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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전 관저동서 큰 불로 11명 부상···“여성 라커룸서 발화”

    대전 관저동서 큰 불로 11명 부상···“여성 라커룸서 발화”

    19일 오후 3시 23분쯤 대전시 서구 관저다목적체육관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났다. 이 불로 현장 근로자 박모(43)씨가 중상을 입고 김모(51·여)씨 등 근로자 10명이 다쳐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연기를 흡입한 근로자가 많아 부상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불은 지하 1층 수영장 여자 탈의실에서 시작됐다. 오는 12월 준공하는 이 건물은 연면적 4907㎡에 지하 2층 지상 3층 규모로 화재 당시 근로자 39명이 투입돼 건물 안팎의 마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불이 나자 소방당국은 헬기, 소방차 등 장비 59대와 인력 369명을 동원해 진화에 나섰으나 페인트와 마감재 등이 많이 쌓여 어려움을 겪었다. 당국은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휴대전화로 재난문자를 보내 인근 주민의 긴급 대피를 당부했다. 주민들은 건물 전체로 불이 번져 시커먼 연기가 치솟고 폭발음이 계속되자 놀라 대피했다. 불은 이날 오후 5시쯤 잡혀 잔불 정리가 진행되고 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공사 관계자와 근로자 등을 상대로 정확한 화재 원인 및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혁명의용군 조작 사건, 해방 후 친일파 군부 보호의 신호탄이었다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혁명의용군 조작 사건, 해방 후 친일파 군부 보호의 신호탄이었다

