변경계기 교사들 동참/“내면적 의식변화가 진정한 광복”/주요 내용/학교시설 개방… 주번­반장제 폐지/운동회방식 변경·폭언­폭행 등 없게/종 치지말고 번호­출석 그만 부르기 광복 50주년을 맞아 국민학교 명칭이 54년만에 초등학교로 바뀌게 되자 일선 국교에선 이번 기회에 교육현장의 일제 찌꺼기들을 말끔히 씻어내자는 목소리가 드높아지고 있다. 교실과 운동장 곳곳에 「황국신민」의 모습을 그대로 둔채 단순히 명칭과 간판만 바꾸어서는 일제의 잔재 청산과 극일의 길을 열 수 없다는 인식이 크게 확산되고 있다. 이에따라 최근 서울시내 상당수 일선 학교·교사들은 통제와 획일에서 벗어나 자율과 다양성이 중시되는 교실을 만들기 위해 「초등학교 10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소프트웨어의 변화를 부르짖고 있다. 「제1조,각종 학교 시설을 지역 주민에게 개방하자」 지금까지 학교문이 굳게 닫혀있었던 것은 「학교는 곧 관」이라는 일제 때부터의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제2조,학부모가 교사를 어려워하는 것이 미덕이 되어서는 안된다」 교사를 자식의 성적과 미래를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권력」으로 여기는 풍토는 없어져야 한다. 「제3조,주번제도를 없애야 한다」 아침마다 주번이 교문앞에 서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감시·감독」하는 것 역시 일제시대의 잔재이다. 「제4조,반장제도도 없애야 한다」 수업시간마다 「차렷·열중 쉬어·경례」를 호령하는 모습도 군국주의의 찌꺼기이다. 「제5조,인사예절을 바로 가르쳐야 한다」 교사에게는 인사하면서 주민에게는 선뜻 고개를 수그리지 않는 것은 일제시대 교육이 남긴 비뚤어진 인사법이다. 「제6조,번호 출석은 이제 그만」 『1번』,『2번』,…『50』번과 같이 번호로 불리는 「인격모독」과 「개성말살」의 의식을 물려주어서는 안된다. 「제7조,상급기관 관계자나 외부 손님이 찾아오면 대청소를 하는 분위기도 바뀌어야 한다」 교사의 권위와 편의를 위해 「얼굴이 비치도록」 유리창을 닦아대는 대청소 관행은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와는 거리가 멀고 노동력을 빼앗는 것이다. 「제8조,종을 치지 말자」교사는 수업시간을 재량껏 줄이거나 늘릴 수 있어야 한다. 「제9조,운동회도 일제시대 이후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집단체조와 기마전 등의 운동회 종목과 형태,진행과정,상명하복식의 전달체계,청군과 백군으로 나누는 통제 체제를 탈피해야한다. 「제10조,폭언과 폭행·상급자 눈치보기는 이제 그만」 고학년의 저학년에 대한 명령·억압은 민주적 사고로 전환,사랑과 존중으로 대체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일선교사들은 전국 5천7백72개 국민학교마다 소요될 학교간판교체등 33만원씩의 기본 비용을 포함,명칭 변경에 따른 20억8천만원의 외형적인 예산의 책정으로 개칭의 과업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개칭의 진정한 의미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 정치개혁의 과제와 방향/정책기획위 정책포럼 중계

    대통령자문기구인 정책기획위원회(위원장 서진영)는 11일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정당정치 현실과 개혁방향과 선거제도 문제와 개선방안을 주제로 제2차 정책포럼을 가졌다.이날 정책포럼의 주제발표 및 토론 요지는 다음과 같다. ◎정당정치 현실과 개혁 방향/최한수 교수 건국대·정치학/분당·탈당땐 의원직 박탈/이합집산 철새 발못붙이게 정당의 성격변화에 따른 정당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정당의 핵심기능은 후보추천과 그의 당선을 돕는 「선거기능」이며 이른바 「정책정당」은 허구다.정당의 정책은 정당 차원이라기 보다는 후보(의원) 개인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따라서 사실상 가부장적이고 권력배정적인,당의 이름을 빈 의원들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고 더 나아가 해제되어야 한다.우리나라의 정당 개혁은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한국정당이 안고 있는 대표적인 문제는 정당구도와 운영의 취약한 민주성,지역주의를 배경으로 하는 가부장적인 사당화,지역주의 토대의 지역당과 지역패권적 1당 지방정부,하루살이 단명정당,무소신 무정견속에 이해에 따른 합종연횡의 이합집산에 의한 불안정한 정당체계 및 전근대적인 당원구조등이다. 정당의 제도화를 촉진하고 정당체계의 안정화를 기하며 당리당략과 사리사욕에 의해 이합집산하는 정당문화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분당 및 탈당하는 의원은 의원직을 박탈,즉시(45∼50일이내) 보궐선거를 해야한다.지역주의타파를 위한 응급조치로 중대선거구제로 바꿔야 한다.여당의 안정적인 다수의석 확보를 위해서는 다당구도를 통한 정책연합을 유도한다. 여소야대 국회에 대비하여 여권연합 또는 통합의 정치관행이 필요하다.지역주의 구도에서의 내각제는 정책연합 대신 지역연합으로 인한 망국적인 지역주의 심화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연합이 필요한 상황이 초래되면 내각제적 요소가 가미된 우리 현행제도를 「대통령­수상제」 형태로 적절히 운영하는 것도 고려의 대상이다. 중대선거구제하에서 소수당 난립을 방지하고 정당연합을 촉진하여 대정당 중심의 국회가 구성되도록 원내교섭단체 구성요건을 강화하여 현재의 20명을 60명으로 상향조정해야 한다.또 교차투표를 제도화하고 유권자들의 의원에 대한 감시·평가수단으로 대부분의 표결은 기명으로 해야한다.대통령으로부터 여당이 조화로운 자율성을 확립해야 한다.여당이 정부에 예속화되면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야당은 결국 정부의 전위대인 여당을 공격하지 않을수 없다. 정당원의 구조를 연고주의에서 이익지향적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이익집단과 노조의 정당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부정과 투쟁,야누스적 술수의 정치꾼들은 이제 자리를 비켜주어야 한다.토론과 타협,양심과 전문성을 갖춘 새 정치인들이 파격적으로 충원되어야 한다.