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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되돌아본 2002 산업계] (1) 달라진 기업문화 - 평생직장 퇴조, 성과주의 확산

    외환위기 발생 5주년을 맞은 올해는 산업계 전반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적지 않았다.상시구조조정체제의 정착으로 ‘평생직장’ 대신 ‘평생직업’ 개념이 보편화됐다.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직장인의 여가활동이 크게 고급화·다양화되는 추세를 보였다.저금리 여파로 시중 유동자금이 부동산시장에몰리면서 투자 열풍이 거셌고,미국 엔론사의 회계부정 사건으로 윤리경영이재계의 화두로 떠오르기도 했다.올 한해 산업계의 주요 변화상을 이슈별로나눠 진단해 본다. 환란 이후 대규모 구조조정은 ‘평생직장’이라는 말을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게 했다.직장내 연공서열과 온정주의는 구시대의 잔재로 전락했다. ◆사라진 ‘평생직장’ 한국노동연구원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국내 30대 그룹과 금융기관,공기업의 직원수는 환란 직전인 97년 10월 155만 9000명에서 지난해 말 122만 2000명으로 줄었다. 상시구조조정에 따른 퇴직은 떠난 이들은 물론,남은 이들에게도 ‘평생직장’이라는 생각을 버리게 했다. S사의 김모 부장(44)은 “무더기로 회사를 떠난동료들을 보며 ‘평생직장’이라는 생각을 함께 떠나보냈다.”며 “조직에 몸담는 동안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10월 100대 그룹 임직원 43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79.1%가 ‘평생직장이라는 생각이 사라졌다.’고 말했다.환란 이후 가장 큰 변화를 겪었던 금융업 종사자의 84%는 평생직장이 없다고 밝혔다. ◆확산되는 성과·개인주의 ‘평생직장’을 포기하는 대신 “더 나은 비전과 처우를 제시하는 기업이있으면 언제든지 떠나겠다.”는 직장인들은 크게 늘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전국 1326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대상 기업의 66.8%가 연봉제를 실시중이거나 조만간 실시할 계획이라고대답했다. L사의 최모 과장(37)은 “조직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던 시대는 지났다.”면서 “부단한 자기계발을 통해 스스로 몸값을 올리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게 됐다.”고 덧붙였다. 현대경제연구원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5.4%가 ‘향후 5년내 현재 직장에서 다른 직장으로 전직할의사가 있다.’고 말해 ‘절대로 옮기지 않겠다.’는 응답자보다 3배 이상 많았다.전직 의사를 밝힌 응답자는 제조업과 30대가 가장 많았다. 이에 따라 여가시간을 자기계발에 투자하는 직장인들이 부쩍 많아졌다.퇴근 뒤 동료끼리 식사하는 일이 눈에 띄게 줄어든 대신 대학원·외국어학원 등으로 달려가거나 부업에 나서는 직장인들이 크게 늘었다. 전광삼기자 hisam@
  • “재산 30억넘으면 부유세”/민노당 100대 대선공약 발표

    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 대통령 후보는 26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기자회견을 갖고 ‘평등한 세상,자주적인 나라’라는 대선 슬로건과 함께 100대 공약을 발표했다.권 후보는 “십수년 동안 대통령이 세 명이나 바뀌었지만 어느 누구도 부익부빈익빈 철칙에 도전하지 않았다.”며 대선공약 1호로과세기준 10억 이상(시가 30억) 재산에 대한 부유세 부과를 약속했다. 또 군사정권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공약으로 ▲국가보안법 철폐 ▲국가정보원 폐지 ▲정치범 및 양심수 석방 등을 제시했다.아울러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에게 부과된 추징금을 즉각 징수하겠다는 내용도 담았다. 정치개혁을 위한 공약으로 전체 국회의석 중 50%를 정당명부식 비례대표로선출,대통령선거 결선투표제 도입,국민소환제 실시 등을 제시했다. 또 주5일 근무제를 비롯해 근로자파견법 철폐,공무원 노조 합법화,외국인노동허가제 실시 등도 약속했다. 민노당은 ▲군병력 20만명 감축 ▲예비군제 폐지 ▲대체복무제 실시 ▲주한미군 단계적 철수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오석영기자 palbati@
  • 나토정상회담 체코 프라하서 개막/ 옛 공산권7개국 흡수 유럽 안보체제 대통합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19개 회원국 지도자들은 21일 체코 프라하에서 개막된 정상회담에서 옛 공산권 7개국을 신규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는 사상 최대의 확대 방안을 승인했다. 나토는 이로써 옛소련 영토까지 영역을 확대,서방만의 안보동맹을 넘어서는 대규모 집단안보 체제로 거듭났다.또한 러시아를 제외한 과거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 전부를 흡수함으로써 유럽 대륙에서 냉전의 잔재를 완전히 청산했다. 이번에 가입이 승인된 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 등 발트해 3개국과 루마니아·불가리아·슬로바키아·슬로베니아 등 동구권 4개국은 2004년부터 회원국으로 가입,미국이 주도하는 나토의 안보 우산 속으로 편입됐다. 1949년 옛소련의 위협에 맞서 서유럽 안보를 위해 창설된 나토가 과거의 적성국가들을 대상으로 기구 확대를 단행하기는 99년 체코·헝가리·폴란드 등 3개국을 회원국으로 가입시킨 데 이어 두 번째다. 조지 로버트슨 나토 사무총장은 새 회원국 명단을 정상회의에 제출하면서 “이것은 매우 중대한 결정”이라고 말했으며,나토 정상들은 로버트슨 총장이 제출한 안건을 박수로 통과시켰다.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이 과거의 균열을 제거하고 점점 하나로 통합되는 역사적 순간이다.”라고 감격스러워했다.앞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나토 확대 결정은 53년 나토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성공적으로 몸집을 키웠지만 나토는 미래에 대해 한동안 고민해야할 것 같다.유럽 언론들이 이번 회담의 주요 의제가 기구 확대가 아닌 나토의 향후 성격과 진로 모색이라고 지적한 것도 이런 이유다. 지난해 9·11테러 이후 급변한 안보환경에서 나토가 제몫을 수행할 수 있을지가 관심의 초점이다.이와 관련,제프 훈 영국국방 장관은 20일 나토가 21세기 새로운 도전에 부응해 체제를 개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따라 나토는 근본적 전략 수정에 착수했다.그동안 지역안보에 치중해왔으나 안보대상을 테러리스트나 불량국가의 위협으로 바꾸고 이를 위해 세계 분쟁지역에 빠르게 개입할 수 있는 2만명 규모의 신속대응군을 창설하며,미국과의 군사력 격차를 좁히기 위해 군비현대화 등을 승인했다. 지금까지 유럽과 북미 지역으로 제한됐던 나토군의 작전지역은 신속배치군 설치와 함께 전세계로 확대된다.하지만 미국 주도의 대테러전선 확대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독일·프랑스 등 일부 회원국들은 나토가 유럽 방위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상당기간 진통이 예상된다.나토 정상들은 이와 함께 미국이 테러리즘과 불량 국가들의 위협에 기동력 있게 대처하기 위해 나토 회원국들에 요청한 2만명 규모의 신속대응군 창설 방안을 승인하는 한편,이라크에 대해 유엔의 무장해제 결의를 ‘전면적이고 즉각적으로’ 이행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채택했다.정상들은 성명을 통해 “나토 동맹국들은 아무런 조건이나 제한도 없이 이라크의 전면적이고 즉각적인 순응을 담보해내기 위한 효과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데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며 “이번 유엔 결의는 이라크가 무장해제 의무를 이행할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박상숙기자 alex@
  • 새영화/ 하얀방, 죽음 부르는 이메일… ‘링’과 닮은꼴