    지난 5월 4일 ‘일베’ 게시판에는 이런 제목의 ‘뉴스’가 떴다. “탁현민 뒤를 졸졸 따라다닌 육사 교장 김완태(중장)/백선엽 장군 기념관 없애.” 출처는 박근혜 인터뷰로 유명한 ‘정규재TV’로 돼 있었다.“육군사관학교가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기념 비석을 빼서 야산에 방치” “박근혜 대통령 기념 물건 모두 폐기” “백선엽 장군 기념관 없애고” “육사의 기원은 조선 독립군이라 역사 바꾸며” “탁현민(청와대 행정관) 방문 때 3성 장군(김완태 육군사관학교 교장)이 뒤를 졸졸”. 육사총동창회(회장 김병관)는 감사단을 편성해 육사로 ‘파견’했다. 이른바 감사단은 육사 안 교회에 진을 치고 김완태 교장을 비롯해 관계자들을 오라 가라 하며 따졌다. 당시 무자격 감사단의 강짜가 얼마나 심했던지 교회가 이들에게 ‘퇴거’를 요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확인 결과 소문은 모두 가짜였다. 그러나 김완태 교장은 지난 5월 말 결국 경질됐다. 수도군단장 시절, 훈련 중 물의를 빚은 예하 부대의 노모 중령에 대해 경징계를 찾아내 집요하게 문제 삼은 결과였다. 이들의 회를 뒤집은 것은 육사의 기원 문제. 김 교장은 육사의 정통성을 신흥무관학교나 임시정부 육군무관학교 등 독립군의 전통 속에서 새로이 세우려 했다.육사는 지금까지 그 뿌리를 미군정(美軍政)이 설립한 남조선경비사관학교에 두었다. 이 학교의 전신은 미군정 군사영어학교. 육사가 이렇다 보니 국군 역시 연원을 미군정이 설립한 남조선국방경비대에 두었다. 1946년 1월 15일에 출범한 경비대는 군사영어학교 출신 장교 110명으로 출범했다. 이 가운데 87명은 일본군 출신, 21명은 일본의 괴뢰국 만주군 출신이었다. 1, 2대 사령관은 일본군과 만주군 장교였던 이형근과 원용덕이었다. 이형근의 장인 이응준(일본군 육군 대좌 출신)은 미군정 군사 고문이었다. 미군정은 1946년 말 통위부장(미군정기 국방장관)과 경비대사령관을 유동렬(광복군 총참모장)과 송호성(광복군 훈련처장) 등 독립군 출신으로 교체했다. 독립군을 우대한 것이 아니라 여론 때문이었다. ‘이게 일본군이지 대한민국 군대인가!’ 제1연대에선 “이 따위 경비대 해산시켜라. 빨갱이 노랭이 같은 놈 몰아내라”며 소요사태가 벌어졌다. 놀란 이응준은 미군정에 수뇌부를 광복군 출신으로 임명하자고 제안했다. 유동열·송호성 체제는 서둘러 독립군 출신을 특임 장교 형태로 충원했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다. 경비대의 뼈대는 이미 일본·만주군 출신 장교들이었다. 정부 수립 후엔 이런 노력마저 제동이 걸렸다. 초대 국방장관이 광복군 제1지대장 이범석이었지만 그는 김구와 각을 세우고 있었다. 광복군 출신은 대부분 김구 계열이었다. 그는 초대 총참모장에 이응준, 육군사령관에 이형근을 앉혔다. 이들에게 김구 계열의 광복군 출신들은 눈엣가시였다. 광복군 출신들은 친일파 청산을 물고 늘어졌다. 게다가 제헌국회가 1948년 9월 22일 반민족행위자처벌특별법을 제정, 공포했으며, 10월 22일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반민특위)를 설치했다. 총참모장, 육군사령관 등 핵심 간부는 형사처벌을 당하거나 경질돼야 했다. 조병옥, 장택상 등이 장악하고 있던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특별법 공포 후 6일 뒤인 9월 28일 독립군 출신의 14연대장 오동기 소령이 체포됐다. 사흘 뒤 최능진 전 경무부 수사국장 등이 체포됐다. 10월 5일자 도하 각 신문엔 이런 경찰 발표가 실렸다. “1일 오후 3시경 최능진, 서세충, 김진섭 등이 수도청 형사대에 체포됐다. 지난해 11월경부터 국군 소령 오동기 등과 공모하여 국방군속에 혁명의용군을 조직하고 현정부를 붕괴시키려 한 바, 군자금으로 15만원을 제공한 혐의라 한다.” 해방 후 첫 조작사건인 ‘혁명의용군 사건’이다. 친일 군부와 경찰이 합작한 ‘숙군’의 신호탄이었다. 그 칼날은 정치권까지 겨냥하고 있었다. 오동기는 항일전선에 투신했던 독립군 지휘관이었다. 그는 경비대 감찰총감직에 있으면서 군내 일본군 출신 장교들의 부패를 단호하게 처리하려 했다. 상층부와 사사건건 마찰을 빚다가 결국 야전으로 밀려났다. 좌익에 대해서도 단호했다. 14연대장 시절, 김지회 중위를 요시찰 인물로 찍어 작전과장에서 포병중대장으로 전보시켰다. 반란을 주도한 인물이다. 최능진은 일제 치하에서 2년간 복역한 독립운동가로 해방 후 소련군의 압박을 피해 월남했다. 미군정 경무부 수사국장으로 경찰 내 친일파 청소를 주장해 친일경찰의 대부 조병옥 경무부장, 장택상 수도청장과 마찰을 빚었다. 두 사람은 노덕술, 이익홍, 최연, 최운하, 김정빈, 김홍걸, 백원교, 박경후 등 일제의 조선인 악질 경찰관들을 요직에 앉힌 터였다. 최능진은 10·1 대구사건을 계기로 미군정 당국에 조병옥과 장택상의 처리를 요구하기도 했다. 5·10선거 때는 동대문 갑구에 입후보한 이승만을 낙선시키기 위해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려다 정권의 방해로 실패했다. 두 사람은 군과 경찰의 상징적 민족주의자였다. 그 둘을 좌익과 연계한 내란음모 사건의 주동자로 엮은 것이다. 10월 19일 14연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21일 이범석 국무총리는 이 사건을 공산주의자가 극우 정객들과 결탁해 일으킨 반국가적 반란이라고 규정했다. 이튿날 김태선 수도청장은 ‘혁명의용군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주모자 최능진, 오동기, 서세충, 김진섭 등이 남북 노동당과 결탁해 (그들이) 숭배하는 정객을 수령으로 공산정부를 수립하려는 것으로 …이번 여수 사건을 야기했다.” ‘극우 정객’이란 김구였다. 이후 군과 경찰 친일파들은 반민특위 무력화와 군내 민족주의 계열 제거에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이승만은 물론 광복군 출신의 이범석 총리가 지원사격을 하고 있었으니, 거칠 게 없었다. 만주특설대 출신의 백선엽 국장의 지휘 아래 육군 정보국은 1949년 7월까지 전체 국군의 10%에 이르는 4700여명을 제거했다. 이 중에는 좌익 외에 광복군, 학병 출신 등 친일파를 혐오하는 중간계열이 광범위하게 포함돼 있었다. 심지어 송호성 사령관도 끼어 있었다. 처형된 장교 중 김종석, 오일균, 최남근 등은 일본군 장교 출신이지만, 중간계열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김종석, 오일균은 미 군사고문관 하우스만이 구명에 앞장설 정도로 유능한 인재였다. 그러나 ‘진짜 남로당원’ 박정희가 일관되게 두 사람을 군내 좌익 책임자로 몰아 구할 수 없었다. 그때 박정희에게 ‘스네이크(독사) 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14연대장이었던 최남근은 반란군에 잡혀 고초를 겪다가 탈출했지만, 다시 진압작전에 나서라는 요구에 ‘동족에게 총을 쏠 수 없다’며 거부했다. 이들은 형장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죽었다. 군내 숙청이 정리되면서 군은 정치권을 정조준했다. 육군 헌병대는 1949년 5월 이른바 ‘국회프락치 사건’을 수사했다. 친일파 처단을 앞장서 주장해 온 소장파 10여명을 국제공산당 프락치로 몰아 처벌했다. 국회가 얼어붙자 경찰은 6월 6일 반민특위를 습격해 특경대를 무장해제했다. 이승만은 10일 반민특위 해체를 명했다. 13일 채병덕 육군참모총장은 “군은 대한민국의 발전을 저해하는 일체의 파괴행동에 대해 용서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군의 정치개입 선언이었다. 그로부터 13일 뒤 육군 정보국 소속 포병 소위 안두희는 김구를 암살했다. 이른바 ‘숙군’의 대단원이었다. 당시 수사본부장으로 헌병대 실세는 일제 치하에서 조선인으로서 경찰 최고직위에 올랐던 전봉덕이었다. 의열단 출신에 중국군 상위였던 장흥이 사령관이었지만 실권이 없었다. 장흥은 김구 암살 다음날 경질됐다. 잔불 정리만 남았다. 이범석은 ‘숙군’에 앞장섰지만, 순망치한의 화를 자초했다. 광복군 계열이 정리되자 그의 사조직 대한민족청년단(족청)도 이승만의 압박으로 해체되면서 국방장관에서 밀려났다. 전쟁 발발 이후 내무장관으로 기용돼 ‘부산정치 파동’에서 크게 이용당한 뒤 결국 ‘팽’당했다. 이른바 ‘숙군’으로부터 70년 뒤, 군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려는 작업이 육사에서 시도됐다. 그러나 불과 7개월여 만에 지휘관은 정치적으로 ‘저격’당했다. 더러운 ‘숙군’의 칼날은 여전히 자주와 독립을 겨냥한다. 논설고문 kbc@seoul.co.kr
  • 안양 삼성산 불…헬기 4대 투입해 7시간만에 큰 불 진화