과도한 국고보조로 인하여 비생산적인 군소정당의 난립과 정당불신풍조를 막기위해서 정치자금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정당의 조직개혁방향과 관련,현행 지구당구조를 선거구협의회로 전환해 대의원을 직접 선거의 득표율,활동당원수 등을 기준으로 할당선정하는 경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국회의원후보 공천은 지역별 특성을 고려하여 광역시와 도를 분리해 선출방법을 다양화해야 하는데 광역시 후보는 협의하향식으로,도급 후보는 하향식 제한경선,상향식 선정,중앙당·지역구 연석협의 확정 등의 방법으로 선출할 수 있다.건실한 지구당의 정당활동을 통한 선거운동이 가능하도록 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 ◎선거제도 문제와 개선방안/김선종 교수 강원대·정치학/중대선거구제·비례제 도입/「지도자중심의 붕당」 탈피해야 실천적 민주주의를 달성하고 민주주의 제도화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의회와 정당같은 정치적 하부구조의 민주화에서부터 그 출발점을 찾아야 한다.특히 당의 하부구조의 민주화와 자율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지방정치시대에 지역정당의 역할과 그에 따른 위상을 강화할 수 있게 해주며 이는 나아가서 중앙당의 당내 민주주의를 활성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한국 선거제도의 개혁은 3가지 필요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참신하고 유능한 정치세력이 정치권으로 진입하는 제약이 되는 권력과 정치의 독과점 현상을 구조적으로 개선하는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둘째,정책중심의 정치적 경쟁이 부재한 상황에서 인물과 지역중심의 투표성향이 고질적으로 구조화 되고 있는 정치구조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새로운 차원의 정치적 경쟁의 장을 열어가는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셋째,표의 등가성과 대표의 정확성 및 정치적 안정과 같은 민주주의의 보편적인 가치를 이땅에 뿌리내리는 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아울러 선거구의 재획정 과정에서는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와 한국적 특수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절충하기 위한 기본원칙과 기준이 설정돼야 한다.국회의석은 3백석이내로 하되 지역구 대 비례대표 의석의 비율은 2대1을 유지할수 있도록 명문화할 필요성 등을 제도적·구조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필요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이상적인 선거제도는 중대선거구제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결합하는 형태다.중대선거구는 전국을 57개의 선거구로 재획정하여 전체 2백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한다.지역의 특성과 민주주의적 보편성의 가치를 체계적으로 고려하여 한 선거구에서 2∼6명을 선출하며 이럴 경우 각 지역구별로 선출되는 의원은 평균 3.5명이 된다.유권자는 후보자 가운데서 1인에게 투표하고 당선자는 선거구의 크기에 따라 각 정당별 득표비율에 따라 결정한다. 위로부터의 주체적 역량을 결집해 「미완성의 정치혁명」을 완성시키기 위한 정치개혁적 차원에서 획기적으로 도입되는 정당투표제는 국민과 정당,국민과 정부 및 시민사회와 정치와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시키는 전환점이 되리라고 생각한다.정당의 기능과 역할 및 업무수행 능력에 대해 국민이 표로써 지지 또는 응징을 표출한다는 것은 정당을 길들이기 위한 국민적 견제가 제도화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권위주의적 유산과 잔재에 안주해온 기존의 정당을 「지도자 중심의 붕당」으로부터 「정책중심의 대중정당」으로 환골탈태하도록 강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될 것이다. 이제는 개혁지향적이고 참신한 정치세력과 전문적 지식을 갖춘 인재를 과감하게 영입하여 지배집단 내부로부터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 넣고 또한 정당의 이익 결집 능력과 정책개발을 통한 업무수행 능력을 배가시킴으로써 「국민과 함께 하는 정당」 「생활정치를 구현하는 정당」 그리고 「세계화를 주체적으로 선도하는 정책정당」으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것이 국민적 지지를 확대하는 최선의 방안이 될 것이다. ◎정책기획위 토론 요지/내각제는 관료 권한강화만 초래/공동선 추구 시민단체 정치참여 중요 ▲이광훈 경향신문 논설주간=우리 정치의 후진성으로 정치충원 채널의 전근대성을 들 수 있다.가방심부름하는 수행비서로서 오랜 도제적 관계를 견디어야 하는 정치입문 풍토에서 자라온 국회의원들은 아직도 능력보다는 선수를 중시한다. 정당 사무처에서 오래 몸담아도 정치에 입문할 길이 없어 집권하면 국영기업체에 「취직」하는게 고작이다. 이익집단의 정치참여도 중요하지만 법과 정의,공동선을 추구하는 시민단체 등 가치집단의 정치참여가 더 중요하다.비례대표가 야당의 공천장사와 여당의 나눠먹기에 악용되지 않기 위해서는 직능대표성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 ▲이삼열 숭실대교수=권력의 독과점 현상을 막고 합리성·규범성의 지배를 확대해야 한다.이를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 우리나라대통령제는 세계에서 가장 비대한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권력을 잡겠다는 욕심에서 파당과 이합집산,보스중심의 정치가 만연한다. 입법부나 사법부의 구성에 대통령이 사실상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어서 모든 일에 대한 책임과 비난이 대통령에 집중된다.따라서 대통령의 권한은 약화시키되 대신 4년을 임기로 한차례 중임을 허용해야 한다.그리하여 대통령은 외교·안보·통일문제 등에 연속성을 갖고 집중해야 한다. 정당구조는 각계 전문대표와 지역대표들에게 당원자격으로 참여를 허용,상향식 운영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의석의 3분의 1은 비례대표를 허용해야 하지만 중·대선거구제는 우리 현실에서 또다른 소지역 대표들의 나눠먹기를 양산할 수 있다. ▲서경석 전경실련 사무총장=정치개혁의 방향상실로 국민들은 허탈감,무력감에 빠져 있다.정치개혁은 더 이상 정치의 공급자들에게만 맡길 수 없다.