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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언내언] 첨단 범죄

    100여편의 탐정소설을 쓴 영국의 소설가 G K 체스터턴은 ‘도둑들은 남의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기발한 발상과 첨단장비를 동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고 말한다.예를 들어 금고털이들은 시장에 나오는 새로운 금고를 파괴하기 위해 드릴과 폭약,심지어는 대포와 니트로글리세린을 사용하는 등 금고제작자들로 하여금 좀더 튼튼한 금고를 제작하게 하는 데 공헌해왔다.이른바 도둑들은 금고공장의 직공으로 들어가서 용접기술을 배우는가 하면 제조회사들의 팸플릿을 숙독하여 금고의 비밀을 속속들이 파헤친다.그리고 그들이 들인 시간과 공만큼이나 채산이 맞는 범죄에 손대고야 만다. 날이 갈수록 범죄는 흉포화·대형화하고 도둑질이나 사기도박 장비도 첨단화하고 있다.휴대전화와 고유번호의 불법복제,신용카드의 마그네틱 띠(MS)에 변조된 개인정보를 입력해서 현금을 인출하는 컴퓨터범죄가 등장하더니 이번엔 소형 비디오카메라를 아파트 현관의 우유투입구에 넣어 아파트를 터는첨단 도둑,손목에 장착된 특수 카메라와 컴퓨터로 화투패를읽은 다음 일당들에게 무선진동수신기로 연락하는 신종사기 도박단이 검거됐다.그 치밀함이란 가히 천재적이어서 혀를 내두를 만하다. 하지만 지능화된 범죄만큼이나 이에 못지 않게 연구개발되는 것이 첨단 수사장비다.미국 샌디에이고 국립연구소는 최근 법무부의 지원을 받아 사건현장에서 지문과 머리카락 등 범죄의 단서가 될 만한 흔적을 알려주는 ‘증거탐지기’를 개발해 냈고 영국 런던대 유전학자들은 DNA분석을 통해 수천종류의 얼굴형을 입력해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있다.첨단 수사장비의 과학화로 이런 좀도둑이나 얍삽한 사기꾼들은 20세기 말의 마지막 잔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빈정거림도 들린다. 훔친 돈이나 사기도박으로는 결코 부자가 되지 않는다.그렇게 연구하고 노력할 머리와 정성을 좀더 건설적인 데 썼더라면 아마도 틀림없이 큰 성공을거두었을 것이다.아무리 날고 기는 도둑이라도 이에 맞설 만한 최첨단 수사장비들이 가차없이 적발해낸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피해자들도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안짓는다’는 속담을 염두에 두고 내 재산을 도둑에게 넘겨주지 않기 위해선 소형 카메라 등이 비집고 들어설 작은 틈새도 만들지 않는 것이 먼저다.한번 도둑질과 한번 도박은 영원한 패가망신만을 남긴다. 결국 사기도박이니 빈집털이의 한계는 일회적인 한탕주의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어리석음의 끝일 뿐이다. 이세기 논설위원
  • [외언내언]父子 훈련병

    병영은 본질적으로 타율이 지배하는 사회다.병영에는 복종을 주내용으로 하는 엄격한 규율과 고된 훈련이 있다.그것만으로도 군대생활이 녹록지 않을것은 당연하다.하지만 교본대로 적용되는 규율과 훈련만이면 군대생활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군대생활이라면 뒤도 돌아보기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그런 생각을갖게 만드는 것은 교본대로의 규율과 훈련은 결코 아니다.지금은 줄었다고하지만 여러가지 비인격적이고 모욕적이며 자의적이고 무원칙한 악습들이다. 규율과 훈련은 젊은이를 단련시킨다.강하게 만든다.반대로 악습은 사람의 영혼을 상처내며 타락시킨다.국민은 규율과 훈련은 엄정하고 고되지만 악습이없는 그런 건강한 군대를 원한다.군이 국민의 사랑을 받고 아름다운 추억의대상이 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하다.강군(强軍)의 지름길이요,진정한 국민의군대가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예전의 악습들이 다시 군대에 발을 못붙이게 해야 하며 잔재가 있다면 깨끗이 쓸어내야 한다.그렇게만 된다면 누가 군대를 뒤도 돌아보기싫다고 할 것인가. 일부 계층의 병역비리가 문제되고 있는 때다.비리의 양태가 어떠하든 그배경을 이루는 것은 군기피 의식이다.군기피는 젊은이들의 유약함과 이기적 타산,부모들의 과보호 탓만은 아니다.오히려 군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이 더 큰 원인일 수 있다.군에 가는 본인만이 아니다.부모들은 더 공포감을갖기 마련이다.부모들의 그것을 꼭 자식에 대한 과보호라고 삐뚜로만 볼 것은 아니다.오히려 자연스런 자식사랑의 발로라고 봐줄 수 있다.자식이 군복무를 시작하기 위해 군병영으로 모습을 감출 때 눈물을 훔치지 않을 부모는거의 없을 것이다.이렇게 보면 군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병역기피와 병역비리를 막는 한 가지방법이 될 수 있다.그러자면 군조직이 건강하고 투명해야 한다.동시에 국민들이 군조직의 건강성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 육군 논산훈련소가 훈련병의 아버지들을 훈련소로 초청했다.2박3일 동안 아들과 함께 훈련생활을 체험토록 한다는 것이다.각종 훈련도 같이 받고 불침번과 초병근무도 선다.일석점호도 받고 잠도 아들 곁에서 나란히 잔다.필시군의 공격적이며 이례적인 홍보작전 같다.그만큼 군이 군조직의 건강성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그렇다면 군에 가야 할 장정들과 부모들의막연한 공포도 많이 사그라들 듯하다.군면역(軍免役)을 위한 비리유혹도 덜받을 것이다.반기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최상현 논설위원
  • [제2공화국과 張勉](4)경제개발 5개년 계획(中)/아이젠하워