    안양 삼성산 불…헬기 4대 투입해 7시간만에 큰 불 진화

    안양 삼성산에서 불이 나 소방당국이 7시간여 만에 큰 불을 잡았다. 지난 18일 오후 11시 59분 경기도 안양시 삼성산 천인암 부근 8부 능선에서 불이 났다. 산 중턱에서 야간에 발생한 불로 소방당국은 19일 날이 밝자마자 산림청 등과 함께 150여 명과 헬기 4대 등 장비 15대가량을 투입해 이날 오전 7시 2분 큰불을 잡았다. 이 불로 산림 0.5ha가 불에 탔으며 소방당국 등은 잔불을 정리가 끝나는 대로 화재 경위를 조사할 예정이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美캘리포니아 산불, 서울 절반 이상 ‘잿더미’…70세 할머니, 어린 증손주 구하려다 참변

    美캘리포니아 산불, 서울 절반 이상 ‘잿더미’…70세 할머니, 어린 증손주 구하려다 참변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속 한 소방관이 29일(현지시간) 일주일 전 자동차 화재로 발생한 산불 ‘카 파이어’로 잿더미가 된 캘리포니아 샤스타 카운티 지역에서 잔불을 확인하고 있다. 미 국립기상청에 따르면 최고 시속 80㎞의 돌풍을 타고 ‘화염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빠르게 확산한 불길은 이날까지 323㎢의 산림과 시가지를 태웠다. 서울시(605㎢) 면적의 절반 이상이 타들어간 것이다.화재 진압에 나선 레딩소방서 소속 대원과 사설 불도저 운전자가 화재 진압 도중 숨지고, 70세 여성 멜로디 블레드소가 어린 증손주 두 명을 구하려다 함께 참변을 당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번 화재로 지금까지 최소 8명이 숨졌다. 레딩 AFP 연합뉴스·NBC 뉴스 캡처
  • ‘인천 화재’가 커진 이유는?… “사람 키 두배 만큼 쌓인 고무매트 때문”

    ‘인천 화재’가 커진 이유는?… “사람 키 두배 만큼 쌓인 고무매트 때문”

    인천 서구의 한 합성수지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이유는 사람 키의 두배 만큼 쌓인 고무매트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인천소방본부는 17일 이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는 고무발표수지류에 불이 옮겨 붙으면서 급격하게 확산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 공장은 포장 완충재, 보온 단열재 등을 만드는 곳으로 원료가 되는 고무발포수지류 등을 공장 내부에 적재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화재 진압에 나섰던 한 의용소방대원은 “형형색색의 고무 매트가 사람 키 두배 정도로 공장 주변에 곳곳에 쌓여 있었다”며 “이 매트가 특히 불에 잘 타는 성질이어서 급속도로 불길이 번졌고, 열기로 인해 진화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진화 당시 공장 곳곳에 천막이 쳐진 작업 공간이 마련돼 있어 방화 구획이 없었고, 건물간 이격거리도 협소했던 점도 불을 키운 원인으로 지목됐다. 소방 관계자는 “도로 곳곳에 상당한 높이로 고무 매트가 쌓여 있는데다, 공장 내부 곳곳에 설치된 작업공간 때문에 더 빠르게 불이 번진 것”이라며 “이 탓에 소방차 진입에도 어려움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불은 전날 오후 11시40분 발생해 공장 건물 전체 4개동(3866㎡) 중 3개동을 태웠으며 나머지 1개동(기숙사)과 인근의 가구·금속가공 공장 일부를 태웠다. 당시 기숙사에 외국인 노동자 등 5명이 있었으나, 긴급 대피시켜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은 화재 발생 4시간 만인 17일 오전 3시43분께 큰 불길을 잡았다. 하지만 화재 구역이 광범위해 대응 1단계를 유지한 채 잔불을 정리하며 정확한 화재 원인과 피해규모를 조사하고 있다. 소방 관계자는 “공장 직원들이 작업하던 도중 공장 외부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을 봤다는 진술을 확보해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물과 닿으면 폭발우려” 김포 폐알루미늄가루 창고 화재 이틀째 진화중

