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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소리
    202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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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젊은 후배에게/이호준 인터넷부장

    시인은,‘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는 말로 이별을 위안했지만, 그게 어디 맘 먹은 대로 되더냐. 아직도 내일의 희망으로 오늘의 아픔을 치유할 능력이 없는 나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영영 못 보는 건 아니겠지만 널 먼 곳으로 보내며, 손은 자꾸 술잔을 더듬는다. 잘하고 있지만, 선배라는 이름에 기대어 또 잔소리 보따리를 푼다. 이름 석자 높이려 자신과 남을 속이지 마라. 양심을 재는 잣대는 고무줄과 같아서, 제멋대로 늘어나고 줄어든다. 하지만 뭇사람의 눈에는 늘 칼날이 번득인다. 가장 무서운 적은 자신임을 명심해라. 잘못을 사과하고 이해를 구하는 대신 변명과 합리화로 때우려 할 때, 무덤은 눈앞에 있다. 돈과 출세에 매몰되어 발버둥치지 마라. 화살과 같은 세월 속에 얼마나 허망한 짓인지. 사람은 누구나 매일 도화지 한 장씩을 받는다. 누군 그 곳에 무의미한 낙서를 하고, 누군 알차고 예쁜 그림을 그려 넣는다. 선택은 자신에게 달렸다. 하지만 후배여, 언젠간 그렇게 쌓인 도화지를 검사 받는 날이 온다는 걸 잊지 마라. 이호준 인터넷부장 sagang@seoul.co.kr
  • [CEO 칼럼] 원칙 지키면 바보인가?/안용찬 애경 사장

    [CEO 칼럼] 원칙 지키면 바보인가?/안용찬 애경 사장

    몇해 전 강남역 근처의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처음엔 강남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조용하고 쾌적한 환경에 가족들이 매우 만족해 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아파트 단지 소도로까지 침범해 버린 불법 주·정차들로 인해 조용함이나 쾌적함을 즐길 수 없게 됐다. 물론 강남역 근처의 혼잡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불법 주·정차 지역 견인표지 바로 아래까지 버젓이 주차한 차를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한 번은 불법정차 중인 차주에게 “여기는 주·정차 금지구역으로 견인표지까지 있는데, 이렇게 정차하고 있으면 어떡합니까?”라고 잔소리를 해보았다. 그러나 그는 “말만 주·정차 금지구역이지 다들 여기 세워요. 단속도 안 하는 지역이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라고 답했다. 말문이 탁 막혀 버렸다.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자신의 행동이 안전한지 아닌지를 배운다. 불법 주·정차하는 사람들 역시 경험을 통해 단속이 허술하다는 것을 알고 습관처럼 불법주차를 하는 것이다. 약간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한다. 남들 다 안 지키는 법규를 나 혼자만 지키면 바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통법규와 같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기본원칙을 쉽게 어기며 살고 있다. 나 혼자 편하기 위해, 아주 조금 빨리 가기 위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애써 무시하려 한다. 기업경영에 있어서도 원칙을 지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생활용품과 화장품을 생산하는 애경에는 많은 브랜드가 있다. 매년 새로 태어나는 브랜드가 있고, 태어난 지 불과 몇년 되지 않았는데도 쓸쓸히 사라지는 브랜드가 있다. 반면에 어떤 브랜드는 수십년을 한결같이 소비자에게 사랑 받으며 장수한다. 장수 브랜드로 꼽히는 제품들의 공통점은 기본적으로 품질이 우수하고 가격이 적당하다는 것이다.‘저렴하고 좋은 품질의 제품’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시장에서 사랑받고 장수하는 최고의 비결인 것이다. 얼마 전 한 경제연구소에서 발표한 ‘2015년 10대 선진국 진입전략’에서 한국 경제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양적으로는 11위, 기업경쟁력 국가이미지 브랜드 파워 등 질적으로는 19위에 그치고, 삶의 질은 26위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했다. 우리나라는 10년내 선진국 진입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 시스템 경쟁력을 시급히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시스템 경쟁력으로는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승산이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시스템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경제 발전기에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사회 분위기가 강했다. 그 결과 ‘빨리빨리’가 한국인의 대명사가 되었고, 교통법규 같은 사회 기본원칙이 쉽게 무시되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기본원칙이 준수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약속된 법칙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에게 불이익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질서 의식이 함양되기까지 기다리는 방법도 있지만 그 때까지 우리 사회 전체가 치러야 할 무질서의 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향후 10년간 통일비용에 대한 부담과 인구 고령화, 중국의 부상에 따른 국제적 입지 약화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문제는 많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원칙과 기본을 지키는 10년 후의 대한민국을 기대해 본다. 안용찬 애경 사장
  • [여의도 in] “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 고건 전 국무총리가 6일 소개한 장마속담 중 하나다.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렛츠고에 올린 글을 통해서다. 뜻은 ‘빗소리와 여울소리가 겹쳐지면 무슨 소리인지 구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치에 닿지 않은 말을 웅얼거릴 때 비꼬는 말로, 아닌 게 아니라 요즘 가끔 이런 소리가 들리지요.”라며 묘한 질문을 던졌다. 요즘 정치권에 ‘생뚱맞은’ 화두들이 오가는 현상을 빗대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이어 “‘장마 만난 미장이’는 미장이가 장마를 만나 일거리가 없어 먹고 살 일이 아득한 상황을 비유한 것”이라면서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우리 경제의 미래가 이래서는 안되겠지요.”라고 반문했다. 그는 ‘장마는 아내의 잔소리와 같다.’‘장마 개구리 호박잎에 뛰어 오르듯’‘장맛비는 초록비’‘장마 뒤에 외 자라듯’ 등의 속담을 여러건 소개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與 ‘당게낭인’ 논란 계파갈등으로

    열린우리당의 ‘당게 낭인(浪人)’논란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서울신문 6월20일자 4면 보도> 당원을 ‘낭인(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놀고 있는 사람)’으로 표현한 당직자와 지도부에 해명 요구가 쏟아지자 홈페이지 당원게시판에 관련 글을 처음 올린 기간당원이 21일 탈당을 선언했다. 심지어 당원간 계파간 갈등 양상까지 드러나고 있다. ●지도부 해명 요구 빗발 지난 19일 ‘핵심당직자’의 말을 인용,‘당게 낭인’12명이 게시판 여론을 좌지우지한다는 일부 언론보도가 나간 이후 당원게시판에는 하루 수십건의 관련 글과 대글이 쏟아지고 있다. 대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보도된 지도부를 성토하고, 특정 계파를 도마에 올린 글이 대부분이다. ‘해질녘 바람’은 문희상 의장에게 “당원을 무시하는 풍조에 대해 당원 대표로서 입장을 밝혀 달라.”고 요구했다.‘한강’은 “수구정당을 욕하면서 (지난 보선에서)수구정당이 했던 모습을 저지른 것에 대해 당원은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당원의 목소리를 12인 당게 낭인이라는 용어로 입을 막으려 한 것은 마당쇠가 잔소리 많고 일 많이 시키는 주인을 내쫓아 버리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가세했다. 일부 당원은 ‘당게 낭인’카페를 개설하기도 했다. 반면 ‘corealove’는 “당게 낭인이 실제로 있으며, 당원 의견이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다.”면서 “발전적·창의적 의견을 개진하지 않고, 비난전에 몰두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당게 낭인´ 글 올린 당원 “탈당” 논쟁이 확산되자 처음 관련 글을 올린 ‘달그림자’는 “당원 생활을 접고 개인 사업에만 전념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기간당원인 ‘달그림자’는 지난 9일부터 15일까지 당원게시판에 2건 이상의 글을 올린 195명의 아이디와 글 게재 수를 순위별로 정리한 리스트를 공개하고,“불과 3% 정도의 당원이 게시판을 점령, 계파 싸움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 당원들은 ‘친노’성향의 당원 모임인 국민참여연대를 집중 거론했다.‘안토’는 “국참연이 당원게시판을 청소(정화)하겠다고 성명을 발표한 이후 비(非)국참연 성향을 보인 사람들의 글이 대거 해우소(자체 정화성격의 쓰레기통 역할을 하는 게시판)로 보내졌다.”면서 “이것이 당게 낭인을 만든 실상”이라고 주장했다.‘투탕카맨’은 “당 게시판을 조직의 유불리에 따라 통제하려는 국참연이 당내 정파의 자격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염동연 의원의 심경토로도 도마 지난 8일 상임중앙위원직을 사퇴한 염동연 의원이 20일 국참연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당원동지 여러분께 드리는 글’도 불똥을 맞았다. 염 의원은 “민주세력의 정권 재창출을 위해 백의종군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모퉁이’는 “(염 의원의 글이)국참연 게시판에만 있고, 당원 게시판에는 없다. 분란의 불씨를 자꾸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바다사랑’은 “당게에 올려도 해우소로 갈 것 아니냐.”며 맞받아쳤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김성수의 ‘맛있는 영어] ‘웃기는 영어 (2)Taxi Drivers’ Favorite Jokes

    I would be glad to answer iy for you 지금 갑자기 마른 하늘에 비가 오기 시작한 거죠. 연인은 서로를 바라보며 무드를 잡고 있었죠. 남자가 먼저 말하죠 “아이(I) 웃 비(would be)! ” 여기서 ‘아이’는 왕짜증접속사죠. 여자는 그런 남자를 보며 가만히 있죠. 남자가 무드를 깬 거죠. 남자는 우산을 펴며 말하죠 “비 많이 와, 이리와 이거 써” 여자는 이미 삐졌죠. “그래두(glad to) 안써(answer)” 남자 삐친 사태를 파악하죠. 그리고는 겸연쩍게 한마디 던지죠. “비맞는 당신 너무 이뽀유(it for you)” 생뚱맞죠~ 우산도 무드 잡을땐 가끔 접어두는 게 좋을 때가 있는 거죠. A born and bred New Yorker is in London.He is sitting by the Thames,taking in the sights,when a very proper English gentleman walks by. “Excuse me,mista,” says the New Yorker,“but can you tell me if dat’s da Tower of London I’m looking at?” “Sir,” says the Englishman,“it is very improper to end your sentence with a preposition.Now,if you would care to rephrase the question,I would be glad to answer it for you.” “Uh,okay,” says the New Yorker,“can you tell me if dat’s da Tower of London I’m looking at,you asshole? (Words and Phrases) born and bred New Yorker: 뉴욕 토박이 take in ∼: ∼을 구경하다 mista: Mr. 의 사투리식 발음 dat’s da Tower of London: that’s the Tower of London의 사투리식 발음 look at ∼: ∼을 쳐다보다 preposition: 전치사 care to do ∼: ∼하기를 원하다 rephrase: 고쳐 말하다 asshole: 비어로 항문이라는 뜻이나, 여기에서는 사람을 비하하여 부르는 말로 쓰였음. (해석) 뉴욕 본토박이가 런던에 있었습니다. 템스 강 가에 앉아 경치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진짜 영국 신사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뉴욕 사람이 “선생님, 실례합니다만, 지금 쳐다보고 있는 것이 런던탑인지 말해주시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영국인이 말했습니다.“선생, 문장을 전치사로 끝내는 것은 매우 적절치 못해요. 질문을 고쳐 말한다면, 기쁜 마음으로 질문에 답할 거예요.” “어, 알겠어요.”라고 뉴욕 사람이 말했습니다.“지금 쳐다보고 있는 것이 런던탑인지 말해주시겠어요, 이 똥구멍 자식아?” (해설) 한 때 학교문법에서는 영문 글을 잘 쓰기 위한 규칙의 하나로 다음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Do not end sentences with prepositions. 이 규칙에 따르면,“What are you looking at?”이라는 질문보다는 “To what are you looking?”질문이 더 자연스러운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후자와 같은 질문을 사용하는 영어 화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 규칙은 용도가 폐기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장을 전치사로 끝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특히 영국에서 강조되었기 때문에, 이야기에서 뉴욕 사람과 영국 신사를 등장시켜 영국인의 현학적인 태도를 익살스럽게 조롱하고 있습니다. 영국 신사가 뉴욕 사람에게 전치사로 끝나지 않는 질문을 하면 질문에 대해 답해주겠다고 하자, 원래의 문장 끝에 단지 사람을 호칭하는(그것도 비어로) 표현 you asshole “이 똥구멍 자식아”를 넣어 영국 신사의 요구를 들어주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지만, 말 그대로의 요구를 들어주었으니 달리 할 말이 없겠지요. 이 유머의 핵심 문장인 “That’s the Tower of London I’m looking at?”은 원래 “It’s the Tower of London (that) I’m looking at?”이 돼야 문법에 맞습니다. 이와 같이 특정 정보를 강조하는 it is ∼ that…구문과 관련된 보다 자세한 설명은 www.moumou.co.kr를 참고하세요. ● 수포는 대포요 영포는 인포라 나는 여자라는 말보다 어머니라는 말을 좋아한다. 어머니는 위대하다. 어머니에 의해 나도 있고 이 세상은 존재한다. 세상을 존재시키기 위해 어머니는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찢기고 또 버린다. 그래도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 위대한(?) 어머니들에게 어렵게 말을 하면 순간은 감동으로 고개를 끄덕여도 집에 가서는 그 말을 찾기 위해 청소기를 돌릴지도 모른다. 때문에 아이들 영어교육을 위한 수천회의 어머니교실에서 수포, 즉 ‘수학을 포기하면 대학을 포기’해야하고, 영포, 즉 ‘영어를 포기하면 인생을 포기’한다는 다소 격하지만 쉽고 재미있는 성어를 만들어 교육에 활용하고 있다. 우리의 위대한(?) 어머니들은 또한 TV나 세상의 많은 것들의 자극에 길들여져서 강의가 딱딱하면 바로 남편 걱정이나 저녁 반찬 걱정에 몰입하므로 10분에 한번쯤은 배꼽을 빼주어야 한다. 그렇게 배꼽 빠지도록 웃으며 영포는 인포라는 협박을 슬기롭게 극복한 수십만의 어머니들이 영포 않는 자녀, 인포 안하는 자녀를 만들기 위해 잔소리 대신 매일 단 1분이라도 자녀와 함께 공부하므로 글로벌 한국을 앞당겨주신 부분에 깊이 감사드린다. ● 단어의 자리를 알면 영어가 보인다 한국말은 주어나 목적어와 같은 문법 기능이 조사에 의해 정해지지만, 영어는 문장 내 단어의 위치(어순)에 따라 문법 기능이 정해진다. 따라서 영어를 잘 하기 위해서는 영어 단어가 문장에 어떻게 위치하는지 인식하고 이에 따른 문법 기능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영어에서 단어의 자리매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해주는 다음 일화를 살펴보자. 어느 영어 교수가 칠판에 “Woman without her man is nothing”이라고 쓴 다음 학생들에게 구두점을 찍어보라고 했습니다. 남학생들이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Woman,without her man,is nothing.(남자가 없다면, 여자는 아무 것도 아니다.) 반면에, 여자들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Woman! Without her,man is nothing.(여자여! 여자가 없다면, 남자는 아무 것도 아니다.) 남자인 교수님은 모든 여학생의 답을 틀린 것으로 채점했습니다. 이 문장(복수가 아닌 단수)에 구두점을 찍으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떤 학생이 녹음테이프를 틀어주기까지 했지만, 그 교수님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위 일화에서 똑같은 단어들이 남학생의 답과 여학생의 답에 사용되었지만, 사용된 구두점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구두점을 다르게 사용한다는 것은 이들 단어들이 문장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모든 영어 문장에는 주어와 동사가 있습니다. 이들 외의 요소들은 동사의 특성에 따라 쓰일 수도 있고 안 쓰일 수도 있습니다. 목적어, 보어, 수식어가 이런 요소들입니다. 위 남학생 답과 여학생 답의 공통점은 동사로 is가 사용되었고 nothing이 이 동사의 보어로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결국,Woman without her man 가운데에서 is nothing의 주어를 찾아야만 합니다. 앞으로 좀 더 자세한 설명이 있겠지만, 주어는 일반적으로 명사구가 되는데,Woman without her man에서 명사구가 될 수 있는 것은 woman,her man,man 이렇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Woman without her man은 그 자체로 명사구가 될 수 없습니다.woman 앞에 관사 a나 the가 와야 합니다. 세 가능성 중에서,her man이 주어가 된다면 woman without를 어떻게 처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woman을 주어로 삼으면,without her man을 하나의 수식어로 처리하여 주어와 동사 사이에 위치하게 할 수 있습니다. 반면,man을 주어로 삼으면,woman without her를 가지고 하나의 수식어를 만들 수는 없지만, 위의 답처럼 woman을 독립된 감탄문으로 처리하고,without her를 man is nothing이라는 문장을 수식하는 수식어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여러분은 영어에서 단어의 자리매김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습니다. 다음 주에는 영어의 기본 문장에 대한 자리인식 학습법을 좀 더 많은 예문과 연습을 통하여 익힐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 김성수 회장은 -1976년 전남대 건축학과 졸 -1989년 전화 학습 관리법, 오디오 심화학습법 도입 -어머니 교실 1000여회 개최 -㈜무무 잉글리시 회장
  • 인터넷중독 치료10계명