    張勉정부는 집권 직후인 1960년 9월 제1차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곧바로 미국에 재정지원을 요청하는 외교문서를 보낸다. 그것이 ‘한국의 경제개혁 비망록’(Aide Memoire on Economic Reform Measures in Korea)이다. 25쪽 분량인 이 문서는 구성상 통상적인 외교문서와는 큰 차이가 있다.張勉정부는 단순히 원조를 요청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사회의 실정과 이에 따른 경제개발 필요성,5개년계획의 윤곽,그리고 張勉정부의 개혁의지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예컨대 한국은 지금 ▒노동가능 인구 940만명 가운데 130만명이 실업자이고 ▒농촌인구의 65%는 가난과 저생산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3년간(1957∼1959년) 무역적자는 연평균 3억4,800만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장기적인 경제개발이 절실하다고 강조하고 미국이 원조를 해준다면장면정부도 국군 5만명 감축,일본과의 국교정상화,환율 정상화 등을 이루겠다고 약속했다.말하자면 ‘우리가 이러저러하게 개혁을 해나갈 터이니 대신경제 지원을 해달라’는 식이었다. 실무자로서 비망록을 작성한 李起鴻(당시 부흥부 기획국장)은 “외교문서에 공무원 봉급을 현실화해 공직사회 부패를 없애겠다는 다짐까지 했으니 자주독립 정부로서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버린 문서였다”고 회고했다.그는 張총리에게 결재받으러 갔더니 힘없이 그러나 인자한 표정으로 몇마디 묻고는 사인하더라면서 “張총리가 그 내용에 공감했다기보다는 金永善재무장관을 믿고 결재하는 듯했다”고 기억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굴욕적이기까지 한 ‘경제개혁 비망록’이 꼭 필요했을까.그 무렵은 국가재정의 절반 가까이를 미국원조에 의존하는 상태였고 게다가 李承晩정권의 실정(失政)으로 국고는 텅 비어 있었다.60년 8월6일 許政과도정부가 발표한 李정권의 ‘외화 낭비’규모를 보면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낭비액’은 미화 3억3,000만달러,영국돈 286만4,000파운드,일화 1억4,600만엔 등이었다. 이 비망록은 당시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필요악이었을 것이다. 金永善장관과 車均禧부흥부 사무차관은 미국을 방문,10월4일 비망록을 허터 국무장관에게 수교한다.이 문서는 국제사회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유력한 경제지인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의 윌슨 편집국장이 직접 한국에와 金永善장관과 李起鴻국장·李漢彬재무부 예산국장 등을 인터뷰해 그 내용을 10월27일자 커버스토리로 싣는다. ‘도약을 위한 한국의 탄원’이란 이 기사에서 윌슨은 “일단의 젊은 관료들이 체면불구하고 미국에 매달려 경제적 도약을 하겠다고 공개 탄원했다”고 보도했다.아울러 한국의 사회상이 한심스럽지만 희망을 가지고 경제발전을 지켜볼 만하다고 기대를 걸었다. 나라의 체면마저 저버린,그래서 도리어 張勉정부의 경제개발 의지를 더욱분명하게 보여주는 이 비망록은 1983년 11월에야 외교문서로 정부에 정식등록된다.부흥부에서 작성해 총리의 결재를 받고 재무장관이 미국에 전달할 때까지 외무부의 손을 전혀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만큼 파격적인 외교문서였다고 할 수 있다. 경제지원에 관한 張勉정부와 미 행정부간의 협의는 순조롭게,그리고 바삐돌아간다.60년 10월13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경제회담에서 한국은 4억2,100만달러를 61∼65년에 걸쳐 원조해 달라고 미국에 정식 요청한다.이 액수는‘경제개혁 비망록’에서 한국이 밝힌 5개년계획의 미국측 지원규모 그대로다. 이 회담에서는 또 환과 미국의 달러화 환율을 61년부터 1,000대1로 끌어올리기로 합의한다.11월26일에는 매카나기 주한 미국대사가 張총리를 방문,비망록에서 밝힌 요청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는 허터 미 국무장관의 공한을 전달한다. 미국의 적극적인 지지는 친한파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관심에도 크게 힘입었다는 사실이 최근 발굴된 미국 외교문서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별도기사 참조] 張勉정부는 미국의 경제지원을 얻느라 부단히 애쓰는 한편 국내에서도 기업인과 국민에게 장기 경제개발의 당위성을 알리고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고자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대표적인 예가 60년 12월5일부터 닷새 동안 열린 ‘종합경제회의’다. 정부가 경제정책에 관한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자 마련한 이 회의에는 경제·기술·언론·학계 인사들과 각 지방 독농가까지,당대의 오피니언리더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 張총리는 “4월혁명의 진정한 과업은 민생안정을 바탕으로 한줄기찬 경제발전 없이 실효를 거둘 수 없다”고 강조하고 “새해부터는 실업과 민생문제에 적극 대응해 나갈테니 온국민이 자조자립의 정신으로 동참할수 있게끔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이 자리에서 나온 金永善장관의 발언은 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金장관은 한국이 경제면에서 북한보다 3∼5년 뒤져 있음을 산업별 수치를들어 솔직히 밝히고 “북한과의 경제전쟁에서 뒤떨어진 현실을 극복하려면땀과 피,희생과 인내,그리고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불과 몇달 전까지 ‘반공’을 국시로 내건 李承晩정권 하에서 언제라도 ‘북진통일’이 가능하다고 믿던 국민에게는 이보다 더한 충격이 없었을 것이다.이와 함께 ‘金永善 발언’은 ‘국민에게 사실을 알리고 대화를 통해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한다’는 張勉정부의 기본방침을 명확하게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종합경제회의에서 간사로 일한 金立三(77·전경련 고문)은 지금도 “張勉정부는 경제발전에 관한 뚜렷한 청사진을 가지고 있었다”고 회고하면서 “그점에서는 張勉정부가 자유당정권은 물론 5·16 군사정부보다도 월등히 앞섰다”고 평가했다. 1961년으로 해가 바뀌면 민간 경제계도 한국경제협의회를발족하는 등 경제개발에 동참할 채비를 갖춘다.아울러 산업개발위원회가 준비하는 제1차경제개발 5개년계획 안이 완성 단계에 이른다. 李容遠 ywyi@ - 아이젠하워 한국경제 큰 관심… 개발 적극 독려 1960년 9월은 張勉정부가 경제개발계획을 공표하고 ‘경제개혁 비망록’을준비하는 등 숨가쁘게 돌아가던 때다.이 무렵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일시 귀국한 매카나기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한국문제,특히 경제개발에 관해깊이 상의한다. 이같은 사실은 미국 정부문서간행처(USGPO)가 발행한 FRUS 18권 691쪽에 수록된 자료 ‘아이젠하워 대통령과의 회의록’(A)에서 확인할 수 있다.아이젠하워는 처음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인 1952년 12월과 두번째 임기중인 60년 6월 등 두 차례 방한한 친한(親韓)인사다. 9월14일오전 9시 아이젠하워를 만난 매카나기는 “한국에서 많은 진전이있었고,張勉정부는 잘 해나가고 있다”고 보고한다.또 “파벌싸움이 있기는하지만 이는 동양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이어 본인이 이번 방문에서 확실하게 추가원조를 얻어올 것이라고 한국인들이 기대한다고도 보고한다. 이에 대해 아이젠하워는 자신이 한국인들에게 얼마나 탄복하고 있는가를 설명하면서 “그들 스스로 경제 단계를 끌어올리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아이젠하워는 한국인들이 듣기 싫어하겠지만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않는 한 주권국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깨닫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한국의경제발전이 시급함을 재차 강조했다. 그 무렵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1960년 8월12일 파슨스 국무부 극동담당차관보가 매카나기에게 보낸 편지(B)에 잘 나타나 있다. 파슨스는 “한국사회와 경제를 자유롭고 안정되게 유지한다는 미국의 기본입장은 적어도 공산주의자들이 줄 수 있는 것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며,크게는 한국에서 사회정의와 경제발전을 실현함으로써 아시아에 자유세계의 이념이 구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전시장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밝힌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사회에 늘 존재하는 불화와 반목,광범위한 혁명적잔재의 위협을 극복하고 미국 경제학자 로스토가 제시한 ‘도약단계’로 전환하도록 지도와 격려,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만일 그렇지 않을 경우“우리의 공산주의 경쟁자들에게 그들의 방식을 시도할 기회를 주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파슨스의 관점에서도 엿보이듯 미국의 대한(對韓)정책 기조는 냉전논리에서 비롯된 것이다.그러나 張勉정부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까닭은 ‘李承晩독재’를 무너뜨리고 들어선 張勉정부야말로 미국이 자유세계의 모범생으로서 키울 만한 가치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전상숙(梨大강사·정치학박사)
  • 7일 세계여성의 날…곳곳서 기념대회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 15회 한국여성대회가 7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공동 상임대표 池銀姬) 주최로 열렸다. ‘평등 평화 이루는 새로운 천년으로’를 주제로 한 이날 행사에는 金慕妊보건복지부장관,申樂均 문화부장관,尹厚淨 여성특위 위원장,李效再 올해의여성운동상 심사위원장 李美卿·鄭喜卿 국회의원등 각계인사와 경제정의실천연합,녹색연합,참여연대등 14개 관련단체 회원,가족 1,500여명이 참석했다. 金大中대통령은 축하 영상편지를 통해 “21세기는 여성의 장점이 빛을 발할수 있는 지식과 정보,문화의 시대로 새 천년의 주역은 여성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정부는 이러한 흐름에 적극 부응하기 위해 올해 불합리한 남녀 차별제도를 개선하고 남존여비의 인습적 잔재를 청산하는 한편 사회 모든 분야에서 여성의 권리와 참여가 실질적으로 확대될수 있도록 힘써 나갈것”이라고 밝혔다. 池銀姬 상임대표는 대회사를 통해 ◆‘성차별적인 고용조정 중단과 무분별한 비정규직 확산 규제 ◆ 국민기초생활보장법제정을 통한 일정 소득 이하여성의 최저 생계 보장 ◆공공부문 30% 고용·승진할당제 실시와 군복무 가산점제 폐지◆가사와 직장을 양립할수 있는 육아지원제도 수립◆여성농민의노동가치 실현 제도화와 복지·건강대책 마련◆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과 30%여성 할당제 실시◆국민건강보험법에 기초출산 수당제 도입◆국민1인1연금제도입◆호주제 폐지◆성폭력근절 종합대책 마련등을 ‘새로운 세기가열리기 이전에 꼭 해결해야 할 10가지 여성과제’로 선포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또 25년간 빈민여성 운동을 벌여온 姜命順 부스러기선교회협동총무(47)가 제11회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했으며 기념공연과 미술전,페이스 페인팅(Face Painting)행사,군가산점 폐지 서명운동도 열렸다. 대회가 끝난뒤 5백여명의 회원들은 서울교를 거쳐 영등포 롯데 백화점 앞까지 여성해방 기원 거리행진도 벌였다. 姜宣任 sunnyk@
  • 洞이름 30% 일본식 그대로

    종로 중 서대문 마포 성동 영등포 용산 성북구 등 일제시대부터 있었던 자치구의 동이름 가운데 30% 이상이 여전히 일본식 지명을 쓰고 있는 것으로나타났다. 이는 최근 열린문화운동시민연합이 개최한 공개토론회에서 ‘일제잔재 청산을 위한 올바른 땅이름 제정의 과제’란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한 이단체의李洪煥 공동대표(58)에 의해 밝혀졌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8개 자치구 470개 동이름 가운데 31.1%인 146개 동이 일제시대때의 명칭을 그대로 쓰고 있다.종로구의 경우 87개 동가운데 60.9%에달하는 53개 동이,서대문구도 20개 동가운데 8개(40%)가 일제잔재였다.특히일본인이 많이 거주했던 을지로 근처나 용산 일대는 일본식 지명으로 도배를 하다시피 한 상태다. 이와 관련,서울시 지명위원회 관계자는 “동의 이름을 바꾸려면 정부는 물론 민간에서 부담해야 할 사회비용이 방대해지고 각종 권리행사,배달체계 등에 엄청난 혼란이 따를 것으로 예상돼 현재로선 동이름 개정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말했다.
  • 3·1항쟁 80돌 아침에/김삼웅 대한매일 주필

    3·1항쟁 80주년이다. 1세기에 가까운 세월의 더께와는 달리 갈수록 엷어지는 항쟁의 정신을 아쉬워하면서 다시 그날을 맞는다. 해마다 3월이면 3·1정신을 계승하자는 구호는 요란하지만 정작 우리 주변은 일제 잔재로 가득차 있다. 여기서는 지식인들까지 부지불식간에 쓰고 있는 일제가 남긴 ‘역사용어’에 대해 살펴본다. 일제는 한국침략과 지배를정당화시키고자 관학자들을 동원하여 각종 용어를 만들었다. 그런 용어를 우리는 해방 반세기가 지나도록 부끄러움을 모른채 그대로 쓰고 있다. ▲정한론(征韓論)― 중·고등학교 국사책이나 역사학자들의 저서에 ‘정한론’이란 용어가 수록돼 있다. 1860년대 이후부터 일본 정부내에서는 조선을정벌하여 식민지로 만들어야 일본이 대륙에 진출할 수 있고 아시아의 패권을 누리게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일본은 이미 강호(江戶)시대의 해방론(海防論)에 이어 막부(幕府) 말기의정한론,다시 명치 이후에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일한일역론(日韓一域論)으로 한국침략의 정당성을 내세웠다. 먼저 정(征)자의의미를 살펴보면,두인변과 바를 정(正)자가 합쳐서 생긴 회의문자다. 아버지와 아들 관계 또는스승과 제자 즉,올바른 웃어른이 어린아이의 잘못을 꾸짖어 훈계한다는 뜻이다(여씨춘추). 또 다른 의미에는 정(征)이란 천자(天子)가 죄인을 호되게 꾸짖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여진정벌’이나 ‘대마도정벌’의 경우,도발하는 외적을 응징할때 주체적 의미로 쓴다. 그런데 일본이 우리를 침략하는 의미의 ‘정한론’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일제의 침략론’으로써야 옳다. ▲이조(李朝)― 우리 역사에 ‘이조’란 나라는 없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합병하면서 한국민에게 조선왕조를 격하,한 씨족사회를 합방했다는 점을 인식시키고자 만든 용어다. 즉,일본은 ‘조선’이란 국가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씨족 대표가 지배하는 사회를 해체하고 대신 자기들이 다스리게 되었으니독립운동이나 애국심 따위를 갖지 말도록 조작한 용어다. 이런 것도 모르고 우리는 ‘이조 500년’,‘이조백자’,‘이조시대’ 어쩌고 하면서 역사를 말한다. 정식국호는 ‘대조선왕국’(1894),‘대조선제국’(1895),‘대한제국’(1897)이고 통칭 ‘조선왕조’또는 ‘조선’이라 써야 옳다. ▲의병토벌―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자 일본군이한국의병을 토벌했다는 기록이 많다. ‘토벌’은 관군이 반란군을 진압하는것인데,왜병은 관군이고 우리 의병은 반란군이란 말인가? ‘의병학살’로 써야 한다. ▲당쟁― 흔히 조선왕조가 ‘당쟁’으로 망했다고 말한다. 당쟁이란 용어는일본인들이 만들었다. 대한제국의 학정참여관을 지낸 幣原단이 1907년에 쓴‘한국정쟁지(韓國政爭志)’에서 처음으로 ‘당쟁(黨爭)’이란 용어를 쓰면서 조선시대를 당쟁시대로 부정적으로 규정했다. 細井이란 자는 “조선사람의 혈액에 특이한 검푸른 피가 섞여 있어서” 당쟁이 여러 대에 걸쳐 계속되고,결국 고칠 수 없는 것이라고 체질론을 폈다. 조선시대에 파쟁이 심했던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을 비롯,어느 나라든 정도의 차이일 뿐 정치적 파쟁은 있기 마련이다. 조선시대에는 ‘붕당’이란 용어가 사용됐다. ▲민비― 고종의 왕비 민황후를 일제는 민비로 비칭했다. 1895년 일본공사미우라가 일본군대와 정치낭인들을 내세워 왕궁을 습격하고 황후를 시해한뒤 정권을 탈취하는 을미사변의 만행을 저질렀다. 대한제국 정부는 1897년명성황후로 추책하고 국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일제는 한국의 황후를 시해한 만행이 세계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민비’라 부른 것을 우리가 그대로호칭한다. ▲모의(謀議)― 항일독립운동가들의 모임을 ‘모의’라고 표기하는 경우가흔하다. 모의는 “옳지 않은 일을 하기 위한 음모”를 말하는데,독립운동이옳지 않은 일인가. 일본 경찰이나 헌병이 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협의’나 ‘논의’로 써야 한다. ▲징용(徵用)― 일제시대 많은 한국인이 전쟁터나 탄광으로 강제로 끌려가노역에 시달렸다. 이를 ‘징용’이라 부르는데,원래 징용은 국가가 사람을불러 일을 시키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징용’당한 것이 아니라 ‘강제노역’당한 것이다. ‘징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신대― 정신대란 몸을 던져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일제에 끌려가 성노예 노릇을 한 여성을 어찌 정신대라 부를까. ‘일본군 강제 위안부’라 표기하자. 3·1항쟁 80주기를 맞아 일제의 용어 한가지라도 바로 잡으면서 선열들의구국정신을 기렸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kimsu@
  • 獨 바이마르市 ‘홀로코스트 속죄’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南玎鎬 특파원□ 99년 유럽 ‘문화도시’ 바이마르가 나치 탄생의 어두운 역사를 새로운 교훈의 역사로 변신시키고 있다. 지난 19일 개막공연을 갖고 축제의 한 해를 시작한 인구 6만의 소도시 바이마르는 작가 괴테,실러,작곡가 바흐,리스트등 고전 대가들의 숨결이 깃든 곳.20세기초엔 최초 민주헌법이 피어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마냥 들떠 있지 않다.이 도시가 민주헌법 수립이후 우익정권을 최초로 배태,나치 태동에 앞장선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3년 ‘문화도시’로 선정 이후 준비를 해온지 6년만에 바이마르는 몰라보게 달라졌다.700만달러를 쏟아부어 새단장을 했다.당시 선정된 배경에는 99년이 괴테가 이곳에서 탄생한지 250주년되는 해라는 점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 그러나 재탄생의 발목을 부여잡는 것이 바로 과거의 악령.지난 37년부터 45년 사이 5만 6,000명이 학살된 부켄발트 유태인 수용소가 바로 이곳에 있다. 그리고 잊을만하면 한번씩 신나치주의자들이 발흥한다. 시는 이런 역사 잔재를 외면하기보다는 프로그램속에 끌어들여 반성의 계기로 삼는 길을 택했다.괴테가 자신의 연극을 공연한 언덕위 궁전에서 부켄발트 수용소까지 1마일 거리의 숲속 산책로가 만들어졌다.부켄발트의 대변인은 ‘시간의 편린’이라 이름붙인 이 산책로를 만든 배경을 “독일역사에서 문화와 야만이 얼마나 가까이서 공존하는지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njh@
  • 경호실 변화