    경기 김포소방서는 지난 3일 오전 5시 54분쯤 통진읍 가현리 폐알루미늄 가루 보관창고에서 불이 나 이틀째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4일 밝혔다. 이 불로 486㎡ 규모인 조립식 샌드위치 패널 창고가 일부 타 소방서 추산 566만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다행히 창고에 사람이 없어 인명 피해는 없으나 인근 주민들이 매연과 악취로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불이 붙은 알루미늄가루는 물과 닿으면 폭발할 수 있어서 물을 뿌리지 못하고 대신 모래로 불길을 잡느라 진화가 늦어지고 있다. 소방당국은 현재 포클레인과 트럭을 동원해 진압중으로 창고의 큰불은 꺼지고 잔불을 정리하고 있다. 김포소방서는 잔불까지 모두 잡히면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인천항 선박 화재, 차량 1500대 태우고 3일째 진화작업

    인천항 선박 화재, 차량 1500대 태우고 3일째 진화작업

    소방당국이 인천항에 정박 중인 화물선에 난 불을 3일째 끄고 있다. 선박에 실린 중고차 1500여대가 태운 불은 23일 새벽부터 잦아들고 있다.인천소방본부에 따르면 21일 오전 인천 중구 인천항 1부두에 정박해 있던 파나마 국적 화물선 오토배너호(5만 2224t급)에서 화재가 발생한 이후 소방당국은 이틀 연속 밤샘 진화작업을 벌이며 완전 진화에 주력했다. 그러나 화물선 규모가 워낙 큰 데다 선박 내부 연기와 열기가 거센 탓에 진화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소방당국은 이틀간 선박 측면 10mm 두께의 강판에 가로·세로 1m 크기의 구멍 13개를 뚫어 연기와 열기를 배출했다. 또 선체 열기를 식히기 위해 선박 최상층 갑판에 고압 방수작업을 하고 펌프차로 평형수 200t을 급수하며 선박 균형을 유지했다. 구조대원 60명을 5개 조로 나눠 한 번에 선수와 선미를 통해 각각 6명씩 투입해 화물선 내부에서도 진화작업을 벌였다. 소방당국은 화재 발생 사흘째인 이날 오전 현재 그동안 화물선 내부에서 발생하던 거센 연기가 거의 잦아든 것으로 보고 곧 완전히 진압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서장은 현장 브리핑에서 “거의 진압이 완료됐다”며 “방화선을 구축한 선박 9층 이하로는 화재 피해가 없었고 9층부터 12층 갑판까지는 불이 완전히 꺼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13층 갑판 선미 쪽에 아직 불이 남아 있다”며 “선박 내부에 300도가 넘는 열을 빼낸 뒤 모든 소방대원을 투입해 잔불까지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화재는 이달 21일 오전 9시 39분 인천시 중구 항동 7가 인천항 1부두에 정박해 있던 오토배너호에서 중고차 선적 작업 중 발생했다. 이 불로 화물선에 선적된 중고차 2438대 중 선박 11∼13층에 있던 차량 1천460대가 모두 탔다. 화재 첫날 5000여개의 타이어가 타면서 발생한 검은 연기가 남동풍을 타고 10km 떨어진 연수구·남동구 일대까지 퍼져 고통을 호소하는 200여건의 민원이 접수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호준의 시간여행] 보리 서리, 그리고 성냥의 추억