지난 임시국회에서 여야가 야합으로 선거구를 획정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정치에 대한 환멸이 정치개혁의 유리한 여건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개혁은 법으로만 되는게 아니다.분당이나 탈당시 의원직을 법으로 박탈하자는 주장은 정치개혁을 위해 탈당하는 의원을 제약할 수 있다.정치는 자유경쟁의 원리를 기본으로 해야지 또다른 규제로는 안된다. 중·대선거구제엔 반대다.이는 내각제를 조성하며 내각제는 지역할거주의가 팽배한 우리 풍토에서는 관료의 권한강화만을 가져올 것이다. 대도시에서는 대선거구제를 채택하되 농촌지역은 귀속의식을 고려,소선거구제를 배합하는 방식은 고려해봄직하다. 단체의 선거운동 금지조항 폐지에 적극 찬성이다.여당은 재야단체를 야당은 관변단체를 제어하기 위해 이 조항을 만들었지만 이는 정치를 둘러싼 주변단체들의 비판과 위협을 봉쇄하고 기득권,특권을 유지하려는 정치권의 인위적 진입장벽이다.참신한 개혁세력의 역할에도 장애가 되고 있다. ▲손학규 민자당의원=개방성,민주성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 이 정부가 효율성,경쟁력을 높이는데 최대의 장벽은 지역분할구도다.이를 타파하기 위해 선거제도는 단기적으로 중·대선거구제가 돼야한다.도폐지를 포함한 지방행정구조 개편도 추진해야 한다. 책임정치와 정치의 연속성을 위해 중임제를 실시,집권자에게 국민의 심판을 받을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새로운 사고,축소·분산된 역할을 수용할수 있는 탈권위주의적 인물로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 ▲박상섭 서울대교수=비례대표도 우리 풍토에서는 보스의 권한강화만을 가져올 수 있다.정치권력과 사회의 단절은 정치충원의 파행성을 가져오고 있다.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 50여년만에 벗은 일 잔재 오명/「국민학교」 명칭 변경 의미

    ◎소학교­보통학교­심상소학교로 불러/일 제국주의 산물… 현학제와도 안맞아 정부가 11일 국민학교의 명칭을 「초등학교」로 바꾸기로 한 것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늦게나마 일제의 잔재를 청산해야 하고 명칭 자체도 부적절하다는 여론을 적극 수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국민학교라는 이름은 1941년 2월28일 일왕 히로히토가 칙령 제148호 「국민학교령」을 내린데 서 비롯된 것으로 광복후에도 고치지 않은채 54년동안 그대로 사용돼 자주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일본이 국민학교라는 명칭을 쓰도록 한 목적은 민족말살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국민들을 태평양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것으로 한국말고도 일본·대만에서도 적용됐다. 이때 「국민」은 민족이나 백성이라는 뜻보다는 「황국신민」의 뜻으로 보아야한다.이런 이유 때문에 대만은 물론 일본조차도 광복직후인 46년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버리고 「소학교」로 바꾸었다. 41년 이전에도 국민학교 명칭은 여러차례 바뀌었다.1883년 원산학사에서 시작되는 우리의 근대교육은 초등과 중등의 구분없이학사나 학당이라는 이름을 학교의 의미로 썼다. 1894년 갑오경장 직후 비로소 신식 교육체제를 갖추게 되면서 학교등급도 구분되어 「소학교」가 생겨났고 이 명칭은 「보통학교」로 바뀐 1906년 8월까지 사용됐다. 「보통학교」는 「내선일체」의 구호를 내세운 민족말살정책에 따라 1938년 「조선교육령」이 공포됨으로써 「심상소학교」로 다시 개명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생겨난 「국민학교」는 정부수립이후 교육법에 그대로 명시됐고 50년이 훨씬 지나서야 일제의 잔재라는 오명을 벗게됐다. 정부가 이번에 개명을 하게된 데는 일제의 잔재라는 이유말고도 명칭자체가 전체·제국주의의 산물이고 현행 학제와 맞지않으며 「프라이머리 스쿨」이라고 부르는 국제적인 추세에도 어긋난다는 견해가 작용했다. 본래 국민학교의 어원은 나치 독일의 「폴크스 슐레」를 일제가 그대로 옮긴데서 유래하며 의무교육이 중학교까지 확대되는 현실에서 국민학교만 국민생활에 필요한 교육을 하는 학교로 볼 수 없고 초·중·고등교육의 학제에 비춰서도 부적합하다는논리였다. 이에 따라 한국외국어대 박창희 교수 등이 중심이 된 민간단체들의 연합체인 「국민학교 명칭 개정을 위한 협의회」에서 본격적인 개명운동을 벌이기에 이르렀으며 3만여명의 서명을 받아 4건의 개명청원이 국회에 제출됐다. 명칭의 대안으로는 「초등학교」 「기초학교」 「보통학교」 「어린이학교」 「새싹학교」 등이 제시됐으나 「초등학교」가 가장 적절한 명칭으로 받아들여졌고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45.6%,교육관계자의 69%가 찬성할 만큼 호응을 얻었다. 한편 명칭변경에 따라 전국 5천7백72개의 학교간판과 학교직인·교기 등을 새로 제작하는데 20억8천만원 가량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교육부는 추정하고 있다.
  • 「국민학교」명칭 「초등학교」로/“일제잔재 청산”… 54년만에 바꿔

    ◎정기국회 통과 즉시 사용 국민학교 명칭이 54년만에 「초등학교」로 바뀐다. 박영식 교육부장관은 11일 『광복 50주년을 맞아 각계에서는 아직까지 청산되지 않은 일제의 잔재를 깨끗하게 청산하여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한 일들을 전개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국민정서와 세계적 추세에 부합하는 새이름으로서 국민학교 명칭을 초등학교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1941년 일제의 칙령인 「국민학교령」으로 정해진 국민학교 명칭이 54년만에 개명됐다. 교육부는 올 가을 정기국회에 국민학교 명칭이 규정된 교육법 관련규정 개정안을 제출,통과대는대로 새 이름을 쓰기로 했다. 교육부는 그동안 국민학교의 새로운 이름으로 기초학교와 소학교,어린이학교 등을 검토해 왔으나 초등학교가 가장 적합하다는 여론이 우세해 이를 새 명칭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국민학교 명칭 개정에 대한 논의는 지난 87년 교육개혁심의회가 학제 개혁안의 하나로 거론한데서 시작됐다가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미뤄져오다 90년 이후 「국민학교 명칭개정 협의회」 등 민간단체의 주도로 개명 운동이 활발히 전개돼 왔다.