    김 박사는 인터넷 중독의 조기 징후로 ▲인터넷시간 왜곡 ▲‘1분만 더’ 증후군 ▲잔영현상 증후군을 들었다.“실제로 인터넷에 빠지면 몇 시간을 해도 조금 밖에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게 되고, 인터넷을 중단해야 할 때 중단하지 못하는가 하면, 다른 일을 할 때도 인터넷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라 집중력을 방해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이어 흔히 나타나는 2차적인 징후로는 피로와 졸음, 집중력과 성적 저하, 귀가시간의 변화와 취미생활 상실, 친구관계 단절, 짜증·반항·불복종 및 충동적 반응, 언어와 맞춤법의 혼란, 외박과 지각 및 결석·결근을 들 수 있다. 이런 징후가 나타나면 서둘러 치료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일단 진행된 중독이라면 치료에 기적은 없다. 참을성있게 제 자리를 찾도록 도와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힌트는 다음과 같다.▲하는 시간 줄이기 보다 안하는 시간 늘리기에 더 많은 투자를 한다.▲잔소리 등 외적 강제보다 스스로 조절력을 기르도록 돕는다.▲당장의 쾌락보다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돕는다.▲중독을 초래한 환경을 바꾼다.▲자녀와 다양한 대화법을 개발한다.▲중독을 초래한 원인을 찾아서 제거한다.▲메신저나 멘토를 만들어 아이들의 숨통을 틔어준다.▲파국적 상황보다 학교 등 현실생활을 유지하도록 하는 가운데 해결책을 찾는다.▲치료를 위해서는 부모의 인내가 필요하다.▲원인이 된 제도나 게임 회사에 항의하고 방지책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여의도~포천 100㎞ 자전거여행

    여의도~포천 100㎞ 자전거여행

    ‘자전거는 엔진이 갈 수 없는 모든 길을 간다. 몸 앞의 길이 몸 안의 길로 흘러들어왔다가 몸 뒤의 길로 빠져나갈 때 바퀴를 굴려서 가는 사람은 몸이 곧 길임을 안다.’작가 김훈은 자전거여행을 이렇게 노래했다. 자전거는 자유를 주고 욕심없는 마음과 또한 자연을 사랑하는 여유까지 준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자전거를 통해 세대를 뛰어넘는 만남을 즐기고, 또한 굳은 얼굴로 오가는 자동차 속의 사람들과 달리 초보자를 발견하면 서로 도와주려고 한다. 운동을 원한다면, 삶이 얼마나 향기로운가를 느끼고 싶다면, 또한 욕심없는 마음이 얼마나 행복을 부르는가를 확인하고 싶다면 그대 자전거에 오르라. 그리고 페달을 열심히 밟아 보라.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지난 21일 토요일 오전 9시, 서울 중랑천 다리 밑으로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한다. 조그만 배낭과 헬멧, 장갑까지 갖춘 그들은 마치 사이클 선수 같았다. ●봄을 찾아 떠나는 이들 “어, 형 오셨어요. 오늘은 날씨가 좋아 좋은 여행이 되겠어요.”“그래 오래간만에 ‘찐’하게 라이딩 한번 하자.”며 웃는 이들은 인터넷 다음카페의 아마추어 자전거 동호회회원들. 여의도에서 출발해 경기도 포천의 허브아일랜드까지 자전거 여행을 떠난다. 왕복 100㎞가 넘는 거리다. 평지만 달리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여성 라이더도 보여 무리가 아니냐고 물으니, 아마추어자전거 동호회 서울지부 운영자인 김덕우(39·컴퓨터 프로그래머)씨는 “약간은 무리가 따를 수도 있지만 서로 도와가면서 가면 누구나 갈 수 있어요.”라며 서로 돕는 것이 바로 자전거라이딩의 예의라고 말했다.“혼자서는 누구나 힘들어요. 감히 엄두도 못낼 만큼. 하지만 함께 움직이면 본인도 모르는 힘이 나옵니다.” 어느덧 10시가 가까워지자 20여명의 회원들이 모였다. 첫 여행을 떠난다는 배정숙(36·아디다스 마케팅)씨는 “어젯밤 잠을 설쳤어요. 괜히 짐이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설레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젠 자신 있어요!”라고 한마디. “흔히 술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지만 땀 흘리고 마시는 물 한잔은 정말 스트레스 해소에 최고예요.” 심교진(37·의류업)씨는 2번째 정기모임에 참가하는 초보라면서도 자전거 재미에 푹 빠졌다. 세무사 사무소에 근무하는 류혜종(28)씨는 다이어트가 필요없다고 말했다.“여성들에게 더욱 좋아요. 허리와 뱃살을 빼는데 그만이에요. 평소에 맛있는 음식 앞에 두고 고민할 필요없이 많이 먹어도 매주말 자전거여행으로 빼주면 걱정 없어요.” ●나이는 묻지 마세요 마침 도착한 10여명의 라이더가 숨을 고르기 위한 듯 자전거에서 내렸다. 그런데 헬멧과 고글을 벗으니 어르신들이 아닌가. 더욱이 60대도 계셨다. 목적지가 강원도 고성이라니…. 이영희(65)씨는 60세때 난생처음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단다.“처음엔 용기가 필요했어요. 혹시 노인네가 주책을 떤다는 이야기를 들을까봐…. 하지만 조심스럽게 자전거사랑전국연합회에 문을 두드리면서 인생이 달라졌어요.”신선균(63)·박종숙(57)씨는 부부 교육자 출신으로 은퇴 후 나란히 자전거란 같은 취미생활을 하면서 노년을 즐기고 있다. 특히 신씨는 암수술을 받을 만큼 건강이 나빠졌으나 올 3월부터 자전거를 타면서 건강도 회복됐다.“취미가 같다 보니 대화도 많아졌고, 함께하는 시간도 늘어 요즘 너무 행복하다.”는 부부에게선 신혼의 활력이 느껴질 정도다. ●만병통치약이 따로 없네 자전거로 건강을 회복한 사람은 또 있다. 이점홍(60)씨는 자전거를 타고난 후 의사도 놀랄 정도다.“재작년 암수술을 받고 항암제를 먹으며 힘들었을 때 의사가 자전거를 권했죠. 수술 후 몸뿐 아니라 마음도 많이 아팠는데 자전거 타고 난 후에는 새 사람이 됐어요.” 더욱이 자전거 여행의 장점은 경제적인 부담이 없다는 것. 기름값은 물론 통행료 한 푼 없어 젊은이는 물론 은퇴한 이들에게도 제격이다. 막내 손영화(37)씨가 “우리 몸매 보세요. 쫘∼악 빠졌잖아요.”라고 일행을 웃긴 후 그들은 함께 자전거에 올랐다. 그리고 쑥부쟁이가 활짝 핀 중랑천을 따라 1차 목표인 축석고개로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숨은 가빠도 행복해요 상계동에서 중랑천을 따라 의정부를 거쳐 축석고개까지 1시간30분 코스. 자동차로 먼저 달려가 그들을 기다렸다. 울긋불긋한 옷에 헬멧, 고글, 마스크…. 한줄로 서서 도로를 질주하는 이들이 축석고개에서 숨을 고른다. 숨소리가 들릴 정도다. 힘들어하는 여자회원들 뒤로 남자회원들이 다가가 밀어주기도 한다.“정말 힘들게 언덕을 오르면 신나는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과 같지 않나요.”라며 막판 힘을 모으는 초보 배정숙씨는 가쁜 숨을 몰아쉰다. 낙오자 한명없이 축석고개에 올랐다. 김국현(56·자전거숍 운영)씨는 “혼자 탈 때보다 함께 도로를 질주하는 맛은 정말 짜릿합니다. 또한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끌어줄 때 서로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어 더욱 애착이 갑니다.”라고 말했다. 매일 장안동에서 강남까지 출퇴근한다는 조언식(31·전기설계 기사)씨는 땀흘리는 기쁨을 이야기했다.“흔히 자전거가 큰 운동이 되냐고들 하지만, 셔츠가 흠뻑 땀에 젖는 기쁨은 타본 사람만 알지요.” ●밤낮을 가리지 않아요. “자전거는 낮에만 타는 것이 아닙니다. 밤에 서울의 야경을 보며 즐기는 라이딩은 정말로 달콤합니다. 사람들이 없어서 더욱 좋습니다.”라는 최창환(32·자전거미캐닉)씨는 야간에 즐기는 자전거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고 한다. 낮에 시간이 없는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주로 밤에 모여 자전거를 탄다고 한다. 여의도나 잠실에 모여 시민공원도로를 이용해 남산순환도로를 타고 정상인 약수터까지 오른다. 김미정(29·플로리스트)씨는 “꽃구경 멀리 갈 것 있나요.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는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는 정말 황홀해요. 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에요.”라며 라일락과 아카시아가 한창인 남산순환도로를 권했다. 특히 야간에는 사고의 위험이 높으므로 혼자보다는 단체로 움직이는 편이 낫다. 후미등과 전조등은 꼭 필요하다. 또 호루라기를 소지해 사고를 예방한다. ●자전거, 어디서 배울까 전국 자전거사랑 연합회(www.bike love.or.kr,02-2203-6283)는 전국적인 조직으로 각 동네마다 조직이 있어 어르신들이 참가하기 좋은 모임이다. 다음 카페에 아마추어 자전거 연합회(cafe.daum.net/donga li)는 20∼40대가 주축인 동우회로 매주 오프라인 모임을 하는 등 지역별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 장비 이렇게 준비하세요 자전거는 10만원대에서 티타늄을 소재로 한 1000만 원 이상의 ‘명품’까지 천차만별이다. 온·오프라인 자전거숍인 UTL유토피아라인(www.utlbike.com,02-992-2826)의 이영규점장은 “자전거는 자신의 키나 몸무게 어깨넓이 등과 타는 용도를 고려해서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전거 전문숍에서 충분히 상담을 받고 선택해야 제대로 된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보통 전문적으로 자전거 여행을 즐기려는 사람들은 60만원대 정도의 자전거를 선택하면 된다. 또한 자전거로 여행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안전장비다. 특히 도로 산악 야간 주행 때 안전장비는 필수적이다.UTL의 이점장은 “자전거 헬멧의 중요성은 두말하면 잔소리”라며 “자동차를 타면 안전띠를 매는 것과 같이 자전거를 타면 헬멧은 필수. 또한 넘어질 때를 대비한 장갑도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헬멧은 대개 10만원선. 장갑은 3만원 선이다. 또 자전거용 쫄바지(5만원 선)는 엉덩이에 쿠션이 덧대 있어 장시간 라이딩을 할때 도움이 된다. 도로 주행이나 산악 주행할 때 쓰는 마스크는 2만원 선. 미끄럼 방지와 힘이 고루 실리는 기능이 있는 자전거용 신발은 6만원 선이다. 이밖에도 펑크날 때 응급조치를 할 수 있는 키트가 5000원. 디지털 속도계(3만원)도 갖추면 좋다. ■ 자전거 초보자 5계명 1.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익숙해지는 것이 좋다. 자전거를 탈 때와 걸을 때 사용되는 근육은 다르다. 발 근육이 페달을 밟는 것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오래타기 힘들다. 처음에는 평지에서 편안하게 타다가 익숙해지면 매주마다 기어비를 조금씩 올려 저항을 높이며 탄다. 또는 언덕을 정해놓고 올라가는 것도 좋다. 처음부터 무리하면 무릎이 상하기 쉽다. 2. 천천히 페달을 밟는다.1분당 바퀴회전수를 50회 정도로 시작하는 게 좋다. 점점 익숙해지면 속도를 빠르게 한다. 더욱이 빠른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므로 음악을 들으면서 가볍게 박자를 맞추는 것이 페달을 일정한 속도로 돌릴 수 있다. 3. 운동의 강도를 서서히 증가시킨다.20분 정도 편안한 속도로 페달을 밟는 것으로 운동 목표를 정하고 속도의 강약을 조절하면서 운동 시간을 늘려가는 것이 좋다. 4. 타는 거리와 속도를 적어 놓는다. 자전거로 여행한 거리와 시간을 기록한다. 그래야 스스로 능력을 조절할 수 있다. 5. 매일, 꾸준히 운동한다. 조금이라도 매일 꾸준히 자전거를 타는 것이 중요하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초대 기상 통보관 지낸 김동완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초대 기상 통보관 지낸 김동완씨