    정준호·이은주 주연의 ‘하얀방’(15일 개봉·제작 유시네마)은 아쉬움을 남기는 공포영화다.‘링’시리즈보다 먼저 나왔으면 어땠을까? 관객에게 이런 걱정을 끼치는 건 접근방식 때문이다.영화 속 공포의 근원은 죽음을 부르는 인터넷 메일.비디오 테이프가 죽음을 전염시킨 ‘링’시리즈와 모양새가 많이 닮았다. 젊고 발랄한 방송국 PD 수진(이은주)은 사이버 수사관인 진석(정준호)의 일상을 취재하던 중 믿을 수 없는 일을 겪는다.자신이 죽는 광경이 담긴 메일이 날아오고,그것이 임신한 채 의문사한 여자들과 관련 있다는 걸 직감한다.죽은 여자들이 똑같은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했다는 공통점이 유일한 단서.다급해진 수진은 생존의 실마리를 찾고자 살인이 일어난 오피스텔로 들어가고,진석은 그 주변을 맴돌며 함께 의문을 풀어간다.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영혼의 저주가 이야기의 원동력.부적이나 축사(逐邪)의식 등이 공포물에 잔재미를 실어준다. 반면,낯설고 참신한 상황설정이 관객에게 스스로 공포심을 키워가게끔 하는 창의성은 기대하기 어렵다.무분별한 낙태 행위에 경종을 울리는 주제어는 선명하나,수진의 애인이자 방송국 앵커인 이석(계성용)이 저주와 관련 있다는 반전 등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그러나 공포물에서 완성도보다는 식은 땀나는 스릴을 즐기고 싶다면 후회하지 않을 영화다.고막을 찢을 듯 잔인한 기계음이 긴장을 풀 틈을 주지 않는다.‘눈물’‘아쿠아 레퀴엠’등 독립영화를 만들어온 임창재 감독이 연출했다. 황수정기자
  • 새영화/ ‘스위트 알라바마’, 출세 위해 두남자사이에서 ‘주판알’

    코믹 드라마 ‘금발이 너무해’의 귀여운 여인 리즈 위더스푼이 또 찾아왔다.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스위트 알라바마’(Sweet Home Alabama·15일개봉)의 여주인공이 돼서다. 그런데 좀 달라졌다.남자친구의 말 한마디에 악착같이 변호사로 성공하던(금발이 너무해)그녀가 이번엔 출세를 위해 두 남자 사이에서 얄밉게 주판알을 튕긴다.알라바마의 시골마을에서 사고뭉치로 자란 멜라니(위더스푼)가 뉴욕에서 패션디자이너로 성공하자 ‘킹카’가 생긴다.뉴욕시장의 아들 앤드류(패트릭 뎀시)의 청혼에 갈팡질팡.별거중인 시골의 남편 제이크(조쉬 루카스)에게 결별선언을 하러 7년만에 고향을 찾아가지만 신데렐라가 되는 일이 쉬울 리 없다.멜라니가 고향을 찾아가 겪는 에피소드들로 잔재미와 감동을 교차시킨다.결혼식장에서의 반전 등 전형적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식상함이 거슬리기도 한다.초가을 미국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사랑싸움을 벌이는 영화에서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위더스푼의 귀엽고 풋풋한 연기.미국 로맨틱코미디 사상 최대의 오프닝 흥행기록을 세웠다.감독은 ‘에버 애프터’를 만든 앤디 테난트. 황수정기자
  • 오피니언 중계석/ 美 프리덤하우스 레너드 서스먼 연구위원 “한국 언론개혁 특별위 구성 시급”

    ‘한국사회가 과거의 잔재를 정리하면서 완전한 민주국가로 전환하기 위해 언론개혁은 모든 국민이 원하는 필수적인 것이다.과거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던 한국 언론은 바로 이 점에서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세계 각국의 언론자유 정도를 조사,평가하는 미국 프리덤하우스의 책임연구위원 레너드 서스먼(82)의 지적이다.그는 30일 한국언론재단 주최로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국가이익과 언론-비판과 협력의 관계’주제의 강연을 통해 한국 언론개혁을 위해 각계 인사로 구성된 특별위원회 구성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강연 내용을 요약한다. 최근 몇 년간 한국은 민주주의 정신과 민주적 제도의 타당성을 잘 보여주었다.그러나 바로 이러한 정신 때문에 한국정부와 언론 사이에 심각한 마찰이 야기되었다.국민에 봉사하는 목적을 지닌 언론과 정부의 관계는 미묘하면서도 핵심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언론인이 기사를 전달하는 데 어떠한 책임요소들이 작용해야 할까.먼저 균형(공정성)을 유지,취재하는 내용의 다양한 관점에 대하여 동일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균형잡힌 보도의 특성상 기자·언론사 소유자·사건 관계자 등의 입장이나,현금 등 대가로 인해 발생하는 이해관계가 사건 보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없애기 때문에 이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둘째 책임있는 언론인은 취재의 성격과 관계없이 하나의 정보원에만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많은 정부 관리들은 자신이 유일한 정보원이거나,정보의 주된 원천이어야 한다고 믿는다.그러나 책임있는 언론인에게 정부관리는 여러정보원들 중 하나일 뿐이다. 언론의 정보 취재 및 보도에 관한 권리와,정부의 매우 민감한 기밀사항 보호에 관한 권리 사이에는 항상 희미한 선이 존재한다.심지어 민주주의 정부의 관리들도 흔히 언론인을 협박하거나 개별 또는 일단의 언론인들을 비난하려 할 수 있다.이러한 협박은 공개적인 질책,정보접근의 간접적 금지형태로 이루어지거나 언론사 경영자들에게 조용히 압력을 넣어 특정 언론인을 해고하거나 보직이동을 시키는 등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언론보도에 위협이 가해지고 있음을 아는 상태에서 독자들이나 시청자들은 해당 언론보도의 신뢰성을 의심할 것이다.그리고 이는 민주사회의 큰 손실이다. 한국은 권위주의적 사회에서 완전히 제 기능을 하는 민주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전환기에 있다고 생각한다.그러면 이 사회가 어떻게 과거의 잔재를 정리하면서 완전히 민주적인 국가로 전환할 수 있을까.언론개혁은 모든 국민이 원하는 것이다.그러나 정부가 그러한 개혁의 주체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그렇다면 언론사 주주들이 언론을 개혁해야 할까.현재 주주들이 통제권을 갖는 언론사의 경우 이들이 개혁에 일부 책임을 져야 한다.언론인 자신이 언론을 개혁해야 할까.이들도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결국 개혁의 주체가 되는 이해당사자만 바뀌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언론개혁에 접근해야 할까.언론계·학계·금융계·종교계·기업 등 모든 관련 분야의 덕망있는 대표자들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과거와 현재에 이르는 언론매체의 장점과 문제점을 조사해야 한다.위원회는 공청회를 개최하고 다양한 분야를 다루어야 한다.이러한 조사가 끝난 뒤 위원회는 언론개혁 권고안을 제출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면 정부에 의한 언론개혁을 막을 수 있다.국민은 주요언론매체에 대해 갖고 있던 불만사항과,문제점에 대한 합의된 해결책을 비정부기구가 제시하리라 기대할 것이다. 해결책 모색에 보복심리가 작용해서는 안 된다.과거의 행위가 형사처벌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경쟁적인 다양한 뉴스 제공기관의 존재가 역동적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이다.합법적인 조치라 할지라도 보복심리에 의한 법 적용은 전환기에 있는 이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구조에 손상을 줄 것이다.이제는 화해를 해야 할 때이다.정부는 정부에 권한을 부여한 시민사회에 이러한 책임감을 보이며,그렇게 함으로써 언론인이 언론활동에서 높은 책임의식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해야 할 때이다. 김성호기자 kimus@
  • 노벨문학상/ 케르테스의 작품세계