  • 조선총독부건물 철거를 보며/안휘준 서울대 박물관장(기고)

    ◎이마에 박힌 못 이제야 뽑히는구나!/일제잔재 청산은 국민적 합의… 뒤늦은 철거반대 안될일 국립중앙박물관 측의 초청을 받아 7일 상오10시쯤에 시작된 구 총독부건물의 첨탑절단작업을 참관할 수 있었다. ○참관인사 모두 숙연 높이가 8.5m나 되는 이 첨탑은 7일과 8일에 걸쳐 다이아몬드 줄톱으로 잘려진후 오는 15일 광복50주년을 기하여 3백30t급 크레인에 의해 광장에 내려질 예정이다.이로써 내년까지 이어질 구 총독부건물의 철거작업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이다.일제의 잔혹한 통치로부터 벗어난지 무려 50년만에 이루어진 실로 의미심장한 일이다.이 행사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모두 숙연한 가운데 매우 감격스러워 하는 모습이었다.각자의 가슴속에 오가는 만감을 어찌 일일이 다 필설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중인 이 구 총독부건물의 철거문제에 관해서는 문민정부 출범이후 줄곧 많은 논의가 있었고 그 논의의 결과 철거키로 결정이 되었던 것임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또한 철거를 계기로 일제에 의해 마구훼손된 경복궁을 복원하고 용산 가족공원에 제대로 된 새 국립중앙박물관을 짓기로 결정이 나서 이에 따른 모든 일들이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다.용산박물관 설계안의 국제공모와 우수작품의 선정,구 총독부건물철거후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임시로 사용할 왕궁박물관의 건설,경복궁복원의 착수,그리고 7일 시행된 첨탑절단작업은 그 뚜렷한 증거들이다.이러한 모든 일들은 국내외에 널리 공표되었으며 이미 본격적인 단계에 들어서 있다.「국민의 혈세」도 많이 투입되었음은 물론이다. 이와 같은 단계에서 또다시 구 총독부건물 철거반대론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어서 뜻있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착잡하게 하고 있다.반대론자들의 주장도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아끼는 심정에서 나온 것이며 애국심의 발로로 생각된다. ○국민혈세 대량 투입 그러므로 그들의 주장도 겸허하게 경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마찬가지 이유로 그들도 철거찬성론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해야 할 당위성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이 일도 시비가 엇갈리게 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이때문에 그동안 찬반양론이 개진되었고 그에 따라 결론이 났던 것이 아닌가.그렇다면 이제는 그렇게 맺어진 결정을 존중하고 따라주는 것이 순리라고 본다.하물며 일들이 본격 추진되어 궤도에 올라 있고 또 상당한 예산이 투입된 상황에서 중단을 강요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그것이야 말로 「국민의 혈세」를 낭비케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또한 철거작업을 중단하거나 철회할 경우 그 국제적 망신과 국민적 좌절감을 누가 어떻게 감당하고 책임질 것인가. 여기에서 일생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온갖 고난과 피해를 감내한 독립운동가들과 그들의 후예들이 왜 한결같이 철거를 갈망하고 있으며 수많은 일본인들이 왜 그 문제의 건물앞에 허겁지겁 몰려와 기념촬영을 하는지 냉철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원폭의 피해만 강조하고 자신들의 범죄는 반성하지 않는 일본인들에게 더이상 분열되고 못난 「조센징」으로 비춰지지 않도록 우리 모두 뜻을 모으는 것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작업을 중단하라니 그러면 그 흉측한 건물의 철거에 따른 의의는 무엇일까.첫째,그 건물의 제거는 우리 이마의 한복판에 박힌 못을 뽑아내는 것과도 같다.이 건물의 정곡과도 같은 지리적 위치와 일제의 불순한 건축배경이 이미 잘 알려져 있으므로 더이상의 사족은 필요하지 않다.둘째,민족사와 전통문화를 되찾아 복원하게 된다.경복궁이 복원되어 옛모습은 물론 역사와 문화를 되찾게 된다.셋째,이를 계기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제대로 된 국립중앙박물관을 가지게 된다.현재의 세배가 되는 위풍당당한 박물관이 널찍한 공원에 자리함으로써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에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넷째,그 총독부건물을 볼때마다 짓눌리던 국민들의 암울함이 걷히고 밝은 희망이 대신하게 될 것이다.이는 국민의식의 긍정적인 변화와 새로운 발전에 큰 촉진제가 될 것으로 믿어진다.다섯째,한·일관계에 새로운 전기가 될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일본인들은 한국민들을 보다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게 될 것이며 한국민들은 좀더 밝고 자신에 찬 입장에서 일본인들을 보게 될 것이다.따라서 양국관계는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한일관계 새 전기로 그 흉물스러운 건물의 철거는 투철한 역사인식,일제 잔재의 불식에 대한 확고한 의지,민족문화에 대한 돈독한 이해와 돈후한 배려,굽힘없는 실천력,뜻을 펼 수 있는 경제력,국민들의 높은 문화적 긍지가 고루 갖추어졌을 때에만 가능하다고 본다.그 때가 바로 우리 앞에 다가와 있는 것이다.더이상 미룰 일이 아니라고 본다.우리 모두가 소모성 시비를 거두고 뜻과 힘을 합칠 때인 것이다.