    [이호준의 시간여행] 보리 서리, 그리고 성냥의 추억

    천지간에 봄이 깊숙이 들어앉았다. 남도로 가는 길, 황토까지 푸르게 덧칠한 보리들이 우쭐우쭐 키를 재고 있다. 성급한 눈에는 곧 이삭이 패고 누렇게 익어 갈 것 같다. 보리만큼 많은 추억을 품고 있는 단어도 드물 것이다. 세월이 흐르니 보릿고개나 보리 서리라는 말조차 정겹다. 풍경을 그려 보는 것만으로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채 여물지도 않은 보리를 몰래 잘라다 짚불에 익혀 손으로 비벼 먹던…. 그걸 보리 서리라고 했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던 시절이었다. 보리 서리는 놀이이기도 했다. 불장난만큼 재미있는 놀이가 있을까. 겨울에 쥐불놀이를 하든, 늦봄에 보리 서리나 밀 서리를 하든 성냥은 필수 도구였다. 성냥이 귀한 시절에도 아이들은 어떻게든 하나쯤 갖고 싶어 했다. 불장난을 하다가 불을 내는 경우도 많았다. 논둑에 놓은 불이 산불이 되기도 했고 심지어 집 한 채를 홀라당 태운 아이도 있었다. 그렇게 위험을 품고 있었지만, 성냥은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다. 인류와 오랫동안 함께했다고는 해도 부싯돌이 어찌 성냥을 따라갈까. 특히 불씨를 보존하는 것이 미덕이었던 이 땅의 여인들에게 성냥의 등장은 복음이었을 것이다. 최초의 성냥은 1827년 영국의 J 워커가 염소산칼륨과 황화안티몬을 발화 연소제로 써서 만든 마찰성냥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1880년 개화승(開化僧) 이동인이란 이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가져온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성냥이 들어왔다고 백성들이 바로 혜택을 볼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한일합병 후 일제가 인천에 ‘조선인촌’(朝鮮燐寸)이라는 성냥 공장을 세우고 대량 생산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보급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제는 수원·군산·부산 등에도 성냥 공장을 세웠는데, 조선인들에게는 제조법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그렇게 시장을 독점하고 성냥 한 통 값이 쌀 한 되 값과 맞먹을 정도로 비싸게 팔았다. 아무리 비싸도 편리함에 익숙해진 이상 성냥은 외면할 수 없는 필수품이었다. 1970년대까지도 시골에서는 등잔불을 켜거나 밥을 짓기 위해 성냥이 반드시 필요했다. 담배 역시 성냥이 없으면 피우기 어려웠다. 성냥 공장들은 한때 최고의 호황 산업으로 각광받았다. 지역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게 성냥 공장이었다. 유엔·아리랑·향로·기린표·새표·복표·야자수·대한·비사표·제비표·두꺼비표·토끼표…. 성냥의 종류도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았다. 하지만 세월의 심술은 성냥이라고 비껴가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누구도 찾지 않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굳이 성냥의 위상이 추락하게 된 시기를 따지자면 1980년대 후반부터였을 것이다. 궁벽한 곳까지 전기가 들어가고 전기밥솥에 가스레인지, 전자레인지까지 등장하면서 점차 찬밥 신세가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값싼 1회용 라이터가 쏟아져 나오면서 담뱃불을 붙일 때마저 외면받게 되었다. 성냥이 그렇게 생활공간에서 퇴장하면서 이제는 구경조차 어려운 물건이 되었다. 마당에 미루나무들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수백 명의 직원이 일하던 성냥 공장도 하나둘 문을 닫았다. 요즘은 어느 산골 외딴집 쇠죽 쑤는 부뚜막에서나 구경할 수 있을까. 성냥이 다시 부엌으로 돌아올 날은 영영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냥과 함께했던 기억은 여전히 멀지 않은 곳에 머물고 있다. 보리 서리의 추억을 엊그제 일처럼 간직한 세대가 살아 있는 한….
  • 연천 DMZ 이틀째 산불…진화헬기 일몰로 철수

    연천 DMZ 이틀째 산불…진화헬기 일몰로 철수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두현리 비무장지대(DMZ)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 진화작업이 21일 재개됐으나 오후 7시 12분쯤 일몰로 중단된 상태다. 산림 당국은 이날 오전 6시쯤 산림청 진화헬기 5대를 두현리 산불 현장에 투입하려 했지만, 안개로 인해 오전 8시가 조금 넘어 투입했다. 연천군 관계자는 “밤사이 바람이 잦아들면서 불이 크게 번지지 않았지만, 비무장지대로 인력 투입이 어렵고, 이날 오전 11시부터 다시 바람이 불면서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큰불은 오후 3시 40분쯤 잡혔으며 산림청 헬기 2대가 일몰로 철수 때까지 잔불 정리에 집중했다. 이에 앞서 20일 오후 4시 30분쯤 경기 연천군 백학면 비무장지대 야산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산불이 발생했다. 불은 임야 약 20㏊를 태우고 약 2시간 반 만에 초기 진화는 마무리됐다. 민통선 지역으로 불이 번지지는 않아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남방한계선 북쪽인 DMZ로는 원래 접근이 제한된다. 하지만, 군부대 측 헬기 인도에 따라 소방당국은 전날 산림청 헬기 3대를 동원해 불을 끄다 오후 7시쯤 일몰로 헬기는 철수했다. 또 장비 22대와 인력 180여 명이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민통선 지역 주변에서 대기 중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양양 산불, 3㏊ 태우고 진화 완료

    양양 산불, 3㏊ 태우고 진화 완료

    강원 양양군 현북면 잔교리에서 발생한 산불이 20일 오전 완전히 진화됐다.산림당국은 387명의 진화인력과 41대의 장비를 동원, 오전 4시 10분쯤 주불을 진화한 데 이어 오전 7시쯤 진화를 완료하고 뒷불감시 중이라고 밝혔다. 오전 5시 44분쯤는 일출과 동시에 산림청 2대, 군 4대, 소방 1대, 임차 1대 등 진화헬기 9대를 산불 현장에 대거 투입, 진화 및 감시를 벌였다. 산림 당국은 임야 3㏊가 불에 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뒷불감시와 함께 정확한 피해면적과 화재원인을 조사할 방침이다. 양양 산불은 전날 오후 7시 30분쯤 발생했다. 진화인력 358명과 소방펌프 등 장비 21대를 투입, 진화에 나섰으나 날이 어두운 데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 어려움을 겪었다. 불이 골짜기를 타고 번지면서 전날 오후 11시 30분쯤 인근 마을 주민 3명이 한 때 잔교리 마을회관으로 대피하기도 했다. 산림 당국 관계자는 “진화인력이 현장에 남아 잔불 정리를 철저히 할 것”이라며 “현재 건조한 날씨와 강한 바람이 지속하고 있는 상태로 산불위험이 큰 상황이어서 불씨 취급 등에 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동부전선 비무장지대 북측 구역에서 발생,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남하한 산불 진화작업도 재개됐다. 일출과 동시에 산림청 헬기 4대가 투입돼 진화 중이며, 현재까지 군 피해 상황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무장지대 산불은 18일 오후 4시경 북측 구역에서 관측된 이후 바람을 타고 번졌다. 군은 군사정전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19일 오후 4시부터 산림청 헬기를 투입, 진화작업을 벌여 80%를 진화한 상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고성 산불…축구장 면적 56배 잿더미