    ■아우슈비츠의 충격 문화해석 평생 고뇌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케르테스 임레는 나치의 동유럽 침공 때 악명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돼 이때의 처절한 체험을 문학적으로 꽃피워낸 작가로,동유럽 문학계에서 ‘반나치즘의 기수’지위를 구축한 소설가이다. 1975년 발표한 그의 첫 소설이자 대표작이 된 ‘소르슈탈란사그(Sorstalensag·비운)’는 악명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체험을 작품화한 것. ‘반나치즘’이라는 그의 정신이 가장 깊고 치밀하게 배어 있는 이 작품은 열다섯살 난 소년의 천진난만한 의식에 투영된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의 홀로코스트(집단 학살)가 준 충격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주인공이 바로 15세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용된 케르테스 자신이라고 여긴다. 이 작품은 출간 당시 헝가리에서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으나,1985년 재출간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해 서유럽 각국에서 번역됐으며 독일어로는 1996년에 출간돼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특히 나치의 폭정을 체험한 사람들은 어린 케르테스가 겪은 아우슈비츠의 체험을 너무나 충격적인,그러면서도 결코 예외적일 수 없는 일로 받아들였다. 이와 관련,“새로운 소설을 구상할 때마다 왜 나는 항상 아우슈비츠를 떠올리게 될까.”라고 술회하는 그는 유대인 집단학살 문제를 문화적으로 어떻게 풀 것인가를 화두삼아 평생을 고뇌하며 사는 ‘나치즘의 역사이자 증인’이기도 한 인물이다. 이후에도 그는 수용소 체험을 바탕으로 ‘소르슈탈란사그’시리즈 3부작인‘실패(A Kudrac)’(1988)와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Kaddish for a Child Not Born)’(1990)등을 잇따라 내놓았다.이후 ‘길을 발견한 사람’을 비롯,‘문화로서의 홀로코스트’‘영국의 깃발’‘누군가 다른 사람’등을 펴내는 등 지난 90년대 말까지 꾸준하게 작품활동을 하며 유대인 학살문제와 유럽사회에서 일어났던 반인륜적 집단학살의 문제를 작품화해 동구는 물론 세계의 눈길을 끌어왔다. 케르테스는 전쟁이 끝난 뒤인 48년부터 부다페스트의는 빌라고샤그 신문사에서 기자로 약 3년동안 일했으며,2년간 군복무를 한 뒤 전업작가 겸 번역가로 활동했다. 이 시기에 그는 주로 니체·프로이트·비트겐슈타인 등 독일 문인과 철학자들의 작품을 번역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 가운데는 그를 ‘타협을 거부하는 사람’으로 평가하기도 한다.스웨덴 한림원도 “그는 낯선 방문자에게 빡빡하고 가시돋친 산사나무 생울타리를 연상케 한다.”고 설명할 정도.그러나 그런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그는 독자들을 강요된 감정의 부담에서 해방시키고,생각을 자유롭게 하는 영감을 주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헝가리를 비롯한 동구권에서는 케르테스가 올해 노벨상을 탈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무성했다.그만큼 그의 문학이 동구권에 미친 영향은 큰 것이었다. 최문규 연세대 독문과 교수는 “4∼5년전부터 유럽 문학의 주요 이슈가 ‘기억이냐 망각이냐.’였다.나치 독일의 전쟁범죄를 다음 세대까지 가져갈 수는 없다는 의견과,과거를 잊을 수는 없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올해 노벨문학상은 결국후자의 손을 들어준 셈”이라며 “팔레스타인 문제 등에서 보듯 지금도 전쟁범죄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이며,이는 일제 잔재 청산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이번의 수상작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한경민 한국외국어대 헝가리어과 교수는 “케르테스는 아리안족이 유대인에게 반감을 가진 이유와,집단학살에 침묵했던 유럽인의 의식구조를 파헤치기 위해 헝가리내 유태인 모임을 통해 끊임없이 전통문화를 탐구하는 열정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아직 국내에 번역,소개되지 않았다. 심재억기자 jeshim@ ■연 보 ▲1929년 부다페스트에서 유태계로 출생. ▲1944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이듬해 부첸발트 수용소에서 석방. ▲1948년 부다페스트 신문 ‘빌라고샤그’에 취직했으나 1951년 해고. ▲2년간 군복무 후 생계를 위해 작가와 번역가로 활동. ▲1975년 아우슈비츠 체험을 담은 첫 소설 ‘비운’집필. ▲1977년 ‘길을 발견한 사람’발표. ▲1988년 ‘실패’집필. ▲1990년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발표. ▲1993년 ‘문화로서의 홀로코스트’집필. ▲1995년 브란덴부르크 문학상 수상. ▲1997년 라이프치히 도서상 수상.
  • 평양 학술토론회 다녀온 윤내현 단군학회장 “”고대사 남북 공동연구 물꼬텄다””