    金大中대통령의 취임 1년은 청와대 경호실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보안이 생명인 경호 업무상 한계는 있지만,‘열린,선진 경호실’의 구현이 주된목표였다.安周燮 경호실장은 “폐쇄적이고 권위적이라는 일반인의 관념을 해소하기 위해 金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지난 1년간 눈에 띄는 변화를 추구해왔다”고 평가했다. 실제 지난 1년동안 金대통령(238건)과 李姬鎬여사(108건) 행사건수가 이전의 3배 이상으로 증가해 경호수요가 급증했으나 경호조직을 대폭 감축했다.5개처를 4개처로 축소하고 과장급 이상 간부의 직위 60%를 줄였다.정원도 10. 6%나 감축했다.과거정부의 미얀마 아웅산사태에서 보듯 수보다는 형사 ‘콜롬보’같은 전문경호인 1명이 더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청에 따른 것이다. 청와대 주변도 바꿨다.친근감을 가질 수 있도록 노출 경비원의 수를 줄이고,각종 철제 바리케이드를 화단형으로 교체했다.콘크리트 초소도 청기와 초소로 바꿨고,청와대 앞길 통행도 완전 자유화했다.그 결과,하루 평균 1,000여명의 일반인이 청와대 경내를 관람하고있다.청와대 앞길 차량통행도 하루 6,000여대에 달해 웬만한 서울시 주변 도로의 통행량과 비슷한 수준으로 개방됐다. 청와대내 경호실 건물과 시설,지하통로도 내방객들이나 청와대에 들어오는행사요원들을 배려하는 쪽으로 개·보수작업을 마쳤다. 구내식당 등 권위주의 잔재가 남아있는 건물들은 철거하고,눈에 띄지 않도록 지하화하기도 했다. 경호실 인터넷 홈페이지는 개설한 이래 하루 300여명이 접속하고 있고,이중 3명 정도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이는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일”이라는 安실장은 “세계화시대에 맞춰 전체 경호원의 영어회화,컴퓨터교육은 물론 국제행사 경호를 위한 전문성 제고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말했다.梁承賢
  • [국민의 정부 국난극복 1년 2] 金대통령 국정운영 스타일

    취임초 국민의 정부의 일부 정책결정 과정을 놓고 ‘혼선’이니,‘갈팡질팡’이니 하는 지적이 있었다.국무회의에서 종군위안부 정부지원금 지급문제를 둘러싸고 국무위원간에 격돌,결론을 내지 못하고 다음 회의로 연기하는 일이 벌어졌다.철저한 구조조정과 동시에 실직자 최소화 대책을 거론하는 등얼핏보면 이율배반적으로 비치는 일들도 있었다. 이들 현상은 대부분 金大中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생긴 오해들이다.金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은 자로 잰 듯 엄격하다.처음부터 끝까지 논리가 완벽하다.허점이 보이면 끝없이 고치고 다듬는 것이 이른바 ‘DJ 리더십’의 핵이다. 여기에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섬세함,획일주의가 아닌 토론문화와 다양성의 선호,노사정협약과 구조조정 5원칙과 같은 사회협약과 약속의 중시….오랜 야당생활과 수많은 독서를 통해 형성된 金대통령만의 독특한 개성이다. 이러한 국정 운영스타일을 반영하듯 金대통령은 국정방향과 주요 정책을 결정하기에 앞서 먼저 많은 사람들과 만나 얘기를 나눈다. 청와대 수석이건,비서관이건 직위를 크게 따지지 않고 야당때부터 도움이 됐던 인사들을 불러 1차 논리적인 검증절차를 거친다.문제점이 발견되면 ‘숙제’를 주고 다시 가다듬는다.YS(金泳三전대통령)와 달리 ‘화끈한’ 것은없어도,좀처럼 큰 실수가 없다. 모든 사람들이 우려의 시각으로 바라보았던 5대 기업 빅딜이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기 시작하고,대북 3원칙이 국제적 지지 속에서 변화의 싹이 움트고,국무회의와 청와대 오·만찬 간담회에서 비교적 자유스럽게 대화가 오고가는 것도 ‘민주적 토론’과 원칙을 중시하는 그의 스타일과 무관하지 않다. 독재에 맞선 민주투사로,공정경쟁을 존중하는 정치인으로 당연한 시스템의변화라는 것이다.간혹 논의 과정에서 정책 초안이 공개됨으로써 혼선을 초래하는 일이 있지만,金대통령이 일관성을 중시하는 지도자임이 분명하다. 창조적 지식기반 국가 건설과 신지식인 운동을 제시한 부분은 미래지향적이고 비전있는 지도자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21세기 우리나라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앞서 제시함으로써새로운 세기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심어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의 리더십에도 아직은 과제가 남아있다.지난 1년 동안 지역차별의 최대 피해자로서 화합의 정치를 시도하고 있으나 정쟁에 휘말리면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총풍·세풍수사와 정치개혁 작업에서 보듯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를 청산하려는 개혁작업도 곳곳에서 암초에 직면해있다.그의 화합의 리더십을 ‘유약함’으로 보고 도전하는 수구 저항세력들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게 엄연한현실이다. 개혁의 길로 여러 집단을 아우르고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통합의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金대통령 스스로도 그런 리더십을 꾸준히 추구하고 있다. 梁承賢 yangbak@
  • 덩샤오핑 死後 2년

    중국이 19일로 덩샤오핑(鄧小平)사망 2주년을 맞는다.덩 사후 정치불안과 분열 예측을 일축하면서 덩에 의해 선택된 ‘장쩌민(江澤民) 체제’는 안정속에 개혁 행보를 더하고 있다. 덩 사후 장쩌민은 정적들을 은퇴시키면서 홀로서기에 성공했다.정치안정을바탕으로 덩샤오핑의 ‘시장 사회주의’이론과 프로그램에 따라 개혁 강도를 높이고 있다. 장쩌민 중심의 통치구도는 2002년 가을 16차 당대회때까진 흔들림없을 전망이다.당·정·군 요직에 널리 포진해 있는 그의 ‘직계’들의 위세도 강화추세다.3년후인 2002년 76세가 되는 장쩌민을 이을 권력승계가 문제로 남아있을 뿐이다. 2002년까지 계획경제의 잔재를 줄이고 경쟁과 시장원리의 폭을 넓히겠다는것이 장쩌민 개혁의 요체다.3월초 개최될 정기국회인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선헌법개정을 통해 사유재산을 공인할 예정이다. 현재까지 장쩌민의 시도는 성공적이다.아시아 금융위기를 이겨냈고 8%가까운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외환보유고도 1,400억달러로 일본에 버금간다. 국제적 위상도 상승중이다.그러나 복병도 없지 않다.무너지는 복지체제속에 실업자 급증은 민족분규와 함께 사회안정을 흔들어대고 있다.정치 자유화 요구와 인권문제는 현 체제의 아킬레스건.개혁과 함께 사회 각분야에서 심화되는 참여와 인권신장 요구를 어떻게 다룰지가 지도부의 부담이다. 정치와 사상은 움켜쥔채 경제분야의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장쩌민 체제는 덩샤오핑 이론을 높이 들고 중국식 개혁개방의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李錫遇 swl@
  • 외언내언-북한 설명절

