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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민지시대 한인 아나키즘 운동사’ 펴낸 박환 교수

    ‘식민지시대 한인 아나키즘 운동사’ 펴낸 박환 교수

    아나키즘(anarchism). 흔히 무정부주의로 번역된다. 그러나 아나키즘에 애착을 가진 이들은 그런 번역을 일종의 오역으로, 심지어는 일제의 잔재로까지 보기도 한다. 서구에서 수입된 이 단어가 제국주의 일본을 거치면서 ‘정부가 없는 무법·혼란 상태’라는 부정적 의미가 짙게 깔린 무정부주의로 번역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정부주의 대신 아나키즘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다.‘an-archi’라는 어원 그대로,‘지배자 혹은 권력집단이 없는’ 자유로운 개인간의 연대라는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노엄 촘스키가 아나키즘을 어떤 이론체계나 행동양식이라기보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계속될 경향’으로 정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나키즘은 살아남기가 버겁다. 체제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냉전 같은 경우에는 더 그러하다. 자본주의·공산주의 모두에게 ‘체제를 부정하는 자’로 낙인찍히기 때문. 우리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일제시대는 달랐다. 기존 체제를 격렬히 부정했기에 당시 많은 독립지사들은 아나키즘으로 ‘광복 이후’를 상상했다. 잊혀져 가던 이 대목을 정리한 책이 나왔다. 독립운동사 연구로 유명한 한국민족운동사학회장 박환 수원대 교수가 ‘식민지시대 한인 아나키즘 운동사’(선인 펴냄)를 정리해 낸 것. ●제3의 길, 아나키즘 얼마 전 유행했던 말로 치자면 일제시대 아나키즘은 제3의 길이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독립운동 진영내 좌우파 대립을 보다 못해 택한 길이 바로 아나키즘이었다는 사실에서 이는 잘 드러난다. 박 교수는 이들이 왜 제3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집중 조명한다. ‘다물단’‘재중국조선무정부공산주의자연맹’‘남화한인청년연맹’‘한국청년전지공작대’‘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한족총연합회’‘조선공산무정부주의자연맹’ 등 중국·만주·조선에서 1920년대부터 45년까지 활동한 아나키스트들을 통해서다. 이들이 꿈꾼 사회는 ‘자본주의의 착취’도 없고,‘공산주의의 독재’도 없는 국민자치에 의한 연합체였다. 중간에 낀 입장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선택은 다양했다. 사회주의 혹은 민족주의 진영과 힘을 합하는 경우도 있었고, 끝까지 아나키스트로서의 삶을 유지한 사람들도 있었다. ●잊혀진 운동, 아나키즘 아나키즘은 환영받기 힘들었다. 일단 중간자였다. 우파가 보기엔 체제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좌파와 별 다를 바 없고 좌파가 보기엔 무모한 행동으로 혁명 역량을 분산시키는 어리석은 자들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남북분단 뒤 이승만·김일성은 임정 중심의 일부 우익 세력과 제한적인 사회주의 계열에만 정통성을 부여했다. 또 아나키스트들은 행동력에서도 주목받기 어려웠다. 개인 중심의 저항운동이다 보니 순교자적인 행동을 요구했고, 그러니 숫자도 얼마되지 않았는 데다 그나마도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책에서 아나키스트들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대목을 추가해 놓았다. 바로 당시 아나키스트들의 숨결이 녹아 있는 각종 문건들을 번역해 놓은 것. 중국의 대문호로 꼽히는 바진, 뤼신이 아나키즘에 대해 남겨둔 글과 조선 아나키스트 기관지 ‘고려청년’의 발간사 등이 각장 뒤에 달려 있다. 박 교수는 “학계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글이라도 사료 차원에서 참고자료 삼아 번역해 실어뒀다.”고 말했다. ●아나키즘의 현재적 의미 박 교수가 이렇게 아나키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지금 한국에도 유효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독립운동으로서 어떤 성과를 냈느냐고 한다면 다소 부족하지만, 새로운 국가 건설론으로 이해하면 의미가 적지 않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다름 아닌 중간자였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아나키즘의 근본적인 목적은 인간성 존중과 풀뿌리 민주주의”라면서 “다른 체제로 살아온 남북이 통일할 때 한 방안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물론 박 교수가 마냥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자유로운 개인의 자유로운 연대라는 것이 현실성 있느냐는 질문은 여전하기에. 그래도 그는 “다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포기하기보다 하나의 이상향으로서, 미래지향적으로 가능성을 열어 두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박 교수는 책 내용에 조금 불만이 있다.“이번 책은 중국내 한인들의 아나키즘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 다음 번에는 한국내 아나키즘의 수용과 전개에 대해 연구해볼 참입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공기업 KT 민영화2기 출범, 성장동력 발굴 관건

    민영 2기 KT호가 출범했다. KT는 19일 서울 우면동 KT연구센터에서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남중수(50) 내정자를 사장으로 공식 선임했다. 남 사장은 오는 2008년까지 임기 3년간 ‘내실 경영’에 주력, 민영화의 완성도를 높여나갈 전망이다. 그는 취임사에서 “(블루오션 같은) 고객감동 경영으로 또한번 도약의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영화 안착은 물론 정체된 수익구조 개선, 신 성장동력 발굴의 과제도 안고 있다. ●민영화 안착 돌파구는 ‘원더(Wonder) 경영’ 남 사장은 “앞으로 3년은 외부 영향을 받지 않는 진정한 민영화를 정착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임기동안 내부적으로나 외형적으로 민영화의 틀을 제대로 다져놓겠다는 말이다. 남 사장이 선언한 ‘Great KT’와 ‘원더경영’ 비전들도 이같은 연장선에서 나왔다. 국내외 고객에게 지금보다 다른 ‘놀라운 감동’을 제공하는 KT가 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성장동력 발굴 지속 최근 KT의 경영 성적표는 밝지 못하다. 민영화 이전인 2001년에 11조 5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뒤 2002년 11조 7000억원,2003년 11조 6000억원, 지난 해 11조 9000억원으로 ‘염원의 12조원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올 2·4분기의 실적 악화를 계기로 올해 주요 경영목표도 하향 조정했다. 남 사장으로서는 이런 이유로 통신·방송 융합시장에 대응하는 신성장 엔진 발굴이 큰 과제 중의 하나다. 사실 KT는 국가기간통신망을 운영하는 등 공기업적 성격도 많아 통신정책을 따로 놓고 사업을 가져갈 수 없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공익성과 수익성이란 ‘두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게 KT의 숙명이란 뜻이다. 때문에 휴대인터넷 등 성장동력 발굴에서는 정부와의 보조를 맞춰가면서 서비스들은 고객에게 맞추는 구도를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남 사장도 “공적 사회적 역할은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케 하는 소중한 경영자산”이라며 공익적 역할에 대해 강조했다.KT는 민영화 1기때 민영기업으로서의 경영목표 때문에 통신정책 주무 부처인 정보통신부와의 의견차를 가끔씩 드러냈다. ●공기업 잔재 털어내기 남 사장은 취임사에서 “사장 내정 이후에 각계의 조언을 구해 봤더니 ‘민영화된 공기업, 즉 민영화 혜택만 먹으면서도 민간 마인드는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조직 및 인적 쇄신이 예견되는 언급으로 보인다. 남 사장은 또 “매출이 적어지더라도 내실을 우선 순위로 가져가겠다.”면서 “직원을 통한 서비스 강매 등으로 시장지배력을 강화해 가는 경영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90일 ‘하안거’ 수행끝낸 송광사 방장 보성스님

    “좋은 환경에서 편하게 수행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수행이 아닙니다. 돈을 멀리하고, 잔꾀를 부리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정성을 다해 노력해야만 자신을 이길 수 있습니다.” 스님들의 여름수행인 하안거(夏安居) 해제를 하루 앞둔 18일 오후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 만난 송광사 방장 보성(菩成) 스님은 하안거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선풍기도, 휴대전화도 없이 매일 새벽 3시부터 오후 9시까지 규칙적으로 이뤄지는 하안거 수행은 불교의 전통이자 자부심이다. 아침식사는 죽, 점심식사는 발우공양, 저녁식사는 소식하면서 90일을 지낸다. 보성 스님은 기자들을 반기며 “불교를 이해하려면 부지런해야 하고,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며 말문을 열었다.‘나’를 앞세우면 ‘전체’가 제대로 보이지 않고 위축돼 좋은 의견이 나올 수 없다는 것. 요즘 세상이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해 정당하지 못한 일들이 많다고 걱정했다.“돈만 밝히고 내놓지 않는 ‘고급병신’이 너무 많아요. 차라리 의로운 패배자가 되는 게 낫지….” 불교계도 돈 때문에 발전이 없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돈이 있어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데 차라리 돈이 없는 것이 낫습니다. 이 썩은 곳에서 어떻게 헤엄쳐 나가야 하나 고민입니다.” 최근 불거진 ‘도청문제’에 대해서도 일침을 놨다.“무엇이든 정당하게 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정치인도, 기업인도 모두 자신에게 속은 줄 모르고 남한테 속았다고 하지요.”하지만 내부적인 문제만 긁어낼 것이 아니라 앞을 내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일본의 역사왜곡이 심각한데 우리는 이해관계에만 얽매여 있습니다. 일본뿐 아니라 중국·미국 등도 우리가 잔재주를 부릴 때 가장 좋아합니다.”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피력했다.“어떤 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중요한데, 뭔가 잘 지켜야겠다는 생각들만 하는 것 같아요. 어떤 인생관을 갖고 사는지 자문자답해야 합니다. 대통령도 임기동안 뭐 내놓고 가려고만 하지 말고 이순신 장군처럼 깨끗한 지도자가 돼야 합니다.” 보성 스님은 우리 먹을거리와 교육문제에 대해서도 애착이 많았다.“농사를 짓지 않고 수입품과 외식에 의존하다 보니 몸을 망치고, 스스로 머리를 쓰지 않아 녹슬고 있습니다. 식구들과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나’를 다듬어야 합니다.”자녀교육에 대해서는 “제대로 가르치려면 돈을 주지 않고 강한 의식구조로 공부시켜야 참다운 자녀교육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보성 스님 방 벽에는 ‘목우가풍(牧牛家風)’이라 쓴 액자가 걸려 있다. 소 코를 꿰어 길들이듯 사람도 스스로를 길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좋은 것만 보고 듣고 먹으려다 보니 스스로 속고 산다며, 자신을 내세우지 말고 소처럼 다듬으며 살라는 가르침이다. 하안거 해제일인 19일 오전 10시. 해제법회를 마친 스님들이 하나 둘씩 송광사 일주문을 나섰다. 선풍이 엄격하기로 소문난 송광사에서 90일간의 수행으로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서로를 격려하며 재촉하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보성 스님은 하안거 법어를 통해 “물거품과 허깨비는 기약하기 어려우니 한 치의 세월도 아껴야 한다.”고 했다. 이날 해인사·봉암사·통도사 등 전국 선원 99곳에서 2254명의 스님이 해제법회를 끝으로 회향했다. 글 순천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사설] 광복 60년, 한민족 공영시대를 열자