    고성 산불…축구장 면적 56배 잿더미

    28일 오전 6시 19분쯤 강원 고성군 간성읍 탑동리 야산에서 발생한 불이 막대한 피해를 내고 오후 5시 30분쯤 진화됐다. 북서풍이 초속 10m 이상 불면서 불길이 가진리·공현진리 등으로 확산돼 화선이 5㎞에 달했다. 축구장 면적의 56배에 달하는 산림 40㏊가 잿더미가 됐고, 주택 5채 등 건물 17채가 소실됐다. 주민들은 고성종합체육관 등으로 대피했고, 7개 학교는 휴업하거나 단축 수업을 했다. 산림청 등은 산불 진화에 산림청 소속 23대를 포함해 헬기 40대와 인력 2446명, 진화차와 소방차 등 장비 99대를 투입했다. 강원도와 고성군은 잔불 진화와 뒷불 감시 체계로 전환했다. 서울신문 독자 김현기씨 제공
  • 새벽 광주 의류 창고서 불…인명피해 없어

    23일 오전 3시쯤 경기 광주시 초월읍의 한 1층짜리 의류 보관 창고에서 불이 나 출동한 소방관들에 의해 3시간 20여 분 만에 진화됐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불이 의류 창고 옆 1층짜리 커피 보관 창고로도 옮겨붙으면서 총 2개 동이 모두 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은 소방관 48명과 펌프차 등 장비 27대를 동원해 오전 3시 30분쯤 큰 불길을 잡았지만 창고 내부에 보관된 물품이 많아 잔불 정리에 어려움을 겪었다. 소방당국은 목격자 등을 토대로 정확한 피해 규모와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이호준의 시간여행] 등잔, 흐린 불빛 속에 담긴 추억

    [이호준의 시간여행] 등잔, 흐린 불빛 속에 담긴 추억

    가끔은 시간을 거슬러 오르고 싶을 때가 있다. 눈코 뜰 새 없는 일상에 치여 느리게 흐르던 시절이 간절하게 그리울 때가 특히 그렇다. 그런 때는 문명과 떨어져 있는 오지로 떠나거나 오래된 것들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벼룩시장에 갔다가 하얀 사기 등잔을 발견했다. 등잔대와 함께 진열돼 있었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아 등잔만 사 왔다. 그날 밤 등잔에 불을 붙이고 집안의 모든 불을 껐다. 처음에는 어둠이 무척 낯설더니 차차 눈에 익으면서 안온해지기 시작했다. 조금 지나자 아련한 불빛 속에서 추억이 하나 둘 걸어 나왔다. 내가 전등불을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전기가 설치되고 누군가 스위치를 올렸을 때, 팟! 하고 눈을 찌를 듯 달려들던 불빛. 둔기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전기를 만나기 전까지의 밤은 장난감을 숨겨 둔 뒷산의 작은 굴처럼 적당한 은밀함이 있었다. 땅거미가 물고 와 마당을 지나 토방, 마루를 거쳐 방으로 들어서는 어둠은 뒤춤에 설렘을 동반하고는 했다. 등잔불을 켜도 그 설렘은 여전히 방 안에 머물렀다. 하지만 전깃불 아래서는 아무것도 감출 수 없었다. 등잔불이란 게 그랬다. 아무리 심지를 돋워도 어느 정도 이상의 빛을 내어주진 않았다. 그을음만 신경질적으로 뿜어낼 뿐이었다. 등잔이 특별히 인색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져 있었다. 과도함은 부족함만 못하다는 걸 몸으로 가르쳤다. 시인 도종환이 그의 시 ‘등잔’에서 ‘심지를 조금 내려야겠다/내가 밝힐 수 있는 만큼의 빛이 있는데/심지만 뽑아올려 등잔불 더 밝히려 하다/그으름만 내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잠깐 더 태우며 빛을 낸들 무엇하랴 /욕심으로 타는 연기에 눈 제대로 뜰 수 없는데’라고 읊었듯이 인간에게는 등잔불빛 정도가 적절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밤하늘의 별도 제 빛으로 반짝이고, 달도 환하게 빛나고, 반딧불도 소중해 보였을 것이다. 전기가 등장하면서 밝음을 얻은 대신 무언가 잃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것 중 하나는 꿈도 있었을 것이다. 등잔불만 있던 시절 어머니는 그 불빛 아래서도 문제없이 바느질을 했다. 어머니가 등잔불 아래서 꿰맨 옷은 재봉질을 한 것처럼 한 땀 한 땀 간격이 똑 같았다. 우리 형제들도 흐린 등잔불 아래서 밥을 먹고 숙제를 하고 연도 만들고 딱지도 접었다. 그래도 공책 안의 글씨들은 제법 반듯했고 연도 하늘을 펄펄 날았다. 등잔불과 함께 싹튼 꿈도 쑥쑥 자랐다. 전기가 안 들어가는 곳이 거의 없는 지금 등잔불을 보기란 쉽지 않다. 사냥꾼의 총에 넘어져 박제로 걸린 짐승처럼 생명 잃은 등잔들이 박물관이나 카페의 장식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시절을 산 사람들의 가슴속에 희미한 빛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 기억 속의 등잔은 내게 항상 말한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어둠 속에 있어 더욱 소중한 것들도 많다는 걸 기억해라.” 등잔을 사 와 불을 켜던 날, 늦도록 불을 끄지 못하던 할머니와 먼 길을 떠났다가 그 흐린 불빛을 등대 삼아 집으로 돌아오던 아버지도 추억 속에서 걸어 나왔다. 두 분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등잔도 지난 시간 속에 잠긴 지 오래지만, 어둠 속에서 꿈을 그리던 시절은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반짝거리고 있었다.
  • 가뭄·한파·강풍 전국이 ‘화약고’