    날씨처럼 인생과 밀접한 것이 또 있을까. 흥미로운 속담도 많다.‘장마는 나이 많은 아내의 잔소리다.’‘봄비가 많이 오면 아낙네의 씀씀이가 헤프다.’‘더위 먹은 소는 달만 봐도 헐떡거린다.’ 올 여름에는 100년 만의 더위가 찾아온다는 얘기가 있어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온다면 어떤 더위일까.‘무더위’는 ‘물더위’에서 유래됐다. 습도와 온도가 매우 높아 후덥지근하다. 끓는 물과 같다는 ‘가마솥더위’나 ‘찜통더위’도 비슷하다. 또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따가운 ‘불볕더위’도 있다. 어쨌든 여름손님(더위)이 있어야 가을손님(열매)도 온다고 했다. ●날씨는 하루에 서른여섯번씩 변해 추억의 방송멘트가 있다.“여우가 시집가는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영국의 한 과학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날씨는 하루에도 서른여섯번씩 변한다고 합니다. 봄날씨는 최소한 하루에 세 번 변합니다. 아침은 썰렁하고 점심은 덥고 저녁에는 바람이 붑니다. 돌아오는 길에 여벌의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기상대에서 김동완 통보관이었습니다.” 맞다. 이른바 우리나라 초대 기상통보관을 지낸 김동완(71)씨. 특유의 비유법과 정감 있는 목소리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나이 30대 이상은 적어도 하루 한번씩 김씨의 목소리를 들었을 정도다. 지금도 ‘프리랜서 기상해설가’로 활동 중이어서 45년 동안 ‘날씨해설 인생’이라는 흔치 않은 길을 걷고 있다. 에피소드 #1. 어린이날이었다. 아침방송에서 김씨는 “오늘은 어린이 얼굴만큼이나 해맑은 날씨가 되겠습니다.”라고 마무리 멘트를 했다. 이어 방송국을 나오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김씨는 비를 피하기 위해 다시 방송국 안으로 들어갔다. 비는 계속됐다. 이때였다. 방송 자막을 통해 ‘오늘 효창공원에서 열리기로 한 어린이날 행사는 우천관계로 무산됐습니다.’라고 알렸다. 이를 보는 김씨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에피소드 #2. 봄날 일요일이었다. 부부동반으로 고향 친구들과 등산을 갔다. 그런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산밑 음식점 등으로 비를 피했다. 하지만 김씨는 혼자 떨어져 초라하게 비를 맞아야 했다. 사람들과 맞닥뜨릴 경우 얼굴이 알려진 그에게 무슨 얘기를 할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날 아침 김씨는 “지역에 따라 한차례 소나기가 내리겠습니다.”라고 예보했다. ●올 100년만의 무더위, 그때 가봐야 지난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위치한 기상청에서 김씨를 만났다. 기상예보 역사의 산증인이나 다름없기에 인터뷰 장소를 기상청으로 정했다. 뒤뜰 의자에 앉자마자 다가올 여름 더위의 안부(?)부터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100년 만의 더위라는 말은 미 항공우주국(NASA)의 한 박사가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 큰 더위가 올지 안 올지 아직은 미지수”라면서 “다만 요즘 계절의 변화를 볼 때 예년보다 10여일 이른 이달 하순부터 여름이 시작될 것으로 본다.”고 대답했다. 또한 “우리나라는 본래부터 더운 나라”라고 전제한 뒤 “예부터 겨울을 ‘동장군’(冬將軍)이라 하고 여름을 ‘염제’(炎帝)라고 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면서 “그래서 겨울철에는 방한(防寒)이고 여름철에는 피서(避暑)라는 말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아울러 우리나라는 대륙성 기후지만 여름철에는 열대성 기후여서 매년 열대야 현상이 20∼30일, 낮기온이 섭씨 30도 이상인 열대일 현상은 57일가량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우리 조상들은 더위를 극복하려는 지혜가 많았습니다. 복(伏)날은 농업 위주의 전통적 생활환경에서 유래됐지요. 한여름철의 낮길이가 가장 길다 보니 노동시간이 자연히 많아지고 대신 휴식은 짧았습니다. 때문에 땀흘려 일했던 머슴들은 온·습도의 상승으로 왕성해진 병원체에 감염돼 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나라에서 복날을 정해 영양을 보충하고 하루를 푹 쉬게 했던 것이지요.” 하지(6월21일)에서 셋째 경일(庚日)을 초복, 넷째 경일을 중복, 입추 후 첫 경일을 말복날로 정해 하루를 쉬며 개장국 등으로 기력을 보충했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또한 머슴들은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먹는 일이 그림의 떡이었기에 집집마다 흔하게 키우는 개고기로 대신했다는 자료가 전해온다고 부연했다. 결국 복날은 노동자의 보건일로 경륜이 높은 정치가가 노동자를 위해 베푼 선정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했다. “속담에 ‘여름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할 만큼 옛조상들은 나돌아다니지 않았습니다. 마을정자에 앉아 부채질 하나로 무더위를 이겨냈지요. 반면 지금의 우리들은 냉장고와 에어컨 등 냉방기구들을 잔뜩 갖추어 놓고도 여름철에 휴가를 떠납니다. 하지만 교통지옥 등으로 진이 다 빠져버리지요.” 지금의 여름철 휴가풍습은 북유럽 바캉스에서 유래됐으며 우리나라 기후로 볼 때 5월이나 10월 중에 휴가를 떠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유했다. 또한 사람은 섭씨 20도부터 더위를,30도부터는 고통을 느끼며 더위는 빙과류로, 고통은 차가운 음료수로 해결하고자 하는 습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부부싸움 많은 여름엔 말조심을 무더운 여름을 지혜롭게 지내기 위해서는 날씨에 순응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불쾌지수가 높다고 하지 말고 상쾌지수가 약간 낮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 또한 여름철에는 부부싸움이 많기 때문에 각자 말조심하는 것도 가정에 도움을 준다고 귀띔한다. 여성의 의상과 온도관계에 대해 흥미롭게 풀이한다. 예를 들어 겨울철 실외온도가 섭씨 0도일 경우 무릎위 20㎝가량 올라간 미니스커트를 입었다면 체감온도는 영하 4도라는 것. 또 1㎝씩 올라갈 때마다 체감온도는 0.5도씩 더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반면 청바지를 입었을 경우 영상 6도의 체감온도를 느낀다고 한다. 따라서 겨울철에 미니스커트를 자주 입는 여성은 생리적 부담으로 임신했을 때 순산하기가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고 전했다. 김씨는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전두환 전 대통령과 같은 대구공고를 졸업했다. 전씨와의 인연에 대해 “(전씨가)백담사에 머물 때 처음 만나 ‘(24회)선배님 26회 김동완입니다.’고 했더니 어깨를 툭치며 ‘(청와대)재임기간에 한번 오지 그랬느냐.’고 하며 무척 반가워했다. 하지만 곧 ‘그랬으면 지금쯤 청문회에 불려다니겠지.’라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서울 연희동의 전씨 자택에서 고교 선후배간으로 몇차례 만났다고 귀띔했다. 김씨는 원래 공군 조종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대구공고 3학년때 공군사관학교 입학시험에 응시, 합격했다. 그러나 최종 선발과정에서 탈락했다. 이어 조종간부후보생 시험에도 합격했으나 기초군사훈련 중 또 탈락했다. 어쩔 수 없이 공군하사관학교를 나와 조교로 공군복무를 마쳤다. 조종사의 꿈이 무너지자 그는 수학선생이 되려고 마음을 먹었다. 서울대 사대 원서를 접수하러 가던 중 우연히 국립중앙관상대 모집 공고를 보게 했다. 결국 발길을 돌려 관상대 시험에 응시,15대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이때가 58년 12월. “사무관 시절 날씨 해설을 할 때 ‘기상대의 김동완 사무관입니다.’라는 어감이 안 좋아 편의상 ‘통보관’을 사용하기 시작했지요.”이후 중앙기상대 예보분석관-통보관-예보과장 등을 거치면서 TV와 라디오 등에서 방송해설을 꾸준히 맡아 기상캐스터의 대명사가 됐다.1남4녀를 둔 그는 요즘 날씨와 관련된 원고를 써주기도 하고 각종 단체와 기업체 등에서 초청강의를 하느라 분주하다. 주말에는 주례를 보느라 더 바쁘다. 지금까지 어림잡아 1000여쌍의 주례를 봤다며 웃는다. 그는 평생동안 날씨에 대해 한번도 짜증을 낸 적이 없다. 이는 곧 자연에 대한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란다. ■ 그가 걸어온 길 ▲1935년 김천 출생 ▲55년 대구공고 기계과 졸업 ▲59년 중앙관상대 공채8기, 국립기상기술원 양성소 1기 수료 ▲59년∼82년 예보분석관, 통보관, 예보과장 ▲63년 국제대학 법학과 졸업 ▲82년∼92년 문화방송 보도국 보도위원 ▲92년∼현재 프리랜서 활동 ▲97년∼99년 한국일기예보회장 ▲2000년∼2001년 자민련 김천지구당 위원장 ▲2000년∼2002년 기상정보 케이블TV웨더뉴스채널의 김동완 기상뉴스 진행 ■ 저서 날씨 때문에 속상하시죠(좋은벗,1998년) km@seoul.co.kr
  • [떴다, 포스터] 친절한 금자씨 섬뜩한 영애씨

    [떴다, 포스터] 친절한 금자씨 섬뜩한 영애씨

    이영애는 어지간히도 비싼(?) 배우다. 충무로 캐스팅 목록에 0순위로 올라있으니 몸값이 비싼 건 두말하면 잔소리. 부지런히 스크린에 얼굴을 내미는 걸로 팬들의 성원에 부응하는 게 톱스타의 의무라면, 그녀는 ‘직무유기’를 해온 셈이다.2001년 ‘봄날은 간다’ 이후 내리 4년을 스크린에서 떠나 있었으니 참을성 없는 팬들에게서 “참 비싸게도 구네∼”란 볼멘소리를 듣게도 생겼다. 그런 그녀가 만회작전에 들어갔다. 오는 7월 개봉할 ‘친절한 금자씨’(제작 모호필름)를 통해서다. 박찬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이래저래 얘깃거리가 많은 영화에서 그녀의 이름은 ‘이금자’. 그런데 박 감독의 영화 주인공이 친절할 수 있을까. 싱겁고 착한 영화는 만들어본 적이 없는 감독이 그녀라고 가만 놔뒀을 리 만무한 일.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감옥에 들어가 무려 13년을 보낸 뒤 ‘민간인’이 되자마자 복수의 화신으로 변한다. 자신을 죄인으로 내몬 남자(최민식)에게 얼마나 치밀하고 끔찍하게 앙갚음하는지,‘올드보이’때처럼 감독은 영화의 세부정보를 일체 비밀에 부쳤다. 금자는 복수를 위해 제 발로 감옥에 들어갔다는 게 노출가능한 유일한 정보다. 영화는 호주 촬영분까지 5개월여의 촬영을 끝내고 후반작업 중이다. ‘소녀의 기도’풍의 이발소 그림처럼 역설적으로 착한 티저포스터가 극장가에 선보였다. 여주인공의 말갛게 무표정한 얼굴 아래 ‘정말이지…착하게 살고 싶었답니다’라는 카피 한줄이 선언처럼 떠있다.“신선하다”“섬뜩하다” 등의 반응이 벌써부터 시끌시끌하다. 올여름 극장가에 그녀가 광고하는 그 에어컨보다 더 시원한, 소름돋는 바람이 불어닥칠지 기다려보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동양의 맛으로 오스트리아인 사로잡은 전미자 아카키코 사장