    광복 60돌의 아침이다.60년 전 오늘 우리 민족은 일제의 사슬에서 벗어났다. 광명을 되찾긴 했지만 초기 해방공간은 여전히 빛과 어둠이 공존했다. 외세의 개입과 내부의 분열은 국토의 분단을 초래했다. 주체적 역량의 미성숙은 우리 민족을 다시 전쟁과 가난의 질곡으로 몰아 넣었다. 그러나 우리는 강인한 민족성으로 다시 일어섰다. 모두가 열심히 배우고, 일하고, 뛰었다. 두 세대만에 1인당 국민소득 67달러의 최빈국에서 세계 11위의 경제부국을 건설했다. 전쟁의 폐허 속에 세계가 놀라워 하는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독재의 악순환을 끊고 정치 민주화도 이룩했다. 그러나 어둠이 모두 걷힌 것은 아니다. 분단과 이산의 고통은 60년이 지나도록 민족의 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 이제 우리는 순국선열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통일조국 건설의 과업을 앞에 두고 새로운 60년의 출발선에 서 있다. 지금 남과 북 사이에는 민족화해와 평화의 상서로운 기운이 감돌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어제와 오늘 서울에서는 광복 60돌의 의미를 되새기는 다양한 8·15 기념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무엇보다 올해에는 남과 북, 그리고 해외의 동포들이 한자리에 모여 민족화해와 대동단결의 의지를 다짐하고 있다. 특히 북한 대표단은 국립현충원을 참배했다. 실로 얼마만인가. 분단 60년, 그리고 6·25전쟁 발발로부터 55년 만에 남과 북은 체제와 이념의 벽을 넘어 화해의 몸짓을 주고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5년전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다짐하는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는 모습을 가슴 뜨겁게 지켜 보았다.6·15 남북공동선언은 남과 북이 대립과 분열, 왜곡과 반목의 시대를 끝내고 21세기 화해와 공영의 시대를 열어갈 것임을 민족 앞에 약속한 것이다. 이 선언에 따라 남과 북 사이에는 하늘과 땅과 바닷길이 열리고 교류와 협력의 물꼬가 트였다. 금강산 관광이 가능해지고 개성에는 경제협력의 상징인 공단이 들어섰다. 머지 않아 백두산 길도 열릴 것이라고 한다. 이산가족 화상상봉센터도 문을 열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헤어진 가족들을 화상으로나마 만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분단의 극복을 위해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다. 그 가운데 북핵 문제는 남과 북이 함께 힘을 모아 넘어야 할 가장 큰 장애물이다. 이 문제의 해결 없이는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주변 4강의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반도의 오랜 군사적 대결 상태를 해소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가기 위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결단을 촉구한다. 우리는 또한 5년전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 국방위원장이 서로를 뜨겁게 포옹하던 장면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러나 김 국방위원장의 답방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의 답방과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진다면 이는 남북간의 신뢰 구축과 화해·협력을 획기적으로 증진시킬 것이다. 우리는 김 국방위원장이 민족에게 다시 한번 희망과 감동을 안겨주기를 갈망한다. 올해는 을사조약으로 국권을 빼앗긴 지 100년, 그리고 일본과 다시 국교를 맺은 지 40년이 되는 해이다.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광명을 되찾은 지 60년이 지났건만 일본의 역사인식은 갈수록 퇴보하고 양심을 저버린 망언들은 계속되고 있다.36년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교과서를 만들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가르치며,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동북아의 평화는 물론, 일본의 장래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일본의 시대착오적인 일부 우익 정치인들의 망동에 단호하게 대처하되 양식 있는 지식인들과 연대해 상호 존중과 화해의 바탕 위에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의 발전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친일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것 또한 시급하다. 과거사를 정리함에 있어 진실은 규명하되 화해의 정신을 발휘해 민족화합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 대결의 정치를 지양하고 동서의 지역갈등과 빈부의 계층갈등을 치유하는 화합의 정치를 펼쳐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남과 북이 한자리에 모여 화해와 협력을 다짐하면서 새로운 60년을 시작한다. 한민족 특유의 강인함과 역동성으로 또 한번의 도약을 이룩해야 한다.21세기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도록 통일의 초석을 쌓아가야 한다. 세계와 미래를 향해 한민족 공영의 시대를 열어 나가자.
  • 생활속 일본말 걷어내자

    “다데기, 단도리, 삐까삐까….” 국가보훈처가 광복 60주년을 맞아 지난달부터 일제잔재 뿌리뽑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미니홈피(www.cyworld.nate.com/lovelovekorea)에 올라와 있는 일본말을 정리해 10일 자료로 내놓았다. 평소 우리 생활에 뿌리 깊게 녹아 있어 본인도 모르고 부지불식간에 사용하는 표현 등이 대부분이다. 네티즌들은 근절해야 할 일본말로 ‘만땅’,‘이빠이’(가득),‘다스’(연필 12개 묶음),‘기스’(상처나 흠집),‘땡깡’(투정),‘까치’(담배 한 개비), 다데기(다진 양념),‘곤색’(청색),‘사라’(접시) 등을 가장 많이 꼽았다. 또 ‘오케바리’(좋다),‘삐까삐까’(번쩍번쩍하다),‘싹쓸이’(모조리 쓸어가다),‘싸바싸바’(편법으로 넘기다),‘쿠사리’(꾸중),‘무대포’(막무가내) 등도 가급적 사용하지 말아야 할 단어로 선정됐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신조어인 ‘원조교재’‘과로사’‘이지메’를 비롯해 일본을 거쳐온 외래어인 ‘장껜뽀’,‘단스’,‘우동’(중국어),‘카스테라’,‘뎀뿌라’,‘메리야스’(스페인어),‘뺑끼’(네덜란드어),‘쓰봉’,‘부라자’(프랑스어),‘코펠’(독일어) 등도 일상생활에서 무심코 사용하고 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단가로 日열도 울린 손호연 여사

    올해로 60주년을 맞는 8·15가 성큼 다가오면서 방송사마다 내놓는 이런 저런 특집물들이 눈에 띈다. 우선 아리랑국제방송이 마련한 ‘일본 열도를 울린 무궁화’가 시선을 끈다.15일 오전 9시에 전파를 타는 이 방송은 ‘단가(短歌)’라는 일본 전통 정형시를 통해 일본인들을 울린 한국인 손호연(1922∼2003) 여사를 다룬다. 어느 때보다 일본에 대한 분노가 높은 이 시점에 한·일관계의 긍정적인 측면을 다룬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손 여사는 일본어에 익숙했기에 일본 전통시인 단가의 형식을 빌려 시심을 쏟아냈다. 단가는 31자의 응축된 단어로 표현하는 시. 그렇기에 일본인들조차도 잘한다고 평가받는 사람이 50여명에 불과할 정도로 어려운 시다.그럼에도 손 여사는 단가의 대가 나카니시 스스무로부터 극찬을 받았고, 그녀의 단가는 일본근대사를 단가로 정리한 ‘쇼와 만엽집’에 5수나 실렸다. 그러나 광복 뒤의 극심한 반일감정은 손 여사를 죄인으로 만들었다.‘조센징’이어서 일본이 내친 게 아니라, 일본시를 했다며 한국인들이 그를 내친 것이다. 제작진은 단가가 백제의 시가였다는 사실을 들어 손 여사 구출에 나선다. 일본인들에게 문자와 표기법을 전해주면서 백제의 단가가 그대로 넘어갔다는 것이다.4000여수의 단가가 실린 고대 일본의 ‘만엽집’ 자체가 백제인들의 시가집이었다는 것이다. 아직 판독이 어려운 대목이 곳곳에 있는데 이는 고대 한국어로 풀어내면 쉽게 읽을 수 있다고 한다.구출방식이 꼭 이래야 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손 여사는 이제 한·일 문화교류의 상징으로 거듭 태어나고 있다. 히스토리 채널은 아직도 곳곳에 엉겨붙어 있는 일제의 흔적을 들추어내는 ‘전통적’인 방식의 특집을 마련했다.15일부터 매주 월요일 저녁 8시에 방영되는 ‘일제 문화잔재 60년’이 그것. 올해에는 4부까지만 제작·방영하고 내년에 6부를 추가, 모두 10부작으로 구성할 예정이다. 이번에 제작된 4부의 주제는 각각 음악·건축·미술·생활문화이다. 익숙하게 듣고, 봐왔던 노래와 건축물과 위인 영정 등에서 일제의 흔적을 찾아낸다.“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로 시작하는 동요에서도, 지난 5월 ‘친일파가 그린 논개 영정’으로 불붙은 논란에서도, 우리가 쓰는 일상용어와 학술용어에도 일제의 흔적은 짙게 배어 있다. 그러나 이런 청산론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일본은 침략자인 동시에 근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새로 선보이는 프로그램들이 이 두 측면을 어떻게 구분지을 수 있을까. 넘쳐나는 일본 관련 프로그램을 조망하는 또 다른 관점으로 참고할 만하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민족사의 아픔 선율로… 몸짓으로…

    민족사의 아픔 선율로… 몸짓으로…

    광복 60주년을 맞아 음악회를 비롯해 뮤지컬, 연극 등 다채로운 공연이 줄을 잇고 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들의 작품이 연주되는 의미 있는 경축 음악회가 열리는가 하면, 독립운동가 장준하 선생의 독립운동 일대기가 뮤지컬로 엮어지기도 한다. 한편에서는 각계의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의욕적인 행사준비로 인해 광복절 당일인 15일 야외음악회를 둘러싼 갈등도 보인다. ●음악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15일 오후 4시 우리나라가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안익태, 윤이상, 진은숙의 작품세계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종전의 이벤트성 공연과 달리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 이들 작곡가 3인의 작품 연주를 통해 광복 60주년의 특별한 의미를 되새기는 무대다.(02)580-1135. 서울시는 이날 오후 7시30분부터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의 지휘로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서울시합창단, 김덕수 사물놀이패 등이 협연하는 음악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도 이날 오후 7시 남대문광장에서 윤도현, 김수철 등 대중가요 가수와 성악가, 국악인들이 총출동하는 음악회를 갖기로 해 양측은 “서로 장소를 변경하라.”며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시민들은 같은 시간대에 불과 60m밖에 떨어지지 않은 서울시청앞 광장과 남대문광장 사이에서 클래식과 대중음악이 각각 뒤섞인 음악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무용극 공연예술그룹 칼미아(예술감독 정선혜 상명대 교수)가 창작한 무용극 ‘코드명 19450815’가 15일 오후 7시30분 천안 독립기념관 내 조선총독부 철거부재 전시공원에서 공연된다. 이곳은 1995년 광복 50주년 당시 일제 잔재 청산을 상징하기 위해 폭파했던 옛 조선총독부(중앙청) 건물의 파편을 모아 조성한 곳으로, 공연장으로 활용되기는 처음이다. 치욕의 세월을 이겨내고 마침내 조국의 빛을 되찾은 우리 민족의 의지를 세 부분으로 나눠 보여준다.(041)550-5282. ●연극·뮤지컬 광복 60주년을 맞아 역사를 소재로 한 공연 두 편이 문예진흥원예술극장 대극장과 소극장에서 나란히 막을 올렸다. 지난 5일부터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청년 장준하’(조한신 작·연출)는 독립운동가 장준하 선생을 통해 조국과 민족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작품. 장준하 선생이 독립군에 합류하려고 중국 중동부지역에 있던 일본군 부대를 탈출해 중경으로 가는 6000리 대장정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독립유공자증을 지닌 관객은 50%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15일까지.(02)722-1467. 지난 4일 소극장에서 막 올린 연극 ‘나비’(김정미 작·방은미 연출)는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에 관한 이야기다. 재미교포 희곡작가 김정미의 작품으로, 지난해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돼 호평을 받았다. 뉴욕에 이민 온 김윤이 할머니와 손녀 진아, 한국에서 집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위안부 할머니들 사이의 갈등과 화합을 그렸다.15일까지.(02)741-5332. 일제 침략기부터 해방기까지의 민족사를 다룬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아리랑’도 무대에 오른다. 인천시립극단은 13∼21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연극 ‘아리랑’(엄태경 각색·정진 연출)을 공연한다.(032)438-7775. 최광숙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베일벗는 도청] 野 “文의장 왜 숨겼나” 與 “내용 모두 열자”

    [베일벗는 도청] 野 “文의장 왜 숨겼나” 與 “내용 모두 열자”