    가뭄·한파·강풍 전국이 ‘화약고’

    ‘한파·강풍·가뭄’이 이어지면서 최악의 산불 위험 상황을 맞고 있다. 바짝 말라버린 산하는 작은 불씨에도 산불로 확산될 수 있는 ‘화약고’로 돌변했다. 더욱이 다발성 산불 발생 시 자칫 재난으로 번질 수 있기에 산불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19일 산림청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8일 현재 112건의 산불로 209.6㏊의 산림이 사라졌다. 지난해 같은 기간(61건, 7.79㏊)뿐 아니라 최근 10년 평균(51.5건, 37.0㏊)을 크게 웃돈다. 15~18일 설 연휴 기간에도 32건(14.5㏊)이 발생했다. 연휴 첫날인 15일에는 10건이 발생해 2002년(9건) 이후 하루 최다 발생 건수를 기록했다. 1~2월은 산불이 적은 시기라는 점에서 심각한 상황을 대변한다. 2011년 1건, 2015년 1건이던 50㏊ 이상 대형 산불이 올해는 1월 부산과 2월 강원 삼척 등 벌써 3건이나 발생했다. 여건은 좋지 않다. 건조일수가 43일째 이어지고 있는데 2월 강수량이 1.9㎜로 가뭄이 가장 심했던 지난해(2.7㎜)보다 심각하다. 한파와 강풍으로 헬기에서 뿌린 물이 지표면에서 얼면서 지상 진화대원들의 부상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11일 발생한 삼척 산불현장에서는 산불진화대원 13명이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삼척과 구례 산불에서 나타났듯 산마다 두꺼운 낙엽층이 쌓이면서 외연상 꺼진 산불이 재발화해 피해가 커져 잔불 관리에도 주의가 요망된다. 연초부터 잦은 출동에 헬기 운용에 차질마저 우려된다. 헬기는 50·100시간 단위로 정비가 이뤄지는데 진화 중 정비가 이뤄지는 등 산불이 잇따르면서 가동에 비상이 걸렸다. 야간 산불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도 대형 산불 위험성을 높이고 있다. 설 연휴 기간에도 부산을 비롯해 경북 칠곡, 인천 신도리, 경주 산불이 야간에 발화해 진화해 어려움을 겪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포천 왕방산 산불 4시간 만에 잡혀…인명 피해 없어

    포천 왕방산 산불 4시간 만에 잡혀…인명 피해 없어

    포천 왕방산 산불이 4시간 만에 잡혔다.16일 오후 4시 20분쯤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심곡리 왕방산 8부 능선에서 불이 났따. 화재 발생 4시간여 만에 큰 불길은 잡혔으며, 인명 피해는 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진화 작업에는 헬기 등 장비 14대와 인력 33명이 동원됐으며, 현재 잔불 정리 중이다. 시와 소방당국은 정확한 피해 규모와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구례 산불로 주민 대피…“성묘 중 촛불 넘어져 불 붙어”

    구례 산불로 주민 대피…“성묘 중 촛불 넘어져 불 붙어”

    구례 산불로 주민 대피령이 내려졌다.전남도소방본부와 구례군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36분쯤 전남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야산에서 불이 나 최소 3㏊ 이상 임야가 피해를 봤다. 게다가 이날 구례에는 오전 10시를 기해 건조주의보가 내려졌으며 바람이 강하게 불고 산 중이라 차량 접근이 쉽지 않아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소방당국은 소방헬기 13대를 비롯해 화재 진화용 살수차 등 장비 45대를 동원해 진화에 나섰다. 소방대원 64명과 의용소방대원 89명, 공무원 등 총 500여명이 투입됐다. 소방당국을 비롯해 전남지방경찰청, 구례군 등이 재난 문자를 발송하는 등 비상 체제에 나섰다. 특히 불길이 강한 바람을 타고 천은사 방향으로 번지고 연기가 확산되자 주변 마을 주민의 접근 예방 차원에서 대피령이 내려졌다. 구례군청에는 대피 문자를 받은 주민들의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이날 불이 난 지점은 천은사에서 800~900m 떨어진 곳이다. 소방당국은 오후 5시 30분쯤 큰 불길을 잡았으며 6시 30분쯤 95% 이상 진화하고 잔불 정리를 하고 있다. 현재 육안으로는 불씨가 보이지 않지만 소방당국과 산림청 등은 덤불 곳곳에 불씨가 남아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고 있다. 산림청은 드론을 동원해 밤 사이 산중에 불이 다시 살아날 가능성에 대비할 방침이다. 이날 설 명절을 맞아 전남 담양 고향을 방문했던 김재현 산림청장도 화재 현장을 찾아 가용 가능한 장비를 모두 동원해 산불을 조기에 진화하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성묘 중 켜놓은 촛불이 넘어져 잔디에 불이 붙었다”는 최초 신고자의 진술을 토대로 정확한 화재 원인과 피해 면적 등을 조사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의정부 제일시장 큰 불···의정부역 시민들도 놀라