    동양의 맛으로 오스트리아인 사로잡은 전미자 아카키코 사장

    |빈 함혜리특파원|오스트리아 빈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다 보면 특이한 광고 간판이 눈에 띈다. 현대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동양 여자의 얼굴을 그려 넣은 ‘아카키코(AKAKIKO)’의 광고판이다.‘아카키코’는 빈 시내에만 10개의 체인점을 두고 있는 아시아 요리 전문 패밀리 레스토랑이다. 아카키코의 하루 총 고객수는 3000명이 넘는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오스트리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주인공 전미자(48) 사장을 시내 중심가의 ‘S’백화점 식당가 아카키코에서 만났다. ●오스트리아 여성 경제인 50인에 아카키코는 지난 1994년 빈 시내 백화점 식당가 한 구석에 1호점을 낸 지 11년 만에 연 매출 200억원에 이르는 사업체로 성장, 현지인들을 놀라게 했다. 전 사장은 몇해째 오스트리아의 경제 전문잡지 ‘비르트샐트블라트’와 ‘비에네르린’이 선정하는 여성경제인 50인에 꼽히고 있다. 전 사장은 “경기침체로 모두들 고전하는 요즘에도 매상이 올라간다.”며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도대체 비결이 무엇일까. “아시아 요리는 무척 다양하고 맛이 독특하지만 오스트리아인들에게는 그다지 친근하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서구인의 식성에 맞는 다양한 메뉴를 개발하고, 편안하게 아시아 요리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식당의 분위기를 꾸몄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의 맛이다. 전 사장은 “빈 시내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요리를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아카키코를 즐겨 찾는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이곳에서 맛볼 수 있는 요리의 가짓수는 대략 120종이나 된다. 한국, 중국, 일본, 태국의 전통 요리 이외에 전 사장이 요리사들과 머리를 맞대고 개발한 퓨전 요리들이다. “요리는 할 줄 모르지만 맛을 보고, 잔소리는 좀 할 줄 안다.”는 전 사장은 전 세계의 요리책을 닥치는 대로 보고 유명하다는 식당을 찾아 다니면서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했다.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점 외에도 성공의 비결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80명의 요리사와 150명의 종업원들에게 언제나 최상의 품질을 유지하도록 교육하고, 눈앞의 작은 이익보다는 고객의 만족을 최고로 중시하라고 강조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살펴야 직성이 풀리는 완벽주의자인 전 사장은 말로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주방과 테이블을 오가면서 식재료의 품질과 위생 상태, 맛, 서비스를 점검한다. ●테이블 회전 위해 커피는 안 팔아 일본 식당을 연상시키는 이름 ‘아카키코’는 서구인들이 쉽게 기억할 수 있고, 이국적인 분위기가 나도록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으로 국제 상표등록까지 돼 있다. 또 음식점의 위치는 항상 최고로 좋은 자리, 접근이 쉬운 장소를 택한다. 테이블 회전이 빨라지도록 하기 위해 커피는 팔지 않는다. 그는 “음식점은 입에서, 입으로 구전이 잘돼야 성공할 수 있다.”면서 “음식 맛이 좋고, 종업원은 친절하고, 가격도 적당하고, 분위기까지 좋은 집은 금방 입소문이 나고 고객들이 알아서 제 발로 찾아온다.”고 말했다. 아카키코의 고객은 99%가 현지인이다. 전 사장은 “고객 중에는 담백한 요리를 먹었더니 건강이 좋아졌다면서 일주일에 3∼4차례씩 찾는 단골도 많다.”며 “아이들은 ‘아카키코’에서 식사하는 것을 맥도널드에서 햄버거 먹는 것보다 좋아할 정도가 됐다.”고 자랑했다. 아카키코 4개점은 오스트리아 레스토랑 가이드가 선정한 500개 식당에 올라있다. 아카키코의 동유럽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전 사장은 보다 간편하게 담백한 아시아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아시안푸드 전문 패스트푸드점 ‘고 웍(Go Wok)’을 시작했다. 웍(Wok)은 중국 요리나 태국 요리를 할 때 쓰이는 속이 깊고 커다란 프라이팬이다. 즉석에서 웍을 이용해 요리를 해 주는 ‘고 웍’은 젊은 층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빈 시내에 있는 1호점에 이어 지난해 12월초 린츠 역사에 ‘고 웍’ 2호점을 선보인 그는 앞으로 새롭게 보수하는 기차 역사마다 개설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27년째 외국생활 가난한 유학생 도울 터 시원하게 웃는 모습이 무척 쾌활해 보이고,27년째 외국생활을 한 탓에 서구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강인하고 억척스러우면서도 정이 무척 많은 전형적인 ‘한국 아줌마’다. 전북 이리 출생인 전 사장은 지난 1979년 오스트리아에 발을 디뎠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3년 정도 간병인으로 양로원에서 일한 뒤 빈 시내의 재래시장(나시마르크트)에서 채소와 과일 장사를 하다 한국식당을 개업했지만 곧 실패했다. 아직 어린 두 아이를 둔 상태에서 남편과 이혼하는 아픔도 겪었다. 전 사장은 오스트리아 국적의 유대인 프리드랜더(47)를 만나면서 안정을 찾았고, 든든한 후원자인 시부모가 쌈짓돈을 풀어 준 덕분에 아카키코를 시작할 수 있었다. 경제학 박사인 남편은 노무라연구소를 그만두고 아카키코의 재정을 맡아 도움을 주고 있다. “마음 고생, 몸 고생을 일일이 어떻게 다 얘기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그때의 고생은 지금 생각하면 고생이 아니에요. 힘들었지만 그때의 고생을 발판으로 오늘의 제가 서 있는 거죠.” 전 사장은 “음식이든, 마음이든, 돈이든 아끼지 않고 퍼줬더니 그보다 더 큰 것이 돌아왔다.”면서 “어려운 환경에서 생활하는 교민들과 가난한 유학생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lotus@seoul.co.kr
  • [CEO 칼럼] ‘민주노인당’ 창당 선언문/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컨설턴트

    [CEO 칼럼] ‘민주노인당’ 창당 선언문/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컨설턴트

    5년 후 일어날지도 모를 한 정당의 창당 선언문이다. “친애하는 전국의 600만 65세 이상 노인들과 국민 여러분! 2010년 10월 2일 오늘 노인의 날을 기해 전국 팔도 노인의 대표자 3000명이 모였습니다. 고령사회를 대비해 노인의 권익을 대변·수호토록 하는 한국민주노인당(韓國民主老人黨) 창당을 위한 자리입니다. 고령화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유엔 발표에 의하면 1950년대에는 경제활동인구(15∼64세) 12명이 퇴직노인 1명을 부양했지만 21세기 중반에는 4명에 1명꼴로 더욱 낮아질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습니다. 이미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표방한 북구 선진국들도 연금의 파탄 등 고령사회에 대한 대비에 적절히 대응치 못해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한국의 고령화는 매우 빠르고 심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와 사회는 너무나 한가해 우리가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한국이 산업화·민주화에는 뒤졌지만 정보화를 서둘러 이제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목표로 고도 선진화를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인문제를 현명하게 해결치 않고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우선 정당 강령정신을 담은 네 가지 메시지를 만천하에 알리고자 합니다. 첫째, 노인에 대한 편견부터 버려야 합니다. 이제 60∼75세 인간은 직장에서 더 이상 지적·신체적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퇴출당해 마땅하다는 생각은 일종의 인종차별입니다. 노인들의 지혜를 괜한 늙은이 잔소리로 인식하면 시행착오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없습니다. 둘째,18세 미만 미성년자를 빼고는 국민의 3분의 1에 육박하면서도 노인의 목소리가 국정에 반영되기 힘들었습니다. 이에 다수 국회의원을 내면서 국정에 참가할 것입니다. 대통령 후보도 내 집권을 목표로 하고 최소한 실력 있는 균형자 역할을 할 것입니다. 셋째, 저출산에 따른 노동력 인구감소가 심각합니다. 노인의 노동력이 적극 활용돼야 합니다.2005년부터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는 60세 이상 정년 퇴직자를 재고용해 빛나는 생산성 증진의 결실을 보고 있습니다. 노인의 소득 증진은 소비를 진작시켜 국가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넷째, 이러한 문제를 범국가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노인부’를 신설해야 합니다. 한국민주노인당 창당위원장.” 창당 선언문의 취지처럼 건강을 유지하는 노인과 병노인(病老人)·장애 노인을 구분하는 국가사회정책의 도입이 시급하다. 건강노인은 사회참여를 적극화하고 반면에 병노인과 장애노인은 더욱 따뜻한 복지혜택을 누려야 한다. 병노인과 장애노인을 위해서는 아파트 동마다 탁노소(託老所)가 있도록 해야 하고, 병약한 부모를 모시는 가정에는 아파트 분양과 세금, 그리고 금융 등의 특혜를 주어 경로사상을 진작해야 한다. ‘깨진 가정’을 복원하는 유례없는 ‘선(善)진사회’ 건설도 앞당겨야 한다. 한 가정에 3대가 함께 함으로써 ‘카트 베이비(맞벌이 부부가 밤에 쇼핑하느라 카트에서 키운 베이비)’같이 어려서부터 쇼핑 중독부터 배우는 천박한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노년 창업은 정부에서 적극 나서 도와야 한다. 맥도널드의 레이 크록도 나이 50을 넘어 창업,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가가 됐다. 당시 평균수명으로 보면 지금 나이로는 70세를 훨씬 웃도는 것이다. 노인의 재혼·삼혼을 적극 권장하는 인식과 사회시스템을 갖춰야 한다.‘효자 셋보다 악처(악한 반려자)가 낫다.’는 속담이 있다. 또한 ‘품위 있는 죽음’을 절실하게 검토해야 할 때다. 죽지도 못하고 치료에 시달리는(?) 수많은 병노인들의 죽을 권리를 심각히 사회시스템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컨설턴트
  • [29일 TV 하이라이트]

    ●어여쁜 당신(KBS1 오후 8시25분) 희주는 인영의 임신 사실에 충격을 받고, 기준에게 축하인사를 하지만 기준은 희주를 외면한다. 선미는 점점 남자로 느껴지는 인철 때문에 복잡한 심정이다. 하지만 선미는 절대로 인철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고, 인철은 선미가 받아줄 때까지 집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오픈 스튜디오(SBS 오후 4시10분) 38세에 사법고시에 도전해 10년의 실패 끝에 2002년 44회 사법고시에서 최고령자로 합격한 박춘희 변호사.22번의 아나운서 시험에 낙방한 후 1995년 최초의 홈쇼핑 공채 1기로 쇼 호스트가 된 유난희씨. 박춘희 변호사와 쇼 호스트 유난희씨의 성공 이야기를 듣는다. ●박주현의 시사 업클로스(YTN 오후 3시5분) 내년 4월 개교를 목표로 공사가 한창인 평양 과학기술대학. 주변국간의 외교환경이 급물살을 타고 있고, 남북간의 교류와 협력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지금, 관광특구와 경제특구에 이어서 교육특구가 활성화되면 남북간의 민·관교류는 더욱 직접적이고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것 같다. ●생방송 60분-부모(EBS 오전 10시)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의 자식 사랑법은 특별하다. 절대로 간섭하지 않고, 잔소리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면 부모와 자식 간의 거리가 멀어진다는 생각에서다. 부모로서의 박재동 화백과, 자식으로서의 박재동 화백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김약국의 딸들(MBC 오전 9시) 잔뜩 술에 취해 들어온 홍섭은 김약국네 집안에 복수를 하기 위해 만신창이가 돼 가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괴롭다며, 정국주에게 복수에 눈이 멀어 자식을 이용하는 아버지라고 소리친다. 한편, 김약국은 기두를 불러놓고 대구를 사재기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라고 한다. ●사랑과 전쟁(KBS2 오후 11시5분) 모자랄 것 없는 집에서 자라 아직도 철부지인 수철. 어머니는 이런 못난 아들을 보필해 줄 며느리로 성미를 선택한다. 그러나 가난한 집에서 자란 촌스러운 성미가 마음에 차지 않는 수철은 신혼 초부터 밖으로 나돌며 모델 출신 지나와 바람을 피운다. 어느날 성미는 수철의 이중생활을 알게되는데…
  • [2005 프로배구] 10년만의 정상 탈환 ‘무명의 힘’

    “무명이던 그들이 있었기에 우승이 가능했습니다.” 프로배구 현대캐피탈의 김호철 감독은 23일 LG화재와의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3-2로 마치고 우승을 확정한 뒤 “묵묵히 제 몫을 다한 레프트 송인석과 장영기, 그리고 리베로 오정록에게 가장 큰 공이 있다.”고 주저없이 말했다. 현대가 겨울리그 우승컵을 포옹한 것은 자동차 시절이던 지난 1995년 슈퍼리그 이후 처음.‘호화 군단’ 삼성화재의 9연패를 저지한 원동력은 바로 무명들의 힘이었다. 6개팀 레프트를 통틀어 가장 지명도가 떨어지던 송인석과 장영기는 삼성과의 개막전에서 번갈아 날며 36점을 합작, 돌풍을 예고한 뒤 시즌 내내 ‘소금’ 역할을 톡톡히 해 냈다. 한양대 세터 출신의 3년차 장영기는 후배들에 밀려 레프트로 자리를 바꾼 이후 현대 입단 뒤에도 대학 선배 백승헌에 밀려 주위를 맴돌았지만 이제는 팀의 버팀목이 됐다.5년차 송인석은 타고난 소심함 때문에 김 감독의 ‘잔소리’를 가장 많이 들었던 선수. 지난해 이탈리아 전지훈련 당시 “주눅들지 말고 제 실력을 발휘하라.”는 조언을 들은 뒤 숨은 실력을 발휘했다. 이들이 창이었다면 최단신(170㎝) 리베로 오정록(25)은 방패였다. 경희대 졸업 뒤 갈 곳이 없어 계약금조차 없이 팀 최저 연봉으로 입단했지만 2년 만인 올시즌 디그(상대 스파이크를 걷어올리는 수비) 부문 2위의 수비력을 발휘하며 우승을 떠받쳤고, 지난주에는 첫 국가대표에도 선발됐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어바웃 러브’-미지의 러브레터 남편이 보낸게 아냐?