    개천절인 지난 3일 평양에서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한 역사학자들이 모여 단군 및 고조선에 관한 학술토론회를 가져 안팎의 눈길을 끌었다.북한 력사학회와 우리측 단군학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이 학술토론회는 단군과 고조선의 실체를 남북이 학문적으로 수용,함께 체계적인 연구의 초석을 놓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행사였다. 단군학회 회장으로 이번 학술대회에 남쪽 학자들을 인솔하고 돌아온 윤내현(63)단국대 대학원장은 “이번 학술토론회는 그동안 일제에 의해 망실돼 온 우리 고대사를 남북이 공동으로 복원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무척 뜻깊고 고무적인 행사였다.”고 기꺼워했다. 윤 교수는 “그동안 우리 문화의 모태이자 역사의 기원이면서도 실체를 모호하게 인식할 수밖에 없던 많은 사람들이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적 실재성과 의미를 새롭게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윤 교수를 만나 이번 학술행사의 의미와 우리 역사학의 문제들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이번 평양 학술토론회의 의의와 성과는 무엇인가. 남북한 학자들이 제3국이 아닌 우리 땅에서 학술행사를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3년 전부터 준비해 원래는 지난해에 갖기로 한 것이 이번에 열린 것이다. 북쪽에서 사회과학원과 김일성대학 등의 권위 있는 교수 11명이 참석했으며,우리 쪽에서도 9명이 나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기회를 가졌다.학문 분야에서 남북 공동연구의 물꼬를 튼 셈이다.또 남북이 역사학자 교류와 공동연구에 합의한 점도 의미가 있다고 여긴다.다음번 서울 개최가 실현됐으면 좋겠다. ◆북한의 단군 인식은 어떠한가. 과거 북한 학자들은 단군보다 고조선에 더 집착했다.1970년대까지 우리의 고대사 연구가 거의 없었던 데 비해 북한은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다뤄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실제로 고조선은 만주 일대를 아우른 우리 역사상 최대의 고대국가였으나 삼국·고려시대를 거치면서 그 실체를 모두 잃고 말았다.여기에 일제 식민사관이 개입하면서 우리는 타의에 의해 고대사를 잊고 살았다. 생각해 보라.고조선이 없으면 우리는 과정없이 형성된 민족이라는 말이 되는데,이게 가능한 얘긴가.이런 점에서 북한은 나름대로 많은 연구를 했다.강역(彊域)문제만 하더라도 우리보다 훨씬 넓게 잡고 있다. 북한의 고조선 연구는 지난 93년 단군릉 발굴이 전환의 계기가 됐다.주체사상이나 사회주의적 역사관에서 볼 때 우상을 인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으나,그후 단군에 대한 시각이 크게 바뀌어 지금은 고조선 대신 ‘단군조선’이라고 칭하는 정도다. ◆단군과 고조선에 관한 북한의 그러한 인식이 우리와는 크게 다르지 않나. 아직은 차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또 이번 학술토론회에서 북한 학자들이 대체로 단일한 학설을 편 반면 우리는 시대구분이나 도읍설 등에서 이견이 있었다.연구,정리할 과제다. ◆그 차이를 학문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보는가. 당연하다.해소가 가능하다는 점을 이번에 확신했다. ◆주체사상의 북한이 단군릉을 조성한 것은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가.또 그 단군릉이 어느 정도 실증적 근거를 가졌다고 보나. 북한이 단군릉을 조성한 배경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입장이 아니나,우리가 단군 실체를 인정하는 데 인색한 것은사실이다.북한의 단군 연구는 단군릉 발굴 이후 시작됐다.북한은 단군릉에서 발굴된 유골에 대해 무려 60∼70회의 연대 측정을 거쳐 지금부터 약 5020년 전의 것이라고 확인했다.이것이 옳다면 고조선의 역사를 지금보다 훨씬 앞당겨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단군을 허구적 인물 정도로 알고 있는데. 식민사관의 영향이 크다.중요한 것은 그 실체성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것이다.단군의 역사는 바로 우리 역사학의 뿌리다.이는 역사적·상징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역사학이 사료를 근거로 하는 학문이나 그렇다고 상징성을 애써 무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단군학에 대해 우리 사학계의 주류는 어떤 입장인가. 주류·비주류를 떠나 명백한 역사를 제대로 탐구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은 민족적 불행이다.일본인들은 철저하게 고대사와 단군의 실체를 부인했다.해방후 단군 연구가 되살아나는 듯하다가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이내 잊히고 말았다.당시에 ‘민족’이니 ‘민족 정체성’이니 하는 말은 금기였지 않나. 우리 역사에서 불교·유교처럼 지배계층의이념으로 작용한 외래문화가 유입되기 전의,그 온전한 민족 원형은 고조선에 있다.이런 점에서 고대사는 바로 우리 역사학의 뿌리라고 봐야 한다.그런데도 고대사 연구는 무척 취약하다. ◆우리 고대사의 문제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나는 실증주의적 학자다.과거 국사교육심의위원회에 잠깐 몸담은 적이 있는데,당시 우리 고대사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지 않으면 심의안에 서명할 수 없다고 버티다 결국 그만뒀다.그게 계기가 돼 국사교과서에서 고조선 지도가 바뀌긴 했지만…. 문제는,실체가 분명한 고대사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일본 학자들은 “고조선에 관한 사료가 너무 후대에 기록됐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그래서 나는 주로 중국측 자료를 취해 연구해 왔다.식민사관은 일제의 주장과 방법을 모두 버리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식민사관이 문제라면 해법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 결국 우리 자신의 문제다.아무리 식민사관이 문제라고 하나 우리가 합리적으로 우리 역사에 접근했으면 지금처럼 (폐해가)심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일제와 독재정권의 탄압과 제약을 인정한다 해도 우선 문제는 우리 내부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고대사에 대한 우리 사학계의 학문적 성취도를 평가해 달라.전망은 어떻고,문제는 무엇인가. 최근 들어 연구가 다양해지고 또 성과도 나타나 고무적이다.그러나 문제는 있다.가장 심각한 폐단은 학자들이 학파나 학맥에 너무 집착한다는 점이다.제자가 스승의 오류를 알고도 바로잡지 못한다.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민족문제는 학파나 학맥을 초월하는 것이다. ◆이른바 강단사학과 재야사학 사이에도 갈등이 크지 않나. 재야사학에 문제가 없지는 않을 것이나,우리 강단사학이 그동안 재야사학을 외면해 온 면이 크다.우리 학회에서는 재야사학을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있다.일단 한자리에 앉아야 한다.토론과 대화로 이견을 해소하고 의견차를 좁히는 게 바람직하다. ◆단군이나 고조선에 관한 현재의 교과서 기술이나 교육상의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국사편찬위원회의 의지와 관계되는 분들의 역할이 중요하다.역사는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라기보다 그 사건 속에서 정신과 의미를 찾는 작업이다.실제로 우리는 ‘홍익인간’을 주창했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은 없었다. 역사적으로는 각 시대를 이끈 지식인들이 우리의 원형 문화 대신 외래문화를 우위에 둬 온 점도 반성할 점이다.이렇게 해서 망실된 우리 문화의 원형을 고대사를 통해 되찾아 이를 후대에게 바로 가르치는 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심재억기자 jeshim@ ■윤내현 교수는 ▲단국대 사학과 졸 ▲동 대학원 석·박사 ▲하버드대 대학원 동아시아학과 ▲단국대 문과대 교수 ▲하버드대 인류학과 객원교수 ▲단국대 중앙박물관장·문과대학장·인문과학부 학부장·부총장 역임 ▲문교부 국사교육심의위원 ▲민족사 바로찾기 국민회의 학술위원 ▲현 단국대학원장 ▲주요 저서-‘한국 고대의 사회와 국가’‘한국고대사 신론’‘중국사 1·2’‘고조선 연구’‘고조선,우리의 미래가 보인다’‘한국 열국사 연구’등 ▲수상-‘오늘의 책’상(한국출판문화협회),일석학술상,금호학술상 등. ■윤내현교수 ‘최씨낙랑국설' - “”대동강변 낙랑 우리 토착국가”” 윤내현 교수의 고대사론 가운데 눈길을 끄는 대목의 하나가,사서에 등장하는 대동강 변의 낙랑이 한(漢)의 군현이 아니라 우리 토착국가라고 주장하는 ‘최씨낙랑국’설이다. 지난 85년 ‘한국학보’(일지사 간)제41집에 ‘한사군(漢四郡)의 낙랑군과 평양의 낙랑’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이 연구 성과는 지금까지 대동강 일원에 자리한 것으로 알려진 낙랑군의 실체를 정면으로 뒤짚는 파격적인 내용이어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윤 교수는 당시 “우리가 아는 한사군의 낙랑은 사실 대동강의 낙랑과는 전혀 다른 존재”라고 주장했다. 중국 문헌사료에 따르면 한사군의 낙랑은 대동강 인근이 아니라 베이징 인근에 있었으며,그 근거로 고구려 미천왕과 한나라간에 벌어진 전쟁기록 등을 제시했다.중국 사료에 ‘갈석산을 지나 낙랑·현도군이 있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 갈석산이 바로 지금의 산해관 서쪽에 있는 산이라는 것. 그는 우리가 ‘낙랑공주와 호동왕자’로 기억하는 낙랑국은 한사군이 설치되면서 대이동을 시작한고조선의 후예들이 최리 왕을 중심으로 대동강변에 세운 나라로, 낙랑군과는 전혀 다른 고대국가라고 주장했다. 대동강 낙랑이 국(國)이 아니고 군(郡)이었다면 당연히 최고 통수권자는 태수가 되며,태수의 딸에게 ‘낙랑공주’라는 칭호를 부여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근거를 내세웠다. 윤 교수는 “지금도 일부에서는 명칭에 집착하나,고대에는 낙랑을 비롯해 고구려,옥저 등 ‘같은 명칭의 다른 집단’이 여러 지역에 존재했다.”며 이는 중국 식민국가와 그 식민지배를 거부한 토착민의 나라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파격적인 학설을 제기하며 한국 고대사의 지형을 바꿔온 윤 교수는 일찍부터 사학계의 일제 식민잔재를 청산하는 데 주력해 왔다. 진보적이면서도 합리적 사관을 가진 데다 문헌과 유물에 의거,엄정한 논리틀을 구축함으로써 우리 고대사는 잃어버린 역사적 위상을 상당부분 회복했거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심재억기자
  • 건설업계 우리말쓰기 운동

    ‘노가다(현장근로자),시마이(마감),가쿠목(각목),기스(흠)….’ 일본어 잔재가 유난히 많은 건설업계가 지속적으로 올바른 우리말 쓰기 운동을 벌여 눈길을 끌고 있다. 24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건설 유관기관 협의체인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는 최근 ‘올바른 우리말 건설용어집’을 재인쇄,배포했다.또 ‘건설용어 올바른 우리말로’를 주제로 한 스티커 8000장을 배포할 계획이다. 용어집은 연합회가 1999년 한글학회 감수를 거쳐 수첩크기로 제작한 것으로 40여쪽에 달한다. 연합회 관계자는 “건설현장에 일본어의 뿌리가 워낙 깊이 박혀있어 단시일내에 고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대졸 건축기사들의 증가와 업계의 노력에 힘입어 서서히 개선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거푸집의 경우 과거에는 ‘가다와쿠’로 많이 불렸으나 현재는 ‘거푸집’이라는 말이 자리를 잡는 등 일부 일본 용어가 올바른 우리말로 바뀌고 있다. 김경두기자 golders@
  • TV리뷰/ ‘억지감동 만들기’ 이대로 좋은가

    서울,인천,순창….고향이름을 딴 팀들이 퀴즈대결을 벌인다.인천팀 소속 연예인 최불암은 “(우승팀에게 주어지는 2000만원으로)모교인 S초등학교의 무너지는 담장을 수리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혀 시청자들을 흐뭇하게 만든다.지난 22일 오전 9시50분에 방영된 MBC ‘추석특집 퀴즈 퍼레이드Ⅲ 퀴즈!금의환향’의 한 장면이다. 언제부터인가 ‘오락’프로그램들이 ‘감동’을 찾기 시작했다.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브레인 서바이버’는 게임 승자의 모교로 장학금을 전달한다.KBS2 ‘해피투게더’ 중 ‘쟁반노래방’은 출연자들이 노래 한 곡을 제대로 불러내면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이들 프로의 공통점은 출연자들이 경쟁하는 오락게임이 있고 게임의 승자가 남을 돕는다는 점이다.그러나 이 프로들을 보고 있으면 “오락게임을 통해 불우이웃을 돕는 것이 목적”이라는 주장에 쓴 웃음을 짓게 된다.불우이웃돕기는 게임의 재미를 돕기 위한 장치-경쟁을 북돋는 상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락프로를 보는 주목적은 게임 중 연예인들의 입담과 개인기가 재미있기 때문이지,불우이웃이 도움을 얻는 것을 보는 흐뭇함 때문이 아닐 것이다. 시청자들이 일정 종류의 자극에 익숙해지면 비슷한 효과-감동을 주는데에 좀더 큰 자극이 필요하다.이야기 구조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동일한 감동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부가적인 재주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즉 비슷한 이야기에 장식과 효과,출연진만 갈아낀 제품이 소비자들을 농락할 공산이 크다. 현재 이같은 오락프로들에서 남발되는 클로즈업 화면,감정이 복받치는 배경음악과 효과음,감동받을 부분을 친절히 알려주는 자막 등이 바로 그 예이다. 잔재주에 집착한 결과,대부분의 프로들은 비슷비슷하게 동질화된다.즉 다양한 소재발굴과 기획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풍성한 볼거리를 안겨주지 못한채 시청자들의 채널선택권과 볼 권리를 제한한다. 패자가 ‘김밥말이’를 당하거나 군대조교에게 기합을 받는 가학적인 벌칙,우스꽝스런 ‘당근인형차림'을 입은 연예인들의 선정적인 퍼포먼스,‘몰래카메라’류의 스타 사생활 훔쳐보기,빈자·불구자·동성애자처럼 사회적 약자들 비웃기 등등.기존 오락프로가 다루었던 소재들보다 지금의 획일화된 ‘감동만들기’가 다양성 측면에서 낫다고 말할 이유는 없다. 오락콘텐츠의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천편일률적인 감동-오락프로들로 전파를 낭비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제작진들의 기획력 부족에 원인이 있다.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시청자들의 ‘노는 것’자체에 대한 죄의식에 있을 것이다. 오락프로그램의 본령은 재미에 있다. 굳이 ‘감동’같은 것으로 노는 것에 대한 면죄부를 찾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시청자들이 잠시라도 삶의 시름을 놓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준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중요한 것은 그것이 ‘건강한’재미냐는 문제일 것이다. 시선끌기에 억지로 끼워맞춰지는 감동보다는,그냥 보고 있으면 자신과 남을 돌아다볼 여유를 갖게 만드는 재미.시청자들이 정작 오락프로그램들에게 바라는 것은 그것이 아닐까. 채수범기자 lokavid@
  • [사설] 南北·北日의 미래를 위하여