  • 일,총독부청사 철거에 유감 표명/정부 “내정용훼 용납못해”

    ◎양국,비공식 채널통해 물밑공방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가 오는 8월15일 광복절 50주년을 맞아 일제시대 조선총독부로 사용됐던 현 중앙박물관의 철거를 시작하려는 방침에 대해 『양국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는 비공식 우려의 뜻을 전달해온 것으로 7일 알려졌다. 일본 정부가 비공식 채널을 통해 전해온 우려는 『종전50년,한일국교정상화 30년을 맞아 미래지향적인 양국관계를 건설해야하는 올해 한국정부가 국내의 일부 반대여론을 무릅쓰면서까지 굳이 8월15일에 건물을 해체를 시작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면서 『한국정부의 이같은 방침이 한국내에서 반일감정을 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할까 우려된다』는 내용이라고 한 외교소식통이 전했다. 이 소식통은 『일본측은 「한국에 새정부가 들어서 구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하려는 방침을 정할 때부터 양국관계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각을 가져왔지만,한국 내부의 일이기 때문에 아무런 의견을 표시하지 않았다」는 견해를 전해왔다』고 설명했다. 이에대해 정부는 비공식 입장표명을 공식으로 문제 삼기는 어려운 점을 감안,역시 비공식 채널을 통해 일본측의 유감표명이 전혀 적절치 못하며 그 같은 견해표명은 한국민의 반일감정만 자극할뿐 양국관계에 도움이 되지않는다는 강력한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근본적으로 과거 식민시지시대의 잔재를 제거하는 문제는 우리의 국내문제일뿐 타국이 간여할 사항이 못된다』고 지적하고 『더구나 식민통치의 가해자인 일본측이 이 문제와 관련,용훼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 40대장관 임명… “세대교체” 실천/김 총무처장관 기용에 담긴뜻

    ◎당·정 주요포스트 신지인사 대거발탁 전망/“광복 50주년행사 해방후세대에 위임” 의미 김영삼 대통령은 7일 새벽 함께 조깅을 하던 보좌진에게 의미심장한 언급을 했다고 한 관계자가 전했다.『40대의 김기재 전부산시장을 총무처장관에 임명하기로 했다.이제부터는 가급적 세대교체라는 말을 쓰지 않겠다』는게 요지다.세대교체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국민들에게 보여주겠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김신임장관은 46년생으로 올해 49세.40대 장관은 새정부들어 이인제 노동·서상목 보건복지부장관이 있었고 과거 정권에서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은 경우가 다르다.대통령의 「특별한 의지」를 담고있어 앞으로 정부·여당의 각종 인사에서 중요 기준이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김대통령이 세대교체를 말로 강조하면 특정인을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언급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수도 있다』면서 『지금부터는 말보다는 실제 인사를 통해 「세대가 바뀌고 있구나」는 느낌을 국민에게 주게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당대표 등 주요 당직자가 한꺼번에 갑자기 젊어지기는 힘들겠지만 일부 장·차관과 민자당의 중·하위 당직,그리고 지구당위원장을 비롯,여러 분야에서 50세 이하가 상당수 발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그는 『특히 이번에 신설되는 지구당 조직책 인선과정에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신진 인사가 대거 영입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김총무처장관의 기용은 또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청와대측은 설명했다. 윤여전 청와대대변인은 이날 『김대통령이 김전부산시장을 총무처장관에 임명한 것은 오는 15일 광복 50주년을 맞아 구총독부건물 철거 등 식민시대 잔재를 없애는 작업을 해방이후 세대에게 맡긴다는 생각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윤대변인은 김시장의 풍부한 행정경험,청렴도도 기용의 배경이라고 말했지만 그보다는 「젊음」과 「해방이후 세대」가 이번 인선의 주된 배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인터뷰/“공직사회 사기진작… 분위기 쇄신”/“행정 생산성”·효율성 제고에 초점/국가경영 선도역할 충실히 수행”/김기재 신임총무처장관 김기재 신임 총무처장관은 『행정이 국가 경영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총무처를 이끌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다음은 김장관과의 일문일답. ­소감은. ▲갑자기 중책을 맡아 개인적으로는 영광이지만 국가적 과제가 중첩한 시기라 어깨가 무겁다.청와대에서도 이야기가 있었지만 올해는 광복 5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로서 해방둥이 또는 해방 이후 세대에게 맡겨 국정에 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인 기풍을 불어넣자는 취지에서 발탁된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 총무처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 생각인가. ▲국가 경영의 생산성과 효율성 제고에 초점을 맞추겠다.나라의 경제규모가 커지고 다양화·전문화되는 추세에 비추어 행정이 선도적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적극적인 행정으로 국가 발전을 촉진시키는데 역점을 둘 생각이다.이와 함께 대형 사고 등으로 인해 행정에 대한 불신이 회복되지 않고 있는데 행정의 신뢰 회복에도 진력하겠다.행정의 변화와 개혁,그리고 세계화 추진의 본산이 바로 총무처라고 본다.공직사회의 분위기를 쇄신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공직자의 사기 진작이 선결과제라고 생각한다. ­정부조직 개편에 대한 견해는. ▲지방에 있어서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잘 모르겠다.그러나 작은 정부와 공직자들의 능력 극대화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정부조직을 개편할 필요성은 느끼는가. ▲조직 개편은 많이 됐다고 본다.개편할 곳이 더 남아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차기 총선에 출마할 생각은. ▲야인에서 행정부로 돌아왔으니 거리가 멀어진 것 아닌가.현 위치에 충실하겠다. ­일본통으로 알려져 있는데. ▲박사학위를 딸 때 제2외국어를 일본어로 했고 지방자치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본과 교류할 때 앞장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김신임장관은 지난 72년 제11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줄곧 내무부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내무관료 출신.최형우 전내무부장관 밑에서 차관보를 맡아 시·군 통합과 제2차 행정구역 개편을 주도해 능력을 인정받았다.지난해 9월부터 지난 6월말까지 부산시장을 지내면서 아시안게임 부산 유치를 따내는 등 상당한 업적을 남겨 한때 민선 부산시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소탈한 성품으로 각계에 발이 넓다.두주불사형으로 취미는 바둑과 등산.부인 전명숙씨와 1남1녀.
  • 일제 36년 그 아픈역사의 극복(사설)