    오늘날 지구상에는 250여개의 민족 구성원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 나름대로 아끼고 숭상하는 고유의 명절이나 풍속을 갖고 있다.우리민족에게도 면면히 전해 내려오는 고유명절과 각종 민속놀이가 있다.그 가운데서도 정월초하루 설날과 8월 한가위 중추절은 우리민족만이 간직하고 있는 미풍양속이며 전통명절이다. 바로 이같이 뜻깊은 명절이기 때문에 올 설연휴에도 2,700여만명이라는 민족의 대이동을 통해서 고향을 찾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민족정통성의 차원에서 볼 때 분단 이후 북녘땅에서 우리의 전통 민속명절이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북한은 정권수립 이후 착취계급들이통치권 유지에 악용했던 허례허식을 추방하고 봉건잔재를 뿌리뽑는다는 정치적 결정에 따라 설날을 아예 공식명절에서 제외시켜 버렸다.89년 음력설을전통명절로 부활시켰지만 金正日생일이나 정권창건기념일과 같은 사회주의명절에 가려 빛바랜 명절로 전락하고 말았다. 북한에서 음력설은 예순을 넘은 촌로(村老)의 기억 속에 희미한 흔적으로만남았을 뿐 이제 설 명절의 진정한 의미는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조상의 음덕을 기리고,친지들과 만나 회포를 푸는 전통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되며 녹두전을 지지고 만두를 빚던 아낙네들의 분주함과 즐거움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그래도 올 설 명절은 金正日생일인 16일과 겹쳐 각종 충성선물과 특식이 배급될 것으로 보여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될 듯하다. 식량난으로 조상에 대한 제삿밥조차 올리기 어려운 북한주민들에게는 위대한(?) 통치자의 생일 덕에 올 설날에는 밥 한술이라도 제대로 먹을 수 있을것 같아 퍽 다행스럽게 생각된다.우리가 설 명절을 맞으면서 되새겨야 할 교훈은 무엇보다 우리민족이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는 정통성을 되찾는 일이다. 기나긴 민족사에서 숱한 수난과 분쟁을 겪으면서도 단일혈통을 유지하고 찬란한 문화를 창조하며 5,000년의 역사를 유지·발전시킨 저력은 우리민족만의 뿌리깊은 정통성이 밑받침되었기 때문이다.민족의 정통성 회복을 통해서만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는 견해도 바로 여기에 근거하고 있다.남북한이 하루속히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시켜 설과 같은 민속명절에서부터 민족의 동질성을 되찾아야 하겠다.설날을 맞아 고향을 찾는 귀향행렬이 북으로도 이어져 북한주민들과 실향민들의 가슴을 녹일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 박은경씨 박사학위 논문‘일제하‘책으로

    일제하 조선인 관료들의 임용정책과 실태,사회적 배경 등을 분석한 연구서가 출간됐다.94년 이화여대 정외과에서 ‘일제시대 조선총독부 조선인관료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박은경(40·광운대 강사)씨가 학위논문을수정·보완,‘일제하 조선인관료 연구’(학민사)를 단행본으로 펴냈다. 박씨에 따르면 1909년 ‘한국직원록’에 수록된 조선인 관료 3,624명중 67.6%에 해당하는 2,449명이 조선총독부 관료로 유임된 것으로 나타났다.이들가운데 절반 이상은 근대교육을 받은 자들로 일본유학이나 일어학교 출신자가 43%에 이른다.이는 일제가 병합전 유학생이나 교육기관을 통해 친일파를육성해 왔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박씨는 분석하고 있다. 일제는 조선통치초창기 조선을 파악할 목적으로 부득이 대한제국 관료를 재임용하였으나 그들에 대한 대우는 보잘 것 없었다.우선 일제는 이들의 대부분을 하급 지방관에 임명하였으며 총독부 본부에는 서기나 통역생·속(屬) 정도에 불과하였다는 것.특히 경제부처에는 단 한 명의 조선인도 채용하지 않았으며 경찰분야에서도 조선인들은 순사보·헌병보조원 자리가 고작이었다고 박씨는 주장했다. 한편 1930년대 이후 일제는 고등고시를 통해 조선인 관료를 직접 충원하였다.이들중 더러 도지사나 도 참여관 등 고위직에 이른 자들도 있는데 이들은 대개 도쿄제국대학 출신자들로 일제로부터 업무능력과 친일성을 인정받은자들이다.일제의 식민통치에 협력했던 조선인 관료중 상당수는 해방후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권력엘리트로 재등장하였는데 우리가 식민잔재 청산에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이들에 대한 인적청산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박씨는지적했다.이 책은 조사대상 기간을 1910∼39년까지로 한정하고 있어 1940∼45년 사이해당자들의 행적확인이 곤란한 제한점을 갖고 있다.저자는 “1940년 2월 일제가 ‘창씨개명’을 실시한 이후로는 조선인과 일본인을 구분하기 어려웠기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 기고-‘법조개혁’ 국민이 나설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있다.그런데 여기에 덧붙여서 ‘법은멀고 돈만 판친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요즘이다.이번 대전 법조비리사건을 반성하는 뜻에서 대법원장은 사법연수원 수료식에서 원생들에게 ‘법률상인’이 되지 말라고 했지만,문제는 ‘법비(法匪:법을 악용하는 도적)’가 되니까 문제이다.변호사가 아무리 사회정의와 인권의 수호를 내세워도 넓은 의미의 장사인 것은 틀림없다.장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얼마나 공정한 장사를 하는가가 문제다. 이번 대전 법조비리사건은 의정부사건이 있은지 얼마 안돼 터져서 충격도크다.그렇지만 알만한 사람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다.1993년 김영삼정권 당시 사법개혁을 한다고 요란스러웠다.그 당시도 ‘전관예우’가 문제되고,문턱높고 패쇄적인 사법부의 권위주의와 관료주의 및 법조인맥의 연고-파벌주의가 문제로 떠올랐다. 사법제도와 관련되어 일어나는 모순과 부조리는 그 특수 패쇄사회 속의 오랜 폐습에 서식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밖에선 알기도 어렵고,또 알아도 당장어쩌지 못해왔다.더욱이 그 제도나,그 운영주체인 전문직종의 법조인은 일제하로부터 특수한 분위기 속에서 육성되어 왔다.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건국을 맞아 세상이 바뀌어도 일제하에 생긴 일부 전통과 관례를 철벽으로 고수하는데 성공해온 특정 전문직종의 엘리트 계층이다.그래서 사법제도에는 일제 잔재도 많이 있다.그중에서 관료주의,연고주의와 선후배의 서열에 따른 의리관계 및 특권직종으로서 폐쇄주의의 독특한 세계를 이루어 왔다. 한편 법조인이 독재에 항거하고 사회에 소금역할을 해온 사회 기여와 인권수호의 공로는 인정해야 한다.그런데 독재정권의 법기술자로 전락한 일부 법조가 실세화되면서 법조 분위기는 일각으로부터 급속도로 변질된 것도 사실이다.정의고 사명이고,별볼일 없다는 분위기를 부채질한 것은 독재하 법기술자들의 출세이고 그들에게 주어진 황금방석의 보장이었다.최고법원의 법관을 역임한 자가 대기업을 위해 상고이유서를 한장 써주고 얼마의 수임료를 받았다는 말이 나돌아도 그럴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수긍하는 딱한 세상이 된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까? 법을 믿지 못한 지는 오래다.그러나 이번 사건에서처럼 서민이 법을 전면적으로 불신하고,법치란 제도에 대해 허무해한 적도 없을 것이다.서민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 무법자인 ‘마피아’의 그늘에라도 들어가야 살아 남는다.그러한 서민을 비웃을 수만 없다.그러한 무법사태의 종결을 위해 우리는 자구적 차원에서 일대 결단을 내려야 한다.문제 당사자인 법원,검찰 및 변호사회 등 3주체는 각기 자기 나름으로 공정엄정하게 처리하라.시간을 더 이상 끌다간 마지막 기회마저 놓친다.다음에국회는 국정조사권을 응당 발동,진상 규명과 대안 제시를 해야 한다.그런데지금 국회가 돌아가는 꼴을 봐선 당장에 기대할 수 없다.그러니 정당은 국회와 사정이 비슷하다고 할지라도 나름대로 정책을 제안하는 등 애를 써라.결국 시민 사회단체가 나서서 진상을 따지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이 나서는 것이다.시민단체를 통하든,개개인으로서든 법을 지키는 온갖 방책을 강구하도록 공개요구,감시,비판,규탄,대안 제시 등을 해야 한다.결국 피해자는 누구인가? 우리 국민이다.그리고누구의 사법제도인가? 국민의 것인데 이토록 국민을 배반하는 지경에 이른것을 그대로 둘 수 없다.이번 기회에 사법과정에 얽힌 부패 먹이사슬의 연결고리인 연고주의에 서식하는 정실과 뇌물구조를 부숴버리는 것을 비롯해 철저히 개혁해야 한다.1993년 개혁 드라이브의 헛바퀴 돌리기가 되풀이된다면 우리 장래는 암담하다.서민이 지금 얼마나 분개하고 죄절해 가슴을 치고 피를 토하고 있는지 아는가?
  • 신춘 논단-20세기 남은 한해의 과제