    북한의 과거 일본인 납치 문제를 둘러싸고 일본 열도가 들끓고 있는가 하면,남한에서도 납북자·아웅산 폭파 사건 등에 대한 북한의 사과를 받으라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그런 가운데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인 남북한이 반세기 만에 비무장지대(DMZ)를 뚫어 단절된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는 첫 삽을 떴고,북·일 관계도 전격적인 양국 정상회담을 전기로 정상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제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의 정세는 20세기 유산인 냉전의 마지막 잔재를 청산하고 화해와 협력과 평화의 새 이정표를 향해 빠른 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현재 북·일 관계 정상화에 암초로 부상하고 있는 일본인 납치 문제나 여기서 불거져 나온 우리의 납북자 문제는 그것대로 해결은 되어야 한다.다만 이런 문제들로 인해 남북,북·일간 평화의 틀을 구축하는 일이 중단되거나 후퇴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 일본 안에서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에도 불구하고 납치된 13명의 일본인 가운데 사망자 8명의 납치 및 사망 경위 설명을 요구하며 대북 비난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일각에서는 납치 일본인 총살설이 제기되고 있는가 하면,피랍자 가운데 결혼한 2명은 같은 날 사망한 것을 놓고 ‘타살 의혹’논란까지 벌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심지어 모리야마 마우미 일 법무상 같은 이는 납치에 가담한 북한 요원들을 일본 법정에 세워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또 사망한 피랍여성 4명은 당시 20∼30대로 북한이 사인으로 밝힌 ‘재해와 병’으로는 이들의 죽음을 수긍하기 어려울 만큼 너무 젊은 나이들이다.일본 국민들이 당혹해 하면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며,이해가 되는 부분이다.마땅히 일본 정부로서는 북한과 후속 협상 과정에서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사망자들에 대한 신속한 경위파악과 함께 생존자 4명에 대한 조기귀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또 피랍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끌려와 젊은 나이에 이국땅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죽음을 맞았을 것을 생각하면 절로 가슴이 메어진다.북한은 성실하고 진지한 자세로 사망경위를 밝히고 다시 한번 유가족들에게 사죄하고 책임 규명과 함께 보상을 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로 북·일 수교교섭 협상이 휘청거리거나 지연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북·일 관계 정상화는 납치 문제라는 과거사보다 동북아평화라는 미래를 개척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납치문제와 관련,일본측에 고언을 한다면 과거 일제 침략과 36년의 식민지배하에서 수백만,수십만의 무고한 한국 백성을 징용으로,군대 위안부로 끌어 가고,희생시킨 ‘과거사’도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보기 바란다.시차는 있어도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가 북·일간에 분명히 남아 있는 것이다. 현재 국내 납북자 가족과 북의 테러와 납치에 희생된 가족 및 단체들은 북한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위원장이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일본인 납치에 관해 시인하고 사과하면서 다시 제기된 것이다.이들의 주장은 옳고 마땅하다.북한이 일본측에는 납치에 관해 사과하면서 우리에게는 하지 않는 등 2중 잣대를 사용하는 것은 용납할수 없다.정부도 북측이 자행한 KAL기 폭파 사건 등 각종 테러와 어부 억류,국군포로 문제 등에 관해 당당하게 주장하고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에는 선후와 경중이 있다고 본다.지금은 남북이 ‘다름’을 강조하기보다는 ‘같음’을 우선해 화해와 평화를 추진하지 않으면 안된다.남북 간에 긴장이 해소되고 신뢰가 어느 정도 형성되면 그때 가서 냉정하게 따질 것은 따지고,받을 것은 받고 줄 것은 주는 것이 일의 순서가 아닌가 한다.북·일 관계만 하더라도 양측이 수교하고 경제협력이 가속화하면그 여파는 한반도의 평화 정착으로 선순환된다는 것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일본인 납치 문제나 과거 북한이 자행한 일련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사과 문제는 북·일 관계 정상화나 남북화해로 가는 도정에 결정적인 장애가 되어서는 안된다.그런 의미에서 이 문제는 대승적 차원에서 미래를 보고 차분하게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 [사설] 북·일 관계 정상화에 큰 진전

    어제 평양에서 열린 역사적인 북·일 정상회담은 북한의 2003년 이후에도 미사일 발사 유예 약속,핵 합의 준수 등 예상보다 많은 성과를 거뒀다.그런점에서 동북아의 긴장완화와 한반도 평화정착에 기여한 의미있는 만남으로 평가받을 만하다.특히 동북아 냉전의 잔재를 떨어버리는 큰 걸음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와 첫 대면에서 “가깝고도 먼 나라는 20세기 낡은 유물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 데서도 감지된다. 무엇보다도 북한핵 문제의 포괄적 해결을 위해 모든 국제적 합의를 준수하고 다음달 중으로 수교협상을 재개한다는 4개항의 합의가 담긴 공동선언을 발표한 것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성과로 볼 수 있다.향후 양국관계의 ‘대장전’이 될 이 선언에는 북한이 일본인 납치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내용도 담겨있어 양국 관계정상화의 토대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되며,우리는 이를 환영한다.또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보상 등 과거사 처리방식에 합의한 것 역시 관계개선의 청신호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수교에 이르는 길은 험난하다.고이즈미 총리도 기자회견에서 “현안이 다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혀 양국관계의 현주소를 짐작케 했다.또 실무적인 논의에 들어가면 입장차가 현격해 조율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도 많다.북한은 경제협력 자금으로 130억달러를 요구하고 있으나,일본측은 50억달러 안팎을 염두에 두고있는 것으로 알려진다.납치된 일본인중 생존이 확인된 4명의 본국 귀환 등 신병처리,책임문제도 추후 협상의 난제가 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북·일이 이번 회담의 역사적 의미와 동북아에 미칠 평화적 메시지를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본다.양국은 어느 때보다 진솔하고 성실한 자세로 후속 합의를 이끌어내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이번 북·일 회담은핵·미사일 문제가 주요 현안인 북·미 관계의 진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북한은 차제에 명실상부한 국제사회 일원으로 편입하는 노력을 배가해주기 바란다.
  • 前서울대교수 김민수씨 디자인비평서 발간/“정치꾼 디자이너가 우리 디자인 망쳤죠”