    의정부 제일시장 큰 불···의정부역 시민들도 놀라

    23일 오후 4시쯤 경기도 의정부시 제일시장에서 불이 나 약 1시간 만에 큰 불길이 잡혔다.불은 시장 상가에 입점한 의류점과 식당 등 점포 11개를 태웠으며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소방당국은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장비 23대와 인력 140명을 동원해 진화작업을 벌였다. 점포들이 밀집해 있는데다 이날 바람도 강하게 불면서 불길이 크게 확산할 우려가 있어 소방당국이 한때 긴장했다. 이 불로 인해 일대에 검은 연기가 자욱하게 퍼지면서 지하철 의정부역 등과 연결된 도로를 지나던 시민들이 놀라기도 했다. 소방당국은 잔불을 정리하는 한편 화재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한편 의정부 제일시장은 1978년 설립돼 점포 수가 약 600곳으로, 경기북부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전통시장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양양 산불 1.2ha 태우고 9시간 만에 큰 불 잡혀

    양양 산불 1.2ha 태우고 9시간 만에 큰 불 잡혀

    강원 양양에서 건조특보 속에 발생한 산불이 9시간 만에 큰 불길이 잡혔다.강원도와 양양군은 15일 오전 5시 30분쯤 양양읍 화일리 산불의 잔불 정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14일 오후 7시 53분쯤 발생한 이 불로 인해 산림 1.2ha가 소실된 것으로 양양군은 추산했다. 900여명 소방대원과 진화대원, 공무원들은 밤샘 진화작업을 벌였지만 야간인 데다 산세가 험해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불길은 한때 산 정상을 넘어 서풍을 타고 동쪽으로 번져 주변 영혈사 스님과 신도 등 30여명이 대피하기도 했다. 이 불은 주택에서 발생해 인근 산으로 번진 것으로 소방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양양군 관계자는 “큰 불길은 잡은 상태로, 피해 범위가 약 1.2ha에 걸쳐 넓은 탓에 잔불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한편, 양양을 비롯해 동해안 6개 시·군 평지에는 건조 특보가 발효 중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불붙은 깃털 모자 쓴 여성 모델의 아찔한 순간

    불붙은 깃털 모자 쓴 여성 모델의 아찔한 순간

    이집트 테마 패션쇼에서 발생한 아찔한 순간을 지난 11일(현지시각) 영국 매체 데일리 메일이 소개했다. 영상을 보면 거대한 흰색 깃털 모자를 쓰고 금색의 화려한 스카트를 입은 여성모델 한 명이 무대 뒤쪽 중앙에서 관객 쪽으로 워킹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무대 양 옆에서 횃불을 들고 서 있는 한 남성 곁을 지나는 순간, 여성의 깃털 모자에 불꽃이 옮겨 붙습니다. 불길은 순식간에 모자 전체로 퍼집니다. 매우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이라 여성 모델은 그 상황을 바로 알아 차리지 못했지만, 영상에서 들리는 관중들의 비명 소리로 곧 상황을 인지하게 됩니다. 무대 위 이벤트 해설자도 불타는 깃털에 대응하기 위해 그녀 쪽으로 뛰어 나왔지만 손을 쓸 수가 없는 모습입니다. 절대절명의 순간, 관중으로 추정되는 한 사람이 무대 위로 뛰어 올라 활활 타오르는 깃털 모자를 손으로 끄면서 모델로부터 떼어내려 합니다. 이 사람의 도움으로 불길은 완전히 소멸 됐지만, 타버린 모자는 여전히 그녀 머리에 있습니다. 이후 여자 모델은 무대 뒤쪽으로 가서 잔불이 남아 있을 수 있는 모자를 완전히 벗어 버립니다. 이집트를 주제로 한 화려한 패션 무대는 비록 아수라장이 되었지만 용감한 관중 한 명의 신속한 도움이 없었다면 여자모델은 큰 화상을 입었을 것입니다. 이 영상을 본 누리꾼들은 ‘정말 끔찍한 순간이다’, ‘그 용감무쌍한 관중은 여자 모델의 생명의 은인이다’ 는 등 여러 댓글을 남겼다.사진·영상=DON !K/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속보] 홍대 화재 “서교동사거리 인근 공사장서 불”

    [속보] 홍대 화재 “서교동사거리 인근 공사장서 불”

    3일 오후 3시 10분 서울 마포구 서교동사거리 인근 공사장에서 불이 났다. 소방 관계자는 “현재 큰 불길은 잡아 잔불을 제거하는 중이며 인명피해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화재로 연기가 크게 나면서 현장 일대에선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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