    영화 ‘어바웃 러브’(The truth about love·21일 개봉)는 ‘노팅힐’ ‘브리짓존스의 일기’ ‘러브 액추얼리’로 이어지는 맛깔스러운 영국산 로맨틱코미디의 전통을 충실하게 따르는 작품이다. 사랑에 관한 리얼리티와 팬터지 사이의 황금비율을 교묘히 유지하는 스토리, 남녀의 심리를 콕 집어내는 촌철살인의 대사, 그리고 해피엔딩에 이르는 아슬아슬한 라스트신까지. 물론 불가항력의 매력으로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여주인공의 존재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모든 사건의 발단은 밸런타인 데이에서 비롯된다. 술에 취해 밤거리를 걷던 아치(더그레이 스콧)는 술김에 짝사랑하는 여인 앨리스(제니퍼 러브 휴잇)에게 러브레터를 보낸다. 문제는 그녀가 절친한 친구 샘(지미 미스트리)의 아내라는 것. 게다가 샘과 앨리스는 누가 봐도 샘낼 만한 닭살 커플이니 아치가 우체통에 카드를 떨어뜨리자마자 후회하는 건 당연한 일. 그나마 이름을 적지 않은 걸 천만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이다. 하지만 폭탄은 엉뚱한 곳에서 터진다. 익명의 러브레터를 남편이 보낸 것으로 지레 짐작한 앨리스는 둘 사이의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하려는 의도로 남편에게 ‘미지의 여인’이란 이름으로 노골적인 유혹의 편지를 보낸다. 가벼운 장난으로 시작한 앨리스의 행동은 그러나 뜻하지 않게 남편의 외도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앨리스는 배신당한 사랑에 절망한다. 이제 남은 일은 오랫동안 자신의 옆에 존재했던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는 것. 러브레터의 발신자가 아치임을 뒤늦게 깨달은 앨리스는 멀리 떠나는 아치를 붙잡기 위해 기차역으로 달려간다. 영화의 일등공신은 단연 제니퍼 러브 휴잇이다. 지난해 ‘이프 온리’로 관객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긴 그녀는 가냘프면서도 육감적인 몸매에서 드러나는 섹시함과 귀여움의 이중적인 매력으로 여성 관객조차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로맨틱코미디의 새 히로인을 발견하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제값을 하는 영화다.15세 관람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정읍 북면 ‘50년 홀로 고생한 어머니’ 14명 위로

    정읍 북면 ‘50년 홀로 고생한 어머니’ 14명 위로

    “어머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어떻게 혀. 그런 말 난 못혀. 효도를 주둥이로 하는 감. 당신이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면 나도 아퍼.” 1일 전북 정읍시 북면초등학교에서는 ‘면민의 날’을 맞아 남편과 사별하고 50년 이상을 홀로 살아온 할머니들을 위로하는 행사가 열렸다. 마을 이장의 추천과 심사를 거쳐 14명의 할머니가 받은 것은 ‘제1회 반 백년 한 세월 상’이었다. 북면은 6·25 당시 인민군의 학살로 유난히 남편과 사별한 미망인이 많다. 시상식장에 엉거주춤 선 어머니 송귀순(87·보림리)씨를 지켜 보는 막내아들 이정삼(56)씨는 그만 눈물이 그렁거린다.“내가 세 살 때니께 기억도 못혀. 아직도 어머니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못한당께. 눈물만 팍 쏟으신당께.”이씨도 흰 머리가 수북하지만 어머니 앞에선 그저 막내아들일 뿐이다.“아야 거서 그렇고 있지 말고 뭐라도 먹으래이.”시상식이 이어지며 스피커가 쩌렁쩌렁 울리는데도 아들을 걱정하는 송씨의 잔소리가 계속된다. 상을 받은 할머니들의 평균 나이는 82.7세. 가장 나이가 많은 신순녀(94·남산리) 할머니는 아들 내외가 안겨준 꽃다발을 안고는 쑥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할머니 대부분이 초등학교 문턱도 넘지 못했다. 고향인 전남 무안을 떠나 정읍에서 남의 집 더부살이로 살았다는 신씨는 “내는 못 배워도 애들은 쑥 뜯어다 먹이며 가르쳤제. 새끼들 안 굶겨 죽이려고 힘께 남편 생각도 못했제.”라며 순박한 웃음을 지었다. 어머니 나현숙(78·승부리)씨의 수상을 지켜보던 아들 유창범(55·대전)씨도 눈시울을 붉힌다. 전쟁이 발발하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당시 유씨는 어머니 뱃속에 있었다. 공무원인 유씨는 “애비없는 자식이라는 손가락질이라도 받을까 어머니에게 오지게 맞았다.”면서 “어머니는 강한 분이었다.”고 말했다. 딸이라고 마음은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도 딸도 모두 할머니가 됐지만, 딸은 어머니가 밟아 온 길을 걸어갈 자신이 없다고 고백한다. 최양순(76)씨의 둘째딸 이유순(60·마정리)씨는 “어릴 때 어머니가 새벽에 머리라도 매만지면 ‘오메 시집가려나 부다.’하고 겁나게 눈물을 쏟았제.”라고 추억했다. 이씨는 “나는 어머니처럼 그렇게 살 수 있다고 장담을 못한다.”면서 어머니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시상식은 할머니의 이름을 한 분씩 호명한 뒤 “50년을 한 세월로 대나무처럼 곧은 마음, 소나무처럼 추상같은 마음으로….”라고 상패의 문구를 읽는 순으로 진행됐다. 북면 사람들은 이 상이 해가 거듭될수록 수상자가 줄어들어 ‘시한부 상’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김기문(52) 면장은 “열녀상이 아니라,50년 이상 홀로 고생하신 우리 시대의 어머니들에게 드리는 상”이라면서 “단 한 분이 남을 때까지 매년 ‘면민의 날’에 시상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글 정읍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의식의 잠에서 깨어나자/권도갑 원불교 도봉교당 주임 교무

    많은 사람들이 지금 잠을 자고 있는 것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몸은 세상 속에 있으면서 의식은 꿈을 꾸고 있다. 그러면서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늘 상처받으며 괴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깨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은 이미 눈을 떠서 열린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원불교의 경전인 대종경 전망품에는 ‘지금 날이 밝은 줄 모르고 깊이 자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얼음 속에서 씨를 뿌리는 사람, 겨울에 여름옷을 입은 사람이 있어서 이들은 때를 모르고 사업을 하니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라고 비유하여 말씀하셨다. 다행히 나는 스스로의 마음을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다른 사람이 내 마음을 대신 먹게 할 수가 없다.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마음은 자신만이 자기를 지배하고 지배당한다. 사람들은 ‘상대가 나를 괴롭힌다. 그가 나를 상처 주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나를 아프게 하지 말라. 스트레스 주지 마. 속상하게 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이들은 모두가 의식의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나를 상처 줄 수가 없다. 오직 한 사람 나 자신만이 나를 괴롭히고 아프게 할 뿐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외면하고 다른 사람을 탓하며 마음의 아픔을 계속 쌓아가고 있다. 자신을 명료하게 살피면 내가 스스로 내 마음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를 깨닫는다면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경험하고 느끼게 된다. 예를 들면 누가 나를 무시하고 비난할 때에 그가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생각을 믿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는 전혀 감정의 상처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믿고 수용하면 속이 상하고 짜증이 나는 것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은 나를 괴롭힐 수가 없다. 많은 이들이 이 사실에 대해서 저항하며 냉소를 보낸다. 조용히 살펴보면 누가 나를 무시할 때 정확히 그가 나를 통해 본 그의 모습을 보고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를 통해 자신을 보게 되면 깨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상대는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지금 내가 보는 것을 실재라고 믿는 것은 어리석음이며, 착각일 뿐이다. 현실 상황은 언제나 나를 일깨워주는 고마운 거울이다. 이를 깊이 성찰한다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이는 바로 그를 통해 본 나를 미워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나를 미워하고 있는 것이다. 결혼한 지 25년이 된 어떤 부인이 “이제 더는 못 살겠어요. 남편 곁을 떠나야겠어요. 너무 힘이 들어요.”하며 하소연하였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남편이 나를 인정하지 않으며, 친정 식구들을 무시하고, 자신에 대해서 무관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를 짜증내거나 잔소리하면 한동안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이 쌓이고 쌓여서 이제는 아주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나며 지나온 삶이 억울하다고 하였다. 부인은 이처럼 깊은 마음의 아픔을 겪으며, 마침내 이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정확히 살펴보면 남편은 아내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며 무시하고 못마땅해 하고 있다. 그리고 아내는 남편을 통해 자신을 비추어 보고는 속상해 하며 답답해한다. 알고 보면 누구도 상대가 자신을 괴롭힌 적이 없는 것이다. 때문에 깨달은 분들이 한결같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며, 미워하면 바로 나를 미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상대를 무시하고 경멸하면 이는 곧 나를 무시하는 것이 되며, 결국은 내가 상처를 받게 된다. 만약에 나를 살피지 못하면 언제나 남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끊임없는 고통을 받는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할 때 마음속에서는 자신이 자기를 주먹으로 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그리하여 몸속의 여기저기에 피멍이 들고 심한 상처를 얻게 된다. 마음이 잠들어 꿈속에 빠져있지 않다면 어떻게 두 눈을 뜨고서 스스로 자신을 학대하고 괴롭힐 수가 있겠는가? 지금은 모든 것이 밝게 드러나는 시대이다. 이제 마음을 잘 살피어서 의식의 잠에서 깨어나자. 그리하여 좋은 마음을 먹고 만나는 인연들과 서로 화합하며 여한 없이 인생을 즐겨야 할 때이다. 권도갑 원불교 도봉교당 주임 교무
  • [데스크시각] 이혼이 줄었다고?/허남주 주말매거진 We팀장

    결혼 때 배우자를 천생연분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 행복한 결혼을 확신하지 않았던 이가 있을까. 하지만 ‘불행한 결혼보다는 행복한 이혼이 낫다.’는 말이 긍정적 명제로 인정받은지 오래다. 그래서 지난해 공신력있는 기관에서 발표한 이혼률 47.4%이라는 분석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음에도 결혼제도의 위기에 대한 강력한 경고로 받아들여져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결혼한 2쌍 중 1쌍이 이혼한다는 지적은, 약간 과장한다면 ‘나도 예외가 아니다.’는 불안감을 불러왔고 ‘노력하면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보다는 무력감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1년만에 이혼이 줄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 통계청은 ‘2004 혼인·이혼통계 결과’를 통해 2004년 한해 이혼한 부부는 13만 9365쌍으로 이는 2003년보다 2만 7731쌍이 줄었다고 한다.1년만에 무려 16%나 줄었다는 얘기다. 최근 16년간 지속적인 증가추세였고,98년이래 급증세였던 이혼률이 줄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지난해 47.4%가 이혼한다는 통계를 접했을 때처럼 이혼이 감소하는 추세라는 희소식을 접하고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단 한 해의 통계만으로 ‘줄어드는 추세’라고 속단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이혼율이 줄어든 이유로 내세운 것역시 석연치않다. 정부는 ‘이혼율이 높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혼을 자제하자는 사회적 분위기(숙려기간 도입 등)가 점차 고조된 결과로써 이혼 과열양상이 제자리를 찾는 현상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과연 그럴까. 나 하나라도 참아서 이혼률을 낮추자고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각성했다? 교통사고와 함께 부끄러운 세계 높은 순위를 차지한 그 이혼률을 낮추기 위해서? 더욱이 3월 2일 도입된 이혼숙려제의 효과가 벌써 나타났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아무리 ‘냄비현상’이 있다해도 설명이 안된다. 물론 이혼숙려제가 앞으로 일정한 역할을 해줄 것은 의심하지 않는다. 이혼에 합의한 사람들에게 법원이 이혼확인을 2주 정도 늦추기만해도 이혼신고를 하지않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사례에 비춰볼 때 협의이혼하려는 사람에게 1주일의 시간 여유는 분명 생각의 시간을 늘려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제도 시행 한달만에, 아직 가정법원에서 한달간의 성과가 수치로 나오지도 않은 제도에 이혼을 줄인 공을 돌리기엔 논리가 딸린다. 한편 이번 통계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젊은 층의 이혼이 줄어든 반면 결혼 20년이상 장·노년층의 이혼은 계속 늘고있다는 것이다. 이제 결혼경력이 길다는 이유로 “요즘 젊은애들은 이혼을 밥먹듯이 한다.”는 잔소리를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젊은 층의 이혼은 왜 줄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초혼이 줄고, 초혼연령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 하나 동거의 증가가 그 원인이다. 젊은 층의 동거는 이미 사회적 현상 중 하나이지만 아직 통계를 잡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혼인·이혼의 정부통계에선 완전히 빠져있다. 결혼이 없으니 이혼이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서류상 정리하는 것도 일종의 사치다. 먹고 살기도 힘들고 나눌 재산도 없다면 이혼도 안한다.’라는 말을 들으면 쉽게 낮아진 이혼율을 기뻐할 일만도 아닌 것같다. 말이 나온 김에 짚고 가자. 두 쌍, 혹은 세 쌍 중 한 쌍이 이혼한다는 분석이 사실일까. 통계청은 지난해 통용됐던 47.4%의 이혼은 잘못된 분석이라고 적시했다. 결혼연령대는 20∼30대이고 이혼은 20대부터 70대까지 전 연령층에서 일어나는 일임을 고려해, 가중치를 두고 계산한다면 우리 사회의 실제 이혼율은 15.8% 정도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더욱이 아직은 결혼과 혼인신고를 중시하는 우리의 결혼문화와 동거가 일반화된 서구의 이혼통계를 비교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한다. 우리 사회의 이혼률이 수치만으로 따져 세계수준이라고 볼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쨌든 이혼이 줄어든 것은 일단 다행한 일임에 분명하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건강성이 가정에서부터 출발, 확산되기를 바란다. ‘결혼은 판단 부족, 이혼은 인내심 부족, 재혼은 기억력 부족∼’대중가요의 한 구절이 귀를 잡는다. 허남주 주말매거진 We팀장
  • [안귀옥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결혼이후 180도 변해버린 남편