    “나는 고상하게 말해 마틴 루터가 코페르니쿠스에 대해 비아냥거렸던 ‘성서를 위배한 바보’이자,한국 사회에서 서울대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서울대공화국 교수의 특혜와 기득권’도 얌전히 챙겨먹지 못한 쪼다라고 할 수 있다.” 지난 96년 서울대 미대 원로교수들의 친일행적을 비판한 뒤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한 김민수 ‘디자인문화비평’편집주간.표면적인 탈락 이유는 ‘연구실적 미비’였지만 원로교수들의 친일행각을 비판한 ‘괘씸죄’가 작용했다는 반론이 거셌다.그후 4년의 세월.서울 미대 교수 복직투쟁을 벌여온 그는 한층 원숙한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문화지평을 넘나들며 활발한 비평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김민수의 문화디자인’(다우 펴냄)은 그 치열한 시간의 기록이자 디자인·시각문화 비평집으로 우리 사회에 산재한 디자인의 여러 맥락들을 쉽고 정확하게 짚어준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혹자는 디자인을 미적 장치,혹은 잔재간으로 치부한다.경제가치를 극대화하는 부가적 수단,즉 문화상품으로 오해하기도 한다.디자인은 또 ‘예술’이라고 불린다.저자는 이같은 ‘박제된’인식을 던져버리라고 말한다.디자인은 단순히 예쁜 그림을 그리는 행위도,상품을 더 잘 팔기 위한 도구적 수단도 아니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언어적 사고’에 기초한 커뮤니케이션 행위”라고 정의하는 저자는 디자인 개념을 단순한 도안산업이나 소비문화 차원으로 좁혀 보지 말 것을 주문한다.디자인을 그저 미술의 하위개념으로 보는 ‘관행’에도 제동을 건다.그렇게 한정시켜 보면 볼수록 디자인은 저급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저자는 중국의 혁명가 루쉰까지 당대로 호출해 디자인에 관한 조언을 구한다.그에 따르면 루쉰은 손색없는 ‘디자인 사상가’다.20세기 초 중국 근대사회에서 루쉰은 민중계몽을 위한 문학적 실천과 더불어 디자인에서도 ‘심미적 정체성’을 찾게 한 정신적 지주였다.루쉰은 1920년대의 서구 취향과 허식적 도시감각에서 파생한 이른바 ‘상하이 스타일’에 맞서 중국 고유문화에 따른 심미적 언어를 강조했다.우리가 여기서 배울 점은 바로그 문화적 연속성과 정체성이다. “한국 현대디자인의 역사에는 유감스럽게도 루쉰과 같은 정신적 지주가 한명도 없다.”고 아쉬워하는 저자는 “일제 식민미학의 잔재를 신주 모시듯 받들고 이것을 해방 후 미국식 라이프스타일에 끼워맞춰온 디자이너들만 있었을 뿐.”이라고 비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을 디자인 정치학의 측면에서 재해석한다.“그동안 한국 디자인은 최소한의 공공성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술수를 구사하는 ‘정치꾼 디자이너’들의 사적인 먹이채집에 불과했다.”며 디자인계 내부의 비민주적 관행에 쐐기를 박는다.1만 5000원. 김종면기자
  • [사설] 사법 수장 국감증인 적절치 않다

    국회 법사위가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을 정기국회 국정감사의 증인으로 출석시켜 답변을 듣기로 합의한 데 대해 대법원과 헌재가 ‘위헌적 발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입법부와 사법부의 그같은 분쟁은 자신들의 권위와 체통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국회는 ‘그동안 국감에 응하지 않았던 것은 국회의 권위를 무시했던 유신독재의 잔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권력을 입법·사법·행정으로 나눠 분담토록 한 것은 권력의 집중을 막아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임을 상기해야 한다.따라서 사법기관의 장이 국감의 증인으로 출석해야 하는지 여부는 어느 쪽이 국민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것인지를 따져 결정해야 할 것이다.국회 법사위는 국회법상 두 기관의 장을 출석토록 하는 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하지만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민주 국가를 관통하는 헌법 이념이요 정신이다.보통 사람들도 권력 분립의 취지는 대체적으로 알고 있다.그런 상황에서 법사위가 국회법만으로 증인으로 출석시키겠다는 발상은 성급한 것이다.일각에서는 “선거법 위반 등 국회의원 관련 사건의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이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국민은 그런 부분에 대해 당연히 알 권리가 있다.그러기 위해서는 시민단체와 관련 전문가 등이 참석하는 공청회 등을 열어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마땅하다.권력 분립의 원리를 먼저 채택한 영국,미국,프랑스 등 선진 외국의 관행을 파악하는 것도 시사점을 던져줄 것이다.시간이 촉박해 그런 절차를 거칠 수 없다면 이번 국감에서는 증인 출석을 유보해야 한다.두 기관 장의 출석은 다음 국감 전이라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결정해야 한다.
  • [사설]‘金주석과 내 초상화 떼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일본내 조총련계 초·중학교에 걸려있는 고(故)김일성 주석과 자신의 초상화를 떼라고 지시해 오는 15일까지 모두 떼어낼 것이라는 소식이다.김 위원장이 지난달 북한을 방문한 허종만 조총련 부의장에게 직접 지시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한다.조총련 학교의 정치색을 지워 일본내 거부감을 줄이려는 조치였다는 것이다.이와 관련해 일본 산케이신문도 김 위원장이 허 부의장에게 조총련의 비공식 조직인 ‘학습조’도 해체할 것을 지시했다고 2일자로 보도했다.학습조는 일본내 북한 공작조로서 북·일관계를 긴장시켜온 일종의 정치결사체다. 북한의 변화는 평양 북·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매우 긍정적인 조치로 평가할 만하다.그렇지 않아도 북한은 7·1 경제관리 개선조치 추진 이후 외견상 대외관계의 대전환을 모색하는 태도를 취해온 터다.이번 경제 개선조치를 성공시키려면 국제사회의 지원과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그러나 국제사회는 여전히 북한의 진의를 의심의 눈으로 보고있는 게 현실이다.그런 점에서 김 위원장이 보인조총련내 전근대적이고 교조주의적 잔재를 청산하려는 노력은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본다.북한의 대외개방 조치가 일시적이고 전술적인 유화책이 아님을 알렸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이번 북·일 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정착은 물론 파탄 상태의 북한 경제를 살리기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이끌어낼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북한이 얼마나 성의있고 대담한 태도를 보일지 국제사회가 주시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예전처럼 트집을 잡기 위해 당장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들을 내건다거나,대화 자체를 ‘무슨 시혜’쯤 여기는 오만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북한의 근본적인 대외정책 변화를 고대한다.
  • [열린세상] 역사는 정방향으로 흐른다

    군사독재정권이 신임 교수들을 일주일씩 정신문화연구원에 집어넣고 정신교육을 시키던 1987년 여름의 일이다.6월 항쟁으로 민주화의 봇물이 터진 상황에서 정신교육에 들어간 내게 가장 큰 기억으로 남은 것은 북에서 갓 내려온 김만철씨와의 대화였다.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 TV에도 아랑곳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일방적으로 남쪽이 좋다고만 하지 말고 거꾸로 북의 장점과 남의 단점을 이야기해 보라고 하였다. 그러자 잠시 멈칫했던 김만철씨가 이제까지와 달리 머리를 꼿꼿이 들고 가슴을 편 채 자랑하듯 말을 꺼냈다. “북은 친일을 빨리 청산했습니다.그리고 남은 극장 간판에 보이는 것처럼 너무도 부도덕해 보입니다.”그 말을 들으면서 부끄러운 생각이 든 것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 해방 직후 1년 만에 작업을 마친 북과 달리 남의 친일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청산은 실패로 끝났다.미군정은 행정 공백과 공산화를 막는다는 이유로 친일 반민족 세력을 다시 내세웠고,이승만 또한 자신의 집권을 위해 그들과 손을 잡았다.그 뒤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은 친미 반공주의자로 둔갑하였고 ‘건국의 공로자’로까지 올라섰다.일본 장교 출신 대통령을 비롯하여 친일 인사 7명이 9번이나 국무총리를 지냈고,18명이 22번 장관을 지낸 내무부와 13명이 16번을 거친 법무부,10명이 11번을 지낸 상공부에서 보듯 중앙 부처 대부분을 그들이 장악하였다.또한 서울,경기,전북,경북은 4번씩이나 친일 경력 도지사를 배출하였으며,군부는 더욱 심해서 12명이 13번에 걸쳐 국방부장관을 지냈고,육군참모총장은 초대부터 21대까지,합동참모회의의장은 초대부터 14대까지 일본 장교 출신들로 도배하였다.어디 그뿐인가.각 대학 총장들을 비롯하여 언론계,문화계 등 모든 분야에서 친일 인사들이 원로대우를 받았다. 이러한 현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정부지원으로 ‘박정희기념관 건립’이 추진되고,일부 언론은 자신들의 친일행각을 감추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다.또한 1995년에는 이완용의 손자가 할아비의 땅을 되찾아 땅 값 20억 원을 들고 외국으로 떠났으며,재작년에는 서울대학교 김민수 교수가 미술계 원로들의 친일 행각을 비판하다가 재임용에서 탈락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결국 바른 방향으로 흐른다고 했던가? 올해 3·1절 전날 비록 국회 차원의 활동은 아니었지만 여야 소장 의원들이 만든 ‘민족정기를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친일 반민족 행위자’708명의 명단을 발표하였다.그리고 광복절 즈음인 지난 13일 학술단체협의회는 ‘한국 근현대사 속의 친일의 의미와 친일파 청산의 필요성’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고,14일에는 민족문학작가회의를 비롯한 문학단체들과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 문인 42명의 명단을 발표하였다.특히 참여 숫자도 숫자지만 어느 분야보다 후대의 가슴에 아픈 못질을 한 친일 문인들의 작품을 낱낱이 적시하면서 이날 후배 문인들은 당사자 선배들을 대신해 국민들 앞에 사죄의 글을 올렸다.그리고 ‘친일인명사전’편찬 작업과 소장파 의원들에 의한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한 특별법’추진이 모두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에 불을 지피고 있다. 물론 반대 논리도 만만치 않다.당사자들 대부분이 죽은 지금 지나간 과거를 들추는 일은 죄 없는 후손에게 피해를 줄 뿐이라는 주장에서부터 그들이야말로 민족을 위한 역사의 희생자라는 논리까지 다양하다.하지만 친일 청산운동은 과거 개인의 잘못을 일일이 응징하자는 것이 아니며,민족을 분열시키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정당한 역사적 심판을 거쳐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올바른 역사를 후손에게 물려주자는 운동이다.그리고 그 성공 여부는 시민운동으로 승화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라고 하지만 한미주둔군지위협정(소파) 같은 불공정협약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자주적이지 못한 것처럼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에 대한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자주적일 수 없는 것이다.한편으로 일본의 역사왜곡을 규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김교빈/ 호서대 교수 철학
  • 광복절 특집/ 기고/“일제때 고위관리 존경받는 시대”