    국가정보원이 5일 열어젖힌 불법 감청 실태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본 정치권은 경악감을 감추지 않으면서 긴급 회의를 열고 후속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여야 모두 철저한 진실 규명을 주장했지만 그 내용과 방법은 조금씩 달랐다. ●야 “특검 도입 불가피” 한나라당은 긴급 원내대책회의를 열고 국정원 발표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향후 대응방향을 논의했다. 당 안팎에서는 그동안 제기했던 김대중(DJ) 정부 이후의 불법 도청 의혹이 사실로 판명된 데 약간 고무된 모습을 보이면서도 향후 파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고심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임태희 원내수석부대표는 “노무현 정부 이전 과정에서 불법 도청이 중단됐다고 설명했지만 이는 역대 정권의 전형적 주장”이라며 “국정원은 감청기술의 조잡성 등 애매한 이유로 현재에는 중단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신뢰할 수 없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임 수석부대표는 이어 여권 지도부를 겨냥,“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과 이강래 의원은 DJ정부 시절 국정원 고위 간부를 지냈는데 왜 지금까지 불법 도청 사실을 숨겼는지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휴대전화 감청문제를 제기했던 권영세 전략기획위원장은 “자료 내용에 대해서 언급이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녹취록을 어떻게 관리했으며, 어떻게 악용했는지 등을 밝혀야 될 것”이라고 촉구했다. 한나라당은 이날 향후 대책으로 ▲국회 정보위·과학기술정보통신위 긴급 소집 ▲특검법 조속 처리 ▲불법 도·감청 근절 관련 3개법 개정 등을 발표했다.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단 대표는 “파일 공개를 위한 특별법·특검법 도입, 국정조사 실시를 논의하기 위해 5당대표 회담을 갖자.”고 촉구했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불법 도·감청을 근절하라고 지시했음에도 반영되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이지만 그나마 국민의 정부 말기에 근절된 것은 다행”이라면서 국정원 발표의 후폭풍이 당으로 이어지지 않게 차단에 나섰다. ●여 “진실 규명 철저히” 열린우리당은 “역대 정권의 불법 도청에 대한 모든 실체적 진실은 철저하게 규명돼야 한다.”고 밝혔다. 배기선 사무총장은 이날 오전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국정원의 자기 고백은 진실 규명의 출발점이 돼야 하며 역대 정권에서 이뤄진 도청의 진실과 모든 내용을 조사해 독재정권의 잔재를 청산하고 국민적 의혹을 해소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배 사무총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 사찰의 가장 큰 피해자로 국정원의 도청 근절을 거듭 강조해왔는데, 국정원이 독재의 잔재를 탈피하지 못하고 불법 행위를 답습해온 것으로 드러났다.”며 “철저한 진실 규명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오영식 공보담당 원내부대표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수십년에 걸쳐 독재정권 불법 도청과 정치 사찰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면서 “과거 타성에 젖어 상당기간 불법 도·감청을 한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당은 검찰 수사와 특별법 제정을 통해 이번 사건 진실을 철저하게 규명할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박영선 의장 비서실장도 “김영삼 정부 때의 것만 아니라 김대중 정부 시절의 도·감청 내용도 모두 공개돼야 한다.”고 자신감을 보였지만, 일부에서는 앞으로 정치권에 닥쳐올 후폭풍을 가늠하느라 복잡한 기상도를 그려보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종수 이지운기자 vielee@seoul.co.kr
  • [일본을 다시본다] (11) 시험대에 오른 우정공사

    [일본을 다시본다] (11) 시험대에 오른 우정공사

    |도쿄 특별취재팀|“전국 2만 4200여곳의 우체국과 360조엔을 웃도는 세계 최대 규모의 수신고를 보유한 거대 조직….” 공룡 조직으로 불리는 일본우정공사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우정 민영화 법안 추진을 계기로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130여년간 국가기관으로 존속해 오다 2003년 4월 공사로 전환한 뒤 ‘고객지향주의’를 외치며 체질개선에 나선 지 불과 2년 만에 ‘민영화’라는 격랑에 휩싸였다. 민영화가 추진되면서 27만여명에 이르는 직원들의 신분 변화 등을 걱정하는 내부의 목소리도 있다. 일각에서는 ‘공사든 민영화든 수익만 내면 걱정할 것이 없다.’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살길은 서비스 개선뿐 지난 5월 말 도쿄도(都) 지요다구(區) 가스미카세키 인근의 일본우정공사 본부내 우체국.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창구 직원들이 ‘어서 오세요.’라며 환한 미소로 반긴다. 오밀조밀하고, 아담하게 꾸며져 액세서리 가게를 연상시킨다. 창구 앞에 부착된 받침대에는 새로 출시된 상품들이 광고전단과 함께 진열돼 고객을 유혹하고 있었다. “실내가 너무 안락한 것 같다.”며 말을 던지자 니타 유키오 부국장은 “우정청에서 우정공사로 바뀐 뒤부터는 ‘고객은 왕이다.’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죠. 뻣뻣하고 고압적인 자세로는 더 이상 고객을 붙들 수 없습니다.”고 대답했다. 니타 부국장은 최근 출시된 신상품 ‘EXPAK 500’을 펼쳐 보이며 “인기가 너무 좋다.”고 자랑했다.500엔만 내면 전국 어디든 택배를 이용할 수 있고, 미리 사둔 뒤 이용하면 굳이 우체국에 가지 않고 인근 우체통에 집어넣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우체국과 편의점의 제휴 공사 전환 뒤 달라진 것 중의 하나는 새로운 택배마케팅을 도입한 점이다. 우체국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2003년 11월 택배업계 1위인 야마토운수와 제휴관계에 있는 편의점 체인망 ‘로손(LAWSON)’과 손을 잡았다. 전국에 8000여개의 점포를 갖고 있는 로손과의 제휴는 택배사업의 거점 확보는 물론 우체국과 편의점의 유기적인 시너지 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우체국에서 만난 회사원 다나카 다이치는 “우체국이 점차 편의점의 성격으로 바뀌는 것 같다.”며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다양한 서비스에 눈을 돌리는 게 피부로 느껴지곤 한다.”고 말했다. ●시스템도, 사람도 ‘바꿔’ 사실 공사의 구조적인 비효율과 관료주의 색채를 없애는 데는 2002년 12월 도요타자동차의 생산방식을 본뜬 JPS(Japan Post System) 개혁프로그램을 도입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우편물 접수, 분류, 배달업무 등의 시간을 줄여 시간당 20%의 절감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업무시스템 개선, 인원 재배치 등으로 2003년에는 4년간의 적자행진을 멈추고 우편업무에서만 263억엔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지금은 공사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액션플랜(중기경영목표)에 따라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고객서비스 개선 등에 초점을 둔 반면 올해부터는 새로운 수익창출 모델과 상품개발, 경영체질 개선 등에 힘을 쏟고 있다. 경영진을 외부 인사로 대거 교체한 것도 액션플랜 실천에 탄력이 붙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한다. 부사장 2명 가운데 1명은 도요타차 출신이며, 임원도 15명 중 무려 7명을 학계·업계 등 외부에서 영입했다. 우정공사 경영기획부 다니가키 구니오 전략담당부장은 “임원들을 대거 민간에서 데려옴으로써 집행·감시의 피드백 시스템이 철저히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고민도 적지 않다 하지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대 돈줄인 우편저금과 간이보험의 판매가 민간업체와의 경쟁으로 예전 같지 않다. 공사에 따르면 우편저금 잔액은 1999년 259조 9000억엔이었으나, 이후 줄곧 감소해 지난해에는 214조 1000억엔에 그쳤다. 간이보험 계약건수도 800만건을 웃돌다 2000년을 기점으로 700만건대로 뚝 떨어지고 있다. 우편 영업수익도 시스템 및 서비스 개선으로 나아지긴 했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은 상황이다. 우정공사 나카지마 히사하루 IR담당부장은 “정부 주도의 민영화 추진에 개의치 않고 민간기업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경영체질로 바꾸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했다. bcjoo@seoul.co.kr ■ 고이즈미 우정개혁 ‘두가지 셈법’ |도쿄 특별취재팀|일본우정공사의 민영화 작업은 ‘고이즈미 개혁’의 핵심이다. 성공 여부에 고이즈미의 진퇴가 걸려 있어서다. 이런 까닭에 국가금융을 민간금융으로 전환한다는 경제논리 외에 정치논리가 깊이 개입돼 있다. 이른바 우정족(郵政族·지방 우체국 토호세력 등의 지지로 정계에 진출한 의원) 등 기득권 세력이 자민당내 반대파다.‘우정 민영화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중의원 해산·총선거’라는 카드를 빼든 고이즈미 총리와 내년 9월 고이즈미 총리의 임기 만료 이후 주도권을 노리는 반대파들간의 힘겨루기 측면이 강하다. 경제적 효과를 둘러싼 학계·금융계의 엇갈린 시각도 우정 민영화 작업에 논란거리로 작용하고 있다. 나오히로 야시로 일본경제연구센터 이사장은 “일본이 개혁을 하려면 마지막 남은 낡은 사회주의적 금융 잔재를 털어내야 한다.”며 민영화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지바대학 신도우 무네유키 교수는 “우정 민영화는 옳은 방향이지만, 민영화를 추진하는 배경 등에 대해서는 해석이 구구하다.”며 “우정 민영화 문제는 형식적인 것과 실질적인 것의 이중성을 추구하는 일본 국민의 속내와 비슷한 측면이 있어 진짜 배경을 알 수 없다.”고 꼬집었다. 아키히코 스즈키 UFJ종합연구소 조사부 수석연구원은 “자민당내 반대파들은 고이즈미 총리의 우정 민영화를 정치개혁을 위한 꼼수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문제는 민영화를 왜 하는지 국민들이 잘 모르고 있는 점”이라고 말했다. 다다요시 구사노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사무국장은 “공사로 전환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고, 그동안 서비스 개선 등으로 경영실적이 점차 좋아지고 있는데, 굳이 이 시점에서 민영화를 강행하겠다는 것은 정치적인 계산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현재 우정공사 직원은 자체 수익으로 월급을 받고 있는데, 민영화를 하면 공무원을 줄이는 만큼 세금을 덜 거둬 들이게 된다는 정부측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반박했다. bcjoo@seoul.co.kr ■ 와카바야시 시게요시 기획관 |도쿄 특별취재팀|“우정 민영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인 개혁 과제입니다.” 일본우정공사의 민영화 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내각관방 우정공사민영화준비실’의 와카바야시 시게요시 기획관은 “우정 민영화는 국가가 움켜쥐고 있던 금융업을 시장논리에 따라 민간으로 이양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이 작업을 성공리에 마무리하지 못하면 일본 금융산업은 후진성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 5월 국회에 제출한 우정 민영화 법안은 지난 7일 중의원 표결에서 일부 자민당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지는 바람에 겨우 통과됐다. 현재 참의원에서 심의 중이다. 우정 민영화 법안은 세계 최대 금융기관인 일본우정공사의 금융부문을 떼내 민영화하는 것으로,2017년 3월까지 마무리하는 것으로 돼 있다. 기본 골격은 공사를 지주회사로 전환한 뒤 우편저금과 우편보험은 완전 민영화시키고, 우편회사와 창구네트워크만 지주회사가 주식 100%를 보유하도록 돼 있다. 지주회사의 주식은 정부가 3분의1 이상 보유한다는 계획이다. 와카바야시 기획관은 “은행과 보험을 우체국에서 떼낼 경우 업무차질을 우려하지만, 이행기간이 2007년부터 무려 10년이나 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특히 민영화가 되더라도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은 우편저금·간이생명보험 계약자들은 공사 승계법인에 의해 별도로 관리되기 때문에 피해를 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폐합하기로 했던 지방 우체국도 고객들의 불편을 고려해 그대로 유지하기로 해 반발을 최소화했다고 덧붙였다. bcjoo@seoul.co.kr ●특별취재팀 한종태 국제부장(팀장), 황성기 사회부장, 이춘규 도쿄특파원, 주병철(경제부)·손원천·이언탁(사진부)차장, 안미현(산업부)·김상연(정치부)·황장석(국제부)·유지혜(사회부)·정연호(사진부)기자
  • [오일만특파원 베이징은 지금] 中 회의하다 망한다?