    저는 남편과 같은 동네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사이였습니다.10년을 연애하다가 결혼했습니다. 저와 남편은 서로의 식성이나 말투는 물론이고 성격과 습관까지 장·단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결혼하면 서로 싸우는 일이 없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희망은 결혼 이후에 나타난 남편의 독선적이고 배려없는 태도를 보면서 사그라들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아침잠이 많아 정성껏 준비한 아침식사조차 먹지 못하고 출근을 하는 일이 잦아서 실망을 시키더니 일요일이면 하루 종일 TV 앞에 누워서 청소조차 거들어 주지 않고 빈둥빈둥하고 지내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저는 저대로 남편의 태도에 화가 나서 잔소리를 하다 보면 서로 감정이 격해지는 일이 잦아집니다. 우리 부부가 결혼 전같이 화목해질 방법은 없을까요. -김미숙(가명)- 미숙씨의 고민은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부부들이 고민을 하고 상담을 해 오는 내용입니다. 신혼여행 전문 관광가이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신혼여행을 온 부부 5쌍 중 1쌍은 신혼여행지에서 다투고는 각기 다른 비행기로 떠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도 있습니다. 다소 과장됐을 수 있으나 어쨌든 연애시절에는 죽고 못살 정도로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가 일단 결혼을 하고 나면 의견충돌도 많고 싸울 일이 늘어나고 연애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성격적인 문제들로 갈등을 겪는 일이 많은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배우자의 성격적인 결함이 연애시절에는 없었다가 혼인 이후에 갑자기 생겨난 것이거나, 연애시절에는 숨기고 있었던 것일까요. 전혀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상대방의 결함이 오히려 보호본능을 일으키게 하고 애틋한 연민이 생기도록 해서 두 사람이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가 됩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는 우리 속담이 이럴 때 사용하는 표현일 것입니다. 어쩌다 부모나 친구들이 상대방의 문제점을 지적해 주더라도 그 조언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헐뜯기 위해서 하는 이야기쯤으로 여기고 거부합니다. 혹은 문제들을 알고 있더라도 나만은 그 성격을 극복하면서 살 수 있다거나, 혹은 내가 아니면 상대방의 성격적인 결함을 받아 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관대해지고 자신만만한 생각을 가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심리학자들 가운데에는 이렇게 연애과정에서 사랑에 빠져서 판단력이 흐려지는 상황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랑에 빠져서 상대방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못했던 사람들이 그 사랑에서 빠져나와서 제 정신이 드는데는 긴 시간이 걸리는 것 같지 않습니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2년 정도면 상대방의 장단점을 대부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제 정신이 든 사람이 진정한 사랑을 쌓아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상대방의 감정과 행동을 조절하는 것입니다. 우선은 상대방의 성격이 어떤지를 정확하게 파악해 그 성격에 따른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상대방에 대한 지지입니다. 미숙씨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잔소리는 처음 한번은 몰라도 습관이 되면 남편을 움직이는 방법이 되지 못합니다. 잔소리 시간을 칭찬의 시간으로 바꾸어 보세요. 남편의 행동이나 태도 중에서 작은 것이라도 잘하는 것을 찾아내 칭찬하고 격려해 보세요. 귀가한 남편이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는 것부터 시작해 화장실에 화장지를 바꾸어 주는 것까지 남편이 한 일에 대해서는 일단 호의를 가져보세요. 그래도 칭찬할 일이 생각나지 않으면 TV에 빠져 있는 남편에게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 같이 있어주어서 고맙다고 이야기해 보세요. 이런 칭찬을 미숙씨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으로 만들어 보세요. 남편의 태도에 머지않아 변화가 올 것입니다. 남편 칭찬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은 사단법인 한국행복가족상담소(032-8627-119)로 문의하세요.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은막의 큰스타’ 황정순 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은막의 큰스타’ 황정순 씨

    한 여인이 있다. 낭랑하다. 세월이 무게가 있으련만 곱게 쌍꺼풀진 눈가에선 총기가 빛난다. 소녀처럼 미소짓는 얼굴에는 후덕함이 넘쳐난다. 사람들은 영원한 모상(母像)이라고 한다. 맞다. 지고지순(至高至純), 일생을 모성적 본능으로 예도(藝道)의 길만 고집했다. 그래서 ‘무대의 여왕’‘은막의 큰 스타’로 표현된다. 나이 80, 이번엔 노래와 춤이다. 뮤지컬 배우로 다시 태어나 전국을 감동시킨다. 무대를 떠난 지 꼭 20년 만이다. 누군가 그랬다, 별명이 ‘탱크’라고…. ●20년 만에 다시 무대로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 여인을 만났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었다. 금테안경 너머로 추켜세운 속눈썹이 봄꽃처럼 화사해보였다. 주름살이 보이는가 싶더니 웃는 양볼에는 어린 아이처럼 빨개진다. 카페 종업원이 다가오자 여인은 “난, 커피를 연하게”라고 주문한다. 인사를 건네자 여인은 “응, 그래 반가워, 나 황정순이냐. 성이 뭐요, 김? 그러면 우린 ‘황금’이네.”하며 재치있게 분위기를 바꾼다. 모습이 꼭 18세 소녀같다고 했다. 그는 지체없이 “암, 맞아. 나 소녀가 됐다구. 왜 그런지 알아? 기뻐야 성공해. 요즘 나 많이 기쁘거든.”이라고 했다. 득도(得道)의 산에 올랐다가 금방 내려온 도인처럼 여겨졌다. 황씨는 “이봐, 사실은 말야. 인터뷰를 안하려고 했어. 그런데 손녀딸이 서울신문이라고 하잖아. 내가 서울신문에서 상(1970년 영화부문 대상)을 받았거든. 거절할 수가 없었지. 다른 데 같으면 안했어.”라며 또 한번 파안대소한다. 황씨는 지난해 한국영화대상 공로상을 받으며 20년만의 침묵을 깨고 영화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나 여기 살아 있소.”라는 명언을 뱉어내 참석자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가족반대불구 ‘예도’ 내서워 출연 지난 2월에는 뮤지컬 ‘팔도강산’(서울 리틀엔젤스회관)으로 팬들과 다시 만났다. 뿐만 아니다. 이달 5∼6일에는 부산에서,12∼13일에는 대구에서 공연을 가져 관객들을 웃고 울렸다. 다음달에는 김천(2∼3일), 광주(26∼27일)공연이 예정돼 있으며 오는 5월7∼8일에는 어버이날을 맞아 서울 공연이 기다리고 있다. ‘팔도강산’은 1960년대 크게 히트친 영화. 황씨는 여기에서 남편(고 김희갑씨)과 함께 자식을 찾아 팔도강산을 유람하며 감회에 젖는 노부부로 출연했다. 이번 뮤지컬에서는 ‘노부부의 어머니’ 역으로 등장한다. 그는 이번 공연에 대해 “글쎄, 내가 노래를 해봤어? 춤을 춰봤어? 그런데 무대에 올라탔더니 신이 막 나잖아. 내가 왼쪽다리가 뻣뻣해 잘 걷지 못했거든. 신기하게도 이젠 걸음도 빨라지고 기분이 좋아졌어. 배도 약간 나왔는데 쏙 들어갔지 뭐야.”라며 매우 즐거워했다. 알고봤더니 가족들의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의 ‘예도(藝道)’를 꺾지 못했단다. 황씨는 작품얘기가 나오자 영화와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어머니’와 ‘효’를 강조하는 흐름은 비슷하다면서 “사과 한짝 덜렁 놓고 가는 게 효도가 아냐. 사랑을 해야지. 덕담도 자주 하고 말야.”라며 목소리를 약간 높인다. 그러면서 “나이 먹으면 잔소리가 많아지고 만만한 남편이나 부인한테 자꾸 화풀이를 하게 돼. 기분이 좋으면 그럴 일이 없어. 내가 요즘 기분이 너무 좋아.(무대에)잘 올라탔어요.‘부산갈매기’나 ‘감수광’ 노래도 나오고, 아들딸 같은 출연진들이 너무 잘해줘.(양손을 높이 올리며)이것봐 요렇게 요렇게 춤도 추잖아.”라며 즉석에서 춤동작까지 보여준다. ●연기단짝 김희갑씨 가족도 만나 그는 또한 “이것(작품)을 보면 말야. 꺽꺽대는 사람들 있잖아. 정치인이나 권위적인 사람들 말야.(극장에서)나갈 땐 다들 어린애가 돼.”라며 웃는다. 이어 “부산공연을 갔을 때였어.100년만에 많은 눈이 내렸다는 날이야. 숙소 창가에 앉아 솜사탕같이 내리는 눈 사이로 겨울바다를 봤지. 진짜 영화속의 주인공 같더군. 하기사 이 나이에 드러누워 있어봐. 뭐 기차를 타겠어, 겨울바다를 보겠어? 내 생애에 이런 호강은 처음이야.”라고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뮤지컬 배우로 나서자 몇가지 훈훈한 화제가 생겨나고 있다. 우선 생전에 단짝이었던 고 김희갑씨의 가족들과 20년 만에 상봉했다. 공연 첫날에는 김씨의 부인과 아들·딸이 ‘축 공연, 황정순·김희갑 선생님. 김희갑 가족 일동’이라는 축하화환을 보내와 주위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또 왕년의 액션스타 김희라씨 가족들과도 오랜만에 만났다. 영화배우 백일섭씨는 출연제의를 거절했다가 대선배인 황씨가 출연한다는 말을 듣고 뒤늦게 수락했다. 후배들과 함께 출연한 것만 해도 기분좋은 일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그는 “여운계는 고대 나왔거든, 전은주는 숙대 1학년때 내 옆에 졸졸 따라다녔는데 어느새 같이 출연해 대견스러워”라고 했다. 원래 ‘팔도강산’은 영화에서 시작해 70년대 초반 TV시리즈로 이어지며 대단한 인기를 모았다. 황씨는 이 작품으로 ‘우리들의 어머니’로 각인됐다. 황씨는 지금도 “딸 아이가 멀리서 아버지와 어머니 오신다고 좋아서 아버지한테 막걸리를 드리거든. 하지만 형편이 어려워 막걸리에 물을 탔어. 아버지는 다 알면서도 ‘어째 이리 맛있냐.’ 하는 장면말야. 관객은 다들 눈물을 흘렸지.”라고 술회했다. 이때 황씨는 창밖을 슬쩍 보더니 “어머, 저 여자 좀 봐. 나를 알아보나봐.”하면서 소녀처럼 손으로 입을 가리며 부끄러운 모습을 연출했다. ●65년 동안 영화250편·연극 150편 출연 올해로 연기경력 65년째를 맞이한다. 어릴 적 영화 ‘타잔’을 보며 연극인의 꿈을 키웠다. 홀어머니(아버지는 일제와 싸우다 일찍 사망했다. 오빠는 징용에 끌려가 소식이 끊어졌다.)의 끈질긴 반대에도 불구하고 16살에 그토록 하고 싶은 연극배우가 됐다. 첫 출연작은 ‘순정애보’의 간호사역할이었다. 무대에 올랐을 때 ‘의사가 환자에게 주사를 놓아야’할 대사를 ‘환자가 의사에게 주사를 놓아야’라고 바꿔 말해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면서 질곡의 연기생활이 시작된다. 해방 전에는 신의주로, 만주로 순회공연을 다녔다. 이때에는 ‘모상’‘사랑’‘김약국의 딸’ 등이 자주 무대에 올려진다. 6.25때에는 부산과 대구를 오가며 ‘햄릿’‘오델로’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에 출연하면서 연기의 깊이를 더해간다. 이무렵 친구의 소개로 의사인 이영복씨를 만났다. 둘은 3년 열애끝에 결혼에 이른다. 황씨의 나이 27살때였다. 신혼살림은 현재 살고 있는 삼청동 한옥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결혼 30년 만인 1977년에 남편이 사망하자 3남매의 홀어머니로 새로운 연기생활에 몰두하게 된다. 이후 ‘바닷가의 연정’‘탑’‘작은 사랑의 멜로디’‘사랑과 증오’‘안네의 일기’ 등 주옥같은 작품을 쏟아냈다. 데뷔후 지금까지 250여편의 영화와 150여편의 연극에 출연했다. 그는 인생을 시간으로 쪼개본다. 나이 40이면 12시,50세는 오후 2시, 그리고 60세부터는 황혼기라고 했다. 연예인은 여러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직업이기 때문에 황혼기에 접어들면 사회를 위해 봉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 나이에 즐거움을 주는 것도 사회봉사야, 이봐 기쁘라고 그러면 반드시 성공한다구.” 그는 인터뷰하는 도중 “이이고, 뭐 좀 먹여야 하는데.”라는 주문을 여러번 반복했다. 모성적 본능으로 살아온 평소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가 걸어온 길 ▲1925년 경기 시흥 출생 ▲40년 ‘산송장’으로 연극데뷔 ▲46년 ‘촌색시’로 영화데뷔, 연극 ‘호화선’‘청춘좌’‘성군’ 출연. ▲47년 중앙방송 성우 ▲67년 정박아협회 특별회원 ▲70년 ‘부부’로 드라마 데뷔 ▲74년 낙도어린이와 자매결연 ▲82∼84년 KBS ‘보통사람들’ ▲84년 연극 ‘안네의 일기’ ▲86년 MBC 베스트셀러극장 ‘도깨비의 꿈’ ▲이밖에 연극 150편, 영화 250여편에 출연. ■ 상훈=65년 서울시문화상, 대종상(60·65·66년), 청룡상(63·64년), 제49회 예술원상(2004년), 제3회 대한민국영화대상 공로상(2004년). km@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①-창업주 故정주영회장 일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①-창업주 故정주영회장 일가