    한국의 근대적 법제도는 우리가 자주적 근대국가 발전을 이룩하지 못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일제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1894년 청일 전쟁에서 일제가 주도권을 장악할 당시부터 그들이 침략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근대적 개혁을 하자는 것이었다.그 이후 1905년 한국이 일제의 강압적 지배에 들어갔을 때부터 일제 법령제도를 모방하고 1910년 이후부터는 일본 식민지제로 일본의 주변부로 전락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고 미국과 소련 양국이 군정을 시행했을 당시,남쪽은 미 군정이 일제법령을 시행하고 1948년 정부수립시에도 제헌헌법 100조에 의해 미 군정 법령과 함께 일제법령의 효력을 지속시켰다.그 이유는 사·소유권제도 유지와 기존질서의 안정을 꾀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법조계의 일제 잔재 문제가 청산되지 못한 채 민주주의에 반하는 권위주의와 관료주의,파시즘과 군국주의의 잔재도 온갖 악의 씨로 싹을 키웠다. 이 악의 씨를 싹틔워 충직하게 가꾼 뒤 이 나라의 실세로 군림한 것은 친일 관료이고 그 중에는 사법관료가 있다.일제지배 하에서 법원이나 검찰청의 서기와 통역생으로 있던 무리가 하루 아침에 판사와 검사가 되었다.고등경찰의 보조원과 밀정 및 헌병 보조원이 서장,장관,대장이 된 것이나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일제하의 관료주의 법학이 우리 법조 양성의 자양분이 되어 독을 뿜어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제의 사법관료 제도를 운영하면서 생긴 고문과 가혹 행위의 악습,피의자나 참고인에 대한 범죄인 취급,사법 과정에서 관료성과 비밀폐쇄주의,재판을 나랏님이란 절대자의 대변으로 여기는 반민주적 재판의식이 그대로 답습되었다. 법률 운영이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의식한 것이기보다는 권력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 되었다. 관리가 서민을 앞에 두고 “법대로 하겠다.”는 말은 혼내준다는 협박이 되었다. 그러한 법이란 국민의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문제되어온 전관예우의 폐풍이 무엇인가? 관료 특권의 별명이고 그 찌꺼기가 아닌가? 더욱이 이승만 정권의 엘리트는 제국대학 출신과 고등문관시험 합격자들로 구성되었다. 그리고그들이 다녔던 제국대학 풍토는 1920년대의 치안유지법과 대륙침략에서 1941년 세계전쟁으로 이어지는 파시즘이 극성하던 시대의 산물이다. 그러한 정치적·사회적 상황속에 자유주의는 이미 대학에서 압살된 분위기였다.1945년 이후 한국사회를 지배하게 된 30대 이후의 세대가 잔뼈가 굵은 사회적 배경이 바로 그러했다. 그래서 해방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우리의 법조계에는 일제잔재의 각종 추악한 모습을 본다.일류라는 착각의 교만성과 반민주적 특권의식,법적정의에 무감각한 출세지향의 속물근성,법의 운영을 관료의 입장에서 하는 것 등 많다. 그 중에도 인적 잔재문제는 친일파와 그 아류의 맥이 이어져 오고 있다.한가지 예를 들어 J씨는 김구(金九) 선생 암살사건 당시에 헌병총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안두희를 비호하였다.그는 일제 조선총독부 고위관리로서 제국대학 출신의 인텔리다. 그는 그 후 법조계와 법학계에서 각종 명예로운 고위직을 역임했으며 영화를 누렸다.지금도 미국으로 왔다 갔다 하는데,아직도 천수를 누리고 있다.한국의 많은법학도는 그를 존경하고 그처럼 되길 동경하는 눈치다. 법적 정의가 없고 출세만능과 강자의 지배라는 정글의 세계이니 그들을 나무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누굴까.기막힌 세상이다.법조계 일제잔재의 인적요소인 친일파 부류,그들이 바로 역대 독재자의 법기술자의 원조가 아닌가? 한상범 동국대 명예교수 의문사진상규명 위원장
  • 광복절 특집/ 法체계 속의 日帝 잔재/국민위에 군림…아직 먼 ‘法 광복’