    중국에서 요즘 ‘회의 망국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사회주의 특유의 ‘회의 행정’의 잔재와 권력 분산 추세에 따른 국유기업의 소규모화, 사영기업 등의 등장으로 ‘회의 단위’가 그만큼 많아졌다. 당은 7000만명의 당원을 상대로 각종 회의와 국유기업·사영기업들은 미래 전략회의란 명목으로 회의가 폭주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문제는 효율성이다. 최근 중궈저우칸(中國周刊)은 중국의 회의 문화가 ‘먹고 마시고 시간 때우기’로 변질되고 있다고 질타했다.‘회의 원가’를 시간당 평균임금, 참가자 수, 회의시간에 기회비용을 포함해 계산할 경우 천문학적인 돈이 불필요한 회의로 낭비되고 있다고 한탄했다. 중국의 회의는 일반적으로 고급·중급·저급 회의로 나뉜다. 고급 회의는 링다오(領導·지도자)의 모임인데, 주로 ‘이얼싼쓰(1234) 회의’로 불린다. 기존의 방침을 1,2,3,4로 나열하는 공허한 회의라는 의미다. 조직의 중간 간부들이 주축이 되는 중급 회의는 ‘하오(好)하오(好)’ 회의로 통한다. 소신보다는 위에서 내려온 안건에 ‘옳소.’를 외치는 복지부동의 전형적인 케이스다. 저급 회의는 ‘벙어리 회의’다. 주로 상급 단위의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직원 전체회의다. 참가자들은 말없이 그저 무표정하게 회의에 참석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별칭이다. 더욱 가관은 ‘유람성 회의’다. 고급 휴양지의 최고급 호텔에서 며칠씩 계속되는 회의가 대부분이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1999년 베이징에 회의 관련 서비스 회사가 200여개였으나 지난해 4000여개로 20배가 늘었다. 최근 중국 감사원이 적발한 사례를 보자. 지난해 중국 국가전력공사는 우한(武漢)의 5성급 호텔인 샹그릴라에서 2일간 304만위안(약 4억원)을 썼다. 당 중앙과 중앙정부는 이미 여러차례 ‘회의 간소화’ 지침을 하달했다. 하지만 간소화 지침을 전달하기 위해 또 다시 하부 단위에서 회의를 열어야 하는 ‘악순환’이 끊어지지 않는한 회의 자체가 사회발전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oilman@seoul.co.kr
  • “국정서 가장 어려운건 지역분할구도 타도와 배제의 문화 반드시 극복해야”

    노무현 대통령은 15일 “국정의 여러가지 과제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은 정치적인 지역분할구도가 지역주의를 확대 재생산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역사와 미래를 위한 범국민자문위원회’ 위원들과 청와대에서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우리 역사에서 국난을 겪을 당시의 공통점은 지도층이 분열하고 국론이 분열돼 국가의 위협에 제대로 대비를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위원회는 친일진상규명위 등 과거사 관련 위원회의 통합 회의체 성격을 띠고 있으며 대통령 훈령에 따라 신설된 기구다. 강만길 친일진상규명위원장을 간사로 23명의 위원으로 구성됐다. 노 대통령은 “오랜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아쉬운 것은 극단의 한편에서 깃발 들고 타도, 배제를 외친 사람이 현실에서 권력을 잡고 성공했다.”면서 이런 문화적 잔재를 극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한국이 세계 10위 경제력에 걸맞은 문명국가, 거기에 걸맞은 미래를 가지려면 어려운 문제에 감정적으로, 극단적으로, 습관적으로 부닥쳐 나가는 게 아니라 서로 합리성, 이성을 가지고 극복하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이 대화와 타협의 문화정착을 위해 나서는 데 대해 “국론이 분열돼 겪었던 우리 민족의 아픈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강원룡 목사는 인사말에서 “미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아프더라도 과거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해방 후 일제시대부터 오늘까지 역사에 대해 잘못된 것을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픔이 미래로 계속 이어간다.”고 말했다.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체불임금→밀린임금’ 법령 日式용어 우리말로

    우리 법령에 담겨 있는 일본식 용어들이 대대적으로 정비된다. 광복 60주년을 맞아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순수한 우리말을 되살리자는 뜻이다. 법제처는 13일 “광복 60년을 맞았는데도 우리 법령에는 여전히 일본식 용어들이 산재해 있다.”면서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좀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으로 법령의 일본식 용어들을 대폭 정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난 2000년 마련한 ‘알기 쉬운 법률 만들기’ 추진계획의 하나로 올해 초 어려운 한자용어와 표현을 좀더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에 착수한 데 이은 ‘제2탄’이다. 이에 따라 ‘개전의 정(잘못을 뉘우침)’‘매점매석(사재기)’‘거래선(거래처)’‘가처분(임시처분)’‘체불임금(밀린 임금)’처럼 어려운 한자용어나 일본식 표현들은 내년부터 우리말로 대체될 전망이다. 법제처는 이와 관련, 지난 11일 각종 법령에 담긴 일본식 용어의 실태를 점검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전문연구기관을 상대로 연구용역 작업에 들어갔다. 이달 말 연구기관을 선정해 11월 말까지 검토작업을 벌인 뒤 내년부터 법령 정비에 나설 방침이다. 법제처 관계자는 “일본식 용어를 가급적 우리말이나 상용화된 한자표현으로 바꾸되, 익숙해진 용어는 여론수렴 절차를 거쳐 그대로 사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고 밝혔다. 법제처는 이에 앞서 지난해 말 법률 조문에 있는 한자용어를 한글로 바꾸는 ‘법률 한글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안’을 제정, 오는 10월9일 한글날부터 시행에 들어가기로 했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평화재향군인회’ 주도 표명렬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평화재향군인회’ 주도 표명렬씨