    ◎광복 50주년 총독부건물 철거 구 총독부 건물 철거를 위한 중앙돔 첨탑 절단작업이 7일 시작되었다.일제 식민지 통치의 상징이었던 원부의 정수리를 들어내는 것이다.높이 8.5m의 첨탑은 두 동강이나 광복50돌을 맞는 8월15일 광복절기념식에 앞서 광장으로 내려진다.치욕의 역사가 마침내 우리민족의 시야에서 사라져가는 엄숙한 순간이다.민족정기의 회복을 선포하는 장엄한 팡파르이기도 하다. ○일제폭압·착취·수탈의 상징물 총독부 청사는 1926년 준공돼 식민지 조선의 폭압과 착취,질곡과 수탈의 상징이자 총본산으로 군림해왔다.세워진 부지 선정의 배경에는 조선왕조의 정전인 경복궁의 궁궐들을 시야에서 감추려했던 간교함도 깔려 있었다.육중하고 위압적인 콘크리트 건물로 식민지 백성을 위압해온 것이다.옛 총독부건물의 철거는 곧 치욕의 36년 아픈 역사와 함께 극복해야 할 일제 잔재의 마지막 청산을 의미하는 역사적 사업이라 할 수 있다.광복 50년만에,문민정부에 의해 철거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우리들의 감회는 더욱 깊다. 철거작업이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민족자존의 회복과 민족 정체성의 확립이다.이 건물을 철거한 뒤 그 자리에 대대적인 경복궁 복원작업이 이어짐으로써 민족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일제치하에서 경복궁은 일인들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고 훼손되어 조선왕조 궁궐의 체모를 상실할 지경에 이르렀다.일제는 19 18년 총독부청사를 세우면서 경복궁의 대소 전각 2백여채의 건물을 헐어내는 만행을 저질렀다.국모명성황후의 시해와 함께 이 보다 더한 민족적 치욕이 어디 있겠는가. ○철거는 민주정기회복의 의지 상처받은 민족의 자존심을 회생시키고 파괴된 민족문화 유산을 회복하기 위해 경복궁복원의 대역사가 착수되었다.그러나 총독부건물을 철거하지 않고는 경복궁의 정상적 복원은 불가능하게 돼있다.민족정기와 역사의 회복을 위해서도 총독부 건물은 헐려서 마땅한 것이다. 최근 일부 단체와 인사들은 총독부건물 철거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거기엔 설득력이 없다.치욕의 역사도 보존의 가치가 있으며 또 이 건물이 해방후 대한민국정부 수립의 산실이었다는 점등을 반대의 근거로 삼고 있다.그러나 그 어떤 명분과 반론으로도 치욕의 역사에 대한 국가적·국민적 극복의지를 막을 수는 없다고 본다. ○뒤늦은 철거반대론 이해못해 민족적 자존을 짓밟은 「치욕의 현장」을 우리가 왜 보존해야 하는가.우리 정부수립의 산실이라고는 하지만 이 건물의 시작과 연원은 분명히 식민지통치로부터가 아닌가.게다가 이 건물은 건축사적으로 보존할만한 어떤 가치도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철거직전인 지금에 와서 뒤늦게 「철거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그 배경이 의심스러우며 시기적으로도 온당치 않다고 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건물 철거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미 도출돼 있으며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그러므로 뒤늦게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국민여론에 역행하는,기이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21세기 새한국건설 기폭제로 광복50주년의 커다란 역사의 전환점을 맞으면서 우리는 이제 「제2의 광복」을 지향하는 출발점에 서 있다.「21세기 새 한국의 건설」이라는과제 앞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지나간 역사 앞에서 우리는 뼈아픈 각성을 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치욕의 역사를 청산하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총독부건물의 철거는 단순히 식민지지배의 상징물이 우리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일 뿐만 아니라,치욕으로 얼룩진 구시대의 완벽한 청산을 의미한다.그 역사의 청산을 바탕으로 우리는 창조적이고 미래로 도약하는 새로운 민족사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 역사의 정당한 복원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총독부청사의 철거를 민족의 정체성회복과 극일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 역사·화합·미래 주제 국민축제로/8월을 수놓을 광복 50돌 행사

    ◎역사의 장­총독부 건물철거… 민족정기 고양/화합의 장­한민족축전 열어 남북통일 기원/미래의 장­무궁화호 발사기념 등 11개 행사 8월은 50주년을 맞는 광복절이 들어있는 달.연중 계속되는 각종 기념행사 가운데 가장 비중있고 규모가 큰 행사들이 대부분 8월에 펼쳐진다.정부부처 행사 22개,산하단체 행사 19개,민간단체 행사 16개,지방자치단체 행사 27개 등 모두 84개의 행사가 「역사의 장」「화합의 장」「미래의 장」이라는 3개의 주제로 나뉘어 열린다.정부는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고 민족번영과 통일을 향해 새롭게 출발하는 전기를 마련한다는 의도에서 올해 초부터 추진해 오던 기념행사를 8월에 집중 개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역사의 장」은 민족정기를 고양하는 사업으로 ▲일제 잔재인 옛 조선총독부건물 철거 및 대지미술전 ▲이준열사기념관과 중경임시정부청사등 독립운동 사적지 복원 ▲독립유공자 1천4백여명에 대한 대대적 발굴 포상 ▲국내외 독립운동 사적지 순례등 25개 사업이 포함되어 있다.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염원하는 「화합의 장」에는 ▲여의도 고수부지 레이저영상쇼 ▲광복 길놀이 ▲95 세계 한민족축전 ▲통일 한마음 행사등 20개 사업이 들어 있다.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미래의 장」 사업으로는 ▲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 대향연 ▲종합학술행사 ▲무궁화통신위성 발사 기념행사 ▲지구촌 우주소년 큰잔치등 11개가 있다.이밖에 지방에서 개최되는 주요 행사로는 서울시의 조국을 빛낸 해외동포 초청행사와 경기도의 창작무용극 「제암리의 아침」 공연등 23개가 있다. 정부는 기념행사가 광복이전 세대에게는 광복의 벅찬 감격을 되새기게 하고 광복이후 세대에게는 광복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현장체험의 기회가 되도록 기획했다.독립유공자와 그 유족들의 숭고한 희생에 대해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는 자리가 될 수 있도록 준비했다.또 민간과 정부가 주관하는 행사를 전국에서 어우러지는 국민축제로 승화시키고 해외동포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 민족단결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목표 아래 행사를 추진해 왔다.옥내 행사에서 벗어나 광화문 앞과 국내외 독립운동 사적지,독립기념관 등 개방적이고 상징적인 장소를 활용함으로써 광복의 의미를 한층 되살아날 수 있도록 배려했다. 8월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광복절 당일 각계 대표와 일반 시민 각각 2만5천여명씩 모두 5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옛 조선총독부건물 앞 광장에서 열리는 중앙경축식.「광복 50년,통일로 미래로」라는 주제 아래 상오9시부터 10시까지 식전행사,10시55분까지 본행사,10시55분부터 11시10분까지 식후행사로 나뉘어 2시간10분 동안 진행된다. 민족사를 재조명하고 광복의 환희를 재현하는 식전행사는 5백여명의 북을 멘 바라꾼과 횃불수 및 60여명의 전통군악대가 펼치는 「새아침의 소리」,옛 조선총독부건물 중앙돔 철거행사인 「어둠 거두기」,국립국악관현악단과 국립·서울시립·경기도립 무용단의 고전 및 현대무용 「다시 찾은 빛」,광복 50주년 기수단을 비롯해 각 시·군·구 기수단과 경찰 및 3군 군악대등 약 1천5백여명이 광복 길놀이 꽃차 및 장식차와 함께 벌이는 「한울림」행렬로 구성된다. 통일과 세계를 향한 민족의 결의를 다짐하는 본행사는 국민의례,광복회장의 기념사,서울시립교향악단의 연주 속에 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 7명과 서울시립교향악단·연합합창단이 부르는 축가 「동방의 빛」,독립유공자 포상,경축사,광복절 노래제창,경축비행의 순으로 진행된다. 통일과 미래의 희망을 염원하는 식후행사는 해방둥이들이 광복절 노래를 합창하는 가운데 통일성화 봉송단이 통과하며 4백여명의 현대무용단·서울시립가무단·국민학생들의 무용 「통일로 미래로」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중앙경축식 행사장은 모든 국민의 출입이 허용되며 참가자들에게는 광복 50주년 공식 휘장 또는 태극무늬로 도안된 모자·부채·음료 등이 제공된다. 정부는 행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3가지 종류의 포스터 6만부를 만들고 눈에 잘 띄는 곳에 홍보조형물을 설치했다.안중근 의사의 얼굴이 새겨진 1만원짜리 은화와 김구 선생의 초상을 담은 5천원짜리 니켈화 각각 7만개를 제작했다.기념우표 3백만장,소형 시트 60만장,우표책 1만부를 만들고 5천원권 공중전화카드 30만장과 기념담배 5천만갑을 발매했다.