    20세기 남은 한해의 첫날이 밝았다.한국역사상 유례없는 파란곡절의 20세기가 올해로 막을 내리고 새 천년 21세기 여명을 맞게 된다. 세기말과 새 천년의 어간에 선 1999년은 청산과 새 설계의 한해가 돼야 한다.무엇을 청산하고 무엇을 설계할 것인가. 먼저 식민지배와 분단과 독재와 지역갈등과 IMF로 상징되는 민족모순과 그잔재를 청산해야 한다. 우리는 20세기 초입에서 식민지로 전락하고 중간시점에서 동족상잔을 치르고 세기 말에 IMF환란을 겪게 되었다.분단과 독재와 실업사태 등 모든 갈등구조는 여기서 연유한다. 무능한 지도자는 범죄다.대한제국 지도층은 국제정세에는 장님과 같았고 국내문제에는 색맹이었다.밀물처럼 밀려드는 외세의 침략에는 눈뜬 장님처럼허둥대고 개혁과 통합이 요구되는 국내문제는 개화·쇄국으로 나뉘어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사시적이었다.결과는 참담한 식민지 전락이었다. 지도층의‘장님과 색맹현상251은 해방후에도 나타났다.해방정국에서 찬탁과 반탁,단독정부와 통일정부수립을 둘러싸고 또 다시 국제정세에는 눈뜬 장님이었고 국내 권력투쟁에는 이념의 색맹이 되었다.결과는 분단과 동족상쟁으로 나타났다. 장님과 색맹의 정치는 자유당 12년 독재와 30년이 넘는 군사정권 그리고 여기에 뿌리를 둔 사이비 문민정부로 승계되는 반세기 정치권력의 모순으로 이어졌다.이 기간 물량위주의 성장이‘한강의 기적251을 이루었지만 사회정의와 국제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성장은 IMF허상으로 나타났다.색맹권력이 만든 비극이다. 정경유착,지역갈등,도덕타락,강력범죄,가정해체,공직부패 등 반사회 반국가적 현상은 이같은 모순구조가 빚은 산물이다.이런 것들을 청산하지 않고 21세기를 항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분단과 남북적대의 해소없이는 민족모순의 해결은 공염불이다.‘유일한 분단국251이 지구촌의 치욕이지만,남한 150만 실업자 북한 300만 기아자,세계최고의 군사밀도와 북한의 핵개발과 생화학무기개발 등은 자칫 민족 전체의파멸을 불러올 재앙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양측에서 존재하는 극우 극좌세력의 준동은 민족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조선조 때의 극심한 예송논쟁이나 한말 쇄국·개화파 대결이 국난과 망국을 불러왔듯이 지금 남북간의 적대적 이념대치는 한민족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밝은 구석도 보인다.무역수지와 경상수지의 흑자에 이어 외환,환율,물가안정,주식시장의 활성화,국제신용도 향상,재벌의 빅딜과 구조조정 그리고 정경유착의 단절로 우리 경제의‘안개251가 걷히고 있다.실업과 내수부진 등 부정적 요인이 없지않지만,정치·사회불안 등 비경제논리가 경제회생을 억누르지만 않는다면 전망은 밝다.올해는 국가의 모든 역량을 국제경쟁력 향상에기울여야 한다.북한은 부분적이지만 시장경제적 요소확대,암시장 허용,금강산개방,금창리 지하시설 현장 접근 가능성등 변화의 모습을 보인다.남북간에 인적 물적 교류도 활발하고 대북투자 물량도 확대되고 있다. 남북간의 엷은 햇살은 김대중대통령의 햇볕정책의 영향이 크다.정부가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일관되게 정경분리 정책을 견지하면서 대북 화해정책을 추진한 결과 아직은 엷지만 화해와 협력의 햇살이 50년 언땅을 녹이게되었다. 차제에 미국의대북경제제재 완화,미·일의 대북수교 등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불러올 서방의 가시적 조처가 나타난다면 한반도의 냉전기류는 크게 바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총성없는 혁명의 한가운데 서 있다.과거처럼 폭력혁명이 아닌변화와 개혁의 혁명이다.5대 재벌이 빅딜과 구조조정을 통해 사실상 재벌해체의 과정에 있으며 정부의 4대 개혁과 공직부패 척결이 진행되고 있다.문제는 정치권이다.낡은 행태와 구습을 반복하면서 고비용 저효율의 틀을 벗지못한 정치권이 지역단위 정당체제, 소영웅주의적 의정활동,총독부형 지방행정구조를 고치지 못하면 국난극복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분열적 선거제도와 국회·정당구조를 국민통합형으로 바꾸고무능력자와 부패정치인을 퇴출시켜야 한다.21세기 한국을 20세기적 정치틀에서 19세기형 정치인들에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치권이 개혁을 단행하여 정치발전과 경제회생에 앞장서야 한다.정치개혁이 없는 국정개혁은 미봉책일 뿐이다.인류역사상 가장 극심한 변화가 예상되는 21세기를 한해 앞두고올해를 민족사적인 낡은 질서의 청산과 새 세기를향한 새 설계의 준비기간으로 활용해야한다.정치개혁이 선결과제다. [김삼웅 본사주필]
  • 나아갈 길-버려야 할 국민성, 세워야 할 참가치

    [姜 萬 吉]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경남 마산·65세 ●고려대 사학과졸·문학박사 ●고려대 중앙도서관장 ●월간 ‘사회평론’발행인 ●주요 저서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한국민족운동사론’ ‘통일운동시대 의 역사인식’ 절충하고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나는 그것을 수렴이라고 부릅니다.우월성 으로 통일의 기반을 삼는 견해는 우려스럽고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姜교수 통일문제는 한반도에서만 유일하게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냉전구 도는 다 무너졌는데 한반도에만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역사학도의 입장에서 보면 지정학적 위치가 문제입니다.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은 무력통일이나 독일식 흡수통일이 지정학적 으로 어렵다는 점입니다.한마디로 남북이 대등한 위치에서 평화통일 방법론 을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국민의 정부는 이 점에서 방향은 옳게 잡고 있습니 다.그러나 여기에 만족하지 말고 서해안에 간첩선이 출몰하더라도 왜 동해안 에서 금강산 유람선이 뜰 수밖에 없는지,그리고 왜 흡수통일이 아닌 평화통 일이 이뤄져야하는 지를 국민에게 분명하게 설명해 줘야 합니다. ●李교수 남한사회에서는 북한은 모든 것이 이질화됐다고 말합니다.남한의 거울에 비춰 같지 않은 것은 이질화라고 봅니다.그러면 남한은 이질화되지 않았는지 남한 자체를 객체화시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姜교수 지역대결 문제에도 역사적 원인이 있습니다.일제는 한반도 강점을 쉽게 하기 위해서 분열 요인이 별로 없는 우리를 두가지로 분열시켰습니다. 하나는 계급적 차이를 이용한 것이고,다른 하나가 지역갈등 문제였습니다.일 본이 지역갈등의 씨앗을 심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후 해방이 되면서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 분출되면서 지역문제는 그다지 불 거지지 않았지만,일본군 출신의 朴正熙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악용하기 시 작했습니다.정통성없는 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역대립을 조장한 것입니다.그같은 지역대립조장의 결과가 절정에 이른 게 광주민주항쟁이었습 니다만,문민정부를 거치면서 지금까지도 고질화돼 있는 형편입니다.최근에 겪은 하나의 어이없는 사례를 들겠습니다.제고향(마산)에서 한 관리가 부정 을 저질러 막상 사법처리되자,부정한 사실 그 자체는 간 곳 없어지면서 아무 개 정권이 우리 지역을 탄압하고 있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고 합니다.부패 관 리 징치보다 지역감정이 우선하는 이런 일이 어떻게 생길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지역감정 문제 해결은 과거 피해를 입었던 쪽이 정권 차원에서 이것을 푸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봅니다.과거 정권의 틀을 벗어나 모든 부문에서 공정하 게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도 다행한 것은 젊은 층이 지역감정이 희박하다는 점입니다.동서문제는 젊은 층이 민주사회의 주인으로 자리잡으면서 자연히 해소될 것으로 여겨집 니다.기성세대 중에서도 양심적 지식인들이 시민운동을 통해서 지역대립 문 제를 풀어가는 적극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李교수 남한사회의 지역 대립은 근대사회 들어 사회에서 피해적 존재를 만 들어내기 위한 파쇼의 통치전략입니다.19세기 말과 20세기초 독일,폴란드 등 에서 이같은 일이 일어났는데,이 과정에서 600만여명의 유태인이 나치에 학 살당했습니다.유태인은 유럽에 동화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그러나 파쇼 집단은 백인 부르주아사회의 반인간성을 유태인에 투영시켰습니다.유태 인으로 하여금 사회적 카타르시스의 역할을 하도록 강요한 것입니다.이같은 원리와 전략이 朴정권에 의해 호남에 적용됐습니다. 나는 철이 든 나이로 일제시대를 살아 잘 아는데,일제시대에는 지역 차별이 없었습니다.해방 뒤와 민주당 정권 때도 지역 차이 없이 정당을 구성했습니 다.지역 차별은 71년 대통선거를 계기로 구조화된 것이 분명합니다.유럽 파 시스트체제 생성과정의 유태인의 존재를 호남에서 찾은 것이지요.●姜교수 역사 교육 쪽으로 화제를 돌려보지요.현대사 교육을 제도교육 쪽에서 보더라 도 지금 2가지 문제가 잘못됐습니다.중·고 국사 교과서가 아직도 朴정권 때 결정했던 그대로 국정교과서 상태로 남아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사실입니다. 이래선 일본에 역사교육이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곤란할 지경입니다. 그중 국사교과서에서 현대사 부분이 대단히 약합니다.정권의 정당성 문제에 대한 서술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남북대립적 입장에서 주로 역사를 기술하다 보니 남북화해적 교과 내용이 없습니다.통일된 독일의 경우 옛날 서독 교과 서를 동독지역에서 그대로 쓰고 있어도 문제가 안될 정도입니다.그만큼 객관 적으로 썼다는 얘깁니다.남북의 역사 교과서가 해방 이후 천양지차로 서술돼 있습니다만 민족 화해적인 내용이 더 크게 부각되도록 방향을 잡아가야 합 니다. ●李교수 역사교육의 잘못은 원죄에 속하는 부분이 있습니다.그리고 원죄는 해방 직후 일제 잔재를 토대로 한 새 국가 건설에서 출발합니다. 남한에 진주한 미군은 45∼48년 군사정부를 만들어 통치하면서 일제시대 독 립운동가,혁명가,애국지사를 토대로 한 것이 아니라 친일 반역행위를 한 개 인을 모아 요직에 배치했습니다.그리고 李承晩정부가 그것을 이어 12년간 통 치했습니다.李承晩 개인은 독립운동을 했다고 하지만 그 정권은 친일 반역자 에 업혀 새 국가를 건설하고 통치한 추악스러운 정권입니다.정부 수립 직후 반민특위법을 만들었지만 한 명도처단하지 못하고 거꾸로 애국지사가 처단 됐습니다.그래서 이같은 사실들이 국정교과서에 들어가지 못하고,또 ‘국정 ’으로 교과서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朴正熙는 제 발로 일본군에 입대해 천황에게 목숨을 바치겠다는 말을 한 사람입니다. 그런 나라의 국정교과서가 어떻게 진실을 기술할 수 있겠습니까.朴正熙는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지성의 요구를 반공(反共)이라는 적대적 긴장을 조성해서 무마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늦었지만 교육을 다시 해야 합니다. ●姜교수 역사교과서를 국사편찬위에서 국정교과서로 만든다는 것 자체가 민 주주의 국가에서 어불성설이고 창피한 일이지요. ●李교수 21세기는 스스로 승리했다는 자본주의 안에 사회적,도덕적,인간적 가치를 재생시켜야 하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나는 자본주의는 절반만 승리 하고 절반은 패배했다고 생각합니다.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는 끝났다” 고 말했지만 나는 21세기부터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고 봅니다.IMF는 자본 주의의 발작이자 경련입니다. ●姜교수 20세기에서 자본주의가 살아남게 된 것은 이른바 ‘케인스 혁명’ 이후 사회주의에 약간의 양보를 했기 때문입니다.케인스의 신이론에 따라 자 본주의가 계획경제의 장점을 일부 받아들인 것입니다.반면 국가사회주의는 7 0년대를 지나면서 무너져갔습니다.이제 21세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신자유 주의가 풍미하면서 각종 비인간적인 측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그러나 신자 유주의 체제하에서 비인간적인 사회적 상황이 점점 확대되면서 새로운 (경제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려는 노력도 더욱 적극화될 것으로 보입니다.인간은 끊임없이 자기 혁신을 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21세기에는 그런 새로운 것을 찾아낼 것입니다.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그런 일에 당연히 관심을 가져 야 하며,그렇게 되기 위해선 우리 정치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남다른 역사의 식을 가져야 합니다. ●李교수 여기서 올바른 언론의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미국 수정헌법 1조는 “의회는 종교,언론자유(Freedom of Speech),출판(Pres s),집회,청원권을 제한하는 법을 제정할 수 없다”고규정하고 있습니다.이 는 오늘날 세계의 모든 문명국가가 헌법 전문에 규정하고 있는 문명사회의 원칙으로,호치민의 북베트남 헌법에도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서열에서 출판의 자유가 언론의 자유 다음이라는 것입니다.언론의 자유는 시민과 개인은 무엇이든 책임질 수 있는 범위에서 무엇이든지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뜻합니다.또 언론기관보다 개인의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고 존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것이 언론기관의 자유로 둔갑돼 있습니다. ●姜교수 崔章集교수 문제가 일어나는 과정을 보고 참 불쾌했습니다.한 학자 가 자기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연구,이론구성을 해놓은 것을 가지고 언론 이 즉흥적으로 평가,시비를 거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학술적 결과 물은 학계 내에서 소화하거나 비판해야 합니다.어떤 이유에서건 학자를 걸고 넘어져 학문을 어렵게 하는 것은 언론기관이 할 일이 아닙니다. ●李교수 우리는 역대 개발독재정권이 경제 건설이라는 미명 아래 그동안 쌓 아온,권력집단의 노획물 같이 수탈할 수 있었던 가치구조와 관습 등 모든 면 을 수술해야 합니다.毛澤東정권이 제도를 혁명적으로 바꾸고 鄧小平이 모든 체제를 바꿨던 예를 본받아 혁명적 변화를 이루어야 합니다.우리 국민은 타 락하고 부패한 지도자 밑에서도 뭔가를 이뤄냈습니다.하물며 새 지도자 밑에 서 혁명하는 마음가짐으로 해 나가면 무엇이든 이루어내지 않겠습니까. ●姜교수 12월31일과 1월1일의 24시간은 다를 게 없는데도 굳이 구분하는 것 은 마음을 새로이 하자는 뜻일 것입니다.(시간의 흐름 위에서)마디를 만들어 새롭게 다짐하면 그것이 역사를 바꿔나가는 일이기도 하겠죠.앞서 언급했듯 이 국민의 정부는 해방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정통성을 갖는 정권입니다.새 정부는 올해 역사적 전환점에서 서서 이 정권의 성립 기반을 다시 돌아보고 이를 확실히 정착시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의 기성세대가 가진 역사관을 젊은이들이 다시 이어가게 하면 그 민족 은 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젊은이들의 역사관이 기성세대와 달라야 그 민족사회가 전진할 수 있습니다.기성세대들은 이 점을 인식하면서 젊은 층과 부딪쳐야 조화가 서로 이뤄질 것입니다. 나는 통일을 과정으로 보지 결과로 보지 않습니다.열매를 따려면 나무에 올 라가야 하고,첫 발을 내디디면 두번째 발을 옮기고,그러다가 가시에 찔리기 도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과 같은 통치체제,또는 이념이나 인민의 자유,권리,창의력을 당이 독점 하는 흘러간 공산주의식 체제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그렇다고 남한식으로 통 일의 기틀을 잡는 것도 찬동할 수 없습니다.남한도 해방 후 반세기 동안 친 일파,범죄,부패,타락,잔인성,비인간성,빈부 차이,자본주의가 가지는 주기적 경기변동으로 인한 인간의 재난과 불행 등을 청산하면서 새로운 국가를 지향 해야 한다고 봅니다.우리는 물신주의(物神主義)에 빠져서 인간 위에 돈이 있 고,모든 가치 위에 돈이 있다는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돈을 소유하기 위해 인간의 이기심을 전면적·극단적으로 발동시켜 생산을 극대화시킨 것이 우리 사회의 우월성입니다.그런데 그것은 인간 파괴를 가져옵니다.
  • 실태와 문제점(방송 이대로는 안된다:1­2)