    과연 ‘제2의 향군’으로 자리잡을까. 요즘 색다른 ‘색깔론’ 공방이 한창이다. 무대가 정치권이 아닌 전통 보수성향의 제대군인단체라는 점에서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재향군인회(향군)와 가칭 평화재향군인회(평군). 향군은 50여년 역사를 간직한 700만 회원의 거대 조직이다. 반면 평군은 현재 인터넷상에서 회원을 모집 중이며 아직 공식적인 출범식은 하지 않은 상태. 향군은 최근 평군의 움직임에 대해 “반미·친북성향의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법적 대응까지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그러자 평군은 향군을 향해 “친일·군부독재에 의해 왜곡된 이권단체에 불과하다.”며 헌법소원까지 불사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군대는 일제 때의 시스템을 답습하고 있다며 개혁의 필요성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두 단체의 대립은 색깔론 시비로 이어지면서 점입가경이다. 향군은 최근 “불법단체 평군에 현혹되지 맙시다.”라는 호소문을 통해 “평군의 주장은 반미·친북성향의 허무맹랑한 논리에 불과하다.”며 (평군의)‘군비축소론’ 주장은 북한의 적화통일론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색깔을 칠했다. 특히 평군 설립자인 표명렬(67·육사 18기) 예비역 준장의 선친이 남로당 간부와 빨치산 전력이 있다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평군측은 이를 마녀사냥이라며 오히려 향군이 평군의 탄생을 자초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상훈(육사 11기·예비역 대장) 현 향군회장과 표씨는 육사 선·후배이기도 하지만 현역시절 지휘관과 참모로 동고동락을 해 더욱 눈길을 끈다. 발화의 주인공인 표씨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지난주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자택에서 표씨를 만났다. 평군은 오는 8월15일 광복 60주년에 맞춰 출정식을 갖고,9월17일(광복군 창설일)에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준비상황을 물었다.“홈페이지에 매일 1000여명이 방문할 정도로 날로 반응이 좋아지고 있다. 두고 보라.”며 자신했다. 출정식 때에는 전국적으로 수만명이 참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현재의 향군이나 성우회 등은 사실상 극우라면서, 평군의 이념은 ‘건전보수’를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우리 군은 일제의 잔재를 하루빨리 벗어던지고 정체성과 자부심을 새로이 가져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향군은 냉전체제하에서 해왔던,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군사정권의 이권에서 출발한 태생적 한계도 있지요. 그동안 누려온 기득권을 잃을까봐 걱정도 많이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결국 향군은 국민의 혈세를 지원받고 있지 않습니까. 독점적 권리는 헌법에도 위배되는 것입니다.” 평군의 주요 지향점에 대해 ▲친일·군부독재 세력에 의해 왜곡 형성된 군대문화를 개혁하는 일에 앞장서고 ▲자주적 안보관을 국민의식 속에 확산시켜 동북아의 평화와 조국의 평화통일에 기여하며 ▲세계의 평화단체와 협력, 남북 제대군인간의 화해증진·군비축소 종용 등 평화정착 운동을 전개한다는 것 등이라고 역설했다. 이쯤에 이르러 그는 “군개혁의 핵심은 사관학교의 개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군 간부 양성의 요람인 사관학교의 훈육이 ‘일제의 굴레’에서 아직도 못 벗어나고 있다는 것. 육사의 경우 5·16 때 쿠데타를 찬성하는 시가행진에 가담한 뒤 오히려 일제화된 경향이 뚜렷해졌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12·12 쿠데타 후 육사는 ‘하나회’로 인해 개혁이 더욱 후퇴했으며, 김영삼 정권 때에는 이같은 하나회를 치는 것을 군 개혁으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육사를 개혁하려고 해도 그동안 붙박이 교수들의 반발,2년마다 다른 부대로 전출가는 간부들의 냉소적 분위기, 동창생들의 반대 등으로 사실상 개혁은 어림도 없는 일로 간주돼 왔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육사 출신 장교들은 오로지 진급에만 관심을 갖는, 이른바 정치장교·정치군인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순수성을 잃은 지 오래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최근 전방 GP소초 총기난사 사건도 따지고 보면 일제식 교육풍토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한 예로 사병들간에는 병장(분대장)이 유일한 공적인 명령을 내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간 사병끼리 서로 존비어를 써가며 욕지거리가 오고 가는 군대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것. 이등병, 일병, 상병 등은 전쟁에 대비해 편의상 서열을 정해놓은 것이지 평상시에는 계급 구분이 없다는 논리를 폈다. 미국의 경우도 장교와 사병간에 서로 장난질까지 할 만큼 얼핏 보기엔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세계를 움직이는 합리적인 군대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병들은 상급 지휘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사역작업에 자주 동원되다 보니 사병들의 불만이 늘 상존해 있다는 것이다. 화제를 바꿔 문제가 된 선친의 남로당 전력에 대해 물었다.“아버지는 일제 때 중앙고보에 다니던 중 사회주의운동에 가담했다가 종로경찰서에 붙잡혀 퇴학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중앙고보에서 경성전기학교로 옮겨 졸업한 뒤 한국전력의 전신인 ‘남선전기’(남전)에 취업했다는 것. 남전의 군산지점에서 일하던 선친은 차별대우의 부당함을 알리는 데 앞장서다가 수배대상이 되자 만주로 도망을 갔다. 광복 직후 선친은 다시 남한으로 돌아와 남전 광주지점에서 근무하게 됐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남로당 활동에 가담했다. 이때 표씨는 광주 대성초등 3학년이었다. 6·25전쟁이 나자 선친은 전남지역 노동조합 책임자로 부역을 하게 된다.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인민군이 퇴각하자 선친 역시 백두대간을 따라 숨어서 월북길에 올랐다. 그러나 충북 영동경찰서에 붙잡혔다. 이어 대전형무소로 이감되던 중 영어실력을 인정받아 미군 고문관 역할을 하게 되면서 겨우 목숨을 유지한다.6·25가 끝나자 부역활동이 들통날까봐 표씨 선친은 고향인 완도로 내려가지 못하고 거지나 다름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다. 표씨가 아버지를 오랜만에 만난 것은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아버지한테 6·25 당시 부역했던 기록이 분실돼 고향에서는 그저 ‘사상가’로만 인식돼 있다고 귀띔해주자 그때서야 고향에 내려와 농사지으며 살았다고 회고했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보다 먼저 새마을운동을 펼칠 정도로 고향생각을 많이 했다고 부연했다. 표씨 선친은 90년 4월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표씨는 전남 완도 출신. 사범학교에 진학하라는 어머니의 권유를 뿌리치고 육사에 들어갔다. 생도시절 대대장 생도를 맡아 5·16 때 선배들의 강압에 못이겨 후배들과 함께 서울시청앞 시위에 가담했다.65년에는 맹호사단 기갑연대 11중대 부중대장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귀국 후에는 군개혁을 위해 나름대로 헌신하고자 전투병과에서 정훈으로 변경했다. 5·18 때에는 국방부 정신전력 연구팀장(대령)으로 광주파견 요원으로 차출됐다. 하지만 이때 신군부의 주문대로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3군단 정훈참모(중령 직급)로 좌천됐다. 이때 3군단장은 현 향군회장인 이상훈 중장이었다. 이어 표씨는 2군사령부 정훈참모로 자리를 옮겼고, 곧 이어 육본 정훈감으로 장군 진급을 했다. 표씨는 이때 군개혁과 관련된 로드맵을 작성하는 등 남다른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87년 전역 후에도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저서를 통해 군 개혁을 설파했다. “남북한 제대군인이 만날 수 있도록 하고, 또 남북 합동으로 ‘6·25진혼곡’도 만들 생각입니다. 평군은 회비로 운영되며 이권사업과 정치적인 일체의 행위를 철저히 배제합니다. 평군의 목적은 뭐니뭐니해도 군 개혁이지요. 더 이상 ‘까라면 깔 것이지.’하는 식의 군대는 안됩니다.” 슬하의 1남1녀가 모두 결혼했으며, 아들 정훈씨는 현재 출판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표씨는 ‘맷돌에서 나온 온보리’ 철학을 거론하며 평군을 통해 군 개혁이 이루어지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지론을 거듭 강조했다. 글 김문기자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8년 전남 완도 출생 ▲58년 광주고 졸업, 육군사관학교에 입학. ▲62년 육사 18기 임관. ▲65년 중위 시절 베트남전 참전. ▲67년 전투병과에서 정훈병과로 변경. ▲79년 타이완 국방부 정치작전학교 수료. ▲80년 5월 국방부 정신전력 연구팀장으로 광주항쟁 현장 파견,3군단 정훈참모. ▲85년 2군 정훈참모에서 장성 진급. ▲87년 육군본부 정훈감으로 예편. ▲2003년 평화재향군인회 준비. ▲2005년 6월 평화재향군인회 발기 선언. ▲현재 군사평론가, 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 ■ 저서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2003년) 등.
  • [논술이 술술] 교실 밖 국사 여행/글쓴이 국사학 연구소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까닭은 단지 지나간 과거에 대한 지식이나 상식을 넓히려는 호기심 때문이 아니다. 인간의 과거 삶의 기록인 역사는 바로 현재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삶을 좀더 폭넓게 이해하고, 나아가 그 내용을 충실히 하기 위해서 역사를 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역사 교육은 대체로 현실은 무시한 채 죽은 지식만을 전달하는 데 치우쳤다. 가까운 근·현대사보다는 고대사를 강조하고, 과거의 치욕과 잘못보다는 민족의 우수성과 영화를 찬양하기에 급급했던 역사 교육이 그렇다. 그저 역사적 사실들을 달달 외우도록 했을 뿐 이로부터 역사와 현실을 이해하는 힘을 기르지는 못했던 것이다. 요즘에는 아예 모든 학문의 실용성만을 강조하다 보니 역사 교육은 더욱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단지 지나간 옛 이야기로서가 아니라, 우리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 삼을 수 있도록 이끌고 있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중학생들이 읽을 수 있도록 쓰여진 책들을 찾기 어려운 우리 현실에서 이 책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원시·고대, 남북국, 고려, 조선 전기, 조선 후기, 한말, 일제, 해방 후의 여덟 시기로 나누어 살피고 있다. 그리고 각 시기의 사회상을 잘 나타내고 있는 주제를 잡아서 풀이하고 있다. 그래서 단지 외우는 것이 아니라, 사실과 사건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역사의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게다가 국사 교과서에서 소홀히 다루고 있는 근·현대사를 자세하게 풀이, 역사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좀더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끈다. 이 책을 만든 역사학연구소는 민족 통일의 올바른 방향을 잡기 위해 우리 민족의 역사를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의 모임이다. 특히 역사 연구의 성과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많은 애를 써 왔는데, 그러한 노력으로 ‘바로 보는 우리 역사’,‘우리 나라 지방자치제의 역사’’등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유니드림 대학입시연구소(www.unidream.co.kr) ■ 독서지도시 참고사항 -대상 학년:중1∼고1 -관련 교과:국사, 한국근현대사 -함께 읽어 볼 책’이야기 한국사(이이화), 삼국유사(일연), 삼국사기(김부식) -기출 논제(면접구술)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왜곡된 삶의 태도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서울대) △독도영유권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반박하시오.(서울대) △만약 당신이 조선 중기의 왕이고 당파싸움 등으로 국력이 쇠약해 있을때 강대국이 쳐들어왔다고 생각해 보자. 응전을 할 경우 국가가 멸망의 위기에 처해 있다면 당신은 어떠한 방법으로 대처하겠는가.(연세대 법학) △역사적으로 쿠데타가 정당화될 수 있는지, 없는지 근거를 들어 주장해 보라.(서울대 경제학부) △20세기 우리나라의 가장 큰 사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가톨릭대 법경학부) △‘박정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고려대 정경학부) ■생각해보기 -신라의 삼국 통일이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의와 한계는 무엇일까. -광해군의 자주적 실리 외교 정책이 어떤 교훈을 주는지 최근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를 예를 들어 써 보자. -1894년 농민 전쟁의 성격과 의의는 무엇이며, 농민 전쟁에서 ‘동학’의 역할은 무엇일까. -애국계몽운동과 물산장려운동의 성격과 한계를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는 해방 후에도 아직 일제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다. 해방 후 친일파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까닭과 그것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 -4·19 혁명의 의의와 성격에 대해 생각해 보자.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과거사 청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써 보자.
  • 비상국무회의법등 유신 잔재 아직도

    시한이 종료됐거나 이미 효력을 상실했지만 여전히 법조문에는 살아 있던 ‘사문화(死文化) 법률’ 115건이 조만간 폐지된다. 이 중 소관 상임위별로 별도의 폐지안을 제출, 절차를 밟아야 할 법률이 67건이다. 나머지 48건을 이미 효력이 상실된 한시법이다. 직접 폐지해야 할 법률 가운데는 서슬 퍼렇던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법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5·16쿠데타를 마무리짓고 신설한 ‘국가재건최고회의법’에는 훗날 ‘박통’을 철통 경호하게 될 중앙정보부와 수도방위사령부를 설치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5·16 이전에 부정축재한 공무원들의 재산을 국고로 몰수하는 ‘부정축재처리법’이나 ‘혁명재판소 및 혁명검찰부 조직법’도 이번에 폐지된다. 1972년 10월17일 공포된 ‘유신 헌법’에 따라 국회를 해산시키고, 대신 만든 ‘비상국무회의법’이나 곧이어 국민투표를 실시한다며 ‘선거관리위원회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통일주체국민회의법’도 유신 독재의 산물로 아직까지 남아 있었다. 이밖에도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관광·숙박업을 적극 지원했던 ‘올림픽 대회 등에 대비한 관광·숙박업 등의 지원에 관한 법률’이나, 이 기간 집회나 시위를 금지한 ‘올림픽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법률’ 등 한시 법률도 자동 폐지 대상이다. 또 지난 2000년 1월1일 ‘밀레니엄 버그(Y2K문제)’가 일어날 것에 대비해 제정된 ‘컴퓨터 2000년 문제의 해결에 관한 촉진법’ 등도 사문화 대상으로 분류됐다. 국회 법제실 관계자는 “이미 실효성을 상실해 사망 선고만을 기다렸던 법률을 정리해 혼란을 방지하고, 법적 안정성을 더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서울이야기] 쓰레기종량제 10돌