  • 통일로/미래로/역사적 광복 50돌 행사

    ◎국내외서 8월 한달 84개 경축행사/「총독부 철거」엔 시민·교포 5만명 초청 역사적인 광복 5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중앙경축식이 광복절인 오는 15일 옛 조선총독부건물 앞 광장과 세종로 일대에서 독립유공자와 가족,광복회원,해외동포,청소년,시민등 5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리게 된다. 이와 동시에 지방에서도 대대적인 경축식이 개최되며 특히 중앙경축식에 앞서 식전행사로 일제 잔재의 상징인 옛 조선총독부 건물의 중앙돔 첨탑이 철거된다. 중앙경축식에서 김영삼대통령은 경축사를 통해 한반도 평화와 남북통일을 향하는 대북한 중대 제의를 할 예정이다. 또 중앙경축식과 별도로 8월중에 광복50주년 기념행사로 개최될 정부부처행사 22개,산하단체행사 19개,민간단체행사 16개,지방자치단체 주요행사 27개등 84개 주요 국내외 행사계획들이 확정됐다. 정부는 1일 광복 50주년의 민족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21세기 국가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 위한 화합과 참여의 장으로 치러질 이같은 광복절 중앙경축식 행사계획을 확정,발표했다. 「광복 50년 통일로 미래로」라는 주제 아래 펼쳐지는 중앙경축식은 광화문에서 충무공동상에 이르는 세종로 일대에서 ▲식전행사(9∼10시) ▲본행사(10∼10시55분) ▲식후행사(10시55분∼11시10분)로 나뉘어 2시간 10분동안 진행된다. 식전행사는 5백명의 멜북꾼,바라꾼,횃불수의 합주와 행진등이 어우러지는 「새아침의 소리」로 시작해 고유시낭독,옛 조선총독부건물 중앙돔 첨탑 철거행사인 「어둠 걷기」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어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속에 우리 고전무용과 현대무용이 조화를 이루는 「다시찾은 빛」공연,광복50주년 기수단과 시·군·구및 전국 대학기수단,경찰및 3군 군악대등 1천5백명과 광복길놀이 꽃차등의 「한울림」 행진이 펼쳐진다. 본행사는 김승곤 광복회장의 기념사에 이어 지휘자 정명훈,소프라노 조수미등 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 7명이 참여하는 합창곡 「동방의 빛」연주,독립유공자 포상의 순으로 진행된다. 이어 광복절노래 제창과 만세3창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오색 연기를 내뿜는 경축비행이 하늘을 수놓고 통일성화봉송단 통과와 4백여명의 현대무용단 및 서울시립무용단과 국민학생들의 무용 「통일로 미래로」라는 식후행사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정부는 이날 저녁 경복궁 경회루에서 각계 대표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축연회를 개최하는 한편 각 시·도와 재외공관에서도 중앙경축식에 준하는 경축식을 거행하도록 했다.
  • 제헌국회의 공과(새로쓰는 한국현대사:29)

    ◎헌법·각종 기본법률 제정… 민주주의 토대구축/일제잔재 청산 미비·농지개혁 실패 등 실정도 1950년 5월 30일 제헌국회는 두번째 정기회기를 마침으로써 2년여만에 막을 내렸다.이 날은 마침 제2대 국회 구성을 위한 국회의원선거를 실시한 날이었다.대한민국 출범이후 지금까지 14대의 국회가 구성됐지만 제헌국회의 의미는 각별할 수 밖에 없다. 제헌국회는 헌법을 비롯한 각종 기본적인 법률의 제정,초대 대통령 선출등 대한민국 탄생의 산실이었기 때문이다.또 일제 잔재 청산등 묵은 시대를 정리하고 민주주의에 기초한 새 시대의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 업적은 대단하다.물론 새로 도입한 민주주의 제도가 우리 사회에는 생소한 것이어서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고 일제 청산이 미흡한 점 등 부족한 부분도 많았다고 지적할 수 있겠지만 이는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제헌국회 2년을 수치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1948년 5월 10일 실시한 선거에서 의원 1백98명이 선출됐다.회기는 그해 5월 31일 개막해 2백3일동안 계속된 임시회를 비롯,임시회와 정기회를 합쳐 6차례,6백40일동안 문을 열었다.임기 7백30일 가운데 90일을 제외하곤 늘 개회 상태였으니 신생국가의 첫 의회답게 엄청난 열정을 보였던 것이다.실제로 첫 임시회는 정기국회 개회를 이틀 앞둔 48년 12월 18일 폐회,하루만 쉬고 다시 회기에 돌입할 정도였다. 이같은 열의로 제헌국회는 2백34건의 법률안을 통과시켰다.또 2백26건의 청원을 접수해 65.5%인 1백48건을 처리했다.국회 자체의 건의·결의안은 모두 1백45건이나 됐으며 1백1건을 가결했다. 이같은 활동 중에서도 제헌국회가 다룬 주요 의제로는 반민족 친일파의 처벌,미군 철수대응,국가보안법 제정,농지개혁과 지방자치제 실시 등을 꼽을 수 있다.특히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대응은 새로 출범한 대한민국 정부로서는 사활이 걸린 최대 현안이었다.남북에 별개의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분단은 곧 전쟁을 불러오리라는 예상이 널리 퍼져 있었다.더욱이 북한의 군사력이 대한민국의 수준을 능가한다는 사실도 이미 확인된 상태였다.따라서 주한미군의 존재는 국가안보를 위해 꼭필요했고,만약 미군이 떠난다면 그에 앞서 자체 국방력을 대폭 강화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주한미군 철수의 칼자루는 물론 미국 정부가 쥐고 있었던 만큼 당시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미 정부는 1947년 9월 말 한반도문제를 유엔으로 이관함으로써 주한미군 철수를 위한 정지작업을 했다.하지만 미 국무성과 육군성,그리고 주한 미 군정 사이에는 입장에 따른 견해차가 있었다. 육군성은 『한국에 대해 군사전략적인 이해를 거의 갖고 있지 않다』는 합동참모부(JCS)의 분석을 바탕으로 미군 철수를 강력하게 주장했다.미 군정도 군정을 지속시킬 수 없을 정도로 한국 상황이 악화됐다는 이유로 철군을 지지했다.국무성도 철군주장에는 동의했다.다만 한국이 공산화하지 않도록 철군에 앞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미정부는 1948년 4월 초 「한국에 대한 미국의 입장(NSC 8)」이라는 문서를 채택함으로써 주한미군 철수를 결정했다.이 문서에는 주한미군이 그해 12월 31일까지 철군을 완료하도록 규정돼 있었다.