    ◎시청률 급급… ‘불륜·주먹질’ 여전/MBC 폭력성·SBS 선정성 가장 높아/“저질 판쳐 청소년에 악영향” 비판 거세 KBS­2TV의 시사프로 진행자인 정범구 박사는 최근 출간한 사회평론집(‘정범구의 세상읽기’­창작과비평사 펴냄)에서 이런 지적을 했다. “우리나라 텔레비전을 보면 좀 다르다. 여전히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고,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그런 나라인 것 같다. 그저 면피용(?)으로 일부 시사 교양프로그램에서 실업자문제를 잠깐씩 다룰 뿐 드라마는 여전히 고급주택 안방에서 벌어지는 사랑 놀음,아니면 며느리­시어머니 갈등의 범위를 크게 못 벗어나고 있다”. 텔레비전의 영향력은 이제 어떤 매체도 넘보지 못할 만큼 막강하다. 그러나 ‘공룡 미디어’가 그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각계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공익적 기능과 건전한 국민여론을 이끌어야 하는 소명을 다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특히 상업 논리에 밀려 공영성은 아랑곳 않고 오락·연예인프로가 판을 치며 자극·폭력적인 장면이 난무한다는 지적이 많다. 뉴스도 보도보다 재미에 치중하고 있다고 국정감사의 도마에 올랐다. 지난 2일 金大中대 통령이 MBC 창사특집 생방송인터뷰에서 “온 가족이 함께 보는 그런 TV가 아쉽다”는 말은 이런 문제를 집약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지난 달 열린 한국방송개발원 주최 토론회에서 朴雄振 연구원은 ‘모니터링에 기초한 한국 방송프로그램 진단’을 주제로 한 발제문에서 지나친 시청률 경쟁으로 방송 3사의 폭력성과 선정성이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MBC가 폭력성이 가장 높고,SBS는 선정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초 공중파 3사는 앞다퉈 IMF관리체제를 맞아 10대 위주의 화려한 인기가요 순위프로를 지양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불과 몇달이 지나지 않아 다시 인기가요 프로가 슬며시 부활하고 있다. 드라마 환경은 더 열악하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현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시청률 정상을 달리고 있는 MBC 프로들을 보자. 한번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공허한 내용으로 ‘엿가락 편성’을 하거나(‘보고 또 보고’)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이복자매의 사랑다툼이나 계모 죽이기(‘사랑과 성공’)에 집착한다. 여기에 최근 월화드라마 ‘애드버킷’에서 성폭행 장면이나 유혈이 낭자한 복수장면의 지나친 묘사도 가세했다. 또 범죄 재연프로의 만연이나 귀신을 다룬 비과학적 생활태도를 부추기는 프로의 과열은 어떤가. 연예인의 신변잡기만 늘어놓으며 세상은 어디로 가건 아랑곳 없다는 듯한 심야토크쇼는 차라리 공해에 가깝다.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曺정하 사무국장은 “범죄재연 프로그램이 청소년에게 범죄심리를 부추기는 것도 문제지만 더 우려되는 것은 방법까지 미디어를 통해서 배우게 되는 ‘범죄의 학습’”이라면서 “특히 MBC드라마 ‘애드버킷’의 지나친 성폭행·싸움장면 묘사는 너무 적나라하고 모방심리를 조장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런 프로그램 저질화의 원인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방송 현장에서는 입을 모아 ‘광고 경쟁’이라는 현실 탓으로 돌린다. 경제난으로 광고가 급감하자 방송사별로 유치 경쟁이 불붙었다. 자연히 광고주의 눈길을 끌어야 하고 그 잣대인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좀더 벗기고 좀더 찌르는 선정·폭력의 소재에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회사의 수입이 걸려 있는 일이라 시청률을 의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좋은 프로보다는 같은 시간대의 다른 방송사 프로의 시청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1%라도 뒤지게 되면 흥분하게 된다. 어느덧 시청률 만능주의가 당연한듯 자기 최면에 걸리게 된다”. 모 방송사 예능담당 PD의 자조적인 고백이다. 여성민우회 방송모니터팀 朴奉貞淑 간사는 “시청자의 소리를 반영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제작진과 시청자가 꾸준히 언로를 열어 서로의 입장을 확인해나가면 어느 정도 걸러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개혁위 활동 방향/내부 구조개선·프로그램 질향상에 무게/공영·민영방송 제도적 차별화 주안점 방송개혁위원회 출범은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언론계에선 평가한다. 방송개혁위 위원장으로 내정된 姜元龍 목사(크리스챤 아카데미 이사장)를 비롯,다른 위원들의 면면을 봤을 때 일부에서 제기된 ‘정부여당의 방송 장악 의도’와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언론계 일각에서도 전문성과 개혁성이 있는 인사들이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姜목사도 “6공화국 때 방송위원장을 지내면서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주장해 왔었다”고 주장,항간의 우려를 일축했다. 방송개혁위의 활동 방향은 아직 구체안이 나오지 않았지만 주로 방송계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와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무게를 실을 것으로 알려졌다. 姜목사 역시 “방송개혁은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합리적 대안의 준거틀이 필요하다”고 말해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했다. 특히 편성의 다양성을 위해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은 프로그램 편성의 방향을 제도적으로 차별화하는데 주안점을 둔다는 복안이다. 이 대목에 대해 姜목사는 사견임을 전제하고 “현재와 같은 방송구조로는 질좋은 프로그램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시청률만 좇는 시스템은 결코 국민을 위한 프로를 만들 수 없다는 뜻이다.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회사가 많아야 방송사들이 좋은 프로를 선택할 기회가 많아진다는 논리다. 결국 방송개혁위의 시행과제가 구조조정이나 방송산업에 치중되어 있지만 속내는 좋은 방송 프로를 만들자는 취지로 모아지게 돼 있다. 방송산업의 경쟁력 제고나 영상산업 육성 등도 구체적으로 좋은 프로그램이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청자연대회의 金祥根 대표 인터뷰/“방송사 매너리즘 탈피 개혁프로 과감히 늘려야” 시청자연대회의 상임대표인 金祥根 목사는 누구 못지않게 개혁프로그램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공영,민영방송 모두 구체적 컨텐츠로 건전한 방송문화를 갖추는 것이 ‘시청자를 위한 방송’의 밑거름이 된다는 주장이다. “현재 황금시간대에 방영되는 프로는 안방극장으로서 역기능을 많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심야시간대로 옮겨야 합니다. 대신 개혁적인 프로를 주요 시간대에 과감히 내보내는 결단을 내려야 상업성의 폐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개혁 프로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를 띠어야 하고 지향점은 무언지 궁금하다. “방송사의 개혁에 대한 비전과 철학이 담겨야죠. 구체적으론 옴부즈맨 프로를 늘리고 시청자 참여 토론프로도 의무화해야 합니다. 물론 지금도 시청자와 함께 하는 토론프로가 있지만 대개 방송사 입맛에 맞는 사람 위주의 편중된 진행 아닙니까. 나아가 시청자가 제작에 참여하는 과감한 기획도 도입해야 한다고 봅니다.” 金목사는 좋은 본보기로 ‘정범구의 세상읽기’를 들었다. 사회의 뜨거운 현안을 둘러싸고 관련 인사들을 다양하게 불러 여과없이 현상을 진단한 미덕에 후한 점수를 주었다. 그는 특히 “‘그 나물에 그 밥’의 인물이 아니라 현장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이를 통해 국민의 공감을 확산시키는 프로가 너무 적어 아쉽다”고 말했다. 아울러 방송사 안의 자율심의기구가 현실적 제약으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시청자단체의 모니터를 받아들이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사회에 대표를 참여시키고 시청자위원회의 법적 지위도 격상해야 한다는 대안을 金목사는 제시했다. 방송 개혁과 관련한 金목사의 아이디어는 샘솟는다.KBS 시청료거부운동으로 발을 들여놓은 이후 줄곧 이 분야에서 체험한 비합리적인 관행과 싸우면서 다져진 절실한 얘기들이다. “우리 방송사는 자체 내에서 제작부터 보급에 이르는 완결구조를 갖추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공룡 매체’가 되는 요인입니다. 몸집을 줄이고 유휴 인력이 제작현장에 나가 독립제작사를 만들면서 경쟁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방향있는 실업’은 감수해야 한다고 봅니다.” 金목사는 공영성 확보도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를 위해 공영방송이 민영방송과의 차별화작업을 먼저 시도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민영방송이 본받을 만한 공영성있는 프로가 드문 게 문제입니다 .이는 공영방송이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는 말인데 광고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는 공영방송이 앞장서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KBS­2TV는 수신료 인상을 통해 광고를 폐지하는 방안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으로 방송 개혁의 목표를 제시했다. “지금은 방송개혁의 의지를 어느 때보다 높일 때입니다. 우선 방송의 민주화,노사 협력,시청자 참여를 내적인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전체적으로는 참여민주주의,민족문화의 계승 발전에 기초한 국제화시대 주도,부조리한 사회구조와 부정부패를 척결하려는 제2의 건국정신과 병행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를 위해 방송사 내의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구시대 인물과 잔재를 과감하게 청산하고 제도 개선작업을 실천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별취재반 洪性秋 행정뉴스팀 차장 崔光淑 정치팀 기자 李鍾壽 李順女 문화생활팀 기자
  • 친일의 군상/前 이화여대 총장 金活蘭(정직한 역사 되찾기)