    [서울이야기] 쓰레기종량제 10돌

    ●쓰레기종량제의 탄생 누구든 쓰레기를 버리고자 할 때는 쓰레기 배출방법, 수거하는 사람 그리고 연락처가 찍힌 규격봉투를 사용하고 있다. 이 봉투를 사용하더라도 반드시 지정된 장소와 시간에 쓰레기를 내놓아야 한다. 지금은 자연스러운 생활 속의 한 단면이지만, 사실 이러한 모습은 불과 10년 전에 탄생했다. 정확하게 1995년 1월1일, 우리나라 쓰레기 청소 분야는 쓰레기종량제라는 새로운 사업에 돌입했던 것이다. 서울도 예외가 아니어서 가정, 사무실, 학교, 관공서, 심지어 구멍가게까지도 구청에서 제작한 비닐봉투에 쓰레기를 담아야만 버릴 수가 있었다. 가정에서는 흰색, 사업장에서는 오렌지색, 관공서에서는 엷은 청색 등 건물의 이용형태에 따라 다른 색깔의 봉투를 사용토록 하였다. 쓰레기 봉투는 담배처럼 지정된 장소에서만 판매했으며, 시민들은 봉투를 미리 사두고 한장씩 꺼내 썼다. 규격봉투는 쓰레기 처리비를 포함하고 있어서 시중에서 사용되던 일반봉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비쌌다. 바야흐로 시민들은 운임을 주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거나, 물건값을 지불하고 가게에서 생필품을 구입하듯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가격을 지불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멀리 가거나 많이 사면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 같은 원리로 쓰레기를 많이 배출하면 할수록 그만큼 봉투 사용량과 봉투를 사는 데 드는 비용이 늘어났다. 냉장고, 장롱 같은 규격봉투에 담기 어려운 품목은 개별로 처리비용이 책정되었다. 같은 품목이라도 크기가 클수록 버릴 때 많은 수수료를 지불해야 했다. 이 방법이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당시의 틀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달라진 것은 규격봉투의 크기와 색상, 강도와 같이 시민들이 불편하다고 해 수정한 부분과 처리비용의 상승을 반영하여 조정된 봉투가격 정도이다. 서울에서는 연간 2억 7000만 개 정도의 규격봉투가 팔린다고 하니 시민 1인당 20∼30개의 봉투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규격봉투는 동마다 27개소로 약 1만 4000개소에 이르는 지정판매소를 통하여 공급되고 있다. 지나온 시간이 말해주듯, 이제 쓰레기종량제는 우리 생활의 일부분이 된 것이다. ●왜 쓰레기종량제를 선택했는가 쓰레기종량제를 시행하지 않는 국가들도 많다. 쓰레기가 함부로 버려지거나 규격봉투의 구매, 배출방식의 규제 등으로 시민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의 경우도 시행하기까지의 과정이 간단치 않았다. 시행 3년 전부터 효과와 부작용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였고, 특히 시민들이 이 제도를 받아들여줄 것인가, 어떤 방법으로 시행하고 무엇이 필요한가를 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였다. 최종적으로 1994년 4월부터 8개월 동안 서울을 비롯한 몇몇 기초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해본 뒤, 본격적으로 전국적인 시행이 결정되었다. 시범사업에서는 시민들의 참여도, 봉투 자체와 공급경로의 문제점, 적정 수수료, 쓰레기의 양·질적 변화 등이 종합적으로 평가되었다. 시범사업 기간에 200여건, 시행원년인 1995년 600여건의 관련 언론보도는 당시 종량제가 어느 정도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는 사회적 관심사였던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듯 쉽지 않은 쓰레기종량제를 왜 선택하게 되었을까. 한마디로 쓰레기 처리할 곳을 찾기가 어려워서였다. 이러한 현상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 특히 심각했다.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서울은 88 서울올림픽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 와중에 청소를 담당하던 공무원들은 쓰레기를 치울 공간을 찾아 동분서주했다. 지금은 월드컵공원으로 변한 난지도매립지가 포화상태에 다다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성과가 없었다. 대안으로 소각시설의 건설을 추진했으나 이 역시 별 소득이 없었고, 그 상태로 88 서울올림픽도 지나갔다. 이 때 중앙정부가 수도권 도시들이 사용할 수 있는 매립지 부지를 당시 경기도 김포군의 드넓은 간척지에 마련하였다. 바로 오늘날의 수도권매립지이다. 공사과정에서 정부는 주변주민들과 많은 갈등을 겪었고, 다시는 이와 같은 대형매립지를 만들 자신이 없어질 정도로 갈등은 심각했다. 서울시도 나름대로 소각시설의 확보에 주력하였으나, 재활용품까지 소각하려 한다, 유해물질이 발생한다 등의 반대 목소리와 맞물려 성과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한편 아파트단지를 중심으로 재활용품 분리함이 등장했다. 이 사업은 기대 이상으로 참여가 좋았기에 단독주택이나 소형사업장으로까지 확대할 방안이 필요했다. 이 때 제기된 연결고리가 바로 쓰레기종량제였다. 쓰레기 발생량 자체도 줄일 수 있다는 논리적 분석결과는 종량제를 더 매력적인 방법으로 비춰지게 했다. 이상과 같은 일련의 과정 속에서 쓰레기종량제는 선택되었다기보다 어쩌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제도였고, 이러한 연유에서인지 오늘도 지속되고 있다. ●쓰레기종량제,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가 종량제 전에도 시민들은 쓰레기처리비용을 수수료라는 이름으로 구청에 납부했다. 그러나 규격봉투를 사용하는 종량제와는 다르게 집이 크거나 소득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이 냈다.잘사는 사람이 더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 낸다는 가정 때문이었다. 쓰레기종량제는 그러한 통념을 인정하지 않았다. 더욱이 적게 배출하는 사람도 더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있고, 재활용품으로 분리하면 그 부분은 쓰레기로 생각하지 않겠다는 정책적 의지까지 결합되었다. 종량제의 성과는 시행 원년에 즉각 나타났다. 재활용품으로 분리되는 양이 늘고 상대적으로 소각이나 매립방법으로 처리할 양은 줄었다. 서울에서는 소위 고물상들이 돈 되는 것만 수거할 때 20.5%이던 재활용 실적이 종량제 1년 만에 29.3%로 상승했다.1일 1만 5000t을 초과하던 쓰레기 양도 8.4% 정도 줄었다. 당시 자치구들의 평균 배출량이 600t 정도임을 감안하면 2개 구청지역에서 아예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은 효과와 맞먹는 양이 줄어든 것이다. 종량제 이전의 수수료 방식에서는 자치구별 가구당 부담액이 월 1156∼2102원으로 차이가 컸다. 그러나 종량제 실시 이후 2224∼2288원으로 차이가 대폭 줄었다. 종량제를 실시해보니 생활수준이 달라도 가정에서 기본적으로 배출하는 쓰레기양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결국 쓰레기종량제는 소득과 쓰레기 양은 비례한다는 기존 수수료체계의 모순을 개선하여 실제 배출량에 따라 수수료를 부과하는 형평성을 확보하는 계기도 마련하게 되었다. 타이완이 서울의 사례를 벤치마킹하였으며, 세계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대한민국의 폐기물관리체계가 선진국 수준이라고 칭찬한 것도 바로 이 종량제와 그 운영방식 때문이었다. 종량제 실시 이후에 폐기물관리는 다변화되었다. 우선 음식물쓰레기의 매립이 금지되었다. 재활용품이 빠져나가면서 음식물을 다량으로 버리는 우리 식생활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종량제만으로 쓰레기를 줄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음을 확인하고 일회용품 사용과 상품 포장을 억제하는 정책이 도입되었다. 시민들이 재활용품으로 분리해도 활용할 곳이 마땅치 않은 폐제품에 대해서는 생산자가 책임지고 재활용하는 체계도 마련되었다. 혹자는 이상과 같은 제도의 출현을 종량제의 성과가 아니라 오히려 부작용이라고 지적한다. 쓰레기가 줄어든 것은 종량제 때문이 아니라 연탄재가 줄고 위에서 열거한 부작용 대책들의 효과라고도 주장한다. 일부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재활용품의 분리배출이 생활 속에 자리잡고 수수료 부담에 대한 형평성이 확보된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종량제의 확고한 성과임이 분명하다. ●보완과 이해가 필요한 부분 쓰레기를 규격봉투에 담아 버리면서 자신이 종량제를 이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과거에 세금처럼 납부하던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다. 한마디로 쓰레기종량제는 이제 제도가 아니라 관습이 되었다. 근래에 ‘인터넷종량제’나 ‘종량제사무실’과 같은 신종용어들이 등장하고 있다. 쓰레기종량제가 착실하게 정착되었고 사회적 인식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간접적인 징후들일 것이다. 그렇지만 미흡한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시민들은 ‘자치구간에 봉투가격의 차이가 크다’ ‘비싸다’ ‘봉투가 쉽게 찢어진다’ 등의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물론 근거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해를 필요로 하는 부분도 있다. 봉투가격은 수거처리수수료·봉투제작비·판매이윤 등으로 구성되며, 서울에서 사용되는 20ℓ 봉투가격 중 85%는 수거처리수수료이다. 자치구별 봉투가격의 차이는 바로 수거수수료에서 발생하는데, 지역별로 청소여건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파트가 많고 도로여건이 좋은 K구는 쓰레기 1t의 수거에 4만 2000원 정도가 들지만, 단독주택에 경사진 골목길이 많은 S구는 K구보다 50%이상 더 소요된다. 재활용품을 수거하고 가로를 청소하는 등의 비용은 자치구가 부담한다는 사실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봉투가격이 비싸다고 하지만, 실제로 월 부담액은 가구당 3000원 이내이다. 커피 한잔, 담배 한 갑 값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자치구들은 실태를 정확히 알려서 시민들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연간 6000여 t의 쓰레기가 규격봉투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무한정 튼튼한 봉투를 제작하기 어렵다는 점도 알려야 한다. 정부 측도 시민들에게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불법투기, 골목길 청소 기피, 무단배출 등의 현상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불만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종량제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이자 익히 예상했던 바다. 관건은 근절이 아니라 그러한 행위를 효과적으로 줄이는 것, 청소를 위해 시민들을 골목길로 불러내는 것이다. 규격봉투 안에 1회용 봉투가 많은 것도 정부로서는 불만이다. 그러나 많은 가정들이 화장실, 안방, 공부방, 부엌 등 집안 곳곳에 실내 쓰레기통을 두고 있다. 진공청소기 먼지, 화장실 청소 찌꺼기, 화분 정리 후의 잔재물 등은 별도의 봉투에 담는 것이 위생적이면서 편리하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1회용 봉투가 일정 부분 섞이는 것은 당연한 현상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쓰레기종량제는 하나의 수수료제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연히 해당지역의 청소체계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음식물쓰레기 처리시설에 가보면, 종량제봉투의 제거가 가장 어렵고 일손이 많이 필요한 부분이다. 분리도 잘 안 되고 이물질도 많이 섞여 들어온다. 그런데도 규격봉투를 사용하는 것은 음식물쓰레기에도 반드시 종량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집착 때문이다. 소각하고 매립할 쓰레기에 대해서는 규격봉투가 별 지장을 주지 않지만, 내용물을 다시 꺼내야 할 때는 문제를 유발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별도 용기를 사용하고 스티커를 판매하거나 예전처럼 고지서로 수수료를 징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앞으로 또 다른 10년이 지나가면 쓰레기종량제 20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 제도가 어떻게 변모하고 평가받을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유기영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환경연구부 연구위원
  • [★들에게 물어봐]‘내이름은 김삼순’ 인기비결은

    [★들에게 물어봐]‘내이름은 김삼순’ 인기비결은

    ‘삼순이 모르면 간첩?’ 안방 극장에 불어오는 삼순이의 솔직·엽기·유쾌한 바람이 거세다. 바람의 진원지는 MBC 수목 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 첫 2회 방영에서 전국 평균 시청률 20%를 훌쩍 뛰어넘었다. 지난주말 재방송에서도 10%를 넘는 기현상을 보이며 고공비행을 거듭했다. 본방에서도 시청률이 10%에 이르지 못하는 드라마도 숱하다. 요리를 소재로 한 여타 드라마나 지난 한달 사이에 시작한 드라마 가운데 최고로 우뚝 섰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로맨틱 코미디를 만났다.”,“스트레스를 시원하게 해소할 수 있는 수·목요일 저녁이 애타게 기다려진다.”는 시청자 의견이 봇물을 이룬다. 사랑에 냉소적이고 제멋대로인 부잣집 남자와, 뭐 하나 제대로 내세울 것 없는-케이크 만드는 솜씨는 빼고- 노처녀라는 관계 설정은 어쩌면 익숙한 공식. 그럼에도 재밌다. 왜? ●삼순이가 끌고 삼식이가 밀고 코믹 연기 달인 김선아의 위력이 첫손에 꼽힌다.MBC ‘황금시대’ 이후 4년 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한 김선아는 그동안 닦아온 초절정 코미디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뚱뚱한 역을 소화하기 위해 스스로 6㎏을 불렸다. 일상 생활에서의 거침없는 말투와 푼수 넘치는 행동에서 때로는 철저한 내숭으로 무장한 귀여움, 사랑에 상처받아 눈물과 마스카라로 범벅이 된 망가진 모습, 술 먹고 부리는 주정에다 섹시+코믹 댄스까지.‘김선아 표’ 코미디의 종합선물세트를 선보이고 있다. 연기자와 캐릭터가 제대로 만났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혼자서 드라마를 끌고 갈 수는 없는 법. 지난해 ‘아일랜드’의 ‘착한 남자’ 강국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털어버리고 있는 ‘삼식이’ 현빈이 상대역으로 한 몫 거들고 있다. 어깨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펼치는, 조금은 못된 모습의 연기가 그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려왔던 팬들을 흐뭇하게 만들고 있다. ●튼실한 연출과 대본 “오랜만에 드라마에 복귀하는 터라 무척 망설여졌다. 하지만 김윤철 PD가 연출한다는 것을 알고 제의를 수락하게 됐다.”(김선아) “대본을 받아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을 쏟아내며 읽었다.”(현빈) 또 한편으로 이 드라마의 인기를 뒷받침하고 있는 부분은 탄탄한 연출력과 상큼 발랄한 대본이다. 98년 ‘베스트극장-그녀의 화분 No.1’에서 김선아와 인연을 맺었던 김 PD는 역시 ‘베스트극장-늪’을 통해 지난해 7월 몬테카를로 TV 페스티벌에서 최고 작품상을 받아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이번이 그의 첫 번째 미니시리즈 연출. 자칫 김선아의 ‘원맨쇼’로 이어질 수 있는 드라마 분위기를 다잡아, 현빈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게 한다. 지루하지 않고 빠르게 흘러가는 이야기 전개는 물론, 영화적인 화면 또한 돋보인다. 극본은 형부와 처제 사이의 아련한 사랑을 그린 ‘눈사람’ 등으로 이름을 알린 김도우 작가가 맡았다. 삼순이에게 동병상련을 느끼는 여성 시청자들의 가려운 곳을 통쾌하게 긁어주거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대사를 적절하게 버무리며 재미를 증폭시키고 있다. 연출과 대본의 하모니로 빚어진 ‘내 이름은 김삼순’은 벌써부터 시청자와 누리꾼 사이에 명장면·명대사 고르기를 유행시키며 ‘삼순이 신드롬’을 만들어낼 조짐을 보이고 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삼순이는 욕심쟁이 ‘지랄’ ‘새끼’ ‘개자식’은 기본.“많이 쳐 드세요∼.” “말탱구리야!” 등 막말도 줄을 잇는다. 재미있다고 박수만 쏟아지는 게 아니다.‘내 이름은 김삼순’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만큼, 주인공 삼순이가 내뱉는 욕설과 막말 때문에 논란도 뜨겁다.‘내 이름은‘에서 욕은 삼순이의 성격을 규정하고 사실감을 불어넣는 도구로도 볼 수 있다. 안방에까지 조폭 캐릭터가 밀려든 이후 드라마 속 욕설은 어느 정도 일반화된 측면도 있다. 그러나 따발총처럼 쏟아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듯 하다. 예전 같으면 ‘안방에서 웬 욕 잔치냐.’고 불벼락이 내려질 상황. 하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가족이 함께 보기에는 민망한 욕설 장면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또는 “공영 방송에서 내보내는 드라마에 적절하지 않다.” 등 따끔한 지적도 있다. 반면 “시원하다.” “화끈하다.”는 의견도 많다. 나아가 “불륜 등 윤리적으로 비난 받아 마땅한 내용의 드라마가 한둘이 아닌데, 욕이 나온다고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안 된다.”며 적극적으로 편을 드는 시청자도 다수다. 이와 관련, 제작진은 “일상 생활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준을 옮겼다.”면서 “주인공들의 관계가 본격 궤도에 오르면 욕설 등은 차츰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지금까지 방송분에서 삼순이의 가감없는 말투가 빠진다면 재미는 줄어들 것이다. 문제는 단순하게 잔재미를 주기 위해 욕지거리를 나열한 것인가, 아니면 정말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한 것이냐다. 냉철한 판단은 시청자들에게 달렸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쏟아진 이색제안들