    보는 이마다 다르겠지만 현대를 삼성보다 앞세우는 사람들은 현대의 창업 정신을 강조한다. 현대는 남이 일궈놓은 기업을 인수하기보다는 밑바닥에서부터 하나하나 주춧돌을 올렸다. 건설이 그랬고, 자동차가 그랬으며, 중공업이 그랬다.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회장은 이를 평생의 긍지요, 자랑으로 여겼다.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 시절,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끌려가서도 “사정상 어쩔 수 없었던 인천제철만 제외하고는 어느 하나 내 손으로 말뚝을 박고 길을 닦아 시작하지 않은 공장이 없다.”며 기업 강제 통·폐합에 맞섰을 정도였다. 1947년 5월25일 서울 중구 초동의 허름한 자동차 수리공장 한 귀퉁이에 ‘현대토건사’라는 간판을 내건 지 60여년. 삼성보다 10년 가까이 늦은 출발이었지만 현대는 이내 1위 기업으로 우뚝 섰고,‘경영권 다툼’이 일어났던 2000년까지 그 지위는 차돌만큼이나 단단했다. 이때 현대그룹의 자산규모가 87조여원. 계열사 수만 40개가 넘었다. 비록 그룹이 쪼개지면서 외형상의 규모가 작아지고 재계 서열은 떨어졌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전화위복’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동차(현대차그룹), 유통(현대백화점), 해운·제조(현대그룹), 조선(현대중공업), 금융(현대해상·현대기업금융) 등 각자 전문그룹의 길로 나서면서 경쟁력은 더 강화되고 동반 부실의 위험은 현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다른 그룹들이 이제서야 계열분리 등으로 홍역을 앓는 동안 현대의 대표주자들은 세계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 현대산업개발,KCC, 한라, 성우 등 창업주의 형제들이 이끄는 그룹들도 각자 독자영역을 굳혀가고 있다. 언뜻 봐도 느껴질 만큼 현대에 뿌리를 대고 있는 기업들은 유난히 굴뚝업종이 많다. 고용된 인원과 딸린 부품·협력업체가 많다는 얘기다. 국민경제 기여도로 따지면 현대가 여전히 1위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또 한 가지, 현대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현대정신’이다. 현대에는 일단 해보자며 덤비는 정신, 밀어붙이는 힘이 있다. 때로는 비합리성을 낳기도 하지만 현대맨들은 이를 “맨바닥에서부터 기업을 일군 현대만의 저력”이라고 자부한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이를 “진정한 기업가(起業家) 정신”이라고 불렀다. 제각각 ‘마이 웨이’를 걷고 있는 오늘날의 현대가를 묶는 보이지 않는 끈이기도 하다. ●담(淡)한 혼맥… 후한 연애결혼 다른 재벌가에 비해 현대의 혼맥은 의외로 소박하다. 낭만을 즐겼던 고 정 회장이 자식들의 연애에도 너그러웠던 영향이 가장 크다.‘왕 회장’이라는 별칭으로 더 자주 불렸던 그 자신, 강원도 통천의 평범한 고향처녀(변중석)와 결혼해 평생을 함께했다. 슬하에 9남매(8남1녀)를 두고 동생이 일곱(한명은 어려서 사망)이나 됐지만 눈에 띄는 혼사는 손가락을 꼽는다. 직계가족 중에 굳이 꼽자면 다섯째아들 고 몽헌(MH)씨와 여섯째아들 몽준(MJ)씨를 들 수 있다. 몽헌씨는 신한해운 현영원 회장의 딸 정은씨와, 몽준씨는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막내딸 영명씨와 각각 결혼했다. 오랜 세월 재계를 주름잡았던 현대의 위상에 견줘 혼맥이 조촐한 데는 창업주의 성공과정과도 무관치 않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부두 막노동꾼을 거쳐 대기업 총수에 오른 그는 살아생전 “세상에 공짜란 없다.”며 담(淡)한 마음을 갖자고 입버릇처럼 강조하곤 했다. 권력이나 부(富)를 결코 싫어하지 않았지만 굳이 혼사줄까지 대가며 공짜를 탐할 이유 또한 없었던 것이다. 정략결혼의 흔적이 적은 대신에 유난히 많은 손(孫)과 맞닥뜨리는 게 현대라는 집안이다. 이런 현대가 대(代)를 건너뛰면서 LG, 롯데, 한진, 이건, 비비안 등 내로라하는 그룹들과 사돈을 맺은 점은 흥미롭다. 현대가의 2세들이 ‘몽(夢)’자 돌림이라면 3세들은 딸이 ‘이(伊)’, 아들은 ‘선(宣)’자 돌림을 쓴다.4세는 ‘진’자(딸),‘창’자(아들) 돌림이다. ■ 현대의 핵심축 아들들 ●장남 몽필… 쌍용가와 인연 큰아들 몽필씨는 나이 50도 안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국영 적자기업 인천제철을 인수해 정상화에 여념이 없던 1982년 4월 어느날,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고속도로에서 그가 탄 승용차가 트레일러를 들이받았다. 이 때가 마흔아홉살. 수도여대 출신의 부인 이양자씨와 두 딸 은희·유희씨는 망연자실했다. 몽필씨가 떠난 지 한달 뒤, 정주영 회장은 동서산업 공장장이던 이영복씨를 사장으로 파격 승진시켰다. 이씨는 몽필씨의 처남, 즉 이양자씨의 친동생. 졸지에 가장을 잃은 장남 가족에 대한 배려였다. 하지만 이양자씨마저 91년 위암으로 눈을 감고 말았다. 큰딸 은희씨는 최근 미국에서 귀국했다. 둘째딸 유희씨는 김석원 쌍용양회 명예회장의 장남 지용씨와 결혼해 두 아들(진석·진하)을 두었다. 지용씨는 현재 용평리조트 상무를 맡고 있다. ●2남 몽구… 글로벌 현대차그룹 리더 몽필씨의 죽음으로 사실상 집안의 장남 역할을 도맡아 한 이는 둘째아들 몽구(MK)씨였다. 유희씨가 결혼할 때 부모 역할을 대신 한 사람도 몽구씨 부부였다.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사장 시절,‘갤로퍼 신화’를 만들어낸 그는 기아차마저 인수해 지금의 현대·기아차 그룹을 이끌고 있다.2000년 자동차전문 그룹으로 출범한 지 몇 년도 안돼 그룹을 세계 6위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출범 당시 10개였던 계열사 수는 28개로 불어났다. 그룹의 올해 매출 목표액은 지난해보다 17% 늘어난 85조원.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의 ‘소비자 보고서(컨슈머 리포트)’는 최근 현대차의 뉴쏘나타를 세계에서 가장 결함이 적은 차로 선정했다. 갤로퍼 신화 때부터 MK가 강조해온 ‘품질 경영’의 힘이다. MK는 평범한 집안의 딸 이정화씨와 결혼해 3녀1남을 두었다. 큰딸 성이씨는 저명한 정형외과 의사이자 영훈의료재단을 설립한 고 선호영 박사의 아들 두훈씨와 결혼했다. 둘째딸 명이씨는 정경진 종로학원장의 아들 태영씨와, 셋째딸 윤이씨는 미국 MBA(경영학석사) 출신인 신성재씨와 결혼했다. 둘째사위와 셋째사위는 그룹 계열사인 현대카드·캐피탈 사장, 현대하이스코 사장을 각각 맡고 있다. 막내이자 외아들인 의선씨는 지난 11일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룹내 직함은 현대·기아차기획총괄본부 담당 사장으로 기아차의 기획, 재무, 수출, 연구·개발(R&D) 등 핵심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일찍 결혼해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부인은 정도원 강원산업 부회장의 큰딸 지선씨다. ●3남 몽근… 소리없이 유통명가 키워 셋째아들 몽근씨는 일찌감치 유통을 넘겨받아 현대백화점 그룹을 이끌고 있다.‘빅3’(MK·MH·MJ)에 가려 조명은 덜 받았지만, 묵묵히 외길을 걸으면서 소리없이 유통 명가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현대백화점, 현대H&S(非 백화점 계열), 현대홈쇼핑 등 주력 계열사를 토대로 지난해 5조 5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문 최고경영자(CEO)들이 소신있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면서도 거의 매일같이 매장을 둘러봐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바로 위 형 몽구씨와는 고등학교(경복고)-대학교(한양대) 동문인 데다 선굵은 외모까지 비슷하다. 옛 현대그룹에서 고문을 지낸 우호식씨의 딸 경숙씨가 부인이다. 두 아들은 각각 부회장, 기획담당 이사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큰아들 지선씨는 고 황산덕 전 법무장관의 손녀인 서림씨와 결혼했다. 둘째아들 교선씨는 자동차부품 전문기업인 대원강업 허재철 부회장의 큰딸 승원씨와 지난해 말 깜짝 결혼식을 올렸다. 교선씨의 결혼식에는 큰아버지인 정몽구 회장을 비롯해 집안 어른들이 대거 참석해 모처럼 우애를 다지기도 했다. 현대가는 한때 딸만 남기고 떠난 몽필씨의 대를 잇기 위해 지선씨를 양자로 입양하는 방안을 의논했었다. 유교식 법도대로라면 바로 아래 동생인 몽구씨의 아들을 입양해야 했으나 의선씨가 외아들인 탓에 지선씨가 선택된 것.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실제 입적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주영 회장의 장례식때 의선씨가 ‘종손’ 자격으로 고인의 영정을 든 것은 이 때문이었다. ●외사위 희영… 천마산스키장 운영, 이건·비비안과 사돈 현대가는 자손이 많은데도 딸은 귀한 편이다. 외동딸 경희씨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재원. 그러나 바깥 활동은 없다. 대신 남편(정희영)이 선진종합㈜ 회장이다. 공교롭게 고 정주영 회장의 여동생 희영씨와 이름이 똑같다.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1965년 현대건설 공채로 입사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입사 동기다. 조선 수주에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 창업주의 눈에 들어 사위가 됐다. 정주영 회장은 딸 경희씨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자 희영씨를 도쿄법인 이사로 발령내 자연스러운 교제를 유도했다고 한다. 이후 희영씨는 조그만 해운회사(선진해운) 하나를 갖고 독립, 장인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천마산 스키장은 오롯이 그가 독립해 만든 회사다. 외아들 재윤씨가 선진종합㈜ 상무다. 두 딸은 각각 이건그룹과 비비안그룹으로 시집갔다. 큰딸 윤미씨의 남편이 이건창호 박승준 상무, 둘째딸 윤선씨의 남편이 비비안 남석우 부회장이다. ●4남 몽우… BNG스틸 통해 부활 넷째아들 몽우씨는 숙명여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인’ 이행자씨와 연애결혼했다.40대에 현대알루미늄 회장을 맡은 그는 그러나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결국 1990년 4월 45세의 젊은 나이에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겨진 유족을 돌보는 일도 사실상의 장남 몽구씨의 몫이었다. 조카 셋을 모두 현대차그룹의 계열사인 BNG스틸(전 삼미특수강)에 입사시켰다. 큰조카, 즉 몽우씨의 장남인 일선씨는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최근 BNG스틸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일선씨에 이르러 비로소 현대는 내로라하는 재벌가와 사돈관계를 맺는다. 일선씨의 부인은 구자엽 희성전선 부회장의 딸 은희씨다. 구 부회장은 구태회 LG전선 명예회장의 아들이자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조카이다. 일선씨의 동생 문선씨는 김영무 김&장 법무법인 대표변호사의 딸 선희씨와 결혼했다. ●5남 몽헌… 못다 이룬 꿈, 현 회장이 힘찬 날갯짓 ‘비운의 황태자’ 몽헌씨는 1998년 그룹 공동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화려한 비상을 시작했다.1983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설립해 4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으면서 아버지 정주영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끌어냈다.2000년에는 형들을 제치고 그룹 단독 회장에 추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북 송금’ 사건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던 중,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2003년 8월4일 서울 계동사옥에서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부인 현정은씨가 경영에 뛰어들었다. 급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황망히 그룹을 물려받았지만 사업가 집안의 딸답게 배포와 합리적 리더십으로 1년 만에 그룹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는 현대상선, 올해 첫 흑자를 넘보고 있는 현대아산, 주가 1000시대의 수혜주 현대증권 등을 축으로 재계 10위권 진입(현재 19위)을 눈앞에 두고 있다.2010년까지 매출 20조원을 달성해 10위권에 진입한다는 ‘2010’ 프로젝트를 가동중이다. 현 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이 직접 ‘점지한’ 며느리로도 유명하다. 현 회장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결혼 뒷얘기는 이렇다.“당시 현대상선 회장이던 아버지(현원영)를 따라 선박 명명식차 울산에 내려갔다가 남편을 처음 만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명예회장(정주영)께서 나를 선보러 미리 내려오셨었다. 명예회장께서 중매를 서신 셈이다.” 큰딸 지이씨는 현대상선 재정부 대리로 근무 중이다. 아버지를 잃었을 때 고3 수험생이었던 외아들 영선씨는 졸업후 미국 유학을 준비중이다. ●6남 몽준… 세계1위 현대중공업 ‘건조’ 지금은 정치인의 이미지가 더 강하지만 세계 일류 현대중공업의 뒤에는 기업인 몽준씨가 있다. 형제중에 학벌(서울대-미국 MIT 경영대학원)이 가장 좋아 ‘신문대학’(소학교만 졸업한 정주영 회장은 신문을 통해 지식의 대부분을 얻었다며 자신을 신문대학 출신이라고 소개하곤 했다) 출신인 왕 회장이 유난히 예뻐했다는 몽준씨는 31세에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전격 발탁되면서 집중 조명을 받았다.1988년 금배지를 처음 달면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시도했다. 경영은 CEO에게 맡기고 자신은 대주주로서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만 내리고 있는 것. 지금도 현대중공업의 어떤 직함도 갖고 있지 않다. 공식 직함은 5선의 국회의원이자 축구협회 회장. 아버지의 뒤를 이어 200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현대중공업의 올해 매출 목표액은 10조원. 웬만한 그룹과 맞먹는다. 부인 김영명씨와는 미국 유학시절에 만나 결혼했다. 큰아들 기선씨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와 올해 학사장교(ROTC)로 임관했다. 이로써 부자(父子)가 ROTC 선후배가 됐다. 두 딸 남이씨와 선이씨는 미국 유학 중이다.‘월드컵 베이비’로 유명한 늦둥이 아들 예선씨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우리나라가 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전을 최종 통과한 것을 기념해 이름을 ‘예선’으로 지었다고 한다. ●7남 몽윤… 현대해상으로 컴백 몽윤씨는 지난해 말 업계 2위의 손해보험회사인 현대해상의 등기이사 겸 이사회 의장으로 돌아왔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지 8년 만의 전격 복귀였다. 방카슈랑스(은행상품과 보험상품의 교차판매) 확대 시행 등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맞춰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보이고 있다.1981년 김진형 부국물산 회장의 딸 혜영씨와 연애결혼해 정이양과 경선군을 두었다. ●8남 몽일… 할부금융으로 내실 막내아들인 몽일씨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마친 뒤 현대상사 등에서 근무하다가 2000년 현대기업금융을 차려 독립했다. 