    “아세아 10억 민중의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결전이 바야흐로 최고조에 달한 이 때 어찌 여성인들 잠잣코 구경만 할 수가 잇겟습니까.이 날을 위한 마음의 준비는 이미 벌서부터 되여 잇섯습니다.내지(일본)학도들과 함께 전문대학 법문계(문과) 반도(조선)학도들은 우렁찬 진군을 이르키어 특별지원병으로서 오는 1월20일에는 영예의 입영을 하게 되엿습니다.이번 반도학도들에게 열려진 군문으로 향한 광명의 길은 응당 우리 이화전문학교 생도들도 함께 거러가야될 길이지만 오직 여성이라는 한가지 리유 때문에 참렬을 못하는 것입니다.…아프로는 결전하의 국가목적에 쪼차 한사람이라도 더만히 우수한 지도원을 양성하기에 전력을 다할 각오가 잇슬 뿐입니다.” 金活蘭(1899∼1970)이 1943년 12월25일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每日新報)’에 기고한 ‘男子에게 지지안케­皇國女性으로서의 使命을 完遂’라는 제목의 기고문 중 한 대목이다. ◎이대 키운 공 크지만 ‘여성계 상징’으론 논란 여지/3·1운동 당시 한때 지하 독립운동 조직과 연계/1936년 이화학당 부교장 시절부터 변절 첫 걸음/동포청년 전쟁에 내몰고도 사과 한마디 없어/“비상시국에 있어 기독교 여자청년들도 내선일체의 깃발 아래로 모여 시국을 재인식하는 동시에 황국신민으로서 앞날을…” 일제하 지식인이 신문에 쓴 친일성향의 글 한 두편을 통해 그의 삶 전체를 평가받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거대한 감옥’또는 ‘노예선’으로 불리는 일제 식민지시대에 쓴 글이라면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그러나 여기에는 몇가지 조건이 있다.우선 생명에 위협이 있었느냐,그리고 나중에 자신의 행적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성했느냐 하는 점 등이다. 모든 지식인들에게 지조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몇몇 의사·열사가 이에 속할 뿐이다.그러나 지식인이라면 자신의 과오에 대한 반성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그러나 거의 모든 친일 지식인들은 자신의 친일행위를 반성하지 않았다.친일 지식인들이 더 비난받는 이유중의 하나는 이 때문이다. 일제시대 여성 지식인이었으며 최근 그의 이름을 딴 상(賞)제정 문제로논란이 되고 있는 김활란은 역사 앞에서 용서받을 수 있을까?답은 긍정적이지 않은 것 같다.이유는 그가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따라서 그의 이름을 딴 상 제정은 지식인 사회에서 여러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흔히 김활란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수식어 가운데 하나는 ‘여성박사 제1호’다.그는 학사·석사·박사를 따기까지 세 차례에 걸쳐 5년간 미국유학을 했다.귀국해서는 미국인 선교사 아펜절러(당시 이화여전 교장)의 뒤를 이어 1939년 이화여전 교장에 취임했다.굳이 나눈다면 그는 친미(親美)인사로 분류되는 사람이다.그런 그가 ‘대동아전쟁’이 터지자 친일,반미(反美)인사로 돌변하였다. ○전쟁 터지자 반미로 돌변 “저 흑노(黑奴)해방의 싸움을 성전(聖戰)이라 했고 십자군의 싸움도 성전이라고 했다.…제일선 장병과 보조를 같이 하여 도의를 무시한 물질제일주의의 서양문명을 박차버리고 동아(東亞)의 천지로부터 미영(美英)을 격퇴하여 버리자”.김활란은 조선임전보국단 주최 ‘결전부인대회’결성식(1941.12.27,부민관 대강당)에서 ‘여성의 무장’이란 주제로 미영 타도를 외쳤다. 그러나 해방이 되자 일제하 대부분의 친미·기독교계 인사들(白樂濬·申興雨 등)이 그러했듯이 그 역시 다시 친미인사로 변신했다.그는 미군정 시절 초대 이화여대 총장에 취임했고 이승만정권 하에서 한미(韓美)재단 이사 등을 지냈다. 3·1만세의거 당시 김활란은 이화학당 대학과를 마치고 모교의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그 무렵 지하독립운동 조직과 연결돼 활동하고 있었다.‘7인의 전도대(傳道隊)’를 만들어 기독교 포교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단순한 전도활동 수준을 넘는,일종의 민족운동이었다.20년대 후반 좌우 민족진영의 통합으로 신간회(新幹會)가 결성되자 뒤이어 27년 4월 여성계 민족단체로 근우회(槿友會)가 결성되었다.그는 근우회 창립멤버로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이듬해 돌연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유학을 떠났다. 31년말 그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농촌교육 관련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고 이듬해 귀국했다.귀국후 문맹퇴치·봉건잔재 타파 등을 내걸고농촌운동에 주력하였는데 이는 미국유학을 한 인텔리 여성의 소박한 조국에 대한 헌신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일제 침략전쟁 미화·선전 그의 친일행보는 36년 이화학당 부교장으로 있던 시절 첫걸음을 내딛는다. 그해 말 총독부 사회교육과 주최 ‘가정의 개선과 부인교화운동의 촉진’을 위한 사회교화간담회에 참석하였다.37년 1월 그는 총독부 학무국의 알선으로 ‘조선부인문제연구회’를 결성하였고 7월 들어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애국금채회(愛國金釵會)’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이 단체는 한일병합후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자들의 부인들이 주동이 돼 전쟁물자로 바칠 금비녀·가락지를 모으기 위해 결성한 친일 여성단체였다.이후 여러 친일단체에서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방송선전협의회,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임전대책협의회,조선교화단체연합회,조선임전보국단,조선언론보국회 등등. 그의 활동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기독교 활동이다.38년 6월 조선YWCA의 회장으로 있던 그는 “비상시국에 있어 기독교 여자청년들도 내선일체의 깃발아래로 모여 시국을 재인식하는 동시에 황국신민으로서 앞날을 자기(自期)하는 의미에서…”(매일신보,38년 6월9일)라며 일본YWCA에 가맹을 발표하였다.당시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다가 학교가 폐교를 당하고 구속자·순교자가 잇따르던 때였다. 39년 4월 이화여전 교장에 취임한 이후 그의 친일행각은 본격화되었다.물론 그 배경에는 학교를 지키기 위한 목적도 없지는 않았다.그러나 김해 김씨인 그의 문중이 본관을 따라 ‘김해(金海)’로 창씨를 한 것과는 달리 그는 독자적으로 ‘천성활란(天城活蘭·아마기 가쓰란)’으로 창씨개명하였다.‘어차피 창씨를 해야한다면 정말 (일본식으로)창씨를 해서 자신의 독립된 일가를 세울 생각’이었다.(金貞玉의 저서 ‘이모님 金活蘭’중에서) ○순풍에 돛단 배처럼 살아 ‘대동아전쟁’ 개전(41.12.8) 이후부터는 강연·방송은 물론 가두로 나서서 일제의 침략정책을 미화,선전하였다.특히 여성들을 대상으로 ‘어머니나 딸·동생으로서’ 징병·징용·학병 등 인력동원에 대한 이해와 협력을 촉구했다. 43년8월1일 조선인에 대한 ‘징병제’가 실시되자 그는 “황국신민의 무쌍(無雙)한 영광인 징병제는 드디어 우리에게도 실시되었다.…일시동인(一視同仁)의 황공하옵신 성지(聖旨)에 다시금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나라를 위하여 불덩이 같이 끓는 피와 몸을 통털어 바쳐 성은(聖恩)에 보답할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렸으며 반도 남아의 의기를 뵈일 기회는 드디어 왔다.이 얼마나 기쁜 일이며 수 천년 역사 이래 모처럼 보는 거룩한 감격…”(‘매일신보’1943년 8월7일)이라고 썼다. 그는 해방직전 심한 눈병으로 고생하고 있던 자신을 문병차 찾아온 조카(金貞玉 전 이대교수)에게 “남의 소중한 아들들을 전쟁터에 내보내라고 연설을 하고다닌 죄값”이라고 술회한 적이 있다.(김정옥의 앞의 책 중에서) 당시 여기자 崔銀喜는 그를 두고 ‘모질고 악착한 역경을 맛보지 않고 순풍에 돛단 배처럼 산 행운아’라고 평했다.식민지 시대와 격동기를 산 지식인의 일생이 대체로 고뇌와 아픔으로 점철됐겠지만 그는 상류층의 한 층을 이루는 생애로 일관하였다. 그가 60년 가까이 이화인(梨花人)으로 살면서 일제하와 건국기에 학교를 지키고 가꾼 공로는 인정할만 하다.그러나 그를 여성교육계,나아가 한국여성계의 상징으로 내세우기에는 그의 일생 가운데 ‘흠결’은 큰 편이다.이대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보기에는 그의 친일활동이 적극적이었다.이대측의 ‘김활란상’ 제정 추진은 그의 업적을 기리기 보다는 그의 떳떳하지 못한 삶이 비판의 도마에 오르는 또 하나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김활란 연보 1899년 인천 출생 1914년 이화학당 대학과 졸업 1918년 이화여전 교수·부교장 1928년 ‘근우회’ 발기인으로 참여 1931년 미국 컴럼비아대 철학박사(‘여성박사 1호’) 1937년∼45년 애국금차회·임전대책협의회·조선언론보국회 등 친일 단체 간부로 활동 1939년∼70년 이화여전 교장·이화여대 총장·이화학당 이사장 1948년∼65년 한국대표로 유엔총회 6회 참석 1950년 공보처장 1952년 ‘코리아타임스’ 사장 1954년∼61년 국제기독교선교위원회 부위 원장 1955년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1959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 1963년 대한민국장·막사이사이상·다락방상 수상 1965년 대한민국 순회대사 1970년 별세,망우리 금란동산에 묻힘.대한민국 1등수교훈 장추서 1996년 추모문집 발간,그의 친일 논쟁을 계기로 ‘인터넷 반민특위’이 등장 1998년 이대측의 ‘김활란상’ 제정 계획 발표로 찬반논란
  • 대화채널 복구로 ‘정국 정상화’/총재회담 배경·전망