    여야 의원들은 7일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각종 정치현안과 관련해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표’했다. ●스타워즈3 의상 한복 응용… 홍보를 열린우리당 이근식(서울 송파병) 의원은 “전세계적인 흥행작인 영화 ‘스타워즈 3’ 여주인공의 의상 컨셉트는 한국인 이상준씨가 한복을 응용해 만든 것”이라며 이 영화를 이용한 국가 이미지 제고 방안을 촉구했다. 또 “해외 참전용사 재방한 사업을 통해 국가 이미지 제고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이어 “독도박물관에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을 논박할 수 있는 결정적 사료들이 있다.”면서 “독도 접근이 용의하지 않는 만큼 서울에 ‘독도박물관 분관’을 건립하자.”고 말했다. ●‘특별시’ 권위 잔재… 서울광역시로 한나라당 김정훈(부산 남갑) 의원은 “과거 공작정치의 실체를 밝히고 추후 공작정치라는 말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여야 합의로 ‘정치공작 근절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국회내에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유정복(경기 김포) 의원은 서울특별시 명칭과 관련,“특별시란 명칭은 특권문화의 상징으로 권위주의적 잔재”라면서 “서울특별시 명칭을 서울광역시 또는 서울대도시로 변경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는 또한 “6·15평양행사 참가를 취소하고 대신 국회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위한 남북 국회의원 회담’ 개최를 제안하자.”고 밝혔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동 이름 바꾸기등 일제잔재 일소 앞장”

    “동 이름 바꾸기등 일제잔재 일소 앞장”

    “서울과 대한민국의 중심인 만큼 일제시대 잔재를 없애는 작업부터 앞장서는 기초의회가 되겠습니다.” 서울 종로구의회를 이끌고 있는 나재암(63·종로1∼4가동) 의장은 최근 일본의 우경화를 기초의회 차원에서도 견제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원남동’·‘…가동’ 등이 대표적 이에 따라 종로구의회는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일제시대에 지어진 동명을 바꾸는 작업에 착수한다. 나 의장은 “‘…가동’,‘원남동’,‘원서동’ 등은 모두 일제가 만들어 놓은 이름”이라며 “집행부와 사학계, 주민 의견 등을 모아 동 이름부터 바꿔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원’이라는 것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바꾸면서 유래된 것이다.‘…가동’ 역시 주요도로를 중심으로 편의상 나눈 이름이라는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종로구의회는 일본문화원이 종로구에서 나가 줄 것을 의회 차원에서 촉구할 계획이다. ●“월말쯤 일본문화원 이전 촉구” “지난 3월 독도 사태에 대한 건의문을 들고 일본 대사관을 방문했습니다. 하지만 일본대사관은 본체만체하며 면담요청을 거절했습니다. 이에 대한 항의표시로 일본문화원 이전촉구를 이번달 임시회에서 결의해 문화원측에 전달할 예정입니다.” 종로구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울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으면서도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 나 의장의 기본입장이다. “종로는 공공청사·문화재·도로 등 비과세 구역의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많은 데다 온갖 규제에 묶여 발전에서 한참 뒤처지다 보니 낙후지역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관광 중심지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귀금속상가 등 신산업중심지로 삼아야 나 의장은 청계천 복원을 계기로 종로가 새롭게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계천을 따라 펼쳐진 종로 지역의 귀금속·동대문 상가·재래시장을 새로운 산업의 중심지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 의장은 “종로구가 더 이상 문화적 중심지의 역할만 할 수는 없다.”며 “산업 중심지로 인식을 전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나 의장은 이같은 생각을 지난 3일 최종 논문심사를 통과한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학위 졸업논문 ‘서울시 종로구의 관광특구화 방안에 관한 연구’에 오롯이 담았다. 이 지역에서만 내리 세번 종로구 의원을 역임한 나 의장은 집행부에 송곳 같은 질문과 비판을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나 의장은 “의회와 집행부가 유착돼서는 지방 자치제도가 발전할 수 없다.”며 “지역발전을 위한 정책에 대해서는 협력하되 선심성 정책에는 정면비판하겠다는 것이 의정생활의 큰 원칙”이라고 말했다. 글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0) 현대판 정본 정감록의 배후를 찾아라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0) 현대판 정본 정감록의 배후를 찾아라