기업대출 등을 주로 취급하는 회사다. 권영찬 현대파이낸스 회장의 딸 준희씨와 결혼해 고등학생인 현선(영국 유학중)군과 중학생인 문이양을 두고 있다. ■ 현대의 또 다른 축 형제들 고 정주영 회장의 형제들은 동생이기 이전에 창업 동지요, 사업 동료였다.6·25전쟁 직후 고령교(대구와 거창을 잇는 교량) 복구 공사를 덜컥 떠맡았다가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을 때, 내남없이 살던 집을 팔아 돈을 내놓은 것도 동생들과 매제였다. 이 때문에 20명이 넘는 대식구가 한 집(돈암동)에 모여 살아야 했지만 누구 한 사람 불평하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 독립해 각자의 그룹을 이끌고 있다. ●옛 영화 꿈꾸는 한라·성우 동아일보 외신부 기자로 활동하던 첫째 동생 인영씨는 1953년 현대건설 전무로 입사하면서 경영에 본격 합류했다.75년 말 중동 진출 때 신중론을 펴 형과 이견을 빚을 때까지 그룹의 초석을 닦았다. 당시 독립해 만든 한라그룹은 한라건설·한라시멘트·한라중공업·만도기계 등을 거느리며 재계 서열 12위로까지 도약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때 자금난이 가중되면서 그룹이 부도나는 시련을 겪었다. 지금은 둘째 아들 몽원씨가 한라건설 회장을 맡아 재기를 꿈꾸고 있다. 큰 아들 몽국씨는 94년 아버지가 동생을 그룹 후계자로 지목하자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한때 배달학원 이사장을 맡았으나 지금은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부인 이광희씨는 배달학원 계열인 한라대 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현대시멘트·성우종합건설·성우리조트·현대종합금속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성우그룹은 둘째 동생 순영씨 일가가 이끌고 있다. 순영씨는 명예회장으로 물러앉고 2세 경영을 정착시켰다. 큰아들 몽선씨가 현대시멘트와 성우종합건설을, 둘째아들 몽석씨가 현대종합금속, 셋째아들 몽훈씨가 성우전자, 넷째아들 몽용씨가 성우오토모티브를 각각 맡고 있다. 몽선씨는 사촌인 정몽윤 현대해상 이사회 의장과 함께 정몽헌 회장의 부검을 임관하기도 했다. ●‘기계박사’가 일군 한국프랜지 자동차부품회사인 한국프랜지공업의 김영주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의 유일한 매제다. 정주영 회장은 ‘이 땅에 태어나서’라는 두 번째 자서전에서 “그가 다가가기만 해도 기계가 저절로 고쳐졌다.”며 매제를 ‘기계박사’라고 불렀다.1946년 정주영 회장이 미 군정에서 불하받은 토지에 ‘현대’(현대자동차공업사)라는 상호를 처음 내걸었을 때, 감격적으로 지켜본 이도 영주씨였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로부터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기직종이던 운전기사 출신의 영주씨는 황해도 홀동광산에서 역시 운수업을 하던 정주영 회장과 뜻이 맞아 사업을 같이 도모했고, 매제까지 됐다. 부인 정희영씨는 2001년 정주영 회장이 노환으로 세상을 떴을 때 “대통령 한번 못해보고… 우리 오빠 불쌍해서 어쩔거나.”하며 가장 서글프게 울었던 동생이다. 장남 윤수씨가 회사를 물려받아 한국프랜지공업 회장으로 있다. 둘째아들 근수씨는 독립해 울산화학·퍼스텍 등의 계열사를 거느린 후성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윤수씨의 장남 용석씨가 프랜지공업 계열사인 서한산업(자동차부품회사) 대표이사 사장이어서 3세 경영체제를 갖춰 가고 있다. 둘째아들 용범씨는 이름을 용태로 바꿨다. ●‘포니 정’ 부자(父子)의 변신 ‘포니 정’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넷째 동생 세영씨는 외아들 몽규씨와 함께 1999년 3월 현대그룹에서 독립해 건설시장에서 영역을 확실하게 굳혔다. 꼼꼼한 시공과 치밀한 분양으로 현대산업개발을 국내 도급순위 4위 업체로 키워놓았다.‘포니 정’이라는 별명은 1976년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국산 고유모델 자동차 1호 ‘포니’를 만들어낸 데서 붙여졌다. 이같은 열정과 헌신을 인정받아 87년 형에게서 현대그룹 회장직을 물려받기도 했다. 분가한 뒤로는 현대산업개발 경영에만 매달렸다. 몇 년 전 폐암수술을 받았지만 지난해 희수연을 치렀을 만큼 건강을 되찾았다. 회사 경영은 아들 몽규(회장)씨가 책임지고 있다. 지금의 서울 삼성동 사옥은 몽규씨가 직접 지었다.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현대가 맺은 최고위층 사돈도 세영씨 집안에서 나왔다. 큰딸 숙영씨가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장남 경수(서울대 교수)씨와 결혼한 것. ●“아… 신영아”-교통사고 아닌 병으로 요절 다섯째 동생 신영씨는 고 정주영 회장이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동생이다. 서울대를 나와 동아일보 기자로 있다가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함부르크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 1962년. 처음에 어떤 기자가 교통사고사로 쓰면서 오랜 세월 세상에 잘못 알려졌지만 정확한 사인은 지병이라고 유족은 본지에 밝혔다. 당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잠시도 일에서 떠나본 적이 없는 정주영 회장이 일주일을 손놓았을 만큼 가족의 슬픔은 컸다. 서울대 음대 출신의 첼리스트였던 미망인 제수씨(장정자)에게 현대학원(현대고)을 경영토록 했다. 지금도 현대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장정자씨는 남북이산가족 상봉때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로 남한측 방문단장을 맡았었다. 장홍선 전 극동도시가스 회장의 누나다. 신영씨는 1남1녀를 두었다. 아들 몽혁씨는 32살의 젊은 나이에 현대정유(현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로 취임해 인천정유(구 한화에너지)를 인수하고 오일뱅크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등 두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외자유치와 함께 2002년 전문경영인에서 물러나 그 해 건축자재 유통회사 ‘에이치애비뉴앤컴퍼니’를 설립해 돌아왔다. 부인 이문희씨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동원 이홍근 선생의 손녀이다. 사업가이자 문화재 수집가였던 동원 선생은 평생 모은 문화재 4941점을 198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딸 일경씨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블룸버그대학 회계학과 교수인 남편 임광수씨와 함께 미국에서 살고 있다. ●‘리틀 정주영’이 이끄는 KCC 막내동생인 상영씨는 ‘불에 타지 않는 바닥재’ 등으로 유명한 자재 전문그룹 KCC를 이끌고 있다.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성격 등이 고 정주영 회장을 가장 많이 닮아 ‘리틀 정주영’으로 불린다. 큰형과 나이 차이가 21살이나 나 아버지처럼 따랐다. 장조카 몽구씨와도 2살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또 다른 조카인 고 정몽헌 회장이 자금난에 몰렸을 때 200억원을 선뜻 내놓았을 만큼 의리도 강하다. 그러나 조카의 죽음 이후 현정은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면서 다소 빛이 바랬다. 그룹 경영은 두 아들에게 맡긴 상태다. 큰아들 몽진씨가 대표이사 회장, 둘째아들 몽익씨가 대표이사 부사장이다. 셋째아들 몽열씨는 계열사인 금강종합건설 사장을 맡고 있다.KCC는 몽익씨를 통해 롯데·한진그룹과 사돈으로 연결된다. 몽익씨의 부인 은정씨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외조카(신 회장의 여동생인 정숙씨의 딸)이다. 은정씨의 언니 은영씨는 한진해운 조수호 회장의 부인이다. 몽익씨와 조 회장이 동서지간인 셈이다. ●현대가의 여자들 현대가의 딸이나 며느리들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화여대(정경희-이양자-현정은-김혜영-정유희 등) 출신에 해외유학(김영명-정지선-황서림-허승원 등)까지 다녀온 재원들이 적지 않지만 경영에 참여하거나 대외활동에 나서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다못해 남편을 따라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드물다. 유일한 경영자인 현정은씨도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전업주부’였다. 오너 일가를 가까이서 들여다본 한 관계자는 “지금도 명절 때면 청운동 집(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오랫동안 살던 집)에 몇 대에 걸친 며느리들이 모두 모여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음식을 직접 장만한다.”면서 “옷차림들도 수수하고 인상이 소박해 언뜻 봐서는 재벌가 며느리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한결같이 미인들이다. 어떤 이는 그 이유를 ‘유난히 많은 연애결혼’에서 찾는다. ●그룹분리 가속화시킨 ‘경영권 분쟁’ 2000년 ‘형제간 다툼’은 현대가를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핵분열시킨 결정적 계기였다.99년 12월 마지막 날, 고 정몽헌(MH) 회장쪽 인사로 분류되던 박세용 당시 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 정몽구(MK) 회장 계열의 현대차 회장으로 전격 발령나면서 시작된 형제간의 경영권 갈등은 그룹 후계자로 MH를 지목한 고 정주영 회장의 육성 테이프가 공개되기까지 석달여에 걸쳐 숨막히게 전개됐다. 효심이 남달랐던 MK는 아버지의 육성이 공개되자 깨끗이 승복하고 자동차 계열사를 이끌고 그룹에서 나왔다. 이 과정에서 아픔도 적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현대의 지배구조를 선진화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는 21일 왕 회장의 4주기에 모처럼 형제들 모두가 함께 제사를 지낼 예정이다. 이날은 공식적으로 가족화합이 됐음을 안팎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현대가에 정통한 소식통은 전했다. hyun@seoul.co.kr ■ 정주영 회장의 ‘빈대론’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은 ‘해당화가 찬란하고 눈(雪)이 많은’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에서 1915년 6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죽어라고 일해도 콩죽을 면할 길이 없는 농군이 진절머리나게 싫고 지겨워”(첫번째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소학교를 졸업한 열네살 무렵부터 줄기차게 가출을 시도했다. 무작정 길을 나서 보기도 하고, 아버지의 소 판 돈을 훔쳐도 봤다. 그러기를 네번째. 열아홉살 마지막 가출에 성공해 인천부두 막노동꾼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한 푼이 아까워 몸을 기댔던 곳이 노동자 합숙소. 뼈가 으스러지는 중노동으로 누가 떠메고 가도 모를 만큼 고단했지만 좀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빈대들의 공격 때문이었다. 궁리 끝에 밥상 위에 올라가 잠을 잤다. 빈대들의 공격이 잠시 뜸해지는 듯싶었다. 하지만 이내 밥상다리를 타고 기어올라와 온 몸을 물어 뜯었다. 다시 머리를 써야 했다. 무릎을 탁 칠 만한 묘안이 떠올랐다. 밥상다리 네 개를 물 담은 양재기 넷에 하나씩 담근 뒤 그 위에 올라가 잔 것이다. 빈대를 밥상다리로 유도해 양재기 물에 익사시키자는 계략이었다. 쾌재를 부른 것도 이틀여. 빈대들은 또다시 물어뜯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양재기 물을 건넌 것일까.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불을 켜본 젊은 정주영 회장은 기겁을 하고 말았다. 빈대들이 밥상다리 대신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 사람을 겨냥해 뚝 떨어져 목적 달성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역경에 부딪칠 때마다 정주영 회장은 ‘빈대의 노력’을 떠올렸다.“난관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이지, 걸려 넘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든지 “빈대만도 못한 놈”이라는 단골 지청구는 모두 여기서 비롯됐다. 아무것도 없는 백사장(울산 염포리)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조선소 투자금액을 유치할 때나,20세기 최대 역사(役事)로 꼽히던 중동 주베일 공사 입찰전에 뛰어들 때나, 직원들이 불가능하다고 도리질칠 때면 “이봐, 해봤어?”라고 불호령을 쳤던 것도 빈대의 집요한 노력을 떠올리면서였다. “자본가가 아니라 부유한 노동자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했던 정주영 회장은 근검과 노력을 평생의 신조로 삼았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평등한 자본금” “한강에 기적은 없다. 성실하고 지혜로운 노동이 있을 뿐” “고선지부지설(苦蟬之不知雪;여름철 서늘한 나무 그늘에 앉아 노래만 하다 겨울이 오기 전에 없어지는 매미는 한겨울 펑펑 쏟아지는 눈을 알 수 없다)” ‘아산 정주영 어록’에 실려있는 그의 유명한 말들이다. hyun@seoul.co.kr ■ ‘현대家 대모’ 변중석 여사 열여섯살에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여섯살 연상의 고향총각 정주영에게 시집온 변중석씨는 현대가의 산 증인이다. 올해로 84세. 젊어서 남편이 사준 재봉틀 하나를 자신 소유의 유일한 재산으로 여기며 한결같은 근검과 후덕함으로 ‘현대가의 여자’라는 상징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고 정주영 회장이 매일 새벽 5시의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동생들과 자식들에게 근검을 가르쳤다면, 변씨는 새벽 3시반부터 손아래 동서·며느리들과 아침 준비를 함께 하면서 “언제나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겸손하라.”고 일렀다. 가혹하리만치 자식 교육에 엄격했던 정주영 회장이 아이들을 자가용으로 등교시키는 며느리들을 보고 “젊었을 때 콩나물 버스에 시달려봐야 나중에 자가용을 샀을 때의 기쁨을 안다.”며 역정을 내자 “손주녀석들 키우는 문제에까지 시아버지가 잔소리를 할 거냐.”며 막아준 이도 변씨였다. 칭찬에 인색했던 정주영 회장도 아내를 가리켜 “늘 통바지 차림에 무뚝뚝하지만 60년을 한결같고 변함이 없어 존경한다.”고 자서전에서 고백했을 정도다.“아내를 보며 현명한 내조는 조용한 내조라는 생각을 굳혔다.”고도 했다. 그러나 자식을 먼저 땅에 묻는 참척의 고통과 여자로서의 마음고생을 거치면서 ‘살아있는 보살’도 탈이 났다. 거동이 불편해 10년 가까이 병원(현대아산병원) 생활을 하고 있다. 사실상 맏며느리인 이정화씨 등 며느리들이 틈날 때마다 병실을 들여다보고 있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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