    ◎재벌·공공개혁 등 새로운 여야 협력관계 모색/‘총재회담’으로 표현… 권위주의 잔재 청산 여야가 회담 의제중 하나인 경제청문회 개최문제를 놓고 막판 진통을 거듭했으나 총재회담 개최에는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결국 시기의 문제만 남아있는 셈이다. 여야가 경색정국을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과 총재회담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다.따라서 金大中 대통령과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간 총재회담의 가장 큰 의미는 그 시기를 떠나 정국 정상화와 정치 본궤도 진입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여야총무간 합의한 의제는 다양하다.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초당적 협력과 새로운 여야 협력관계 구축 등 국정현안에 대해 폭넓은 논의가 가능하다.특히 재벌개혁과 공공개혁,그리고 각종 개혁입법,대북정책 등 외교 분야는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어서 이에 대한 논의도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나아가 ‘제2의 건국운동’에 대한 설명과 정치개혁 문제도 곁들여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큰 폭은 아니더라도 정국은 일단 정상적으로 운영될 여지가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金대통령 취임후 대치상태를 보여온 여야가 상대를 대화파트너로서 인정하고 신뢰회복에 비중을 두고있다고 봐야 한다.국무총리 인준,의원 영입 등으로 서로 상처를 입을대로 입은 처지여서 봉합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대화복원을 꾀한 여야간 출발점은 좋다.막후협상에서 일본식 ‘영수회담’이라는 표현 대신 ‘총재회담’으로 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 자체가 좋은 출발을 예고한다.회담을 성사시키면서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까지 신경을 썼다는 것은 일단 우호적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될 것이다.국민회의 趙世衡 대행도 “당이 앞장서서 총재회담이라는 용어를 정착시키려 한다”고 강조했다.
  • 韓­러시아 함께 가는 21세기/세르게이 페도로프(해외기고)

    러시아는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상호간의 부정적 이미지 타파와 전분야에 걸친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동북아문제 전문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세르게이 페도로프씨는 최근 러시아 2대 일간지 네자비시마야 가제타에 기고한 ‘한·러관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라는 글에서 “지금이 모든 분야에서 진일보한 협력관계를 맺어야 할 시기라는 게 러시아정부의 입장”이라고 전제하고 “특히 한국은 냉전사고의 잔재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아 있는 러시아의 변화를 인정하고 생각을 바꿀 때”라고 강조했다. 금융 위기가 몰아닥친 러시아는 경제 회복,국제 기구와의 관계유지 등 국내 문제에 매달려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동반자,특히 건국 50주년을 맞은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결코 소홀할 수 없다. 한국과 러시아가 유대관계를 맺은 지는 매우 짧다. 국교수립 8년째에 불과하다. 올해는 지난 9월30일 국교수립 기념일을 앞두고 외교관 맞추방 사건이 터져 양국관계가 시험대에 오르기도 했지만 러시아 대사와 한국 외교통상부 장관의 노력으로 잘 수습됐다. 양국의 축적된 외교역량을 입증한 계기가 됐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서명한 한·러 우호조약으로 양국이 외교관계를 맺은 이래 러시아는 양국 관계를 긍정적으로 평가해왔다. 그간 양국간에는 숱한 최고위급,고위급 쌍무협정이 맺어졌다. 이러한 관계는 우선 한반도 문제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했다. 한국은 남북한,미국,중국,일본,러시아 6개국이 참여하는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한 공동성명을 채택하자고 제안했다. 남북한,미·중만의 4자회담 구도에서 탈피,일본과 러시아의 역할을 인정한 것이다. 한·러간의 교류는 경제 및 문화 유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양국간 연간 교역량이 30억달러를 넘어섰고 한국과 러시아는 100여건의 합작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러시아 모두 심각한 금융위기에 처해 양국간 경제협력계획은 조정이 불가피하지만 미래는 낙관적이다. 러시아는 신뢰구축을 위해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8억달러에 달하는 대한(對韓) 부채상환을 거듭 확약해 왔다. 지급계획이 확정된 부채의 일부는 최신 군장비 제공으로대체할 계획이다. 이는 한국정부에도 득이 된다. 한국정부는 군장비 공급선 다변화가 자주외교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러시아는 한국에 대한 군장비 공급이 한반도 세력균형의 와해를 야기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북한에도 이를 항상 강조했다. 러시아가 북한을 내치고 한국과 수교를 맺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한반도정책은 남북을 똑같이 대하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해두고 싶다. 한국과 러시아간의 투자협력은 경제유대의 핵심임에도 아직 미미하다. 한국은 러시아 자유경제지역 ‘나홋카’에의 산업복합단지 건설,이르쿠츠크 가스프로젝트 등 2∼3개 굵직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고 본다. 투자협력을 한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해 조인트펀드 형태가 좋을 것 같다. 한국은 또 러시아의 몇몇 선진기술에 관심이 많다. 한국기업들은 러시아내의 한·러 합작 과학연구센터에서 러시아 혁신기술을 배워가고 있다. 하지만 즉흥적이어서는 안되며 지적재산권 보호 등 강력한 제도적 장치가 수반되어야한다고 본다. 경제·과학의 기반이 잘 닦인 시베리아와 극동에서 협력 증진의 여지도 아직 크다. 장기적으로는 각자 국내에서 상대국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관계를 한때 소원하게 만들었던 심리적 유산을 청산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은 냉전사고의 잔재로 아직 호전적이고 팽창주의적 이미지로 과장돼 있는 러시아의 변화를 주시해야 한다. 양국은 이러한 문제들을 쉽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러시아는 한국과 더욱 깊이있는 협력을 희망하고 있다. 한·러 교류확대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는 한국정부의 언급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정부가 말 따로,행동 따로가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폐기되는 중고서적/柳一相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서울광장)

    이 가을을 누가 독서의 계절이라고 말했던가.이 좋은 계절에 마음의 양식이라는 책들의 운명을 보면 너무도 안타까운 느낌이 앞선다.헌 책방이 줄어들면서 1회용 도서가 베스트셀러라는 이름으로 출판문화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 요즈음 풍경이고 책 내용과는 무관하게 거의 대부분의 도서가 재활용되지 못한 채 한 번만 읽히고도 용도 폐기되는 게 현실이다. 신간서적들은 대형서점을 중심으로 유통되고 있지만 얼마 안되는 독서인구도 베스트셀러에 몰리다 보니 출판시장은 초토화라고 할 만큼 오늘의 독서문화는 황폐화되어 있다.방송과 영상물에다 인터넷 등 과학기술의 강력한 후원에 힘입은 신종 매체와의 경쟁에서 이제 출판산업은 질식 위기에 처해 있다. 출판시장이 오늘과 같은 위기에 몰린 것은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책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이다.책이 내포하고 있는 여러 갈래의 문화들과 행간에 숨겨진 심오한 의미들이 내동댕이쳐지는 것은 책의 고귀함에 대한 모독일 것이다.눈을 조금만 바깥으로 돌려보자. ○서점에 중고책 코너 일본 도쿄‘간다진보초’ 거리에는 전문 분야가 분명한 중고서적상이 즐비하고 깨끗이 정리된 서가를 지키는 중년신사는 선비의 기풍으로 특정 분야를 꿰뚫고 있어 존경심마저 들게 한다.일본에서는 이처럼 신간서적과 중고서적이 따로 떨어져서 유통되는 것이 특징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대형서점 가운데 하나라는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P서점은 하나의 서점이라기보다 장르가 다른 전문서점들의 연합체 같은 곳이지만 어디서나 신구서적이 혼합 판매되고 있다.재활용되는 중고책값은 신간의 60∼70%지만 희귀본은 발행가와 상관없이 매우 높은 값이다.이미 사용된(used) 서적의 구입창구도 마련되어 있다. 우리나라 도서 유통의 어려움은 도서시장 구조가 일제 잔재를 답습한 행정규제장치를 계속 운용하는 데서도 찾아지겠다.신간서적의 유통은 문화관광부가 문화적·산업적 관심을 기울여주지만 중고서적은 고물로 보고 경찰서가 중고서적상을 고물상으로 분류하여 행정관리를 하고 있는 법제도가 책의 바람직한 재활용구조 형성을 막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 도서재활용은 누구에게도 어려운 IMF 구제금융시대에 자칫 메마르기 쉬운 서민독자들의 문화정서를 촉촉히 적셔주고 경제적으로도 절약의 미풍을 계승시킬 수 있어 권장할 만한 일이다. ○재활용 가로막는 법제도 서울 종로·광화문의 대형서점만을 찾을 것이 아니라 깔끔한 신간서적과 손때 묻은 중고서적이 함께 매매되고 교환될 수 있는 동네 서점들이 있다면 독서문화가 오히려 진흥되지 않을까.서점에 커피자판기와 티테이블도 갖추어 차 한 잔을 여유있게 즐길 수 있는 종합문화공간으로서의 서점 모습을 그려본다. 그러나 예상되는 부작용에는 미리 확실하게 대비해야 한다.예컨대 신구서적의 혼합 유통을 틈타 출판사들이 저작자의 정열과 정신의 결정체인 책의 판권을 침해하거나 복사점들이 마구잡이로 서적복사를 하여 저자의 인격권과 지적 재산권을 훔치는 일은 막아야 한다.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이 거침없이 헤엄칠 수 있는 마음의 바다로 책방의 모습이 정립되기를 바라면서 신구도서 혼합형 서점이 자리잡게 되는 날을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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