    일본인 호소이 하지메의 손끝에서 이른바 현대판 ‘정본(正本) 정감록’이 탄생했다(연재 19호 참조).1923년 이후 출판된 정감록은 예외 없이 호소이의 동경판 정감록에 실린 25종의 비결을 사실상 그대로 옮겨 싣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호소이는 과연 어디서 무얼 보았기에 감히 정감록의 정본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을까? ●정본 정감록의 대본은 규장각에 1980년대 중반 이민수는 정감록을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서울대 규장각 도서관에는 정감록의 원본이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좀더 정확히 말해,‘감결(鑑訣)’‘동국역대기수본궁음양결(東國歷代氣數本宮陰陽訣)’‘역대왕도본궁수(歷代王都本宮數)’‘삼한산림비기(三韓山林記)’ 등 네 편의 비기가 규장각에 있다고 했다. 나는 동경판 정감록의 대본을 찾기 위해 규장각으로 달려갔다. 그 때가 1997년 8월이었다. 필사본 ‘정감록’이 도서번호 12371번으로 분류돼 있었는데 이민수가 말한 바로 그 책으로 보였다. 그의 말대로 방금 말한 4종의 비결이 한 권으로 묶여 있었다. 그 내용을 자세히 비교해 보았다. 호소이의 동경판과 거의 일치했다. 나는 규장각의 필사본 정감록이 동경판의 대본에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슬며시 일어난다. 이 필사본은 언제 어떤 경로를 거쳐 규장각에 들어왔을까? 알다시피 규장각은 명군으로 알려진 정조가 대궐 안에 세웠다. 그것도 즉위하던 1776년에 말이다. 다른 기능도 가지고 있었지만 규장각은 일차적으로 왕립도서관의 구실을 했다. 만일 문제의 필사본이 처음부터 규장각에 비치된 문서였다면 그야말로 충격적인 일이 된다. 조선후기 왕실이 정감록을 소장했다는 뜻이 되고 그러면 정조를 비롯한 역대 임금들도 읽었을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조바심을 억누르며 필사본 정감록의 겉장을 들추었다. 첫 장 윗부분에 큼직한 도장 하나가 찍혀 있다.‘조선총독부도서지인(朝鮮總督府圖書之印)’이라고 했다. 잠시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곧 그 상황을 미루어 짐작했다. 이 필사본은 본래 식민지시대 조선총독부가 소장했단 뜻이 틀림없지 싶다. 필사본 정감록은 일단 조선후기 왕립도서관 규장각과는 직접 인연이 없는 것으로 단정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총독부 도서가 어떻게 해서 규장각 도서로 변신했을까? 필사본 첫 장 왼쪽 머리 부분에 또 다른 인장 자욱 두 개가 선명한데 거기 답이 있다.‘경성제국대학도서장(京城帝國大學圖書章)’과 ‘서울대학교도서(大學校圖書)’라는 인장 말이다. 연달아 찍혀 있는 도장의 내용으로 미루어 이 필사본의 역사는 대강 이러했다. 처음엔 조선총독부의 도서로 등록됐다. 호소이가 동경판 정감록을 출판한 것은 1923년, 그 때만 해도 이들 필사본은 조선총독부의 소장 도서였다. 그 뒤 1926년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되었고 필사본은 어느 해엔가 대학도서관으로 이관되었다. 그리곤 1945년 해방을 맞아 경성제대의 후신인 서울대학교로 주인이 바뀌었다. 현재 규장각 도서를 자세히 살펴 보면 호소이가 참고한 또 다른 비결들이 있다. 이민수가 언급한 4종의 필사본 외에도 나는 또 다른 4종의 비결들을 찾을 수 있었다.‘남사고비결(南師古訣)’‘도선비결(道宣訣)’‘무학비기(無學記)’및 ‘북창비결(北窓訣)’이 그것이다. 물론 모두 필사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용이 호소이의 동경판 정감록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 규장각에 보관되기까지 경위도 이미 앞에서 말한 필사본 정감록과 똑같다. 이런 식으로 이른바 정본 정감록 25종 가운데 8종의 정체는 확인된 셈이다. 요컨대 1923년 동경판 정감록을 출간할 당시 호소이는 조선총독부에 소장되어 있던 필사본을 대본으로 사용했다고 봐야 한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 이런 일은 총독부와 긴밀한 협의가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본다. 그럼 규장각에 남아 있는 8종의 비결은 그렇다 하더라도 나머지 17개의 비결은 또 어떤 유래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호소이의 동경판 정감록의 원고를 찾아서 호소이가 참고했을 법한 비결 책들을 찾느라 나는 한 동안 규장각을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마침내 그러던 어느 날 중요한 문건이 또 하나 발견됐다. 호소이의 동경판과 표지 제목이 똑같은 ‘비결집록’이란 필사본이었다. 전통적인 책자 형태로 장정된 이 필사본은 본래 경성제국대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것이었다. 거기엔 비결 25편이 수록되어 있었다.‘감결’‘동국역대기수본궁음양결’‘역대왕도본궁수’‘삼한산림비기’‘무학전’‘오백논사’‘오백논사비기’‘도선비결’‘정북창비결’‘남사고비결’‘남격암산수십승보길지지’‘서산대사비결’‘두사총비결’‘피장처’‘화악노정기’‘북두류노정기’‘구궁변수법’‘옥룡자기’‘경주이선생가장결’‘삼도봉시’‘무제’‘서계이선생가장결’‘토정가장결’‘이토정비결’및 ‘갑오하곡시’가 차례로 나와 있다. 나는 이 필사본을 한 장씩 넘겨 보다가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이 필사본은 제목도 편집 순서도 그리고 내용까지도 호소이가 펴낸 동경판 정감록과 조금의 오차도 없이 완전 일치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필사본에 무슨 글자를 썼다가 나중에 고친 부분들이 간행본에는 고쳐 쓴 모습 그대로 인쇄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럴 수도 있는가? 혹시 이 필사본은 동경판 정감록의 원고라도 되었단 말인가? 동경서 나온 정감록의 원고가 어떻게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에 보관됐을까? 미스터리의 연속이다. 여러 날 나는 이 문제로 골치를 썩였지만 끝내 의문을 다 풀지 못 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해 보였다. 이 필사본은 호소이의 원고일 가능성이 무척 크단 점이다. 이미 지난 호에서 알아본 대로 1923년 호소이는 동경에서 정감록을 간행했다. 그 당시 한국 유일의 대학이었던 경성제국대학이 그 책을 구입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동경판을 베껴 필사본으로 간수해야 될 어떤 이유도 나는 발견하지 못한다. 뿐인가. 필사본엔 원고를 수정한 흔적이 역력하고 수정된 사항이 인쇄본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 기막힌 일이다. 그래도 아직 단정을 내리기엔 이르다. 이 필사본엔 동경판에 부록으로 실린 10편의 비결들이 하나도 수록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정감록에 대한 호소이의 비판이 빠져 있다. 그러면 이 원고는 역시 동경판 정감록의 발췌본이란 이야긴가? 그렇게 보기는 아무래도 어렵다. 제국대학 도서관이 왜 하필 본문만 애써 옮겨 쓴 필사본을 소장한단 말인가? 아직 호소이가 부록과 서문을 작성하기 전에 편집한 본문 원고로 보면 문제는 풀린다. 나의 이런 짐작이 옳다면 위에 열거한 25편의 비결은 무엇인가 공통점이 많아야 한다. 본문이 부록과 구별되는 점은 무엇인가? 비결의 내용이 문제일 수도 있다. 비결의 수집 또는 편집 주체를 기준으로 삼았을 수도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총독부가 소유한 텍스트는 본문, 그렇지 않고 개인이 소장한 비결은 부록이란 구분도 있을 법하다. 나의 짐작은 맞았다. 뒤에 보듯 본문에 실린 25개의 비결은 모두 총독부가 관리하던 것이었다. 알고 보면 호소이의 동경판은 아유가이의 원고를 베낀 것이다 그렇다 해도 두어 가지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다. 조선총독부가 25종의 비결을 입수하게 된 것은 과연 언제였으며, 이 비결들을 편집 또는 변형시킨 장본인은 누구인가? 이런 문제가 해결돼야만 비로소 동경판 정감록의 비밀이 드러났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 끝에 나는 우리나라 주요 도시에 있는 도서관들을 순방하기로 했다. 천안, 대전, 대구, 부산, 전주, 광주를 둘러 보았다. 그러나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하나도 찾지 못했다. 다시 서울의 도서관들을 뒤졌다. 국립중앙도서관에는 뜻밖의 문서가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두웠다. 또 하나의 필사본 ‘정감록’이 발견된 것이다. 그 첫머리에는 호소이의 정감록 비판은 오간 데 없었고, 대신 아유가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이란 일본인의 해제가 첨부되어 있었다. 그 일본 사람이 해제를 쓴 것은 1913년(大正2년) 2월. 호소이가 동경에서 정감록을 간행하기 10년 전 또 다른 일본사람이 정감록을 편집했던 것이다. 일제 초기부터 한 일본인이 서울에서 정감록을 연구하고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아유가이 후사노신은 누구인가? 그는 러일전쟁(1904∼1905)이 끝나자 공로가 인정되어 훈장을 받은 일본제국의 ‘애국자’였다. 이미 1884년 동경외국어학교에서 ‘조선어학’을 공부했고 학교를 마치자 바로 한국에 건너왔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가담했으니 우리 입장에서 보면 ‘원수 같은 왜놈’이다. 그런 아유가이는 경부철도부설 등에 종사해 벼락부자가 됐고, 그 돈으로 한국의 고미술품과 서적을 닥치는 대로 수집했다. 일찌감치 1902년 오오에 타쿠(大江卓), 마에마 교우사쿠(前間恭作) 등과 더불어 학회를 조직하여 한국문화를 ‘연구’했다.‘어리석은 한국인을 지도 계몽’할 목적이었다. 아유가이는 조선총독부가 사적을 조사할 때 위원이 되어 활동하기도 했다. 여러 주제에 대해 글도 많이 썼다. 일본의 대표적인 어용학자 아유가이가 정감록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럼 언제였을까? “내가 메이지 초년(明治 1868∼1911)에 한국으로 건너왔을 당시부터 이미 여러 차례 귀에 익숙하게 예언설(讖言)이 들렸다.”고 하였다.1880년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아유가이는 정감록에 주목했던 것이다. 당시 한국에는 각종 예언이 유행하였기 때문이다.“성세(聖歲, 경술년 1910년)에 한양(조선왕조를 상징)의 운수를 보니 옮겨서 붉은 해(紅日, 일본) 아래로 간다(일본에 망한다는 뜻).”는 예언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1913년 아유가이가 편집한 정감록은 ‘감결’‘동국역대기수본궁음양결’‘역대왕도본궁수’‘삼한산림비기’‘무학전’‘오백론사’‘오백론사비기’ 등으로 되어 있다. 흥미롭게도 그가 편집한 정감록은 필사본 ‘비결집록’과 순서도 똑같고 내용도 같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두 필사본의 편집 형태마저 동일하단 점이다. 각기 맨 앞에 실린 ‘감록’을 보면 한 쪽이 10줄로 구성돼 있고 줄마다 20자씩으로 되어 있다. 두 필사본은 모든 글자의 위치가 완전히 일치한다. 이러한 몇 가지 사실로 미루어 호소이의 동경판 정감록은 총독부가 소장했던 비결을 대본으로 했지만, 보다 직접적으로는 10년 전에 편집된 아유가이의 원고를 베끼다시피 했다고 본다. 아유가이는 왜 호소이에게 출판을 양보했을지 의문이다. 당시 아유가이는 학자로서 이름이 꽤 난 편이었다.‘고명하신’ 학자께선 정감록 따위의 잡서에 관한 일로 이름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좀더 ‘싸구려’인 언론인 출신의 호소이에게 양보했다? 자세히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현대판 ‘정감록’은 아유가이로부터 시작되었다? 혹시 아유가이야말로 당시 조선총독부가 소장했던 여러 종류의 비결을 수집 정리한 사람이 아닐까? 아유가이의 필사본 27쪽 왼쪽 가장자리에 이런 메모가 있다.“(총독부) 학무과 분실에 있는 ‘정감록’에는 정말 이렇게 기록돼 있다.”고 되어 있다. 그 다음 쪽 오른편 가장자리에도 “학무과 분실에 있는 무학기에는 (이하 대여섯 자 해독불가) 무학전, 오백론사, 오백논사비기의 세 책이 포함돼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이 명백해진다. 첫째,1910년대 초반 총독부 학무과에는 아유가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노력을 통해 이미 많은 비결이 수집 정리돼 있었다. 둘째, 이것을 토대로 아유가이는 현대판 정감록을 편집했다. 정리하면 본래 총독부 도서였다가 우여곡절 끝에 현재 규장각으로 이관돼 있는 비결들은 아유가이가 참조했던 문서들이었다. 아유가이가 이용한 총독부 소장본 가운데 뒷날 ‘감결(鑑訣)’로 알려진 비결이 실은 1910년대 초반까지는 ‘정감록’으로 불렸다. 이런 사실은 현재 남아 있는 연대 미상의 한글 필사본 비결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한글판 비결의 제목은 정감록이라 돼 있는데 내용과 구성 면에서 보면 한문본 ‘감결’과 대강 같다. 따지고 보면 아유가이가 총독부 소장문서를 참조해 ‘정감록’을 편찬하던 당시에는 ‘감결’이란 이름이 아직 없었다. 감결이란 명칭은 아유가이의 창안품이었다. 그는 총독부가 소장한 다양한 비결을 하나로 묶으면서 ‘정감록’이라고 했다. 그 때 한국의 예언서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정감록이었기 때문이다. 책 이름을 이렇게 정하고 나자 여러 종류의 다른 비결들과 본래의 정감록을 구분할 필요가 생겨났다. 아유가이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감의 비결’이라는 의미로 ‘감결’이란 새로운 제목을 만들었다. 그러면 아유가이는 무슨 이유로 정감록을 편찬했는가? 항상 그가 군국주의 일본제국의 입장에 서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자. 그러면 대답은 명료해진다. 일제의 입장에서 보면 정감록은 정치 사회적 혼란의 진원지였다. 그들은 정감록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었고, 나아가 정감록의 파괴력을 소멸시킬 방도를 찾아야 했다. 일본제국으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아유가이가 그 일에 앞장섰다. 그는 이미 총독부 학무과가 수집, 정리 그리고 변조해 놓은 여러 종류의 비결을 재정리했다. 그가 필사본 가장자리에 남겨 놓은 메모를 보더라도 증명되는 사실이다. 그의 메모를 자세히 살펴 보면 20세기 아유가이가 편집한 현대판 정감록의 특징이 뚜렷이 드러난다.1910년대 초반까지 ‘정감록’은 아유가이가 ‘감결’이라 명명하게 되는 바로 그 비결이 본체에 해당했다. 거기에 세편의 부록이 추가됐다.‘동국역대기수본궁음양결’‘역대왕도본궁수’및 ‘삼한산림비기’가 덧붙여진 것이었다. 당시엔 중요한 비결이라면 본문과 몇 개의 부록으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무학비결도 그런 경우였다. 유명한 비결은 본문과 부록으로 편성되게 마련이었다는 점은 1923년 호소이가 내놓은 동경판에서도 증명된다. 호소이는 정작 서문에서 그 점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목차를 보면 본문과 부록의 차이가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예컨대 ‘무학전’이라는 비결 제목에 이어 좀더 자잘한 활자로 한 칸 낮추어 ‘오백론사’와 ‘오백론사비기’라는 제목이 적혀 있는 식이다. 이처럼 비결들 상호간에는 주종 관계가 있었다. 그러나 부록과 본문을 구별하는 태도는 김용주가 편찬한 한성판부터 점차 애매해진다. 김용주는 총 51편의 비결을 7편으로 나누어 수록하였는데 본문과 부록의 구별이 없었다.1930∼1940년대에 출간된 경성판에 이르러서는 전체를 몇 개의 편으로 나누는 관행조차 사라졌다. 이 책에 수록된 모든 비결은 정감록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경성판에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 이러한 현병주의 입장은 해방 이후 출간된 모든 정감록 번역서들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한 마디로 요약해서, 정감록에 대한 인식은 일제시기인 1910년대부터 달라졌다. 그 변화는 총독부의 비호와 사주 아래 어용학자인 아유가이가 주도했다.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우리가 ‘정감록’이라 하면 아유가이나 호소이의 정감록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일제는 정감록을 독립운동을 비롯한 ‘사회 혼란’의 기폭제로 경원시했던 것인데 알게 모르게 그 잔재가 여태 남아 있다. 문득 씁쓸한 생각이 든다. (푸른역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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