하지만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남북한간 정세가 불안정해지자 철수는 계속 연기됐다. 한국 정부는 처음부터 미군철수를 반대하지만 일단 기정사실로 굳어지자 더 많은 경제원조와 군사원조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꿔 미 정부에 집요하게 요구했다.이에 미국도 군사고문단을 설치하고 국방경비대를 강화하는 등 철군이후 한국의 안전보장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제헌국회 내에서도 미군 철수는 최대의 논쟁점이 되었다.1948년 10월 13일 제87차 본회의에서 의원 46명은 「외군철회 요청에 관한 긴급동의안」을 제출했다.그들은 『자주국가로서 자율권이 엄연한 이상 외군의 주둔을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 다음 유엔을 겨냥,『유엔은 총회에서 19 47년 11월 14일 결의한 기록을 회상해』외군철수를 조속히 시행하라고 요구했다.이에 대해 많은 의원들은 「공산당 모략」이라고 흥분했고 양쪽 의원들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국회의장이 경위를 출동시키기 까지 했다. 이어 11월 19일에는 최윤동 의원 등 99명이 『대한민국의 방위태세가 정비될 때까지 미군의남한주둔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미군주둔에 관한 결의안」을 제출했다.이 결의안은 약간의 논란을 거친 뒤 표결에 들어가 재석 1백13명 가운데 찬성 88,반대 3의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됐다.「외군철회 동의안」이 나온 뒤 빗발치는 여론의 비난 속에서 미군철수 주장이 급격히 사그라든 결과였다. 일제강점기 때 민족반역자 노릇을 한 친일파를 처벌코자 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사안이다.제헌국회는 48년 9월 친일파를 사형까지 시킬 수 있도록 규정한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하고 곧 이어 이를 실행할 기구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반민특위」는 김상덕 의원을 위원장으로 뽑고 중앙과 지방에 사무국을 설치했다.또 친일파를 기소·재판할 특별재판부·특별검찰부도 정하는 등 발빠르고 치밀하게 움직였다. 위원회는 넉달동안 3백5명의 친일분자를 검거하는 실적을 올리지만 곧 활동이 벽에 부딪힌다.친일파를 대거 기용한 이승만 정부가 시국이 불안정한데 사회지도급 인사를 대량검거하면 사회불안을 가중한다며 반대했기 때문이다.게다가 19 49년 6월에는 친일파의 조정을 받은 사회단체가 『반민특위를 해체하라』며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특위 소속 사법경찰관이 습격을 받는 등 온갖 행패가 자행됐다.국회는 그해 8월 22일 「반민특위 폐지안」을 통과시킴으로써 행정부에 굴복했고 친일파 처리는 흐지부지돼 아직도 역사의 짐으로 남아 있다.제헌국회가 친일파 처리에 좌절한 것은 당시 국회·행정부를 차지한 계층의 본질적 한계였다고 할 수 있다. 제헌국회는 이밖에도 국가보안법·농지개혁법·지방자치법등을 제정해 국가의 기틀을 튼튼히 하고 개혁 의지를 보였다.『국헌을 위배해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결사 또는 집단을 구성한』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한 국가보안법은 48년 11월 19일 통과됐다.이 법에 대한 논의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이 『악용할 소지가 있다』고 반대했고 일부 문구의 수정이 있었지만 투표에서는 찬성 84,반대 3으로 가결됐다.남북이 대치하고 「여순반란사건」등 공산주의 폭동을 여러차례 겪은 그때 상황에서 국가보안법 제정은 어쩔 수 없는선택이었을 것이다. 「농지개혁법」은 49년 6월 21일 제정됐다.헌법 제86조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 그 분배의 방법,소유의 한도,소유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는 규정에 따라 하위법으로 마련된 이 법은 유상매수­유상분배를 골자로 했다.농지개혁법도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결국 대농에게 토지가 집중되는 현상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주한미군사령부 전문/이 대통령,49년4월11일 미군철수 동의/1년간 강력반대… 미,계획 수차례 연기/무기이양·군사고문단 설치 조건 수락 대한민국 수립직후부터 한국과 미국 양 정부는 주한미군 철수를 둘러싸고 협의를 계속했다.한국은 철군을 강력하게 반대한 반면 미국은 한국 안보를 위한 보완책을 제시하며 설득했다. 미 정부는 1948년 4월 2일 국가안보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에서 정리한 「한국에 관한 미국의 입장 (NSC 8)」을 미군철수의 지침으로 삼고 있었다.그 내용은 49년 3월 31일까지 철군을 끝낸다는 것이었다.그러나 한국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미국이 계획한 철수 일자는 점차 늦어졌다. 시한은 5월 10일로 한번 수정됐다가 49년 3월 23일 채택한 「NSC 8­2」에서 그해 6월 30일로 최종 결정됐다.따라서 49년 4월 미국으로선 상당히 초조한 상태였다. 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은 당시 양국에서 오간 문서 가운데 한국측 입장 변화를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전문을 발굴했다.워싱턴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에서 입수한 이 문서는 주한미군사령부가 49년 4월 12일 미 국무성에 보낸 것이다. 그 내용은 「이승만 대통령이 전날 미군철수에 마침내 동의했으며 며칠안에 이같은 사실을 국민에게 공개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이와 함께 철군에 앞서 미군이 한국의 육군,해안경비대,경찰에 장비를 이양하며 정식으로 군사고문단을 설치한다는 조건에 합의했음을 밝혔다. 이대통령은 합의에 따라 4월 18일 주한미군 철수를 공표했으며,주한미군 1천5백여명은 49년 6월 27일 인천항을 통해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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