    광복 반세기가 지났지만 우리 사법체제는 아직도 일본식 틀을 깨지 못하고있다.일제의 주도로 심어진 근대 사법제도가 36년간 완전히 뿌리를 내렸고 광복 후에도 그대로 답습해 마치 우리 것처럼 되었다.일제 잔재를 털어내기 위한 사법제도 개혁이 진행중이긴 하지만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광복 57주년을 맞아 사법제도 속에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와 개선 방향을 살펴본다. ◆권위주의와 관료주의- 우리 법 체계의 근간은 일본 사람들이 들여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구한말 전근대적인 사법제도를 버리고 새 제도를 도입할 때부터 일본의 지배가 시작됐기 때문이다.그런 까닭에 우리의 법 정신과 법 제도에는 일제의 잔재가 깊숙이 뿌리박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현 정부 들어 사법제도 전반에 대한 개혁을 검토했던 사법개혁추진위원회는 최종 보고서에서 “이른바 일본의 ‘명치(明治) 사법제도’가 1910년 급속히 도입됐고 식민지적 억압과 수탈의 목적을 위해 변모되고 왜곡됐다.”면서 “이 과정에서 배태된 식민지 사법제도의 잔재가 광복 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우리 사법절차에 남아 있는 경우가 발견되고 있다.”고 지적했다.일제극복은 우리 사법부가 현재까지 안고 있는 과제다. 일제가 남긴 가장 큰 문제로 사법제도 전반과 법조인들에게 배어 있는 권위주의와 관료주의가 꼽힌다.때문에 국민을 위한 사법부가 되지 못하고 국민들은 법과 유리되어 있다.국민 정서와 어울리지 않는 법제도 남아 있다. ◆‘국민’과 먼 사법체제- 우리나라 사법체제의 권위주의는 국민의 참여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데에서 드러난다.사법작용의 핵심 절차인 재판과 기소 과정은 철저하게 법률전문가들이 독점하고 있다. 숭실대 법학과 윤철홍(尹喆洪) 교수는 “우리나라 법제도에 권위주의적 냄새가 짙은 것은 예전부터 계급제도로 인해 관료주의적 사고가 남아 있었고,일제시대 때 더욱 구체화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영미법체계냐,대륙법체계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외국에서는 이런 법체계에 얽매이지 않고 재판에 국민이 참여하는 영미식 배심제(陪審制)와 참심제(參審制)가 널리 채택되고 있다.배심제는 법률전문가가 아닌 배심원들이 재판에 참여해 독립적으로 평결을 하고,참심제는 참심원이 법관과 함께 합의체를 구성해 평결하는 제도다.독일이나 프랑스,일본 등 대륙법체계 국가에서도 도입하고 있는 이 제도를 우리는 채택하지 않고 있다. 검찰의 기소와 관련해서는 검찰심사회제도를 참고해 볼 수 있다.일본의 경우 검찰로부터 독립된 기구인 검찰심사회를 설치,일반 유권자 가운데 추첨으로 뽑힌 11명의 검찰심사원이 검찰관의 불기소처분의 적절성을 심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 중견 판사는 “이같은 외국의 제도를 그대로 따라하다가는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지만 우리의 실정에 맞도록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나가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법서비스 수준도 뒤떨어진다.변호사 1인당 국민 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약 9430명으로 미국(312명),영국(731명),독일(1030명)은 물론 일본(7861명) 보다도 훨씬 많다.그만큼 변호사로부터 도움을 받기 어렵고 수임료는 높다. 또 소송을 제기할 때 납부해야 하는 인지대에대해서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사무총장 김선수(金善洙) 변호사는 “현재 소송물 가액에 따라 일정한 비율로 인지대를 부과하고 있는데 소액이라도 시간이 더 걸릴수 있기 때문에 특히 경제력이 약한 서민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인보다는 국가 위주- 학계에서는 광복 이후에도 권위주의적 군사·관료지배체제가 지속되면서 법을 식민통치의 유용한 수단으로 이용했던 일제의 잔재가 이어졌다.영남대 박홍규(朴洪圭) 교수는 “일제가 시행한 형법의 특징은 개인의 인권·자유 보장보다는 대단히 국가주의적이라는데 있다.”면서 “지금까지도 법정형량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은 국가 위주 형법 체계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가 전세계적으로 폐지 추세에 있는 사형제도.우리나라에서는 형법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국가보안법 등에서 모두 103개 조항에 사형을 최고형으로 두고 있다.간통죄 등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에 지나치게 깊숙이 개입하는 것이나 개인의 사상까지 통제하는 법 조항 등도 일제의 영향을 받은 국가본위의 법이다. ◆국민 정서와 맞지 않는 법제- 우리 고유의 정서보다는 일제식의 사고 방식이 담긴 제도의 대표적인 예로 명의신탁(名義信託)이 있다.원래 이 제도는 일제 강점기에 주로 종중 토지의 소유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도로 이용됐고,최근까지도 취득세,양도소득세 등의 조세부과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 등으로 악용됐다. 일본에서는 이미 1910년 이 제도가 없어졌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95년에야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을 제정,명의신탁을 금지했다.지금도 이 법에서는 종중과 배우자에 대해서는 제한적으로 명의신탁을 인정하고 있다. 호주제(戶主制) 역시 한국 전통의 유교 사상보다는 일본의 ‘가독(家督)제도’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부산대 김용욱(金容旭) 명예교수는 ‘일제에 의한 가족법제의 왜곡과 청산’이라는 논문에서 “해방 뒤 일제식 가족법의 골격이라 할 수 있는 ‘호주상속제’를 ‘호주승계제’로 개정한 노력은 평가할 수 있지만 청산과 극복을 위하여는 아직도 철저를 기하지 못한 점이 있다.”고 밝혔다.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한 노력- 지난해 말 개정된 민사소송법에서는 일본식용어가 상당 부분 정비됐고 판결문에서도 일본식 문장은 개선되고 있다.또 영장실질심사제 시행으로 인신 구속이 엄격해졌고,헌법재판소는 헌법에 어긋나는 법이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일제 극복을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높다.연세대교수를 지낸 신현주(申鉉柱) 변호사는 “법에 있어서는 우리가 아직 광복을 맞지 못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면서 “우리의 정서에 맞는 우리의 법을 하나 하나씩이라도 만들어 나가야 하고 법 의식을 바꾸기 위해 법조인의 인성 교육 강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장택동 안동환 홍지민기자 taecks@
  • 실내용 새 국기틀 보급, ‘족자’형등 6종 제작

    50년 넘게 사용돼온 유리액자형 실내 게시용 태극기 대신 새로운 모양의 실내 게시용 국기틀이 보급된다. 행정자치부는 12일 6종의 국기틀을 정부 권장형으로 제작,전국에 보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새로 개발된 국기틀은 과거 왕의 교지나 상소문에 쓰였던 형태의 ‘좌우보필’형과 일반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족자’형,봉이 상단에만 있는 ‘상방족자’형 등 세 가지 형태다. 색깔은 태극기 깃면과의 보색관계를 고려해 밤색과 연한 밤색 두 가지를 사용토록 했고 유리를 완전히 제거,빛에 반사돼 국기가 가려지는 것을 방지했다. 행자부는 각급 행정기관에서 게시할 새로운 국기틀을 조달청을 통해 우선구매하기로 했으며,일반 국민들은 이달말부터 ‘우편주문제도’를 이용해 구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관련부처와 협의중이다. 행자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실내에 게시해온 유리액자형 국기틀이 일장기를 걸던 일제의 잔재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면서 “국기선양회의 제의를 받아 10개월의 연구 끝에 50년이 넘게 사용돼 오던 실내 국기틀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장세훈기자 shjang@
  • [젊은이 광장] 한총련은 아직도 이적단체?

    얼마전 우리 대학에는 작은 생활방이 하나 생겼다.새로 마련하는 방이라고 장판도 깔끔하게 깔고 시원하게 에어컨도 설치했다. 하지만 하루만 집에서 잠을 자지 않아도 왠지 피로가 풀리지 않는 것은 대학생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방이 아무리 좋다 한들,맛난 음식을 많이 먹는다 한들 내 가족이 있는 집만 하겠는가.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학내에서만 생활한 지 어느덧 한달이 되어 가는 사람들이있다.각 대학의 학생회장들이다. 지난 달 8일 검찰은 한총련 대의원인 대학생 200여명을 상대로 1차 소환장을 발부했다.‘이적단체를 구성·가입한 죄’를 인정하고 어서 탈퇴하라는 내용이었다.하지만8일 현재 학생 229명이 한총련 대의원임을 선언하며 한총련 이적 규정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한총련의 이적단체 문제제기는 하루 이틀전의 일이 아니다.97년 김영삼 정권 당시노동법과 안기부법이 날치기 통과되고,대선 자금 문제,한보 비리 사건 등이 터지자한총련은 부패하고 무능한 김영삼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며 투쟁했다.그 과정에서 수세에 몰린 정권에 의해 이적단체로 낙인찍혔다는 사실은 한총련의 변명만은 아니다. 그런데 대의원 소환장이 발부된 다음 날인 지난 달 9일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97년 한총련 투쟁국장이었던 김준배씨의 죽음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한총련의 이적성 문제가 다시 공론화되고 있다. 한총련이 이적단체로 규정된 이유는 통일방안이 북측과 동일하고 운동방식이 폭력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00년 남북간 6·15선언 이후 한총련은 강령에서 ‘연방제’ 부분을 스스로 삭제했으며 최근 잦은 집회와 시위에서도 폭력행위는 하지 않았다. 의문사진상규명위에서도 밝혔듯 과거 장기간의 권위주의 통치를 겪는 동안 많은 실정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보다는 권위주의 통치를 정당화하고 저항세력을 처벌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지금도 그 잔재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국가보안법이며 학생들의 손으로 직접 뽑은대의원들을 잡아 가두는 것도 이 국가보안법에 의한 것이다. 짧게는 1년,길게는 6,7년씩 부모님도 만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그들은 부모님가슴에 대못을 박는 불효자식이라는 진짜 죄목을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수배 중에 가족의아픈 소식을,심지어 부모님의 부고를 듣는 자식의 죄값을 무엇으로 치를 수 있겠는가. 엊그제 만난 한 대의원은 수배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왔다고 했다.평소보다 많은 용돈을 쥐어주시며 “잘 해보라.”고 하셨다지만 차마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었으랴. 한총련이 자유로운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지난 수년간 억압받는 가운데 형성된 조직의 폐쇄성을 던져버려야 하고 내부의 각성도요구된다. 사회에서도 이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기 위해 올해 초부터 각계의 사회단체들이 한총련 합법화를 위한 대책위를 구성해 활동하고 있다.이제는 신문·방송 등에서도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젊은 학생들이 정당한 이유도 없이 매년 수백명씩 수배자가 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하다. 김주희/ 건국대신문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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